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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7

We Walk the Path Together: 깨어있음 - 지금 이 순간에 대한 탐구 Brian J. Pierce | Goodreads

We Walk the Path Together: 
Learning from Thich Nhat Hanh and Meister Eckhart 
by Brian J. Pierce 
Kang-nam Oh
1 h  · 
책 이야기
불광출판사에서 브라이언 피어스라는 베네딕토 계 가톨릭 신부의 책 <We Walk Together: Leaning from Thich Nhat Hanh and Meister Eckhart>라는 책을 <깨어있음: 지금 이 순간에 대한 탐구>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했습니다.  피어스 신부가 이 책을 위해 주로 참고하고 인용한 틱낫한 스님의 책,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와 <귀향>이라는 두 책을 제가 오래 전에 번역해 낸 적이 있는데, 그 인연으로 저에게 추천사를 쓰라고 부탁한 것 같습니다. 그 책이 방금 나와서 거기 쓴 추천사를 여기 옮깁니다.  페친들 중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서로 어울릴 수 있는가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 책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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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영향력 있는 가톨릭계 출판사인 Orbis Books는 세계적 신학자 폴 닛터Paul F. Knitter의 책들을 비롯하여 종교간 대화에 대한 책을 많이 내고 있다.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불교서적 전문인 불광출판사에서 번역하기로 한 것에 우선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자체가 종교간 대화를 위한 노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저자 브라이언 피어스 신부는 가톨릭 전통의 관상기도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다양한 영성수행을 직접 체험한 후, “위대한 영성전통들을 연결하는 지하수맥을 응시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다가 틱낫한 스님의 글을 접한 저자는 “불교의 가르침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자기 전통을 재발견하게 한다.”고 한다.  “죽음 이후의 삶을 과도하게 염려하여” 윤리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그리스도교의 일반적 경향성 때문에 “영성생활을 통한 자유와 환희를 만끽할 수 없는 위험”을 경고하며, 지금 이 순간에 천국을 체험하게 하는 ‘마음챙김’의 영성수행을 강조한다.

피어스 신부는 이런 수행이 그리스도교 전통에도 있는데, 특히 중세의 위대한 신비주의[심층] 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이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하게 되리라 믿는다.  이는 종교들이 심층에서는 서로 통한다는 필자의 평소 지론이기도 하다.  이 책의 출판을 크게 기뻐하며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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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를 원고지 4매 정도로 쓰라고 해서 좋은 내용들을 소개하지 못하는데, 주옥 같은 생각 몇 가지만 예를 들면, 성경에 나오는 열처녀 비유에서 “깨어 있으라”라는 것은 미래에 올 신랑을 위해 깨어 있으라는 뜻이기 보다는 

지금 여기 우리에게 임하는 은총에 눈을 뜨는 것이라 풀이한다.  '붓다'라는 이름이 '깨어난 자' '각자'가 아니던가. 또 탕자 비유도 돌아오는 탕자를 두 팔 별려 반기는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이라기보다 자기의 진정한 고향으로부터 떠났다가 다시 “돌아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풀고 있다.  

모세에게 “네가 서 있는 땅은 거룩한 땅”이라고 한 말도 우리가 마음챙김을 수행하면서 걸으면 한 걸음 한 걸음이 거룩한 땅을 디디는 것“이라고 한다. 하느님의 현존에서 걸어가기 때문이라고.*

즐독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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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음 - 지금 이 순간에 대한 탐구   
브라이언 피어스 (지은이),박문성 (옮긴이)불광출판사2021-12-31
원제 : We Walk the Path Together (2005년)

책소개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영적인 생각과 지혜를 하나로 묶는 데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브라이언 피어스 신부의 저서. 저자에게 영감을 준 두 명의 영성 대가는 14세기 독일의 영성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신부와 현대의 틱낫한 스님이다. 저자는 시대적으로 동떨어져 있는, 게다가 아주 다른 종교적 전통에 속해 있는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불러 대화를 시도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불교의 마음챙김(mindfulness).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 저자는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 하느님 나라는 오직 지금뿐임을 깨닫기에 이른다.

종교간 대화를 통해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했다고 한 저자의 고백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교 전통에 잠들어 있던 보석 같은 가르침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 불교도들은 마음챙김이라는 익숙한 수행이 불교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타당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챙김 수행이야말로 해탈로 가는 여정의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책 전반에 흐르는 두 종교의 조용하고 평온한 어울림은 자신과 다른 것에 마음을 여는 ‘관대함’ 덕분이다. 두 영성가의 지혜와 깨달음이 담긴 아름다운 언어들은 우리를 단순히 도량 넓은 인간이 아니라 균형 잡힌 인간으로 이끈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그리스도교와 불교도만이 아니라 분열과 다툼, 갈등으로 메말라가는 현대 사회를 구원해줄 깊은 물줄기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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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한국어판 추천사
감사의 말

머리말

제1장. 관대함
1. 대화의 음악
2. 관대함의 실천
3. 대화의 위험

제2장. 마음챙김과 영원한 현재
1. 지금 이 순간
2. 귀향
3.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있다
4. 봄으로서의 깨어 있음

제3장. 성령의 숨결
1. 숨쉬기를 다시 배우기
2. 하느님 마음에서 흘러넘치는 생명수
3. 다양한 소리, 그러나 하나의 성령
4. 사랑의 마음

제4장. 물과 물결
1. 물에 흠뻑 젖은 근거
2. 바다의 물 한 방울
3. 세례와 살아 있는 물
4. 이름을 부름
5. 의지 또는 은총
6. 성사
7. 물 만지기, 하느님 만지기

제5장. 예수와 하느님
1. 사랑의 순례로서 삼위일체
2. 삼위일체와 상호의존적 존재
3. 위대한 숨

제6장. 그리스도
1. 은총
2. 하느님의 말씀
3. 붓다의 몸, 그리스도의 몸
4. 성체

제7장. 고통
1. 사성제(四聖諦)
2. 이욕(離欲)

제8장. 고통에서 오는 연민
1. 깊이 들여다보기
2. 연민, 위험을 무릅쓴 사랑
3. 사랑의 실천

제9장. 십자가라는 나무
1. 자유로 가는 길
2. 생명의 나무인 십자가
3. 십자가의 형상
4. 그는 고통을 피하지 않았다

제10장. 활짝 피어오른 사랑
1. 그리스도의 몸을 어루만지기
2. 비폭력적 사랑의 십자가
3. 무엇이든, 단지 있다
4. 평정심과 십자가
5. 옆으로 누워 있는 붓다

맺음말 : 여정과 발우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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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89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사는 것, 하느님의 견고한 사랑에서 안식을 얻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이 참으로 갈구하는 바라고 믿는다. 그런 사랑을 느끼려면 깨어 있는 상태로 주의를 기울이면서 살아야 한다. 태이가 가르치는 마음챙김 수행이 바로 그것이다.
P. 101~102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이것은 지금 이 순간에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것이다. 즉 지금 여기에서 눈을 부릅뜨고 하느님의 현존과 섭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태이는 마음의 산란함과 태만이 마음챙김 수행을 방해하는 적이라고 규정한다. 에크하르트는 집착이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을 기다리는 자유를 앗아간... 더보기
P. 137 일상에서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실천하려 할 때마다, 우리는 매번 장애물을 만난다. 또 그것을 넘어가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곤 한다. 태이는 매일 마음챙김 수행을 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음챙김 수행은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과 만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이웃이 지닌 마음과 만날 수 있다. 그것이 하느님... 더보기
P. 154 씨앗과 같은 우리는 ‘충만한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존재 그 자체까지 완전히 성장한다. 물방울이나 물결이 “바다가 된다.”라는 에크하르트와 태이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그저 소멸하는 것일까? 우리가 하느님에게 녹아들어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 에크하르트는 지혜를 지닌 스승... 더보기
P. 214 그리스도인은 의문을 갖는다. 어떻게 하느님께 돌아간단 말인가? 그러면 태이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서 돌아갑니다.” 그리스도인도 이 가르침을 따를 수 있다. 마음을 다한 영성수련을 통해 삼위일체가 신학서적의 굴레에서 벗어나 일상 안에 실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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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이 책이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이어 주는 교량 역할을 하게 되리라 믿는다. 이는 종교들이 심층에서는 서로 통한다는 필자의 평소 지론이기도 하다. 이 책의 출판을 크게 기뻐하며 적극 추천하고 싶다.” - 오강남 (종교학자,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명예교수) 

“바야흐로 이런 종류의 책이 대중의 손에 잡힐 때가 되었나 보다.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변하는 세상을 누가 말릴 것인가?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 이현주 

“책 읽기를 마치자 내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그것은 현명한 벗과 함께한 시간과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벗이 되었다고 느낄 대부분의 독자와 함께한 시간에 대한 기쁨이다. 하지만 나는 조용하고 평온하게 가야 할 여정이 남아 있다는 느낌 또한 갖게 되었다. 이 여정은 다음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전력질주하는 사람처럼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는 오직 지금뿐이라는 것을 알고 매 순간들을 살아가는 것이다.” - 티모시 래드클리프 

“곳곳에서 보석들이 빛나고 있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책과의 대화가 막을 내렸다. 그 사이에 내 인생의 키가 훌쩍 자라 있음을 느낀다. 삶의 기적이 만남과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린 무수히 경험하고 있다.” - 도법 (스님(인드라망생명공동체 대표)) 

“이 책은 불자 혹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종교적 체험으로 ‘건너감’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통찰과 함께 자신의 종교로 ‘되돌아옴’에 이르게 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 박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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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브라이언 피어스 (Brian J. Pierce)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도미니코 수도회 신부.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제도의 도미니코 가족수도회의 성소 담당자, 도미니코 관상수녀회 총장의 지도신부였다. 이후 전임 순회 설교사로 돌아왔다. 가톨릭과 불교, 두 종교의 영적인 생각과 지혜를 하나로 묶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2005년 출간한 이 책을 통해 종교간 대화가 서로의 목표와 영적 실천을 더 풍부히 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저서로 『예수와 탕자 : 전적인 자비의 하느님(Jesus and the Prodigal Son: The God of Radical Mercy)』이 있다.
최근작 : <깨어있음> … 총 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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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성 (옮긴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1995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한국인이 가진 종교적 심성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1998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인도철학과에 학부 편입, 2007년 논문 「『깨달음 달의 출현』의 해탈관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가톨릭대학교 동양철학 교수로 재직했다. 2007년부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으로서 종교간 대화에 참여해 왔으며, 2019년부터 동 위원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다. 역서로 『산스크... 더보기
최근작 : … 총 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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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피어스(지은이)의 말
나는 종교간 대화의 여정 덕분에 더 나은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여기서 ‘더 나은’이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있다. 나는 다른 영성전통의 가르침과 수행을 통해 예수의 가르침을 비추어 보았고, 이제는 살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할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유랑하는 순례자다. 때로는 내가 시작했던 그날만큼이나 길이 어둡고 불확실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자신의 현존과 예수의 현존과 하느님의 현존과 붓다를 비롯한 시대를 초월한 많은 남녀 선인들의 현존을 느끼면서 나는 그들과 함께 걷는다. 현존은 현재 순간을 성심성의껏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더 현실화된다. 태이는 내가 현재 이 순간에 머무는 법을 익히도록 도와주었다. 태이는 자신의 마음과 영성전통의 문을 내게 열어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내 자신의 영성여정에서 더 온전하게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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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소개
불광출판사 

최근작 : <깨어있음>,<호흡 그리기>,<어린이를 위한 마음챙김 워크북>등 총 475종
대표분야 : 불교 1위 (브랜드 지수 369,71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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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신은 누구인가? 신은 어디 있는가?
신은 어떻게 고통을 치유하는가?
그리고 구원은 무엇인가?

인류의 오래된 질문, ‘마음챙김’으로 답하다!

“모든 종교의 뿌리에는 하나의 수맥이 흐른다.” 종교간 대화를 통해 이웃 종교의 가르침에 진지하게 접근하면, 그 이웃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 내 종교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브라이언 피어스 신부는 종교간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풍요로운 결실을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저자 브라이언 피어스 신부는 틱낫한 스님이 설명하는 마음챙김 수행에 주목하는 한편, 불교의 마음챙김 수행을 연상시키는 ‘깨어있음’이라는 신앙적 실천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특히 중세 독일의 신비주의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목표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종교간 대화라는 관점에서 불교의 마음챙김과 그리스도교의 ‘깨어있음’을 비교하고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의 ‘깨어있음’이 갖는 중요성에 주목할 것과, ‘깨어있음’을 일상의 영성생활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할 것을 주문한다. 이 책은 그것이야말로 우리들 자신의 삶으로 예수를 부활시키는 길이고, 제도권 교회에 갇혀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참된 생명력을 불어넣는 길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느님이 누구이고 어떻게 이 현실에 역사하는지에 대한 답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제시된다. 영원한 하느님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만 현존한다. 우리는 마음챙김 혹은 ‘깨어있음’을 실천함으로써 그러한 하느님과 만나게 된다. 그 만남을 통해 우리는 분열된 세계의 일치를 이루어 낼 수 있고, 서로의 경계를 초월한 참된 사랑을 할 수 있으며, 불가항력적인 고통 속에서도 평정을 누릴 수 있다. 우리의 삶을 구원하고 우리의 시대와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열리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과 불교도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는 종교간 대화에 참여함으로써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했다고 고백한다. 저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교 전통에 잠들어 있던 보석 같은 가르침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발견을 통해 더 깊이 있는 신앙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불교도들은 이 책을 통해 마음챙김이라는 익숙한 수행이 불교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타당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음챙김 수행이야말로 해탈로 가는 여정의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이웃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
내 종교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이해하려는 대담한 여정

이 책의 저자인 브라이언 피어스 신부(Brian J. Pierce) 신부는 틱낫한 스님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된 불교 전통의 수행인 마음챙김(mindfulness)에 주목한다. 마음챙김 수행에서 영감을 받은 저자는 그리스도교 전통의 여러 가르침, 특히 중세 독일의 신비주의자였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신부의 가르침에 나타나는 그리스도교적 “깨어있음”을 재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영성생활의 길을 찾아 나선다.
예수는 악마에게 사로잡힌 딸을 치유해 줄 것을 청하는 이방인 여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종교와 전통이 다른 이방인과 대화하는 것은 당시의 문화적, 종교적 규범에 위배되는 것이었지만, 예수는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저자는 마태오복음에 기록된 이 일화를 예수가 몸소 보여준 좋은 대화의 사례로 든다. 그리스도교 전통에 본래 있던 대화의 정신은 한때 희미해지기도 했으나 현대에 들어와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톨릭교회가 선포한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 우리시대」에 보이는 이웃 종교에 대한 존중의 태도로 부활한다. 그리고 40년 후, 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종교간 대화는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고 강조하기에 이른다. 가톨릭 신부인 저자는 자신이 속한 전통 안에 숨 쉬고 있었던 이러한 대화의 정신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라는 범주를 넘어 불교의 가르침에 접근해 간다.

마음챙김으로 재발견하는 그리스도교의 ‘깨어있음’

틱낫한의 가르침을 통해 저자는 불교의 마음챙김(mindfulness) 수행을 발견한다. 마음챙김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일상의 매 순간을 생기 넘치고 깊이 있게 사는 것이다. 마음챙김을 통해 삶을 성심성의껏 살아가면 참된 삶을 맛볼 수 있다. 이것이 삶에서 일어나는 참된 기적이다.
불교의 마음챙김 수행은 그리스도교 전통의 ‘깨어있음’이 갖는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을 돕는다. 그리스도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깨어있음을 설명한다.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가 구원사업을 완성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취한 강생(降生)의 신비는 하느님의 말씀이 지금 이 순간 바로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 깨어있음이다.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구절, 그리고 신랑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열명의 신부들의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 또한 이 깨어있음이다. 현대의 영성가인 토머스 머튼 또한 깨어 있으면서 주시하는 것이 영성생활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에크하르트는 마음챙김 혹은 깨어있음을 ‘민첩한 인식’이라고 부른다. 에크하르트는 이것을 “모든 일에서 자기 자신과 자기 내적 존재에 대한 민첩한 인식”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집중하여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인지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지금 이 순간에 숨겨진 경이로움을 보는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오늘을 무엇이라 말할까?”라고 자문하고 “영원”이라고 답한다.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하느님이 영원이다. 바로 이 순간이 영원한 현재다.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과 공간은 오로지 지금 여기뿐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의 ‘민첩한 인식’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다.

깨어있음,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것

잠든 사람은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 예수가 죽은 뒤 걱정과 슬픔에 사로잡혀 엠마오 마을로 가던 예수의 두 제자가 그들이 만난 나그네가 예수임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삶의 온갖 걱정과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도 지금 이 순간에 대한 마음챙김 혹은 깨어있음을 실천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챙김 혹은 깨어있음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 있는 하느님을 만날 때 비로소 자유롭게 된다. 루카복음에 나오는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따뜻한 환대를 받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성심성의껏 살아감으로써 참된 자기를 발견할 때 은총을 받게 된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난 두 제자는 자문한다. “우리의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예수의 두 제자의 마음속에 타올랐던 불길, 즉 살아 있는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만남은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항상 타올라야 한다. 그때 하느님 나라는 먼 곳에, 혹은 먼 미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현존하면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즉 “하느님 나라는 바로 지금이다.”
지금까지 그리스도교는 ‘이런 이런 것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윤리적 계명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 결과 영성생활이 즐겁고 마음 벅찬 삶의 한 형태임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전통의 깨어있음을 실천한다면, 즉 지금 이 순간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항상 인식하며 살아간다면 활기찬 영성생활을 되살려낼 수 있다.

마음챙김 혹은 깨어있음의 힘 1 : 분열된 세계가 일치에 이른다.

마음챙김 혹은 깨어있음을 통해 우리는 우리 안에 머무는 하느님과의 합일을 경험하며, 이때 우리에게 성령이 강림한다. 성령은 모든 것을 완전히 살아 있게 하고, 완전히 실재하고 하고,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는 하느님의 힘이다. 성령은 분열된 세계를 하나로 일치시킨다. 성령이 이룩한 조화와 평화 속에서 우리를 서로 갈라놓는 경계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사도행전 4장 32절) 그래서 에크하르트는 말한다. “하느님이 모든 것 안에 현존한다는 것을 아는 그 사람만이 평화를 안다.”
성령의 힘이 이루어 낸 일치 속에서 우리는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를 본다. 병에 걸린 채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의 몸이 그리스도의 몸이고, 고통받는 이의 비참한 모습이 그리스도의 모습이며, 나를 모욕하고 해치려는 이의 분노에 찬 얼굴이 그리스도의 얼굴임을 본다. 사도 바오로가 말한 것처럼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체입니다.”(1코린토 12장 27절) 이러한 그리스도를 볼 수 있을 때 우리의 마음에는 사랑이 가득하게 된다. 성령의 힘에 의해 하느님과 모든 피조물은 사랑의 마음에서 하나가 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는 매 순간이 성령에게 개방된 순간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이 일상에서 역사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에크하르트는 말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랑은 성령이다.”

마음챙김 혹은 깨어있음의 힘 2 : 고통을 무릅쓴 사랑을 감행한다.

틱낫한은 마음챙김의 한 형태인 ‘깊이 들여다보기’를 실천하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관찰자와 대상 사이의 구분이 사라질 정도로 집중된 상태에서 사물 또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이며, 우리 자신의 정서적 색안경을 벗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깊이 들여다보기’를 행할 때 우리의 눈은 기만과 이기주의와 죄로부터 치유된다. 그리고 비로소 하느님의 눈 부신 빛으로 이웃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눈으로 이웃의 고통을 들여다볼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 연민이 싹튼다. 누군가에 대한 연민의 마음 갖고 산다는 것은 그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고통을 수반할 가능성까지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랑에 따르는 고통이야말로 연민이 의미하는 모든 것이다.
예수의 삶은 고통을 무릅쓴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예수의 가르침과 활동은 소외되고 가난하며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환자를 끌어안았고, 창녀와 간음한 사람을 용서했으며, 죄인 또는 세리와 함께 식사했다. 예수의 이러한 행동은 당시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며, 그 역시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렇게 행동해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하느님이 사랑하는 방식이 바로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종교적, 정치적 권력에 도취된 당시의 지배층은 예수의 행동이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하였고, 결국 그들은 예수를 죽였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의 사랑이 고통을 무릅쓰는 것임을 증명한다. 하느님은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그들의 아픔을 모르는 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느님은 고통받는 그들에게 다가온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챙김 혹은 깨어있음의 힘 3 : 고통 속에서도 평정을 누린다.

에크하르트는 하느님 안에 굳건히 뿌리내린 내린 삶, 즉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고통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 즉 ‘빈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빈 마음’으로 살아갈 때 결과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기도와 일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내면의 평온과 자유를 얻을 수 있으며, “단지 있는 것”일 뿐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평정심은 고통을 낭만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한순간의 삶만을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다. 에크하르트식으로 말하면 고통은 하느님 안에 있고, 고통이 하느님이다. 따라서 고통은 원수가 아니고, 억제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그저 우리의 일부일 뿐이다.
평정심 수행은 영성생활이란 고통 없는 삶이 아니라 고통 안에서 자유로운 삶을 말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고통을 극복해야만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일 뿐이다. 해방은 다른 곳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실현된다.

<마음챙김에서 찾는 참된 신앙 Q&A>

Q. 불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에는 공통의 영성적 기반이 있는가?”
A. 불교의 마음챙김(mindfulness)은 그리스도교의 ‘깨어있음’과 통한다.

Q. 하느님은 어디에 있는가?”
A. 하느님은 영원하지만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현존한다.

Q. 하느님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A. 지금 이 순간에 대한 마음챙김 혹은 깨어있음을 실천할 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Q.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A. 지금 이 순간에 현존하는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고 고통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Q. 구원은 언제 오는가?”
A. 구원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는 지금 이 순간의 일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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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Walk the Path Together: Learning From Thich Nhat Hanh And Meister Eckhart 
 October 31, 2005
by Brian J. Pierce (Author)
4.8 out of 5 stars 19 ratings

Kindle from AUD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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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back
AUD 25.46
This book presents engaging reflections on the modern day Vietnamese Zen Master, Thich Nhat Hanh and the medieval Christian mystic, Meister Eckhart (1260-1327). It celebrates the common spiritual ground that exists between Christianity and Buddhism.

length  202 pages

Editorial Reviews

Review
"... recommended to those who are intentional about their spiritual journey. The book is easy to read and deeply moving, because the book touches the core of our being." --Buddhist-Christian Studies
About the Author
Brian J. Pierce, a Dominican priest, is former Promoter of the Dominican Family in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and Assistant to the Master of the Order for the Contemplative Nuns of the Order. He has returned to full-time itinerant preaching. He is the author of We Walk the Path Together: Learning from Thich Nhat Hanh and Meister Eckhart.

Product details

Publisher ‏ : ‎ Orbis Books; 1st edition (October 31, 2005)
Language ‏ : ‎ English
Paperback ‏ : ‎ 202 pages
Customer reviews
4.8 out of 5 stars

Top reviews from the United States


Gregory DiSalvio

5.0 out of 5 stars Come Together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March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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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an important Spiritual work. Catholic in perspective and open minded in scope this book outlines how closely related sound Spiritual principles are. When we still our minds we can hear that which we never thought we cou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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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Ann, OP

5.0 out of 5 stars Plunging Into Two Worlds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February 2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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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book more than lives up to the reviews that I read about in various publications.
The author clearly develops those beliefs held in common between Christianity and Buddhism as well as the distinct differences. He does this through the lens of the Dominican mystic Meister Eckhart and the lens of Thich Nhat Hanh. I am able to feel at home in both worlds even though I am definitely a 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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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io John

5.0 out of 5 stars East and West are Bridged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une 2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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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Pierce bridges east and west thinking on Christ consciousness/Buddha awakening that we are so gifted to have available to us. The bridge Pierce builds stretches from the historical writings and experiences of Catholic Christian Meister Eckhart of the 14th. century and Buddhist Thich Nhat Hanh of recent times. Comparing the writings and teaching of both these spiritual leaders the reader is confronted and then nurtured through a process that takes them on a journey over a bridge leading to the reality of a mystical kinship that both religious traditions share - a oneness in Awakening and communion of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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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ter Adrienne Colson,OP

5.0 out of 5 stars Outstanding. It is worth a second and third reading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uly 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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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standing.It is worth a second and third reading.I understand after talking with Father Brian,he will have
Anew book out sometime next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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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on Customer

5.0 out of 5 stars a book for the journey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October 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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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book covers the elements essential for matuirity of faith. it integrates spirituality and the human dimension of life as one.;. I didn't just read this book...I lived into the reading and rereading....wonder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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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Garossino

5.0 out of 5 stars Five Stars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September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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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ful and 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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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

4.0 out of 5 stars This is an excellent introduction for Christians to Thich Nhat Hanh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une 21, 2012

I was impressed by Pierce's comprehensive knowledge of Thich Nhat Hanh teachings and equally as well his first hand experience with the monastics in that tradition. He presents and represents many essential teachings of Thay(Thich Nhat Hanh) and relates them beautifully to Christianity.

While the book is full of quotes, poems, and references, it is written with a manner from the heart; I think it would make an excellent comprehensive introduction for any person with a Christian background into the teachings of Thich Nhat Hanh without being overwhelmed by the unfamiliarity of Buddhist terminologies or beliefs.

I highly recommend this book.

4 people found this help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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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ke Hildebrand

5.0 out of 5 stars One of the best spiritual books I ever read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anuary 6, 2011

'We Walk the Path Together' by Brian J. Pierce, OP, seems to me being one of the best spiritual books I ever read. The author is very authentical, and he does not only refer to Thitch Nat Hanh, a contemporary, famous Zen Teacher (whom the author personally knows) and Meister Eckhart, the great German Mysthic, born about 1260. He also shares with the reader his own rich experiences of spirituality, religion and mysthicism.
It is a breath taking experience to follow the author on his way through all the subjects he refers to. Not a single moment boring, never seeming abstract, but full of life and deep knowledge.

This book became for me a personal guide to go deeper inside the cave of my own heart, like being leaded by a warm and brotherly hand.
I wish that every serious seeker will get the grace to meet this marvellous book of guidance!
Heike Hilderand

9 people found this help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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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reviews from other countries

AMR
5.0 out of 5 stars Amazing insights. I highly recommend it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June 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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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truly worth reading and digesting. Amazing insights. I highly recommen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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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sh Park
5.0 out of 5 stars Grounding Oneself in the Now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October 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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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book is nourishing me in ways I did not expect. The author, whilst of course concentrating on Meister Eckhart and on Thich Nhat Hanh, introduces other voices to enrich the path we are walking in Mindfulness and in Contemplation. Being alert both to Life in the newness of each second and also to our own heart has the possibility of awakening us to real perception.

Here is a lovely scrap of a poem by David Wagoner and quoted by Brian Pierce. You will have to read further to get the rest of it!

No two trees are the same to Raven.
No two branches are the same to Wren.
If what a tree or bush does is lost to you,
You are truly lost. Stand still. The forest knows
Where you are. You must let it find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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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on Customer
5.0 out of 5 stars Same as aboveReviewed in Canada on October 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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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llenging, thought provoking and meditative. Great for small group group discussion and 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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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Walk the Path Together: Learning from Thich Nhat Hanh and Meister Eckhart
by Brian J. Pierce
 4.15  ·   Rating details ·  13 ratings  ·  2 reviews
Through reflections on the Vietnamese Zen master, Thich Nhat Hanh and the medieval Christian mystic Meister Eckhart this book celebrates the common spiritual ground shared by Christians and Buddh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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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ricia
Sep 05, 2015Patricia rated it it was amazing
Shelves: 2015
This challenging book, narrated by a Catholic, explains the intersections of Buddhism and Christian theology, acknowledging the differences and shows great reverence to both traditions. Although some parts were above my head in rhetoric and theology terms I am not versed in, I found much to think about and it deepened my own faith. I know it is a book I will revisit numerous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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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Jan 10, 2012Mary rated it liked it
Chosen for a discussion book for my Associates group. This books celebrataes the common spiritual ground shared by Christians and Buddists. Concepts and images made this a powerful book to read and discuss.
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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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0

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민중' 효과 리뷰(김현주), 비평연습 1회차 글쓰기

[프로그램 리뷰] 제237차 월례포럼 <'민중' 효과> 리뷰(김현주)


[프로그램 리뷰] 제237차 월례포럼 <'민중' 효과> 리뷰(김현주)
프로그램 리뷰

by 제3시대 2021. 2. 18. 11:42

제237차 월례포럼 <'민중' 효과> 리뷰


김현주(대전보건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우선 코로나 덕분에 지방에서도 비대면으로 포럼에 참석할 수 있어 감사했다. 민중신학과 거리가 먼 나로서는 긴 시간 유학한 황용연 박사의 모습을 괄목상대하고픈 마음이 컸다. 강의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나와 같은 문외한도 이해할 만큼 쉬웠으며, 강의를 마친 후 다른 논문을 들여다보니 전과 달리 뜻이 들여다보일 만큼 눈을 띄우는 힘이 있었다. 강의를 들은 후 이전과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으니 상당한 배움이 있었던 것 같다. 논문에 담긴 복잡한 논의를 연구자의 정리된 언어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민중’이 누구냐는 질문을 학생운동권 시절에 자주 물었지만 뾰족한 답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대개 ‘그들’이라는 대상으로 여기면서도 민중이라는 말을 놓지는 못했으니, 현실 역사의 주체가 민중이 아니라는 괴리에 주목한 연구자의 문제의식에 개인적으로 납득이 되었다. 연구자는 이 괴리를 드러내기 위하여 박권일의 ‘표준시민’이라는 개념을 가져왔다. 표준시민은 수도권에서 나타나는 중산층 지향 대중 현상을 가리킨다. 표준시민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인정투쟁을 수행한다. 이때 무능력자와 무자격자가 마땅하고 상식적이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배제되고 마는데, 바로 여기에 민중이라는 용어를 호출하자는 것이다. 1970년 전태일 사건으로 사람들이 눈을 뜨고 민중에 주목하였던 것처럼, 무능력자와 무자격자가 무자비하게 배제되는 사건을 지금 증언하기 위하여 민중이라는 안경을 쓰자는 것이다. 

제 눈에 안경이 같은 사건을 보여주지도 않을뿐더러 같은 증언을 요청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이주노동자, 난민, 여성, 성 소수자, 하층 노동자만 아니라, 범죄자, 채용시험 탈락자, 대학의 제2캠퍼스 재학생조차 이 무능력자 또는 무자격자로 배제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배제하는 칼금은 우리들 사이 어디에나 있다.

여기서 바울의 칭의론이 비유대인 그리스도인에 대한 배제를 해소하기 위한 투쟁담론이라는 김창락의 민중신학적 해석이 흥미롭게 등장한다. 로마 식민지 도시의 디아스포라 교회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근거로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배제하고자 했다. 이 긴장관계를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해석할 수는 없지만 표준시민과 무자격자로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바울은 교회의 경계를 율법에서 믿음으로 옮김으로써, 무자격자인 이방인이 할례를 받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이때 바울이 가졌던 남다른 눈이 바로 민중이라는 용어 작용과 유사하다는 주장이다.

연구자는 안경을 쓰라고 하지 않고 안경 씌움을 당하라고 말한다. 나는 그가 바디우 식의 사건을 대망하고 있다고 느꼈다. 시각이 바뀌면 시야가 달라진다. 민중이라는 안경은 경계 밖에 있는 사람과 경계 안에 있는 사람 모두가 경계를 바라보게 할 것이다. 나-남을 알아보는 시력이 배제의 도구가 되어서는 우리가 직면한 시대적·사회적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다. 우리의 증언은 우리들 사이를 가르는 경계를 인식하고 해석하고 정의하여 마침내 경계를 옮기고 허무는 일이 될 것이다.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몸은 경계를 옮기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성벽이라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담을 허물고 지성소 안에서 사람과 신을 가르던 휘장을 찢었다. 우리들도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조각내는 헝클어진 경계를 쳐다보고 경계 너머에 있는 타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이를 받으며 그리스도의 몸을 증언할 수 있다.

강의 후 질의에 답하며 연구자는 ‘경계를 허무는 사건의 양면성’을 생각하는 민중신학자의 조심스러움을 덧붙였다. 문득 여리고성이 무너진 사건을 생각했다. 성이 다른 방향으로 무너졌다면 성을 돌던 백성들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현실에서는 경계를 움직이고자 하는 힘의 의도대로 결과가 펼쳐지지 않을 때도 많다. 이제 와서 우리가 촛불을 후회하겠는가? 사건은 영원으로부터 현실로 온다. 학자의 정교한 시각과 신중한 계산, 신학자다운 초월적 관점을 느끼며 이제는 다음 연구 결과물을 기다리겠다.

황용연 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은 배제된 사람들이 자기식의 언어를 갖게 하자는 목적으로 글쓰기 강좌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였다. 글쓰기는 두려운 일이다. 생각과 마음을 박제하는 결과물이 무겁고 의도와 다르게 적힌 내 글은 낯설기도 하다. 그러나 어려운 논문을 쉽게 설명하는 황용연 박사라면 때로는 표준시민인 듯싶다가 졸지에 무자격자 또는 무능력자로 전락하고 마는 우리들이 무겁거나 낯설지 않은 내 목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도 좋겠다.

ⓒ 웹진 <제3시대>

출처: https://minjungtheology.tistory.com/1297 [웹진 <제3시대>]


[#180, 비평연습 특집] 그의 이름은(창세기 2:4-3:24) : 
비평연습 1회차 글쓰기
웹진 제3시대

2021-11-07
조회수 166
그의 이름은 (창세기 2:4-3:24) : 비평연습 1회차 글쓰기

김현주(대전보건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첫 사람의 이름은 사람일까, 아담일까, 남자일까? 그대와 함께 사는 강아지의 이름은 개인가, 댕댕이인가? 시츄일수도 있고 푸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가 애완하는 강아지를 개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아이는 여느 강아지와 다른 내 아이이며 내가 이름을 부를 때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안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들의 몸짓을 춤으로 담은 과정을 영상으로 보았다. 동대입구역에서 야간노동을 하는 그분의 이름은 배남이였다. “내가 배남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았어요.”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이제껏 누가 볼까 창피하던 청소하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당하는 경험을 그분은 눈물로 감격했다.

성경의 첫 사람은 아담이다. 창조설화에는 개체의 이름과 종의 이름이 섞여 있다. 그래서 이 첫 사람을 좀 알아보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한다. 한글 성경에서는 아담을 사람이라고도 번역했고 남자라고도 번역했다. 어느 쪽이든 사람의 이름은 아니다. 심지어 하나님도 첫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첫 사람은 이름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고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지어 불러줄 이가 아무도 없는 아담에게서 절대 고독의 무게가 느껴진다.

흥미롭게도, 이름이 없던 첫 사람의 직업은 작명가였다. 그는 이름을 지어주는 일을 하며 살았다. 짐승을 보고 그가 이르는 것이 그 이름이 되었다. 허나 그가 지어준 이름은 상대와 관계를 구성하는 애칭이 아니라 공식적인 명칭이었다. 아담은 여러 짐승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으나 무엇과도 벗 삼지는 않은 것 같다(창 2:18-20). 첫 사람이 하나님이 데려온 강아지에게 ‘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을까, 아니면 ‘댕댕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을까? 전자였다. 만일 후자였다면 하나님이 추가로 여자를 만들 필요가 없었을 테다. 사람이 혼자라서 좋지 않으니 짝을 지어 주자던 하나님의 첫 시도는 뜻을 이루지 못하여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창조자가 첫 사람의 이름을 지어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나는 하나님이 첫 사람의 짝(돕는 베필)이 되어줄 수는 없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마치 첫 사람이 어떤 짐승도 짝으로 삼을 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도 사람의 짝으로는 맞지 않았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비유하였다. 이 편지는 성경에 새겨져 기독교 세계에서 가부장을 지지하는 메시지로 기능해 왔다. 성인지 감수성이 좀 생기고 나서는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에서 아내의 복종은 수월하고 남성의 사랑은 엄청 힘들다는 식으로 양보하기도 하지만 그런 시각으로 남편과 아내의 위계를 해체하지는 못한다. 비록 바울이 윤리적인 설교의 형식을 빌리기는 하였으나 이 비유를 부부관계의 첫 모형인 창조 설화의 첫 남자와 아내의 관계에 비추어 보면, 바울의 비유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동등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예수는 생전에 딱 한 번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미래형으로 말한 것 외에 교회라는 것을 시도한 적이 없다. 베드로와 긴장 관계에서 정통성이 간절했던 바울이 본격적으로 교회를 세우고 관리하면서 자신이 세운 교회의 권위를 그리스도와 동등한 수준으로 주장하고 싶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 동등함은 동일함이 아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다르고 사람과 짐승이 다른 것처럼 존재는 구별이 되지만 남자와 여자는 그런 구별이 없다는 정도로만 이해하여도 교회의 위상은 상당히 올라간다.

이 동등한 여자와 남자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하나님은 첫 사람의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만들어 데려왔다. 이제 첫 사람 아담은 더 이상 아담이 아니다. 계산을 해 보면, 갈빗대를 잃은 아담은 당연히 원래 아담보다 모자란다.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었다. 아담에게서 떼어낸 갈빗대는 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창 2:23). 여기서 여자를 만들었다는 표현에 NASB는 fashion이라는 동사를 썼다. 상당히 모양을 낸 것 같은 느낌이다. 들짐승도 날짐승도 움직이지 못한 아담의 굳은 마음을 흔들어보겠다는 창조자의 의지겠다. 갈빗대를 잃어 아담보다 조금 모자라게 된 (첫 사람이 아닌) 첫 남자는 이제 여자에게서 자신의 모자람을 채워 줄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른다(창 2:24). 합본 편집된 성경에서 가장 앞자락에 기록된 노래다.

사람이라는 보통명사로 불리던 이름 없고 외로운 작명가에게 이제 재미라는 것이 생겨났다. 그동안은 갈빗대가 있어서 외롭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갈빗대를 잃고 부족함이 생기자 관계에 대한 갈망도 생긴 것이 우연일까? 처음 만들어진 완벽했던 첫 사람은 여러 짐승과 심지어 창조주에게도 무심했다. 세상에는 동식물이 가득하고 성부, 성자, 성령이 역동하고 있었음에도 하나님은 그가 ‘홀로’라서 좋지 않다고 하였다. 복잡한 놀이공원에서 홀로인 사람을 상상해 보자.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거나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이다. 창조자가 그의 벗이 되어주는 대신 그에게 벗을 만들어 준 이유는 아무래도 그에게 부족했던 것이 바로 ‘부족함’ 그 자체였기 때문일 것 같다. 갈빗대라는 것이 신체 기관인지 마음의 조각인지 영혼의 부스러기인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빠져 나간 ‘빈자리’가 없는 첫 사람은 완벽하지만 무언가 모자랐던 것이다. 이름이 없어도 부족함이 없던 그에게 결핍이 없어서 부족했다는 역설이 흥미롭다.

이어서 선악과를 먹는 장면에서 우리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분명히 첫 사람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했다는데, 여자의 말에서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고, 어기면 우리가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고 묘하게 달라져 있다. 남자가 들은 말을 여자에게 정확히 전달했다면 여자가 열매를 가져와도 바로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마디는 했겠지. 사실 남자도 헷갈렸을까? 여자가 열매를 먹었다는데 죽지 않고 와서 열매를 주니까 아마 괜찮은가보다 믿었을지도 모른다. 이 중요한 장면에서 아담은 망설이지를 않는다. 하나님의 명령은 막연하지만 그걸 어기고도 생존한 아내가 와서 하는 말은 구체적이다. 그래 너만 먹을 순 없지. 나도 먹어보자.

그런데 여자만 열매를 먹어서는 나타나지 않던 열매의 효과가 남편도 먹고 나서야 나타난다. 그들은 눈이 밝아졌다. 이름이나 짓던 한량이 노동으로 옷을 지어 벗은 몸을 가린다. 벗은 몸이 부끄러울 수 있는 여건은 누군가가 쳐다볼 때다. 길고양이는 옷을 입는 법이 없다. 그래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고양이는 인간의 몸을 쳐다보지 않는다. 관심이 없으므로. 마치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 노예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갈아입었다던 상황처럼 상대의 시선이 나에게 의미가 없다가, 눈이 밝아지고 나서야 비로소 상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선악과를 먹은 효과는 일차적으로 개인이 아니라 관계에서 나타났다. 만일 첫 사람이 홀로일 때 선악과를 먹었다면 도대체 무엇이 부끄러웠을까? 여자가 뱀을 만나 열매를 따 먹은 후 남편 것도 따서 가져올 때 옷을 입었을 리가 없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상대를 바라보는 눈이 밝아져서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된 동산의 파국이자 인간이 만드는 새로운 관계, 사회의 시작이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의 몬스터는 괴롭힐 대상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모두 찾아서 죽임으로써 피해자가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을 외롭게 살아가게 한다. 이 만화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는 사람은 존재도 없는 것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성경은 끝내 가인과 아벨과 셋의 아버지인 첫 남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마치 절대적인 존재인 양 내내 아담이었다. 그러나 첫 여자의 이름은 ‘생명’이었다. 하와라는 이 이름은 창조된 동산을 떠나 인간의 사회로 가면서 죽음과 고통을 경험하게 될 아내에게 선물처럼 남편이 지어준다. 첫 남자가 죽을 때까지 아내를 ‘생명’이라고 불렀다니, 애절하지 않은가! 그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그의 입으로는 생명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말했을 것이다. ‘생명’이라고 불리는 그의 아내는 세 아들을 낳았고 가인과 셋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창 4:1, 15). 아벨의 이름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이 ‘부족함’이 완벽함이 지닌 모자람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을 앞에서 말했다.

첫 사람이자 첫 남자인 이름 없는 사나이는 바울이 로마 신도들에게 보낸 편지에 ‘장차 오실 분,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언급된다(롬 5:14). 죄를 지은 첫 사람이라는 멸칭을 장차 오실 분의 모형으로 역전시키는 바울의 논리가 흥미롭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아담은 갈빗대를 지녔던 첫 사람일까, 아니면 갈빗대를 잃고 여자의 짝이 된 첫 남자일까? 다시 묻자. 예수는 남자였을까? 요셉의 정자 없이 마리아의 태에서 성령으로 발생되었다면 일단 Y 염색체를 인간에게서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굳이 남성일 필요가 없지.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성이든 굳이 공개할 필요도 없었다. 분명히 예수는 남성이 아니라 인간으로 성육신하였고 인간으로 살았고 인간으로 부활하였다. 예수는 혼인하지 않았고 자녀를 낳지 않았다. 남성으로서 생식능력을 확인한 바 없으니 남성이었다고 주장할 생물학적 근거도 없다. 그러니 예수의 모형으로 언급되는 아담은 갈빗대를 지닌 첫 사람이라고 하자. 그 사람 안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그들의 관계도 들어있었다. 선악과를 먹고 죽음을 맛본 이는 개별적인 여자,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연합하여 한 몸이 된 인간(人間)이었다. 이 비밀을 자기 몸에 간직한 아담은 누군가의 남편이기 전에 온전한 원형적 인간이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누가 지어 준 이름으로 불리며 개인적인 관계 속에 머물 수가 없었다. 그는 모든 인간의 대표가 되어야 했고 모든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초주체(hypersubject)여야 했으니까. 그리고 신이면서 인간인 예수는 아담의 이름으로 인류와 만났다. 첫 사람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자 비로소 모든 관계를 왜곡시킨 초주체로 이름을 얻는다. 이것은 공자가 논어에서 답한 세상을 바로 세우는 정명(正名)이다. 이제 나는 초주체라는 괴물이 해소된 새로운 세상에서는 hyposubjects가 이름을 얻을 수 있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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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osubjects are necessarily feminist, colorful, queer, ecological, transhuman, and intrahuman. Hyposubjects make revolutions where technomodern radar can’t glimpse them. They patiently ignore expert advice that they do not or cannot exist. They are skeptical of efforts to summarize them, including everything we have just said. Timothy Morton)

ⓒ 웹진 <제3시대>

2021/12/16

제 3 과 성경의 제일 요긴한 교훈

  3   성경의 제일 요긴한 교훈

3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5) :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믿을 것과1)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입니다. 2)

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너희로 믿고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0:30,31)

2)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6:8) I. 성경은 하나님과 구원, 그리고 구원받은 자의 삶을 다룹니다.

지난 공부에서 우리는 성경의 충분성(Sufficiency)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말은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는다는 말인가요?

1) 성경은 백과 사전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에는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 또는 모든 것들이 언급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성경은 인류의 완전한 역사를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주어진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에는 다른 사료에서 배워야만 많은 역사들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일반 과학이 요구하는 기술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화학 공식이 없습니다. 전자 공학의 이론도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주어진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에는 다른 사료에서 배워야 하는 많은 역사들이 있습니다. 고구려사도 학교에서 배워야 하고 중국역사도 따로 배워야 합니다.

법률학 정보나 컴퓨터 정보도 나오지 않습니다.

2)    사실상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우리가 바라는 정보조차도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성경 인류의 완전한 역사를 제공해 주지 않을 더러, 예수님의 소년 시절, 교육, 또는 가정생활에 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정확한 신체적 모양을 도무지 알지도 못합니다.

원래부터 성경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주어진 정보 책이 아닙니다. 목적이라면 아마 구글이 쉬울 것입니다. 

3)    성경은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이고 영원한 문제를 다루십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인간의 구원, 그리고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것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을 가르치려고 주어졌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너희로 믿고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0:30,31)

우리가 땅에서 어떻게 구원을 얻으며,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있게 충분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의 충분성을 이야기할 때에 분명히 우리가 기억하여야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II. 성경의 충분성이 의미하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을 바로 있는  (열쇠) 성경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답을 얻을 있는 분명한 열쇠와 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성경이 없이 세상의 적은 것에서 것까지 어떤 것도,  참된 이해를 가질 없다고 선언할 있습니다.

마치 어두움 속을 걸으면 아무리 눈이 밝아도 아무 것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빛이 비춰질 때에는 모든 것이 환하게 보여 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등불의 빛과 같습니다.

"주의 말씀은 발의 등이요 길의 빛이니이다'( 119:105) "주의 가운데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36:9)

하나님을 배제하고 우주만물과 또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분명히 근본과 원인과 이유를 바로 수가 없습니다.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왜곡된 지식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만으로 존재의 원인을 밝히려는 진화론자들은 존재의 이유를 우연히 화학반응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결론에 도달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가지지 못하였으므로 자신의 눈을 가지고 어두움 속에서 내린 결론입니다. 아무리 좋은 ,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진 과학자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역사가, 지리학자, 철학자 혹은 다른 학문을 연구하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의 조명 속에서 때에 참된 판단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적용됩니다.

여러분들은 삶의 모든 판단과 결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아래서 판단하고 계신가요?

결국 우리가 세상의 모든 사물과 모든 정신세계를 때에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의 눈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고, 지혜로운 것입니다. 분의 특별한 계시 , 말씀의 속에서 사물을 때에 지식을 얻게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빛으로 때에 성령께서 말씀을 깨달을 있도록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어두움 속에서는 아무리 우리가 연구한다하여도 짐작에 불과합니다. 많은 오류를 가지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물을 말씀의 빛에 비추어 바라보는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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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진리의 빛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등불입니다. 등불을 비취는 가운데서 사물을 바라볼 우리는 모습을 발견할 있습니다. III. 인간의 전적부패로 인하여 성령의 거듭남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이렇게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영혼을 거듭나게 만들어 주신 자에게 가능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창조주의 살아계심을 믿고 신뢰하며, 모든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바라 봅니다. 그로 인하여 자신의 참된 위치와 가치를 바로 이해하고 인정합니다.

사람이 과학자라면 그는 하나님의 경이스러운 창조를 알기 위하여 사물을 연구할 것입니다. 창조 과학자들이 그들 중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가 만약 역사가라면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하여 인류의 역사를 연구할 것입니다. 물론 다른 모든 영역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철학자라면 역시 창조주의 인간을 향한 창조 목적과 인간의 근원 등을 빛으로 바라보면서 인간의 존재나 인식, 또는 목적 등을 연구하여 나갈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으로 바른 지식을 얻기 위하여는 말씀의 빛으로 바라보고 연구하여야 합니다.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믿을 것을 때에 만이 우리는 똑바로 걸을 있으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무와 본분을 깨달을 있습니다.

IV.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며 믿는 자가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거듭난 자들이 성경의 조명 아래서서 세상의 이치와 진리들을 깨달아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질문의 열쇠와 답을 성경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조명 아래,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진리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주로 다루는 것은 보다 깊은 영적인 원리들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구원을 얻으며, 믿음으로 구언 받은 자가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교리 문답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작성되었습니다. 

1)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것인가를 크게 강조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흔히 무엇을 믿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믿을 권리가 있다.” 말합니다.

다른 이들은무엇을 믿든지 사람이 타인에 대해 신실하고 점잖으면 그가 믿는 것을 받아들일 만하다.” 말합니다.

시인 알렉산더 포우프(A.Pope)조차도 이렇게 읊었습니다.

"몰지각한 독선적 신앙 문제 싸움은 내버려두라. 정직하게 사는 자가 믿는 모든 것은 나쁠

없다."

물론 믿고 싶지 않는 것을 믿도록 어느 누구도 타인에 의해서 강요당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믿든 차이가 없다고 그것은 참이 없습니다.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이 9)

예수님께서는 우물 가에서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4:22-24).

인간이 잘못된 신앙을 가졌을 지라도 올바른 삶을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없느니라” (

7:18).

교리 문답이,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믿을 선두에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2) 인간이 신앙, 하나님이 그에게 믿기를 명한 믿음을 가졌을 그는 하나님이 명한 것을 행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올바른 행위, 실천의 결과가 없는 , 신앙이란 있을 없습니다.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니요 믿음이 능히 자신을 구원하겠느냐” ( 2:14).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체가 죽은 것이다영혼 없는 몸이 죽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 2:17, 26).

교리 문답이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믿을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 강조하는 것은 신자가 생활의 참된 자세를 갖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죽은 정통이란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의 참된 교리들을 고백하고, 이것을 토론하고 주장하며, 방법들을 이해하긴 하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리 문답이 신앙을 선두에 뿐만 아니라 올바른 실천이 없는 신앙은 구원 받을 있는 신앙이 아님을 계속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율법(십계명) 우리를 회개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의 필요를 깨닫게 하여 줍니다.

한가지 첨가적으로 알야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율법(십계명)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 가정 교사가 된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의 정죄를 통하여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우리의 무능을 지적함으로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여 줍니다.

결국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속의 죄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을 받을 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여 줍니다.( 3:24)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율법의 정죄로 우리가 예수님이 필요함을 깨닫게 주는 몽학선생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의 필요를 먼저 깨닫기 전에는 자신이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앙에 이를 없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죄인들이, 그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오로지 율법에 의해서인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0)

4) 그러면 율법을 먼저 다루어야 하는 아닌가요?

그러면, 교리 문답이 율법을 먼저 말하지 않고, 구원 받기 위해서 필요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먼저 말하는가요?” 라고 질문할 있습니다. 여기 대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a.      교리 문답이 율법을 먼저 다루고, 다음으로 신앙을 다룬다 해서 그릇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세주를 주시기 전에 율법을 먼저 주셨습니다.

b.      그러나 교리 문답에서 율법이 가장 먼저 취급되지 않은 대한 선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                    율법을 앞에 두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뒤에 두게 되면 그리스도가 율법보다 중요하다는 인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                    부주의한 사람들은 구원이, 율법이 명한 바를 행함으로 얻어진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먼저 율법을 지켜라. 그리하면 그리스도가 영접할 것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입니다.

성경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 받을 자는 아무도 없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그리스도 외에는 누구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율법들을 지킬 자는 없습니다.

-                    율법을 먼저 두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뒤에 둔다면 예수 믿은 이후에는 율법이 필요 없다는 인상이 생길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께 왔으므로 나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하는 율법은 필요 없다.”라고 말할 또한 잘못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필요함을 알도록 하나님은 율법을 주셨을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이후 우리가 어떻게 그를 위해 살아야만 하는가를 알게 하려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다.” 요한은 말했다(요일

5:3)

결론적으로 교리 문답은 확고하게 교리로서의 기독교와 생활로서의 기독교, 신앙과 생활의 분리를 배제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기독교는 결코 어느 하나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둘은 항상 병행합니다. 

[   ]

1)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나요?

2)    그러면 성경의 충분성을 인정할 있나요?

3)    세상 원리들은 알기 위하여 성경의 조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주의 가운데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36:9) 말씀에 근거하여 설명하여 보세요.

4)    성경을 조명하여 세상을 바라보기 위하여는 성령의 거듭남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우리가 아무거나 생각대로 믿어도 관계없다"라는 말에 대하여 성경적 원리에 의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6)    교리 문답이 기본적인 강조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7)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럼 율법이 "몽학선생"이란 뜻이 무엇입니까?

8)    교리문답이 율법에 앞서서 믿음을 먼저 취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십시오.

9)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십계명) 필요한가요? 이유를 설명하여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