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1

希修 ‘초보자를 위한 불교명상 설명' plus others

希修


‘초보자를 위한 불교명상 설명'
'불교명상에서 호흡과 지혜의 관계'
'명상 이전에 View, Virtue, Generosity부터 다져야 하는 이유'
‘신비체험, 초월적 경험, 신통력은 의식수준과 무관'
’선정, Perception, 상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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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보자를 위한 불교명상 설명'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239011879804226
< 초보자를 위한 불교명상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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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흡과 몸을 관찰하면서 긴장을 이완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모든 명상 초보자들에게 말하는데, 그 이유들 중 하나는 호흡이나 몸의 감각은 언제나 'here and now'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게 현재가 과거나 미래보다 더 중요하다는 얘기인 것은 아니고, 매순간의 행복 극대화를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나의 업이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의 행동 (생각, 감정, 말 포함)일 뿐이기 때문. 명상의 '목적'은 carpe diem이나 소확행이 아니다. (부수적인 '효과'는 될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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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식당에 가면 아기들에게 간식이나 장난감을 쥐어 주어야 떼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뇌는 일종의 ADHD를 갖고 있기에 호흡관찰이라는 일거리라도 주어 집중하게 해야 한 자리에 앉아 있는다. 그러나 호흡관찰은 세상사에 대한 분석만큼 복잡하진 않기에 그 과정에서 마음이 조금씩 안정된다. 즉, 잡념을 우선 가라앉혀야 마음속의 탐진치가 보일 것이기에 잡념을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우선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지 무슨 기공류의 건강법이나 양생술이 절대 아니다. (불교에서 몸의 의의는 오직 수행의 도구가 된다는 것일 뿐, 부처님은 육체적 건강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Mindfulness를 무슨 명상기법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도 매우 좁은 시각이며 얕은 이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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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호흡/몸에 대한 자각이 예민해지면, 심리변화가 생길 때 몸에서 나타나는 신호를 통해 마음 상태 역시 이해하고 다스릴 수 있게 된다. 감정적으로 동요되어 있을 때 자신의 감정상태를 정확히 분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호흡/몸의 상태를 단서로 삼는 것. 이처럼 물리적인 현상을 읽어 내는 연습을 함으로써 정신적인 현상을 읽어 내는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으며, 이런 식으로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진치의 상카라(saṅkhāra)를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된다. 상카라의 마스터와 탐진치 제거가 명상의 목적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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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호흡과 몸에 집중하려 해도 매초마다 계속 무수한 잡념이 일어나는데, 이 잡념을 알아차리고 끊어 내는 능력 자체가 수행에 있어 핵심적인 기술이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도 인지 못 하는데, 잡념이 일어났을 때 '잡념이 일어났구나' 알아차리는 일은 자각, 자기객관화, 정직한 인정의 훈련이 된다. 대개는 잡념이 일어나 distract 되는 순간과 distract 되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사이에 수 초에서 수 분의 시차가 발생하며, 이 시차를 제로로 줄이는 것이 명상 초보자의 목표다. Distraction이 일어나고 있을 때 distraction이 일어나고 있음을 실시간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매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의 첫걸음인 것이고. 대다수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서사=망상이라는 우물 속에 갇혀 평생을 살다 가는데,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잡념조차 인지 못 한다면, 잠재의식/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상카라를 이해하는 일은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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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잡념제거 훈련은 특히 일상생활에서 매우 유용하다. 우리가 하는 '고민'의 적잖은 수는 내가 컨트롤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일에 대한 것들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대응계획을 세우고 기회비용은 깨끗이 감수할 결심을 하고서 나머지 생각들은 끊어야 하는데, 이걸 못 하기에 (못 하는 이유는 욕망 때문)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허비해 가며 스트레스 받는다. (다른 이에게 자신의 고민에 대해 말할 때는 감정쓰레기 투척이 되지 않도록 '내가 상담을 받는다'는 자세로 해야.) 그런데 매초 무수하게 떠오르는 온갖 생각들의 노예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대신 내가 주인이 되어 그 생각들을 끌고다니면서 가지치기하여 버릴 거 버리고 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도 감소하고 심신의 건강도 당연히 좋아진다. 하루 단 10분이라도 이런 잡념제거 연습을 매일 꾸준히 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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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평소 우리의 뇌는 대충 70% 정도는 눈앞의 작업에 (회사일이든 집안청소든), 15%는 이따 할 일에 (친구 만나서 할 말 미리 생각해 놓기 같은), 나머지 15% 정도는 수십 수백 가지의 온갖 잡다한 것들 사이에서 널뛰기를 하는 데에 팔려 있다. 그러나 뇌의 단 5%라도 호흡/몸의 관조에 늘상 붙들어 둔다면, 일상에서도 외부 사건/반응에 의해 마음이 동요되는 크기도 줄일 수 있고 따라서 보다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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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때로는 호흡/몸의 관찰이 아닌 자신을 괴롭히는 어떤 생각/문제에 대해 숙고해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결혼기념일을 잊어 버린 배우자에게 내가 서운할 경우, 그 서운한 감정은 '세상 모든 기혼자는 결혼기념일을 챙길 의무를 갖고 있다'라는 생각 위에 서 있다. 이 때 '그 전제가 과연 타당한 것이냐? 결혼 당시 이런 규칙을 명시적으로 상대와 합의한 적이 있느냐?'라는 식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분석해 나가다 보면, 내가 빠져 있었던 욕망, 이기심, 자기합리화, 위선, 자가당착 등을 자각하게 되며, 많은 감정들이 저절로 해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분석을 통한 해체가 아닌 그저 '내려놓자! 분별 말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주문만으로는 억압이나 ~척이 될 뿐 무엇도 해체/해결되지 않으며, 그렇기에 상대만 바꿔 가면서 동일 패턴의 갈등/문제가 반복된다. (Vipassana라는 건 초기경전에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숙고를 의미하지 명상기법이 아님에 주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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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명상의 즐거움을 알지 못 하면 감각 (5감+이성)의 즐거움에 대한 욕망/집착을 끊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호흡이나 자세를 어떻게 하고 몸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를 어떻게 견지하면 나의 심신이 편안해지는지, 상카라의 인과를 실험, 연습하여 새로운 '먹이'를 찾는 능력을 키우면, 세속적 즐거움이라는 '먹이'에 대한 집착/의존도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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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죽는 연습. 죽는 순간의 의식상태가 다음 번 윤회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초기불교는 말한다. (다음 생에서 사는 동안 만나게 될 조건들은 이승과 이전 생들로부터의 업에 의해 결정되고.) 그런데 투병과정을 거치면서, 특히 죽음이 임박해서는 죽음에 대한 불안, 이승의 삶에 대한 회한, 남겨 놓고 가는 사람들에 대한 집착, 그리고 육체적 고통 등으로 정신이 점점 더 산만해지고 흐려진다. 그러나 평소 건강할 때부터 명상을 꾸준히 하여 의식의 디폴트 수준을 올려 놓은 사람이라면, 투병과정에서도 좀더 담담할 수 있고 죽는 순간에도 자신의 심신을 관조하면서, 남들보다는 탐진치 적고 맑은 의식으로 죽을 수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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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명상의 궁극적! 목적은 물론, 팔정도의 8요소들 모두를 순서대로 완성하여 Right Knowledge를 얻어, 윤회를 벗어나는 해탈 (Right Release)을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고통의 외적 요인이 아닌 내적 요인, 즉 상카라에 집중하신 분인데, 평범한 인간들은 평소 인지조차 못 하고 있는 상카라를 이해, 마스터함으로써 해탈하는 것이 선정의 의의다. 고통을 설명한 12연기의 첫 요소가 ignorance임을 감안할 때 고통의 해결 역시 knowledge에 있음은 당연한 일. 명상이 습관이 되지 않은 초기에는 집중하는 훈련을 위해 숫자세기나 108배 등의 방법을 사용할 수 있고 음악이나 이미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나중엔 이런 것들도 모두 배제하고 상카라 분석으로 들어가야만 비로소 다른 전통과 차별화되는 불교명상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의 고요함은 지혜개발을 위한 환경일 뿐 그 자체가 궁극의 목적인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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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명상에서 호흡과 지혜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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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이전에 View, Virtue, Generosity부터 다져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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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문제 3. Saṅkhāra (상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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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photo description available.
[Extract] When we read about other people’s meditation experiences, we like to read about the really dramatic ones: The meditator’s awareness leaves his body and goes wandering around, sees all kinds of visions. Or a meditator discovers a sense of oneness with everything she sees. Everything is beautiful, luminous. These things sound very impressive, something we’d like to try too. But you have to look a little further into their stories, and you realize that those kinds of extreme experiences are things that have to be remedied. They’re problems. They actually get in the way of the goal.
... ... You’re not going off into extremes of harmful behavior because you’re trying to establish a pattern that will carry into your meditation. ... ...
Why do we tend to fall into extremes? In some cases it’s because we want a larger sense of self. We’re tired of being finite people and want a taste of the infinite. ... ... Or we push ourselves into extremes with the idea if we just push a little bit harder, we’ll get over the hump and into jhana, into the transcendent. But these things don’t come from pushing. ... ...
... ... We’re not trying to put ourselves into trances. ... ... You get your mind into all kinds of weird situations, weird perceptions, extreme perceptions. Then you’ve got to get yourself out, because that’s not where you’re going—at least not where you’re going if you’re going anywhere sane, anywhere safe.
... ... If your mind has a natural tendency to go in those directions, you’ve got to learn how to remedy it. ... ...
Sometimes you read that in the stages of insight you get into weird psychophysical experiences.
... ... We tend to think of the stages of jhana as very strong trance states, but actually they’re the mind in a state of genuine normalcy where it’s very perceptive, very clearly perceiving things as they are, as they come as they go, able to see distinctions.
... ... If you don’t really understand monkeys, you become a monkey too. When the monkey jumps around, your mind jumps around with the monkey. But what we’re trying to do here is to stay in a state of normalcy where the monkey jumps, but we don’t jump. We know it’s jumping, but we’re not jumping along with it. ... ...
So we are not trying to induce special experiences. ... ... You try to develop a state of normalcy where the mind can stay still and calm in the face of what it likes, in the face of what it doesn’t like. If that sounds too dull, we may want to try to force something unusual, like obliterating all distinctions between subject and object. But look carefully at that desire. There may be a strong but subtle sense of aversion underlying it, or a strong but subtle sense of passion. It’s not the way of the path. Those passions and aversions are the things you’ve got to learn how to see and uproot. ... ...
So what we are doing is something very normal. What’s unusual about it is that we’re trying to maintain this state of normalcy as consistently as we can throughout the day. That’s really extraordinary. It’s the consistency that makes it special.
[希修] Throughout the early scriptures, the Buddha strongly rebukes any mysticism such as believing in the efficacy of religious ceremonies/rituals, pursuing 'miracles' or paranormal powers and fortunetelling. Unusual visions or psychophysical experiences are not the goals of the Buddhist practice. If you experience them, you in fact have to be wary if anything. They are not at all a measure of spirituality.
* jhana, concentration, normalcy, 走火入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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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崔明淑 and 1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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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崔明淑
    고마워요~ 희수씨! 제겐 3번과 5번 만으로도 명상의 가치가 있네요
    希修 replied
     
    3 replies
  • 성수진
    오늘 새로이 발견된 복음으로
    감사히, 깊이, 곱씹어 새깁니다_()_… 
    See more
    希修 replied
     
    1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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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교명상에서 호흡과 지혜의 관계'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857803471258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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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명상에서 호흡과 지혜의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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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목적이 심신의 안정이라고 흔히들 생각하는데, 그게 어떻게 지혜나 해탈로 연결되는지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하시는 분은 거의 못 봤다. 번개 맞듯 어느날 갑자기 번쩍! 하고 뭔가 신비한 '깨달음'이 찾아온다는 식의 허황된 얘기도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럼 명상이 지혜를 개발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연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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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상카라 (saṅkhāra. fabrication)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거친 단순화를 하자면 ‘모든 의식적 무의식적 행동 (인식, 인지, 사유, 감정, 말, 신체 행동 포함)과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의 무의식적 행동에도 실은 뭔가 이유나 목적이 숨어 있으며, 따라서 핵심은 intention (의도)과 perception (의도에 의해 조정된 인식방법. 想)이 된다. 우리가 이번 생을 받은 것도, 이승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도, 또 윤회를 지속시키는 것도 결국 상카라이며, 상카라를 끊어야 윤회로부터의 영원한 탈출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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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 중요한 상카라를 철저히 해부해야 하는데, 세상 일들은 무수한 사람의 무수한 상카라가 얽혀서 일어나는지라 분석도 이해도 어렵다. 그러므로 인체 해부를 하기 전에 개구리 해부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모든 상황과 조건을 단순화시키고 해상도를 높여서 상카라를 연습하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그래서 타니사로 스님은 명상을 "상카라의 workshop (작업실/실험실)"이라 부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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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카라에는 세가지가 있는데, mental fabrication (intention, attention, perception)과 verbal fabrication (directed thought & evaluation. 대상에 대한 평가)이 호흡이라는 bodily fabrication (신체 작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뭘 어떻게 해야 탐진치의 잡념을 제거하여 분별력이 겸비된 평정심으로 귀결되는지, 그 인과를 적극적으로! 실험, 숙달하는 것이 바로 호흡 명상이다. 수동적인 관조가 아니라는 점을 타니사로 스님은 강조하신다. 그리고 세가지의 상카라가 모두 만나는 場이 바로 호흡인지라, 그래서 호흡명상 (SN 54:1, DN 22, MN 118)이 상카라의 실험/훈련이라는 목적에 가장 적합한 명상의 기본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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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상카라를 마스터하면, 
(a) 명상 할 때든 명상 안 할 때든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경험은 자신의 상카라의 결과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어 생각과 감정 포함 자기 자신에 대한 맹점이 줄어들고,  
(b) 윤회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감각적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인 선정의 행복 덕분에 감각적 욕망을 버릴 수 있게 되며,
(c) 그러나 그런 선정의 행복조차 영원하지 않고 수고스런 상카라일 뿐임 역시 확인함으로써 선정의 행복과 수행의 노력 포함 모든 걸 내려놓고서 해탈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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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세 가지가 선정을 통해 개발되는 지혜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선정은 지혜개발의 최적 조건일 뿐이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선생님으로부터 똑같이 수학 수업을 들어도 누구는 미적분을 풀 수 있게 되고 누구는 못 풀고 그런 것처럼, 동일 수준의 선정에 든 모든 이들이 자동으로 동일 수준의 지혜를 얻는 것은 아니다. 제1선정에서 이미 위의 (a)~(c)를 확인한 사람은 해탈하는 것이고, 제8선정을 제 방 드나들듯 쉬이 드나들고 신통력 만랩이어도 그런 선정으로부터 (a)~(c)에 대한 지혜를 얻지 못 하면 영원히 해탈 못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혜 최고인 사리풋타도 갖지 못 한 초능력을 의식 수준 낮은 데바닷따는 갖고 있었던 이유다. 그러므로 선정이나 신통력을 신비화하지도 말고 선정의 수준 자체를 지혜의 수준이라 착각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신통력은 오직! 8정도의 8요소들을 모두! 갖춘 사람만이 바르고 유의미하게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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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X를 발생시키는 원인/조건 이해, (ii) X를 소멸시키는 원인/조건 이해, (iii) 내가 X에 끌리는 이유 이해, (iv) 궁극적으로 X가 가져올 고통 이해, (v) X가 가져올 고통이 X가 가져올 행복보다 크다는 판단을 통해 X에 대한 환상에서 완전히 벗어남. 이 5가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바로 X를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이며 X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부처님은 DN 1에서 설명하셨다. 8정도의 마지막 요소인 선정까지를 모두 완성해야만 (i)~(v)가 가능해져 실제로 뭔가를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지, 무조건 '내려놓자!' 노래만 부른다고 해서 내려놓아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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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이 모든 건 부처님이 가르치신 명상방법을 충실히 따를 때에 그러하다는 얘기다. 다른 전통들에서 하는 다른 호흡법이나 명상법이 어떻게 지혜로 연결되는지, 그게 정확히 어떤 '지혜'인지는 그분들에게 물어 확인해야 한다. 또 불교의 호흡명상에서 몸을 관찰하는 건 어디까지나 상카라의 훈련차원에서일 뿐, 불교는 몸의 건강엔 관심이 없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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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갖고 있는 초기불교 이해는 전적으로 타니사로 (Ṭhānissaro) 스님의 해설에 의지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타니사로 스님의 책 “Right Mindfulness”와 "Undaunted"를 읽으시기 바랍니다.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531663380539073
https://www.facebook.com/media/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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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이전에 View, Virtue, Generosity부터 다져야 하는 이유'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695730447465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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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를 위한 불교명상 설명'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23901187980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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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문제 3. Saṅkhāra (상카라)'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633543037017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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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 Perception, 상카라'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570658569972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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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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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 이전에 View, Virtue, Generosity부터 다져야 하는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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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교리 없는 영성 (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라는 것이 서양에선 몇 십년째 유행 중이다. 그래서 유일신 종교의 신자는 줄어들고 명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꾸준히 증가하며, 불교명상을 한다는 모임들 중에도 '철학적인 토론 금지'를 규칙으로 내세우는 곳들도 있다. 하지만 초기불교를 가르치는 많은 스님들은 8정도의 8요소들을 순서대로 개발하라고 얘기한다. (Right View를 위해 경전공부를 하는 동안엔 명상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8요소들을 두루 개발하되 중점은 순서대로 두라는 것.) 그런데 모두 건너뛰고서 8정도의 맨마지막인 명상만 하겠다는 건, 사칙연산과 방정식 공부조차 않고서 미적분만 풀겠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으며, 또 View (분별의 기준), Virtue (남에게 피해 안 주기. 계율 지키기), Generosity (남 돕기. 인색하지 않기)가 어떻게 명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를 전혀 이해 못 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명상은 의식수준과는 무관해진다. 매우 높은 경지의 선정에 들었고 신통력도 탁월했으나 해탈은 못 했던, 부처님 당시 다른 전통의 수행자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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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은 8정도의 첫요소인 Right View를 얻는 일로서, 수행의 첫단추이고 방향키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초기경전 공부를 등한시하면, 마치 비행기의 각 부속처럼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부처님 가르침의 모듈들 (modules) 간의 연결성도 상실하고 모듈 개개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일상에서 자기 언행 속의 탐진치를 분별, 제어하는 능력과 명상 시 잡념을 발견, 제거하는 능력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나의 물질/재능/시간이 아까워 남을 위해 let go 못 한다면 (인격자는 남을 도울 때조차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돕는다는 AN 5:148의 말씀에 주의) 이후 명상/수행에서 발견하게 될 무수한 아집, 자기기만, 자기합리화 같은 것들 (자신의 self-image와 self-identity를 지탱해 온) 역시 let go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현실왜곡은 현실이해에 맹점 (blind spot)을 만들어 지혜는 커녕 탐진치의 '치'를 가중시키기에, 그래서 계율과 보시를 통한 기초훈련이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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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은 고통을 가져오는 탐진치에 대해 이해하는 일이고, 계율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과 보시는 덩어리가 큰 탐진치를 다루는 일이며, 명상은 마음 속에 꼭꼭 숨어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작고 아지랑이처럼 미세한 형태로 존재하는 탐진치를 다루는 일이다. 그런데 쌀에 섞인 강낭콩조차 골라내지 못 하는 사람이라면 쌀 속의 좁쌀은 발견이나 할 수 있겠나. 그러니 아지랑이 제거는 더더욱 불가능. 물론 이런 'Wrong' Concentration (8정도에서 이전에 위치한 요소들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만 'Right'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것, MN 117)도 스트레스나 불면증 등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부처님이 가르치신 종류의 지혜나 해탈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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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을 풀고 싶다면 숫자 읽기, 쓰기부터 시작하여 사칙연산과 방정식 등의 모든 과정을 차곡차곡 밟아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선 머리에서만이라도 이해하여 일상에서 매사 적용하고, 친구가 새로 산 옷이 안 예뻐 보이는데도 "예쁘다"고 말하는 것 같은 아주 '작은' 거짓말조차 안 하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그런 '작은' 노력 및 무수한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혜=분별력이 되는 것이지, 멍때리기만 하다가 어느날 벼락 맞듯 갑자기 순식간에 지혜가 생겨 나 해탈하고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 초기불교의 가르침이다. 안 예쁜데도 그냥 '좋게 좋게' 예쁘다고 해 주는 것, 모르는데도 '안다' 말하고 틀린 것도 '맞다' 쳐 주는, '착한 의도'에서의 현실왜곡 행동을 한 번 두 번 할 때마다 나의 인지적 건강은 차츰 오염되어 간다. 그러니 지금 당장 편하자고 부정직에 의존하는 얄팍한 요령/편법을 '지혜'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최소한 내 경우엔 23년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고작 처세술이 '지혜'라고 불리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기나 한지 기억이 없다. 그런데 한국인이 말하는 '지혜'는 단순 처세술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 '지혜'라는 단어에 대한 모욕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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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뒤덮어 내 시각을 이미 왜곡하고 있는 탐진치에다가 겨우  당장의 처세적인 편리 때문에 부정직의 '치'를 더욱 가중시키는 일. 이런 게 자기 자신에게 장기적으로 흑자가 되려는지 적자가 되려는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수행의 노력/비용보다 수행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자유가 더 크다는 계산! 때문에 그래서 수행하는 것이다. 또 그래서 처음부터 무작정 에고를 버리려고 할 게 아니라 에고를 우선! 건강하게 만들어야 그래야만 자타 모두에게 실제로 이익이 되는 수행 (spiritual bypassing이 아닌)도 가능하다고, conceit의 제거는 수행이 성숙해진 후에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타니사로 스님은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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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are two destinations for a person with wrong view, I tell you: either hell or the animal womb." 
틀린 견해를 유지하는 사람은 지옥이나 축생계로 윤회한다. 
-- SN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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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body comes into being through craving. And yet it is by relying on craving that craving is to be abandoned. This body comes into being through conceit. And yet it is by relying on conceit that conceit is to be abandoned." 
갈애와 자만 때문에 윤회하는 것이지만, 윤회를 끝내는 일도 갈애와 자만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 AN 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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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Generosity First
https://www.facebook.com/media/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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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22: The Wisdom of Ego. Mature Wisdom Requires a Mature Ego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10771894960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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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를 위한 불교명상 설명'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239011879804226
.
'불교명상에서 호흡과 지혜의 관계'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857803471258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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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 Perception, 상카라'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570658569972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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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상 이전에 View, Virtue, Generosity부터 다져야 하는 이유'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695730447465698


< 명상 이전에 View, Virtue, Generosity부터 다져야 하는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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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교리 없는 영성 (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라는 것이 서양에선 몇 십년째 유행 중이다. 그래서 유일신 종교의 신자는 줄어들고 명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꾸준히 증가하며, 불교명상을 한다는 모임들 중에도 '철학적인 토론 금지'를 규칙으로 내세우는 곳들도 있다. 하지만 초기불교를 가르치는 많은 스님들은 8정도의 8요소들을 순서대로 개발하라고 얘기한다. (Right View를 위해 경전공부를 하는 동안엔 명상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8요소들을 두루 개발하되 중점은 순서대로 두라는 것.) 그런데 모두 건너뛰고서 8정도의 맨마지막인 명상만 하겠다는 건, 사칙연산과 방정식 공부조차 않고서 미적분만 풀겠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으며, 또 View (분별의 기준), Virtue (남에게 피해 안 주기. 계율 지키기), Generosity (남 돕기. 인색하지 않기)가 어떻게 명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를 전혀 이해 못 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명상은 의식수준과는 무관해진다. 매우 높은 경지의 선정에 들었고 신통력도 탁월했으나 해탈은 못 했던, 부처님 당시 다른 전통의 수행자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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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은 8정도의 첫요소인 Right View를 얻는 일로서, 수행의 첫단추이고 방향키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초기경전 공부를 등한시하면, 마치 비행기의 각 부속처럼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부처님 가르침의 모듈들 (modules) 간의 연결성도 상실하고 모듈 개개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일상에서 자기 언행 속의 탐진치를 분별, 제어하는 능력과 명상 시 잡념을 발견, 제거하는 능력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나의 물질/재능/시간이 아까워 남을 위해 let go 못 한다면 (인격자는 남을 도울 때조차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돕는다는 AN 5:148의 말씀에 주의) 이후 명상/수행에서 발견하게 될 무수한 아집, 자기기만, 자기합리화 같은 것들 (자신의 self-image와 self-identity를 지탱해 온) 역시 let go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현실왜곡은 현실이해에 맹점 (blind spot)을 만들어 지혜는 커녕 탐진치의 '치'를 가중시키기에, 그래서 계율과 보시를 통한 기초훈련이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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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은 고통을 가져오는 탐진치에 대해 이해하는 일이고, 계율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과 보시는 덩어리가 큰 탐진치를 다루는 일이며, 명상은 마음 속에 꼭꼭 숨어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작고 아지랑이처럼 미세한 형태로 존재하는 탐진치를 다루는 일이다. 그런데 쌀에 섞인 강낭콩조차 골라내지 못 하는 사람이라면 쌀 속의 좁쌀은 발견이나 할 수 있겠나. 그러니 아지랑이 제거는 더더욱 불가능. 물론 이런 'Wrong' Concentration (8정도에서 이전에 위치한 요소들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만 'Right'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것, MN 117)도 스트레스나 불면증 등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부처님이 가르치신 종류의 지혜나 해탈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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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을 풀고 싶다면 숫자 읽기, 쓰기부터 시작하여 사칙연산과 방정식 등의 모든 과정을 차곡차곡 밟아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선 머리에서만이라도 이해하여 일상에서 매사 적용하고, 친구가 새로 산 옷이 안 예뻐 보이는데도 "예쁘다"고 말하는 것 같은 아주 '작은' 거짓말조차 안 하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그런 '작은' 노력 및 무수한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혜=분별력이 되는 것이지, 멍때리기만 하다가 어느날 벼락 맞듯 갑자기 순식간에 지혜가 생겨 나 해탈하고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 초기불교의 가르침이다. 안 예쁜데도 그냥 '좋게 좋게' 예쁘다고 해 주는 것, 모르는데도 '안다' 말하고 틀린 것도 '맞다' 쳐 주는, '착한 의도'에서의 현실왜곡 행동을 한 번 두 번 할 때마다 나의 인지적 건강은 차츰 오염되어 간다. 그러니 지금 당장 편하자고 부정직에 의존하는 얄팍한 요령/편법을 '지혜'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최소한 내 경우엔 23년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고작 처세술이 '지혜'라고 불리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기나 한지 기억이 없다. 그런데 한국인이 말하는 '지혜'는 단순 처세술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 '지혜'라는 단어에 대한 모욕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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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뒤덮어 내 시각을 이미 왜곡하고 있는 탐진치에다가 겨우 당장의 처세적인 편리 때문에 부정직의 '치'를 더욱 가중시키는 일. 이런 게 자기 자신에게 장기적으로 흑자가 되려는지 적자가 되려는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수행의 노력/비용보다 수행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자유가 더 크다는 계산! 때문에 그래서 수행하는 것이다. 또 그래서 처음부터 무작정 에고를 버리려고 할 게 아니라 에고를 우선! 건강하게 만들어야 그래야만 자타 모두에게 실제로 이익이 되는 수행 (spiritual bypassing이 아닌)도 가능하다고, conceit의 제거는 수행이 성숙해진 후에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타니사로 스님은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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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are two destinations for a person with wrong view, I tell you: either hell or the animal womb."
틀린 견해를 유지하는 사람은 지옥이나 축생계로 윤회한다.
-- SN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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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body comes into being through craving. And yet it is by relying on craving that craving is to be abandoned. This body comes into being through conceit. And yet it is by relying on conceit that conceit is to be abandoned."
갈애와 자만 때문에 윤회하는 것이지만, 윤회를 끝내는 일도 갈애와 자만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 AN 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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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Generosity First
https://www.facebook.com/media/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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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22: The Wisdom of Ego. Mature Wisdom Requires a Mature Ego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10771894960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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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를 위한 불교명상 설명'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23901187980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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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명상에서 호흡과 지혜의 관계'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857803471258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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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 Perception, 상카라'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570658569972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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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비체험, 초월적 경험, 신통력은 의식수준과 무관'
https://www.facebook.com/photo?fbid=935849603453790&set=a.906304756408275




希修

< 신비체험, 초월적 경험, 신통력은 의식수준과 무관 >

부처님도 해탈하면서 이런 저런 신통력을 얻으시긴 했지만, 신비체험이나 초능력은 정신집중에 수반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부산물일 뿐 인격, 의식수준, 지혜 등을 측정하는 잣대는 될 수 없으며 아라한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도 아니다. 예를 들어 데바닷따 (Devadatta)는 수다원 (stream enterer)도 되지 못 한 수준이었지만 신통력만큼은 출중했다. 반대로 사리풋타 존자는 아라한이었고 부처님의 제자들 중 지혜면에서 으뜸이었지만 신통력은 없었다. 부처님이 기적을 보여 주지 않아 자신은 이제 부처님 제자 안 하겠다는 사람을 부처님은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부르셨으며 (Patika Sutta. DN 24),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특히 재가자에게 신통력을 내보이는 행위들에 대해서는 "I dislike, reject and despise them."이라 하셨다 (Kevaddha Sutta. DN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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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선정이 높고 신통력이 뛰어난들 8정도의 모든 요소들을 순서대로! 갖추지 않은 수준에서의 초능력이나 신비체험은 지혜와도 해탈과도 완전히! 무관하다. 수행을 등산에 비유할 경우, 신통력이나 신비체험은 꽃 (등산로에서 마주칠 수도 않을 수도 있는)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듯. 산 정상 (해탈 또는 구원)에 얼마나 가까운가?와는 관련이 없다는 얘기다 (댓글에 올린 자료들 참조). 바로 이것이, 지혜 최고인 사리풋타도 갖지 못 한 초능력을 의식 수준 낮은 데바닷따는 갖고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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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집중을 통해 소위 초능력을 얻는 이들이 세상에 없지는 않고 (다수의 기공 마스터들은 대단한 초능력까진 아니어도 좀 특이한 능력을 약간씩이나마 갖고 있음) 이런 사람들이 대개 사이비 교주들이 되는데, 모든 영적 전통들 중 오직 초기불교만 그런 신통력과 해탈/구원이 무관하다고 가르치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약간의 초능력을 얻은 이들은 자신이 메시아라고 진짜로 믿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얘기들이 매체에 나올 때는 비웃다가도 막상 눈앞에서 그런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 훅 넘어가는 이들이 다수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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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명상 중 떠오르는 생각은 무조건 '神/우주로부터의 메세지'라고 믿는 분들도 많지만, 鬼神 (인간계보다도 낮은 차원의 존재)이 우리의 마음 속에 주입하는 얘기일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神 (인간계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이라 해도 여전히 윤회계 안을 떠도는, 다시 말해 여전히 탐진치에 붙들려 있는 존재일 뿐이기에 신뢰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물론 마음이 차분할 때 떠오르는 생각은 마음에 태풍이 칠 때 떠오르는 생각보다 좀더 현명할 확률이 높지만, 자기기만이나 자기미화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타니사로 스님은 명상 중 떠오르는 생각도 일상 중 떠오르는 생각과 똑같이 그저 "검증의 대상일 뿐"이라 말씀하시며 (a), 또 신비체험은 오히려 "치료대상일 수도 있다"고 하시는 것이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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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력은 오직! 8정도의 8요소들을 모두! 갖춘 사람만이 바르고 유의미하게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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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ttps://www.facebook.com/photo?fbid=1078580192514063&set=a.1042727616099321

(b) https://www.facebook.com/photo?fbid=1102393016799447&set=a.104272761609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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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각묵 스님의 “아비담마 길라잡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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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정, Perception, 상카라'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570658569972887

希修

< 선정, Perception, 상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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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media/set/... 앨범의 사진 번호를 참조해 가며 읽으시고, 보다 자세한 내용은 타니사로 스님의 책 “Right Mindfulness”를 보시기 바랍니다.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531663380539073 . 제가 갖고 있는 초기불교 이해는 전적으로 타니사로 (Ṭhānissaro) 스님의 해설에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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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정 (Jhana, 정신 집중)의 9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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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9:31, AN 9:32, AN 9:34, AN 9:36, AN 9:37, AN 9:41, AN 9:43, AN 11:17, MN 44, MN 111, MN 121, MN 140, SN 36:11, SN 36:15, SN 36:19, SN 41:6, SN 54: 8 등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선정의 9단계에 대한 기술 (記述)은 다음과 같다 (사진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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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선정: Sensual pleasures (감각적 즐거움)이 어떻게 스트레스가 되는지를 이해하고 그 사실에 집중함으로써 sensual pleasures에 대한 생각/갈애를 내려놓음. ‘잡념을 가라앉히고 호흡 관찰에 집중해 보자' 같은 directed thought (조준된 생각)와 evaluation (평가)을 필요로 하며, 정신이 집중되면 그 결과 rapture (환희)와 pleasure (행복감)이 일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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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2선정: Directed thought와 evaluation이 어떻게 스트레스가 되는지를 이해하고 그 사실에 집중함으로써 directed thought와 evaluation를 내려놓음. 그 결과 집중, rapture, pleasure가 조금 더 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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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3선정: Rapture가 어떻게 스트레스가 되는지를 이해하고 그 사실에 집중함으로써 rapture를 내려놓음. 그 결과 고요한 pleasure만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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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4선정: Pleasure가 어떻게 스트레스가 되는지를 이해하고 그 사실에 집중함으로써 pleasure를 내려놓음. 그 결과 pure equanimity (완벽한 평정심)만 남으며 mindfulness (마음챙김)도 완벽해짐. 코와 입을 통한 호흡은 멈추지만, 심신이 완벽히 고요해졌기에 모공호흡을 통한 산소공급만으로도 충분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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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5선정, Infinite/Boundless Space: Forms (육체처럼 형태를 통해 드러나는 현상들)이 어떻게 스트레스가 되는지를 이해하고 그 사실에 집중함으로써 forms에 대한 perceptions (sañña, 인식, 想, 분별의 목적을 위해 사물의 특징을 취하는 것)를 내려놓고서 ‘Infinite Space’라는 perception에 집중. Perception-at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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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6선정, Infinite/Boundless Consciousness: ‘Infinite Space’라는 perception이 어떻게 스트레스가 되는지를 이해하고 그 사실에 집중함으로써 ‘Infinite Space’라는 perception를 내려놓고서 ‘Infinite Consciousness’라는 perception에 집중. Perception-at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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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7선정, Nothingness: ‘Infinite Consciousness’라는 perception이 어떻게 스트레스가 되는지를 이해하고 그 사실에 집중함으로써 ‘Infinite Consciousness’라는 perception을 내려놓고서 ‘Nothingness (아무 것도 없다)’라는 perception에 집중. Perception-at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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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제8선정, Neither Perception Nor Non-Perception: ‘Nothingness’라는 perception이 어떻게 스트레스가 되는지를 이해하고 그 사실에 집중함으로써 ‘Nothingness’라는 perception을 내려놓음. 이젠 perception도 모두 사라졌으며, 따라서 논리적인 사유나 분석이 불가능한 상태가 됨. 그러나 ‘perception이 사라졌다’라는 그 하나의 perception은 희미하게 남아 있기에, 그래서 이 상태를 'perception인 것도 아니고 perception이 아닌 것도 아니다 (Neither Perception Nor Non-Perception, 非想非非想)'라고 표현함. 어떤 특정한 perception을 정신집중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기에 MN 121 (사진 #14)에서는 'themeless (without nimitta) concentration'이라 부름. 그러나 여전히 fabrication (saṅkhāra 상카라, conditioning, 조건화, 조작, 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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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9선정, Cessation of Perception and Feeling: ‘Neither Perception Nor Non-Perception’이 어떻게 스트레스가 되는지를 이해함으로써 ‘Neither Perception Nor Non-Perception’의 상태마저 내려놓음. 모든 perception과 느낌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모든 정신 작용이 멈춤. No more fabr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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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경전의 선정묘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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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선정의 모든 단계들은 특정한 의도 (다음 단계 선정에의 진입)을 위해 특정한 perception!을 이용하여 자신의 의식을 인위적 체계적으로 fabricate (상카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선정조차 양궁, 요리, 대장간 일 같은 skill (技術)에 비유하셨고 (사진 #10=AN 9:36, AN 5:166), 타니사로 스님은 명상을 "상카라 기술의 숙련을 위한 작업장/실험실"이라 표현하신다. 모든 종류의 생각을 무조건 내려놓기만 하는 것이 명상이라는 상식은 초기경전에 나오는 선정 설명과는 다르다. 물론 선정의 각 단계마다 이전 단계에서의 perception을 하나씩 내려놓기는 하지만, 이 내려놓기를 할 수 있으려면 각 단계의 사이 사이마다 현재 상태와 다음 목표에 대한 분별 및 분석을 필요로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슨 신비적인 경험이나 우주에의 접속 같은 것이 아니다 (사진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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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선정의 구체적 목적은 무엇인가? (a) 명상 할 때든 명상 안 할 때든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경험은 자신의 상카라의 결과라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매사 집착을 버리고, (b) 윤회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감각적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인 선정의 행복 덕분에 감각적 행복에 대한 흥미도 잃게 되며, (c) 그러나 그런 선정의 행복조차 영원하지 않고 수고스런 상카라일 뿐임(*) 역시 확인함으로써 선정의 행복과 수행의 노력 포함 모든 걸 내려놓고서 해탈하는 것이다. (사진 #14=MN 121, 사진 #15=AN 11:17, 사진 #29~31= MN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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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 117은 8정도 8요소들이 모두 갖춰진 선정을 Right Concentration이라 부르는데, 선정을 통해 *을 확인(ㄱ)하고 나면 (Right Knowledge), 내 손에 쥔 것이 독풀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구나 그 독풀을 손에서 내려놓듯이 선정의 노력 포함 모든 수고에 대한 완전한 dispassion (정 떼기)이 되어 모든 갈애와 노력을 내려놓는 선택(ㄴ)을 함으로써 10정도를 완성하는 해탈 (Right Release)이 성취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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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즐거움, 존재상태 (bhāva = becoming. 생과 생 사이뿐 아니라 찰나와 찰나 사이에도 계속 변해 가는 존재상태. 선정 포함), 비존재상태 (해탈)에 대한 세 가지의 갈애가 있다고 Iti 58은 설명하는데, 해탈에 대한 갈애조차 윤회로 이끈다는 것이 함정이다. 따라서, 감각적 즐거움을 내려놓음으로써 선정에 들고 선정조차 수고스러움을 깨닫고 난 후(ㄱ) 수행의 노력조차 내려놓는(ㄴ) 바로 이것만이 해탈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만 (8 ), (9) 안에 있을 때는 분석(ㄱ)이 불가능하기에 선정을 마치고 나와서 해야 하며, 분석(ㄱ)과 선택(ㄴ) 없이 선정에서 그치면 그 사람은 해탈하지 못 한다 (사진 #14=MN 121, #15=AN 11:17, #16~17=MN 140). 다시 말해, 높은 수준의 선정에 이르러도 dispassion이 불완전하면 해탈 못 하는 것이고, 선정의 수준이 낮아도 dispassion이 완전하면 곧장 해탈하는 것. 선정은 지혜개발의 조건일 뿐 지혜 자체가 아니라는 얘기도, 해탈로 이끄는 지혜는 선정을 통해 얻는 (ㄱ)과 (ㄴ)이지 선정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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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출가 직후 부처님에게 스승이 되어 주었던 웃따까 라마뿟따와 알라라 깔라마 포함 당시의 타전통 수행자들처럼 높은 수준의 선정에 도달한다 해도, Right View에서 출발하는 8정도 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Right Knowledge에도 Right Release에도 이르지 못 한다 (DN 16). (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이 몇몇 지점에서 마주친다는 이유만으로 두 노선 전체나 종착역이 같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일 뿐.) 반면 AN 9:36, AN 11:17, MN 52 등은 (1)에서 곧장 해탈하는 사례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며,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와중에 해탈한 사람들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고 타니사로 스님은 말씀하신다. 해탈은 선정 자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지혜를 통한 dispassion에 달린 것이고, 선정은 지혜와 dispassion의 최적조건이 될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A의 선정수준이 B의 선정수준보다 높다고 해서 A가 B보다 더 지혜로운 것도 해탈에 더 가까운 것도 아니며, 신통력 같은 건 더더구나 지혜측정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신통력은 오직! 8정도의 8요소들을 모두! 갖춘 사람만이 바르고 유의미하게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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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주의할 점은, 잠들지 않은 상태로 몇 시간씩이나 앉아 있었는데 눈깜짝할 사이에 그 시간이 지나갔을 뿐 아니라 천둥번개가 쳐도 몰랐을 정도로 몰입해 있었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Right Concentration인 것 역시 아니라는 사실이다. 팔정도의 1~7번째 요소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어야만 그 선정이 Right Concentration인 것 (DN 18, MN 117). 어떤 초월적 경험이나 신통력은 과거 업 and/or 집중도/몰입도의 문제일 뿐 의식수준과 무관하며 또 해탈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런 체험을 하는 것도 아니므로, 누군가가 어떤 초능력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우러러보거나 '스승'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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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상, 고, 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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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모든 생각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오직 (9)일 뿐인데 해탈은 (1)로도 충분하므로, '명상 = 생각 않기’도 '선정 = 지혜'도 '선정 = 해탈'도 모두 틀린 얘기다. 그런데도 "생각을 완전히 끊어야 해탈한다" 류의 얘기가 이렇게 범람하는 이유는 부적확한 언어사용 혹은 번역 때문으로 보인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거나 생각을 하지 말라는 메세지처럼 들리는 초기경전 얘기들은, (i) 빠빤쨔에 대한 경계이거나 (ii) 제1선정의 요소인 directed thought & evaluation을 내려놓고 제2선정 이상의 높은 선정에 진입하라는 얘기이거나 (iii) 해탈 순간의 상태에 대한 기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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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perception (想, 인식)의 분별은 명상 뿐 아니라 수행 과정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당신이 발견한 것을 숲 전체의 나뭇잎에 비유할 때 손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나뭇잎 몇 장 만큼의 분량만 일단 가르치겠다고 부처님은 애초부터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고와 고의 소멸' ('인과'라 부르든 '업과 윤회'라 부르든 '4성제'라 부르든 '12연기'라 부르든 결국 마찬가지)이고, 사람들을 해탈로 이끌기 위한 이 프로그램 안에서 보조적으로 쓰인 도구가 무상, 고, 무아라는 perceptions! (sañña, 인식, 想, 분별의 목적을 위해 사물의 특징을 취하는 것)다.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이 이것들을 언급하시는 맥락은 언제나 무언가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실 때였다 (AN 9:36, AN 10:60, AN 11:17, MN 14, MN 35, SN 22:59, SN 22:97, SN 22:122). 윤회계 안에서는 감각적 즐거움과 수행의 행복 포함 모든 물질적 정신적 현상이 계속 변해 가고 (inconstant) 그래서 의지할 만하지 않으며 결국 수고스러움으로 귀결되니 (stress, suffering), 그 무엇에 대해서도 '나'라는 정체성이나 집착을 발달시키지 말라는 (not-self, no conceit) 얘기인 것 (사진 #20~22=SN 22:59). 그래야 윤회를 벗어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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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희노애락이 집착할 가치가 없는 일시적인 것이며 삶 자체가 수고'라는 perception=인식 (a)도 가능하고 '삶은 기적이고 모든 변화도 그 자체로 아름다우니 매순간 지금 여기에서의 소확행을 최대로 누려야 한다'라는 Carpe Diem 식의 인식 (b)도 가능하다. 관점의 차이일 뿐 이 둘 중 하나는 거짓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이고 그런 게 아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입장에서 b는 '어리석은' 관점이고, 그렇기에 완전한 자유=행복인 해탈에 이르게 하려는 의도에서 부처님은 반복적으로 b 아닌 a의 인식! 방법으로 유도하셨으며, 그 b를 내려놓게끔 설득하기 위해 개발된 도구가 無常 (inconstancy), 苦 (stress), 無我 (not-self, '나 없다'가 아님), 공 (‘empty’ 혹은 ‘no substance’) 같은 perceptions!였다. (상품화된 마음챙김은 부처님의 의도와 정반대로 b의 경향이 강하므로 주의 필요.) '허상'이니 버리고 '실체'를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라, 알고 보면 비용이 훨씬 더 큰 단기적 행복에 애착/집착하지 말고 해탈하여 영원한 행복을 얻으라는 취지에서 부처님이 사용하신 'value judgment (가치 판단)' 또는 'strategy (전략)'라고 타니사로 스님이 설명하시는 것도 이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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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無常, 苦, 無我의 perceptions 없이는 선정의 행복에 집착해 머물기가 쉬운데 (사진 #15=AN 11:17, AN 9:36),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想, 사유, 분석 등을 무조건 내려놓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 각 단계에 할당된 상을 짓고 분석, 사유해야만 언젠가 해탈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AN 10:60에서도 부처님은 苦의 최소화에 도움되는 10개의 perceptions (사진 #23~28=AN 10:60)를 언급하셨는데, 여기서도 無常과 無我는 나머지 8개와 같은 위치일 뿐이다. 사진 #29 에서 보듯 초기경전에서 無/空은 무언가가 (i) 없다거나 (ii) 조건지어진 것이라는 의미이지 무슨 추상적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니다. 그런데 후대로 오면서 이 10개의 인식 방법들 중 무상, 고, 무아만을 떼어 내어 절대화하고 선정 (지혜개발의 조건에 불과한) 체험이 그 자체로 지혜 혹은 해탈인 양 오해하게 되었다. (사진 #32, 33에서 보듯 物我一體 혹은 nonduality=advayam의 경지조차 작위적 노력=상카라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일 뿐 해탈이 아님을 AN 10:29는 밝히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자체로 사실인 4성제와 12연기까지, 오히려 관점/도구에 불과한 이런 perceptions의 프레임 안에서 이해하려는 도착(倒錯)으로 인해 "부처님의 가르침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게 마땅하다" 같은 오류를 일어나게 했으며, 역시 그 자체로 사실인 윤회를 단순 방편으로 인식하거나 "고통/번뇌도 공하므로 벗어나려고 너무 노력할 것도 없다"는 등의 착각을 야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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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를 없애려 할 것도 없고 그저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건 "선업을 증장시키고 불선업을 제거하는 것이 Right Effort"라는 SN 45:8의 정의에 대한 무시일 뿐 아니라, 개개의 번뇌 현상!은 조건이 다 하면 '저절로' 사라지는 '것 같이' 보여도 번뇌를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원인!인 탐진치의 제거와 해탈은 저절로 성취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몰이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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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전생을 보는 것이 12연기의 이해에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전생을 봐야'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러므로 나의 과거/현재/ 미래 등 나!를 관심의 촛점에 놓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게 바로 MN 2의 내용. 전생에 내가 뭐였었는지를 명상을 통해 보려고 노력하는 자체도 실은 '나 집착'에서 기인하는 신비주의라고 일묵 스님은 말씀하심.
https://www.youtube.com/watch?v=n5Kwzjv7ZAA&t=582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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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 #23. 無/空은 심오한 깨달음의 대상'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85177045519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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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명상에서 호흡과 지혜의 관계'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857803471258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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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체험, 초월적 경험, 신통력은 의식수준과 무관'
https://www.facebook.com/photo?fbid=935849603453790&set=a.906304756408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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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added 294 new photos to the album First Things First by Venerable Ṭhāniss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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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 can download this book for free at https://www.dhammatalks.org/ebook_index.html under the category of 'Essay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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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Honest to Goodness. Admirable friendship and appropriate attention. The qualities one is required to have to be someone's student, teacher or friend. This means, it is not the case that everyone qualifies as everyone's student, teacher or friend. The Buddha teaches that we should maintain goodwill even while someone is cutting off our limbs one by one (MN 21). But this does not mean that we should maintain a close personal relationship throughout our lives with every single person we run into in our lives. In fact, Sn 2:4 lists 'not associating with foolish people' ('foolish' meaning 'having no understanding or discernment regarding causality') as one of the best 'protective charms'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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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0: In the Eyes of the Wise. A healthy sense of shame, a healthy sense of honor and admirable friend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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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6: Did the Buddha Teach Free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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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2: First Things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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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07: The Karma of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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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131: The Streams of E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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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172: Worlds & Their Cessation. What is 'supernatural' to you may only be 'natural' to the Buddha or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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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199: Wisdom over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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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 All Winners, No los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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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1: How Pointy Is One-pointe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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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86: The Limits of Description. On the not-self strat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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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294: The Names for Nibbāna.




김두일

대승불교와 비교한다면 보다 구체적이고 실전적이라는 생각!


希修

김두일 정교하고 견고하던 초기불교의 교리가 대승에서는 단순화 추상화 신비화 방향으로 흐른 측면이 좀 있지 않나 싶습니다. ^^

김두일

希修 추상화에서 (의도적 또는 무식한)오역도 발생했다 싶고 그렇네요.

希修

https://youtu.be/ZpS-UluUL80
선정이든 ‘기적’이든 매사를 무상 고 무아라는 부처님의 견해!로써 통찰해야 집착이 버려져 해탈할 수 있는 것이지 특별한 경험 자체가 해탈 혹은 지혜라 착각해서는 곤란하다고 일묵 스님도 설명하신다. 어떤 분들은 신비현상의 체험이 모든 종교들에 공통된 본질/핵심이라고 얘기하지만, 각묵 스님 역시 경계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신비현상의 체험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면 무속인들을 스승으로 삼으면 되고, 그럴 의향이 없으시다면 그건 신비현상 자체가 무조건 유의미한 건 아니라는 데에 동의하시기 때문일 것. 신비체험은 '치료대상'일 수도 있다고까지 타니사로 스님이 말씀하시는 이유도 온갖 주화입마 때문.
https://www.facebook.com/photo?fbid=1102393016799447&set=a.104272761609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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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현상보다 통찰이 중요하다ㅣ사성제법회 7ㅣ일묵스님ㅣ초기불교 제따와나선원법은 현상보다 통찰이 중요하다ㅣ사성제법회 7ㅣ일묵스님ㅣ초기불교 제따와나선원


希修







希修

명상을 통한 신통력이나 신비체험을 의식수준의 성장이라 여기는 것: no integrity의 증거. 신통력은 뛰어나고 마음도 ’따뜻‘한 분이었지만 지적 수준도 낮고 integrity도 전혀 없으면서 스스로를 ‘깨달은 사람’이라 불렀던 어떤 유명 기공 매스터와 그 신통력 하나만 보고 모조리 분별을 잃고 사이비에 넘어간 어떤 집단이 생각남. 다들 인간적으론 ‘순수’하고 ’긍정적‘이며 ’따뜻’한 이들. 그래도 wrong view의 종착역은 축생계와 지옥뿐이며 어리석은 이를 멀리하는 게 최고의 부적이라는 것이 초기경전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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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希修

부처님의 선정. 선정은 우연히 도달하는 신비한 상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확립 유지하는 의식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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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 ‘성인(聖人)의 길을 막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3) Namgok Lee - 논어 14편에 나오는 공자와 자공의 대화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어찌... | Facebook

Namgok Lee
38 m  · 
논어 14편에 나오는 공자와 자공의 대화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어찌 선생님을 알 사람이 없겠습니까?”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도 않으며, 아래로부터 배워 위로 통달하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저 하늘일 것이다.” 
子曰 莫我知也夫 子貢 曰 何爲其莫知子也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
논어 첫 장의 ‘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를 이야기한 공자를 생각하면 좀 의외의 대화다.
만일 이 대화가 실제로 있었다면, 공자의 심경이 짐작이 간다.
숱한 비아냥과 왜곡 그리고 몰이해 속에서도  그가 일이관지하려한 ‘인간의 길’에 대한 긍지와 한 편의 ‘외로움’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를 가슴에 품는가에 따라 그 삶의 방향이 정해진다.
나는 젊은 시절 잘 알려진 ‘혁명가’들을 가슴에 품었다.
 나이들어 ‘성인(聖人)’을 가슴에 품기 시작했다.
석가 예수 공자는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인생의 모델이다.
자기의 성향에 맞는 분을 모델로 삼으면 된다.
우리나라는 그래서 좋다.
나에게 60이 넘어 만난 공자는 내 여생(餘生)의 모델이다.
자신의 근기와 능력이 태부족임을 느끼는 하루 하루지만, 마음 속에 뭔가 장애나 부자유나 스트레스가 있을 때 ‘공자라면’ 하는 생각으로 논어를 읽는다.
그것이 나의 명상이다.
‘성인(聖人)의 길을 막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