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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알라딘: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알라딘: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 인류의 위기에 대한  | 뉴아카이브 총서 

이도흠 (지은이)자음과모음2015-12-27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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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양장본840쪽145*225mm1150gISBN : 978895443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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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뉴아카이브 총서. 거리의 인문학자 이도흠이 동서양의 차이를 하나로 아우르는 원효와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마르크스를 가로지르며 우울한 이 시대의 한복판에 거침없는 직언을 던진다. 자본주의에 물든 '지금, 여기'에 대한 통렬한 시대진단이자 인간다운 삶, 진정한 공동체적 사회를 모색하는 한 사람의 도저한 사유와 글쓰기, 치열한 투쟁의 흔적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고, 이 자본주의의 병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서양과 동양 이론에서 일어난 각각의 문제를 서로의 장점으로 아우르고 적용하며 실천하는 것에서 인간다운 삶의 구현이 가능하며, 이에 대한 방편으로 원효와 마르크스라는 두 사상가를 과감히 마주 앉히고 대화를 시도한다.



저자는 총 10장에 걸쳐서 마르크스와 원효를 중심으로 서양의 사상과 이론을 불교와 결합해 인류사회의 위기를 분석하고 대안의 길을 종합한다. 원효의 화쟁 사상과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하되, 서양의 여러 사상과 이론을 망라.진단.분석한 다음 화쟁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개인의 깨달음과 사회변혁을 변증법적인 동시에 대대적으로 종합해 대안을 모색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목차

추천사

머리글



서문

방법



1장 전 지구 차원의 환경 위기

: 사회생태론 대(對)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연기론

-인류 공멸로 가는 완행열차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서양의 생태론에 대한 마르크스적 비판과 한계

-씨는 죽어 열매를 낳는다

-깨달음과 세상의 변혁은 하나다



2장 타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 학살

: 폭력론·평화론 대 변동어이(辨同於異)의 눈부처-차이론

-요한 갈퉁의 평화론과 그 너머

-마르크스의 폭력론과 그 너머

-집단학살의 원인과 동일성의 배제와 폭력

-변동어이의 눈부처-차이론



3장 인간성의 상실과 소외의 심화

: 소외론 대 진속불이(眞俗不二)의 눈부처-주체론

-노동의 의미

-현대인의 소외의 양상

-68혁명의 빛과 그림자

-진속불이 통한 눈부처 주체의 공감과 연대



4장 제국의 수탈 및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모순

: 세계혁명론 대 화쟁의 사회경제학과 눈부처-공동체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축적 방식

-신자유주의 모순의 양상

-개량적 대안에서 마르크스적 대안으로

-세계 체제의 혁신과 눈부처-공동체의 사회경제학



5장 과학기술의 도구화와 상품화

: 과학기술주의 비판 대 일심의 체용(體用)론

-과학기술의 도구화와 디스토피아

-신과학운동과 비판

-과학과 정신의 종합

-화쟁의 과학



6장 근대성의 위기

: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대 인언견언(因言遣言)론

-근대성의 모순

-중세성.근대성.탈근대성의 개념 차이

-언어와 진리는 만나지 못하는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마르크스적 비판과 대안



7장 분단모순의 심화와 동아시아의 전쟁 위기

: 변증법적 통일론 대 동아시아 화쟁체제론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위기 상황

-한반도·동아시아 평화 체제를 향한 장애 및 대안

-일심이문의 화쟁과 동아시아 화쟁공동체

-변증법적 종합과 화쟁에 의한 7단계 통일 방안



8장 욕망의 과잉

: 욕망 이론 대 화쟁의 마음론

-욕망을 욕망하는 사회의 풍속도

-자본주의, 욕망의 자유로운 흐름과 억압

-유식학과 유물론의 종합, 눈부처 마음

-욕망의 절제와 깨달음의 길



9장 정보화사회의 모순

: 디지털정치경제학 대 순이불순(順而不順)의 공유경제론

-디지털사회의 빛과 그늘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의 차이

-디지털사회경제학: 정보화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적 분석

-따르기도 하고 따르지 않기도 하는 화쟁의 디지털사회



10장 가상성과 재현의 위기

: 재현의 위기론 대 화엄의 현실론

-재현의 위기론의 타당성과 한계

-기호에 물질성을, 텍스트에 맥락을 부여하라

-역사·현실과 허구·환상 사이의 화쟁

-대안의 모색



맺음말



미주

참고한 필자의 논저

인명 색인

용어 색인



접기

책속에서

P. 102 화쟁적 합리성은 연기론에 입각하여 자신과 모든 타자가 영겁의 차이와 반복의 과정에 있음을 깨달아 자기의 동일성을 해체하고 타자와 나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인간과 자연, 나와 타자가 서로 작용하고 역동적 인과관계를 형성하며 서로 의지처(依支處)로 삼고 있음을 깨달아 그를 살려 나를 살리기 위하여, 내 안에 자연과 타자가 있고 자연과 타자 안에 내가 있음을 느끼고서 서로를 닮기 위하여, 내 앞의 세계의 부조리와 모순을 합리적으로 인식하고 비판하면서 자연과 생명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한다.  접기

P. 173 똑바로 상대방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상대방의 눈동자 안에 비친 내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이를 한국어로 ‘눈부처’라 한다. 이는 물론 그 형상이 부처의 모습과 닮은 데서 연유한 것이다. 여기에 필자는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눈부처는 상대방을 만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가까이 가서 눈을 마주치며 하나가 되고자 할 때만 보인다. 이는 내 모습 속에 숨어 있는 부처, 곧 타자와 자연, 나보다 약한 자들을 사랑하고 포용하고 희생하면서 그들과 공존하려는 마음이 상대방의 눈동자를 거울로 삼아 비추어진 것이다. 그 눈부처를 바라보는 순간 상대방과 나의 구분이 사라진다. 눈부처는 타인 안의 부처이자 내 안의 부처다.  접기

P. 254~255 공포에 맞서고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진정으로 소외를 극복하려면, 대중은 눈부처-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눈부처-주체는 타자와 무한한 연관 속에서 차이와 가유(假有)로서 주체를 형성하는 자다. 그는 주체로서 모든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소극적 자유를 추구함은 물론, 자연과 세계를 이해하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노동과 실천을 통해 이에 적응하거나 맞서면서 자기를 실현하고 수행과 성찰을 통해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적극적 자유 또한 구현한다. 하지만 눈부처-주체는 이에 머물지 않고 동일성의 사유를 뛰어넘어 타자 속에서 불성을 발견하여 그를 부처로 만들고, 그를 자유롭게 하여 자신의 자유를 완성하는 자다.  접기

P. 263 자본주의는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착취에 기대어 끝없이 경쟁하면서 확대재생산을 거듭하는 거대한 괴물이다. 인간의 사물화와 계급 갈등, 소외, 대부분의 범죄의 근본 동인이면서도 이 체제가 유지되는 비결은 무엇인가. 이윤에 대한 열망이 개인의 차원에서는 열심히 일하게 하고 자본과 국가 차원에서는 기술개발, 성장과 발전에 투자하고 인력과 능력을 집중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본들이 권력과 이윤을 독점하고 더 많은 이득을 얻는 방향으로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을 조종하기 때문이다. 대중 또한 돈을 신처럼 숭배하면서 자신의 화폐와 부를 늘릴 수 있다는 환상에 취하여, 더 좋은 상품을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하여 타인과 다투듯 경쟁하여 더 많은 돈을 버는 데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온통 투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접기

P. 321 이제 진보는 디지털사회에 맞게 패러다임을 혁신하고, 계급의식, 연대 정신과 동지애, 이타적 협력을 바탕으로 투쟁심과 따뜻하고 인간적 품성을 겸비한 진보로 거듭나야 하며, 종파주의를 극복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담대한 진보가 되어야 한다. 대다수는 지역으로 내려가서 노동조합, 농민조직, 민중의 집, 협동조합, 인문교실, 대안학교를 하나로 아우르는 지역의 코뮌을 건설하고 진보지역네트워크를 구성하여야 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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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필자는 사회적 문제의식이 충만한 인문학자이자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싸워온 실천적 지식인이다. 그는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에 기반을 두고 대중의 눈부처-주체로의 등장과, 탐욕과 착취의 자본주의를 끝장내고 새로운 코뮌적 공동체로의 이행을 모색한다. 진보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성찰해보길 바라는 모든 분께 일독을 권한다. - 김세균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 글묵(책)은 ‘말뜸’이다. 말을 하되 온몸으로 하는 말, 다시 말해 문제의 제기요, 해결이다. 이 글묵은 ‘길내(과학)’의 샘이다. 원효와 마르크스, 두 사상가를 마주 앉히되 둘이 걸치고 있는 모든 것, 사상과 이론뿐이랴, 권위와 명예, 품새까지 홀랑 벗겨 신자유주의의 폭학과 만행에 정면으로 부대끼게 했다. 이 글묵은 ‘한내’다. 일꾼들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땀 한 방울, 피 한 방울, 눈물 한 방울이 모여서 큰 흘떼(강)를 일구는, 이 우주를 이르는.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이 책은 무엇보다도 이 시대가 당면한 절실한 주제를 매우 성실하고 포괄적으로, 그리고 깊이 있게 논의하고 있다. 학문이 현실 문제를 도외시하고 다만 순수한 이론적 탐색에 머물러 있을 것이란 편견을 송두리째 깨는 이론적 작업이 이 책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는 글을 위한 글을 쓰지 않는다. 현장으로 달려가 아파하고 공감하고, 함께하면서 이를 성찰하고 이론적 작업을 거쳐 글을 쓴다. 그의 글에는 부족함이 있을지언정 거짓이나 꾸밈은 없다. 그래서 그의 글은 믿을 수 있다. 나는 남김없이, 또 주저 없이 이 책을 권한다. 이제는 한계에 이른 이 시대를 넘어설 새로운 사유의 계기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신승환

정의와 평화를 향한 이도흠 교수의 신념과 열정은 금생만의 것이 아닌 듯하다. 국문학자이며 불교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줄기차게 이론과 실천의 종합을 꾀하며 ‘거리의 인문학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한 지 이미 오래다. 인간이 한낱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고 환경재앙과 경제공황의 유령이 출몰하는 이 위기의 시대에 저자는 이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를 통해 한 줄기 푸른 희망의 바람을 풀어놓는다. - 박경준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장, 불교학과 교수)

저자 및 역자소개

이도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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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학연구소 소장, 계간 『문학과 경계』 주간, 민교협 상임의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기호학회 회장,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지순협 대안대학 이사장 재임 중. 지은 책으로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등이 있다.

수상 : 2016년 유심작품상

최근작 : <과학기술 글쓰기>,<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교사 인문학> … 총 28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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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NASA 과학자 아빠가 들려주는 우주생물학>,<스토리 답사 여행>,<각도와 비례를 알면 나도 마술사>등 총 1,319종

대표분야 : 청소년 소설 6위 (브랜드 지수 196,391점), 초등 한국사 13위 (브랜드 지수 21,446점), 학습법 20위 (브랜드 지수 7,926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거리의 인문학자 이도흠,

동서양의 차이를 하나로 아우르는 ‘원효’와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마르크스’를 가로지르며

우울한 이 시대의 한복판에 거침없는 직언을 던지다!



★ 책 소개

자본주의에 물든 ‘지금, 여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시대진단, 새로운 대안의 패러다임



‘거리의 인문학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불리며 노동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대변하며 싸워온 한양대 국문학과 이도흠 교수. 그동안 4대강사업 반대운동, 희망버스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복직운동, 세월호 참사 등 한국 교수 가운데 집회와 투쟁 현장에 가장 많이 참여하며 한국 사회 변혁에 앞장서온 이도흠 교수가 오랜 세월간의 고민과 현장에서의 투쟁을 아로새긴 신간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자음과모음, 뉴아카이브 총서)를 내놓았다. 이 책은 자본주의에 물든 ‘지금, 여기’에 대한 통렬한 시대진단이자 인간다운 삶, 진정한 공동체적 사회를 모색하는 한 사람의 도저한 사유와 글쓰기, 치열한 투쟁의 흔적이다.

책의 부제인 ‘인류의 위기에 대한’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고, 이 자본주의의 병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서양과 동양 이론에서 일어난 각각의 문제를 서로의 장점으로 아우르고 적용하며 실천하는 것에서 인간다운 삶의 구현이 가능하며, 이에 대한 방편으로 원효와 마르크스라는 두 사상가를 과감히 마주 앉히고 대화를 시도한다. 일견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 두 사상가의 대화를 저자가 시도한 까닭은, 마르크시즘을 비롯한 서양 이론이 지닌 실체론과 이분법, 동일성의 문제를 불교의 연기론과 퍼지(fuzzy)식 논리, 차이의 사유를 통해 새로운 그릇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고, 관념론에 치우쳐 과학성과 합리성을 결여한 불교의 문제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과 방법론을 지향하는 마르크스와 서양 이론을 통해 유심론과 유물론을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를 통해 결국 저자는 ‘서로가 깊은 연관을 맺고서 찰나의 순간에도 서로 조건이 되고 영향을 미치고 의지하며 서로를 만들어주는 상호생성자(inter-becoming)’로서의 삶, ‘타인을 생성시키고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자기 안의 인간다운 본성을 형성하는 눈부처-주체’로서의 삶을 살기를 제안하고,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자본주의의 해체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 자본주의의 해체는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를 통해 가능하다고 믿고 그 믿음을 실제로 이루어가려는 노력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는 인류에게 닥친 전 지구적 위기를 더는 부정하거나 망각할 경우 희망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인류 및 한국 사회의 핵심 위기에 관한 10개의 주제를 ‘전 지구 차원의 환경 위기’ ‘타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과 학살’ ‘인간성의 상실과 외의 심화’ ‘제국의 수탈 및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모순’ ‘과학기술의 도구화와 상품화’ ‘근대성의 위기’ ‘분단모순의 심화와 동아시아의 전쟁 위기’ ‘욕망의 과잉’ ‘정보화사회의 모순’ ‘가상성과 재현의 위기’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원효의 화쟁 사상과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하되, 서양의 여러 사상과 이론을 망라.진단.분석한 다음 화쟁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개인의 깨달음과 사회변혁을 변증법적인 동시에 대대적(對待的)으로 종합해 대안을 모색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다시금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에 있는지, 진보란 무엇인지 성찰할 수 있을 것이고, 아직 끝나지 않은 자본주의에 대한 논쟁을 해결하고 우리 공동의 행복으로 나아가는 삶의 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

자본주의의 해체 없이 인간다운 삶과 공동체는 불가능하다”



1장 「전 지구 차원의 환경 위기: 사회생태론 대(對)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연기론」에서는 38퍼센트의 생물이 멸종 위기에 있는 환경위기의 실상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대안인 서양의 생태론과 마르크스의 자연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인간과 자연을 둘로 나누고 전자에 우월권을 주는 서양의 폭력적 이분법의 패러다임에서는 홍수를 막기 위해 인간이 자연의 도전에 맞서서 댐을 쌓는 방식의 대안을 제시하며, 이는 물이 흐르면서 스스로 정화하는 것을 막아 오염시킨다. 반면에 불일불이의 패러다임에서는 댐을 헐어버리고 강의 유역을 넓혀 실개천을 조성하고 숲을 만든다. 씨와 열매 각각은 공(空)하지만 씨가 자신을 죽여 열매를 맺고 열매가 자신을 썩혀 씨를 생성하듯, 실제로 함양의 태수였던 최치원이 위천의 홍수를 막기 위해 조성한 함양의 숲, 상림(上林)은 물이 나무의 양분이 되고 나무가 물을 품어주는 방식으로 천여 년 동안 홍수를 막으면서도 물이 맑게 흐르게 했다. 이처럼 불일불이의 패러다임에 따라 모든 생명이 공존하는 화쟁의 생태론을 펼치면서 마르크스를 생태론적으로 재해석하며 인간의 자연화와 자연의 인간화를 종합한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한다.



2장 「타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 학살: 폭력론 · 평화론 대(對) 변동어이(辨同於異)의 눈부처-차이론」에서는 요한 갈퉁의 평화론과 마르크스의 폭력이론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면서 인간의 폭력과 집단학살의 원인이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순전한 생각 없음’이나 스탠리 밀그램이 지적한 ‘상황과 권위에 대한 복종’만이 아니라 타자를 배제해 동일성을 강화하려는 데서 비롯함을 밝힌다. 나아가 원효의 변동어이론을 현대적으로 해석, 찰나의 순간에도 나의 호흡으로 대기가 변하고 그 대기가 동시에 나와 타인의 몸으로 들어가서 몸을 변화시키듯, 인간 존재가 서로 영향을 미치고 조건이 되고 인과관계를 맺으면서 서로를 생성하는 상호생성자(inter-becoming)로서 눈부처-주체임을 제시하며 동일성으로 회귀하지 않는 눈부처-차이를 통한 공존의 철학,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한 연대, 구조적 폭력의 제거를 통한 적극적 평화 등의 대안을 펼친다.



3장 「인간성의 상실과 소외의 심화: 소외론 대(對) 진속불이(眞俗不二)의 눈부처-주체론」에서는 마르크스와 프랑크푸르트학파 이론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물화와 소외의 원인과 양상을 분석하고 이의 대안이었던 마르크스의 노동이론, 혁명론과 68혁명의 사례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진화생물학과 인류학, 인지과학을 종합해 인간이 이기와 이타,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타인에게서 빼앗아 소유하려는 동시에 거울신경체계(mirror neuron system)를 통해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모순적 존재임을 밝히고, 진속불이론을 재해석,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를 자유롭게 하는 순간에 진정으로 자유를 완성하는 개인들의 연합에 의한 코뮌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4장 「제국의 수탈 및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모순: 세계혁명론 대(對) 화쟁의 사회경제학과 눈부처-공동체론」에서는 1퍼센트가 전체 부의 20퍼센트를 독점하면서 불평등을 심화하고 민주주의마저 해체하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분석하고, 마르크스는 물론 피케티와 스티글리츠 등의 대안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거대 이윤의 원천은 시장이 아니라 시장의 작동을 억제하는 독점이기에 공정한 시장이나 윤리적 자본주의란 불가능한 유토피아다. M(자본)-C(상품 생산)-M'(잉여가치 착취를 통해 축적된 자본)에서 M-C축에서는 희망버스와 같은 노동거부로, C-M'축에서는 욕망의 자발적 절제에 의한 소비의 최소화로 자본주의를 해체하는 실천이 필요하지만 여러 요인으로 쉽지 않다. 불교의 노동관과 호혜적 교환에 바탕을 둔 화쟁의 사회경제학을 정립하고, 정과 한의 신명을 바탕으로 한 한국의 두레 공동체를 계승하고 마르크스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과 다산 정약용의 여전제를 종합, 타자와 연대하면서 세계의 부조리와 불의에 저항하는 눈부처주체들이 공동생산하고 정의롭게 분배하면서 개인의 이기심도 충족하는 눈부처공동체를 지역 곳곳에 세우고 나아가 세계공화국을 건설한다.



5장 「과학기술의 도구화와 상품화: 과학기술주의 비판 대(對) 일심(一心)의 체용(體用)론」에서는 미신과 주술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던 과학이 현대사회와 자본주의 체제에서 도구화하고 상품화하는 것을 비판함과 아울러 이의 대안이었던 신과학의 사이비성과 신비주의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양자물리학과 진화생물학, 인류학을 바탕으로 우주의 창조와 생명의 진화, 인류의 형성에 신이 관여한 흔적이 없으며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히면서도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에나 계신 신의 의미를 따져보고, 과학과 정신을 종합한다. 원전마피아 등 과학이 자본에 종속되는 것을 해체하고 과학의 윤리성과 객관성을 담보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진리가 작용과 운동을 통해 드러나면서 현상을 구성하는 동시에 감추고, 현상이 다시 진리를 품는 작용과 현상과 진리 사이의 관계망을 밝히면서 석굴암처럼 자연의 원리에 따라 엔트로피가 제로에 가까운 새로운 과학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6장 「근대성의 위기: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대(對) 인언견언(因言遣言)론」에서는 토대와 상부구조의 틀에서 중세성과 근대성, 탈근대성의 개념을 총체적으로 규정하고, 환경위기, 소외의 심화, 이성중심주의 등 근대성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데리다 등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과 이론의 오류와 한계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소쉬르, 퍼스 등의 기호학과 불교의 언어관을 비교하면서 언어의 공성(空性)에 대해 따져본 다음 마르크스와 원효를 종합해 ‘지금 여기에서’ 진리를 확정하고 이를 향해 실천하는 길, 텍스트와 기표에 맥락과 역사를 부여하고, 이성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소통적인 합리성을 추구하고, 주체의 동일성의 폭력을 넘어서서 세계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실천하면서도 타자와 상생하는 길을 모색한다. 예술적 차원에서는 현실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반영상과 프리즘처럼 굴절하는 굴절상의 화쟁을 추구한다.



7장 「분단모순의 심화와 동아시아의 전쟁 위기: 변증법적 통일론 대(對) 동아시아 화쟁체제론」에서는 먼저 통일의 장애와 극복책에 대해 따져본다. 남북 대결과 핵위기는 6자회담에서 핵과 평화협정을 맞바꾸어 한반도 평화 체제를 세우는 것으로, 점증하는 민족주의 및 타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 문제는 각국이 동일성에서 화쟁의 공존공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것으로, 권력의 비대칭과 미국의 개입 문제는 구조적 폭력을 해소하는 적극적 평화 체제를 수립하는 것으로, 신자유주의 모순의 심화는 동아시아 시민과 서발턴(하위주체)의 연대를 바탕으로 화쟁의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으로 극복한다. 남북한의 통일은 자주, 평화, 정의와 복지, 인권과 생명 중시, 민주주의의 대원칙 아래 7단계의 통일방안을 실천한다. 곧, ① 남북의 통일을 위한 최소 합의를 하고, ②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③ 남한과 북한 사이의 다양한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며, ④ 남북한의 시민을 대표로 하는 ‘화쟁코리아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북에 자본주의 마을과 정당, 남에 공산주의 마을과 정당을 세워 서로 대대적으로 회통하는 화쟁 코리아를 건설하며, ⑤ 남북의 국가연합을 하고, ⑥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전환하고, ⑦ 완전한 통일국가를 이룩한다.



8장 「욕망의 과잉: 욕망이론 대(對) 화쟁의 마음론」에서는 프로이트와 라캉을 바탕으로 인간과 본능, 욕망, 욕동의 관계를 살피고, 마르크스와 들뢰즈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욕망의 흐름과 탐욕이 증대된 원인과 양상을 살핀다. 정신과 육체, 유심론과 유물론, 더 나아가 불교의 유식학과 마르크시즘, 정신분석학, 인지과학, 진화생물학을 한데 종합하여, 우주기원종자와 생명기원종자, 인류기원종자 등 여러 종자들과 기억인자들이 알라야식에서 마나스식, 전육식을 오고 가며 뇌의 신경세포와 시냅스를 통하여 발현하며 마음을 작동하는 원리를 밝힌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윤리적 당위일 뿐이고 인류학과 생물학을 종합하여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확대하려는 본능을 지향하는 ‘생존기계(survival machine)’이자 사회를 형성하여 타자와 협력하면서 공존을 모색하는 유전적 키메라(genetic chimera)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에게 선의 종자만 발아하여 선의 꽃밭을 만들고 악의 종자는 발아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8가지-① 노동과 생산의 분배를 정의롭고 공평하게 관장하는 체제 ② 타자에 대한 공감, ③ 의미의 창조, ④ 사회 시스템과 제도, 문화 ⑤ 문화, 타자의 시선 및 행위, ⑥ 수행, ⑦ 공감협력 교육을 비롯한 집단학습, ⑧ 법과 규약-이다.



9장 「정보화사회의 모순: 디지털정치경제학 대(對) 순이불순(順而不順)의 공유경제론」에서는 정보화사회에 대해 정치, 경제, 사회문화영역으로 나누어 정보의 공유와 집단지성을 통한 민주화와 세계화 등 밝은 면과 정보격차, 혼란, 제국주의화, 전체주의화 등 어두운 면을 냉정하게 통찰한다. 마르크스를 바탕으로 정보재의 가치 문제를 분석하고 디지털 지대는 등가교환이지만, 포털의 경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처럼 네티즌의 쏠림에 의하여 독점적 성격을 갖기에 부등가교환으로 전환하며, 초기에는 기술혁신에 의하여 초과이윤이 발생한 것이기에 평등교환이지만, 점차 이 부분은 희미해지고 네티즌의 접속에 의해 초과이윤이 발생하기에 불평등교환으로 전환함을 밝힌다. 아울러, 제러미 리프킨의 한계비용제로와 공유 경제의 가능성과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 따르기도 하고 따르지 않기도 하는 순이불순의 원리와 집단지성을 바탕으로 자본주의를 해체하고, 잉여가치의 착취와 노동의 소외가 없는 화쟁의 공유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10장 「가상성과 재현의 위기: 재현의 위기론 대(對) 화엄의 현실론」에서는 복사본이 원본을 대체하고 소설과 영화가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대중이 영화나 광고를 흉내내어 현실을 구성하고 가상성과 현실이 공존하고 이미지와 기표가 의미를 대체하는 디지털 사회의 재현의 위기론(the crisis of representation)의 타당성과 한계에 대하여 사회문화, 기호학, 철학, 예술의 영역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이에 대하여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기호와 텍스트에 물질성과 맥락을 부여하고 권력의 해석지배에 저항하는 길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화엄사상을 매개로 현실과 환상, 역사와 현실, 영화와 현실 사이의 화쟁을 이루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는 한편, 가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매트릭스적 실존 속에서 상상계, 상징계, 현실, 이데올로기 및 각종 환상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거짓과 허상을 밝혀내고 주체적인 현실을 구성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저자 이도흠은 이렇게 총 10장에 걸쳐서 마르크스와 원효를 중심으로 서양의 사상과 이론을 불교와 결합해 인류사회의 위기를 분석하고 「맺음말」에서 대안의 길을 종합한다. 이 작업을 통해 저자가 내린 결론은 크게 세 가지다.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 체제에 있고 자본주의의 해체 없이 인간다운 삶과 공동체는 불가능하다. 자본주의는 앞으로 50년 안에 이윤율의 저하, 재생에너지, 집단 지성과 공유경제, 지역 공동체와 협동조합 등 새로운 흐름과 대중의 운동에 의해 붕괴되고 새로운 세계가 들어설 것이다. 이는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소극적 자유(from freedom), 거듭남과 깨달음, 진정한 자기실현을 이루는 적극적 자유(to freedom), 타자와 연대하여 그를 행복하게 하는 적극적 자유(for freedom)를 종합한 눈부처주체에 의한 화쟁의 세계 체제다.



★ 이 책의 특징과 장점

1. 새로운 패러다임과 구체적인 대안 제시

원효의 화쟁 사상을 바탕으로 서양의 포스트모던 철학을 넘어서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도 마르크스와 서양의 이론을 적용,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2. 이질적인 마르크스와 불교의 종합

마르크스와 원효의 원전을 꼼꼼하게 해석해 인류와 한국 사회의 위기를 분석하고 종합한다. 저자는 개인의 변화와 세계의 변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고, 초역사적이고 관념적인 불교에는 마르크스와 서양이론을 통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틀과 방법론, 역사성과 사회성을 결합한다. 그리고 마르크시즘에는 불교의 이분법과 실체론을 넘어선 중도와 연기의 패러다임을 입히고 일심을 지향하도록 한다.



3. 여러 학문의 융복합은 물론 최근의 세계 학계의 성과를 회통함

동양과 서양, 문학과 철학, 역사만이 아니라 진화생물학, 인류학, 인지과학, 양자물리학, 사회학 분야의 2014~2015년의 세계 학계의 최근의 성과를 수용해 하나로 회통하고 있다.



4.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를 통한 분석

진보진영의 논의가 대개 당위적이고 선언적인데, 국내외 연구소, 국제기구의 보고서와 국내외 신문에 실린 최근의 구체적인 통계와 수치, 자료를 최대한 수집해 이를 바탕으로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한 후에 진단하고 평가하면서 대안을 제시한다.



5. 난해한 사상을 쉽게 에세이 형식으로 기술하면서도 웅숭깊게 함

원효와 마르크스는 물론, 들뢰즈, 데리다, 라캉 등 난해한 사상과 이론을 장황하지 않은 범위에서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하며 자신의 생각을 담아 종합하고 있다.



6. 현장과 책상머리의 종합

인문학이 ‘지금, 여기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공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저자는 투쟁 현장과 책상을 오고 가며 직접 몸으로 겪은 현실과 이를 깊이 있게 분석하는 이론을 끊임없이 변증법적으로 종합했기에 현장성이 있으면서도 일반화하며 보편적 설득력을 담고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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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다.

긍정의 기대는 크지 않다.

화쟁의 한계를 알기 때문이지 모른다.

자본주의의 멸망 이후를 대비하는 책이라고 말한다.

너무 단순한 생각 아닌가.

화쟁위원회가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에게 했던 짓으로 이 책의 허구는 드러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구매

마른하늘날벼락 2016-08-1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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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9

‘왜 인도에서 불교는 멸망했는가’ - 불교신문

‘왜 인도에서 불교는 멸망했는가’ - 불교신문



‘왜 인도에서 불교는 멸망했는가’

 승인 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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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슌지 저서-김호성 교수 번역 출간



불교의 발생지 인도에서 불교는 거의 없다. 인도 북부에 남아있는 일부 불교성지와 그 주변의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건립한 사찰들을 제외하면 불교 흔적을 찾기 힘들다. 인구 11억 중에서 불교신자는 극소수다. 인도에서 불교가 왜 사라졌을까. 그 원인을 놓고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있었다. 기존 학설은 크게 두 가지다. 외적으로는 이슬람에 의한 파괴며 내적으로는 불교가 정체성을 잃고 힌두교로 흡수되었다는 것이다.



일본 학자 호사카 슌지 교수의 <왜 인도에서 불교는 멸망했는가>는 이슬람 사료로 불교 멸망의 원인을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사진> 동국대학교 출판부 ‘한걸음더’에서 출판한 ‘왜 인도에서 불교는 멸망했는가’ 표지.









이슬람 사료로 印불교 멸망이유 추적

           



 사회ㆍ종교성 침묵이 신도축소로 이어져



 한국ㆍ일본 등 현재의 불교국가에 ‘교훈’



                     



저자는 인도불교를 종교교단으로서의 불교라는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인 존재 즉 일종의 정치집단이며 경제조직, 즉 문명으로 접근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분석틀을 인도사회가 아니라 유라시아 전체로 넓혀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변동이라는 측면에서 불교의 멸망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와 힌두교는 인도사회에서 한 뿌리에서 나온 공존관계였다. 지역과 민족 문화영역에서 많은 부분을 힌두교와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수파 힌두사회에서 생존이 허용되었다. 불교와 힌두교는 이념적으로는 차이가 컸지만 문화적 기반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이 공존이 이질적인 이슬람이 유입되면서 흔들린다. 이슬람은 그들과 같은 뿌리로 동일한 신앙을 가진 유대교 기독교 사비아 교도 외에는 이교도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슬람의 적대적 정책에 대해 불교는 대항할 수단을 갖지 않았다. 교리는 군사적 대응을 부정했다. 즉 이슬람에 끝까지 대응해야 할 종교적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반면 힌두교는 인도의 자생종교로 문화적, 그리고 관혼상제와 같은 일상의 면에서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양자는 생존을 걸고 서로 다투게 되었다. 그 싸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인도사회에서 갈등이 힌두교와 이슬람으로 편제되면서 불교는 양측에 흡수되어 갔다. 불교적 사상이나 습관이 각 종교의 교리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에서 불교는 흡수돼 간 것이다. 현재의 힌두교 속에 남아있는 많은 불교적 요소와 이슬람의 수피즘은 그 증거다. 이를두고 일부에서는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힌두교 안에 살아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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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부처님이 성도한 부다가야의 탑. 인도북부의 일부 불교성지를 제외하고 인도에서는 불교가 사라졌다. 그 이유를 정치경제적 입장에서 다룬 책이 바로 ‘왜 인도에서 불교는 멸망했는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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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종교가 단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양식 즉 생활의 수단이며 생존의 기본인데 개종이 가져다 주는 변화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 의문에 대해 김호성 교수는 역자 후기에서 질문과 함께 해답을 제시한다. “인도사회에서 불교는 카스트 제도를 비판하면서 하나의 평등 이데올르기로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즉 힌두교가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하나의 대항세력 대항종교로서 기능했던 것이다. 그것은 불교가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점이 사회적 역할면에서 보다 강력한 ‘안티 힌두교’인 이슬람교를 만나서는, 그러한 역할을 이슬람에 넘겨주게 됨으로써 불교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아이러니를 낳았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김호성 교수는 이어 “불교라는 종교 안에서 사회적 기능이나 역할 외에 마지막 까지 사회적인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종교로서의 불교’가 갖고 있었던 것은 정녕 없었다는 말인가”라고 물으며 불교가 앞으로도 존속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역할을 다하면서도 고유의 불교적인 그 무엇을 창출하고 내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책이 과거 인도에서의 불교 멸망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사회 혹은 일본이나 다른 불교국가에 화두를 던지는 이유다. 저자 호사카 ?지 교수는 몇 해전 옴진리교가 저지른 지하철 테러 사건에 대해 일본 불교계가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 책의 개정판을 썼다고 했다. 한국불교계의 ‘침묵’은 그보다 훨씬 심하다. 어떤 때는 사회의 흐름과 거꾸로 갈 때도 적지 않다. 한국불교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사회에 강력하게 각인시키고 있는지도 회의적이다.



해방 후 90%대에 이르던 불교신자가 불과 60여 년만에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것은 ‘문명적 개종’과 다름없어 보인다. 인도의 불교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임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불교신문 2444호/ 7월19일자]

2020/03/27

알라딘: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그리스도교 생태철학

알라딘: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그리스도교 생태철학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그리스도교 생태철학
김대식 (지은이)문사철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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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김대식의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그리스도교 생태철학>. 자연, 종교, 그리고 인간의 협화(協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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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들어가는 말_
이제는 종교가 우주적으로 깨어나야 할 때: 어떤 존재라도 생명 아닌 것이 있을까요?



제1부

1. 함석헌의 생명철학과 영성, 그리고 씨알 에코에티카 두울

2. 함석헌의 사상을 생태적으로 읽기 ⑴

3. 함석헌의 사상을 생태적으로 읽기 ⑵

4. 함석헌이 말하는 으뜸이 되는 가르침과 얼

5. 함석헌을 살아야 합니다!

6. 이루지 못한 함석헌의 계몽적 이성

7. 함석헌의 ‘기억’의 신학과 영성적 철학

8.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내며, 한국교회를 탄하다!

9. 정부의 종교적 편향, 씨알의 마음이 아닙니다!

10. 한국교회 영성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비판적 고찰

11. 우리는 숫자가 아니다!

보론 | 생명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과 생명미학적 정치



제2부

1. 환경목회, 세계와 교회의 또 하나의 거룩한 소통입니다!

2. 자연을 ‘배려’하는 환경목회

3. 환경목회, 생태적 문화영성의 실현

4. 소비세계를 향한 외침,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애덕’은 죽었는가!

5. 성 베네딕도의 ‘겸손의 영성’과 생태적 리더십

6. 빙엔의 힐데가르트의 ‘바라봄’의 영성과 생태미학

7. 생태인류학의 선구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우주적 지성(직관)으로 땅과 하늘을 잇다!

8.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의 영성과 생태심리학

9. 성 이냐시오 로욜라와 생태영성

10. 에디트 슈타인의 영성과 현상학적 환경철학

11. 토마스 머튼의 하나님 맛봄의 영성과 범지구적 활동 관상

12. 21세기 지구를 위한 영성과 환경목회의 방향

보론 | 수도원의 탈시공간의 의미와 수도자의 식탁, 그리고 대안적 먹거리 공동체의 가능성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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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대식 (지은이)

1967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종교학과 철학으로 각각 박사학위를 받은 후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서울신학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시간강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숭실대학교, 원광디지털대학교 등에 출강하면서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종교연합(URI-Korea) 지도위원,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 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씨알의 희망과 분노》(공저),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 성서해석 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식탁의 영성》(공저), 《망각의 해석학》(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생태영성의 이해》,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예수와 신앙 언어》,
《함석헌과 이성의 해방》,
《그리스도교 감성학》,
《함석헌의 평화론》,
《아시아 평화공동체》(공저),
《인문학적 상상력과 종교》(공저),
《치명적 자유의 향연: 아나키즘과 함석헌》(공저),
《켜켜이 쌓인 시간을 풀어주는 사람》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종교 간 고통에 대한 해석학적 성찰과 유동적 종교>, <생명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과 생명미학적 정치> 등이 있다. 주요 관심분야는 아나키즘과 현상학적 인식론 및 존재론을 기반으로 하는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회주의 해석, 기술철학과 정치미학, 해체구성적 종교이다. 접기

최근작 :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그리스도교 생태철학>,<켜켜이 쌓인 시간을 풀어주는 사람>,<치명적 자유의 향연 : 아나키즘과 함석헌> … 총 2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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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자연, 종교, 그리고 인간의 협화(協和) 이야기

자연과 종교, 그리고 인간에 대한 상생은 인위적(人爲的) 삶의 이야기를 용인하지 않습니다. 초월, 하늘, 생명, 하나님, 자연, 인간의 신성한 들숨날숨은 무위적(無爲的)입니다. 꼭 그래야만 인간이 자신의 의식이 신성에서 기원한다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하인리히 하이네(H. Heine)의 감동적인 말이 이를 대변합니다. “신이 가장 장엄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곳은 인간이다.”

이러한 연속성의 고리를 잘 꾀고 있는 함석헌의 종교와 삶,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이야기는 에코-아나키즘(Eco-anarchism)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 책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그리스도교의 성인들이라 간주되는 인물들이 말하는 자연 이야기는 비록 체제적, 제도적, 조직적 교회에 토대를 둔 것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신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자연 안에 녹아 있음을 천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이네가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를 앞세워 말하듯이, 서양철학의 한 축을 형성하는 독일철학의 바탕에는 ‘범신론’(pantheism)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찌감치 성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도 “세계는 신과 동일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자연 안에 있으면서 그 위에 군림하는 듯이 인간의 우월성을 말한다면 어불성설입니다. 모두 존재는 실체인 신의 양태이며, 인간조차도 무한한 연장의 한 원자일 뿐입니다. 생명의 아르케(arche)는 오로지 신으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인간이 아르케가 아닙니다(an-arche).

하이네가 이를 토대로 “신은 정신일 뿐만 아니라 물질이고, 이는 두 가지 모두 똑같이 신이다”라고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그리스도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종교는 이야기 공동체입니다. 
물질적 세계인 자연을 벗 삼아 인간이 상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종교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가(종교인식론), 나아가 미래의 종교 공동체가 어떠한 새로운 생명적 이야기를 발생시키는가(생명존재론)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함석헌은 생명, 씨???, 뜻, 하늘, 하나님을 크게 구분 짓지 않고 사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도 범신론자라 규정한다면 오류를 범하는 것일까요? 

인간이 아르케가 아니라 씨???이 아르케가 되어야 한다는 함석헌의 논리는 인간의 오만을 지적하고 그 아르케가 모든 생명에도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하늘의 신성한 몫을 부여받은 모든 생명의 평등성, 곧 아나키즘(anarchism)의 핵심적 가치인 상호부조의 연장적 사유를 풀어 밝히기 위해서 이루어진 작업입니다. 이에 생명의 차별적 폭력에 균열을 내고 무차별적 인식의 전환으로 나아가자는 저자의 ‘느슨한’ 발화수반행위(illocutionary act)에 독자들의 실천적 참여를 기다립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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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기 위함 그리고 의미를 되새시게 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 2020-01-0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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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영성 새창으로 보기

영성은 바람처럼, 불처럼, 물처럼, 흙처럼 살아야 함을 넌지시 일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연스럽게 사는 것, 신의 뜻에 역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내맡겨짐'의 삶입니다.

- 2020-01-01 공감(0) 댓글(0)


2019/03/12

알라딘: 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최준식 2009





알라딘: 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최준식 (지은이) | 모시는사람들 | 2009-10-25



정가 10,000원
판매가 9,500원 (5%, 500원 할인) | 무이자 할부


반양장본 | 208쪽 | 140*210mm | 270g | ISBN : 9788990699787


한국인의 정신세계의 근저에 기층문화로서 자리 잡고 있는 무교(巫敎)가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미신’이자 ‘무속’으로 왜곡되고 비하되어 왔는지 살펴보는 책이다. 저자는 한국 종교의 기본 코드는 표층의 유교(儒敎)보다 더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무교라고 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종교 전반을 일별한다.

책은 결론적으로 “종교로서의 무교”를 제자리에 복권시킴으로써, 정신세계의 실제(무교)와 현상(외래종교, 기성종교) 사이의 괴리로부터 빚어지는 한국사회 정신문화, 종교문화의 부조리와 파행을 치유하고 무교의 문화적 자산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Ⅰ. 한국의 고유 종교인 무교는 미신인가?

- 무교는 어떤 종교?
무교에 대한 간단한 소개 / 무교의 기본 구조/ 무당은 순전한 사제 / 무당이 되려면? / 후post 내림굿 이야기

- 굿은 어떻게 하나
굿이란 언제 그리고 왜 하는 것일까 / 굿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 굿은 어떤 내용으로 되어 있을까?

- 한국인의 근원 신앙으로서의 무교
굿의 종류에 대해 / 전형적인 문화영웅, 바리공주 이야기 / 무교의 신령은 잡령?

Ⅱ. 왜 한국은 무교의 나라인가?

- 한국 무교 약사
무교는 한국인의 근본 종교 / 한국 무교 약사略史와 그 전개 양상 / 신라 금관 이야기 / 신라 이후의 무교 이야기

- 무교의 현재
무교의 종교사회학적인 의미를 찾아 / 조선 이후의 무교 / 현재의 무교 / 한국인의 근본 종교는 분명 무교!

Ⅲ. 한국인의 종교적인 내면 세계

- 무교에서 바라본 불교와 그리스도교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기본 신행信行 구조 / 그리스도교의 경우 / 불교의 경우
불교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초월적인 존재와 정말로 소통하는 것일까? / 맹신 혹은 유치한 신앙의 폐해
- 종교 신앙은 일반적으로 다 똑같다
고등종교와 기층 종교의 차이란? / 그저 권력으로 판가름 날 뿐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무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거둬라! 한국인은 모두 똑같은 신앙을 가졌다. 한국인의 정신세계의 근저에 기층문화로서 자리 잡고 있는 무교(巫敎)가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미신’이자 ‘무속’으로 왜곡되고 비하되어 왔는지 살펴보고 있다.





지은이 : 최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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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한국사)을 전공하고 미국 템플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종교학 박사). 1992년에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학과에 교수로 부임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해 폭넓은 공부를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국제한국학회’를 만들어 김봉렬 교수(2018년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나 고(故) 오주석 선생 등과 같은 동학들과 더불어 한국 문화를 다각도로 연구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사단법인 ‘한국문화표현단’을 만들어 우리 예술문화를 공연형태로 소개하는 운동을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다.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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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인터넷과 무선통신이 생활필수품이 되고, 우리나라에서도 우주로 로케트가 날아가는 21세기, 그리고 기독교를 비롯한 ‘고등종교’가 엄청난 교세를 확장시켜가는 현대사회에, 무속이나 점집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대로라면, 사양산업이 되었어야 마땅할 터.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 방향으로 펼쳐지고 있다. 무속인(무당)의 숫자는, 최소한 줄어들지는 않고 있으며, 골목과 산기슭을 배회하던 점집이나 귀신이야기는 TV를 넘어 인터넷 속에서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이는 ‘무속’의 이면에 간단히 치부하거나 무시해 버릴 수 없는 깊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무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거둬라!
저자는 무교야말로 우리 민족의 유일의 자생적 전통종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교를 무속으로 비하하고, 그 속성에 대해 오해하거나 편견을 거두어들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무교가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 동안 힘없고 가난하고 억압당한 민중의 한을 풀어주고 아픔을 달래 왔던 핵심적인 종교임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기성종교의 신앙행태조차 무교의 속성을 차용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분석한다. 그것은 고스란히 현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성종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기실 무교가 ‘무속’으로 전락한 것은 순전히 무교가 ‘권력’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빚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무교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시각 필요
무교의 복원 내지 복권이 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인가?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무엇보다 한국인들이 잃어버린, 혹은 유폐시킨 종교적 정체성을 양지로 드러내서, 표리가 일치하는 정신적인 성숙을 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이 지금껏 겪고 있는 온갖 파행적 사회문화의 치유와 대안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무교의 문화 속에 대단한 문화적 자산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즉흥 연극판이라 할 수 있는 굿판에서 연주되는 음악, 춤, 음식, 복식 등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적 자산을 갖고 있다. 이렇듯 무교를 연구할 수 있는 시각은 다양하다. 우리가 우리 것을 제대로 보고 연구하지 않으면 외국인도 우리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
셋째는, 한국사회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서 남북 통일이나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 등을 앞에 두고, 한국 정신의 원형을 오롯이 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적 격변에 대응할 수 있는 정신적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민간신앙으로서의 무교의 복권이 논의되어야 한다.

한국인은 모두 똑같은 신앙을 가졌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종교를 갖든지 기본적으로 무교적인 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은 어떤 신앙을 갖든지 그 숭배하는 대상이 명목상으로만 다를 뿐 실제의 신앙 구조와 내용은 같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무교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음지에서 양지로 복권시키는 데 나름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때, 무교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신문화세계는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비약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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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2013-08-14
우리의 진짜 전통이자 종교-신앙은 바로 무교이다. 우리 조상들과 우리들은 유교와 기독교-서양 문명에 젖어 무교를 배척하지만, 사실은 원초적인 마음 속에서 여전히 무교를 숭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진짜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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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해
운산 2009-11-07


민족 고유의 종교로서 중국에 도교가 있고, 일본에 신도가 있다면 우리에겐 무엇인 있을까? 바로 ‘무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도교나 일본의 신도가 그 나라의 민중 종교로써 충분히 기능하고 있는 반면 우리의 무교는 거의 잊혀져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잊혀져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일까?



이 책 안에는 놀랍게도 현재 무당의 수가 대략 20~30만 명 정도라고 쓰여 있다. 대비하여 신도의 수가 가장 많다는 기독교의 목사가 10만 명이 못된다고 하니, 참으로 엄청난 수이다. 이로 미루어볼 때 우리나라의 제일의 종교는 무교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저자는 ‘무교’는 어엿한 하나의 종교이며, ‘무당’은 신도가 신령과 만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어엿한 사제이며, ‘굿’은 엄정한 체계를 갖춘 엄연한 종교의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 안에는 무당이 되는 과정, 굿의 종류와 내용,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령들에 관한 얘기들이 매우 재밌고 흥미롭게 쓰여 있다.








저자는 ‘한국은 무교의 나라’라고 과감히 주장한다. 극성스런 기독교도가 들으면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을 주장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종교는 반드시 그 지역의 토속 신앙과 습합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오리지날’을 유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인도의 불교와 중국의 불교와 한국의 불교와 일본의 불교가 부처를 신앙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내용을 달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 나라의 토속 신앙과 외래 종교가 섞인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외래 종교 역시 우리 토속신앙인 무교와 혼합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종교의 이름이라는 외피를 벗겨보면 내용물은 오히려 ‘무교적’이라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은 거의가 무교의 신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무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이고 특징적인 것은 ‘주술적인 기복신앙’이라는 점인데, 우리나라의 불교나 기독교를 보면 현세 기복적 특징을 전혀 벗어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시 무교적이다.



우리나라이 기독교는 ‘유독 열광적인 기도와 방언이 중시되는 부흥회 같은 집회를 좋아하는데’(p.140), 여기에서 무교의 굿과 같은 열성과 무아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 책에서는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기독교인이라면 거의가 한다는 새벽기도가 사실은 옛날부터 어머니들이 새벽에 정안수를 떠놓고 손바닥을 비비면서 무사안녕을 기원하던 풍속에서 연유한 것인데, 이 또한 무교적인 것은 아닌가?








우리는 보통 무교를 ‘무속’이라고 하여 불교나 그리스도교에 비교하여 원시적이고 저급하며 미신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긴다. 종교라고 이름을 붙인다는 것도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초월성에 대한 믿음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는 그 종류와 관계없이 본질은 같다는 것이다. 다만 사랑이나 자비 등 인간 윤리의 보편성을 교리로 하는 종교는 나라와 민족을 넘어 전파할 수 있고, 여기에 교리를 일관되게 체계화하고, 다시 권력과 결탁할 때 이른바 ‘고등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종교가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떤 옷을 입어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인 것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더 이상 우리를 속이지 말고 무교를 우리의 근본 신앙으로 인정해 우리 문화 발전에 유용하게 쓰자는 것’(p.6)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책 말미에 ‘한국인들은 잃어버린 종교적인 정체성을 찾아 표리가 일치하는 정신적 성숙을 달성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이런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가타부타하기는 어렵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하나의 모색(摸索)으로써 돌아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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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무교
분노의휘갈김 2015-04-28
무교와는 무관하게 굉장히 무식한 책이다. 쓰레기. 자료도 빈약하고 주장의 논거도 엉터리다.불공평하게 하대받는 무교를 대변하고자 쓴 책이라면 더 조심해야 할 것인데, 이 책으로 인해 무교에 관심을 갖는 사람 마저 정이 떨어질 정도다. 심각하다. 책을 읽다읽다 더는 못 참겠다. 과학적 사고의 부재가 이런 총체적 무식함을 부른다. 인문학이 잉여학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런 무식한 책 덕분이다. 과학 교육이 필요한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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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靑竹 2010-03-20
<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저자: 최준식
쪽수: 208쪽
가격: 10000원
출판사: 모시는사람들
초판1쇄: 2009년 10월 25일
참조: 일반 대중이 무속에 대해 접하기에는 괜찮은 편이 아닌가 싶군요. 특별한 필요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이 정도에서 그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몰라도 되는 지식입니다.

제 견해로는 무속은 이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정도라면 괜찮겠지만 흥미를 가지고 파고드는 일은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위험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무당을 가리켜 '신이 내린 직업'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한 번 무병에 걸리게 되면 거의 대부분(사실상 전부) 무당이 되지 않는 한 낫지 않습니다. 또한 무언가에 씌이는 일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해 버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효력도 가지지 못하는 오랜 풍속이 현대까지 살아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고방식입니다. 즉 '무속'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을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현존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태도는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지만 이렇듯 학문적인 주제와 얽히면 신중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기 쉽습니다. 이 글도 좀 그런 면이 있군요. 또한 얼추 부합된다 싶은 근거만으로 '무속을 종교로서 복권시켜야 한다'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전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속은 결국 자신에게서 기원한 신앙이 아니며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천주교와 같은 널리 퍼져 있는 종교에 비해 위험한 편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바대로 어느 종교나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다면 굳이 위험을 내포한 길을 걸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단순히 한반도에 기원을 둔 자연종교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을 살리기 위해 무교를 믿어야 한다는 논리는 '국산제품이니까 써야 한다'는 애국심에서 발로한 기업광고와 같습니다. 한국인의 근간이 무교에 있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만(무교는 한국적인 것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은 별개의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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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햇빛 2009-11-28
사람들은 흔히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인생사가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을때 '굿이라도 해야하나' 혹은 '점이라도 보러가야겠다' 라는 말들을 하고는 한다. 물론 나 역시 농담처럼 쉽게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서양인들의 문학이나 문화를 보면 기독교적인 색채가 짙은 것이 종종 느껴지곤 한다. 그들은 오랜 기간을 걸쳐 자연스레 기독교적인 생각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왔음을 알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부분이 유교적인 관습과 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역사인 조선시대에 숭유억불 정책으로 유교가 크게 번성하여 중,의, 예, 효 를 중시하였고 현대 역시 그 큰 틀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하다.

우리의 동네 골목 골목 마다 찾을 수 있는 점집이나 무당집, 험한 산을 오르고 올라 치성 내지는 기도를 하는 이들을 볼 수가 있는데 아주 오래전 부터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한 흔히 무속신앙이라 불리는 무교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다.



책에서는 무속이라는 단어의 부당을 설명하는데 무속의 속 자가 저속하다라는 의미가 짙기때문에 무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미신이라 천대하고 비하되고 왜곡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에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기도 하지만 속이라는 단어의 저속하다라는 표현보다는 사람들과 그만큼 가까운 곳에 있는 친근한 종교라 불교에서도 일반 사회를 일컫는 말인 속세(俗世)라는 말 처럼 친근한 종교라 무속이라 불리었고 불리어 왔다고 믿고싶은 마음이다.



무교에대한 오해와 천대가 한국인들의 근본에 깔려있는 무교를 향한 믿음을 저속하고 촌스러운 것, 무시되는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어느정도 사실일지도 모른다. 무교란 범위가 워낙에 광범위하고 쉽사리 질서를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왜곡이 더욱 심화되었고 저자가 지적 하는 것 처럼 자생 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자체적으로 통합의 어려움이 있기에 지금껏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였고 또한 그러기에 한국인들의 근본신앙임에도 무교를 신봉하는 이들이 미신이라 비하를 받은것이 사실일 것이다.



저자는 무교에는 많은 문화적 자산이 안겨져 있기에 무교를 복원하여 사회적인 통합과 사회적 성숙을 위한 기틀 아래에에 서게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적 격변에 대응할 수 있는 정신적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 민간신앙으로서의 무교의 복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무교를 정당화 하는 수단으로 다른 종교를 빗대어 비하하거나 혹은 저것도 그러한데 이것이 이러한 것 쯤이야 어떻겠느냐 식의 뉘앙스가 무교가 한국인의 근본신앙임을 주장하는 말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너희 나라는 원숭이 골에 달팽이에 무엇 무엇도 먹지 않느냐'

'그럼 우리가 개고기 먹는게 뭐 어때?'하는식의 빈약한 주장으로밖에는 비쳐지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개고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원숭이 골이나 달팽이를 트집잡아서는 기대하는 만큼의 설득력을 이끌어낼 수 없기에 우리에게 개고기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어떤 역사가 있으며 어떤 개고기 문화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외려 더 자연스레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닐까말이다.

무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다른 종교의 폐혜를 가지고서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무교가 한국인의 근본신앙임을 더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풀어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조금 더 세밀하고 농도 짙은 무교의 세계를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 보다는 무교에 대한 막연한 생각과 궁금증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울릴만한 책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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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fw6kies 2009-12-13
주변에서 쉽게 점을 본다니, 사주팔자가 어떻다니
하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호기심이 막 쏟구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에이~ 그냥 미신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무심코 지나가곤 했다. 그것을 이 책에서 말하는 것
처럼 무교라는 종교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보통 단순히 미신이라고 치부하여
왔던 무당, 굿, 점 이런 것을 무교라고 하는 하나의
종교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개념이 나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보면 호기심을 일게 만들었다.
정말 어쩌면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국인의 가장
뿌리깊은 신앙은 무교와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주변에도 기독교나 불교신자이면서도 정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점을 보러 가는 사람 찾는것은
어렵지 않다. 평소에는 미신이야 미신 하면서 조금
낮게 치부하는 사람들도 마지막에 찾는 곳은 바로
그런 곳들이다.
정말 억압되어 표현은 못하지만 뿌리깊은 마음속에는
그런게 남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종교의 개념으로 다시 한번
이런 분야를 새롭게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앞으로 단순히 미신이야 이런
말은 잘 안하게 될 것 같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기독교나 불교 처럼 엄연한 종교로서 받아들이고 인정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 보다 더 친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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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9

론설 《김정은시대 조선의 모습》



론설 《김정은시대 조선의 모습》
중국 연변대학 교수 김일 2018.10.23.


나는 얼마전 평양의 5월1일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할수 있는 기회를 가지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과 수호, 기적과 비약의 70년사를 예술적으로 형상한 화폭은 나로 하여금 수년간 조선에서 주체철학을 배우고 연구하는 과정에 직접 보고 느낀 김정은시대 조선의 모습을 세상에 전하고싶은 충동을 다잡을수 없게 한다.

필력은 미력하지만 자주, 단결, 부흥, 평화의 모습으로 안겨드는 조선의 현황을 사실그대로 전하는것이 민족의 일원으로서만이 아니라 진리만을 지향하는 학자의 사명이라는 자각으로 붓을 든다.


1


오익제선생은 저서 《자주국의 수호신》에서 《저는 이남에 있을 때도 공화국이 자주국으로 이름높은 나라임을 알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북사회가 이토록 주체성과 민족성으로 지칠줄 모르는 정신력을 이루고 자주의 의지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넘쳐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라고 김정일시대 조선의 현실을 피력하였었다.

세인이 다 아는것처럼 조선의 력사를 거슬러 보면 걸어온 길이 순탄치 않았다. 마지막봉건국가였던 조선봉건정부의 500년사는 큰 나라를 두려워하고 숭배하며 강요와 간섭을 숙명처럼 감수하여온 사대사로 기록되여있다. 남의 나라 군대가 들어와도 항변 한마디 못하고 식민지쟁탈을 위한 대국들의 싸움이 제땅에서 벌어져도 눈을 감아야만 했던 《락후한 조선》의 종착점은 망국이였다. 1905년 《을사5조약》의 날조로 국권은 송두리채 일본에 넘어갔다.

원래 조선민족은 락후한 민족이 아니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와 철갑선을 만들고 세계가 인정하는 우수한 민족어를 만들어낸 지혜로운 민족이다. 그러나 사대는 조선의 힘과 정신을 점차적으로 마비시켰고 20세기 초엽에는 세계에서 제일 불쌍한 나라의 명단에 오르게 하였다.

력사상 그 어느 나라나 민족도 받아보지 못한 악랄한 위협과 공갈, 제재와 압박은 오늘까지도 지속되고있다. 세계가 이제 더는 조선이 처절한 시련속에서 헤여나지 못할것이라고 오판한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이러한 속에서도 조선은 일떠섰다. 지탱하기만 한것이 아니라 자기가 선택한 길로 질풍쳐왔다.

적대세력들이 달라붙어 70여년동안이나 위협하고 압박해온 조선이 어떻게 아직까지 존재하고있으며 붕괴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대해졌는가?

세인의 이 물음앞에 조선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주라는 한마디로 대답한다.

이 나라에는 자주의 뿌리가 억세게 뻗쳐있다.

중어로 자주의 개념을 해석하면 《자체가 주인이 된다. 모든 일에서 주견이 있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자주에 대한 조선사람들의 리해는 그 폭이나 깊이에서 세상사람들의 상상을 훨씬 초월한다.

오래동안 《자유》의 세상에서 살아온 서방사람들은 조선의 자주를 리해하는데서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있다. 서방사람 10명에게 당신들이 주장하는 《자유》란 무엇인가고 물으면 그 대답이 다양하게 나온다. 심지어 자유를 반대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조선이 주장하는 자주란 무엇인가고 수천명의 조선사람에게 물어보아도 그 대답은 한결같으며 언행도 일치하다.

서방의 《자유》는 다른 나라에 대한 내정간섭을 내포하고있다. 조선의 자주는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철저히 사대와 내정간섭을 배격하는 성격을 가지고있다. 조선의 자주를 리해하려면 이 실마리를 따라 들어가면 된다.

김일성주석님의 령도사를 총괄해보면 엄혹한 시련과 곤난의 행로우에서 언제나 민족자주의 대를 꿋꿋이 세우고 근로대중의 립장을 확고히 고수하며 사회주의를 견지하여 인민대중중심의 부강하고 존엄높은 국가를 건설하여오신 자주의 력사였다.

자주는 신성한 권리임과 동시에 그를 담보하는 힘이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96년 1월에 발표하신 저서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에서 《죽음을 각오한 사람을 당할자 이 세상에 없다》는것이 우리 혁명가들이 지녀야 할 신념이고 배짱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 펼치신 선군정치는 조선식사회주의를 고수하였을뿐만아니라 첨단과학기술분야의 실력을 크게 키운 동시에 혁명적군인정신을 온 사회에 일반화함으로써 조선의 일심단결을 비상히 강화하고 나라의 정신적힘을 류례없는 높은 단계에 도달시켰다. 나라의 보위도 건설도 다 맡는 조선인민군과 같은 군대는 이 세상 어디에 가서도 찾아볼수가 없다.

자주의 대는 김정은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지고있다.

김정은위원장님은 조선을 그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제재와 압박이 두려워 딴길을 택하는 나약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가 공인하는 강대한 자주국으로 더 높이 솟구쳐올리시는 민족적영웅이시다.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에서 김정은위원장님께서는 숭배를 해도 자기 민족을 숭배하고 믿어도 자기 민족의 힘을 믿어야 하며 통일론의를 해도 자기 민족과 하여야 한다고, 민족자주의식을 좀먹고 민족자강력을 마비시키는 사대와 외세의존을 철저히 반대배격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자주신념, 자주의지가 맥박치는 참으로 뜻깊은 말씀이다.

그이의 이러한 신념과 의지는 곧 세계를 놀래우는 지략과 로선, 정책을 낳았고 명실공히 자주국으로서의 조선의 모습을 세계앞에 뚜렷이 드러내게 하였다.

원수님께서 분단사상 처음으로 총부리가 마주친 판문점분리선을 과감하게 밟으시며 북남으로 오가실 때 세계는 자주국의 령수다운 결단과 배짱을 보았다.

김정은위원장님의 첫 외국방문은 린방인 중국이다. 그이께서는 중국의 습근평주석님과의 상봉으로 전통적인 중조친선관계의 뉴대를 다시한번 굳게 이어놓으시고 관계발전의 새로운 장을 펼치시였다. 몇달어간에 세번씩이나 중국을 찾으시여 두 나라가 손잡고 선린우호의 길을 걷는 경이적인 현실을 펼치신 김정은위원장님의 대외정책은 자주로선, 자주정치의 일환이라고 할수 있다.

6월 12일 세계에서는 력사적인 싱가포르조미수뇌상봉과 회담으로 폭풍같은 반향이 일어났다.

김정은위원장님의 독자적인 사고와 실천, 자주에 깊고도 억센 뿌리를 둔 놀라운 정치실력은 동등한 자세에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세에 맞게 각자의 리해에 충만되는 해법을 찾아 조미관계사를 새롭게 써나갈수 있는 경이적인 현실을 안아왔던것이다.

자주에서 출발하고 자주로 일관된 김정은위원장님의 지도력으로 조선은 세계의 일각으로 우뚝 솟구쳐올랐고 세계는 작고도 큰 나라, 자주강국 조선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였다.

이것이 내가 본 자주로 강대한 김정은시대 조선의 모습이다.


2


조선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동무, 소속이 어디입니까?》고 물어보군 한다. 이것은 조선의 모든 사회성원들이 다 일정한 조직에 망라되여있다는것을 의미한다.

조선과 같이 남녀로소모두를 해당한 조직에 받아들여 정규적으로 조직생활을 할수 있게 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을것 같다. 이런 수많은 조직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이 나라에서만 볼수 있는 사회정치적생명체가 형성되고 온 사회는 하나로 단결된 사회주의대가정을 이룬다.

한사람, 한지역도 빠짐없이 보살펴주고 이끌어주는 이 나라에서는 누구나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리념을 생활적요구로 받아들이고있으며 집단에 의지하고 집단의 힘에서 희열을 느끼면서 하나로 뭉쳐 더욱더 큰 존재로 자라나고있다.

지난해 8월 어느날 나는 김일성종합대학 류학생숙소 복도에서 중국녀학생과 50대 관리원사이의 대화를 우연히 들은적이 있다.

그 녀학생이 관리원에게 서툰 조선어로 《어머니, 오늘 우리는 금수산태양궁전에 갔댔습니다.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 인사드리고 왔습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관리원은 잠시 일손을 멈추고 정찬 눈길로 녀학생을 보더니 그의 땀흘리는 얼굴도 닦아주고 잔등도 도닥여주면서 참 잘했다고, 조선에 오면 꼭 수령님과 장군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하면서 만족한 웃음을 짓는것이였다.

청사관리원이라면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근로자이다. 이러한 보통 근로자가 자기 나라의 수령에게 존경을 표시한 외국인 류학생을 이토록 사랑해주는 모습은 감동없이는 볼수 없는 진실로 아름다운 화폭이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볼수 없다. 수령을 따르는것이 조선인민들속에서는 이미 생활화되여있다.

정치를 중시하는 사회주의조선은 자기 식의 고유한 정치방식을 구현해왔다. 조선은 소수에 의한 정치냐, 다수에 의한 정치냐 하는 문제의식을 초월하여 민주주의개념자체를 《다수에 의한 정치》로부터 《인민대중의 의사를 집대성한 정치》로 재정립하였다.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사회주의의 기본정치방식으로 규정하고 당과 국가활동에 구현해나가고있다.

여기에서 가장 주되는 표적으로 삼고있는 과녁의 하나가 낡은 사회의 유물인 세도와 관료주의이다. 세도와 관료주의에 종지부를 찍고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현실로 전환시키는 과정에 조선에서는 전체 인민을 운명을 함께 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결합시켰다.

조선의 사회정치적생명체리론에서 《생명체》는 령도자와 전체 인민이 한몸이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령도자와 인민이 운명을 같이하는 문제는 결코 법으로는 해결할수 없다. 령도자와 인민이 한몸이 되자면 서로 믿고 의지하여야 한다. 조선에서는 이것을 동지적사랑과 의리의 관계로 해결하였다. 령도자는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은 령도자의 정치에 의리적으로 따르는 동지적인 도덕관계에 의하여 령도자와 인민은 절대로 배반할수 없는 한몸이 된다.

령도자와 인민의 관계에서 령도자의 인민관이 결정적작용을 한다.

김정은위원장님의 좌우명은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이다.

2017년 1월 1일 김정은위원장님께서는 신년사에서 언제나 늘 마음뿐이였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속에 지난 한해를 보냈는데 올해에는 더욱 분발하고 전심전력하여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찾아할 결심을 가다듬게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인민을 위하여 이룩하신 업적들이 모자라시는듯 너무도 겸손하고도 엄숙하게 다지시는 이 맹세는 김정은위원장님의 인민관이 어떤것인가를 잘 말해준다.

사랑의 정치가 펼쳐져 령도자와 인민이 한마음으로 사는 운명공동체가 바로 조선의 사회정치적생명체이다.

돈이 기적을 낳는것이 아니라 사람이 기적을 낳는다.

수령과 인민사이의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에 기초한 일심단결은 경제건설분야에서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고있다.

조선혁명박물관에는 《건설의 대번영기를 빛내이는 자랑스러운 창조물들》이라는 표제로 2012년-2015년까지 조선에서 건설한 창조물들이 위성과학자주택지구, 마식령스키장, 원산육아원과 애육원,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를 비롯하여 모두 80여개라는 자료가 있다. 여기에 과학기술전당, 려명거리 등 지난 2년동안에 창조된 수많은 건설물들을 더하면 최근년간 조선에서 천지개벽이 일어나고있음을 알수 있다.

조선이 국제사회의 장기간에 걸치는 제재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더 높이 솟구치고있는것은 지향과 리념, 리념과 정치, 정치와 현실이 인민을 대전제로 하여 완전히 통일을 이루었기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령도자와 인민의 일심단결은 조선특유의 생산력이라고 말할수 있다.

조선의 일심단결은 그 출발점이 수령의 인민사랑인것으로 하여 진리이고 수령에 대한 인민의 신뢰가 절대적인것으로 하여 불가항력적이며 총적지향이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인것으로 하여 비가역적이다.

조선사람들은 이 세상에 못할것도, 두려울것도 없다고 확신하고있다.

그것은 그들에게 원자탄보다 더 강한 힘이라고 자부하는 일심단결이라는 재부가 있기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본 단결로 위력한 김정은시대 조선의 모습이다.


3


금년 6월 나는 원산농업종합대학과 원산구두공장을 방문하기 위하여 세번째로 원산시에 갔다. 원산만 동쪽에 자리잡은 갈마반도가 안겨왔다.

명사십리해변가를 따라 크고작은 다양한 건축물들이 키돋음하며 솟아오르는 거창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건설장전경은 참으로 장관이였다. 나날이 부흥하는 조선의 모습이 한눈에 안겨오는것만 같았다.

《로동신문》 5월 23일부에 의하면 금년 봄철국토관리총동원기간에 전국적으로 수백만m3의 강하천바닥파기와 100여만m2의 장석공사를 하여 수백㎞의 강하천이 번듯하게 정리되고 160여정보의 호안림도 조성되였다고 한다. 최근 몇년동안 조선에서는 모든 산을 황금산으로 만들기 위한 《자연과의 전쟁》이 벌어지고있다.

금년 8월 김정은위원장님은 삼지연군안의 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삼지연군을 산간지대의 고유한 특성과 민족성이 훌륭히 결합구현된 군으로 만들자면 군소재지를 잘 꾸린 다음 3~4년어간에 년차적으로 단계별목표를 세우고 군안의 모든 농장마을들을 현대적으로 개건하여야 한다고, 그리하여 전국적인 표준군, 모범군, 방식상학단위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머지않아 벌방지대, 산간지대 할것없이 이 나라의 모든 산과 들, 바다가 부흥하는 황금벌, 황금산, 황금해로 전변될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원수님의 구상이고 인민의 실천이기때문이다.

수십년전 어느 한 나라 대학의 초빙교수인 죠지프 나이가 《무형의 실력》이라는 개념을 내놓은것을 계기로 국제적으로 한 나라의 국력을 기본실력과 무형의 실력으로 나누어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이 론조를 따르면 기본실력에는 경제실력, 군사실력과 과학기술실력 등 물질적힘이 포함되고 무형의 실력에는 정치실력, 문화실력, 외교실력 등 정신적힘이 포함된다.

세계적인 랭전이 종식된 후 많은 사회주의국가들이 서방나라들의 무형의 힘에 녹아나 맥없이 허물어졌는데 그 주요한 원인은 정치가들이 근로대중의 립장을 저버리고 자국인민의 힘을 믿지 않은데 있다. 다시말하여 기본실력이 아니라 무형의 실력에 큰 구멍이 뚫렸던것이다.

조선의 국력은 대단하다. 그것은 한 나라의 국력이 외부에 표현될 때에는 기본실력과 무형의 실력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종합실력으로 나타나기때문이다. 이 나라 국력의 특징은 기본실력의 견지에서 볼 때 나라의 경제규모는 작지만 튼튼한 자립적민족경제토대와 강대한 군사력을 가지고있다. 무형의 실력에서는 지도자의 비범한 정치실력과 일심단결의 힘, 건전한 사회문화영향력을 가지고있다.

금년 4월 조선로동당은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할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로선을 제시하였다.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는 구호는 조선의 실정과 시대의 흐름에 맞는 고무적인 구호이다.

오늘 조선은 단순한 물질적부의 창조가 아니라 과학교육을 앞세워 사회의 모든 령역을 개건현대화하고 나라의 종합국력을 새로운 경지에 올려세우기 위한데로 나가고있다. 2012년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6차회의에서는 법령 《전반적12년제의무교육을 실시함에 대하여》를 대의원전원찬성으로 채택하였다.

조선은 모든 사람들이 일생동안 무료로 공부할수 있는 나라이다. 최근에 조선에서는 중등일반교육을 발전시키는데 힘을 넣으면서 전민을 과학기술인재화할것을 목표로 내세우고있다.

전민과학기술인재화란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대학졸업정도의 지식을 소유한 지식형근로자로, 과학기술발전의 담당자로 준비시킨다는것을 의미한다.

조선에서 과학중시, 교육중시는 선전이 아니라 현실이다.

김정은위원장님은 전민과학기술인재화실현에서 핵심적역할을 수행하여야 할 교육자, 과학자들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신다. 평양의 중심부에 창전거리가 새로 완공되였을 때 원수님께서 제일먼저 찾으신 가정은 부부와 두 딸이 교원으로 일하는 교육자가정이였다. 그이는 나라의 인재들을 육성하는데 한생을 바쳐가는 교원들은 참다운 애국자들이라고 하시였다.

금년 4월말 나는 중국 위해에 있는 산동대학에 가서《자주조선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초빙강의를 하였다.

중국의 유명한 교수들도 방청한다기에 강의안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였다. 나는 청강자들에게 《2017년 4월 평양에 려명거리가 새로 건설되였다. 그중 살림집도 많이 지었는데 김일성종합대학 교원, 연구사가족 1 700여세대가 원수님의 배려에 의하여 무상으로 큰 살림집들을 배정받았다.》고 이야기하면서 교원가족들이 이사하는 장면과 살림집내부구조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강의를 방청하던 관록있는 교수들을 포함한 모든 교원들과 학생들은 놀라움과 경탄으로 웅성거리더니 일제히 나에게 요란한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순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박사로서, 희한한 현실의 목격자로서의 긍지감이 온몸을 감싸안았다.

조선은 경제관리분야에서도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고있다.

최근 조선이 새로운 경제관리방법을 확립하는데서 주목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과학기술의 보급과 도입사업을 잘하며 모든 부문과 단위들이 새 기술개발과 도입에 절실한 리해관계를 가질수 있게 경제관리를 개선해나가고있는것이다.

둘째로, 생산과 건설의 담당자인 근로자들의 책임성과 역할을 높여 생산을 최대한 늘일수 있게 경제관리를 개선하고있는것이다.

셋째로, 모든 기업체들이 기업활동을 주동적으로, 창발적으로 해나가도록 하는 방향에서 경제관리를 개선하고있는것이다.

조선에서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라는 새로운 경제관리방식이 공장, 기업소, 협동단체들에서 전면적으로 도입되고있으며 협동농장들에서는 원래의 분조관리제안에서 《포전담당책임제》라는 새로운 방식이 실시되고있다.

과학과 교육이 중시되고 새로운 경제관리방식이 확립되면서 많은 기업소와 농장들이 그 덕을 보고있으며 집단적경쟁열기가 왕성하고 인민들의 생활은 나날이 윤택해지고있다.

금년 4월말 중국의 유명한 연구조직인 《반고연구소》는 조선경제현황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조선의 광물질자원에 대하여 평가한 자료도 있다.

《…이미 발견된 광물질자원의 종류는 300여가지이며 그중 200여종의 광물질이 경제적개발가치가 있다.…》

조선의 《애국가》에는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라는 구절이 있다. 가사에 있는것처럼 조선은 참으로 산좋고 물맑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다.

나는 조선인민이 김정은위원장님의 현명한 령도하에 자기의 자원과 기술, 자기 식의 방법으로 기필코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을 창조해낼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것이 내가 본 부흥하는 김정은시대 조선의 모습이다.


4


항시적으로 핵전쟁위험이 떠도는 세계최대의 열점지역인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수호하는것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고 동북아지역의 번영과 발전을 이룩하는데서 초미의 문제이다.

2017년말까지 조미사이의 관계는 서로 최소한의 신임도 없는, 언제든지 맞붙어 싸울 적대관계였다. 세계는 미국과 조선이 계속 대결로 치달아나간다면 조선반도는 물론 온 지구가 핵전쟁의 참화를 면하지 못할것이라는 불안에 잠겨있었다.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우려는 더욱 깊었다. 조미사이의 군사적대결은 이미 한 지역, 두 나라사이의 범위를 벗어나 세계의 평화와 안전과 직결된 세계적인 초미의 중대사였다.

조선반도의 정세는 2018년에 들어서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김정은위원장님의 금년 신년사가 세계에 실황중계되면서 국제정세에서는 드디여 반전이 오기 시작하였다. 온 겨레와 세계인민의 평화안전을 위하여 김정은위원장님께서는 과감하고 독자적인 대결단을 내리시였던것이다.

김정은위원장님의 평화의 행보는 가장 적대적이였던 조미 두 나라사이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거대한 사변으로 이어졌다. 세계주요언론들이 앞을 다투어 이 중대사를 특대보도하였다.

중국외교부장 왕의는 《조미 두 나라는 반세기가 넘도록 적대시하여왔다. 두 나라의 최고지도자들이 한자리에 앉아 평등한 대화를 진행하는것 자체가 바로 중대하고도 긍정적인 의의를 가질뿐아니라 새로운 력사가 창조되고있다는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이를 환영하며 지지한다.》고 하였다.

격변하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는 온 겨레의 마음을 사로잡고있으며 때때로 꿈인지 생시이지 착각할 정도로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기적에 기적을 이루어내고있다. 오늘 세계는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는 구호가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것을 실질적으로 감수하고있으며 조선문제전문가들속에서는 만리마가 너무 빨리 뛰여서 미처 따라갈수 없다는 《원망》도 터져나오고있다.

평화는 하늘에서 떨어지는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나는것도 아니며 누가 선물로 주는것도 아니다. 한 나라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유지해나가는데는 수없이 많은 영웅신화가 필요하며 지도자들의 탁월한 정치실력과 선견지명이 동반되게 된다.

김정은위원장님은 트럼프대통령과 단독담화에서 오늘 여기까지 와닿는 과정이 결코 헐치는 않았다고, 과거의 력사가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우기도 했지만 그 모든것을 과감히 짓밟고 이렇게 이 자리에까지 왔으며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되였다고 뜻깊게 말씀하시였다.

조선에 대한 편견과 이그러졌던 나라들사이의 관계가 하나하나 바로잡혀 제자리로 돌아가고 조선반도정세가 서리발치는 힘의 대결로부터 서서히 화해와 평화로 흘러가고있는것은 민족의 운명과 세계평화에 대한 숭고한 책임감을 안으시고 조선반도에서의 전쟁위험을 근원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로고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김정은위원장님의 대결단에 의한것이다.

장장 70여년 지속되여오는 북남사이의 대결과 질시의 관계도 점차 평화와 신뢰의 관계로 바뀌고있다.

김정은위원장님의 신년사가 발표된 이후 북남사이에 고위급대표단래왕이 잦아지더니 드디여 북남수뇌상봉에로 이어졌다. 김정은위원장님과 문재인대통령은 판문점분리선에서 반갑게 만나 악수하시고 서로 인사를 나누시였다. 민족의 화해단합과 평화번영의 새시대를 열어놓은 력사적인 만남이였다.

이후로 북남관계는 평화와 화해협력의 궤도우에서 가속적으로 발전하고있다. 불과 5개월도 안되는 사이에 벌써 세번째로 북남수뇌분들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9월평양공동선언》이 채택되였다. 9월 20일 북남수뇌분들이 백두산에 오르시여 서로 손을 굳게 잡으시고 온 겨레를 향하여 높이 추켜드실 때 세계는 조선반도에서 평화, 번영의 새 력사가 자기 궤도에 확고히 들어섰음을 똑똑히 보았다.

조선반도에 드디여 다가온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는 더없이 소중하고 고귀하다. 여기에는 조선의 선대지도자분들의 평생의 로고가 슴배여있고 용감하고 슬기로운 조선인민의 피와 땀이 깃들어있으며 원수님의 사랑과 믿음의 철학이 들어있다.

평화로, 통일로 가는 길은 언제나 탄탄대로가 아니다. 수천만겨레의 공동의 소원이였지만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하고있다.

하지만 공든 탑은 절대로 무너질수가 없다.

나는 김정은위원장님과 문재인대통령의 세차례에 걸치는 력사적인 만남이 아름다운 이 나라 강산에 평화와 번영을 안아오고 통일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는 결과에로 이어질것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것이 내가 본 평화의 새시대를 열어나가는 김정은시대 조선의 모습이다.


* *


나의 책장에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의 《조선중앙년감》이 있다. 김정은위원장님께서 집필하신 로작부수, 현지지도를 하신 차수, 체육경기와 공연관람을 하신 차수, 주요기념일행사에 참가하신 차수 등 세상에 공개된 혁명활동자료만 통계해보아도 이 몇해동안 원수님께서는 낮과 밤이 따로없이 헌신분투하신다는것을 알수 있으며 조선인민이 얼마나 위대한 령도자를 모시고 사는가를 알수 있다.

김정은위원장님의 위대한 사상과 비범한 령도실력, 피타는 정력과 헌신이 있기에 오늘 조선은 자주의 모습, 단결의 모습, 부흥의 모습, 평화의 모습으로 세계의 이목을 모으고있는것이다.

그이는 명실공히 조선의 강대성의 상징이시고 백전백승의 기치이시며 비범한 령도실력을 지니신 세계적거인이시다.

나는 이 기회에 조선을 위대한 사회주의강국으로 향도하시는 김정은위원장님께 최대의 영광을 삼가 드린다.

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한 공민으로서 전통적인 중조친선이 대를 이어 영원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필승의 조선에 무한한 영광이 있으리!

(필자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주체철학을 연구하고있는 중국 연변대학 교수임)

2016/09/29

연구원 북리뷰 - [50]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황진이ㆍ문화영

연구원 북리뷰 - [50]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황진이ㆍ문화영



1. 저자에 대하여


문화영
외국어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대한적십자사, 국회 등에서 근무했다. 30대에 이미 여성개발원 국제협력담당 책임연구원으로 활약하였고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다. 그러던 중 중년의 39세의 한창 때 수련에 전념하며 승승장구하던 직장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나왔다고 하나 솔직한 그 내막은 아닌 듯도 하다. 이후 선계의 스승이신 천강(天降)선인을 만나 선계수련의 맥을 전수받았다고 하며 1994년 본성을 만난 후 지속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는 견성 즉 깨달음은 수련의 ‘입학’에 불과하며 우주(본성)와 100% 합일을 이루는 것이 되어야 공부의 끝이라고 주장한다. 
그간의 수련 과정은 [선계에 가고 싶다]와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출간되었는데 이들 책에서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련세계의 일들을 손에 잡히듯 풀어놓았다고도 한다. 특히 인간의 생성원리, 사후세계, 우주, UFO, 기(氣) 등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아놓았다. 한편 KBS 라디오 ‘KBS 무대’에 방송작가로 데뷔하여 수백여회의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하고 1996년 ‘다큐멘터리 홍범도’로 제23회 한국방송대상에서 라디오 드라마 부문 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다. 99년부터는‘수선재’에서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현재 수선재 홈페이지(www.soosunjae.org)에 실화소설 [메릴린스에서 온 선인, 토정 이지함!]을 연재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파크 참조] 

그래서 명상수련가이자 작가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30대 후반에 모든 것을 버리고 본격 명상에 든 이후, 금촉이라는 고난도 수련과정을 통해 각(깨달음)을 완성했다고 전한다. 
지난 ‘98년, <선계에 가고 싶다>라는 책을 읽고 모인 몇몇 제자들의 요청으로 수련지도를 시작한 이래 명상학교 수선재의 명상가로 활약하였으며, 최근에는 여행과 집필을 병행하며 제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저서로는 <무심>, <여유>, <선계에 가고 싶다>,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천서0.0001> 등이 있다. 


* 명상학교 수선재 

명상학교 수선재는 건강과 정신적 풍요로움을 위한 대중적인 명상은 물론 생활 속 깨달음을 지향하는 선계수련 과정까지 운영하는 전문 명상학교라고 한다. 
저자는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단계적인 명상 프로그램을 통해 명상의 대중화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고 하며 인간, 자연, 하늘이 하나 되는 선(仙)문화 운동을 펼쳐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고급 선계수련 과정인 상ㆍ중ㆍ하단이 완성된 전인(全人)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호주, 남아공 등 세계 각국에서 이천여 명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명상을 배우고 있노라 소개하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참조] 


황진이黃眞伊 
조선시대의 시인 겸 명기(名妓).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대표작으로 《만월대 회고시》, 《박연폭포시》 등이 있다. 

별칭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 명월(明月) 
출생지 개성 
주요작품 《만월대 회고시》《박연폭포시》《봉별소양곡시》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 명월(明月). 개성(開城) 출생. 중종 때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고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相思病)으로 죽자 기계(妓界)에 투신, 문인(文人) ·석유(碩儒)들과 교유하며 탁월한 시재(詩才)와 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修道)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天馬山) 지족암(知足庵)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破戒)시켰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徐敬德)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제관계(師弟關係)를 맺었다.

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정을 나누고 벽계수(碧溪守)와 깊은 애정을 나누며 난숙한 시작(詩作)을 통하여 독특한 애정관(愛情觀)을 표현했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서경덕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작품으로 《만월대 회고시(滿月臺懷古詩)》《박연폭포시(朴淵瀑布詩)》《봉별소양곡시(奉別蘇陽谷詩)》《영초월시(咏初月詩)》 등이 있다. - ⓒ 두산백과사전 


2. 내 마음속에 들어온 글귀


책머리에 
황진이라는 분이 40세쯤 되어서 돌아가셨다고 그러는군요. p15
그런데 기생이지만 이분의 문학사적인 위치 때문에 이분을 무시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국문학계에서는 조선 500년을 통틀어 황진이를 따라가는 시조시인은 없다고도 합니다. 
한시에서는 허난설헌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평도 있고요.
그래서 특히 국문학자들이 역사 인물 중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인물이 황진이입니다. 
누가 찾아보니까 논문이 한 천여 편 된다고 그러는군요.
그런데 이분의 작품은 많지도 않습니다. 
시조 여섯 수에다 한시 여덟 수 이런 정도인데. 
한시는 잘 나와 있지도 않고 찾아야 되죠.

그 시조 여섯 수를 가지고 그렇다는 거죠.
이분의 기생으로서의 명성보다는 
그 사람이 남긴 작품이 두고두고 향기를 발하는 거예요. p16

공부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는 거예요. p17


프롤로그/ 
모노드라마 선악과는 무엇일까?

중국 당나라 때 측천무후와 고종의 외동딸인 태평공주
그녀는 육촌 동생인 당 현종에 의해 죽음을 당했더군요.
양귀비로 유명한 그 왕 말예요. p32

생로병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누구 마음대로 되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하려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랍니다. 

저는 자살하기 위해 사니까요.
히히...

의문이 생기면 풀릴 때까지는 저와 상대방을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달달달 지지고 볶으니까요.
참 안 좋은 성격이죠.
하지만 배 안의 짓이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겠죠. p33

예나 지금이나 저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 남자를 두 여자가 나누어 가지는 상황에는 늘 분노한답니다. 
한 여자를 두 남자가 나누어 가지는 일에는 부러움을 느끼면서도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편의 말을 종합해 보았죠.
어쩌다 그렇게 되었고, 남자는 평생 한두 번 바람이 나게 마련이며, 제가 잘못한 점이 없다고 했고, 두 여자를 다 데리고 살고 싶다... p38

내 사전에 이혼이라는 말은 없어
남편이 화를 내며 말하더군요.
그렇고 그런 삼류 얘기죠.
허나 다들 비슷한 모양새로 살고 있는 거잖아요. 
이혼을 강행하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아이들을 절대 줄 수 없으며 만나지도 못하게 하겠다고 하더군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라니까요.
그때는 법이 어떤 상황에서건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던 때였습니다. p40

남편이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있는 게 나아.
의논할 상대라도 있는 거잖이...
과부로 오래 살아오신 어머니의 경험담이 이 한마디에 녹아 있더군요.
결혼할 때에도, 그 이후에도 남편의 무질서한 생활태도를 몹시 싫어하시던 어머니의 이 말씀에 많이 고민했죠. p41

속절없이 사랑에 몰입하는 여자들의 속성은 사랑 때문에 인생 전체를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하는 가 봅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결코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죠? p44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산을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 손가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 것은 p58

여성은 항상 어머니의 마음으로 남성을 품어야 하며 그러한 속에서 아들 같으면서도 여인 같기도 하고 아버지 같기도 한 느낌이 살아나오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를 상대할 경우 반드시 유념해야 할 부분은 역할에 있어 절대로 남성이 여성보다 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지는 하늘과 땅이 동시에 존재하였으되 발아의 과정은 모두 땅이 담당하였음을 생각해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씨앗은 하늘이 주되 그것을 살려내는 것은 여성의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성의 기본은 모성이며 모성을 기본으로 하는 한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실패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근본적으로 모성이며 여성만이 온전히 할 수 있는 중의 하나입니다. p62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수많은 남성들과 사랑을 나누고 가슴을 앓아야 했던 과정은 모친의 마음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겪어 넘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과의 사랑을 전부 아들을 여러 명 둔 것 같은 기분으로 받아들였으므로 진실한 사랑을 하면서도 아픔을 나름대로 온전히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그들이 다른 여성과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다독여 주고 바라보는 즐거움까지도 저의 것이 될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여성이므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p63

하지만 결국 완전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지요. 그것은 곧 모든 것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우주이니까요. p64

황 선배가 가장 사랑하신 분은 지족선사였다는 군요. p65

남자 없이 , 성性 없이 사는 고난도의 삶을 통해 겸손을 알게 하시려고 하셨던 것이겠죠.

이제는 나이도 어지간히 먹었으니 여자로서는 접고 자유를 추구하는 오직 ‘인간’으로서만 살고자 합니다. p68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 황진이와의 대화
제 1장 황진이, 삶을 말하다
부친은 선비, 황이黃伊
“저는 원래 진眞이라고 불렸으나 나중에 제 스스로 아버지의 아름 끝 자를 한 자 붙여 진이 眞伊라고 불렸습니다.”

출생: 1511년 6월 생
부친: 시골의 선비로서 조용한 가운데 나름의 학식을 갖춘 분입니다. 거의 말이 없으셨으나 마음속으로는 사랑이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저를 퍽 아껴 주셨으나 소실의 딸이므로 내놓고 귀여워해주시지는 못하셨습니다. p75

아버지의 직업은 무엇이었는지요?
선비로서 초시에 급제하기는 하였으나 벼슬을 한 적은 없고, 농토가 있어 일꾼들이 농사를 지어 생활하였습니다. 부유하지 않고 그런대로 살았습니다.
음주가무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라 아주 조용한 편이셨습니다. 

형제들은 어떠했는지요?
본 부인에게서 아들이 두 명 있었고 그리고는 저 이렇게 셋이었는데 오빠들과는 별로 대화가 없이 자랐으므로 그저 있었다는 정도 외엔 별 기억이 없습니다. p76

성장과정은 어떠했는지요?
집에서 모친과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기생이 되려고 나가기 전에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대로 평범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모친과는 언제까지 있었는지요?
어머니는 15세 경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로 집에 있기가 불편하여 어디로든 나가야 할 형편이었으므로 방편을 생각하던 차 기생이 된 것입니다. 
저로서는 그때까지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독서를 통하여 나름대로 알고 있었으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생각이 있던 차 모친께서 향천하셨으므로 저의 길을 간 것이지요. p77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황 선인을 보필했던 여성은 누구였는지요?
자랄 때는 전속 몸종이 없었고 기생이 되고 나서 서너 명의 몸종이 있었으나 오래 두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몸종은 신월이라고 하였는데 6년 정도 데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로 제 몸종들은 남정네들이 붙여주었던 것이지요.
그들이 제 심부름을 하기는 하였으나 마음을 깊이 줄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고 그저 할 일이나 하였을 뿐이지요. p78

*** 기생의 몸종은 오늘날의 개목걸이?

* 황진이의 출생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담긴 자료가 없고, 여러 책에서 신비로운 설화처럼 전하고 있다. 이덕형(李德泂, 1566~1645)의 <송도 기이(松都記異>)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황진이의 어머니는 현금(玄琴)이었는데 자색이 매우 고왔다. 나이 18세에 병부교 아래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 다리 위에 한 사람이 있으니 용모가 단아하며 의관이 화려했다. 현금을 내려다보며 미소도 띄우고 손으로 가리키기도 하여 현금의 마음이 동하였는데, 문득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해질 무렵에 빨래하는 여인들이 모두 간 후에 다시 나타나서는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다리 아래로 내려와 물을 청하기에 떠주었다. 반쯤 마시다가 돌려주면서 “그대도 마셔보라”하기에 현금이 받아서 마시니, 물이 아니고 술이었다. 그리하여 합환주(合歡酒)가 되어 둘이서 깊은 인연을 맺으니 이로 말미암아 탄생한 것이 진이였다. 

* 약간 추가된 내용이 김이재(金履載, 1767~1847)의 <중경지(中京誌)>에 나온다.

그 뒤 소년은 이름도 안 밝히고 가버렸다. 생각건대 선인이라고 여겨졌다. 과연 임심이 되어 진이를 낳았는데, 해산 때에 기이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 차 사흘 동안 걷히지 않았으니, 즉 이는 선녀라... 어찌 황(黃)이란 성이 있겠는가?

* 김택영(김책영. 1850~1927)의 <숭양기구전(菘陽耆舊傳)에는 ‘황진사의 서녀(庶女)’라는 언급이 있다. 

이는 황진사의 서녀이자 진사의 첩이 현금이었다. 그가 병부교 아래에서 물을 마셨는데 감응하여 임신이 되어 진이를 낳았다. 방 안에 이상한 향기가 사흘간을 머물렀다. 

* 허균(許筠, 1569~1618)의 <성옹지소록 (惺翁識小錄)>에는 ‘맹인의 딸’이라는 언급이 있다. p79

잣나무배
저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잣나무배
몇 해나 이 물가에 한가로이 매였던고
뒷사람이 누가 먼저 건넜느냐 묻는다면 
문무를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 p84

제 경우에는 인간의 몸을 가진 자녀를 둔다는 것은 한 남자에게 매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지요.
어떠한 한 남성을 평생 사랑한다는 것은 곧 제 공부의 미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어요. p88

사람들이 그를 일러 선녀라 하였다
방에서 향내가 났었다는 데 무슨 냄새였나요?
향내는 선인으로서 수련을 하다 보면 나는 향내였지요.
선향仙鄕이었습니다.
호흡을 열심히 하다보면 인체에서 분비되는 물질이 있고 이 물질은 인간을 가장 향기로운 상태로 인도하지요.
호흡을 열심히 할 경우에 무심 상태에서 분비되는 것으로서 인간의 모든 병까지도 나을 수 있게 하는 물질입니다.
화학적인 변화로 가능한 병은 나을 수 있지요.

호흡을 통하여 만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물질의 분비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이 물질의 분비가 가능한 이유는 신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 L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p88

반달을 노래함
누가 곤륜산 옥을 깎아내어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
견우와 이별한 후에 
슬픔에 겨워 벽공에 던졌다오 p91

* 황진이가 서화담 간에 주고받았다고 하는 시조 두 수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만중운산)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 화담 서경덕

내 언제 무신(無心) 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 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 황진이 p119

* 황진이가 벽계수를 유혹하며 불렀던 노래가 아래의 시조이다.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사랑의 정한을 노래한 황진이의 시조

어져 내 일이야 그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p 123



3. 내가 저자라면 

명상을 하며 황진이와의 대담형식을 통해 나눈 저자의 궁금증과 주장을 펴나간 책이다.

하나, 책을 팔려면 저자나 출판사는 적당히 사기를 칠 줄 알아야만 한다?

방식이야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겠지만 인터넷에 나와 있는 저자소개란에 쓰여 있는 저자가 명상에 몰입한 계기 옳지 않게 기록 되어 있는 것 같다. 이혼하고 배반당해 실연을 극복하기 위해 명상에 빠져들었다고 하면 독자들이 쉽게 다가가지 않고 외면할 것이어서 그러한가?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붙여가며 저자의 경력이 마치 저자 글의 가치인양 떠벌이고 있지만 이 책의 프롤로그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내용이 다르게 나와 있지 않은가.

책 내용의 서두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두 남자로부터의 상처에 대한 상심으로 오래 갈등하며 아파하다가 명상에 더욱 심취하게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고 원치 않았던 자신의 일련의 상황들에 대한 인간적인 경험들과 의문을 풀어보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스며져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꼭 그것 때문에 명상을 하게 되었다고는 말하고 있지 못하지만 저자가 첫 번째 남편의 단순한 불륜을 넘어선 장기간에 걸친 지독한 속임수에 심한 모욕감과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고, 감쪽같이 두 집 살림에 오래 동안 속아 살아온 분노로 인해 심적 고통과 함께 실제로 육체의 병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는 점과, 그로인해 병명도 잘 나타나지 않는 유방이 부풀어 오르는 심한 통증에 시달리며 심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웠고 명상으로 인해 차츰 회복되었다고 그 신기함을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살다보니 그녀 역시 첫 번째의 전 남편과 같은 방법으로 삶을 살게 되는 것에 대해 고뇌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거하며 사귀던 남자가 기막히게도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림으로써 결국에 아내가 있는 남자와의 불륜의 관계를 가지며 청산하지 못하고 살다가 마침내 용단을 내리고 혼자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노라 독자가 짐작해 볼 수 있도록 솔직하게 적어놓았다. 그리고 저자는 명상을 위해 사회적 신분 모두를 내려놓았다고 이 책에서는 밝히고 있지 않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 책은 선계를 파동으로 교환할 정도로 신성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럴 듯한 이유보다는 진솔한 진정성을 갖추지 않은 표현은 자칫 독자를 우롱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것이기에 말이다. 

어느 저자소개에는 무조건적으로 오로지 명상을 위해 모든 것을 일순간에 초개와도 같이 버린 것처럼 표현되어 있었으니 이는 독자를 유인하기 위한 출판사나 대행 회사 측의 저의로 보인다. 그것은 저자에 대한 참신성을 애초부터 의심하게 하는 것을 도울 뿐이라고 생각된다. 책이나 읽어보고 쓴 것인지 모르겠다. 지나친 상업주의적 발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작가적 양심으로 헤쳐 볼 수 없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전 이력을 밝히기보다 그럴 듯한 이력을 내세우기를 좋아하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소위 간판 하나로 편히 먹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이러한 현실을 지극히 너무나도 많이 뼈저리게 느끼고 당해온 터라 내 조카의 대학입시 때에는 학벌이 신분을 표방해 주는 이 사회의 논리를 간과하지 않고 설명해 주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사회의 통념과 구조 속에서는 아직까지 대단히 유효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이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지 않은가. 

결국에 출판과 매출이라는 것은 글보다 기획과 홍보라고 말하는 어느 선배의 한에 서린 듯한 주장도 결코 예사롭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런 경우도 복불복福不福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두울, 나는 황진이의 시조를 좋아하고 그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대담하고 대단한 예기를 가지고 남존 여비 시대에 신분상 하위직의 기녀로서 남자를 후려 대는 솜씨가 능숙 능란 가히 일품이기 때문이다. 당대의 내놔라하는 여간한 남자들은 일명 기녀 황진이에게 쭉도 못된다고 할 수 있으니 그의 배포와 깡다구가 멋져 보이기까지 한다. 시대를 잘못만나 그렇지 요즘 같은 세상을 만났더라면 멋진 로비스트로서 크게 한몫 당당히 해내며 일을 내도 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재능이 치마 속 감춰진 부분에만 국한했던 것이라면 물론 어우동 쯤으로 항간의 흥밋거리나 될 뿐 재미없었을 것이다. 허나 그는 우리 문학사에 유유자적 만만히 그 흔적을 들어내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글을 쓴 저자 문화영도 아마 그 점을 높이 사서 이 정도라면 선계에서 노니는 신선들의 지상 왕림 행차라고 할만도 하리라 생각했나 보다. 그러나 저자의 수련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종의 배 아픔과도 같은 빈정댐의 일환인지 마치 하느님이나 부처님 앞마당에서 노니는 듯 자신을 그리 신성시 하는 것에 대해서는 책을 다 읽고 나니 더욱 납득이 가지 않음을 어쩌랴. 이 책에 드러남으로 봐서는 저자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음은 과연 나의 명상의 명자도 모르는 수련에 무지함의 극치의 발로 때문일 것인가?

세엣, 나는 아직 책 고르기에 능숙하지 못하다 

연구원 수련 동안은 지정 목록이 있어서 참 편했고 좋았다. 좋은 책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홀로 자신의 고독을 향해 가야하는 요즈음에는 평소에 책읽기가 잘 훈련되지 않아 그런지 아직도 대형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구입하려고 하면은 많은 사람들의 열기와 빼곡히 들어찬 책들을 보며 이내 현기증을 일으키고 돌아오고는 한다. 어떨 때는 그 수많은 책들 가운데 읽고 싶은 책들을 찾아가며 조금 살펴보다가 금방 지쳐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찬찬히 그 책에 대해 마음 편히 살펴보기가 조급한 성질 때문에 그런지 쉽지가 않고, 설령 몇 권을 살펴보다가는 마음이 편하기보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내가 과연 이 많은 책들 가운데 끼일 수 있는 나만의 책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의심이 드는가 하면 금세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책들을 보면서는 그 꼴이 마치 내 모습일 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까지 하면서 순간 기가 팍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소 편하고 수월하게 인터넷 서치를 통해서 한꺼번에 몇 권씩 구입해 놓고 한동안은 아무 고민 없이 읽는 방법을 선택하고는 하였다. 그것이 즐거운 마음으로 발품을 팔러 나갔다가 공연히 매정한 현실에 부대끼며 자신감을 상실하고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것보다 낫다고까지 생각해 버리기까지 했다. 차라리 냉정한 현실을 눈에 안 보이게 하고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볼 수 있을 거라는 기분 좋은 착각에 잠시 빠져들기도 하노라면 단순히 글쓰기 작업에 집중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욕심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인터넷을 이용한 서치도 미숙해 그런지 좀처럼 만만치도 않거니와 저자 소개나 출판사에서 주장하는 책에 대한 서평만으로는 사실 신뢰성 있는 내용을 쉽게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너무 그럴 듯하게 소개되어 있는 책들이 많아서 말이다.

네엣, 이 책의 다른 구성 다른 주장에는 의도된 억측의 몽상적 사기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구입해서 읽고 있는 특히나 이번에 읽은 이 책은 다른 책들 같지 않게 좀 특이한 형식을 취한 책이다. 어느 면은 약간 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어느 부분의 목차가 황진이와의 대화라고 또렷이 적혀 있다. 자서전들을 읽고 있던 중 평소에 관심이 있던 황진이에 대한 자전적 성격의 글인 줄 알고 선택해서 읽었는데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 난감하기도 하다. 저자가 마치 대필한 듯한 선계의 대화방식으로 글을 엮어 나가면서 저자의 주장을 담아냈으니 독특하기도 하고 무언가 언뜻 사기 당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시대를 초월한 거침없는 여성성을 불러들이고 뭇 사내들을 거친 황진이라고 하는 희대의 기생이며 문필가이기도한 역사속의 인물에 자신을 투영시키기도 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의문점을 풀어간 형식이 독특하고 흥미로운 한편, 자신의 주장으로서는 미흡할 수밖에는 없는 나름의 좀 엉뚱한 듯한 신선사상과도 같은 명상을 선전하거나, 죽은 사람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감정이입을 시켜놓고 마치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억지로 끼워 놓고는 맞는 것인 양 강요하는 구조를 끌어들인 것은 아닌가하고 자못 의아스럽기도 하다. 남다른 빼어난 이력을 가지고 그토록 글쓰기로 돈을 잘 벌었으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까지 올라 그 수입으로 교제하던 이성의 생활비를 지원할 정도로 활발한 글쓰기를 했다는 작가의 고백이 약간 의심스럽기까지 한 것은 나의 너무 지나친 고정관념에 치우친 의구심에 불과한 것일까? 하여 다시 저자에 대한 써치를 해봐도 나름 여러 권의 책을 썼고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확인까지는 할 수 없지만 나와 있는 대로라면 책의 반응도 높은 것으로 되어있으니 아이러니하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기 글에 대한 주장을 싣기보다 남을 빌어 어느 당위성만 가져오려고 하는 얄팍한 일면도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한 맛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명상학교 수선재라고 하는 홍보책자에 불과한 유인물 배포를 대하는 듯 한 자칫 노골적이고 지나친 선전물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혼돈스러움이 들기도 한다. 

명상을 통해 실제로 역사속의 인물들 가운데 선인이 된 자들을 만나고 미묘한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기라도 한 듯 글을 실었고, 어느 누구와도 명상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저자가 주장하는 명상의 높은 단계에까지 도달하게 되면 동급의 대화와 신선과도 같은 삶으로서 이 시대와 세상을 조롱하며 살 수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함이다. 마치 지상에서는 쉽게 그 해답을 찾지 못하니까 신성하고 영험한 초능력의 신비와도 같은 주장을 펴는 것으로 벅찬 감동보다는 의도된 조작이라는 염려가 들기도 한다면 내가 너무 수양이 안 되어 지나친 의심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어느 부분 저자의 잣대에 따라서 사실과는 달리 심한 굴절과 왜곡 현상이 나타날 수 있겠다 싶어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그 불가능하고 불합리하며 부도덕할 수도 있을 법한 약간의 의도된 과장의 파렴치함이라 여겨지기도 하고, 선계를 넘나드는 신성을 상황적으로 설정해 놓고 마음껏 요리해댄 느낌도 없지 않다. 따라서 글쓰기의 한 방편으로서의 시도는 유의미할지라도 이러한 방식을 선택하여 자신의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한 면들을 교묘히 회피해 나갔다고 하는 반론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 지 궁금하다. 톡 까놓고 말하자면 사이비 교주의 간증 같으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대화체를 통해 문답식으로 궁금증을 풀어내는 형식을 취하니 내용이 쉽게 읽혀 가독성과 전달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되고, 어렵지 않게 글을 끌어가는 힘은 저자의 타고난 능력으로 보인다. 또한 질문의 요지만 몇 개 간추려 살을 부치고 중간에 필요하다 싶은 부분은 상세설명을 위해 좀 더 고증학적인 자료들을 첨가해 가며 역사적 자료로 뒷받침해나간 점도 사실증명을 하는 듯 설득력을 높여 주었고 그러는 사이 쉽게 뚝딱 책 한 권이 완성된 느낌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가 주장하는 명상과 운영하고 있는 수선재의 사상을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일반 독자라고 한다면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어야 하고, 읽고 나서도 석연치 않은 구석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드니 일반 대중을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으리라.

작가가 치료의 한 방편으로 명상을 택하여 병과 고통을 치유하고 자신의 내면의 맑음을 끌어내어 선계에 비유한 것 까지는 이해가 가나, 그것을 지극히 몽환적 논리로서 마치 자신이 신선계를 넘나드는 신선인양하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기 최면적 주장을 펴는 모습은 매우 어설프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섯, 출판사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노가 치밀다

출판사의 성의 부족인지 활자가 일정하게 구도 잡히거나 배열되지 않음은 얼렁뚱땅 책을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기도 하고 어느 일면 자기들만의 잔치에 초대를 하며 독자를 아랑곳 하지 않고 지들끼리 노는 듯한 인상을 풍기게 할 만큼 여러 대다수의 일반 독자를 위한 배려가 매우 부족한 무성의한 편집이란 생각이 들어 짜증이 일 정도이다. 

본문에 따로 삽입 형식을 취한 고서 자료를 인용한 부분의 글과 지면과 색깔은 독자의 시야를 극도로 피곤하게 만들어서 여간 피로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또 고서의 자료를 있는 그대로 베끼며 상당부분의 지면을 할애했음에도 오히려 교묘히 그 자료들은 그저 참고 자료일 뿐이고 저자의 주장만이 옳은 양 활자를 구성한 의도도 얄팍한 상술로 여겨진다. 좀 더 중요한 자료는 죽이고 자신의 주장만 전면 부각 시키려는 의도가 탐탁치 않게 여겨진다.

해서 이런 식으로 책을 만드는 기획자와 만나서는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동안 읽은 책 가운데 한마디로 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법 많은 책을 쓴 저자의 사상이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저자 조사를 신중히 잘하라고 이르셨던 게로구나 하고 새삼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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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인용구절을 아직 다 못 채웠는데 자꾸 차일피일 미루게 되어 먼저 올려본다. 황진이가 남긴 시구절과 그에 대한 일화들을 옮겨보고 싶은데 꾀가 난다. 나를 강제하기 위함이다. 외출할 일이 있으니 돌아와 약속을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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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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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8.04.16 13:24:28*.67.52.204
어째.... 좀 .... 그렇네요...

이 놈의 명상 바람은 언제 좀 가시려나?

살기 어려워지면 원래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법이긴 하지만,

요즈음은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추세라서...

에고.. 한 숨만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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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4.17 20:01:45*.247.80.52
기어이 다 해냈구나. 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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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
2008.04.18 08:37:54*.180.231.71
이러니 쌍코피가 터지는 게 당연하지.

이정도 북리뷰를 쓸려면 일주일은 쏜살같이 날려야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