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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2

Namgok Lee |토마스 베리의 ‘위대한 과업’을 읽고 있다.

(4) Namgok Lee | Facebook



Namgok Lee
3 d
  · 
토마스 베리의 ‘위대한 과업’을 읽고 있다.

“1912년 4월, 대서양을 건너 처녀 항해를 하던 타이타닉 호는 빙산을 들이받고 바다에 가라앉았다. 충돌이 있기 훨씬 전부터 지휘관들은 앞에 빙산이 놓여 있다는 여러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항로가 정해진 이상 아무도 항로의 방향을 바끄려고 하지 않았다. 그 배가 생존하리라는 확신은 끝이 없었고, 정규 항로로 운행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배 자체에만 관심을 가졌으므로 날마다 신경 써야 할 배의 관리와 승객의 안전은 무시했다. 여기서 ‘가라앉지 않을’ 선박에서 일어난 일을 지금의 우리 자신에게 비유할 수 있다”

요즘 나는 알게 모르게 인간중심의 진화사관(進化史觀)에 깊이 중독(?)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다.
과연 내가 생각해 온 것이 진정한 ‘진화(進化)’인가?

요즘 함께 보고 있는 논어의 한 구절이다.

<공자 말하기를, “하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기나라에 실증할만한 증거가 부족하고, 은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송나라에 실증할만한 증거가 부족하다.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니 문헌만 충분하다면 내가 능히 증거할 수 있다.”(3-9)
子曰 夏禮 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 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 部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나는 공자의 인간관이나 사회관, 특히 깨달음과 현실정치를 융합하려하는 태도에 적극 공감하면서도, 그의 복고적 태도에 동조하기 힘들었다.
이 문장에서도 그는 주례(周禮)를 하나의 이상적 준거로 생각하면서, 그 원천인 하례夏禮와 은례殷禮의 문헌들을 찾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태도가 나의 진화사관(進化史觀)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이 두 글을 읽으면서 나에게 떠오르는 말이 있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고증할 수 있는 문헌들이 없다.
당시는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지 않은 시대여서 ‘홍익인간’이 지금처럼 인간중심의 자연약탈과는 무관한 것이다. 지금 말로 하면 ‘홍익만유(弘益萬有)’와 같은 의미다.
진화의 방향을 이처럼 적실하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
원시로 회귀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다만 인류사의 뿌리를 다시 보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되는 문명의 진로를 새로 열어가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타이타닉호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남곡 이 시대에 ‘무엇에 목말라하는가?’ 참된 행복과 자유 그리고 사랑과 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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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나는 비교적 낙관적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다.
개인적인 빈곤과 고통은 겪어볼만큼 겪었으면서도, 사실은 이런 낙관이 나를 지탱케 한 힘이었다.
요즘은 가끔 절망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체제나 제도의 벽보다 그것을 유지하게 하는 더 강고한 탐욕과 아집의 벽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온 몸으로 노래한 시인의 절규가 있었다.
 민주주의에 목말라하는 시민들이 독재의 벽을 허물었다.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벽은 물신에 지배되는  탐욕과 각자도생의 이기주의 그리고 확증편향에 지배되는 집단적 아집이다.

이 벽을 허물지 않으면 지금의 제도와 체제는 결국 공멸의 길을 갈 가능성이 크다.
‘무엇에 목말라하는가?’
이 시대가 묻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목말라하는 것보다 좀 더 근원적이고 어렵다.
참된 행복과 자유 그리고 사랑과 협동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희망이 커질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어제 목마른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곳에 다녀왔다.
새 우물을 파기에는 아직 여리디 여리다.
그래도 우물을 판다.
사랑과 자유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먼저 우물을 판다.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우물을 판다.

2023/01/25

Namgok Lee 토마스베리의 ‘위대한 과업(The Great Work)’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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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베리의 ‘위대한 과업(The Great Work)’을 읽기 시작했다.
배곳 바람과 물 연수원 강대인 원장에게 선물 받은 책이다.
이 책 서문에 있는 문장이다.

“미래의 운명은 결정적으로 인간과 지구가 얼마나 가까워지는가에 달려 있다. 대학은 우리를 생존력 있는 미래로 인도하는 제도 중의 하나로, 인간의 노력을 좌우하는 모든 지적 작업을 가르치는 특별한 장소이다”
이 글을 읽으며 오랫 동안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생각이 떠오른다.
어떤 과업도 그 동력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추진할 일꾼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식민지 해방운동을 위해서 먼저 착수하는 것은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군관학교’나 ‘정치학교’를 만들어서, 해방전쟁이나 운동의 장교(將校)를 양성한다.
지금 우리는 문명 전환이라는 인류적 과제 앞에 서 있다.
이 대과업을 수행하고 추진할 젊은 일꾼들을 배출하는 대학을 설립하는 것은 운동의 동력을 얻기 위해 가장 증요한 일의 하나다.
내가 익산 시민이 되고 나서 이 도시의 미래를 그려볼 때, 익산이 지닌 보물을 생각하게 된다.
상당한 저력을 갖춘 새로운 시민운동과 새로운 정치운동, 그리고 지방의 명문대학인 ‘원광대학교’다.
지금 우리는 지방소멸을 걱정하고 있고, 특히 출산율 저하로 지방 대학이 가장 큰 위기를 만나고 있다.
나는 대학도 살고 지방도 살 수 있는 좋은 밑천을 익산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세계적인 대학,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 수 있다.

새로운 문명의 중심도시(메카)로 되는 것이다.
출발은 ‘대학’이 될 수 있다.
원광대학교 안에 ‘새 문명 대학’(더 적합한 명칭을 생각할 수 있다)이라는 단과대학을 창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된다.
충분한 일자리 수요(需要)도 있고, 아마도 이론이나 실천 면에서 준비된 교수진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는 상당한 규모의 생활협동조합들이 발전해 있다. 생협을 비롯해 앞으로 발전할 협동조합들, 마을 운동, 공동체 운동, 사회적 경제, 기후 운동, 환경생태운동 등 새로운 문명과 관련되는 분야들이 젊은 일꾼들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이런 운동체 안에서 대학을 만들면 좋겠다는 제안도 많았지만, 실제로 그 실행이 만만치 않았다.
역시 이미 있는 체계와 결합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에 전적으로 맡기기에는 여러 가지 여건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바라는 정치 전환의 과정으로 탄생하는 익산시정부(市政府)와 원광대학교가 손을 잡으면 된다.
원광대학교의 건학(建學) 이념과도 통하는 일이다.
도시도 살고 대학도 사는 윈윈(win win)의 길이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탄생하는 차기 익산 시정부(市政府)와 시의회(市議會) 그리고 원광대학교가 익산을 나라의 모델 도시 더 나아가 세계적인 명품 도시로 성장하는데 ‘대학(大學)’의 창설이 출발이 될 수 있다는 발상(發想)에 주목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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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2 d · 토마스 베리의 ‘위대한 과업’을 읽고 있다.
”내가 열한살쯤 되었을 때일 것이다. 5월 말 이른 오후 이사한 새집이 있는 언덕을 어슬렁거리다가 샛강 건너 편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들판은 온통 하얀 백합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 마술 같은 찰나의 경험은 지금까지 기억할 수 있는 그 어떤 경험보다도 더욱 심오한 그 무엇을 내 삶에 안겨주었다. 단지 백합꽃만이 아니라 귀뚜라미의 노래, 멀리 펼쳐진 삼림지대, 그리고 맑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까지도 그러했다“
“이 초원을 자연순환 체계 내에서 보존하고 향상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선(善)이다. 반대로 이 초원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것은 무엇이든 선이 아니다. 내 삶의 시작은 이렇듯 단순하다. 이 초원의 자연적 변화 과정을 잘 유지시키는 경제학이 있다면 그 경제학은 선이다. 그러나 이 초원이 매년 봄 스스로를 소생시키고 귀뚜라미가 노래하게 하고 새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도록 놔두지 않는 경제학이 있다면 그것은 선이 아니다. 정치, 교육, 종교도 마찬가지다.“
“우주를 근본적으로 축제(祝祭)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주가 모든 존재 자체를 축제로 인식하는 틀 속에서, 인간은 자기 인식의 특별한 양식 안에서 그 자체를 축하하고 우주 자신의 신비한 기원을 축하하는 바로 그 맥락에 있는 존재이다. 지구는 실로 다양한 구성체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살아가는 마술적인 행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운동은 또한 신성한 방식으로 이뤄져야만 한다. (*祝祭로 완성된다)“
올해 내 지적(知的) 작업은 ‘논어를 연찬하다’는 책 저술과 그 때 그 때 보고 싶은 책 독서를 병행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까. 위의 토마스 베리의 글들이 논어의 다음 내용과 겹쳐보인다.
“①시(詩)로 일어나고, ②예(禮)로 서며, ③악(樂;축제)으로 이룬다.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토마스 베리의 산문은 그 자체로 시적 감흥이 충만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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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 '토마스 베리의 위대한 The GReat TheGreatwork WORk 과업 향한 한 우리의 길 Our way into the Future 지구온난화, 환경오염, 생태 파괴... 인류는 파국을 맞을 것인가? 우리는 이제 생명 중심의 그 위대한 과업에 동참해야 한다. 번, 인류 가운데 심오한 명료함을 가지고 우리에게 말하는 베리는 그러한 인물이다. 불음베리 ombury Review, 에서 사람이나타난다.'의 이미지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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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sang-eun Jeong
    정말 멋있는 제안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거창에도 참고가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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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귀순
    희망과 비젼이 보으는 글을 통해 좀 더 좋은 나라로 이끌어 가는 인재들이 길러지면 정말 좋을 듯 하내요 응원합니다
  • 남평오
    다시 세상을 볼 수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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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경
    좋은 대안입니다
    새문명대학(원광대학교) 익산시정부 익산시의회분들 한자리에 모아서 제안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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