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3

Dani's Journey :: 소명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파커. J. 파머]



소명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파커. J. 파머]

소명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파커. J. 파머] | 思/독서 2008.04.30 12:22 Posted by 박경식

소명은 의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 은 듣는데서부터 출발한다. 소명이란 성취해야할 어떤 목표가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는 선물이다.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네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May Sarton의<나 이제 내가 되었 네>-

나는 교회 안에서 성장한 까닭에 '소명'의 의미에 대해 맨 먼저 배웠다. 하나님 앞에서 겸허 하고 세상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정의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종교적 전통에서 자란 것이 얼 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 내가 깨달은 '소명'의 개념은 왜곡된 것이었다. 소명은 자신을 향해 외 부에서부터 들려오는 도덕적인 요구의 목소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뭔가 지금의 자기 모습보다 더 훌륭하고 자신을 초월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상을 그리고 있었다. 소명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자아에 대한 깊은 불신에서 시작된다. 죄 많은 자아는 '선'이라는 외부의 강제적 힘을 동원해 바로잡지 않는 한 늘 이기적일수밖에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런 생각 때문에 나는 늘 내 인생을 잘 꾸려 나가기에는 부족한 존재라는 느낌을 가졌다. 내게 기대되는 이상적인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의 차이 때문에 죄의식을 만들어 내면서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해 몸부림치느라 지쳐갔다. 소명의 발견이란 얻기 힘든 상을 바라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참자 아의 보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본래 타고난 사람이 되어, 태어날 때 하나님이 주신 본연의 자아를 완성하라는 '여기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나온다. 토마스 머튼은 이 것을 참자아라고 했고, 퀘이커 공동체에서는 내면의 빛, 또는 각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하 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르며, 인문주의자들은 정체성이나 본성이라고 부른다.

갓난아기인 손녀딸의 모습에서 나는 날때부터 아이 내면에 심어져 있는 성향과 기질을 관찰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에 얼굴을 찡그리고 기분 나빠하는지, 어떻게 몸을 움잊기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게 되었 고, 그건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나는 내가 관찰한 내용들을 편지에 적어 놓고 있다. 손녀딸이 스무 살이 될 즈음에 이 편지 를 보낼 것이다. 나는 그 편지에 이런 서문을 함께 적었다. "네가 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때의 모습을 그려 놓은 것이다. 물론 명확한 그림은 아니지. 명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니까. 그래도 너를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그린 그림이란다.어쩌면 이 기록이 할아버지가 훨씬 나중 에서야 해낸 일들을 네가 더 일찍 해낼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바로 네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참자아라는 선물을 되찾는 일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천부의 재능을 타고 이 땅에 태어난다. 그래놓고는 절반을 그 재능을 내어버 리거나 다른 사람들의 말에 미혹되어 잊어버리고 산다.

젊은 시절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 과는 별 상관 없는 기대들에 둘러싸인 다. 우리의 자아를 알아주기보다는 어 떤 틀 안에 끼워 맞추려는 사람들의 기 대 말이다. 가정, 학교, 직장, 종교단체에서 우리 는 자신을 버리고 사회적인 기준에 맞 추어 살아가도록 교육 받는다. 인종차 별주의, 성차별주의와 간은 사회적 압 력에 짓눌려 자기의 본래의 형상은 알 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질 때도 있다. 또한 우리 역시 두려움에 내몰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참자아를 배반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참자아의 선로를 벗어났을 때, 어떻게 하면 그 흔적을 다시 찾아갈 수 있을까? 한 가 지 방법은 타고난 재능에 좀더 근접하 게 살았던 어렸을 때의 기억에서 실마 리를 찾는 것이다. 세상 만물은 나름의 본성이 있다. 누 구에게나 능력은 물론 한계도 있다. 한 예로, 도자기 만드는 일을 보자. 도 자기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점토에게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점토는 도공의 손놀림에 따라 빚어지지만, 동시에 자기가 할 수 있 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도공에게 얘 기하고 있다. 만약 도공이 점토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결과는 깨어진 파편이나 보기 흉 한 물건이 된다. 공학 (工學)이란 그저 재료를 향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 다. 건축기사가 철, 나무, 돌 같은 재료의 본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단순히 보기 싫은 정 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리나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인간의 자아가 지닌 본성 역시 능력과 한계를 함께 지니고 있다. 자기가 가진 재료에 대한 이해 없이 소명을 구한다면 그 인생은 아름답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를 비롯한 주위 사람 들의 생명까지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무언가 대단히 가치 있는 일에 몸 바치면서 '꾸며대 기'를 해 봐야 아무 소용 없다. 소명과도 상관 없는 일이다. 그것은 자기 본성을 유린하는 무 지하고 건방진 시도이며 결과는 언제나 실패로 끝난다. 우리의 가장 깊은 소명은 그것이 우리가 '되고자 하는' 어떤 이미지에 맞든 안 맞든 자기의 진정한 자아를 향해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기쁨을 발견할 뿐 만 아니라 세상에서 진정 우리가 갈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제 소그룹원들과 함께 나누었다. 사 명, 소명, 비전, 목적...다 같은 말인데 왜 그리들 구분하려하는지. analogia entis. 존재의 유비. 하나님 과 비슷한 무엇인가가 인간에게 남아 있다. 그것을 형상이라고 한다. 영화 감독이나 artist들에게서 볼 수 있는 창조력도 다 그분의 능력의 그림 자일뿐이다. 그러나 그림자를 통해서 그분과 비슷한 무엇을 발견할 수 있 다. 우리 안에 이미 심겨진 것. 박성동 형제님이 그러셨나, 현대 인지 학에서 최근의 화두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무', 백지 상태라고 믿어왔던 가설에서 이제는 뭔가 '스케치(큰 그림)'가 된 상태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본래 각 사람의 취 향이, 행동과 언어와 감각이 다 다르다는 것인데, 것은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과 닮아 있는 그 무엇인 것이다. 그래서 각 사람은 본래 스케치 된 상태의 그림을 찾아 살아간다는 것이 다. 기독교인 본래의 소명은 분명하다.(마6:33, 마28:18-20) 이미 주어진 소명. 그렇다면 어 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릴 때의 기억에 잠겨 보면, 그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지도 모른다. 나는 몇가지 힌트를 벌 써 찾았고, 그것이 현재의 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것은 미래의 나를 인도해주는 중 요한 빛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심어 주신 본질, 내면 안에서부터 출발한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것에 휘둘릴필요가 없다.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에 도 있듯. 부름받은 사람 세례요한의 삶은 평안과 기쁨이었다. 그것은 내면에서부터 흘러 나 오는 질서와 확신 가운데 영향력 있는 삶을 산 것이다. 사울은 쫒겨다니는 사람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왕위를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는 감정이 다윗 을 죽이려는 살인의 감정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과도한 성취와 팽창, 만족할지 모 르는 욕망들...그의 말로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나는 부름받은 사람(Called People)인가? 아니면 쫒겨다니는 사람(Driven People)인가? 하나님은 내게 주신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70의 능력을 주셨는데 90을 요구하 지 않으신다. 그러나 30의 능력만 쓰고 있다면 긴장할 일이다. 영화 [말아톤]에서 초원이가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몸매는 끝내줘요' 했던 그 말. 그는 달릴 때 기쁨을 느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를 빨리 달리도록 창조하셨으니까. 나는 요즘, 가르칠 때 기쁨을 느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를 가르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Dani's Journey :: 탈진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파커 J 파머]

Dani's Journey :: 탈진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파커 J 파머]



탈진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파커 J 파머]
| 思/독서

 2008.04.30 12:48
Posted by 박경식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누군가에게 주고 있다면 나는 잘못되고 위험한 선물, 사랑처러
보이지만 사실 사랑이 담겨 있지 않은 선물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돌보기 위해서보다는 나 자신을 내세우려는 필요에서 나온 선
물이다.
그런 베풂에는 사랑도 믿음도없으며, 사랑의 전달 통로는 나 말고는 없다는 오만과 착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를 위해서 창조되었다. 사랑 안에서 서로를 위해 존재
하도록 창조 되었다. 하지만 공동체는 양쪽으로 열려 있다.
PANTECH|IM-R110|Normal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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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1, 11층 교육관에서...IM-R110 폰카
자기가 가진 사랑의 용량이 한계에 다
다르면, 공동체는 누군가 다른 사람에
게 그 책임을 맡겨 필요한 사람을 돕도
록 한다. 나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을
나타내는 징후는 소위 탈진이라는 상
태이다.
대개는 너무 많은 것을 주려는 데서 나
오는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내 경험상
탈진은 내가 갖지 않은 것을 주려고 할
때 나오는 결과이다. 탈진은 분명 공허
함이지만 내가 가진 것을 주는데서 나
오는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주
려고 해도 아무 것도 없음이 드러나는
것이뿐이다.
그 선물이 참다운 나의 본성. 유기적인
실체 속에서 생성된 것이라면 내가 그
것을 주어버린다 할지라도 스스로 다시 생겨날 것이다. 또한 그러한 베풂의 결과는 탈진이
아니라 비옥함과 풍요로움이며 나를 새롭게 할 것이다.
오직 내 안에서 자라지 않는 어떤 것을 주려고 할 때, 그 행위는 나를 고갈시키며 다른 사람
에게도 해가 된다. 강요되고, 기계적이며, 실체가 없는 선물은 해악만 불러온다. 교사로서
내가 가진 재능은 학생들과 함께 '춤출 수 있는 능력', 대화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음으
로써 학생들을 가르치며 또 함께 배우는 능력이다.
학생들이 기꺼이 나와 함께 춤을 추면 그 결과는 아름답다. 그들이 춤추기를 거부하고 내 재
능이 거부당하면 일은 엉망이 되기 시작한다. 나는 괴롭고 화가 나며 학생들을 원망한다. 내
곤경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 다음엔 나는 그들을 대할 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
다. 함께 춤춘다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하지만 이런 약점이 내 강점의 댓가라는 걸 이해하고 나면 새로운 해방의 기운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 나는 더 이상 내 약점을 '고치려고'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와 함께 춤추고 싶지 않
을 때는 솔로로 춤추는 법을 배운다.
왜냐하면 자칮 그것은 내 재능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나와 춤추기를
거부하는 학생들에게 더 품위있게 대응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내 한계를 그들 탓으로 돌리는 대신 나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한사코 춤을 추
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학생들에게까지 좋은 선생님 노릇을 할 수는 없다. 그게 나의 한계다.
하지만 그런 학생들을 계속해서 춤추자고 불러낼 수 있는 이해심을 키울 수는 있다.
단 몇 명의 학생들이라도 음악을 듣고 초대에 응해서 나와 함께 가르치며 바우는 댄스 무대
에 동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다.



가을 포천 집에 가는 길에서...IM-R110 폰카
인생을 충만하게 살고 싶다면 반대의 것을 인정
할 줄 알아야 하며, 한계와 능력 사이의 창조적
긴장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본성을 왜곡시키지 않도록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타고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재능을 신뢰해야한다. 길이 닫힐 때면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것이 주는 가르침을 발견해야 한다.
길이 열릴 때문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우리 인생
의 가능성에 화답해야 한다.
맞다. 내 맘을 너무 잘 표현해 주었다. 대부분,
앞에 서야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거절에 익숙하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게 되어 있다. 그러
나 그 반응조차 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나의 한계를 아는 것이다. 모두를 만족케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단지 열어 놓을 뿐이다.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이며, 또한 함께 할 수 있도록 열어 놓는 좋은
방법이다 .약점을 고치려고 하지 말자. 약점이 무엇인지 인정하자. 그것도 나의 본성의 한
부분 아닌가? 사랑하게 되겠지. 약한 점까지도. 그것이 진정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기에 앞
서 우리는,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 앞에서 찬
양할 때의 원칙이 있다.
먼저는 내가 그 가사에 침전되는 것이
고, 두 번째는 한 사람에 포커스를 두
는 것이다.
누가 되었든, 필요한 한 사람이라도
맘을 열고 함께 찬양하면 그 찬양은 성
공이다. 그러나 모두를 함께 찬양하게
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아는 것.
이것이 지혜다.

성공회 영성생활 :: '공부방/퀘이커' <퀘이커 300년> 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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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이커 300> 독서후기 (1)
공부방/퀘이커
2014.11.28 13:20



 <
퀘이커 300>이라는 제목의 책(복사본)을 읽는다. 하워드 H. 브린튼이 지었고 함석헌이번역하였다.
책을 요약하는 하며 간간히 나의 감상과 생각들을 적어보겠다.

 


<
머리말> 중에서
*
종교개혁과 퀘이커주의
-
종교개혁 처음에는 그것은 퀘이커주의에 가까웠다. 종교개혁은 얼마 못가서 곧 제 형식과권위를 다시 만들었다. 그 지도자들은 순전히 성령에만 근거하는 종교에 겁을 집어먹고, 그런 종교는 무질서에 빠지게 하는 길을 열어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 교회들은 자기네들권위의 뒷받침을 얻기 위해 국가와 손을 잡기를 청했다. 독일의 종교개혁은 내면적 종교의하나인 재침례파를 쳐부숴버렸고, 영국의 종교개혁은 퀘이커를 쳐부숴버리려고 했다.



퀘이커는 종교개혁의 원형인가? 사회제도의 권위와 형식을 초월하여 성령에만 근거하는 것이라면....
*
퀘이커주의는 기독교적인 관념에 근거하는 단체신비주의 (group mysticism)

-
신비주의는 어떤 종교에나 다 있다.

-
퀘이커가 신비주의로서 기독교 안에서 가지는 지위는 마치 선종이 불교 안에서 가지는 그것과, 도교가 중국 종교에서 가지는 그것과 마찬가지이다.

-
그러나 동양의 신비주의는, 동양의 종교가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개인주의적이다. 교단적인 예배는 거의 있다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퀘이커는 단체신비주의이다. 순수한 신비주의는너무나 주관적이기 때문에 연합의 끈을 마련해줄 수가 없다.

-
대게의 사람은 종파의 냄새만 맡아도 싫어한다. 그들의 의견대로 한다면 조직은 정신을 죽여버린다. 그러나 실제로 해야만 종교이다. 그것이 시작될 때는 아마 어떤 개인 선견자 또는예언자의 사상이나 상상 속에서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가 완전히 드러나려면 반드시 그가르침에 따라 생활하려는 어떤 인간의 단체 속에서 전개되는 역사적 발전에 있어서만 가능하다. 종교적 진리가 만일 하나의 운동으로 구현되지 못한다면 그 생기와 전파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
퀘이커주의는 본래 내면생활에 대한 것이지만또 객관적 역사적 사건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기독교 역사에서 중심적인 사건인, 하느님이 나자렛 예수를 통해인간적인 것으로 나타나셨다는 사실이다.
 만일 하느님이 자기를 외적으로는 역사속에서, 내적으로는 체험 속에서 두가지를 다해 나타내지 않았다면, 그 외적계시는 아무 능력 없는 의미 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고, 그 내적 계시는 아무 형체 없는 막연한 것이 돼버렸을 것이다.



21
세기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신비주의를 모르거나 왜곡하거나 피하고 있다. 기성교회는 확립되어 있는 질서에 신자들을 묶으려한다. 그러나 그 질서는 대중들로부터 (특히 젊은이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이것을 알아차린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새롭게 신비주의를 배우고새로운 교회의 틀을 세우려 한다.
교회개혁을 요구하는 소리가 거세다. 특히 교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더욱 거칠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대중의 요구들을 정치적인 것으로 몰아버린다. 이제는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시절이다.



퀘이커는 지금 한국사회 기독교에 무슨 말을 걸어 오는가, 나는 무엇을 보게 될것인가?
책을 거울로 나를 돌아보며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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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 300> 독서노트 (2) 공부방/퀘이커 2014.11.2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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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 300> 독서노트 (2) 1.

주님을 우러러 보기 위해 * 올리버 크롬웰이 청교도혁명을 일으켜 영국을 다스리고 있던 1652년에서 56년 사이에 그전에 있었던 그 어떤 것과도 다른 한 종교운동이 일어났다. 얼마 되지 않은 수의 남녀 무 리가 도시와 시골 집 집에 모여서 고요한 가운데 같이 앉아 ‘주님을 우러르고’ 있었다. 그들 의 얼굴이나 모양에는 두려움과 공경의 빛이 가득해서 그저 보통 살림방이 아니라 거룩한 성 전에라도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무리 위에는 어떤 위대한 인물이 오는 것 혹은 어떤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다림의 기운이 넘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 표정으로 보아서 그 마음들은 밖을 향한 것이 아니고 안을 향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떤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머리를 높이 들어 하 늘에서 오는 빛을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이따금씩 갑자기 침묵을 깨치고 거룩한 뜻에 복종 하라 외치는 목소리, 하느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음성이 들려왔다.

-
이러한 새로운 영적 힘의 폭발은 그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한 나머지 이따금 몸을 떨 게 하는 일이 있었으므로 반대자들은 그들을 별명지어 ‘퀘이커(quaker)’ 곧 ‘떠는 자들’이라 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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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새 교파를 만들자는 생각은 없었고, 다만 자기네가 발견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려 했을 뿐이다. 그것을 그들은 ‘진리’(The Truth)라 불렀는데, 이 ‘진리’는 새 교리라 기보다는 새 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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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네가 모여 있는 곳이 진동하더니 모든 사람이 다 성령이 충만했다” (사도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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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18:20)

*
최초에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보고

-
“토마스 스테시, 토마스 스텁스, 그 외 몇사람이 처음으로 어퍼사이드에서 진리를 선포했 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얻은 사람들 수는 대여섯 되었고, 이들은 곧 모여서 고요한 가 운데 하느님을 우러렀는데 주님께서는 친히 임하셔서 우리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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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 우리는 꽤 많은 수의 사람이 이곳(콘웰)에 모여서 고요히 앉아 주님을 우러렀는 데, 이때에 우리는 아주 좋고 재미있는 모임을 여러 번 가졌습니다. 그 때 우리는 오직 하나 이신 스승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계셔서 우리의 영적인 요구를 이루어주시는 것을 깨달았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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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킨슨은 우리와 같이 며칠을 머문 후 우리에게 모임을 만들라고 권면했습니다. 아무 도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여서 주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대로해서 한동안 크리스토 퍼 스토리네 집 이층에 모였는데 얼마 아니 가서 그 방이 적게 됐습니다.



-
“이와 같이 친우들은 진정한 침묵을 속으로 지키기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 뜻 대로 우리 여럿의 마음을 새 술로 채워주셨습니다. 그래서 몇 사람의 친우는 견디다 못해 마 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 몇 마디 말을 하는 수밖에 없이 되었습니다. 이때에 사람들의 마 음의 부드럽고 겸손함은 놀랄 정도였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이 생생하게 증거 가 되었고, 그로부터 새로운 힘이 왔기 때문입니다.

-
“그들 (켄트에서 설교를 하고 있던 윌리엄 카튼과 존 스텁스)은 모임을 만들어 세워서 신 앙 얻은 사람들을 한데 모아서 고요한 가운데 주님을 우러르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제 속으로 향하여 제 안에 받아가지고 있는 생명의 빛의 분량 에 따라 자기네가 오래 두고 말로 증거해 오던 신앙의 산 실속을 차차 느끼고, 몸에 지니고, 즐길 수 잇는 데까지 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도, 지금 이 시대에도 이루어지기를............. 기독교 교회의 무미건조한 형식을 인위적으로 깨뜨릴 수는 없다. 새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그곳에 기존의 형식은 깨질 것이고 새로운 그 무엇이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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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파머(저자) | 홍윤주(역자) | 한문화 | 2015-04-30 | 원제 Let Your Life Speak: Listening for the Voice of Vocation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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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양장본 | 196쪽 | 215*153mm | 334g | ISBN : 9788956992112

국내도서 > 자기계발 > 힐링 > 마음 다스리기



미국의 교육지도자, 사회운동가,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파커 J. 파머의 산문집. 이 책의 특징은 소명 찾기를 개인의 관점 뿐만 아니라 사회생태학적인 관점으로도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정한의 나의 길'이라는 개인적 관심사와 '커뮤니티'라는 공동체의 긴밀한 관계를 자신의 인생경험을 통해 잔잔하고 감동적으로 적어나갔다.

파커는 소명을 찾기 위해 방황했던 지난 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실수와 시행착오, 내면의 나약함과 어두움을 솔직하게 그려낸 것.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부드러운 유머와 따뜻함으로 풀어나갔다. 매 페이지마다 지은이의 깊은 통찰력에서 뿜어져 나온 지혜롭고 의미심장한 경구가 담겨있다.





1. 인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라.

2. 이제 나 자신이 되다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는 일
어둠으로의 여행
내면의 기쁨과 세상의 요구가 만나는 곳

3. 길이 닫힐 때
길이 열린다
길이 닫힐 때 나머지 세상이 열린다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
바로 지금 여기에
세상 뒤집어 보기

4. 모든 길은 아래로 향한다
상처 입은 치료자
우울증이 가르쳐 준 것들
영혼의 고통에 다가가기
아래로, 아래로
빛과 어둠

5.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다
안으로의 여행
그늘과 영성
리더가 갖기 쉬운 다섯 가지 그늘
공동체에서의 내면 활동

6.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끝없는 순환
가을
겨울

여름




- 우리 안의 참자아는 침범을 당하면 우리에게 저항할 것이다. 진실을 인정할 때까지 때로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 우리 인생을 방해할 것이다. 소명은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듣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그 참모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참모습이 내가 원하는 인생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은 내 의도가 아무리 진지하다 할지라도 결코 참된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15-16쪽)



- 사회제도는 종종 사람들에게 진실하지 못한 삶의 방식을 강요하려 든다. 가난한 자여, 빵 반쪽이라도 감사하게 받아들여라. 흑인이여, 저항하지 말고 인종차별을 그냥 당해라. 동성연애자여, 내색하지 말고 아닌 척 그냥 살아라. 이런 상황에서 자기의 진실을 감추라는 유혹에 빠져들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러지 않았을 때 뒤따라오는 사회제도적 불이익은 또 얼마나 큰가. (52쪽)

- kelly110
사람이 본연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그 과정에서 자기 것이 아닌 남의 얼굴을 가면처럼 쓰는 일이 또 얼마나 많은가! 내면 깊은 곳의 정체성을 발견하기까지 우리의 에고는 얼마나 많이 녹아 내려야 하며 흔들림을 겪어야 하는가! (28)
- 꿈꾸는학생
˝신은 내게 ‘왜 너는 모세 같은 사람이 되지 못했느냐?‘ 라고 묻는게 아니라, ‘왜 너는 주즈야답게 살지 못했느냐?‘ 라고 물을 것이오.˝ (30) (주즈야의 말)
- 꿈꾸는학생





저자 : 파커 파머 (Parker J. Pal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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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대학의 영혼>,<역설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 총 67종 (모두보기)
소개 :
존경받는 작가이자 교사, 활동가인 파커 파머의 가르침은 교육, 의료, 종교, 법률, 자선 사업, 정치, 사회 변혁 등 많은 영역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고 있다. UC 버클리에서 사회학 박사를 취득한 뒤 워싱턴 DC에서 5년 동안 공동체 조직가로 활동했으며 성인 학습자와 구도자를 위한 <퀘이커 삶-배움 공동체>에서 10년간 일했다. 다양한 차원에서 실천하는 교육학, 공동체와 영성, 사회 변혁이 주요 관심사인 그는 미국 고등교육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가르침과 배움의 역동, 교사와 학생의 내...




역자 : 홍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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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 총 21종 (모두보기)
소개 :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차이나메리카》, 《빈곤의 경제》, 《성과를 내는 팀장은 다르다》, 《최강의 리더십》, 《모두가 말하는 성공을 깨면 나만의 성공을 만들 수 있다》, 《세익스피어의 경영》, 《십계명에서 배우는 인생》,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심리학자가 알려주는 모든 기획자와 프리젠터가 알아야 할 사람에 대한 100가지 사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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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정말 나의 길인가?
삶이 그저 지나치는 듯 느껴질 때,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을 때
이 책을 펼치고 인생이 당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라!

이것이 정말 나의 길인가?
길을 묻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삶의 메시지

가장 나답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

인생의 진로와 소명에 대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 본 적이 있지만 쉽게 그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20~30대의 고민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40대, 50대가 되어서도 마음 한 구석의 허전함이 남아 있어 자기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해 회의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정말 나의 길일까?” 하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길이 주어져 있다고 하지만 그 길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 해답을 찾아 우리는 바깥 세계를 향해서만 눈과 귀를 열어둔다. 그러나 이 책은 그 해답은 바로 자신이 살아온 인생 안에 있다고 말한다.
하는 일마다 제대로 안 풀리고, 어느 날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깊은 좌절과 실망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그때 바로 “당신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하고 말한다.
이 책은 미국의 존경받는 교육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이며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파커 J. 파머의 산문집’이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소명을 찾는다는 것을 한 개인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태학적인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 ‘진정한의 나의 길’이라는 개인적 관심사와 ‘커뮤니티’라는 공동체의 긴밀한 관계를 저자의 인생경험을 통해 잔잔하고 감동적으로 써내려가고 있어 호소력이 있다.
저자는 젊은 나이에 사회적으로 화려한 이력과 명예를 성취했고 초등학교 때부터 최고학부를 마칠 때까지 줄곧 모범생의 길을 걸어왔다.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고 존경받을만한 삶을 살아온 저자가 이 책에서 고백하는 소명 찾기의 과정은 평범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감동과 흡인력이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저자 자신이 소명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실수와 시행착오, 내면의 나약함과 어두움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 또한 그러한 내용들이 결코 심각하거나 무겁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저자 특유의 부드러운 유머와 따뜻함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이것은 저자가 지닌 따뜻하고 풍요로운 영혼의 힘에서 나온 것이다. 페이지마다 저자의 깊은 통찰력에서 뿜어져나온 지혜롭고 의미심장한 경구들은 독자들의 영혼을 관통하는 큰 울림이 있다.
이 책은 인생에서 소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흔히 범하게 되는 실수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본연의 소명의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는가? 누구에게나 주어진 자기만의 소명이 있다고 하는데 왜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방황하게 되는가? …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길이 진정한 자기의 길이 아님을 알아차렸을 때 어떻게 자기 본연의 길을 찾아야 하는가? 견디기 힘든 시련과 고통이 인생에 찾아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모든 물음에 파머는 잔잔한 목소리로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 한다.

내 삶의 소명을 어떻게 알아낼까?
소명을 알아볼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들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우리가 자기 본연의 길에서 멀어지게 되는 까닭은 소명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이다. 종종 우리는 소명을 자기 인생이 원하든 원치 않든 따라야만 하는 지고한 가치나 이상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소명은 자신의 의지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노력을 통해 성취해야 할 어떤 목표도 아니다. 소명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선물이다. 소명은 내가 살아가면서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말하기에 앞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주는 ‘내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 때 발견할 수 있다.
원제 'Let Your Life Speak'가 의미하는 바대로 ‘당신의 삶이 말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 퀘이커 공동체에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경구이기도 한 이 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저자 자신도 처음엔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파머는 소명이란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이상들을 늘어놓고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라 생각했다. 마틴 루터 킹 2세나 마하트마 간디처럼 숭고한 삶을 살기 위해 애썼으나 그 결과는 비참했다. 그러한 삶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왜곡하고 영웅들의 인생을 흉내내는 ‘고상한 길’일 뿐이었다.
파머는 마음에도 없는 소명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소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참모습이 나의 에고가 원하는 인생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해도 참자아의 목소리를 따라야 한다. 참자아는 침범을 당하면 우리에게 저항할 것이며 진실을 인정할 때까지 때로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 우리 인생을 방해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모습에서 소명의 단서를 찾아라
애초부터 우리 인생은 참자아와 소명에 대한 어떤 단서를 갖고 시작한다. 그 단서를 해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그것을 풀어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특히 20대나 30대, 40대가 되어서도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거나 이리저리 끌려 다니느라 타고난 재능을 까맣게 잊고 살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각자 재능을 선물 받고 태어난다. 그래놓고는 그 재능을 내버리거나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모습에 미혹되어 다른 이의 얼굴을 쓰고 그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게 되면 나머지 인생을 바쳐 원래 갖고 있던 선물을 되찾기 위해 애쓴다.
참자아의 선로를 벗어났을 때 어떻게 하면 그 흔적을 다시 찾아갈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타고난 재능에 보다 근접하게 살았던 어린시절의 기억에서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어린시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순수한 열정을 쏟아 몰두했던 일은 무엇인가?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보였던 일은 무엇인가? 가장 생생한 단서는 거기에서 찾을 수 있다.

때로는 인생의 실수, 약함과 어둠이 단서가 된다
소명은 재능이나 능력을 통해서만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 또한 처음부터 ‘가르치는 일’과 ‘작가’를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러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처음에는 신학대학에 입학해서 목사가 되려고도 했고, 사회학 연구교수가 되려고 마음먹기도 한다. 그럴 때 마다 ‘그저 그런 성적’으로 실의에 빠지게 되거나 연구 조교직에서 파면당하는 등 비참한 실패와 실수를 통해 그 길이 자기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아 방황하던 파머는 40대에 들어 두 번씩이나 아주 지독한 우울증을 겪는다. 그리고 그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진실을 깨닫게 된다.
“소리쳐 부르고 어깨를 두드리고 돌을 던지고 작대기를 휘둘러도 소용없자 인생은 나에게 우울증이라는 핵폭탄을 터뜨렸다. 그것은 나를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나를 돌려세워 ‘당신이 원하는 게 뭡니까?’ 하고 묻기 위한 최후의 노력이었다.”
실패와 좌절과 고통은 아주 어린시절부터 줄곧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보면서 가야할 길을 인도해 주려는 ‘참자아’라는 친구가 보내온 신호이다. 우리의 에고가 참자아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본래 가야 할 길에서 멀어질수록 그 친구는 우리의 주의를 끌려는 방법으로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온다. 파머는 이러한 인생의 역설을 통해 자기 안에 있는 빛과 어둠, 강함과 약함, 능력과 무능력 모두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온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됨을 이야기 한다.

인생의 길이 닫힌다는 것의 의미
저자가 무엇이 진정한 자기만의 길인지 알지 못해 방황하고 고민하던 중 퀘이커 공동체에서 사려 깊고 공정 하다고 정평이 난 나이 지긋한 여성을 만나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사람들은 계속 길이 열릴 것이니 기다리라고만 합니다. 나는 기도도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어요. 그래도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소명을 찾기 위해 애썼지만 세월만 자꾸 흘러가고 아직도 그 길을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그녀의 대답은 솔직했다. “나는 모태 신앙인이라네. 그리고 60년이 넘게 살아왔지. 그러나 내 앞에서 길이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네.” 우울하게 말하던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었을 때, 파머는 절망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갔다.
“반면에 내 뒤에서는 수많은 길이 닫히고 있다네. 이 역시 삶이 준비된 길로 나를 이끌어 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겠지.” 순간 파머는 그녀와 함께 큰소리로 오랫동안 웃었다. 쓸데없이 신경을 곤두세웠던 문제가 아주 단순한 진리로 마음에 와 닿았을 때 나오는 그런 웃음을. 그리고 파머는 그 순간 인생에 일어나지 않은 일,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일, 일어난 일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파머는 우리에게 인생의 문이 닫힐 때 그 앞에 너무 오래 서 있지 말라고 충고한다. 문이 닫힌다는 의미는 그 나머지 세상의 가능성이 우리 영혼 앞에 활짝 열린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기쁨과 세상의 간절한 요구가 만나는 지점
소명은 사회라는 생태계 안에서 내 본연의 역할을 찾는 것

‘자아’라는 질문에 최대한 정직하게 대답하라
세상 만물은 나름대로 본성이 있다. 누구에게나 능력은 물론 한계도 있다. 자기가 가진 재료에 대한 이해없이 소명을 구한다면 그 인생은 아름답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생명까지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자기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점토에게 무엇이 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도공이 점토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깨진 파편이나 보기 흉한 물건이 된다. 건축기사가 철, 나무, 돌 같은 재료의 본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단순히 보기 싫은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리나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소명을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든 최대한 정직하게 대답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인생이라는 생태계 안에서 자기 본연의 자리를 찾을 수 있고 자신의 진정한 공동체(커뮤니티)를 찾게 된다. 그때 우리는 이 세상이라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모든 존재와 더불어 상호작용하며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게 된다.

소명은 인생의 생태계에서 내가 있어야 할 본연의 자리
우리의 가장 깊은 소명은 그것이 자신이 되고자 하는 어떤 이미지에 맞든 안 맞든,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향해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기쁨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진정 우리가 갈길을 발견하게 된다. 소명은 자아에서 시작해서 세상의 요구를 향해 나아간다. 자신의 유일한 재능, 이 땅에서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 할 재능을 잘 관리하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책무인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당신의 소명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충실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 끔찍한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소명과 리더십
본연의 소명을 찾게 될 때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이 땅에 살면서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다. 리더십은 모든 사람의 소명이다. 그 길에서 벗어나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도피일 수도 있다. 파머는 모든 사람이 본연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인도해야 하며 또한 다른 사람에게 인도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서로를 이끌어주는 조화로움 속에서 이 세상이라는 생태계는 건강하게 존재할 수 있다고 파머는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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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 던져야 할 질문을 던지게 해주고, 생의 오답을 많이 교정해 주는 책. 겨울을 녹여없애는 산들바람 같은 책. 명언 대잔치. 진작 파커파머를 만났어야 했다. 아니, 그가 걸어오는 말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꿈꾸는학생 ㅣ 2017-12-02 l 공감(4) ㅣ 댓글(0)



여러번 읽고 있는 책
진정성과 깊이를 주는 저자 파커 파머, 읽을 때마다 다가오는 구절들이 있고, 삶의 나침반을 챙기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이 될 때 펴보아야할 책.
vitualD ㅣ 2017-09-21 l 공감(1) ㅣ 댓글(0)



소명대로 산다는 건
남들처럼 산단 것도 아니고
멋진 사람처럼 산다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시선 두고 나를 찾는 게 아니라
나에게 시선 두고 내 안의 조곤한 소리를 듣는 것.
멍멍디노 ㅣ 2017-07-09 l 공감(0) ㅣ 댓글(0)



2년차 때 읽었던 책이,
오늘 다시 새롭게 다가왔다.
읽다가 눈물이 났다.
파커팔머가 된 것처럼
글이 내게 다가왔다.
곱씹지 못하고
폭풍처럼 막 읽어나갔다.

내가 생각한 이상속에서
책 속, 가까이의 능력자 선생님들 속에서
남들의 시선 속에서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열등감의 나락속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또 소진되고 피곤해졌다.

분명히 그때 나는 무언가를 꿈꾸었는데,
지금의 나는 이룬 것 없이 뿌연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다.
이제 이 방황과 좌절을 끝내고 싶다.

#내면의목소리를들을때가왔다.
hsyangcute ㅣ 2017-03-14 l 공감(0) ㅣ 댓글(0)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충고
chester51 ㅣ 2016-04-11 l 공감(2) ㅣ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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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5편




질문을 사는 것 -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꿈꾸는학생 ㅣ 2017-12-02 ㅣ 공감(4) ㅣ 댓글 (0)


질문을 사는 것 -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되고, 읽어야 할 책은 언젠가 읽게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강렬하게 치고 있는 생각이다. 이 책은 내가 꼭 읽어야 할 책이었고, 결국 나를 찾아왔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라는 제목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한동안 깊은 절망감에 책을 읽지 못했던, 아니 책을 읽지 않았던 나는 삐죽삐죽 입을 내밀며 고집을 꺾고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파커 파머는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된 저자이다. 교육계의 '구루'라고 일컬어지는 그가 짤막한 텍스트를 통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 처음엔 별 기대 없었는데, 그 책을 읽으며 그 깊이에 당황했다. 마치 땅인 줄 알고 밟았던 곳이 맨홀구멍인것 같은 느낌이었다. 교육자 이면서 이런 영성가라니? 이제껏 내가 마주친 교육자들은 죄다 고리타분하고 메말랐었는데, 이 사람은 너무 달랐다. 그는 깊은 우물이었다. 나의 마음을 깊이 울리며 공명하는 사람이었다. 그 책을 읽을 시기에는 다독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 책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했었다. 아마 내 마음은 너무 바쁜 나머지 앉아서 그가 하려는 말을 제대로 들을 시간도, 들을 귀도 없었던 것 같다. 그토록 미친듯이 찾을 때는 들리지 않았던 말이, 가만히 멈추어 서 있으니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저자는, 삶은, 하나님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본서에서 저자는 인생을 '진정한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내면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자아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비록 그 자아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두려워서 벌벌 떨고, 깊은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와 대면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말한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알 때, 자신의 소명(vocation)을 알게되는 법이고, 그것은 진정한 리더십으로 자신을 이끈다고 말한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내면의 가장 밑바닥, 어두움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내적 여행을 계속 하라, 에고를 지나쳐 참자아에 이르라, 그러면 자아도취에 빠져 헤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따르는 책임감을 좀더 늠름하게 간직한 채 세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134)




이 책이 그렇게 나에게 와닿았던 것은 내가 수많은 질문들을 하며 돌고 돌아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 왔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이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나는 언제 행복한가? 나는 무엇이 기쁜가? 무엇을 하는 내가 진정한 내가 아니라, 내 존재를 알때야 내가 해야할 일을 알게되는 법. 그렇다면 그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사춘기적이기도 하고 아우구스티누스적이기도 한 이 질문을 다시 던질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쉽게 결론짓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옛날처럼 그리 고통스럽게 질문하지 않을 것이다. 하하하 웃으며 질문 던지는 걸 즐길 것이다. 시인 릴케는 우리 삶 전체가 '질문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171) 그러한 삶 자체를 포용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나 자신을 찾으며 질문하는 여행같은 삶을 다시 시작할 때가 왔다.




사람이 본연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그 과정에서 자기 것이 아닌 남의 얼굴을 가면처럼 쓰는 일이 또 얼마나 많은가! 내면 깊은 곳의 정체성을 발견하기까지 우리의 에고는 얼마나 많이 녹아 내려야 하며 흔들림을 겪어야 하는가! (28)



˝신은 내게 ‘왜 너는 모세 같은 사람이 되지 못했느냐?‘ 라고 묻는게 아니라, ‘왜 너는 주즈야답게 살지 못했느냐?‘ 라고 물을 것이오.˝ (30) (주즈야의 말)



˝내 앞에서 길이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네 ... 반면에 내 뒤에서는 수많은 길이 닫히고 있다네, 이 역시 삶이 나를 준비된 길로 이끌어 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겠지.˝ 나는 그녀와 함께 웃었다. 큰 소리로 오랫동안 웃었다. 슬데없이 신경을 곤두세웠던 문제가 아주 단순한 진리로 마음에 와 닿았을 때 나오는 그런 웃음을. (74)



훌륭한 리더십은 자기 내부의 어둠을 꿰뚫고 지나가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지점에까지 도달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들은 이미 어둠을 경험했고 길을 알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을 ‘완전함‘으로 이끌 수 있다. (144)



˝겨울 속으로 뛰어들어가지 않으면 겨울 때문에 미쳐버릴 겁니다.˝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두려움 속으로 대담하게 들어서기 전 까지는 그 두려움이 우리 인생을 지배한다. (183)



하나님이 주신, 이미 내 안에 있는 소명 찾기 EY ㅣ 2017-08-20 ㅣ 공감(0) ㅣ 댓글 (0)
소명이란 하나님이 내 안에 심어놓은 씨앗과 같은 것이며 이러한 소명은 공동체에서의 봉사와 헌신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 교사로서의 불확실성에 갇힌 나에게 교사로서의 소명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책이었으며 나의 두려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두려움에 당당히 들어가도록 용기를 북돋아준 책이었다. 일년 전 교사로서의 탈진을 겪은 나는 탈진이 곧 실패라는 생각에 다시 가르치는 것에 진저리가 났었다. 하지만 이 책은 탈진은 공급이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올 수 있는 현상이며 탈진으로 인해 모든 것을 내려...

[마이리뷰]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hsyangcute ㅣ 2017-03-14 ㅣ 공감(1) ㅣ 댓글 (0)2년차 때 읽었던 책이,오늘 다시 새롭게 다가왔다.읽다가 눈물이 났다.파커팔머가 된 것처럼글이 내게 다가왔다.곱씹지 못하고폭풍처럼 막 읽어나갔다.내가 생각한 이상속에서책 속, 가까이의 능력자 선생님들 속에서남들의 시선 속에서끊임없는 비교와 경쟁,열등감의 나락속에서나는 한없이 작아졌다.또 소진되고 피곤해졌다.분명히 그때 나는 무언가를 꿈꾸었는데,지금의 나는 이룬 것 없이 뿌연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다.이제 이 방황과 좌절을 끝내고 싶다.#내면의목소리를들을때가왔다.

자기로의 여행 ooomom ㅣ 2016-12-29 ㅣ 공감(1) ㅣ 댓글 (0)


릴케가 말했다고 한다.

우리 삶은 질문을 사는 것이라고.

질문을 사는 것이라니....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가?

질문만 하면 되는가?

질문의 답은 또 어찌 구해야 하는가?

그 답이 답인지는 또 어찌 알 것인가?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에 그 말은 아마도 질문일 것이다.

살아가다보면 영과 육이 갈라져 어느 새 육의 마음으로 내달릴 때, 영이 내게 말을 건다.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니?

행복하니?

어디로 가는 거니?

뭘 하고 싶은 거니?

사람답게 살고 있는 거니?

가치있게 사는 거니?

내게 말을 걸어오는 그 영의 목소리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멈춰서야 한다.

멈춰서서 내가 살아온 내 삶의 길이 나에게 보여주는 것을 보고 멈춰 선 채로 자신의 내부로 긴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가야할 길은 왔던 길을 되짚어보면서 더욱 명료해 질 수 있다.

답은 내 안에 있다.

내 안에 답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계속 물었던 질문.

넌 어디로 가고 싶은 거니?

네가 진정 행복을 느끼는 일은 무엇이니?

어쩌면 이만큼 살면서 내가 알게 된 건, 행복은 사람한테서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사람과의 관계를 제일 우선시하고, 사람들하고 만나 뭔가 함께 일을 벌이는 일을 해 보고 싶다는 꿈이 더욱 명료해졌다. 거기에 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으려나.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 안에서 함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나의 미래의 길을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 파커 J. 파머 kelly110 ㅣ 2016-05-18 ㅣ 공감(0) ㅣ 댓글 (0)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711166322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나의 참모습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이 바쁘기도 하다. 진로를 결정해야 할 학생들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보다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을 지향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는 유독 대학을 졸업한 후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대학 4년을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과목들을 배우며 어떤 의미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건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참모습을 일찍 깨닫고, 진로를 결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행복한 청장년의 시기를 보낼 수 있다. 학생들의 경우 한가하게 홀로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야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기 떄문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들은 그런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학원을 전전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고등학생은 ‘나는 이미 늦었어.’하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늦었음을 알았을 때가 자신의 남은 인생 중 시도하기에 가장 빠른 시기라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거나, 남의 꿈이 내 꿈이 되어버리지는 않는지 학생들도 항상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추워서 맞기 싫어도 매년 다가오는 겨울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맞닥뜨린다. 그럴 때마다 두려워 숨기만 한다면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겨울이 와야 한다면 과감히 그 겨울 속으로 뛰어 들어가라고 저자는 말한다.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대담하게 어려움에 맞선다면 이후 오히려 남은 인생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도 있다. 조금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진로를 결정해야 할 아이들에게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 우리 안의 참자아는 침범을 당하면 우리에게 저항할 것이다. 진실을 인정할 때까지 때로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 우리 인생을 방해할 것이다. 소명은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듣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그 참모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참모습이 내가 원하는 인생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은 내 의도가 아무리 진지하다 할지라도 결코 참된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15-16쪽)



- 사회제도는 종종 사람들에게 진실하지 못한 삶의 방식을 강요하려 든다. 가난한 자여, 빵 반쪽이라도 감사하게 받아들여라. 흑인이여, 저항하지 말고 인종차별을 그냥 당해라. 동성연애자여, 내색하지 말고 아닌 척 그냥 살아라. 이런 상황에서 자기의 진실을 감추라는 유혹에 빠져들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러지 않았을 때 뒤따라오는 사회제도적 불이익은 또 얼마나 큰가.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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