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8

[김조년] 좋게 경쟁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좋게 경쟁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좋게 경쟁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1.05.17
--

[금강일보] 또 한 번 대전체육고등학교 학생들 몇 명을 만났다. 이번에는 저번보다 답하기 더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 ‘운동선수들인 저희들은 늘 경쟁하는데, 그러다가 서로 미워할 수도 있고, 상처받고 힘들기도 합니다. 경쟁을 좋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경쟁의 끝은 곧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경쟁은 삶을 매우 피폐시키고, 불안과 공포 속에서 일상생활을 하게 한다는 것을 다 안다. 경쟁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지 즐겨서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도 다 안다.

결국 경쟁이란 이기는 자나 지는 자 모두를 만족스럽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도 다 안다. 그렇게 경쟁하는 동안 인간의 아주 훌륭한 덕목을 무수히 많이 잃고 메마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것도 다 안다. 어느 항목의 경쟁에서 이겼다고 하여 늘 그런 승리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다 안다. 그런데 경쟁할 수밖에 없는, 다시 말하면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강제상황에 처하여 있음을 인식할 때 슬프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질문은 운동선수 활동을 하는 고등학생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냉혹한 현실에 대한 비판의 외침이다.

나는 그렇게 질문한 그 학생이 얼마나 많이 경쟁에서 만족하였고, 또 쓰라린 아픔을 경험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이 일단 경기장에 투입되는 순간 물리치고 눌러야 할 적으로 돌변하는 현상을 항상 가슴 아파하였다는 것을 그 질문을 통하여 금방 알 수 있었다. 단순한 질문이지만, 인류의 역사를 통째로 바꾸지 않으면 대답할 수 없는 핵심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일생동안 우리가, 전체 인류가 생각하고 고민하여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돌려버렸다. 그러나 그 질문은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나는 물론 경쟁사회를 무척 싫어한다. 이제까지 나는 치열하게 경쟁해서 이겨본 적이 없다. 그럴 맘이 없어서 경쟁을 피했는지, 경쟁에서 이길 수 없으니 경쟁체계로 들어가지 않았는지 모른다. 운동회 할 때 100m 달리기에서 3등까지 주는 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도 그만큼 똑같이 달렸는데, 그 등수 안에 들지 못한다고 아무 상도 주지 않는 것에 대하여는 언제나 불만이 많았다. 물론 공부를 잘하는 사람에게 우등상이나 어떤 상을 주는 것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잘하는 것 그 자체로 이미 자신은 만족한 삶을 사는 것인데 왜 또 상을 주어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으로 또 진학할 때 이득을 보는 수도 있는데, 그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잘하면 잘한 것이지, 그것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칭찬받는 상을 받아 좋아하고, 박수를 받아야 할 이유를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나는 경쟁체제를 싫어한다. 물론 학교에 간다거나 어떤 시험을 볼 때는 어느 정도의 경쟁에서 약간 우위에 있어서 합격한 적도 있지만 이른바 치열한 경쟁을 하여 이겨서 만족스러워한 적은 별로 없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 경쟁을 피해도 되는 삶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삶의 여정이나 상황에서는 막연히 경쟁은 좋지 않고 사람들을 깊은 부담과 상처 속에서 살게 한다고 느껴 그런 경쟁체제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삶을 위하여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경쟁체제 속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경쟁스트레스와 경쟁트라우마의 깊음을 나는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하나밖에 없는 메달이나 자리를 놓고 다툴 때, 그것을 획득하느냐 못하느냐는 것이 그의 삶의 진로를 결정하는 하나의 길이라고 배우고 느끼고 알고 있는 제도 속에서 아름다운 경쟁을 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경쟁 속에서는 아름다움은 나오지 않는다고 본다. 물론 경쟁에 이기기 위하여 놀라운 기술이 개발되고 능력이 발휘되어 그것을 성취한 당사자와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경쟁하여 이기고 진다는 그 과정은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단 말이다.

사실 나는 올림픽의 구호라고 하는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라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0.01초 더 빨리 달렸다고 하여, 1㎝ 더 높이 솟고, 더 멀리 뛰었다고 하여, 그나 그것을 심판하고 보는 사람들에게나 또는 인류에 더 질높은 삶을 보장하여 주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것을 알지만, 그런 질문을 한 학생도 다 알겠지만, 그 앞에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는 노자의 말을 할 수도 없고, 좀 다른 위치에서 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는 무수히 많은 장자의 이야기로 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경쟁체제가 있는 한, 그 속에 몸을 담고 있는 한 경쟁하지 않을 수 없고, 경쟁하되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거나 아픔을 주지 않고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하고 고뇌를 말하는 그에게 만족스런 답을 우리 사회는 주어야 할 것이다. 그 길은 하나밖에 없다. 경쟁체제 자체를 없애는 길이다.

왜,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경쟁은 어느 누구에게도 질높은 삶을 보장하여 주지 않는다. 경쟁체제는 그 속에 들어간 사람들을 놀리는 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와 학교, 지역과 지역,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를 경쟁시키는 자체도 옳지 않다. 스포츠라는 이름의 정치행위로 사람들을 몰아가는 경쟁놀이도 옳지 않다. 그래서 너무 일찍 경쟁체제에 몰입하게 하는, 경쟁을 통하여 진학하는 입시제도를 없애야 한다. 자유롭게 입학하되, 여러 가지를 경험하여 자기에게 맞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경쟁을 통한 선발은 가장 낮은 수준의 선발방법이라고 본다. 좀 더 즐길 수 있는 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길을 개척하는 길로 방향이 바뀌면 좋겠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