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너머, 아하! 뉴스레터 발간사_이사장 오강남 : 네이버 카페
종교 너머, 아하! 뉴스레터 발간사_이사장 오강남 | 공지사항
전체공개 2013.05.30. 19:56
녹명(svad****)
카페매니저 1:1대화
http://cafe.naver.com/yooyoonjn/207 주소복사
비영리단체 <종교너머, 아하!>의 뉴스레터 발간을 충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일을 위해 특히 애써 주신 운영위원장 성소은 님과 운영위원 최지영 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면 작년 9월 창립 기념식을 가진 이래 <녹명종교나눔터>라는 이름에서 <종교너머, 아하!>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제 어엿이 뉴스레터까지 정기적으로 발행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도록 보이게 보이지 않게 도와주신 고문님들, 이사님들, 감사님, 운영위원들, 그리고 이 모임에서 주관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동참해주신 모든 길벗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모임의 이름 ‘종교너머, 아하!’에는 우리가 처음 목적했던 의도를 나타내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우선 ‘종교너머, 아하’라고 하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각 종교의 울타리를 넘는다는 뜻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각 종교들은 서로 각자의 울타리를 치고 제각각 그 울타리 안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울타리 안의 세계만 오로지 유일한 진리의 영역이라는 배타적 태도를 보이며 그 울타리를 넘어보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종교너머, 아하!>는 각 종교들이 이런 울타리를 넘어서 서로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 싶었습니다.
종교 간의 대화 없이는 종교 간의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 간의 평화가 없이는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한 말과 같이 우리는 자기 종교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현 한국 종교계에 조그마한 소통의 물고를 트고 서로 사귀며 대화할 수 있기를 바라고, 이것이 한국 사회, 나아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이 되리라 믿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지금껏 자기 울타리에 갇혀 남의 종교에 대해 전혀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태도로 일관하던 종교인들이 울타리를 넘어서 이웃 종교와 대화할 때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감격으로 ‘아하!’를 외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둘째, ‘종교너머, 아하!’에는 현재의 제도적이고 개별적인 종교를 넘어가 본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느 면에서 통속적으로, 그리고 천박하게 이해된 대로의 종교, 자본주의의 물질제일주의에 경도된 기복 종교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도 최근에 쓴 그의 책 '종교를 넘어'�에서 “사람들이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분명 종교가 도움을 줄 순 있지만 종교 또한 잘못 이용될 때는 갈등과 분열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고 하고, 이런 종교를 뛰어 넘어 “내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작년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어느 사찰을 방문하여 그곳 큰 스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나 같이 촌에 박혀 있는 사람이 뭐를 알겠소.”하면서도 몇 마디씩 던지는 말씀이 모두 진리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중에 아직도 귀에 쟁쟁한 것은 “불교고 기독교고 ‘종교’로서의 기능은 이제 지나갔지요. 밖에 나가 밭을 갈고 있는 촌로에게 물어보세요. 부처님께 빌고 하느님께 빌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가 하고. 이런 식으로 무엇이든 빌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던 ‘종교’는 이제 그 명을 다 했지요.” 그 큰 스님이 바라는 것도 ‘종교너머’가 아니었던가 하는 것입니다.
현재 서양 젊은이들 중에는 “I am not religious, but spiritual.”이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지금까지의 인습적이고 형식적인 ‘종교’가 궁극적인 해답을 가져다주리라는 기대를 접고, 이런 종교를 넘어 종교가 본래 인간에게 주려고 했던 그 ‘속내’, 그 심층, 그 영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종교너머, 아하!>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뜻을 묶어보려는 시도인 셈입니다. 종교인들이, 특별히 종교가 없더라도 종교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모두 자기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과 손잡고 오손도손 이야기하면서 종교의 속내, 그 깊은 영적 차원을 발견해 나가자면서 계속 아하!를 외치는 경험을 해 보자는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의 말씀처럼, 자비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 ‘하룻밤 새’에 이루지지도 않고, 또 우리의 작은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각’을 통해서, 그리고 ‘교육’을 통해서 ‘서서히’ 다가올 것이라 그의 확신에 동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1) 함께 생각하고, 2) 함께 자라나고, 3) 함께 나누는 일을 해 나가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세계 종교 개관이나, 노자, 장자 등 개별 종교 사상의 연구를 비롯, 종교 체험 여행, 명상 수행 등의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큰 행사로서 9월 말에 있을 그리스, 터기 세계종교문화 답사 1차 여행을 꾸미고 있습니다.
<종교너머, 아하!>는 현재 사단법인 등록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등록을 위한 기본 자금이 5천만 원이라고 합니다. 이 자금을 만들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저희의 뜻에, 그리고 저희가 하는 일에 뜻을 같이 하시려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라고, 또 될 수 있으면 후원회원이 되어 주시기 부탁합니다.
끝으로 이 뉴스레터가 회원 상호간의 더욱 원활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종교너머, 아하!>가 추진하려는 일을 더욱 효율적으로 이루어 가는 데 도움을 주는 매체로 꾸준히 발전해가길 기원합니다.
2016/09/29
함께 하시는 분들 | 녹명종교나눔터가 "종교너머, 아하!"로 자라났습니다 : 네이버 카페
함께 하시는 분들 | 녹명종교나눔터가 "종교너머, 아하!"로 자라났습니다 : 네이버 카페
함께 하시는 분들 | 녹명종교나눔터가 "종교너머, 아하!"로 자라났습니다 | | | 공지사항 |
2013.01.19. 15:00 |
존경하고 사랑하는 길벗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2013년 계사년이 열리고, 모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희망과 꿈을 위해 열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올해를 상징하는 검은 뱀은 치유와 위로의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누구랄 것없이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입니다.
닫혀있는 생각이 아픔을 자아내고, 불통을 야기하지요.
올해는 '여는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여는 일은 분리시키는 벽을 허물고, 틀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합니다.
막힌 담이 허물어질때 나와 이웃의 진정한 만남과 이해가 선물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
이런 바람으로 2012년 9월2일 녹명종교나눔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여러분들과의 아름다운 만남과 자라남이 있었습니다. 축복이었습니다.
이제 '태동기'를 지나 튼튼하게 자라나고자 합니다.
내부 조직을 개편하고, 힘을 실어주시는 고문과 이사진으로 대폭 넓힐 수 있었습니다.
* 함께 하시는 분들
이사장 오강남 |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상임고문 김성곤 |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노영찬 | 워싱턴 조지메이슨대학 교수
도 법 | 실상사 회주, 조계종 자성과 쇄신결사추진본부장
미 산 | 상도선원장, 중앙승가대학 교수
민영진 |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이재정 | 신부, 성공회대 교수
외 1명
(이상 7명, 가나다 순)
이사 강신영 | 의사
김기호 | 명상가
김도원 | 한터울 대표
김진호 | 목사,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장
김용휘 | 천도교 사무국장
문인숙 | 수녀, 부산 예수공부 지도
박은주 | 출판사 김영사 대표
박찬욱 | 밝은사람들연구소 소장
성해영 | 서울대 HK 연구교수
이봉원 | 이사
이영환 |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정용희 | 한신실리콘 대표, 부산 예수공부
조동섭 | 백산인터내셔널 대표
조성백 | 서안 대표
차춘희 | 부산 예수공부 회장
최인영 | 의사
(이상 16명, 가나다 순)
감사 이영종 | 변호사
운영위원장 성소은
운영위원 최지영 | 정광선 | 하석범
..................................................................
지난 1월15일 첫 확대이사회의를 통해 올해 진행될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보고와 개칭에 대한 승인이 있었습니다. 이로써 정식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향후로는 "종교너머, 아하!"를 지향하는 어울림과 열림의 장이 될 것입니다.
길벗 여러분과 함께 하는 새로운 눈 뜸의 체험을 기대합니다.
아하! 아하! 아하!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 연구원 제도
연구소 프로그램 > 연구원 제도
연구원 북리뷰 - [50]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황진이ㆍ문화영
연구원 북리뷰 - [50]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황진이ㆍ문화영
1. 저자에 대하여
문화영
외국어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대한적십자사, 국회 등에서 근무했다. 30대에 이미 여성개발원 국제협력담당 책임연구원으로 활약하였고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다. 그러던 중 중년의 39세의 한창 때 수련에 전념하며 승승장구하던 직장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나왔다고 하나 솔직한 그 내막은 아닌 듯도 하다. 이후 선계의 스승이신 천강(天降)선인을 만나 선계수련의 맥을 전수받았다고 하며 1994년 본성을 만난 후 지속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는 견성 즉 깨달음은 수련의 ‘입학’에 불과하며 우주(본성)와 100% 합일을 이루는 것이 되어야 공부의 끝이라고 주장한다.
그간의 수련 과정은 [선계에 가고 싶다]와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출간되었는데 이들 책에서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련세계의 일들을 손에 잡히듯 풀어놓았다고도 한다. 특히 인간의 생성원리, 사후세계, 우주, UFO, 기(氣) 등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아놓았다. 한편 KBS 라디오 ‘KBS 무대’에 방송작가로 데뷔하여 수백여회의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하고 1996년 ‘다큐멘터리 홍범도’로 제23회 한국방송대상에서 라디오 드라마 부문 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다. 99년부터는‘수선재’에서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현재 수선재 홈페이지(www.soosunjae.org)에 실화소설 [메릴린스에서 온 선인, 토정 이지함!]을 연재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파크 참조]
그래서 명상수련가이자 작가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30대 후반에 모든 것을 버리고 본격 명상에 든 이후, 금촉이라는 고난도 수련과정을 통해 각(깨달음)을 완성했다고 전한다.
지난 ‘98년, <선계에 가고 싶다>라는 책을 읽고 모인 몇몇 제자들의 요청으로 수련지도를 시작한 이래 명상학교 수선재의 명상가로 활약하였으며, 최근에는 여행과 집필을 병행하며 제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저서로는 <무심>, <여유>, <선계에 가고 싶다>,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천서0.0001> 등이 있다.
* 명상학교 수선재
명상학교 수선재는 건강과 정신적 풍요로움을 위한 대중적인 명상은 물론 생활 속 깨달음을 지향하는 선계수련 과정까지 운영하는 전문 명상학교라고 한다.
저자는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단계적인 명상 프로그램을 통해 명상의 대중화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고 하며 인간, 자연, 하늘이 하나 되는 선(仙)문화 운동을 펼쳐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고급 선계수련 과정인 상ㆍ중ㆍ하단이 완성된 전인(全人)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호주, 남아공 등 세계 각국에서 이천여 명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명상을 배우고 있노라 소개하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참조]
황진이黃眞伊
조선시대의 시인 겸 명기(名妓).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대표작으로 《만월대 회고시》, 《박연폭포시》 등이 있다.
별칭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 명월(明月)
출생지 개성
주요작품 《만월대 회고시》《박연폭포시》《봉별소양곡시》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 명월(明月). 개성(開城) 출생. 중종 때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고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相思病)으로 죽자 기계(妓界)에 투신, 문인(文人) ·석유(碩儒)들과 교유하며 탁월한 시재(詩才)와 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修道)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天馬山) 지족암(知足庵)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破戒)시켰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徐敬德)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제관계(師弟關係)를 맺었다.
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정을 나누고 벽계수(碧溪守)와 깊은 애정을 나누며 난숙한 시작(詩作)을 통하여 독특한 애정관(愛情觀)을 표현했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서경덕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작품으로 《만월대 회고시(滿月臺懷古詩)》《박연폭포시(朴淵瀑布詩)》《봉별소양곡시(奉別蘇陽谷詩)》《영초월시(咏初月詩)》 등이 있다. - ⓒ 두산백과사전
2. 내 마음속에 들어온 글귀
책머리에
황진이라는 분이 40세쯤 되어서 돌아가셨다고 그러는군요. p15
그런데 기생이지만 이분의 문학사적인 위치 때문에 이분을 무시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국문학계에서는 조선 500년을 통틀어 황진이를 따라가는 시조시인은 없다고도 합니다.
한시에서는 허난설헌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평도 있고요.
그래서 특히 국문학자들이 역사 인물 중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인물이 황진이입니다.
누가 찾아보니까 논문이 한 천여 편 된다고 그러는군요.
그런데 이분의 작품은 많지도 않습니다.
시조 여섯 수에다 한시 여덟 수 이런 정도인데.
한시는 잘 나와 있지도 않고 찾아야 되죠.
그 시조 여섯 수를 가지고 그렇다는 거죠.
이분의 기생으로서의 명성보다는
그 사람이 남긴 작품이 두고두고 향기를 발하는 거예요. p16
공부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는 거예요. p17
프롤로그/
모노드라마 선악과는 무엇일까?
중국 당나라 때 측천무후와 고종의 외동딸인 태평공주
그녀는 육촌 동생인 당 현종에 의해 죽음을 당했더군요.
양귀비로 유명한 그 왕 말예요. p32
생로병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누구 마음대로 되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하려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랍니다.
저는 자살하기 위해 사니까요.
히히...
의문이 생기면 풀릴 때까지는 저와 상대방을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달달달 지지고 볶으니까요.
참 안 좋은 성격이죠.
하지만 배 안의 짓이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겠죠. p33
예나 지금이나 저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 남자를 두 여자가 나누어 가지는 상황에는 늘 분노한답니다.
한 여자를 두 남자가 나누어 가지는 일에는 부러움을 느끼면서도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편의 말을 종합해 보았죠.
어쩌다 그렇게 되었고, 남자는 평생 한두 번 바람이 나게 마련이며, 제가 잘못한 점이 없다고 했고, 두 여자를 다 데리고 살고 싶다... p38
내 사전에 이혼이라는 말은 없어
남편이 화를 내며 말하더군요.
그렇고 그런 삼류 얘기죠.
허나 다들 비슷한 모양새로 살고 있는 거잖아요.
이혼을 강행하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아이들을 절대 줄 수 없으며 만나지도 못하게 하겠다고 하더군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라니까요.
그때는 법이 어떤 상황에서건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던 때였습니다. p40
남편이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있는 게 나아.
의논할 상대라도 있는 거잖이...
과부로 오래 살아오신 어머니의 경험담이 이 한마디에 녹아 있더군요.
결혼할 때에도, 그 이후에도 남편의 무질서한 생활태도를 몹시 싫어하시던 어머니의 이 말씀에 많이 고민했죠. p41
속절없이 사랑에 몰입하는 여자들의 속성은 사랑 때문에 인생 전체를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하는 가 봅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결코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죠? p44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산을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 손가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 것은 p58
여성은 항상 어머니의 마음으로 남성을 품어야 하며 그러한 속에서 아들 같으면서도 여인 같기도 하고 아버지 같기도 한 느낌이 살아나오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를 상대할 경우 반드시 유념해야 할 부분은 역할에 있어 절대로 남성이 여성보다 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지는 하늘과 땅이 동시에 존재하였으되 발아의 과정은 모두 땅이 담당하였음을 생각해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씨앗은 하늘이 주되 그것을 살려내는 것은 여성의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성의 기본은 모성이며 모성을 기본으로 하는 한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실패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근본적으로 모성이며 여성만이 온전히 할 수 있는 중의 하나입니다. p62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수많은 남성들과 사랑을 나누고 가슴을 앓아야 했던 과정은 모친의 마음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겪어 넘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과의 사랑을 전부 아들을 여러 명 둔 것 같은 기분으로 받아들였으므로 진실한 사랑을 하면서도 아픔을 나름대로 온전히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그들이 다른 여성과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다독여 주고 바라보는 즐거움까지도 저의 것이 될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여성이므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p63
하지만 결국 완전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지요. 그것은 곧 모든 것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우주이니까요. p64
황 선배가 가장 사랑하신 분은 지족선사였다는 군요. p65
남자 없이 , 성性 없이 사는 고난도의 삶을 통해 겸손을 알게 하시려고 하셨던 것이겠죠.
이제는 나이도 어지간히 먹었으니 여자로서는 접고 자유를 추구하는 오직 ‘인간’으로서만 살고자 합니다. p68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 황진이와의 대화
제 1장 황진이, 삶을 말하다
부친은 선비, 황이黃伊
“저는 원래 진眞이라고 불렸으나 나중에 제 스스로 아버지의 아름 끝 자를 한 자 붙여 진이 眞伊라고 불렸습니다.”
출생: 1511년 6월 생
부친: 시골의 선비로서 조용한 가운데 나름의 학식을 갖춘 분입니다. 거의 말이 없으셨으나 마음속으로는 사랑이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저를 퍽 아껴 주셨으나 소실의 딸이므로 내놓고 귀여워해주시지는 못하셨습니다. p75
아버지의 직업은 무엇이었는지요?
선비로서 초시에 급제하기는 하였으나 벼슬을 한 적은 없고, 농토가 있어 일꾼들이 농사를 지어 생활하였습니다. 부유하지 않고 그런대로 살았습니다.
음주가무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라 아주 조용한 편이셨습니다.
형제들은 어떠했는지요?
본 부인에게서 아들이 두 명 있었고 그리고는 저 이렇게 셋이었는데 오빠들과는 별로 대화가 없이 자랐으므로 그저 있었다는 정도 외엔 별 기억이 없습니다. p76
성장과정은 어떠했는지요?
집에서 모친과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기생이 되려고 나가기 전에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대로 평범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모친과는 언제까지 있었는지요?
어머니는 15세 경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로 집에 있기가 불편하여 어디로든 나가야 할 형편이었으므로 방편을 생각하던 차 기생이 된 것입니다.
저로서는 그때까지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독서를 통하여 나름대로 알고 있었으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생각이 있던 차 모친께서 향천하셨으므로 저의 길을 간 것이지요. p77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황 선인을 보필했던 여성은 누구였는지요?
자랄 때는 전속 몸종이 없었고 기생이 되고 나서 서너 명의 몸종이 있었으나 오래 두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몸종은 신월이라고 하였는데 6년 정도 데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로 제 몸종들은 남정네들이 붙여주었던 것이지요.
그들이 제 심부름을 하기는 하였으나 마음을 깊이 줄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고 그저 할 일이나 하였을 뿐이지요. p78
*** 기생의 몸종은 오늘날의 개목걸이?
* 황진이의 출생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담긴 자료가 없고, 여러 책에서 신비로운 설화처럼 전하고 있다. 이덕형(李德泂, 1566~1645)의 <송도 기이(松都記異>)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황진이의 어머니는 현금(玄琴)이었는데 자색이 매우 고왔다. 나이 18세에 병부교 아래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 다리 위에 한 사람이 있으니 용모가 단아하며 의관이 화려했다. 현금을 내려다보며 미소도 띄우고 손으로 가리키기도 하여 현금의 마음이 동하였는데, 문득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해질 무렵에 빨래하는 여인들이 모두 간 후에 다시 나타나서는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다리 아래로 내려와 물을 청하기에 떠주었다. 반쯤 마시다가 돌려주면서 “그대도 마셔보라”하기에 현금이 받아서 마시니, 물이 아니고 술이었다. 그리하여 합환주(合歡酒)가 되어 둘이서 깊은 인연을 맺으니 이로 말미암아 탄생한 것이 진이였다.
* 약간 추가된 내용이 김이재(金履載, 1767~1847)의 <중경지(中京誌)>에 나온다.
그 뒤 소년은 이름도 안 밝히고 가버렸다. 생각건대 선인이라고 여겨졌다. 과연 임심이 되어 진이를 낳았는데, 해산 때에 기이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 차 사흘 동안 걷히지 않았으니, 즉 이는 선녀라... 어찌 황(黃)이란 성이 있겠는가?
* 김택영(김책영. 1850~1927)의 <숭양기구전(菘陽耆舊傳)에는 ‘황진사의 서녀(庶女)’라는 언급이 있다.
이는 황진사의 서녀이자 진사의 첩이 현금이었다. 그가 병부교 아래에서 물을 마셨는데 감응하여 임신이 되어 진이를 낳았다. 방 안에 이상한 향기가 사흘간을 머물렀다.
* 허균(許筠, 1569~1618)의 <성옹지소록 (惺翁識小錄)>에는 ‘맹인의 딸’이라는 언급이 있다. p79
잣나무배
저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잣나무배
몇 해나 이 물가에 한가로이 매였던고
뒷사람이 누가 먼저 건넜느냐 묻는다면
문무를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 p84
제 경우에는 인간의 몸을 가진 자녀를 둔다는 것은 한 남자에게 매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지요.
어떠한 한 남성을 평생 사랑한다는 것은 곧 제 공부의 미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어요. p88
사람들이 그를 일러 선녀라 하였다
방에서 향내가 났었다는 데 무슨 냄새였나요?
향내는 선인으로서 수련을 하다 보면 나는 향내였지요.
선향仙鄕이었습니다.
호흡을 열심히 하다보면 인체에서 분비되는 물질이 있고 이 물질은 인간을 가장 향기로운 상태로 인도하지요.
호흡을 열심히 할 경우에 무심 상태에서 분비되는 것으로서 인간의 모든 병까지도 나을 수 있게 하는 물질입니다.
화학적인 변화로 가능한 병은 나을 수 있지요.
호흡을 통하여 만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물질의 분비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이 물질의 분비가 가능한 이유는 신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 L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p88
반달을 노래함
누가 곤륜산 옥을 깎아내어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
견우와 이별한 후에
슬픔에 겨워 벽공에 던졌다오 p91
* 황진이가 서화담 간에 주고받았다고 하는 시조 두 수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만중운산)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 화담 서경덕
내 언제 무신(無心) 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 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 황진이 p119
* 황진이가 벽계수를 유혹하며 불렀던 노래가 아래의 시조이다.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사랑의 정한을 노래한 황진이의 시조
어져 내 일이야 그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p 123
?
3. 내가 저자라면
명상을 하며 황진이와의 대담형식을 통해 나눈 저자의 궁금증과 주장을 펴나간 책이다.
하나, 책을 팔려면 저자나 출판사는 적당히 사기를 칠 줄 알아야만 한다?
방식이야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겠지만 인터넷에 나와 있는 저자소개란에 쓰여 있는 저자가 명상에 몰입한 계기 옳지 않게 기록 되어 있는 것 같다. 이혼하고 배반당해 실연을 극복하기 위해 명상에 빠져들었다고 하면 독자들이 쉽게 다가가지 않고 외면할 것이어서 그러한가?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붙여가며 저자의 경력이 마치 저자 글의 가치인양 떠벌이고 있지만 이 책의 프롤로그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내용이 다르게 나와 있지 않은가.
책 내용의 서두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두 남자로부터의 상처에 대한 상심으로 오래 갈등하며 아파하다가 명상에 더욱 심취하게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고 원치 않았던 자신의 일련의 상황들에 대한 인간적인 경험들과 의문을 풀어보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스며져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꼭 그것 때문에 명상을 하게 되었다고는 말하고 있지 못하지만 저자가 첫 번째 남편의 단순한 불륜을 넘어선 장기간에 걸친 지독한 속임수에 심한 모욕감과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고, 감쪽같이 두 집 살림에 오래 동안 속아 살아온 분노로 인해 심적 고통과 함께 실제로 육체의 병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는 점과, 그로인해 병명도 잘 나타나지 않는 유방이 부풀어 오르는 심한 통증에 시달리며 심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웠고 명상으로 인해 차츰 회복되었다고 그 신기함을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살다보니 그녀 역시 첫 번째의 전 남편과 같은 방법으로 삶을 살게 되는 것에 대해 고뇌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거하며 사귀던 남자가 기막히게도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림으로써 결국에 아내가 있는 남자와의 불륜의 관계를 가지며 청산하지 못하고 살다가 마침내 용단을 내리고 혼자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노라 독자가 짐작해 볼 수 있도록 솔직하게 적어놓았다. 그리고 저자는 명상을 위해 사회적 신분 모두를 내려놓았다고 이 책에서는 밝히고 있지 않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 책은 선계를 파동으로 교환할 정도로 신성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럴 듯한 이유보다는 진솔한 진정성을 갖추지 않은 표현은 자칫 독자를 우롱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것이기에 말이다.
어느 저자소개에는 무조건적으로 오로지 명상을 위해 모든 것을 일순간에 초개와도 같이 버린 것처럼 표현되어 있었으니 이는 독자를 유인하기 위한 출판사나 대행 회사 측의 저의로 보인다. 그것은 저자에 대한 참신성을 애초부터 의심하게 하는 것을 도울 뿐이라고 생각된다. 책이나 읽어보고 쓴 것인지 모르겠다. 지나친 상업주의적 발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작가적 양심으로 헤쳐 볼 수 없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전 이력을 밝히기보다 그럴 듯한 이력을 내세우기를 좋아하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소위 간판 하나로 편히 먹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이러한 현실을 지극히 너무나도 많이 뼈저리게 느끼고 당해온 터라 내 조카의 대학입시 때에는 학벌이 신분을 표방해 주는 이 사회의 논리를 간과하지 않고 설명해 주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사회의 통념과 구조 속에서는 아직까지 대단히 유효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이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지 않은가.
결국에 출판과 매출이라는 것은 글보다 기획과 홍보라고 말하는 어느 선배의 한에 서린 듯한 주장도 결코 예사롭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런 경우도 복불복福不福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두울, 나는 황진이의 시조를 좋아하고 그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대담하고 대단한 예기를 가지고 남존 여비 시대에 신분상 하위직의 기녀로서 남자를 후려 대는 솜씨가 능숙 능란 가히 일품이기 때문이다. 당대의 내놔라하는 여간한 남자들은 일명 기녀 황진이에게 쭉도 못된다고 할 수 있으니 그의 배포와 깡다구가 멋져 보이기까지 한다. 시대를 잘못만나 그렇지 요즘 같은 세상을 만났더라면 멋진 로비스트로서 크게 한몫 당당히 해내며 일을 내도 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재능이 치마 속 감춰진 부분에만 국한했던 것이라면 물론 어우동 쯤으로 항간의 흥밋거리나 될 뿐 재미없었을 것이다. 허나 그는 우리 문학사에 유유자적 만만히 그 흔적을 들어내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글을 쓴 저자 문화영도 아마 그 점을 높이 사서 이 정도라면 선계에서 노니는 신선들의 지상 왕림 행차라고 할만도 하리라 생각했나 보다. 그러나 저자의 수련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종의 배 아픔과도 같은 빈정댐의 일환인지 마치 하느님이나 부처님 앞마당에서 노니는 듯 자신을 그리 신성시 하는 것에 대해서는 책을 다 읽고 나니 더욱 납득이 가지 않음을 어쩌랴. 이 책에 드러남으로 봐서는 저자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음은 과연 나의 명상의 명자도 모르는 수련에 무지함의 극치의 발로 때문일 것인가?
세엣, 나는 아직 책 고르기에 능숙하지 못하다
연구원 수련 동안은 지정 목록이 있어서 참 편했고 좋았다. 좋은 책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홀로 자신의 고독을 향해 가야하는 요즈음에는 평소에 책읽기가 잘 훈련되지 않아 그런지 아직도 대형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구입하려고 하면은 많은 사람들의 열기와 빼곡히 들어찬 책들을 보며 이내 현기증을 일으키고 돌아오고는 한다. 어떨 때는 그 수많은 책들 가운데 읽고 싶은 책들을 찾아가며 조금 살펴보다가 금방 지쳐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찬찬히 그 책에 대해 마음 편히 살펴보기가 조급한 성질 때문에 그런지 쉽지가 않고, 설령 몇 권을 살펴보다가는 마음이 편하기보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내가 과연 이 많은 책들 가운데 끼일 수 있는 나만의 책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의심이 드는가 하면 금세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책들을 보면서는 그 꼴이 마치 내 모습일 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까지 하면서 순간 기가 팍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소 편하고 수월하게 인터넷 서치를 통해서 한꺼번에 몇 권씩 구입해 놓고 한동안은 아무 고민 없이 읽는 방법을 선택하고는 하였다. 그것이 즐거운 마음으로 발품을 팔러 나갔다가 공연히 매정한 현실에 부대끼며 자신감을 상실하고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것보다 낫다고까지 생각해 버리기까지 했다. 차라리 냉정한 현실을 눈에 안 보이게 하고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볼 수 있을 거라는 기분 좋은 착각에 잠시 빠져들기도 하노라면 단순히 글쓰기 작업에 집중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욕심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인터넷을 이용한 서치도 미숙해 그런지 좀처럼 만만치도 않거니와 저자 소개나 출판사에서 주장하는 책에 대한 서평만으로는 사실 신뢰성 있는 내용을 쉽게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너무 그럴 듯하게 소개되어 있는 책들이 많아서 말이다.
네엣, 이 책의 다른 구성 다른 주장에는 의도된 억측의 몽상적 사기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구입해서 읽고 있는 특히나 이번에 읽은 이 책은 다른 책들 같지 않게 좀 특이한 형식을 취한 책이다. 어느 면은 약간 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어느 부분의 목차가 황진이와의 대화라고 또렷이 적혀 있다. 자서전들을 읽고 있던 중 평소에 관심이 있던 황진이에 대한 자전적 성격의 글인 줄 알고 선택해서 읽었는데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 난감하기도 하다. 저자가 마치 대필한 듯한 선계의 대화방식으로 글을 엮어 나가면서 저자의 주장을 담아냈으니 독특하기도 하고 무언가 언뜻 사기 당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시대를 초월한 거침없는 여성성을 불러들이고 뭇 사내들을 거친 황진이라고 하는 희대의 기생이며 문필가이기도한 역사속의 인물에 자신을 투영시키기도 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의문점을 풀어간 형식이 독특하고 흥미로운 한편, 자신의 주장으로서는 미흡할 수밖에는 없는 나름의 좀 엉뚱한 듯한 신선사상과도 같은 명상을 선전하거나, 죽은 사람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감정이입을 시켜놓고 마치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억지로 끼워 놓고는 맞는 것인 양 강요하는 구조를 끌어들인 것은 아닌가하고 자못 의아스럽기도 하다. 남다른 빼어난 이력을 가지고 그토록 글쓰기로 돈을 잘 벌었으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까지 올라 그 수입으로 교제하던 이성의 생활비를 지원할 정도로 활발한 글쓰기를 했다는 작가의 고백이 약간 의심스럽기까지 한 것은 나의 너무 지나친 고정관념에 치우친 의구심에 불과한 것일까? 하여 다시 저자에 대한 써치를 해봐도 나름 여러 권의 책을 썼고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확인까지는 할 수 없지만 나와 있는 대로라면 책의 반응도 높은 것으로 되어있으니 아이러니하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기 글에 대한 주장을 싣기보다 남을 빌어 어느 당위성만 가져오려고 하는 얄팍한 일면도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한 맛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명상학교 수선재라고 하는 홍보책자에 불과한 유인물 배포를 대하는 듯 한 자칫 노골적이고 지나친 선전물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혼돈스러움이 들기도 한다.
명상을 통해 실제로 역사속의 인물들 가운데 선인이 된 자들을 만나고 미묘한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기라도 한 듯 글을 실었고, 어느 누구와도 명상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저자가 주장하는 명상의 높은 단계에까지 도달하게 되면 동급의 대화와 신선과도 같은 삶으로서 이 시대와 세상을 조롱하며 살 수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함이다. 마치 지상에서는 쉽게 그 해답을 찾지 못하니까 신성하고 영험한 초능력의 신비와도 같은 주장을 펴는 것으로 벅찬 감동보다는 의도된 조작이라는 염려가 들기도 한다면 내가 너무 수양이 안 되어 지나친 의심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어느 부분 저자의 잣대에 따라서 사실과는 달리 심한 굴절과 왜곡 현상이 나타날 수 있겠다 싶어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그 불가능하고 불합리하며 부도덕할 수도 있을 법한 약간의 의도된 과장의 파렴치함이라 여겨지기도 하고, 선계를 넘나드는 신성을 상황적으로 설정해 놓고 마음껏 요리해댄 느낌도 없지 않다. 따라서 글쓰기의 한 방편으로서의 시도는 유의미할지라도 이러한 방식을 선택하여 자신의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한 면들을 교묘히 회피해 나갔다고 하는 반론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 지 궁금하다. 톡 까놓고 말하자면 사이비 교주의 간증 같으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대화체를 통해 문답식으로 궁금증을 풀어내는 형식을 취하니 내용이 쉽게 읽혀 가독성과 전달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되고, 어렵지 않게 글을 끌어가는 힘은 저자의 타고난 능력으로 보인다. 또한 질문의 요지만 몇 개 간추려 살을 부치고 중간에 필요하다 싶은 부분은 상세설명을 위해 좀 더 고증학적인 자료들을 첨가해 가며 역사적 자료로 뒷받침해나간 점도 사실증명을 하는 듯 설득력을 높여 주었고 그러는 사이 쉽게 뚝딱 책 한 권이 완성된 느낌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가 주장하는 명상과 운영하고 있는 수선재의 사상을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일반 독자라고 한다면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어야 하고, 읽고 나서도 석연치 않은 구석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드니 일반 대중을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으리라.
작가가 치료의 한 방편으로 명상을 택하여 병과 고통을 치유하고 자신의 내면의 맑음을 끌어내어 선계에 비유한 것 까지는 이해가 가나, 그것을 지극히 몽환적 논리로서 마치 자신이 신선계를 넘나드는 신선인양하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기 최면적 주장을 펴는 모습은 매우 어설프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섯, 출판사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노가 치밀다
출판사의 성의 부족인지 활자가 일정하게 구도 잡히거나 배열되지 않음은 얼렁뚱땅 책을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기도 하고 어느 일면 자기들만의 잔치에 초대를 하며 독자를 아랑곳 하지 않고 지들끼리 노는 듯한 인상을 풍기게 할 만큼 여러 대다수의 일반 독자를 위한 배려가 매우 부족한 무성의한 편집이란 생각이 들어 짜증이 일 정도이다.
본문에 따로 삽입 형식을 취한 고서 자료를 인용한 부분의 글과 지면과 색깔은 독자의 시야를 극도로 피곤하게 만들어서 여간 피로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또 고서의 자료를 있는 그대로 베끼며 상당부분의 지면을 할애했음에도 오히려 교묘히 그 자료들은 그저 참고 자료일 뿐이고 저자의 주장만이 옳은 양 활자를 구성한 의도도 얄팍한 상술로 여겨진다. 좀 더 중요한 자료는 죽이고 자신의 주장만 전면 부각 시키려는 의도가 탐탁치 않게 여겨진다.
해서 이런 식으로 책을 만드는 기획자와 만나서는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동안 읽은 책 가운데 한마디로 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법 많은 책을 쓴 저자의 사상이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저자 조사를 신중히 잘하라고 이르셨던 게로구나 하고 새삼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다.
..............................................
책의 인용구절을 아직 다 못 채웠는데 자꾸 차일피일 미루게 되어 먼저 올려본다. 황진이가 남긴 시구절과 그에 대한 일화들을 옮겨보고 싶은데 꾀가 난다. 나를 강제하기 위함이다. 외출할 일이 있으니 돌아와 약속을 지켜야겠다.
IP *.36.210.11문화영
외국어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대한적십자사, 국회 등에서 근무했다. 30대에 이미 여성개발원 국제협력담당 책임연구원으로 활약하였고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다. 그러던 중 중년의 39세의 한창 때 수련에 전념하며 승승장구하던 직장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나왔다고 하나 솔직한 그 내막은 아닌 듯도 하다. 이후 선계의 스승이신 천강(天降)선인을 만나 선계수련의 맥을 전수받았다고 하며 1994년 본성을 만난 후 지속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는 견성 즉 깨달음은 수련의 ‘입학’에 불과하며 우주(본성)와 100% 합일을 이루는 것이 되어야 공부의 끝이라고 주장한다.
그간의 수련 과정은 [선계에 가고 싶다]와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출간되었는데 이들 책에서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련세계의 일들을 손에 잡히듯 풀어놓았다고도 한다. 특히 인간의 생성원리, 사후세계, 우주, UFO, 기(氣) 등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아놓았다. 한편 KBS 라디오 ‘KBS 무대’에 방송작가로 데뷔하여 수백여회의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하고 1996년 ‘다큐멘터리 홍범도’로 제23회 한국방송대상에서 라디오 드라마 부문 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다. 99년부터는‘수선재’에서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현재 수선재 홈페이지(www.soosunjae.org)에 실화소설 [메릴린스에서 온 선인, 토정 이지함!]을 연재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파크 참조]
그래서 명상수련가이자 작가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30대 후반에 모든 것을 버리고 본격 명상에 든 이후, 금촉이라는 고난도 수련과정을 통해 각(깨달음)을 완성했다고 전한다.
지난 ‘98년, <선계에 가고 싶다>라는 책을 읽고 모인 몇몇 제자들의 요청으로 수련지도를 시작한 이래 명상학교 수선재의 명상가로 활약하였으며, 최근에는 여행과 집필을 병행하며 제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저서로는 <무심>, <여유>, <선계에 가고 싶다>,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천서0.0001> 등이 있다.
* 명상학교 수선재
명상학교 수선재는 건강과 정신적 풍요로움을 위한 대중적인 명상은 물론 생활 속 깨달음을 지향하는 선계수련 과정까지 운영하는 전문 명상학교라고 한다.
저자는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단계적인 명상 프로그램을 통해 명상의 대중화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고 하며 인간, 자연, 하늘이 하나 되는 선(仙)문화 운동을 펼쳐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고급 선계수련 과정인 상ㆍ중ㆍ하단이 완성된 전인(全人)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호주, 남아공 등 세계 각국에서 이천여 명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명상을 배우고 있노라 소개하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참조]
황진이黃眞伊
조선시대의 시인 겸 명기(名妓).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대표작으로 《만월대 회고시》, 《박연폭포시》 등이 있다.
별칭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 명월(明月)
출생지 개성
주요작품 《만월대 회고시》《박연폭포시》《봉별소양곡시》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 명월(明月). 개성(開城) 출생. 중종 때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고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相思病)으로 죽자 기계(妓界)에 투신, 문인(文人) ·석유(碩儒)들과 교유하며 탁월한 시재(詩才)와 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修道)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天馬山) 지족암(知足庵)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破戒)시켰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徐敬德)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제관계(師弟關係)를 맺었다.
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정을 나누고 벽계수(碧溪守)와 깊은 애정을 나누며 난숙한 시작(詩作)을 통하여 독특한 애정관(愛情觀)을 표현했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서경덕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작품으로 《만월대 회고시(滿月臺懷古詩)》《박연폭포시(朴淵瀑布詩)》《봉별소양곡시(奉別蘇陽谷詩)》《영초월시(咏初月詩)》 등이 있다. - ⓒ 두산백과사전
2. 내 마음속에 들어온 글귀
책머리에
황진이라는 분이 40세쯤 되어서 돌아가셨다고 그러는군요. p15
그런데 기생이지만 이분의 문학사적인 위치 때문에 이분을 무시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국문학계에서는 조선 500년을 통틀어 황진이를 따라가는 시조시인은 없다고도 합니다.
한시에서는 허난설헌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평도 있고요.
그래서 특히 국문학자들이 역사 인물 중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인물이 황진이입니다.
누가 찾아보니까 논문이 한 천여 편 된다고 그러는군요.
그런데 이분의 작품은 많지도 않습니다.
시조 여섯 수에다 한시 여덟 수 이런 정도인데.
한시는 잘 나와 있지도 않고 찾아야 되죠.
그 시조 여섯 수를 가지고 그렇다는 거죠.
이분의 기생으로서의 명성보다는
그 사람이 남긴 작품이 두고두고 향기를 발하는 거예요. p16
공부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는 거예요. p17
프롤로그/
모노드라마 선악과는 무엇일까?
중국 당나라 때 측천무후와 고종의 외동딸인 태평공주
그녀는 육촌 동생인 당 현종에 의해 죽음을 당했더군요.
양귀비로 유명한 그 왕 말예요. p32
생로병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누구 마음대로 되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하려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랍니다.
저는 자살하기 위해 사니까요.
히히...
의문이 생기면 풀릴 때까지는 저와 상대방을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달달달 지지고 볶으니까요.
참 안 좋은 성격이죠.
하지만 배 안의 짓이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겠죠. p33
예나 지금이나 저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 남자를 두 여자가 나누어 가지는 상황에는 늘 분노한답니다.
한 여자를 두 남자가 나누어 가지는 일에는 부러움을 느끼면서도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편의 말을 종합해 보았죠.
어쩌다 그렇게 되었고, 남자는 평생 한두 번 바람이 나게 마련이며, 제가 잘못한 점이 없다고 했고, 두 여자를 다 데리고 살고 싶다... p38
내 사전에 이혼이라는 말은 없어
남편이 화를 내며 말하더군요.
그렇고 그런 삼류 얘기죠.
허나 다들 비슷한 모양새로 살고 있는 거잖아요.
이혼을 강행하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아이들을 절대 줄 수 없으며 만나지도 못하게 하겠다고 하더군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라니까요.
그때는 법이 어떤 상황에서건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던 때였습니다. p40
남편이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있는 게 나아.
의논할 상대라도 있는 거잖이...
과부로 오래 살아오신 어머니의 경험담이 이 한마디에 녹아 있더군요.
결혼할 때에도, 그 이후에도 남편의 무질서한 생활태도를 몹시 싫어하시던 어머니의 이 말씀에 많이 고민했죠. p41
속절없이 사랑에 몰입하는 여자들의 속성은 사랑 때문에 인생 전체를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하는 가 봅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결코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죠? p44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산을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 손가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 것은 p58
여성은 항상 어머니의 마음으로 남성을 품어야 하며 그러한 속에서 아들 같으면서도 여인 같기도 하고 아버지 같기도 한 느낌이 살아나오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를 상대할 경우 반드시 유념해야 할 부분은 역할에 있어 절대로 남성이 여성보다 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지는 하늘과 땅이 동시에 존재하였으되 발아의 과정은 모두 땅이 담당하였음을 생각해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씨앗은 하늘이 주되 그것을 살려내는 것은 여성의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성의 기본은 모성이며 모성을 기본으로 하는 한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실패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근본적으로 모성이며 여성만이 온전히 할 수 있는 중의 하나입니다. p62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수많은 남성들과 사랑을 나누고 가슴을 앓아야 했던 과정은 모친의 마음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겪어 넘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과의 사랑을 전부 아들을 여러 명 둔 것 같은 기분으로 받아들였으므로 진실한 사랑을 하면서도 아픔을 나름대로 온전히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그들이 다른 여성과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다독여 주고 바라보는 즐거움까지도 저의 것이 될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여성이므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p63
하지만 결국 완전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지요. 그것은 곧 모든 것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우주이니까요. p64
황 선배가 가장 사랑하신 분은 지족선사였다는 군요. p65
남자 없이 , 성性 없이 사는 고난도의 삶을 통해 겸손을 알게 하시려고 하셨던 것이겠죠.
이제는 나이도 어지간히 먹었으니 여자로서는 접고 자유를 추구하는 오직 ‘인간’으로서만 살고자 합니다. p68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 황진이와의 대화
제 1장 황진이, 삶을 말하다
부친은 선비, 황이黃伊
“저는 원래 진眞이라고 불렸으나 나중에 제 스스로 아버지의 아름 끝 자를 한 자 붙여 진이 眞伊라고 불렸습니다.”
출생: 1511년 6월 생
부친: 시골의 선비로서 조용한 가운데 나름의 학식을 갖춘 분입니다. 거의 말이 없으셨으나 마음속으로는 사랑이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저를 퍽 아껴 주셨으나 소실의 딸이므로 내놓고 귀여워해주시지는 못하셨습니다. p75
아버지의 직업은 무엇이었는지요?
선비로서 초시에 급제하기는 하였으나 벼슬을 한 적은 없고, 농토가 있어 일꾼들이 농사를 지어 생활하였습니다. 부유하지 않고 그런대로 살았습니다.
음주가무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라 아주 조용한 편이셨습니다.
형제들은 어떠했는지요?
본 부인에게서 아들이 두 명 있었고 그리고는 저 이렇게 셋이었는데 오빠들과는 별로 대화가 없이 자랐으므로 그저 있었다는 정도 외엔 별 기억이 없습니다. p76
성장과정은 어떠했는지요?
집에서 모친과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기생이 되려고 나가기 전에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대로 평범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모친과는 언제까지 있었는지요?
어머니는 15세 경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로 집에 있기가 불편하여 어디로든 나가야 할 형편이었으므로 방편을 생각하던 차 기생이 된 것입니다.
저로서는 그때까지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독서를 통하여 나름대로 알고 있었으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생각이 있던 차 모친께서 향천하셨으므로 저의 길을 간 것이지요. p77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황 선인을 보필했던 여성은 누구였는지요?
자랄 때는 전속 몸종이 없었고 기생이 되고 나서 서너 명의 몸종이 있었으나 오래 두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몸종은 신월이라고 하였는데 6년 정도 데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로 제 몸종들은 남정네들이 붙여주었던 것이지요.
그들이 제 심부름을 하기는 하였으나 마음을 깊이 줄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고 그저 할 일이나 하였을 뿐이지요. p78
*** 기생의 몸종은 오늘날의 개목걸이?
* 황진이의 출생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담긴 자료가 없고, 여러 책에서 신비로운 설화처럼 전하고 있다. 이덕형(李德泂, 1566~1645)의 <송도 기이(松都記異>)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황진이의 어머니는 현금(玄琴)이었는데 자색이 매우 고왔다. 나이 18세에 병부교 아래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 다리 위에 한 사람이 있으니 용모가 단아하며 의관이 화려했다. 현금을 내려다보며 미소도 띄우고 손으로 가리키기도 하여 현금의 마음이 동하였는데, 문득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해질 무렵에 빨래하는 여인들이 모두 간 후에 다시 나타나서는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다리 아래로 내려와 물을 청하기에 떠주었다. 반쯤 마시다가 돌려주면서 “그대도 마셔보라”하기에 현금이 받아서 마시니, 물이 아니고 술이었다. 그리하여 합환주(合歡酒)가 되어 둘이서 깊은 인연을 맺으니 이로 말미암아 탄생한 것이 진이였다.
* 약간 추가된 내용이 김이재(金履載, 1767~1847)의 <중경지(中京誌)>에 나온다.
그 뒤 소년은 이름도 안 밝히고 가버렸다. 생각건대 선인이라고 여겨졌다. 과연 임심이 되어 진이를 낳았는데, 해산 때에 기이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 차 사흘 동안 걷히지 않았으니, 즉 이는 선녀라... 어찌 황(黃)이란 성이 있겠는가?
* 김택영(김책영. 1850~1927)의 <숭양기구전(菘陽耆舊傳)에는 ‘황진사의 서녀(庶女)’라는 언급이 있다.
이는 황진사의 서녀이자 진사의 첩이 현금이었다. 그가 병부교 아래에서 물을 마셨는데 감응하여 임신이 되어 진이를 낳았다. 방 안에 이상한 향기가 사흘간을 머물렀다.
* 허균(許筠, 1569~1618)의 <성옹지소록 (惺翁識小錄)>에는 ‘맹인의 딸’이라는 언급이 있다. p79
잣나무배
저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잣나무배
몇 해나 이 물가에 한가로이 매였던고
뒷사람이 누가 먼저 건넜느냐 묻는다면
문무를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 p84
제 경우에는 인간의 몸을 가진 자녀를 둔다는 것은 한 남자에게 매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지요.
어떠한 한 남성을 평생 사랑한다는 것은 곧 제 공부의 미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어요. p88
사람들이 그를 일러 선녀라 하였다
방에서 향내가 났었다는 데 무슨 냄새였나요?
향내는 선인으로서 수련을 하다 보면 나는 향내였지요.
선향仙鄕이었습니다.
호흡을 열심히 하다보면 인체에서 분비되는 물질이 있고 이 물질은 인간을 가장 향기로운 상태로 인도하지요.
호흡을 열심히 할 경우에 무심 상태에서 분비되는 것으로서 인간의 모든 병까지도 나을 수 있게 하는 물질입니다.
화학적인 변화로 가능한 병은 나을 수 있지요.
호흡을 통하여 만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물질의 분비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이 물질의 분비가 가능한 이유는 신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 L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p88
반달을 노래함
누가 곤륜산 옥을 깎아내어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
견우와 이별한 후에
슬픔에 겨워 벽공에 던졌다오 p91
* 황진이가 서화담 간에 주고받았다고 하는 시조 두 수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만중운산)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 화담 서경덕
내 언제 무신(無心) 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 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 황진이 p119
* 황진이가 벽계수를 유혹하며 불렀던 노래가 아래의 시조이다.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사랑의 정한을 노래한 황진이의 시조
어져 내 일이야 그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p 123
?
3. 내가 저자라면
명상을 하며 황진이와의 대담형식을 통해 나눈 저자의 궁금증과 주장을 펴나간 책이다.
하나, 책을 팔려면 저자나 출판사는 적당히 사기를 칠 줄 알아야만 한다?
방식이야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겠지만 인터넷에 나와 있는 저자소개란에 쓰여 있는 저자가 명상에 몰입한 계기 옳지 않게 기록 되어 있는 것 같다. 이혼하고 배반당해 실연을 극복하기 위해 명상에 빠져들었다고 하면 독자들이 쉽게 다가가지 않고 외면할 것이어서 그러한가?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붙여가며 저자의 경력이 마치 저자 글의 가치인양 떠벌이고 있지만 이 책의 프롤로그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내용이 다르게 나와 있지 않은가.
책 내용의 서두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두 남자로부터의 상처에 대한 상심으로 오래 갈등하며 아파하다가 명상에 더욱 심취하게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고 원치 않았던 자신의 일련의 상황들에 대한 인간적인 경험들과 의문을 풀어보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스며져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꼭 그것 때문에 명상을 하게 되었다고는 말하고 있지 못하지만 저자가 첫 번째 남편의 단순한 불륜을 넘어선 장기간에 걸친 지독한 속임수에 심한 모욕감과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고, 감쪽같이 두 집 살림에 오래 동안 속아 살아온 분노로 인해 심적 고통과 함께 실제로 육체의 병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는 점과, 그로인해 병명도 잘 나타나지 않는 유방이 부풀어 오르는 심한 통증에 시달리며 심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웠고 명상으로 인해 차츰 회복되었다고 그 신기함을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살다보니 그녀 역시 첫 번째의 전 남편과 같은 방법으로 삶을 살게 되는 것에 대해 고뇌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거하며 사귀던 남자가 기막히게도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림으로써 결국에 아내가 있는 남자와의 불륜의 관계를 가지며 청산하지 못하고 살다가 마침내 용단을 내리고 혼자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노라 독자가 짐작해 볼 수 있도록 솔직하게 적어놓았다. 그리고 저자는 명상을 위해 사회적 신분 모두를 내려놓았다고 이 책에서는 밝히고 있지 않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 책은 선계를 파동으로 교환할 정도로 신성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럴 듯한 이유보다는 진솔한 진정성을 갖추지 않은 표현은 자칫 독자를 우롱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것이기에 말이다.
어느 저자소개에는 무조건적으로 오로지 명상을 위해 모든 것을 일순간에 초개와도 같이 버린 것처럼 표현되어 있었으니 이는 독자를 유인하기 위한 출판사나 대행 회사 측의 저의로 보인다. 그것은 저자에 대한 참신성을 애초부터 의심하게 하는 것을 도울 뿐이라고 생각된다. 책이나 읽어보고 쓴 것인지 모르겠다. 지나친 상업주의적 발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작가적 양심으로 헤쳐 볼 수 없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전 이력을 밝히기보다 그럴 듯한 이력을 내세우기를 좋아하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소위 간판 하나로 편히 먹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이러한 현실을 지극히 너무나도 많이 뼈저리게 느끼고 당해온 터라 내 조카의 대학입시 때에는 학벌이 신분을 표방해 주는 이 사회의 논리를 간과하지 않고 설명해 주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사회의 통념과 구조 속에서는 아직까지 대단히 유효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이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지 않은가.
결국에 출판과 매출이라는 것은 글보다 기획과 홍보라고 말하는 어느 선배의 한에 서린 듯한 주장도 결코 예사롭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런 경우도 복불복福不福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두울, 나는 황진이의 시조를 좋아하고 그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대담하고 대단한 예기를 가지고 남존 여비 시대에 신분상 하위직의 기녀로서 남자를 후려 대는 솜씨가 능숙 능란 가히 일품이기 때문이다. 당대의 내놔라하는 여간한 남자들은 일명 기녀 황진이에게 쭉도 못된다고 할 수 있으니 그의 배포와 깡다구가 멋져 보이기까지 한다. 시대를 잘못만나 그렇지 요즘 같은 세상을 만났더라면 멋진 로비스트로서 크게 한몫 당당히 해내며 일을 내도 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재능이 치마 속 감춰진 부분에만 국한했던 것이라면 물론 어우동 쯤으로 항간의 흥밋거리나 될 뿐 재미없었을 것이다. 허나 그는 우리 문학사에 유유자적 만만히 그 흔적을 들어내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글을 쓴 저자 문화영도 아마 그 점을 높이 사서 이 정도라면 선계에서 노니는 신선들의 지상 왕림 행차라고 할만도 하리라 생각했나 보다. 그러나 저자의 수련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종의 배 아픔과도 같은 빈정댐의 일환인지 마치 하느님이나 부처님 앞마당에서 노니는 듯 자신을 그리 신성시 하는 것에 대해서는 책을 다 읽고 나니 더욱 납득이 가지 않음을 어쩌랴. 이 책에 드러남으로 봐서는 저자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음은 과연 나의 명상의 명자도 모르는 수련에 무지함의 극치의 발로 때문일 것인가?
세엣, 나는 아직 책 고르기에 능숙하지 못하다
연구원 수련 동안은 지정 목록이 있어서 참 편했고 좋았다. 좋은 책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홀로 자신의 고독을 향해 가야하는 요즈음에는 평소에 책읽기가 잘 훈련되지 않아 그런지 아직도 대형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구입하려고 하면은 많은 사람들의 열기와 빼곡히 들어찬 책들을 보며 이내 현기증을 일으키고 돌아오고는 한다. 어떨 때는 그 수많은 책들 가운데 읽고 싶은 책들을 찾아가며 조금 살펴보다가 금방 지쳐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찬찬히 그 책에 대해 마음 편히 살펴보기가 조급한 성질 때문에 그런지 쉽지가 않고, 설령 몇 권을 살펴보다가는 마음이 편하기보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내가 과연 이 많은 책들 가운데 끼일 수 있는 나만의 책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의심이 드는가 하면 금세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책들을 보면서는 그 꼴이 마치 내 모습일 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까지 하면서 순간 기가 팍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소 편하고 수월하게 인터넷 서치를 통해서 한꺼번에 몇 권씩 구입해 놓고 한동안은 아무 고민 없이 읽는 방법을 선택하고는 하였다. 그것이 즐거운 마음으로 발품을 팔러 나갔다가 공연히 매정한 현실에 부대끼며 자신감을 상실하고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것보다 낫다고까지 생각해 버리기까지 했다. 차라리 냉정한 현실을 눈에 안 보이게 하고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볼 수 있을 거라는 기분 좋은 착각에 잠시 빠져들기도 하노라면 단순히 글쓰기 작업에 집중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욕심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인터넷을 이용한 서치도 미숙해 그런지 좀처럼 만만치도 않거니와 저자 소개나 출판사에서 주장하는 책에 대한 서평만으로는 사실 신뢰성 있는 내용을 쉽게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너무 그럴 듯하게 소개되어 있는 책들이 많아서 말이다.
네엣, 이 책의 다른 구성 다른 주장에는 의도된 억측의 몽상적 사기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구입해서 읽고 있는 특히나 이번에 읽은 이 책은 다른 책들 같지 않게 좀 특이한 형식을 취한 책이다. 어느 면은 약간 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어느 부분의 목차가 황진이와의 대화라고 또렷이 적혀 있다. 자서전들을 읽고 있던 중 평소에 관심이 있던 황진이에 대한 자전적 성격의 글인 줄 알고 선택해서 읽었는데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 난감하기도 하다. 저자가 마치 대필한 듯한 선계의 대화방식으로 글을 엮어 나가면서 저자의 주장을 담아냈으니 독특하기도 하고 무언가 언뜻 사기 당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시대를 초월한 거침없는 여성성을 불러들이고 뭇 사내들을 거친 황진이라고 하는 희대의 기생이며 문필가이기도한 역사속의 인물에 자신을 투영시키기도 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의문점을 풀어간 형식이 독특하고 흥미로운 한편, 자신의 주장으로서는 미흡할 수밖에는 없는 나름의 좀 엉뚱한 듯한 신선사상과도 같은 명상을 선전하거나, 죽은 사람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감정이입을 시켜놓고 마치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억지로 끼워 놓고는 맞는 것인 양 강요하는 구조를 끌어들인 것은 아닌가하고 자못 의아스럽기도 하다. 남다른 빼어난 이력을 가지고 그토록 글쓰기로 돈을 잘 벌었으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까지 올라 그 수입으로 교제하던 이성의 생활비를 지원할 정도로 활발한 글쓰기를 했다는 작가의 고백이 약간 의심스럽기까지 한 것은 나의 너무 지나친 고정관념에 치우친 의구심에 불과한 것일까? 하여 다시 저자에 대한 써치를 해봐도 나름 여러 권의 책을 썼고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확인까지는 할 수 없지만 나와 있는 대로라면 책의 반응도 높은 것으로 되어있으니 아이러니하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기 글에 대한 주장을 싣기보다 남을 빌어 어느 당위성만 가져오려고 하는 얄팍한 일면도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한 맛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명상학교 수선재라고 하는 홍보책자에 불과한 유인물 배포를 대하는 듯 한 자칫 노골적이고 지나친 선전물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혼돈스러움이 들기도 한다.
명상을 통해 실제로 역사속의 인물들 가운데 선인이 된 자들을 만나고 미묘한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기라도 한 듯 글을 실었고, 어느 누구와도 명상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저자가 주장하는 명상의 높은 단계에까지 도달하게 되면 동급의 대화와 신선과도 같은 삶으로서 이 시대와 세상을 조롱하며 살 수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함이다. 마치 지상에서는 쉽게 그 해답을 찾지 못하니까 신성하고 영험한 초능력의 신비와도 같은 주장을 펴는 것으로 벅찬 감동보다는 의도된 조작이라는 염려가 들기도 한다면 내가 너무 수양이 안 되어 지나친 의심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어느 부분 저자의 잣대에 따라서 사실과는 달리 심한 굴절과 왜곡 현상이 나타날 수 있겠다 싶어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그 불가능하고 불합리하며 부도덕할 수도 있을 법한 약간의 의도된 과장의 파렴치함이라 여겨지기도 하고, 선계를 넘나드는 신성을 상황적으로 설정해 놓고 마음껏 요리해댄 느낌도 없지 않다. 따라서 글쓰기의 한 방편으로서의 시도는 유의미할지라도 이러한 방식을 선택하여 자신의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한 면들을 교묘히 회피해 나갔다고 하는 반론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 지 궁금하다. 톡 까놓고 말하자면 사이비 교주의 간증 같으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대화체를 통해 문답식으로 궁금증을 풀어내는 형식을 취하니 내용이 쉽게 읽혀 가독성과 전달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되고, 어렵지 않게 글을 끌어가는 힘은 저자의 타고난 능력으로 보인다. 또한 질문의 요지만 몇 개 간추려 살을 부치고 중간에 필요하다 싶은 부분은 상세설명을 위해 좀 더 고증학적인 자료들을 첨가해 가며 역사적 자료로 뒷받침해나간 점도 사실증명을 하는 듯 설득력을 높여 주었고 그러는 사이 쉽게 뚝딱 책 한 권이 완성된 느낌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가 주장하는 명상과 운영하고 있는 수선재의 사상을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일반 독자라고 한다면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어야 하고, 읽고 나서도 석연치 않은 구석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드니 일반 대중을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으리라.
작가가 치료의 한 방편으로 명상을 택하여 병과 고통을 치유하고 자신의 내면의 맑음을 끌어내어 선계에 비유한 것 까지는 이해가 가나, 그것을 지극히 몽환적 논리로서 마치 자신이 신선계를 넘나드는 신선인양하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기 최면적 주장을 펴는 모습은 매우 어설프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섯, 출판사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노가 치밀다
출판사의 성의 부족인지 활자가 일정하게 구도 잡히거나 배열되지 않음은 얼렁뚱땅 책을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기도 하고 어느 일면 자기들만의 잔치에 초대를 하며 독자를 아랑곳 하지 않고 지들끼리 노는 듯한 인상을 풍기게 할 만큼 여러 대다수의 일반 독자를 위한 배려가 매우 부족한 무성의한 편집이란 생각이 들어 짜증이 일 정도이다.
본문에 따로 삽입 형식을 취한 고서 자료를 인용한 부분의 글과 지면과 색깔은 독자의 시야를 극도로 피곤하게 만들어서 여간 피로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또 고서의 자료를 있는 그대로 베끼며 상당부분의 지면을 할애했음에도 오히려 교묘히 그 자료들은 그저 참고 자료일 뿐이고 저자의 주장만이 옳은 양 활자를 구성한 의도도 얄팍한 상술로 여겨진다. 좀 더 중요한 자료는 죽이고 자신의 주장만 전면 부각 시키려는 의도가 탐탁치 않게 여겨진다.
해서 이런 식으로 책을 만드는 기획자와 만나서는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동안 읽은 책 가운데 한마디로 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법 많은 책을 쓴 저자의 사상이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저자 조사를 신중히 잘하라고 이르셨던 게로구나 하고 새삼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다.
..............................................
책의 인용구절을 아직 다 못 채웠는데 자꾸 차일피일 미루게 되어 먼저 올려본다. 황진이가 남긴 시구절과 그에 대한 일화들을 옮겨보고 싶은데 꾀가 난다. 나를 강제하기 위함이다. 외출할 일이 있으니 돌아와 약속을 지켜야겠다.
댓글3 건
댓글 닫기
수선재, 순풍만났나? - 현대불교신문
수선재, 순풍만났나? - 현대불교신문
|
승인 2004.12.17 13:00:00 |
|
한국단학회 연정원 수련상담 및 단학체험담 - 수선재에 대한 물음에 답함
한국단학회 연정원 수련상담 및 단학체험담 - 수선재에 대한 물음에 답함
수선재는 정녕 단학을 중심으로 한 정신수련단체인가?
이 사이비 단학을 두고 나는 단호히 철퇴를 가하고 싶으며 저들이 어떤 공격을 취하든 충분한 방어기제를 보유하고 있다.
수선재는 정녕 백두산족 고유의 문화적 전통과 정신수련의 순수성을 갉아먹는 사이비단학이며 그 폐해야말로 누군가는 나와서 당당하게 지적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저들이야말로 채널링을 외포(外包)로 해서 단학을 적당히 믹스(mix)한 가운데 근거 없는 외계인과 UFO타령, 뉴에이지 과학, 초심리학, 심령치료술, 사이비 신앙, 엉터리 점술 등으로 사람들을 부지런히 꾀고 있다.
문화영 여사는 스스로가 스스로의 강박과 부자유속에서 속고 있다는 사실을 정작 본인은 잘 알고 있다고 본다.
일정 부분 내가 가지는 수선재에 대한 비판을 두고서 일반인은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렵고 마찬가지로 독선적이며 반박의 논리라는 것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힐난할지 모르겠다.
채널링이 무엇이든간에 가장 중요한 이슈는 단연코 '정보분석력'이다.
주관과 객관을 넘어서 외계로부터 무수히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어떻게 걸르고 추슬러서 확실한 정보를 얻어내느냐 하는 문제는 채널러(문화영 여사)가 얼마만큼 순수정신각성과 고도의 수련을 통해서 우주심(宇宙心)과 하나되는 세계에 가 있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헝클어진 잡된 지식과 정보에 노출된 사람이라면 어차피 정보분석력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에게 자신이 속으며 소위 '마스터'라고 하는 존재에게는 더 잘 속게 마련이다.
지금의 문화영 여사는 영매 이상도 아니며 고급문화로 포장된 사이비무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채널링은 상념의 세계의 다른 모습이다.
그러기에 물질과학이 보여주는 확실성과 명징에 비해 곧잘 오류와 왜곡과 자기기만과 가식에 노출될 우려가 많다.
점증하는 인류의 고난을 두고 채널링은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없으며 그저 한낱 '귀신장난'에 불과할 따름이다.
채널링은 신과학이 절대 아니며 현대판 샤머니즘일 뿐이다.
단학은 21세기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과 꿈을 선사할 것이며 비록 불완전하다고 할지라도 현재 지구가 직면한 그 많은 숙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과거의 '천기누설'이라고 불렸던 지극히 제한된 정보공개의 틀 속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인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정보는 일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것으로 된지 오래다.
우리는 완성의 꿈을 향해 달린다.
우리는 우리를 향해 도전해오는 일체의 악조건과 과제들을 부여잡고 있으며, 생태계의 파괴와 자원고갈, 인구 증가 및 노령화문제 등 심각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과연 채널링이 해결할 수 있을까?
삶의 주체는 우리이며 이상한 세계(?)에 머물고 있는 가장된 독단적인 귀신의 무리들이 아니다.
저들 채널러들이 스스로 등불임을 자임하나 그 등불은 광명한 아침햇살에는 그저 한낱 촛불에 불과하며 그 빛은 당연히 흐려지게 된다.
나는 우리 순수단학이 저들 사이비단학의 놀음판에 노출된 채 저들의 술수로 순진무구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꾀어내는 현실을 개탄한다.
단학은 미래구원의 메시지를 함껏 머금고 있으면서도 이렇듯 수선재와 같은 오류파(!)들에 의해 오용되고 남용되고 있는 사실만을 두고서 단학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럴수록 우리는 '단학의 참가치와 중요성'을 깨달아 단학을 오늘날에 와서 확대재생산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한국단학회 연정원은 특별한 권위를 확보하려고 노력한 적도 없으며, 아무 것도 숨기거나 감추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정보사회 기준점과 추구하는 가치에 맞닿아 있다.
수선재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좀 더 합리적인 이유와 논리의 일관성 및 엄격한 증거의 기준, 그리고 진실성을 저들에게 요구하는 바이다.
그리고 단호한 비판적 정신을 일깨워줌으로써 신비주의와 미신으로 포장된 저들에게는 경고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주어야 한다.
수선재는 문화영 여사의 압도적인 권위와 신비주의를 앞세워 자신의 논리에 대한 비판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순수철학과 분명하게 궤를 달리한다.
그래서 수선재는 단학이 가지는 평등성과 민주주의와는 절대 양립할 수 없다. 수선재는 사이비 단학이기 때문에 결국 이 땅에서 사라져 버리고 권위주의적인 어둠의 세계로 되돌아갈 수밖에는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이비 단학의 화려한 속임수 앞에 순수단학이 무릎을 꿇으면 비판적 사고방식의 실종으로 미신과 불합리가 판치는 사회가 된다’고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崔 龍上
* 이젠 논쟁의 중심에 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거짓은 언제나 진짜처럼 포장하고 돌아다니니까요.
진짜같은 가짜가 판을 치고 세상을 계속해서 속이는 행태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구태여 나서봅니다. *
----
우리는 좀 더 진지해지고 숙연해지며 철저하고 보다 명확한 통찰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수선재의 문화영 여사에 관한 글이 올라왔으나 내가 시종일관 느끼는 감정은 답답함과 한심함의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온갖 지식과 정보가 난무하는 가운데 정작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할 겨를도 없이 쉴새 없이 속도경쟁을 일삼는 스피드의 사회다.
거짓은 언제나 진짜처럼 포장하고 돌아다니니까요.
진짜같은 가짜가 판을 치고 세상을 계속해서 속이는 행태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구태여 나서봅니다. *
----
우리는 좀 더 진지해지고 숙연해지며 철저하고 보다 명확한 통찰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수선재의 문화영 여사에 관한 글이 올라왔으나 내가 시종일관 느끼는 감정은 답답함과 한심함의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온갖 지식과 정보가 난무하는 가운데 정작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할 겨를도 없이 쉴새 없이 속도경쟁을 일삼는 스피드의 사회다.
수선재는 정녕 단학을 중심으로 한 정신수련단체인가?
이 사이비 단학을 두고 나는 단호히 철퇴를 가하고 싶으며 저들이 어떤 공격을 취하든 충분한 방어기제를 보유하고 있다.
수선재는 정녕 백두산족 고유의 문화적 전통과 정신수련의 순수성을 갉아먹는 사이비단학이며 그 폐해야말로 누군가는 나와서 당당하게 지적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저들이야말로 채널링을 외포(外包)로 해서 단학을 적당히 믹스(mix)한 가운데 근거 없는 외계인과 UFO타령, 뉴에이지 과학, 초심리학, 심령치료술, 사이비 신앙, 엉터리 점술 등으로 사람들을 부지런히 꾀고 있다.
문화영 여사는 스스로가 스스로의 강박과 부자유속에서 속고 있다는 사실을 정작 본인은 잘 알고 있다고 본다.
일정 부분 내가 가지는 수선재에 대한 비판을 두고서 일반인은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렵고 마찬가지로 독선적이며 반박의 논리라는 것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힐난할지 모르겠다.
채널링이 무엇이든간에 가장 중요한 이슈는 단연코 '정보분석력'이다.
주관과 객관을 넘어서 외계로부터 무수히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어떻게 걸르고 추슬러서 확실한 정보를 얻어내느냐 하는 문제는 채널러(문화영 여사)가 얼마만큼 순수정신각성과 고도의 수련을 통해서 우주심(宇宙心)과 하나되는 세계에 가 있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헝클어진 잡된 지식과 정보에 노출된 사람이라면 어차피 정보분석력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에게 자신이 속으며 소위 '마스터'라고 하는 존재에게는 더 잘 속게 마련이다.
지금의 문화영 여사는 영매 이상도 아니며 고급문화로 포장된 사이비무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채널링은 상념의 세계의 다른 모습이다.
그러기에 물질과학이 보여주는 확실성과 명징에 비해 곧잘 오류와 왜곡과 자기기만과 가식에 노출될 우려가 많다.
점증하는 인류의 고난을 두고 채널링은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없으며 그저 한낱 '귀신장난'에 불과할 따름이다.
채널링은 신과학이 절대 아니며 현대판 샤머니즘일 뿐이다.
단학은 21세기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과 꿈을 선사할 것이며 비록 불완전하다고 할지라도 현재 지구가 직면한 그 많은 숙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과거의 '천기누설'이라고 불렸던 지극히 제한된 정보공개의 틀 속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인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정보는 일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것으로 된지 오래다.
우리는 완성의 꿈을 향해 달린다.
우리는 우리를 향해 도전해오는 일체의 악조건과 과제들을 부여잡고 있으며, 생태계의 파괴와 자원고갈, 인구 증가 및 노령화문제 등 심각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과연 채널링이 해결할 수 있을까?
삶의 주체는 우리이며 이상한 세계(?)에 머물고 있는 가장된 독단적인 귀신의 무리들이 아니다.
저들 채널러들이 스스로 등불임을 자임하나 그 등불은 광명한 아침햇살에는 그저 한낱 촛불에 불과하며 그 빛은 당연히 흐려지게 된다.
나는 우리 순수단학이 저들 사이비단학의 놀음판에 노출된 채 저들의 술수로 순진무구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꾀어내는 현실을 개탄한다.
단학은 미래구원의 메시지를 함껏 머금고 있으면서도 이렇듯 수선재와 같은 오류파(!)들에 의해 오용되고 남용되고 있는 사실만을 두고서 단학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럴수록 우리는 '단학의 참가치와 중요성'을 깨달아 단학을 오늘날에 와서 확대재생산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한국단학회 연정원은 특별한 권위를 확보하려고 노력한 적도 없으며, 아무 것도 숨기거나 감추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정보사회 기준점과 추구하는 가치에 맞닿아 있다.
수선재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좀 더 합리적인 이유와 논리의 일관성 및 엄격한 증거의 기준, 그리고 진실성을 저들에게 요구하는 바이다.
그리고 단호한 비판적 정신을 일깨워줌으로써 신비주의와 미신으로 포장된 저들에게는 경고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주어야 한다.
수선재는 문화영 여사의 압도적인 권위와 신비주의를 앞세워 자신의 논리에 대한 비판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순수철학과 분명하게 궤를 달리한다.
그래서 수선재는 단학이 가지는 평등성과 민주주의와는 절대 양립할 수 없다. 수선재는 사이비 단학이기 때문에 결국 이 땅에서 사라져 버리고 권위주의적인 어둠의 세계로 되돌아갈 수밖에는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이비 단학의 화려한 속임수 앞에 순수단학이 무릎을 꿇으면 비판적 사고방식의 실종으로 미신과 불합리가 판치는 사회가 된다’고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끝-
p.s)차라리 무당이나 박수가 더 양심적이지 않을까...
p.s)차라리 무당이나 박수가 더 양심적이지 않을까...
남편, 자식과 접촉 끊고 1천일 수련 끝에 깨달음 얻은 문화영 2000 여성동아
마이다스 동아일보[매거진:여성동아12월호] 2000
문화영(文花英)1951~2012 (age 61)
===
남편, 자식과 접촉 끊고 1천일 수련 끝에 깨달음 얻은 문화영 |
“황진이, 이율곡, 신사임당, 서경덕, 이지함 등은 모두 선계(仙界) 수련을 했던 선인(仙人)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우주의 선계나 다른 별에서 기적(氣的)인 존재로 살아 있으며, 후손들인 우리도 선계 수련을 하면 이들 선인과의 만남이 가능합니다.” ‘기공수련’이 아닌 ‘선계수련’이라는 독특한 수련법을 보급하고 있는 한 수련단체의 파격적인 주장이다.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영계(靈界)보다 한차원 높은 선계(우주를 다스리는 곳)가 존재하고, 위에서 말한 인물들은 육신의 옷을 입고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문득 자신이 선계 출신이었음을 깨달아 선계수련을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수련법을 주창하는 이 단체의 이름은 ‘수선회(樹仙會)’·선도(仙道)의 나무를 가꾸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또한 놀랍게도 이 수련단체의 지도자는 올해 마흔아홉살의 주부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수련단체 중 여성이 수련 지도자로 나선 전례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 창덕궁 앞 원서빌딩의 수선회 수련장소인 수선재(樹仙齋)에서 수련 지도자 문화영씨를 만났다. 뜻밖에도 문씨는 산속에서 수행해 득도한 뒤 그 뜻을 펴기 위해 하산했을 것이라는 분위기는 별로 풍기지 않았다. 조용조용한 말씨에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도시의 아줌마’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는 대학 동창생인 공무원 남편과 살고 있으며 사회 초년생과 대학생인 두 딸을 두고 있다. 그의 이력을 봐도 수련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문씨는 1951년 함남 원산 앞바다 모도에서 출생해 1·4후퇴때 월남한 피난민 출신. 전쟁중에 아버지를 잃었지만 어머니(85)가 이화여대 출신이어서 비교적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강원도 원주와 춘천에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뒤 73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홍일점으로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의 사회활동 경력도 화려하다. 대한적십자사에서 국제협력 전문 인력으로 일했고, 적십자간호전문대학에서 교양영어 강사로, 국회에서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83년에는 한국여성개발원 창립멤버로 들어가 6년간 국제협력담당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해외를 내집 드나들 듯이 했다. 하지만 89년 그는 미련없이 직장생활을 그만두었다. 이유는 당시 단전호흡을 배웠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수련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 오늘에 이르게 됐다. 남편과 성관계는 물론 자식과도 접촉하지 말아야 하는 고난도 수련 ― 남보기에는 화려한 직장생활까지 집어치울 정도로 수련이 재미있던가요? “수련에 맛을 들이고 나면 재미있긴 하죠. 그런데 수련이란 자신의 본성(생명의 근원 자리)을 찾아가는 힘든 일이에요. 외롭고, 서럽고, 미아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그 원인을 자신 속에서 찾아보려 할 때 수련이 시작되지요. 그런 구도심이 너무나 강렬해 저는 직장까지 포기했습니다.” ― 결혼한 여자가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산속으로 들어가 수련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왜 수련을 산속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수련은 산속에서나 도심에서나 마찬가지예요. 저는 집에서 수련했습니다. 집에 있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수련하기가 더 좋아요. 여성 생활이 예전에 비해 훨씬 편리해진데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없는 집안에서 홀가분하게, 여유롭게 수련할 수 있잖아요. 오히려 남자들은 직장 생활에서 스트레스받느라 수련하기가 더 힘들지요.” 문화영씨는 여성들이 수련하기가 더 좋아진 것은 우주의 기운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까지는 양(陽)이 지배하던 시대로 모든 것이 남성 위주였는데, 양과 음이 균형잡히는 시대가 되면서 그간 침체됐던 음의 기운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문씨는 자신이 여성의 몸으로 ‘선계 수련의 안내자’가 된 것도 이런 기운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 한 수련단체의 지도자가 되기까지 수련에 남다른 인연같은 건 없었나요? “저는 나이 삼십이 넘어서야 기를 알고 도의 바다로 향하게 됐지요. 처음에는 저 역시 수련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헤맸습니다. 어느 선원에 나가 기수련도 해보고 중국 용정에서 온 조선족 여기공사에게서 특이공능(特異功能;특수한 기공 능력)을 배우려고 수련하던 중에 내게 영적(靈的)인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전부터 누군가가 나를 보살펴주고 있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데, 바로 그 분이 선계의 스승인 천강선인(天降仙人)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과의 텔레파시 대화가 통하기까지 많은 수련이 필요했고, 결국 그 분으로부터 선계수련의 맥을 전수받았던 것이지요.” 말하자면 문씨에게는 처음부터 육신을 가진 스승이 아니라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선계의 스승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스승과 초능력으로 알려진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누며 수련법을 전수받았다는 것이다. ― 집에서 그런 수련을 하면 남편과 아이들이 좀 이상하게 보지 않던가요? “남편이나 아이들은 제가 직장생활하는 것을 좋아했고 ‘이상한 세계’에 빠져드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직장을 그만두고서도 식구들이 없을 때나 새벽에 수련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식구들도 제가 수련하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지요.” 문씨는 94년에 본성을 만나기까지 선계의 스승으로부터 ‘금촉(禁觸) 지감(止感) 수련’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금촉수련이란 일상생활속에서 부부간 성관계는 물론 자식을 포함해 그 어느 누구하고도 기운을 섞지 말아야 하는 최고난도의 수련법이고, 지감수련이란 사람의 감각적인 면을 모두 차단시키는 수련을 말한다. 문씨는 그것을 90년부터 시작해 무려 1천일 이상 실천해야 했다. 말이 1천일이지, 3년 내내 가장 가까운 사이인 남편과 자식들을 소 닭보듯이 무심하게 보아넘기는 식으로 기운을 섞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수련은 자신을 맑게 가꾸고 다듬어나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속가(俗家)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가족들의 어떠한 행동에도 반응하지 않는 겁니다. 사실 수련을 하다가 너무 힘겹게 느껴져 울기도 했습니다. 또 수련 중에 악령(惡靈)들이 나타나고 남자들이 나타나 저를 유혹하기도 했어요. 이 모든 것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 수련하는 사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은 3년간 어떻게 참고 지낼 수 있지요? “남편은 매우 일이 바쁜 곳에서 공직자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묘하게도 그 3년간 남편은 더 바빴고, 술을 엄청나게 마셔댔습니다. 술을 연거푸 마실 때는 집에 2, 3일 씩이나 안 들어오면서도 연락도 없었습니다. 옛날 수련하기 전의 저 같았으면 왜 연락도 없이 안 들어왔는지 악착같이 따져서 어떤 대답이든 받아냈을 텐데, 수련하는 동안에는 일절 묻지 않았습니다. ― 딸들은 어땠습니까? “그때 아이들이 고등학교,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금촉 지감 수련 중에 연락도 없이 밤 늦게까지 안 들어오는 때가 종종 있었어요. 저는 아이들이 거짓말하는 것을 듣기 싫어서 ‘몸 건사 잘해라’라고만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매우 철저한 성격이라서 아이들도 철저하게 관리해왔는데 완전히 풀어놓은 셈이지요. 그것은 아이들이 내 분신이 아니라 내 몸을 빌려 태어난, 독립된 별개의 영체(靈體)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들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영체들이지요. 홍신자씨가 자기 딸이 자신보다 영성(靈性)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듯이, 요즘에는 영성이 뛰어난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하면 거짓말을 하게 되지요.” 문씨는 이렇게 수련하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을 모두 풀어놓아도 가족들이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밖으로 나돌아다니지 않고 집에서 수련을 하거나 공부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보이지 않는 고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아내가 집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으면 남편과 아이들이 밖으로 나돌게 마련이라고 한다. ― 딸들이 공부는 잘 했습니까? “딸 선생님들이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한다고 해요. 저는 참 공부를 잘 한 편이었는데, 두 딸들을 보니까 현생에 공부하는 인연이 아니었습니다. 큰 애는 쉬운 말로 딴따라 기질이 있고, 기운이 그쪽으로 쏠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방면으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 동의했습니다.” 문씨는 수련을 하면서 가족들의 전생을 파악했다. 따라서 아이들에게도 무리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 1천일간의 수련 끝에 본성을 만났다고 했는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94년에 본성을 만난 이후 스승인 천강선인도 떠나셨고, 지금까지 혼자 계속 수련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수련을 한 이후 제도권으로부터 이탈한 삶을 살다보니까 심한 좌절감과 소외감이 닥쳐왔어요. 늘상 수련만 하고 살 수도 없었고요. 다행히 문학수업으로 돌파구를 찾아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라디오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하며 계속 수련중 그는 <현대문학>을 통해 늦깎이 희곡작가로 등단했으나 희곡은 쓰지 않고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1995년 KBS라디오 ‘KBS무대’로 데뷔한 후 그해 KBS라디오 광복50주년기념 특별기획인 <다큐멘타리 홍범도>를 집필했는데, 이 작품은 1996년 제23회 한국방송대상에서 라디오드라마 부문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사회생활로 돌아와서도 재기에 성공했던 것. 이후에도 그는 KBS라디오 드라마(50회)와 KBS라디오 사회교육방송 드라마(37회)를 집필했고, KBS라디오 한국외교비사 <남북외교의 시작과 끝>(90회)을 집필했는데 이 작품은 KBS가 선정한 1997년 상반기 라디오부문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1998년부터는 KBS라디오 다큐멘터리 국회속기록을 집필중인데 <가족법 개정 40년>(42회)과 <돈과 명예는 함께 갖지 말라:공직자재산등록>(52회) 등의 작품이 있다. 한편 그는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도 선계 수련 체험기인 <선계에 가고 싶다>에 이어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6권)을 집필, 수련계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선계에 가고 싶다>는 책을 읽은 사람들이 문씨에게 수련을 배우고 싶다고 간청해 오늘의 선계수련모임인 수선회가 98년에 탄생했던 것. 재미있는 점은 수선회의 수련장인 수선재 외부에는 우주 기운을 지구의 주파수에 맞게 바꾸어주는 안테나가 달려 있고, 내부에는 수련생의 수련을 도와주는 기(氣) 방석이 설치돼 있다는 것이다. 이 안테나와 방석은 천기(天氣) 및 우주 기운과 그에 따른 정보를 송수신하는 장치라고 한다. 그런데 수련에 필요한 안테나와 방석은 기적(氣的)인 물건이므로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또 문씨가 99년에 펴낸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이란 책에는 문씨가 선계 선인들과 텔레파시 통신을 한 내용들이 기록돼 있다. 이 중에서 여성으로서 선계의 선인인 황진이, 신사임당과 나눈 문씨의 통신기록을 보면 재미있다. 먼저 조선시대 기생으로 이름을 떨친 황진이는 자신이 인간 세상에서 기생이라는 신분을 가진 것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저의 할 일은 지상에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파장을 좀더 가까이에서 느껴보고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양가의 규수로는 불가한 일이었으므로 인간의 파장 중 가장 솔직한 답이 나오는 곳을 찾아다녔던 것입니다. 그래서 천민에서 수도승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성스러움과 속됨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모두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스케줄은 고급 차원의 수련법으로서 상당히 신속한 진도를 볼 수 있습니다.” 황진이는 자신을 사모하다가 죽은 총각의 상여에 옷을 던져 준 이후, 자신이 선계 출신으로 지상에 공부하러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한편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 이율곡 역시 대선인이었다고 한다. 신사임당은 율곡 선인의 청에 의해 지상에서 모자관계의 인연으로 나오게 됐다는 것. 특히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호흡법을 알아 일찍이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었으며, 이를 율곡에게 지도해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신사임당이 남긴 시(詩)·서(書)·화(畵)는 우주의 파장을 전하기 위한 도구였다고 한다. 현재 문씨가 이끄는 수선회는 출범한 지 1년 만에 회원들이 1백50여명으로 불어나는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했고, 진천에다 폐교를 구입해 야외 수련장까지 조성했다. 그렇다고 수선회가 아무나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선계 수련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들만 받아들인다는 것. 즉 혼자 수련을 해나갈 수 있도록 정서적으로 독립해 있고, 자기 몸을 남한테 의탁하지 않고 관리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남한테 신세지지 않는 정도의 세가지 여건을 갖춘 사람들만 회원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수선회 회원들은 수련에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수련단체에서 수행하다가 갈증을 못 이겨 찾아온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수선회는 그 운영도 독특하다. 이 단체의 회원들이 직접 살림을 챙기고 꾸려나간다. 회원들 사이에서 선출된 1년 임기제 임원들이 회원 관리나 회비 등 수선회 운영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자체적으로 꾸려 나간다. 선생님인 문씨는 수련 지도 외에는 모임 운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씨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수선재에서 빠져나왔을 때, 기자는 선계에 놀러갔다가 지상으로 다시 하강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이상하고 흥미로운 체험을 한 하루였다. |
2016/09/28
(1) 조시현 - 이영훈 교수의 '위안부'에 관한 글이 걸려 예전에 메모한 것이라도 올려본다. 성노예, 노예제 자체에 대한...
(1) 조시현 - 이영훈 교수의 '위안부'에 관한 글이 걸려 예전에 메모한 것이라도 올려본다. 성노예, 노예제 자체에 대한...
조시현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이렇게 성노예와 성매매의 개념들 사이의 택일적인 것으로 논의되어왔지만 양자의 관계는 상호배타적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동원의 주체, 전시 성의 수요자로서 일본제국의 입장에서는 성매매여성 역시 이러한 일본군의 시스템에 편입되어 관리되어왔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를 일본군의 성관리체제로 말해볼 수 있다. 이것이 역사학계에서도 말하는 위안소체계 또는 위안부시스템과 일치하는지의 여부는 논자의 관점과 해석이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강제 동원돼서 성노예적인 삶이 강요된 시스템의 대상 또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어떤 유형의 피해자들이 이른바 위안부로서 범주화되어 관심의 대상이 되는지는 다분히 사회적, 정치적 결정 문제이기도 하다.
한편 박유하 교수의 일본군인과 위안부의 관계를 동지적으로 파악하는 언설이나 이영훈의 주장 등은 논의를 성노예 여부에서 나아가 이를 부정하고 자발적 매춘이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 저자가 이를 부정하는 그렇지 않든 - 적어도 논리적 차원에서는 가져온다.
이러한 결과는 성매매를 어떻게 파악하여야 하는가의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효과도 또한 가져온다. 성매매가 불법이라는 입장에 서면 일제의 행위는 국가에 의한 불법한 조직적 성매매 행위이기도 하다. 성매매를 합법의 영역에 두어야한다는 입장에서는 이제 핵심 쟁점은 노예적인 상태와 자발적 성노동과의 경계가 되게된다. 그러나 일본의 우익과 박유하를 제외하고 후자의 입장에 선 담론들은 그다지 찾아보기 힘들다.
성노예 개념의 핵은 누군가를 인간으로 대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자발적 매춘부라는 주장이 결국 가리키는 것은 위안소에 있었던 여성들이 그럼에도 인간이었다고 할 수 있는지,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았는지 등의 질문에 대하여 긍정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박유하의 이에 대한 서술전략은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위안부 여성들도 위안소에서 다수의 군인들을 상대해야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이었다는 언어도단의 주장이 되게된다. 이러한 사태 파악은 그 동안 운동과 학계는 말할 것도 없이 국제사회 전반에서 부정되었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은 더 말할 것이 없겠다. 또한 성노예 개념은 흑인노예제에 비유할 것이 아니며 강간 등 성폭력과 폭행, 구타, 감금 등 일상적인 폭력과의 연결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여성들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동원, 구금하고 강간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 수년 간 지속적으로 운영되었으니까 성노예제도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인간적인 삶이 되게된다. 한나 아렌트의 용어를 빌리면 인간의 조건을 묻는 것이 된다. 법은 이러한 인간의 조건을 정하고 지켜내려는 노력이다. 도덕은 고사하고 법적 책임이라도 다하라는 것은 피해자들에 의해서만 전유될 수 없는 인간됨의 요청인 것이다.
조시현
이영훈 교수의 '위안부'에 관한 글이 걸려 예전에 메모한 것이라도 올려본다. 성노예, 노예제 자체에 대한 글들이 많지 않고 본인 역시 본격적인 글을 쓸 형편이 안된 탓이라고 변명하면서 설익은 생각이나마 공유한다.
위안부 - 성노예, 성매매, '인간의 조건'
혹자들은 성매매(좁게는 일본의 공창제)와 성노예라는 용어를 택일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인신매매에 관한 국제법의 발전을 살펴보면 이러한 개념들의 경계문제는 이미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논의는 진행 중이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답이 주어진 것은 아닌 상황이다.
성매매와 성노예를 택일적인 관계로 설정하고 일본군'위안부'문제는 성노예문제이다라고 파악하면 성매매 문제가 배제되거나 가리워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운동내지 실천 차원에서는 후자에 대한 입장 차이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성노예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위안부 개념이 가지는 다의성과 모호함은 후자, 즉 성매매의 측면에서 문제를 접근하는 시각의 유효성을 남겨두게 된다. 실제 위안부 문제가 대두된 이래 열띤 논쟁은 특히 공창제와의 관련을 두고 성매매로서의 성격이 핵심적인가에 있었다. 유의할 것은 1932년 시점에 국제연맹의 조사위원회가 일본의 공창제가 여성과 아동에 대한 불법적인 국제인신매매의 원인이 된다고 한 점이다. 현실의 복잡함은 단순히 하나의 개념으로 사태를 다룰 수 없게 만든다.
성매매와 성노예를 택일적인 관계로 설정하고 일본군'위안부'문제는 성노예문제이다라고 파악하면 성매매 문제가 배제되거나 가리워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운동내지 실천 차원에서는 후자에 대한 입장 차이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성노예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위안부 개념이 가지는 다의성과 모호함은 후자, 즉 성매매의 측면에서 문제를 접근하는 시각의 유효성을 남겨두게 된다. 실제 위안부 문제가 대두된 이래 열띤 논쟁은 특히 공창제와의 관련을 두고 성매매로서의 성격이 핵심적인가에 있었다. 유의할 것은 1932년 시점에 국제연맹의 조사위원회가 일본의 공창제가 여성과 아동에 대한 불법적인 국제인신매매의 원인이 된다고 한 점이다. 현실의 복잡함은 단순히 하나의 개념으로 사태를 다룰 수 없게 만든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이렇게 성노예와 성매매의 개념들 사이의 택일적인 것으로 논의되어왔지만 양자의 관계는 상호배타적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동원의 주체, 전시 성의 수요자로서 일본제국의 입장에서는 성매매여성 역시 이러한 일본군의 시스템에 편입되어 관리되어왔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를 일본군의 성관리체제로 말해볼 수 있다. 이것이 역사학계에서도 말하는 위안소체계 또는 위안부시스템과 일치하는지의 여부는 논자의 관점과 해석이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강제 동원돼서 성노예적인 삶이 강요된 시스템의 대상 또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어떤 유형의 피해자들이 이른바 위안부로서 범주화되어 관심의 대상이 되는지는 다분히 사회적, 정치적 결정 문제이기도 하다.
한편 박유하 교수의 일본군인과 위안부의 관계를 동지적으로 파악하는 언설이나 이영훈의 주장 등은 논의를 성노예 여부에서 나아가 이를 부정하고 자발적 매춘이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 저자가 이를 부정하는 그렇지 않든 - 적어도 논리적 차원에서는 가져온다.
이러한 결과는 성매매를 어떻게 파악하여야 하는가의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효과도 또한 가져온다. 성매매가 불법이라는 입장에 서면 일제의 행위는 국가에 의한 불법한 조직적 성매매 행위이기도 하다. 성매매를 합법의 영역에 두어야한다는 입장에서는 이제 핵심 쟁점은 노예적인 상태와 자발적 성노동과의 경계가 되게된다. 그러나 일본의 우익과 박유하를 제외하고 후자의 입장에 선 담론들은 그다지 찾아보기 힘들다.
성노예 개념의 핵은 누군가를 인간으로 대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자발적 매춘부라는 주장이 결국 가리키는 것은 위안소에 있었던 여성들이 그럼에도 인간이었다고 할 수 있는지,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았는지 등의 질문에 대하여 긍정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박유하의 이에 대한 서술전략은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위안부 여성들도 위안소에서 다수의 군인들을 상대해야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이었다는 언어도단의 주장이 되게된다. 이러한 사태 파악은 그 동안 운동과 학계는 말할 것도 없이 국제사회 전반에서 부정되었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은 더 말할 것이 없겠다. 또한 성노예 개념은 흑인노예제에 비유할 것이 아니며 강간 등 성폭력과 폭행, 구타, 감금 등 일상적인 폭력과의 연결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여성들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동원, 구금하고 강간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 수년 간 지속적으로 운영되었으니까 성노예제도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인간적인 삶이 되게된다. 한나 아렌트의 용어를 빌리면 인간의 조건을 묻는 것이 된다. 법은 이러한 인간의 조건을 정하고 지켜내려는 노력이다. 도덕은 고사하고 법적 책임이라도 다하라는 것은 피해자들에 의해서만 전유될 수 없는 인간됨의 요청인 것이다.
Subscribe to:
Posts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