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자본주의에 대한 동양학적 접근*
-도가사상(道家思想)을 중심으로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1. 서언(序言)
자본주의는 근대 성립의 토대이자 과학 발전의 중요한 배경으로서 인류의 양적, 물적 진보에 획기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인간소외, 계층 간의 격차, 환경위기 등 많은 폐해를 낳음으로써 줄곧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자체 수정의 길을 걷기도 하고 외부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 등에 의해 강력한 도전을 받기도 하였으나 주지하듯이 그 어느 것도 욕망의 무한궤도를 질주하는 자본주의를 어거(馭車)하지는 못하였다. 과연 자본주의는 초신성(超新星)처럼 팽창하여 끝내는 선택의 여지없이 인류를 파멸의 나락으로 몰아넣고야 말 것인가?
그런데 신화를 보면 개체는 극한적인 상황에서 변신을 통해 곤경을 극복하고 승화한다. 인류 역시 역사를 보면 위기의 순간마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난국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이룩하였다. 그렇다! 위기의 자본주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대체로 1970년대 이후 기존의 주류 경제학에 대해 변화를 모색하는 패러다임상의 움직임들이 있어왔는데 근래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움직임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가령 슈마허(E.F. Schumacher)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에서 성장지상주의를 비판하고 자연과의 조화속에서 이루어지는 지속가능의 경제학을 선구적으로 제창하였고, 뒤를 이어 폴 호큰(Paul G. Hawken) , 에이머리 로빈스(Amory B. Lovins), 헌터 로빈스(L. Hunter Lovins) 등은 『자연자본주의(Natural Capitalism)』에서 슈마허의 구상을 더욱 실천적으로 발전시켜 통합과 복원의 차원에서 물리적 자본과 금융자본만이 아니라 자연자본과 인적 자본도 포함시킨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이른바 ‘차세대 산업혁명’을 예고하였으며, 빌 게이츠(William H. Gates)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여 사회와의 조화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함으로써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른바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를 선언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주류 경제학에 반대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자본주의를 모색하는 이들의 관념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서구의 전통적인 인간중심적, 과학주의적 사고에서 비정통으로 간주되어왔던 자연친화적, 생태적, 전일적 관념 등인데 이러한 관념들은 동양권에서는 오히려 정통으로 여겨져 왔던 것들이다. 오늘날 다문화의 호혜적 공존이 지향되고 있는 시점에서 서구 자본주의와 동양사상의 창조적 조우는 시의적절하고 긴요한 모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국내에서는 이어령이 앞서의 자연자본주의, 창조적 자본주의 등의 개념을 포괄하면서 보다 동양적인 특색을 보여주는 ‘생명자본주의’를 제창한 바 있다. 생명자본주의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생명이 자원이 되고 감동이 경제력이 되는 자본주의로서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아름다움, 많은 물질을 소비하지 않고서도 감동이라는 가치를 생산하는 자본주의이다. 생명자본주의는 자연자본주의나 창조적 자본주의에 비해 더욱 생명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심미적, 감성적 가치를 중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본고에서는 문화 간의 교류와 수용 그리고 호혜적 공존을 위한 문화다원주의의 입장을 염두에 두면서 우선 서구 자본주의를 변용 혹은 극복하기 위한 동양권에서의 여러 시도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어서 자연자본주의와 창조적 자본주의 및 이들을 포괄한 생명자본주의의 주요 관념을 크게 자연생태의식과 공생의식으로 파악하고 양자의 동양사상적 기반을 주로 도가사상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아울러 본고에서는 편의상 이들 여러 경향들을 기존의 자본주의 대안들에 대한 종합적 성격이 강한 생명자본주의로 통칭(統稱)하여 논구하기로 한다.
2. 자본주의의 변용과 극복을 위한 시도들-동양권의 경우
근대 이후 동양권은 서구 자본주의를 수용하면서도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적 극복을 시도해왔다. 한 가지는 서구 자본주의의 병폐를 시정하자는 측면에서였고 다른 한 가지는 서구 자본주의를 동양의 가치와 문화에 맞게 변용하자는 측면에서였다. 이러한 시도가 가장 먼저 이루어진 곳은 근대화, 서구화를 동양권의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일찍 추동한 일본에서였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에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1684-1744)의 생활철학을 바탕으로 유교에 입각한 상인정신을 확립한 바 있고 이는 지금까지 일본적 경영의 원류로 존중되고 있다. 가령 그가 제시한 상인정신의 내용을 보면 “상인은 천하태평의 도를 상거래의 형태로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상거래시에는 상대방과 상호공존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등으로 상업윤리를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적 기업을 일구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도 일본의 선각적 경영인들은 기업의 존재의미와 가치를 제고시키는 데에 노력하였다. 그 대표적 인물이 일본 근대화의 대부라 불리우는 시부사와 에이치(澁澤榮一, 1840-1931)로 그의 저서 『유교와 주판』은 여전히 일본 기업의 윤리적 기초를 제공하는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부사와는 이 책에서 “부를 이루는 근원은 인의도덕이다. 올바른 도리의 부가 아니면 그것은 영속될 수 없다.”라고 하여 사업에 있어서 윤리적 기초가 전제되어야 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 책은 이후 일본 기업이 서구의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동양적 전통에 기초한 경영 이념을 확립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가족윤리를 사회에 접목하여 기업은 공동운명체라는 관념, 종신고용 등 일본식 경영의 특성들은 시부사와의 상술한『논어(論語)』적 경영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일본식 경영도 개방화, 정보화 시대에는 지나친 가족공동체적 의식으로 인한 폐쇄성, 창의적 마인드의 결핍 등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한편 일본의 경제적 성공 이후에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동양의 여러 나라들이 잇달아 발전을 이룩하였고 이들 국가들의 공통적 문화기반이 유교임에 착안, 1970년대부터 일부 서구 학자들에 의해 이른바 ‘유교자본주의’가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유교자본주의는 이들 여러 나라의 경제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동아시아 담론’의 중심에 서기도 하였다. 특히 하버드 대학의 두유명(杜維明)을 비롯한 이른바 신유가(新儒家) 학자들은 이미 사멸한 줄 알았던 유학이 자체의 적응 논리를 갖고 서구 자본주의와는 다른 유교자본주의의 방식으로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 서구 자본주의의 폐단을 극복, 21세기의 동양 나아가 세계 정치, 경제, 문화의 새로운 이념적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정경유착, 개발독재 등의 혐의와 대중화권(大中華圈) 부활이라는 정치적 발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비판 등이 제기되고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등과 맞물려 유교자본주의의 시의성(時宜性)은 많이 퇴색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의 경우 대기업 삼성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창업주의 정신을『논어』와 연계시켜 파악하고 크게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인식, 구체적으로는 대외적 기업윤리의 미확립에 대한 반성에서 사회와의 호혜적 공생의 달성, 기업구성원들의 창조성과 기업가 정신의 발휘를 위해서는 기업윤리가 바로 그 정신적 인프라가 된다는 자각을 갖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양사상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하여 유교 윤리관에 바탕한 ‘기업가족주의’, 불교의 이타행(利他行)에 근거한 기업의 사회적 기여, 도교의 수행법을 활용한 조화로운 기업생활의 추구 등 한국형 경영모델의 개발을 시도하였다.
학계에서 이어령과 경제학자 박우희는 1989년에 『한국의 기업정신』이라는 공저를 통해 한국 기업의 ‘정신(spirit)’에 대해 토론을 나누었고 그러한 문제의식이 심화된 결과 2005년에 『한국의 신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공저를 다시 출간하였다. 양인은 이 책의 후반부에서 한국의 신자본주의를 지식자본주의, 문화자본주의, 정신자본주의의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고 특히 정신자본주의에 역점을 둔다. 그렇다면 정신자본주의의 내용은 무엇인가?
양인은 이렇게 말한다. “지식, 정신, 문화 그리고 선비, 이 모든 것이 한국의 경제 속에 어우러져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인 ‘선비자본주의’, 나아가 ‘사·상(士·商) 자본주의’로 거듭 태어날 때 한국의 자본주의의 미래는 다시금 희망찬 항해를 계속할 것이며......사·상자본주의에 걸맞는 정신이 우리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식산업시대, 정보화시대의 자본주의로서 양인은 과거의 바람직한 지식인인 선비와 상인의 정신을 결합한 사·상자본주의를 제시했던 것이다. 사·상자본주의는 표제만 보면 경영에 유교 이념을 접목한 일본의 경우와 흡사한 것 같지만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원효(元曉)의 회통사상(會通思想) 등 유교문화의 근저를 관류하는 한국 토착의 정신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최근 이어령은 기존의 사·상자본주의에 자연자본주의, 창조적 자본주의 등을 융합하여 범세계적인 패러다임의 차원에서 서구 자본주의를 극복할 대안으로 생명자본주의를 제창하는 데에 이르고 있다.
양인은 이렇게 말한다. “지식, 정신, 문화 그리고 선비, 이 모든 것이 한국의 경제 속에 어우러져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인 ‘선비자본주의’, 나아가 ‘사·상(士·商) 자본주의’로 거듭 태어날 때 한국의 자본주의의 미래는 다시금 희망찬 항해를 계속할 것이며......사·상자본주의에 걸맞는 정신이 우리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식산업시대, 정보화시대의 자본주의로서 양인은 과거의 바람직한 지식인인 선비와 상인의 정신을 결합한 사·상자본주의를 제시했던 것이다. 사·상자본주의는 표제만 보면 경영에 유교 이념을 접목한 일본의 경우와 흡사한 것 같지만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원효(元曉)의 회통사상(會通思想) 등 유교문화의 근저를 관류하는 한국 토착의 정신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최근 이어령은 기존의 사·상자본주의에 자연자본주의, 창조적 자본주의 등을 융합하여 범세계적인 패러다임의 차원에서 서구 자본주의를 극복할 대안으로 생명자본주의를 제창하는 데에 이르고 있다.
3. 생명자본주의의 자연생태의식과 도가사상
서구의 정통과학적 견지에서 보면 최근 풍미하고 있는 생태학이라는 학문은 예외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오만한 이성을 중심에 둔 입장에서 인간 주변의 자연을 함께 혹은 우위에 두고 고려한다는 사실 자체가 넌센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과 서구의 전근대 시기에 이러한 관념은 보편적이었다. 동양 고전 중에서도 도가의 최고(最古) 경전인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은 자연생태의식에 관한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땅을 법칙으로 삼고 땅을 하늘을 법칙으로 삼으며 하늘은 도를 법칙으로 삼고 도는 자연을 법칙으로 삼는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사람, 땅, 하늘, 도, 자연의 순차적 모방관계는 결국 인간은 자연의 이법(理法)대로 살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인간과 자연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천인합일관(天人合一觀)을 형성하는데 그것은 『장자(莊子)』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하늘과 땅이 나와 함께 살고 만물도 나와 함께 하나가 된다.
(天地與我幷生, 而萬物與我爲一.)
다시 『회남자(淮南子)』를 보면 천인합일관에 의해 인체와 자연을 상동관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고, 발이 네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다. 하늘에 사계, 오행, 아홉 지점, 366일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사지, 오장, 아홉 개의 구멍, 366개의 골절이 있다. 하늘에 비, 바람, 춥고 더움이 있 듯이 사람에게도 빼앗고 줌, 기쁘고 슬픔이 있다.
(故頭之圓也, 象天. 足之方也, 象地. 天有四時五行九解三百六十六日, 人亦有四肢五臟九竅三百六十六節. 天有風雨 寒暑, 人亦有取與喜怒.)
자연자본주의에서 취하고 있는, 생명을 부양하는 일에 있어 경제의 방식과 생태의 방식이 별개가 아니라는 입장은 바로 이 천인합일관과 같은 맥락이라 할 것이다. 아울러 슈마허가 메타 경제학의 두 가지 범주 즉 인간과 자연이 다함께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을 역설한 것도 천인관계의 불가분성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서『장자』에서는 천인합일관을 체득한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실감나게 묘사한다.
공자가 한번은 여량(呂梁)에 간 적이 있었다. 마침 그곳에는 폭포가 있었는데 그 높이는 30길이나 되어 보였고 물방울을 튕기는 그 물은 40리에나 뻗쳐 있었다. 큰 자라나 악어나 고기나 자라도 헤엄칠 수 없을 정도로 물살이 세었다. 그런데 그 사나운 물결 속에서 한 사나이가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사람은 필시 무슨 괴로운 일이 있어서 죽으려 하는 것이려니 생각한 공자는 제자들을 시켜 물결을 따라 내려가 그를 구출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그 사나이는 수백 보 하류까지 내려가더니 물에서 나와 머리가 흩어진 채로 콧노래를 부르며 둔덕 밑에서 놀고 있었다. 공자는 거기까지 가서 물었다.
“나는 처음에 당신을 귀신인가 여겼지만 여기 와 자세히 보니 역시 사람이로군. 어떻게 그리도 헤엄을 잘 치는가? 헤엄치는 데도 무슨 비결이 있는가?” 그 사나이가 대답했다. “천만에! 그런 비결이란 것은 저에게 없습니다. 저는 다만 예전부터 시작했고, 그것이 차츰 천성이 되면서 자랐으며 운명처럼 돼 버린 것뿐입니다. 저는 소용돌이를 따라 물에 들어갔다가 솟아오르는 물결과 함께 떠오르며 물결을 좇아 헤엄칠 뿐 자기의 사사로운 힘을 쓰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물에서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는 근거입니다.”
“나는 처음에 당신을 귀신인가 여겼지만 여기 와 자세히 보니 역시 사람이로군. 어떻게 그리도 헤엄을 잘 치는가? 헤엄치는 데도 무슨 비결이 있는가?” 그 사나이가 대답했다. “천만에! 그런 비결이란 것은 저에게 없습니다. 저는 다만 예전부터 시작했고, 그것이 차츰 천성이 되면서 자랐으며 운명처럼 돼 버린 것뿐입니다. 저는 소용돌이를 따라 물에 들어갔다가 솟아오르는 물결과 함께 떠오르며 물결을 좇아 헤엄칠 뿐 자기의 사사로운 힘을 쓰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물에서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는 근거입니다.”
(孔子觀於呂梁, 緜水三十仞, 流沫四十里, 黿鼉魚鼈之所不能游也. 見一丈夫游之, 以爲有苦而欲死也. 使弟子竝流而拯之, 數百步而出, 被髮行歌, 而游塘下. 孔子從而問焉, 曰吾以子爲鬼, 察子則人也. 請問蹈水有道乎. 曰亡, 吾無道, 吾始乎故, 長乎成, 成乎命, 與齊俱入, 與汨偕出, 從水之道, 而不爲私焉, 此吾所以蹈之也.)
여량의 사나이는 물의 움직임에 몸을 맡길 뿐 작위적으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물의 도를 터득하여 격류 속에서도 유연히 몸을 노닐게 할 수 있었다. 인간은 이와 같이 자연과 하나가 된 행동을 통하여 비범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호큰 등의 『자연자본주의』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자연자본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흐름을 거스르는 게 아니라 흐름을 타고 헤엄치는 것이다.”라는. 천인합일적 행동은 자연자본주의의 중요한 원칙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것은 ‘생물모방생산(biomimetic production)’이다. 폴 호큰 등에 의하면 “기업들은 생물이나 생태계의 과정을 모방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자연의 생산 및 공학기법을 흉내 내어 원소, 재료, 화합물을 제조하려 한다......영리한 설계자들은 이미 자연의 제자가 되기를 자처하여 자연의 무해한 화학과정들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일찍이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에 근거한 자연농법이 고안된 바 있는데 그것은 근대 과학농법이 낭비적이며 자연계의 생태평형을 파괴한다고 비판하고 불간섭의 원칙 아래 자연의 자기조절 능력에 맡기는 농법이다. 그렇다면 천인합일관이 우주론이자 존재론이었던 동양에서는 재화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원기(元氣)는 황홀하고 자연스러워 함께 엉기어 하늘이 된다. 이것을 하나라 이름한다. 나뉘어 음을 낳아 땅이 된다. 이것을 둘이라 이름한다. 이리하여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땅이 되어 음과 양이 서로 합하여 사람을 베풀어낸다. 이것을 셋이라 이름한다. 세 가지 근본이 함께 낳아 온갖 사물을 길러낸다. 이것을 재화라 이름한다.
(元氣恍惚自然共凝成一, 名爲天也. 分而生陰而成地, 名爲二也. 因爲上天下地, 陰陽相合施生人, 名爲三也. 三統共生, 長養凡物, 名爲財.)
윗글에 의하면 재화는 우주의 원초적 기운 즉 원기에서 비롯한 하늘과 땅의 기운 즉 음양의 두 기운과 사람의 기운 즉 중화기(中和氣)의 3자가 합쳐져서 생겨난다. 우주에 존재하는 음, 양, 중화의 3가지 기운이 서로 합쳐지고 통하여 만물을 생육한다는 이론을 삼합상통설(三合相通說)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모든 우주적, 인간적 기운의 소산인 만물을 재화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재화는 인간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라 교감 관계에 있는 생동적 실체이고 이러한 의미는 1차 재화를 가공하여 생산된 물건 곧 2차 재화에까지 확장된다. 이어령이 애플의 아이폰을 통한 기계와 신체의 교감을 예로 들어 설명한 생명자본주의는 바로 여기에서 우주론적 근거를 갖는다.
슈마허는 시장에 출현한 적은 없지만 모든 인간 활동의 본질적인 전제 조건이 되는 것으로서 공기, 물, 토지 그리고 사실상 살아있는 자연 전부를 재화로서 긍정하고 폴 호큰 등 역시 물, 광물, 석유, 나무, 어류, 토양, 공기 등 인류가 활용하는 온갖 친숙한 자원을 자연자본이라 총칭했는데 윗글에서의 음, 양, 중화의 세 가지 기운이 삼합상통하여 생긴 재화야말로 이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이 자연자본 혹은 자유재(自由財)에 대해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명작 「전적벽부(前赤壁賦)」에서 아주 적절하게 묘사한 바 있다.
且夫天地之間, 저 하늘과 땅 사이,
物各有主. 사물은 각기 주인이 있느니.
苟非吾之所有, 진실로 내 소유가 아니면,
雖一毫而莫取. 털끝 하나일지언정 취하지 말지어다.
惟江上之淸風, 다만 강변의 맑은 바람과,
與山間之明月. 산 사이의 밝은 달은.
耳得之而爲聲, 귀로 들으매 소리가 되고,
目寓之而成色. 눈으로 보매 빛깔을 이루나니,
取之無禁, 그것을 취하여도 금함이 없고,
用之不渴. 그것을 써도 다함이 없는지라.
是造物者之無盡藏也, 이것은 조물주의 무진장한 보물로서,
而吾與子之所共樂.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길 것이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와 소동파가 구가(謳歌)했던 무진장의 자연자본은 빠르게 고갈되거나 오염되고 있으며 주지하듯이 이에 대한 경각심에서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자본주의를 모색하는 와중에 있다.
4. 생명자본주의의 공생의식과 도가사상
명대(明代)의 염정소설(艶情小說) 『금병매(金甁梅)』의 주인공 서문경(西門慶)은 희대의 탕아로서 수많은 여인과 음란한 성행을 벌이다 종국에는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서문경은 색광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살인, 협잡, 몰인정 등 모든 악의 화신이었는데 중국소설에서 이처럼 악당이 주인공이 된 경우는 드문 예에 속한다. 그런데 우리가 서문경의 신분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상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약 도매상이었는데 이를테면 독점재벌이었던 셈이다. 명말에는 자본주의가 흥기하고 개성과 욕망을 긍정하는 새로운 유학인 양명학(陽明學)이 이를 옹호하고 있어 기존의 정통 주자학은 이에 대해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금병매』는 이러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서 당시 부상하는 자본가에 대한 보수 유학의 부정적 인식 및 반감을 표현한 소설로 단순한 색정소설이 아니라 오히려 유교적 모랄에 충실한 소설이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조선에도 독점자본을 다룬 소설이 있는데 결말은 완연히 다르다. 실학파(實學派) 박지원(朴趾源)의 『허생전(許生傳)』이 그것으로 남산골의 빈한한 양반 허생은 아내의 불평에 견디다 못해 공부를 그만 두고 장삿길에 나선다. 그는 장안의 갑부인 변(卞) 부자로부터 1만냥을 빌린 다음 삼남(三南) 교역의 중심지인 안성(安城)으로 내려가 모든 과일을 두 배 값으로 사서 저장해두었다가 가격이 폭등하자 열 배의 값으로 판다. 다시 그는 제주도에 들어가 말총을 모두 사들여 엄청난 이익을 본다. 이렇게 해서 번 돈 백만금으로 그는 변산(邊山)의 도적떼들을 회유하여 무인도로 데려가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유토피아의 기초를 마련해 준 후 본래의 가난한 서생으로 되돌아간다. 말하자면 허생은 자신이 번 거금을 생활고로 어쩔 수 없이 도적이 된 최하층 빈민을 구제하는 데에 아낌없이 쓴 것이다. 서문경과 허생은 모두 독점을 통해 극도의 이익을 도모하였다. 여기까지 양자는 무한 욕망의 추구라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말에서 서문경은 욕망의 화신이 되어 파멸을 맞았지만 허생은 욕망을 절제하고 자선행위를 통해 소득을 재분배함으로써 본연의 자신을 지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창건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의 무한증식성, 거대 지향성이 초래한 폐단으로는 부의 편중, 낭비, 비효율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산업의 거대증에 대해 최초로 의문을 제기했던 슈마허는 ‘불교경제학’을 거론하면서 ‘소박함(simplicity)'의 정신에 입각한 적절한 소비패턴으로 인간의 만족을 극대화해야 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물질에 대한 압박감이나 긴장감을 느끼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비폭력의 세상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유명한 언명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로 집약되는 슈마허의 이러한 구상은 놀랍게도 노자의 『도덕경』에서 이미 집중적으로 묘사된 바 있다.
소박함을 지키고 사욕을 적게 한다.
(見素抱樸, 少私寡欲.)
극단을 피하고 사치를 없애며 교만하지 않는다.
(去甚, 去奢, 去泰.)
욕망을 절제하고 큰 것을 추구하지 않는 이러한 정신은 다음과 같이 작은 규모의 정치, 경제적 공동체를 이상 사회의 모델로 제시하게 된다.
나라는 작게 백성은 많지 않게 한다. 온갖 기물이 있어도 쓰지 않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삶을 아끼고 멀리 떠돌지 않게 한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다 한들 타는 일이 없으며, 갑옷과 무기가 있다 한들 사용할 일이 없다. 백성들로 하여금 결승문자를 다시 사용하게 하고, 맛있게 먹고 멋있게 입고 편안하게 살고 즐겁게 지내도록 해준다. 이웃 나라가 바라다보이고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만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다.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 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使民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이러한 상황을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는 자급자족의 촌락공동체로 묘사했다. 물론 현대의 우리들은 이것을 비유로 이해해야 한다. 작은 것이 지니는 편의성, 만족도 등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그런데 실상 규모의 작음은 적은 욕망에서 비롯되고 적은 욕망은 절제할 줄 아는 마음에서 가능하다.
명예와 몸, 어느 것이 더 가까울까? 몸과 재물, 어느 것이 더 소중할까? 얻는 것과 잃는 것, 어느 것이 더 나쁜 걸까? 이 때문에 너무 아끼면 반드시 크게 소모하게 되고 엄청나게 간직하면 반드시 많이 잃게 된다. 만족할 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아서 오래도록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만족할 줄 아는 것(知足)”과 “멈출 줄 아는 것(知止)” 즉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상태를 가장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책이다. 이것은 생산증대와 부의 획득을 최고 목표로 삼고 있는 오늘의 자본주의가 파멸에 이르지 않고 지속가능하기 위해 반드시 유념해야 할 금언이다. 아니 이 두 가지 덕목은 단순한 지속가능에 그치지 않고 창조적 발전을 낳게 한다.
이러한 도를 간직한 자는 극도의 만족을 추구하지 않는다. 극도의 만족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수고 새로운 것을 이룩할 수 있다
(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盈, 故能蔽而新成.)
그릇이 비어있기 때문에 물건을 담을 수 있고, 건물이 비어있기 때문에 거주할 수 있듯이 우리의 창조력은 욕망이 충만된 상태에서가 아니라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나올 수 있다. 허생은 자신이 획득한 백만금에 대한 욕망을 제거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신천지를 건설할 수 있었고, 빌 게이츠는 기업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다시 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창조적 자본주의’ 즉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욕망의 절제가 부의 편중을 억제하여 공생의 사회로 나아감을 보게 된다. 그런데 부의 획득에 대한 욕망이 절제되고 나아가 그것이 분배 행위로 이어져야 할 우주론적 당위성을 다음 글은 잘 보여준다.
재물이란 천, 지, 중화의 소유로서 사람을 기르는 것이다. 집이란 그저 재물을 우연히 모아둔 곳일 뿐이다. 비유컨대 창고 속의 쥐가 늘 혼자서 양껏 먹지만 그 큰 창고의 곡식은 본래 쥐의 소유만은 아니다. 왕실 창고의 재물은 본래 한 사람에게만 공급할 것이 아니다. 부족한 경우 언제든지 그곳에서 가져와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러한 도리를 모르고 평생토록 독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백성이 맡겨두었다가 필요할 때 당연히 그곳에서 의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此財物乃天地中和所有, 以共養人也. 此家但遇得其聚處, 比若倉中之鼠, 常獨足食, 此大倉之粟, 本非獨鼠有也. 小內之錢財, 本非獨以給一人也. 其有不足者, 悉當從其取也. 愚人無知, 以爲終古獨當有之, 不知乃萬戶之委輸, 皆當得衣食于是也.)
재물은 우주의 모든 기운이 만들어 낸 것으로서 개인은 잠시 그것을 맡고 있을 뿐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는 관념이다. 이 관념에 의하면 재물은 우주적 기운의 소산이라는 속성상 한 곳에 머무를 수 없고 끊임없이 부족한 곳을 찾아 순환, 유통되어야 세상이 조화로워진다. 바로 여기에서 기업 혹은 가진 자의 사회환원 행위는 우주론적 의의를 지니게 될 것이다.
5. 결어(結語)
자본주의의 폐해를 치유, 극복하기 위한 시도는 여러 방면에서 이루어져 왔지만 근래 부상하고 있는 자연자본주의와 창조적 자본주의 그리고 이들의 개념을 포괄한 생명자본주의 등은 자연친화적, 생태적, 전일적 관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미래의 유효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본고에서는 문화다원주의의 입장을 염두에 두고 이들과 동양사상 특히 도가사상과의 관련성을 살피기에 앞서 동양권에서의 자본주의 변용 및 극복의 사례들을 일본의 경영철학, 유교자본주의, 한국의 신자본주의 등을 통해 그 특성과 한계 등에 대해 개괄하였다. 이어서 생명자본주의를 중심으로 자연생태주의, 공생의식 등의 차원에서『도덕경』,『장자』,『회남자』,『태평경』등 도가 경전과의 사상적 상응 관계를 탐구한 결과 오늘날 풍미(風靡)하고 있는 생명자본주의 등의 기본 정신이 이들 경전에 풍부히 내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 1세기 전에 막스 베버(Max Weber)는 중국에서의 자본주의 발달을 저해한 주인(主因)으로 유가와 도가 등 동양사상의 비합리성을 지적한 바 있었다. 그런데 동양사상이 탈근대의 이 시점에서 도리어 자본주의를 구원하기 위해 새롭게 음미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칼하기만 하다. 최근 탈영토화된 전지구적 흐름이 가속화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문화적 획일화의 추세가 지배적인 것 같지만 도처의 다양한 문화적 저항도 거세지고 있으며 동시에 주목해야 할 것은 문화의 역류 현상으로 인한 제1세계 문화의 주변화 현상이다. 생명자본주의는 제1세계 문화의 혼종화, 다원화 등의 추세와 맞물려 등장하였으며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세계인의 삶을 규정짓는 큰 흐름이 될 것이다.
창조력과 상상력의 콘텐츠, 디지로그의 위력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이제부터는 생명자본 주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생명자본은 지엽적인 대안이 아니라 아예 자본주의의 패러다 임 자체를 뒤바꾸는 개념이다.
이어령의 이와 같은 천명은 도가사상의 함의를 풍부히 지닌 생명자본주의가 이제 미래의 움직일 수 없는 대안임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생명자본주의는 앞으로도 많은 검증을 거쳐야 하며 만능의 대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매 시대의 고비마다 적절한 진단과 과감한 처방으로 위기를 돌파해 왔다. 우리는 이 시대의 도전적 과제에 대해 어떻게 응전해야 할 것인가? 신고(辛苦)의 과정이었지만 경이적인 속도로 근대를 달성한 우리에게는 앞으로 근대 극복 즉 자본주의의 발전적 극복이라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친숙한 과거의 유산을 슬기롭게 활용한다면 근대의 후발(後發) 주자였던 우리는 오히려 탈근대에 대해 선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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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Oriental Approach to Vital Capitalism
-Focused on Daoism
Jae-Seo Jung(Dept. of Chinese Literature, Ewha Woman’s Univ.)
Capitalism that is a foundation of establishment of modern times as well as a major background of scientific development has taken a epoch role in both quantity and quality progresses of human. Capitalism, however, has been condemned constantly because it has caused many such as the human alienation, the gap between the classes, and the environmental crisis. To solve these, not only Capitalism walked along its own way to revise internally itself but also capitalism was strongly challenged by Marxism externally. Although it tried to solve its own troubles, nothing can handle Capitalism speeding the road of an infinite desire. Will Capitalism expand gradually like a supernova and eventually make human destroy without any other choices?
On the various aspects, there have been attempts that treat and overcome harmful effects of Capitalism. These days, however, nature capitalism, creative capitalism and vital capitalism that entails the first and the second one are emerging because they pursue the ideas of nature-friendly, ecological, and holistic concept. These sorts of capitalisms are received wide attention for its effectivities and accepted as the useful alternatives for the future.
This paper covers not only transformation of capitalism but overcoming capitalism in Asian countries through management philosophy and Asian values of Japan and new capitalism of Korea. Subsequently, in terms of environmental ecology and symbiosis focusing on vital capitalism, it is possible to confirm that basic foundation of vital capitalism which has been overwhelming throughout these days is embodied the Daoist Classics like 『Daodejing(道德經)』, 『Zhuangzi(莊子)』, 『Huinanzi(淮南子)』, and 『Taipingjing(太平經)』.
. Around a country ago, Max Weber had pointed out irrationality of oriental thoughts like Confucianism and Daoism as a major reason that impedes growth of capitalism in China. Ironically, however, at this postmodern times, the oriental thoughts are closely examined to save capitalism.
How should we take up the challenges for our time? Even though we had had a hard time getting to the modern times, we achieved the modern times with phenomenal speed. Now, the challenge tasks, overcoming modern times that means the progressive overcoming capitalism, are given to us. If we use our familiar heritages to achieve the task mentioned above, we who were once late coming into the modern times will play a leading role in overcoming modernity.
Key word: vital capitalism, oriental thoughts, Confucianism, Daoism, overcoming moder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