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9

[북한 영상] 려명거리 공사 현장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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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영상] 려명거리 공사 현장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북한 영상] 려명거리 공사 현장
입력 2016.05.21 (08:27) | 수정 2016.05.21 (09:22)남북의창| VIEW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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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김정은 정권 들어 특징 가운데 하나가 유난히 전시성 건설 사업이 많다는 거죠.

네, 따져보니까 평양 시내만 하더라도 평균 일년에 한 개씩 대형 단지가 들어서고 있고, 지금도 려명거리가 속도전으로 조성되고 있습니다.

네, 70층 아파트도 짓는다고 선전하던데요.

대북 제재로 가뜩이나 어려운 주민들의 삶을 더 힘들게만 하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만리마 속도전의 현장, 려명거리 건설 모습 보면서 오늘 남북의창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클로즈업 북한] 평양은 변신 중…북한식 재개발 한계는?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클로즈업 북한] 평양은 변신 중…북한식 재개발 한계는?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클로즈업 북한] 평양은 변신 중…북한식 재개발 한계는?
입력 2016.05.28 (08:08) | 수정 2016.05.28 (09:11)남북의창| VIEW 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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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여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북한 김정은이 평양에 한해 하나씩 건설하고 있는 북한식 뉴타운들의 이름입니다.

겉보기엔 일단 화려해 보이지만, 별다른 치적이 없는 김정은이 정당성 확보를 위해 급조해 짓다보니 부작용과 한계도 적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 경제의 발목을 잡아 체제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거란 평가까지 나오는데요.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평양판 뉴타운들을 중심으로 북한 재개발의 실태와 그 한계를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평양 시내 한복판. 거대한 부지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장 여기저기 내걸린 만리마속도’ 등의 구호판 아래 일꾼들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각 지역 돌격대원들의 공사 성과를 비교한 커다란 ‘실적판’까지 등장했다.

<녹취> 김정훈(북한 군인) : "려명거리 건설을 힘있게 다그쳐서 공사장 쪽으로 제일 먼저 승리의 깃발을 꽂겠다는 것을 굳게 결의합니다."

지난 3월, 김정은이 연내 완공을 지시한 ‘려명거리’ 건설 현장.

수십 동의 건물 해체를 시작으로 터파기, 골조 건설 등의 기초공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녹취> 려명거리 착공식(지난달 3일) : "또 하나의 선경거리 려명거리가 혁명의 수도 평양에 일떠서게(건설되게) 됩니다."

북한의 중심이자 ‘거대한 전시장’으로도 불리는 평양.

<녹취> “와~ 와~ 만세~”

제 7차 노동당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군중대회가 열렸던 김일성 광장.

평양의 심장부인 이 곳, 김일성 광장에서 대동강변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거리가 눈길을 끈다.

지난해 10월, 당 창건 기념일에 맞춰 완공된 ‘미래과학자거리’의 모습이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10월) : "온 세상이 부러워할 최고의 문명을 최대의 속도로 창조해가는 백두산대국의 기상인 양 날로 변모되는 사회주의 조국의 수도 평양에 미래과학자거리가 보란 듯이 일떠섰습니다(건설됐습니다.)"

대동강변을 따라 조성된 미래과학자거리에는 최신식 주거시설 뿐 아니라 공원과 백화점 등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다시 김일성광장을 지나 평양 중구역의 북동쪽에 위치한 만수대언덕.

김일성, 김정일의 거대한 동상이 세워진 만수대언덕 주변으로는 이른바 ‘평양의 강남’으로 불리는 ‘창전거리’가 있다.

지난 2012년 완공된 창전거리는 평양 10만 세대 건설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대규모 주택단지다.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6월) : “수천 세대의 현대적인 고층 살림집들과 각종 편의시설들이 훌륭히 꾸려져 주민들의 생활에 최대의 편의를 보장해줄 수 있게 돼있습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거리를 중심으로 한 새 단지를 해마다 하나씩 지어가고 있다.

2013년엔 평양 외곽 룡성구역에 은하과학자거리가 들어섰고, 다음해엔 평양의 위성도시 평성에 위성과학자주택지구가 새롭게 건설됐다.

<인터뷰> 조봉현(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평양에 고층 건물을 짓고, 그다음에 새로운 거리를 조성해서 단기간 내에 경제적 업적을 과시함으로써 결국은 김정은 시대가 화려하게 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로써 평양을 대대적으로 개발했다고 하겠습니다.”

권력기반이 약한 김정은은 경제적 치적으로 내세우기 위해 ‘평양 개발’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고강도 대북제재로 경제 강국 건설에 차질이 빚어지자 대내외 과시용으로 전시성 대형 거리 조성에 더욱 몰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터뷰> 조봉현(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국제 사회의 대북제재가 가해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독자적으로 경제 강국을 건설하기 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은 대내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사업으로써 건설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건설은 단기간 내에 성과를 보여주고 외형적으로 경제적 치적 사업을 할 수 있는 핵심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건설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앞서 1950년대, 김일성은 6.25 전쟁 직후 이른바 ‘평양속도’를 동원 구호로 내걸고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는데 집중했다.

그러다, 1970년대 후계자 신분이던 김정일이 건설 사업을 주도하면서 평양 재개발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창광거리, 광복거리, 통일거리 등 대규모 거리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녹취> 北 기록영화(‘위대한 전환의 1970년대’) : "천리마거리, 낙원거리들이 연이어 짧은 기간에 웅장 화려하게 일떠섰으니 일찍이 없었던 일대 융성 번영의 시대였습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엔 평양 재개발 사업은 주거공간과 일체의 편의시설이 함께 구성된 대규모 주거 복합단지 건설로 탈바꿈했다.

<인터뷰> 이상준(국토연구원 한반도·동북아연구센터장) :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상징적으로 강화된 것은 여러 가지 서비스, 봉사시설이라고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백화점이라든지 유희시설이라든지 이런 것까지 더 복합적으로 개발을 하는 것이 김정일 시대와 조금 더 차별화되는 김정은 시대의 도시 개발 특징 중에 하나다."

북한 매체들은 새로 지은 고급 아파트를 인민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11월) : “이런 궁궐 같은 살림집에서 우리의 평범한 교육자·과학자들이 돈 한 푼 내지 않고 살게 됐다고,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평양의 고급 아파트에 살 수 있는 북한 주민은 선택받은 소수일 뿐이다.

북한의 주택은 1호부터 특호까지 5등급으로 나뉘는데 계급과 직위에 따라 국가가 배정한다.

일반 노동자와 사무원, 농촌 주민들에겐 가장 작은 1호 주택을 준다.

주로 2~3층 짜리 연립주택으로 화장실과 욕실을 함께 쓰는 형태다.

2호와 3호 주택은 소형 아파트로 중앙당 지도원이나 학교 교원 등이 산다.

100제곱미터 안팎에 신식 화장실과 부엌을 갖춘 고층 아파트는 4호 주택에 해당하는데, 중앙당 과장급, 대학교수나 과학자 등이 배정받는다.

특호 주택은 정원이 딸린 고급 단독주택으로 당과 정무원 부부장급, 군 소장급 이상 고위 간부들의 차지이다.

김정은 시대 새로운 거리들에 주로 들어서는 4호 주택은 대부분이 김정은에 충성하는 특권층을 위한 선물로 하사된다.

<인터뷰> 차리혁(2014년 탈북) : "자기를 떠받들 수 있는 사람들 중앙당 간부들, 과학자 그다음에 교육자들 그 다음에 특권층 중앙당 간부 자식들 간부들 이런식으로 해서 평양 중심 지역에 짓는다는 건설을 보게 되면 100% 특권층들, 일반 주민들은 거기에 가서 마식령 건설을 하든 아파트를 짓든 뭘 하든지 간에 일반 주민들이 누릴 수 있는 조건은 하나도 없어요."

<녹취> 조선중앙TV(지난 22일) : “황해북도에서 당의 웅대한 수도건설 구상에 따라 훌륭히 건설되고 있는 평양시 려명거리 건설을 힘있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평양 개발’을 위해 지방의 물자와 재원, 인력까지 끌어다 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정된 자원이 평양으로 쏠리다보니 다른 지역의 주거환경은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평양과 다른 지역 간의 주거환경과 생활수준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이다.

평양 특권층의 주택 보급률은 100%에 가까운 반면, 일반 주민들의 주택보급률은 50~60%에 불과한 수준.

주택을 신청하고 주택사용권인 ‘입사증’을 받기까지 적어도 4~5년 이상 걸리다보니, 생판 모르는 사람과 ‘동거’를 하는 경우도 상당하고 한다.

<인터뷰> 차리혁(2014년 탈북) : “말하자면 평양에서 1년에 하나씩 건설한다면 여기는 10년 있어야 하나 건설해요. 진짜 못 건설해요. 저 역시도 집이 없어서 남의 집 곁방살이를 했어요. 동거살이죠. 집이 진짜 보게 되면 한 7평도 안됐어요. 그런 정도인데 사람 둘이 겨우 누워서 잘 수 있는 집이었어요.”

무엇보다 새로 지은 거리 대부분이 1년 이내의 짧은 기간에 무리한 속도전으로 지어지다보니 부실공사 우려도 커지고 있다.

<녹취> 조선중앙TV(2014년 5월) : "평양시 평천 구역의 건설장에서는 엄중한 사고가 발생해서 인명피해가 났습니다."

2년 전 평양시내 23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무너져 수백명으로 추정되는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도 바로 이런 부실공사 때문이었다.

<인터뷰> 이상준(국토연구원 한반도·동북아연구센터장) : "70층짜리 아파트를 짓는데 우리나라에서 지으려면 최소한 한 2년 이상은 잡아야 됩니다. 기초적인 준비부터 시작해서 완공될 때까지 이것을 갖다가 지금 한 8개월, 9개월에 하겠다는 것이거든요. 북한에서는. 단기간내에 그만한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 북한이 이런 대규모 초고층 건물을 지었을 때 이것이 안전적인 측면에서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들이 있겠습니다."

1989년 개최된 평양청년학생축전.

<녹취> 조선중앙TV(1989년 7월) : “외국의 벗들은 조선의 현실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88 서울 올림픽에 지지 않겠다며 엄청난 규모로 화려하게 펼쳐졌지만, 과시용으로 쏟아부은 막대한 비용이 문제였다.

이는 1990년대 북한이 고난의 행군 시기를 좀처럼 극복하지 못했던 한 원인으로 꼽힌다.

7차 당 대회 준비에 1조원 가까이 쏟아 붓고 대북제재까지 겪고 있는 북한이 무리한 거리 개발로 경제 성장에 발목을 잡힐 것이란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가뜩이나 부족한 자원이 특정 건설 사업에만 집중될 경우 자원배분의 왜곡으로 인한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터뷰> 조봉현(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 경제가 국제 사회의 제재에도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일반 기업소에 투입해서 북한 주민 생활과 관련된 산업을 육성해나가야 되는데 건설 사업, 즉 김정은과 일부 계층을 위한 이런 어떤 건설 사업에 많은 자금들을 투입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경제가 더욱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달 초 북한 당대회를 취재했던 외신 기자들은 평양의 스카이라인이 멀리서 보면 그럴싸해도 가까이서 보면 벽은 파손되고 전력 공급도 원활치 않다고 비판했다.

북한이 지금처럼 일반 주민들의 생활 개선이 아닌 특권층을 위한 전시성 건설에만 몰두한다면, 김정은이 치적으로 내세우는 평양 개발은 결국엔, 정권에 대한 불만을 고조시키는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클로즈업 북한] 北 나무심기도 ‘70일 전투’…한계는?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클로즈업 북한] 北 나무심기도 ‘70일 전투’…한계는?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클로즈업 북한] 北 나무심기도 ‘70일 전투’…한계는?
    입력 2016.04.02 (08:08) | 수정 2016.04.02 (14:58)남북의창| VIEW 2,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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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멘트>

    사흘 뒤면 식목일이죠.

    봄철을 맞아 북한에서도 요즘 나무 심기가 한창인데요.

    우리와 다른 점은 나무심기도 이른바 70일 전투의 일환으로 ‘전투처럼’ 한다는 겁니다.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해마다 반복되는 ‘나무심기 전투’에도 불구하고 황폐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 산림 대책의 한계를 심층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누런 맨 땅이 훤히 드러난 북한 함경남도의 민둥산.

    산비탈을 가득 메운 주민들이 나무심기에 한창이다.

    <녹취> 김윤희(함경남도 금강관리국 부원) : "오늘 우리가 심는 이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다 내가 사는 이 땅을 더 푸르게 한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산악지대는 물론이고 도로 주변과 수목원, 각 공장과 기업소까지.

    이런 나무심기는 집단적으로, 북한 전역에서 진행된다.

    <녹취> 박응남(초급청년동맹위원장) : "감나무, 사과나무를 비롯한 6종의 5000여 그루 과일나무들로 과수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푸른 숲이 병풍처럼 쭉 둘러싼 공장으로 꾸려가고 있습니다."

    <녹취> "나무를 심자 나무를 심자~ 우리 사는 거리와 마을마다~"

    나무 심기를 ‘전투’라 부르며 나무를 심는 것이 애국이라는 노래까지.

    나무심기를 독려하는 온갖 선전물이 연일 전파를 타고 있다.

    5월 7차 당 대회까지 북한 전역을 수림화하자는 이른바 ‘나무심기 70일 전투’다.

    <녹취> 조선중앙TV : "오늘의 나무심기는 단순한 실무적 사업이 아니라 70일 전투 기록장에 애국의 뜨거운 마음을 새겨가는 영예롭고 보람찬 애국사업임을 깊이 자각하고..."

    나무심기 전투의 다양한 현장을 담은 특집 프로그램.

    인터뷰에 나선 북한 주민들은 경쟁적으로 나무심기 실적을 자랑한다.

    <인터뷰> 신승호(송화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 "오늘 하루 나무모 심기 실적을 종합해보니까 13만 여 그루나 심었습니다. 저희들은 군안의 인민들의 앙양된 열의에 맞게 정책사업을 앞세우고 나무심기 사업을 짜고 들겠습니다."

    ‘나무심기 전투’엔 일반 근로자와 군인, 주부뿐 아니라 어린 학생들까지 동원된다.

    개인이 하루에 심어야 할 나무의 목표량으로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그루가 할당된다.

    <녹취> 이향(온천 고급중학교 학생) : "(학생동무 이름을 어떻게 부릅니까?) 온천 고급중학교 학생 이향입니다. (나무를 몇 그루나 심었습니까?) 현재 22대 심었는데 아직 더 심어야 합니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산림 복구에 나선 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친 뒤인 2000년대부터다.

    특히 김정일은 2001년 ‘산림조성 10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별도의 식수기간까지 정해 나무심기를 독려했다.

    <녹취> 김정은(신년사/지난해 1월 1일) : "전후에 복구 건설을 한 것처럼 전당, 전군, 전민이 떨쳐나 산림복구 전투를 힘 있게 벌여 조국의 산들을 푸른 숲이 우거진 황금산으로 전변시켜야(바꿔야) 합니다."

    매년 신년사에서 산림녹화를 언급해온 김정은은 처음으로 정권 차원에서 산림복구 전투를 진행했다.

    <녹취> 북한 기록영화("산림 복구 전투의 포성이") : "오늘의 산림복구 전투에서 영예로운 승리자가 되자!"

    나무를 심는데 ‘철야전투’까지 강행했고 자신이 직접 나무를 심는 모습도 연출했다.

    한발 더 나아가 선대의 산림정책 실패까지 이례적으로 자인하며 나무심기를 독려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2월) : "고난의 행군시기부터 사람들이 식량과 땔감을 해결한다고 하면서 나무를 망탕(무분별하게) 찍은 데다 산불방지대책도 바로 세우지 못하여 나라의 귀중한 산림자원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지난해 임업성 부상과 내각 부총리까지 숙청할 정도로 나무심기를 몰아붙인 김정은,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지난 2014년 촬영된 양강도 혜산시의 위성영상이다.

    ‘산의 혜택을 본다’는 ‘혜산’이라는 지명이 무색하게 대부분의 산이 헐벗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역시 2014년 평양의 위성사진.

    2005년, 9년 전에 비해 녹지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산림이 복구되기는커녕 황폐화가 더 심해진 것이다.

    산림녹화 지원을 위해 수차례 북한을 찾았던 민간단체 관계자는 북한의 산림 실태를 이렇게 증언한다.

    <인터뷰> 이운식(겨레의 숲 사무처장) : "평양에 비행기가 착륙할 때보면 순안 공항을 내려다보면 그 언저리에 황폐한 야산들이 많이 보여요. 평양 시내에 있는 대성산이라든가 용악산이라든가 그런 데는 북한이 자랑하는 유원지니까 잘 보존이 되어 있지만 평양을 좀 벗어나서 황해도라든가 평안도 쪽으로 좀만 벗어나면 그런 다락밭이라든가 황폐한 단지를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유엔 산하기구가 최근 공개한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FAO,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1990년 820만 헥타르였던 북한의 산림은 지난해 말 503만 헥타르까지 줄어들었다.

    25년 간 북한 산림 면적의 38%가 훼손된 건데, 해마다 평양보다 큰 면적의 산림이 사라지고 있다.

    <인터뷰> 김성일(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 "1990년도에는 전 국토의 68%가 숲이었고요. 그 이전에는 사실 70%를 상회했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보게 되면 약 47%, 지금은 아마 그것보다 더 떨어졌지 않았을까 (해마다) 1%정도씩 숲이 줄어들고 있고요. 그게 보통 우리 서울시 면적의 두 배 정도, 축구장으로 따지면 약 13만개 정도 없어지니까 보통 심각한 게 아니죠."

    그렇다면 15년 넘게 진행된 산림복구에도 상황이 더 악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식목일에 해당하는 지난 달 2일 북한 식수절 모습이다.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사람들이 쌓인 눈이 채 녹지도 않은 땅을 나무를 심기 위해 갈아엎고 있다.

    당연히 나무가 잘 자랄 수 없는 상황, 이런 전시성 행사가 비일비재하다.

    <인터뷰> 김은아(2009년 탈북) : "눈이 오든 비가 오든 그날(식수절)은 무조건 다 나무 심으러 가거든요. 전혀 살 수가 없죠. 땅이 다 녹아진 상태에서 나무들도 좋은 땅에서 자라야 되는데, 땡땡 얼은 땅에서 그 나무가 전혀 살 수 가없거든요. 그런데 왜 그날 꼭 나무를 심어야 되는지 전혀 이해가 안갔죠."

    주민 동원을 통해 나무 심는 데만 급급할 뿐 사후 관리가 잘 되지 않는 것도 고질적인 문제다.

    <인터뷰> 김은아(2009년 탈북) : "저희가 이렇게 심어놓으면 저희가 매번 가서 관리를 해줄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산림청에 계시는 분들이 이렇게 다 물도 줘가면서 이렇게 관리를 잘 해줘야 되는데 그쪽에서도 관리가 되게 허술한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이제 나무들이 살지를 못하고 금방 죽고. 그리고 다음날이면 또 주민들이 땔감으로 다 뽑아가고.."

    북한 당국이 최근 들어 이른바 사름률, 나무의 생존율을 특별히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 매체는 이례적으로 일선 기관의 업무태만을 공식 거론하기도 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8월) : "나무모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은 불리한 자연기후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림경영소의 일꾼들과 모체양묘 작업반원들의 패배주의적인 일본새(일하는 태도), 주인답지 못한 일본새에 있는 것입니다."

    특히 만성적인 에너지난은 북한의 산림 복구를 막는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중국 접경 북한의 한 마을 풍경이다.

    나무 땔감을 자전거에 싣고 가거나 잡초 무더기를 짊어지고 가는 모습을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땅한 연료가 없는 주민들이 여전히 난방과 취사 등에 주로 나무를 쓰고 있는 것이다.

    땔감을 구하기 위해 절도 등 불법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인터뷰> 김은아(2009년 탈북) : "집 뜨락에 보면 이렇게 배재를 많이들 세워 놓잖아요. 저희는 나무로 널빤지로 많이 세우는데 밤에 자고 일어나면 그 울타리를 다 뽑아 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것도 나무니까 사람들이 남의 집 울타리를 다 뽑아가는 거예요. 진짜 눈에 보이는 나무라고 생긴 건 다 도둑질해가고..."

    여기에 대북 제재의 여파로 최근 들어선 국제사회의 지원도 막히고 있다.

    오는 2023년까지 나무 65억 그루를 심는다는 게 2014년 북한 당국이 밝힌 산림 복구 계획의 청사진.

    지난해만 해도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적극 검토됐지만, 올 들어 이어진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도발로 대부분의 지원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인터뷰> 이운식(겨레의 숲 사무처장) : "저희 민간단체들이 주로 국제기구라든가 해외 동포 단체, 이런 데에 협력해가지고 사업을 진행해왔었어요, 작년 하반기부터. 그런데 아시다시피 올해 초에 핵실험이라든가 미사일 발사, 이런 문제로 인해서 우리 정부가 이런 교류 사업에 대한 잠정 중단 조치를 발표했었고. 그래서 그마저도 현재는 좀 보류된 상황입니다."

    북한의 산림 재앙은 한반도 전체의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재앙이 통일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급히 해결해야할 사안이다.

    북한이 하루 빨리 도발을 중단하고 협력의 길로 나와야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클로즈업 북한] 北 외화벌이 전위대 ‘만수대창작사’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클로즈업 북한] 北 외화벌이 전위대 ‘만수대창작사’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클로즈업 북한] 北 외화벌이 전위대 ‘만수대창작사’
    입력 2016.03.26 (07:51) | 수정 2016.03.26 (08:48)남북의창| VIEW 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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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멘트>

    만수대 창작사라고 들어보셨나요?

    6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북한 최고의 예술가 집단입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 동상 등 각종 체제 선전용 조각물과 건축물 모두 이 만수대 창착사가 만든 건데요.

    우상화의 선봉에서 최근엔 외화벌이 전위대로 성격을 바꾸고 있는 북한의 만수대 창작사를 <클로즈업 북한>에서 심층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아프리카 남서부 인구 2백만 명의 작은 나라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 도심 한복판에 거대한 건물 하나가 우뚝 솟아있다.

    지난 2014년에 완공된 나미비아의 독립기념관 건물이다.

    압도적인 크기의 이 건축물을 지은 건 다름 아닌, 북한의 예술가들이다.

    <녹취> 나미비아 현지방송 : "또다시 북한 만수대창작사의 해외개발사가 기념물의 디자인과 건설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역시 아프리카 국가인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다.

    수백 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어마어마한 규모의 동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2010년 세네갈 독립 50주년을 맞아 완공한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상’이다.

    무려 2700만 달러, 우리 돈 약 30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갔다.

    완공을 앞둔 당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이들은 북한 노동자들이다.

    <녹취> 세네갈 파견 북한 근로자 : "(북한에서 왔나요?) 네. 북한에서..."

    동상의 높이가 49미터, 미국 자유의 여신상보다도 더 높은 이 동상 역시 만수대창작사가 만든 것이다.

    <녹취> 세네갈 측 건축회사 대표 :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아이디어를 그들의 기술로 실현한다는 겁니다. 대형 청동 조각상은 오직 북한인들만 제조 방법을 압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들은 최고입니다."

    만수대창작사가 아프리카에서 제작한 조형물은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특히 눈여겨 볼만한 건 북한만의 독특한 조형양식이다.

    콩고에 건립된 초대 총리 루뭄바의 동상 팔을 쭉 뻗은 모양과 불룩 나온 배가 김일성-김정일의 동상을 연상케 한다.

    에티오피아의 혁명승리탑은 뾰족한 석탑의 형태가 평양의 주체사상탑을, 나미비아의 열사릉은 평양의 혁명 열사릉을 판박이처럼 빼닮았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돌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최원준 감독은 북한 조형물의 특징을 이렇게 말한다.

    <인터뷰> 최원준(감독/미술가 겸 영화감독) : “아프리카에서 처음 북한의 건축물을 봤을 때는 일단 압도적인 규모에 놀랐었고요. 또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대칭성, 수직선 이런 것들이 강조된 건축물들이 아무래도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되죠.”

    이렇다보니, 북한의 체제선전용 기념물이 아프리카 독재자들의 우상 숭배를 조장한단 논란도 적지 않다.

    또, 북한의 조형물이 아프리카 고유의 문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뷰> 최원준(감독/미술가 겸 영화감독) : “이를테면 나미비아의 현충원같은 경우는 히어로스 에이커라고 불리는데 평양에 있는 대혁명열사릉을 아주 흡사하게 만들어놓은 모습으로 현지의 아프리카적인 색채라든가 이런 것들하고 사실 거리가 있죠. 그래서 단층 건물들이 많은 지역 주변하고 어울리지 않고 아주 높은 건축물이어서 한눈에 보기에도 눈에 확 띄고 강렬한 인상을 주긴 하는데 어쨌든 뭔가 좀 어색한 그런 느낌이 있죠."

    그렇다면, 이러한 조형물의 제작을 주도하고 있는 ‘만수대창작사’는 어떤 곳일까?

    김정은 집권 이듬해인 지난 2012년, 평양 만수대 언덕.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들 너머로 김정은이 등장한다.

    <녹취> 김기남(선전 담당 비서/2012년 4월) : "지금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동상 제막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후, 팡파르가 울리고 흰 천이 벗겨지자 높이 23미터의 거대한 김일성-김정일의 동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를 형상화했을 때 부르는 이른바,‘1호 작품’이다.

    대형 동상과 초상화, 모자이크 벽화 등 북한 전역에 들어선 이런‘1호 작품’을 만드는 이들이 바로 북한의 최대 미술창작집단인 만수대창작사다.

    <인터뷰> 김철수(가명/‘1호 화가’출신 탈북민) : “만수대창작사는 북한의 우상화, 김일성, 김정일 가의 우상화에서 제일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단체이고요. 모든 미술 장르들에서 그걸 통해서 김일성, 김정일의 용상을 창조해내고 그 용상을 통해서 주민들한테 김 씨 일가에 대한 우상숭배를 고취시키는 거죠.”

    선전선동부 소속인 만수대창작사의 전체 직원은 약 4천 명.

    창작과 조직사업, 제작, 보급 등 총 4개의 분야로 이뤄져 있다.

    사실주의적 북한 그림을 일컫는 조선화와 조각, 공예 등 10여 개 창작단에 미술가만 천여 명이 소속돼있다.

    특히, 김씨 일가의 우상화를 전담하는 ‘1호 작품과’ 예술가들은 더욱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인터뷰> 김철수(가명/‘1호 화가’출신 탈북민) : “김일성이 죽었을 때 사후에 김일성의 태양상이라고 김일성 초상화를 창작한 작가가 있어요. 그 사람이 김성민인가 그럴 거예요. 그 사람 같은 경우는 승용차도 받고, 집도 받고 그랬죠. 태양상 같은 경우는 그 사람이 그려서 지금 전국에 다 비치가 되어 있잖아요. 그만한 공로가 있는 거죠. 영웅 칭호도 받고, 인민예술가 칭호도 받고 선망의 대상이죠.”

    만수대창작사를 이용한 우상화 시도는 김정은 시대 들어 더욱 강화됐다.

    후계자 시절, 아버지 김정일과 함께 만수대창작사를 직접 찾았던 김정은.

    집권 초부터 만수대창작사를 다시 찾아 각별히 챙겼다.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4월) : "만수대창작사 일꾼들과 창작가, 종업원들이 당의 문예 전사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분발하여 수령 형상 창작 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며..."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 전역엔 250개가 넘는 김일성-김정일 기념탑과 35개의 김정일 동상이 세워졌다.

    그렇다면 우상화를 위한 예술 전위대를 자처했던 만수대 창작사는 어떻게 외화벌이까지 하게 됐을까?

    그 시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녹취> 김석삼(만수대창작사 부사장) : "오늘 주체미술의 비약적인 눈부신 발전으로 하여 선군조선의 위력이 세계만방에 널리 과시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전쟁기념비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 동상, 기념비, 기념비적 건축물들을 훌륭히 건립하였습니다."

    남북 간의 외교 경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 북한이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위해 지도자들을 상대로 외교선물 공세에 나선 것이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前 북한 외교관) : “74년, 5년도에 에티오피아에 하일레 멩기스투라는 대통령이 아주 친북적인 대통령, 친사회주의적인 대통령이 섰고 김일성을 만나러 왔고 김일성하고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기념비 같은 이야기가 나왔고, 그러니까 김일성이 ‘건설을 해줘라.’ 해서 만수대 창작사가 나갔는데 기술자들의 여비와 체류비 정도만 받은 거예요. 그게 첫 시작입니다.”

    동상 뿐 아니라 대형 건축물을 설계하고, 인테리어와 소품 제작을 담당하면서 만수대창작사는 주로 북한의 외교적 이익을 위해 동원됐다.

    1980년대 중반 김정일이 외교권을 장악하면서 해외 기념비 건설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단순한 외교를 넘어 북한 외화벌이의 첨병으로 만수대창작사가 나선 것이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前 북한 외교관) : “1980년대 들어서서 김정일이 모든 것을 거머쥐면서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돈을 받아라 그래서 심지어 이제 가봉 같은 나라는 김일성은 동상을 해주지 말라 너무 친남한적인 국가다. 그런데 김정일이 아버지를 무시하고 봉고 대통령의 동상을 리브리빌 도시에 지어줘라 그리고 돈을 받아라 해서 8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각종 조형물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자 북한은 2천 년대 들어 더욱 본격적으로 예술가들을 외화벌이에 활용한다.

    단순한 조형물 건설을 넘는 새로운 양상도 최근 나타났다.

    세계 최대의 불교 유적지가 있는 캄보디아의 ‘앙코르 파노라마 박물관’.

    박물관의 투자부터 설계, 건설과 운영까지 전 과정을 만수대창작사가 도맡아했다.

    <녹취> '앙코르 파노라마 박물관' 북한 직원 : “만수대창작사라고 아십니까? 조각, 미술, 공예, 도자기, 여러 가지를 다 창작하고 이거만 만드는 것도 그저 한 거의 1년 넘었는데..”

    북한이 박물관 건립에 들인 비용은 우리 돈으로 280억 원.

    특히, 주목되는 건 박물관의 운영 방식이다. 앞으로 10년 간 입장료 수익으로 투자금을 회수한 후 캄보디아 정부에 기증하는 방식이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前 북한 외교관) : "1990년대, 2000년대 들어와서는 완전히 그게 커져서 세네갈의 아프리카 르네상스 같은 것이나 나미비아나 그게 커지고 지금 최근에 와서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앙코르와트 전람관 같은 것은 이제는 북한도 눈을 뜨니까 건설을 해서 절반씩 나눠먹자."

    나미비아를 비롯해 짐바브웨와 콩고 등 최근까지도 아프리카 10여 개국에서는 대형 기념물 건설이 계속되고 있다.

    연간 1500만 달러에서 많을 때는 2500만 달러까지, 북한이 이렇게 벌어들인 외화는 최근 10년간 1억 6천 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벌어들인 외화는 김정은 일가의 통치자금으로 들어간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만수대창작사에서 벌어들이는 외화가 인민생활이나 인민경제에 쓰여진다면 큰 문제가 없겠죠. 헌데 이것은 북한의 수령 우상화에 많이 쓰여지고 또 북한 지도부에 흘러 들어가서 핵미사일 개발과 같은 그런 데 남용이 되는, 해서 국제사회가 눈여겨보면서 북한의 모든 외화수익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그런 노력들을 더 많이 해야 될 것 같고요.”

    국제 제재의 빈틈을 노려 여전히 해외 외화벌이에 혈안이 된 북한.

    최고 예술가 집단까지 돈벌이에 동원한 모습은 북한의 현실을 상징하는 적나라한 자화상이다.

    [요즘 북한은] 블랙박스에 찍힌 평양의 일상 외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요즘 북한은] 블랙박스에 찍힌 평양의 일상 외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요즘 북한은] 블랙박스에 찍힌 평양의 일상 외
    입력 2015.12.05 (08:03) | 수정 2015.12.05 (10:35)남북의창| VIEW 2,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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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멘트>

    북한의 최근 소식을 알아보는 ‘요즘 북한은’입니다.

    최근엔 헬기 관광까지 허용되면서 다양한 시각에서 평양의 모습을 담은 영상들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이번엔 평양에 사는 한 외국인 사진작가가 자신의 차량용 블랙박스에 찍힌 평양의 모습을 인터넷에 잇따라 공개했습니다.

    블랙박스에 찍힌 평양, 어떤 모습일지 함께 보시죠.

    <리포트>

    블랙박스를 단 차량이 평양의 상징물인 주체사상탑을 지나 시내 중심으로 향합니다.

    3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새로 조성된 미래과학자거리,

    아파트 단지 입구에 바리케이드와 함께 검문소가 세워져 있는데요.

    ‘경무관’이라고 적힌 완장을 찬 북한 군인들이 차량들을 멈춰 세웁니다.

    <녹취> "(소속이) 어디입니까? (인도네시아 대사관.)"

    휴대전화를 꺼내 차량번호를 조회하고, 행선지를 묻더니 오늘은 갈 수 없다고 통보합니다.

    <녹취> "아직 (영업) 안 한답니다. 그러니까 며칠 지나서 그때 오랍니다."

    차를 돌려 향한 곳은 평양역 근처.

    택시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고, 평양의 명물 중 하나인 무궤도전차, 트롤리버스도 보이는데요.

    도로의 차량들 가운데는 일제와 독일제 등 수입차와 함께 국산 중형버스도 있습니다.

    신호를 아랑곳하지 않는 차량들, 횡단보도에서도 사람보다는 차량이 우선입니다.

    블랙박스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자카 파커 씨는 평양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관 소속의 사진작가인데요,

    자신의 딸이 다닌다는 평양의 외국인학교는 물론 눈 내리는 평양 외교단지의 모습 등 이색적인 평양의 일상을 담은 영상을 잇따라 공개하고 있습니다.

    北 인기 만화 ‘소년장수’ 새 시리즈 공개

    <앵커 멘트>

    북한의 최고 인기 만화영화 하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소년장수’를 꼽을 수 있는데요.

    소년장수가 18년 만에 새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소년이었던 주인공 쇠메도 어느덧 청년으로 성장해 안방을 찾았는데요.

    새롭게 변신한 ‘소년장수’ 함께 보시죠.

    <리포트>

    조국 고구려를 침략한 오랑캐를 뛰어난 무예 실력으로 무찌르는 소년 장수 ‘쇠메’

    <녹취> "사랑하는 고구려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싸움의 언덕을 넘어온 우리의 주인공."

    북한 어린이들의 최고 인기 만화였던 ‘소년장수’가 18년 만에 새롭게 단장됐습니다.

    기존 50부작에 이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로 추가로 50편이 더 제작에 들어간 건데요.

    그중 다섯 편이 먼저 공개됐습니다.

    세월이 흘러 10대 소년이었던 주인공 쇠메가 청년 장수가 되고, 절벽에 떨어져 죽은 줄만 알았던 적장 ‘호비’가 다시 나타나 또 한 번 대결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녹취> ‘소년장수’ 55부 : "똑똑히 알아둬라. 우리 고구려는 돌탄국에서 날아오는 그 어떠한 화살도 이렇게 막을 것이다."

    지난 1988년 첫 방영된 ‘소년장수’는 이후 1997년까지, 9년간 총 50편이 제작돼 방송될 정도로 북한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녹취> ‘소년장수’ 14부 : "선녀봉에 적을 그대로 두고서는 청운성을 지킬 수 없다. 방어부사는 군사와 백성들로 성 안의 불을 끄라. 나는 선녀봉을 치겠다!"

    방영 당시 북한 어린이들이 앞 다퉈 소년장수의 칼을 본 딴 장난감 칼을 갖고 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새로 제작된 ‘소년장수’는 전 제작 과정에 컴퓨터 그래픽이 도입돼 전작에 비해 전투 장면 등이 훨씬 더 생생하게 표현된 게 특징입니다.

    <녹취> 조명덕(4?26만화영화촬영소 창작단장) : "정말 만화영화 소년장수 연속부들을 만들 생각을 우리 창작가들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얼마 전에 (소년장수) 다섯 개 부를 만들어 내놓았고, 지금은 당 제7차 대회를 명작 폭포로 맞이하기 위해 창작전투를 힘 있게 벌이고 있습니다."

    북한은 최근 만화 강국을 건설하겠다며 ‘명작 폭포’라는 새 구호까지 내걸었는데요,

    18년 만에 부활한 ‘소년장수’가 과연 예전의 인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지금까지 ‘요즘 북한은’이었습니다.

    [클로즈업 북한] 김정은 ‘공포통치’…수단·사례는?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클로즈업 북한] 김정은 ‘공포통치’…수단·사례는?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클로즈업 북한] 김정은 ‘공포통치’…수단·사례는?
    입력 2015.11.21 (08:07) | 수정 2015.11.21 (09:15)남북의창| VIEW 2,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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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최룡해의 실각과 마원춘 등 최측근들의 잇단 복권,

    북한의 권력 지형이 요동치면서 김정은식 공포 통치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무자비한 처형과 숙청, 혁명화 조치를 통한 기강잡기는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데요,

    김정은 시대 북한 공포통치의 양상과 특징을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주민들이 도열한 평양 시내를 한 대의 장갑차가 지나간다.

    북한군 원수이자 빨치산 1세대 리을설의 장례 행렬이다.

    <녹취> 조선중앙TV : "고 리을설 동지의 장의식이 11일 평양에서 국장으로 엄숙히 거행되었습니다."

    김정은 제 1위원장을 비롯, 북한 최고위층이 모두 참석한 장례식..

    <녹취> 황병서(북한군 총정치국장) : "우리는 주체혁명위업, 선군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해 한평생을 바친 리을설 원수동지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닷새 간의 국장 기간,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가 있었다.

    최룡해 노동당 비서였다.

    갖가지 억측이 나도는 가운데 지난 12일, 정통한 대북 소식통에 의해 최룡해의 신변이 확인됐다.

    지방의 한 협동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백두산발전소의 부실 공사와 사적인 자리에서의 말실수가 화근이 됐다는 설명이다.

    북한 권력 내 최고 실세 중의 실세 최룡해 비서의 갑작스러운 실각..

    고위 간부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이른바 ‘공포통치’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북한군 훈련일꾼대회에 참석한 김정은 제 1위원장.

    김정은이 꽃다발을 받기 위해 잠시 멈춘 사이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한걸음 앞서 걷는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황병서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친다.

    김정은이 받은 꽃다발을 건네자, 군 서열 1위 황병서는 물론 서열 2위 리영길 총참모장이 경쟁하듯 받는다.

    현영철 처형 직후 촬영된 이 영상은 북한 공포통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녹취> 조선중앙tv :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현명한 영도따라 백두산 혁명강군의 위력을 천백 배로 다져갈 불타는 맹세를 다짐했습니다."

    그렇다면 공포통치의 수단인 고위간부 처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표적으로 정치적 반대 세력을 차단, 제거하는 숙청이 있다.

    특히, 총살 등을 통한 ‘처형’은 가장 강도 높은 숙청 방식에 속한다.

    <녹취> 조선중앙TV(2013년 12월) : "만고역적인 장성택을 혁명의 이름으로, 인민의 이름으로 준렬히 단죄 규탄하면서 공화국형법 제 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지난 2013년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김정은이 자신의 고모부이자 후견인이었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한 것이다.

    북한 당국은 국가 전복 기도와 매국, 부정부패 등 20가지가 넘는 죄목을 일일이 열거하며, 체포 사흘 만에 장성택의 공개 처형을 집행했다.

    이 같은 고위간부 처형은 어떤 과정을 거칠까.

    <인터뷰> 이OO(북한 당 간부 출신 탈북자) : "북한에서 고위 간부들을 숙청하거나 철직(해임)시킬 때 법적 문제에 근거하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문제를 근거할 때는 오직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 근거합니다. 최고 수뇌부의 권위와 위신을 훼손시켰다는 조항을 조목조목 비판을 하고, 그 자리에서 모든 당과 행정 직무를 박탈한다는 걸 선언합니다. 선언하고 체포 지시를 하달합니다. 그렇게 되면 체포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처형의 주된 이유는 대부분 유일 권력, 즉 김정은 제 1위원장에 대한 불충 또는 불경이다.

    지난 5월 우리 정보기관에 의해 처형 사실이 공개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죄목 역시 ‘불충’이었다.

    김정은이 주재한 회의에서 졸거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모습이 김정은의 진노를 샀다는 설명이다.

    당시 북한을 촬영한 위성사진엔, 대공포를 이용한 현영철의 처형 당시 상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처형은 정책 실패의 책임을 돌리는 방편으로도 활용돼 왔다.

    지난 2009년, 비대해져가는 시장을 억제하기 위해 시행한 ‘화폐 개혁’

    하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갔고, 주민들의 반발은 거세졌다.

    <녹취> "먹지도 쓰지도 않았는데 모아놓았더니 한 순간에 돌이 되었단 말이다. 그걸 다 국가가 회수했단 말이다."

    그러자 북한 당국은 ‘인민 생활을 도탄에 빠트린 역적’이라며, 당시 화폐 개혁 책임자였던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을 전격 총살했다.

    김정일 시대 ‘농정파탄’의 책임을 물어 서관희 농업 담당 비서를 처형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체제에 위협이 되는 사회적 상황, 정치적 상황이 발생을 했을 때 일종의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거죠. 주민들의 어떤 동요가 있거나 아니면 엘리트층의 어떤 이완이 있거나 할 때 그런 것들을 막기 위해서 그런 죄를 뒤집어씌워서 숙청을 했다..."

    처형 다음 단계인 ‘정치적 숙청’도 강도 높은 처벌에 속한다.

    지난 2011년, 김 제 1위원장과 나란히 김정일의 운구차를 호위하며 김정은 시대 최고 실세로 예측됐던 리영호 총참모장.
    그러나 불과 7개월 후 상황이 바뀐다.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7월) : "리영호 동지를 신병 관계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정치국 위원,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머지 운구차 호위 인물들인 우동측, 김영춘, 김정각도 줄줄이 숙청의 칼날을 빗겨가지 못했다.

    이러한 정치적 숙청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정보 당국은 지난 5월 변인선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의 숙청 소식을 전했다.

    또 그 칼날이 중간 간부에게까지 향하고 있으며, 유일권력에 대한 불충 외에 비리, 여자 문제 등에 대해서도 엄벌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이렇게 숙청된 이들 중 일부는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지기도 한다는 게 북한 간부 출신 탈북자의 증언이다.

    <인터뷰> 이OO(북한 당 간부 출신 탈북자) : "본인 자체는 살려주지만 엄한 징계로서 정치범 관리소 이주민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도 직계 가족들이 다 같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는 인간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 XXX, △△△ 그 소리를 듣고 무조건 갱에 들어가서 일을 해야 되며 그 사람들이 발언하는 것을 보면‘정말 이렇게 살 바에는 죽어야 한다'."

    숙청보다 한 단계 낮은 처벌 수단은 ‘혁명화’다.

    지난 해 11월, 평양 순안공항 건설 현장을 시찰하던 김정은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해 11월) : "다른 나라의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면서도 주체성, 민족성이 살아나게 마감하라고 과업을 주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 일로 총 책임자였던 마원춘 설계국장이 받은 처벌이 다름 아닌 혁명화이다.

    최룡해 당 비서가 현재 받고 있는 처벌이기도 하다.

    지방 농장, 탄광 등에서 낮에는 노역을, 밤에는 김일성 일가에 대한 학습을 하며 사상적, 육체적 단련을 하는 혁명화..

    북한 당국은 이 같은 혁명화를 고위 간부의 충성다짐 계기로도 활용했다.

    김정일 시절 혁명화로 탄광 노역을 했던 김용순 당시 당 비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인터뷰> 이OO(북한 당 간부 출신 탈북자) : "그 사람이‘당의 신임을 져버렸을 때 나의 인생은 개나 버러지와 같은 인생이로구나’ 이런 의미의 감상 일기를 적었었습니다. 김정일이 그걸 보고 참으로 실감나는, 우리 간부들에게 교양적 가치가 있는 실감나는 감상일기라고, 그러니까 이것을 출판 편집해서 당 간부들과 모든 국가 간부들에게 의무적으로 보게 하라. 그래서 이제 중앙기관 국장 이상급 간부들이 그걸 다 봤습니다."

    이러한 혁명화는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3년이 지나면 다시 현직 복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숙청과는 차이가 있다.

    유일권력에 대한 충성 강요와 이를 어길 시 뒤따르는 무자비한 처벌..

    북한 간부 처벌의 역사는 정권 수립과 궤를 같이 해 왔다.

    6.25 전쟁 직후 김일성은 남로당 박헌영을 미국 스파이로, 친소파 허가이를 반혁명분자로 몰아 공개처형했다.

    이후 ‘8월 종파사건’을 통해 남은 세력까지 모조리 숙청하며 유일권력 체제를 확립한다.

    그리고 1974년 김정일의 본격적인 등장..

    <녹취> 조선중앙TV : "역사적인 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는 영롱하신 그이(김정일)를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김정일이 간부들을 향해 칼을 빼든 건 사회주의 진영의 잇단 붕괴와 경제난으로 위기가 도래한 1990년 대.

    약 2만 여 명의 간부가 숙청, 처벌을 받은 ‘심화조 사건’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유독 김정은 시대 들어 ‘공포통치’가 부각된 건 짧은 승계 과정과도 관련이 있다는 게 국정원 고위 간부 출신 대북 전문가의 분석이다.

    <인터뷰> 남주홍(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는 바람에 후계가 승계된 것 아닙니까. 그러다보니까 체계적으로 주변에 당정군 간부의 인물, 이른바 세력군을 모집하는데 시간이 없었어요. 단기에 군의 기강을 확립하고, 단기에 당정 간에 교통을 정리하고, 단기에 장성택 세력에 대한 견제를 해야 되기 때문에, 먼저 견제 세력을 쳐버렸는데 (그 때문에) 상당히 이 공포 통치의 현상이 심각하죠."

    실제로 지난 5월까지 김정은 집권 기간 처형된 고위 간부는 70여 명으로, 김정일 집권 초기 같은 시기보다 일곱 배나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즉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김정은의 성격 역시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터뷰> 남주홍(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 "내가 어려서 후계 체제를 이어받았다고 함부로 나한테 했다가 내가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강한 집착증이 있어요.‘감히 내 앞에서 졸다니.’이게 현영철 같은 거예요. 과거에는 여러 차례 시험 기간을 거쳐서 하는 처리 행위를 급격하게 해버린다니까. 그것이 지금 김정은의 성향으로 봐야 돼요."

    나아가 군, 당 고위층 관료들의 계급 강등과 복권을 반복하며 충성 경쟁을 유도하는 전략도 김정은 식 공포통치의 특징이다.

    아버지 김정일이 집권 17년 동안 3명의 인민무력부장을 기용한 것과 달리 집권 4년 동안 인민무력부장을 다섯 번이나 교체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런 공포통치는 역효과도 가져온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이런 지속적인 유혈 숙청을 통한 공포 통치는 결과적으로는 단기적으로는 권력을 강화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엘리트의 결속을 약화시키고 신뢰감을 약화시킨다. 김정은이 그렇게 무모하게 즉흥적인 국정 운영을 하는데 만약에 직언하는 세력들이 없게 되면 사실 조기 경보 기능이 없어지는 거고, 결과적으로 김정은 체제 내구력에 현저한 약화를 초래하게 되는 거예요."

    최룡해의 해임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간부들을 향한 기강잡기에 나선 김정은 제 1위원장!

    하지만 공포통치는 결국 체제 불안을 부르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지적 속에, 김정은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