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3

Belgic Confession 벨직 신앙고백

#9일차 2.21 벨직 신앙고백: 자연의 책. (귀도 드 브레, 1561) 

"우리는 하나님을 두 가지 방식으로 안다. 

첫째, 우주는 우리 눈앞에 펼쳐진 가장 아름다운 책이며, 그 안에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은 마치 수많은 부호처럼 우리를 이끌어 사도 바울이 말한 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신성'(롬 1:20)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 모든 것은 사람들을 확신에 이르도록 이끌기에 족하며, 따라서 누구도 변명할 수 없게 된다. 

둘째, 하나님은 그의 거룩하고 신성한 말씀으로 더욱 분명하고 온전하게 그분 자신을 알려 주신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이 세상의 삶에서 그분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에 관해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 주신다.(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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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직 신앙고백은 자연계시를 강조한다. 성경(vol.I)이 완전하지만 자연(vol.II)도 덮어두지 말고 읽으라는 뜻이다. 세속에 신이 깃들어있다는 범재신론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나는 오히려 세속에 깃든 진리가 자기가 아는 바로 그 신이라고 믿는 좁은 마음을 더 걱정한다. 작은 차이로 크게 긴장하던 종교 개혁기의 살아있는 신자들은 성경과 자연이 서로 멀더라도 그 사이에 머물며 자기자신을 넓히기를 바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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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gic Conf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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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page of a 1566 copy

The Confession of Faith, popularly known as the Belgic Confession, is a doctrinal standard document to which many of the Reformed churches subscribe. The Confession forms part of the Three Forms of Unity of the Reformed Church,[1] which are still the official subordinate standards of the Dutch Reformed Church.[2][3] The confession's chief author was Guido de Brès, a preacher of the Reformed churches of the Netherlands, who died a martyr to the faith in 1567, during the Dutch Reformation.[4] De Brès first wrote the Belgic Confession in 1559.[5]

Terminology[edit]

The name Belgic Confession follows the seventeenth-century Latin designation Confessio BelgicaBelgica referred to the whole of the Low Countries, both north and south, which today is divided into the Netherlands and Belgium.

Authorship and revisions[edit]

De Brès was a Presbyterian and a Calvinist,[6] and the initial text he prepared was influenced by the Gallic Confession. De Brès showed it in draft to others, including Hadrian à SaraviaHerman Moded, and Godfried van Wingen (Wingius). It was revised by Franciscus Junius, who abridged the sixteenth article and sent a copy to Geneva and other churches for approval; and was presented to Philip II of Spain in 1562, in the hope of securing toleration for his Protestant subjects in the Low Countries.[7] In 1566, the text of this confession was revised at a synod held at Antwerp. It was adopted by national synods held during the last three decades of the sixteenth century.[8]

The Belgic Confession became the basis of a counter to the Arminian controversy that arose in the following century and Arminius opposed the notion that it could be used against his theology.[9] Furthermore, contrary to popular thought and allegations to the contrary, Arminius maintained his affirmation of the Belgic Confession until his death in October 1609.[10][11] The text was revised again at the Synod of Dort in 1618-19, was included in the Canons of Dort (1618–19), and adopted as one of the doctrinal standards to which all office-bearers and members of the Reformed churches were required to subscribe. This revision was drafted in the French language (1618–19).

Composition[edit]

The Belgic Confession consists of 37 articles which deal with the doctrines of God (1-2, 8-13), Scripture (3-7), humanity (14), sin (15), Christ (18-21), salvation (16-17, 22-26), the Church (27-36), and the end times (37).

Editions and translations[edit]

The first French edition is extant in four printings, two from 1561 and two from 1562.[12] The Synod of Antwerp of September 1580 ordered a copy of the revised text of Junius to be made for its archives, to be signed by every new minister; this manuscript has always been regarded in the Belgic churches as the authentic document. The first Latin translation was made from Junius's text by Theodore Beza, or under his direction, for the Harmonia Confessionum (Geneva, 1581), and passed into the first edition of the Corpus et Syntagma Confessionum (Geneva, 1612). A second Latin translation was prepared by Festus Hommius for the Synod of Dort, 1618, revised and approved 1619; and from it was made the English translation in use in the Reformed (Dutch) Church in America. It appeared in Greek 1623, 1653, and 1660, at Utrecht.[7]

References[edit]

  1. ^ Horton 2011, p. 1002
  2. ^ Cochrane 2003, p. 187
  3. ^ Latourette & Winter 1975, p. 764
  4. ^ Cochrane 2003, p. 185
  5. ^ Bangs, Carl (1998). Arminius: A Study in the Dutch Reformation. Eugene, OR: Wipf & Stock Publishers. pp. 100–01. ISBN 1-57910-150-XOCLC 43399532.
  6. ^ Latourette & Winter 1975, p. 763
  7. Jump up to:a b Jackson 1952, p. 32
  8. ^ Bangs 1961, p. 159
  9. ^ Bangs 1997, p. 119
  10. ^ Bangs, Carl (1973). "Arminius as a Reformed Theologian". In Bratt, John H. (ed.). The heritage of John Calvin : Heritage Hall lectures, 1960-70. Grand Rapids, Michigan: Eerdmans. pp. 216–17. ISBN 0-8028-3425-6OCLC 623481.
  11. ^ Pinson, J. Matthew (2015). "Jacobus Arminius: Reformed and Always Reforming". Arminian and Baptist: Explorations in a Theological Tradition. Nashville, Tenn.: Randall House. pp. 8–10. ISBN 978-0-89265-696-7OCLC 919475036.
  12. ^ Gootjes 2007, Chapter 1

Sources[edit]

  • Bangs, Carl (June 1961), "Arminius and the Reformation", Church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30 (2): 155–170, doi:10.2307/3161969ISSN 0009-6407JSTOR 3161969
  • Bangs, Carl (March 1997), "Review: God, Creation, and Providence in the Thought of Jacob Arminius", Church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66 (1): 118–120, doi:10.2307/3169661ISSN 0009-6407JSTOR 3169661
  • Cochrane, Arthur (2003), Reformed Confessions of the Sixteenth Centu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ISBN 978-0-664-22694-7, retrieved 2013-02-13
  • Gootjes, Nicolaas (1 November 2007), The Belgic Confession, Grand Rapids: Baker Academic, ISBN 978-0-8010-3235-6, retrieved 2013-02-13
  • Horton, Michael (21 December 2011), The Christian Faith: A Systematic Theology for Pilgrims on the Way, Grand Rapids: Zondervan, ISBN 978-0-310-40918-2, retrieved 2013-02-13
  • Jackson, Samuel, ed. (1952), "Belgic Confession", The New Schaff-Herzog EncyclopediaII,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retrieved 2013-02-13
  • Latourette, KennethWinter, Ralph (1975), A History of Christianity2, Peabody: Prince Press, ISBN 978-1-56563-329-2, retrieved 201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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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직신앙고백

    제 1 조 유일하신 하나님에 관하여 : 우리는 하나님으로 불리는 유일하시며 단일 본질의 영적 존재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다. 그는 영원하시며 다 알 수 없으며 보이지 않으며 불변하시고 무한하 시고 전능하시고 완전히 지혜로우시며 정의로우시며 선하시며 모든 선이 넘쳐흐르는 원천이다.


    제 2 조 하나님의 인식에 관하여 : 우리는 하나님을 두 방법으로 안다. 
  • 첫째는 우주의 창조와 유지와 통치를 통한 것인데, 이 우주는 우리 눈앞에 있는 가장 훌륭한 책과 같고 그 안에는 크고 작은 많은 피조물들이 글자와 같아서 그것들을 통하여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롬 1:20)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과 같이 하나님에 관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우리가 명상하도록 인도한다. 이 모든 것이 사람들에 게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여 사람들이 변명할 수 없게 된다. 
  • 둘째는,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말씀으로 더 분명하고 충분히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알리신다. 즉 현세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 에 관하여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만큼 우리에게 알리신다.


    제 3 조 성경에 관하여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뜻으로 전달된 것이 아니고 사도 베드로가 말한 대로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대로 한 것이라고 믿는다. 나중에 하나님은 또 우리 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특별히 배려하셔서 자기의 종들, 즉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자기의 계시된 말 씀을 글로 쓰도록 맡기셨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자신의 손가락으로 율법의 두 돌 판에 쓰셨다. 그러 므로 우리는 이러한 글을 성경이라고 부른다.


    제 4 조 성경의 정경들에 관하여 : 우리는 성경이 구약과 신약의 두 책으로 되어 잇고 이 책들은 정 경이어서 이 책들에 대한 어떤 이의도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구약성경의 책들 : 모세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의 두 책들, 파라리포메논이라는 열왕기의 두 책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다윗의 시 편, 솔로몬의 세 책들, 즉 잠언, 전도서, 아가서; 네 대예언자들, 즉 이사야, 예례미야, 에스겔 및 다니 엘; 그리고 12 소 예언자들, 즉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

    신약성경의 책들 : 4복음서들,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바울의 14편지들, 즉 로마 인들에게 보낸 편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두 편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에베소인들에게 보 낸 편지,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편지, 골로새인들에게 보낸 편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두 편지, 디 모데에게 보낸 두 편지; 디도에게 보낸 편지,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다른 사도들의 일곱 편지들, 즉 야고보가 보낸 편지, 베드로의 두 편지, 요한의 세 편지, 유다의 편지; 사도 요한의 계시록 등이다.


    제 5 조 성경의 권위에 관하여 : 우리는 모든 책들을 우리의 신앙의 조정과 토대와 확인이 되는 거룩 한 정경으로 믿는다. 교회가 이 책들을 정경으로 받고 또 동의하였기 때문만이 아니고 그 책들이 하 나님에게서 나온 것과 또 그 증거가 그 책들 자체 안에 들어 있음을 성령이 우리 마음에서 증거하기
    때문이다.


    제 6 조 정경과 외경의 구별에 관하여 : 우리는 이러한 성경을 외경과 구별한다. 즉 제 3, 제 4 에스 드라서, 토빗트, 유딧, 지혜서, 예수 시락, 바룩, 에스더 부록, 가마솥 속의 세 자녀의 노래, 수산나의 이야기, 벨과 용의 이야기, 므낫세의 기도, 마카베오의 두 책들이 외경이다. 이 모든 외경들은 정경의 책들과 일치하는 한 교회가 읽고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외경들은 우리가 그 책의 증거에서 신앙과 그리스도교의 어떤 요점을 확정할 만한 힘과 효과를 얻기에는 거리가 먼 책들이다. 더구나 이 외경들이 정경의 권위를 저하시킬 수 없다.


    제 7 조 성경의 완전성에 관하여 :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사람이 구원을 위하여 믿어야 할 것은 거기서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 의 전체 방식이 성경 안에 대체로 기록되어 잇기 때문에 비록 사도라 할지라도 지금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과 다르게 가르치는 것은 부당하다. 사도 바울이 말하듯이 "아니, 비록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어떤 것을 보태든지 혹은 거기서 어떤 것을 빼는 것이 금지되 어 있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교리는 어떤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다. 사람이 쓴 어떤 신성 한 책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성경과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리는 지고하기 때문에 관례, 대중, 고 전, 연륜, 전승, 회의들, 법령들, 혹은 제도 등등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 스스 로 속이는 사람들이며 공허 그 자체보다도 더 공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것이든지 이 절대무오한 규칙과 조화되지 않는 것을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배격하는 것은 사도들이 우리에게 다음 과 같이 가르친 대로이다. "영들이 하나님에게로부터 왔는지 시험해 보라". 또한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와서 이 교리를 전하지 않거든 그를 너희 집에 받아들이지 말라".


    제 8 조 동일 신성의 삼위일체에 관하여 : 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단 한 분의 하나 님을 믿는데, 그는 하나의 단일 신성을 가지신 삼위이며, 그 삼위의 교환할 수 없는 특질, 곧 성부, 성 자 및 성령은 실질적으로, 참으로, 그리고 영원히 구별된다. 성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 의 원인이며 기원이시다. 성자는 말씀이니, 성부의 지혜이며 형상이시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 영원한 능력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별에 의하여 하나님이 셋으로 분리되지 않았으니,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대로 성부, 성자 및 성령은 각각 자기 품격을 가지시며 그들의 특질에 의하여 구별된다. 그러나 이러한 모양으로 삼위는 단 한 분의 하나님이시다. 그리하여 성부는 성자가 아니며,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또한 성령은 성부도 아니고 성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별된 삼위는 나눠지거나 서로 혼돈되지 않는다. 성부는 육신을 입지 않으셨고 성령도 또한 그러하 고 성자만이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이다. 성부는 성자 없이, 또한 성령 없이 계신 적이 없었다. 왜냐하 면 삼위는 다같이 영원하고 동일한 본질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진리와 능력과 선과 자비에 있어서 삼 위는 한 분이시기 때문에 첫 째되는 분도, 또 나중되는 분도 없다.


    제 9 조 성경이 증거하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 이 모든 진리는 성경의 증거들은 물론 삼위의 역사, 특 별히 우리 자신들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에 의하여 우리가 안다. 이 삼위일체를 믿도록 우리를 가 르치는 성경의 증거들은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기록되고 있는데, 그것을 열거할 필요는 없으나 신 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 창세기 1장 26,27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 을 만들자!... 하나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 또 창세기 3장 22절 에서 말하기를 "이제 이 사람들이 우리들처럼 되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신 말씀에서 하나님 안에는 한 품격 이상의 품격들이 있는 듯하다. 또 그가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말할 때는 통일성을 의미한다. 몇 품격이 계시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구약성경에서 는 우리에게 애매했던 것이 신약성경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된다.우리 주님이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 으실 때 하늘에서 성부의 소리가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성자가 물에 나타나셨다. 그리 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이 형식은 또한 모든 신자의 세례의식에 쓰이도록 그리스도 가 제정하셨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백성에게 세례를 베풀라." 누가복음에서는 천 사 가브리엘이 마이라, 우리 주님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성령이 아가씨에게 내려오시고 지 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또 같은 모양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 통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그리고 "하늘에 기록된 자,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 세 분이 계시며 이 세 분은 곧 한 분이시라." 위의 모든 곳에서 보면, 세 품격이 계시되 한 거룩한 본질을 가지신 것을 충분 히 가르친다. 그리고 이 교리는 인간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되 내세에 하늘에서는 완전한 지식과 은총을 향유할 것을 기대한다. 더구나 우리는 이 삼위의 우리를 위한 특수한 직책과 역사(役事)를 살펴야 한다. 성부는 그의 능력에 따라 우리의 창조 주로, 아들은 그의 피에 따라 우리의 구주이며 구원자로, 그리고 성령은 우리 마음에 내재하심에 따라 성화자라고 불리운다. 사도시대 이후로 바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된 교회는 유대교인, 마니교인, 어 떤 거짓 크리스찬들과 이단들, 즉 마르키온, 프라키아스, 사벨리우스, 사모사태누스, 아리우스와 그리 고 정통교부들로부터 정식으로 정죄된 사람들에 대항하여 이 삼위일체 교리를 언제나 변호하고 보존 하여 왔다. 그러므로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사도신조와 니케아 신조와 아타나시우스 신조를 받아들 인다. 또한 이 신조들에 일치하는 것으로서 고대의 교부들이 합의한 신조들도 받아들인다.


    제 10 조 예수 그리스도는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신성에 따라 하나님 의 유일한 아들로서 지음을 받지 않고(만일 그렇다면 그는 한 피조물일 것이다) 영원부터 탄생하셔서 아버지와 같은 본질을 가지시며 같이 영원하시니 그 아들은 하나님의 분명한 형상이시며 그의 영광을 환히 드러내셨으며 모든 것에 있어서 그와 평등하심을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우리 인간 의 본성을 취하신 때부터 만이 아니고 영원 전부터 그러하시다. 이러한 증거들을 함께 비교해 보면 그것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그대로이다. 모세가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말하였다. 요한은 만물이 말씀으로 지음 받았다고 말한다. 또 사도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통하여 세계를 지으셨다고 말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이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으셨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으로, 말씀으로, 아들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그가 만물이 창조되던 그 때에 존 재하셨다. 그러므로 예언자 미가가 말하기를 그의 근본은 태고에, 영원으로부터이니라. 사도는 말하기 를 그는 생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참된, 영원한, 그리고 능력 있는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그를 찾고 예배하며 섬기는 것이다.


    제 11 조 성령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 : 우리는 또한 성령이 영원부터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왔으므 로 그는 지음을 받거나 창조되거나 또는 탄생하신 분이 아니고 다만 성부와 성자 두 분에게서 발생하 신 분임을 믿고 고백한다. 그는 삼위일체의 순서에 있어서는 세 째의 위격이시며, 성부와 성자와 같이 하나의 동일한 본질과 존귀와 영광을 가지신 분이며, 따라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듯이 참되고 영 원한 하나님이시다.


    제 12 조 세계의 창조와 천사에 관하여 : 우리는 성부가 그의 아들인 말씀으로 자기 마음에 드는 대 로 무에서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개개의 피조물에 존재와 형태와 모습과 창조주를 섬길 몇몇 직책들을 주셨다고 믿는다. 또 그는 인류에게 봉사하며 사람이 자기 하나님을 섬길 수 있 도록 그의 영원한 섭리와 무한한 능력으로 피조물들을 지금도 보존하시고 통치하신다고 우리는 믿는 다. 하나님은 또한 천사도 선하게 창조하셔서 자기의 사자가 되어 선택된 사람들에게 봉사하도록 하 셨다. 그런데 어떤 천사들은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탁월한 성질에서 타락하여 영원히 멸망하게 되었
    다. 그리고 남은 다른 천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종 여일하게 본래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악마들과 악령들은 타락하여서 자기들의 힘이 미치는 데까지 하나님과 모든 선한 일의 원수가 되어서 교회와 교회의 개개 회원을 유린하려고 지켜보며 또 그들의 악한 획책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살 인자들처럼 행한다. 그리하여 자기들 자신의 악 때문에 영원한 정죄를 받아 날마다 무서운 고통을 기 다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물들과 천사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의 과오와 또한 악마들은 독자적인 기원을 가진 존재라든지 또 부패된 것이 아니고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하는 마니교 도들도 우리는 배격하며

    혐오한다.


    제 13 조 하나님의 섭리에 관하여 : 우리는 이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후 그것들을 저버리시거나 혹은 운명과 우연에 맡기시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그것들을 지배하시고 통치하셔서 그의 작정 없이 아무 것도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으나 하나님은 죄의 창시자가 아니시며 또 범행된 죄에 대하여 책임 을 질 수 없는 분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그의 능력과 선은 너무도 위대하고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이며 악마와 악인들이 비록 불의하게 행할 때일지라도 그는 가장 탁월하고 정의로운 모양으로 자기 일을 정리하시고 실행하시기 때문이다. 또 그가 사람의 이해를 능가하여 행하시는데 대하여 우리가 그것을 우리의 능력이 허락되는 한도를 넘는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려 하지 않고 오직 우리는 최대의 겸손 과 존경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가리워진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찬양하며, 우리로 이러한 한계를 넘지 않고 그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만을 알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으로 족 하게 생각한다.이 교의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주는데 그 까닭은 어떠한 일도 우리에게 우 연히 닥치지 않고 오직 가장 은혜로운 하늘의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생기는 것임을 가르쳐 주기 때문 이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의 배려로써 우리를 염려하여 주시고 자기에게 속하는 모든 피조물을 지배 하시며 우리의 머리털 한 가닥도(왜냐하면 그 털들은 모두 헬 수 있기 때문에), 또 참새 한 마리도 우 리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를 참으로 신뢰할 수 있다. 그 까닭 은 그는 악마와 우리의 모든 원수들을 제압하셔서 그의 뜻과 허락 없이는 그들이 우리를 해칠 수 없 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무 것도 상관하시지 않고 모든 것을 우연에 맡겨 두신 다는 에피큐리안들의 사상의 저주할 만한 과오를 우리는 배격한다.


    제 14 조 인간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부패에 관하여 :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창조하시되 자기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지으시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그의 뜻에 일치되게 사람이뜻하도록 하기 위 하여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지으셨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람이 영예로운 가운데 있었으므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또 자기의 탁월한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죄에 복종시키고 그 결과 죽음과 저주를 받게 되고 악마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받은 생명의 계명을 어기고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또 죄 때문에 사람이 자기의 참된 생명이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와 자기의 본성이 전부 부패되어 자기 자신이 육체적으로 또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악하고 왜곡되고 그리고 자기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부패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받았던 자 기의 탁월한 소질들을 다 상실하고 다만 몇 가지만 남아 있으나 이것으로써도 사람이 변명할 수 없게 되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인간 안에 있는 모든 빛은 어둠으로 변하였기 때문이니,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대로이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그 빛을 알지 못하였다. 요한은 사람을 어둠이라고 부른다.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는 모든 교훈을 배 격한다. 사람은 죄의 노예에 지나지 않으므로 하늘에서 주신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예수가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에게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셨으므로 누가 스스로 어떤 선을 행할 수 있다고 감히 자랑할 수 있을까?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 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누가 자기 자신의 뜻을 찬양할 것인가? 자연적인 사 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하는 것을 얻지 못하므로 누가 자기의 지식을 말할 것인가? 요컨대 우리 자신 이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그런 자격을 우리에게 주신 것임 을 알면 누가 감히 어떤 사상을 암시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사도가 말한 것을 올바로 그리고 확고하 게 주장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자기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도록 뜻하게 하신다 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이해 에 일치할 수 있는 뜻과 이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니, 이것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실 때 그가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제 15 조 원죄에 관하여 :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원죄가 모든 인류에게 미쳐간 것을 믿는다. 그 죄는 인간성 전체의 타락이며 유전적인 병이며, 이 병 때문에 유아라 할지라도 모태 안에서 전염되는 것이며, 사람 안에서 모든 종류의 죄를 만들며 그 죄가 뿌리를 박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 보시 기에 아주 악하고 혐오스러운 것이어서 모든 인류를 정죄하시기에 넉넉하다. 이 원죄는 세례의식으로 도 박멸되거나 제거될 수 없다. 왜냐하면 마치 물이 샘에서 솟아나듯이 죄가 이 무서운 원천에서 솟 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원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전가되어서 멸망하게 못하고 그의 은혜와 자비로 그들은 용서를 받는다. 이것은 그들이 죄 가운데서 안주하지 않고 오직 타락을 의식하고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을 받고자 신자들을 이따금 탄식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는 다만 모방하 고 생긴다고 주장하는 펠라기우스파의 과오를 배격한다.


    제 16 조 선택에 관하여 : 우리는 아담의 후손이 이처럼 우리의 최초의 부모의 죄로 인해 멸망과 파 멸로 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 본연의 존재, 즉 자비롭고 정의로우신 분으로서 자기 자신을 드 러내신 것으로 믿는다. 그는 자비로우셔서 자기의 영원한 불변의 뜻과 선의에 따라 사람들의 행위를 돌보지 않고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한 사람들을 멸망에서 구출하시고 보존하신다. 그 는 정의로우시므로 그 밖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개입된 타락과 멸망에 그대로 버려두신다.


    제 17 조 타락한 인간의 회복에 관하여 : 우리는 우리의 가장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놀랄 만한 지혜와 은혜로써 이렇게 육체적 및 영적 죽음에 떨어져서 자신을 전적으로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인간을 살 펴보시고 자기의 목전에서 두려워 떨면서 도망칠 때에 즐겨 찾으시고 위로하시며 자기의 아들을 주시 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아들은 여자에게서 나서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 인간을 행복하게 하실 분임
    을 믿는다.


    제 18 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관하여 :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옛날에 조상들에게 거룩한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그가 정하신 때에 자기의 독생자이신 영원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것을 약 속하시고 이것을 이루신 것을 믿는다. 그 아들은 종의 형상을 취하셔서 사람과 같이 되셨고, 모든 연 약함을 지닌 참된 인간성을 취하셨으나 사람의 방법이 아니고 성령의 힘으로 복된 동정녀 마리아의 태내에서 수태되었다. 그는 다만 몸으로만 인간성을 취하신 것만이 아니고 참 사람이 되기 위하여 참 된 인간의 영혼도 취하셨다. 그가 몸과 영혼을 다 구원하기 위하여 두 가지를 다 취할 필요가 있었던 까닭은 영혼과 함께 몸도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그의 어머니의 몸을 취 하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재세례파 신도들의 이단설을 반대하고 그리스도는 어린이들과 같은 몸 과 피를 공유하고 계심을 믿는다. 즉 그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어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씨에서 태어나셨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의 태의 씨, 여자에게서 나서 다윗의 후손 이새의 뿌리에서 나셨고 유 다의 지파이다. 육신으로는 유대인에게서 나셨고, 아브라함의 씨를 받아 모든 것에 있어서 죄를 제외 하고는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 그리하여 참으로 그는 우리의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것이다.


    제 19 조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연합과 구별에 관하여 : 우리는 이 수태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품격이 인간성과 불가분리적으로 연합된 것을 믿는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둘이 아니며 또한 두 품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두 본성이 단 하나의 품격으로 연합되었다. 그러나 각 본성이 그 자체 독특한 자질을 보유한다. 그리하여 그의 신성이 언제나 비피조물로서 남아 있어서 시작하거나 끝나는 날도 없이 하늘과 땅을 채우시는 것처럼 그의 인간성도 그 자질을 잃지 않고 피조물로서 남아 서 유한한 존재로서 시작하는 날이 있고 실질적인 몸의 모든 자질을 보유한다. 그리고 그가 부활하여 그의 몸을 불멸하게 하였으나 그러나 그의 인간성이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러한 정도로 우 리의 구원과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사실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의 신성과 인간성은 한 품격으 로 아주 접하게 연합되었으므로 그가 죽었어도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죽으실 때 그의 아 버지의 손에 부탁하신 것은 그의 몸에서 떠나던 진짜 사람의 영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의 신성 이 그의 인간성과 연합하여 그가 무덤 속에 누워 있었을 때에도 함께 하였다. 그리하여 신격은 그리 스도 안에서 부재하신 적이 없었으니 그의 유아기에는 그 신격이 비록 얼마 동안에는 크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역시 같이 하

    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임을 고백한다. 즉 자기 힘으로 사망을 정 복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자기 육신의 연약함에 따라 우리를 위하여 죽을 수 있던 참 사람이시다.


    제 20 조 그리스도의 안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에 관하여 : 우리는 전적으로 자비로우며 또 전적으로 정의로운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셔서 순종하지 않을 수 있는 인간본성을 취하시고 그 본성으로 죄의 값을 치르도록 가장 괴로운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죄의 벌을 짊어지게 하신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죄를 자기에게 돌리셨을 때 하나님은 자기 아들에게 대하 여 자기의 정의를 발휘하셨고, 그리고 죄를 짓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단순하고 완전한 사랑 으로 자기의 자비와 선의를 쏟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죽음에 넘겨주시고, 그리고 그를 통 하여 우리가 불멸과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게 하셨다.


    제 21 조 우리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속죄에 관하여 : 예수 그리스도는 서약을 통하여 멜기세덱의 반 열을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에 임명되어서 우리를 대신하여 아버지 앞에서 십자가의 제단에 자신을 바 쳤을 뿐더러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하여 값진 피를 뿌리시고 아버지의 진노를 가시게 하기에 충분한 보 상을 치르신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그것은 예언자들이 말한 대로 그가 우리의 죄 때문에 상처를 입 으셨으며, 우리의 악행 때문에 찢기셨고 그가 징벌을 받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고 그가 매를 맞고 우리를 고쳐 주셨고 그는 어린양처럼 도살장으로 이끌려 가서 사형 죄수들의 손에 들게 되었다. 그리 고 본디오 빌라도가 처음에는 그의 무죄를 선언하였으나 범인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빼앗아 가지 않았던 것을 찾아 돌려 주셨으며 또 불의한 자를 위하여 의로운 분이 고난을 받으셨으니, 그의 몸과 영혼이 다같이 우리의 죄 값에 해당하는 무서운 벌을 경험하셨으며 그의 땀은 땅에 쏟아지는 핏 방울처럼 되었다.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립니까 라고 부르짖으셨다. 이 모 든 것은 우리의 죄의 용서를 위한 일이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 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존귀함으로 우 리는 모든 것을 잃었고 또 쓰레기로 여겼다고 말할 수 잇다. 그의 상처에서 우리는 온갖 모양의 위로 를 얻는다. 신자가 영원히 완전할 수 있도록 된 그리스도의 바치신 또 한 번만의 이 희생밖에는 하나 님과 화해할 수 있는 어떤 다른 방법을 찾거나 발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예수 즉 구주라고 불렀으니 그 까닭은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 22 조 믿음으로 의롭다 함에 관하여 : 성령은 이 위대한 신비에 관한 참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우 리 마음에 참된 신앙의 불을 붙이심을 우리가 믿는다. 신앙은 모든 공로를 가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며 그를 소유하며 그 분 밖에는 아무 것도 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없든지 아니면 모든 것이 다 그 분 안에 있든지 간에 예수 그 리스도를 소유하는 사람들이 믿음을 통하여 그 분 안에 있는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밖에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대 단히 큰 모독이 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반구주(半救主)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처럼 우리는 믿음만으로, 혹은 행위 없는 믿음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러나 보다 더 분명히 말하자면 믿음 자체가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니 그 까닭은 믿음은 우리의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 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거나 우리를 대신해서 행하신 많은 거룩한 공로와 일들을 우리에게 돌려주 시는 우리의 의가 되신다. 그리고 믿음은 우리가 그의 모든 은총 안에서 그와 계속 교통하도록 해주 는 도구이니, 그 은총들이 우리의 것이 될 때 그것들은 우리의 죄를 사면하기에 충분하다.


    제 23 조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우리의 의에 관하여 :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죄의 용서에 있으며, 또 하나님 앞에 내놓을 우리의 의도 그 사죄에 있다고 믿는다. 다윗과 바울은 이 것이 사람의 행복이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로를 묻지 않고 의를 넘겨주시는 것이라고 말한 바와 같
    다. 바울은 또 말하기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하여, 또 그에게 있는 구원을 통하여 거저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며 우리 자신이 그 앞에서 겸손하여 이 튼튼한 터전을 언제나 견지하며, 또 우리 자신의 모습이 이러함을 인정하고 우리 안에 있는 아무 것에도 혹은 우리의 공로에도 의지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순종에 만 의지해야 하나니, 우리가 그를 믿을 때 그의 순종은 우리의 것이 된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죄과를 가리우며 우리가 하나님에게 나아갈 자신을 우리에게 주기에 충분하다. 즉 두려움과 떨림에서 해방되 어 우리의 처음 시조 아담의 모범을 따르지 않으니, 그는 두려워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기자신을 가 리우려고 하였다. 그리고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타나려 할 때, 우리 자신이나 또는 아무리 작 은 다른 피조물에라도 의지하면 우리는 멸망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다윗처럼 기도해야 한다. 오 주여 당신이 당신의 종을 심판하지 마소서, 당신 앞에서는 살아 있는 아무도 의롭다고 인정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제 24 조 사람의 성화와 선행에 관하여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으로써 또 성령의 역사를 통하 여, 사람이 얻는 이 참된 신앙이 사람을 중생시켜서 새 사람을 만들어서, 새 생활을 하게 해 주며 죄 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의인(義認)의 신앙이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든지, 또 반대로 의인의 신앙 없이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 하여 사람으로서 아무 것도 행할 수 없고 다만 자기애(自己愛) 때문에, 혹은 저주가 무서워서 행한다 는 견해는 진실에서 아주 멀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신앙이 사람에게 있어서 결실이 없는 것이 될 수 없다. 그 까닭은 우리는 헛된 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참된 믿음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니 이 믿음은 사람을 격려하여 하나님이 자기 말씀으로 명령하신 일 들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이 행위들은 신앙의 좋은 근원에서 생긴 것이므로 선하고 하나님 보시기 에 가상할 만한 것이니 그 일들은 하

    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성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행위들은 우리가 의롭게 되는 데는 아무 효력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선행을 행하기 전일지라도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의한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나무 자체가 선하기 전에는 그 나무의 열매가 좋은 것이 될 수 없는 사실 이상으로 우리의 행위가 선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우리가 선한 일을 행 하되 그것으로 공로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우리가 무슨 공로를 세울 수 있겠는가?). 아니, 우리는 우 리가 행하는 선행을 위하여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것이고 그가 우리를 바라보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우리가 그의 기뻐하실 일을 뜻하게 하시며 또한 그 일을 행할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을 경청하자. 너희가 명령대로 이 모든 일을 다하고 나서는 저 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때가 오면 하나님이 선한 일에 보답하 실 것을 우리는 부인하지 않으나 그러나 그가 자기의 선물을 자기의 은혜를 통하여 갚으신다. 더구나 우리가 선행을 행하여도 그 일에서 우리의 구원을 찾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욕심으로 오염되어서 벌을 받을 만한 일 밖에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행할 수 있을지라도 한 가지 죄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하나님이 그 일들을 배격하시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언제나 아무 확실성 없이 의심을 품고 좌우로 왔다 갔다 할 것이며, 또 우리의 연약한 양심이 우리 구주의 고난과 죽음의 공로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계속 고민하게 될 것이다.


    제 25 조 의식의 율법의 폐지에 관하여, 구약과 신약의 일치에 관하여 : 우리는 율법의 의식과 표상 들이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로 폐지된 것과, 또 모든 그림자가 성취된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크리스찬들 사이에서는 폐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진리와 실체는 율법을 완성시 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는 복음의 교리를 우리가 확신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생활을 정직하게 조정하기 위해서 율법과 예언자들에게서 취하 여 낸 증거들을 여전히 사용한다.


    제 26 조 그리스도의 중보에 관하여 : 우리는 유일한 중보자이시며 변호자이신 의로운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없음을 믿는다. 그는 이 일을 위하여 사람이 되어 한 품성으 로 신성과 인간성이 연합되었고 그리하여 사람이 거룩하신 주재자에게 접근할 수 있게 하였으니, 이 접근을 방해할 것이 없다. 그런데 성부가 자기와 우리 사이에 임명하신 이 중보자는 그의 위엄으로써 결단코 우리에게 겁을 주거나 혹은 우리가 공허한 생각으로 다른 중보자를 찾도록 만들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하늘이나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보다 우리가 더 사랑하는 피조물이 없기 때문이니, 그는 본 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계셨으나 자기 자신을 높이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사람과 종의 형상이 되어서 모든 것에 있어서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만일 우리가 다른 중보자를 찾는다면 누가 우리를 사랑하여 줄 것이며, 또 비록 우리가 원수일 때라도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희생시키신 그분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여 줄 것으로 믿겠는가? 또 만일 우리가 능력과 권세를 가진 자를 찾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에 비할 수 있겠는가? 또 누 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보다 더 빨리 우리의 기도를 들어줄 것인가? 그러므로 성도들을 존경하 기보다는 모욕하는 실천상황을 소개하여 가지고 그들이 실시해 본 적도 없고 또 요구한 적도 없고 오 히려 자기들의 저서들에서 나타나듯이 자기들의 의무에 따라 시종여일하게 거부했던 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다만 자신의 결핍을 통하여 온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의 무가치성에 호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 면 우리가 우리의 가치를 고려하여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오직 주 예수 그리 스도의 탁월하심과 공로에 의지하기 때문이니 그의 의로움이 믿음으로 우리의 것이 된다.그러므로 사 도는 우리의 어리석은 공포심이나 혹은 불신을 우리에게서 제거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올바로 말씀 하신다. 그러므로 그 분(예수 그리스도)은 모든 점에 있어서 당신의 형제들과 같아지셔야만 했다. 그 래서 자비롭고 진실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제물이 되실 수 있었다. 그분은 친히 고난을 당하시고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을 도 와주실 수 있다. 또 우리를 격려하기 위하여 더 말씀하신다. 우리에게는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 사장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계심을 알고 우리는 그분에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키자. 우리의 대제사장은 연약한 우리를 몰라주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이
    다. 그러나 죄를 지으시지 않았다.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은총의 옥좌로 가까이 나아가자.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받아서 필요한 때에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또 같은 사도가 말씀하 신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의 덕분으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신을 갖게 되 었다. 또한 그리스도는 영원히 사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제사장직은 영구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 께서는 당신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언제나 완전히 구원해 주실 수 있다. 그분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해서 중보자의 일을 하신다.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을 우리의 변호자로서 우리에 게 주시기를 기뻐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우리가 다른 변호자를 찾겠는가? 우리가 찾을 수도 없는 다른 변호자를 취하거나 찾고 또 찾기 위하여 그를 저버리지 말자. 하나님이 그를 우리에게 주셨을 때 우 리가 죄인들이었음을 그가 잘 아셨던 것이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주의 기도에서 가르 치시는 대로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아버지에게 부르짖을 수 있다. 그의 이름으로 우리가 아버지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실 것을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제 27 조 공동 교회에 관하여 : 우리는 하나의 카톨릭, 즉 공동(共同) 교회를 믿고 고백한다. 이 교회 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고 성령으로 성화되고 인침을 받아 구원받을 것을 바라는 참된 그리스도인 신자들의 하나의 거룩한 회중이며 회합이다.이 교회는 세계의 시작부터 있었고 또 세계의 마지막까지 있을 것이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가 영원한 왕이시므로 백성 없이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 교회는 온 세상의 격렬한 박해를 막으시는 하나님이 보존하시고 지원하신다. 교 회는 한 때 사람들 눈에는 아주 작고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보이는 것이니, 이것은 아합의 위험한 통치 기간을 보기로 들 수 있으나 그러나 그 때에도 주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던 7 천명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셨다.더구나 이 거룩한 교회는 어떤 장소나 혹은 어떤 인물에게 국한 되거나 구속되어 있거나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 퍼져서 확장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믿음의 힘으로, 또 하나의 같은 성령 안에서 마음과 뜻으로 연결되고 연합되어 있다.


    제 28 조 참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교통에 관하여 : 우리는 이 거룩한 회중과 회합은 구원받은 사 람들의 회합이며 그 밖에서는 구원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지위나 상태의 인물이든지 그 회중에서 떨 어져 나간 상태에서 살기 위하여 자신을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이 그 회중에 들 어가서 일치하며 교회의 일치를 보존하며 교회의 교훈과 훈련에 복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목을 굽히고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재능에 따라 같은 몸의 공통된 지체와 같이 형제들의 건덕을 위 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보다 잘 지켜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교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분리되며, 어디든지 하나님이 설치하신 회중에 가입하는 일은 시장이나 군 주의 칙령이 반대하거나 죽음이나 육체의 형벌을 과하는 일이 있더라도 모든 신실한 신자들의 의무이
    다.이렇게 하여 교회에서 후퇴한 사람이나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다 하나님의 명령에 위반하게 된다.


    제 29 조 참된 교회의 표지에 관하여 : 우리는 열심히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인식해야 한다고 믿는다. 즉 오늘 세계에 있는 모든 분파가 이 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교회 안에 선한 자와 함께 섞여 있어서 외부적으로는 교회 안에 있지만 사실은 교회에 속해 있지 않는 위선자의 무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참 된 교회의 몸과 교제는 자칭 교회라고 부르는 모든 분파들과 구별되어야 함을 말하고자 한다.참된 교 회를 인식하기 위한 표지는 다음과 같다. 교회가 순수한 복음의 교훈을 설교하고 있는지 않는지, 그리 스도가 명령하신 바와 같은 순수한 성례전을 베풀고 있는지 않는지, 교회의 훈련이 죄를 벌하기 위하 여 사용되는지 않는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모든 것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지 않는지, 그 말씀에 위배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배격되는지 않는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 일한 머리로 인정되고 있는지 아닌지, 이러한 표지로써 참된 교회를 분명히 알며, 이 교회에서 분리되 어도 좋을 권리는 아무도 갖지 않는다. 또 교회에 속하는 사람들에 관하여서는, 그들을 크리스찬의 표 지로서, 이를테면 믿음으로 알려져야 한다. 또 그들이 유일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죄에 서 해방되고 정의를 구하며 참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그들의 육을 그들 의 업적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큰 과오가 없는 바가 아니다. 그들은 성 령의 힘으로 그들의 생애의 모든 날에 그 과오와 싸우며 쉬지 않고 주 예수의 피와 죽음과 수난 및 복종에 의지하며, 예수에 의하여 그들은 믿음으로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다.거짓된 교회를 논한다면 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교회자체와 교회의 규정들에 더 큰 힘과 권위를 돌리며 예수 그리스 도의 멍에에 교회자체를 복종시키지 않으려 한다. 또 이 교회는 그의 말씀으로 지정된 성례전들을 집 행하지 않고 그 성례전을 자의로 감한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보다는 사람들에게 더 의존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살며 그 교회의 과오와 탐욕과 우상예배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박해한
    다.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는 쉽게 알 수 있고 서로 구별이 된다.


    제 30 조 교회의 행정에 관하여 : 우리는 이 참된 교회의 영적 정책에 따라 통치되어야 하는데 그것 은 우리 주님이 자기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으로 믿는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 하며 성례전을 집행할 목사들이 있어야 한다. 또한 목사들과 함께 교회의 제직회를 구성할 장로들과 집사들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것은 참된 종교가 보존되며 참된 교리가 어디서든지 전파되며 또한 범 죄자들이 처벌되며, 영적 방법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고난을 당하는 사 람들이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교회 안에서 질서 바르고 겸손하게 모든 것이 실시되면 그때에는 성 바울이 디모데에게 지시한 규칙에 따라 신실한 사람들이
    선택된다.


    제 31 조 목사, 장로, 집사에 관하여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역자들과 장로와 집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시듯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구하며 질서에 따라 교회의 정당한 선거로써 각기의 직무 에 피택되어야 하는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각자가 부정한 수단으로 자기를 어 넣지 않도록 주의하 고 자기가 부름받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소명이 주님으로부 터 온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여 확신하기 위한 증거를 갖기 위한 것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의 교역 자는 어떠한 지위에 있든지 그들은 다 유일하신 총감독 또는 유일한 교회의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역자라면 동일한 권력과 권위를 가진다.또 하나님의 이 거룩한 규약이 침해되거나 혹은 경시되지 않도록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역자들과 교회의 장로들을 그들의 사업을 보고 아주 높이 평 가해야 하며 또 불평이나 경쟁이나 혹은 싸우는 일이 되도록 없이 하여 그들과 화평하게 지내야 한다 고 우리는 말하는 바이다.


    제 32 조 교회의 질서와 기강에 관하여 : 우리는 교회의 지배자들이 자기들 사이에서 어떤 규약을 만 들어서 교회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며 또 유익함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유일한 주이신 그리스도 가 제정하신 것들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그들은 조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발명한 것과 또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도입하여 그러므로 어떤 모양으로든지 양심을 구속하고 강요하는 법률들 을 배격한다.그러므로 우리는 일치와 통일을 신장하며 보존하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순종하게 하는 것만을 인정한다.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출교처분, 혹은 교회 기강과 또 여기에 속 하는 몇 가지 경우들을 필요로 한다.


    제 33 조 성례전에 관하여 : 우리는 우리의 자비로운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과 결점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성례전을 제정하시고 그것으로 우리에게 그의 약속을 표시하시고 우리를 향한 그의 선의와 은 혜의 징표가 되게 하시며, 또한 우리의 신앙을 기르며 강화하시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이 복음의 말씀 에 성례전을 보태서 연합시키시고 그의 말씀으로써 우리에게 상징으로 주신 성례전과 우리 마음 안에 서 내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보다 잘 우리의 감관(感官)에 제시하여서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을 보장하시며 확실케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성례전은 볼 수 있는 상징들이며 또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 에 의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방편이 되는 내적인 보이지 않는 표적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례전의 상징들은 공허하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속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들이 제시하는 참된 대상이며 그분 없이는 그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더구나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성례전의 수를 만족하게 생각하니 그것은 세례의 성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찬의 단 두 가지 뿐이다.


    제 34 조 세례에 관하여 : 우리는 율법의 종말인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피를 흘림으로써 사람들이 죄의 보상으로서 삼을 수 있었던 혹은 삼으려던 모든 피흘림의 종말이 된 것을 믿고 고백한다. 또 그 는 피로써 행한 할례를 철폐하시고 그대신 세례의 성례전을 제정하셨는데,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하 나님의 교회에 용납되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타종교들로부터 떨어져 나오며, 우리가 전적으로 그에게 속하게 되며 그의 기장(旗章)과 깃발을 지니는 것이며, 그는 영원히 우리의 은혜로운 하나님이시며 아 버지이심을 우리에게 증거로 삼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성부와 성 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순수한 물로 세례를 받을 것을 명하셨다. 세례가 우리에게 상징하여 주는 것은 마치 물이 세례받는 사람의 몸에 뿌려질 때 몸의 때가 씻겨 없어지듯이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피 가 세례 받는 사람의 영혼에 내적으로 뿌려져서 죄를 씻어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우리를 진노의 자식 들로부터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

    들이 되게 중생 시킨다. 이것은 외부적인 물의 힘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아들의 고귀한 피를 뿌림 으로 효능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홍해이니, 우리는 이 홍해를 통과하여 바로 왕 폭군, 즉 악마를 피하여 가나안의 영적인 땅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이 성례전을 행하며 그것은 외부적으로 보이는 것이지만 우리 주님이 세례의식으로 우리에게 보장하여 주시는 것은 여러 가지 은 사들과 보이지 않는 은혜, 씻음, 정화, 아주 더럽고 불의한 것들을 우리의 영혼으로부터 제거하는 일,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여서 모든 위로로써 채우는 일,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선의에 대한 참된 확신 을 우리에게 주시는 일, 우리에게 새 사람을 입히고 옛 사람을 모든 행동과 함께 벗겨주는 일이다.그 러므로 우리는 영생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이 세례만을 받아야 하되 같은 세례를 되풀이하 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가 두 번 중생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 세례는 우리에게 물을 뿌리고 우리가 그것을 받을 때만이 아니고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서도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는 재세례파의 과오를 배격한다. 그들은 그들이 전에 받은 단 한 번의 세례에 만족하지 않으며 또 신 자들의 유아들의 세례를 정죄하지만 우리는 그 유아들도 이전에 이스라엘의 어린아이들이 우리의 유 아들에게 주신 같은 약속으로 할례를 받았듯이 계약의 상징으로서 세례를 받고 인침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또 사실은 그리스도는 장년들과 마찬가지로 신자들의 어린이들의 정화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
    다. 그러므로 유아들도 그리스도가 그들을 깨끗하게 하신 일의 상징과 예전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율법에서 명령하신 대로 유아들도 출생 직후에 그들을 위하여 어린양을 제물로 바치는 그리스도의 고 난과 죽음의 성례전을 받도록 되어야 한다. 더구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의 할례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세례와 같다. 그리고 이 이유 때문에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불렀다.


    제 35 조 성만찬에 관하여 :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중생하여 그의 가족, 즉 그의 교 회에 연합된 사람들을 먹이시며 유지시키기 위하여 성만찬의 성례전을 제정하신 것을 믿고 고백한다. 이제 그들 중에 중생한 사람들은 이중의 생활을 하는데, 한 가지는 육신적 또는 현세적인 생활인데, 이것은 그들이 처음 출생했을 때부터 하는 생활로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영적이며 천상적인 생활인데, 두 번째의 출생이며 이것은 복음의 말씀에 따라 또 그리스도의 몸과의 교제를 통하여 효과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후자의 삶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특별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육신적인 지상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지상적이고 일반 적인 빵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빵은 육신 생활에 유익하며, 삶 그 자체처럼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 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들이 영위하는 영적이며 천상적인 삶의 유지를 위하여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 려온 산 떡, 즉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니, 신자들이 그를 먹을 때, 즉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그를 받아들일 때 그가 그들의 영적인 삶을 풍부하게 하시며 강화하신다. 우리에게 이 영적인 하늘의 떡을 제시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자기 몸의 상징으로서 지상의 보이는 떡을 제정하셨고 또 그의 피의 상징으로서 포도주를 제정하셔서 이것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손에 이 상징물들을 받아 쥐고 입으로 먹 고 마실 때 우리의 삶이 나중에 살찌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신앙(이것은 우리 영혼의 손과 입 이 된다)으로 우리의 유일한 구주의 참 몸과 피를 우리의 영적 삶을 위하여 우리의 영혼에서 분명히 받게 하려는 것이다.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성례전을 공연히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 이 아님이 분명하며 의심할 여지가 없듯이 그는 우리 안에서 마치 성령의 역사가 감춰져 있어서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모양으로 성례전의 이러한 상징물 들에 의하여 우리에게 그가 제시하시는 그 모든 일을 우리 안에서 행하신다. 그리하여 드디어 우리가 먹고 마신 것은 그리스도의 자연적인 몸과 본래의 피였다고 우리가 말할지라도 잘못된 말이 아니게 된다. 그러나 이 성례전을 받는 모양은 입으로서가 아니고 신앙을 통하여 성령으로 한다. 그리하여 그 리스도가 언제나 하늘에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여전히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자 신과 교통하게 역사하신다. 이 만찬은 영적인 식탁이며 거기서 그리스도가 자기의 모든 축복을 가지 고 우리와 사귀시며 거기서 그는 자기 자신과 자기의 고난과 죽음의 공덕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그것을 즐기게 하시며, 그의 살을 먹음으로 우리의 가난하며 위로가 없는 영혼들을 먹이시고 강화하 시며, 또 그의 피를 우리가 마심으로 그 영혼들을 살리며 소생케 하신다.더 나아가서, 성례전들은 그 것들이 상징하는 것과 연결되지만, 그 두 가지 성례전을 모든 사람이 받지 않는다. 즉 불경한 사람은 실은 성례전을 받고서 정죄를 받는 자리에 나가게 되지만 성례전의 진리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마 법사인 시몬이 성찬을 받았으나 실은 그 성례전이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받지 않았다. 신자들은 단지 그리스도를 받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찬을 겸손과 존경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의 회 합에서 받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신앙과 우리 크리스찬 종교를 고백하고 우리 구주 그리스도 의 죽음을 우리들 사이에서 거룩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미리 올바르게 자신을 반성 해 보지 않고는 이 식탁에 와서는 안 되는데, 그것은 이 떡을 잘못 먹고 이 잔을 잘못 마심으로 스스 로 멸망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이 성만찬 예전을 사용함으로써 우 리가 감격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품게 된다.그러므로 우리는 성례전들에 사람들이 첨가한 것이나 또는 혼합시킨 모든 혼합과 저주를 받을 새 의식들을 성례전의 모독으로서 배격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제도로 만족해야 하며 그 성례전들 에 대하여 말씀하신대로 말해야 할 것을 확언하는 바다.


    제 36 조 관공리에 관하여 : 우리는 우리의 은혜로운 하나님이 인류의 타락 때문에 왕과 군주와 관리 들을 지명하시고 세계가 어떤 법률과 정책으로 통치되기를 원하신다고 믿는다. 그 결과 사람들의 황 폐가 저지되고 모든 것이 질서 있고 보기좋게 운영되게 하려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은 집정관에게 무기를 쥐어주셨으니, 악행자들을 벌하시며 선행자를 상주시기 위함이다. 그들의 직책은 단지 국가의 복지를 존중히 여겨서 지켜보는 것만이 아니고 거룩한 목회사업을 보호하며, 모든 우상 숭배와 거짓된 하나님 예배를 제거하며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즉 적 그리스도의 왕국이 파괴되며 그 리스도의 왕국이 신장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정관들은 어디서든지 복음의 말씀의 설교를 경 청하여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서 명령된 대로 모든 사람에게서 존귀와 예배를 받게 되어야 한다.더구 나 어떤 지위나 신분이나 조건의 사람일지라도 집정관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의무이다. 즉 세금을 바치며, 그들에게 존경심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말씀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면 모든 일에 있 어서 그들에게 복종하는 일이다. 또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집정관들을 지배하시며 그들의 모든 길을 인도하시도록 그들을 위하여 대신 기도할 것이며, 또 우리가 경건하고 정직하여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그러므로 우리는 재세례파의 과오와 그 밖의 선동적인 사람들과 또 일반적으로 높은 권세와 집정관들을 배격하며 정의를 파괴하며 물질사회를 유도하며 하나님이 사 람들을 위하여 제정하신 고상하고 선한 질서를 혼란시키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제 37 조 최후심판에 관하여 :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주께서 지정하신 때(이 때 는 모든 피조물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가 오면, 또 선택된 자의 수가 찰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가 육신을 가지고 보이게, 즉 그가 크신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승천하셨듯이 하늘에서 오셔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심판을 선포하시며, 세계를 정화하기 위하여 불과 불꽃으로써 이 낡은 세계를 태워버리 실 것을 믿는다. 그때에 남자와 여자와 어린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 팔 소리를 듣고 모여들어서 세상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신 대 재판관 앞에 직접 나타날 것이다. 모 든 죽은 자들이 땅에서 살아날 것이며, 그들의 영혼이 전에 있었던 본래의 몸들과 연합될 것이다. 그 때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었던 사람처럼 죽지는 않을 것이되 순간적으로 변하여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변할 것이다.그리고는 책들(즉 양심들)이 펼쳐지고 죽은 자들이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이 세상에서 그들이 행한 일에 따라 재판을 받을 것이다. 아니, 모든 사람이 세상에서는 한갖 오락과 농 담으로만 간주되던 자기들의 쓸데없는 말에 관하여 일일이 설명해야 할 것이다. 또 그 때 사람들의 비 과 허위가 드러나서 모든 사람들 앞에 공개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재판을 생각한다는 것은 악한 자와 불신자에게는 바로 무서운 것이지만 의롭고 선택된 자들에게는 가장 바람직하며 통쾌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그들의 완전한 해방이 성취될 것이며, 그들이 짊어졌던 노고와 고난의 열매들을 거둬 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결백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질 것이며 이 세상에서 그들을 가장 잔인하 게 박해하고 압박하고 괴롭혔던 악인들은 하나님이 처벌할 무서운 보복을 받을 것이다. 또 그들은 자 기들 양심의 증거에 의하여 고발된 것이며, 또 불멸할 것이므로 악마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에서 고통을 받을 것이다.그러나 반대로, 신실하고 선택된 사람들은 영광과 영예로써 보답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그가 택하신 천사들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밝힐 것이다. 모든 눈물이 그들의 눈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 세사에서 지금 많은 재판 관들과 집정관들에게서 이단으로 정죄된 사건들이 그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위한 것으로 알려질 것 이다. 그리고 은혜로운 보답으로서 주께서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한 영광을 그들이 가 지도록 만드실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 이 위대한 날이 와서 드디어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충분히 즐길 수 있기를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한다. 주여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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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작 미드 : 2021년 올해의 신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Maid(조용한 희망)" & "Ginny&Georgia(지니&조지아)" : 네이버 블로그

2021년 신작 미드 : 2021년 올해의 신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Maid(조용한 희망)" & "Ginny&Georgia(지니&조지아)"켈리
2021. 10. 2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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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올해의 신작 미드로 꼽히는 두 편 <지니&조지아>, <조용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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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신작 드라마들 가운데 평단의 극찬을 받은 미국 드라마가 있지요, 바로 <Maid(조용한 희망)>입니다. 눈물날것 같은 잔잔한 드라마는 보고싶지 않아서 처음엔 스킵했다가 들리는 평가가 심상치 않아 뒤늦게 서둘러 확인해보았습니다. <Ginny&Georgia(지니&조지아)>는 올 초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국내에도 많은 분들이 이미 보시지 않았을까 생각될정도로 주목받은 신작이자 국내외 호평받은 코미디 장르물입니다. 시즌2도 일찍이 확정되었구요. 오늘 소개하는 두 편의 드라마는 2021년 올해 최고의 신작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지 않을까 예상될 정도로 호평을 받은 드라마들. 자 그럼 올해 넷플릭스 구독자들을 울고 웃게 만든 모녀들을 소개해볼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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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조지아>는 올해 초 나오자마자 본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이제서야 소개하게 되네요; 비록 성격은 다르지만 <조용한 희망>도 재밌게 보실 수 있을겁니다. 내용 자체가 유쾌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집중이 되는 이야기랄까.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던지는 이야기로 기회가 되면 꼭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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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의붓아버지를 잃고 엄마 조지아, 동생 오스틴과 새로운 동네에서 새출발하는 '지니'로부터 시작합니다. 1~2화에서는 새 집, 새로운 친구,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느라 바쁜 '지니'를 그리는 한편, 몇달지나지 않아 변덕스러운 엄마가 다시 이사하지는 않을까...새출발에 회의적인 '지니'가 그려집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엄마의 말대로 다를지도...?! 

<지니&조지아>는 올 2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 일찍이 시즌2를 확정지은 화제작. 30살 철없는 엄마 '조지아'와 일찍 철든 15살 딸 '지니'의 조합으로, 모녀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들 중 베스트로 인정받는 <길모어 걸스>의 21세기버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싱글맘 '조지아'가 딸 '지니'와 아들 '오스틴'에게 더 나은 삶과 기회를 주기위해 뉴 잉글랜드의 부유한 동네에 정착하면서 벌어지는 유쾌한 적응기를 다룬 작품. 

지난 4월 시즌2 확정을 발표하면서 넷플릭스는 공개된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5200만명의 구독자들이 시즌1을 감상했다고 밝혀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더 많은 분들이 봤겠죠?! 앞서 말한대로 <길모어 걸스> 21세기 버전으로 소개되는 드라마인만큼 일부 매체에서는 <길모어걸스>와 비교하며 혹독한 평가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매체 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둘을 비교하는 리뷰가 적지않은데 <길모어걸스>는 <길모어걸스>니까요..) 그렇다고해서 <지니 & 조지아>가 형편없다는건 아니고 오히려 재밌습니다. 가볍게 시도해볼만한 유쾌살벌한(?) 코미디/드라마로 각본, 배우들의 연기, 사운드트랙까지..개인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시즌1 일찍이 확인해보신 분들은 다음 시즌 언제 나올까 궁금해하실텐데 시즌2 촬영이 올해말부터 내년에 걸쳐 4개월정도 진행될 예정이라고 하니 아마 내년 하반기 되어서야 공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Ginny&Georgia(지니&조지아)>는 엄마 '조지아'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조지아'가 아이들에게 자신이 가지지 못한 기회를 주기위해 어째서 이토록 애쓰는건지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사실 오늘 소개하는 두 편의 드라마 모두 미처 준비가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가 된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아이에게만큼은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해 그 방식은 다르지만 희생을 감수하고 고군분투하는 노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참고로 또 다른 공통점이라면 배우 레이먼드 애블랙이 각각 '조'와 '네이트'역으로 <지니&조지아>, <조용한 희망>에 출연한 다는 것. 장르는 다르지만 오늘 소개하는 두 편의 드라마 모두 강력하게 추천할만한 신작이라는 점도 공통적.
꼭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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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소개하는 신작 미드는 지난 10월 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조용한 희망(Maid)>입니다. 스테파니 랜드의 자서전 <Maid: Hard Work, Low Pay, and a Mother's Will to Survive>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내 가사근로자의 현실을 꼬집고 복지 제도의 결함등을 지적...책은 출간과 동시에 전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19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연간 추천 도서로 꼽기도 했습니다. 애초 영화로 제작될거란 소식과는 달리 10부작 미니시리즈로 재탄생된 <조용한 희망>은 90년대 할리우드의 로코퀸이었죠, 앤디 맥도웰의 딸 마거릿 퀄리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마거릿 퀄리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원스어폰어타임 인 할리우드>에 출연하며 관객들에게 배우로서의 눈도장을 찍었다면 오늘 소개하는 이 드라마를 통해 다시한번 똑똑히 본인을 각인시키지 않았을까. 극 중 마거릿 퀄리는 딸아이 '매디'를 둔 싱글맘 '알렉스'역을 맡아 정서적 학대를 하는 남자친구를 떠나 생계를 위해 가사근로자로 취직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늦은 밤 남자친구 몰래 잠든 아이를 안고 도망치듯 집을 나오는 '알렉스'로부터 시작됩니다. 하지만 수중에 돈도 거의 없는 빈털터리로 집을 나와 잠잘 곳도 여의치 않아 사회복지사를 찾지만 거기서도 마땅한 수가 없었죠. 일단 잠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밑천도 없는 '알렉스'의 현재 상태로는 선택지가 가사근로자밖에 없었죠. 아무리 힘들어도 딸 '매디'를 위해서라면 궂은 일도 마다할 수가 없을만큼 그녀는 절박한 상태였구요. 그렇게 일을 시작한 '알렉스'는 아이 아빠의 양육권 주장에 또다시 위기를 맞게 됩니다.
간단한 줄거리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야기는 어린 엄마의 험난한 여정을 그리고 있으며 그 이야기는 매우 현실적40입니다. 그래10서 때때로 울컥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어디선가는 벌어지는 이야기니까요. 모두가 알지만 외면하는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가 <Maid(조용한 희망)>에서 다루어집니다. 어떻게보면 민감할수도 있는 소재이지만 마거릿 퀄리의 담백하면서도 진정성있는 연기로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웰메이드 드라마가 탄생되었다는 평가. 평단은 <Maid>를 극찬하는 한편 할리우드 차세대 무비 스타로 손색없는 마거릿 퀄리의 연기 또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평단은 이듬해 열릴 에미상에서 수상을 견줄만큼 높게 평가하기도. 참고로 재밌는 건 마거릿 퀄리와 앤디 맥도웰이 드라마에서 모녀로 호흡을 맞춘다는 사실. 모르고 보면 두 사람 은근 닮았네 지나칠 수도 있을텐데 두사람은 실제로도 모녀사이.

2021/11/22

“증오와 전쟁의 되풀이, 이제는 끝내야 한다”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증오와 전쟁의 되풀이, 이제는 끝내야 한다”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증오와 전쟁의 되풀이, 이제는 끝내야 한다”

등록 :2021-11-21 18:56수정 :2021-11-22 09:39
조현 기자 사진
조현 기자

【짬】 평화활동가 송강호 박사



평화활동가 송강호 박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송강호’(63)란 인물은 우리에게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그가 지난달 28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는 지난해 3월 구럼비 바위 발파 8주기를 맞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안에 남아 있는 구럼비 바위 출입을 군이 거부하자 철조망을 끊고 들어갔다가 2년형을 선고받고 1년7개월 옥살이를 했다. 제주 강정마을만이 아니라 지구의 가장 골치 아픈 분쟁지역으로 달려가 평화활동을 해온 평화운동단체 ‘개척자들’의 씨앗을 심은 그를 지난 12일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2011년부터 제주 강정마을에서 ‘개척자들’ 소속 사역자 4명과 함께 처음엔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2016년 해군기지가 완공된 뒤엔 평화적으로 용도를 전환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장신대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독일교회 지원으로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실천신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진 개척자들 누리집 갈무리

그는 교수의 길을 포기하고 왜 아직도 거친 현장을 떠돌까. 그것도 장신대 동기인 부인과 함께 말이다. 출발은 1994년 아프리카의 르완다 내전 지역에서였다. 장신대에 다니며 서울 용산 보광중앙교회 교육전도사를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앙의 의미를 잃던 청년들과 함께 재난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천재보다 인간이 만든 인재로 더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으니, 다음엔 분쟁지역에 직접 가보자’는 말을 했다. 그 말을 기억한 청년 3명이 르완다 내전이 터지자 ‘함께 가자’며 독일까지 찾아온 것이다.


“현장에 가보니, 부족들 싸움에 제삼자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 중단시켜야 하는데 선교사들은 선교할 수 없다며 다 떠나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방치된 난민 5만 명을 유엔 직원 10여 명이 돌보느라 과로사에 내몰린 상황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밤새 노래를 불렀다. 박진감이 넘쳤다. 우리의 쾌지나칭칭 같은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내용을 물어보니, ‘후투족의 눈을 뽑아 잘근잘근 씹어먹세, 귀를 잘라 씹어먹세’ 같은 잔인한 보복을 다짐하는 노래였다.” 아이들 마음에 스며든 증오에 당황했다고 한다.



분쟁지 평화단체 ‘개척자들’ 만들어
2011년부터 강정마을에서 활동
지난해 철조망 끊고 해군기지 진입
1년7개월 옥살이 뒤 지난달 가석방



최근 ‘그리스도인의 직무유기’ 펴내
“강정에서 한·중·일 평화일꾼 키울터”



사진 개척자들 누리집 갈무리

개척자들은 분쟁과 재난 지역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아이티, 후쿠시마, 동티모르, 아체로 달려가 고통받는 이들을 도왔다. 분쟁지역마다 공통점도 발견했다.

“유럽국가들은 식민지를 다른 부족에게 악역을 맡겨 지배했다. 현지인들은 오히려 유럽인들은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직접 자신을 탄압한 다른 부족들을 원수로 생각한다.” 그가 갈등과 전쟁을 막기 위한 평화학교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이유다. 이런 갈등과 전쟁에 책임이 있는 유럽의 청년들까지도 참여해 가해자와 피해자, 제삼자가 함께하는 평화캠프를 열어 생각을 바꿔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개척자들은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한 동티모르에서 15년간 평화학교를 지속해서 운영한 것을 비롯해 아프가니스탄과 아체에서도 평화캠프를 열었다.

“선교사들은 제국의 하수인이 되어 침략을 돕고 노예무역까지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함께 놀던 아이들이 ‘우리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한국인이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을 떠올리듯 경직돼 바라보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무고한 아이들까지 학살한 원한이 아이들 가슴에까지 박혀있는데, 한국교회는 그곳에 가서 선교한다며 ‘땅 밟기’를 했다. 네덜란드가 1945년까지 식민지화한 인도네시아도 북부 일부 지역은 기독교인이 이슬람교도보다 더 많았는데 지금은 이슬람교도가 90%까지 늘고, 당시 기독교인들은 ‘네덜란드의 개’로 불린다. 이슬람교도인 로힝야족도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이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불교국가인 미얀마 지배에 이용하면서 생긴 것이다. 세계전도라는 구호에 앞서 그들의 아픈 역사에 어떻게 정직하게 응답하느냐가 더 시급하다.”




한국 개신교에서 보수적인 예장합동교단 소속 교회에 다녔던 그도 근본주의적 신앙관을 벗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신앙심이 깊어질수록 더 배타적이 되고, 주변을 악마화하며 갈등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일까. 예수님의 이웃사랑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그 의문으로 출발한 박사 학위 논문을 쓰면서, 분쟁지역의 아픈 역사를 실감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교회의 이웃사랑과 평화를 잃어버린 그리스도의 현주소도 자각했다. 그는 감옥에서 이런 깨달음으로 ‘평화를 위한 순종’이란 부제를 달아 <그리스도인의 직무유기>(대장간)란 책을 냈다. 이 책에서 그는 “남들은 다 불타는 지옥으로 가고 자신들만 최상의 천국으로 갈 것이라고 주장해도, 그가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유대교든 불교든 외피에 상관없이 힘과 권력을 숭상하며 싸우는 이기주의자들은 모두 하나”라며 “이기적 본능에서 해방돼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희생할 수 있는 이타적 사랑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에 베푸신 삶의 기적이자 구원”이라고 했다. 따라서 ‘마녀사냥을 하고 노예무역을 했던 이들과 천국의 식탁에서 함께할 수는 없으며,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천국에 못 들어올 자들도 많고 예수를 안 믿는다고 하는 자들 가운데도 천국에 들어올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역비로 월 30만원을 받는 평화활동가 부부의 아들로 가난하게 자라 지금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외과 레지던트로 일하는 아들도 분쟁지역에 봉사하러 가겠다고 한단다. 감옥살이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다시 강정마을로 향하는 송 박사도 소망을 보탰다.

“강정마을에서 평화대학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한·중·일 청년들이 함께 평화훈련을 해 평화일꾼이 되도록 돕겠다. 강대국들의 군사 기지화되는 오키나와, 대만과 제주의 연대를 강화해 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well/people/1020182.html?fbclid=IwAR0VZZ9_o2tX4oX23ZbeWxfBG5RyefBSRcSFPjBGUwsFs0xVDz7yKhgesG0#csidxf677e596d891a6991200d480a802ed2

'Maid' On Netflix Is Based On A True Story: Here's What We Know | Marie Claire Australia

'Maid' On Netflix Is Based On A True Story: Here's What We Know | Marie Claire Australia

Netflix's 'Maid' Is Actually Based On A Heartbreaking True Story
All the best shows are. - by Lucy Cocoran
06 OCT2021


It's the Netflix show that has captured the world's attention with its heartbreaking story of a single mother fighting to provide for her daughter. Maid details the life of Alex Russell (Margaret Qualley), a 25-year old woman with a two-year old daughter who has recently fled an abusive relationship with her longterm boyfriend, Sean Boyd (Nick Robinson). In order to survive on her own (and with less than $20 to her name), Alex begins working as a house cleaner to save them from homelessness. The work is unforgiving and gruelling, but she needs to find a way through to provide a better life for her daughter, Maddy.

The 10-episode series has kept viewers on the edge of their seats, with its heartbreaking yet heartwarming plot line and incredibly talented cast. Many have found themselves wondering if the show is based on a true story, and as it turns out, it is.

Is the show true to the book?

Maid is based on the best-selling memoir from Stephanie Land, titled Maid: Hard Work, Low Pay, and a Mother's Will to Survive. The book was released in 2019 and hit the New York Times best-sellers list.

While the names have been changed for the series, the plot is much the same. Like Alex, Stephanie began working as a maid to support both herself and her child (who goes by Story) after fleeing a tumultuous relationship. Stephanie and Story spent 90 days in a homeless shelter, struggling to find work and unable to receive a childcare grant as a result of her unemployment.

On her website, Stephanie details her reasons for writing her memoir, and her hopes for the change it will bring.

"In writing MAID, I hoped the book would change the stigmas that surround single mothers, especially those living in poverty," she explained. "The stigmas that say we somehow deserve hardship because of the terrible decisions we made to get us there."


"I hoped people would see how hard we work to make ends meet, and how fiercely we love our kids. How much we struggle to be enough while the government scolds us, telling us we're becoming dependent on things they call handouts, [but] we call means to survive. I also hope that you’ll begin to notice the millions of workers who invisibly clean up after us for minimum wage," she continued.


Where is Stephanie Land now?

In 2014, Stephanie received a bachelor's degree in English from the University of Montana. After spending nearly a decade working as a house cleaner, she began working as a freelancer and gave birth to her second child.

In 2015, Stephanie published an essay on Vox, detailing her time working as a maid. Unsurprisingly, the essay became very widely read very quickly, allowing her to hire a book agent and subsequently receiving a book deal with Hachette a year later. From there, we know the story. She published her memoir and fast forward to 2021, it's become a highly successful series on Netflix.

Stephanie is now married to a man named Tim Faust and the couple share four children in their blended family. She is currently working on a new novel titled Class, which is expected for release in 2022.

You can find her on Instagram here.

Lucy CocoranLucy Cocoran is the lifestyle editor (digital) of marie claire and ELLE. When she’s not following the scent of pastries, she enjoys listening to true crime podcasts and smiling at dogs.

Namgok Lee 2111 지리산 정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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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2370 hc7NotvmemgSbher atl 0f6:031ed9  · 
어제 저녁 지리산 정치학교에서  연찬에 대한 소개를 했다.

최선의 합의란 결국 최선의 타협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것을 위해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분ㆍ계급ㆍ성별ㆍ나이 ㆍ소속집단(국가ㆍ민족ㆍ지역 등)에 의한 기울어짐을 바로잡는 것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관념 안에 있는 기울어짐을 바로잡는 것이 다른 하나다.
즉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말은 생각과 사람을 떼어놓고 보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생각, '너'의 생각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연습이다.
이 꼬리표가 붙어 있으면 내로남불이 된다.
이것은 누구나 사실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과 판단(입력된 정보)이라는 필터를 통한 '상'이라는 것, 즉 사실과 별개의 관념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신도 확증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각을 유지할 때, 다른 사람의 생각에도 동등한 지위를 부여할 수 있고, 최선의 합의(타협)를 도출할 수 있다.
집단적 확증편향은 개별적 확증편향보다 더 심각한 폐해를 가져온다.
알고리즘은 이것을 더 강화시키는 폐단이 있다.
편향적 정보입력이 손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팔로워를 가진 유튜버들의 해악이 단적인 현상이다.
악성(과거집착의 문화지체) 편가름은 사회적 합의, 즉  그 시점에서 최선의 사회적대타협을 불가능하게 한다.
결국 이 정치문화를 바꾸는 것이 뿌리깊은 집단적 확증편향의 굴레에서 정신을 해방하는 것이고, 실사구시와 구동존이의 태도로 사회적대타협을 가능케 한다.
대연합정치를  통해서 문명전환의 물꼬를 틀 수 있게 한다.
이 사회적대타협에 의해 비로소 가장 합리적인 제도의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끝없는 소모적이고 퇴영적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을 연습하는 장이 지리산 정치학교가 되기를 바란다.
물질위주의 행복관과 각자도생의 이기주의라는 강고한 관성은 물질의 결핍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노력과 개인을 해방하기 위한 투쟁의 부산물이라는 측면이 있다.
그것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자유를 유발한다.
그것을 이해하고, 보다 자유로운 자신과 세상을 향해 정신을 해방하는 과정에서 문명과 정치가 진정으로 전환될 수 있다.
강제나 분노나 증오가 아니라 사랑과 기쁨이 동력이 될 때 진정한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연찬방식이라는 것은 이 동력을 강화시킬 때 유효한 것이다.
어제 연찬에 대한 소개를 하고 나서의 단상들이다.
지리산 실상사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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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Yesteu9rday8 hti2at 1f49o0s:0r47e1a  · 
오늘 지리산 정치학교 2기를 마치면서 제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스스로 인문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나름의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노인세대의 한사람입니다.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고,  내  말을 듣고도 나에게 시켜주면 가능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제 나름의 노후살이입니다.
어제 전체연찬에 참석하고, 그 주제가 저에 대해서도 물음이라고 생각하고 말해보겠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제가, 치국, 평천하가 다 정치입니다.
치국 다음이 평천하입니다.
마을 정치가 평천하입니다.
국경이 사라지는 최고의 정치입니다.
오히려 치국은 한 단계 낮은 정치입니다.
먼저 내년 선거를 둘러싼 정세에서 치국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저는 거칠게 중도를 지향하는 것을 역사로 보고 있습니다,
산업화ㆍ민주화의 성공은 한국을 선진국의 대열에 올려놓았지만, 87체제 속에서 산업화ㆍ민주화의  어두움, 즉 퇴출되어야할 요소들이 거칠게 퇴춣되는 과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년 선거가 막바지가 되리라 전망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내년 정초를 전후해서 여러분야의 벗들과 허심탄회하게 지지후보를 함께 결정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향후 정국을 고질적이고 퇴영적인 편가름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와 다원성에 바탕을 둔 대연합정치를 모색하는데, 인문운동가로서의 가능한 역할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면 자유민주주의(보수), 사회민주주의(진보), 문명전환의 녹색정치 삼자의 공동정권이 탄생하는 과도적 정권이 출범하도록 노력하는데 일조를 하고 싶습니다.
지방 선거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새로운 정치문화가 탄생하도록 돕겠습니다.
다음은 평천하 즉 마을 정치에 대해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본주의와 개인해방의 민주주의를 거치면서 해체된 과거의 공동체로 복귀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개인의 자율성이  최대로 보장되면서 '활사개공'의 바탕에서 물질위주의 행복관과 각자도생의 이기주의를 넘서서는 튼튼한 물적토대와 고도한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21세기의 따뜻한 공동체입니다.
'적당한 거리'는 우애와 협동의 조건입니다.
어제 '영성'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는데, 저는 영성의 사회화 혹은 사회적 영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세가지가 떠오릅니다,
사이좋음, 즐거움(기쁨), 단순소박한 삶의 풍요입니다.
개인적인 영성(깨달음)의 추구가 사회적 영성으로 이어져야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성숙시킬것인가 하는 구체적 방법들은 다양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최고의 정치인 마을 정치의 성공을 좌우할 것입니다,
인문운동가로서 저도 가능한 이 분야에서 만년의 즐거움을 느낀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2기 참여자 여러분과 진행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 그리고 실상사와 지리산에 감사드립니다.
                  이남곡 드림
===



이병철
17 h ·



-제2기 지리산정치학교를 마치다/
-먼저 가슴 열어/
푸른 새벽
하얀 사발에 담아 올린 정화수
퍼져가는 잔물결을 본다
모두가 탈 없이 잘 지내기를
참으로 행복하기를
내쉰 내 숨을 당신이 들이쉰다
우리는 서로에게로 이어진 한 물결
만물이 한 숨길 속에 출렁인다
선 자리가 중심
물결은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다시 이 자리로 밀려온다
서로가 서로를 품어
어느 것 하나 외따로 일 수 없는 이 물결 속에서
가는 것이 오는 것이다
본시 한목숨
내가 먼저 가슴 열어
당신을 안는다.
문명전환을 위한 지리산 정치학교 2기 과정을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 지리산 실상사에서 가졌다. 나는 여는 시로 '먼저 가슴 열어'를 낭송했다.
이번 과정엔 추천을 받아 면접을 거친16명이 참여하여 전환정치에 대해 연찬하고 문명전환의 정치를 어떻게 열어갈 것인지, 그 길에서 서로의 역할과 연대 방안에 대해 함께 논의했다.
이 과정을 1기 수료생 몇 분이 준비팀으로 합류하여 진행을 함께한 것이 나에겐 무엇보다 큰 성과이자 기쁨으로 느껴졌다. 특히 1기 수료생 3분의 사례 발표는 지리산정치학교의 의미와 필요성을 새롭게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았다.
마지막 연찬테마로 '22년 3월 대선과 6월 지자체장 선거국면에서 문명전환의 정치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루었다.
오늘 수료식이자 파견식에서 나는 이 주제와 관련하여 '지리산정치학교는 23년 국회의원 선거 때까지 3년간 전환정치를 담당할 젊은 정치인들을 함께 묶어내는 것을 그 목표와 과제로 삼는다.'라고 이야기했다.
지금 지구촌 전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명전환이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는 것이란 생각이 새삼 절실하게 느껴졌다. 이것을 외면하거나 피해갈 수 없다는 것임을. 그렇게 거센 쓰나미처럼 우리 앞에 닥쳐와 있는 이 비상한 사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살아남기 위한 비상한 행동, 구명정과 생명둥지를 마련하는 것뿐이라는 인식이 깊게 다가왔다.
호스피스와 산파의 역할, 지리산정치학교는 그렇게 구명정과 생명둥지를 마련하는 이들을 일깨우고 함께 연결하고 재연결하는 것임을 이야기 했다.
문득 의암선생이 독립운동을 준비하기 위해 우이동에 봉황각을 짓고 1912년 4월부터 1914년 3월까지 '21일 기도' '49일 기도'를 통해 연인원 483명의 천도교 지도자들을 길러내어 기미독립운동을 이끌내었던 역사가 정치학교의 염원과 겹쳐서 떠올랐다.
그런 간절한 소망을 지리산정치학교가 담아 이어갈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파견의 시로 '하늘 창'을 나누었다.
-하늘 창(窓)/
꽃을 피우는 것은
하늘의 창(窓)을 여는 것이다
한 송이 꽃이 필 때마다
하늘로 향한 창 하나씩 열린다
별들이 피어나
밤하늘에 꽃등을 매어다는 것처럼
꽃들이 피어나
하늘의 창을 활짝 여는 것이다
네가 피어나고
내가 피어나면
온 세상이
그래 환해지는 것이다.
지리산정치학교 2기 수료생들과 이번 과정을 함께 열어간 도반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14


95You, 崔明淑, 박정미 and 92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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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t2tlplm9884g9lul5301r1hafu1hd  · 
이번 금요일(26일) 오후 세시부터 토요일(27) 오전까지 지리산 실상사에서 '문명전환의 정치, 그 제도'라는 주제로 연찬을 합니다.
대면과 줌zoom을 겸합니다.
인연이 닿는 분들께 함께 하실 것을 권하는 소개 말씀을 올립니다.

"지금 우리는 펜데믹 현상과 기후 위기와 같은 생태적 재앙 앞에서 인류라는 종(種)의 사활(死活)이 걸린 결정적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함으로서 2차대전 후 독립한 나라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나라이지만, 그 과정의 모순들이 표출하는 정치사상적, 심리적 혼돈의 시기가 겹치고 있습니다.
물질혁명은 자본주의가 이룩했지만, 의식(意識)이 물질위주의 행복관과 각자도생의 이기주의에 갇혀 있어서 그것에서 해방되지 못하면 생태적 재앙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이 망(亡)하고 식민지로 전락하던 그 암울한 시기에 나타난 개벽사상은 너무 일찍 핀 꽃이었습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구호는 100년 후를 내다본 우리 공동체의 예지(叡智)였습니다.
이제 의식혁명은 인류의 생존이 걸린 과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물질혁명과 의식혁명을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할 곳은 결국 새로운 문명이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그것을 향한 진로는 어떻게 열릴까요? 그리고 그 주체와 동력은 무엇일까요?
이제 이런 질문들이 단지 이상주의자들의 오랜 염원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질문으로 절박하게 다가옵니다.
마침 이번 연찬이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고, 오래 동안 심도 있게 이런 주제를 연구해오고 이번에 ‘붕새의 날개-문명의 진로’라는 대작으로 그의 사상을 세상에 소개한 김상준 교수를 모셔서 발제를  듣고 연찬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 금요일(26일) 오후 세시부터 다섯시까지 김 교수의 발제를 듣고, 27일 오전까지 토론과 연찬으로 이어집니다. 
직접 오셔서 참여해주시면 더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시면 줌(zoom)으로 참여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Namgok Lee 우리 현실의 난맥상의 근원을 ‘남북 분단’에서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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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요즘 어떤 책을 보면서 느끼는 소감인데, 전체적인 총론이나 세계나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은데, 각론에 들어가거나 특히 정치적 판단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경우를 느낄 때가 많다. 이런 견해 차이를 넘어 어떤 합의(타협)에 도달할 수 없을까 하는 것이 요즘 많이 생각된다.

바탕의 총론이나 세계나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경우보다 더 안타까울 때가 많고, 총론이나 바탕이 다르면서도 이해관계로 정치적 판단이나 성향에서 일치하는 경우를 볼 때 더욱 그러하다. 특히 관념을 다루고,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 사이에 관념계의 단정(斷定)이 심한 것이 더 그렇다. 이 단정은 특히 빠지기 쉬운 연역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만든다.
예를 든다면, 지금 우리 현실의 난맥상의 근원을 ‘남북 분단’에서 찾는 것이다.

물론 일리가 있고, 대단히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분단은 세계정세와 우리공동체의 실상이 만들어낸 하나의 과정이고, 오히려 우리가 겪은 역사에서 찾자면 조선(朝鮮)을 망국으로 이끈 원인들에서 찾는 것이 더 맞다고 본다.
원인에는 원인이 있어서 끝없는 연기(緣起)를 이루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가 더욱 성찰할 것은 분단(分斷) 이전 조선의 망국(亡國)에 대한 공동체 내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민족이나 국가를 넘어서는 세계체제가 지금의 열국의 패권경쟁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방향이다.  민족적 동질성보다 체제의 이질성이 이미 더 심화된 남북의 현실에서 통일을 문제해결의 근원으로 보는 인식은 스스로의 상상을 과거의 관념적 인습 속에 가두어 버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오히려 남북 두 국가체제로 평화공존하는 것을 분단체제에 대한 우리 역사공동체의 자주적 대응으로 하는 것이 더 맞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이런 바탕에서 남북이 각각의 처지와 입장에서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향하는 자유와 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부 체제를 발전시키는 경쟁을 하는 것이 굳이 민족주의를 취한다해도 더 큰 민족주의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통일이 필요하면 통일하게 될 것이고, 아시아 연방이나 세계 연방으로 나아가게 되면 남북의 상이한 경험들이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생태적 재앙으로 인한 인류 공통의 위기는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게 하는 결정적 환경으로 될 수 있고, 그 길에서 제대로 된 전망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위기 앞에서 여전히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악몽으로 될 것이다.

엊그제 지리산 정치학교에서도 말한 것이지만, 마을 정치(마을운동이나 공동체운동을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정치를 좁은 의미로 가두지 않고 확장하는 것이 정치에 대한 근본적 지평을 변혁하는 것이다)는 평천하(平天下)의 정치다. 
서로 다른 국가별 체제나 문화 속에서 인류가 열어가야할 평천하(平天下)의 길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운동이라는 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목적’인 정치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예술’로 전환하는 것이 평천하(平天下)의 정치고, 우리 시대 개벽운동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꼭 순서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굳이 말하자면 마을 정치가 진화해서 국가 정치가 진화하는 것보다는, 국가 정치의 진화를 거치며 마을 정치가 진화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산관계나 소유관계를 변화시키는 주체는 국가와 시장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을 단위로 이런 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보편적인 목표가 되기 힘들다.
나는 사실 50대의 대부분을 마을 단위로 소유관계와 생산관계를 변혁하는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보편화하기 힘들다는 나름의 판단을 하게 되었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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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모인 가족과 친지들은 한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추수의 결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성묘를 하는데요. 대체로 유교식 제사를 따르고 있지만, 불자라면 이번 추석에 조금 특별한 차례를 지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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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붓다 빅 퀘스천
윤회는 어떻게 삶의 지혜가 되는가?











윤회는 허황된 믿음인가? 철학적 사상인가?

21세기인 지금, 우리는 윤회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역사‧철학, 과학, 종교, 다방면의 시각을 통해
윤회의 깊은 곳에 자리한 삶의 지혜를 모색해 보는 시간.


* 1교시 | [윤회의 문화사] 윤회, 그것이 알고 싶다
-임승택(경북대 철학과 교수)
* 2교시 | [윤회와 과학] 윤회에 관한 과학적 고찰
-김성구(이화여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 3교시 | [윤회와 불교] 업과 과보,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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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2021.10.16 (토) 13:00~17:00
- 제16회 붓다 빅 퀘스천은 정부 코로나19 대응 지침에 따라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합니다.
- 이번 행사에서는 강연 중 유튜브 실시간 채팅창을 통해 참가자 질문을 받아 강연 말미 연사가 직접 답해 주는 Q&A 시간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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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1

Bequest - Wikipedia

Bequest - Wikipedia

Bequ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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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quest is property given by will.[1] Historically, the term bequest was used for personal property given by will and deviser for real property.[2] Today, the two words are used interchangeably.

The word bequeath is a verb form for the act of making a bequest.

Etymology[edit]

Bequest comes from Old English becwethan, "to declare or express in words" — cf. "quoth".

Interpretations[edit]

Part of the process of probate involves interpreting the instructions in a will. Some wordings that define the scope of a bequest have specific interpretations. "All the estate I own" would involve all of the decedent's possessions at the moment of death.[3]

conditional bequest is a bequest that will be granted only if a particular event has occurred by the time of its operation. For example, a testator might write in the will that "Mary will receive the house held in trust if she is married" or "if she has children," etc.

An executory bequest is a bequest that will be granted only if a particular event occurs in the future. For example, a testator might write in the will that "Mary will receive the house held in trust set when she marries" or "when she has children".

In some jurisdictions, a bequest can also be a deferred payment, as held in Wolder v. Commissioner, which will impact its tax status.

Explanations[edit]

In microeconomics theorists have engaged the issue of bequest from the perspective of consumption theory, in which they seek to explain the phenomenon in terms of a bequest motive.

Oudh Bequest[edit]

The Oudh Bequest is a waqf[4] which led to the gradual transfer of more than six million rupees from the Indian kingdom of Oudh (Awadh) to the Shia holy cities of Najaf and Karbala between 1850 and 1903.[5] The bequest first reached the cities in 1850.[6] It was distributed by two mujtahids, one from each city. The British later gradually took over the bequest and its distribution; according to scholars, they intended to use it as a "power lever" to influence Iranian ulama and Shia.[7]

American tax law[edit]

Recipients[edit]

In order to calculate a taxpayer's income tax obligation, the gross income of the taxpayer must be determined. Under Section 61 of the U.S. Internal Revenue Code gross income is "all income from whatever source derived".[8] On its face, the receipt of a bequest would seemingly fall within gross income and thus be subject to tax. However, in other sections of the code, exceptions are made for a variety of things that do not need to be included in gross income. Section 102(a) of the Code makes an exception for bequests stating that "Gross income does not include the value of property acquired by gift, bequest, or inheritance."[9] In general this means that the value or amount of the bequest does not need to be included in a taxpayer's gross income. This rule is not exclusive, however, and there are some exceptions under Section 102(b) of the code where the amount of value must be included.[9] There is great debate about whether or not bequests should be included in gross income and subject to income taxes, however there has been some type of exclusion for bequests in every Federal Income Tax Act.[10]

Donors[edit]

One reason that the recipient of a bequest is usually not taxed on the bequest is because the donor may be taxed on it. Donors of bequests may be taxed through other mechanisms such as federal wealth transfer taxes.[10] Wealth Transfer taxes, however, are usually imposed against only the very wealthy.[10]

References[edit]

  1. ^ Black's Law Dictionary 8th ed, (West Group, 2004)
  2. ^  One or more of the preceding sentences incorporates text from a publication now in the public domainChisholm, Hugh, ed. (1911). "Bequest". Encyclopædia Britannica3 (11th 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761.
  3. ^ Law.com, Law Dictionary: all the estate I own
  4. ^ Algar, Hamid (January 1980). Religion and State in Iran, 1785–1906: The Role of the Ulama in the Qajar Perio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ISBN 9780520041004. Retrieved 19 November 2016.
  5. ^ Litvak, Meir (1 January 2001). "Money, Religion, and Politics: The Oudh Bequest in Najaf and Karbala', 1850–1903". International Journal of Middle East Studies33 (1): 1–21. doi:10.1017/S0020743801001015JSTOR 259477S2CID 155865344.
  6. ^ Nakash, Yitzhak (16 February 2003). The Shi'is of Iraq. Princeton University Press. ISBN 0691115753. Retrieved 13 November 2016.
  7. ^ Litvak, Meir (1 January 2000). "A Failed Manipulation: The British, the Oudh Bequest and the Shī'ī 'Ulamā' of Najaf and Karbalā'". British Journal of Middle Eastern Studies27 (1): 69–89. doi:10.1080/13530190050010994JSTOR 826171S2CID 153498972.
  8. ^ "US CODE: Title 26,61. Gross income defined". Law.cornell.edu. Retrieved 2013-01-20.
  9. Jump up to:a b "US CODE: Title 26,102. Gifts and inheritances". Law.cornell.edu. Retrieved 2013-01-20.
  10. Jump up to:a b c Samuel A. Donaldson (2007). Federal Income Taxation of Individuals: Cases, Problems and Materials, 2nd Edition, St. Paul: Thomson/West,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