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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30

우리역사넷 한국문화사 제2장 현세 구복의 불교 미술

우리역사넷   한국문화사


제2장 현세 구복의 불교 미술  목차닫기
1. 현세에 복 받기를 바라다
2. 관음보살을 청하다  
3. 부처님의 가호로 나라를 지키다
4. 이 내 몸에 부처님의 가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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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과 연애의 풍속도
02권 배움과 가르침의 끝없는 열정
03권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05권 상장례, 삶과 죽음의 방정식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07권 전쟁의 기원에서 상흔까지
08권 화폐와 경제 활동의 이중주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11권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14권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15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16권 장시에서 마트까지 근현대 시장 경제의 변천
17권 천민 예인의 삶과 예술의 궤적
18권 불교 미술, 상징과 영원의 세계
19권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
20권 광고, 시대를 읽다
21권 근대와 만난 미술과 도시
22권 여행과 관광으로 본 근대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24권 유교적 사유와 삶의 변천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28권 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29권 조선이 본 일본
30권 이방인이 본 우리
31권 서구 문화와의 만남
32권 한반도의 흙, 도자기로 태어나다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36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 풍속
37권 한국 서예문화의 역사
38권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39권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
40권 사냥으로 본 삶과 문화

여성관음의 탄생 한국 가부장제와 석굴암 십일면관음 김신명숙 저

여성관음의 탄생 - YES24




여성관음의 탄생
한국 가부장제와 석굴암 십일면관음
김신명숙 저 | 
이프북스(IFBOOKS) | 2019년 
 회원리뷰(2건) | 판매지수 36



출간일 2019년 11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책소개

관음이 품은 여신, 여신이 바꾼 관음
석굴암 십일면관음을 관통하는 신비롭고 파워풀한 한국 여성관음의 역사

“관세음보살은 남성일까?, 여성일까?, 트랜스젠더일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도서는 처음부터 신의 성별을 문제 삼는다. 신의 성별은 세계적으로 남성적 신성이 문제로 부각되고, 신성의 젠더균형이 이슈가 되면서 큰 조명을 받고 있는 주제다. 그리고 이 책을 탄생시킨 콘텍스트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여성관음의 역사를 최초로 탐색해 나간다.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사진자료
여는 글. 관음은 여자? 남자? 트랜스젠더?

제1부 동아시아 여성관음과 서구 여신관음

1. 중국의 여성관음: 묘선공주 이야기
2. 일본과 한국의 여성관음
3. 서구로 간 관음: 여신관음의 등장

제2부 한국 여성관음의 역사

1. 고대 한국의 여신신앙
2. 여신신앙의 핵심적 상징 : 여근
3. 초기불교와 여신신앙의 만남
4. 여성관음의 등장과 원효
5. 출산하는 관음의 등장
6. 원효의 파계행 다시 보기
7. 신라와 백제의 여성관음상들 : 석굴암 십일면관음
8. 고려시대 이후 여성관음도 : 관음의 수염
9. 금강산 보덕굴의 보덕각시 : 사라진 성기
10. 한국관음의 본생담 [안락국태자경]과 『사씨남정기』
11. 현대 한국관음의 여성성 : 자비의 어머니

제3부 [안락국태자경]과 석굴암 : 원앙부인과 요석관음

1. 관음의 전생, 원앙부인
2. 사라수왕과 원효의 숨은 관계 찾기
3. [안락국태자경]과 석굴암 주실의 상통성
4. 석굴암의 입지와 건축구조 : 여근상징들을 품다
5. 본존불의 정체와 십일면관음의 위상
6. 주실벽 존상들과 [안락국태자경]의 인물들
7. 본존불과 원효 : 본존불은 원효불
8. 경덕왕의 아들집착과 석굴암
9. 석굴암에 담긴 주체적 불국토사상
10. 혜공왕 설화 다시 읽기 : 원효와 무열왕의 가부장제 동맹
11. [안락국태자경] 서사의 기원과 의도
12. [안락국태자경] 서사가 무가에 미친 영향

제4부 여신관음을 찾아서

1. 여성들의 삶에서 꽃핀 관음신앙
2. 동아시아 여성관음의 한계 : 유교적 관음
3. 서구여성들이 만난 관음 : 페미니스트 여신
4. 여성부처가 필요하다
5. 보덕의 잃어버린 성기 되찾기
6. 미래를 여는 새로운 신, 관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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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 : 김신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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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적 신성이 되살아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여신학)Goddess Stdies)분야를 홀로 개척하고 있는 연구자이자 대학강사. 10대부터 영적인 문제와 세상 문제 모두에 관심을 두고 살아왔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화두로 해서 살다 보니 30대에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40대 중반에 여신을 만났다.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를 알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고, 50대 초반에 국내 최초로 여신학(Goddess Studies) 분야의 박사논문도 썼다. 앞으로의 인생이 여신과 함께 춤추는 길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낸 책으로는『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소설 허난설헌』, 『김신명숙의 선택』 등이 있다. 이후 여성적 신성의 관점에서 한국 여성관음의 역사를 추적해 『여성관음의 탄생』을 출간하게 됐다. 현재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치는 한편으로 여신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2018년 5월 출간한 『여신을 찾아서』(판미동)를 통해 여신의 역사, 여신문화, 여신순례 등을 한국사회에 소개했다. 과거 강력했던 한국여신의 역사를 회복하는 일을 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여신이 신앙의 중심에 있었을 때 여성 역시 존중되었고, 성과 계층 모두에서 평등한 사회가 유지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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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다른 상품






여신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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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관세음보살은 여성일까, 남성일까?

보통의 한국인들에게 관음의 성을 물으면 대개는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한국사회에서 관음의 성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멈칫대다가 이렇게 답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 아니에요? 그런 것 같은데….”
어릴 적부터 가끔씩 절을 방문해온 나도 관음을 여자로 알고 있었다. 아무도 그렇게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부지불식간에 그런 인식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사람일수록 “여자”라는 답은 하지 않는다. 관음 같은 보살은 성을 초월하므로 그런 질문은 부적절하다는 태도가 가장 흔하고, 경전에 근거해 남자라고 대답하는 경우도 있다. [수월관음도] 를 예로 들며 양성적이거나 중성적인 보살이라고 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 성적 소수자들의 존재가 부각되면서 관음을 트랜스젠더라고 하는 이야기도 들린다. 원래 남성이었다가 중국에서 여성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성적 정체성이 분명한 다른 신이나 신격들과 달리 관음의 성은 이처럼 문제적이다. 모호하고 미끄러지며 경계를 가로지른다. 남성인가 하면 여성이고 중성적인가 하면 다젠더 multi -gender 적이다.
그런데 관음이 보여주는 이 특유의 성격에 ‘신의 성별’이라는 고질적 난제에 대한 해답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이 관음의 여성화 과정을 탐구하며 젠더문제에 주목하는 이유다.
--- 「여는 글 ‘관음은 여자? 남자? 트랜스젠더?’」중에서

『삼국유사』에서 관음보살이 여성으로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문무왕대다.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 조와 광덕엄장 조에 등장하는 관음들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설화 모두에 원효가 등장한다. 먼저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 조에 실린 내용을 보자.
그 뒤(의상대사가 낙산 해변의 굴에서 관음진신을 친견하고 낙산사를 창건한 후)에 원효법사가 와서 예를 올리려고 했다. 처음에 남쪽 교외에 이르렀는 데, 논 가운데서 흰옷을 입은 여자가 벼를 베고 있었다. 법사가 희롱삼아 그벼를 달라고 하자, 여자도 희롱조로 벼가 영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법사가 또 가다가 다리 밑에 이르자 한 여인이 월경수건을 빨고 있었다. 법사가 물을 달라고 청하자 여인은 그 더러운 물을 떠서 바쳤다. 법사는 그 물을 엎질러버 리고 다시 냇물을 떠서 마셨다. 이때 들 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靑鳥)한 마리가 말했다.

“불성을 깨닫지 못한 중!”

그리고는 홀연히 숨어서 보이지 않았고, 다만 그 소나무 아래에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법사가 절에 이르러 보니 관음보살상의 자리 밑에 또 아까 보았던 신발 한 짝이 있었다. 그제야 원효법사는 전에 만났던 성녀 聖女가 관음의 진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관음송 觀音松이라고 했다. 법사가 신성한 굴로 들어가 다시 관음의 진신을 보려고 했지만 풍랑이 크게 일어나 들어가지 못하고 떠났다.
간단히 말하자면 원효가 여성으로 나타난 관음을 두 번이나 만났지만 알아보지 못했고, 결국 의상이 친견했던 관음진신을 보기는 커녕 굴에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관음보살의 놀라운 영험을 말해주는 전형적인 관음설화와는 다른 종류다.
그런 점에서 이 설화는 매우 독특할 뿐 아니라 내용 역시 불교적 관점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다. 한국 불교사의 최고봉으로 존숭되는 원효를 조롱 내지 비판하는 내용부터가 그렇다.
위 설화의 이해가 쉽지 않은 이유는 여신신앙의 코드로 서사가 직조돼 있기 때문이다. 이 설화의 출처는 고본 古本이라고 돼 있는데 정체가 불분명하지만 정통 불교전적이 아닐 것이다.
--- 「제2부 4장. 여성관음의 등장과 원효 중에서」중에서

사라수왕처럼 본존불 역시 원효와 관련돼 있을까?

이 새로운 질문을 갖고 다시 석굴암을 들여다 보면 놀랍게도 여러 연관성들이 보인다.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것은 본존불이 무덤 형태의 석굴에 좌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설명했듯 석굴암은 횡혈식 석실분 형태의 감실에 봉토를 쌓아 무덤처럼 만들어 놓은 건축물이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무덤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원효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본존불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무덤 속에서 성도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원효가 무덤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은 『송고승전』 의상전에 전한다.(---)
석굴암이 원효의 오도처인 무덤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추정은 ??송고승전??에 실린 원효의 게송과도 공명한다.
마음이 일어나는 까닭에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감(龕)과 분(墳)이 둘이 아니네. 삼계가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며, 모든 현상은 의식의 전변이라.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달리 구하겠는가?"

“감과 분이 둘이 아니”라는 위 구절은 신성한 감실이면서 무덤이기도 한 석굴암과 그대로 통한다. 감은 원효가 머물렀던 토감, 즉 토굴을 지시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불감(佛龕), 즉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공간도 의미할 것이다. 감분불이(龕墳不二)는 곧 원효가 주창했던 진속불이(眞俗不二)와 통하기 때문이다. 원효는 게송을 통해 부처를 모신 감실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노래했고, 석굴암을 만든 사람들은 그것을 구상화한 것같다.
--- 「제3부 7장. 본존불과 원효: 본존불은 원효불」중에서

원효와 김춘추는 신라사회에 유교적 부계혈통을 새롭게 세우는 데 서로 합의했던 것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원효에게 관리를 보내 요석궁으로 인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교적 부계혈통은 남성계보를 중심으로 하는 승가와도 어긋나지 않는다. 역시 남성중심적인 불교의 질서를 세우려 했던 원효와 태종무열왕은 젠더권력 관계의 변화라는 과업에서 이해를 공유했던 것같다. 당시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을 여신신앙과 여성권력에 대해 둘은 동맹관계였을 것이다.

그런데 유교적 부계혈통은 당시 신라사회에 익숙한 문화가 아니었다.
왕실부터가 그랬다. 알다시피 바로 전의 두 왕이 여성이었다. 원칙적으로 여왕은 부계혈통중심 사상에서는 나올 수 없는 모순적 존재다. 때문에 원효-김춘추 동맹이 추구한 부계혈통의 확립은 신라사회에 새로운 충격이었을 것이다. “자루 없는 도끼” 노래가 오늘날까지 전해진 이유다. 그 노래는 원효 개인의 기이한 행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증언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 「제3부 10장. 혜공왕 설화 다시 읽기; 원효와 무열왕의 가부장제 동맹」중에서

원효와 요석공주의 결합에는 신라 여신전통을 모르면 보이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숨겨져 있다. 요석공주는 왕실여사제 전통에 속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왕실여사제였다면 그녀를 아내로 맞는 일은 불교와 여신신앙의 융섭을 의미한다. 물론 평등한 융섭이 아니라 여신신앙이 불교에 복속되는 방식이다. 요석공주와 원효의 만남이 원효와 무열왕의 가부장제적 공모라는 맥락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만약 요석공주가 여사제였다면 원효로서는 그녀만큼 효과적인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당시까지도 상당한 세력으로 존재했던 토착신앙을 그녀와의 결혼을 통해 포섭하고 순치시킬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효가 무애박을 들고 다니며 대중포교에 나선 것이 “설총을 낳은 후”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의미가 크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결합은 오래된 여신이 새롭게 등장한 남신으로 대체되는 과도기에 여신이 남신의 아내로 포섭되곤 했던 여신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홀로 숭배됐던 중국의 창조여신 여와가 복희의 아내로 격하되고, 가나안의 여신 아세라가 야훼의 아내로 짝지워졌던 경우같은 것들이다.

--- 「제2부 6장. 원효의 파계행 다시 보기」중에서

서구에서 등장한 여신관음이 현대여성들, 더 넓게는 현대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바우처가 여신관음에 대해 밝힌 아래의 견해부터 보자.
여성으로 태어난 우리는 여성 몸을 한 영적 안내자를 보고 싶어 한다. 불교는 깨달음이 젠더를 초월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물론 누구든 사려 깊은 사람에게는 합당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우리들은 일상생활과 영적 공동체에서 작동하는 젠더 차이와 불평등을 겪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들이 여성의 몸을 하고 있는 걸 너무나 보고 싶다. 만약 내가 부처의 경지에 오르고 싶다면, 내가 여성의 몸으로 매일 경험하는 의식과 반응들을 같이 나누는 부처의 모델을 갖는 것이 나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더 좋을 것인가.
내가 남자라 하더라도 여성부처를 보면 안도할 것이다. 보다 통합적인 불교의 길을 보게 돼서 감사할 것이다.

바우처가 말한대로 불교에서는 깨달음 혹은 불성이 젠더와 무관하다고 가르친다. 성별 자체가 근본적으로 실체 없이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교에서 성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천녀와 사리불의 대화에 나오듯 성별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색즉시공만 있는 게 아니라 공즉시색도 있다. 없음(공)과 있음(연기)이 공존하며 움직이는 것이다.

젠더가 인정되지 않았다면 불교 가부장제와 성차별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가르침과 달리 불보살의 몸은 남성으로 표상된다. 정토 역시 남성들의 땅이다.
--- 「제4부 4장. 여성부처가 필요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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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제1부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관음의 성에 대해 소개한다. 인도에서 남성이었던 관음은 중국에 들어와 여성으로 변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 여성화된 관음은 미국으로 건너가 20세기 후반에 또 한번의 변화를 겪었다. 그들의 문화적 변동 속에서 여신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 여신관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성적 관음과 질적으로 다르다. 이 흥미로운 역사적 변전과정들이 소개돼 있다.

제2부에서는 한국 여성관음의 역사를 불교 전래 이후 현재까지 통시적으로 고찰한다. 관음이 여성화된 저변에는 여신이 중심에 있던 토착신앙이 자리하므로 우선 고대 한국의 여신신앙에 대해 소개했다. 여신신앙의 내용과 상징들, 중요한 여신들과 여사제 전통 등을 개괄적으로 설명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018년 5월 출간된 저자의 책 『여신을 찾아서』에 담겨 있다). 한국에서 관음이 여성화되기 시작한 시기는 불교전래 초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는 문무왕 대에 처음 나타난다. 그런데 신라의 관음은 여성관음이라고 할 정도로 여성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토착신앙의 여신들이 갖는 특성을 공유한다. 신라의 관음상들 중 가장 여성적인 것은 여성미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는 석굴암 십일면관음상이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여성관음은 금강산 보덕굴의 보덕각시다. 그녀와 관련된 설화를 소개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양성적이거나 남성적인 관음으로 알려진 수월관음도가 실질적으로는 여성적 신성을 담고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조선시대의 여성관음은 [안락국태자경]과 그것의 이본인 소설 『안락국전』 그리고 소설 『사씨남정기』 등을 통해 설명했다.

한국관음의 전생인물인 [안락국태자경]의 원앙부인.
그녀의 정체를 추적하다 만난 석굴암
본존불과 십일면관음의 모델이 원효와 요석공주일 가능성을 최초로 제기한 문제작!

제3부에서는 한국관음의 유일한 본생담인 [안락국태자경]을 집중탐구하고 석굴암과의 관련성을 밝혔다. 1장과 2장에서는 [안락국태자경]의 내용을 소개 분석하고, 주인공 중 하나인 사라수왕을 원효와 비교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사라수는 원효의 상징 중 하나다. 사라수왕의 가족구성과 원효의 가족구성도 같다. 또 [안락국태자경]은 국내창작물이고 이후 유례없이 다양한 장르로 파생되며 엄청난 대중적 영향력을 미쳤다. 한국문화에서 원효가 차지했던 대중적 영향력과 유사하다.

이상의 사실들을 실마리로 사라수왕이 원효를 모델로 창작된 인물일 가능성을 원효의 행적을 추적하며 탐구했다. 그 결과 여러 근거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 추론 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어서 석굴암을 들여다 보았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안락국태자경]에 전생이 소개된 불보살·나한들과 석굴암에 모셔진 불보살·나한상들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석굴암에 봉안된 존상들의 구성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그만큼 독창적인 구성이고 배치다. 그런데 [안락국태자경]과 석굴암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그렇다면 석굴암의 본존불도 원효와 관련돼 있을까? 이 점을 밝힐 수 있다면 사라수왕이 원효를 모델로 창작된 인물이라는 추정이 큰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본존불이 원효불임을 추정해낼 수 있다면 십일면관음은 요석공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석굴암은 가만히 들여다 보면 본존불이 원효불일 가능성을 여러가지로 보여준다.

7장에서 그 근거를 다섯가지로 제시했다. 그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석굴암이 무덤형태로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석굴암은 횡혈식석실분 형태 위에 봉토를 덮어 전체적으로 커다란 무덤처럼 보인다. 현재는 입구에 목조건축물을 세워 놓아 느끼기 힘들지만 조선 후기 석굴암을 방문한 사람들은 석굴암을 소릉(小陵)이라고 표현했다.그런데 무덤같은 굴 속에 들어앉은 본존불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을 때의 모습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무덤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효를 연상시킨다. 특히 원효는 신라인들에게 석가모니같은 존재로 숭앙되었다. 그는 사라수(석가가 열반에 들 때 사방에 있었던 나무) 아래서 태어났고 사라사라는 절을 지었다. 신라의 석가로 여겨진 원효가 무덤을 본뜬 석굴암에 본존불로 봉안된 것같다(승려이자 거사였던 원효는 [안락국태자경]에서 사라수왕(아미타불의 전생)과 광유성인(석가불의 전생) 두 인물로 나뉘어 형상화되었는데, 석굴암 본존불 역시 석가불과 아미타불의 성격을 함께 갖추고 있다).

지면상 생략하지만 나머지 네 가지 근거들도 본존불이 원효를 표상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설득력 있는 것들이다. 그 중 하나는 석굴암 주실에 서 있는 돌기둥이다. 이는 원효의 “자루 없는 도끼” 노래에 나오는 “하늘 바칠 기둥”(아들을 의미)으로 해석된다. 중국인들은 낙양의 용문석굴 봉선사에 모셔진 본존불(7세기 후반)이 당의 무측천을 모델로 했다고 전한다. 또 일본 법륭사의 유명한 구세관음상도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을 그리워 해 그 모습을 본 따 조성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본존불이 원효불일 가능성에 힘을 주는 사례들이다.

8장에서는 석굴암이 무엇보다 아들을 얻으려는 경덕왕의 기원에 의해 건립되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미 학계 일부에서 나온 주장인데 추론을 훨씬 더 구체화했다. 설총의 아버지인 원효는 아들생산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 인물이다. 불교가 아니라 민중문화의 차원에서 그렇다. 그 흔적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경덕왕 당시 원효는 가부장제 부계혈통의 상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외 주체적인 신라불교를 선언하기 위해 신라의 부처인 원효불을 봉안한 것이라는 추정도 제기했다. 석가모니만 보리수 아래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원효도 무덤 안에서 깨달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석굴암의 건립목적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삼국유사』의 기록과 다르다. 10장에서는 그렇다면 왜 김대성이 석굴암을 창건했다는 설화가 만들어져 전하게 됐는지를 당시 신라의 정치적 격변상황을 분석하며 설명한다. 그리고 11장에서는 [안락국태자경] 서사가 석굴암을 근거로 언제쯤 창작됐을지 추정해 보고, 그 이야기가 대중에 유포되면서 한국의 종교문화 전반에 미친 중대한 영향을 살펴본다. 그것은 여성적 신성에서 남성적 신성으로의 전환이라는 패러다임적 변화였다.

[안락국태자경]과 석굴암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에 있다. 둘은 한국문화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데서도 공통적이다. [안락국태자경]은 다른 나라에서 유사작품이나 모본이 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고. 석굴암 또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독특한 석굴사원이다. 또 불교미술사에서 석굴암 십일면관음이 한국 여성관음의 정점을 보여준다면, [안락국태자경]의 원앙부인은 불교설화사에서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4부에서는 한국 여성관음의 미래적 가치를 논했다. 불교 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성평등한 변화를 위해 그녀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할수행을 위해 단순히 여성인 관음에 그치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적 맥락의 “여신관음”으로 거듭 태어날 필요를 주장했다.

여성적 신성의 회복을 위한 ‘여성관음’이라는 화두.
그 화두가 밝혀낸 석굴암의 정체와 한국 가부장제의 뿌리.

이상 소개했듯 이 책에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잊혀졌던 토착 여신신앙을 복구하고, 그 관점에서 역사를 새롭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석굴암의 정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물론 한국 가부장제가 언제 누구에 의해 본격적으로 추동됐는지 중요한 계기를 밝혀낼 수 있었다.

저자가 이 흥미로운 역사탐구 과정에 동원한 자료들은 광범위하고 풍부하다. 국내외 관음신앙 관련 불교경전들과 저서 및 논문들, 젠더 관점의 불교저작들,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의 사서와 고려·조선의 관련문헌들, 설화와 민속, 무속신화들, 소설들, 원효와 석굴암과 신라사 관련 논문들, 신문기사와 인터넷 자료 등등….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이 가능했던 것은 여성적 신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저자의 신념 덕이었다. 책의 핵심적 목소리는 그러므로 “왜 우리가 여성적 신성을 필요로 하는지” 설명하는 제4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현재 서구에서 부상 중인 여신운동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관음을 한국의 여신으로 재인식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한국여신의 계보에서 관음이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특별하다. 불교가 한국의 지배적 종교가 되면서 토착여신들이 그녀에게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한국여신들의 총화라고도 할 수 있다. 관음은 또 심오하고 풍부한 불교 사상체계와 다양한 의례들을 품고 있다. 지역적으로도 동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사랑받고 숭배되는 여신일 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영향력을 넓혀가는 중이다.

이러한 관음의 특성과 현실은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여신으로서 그녀를 다시 보게 만든다. 현대 한국여성들 혹은 한국사회와 관음의 관계를 재설정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불교의 보살이라는 경계를 넘어 한국의 여신으로서 관음을 새롭게 상상해 보았으면 한다.


[읽는여자2기] 여성 관음의 탄생 (김신명숙,이프북스)을 읽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c*****0 | 2020-08-03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12815965


읽는 여자 2기. 보내주시는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의 2권의 무게감이 상당했던지라 이 책의 제목만을 보고서 "몰카"를 다룬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내안의 '관음증'에 대해 반성해봅니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어요. 부제가 '한국 가부장제와 석굴암 십일면관음'입니다.

부제를 읽고 제목을 다시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이!






표지를 넘겨 작가 소개글을 보면 이야기의 전개가 명확하게 그려집니다.

2018년 5월에 출간된 전작이 "여신을 찾아서". 여신의 역사, 여신문화, 여신 순례 등을 소개한 책이라고 하네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전작에 대한 흥미가 동할 듯.






'관음보살'에 대한 학술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여성의 역할과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여성부처가 필요한 이유'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밝히면서 끝이 납니다.






읽다보니 궁금해진 부분이 결국 '여성부처의 존재'였거든요.



언제부터 '관음보살'을 떠올리면 자애로운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생겼을까요?

이유는 무엇일까요?






종교적, 학술적, 역사적 기원을 짚어봅니다. 생각보다 짧은 역사인 듯.






자극적인 사건을 둘러싼 실시간 대화가 이슈몰이로는 제격일지 몰라도 그 근원을 파헤쳐가는 글쓰기의 생명력에는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법에 대한 이해의 처음이 제정목적과 연혁이듯. 이념 혹은 생각의 근원을 찾아가다보면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는 듯.

그래서 뭔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면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요.






감정에 대한 호소 역시 하나의 방법이지만, 이론적인 접근 역시 필요합니다.






이프북스에서 좋은 책을 많이 내시는데, 좀 더 많은 분들이 접했으면 합니다.

참고로 이 책. 생각보다 사진 자료가 많고, 상식에서 접근하는 부분도 많아서 중간중간 흥미가 동하는 부분을 발췌해서 읽어도 잘 익힌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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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관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n*****e | 2020-02-01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12047724





2019년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33명이 기독교를 믿고 19명이 무슬림이며 13명은 힌두교 6명은 불교를 자신의 종교로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기독교인이 29명(개신교 18명, 천주교 11명)이고 불교인은 23명이고 종교가 없는 사람은 47명이나 된다.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인이 없다면 종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인은 누구인가? 수많은 종교인은 어떻게 다르며 이 순간 어디에 있는가? 통계에 선택지로 등장하는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의 분류는 어떠한 기준인가? 셀 수 없는 신흥종교는 누구의 발명품인가



내 부모의 종교는 유교 가부장제였다. 아들을 낳기 위해서 딸을 다섯이나 낳았으며,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아 제사를 지내야 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의 나는 어떠한가? 내 종교는 책에서 영화나 드라마로 바뀌었다. 다음은 유튜브나 넷플릭스일까? 아이들은 스마트폰인 것 같다.






신화와 과학은 종교를 해석하는 관점을 변화시켰다. 누구든 아는 만큼 의문을 갖게 됐고 나름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아주 오래전 존재했던 여신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이유다. 가부장제가 감췄던 여성이, 여신이 재조명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부족한 자료는 상상력이 대신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왔다는 사실은 변함없을 테니까 말이다.



관음은 여성? 남성? 트랜스젠더? 라는 의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동아시아의 여성관음과 서구에서 등장한 여신관음을 통해서 한국의 관음신앙을 다시 살펴본다. 특히 관음이 한국에 들어온 후 여성화된 역사적 맥락과 과정을 중점적으로 탐구하며 석굴암 건축 당시 신라의 종교문화적, 정치적 상황을 젠더사적 관점에서 분석한 역사여행을 선물한다.



한국관음의 여성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인용1_신성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월경피, 그리고 동지팥죽

p.110

여신신앙에서 월경피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신성한 것이다. 고인돌 유구에서 흔히 발견되는 붉은 흙은 죽은 이를 재생시킨다고 믿어진 월경피를 모방한 것이다. 임신 중에는 월경이 그치므로 고대인들은 그 피가 생명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p.111

생명을 탄생시키는 월경피는 그 신성한 힘으로 병을 치료하거나 액을 막아주는 효험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18세기 초 수년간 부산에 머물렀던 한 일본인은 『유년공부』라는 설화집을 쓰면서 한국인들이 월경피를 약처럼 복용한다고 기록했다.



월경피를 이용한 액막이 주술은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마을 여성들이 중심이 돼 벌였던 도깨비굿에서 나타난다. 굿이 시작되면 맨 앞에 선 인솔자가 월경피가 묻은 속곳을 긴 간대에 걸고 휘저으며 마을의 집들을 돌아다녔다. 그것이 도깨비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새알심이 들어있는 붉은 팥죽은 월경피와 알을 표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동지팥죽이 액막이 효능이 있다고 믿어졌을 것이다. 팥죽과 관련해 전승돼 온 민담에서는 붉은 팥물이 말이나 염소같은 동물의 피 대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원래 월경피를 의미하던 것이 훗날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인용2_여신은 섹슈얼리티와 생명탄생을 축하한다

p.119

세계적으로 여신신앙 전통들에서 보이는 공통적 가치관은 생명탄생에 대한 축하다. 이는 현세를 비하하며 죽음 이후 피안의 세계를 신앙의 핵심에 놓고, 탄생보다 죽음에 더 관심을 두는 가부장제 종교들과 확실히 다른 특성이다.



여신신앙에서는 모든 생명체가 죽은 후 다른 세계로 가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여겼다. 자연의 법칙 그대로다. 또 현세의 실존적 상황을 죄나 고통의 시각에서 보는 기독교나 불교와 달리 일상 속 현장을 아름답고 성스럽게 여겼다. 그러니 세상에 태어나는 게 축복이 되는 것이다.



생명이 탄생하려면 성행위가 전제돼야 하므로 섹슈얼리티도 신성한 것으로 찬양됐다. 수메르의 여신 이난나는 <이난나와 두무지의 구애>로 알려진 신화에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조금도 거리낌 없이 과시한다. 신랑인 두무지와 함께 성적 쾌락과 그 결실에 대해 노래하는 것이다.



성행위를 묘사하거나 과장된 성기를 노출시킨 신라의 토우들도 같은 맥락에 있다. 여신신앙에서 섹슈얼리티는 인간의 육욕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과 우주를 발행, 유지시키는 창조력이자 생산력으로 확장된다



인용3_여성 몸에 대한 혐오와 기피

p.126

금욕과 출가를 지향하는 불교에서 섹슈얼리티는 장애이자 부정한 것이다. 태어나는 것도 고통이니 월경과 출산 또한 마찬가지다. 주기적으로 배출되는 월경피는 오염과 부정함의 징표일 뿐 아니라 존재의 무상함을 상기시키는 기표였다. 이러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몸에 대한 혐오와 기피로 이어진다.



여성의 몸, 특히 그 몸에서 나오는 피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는 12세기경 중국에서 만들어진 <혈분경>이 말해준다. 여자들은 월경과 출산 때 흘린 피로 세상을 오염시켰으므로 죽은 후 피 연못이 있는 지옥에 떨어져 매일 세 번씩 피를 마셔야 한다는 내용이다.



불교는 여성의 몸 뿐 아니라 몸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다. 덧없이 늙어가고, 죽으면 썩기 때문이다. 몸은 더러운 것이어서 몸의 부정관이 중요한 수행법으로 쓰일 정도다. 그런데 수행론이 남성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특히 여성의 몸이 더러운 것, 수행에 방해가 되는 혐오스런 것으로 부각되었다.



남성 수행자들은 "여성의 몸은 더럽다"는 관찰 및 인식을 중요한 수행법 중 하나로 활용했다. 그들에게 섹슈얼리티는 자신들을 중생의 상태에 매이게 하고 가족의 계보에 묶는 위험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가 웬만해선 제어하기 힘든 치명적 유혹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석가모니가 성도하기 전 마왕의 아름다운 세 딸이 나타나 유혹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여성의 몸은 늘 수행자들이 걸려 넘어지는 최고의 장애물이자 육욕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인식이 불교의 여성혐오와 고질적인 성차별로 이어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인용4_남성적 관음도상, 여성관음이 주류인 문헌자료

p.162

고려에서 조선까지 관음의 도상이나 조각상들은 대개 남성적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관음신앙과 관련된 문헌자료와 구전설화는 여성관음이 주류였음을 말해준다. 표현된 형상과 실제 신앙현실 사이에 큰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불일치는 사찰불교와 민간불교의 경계를 따라 생산됐을 것이다.



민중이 아무리 관음을 여성으로 인식해도, 불보살상의 생산주체인 사찰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여성관음상이 만들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집요하게 붙어있는 '관음의 수염'은 그러한 사찰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한국역사에서 여성관음 도상이나 조각상이 드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들이 있다.

선불교를 지목하는 것도 그렇다. 선불교는 깨달음을 남성성과 관련시키고, 남성조사들의 계보를 법맥이라 하여 중심에 두는 등 남성중심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는 조선시대의 강력했던 유교 가부장제와 만나 더 강화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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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5점
불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아등바등 여성을 낮춰보려는 역사의 흐름을 알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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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꺄*르 | 2020-07-28


평점5점
여성주의의 대상을 가부장제라고 놓고 산 지난 날이 새삼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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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b*******n | 2020-07-22

제2장 현세 구복의 불교 미술 2. 중생의 소리를 들어주소서, 나무 관세음보살

우리역사넷

  • 한국문화사
  •  
  • 18권 불교 미술, 상징과 영원의 세계
  •  
  • 제2장 현세 구복의 불교 미술
  •  
  • 2. 관음보살을 청하다
  •  
  • 중생의 소리를 들어주소서, 나무 관세음보살
강희정

사람들이 현세에서 구하던 복은 어떤 것이었을까? 자신들이 살아 있는 바로 이 현실에서 구하고자 하였던 것은 무엇보다 개인과 그 일족의 안녕을 구하는 일이었다. 집안 식구, 친족, 가정의 안녕과 평화를 바라는 것은 어느 시대이건 모든 이가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이고 현실적인 바람일 것이다. 불교에 귀의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현실에서 얻기를 바랐던 소원은 바로 자신과 집안 권속(眷屬)의 무탈(無頉)한 번영이었다.

구복 신앙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 주는 것은 아무래도 관음보살이다. 인도나 중국에서 모두 일찍부터 가장 널리 신앙되었던 관음은 대승 불교(大乘佛敎)를 대표하는 보살이며, 관음 혹은 관자재(觀自在)로 불리기도 하였다.38) 위로는 진리의 길을 찾아 보살행을 닦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원한다(上求菩提 下化衆生)는 보살은 불타의 세계와 중생들의 세계, 그사이 어디쯤에 자리한 이질적인 존재이다. 보살의 본뜻은 수행자로서의 개념에 더 가까웠을 것이나, 동아시아에서는 그보다 부처님 다음 가는 신격(神格)으로 받아들여졌다. 대승 불교가 발달하면서 보살은 더욱 다양하게 분화되었는데 그 가 운데 현세 구복의 기원을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줄 수 있는 보살은 바로 ‘자비’를 중요한 속성으로 한 관음보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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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해수관음보살상

대자대비(大慈大悲)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이 익숙할 정도로 중생들이 관음의 자비심에 기댄 신앙은 그 어떤 부처님이나 보살에 대한 신앙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속세에 사는 몽매한 중생을 가엾게 여긴다는 것은 부처님에게 직접 바라기는 사실 어려운 문제이다. 열반에 들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난 부처님께 인간의 감정과 같은 ‘불쌍히 여김’이나 ‘가엾게 여김’, ‘측은하게 여김’을 바라고, 그에 기대어 어떤 희망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곤란한 점이 있다. 이때 중생들에게 친숙하게 여겨진 것이 관음보살이다. 관세음(觀世音), 혹은 관음보살은 그 이름부터 부처님을 대신하여 중생들의 소리를 들어준다는 의미가 아닌가.

대승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경전 가운데 하나인 『법화경(法華經)』의 관세음보살 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이하 보문품(普門品)으로 약칭)은 중국 남북조시대인 6세기에 이미 따로 『관음경(觀音經)』으로 독립되어 있었을 정 도로 널리 알려졌다. 보문품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천만 중생이 온갖 고난을 받아도, 한마음으로 관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그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대목이 있다. 이어서 보문품에서는 인간이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다종다양한 고난의 예를 든다. 큰 화재를 만났을 때나 물난리가 났을 때, 바다에서 겪게 되는 해난(海難)과 같이 거의 천재지변에 해당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나찰(羅刹)이나 야차(夜叉)를 만났을 때, 산중에서 도적을 만나거나 옥살이를 할 위험 등이 있다. 여기서 언급한 고난은 현대 사회에서 부닥칠 위험이 별로 없는 것이지만 의지할 곳 없는 옛날 중생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여기서 위기에 처한 중생이 한마음으로 관음의 이름을 부르면 관음이 그를 돌아본다는 부분은 관음의 명칭에 대한 설명이 되기도 하였다. 즉, ‘관세음’이라는 이름이 세간(世)의 음성(音)을 본다(觀)는 뜻이며, 이는 중생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에 응답하여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보살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사실 중생이 보기에 보문품에서 거론한 재난은 불가항력이어서 피할 수 없는 옆면이 많다. 그런 재난을 만나 절망에 빠져 있는 중생을 단지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구원해 주는 관음보살은 얼마나 자비로운 존재인가. “대자대비하신 관세음이시여.” 하는 찬탄이 절로 나올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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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은니 묘법연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

한편으로 무수한 대중을 제각각의 고난에서 구원해 주기 위하여 관음은 또 다양한 분신(分身)을 내보인다. 관음을 부르는 중생의 목적이 서로 다른 만큼 그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 어떤 때는 자재천(自在天, 힌두교의 시바 신이 불교에서 천신의 지위를 얻은 뒤의 이름)이 되었는가 하면, 어떤 때는 부처님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왕의 모습으로, 비구나 비구니의 모습으로, 소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관음이 다른 모습을 내보이는 것은 그만큼 중생이 겪는 어려움과 바라는 바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고, 관음보살은 모든 중생의 소망을 들어주고, 제도(濟度)해 주기 위하여 중생 개개인에게 적합한 모습을 내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불교를 믿는 중생이라면 누군들 관음보살을 믿고 싶지 않겠는가.

언제 어디서나 중생의 부름에 응답하여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 주는 관음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 관음삼십이응신도(觀音三十二應身圖)이다. 관음삼십이응신도라는 이름은 32가지 다른 모습으로 화현한 관음의 모습을 그렸다는 뜻에서 붙인 것이다. 1550년(명종 5)에 그려 전라남도 도갑사(道岬寺)에 안치되었던 그림이지만 현재는 일본 지온인(知恩院)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그린 다른 관음보살도처럼 관음삼십이응신도의 관음보살 역시 화면 중앙 바위 위에 앞면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편안하게 앉아 있다. 화면 윗부분에는 양쪽에 다섯 구씩 모두 열 구의 부처님이 있고, 중앙의 관음보살 바로 머리 위에 따로 두 구의 여래가 있어서 『법화경』에 기반을 둔 불화라는 것을 잘 보여 준다. 관음 머리 위의 세계는 부처님이 주관하는 불국세계(佛國世界)이자 천상이고, 관음이 앉아 있는 바위산 아랫부분은 속세의 중생이 살아가는 사바세계(娑婆世界)이다. 화면에서 관음을 중심으로 뾰족뾰족한 바위산이 솟아 있는 아랫부분은 마치 험난한 사바세계에서 고통스러운 윤회를 반복하는 인간사를 비유한 것처럼 보이며,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 하늘은 역시 분란 없이 평온한 부처님 나라를 보는 듯하다. 이렇듯 중앙의 큼직한 관음상을 중심으로 화면을 상하 둘로 나누어 양쪽을 분명하게 대비시킨 것은 여느 보살이 그렇듯이 사바세계와 불국세계를 연결해 주는 중개자이자, 중생들을 교화하여 불국으로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하는, 중생의 지도자로서의 관음의 이미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화면 하단에는 각양각색의 위난에 빠진 중생의 모습과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난 관음의 화신을 그렸다. 화면 중앙을 차지한 관음의 모습과 나머지 하단부에 가득한 관음의 여러 가지 변화신(變化身)은 그를 부르는 중생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관음의 자비가 한눈에 그대로 들어오도록 시각적으로 재현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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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삼십이응신도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만나게 되는 고통, 즉 재난에 빠지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였을 때, 한마음으로 관음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관음 신앙의 내용이다. 코앞에 닥친 현세의 고통 속에서 관음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보통 사람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갔음이 틀림없다.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심지어 구원에 이르는 방법이 단지 관음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쉬운 방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관음 신앙은 동아시아에 소개되자마자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사람들은 곧 눈에 보이는 숭배 대상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중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불교 미술을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관음상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세간의 소리를 본다(觀世音)는 관세음보살을 조형화하였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관음보살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만일 어떤 보살상을 보면서 이를 관음보살로 믿고 숭배하였다면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보살상의 외적인 특징 가운데 그것을 관음이라고 인식시키는 징표들이 있었을 것이고, 이러한 징표들은 일종의 시 각적인 약속이 되었다. 미술사에서는 이러한 시각적 약속을 도상(圖像)이라고 한다. 도상은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사이에 다양한 시각적 약속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가 있어야 의미가 있다. 예컨대 관음보살의 도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머리에 쓴 보관(寶冠)에 표현된 작은 부처상인 화불(化佛)이다. 때로는 손에 정병(淨甁)을 들고 있는 것도 관음의 상징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특정한 징표나 상징이 있는 것을 관음보살로, 또 다른 어떠한 특징을 갖춘 것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이라고 믿게 만드는 시각적인 약속이 있었기에 불교에서는 무수한 신상(神像)을 만들 수 있었고, 이를 기초로 삼아 불교의 판테온(Pantheon)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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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의 화불

삼국시대에 보살상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기 시작한 것은 관음보살과 미륵보살이었다. 그런데 미래불인 미륵보살은 지금이 아니라 머나먼 미래에 이 땅에 내려와 중생들을 구원할 것을 맹세한 보살이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미륵 신앙은 내세와 관련된 신앙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현세 구복의 불교 미술을 다루는 이 글에서는 관음보살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삼국시대의 관음상은 명문을 보고 관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 도상적 특징을 보고서 관음으로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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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 관음보살 입상

삼국시대 관음의 도상으로 통상 거론되는 것은 보관의 화불과 손에 든 정병(淨甁)이다. 충남 부여 군수리의 목탑지에서 발견된 보살 입상은 아직까지 머리에 쓴 보관에 화불이 표현되지 않아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말해 준다. 납석(蠟石) 혹은 활석(滑石)으로 만든 작은 불좌상(佛坐像)과 함께 발견된 이 보살상은 왼손에 하트 모양의 심엽형(心葉形)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주를 들고 있는 보살상을 관음으로 단정 지을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심엽형 보주를 들고 있는 보살상 중에 ‘관음’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것이 적지 않다.39) 보주를 들고 있는 보살상 가운데 관음 이외에 다른 보살의 이름이 새겨진 예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보주를 들고 있다면 관음보살로 만들었다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군수리 출토 보살상은 양식적으로 좀 더 오래된 고식(古式) 전통을 따르고 있어서 어깨에 걸친 스카프 같은 것이 X 자로 교차되었다. 이를 천의(天衣)라 하는데 X 자 천의는 장천 1호분과 같은 고구려 고분 벽화와 고구려 영역에서 발견된 금동 보살상, 평양 원오리 사지에서 출토된 소조 보살상 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이른 시기의 특징이다. 천의를 빼면 목걸이나 팔찌 같은 장신구도 없고, 화려한 보관을 쓰지도 않았다. 꾸미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관음상은 삼국시대 관음 조상의 초기 단계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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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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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조 보살상

오늘날 알려진 것과 같은 모습의 정형화된 관음의 도상을 보여 주는 것은 서울 삼양동에서 발견된 관음보살상이다. 배를 약간 내민 것처 럼 보이는 자그마한 보살상은 머리에 세 개의 화판으로 이루어진 보관을 썼다. 보관에는 부처님의 화신인 작은 화불이 양각되었고 손에는 제법 큰 정병을 들고 있다. 이처럼 보관의 화불과 정병은 전형적인 관음보살의 도상적 특징이다. 이 보살상은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관음상 가운데 이와 같은 도상을 보여 주는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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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 관음보살 입상

보관에 화불을 표현하는 것은 원래 인도의 보살상에서 시작되었다. 간다라(Gandhara)에서는 터번(turban)에 화불이 있는 보살상을 만들었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보살이 다음 생에 태어나면 깨달음을 얻어 불타가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는 징표로 화불이 표현되었다는 것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간다라와 서역의 보살상에서 화불이 표현된 것은 대개 미륵보살로 판단하지만 6세기 이후 중국을 중심으로 화불이 표현된 관음상이 만들어졌다. 아마도 여기에는 5세기경에 한문으로 번역된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관음보살에 대한 신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경전은 앞에서 거론한 『법화경』 외에 『관무량수경』을 비롯한 아미타 관계 경전과 『화엄경(華嚴經)』, 『천수경(千手經)』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관무량수경』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경전 중에 무량수불(無量壽佛), 즉 아미타불(阿彌陀佛)의 협시(夾侍) 보살로 관음과 세지보살(勢至菩薩)을 들고, 이들의 외형을 설명한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관음보살은 머리를 위로 묶고 화불이 있는 보관을 쓴 모습으로 나타난다. 『관무량수경』의 이러한 서술에 따라 보관에 화불이 있는 보살상은 관음보살이라는 것이 오랫동안 통설로 믿어졌다. 그러나 화불이 표현된 관음상은 생각보다 늦은 6세기 중엽경 중국에 등장하기 시작하며, 우리나라의 조각 중에서는 삼양동 출토 관음상보다 제작 시기가 올라가는 예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삼양동 관음보살상은 군수리 출토 관음보살상에 비하면 화 불이나 정병 등 새로 유입된 요소들을 수용하여 만든 조각이다. 또 양식적인 옆면에서도 새로운 점들이 보이는데, 천의가 두 줄로 짧게 U 자 모양을 만들며 흘러내린 것도 군수리 출토 관음상에서 X 자 모양으로 내려뜨린 것보다 새로운 방식이다. 삼양동 관음보살상은 얼굴이 지나치게 크고, 상반신에 입체감이나 양감이 결여되어서 전체 비례라든가, 사실성 면에서 얼핏 보기에는 엉성하게 조각되었지만, 나름대로 그 시대의 최신 유행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도상적으로나 양식적인 면에서 6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관음보살상이 출토된 삼양동이 속해 있는 서울 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각축을 벌이던 한강 유역에 자리하고 있어서 7세기 전반에 어느 나라에 속하였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삼양동 관음보살상을 제작한 나라도, 제작 목적도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세속의 온갖 염원을 자비로운 관음보살에게 빌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관음보살이 부처가 못 된 까닭 : 신동아

관음보살이 부처가 못 된 까닭 : 신동아


환상극장②
관음보살이 부처가 못 된 까닭


윤채근 단국대 교수
입력2020-11-07 

윤채근 단국대 교수가 우리 고전에 기록된 서사를 현대 감성으로 각색한 짧은 이야기를 연재한다. 역사와 소설,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져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우주는 권태롭고 나른했다. 누군가는 성불해 부처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중생에 머물러 삶의 고해를 끝없이 떠돌아야 했지만, 적어도 그들은 그 나름대로 신나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몸으로,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채, 인간 세계의 언저리에서 구경꾼 노릇하는 건 지겨운 일이었다.

참다못한 관음은 어느 날 석가여래에게 하소연했다.

“대중을 구제한다는 구실로 저들의 비밀을 엿보는 삶이 짜증납니다. 게다가 시간에 쫓기다 보면 엉뚱한 자를 성불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제가 하는 일에 자신을 잃은 데다, 인간들 돕는 이 짓에도 점점 염증이 나는군요. 대답해 주소서. 제가 왜 이 일을 계속해야만 합니까?”

끝이 없는 열반에 들어 깨달음의 환희에 잠겨 있던 여래가 느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자리를 비워놓을 순 없지 않으냐? 관음 노릇도 업보이니만큼, 네 스스로 그 업을 풀어야 할 게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넌 관음 아니냐? 인간 세상 경험은 나보다 풍부하고, 지혜로 치자면 우주 제일의 보살이렷다! 꾀를 내어보아라.”

생각에 잠겨 도솔천을 떠돌던 관음은 자기 자리를 물려줄 적당한 사람을 물색하기로 결심했다. 사바세계 어딘가에는 인간도 싫고 부처도 싫어 관음보살이 되고 싶은 자 한 명 정도는 필시 있을 법했다. 쾌재를 부른 관음은 서둘러 인간계로 복귀했다.



관음의 권태신라 성덕왕 재위 8년째 되던 해 사월 초파일, 후계자를 찾는 데 실패를 거듭하던 관음은 지친 발걸음으로 반도 남단 백월산 주변을 헤매고 있었다. 영험한 길지로 소문난 백월산 주변에는 불자들이 수행하는 암자가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가운데 어딘가에는 관음보살의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백월산 북쪽 기슭에서 수행하던 달달박박이 정체 모를 처녀의 방문을 받은 건 초저녁 무렵이었다. 길을 잃었다는 처녀는 다짜고짜 하룻밤 묵어가겠다며 떼를 썼다. 그녀 몸에서 풍겨오는 미묘한 냄새와 기품 있는 말투에 흥미를 느낀 박박은 우선 처녀를 들여 방에 앉히고 물었다.

“보아하니 귀한 댁 처자이신 듯하온데, 홀몸으로 이 깊은 산중엔 무슨 까닭이신지?”

봉긋하게 솟은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교태를 부린 처녀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서라벌의 재미없는 삶에 진력났지 뭐예요. 시종을 데리고 남쪽 바닷가를 떠돌며 놀다 혼자 길을 잘못 들었답니다. 자비를 베풀어 하룻밤만 재워주셔요.”

염주를 쥔 손마디에 잔뜩 힘을 준 박박이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서라벌은 어쩌다 그리 재미없어지셨습니까?”

바싹 다가앉은 처녀가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했다.

“왕이 문제예요. 나라를 통째로 바꾸려고 하잖아요. 사람 이름과 땅 이름을 죄다 당나라식으로 고쳐 쓰게 하고 있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유학을 국교로 삼아 예의범절을 강요하는데, 아휴 숨도 못 쉴 지경이랍니다.”

“그거야 그분이 왕권을 강화하고 싶은 게지요. 귀족들 힘만 꺾으면 서라벌은 도로 불국토가 될 겁니다.”

“아니에요! 왕은 우리 귀족을 아예 짓뭉갤 심산이에요. 서라벌엔 이제 저랑 놀아줄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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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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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1025년경 중국(북송)에서 제작된 관세음보살 목상
1025년경 중국(북송)에서 제작된 관세음보살 목상
산스크리트어अवलोकितेश्वर 아왈로키테슈와라
중국어聖觀音
일본어聖観音しょうかんのん 쇼칸논[*]
한국어관세음보살
몽골어ᠨᠢᠳᠦ ᠪᠡᠷ
ᠦᠵᠡᠭᠴᠢ
 미그지드 잔라이식
태국어พระอวโลกิเตศวรโพธิสัตว์
티베트어སྤྱན་རས་གཟིགས་ 쩬레식
베트남어Quán Thế Âm Bồ-tát
숭배 정보
종파대승불교밀교
속성대자대비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산스크리트어अवलोकितेश्वर avalokiteśvara ‘모든 것을 내려다보시는 지배자’)은 불교의 보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보살 중 하나로, 석가모니의 입적 이후 미륵이 출현할 때까지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지켜주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보살이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광세음보살(光世音菩薩), 관세자재보살(觀世自在菩薩), 관세음자재보살(觀世音自在菩薩), 또는 

줄여서 관음보살이나 관음(觀音) 등으로도 불린다. 


중국에서는 남해관음(南海觀音), 남해고불(南海古佛)이라고도 불린다. 모든 부처의 연민(compassion)이 구체화된 화신이며,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현신으로 보고 그를 받든다.

설명[편집]

셀 수 없는 항하사겁(恒河沙劫)전에, 관세음(觀世音)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셨을 때, 관세음보살에게 '듣고 생각하고 닦는 지혜[聞思修]로 삼마지(三摩地)에 들어가라'고 가르쳐주었다. '환술(幻術)처럼 듣는 성품을 훈습하여 듣는 성품을 수행하는 금강삼매[如幻聞薰聞修金剛三昧]'라고도 한다.(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여환문훈문수금강삼매는 여환삼마지, 여환삼매라고도 한다.

각 언어별 명칭[편집]

산스크리트어한국어한자비고
Aryavalokitesvara관세음보살觀世音신성한 관세음보살보살의 기본형태
Ekādaśamukha십일면관음十一面얼굴이 11개인 관세음보살모든 것을 가르침
Sahasra-bhuja Sahasra-netra천수천안千手千眼천개의 팔, 천개의 눈을 가진 관세음보살모든 것을 보고 모든 일을 도와줌
Cintāmani-cakra여의륜관음如意輪소원을 들어주는 관세음보살여의주를 가짐
Hayagrīva마두관음馬頭말의 얼굴을 가진 관세음보살화난 모습
Cundi'준제관음准提어머님을 상징하는 준제관음보살여덟개의 손이 있으며, 깨끗한 모성을 상징
Amoghapāśa불공견색관음不空羂索중생을 건져 제도
Bhrkuti
Pāndaravāsinī白衣
Parnaśabarī
Rakta Shadaksharī
Śvetabhagavatī
Udaka-śrī

관련서적[편집]

  • Alexander Studholme: The Origins of Om Manipadme Hum. Albany 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2 ISBN 0-7914-5389-8
  • Kuan-Yin: The Chinese Transformation of Avalokitesvara (2001) by Chün-fang Yü, ISBN-13: 978-0231120296, Columbia University Press
  • Buddha in the Crown: Avalokitesvara in the Buddhist Traditions of Sri Lanka (1999) by James P. McDermott, Journal of the American Oriental Society119 (1): 195-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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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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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o infobox cinema.png
관세음보살
Goddess Of Mercy
감독최인현
각본신봉승
제작이우석
원작해곡
출연김정하, 유영국, 황해
촬영유재형
편집김희수
음악황문평
개봉일1978년 5월 25일
시간120분
국가한국
언어한국어

"관세음보살"(Goddess Of Mercy)은 한국에서 제작된 최인현 감독의 1978년 드라마 영화이다. 김정하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이우석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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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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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asarpana Lokesvara.jpg

성관음(聖觀音), 아발로키테슈바라(Avalokiteśvara)는 불교에서 모든 붓다후드의 연민을 내재한 보살을 말한다. 108개의 아바타라가 있으며 그 중 저명한 아바타라는 연화수보살(Padmapāṇi)이다.

이 용어의 최초의 번역은 관자재(觀自在)였다. 특히 쿠마라지바 등 일부 중국 번역가들은 관세음(觀世音)으로 번역하는 것을 선호한다. 아발로키테슈바라의 원래 형태는 15세기 산스크리트어에 나타난다.[1]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 Studholme, Alexander (2002). 《The Origins of Om Manipadme Hum》. Albany 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ISBN 0-7914-5389-8.

각주[편집]

  1.  Studholme p. 52-57.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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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alokiteśv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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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alokiteśvara
Khasarpana Lokesvara.jpg
Avalokiteśvara holding a lotus flower. NālandāBiharIndia, 9th century CE.
Sanskritअवलोकितेश्वर
(IASTAvalokiteśvara)
Burmeseလောကနတ်
Lokanat (IPA: [lɔkənaʔ])
Chinese觀自在菩薩, 觀世音菩薩 or 觀音菩薩
(PinyinGuānzìzài PúsàGuānshìyīn Púsà or Guānyīn Púsà
(CantoneseGun1 Zi6 Zoi6 Pou4 Saat3Gun1 Sai3 Jam1 Pou4 Saat3 or Gun1 Jam1 Pou4 Saat3)
Japanese観自在菩薩かんじざいぼさつ, 観世音菩薩かんぜおんぼさつ or 観音菩薩かんのんぼさつ
(romajiKanjizai BosatsuKanzeon Bosatsu or Kannon Bosatsu)
Khmerអវលោកិតេស្វរៈ, អវលោកេស្វរៈ, លោកេស្វរៈ
(’âvôloŭkĕtésvâreă’âvôloŭkésvâreăLoŭkésvâreă)
Korean관세음보살
觀世音菩薩
(RRGwanseeum Bosal)
Mongolianᠨᠢᠳᠦ ᠪᠡᠷ
ᠦᠵᠡᠭᠴᠢ
Thaiพระอวโลกิเตศวรโพธิสัตว์ Phra Avalokitesuan
Tibetanསྤྱན་རས་གཟིགས་

Wylie: spyan ras gzigs
THL: Chenrézik
VietnameseQuán Thế Âm Bồ Tát, 觀世音菩薩
Quán Tự Tại Bồ Tát, 觀自在菩薩
Quan Âm Bồ Tát, 觀音菩薩
Phật Bà Quan Âm, 佛婆觀音
Information
Venerated byMahayanaVajrayanaTheravadaConfucianism TaoismChinese Folk Religion
AttributesCompassion
P religion world.svg Religion portal

In BuddhismAvalokiteśvara ( Sanskrit: अवलोकितेश्वर /ˌʌvəlkɪˈtʃvərə/[1]) is bodhisattva who embodies the compassion of all Buddhas

He has 108 avatars; one notable avatar being Padmapāṇi, the one who holds the lotus (padma). This bodhisattva is variably depicted, described and portrayed in different cultures as either male or female.[2] In Tibet, he is known as Chenrezig. In ChinaTaiwan and other Chinese communities, Avalokiteśvara has evolved into the somewhat different female figure Guanyin or Guanshiyin, also known as Kannon or Kanzeon in Japan, Gwanseum in Korea and Quán Thế Âm in Vietnamese. In the Kathmandu valley, this figure is known as Jana Baha Dyah, Karunamaya or Seto Machindranath. He is known as Natha Deviyo in Sri Lanka and Lokanatha In Myanmar(Burma). In Thailand and Cambodia, he is called as Lokesvara.

Etymology[edit]

The name Avalokiteśvara combines the verbal prefix ava "down", lokita, a past participle of the verb lok "to notice, behold, observe", here used in an active sense; and finally īśvara, "lord", "ruler", "sovereign" or "master". In accordance with sandhi (Sanskrit rules of sound combination), a+īśvara becomes eśvara. Combined, the parts mean "lord who gazes down (at the world)". The word loka ("world") is absent from the name, but the phrase is implied.[3] It does appear in the Cambodian form of the name, Lokesvarak.

The earliest translation of the name Avalokiteśvara into Chinese by authors such as Xuanzang was as Guānzìzài (Chinese觀自在), not the form used in East Asian Buddhism today, Guanyin (Chinese觀音). 

It was initially thought that this was due to a lack of fluency, as Guanyin indicates the original Sanskrit form was instead Avalokitasvara, "who looked down upon sound", i.e., the cries of sentient beings who need help.[4] 

It is now understood Avalokitasvara was the original form,[5][6] and is also the origin of Guanyin "Perceiving sound, cries". This translation was favored by the tendency of some Chinese translators, notably Kumārajīva, to use the variant 觀世音 Guānshìyīn "who perceives the world's lamentations"—wherein lok was read as simultaneously meaning both "to look" and "world" (Sanskrit lokaChinesepinyinshì).[4] 

The original form Avalokitasvara appears in Sanskrit fragments of the fifth century.[7]

This earlier Sanskrit name was supplanted by the form containing the ending -īśvara "lord"; but Avalokiteśvara does not occur in Sanskrit before the seventh century.

The original meaning of the name fits the Buddhist understanding of the role of a bodhisattva. 

The reinterpretation presenting him as an īśvara shows a strong influence of Hinduism, as the term īśvara was usually connected to the Hindu notion of Vishnu (in Vaishnavism) or Śiva (in Shaivism) as the Supreme Lord, Creator and Ruler of the world. Some attributes of such a god were transmitted to the bodhisattva, but the mainstream of those who venerated Avalokiteśvara upheld the Buddhist rejection of the doctrine of any creator god.[8]

14th Dalai Lama, at his enthronement ceremony, February 22, 1940 in Lhasa, Tibet

In Sanskrit, Avalokiteśvara is also referred to as Lokeśvara ("Lord of the World"). In Tibetan, Avalokiteśvara is Chenrézig, (Tibetanསྤྱན་རས་གཟིགས་) and is said to emanate as the Dalai Lama,[9] the Karmapa[10][11] and other high lamas. An etymology of the Tibetan name Chenrézik is spyan "eye", ras "continuity" and gzig "to look". This gives the meaning of one who always looks upon all beings (with the eye of compassion).[12]



Origin[edit]

Avalokiteśvara painting from a Sanskrit palm-leaf manuscriptIndia, 12th century.

Mahayana account[edit]

According to the Kāraṇḍavyūha Sūtra, the Sun and Moon are said to be born from Avalokiteśvara's eyes, Shiva from his brow, Brahma from his shoulders, Narayana from his heart, Sarasvati from his teeth, the winds from his mouth, the Earth from his feet, and the sky from his stomach.[13] In this text and others, such as the Longer Sukhavativyuha Sutra, Avalokiteśvara is an attendant of Amitabha.[14]

Four-armed Tibetan form of Avalokiteśvara.

Some texts which mention Avalokiteśvara include:

We come across the name Avalokiteshvara in the Avatamsaka Sutra, a Mahayana scripture that precedes the Lotus Sutra.[15] 

On account of its popularity in Japan, and as a result of the works of the earliest Western translators of Buddhist Scriptures, the Lotus, however, has long time been accepted to be the earliest literature teaching about the doctrines of Avalokiteśvara. These are found in Chapter 25 of the Lotus Sutra: Universal Gate of Bodhisattva Avalokiteśvara (Chinese觀世音菩薩普門品). This chapter is devoted to Avalokiteśvara, describing him as a compassionate bodhisattva who hears the cries of sentient beings, and who works tirelessly to help those who call upon his name. A total of 33 different manifestations of Avalokiteśvara are described, including female manifestations, all to suit the minds of various beings. The chapter consists of both a prose and a verse section. This earliest source often circulates separately as its own sutra, called the Avalokiteśvara Sūtra (Chinese觀世音經pinyinGuānshìyīn jīng), and is commonly recited or chanted at Buddhist temples in East Asia.[16]

When the Chinese monk Faxian traveled to Mathura in India around 400 CE, he wrote about monks presenting offerings to Avalokiteśvara.[17] When Xuanzang traveled to India in the 7th century, he provided eyewitness accounts of Avalokiteśvara statues being venerated by devotees from all walks of life: kings, to monks, to laypeople.[17]

Avalokiteśvara / Padmapani, Ajanta CavesIndia

In Chinese Buddhism and East Asia, Tangmi practices for the 18-armed form of Avalokiteśvara called Cundī are very popular. The popularity of Cundī is attested by the three extant translations of the Cundī Dhāraṇī Sūtra from Sanskrit to Chinese, made from the end of the seven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the eighth century.[18] In late imperial China, these early esoteric traditions still thrived in Buddhist communities. Robert Gimello has also observed that in these communities, the esoteric practices of Cundī were extremely popular among both the populace and the elite.[19]

In the Tiantai school, six forms of Avalokiteśvara are defined. Each of the bodhisattva's six qualities are said to break the hindrances respectively of the six realms of existence: hell-beings, pretas, animals, humans, asuras, and devas.

And also according to prologue of Nīlakaṇṭha Dhāraṇī Sūtra, Gautama Buddha told a disciple Ānanda that Avalokiteśvara had become a Buddha from countless previous incarnations ago, alias "Wisdom of Right Dharma Tathāgata", also had Ten titles of Buddha include Tathāgata (Thus Come One), Arhat (One Worthy of Offerings), Saṃyak-saṃbuddha (One of Proper and Universal Knowledge), Vidyacaraṇa-Saṃpaṇṇa (One Perfect in Clarity and Practice), Sugata (Well Gone One), Lokavid (Unsurpassed One Who Understands the World, Anuttarā (Unsurpassed Knights), Purusa-damya-sarathi (Taming Heroes), Sastā deva-manuṣyanam (Teacher of Gods and Humans), Buddha-lokanātha or Bhagavat (World-Honored One). Because of his great compassion, because he wanted to create proper conditions for all the Bodhisattva ranks, because he wanted to bring happiness and peacefulness to sentient living beings, he became a Bodhisattva, the title of Quan Avalokiteshvara, often abiding in the Sahā world. At the same time, Avalokiteśvara is also the attendant of Amitabha Buddha, assisting Amitabha Buddha to teach the Dharma in his Pure Land.

Theravāda account[edit]

Bronze statue of Avalokiteśvara from Sri Lanka, ca. 750 CE

Veneration of Avalokiteśvara Bodhisattva has continued to the present day in Sri Lanka:

In times past both Tantrayana and Mahayana have been found in some of the Theravada countries, but today the Buddhism of Ceylon, Burma, Thailand, Laos, and Cambodia is almost exclusively Theravada, based on the Pali Canon. The only Mahayana deity that has entered the worship of ordinary Buddhists in Theravada countries is Bodhisattva Avalokitesvara. In Ceylon he is known as Natha-deva and mistaken by the majority for the Buddha yet to come, Bodhisattva Maitreya. The figure of Avalokitesvara usually is found in the shrine room near the Buddha image.[20]

In more recent times, some western-educated Theravādins have attempted to identify Nātha with Maitreya Bodhisattva; however, traditions and basic iconography (including an image of Amitābha Buddha on the front of the crown) identify Nātha as Avalokiteśvara.[21] Andrew Skilton writes:[22]

... It is clear from sculptural evidence alone that the Mahāyāna was fairly widespread throughout [Sri Lanka], although the modern account of the history of Buddhism on the island presents an unbroken and pure lineage of Theravāda. (One can only assume that similar trends were transmitted to other parts of Southeast Asia with Sri Lankan ordination lineages.) Relics of an extensive cult of Avalokiteśvara can be seen in the present-day figure of Nātha.

Avalokiteśvara is popularly worshiped in Myanmar, where he is called Lokanat or lokabyuharnat, and Thailand, where he is called Lokesvara. The bodhisattva goes by many other names. In Indochina and Thailand, he is Lokesvara, "The Lord of the World." In Tibet he is Chenrezig, also spelled Spyan-ras gzigs, "With a Pitying Look." In China, the bodhisattva takes a female form and is called Guanyin (also spelled Kwan Yin, Kuanyin or Kwun Yum), "Hearing the Sounds of the World." In Japan, Guanyin is Kannon or Kanzeon; in Korea, Gwan-eum; in Vietnam, Quan Am.[23]

Wood carving of Lokanat at Shwenandaw MonasteryMandalayBurma

Modern scholarship[edit]

Avalokiteśvara is worshipped as Nātha in Sri Lanka. Tamil Buddhist tradition developed in Chola literature, such as in Buddamitra's Virasoliyam , states that the Vedic sage Agastya learnt Tamil from Avalokiteśvara. The earlier Chinese traveler Xuanzang recorded a temple dedicated to Avalokitesvara in the South Indian Mount Potalaka, a Sanskritzation of Pothigai, where Tamil Hindu tradition places Agastya having learnt the Tamil language from Shiva.[24][25][26] Avalokitesvara worship gained popularity with the growth of the Abhayagiri vihāra's Tamraparniyan Mahayana sect.

Pothigai Malai in Tamil Nadu, proposed as the original Mount Potalaka in India

Western scholars have not reached a consensus on the origin of the reverence for Avalokiteśvara. Some have suggested that Avalokiteśvara, along with many other supernatural beings in Buddhism, was a borrowing or absorption by Mahayana Buddhism of one or more deities from Hinduism, in particular Shiva or Vishnu. This seems to be based on the name Avalokiteśvara.[7]

On the basis of study of Buddhist scriptures, ancient Tamil literary sources, as well as field survey, the Japanese scholar Shu Hikosaka proposes the hypothesis that, the ancient mount Potalaka, the residence of Avalokiteśvara described in the Gaṇḍavyūha Sūtra and Xuanzang’s Great Tang Records on the Western Regions, is the real mountain Pothigai in AmbasamudramTirunelveliTamil Nadu-Kerala border.[27] Shu also says that mount Potalaka has been a sacred place for the people of South India from time immemorial. It is the traditional residence of Siddhar Agastya, at Agastya Mala. With the spread of Buddhism in the region beginning at the time of the great king Aśoka in the third century BCE, it became a holy place also for Buddhists, who gradually became dominant as a number of their hermits settled there. The local people, though, mainly remained followers of the Tamil Animist religion. The mixed Tamil-Buddhist cult culminated in the formation of the figure of Avalokiteśvara.[28]

The name Lokeśvara should not be confused with that of Lokeśvararāja, the Buddha under whom Dharmakara became a monk and made forty-eight vows before becoming Amitābha.

Hindu tradition[edit]

In Hindu tradition, he has been depicted as an emanation of Shiva.[29]

Mantras and Dharanis[edit]

OṂ MAŅI PADME HǕṂ. The six syllable mantra of Avalokiteśvara written in the Tibetan alphabet.

Mahāyāna Buddhism relates Avalokiteśvara to the six-syllable mantra oṃ maṇi padme hūṃIn Tibetan Buddhism, due to his association with this mantra, one form of Avalokiteśvara is called Ṣaḍākṣarī "Lord of the Six Syllables" in Sanskrit. Recitation of this mantra while using prayer beads is the most popular religious practice in Tibetan Buddhism.[30] The connection between this famous mantra and Avalokiteśvara is documented for the first time in the Kāraṇḍavyūhasūtra. This text is dated to around the late 4th century CE to the early 5th century CE.[31] In this sūtra, a bodhisattva is told by the Buddha that recitation of this mantra while focusing on the sound can lead to the attainment of eight hundred samādhis.[32] The Kāraṇḍavyūha Sūtra also features the first appearance of the dhāraṇī of Cundī, which occurs at the end of the sūtra text.[18] After the bodhisattva finally attains samādhi with the mantra "oṃ maṇipadme hūṃ", he is able to observe 77 koṭīs of fully enlightened buddhas replying to him in one voice with the Cundī Dhāraṇī: namaḥ saptānāṃ samyaksaṃbuddha koṭīnāṃ tadyathā, oṃ cale cule cunde svāhā.[33]

Another mantra for Avalokiteśvara commonly recited in East Asian Buddhism is Om Arolik Svaha. In Chinese, it is pronounced Ǎn ālǔlēi jì suōpóhē (唵 阿嚕勒繼 娑婆訶). In Korean, it is pronounced Om aroreuk Ge Sabaha (옴 아로늑계 사바하). In Japanese, it is pronounced On arori kya sowa ka (おん あろりきゃ そわか).

The Nīlakaṇṭha Dhāraṇī is an 82-syllable dhāraṇī for Avalokiteśvara.

Shrine to the Thousand-Hand Guanyin (Qianshou Guanyin) and Eleven-Headed Guanyin (Shiyimian Guanyin) on Mount Putuo Guanyin Dharma Realm in Zhejiang, China
Shrine to the Thousand-Hand Guanyin (Qianshou Guanyin) and Eleven-Headed Guanyin (Shiyimian Guanyin) on Mount Putuo Guanyin Dharma Realm in Zhejiang, China

Thousand-armed Avalokiteśvara[edit]

One prominent Buddhist story tells of Avalokiteśvara vowing never to rest until he had freed all sentient beings from saṃsāra. Despite strenuous effort, he realizes that many unhappy beings were yet to be saved. After struggling to comprehend the needs of so many, his head splits into eleven pieces. Amitābha, seeing his plight, gives him eleven heads with which to hear the cries of the suffering. Upon hearing these cries and comprehending them, Avalokiteśvara tries to reach out to all those who needed aid, but found that his two arms shattered into pieces. Once more, Amitābha comes to his aid and invests him with a thousand arms with which to aid the suffering multitudes.[34]

The Bao'en Temple located in northwestern Sichuan has an outstanding wooden image of the Thousand-Armed Avalokiteśvara, an example of Ming dynasty decorative sculpture.[35][36]

Tibetan Buddhist beliefs[edit]

Avalokiteśvara is an important deity in Tibetan Buddhism. He is regarded in the Vajrayana teachings as a Buddha.[37]

In Tibetan Buddhism, Tãrã came into existence from a single tear shed by Avalokiteśvara.[2] When the tear fell to the ground it created a lake, and a lotus opening in the lake revealed Tara. In another version of this story, Tara emerges from the heart of Avalokiteśvara. In either version, it is Avalokiteśvara's outpouring of compassion which manifests Tãrã as a being.[38][39][40]

Manifestations[edit]

Magnificent clay images of Amoghpasha Lokesvara flanked by Arya Tara and Bhrikuti Tara enshrined at the side wing of Vasuccha Shil Mahavihar, Guita Bahi, Patan : This set of images is popular in traditional monasteries of Kathmandu ValleyNepal.

Avalokiteśvara has an extraordinarily large number of manifestations in different forms (including wisdom goddesses (vidyaas) directly associated with him in images and texts). Some of the more commonly mentioned forms include:

SanskritMeaningDescription
ĀryāvalokiteśvaraSacred AvalokitesvaraThe root form of the Bodhisattva
EkādaśamukhaEleven FacedAdditional faces to teach all in 10 planes of existence
Sahasrabhuja SahasranetraThousand-Armed, Thousand-Eyed AvalokitesvaraVery popular form: sees and helps all
CintāmaṇicakraWish Fulfilling AvalokitesvaraHolds the wish-fulfilling jewel (cintamani) and the wheel (Chakra)
HayagrīvaHorse-necked oneWrathful form; simultaneously bodhisattva and a Wisdom King
CundīExtreme purityPortrayed with many arms
AmoghapāśaUnfailing RopeAvalokitesvara with rope and net
BhṛkutiFierce-Eyed
PāndaravāsinīWhite and Pure
Parṇaśavarī ParṇaśabarīCloaked With Leaves
RaktaṣadakṣarīSix Red Syllables
ŚvetabhagavatīWhite Lord
UdakaśrīAuspicious Water

Gallery[edit]

See also[edit]

References[edit]

  1. ^ "Avalokitesvara"Random House 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
  2. Jump up to:a b Leighton, Taigen Dan (1998). Bodhisattva Archetypes: Classic Buddhist Guides to Awakening and Their Modern Expression. New York: Penguin Arkana. pp. 158–205. ISBN 0140195564OCLC 37211178.
  3. ^ Studholme p. 52-54, 57.
  4. Jump up to:a b Pine, RedThe Heart Sutra: The Womb of the Buddhas (2004) Shoemaker 7 Hoard. ISBN 1-59376-009-4 pg 44-45
  5. ^ Lokesh Chandra (1984). "The Origin of Avalokitesvara" (PDF)Indologica Taurinensia.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Sanskrit Studies. XIII (1985-1986): 189–190. Archived from the original (PDF) on June 6, 2014. Retrieved 26 July 2014.
  6. ^ Mironov, N. D. (1927). "Buddhist Miscellanea". Journal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of Great Britain and Ireland59 (2): 241–252. doi:10.1017/S0035869X00057440JSTOR 25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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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Studholme p. 30-31, 3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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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Martin, Michele (2003). "His Holiness the 17th Gyalwa Karmapa"Music in the Sky: The Life, Art, and Teachings of the 17th Karmapa. Karma Triyana Dharmachakra.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4 October 2007. Retrieved 2007-10-17.
  11. ^ "Glossary". Dhagpo Kundreul Ling.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07-08-08. Retrieved 200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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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Studholme, Alexander (2002). The Origins of Om Manipadme Hum: A Study of the Karandavyuha Sutr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pp. 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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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Baroni, Helen (2002). The Illustrated Encyclopedia of Zen Buddhism: 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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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Baruah, Bibhuti. Buddhist Sects and Sectarianism. 2008. p.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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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Skilton, Andrew. A Concise History of Buddhism. 2004. p.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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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Studholme, Alexander (2002) The Origins of Oṃ Maṇipadme Hūṃ: A Study of the Kāraṇḍavyūha sūtra: p.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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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Shaw, Miranda (2006). Buddhist Goddesses of India. Princeton University Press. p. 307ISBN 0-691-127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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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s[edit]

External links[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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