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05

The Top Non-Asian Civil Rights Heroes For Japanese Americans | Discrimination | 8Asians.com | An Asian American collaborative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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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Japan attacked Pearl Harbor, there was only one national organization that was willing to stand up for the rights of Japanese Americans (JAs). They were the Quakers. Not only did they speak out against the unconstitutional incarceration of JAs they helped many of the Nisei (second generation) kids go to college.
Even though the Quakers were the only national group, there were some brave individuals who spoke out for the rights of Japanese Americans. These individuals were willing to put their professional and personal reputations and sometimes their safety on the line for their fellow Americans, even when the majority did nothing. Here is my list (in no particular order) of some of the more famous non-JA Civil Rights heroes.
Who says librarians or teachers can’t be heroes? Clara Breed, a librarian from San Diego, corresponded with JA children and encouraged them to continue to read by bringing them books and hope. Frida Mix was so outraged about what was going on, she quit her job and became a volunteer teacher in Gila River, Arizona. She remained in the camp until it closed.
Lazo was only a teenager in Los Angeles when Pearl Harbor was attacked. Despite his age, he knew what was happening to the Japanese Americans was wrong. He believed that his Nisei friends were as American as he was. So when his friends were sent off to “camp,” he went too. He was willing to put his freedom on the line for what he believed in.
Besig was the founder and executive director the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of Northern California. He believed what was happening to Japanese Americans to be unconstitutional and persuaded Fred Korematsu to challenge the constitutionality of the “internment,” something that not everyone at the ACLU agreed with. The case eventually made its way to the Supreme Court where he lost. However, in a time of war hysteria and racism, Besig forced people to questioned the legality of what the government was doing.
Collins was a civil rights attorney who also worked on the Korematsu case. But when I think of Collins I think of his “two mass class habeas corpus proceedings with the U.S. District Court of San Francisco in 1945, which aimed to establish American nationality, end internment, and cancel renunciation of Japanese Americans.” Because of Collins, my father and his family (and thousands of  other families like mine) were able to remain in the United States.

조계종은 지금 '깨달음' 논쟁 중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 문화 > 종교ㆍ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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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은 지금 '깨달음' 논쟁 중

입력 : 2016.01.15 03:00

교육원장 현응 스님 "깨달음은 토론·대화로 가능"
선원수좌회·수불 스님 반박 "간화선 부흥에 불교 미래 걸려"

현응 스님, 수불 스님 사진
현응 스님, 수불 스님.
깨달음은 '이루는 것'인가, '이해하는 것'인가. 조계종이 지금 '깨달음' 논쟁으로 뜨겁다.

방아쇠는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당겼다. 그는 작년 9월 한 세미나 발표를 통해 "깨달음이란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초기 경전을 보면, 통찰하고 이해하는 내용이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이라며 "깨달음은 이해 영역이었기 때문에 설법, 토론,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지, 선정(禪定) 수행을 통해 이루는 몸과 마음의 높은 경지, 즉 신비로운 경지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뜨거운 논쟁의 시작이 된 것은 바탕에 간화선(看話禪) 특히 선정과 좌선(坐禪)에 대한 비판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화두에 몰두하는 참선 수행인 간화선은 조계종이 근간으로 삼는 수행법이며 지금도 매년 선승(禪僧) 2000여 명이 간화선 수행을 하고 있다.

게다가 현응 스님은 현재 조계종 승려 교육의 총책임자이며, 성철 스님이 간화선 수행 기풍을 펼쳤던 해인사의 주지를 지냈기 때문에, 그가 일으킨 파문은 컸다. 현응 스님은 간화선에 대해, 원래는 언제 어디서나 문답을 통해 가능했는데 원나라 이후로 좌선(坐禪) 위주로 바뀌었으며 이 과정에서 깨달음이 '이해하는 것'에서 '이루는 것' 즉 신비한 것으로 변질했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그런 깨달음을 이룬 사람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까지 직격탄을 날렸다.

선승들의 대표 단체인 전국선원수좌회는 한 달 후 성명을 내 "현응 스님이 말한 '이해하는 것'은 부처님과 조사들이 경계한 '알음알이'"라고 반박했다. 수좌회는 "이해(알음알이)를 깨달음으로 삼게 되면 도둑을 자식으로 삼는 것과 같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현응 스님은 재반박을 통해 '조계종'이란 이름까지 재고해야 한다고 한 걸음 더 나갔다. 한국 불교는 1700년 동안 다양한 역사와 전통을 승계한 '통(通)불교'이기 때문에 육조 혜능 이후 선종(禪宗)의 느낌이 강한 조계종보다 더 큰 그릇 명칭이 필요하다는 것.

소강상태를 보이던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간화선 현대화·대중화의 기수(旗手)인 수불 스님(안국선원장)이다. 수불 스님은 지난 연말 '종지(宗旨)의 현대적 구현'이란 책자를 만들어 전국 선원과 불교계에 배포했다. 이 글에서 수불 스님은 "'깨달음이란 이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책상물림의 말일 뿐이고, 정작 진실된 수행자라면 '깨달음이란 사유의 영역을 초월한다'는 부처님 말씀에 동의할 것"이라며 "간화선 부흥에 한국 불교의 미래가 달렸다"고 말했다.

불교계에서는 "오랜만에 추문이나 논란이 아닌 본질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깨달음 논쟁'을 반기는 분위기다. 

[키워드정보] 간화선(看話禪) 수행법이란?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불교닷컴 모바일 사이트, 그런 깨달음은 ‘환상’이다

불교닷컴 모바일 사이트, 그런 깨달음은 ‘환상’이다



그런 깨달음은 ‘환상’이다

기사승인 2016.10.04  14: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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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수] 다시 ‘깨달음’

한국불교는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그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많은 사람들이 “불교의 최고의 목표가 깨달음에 있다”고 하는 생각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나는 그것을 ‘깨달음이라는 환상’이라고 표현한다. (참고로, 이 글은 지난해부터 벌어진 현응 스님의 글에 대한 전통불교의 반발-수불스님으로 대표되는-과는 상관이 없다. 나는 그 분들의 글이나 말은 전혀 보지 않았다. 십여 년 전에 현응 스님 책만 대충 본 적이 있다.)
1. 깨달음?
  
▲ 김광수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한양여자대학교 교수.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아(無我)사상을 깨닫는다는 것이고, 공(空)사상과 연기법(緣起法)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는 반야지혜를 닦는다든가, 선정 참선을 닦는다든가, 교학을 한다든가, 육바라밀을 한다든가, 여러 가지가 있겠다. “그래, 그게 수행이지, 그렇게 깨달아서 부처가 되면 윤회를 벗어나고, 해탈, 열반을 얻는 거지. 그런데 뭐가 문제란말인가?” 여기까지 나는 당연한 불교의 기본을 말하였다. 그리고 열반의 정의는 “탐진치의 불길을 불어서 끈다.”이다. 그것이 곧 성불이고 불교의 목표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를 제기하자. 탐진치(貪瞋痴)의 불길이 과연 깨달음만으로 꺼지는가?
“깨달으면 차차, 혹은 자연히 꺼지게 된다?” 언제? 그렇게 막연히 얘기하면 안 된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깨달음 그 자체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깨닫는다고 해서 저절로 탐진치의 불길이 꺼지는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깨달아서 쉽게 꺼진다면 그것을 “세 마리 독사”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치로써 깨닫는다고 해도, 마음의 불길은, 마음의 갈애심은, 마음의 탐욕심은, 마음의 증오심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치(어리석음)라는 독사 이외에 탐(貪, 갈애), 진(瞋, 싫어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이라는 독사를 두 마리 더 설정한 것이다.
즉, 깨닫는다고 해도 그것은 우치(愚癡)라는 한 마리 독사만 잡을 뿐, 나머지 두 마리 독사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깨달으면 자연히 (혹은 쉽게) 貪과 瞋은 사라진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다른 두 마리가 중요하니까 부처님께서는 세 마리라고 따로 말씀하신 것이다. 깨닫더라도 마음 밑바닥에 있는 갈애심, 애욕, 소유욕, 자기집착, 자기애(自己愛) 이런 것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깨달음이라는 단어의 뜻을 그렇게 확장시키기 말라는 것이다. 바로 그 단어의 뜻을 그렇게 손쉽게 확장하는데서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그런 것까지도” 깨달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중이다. 바로, 자기 마음(욕애와 갈애)을 조복 받지 못하고, 참선해서 깨달았다고 주장하면서 할 일을 다 했다고 하지 말아달라는 말씀이다. 왜냐. 두 마리의 독사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선정 수행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상한 현상 몇 가지를 겪고서 깨달았다고 하지 말라는 것은 여러 경전에서도 경계하였고, 조사의 어록에서도 크게 경계하였다.
그런데 초기불교에서도 이 점을 잘 알았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우치(愚癡)를 극복하여 해탈한 것을 혜(慧)해탈이라고 하고, 갈애와 증애심을 극복한 것을 심(心)해탈이라고 했다. 다른 말로 그것은 생각 머리의 해탈과, 마음 본능의 해탈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교학에서도 이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원효(元曉)도 마명(馬鳴)도 해탈로 이르지 못하게 하는 장애, 우리를 결박하는 장애(障碍)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가 있다고 했으니, 그것이 소지장(所知障)과 번뇌장(煩惱障)이라고 했다. 논서에서 말하는 소지장이 법집을 일으키는 장애라고 하지만 결국 그것은 머리의 장애이다. 그보다 더 무섭고, 더 어려운 것이 가슴의 장애인 탐심과 진심이다. 탐심은 실제로는 raga를 번역한 말로, 그것은 물질적인 탐욕보다는 “애욕의 근본”을 말한다. 그러니 그것이 단지 선종에서 말하는 깨달음으로 단박에 없어진다는 것은 공허한 억지일 뿐이다.
소지장, 안다는 것의 장애, 그것은 불교의 진리인 무아사상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러나 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깨닫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깨닫는다는 말에는 그것까지 포함한다.”고 하실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사람들은 그렇게 쓰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오해 때문에 수없이 많은 잘못이 생겨나는 것이다. 깨닫기만 하면 된다는 잘못.
깨달음에 대한 인가(認可)도 문제이다. 실제로 깨달은 선사가 없는데 누가 누구를 인가해 준다는 말인가. 또 깨달았다는 것은 행동으로 드러나고, 감화력으로, 성인(聖人)의 행동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현실이 전혀 그렇지 못한데 참선에서의 깨달음이란 것이 성불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지 않은가.
2. 그러면 어찌해야 탐진치가 조복되는가
탐진치를 조복 받으려면 일단 육바라밀이나 8정도를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말인데? 그렇지 않다. 한국의 선종이 깨달음을 목표로 한다고 하면 6바라밀이나 8정도는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6바라밀은 너무도 기본적인 기초 교리이다. 즉, 바라밀 중에서도 <보시, 인욕, 지계> 등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선정, 지혜”만 닦아서는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불교 교리의 가장 기초이다. 아, 물론 참된 지계(持戒)가 없는 선정수행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도 다 아는 얘기지만, 오늘은 지계 이야기는 하지 말자, 그 이야기 하게 되면 할 말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일하게 참선만을 강조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불교의 잘못된 풍조인데, 그 근저에는 “불교가 깨닫는 중교”라고 잘못 주장하는 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 8정도 중에서 선정만 중요하다면 어째서 “성스러운 도”가 8가지나 된다고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 하셨겠는가. 깨달음이 나쁜 것은 아니로되, <불교가 깨닫는 종교다>라는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깨달으면 다 된다”는 생각이 선종이 심어놓은 가장 나쁜 독소라는 것이다. 그 생각이 오늘날 한국불교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깨달음은 환상”이다. 어떤 깨달음? “그런 깨달음”은 환상이다.
물론 이렇게 한국불교에서 압도적으로 선종 우위의 풍토가 된 것은 이른바 60년 전에 벌어진 “정화(淨化)” 때문이기도 하다. 정화의 과정이 그리 떳떳하지 못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화 사태의 결과로 가장 큰 혜택을 누린 것이 비구승단이다. 그리그 그 결과로 오늘날 한국불교는 선종 일색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불교가 과연 깨달음 수행이라도 제대로 하는지, 그리고 종단 중진 스님들이 출가비구인지 그 문제는 차치해 두자. 그 이전에 과연 공허한, 증명되지 않는 “깨달음”이라는 이데올로기만으로 종교지도자라는 자신들만의 허상을 유지해 갈 수 있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승의 초기 성자들을 소승적 깨달음 수행을 극복하기 위해서 매우 노력했다.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보살사상이고 이타사상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발전되어 온 불교를 모르고, 깨달음만을 강조하고, 그것이 불교의 전부인양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매우 이기적인 것이고, 소승적인 것이고 대승불교가 가장 경계했던 것이다.
3. 참선할 자격
사람들은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선불교에서는 참선을 열심히 하라고 한다. 그러나 참선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6바라밀의 네 가지를 잘 수행한 사람이다. 그 네 가지란 보시, 인욕, 지계. 정진이다. 오늘날 선종 스님들은 보시 잘했나? 인욕 잘 했나? 지계 잘 했나? 그러니 그렇지 않다면 참선 할 자격도 없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이 “깨닫는답시고” 앉아서 깨닫기만 하면 된다고 가르치고 셈 아닌가. 선방에 들어가 앉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보시 인욕 지계를 잘 수행해 마친 사람들이다. 그리고 경전을 충분히 공부한 사람들만이 선방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 그것이 사교입선(捨敎入禪)의 의미이다. 오늘날 한국 불교에서, 한국의 선종에서 그럴 자격 있는 사람 몇이나 되는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깨달을 자격은 보시를 잘해야, 인욕을, 지계를 잘해야 생기는 것이다. 사회, 이웃 생각 안하고, 정치 경제에도 관심 없고, 사회의 도덕성에도 관심 없고, 이 사회의 교육문제 가정문제에도 관심 없이, 그저 참선만 한다고 깨달음이 저절로 이루어지는가? 깨달음이란 그런 게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 선종이 주장하는 깨달음, 그런 이기적인 깨달음은 근거 없는 “환상”이다. 그것은 일종의 부도수표일 뿐이다.
4. 부처가 되고 나서는?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고 한다. 성불(成佛)한다고도 한다. 열반(涅槃)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지극한 즐거움이다. 그리고 할 일을 다 마친 것이다. 깨달은 후의 즐거움, 그것을 선종에서는 극찬한다. 한(閑)도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도인이 한가한가? 도인이 한가해도 되는가? 그래서 부처님께서 깨닫고 나서, 매일 놀고, 옥황상제처럼 하늘에서 선녀들과 춤추고 노셨나? 아니면 열반락에 취해서, 혹은 한없는 선정의 즐거움 속에서 노셨나?
그럼 깨닫고 나서는 뭘 해야 하는가? 당연히 보살행을 해야지. 보살행이 한가한가?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45년 동안을 온 인도 대륙을 헤매고 다니시면서 고생하셨나? 그래서 코삼비에서 제자들이 속 썩일 때 괴로워하시고, 제바달다의 모함과 종단의 분열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도 동분서주하셨나?
그래서 부처님은 유리왕(위두다바)이 석가족을 멸망시키려고 군사를 몰고 오셨을 때 세 번이나 유리왕께 간청을 했나? 그래서 부처님은 자신의 일족이 멸망하고, 석가족의 왕이 된 사촌동생 “마하나마”가 물속에 빠져 일족을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 바위덩어리를 몸에 묶고 물에 빠지는 비극을 목도하셨나? 그래서 부처님은 자신을 도와 불교를 마가다국의 국교로 발전시킨 빔비사라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그 아들 아사세 왕(아자타사투)을 달래서 조복시키기 위해서 그리도 애쓰셨나? 잘 생각해 보라. 그것이 깨달은 후 도인의 한가한 모습이던가. 그래서 당신께서는 세수 80에 지친 몸을 이끌고 고요히 열반하고자 해도 수많은 제자들의 만류를 당하셔야 했나?
부처님은 깨닫고 나셔도 여전히 바쁘셨다. 쉴 사이가 없으셨다. 깨닫고 나면 할 일을 마쳐? 할 일이 없어? 그게 바로 선불교의 독소(毒素)이다. 깨달은 후의 보살행, 이타행에 관심이 없고, 그저 깨달으면 한도인(閑道人)이 된다는 깨달음, 그런 깨달음은 매우 이기적이 깨달음이고, 매우 암적(癌的)인 깨달음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깨달음은 그런 깨달음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당신들, 한국 선종이 생각하는 그런 깨달음은 없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깨달음은 환상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내 주위 사람들이 왜 스님들은 한 결같이 그렇게 “피둥피둥하냐”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불자로서 한없이 부끄럽다.
5. 올바른 깨달음?
그럼 어떤 깨달음이 올바른 깨달음인가?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깨달음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자 하는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단어를 일단 쓰면 바로 “잘못된 깨달음”으로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교는 온통 깨달음이라는 말로 채색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환상이라는 주장을 계속 해야만 한다. 다시 정리하자.
① 불교의 목적은 해탈, 성불이고, 인생고를 제거하는 것이다.
② 그것을 위해서는 탐진치 삼독을 조복 받아야 한다. 즉 번뇌를 조복 받아야 한다. 그것은 혜해탈과, 심해탈을 의미하고, 번뇌장과 소지장을 없애는 것이다.
③ 그리고, 깨닫는 과정보다도 깨닫고 나서의 보살행, 이타행이 더욱 중요하다.
깨닫는 과정의 중요도가 45% 라면 깨달은 후에 해야 할 일이 55% 이다.
④그런데 탐진치의 조복 중에서 깨달음을 통해서 얻는 것은 우치(愚癡)의 극복이다. 깨달음만으로는 욕애 (갈애), 증오심, 증애심(憎愛心) 등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것은 번뇌장의 극복으로서 가능하다. 그래서 수행(전체의 45%) 의 과정 중에서 “깨달음”이란 것은 그 1/3이다. 즉 15%이다.
⑤ 역시 6바라밀로 설명하자면, 앞의 네 가지 보시 인욕, 지계 정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깨달음이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전체 수행 중에서 깨달음이 갖는 중요도는 1/3, 즉 45% 의1/3인 15%이다.
6. ‘보리도차제론’으로 설명해 보자
<보리도차제론>은 티베트 불교의 가장 중요한 교과서이다. 그에 의하면, 수행에는 3단계가 있다. 그것은 하사도 중사도 상사도(下士道 中士道 上士道)인데, 마치 3층 건물을 짓는 것과도 같다. 1층이 보시 지계 인욕 정진이고, 2층이 선정이고, 3층이 반야지혜와 보살행이다. 1층이 없이는 2층이 있을 수 없다. 지금 깨달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선정을 열심히 해야 깨닫는다고 하는데 선정수행은 (즉 “깨달음” 수행은) 3층 누각에서 중간에 있는 2층일 뿐이다. 그래서 그것은 1/3이다. 그리고 그것은 1층이 없으면, (보시, 지계가 없으면) 불가능한 절름발이 2층이다. 또한 선정 수행을 열심히 한다는 것과 3층인 반야지혜를 얻고 보살행을 한다는 것과는 또 다르다. 선정수행은 단지 2층일 뿐이다. 자, 이래도 계속 “깨달음”만 주장해도 되겠는가. 그래도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다면 ‘깨달음’ 이전에 보시와 지계, 그리고 보살행을 먼저 주장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광수 / 한양여자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동 대학원 졸업(치의학 박사). 동국대 불교대학 대학원 졸업(철학박사). 주요 논문으로 〈시장경제에 대한 불교경제학적 연구〉 〈불교의 가치관을 통해본 심층생태론 비판〉 〈소비사회에 대한 불교의 역할〉 등이 있다.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불교사회경제사상 담당.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김광수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한양여자대학교 & mytrea70@gmail.com

나의소개 - 개인이력 (2013. 9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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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력 (2013. 9월 현재)조회 수 1664 추천 수 0 2006.07.03 11:03:18

관리자*.83.160.85http://www.ecopeace.pe.kr/index.php?document_srl=976

이 름: 박성용(Sung Yong Park)

email :ecopeace21@hanmail.net

손전화: 016-774-7613

단체웹사이트: 비폭력평화물결/www.peacewave.net



활동분야:

* 시민사회: 생명평화관련 조직, 훈련 및 교육기획, 각종 비폭력 실천 워크숍 진행

* 학교 영역: 학교폭력관련 갈등중재, "안전하고 평화로움 학교세우기" 기획과 교사훈련, 학생자치임원훈련 등



전공 분야: 종교학, 생태신학, 참여불교학, 기독교평화신학, 비폭력 영성과 실천





현직 - 비폭력평화물결 대표

         기독교대한감리회 평화서클교회 담임목사

         남북평화재단내 평화연구소 소장    

         감리교신학대학 외부교수

         기독교대한감리회본부선교국 환경위원회 정책실장

         한국교회협의회(NCC) 정의 평화 위원회 위원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집행위원  

 

전직: 유네스코/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 시민사회실장



○ 현재 훈련가로서 진행하고 있는 교육훈련모델들

-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 AVP” 진행자(AVP trainer; 국제모델)

- 영성수련으로서 “비폭력 대화” 훈련가 (NVC trainer; 국제모델)

- “비폭력대화에 기초한 조정” 훈련가 (NVC Mediator; 국제모델)

- “회복적 서클 (Restorative Circle)” 실천가(RC trainer; 국제모델)

- “어린이 청소년 평화지킴이(HIPP)” 진행자 (HIPP trainer; 국제모델)



- “갈등과 혼란의 폭풍우속에서 중심세우기”(교사 및 시민사회활동가

                              훈련워크숍; 본인이 자체개발) 기획과 진행

- “평화로운 수단을 통한 갈등전환 TRANSCEND”워크숍 진행

  (TRANSCEND Trainer; 국제모델)

- 각종 회의와 모임용 서클 프로세스(Circle Process) 연구, 개발 및 진행

- "서클로 하는 비폭력평화수업" 진행(매뉴얼 본인 저술)

- "대중운동을 위한 전략적 기획 워크숍" (비폭력직접교육) 진행자



○ 학 력



1977년 2월 덕수상고 졸업

1985년 2월 감리교신학대학교(B.A) 졸업

1987년 2월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M.Th) 졸업

1993년 5월 Graduate Theological Union (Berkeley, California, USA) MA 졸업

2001년 9월 -12월 퀘이커 평화영성훈련센터, Pendlehill 에서 Visiting Scholar로 평화학 연구

2002년 2월 Temple University (Philadelphia, Pennsylvania, USA) 종교학부 (Ph.D) 박사과정 졸업

논문제목-"The Greening of Interreligious Dialogue between Christianity and Buddhism for the Florishing of the Oppressed Others: Focusing on Sallie McFague's Embodiment Theology and Joanna Macy's Engaged Darmology"



○ 목회경력



1985년 7월-1991년 8월 동부연회 괴산지방 고사리교회 담임

1990년 3월 기독교대한 감리회 목사안수

1994년 2월-1995년 4월 미국 Maryland 주의 Baltimore Methodist Church 담임

1995년 9월-1999년 8월 미국 Pennsylvani주 The First Korean United Methodist Chruch of    Philadelphia

                                      교육목사

2006년 5월 -2013.1월 기독교대한감리회 청수교회 부목사

2013년 4월 - 현재   기독교대한감리회 평화서클교회 담임목사 (광명시 철산역 근처)



○ 사회단체활동경력



1994.9월-2001.12월 북미주 자주평화통일 연합  필라델피아 지부장 및 실행위원

2001년 9월 - 12월 퀘이커 평화교육센터, Pendlehill(Wallingford, USA)에서 기독교평화 운동 연구

2003년 1월 - 2005년 12월  The United Religions Initiative-Korea 실행위원

2004년 5월 - 현재  기독교대한감리회 평화교육정책위원회 위원

2005년 3월 - 현재  기독교 환경연대 실행위원(2006년 4월이후-정책위원장)

2005년 4월 - 현재  기독교대한감리회 환경선교위원회 교육정책위원장

2002년 2월 - 2005년 5월 유네스코/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 시민사회실장/사업조정자 역임

2006년 6월 - 현재  비폭력평화물결 대표/ 청년평화운동 푸름 지도위원

2007년 1월 - 현재  한국교회협의회 생명/윤리 위원회 위원

2007년 6월 - 현재  비폭력대화센터 자문위원

2009년 1월 - 현재  동북아갈등해결센터(NARPI; North-East Asia Regional Peace Institute) 실행위원

2010년 5월- 현재   남북평화재단내 비폭력평화훈련센터 소장





○ 연구결과물



가. 저서 /역서

박성용외 공저, 회복적서클에 기초한 또래조정 매뉴얼(동그라미와네모, 2013)

박성용, 비폭력평화교육:각모델의 흐름과 지평(동그라미와네모, 2012)

-----, 평화로운 수단에 의한 갈등전환 TRANSCEND 매뉴얼 (비매품, 2012)

-----, 『청소년을 위한 비폭력평화수업 매뉴얼』(비매품) 비폭력평화물결, 2012. 5.

-----,  『에코페미니즘 관점에서 본 기독교와 불교의 생태평화화』다산글방  2007. 2.

이삼열, 박성용외,   『아시아의 종교분쟁과 평화 』 오름 2005.1.



마이클 네글러 저, 박성용 옮김,  『폭력의 세기에 새로운 희망을 찾아서』비폭력평화물결, 2008.12.



나. 논문



-“생명평화 공동체를 위한 종교간의 대화,” 『지구촌 시대의 한국문화와 불교』

  오성컴, 2005.8.



-“생태여성신학의 관점에서의 종교담론,”『생태신학강의』크리스찬헤럴드 2006.3.



-“매튜폭스의 창조영성과 우주 그리스도론,”『현대생태신학자의 신학과 윤리』

  대한기독교서회, 2006. 8.



-"비폭력의 길"  샘, 2007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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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소개 - 은총과 진실과 자비가 삶의 실재로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 대표 인터뷰 기사



은총과 진실과 자비가 삶의 실재로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 대표 인터뷰 기사조회 수 1526 추천 수 0 2012.05.27 07:31:50

관리자*.83.160.85http://www.ecopeace.pe.kr/index.php?document_srl=1763

은총과 진실과 자비가 삶의 실재로

 

사진ㆍ박숙영 / 인터뷰ㆍ문경민

 (잡지 "좋은교사" /2012.6월호, '만나고 싶었습니다")







회복적 정의, 평화, 비폭력 대화, 회복적 생활지도, 회복적 써클.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한 좋은교사운동의 대안에 주로 오르내리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이 오고가는 상황의 중심에 있지는 않지만, 그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바둑돌 놓듯 고요히 움직이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다.  “뭐...배꼽에 있는 거 다 꺼내야지.” 준비되지 않은 인터뷰 요청에 박성용 목사님은 특유의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놓기 시작했다.



왜 목회자의 길을 가고자 하셨나요?



저희 집은 힘든 가정이었습니다. 6.25로 인한 상처는 아버지를 30여 년의 알콜 중독으로 끌어들였고, 저는 그 상황 속에서 염세주의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살아갈 이유를 못 느꼈죠. 하지만 살아갈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나의 내면은, 살아가야할 의미를 치열하게 찾고 있었습니다. 그 방황의 끝에 교회를 만나게 됐죠. 교회는 저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었습니다. 그게 중학교 때였어요.

상업 고등학교를 나온 뒤에 은행에 취직을 했습니다. 정말 즐겁게 직장생활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폐결핵에 걸렸어요. 각혈을 하는 상황이었죠. 그런 것들이 연결이 되어서 야간신학교에 간 후 다시 감신대를 가게 됐어요. 신학대학생에게 목사 외에 특별히 다른 길은 잘 보이지 않았죠. 조령 관문에 고사리 마을이라고 있어요. 거기에 처음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는 데, 주변 사람들이 그곳은 목회가 될 곳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게 더 맘에 들었어요.

‘오호라... 목회가 안 되면 나는 학자의 길을 가겠다. 공부하겠다.'했죠. 그런데 거기에서 7년 반을 보내게 됐어요. 잘한 목회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도시화물결속에 버틴 목회였죠.



목사님은 좀 특별한 삶을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실례지만 가정에 대해 궁금한데요. 좀 소개 부탁드립니다.



그 당시에 ‘고사리에서 띄우는 편지’라는 묵상 편지를 여기 저기 보냈는데, 그걸 본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맞는 여자가 있다.’고 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됐어요. 세 번 정도 만난 다음에 계룡산에 텐트를 가지고 올라갔죠. 산장 뜰에서 촛불 켜놓고 밤새도록 서로의 인생을 다 털었어요. 그러고 나서 결혼하기로 했죠. 딸이 둘(대학생, 고등학생) 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아갔으면 좋겠다 싶어서 대안학교로 보냈어요. 알아서 행하게 하니까 일찌감치 성장하더라고요. 스스로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것을 보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진짜 그냥 뒀어요. 하지만 저는 애들이 저를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요. 제가 새벽에 일어서나 책 붙들고 있는 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거, 애들한테 도시락 만들어 주고 아침 챙겨주는 거... 그런 것들을 우리 애들이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애들한테 말로 가르치려 드는 것은 잘 안 했어요. 그냥 보여줬죠. 제가 보는 책의 제목들이 아이들에게 암시를 줄 거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저는 주로 애들한테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애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퀘이커들의 영성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애들이 저 퇴근하면 와서 안기고 뽀뽀하고 그래요. 그러면 저는 애들에게 ‘너 이거, 지금 이러는 거 폭력이야. 나는 지금 자발적으로 너랑 뽀뽀하고 싶지 않다고. 징그럽다야.’ 그러죠. (웃음)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카리스마적인 사람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지만, 그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았어요. 스승이라고 부를 사람은 없었지요. 내게 있어서 스승이란 힘을 갖지 않았던, 그러니까 카리스마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그런 것들이었어요. 음... 동물 중에도 그런 친구가 있었는데...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어떤 토끼였어요.(웃음)

필라델피아에 있을 때였어요. 아침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책을 하는데, 야생 토끼 한 마리가 뭔가를 먹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어요. 토끼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지요. 나는 토끼의 눈을 보면서 나의 존재 자체가 상대방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것은... 뭐랄까요, 울림, 울림 그 자체였죠. 2,3분동안 우리는 미동도 없이 서로를 응시했지요. 저에게는 그것이 계시적 사건이었어요. 상대방의 안전이 나에게 전적으로 달려있다는 것, 상대방의 약함이 나의 폭력성을 노출시키는 것을 보았던 것이죠. 그 사건은 제가 특권을 경계하는 삶의 스타일을 갖추는 계기가 됐어요. 저는 미국에 있을 때에도 목회자 넥타이를 하지 않았어요.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눈에 보이는 차별을 받았지만 목회자들은 인종에 상관없이 대접을 잘 받았거든요. 그게 싫었어요.저는 카리스마 있는 사람들의 삶도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정작 제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것은 자기 타이틀이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종종 저를 소스라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교인들도 거의 없는 고사리에서 7년 반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약한 존재들로부터 힘을 얻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것을 통해서 저의 허무주의와 염세주의가 치유되기도 했어요. 그것이 나에게 은총이었지요.



운동가의 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는 제가 운동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미국 생활을 하면서 운동가로서의 삶에 눈을 뜨게 된 것 같아요. 제게 큰 영향을 준 사건은 모두 세 개 정도 되는데...



첫 번째는 LA로드니 킹 사건이었어요. 한인 점포들이 불타는 걸 많이 봤죠. 2000개 정도 탔으니까요. 이해가 안 되는 사건이었죠. 로드니 킹과 한인들의 연결고리는 로드니 킹이 현대 엑셀 승용차를 탔다는 것 밖에 없었는데 말이죠.



두 번째는 우리나라의 IMF였어요. 미국에서 내 조국이 부도가 난 걸 알게 됐어요. 아빠는 거리에서 자고, 아이는 먼 곳으로 보내고... 그 장면들이 정말 참담했어요. 그걸 보면서 영성을 공부하러 갔던 것은 다 집어 치우게 됐어요.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보는 공부를 하는 걸로 방향을 바꾸게 됐지요. 그렇게 해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됐죠.



그러다가 911사태가 났어요. 그 사건이 저에게 결정적이었죠. 온갖 인종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던 템플 대학이 911사태이후 섬뜩한 분위기가 됐어요. 성조기를 밖에 내걸지 않은 집들은 종종 보복의 대상이 되기도 했죠. 그런 분위기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새로운 인간들을 봤어요. ‘펜들힐’ 라는 퀘이커 영성 센터는 911사태가 일어난 그 다음 주에 자신들의 공개강좌 제목을 즉각 바꾸어 이슬람 사람들을 불러들였어요.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달라고 했죠. 울분으로 꽉 차 있는 미국 상황에서 그런 공개강좌를 연다는 건요, 정말... 목숨을 걸고 한 거나 다름없었어요. 저는 거기에서 세상과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렇게 퀘이커를 알게 됐지요.



그런 일들을 겪고 난 뒤 한국에 들어오게 될 때 한가지 결심했어요. ‘나는 내 문제를 가지고, 내게 어떤 불행이 닥쳐오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 자신을 위한 기도는 하지 않겠다.’ 그런 결심이었죠. 그리고 오자마자 유네스코에서 아시아의 빈곤과 종교의 무능력, 종교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을 하게 됐어요. 필리핀과 스리랑카의 분쟁지역을 돌아보고, 반군 사령부까지 들어가서 인터뷰를 했어요. 종교가 그 분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종교에 어떤 희망이 있는지 보고 싶었어요. 거기에서 아시아의 참담한 현실을 보았고, 깊은 분노를 느끼게 됐어요. 대농장에서 붙어먹고 사는 사람들의 가슴 아픈 상황... 기독교가 아시아에서 주는 의미... 그것들을 직면하는 것은 제게도 아픔이었죠. 기독교는 그곳에서 침략의 도구로 쓰이고 있었어요. 자기 성찰에 집중하는 기독교의 무능력, 기독교가 정치권력과의 타협하는 현실. 그리고 새롭게 솟아나오는 대안의 힘들을 보았어요. 그런 것들은 책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었죠.

한국 기독교는 곪아있는 상태이죠. 저는 교단에 대해서는 희망을 갖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름에서도 싹은 나니까요. 한국 기독교에 필요한 것은 문화적 크리스천이 아닌, 실천적 의지를 갖고 있는 크리스천입니다. 저는 여전히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환경운동 등, 여기저기 선한 일들을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보면 많은 크리스천들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이 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크리스천들이 하고 있는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 활동하고 계신 비폭력평와물결이라는 단체와 활동에 대해 자세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유네스코 일을 매듭짓고 비폭력 평화 물결이라고 하는 단체에 오게 됐죠. 처음에 저는 헤맸어요. 비폭력, 평화. 이게 뭔지 몰랐으니까요. 간디를 읽고, 퀘이커 등 기독교내 평화전통을 확인하면서 저의 중심이 다시 세워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했던 일은 평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 자신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게 해주고, 재충전할 수 있게 도와주고, 거대한 악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어떻게 새 힘을 얻을 수 있는지 에너지를 공급 해주는 것이었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폭력이 일어날 수 있는 현장을 방어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그 현장을 돌보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한 훈련 모델이 필요해요. 연구자로 살아온 내 사명은 이들을 훈련시키는 게 내 적성이라고 본 것입니다. 유네스코 관련 교육기관에 있었을 때 지구촌 현장에서 일어나는 실천적이고 실제적인 모델에 대한 감각이 지금의 활동에 도움이 됐습니다. 거대한 구조악과 맞서 싸우는 어느 누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투쟁의 모델이 있는지 안내해주고 설명해줄 수 있는 연구 경험과 지식을 좀 갖고 있었거든요.

비폭력 평화운동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종교성을 앞서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저 상대방이 고통가운데 있으면 그 고통을 감소시키기 위해 섬기는 역할을 하죠. 저에게는 그 섬김(service)이 곧 예배(service), 신을 향해 나가는 거룩한 길입니다. 그래서 나는 훈련하는 워크숍(workshop)을 진행을 할 때 이를 거의 예배(worship)하는 자세로 임하곤 해요. 훈련하여 평화의 일꾼을 만드는 것은 바로 ‘샬롬의 통치’에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한국에 도입되어 훈련커뮤니티로 성장하고 있는 모델이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AVP)” “어린이청소년평화지킴이(HIPP)” “회복적서클” 등이었고, 타 단체들과 함께 처음으로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 “회복적정의네트워크” “비폭력대화에 기초한 중재모임” 그리고 “사회적·감정적 배움(SEL)”입니다. 이 모두가 처음 시도되어 배움과 돌봄의 커뮤니티로 성장하고 있지요.



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가장 안전한 곳에서만 추앙을 하고 어둠과 폭력이 있는 곳에서는 그분의 역사하심을 못보는 것일까요? 낮과 밤의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밤, 곧 폭력과 아픔이 있는 곳에서 그분의 주권성을 세워드려야 합니다. 가장 힘든 곳에서 그분의 현존하심을 가장 잘 계시하도록 우리가 증언하는 것, 이것이 바로 문화적 그리스도인이 아닌 속그리스도인의 할 일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분노의 힘이 아닌, 성찰과 섬김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하고 연대하는... 그런 방식으로 구조악 앞에 설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사람들을 세우고, 연대하는 세력으로 키우고, 스스로 굴러가는 힘을 갖게 하는 것이 제 사역의 방향이에요. 새로운 에클레시아를 만드는 것이죠. 하나님 나라의 평등, 섬김, 같이 가는 사랑의 힘. 이런 것이 실제로 우리 사회에 통용되고 삶에서 소통이 되고 원리가 되고 가치가 되는 것... 저는 그것이 에클레시아라고 생각해요.



근본적으로 폭력이 나쁜 이유에 대하여 좀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파괴와 죽임과 혼돈과 부패를 몰고 오는 것, 그것이 폭력이죠. 폭력은 하나님의 ‘생명, 은총과 평화’라는 본성과 어긋나는 것이라 생각해요. 심지어 폭력에 대적하기 위해 쓰는 ‘구원하는 폭력’은 우리가 원치않는 악을 우리도 은연히 닮아가게 되기 때문에 이것도 허락이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말씀하시기를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셨고, 또 이어 더욱 확실하게 정의하시기를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대적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고, 이것이 핵심이죠.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시고 십자가 지심은 바로 원수된 것을 자신의 몸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화해를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복음서의 핵심이자 산상수훈의 핵심이 이것이고 목회서신으로 알려진 에베소서를 통해 사도바울이 영으로 만난 그리스도에 대한 핵심이 이것입니다. 제자직이란 평화와 화해를 위한 섬김에 있다는 것이 나의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는 것은 상대방을 쳐서 없애는 게 아니에요. 상대방을 틀어잡고 선을 행하게 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죠.



기독교사들에게 꼭 당부학 싶은 말슴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기독교사가 쫓아야할 모델은 둘이예요.



하나는 예수님이죠. 예수님은 삶의 실천적인 문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미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셨죠. 산상수훈과 식탁교제, 그리고 치유를 통해 보여주신 샬롬(평화)의 통치, 이것이 첫 번째 모델이죠.



또 다른 하나는 성령님이세요. 성령의 역사나 열매는 부자로 살게 되는 게 아니라, ‘평화’입니다. 기독교사는 이 두 모델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앙은 차치하고 배움의 본성에 대해서만 얘기해 봅시다. 애들에게 폭력과 강제가 효과가 있다는 말은요, 애들이 움찔하고 겁을 먹게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요. 우리는 상대방이 변화되길 기대합니다. 여기에서는 모두가 “예”라고 말할 것입니다. 정말 그런 태도, 습관은 그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질문을 해볼까요? 상대방이 바꾸어질 때, 그 행동을 안 할 때, 어떤 동기로, 어떤 마음으로 그런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할까요?

우리는 상대방이 내 진심을 이해해서,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자발적으로 하기를 바라는 것이 맞지 않나요? 상대방이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동기가 나의 말을 존중해주고, 내 말의 뜻을 알고, 진심으로 내가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 변화가 있어주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애가 일어나지 않아서 지각할 것 같을 때, 딴 짓을 할 때, 성적이 나쁠 때, 우리는 그 아이를 때리거나 혼을 내곤 합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는 그 아이가 우리 마음을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는가요? 아이들의 마음에 움트는 것은 무엇이죠? 수치심? 두려움? 도덕적 강요? 보상에 대한 기대가 아닙니까? 폭력으로 아이를 가르치려 들면 이런 것들이 작동하게 됩니다. 교육자라면 이 문제는 명확해요. 이건 교육이 아니죠. 변화의 동기가 두려움, 수치심, 도덕적 강요, 보상 따위라면 그 변화를 성장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아이들은 그냥 길들여질 뿐이고, 안전하게 행동하는 정치를 배울 뿐이에요. 아이들에게 내면적 자율성이 있어야 해요. 이게 없는 상태에서 폭력적인 훈육이 들어오면,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하고 상대방을 다루는 정치술을 배우게 됩니다. 신앙인을 떠나서, 교육자의 양심으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배운 성육신 신앙이라는 것은 모범자 되시고 스승이 되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와 은총, 진정성과 자비로움이 눈에 보이는 바 곧 실재가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도 충만할 정도로 실제 삶에서 작동됨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우리를 진정한 크리스천이라고 부를 수 있어요. 존재의 기반이 되고, 말하고 듣고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회의나 시스템 구축에 있어서... 이 진리와 은총이 눈에 보이는 실재로 보여주지 않으면 과연 그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원리가 교실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애들을 응보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이 종교 신념에 위배된다고 봅니다. 응보적 처벌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에도 전혀 맞지가 않아요. 우리는 기독교인으로 살아왔다고 생각들을 하지만, 기독교의 원리대로 산 것이 아니라 유일한 보편적 종교, 궁극적 종교, 곧 폭력이라는 종교의 신봉자였을 수 있습니다. 무서운 거예요, 이것은. 기독교의 핵심이 뭔지 다시 한 번 봐야합니다.

기독교의 원리, 예수님의 삶, 성령의 열매, 이런 것들을 다시 살펴보면 회복적 정의, 비폭력 평화교육. 이런 것들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왔을 때, 그 아이를 사랑의 눈길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얘가 무슨 잘못을 했을지 생각하고, 숙제는 했을지 점검하고 싶어 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 먼저 체크하고 아이들을 대하는 삶의 태도의 이면에는 폭력이라는 유해한 종교에 대한 신봉, 그리고 이것이 효과가 있다는 종교적 신봉이 숨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정말 그리스도인으로... 상상조차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에요. 이런 일들이 우리의 삶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그게 인식이 안 되고 화나는 일이 되지 않고,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는지... 저는 그게 놀라워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에요. 지금의 폭력적인 문화가 자연스럽고, 비폭력에 대해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긴 설명을 해야 하는 현 상황......(한숨) 제가 하는 이게 비정상, 비상식이 된 것이 저는 섬뜩합니다. 핵심은 거기에 있어요.



회복적 교육이라는 것은 자비롭고, 평화롭고, 서로 돌보는 인성과 관계가 따사로운 교실과 학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건 종교적 언어-샬롬의 통치라는 단어를 ‘회복적’이라는 말로 바꾼 것일 뿐이죠. 내용은 딱 같아요. 참된 기독교성과 전혀 위배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비롭고 평화롭고 서로 돌보는 품성을 갖게 하는 일을, 교육을 통해 하는 것일 뿐이죠. 기독교의 진리 개념과 교육학이 전략적으로 제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용 목사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삶의 깊이와 무게가 남다른 한 사람을 만나고 왔다는 것을 느꼈다.



세속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나 몰라라 하고,

높은 목표를 향해 오늘의 한 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이익을 쫓는 바람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우리 모두의 모범이 된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의 길을 정하게 되는 이야기는

하나 하나 모두 드라마틱하지만,

그 드라마가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름다운 드라마를 이어갈 박성용 목사님의 오늘을 응원한다.

2016/10/04

나의소개 - Personal Experience of Peace Works in Korea

나의소개 - Personal Experience of Peace Works in Korea



Personal Experience of Peace Works in Korea조회 수 1912 추천 수 0 2005.06.28 22:01:00

관리자*.83.160.85http://www.ecopeace.pe.kr/index.php?document_srl=939









Message at Celebration of URI's 5th Anniversary and UN's 60th Anniversary

Date: 2005. 6. 26

Venue: Ambassador Hotel (JangChung dong, Seoul)



This program is one part of United Religions Initiative-Global Council Meeting:

Many Faces and One World: Bridging Chasms That Divide

Living into the Promise of URI (June 26th - July,1)







Warm greeting from my heart!

It is a great honor for me to share a bit of peace works with all of you.

I am afraid that I am not right person to stand here, but unfortunately since no other staff is available from URI-Korea, I humbly forward here to speak.



I am Sung Yong Park, a Methodist minister. My first name came from my father's home address in North Korea (P'yongNam province Sung Chun-Gun Gu Yong-myon Un Jun Ri). He left his home village and moved to the south of the Han River during Korean War. And I was born in boundary area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Kang Hwa province Yang Sa-myon Chul Got.



In my childhood, daily I saw North Korean farmers working in the field over Han River.



However, in my village and their village, there are big speakers cursing the other side. Each part broadcast to the other side, "You are a puppet of US imperialists, You are a puppet of Communists, Destroy Communism, Destroy Imperialism."



In that time, I never doubt that they are my ENEMY, even though they are Koreans. I was taught in school that they are dangerous, even that they are not human beings. However, As I grew up, I realized that the teaching that the other side is enemy is a big lie.



From my experience located in boundary area, I was awakened to look at the Others differently. The Others slowly become the Center of my ethical concern. This is the reason why I engaged in dialogue, starting from ideological Others(reunification movement), including religious Others(interfaith dialogue movement), and reaching to gendered Others and ecological Others(ecofeminism), during my whole academic journey and religious practice. 



As a executive member of URI-Korea, I have worked in peace education in UNESCO-related institution from 2002 to last month. It is called Asia-Pacific Centre of Education for International Understanding. This centre's mission is to implement a culture of peace in Asia-Pacific region. I was charge of civil society network and non-formal education focusing such subjects as peace, human rights, multicultural understanding, and sustainable development in domestic and regional level. And also supported by research fund from government-related research foundation, I, with other fellows, visit conflict zones of Asia such as Philippines, Sri Lanka, Kashmir, Indonesia and East Timor for 2 years. We met many peace activists and institute staffs at grass roots level in order to understand conflicts' roots, process and their effort toward peace-building and published a peace study book called "Religious Conflicts in Asia and Peace" this year.



Now I gave up my job in UNESCO-related Centre and I am preparing to establish a alternative educational Centre for peace and sustainable culture. My goal is to coordinate and train peace NGO staffs, Green activists, religious leaders, community organizers and alternative educators.



Until now in Korea, peace works are fragmented and issue-fighting oriented. Many peace activists were easily burned out after serious period of peace works. They feel desperation under the consistent challenges of seemingly unbeatable domestic and global problems.



I would like to re-energize them with the spirit of resistance and transformation, and to deepen their experiences into Sacred Source. And finally through this center, my vision is to expend the greater community with care and universal responsibility through network.



As a first time of Korean Methodist history, I opened officially a peace education program for 5 weeks supported by Educational Division of Korean Methodist Church just several weeks ago.



The second, advanced course will be initiated during Sep. and Oct. Fall. I am also charge of retreat workshop program for about 30 YMCA general sectaries among total 67 YMCA branches in Korea focusing on "Orientation toward Culture of Life and Peace" in next month(July, 7-9).



Still we see a little of seeds and sprouts for peace within conservative and capitalist-absorbing context of Korea. However, I hope there is a good hope for the near future, since peace activists gather together and work harder. URI-Korea is one of this hope.



URI-Korea has worked some significant peace programs. Some of them are:

1) peace champaign for new millenium era

2) interfaith dialogue forum and workshop, focusing on peace from different religious tradition

3) interfaith prayer meeting regularly

4) special event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in some memorial days

5) visiting some different worship places and sharing of each other's rituals and teaching



I think that the important task of URI-Korea toward next step will be to set up some constant and systematic program in areas of interfaith dialogue on peace, reconciliation and green activism. The target groups will be the Youth and young leaders in religion, civil society and alternative education sectors.



Still most traditional and conservative Christian communities in Korea do not want allow their leaders/peoples to engage in multi-faith dialogue movement. However, the unprecedented challenges from regional and global level such as militarism, capital-oriented globalization, environmental crisis and destruction of human security are now asking for us to work together.



I feel desperately that there is no much time to change our current lifestyle and to save eco-fellows and future generations. Therefore, I confess that now we need planetary practice rather than individual practice or group practice. What I means by planetary practice is that every one gets in to contribute one's own talent, time and effort to save our own true humanity and lifes of eco-fellows, and that it means to connect all human being and eco-fellows toward making one planetary community with trust, compassion and justice. It will be communal/collective practice to weave every one and work together disregard of race, sex, class, age, religion and even species.



As a protestant Christian, personally I have only one Creed and one practice which I learn from Christ by heart.



One creed I believe is Incarnation. I interpret this to mean that "the Truth becomes life" not only to Jesus in certain time ago but also to all of us. The Em-body-ment(In-car-nation) of Truth is only what I live by. From this living doctrine, I confess that this is my universal calling that "I have to manifest Truth through whole life of mine." My religious practice comes from this living creed: practice to move from higher to lower. That is practice of the bottom to serve the least, the lost and the last. For the bottom is where they are located and where. This is where Christ live. This is also where I am and where I will go.





Thank you to listen to my personal story.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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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P한국활동가 모임 | 평화서클 신앙공동체(평화교회) 설립을 위한 제안과 초대-빈들녁 - Daum 카페

AVP한국활동가 모임 | 평화서클 신앙공동체(평화교회) 설립을 위한 제안과 초대-빈들녁 - Daum 카페



평화서클 신앙공동체(평화교회) 설립을 위한 제안과 초대

-빈들녁|평화를 향한 일상

평화세상|조회 61|추천 0|2012.10.15.



09:16http://cafe.daum.net/avpkorea/8KG6/20





지난 10년 동안 ‘비폭력평화물결’이란 단체를 통해 저는 비폭력영성과 실천 그리고 평화훈련/교육의 소개와 진행 워크숍을 꾸준히 해 왔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중요한 과제로 깨달은 한 가지는 이제는 단순히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자기 내면과 관계에 있어 비폭력의 가치에 근거하여 실제로 삶의 전반에 걸쳐 좀더 따사롭게 상호성장과 돌봄, 그리고 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신앙에 근거한 평화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이유 중 한 가지는 ‘비폭력대화(NVC),’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AVP),’ ‘청소년평화지킴이(HIPP),’ ‘회복적 서클(RC)’ 등의 비폭력훈련모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비폭력 실천 공동체, 그러한 문화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실습과 돌봄의 공동체라는 울타리를 통해 개인의 수련으로서는 벅찬 과제를 내면의 의식과 실천이라는 생활로 살기 위해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며, 가치(사상과 영성)에 근거한 태도를 심화하고 확산하는 데 있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현장의 필요성과 욕구에 기초하여, 신앙 공동체로서 평화를 사명으로 하되 그 방식을 역사적 평화교회와 인디언의 서클진행으로 하는 ‘평화서클 신앙공동체(평화교회)’를 제안합니다. 이 공동체는 듣고 말하기의 안전한 공간에서 각자의 지혜를 연결하여 ‘공동의 지혜’ 혹은 ‘서클의 중심’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그 역사적 맥락은 기독교의 역사적 평화교회와 간디의 사티그라하(진리의 증언)운동의 전통인 ‘더불어 홀로’의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지혜를 결합하는 방식을 안내 지침으로 삼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초안이자 비전이며, 이것을 구체화하는 것은 구성원들 모두의 동의과정(다수결이 아님)을 통해 상호 약속에 따른 책임이 부여됩니다. 개인의 선택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필요하면 실천약속을 실험하는 기간(1년~2년?)을 갖고 연장, 수정, 탈회를 자유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강요와 의무가 아닌 자발성과 선택의 원리가 존중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욕구에 근거한 이 두 원리에 기초하여 공동체의 치유와 화해, 배려와 돌봄, 헌신과 변혁의 원리가 동시에 존중되는 분위기를 지향합니다.



취지에 동감하고 이런 신앙공동체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데 뜻을 같이 하시고자 하는 분을 초대합니다. 빈곤과 위기의 지구적 상황과 새로운 정치 실험의 대선의 한국상황에서 그 모든 것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개인의 삶에 미치는 지금, 혼란과 위기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료화하고 내적으로나 관계 그리고 공동체의 갈등을 전환하는 회복적 삶의 ‘신앙-실천’ 공동체의 형성에 함께 하시고자 하시는 분들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1. 가치와 목적



1) 서클이 주는 평등성, 관계, 배려, 경청과 존중 등의 비폭력·과 평화의 가치를 실천하는 가치지향의 만남을 중요시합니다.

2) 소수 인물이 아닌 서클 프로세스나 기타 동의과정을 통해 ‘공동의 지혜’가 지도력을 발휘하는 운영방식을 준수합니다.

3) 기독교평화전통과 국제사회의 비폭력운동전통이 지닌 살아있는 신앙, 사상, 영성 그리고 실천의 맥을 잇고 수련하며 이를 삶으로 증언하는 것을 소중히 합니다.

4) 개인과 가정이 지닌 혼란과 위기에 대한 치유와 화해의 회복적 실천(restorative practice) 그리고 지역사회의 폭력과 갈등을 전환하는 적극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기여합니다.

5) 비신앙인, 타종교인의 개종이 아닌 진리에 대한 상호배움과 공동의 선을 향한 대화와 협력의 열린 마음으로 공동의 ‘휴매니티’에 근거한 생명 존중에 관심을 둡니다.

6) 공동체 구성원의 친밀한 관계와 배움, 그리고 성장이 가능한 소규모형의 신앙공동체를 지향합니다.

7) 비폭력 평화 활동을 위한 현장과의 적극적인 연대와 현재 및 미래의 일꾼들의 사회적/사상적/영적 지원과 돌봄에 적극적인 노력을 합니다.





2. 참여 방식과 일정



1) 장소: 서울과 광명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모임 장소를 한 곳으로 정하거나 혹은 편의를 위해 격주로 서울과 광명을 오가며 모이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 곳은 임대, 한 곳은 빌려 씀).

2) 일정: 11월 말까지 의사표시를 통해 응답한 분들을 중심으로 2~3개월간 실험적인 (준비)모임을 갖고 여기서 나온 구체적인 청사진과 상호 약속(covenant-making) 과정을 거쳐 정식 모임을 갖도록 합니다.

3) 공동체 구성원 멤버십: 처음 시작은 공유된 가치와 방향에 대한 동의를 통해 멤버십을 갖되, 그 이후로는 게스트로서의 일정기간 참석후 멤버가 되는 일정한 과정이 있게 되며 이 과정은 준비모임에서 정합니다.





3. 문의 연락처: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 대표/감리교 목사)

전화: 016-774-7613, 이메일: ecopeace21@hanmail.net

개인 블로그: www.ecopeace.pe.kr

(* 수시로 회의와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어서 때로는 연락이 닿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메일로 연락처와 간단히 나누고 싶으신 것을 적어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

고요한 종소리 12.10.28. 21:09

빈들녘님,

제안을 읽었습니다. AVP와 AVP활동가가 지향하는 여러가지 가치 중의 하나는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서 활동한다는 점입니다. 

각자가 가진 신앙과 신앙공동체를 존중하는 것으로 충분 하다는 생각입니다. [평화교회?]라는 이름 안에 속한 활동가와 속하지 않은 활동가를 가르게 되며 [교회]라는 속성 자체가 종국에는 종교와 종파를 논하게 될 소지가 있다는걸 혹시 간과하신게 아닐까 하며 갸우뚱한 마음입니다.

----
창밖의 잎새(황필규), 
흐르는 강물처럼(김민경), 
맑은눈물(이혜숙), 
까꿍(박성일), 
양념짱(석연희), 
고요한종소리(이종희), 
흰돌(김조년), 
꽃단지(안영미), 
똥나무(이형우), 
마리솔(권승현), 
물과바람(최신옥) 
입니다.





AVP한국활동가 모임 | AVP 현황 및 소개(AVP Introduction) - Daum 카페

AVP한국활동가 모임 | AVP 현황 및 소개(AVP Introduction) - Daum 카페



비폭력평화물결|조회 765|추천 0|2009.03.02. 18:48http://cafe.daum.net/avpkorea/8KG3/3

AVP 현황 및 소개(AVP Introduction)

 

AVP는 다양한 폭력의 현장속에 있는 개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타인을 해방시키는 힘을 주기 위한 폭력의 본성에 대한 이해와 그에 대한 실제적인 대안을 찾고, 삶의 비폭력적인 방식의 핵심인 희망과 공동체의 정신을 발견하게 하는 경험적 워크숍(experiential workshop)을 제공하는 자원가들의 조직체이다.



- 공동체 형성: AVP의 목적은 감옥, 학교, 다양한 공동체에 경험적 워크숍을 제공함으로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각 워크숍은 참여자들이 안전함, 가치있음, 존경받음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가 된다.



-AVP의 핵심: AVP는 각 개인에게 있는 근본적인 선의 경험과 변혁시키는 힘의 경험 그리고 진행자의 동기부여를 통해 시작된다. 프로그램은 모든 개인의 이러한 선의 실제적인 신뢰속에서 진행된다.



- 변혁적인 힘(Transforming Power): AVP가 “변혁적인 힘”이라 부르는 것이 AVP의 구조와 아젠다의 맥락을 이룬다. “변혁적인 힘”은 교리나 신앙조목이 아니라 단순히 각 참여자들이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남을 배려하며 비폭력의 길을 추구하며 반응에 앞서 생각하고 최선의 것을 기대할 때 종종 경험되는 그 무엇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평화와 신뢰의 문화: AVP는 자아와 타자에 대한 존중과 돌봄, 반응앞서 생각하기, 비폭력의 길과 최선의 것을 기대하는 등의 원리들을 통해 평화와 신뢰의 문화를 구축하는 시도를 한다. 놀이와 유머는 AVP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능력부여(empowerment): AVP의 목표는 삶을 비폭력적으로 사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적 차이가 있는 곳에서 AVP는 무엇이 폭력이고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AVP는 각 참여자로 하여금 스스로 이를 결정하도록 하고 폭력의 상황에 대응함에 있어서 사람들의 선택을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대안적 기술들을 제공한다.



-AVP의 기원과 국제활동:

이 프로젝트는 처음 1975년 뉴욕 교도청에 속해 있는 그린헤이븐 교도소의 청소년 재소자를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종교와 교화 위원회의 부탁으로 퀘이커 교도들이 시작한 후 첫 번 세미나가 끝나자 미국 전역과 카나다에서, <폭력에 대안 대안적 실천: Alternative to Violence Project>라는 이름으로 급속히 받아 들여졌다. 90년대부터 유럽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폭력의 희생자이자 제공자인 재소자의 인격적 변화에 대한 AVP의 놀라운 효과에 따라 폭력이 있는 어느 곳(학교, 공동체)에도 이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급속히 번져나가 이제는 세계 42개국에 국가별 지부가 형성되어 있고 이들이 함께 모이는 국제총회도 열고 있다.



* 주요 AVP 국제단체: 국제 AVP (www.avpinternational.org)

                             영국(www.avpbritain.org.uk)  미국(www.avpusa.org)

Armenia, Australia, Azerbaijan, Brazil, Belarus, Burundi, Canada, Caucasus Region, Columbia, Costa Rica, Croatia, Cuba, Dominican Republic,Ecuador, Georgia, Germany, Haiti, Hong Kong, Hungary, India, Ireland, Israel, Kenya, Lithuania, Macedonia, Mexico, New Zealand, Nicaragua, Nigeria, Russia, Rwanda, Singapore, Slovenia, South Africa, Spain, Sudan, Sweden, Tanzania, Tonga, Uganda, Ukraine 등 40여 개국이 참가.

AVP한국활동가 모임 | Welcome to the AVP Workshop! - Daum 카페

 비폭력평화물결|조회 322|추천 0|2009.03.02. 18:12http://cafe.daum.net/avpkorea/8KG3/1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AVP)

국제워크숍을 한국에서 시작하며

(Welcome to the AVP Workshop!)



2000년 이후 급속히 성장한 한국 평화운동은 그동안 몇 차례의 활동가대회와 공동 워크숍 등을 통하여 평화의 거대담론만이 아니라 이를 일상의 생활 문화 속에 실현하는 과제를 제안하였고, 활동가들의 재충전과 훈련, 각 현장에서의 폭력에 대한 성찰과 이에 대한 극복, 활동가 자신의 폭력에의 노출에 대한 대안을 고민해 왔습니다.



1975년 이후 전 세계 40여 나라로 급속히 퍼진 AVP 모델은 바로 이런 우리의 고민에 대한 해결을 풀어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집니다. 우리는 40명이 이미 작년 4월에 우테 카스퍼스 선생을 통해 평가워크숍을 하여 그 신념을 얻었고, 

본인은 영국에서 심화과정을, 

진행자인 이종희 선생은 독일에서 진행자 워크숍을 다녀왔을 정도입니다. 

이제 독일 AVP공동체의 관심과 국내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어려운 형편에서도 서로 도와 한국에서 AVP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그 첫 워크숍을 지난 1월에 두 번 입문과정을 하였으며 이제 세 번째,네번째 입문과정과 첫 번째 심화과정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리 모두의 매우 큰 기쁨입니다.



AVP에 관한 내용들은 어느 정도 본 자료집에 실려 있어서 그 내용과 목적, 가치관과 과정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기에,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우선적으로 AVP는 단순히 갈등해결 모델 그 자체만이 아니라 어떤 인간,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고, 어떻게 그것을 내면화(개인), 구조화(사회)하려고 하는 가에 대해 자발적 헌신에 기초합니다.

그리고 기술과 방법론을 넘어서 AVP의 핵심인 “변혁시키는 힘”의 발견과 육성이 중심 열쇠가 됩니다.

따라서 단순히 현장에 급하게 적용하고 대상인 타인에게 써먹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게서 어떻게 이것이 경험되어질 수 있는가(“사건화”)에 워크숍동안 주목해 주시면 AVP 전문 진행자가 되는 긴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AVP의 역사를 통해 볼 때 그리고 한국에서 AVP를 시작할 목적과 의미에 있어서 공동주관단체들은 단순한 일 년에 한 두 번의 워크숍이 아니라, 앞으로 2~3년간 계속적인 자체 공동학습시간을 따로 갖고 각자가 감옥, 공동체, 학교 등의 현장에서 AVP 전문 진행자로서 역할을 하여 개인, 공동체 그리고 사회에 자그마한 변화가 오도록 함께 뜻을 모으고자 합니다.



특히 당분간은 AVP워크숍은 단순 참가가 아니라 전문 진행자를 키워내는 과정에 전렴하기 때문에, 현재 참여하시는 분들만 아니라 앞으로 소개하실 미래의 참여자들께도 이런 취지에 동참해 주시면 AVP 공동체가 한국에서 새롭게 서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같이 긴 여정을 함께 갈 벗들에 대해 정말 진심에서 나온 감사와 참여하신 개인의 욕구들이 다 충족되는 경험들이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이 모임이 더욱 창의적이고, 각자의 희망이 배려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계속 주시면 서로 돌보고 힘을 얻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여에 환영하며 간디의 말로 인사를 대신 마무리 합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보기를 원하는 그 변화가 되십시오(You must be the change you want to see in the world)"



2008년 1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