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6

류시화 Shiva Ryu · <영혼의 자서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내 인생책 중 한 권인 그리스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아테네에서 대학을 마친 카잔차키스는 친구와 함께 몇 달 동안 그리스의 수도원들을 순례한다. 독신 서약을 한 수도사들이 파란 바다까지 뻗어 나간 높은 산의 수도원과 동굴 속에서 일생 동안 수도 생활을 하고 있다. 행복한 수도사도 있고 아직 확신을 갖지 못한 수도사도 있다.
순례의 마지막에 두 사람은 아토스산으로 발길을 향한다. 에게해에 면한 아토스산은 10세기 경부터 시작된 동방정교 수도원들이 흩어져 있는 곳으로, 현재도 수천 명의 수도사들이 철저한 금욕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물질적인 세계에 대한 애착과 영혼이 기억하는 더 근원적인 세계에 대한 갈구 사이에서 갈등을 겪던 두 청년은 수도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해답을 찾고 싶었다. 잎사귀 넓은 월계수 숲을 올라 오래된 수도원에 도착한 카잔차키스와 친구는 수도사들이 잠든 뒤에도 손님방에서 매일 밤늦게까지 얘기를 나눴다. 대화의 주제는 인간이 겪는 괴로움과 신에 도달하는 여러 길들, 그리고 구원이란 정말로 존재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나아가 두 사람은 종교를 거치면서 추상적이고 상투적인 존재가 된 신이라는 이름에 좀 더 신선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밤, 자정 넘도록 두 사람이 논쟁에 가까운 토론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어두운 구석에서 감정이 격해져 숨차 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여기 앉아서 그대들이 하는 얘기를 영원히 들었으면 좋겠소. 난 다른 천국은 원하지 않소."
그 수도사는 어두컴컴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두 사람의 얘기를 며칠 밤 내내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들의 대화를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얘기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신'과 '사랑'이라는 말에, 그리고 두 사람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진지한 어조에 감동했다. 수도사 자신도 젊은 시절에는 신과 진리에 대한 추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열정이 식고 일상적인 수도 생활에 젖어 살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가슴 저린 통증을 느꼈던 것이다.
그 수도사는 두 젊은이와 친구가 되었다. 그날 밤 이후로 그는 항상 자리를 같이 하면서, 말은 하지 않고 두 사람의 대화를 열심히 귀 기울여 듣기만 했다. 수도사들끼리 나누는 판에 박힌 얘기가 아닌, 신과 진리에 정면으로 맞서는 격정적인 대화에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거대한 바다로 흘러가던, 지금은 말라 버린 강을 되살리고자 했다. 아니면 힘찬 날개로 자신을 다시 들어올려 아토스산 정상으로 향하고 싶었다.
하필이면 대학 졸업식 전날 『영혼의 자서전』을 읽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은 것이 실수였다. 밤을 꼬박 새워 읽고 아침에 깜박 잠들었다가 일어나 세수도 못 한 채 학교로 올라가니 졸업식은 이미 막을 내린 후였다. 부러진 꽃다발들과 신문지 조각들만 어질러져 있었다. 그나마 학과 사무실로 가니 졸업생들이 입었다가 벗어 놓고 간 졸업 가운과 사각모자들이 쌓여 있어서 그중 하나를 걸치고(모자가 작아서 머리에 맞지 않았다) 문리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는데 찍어 준 사람과 사진의 행방은 지금 알 길이 없다.
하루라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졸업 가운을 벗음과 동시에 학생의 굴레에서 탈피했고, 어느새 내 영혼의 스승으로 자리 잡은 카잔차키스를 본받아 생각이 같은 친구와 함께 전국 사찰 순례 여행을 떠났다. 아직 겨울이라서 강원도는 발목까지 눈 속에 푹푹 빠졌다. 눈밭에 어지러이 찍힌 새 발자국과 노루 발자국들 때문에도 우리가 걷는 방향이 맞는지 분간이 안 갔다. 카잔차키스는 '스스로 야수인 줄 모르는 야수, 그것이 젊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도중에 들른 절들에서 세 번이나 문전박대를 당하고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고 오히려 절 입구에서 신나게 욕을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의 번뇌가 사라졌다). 당시 우리의 모습은 추위로 얼굴이 빨갛고 긴 머리카락에 고드름이 언 야수의 행색 그대로였으니 수상쩍게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충청도의 큰 절에서는 출가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승려가 자신의 방에 우리를 재워 주었다. 오랜만에 밥다운 밥을 눈치껏 퍼먹고, 우리는 기분이 좋아져서 세 사람의 무릎이 맞닿을 정도의 손바닥만 한 방에 마주앉아 차를 마시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깨달음이 무엇이며, 그것에 이르는 길에 대해, 그리고 그 무렵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한 인도의 영적 스승들에 관한 얘기가 한창 고조될 무렵, 얇게 칸막이한 벽을 타고 옆방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우리의 떠드는 소리에 잠을 방해받아 몹시 화가 난 노승이 선문답인지 욕설인지 모를 일갈로 우리의 대화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젊은 수좌나 우리는 그 험악한 목소리에 대항할 아무 힘이 없어 차갑게 식은 방바닥에 몸을 눕힐 수밖에 없었다.
전라도의 고찰에서는 무조건 출가하라고 우리를 종용했다. 사실 절들마다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얼굴이 여지없는 승려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차피 승려가 될 운명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절에 들어오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내가 운명을 어찌 알았겠는가? 어느 쪽이 옳은 길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위투성이 길을 오르느라 발목을 삐끗해 바로 앞의 길조차 절뚝거리며 걷는데.
나에게 선동되어 충동적으로 따라나선 친구는 차츰 우리가 하고 있는 여행의 과정과 의미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그럴 때마다 친구보다 몇 걸음 앞장서서 걷던 나는 저 눈부시게 파란 소나무를 보라는 둥, 떡갈나무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직박구리새도 전생에 수도승이었다는 둥 계속 세뇌를 시켰지만 나의 상상력은 아직 한 인간을 완전히 설득시키기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우리는 뒤엉킨 실타래를 풀려다가 그것이 토막 난 실들의 뭉치임을 안 사람처럼 허탈하게 순례를 마감했다. 그로부터 불과 2년 후 그 친구는 정말로 출가를 해서 내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인도로 향했다. 손이 닿지 않는 것을 잡으라고 한 카잔차키스의 말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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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났는가? 나는 그때의 열정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가? 해답을 얻었다고 자만하지 않고, 가슴은 의문으로 넘치며, 손이 닿지 않는 것을 잡으려고 여전히 까치발을 하는가? 미남이고 순진하기만 했던 그 친구는 삭발한 머리로 어느 산모퉁이를 돌고 있는가? 실패한 곳으로 돌아가고 성공한 곳은 떠나라는 카잔차키스의 말을 새기며. 가장 많은 바다와 가장 많은 대륙을 본 사람은 행복하므로.
거룩한 산을 40일 동안 여행한 카잔차키스와 친구는 순례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기적이 그들을 맞이한다. 한겨울이었는데도 어느 작은 과수원에서 아몬드나무가 꽃을 피운 것이다!
친구의 팔을 잡고 카잔차키스는 말한다.
"앙겔로스, 순례를 하는 동안 우리 마음은 줄곧 수많은 의문으로 괴로웠어. 그런데 이제 답을 얻었어."

art credit_Bev Doolittle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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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수영 저기 가면 진리가, 깨달음이 있어 찾아 나서는 자여!
    나는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용기도 없어비록 떠난 적 없으나, See more
  • 이영선 세속에서 세속이 아닌 삶을 추구하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고 진정 신을 닮아가는 모습이 아닐까요. 나의 사소한 행위가 주위에 선한 영향력이 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때까지...
  • Mansik Ju Ruy 선생님, 오늘은 정말 재미있는 말씀이시네요. 다른 어떤 서양이야기도 기억납니다.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서 온갖 고초를 다겪으면서 세상의 여러 곳을 찾아다녔지만 실패하고 말았지요. 지치고 낙담해서 집으로 돌아왔지요. 그런데 자기집 뜰앞 나무가지에 행복의 파랑새가 있는것을 발견하게 되지요. 카잔차키스와 이 분의 깨달음이 비슷하겠지요. 행복은 진리는 우리마음속에 있어 등등... 옛날에 보았던 근대 인도의 성자라고 하던 나무르티라던가 하는 분이 있See more
  • 민수산나 우리 부부도 정하지 않고 여행길에 꼭 빼놓지 않는것 성지와절을 방문합니다 그중에 보리암이 생각 나는군요 .닐다이아몬드에 ㅡ비도 듣고 싶어요 그림을 보면서요 추억은 영혼에 밥입니다.반찬은 지금이겟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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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귀향 갑자기 머리 속이 하얗게 되어집니다~~
    오늘 내 생일날!
    이래 저래 복잡다단한 내 머리 속이~~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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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eonglyeul Jang "실패한 곳으로 돌아가고 성공한 곳은 떠나라는 카잔차키스의 말을 새기며. 가장 많은 바다와 가장 많은 대륙을 본 사람은 행복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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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윤전 전국 사찰 순례 여행
    저도 가보고 싶네요
    진리란 밖에서가 아니고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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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K Yun 저에 인생의 책중 하나는 ''오쇼라즈니쉬의 달마'' -정신세계사 출판 류시화옮김- 이렇게 작가님을 따라 나서게 됐습니다.
    나서기만 했지 따라가지는 못하고 변방에서 삶의 울따리에 갇혀 지내고 있지요
    진리에 배고파서 편식한적도 있었고 지금은 다행히 혼자 남겨질때면 먹어도 배고프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그것을 명상합니다.See more
    Image may contain: mountain, outdoor and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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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미 마음이 헝클어진 실타래가 된듯
    복잡하고 춥습니다.
    도대체 진정한 진리와 해답은 존재 하는건지요?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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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inny Yoojin Kwon "40년 동안이나 해메어도 신을 찾지 못했던 고행자가 있었죠. 어떤 시커먼 물체가 가운데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어요.
    하지만 어느 날 아침에 알고 보니 그것은 그가 너무나 좋아해서 선뜻 버릴 마음이 없었던 낡은 털옷이었지요. 그것을 버리자 그는 당장 앞에 나타난 신을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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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진 오늘도 마음을 흔들어 놓네요.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일뻔 했었고 택시기사에게 화를 내보았지만 용서를 구하는 기사 아저씨한테 지금은 미안한 감정을 만들게 하는 당신은 정말로 연약하게하고 자유를 선사해주십니다. 시인님의 책들을 읽을때보다 이런 아침에 주시는 희망의 메세지가 더욱더 와닿는 이유가 뭘까요?

    주) free 는 fri(인도어로 사랑)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자유로운 삶을 사시는 시인님이 오늘도 사랑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 조용히 묻고자 합니다.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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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ang EunJune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생기는 의심, 종종 나를 시험에 빠트리는 외부환경.

    이런것들이 실로 값진것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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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ona Kim 카잔차키스가 제게도 최고작가여서 고려원의 전집을 아직도 다 갖고있어요. 그중 최고감동은 깨알같은 글씨의 두꺼운 영혼의 자서전이었습니다. 보라빛으로 물드는 시나이사막은 언젠가 꼭 가보려구요. 카잔차키스 얘길 다시 보게되어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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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gok Lee 시인님의 ‘인생책 중 하나’라니!!!
    저도 사서 읽을래요!!
    제 인생책은 아시겠지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입니다!💕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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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vid Lee 독수리 날개치는듯.
    쏜살같은 세월이 깨달음과 후회로 ..
    마감되지 않으려면 속히 돌아가야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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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민 떠나고 싶은 마음과 머물고 싶은 마음이 교차할 때, 두 마음이 서로 부딪힐 때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납니다.
    ' 또 시작일세~' 하며, 회피하고 싶지요. 이런 나를 세워놓고 말합니다. ' 불편한 마음 피하고자 떠난다해도 그 자리 낮익으면 다시 그 마음 돌아오더라. 이럴 때 거울앞에 서서 '내가 그렇구나~~' 하면서 시원~하게 큰! 숨 한번 내쉬고 씨익 웃어 보았지요.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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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지안 "성공한곳을떠나
    실패한곳으로 돌아가라"......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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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yunsook Cho 제게도 구도자의 길을 가려는 친구가 라나 있는데.. 멀리서 볼 땐 멋져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좀 답답해 보이긴 합니다. ^^ 여튼 세속에 살지만 속되게 살지는 않으려 하니 그 점에서 대단한 사람 같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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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미 감동해 전국사찰을 찾아 나섰다는 청년 류시화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숱한 길끝에 돌아와 과수원에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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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ucia Gang 니코르 카잔차키스
    저도 선생님처럼 밤을 새우며 가슴이 떨리며 한장한장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기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나이 먹어 다시 보면 어떨까 궁금해집니다.See more
  • Hanna Yoon 사람으로 태어나 이런 신비한 세계를 보고 느끼고 감탄하며 살 수 있는 것 만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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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연숙 언젠가 선생님의 책을 읽고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바로 실행에 옮겼던때가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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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rlie Hong 성공한 곳을 떠나기 위해 일단 성공해야될 듯 합니다만^^ 아직도 길 위에 서 있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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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무인 스스로 야수인지 모르는 야수, 그것이 젊음.
    실패한 곳으로 돌아가고 성공한 곳으로 떠나라.
    1
  • Mary Han 글이 참 마음에 파뭍히네유
    사진도 어쩜저리 멋진 반영으로 커다란 꿈새를 하이얀꿈꾸는새
    1
  • 권경애 함께 한 미남 친구분이 출가를 하셨군요ᆢ
    마하 반야바라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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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민자 답을 얻을 수 있을까요?? 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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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주영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꽃을 피워라!!!~
    이렇게 깨닫는 행복한 하루입니다
    3
  • Haley Kim 처음에는 그림에, 그 다음엔 글에 압도되었습니다.
    2
  • 노은정 영혼꽃 새처럼 훨훨 날아오름을
    떠올립니다
    옴 샨티~
    2
  • Yeri Choi 이 아침에도 선생님의 글, 고맙습니다.
    2
  • 양성희 어느길이내길인지모르겠고 내인생도 답을찾았으면...
    2
  • Mi Kim 발목이 삐긋해
    바로 앞에
    길조차도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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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서영 실패한곳으로 돌아가고
    성공한곳은 떠나라는 말..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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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현주 깨달음은..다른말로 편안함이라는 생각이 이젠 드네요~^^
    편안한 하루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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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훈 물질세계에 대한 애착, 여성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면서도 근원 세계를 갈구하는 저의 방황은 아직도 진행중입니다..시인님 고맙습니다🙏
  • 정재영 해답을 얻기 위해 떠나는 것은 우리의 인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떠날 수 있는 마음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러면...
  • 이명원 성공한 곳 실패한 곳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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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준교 영혼의 순례중...
    아몬드꽃을 발견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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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lia Park 가슴뛰게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사진도 멋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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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sther Jo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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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시율 잘 읽었습니다. 자주 영감 넘치는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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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선아 지금,이 순간 !!!
    1
  • 임유진 3번은 읽고나서~독후감 제출 하겠습니다.
  • 구영애 영혼의 자서전 상.하 이권으로 되서 있네요선생님 읽어보겠습니다..
  • Kyung Hee Kim 고맙습니다
  • 공평화 챃으려고 애쓰지마라ㅡ우연이 챃을때 까지
  • 별빛 그래, 내 마음의 봄을 찾은 거야.
  • 강헌희 구도를 향한 끝없는 길. 그 끝은 과연 어디일까요?
  • Tracer Seoul 대학졸업식 굳이 참석안하셔도 되는데...^^

류시화 Shiva Ryu - <세 편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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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Shiva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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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자화상>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운 좋게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유학을 왔다. 대광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에 심취해 경희대학교 국문학과에 문예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 2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다. 졸업 후 인도, 네팔을 여행하는 한편 명상서적을 번역 소개하기 시작했다.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을 냈으며,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과 『지구별 여행자』를 썼다.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엮었다. 

라즈니쉬(오쇼)의 『삶의 길 흰구름의 길』을 시작으로 『성자가 된 청소부』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인생 수업』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등을 번역했다. 

인디언 연설문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와 하이쿠 선집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도 냈다.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썼으며, 우화집 『인생 우화』를 출간했다.

내가 내는 책이나 이력서에 실리는 내용이다. 외면적으로 드러난 삶의 행적과 성취들로 이루어진 자서전이다. 저자와의 대화나 강연에서 나를 소개할 때도 열거되며, 생을 마친 후에도 그렇게 소개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일면이기는 해도 그것이 나의 전부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한 일들일 뿐 나의 스토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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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자서전은 내적인 삶에 대한 내용이 될 것이다. 이루고 창조하는 실용적인 행위들을 제외했을 때의 나는 누구인가, 또 그 행위들을 하는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 그 초등학생과 지금의 나 사이 어디에선가 영적으로 성장했는가? 시인으로 등단할 때의 시와 지금의 시 사이 어디에선가 깊어졌는가? 처음 인도를 여행하던 장소와 이 글을 쓰고 있는 북인도 리시케시 사이 어디에선가 진정한 포기와 평화에 도달했는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뿐만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는가? 여행자가 없는 길을 따라 홀로 걷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험하듯 인생을 살았는가? 무엇보다 마음이 부자였는가?

자서전을 쓰기 시작할 때 긴 침묵에 잠기는가? 내적인 성취를 이야기하기 전에 적어도 사흘 동안은 침묵하는가? 그러고는 마침내 세 가지 단어를 종이에 적을 수 있는가? '살고, 사랑하고, 웃었다.'라고.

영혼이 천국의 문에 다다르면 신이 묻는다고 한다.
"그대는 이곳을 떠날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구나. 수많은 기회들로 축복받았지 않은가? 그대의 여행에서 입은 상처와 흉터들은 어디 있는가? 그곳으로 빛이 들어갔는데."
그 상처와 흉터들을 극복하고 어떤 존재가 되었느냐는 물음이다. 자신을 정화시키는 길마다 옳은 길인 것이다.

--------

세 번째 자서전은 나의 조사에 들어갈 내용, 즉 내 존재의 중심을 이루는 덕목들이 될 것이다. 친구 이문재 시인이 나보다 오래 살아 내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어 주길 바라지만, 이력서에 들어갈 내용과 조사에 들어갈 덕목은 다를 것이다. 얼마나 친절한 사람이었는가, 동물들에게 다정했는가, 비 오는 날 달팽이를 옮겨 주어 며칠을 더 살게 도왔는가, 나의 이름과 경력을 모르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 단순한 행위들에서 기쁨을 느끼는 인간이었는가가 조사를 채워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삶으로 무엇을 말했는가가.

작가로서 얻은 명성, 여행한 장소들, 잠깐씩 누린 영광과 깨달음들은 신기루에 지나지 않음을 나는 안다. 어쩌면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단락이 내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월이자 의심의 세월이었다.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앞에 모든 것이 있으면서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천국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반대 방향으로도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인간으로서 나는 나의 가장 가깝고 오랜 벗인 나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에게서도 선한 것을 보았는가, 괴로움을 겪을 때의 인내와 그러지 않을 때의 태도가 어떠했는가, 받은 만큼 주었는가가 세 번째 자서전에서 나를 정의 내릴 것이다. 당신의 자서전은 무엇이 될 것인가? 현실의 모습이 어떠하든 내면에서 일궈 온 삶은? 당신이 행위들로 이력서의 칸을 채워 나가고 있는 동안 천사는 또 다른 이력서에 들어갈 내용을 모으고 있지 않겠는가?


*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출간 기념 저자 사인회를 아래와 같이 진행합니다. 많이 오셔서 사라져가는 지역 서점들에 힘을 실어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 동양서림(종로구 혜화동 로터리) 02-762-0715
4월 6일(토요일), 오후 2시

부산 영광도서(부산진구 서면 문화로) 051-816-9500
4월 13일(토요일), 오후 2시


art credit_Phil Borges, from <Tibetan Portr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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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서 작가님의 글은 항상 저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 놓으십니다.
덕분에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번역서로 내셨던 명상책들 또한 너무 훌륭해서 경전처럼 가지고 있답니다.…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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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Shiva Ryu 김민서 나마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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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eon Kim 정말 맘에 들어오는 구절이라 캘리로 써봤습니다. 늘~따듯한 글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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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Shiva Ryu 김소연 아, 이렇게 쓰니까 더 좋네요. 캘리그라퍼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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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채복 꽃샘바람이 불었고
몇몇 꽃잎은 떨어져 그래도 꽃인지라 아름다워요.
인용하신 찰스 디킨스 글에서, 핑 눈물이 나네요.…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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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Shiva Ryu 강채복 왜 눈물이 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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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철 작가님 싸인북 갖으려고 담주 토요일 혜화동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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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Shiva Ryu 심영철 오시면 네팔 트레킹 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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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min Jung 작가님의 실용적인 행위로 저는 간접적으로 작가님을 만납니다.
만나뵌적은 없지만 글이 친절하고 선하지요. 작가님의 번역서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겁니다. 실용적인 행위가 신기루에 지나지않다는것은 작가님 존재에 대한 관점이지만 덕분에 저는 마중물같은 글을 종종 만나서 힘을 얻기도 했지요. 그 힘으로 저도 마중물같은 존재가 되기위해 제 자서전을 써내려나가려합니다. 실용적인 행위를 통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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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Shiva Ryu 정정민 더 열심히 실용적인 행위를 해 나가겠습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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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yea Park 다른건 몰라도 이력에 들어갈 확실한 한가지는 방금 기억 났습니다.언젠가 먼 여행에서 돌아오는 고속버스를 타고 어느 지방의 휴게소 화장실에 들렀는데
하얀 변기뚜껑 위에 떡하니 달팽이 한마리가 혼비백산 해서 떨고 있더라구요.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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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Shiva Ryu 비시아 옥천 안내면도 저의 고향에서 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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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4

녹명살롱 17회(경전명상_카마수트라_섹스 초월의 시작) - YouTube

녹명살롱 17회(경전명상_카마수트라_섹스 초월의 시작)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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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17회(경전명상_카마수트라_섹스 초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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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매거진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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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16회(경전명상_장자_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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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15회(경전명상_숫타니파타_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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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14회(경전명상_금강경_머물지않는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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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13회(경전명상_도마복음_나그네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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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12회(경전명상_도덕경_가장좋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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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매거진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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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11회(경전명상_중용_지속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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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10회(경전명상_동경대전_마음을 조급하게 갖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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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9회(경전명상_우파니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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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매거진 201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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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8회(명상특집2_명상은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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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종교문화 탐방 시즌5-신들의 땅 코카서스 3국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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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7회(명상특집1_명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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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6회(경전명상_명상의 요가 dhyana-yo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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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5회(경전명상_행위의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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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매거진 201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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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4회(경전명상_바가바드기타와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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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3회(경전을 읽는 4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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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2회 (인생의 4가지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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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1회(녹명살롱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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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교수 장자 특장(장자 in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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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 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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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살롱 17회(경전명상_카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