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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0

[김조년] 단순함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단순함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단순함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1.04.19

한남대 명예교수

[금강일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해 본다. 

물론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맘이나 생각에서 떠나지 않고 항상 내 삶과 함께 따라다니는 질문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청소년 때, 장년 때, 노년 때도 각각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를 늘 고민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쌈박한 답을 스스로 얻지 못하고 있다. 설령 막연하게 이러한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도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너무 멀게 산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확산 사태로 관행으로 살아왔던 모든 것들이 다 흩어지고 새로 정립되어야 하는 것을 느낀다. 많은 이들이 말하고 나 자신도 막연히 생각하는 것이지만, 분명히 코로나19는 인류의 삶의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한 대응은 전혀 나에겐 없다. 물론 이 때에도 내 맘 속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그런데도 어떤 뾰족한 대답이 찾아진 것 같지가 않다.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다만 빈번하게 여러 사람들이 만나던 것이 줄어들었고, 집단으로 하던 것들이 줄어들었을 뿐 나머지는 별로 달라진 것 같지가 않다. 그 결과로 사회 전체의 경제활동이나 일상생활이 크게 손실을 보게 되었다고 걱정하는 것을 많이 보고 듣는다.

굉장히 힘들다고 하는 이 때에 오래 전에는 어떻게 살았을까를 생각하여 본다. 그리고는 순간 아찔한 느낌이 드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내가 어려서 살던 시골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때 삶은 참 단순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삶도 많이 단순했다. 문명의 이기가 지금처럼 좋게 발달하지 못하던 때다.

내가 살던 마을에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다니던 학교들도 교무실이나 다른 특수하게 중요한 곳에만 전기가 들어올 뿐 교실에는 전기가 없었다. 그래서 저녁에 하는 수업이란 것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그 때 나는 전기없는 세상에서 살았다. 전기 있는 것보다 불편했겠지만, 그런대로 잘 살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살았다. 삶의 기구들도 복잡하지가 않았다. 추위나 더위를 피하는 방법도 유치하지만 단순했다. 나무를 때서 방을 덥히거나 문을 활짝 열어서 식히는 것이 전부였다. 옷과 신발도 무척 열악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기 없는 세상을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선 당장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에 전기가 끊어졌다고 생각하여 본다. 내가 안에 있다면 밖으로 나갈 수가 없을 것이고, 내가 밖에 있다면 우리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우선 출입문이 열리지 않을 것이다. 승강기는 멈추어서 높은 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려야 할 것이다. 수돗물이 올라오지 않아 밥을 지을 수도 없고, 세수를 하거나 몸을 씻을 수가 없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물을 내릴 수도 없다. 냉장고도 가동이 되지 않을 것이고, 전화도 안 되고, 컴퓨터사용도 불가능할 것이다. 음악도 들을 수 없고, 뉴스도 듣고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여름이라면 무척 더운 상태에서 살게 될 것이고, 겨울이라면 전혀 난방이 되지 않는 무척 추운 상태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 노트북으로 쓰는 이 글도 쓰지 못할 것이고, 이 글을 신문사 편집국장에게 보낼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 만약 전기가 끊어져서 얼마동안 지속된다면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아니,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게 될까를 상상할 수가 없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내가 살던 시골농촌에서도 지금은 전기 없이는 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고도로 문명한 시대라는 지금은 완전히 전기에 종속된 때다. 그런데 불과 60년 또는 70년 전만 하여도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우리가 살았던 것을 잊고 산다. 그렇다고 그 때로 되돌아가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잘 사는 것은 단순하게 사는 것이라고 스스로 확정하고 있다. 단순, 소박하게 사는 것이 곧 모든 삶의 근본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가정생활도, 친구관계도, 사회생활도, 국가의 재정이나 정치도, 국제관계도 단순한 것이 바닥을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생각도, 사상도, 그것들을 펼치는 것도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너무 생각이 탁월하게 예민하니까 복잡하다.

물론 이미 복잡하게 얽힌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따라가는 것이지만, 일단 맘을, 생각을 단순하게 하자고 하고 나서면 무엇인가 단순하게 되는 길로 가지 않을까? 단순하게는 일단 자기 맘 속에 처음 떠오르는 것, 어떤 잡다한 계산들이 세워지기 전에 떠오른 그 생각을 따르면 될까? 집이라면 살아야 하는 것, 옷이라면 입어야 하는 것, 밥이라면 먹어야 하는 것처럼 다른 어떤 가치나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가장 단순한 기본 가치만을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단순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떤 정책,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보여지는 아파트라면, 전망 값, 고요함 값, 편리한 생활권 값, 좋은 학교가 가까이 있다는 값, 시장이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다는 값, 주변이 개발될 것이라는 값이 따로 붙지 않는 단순함을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거기다가 일단 하나만 더, 플라스틱 제품이 없는 삶은 어떨까를 생각해 본다. 무척 불편하고, 지금 쓰고 있는 모든 물건을 다 버려야 할 처지가 되겠지만, 그 플라스틱의 편리함이 가져다주는 어마어마한 폐해를 벗어나는 어떤 단순한 삶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망상일까? 어찌 되었든 나는 단순함이 곧 모든 행복과 평화로운 삶의 기초를 이룬다고 본다. 그 생각에서 앞으로 내 삶을 이끌어 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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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3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 [20101115] 김조년 교수의 함석현의 평화주의와 우리의 평화운동 (정세미)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 [20101115] 김조년 교수의 함석현의 평화주의와 우리의 평화운동 (정세미)



[20101115] 김조년 교수의 함석현의 평화주의와 우리의 평화운동 (정세미)정세미 강연 2016. 12. 20. 22:09


2010년 11월 15일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정세미) 강연

대전 관저동 성당



함석헌의 평화주의와 우리의 평화운동

김조년 한남대 교수

(민들레의료생협 이사장, 표주박통신 발행인)









함석헌의 평화사상의 맥락




이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일단 그의 생애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함석헌에게서 평화는 가능하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왜 살아야 하냐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과 같다. 어느 누구도 살 가치가 있다거나, 살아야 할 어떤 당위성이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낳았으니까 사는 것이요, 살려 주시는 것이니까 사는 것이지, 어떤 자유의지의 선택에 따라서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물론 살지 않고 죽음을 택할 수는 있는 것이지만, 그 순간 삶과는 일단 떨어진다. 살아 있는 한은 살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거기에 어떤 다른 질문이 없다. 이것처럼 평화롭게 사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삶이 아니면 죽음이듯이, 평화가 아니면 반평화나 불화가 있을 뿐이다. 즉 평화롭게 살아야 하냐 아니냐의 문제는 평화가 필요한 것이냐, 가능하냐,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를 뛰어 넘는 문제로 설정한다. 여기에는 어떤 논리를 따지는 말의 전개가 필요가 없다. 평화하지 않으면 죽음이다 하는 것에 걸리는 문제기 때문이다.




함석헌에게서 이러한 문제는 태어나면서부터 일생을 따라다닌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태어난 1901년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한 가운데 있는 시점으로 언제나 전쟁의 기운이 사회에 가득할 때였다. 특히 그가 태어난 평안북도 용천지방은 중국과 한반도를 연결하는 지점, 압록강 하류 서해안에 있는 작은 섬이었다. 그래서 지리상으로 볼 때 중국과 한반도 사이의 갈등과 긴장과 화해의 분위기를 아주 민감하게 느끼던 곳이다. 더욱이나 조선은 말기현상으로 중앙정부의 권위가 사라지고 지역민 스스로 자신들의 안녕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와 곳에서 자랐다. 전쟁의 분위기는 어린아이들의 놀이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패를 나누어 놀이를 할 때에도 ‘나는 아라사다, 나는 일본이다’라고 하면서 전쟁놀이를 하는 것이 어린아이들의 일상이었다.




6ㆍ25 때 우리가 전쟁놀이 하면서 자랐고,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 미군이 싸우는 전쟁놀이를 하고 자라는 아이들이 있는 것처럼, 언제나 전쟁 상황에서는 아이들이 놀이를 통하여 전쟁을 재생산하고 체화하는 비극을 반복한다. 그러다가 국권을 잃은 때부터 점점 더 사회불안은 심화되었다. 이러한 때 사회분위기는 언제나 나라를 잃고 자기를 상실한 비애감에 휩싸였다. 함석헌의 집안 분위기와 그가 살던 지역의 분위기는 중앙정부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상관은 없었지만, 민족과 나라를 잃은 것에 대한 비감함은 매우 대단하였다. 그러한 것이 그에게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가 일찍이 어린 나이에 접촉한 기독교교육의 효과는 매우 결정적으로 컸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동등하다는 것을 그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그가 자랐던 곳에서는 반상의 구별이 별로 없던, 평민들이 주로 살았던 곳이기에 계급갈등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안에서의 남녀차별이나 장자우선 관습은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어머니의 가르침에 의하여 아주 뼈저린 경험으로 깨지고 깨우쳐진다. 거기에서 그에게는 민주주의 사상의 기초를 배운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 상하가 평등하다는 것을 어머니의 단순한 이야기로 깨달아 그의 일생을 이끌어 나간다.




그 뒤 그는 사립 기독교학교를 다닐 때와 공립학교를 다닐 때의 분위기를 다 경험한다. 사립학교에서는 매우 활발한 자유정신과 독립정신을 경험하였지만, 공립학교에서는 식민지배자의 앞잡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없었다. 그러던 중 3ㆍ1만세운동이 일어난다. 이 때 그는 평양의 만세운동을 앞장에서 아주 시원하게 전개한다. 그 결과로 학교를 나오게 되고, 다시는 관립학교에 가지 않고, 그의 말대로 하느님의 발길에 채여 오산학교에 간다. 이 때부터 그는 관과는 대립하는 관계를 설정한다. 그것은 바로 그에게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거대한 사건이 된다. 그곳에서 민족주의를 알게 되고, 독립 기독교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동양고전과 서양철학의 접목이 어떠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며, 동시에 자기 자신이 독자적으로 깊이 생각하고 파고들어가는 훈련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그는 매우 귀한 사람들을 책으로 접촉하게 된다. 가장 귀한 인물이 이승훈과 유영모다.




일본에 건너가 공부하게 되면서 기독교를 새로 이해하고, 기독교와 애국이라는 관계를 새롭게 정리한다. 특히 예레미야를 공부하면서 망국노의 비애가 무엇인지? 무엇을 통하여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는 것인지를 깨닫고 생각하게 된다. 이 때 그가 만난 우찌무라 간조는 일생의 좋은 스승으로 남는다. 그에게 배운 것은 독립정신으로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뒤 귀국하여 모교 오산학교에서 10년간 교사로 생활한다.




특히 예레미야를 공부하면서 망국노의 비애가 무엇인지?

무엇을 통하여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는 것인지를 깨닫고 생각하게 된다.




이 때 그의 동료 김교신과 함께 무교회성서집회를 열고, 《성서조선》을 창간하여 함께 꾸려나간다. 이 때 그는 오산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데, 역사 교사가 된 것을 무척 후회한다. 아무 것도 학생들에게 영광스럽던 조상들의 역사를 가르칠 건덕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외세의 침략과 패배와 굴종과 식민통치의 쓰라린 경험의 역사만을 반복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데는 ‘자기를 잃어버린’ 결과라는 것이다. 자기를 잃어버린 뒤에는 어떠한 물질의 영광이나 힘의 강력함도 소용이 없다. 등뼈가 부러진 것이요, 중축이 부러진 것이 되고 만다. 그러한 근본이 못된 다음에는 어떤 처방도 임시처방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그는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쓴다.




여기에서 그는 한국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규정하고, 고난의 의미를 예수의 고난과 한국민족의 고난을 대비하여 본다. 예수의 고난에서 인류구원의 비전을 보듯이 한국역사의 고난의 행진 속에서 세계구원의 비전을 본다. 한국역사는 단순히 한민족의 한 역사로 끝나지는 않는다. 그 한 예가 6ㆍ25전쟁이다.




그것은 세계의 모든 잘못 된 것이 함께 몰려든 전쟁이다. 이데올로기와 물질과 과학과 민족들과 헤게모니 쟁탈전이 한반도에서 집중하여 나타난 것이었다. 그것은 세계화의 어두운 면과 긍정의 면을 동시에 경험한 거대한 사건이었다. 이것의 의미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1) 우선 무력과 전쟁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2) 국지적인 문제라 하더라도 그 지역의 독자적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관계 안에서 해결된다는 것, 3) 적과 아, 원수와 형제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인류, 하나의 인간이라는 철학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 4) 그러나 민족의 문제는 외세종속체계에서가 아니라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는 것, 5) 고난의 연속으로 경험한 민족의 최대비극을 통하여 세계구원의 원대한 비전을 찾아보라는 것, 6) 적대관계나 상생관계나 어느 한 편이 이기고 다른 편은 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살아가는 길을 찾으라는 것. 사실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현재의 남북문제도 처리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비로소 예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과 모든 인류가 궁극적으로 구원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음미하여 볼 때라고 본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논의하게 될 것이다.

그이의 평화사상: 민족과 민족의 화합, 사람과 하느님의 합일, 사람과 자연의 평화, 순간(지금)과 영원의 통합, 땅과 하늘의 합일, 개인과 전체의 합일을 상정한다.




그는 “씨알은 평화요 평화는 씨알에 있다”는 명제에 따라서 이와 같은 사상을 전개한다. “우리는 모두 세 세계에 살고 있다. 극대(極大)의 나라, 극소(極小)의 나라, 중간 나라. 물질계를 보는 데 눈ㆍ망원경ㆍ현미경의 세 눈이 있듯이, 정신계에도 세 눈이 있어야 한다. 영원ㆍ무한을 내다보는 눈, 마음이 갈피를 찾는 눈, 그리고 사회와 역사를 두루 살피는 눈. 이 여섯 세계를 공통으로 다스리고 있는 원리가 평화다. 화는 곧 조화ㆍ고름인데, 고르게 되지 않고는 세계가 서갈 수 없다. 안ㆍ밖ㆍ생ㆍ무생을 말할 것 없이 복잡한 힘의 얽힘이다. 그 얽혀 작용하는 것이 어느 고른 상태에 이르지 않고는 하나의 세계가 있을 수 없다. 코스모스라는 말은 그래서 있다. 하나의 질서 잡히고 법칙 있는 세계가 된 다음에야 우리가 능히 생각하고 알고 교섭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설혹 상상한대도 혼돈ㆍ어지러움ㆍ허무ㆍ두루뭉수리밖에 없다. 우리가 있을 때, 알 때, 나일 때는 벌써 거기 세계 곧 질서ㆍ코스모스ㆍ대조화ㆍ평화가 있었다. ‘화(和)는 천하지달도(天下之達道)다.’(중용) 그러므로 화는 알파와 오메가다.




영원ㆍ무한을 내다보는 눈, 마음이 갈피를 찾는 눈,

그리고 사회와 역사를 두루 살피는 눈.

이 여섯 세계를 공통으로 다스리고 있는 원리가 평화다.




다른 말로 하면 평화는 구경의 원리인 동시에 또 내재의 원리다. 칸트가 위와 안을 보고 다 같이 놀라고 찬미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중간의 세계도 알고 보면 놀랍다. 공자가 교육의 대강을 말하는데, 명명덕 친(신)민 지어지선(明明德 親(新)民 止於至善)이라고 했다.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을 말할 때 첫머리에 평천하(平天下)를 내걸었다. 명명덕 어천하(明明德 於天下)라 했다. 예수가 날 때 하늘에서 찬송이 들려서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기쁨’이라 했다. 노자의 무위(無爲), 석가의 니르바나도 요컨대 평(平)의 자리다.




예와 이제를 말할 것 없이, 종교 정치를 가를 것 없이, 사람인 다음에는 다 평화를 내세웠다. 전쟁을 직업으로 하여 불쌍한 씨알의 피로 제 살을 찌우고 기름을 짜며 사람 죽임을 재미있는 장난으로까지 하는 소위 영웅이란 것들도 입으로는 평화를 위해 하노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내놓고 전쟁을 예찬하는 놈은 미쳤거나 그렇지 않으면 악마의 종자라고 할밖에 없다. 씨알은 말하자면 내재의 평화, 극소세계의 평화다. 본질적인 평화다. 씨알의 바탈이 평화요, 평화의 열매가 씨알이다. 그러므로 씨알의 목적은 평화의 세계 이외에 있을 수 없다. 극소는 극대에 통한다.” 함석헌: ‘세계평화의 길’, 함석헌 저작집 12, 『평화운동을 일으키자』, 한길사 2009, 44-46




결국 그에게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 그것들이 교섭하여 사는 방법은 화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내세우는 평화사상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런데 이것들이 깨지는 데는 몇 가지 사회제도와 그것에 힘을 업은 인간의 집단 심리와 집단행동에서 연유한다. 소유제와 국가지상주의와 계급제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은 국가지상주의다. 국가주의는 결국엔 국가지상주의, 민족 지상주의로 변하여 나와 다른 민족이나 나와 다른 가문, 또는 내나라 다른 나라, 나와 다른 종교에 대한 전쟁을 때때로 신성한 것으로 만들었다. 대개 정의로운 전쟁이나 거룩한 전쟁이란 것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뒷받침하는 철학은 차별에 있다. 나와 너는 다르다는 것, 다른 너는 나의 소유물이나 밥이나 도구가 되어도 좋다는 기본철학을 깔고 있다. 여기에 모든 중심은 ‘나’에 있다. ‘우리’나 ‘서로’가 아니라, ‘나’를 중심에 놓는다. 이 때 나는 언제나 강력하여야 했다. 여기에 복무한 것이 이른바 우승열패, 약육강식 따위의 사회진화론적 차원의 관계철학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힘의 논리를 앞세운 것으로 화쟁의 원칙이 없다. 그러나 상당히 강한 다른 이론, 즉 생물진화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들은 꼭 강자만이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약한 자들이 연합하여 살아남았다는 이론이 매우 강하다. 이것은 러시아의 학자 크로포트킨이 쓴 『상호부조론』에서 주장하는 화쟁과 상생의 논리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상생관계로 돕고, 어떤 것은 상극관계로 돕는다. 그것들은 서로 함께 존재해야 살아나가는 것이지, 어느 것이 사라지면 다른 것 역시 사라진다. 적대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 역시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주의 원리다. 원칙이 그러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현실에서 어떻게 사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2. 함석헌의 평화운동과 실천


함석헌의 평화사상이 언제부터 싹트게 되었을까? 가장 가까운 직접 영향은 2차 대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 그는 전선에 투입되지는 않았지만, 무모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특히 식민지배체제 아래 살고 있는 조선 청년들이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본다. 그리고 가장 큰 것, 특히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장 큰 이유로 과학기술의 발달과 성숙한 인간이성을 든다. 전쟁무기를 생산하고 운용할 수 있는 과학기술은 세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완전히 말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증명하였다. 핵무기의 개발은 전혀 무력전쟁의 무의미함을 말해준다. 핵무기의 발명과 개발은 그것을 무기로 사용하여 무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할 경우 모두가 멸망하게 될 것이기에 평화롭게 살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무렵 H. G. 웰즈의 『세계문화사대계』를 읽고 그의 세계국가주의와 평화사상을 받아들인다. 세계는 점점 더 하나의 국가로 되어가며, 한 형제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싸워야 할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톨스토이나 간디의 삶은 그에게 비폭력적 평화의 삶이 어떠한 효과를 가져오는가를 깨우쳐준다. 더욱이나 인간이성의 성숙으로, 인간은 함께 사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과 그가 꾸리는 사회는 독립이지만, 종속이 나닌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을 생활로 경험한다. 급격하게 문제들이 개별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더욱이나 6ㆍ25를 경험하면서 더 이상 무력을 통한 전쟁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런데도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누구보다, 어느 나라와 민족보다 더 평화를 사랑하여야 하는 한반도에서 ‘평화’란 말의 정치-사회적 범죄성을 뼈아프게 여긴다. 평화운동이 어디에서보다도 더 먼저 일어나야 할 한반도에서 평화란 말이 위험한 말이 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당대의 가장 큰 화두는 평화임을 실감한다. 그 당시 평화는 새 길을 여는 명령이면서 시대를 때리고 깨우는 목탁이었다.




그래서 일차로 주장한 것이 한반도의 중립국가론이다. 이것은 그 당시 이데올로기 대립과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었다. 어느 한 이데올로기에 속하는 것을 극복하는, 초월하자는 주장이었다. 그것은 동시에 한반도의 남북 양쪽을 통제하고 있는 외세로부터 자유를 선언하고 독립하자는 주장이 된다. 즉 남의 힘을 빌리지 말고,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통일하고 이끌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스위스처럼 약한 나라는 중립의 입장이라야 자신을 잃지 않고 종속체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리하고 지배하려는 외세의 입장에서 볼 때와, 그러한 외세의 힘을 빌어 정치를 하려는 세력의 입장으로 볼 때는 매우 불순한 주장이었다. 이러한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방법이 나와야 한다. 그것은 철학과 도구와 삶을 통합하는 것이라야 한다. 다음 같은 것들이 그 중 몇 가지다.




평화사상은 그의 폭력에 의한 피해와 그것에 맞서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일제 때 감옥에 두 번 씩 투옥되었고, 해방된 조국에서 소련군에 의하여 투옥되었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글을 쓴 것 때문에 투옥되었다. 그 뒤 감금, 투옥, 재판, 가택연금, 금구령에 버금가는 강연방해, 글 삭제와 게재방해 등을 받았다. 정부의 집권권력의 폭력성을 고스란히 몸으로 체험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몇 가지 그의 평화사상과 운동에 영향을 준 것이 있었다. 동양에서는 제도와 권력을 철저히 부정하는 노장사상, 힌두교의 바가받기타를 몸으로 실천한 간디, 전쟁에 대한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에 맹렬한 비판을 가하면서도 기독교의 예수와 이사야의 사상, 퀘이커의 평화사상과 평화운동, 그리고 우리 민족의 본래 가지고 있는 평화사랑의 사상을 기본으로 한다.




앞에서도 말하였듯이 평화는 그에게는 신조다. 어떤 논리나 실험으로 증명하여서가 아니다. 인간의 본능이 평화라고 보고 싶은 것이다. 평화가 생명의 본연의 길이기에 그것에 저촉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아주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평화는 공존이다. 공존하지 못하면 공멸할 뿐이다. 이렇게 평화로운 삶을 가장 극명하게 저해하는 것이 국가주의다. 나라를 뜻하는 한자의 국(國)자에서, 국가는 이미 근본에서부터 무력을 핵심으로 한다. 사람(口)과 땅(一)을 무력인 칼(戈)로 지켜 낼 큰 테두리(口)가 곧 국가다. 그에게 국가는 폭력의 핵심이다. 아직 사람이 크게 깨닫지 못하였을 때는 국가가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지만, 지금은 그것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점점 더 국가는 견고한 성으로 자리를 굳힌다. 그러므로 가장 근본 되는 평화주의 운동은 국가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된다. 그 한 예를 그는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않았다. 성숙한 개인-이성의 진행은 국가 없이 살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다. 전쟁은 언제나 국가를 앞세운 전쟁업자들의 흥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만큼 가장 사치스럽고 낭비스럽고 파괴스런 것이 없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그것에 저항하는 방법은 어디까지나 비폭력저항이다. 그것의 실예를 간디의 비폭력저항운동에서 보며, 그보다 먼저 살았던 소로우에서 모범을 찾는다. 이 두 사람에게 비폭력은 방법이나 수단이 아니라 삶이었다. 그것을 통하여 일을 성취시키고 이룬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삶이기 때문에 살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간디에게는 폭력을 통하여 인도의 독립을 얻기 보다는, 비폭력으로 영국의 식민지 안에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할 만큼 비폭력을 철저한 삶의 하나로 본 사람이다. 바로 그 길을 함석헌은 따르기를 바랬고, 실천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비폭력운동과 삶은 철저한 자기훈련과 자기교육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개개인들이나 집단문화가 성숙되어야 하며, 삶을 수련하듯이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폭력을 미워하고, 국가권력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잠시 동안 수행하고 담당하는 사람들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 사람을 우리와 꼭같은 인격을 가진 존재, 하느님, 부처, 그리스도, 인을 가진 존재로 인정하고 그들까지도 불쌍히 보고, 구원하는 깊은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그들은 역사의 심판을 위하여 대신 짐을 져주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함석헌이 가장 힘들어 했던 부분의 하나는 바로 이 점이었다. 내 속에 공격의 대상인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맘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내가 맘으로 그를 미워하는 것은 이미 그를 죽이는 폭력에 사로잡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비판이나 대항하는 행동은 나와 그를 동시에 구원하는 기도요 구도자의 행위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을 위하여 해체되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계급이요, 소유제도였다. 계급은 평등에 저해되는 것이며, 지나친 소유제의 신성시는 함께 사는 것을 방해하는 근본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계급해체의 방법으로는 역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 밖에 다른 것은 없었다. 그것은 인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사회제도에서 온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도 제재하지 않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실현은 그에게는 인간의 권위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평등한 사회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것을 거저 되지 않는다. 값비싼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전대로 남이 그것을 대신하거나 집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 우리 자신이 이루어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하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언론의 자유였다. 그래서 그는 일제 때는 김교신이 주간이었던 《성서조선》을 통하여, 해방된 뒤에는 《영단》아니, 《말씀》을 통하여 영적 진리의 말씀을 펼치다가, 1950년대 중반부터 장준하가 발행하는 《사상계》와 1970년에 그 자신이 발행한 잡지 《씨알의 소리》를 통하여 끊임없이 발언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씨알의 자기교육 도구였다. 무지하거나 무식하여서는 결코 자기를 해방할 수는 없다. 온갖 것으로 씨알을 무식하게 만들고 무지하게 만들려는 제도로부터 벗어나려면 스스로 깨닫는 길밖에는 없다. 그러려면 교육기관이 필요한데, 이제 제도 교육기관이나 언론기관은 모두 다 기본 틀을 유지하고 지키고 더욱 견고히 하는데 봉사할 뿐이다. 여기에는 기본 종교기관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바른 언론을 통한 씨알들의 자기교육을 통한 깨달음, 곧 해방뿐이었다.




그 해방운동은 결국 평화운동과 통한다. 왜냐하면 온갖 기본 제도들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데 방해되는 것을 주장하고 이끌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인간해방운동은 평화운동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사탄은 우리는 서로 싸우는 적대자로 갈라놓고 지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운동을 제창하는 것은 결국 통합운동이다.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고, 민족과 민족을 갈라놓으며, 나라와 나라를 분리하고,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를 따로 서게 하며, 사람과 하느님을 분리시키고, 자연과 인간을 적대관계로 설정하는 온갖 분열의 철학과 종교와 정치와 문화에 대한 저항운동이다. 그 저항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함석헌은 끊임없이 ‘생각하는 백성’과 ‘행동하는 씨알’을 말하였다. 이들이 모여서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함께 살기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평화운동의 요체였다.




3. 우리의 평화운동




그렇다면 우리의 평화운동은 어떠하여야 하는 것일까?

기독교인으로서: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구교와 신교를 막론하고 스스로 우리 사람들에 의하여 된 일이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유교가 한국에 들어온 때도 분명한 기록은 없으나 그 때 사정으로 미루어보면 지배자 층을 통하여 들어왔고, 불교도 일부 민간에 들어왔던 것이 있는지 모르나 적어도 공공연히 크게 들어온 것은 정치 세력을 타고 왔다. 그러므로 그 두 종교는 처음부터 사회의 상층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후에 민간에 널리 퍼진 때에는 그것은 늘 지배자의 종교, 국교였다. 그런데 이 기독교만은 그와 반대로 지배자가 아니고 불우한 지위에 있는 자를 통하여 왔다. 유교나 불교와 같이 나라 사이의 외교의 한 부분으로 온 것이 아니고 민간의 요구로 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 후의 발달에서도 나라의 지배 세력과 늘 사우는 자리에 있었다. 그러므로 도덕면에서 크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길사(젊은이들을 위한 새편집) 2010, 363




그래서 우리에게는 처음부터 큰 의미를 가지고 오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처음부터 온전히 세상을 건지고 인생을 건지는 진리로, 연구하는 것으로 시작이 되었으며, 마침내 이편에서 머리를 숙여 세례를 구하게 되었다는 것은 비단 교회사에서뿐 아니라 일반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위의 책, 364




이 때 우리 사회는 매우 절박하게 새로운 기운이 필요하였다. “한 시대가 새로워지려면 결국 기적이 일어나야만 한다. 기적을 행하는 것은 외물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하는 정신만이다. 그러므로 결국 종교 문제다. 유럽의 신생운동이 종교혁신에 이르러 가지고야 참 신생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의 종교는 어떠하였느냐 하면 불교에서도 유교에서도 새로운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제 깬다는 것은 씨알이 깨는 것이므로 요구되는 것은 씨알의 종교다. 그런데 유교도 불교도 다 씨알의 종교는 될 수 없었다. 그것은 완전히 씨을 떠나 특권층의 것이 되어버렸고, 그 특권층과 함께 썩었으므로 도저히 씨알의 가슴을 흔들 힘이 없었다. 씨알이 구하는 것은 곧 새 양심이다. 두 종교가 다 특권층에 붙음으로써 씨알의 양심을 마비시켜버렸다. 그러므로 그 때의 형식으로 굳어진 유교 교리나 고루한 선비의 유교 사상을 가지고는 아무리 뒤집고 고쳐보아도 씨알을 흔드는 새것은 나올 수 없었다.” 위의 책, 357




물론 그 당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던 불교나 유교 역시 그것들이 들어올 때는 언제나 새 기운으로 들어왔다. 단군조선이 세워질 때 하나님을 숭배하는 종교로 됐고, 기자조선이 될 때 유교로 했으며, 삼국이 세워질 때는 불교가 큰 할 일을 하였다. 이것들이 다 썩은 뒤에는 새로운 것이 와야 하는 조건들이 형성된 때였다. 이 때 기독교는 왔다. 모두가 다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찾게 하려는 것이란다.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인이 따로 있지 않고, 종이나 주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늙은이나 젊은이가 따로 있지 않고, 지배자나 피지배자가 따로 있지 않다. 모두가 그 앞에서는 평등하며 오로지 하나가 되어 그를 찾음이 인생의 최종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종교가 이 땅에 들어온 것은 몇 가지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었다. 1) 계급주의를 깨뜨리는 일이요, 2) 사대사상을 쓸어버리는 일이요, 3) 숙명론의 미신을 씻어버리는 일이었다. 위의 책, 369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는 천지에 오직 섬길 이는 영이신 하나님 하나밖에 없다는 것, 모든 인류는 다 형제라는 것, 삶의 기본 원리는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진리에 대한 절대순종의 믿음을 주장하는 엄격한 도덕적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이 사명을 띄고 이 땅에 왔다는 것이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는 다 인생을 건지자는 것이지, 압박하고 짜먹는데 협력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모든 종교들이 그렇게 됐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그 자체 내에 계급주의, 사대주의, 미신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혁명을 이루지 못하는 종교가 되고 말았다. 순교자를 그렇게 많이 내면서도 사회혁명을 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땅에 온 기독교가 깔끔하고 깨끗하게 들어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위의 책, 370

그것은 서양에서 실패한, 썩은 제도를 그대로 가지고 왔을 뿐, 그리스도의 복음을 살리지 못한 데서 연유한다. 미신이 흥행한 것은 그 당시 사회가 흉흉하여 살고자 하는 발버둥이었다. 그것을 받아 새로 들어온 기독교는 과학적 탐구를 통한 개혁운동을 주도할 민중교육을 실시하였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때, 구교보다 100여년 늦게 들어온 개신교의 활동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흐름을 타고 들어온 개신교의 활동은 초기의 가톨릭처럼 매우 희망스런 출발을 하였다. 독립사상, 새교육의 흐름과 과학정신이 가득한 것은 새로운 기운을 넣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개신교가 했어야 할 근본혁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것을 이끌고 나갈 사회적 중산층이 없었기 때문이다. 워낙 강력한 착취 때문에 피폐한 민중 뿐 중산계급이 형성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일제 때 그 역할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으나 기독교의 생생한 정신이 제대로 펴졌다면, 다른 시들어가는 종교들의 정신도 다시 살아나도록 됐어야 한다. 한 종교의 살아남은 다른 종교가 동시에 새롭게 살아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정신으로 나갈 때 사회는 평화가 오며 혁명은 가능하여 진다. 특히 우리 사회는 다원종교사회다. 역사를 관통하여 볼 때나 사회를 횡으로 볼 때 다양한 종교들이 고루 분포해 있다. 여기에서 원수는 없다는 것을 선언해야 한다. 한 종교의 건전한 발전은 다른 종교의 건전한 발전을 이끌어 온다. 반대로 한 종교의 타락은 다른 종교의 타락을 함께 불러 올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그물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평화생활의 요체는 이러한 것이리라. 신약성경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 12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중심으로부터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는 척 하지 마십시오. 악은 필사적으로 피하십시오. 선은 필사적으로 붙드십시오. 깊이 사랑하는 좋은 친구들이 되십시오. 기꺼이 서로를 위한 조연이 되어 주십시오.(9-10)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늘 힘과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 되십시오. 언제든 기쁘게 주님을 섬길 준비를 갖춘 종이 되십시오. 힘든 시기에도 주저앉지 마십시오.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도움이 필요한 그리스도인들을 도우십시오. 정성껏 환대하십시오.(11-13) 원수에게도 축복해 주십시오. 결코 악담을 퍼붓거나 하지 마십시오. 친구들이 행복해 할 때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그들이 슬퍼할 때 함께 울어 주십시오. 서로 잘 지내십시오. 혼자 잘난 척 하지 마십시오. 별 볼 일 없는 이들과도 친구가 되십시오. 대단한 사람인 양 굴지 마십시오.(14-16) 되받아치려고 하지 마십시오. 대신 누구에게서나 아름다운 점을 찾으십시오. 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사이좋게 지내십시오. 받은 대로 갚아 주겠다고 고집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할 일이 아닙니다. ‘내가 상관할 것이다.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17-19) 우리의 성경은 원수가 굶주리고 있는 것을 보면 가서 점심을 사 주고 그가 목말라하면 음료수를 대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관대함을 베풀면 원수는 소스라치게 놀랄 것입니다. 악이 여러분을 이기도록 놔두지 마십시오. 오히려 선을 행함으로써 악을 이겨 내십시오.(20-21)” 신약성경, 로마서 12장(유진 페터슨: 메시지, 신약), 복 있는 사람 2010




얼마나 놀라운 소리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의 말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을 실천하는 실행방법이다. 진리를 위하여 죽은, 초기의 순교자들은 모두가 다 타협을 몰랐고, 방편을 쓰지 않았으며, 소박하였고, 목숨을 내걸었고, 직접적이요, 저돌적이었다. 그것이 우리 크리스천의 전범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지금은 국가주의, 자본주의, 정치주의와 타협하여 산다.




일반 시민으로서; 허(虛) 정(靜) 유(柔) 겸(謙)의 수련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하여 일단 ‘나’를 정립해야 한다. 나는 공(公)과 연결되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은 국가, 민족, 종교, 단체, 가문 따위를 뛰어 넘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한 때 우리 인류 역사에서 공은 바로 위에 든 것들이라고 여기게 되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공으로 가는 길목에서 잠간 돌보아 주는 역할을 하였던 것들이다. 지금은 그것을 지나야 하는 때가 되었다. 여기에서 바로 허상을 넘는, 진리와 합일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를 나 되게 하는 데 방해 되는 모든 것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는 어떤 사람이든 그 속에 그리스도, 하느님, 부처, 인(仁)의 씨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내면의 빛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이것은 적절한 상황만 되면 언제나 움이 트고 잎이 나고 줄기가 생기고 가지를 뻗치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것은 언제나 무서운 고난 속에서 피어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든 좋고 나쁜 환경을 겪어 가면서 때를 기다려서 솟아난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씨는 많고 무성해서가 아니라, 한 알이라도 제대로 여물고 썩으면 된다. ‘나는 한 알의 씨다’ 라는 생각을 가지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것을 선언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요 위로다. 나는 한 알의 씨알이다. 즉 하느님, 그리스도, 부처, 인, 내면의 빛을 가지고 있는 영근 씨알이라는 것을 확고하게 믿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든 그 속에 그리스도,
하느님, 부처, 인(仁)의 씨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내면의 빛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함석헌과 김교신 등이 일제 강점기의 갖은 압제에서 온갖 박해를 겪으면서 만들어 낸 《성서조선》이란 잡지는 독자가 많을 때 200명 정도를 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매년 연말과 연시에 가졌던 수련집회에는 20명 이내가 참석하였다. 그런데 그들에게 뿌려진 씨와 그들이 뿌린 씨는 매우 고귀하고 강력하였다. 한 사람에게 뿌려진 씨는 모든 사람에게 함께 뿌려지는 보편적 씨요, 한 곳에 피어나는 씨는 전체를 뒤덮는 상징이다. 관저동에 개나리가 피면 다른 강산에도 핀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요, 목포에서 움트는 싹이라면 여기에서도 조건이 맞으면 틔어난다는 것을 예시하는 것이다.




다시 반복하여 말하는 것이지만, 동양에서 인(仁)으로 표시하는 씨, 기독교에서 이미지 또는 형상으로 표시하는 하느님의 상은 모든 사람에게 있다. 아니, 내 속에 있다. 이 씨는 알이다. 로 함석헌은 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전체와 개체, 극대와 극소, 영원과 순간, 하늘과 인간을 통합하는 개념이다. 그것은 각각 독립된 개체이면서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다. 이것이 평화의 근원이다. 아름다움의 근원이다. 이 씨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있는 한 우리는 평화할 수밖에 없다.




생명평화운동에서 전개하고 있는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라는 것은 좀 더 적극성을 띈 것으로 진전되어야 한다. 나는 이미 평화의 씨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을 누리는 것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평화는 원하고 원하지 않고 할 선택사항이 아니라, 명령으로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평화 한다고 선언하는 것만이 남아 있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내가 평화하면 된다. 이미 나는 평화에 들어섰다고 선언하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독립은 선언하므로 시작이 되고, 자유와 평화 역시 선언하므로 되는 것이다. ‘네 병이 고쳐졌느니라’ 선언할 때 이미 병은 사라지는 것이다.

정의롭고 아름다운 세상은 바로 평화로운 세상이다. 단일한, 획일화한 세상이 아니라, 백화가 만발하듯이 서로 다른 독특한 것들이 건전하게 조화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이 될 때는 각각 자기 소리를 내되 다른 것에 맞출 때 이루어진다. 불협화음도 아름다운 음악이 되는 것은 바로 전체 음악에 따르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그가 만들고 인정한 모든 것 속에 그의 속성이 함께 들어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믿고 따른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따르고 그렇지 않은 것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만큼 통이 클 필요가 있단 말이다.




나와 전체; 그렇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우리는 몇 가지를 일상생활에서 실현하여 볼 필요가 있다. 평화는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찾아야 하는 것이다. 누가 할까? 내가 평화롭게 살아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우선 ‘천하에 남이란 없다’는 묵자의 말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그래서 폭력과 평화에 대한 공부와 생각을 하되, 혼자서도 하여야 하는 것이지만, 몇 명 씩 짝을 지어 끊임없이 해보는 것이다. 수도원이나 수녀원 같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실험할 필요도 있다. 간디는 그것을 아쉬람에서 실험하여 보았고, 함석헌 역시 실패하긴 하였으나 몇 번 시도하여 보았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적대적이라고 하는 것을 서로 방문하여 보는 것도 좋겠다. 우선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 짝을 지어 방문하여 보고, 기독교가 연합하여 불교나 원불교나 이슬람을 방문하고, 함께 예배, 미사, 예불을 드려보는 것이 좋겠다. 다른 종교를 적대시하고 자기들 것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대한 배반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평화의 노래를 자주 부르고, 평화의 기도를 부르며, 한 두 가지의 평화운동이나 평화로운 삶에 구체적으로 우리 자신을 던져보는 것이 좋겠다. 이제는 좌우익의 갈등이나, 진보나 보수의 대립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아우르거나 뛰어넘는 하나로 살아가는 실제 생활을 실험하여 볼 때다. 사실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을 통합하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 다만 제도와 틀이 그것을 가리고 방해할 뿐이다. 성숙된 인간이라면 바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운동을 벌일 때 우리 사회에 평화로운 기운은 싹이 트고 만발할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오늘 가톨릭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퀘이커를 따르는 저를 이곳에 초청하여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자 하는 것 자체가 벌써 통합의 평화운동으로 가는 한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남이야 어떠하든 나는 평화 한다는 것, 사회야 어떠하든 나는 평화 한다는 것을 선언하고 나갈 때 이미 평화의 세계는 뿌려지고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나무가 되며 가지가 돋고, 잎이 피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어 다시 땅에 떨어져 그 평화의 행진을 계속하여 진행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 맘과 발걸음 자체가 이미 복일 것이다. 세상은 언젠가는 평화의 세계가 되고야 말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요 예수가 이 땅에 온 뜻일 것임을 믿는다. 그러나 지금 평화롭다는 안일한 생각에 위기의식이 없을 때 이미 평화세계는 깨져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2010. 11. 15. 관저동성당에서)



[20101115. 사진] 김조년 교수의 함석헌의 평화주의의 우리의 평화운동


출처: https://www.djpeace.or.kr/177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2021/03/23

[김조년] 열린 맘으로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열린 맘으로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열린 맘으로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1.03.22 19:08  수정 2021.03.22 19: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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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 명예교수

[금강일보] 맘에는 어떤 문이 있을까? 그 문은 쉽게 열 수 있을까? 한 번 닫으면 영원히 열리지 않고 닫혀 있는 문일까? 나는 내 맘 문을 때에 맞추어 잘 닫고 열까? 엉뚱한 때 열고 닫을까? 닫아야 할 때 열고, 열어야 할 때 닫을까?

사실 맘 문이라고 하지만, 한 번 닫힌 맘 문을 열기는 무척 어렵다. 또 열린 맘 문을 닫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맘 문도 꼭 닫혀만 있는 것도 없고, 늘 열려 있는 것도 없다.

맘 문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집의 문도 어떤 때는 열고, 어떤 때는 닫는다. 사람이 나가고 들어올 때 열고 닫는다. 또 바람이나 공기를 받고 막을 때 또 열고 닫는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연세가 높은 증조할머니가 계셨다. 어리고 활발한 우리는 추운 겨울에도 펄럭거리며 문을 열고 닫으면서 들락날락했다. 때로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증조할머니는 ‘문 꼭닫고 살살 다녀라’ 하셨다. 어떤 때는,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날 때 어린 나는 따뜻한 이불을 덥고 오래도록 자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 때 또 할머니는 문을 활짝 열고 새바람이 들어오게 두라고 하셨다. 어떤 때는 그 바람이 차가우니 닫으라 하시더니, 어떤 때는 새바람이 들어오게 활짝 열어두라고 하셨다.

문은 언제 열고 닫는 것일까? 열린 그 문들은 얼마나 새바람을 불러 들였고, 닫힌 그 문들은 어떤 것들도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을까?

시골에서는 밤이 되면 사립문을 닫았지만, 아침이 되면 언제나 활짝 열어 놓았다. 금줄이 쳐져 있지 않을 때는 언제나 누구나 쉽게 드나들었다. 사립문에 쳐져 있는 금줄, 그것은 참 신비롭고 놀라운 전통이었다. 모든 것이 다 통과되었지만, 외부 사람만은 들어가지 못하였다. 열려 있지만 닫힌 문이다. 물론 요사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집문은 옛날과 전혀 다르다. 단독주택이든, 다세대주택이든 모든 문은 꼭꼭 닫혀 있는 것이 보통이다. 닫혀 있을 뿐만 아니라 잠겨 있다. 항상 찍히는 사진기가 돌아간다. 이런 때는 열려 있어도 닫혀 있는 것과 같다. 서로가 믿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아주 놀라운 일이다. 언젠가는 모든 사람을 다 믿는다는 상징으로 문을 열어 두었겠지만, 오늘날은 모든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뜻으로 문을 꼭꼭 닫고 잠근다. 이것은 맘 문이 그만큼 닫혀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맘 문이 닫히니 개인 주택이나 다세대 주택의 출입구와 집 문과 방문이 다 닫힌다. 답답한 시대다. 더욱 요사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문제로 모든 곳이 열린 듯 닫혀 있다. 나라와 나라를 오가는 문도 닫힌다. 그런데도 무사히 통과되는 것들도 많다. 문은 아무리 닫아도 열리고 또 아무리 열려고 하여도 닫힌 상태로 있기도 한다. 맘 문도 그러한 것일까?


 
문을 활짝 열어도, 시원하게 확 트인 넓은 들판이나 높은 산에 올라도, 또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닷가에 서 보아도 답답한 때가 많다. 어느 개인에게는 어려서부터 맺히고 쌓여서 풀리지 않는 어떤 응어리가 있어서 무엇을 해도 답답한 것을 풀 수가 없을 때가 있다.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종족과 종족들 사이에 이루어진 긴 역사과정의 응어리들도 역시 풀리지 않고 꼭 막혀 있을 때가 참으로 많다. 그러할 때, 밖에서 다른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일단 맘 문을 열고 보라고 한다.

사실 상당히 많은 것들에는 문을 닫아도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들이 많다. 바람이 그렇고, 빛이 그러하며, 병균이 그러하고, 철새들이 그러하며, 맘이 그러하다. 문화의 흐름이 그러하고, 정신의 오고감이 그러하다. 그것을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요사이 내 맘에는 이른바 기축시대라고 하던 때 인류의 스승들이 말씀하셨던 것들이 암암리에 실현될 조짐들이 보인다고 느껴진다.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던 것들을 허물라는 말씀, 나라와 나라의 금이 거짓이라는 말씀, 삶과 죽음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순간과 영원이 한 점이라는 말씀, 깨달음의 거룩한 생활과 평범한 일상생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원수와 친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이런 것들이 지금은 생각이나 믿음으로가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다만 맘을 열고, 눈을 뜨고, 귀를 막지 않으면 보이는 현실이다.

내 맘을 닫게 하고, 눈을 감게 하고, 귀를 먹게 하는 것들은 확고한 진리인 듯이 보이고 배우고 믿어 왔던 이념들, 전통들, 규정들이다. 좋고 나쁘며, 예쁘고 미우며, 높고 낮으며, 빠르고 느리며, 아름답고 더러우며, 화려하고 지저분하다는 어떤 판단과 규정에 의하여 우리 눈을 뜨고 닫게 하고, 맘을 열고 닫게 하던 것들을 잠깐 옆으로 젖혀 두고 살펴본다면 상황은 전혀 달리지지 않을까? 열린 맘으로, 아니 맘을 조금 열고 보면 금방 새롭게 깨달아지는 세계가 아니던가? 맘을 조금 넓게 열고 보면, 우리는 한 세계, 한 역사, 한 하늘, 한 물, 한 바람, 한 빛 속에서 살고 있음을 금방 깨닫는다. 그렇게 보면 나라와 나라가, 민족과 민족이, 종교와 종교가, 정당과 정당이, 여와 야가, 예쁨과 미움이 한 가지를 향하여 함께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열린 내 맘 속에서 이것들의 순수한 본질에 접근할 수만 있다면 될 일이 아닐까?

열린 맘으로 보면 허상과 실상이 제대로 보인다고 했으니 허상에 매어 억울하게 살았던 맘 하나 같이 열면 어떨까? 열린 맘으로 보면 이것 속에 저것이, 저것 속에 이것이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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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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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4

[김조년] 외로움 또는 고독함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외로움 또는 고독함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외로움 또는 고독함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1.02.22 
한남대 명예교수

 

[금강일보] 얼마 전 가끔 깊게 대화하고 안부를 서로 묻는 한 분과 전화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 그분은 ‘이번 코로나19는 우리가 고독함, 외로움이 무엇인지 알라는 메시지인지 몰라’ 라고 하였다. 일가친척도, 친구도, 아는 사람들도, 일이나 다른 것 때문에 만나야 할 사람들도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고 뒤로 미루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다보니 혼자서 지내야 하는 일이 많고 길어진다.

이 때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고독하기에 우울하고 답답하고 쓸쓸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사전에서는 고독이나 외로움을 ‘부모나 자식이 없어 의지할 길이 없어 쓸쓸함’을 뜻한다고 돼 있다. 그러니까 든든한 후견인이 없어서, 비비고 의지할 언덕이 없어서, 밝혀줄 등불이 없어서 앞이 막막하고 캄캄하며, 뒤가 텅 빈 듯이 허전함을 느낀다는 뜻이겠다. 그러니까 고독하고 외롭다는 것은 자기 혼자 광막한 곳에 던져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우리를 이제까지 지탱하고 우울하지 않으며 고독감을 느끼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친구를 만나든, 친척을 방문하든, 어디에 가서 운동을 하고 산책을 하든 사람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만나지 못함으로 그 관계가 끊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어져 있는 관계를 확인할 만남이 없으니 때때로 존재 자체가 무상하고 허무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전통과 관행과 문화로 내려오던 것들이 온통 다 흩어져서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기가 혼란스럽다는 뜻이겠다. 부모나 자녀나 형제자매와 친지가 병원에 입원하여도 방문이 자유롭지가 못하고, 심지어는 임종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깊은 맘으로 애도할 기회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슬프게 한다. 기쁘고 즐겁게 축하할 일도 속시원히 할 수 없어서 우울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상황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단 말이다.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 삶은 꼭 그렇게 만나서 밀접한 접촉만을 통하여 생존의 의미를 찾았던가?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빈번한 소통을 가져야 행복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게 하였던가? 삶은 관계요 만남이라고 하지만, 때때로 홀로 외롭고 고독하게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과 장소를 가지기를 간절히 소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외부에서 오는 강제상황으로 고독한 상태가 만들어지는 것을 바랄 사람은 없다.

스스로 선택하여 만든 외롭고 고독한 상황이 아니라 지금은 그런 것들이 강요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요 사실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이 어떠해서가 아니라, 내가 혹시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만나거나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따져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코로나19가 왜 왔는가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무슨 까닭이 있고, 터무니가 있어서 생긴 것이겠지만, 그것은 때가 되면 밝혀지고 알려지겠지만, 지금 내 자신이 할 일은 현실로 다가온 강요된 고립감을 어떻게 긍정의 세계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강요된 것을 어떻게 내 자신이 선택한 고독과 외로움으로 바꾸어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와 씨름해 보는 일이다.


 
어려서나 지금이나 나는 나만의 고독한 공간과 시간을 가지고 싶었고, 가지고 있다. 인디언들의 삶을 그린 책들에서 발견된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매우 감동스러운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기만이 가지는 비밀스런 장소와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오로지 혼자서 외롭게 (어떤 궁극존재와) 이야기를 하거나 묻거나 답하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다. 복잡한 세상과 나 자신을 떠나서 혼자만이 있는 절대고독의 기회를 가지는 곳과 때를 가진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절대고독을 가질 수 있는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한 점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 사람에게는 그런 절대고독의 그 한 점에서 삶이 결정된다. 예수가 잡혀서 죽기 전 피땀을 흘리며 하느님 아버지에게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 아무런 응답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절대고독의 시간, 자신도 없어진 것같은 절대고독의 상태를 경험한 뒤 얼마나 홀황한 해방의 느낌을 가지고 자기에게 다가온 운명을 받아들였던가?

석가가 생노병사의 비밀을 알아보겠다고 온 뫔을 던져 생명을 걸고 정진하던 보리수나무 아래의 절대고독이 없었다면 해탈의 찬란하고 까맣고 까만 체험을 통한 윤회의 연결고리를 풀어낼 길을 찾을 수 있었을까? 이런 예는 가장 근본되는 문제에 둘러싸인 강요된 고독의 상황을 덥썩 받아 스스로 적극 더 깊은 절대고독의 자리를 만들어 해답을 찾은 참 길이 여기에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만들고 자기 자신을 꾸리는 인간은 언제나 위기상황을 절대긍정의 자리로 이끌어 가는 놀라운 전환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여 왔다. 문명의 전환을 가지고 올 것이라고 판단하는 지금, 우리는 개인이나 집단이나 사회나 나라들이 절대고독을 체험할 때다. 이것이 삶이냐, 이것이 나라냐, 이것이 문명이냐 하는 물음을 근본부터 다시 던지고 따질 일이다. 원래 사람이 사는 것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지만, 또 자기 자신만이 문제를 풀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시, 강요된 고독의 길에서 우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절대고독의 자리로 끌고가서 철저하게 곱씹어보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관계를 끊지 않지만 스스로 선택한 절대고독의 자리에서 독립되고 해방된 나라, 종속되지 않은 자유하는 인간, 인간중심의 교만한 문명이 생명중심으로 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따져보는 기회를 가져보면 좋겠다.

2021/02/09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기다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기다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기다림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1.02.08 


한남대 명예교수


나는 언제 처음으로 왜 무엇을 어떻게 기다리기 시작하였을까? 지금은 또 무엇을 왜 기다릴까?

내 생일이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 그날이 되면 어떤 밥을 기다렸을까? 농촌에서 어머니와 한 집에 살았기에, 언제나 어머니는 집에 계셨기 때문에 나는 어려서 어머니를 기다린 적은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강요된 아버지에 대한 기다림, 어른들은 어린 나에게 ‘애비 언제 오나 머리 긁어보라’고 하셨다. 그러면 내 앙증맞은 손으로 내 머리 여기저기를 긁었다. 뒷꼭지 쪽을 긁으면 아직 아버지가 올 때가 먼 것이고, 이마에 가까운 머리를 긁으면 곧 오실 때가 되었다고 어른들은 뻔한 헛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좋아하셨다. 그렇게 나는 객지에 나가 사는 아버지를 기다린 것일까? 명절 때가 되면 막연하게 나는 버스 정류장에 나가서 그를 늘 막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꽉 찬 버스에서 마지막에 내리는 손님을 떨구고 떠나는 버스를 한참 바라보고 맥없이 집으로 돌아올 때, 언제나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른들 앞에 명절이라고 일찍 나타나지 않는 남편이 부끄러워 그냥 죄송해 할 그 맘이 내 맘에 아리게 솟아났다.

장날이 되면 늦은 저녁나절이나 초저녁에 동구밖까지 나가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어둠은 짙어졌다. 어둠 속에 히끗히끗 두루마기자락 날리는 듯 느껴져 반갑게 그의 발자국 소리 들리는가 귀까지 쫑긋하고 기다렸다. 오시지 않는 그를 찾아 시장 가까이 살던 그의 친구 양약국 댁까지 가면서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무엇을 기대하면서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집에 떨어질 날벼락이 걱정되어 억지로 기다린 것일까?

그러기 전 나이가 들어 학교에 가게 됐을 때 막연히 학교 가는 날을 기다렸을까? 말로만 듣던 선생님들이 어떤 분인가를 기다렸을까? 함께 놀고 공부하게 될 다른 동네에서 오는 동무들을 기다렸을까? 새로운 학기가 되거나 학년이 되어 나누어 주던 책이 어떻게 생겼고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기다렸을까? 시험이라는 것을 보기 시작하면서 오늘 보게 될 시험문제는 어떻게 나올까 기다렸을까?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하여 시험을 본 다음에 어떤 소식을 나는 기다렸을까?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쓰기 시작한 편지 때문에 빨간 자전거를 타고 빨간 가방을 메고 오는 우편배달부 아저씨를 기다릴 때는 벌써 꽤 생각이 컸을 때다. 아니지, 우편배달부 아저씨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혹시 그 양반이 나에게 오는 편지를 가지고 오지나 않을까 기다리지 않았을까? 언젠가부터 편지를 즐겨 쓰던 나는 나에게 오는 많은 편지를 기다릴 때, 그냥 편지를 기다렸을까? 그 속 귀한 내용을 기다렸을까? 그 중 어느 한 사람의 편지를 특별히 골라서 기다렸을까? 혹시 맘에 두었으나 한 번도 내 맘을 나타내보이지 못한 그녀가 내 맘을 알고 편지를 보내지는 않았을까 무망하게 기다린 것은 아니었을까? 군대에 가 있는 동안 간절히 바라던 그녀가 혹시 면회를 오지는 않을까 마냥 떨리는 맘으로 기다리지는 않았을까?


 
분명하고 확연한 맘으로 기다려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부장수라고 하는 보따리장사들이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는 일이었다.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우리 집에서 자게 되면 이것저것 재미나는 일을 이야기하고 갔다. 그러할 때는 나는 참 재미가 있었고 기분이 좋았다. 그들이 여기저기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말할 때 나에게는 매우 특이한 소식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기다리면서, 그들이 물고 올 괴상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기다렸던가?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살피고 빌릴 때, 이런 저런 탁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갈 때, 그 속에서 무엇인가 놀랍고 깊은 깜짝 깨달음이 오기를 기다렸을까? 우리들의 선생님들이 그렇게 했다면 무딘 나에게도 깨닫는 날이 있을까 기다렸을까? 무망하다고 포기했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를 쓰고 고생을 했는데 왜 이 사회는 이렇게 불평등이 가득한 것일까? 있고 없고를 서로 고르게 나누어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것은 쓸데없는 기다림일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이야기와 화해로운 말들과 생각들을 펼쳤고 가르쳤는데도 왜 들리느니 전쟁과 다툼의 소리일까? 그런 것들 속에서 깔끔한 화평한 소리 하나 기다리는 것은 허망한 일일까?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것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한 듯하다. 있다가 없고 없다가도 있게 되는, 바닷가 물결이 높고 낮게 번갈아 출렁이듯이, 있고 없고 기쁘고 슬프고 불행하다고 느끼고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하나로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고 덤덤히 살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고 믿는 것은 무망한 기다림일까?

가만히 생각하니 내 삶은 기다림이었던 듯하다.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도 없이 그냥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내 삶이었던가? 내 삶만이 아니라 온통 모든 삶이 다 기다림이지 않던가? 어려서 앞으로 살 날이 창창하게 멀리까지 펼쳐질 사람만 아니라, 앞날이 별로 많지 않을 것이라고 보이는 이들에게도 삶은 기다림이지 않을까? 일단 사람이라면,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기다리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닐까? 맘이 텅 비어있어도 무엇인가로 가득해도 끝없는 기다림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기다리나? 내가 속한 퀘이커에서는 모든 사람에게는 ‘내면의 빛’이 있다고 말한다. 그 빛이 가리워지지 않고 살짝 빛나기를 기다린다. 빛나는 그 빛들이 다른 빛나는 빛들과 만나 빛의 동무들의 잔치가 일기를 기다린다. 나도 내 속에 있는 빛이 빛나기를 기다리고, 이웃 친구 속에 있는 그 빛이 빛나기를 기다린다. 그 빛들이 함께 빛나기를 기다린다.

2021/01/30

아름다운 영혼과 용기 <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아름다운 영혼과 용기 <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아름다운 영혼과 용기

기자명 김조년
입력 2012.10.2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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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년
한남대 명예교수

가끔 우리가 살아가면서 짜증스러운 소식과 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또 그보다 더 산뜻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아마도 아름답고 용기 있는 영혼들이 있어서 우리가 이만큼 품위가 있고 진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오늘날처럼 차차 국경이라는 것이 흐려지거나 없어지고, 경제와 재정, 국방과 정치와 문화와 종교, 그리고 의사소통과 생각과 학문의 교류가 한 국가단위나 종파단위 또는 민족과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자유스럽게 오고가는 때도 그렇게 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더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제까지 당연하다고 하였던 가치들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아주 급속하게 거대한 강물처럼 흐를 것이란 말이다. 물론 그 반대의 흐름도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들이 종국에는 어느 곳으로 흘러갈 것인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흐름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강압된 분위기 속에서 깊은 속으로부터 ‘아니’라고 부르짖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삶으로 표출한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역사는 그런 사람들의 작은, 그러나 용기 있는 몸짓 하나로 제대로 된 길로 접어들고 껑충 뛰어오르는지 모른다. 1955년 12월 1일 미국 앨러배마주의 몽고메리에 사는 흑인 여인이 봉재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버스를 탔을 때다. 빈자리에 앉았으나 다음 승강장에서 백인이 올라왔다. 그가 앉을 자리가 없었다. 흑백의 구별이 명확하던 때, 그녀는 당연히 그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여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기사의 말을 ‘나는 내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습니다’란 말로 거부하였다. 그녀는 경찰에 의하여 체포되었고, 구치소에 갇혔다가 나왔다. 바로 이 작은 사건은 380여일이 넘는 긴 기간 버스타기거부 운동으로 번졌고, 워싱턴까지 몇 년을 걸친 대행진이 이루어졌으며, 흑백을 구별하던 차별정책들이 속히 사라지게 하는 시작이 되었다. 오늘의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그래서 나오지 않았을까? 아름다운 영혼의 용기 있는 몸짓이 역사를 어떻게 짓는가를 말해준다.

2001년 9월 11일 아침에 미국 뉴욕시에 있는, 미국의 경제 권력을 상징하는 세계무역센터를 적이라고 여긴 세력의 두 대의 비행기가 공격하여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었다. 미국 전 지역에 갑자기 옛 시대에나 있을 법한 국가주의와 애국주의가 거대한 파도처럼 춤을 추었다. 집집마다, 승용차와 거리를 달리는 모든 차들도 성조기를 달았다.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 어디에서나 알카에다가 존재하는 아프가니스탄을 바숴버려야 한다는 흐름이 거대하게 일고 흘렀다. 대통령은 그들을 향한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선포하고, 국민들은 들끓는 여론으로 지지하였다. 그 때 굉장히 빠른 속도로 미국의 퀘이커(Quaker)교도들과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교수는 아프가니스탄을 향한 공격전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반국가적인 듯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세계의 양심들은 그 성명을 크게 지지하고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일어나는 국가주의의 반이성적 흐름을 걱정하였다.


최근 일본의 우익정치가들의 수없이 많은 발언으로 독도를 사이에 둔 한·일 간의 긴장이 높아지고 센카쿠열도(尖閣列島) 또는 댜오위다오(釣魚島)를 중심에 둔 일본과 두 중국 사이의 긴장이 매우 날카롭게 대립한다. 한국의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그 문제되는 열도 주변에서 군사작전 비슷한 무력시위를 양 중국은 벌이기도 하였다. 일본은 그 섬을 사서 자기 영토로 등록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 때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아사히신문에 긴 글을 썼고,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와 1270여 명의 지성인들이 성명을 발표하였다. 논쟁이 되는 그 지역들은 한국과 중국이 약할 때 일본의 침략의 산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영토논쟁을 일으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일본은 자신들이 잘못했던 과거로부터 해방되는 참신함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하여 중국의 작가 옌렌커(閻連科)가 응답하는 글을 썼다. 국제적인 지성인들의 모임이나 연대운동으로 정치가들이 바람을 일으키려는 국가주의의 흐름을 평화의 흐름으로 바꾸는데 함께 힘쓰자는 발언이었다. 이 두 발언들은 각각 자기 나라에서 소수에 속하거나 별로 듣는 사람이 많지 않은 작고 맑은 소리인지 모른다. 그러나 바닥 깊은 곳에서 나오는 참의 소리일지 모른다.

최근 우리나라 동부전선에서 북한을 탈출한 병사가 휴전선 양쪽으로 쳐진 철책선을 넘어 아무런 제재 없이 초소의 문을 두드려 귀순한 일이 보도되었다. 남과 북의 양측에서 철책선을 아주 철저하게 감시하고 지키지만 그것이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그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것과 동시에 우리 정치권에서는 NLL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그 선들은 언제부터 있었으며, 누가 만들었으며, 언제까지 지속될까? 그것이 없었던 때와 사라진 뒤의 그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살아가는 제한적 존재이기에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미래와 꿈을 먹고 사는 존재들이다. 미래의 밝은 세계를 염두에 둘 때 현재의 복잡한 문제들이 풀릴 실마리가 생긴다. 남북의 경계들은 통일 된 뒤에는 하나의 아프고 슬픈 추억과 기억으로 남을 것들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한다는 것은 또한 비극이요 슬픔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건들을 미래의 자리에서 그 경계의 무의미성을 상징하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표를 의식하지 않고 근본문제를 바라보는 지점에 설 때 우리의 논쟁은 훨씬 더 창조적이고, 평화적이며, 밝은 미래를 바라보는 차원의 것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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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8

김조년 1월 1일에서 3일까지의 수련모임

(10) Sejin Pak | Facebook





Sejin Pak


친우들께,
몇번 운을 띄웠듯이, 1월 1일에서 3일까지의 수련모임은 대면이 되었든 zoom을 통해 하든 다음과 같은 순서면 어떨까 제안합니다. 몇 친우가 희망하듯이 퀘이커에 대한 공부를 집중하여 하면 좋겠습니다. 그동안도 하였지만 좀 더 정성스럽게 하면 좋겠습니다.

교재: 하워드 브린턴 저, 함석헌 역; 퀘이커 350년

전체가 11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나누어서 하나 둘씩 맡아서 책임독서를 하고 
핵심내용 발표와 의견나눔의 형식으로 하여, 
한 권을 다 읽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적극 참여하셔서 퀘이커에 대한 공부의 시작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의견들을 나누어 주세요.
책이 필요하신 친우님은 말씀하여 주세요. 주문하여 책이 도달하였습니다. 25000원입니다.
다음과 같이 초안을 잡았습니다.

일정

1일 [F]
오후 3시: 고요모임, 자기 일상 이야기 5시: 휴식과 식사 [2hr]
19시: 저녁 공부모임 - 21시: 모임끝, 휴식 [2hr]

2일 [Sat]
9시: 공부모임 - 10: 30: 휴식                     [1.5hr]
11시: 공부모임 - 12:30: 점심, 휴식         [1.5hr]
15시: 공부모임 - 16:30: 휴식                   [1.5hr]
17시: 공부모임 - 18:30: 휴식, 식사         [1.5hr]
20시: 모임, 자기 이야기 하기                 [1.5hr]

21:30: 휴식, 잠

3일 [Sun]
10:30: 고요예배
11:30: 공부모임 - 12:30: 마감 이야기     [1 hr]
13시: 식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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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4

이카루스의 날개에 매달려- 퀘이커 글 모음 2

이카루스의 날개에 매달려- 퀘이커



이카루스의 날개에 매달려- 퀘이커


탈핵 강연 만든 배현덕 조합원 /프레시안20150913
2015.09.14

퀘이커, 내면의 빛을 찾아가는 평화주의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20140107
2014.01.10

박근혜 사퇴-종교친우회 (퀘이커) 서울모임 성명서20131212
2013.12.13

빛 그리고 평화-서울퀘이커모임
2013.05.31

'권력종교'로부터의 해방 - 퀘이커교
2013.02.18

[서평] 스콧 새비지가 쓴 <행복한 걷기> /오마이뉴스20101129
2013.02.18

[인터뷰]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자, 이행우 선생 /오마이뉴스20110618
2013.02.18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14) /기독교사상2012년7월호
2013.02.14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13) /기독교사상2012년6월호
2013.02.14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12) /기독교사상2012년5월호
2013.02.14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11) /기독교사상2012년4월호
2013.02.14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10) /기독교사상2012년3월호
2013.02.14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9) /기독교사상2012년2월호
2013.02.14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8) /기독교사상2012년1월호
2013.02.14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7) /기독교사상2011년12월호
2013.02.14

다(6) /기독교사상2011년11월호
2013.02.14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5) /기독교사상2011년10월
2013.02.14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4) /기독교사상2011년9월
2013.02.14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3) /기독교사상2011년8월
2013.02.14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2) /기독교사상2011년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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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1) /기독교사상2011년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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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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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Korea /Haeng Woo Lee 1969


2010.12.14



퀘이커 50주년 행사모임 /김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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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찾는 벗들에게 (함석헌저작집) 함석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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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찾는 벗들에게 (함석헌저작집)

함석헌 지음
2009-03-13 | 한길사 刊
국판 | 반양장 | 620 쪽 | 20,000 원
978-89-356-6072-8 | 04800



친구, 친구! 없어요. 죄를 사하고 나를 일으켜주는 사람만이 친구인데 없나봐요. 나는 한 사람이 필요해요. 내 맘을 알아줄, 붙들어줄 한 사람! 예수가 있다 하지만 성경에 있는 예수 무얼 해요. 산피가 도는 구체...














친구, 친구! 없어요. 죄를 사하고 나를 일으켜주는 사람만이 친구인데 없나봐요. 나는 한 사람이 필요해요. 내 맘을 알아줄, 붙들어줄 한 사람! 예수가 있다 하지만 성경에 있는 예수 무얼 해요. 산피가 도는 구체적인 예수만이 나를 위로하고 사하고 살리지. 없나봐요. 지금 내 방엔 아무도 없어요. 나 혼자! 안 형도 여기 없으니 이 편지지. 내 소원은 장발장이 되는 일. 그거 못 되면 삼손이라도! 죽으면서도 대적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러려면 참사람 소년이 나를 이 현 질서를 버티는 기둥까지 인도를 해주어야지. 나는 죽어 마땅해. 이 죽음이라도 이용하잔 말이야. 내가 죄는 지었지만 내 생각은 그래도 페스탈로치 모양 저 나무에 있어! 나는 불시로 떨어지는 병든 과일이지만 이거 썩어서라도 그래도 나를 길렀던 저 나무를 가꿔보잔 생각이오. 말이 아니 된 소리지, 말 아니 된 소리. 의형들은 아니 들을 거야, 아버지나 듣지. 아 형! 내 맘을 형용할 길 없습니다. 내일로 나를 벌하자는 사람들이 사회문제를 일으켜 영 매장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아멘! 미국을 가겠는지 독일을 가겠는지. 전재호신의全在乎神意.
형, 나를 버리시오. 그러나 자세히 듣고 보기나 한 후에.
●「젖을 내라는데 어미가 썩었소」



-




1
<안병무 님>
서로의 영이 살기 위해 주고받는 것
낡은 제도에 새 정신을
인 이야기
새 출발 기회 얻자는 것
마음의 정화 위해
젖을 내라는데 어미가 썩었소!
재기 신생
맘속에 명령을 받아야
인간적인 참, 하나님의 참
미국에서
내 맘이 나를 허하느냐 못 하느냐
세계의 새 종교운동과 평화운동
좀더 튼튼히 보고 생각을 새로이
유럽여행 계획
우선 안 형 논문부터
안 형 일에 방해 안 되도록
이번 길에 될 수록 볼 것 다 봐야
우선 런던으로
돌아가면 싸워야지
장차 올 것에 대한 준비
살아 있는 이 시간에
여정이 자꾸만 늦어집니다
이제 정말 가까이로 갑니다
런던 도착했소
나 자신이 나를 심판
그 나라 역사 있는 데
신흥국가를 보고 싶군요
공부 방해해 미안하오
참인물이 있다면
우리 일은 나로서 해결
건강이 걱정이군요
몸은 튼튼해졌소
민중이 정부를 신용 아니 합니다
비폭력 국민운동으로 민정 수립
민중이 일어서야
민중 계몽, 새 세력 육성
차라리 말하다가 죽기나 했으면
로스앤젤레스에서
안병무박사(安病無迫死)

<이준묵 님>
새 맘 되어 돌아가고 싶소
당나귀 되지 마셔
하늘나라 문을 교회당이 막았어
나라 못 일어서면 삼천만이 다 앉은뱅이
퀘이커 국제워크캠프
일반주민들과 접촉 있기를
워크캠프 건
속에 있는 것을 다 말할 친구
씨알 속에서 나를
인생의 끝은 차차 가까워 저쪽이 뚫려 비치는데
우리는 왜 이래야 합니까
혼자서 생각을 해남으로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벗을 불러 하늘나라의 잔치를
마음만 서로 활짝 열린다면야
이 고난의 뜻

<이두수 님>
텅 빈 성전 안에는 하나님만

2
안반덕 씨알농장 일꾼들께
의(義)의 싸움 다 싸우고 기쁘게 만나는 날

<문대골 님>
여러 날이 지났소
감자는 될 수록 종자를 많이
소 건은 어떻게 됐소
소는 꼭 찾도록
한 푼도 두고 오지 못해 마음이
굶지나 않나 걱정
얼마나 힘들고 적적하오
송아지는 샀는지
대체 살아 있기는 하오
밝고 참된 혼을 기르는 도장

<김종성 님>
내 마음은 틀목집에
이 겨울을 참고 견디도록
적은 안에 있지 밖에 있지 않다
짐승들도 잘 있는가
골 안 곳곳에 아카시아를
마음이 급하오, 앞날이 없으니까
악이란 인간본질의 일면
제대했다니 좋고
잡지는 또 늦었소
이번 달엔 못 가게 될 듯
저번 주일에 참 미안하오
한 가지 묻겠소
도리가 통치 않는데
잡지는 난산 또 난산

<정만수 님>
비가 새고 파손된 곳 많습니다

<김숭경 님>
걱정 끼쳐 미안합니다
산양을 사려고
비준반대투쟁
자라나는 아이들
김지헌 군

<김태현 님>
아픈 맘을 참고
수고해서 얻은 첫 열매
죽으려던 마음도 살아납니다
삼무의 그 좋은 나라
보내주시는 열매 속에는
밀감 값도 싸다는데
향기롭게 내일을 밝혀주시오
정말 건강한 사람
난을 키우는 어려움

<석진영 님>
세상에서 그어논 금
그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시원한 소식입니다
역사의 솥에서 이런 불길이
민중이 참 담대해졌습니다
사람 사는 나라답게
사람은 혼자는 못 산다
고요한 시간, 생각하는 시간
교육이 최후의 보루
사상 없는 민중
십 년 만에 또 삭발을
고난의 짐이 이제 바로 시작
날씨까지 비정상

<이향 님>
있을 자리에 있으면
글이나 써가지고야
스스로 넝마인 줄 알았거든
작은 일을 참되게 하는 데
모든 장소를 성당으로, 모든 일을 예배로
내일 모레 달을 같이 바라면서
건강하셔서 일 많이 하셔요
고통 이기는 길, 새로남 없이는 있을 수 없어
비 오고 꽃 활짝 피니
가장 아픈 데를 치시잔 것
우로부터 고쳐나는 것
만물이 스스로 바르게 되다
깊은 숨을 소리도 아니 나게
요즈음 또 시국이
믿음이란 화(化)를 이루자는 공부

<이미경 님>
세상이 어지러워진 것을 멍청히 보고만 있으니
늘 하나님의 평화 속에
한 달 넘게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아가페 동산
깊이 생각하는 생활

<이오덕 님>
참사람의 씨알 가꾸기

<법정 님>
새로운 밝히심을

<이천우 님>
하나님이 나를, 민중이 나를 믿어주셔야지

<김조년 님·부인님>
어느 구석에 대 씨?이
모든 것을 아는 자리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씨
주의(主義)의 희생물
잡지에도 어려움 많습니다
세계권력쟁탈전의 악조건
말씀의 가뭄
믿음이 모든 고난과 시험을
명동(明洞)이 아니라 암동(暗洞)

3
<이행우 님>
나를 거꾸러뜨리려는 악은
참된 정신의 불붙음
대동(大同)하는 정신
금년 비에 또 지붕이 샙니다
전 대통령의 방일(訪日)
지금이야말로 성경연구를
모임집 문제
차차 정신이 둔해가고 할 일은 많고
일은 자꾸 밀리고 바쁘기만


<장익근 님·명옥 님>
생명의 씨를 보존했던 노아의 심정
국민 전체의 지혜와 용기를
비디오로 간디를
사람들이 제 하는 일터에 있지 못하고
마지막이 언제 올지
시국, 정말 걱정입니다
싸움만 있을 뿐, 나라는 어디로

<이열 님>
나는 님의 갈대피리입니다

<노명환 님>
언제 어느 날 그런 일이
수고하셨지만 이기셨으니
어려움이 많으신데
열린 마음으로 서로 대하면
고통 모욕을 당하고도 미워하지 않는 큰 마음

<유영빈 님>
맛있다, 없다를 가리지 말자
참교육은 혼으로
연전에 이미 영구독자가
『씨알의 소리』가 벼락을
믿는 사람만이 역사인
봄 잘 맞으십시오

<박선균 님>
열정만으로 오래 못 가
인생 전체가 훈련
스스로 유익을 얻도록
새 학기에 공부 잘하시고
마음은 가두어두면 썩고 마는 거요

<강기철 님>
오는 15일에 재판을
읽고 난 느낌
옛글 한 수
꾸준히 쉬지 않고 공부하시는 것이 고마워

<김대숙 님>
진작 말을 할 것이지
퀘이커 모임에 한번 와보시오
무슨 말을 할까 미리 걱정 말라

<홍재경 님>
써먹을 생각의 노예가 아니 되는 공부
언제나 굳세고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 힘을 쓰시오

<서정웅 님>
길이 나타날 때까지 믿는 마음으로
말 들을 줄 아는 참 아는 사람
한국의 간디
‘아, 배고프다’ 소리가 자꾸 들려
누가 뭐라거나 나는 내 할 일을

<임명수 님>
타는 촛불처럼 빛을 내며
죽을 각오로 순간에 살라

<경옥 님>
명절 때마다 어버이 생각 갑절
잘못을 뉘우치는 일은 그렇게 아름다워
네 길을 스스로 열어라
하나님의 경륜

<전경임 님>
네 혼으로 노래를 부르라
낚시질꾼이 그 딸에게

한가람 뿌리에서 양 떼를 먹이는 목자께

4
모임의 형제들에게
공주로 보내는 글 1
앓는 이에게
청도로 보내는 글
너는 언제까지나 그 꼴일 터이냐
광주로 보내는 글 1
광주로 보내는 글 2
해남으로 보내는 글
홍동으로 보내는 글
○○○ 씨에게 보내는 답장
공주로 보내는 글 2
영원히 불어 오고가는 바람소리
안반덕으로 보내는 글
맘을 다하라

5
내외문답
고아원으로 보내는 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음악
동문서답
맘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 씨에 주는 물음
새것이 어디 왔느냐
내가 믿는 예수
어떻게 하는 것이 버리는 것이냐
죄는 참말로는 없다
오월을 생각해본다
전 세계의 친구들에게
새해 머리에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

6
<김용준 님>
우리는 언제나 사람답게 살아볼까
왜 이때껏 부버를 몰랐을까
날마다 마지막 날의 심정으로 살자
감사절 소감
영국은 여러 가지로 미국과 다르군요
양 치는 것이 흥미 있게 보여서 시험해보려오
필요하면 싸워야지요

<김세인 님>
『노자익』을 구해 보십시오
평화는 어서어서 강조되어야
앞으로 차차 어려운 시대가 될 것
『싸우는 평화주의자』가 발매금지 당했습니다
세배객이 예년보다는 줄었습니다
밥도 걸음도 말도 제대로

<홍성빈 님>
최후 진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박종택 님>
용서는 양심으로 해야지요
명상에 꼭 무슨 제목이 있겠습니까

<서형선 님>
호주행을 중지했소
이 인류는 결국 멸망할 것
명년 여름에 퀘이커 세계대회가 있습니다
계훈제 선생이 쇠약해져서 염려되오
어려움이 많아도 또박또박 일을 해나가시오
글도 늘 마음대로 내지 못하니 답답합니다

<한경원 님>
공공사업에 정신이 좀 있는 인물이 있습니까

<곽분이 님>
『성경』을 좀 진지한 태도로 가르쳐주어야겠다
이 나라야말로 제 얼굴 들여다볼 줄 모른다
일시적으로 좀 피곤했던 듯하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

<진영상 님>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만입니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합하는 점에 갈 수 있어
사람이 자기를 불신하는 듯이 보이면 불쾌한 법

<함우용 님>
『씨알의 소리』 영인본 판매 때문에

<양영호 님>
일본에 한 주일 머물게 될 것이다

<정미희 님>
어린이라도 어찌 무심히 여길 수 있느냐

<함정해 님>
3년 전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고
온실과 뜰의 꽃나무가 잘 자라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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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안병무 님
이준목 님
이두수 님

2
안반덕 씨알농장 일꾼들께
의의 싸움 다 싸우고 기쁘게 만나는 날
문대골 님
김종성 님
정만수 님
심숭경 님
김태현 님
석진영 님
이향 님
이미경 님
이오덕 님
법정 님
이천우 님
김조년 님·부인(이종희)님
이행우 님
장익근 님·명옥 님
이열 님
노명환 님
유영빈 님
박선균 님
강기철 님
김대숙 님
홍재경 님
서정웅 님
임명수 님
경옥 님
전경임 님
한가람 뿌리에서 양떼를 먹이는 목자께

4
백영자 님
전재경 님
장기홍 님
부산 모임 여러분께
공주로 보내는 글1
.
.
.

5
내외문답
고아원으로 보내는 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음악
동문서답
맘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
.
.
6
김용준 님
김세인 님
홍성빈 님
박종태 님
서형선 님
한경원 님
곽분이 님
진영사 님
함우용 님
양영호 님
정미희 님
함정해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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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웅혼한 역사의 외침, 민족의 큰 사상가 함석헌을 읽는다
서거 20주기 및 탄생 108주년에 새로운 편집으로 간행된 ‘함석헌저작집’ 전30권 !


불안과 위기의 이 시대에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읽는 것은
우리의 정신과 양심을 다시 찾는 일입니다. 이념에 사로잡히고,
무지와 물욕에 빠져 있는 우리의 잠든 혼을 일깨우는 일입니다


동서고금의 사상을 넘나들며 사람의 도리와 생명의 본질을 설파하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과 글은 오늘 우리들에게 삶의 비전이자 정신적 지표입니다. 선생의 저작은 상아탑 연구실이나 책상머리에서 쓴 것이 아니고 험난한 20세기 역사의 현장에서 몸소 체험하며 가슴에서 토해낸 ‘민족자서전’입니다. 정치와 언론, 교육과 종교의 혁명을 강조하며 다양한 삶(생명)의 원리와 실천론이 아우러집니다. 함석헌은 역사와 사회가 십자가를 이루는 교차점에 늘 서서 사유하고 실천한 공인으로, 지공무사의 정신으로 평생을 살아간 선비입니다. 민중들과 더불어 그들의 아픔을 보듬고 그들의 무지를 사랑으로 깨우친 씨알들의 스승이었습니다. 불안과 위기의 이 시대에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읽는 것은 우리의 정신과 양심을 다시 찾는 일입니다. 이념에 사로잡히고, 무지와 물욕에 빠져 있는 우리의 잠든 혼을 일깨우는 일입니다.
서거 20주기 및 탄생 108주년에 즈음하여 펴내는 ‘함석헌저작집’(전30권)은 1988년 전20권으로 간행된 ‘함석헌전집’을 토대로 그 이후 새로 찾아낸 72편의 시와 수십 편의 강연, 편지, 에세이를 수록하여, 오늘의 독자 감각에 맞게 새로운 디자인으로 편집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말씀과 글에는 마치 악곡의 변주곡처럼 거듭 반복되는 몇 가지 일관된 주제가 있습니다. 민중과 씨알, 민중사관 및 고난사관, 비폭력 평화주의, 국가(지상)주의 및 민족(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세계주의(globalism)로의 이행. 개혁과 혁명, 사회진화론, 종교적 가치관, 새 종교와 새 인류의 대망(待望). 개인주의를 넘어선 전체주의(holism), 상생론적 같이살기운동의 전개 등이 그것인데, 모두 혁명적인 거대 담론들입니다. 개인사와 민족사를 넘어선 인류 전체의 보편사 차원의 문제와 씨름하는 독창적 독자적인 담론들입니다. 이 주제들을 유의하면서 함석헌 선생의 말씀과 글을 읽는다면 우리는 큰 깨침을 얻게 될 것입니다.


22.진실을 찾는 벗들에게
“인생은 붙잡는 것이요 믿음은 놓치지 않는 것이다.”
함석헌저작집 제22권 『진실을 찾는 벗들에게』는 함석헌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것이다. 제6부에 실린 편지들은 새로 입수하여 이번 저작집에 처음 싣는다.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