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1

《조선의 오늘》 서부지역 구월산지구

《조선의 오늘》






서부지역





구월산지구

조선의 중서부 해안지구에 면하고있는 구월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관광지, 피서지이다. 명승들뿐아니라 안악3호무덤을 비롯한 력사유적들도 적지 않다. 평양을 가까이 하고있어 평양에 체류하는 손님들이 하루이틀 피서지로 리용할수도 있고 등산, 참관, 해수욕도 할수 있는 리상적인 관광지구이다. 가지가지 재미나는 전설도 많이 깃들어있다.






구월산



구월산은 조선의 6대명산의 하나이다.

예로부터 9월의 단풍이 류별나게 아름답다는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였다. 구월산의 총면적은 110㎢이다.

구월산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정력적인 령도와 조선인민군 군인들의 헌신적인 투쟁에 의하여 인민의 휴양지, 관광지로 훌륭히 꾸려졌다. 구월산에는 100여㎞의 탐승도로들과 수십개의 정각, 부감대들, 등산길들이 있다.

구월산관광지구에는 절승경개들뿐아니라 구월산성, 삼성사, 월정사, 안악3호무덤을 비롯한 많은 력사유적들이 있다.

평양과 가까이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등산, 참관, 해수욕을 하는 훌륭한 관광지이다.

평양에서 구월산까지는 약 100㎞이다. 남포시를 거쳐 서해갑문을 지나 륙로로 가는것이 편리하다.




구월산성



고구려시기 외래침략자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다.

둘레길이는 5. 23㎞, 높이 3. 5~5. 2m이다.

성을 보위하는데 리용된 무기고, 식량창고, 병영 등의 터가 있으며 자기를 구워낸 가마터도 있다.

평양에서 구월산까지는 약 100㎞이다. 남포시를 거쳐 서해갑문을 지나 륙로로 가는것이 편리하다.




단풍골



구월산 서쪽비탈면을 따라 펼쳐진 명승구이다. 맑은 시내물이 쏟아져내리다가는 바위돌에 부딪쳐 무수한 물안개를 일으키는데 노을빛이 비끼면 령롱한 무지개색을 반사하여 마치 구슬을 뿌려놓은것 같다.

원래 옥류골이라고 하였는데 단풍경치가 하도 아름다워 단풍골이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구월산에서 제일 깊고 이름난 골안이다. 등산로정은 5km인데 차를 타고 유람할수도 있다. 단풍골에는 마당소, 삼형제소, 뱀장어소, 차대폭포와 같은 명소들뿐아니라 월정사와 같은 력사유적들도 있다.




월정사



구월산 아사봉을 배경으로 단풍골에 자리잡은 고구려시기 절이다.

지금의것은 조선봉건왕조초기에 다시 지은것이라 한다. 월정사란 월정대사에 의하여 세워진 절이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만세루, 명부전, 수월당과 기타 부속건물로 이루어졌다.

건축형식이 독특할뿐아니라 주변경치 또한 매우 아름다워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팔담골



관광도로를 따라 안악군 월정리 방향으로 내려가느라면 곳곳에서 샘물이 솟아나는 팔담골에 이르게 된다. 500m의 구간에 8개의 맑은 담소가 차례로 놓여있다고 하여 팔담골이라고 한다. 맑은 물우에 무도장, 휴식터도 있다.




삼성사



팔담골입구에서 2km정도 내려가면 있다.

고조선의 건국시조 단군을 제사지내기 위하여 고려말기에 세운 절인데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제사도 함께 지냈다고 한다.

삼성이란 단군의 할아버지 환인과 아버지 환웅, 단군을 가리키는 말이다.

동, 서, 남쪽에 3채의 주요건물과 보조건물이 있다.




은정호



팔담골에서 1. 5km 들어가면 은정폭포가 있는데 그우에 자리잡고있다. 협곡의 시내물이 모여 형성된 산중호수이다.

깊이가 약 5m되는 호수는 물이 맑아 바닥까지 들여다보이며 물밑에는 마치 살아움직이는것만 같은 세마리의 돌사자가 있다.




안악3호무덤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에 자리잡고있는 고구려 고국원왕의 무덤이다.

4세기 중엽에 건설되였는데 규모가 크며 특별히 화려하고 내용이 풍부한것으로 하여 고구려벽화무덤가운데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문화유산으로 되고있다. 벽화를 통하여 고구려의 력사와 건축, 회화, 음악, 춤, 무술, 음식차리기 등을 알수 있다.

안악3호무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였다.




산성혁명사적지





구월산성중심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아버님이시며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의 걸출한 지도자이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 주체10(1921)년 11월 이곳에 오시여 이 지구 반일조직대표들의 회의를 소집하시고 오직 무장투쟁으로써만 반일투쟁에서 승리할수 있다는 방침을 제시하신 력사적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