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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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100주년 시집 - 님의 침묵,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날이 오면, 모란이 피기까지는, 광야, 쉽게 씌어진 시
한용운,이상화,심훈,김영랑,이육사,윤동주 (지은이)스타북스201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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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쪽
135*207mm
333g
ISBN : 9791157954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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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백 년 전 1919년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가 가장 역동적으로 표출된 의미 있는 해라 할 수 있다. 고종이 1월 21일 서거하고 독살 의혹으로 번지면서 2월 8일 독립선언을 이어진다. 드디어 3월 1일 독립운동이 기폭제가 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그리고 4월 10일 임정요원들이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투표를 통하여 국호를 정하고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는 100주년이 올해 2019년이다.

이 시집은 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6명의 시에서 대표적인 시 100편을 선정하여 실었다.


목차


한용운
님의 침묵
당신을 보았습니다
알 수 없어요
이별은 미(美)의 창조
찬송(讚頌)
거짓 이별
수(繡)의 비밀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
해당화
나룻배와 행인
복종(服從)
나는 잊고자
길이 막혀
차라리
당신은
밤은 고요하고
사랑하는 까닭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가장 비통한 기욕(祈慾) - 간도 이민을 보고
역천(逆天)
말세의 희탄(?嘆)
독백
비음(緋音) - 비음의 서사
빈촌의 밤
조소
선구자의 노래
조선병(朝鮮炳)
통곡
배 갠 아침
눈이 오시네
단조(單調)
어머니의 웃음
시인에게
나는 해를 먹다

심훈
그날이 오면
나의 강산(江山)이여
봄의 서곡(序曲)
통곡(痛哭) 속에서
짝 잃은 기러기
고독(孤獨)
풀밭에 누워서
고향은 그리워도 - 내 고향
첫눈
동우(冬雨)
선생님 생각
마음의 각인(恪印)
잘 있거라 나의 서울이여
토막 생각 - 생활시
산에 오르라
조선은 술을 먹인다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독(毒)을 차고
정든 달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언덕에 바로 누워
오-매, 단풍 들것네
내 마음을 아실 이
춘향
거문고
시절이 가엽고 멀어라
한 줌 흙
겨레의 새해
발짓
어느 날 어느 때고
떠나가는 배
아파 누워 혼자 비노라

이육사
광야
자야곡(子夜曲)
노정기(路程記)
황혼

절정(絶頂)
청포도
파초
일식
소년에게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초가
호수
반묘(斑猫)
교목(喬木)
아편(雅片)
서울

윤동주
간(肝)
자화상(自畵像)
돌아와 보는 밤
서시(序詩)

별 헤는 밤
참회록(懺悔錄)
또 다른 고향
십자가(十字架)

병원(病院)
쉽게 씌어진 시(詩)
산골물
새벽이 올 때까지
아우의 인상화(印象畵)
무서운 시간
눈 감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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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 연합뉴스 2019년 2월 26일자 '신간'



저자 및 역자소개
한용운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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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한응준과 온양 방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자(字)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 법명(法名)은 용운(龍雲), 법호(法號)는 만해이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는 한편 부친으로부터 때때로 의인들의 기개와 사상을 전해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홍주에서 전개되었던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면서 수도하다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노령 시베리아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1905년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910년 당시 모순과 부패가 만연하던 한국불교의 상황을 개탄하면서 개혁방안을 제시한 실천적 지침서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하였고, 그것을 1913년 발간함으로써 불교계에 일대 혁신운동을 일으켰다. 1914년 4월에는 고려대장경을 독파하고 《불교대전》을 간행하였으며, 1918년에는 본격적인 불교잡지 <유심(惟心)>을 발간하였다.

1919년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추진된 3.1운동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불교계측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일도 맡았다. 1919년 7월 10일에는 경성지방법원 검사장의 요구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이란 논설을 집필하여 명쾌한 논리로 조선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하였다. 3.1운동 때문에 감옥에 갔다가 석방된 뒤에도 전국적으로 확산된 물산장려운동을 지원하고, 민족경제의 육성과 민족교육을 위한 사립대학 건립운동에 앞장섰다. 창씨개명 반대운동,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 등을 펴기도 했다. 1944년 6월 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눈앞에 두고 입적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는 뜻으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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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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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대구에서 부친 이시우와 모친 김신자의 2남으로 출생했는데, 가정은 부유했으나 7세 때 부친이 별세해, 어머니의 인자하고 후덕한 성정과 백부 이일우의 엄격한 훈도 밑에서 성장했다. 백부 이일우는 인품과 재력을 갖추었으며, 민족정신을 선도하고 국민 계도에 앞장선 지사로서, 이상화로 하여금 가내에 설치한 사숙에서 한문 수업을 받게 했다. 백부를 통해 이상화는 민족의식을 함양하고 많은 감화와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상화의 형인 이상정이 독립 운동가로 활동하게 된 것 또한 이러한 가계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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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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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9월 12일 경기도 시흥군 신북면 노량진리에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해평 윤씨 사이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다. 그의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본명은 ‘대섭(大燮)’이다. 어렸을 때 ‘삼준(三俊)’, ‘삼보(三保)’로도 불렸으며, 필명으로 ‘금강샘’, ‘백랑생(白浪生)’, ‘해풍(海風)’ 등을 썼고, 1926년 이후부터 아호로 ‘훈(熏)’을 썼다.

1915년 심훈은 서울 교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며, 2년 뒤인 1917년 3월에는 왕족의 누이동생 이해영과 결혼한다. 그리고 그해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 재학 중 조선인에 대해 모욕적인 발언을 한 일본인 수학 선생에게 항의하며, 그 항의의 표시로 백지 답안을 제출해 수학 과목이 낙제되어 유급을 당한다.

1919년 3월 기미년 만세 사건 때 심훈은 남대문 앞에서 가담하며, 3월 5일 경성 헌병대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7월 형 집행을 마치고 풀려나지만 퇴학을 당한다. 심훈은 당시 졸업을 하지 못했지만 2005년 7월 경기고등학교는 심훈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

1920년 심훈은 흑석동 본가와 가회동 큰형 집에 머물면서 문학 독서에 매진하며, 이희승에게 한글 맞춤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그해 겨울 중국 망명길에 오른다. 이듬해 1921년 그는 중국 항저우의 즈장대학(之江大學) 문학원에 입학해 극문학 관련 공부를 하다가 1923년 국내에 들어와 최승일, 이경손, 안석주, 이승만, 김영팔 등과 신극 연구 단체인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한다. 1924년에는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입사하며,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 창작 활동도 하게 된다. 이 무렵 그는 송영, 이적효, 이호, 박세영, 김홍파 등이 주축이 된 사회주의 문화 단체인 ‘염군사’ 멤버로 동참하며, 1925년에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도 가담하여 활동하게 되는데 무산 계급의 해방 문학보다는 전방위적인 해방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1926년 2월 심훈은 동아일보 학예부에서 사회부로 옮긴 후 ‘철필구락부’에 가입하며, ‘철필구락부 사건(급료 인상 투쟁 사건)’으로 해직된다. 그해 11월 그는 동아일보에 연재한 영화 소설 <탈춤>부터 “심훈(沈熏)”이란 새 이름을 쓰기 시작한다.

1927년 2월에는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해 도일(渡日)하며 일본의 닛카스(日活) 회사에 입사하지만 얼마 있지 않고 5월 귀국해 경성방송국 프로듀서로 입사한다. 그러나 일본 황태자를 전하로 호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3개월도 안 되어 퇴사를 당한다. 그리고 7월에는 나운규를 감독으로 <탈춤>을 영화화하며, 10월에는 원작·각색·감독한 영화 <먼동이 틀 때>(원제 <어둠에서 어둠까지>)를 완성해 상영하기도 한다.

1928년 심훈은 조선일보에 입사해 신문 기자직을 이어 가나 월급을 제대로 못 받아 생계를 외상으로 허덕인다. 이 해 11월 ≪새벗≫에 소년 영화 소설 <기남(奇男)의 모험(冒險)>을 게재한다. 1929년에는 ≪조선일보≫에 소설 <오월비상(五月飛霜)>을 게재하며, <원단잡음(元旦雜吟)>, <거리의 봄>, <어린이날>, <야구(野球)> 등의 시도 여러 편 게재한다.

1930년 심훈은 ≪조선일보≫에 <동방의 애인>을 연재하나 10월 29일 조선총독부 검열로 중단된다. 그리고 그 해 11월 근화여학교(槿花女學校)를 수석으로 졸업한 안정옥(安貞玉)과 약혼하며, 12월 24일에는 결혼을 한다.

1931년 8월 16일부터는 ≪조선일보≫에 <불사조>를 연재하나 12월에 또다시 검열로 중단된다. 1932년에는 조선일보 기자직을 그만두고 양친이 계신 충남 당진으로 내려가 살게 되며, 그해 4월 아들 ‘재건’이 태어난다. 이해 9월 경성세광사에서 ≪심훈 시가집≫을 출판하려 했으나 일제의 검열로 출간이 미뤄진다.

1933년 7월 심훈은 ≪조선중앙일보≫에 소설 ≪영원한 미소≫를 연재하며, 8월에는 기자 생활을 못 잊어 서울로 상경해 조선중앙일보사에 들어가 학예부장을 맡지만 3개월 만에 그만두고 당진으로 다시 내려간다. 그는 1934년 3월 이혼한 부인 이(李)씨를 모델로 <직녀성>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며, 여기서 생긴 원고료로 ‘필경사(筆耕舍)’를 짓고, 그 집에서 ≪상록수≫를 완성한다.

1935년 2월 심훈의 장편소설 ≪영원한 미소≫가 한성도서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며, 8월에는 ≪동아일보≫ 창간 15돌 기념 현상공모에 ≪상록수≫가 당선된다. 심훈은 그때 받은 상금 500원 중 일부를 야학당에 후원하며, 이 후원으로 상록학원이 세워진다. 그리고 그해 9월부터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상록수≫를 연재하기 시작한다.

1936년 8월 10일 심훈은 서울로 상경했다가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접하고는 신문 호외의 뒷면에 시 <절필-오오 조선의 남아(男兒)여!>를 써서 ≪중앙≫ 문예지 편집실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해 9월 16일 ≪상록수≫ 출판 문제를 의논하고 ≪심훈 시가집≫ 교정을 보던 중 당시 유행하던 장티푸스에 걸려 경성대학병원에서 치료하다가 36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17일에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사후 1949년 7월 생전에 출간하지 못한 그의 시가집이 중형(仲兄) 심설송(沈雪松)의 도움으로 한성도서에서 시집 ≪그날이 오면≫으로 발간된다. 접기


최근작 : <상록수>,<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독립 시는 기억한다>,<그날이 오면> … 총 186종 (모두보기)

김영랑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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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강진의 부유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김영랑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이다. 영랑永郞은 아호인데 《시문학詩文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혼인했으나 불과 1년 반 만에 부인과 사별했다. 그 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후에 ‘사립휘문고등보통학교’로 개칭)에 입학하여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때 휘문의숙에는 홍사용, 안석주, 박종화 등의 선배와 정지용, 이태준 등의 후배, 그리고 동급반에 화백 이승만이 있어서 문학적 안목을 키우는데 직간접으로 도움을 받았다.

휘문의숙 3학년 때인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 학원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이 무렵 독립투사 박렬, 시인 박용철과도 친교를 맺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 후 고향에 머물렀다. 1925년에 개성 출신 김귀련과 재혼했다. 광복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했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했다.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으며, 평소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국악이나 서양 명곡을 즐겨 들었고, 축구와 테니스 등 운동에도 능하여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영위했다. 9·28수복 하루 전인 9월 27일 길에서 유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작품이 실린 《영랑시집永郞詩集》(1935)과 《영랑시선》(1949), 유고시집 《모란이 피기까지는》(1981)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김영랑 시집>,<다시, 사랑하는 시 하나를 갖고 싶다>,<[POD] 김영랑 시집 (큰 글씨 특별판)> … 총 93종 (모두보기)

이육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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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5월 18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 881번지에서 이가호와 허길 사이에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원록(源祿)이다.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그의 형제 중 다섯째는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월북 이후 1950년대 초 숙청당한 이원조다. 어릴 때 조부 이중직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919년에 신학문을 접한 보문의숙을 졸업했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고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대학 상과에 입학해 7개월간 다녔다.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었다. 일본 경찰이 장진홍이란 인물은 물론 단서조차 잡지 못하자,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물들을 잡아들여 고문으로 진범을 조작해 법정에 세웠다. 이 과정에서 육사를 비롯해 원기·원일·원조 등 4형제가 함께 검거되었다. 원기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은 미결수 상태로 1년 반을 넘겼다. 그때의 수인번호 264에서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1930년 1월 3일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이활(李活)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1935년 정인보 댁에서 시인 신석초를 만나 친교를 나눴다. 같은 해 다산 정약용 서세 99주기 기념 ≪다산문집(茶山文集)≫ 간행에 참여했다. 그리고 신조선사(新朝鮮社)의 ≪신조선(新朝鮮)≫ 편집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발표했다.

1940년 4월에 베이징으로 가서 충칭과 옌안행 및 국내 무기 반입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모친과 맏형 소상에 참여하러 귀국했다가 붙잡혀 베이징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구금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4년 1월 16일 새벽, 베이징 네이이구(內一區) 동창후퉁(東廠胡同) 1호에서 옥사했다. 접기


최근작 : <다시, 사랑하는 시 하나를 갖고 싶다>,<[POD] 이육사 시집 (큰 글씨 특별판)>,<김소월을 따라 쓰다> … 총 116종 (모두보기)

윤동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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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별이 있다. 시인 윤동주의 세상은 어둠이었고 별이었다. 감수성이 남다른 그는 작은 바람에도 일렁인다. 윤동주는 시를 통해 상처입은 마음을 치료하게 한다. 현대인들이 잊고 사는 자신은 물론 삶을 돌아보게 하며 스스로의 회개와 반성의 시간을 만나게 한다. 어둠을 보면 우린 빛낼 줄 안다고 말했다. 윤동주는 바로 그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의 색을 짚어보게 한다. 나를 있게 한 오늘과 내일을 연계하며 삶을 승화시키는 바람 그리고 기원이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의 마음을 모이게 한다. 손에 손을 들던 그 바람을 아는 동주는 그대로 꽃을 만들고 별을 만들고 바다로 넘치게 했다. 오늘을 기억하고 아픔을 함께하며 모두의 내일을 만나게 할 “별 헤이는 시간”을 찾아 나서게 한다. 접기


최근작 : <윤동주 김소월이 노래하고, 반고흐 모네가 그리다>,<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육필원고본)> … 총 44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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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시인들의 염원들

백 년 전 1919년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가 가장 역동적으로 표출된 의미 있는 해라 할 수 있다.
고종이 1월 21일 서거하고 독살 의혹으로 번지면서 2월 8일 독립선언을 이어진다. 드디어 3월 1일 독립운동이 기폭제가 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그리고 4월 10일 임정요원들이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투표를 통하여 국호를 정하고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는 100주년이 올해 2019년이다.
이 시집은 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6분의 시에서 대표적인 시 100편을 선정하여 실었다.

독립운동가 6분의 민족시와 저항시 그리고 서정시 100편
3.1운동의 불씨가 된 독립선언문 전문과 번역문 수록!!

결코 잊지 말아야할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적 저항 시로 꼽히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심훈의 ‘그날이 오면’,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육사의 ‘광야’,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등등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여섯 분 독립시인들의 민족혼이 담긴 저항 시와 감성을 되살리는 주옥같은 서정시 100편을 만난다.

백 년 전 1919년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가 가장 역동적으로 표출된 의미 있는 해라 할 수 있다.
고종이 1월 21일 서거하고 독살 의혹으로 번지면서 2월 8일 독립선언을 이어진다. 드디어 3월 1일 독립운동이 기폭제가 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그리고 4월 10일 임정요원들이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투표를 통하여 국호를 정하고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는 100주년이 올해 2019년이다.
이 시집은 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6분의 시에서 대표적인 시 100편을 선정하여 실었다.

시를 통해 자유의 종을 만천하에 울린 독립운동 시인들

독립운동 100주년 시집에 실린 시들은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감성을 되살리는 민족시와 저항시 그리고 주옥같은 서정시 100편을 서울시인협회와 함께 선정하여 수록하였다.
100년 전 지금도 우리가 좋아하는 시인들이 독립운동을 하며 감옥에서 겪었을 고통과 함께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마음을 되새기며 독립시인들의 생각과 마음을 헤아려보고자 시집을 기획하게 되었다.
독립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 시대의 우리 민족의 어둡고 힘들었던 삶을 기억하고 반추해보면서, 100년이 지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와 미래에 대한 통찰이 있을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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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지금도 우리가 좋아하는 시인들이 독립운동을 하며 감옥에서 겪었을 고통과 함께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마음을 헤아려보고 독립정신을 되새기고자 시집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오늘날 있기까지 자기들의 인생 살아보지 않고 이만큼 나라를 되찾게 해준 고군분투한 모습이 느껴졌다
이보나 2019-03-0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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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 읽어 봤을, 읽어야 할 시.
자바라 2019-02-2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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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100주년 시집




복종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만은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조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p51)


조선은 술을 먹인다.

조선은 마음 약한 젊은 사람에게 술을 먹인다.
입을 벌릿고 독한 술잔으로 들이붓는다.

그네들의 마음은 화장터의 새벽과 같이 쓸쓸하고
그네들의 생활은 해수욕장의 가을처럼 공허하여
그 마음, 그 생활에서 순간이라도 떠나고자 술을 마신다.
아편 대신으로, 죽음 대신으로 알코올을 삼킨다.

가는 곳마다 양조장이요, 골목마다 색주가다.
카페의 의자를 부수고 술잔을 깨뜨리는 사나이가
피를 아끼지 않는 조선의 테러리스트요,
파출소 문 앞에 오줌을 깔기는 주정꾼이
이 땅의 가장 용감한 반역아란 말이냐?
그렇다면 전봇대를 붙잡고 통곡하는 친구는
이 바닥의 비분(悲憤)을 독차지한 지사로구나.

아아, 조선은, 마음 약한 젊은 사람에게 술을 먹인다.
뜻이 굳지 못한 청춘들의 골을 녹이려 한다.
생재목에 알코올을 끼얹어 태워버리려 한다.(p145)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 독립을 염원하기 위해 헤이그 특사가 실패로 끝나버리고, 고종 임금의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인해 조선 강토가 들풀처럼 슬픔과 분노로 들끓게 된다. 조국을 잃어버린 것 뿐만 아니라, 슬픔 언저리에 숨어있는 그들의 뜨거운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은 1919년 3월 1일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죽음을 통해서라도 후대에 희망을 분출하기 위한 조상들의 뜨거운 열망들이 모이고, 모여서 조국 독립은 현실이 되었건만, 서양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는 남한과 북한, 두 동강나는 아픔을 간직한 채 , 70년의 세우러이 속절없이 흘러가 버렸다.


고국을 잃어버린 아픔을 그들은 글필로서 나타내고자 하였다. 수많은 조선의 문인들 중에는 조국의 독립을 꿈꾸는 이들도 있었고, 친일을 하면서 변절자라는 소리도 들었던 이들도 있었다. 책에는 그 중에서 독립을 간절히 염원하던 여섯의 시인의 시가 100편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의 시구 하나하나에는 그들의 서정적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왔다. 그 서정적인 시어 하나에 숨어 있는 뜨거운 열망,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아픔이 그들의 서정 그 자체였다. 아니 그들이 서정시를 남겼던 것은 그들에게 허용된 제한적인 상황 때문이었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감히 추측해 보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뜨거움을 안고 있었다. 조국을 잃어버린 슬픔은 <서시,<별헤는 밤>을 남긴 윤동주의 삶에 고슿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그의 죽음 언저리에 숨어 있는 일제 만행의 서슬퍼린 고통들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또다른 고통의 실체였으며, 현실이었다. 서정시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그들의 저항적인 가치가 있었고, 그럼으로서 우리는 그들의 시 하나하나 잊지 말아야 하는 또따른 이유였다. 시어 곳곳에 그들의 생각이 묻어나 있었으며, 변화된 조국의 또다른 모습들이 관찰되어진다. 시대적 아픔과 시대적인 변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독립을 꿈꾸었던 그들의 삶과 ,그들의 의지가 반영된 그들의 시와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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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9-03-11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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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ㅡ 과거, 추보식 구성

하늘이 처음 열리고 ㅡ 광야의 탄생

어디 닭 우는 소리가 들렸으랴. ㅡ생명의 기척



끊임없는 광음을 ㅡ 오랜 세월

부지런히 계절이 피어선 지고 ㅡ 세월을 꽃에 비유, 추상적 개념을 시각화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ㅡ 역사의 시작




지금 눈 내리고 ㅡ 현재 일제 강점하의 시련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ㅡ 현실극복(광복) 의지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ㅡ 독립을 향한 강인한 생명력, 명령형 종결은 의지적 태도



다시 천고의 뒤에 ㅡ 미래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ㅡ조국광복을 가져오는 민족의 구원자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ㅡ 예언자적 태도, 미래지향적



===

지금 눈발이 날린다.
눈 속에서 매화 향기는 어찌나 황홀하던지!
얼마 전에 뜰에 매화 핀 걸 보고 사진 찍어
카톡 프로필에 담아 다니면서도
뭔가 허전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는데
눈이 나리니 비로소 잃었던 짝을 찾은 것 같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육사의 싯구 이 부분 덕분에
매화와 눈은 따로 뗄 수 없는 조합인가 보다.


일제 강점기에 감히 비할 순 없지만
내 개인의 삶에도 지금 갑작스런 눈이 내리고, 나는 지금 눈에 갇혀있다.
강인하진 못해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텨내야 할 텐데...
회사에서 생활안정자금을 무이자로 지원해준다니
내일은 신청해봐야 겠다.




눈이 내리면 언제까지 내리려구..
한파라고 해봤자 지가 어쩌겠냐구, 이미 춘삼월인데.
찬 바람이 잉잉 댈지라도 며칠 남지 않았다.
며칠 남지 않았다.
봄이여, 얼른 백마타고 오길.


200315ㅇㅂㅊㅁ



※ 사진에 이육사 이름 한자는 수인번호 264를 생각하여 일부러 64라고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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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20-03-15 공감(5)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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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100주년 시집














독립운동 100주년 시집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이다.





대.한.독.립.만.세.!!!





이 여섯글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우리는 안다.


그때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면


목숨을 내어주고 외칠 수 있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잊지 않는 것이다.


기억하고 또 기억해서 그들의 아름답고도


숭고한 희생을, 인생을, 역사를 헛되게 하지 말아야한다.





올해로 독립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의미를 기리기 위해 스타북스 출판사에서


《독립운동 100주년 시집》을 출간했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여섯 분을 선정했다.


'님의 침묵'의 한용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그날이 오면'의 심훈,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김영랑,


'광야'의 이육사,


'서시'의 윤동주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시, 100편을 만나볼 수 있다.





"당신은 해당화가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


_한용운의 해댕화 중에서.





시 한편 한편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봄을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는 시였으면


그냥 아름다운 시 한편으로만 기억했을텐데


그 속에 담긴 깊은 한숨과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과


자신을 아낌없이 주고도 찾고 싶었던 나라가 있음을


알기에 그냥 흐루룩 읽어버릴 수가 없었다.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고 머리로 읽고,


마지막엔 소리내어 읽었다.





감히 시 몇편 읽고 그들의 아픔을, 간절함을


모두 알수는 없겠지만 시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그들이 살아 낸 치열한 삶을 이해하고 작은 손길이라도


토닥여주는 마음을 보이면 좋겠다.





"그러니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던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_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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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2019-03-0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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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시인




얼마 전, 3.1운동을 맞이해 다양한 행사와 더불어, 역사의식 고취를 위한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예전보다 좋아진 역사에 대한 국민적 인식, 이는 역사를 통해 현재를 알고,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매우 유의미한 행동으로 보인다. 물론 유명한 독립운동가를 통해 역사를 배우며,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과 분위기를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독립운동에 있어서 덜 알려진 사람들의 활동이나 새롭게 재평가가 필요한 사람들도 많다.


중요한 것은 어떤 분야에서 활동을 하더라도, 함께 독립운동을 염원했고, 그들 나름대로 일제에 저항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책도 이런 취지에서 발간되었고,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더 나은 역사의식 고취와 방향성을 위해 대중들에게도 소개되고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시인이라 교과서에서 접했을 수도 있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유명한 작품이 주는 이미지가 무엇이며, 시에 빗대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독립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일제가 패망하며 해방되었고, 우리는 원하지 않는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독립 그 자체적으로 매우 의미있었고, 이는 다양한 분야에서 소신을 지키며 살았던 사람들, 혹은 일제에 부역하지 않고, 나름의 저항을 통해 자신의 가치와 민족의 정신을 지키려 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무장투쟁이나 교육적 항쟁, 혹은 드러나느 활동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저항한 독립운동가들도 많았고, 이는 우리가 반드시 알고, 그들의 생애를 통해 역사적 의미를 배워야 할 것이다.


지금은 가치적인 면이나 존재감 면에서 낮아졌다고 볼 수도 있는 시와 시인에 대한 평가, 당대는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더 민족정신을 일깨우며, 일제를 두렵게 했다. 때로는 글의 강함이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데, 바로 시가 그랬고, 이는 대중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부끄러움을 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독립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말할 수 있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 해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역사를 보다 가슴으로 느끼며, 의식을 깨울 수 있는 행위, 이 책을 통해 역사를 느끼고 배우며, 스스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다 깊이있는 생각과 행동을 통해,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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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kidol 2019-03-1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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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100주년 시집




1919년 3월 1일, 대한의 독립만세를 외치던 그날로 부터 2019년 지난 3월 1일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에 따라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글들도 접했더랬다. 그러다 눈에 띈 시집이 이 시집이다. <독립운동 100주년 시집>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만큼 일제강점기 당시에 활동한 시인들 중 대표적 시인 여섯 사람의 시를 실어 놓았다. 이책을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일제강점기 대표시인 여섯 명의 시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용운을 제외한 다섯 명의 시인은 모두 1900년이 지나 태어났다. 1910년 우리의 국권이 강탈되었던 해에 한용운을 제외한 그들은 코흘리개 어린아이였을 뿐일텐데, 윤동주는 1917년생이니 한일병합 후 태어난 시인이고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시에선 절절한 독립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자기마다 표현의 색채만 다를 뿐 피끓듯 올라와 가득하다. 머리글로 시작된 '기미독립선언문'도 의미 깊게 읽었다. 온몸으로 이 시집이 '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시집임을 머리글에서부터 각인시킨듯 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의지를 가지고 활동한 시인이 이들 여섯만은 아니지만 이들 여섯을 대표시인이라고 할 때 트집잡을 이는 정말 없을 듯하다. 기미독립선언문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한용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그날이 오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두개골이 깨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겠다고 노래한 <그날의 오면>의 심훈, 일제강점기 그 시기를 '독을 차고 선선히' 가겠다는 <독을 차고>의 김영랑, 두 말 할 필요없는 이육사와 윤동주이니 말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던 것은 익숙했던 시인들의 익숙하지 않은 시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시인들의 각 대표시들이 떠억 하니 실려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여러 편의 시들을 통해 여섯 시인들의 다양한 시를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주 흡족했다.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달파 하늘을 흘기니 울음이 터'진다는 이상화의 <통곡>이, 심훈의 <고독>에서 방안으로 굴러든 낙엽을 보며 '...어루만져 재우나 바스락거리며 잠은 안 자네'라고 한 표현과 마지막 행 '밤중이면 이불 속에서 그 울음을 깨물어 죽이네'라는 표현이, '항상 앓는 숨결이 오늘은 해월(海月)처럼 게을러 은빛 물껼에' 뜬다는 이육사의 <파초> 첫 연이, 내겐 무척 인상적이었다.

'조선은 마음 약한 젊은 사람에게 술을 먹인다. / 입을 벌리고 독한 술잔으로 들이붓는다./ ...(중략)... / 아아, 조선은, 마음 약한 젊은 사람에게 술을 먹인다. / 뜻이 굳지 못한 청춘들의 골(腦)를 녹이려 한다. / 생재목(生材木)에 알코올을 끼얹어 태워버리려 한다.'는 심훈의 시는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를 한 편의 시로 적어 놓은 듯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읽어내리는 그들의 시가, 그들이 목놓아 부르는 저항적 의지와 독립의 열망이 새삼 더욱 새록새록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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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통 2019-03-1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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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dependence: A Postcolonial Feminist Practical Theology: Kim-Cragg, HyeRan, Moore, Elizabeth Mary, Dube, Musa W.: 9781532617249: Amazon.com: Books

Interdependence: A Postcolonial Feminist Practical Theology: Kim-Cragg, HyeRan, Moore, Elizabeth Mary, Dube, Musa W.: 9781532617249: Amazon.com: Books



This book calls attention to an urgent need for postcolonial feminist approaches to practical theology. It not only advocates for the inclusion of colonialism as a critical optic for practical theology but also demands a close look at how colonialism is entangled with issues of race, ethnicity, gender, class, disability, and sexual orientation. 



Seeking to highlight the importance of the interdependence of life, the author challenges and contests the notion of independence as the desirable goal of the human being. Lifting up the experiences of overlooked groups--including children at adult-centered worship, queer and interracial youth in heterosexual and white normative family discourse, and non-human species in human-centered academic and theological realms--the book contributes to expanding the concerns of practical theology in ways that create healthy community for all human beings and non-human fellow creatures. It also takes up issues of multiple religious belonging and migration that practical theology has not sufficiently explored. These illuminating new possibilities promise to renew and even transform church communities through the inclusion of often-neglected groups with whom God is already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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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일승법계도

화엄일승법계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화엄일승법계도



[ 華嚴一乘法界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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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승려 의상이 화엄사상의 요지를 간결한 시로 축약한 글. 210자를 54각이 있는 도인에 합쳐서 만든 것이다. '화엄일승법계'란 '가지가지의 꽃으로 장엄된 일승의 진리로운 세계의 모습'을 의미하며 진숭, 법융, 균여 등의 고승들이 이 법계도에 주석을 달기도 했다.

이칭별칭 법계도, 법성게, 일승법계도
유형 문헌
시대 고대/남북국
성격 화엄사상축약시
편저자 의상(義湘)
제작시기 신라 시대


목차
정의
내용
정의

신라시대의 승려 의상(義湘)이 화엄사상의 요지를 간결한 시(詩)로 축약한 글.
내용

210자를 54각(角)이 있는 도인(圖印)에 합쳐서 만든 것이다.

‘갖가지 꽃으로 장엄된 일승(一乘)의 진리로운 세계의 모습’이라는 뜻이며, 『삼국유사』에서는 ‘법계도서인(法界圖書印)’이라고 하고, 이 밖에 ‘화엄일승법계도장(華嚴一乘法界圖章)’·‘화엄법계도(華嚴法界圖)’·‘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법계도장(法界圖章)’·‘법성도(法性圖)’·‘해인도(海印圖)’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화엄일승법계도』에는 저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 책 끝에 “인연으로 생겨나는 일체의 모든 것에는 주인이 따로 있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저자명을 기록하지 않는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였을 뿐이다.

이로 인하여 뒷날 이 책의 저자를 당나라의 지엄(智儼) 혹은 현수(賢首) 또는 진숭(珍嵩)이라고 하는 등의 설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려의 균여(均如)는 그의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에서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의상전(義湘傳)」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인용하여, 이것의 저자가 의상임을 밝히고 있다.

의상이 스승 지엄의 문하에서 화엄을 수학할 때이다. 꿈속에 형상이 매우 기이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의상에게 “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저술하여 사람들에게 베풀어 줌이 마땅하다.”고 하였고, 또 꿈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총명약(聰明藥) 10여 알을 주었으며, 청의동자(靑衣童子)가 세 번째로 비결(秘訣)을 주었다.

스승 지엄이 이 말을 듣고 “신인이 신령스러운 것을 줌이 나에게는 한 번이었는데 너에게는 세 번이구나. 널리 수행하여 그 통보(通報)를 곧 표현하도록 하라.” 하였다. 의상이 명을 따라 그 터득한 바 오묘한 경지를 순서를 따라 부지런히 써서 『십승장(十乘章)』 10권을 엮고, 스승에게 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청하였다.

지엄이 이를 읽어 본 후 “뜻은 매우 아름다우나 말은 오히려 옹색하다.”고 하였다. 이에 의상은 다시 번거롭지 않고 어디에나 걸림이 없게 고쳤다. 지엄과 의상이 함께 불전(佛前)에 나아가 그것을 불사르면서, “부처님의 뜻에 계합함이 있다면 원컨대 타지 말기를 바랍니다.”고 서원하였다.

불길 속에서 타고 남은 나머지를 수습하니 210자가 되었다. 의상이 그것을 모아 다시 간절한 서원을 발하며 맹렬한 불길 속에 던졌으나 마침내 타지 않았다.

지엄은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하여 칭찬하였고, 의상은 그 210자를 연결하여 게(偈)가 되게 하려고 며칠 동안 문을 걸고 노력했다. 마침내 삼십 구절을 이루니 삼관(三觀)의 오묘한 뜻을 포괄하고 십현(十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법계도』는 의상 자신이 스스로 깨달은 자내증(自內證)의 경지를 기술한 것이고, 그 자내증은 완전히 부처의 뜻에 계합하는 것이기에 불후의 명저를 낳게 된 것이다.

『법계도』가 완성된 것은 스승 지엄이 입적하기 몇 달 전인 670년(문무왕 10)이다. 이것은 이 책 끝에 밝혀져 있고, 『삼국유사』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의상은 『법계도』 첫머리에서 이것을 짓게 된 동기를, “이(理)에 의하고 교(敎)에 근거하여 간략한 반시(槃詩)를 만들어 이름에만 집착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그 이름마저도 없는 참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고자 함이다.”라고 하였다.

의상의 『법계도』 원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대의(大意) 및 도인, 둘째는 석문(釋文: 문장의 풀이)이다.

석문은 다시 총석인의(總釋印意: 총괄적인 圖印의 의미해석)와 별해인상(別解印相: 개별적인 圖印의 형상해석)으로 나누어지며, 별해인상은 ① 설인문상(說印文相: 도인의 글이 지니고 있는 모습에 대한 설명), ② 명자상(明字相: 문자의 형상에 관한 글), ③ 석문의(釋文意: 문장의 뜻풀이)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중 「석문의」에 의하면 『법계도』를 구성하는 글은 칠언삼십구(七言三十句)를 이룬다. 「총석인의」에서는 인(印)이라는 형식을 취하여 법계도를 짓게 된 까닭을 밝혔다.

곧, “석가여래께서 가르치신 그물과 같은 교법(敎法)이 포괄하는 삼종의 세간(世間)을 해인삼매(海印三昧)를 좇아 드러내어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여, 해인삼매에 들었을 때 나타나는 삼종의 세간인 기세간(器世間: 물질의 세계)과 중생세간(衆生世間: 인간들의 세계), 그리고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 正覺에 의한 智慧의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특히 『법계도』는 흰 종이 위에 붉은 도인의 길(줄)과 검은 글자를 써서 만들었는데, 이는 삼종세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법계도』의 인은 사각형을 이루고 있고 중심의 ‘법(法)’ 자에서 시작하여 역시 같은 중심의 ‘불(佛)’ 자에 이르기까지 54개의 각을 이루면서 210자의 시가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

「별해인상」의 「설인문상」과 「명자상」에서, 의상은 스스로 “어째서 인문(印文)이 외줄로 되어 있는가? 어째서 사면사각으로 되어 있는가? 어찌하여 시의 글자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가? 그리고 그 시작하는 글자와 끝 글자가 중앙에 위치하는가? 또 시의 글에는 왜 굴곡이 많은가?”라고 질문한 다음 답을 내리고 있다.

그 내용을 함께 묶어 정리해 보면, “인문이 다만 하나의 길로 되어 있는 것은 여래(如來)의 일음(一音)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또 그 길이 번거롭게 굴곡을 나타내고 있는 까닭은 중생의 근기(根機)와 욕망이 같지 않기 때문이니, 삼승교(三乘敎)가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하나의 길에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은 여래의 선교방편(善巧方便)에는 특정한 방법이 없고 대응하는 세계에 알맞게 융통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원교(圓敎)에 해당한다. 사면사각으로 되어 있는 것은 사섭사무량(四攝四無量)을 나타낸 것이다. 이 인문은 삼승(三乘)에 의하여 일승을 드러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시의 글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데, 그것은 수행방편(修行方便)에는 원인과 결과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이 많은 굴곡을 보이는 까닭은 역시 삼승의 근기와 욕망이 꼭 같지 않고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첫 글자와 끝 글자가 중심에 와 있느냐 하면, 인과(因果)의 양위(兩位)는 법성가내(法性家內)의 진실한 덕용(德用)으로서 그 성(性)이 중도(中道)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석문의」는 『법성도』의 뜻을 자세히 풀이하는 부분으로 이 책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법성게(法性偈)』의 전체적인 구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석문의」의 구분에 따라 조직내용을 도식화 할 수 있다.

의상은 이 『법계도』를 그 제자들에 대한 인가의 표시로 주기를 좋아하였다. 이러한 도(圖) 자체가 극히 독창적이요 한국적인 사고방식의 특성을 이룬다고 볼 수 있는데, 상징을 통하여 깊은 뜻을 간추리고 짧게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법계도』의 근본정신은 『화엄경』의 근본정신이며, 그 이상의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문제는 의상이 그 방대한 『화엄경』의 정신을 이렇게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아무도 이만큼 적절하고 평이하게 그 어렵고 방대한 『화엄경』의 정신을 요약한 이가 없었다.

그것을 해냈기 때문에 의상은 위대한 것이며, 그의 위대한 학덕은 이 『법계도』에 의해서 증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계도』는 현재 『대일본속장경(大日本續藏經)』 제8투(套) 및 『대정장경(大正藏經)』 제45권에 수록되어 있다.

또 이에 대한 우리나라 역대 고승의 주석서로는 진숭의 『일승법계도기(一乘法界圖記)』, 법융(法融)의 『법계도기(法界圖記)』, 균여의 『일승법계도원통기』, 작자 미상의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髓錄)』, 설잠(雪岑)의 『화엄일승법계도주(華嚴一乘法界圖註)』, 『법성게과주(法性偈科註)』 등이 있다.

참고문헌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髓錄)』
『한국의 불교사상』(이기영, 삼성출판사, 1976)
「화엄일승법계도의 근본사상」(이기영, 『신라가야문화』4, 영남대학교 신라가야문화연구소,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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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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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조선불교유신론 - 민족 지성 한용운이 제시한 한국 불교의 길 | 청소년 철학창고 36
한용운 (지은이),정은주풀빛201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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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파일 : ePub(1.55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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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296쪽, 약 18.2만자, 약 4.8만 단어

책소개
시인,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민족 지성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이 집필한 불교 개혁론이다. 생소한 불교 용어나 고전 문구가 나올 때마다 원서에 없는 해석과 배경지식을 병기하고 한용운이 저술한 다른 논설 자료나 시 등도 다각도로 참고했다. 원서는 서론부터 결론까지 17장으로 나누어 서술되었지만, 이 책에서는 주제별로 묶어 6장으로 재구성해 청소년들이 더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유신(維新)’은 낡은 제도나 관습을 청산하고 항상 새롭게 바꾸어 나간다는 의미다. 한용운은 불과 서른두 살이던 1910년에 당시 불교의 타락상과 나태함을 하나하나 파헤쳐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한 <조선불교유신론>을 완성했다. 당시 불교계는 조선 시대부터 시작된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으로 쌓여 온 무기력과 무질서, 각종 인습과 폐단으로 얼룩져 있었다.

<조선불교유신론>은 정치·사회 모든 분야에 변화와 혁신이 활발한데 오직 조선 불교만이 미신, 기복, 은둔 등 인습에 젖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불교 교리와 철학에서 시작해 승가 교육과 수행, 참선, 불교의식 간소화, 의례나 포교 방식 혁신, 불교를 통괄하는 조직 기구 구성, 심지어 승려의 혼인 문제 등 일제 식민 치하 당시 불교계의 당면 문제에 대해 과감하고 파격적인 대안을 모색했다. 한용운은 불교를 동양과 서양의 주요 종교 철학 사상과 비교해 논했고, 불교가 깊은 산중이 아닌 대중 안에서 함께 호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불교유신론>에는 불교개혁 의지뿐 아니라 만해 한용운이 지닌 역사의식과 세계관, 시대상이 담겨 있다. 종교적인 열정을 바탕으로 불교 전반에 걸친 예리한 관찰과 비판, 시대에 뒤떨어진 우리 불교를 개혁할 새로운 방향과 대안을 제시해 우리 사상계에 큰 영향을 남긴 명저로 손꼽힌다. 오늘날 종교계와 사회상까지도 돌아보도록 이끄는 혜안과 과감한 대안을 통해, 진정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목차


‘청소년 철학창고’를 펴내며
들어가는 말

머리말

1장 서론

2장 불교의 근본과 혁신
1. 불교의 성질
2. 불교의 주의(主義)
3. 불교의 유신은 파괴가 먼저

3장 승가의 혁신
1. 승려 교육
2. 승려의 인권 회복과 생산
3. 승려의 결혼 문제
4. 승려의 단결 문제

4장 수행과 포교의 혁신
1. 참선
2. 염불당의 폐지
3. 포교

5장 사찰과 의례의 혁신
1. 사찰의 위치
2. 불교에서 숭배하는 조각과 그림
3. 불교 의례
4. 사찰 주지 선거법
5. 사찰의 관리

6장 결론

《조선불교유신론》, 불교 개혁의 상징이 되다
한용운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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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한용운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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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한응준과 온양 방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자(字)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 법명(法名)은 용운(龍雲), 법호(法號)는 만해이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는 한편 부친으로부터 때때로 의인들의 기개와 사상을 전해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홍주에서 전개되었던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면서 수도하다가 다른 세계에 대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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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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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고 지금은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교양서를 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고백록, 젊은 날의 방황과 아름다운 구원>, <육조단경, 사람의 본성이 곧 부처라는 새로운 선언>, <비단길에서 만난 세계사>(공저) 등이 있다.


최근작 : <육조단경>,<생명의 진화를 밝힌다 다윈의 종의 기원>,<내생의 해답되신 예수가 그리스도 2> … 총 1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 불교개혁과 새 시대를 향한 한용운의 열망과 사상이 담긴 명저 《조선불교유신론》

《조선불교유신론》은 구한말에서 식민지 시대 초기에 우리 불교가 처했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한국 불교가 나아가야 할 개혁 방향을 제시한 책이다. 그 핵심은 전통 불교의 미신적·기복적·은둔적 모습을 과감하게 탈피하고 불교 본래의 철학적·종교적·대중적 정신을 회복해 근대화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불교로 거듭나자는 것, 즉 유신(維新)을 하자는 것이었다.
1913년 출간된 《조선불교유신론》은 총 17장을 내용 구분 없이 쭉 나열하는 서술 방식이었다. 따라서 전체 개요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 청소년 철학창고 36번으로 출간된 이 책 《조선불교유신론, 민족 지성 한용운이 제시한 한국 불교의 길》에서는 유신의 내용을 주제별로 서론, 불교의 근본과 혁신, 승가의 혁신, 수행과 포교의 혁신, 사찰과 의례의 혁신, 결론 등 총 6장으로 재구성했다.
서론에서는 먼저 당시 모든 분야에서 근대화를 향한 변화와 유신의 기운이 차오르고 있는데 오직 조선 불교만이 ‘유신’을 외면하고 있다고 한탄한다. 그 책임을 종단이나 사찰보다는 ‘나’라는 개인에 있음을 강조하며 여러 승려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어서 한용운은 불교의 근본과 그 안에 담긴 사상을 들여다본다. 불교는 단순한 미신이나 철학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위대한 사상으로, 동서양과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이끌어 갈 철학이자 종교적인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평등주의와 구세주의가 불교의 근본 사상으로, 이는 서양에서 정치 민주화와 과학 발전을 이끈 자유주의 사상과도 통한다고 보았다. 시대에 뒤처진 구습이나 인습을 타파하려면 먼저 파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과감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또한, 당시 품위가 떨어지고 타락한 승려들의 자질을 개선하려면 근대적인 승려 교육이 절실하다고 한용운은 주장했다. 기초 학문인 보통학, 자연계와 인문계를 포괄한 사범학, 한문과 지식의 발전과 교류를 위한 유학 등이 그가 제시한 개선책이다. 또한 승려들이 신도의 보시에만 의존해 구차하게 지내지 말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사찰도 수익 사업을 통해 자활할 때 승려 인권이 회복된다고 보았다. 지금까지도 《조선불교유신론》에서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온 승려 혼인 주장도 이러한 맥락을 잇는다. 한용운은 승려 혼인이 불교 계율에서 금지한 사항이긴 하지만, 계율이란 득도를 위한 방편이기 때문에 시대와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승려가 독신 생활을 계속하면 사회 윤리에 해롭고, 인구가 줄어 국가적으로 손실이며, 포교에도 해롭고, 풍속에 해롭다는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승려 개인의 선택에 맡기자는 주장이다.
한용운은 제도 개선의 필요성 또한 놓치지 않는다. 승려들은 대부분 외딴 산사에서 고립되어 살기 때문에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이 되기 쉬우며, 따라서 승려들도 서로 단결되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조직과 체계를 갖춘 중앙 교단을 만들고 승려들 개인은 봉사 정신을 갖고 뭉쳐야만 한다. 따라서 주지가 개인 이익을 추구할 수 없도록 선거를 통해 선발하고 전체 사찰과 재산을 통괄하는 기구를 수립하자고 그는 역설했다. 시험을 통해 선발된 자들만 선방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며, 모든 불교 의식을 간소화하고 제사 등은 폐지하고 미신 요소가 많은 각종 탱화나 상들도 철거하자고 주장했다. 거짓된 염불과 유행처럼 번지던 염불당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당시 열성으로 포교하며 각종 사회사업으로 교세를 확대하던 서양 기독교의 포교 활동을 본받아, 조선 불교도 산사에서 나와 도심지에서 대중 포교를 하며 중생과 교류를 넓혀야 구세주의가 완수된다고 보았다.
《조선불교유신론》은 한용운이 일본의 조동종계 불교 대학에 잠시 유학했다가 돌아와 1909년에 집필을 시작했는데, 통쾌하고 속 시원한 개혁을 주장했기 때문에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그 주장의 비현실성 탓에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당시 불교의 타락상과 안일함을 낱낱이 파헤친 비판 정신이다. 또 승가 교육이나 수행, 의례나 포교 방식의 혁신 등 불교계 당면 문제에 대해 파격적이고 과감한 대안을 모색했다는 점도 주목할 지점이다.

█ 시인이자 승려, 독립운동가로 온 생애를 바쳐 시대를 이끌어 간 민족 지성 한용운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한 한용운은 서정 시인인 동시에 저항 시인, 민족 시인으로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은 문학이라는 범주로만 한정할 수 없는 폭넓은 삶을 산 인물이다. 시와 소설, 평론을 남긴 문인이기도 했지만 설악산, 금강산 등 고요한 산중에 은거하며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한 선불교의 승려였고, 3·1 운동에서는 불교계 대표로서 일제에 날카롭게 저항한 독립운동가였다. 시대를 이끈 이런 선각자다운 모습은 1932년 조선 불교의 대표 인물 선정에서 1위에 오를 만큼 당대에도 높이 인정되었다.
한용운은 1897년, 조선 초기 세도가 한명회의 후손인 양반 가문이었으나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났다. 한용운의 학력은 어릴 적 서당에서 배운 한학과 출가 뒤 설악산에서 배운 불교 경전 수업 그리고 일본 여행 도중 잠시 조동종 대학에서 공부한 경험이 전부였다. 하지만 독서의 폭이 넓었고 지적인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에 독학으로 유교나 불교 등 지식을 터득할 수 있었고, 뛰어난 선각자 스님들을 통해 중국이나 서구 근대사상도 접할 수 있었다.
한용운은 19세 즈음 처음으로 집을 떠나 1903년 25세 무렵 완전히 출가해, 설악산 백담사로 가 27세에 법명을 받았다. 폭넓은 독서를 통해 세계의 움직임을 간파한 그는 한반도를 넘어 시베리아 대륙 여행을 감행하기도 했고, 당대 유명한 학생이던 이학암 스님, 만화 스님 등 스승들을 통해 참선하며 불교 사상과 수행 체계를 정립해 학문의 깊이를 더했다. 근대 한국 불교의 선구자들이라고 할 박한영, 방한암, 송만공과 같은 수행자들과 두루 사귀면서 그의 불교 사상은 더욱 깊이 발전했고,《음빙실문집》, 《영환지략》 등 중국 개화 서적들을 통해 19세기 말 격동하는 세계의 움직임에 눈을 뜨고 서구 근대사상에 대한 학문 욕구 또한 싹트기 시작했다. 당시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에 앞서가던 일본으로 유학 갈 기회를 잡은 한용운은 선진 의식으로 가득 찬 유학생들을 통해 민족 독립의 열정을 키우고, 민족 사상이나 불교 사회주의 사상도 접했다. 이 만남들은 그를 조선 불교 개혁과 3·1 운동으로 이끈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에 뛰어든 한용운은 불교계를 대표해 3·1 운동에 앞장섰고 그 결과 1919년 3월 1일부터 1922년 3월까지 만 3년간 옥고를 치른다. 이후 주로 선학원에서 지내며 불교 대중화 사업에 몰두했고 조선 불교 청년회 총재에도 취임하지만, 일제의 압박이 심해져 활동이 여의치 않게 되자 만해는 다시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간다. 이때 그를 일약 유명 시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님의 침묵>을 완성했다. 그 뒤 신간회, 조선 불교 총동맹 등을 통해 독립운동과 불교 단체의 사회 운동을 활발히 했고 월간지 <불교>를 인수해 불교 대중화와 독립 사상 고취에 힘썼으나, 1930년대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공개적인 민족운동은 불가능해졌다. 불교계 청년 운동가들이 비밀결사 ‘만당’을 조직해 한용운을 총재로 추대했으나 불교계 내분 등으로 자진 해산하기에 이른다.
이후 한용운은 서울 성북동 산기슭에 작은 한옥 심우장을 지어 수행자로 정진하고 글을 쓰며 지냈다. 생활은 가난하고 고독했지만 지조를 지키며 정진한 한용운은 1944년 66세로 세상을 떠나는데,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며 불교계의 저명인사였던 인물로서는 지극히 초라한 장례식이었다고 한다.
해방 뒤에도 한용운은 식민지 치하 고난의 시대를 서릿발 같은 기상과 높은 절개로 살다 간 위대한 ‘민족 지성’으로서 자리매김 되었다. 한용운의 정신적인 고향이라 할 설악산 백담사 기슭에는 만해 마을이 조성되었고 해마다 만해 축전이 개최되고 있으며 민족 문학의 상징이라는 차원에서 만해문학상까지 제정되었다. 심지어 ‘만해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생길 정도로 한용운의 사상과 업적에 대한 학문적 고찰이 이루어졌고 그를 기리는 다양한 사업들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 《조선불교유신론》에 담긴 만해 한용운의 선구적인 사상과 실천 정신

이렇듯 만해는 평생 식민지 조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실천적인 삶을 살다 갔다. 《조선불교유신론》 또한 불교 혁신을 통해 조국 근대화와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다짐이자 모두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결과물이었다. 그 핵심은 전통 불교의 미신·기복·은둔적인 성격을 탈피해 불교 본래의 정신, 즉 중생 구제와 자유평등 실현을 회복하는 것, 시대에 맞고 나아가 시대를 선도해 가는 근대 불교로 새롭게 태어나자는 주장이었다. 오늘날 《조선불교유신론》이 근대 한국 불교의 개혁 정신을 밝힌 탁월한 저술로 평가받는 이유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조선 불교를 총체적·다각적으로 진단하고 비판을 가했다는 점, 근대사상과 불교 사상을 토대로 논리적이고 혁신적인 대안을 내놓았다는 점, 현재는 물론 미래에까지도 한국 불교가 해야 할 종교·사회적 역할을 올바르게 분석하고 예견한 점 등에 있다.
물론 《조선불교유신론》에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당시 교단의 현실 고충을 깊이 파악하지 못한 채 혁신에만 조급했다는 점, 승가의 계율 문제를 중추원, 통감부 같은 식민지 권력에 의지해 해결하려 한 점, 대안으로 제시한 방안들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조선불교유신론》은 한국 근현대 불교가 나아갈 방향과 대안을 제시한 보기 드문 걸작이며, 한용운이라는 인물 자체가 근대 불교 개혁에 앞장서고 그 실천을 위해 평생을 바친 열렬한 지도자요 뛰어난 선각자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용운은 중생과 더불어 깨달음을 강조하는 불교에 대해 철학적 종교이며 미래에 도덕과 문명의 원천이 될 위대한 종교라고 보았다. 그러나 당시 미신적이며 왜곡된 불교를 혁신하고 본래 불교 정신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불교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교의 본래 정신을 회복하자는 차원에서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한 것이다. 《조선불교유신론》의 사상적 기초는 참다운 믿음의 대상은 밖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다는 깨달음을 향한 선종 본래 정신을 회복하자는 데 있다. 당시 불교는 너무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한용운은 부단한 개혁을 촉구했지만, 결국은 중생과 더불어 해탈에 이른다는 선(禪) 불교의 정신을 회복하자는 것이야말로 유신의 근본 해법임을 잊지 않았다.
만해는 일본에 잠시 유학하면서 메이지유신을 통해 봉건 사회에서 근대사회로 급격히 탈바꿈한 일본의 발전상을 목격했고, 일본 불교의 근대적 발전을 관찰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온 뒤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했다. 1909년에 집필을 끝냈지만 그 파격적인 주장이 몰고 올 충격과 파장을 의식했던지 출간을 늦추어 1913년 간행한다. 예상대로 승려 결혼이나 의례의 간소화 등 급진적인 주장 때문에 불교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만해가 주장하는 불교 혁신은 상당 부분 올바른 방향이었다. 그러나 식민지 치하의 불리한 정세, 불교계의 보수적이고 안일한 자세로 인해 《조선불교유신론》의 개혁안은 현실적인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만해의 정신은 과거나 현재나 여전히 우리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핵심은 부처의 중생 구제 정신 실현, 민족의 자주독립과 발전, 불교와 사회의 근대화와 개혁이다. 이러한 면에서 《조선불교유신론》은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불교의 참다운 정신과 중요성과 현대성, 또 우리 근대 역사가 당면했던 개혁과 발전의 과제가 무엇인지 알려 준다. 《조선불교유신론》은 여전히 개혁과 발전이 절실히 필요한 오늘날 불교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서, 과거를 통해 시대를 조명하는 거울과 같은 책이다.
미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핀스키는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동양에, 이렇게 심오한 사상을 지닌 시인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게다가 식민지였던 조선에 그런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만해 한용운의 사상과 문학의 깊이에 찬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 만해 한용운의 선구적인 사상을 응축한 결과물인 《조선불교유신론》은, 오늘날 우리 종교와 사회에서도 ‘유신’해야 할 과제들을 끊임없이 되찾고 개혁의 길을 모색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접기

The Origins of Non-violence Tolstoy and Gandhi in Their Historical Settings Martin Green

The Origins of Non-violence



The Origins of Non-violence
Tolstoy and Gandhi in Their Historical Settings
Martin Green

Leo Tolstoy and the Origins of Spiritual Memoir - Los Angeles Review of Books

Leo Tolstoy and the Origins of Spiritual Memoir - Los Angeles Review of Books



Leo Tolstoy and the Origins of Spiritual Memoir

By Thomas Larson







     



JANUARY 13, 2017





I.



TWO THINGS ARE TRUE about Leo Tolstoy in 1879. First, he had mostly given up on fiction, having published his two titanic novels, War and Peace and Anna Karenina. The latter book exhausted him physically and morally: not long after its appearance, he termed his saga of adultery “an abomination.” He found novel writing to be a poor substitute for confronting religious issues and his existential lot. Second, because of his early literary acclaim and the immoral lifestyle it had spawned and enabled, he was miserable. He was so ashamed of himself that post-Karenina his ambivalent atheism collapsed and he sought a new relationship to the “truth.” He abdicated the throne of novelist and took up the mantle of religious critic — on the side of Christianity and against it.



Raised in the Russian Orthodox Church, Tolstoy lost his religion at 18. After a life of debauchery, in his early 50s, he wanted religion — or some source of intellectual security — back. In 1882, he published his Confession, a retrospective analysis of the previous five years in which his midlife crisis of faith unbalanced his literary and philosophical bearing. It is among the oddest of Christian tell-alls, a treatise searching for its own focal truth. Throughout, he hungers for spiritual fortitude: “Is there any meaning in my life that wouldn’t be destroyed by the death that inevitably awaits me?” Readers note that the title has no “a” or “the” attached. (There are no articles in Russian, but this particular absence in English is meaningful.) The singular noun by itself emphasizes its currency.



Early on in the book, he asserts, in defiance, that “Christian teaching plays no part in life; one never comes across it in one’s relations with others and one never has to deal with it in one’s own life.” He pegs believers as “stupid, cruel, and immoral people who think themselves very important.” He tags unbelievers as the finest people he knows: they have “[i]ntelligence, honesty, uprightness, goodness of heart, and morality.” He renounces religion in favor of “reading and thinking” — in essence, reason — and recalls that five years prior “my only real faith […] was a faith in self-perfection.”



Of course, reason means progress, and progress, for an egoist like Tolstoy, entails an unchecked liberality in one’s behaviors. At this, the young Tolstoy, an aristocrat and braggart, more than excelled. Here’s part of his resume:



I killed people in war, I challenged people to duels in order to kill them, I lost at cards, I consumed the labor of peasants, I punished them, I fornicated, I deceived. Lies, theft, adultery of every kind, drunkenness, violence, murder. … There was no crime I did not commit, and for all this my contemporaries praised me and thought me a relatively moral man, as they still do.



But the hyper-observant and self-obsessed Tolstoy suffers, despite his ego, a debilitating paranoia. He believes that people ridicule him because of his alcoholic, adulterous, and arrogant excesses. He has often imagined he’s dying: the darkness is drawing close, and he must find a purpose, because soon, for him, “nothing will remain but stink and worms.” (The death-obsessed Russian lived another 30 years after Confession.) At times, despair clings to his words like a rose vine: “You can only live as long as you’re drunk with life; but when you sober up, you can’t help but see that all this is just a fraud, and a stupid fraud. Precisely that: there’s nothing even amusing or witty about it; it’s simply cruel and stupid.” He says he doesn’t know why the universe exists. He is tortured by the question. He wants it answered; he can’t bear living in an untended and unintended cosmos.



By mid-book, Tolstoy’s searching starts to change — not just his focus but his sensibility. To unburden his longing, he quotes Bible passages, an Indian sage, and nuggets from the saints and the martyrs, honoring what he said earlier were useless “teachings of faith.” He wonders if to feel secure all we need is the wisdom of the ancients. These teachings have, he argues, lasted this long. His disclosures work him into a lather, and he declares that a pure belief in reason, without room for God as ultimate mystery, leads to insanity and suicide. A worrywart, Tolstoy plunges on with the tone of a querulous depressive. Moreover, he shifts, as it suits his gain, the blame for who should tow his anguish: from pagan nihilists to scientific rationalists to Orthodox dogmatists to jurisprudent bureaucrats — these last, the Ivan Ilyiches of the world. The only blameless one, he decides, is he who lives as Jesus lived. And yet, he counters, who can? It’s impossible.



Tolstoy decides that no faith is truer than the Christian peasant’s, whose “irrational knowledge” paves the road to happiness. Irrational knowledge is faith, he posits. Peasants should know. They are (though he aspires to join up, Tolstoy is definitely not one of them) the “great mass of people, the whole of mankind” — the nonindividuated mass, whom he lauds but who also rise, in his characterization, no higher than type. Uniformly, he writes in Chapter VIII, they believe God is “one and three,” father, son, spirit, “creation in six days, devils and angels and everything I couldn’t accept as long as I didn’t go mad.” That odd admission, with its tortuous grammar and emphatic final clause — as long as I didn’t go mad — is a performative leap away from his natural inclinations. He needs to believe something that transcends his inherent, incessant self-questioning, and he decides to do so. For him, peasant certainty is true because he, the great literary arbiter of truth, has arrived at it, not because Christianity has told him to accept it.



II.



Thus, with a thunderclap, Tolstoy’s short and intensely self-defensive polemic turns into a classic Christian conversion story, worthy of Augustine’s tale of tribulation. After weighing all the possibilities, mad or not, Tolstoy drapes the crucifix around his neck. As one of his best biographers, Martine de Courcel, writes, he has, rather Christianly, “admitted his sins and proclaimed his faith.” Saved, he declares that his actions from now on will embody his intentions — he will attend church, participate in sacraments, live frugally, leave his bourgeois habits, love God and peasant equally.



But wait. Opening faith’s creaking door hardly calms his restlessness. Though Tolstoy says he erred “not so much because I thought wrongly as because I lived badly,” the insight is not enough. He cannot settle his thoughts. Try as he might, Tolstoy, a self-cleansing fanatic, cannot rid himself of his deviant past or his disputatious nature. He can neither forgive himself nor stop analyzing the demands of Christian belief. As long as he keeps writing pages, he’s not sure about Christ as savior or about divine intervention. His belief demands more and more tuning.



The faith wedge splits him in two, before and after this, his so-called religious rebirth. Without God, Tolstoy has lived a life of pain and deceit. He declares he is now, with God, living a life free from such pain. But that’s too easy. Resolving each query brings another, and each time he squirms. De Courcel faults him. She writes that in “abandoning the dogmas of the Church, he thought he was freeing himself; in fact, he was about to become captive to the dogmas of his own making.” This is Tolstoy, the self-disappointment artist, his pattern, his personality. He confesses and converts — that is, he purifies religion down to what he finds valuable and cries, “Eureka!” But then he admits, often right away, that the conversion’s center cannot hold. Statement and counterstatement cancel each other out.



I think the critical point here is that “the dogmas of [our] own making” come to writers because personal writing is testimony — what I affirm or doubt can become as scriptural as a so-called sacred text. The problem with religious autobiography before Tolstoy is that it had to be based on Biblical reasoning (alas, not a clear field of study) and, apparently, required the author’s God-directed epiphany mid-confession. And yet almost all autobiographers of faith after Count Leo realize they are primarily writers of personal, not religious, revelation.



The final five chapters of Confession embroil us in his hemming-and-hawing conversion and deconversion. Tolstoy sides with Christianity only to oppose it, again and again, the combat all his, faith dispersing like a noble gas — free, loose, unbonded. What’s remarkable in Tolstoy is not his conversion but the way he evaluates his confession while he’s confessing.



Tolstoy’s energy comes from his questions, which often crowd out or undermine his answers. His telling has power, though it’s not the power we get from the dramatic narrative of a novel or a contemporary memoir. It’s something else. There’s little attempt in Confession to show action or deed, no scenes, no reportage, no exchanges with others, and few stories. Analysis trumps narrative. And yet it’s not all rhetoric. There is a dialectic — a reasoned discussion in which Tolstoy debates himself. What’s going on is a mélange of preaching virtues to the reader and arguing vices with himself, the self who can’t figure out what he should believe.



III.



To illustrate his mastery of fictional drama, consider Tolstoy’s novella, The Death of Ivan Ilyich, written just after Confession. The character of Ilyich comes vividly to life via thought and action: we hear about the offstage pettiness of his family and the bureaucratic sycophants who eagerly await his death and we participate in moments of tenderness between him and a loyal, pure-hearted peasant during Ilyich’s final months. For the most intense scenes, we’re inside Ilyich’s head as he seethes and self-deludes, undone by his illness and repulsed by his approaching death. Nothing tempers his fervid anxiety:



He wept for his helplessness, for his horrible loneliness, for people’s cruelty, for God’s cruelty, for God’s absence.



“Why have you done all this? Why have you brought me here? Why, why do you torment me so horribly?”



He didn’t expect an answer, but he also wept because there wasn’t and couldn’t be an answer. The pain increased again but he didn’t move or call anyone. He said to himself, “More, go on, beat me! But why? What have I done to you, why?”



The message is that fiction like Ivan Ilyich possesses a verisimilitude to life we recognize and an actual character who breaks down and dies, slowly, through story-time, while the nonfiction Confession shapes the verisimilitude of thought, the analytical riding on didactic summary and blatant assertion. Both types of writing (they can be equally emotional and purgative) feel necessary from Tolstoy — while exhausting one form, he seems to invite the other.



Narrative is what I find missing in Confession, scenes and torments from Tolstoy’s life, which, of course, got into his fiction and which, for better or worse, I’ve grown accustomed to reading in the contemporary memoir. If only he had shown us the depth of his suicidal despair, the effect on himself and others when he cheated them in gambling, when he felt hollowed out by his adultery (“of every kind”), when he killed a man in a duel — in short, narrative drama might have been more persuasive than exposition. As a result, we might have sympathized with the moral disease he suffers in Confession — as we do with Ivan Ilyich. (And as we do with Ivan in The Brothers Karamazov.) I sympathize not with the meaning of Ilyich’s struggle; I sympathize with the felt struggle itself. For example, in a moment of physical pain (he doesn’t know he has cancer), he says:



It’s not a case of the appendix or of the kidney, but of life … and death. Yes, I had life and now it’s passing, passing, and I can’t hold it back. That’s it. Why deceive oneself. Isn’t it obvious to everyone but myself that I am dying, and it’s only a question of the number of weeks, days — maybe now.



I feel the fact of Ilyich’s dying terrorize him. And that terror expresses itself, in Tolstoy’s handling, as a contentious belief Ilyich cannot shake. As long as we are alive, death cannot transform us. There is no death, an idea Tolstoy or any of us want to believe. It doesn’t matter that we are deceiving ourselves; we need to avoid death’s psychic pain. But Ilyich is bursting with psychic pain. So, too, we feel, is Tolstoy himself. Religions say there’s no end, but we know there is. Despite our belief in a resurrected Christ and the immortality we are promised, the sight of death insists that death is final. Tolstoy refused to mute the existential turmoil of his literary character. And if Ilyich couldn’t settle that turmoil, neither could Tolstoy. His way forward was to shift forms and go deeper in his next venture, a play, The Power of Darkness.



IV.



The more I study Confession, the more apparent Tolstoy’s conflicts become. (He becomes less a religious author than a spiritual one — less dogmatic and more interesting to read as he interrogates his leaky faith.) On one hand, I could fault Tolstoy, in this book, for abandoning the drama of narrative propulsion. On the other hand, I recognize the book he has written represented a major risk: to argue for uncertainty and identify faith-based deception in oneself and in the state was apostasy.



Several examples nail this yes/but rhetoric of Tolstoy’s bristling hostility: “To comprehend the truth one must not stand apart, and in order not to stand apart one must love and accept what one may not agree with”; “In the Mass the most important words for me were: ‘Let us love one another of one mind …’ The following words, ‘We believe in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I omitted because I could not understand them”; “How often I envied the peasants for their illiteracy and lack of education. The statements of faith, which for me produced nonsense, for them produced nothing false.” And,



[T]he more I began to be imbued with these truths [Christian dogma] I was studying and the more they became the foundation of my life, the more burdensome and painful these conflicts became and the sharper became the dividing line between what I didn’t understand and what couldn’t be understood except by lying to myself.



We hear an almost effortless aversion to faith in these quotations (truths are “conflicts”). We also hear (“except by lying to myself”) how much the Orthodox Church, whose religious audacities are “interwoven by the thinnest of threads with lies,” repulses him.



Indeed, in the final pages of Confession, Tolstoy states that those “teachings of faith,” which have enraged him and to which he has submitted, cannot be true. “But where did the falsehood come from,” he writes, “and where did the truth come from? Both falsehood and truth had been handed down by what is called the church. Both falsehood and truth are contained in tradition, in the so-called sacred tradition and holy writ.” The only alternative is to drop out of organized religion, which Tolstoy will do, while his anti-Orthodox screeds will mount up — another way was via the privately circulating book A Criticism of Dogmatic Theology — before the church excommunicates him in 1901.



In 2013, Peter Carson’s translations of Confession and The Death of Ivan Ilyich were published in one volume, from which I’ve been quoting. In her introduction, Mary Beard raises the problem any life-writer faces when her subject is turning personal faith into textual description. “[A]utobiography is never quite transparent,” Beard writes, “and […] first-person spiritual memoirs are always partly constructions — retrospective and simplifying fictions imposed on the confusing stream of memories and on intellectual doubts and dilemmas.” That’s true of any memoir: the writing subdues and revamps the rawness of life. Beard’s view, however, doesn’t capture the unique quality of Tolstoy’s work. With Tolstoy, the core story is his confusion, his grappling with what’s unresolved, his placing “doubts and dilemmas” at the center of his soul’s inquiry. He’s trying not to simplify or fictionalize his faith-crumbling point of view: he is confessing the trauma of his spiritual crisis. That’s why he’s writing. This is nothing like Augustine’s hang-ups with sin, which in the Confessions lead him shamefully and self-loathingly to accede to God’s plan. If anything, Tolstoy is contending with his own unexamined life in Christianity, and it’s that which is making him so ornery or, if you like, a nonfictional Tolstoyan character.



The real issue, I think, is rhetorical: how does one persuade others of what one believes without listing unevidenced expository statements, whether agnostic or affirmed, which end up sounding simplistic, though they may not be simplistic at all? I like Robert Jensen’s tack in Arguing for Our Lives: “[W]hile faith experiences can be described to others, and patterns in faith experiences can be evaluated, a faith experience is not evidence in the sense we use that term in intellectual life — it can’t be replicated or presented to others to examine.” Faith is opinion, not fact. It is wished for, not verified. Christ was born of a virgin, did not die, and was resurrected? Just believe it. Once you do, these feel like facts, making emotional sense. Imagine there’s a videotape of the resurrection, for instance. We see the body, soul on board, leave the tomb together; the soul’s separation comes in a later “Caught on Camera” moment. But there isn’t any videotape — which is the point. There is only the scriptural claim. It’s why there’s only a scriptural claim. If you accept it, you accept two things: one, that the Immaculate Conception “can’t be replicated or presented to others to examine,” and two, such a truth is wholly a province of text.



Which, again, is not fact. But a reader and writer like Tolstoy or like us is highly susceptible to believing it, because it is written down — and to disbelieving it or, at least, questioning it, by way of the very writing with which we interrogate the validity of beliefs in the first place.



Testaments of common faith, ritualized in human ceremony and endowed in textual statements, take on the strange actuality of a religious experience. Thus, one’s doctrine can be one’s experience. Muslims need only say, “There is only one God and Allah is his name,” and you’re in. Christians need to say, “I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my personal savior,” and you’re in. What are you “in”? You are in the secure club of the people who have asserted the creed. In fact, the most secure bond of the tribe is its reliance on religious language. In Confession, Tolstoy’s great insight is that when he himself had to assert Orthodox creeds, he couldn’t turn such statements into religious experience. He couldn’t suspend his disbelief. He had to speak out and write against any dogma he couldn’t practice. Exploring the enigma of religious language — that what you say is true because you assert it and you believe it — led Tolstoy to, in a sense, give up on literature, though not entirely. Fiction couldn’t assuage his spiritual dryness. But anti-religious and pro-spiritual polemics, his forte as a writer for the rest of his life, offered a tonic to the most vexatious questions about how to live.



V.



Here’s the writerly difference between Augustine and Tolstoy, separated by more than 14 centuries: Augustine exsanguinates his body of sin until he aligns with Christian teaching, over-loathing himself to be overcompensated by God’s love. Tolstoy wrestles with Christian discourse and rejects much of it in favor of his own salvational plan. He will be a better man when he serves the poor, abnegates attachment, and adopts peasant deprivations, many abject, some unattainable — but so be it. These values culminate in one that he himself creates: spiritual self-reliance. Though he’s salvaged Christ’s call to social justice, Tolstoy is convinced that he is the originator of his post-Christian beliefs. If others follow suit, they often do so because of the writer’s textual prowess. It is an odd by-product of any religious confession — the idea that autobiographers are promulgating a reformed path for likeminded readers or adepts (think Gandhi or Deepak Chopra) because they themselves have refined the faith, made it more workable in the contemporary world.



For life-writers, Tolstoy offers existential scrutiny of religion; like Kierkegaard, he is a pioneer in this “field.” He rejects the package: a church, a religion, and the political system that underpins it. His is a writerly means to spiritual understanding: the author, ever-free, ever-seeking, ever-burdening himself, denies that any other source can change him. In effect, he spiritualizes himself. As such, Tolstoy births a primitive or nascent or proto-subgenre of the memoir, life-writing whose purpose is to lead the self away from its own and the world’s deceptions. The self on the page knows. Sometimes that self knows best. Not God. Not Jesus. Not the Bible. Not the clergy. The “I” I create via the writing.



Perhaps, you say, this skirts history and community and tradition, and thus is deeply flawed. But the authority of religious autobiography would need no Tolstoyan reformation had the form ensouled the values of the writer’s inner authority. Today, with the memoir explosion and its focus on narrative self-disclosure (mixing strategies of scenic fiction with those of nonfiction discourse), we have new ways for autobiographers to enact their religious and spiritual quandaries. There are more than just formal reasons for this change.



In one sense, Tolstoy’s imperative-driven form — listen to me confess — has had scant legacy, if any at all, in European and American literature. For the most part, literary writers have found religious confession irrelevant — because most writers and artists of the past century and a half have viewed Christian life, belief, and tradition as unrewarding, to say the least. Excepting the (very) Catholic Thomas Merton and the pan-religionist Alan Watts, in the United States we’ve had few writerly souls bent by the ferocity of a Leo Tolstoy. Indeed, some of the best writing on religion and spirituality has been unrelentingly critical or disestablishing of traditional faith. While beloved, C. S. Lewis’s many books on Christianity, including his religious autobiography Surprised by Joy (1955), are works of pious Christianity, which is, in many ways, a ship that has sailed into the sunset. Much to Lewis’s consternation, the foundational writers of the last two centuries — Paine, Whitman, Freud, Darwin, Nietzsche, Marx, Twain, Russell, Camus — have been anti-religious or nonreligious in the extreme. Despite Flannery O’Connor, Walker Percy, Marilynne Robinson, and Anne Lamott in the United States and Roger Scruton and Don Cupitt in England, Christian themes are moribund, like coal deposits in Wyoming. There but unexcavated.



In our time, spiritual and nonreligious memoirists embrace doubt and disbelief. For them, remaining in doubt is not a hostile act, but a way to unlock the numinous, parlay the transcendent, in the writing life of the author. This would not be incongruent to Tolstoy, who, for the most part, killed off the religious autobiography. For contemporary writers, the spiritual is that which wrestles itself free from religion to become an act of self-reclamation, and perhaps of cultural reclamation as well. Each body that comes into the world comes in with a soul, intact. An Edenic unity. Under no prior system. Despite the parents’ wishes or those of the state. What is the moral geography of this individual’s inner life? That’s the door in each of us Tolstoy pushed 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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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 memoirist, and essayist, Thomas Larson is the author of three books: The Sanctuary of Illness: A Memoir of Heart Disease, The Saddest Music Ever Written: The Story of Samuel Barber’s “Adagio for Strings,” and The Memoir and the Memoirist: Reading and Writing Personal Narrative. Larson teaches in the MFA Program at Ashland University, Ashland, Ohio. His website is www.thomaslars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