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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0

미래를 향한 선택 - 화해의 여정 > 웹진 |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미래를 향한 선택 - 화해의 여정 > 웹진 |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평화] 미래를 향한 선택 - 화해의 여정
김성한 121.♡.116.95
2021.03.10 15:31 6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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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르완다 학살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렸던 로잔세계복음화대회가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 이어서 21년 만에 2010년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다. 케이프타운 시내에 위치한 대회장 가까운 곳에서 혹독했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남긴 흔적들을 발견하는 일을 어렵지 않았다. 법원이었던 건물 앞에는 유색인종을 위한 전용 벤치가 남아 있었다. 법원에서 다뤄지는 판결은 그 사람이 어느 인종에 포함되는지를 판결하는 일이었다. 그 판결에 따라 그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던 누군가의 인생은 뒤바뀌었을 것이다.

로잔대회 셋 째날 아침이었다. 르완다에서 온 안투완 루타이시어(Antoine Rutayisire)가 사람들 앞에 섰다. 학생사역을 하던 그는 르완다 학살(Rwanda genocide)의 생존자였다. 1994년 4월부터 7월까지 르완다에서는 80만 명에서 100만 명이 죽는 학살이 벌어졌다.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몽치, 도끼, 마체테(벌채용 칼)와 같은 일상적인 도구로 살해당했다. 안투완은 1994년에 일어난 르완다의 이야기와 함께 네 가지 교훈을 세계교회와 나누었다.1)


첫 번째로 그는 르완다의 교회가 자신들의 진짜 문제들을 다루지 않았다고 했다. 벨기에의 오랜 식민 통치를 경험한 르완다에는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후투, 15%를 차지하는 투치, 그리고 5% 정도의 트와, 세 부족이 있었다. 벨기에는 다른 식민국가와 같이 ‘분리해서 통치’하는 과정에서 소수 부족인 투치를 전면에 내세워 다수인 후투를 통치하였고 이 식민 통치 기간 동안 생긴 두 부족 간의 깊은 갈등은 1965년 벨기에가 르완다를 떠난 뒤에도 계속 남아 있었다. 1994년 이전에도 후투와 투치 사이에 크고 작은 충돌과 학살이 있었지만 교회는 이것을 신앙의 문제로 직면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신자들은 신앙고백과 함께 필수 성경 구절을 암송하는 단기간의 교리 교육을 마치면 세례를 받고 교회의 멤버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거나 갈등이 발생할 경우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르완다의 전통적인 부족 중심의 세계관으로 돌아서곤 했다. 1994년 당시 르완다 인구의 90%가 그리스도교인 (가톨릭 아니면 개신교)이었다.

세 번째로 안투완은 선교 주체들 간의 갈등을 언급했다. 교회는 성장했고 복음은 널리 전파되는 것 같았지만 르완다의 교회들은 서로 일치되거나 서로 사랑하기 보다는 경쟁하며 때로는 폭력을 수반한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놀랍게도 르완다는 1970년대까지 계속 되었던 동아프리카 개신교 대부흥 운동의 핵심 지역 중 하나였다. 네 번째로 국가 권력과 깊이 연합한 교회를 언급했다. 벨기에의 식민 통치기간동안 가톨릭교회는 식민지 통치의 주된 협력자였으며 식민 통치가 끝난 뒤에도 교회는 자신들의 과거로 인해 현실에 대한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고 했다.

종합하자면, 르완다 대학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후투와 투치이기도 했지만, 또한 대부분은 그리스도인이었다. 이것이 안투완의 이야기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었다. 이 끔찍한 일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가 꼭 물어야 할 질문은 ‘교회가 학살과 관련해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이다.

안투완 루타이시어(Antoine Rutayisire)의 강의 영상

르완다 학살을 연구한 롱맨(Longman)은 르완다의 교회와 국가 모두에게 근본적인 내부개혁과 그들이 맺어온 역사적인 관계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었으며, 두 기관 모두 ‘대중적 인기를 다시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인종에 대한 논의’를 이용했다고 설명한다. 롱맨은 이 발전 과정이 1994년에 일어난 대량 학살에서 교회가 담당했던 후원자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교회는 ‘대량 학살의 계획의 중심’에 있지는 않았어도 ‘권위에 순종하라고 격려하였고 인종 차별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듯 만들어서’ 대량 학살을 도왔다”는 것이다.2) 그러나 안타깝게도 롱맨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 많은 신부들과 목사들이 학살에 직접 가담했다는 기록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들은 단지 후견인이 아니었으며 적극적으로 학살에 참여했다.3)


2. 한국전쟁과 그리스도교

르완다에서 벌어진 이 끔찍한 학살의 이야기는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을까? 안투완이 제시하고 있는 네 가지 문제를 우리 교회의 상황으로 가져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한국전쟁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남북한의 군인 사망자의 합이 약 44만 명, 민간인 사망자의 합이 약 65만 명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군인 사망자보다 훨씬 많다. 그리고 광범위한 민간인의 희생과 피해의 대부분은 무차별적인 폭격과 국가권력과 그 수족역할을 했던 좌우익에 의한 학살의 결과였다.4) 박해와 순교자의 이야기만 주로 다루는 교회에서는 숨겨진 이야기들이다. 더 나아가서 전쟁기간 중 교회의 역할과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려운 질문이다. 물론 교회는 순교자들로만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70년 동안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상황에서, 전쟁 이후의 미래에 대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분단과 전쟁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교회는 복음의 능력으로 온전히 치유되지 못한 것 같다.

한국전쟁기 학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구성 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김동춘 교수는 “화해가 중요한 국가적 쟁점이 되었는데도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단체나 종교 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거의 개입하지 못했다...한국 기독교는 강한 반공주의를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해보다는 적대와 증오의 종교에 가까웠다. 공산주의에 피해를 본 경험이 강하게 드리워서 그런지 대체로 군경 학살에 대해 무관심했고 화해에 대한 입장이나 철학 자체가 없었다”라고 회고한다.5) 적대와 증오로는 오늘의 현실을 바꿀 수 없으며, 미래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3. 화해의 여정을 위해서



다시 케이프타운으로 돌아가 보자. 1994년 5월 르완다에서 학살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최초의 총선을 치르게 되고 27년 동안 정치범으로 수감 생활을 한 넬슨 만델라가 승리한다. 오랜 기간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인종분리 정책을 시행해왔던 남아공의 미래는 불분명했다. 그러나 만델라가 이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선택은 아파르트헤이트 기간 동안 일어난 국가 폭력과 테러의 진실을 밝히고 화해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진실과 화해 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를 꾸리고 과거를 다루게 된다.

더 놀라운 일은 만델라가 진실을 밝히고 화해를 이루는 어려운 과업을 법률가나 정치인이 아닌 성공회 대주교였던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둘째 편지 5장에서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화해하셨고, 우리에게 ‘화해의 임무’와 ‘화해의 이치’를 맡겼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교회는 깨어지고 분열 된 세상에서 정의와 평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70년 넘게 계속되는 전쟁이 끝난다하더라도 교회가 화해의 공동체로 나설 수 있을까?

존 폴 레더락은 시편 85편을 사용하여 화해를 진실, 자비, 정의, 평화가 함께 있으며 그 모두가 하나로 드러나는 자리라고 설명한다.6) 진실 없는 자비와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평화는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며 반대로 자비 없는 진실과 평화를 위한 수고 없는 정의의 구현도 온전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화해의 임무는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실천을 요구한다.

거듭 말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된 이들은 적대와 증오의 임무를 받지 않았다. 그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임무는 화해를 이루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부터 우리가 화해의 여정을 시작한다면 교회와 세상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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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투완의 이야기는 ‘상처입은 민족들, 상처입은 치유자들, Wounded Nations, Wounded Healers’라는 제목으로 다음의 링크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 나는 안투완의 이야기에 내 나름대로의 해석과 의견을 덧붙였다. https://www.lausanne.org/content/reconciliation-gospel-of-reconciliation-rwanda?_sfm_wpcf-groupings=Session+Videos&_sfm_wpcf-select-gathering=2010+Cape+Town&sf_paged=2

2. Longman, T. 『Christianity and Genocide in Rwand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28. Anthony Court, “The Christian Churches, the State, and Genocide in Rwanda,” 『Missionalia』 44:1 (2016) 에서 재인용.

3. 필립 고레비지/강미경 옮김,『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아프리카의 슬픈 역사, 르완다 대학살』 (갈라파고스, 2011).

4. 박찬승 지음, 『마을로간 한국전쟁-한국전쟁기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 (돌베개, 2010).

5. 김동춘 지음,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한국전쟁과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 (사계절, 2013), 191-12.

 

6. 존 폴 레더락/유선금화해를 향한 여정』 (KAP, 2010)

 


 

김성한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 동북아 대표)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에서 평화교육가이자 동북아시아 지역 대표로 일하고 있다.

   

2020/11/27

국가폭력과 한국사회의 트라우마 김동춘

 국가폭력과 한국사회의 트라우마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1. 도입

20세기 한국인들은 일제 말 징용과 징병, 일본군 성노예 동원, 해방 후 좌우 대립과 분단, 한국전쟁, 이후의 베트남 전쟁, 그리고 군사정권의 억압과 폭력과 광주 5.18 등을 집단적으로 체험했다. 이 폭력 의 경험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혔으며, 그것이 한국사회의 건강성을 크게 손상 하였다. 분단, 전쟁, 군사독재 시간에 벌어진 국가폭력 피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여러 과거청산 기구 의 진상규명 활동, 사법당국의 재심과 보상 결정,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명예회복 등의 방법으로 진행 되어 왔다. 그러나 이들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 겪어온 정신적 외상에 대해서는 아직 체계적인 실태 조 사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에 의해 공식적인 인정, 집단적 치유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모 든 상처는 오직 개인의 질병으로 간주되고 따라서 개인이 감당하고 치료해야할 일이다. 분단과 전쟁의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 증상이 의학적 사실을 넘어서 사회적 사실로 되고, 과거청산이 법적인 처리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의제가 되어야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남북한의 분단은 무엇보다도 좌우 이념 대립으로 동족, 심지어 가족 간에 죽고 죽이는 일들을 수 없 이 많이 만들어 냈고, 지금까지 그 적대의 상처를 남기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자기 눈앞에서 부모나 형제가 총 칼을 맞고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거나, 그러한 일을 직접 경험했던 남북, 좌 우 양측에 의한 피학살 유족들은 억울함과 분노, 수치심을 갖고 살아왔다. 즉 가공할만한 폭력현장에서 벌레 취급을 당한데서 오는 극도의 무력감과 자기 비하, 국가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겪고도 국가에 대해 가해 책임을 묻거나 가해자 처벌을 요구할 수 없는데서 오는 분노와 좌절감, 그리고 부모 형제가 억울 하게 죽게 되었는데도 그것을 막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 등이 이들의 정신에 남아있다.

국가폭력 피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여러 과거청산 기구의 진상규명 활동, 사법당국의 재심과 보상 결정,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명예회복 등의 방법으로 진행되어 왔다.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와 PTSD 증상이 의학적 사실을 넘어서 사회적 사실로 되고, 과거청산이 법적인 처리의 차원을 넘어서 사 회적 의제가 되어야하고, 화해 치유의 과정이 사회적으로 전개될 필요성이 절실하다.

2.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의 정신적 상처

1) 집단학살 피해 한국전쟁당시 피학살자들과 그의 가족들, 군사정권 하의 고문과 폭력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 광주

5.18 당시폭도 로지목된 사람들과 가족들이 모두가 그런 말도 안되는 충격을 당한 사람들이다. 모든 국가폭력 피해 중에서 학살, 고문 피해는 가장 충격적인 것이며, 그것은 당사자들의 정신 도덕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려 그의 평생을 옥죈다.

한국전쟁 전후 자기 눈앞에서 부모나 형제가 총 칼을 맞고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거 나, 그러한 일을 직접 경험했던 피학살 유족들은 억울함과 분노, 수치심을 갖고 살아왔다. 즉 가공할만 한 폭력현장에서 벌레 취급을 당한데서 오는 극도의 무력감과 자기 비하, 국가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겪 고도 국가에 대해 가해 책임을 묻거나 가해자 처벌을 요구할 수 없는데서 오는 분노와 좌절감, 그리고 부모 형제가 억울하게 죽게 되었는데도 그것을 막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 등이 이들의 정신에 남 아있다. 그래서 생존자들은원통하고 분한 생각이 솟구쳐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느낌을 갖고“, ” 식사를 하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대화를 하다가도 그 생각만 나면 정신을 잃는증세를 보였다. .경에 의해빨갱이 로        몰려서 죽은 것도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지만, 사건 이후 수십년 동안빨갱이 가 족 으로        지목되어 번듯한 직장을 가질 수도 없었고, 계속되는 사찰과 감시, 사회적 차별을 당했다는 사 실 자체도 이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그래서              이들 유족들은 무기력감, 공포, 대인기피, 침묵, 그리고 과민증을 보였다.

그래서 한국전쟁 그 자체로부터 상처를 입은 5,60년대 한국인들은 대체로내부 망명[1])과 망각, 기복 주의 신앙에의 집착을 통해 전쟁 분단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했고, 그 중 피학살자들은 가해자 즉 국가 의 편에 섬으로써 생존의 길을 갔다. 그것은신분정화 의   일종이었다. 피학살 유족들이 좌익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교회에 간 것도 그 중 하나였지만, 남성의 경우 군 입대가 대표적인 신분정화, 신분세탁 행 동이었다. 한국전쟁기 제주도 4.3 피해자들의 군 입대 선풍도 그것이었다. 들은 자신의 가족을 국가 안 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국가가 공식 사용하는 빨갱이 담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일부 피학살 유 족들은 빨갱이를 성토하는 일에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의 눈 밖에 나지 않을까 두려워 선 거 때마다 무조건 여당을 지지하기도 한다.

이것은 자신의 정치 사회적 위치를 국가의 주류나 핵심에 두기 위한 자기방어, 자기변호의 몸부림이 었다. 즉 차별의 구조, ‘빨갱이 담론 을도저히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그 헤게모니의 제약 아 래서 행동의 반경을 설정하는 셈이다. 피학살 유족들이 희생자들이띠끌만한 잘못도 하지 않았던’ ‘순수 한양민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였다. 상당한 교육수준을 갖고 있거나 사회단체에 가담한 경력이 있 는 유족들도 별 차이가 없었다. 즉 그들은 스스로가 불순분자라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려 함으로써, 가 해자인 국가의 인정을 받으려 하였다. 여기서 바로 피학살자 진상규명 운동 과정에서 보도연맹 유족들 에 대한 여타 유족들의 거리두기가 시작되었다. 사실 학살사건 이후부터 보도연맹 가족들은 빨갱이라고 시골 동네에서는 이웃 사람들이 농사 품앗이에도 끼워주지 않았다. 그들의 자녀들은 공무원도 못되고 육사도 못가고 회사에 들어가도 인사발령을 내주지 않았다. 그런데 또 다른 피학살 유족들은 자신은 순 수양민이기 때문에 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들을 차별하였다. 즉 당신들 (빨갱이) 때문에 우리순수한 양민 이함께 빨갱이 취급받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 이들순수 양민 들이좌익 활동가 유족이나 보도연맹 유족들을 물리치는 이유였다.

사건 이후 거의 60여년 지난 시점의 조사에서도 제주 4.3 피해자 중 설문에 응한 70명 중 68.6% PTSD 장애를 겪고 있었고, 52.9%가 우울증을 겪고 있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한국전쟁 중 군.

. 미군에 의한 피학살자 가족들의 대부분은 감정조절이 안되어 대인관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심리적 충격. 대인기피, 화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치료경험이 없는 사람이 85%에 달했다.

2) 고문 등 인권침해 피해

지난 군사정권 시절 고문 등의 현장에서 이들을 거의 짐승, 벌레와 같은 존재로 취급당했으며, 피해 자들은 스스로를 인간이하의 존재로 느꼈다. 고문은 권력에게 철저한 복종을 요구하는 일이고, 인간의 자존감과 자아를 철저하게 붕괴시키기 때문이다.켰다. 그리고 사건 이후 수십년 동안 권력과 사회가 이 들에게 가한 존재 부인( 빨갱이, 간첩 은) 이들을산 송장’, ‘금치산자혹은 국가 내의 식민지 백성, 천민 이나 노예처럼 살았다. 누구도 그들과 함께 하려 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반공지 상주의 사회에서 빨갱이, 폭도, 간첩으로 지목되어 산다는 것, 그것은 가족을 포함한 공동체로부터 퇴출 을 의미하였다.

고문을 당하고 살아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육체적 정신적 상처는 평생 따라다닌다. 그리고 고문 등 국 가폭력을 가한 국가가 이 문제를 인정하고, 그것을 가능케 했던 모든 법과 제도를 고치고, 관련자를 처 벌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병든 국가는 계속 사회를 병들게 한다. 조작간첩 사 건 피해자 김철씨는수개월 동안 밀폐된 고문실에서 일제강점기 일본 고등계 형사들이 독립군을 고문 했던 방식으로 고문을 당했다 고말했다. 그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끔찍했던 고문실은 그 자체가 공 포다.

이들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은 가족과 이웃을 불신하고,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여 자살하기도 했고, 가 족의 죽음이나 친구들의 고통을 보고서도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다. 즉 국가폭력이 계속 정당화되는 사회에서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수치심을 갖는다. 남들은 죽었는데 자기 손자 살아났다 는 수치심, 가족을 돕지 못했다는 수치심, 폭력에 굴복했다는 수치심, 고문 앞에 동료들의 이름을 불었 다는 수치심이 그것이다. 전쟁 기 피학살자 가족들도 그렇지만 민주화 운동 유가족들도 혈육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데 대해 자책감을 갖고 있다. 정보기관이 가족을 협박할 경우 수배자인 가족을 자수시키거 나 군 입대 시킨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삶과 생각은 전형적인 트라우마 증상, 즉 폭력을 당했던 그날 그곳에 머물러있다. “피해의 현 재성, 그 자리에서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이 갖는 고통의 극단이다.... 정신활동이 그곳에 멈추어 있다는 것, 어떤 자질한 행복이나 감정을 잘 느낄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조작간첩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의 절정이다”. 사실 베트남 참전군인과 성폭력 피해자들의 체험에 주로 기초한 미국의 PTSD 라는 지표자체가 한국에서 이들이 겪었던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과 고통을 측정하기에는 부적절한 지표 일지 모른다.

조작 간첩, 인권침해, 및 고문 피해자들의 경우는 본인이 직접 피해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 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모든 나라의 모든 형태의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공포와 피해의식, 사회의 냉대와 차별, 이웃과의 단절, 실질적인 불이익 때문에 자신이 겪은 일에 일체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같은 종류의 피해를 겪고 있으면서도 완전히 개인으로 고립되어 있 다. 이들은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아도 언제나 죄인처럼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과거 자신이 당했던 부당한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이 어느 정도 규명되고 이들의 명예가 회복되어도 여전히 정상적 사회적 관계를 맺는데 서투르다.

앞의 진실화해위 조사 중 피학살 가족의 경우 PTSD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20% 정도에 불과했으나, 군사정권 하의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경우 조사 대상자 58명 중 43% 25영이 PTSD 증상을 앓고 있 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중 심각한 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8명이나 되었다. 이들 학살 피해자의 59%, 인권침해 피해자들 중 68%는 외상 경험에 대해 침투적이고 고통스러운 생각이나 기억이 났다고 답하고 있다. 한편 광주 5.18 피해자들 역시 사건 2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과잉경계에 의한 피해의식, 무기력 과 희망상실 등 만성화된 트라우마티즘으로 고통받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2006년의 조사에서는 당사자 들의 경우 41.6% PTSD를 경험하고 있으며, 부상자들의 경우 45.2%가 중간이상의 PTSD를 경험하 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의학연구소의/              고문피해자 213명 대상의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76 % 163명 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고문을 포함한 다른 형태의 국가폭 력을 입고 생존한 사람 중 48.8% PTSD로 고통받고 있다. 이것은 광주 5.18 민주화 운동 생존자 중 41.6% PTSD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과 비교해볼 때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한편 이 조사에서 조사 참여자인 고문피해자의 11.3%가 정신 분열증 진단을 받았다고 응답하였는데, 이는 한국인 평생 유별율 인 0.5%에 비해서 매우 높은 수치이다. 그리고 조사 참여자들 중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은 52 명으로 응답자의 24%를 차지하였다. 특히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은 전체 43 17(39.5%)이 자살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은 3,4 회 정도 자살을 시도했다고 하고, 10회 이상인 경우 도 2명이 있었다.


억울하게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은 그 억울함을 벗어나기 위한 일에 병적으로 집착을 한다. 즉 폭력의 트라우마는 자신의 해결되지 않는 원통함, 분노를 풀기위해 피해자임을 벗어나기 위해 집착 을 가져오게 된다. 자신이나 가족이 간첩이나 빨갱이로 몰려 학살을 당하거나 고문을 당한 사람들은나 는 간첩이 아니다’, ‘는 빨갱이가 아니다 라고계속 외치면서, 오직 그 멍에에서 벗어나는 일에만 사력을 다한다.

3) 가해 군인들이 겪는 트라우마

전쟁에서 동료가 죽는 것을 목격한 군인 일반, 상부의       명령을 받아서 할 수 없이 살인과 고문을 저 지르는 군인. 경찰도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는다.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군인 중 20% 2004년 당시 의 조사에서도 부정적인 심리적 충격에서 고통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 수백만명 중 몇 퍼센트가 외상에 시달려왔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정부가 한번 도 조사조차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트남 전 첨전 한국군도 공포증에 시달린다는 증언이 있 다, “풀밭 위를 걷다가 다리를 잃은 수 많은 동료 부하를 봤기 때문에 풀밭을 걸어가지 못하는 증세가 있다 고                 한다.        미군의 경우 이라크와 아프칸 전쟁에 투입된 군인들 30%PTSD 증후군을 보인다는 보고서가 있고, 10만명당 미군 자살률은 이들의 2005년의 12.7명에서 2008년에는 20.2명으로 두배가 까이 늘었다.

전투 현장의 군인들에게 적은 사람이 아닌 존재, 즉 괴뢰, 빨갱이, 오랑캐 공비, 개 등으로 비인간화 됨으로써 살인에 대한 심리적 거부반응을 완화한다. 그리고 적군의 사살하는 것은 전우인 내 동료를 죽 인데 대한 복수 행위로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어 살인의 부담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다. 군인들에게 전쟁은 승리하고 정복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적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생존을 위한 전투로 기 억되고 있으며, 공포 그 자체다.

학살 현장의 가해 군인이 겪었던 트라우마도 상상 이상이다. 80 5.18 당시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 입되었다가 이후 시민에게 총을 겨눴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시민을 사살하라는 상관의 지시에 반항하 다 구타를 당한 군인이 이후 29년째 정신병원을 전전하였다. 보훈처는 군 복무로 인해 정신병이 생겼다 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법원은 정신적 피해를 인정하고 불법행위로 동원된 데 대해 보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5.18 진압 63대대 출신 임00씨는 "5.18에 투입된 63대대 제대 장병 350명 중 적어도 150명에서 100명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고" 말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상이군인이 된 사람들 역시 소모품으로 간주되었던 것에 대한 분노, 존중받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존심의 상실로 우울증을 겪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상관에 대한 분노도 있다. 그것은 전쟁 이후 이들이 버려지고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태에 빠지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부상당한 자 신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무가치한 존재로서의 느낌, 죽음에 대한 공포와 미래에 대한 상실감 때문에 이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을 보였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분노를 폭력을 표출하기도 했다. 5,60년대까지 우리 국민들은 손목에 쇠갈코리를 달거나 의족에 의지해 절둑리거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폭언을 하는 상이군인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을 버린 국가에 대한 분노의 표 출이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국가는 아직 이들 군인의 정신적 피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후 참전군인, 상이 군인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졌지만, 이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상이군인의 고통은 물 리적 자원 연금 과( ) 교환되고 국가수호의 상징적 자본이 된다. 따라 고통의 정도가 국가에 의해 관리되고 (등급화), 전유됨으로써 전쟁의 참상에 대한 도덕적 호소가 금기된다. 상이와 용사가 국가에 의해 대중 의 기호로 표상됨으로써 개개인의 존재는 가려져 있다. ... 전우들이 전사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데 대 한 양심의 가책을 갖고 있다. 대중매체는 전쟁의 폭력성에 대한 그들의 기억을 상흔의 이야기로 전도시 켜 버린다. 이들의 육체적 상흔은 국가에 의해 반공주의 혹은 국가주의를 정당화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내세워진다. 그러나 전쟁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군인들에게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베트남 파병 군인이나 한국전쟁 참전군인 등 국가를 위해 전투에 나섰으나 지휘관 급 사람들은 부와 명예를 누려도 이들은 사실상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징에 더욱 집착을 한다. 특히 민주화 이후 이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이들은 자신의 과거의 활동을 정당 화하고 자신의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국가에 더욱 집착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민주화 이후 5.18 항쟁의 주도세력이나 민주화 세력이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는 것에 대해 더욱 강한 피해의식과 소외감을 가진 나머지 반공, 발전, 국가주의에 더욱 집착을 하게 된다(윤충로, 2007). 국가 를 위해 싸우다가 피해를 입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로부터 제대로 인정을 받기를 열망하는 참전 군인 은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들처럼 국가 폭력의 행사에 가해자의 일부로 참여하기도 한다. 그것이 국가라 는 정체성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에서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해서는 물론 참전자들 대상의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 기 때문에 속단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한국에서는 사건이후 오래 시간이 지속되어도 만성적인 트라우 마를 겪는 사람이 많고, 학력이 낮거나 계층적으로는 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즉 사회적으로는 그러한 사건 자체를 부인하는 정치체제가 분단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 고, 사회적 배제나 무관심이 지속되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국가나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들의 트라우마가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상이군인의 경우도 그렇지만 자신이 사회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학력, 경제력,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지 못한 경우 더욱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광 주 5.18 피해자의 경우도 항쟁에 끝까지 참여했던 주로 바닥 출신 사람들, 사건 이후에도 노동자나 사 무판매직에 종사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당시 학생이었던 사람 등에 비해 훨씬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 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국가, 사회전체 차원의 트라우마와 도덕적 아노미

개인뿐만 아니라 굴욕적인 식민지 체험, 외적으로부터의 공격, 대규모 재해나 따돌림 등을 집단적으 로 겪은 국가나 민족, 사회일반 그리고 특정 지역사회도 그와 유사한 정신 상태, 즉 공포와 슬픔, 과민 한 반응과 공격성, 과거 부정과 기억의 삭제,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과도한 집착 증세를 보일 수 있고, 또 위축 불신 희망 상실 등 도덕적 손상을 입을 수 있다. 20세기 한국인들은 일제 말 전시 동원, 해방 후 좌우 대립과 분단, 한국전쟁, 이후의 베트남 전쟁, 그리고 군사정권의 폭력과 광주 5.18 등을 집단적으로 체험했다. 이 폭력의 경험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었을 것이며, 그것 이 한국사회의 도덕적 손상을 가져온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국가나 사회 전체가 전쟁이나 폭력의 상처를 입고 이후에도 그와 같은 전쟁 폭력이 지속되거나, 이후 에 가해 국가나 가해 세력이 그것을 부인할 경우에는 피해 국가의 트라우마는 지속된다. 일본의 한국 과거사 부인이 한국인들에게 이와 같은 영향을 줄 것이고, 광주 5.18 가해세력이 5.18에 대해 사과하지 않거나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여전히 승승장구 하면서 권력과 부를 누리고, 항쟁이 북한군의 소행이 라고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매체가 존재할 경우 광주 시민 일반은 더 큰 상처를 입는다.

한국사회 전반의 사회적 정신병리, 특히 반공주의 콤플렉스는 20세기 최대의 재앙이었던 한국전쟁에 서 기인하는 것이기는 하나, 남북한의 분단과 주기적인 적대 관계에 의해 강화 유지되었고, 멀리는 식 민지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있다. 식민지의 억압, 전쟁의 공포는 모든 한국인에게 원초적인 상처를 안겨 주었는데 한국전쟁과 분단은 바로 식민지의 미청산 즉 국민국가 건설의 실패라는 점에서 연결되어 있

. 서구적 표준을 설정하고 식민지를결핍 으로만보는 태도, 식민지를예외적 일탈 로보면서 돌아보 지 않으려는 태도가 모두 여기에 대당한다. 식민지와 분단은 민족과 국가의 좌절. 분단은 서로가 민족 = 국가를 자처하는 과잉 상징화하게 된다. 분단 상태에서 남북한 자신과 민족을 동일시함으로써 상대방 을 적으로 돌리게 된다.

특히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코리안이나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도 모두 식민지 트라우마, 역사 적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의 경험은민족적 리비도 의흐름이 단절, 억압되는 것을 의 미한다. 그래서 역사적 트라우마는 집단 전체의 성향이나 인격을 왜곡시키고 집단적 광기와 같은 현상 을 만들어 낸다. 오늘의 한국은 식민지, 전쟁, 분단의 한 세기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심각한 외상을 입 은 사회라 볼 수 있고, 그것이 국가와 국민의 행동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북한, 빨갱이에 대한 공포와 공격성은 강자인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심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영어구사능력에 따라 지위가 좌우되고 능력이 평가받는 것, 미국의 유명대학 졸업장이 한국에서 대학교수의 보증수표가 되는 것은 일종의 식민지적 멘탈리티가 지금까지 한국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력이나 주류매체가 여전히빨갱이’, ‘종북 담론을구사하는 것은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며, 사회전반으로도 이들 희생자들에 대한 공감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가 평행하는 두 개의 세계로 구분되면, 한 쪽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의 고통에 대해 아무련 연관 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들도 도덕적인 아노미 상태에 서 벗어날 수 없다. 정의의 훼손, 국가 범죄에 대한 분노도 일어나지 않고, 피해자에 연민의 감정도 생 겨나지 못하도록 사회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설사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 다는 생각 때문에 심각한 무력감을 갖게 된다.

트라우마가 국가나 사회 전체 차원에서 발생하면 피해자 가해자/ , 처벌 보상의/ 구분을 넘어서 법적 정 치적 도덕적 문법으로 거론되어야 하며,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사회전체가 치료, 치유의 대상이 될 것 이다. 정치가 가장 중요한 치료제가 될 것이다.

4. 진상규명, 재심판결 등과 트라우마 극복의 가능성

학살사건, 고문 등 피해가 포함된 조작간첩 사건 등에 대한 국가차원의 진상규명,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민사상의 보 배상이. 어느정도 진행되었다. 국정원(NIS), 국방부, 경찰청의 과거사 기구들과 진실화 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The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의 조사는 그동안 은폐된 인권침해 사건들의 실체를 규명함으로써 피해자들의 구제와 명예회복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특히, 이 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의 학살, 고문 피해자들의 주장과 인권단체들 의 고문조작 피해 자료들이 상당수 진실로 밝혀졌다. 그 결과 피해자들이 부분적으로 구제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고, 일부는 재심을 통해 배상을 받았다.

한국의 대다수 학살, 고문피해자들은 검찰이나 공안기관의 강압적인 수사와 이후 판결이라는 절차를 거쳐간첩 이되었고, 장기간 감옥 생황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들이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 음은 우선 의문사 위원회(The Presidential Truth Commission on Suspicious Deaths) 혹은 진실화해 위원회 활동을 통한 사건의 진상의 규명이고, 이렇게 얻어진 진실을 통해 재심 판결을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는 것이다. 즉 이들 피해자들은 검찰과 법원이라는,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국가기관의사법절차 를통해 간첩으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에,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서는 그 절차를 거 꾸로 되밟아야 한다. 이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지 않는 한 이로 인한 법적, 심리적, 사회적 고통은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진상규명 사건에 대하여 재심권고를 하였다. 검찰이 과거사 사 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들의 피해회복을 위해 직접 재심을 청구한 사례가 500여명에 육박했다. 많은 사건이 무죄로 확정되었고, 나머지는 무죄판결 후 상급심에서 진행 중이거나 재심을 청구하였으나 아직 개시결정이 나지 않거나 개시 결정 후 재심 진행 중에 있다. 재심법원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여 재심사유인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 호7 , 422조에 의해 재심개시결정을 하였고, 실체 판단에 들어가서는 전부 무죄 선고를 하였다. 그리고 무죄 확정 판결 후 진행되는 민사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법원은 위원회의 결정 및 재심법원의 판결을 증거로 채택하고 1)체포, 구속과 정의 위법, 2)경찰과 검찰 수사과정의 위법 고문( ), 3)공판절차 및 형사판결의 위법으로 세분화하여 국가 배상 판결을 인정하고 있다.

즉 한국에서 과거의 고문사건 자체와 그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후유증에 대해 국가차원의 체계적인 조사나 예방조치는 거의 없지만, 개별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 결정이 나오고 있고, 피해 자들에 대한 배상 작업은 비교적 잘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보도연맹 학 살 사건, 제주 4.3 사건에 대해 사과했으나 군, , 국정원 등 가해기관은 제대로 과거 사실을 인정하거 나 공식적인 사과하지 않았고, 그리고 재판과정에서의 법원이 여러 가지 방식의 태도 변화가 있어서 피 해자들에게는 또 다른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

재심재판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은 고문, 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을 고통에 빠트린, 국가에 의 해 조작되어 공식화된 진실을 뒤집는 과정이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간첩으로 조작된 구체적인 상황에서부터 당시의 정치적 맥락, 법적 논리,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짚어나가야 한다. 재심 에 이르는 과정은 이와 같이 불법감금과 고문, 고통스런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해야 하는 과정이다. 물 론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문수사실의 고통스런 상황을 재연해야 했다. 그 리고 고문에 굴복하여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허위자백을 한 그 순간의 그 무력감과 비참함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그런데 당시의 사건 조작, 고문, 기소, 판결 등을 통해 이들을 간첩으로 만들어낸 가해자나 정치적 목 적으로 그러한 일을 기획하거나 명령을 한 사람 상당수가 아직 살아있는데, 당시의 지휘 명령계통예 있 었던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하지는 않고, 오직 피해자들이 수십년 전의 상황을 복기해서 무죄를 증명하 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가해자 중에서도 수사기관에 의한 고문사실을 고백해도 오히려 피해자들을 윽박 질러 그러한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있던 검사나 판사들이 경찰이나 공안기관의 수사관보다 훨씬 더 무거운 책임을 갖고 있지만, 이후의 재심사건에서는 이들에 대한 수사를 거의 생략하고 진행된다.

무죄판결은 한국사회에서 비시민(non-citizen), 사실상불가촉천민’(untouchable)과 같은 존재인 간 첩에서 인간으로, 이름 석자를 가진 보통 시민으로 되돌아오는 결정이다.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면 외상 경험으로 인해 무력감과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던 이들이 이제 자신의 내적인 힘에 눈을 뜨면서 외상이전의 삶보다 높은 자존감과 가치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정서적 둔감함 예민함 이 줄어들면서 타인에 대한 친밀감, 연민, 동정 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타인을 수용하게 되고 깊이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공감을 바탕으로 이들을 외면했던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들 중 일부는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도움을 주는 활동까 지 하게 된다.

그런데 재판과정에서 이들의 상처를 덧나게 만드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사건 당시에서 고문 조 작을 통해 이들을 간첩으로 만들었던 검찰이 사과나 반성을 하기는커녕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항소, 상 고를 하는 일이다. 재심 법정을 목격한 사람들은 "법정에서는 '할 말 없다 거나' 고개를 푹 숙이던 검사 가 돌아서서 항소 상고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라며" "굳이 상급심 판단을 받을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도 기계적으로 항소 상고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 말한다. 즉 검찰은 자신의 과거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 겠다는 말이다. 검찰의 이러한 태도는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행위이고, 그들의 상처를 더 깊게 만드는 행위다.

그러나 재판을 통한 재심은 국가가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조치일 따름이다. 고문이나 잔학행위 가해자 인 국가는 사건 별로 유족들이 재심을 하도록 하기 이전에 일괄적으로 이런 사건을 처리했어야 한다. 의문사위원회나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상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국가차원의 공식 공개 사과, 그리고 포괄 적 배상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국가차원의 공개 공식 사과나 가해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피해자나 생존자들은 개별적으로 법원에 재심을 신청하게 되었고, 무죄결정을 받은 이후 국가에 손해배 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였는데 여기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법원은 국가기관이지만, 행정부가 아 니므로 개인 소송 당사자의 사건에 대해서만 심리와 판결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배상 역시 판사의 판 단에 의존한다. 여기서 국가차원의 일관되거나 형평성 있는 조치를 기대할 수 없다. 둘째로 법원은 오 직 권리행사를 한 피해자들의 요구에 반응할 따름이며,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다. 따라서 과거 고문 피해를 당하고도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신청을 하지 않았거나 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겪은 진실과 일치하는 진실규명 결정을 얻지 못한 피해자, 그리 고 그것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법원으로부터 무죄결정을 받기를 원하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람 들은 법원으로부터 무죄 결정을 받지 못한다. 즉 피해는 동일한 것이지만, 국가의 공식적인 인정은 사 람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즉 법원은 일관성과 보편성의 관점에서 국가차원의 공식적인 결정이 되기에는 결함이 있고, 배상액수 에서는 판사마다 판단의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배상액수가 합리적이거나 공평한 기준에서 결정되 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법원은 과거의 잘못된 판결의 주체이기도 하므로 가해의 주체가 자신의 과오에 대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반성이 없이, 또다시 과거의 판결을 뒤집는다는 것도 모순인 측면이 있다. 개별 판사들이 사과를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의 공식사과, 즉 사법부의 공식사과는 아니기 때문이 다.

그래서 피해자 유족이나 생존자들이 법원을 통해 재심을 요청하거나 배상을 청구할 때는 법원의 이 러한 한계를 미리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즉 피해자 개인의 차원에서는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몰라 도, 국가가 공직적으로 이 결과를 받아들어 어떤 법과 제도, 관행을 고치는 것이 아니므로 유사한 피해 자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다.

어떻게 하면 학살, 고문 등 국가의 잔혹행위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약간이라도 원상회복의 느낌을 가질 수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회가 복원될 수 있을까? 진상의 규명과 무죄의 결정, 국 가의 잘못 인정, 피해자 배상은 그것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지언정 원상회복, 진정한 과거사 정 리와는 거리가 멀다. 가해자 처벌이 없다면 정의의 수립을 기대할 수 없고, 피해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치유의 과정이 결합되지 않는다면, 피해자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음은 물론 사회의 도덕적 질서의 복원 도 기대할 수 없다.

우선 법원의 무죄판결이 국가의 사과를 의미하는지가 의문이다. 일부 법관의 개인적 사과표시가 국가

의 공식적 사과와는 거리가 멀다. 국가가 이렇게 내키기 않은 방식으로 사건의 실재를 인정하기 때문에 가해자의 처벌은 말도 꺼내기 어렵다. 가해자를 규명하기도 처벌하기도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 을 규명할 의지도 처벌할 의지도 없는 국가는 여전히 그것은 사실상 범죄라고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국가가 그러한 잘못을 앞으로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다. 2000년대 이후 국정원 등 이 국민을 사찰하거나 간첩조작 사건을 일으키고, 선거에 개입하는 일이 재발한 것이 바로 그것을 말해 준다. 특히 이명박 정부 하에서 국정원과 검찰은 탈북자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조작되기도 했으나 관련 자들 중에서 처벌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과거 인권침해나 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은 가해자 처벌 없이는 진정한 과거청산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해자가 처벌되지 않거나 가해 기관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잘못된 관행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들 개인이나 기관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적반하장 격으로 가해 사실을 부인하거나 오히려 이들에게 2차 가해를 가하기도 한다. 고문사건 재심 사건에서 검찰이 항소나 상고를 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선 이후 검찰이 과거 방식 으로 권력자의 입김에 따라 정치적인 수사를 계속하거나 국정원과 보조를 맞추어 간첩조작에 가담하는 것도 그 예이다.

한편 피해자 개인의 상처의 치유는 결국 그들을 따돌렸던 사회가 그것을 반성하고 이들을 다시 품어 줄 때 가능하다. 이웃과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은 이들 피해자들에게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다. 재심 무 죄결정을 담은 판결문은 간첩 혹은 '간첩의 가족 이라는' 누명을 벗겨주는 유일한 입증자료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판결문 하나로 이들의 트라우마가 치유되기는 어렵다. 이웃은 오히려 "보상금을 얼마나 받으 려고 그러느냐 식의" 싸늘한 시선만 보내는 경우가 많다. 진실화해위는 간첩조작 사건이 발생한 곳에서 주민들을 참여시킨 다음 위안잔치를 주선하곤 했다. 자치단체, ·, 마을주민이 참여하는 잔치는 당사 자들의 수십 년 된 응어리를 푸는데 법원 판결 이상의 효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웃들은 이들를 흔 쾌히 받아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내 형을 간첩으로 몰아세운 사람들에게 거짓이라도 좋으 니 사과 한번 받는 것이 유일한 바람 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재판을 통한 무죄 결정, 배상결정은 고문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한 필요한 절 차이기는 하나 그것은 잘못하면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고, 국가나 사회가 진정한 반성을 통해 거듭하는 절차를 차단하는 바람막이 장치일 수도 있다.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주장, 그리고 사회정의와 도덕성 회복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지 않으면 재판을 통한 구제는 이런 한계에서 벗 어나지 못할 것이다.

5. 시민사회와 사회적 치유

반공 반북,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자행된 과거의 잘못된 공권력 행사의 모든 진실이 알려지고, 가해자 가 사과를 하거나 응분의 처벌을 받으면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어느정도 극복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 했듯이 군, 경 등 말단의 가해자도 일종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사법 정의, 피해자 보배상 조치를 통해서 전체의 트라우마가 극복되기는 어렵다. 피해자 보상이나 배상은 하나의 치유와 복원이 될 수 있지만, 권력이나 가해자가 제대로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과하지도 않은 채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보상조치 를 실시할 경우 그것은 상처를 지속시키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적대와 폭력을 가져왔던 바로 분단 체제 아래의 힘의 불균형이 시정되고, 피해자들 간에 불신도 해소되어야 한다. 억울한 처지에 대한 사 회적 인정과 공감이 일어나면 모든 피해자의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끊어진 관계가 회복될 수 있 다.

한국처럼 식민지와 내전이라는 대참사를 몸으로 겪었고, 여전히 분단 상태에 있는 경우에는 국가나 사회의 욕망 자체가 크게 좌절된 이력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국가나 사회 전체 차원에서의 사회적 치 유가 중요하다. 거시적으로 보면 정의, 특히 응보적 정의보다는 복원으로서의 정의가 중요하다. 억울한 피해자나 말단 병사 등 폭력의 하수인이었던 가해자들의 상처는 우선 국가가 사실을 인정하거나 잘못된 일에 대해 사과를 하고, 그에 합당하는 응분의 조치를 취해 줄 때 어느정도 치유될 수 있다.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분단극복, 평화, 통일을 통해서만 궁극적으로 치유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 판문점 정상회담, 그리고 남북한 화해와 평화의 시도는 최고의 분단 트라우마 치유제라 할 수 있다. 남북간의 군사정치적 적대가 해소되고, 지난 70년 동안 남과 북에서 분 단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남북한 정부로부터 적절한 위로를 받게 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남북 간의 화해 이전에 남남 간의 화해가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남한 내부의 화해는 분단과 전쟁이 초래한 각종의 부정의를 바로 잡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남한 사회 내에서의 국가와 국민,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관계의 회복, 민주주의의 질적인 심화를 통해 서 가능하다.

그러나 사회 내에서의 화해와 치유의 노력도 계속되어야 한다. ‘진실의 힘같은 단체는 고문피해자들 에 대한 치유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광주와 제주의 트라우마 센 터의 역할도 의미심장하다. 행안부에서는 국가적 트라우마 센타 설립을 위해 용역도 발주했으나 구체적 으로 착수하지는 않고 있다.

특히 종교단체나 종교지도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불교, 기독교 등 중교 종교단 체는 과거의 국가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도 그것을 막는 역할을 하지 않거나 오히려 가해의 편에 섰듯 이, 사건을 해결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도 언제나 비켜서 있었다. 특히 6.25 한국전쟁 기간 동안 동족 간에 전쟁이 발생하여 수만, 수십만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발생했는데, 종교기관 혹은 종교자들이 자신이 어느 한쪽의 편에 선 피해자라는 이유로 권위주의 정권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면서, 화해보다는 적대의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한국의 제도권 교단이 얼마나 우리나라 대중들의 고통, 우리 민족의 진정 한 평화 통일에 무관심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교단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런 정도의 고통 과 비극이 있었다면, 적어도 민족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풀자고 제안하는 종교 지도자, 그러한 담론 정도는 본격적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 맞는 일이다. 용서 화해 등과 관련된 주제에 기여하는 데서 남아 공화국은 물론이고 독일 등 외국에서는 종교학자나 신학자들의 역할도 매우 컸다. 그런데 한국의 각 종 교단체의 성직자들 중에서 한국전쟁으로 이렇게 사회가 심각하게 찢어져,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 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일까?



[1] ) 최인훈의 [회색인 에서] 전후 젊은이들의 사고를 지칭할 때 사용한 용어.

2020 한국종교학회 학술대회 종교와 영성, 사회적 치유

 

2020 한국종교학회 창립50주년기념 학술대회

종교와 영성, 사회적 치유

일시: 2020 11 27 ( ) ~ 28 ( )일 금     일 토

장소: 원광대학교 · ZOOM 화상회의

주최 주관 한국종교학회·             :  ·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후원: 한국연구재단

국종교학회 회원 여러분께

올해 2020년은 한국종교학회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코로나19의 팬데 믹으로 전세계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사회적 치유로서의 종교의 역할은 더 없이 중요한 때입니다 이번.  한국종교학회는 이러한 시류에 발맞춰 한국과 국제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사회의 병적현상 뿐만 아니라 역사적 상흔까지도 다양하 게 조명하고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종교와 영성 사회적,      치유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학 문의 발전을 위한 담론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한국종교학회 회장 박광수 배상

프로그램 1. 11 27일 금( ): 기조발표 원광대( 숭산기념관 2 1세미나실, ZOOM 화상회의)

일 시

발표 및 내용

진행

개회

13:00 ~ 13:30

한국종교학회 학술대회 등록

원영상

(원광대 평화연구소)

13:40 ~ 14:10

개회사

(박광수, 한국종교학회 회장)

1주제발표

 

                                                 제 부1 종교와 영성

 

13:40 ~ 14:10

종교와 영성 그,          사회적 치유 김경재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신광철 (한신대학교)

14:10 ~ 14:40

코로나19시대의 병적 현상과 종교 영성의·          사회적 치유 박광수 (원광대학교)

14:40

15:00

휴 식

 

2주제발표

 

                                                 제 부2 사회적 치유

 

15:00 ~ 15:30

한국사회의 트라우마 - 그 원인과 해결의 길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신광철

(한신대학교)

15:30 ~ 16:00

초기 동학의 영적 기록: 『회상영적실기(繪像靈蹟實記)』 최종성 (서울대학교)

3종합토론

16:00 ~ 17:20

종합토론 유기쁨 서울대학교(     ), 원영상 원광대(                평화연구소)

신재식

(호남신학대학교)

17:20 ~ 17:30

휴 식

 

총회

17:30 ~ 18:00

한국종교학회 총회

원영상

(원광대학교)

2.    11 28일 토(     ): 분과발표 (각 분과 ZOOM 화상회의)

일정

발표분과

분과발표

(10:00~

17:10)

9:30~10:00

                                                                

분과발표

10:00~12:00

       종교이론 및 대학원 유대교, 및 이슬람 종교와,  과학, 한국종교(1)

12:00~13:00

점심식사

분과발표

10:00~12:00

불교, 유교, 일본종교, 종교평화학, 한국종교(2)

15:00~15:10

휴식

분과발표

10:00~12:00

신종교, 종교사회학, 종교와 예술, 한국종교(3)

3.    분과 발표자

분과분야

분과장

분과발표자

한국종교

조성환

지구위험시대의 한국적 영성과 지구적 치유

<1분과> 10:00-12:00 지구인문학의 모색

사회: 이주연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1.   조성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근대성에서 지구성으로」 본 발표에서는 울리히 벡이 제시한지구성’(globality) 개념과 원불교사상연구 원에서 제안한지구인문학 에착안하여, 90년대 이래로 대두된 서양의 지구인 문학의 바탕에는근대성에서 지구성으로 라는테제가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음 을 확인하고, 이러한 전환이야말로 21세기의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제안하고자 한다.

2.   이우진 (공주교육대학교)

코로나시대의 지구시민교육」 코로나19 사태는지구화 현상 세계화’(                 , 지구적 상호연동성 으로)                인해복합위

기의시대에 접어들었고, 복합위기는 개별국가의 수준을 넘어 지구적 공동체 (global community) 차원의 대응이 요청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에 따 라 시민교육의 방향도 전 지구적 시각을 견지한탈주권적 행위자로서의 지구시 민양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전통적인 시민성을 넘어서 지구환경의 복합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생태 시민성(ecological citizenship)을 양성하는 방향 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지구시민교육은 지역적 정체성을 넘어보편적 시민성을추구하면서도, 자신이 속한지역적 정체성 을담아내야 한다 는 이중과제를 지니고 있다. 본 발표에서는 지역적 정체성과 보편적 시민성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토착적 사유 종교 에서( ) 찾아보고자 한다.

3.   허남진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지구위험시대의 지구종교학 : 토마스베리의지구신학을중심으로」 가톨릭 신부이자 생태신학자인 토마스 베리(Thomas Berry)는 자신을 문명사 학자나 신학자보다는지구신학자’(geologian) 혹은지구학자 로자칭하였다. 그 가 지향한지구신학 의목적은 지구공동체(Earth Community)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지구와 인간의 화해에 있다. 본 발표에서는 지구신학자/지구학자로서의 토 마스 베리의 지구신학사상을 통해지구종교학 의가능성을 탐색하고, 지구위험 시대에 종교학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4.   김단아 (서강대학교)

동아시아의 공화사상 - 유학을 중심으로」 본 발표는 대동(大同) 사상에 대한 종래의 오해들을 지적하고, 대동을화동(和同)’으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또한 화()에서 화동(和同)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의 사상적 전통에서 한국적 공화주의의 원형을 모색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전 통사상과의 조우를 통해 한국적 공화주의의 에토스(ethos)를 제시할 예정이다.

<2분과> 13:00-15:00 지구인문학과 한국종교

사회: 허남진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5.   김봉곤 야규/  마코토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최한기의 지구인식과 기학적 종교관

『지구전요(地球典要)』는 조선후기의 실학자 혜강 최한기가 자신의 기철학(氣哲學)체계에 입각해서 1857년에 편집한 세계지리서이다. 그는 이 책에서 태양계 의 운행에 의해 지구환경의 다양한 기후변동이 생겨나고 그것을( ‘기화(氣化)’라고 부른다), 그 바탕 위에 각국의 정치, 사회, 문화, 산업, 역사 등이 전개된다고 보 았다. 특히 그는 교학(敎學), 즉 종교가 사회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 강조하였는데, 아쉽게도 기존의 세계종교에는 이러한 조건을 갖춘 참된 교학 은 아직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같은 해에 기학 을쓰고서, 그것을 직접 제시 하려 한 것으로 생각된다.

6.   박길수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천도교의 지구인문학 : 천도교회월보를 중심으로

지구인문학 이라는용어는 최근 들어 제시되었지만, 동일한 문제의식은 160년 전에 이미 동학 창도 당시부터 구체화되었다. 동학은 1905년에 천도교로 개신 한 이후에도 인문학적인 견지에서 전 지구적 지평의 사유를 전개해 나갔다. 본 발표에서는 일제 강점기의 천도교 기관지 천도교회월보 에실린 논설들을 중 심으로, 천도교의 지구인 문학적 사유의 일단을 살펴봄으로써 지구인문학 개념 의 내포를 심화하고 외연을 확장 하고자 한다.

7.   이주연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지구여성학의 모색 : 에코페미니즘과 원불교의 만남」 이 연구는 에코페미니즘과 원불교의 접점을 탐색함으로써 지구여성학의 이론 적 바탕을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에코페미니즘 은여성과 자연을 동일 한 맥락에 위치시키고 남성중심적인 자본주의문명에 대항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다만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반면에 원 불교에서는 자연을 단지 여성적인 것만이 아니라일원(一圓)’이자 은혜로운 것 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에코페미니즘이 추구하는 통합의 길은 모두가일원 으로만나는보은(報恩)’의 세계에 해당된다. 그런 의미에서 원불교의 자연관은 에코 페미니즘에서의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에 대한 하나의 보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8.       김재익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

지구인문학으로 읽는 김지하의 생명철학」 시인 김지하는 1994년에 출간된 동학이야기 의「서문 에서」 우리사회의 당면 과제를탈근대 지구화와 지역자치 사상과 생명의 세계관 발견 으로규정하였 다. 이러한 그의 주장의 이면에는 독일의 녹색당의 출현과 서구 생태학의 발전 과정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있다. 그는 근대 문명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탈 근대를 말한다. 또한 지구화를 말하면서도 지역자치를 놓지 않는다. 그는다양 성, 관계성, 순환성 을생명의 속성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세계관의 확립을 근대 적 세계관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본 발표는 김지하의 생명철학을 지구인문학으 로 재구성해보고자 한다.

<3분과> 15:00-17:00 신에게서 님에게로

사회: 조성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9.       김용휘 (대구대학교)

동학의님의영성」 수운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의 한울님 은‘ ’ 기존 연구에서는 범천론, 범재신론 등 으로 규정되어 왔다. 심지어는 기독교와 같은 초월적 일신관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수운의 천()은 그의 체험이 깊어짐에 따라 우주적 영기(靈氣), 그 리고 내 안에 내재한 거룩한 영()으로 상정된다. 나아가 그 영과 나의 본심이 하나라는 자각 오심즉여심 을( ) 하면서, 나의 본질과 우주적 본질의 동일성에 대 한 자각, 영원성에 대한 자각으로 나아간다 무궁한(“ 이 울 속의 무궁한 나”). 한 편 해월 최시형에 이르면 천지를 곧님 으로보는가 하면, 모든 사물 하나하나 를님 으로보고, 특히 천대받는 며느리, 어린이, 빈천자를님 으로봄으로써 동 학의님 학은단순한 신학, 존재론이 아니라만물공경의생태적 영성으로, 가 장 낮은 자들을 위한 해방의 철학으로 나아갔다.

10.   홍승진 (서울대학교)

만해의 『유심』 기획과 한국 사유의 발현」 본 논문은 1918년에 만해 한용운이 창간한 『유심 지에』 실린 글과 그 글의 필 자 전체를 분석하여 잡지의 의미망을 '조선 불교와' 천도교와 대종교의 세 가지 사상적 맥락으로 범주화하고자 한다. 나아가서 『유심』 필진 분석을 통하여 밝힌 한국적 사유의 특성이 타고르 번역 과정과 어떠한 점에서 연관이 있는지도 밝 힐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심 의』 기획 방식과 거기에 담긴 한국적 사유에의 모 색이 한용운의 문학 세계와 구체적으로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11.   유신지 (경북대학교)

이상화의 시 세계와 생명회복 공간으로서의 '조선'」 본 발표는 이상화의 시나 평론을 통해 드러나는 시인의 세계 인식이 동학의 후천개벽과 닿아 있음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울러 이를 통해 그가 시 작품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공간, 예컨대새 세계”, “나라”, “청량 세계등에서

 

 

 

드러나는생명지향의사유가 이상화가 소망했던조선의 생명력 의회복을 전제 로 한다는 사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서 이는 그가 살아가던 일제강점기의 조선이각자위심(各自爲心)’의 죽음의 상태에서동귀일체(同歸一體)’새 생명의 상태로 거듭나기를 지향하는 시인의 사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12. 박지은 (서강대학교)

님의철학으로 바라본지금-여기한국페미니즘」 한국의 페미니즘은 리부트(reboot)를 맞이함과 동시에, 그것을 향한 회의적인 시선 앞에서 스스로를 규명해야 하는 숙명적 과제 예컨대 서구 페미니즘과 의다름을말하는 것, 사회갈등을 조장하는 불온한 사상이라는 시선에 대한 해 명를 안고 있다. 본 발표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책이님 의철학적 사유에 있다고 보고, ‘지금- 여기한국페미니즘에서 대두되는 세 가지 담론, “탈코르셋, 비혼, 비출산 을” ‘님의 철학 이라는관점에서 논하고자 한다.

불교

원영상

사회자: 원영상 (원광대학교)

1.   서정원 (동국대학교)

「붓다라는 절대타자」

인간붓다는근현대에 제시된 새로운 불타관(佛陀觀)으로 이해되면 문제가 없지 만, ‘초기불교라는마찬가지로 새로운 종교적 현상과 맞물려, 본래 인간으로 이 해되던 붓다 아함과( 니까야에 묘사된 붓다 가) 후기로 갈수록 신비화되고 절대화 되어 신 특히( 대승경전에 묘사된 붓다 으로서) 믿어지게 되었다는 역사적 접근법 으로 이용될 때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최근 비판적으로 많은 논 의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함, 니까야 등의 이른바 초기경전에 묘사 된 붓다와 대승경전에 묘사된 붓다 사이에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 다. 본 발표는 이 차이가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이념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구술과 서사라는 매체적 차이일 뿐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2.   김보과 (동국대학교)

정도삼매경 의태벌(笞罰) 규정을 통해본 중국불교교단의 한 특징」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위경인 정도삼매경(淨度三昧經)은 재가신자에게 오계(五戒) 수지의 복덕 등을 설하는 민중교화의 성격을 띠는 경전이다. 그런데 이 경전이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출가교단 내 규율 위반자를 대상으로 태벌(笞罰)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도삼매경에 의거한 태벌 처벌은 남북조, 수 당 초에 걸친 시기에 실제로 불교교단 내에 서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태벌처럼 신체에 직접적인 고통을 가하는 처벌은 불교교단의 전통적인 운영 규범집인 율장(律藏)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규정이라는 점이다. 본 발표는 정도삼매경 의태벌 규정과 이에 대한 당시의 비판 등을 살펴봄으로써 인도불교교단과 구별되는 중국불교교단의 특징 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3.   허석 (원광대학교)

「태허의 무창불학원과 소태산의 불법연구회의 설립이념과 활동 비교고찰」

태허(太虛, 1890-1947)와 소태산(少太山, 1891-1943)은 동시대에 활동한 근

 

 

 

대 동아시아 불교계를 대표하는 개혁가다. 양자는 당시 불교계에 대한 강한 비 판의식을 바탕으로 과감한 혁신이념과 활동을 보여주었는데, 태허의 인생불교와 소태산의 원불교 운동은 불교의 현실참여와 불법(佛法)의 생활 속 실천을 중시 하며 오늘날 동아시아 불교의 방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 였다. 본고에서는 태허가 설립한 무창불학원(1922년 설립 과) 소태산이 창립한 불법연구회(1924년 창립 의) 설립이념과 활동을 분석해 보고, 양자의 불교혁신운 동의 방향성과 그 현대적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종교사회학

김재명

사회자: 김재명 (건양대학교)

1.   정규현 (서강대학교)

「천주교 신자들의 사회참여 요인 분석 - 사회교리 수용성을 중심으로」 본 연구는 공적 지향을 지닌 천주교의 사회참여에 관하여 신자들이 어떤 요인 들을 통해 이를 수용하고 있는지에 주목하였다. 경험 분석을 위해 제 차4 “가톨 릭 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2018) 설문조사를 활용하였으며, 종교성과 종 교 미디어 활용도가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한 태도와 주요 사회현안에 대한 태 도 형성에 미치는 요인을 상관분석과 다중회귀분석을 통해 시도하였다. 본 연구 는 기존까지의 교회 단체나 지도자 중심의 종교의 사회참여 연구를 신자 전반 으로 확장시켜 포괄적으로 통계적 검증방법으로 종교의 사회참여에 대해 조망 했다는 데에, 신자들의 시민적 참여 태도와 교리적 수용 사이의 연관성을 규명 하고자 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2.   임전옥 (원광대학교)

「원불교 마음공부에서 대중‘ (大中)’의 의미」 본 연구는 원불교 마음공부와 관련하여 사용되는대중(大中)’의 구체적인 의미 를 살펴보려 한다. 원불교 마음공부란 마음을 잘 알고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경계에 접하여 이 경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마음 객체적( 자아) 을 또 다른 마음 주체적( 자아 이) 지켜보면서, 성품에 비추어 반응하는 마음이 적절한지 대조하는 과정을 말한다 대중 의.‘ ’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교서의 의미와 선지자들의 본의를 파악하고, 교법을 생활에 접목하여 마음공부의 바른길을 잡 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유교

정소이

사회자: 정소이 (서강대학교) 1. 김민정 (서강대학교)

<理解>의 公理와 유교적 恕」 코로나 시대 이후로 소통에 대해서는 거리두기가 더 미덕이 되고 있는 사회에 서 과연 인간 내면의 치유는 무엇으로 가능할 것인가? 인간이 사회적 본성을 가진 이상 타인과 세계와의 관계정립은 삶 전체의 과제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 이해와 세계 이해에 대한 근본 방향성은 개인과 사회 전체의 심리적 동기 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 지향성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이해라는 특성이란 무엇 을 지칭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막스베버의 견해를 통해 알아보고 유교에서자 기 마음을 미루는 것 인推己及人의 恕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2. 정강길 (서강대학교)

「순자에게서 찾는 자연주의 영성과 사회문화적 치유의 길() - 외왕내성의 道

(自ㆍ他 智行」)

이 글은 유가전통에선 주로 배척되어왔던 순자(荀子)를 통해 소위 유교의 자연 주의적 영성과 사회문화적 치유의 道[길 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순자에게서는 <자율성의 마음 수양 과> <타율성의 예치 교화 로> 인한 상호 발달의 성장적 진 화까지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순자의 道는 시간성과 역사성을 초월한 道가 아 니며 어떤 의미에서 시간 적 역사를 통해 함께 만들어가는 길道이다. 또한 그가 설파한 神도 초자연적인 神은 거부하면서도 오히려 道에 동화되는 것[化道] 이 상의 神은 없다고 봤었고, 이를 청출어람이 가능한 學問으로부터 구하고 있었 다. 학문은 유교 전통의 가장 강력한 영성수련 방법이기도 하다. 최종적으로 필 자는, 이를 ∝ (自ㆍ他 智行) ’[풀이하면, ()에 이르는 길은 나와 타자를 알 아가며 행하는 것에 비례함 으로] 정식화할 수 있다는 점과 이것은 서구의 ‘God ∝ IOthers’와도 양립 가능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제안해본다.

3. 최해인 (서강대학교)

「조선시대 여성 돌봄의 유교적 내면화」 유교적 죽음관은 흔히 삶과 죽음을 연속적으로 이해하며, 도리(道理)를 실천하 는 현세의 삶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근거가 된다. 유교적 이상적 삶 은제사 를‘ ’ 통해 죽음과 깊이 연관된다. 돌봄이 필요한 의존의 시간인죽어가는 과정 은현대인에게 외면 받으며, 필연적인 과정임을 거부하거나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짧게 만드는 것이 행복한 삶인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 사람들은 의존의 시간을 유교적 맥락 내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특히 가정을 재생산하고 영속시키는 주요 일원으로서 여성은 어떤 유교적예 를통해 자신의 존재 의의 를 이해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돌봄이 수반하는 감정을 인간 관계 속 "자신 이 처한 상황과 때에 맞는 적절한" 예로서 어떻게 인을 구체화하는지 그 철학 적, 정당화 과정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감정이 어떻게 정치적 차원과 연결되는 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종교이론 및 대학원

방원일

사회자: 박병훈 (서울대학교) 1. 방원일 (숭실대학교)

「초기 개신교계의 종교 개념 수용」 근대에 서양의 종교(religion) 개념이 수용된 양상을 개신교계로 한정해 살펴 보면 흥미로운 양상이 나타난다. 개신교계에서 근대적인 종교 개념이 수용된 시 기는 유교계 지식인에 비해 늦은 편이었고, 1910년 이전 상당 기간 전통적 용 법이 유지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종교 개념이 전통적 용법으로부터 근대적 용법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2. 오준혁 (서울대학교)

「근대 한국 개신교인들의치병표상들 - 『조선예수교회 이적명증』(1921)을 중 심으로」

『조선예수교회 이적명증』(1921) 1920년대 부흥사로 유명했던 김익두 목사의

 

 

 

치병 행위를 검증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발간된 책이다. ‘미신을배척하고 싶어 했던 선교사들의 의도와 달리, 한국 개신교의치병행위 는초기부터 자생적으로 등장했으며, 꾸준히 지속되어 왔다. 이 글은 『조선예수교회 이적명증』에 등장하 는 한국 개신교인들의 치병표상 을분석하고, 이러한 표상들이 동원되는 맥락 들 검토해보고자 한다.

3. 배희정 (서울대학교)

「한국인구집단에서 종교 점화가 독재자게임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 종교가 초자연적인 감시와 처벌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친사회성을 촉진한다는 주장은 인간사회의 협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지닌다. 본 연구에서는 주로 서구에서 진행된 연구들에서 나타난 종교 점화와 친사회성 증진 간의 인 과적 관계가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인지를 알아보 고자 했다. 실험 결과, 한국인 참여자들은 문장구성과제를 통해 종교를 상기시 켜도 타인과 자원을 나눠 갖는 행동실험인 독재자게임에서 더 관대하게 행동하 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대교 및 이슬람

박현도

사회자: 박현도 (명지대학교) 1. 권남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교회 건축법 찬반 입장으로 보는 현 이집트 사회의 종교 문제」

2016 9 28, 이집트에서교회 건축 및 보수에 관한 법 이공포되었다. 이 법이 제정 되기 전에는 교회를 짓고 수리하기 위해 주지사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서류상으로는 절차가 단순했지만 허가 기준이 모호해 현실적으로 교회 건 축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2016년 법안은 개선책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지 만, 최종안이 나온 후 평가는 옹호와 반대로 극명하게 갈렸다. 이번 발표에서는 양쪽 의견을 살펴본 후 각각의 내용들이 담고 있는 이집트 사회의 문제점들, 특 히 종교간 갈등과 종교의 자유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2.   양정아 (한국외국어대학교)

「시진핑 정권의 이슬람중국화 배경과 실행양상 분석」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2020년 중국 시진핑 정부는 이슬람 중국화를 강력하게 시행중이다. 정부 통일전선(United Front Work Department)은 자 율권을 갖은 국가 종교사무국(State Administration of Religious Affairs)을 직접통제하고 관리 할 수 있도록 관료제도 개혁을 완료했다. 이를 기반으로 정 부는 본격적으로 이슬람 중국화에 돌입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중국 시진핑 정 권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슬람 소수민족의 종교적 요소를 제거하는 이슬 람 중국화를 추진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3.   이수정 (한국외국어대학교)

「종교의 상업화: 이슬람 컨텐츠 인플루엔서 사례 연구」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이슬람 컨텐츠를 이용하여 인플루엔서가 되 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다양한 이유로 인하여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

 

 

 

는 경우도 발생할 정도로 이슬람과 관련된 컨텐츠는 여러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본 연구는 국내에서 이슬람을 컨텐츠로 소비하고 있는 현황을 정리하고, 이런 현상이 기인한 원인과 사회 영향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종교평화학

이명권

사회자: 이명권 (서울신학대학교) 1. 박수영 (동국대학교)

「간디 비폭력사상의 재조명」  마우리아의 아쇼까(Aśoka), 무굴제국의 악바르(Akbar)와 더불어 인도의 3대 전륜성왕(轉輪聖王, Cakravartirāja)으로 일컬어지는 간디는 인도를 대표하는 사 상가이자 정치인이다. 현대 인도의 모든 지폐의 앞면에는 간디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 그의위상을 말해준다. 국수주의적 힌두뜨바를 이념으로 하는 모디 총리의 인도인민당(BJP)가 집권한 이래 간디의 유산을 지우려고 하지만, 적어도 인도의 독립과정에서 간디가한 막중한 역할만큼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 다. 본 발표에서는 간디가 영국의 압제에 저항하기 위하여 선택한 이념인 비폭 력사상, 즉 아힌사(ahiṁsa)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2.   최자웅 (코리안 아쉬람)

「마오쩌뚱의 전쟁과 평화사상」 중국혁명은 러시아혁명과 더불어 20세기 현대의 가장 커다란 변화와 사건이었 다. 이 같은 중국혁명은 사상적으로 마오이즘으로 일컫어지는 확고한 혁명적 철 학적 군사사상이기도 했다. 오늘 지구촌의 평화를 추구할 때에 세계사회주의 진 영의 맹주로서 중국과 마오이즘에 근거한 전쟁과 평화사상을 빼뜨리고 논의할 수 없다. 오늘 중국의 근본 사상적 토대와 중심으로서의 마오이즘에서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사상과 개념들을 고찰하여 보고자 한다.

3.   김동근 (성공회대학교)

「종교적 인간과 평화 레비나스의-                종교 이해와 과정신학의 인간 실존 방식을 중심으로」

평화를 수립하는 주체로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레비나스와 과정신학을 중심으 로 조명해보고자 한다 분리된.‘ 관계 를지시하는 것으로종교 를이해하는 레비 나스의 사유와타자성의 출현에로 개방된 주체를제시하는 과정신학의 인간 실존 이해를 토대로, 타자를 나에게로 환원하지 않고 맺는 관계를 종교적 관계 로 이해해 보면서, 이렇게 환원 불가능한 관계를 종교적 관계로 확인하고, 종교 적 인간을 통해 가능한 평화를 상상해보고자 한다.

4.   전철후 (성공회대학교)

「원불교 교학에서의 한반도 평화공동체적 함의」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을 부각시키고 분단구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한반도 전역에는 일종의 체제 가‘ ’ 형성되었다. 남한과 북한의 대립과 갈등의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의 관계로서 평화공동체에‘ ’ 대한 가치 정립이 필요하다. 평화는 서로 돕고 위하는 조화()의 원리가 심층에서 실현된 세상을 의미 한다. 원불교 교학의 시각에서 한반도 평화공동체의 함의가 무엇인 지 살펴보고자 한다.

 

신종교

이경원

사회자: 이경원 (대진대학교) 1. 이지영 (대진대학교)

「대순사상에 나타난 치유의 미학」 본 논문은 한국신종교사상에 해당하는 대순진리회의 대순사상을 치유라는 논 리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그 미학적 가치를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대순사상은 한국 근대 종교가로서 강증산의 주된 교학으로서 우주관, 신관, 인간관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후천개벽사상에 나타난 주요 논리로서 병과 치병의 관계를 통 해 인류 미래의 이상적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2. 유철 (상생문화연구소)

「증산도 도전에 나타난 조화사상」 증산도 도전에는 '造化'라는 개념이 많이 등장한다. 조화성신, 조화정부, 조화낙 원, 신명조화, 조화주, 등등 조화는 '창조적 변화 를'         뜻한다. 즉 무언가가 새롭게 바뀐다는 것을 말하는데 그 변화의 성격을 '창조적 이라고'                 규정한다. 그럼 왜 창 조적인가? 조화가 갖는 증산도적 특징을 도전을 통해서 살펴보고 그 함의를 규 정하고자 한다.

일본종교

제점숙

사회자: 제점숙 (동서대학교)

1.   이현경 (일본 도카이대학교), 토론: 배귀득 (일본 리츠메이칸대학교)

「인구감소시대 일본의 종교와 외국인 선교사의 역할: 아마미오시마의 가톨릭을 중심으로」

1891년 파리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가 아마미오시마를 처음으로 방문한 이래, 아마이오시마에는 가톨릭 신자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도경제성장 기 이후 젊은 층의 도시부 인구유출로 인해 과소화와 저출산,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신자수가 급감, 신자 및 선교사들의 고령화 현상이 현저해졌다. 이 러한 가운데 오늘날 외국인 선교사들의 활약이 눈에 띄고 있다. 이번 발표에서 는 아마미오시마 외국인 선교사의 역할을 통해 인구감소시대 일본의 종교 현황 과 금후 전망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2.   김태훈 (일본 시코쿠대학교), 토론: 제점숙 (동서대학교)

「식민지조선 일본인 종교자들에 대한 기초적 연구-디지털아카이브의 활용과 데이터베이스 구축」

본 발표에서는 식민지조선에 유입된 일본계 종교와 종교자들에 대한 기초적 연구를 소개한다. 『조선총독부관보 와』 「조선총독부 종교관련 기록물 등」 최근 비 약적으로 진전되고 있는 근대 사료에 대한 디지털아카이브를 활용하여 각 종파 의 포교자, 포교거점, 포교지역에 대한 구체적 수와 시기별 추이를 확인한다. 또 한 디지털아카이브를 활용한 인문학적 연구방법의 한 가능성으로 발표자가 구 축한 데이터베이스를 소개한다.

 

종교와 과학

구형찬

사회자: 구형찬 (서울대학교)

1.   구형찬 (서울대학교)

「과학적 종교연구 방법론 현황: 진화인지적 접근을 중심으로」 본 발표는 21세기에 시도되고 있는 과학적 종교연구의 주요 방법론들을 리뷰 하고자 한다. 과학적 종교연구의 핵심은 이론적 가설과 연구문제를 구체적인 수 준의 경험 연구로 검증하는 데 있다. 전통적으로는 종교를 대상으로 하는 경험 연구는 주로 사회과학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 발전되어 온 진화인지적 종교연구는 행동생태학, 인지심리학, 뇌신경과학 등 현대 복합과 학의 이론적 문제의식과 연구질문을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방법론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과학적 종교연구는 선발주자인 해외 학계에서도 첫걸 음을 떼었을 뿐이므로 후발주자인 국내 학계도 주도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여 지가 충분하다. 가장 핵심이 되는 실천적 과제는 양질의 연구문제를 구체화하면 서 실제 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이다.

2.   심형준 (서울대학교)

「트라우마 경험자의 종교활동 효과에 관한 연구 리뷰: ETS ACE 관련 연구를 중심으로」

종교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대한 이론적 탐색의 일환으로 트라우마 경험자에 대한 종교활동의 효과를 검토하는 연구들을 리뷰한다. 종교에 관한 최근의 진화 인지적 관점의 연구들은 종교활동이 진화적 이점을 제공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그 실제 메커니즘은 규명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아동 트라우마 경험 자의 건강에 대한 연구들은 트라우마 경험과 건강 악화 사이의 관계를 생리적 수준에서 논의하고 있다. 또 관련 연구들 중에 종교활동의 건강 개선 효과에 주 목한 연구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서 종교활동의 진화적 이점을 생리적 메커니즘 수준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   박상준 (가톨릭대학교)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와 종교경험」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는 외부 자극에 집중하지 않고 내적 성찰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로 내측 전전두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 후측 대상피질(posterior cingulate cortex), 각이랑(angular gyrus)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본 논문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신경생물학적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또한 이 네트워크는 우울증과 자폐장애(autism) 치료를 위한 핵심 부위로 연구되고 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종교경험을 설명하는 신경생물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종교와 예술

최화선

사회자: 최화선 (서울대학교)

1. 최정화 (서울대학교)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 독일어권 종교학 도서」 현재 서울대 고문헌 자료실에 남겨진 경성제대 부속도서관 서양어(西洋語) 종 교학도서들을 분류한다. 그 중에서 독일어권 종교학 문헌은 영어 문헌을 제외하


 

 

 

고 가장 큰비중을 차지한다. ‘수집되고 보관된(archived)’ 도서들을 살펴보는 방 식으로 일제 강점기 독일 종교학의 수용이라는 문제에 한 발자국 다가간다.

2. 윤경희 (한국예술종합학교)

「알베르 칸의 <행성 아카이브>에 관하여」 프랑스 은행가 알베르 칸은 1909-1931년 세계 각지로 사진사와 지리학자를 파견해서 72000여 장의 오토크롬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게 했다. 인간의 다양 한 삶의 양상들이 치명적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타자의 삶에 대한 이해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한다는 믿음에 의해서였다. <행성 아카이브>(Les

Archives de la planète)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기술, 예술, 인류학, 공동체 윤 리가 결합한 칸의 기획에 대해 알아보고, 아비 바르부르크나 발터 벤야민 등이 동시대에 행한 다른 아카이브 작업과 비교할 만 한 생각의 장을 마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