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시대의 종교- 지구종교론을 중심으로
허남진(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Ⅰ. 들어가는 말
요즘 인류세(Anthropocene) 논의가 여러 학문분야에서 눈에 띄게 논의되고 있다. 포스트휴머니즘, 신유물론은 대표적인 인류세 인문학의 흐름이다. 인류세는 지구시스템 과학자와 지질학자들이 인류의 활동이 지구 환경 변화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음을 의미하기 위해 제안된 용어이다.
지구 시스템 과학의 대표적인 연구결과가 바로 ‘인류세’이다. 이렇게 지구시스템 과학의 등장은 지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발시켰다. 지구 시스템 과학의 사고체계는 생태적 사고에서 지구적 사고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 이렇게 지구 시스템 과학은 지구가 인간의 미래를 논의할 때 고려해야 할 하나의 실체로 드러나게 하는 등 지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하도록 이끌었다.
이제 지구는 지구위기라는 상황과 대면하면서 학문적 성찰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인류세에 대한 여러 연구들의 공통된 견해는 ‘지구’에 대한 성찰의 촉구와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와의 관계 재 정립의 요구로 집약된다. 지구위기를 초래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인간을 인간 이외의 존재들과 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하나의 연결된 세계로서 지구 시스템을 고려하여 인간 삶의 방식과 사회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세는 환경위기, 기후변화 등 부정적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인류세 논의에 등장하는 ‘지구역사(geohistory)’, ‘행성적 위기(planetary crisis)’,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재앙 (catastrophe)’ 같은 용어는 기존의 지구 환경 변화와 지속가능성 논의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강력 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지구 행성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 지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새롭게 지구와 인 간의 관계를 사유하기 위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인류세는 성찰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처럼 우리가 ‘지구’라고 부르던 우리의 복합적 거주지와의 관계를 재구성한다는 의미에서는 긍정적 인 차원도 있다. )
인간중심주의적 습관의 결과가 지구를 전지구적 환경 위기로 몰고 가버린 현재 인류세의 시대에, 최 근 ‘지구(earth)’라는 수식어가 붙은 용어들이 학계에서 눈에 띄게 사용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 다. 생태학이 생물학적 연구에서 차츰 다양한 학문적 영역으로 확대된 것처럼, 지금까지 지구는 자연과학 중심으로 분석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성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통합적 지구학이 시작된 것이다.3)
종교영역에서도 지구에 대한 성찰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구종교(Earth Religion)’, ‘지구신학(Theology of the Earth/ Theology for Earth)’이다. 본 발표는 지구종교론 이 출현하게 된 배경과 그 특징을 통해 인류세 시대 종교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인간의 조건과 지구소외
대지 혹은 지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일찍이 하이데거, 니체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니체는 이 원론적 자연관을 거부하면서 지구를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의 토대이며 생성의 법칙이 지배하는 장 소로 이해했다. ) 그러나 지구에 대한 절대 의존적인 관계는 점차 이루어진 상업주의, 산업화, 기술 화를 거쳐 전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하이데거에 의하면, 형이상학의 역사를 통 해 대지는 인간의 삶의 근거로부터 점차 인간을 위한 거대한 재료로 전락하게 되고, 지구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점차 부정되고 왜곡되며, 망각되어 온 것이다. )
데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는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를 ‘지구’를 인문학의 범 주로 등장시킨 인물로 소개한다. ) 하이데거는 지구를 철학적 범주로 설정하면서 자신의 존재론과 연결시켜 지구를 성찰한다. 그에게 ‘지구(Erde)’는 흙과 지구 모두를 담고 있는 함축적 의미로서 생 명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조건을 규정하는 것이다. ) 그는 지구를 “어딘가에 퇴적된 질료 덩어리 로서의 지층이라든가, 혹은 천체에 대한 천문학적 관념과 연관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어 생 명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설명하면서 인간이 거주하려는 시도의 근거였음을 강조한다. ) 그래서 세계는 지구로부터 떠날 수 없다. 세계와 지구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결코 분리되지 않는 다 는 것이다. 하이데거에게 ‘거주’란 인간이 지구 위에서 땅을 딛고 실제로 존재하는 양상을 의미한 다. 이를 지구, 하늘, 신(성스러운 것), 인간이라는 ‘사방’(das Geviert)개념을 통해 논의한다. 여기 서 지구는 “하천, 암석, 식물 그리고 동물을 돌보고 보호하면서 건립하며 떠받치고 있는 것, 즉 자 양분을 공급하며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으로 만물의 어머니로 사유되고 있다. ) 그는 사방은 유기 적 관계로 사방을 소중히 보살피는 것이 거주하는 것이라 말한다. 지구를 보살핀다는 것은 지구를 구원한다는 것이며, 이는 지구를 지배하지 않고 또한 지구를 복종케 만들지도 않는 것이다. ) 이처 럼 하이데거에게 지구는 본질적인 인간의 조건으로 사유되고 있다.
하이데거의 인간의 조건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지구소외로 이어진다. 1957년 10월 4일, 인류는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Sputnik) 1호’를 우주를 향해 발사하였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의 서론에서 “1957년 인간이 만 든 지구태생의 한 물체가 우주로 발사됐다”면서 ‘스푸트니크 1호’발사를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인 식했다. 그녀는 “기독교가 비록 지구를 눈물의 계곡이라 부르고 철학자들이 육체를 정신이나 영혼 의 감옥으로 생각하기는 했지만, 인류 역사상 어느 누구도 지구를 인간 육체의 감옥으로 생각한 적 도 없으며”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아버지인 신을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던 근대의 인간해방이 이제 모 든 피조물의 어머니인 지구를 거부하는 모습으로 보았다. 아렌트에게 지구는 인간이 별다른 노력없 이 움직이고 숨 쉴 수 있는 거주지를 제공하는 가장 핵심적인 인간의 조건이다. )
아렌트는 인간과 지구 사이에 생긴 거리(distance)에서 지구소외를 포착한다. 이제 인간은 인공 위성을 통해 지구를 대상으로 떼어 내어 보는 시점이 가능해 졌다. 지금까지 일체화되었던 상태에 서 관점적으로, 심리적으로 거리가 생겼다는 점에서 소외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지구 에 묶여 있는 피조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고 아르키메데스적 관점으로 지구 밖에서 지구에 묶여 있는 자연을 생각하고 다루게 된 것이다. ) 이를 아렌트는 “우리는 항상 자연을 지구 밖 우주의 한 점의 관점에서 다룬다. 아르키메데스가 서 있기를 희망했던 점에서 실제로 서지 못하고, 인간의 조 건 때문에 여전히 지구에 구속되어 있는 우리는 아르케메데스적 점에서 지구를 자유롭게 다루는 방 법을 발견했다” )고 말한다. 여기서 아렌트는 인간이 지구에 묶인 존재임에도 ‘지구소외’를 통해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파괴하고 언젠가는 지구 자체도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바로 지구 와 자연은 인간의 탐구․분석 대상이자 정복의 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다시 말해, 인간은 과학기술의 힘을 통해 어머니인 지구에서 벗어나 이제 지구의 지배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는 것이었다.15)
Ⅲ. ‘ 위기의 지구’ 와 ‘ 지구’ 에 대한 성찰
주지한 바와 같이 지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우주적 관점의 출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 주시대 개막과 더불어 지구의 위기에 대한 의식 역시 심화된다. 하이데거와 아렌트가 주장한 ‘인간 의 조건’이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1963년 레이철 카슨은 침묵의 봄 출간을 통해 인간이 만든 화학 물질인 DDT가 지구를 죽음의 행성으로 바꿀 수 있다고 경고했고, 1970년대 인류의 화석연료 소비 증가로 인해 지구가 뜨거워져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자연스럽게 전 지구적 환경운동으로 이어졌다.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희의”는 ‘오직 하나뿐인 지구’를 슬로건으로 열린 최초의 환경회의였다.
이어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정상회의(Earth Summit)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 서 삶의 터전인 지구의 통합적이며 상호의존적인 성격에 기초한 ‘리우선언’이 발표되었고, 이 ‘리우 선언’은 초기에 ‘지구헌장(Earth Charter)’으로 지칭되기도 했다. “유엔인간환경회의”가 ‘하나뿐인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경고한 회의였다면, 리우정상회의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실천적 방 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처럼 1990년대 무렵 지구 자체가 파멸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 1992년 급진적 생태운동 단체인 지구해방전선(Earth Liberation Front)이 설립된 것도 궤를 같이 한다.
당시 미국의 전 부통령이자 환경운동가인 앨 고어(Al Gore)는 위기의 지구에서 지구위기를 지 구와 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한 세 가지 변화 즉 인구증가, 과학과 기술의 혁명, 환경과 인간의 관계 설정에 대한 사고방식 등으로 인해 발생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17) 이렇게 서구에서는 지구위기문 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흐름이 지구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었다.
지구 그리고 인간과 지구의 관계에 대해 성찰한 대표적 인물은 토마스 베리이다. 대표적인 지구 신학자로 평가되고 이후 지구신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18) 그는 지금까지의 학문들은 모 두 인간이 지구를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구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지구에 대한 재성찰을 주장했다. 지구의 꿈에서 지구와 생물 그리고 인간이라는 지구의 모든 구성원이 친밀한 지구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말하면서 상호증진적인 인간과 지구의 관계의 확립을 촉구했다.19) 황혼의 사색에 서는 본격적인 지구에 대한 성찰을 시도했다. 인간은 지구시스템을 온전히 보존해야 하며, 지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지구에 대한 경외감을 발견할 것을 주장했다.20) 토마스 베리에게 지구시스템은 하이데거와 아렌트가 말했던 인간의 조건과 다름이 아니었다. 이렇게 그는 지구에 대한 성찰을 통 해 착취의 대상이 아닌 사귀어야 할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생태대(Ecozoic Era)’라 는 새로운 시대 개념을 제안하였다.21)
주지한 바와 같이, 토마스 베리는 지구위기를 지구에 대한 경외감의 상실에 찾았다. 토마스 베리에게 영향을 받은 래리 라스무쎈은 “내게 새로운 시대의 종교를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가 말하는 새로운 시대의 종교는 ‘지구를 공경하는 신앙(Earth-honoring Faith)’이다.22) 바로 이 지점에서 ‘지구종교’ 혹은 ‘지구신학’이 출발한다.
Ⅳ. 지구종교론의 양상
1. 시민종교로서 ‘ 테라폴리턴 지구 종교’ (terrapolitan earth religion)
행성(planetary)은 ‘cosmos’, ‘cosmopolitan’, ‘earth’, ‘world’ 등의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며, 최근에는 가이아영성처럼 환경운동에서, 코스모폴리턴주의(cosmopolitanism)와 연관되어 테라폴리턴(terrapolitan)의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23) 한 예로,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는 ‘행성’이 ‘글로브’를 대체하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글로벌의 주체가 아니라 행성적(planetary) 주체, 세계(worldly)의 존재가 아니라 행성적 피조물로 볼 것을 주장했다 ‘글로 브’(globe)라는 용어는 그 안에 있는 생명체들의 다양성을 단일화하는 개념으로 쓰이는 반면, ‘행 성’(planet)은 개별적인 생명체 고유의 ‘다름’(alterity)과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행성’이 보다 적합한 용어라는 것이다. ) 그래서 최근에 서구에서 ‘지구화시대’보다 ‘행성시대(planetary age)’라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화현상의 비판적 고찰, 인문과학연구39, 2020, 189-190쪽.
17) 앨 고어, 위기의 지구, 삶과 꿈, 1994, 2쪽.
18) Anne Marie Dalton, A Theology for the Earth: The Contributions of Thomas Berry and Bernard Lonergan, University of Ottawa Press, 1999.
19) 토마스 베리, 지구의 꿈, 맹영선 옮김, 대화문화아카데미, 2013, 16-17쪽.
20) 토마스 베리, 메리 엘블린 엮음, 황혼의 사색-성스러운 공동체인 지구에 대한 성찰, 박만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5, 155-162쪽.
21) 토마스 베리· 토마스 클락, 신생대를 넘어 생태대로, 김준우 옮김, 에코조익, 2006, 68쪽.
22) 래리 라스무쎈, 지구를 공경하는 신앙: 문명전환을 위한 종교윤리, 한성수 옮김, 생태문명연구소, 2017, 15-17쪽.
23) Christian Moraru. Reading for the Planet: Toward a Geomethodology,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15, p. 40
북미 종교학자 브론 테일러(Bron Taylor)는 현재 지구 종교성(Earth Religiosity)은 급진적인 환 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지구종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 다고 말한다. 테일러는 야생의 법(Wild Law) 저자 코막 컬리난(Cormac Cullinan)의 ‘지구이데올 로기(Earth ideology)’와 ‘지구민주주의(Earth democracy)’를 주장하는 생태여성학자 반다나 쉬바 (Vandana Shiva)의 ‘지구중심적 사고(Earth-centered thinking)’를 일종의 지구민족주의(earth nationalism)와 시민 지구종교(civic earth religion)로 보았다.
테일러는 이러한 지구종교를 어두운 녹색 종교(dark green religion)로 개념화한다. ) 그가 지구 종교를 ‘어두운 녹색 종교’로 개념화한 이유는 지구중심적 사유가 어스 퍼스트(Earth First)와 지구 해방전선과 같이 인간예외주의(인간혐오)로 확장될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일러는 정치학자인 대니어 듀드니(Daniel Deudney)가 제안한 ‘테라폴티턴 지구 종교 (terrapolitan earth religion)’에 주목했다. ) 듀드니는 지구헌법(Earth constitution)과 지구 민족 주의(Earth nationalism) 그리고 가이아 지구종교(Gaian Earth religion)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 듀드니는 주요 환경문제의 출현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국가중심의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 다고 지적하면서 테라폴리턴(terrapolitan) 주권을 제안한다. 지구촌의 정치적 연합의 중심적 기반 은 지구(earth/terra)이어야 하며, 지구촌(global village)의 새로운 구성에 적합한 정치적 연합은 지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테라폴리턴을 주장한다.. ) 왜냐 하면 지구는 모든 인간의 공 동의 집이라는 장소성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지구민족주의(Earth nationalism)와 함 께 그 공동 정체성을 구성하기 위해 시민종교로서 가이안 지구종교(Gaian Earth religion)제안 한 다. 듀드니의 가이안 지구종교는 토크빌의 주장에 따라, 공화주의 정치 질서에는 특정한 형태의 종 교가 필요하다는 전제에 근거하고 있다. 칼 세이건이 우주시대 개막은 지구를 정치적 국경이 없는 하나의 통일된 행성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켰다고 말한 바와 같이 ), 그는 우 주에서 촬영한 지구의 정치적 메시지는 지구가 완전히 통합된 생명영역이며 모든 인간의 집이라는 경험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에서 지구민족주의와 지구애국주의의 가능성을 본 것이 다. 듀드니는 지구민족주의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전체 지구(whole Earth)와 지구본(globe)을 비교 한다. 즉, 지구본은 국민국가를 표현하는 인공적인 정치적 경계선이 있지만 전체지구에서는 이러한 국민국가의 경계가 드러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30)
테일러는 듀드니의 생태학적 상호의존성의 강조, 집으로서 지구와 친족으로서 인간이외의 존재에 대한 정서적 연결은 짙은 녹색 종교의 전형적인 특성으로 파악한다. 특히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가 보장될 수 없다는 문제에 대해 비판한다. )
주지한 바와 같이, 듀드니의 가이아 지구종교는 테라폴리티언의 정체성의 원천으로서의 잠재적 역할에 있다. 그는 마키아벨리, 스튜어트 밀, 홉스 그리고 루소 등의 종교와 정치 관계에 대한 분석 의 공통점은 종교를 특정한 정치적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 래서 지구종교를 시민종교로서의 잠재적 역할과 지속가능한 공동 정체성의 원천으로 보고 있다. ) 또한 지구를 존중하는 행동의 동기를 부여시키는데 지구종교가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 보고 있 다.33)
애드가 모랭(Edgar Morin)과 안느 브리지트 케른(Anne Brigitte Kren)은 지구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중심(Earth-Centered)적 관점에서 지구시민(citizens of the Earth)과 지구연방(Earth Federation)을 주장한다. 이들 여기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사건과 하나의 지구라는 단위를 강조 한다.
그들은 지구에 태어난 생명은 지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생태학적 상호의존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이에 따라 지구라는 행성은 모든 인간존재들의 ‘공동의 집’, ‘모태(母胎)’ 나아가 ‘조국’이기 때문에 지구운명공동체를 이루게 된다고 논의한다. )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단 하나뿐인 지구’의 위기이다. 기술과학을 지구를 괴롭히는 원인으로 파악하면서, 이 같은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를 초월하는 지구 연합체가 구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서는 지구시민권, 지구시민의식, 지구정치여론 그리고 지구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그래서 인류를 지구시민(citizens of the Earth)로 개념화하면서 정치는 인간의 운명뿐만 아니라 지구의 운명과 변화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지구정치학’을 주장한다. 지구정치학은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의 우명과 변화까지 책임져야 하는 정치이다. 즉 인간정치, 지구적 책임정치, 다차원적이지만 전체주의적이지 않은 정치이다. 지구는 물리적, 생물학적, 인류정치학적 복합체이기 때문이다.37) 모 랭과 게른 역시 모든 인간존재와 국가를 연결하고 일치 시킬 수 있는 지구종교(Earthly religion)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연결하고 일치시키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의 어원에 착 안하여 ‘다시 연결짓다’는 종교의 본질에 접근한다. 따라서 그들이 제안하는 지구종교는 지구를 보 존하고 인간의 일체성을 완성시키며, 인간의 다양성을 보존할 수 있는 종교가 된다. ) 이것은 듀드 니의 시민종교로의 가이안 지구종교에 대한 요구와 일치한다.
2. 지구를 위한 종교(Religions for Earth)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지구화과정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이며, 모든 생명의 근원인 지구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지구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그 역시 지구는 우 리가 서있는 땅, 농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를 수 있는 땅, 천국과 대비되는 지상 생활의 서식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면서 우리의 집을 의미한다. 몰트만은 지구에 대한 성찰을 위해 제임스 러브 록의 가이아론을 끌어들인다. 그는 가이아론은 지구를 신격화하려는 시도가 아닌 인간중심주의를 종식시키고 인류를 지구 체계 전체의 삶에 통합시키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평가한다. 또한 지구를 생명체를 창조하고 다양한 형태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서식지를 만드는 유기체로 이해해야 한 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구, 자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을 지구의 피조 물로 인식한다. 그가 보기에 지구는 인간을 위한 환경이 아닌 오히려 생명을 낳고, 생명을 유지하 고, 생명에 필요한 조건을 만드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몰트만은 ‘세계종교(world religion)’에서 ‘지구종교(Earth religion)’으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지구가 존재하지 않으면 세계종교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지구종교가 되어야 하며, 인간을 전체로서 행성 지구 속에 통합 된 요소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잊혀진 생태학적 지혜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재발견하고 지구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지 구종교로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논한다. 따라서 원시적인 것으로 경시했던 자연종교를 인정하고 산 업화 이전의 지혜를 산업화 이후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40)
최근 기독교 신학에서는 전 지구적 파멸 위기에 직면하여 지구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지구신학’에 논의가 활발하다. 지구를 위한 신학(Theology for Earth)은 1954년 조셉 시틀러 (Joseph Sittler)의 「A Theology For Earth」에서 처음 등장했다. )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본격적 으로 지구신학이 논의되고 있다. 지구신학은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지구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다. 방법론적으로 모든 것은 상호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생태학적 관계에서 시작한다. 또한 지구를 생명체와의 관계성에서 생명 의 장소(topos)와 거처(oikos)로, 하느님과의 관계성에서 하느님의 장소와 거처로, 마지막으로 인간 과의 관계성 속에서 인간의 장소와 거처로서 성찰한다.42)
대표적인 지구신학자는 생태여성신학자 셀리 맥페이그(Sallie McFague)이다. 맥페이그는 신학자 의 과제는 기독교 전통의 중심 상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억압받고 있는 지구와 지구에 있는 모 든 피조물들 해방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지구신학을 제창한다.
새로운 창조 이야기를 통해 인간을 지구 위에 있는 이방인 혹은 여행자가 아닌 땅에 속한 사람 즉 지구적 존재로 이해하며, 하느님을 지구는 물론 우주 전체의 진행과정에 현존하는 분으로 이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신학은 ‘지구를 구원하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
또한 그녀는 지구 위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즉 인간은 지 구의 다른 생명체들과의 공생적 존재한다는 것이다. ) 이처럼 지구의 몸과 더불어 살아가는 몸들이 라는 은유를 통해 지구에 속해 있는 존재라는 인간관을 제시한다.45) 그래서 그에게 지구신학은 사 람들로 하여금 터전인 땅 위에 올바르고 합당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소 외받았던 억압받는 이웃들, 우리 모두를 지탱시켜 주는 지구, 그 밖의 피조물과의 올바른 관계를 정 립하는 신학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신학자 캐서린 켈러(Catherine Keller)는 지구행성의 위기에 적합한 정치신학을 재규정하기 위해 “지구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 of the earth)을 주창한다. 켈러는 지금까지 동등한 존재로 인정되지 않았던 인간이외의 존재들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존재를 회복시 켜주는 정치를 신학적으로 성찰한다. 그 연장선에서 지금의 정치와 경제제도로는 지구적 생태곤경 을 해결할 수 없다는 신학적 비판 속에서 ‘지구정치신학’을 제창한다.46)
켈러는 인간은 지구행성에서 생태적 관계 속에서 인간 이외의 존재들을 포함하는 모든 존재들과 공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지구행성과 분리될 수 없는 지구적 존재들(earthlings)임을 강조하면서 지구를 성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구는 그의 정치신학의 공간에 위치된다. 그에게 지구는 우리의 집합성의 영역을 비옥하게 하는 존재이다. 켈러는 예외주의를 비판하면서 지금까지 정치영역에서 배제된 서민이하(undercommons) 즉 정치적인 것 밑으로 떠밀어지고 자원이나 욕구, 서비스의 흐 릿한 배경으로 간주됐던 사람과 인간 이외의 존재들, 그리고 ‘지구’까지 ‘서민(commons)’으로 포함 시킨다.47) 이처럼 인간, 자연, 지구 모두를 포함한 지구 행성 전체로 공동체 의식이 확대되어야 함 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지구적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몸을 통해 물질세계와 소통하며, 그래서 몸이 속한 지구가 문제가 될 때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몸에 기반하여 작동하는 정신도 문제 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은 ‘지구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 of earth)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이다.48)
3. 지구를 모시는 종교49)
한국 개벽종교의 공통된 특징은 ‘천지’를 부모와 같은 존재로 받드는 ‘지구를 모시는 종교’라는 점에 있다. 해월 최시형은 천지를 부모와 같이 섬겨야 한다는 ‘천지부모론’을 제창했다. 물론 천지 를 부모처럼 인식하는 사유는 역전(易傳)의 ‘건칭부곤칭모(乾稱父坤稱母)’에서 확인 되듯이 고대 중국사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잠재적 가능성은 있지만 천지부모를 공경해야한다는 실천적 윤리로 까지는 확장시키지는 않았다.
해월의 천지부모론은 수운 최제우의 ‘천지은혜론’에 근거하고 있다. 수운은 동경대전 「축문」에 서 “천지가 덮고 실어주는 은혜를 느끼며, 일월이 비추어 주는 덕을 입는다”50)라고 하여 천지의 은 혜를 강조했다. 수운의 ‘천지은혜론’은 해월의 ‘천지부모론’으로 체계화된다. 해월에 의하면 천지(天地)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생존 조건이며, 만물은 천지라는 ‘포태’ 안에서 생장하는 자식과 같고, 그런 의미에서 천지는 부모와 마찬가지로 은혜롭고 공경해야 할 존재이다. ) 해월은 천지를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인간의 조건으로 이해했고, 한걸음 나아가 천지를 부모처럼 섬기 라는 천지공경의 실천윤리까지 설파했다. 이러한 천지부모론은 자연스럽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 재가 동포 즉 ‘물오동포(物吾同胞)’가 된다.
45) 샐리 맥페이그, 풍성한 생명, 장윤재· 장양미 옮김, 이화여대출판부, 2008, 209쪽.
46) 박일준, 공생의 정치신학-캐서린 켈러의 ‘ (성공)보다 나은 실패(a Failing Better)를 위한 정치신학 , 한국기독교신학논총116, 2020, 329쪽.
47) Catherine Keller, Political Theology of the Earth: Our Planetary Emergency and the Struggle for a New Public,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8, pp. 5-6. ; 박일준, 앞의 논문, 340-341 쪽.
48) 박일준, 앞의 논문, 347쪽.
49) “ 지구를 모시는 종교” 는 필자의 지구를 모시는 종교-동학과 원부교의 ‘ 천지론’ 을 중심으로(원불 교사상과 종교문화88, 2021, 155-183쪽)를
50) “ 叩感天地盖載之恩, 荷蒙日月照臨之德.” (동경대전, 축문). 이 글에서 인용하는 동경대전의 원 문과 번역은 김용휘, 최제우의 철학(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2)을 참고하였다.
52) 동학의 천지부모론은 소태산 박중빈의 천지은 교리로 이어졌다. 소태산은 천지은‧부모은․동포은․ 법률은으로 구성되고 있는 사은(四恩)을 설명하면서 천지·부모를 ‘부모 항’에, 동포·법률을 ‘형제 항’ 에 넣고 있는데, 이는 소태산 역시 “천지를 부모로 간주한다”고 하는 해월의 천지부모사상을 공감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원불교에서 ‘천지’는 “그것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은혜로운 존재로 여겨지고 있고, 모든 은혜 중에서 가장 큰 은혜로 간주되고 있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천지의 은혜를 입고(피은被恩)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은혜에 보답할 윤리적 책임이 동반되는데, 그것이 바로 원불교에서 말하는 ‘천지보은(天地報恩)’이다. ) 특히 천지의 은혜를 저버리면 벌을 받고, 천지의 은혜에 보답하면 우대를 받는다고 하는 천지배은(天地背恩)과 천지보은(天地報恩)이 설파하고 있다. 여기서 천지배은은 최근 프란치스 코 교황이 제안한 ‘생태적 죄’의 요구와 매우 유사하다.
해월이 천지부모론과 천지공경을 제시한 것처럼, 소태산은 천지은과 천지보은을 말하고 있다. )
이상과 같이 동학과 원불교의 ‘천지’를 좁은 의미의 ‘지구’로 이해하면, 동학과 원불교는 ‘지구를 모 시는 종교’라고 명명할 수 있다.
Ⅳ. 나오는 말
차크라 바르티는 인류세의 위기를 경외감의 상실에서 찾고 있다. 새로운 정치사상의 전통을 재 구축함에 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와 우리와의 관계에 경외심의 요소를 결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인간과 지구 그리고 만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 요소를 경외심으 로 보고 있다. 이는 인류세 시대에 종교가 무엇을 모색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