2024/08/27

신디 위글즈워스의 《SQ 21: 온전한 삶을 위한 21 영성지능기술》 : 네이버 블로그

신디 위글즈워스의 《SQ 21: 온전한 삶을 위한 21 영성지능기술》 : 네이버 블로그

==
신디 위글즈워스의 《SQ 21: 온전한 삶을 위한 21 영성지능기술》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8-07-01 00:40
신디 위글즈워스(Cindy Wigglesworth) 
역자: 도승자 
출판사: 신정(2015)
차례
1부 영성지능이란 무엇인가
 1장 온전히 인간다워지기
 2장 지능에 대한 이해
 3장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하기

2부 4상한과 21 기술들
 4장 너 자신을 알라(기술 1~5)
 5장 세상을 알라(기술 6~11)
 6장 자기 숙련성(기술 12~16)
 7장 사회적 숙련성과 영성적 현존(기술 17~21)

3부 영성지능 개발하기
 8장 영성 역기운동
 9장 높은 자아로의 전환을 위한 9단계 수련
 10장 일상생활에서의 SQ
 11장 SQ 개발을 지지하기 위한 세 가지 핵심 연습법
 12장 깊이 있는 심층 변화와 무한한 영향력
■ 저자 소개 및 책의 특징

저자 신디 위글즈워스는 세계 최대 정유회사인 엑슨(Exxon)에서 20여 년 동안 인력개발부서에서 근
무했던 여성이다. 그러다가 위글스워스는 어느 날 문득 영성지능을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엑슨을 그만두고 영성지능 기술을 개발해 현장에 응용하는 비
즈니스를 수행하는 기업을 설립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녀의 이런 결단과 노력의 산물이다.
저자는 종교학자도, 심리학자도, 철학자도 아니다. 기업에서 인력개발 업무를 담당했던 실무자로서
저자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성과, 팀의 성과, 나아가 기업의 성
과를 결정하는 데 인간의 영성적 측면이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런 측면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나 지표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
기에 이 분야에 뭔가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백지 상태에서 이 작업에 착수한 것은 아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술이부
작(述而不作)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저자는 특히 대니얼 골만(Daniel Goleman)과 리차드 보얏지스
(Richard Boyatzis)가 개발한 감성지능(EQ) 모델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통
합심리학의 대가 켄 윌버(Ken Wilber)가 제시한 통합 비전(Integral Vision) 모델의 방법론을 상당 부
분 차용(借用)한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인본주의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Maslow) 의 욕구단계설도 저자가 논의를 전개하는 데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저자가 언급하지는 않았
으나, 필자 생각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Jung)이 제시한 의식의 중심으로서 자아(sel
f) 또는 에고(ego)와 전체정신의 중심으로서 자기(Self) 개념도 저자의 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
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에고는 융이 말하는 자아(소문자 self)에 해당되고, 높은 자아는 융이 말
하는 자기(대문자 Self)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나아가 영성지능을 계발한다는 저자의 생각은 융이
말한 전체정신을 구현함으로써 자기를 발견해 가는 과정인 개성화(Individuation)와 유사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
의 욕구단계설도 저자가 논의를 전개하는 데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저자가 언급하지는 않았
으나, 필자 생각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Jung)이 제시한 의식의 중심으로서 자아(sel
f) 또는 에고(ego)와 전체정신의 중심으로서 자기(Self) 개념도 저자의 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
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에고는 융이 말하는 자아(소문자 self)에 해당되고, 높은 자아는 융이 말
하는 자기(대문자 Self)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나아가 영성지능을 계발한다는 저자의 생각은 융이
말한 전체정신을 구현함으로써 자기를 발견해 가는 과정인 개성화(Individuation)와 유사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저자 또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을 수 있기에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이고,이런 책을 출
판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영성과 관련해 새로운 이론 모델이나 수행 방법을 제공하려는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구체적으로 이 21가지 영성
기술 모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결과 주어진 것이다.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라는 질문이다.”(15쪽) 저자는 사람들에게 모호하고 신비로우며, 때로는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영성 분야에서 구체적인 측정과 평가가 가능한 매뉴얼을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
에서 이 책을 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이 분야에서 매우 창조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저자 표
현대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하려고 한 것이다.
이 책은 모두 3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 지능의 의의를 살펴본
후 범위를 좁혀 영성지능의 의의를 논한다, 그리고 다른 지능과 영성지능 간의 관계를 살펴본다. 따
라서 1부는 저자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영성지능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이론적 기초에 해당한다. 2 부에서는 이 책의 핵심 내용인 영성지능을 4상한(quadrant)으로 분류하고 각 상한에 포함된 기술들
의 핵심 내용을 소개한다. 저자는 모두 21개의 기술들을 소개하면서 각 기술이 영성지능을 높이는
데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는지 소상히 설명한다.
3부에서는 21가지 영성지능을 계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실천적인 수련 방법과 이에 적합한 연습법
을 소개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3부가 가장 주목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할 수 있다. 저자는 여
기서 9단계 수련을 제안한 후 복잡한 일상생활을 고려해 다시 4단계로 축소해 이를 S-O-U-L로 표현
한 것은 재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상징적이기도 하다. S는 Stop으로서 지금까지 습관을 중단하라는
의미다. O는 Observe로서 자신과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관찰하라는 의미다. U는 자신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이해하라는 의미다. L은 Love로서 항상 지혜롭고
자비심을 갖고 행동하라는 의미다. 이것만으로도 저자가 영성지능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
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사족을 달자면 “상한”은 수학 용어로서 평면을 4등분 한 다음 상단 오른쪽이 1상한, 왼
쪽이 2상한, 하단 왼쪽이 3상한, 오른쪽이 4상한이다. 그런데 골만과 보얏지스의 EQ 모델이나 저자
의 SQ 모델은 모두 상단 왼쪽이 1상한, 오른쪽이 2상한으로 수학의 기준과는 반대다. 반면 3상한
과 4상한은 수학의 기준과 같다. 필자는 이들이 이런 기준을 선택한 것이 수학의 기준을 몰랐기 때문
무중력ㆍ수평시대
8/27/24, 10:12 PM 신디 위글즈워스의 《SQ 21: 온전한 삶을 위한 21 영성지능기술》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aebeole/221311306427# 1/6
이 아니길 바란다. 만약 몰랐다면 이것은 다른 학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은 셈이다.
이 책은 영성에 관한 이론적·종교적 안내서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에고(ego) 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더 큰 자아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기술과 이것을 실천하는 수련법을 소개한 책이다. 필자가 아는 한 이런 방식으로 영성지능 기술을
다룬 책으로서는 가장 탁월한 책이다. 저자는 풍부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서 어려운 주제를 매우 일상적인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도승자 교수의 번역 또한 매
끄러워서 이 분야에 특별한 소양이 없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 영성과 영성지능
이성(reason)과 감성(emotion)에 비해 영성(spirituality)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
다. 필자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바탕으로 영성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삶은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들 수 있다. 그가 남긴 많은 명
언과 에세이를 보면 위대한 물리학자로서의 이성적인 측면, 유머가 넘치며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감
성적인 측면, 그리고 우주의 신비에 대한 외경(畏敬)을 잃지 않았던 영성적 측면을 감지할 수 있
다. 그의 위대함은 상대성원리를 발견해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조화로운 삶의 전형(典型)을 보여주었다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도 같은
맥락에서 영성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성은 영혼(soul) 또는 더 높은 차원인 영(spirit)과 연관된 속성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성이라는 표현에 다소 거부감을 갖는다. 특
히 과학적 물질주의와 진화론을 철저히 신봉하는 과학자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
게 영혼은 유한한 삶에 불멸성(immortality)을 부여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창작물 정도로 여기므
로 영성은 모호한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영성은 영혼을 전제해야만 성립하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영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성이란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무엇, 신성함 혹
은 탁월한 고귀함이라고 여겨지는 무엇인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 본래의 타고난 욕구이다. 이 정
의는 인간은 자신의 미성숙한 에고나 사소한 욕구보다 더 큰 무엇인가와 연결되고자 한다는 것을 의
미한다.이러한 연결되고자 하는 내재적인 욕구는 특정 신앙이나 전통을 초월하는 것이다.”(44쪽) 필
자는 영성에 대한 저자의 정의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영성은 반드시 영혼의 존재
를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성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
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가 “자신보다 더 큰 무엇,신성함 혹은 탁월한 고귀함”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
는 다소 모호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말한 내용이 참고
가 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Cosmic Religion》이라는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것
을 우주적 종교심이라 부를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쉽
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의인화된 신의 개념이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인간의 욕망과 목적의 헛됨을 느끼며 또한 자연과 사색의 세계를 통해 드러나는 고결함과 놀라운 질
서를 느낀다. 그런 사람은 인간의 운명을 하나의 구속으로 느끼며, 또한 의미로 충만한 통합으로서
존재의 전체성을 경험하고자 한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우주적 종교심을 보여주는 유명한 사례로는 아폴로 14호를 타고 달 착륙을 시도
한 후 지구로 귀환하던 우주인 에드가 미첼(Edgar Mitchell)의 체험을 들 수 있다. 미첼은 지구 밖에
서 처음 푸른 행성 지구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우주의 모든 것들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
백했다. 이런 체험은 특별히 영혼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미첼이 처했던 상황에서는 누구에게도 가능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성은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아인슈타인의 말
이나 미첼의 체험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우리는 우주라는 커다란 스케일에서 보면 그야말
로 흔적도 없는 미미한 존재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어떻게 해서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적합하게 미세 조정된 우주(fine-tuned universe)에서 살게 되었는지 여전히 아는 것이 없다. 우리는
무지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일 뿐이다. 이런 진실을 인정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영성을 인정하
는 셈이다.
그렇다면 영성지능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성지능은 영성이나 종교
와는 모두 구별되는 것으로서, 오랜 시간을 걸친 연마를 통해 계발해 나가는 일련의 기술이다.”(18 쪽)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성지능은 영성 자체와는 달리 훈련을 통해 연마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
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저자는 구체적으로 21가지 기술을 제안한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다음과 같
이 말한다. “영성지능은 종교적 믿음이나 전통 내에서, 아니면 그와 독립적으로 개발될 수 있다. 여
기서 주목해야 할 핵심 요지는 그것은 개발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영성지능이란 무
엇인가? 많은 숙고 끝에 내가 내린 정의는 주어진 상황에 관계없이 내적으로, 외적으로 평온을 유지
할 수 있고, 지혜와 자비심(compassion)을 갖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45쪽) 따라서 영성
은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며 영성지능은 이런 영성
==
은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며 영성지능은 이런 영성을 훈련을 통해 계발하도록 하는 기술을 의미한
다. 영성지능은 영성지능 기술인 것이다.
인간의 지능은 다양한 관점에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같이 지능이
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복합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지능을 달리 정의해왔다. 이 책에서 저자
는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가 “지능이란 적어도 하나의 문화권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하거
나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 데 요구되는 정보를 처리하는 생체심리학적
인 잠재력이다”라고 정의한 것을 받아들인다. 이것을 포함해 지능에 대한 여러 정의에 공통된 요소
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이런 요소는 인공지능(AI)에도 적용된다는 점에서
지능의 가장 일반적인 속성을 나타낸다. 이런 지능은 다양한 관점에서 분류할 수 있으나 대체로 신
체지능(PQ), 인지지능(IQ), 감성지능(EQ), 영성지능(SQ)의 네 가지로 분류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필자가 이 점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다른 지능과 영성지능과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검토하기
위해서이다. 저자는 다른 지능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영성지능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는 점을 강조하면서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처럼 지능도 PQ → IQ → EQ → S Q의 단계로 발전하는 것처럼 말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에 대한 비판과 동일
한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육체적으로 강건하지 못해 PQ면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SQ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지체장애자로서 높은 영적 수준을 보
여준 사례는 넘쳐난다. 필자는 지능의 발달은 저자가 생각한 것처럼 선형적(linear)인 단계보다는 비
선형적(non-linear)인 단계를 거쳐 발전하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매슬로우가
말한 욕구의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self- actualization)을 위해서는 영성지능을 계발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단지 과정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정의한 영성지능에서 핵심 요소는 “평온을 유지하는 가운데 지혜와 자비심(compassion)을
갖고 행동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배가시킬 수만 있다면 영성지능면에서 뛰어난 점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제시한 21가지 기술은 모두 이 능력을 함양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저서 『영원의
철학』에서 했던 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헉슬리는 “최고의 사랑”의 표현으로서 “charity”를 강조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대 영어의 ‘charity’는 ‘자선’과 유사한 용어가 되어 최고이자 가장 신
성한 형태의 사랑을 뜻하는 원래 의미로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심리학적이고 영적인 표현으로
그것을 사용하기에 적절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이렇게 ‘charity’라는 용어를 빈곤화함으로써 ‘love’ 라
는 단어는 그 짐이 더 무거워졌다. 우리는 말로만 그럴듯하게 ‘신은 사랑이다’, ‘이웃을 네 몸같이 사
랑하라’라고 반복한다.“ 이 말은 charity의 본래의 의미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영원의 철학이 추구하
는 영성적인 삶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헉슬리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언어가 모호하면 사고가 혼란스러워진다. 이런 사랑의
문제에 있어 사고의 혼란은 놀랍게도 신을 믿지 않는 분열된 인간본성, 양쪽 세계에 나름대로 최선
을 다하려 결심한 인간본성이 추구하는 목적을 위해 종사한다. 신에게 봉사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돈, 술, 여자에게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남용 및 오용되고 있는
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헉슬리는 바로 이런 위선을 지적했던 것이다. 모
두가 사랑을 말하면서 사실은 정반대로 행동하는 모순을 만들어낸다. 저자가 말한 지혜와 자비심의
경우에도 헉슬 리의 경고가 그대로 적용된다. 또한 사랑이라는 표현의 모호함과 같이 지혜 자비심에
3 0 무중력ㆍ수평시대

담겨 있는 모호함 또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영성지능 기술 21가지를 제시함으
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 두 개의 자아와 영성지능의 계발
저자가 추구하는 “영성지능의 계발”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두 개의 자아, 즉 낮은 자아와 높은 자
아의 역할을 바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낮은 자아는 우리가 에고(ego)라고 부르는 욕망과 감
정에 휘둘리는 나약한 자신이다. 반면 높은 자아는 저자가 말한 지혜와 자비심을 바탕으로 뭔가 자
신보다 크고 신성한 것과 연결되려고 하는 내면의 주체다. 칼 융이 말한 전체정신의 중심으로서의
자기(Self)는 높은 자아와 유사해 보인다,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 사상가 다석(多夕) 유영모 선생이 말
한 “몸나”는 에고, “얼나”는 높은 자아와 다름이 없다. 이와 같이 인간에게는 대립하는 두 개의 자아
가 있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된 점이다. 문제는 이 둘 가운데 누구 주도권을 쥐도록 하는
가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자아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을 효시로 정신분
석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인간의 정신세계를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하고 이들 간의 관계를 통해 이
성, 감성 및 영성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려는 시도 또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저자는 이
보다 더 중요한 사항을 지적한다. 저자는 자신을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으로 생각해보라고 충고하
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을 명사형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우
리는 우리 자신을 정적인 용어로 표현한다.......이제 당신의 자아를 하나의 동사형으로 생각하여 당
신을 역동적인 용어로 지칭해 보라. 그렇게 하는 것이 정체성과 가능성에 대해 당신이 지닌 감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살펴보라.”(51쪽)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와 관련해 생각나는 것은 미국 UCLA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인 대니얼 시겔(Daniel Siegel)이 저
서 『마음을 여는 기술』에서 “인간의 마음은 에너지와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관계적이며 구체적인
과정이다”라고 정의하였는데, 이는 몸과 달리 마음을 하나의 역동적인 과정, 즉 동사로 파악한 것이
었다. 시겔은 마음에 대한 이런 조작적 정의를 바탕으로 “마인드사이트(mindsight)기술”을 연마하자
고 제안했다. 마인드사이트는 “마음의 시야” 또는 “마음 바라보기”라 할 수 있다. 즉, 마치 렌즈를 이
용해 사물을 더 자세히 살펴보듯이 자기 자신의 마음,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더 상세히 살펴
봄으로써 개인적인 웰빙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웰빙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시겔의
제안은 저자의 제안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마음, 의식 나아가 정신세계는 동사로 파악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속성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작용에 해당하는 영성지능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이와 관련
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말한다. “영성지능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게로 귀결된
다.당신의 삶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이는 누구인가? 보다 고요하고, 지혜로운 ‘높은 차원의 자아’에
게 주도권이 있는가, 아니면 미성숙하고 짧은 안목을 지닌 에고 그리고 아니면 다른 이들이 가진 믿
음과 이상이 당신의 삶을 내몰고 있는가?”(52쪽) 결론적으로 말해 높은 자아가 운전석에 앉도록 하
는 것이 영성지능 계발의 목적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는 에고를 더욱 성숙시켜서, 운전자 자리에서 승객의 자리로 부드럽게 옮겨 앉
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성지능 기술 21가지를 제안한 것이리라. 저자 말대로 지
혜와 자비심에 입각해 평정심을 유지하는 가운데 선택과 행동을 주도하는 주체는 당연히 높은 자아
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모든 결정을 높은 자아에게 맡길 수 있는가? 이는 진정 깨달음
의 경지에 도달한 후 이를 유지하는 현자(賢者)의 경우에만 가능한 것 아닌가? 높은 자아에게 맡겨
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쑥불쑥 에고가 등장해 일을 망치는 것을 피할 수 있겠는가? 웬만큼 수련
을 하고 영성지능을 계발해도 이런 실수를 피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최대
한 높은 자아의 인도를 받는 것이지, 아예 운전석을 맡기는 것은 어렵지 않겠는가? 이것이 필자의 솔
직한 생각이다.
이런 면에서 두 개의 자아를 놓고 양자택일적인 상황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
한다. 그런데 저자가 표현은 그렇게 했으나 실제로 양자택일을 강요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
라고 본다. 단지 높은 자아가 주도권을 쥔다는 것이 영성지능이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는 것을 상
징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럼에도 이런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마치 선과 악의 이분법처럼 영성지능 기술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열등하거
나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보완할 필요가 있다.
■ 영성지능 기술 연마의 핵심 메시지
이 책에서 저자의 창의적인 생각이 가장 많이 반영된 것은 저자가 고안한 21가지 영성지능 기술에
관한 부분이다. 저자는 골만과 보얏지스가 감성지능과 관련해 “4상한, 18가지 기술”을 제안한 것에
대비해 “4상한, 21가지 기술”을 제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성지능 기술들은 4상한의 틀 속
에 각각 넣을 수 있고 그런 면에서 골만과 보얏지스가 말하는 감성지능 기술보다 “한 단계”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가설이었다.“(90쪽)여기서도 저자는 영성지능은 감성지능 보다 한 단계 높은 지능
이라면서 선형적인 위계구조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필자는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든
저자의 생각에도 일리는 있다고 본다.
저자는 21가지 기술을 4개의 범주로 분류한 후 각각 1상한, 2상한, 3상한 및 4상한으로 명명한 후 각
상한에 속하는 기술들의 의미를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4장부터 7장까지가 이
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도 점차 높은 수준의 기술로 발전한다는 선형적 위계구조가 전
제되어 있다.
우선 저자는 1상한에 속하는 기술 1부터 기술 5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1상한에 속하는 기술
들은 한 마디로 자신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술들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대아(大我)와 소아(小我)에 대한 인식

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에고라고 칭하는 당신의 한 부분으로부터 높은 자아라고 불리는 또 다른 자
신의 부분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영성지능에서 매우 핵심적이다. 그래서 영성지능 4상한의 첫 번째
상한은우리 자신을 깊이 아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104쪽) 이와 같이 1상한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
찰로부터 출발한다. 자신의 세계관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출발
점이다.
2상한은 기술 6부터 기술 11을 포함하는 데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세상과 연
결의식을 갖도록 하는 다음과 같은 기술들이 포함되어 있다.

2상한의 기술들은 자신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타인의 세계관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연
결되어 있다는 의식을 함양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사실 2상한에 속한 기술들은 대부분 최근 과학을
통해 확인된 내용에 근거를 두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학과 영성(science and spirituality)의
조화를 추구하는 활발한 움직임은 모두 이런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때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
이 굴드(Stephen Jay Gould)가 제안한 노마(NOMA, Non-Overlapping Magisteria), 즉 “중복되지 않
는 교도권”이라는, 과학과 종교는 서로 분리되어 있으면서 독자적인 기반을 갖고 활동하면 된다는
주장이 널리 수용되었지만 이제는 아닌 것 같다. 과학은 영성 나아가 종교와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
는 가운데 상호 보완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때가 온 것 같다. 저자가 제안한 2상한의 기술들은
이런 의미에서 과학과 종교 간의 간극을 좁히는 실천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3상한에 속하는 기술 12부터 기술 16까지는1, 2상한의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을 단련시키는 것을 목
표로 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상한은 SQ21 모델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인
식 다음에 오도록 배치되었다.......자기 인식에 대한 상한에서 우리는 자기 내면의 에고와 높은 자아
를 구별하는 것을 배우는 것과 개인적인 사명과 가치를 명료하게 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었다. 이 상
한은 이들 기술을 토대로 하여, 어떻게 하면 운전석에 있는 에고를 몰아내어 높은 자아가 통제권을
발휘할 것인지에 대해 가르쳐
==
으로서 다음과 같다.



이 표에서 알 수 있듯이 3상한에 속한 기술들은 운전석에서 에고를 밀어내고 높은 자아가 앉도록 하
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3상한은 실천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숙련성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어진다. 이와 관련된 저자의 생각은 다음에 잘 드러나 있다. “SQ는 특정
믿음체계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자주 말하는 대로 그것은 믿음 중립적이고 신앙 친화적이다. 이
것은 당신이 어떤 종교적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당신에게
높은 차원의 힘이란 우주의 생명력, 양자장(quantum field), 혹은 심지어 당신 내면의 높은 자아일 수
도 있다. 반면에 당신에게 어떤 종교적이거나 영성적인 믿음이 있다면 그런 믿음은 기술15의 계발과
온전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당신에게 높은 차원의 힘은 신, 성령(Spirit), 본래의 근원(Source), 혹은
조물주(Creator)가 될 수 있다.”(178쪽)



4상한에 속한 기술 17부터 기술 21까지는 개인적 숙련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숙련성을 습득하고 나
아가 영성적 느낌의 드러남을 체험하는 데 기여하도록 설계되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술들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4상한에 속하는 기술들은 개인의 영적 성장을 바탕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긍정
적 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도약하도록 돕도록 설계되었다. 따라서 여기 포함된 기술들은
연마해 하나하나 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소요될 것이다. 그런데 저자
가 마지막 기술인 21번째 기술을 이와 같이 설정한 것이 다소 의외지만 나름 숙고의 결과인 듯하
다. 저자는 도교(道敎)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
다. “이 기술의 최상위 단계는 영원한 현재의 순간을 즐기며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삶에서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는지는 힘들이지 않고 춤을 추는 일이 된다. 영성적인 지성이 이 수
준에서 꽃피우게 되면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존재라기보다, 우주가 당신을 통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되고 그것이 바로 기쁨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춤이다.”(210쪽) 이 대목에서 저자는 다분히 감상
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무위(無爲)를 근간으로 하는 도교의 정신이 영성지능의 최고 수준에 해당한
다고 보는 것 같다. 저자는 동양과 서양의 통합을 시도했던 것일까?
■ 영성지능 숙련 매뉴얼로서의 가치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하려고 시도한 데 있다. 물론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각 개인의 “영성 수준”이다. 저자는 오랜 직장 경험을 통해 조직 내에서 종교적 사안에 대해 언급하
는 것이 얼마나 미묘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영성 관련된 의미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방치되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피해는 순전히 영적으로 목마르면서도 앎이 부족
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이비 종교와 교주들로 인해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부작용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다음에 잘 나타나있다. “많은 사람들이 강
력한 계시를 경험하지만 여전히 정직성, 배려심, 그리고 다른 이들에 대한 자비심이 결여된 방식으
로 행동한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대중적 인기를 누린 영적 스승들 중 몇몇 사람들이 남긴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이 점을 알 수 있다.”(217쪽)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 책과 같이 구체
적인 영성지능 기술을 계발할 수 있는 매뉴얼의 가치는 매우 높다.
사실 저자가 지적한 부작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올더스 헉슬리는 『영원의 철학』에서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했다. “고행을 하지만 여전히 자만심에 차있고 자기중심적인 금욕
주의자와 고행하지 않는 쾌락주의자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후자는 칠칠치 못하고 야심이 없으
며, 마음속으로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서, 자신의 몸·마음·영 외에는 많은 해를 끼칠 에너지와 동기
가 부족하다. 전자는 모든 부수적인 미덕을 갖추고 자신과 같지 않은 사람들을 업신여기기 때문
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매우 큰 규모로 해를 끼치려고 마음먹을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도덕적인 준비가 되어 있다.”이것은 매우 신랄한 비판이다.일부 수행을 잘못한 성직자들은 우
월감에 빠져 일반인들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극복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성직자들 가운
데 이런 부류의 인간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저자는 이런 이유에서도 영성지능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3부에서
는 몸의 근육과 마찬가지로 영성근육을 단련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것은 에고에서 높
은 자아로의 전환을 위해 절실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을 영성 역기운동이라고 표현하면서 영성
지능 계발은 단지 내면적인 의식의 변화에 그쳐서는 안 되고 반드시 행동으로 표출되어야 한다는 점
을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지행합일(知行合一)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영성근육을 강화
시키기 위한 9단계 수련법을 제시하고 바쁜 일상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것을 단순화한 4단
계 버전으로 S-O-U-L을 제안한다. 그리고는 다시 또 다른 관점에서 세 가지 연습방법을 제안한
다. 솔직히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저자가 중복해서 이런 주장을 펼치는 이유에 의문이 갔다.

이 책에서 제시한 21가지 기술들 하나하나는 연마하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향상 정도를 측정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답변자의 주관적인 대답이 유일한 기준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이에 대한 보완
책을 기대했던 필자에게는 이런 중복된 해설이 오히려 거북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저자의 진정성
은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 모두 자신이 제안한 기술들을 연마해 높은 자아의 인도를 받는 좋은
삶,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바라는 마음에서 21가지 기술을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다음에 잘 드러나 있다. “자신의 PQ, IO, EQ의 계발과 함께 SQ를 계발하는 작업을 하면서 보다 온전
하게 인간다워지고자 하는 개개인이 이루는 집단적 행위들은 그들 자신에게 엄청난 가치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구라 부르는 이 소중한 푸른 행성에 무한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우리 모두
끊임없이 진화해 나가는 기적적인 전체의 일부분인 것이다. 나는 SQ가 절정에 있는 지능으로서 다
른 유형의 지능이 발휘하는 기능을 증폭시키고 인도해 준다고 믿는다.”(315쪽) 이 책은 우리가 왜 영
성지능을 계발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려준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일독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