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2

(2) 송영숙 - 최근 정의당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정의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주의 여성인권의 문제가 사회의 큰 흐름이...

(2) 송영숙 - 최근 정의당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정의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주의 여성인권의 문제가 사회의 큰 흐름이...



최근 정의당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정의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주의 여성인권의 문제가 사회의 큰 흐름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지금까지 진보정당은 젠더문제에 대해 당위성만으로 대응해왔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도가 그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겪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진보정당에게 젠더문제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토론과 대안들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4월 총선때 중식이 문제, 강남역 살인사건, 최근의 정의당 논평과 매갈리아 문제 등 젠더문제가 계속해서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고 그때마다 정의당은 대답과 대책을 요구받고 있다.
그 때마다 정의당이 시련을 받고 있는 것은 지도부의 문제만도 아니고 문예위의 문제만도 아니다. 젠더문제에 대해 당위성이상으로 논의를 진전시켜온 적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의 요구와 흐름에 직면하여 적절한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던 거다.
나는 지금의 사태를 긍정적으로 본다.
젠더문제가 새삼스럽고 새로운 문제는 아니지만 이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고민에 빠져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것이 등장할 때는 항상 시끄럽고 불편한 법이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논의의 장에 젠더문제가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다소 설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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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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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 변화의 흐름. 딸 보면서 많이 느껴요. 그리고 정치인 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서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할 듯.
송영숙 맞아요^^
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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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당 홈페이지 게시판이 그리 살아있는 정당은 정의당밖에 없을 듯
Hojoong Kang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좋지만 모양새는 영.... 토론을 전쟁으로 의식하는 현장에서 뭘 기대할 수 있을지.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경멸 의식이 깔려 있으니 끼어들기 싫어요.
송영숙 큰가방님의 이런 모습도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태도입니다
Hojoong Kang 어떤 태도?
송영숙 위글에 쓰신 태도 ㅎㅎ
Hojoong Kang 모르겄는디???? ㅋㅋㅋ 난 토론은 해도 개싸움은 안할거유. 이런 태도???
Hojoong Kang 그런데 게시판 들여다 보면 정이 떨어져요. 시간이 아깝고.
송영숙 개싸움이라 표현할 수도 있고 격렬한 싸움이라 표현할 수도 있죠. 문제를 바라보는 입장이 반영된 표현이죠
Hojoong Kang 송영숙 주제 자체에 대한 경멸이 아니고 편협함에 대한 답답함을 말하는거에요. 생산적인 경론 내기는 힘들겠구나. 이 동네에서. 이런 생각이 든다구요.
송영숙 당장은 생산적 결론이 안나오겠죠. 그렇게 쉬운 거였으면 이렇게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오랜 세월 변이들이 쌓여 생물의 진화를 이루듯 이 문제도 논의와 싸움들이 쌓이고 쌓여야 변화가 생길 겁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도 않겠죠. 생물의 진화가 끝이 없듯이.
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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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in Jung 언니~ 이게 지금 젠더문제가 아니에요;; 아무도 여성주의에 대해 뭐라하고 있지 않아요.

1. 문예위는 논평을 낼 자격이 없어요. 위원장 공석. 부위원장은 당의 승인을 받지 못한 인물들. 이미 다른 일에 당원들이 논평을 요청했을 때는 위원장 공석이라 논평을 낼 수 없다더니 이번에는 논평을 냈네요;;

2. 메갈의 탄생은 어떠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혐오집단이에요. 저 역시 첫 시작엔 온정적인 시선으로 봤으나 지금은 멀리하고 있어요. 한국남자의 아들이니 아들의 성기를 잘라서 어쩌구저쩌구..;; 이게 어떻게 페미니즘 집단인가요?

3. 중앙당의 바보같은 대처로 대형커뮤니티들이 등을 돌렸어요. 선거 때 몇 억씩 만들어주고 비례표 준 곳들인데. 트래픽이 100만 되는 곳도 있어요. 문예위가 이런 사이트를 자신들을 정당화 시키고자 반여성주의로 몰아붙이며 깠죠;;

4. 문예위 논평 쓴 친구들은 이미 당기위에 제소된 친구들인데 당기위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어요. 당기위에서 처리가 됐으면 이번 일도 없었을 텐데.

5. 문예부 부위원장들이 언론사를 끼고 뒤에서 조작질을 하고 있어요. 심지어 일베자료까지 가져와서;; 

6. 이게 제일 문제인데.. 혐오에 맞서자는 말에 여성주의 프레임을 끌고 와서 자신들을 정당화 시키고 있어요. 그동안 계속 진보정당에서 보던 패턴 아닌가요. 만날 무슨 이념 끌어들여서 자신들을 정당화 시키며 분탕질을 하다가 당 말아 먹는 것.

언니~ 지금 여성인권 신장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에요. 저들의 프레임에 놀아나시면 안 돼요 ㅠ
LikeReply4July 29 at 3:22pm
송영숙 저는 중앙당이나 문예위나 이번뿐만이 아니라 4월부터 죽 이어져 온 문제들에 대해 아무 답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매번 헛발질이 나오고 있는 거죠. 문예위가 어떤 사람들인지 디테일하게 들여다 본적 없구요. 액면 그대로 제 눈에 보이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내생각을 말하는 것일뿐입니다. 누구의 프레임에 누가 휘말리고 있느냐는 제가 좀더 고민해볼게요.
LikeReply1July 29 at 4:03pm
송영숙 그리고 시작은 어찌되었든 문제가 퍼져나가는 방향은 제어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이런 일을 계기로 우리의 방향성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자는 거죠
LikeReply1July 29 at 4:07pm
Suin Jung 그러니까 답답해요. 그 액면 그대로 보이는 것이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여성주의를 끌어온 것이에요. 지난 진보정당의 역사를 돌아봐주세요.
메갈은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단체에요. 정의당이 옹호해도 될만한 단체가 아니에요.
문예위 피라미 몇에게 휘둘리시면 안 돼요. ㅠ

저도 여성인데 여성주의, 젠더 문제에 관심이 없겠어요? 그런데 이런 방식의 부각은 모두에게 마이너스가 될 거에요. 메갈은 페미니즘 단체가 아니에요.
LikeReply4July 29 at 4:53pm
송영숙 네 저도 좀더 알아볼게요^^
LikeReply1July 29 at 4:56pm
이청호 딴지의 사관적 입장에서 올린 글 잘 읽었네요. 4개월의 여정을 한 눈에 볼수 있어 유익했단 말씀만 드립니다.ㅎ
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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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미 사람들이 시끄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걸 참 불편해 합니다. 자신의 기준에 수준 낮아 보이는 글이 당게에 올라온다고 부끄러워 하는 사람도 있고, 더럽고 시끄럽다고 무조건 피하기부터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아예 외면하지 않고 꾸준히 지켜보고들 있으니 어떻게 잘 수습을 해봤으면 좋겠네요.
LikeReply2July 29 at 7:04pmEdited
고석군 저도 정수인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모두는 아니 최소한 열려있고 깨어있다고 자부하는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 (진보정당 당원이 모두 그런건 아닙니다만...) 남녀평등이나 여성의 인권신장에 대해 반대하는것이 아닙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이된 메갈리아가 진정으로 여성들의 여권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페미니즘단체이냐 아니냐의 문제에 있습니다. 메갈리아4가 메갈리아의 남혐에 대한 폭력성에 염증을 느껴 분화된 순수한 페미니즘 단체라고 강변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운영자가 의도적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활동영역을 넓힌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운영자와 사용하는 로고를 봐도 알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메갈리아는 혐오에 혐오로 대응해야 된다는 극단적인 여성주의자들의 폭력단체임에 다름아닙니다.
Ung Jae Paik 기존의 문제의식으로 접근하다보니 답이 안 나오는 것 같습니다. 서로 답 없음을 인정하고 새롭게 사회적인 약속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누군가(모두들) 답이 있고 그 답을 인정 안 하면 나쁘다고 서로 ㅂ난하고 있네요.
고석군 아니 오히려 명확히 답은 나와있는 겁니다. 그걸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Ung Jae Paik 아 네네 현자나셨군요.
LikeReply1July 30 at 2:07pm
고석군 댓글 하고는......
Ung Jae Paik 답이 뭐에요?

유사 마음수련 홍수… 禪 참의미 알리자 - 현대불교신문

유사 마음수련 홍수… 禪 참의미 알리자 - 현대불교신문

유사 마음수련 홍수… 禪 참의미 알리자한국불교의 변곡점, 다불교&탈종교
③ 탈종교 현상과 명상 대중화
신성민 기자  |  motp79@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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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10  13:3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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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단체에서 명상을 하는 사람들. 명상 대중화는 반가운 일이지만 무분별한 수행법 범람은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대불교 자료사진
[현대불교= 신성민 기자] 한국사회의 종교가 가지는 공통된 문제 현상은 ‘탈종교화’이다. 이미 서구사회에서는 젊은 층들의 종교 이탈이 심각한 문제다.

불자 중 4%만 간화선 수행
유사수련 경험자도 많아져
종교 사사화 경향 확대일로


수행, 자기 위안 활용 세태
명상 대중·상업화 明暗봐야
종단 수행체계 개발 필요해

종교의 나라 미국에서 무신론자가 점차 늘고 있다. 미국 공공종교연구소(PRRI)의 최신 보고서 ‘엑소더스: 미국인들은 왜 종교를 떠나는가, 그리고 왜 돌아올 것 같지 않은가’에 따르면 미국에서 ‘믿는 종교가 없다’ 혹은 ‘나는 무신론자다’는 응답률은 지난 8월 말 기준 25%이다. 1986년 7%, 1996년 12%, 2006년 16%였던 미국 ‘비종교 인구’ 비율이 또다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신을 믿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연령대별 ‘비종교 인구’ 비율은 18∼29세 39%, 30∼49세 29%, 50∼64세 17%, 65세 이상 13%였다. PRRI는 “30년전 20대 가운데 10%에 불과했던 비종교 인구가 4배 가까이 폭증한 것”이라며 “종교에 있어서도 세대간 격차가 날로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종교를 믿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종교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연구소 설문에 응답한 사람 중 60%가 “종교적 가르침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어서”라고 답했다.

이 같은 탈종교화 현상은 세속화와 탈제도종교화로 세분돼 나타난다. 불교에서 이 같은 현상과 맞닿아 나타나는 사례가 명상의 대중화이다.


  
 
명상의 대중화는 불교에는 큰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 기업들이 서로 앞 다퉈 자신들이 설립한 연수원에 명상프로그램들을 도입하고 있고, 명상 수행에 대한 정보와 수련장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기실, 참선이나 명상 수행은 특정 종교나 종단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불교의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을 수행하는 재가불자 인구는 그리 많지 않다.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2013년 발간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에는 불자 중 70.4%가 실천 중인 수행법이나 기도법이 ‘없다’고 답했다. 그나마 ‘있다’고 답한 불자들 중에서도 대부분 염불(21.3%)과 호흡명상(21.3%)이 주류를 이뤘고, 간화선을 수행한다고 답한 불자는 4%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불교사회연구소가 올해 9월 발간한 〈조계종 수행 현황과 과제 연구 보고서〉는 “현재 조계종단의 크고 작은 갈등도 종단 구성원들이 수행에 무관심하거나 수행상의 혼돈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종단 구성원들 사이의 불교관과 수행관의 불일치가 다양성을 뜻한다면 환영할 일이나 그렇지 않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탈종교화 현상은 명상의 대중화와 함께 유사 불교 수련법의 범람도 함께 가져온다. 이는 종교적 수행을 사사화(私事化)·세속화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실제 한국갤럽이 2015년 발간한 〈한국인의 종교 1984~2014〉에 따르면 ‘마음 수련 참여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 중 25%가 불자였고, 개신교인이 33%로 가장 많았다. 가톨릭은 23%로 비슷해 모두 대동소이한 수치를 보였다.

종교보다 개인적 수련에 관심이 많다’는 응답에는 불자가 33%로 가장 많았고, 개신교인은 25%, 가톨릭인은 29%였다. 

이에 대해 한국갤럽은 “종교계에서도 사사화 경향이나 얽매임에서 탈출하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는 한국인들의 신앙이 제도 종교 중심의 신앙 생활에서 개인 중심의 신앙 생활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탈종교화 현상으로 인한 종교의 사사화, 세속화는 종교적 수행문화를 소비문화로 환치 시킨다. 김성건 서원대 사회학과 교수는 논문 ‘종교의 미래:사회학적 전망’에서 “글로벌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종교적 변동은 △제도 종교에서 소비적 영성으로 전환 △종교의 사사화와 상품화로 요약된다”면서 “이는 종교인과 종교적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성찰적 신앙에서 세속적 건강과 부(富)의 숭배로 전환됨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명법 스님은 대중들이 좇는 명상 대중화의 환상을 경계했다. 명법 스님은 “사람들이 종교인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위로’나 ‘만족’ 위주가 됐다. 사찰에 법회를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나 경연장에서 만족을 얻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하며 “예전엔 스님들에게서 직설적이나 핵심을 찌르고, 현실서 가치 없다고 판단된 부분을 파격적으로 언급하는 태도를 기대했지만, 이제는 제대로 가르치는 스승에게서 배우려는 자세가 없다”고 현 세태를 평가했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원래 명상이나 불교적 수행은 단지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모든 생명은 연결돼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나만의 행복이 아닌 모두의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가치관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밝혔다.

간화선 대중화를 위한 조계종의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4년부터 조계종 교육원은 전국선원구좌회와 협의해 ‘간화선 지침서’ 편찬을 추진했고, 2005년 〈간화선-조계종 수행의 길〉을 간행해 2만권 이상 출간하는 호응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이렇다 할 노력이 없고, 2010년 이후에는 종단 차원의 간화선 종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세계적인 명상 열풍과 인성교육 강화 시류에 맞춰서 불교계 안에서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명상 포교 현장 지도자들이 네트워크를 위해 2015년 4월 21일 한국불교명상지도자협회를 출범했고, 올해 5월에는 서울시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현재 협회는 협회 명의의 명상지도사 자격증을 국가 등록으로 놓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조계종 포교원과 불교상담개발원은 ‘조계종 명상지도사’ 양성 과정을 2년 째 진행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불교사회연구소가 9월 발간한 〈조계종 수행 현황과 과제 연구 보고서〉는 의미가 큰 연구 성과이다. 보고서는 현재 조계종의 수행 현황부터 역사와 전통, 문제점과 전망·과제까지 총체적으로 짚어내고 있다.

보고서는 “종단 차원의 수행체계와 이에 맞는 수행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하는 사이 다양한 유사 종교 수련단체들이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면서 “불자들이 사찰이나 부처님 교법서 마음의 고통을 해결 못하고 종단 밖의 수행·수련 단체로 가서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면 그것은 불교와 종단의 본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종단 차원의 사부대중 수행체계 정립과 수행종책 수립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한 이런 종무행정을 담당할 수행 전문 부서와 기구 설립도 주장했다.

보고서는 “종단 수행 종책에는 수행이 무엇이며, 목표와 수행 방법, 효과를 담아내면서 프로그램 교재, 매뉴얼 개발과 보급, 지도자 양성 방안, 국내외 수행센터 운영과 지원 방안을 담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종단 지도부와 제방 사부대중은 종단 수행체계의 정립과 실천을 위해 지혜와 역량을 결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간화선이 최상승이라고 아무리 주장한들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소통하지 않으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면서 “이제는 간화선이 최상승이라는 전통적인 주장만이 아니라 직지·돈오의 간화선이 세상의 고통을 어떻게 보며, 해결할 수 있지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정립해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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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일본·대만·서구까지, 한국은 ‘불교 각축장’ - 현대불교신문

동남아·일본·대만·서구까지, 한국은 ‘불교 각축장’ - 현대불교신문



동남아·일본·대만·서구까지, 한국은 ‘불교 각축장’한국불교의 변곡점, 다불교&탈종교
②한국은 세계불교 백화점
노덕현 기자  |  noduc@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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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10  13: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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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종 해외승려초청 연수에 참가한 해외 스님들이 법회를 보고 있다. 스님들의 다채로운 가사색만큼 한국불교의 다불교 현상도 확연하다.
[현대불교=노덕현 기자] 한국불교계가 세계화를 외치는 사이, 한국은 이미 세계불교의 각축장이 된지 오래다. 다불교를 넘어 불교의 백화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현재 한국에는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 불교를 포함해 일본과 대만, 서구화된 불교까지 다양한 국가의 불교가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

국내 이주민 대부분 불교국가 출신
2008년 테라와다불교 법인화
중·일도 부산지역 중심 진출


명상 관심↑, 명상 대회 등 열려
명상 관련 논문 매년 증가세
“자기개발 차원으로 확장 특징”

해외불교의 한국 진출은 1990년대 시작된 동남아 불교국가 노동자들의 이주현상과 증가, 2000년대 위빠사나를 중심으로 한 테라와다 불교의 전파와 과학화된 서구불교의 역수입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이뤄졌다. 예전에는 한국 스님들이 동남아 등지에서 유학하며 해외불교를 배워왔다면 최근에는 외국인 스님들이 한국에 들어와 정착하며 각국 불교를 전하고 있다. 동국대를 비롯한 다양한 종립학교에서 이들 스님들은 한국불교를 공부하며 상호 교류를 이어가고 있으며 공부를 마친 후 한국에서 명상센터 등을 열고 소속 국가의 수행전통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폭발적인 이주민 증가와 해외불교 직접 전래가장 먼저 동남아 남방불교의 한국 전파는 동남아 불교국가 이주민의 정착과 맞물려 있다.
통계청 ‘2015인구총조사’에 따르면 현재 이주민은 136만명에 달한다. 2010년 96만명에 비해 42%나 증가한 수치다.

이 중 대부분이 불교국가에서 온 이들이다. 구성을 살펴보면 대만을 비롯한 중국계가 51.6%(70만 여 명), 태국 5.7%(7만 6000여 명), 캄보디아 3.1%(4만 1000여 명)에 달한다. 미얀마와 네팔도 각각 2만여 명이 넘는 이주민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5년 사이 이주민 증가가 가장 높은 국가로 꼽히고 있다. 

불자인 이들은 서울, 경기, 부산 등지에 크고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스님들을 초청해 법회를 열고 있다.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의 협조를 얻어 조사한 결과 이렇게 법회를 열고 있는 이주민 관련 법당은 17곳에 달했다.

김현덕 마주협 사무국장은 “1998년 2곳에 불과했던 법당이 2000년 이후로 급증한 상태”라며 “현재 파악된 수치는 조계종 등록 후 지원을 받는 법당으로 최근 자체운영하는 법당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고 밝혔다.

  
 
2000년대 초기불교 열풍 이어져여기에 2000년대 본격화된 상좌불교 수행의 열풍도 이어지고 있다. 상좌불교의 한국진출은 이제 완연히 자리를 잡은 상태다. 2008년 12월 한국테라와다불교가 사단법인으로 정식 출범 한 것은 한국에도 상좌불교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것을 의미한다.

초기 미얀마 파욱센터 등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배운 이들이 한국에 센터와 수행처를 열었다면 최근에는 이들 센터나 이 곳에서 활동한 외국스님들이 직접 한국에 분원을 세우고 있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초기불교 수행을 전하는 곳은 40여 곳이 넘는다.

일본ㆍ대만ㆍ중국 불교도 교세 확장일본의 경우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 진출을 급격히 늘려오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일본 30여 종파에 150만명 이상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일련정종 입정교성회, 정토진종, 천리교 등 법화ㆍ정토 계통의 종단이 포교원을 건립하고 있다.

한국에는 1960년대 한국에 진출한 SGI(창가교육학회)가 대표적이다. 2000년 재단법인으로 등록한 이후
120만 명의 신도를 거느리며, 1230개 지부가 있다. 이와 함께 일련정종 계열로 동대문 일련정종(한국일련정종총본부), 일련정종 강동본부(대한정법일련정종법화강불교회), 일련정종 대한사(연화산 대한사)가 있으며 부산 일련정종 고려사는 20만 신도를 비롯해 18개 종파 25만여 교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에는 일본 진언종 계통인 진여원이 부산에 지부를 두고 한국포교에 나서기도 했다.
대만도 1990년대 초부터 한국 포교에 관심을 가져 1998년에는 대만 불광산사 한국지부격인 사찰이 장충동에 법당을 개원하기도 했다.

  
 
명상ㆍMBSR 등 서구화된 자기개발 담론 거세최근에는 서양에 전파된 불교가 마음공부와 수행 등으로 진화돼 오히려 역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2010년부터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도를 내고 있다. 현지의 고승들과 저명한 마음명상지도자들을 초청해 국내서 직접 수행법을 지도받는 단체가 많아졌다.

충남 천안 ‘호두마을’, 서울 과천 ‘보리수선원’ 김해 ‘반야라마’ 등에서는 명상 지도자들을 초청하고 있다. 보리수선원이 2013년 제1회 국제명상심포지엄을 연데 이어 참불선원이 2014년, 2016년 명상 수행승 아잔브람을 초청, 세계명상힐링캠프를 열기도 했다.

명상에 대한 관심은 명상관련 연구의 급증에서도 드러난다. 불교와사상의학연구회의 ‘명상 어떻게 연구되었나’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에 게재된 명상 관련 논문은 총 413편으로 매년 22.7%씩 증가했다.

명상 논문 중 심리 관련 논문이 130편으로 가장 많았고, 불교 관련 논문이 95편으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불교 명상 논문에서는 위빠사나 및 사티와 관련된 논문이 29편으로 전체 30.5%를 차지했으며, 초기불교가 12편으로 12.6%를 선은 8편으로 8.4%에 불과했다.
존 카밧진에 의해 체계화된 MBSR 등 다양한 심리치료 프로그램도 영역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 미국서 유행하는 ‘MBSR’ 또는 ‘마음챙김에 바탕한 스트레스 감소’는 한국서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안희영 한국MBSR연구소장은 “한국으로 진출하는 다양한 불교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MBSR을 비롯한 명상 프로그램도 자기개발 차원으로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며 “한국불교의 위기가 아닌 기회로, 한국불교도 해외로 진출하고 지평을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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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차이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차이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차이



donrs219

2007.05.14 23:15



위빠사나는 오직 붓다만이 찾아내시고 설하실 수 있는 수행법입니다. 붓다가 출현하기 전에는 세간의 모든 수행법은 다 사마타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처음 출가하셔서 그 시대에 있는 모든 수행법을 다 해보셨습니다. 그것은 모두 사마타 수행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색계 선정 수행을 하시고,  6년간 고행을 하시고도,  번뇌를 해결하지 못해 수자타의 유미죽 공양을 받으시고,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세세생생 동안 쌓으신 바라밀 공덕이 완전하게 무르익어서 스스로 스승없이 위빠사나라는 위없는 수행법을 찾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일체를 통찰하신 위빠사나의 지혜로 모든 번뇌를 완전히 소멸하는 누진통을 얻으시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이 순간 부처님은 아라한과 동시에 붓다가 되신 것입니다.



이제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의 차이점을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수행대상이 다릅니다.

두째 대상에 집중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세째 수행으로 얻는 결과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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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타 수행의 대상은 관념(想)입니다. 그리고 대상과 하나가 되는 깊은 집중을 합니다. 그래서 얻는 것이 마음의 안정. 심청정입니다. 그리고 수행의 과보는 색계천상이나 무색계 천상으로 윤회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은 현재의 오온입니다. 그리고 대상과 하나가 되지 않고 대상을 객관적으로 분리해서 보는 찰나 집중을 합니다. 그래서 얻는 것이 통찰 지혜입니다. 그리고 수행의 과보는 윤회를 벗어나는 완전한 열반입니다.



사마타 수행은 멈춤(止. 선정) 수행으로 무엇을 멈추는가하면, 감각적 쾌락, 악의, 혼침과 게으름, 들뜸과 회한, 회의적 의심이라는 다섯 장애에 휩쓸리는 것을 멈추고 마음에 번뇌가 없는 심청정을 얻는 수행입니다.



일상생활이나 수행 중에 현재를 놓치게 하고 마음이 과거 미래로 달리면서 우리를 번뇌에 휩쓸리게 하는 것이 이 다섯 가지 장애입니다. 이들이 일어나면 우리는 번뇌에 휘둘리게 됩니다. 이 다섯 장애는 매 순간 여섯 감각기관이 촉하는 대상에 대하여 일어나는 내 자신 속의 탐진치의 마음의 작용입니다. 사마타 수행은 이 다섯 장애를 우선 멈추게 해서 마음에 번뇌가 없게 합니다.



사마타 수행은 불, 법, 승, 자비희사, 죽음에 대한 명상, 10가지 까씨나(원판), 몸의 부정(不淨)함 등등으로 40가지 사마타 수행의 대상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수행자가 한 가지 수행 주제를 스승으로부터 선택받아 오직 그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면 어떤 원리로 다섯 장애가 일어나지 않고 마음이 청정해질까요?



그 기전은 한 순간에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한 순간에 하나의 대상에 대하여만 아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선정수행의 주제인 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고 있는 동안 번뇌가 일어날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자의 마음이 고요함, 안정, 평온, 집중 등의 상태에 도달하여 번뇌가 없는 행복을 느낍니다. 이것을 색계 1선정이라고 합니다. 색계 선정으로 마음에 번뇌가 없는 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고 합니다. 결론은 사마타 수행은 마음의 안정, 고요함, 집중을 얻는 수행입니다.



우리가 염불을 할 때 염불삼매에 빠지면, 지금 관하는 부처님의 상(想. 관념. 빤냐띠)이라는 대상에 오직 마음을 모아 깊은 집중(근본 삼매)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불수행으로 얻는 것은 마음의 집중, 고요함, 평온입니다. 그러나 이 선정력은 일상생활로 돌아오면 깨집니다. 그럼 다시 번뇌가 일어납니다.



위빠사나는 오직 현재의 대상과 그것을 아는 마음이 쌍으로 생멸하면서 이어지는 찰나 삼매(찰나집중)를 유지하여 다섯 장애를 극복합니다. 그런 뒤 오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12처를 알아차리고, 7각지를 알아차리고 사성제를 알아차려 열반에 이릅니다.  이렇게 4)의 방법으로 열반에 이른 경우에는 혜해탈자라고 부릅니다.



사마타 수행이나 위빠사나 수행이나 처음에는 모두 다섯 장애가 일어나므로 그들을 극복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일단 극복을 하면 선정을 얻거나, 지혜를 얻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마하시 방법은 사마타 수행 없이 처음부터 위빠사나 수행으로 시작하는 순수 위빠사나 방법으로 지도합니다.



이 방법이 현대 생활에 잘 접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이 모두 알아차릴 대상이고, 법이며, 생활 속에서 번뇌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키우는 수행법이 4)번의 순수 위빠사나라고 생각합니다.



사마타 수행으로 일정 수준의 선정력을 얻으려면 오직 자신의 수행 주제에 집중만 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출가 수행자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염불, 간경, 절, 100일 기도 등등은 모두 사마타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대상에 깊이 몰입하는 집중을 하여 마음의 안정을 얻는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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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기도나 염불로 집중력이 있는 분들이 마음을 열고 위빠사나 수행을 하시면 쉽게 자신의 탐진치가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그래서 탐진치를 놓는 법을 알게 되며, 또 알아차림으로 몸과 마음의 무상, 고, 무아의 성품을 확인할 수 있어 위빠사나의 지혜가 더 빨리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사마타 수행으로 얻은 마음의 고요는 일상에서 잘 깨지지만 ,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얻은 지혜는 일상에서도 그 힘을 발휘하여 번뇌로부터 막아줍니다.



위빠사나의 지혜는 자기가 닦은 만큼의  항상 자기를 따라다니며 수행자를 번뇌로부터 보호합니다. 그래서 위빠사나의 통찰 지혜만이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에까야노막가)이라는 부처님의 대념처경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위빠사나는 오직 현재의 대상과 그것을 아는 마음이 쌍으로 생멸하면서 이어지는 찰나 삼매(찰나집중)를 유지하여 다섯 장애를 극복합니다. 그런 뒤 오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12처를 알아차리고, 7각지를 알아차리고 사성제를 알아차려 열반에 이릅니다.  이렇게 4)의 방법으로 열반에 이른 경우에는 혜해탈자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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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타 수행이나 위빠사나 수행이나 처음에는 모두 다섯 장애가 일어나므로 그들을 극복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일단 극복을 하면 선정을 얻거나, 지혜를 얻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마하시 방법은 사마타 수행 없이 처음부터 위빠사나 수행으로 시작하는 순수 위빠사나 방법으로 지도합니다.



이 방법이 현대 생활에 잘 접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이 모두 알아차릴 대상이고, 법이며, 생활 속에서 번뇌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키우는 수행법이 4)번의 순수 위빠사나라고 생각합니다.



사마타 수행으로 일정 수준의 선정력을 얻으려면 오직 자신의 수행 주제에 집중만 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출가 수행자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염불, 간경, 절, 100일 기도 등등은 모두 사마타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대상에 깊이 몰입하는 집중을 하여 마음의 안정을 얻는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기도나 염불로 집중력이 있는 분들이 마음을 열고 위빠사나 수행을 하시면 쉽게 자신의 탐진치가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그래서 탐진치를 놓는 법을 알게 되며, 또 알아차림으로 몸과 마음의 무상, 고, 무아의 성품을 확인할 수 있어 위빠사나의 지혜가 더 빨리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사마타 수행으로 얻은 마음의 고요는 일상에서 잘 깨지지만 ,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얻은 지혜는 일상에서도 그 힘을 발휘하여 번뇌로부터 막아줍니다.



위빠사나의 지혜는 자기가 닦은 만큼의  항상 자기를 따라다니며 수행자를 번뇌로부터 보호합니다. 그래서 위빠사나의 통찰 지혜만이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에까야노막가)이라는 부처님의 대념처경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세계불교 도래·명상 산업화… ‘멜팅폿’ 한국불교 - 현대불교신문

세계불교 도래·명상 산업화… ‘멜팅폿’ 한국불교 - 현대불교신문



세계불교 도래·명상 산업화… ‘멜팅폿’ 한국불교한국불교의 변곡점, 다불교&탈종교
① 한국불교, 준비가 필요하다
신성민 기자  |  motp79@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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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10  13: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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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신성민 기자] ‘멜팅폿(Melting Pot).’ 현재 한국불교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다. 흔히 ‘멜팅폿’은 인종과 문화 등 여러 요소가 하나로 융합·동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를 한국불교에 적용시키면 ‘세계불교·수행의 용광로’로 표현될 수 있겠다.

각국 불교 백화점된 한국불교
초기불교에 높은 관심 가져와
권위·중심 해체된 다불교 상황


탈종교화, 한국사회 명백한 현상
종교, 사생활의 영역으로 추락해
명상 대중·산업화 明暗 분석해야


현재 한국불교는 ‘다불교’라는 큰 조류를 맞이하고 있다. ‘다불교’는 다문화와 세계화를 통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해석된다. 현재 한국에는 미얀마·태국·스리랑카·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 불교를 포함해 일본과 대만, 서구화된 불교까지 다양한 국가의 불교가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

해외불교의 한국 진출은 1990년대 시작된 동남아 불교국가 노동자들의 이주현상과 증가, 2000년대 위빠사나를 중심으로 한 테라와다 불교의 전파와 과학화된 서구불교의 역수입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이뤄졌다.

‘다불교’라는 현상적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다. 그는 다불교의 특징을 한국의 전통불교가 더 이상  중심에 있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다. 

조성택 교수는 “다문화라는 말의 핵심은 ‘한국문화를 중심에 놓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한국불교에서는 대승불교, 간화선이라는 중심이 존재했는데 이제 그 중심이 해체된 상황을 ‘다불교’라고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다불교 현상은 역사적 유례가 없는 사례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윤승용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는 다불교를 다문화의 확장판으로 보고 세계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봤다. 윤승용 이사는 “규격화되고 표준화된 불교만으로는 현대 불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다수 수용하기 힘들다”면서 “한국불교가 조금 더 개방적으로 나아가고 신도 중심의 불교가 돼야 한다. 기초가 튼튼해야 다불교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다불교 현상의 대표 사례는 광풍에 가까운 초기불교에 대한 열기이다. 2000년대 이후 초기경전 번역과 함께 위빠사나 등 초기불교 수행법들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완벽하게 자리잡았다. 그러면서 한국불교의 전통 수행법이라고 자신했던 간화선은 적지 않은 도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2013년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발간한 <대국민여론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 불자 중 4%만이 “간화선을 수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반대로 사회적으로는 웰빙·힐링 열풍과 더불어 명상 대중화와 산업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서양에 전파된 불교가 마음 수행 등으로 변화돼 오히려 역수입되고 있다. 실제, 존 카밧진에 의해 체계화된 MBSR 등 다양한 심리치료 프로그램과 접목되면서 영역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 여기에 기, 마음수련 등 유사불교 형태의 마음 수련들도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명법 스님은 9월 3일 조계종 포교연구실과 불광연구원 주최로 열린 ‘탈종교화 시대, 종교의 위기인가 기회인가’란 주제의 학술연찬회서 탈종교화와 다불교 현상을 연계시켜 비판했다.

명법 스님은 “명상의 대중화는 종교의 사사화(私事化·개인의 사사로운 영역이 되는 것)와 함께 발생한 근대적 현상”이라며 “명상은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소비문화의 하나로서, 명상의 유행과 더불어 오히려 탈종교화와 종교의 사사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상업주의와의 결탁은 더 긴밀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불교 상황은 다종교 상황과 마찬가지로 제도권 불교를 약화시키고 종교를 사생활 또는 취미생활로 여기게 했다”면서 “이제 한국불교는 종교 시장에서 타종교뿐만 아니라 경쟁하는 다른 불교전통과 함께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상품이 된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다불교와 탈종교 현상이 공통적으로 갖는 현상은 바로 ‘탈제도화’다. 이는 기성 종교·종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다불교는 중심 권위의 해체로 기성 전통 종단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며, 탈종교 현상은 세속화와 탈제도종교화로 세분돼 나타난다.


  
▲ 태국 방콕의 한 불교사원의 수많은 불상들. 다불교시대를 맞은 한국불교도 다양한 불교를 만나고 있다.
한국갤럽이 2015년 발간한 <한국인의 종교 1984-2014>에 따르면 ‘종교 단체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종교적 믿음을 실천하면 된다’는 질문에 긍정 응답을 나타낸 사람은 83%에 달했다. 불자의 경우 85%가 가톨릭인은 84%가 개신교인은 73%가 종교 단체에 의존하지 않고도 신행 생활이 가능하다고 봤다. 이는 탈제도화 현상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계종 포교연구실의 ‘탈종교화’ 주제 연찬회에 참석한 김진호 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탈종교화 시대에 세속적 제도들이 종교화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종교의 전문영역이었던 분야에 기업들이 나서서 힐링의 산업화를 활발히 도모하고 있고, 영성을 마케팅의 주요 범주로 활용하고 있다. 대중스타에 대한 팬덤은 청소년의 유사종교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는 1000억원을 투입해 2017년 개원을 목표로 영덕연수원을 건립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1만 임직원을 대상으로 영덕연수원에서 명상교육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동국산업, 동화그룹 등도 명상센터 형식의 연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국선도, 단월드, 마음수련원 등 유사 종교 수련단체들이 전국 조직을 넘어 세계로 진출해 국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자체 수련법를 개발하고 지도자를 양성하고 대규모 명상센터를 세우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우혜란 가톨릭대 외래교수는 ‘신자유주의와 종교 상품화’ 제하의 논문에서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이전에는 상당 부분 제외됐던 종교 영역을 소비문화로 흡수하면서 상품화의 길을 걷고 있다”며 “현 시대에서 종교문화는 일종의 ‘주인 없는 자원’으로 쉬운 상품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조계종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전통 불교는 이 같은 변화 현상들에 대해 수용할 것인지,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가 남는다. 하지만, 한국불교는 아직 현상 인식과 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명법 스님은 “한국불교는 아직까지 다문화, 다종교, 다불교 상황을 수용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고, 상대주의를 허용할 만큼 권위주의도 청산하지 못했다”면서 “불교를 현재적 경험 속에서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 속에서 이해하고 다시 현재 한국 상황과 접합시키는 시도들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승용 이사는 “선종이라는 큰 줄기의 전통을 제외하고 나면, 한국불교는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다”면서 “현재의 규격화된 불교로는 현대인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기 어렵다. 전통을 중심으로 수용과 보완 작업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국불교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용표 동국대 불교학과 명예교수는 “다불교 현상은 불교 전통간의 상호 교류와 불교의 국제화 운동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를 통해 불교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한국불교의 우월성과 정체성만 내세우기보다 서로 배우며 성장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 저작권자 © 현대불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2016/10/11

근대 일본의 치명적 발명품, 무사도 : 한겨레21

[제838호]근대 일본의 치명적 발명품, 무사도



박노자의 국가의 살인

근대 일본의 치명적 발명품, 무사도

군국주의 필요에 의해 ‘전근대 유산’이 ‘위대한 전통’으로 둔갑…
근대의 군주가 되려던 박정희가 ‘선비정신’ 강조한 맥락도 비슷

제838호
등록 : 2010-12-01 10:41 수정 : 2010-12-0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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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어느 나라를 봐도 국민국가에 유리한 쪽으로 ‘전통’의 이미지를 조작하지 않는 곳은 없다. 대한민국부터 그렇다. 박정희와 박종홍(1903∼76)이 반동적이고 복고적인 민족주의로 어용적 사상 흐름을 틀었던 1970년대 초반부터 ‘선비정신’과 같은 표현이 유행했는데, 이런 표현이야말로 ‘전통의 날조’치고 가장 심한 편에 속한다. ‘정신’ 같은 일본제 근대 용어들이 조선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선비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선비정신이라기보다는 그저 성리학이었다.
집권 초기엔 폄하했던 선비정신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주군을 위한 복수’는 중요한 테마였다. 주군의 적을 죽이고 전원이 할복자살한 47명의 사무라이 이야기를 그린 일본 민화.한겨레 자료
선비들이 ‘이발기수’(理發氣隨·우주의 원리인 ‘이’가 먼저 발하고 물질의 본질인 ‘기’가 이에 따른다)와 같은 고급 관념론을 줄줄 외웠다고 해서 과연 그렇게까지 고매했던가? 고매한 이들도 없지 않았겠지만, 세계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조선 지배층인 양반 사대부들이 일차적으로는 고매한 ‘선비’라기보다는 소유욕과 승부욕, 출세욕을 불태울 수밖에 없는 ‘지배자’였다. ‘상것’들의 재산을 빼앗는 데 정신이 없던 양반 지방관과 재지(在地) 사족들을 “흡혈귀와 같은 존재”라고 부른 유명한 영국 여류 탐험가 비숍(1831∼1904)의 의견은 오만한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적 속단이라고 치자. 하지만 조선 후기의 양심적 지식인들도 당대 선비들의 ‘정신 상태’를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예컨대 평생 벼슬을 멀리해온 성호 이익(1681∼1763)은 선비들의 불같은 출세욕을 거의 망국적 질환으로 봤다.
“본래부터 우리나라는 토지는 좁고 관원은 많다고 이르는데, 토지가 좁으면 재물이 넉넉하지 않고 관원이 많으면 토색질이 성행되어 백성은 더욱 곤궁할 것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권귀(權貴)의 자제들은 천치 바보를 막론하고 벼슬 없는 자가 없고, 그 연인 족척들과 문객들도 벼슬에 오르지 않는 자가 없어, 한 번 사모를 썼다 하면 수령은 떼놓은 당상으로 여기고 오히려 지체됨을 꺼리어 만기도 되기 전에 미리 엽등할 것을 도모한다.” (<성호사설> 제14권, ‘파용관’)
조선 후기의 선비들의 타락은, 구한말의 계몽주의자부터 식민지 시대나 그 후의 진보·보수를 막론한 다수의 근대적 지식인들의 한탄과 비판의 표적이었다. 박정희 자신도 집권 초기에 <국가와 혁명과 나>(1963)와 같은 ‘강령’ 격의 책에서 ‘선비문화’를 위시한 ‘전통시대 역사’를 “퇴영, 조잡, 침체의 연쇄사”라고 싸잡아 폄하했다.
그러면 1970년대 초반부터 관 주도로 선비정신이 선양되고 율곡과 퇴계 등이 새로운 지폐 문양에까지 등장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서구식’ 민주주의와 결별하고 김일성의 종신집권을 빼닮은 영구적 권력을 누리려 했던 박정희에게 근대 이전의 ‘충효’ 전통이 그 의도를 합리화하는 기제로 급하게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의 반동화가 관 주도 사상 흐름의 복고화를 부르고, 복고적 민족주의 차원에서는 선비문화에 전통의 후광을 입히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박정희는 그렇게 해서 ‘선비나라’의 새로운 ‘군주’ 노릇을 하려 했다. 그 자신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절대다수의 국민은 선비의 자손이라기보다는 선비에게 착취와 토색질, 무시를 당해온 ‘상것’들의 자손이었으며, 선비정신 등은 전통시대에는 물론 일제시대나 그 직후에도 잘 쓰이지 않던 새롭게 발명된 표현이었다.
‘부국강병’을 메이지 일본에서 배운 박정희는, 선비정신 같은 전통 날조의 기술도 거기에서 배웠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박정희가 임금에게 충성을 다할 선비를 역사 속에서 불러내고 싶었다면, 메이지 말기 군국 일본의 지배자들은 무사(武士)의 유효성을 높이 사서 동시대 일본인들에게 무사도(武士道)가 일본의 ‘위대한 전통’임을 믿게끔 하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일본을 피상적으로만 아는 이는 분명히 “일본 전통사회는 사무라이들의 ‘칼’ 문화에 정말로 젖어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고, “무사도가 왜 근대적 발명품이냐”고 의아해할 것이다. 답은 아주 간단하다. 향반 등 중간 계층을 제외한 양반 사대부들이 조선 사회의 다수를 차지할 수 없었듯이, 에도시대(1603∼1868) 일본에서도 사무라이, 즉 사족(士族)이 많이 잡아봐야 총인구의 1할에 불과했다. 그들의 ‘무도’(武道) 문화에 나머지 90%의 인구가 영향을 받았느냐 하면 그것도 결코 아니었다. 사족들과 달리 나머지 90%의 주민들은 칼을 차고 검술을 배울 권리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청일전쟁 전후 ‘무사도 폭발’
주군의 원수를 갚고 자살한 47명의 사무라이 이야기를 영화화한 <기묘한 이야기 - 사무라이 휴대폰>. 한겨레 자료
그렇다면 사족들의 교육은 과연 ‘무덕(武德) 수양’ 위주였던가? 꼭 그렇지도 않았다. 외전(外戰)이 없었던 에도막부의 장기적 평화 시대에 지배층에게는 검술보다 유교경전과 문장 익히기가 훨씬 더 중요시됐다. 예컨대 나카쓰(中津)번의 하급 사족 아들로 태어난 유명한 계몽가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는 만향당(晩香堂)이라는 번의 학교에서 <좌전>(左傳)과 같은 경전을 11차례나 읽어 다 외울 정도로 한학에 열을 올렸지만, 이렇다 할 만한 ‘무사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칼잡이 사무라이의 나라’라는 에도시대 일본의 통상적 이미지는 사실과 상당히 다르다고 봐야 한다.
물론 관료적·학구적 분위기가 강한 에도시대라고 하더라도 유교와 다른 ‘무사의 덕목’에 유념하는 지식인도 없지 않아 있었다. 예를 들어 변방인 규슈섬 사가 지역의 고급 사족인 야마모토 쓰네토모(1659∼1719)가 먼저 돌아간 번주(藩主)와의 대화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가쿠레>(葉隱)라는 책을 남겼다. 그런데 “무사도라는 것은 죽는 일에서부터 발견된다”는 구절로 시작되는 이 책은, 에도시대에 널리 읽히지 않았으며 근대에 와서야 빛을 보게 된다. 자세한 내용을 보면, ‘순사(殉死) 찬양’ 이외에는 유교나 불교에서 따낸 자비, 성(誠), 간언(諫言), 예의에 대한 설파로 가득 차 있다. 불명예를 씻기 위한 죽음에 대한 강조의 정도는 조금 달라도,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사실 조선 성리학자도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근세의 일본은 ‘무사도의 나라’라기보다는 점차 유교화돼가던 농업관료제 사회였다. 단, 막번(幕藩) 체제라는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의 독특한 조합만이 중국이나 조선과 판이하게 달랐을 뿐이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일본이 1894∼95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을 눌러 동북아의 군사적 패권국가로 돌연히 등장한 뒤였다. 박정희가 초기에 한국 전통문화에 무관심하고 적대적이었듯이, 1890년대 이전까지 근대 일본의 주류는 에도시대 사무라이 문화를 ‘전근대의 유산’이라고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러일전쟁을 준비하면서 점차 징병제를 확대하고 학교 교육까지 군사화하는 시점에서는 군국주의를 합리화하는 ‘전통’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 시점에서는 에도시대 사람들도, 메이지 초기의 사람들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던 ‘무사도’가 갑자기 중요해졌다. 1890년대 이전까지 제목에 ‘무사도’가 들어간 책이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1890년대에는 거의 해마다 한 권씩 나오고 1901∼05년에만 해도 47권이나 나와 ‘무사도 폭발’을 이루었다. 일본보다 훨씬 강해 보였던 러시아와의 전쟁, 그리고 한반도의 식민화를 일본 주류가 이렇게 ‘정신적으로 준비’했던 셈이다.
이커 교도까지 무사도 찬양
‘무사도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제작·보급한 영화 <망루의 결사대>.한겨레 자료
당시 무사도를 입에 올리고 다니던 이들 중에는 당대 지식계의 거물들도 포함됐다. 예컨대 동경제국대학의 철학과 원로이며 ‘가족국가’로서 천황제 국가의 이념적 틀을 준비한 핵심적 관(官)철학자 이노우에 데쓰지로(1855∼1944)는 육군사관학교에서 특강한 내용을 중심으로 무사도에 대한 소책자를 따로 냈다. 이노우에가 본 무사도는 아예 ‘일본 정신’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일본사를 관통하는 핵심적 ‘국민도덕’이었다. 극단적 보수주의자 이노우에는 “천황보다 하나님을 우위에 두는” 기독교를 ‘비일본적 종교’라고 생각하고 애써 배격했는데, 무사도 찬양에는 기독교인도 열심히 한몫했다. 대표적 사례는 최근까지만 해도 일본의 5천엔 지폐를 장식한 퀘이커 신자 니토베 이나조(1862∼1933)였다. 물론 그 얼굴을 5천엔 지폐에 등장시킨 것은 무사도와 관계없는 일이었다. 미국과 독일에서 유학한 저명한 학자이자 저술가인 그는, 1920년대에 국제연맹 등에서 중역을 맡는 등 일본의 ‘국제주의’와 ‘자유주의’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는 탁월한 영어 실력을 국제주의를 위해서만 발휘하지 않았다. 1900년 한반도와 남만주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갈등이 점차 심해지는 민감한 시기에, 그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로 <일본의 영혼, 무사도>라는 책을 발표한다. 특히 영미권에서 히트를 쳐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애독서가 된 이 책은 무사도를 유럽의 ‘기사도’와 유사한 것으로 묘사해 외국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한편, 청일전쟁에서의 일본 승리를 ‘무사도 덕분’으로 돌리기도 했다. 전쟁을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퀘이커 신자인 니토베였지만, 그는 무사도야말로 기독교가 일본에 이식될 수 있는 ‘좋은 토양’이라고 결론 내렸다. 상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병역거부를 최초로 보편화한 초기 기독교(퀘이커)와 <하가쿠레>류의 ‘전사(戰死) 찬미’가 양극단처럼 보이지만, 전쟁 열풍에 휩쓸린 지식인들의 관심은 거기까지 미치지 않았다. 국가를 위한 살인은 그들에게 예수의 자기희생처럼 고귀하게 보였다.
천황주의적 극우부터 기독교적 자유주의자까지, 전쟁 열기의 히스테리적 분위기에서 ‘무사도는 일본인의 고유 정신’이란 테제에 반대할 사람은 극소수의 사회주의자 이외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함석헌(1901∼89)의 스승이 된 전쟁 반대론자인 우치무라 간조(1861∼1930)마저 일찌감치 1894년의 영문 저서 <일본과 일본인>에서 ‘전형적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1828∼77)의 “충성, 용기, 결단력, 헌신”을 “일본 민족의 대표적 덕목”으로 봤다면, 그보다 더 온건한 지식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포스트모던 시대에 되살아난 무사도
‘칼의 도덕’에 대한 지식인들의 찬양을 글로 읽을 수 있는 식자는 소수에 불과했지만, 1910∼20년대 일본에서 영화가 대중적으로 보편화됨에 따라 칼부림이 난무하는 ‘시대극’은 무사도를 민초 사이에 인기 있는 담론으로 만드는 새로운 매체가 됐다. 에도시대 사무라이들을 등장시키는 시대극 중에는, 1701년 주군의 억울한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주군의 적을 죽였다가 정부의 명령으로 전원 할복자살한 47명의 충실한 사무라이 이야기인 <주신구라>(忠臣藏)가 단연 1위의 인기를 누렸다. 1908년에 처음 영화로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일본에서 약 130편의 다른 영화로 나왔다. 이런 영화로 인해 대중 사이에서 관료로서의 사족들이 비교적 평화롭게 다스렸던, 꽤나 유교화된 에도시대의 일본은 적의 머리를 멋지게 베고 할복을 쿨하게 하는 ‘용감무쌍의 무사 나라’로 비치게 된 것이다.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으로 등장한 무사도 담론은 전후 한때 혹독한 비판을 받아 그 자취를 감춘 듯했다. 1960년대에 무사도를 여전히 찬양했던 미시마 유키오(1925∼70)와 같은 심미주의적 극우파들은 비주류 중에서도 한참 비주류였다. 그런데 경제성장이 멈춘데다 포스트모던의 광풍으로 선과 악의 구분선이 흐려진 1990년대 이후의 일본에서는 무사의 ‘멋진’ 칼이나 주먹이 또다시 상당수의 노골적 숭배 대상이 되는 것 같다. <흉기의 벚나무>(2002) 같은 영화에서는 도심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네오나치가 거의 낭만적 ‘협객’처럼 보일 정도다. 인간의 해방과 궁극적으로 모든 폭력이 정지될 공산주의적 미래에 대한 좌파의 꿈들이 좌절되고 모든 것이 상대화된 포스트모던의 반동적 시대에는, 관객을 매료시키는 아름다운 청년 배우가 화면에서 상대의 가슴에 ‘시원하게’ 칼을 꽂거나 몸을 ‘쾌활하게’ 풀어 상대를 ‘멋있게’ 때려눕히는 등 폭력을 낭만화·미화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왜 나쁜지 설명하기 힘들어졌다. 상대주의 시대에는 구태의연한 도덕론적 무사도는 인기를 끌지 못해도, ‘눈요깃감’으로서 영상 폭력은 난무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소비 대중의 거부감을 조금씩 무력화해 전쟁을 흉악한 범죄가 아닌 ‘아름다운 일’로 다시 한번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참고 문헌
<성호사설> 이익 지음, 최석기 옮김, 한길사, 285∼291쪽, 1999
<국가와 혁명과 나> 박정희, 상문사, 11쪽, 1963
Kiyooka Eiichi (transl.), NY: Columbia University Press, p.8, 1960
<武士道> 이노우에 데쓰지로, 東京: 兵事雜誌社, 1901
‘The Apocryphal Suicide of Saigo Takamori’ Mark Ravina, , 69/3, pp.691∼723, 2010
Inazo Nitobe, NY: G.Putnam, 1905(www.sacred-texts.com/shi/bsd/index.htm)
<일본 영화와 내셔널리즘> 김려실, 책세상, 94∼96쪽,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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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의 신분제에서 무사계급은 최상위 지배계급이었기 때문에 신분상승하려는 평민들도 무사가 되려고 적지 않았고 전국시대에 그런게 유행하였지요 그러나 전국시대를 종식하고 일본을 통일한 임진왜란의 주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검 몰수령을 내려 평민들의 신분상승을 봉쇄했고 에도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신분제도를 엄격하게 확립하여 평민들의 신분상승을 가로 막았지요 그리고 일본의 유교는 중국 조선의 유교와 그 성격이 다르지요 일본의

    박노자 교수의 글을 잘 읽으면서 일본의 무사도가 약간 후대에 의해 부풀려질수도 있지만 그러나 에도시대 당시 무사들의 인구수를 근거없이 섣부르게 단정하는 내용은 약간 성급한 면이 있습니다 무사들이 일반 평민들 수보다 적었는지 많았는지를 에도시대 당시 인구문서같은 기록을 통해 규명해야 할것인데 박 교수는 이런 근거없이 너무 자의적으로 단정지어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관하여 주장할때에 최소한 자료근거에 임해주시지요 일반적 사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