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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9

‘탐진치(貪瞋痴)’의 뜻 : 네이버 블로그

‘탐진치(貪瞋痴)’의 뜻 : 네이버 블로그

 ‘탐진치(貪瞋痴)’의 뜻

 동동이 ・ 2019. 12. 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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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貪)은 탐욕, 탐애(貪愛)라고도 하며
자기가 즐기는 대상을 탐내서 구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진(瞋)은 진애(瞋愛)라고도 하며,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대상에 대하여 반발하고 미워하고 분하게 여겨서
이러한 분하고 신경질나고 화가 나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치(痴)는 우치(愚癡)라고도 하는데,
잘 알지 못하여 해아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지 못하여 잘못을 저지르거나, 옳고 그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잘못 생각하고 행동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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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의미

貪(탐내다 탐)

뜻을 나타내는 조개패(貝돈, 재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며 分散(분산)의 뜻을 가지는 分(분→탐은 변음)으로 이루어짐.

재물(財物)이 분산되어 모자라다의 뜻/에서 탐내다의 뜻으로 확대됐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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瞋(부릅뜰 진)

단서가 될듯한 한자를 찾아보았다

直(바르다 직)-열십(十)과目(목)과 ㄴ(숨을 은(隱의 옛자)의 합자(合字).

十(십)과 目(목)을 합(合)하여 열개(여러 개)의 눈(☞많은 사람)으로 숨어 있는(ㄴ) 것을 바르게 볼 수 있다는 뜻을 합(合)하여 바르다, 곧다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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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참진)-사방팔방(八)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目) 올바른 것으로 '참'을 뜻함

貞(곧을정)은 갑골문에서 의미부인 卜과 소리부인 鼎으로 구성되었는데, 이후 鼎이 貝로 잘못 변했다.
卜은 거북점을 칠 때 불로 지져 열에 의해 갈라지는 거북딱지의 형상이고,
그래서 貞은 원래 신에게 ‘물어보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불에 지져진 거북딱지가 직선을 그리며 갈라진데서 ‘곧다’는 뜻이 나왔고,
지금은 ‘곧다’는 의미가 주로 쓰인다.

貞으로부터 분화된 글자가 眞이고, 이후 眞人(진인)은 이러한 사람의 최고 호칭이 되었다.
그래서 眞은 신의 소리를 듣기 위해 점복을 행할 때의 몸과 마음가짐처럼
‘眞實(진실)됨’과 ‘참됨’, 그리고 眞理(진리)라는 뜻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렇다면 瞋은 눈을 진짜로 힘주어 뜨고 있는 모양이 되어 화난 상태의 표현이 되었지 않을까

癡(어리석을 치)
癡(어리석을 치)는 의심스러운(疑·의)+병녁,역의 합자로
병명이 의심스러워 확실히 알지 못해 治癒(치유)하기 어려운 병을 말했으며,
이후 疑가 知(알 지)로 대체되어 痴로 변했다.

(知는 갑골문에서 口(입 구)와 矢(화살 시)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화살(矢)이 과녁에 명중하듯 상황을 날카롭게 판단해 말(口)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다)

어떤이는 疑는 갑골문에서 머리를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으로부터
疑心(의심)의 의미를 담아 낸 글자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어린아이가 비수(匕)와 화살(矢)을 들고 있어 위험하여 걱정하니 '의심하다'를 뜻함-라고 해석한다

하여튼 병들어기댈 역,녁에(?- 병상을 그린것) 잘 모르는 덩어리가 누워있는 것이니
어리석은 병을 뜻한다

빈 배가 떠내려오면 거슬러 올라가던 사공은 배를 피해 노를 젓지만
사람이 타고 내려오면 싸움이 난다고 합니다
빈 배를 보고 화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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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치(貪瞋痴)와 삼업(三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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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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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 먼 과거로부터 지은바 여러가지 악업들은
모두가 저 시작도 끝도 없는 과거로 부터의 탐진치로 말미암은 것이다.
모든 악업들은 신`구`의(身`口`意) 삼업으로 부터서 생기는 바이오니, 
일체를 이제 다 참회 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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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불경에 의하면 모든 탐진치와 삼업이 모든 악업의 시작이고 끝이다.
탐, 진, 치의 삼독이란 세 가지의 번뇌를 말하는데 삼도(三道)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범부(凡夫)의 경우에서 보면,
탐(貪)이란 탐욕(貪慾), 즉 사물을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을 말한다.
진(瞋)이란 노여움이란 뜻이며, 모든 것을 감정적으로 결정하고 올바른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치(癡)란 어리석다는 뜻이며, 자기 마음대로 매사를 판단하고 만심(慢心)을
일으키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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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의 삼독은 경전에 의하면

열반(涅槃=번뇌를 없애고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경애)을 원하는 것이 탐(貪)이며,
생사(生死=괴로움이나 슬픔)을 싫어하는 것이 진(瞋)이고,
중도(中道)에 미혹되는 것이 치(癡)라고 한다.

​또한 보살의 경우는 불법을 구도하는 것이 탐이고, 이승(二乘)을 미워하는 것이 진이며, 불성을 깨닫지 못한 것을 치라고 한다. 이승이나 보살(普薩)의 삼독(三毒)을 보면 돈을 벌고 싶다든가, 저 사람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내는 우리들 범부의 삼독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승이란 성문(聲聞=부처의 설법의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연 사람)과 연각(緣覺=부처의 설법의 이치를 알아서 깨달음을 얻는다든가, 꽃이 지고 낙엽이 지는 것을 본다든가 하는 등의 자연계의 현상을 연으로 해서 깨달은 사람)을 말한다.

탐`진`치가 배어 나오는 곳이 어디인가?
몸과 입과 생각이다. 탐.진.치 삼독심이 생겨나는 곳이 몸, 입, 생각의 신`구`의 이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모두가 신`구`의로 부터 표현된다.
탐`진`치 삼독심을 잘 다스리려면 항상 몸과 입과 생각을 잘 관리해야 한다.

자기 몸과 마음을 좋지 못한 환경에 머물게 하면 의도적이 아니더라도 빨려 가듯이 죄를 짓게 된다.
그런 환경을 만드는 마음을 파기해야한다.

그런데 그런 환경에 빨려 들어가는 것은 우리들의 몸과 마음속에 쌓인 업 때문이다.
억겁창생을 두고 저 먼 과거로부터 나쁜 생각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나쁜 생각이 나쁜 업을 만들어서 우리의 몸과 마음 가운데 배어진 까닭이다.

법구경을 공부할수 있으니 기쁩니다. 법구경은 읽을수록 더욱 깊은 의미를 알수 있는 경전으로 봅니다. 법구경 202게송도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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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같은 불은 없고
성냄같은 악은 없고
오취온(五取蘊)같은 괴로움은 없고
적정(寂定)같은 행복은 없다.

2020/06/25

알라딘: 계시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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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의 한국 - 자유 독립 통일  | 사색인서고문집 

김흥호 (지은이),김흥호 사상전집 편집부 (엮은이)사색2019-10-31







계시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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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쪽148*210mm (A5)239gISBN : 9788993994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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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의 한국 - 자유 독립 통일



심재 - 현재 김흥호 생각하는 사람의



영미 시문학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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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특별 선물! 오로라 유리컵.본투리드 머들러(이벤트 도서 포함, 국내서.외서 5만원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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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저자, 현재鉉齋 김흥호金興浩 선생이 1945년 8월 29일 평안남도 함종교회 목사로부터 들었던 한국의 미래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가 중심으로 되어있는 책이다. <계시>의 내용은 세 가지였는데, 함종 목사가 이 <계시>를 접한 날은 1945년 4월 9일이었다. 1945년 8월 29일에 함종 목사는 선생을 만나 이 <계시>의 내용을 해석해달라고 했지만 풀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8월 15일 해방이 되었고, 그 후 삼팔선이 생기는 것을 보고 이 <계시>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1947년 함종 목사는 선생을 찾아가 자신은 교회와 교인들을 지키기 위해 북한에 남겠으니, 선생은 월남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달라는 부탁을 하고 그들은 헤어졌다. 그 후 선생은 함종 목사가 말한 <하나님의 계시>를 세상에 알리려 노력해왔다. 선생은 교회에서, 강단에서, 글로써, 여러 통로를 통해 이 <계시>를 전했다.



육이오 전쟁이 일어남으로써 두 번째 <계시>의 뜻이 확실해졌고, 이제 세 번째 <계시>가 남아있다. 선생은 당신 생전에 이 세 번째 <계시>가 실현되기를 바랐지만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고, 선생은 2012년 12월에 92세로 소천 하였다.



선생은 이 <하나님의 계시>가 왜 한국에 주어졌는지 이해했다. 그것은 기독교를 통해 한국이 거듭 나야 하고, 한국의 기독교로써 전세계를 구원하라는 사명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일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이 책은 선생의 설교, 성경강독, 고전강의 중에서 이 <하나님의 계시>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역사와 미래에 관련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계시啓示



제1장 역사 즉 신앙



제2장 자유



나라와 의義

원수를 사랑하라

민족의 꽃



제3장 독립



육이오



제4장 통일



통일의 어려움

난산難産

통일의 문제를 극복하려면



제5장 자유 · 독립 · 통일



국가의식은 자유 · 독립 · 통일을 가지는 것

한국 사람이 할 일

나의 애국관



에필로그: 하나님의 사랑



출전 목록

엮고 나서



접기

책속에서

기독교는 서양문명 세계로 전도되면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시작으로 희랍철학을 기독교 신학으로 만들고, 계속 세계적인 종교로 자라서 우리 한국에까지 왔다. 이제 기독교는 동양문명의 세계로 올 운명에 있다. 앞으로 기독교가 살기 위해서는 동양의 철학을 기독교 신학으로 만들어 동양 사람들을 먹이고 살려가야만 한다. 앞으로 기독교가 살아서 무성한 숲을 이루어 온 세상을 덮고, 생명의 샘이 땅 끝까지 임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기독교가 동양을 살려내는 세계적 기독교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다.  접기

<프롤로그: 계시啓示>

그날 저녁 나는 함종 목사님과 한 방에서 잤다. 자기 전에 그 목사님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것은 진지한 말씀이었다.



1945년 4월 9일 새벽 3시에 예배당에 가서 기도하던 중 예배당에 빛이 들어와 한 벽면을 비추었다. 그 벽에는 한국지도가 나타나고 다음, 한반도를 절반 그은 선이 나타났다. 이어서 북쪽은 싸늘한 기운이 차고, 남쪽은 따뜻한 기운이 감돌면서 무궁화가 한 포기 자라나 꽃을 피우고, 그 꽃은 서편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때 만주 북쪽에서 호랑이가 한 마리 무섭게 북한 땅으로 내려왔다.



얼마 있다가 다시 빛이 비치었다. 다시 한국 지도와 호랑이가 나타났고, 그 호랑이는 성곽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몰리고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 후 또 한 번 빛이 비쳤다. 북쪽에서 호랑이가 다시 울타리를 넘어서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때 남쪽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 호랑이와 죽을힘을 다하여 싸웠다. 종래 호랑이가 쓰러지고 그 사람도 쓰러졌다. 그가 정신이 들어 깨어보니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접기

<역사 즉 신앙>

신앙을 가졌다는 것은 역사를 가졌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로마서 4장에는 아브라함의 신앙에 대해서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역사를 가졌고, 역사를 믿었습니다. 기독교인 신앙의 독특한 점은 신앙이 곧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면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나라와 의義>

국가야말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예술작품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빛내면 나라는 우리를 빛내줍니다. 우리가 빛나는 길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나라를 빛냄으로써 우리가 빛나는 것이지, 그냥 내가 빛나자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기독교의 핵심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온전하게 될 때 우리도 원수를 사랑할 수 있구나. 그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와 싸워 이겨야 되는데 무엇을 가지고 이기는가. 사랑을 가지고 이긴다. 그럼 사랑이란 무엇인가. 진리다. 그것이 간디의 사상입니다.



원수와 싸워서 이기는 힘, 그것이 사랑인데 사랑이란 무엇인가. 진리다. 그럼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영靈이다. 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다. 그럼 결국은 원수를 이기는 힘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싸울 때 원수를 이길 수 있다. 그래서 간디는 그것을 ‘무저항 저항’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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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흥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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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서흥에서 출생

평양고보 졸업

와세다 대학 법학부 졸업

미국 버틀러 대학 종교사학 석사

미국 인디아나 주 감리교회에서 정목사로 안수 받음

이화여대 명예철학박사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 선생을 만나 6년 만에 깨달음을 얻고

스승으로부터 현재鉉齋라는 호를 받음



국학대학 철학교수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종교철학 교수

이화여대의 교목

감리교 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교수

이화여대에서 학생, 교수, 일반인을 상대로 45년간 고전강독을 함

최근작 : <계시의 한국>,<심재>,<노자 노자익 강해 6> … 총 43종 (모두보기)

김흥호 사상전집 편집부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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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사색 출판사는 현재鉉齋 김흥호 선생의 여러 내용 중에서 우리나라 운명에 관한 글들을 발췌하여 한 권의 책을 내게 되었다.

현재 선생의 기독교는 한마디로 애국적 기독교이다. 선생에게 기독교는 그릇이고 애국은 그 안에 담긴 밥이다. 밥이 없는 빈 그릇은 배고프고 허망한 그릇일 뿐이다. 또 한편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밥은 먹을 수 없는 오염된 밥일 것이다. 기독교라는 단단한 그릇에 담긴 귀하고 알찬 밥을 먹을 때 배가 부르고, 힘이 나고, 생명의 살이 붙을 것이다.

선생은 항상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다고 말씀해오셨다. 나와 나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나라를 빛내야 내가 빛날 수 있지, 나 혼자서 아무리 빛나려 해도 그건 불가능하다고 하신다. 나를 빛내주는 것은 오직 나라가 빛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선생의 강의를 오래도록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이 책의 중심 테마인 <하나님의 계시>가 매우 익숙하다. 늘 선생께로부터 들어온 얘기이다. 우리는 선생께 늘 여쭙고는 했다. 그 마지막에 호랑이와 싸운 흰 옷 입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하고. 선생께서는 글쎄 아마 기독교인이 아닐까 하고 대답해주셨다.

2019년 우리나라는 점점 이상한 소용돌이로 말려들어 가는 것 같다. 정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이제 세 번째 계시가 나타나려는 걸까? 이 책을 만들면서 이 세 번째 계시에 더욱 관심이 쓰였다.

이 책을 통하여 선생께서 생전에 누누이 말씀하셨던, 어떤 국가의식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통일과 독립과 자유로 인식되어야 하고 실현시켜야 하는지 정리해보았다.

사색 출판사는 김흥호 선생의 사상전집만을 출간하고 있다. 주로 선생의 강의를 녹취로 풀고 문서화하여 책을 내고 있다. 예를 들어 『노자·노자익 강해: 무지·무위·무욕』 (전 8권, <김흥호 사상전집 ? 노장사상 1> 서울: 사색출판사, 2013~16) 의 경우는 전 8권으로 되어있다. 총 47회(약 1년 반 기간) 강의를 문서화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독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8권이나 되는 노자 해석서를 요즘 읽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런 연유로 선생의 대표사상을 몇 분류로 나누어 일차로 2019년 5월에 『심재心齋』라는 책을 내었다. 그것은 ‘생각’이라는 주제어를 가지고, 관념의 허상에서 실상의 세계로 어떻게 돌파해나갈 수 있을지 그 천착의 길을 안내해 보았다. 선생께서는 생전에 생각을 바로 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선생의 사상의 요체를 따라가 볼 수 있는 좋은 안내서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출간된 이 책은 우리나라 역사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내용이다. 이 계시를 전해들은 선생께서는 3.1 운동과 해방을 ‘자유’로, 6.25 전쟁을 ‘독립’으로, 이제 남북한의 통일을 기다림으로써 국가의 완전한 모습을 기대하셨다. 한국의 완전한 국가의 탄생은 난산難産이라고 보셨다. 한국이 완전한 국가가 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난산은 위험하다. 어머니도 아기도 모두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3의 계시에서 호랑이는 쓰러지고 싸웠던 사람이 일어나고, 태극기가 휘날리고, 사람들은 만세를 외쳤다. 정말 그렇게 될까. 제1, 제2 계시가 모두 맞았으니 제3의 계시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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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램만 가지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자유민주시민의 행동하는 힘을 보여야 할 때다.  구매

madwife 2020-01-22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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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3

추천 도서, In Tune with the Infinite 생명의 실상/생장의 집/다니구치 마사하루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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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une with the Infinite - 인생의 문을 여는 만능열쇠 추천 도서

2014. 7. 14. 14:32



https://blog.naver.com/haeil0308/220059855922



이 글을 보낸곳 (1)



물질주의는 필연적으로 비관주의와 직결된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만약 우리 속에, 우리를 통해, 그리고 모든 곳에 ‘영혼의 힘’이 작용하고 그 힘이 바른 힘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낙관주의가가 된다. 비관주의는 유약함이 되고 낙관주의는 힘이 된다. ‘신성(神性)’에 자신의 중심을 둔 사람은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이를 극복할 수 있고, 자신 속에 있는 힘을 믿고 폭풍이 칠 때도 맑은 날처럼 침착하고 평온하게 보낼 수 있다. 이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잘 알기 때문이다.

​ <인생의 문을 여는 만능 열쇠>에서






인생의 문을 여는 만능열쇠작가랄프 왈도 트라인출판지식여행발매200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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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In Tune with the Infinite (무한에 파장 맞추기)

원제를 번역하면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면이 있어 제목은 별도로 붙였다.

이전에도 번역이 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모두 다른 제목을 붙였었다.

다니구치 선생께서도 1966년 이 책을 번역하시면서 “행복은 당신의 마음으로” 라는 제목을 붙이셨다. (사진 참조)







그리고 생명의 실상 8권 관행편 ‘무한지혜를 감수하는 길’에서 아래의 2개의 에피소드를 인용하셨다.

In Tune with the Infinite 는 광명사상의 책은 아니지만, 광명사상가는 물론이고 실천철학자, 자기계발강사 등 형이상학의 실천적인 부분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책이다.



내면의 빛에 눈을 돌려 계속 성장하라.

동양에는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가 있다. 이 개구리는 연못에 사면서 한 번도 자신이 사는 작은 연못에서 나온 젓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에 사는 개구리가 연못에 왔다. 호기심 왕성한 바다 개구리는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넌 누구야? 어디서 살아?” 연못에 사는 개구리가 물었다. “난 아무개고 바다에서 살아.” “바다? 바다가 뭐야? 어디 있는 거야?” “바다는 엄청 크고 그 안에 물이 가득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 “그래? 얼마나 큰데?” “어, 굉장히 커.” “이 만큼 커?” 연못에 사는 개구리는 옆에 있는 작은 돌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니, 훨씬 커.” “음, 그래?” “내가 사는 바다는 이 연못보다 훨씬 커. 이만한 연못이 수백만 개 정도 들어갈걸?” “헤, 말도 안 돼. 지금 날 속이려는 게지? 넌 거짓말쟁이야. 내 연못에서 나가. 얼른! 너 같은 개구리하고 사귀고 싶지 않아.”

‘당신은 진실을 알고 진실은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 진실에게서 눈을 돌리면 저 혼자 잘난 맛에 살고 이러한 거만이 당신을 바보로 만든다. - 이 말은 ‘난 머리가 좋아’라고 잘난 척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아둔한 자는 정신적인 성장을 멈춘 사람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성장을 멈추면 가령 다른 사람이 아둔하다고 말하지 않더라도 그 자신이 아둔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잠자면서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내 친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멋진 기사를 쓴 적이 있고, 곧잘 이 방법에 의존한다고 한다. 그녀는 어느 날 오후, 편집장에게서 다음 날 아침까지 기사 하나를 쓰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그 기사는 꽤나 손이 많이 가는 조사가 필요한 기사였다. 그 분야에 대해 잘 몰랐던 그녀는 많은 정보를 모으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다지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책상 앞에 앉기는 했지만 평소 실력밖에 발휘할 수 없으니 실패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거의 절망적인 생각에 휩싸인 그녀는 일단을 일을 접기로 했다. 그리고 잠자는 동안 가능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마음상태를 만들어놓고 자리에 누워 다음 날 아침까지 푹 잤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그녀, 가장 먼저 지난 밤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잠깐 동안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러자 완벽하게 완성된 기사가 눈앞에 떠오르는 것 아닌가. 그녀는 기사 전체를 새겨본 후 일어나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펜을 잡고 원고지 앞에 앉았다. 마치 완성된 문장을 그대로 베끼듯이 펜은 술술 원고지 위를 굴러갔다.

이렇게 되면 마음의 힘을 끌어내는 법칙 덕에 우리는 잠자는 동안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품었던 생각의 영향을 받는다. 마음은 항상 활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잠자는동안에도 어떤 생각의 영향을 받을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거기서 큰 성과를 올릴 수도 있다. 마음의 능력은 여러 의미에서는 눈 뜨고 있을 때보다 잠자고 있을 때 더 개방적이고 유연하다. 따라서 어떤 생각을 하며 잠에 빠질 것인가에 대해 상당히 신경 써야 한다. 마음이 끌어 들이는 것은 이미 당신 마음에 있던 생각과 같은 것이므로,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이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정신력의 기적 - 단 카스터 추천 도서

2014. 7. 4. 18:11



https://blog.naver.com/haeil0308/22005026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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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력의 기적작가단 카스터출판문예출판사발매200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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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력의 기적작가단 카스터출판매일발매200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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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에 우연히 알게 되어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릅니다.
단카스터는 미국 광명사상의 아버지에 해당하는 분입니다.
지금은 2개 출판사에서 출판하고 있군요...
#정신력의기적





마음의 과학 1 - 어니스트 홈즈 추천 도서

2014. 7. 2. 16:17



https://blog.naver.com/haeil0308/220047945813



이 글을 보낸곳 (1)




마음의 과학 1작가어니스트 홈즈출판서른세개의계단발매201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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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에디부인(Mrs. Mary Baker Eddy)이 설립한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 미국의 광명사상가 어니스트 홈즈의 저서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다니구치 마사하루 선생께서도 어니스트 홈즈의 책을 직접 일본어로 번역하신 적이 있습니다. 광명 사상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꼭 보시도록 추천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병자에게 어떻게 기도하면 좋은지를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 중의 일부를 소개 합니다.



치유하는 방법

병은 암시를 통해 정신적으로 쉽게 전염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호의 아우라, 보호의 기운으로 환자를 감싸야 합니다. 그들이 생명이 바로 신(神)임을 깨닫고,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신(神)임을 깨닫고, 그들 안의 완전함과 완벽함으로 신(神)이 존재함을 깨달음으로써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당신의 완벽함을 인식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환자에 대해서도 그것과 똑같은 완벽함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십시오. 그런 후에 당신의 말이 그를 속박하고 있는 잘못된 상념을 부순다고 말하면서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을 생각해, 구체적으로 그 깨어진 법칙 혹은 잘못된 생각이라 불리는 것을 언급하십시오. 당신이 이 일을 할 때 당신의 말은 그것들을 사라지게 할 거라고 확신하면서 그 문제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십시오. 이제 그곳에 그대로 잠시 앉아서 치유가 이루어져, 안전하고 완벽하다는 것을 인식하십시오. 평화를 크게 인식하면서 치유를 마치십시오.

이 작업이 어려운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의 마음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이 일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마음의 치유는 우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을 마음 안에서 직접적으로 선언하는 것이고, 그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완벽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해동사문
(haeil0308)

구원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지혜롭게 살고 있거나 어리석게 살고
있거나 구원은 일어납니다.
어떻게 살아왔든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언진 유일한 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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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n Tune with the Infinite - 인생의 문을 여는 만능열쇠|작성자 해동사문

광명사상이란? 뜻좀 알려주세요 : 지식iN

광명사상이란? 뜻좀 알려주세요~급함!ㅠㅠ : 지식iN

질문

광명사상이란? 뜻좀 알려주세요~급함!ㅠㅠ

광명사상이란 것을좀 알려주세요~~

최대한 정확히좀요~~



 닉네임wsk5**** 작성일2007.12.09 조회수 5,318댓글  나도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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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채택답변수 30한국사

광명사상은 우리 민족의 기원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 역사가 오래되고 그 의미  또한 역사적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아래는 월간개벽을 통하여 광명사상을 밝혀 봅니다.







  ‘한’의 정신

 ‘대한’의 참뜻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한(韓)에 담긴 비밀을 풀어야 한다. ‘한’은 ‘한민족 한겨레 한글 한복 한옥 …’ 등 우리 고유의 것을 지칭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8·15 광복 후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냈던 안호상 씨는 ‘한’이 ‘하나’라는 뜻부터 ‘크다, 강하다, 높다, …’ 등 22가지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이처럼 ‘한’은 실로 포괄적인 개념으로 우리의 언어와 의식, 생활문화 속에 깊숙이 스며있다.

 

 이제 이 한의 뿌리와 정신을 찾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환국의 ‘환’

 『삼국유사』를 보면 고기(古記)를 인용해 “먼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f)”고 기록한 구절이 나온다(고기는 지금은 없어진 사료이지만 일연이 삼국유사를 쓸 때만 하더라도 구해볼 수 있었던 자료였을 것이다).

 

 최근 주목받는 도가사서 『환단고기』를 살펴보면 이 환국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환단고기』 「삼성기」의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삼성기』 상), 즉 “우리 환족의 나라 세움이 가장 오래되었노라!”고 한 당당한 선언에 비추어 본다면, 환국은 인류 시원문명의 뿌리이면서 우리 한민족 문화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환단고기』 「태백일사」의 환국본기 편을 보면, 이 ‘환’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풀이되어 있다. “환은 온전한 하나[全一]이고 광명이다(桓者全一也, 光明也.)” “전일은 삼신의 지혜와 능력이요, 광명은 삼신의 참된 덕이다(全一爲三神之智能, 光明爲三神之實德)”라 하여, 환은 곧 광명을 의미하고 광명은 곧 삼신(하느님)의 참된 덕임을 밝히고 있다.

 

 

 배달국과 단군조선의 광명사상

 이 환국의 광명사상은 배달국에서는 ‘광명개천(光明開天)’의 건국이념으로, 단군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나라의 통치체제로 이화되기 이른다.

 

 앞서 인용한 『태백일사』 「환국본기」편에서 광명이 삼신 상제님의 참된 덕임을 부연하고 있는데, 이 가르침 그대로 단군왕검은 삼신의 덕성 ― 즉 조화신(造化神), 교화신(敎化神), 치화신(治化神) ― 을 바탕으로 조선을 진한(辰韓), 번한(番韓), 마한(馬韓)의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통치한 것이다(이를 삼한관경三韓管境이라 하는데, 일찍이 한말의 애국지사요 민족 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도 삼한관경이 고조선의 국가경영원리였음을 밝혀낸 바 있다).

 

 

 국호에 깃든 광명 정신

 이렇듯 ‘한’의 뿌리를 통해 볼 때, 우리 선조들은 삼신상제님의 참된 덕인 광명을 추구하였으며, 나아가 통치체제로까지 구현해 광명 세계를 지상에 직접 건설하려는 뜻을 펼쳤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선조의 이러한 광명사상은 ‘환국, 배달, (고)조선, 북부여, 고구려, 대진국,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국통맥에 그대로 포함되어 있다.

 

 환국은 ‘광명의 나라’, 배달국은 ‘광명이 비친 땅(밝땅→밝달→배달)’, 조선은 ‘아침의 해가 빛나는 나라’, 부여는 ‘아침의 먼동이 뿌옇게 밝아오는 나라’, 고구려는 고대광려(高大光麗) 즉 ‘높고 빛나는 나라’, 대진은 동방 진(震)자를 써서 ‘광명이 처음으로 비춰오는 나라’, 그리고 고려는 고구려의 준말이며,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한(韓)에 이르기까지 광명의 정신을 일관되게 지켜왔다.

 

 그러면 한(韓)의 앞에 대(大) 자를 붙인 지금의 대한(大韓)이라는 국호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대한의 유래와 비전

 조선말 고종황제는 원구단에서 천체를 앞두고,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는 국호를 선포하며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나라의 이름을 ‘대한’이라고 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고, 또한 매번 일찍이 보건대 여러 나라의 문헌에는 조선(朝鮮)이라고 하지 않고 ‘한’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전에 이미 ‘한’으로 될 징표가 있어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포하지 않아도 세상에서는 모두 다 ‘대한’이라는 이름을 알 것이다.“ (고종실록 권 36, 광무원년 1897년 10월 11일조)

 

 위 내용을 통해서도 고종이 단군조선 시대의 삼한관경제에 담긴 광명사상, 즉 ‘한’사상을 되살리고자 했던 의도를 읽을 수가 있다. 그 대한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우리의 국호 ‘대한민국’은 천지와 지기가 응해서, 앞으로 올 큰 운세를 따라 하늘의 뜻에 의해 지어진 이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한(韓)에는 바로 광명을 이어받아 하늘백성으로 이룩된 대광명의 지상선경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원대한 비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개벽 실제상황』, 『한한한의 비밀과 사명』, 『한사상의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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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광명사상과 빛의 의미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2014. 9. 12. 05:00


한민족의 광명사상과 빛의 의미











역사적으로 우리 한민족만큼 '광명'(光明)과 친근한 민족은 없을 것이다.

'백의민족'이라는 닉네임은 우리 동이족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나라이름을 짓기에도 늘 '광명'을 사용하였다.



환국(桓國), 배달(倍達), 조선(朝鮮), 부여(夫餘),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大韓民國), 이 모든 국호(國號)가 말호 '광명' 즉 빛을 표현한 단어들이다. 우리 민족은 늘 이 '빛'과 함께 공존하여 왔다.











우리 주변에서는 흔히 빛과 어둠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동양철학에서는 '음양(陰陽)이라고 하여 빛은 양을 어둠은 음을 의미한다.

사시(四時)가 분명한 우리나라는 특히 춘분과 추분이라는 절기가 있어 빛과 어둠의 비율이 반반인 시기가 있다.



예로부터 '등하불명'(燈下不明,등잔 밑이 어둡다)이라는 말도 있어 왔다.

하지만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는 어두운 밤에는 '빛'이라는 게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몇 년전 발생한 초유의 정전사태(블랙아웃) 역시도 이러한 '빛'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사랑방에서 호롱불에 의지하면서 바느질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에서 짙은 어둠을 밝히는 '빛'의 위대함도 같이 느끼게 된다.









'빛은 동방으로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빛'은 단순한 '빛'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고대문학과 철학, 종교 전반에 걸쳐 '빛'이 갖는 비유적 의미는 매우 광범위하다.

지상의 밝은 세계와 지하의 어두운 세계가 빛과 어둠의 대비로 표현된다.

빛은 생명의 충실, 청정함, 자유, 희망, 기쁨, 신들의 지복 세계를 나타낸다.

또한 보는 작용의 매체, 보여지는 대상, 사상의 통찰, 세계인식과 그 힘을 나타내며 신(神)적인 것의 현현, 임재이다.





빛은 종종 영적인 세계에 비유되기도 한다.

수많은 수행자들이 말하는 영의 세계는 그야말로 광명의 세계다. 영의 세계에서 영적인 존재들은 '빛'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예수, 석가, 공자 등의 성자들 모습을 그릴때는 반드시 뒷쪽에 둥그렇게 밝은 후광(後光)을 그려 넣는다.

신(神)은 밝음 그 자체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밝을 명(明)자를 덧붙여 '신명'(神明)이라고 불러왔다.





몇해전 빛보다 빠른 물질이 발견되었다고 했다가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언제 발견될지 아직 미지수인 빛보다 빠른 물질인 '타기온'.

빛보다 빠르다는 것이 큰 이슈가 되는 것만큼 '빛'은 비교대상에서 항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어두운 밤을 밝히는 빛은 현대에 이르러서는 '조명'이라는 말로 대치된다.

'조명'은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현실생활 가정, 상가, 문화공연,직장 등에서 다양한 용도에서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크기 사랑을 받았던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아바타'가 3D영화라는 이슈와 함께 대중들에게 던져준 새로운 세계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색채감이었다.

유토피아라는 신세계의 이미지를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앞으로 펼쳐질 조명의 세계라고 말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사실 요즘 조명의 대세인 LED 빛의 색깔은 친환경적이면서도 그 색상이 매우 유려하다.

그리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명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9천 년 전부터 대우주의 본성(本性)인 광명을 나라 이름으로 정하여 사용하여 왔던 우리 한민족.

혹자는 현대의 기준으로 구석시, 신석기, 청동기로 분류하여 역사 발전단계에서 우리 한민족이 염색기술이 부족해서 흰옷을 입었다는 무지한 소리를 하는 자들도 있다.

어떤 시인의 말처럼 "무지는 순수가 아니라, 죄악이다."라는 말이 떠올려진다.

우리 한민족은 우주의 본성인 광명사상을 생활속에서도 잊지 않고 실천하며 살아 왔던 것이다.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은 일제강점기 당시 식민치하에 있던 한국 민족에게 큰 감동과 자긍심을 일깨워준 작품이다.

3,1운동 이후 실의에 빠져 있던 한국 민족에게 큰 격려와 위안을 주었던 시(詩)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출처: https://gdlsg.tistory.com/784 [증산도 이도경세 이의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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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로 보는 광명 사상 

짧고굵은기록

2013. 4. 7. 16:50

https://blog.naver.com/kctjpark/60189536783



예로부터 우리 나라 국호에는 모두 광명 사상이 담겨 있다. 하나씩 보면 다음과 같다.

환국: 환한 광명의 나라

배달국: 밝달 -하늘의 광명이 비친 나라

(고)조선: 조일선명(朝日鮮明) -아침에 태양이 선명하게 밝아 온다

부여: 아침에 먼동이 뿌옇게 밝아 온다

고구려: 고대광려(高大光麗) -높고 크게 빛난다

대진국: 동방 '진(震)' -태양이 동쪽에서 밝아 온다

발해: 불해 -불의 바다, 광명의 바다

고려: 고구려의 준말

조선: 조일선명(朝日鮮明)

대한민국: '한(韓)'에 광명의 뜻이 있다

환(桓)은 하늘의 광명을 뜻하고, 단(檀)은 땅의 광명을 뜻하며, 한(韓)은 천지의 광명을 실현하는

역사의 주체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런 광명 사상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빛의 의미를 종교적으로 풀이하면 루시퍼가 될 수도 있다.

루시퍼를 사탄과 동일 인물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호와, 루시퍼, 그리고 사탄은 서로 다른 존재로 알려졌다. 루시퍼는 인류 창조의 주체지만 사탄은 그 위험성을 들어 반대한 그룹의 수장이라는 것이다. 여호와는 그들 모두를 아우르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인간 창조의 시기에 인간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갈등의 주체였고, 물(노아의 홍수)로써, 또는 불(소돔과 고모라)로써 인간을 대상으로 한 원죄를 심판하거나 보호하려 했던 그들 간의 역사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이 스스로 깨우치고 진화하여 우주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각각 다른 역할(정-반-합)로써 배후에서만 인간의 자각을 돕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NWO, 후천 개벽, 용화 세계, 의식 상승, 지축 정립, 종말론 등)에 대한 예언들은 예

로부터 수 없이 많지만 그것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감추어져 있거나 추상적으로 서

술되어 있다. 즉, 힌트만 주어서 경고하거나 인간의 의식을 유도하기만 하였지 구체적으로 가르

쳐 주지는 않았다. 그것은 인간 스스로 그 의미를 알게 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게 될 때(아포칼립스 시대, 현재)를 대비하였다는 것이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탄 투하를 그들은 성경에서 666으로 예언하였다. 악마의 숫

자 666은 아담 이후 666 세대가 지나서 지구 뿐만 아니라 우주를 뒤흔들 수도 있는 핵의 무기화

를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인간의 악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을 잘 아는 그들이 숨기고 대비해 온 방법으로 스스로 통제되어 결국 지구

를, 악을 경험한 후의 선함으로 가득 찬 파라다이스로 건설하는 것이 우리가 신으로 알고 있는

그 창조자들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그 계획이 우리의 국호에도 숨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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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선생의 광명사상



마음을 닦으면 정신이 맑아지는데
정신의 맑아짐을 순조롭게 성취하기 위해선 단전호흡을 통해
광명(光命)을 이루는 노력을 해야한다.
정신은 물〔水精〕이고 마음은 불〔火神〕이므로
1백도(度)의 불에
36도의 물기운〔水氣〕이 들어오면 심장(心臟)에서 광명이 이뤄진다.
공기 중의 물과 불이 마찰하면 화(火)의 붉은 색 속에서 선(線)이 나오는데
이를 광선(光線)이라고 한다.
광(光)은 수기(水氣)가 들어오면 명(明)으로 화(化)한다.
우주의 명(明)과 정신의 명(明)이 하나로 되는 것이 선의 완성인데
이를 대각(大覺)이라고 한다.
단전호흡을 오래하면 되게 마음의 밝음〔明〕을 이룬다.
예를 들어 새끼 잉어가 명(明)을 이루고 조화무쌍한 용(龍)으로
화(化)하는 것도 잘 관찰해 보면 조식법(調息法)
즉 단전호흡을 통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또 그것은 결국 공간(空間)의 색소중(色素中)에 광명을 이루는 원료가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광명을 이루는 색소는 적색소(赤色素)이다.
적색소에서 화기(火氣)는 화광(火光)을 이룬다.
화광(火光)을 이루는 이유는 불속에 물이 있기 때문이다.
불속에 있는 물〔火中之水〕이 외부의 물과 합해질
불은 광선(光線)으로 독립하고 물은 수명(水明)으로 독립한다.
수극화(水剋火)의 원리에 따라 불의 열기(熱氣)는 물의 냉기(冷氣)에,
불의 광선(光線)은 물의 수명(水明)에 각각 밀려나게 된다.
이에 따라 수명(水明)의 명(明)만 남아서 공간의 광명세계를 이룬다.
광명은 있되 뜨거움이 없는 것은 불기운이 물기운의 힘에 밀려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돋보기로 광선을 모으면 뜨거워지는 것으로 볼
불기운이 전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호흡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밝음〔明〕의 원료는
공기 속의 물과 물속의 불이다.
이 원료들이 체내에 들어와 폐선(肺線)에 이르면 색소는
색별(色別)로 나뉘어져 각각 해당 장부(臟腑)로 귀속된다.
즉 적색소(赤色素)는 심장, 흑색소(黑色素)는 콩팥, 백색소(白色素)는 폐,
청색소(靑色素)는 간, 황색소(黃色素)는 비위(脾胃)계통으로 들어간다.
밝음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성령정기신(性靈精氣神)의 명(明)에 이른다.
화기(火氣)
1백도 중에 수기(水氣)
3
6도가 들어올
적색소〔불〕는 신(神)으로 화(化)하고
수기(水氣)
1백도 중에 화기
3
6도가 들어올
흑색소〔물〕는 정(精)으로 화한다.
토기(土氣)
1백도 중에 목기(木氣)
3
6도가 들어올
황색소〔土〕는 영(靈)으로 화하고
목기
1백도 중에 금기(金氣)
3
6도가 들어올
청색소〔木〕는 성(性)으로 화하며
금기
1백도 중에 화기
3
6도가 들어올
백색소〔金〕는 기(氣)로 화한다.
정(精)은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원동력이다.
옛 글에
“영(靈)을 머금은 모든 생물은 다 깨달음의 속성(본질)을 지니고 있다”
한 것은 영(靈)과 성(性), 정(精)과 신(神)이 모두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설명해 준다.
단전호흡을 통해 이러한 밝음을 이룰 수 있는 요소인 성령정기신의
원료(청ㆍ황ㆍ흑ㆍ백ㆍ적색소)를 체내에서 증장(增長)시킴에 따라
광명을 이루어 마침내 대각(大覺)에 이르게 된다.
영명(靈明)ㆍ신명(神明)ㆍ성명(性明)ㆍ정명(精明)ㆍ기명(氣明)으로
대명(大明)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단전호흡을 이룩하는 참선의 묘용(妙用)이다.
참선의 방법이 올바른 길로 들어서게 되면 건강과 밝음을 성취하나
그렇지 못하면 건강과 함께 밝음의 성취의 꿈도 무산되어 버리고 만다.
참선시 호흡 실조(失調), 냉처기거(冷處起居), 자세 부정(不正)
몇 가지 부주의로 오는 대표적인 질병은 중풍(中風)이다. 10분의 7에 해당하는 것이 중풍이고 나머지 3은 암이다.
암이 오는 확률이 이토록 높은 것은 호흡 실조와 자세 부정의 상태에서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고 있음으로써 수명골(壽命骨)이 제자리를 이탈,
골수(骨髓)가 온몸에 골고루 유통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20/06/21

당신의 아름다운 세계 - 바이런 케이티, 금강경을 말하다 스티븐 미첼,바이런 케이티


당신의 아름다운 세계 - 바이런 케이티, 금강경을 말하다  epub
스티븐 미첼,바이런 케이티 (지은이),이창엽 (옮긴이)침묵의향기2020-01-21 원제 : A Mind at Home with Itself

종이책 페이지수 415쪽, 약 25.2만자, 약 6.5만 단어
가능 기기 : 크레마 그랑데, 크레마 사운드, 크레마 카르타, PC,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폰/탭, 크레마 샤인


책소개

서구를 대표하는 영적 지도자인 바이런 케이티가 선불교의 중심 경전인 금강경에 대해 말한다. 궁극의 진실이 무엇인지, 이 진실에 눈을 뜬 사람은 세계를 어떻게 보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어떻게 하면 우리도 온전한 자유와 깊은 평화를 누릴 수 있는지를 심오한 통찰과 감동적인 언어로 들려준다.

32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바이런 케이티와 함께 ‘작업’을 한 5가지 사례가 실려 있으며, 부록에서는 생각의 족쇄에서 풀려나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방법인 ‘작업’에 대해 자세히 안내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네 가지 질문》 《기쁨의 천 가지 이름》 등의 저자인 바이런 케이티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 중 한 명이며,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녀를 새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소개했다.
목차
머리말
탐구에 대하여
금강경에 대하여
이 책의 금강경 번역에 대하여

1. 우주적인 농담
2. 모래알에게 절한다
3. 환히 빛나는 순간
4. 주는 것이 받는 것이다
-작업: “데이브가 나를 무시했어요.”
5. 일상 속의 붓다들
6. 마음이 모든 것이며 마음은 선하다
7. 일상생활 중에 집에 있기
8. 궁극의 자비
9. 사랑은 자기에게 돌아온다
10. 탐구 속에 살기
11. 비판이라는 선물
12. 고양이에게 개처럼 짖으라고 가르치기
-작업: “어머니가 나를 공격해요.”
13. 이름 너머의 세계
14. 아무것도 우리 것이 아니다
15. 집으로 돌아오기
16. 모든 일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당신을 위해 일어난다
17. 분리 없는 삶
18. 자유란 생각을 믿지 않는 것
-작업: “딸이 내 말을 듣지 않아요.”
19. 상상할 수 없는 부유함
20. 완벽한 몸
21. 잃을 것이 없다
22. 쓰레기를 줍는다
23. 감사에는 이유가 없다
24. 모든 괴로움의 원인
-작업: “남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요.”
25. 동등한 지혜
26. 집에 있는 붓다
27. 생각 사이의 공간
28. “이를 닦아라!”
29. 투명함
30. 완전히 친절한 세상
-작업: “아들이 다시 술을 마십니다.”
31. 모든 것의 본성
32. 꿈을 사랑하기

부록: 작업을 하는 방법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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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이렇게 나는 들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 아나타핀디카의 기원정사에서 1,250명의 비구와 함께 머물고 계셨다.
P. 130 자기가 없음을 깨달으면, 죽음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죽음이란 단지 정체성의 죽음일 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쌓아 올린 모든 정체성이 탐구로 사라지면, 당신은 아무 정체성이 없으므로 태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미래의 ‘나’는 이제 존재하지 않으며, 남은 것은 상상된 것뿐입니다. 마음이 멈추면, 마음이 없음을 알 마음도 없습니다. 완벽합니다! 죽음은 끔찍한 악명을 떨치고 있지만, 그건 헛소문에 불과합니다.  접기
P. 139~140 깨달음에 대해 알 필요가 있는 단 하나는, 어떤 생각을 믿는 것이 스트레스를 주는가 주지 않는가, 입니다. 그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하나요, 안 하나요? 그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면, 괜찮습니다. 그 생각을 즐기세요. 만일 그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면, 슬픔이나 화, 어떤 불편함을 일으킨다면, 그 생각에 대해 질문해 보세요. 그래서 자신이 그 생각을 깨닫게 하세요. 고통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고통은 몇 년씩 지속될 필요가 없습니다. 몇 달, 몇 주, 며칠, 몇 분, 몇 초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과거에 당신을 괴롭히던 생각들이 일어나더라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습니다.  접기
P. 140 탐구는 당신을 맑은 마음의 자리로 되돌려 줍니다. 당신이 ‘나’의 모든 생각보다 먼저인 존재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지요! 나는 돌아옴을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눈을 뜨고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보는 것은 하나의 특권입니다. 하지만 영원히 맑은 마음 상태는 없습니다. 맑은 마음에는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깨어나는 게 아닙니다. 오직 지금 깨어납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생각에 질문하고 행복할 수 있나요? 사람들은 영적으로 열리는 멋진 경험을 하는데, 이런 경험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 멋진 경험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원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미래로 이동했고 현실을 잃어버렸습니다. 바로 지금, ‘이것’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단순합니다. 이것만이 존재합니다.  접기
P. 143 자아 없이 사는 삶은 어떨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삶조차도. 당신이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그 행위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끝나 버렸습니다. 나의 발이 방금 움직였는데, 내가 그 움직임을 지켜볼 때, 나는 과거를 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 일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그것을 볼 때조차 그 지금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것이 깨달은 마음의 힘과 선함입니다. 나는 차도 마실 수 없습니다. 그 일은 일어나기 전에 사라졌고, 그것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접기
P. 153~154 마음이 무엇을 지각하든 마음은 그것 이전입니다. 마음은 맑고 순수하며, 모든 것에 완전히 열려 있습니다. 아름다운 듯한 것만큼 추한 듯한 것에도 열려 있고, 수용만큼 거부에도 열려 있으며, 성공만큼 실패에도 열려 있습니다. 마음은 자신이 언제나 안전하다는 것을 압니다. 마음은 삶을 끊임없는 흐름으로서 경험합니다. 마음은 어디에도 발을 딛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며, 어디에든 발을 디디면 한계가 된다는 것을 압니다. 마음은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생각을 알아차리지만, 어떤 생각도 믿지 않습니다. 마음은 발 디디고 서 있을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전혀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 깨달음에서 자유가 흘러나옵니다. ‘서 있을 곳 없음’이 마음이 서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 마음의 기쁨이 있습니다. 당신의 내면에 탐구가 살아 있을 때,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생각은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고통의 끝입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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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스티븐 미첼 (Stephen Mitchell)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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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학, 파리대학 등에서 수학했으며 지은 책으로 <개구리 왕자>, 옮긴 책으로 <도덕경>, <바가바드 기타> 등이 있다.
최근작 : <당신의 아름다운 세계>,<네 가지 질문>,<부처가 부처를 묻다> … 총 183종 (모두보기)
바이런 케이티 (Byron Katie)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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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영적 스승 바이런 케이티는 ‘생각’에 대한 믿음이 모든 스트레스와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모든 생각에서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와 평화에 이르는 단순하면서도 경이로운 방법인 ‘작업’(The Work)을 창안했다. ‘작업’은 네 가지 질문과 뒤바꾸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간단한 질문으로 생각의 족쇄에서 풀려나 평화로운 마음을 경험하게 한다.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그녀를 새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선정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사막지대의 소읍인 바스토우에서, 세 자녀를 둔 어머니이자 부동산 중개인으로... 더보기
최근작 : <당신의 아름다운 세계>,<기쁨의 천 가지 이름>,<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2> … 총 74종 (모두보기)
이창엽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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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를 공부하며 일상생활에서 영생 혹은 행복에 이르는 길을 탐구하고, 붓다의 가르침에 의해 예수의 메시지를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언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서양인들에게 전해진 불교를 통해 새로운 불교의 길을 찾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공역), 『마음과 통찰』, 『알아차림의 기적』, 『나는 힘든 감정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티베트 마음수련법 로종』, 『후회 없는 죽음, 아름다운 삶』, 『과학자인 ... 더보기
최근작 : … 총 1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서구를 대표하는 영적 스승 바이런 케이티,
모든 스트레스와 고통에서 해방되는 단순한 길을 발견하다

올해 나이 70대 후반인 바이런 케이티는 에크하르트 톨레와 함께 서구를 대표하는 영적 스승이다. 모든 스트레스와 괴로움에서 온전한 자유와 평화로 해방되는 혁명적인 방법을 담은 그녀의 책 《네 가지 질문》은 29개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사막지대의 소도시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던 바이런 케이티는 이혼을 계기로 십여 년에 걸쳐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986년 어느 날 아침, 문득 (사람들이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기쁨의 상태로 깨어났다. 그때 그녀가 발견한 진실은 단순한 것이었다. 모든 스트레스와 괴로움의 원인은 진실하지 않은 ‘생각’을 믿기 때문이라는 것. 생각을 믿으면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고, 생각을 믿지 않으면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을 믿을 때는 고통을 받지만, 그 생각을 믿지 않을 때는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유는 그처럼 단순합니다. 고통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내 안에서 발견한 기쁨은 한순간도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그 기쁨은 언제나 모든 사람 안에 있습니다.”

그녀는 깨어나면서 ‘작업(The Work)’을 발견했는데, 생각에 대해 질문하는 ‘네 가지 질문’과 뒤바꾸기로 이루어진 이 자기탐구 방법은 생각의 족쇄에서 해방되는 단순하면서도 경이로운 방법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의 저자인 에크하르트 톨레는 이 ‘작업’을 우리 지구별에 위대한 축복이라고 극찬했다.


바이런 케이티와 금강경의 만남,
그녀가 말하는 궁극의 진실과 자유로운 삶

금강경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널리 독송되었으며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여겨진다. 이 책 《당신의 아름다운 세계》는 이 금강경을 소재로 궁극의 진실이 무엇인지, 이 진실에 눈을 뜬 사람은 세계를 어떻게 보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런 자유와 평화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지를 심오한 통찰과 감동적인 언어로 얘기한다.

책에 실린 금강경 번역문은 숭산 스님에게 한동안 선불교를 배운 스티븐 미첼이 현대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간결한 표현으로 번역했다. 그는 이렇게 번역한 금강경을 바이런 케이티에게 읽어 주고, 여기에 대해 그녀가 한 말을 엮어 책으로 펴냈다. 책은 총 32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케이티와 함께 ‘작업’을 한 5가지 사례가 실려 있으며, 부록에서는 ‘작업’을 하는 방법을 자세히 안내한다.

이 책에서 바이런 케이티는 궁극의 진실에 관해 말한다. 궁극의 진실은, 양자물리학이 밝히는 진실이 그렇듯이, 우리의 상식과는 무척 다르고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왜 영적 스승들은 먼 옛날부터 이 진실을 얘기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물거품 같은 자유와 평화가 아니라, 스트레스와 괴로움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한없는 자유와 깊디깊은 평화를 발견하고 변함없이 누리려면 이 진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진실은 처음에는 어려워 보여도 선지식(善知識)이 가리키는 바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면서 유심히 살펴보면 누구나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진실은 우리 자신과 별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언제나 지금 여기에 현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진실에 눈을 뜬 사람에게 세계는 어떻게 보일까. 지은이의 수많은 표현 가운데 하나만 예로 들어 보자.

“그들은 실제 세계를 점차 알아봅니다. 그것은 두려움 없는, 이름 없는, 아름다운, 사랑인 세계이며, 아무것도 분리되어 있지 않은 세계, 창조성이 방해받지 않고 흐르도록 허용되는 세계, 매 순간 새로운 것을 보고 감사하는 세계, 당신이 늘 자신과 함께 혼자인 세계, 당신이 모든 사람이고 모든 것이며, 온 세계―당신의 세계, 당신의 상상의 세계―의 창조자로서 자유롭게 모든 책임을 지는 세계입니다.” (309쪽)

금강경 1장부터 32장까지 차례차례 이어지는 이 진실에 관한 그녀의 독특한 통찰과 경험, 표현들은 마치 저마다의 광채로 빛나는 보석들로 촘촘히 장식된 화환과 같아서 그 다채로움과 깊이를 몇 마디 말로 요약할 수가 없다. 이 책이 여느 금강경 해설서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그 진실을 고스란히 살아가는 그녀 자신의 삶을 곳곳에서 들려준다는 것이다. 완전한 자유와 평화, 기쁨과 행복, 사랑과 자비, 깨달음에 관해 얘기하는 글과 가르침은 많지만, 온전히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보여 주는 글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녀는 말과 행동이, 진실과 삶이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도 초연하고 감사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서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하는 험악한 남자 앞에서도 변함없이 평화롭고, 지저분한 행색에 악취를 풍기는 노숙자들이든 험상궂은 청년이든 가리지 않고 사랑으로 껴안아 주며, 자신의 집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가족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집을 흔쾌히 넘겨 주기도 한다. 그런 그녀는 깨달음이란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또 이렇게도 말한다.

“만일 당신이 깨달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차가 견인되어 가는 것도 사랑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증거입니다! 자녀가 아플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남편이 이혼하자고 할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남편이 원하는 인생을 살려 하는 걸 보고 가슴이 설레나요? 남편이 집을 떠나려 짐 싸는 걸 도와줄 때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나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과 순수한 자비심 사이를 어떤 생각이 가로막고 있나요?” (64쪽)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가 아니다
참된 우리 자신은 무엇일까?

그런데 만약 그런 삶이 바이런 케이티나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라면, 평범한 다수의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소수에게만 가능한 삶이라면, 이런 말이나 글은 별 가치도 없고 쓸모도 없다. 그러나 온 우주에서 어떤 분리도 보지 못하는 바이런 케이티에게는 그녀가 곧 우리 자신이다. 그녀가 따로 있고, 우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믿지만 않으면, 생각과 관념, 이름에서 해방되기만 하면 그런 진실을 누구나 알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나도 없고 남도 없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진리도 없고 비진리도 없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분리된 것들은 없으며, 분리되지 않은 것들도 없습니다. 당신의 바깥에는 세상이 없고, 당신의 안에도 세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명의 ‘당신’이 있다고 믿기 전에는 당신은 아직 세상을 만들어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세상이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에게는 두 가지―당신과 세상―가 있습니다. 당신의 바깥에 세상이 없다고 믿어도, 당신에게는 여전히 그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둘은 없습니다. 둘은 혼란한 마음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오직 하나만 있고, 그것조차 없습니다. 세상이 없고, 자아가 없고, 물질이 없습니다. 오직 이름 없는 알아차림(앎)만 있을 뿐입니다.” (113-114쪽)

궁극의 진실에 관해, 그 진실을 사는 삶에 관해, 그 진실에 눈을 뜨는 방법에 관해 주옥같은 말들이 가득 담긴 이 책은 이런 진실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모든 스트레스와 괴로움에서 해방되어 온전한 자유와 평화를 깊이 누리고 싶은 독자라면 더없이 반가워할 귀하고 탁월한 영성 문학 작품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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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질문 : 내 삶을 바꾸는 경이로운 힘 - 내 삶을 바꾸는 경이로운 힘, 개정판 스티븐 미첼,바이런 케이티

알라딘: [전자책] 네 가지 질문 : 내 삶을 바꾸는 경이로운 힘


[eBook] 네 가지 질문 : 내 삶을 바꾸는 경이로운 힘 - 내 삶을 바꾸는 경이로운 힘, 개정판  epub
스티븐 미첼,바이런 케이티 (지은이),김윤 (옮긴이)침묵의향기2020-02-04 원제 : Loving What is



네 가지 질문 : 내 삶을 바꾸는 경이로운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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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세계적인 영적 지도자인 바이런 케이티가 모든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법을 들려준다. 그녀는 모든 스트레스와 고통의 원인은 생각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네 가지 질문과 뒤바꾸기로 이루어진 그녀의 '작업'은 모든 생각의 족쇄를 부수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방법이다. 생각에서 풀려나면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즉시 평화가 찾아온다.

'작업'은 가족이나 친구 간의 갈등이나 인간관계, 심리적인 문제뿐 아니라 우리가 겪는 세상의 모든 문제에 적용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혁명적인 도구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녀를 새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선정했으며, 에크하르트 톨레는 "바이런 케이티의 '작업'은 우리 지구별에 위대한 축복"이라고 극찬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소울 시리즈에 바이런 케이티를 초대하여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소개했다. 29개의 언어로 번역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이며, 2003년에 초판 발행했던 책을 새롭게 번역하여 다시 펴냈다.
목차
들어가는 말
이 책에 대하여

1. 몇 가지 기본 원칙
2. 완전한 자유의 길
3. 대화로 들어가며
4. 부부와 가족생활에 대해 작업하기
5. 더 깊이 탐구하기
6. 일과 돈에 대해 작업하기
7. 자기비판에 대해 작업하기
8. 아이들과 작업하기
9. 밑바탕 믿음들에 대해 작업하기
10. 생각이나 상황에 대해 작업하기
11. 몸과 중독에 대해 작업하기
12.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과 친해지기
13. 질문과 답변
14. 스스로 작업하기

부록 스스로 작업한 사례들

책속에서
P. 36 나는 지금 있는 현실을 사랑합니다. 내가 영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현실과 다투면 나 자신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실이 지금 있는 그대로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실과 다투면 긴장하고 좌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마음이 편안하거나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우리가 현실에 맞서기를 멈출 때 행동은 단순하게, 물 흐르듯이, 친절하게, 두려움 없이 일어납니다.  접기
P. 41-42 이제껏 내가 경험한 모든 스트레스는 진실하지 않은 생각에 집착한 까닭에 일어났습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생각 뒤에는 늘 자기에게 진실하지 않은 생각이 있습니다. “바람이 계속 불면 안 돼”나 “남편은 내 말에 동의해야 해”와 같은 생각들. 우리는 현실에 반하는 생각을 믿고, 그 뒤 스트레스를 느끼고, 다음에는 그 느낌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만들어 냅니다. 최초의 원인인 생각을 이해하는 대신에, 우리 바깥을 바라봄으로써 스트레스 받는 느낌을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일시적인 위안과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애쓰거나 섹스, 음식, 술, 마약, 돈 등에 기대려 합니다.  접기
P. 259 질문할 수 없는 생각이나 상황은 없습니다. 모든 생각, 모든 사람, 그리고 문제처럼 보이는 모든 것은 당신의 자유를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것이 자신에게서 분리되어 있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껴지면, 질문해 보세요. 그러면 그 생각을 믿기 전에 느꼈던 평화를 다시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거든 ‘작업’을 하세요. 모든 불편한 느낌이 있는 까닭은, 아픔이 있는 까닭은, 돈이 있는 까닭은, 담벼락과 구름과 개와 고양이와 나무가 있는 까닭은, 세상 모든 것이 있는 까닭은 바로 이것을 위해서입니다―당신의 자기 깨달음. 그 모든 것은 당신의 생각이 거울에 비치듯 비친 모습들입니다. 자유를 원한다면 그것을 판단하고, 조사하고, 뒤바꿈으로써 자유로워지세요.  접기
P. 266 몸은 생각하거나 상관하지 않으며, 자기에게서 아무런 문제점도 보지 못합니다. 몸은 자기를 때리거나 모욕하지 않습니다. 몸은 그저 스스로 조화롭게 유지하고 치유하려 할 뿐입니다. 몸은 완전히 효율적이며, 지성적이고, 친절하고, 슬기롭습니다. 생각이 없으면 문제도 없습니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믿는 조사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나의 아픔은 몸의 잘못이 아닙니다. 나는 내 몸에 대한 이야기를 얘기하면서, 내 몸이 문제이며 이것이나 저것이 바뀌기만 하면 내가 행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생각을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접기
우리가 느끼는 모든 스트레스는 지금 있는 현실과 다투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p35

그 일은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생각도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용납하거나 시인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마음의 갈등과 혼랍 없이 지켜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p36

나는 지금 있는 현실을 사랑합니다. 내가 영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현실을 거부하면 나 자신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p36

우울과 아픔, 두려움은 “지금 당신의 생각을 바라보세요. 당신은 지금 자기에게 진실하지 않은 이야기 속에 빠져 있어요”라고 말해 주는 선물입니다. 진실하지 않은 이야기에 따라 살면 언제나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p42

당신이 지금까지 기다린 스승과 치유자는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p66

어느 누구도 당신을 아프게 할 수 없다는 말이 이해될 거예요. 당신을 아프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p92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는 일을 하는 데에 열리고, 기다리고, 신뢰하고, 사랑하며 그렇게 단순하게 살면, 우리의 삶에는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p245-6

당신의 바깥에는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p265  접기 - learningbydoing
저자 및 역자소개
스티븐 미첼 (Stephen Mitchell)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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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케이티 (Byron Katie)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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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영적 스승 바이런 케이티는 ‘생각’에 대한 믿음이 모든 스트레스와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모든 생각에서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와 평화에 이르는 단순하면서도 경이로운 방법인 ‘작업’(The Work)을 창안했다. ‘작업’은 네 가지 질문과 뒤바꾸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간단한 질문으로 생각의 족쇄에서 풀려나 평화로운 마음을 경험하게 한다.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그녀를 새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선정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사막지대의 소읍인 바스토우에서, 세 자녀를 둔 어머니이자 부동산 중개인으로... 더보기
최근작 : <당신의 아름다운 세계>,<기쁨의 천 가지 이름>,<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2> … 총 74종 (모두보기)
김윤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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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으로 안내하는 글들을 우리말로 옮기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번역한 책으로는 《네 가지 질문》 《기쁨의 천 가지 이름》 《가장 깊은 받아들임》 《아잔 차 스님의 오두막》 《마음은 도둑이다》 《지금 이 순간》 《영원으로 가는 길》 《오늘 하루가 선물입니다》 등이 있고, 공역한 책으로는 《사랑에 대한 네 가지 질문》 《요가 수업》 《아쉬탕가 요가의 힘》 등이 있다.
최근작 : <철학을 좋아하게 만드는 책> … 총 2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29개의 언어로 번역 출간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타임지가 새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선정한
사랑의 현자 ‘바이런 케이티’의 혁명적인 행복 레시피!

우리 모두가 정말 원하는 것은, 결국 행복이다. 사람들마다 바라는 소원들은 수없이 다양하고 다를 수 있지만, 그 소원들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도 결국은 행복이다. 그렇지 않은가? 의식하든 못하든, 당신은, 나는,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분명한 해답을 제시한다.

바이런 케이티, 절망의 한가운데에서 평화와 기쁨으로 깨어나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사막지대의 소도시 바스토우에서, 세 자녀를 둔 어머니이자 부동산 중개인으로 평범하게 살던 케이티는 이혼을 계기로 점점 우울증이 심해졌고 분노와 좌절감에 빠져들었다. 급기야 죽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 그녀는 결국 1986년에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갔다. 보름쯤 지난 어느 날 아침, 요양원 다락방에서 홀로 자던 그녀는 홀연히 (사람들이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절대 기쁨의 상태로 깨어났다.

“나를 괴롭히던 모든 분노와 생각, 내 모든 세상, 온 세상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동시에 깊은 곳에서 웃음이 솟아나와 넘쳐흘렀습니다.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 다른 무엇이 깨어난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눈을 떴습니다. ‘그것’은 케이티의 눈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기쁨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것과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것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바로 그것 자신이었습니다.”

스트레스 해방의 바이블!
생각을 믿지 않으면 스트레스는 없다

그때 케이티가 발견한 진실은 단순한 것이었다.
모든 스트레스의 원인은 ‘생각’을 믿기 때문이라는 것.

생각을 믿으면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고, 생각을 믿지 않으면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 중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현실이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더 친절해야 해”, “아이들은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해”, “이웃들은 밤에 떠들지 말아야 해”, “마트 계산원은 더 빨리 계산해야 해”, “남편(아내)은 내 말에 동의해야 해”, “나는 더 날씬해야 해, 더 예뻐야 해, 더 성공해야 해”와 같은 생각들은 현실이 지금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들이며, 이런 생각을 믿을 때 우리는 예외 없이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는다.

케이티의 경우, 그녀는 양말을 거실 바닥에 벗어 놓는 자녀들 때문에 줄곧 스트레스를 받았다. 세탁바구니에 양말을 넣으라고 수없이 잔소리를 하고 나무랐지만 바뀐 것은 거의 없었다. 그 때문에 케이티는 번번이 화가 나고 우울했는데, 깨어난 뒤로는 바닥에 놓인 양말 자체가 아니라, “아이들은 양말을 세탁바구니에 넣어야 해”라는 생각을 믿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즐겁게 양말을 주울 수 있었고, 나중에는 말하지 않아도 자녀들이 양말을 줍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사소한 예일 수 있지만 이 원리는 모든 경우에 똑같이 적용된다. 부부나 연인 간 갈등도, 부모자녀 간 불화도, 인간관계의 문제도, 화나 불안, 우울증, 강박관념 같은 심리적인 문제들도, 질병과 관련된 고통에 대해서도, 심지어 개인의 범죄뿐 아니라 인종학살 같은 끔찍한 집단 범죄들, 나라 간의 전쟁도 그 원인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어떤 생각에 대한 믿음이 있다. 어떤 생각을 믿기 때문에 어떤 반응과 행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인과관계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반응을 조금만 살펴보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책에서 갖가지 문제들로 고통 받던 사람들이 케이티와 대화를 하면서 하나같이 상상하지 못했던 해방감을 느끼고 평화를 되찾는 이유는 그런 원리 때문이다. 생각에 대한 믿음이 문제의 원인이므로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면 모든 문제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의 족쇄에서 해방되는 혁명적인 방법!
네 가지 질문과 뒤바꾸기

에크하르트 톨레가 인간의 상태를 “생각의 감옥에 갇힌”이라고 표현했듯이, 우리는 생각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있다. 생각에 대한 믿음과 집착은 고질적인 습관이 되어 버렸기에 벗어나기가 너무 어려워진 것이다. 그래서 생각에서 해방되고 싶어도 그러질 못한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생각에서 해방되어 마음 편히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참된 현실로 깨어나면서 케이티는 모든 생각의 족쇄에서 해방되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했다. 네 가지 질문과 뒤바꾸기로 이루어진 ‘작업’(The Work)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남편의 태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그 원인이 “남편은 나를 무시해”라는 생각임을 발견했다고 하자. 이 생각에 대해 아래의 네 가지 질문을 차례차례 묻고 대답을 해본다. 그 다음에는 뒤바꾸기를 한다.

그게 진실인가요?
그게 진실인지 당신은 확실히 알 수 있나요?
그 생각을 믿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뒤바꾸기를 한다.

이렇게 네 가지 질문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은 원인은 사실은 남편 자체가 아니라, 남편에 대한 생각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뒤바꾸기를 하면, “남편은 나를 무시하지 않는다, 나는 남편을 무시한다, 나는 나를 무시한다”라는 정반대의 문장들이 나오며, 이 문장들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를 살펴보게 된다. 열린 마음으로 ‘작업’을 하면, 그동안 밉게만 보이던 남편이 갑자기 사랑스러워지는, 생각지도 못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생각에 대한 집착에서 풀려나면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의 예일 뿐이며, 모든 문제는 결국 생각의 문제이므로 케이티의 ‘작업’은 우리의, 세상의 모든 문제에 똑같은 방식으로 적용된다. ‘작업’이 어느 상황에서나 효과를 발휘하는 만병통치약인 까닭은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작업’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지금 있는 현실의 아름다움을 보게 해준다. 그리고 생각에서 완전히 해방되면 완전한 평화와 행복과 사랑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바이런 케이티의 ‘작업’은 우리 지구별에 위대한 축복입니다.”
_에크하르트 톨레

이 책은 삶에서 마주치는 온갖 문제들을 네 가지 질문을 이용하여 쉽고 명쾌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주식에 투자했다가 망한 사람,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 괴로운 사람, 심장병을 앓는 남자, 부하직원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사람, 심하게 울어대는 아기 때문에 상심한 엄마, 가족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사람, 죽음이 두려운 사람, 성폭행 당한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여성 등―이 바이런 케이티와 대화하면서 네 가지 질문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참된 평화와 행복을 찾는 17편의 사례가 함께 실려 있다.

바이런 케이티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 중 한 명이며,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녀를 새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소개했다. LA 타임스 매거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퍼시픽 선, 바디 앤 소울 등 다수의 언론매체에서 그녀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으며, 오프라 윈프리도 소울 시리즈에 초청하여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소개하였다.

2003년에 초판 발행한 것을 새롭게 번역하여 펴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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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는 마음공부 수업에서 에크하르트톨레 님의 책과 더불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책입니다. 저의 마음공부 관련 추천 책 30 종류 중에 가장 위에 자리하기도 합니다. 더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그야말로 지구별로 배달된 소중한 선물입니다. ^^  구매
타박타박 2019-10-2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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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싫어하는 상황이 바로 우리가 그동안 찾아온 것, 곧 우리 자신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p.74  구매
ooohcoach 2019-10-1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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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이런 종류의 책은 자신이 꺠달은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식이지만 이 책은 플라톤의 대화편처럼 서로 대화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보고 있는지 질문을 통해 알게해주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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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yoang 2016-02-1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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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 저자가 하라는대로 하다보니, 화가 나기도 하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연유인즉,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하니,나에 대한 사실이 내가 인정하기 싫어서였습니다. 아니러니하게도,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읽어보세요  구매
kangim 2019-07-2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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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케이트를 만나다.. 새창으로 보기
1. 그게 진실인가요?

2. 당신은 그게 진실인지 확실히 알 수 있나요?

3. 그 생각을 생각할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4. 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뒤바꿔보세요.



이 네 가지 질문으로 삶이 평안해진다?

믿기 어려웠지만 함께 심리상담 일을 하는 형의

강력한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가장 간단하고 핵심적인 인지치료의 정수' 라더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당시 대학에서 상담을 하고 있던 내게

이 책은 내 상담의 비장의 무기 중 하나가 되었다.

단순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간단한듯 심오한 질문을 하고 내담자의 대답을 따라가는 가운데

많은 친구들이 '아!' 하는 경험을 했다.



솔직히 안 쉽다.

간단할수록 깊이와 정도를 조율하기가 까다롭다.

그러나 기억하고, 사용하라.

정직하게 네 가지 질문 앞에 서라.

성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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슝슝 2015-01-2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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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영역과 의미의 영역 새창으로 보기 구매
우리는 우리가 언어를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언어가 우리를 지배한다. 언어가 등장하여 지각을 물들일 때, 우리의 지각은 사실의 영역에서 의미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나’는 언어가 만들어낸 의미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사실의 영역에 머무를 땐 ‘나’도 하나의 사실이 된다. 생각도, 모든 것도, 심지어 탐진치조차 해석되지 않고 사실의 영역으로 보아질 때는 번뇌가 아닌 것이다.



생각에 함몰된 지각이 생각 속에서 빠져나와 그 바탕에서 생각을, 언어적 사유를 응시하게 될 때. 우리는 그러한 사유와 생각이 우리가 눈을 깜빡이거나 코로 숨을 쉬는 것과 같은 생리적 부수작용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생각과의 동일시로부터 벗어난 삶은 놀랍도록 가뿐해진다. (요점은 생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해석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이 '나'라고 얘기하는 것을 진짜 '나'라고 믿습니다. 어느 날, 숨 쉬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숨쉬어지고 있었습니다. 또 놀랍게도, 생각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는 내가 생각되어지고 있었고, 생각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오늘 생각하지 않겠다"고 생각해도, 이미 늦습니다. 이미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은 저절로 나타납니다. 구름이 텅 빈 하늘을 가로질러 흘러가듯, 생각은 허공에서 나와 허공으로 돌아갑니다. 생각들은 와서 머무르지 않고 지나갑니다. 진실이라 믿고 집착하지만 않으면, 생각은 조금도 해롭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생각을 통제할 수 있었다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생각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생각을 이해로 만납니다. 그러면 생각이 나를 놓아줍니다.



생각은 산들바람이나 나뭇잎,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과 같습니다. 생각은 그렇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을 통해서 생각들과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빗방울과 다툴 수 있나요? 빗방울은 개인의 것이 아니며,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괴로운 생각을 이해로 만나면, 다음에 그 생각이 나타날 때는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전에는 악몽이었던 생각이 이제는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다음에 그 생각이 또 나타날 때는 웃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예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있는 현실을 사랑하는 힘입니다.



------p.38~39, 바이런 케이티 저, <네 가지 질문>



바이런 케이티는 미국의 떠오르는 영성가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삶의 부조리한 고통이 '생각'을 직면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생각의 대상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 잘 정제된 네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는 아주 정교한 외과의처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에 대한 믿음'을 예리한 질문 몇가지로 해체시킨다.



이를테면 이런 것. 현재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되는 명제를 이야기하도록 한다. 이를테면 '그(그녀)는 나를 괴롭게한다'라는 식의. 바이런 케이티는 이 명제에 스스로 네 가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첫번째 질문, 그것이 진실인가? 두번째 질문, 그것이 진실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가? 세번째 질문, 그 생각을 믿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네번째 질문, 그 생각이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



자신이 문제라고 믿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현상이 아닌, 현상에 대한 자신의 해석(생각)임을 확인케하고, 그 해석(생각)의 대상성을 부각하여 생각이 내가 아님을 깨닫게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특별한 지도자 없이도 스스로 종이에 네 가지 질문을 적어가며 자신의 '생각에 대한 믿음'을 해체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아주 예리하고 심플한 기법을 통해 '생각'을 조사케하고, 그 조사의 결과로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게 한다. 저자 자신도 언급하듯이, 이 기법은 마치 달마와 혜가가 나눈 안심법문을 연상케한다.



그녀는 현상을 다루지 않는다. 현상에 대한 해석을 다룬다.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현상이 아닌, 현상에 대한 해석임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녀의 가르침은 현실적인 상황들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 단지 그 현실적 상황들을 받아들이는 관점의 전환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이것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



마음은 생각을 통해서만 자기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생각 말고 또 무엇이 있나요? 마음이 달리 어떻게 자기를 발견할까요? 마음은 자기를 위해 실마리들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은 스스로 자기의 빵 부스러기들을 떨어뜨렸음을 깨닫게 됩니다(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에서 인용함-옮긴이). 마음은 그것 자체로부터 나오지만,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탐구는 빵 부스러기들이 그것 자체로 돌아가게 하는 빵 부스러기입니다. 모든 것은 모든 것으로 돌아갑니다. 없음은 없음으로 돌아갑니다.



------p.364, 바이런 케이티 저, <네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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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2020-03-1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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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케이티는 '질문'이라는 방법으로 우리를 리얼리티로 인도합니다. 그동안 애가 얼마나 생각속에서만 살고 있었고 나를 힘들게 하는 갈등의 모든 것이 바로 그 생각이었음을 이해를 통해 만나도록 권합니다. 질문을 통해 자신을 만나는 시간은 때로는 고통스럽고 그만두고 피하고픈 나와 다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를 원한다면 이 순간 정면으로 그 질문을 쳐다보고 대답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예상치도 못했던 자유와 만나게 됩니다. 본래 있었지만 생각의 그림자로 감추어져 있던 나의 진정한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머리로 이해하며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달리 질문이라는 구체적인 방법은 분명히 나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입니다. 함께 그 질문의 모험에 참여해보시길 적극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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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oo815 2015-01-2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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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는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줄줄이 적어놓는 방식으로 책을 썼다면 이 책은 질문을 토대로 자신이 직접 성찰하게 만드는 방식이 특이하다.
mongyoang 2016-01-1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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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케이티의 '네 가지 질문'을 읽고 새창으로 보기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인 바이런 케이티는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한 관점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방법인 ‘작업(The Work)’을 창안했습니다. ’작업‘은 네 가지 질문과 뒤바꾸기로 이루어진 자기탐구의 방법입니다.



바이런 케이티는 이혼을 계기로 심한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결국 요양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아침, 요양원 다락방에서 고통이 없는 기쁨의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으며, 그 깨달음의 자유가 그 뒤로 지속되었고, 인생의 모든 문제들이 치유되며 항구적인 평화를 얻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려졌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식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네 가지 질문과 뒤바꾸기는 아래와 같이 아주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1. 그게 진실인가요?

2. 당신은 그게 진실인지 확실히 알 수 있나요?

3. 그 생각을 생각할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4. 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뒤바꿔보세요.



정말 간단합니다. 우리는 매번 진실이 아닌 생각을 가지고 여러 가지 많은 감정과 생각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 대해,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네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순서에 따라 진술을 하고 나면, 모든 것은 내 생각에 대한 믿음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탐구라는 과정을 통해 이것을 바꿔가고, 올바른 믿음으로 향하게 됩니다. 내가 힘든 것은 항상 타인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그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고, 그 생각에 대한 믿음이 부정적이었음을 깨닫게 되듯이 말입니다.



네 가지 질문은 우리가 믿고 있는 생각을 의심하는데서 출발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불행하다. 왜냐하면 나는 현재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는 진술을 종이에 썼다고 가정해 보면, 과연 그 생각이 진실인가? 그리고 나는 그 생각이 진실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가? 그 생각을 생각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리고 그 생각이 없다면 나는 누구일까? 네 가지 질문에 맞춰 답을 해나가다 보면, 그 동안 근거 없는 생각을 믿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내 고통의 원인은 내 생각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저자는 생각을 통제하거나 내려놓을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대신 생각을 조사하고 이해하면, 생각이 나를 놓아준다고 말합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됩니다. 우리가 마음의 갈등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나 과거 또는 미래에 대한 생각이 들어차 있을 때입니다. 사람들은 늘 남의 일이나, 신의 일에 대한 생각으로 힘들어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거짓된 생각을 진실이라고 믿음으로서 삶의 참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은 고통스럽습니다.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내 생각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네 가지 질문은 뭔가를 바꾸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을 지금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네 가지 질문을 통해,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생각들이 사실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을 통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던 많은 문제들이 사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인식하는 순간 삶은 휠씬 편안해지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저 막연하게 보이는 이 질문들을 통한 ‘작업’이 모든 생각의 족쇄를 부수는 강력한 치유의 방법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지기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행복하게 사는 일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고, 추구하는 이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진실이 아닌 생각을 가지고 여러 가지 많은 감정과 생각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네 가지 질문을 통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나간다면 생각의 구조가 바뀌고, 편협된 시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보게 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뭔가 내 머리 속에서 불편한 생각이 떠오른다면 “그 생각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생각들이 사실은 거짓이고, 왜곡된 생각임을 인지하게 된다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항상 평화롭고 행복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이나 상황에 처해 있다면 바이런 케이티님의 <네 가지 질문>을 통하여 새로운 생각의 틀로 바꿔보시기를 권합니다.



만일 내게 기도가 있다면 이러할 것입니다. “신이시여, 부디 저를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중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구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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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 2015-01-3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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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첫 책 구매와 2017년에 읽은 책 목록 새창으로 보기
            새 해의 첫 책을 3권 주문하고 시간이 더 가기 전에 2017년 읽은 책을 정리해야겠다.눈이 피곤해서  책보다는 드라마의 재미에 눈을 뜬 해이기도 했는데그래도 그럭저럭 70여권은 읽은 것 같다.                    &nbs... + 더보기
혜덕화 2018-01-02 공감 (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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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천 가지 이름 - 대자유인 바이런 케이티, 道를 살다, 道를 말하다

기쁨의 천 가지 이름 - 대자유인 바이런 케이티, 道를 살다, 道를 말하다  | Modern Spiritual Classic 1 
바이런 케이티 (지은이),김윤 (옮긴이)침묵의향기2014-12-27원제 : A Thousand Names For Joy (2007년)

415쪽150*220mm585gISBN : 9788989590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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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인 바이런 케이티가 도(道)에 대해 말한다. 궁극의 진리 혹은 진실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본래 무엇인지를, 어찌하여 생각이 모든 괴로움과 스트레스의 원인이며, 어떻게 하면 생각의 감옥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흔들림 없는 평화를 누릴 수 있는지를, 어디에도 걸림 없는 완전한 대자유의 삶이란 어떠한지를, 그리고 모르고 있을 뿐 실은 우리가 이미 그 자유라는 진실을 심오한 통찰과 감동적인 언어로 들려준다.

도덕경을 소재로 한 탁월한 영성 작품으로서, 생각의 족쇄에서 풀려나는 단순하면서도 경이로운 방법인 '작업'에 대한 설명과 사례도 곁들인다. 바이런 케이티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 중 한 명이며,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녀를 새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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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머리말

기쁨의 천 가지 이름

부록: 작업을 하는 방법
감사의 말
추천의 글

책속에서

P. 79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생각될 수 없고 붙잡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자기의 눈을 보고 있고, 자기의 귀를 듣고 있으며, 자기 상상의 세계에 반응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모든 것은 애초에 당신의 마음이 창조한 것입니다. 당신이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창조하고, 그것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현실에 ‘무엇’을 덧붙이고, 다음에는 ‘왜’를 덧붙입니다. 그 모든 것은 당신입니다.  접기
P. 85 스트레스를 주는 근원적인 생각은 하나의 ‘나’라는 생각입니다. 그 생각이 있기 전에는 평화가 있었습니다. 생각은 무(無)에서 태어나며, 즉시 나온 곳으로 돌아갑니다. 만일 생각들의 이전, 사이, 이후를 바라본다면, 한없는 빈 공간만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모르는 공간입니다. 그것이 참된 우리 자신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의 근원이며,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시작과 중간과 끝이…….  접기
P. 93-94 대지는 조건 없이, 아무도 모르게 그저 주기만 하며, 그것이 사랑의 증거입니다. 대지는 바람과 비, 사막, 바위, 자기가 창조한 것들의 소리를 통해 얘기합니다. 그녀는 의미 없는 노래를 부를 뿐이며, 어떤 보답도 기대하지 않으면서 계속 주기만 합니다. 그녀는 당신을 평생 도울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당신이 그녀에게 깡통을 던지거나, 그녀의 혈류에 독극물을 붓거나, 그녀에게 폭탄을 떨어뜨린다 해도, 거기에는 여전히 전적인,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을 뿐입니다. 그녀는 주고 또 줍니다. 그녀는 깨어 있는 나입니다. 그녀는 당신입니다.  접기
P. 97 모든 사람이 자기의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것들은 실제로는 훌륭한 스승들입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부족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필요한 것을 얻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그 뒤 우리는 필요한 것을 이미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 뒤 우리는 오로지 지금 있는 것만을 원하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언제나 성공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접기
P. 135 깨달음은 삶으로 표현되기 전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나는 고통을 겪는 한 사람을 위해 지구의 끝까지 여행할 것입니다. 절망하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내 몸의 깨어나지 못한 세포들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몸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며, 세상이라는 몸이 나의 몸입니다. 나 자신이 존재하지도 않는 물속에 빠져 익사하도록 내가 내버려둘까요? 나 자신이 상상으로 만들어진 고문실에서 죽도록 내가 내버려둘까요? 나는 생각합니다. “맙소사, 문제가 있다고 정말로 믿는 사람이 저기 있구나.” 나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도움을 청할 때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나 자신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갈 수 있으면 “예” 하고 갑니다. 그것은 특권입니다. 아니,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자기사랑입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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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바이런 케이티는 우리 시대의 진정으로 위대한 영적 스승입니다. 그녀의 가르침은 나에게 굉장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 지혜로운 여성을 사랑하며, 모든 사람에게 이 경이로운 책 속에 빠져 보라고 권합니다. - 웨인 다이어 (<행복한 이기주의자>, <의도의 힘>의 저자. 심리학 교수)
바이런 케이티의 ‘작업’은 우리 지구별에 위대한 축복입니다. 고통의 근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지나가는 생각과 이야기들을 우리 자신이라고 믿는 데 있습니다. ‘작업’은 그런 망상을 자르고 우리 존재의 영원한 본성을 알게 하는 예리한 검과 같습니다. 거기에서 우리의 본래 상태인 기쁨과 평화, 사랑이 흘러나옵니다. - 에크하르트 톨레 (<NOW>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의 저자)
단언컨대, 이 책은 진정 최고의 책이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보다 더 분명하고 섬세하며 눈부시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케이티를 읽는 내내 너무나 즐거웠고, 감사했으며, 행복했다. - 김기태 (<지금 이대로 완전하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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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바이런 케이티 (Byron Katie)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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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영적 스승 바이런 케이티는 ‘생각’에 대한 믿음이 모든 스트레스와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모든 생각에서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와 평화에 이르는 단순하면서도 경이로운 방법인 ‘작업’(The Work)을 창안했다. ‘작업’은 네 가지 질문과 뒤바꾸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간단한 질문으로 생각의 족쇄에서 풀려나 평화로운 마음을 경험하게 한다.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그녀를 새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선정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사막지대의 소읍인 바스토우에서, 세 자녀를 둔 어머니이자 부동산 중개인으로 평범하게 살던 케이티는 이혼을 계기로 점점 우울증이 심해졌고 분노와 좌절감에 빠져들었다. 십 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며 급기야 죽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 그녀는 결국 1986년에 요양원에 들어갔다. 그 뒤 보름쯤 지난 어느 날 아침, 요양원 다락방에서 홀로 방바닥에 누워 자던 그녀는 홀연히 고통이 없는 절대 기쁨의 상태로 깨어났으며, 그 깨달음의 자유는 결코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요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사람들이 스스로 그녀의 집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녀에 대한 소문이 점점 퍼지면서 여기저기에서 초청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 후로 케이티는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작업’을 소개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작업’을 통해서 참된 평화와 행복을 찾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네 가지 질문》 《사랑에 대한 네 가지 질문》 《기쁨의 천 가지 이름》《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1,2권) 《나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는가》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당신의 아름다운 세계>,<기쁨의 천 가지 이름>,<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2> … 총 74종 (모두보기)
김윤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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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으로 안내하는 글들을 우리말로 옮기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번역한 책으로는 《네 가지 질문》 《기쁨의 천 가지 이름》 《가장 깊은 받아들임》 《아잔 차 스님의 오두막》 《마음은 도둑이다》 《지금 이 순간》 《영원으로 가는 길》 《오늘 하루가 선물입니다》 등이 있고, 공역한 책으로는 《사랑에 대한 네 가지 질문》 《요가 수업》 《아쉬탕가 요가의 힘》 등이 있다.
최근작 : <철학을 좋아하게 만드는 책> … 총 20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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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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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지금 여기에 현존하라>,<대혜법어>,<가장 깊은 받아들임>등 총 58종
대표분야 : 불교 13위 (브랜드 지수 23,593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바이런 케이티, 절망의 한가운데에서 절대 기쁨으로 깨어나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사막지대의 소도시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던 바이런 케이티는 이혼을 계기로 십여 년에 걸쳐 우울증이 심해지고 자살충동에 시달리다가 요양원에 입원했는데, 1986년 2월의 어느 날 아침, 홀연히 (사람들이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절대 기쁨의 상태로 깨어났다.

“나를 괴롭히던 모든 분노와 생각, 내 모든 세상, 온 세상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동시에 깊은 곳에서 웃음이 솟아 나와 넘쳐흘렀습니다.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 다른 무엇이 깨어난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눈을 떴습니다. ‘그것’은 케이티의 눈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기쁨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것과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것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바로 그것 자신이었습니다.”

그때 바이런 케이티가 발견한 진실은 단순한 것이었다. 모든 스트레스와 괴로움의 원인은 ‘생각’을 믿기 때문이라는 것. 생각을 믿으면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고, 생각을 믿지 않으면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을 믿을 때는 고통을 받지만, 그 생각을 믿지 않을 때는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유는 그처럼 단순합니다. 고통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내 안에서 발견한 기쁨은 한 순간도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그 기쁨은 언제나 모든 사람 안에 있습니다.”

그녀는 깨어나면서 ‘작업’을 발견했고, 생각의 족쇄에서 해방되는 단순하면서도 경이로운 이 방법을 그 후 세상에 널리 전하고 있다.

대자유인 바이런 케이티,
道를 살다, 道를 말하다

어떤 영적 스승도 없이 스스로 깨어난 그녀는 당연히 어떤 영적 전통에도 속하지 않았고, 영적 고전을 접한 적도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영성문학 작가인 남편 스티븐 미첼은 자신이 의역한 도덕경을 한 장씩 읽어 주고 여기에 대해 바이런 케이티가 한 말을 기록하여 책으로 펴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남편의 요청에 응하여, 말할 수 없는 도(道)에 대해 말한다. 도덕경 1장부터 81장까지 차례차례 이어지는, 도에 관한 그녀의 말들은 마치 저마다의 광채로 빛나는 보석들로 촘촘히 장식된 화환과 같아서 그 다채로움과 깊이를 몇 마디 말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그녀가 가리키는 궁극의 진실이라는 것은 지금 여기를 떠나 있지 않으며, 나와 따로 있는 어떤 고매한 것이 아니며, 길고 고단한 수행이나 노력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경지도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언제나 지금 있는 것이며, 바로 나 자신이지만, 단지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고 있을 뿐인, 어떤 분리도 없는, 언어 이전의 무엇이다. 도덕경 1장에 대해 케이티는 말한다.

“언어 이전의 이 세계에는 오로지 실재하는 것만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뉘어 있지 않고, 파악될 수 없으며, 지금 여기에 이미 현존합니다. 분리되어 보이는 것은 어떤 것도 실재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이름을 붙여 창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면, 실재하지 않는 것도 아름다워집니다. 왜냐하면 실재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무’나 ‘너’나 ‘나’라고 불리는 어떤 분리된 것도 보지 못합니다. 믿든 믿지 않든 이런 것들은 상상일 뿐입니다.”

도(道)가 무엇인지를 가리키는 형형색색의 언어들과 엮이면서 이 책의 무늬를 이루는 또 하나의 큰 줄기는 도(道) 자체로서 살아가는 바이런 케이티의 모습이다. 도(道)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고 해서 금세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굳어진 생각에 대한 믿음은 뿌리가 깊고, 생각의 속도는 빛보다 빨라서 순식간에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모든 생각, 모든 관념의 감옥에서 해방된 도인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책 곳곳에는 그런 대자유인의 삶을 생생히 보여주는 모습들과 에피소드들이 푸짐하게 담겨 있으며, 그런 그녀의 삶은 그녀의 말들이 어떤 이론이 아니라 진실로 그러한 것임을 증언한다. 스티븐 미첼은 서문에서 그런 삶의 예를 몇 가지 언급한다.

“이 책은 또한 그녀가 아기 손녀와 춤을 추고 있든, 그녀의 집이 도둑들에게 다 털리고 남은 것이 하나도 없든, 그녀를 죽이려 하는 남자 앞에 서 있든, 또는 주방을 향해 걸어가는 모험을 떠나든, 그녀가 실명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듣든, …… 암 진단을 받든, 언제나 흔들림 없이 기뻐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담은 초상이다.”

우리 모두는 자유를 구하지만
우리가 이미 그 자유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삶이 바이런 케이티나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라면, 평범한 다수의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소수에게만 가능한 삶이라면, 이런 말이나 글은 별 가치도 없고 쓸모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온 우주에서 어떤 분리도 보지 못하는 바이런 케이티에게는 그녀가 곧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모르고 있을 뿐, 우리가 이미 찾으려 하는 그 자유이며, 그녀가 그 길을 발견했으므로 우리도 똑같이 발견할 수 있다고 단호히 말한다. 그리고 변함없이 “어떻게?”를, 그 길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나는 고통에 대해 알고, 기쁨에 대해 알며, 내가 누구인지를 압니다. 나는 곧 당신입니다. 아직 당신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해도……. 어떤 이야기도 없을 때는 과거도 미래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고, 가야 할 곳도 없고, 되어야 할 사람도 없고, 모두가 좋습니다.”

사람들이 ‘작업’을 통해 스스로 진실을 깨닫고 자유로워지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두었던 《네 가지 질문》 등 전작들과 달리, 이 책은 바이런 케이티 자신이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일상생활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는 궁극의 진실과 자유로운 삶에 관해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함과 섬세함, 명쾌함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바이런 케이티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은 독자들과 도(道)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더없이 반가워할 귀하고 탁월한 영성문학 작품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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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고 드문 책이다. 이렇게 자유롭고 기쁨 가득한 영혼과 같은 시대, 같은 별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번역자와 출판사에도 감사한다.  구매
사자평 2015-02-10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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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케이티의 책은 읽을 때마다 다시 읽힙니다. 이렇게 지금 이 순간으로 즉시 돌아오게 해주는 귀한 책이 감사합니다.  구매
joonoo815 2018-12-0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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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해설서를 쓰신 김기태 선생께서 추천의 글에서
˝단언컨데, 이 책은 진정 최고의 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읽기 쉽고, 아름답고, 잘 만들어진 책 같습니다.
이런 책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고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네가지 질문>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듯합니다.  구매
sangsup2607 2015-07-1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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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아님'을 산산조각 내 버리는 책 -'기쁨의 천 가지 이름' 새창으로 보기
기쁨의 천 가지 이름



도덕경을 바탕으로 저자의 '일상 생활'을 담은 책이다.
보통 경전에 관한 해설책을 읽으면,
한문 원어, 한문 풀이, 저자의 해석, 일화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도덕경 해설'이기는 한데,
읽어보면 그냥 도덕경 한 구절과, 거기에 따른 저자의 사사로운 생활을 죽 써놓았다.

이 책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일화' 대신에, '자신의 일상 생활'을 쓴 건 바로, 그만큼 저자가 도(道)에 가깝게 살고 있어 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아니, 인간=자유이다.
자유에 관해 개념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토록 자유롭고 아름다운 책을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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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sword777 2015-01-30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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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도한 삶이란... 새창으로 보기 구매
바이런 케이티는 득도하였다.
화두선을 점검한 내용과 모두 같다.
대표적인 돈오돈수이다. 득도후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독특한 것은 저자의 득도이전에 동양의 종교와 철학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내용을 비교해 보니 같은 것이었을 뿐이다. 결국 득도의 내용은 동일한 것이다. 근대 서양사상의 대표인 이성중심의 합리주의와는 전혀 설명 될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 다시 말하면 합리주의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한가지로 절대적일 것은 없는 모양이다.
선을 모르거나 득도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 읽으면 이해할 수 없고 어려운 내용이다. 하지만 일독을 권한다. 저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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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섭 2018-09-0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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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5

(1) 박성용 - <누가복음 주제초점 ⑪> 포스트코로나 시대에서 복음적인 평화교회의 재구축 본문: 누가복음 8장...

(1) 박성용 - <누가복음 주제초점 ⑪> 포스트코로나 시대에서 복음적인 평화교회의 재구축 본문: 누가복음 8장...



박성용

56 mins ·

<누가복음 주제초점 ⑪> 포스트코로나 시대에서 복음적인 평화교회의 재구축

본문: 누가복음 8장



지금까지 계속해서 누가복음을 읽어오면서 누가복음이 혁명적이라 함은 환상과 실재에 대한 전복에 대한 인식의 교정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게 되었기 때문임을 알게되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들의 현실이라는 가이사 나라의 지배체제와 달리 누가기자는 처음부터 마지막된 자(the last), 미천한 자(the least), 그리고 잃은 자(the lost)들의 미약한 증언들을 통해 ‘우리에게 일어난 일’(눅1:1)의 새로운 현실인 자비로운 실재의 새로운 현실성-해방, 눈뜸, 자유, 평화, 기쁨-의 도래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다.



자비로운 실재의 화육자이자 전형(典型)으로서 예수의 말과 행동에 대한 앞에서의 목격과 증언들이 이제는 ‘말씀이 목격자이자 일군된 자들’(1:2)의 스토리텔링 흐름이 목격자에서 일군된 자들인 제자들의 선택으로 전환되어가는 것을 6장에서부터 소개하고 있다. 예수에 관한 초기의 이야기에서 ‘예수의 일행’인 제자들의 ‘일군됨’의 준비와 훈련으로 초점은 바뀌어진다. 목격자의 진실성이 이제는 섬김(service)으로서, 하느님 나라의 담지자로서 그 역할에 대한 중요성의 전환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6장의 열두 사도의 선택 이야기는 매우 치열한 분별과 자각의 훈련을 요구하고 있었다. 즉, ‘복있을진저’와 ‘화있을진저’의 정반대의 삶의 길(way of life)이 우리에게 놓여짐(6:20-26),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행동 원리인 보복과 비판의 금지(27-42)와 더불어 말씀을 실행하라는 점에서 이는 추상적인 이슈가 아니라 향후 ‘홍수가 나서 큰 물이 집으로 들이치는’ 상황에서 ‘무너져 여지없이 파괴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지음’(46-49)의 실천성을 답보하기 위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는 진정성의 문제를 넘어서 위험에 대한 실효적인 복지(well-being)을 위한 살아있는 지혜와 능력에 대한 것이라는 권고도 두드러진다. 관심밖의 이방인인 백부장에 대해 그리고 우리 안의 추방된 자인 과부와 ‘죄많은 여인’이라는 사회적 살인의 이슈에 대해 주목하는 돌봄의 철저성을 확대하고 있다. 주목의 한계와 경계선을 내려놓는 인식의 확장에 대한 실천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2천년 전의 성서 이야기와 지금의 현실을 연결하는, 생생한 목격에 따른 증언자의 삶이자 활동가라는 ‘일군됨’의 문제라는 살아있는 이슈에 직면하고자 할 때 잠시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19를 누가기자가 말하는 새로운 비유로서 ‘홍수가 나서 큰 물이 집으로 들이치는’ 상황에 대해 확인하고 8장을 다룰 필요가 있다. 코로나 19는 세상의 나라가 지닌 통치와 질서의 허구, 속빈 강정의 리더십과 권력의 오용으로 인한 비참함의 현실, 사회적 약자의 차별과 불행의 시스템적인 구조화, IT의 장밋빛 환상과 권력의 재편,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인프라의 건강한 토대의 필요, 시민사회의 참여와 민주역량의 긴급성, 소통의 리더십의 출현의 요청, 자연의 통제에서 자연과의 상생적 공존 등등의 이슈에 있어서 과거의 수정적인 접근을 넘어서서 아예 패래다임 전환의 도약이 필요한 전례없는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중세의 흑사병이 사천만 명이 넘는 사망자와 더불어 르네상스를 가져온 문명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과거 역사와 유사하게,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명 속으로의 진입을 코로나19가 가져온 것이 종교의 영역에도 중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화상 예배로의 전환과 그 긍정적인 가능성, 형식적인 종교권위로부터의 자율적 개인 공간과 선택의 확보, 작은 신앙공동체의 중요성과 같은 신앙의 ‘겉옷’의 바꿈에 대한 것만 아니라 본질적인 물음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우리의 신앙의 본질적인 것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디에 토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그것이다. 양파껍질을 벗기듯이 신앙의 겉옷을 벗기면 무엇이 본질로 남는 것인가? 그리고 어떤 방향이 진정성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질문이 다가오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코로나 질병의 상시적인 위협과 이에 대한 두려움의 일상화 –방송과 언론의 일상적 정보의 ‘홍수’와 이에 대비하는 안전을 위한 문화와 구조의 시스템화라는 ‘맨땅에 집짓기’(6:48-49)-는 실재가 두려움과 결핍에 기초하고 있다는 환상을 계속 의식적으로 심어주게 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는 신앙인에게 신앙의 본성에 대해 무엇이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가에 대한 나침판에 있어서 혼동과 착시의 안내를 주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누가복음 8장은 방향에 있어서 필자에게는 매우 지혜로운 안내를 제공하고 있고, 이것은 2천 년 전의 상황이나 지금의 삶의 맥락에도 적절한 나침판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이해에 도달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다.



1) 하느님 나라의 재건의 주체자들은 지배체제의 억압, 눈가림, 덫에 희생이 되었던 마지막 된 자, 미천한 자 그리고 잃은 자들의 파트너십 체제를 통해 이루어진다(8:1-3). 열 두 (남성)제자들의 민중성과 사회적정치적 지배체제로부터 얻은 ‘악령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은 여성들’의 파트너 리더십으로 ‘예수의 일행’이라는 돌봄과 섬김의 리더십을 꾸린다. 이들은 자신들의 구체적인 희생 경험으로부터 가장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지혜와 열정을 통해 ‘육화된 앎(embodied knowledge)’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삶의 가장자리(the edge)에 있던 자들과 ‘악령이라 질병’의 고통을 알고 있는 (여성) 경험자들은 변혁 담론의 주체가 되고, 그들은 가장자리에서 중심인 그리스도를 섬기고 돕는 서번트의 역할을 파트너됨이라는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다. 예수 운동의 뒤따름은 그러한 자들의 결합과 포함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복음 전하는”(8:1) 데 있어 핵심역량을 세운다.



2) 그 핵심역량이 알아야 할 첫 번째 인식은 이것이다. 즉, 씨뿌리는 자의 비유(4-15절)에서 신앙이란 철저하게 그리고 일관성을 갖고 인식하는 ‘자비로운 실재의 제약없는 베푸심’에 대한 자각의 수행을 말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두려움과 결핍의 실재가 아니라 자비로움과 풍성함의 베푸심의 실재가 우주와 세상의 터전임을 안다. 이것은 우리의 지각(perception)으로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하느님은 자비로운 실재로서 자신의 베푸심을 중단하지 않고, 씨앗이 떨어지는 토양에 대한 조건이 없으며, 변함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8절)에게 보이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10절; 씨앗처럼 보이지 않지만 곧 드러날 실재로서 신비)이다.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뺏어가는 길가의 조건이나, 믿음이 오래가지 못하는 돌맹이, 혹은 세상 걱정과 재물과 현세의 쾌락의 가시덤불의 상황이 어떠하든 그 자비의 베푸심이라는 씨앗뿌림은 조건없이 주어진다. 그것이 보이는 현실보다 더 참된 실재이다. 실재가 자비롭다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며, 변화하지 않는다. 하느님 나라 운동은 그러한 실재에 대한 자각–보이는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 비전(vision)에 기초한 깨달음-에서 시작되고 확장된다. 이런 점에서 징벌하는 두려운 하나님 개념은 오류이며, 십자가의 처형과 대리적인 희생의 논리 또한 두려움과 결핍의 지각에서 해석한 오류이다. 하느님이 선하시다면 실재는 선하고 자비롭다는 뜻이며, 무한하시다 함은 그러한 선과 자비의 궁극성과 변함없음을 뜻하며, 원죄나 희생의 보상과 처벌에 대한 실행들은 두려움과 결핍에 따른 인식의 오류라는 것이다. 그것은 지배와의 공모에서 나중에 기독교 역사의 제국주의적 발상에 따라 –어거스틴 이후의 신학에서- 나온 교의적 해석이지 복음의 원의(原意)는 다르다.



3) 두 번째로 핵심역량으로서 제자가 알아들어야 하는 점은 실재가 자비롭고 풍성함과 동시에 우리의 본성은 원래가 거룩한 빛(등불)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16-18절). 우리의 내면은 괴물이 아니라 신성한 불꽃이 있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과 같다. 우리의 본성이 원래 그러한 신성한 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그릇으로 덮어 두거나 침상 밑에 두는’(16절) 것과 같이 우리의 의식이 그러한 방해물을 덮어 두거나 그 등불을 사용하지 않는 습관으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내면의 신성한 빛에 의해 안내를 받는 사람과 달리 그것을 갖고도 우리가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그것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자각의 결과로 일어난다. 따라서 “(내면의 등불을)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줄 알고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18절)의 작동원리는 자연스러운 예측이다.



이 내면의 빛은 자비로운 실재를 비춘다. 그래서 두려움과 결핍의 세상됨이 아니라 자비로움과 풍성함의 현실을 보고, 세상이 종살이와 얽매임의 감옥이나 여인숙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할 집으로 볼 수 있게 하고, ‘그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 빛을 볼 수 있는’(16절) 상호 조명이 일어나게 되어 빛의 안내를 받아 삶에서 실족하지 않는다. 자비로운 실재와 내면의 빛은 동심원처럼 서로 연결되어 삶에서 풍성함을 가져오는 ‘더 받는’ 삶에로,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원래 있는 것마저 ‘빼앗기는’ 결과의 삶을 초래하게 된다. 이 원래 주어진 내면의 빛은 성취나 재능의 특별성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원래 보편적으로 주어진 본성적인 것이며 여기서 나의 온전함과 창조성과 무제약적인 나눔의 본성이 있는 것이다. 이는 원래 있는 것의 사용 여부에 있는 것이지, 나중에 도달하여 성취될 차원이 아닌 것이다.



4) 세 번째는 인식에서 '소속'으로 나아감에 대한 것이다. 신앙공동체는 친밀함과 혈연적 소속이라는 몸의 위치성이 아니라 말씀의 새김과 실행이라는 영적 가족됨이라는 제자직을 요청한다(19-21). 이상적인 목표로서 영적 가족됨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21절)라는 점에서 의식적이고, 비개인적인 우정어린 실천 공동체를 말한다. 그것은 혈연, 학연, 지연의 혈과 육의 친소관계 중심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보편적 이상에 대한 헌신과 투신을 요청한다. 그렇다고 시민사회의 가치중심의 윤리적 선택의 범위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비로운 실재인 하느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이를 실행하는 근본적인 자각(awareness)과 일관성 있는 말씀의 자장력 ‘안’에 있는 수행의 커뮤니티를 말한다.



영적 가족됨은 나와 우리를 둘러싼 외부환경이 자비로운 실재의 베푸심이라는 자장력안에 내가 살아가고 있고, 내 안의 중심도 또한 내면의 빛이라는 등불에 의해 내 정체성이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에 의한 점화가 나를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타율과 자율을 넘어선다. 화살이 시위에서 떠날 때, 화살인 나는 시위를 당기는 ‘자비로운 실재(곧 하느님)’의 선제성과 시위를 벗어난 화살로서의 나의 내면의 빛이 조화되어 과녁을 향해 나아간다. 이것이 바로 창조(creation)이다. 반대로, 과녁을 벗어남이 죄(하마르티아)이며 이는 분리됨을 의미한다. 구원은 이러한 분리됨, 곧 양극성을 해체하고 다시 자비로운 실재와 내면의 빛의 ‘거룩한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양극성이 해체되고 자비로운 실재와 내면의 빛이라는 거룩한 관계에 따라 “하느님 나라의 신비”(10절)에 들어가는 길(hodos)을 가는 자들이 연결되는 것이 바로 영적 가족됨이라는 것이다.



누가 기자는 이렇게 실재의 자비로움과 내면의 빛의 거룩한 관계를 형성하는 영적 가족으로서 신앙공동체를 통해 어떤 미션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그 잠재적인 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아름다운 표현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게 되었다.

예수께서 "호수 저편으로 건너 가자"

하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배를 젓기 시작하였다.(8:22)



신앙공동체라는 배의 공간에 예수와 제자들이 함께 타고 있음이란, 자비로운 실재의 무제한적인 베푸심의 화육인 예수와 ‘말씀의 목격자이자 일군된 자’(1:2)인 증인들로서의 제자들이 함께하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함께 함의 목표는 ‘저편으로 건너가기’(let’s go over the other side; 디엘도멘[우리는 건너가자] 에이스[으로] 토 페란[그 건너편])의 실천에 있었다. 이편(this side)이라 생각되는 것이 그간 익숙한 가이사 나라의 통치 방식(분리와 힘의 지배)이라고 한다면 저편은 하느님 나라의 삶의 방식(연결과 힘의 분배라는 파트너십체제)일 수 있다. 아니면 에고의 두려움과 결핍의 일상생활에서 자비로운 실재에 따른 참자아의 내적인 차원으로의 건너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비로운 실재의 인식과 내면의 빛의 자각 그리고 그 둘의 거룩한 관계의 실천으로서 영적 가족됨이라는 신앙공동체의 회복은 샬롬의 실천에 있어서 토대와 자원이 된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신비라는 샬롬의 실천은 그러한 토대구축인 ‘배에 함께 탐’으로 그 시작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 시작은 ‘저편으로 건너가자’라는 움직여 나아감을 일으킨다. 그러한 저편으로 건너감(passing-over)은 어떤 결과를 보고자 하는 것인가? 누가는 이에 대해 두 가지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 하나는 바로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에 있는 게르게사 지방’(26절)에 사는 ‘군대(레기온);로마군인 부대의 명칭임)’라는 마귀들린 사람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사람은 발작을 일으키고,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단단히 묶였으나 번번이 부수어 버리며, 집없이 무덤들 사이에 살고 있었다. 추측건대 잦은 전쟁과 약탈 그리고 무자비한 진압의 군대들의 방화나 저항하는 거주민들에 대한 억압에 의한 결과로 얻은 트라우마를 지닌 추방자에 대한 온전함을 회복하는 이야기이다. 그는 온전함을 찾아서 ‘옷을 입고 멀쩡한 정신으로 예수 앞에 앉아 있는’(35절) 상태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아서, 집/마을로 돌아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온 동네에 알리게 된다(39절).



다른 하나는 살아난 야이로 딸의 스토리의 중간에 가미된 ‘열 두 해동안 하혈병을 앓고 있는 여자’의 치유 이야기이다(40-56절). 군대귀신 들린 자의 치유는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에서 일어난 이방인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야이로 딸의 소생과 하혈병 치유의 이야기는 다시 갈릴래아호수 이편으로 돌아와 유대인들 중에 일어난 이야기이다. 이편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의사나 자신들의 자원으로는 치유가 안 된 중병과 거의 죽어가는 처지에 대해, 공통으로 가망 없는 –12해나 고치지 못함 &, 거의 죽게 됨의- 상황에 있어서 변화의 이야기였다.



저편(the other side)으로 ‘건너감’은 거룩한 관계의 분별(실재의 자비로움과 나의 꺼지지 않는 내면의 빛의 자각) 후에 오는 능력(뒤나미스)이다. 그 능력은 아웃사이더로 처리된 타자(the Others)에 대한 돌봄과 온전함으로의 회복에서 비유가 내재한 ‘하느님 나라의 신비’(8:10)는 현실로 경험되어진다. 그 하나의 새로운 통치는 나/우리/신앙공동체의 저편에 있는 아웃사이더인 사회정치적 지배체제의 희생자에 대한 회복에 관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새로운 통치는 나/우리/신앙공동체의 이편에 있는 내부자의 출혈에 대한 회복이다. 외부의 억압과 내부의 출혈이라는 비극적 현실에 있어서 ‘건너감(passing-over)’이라는 행동은 그러한 비극적 현실을 온전함의 회복으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8:22) 돌려놓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서 평화교회가 누가복음이 제시하고, 또한 전례 없는 코로나19의 새로운 상황에서 가야 할 목표가 명료해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인식-구축-실천의 메커니즘에 대한 것이다. 인식이란 포스트코로나시대의 위험/두려움의 일상적인 자기-보호와 타인에 대한 의심의 실천에 있어서 자비로운 실재와 내면의 빛에 대한 신뢰하기의 중심을 세우는 것이다. 구축이란 그러한 거룩한 관계의 인식을 새기고 실천할 영적인 가족됨의 세움을 말한다. 그리고 실천은 바로 외부의 억압과 내부의 출혈에 대한 온전함으로의 건너감(경계를 넘어섬)이라는 공동적인 수행을 말한다.



“사나운 바람이 내리 불어 배에 물이 들기 시작하여 사람들이 위태롭게 된”(8:23) 지금의 현실에 나의 신앙과 내가 속한 신앙공동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자비로운 실재에 대한 신뢰 속에서 내면의 빛을 켜서 건너감의 질문을 해야 할 때라고 보여진다. 주변에서 비참함의 희생자를 볼 때는 다가가서 묻는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8:30) 당신의 정체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통해 비인간화의 억압 시스템을 제대로 보게 만든다. 내부의 손상과 출혈에 의한 희생자에게는 우리 내부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8:45), 누가 우리에게 자기 필요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을 내밀고 있는지에 대한 민감성을 계속해서 확인할 때이다.

2020/06/09

한국신학/종교학 - 21세기의 문턱에서 民衆神學을 다시 생각한다 / 박성준



한국신학/종교학 - 21세기의 문턱에서 民衆神學을 다시 생각한다 / 박성준

“21세기의 문턱에서 民衆神學을 다시 생각한다.”
--‘民衆’ 理解의 새 지평을 모색하며--
박 성 준
1999. 11. 3


一. 문제제기


서남동은 한국민중의 ‘恨’을 그리스도교 신학의 중심 주제로 삼는 독특한 기여를 했다. 나는 ‘한’을 민중신학의 핵심 주제로 설정하는 데 대하여 서남동에게 확고한 지지를 보내왔고 그 점에 있어서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최근에 나는 민중이 ‘자기 안에 모시고 있는 한울님’(동학=崔水雲) 또는 ‘내재하는 빛’(the Light within) (퀘이커=George Fox)을 민중신학적 성찰의 중심에 놓는, 그래서 ‘한’과 더불어 또 하나의 핵심되는 주제로 삼는 민중신학의 새로운 얼개를 구상해 보게 되었다. 민중의 ‘한’이라는 하나의 핵심에 편중되면 역사창조 주체로서의 민중의 생명력(자율성, 자주성, 창조성, 자기 구원의 주체성)이라는 다른 하나의 핵심이 가려지거나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중 안에 있는 ‘恨’은 보면서 민중이 자기 안에 모시고 있는 ‘빛’(=그리스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민중의 일면 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서남동이 지배자의 언어인 ‘죄’에 대해서 민중의 언어인 ‘한’을 제시한 것은 옳다. 그러나 이제는 지배자의 언어인 ‘죄’에 대해서 민중 안에 있는 ‘빛’을 제시할 차례이다. 민중의 ‘한’과 함께 ‘빛’을 보고 그 상호관계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면서 그 양자를 민중신학의 중심에 역동적으로 위치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남동의 신학에서 민중의 ‘한’과 ‘고난’이 민중의 ‘메시아성’으로 연결되는 통로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능력’이라는 기독교의 正統 敎義에 있었다. 민중의 메시아성을 이렇게 대속적 능력 쪽으로만 치우쳐 이해할 것이 아니라 민중이 자기 안에 지니고 있는 빛과 창조력에도 동시에 주목하면서 그 메시아성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안병무가 이따금 언급하며 경탄해 마지않았던 민중의 자기초월의 능력은 ‘초월’이면서 동시에 민중에게 본래 ‘내재’하는 생명력에 다름 아니다. 이제 우리는 씨(함석헌)인 민중의 속 깊이 숨겨져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 가능성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씨의 살아 숨쉬는 보배로운 생명력, 그 경이로운 역동성에 새삼 눈뜨고 이를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평가하면서 21세기와 새 천년(the New Millenium)의 ‘새 민중신학’을 힘차게 열어가야 한다.


나는 결코 민중에 대한 美化나 낭만화(romanticize)를 찬성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민중을 말해야 한다. 낭만화된 관념 속의 민중, 비현실화되고 박제화된 민중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민중, 질긴 생존력으로 일상의 삶의 터전에 뿌리내린 ‘생활하는 주체’로서의 민중을 있는 그대로 다루어야 한다. 자기 속에 ‘한’을 품고 살지만 ‘빛’도 품고 살아가는 온전한 민중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서남동, 안병무의 민중이해에 다음과 같은 점들을 보완하거나 새롭게 추가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첫째로, 함석헌의 민중 이해로부터 ‘씨’을 받아들이되 <ㅇ  ㄹ>의 각 요소를 적극적으로 深化 發展시킨다. 즉 <ㅇ>은 초월적인 하늘을, <  >는 내재적인 하늘을, <ㄹ>은 활동하는 생명을 나타낸다고 그가 스스로 설명해 놓은 그 각 項을 적극적으로 탐구해서 한층 더 심오하고 풍부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우리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사상적 源泉(resources)으로서는, 한쪽으로는 東學이라는 큰 사상의 젖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함석헌 자신이 훗날 그 멤버가 되었던 퀘이커의 사상, 그 중에서도 특히 초기 퀘이커 사상(Early Quakerism)이라는 큰 광맥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둘째로, 민중의 목마름의 重層구조를 천착하는 것이다. 민중이 갈구해 마지않는 구원과 해방에의 타는 목마름 곧 민중의 영성은, 예컨대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日常의 안전과 편안함, 경제적 안정 등에의 갈망이라는 層位가 있는가 하면, 우정과 고독, 사랑의 아픔과 번뇌, 인간관계의 어려움에서 오는 고민 등의 層位가 있으며, 영혼의 虛飢, 생애를 통해 지속되는 인격의 성숙과 자기완성에의 渴求, 진실과 진리를 향한 목마름, 疾苦와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등의 層位, 이렇게 複雜하고 重層的이다. 민중신학은 민중의 이 목마름을 ‘민중의 거룩한 갈망’(the holy longing of minjung) 또는 ‘민중 영성’(minjung spirituality)이라는 범주로서 다루어 볼 수 있다.


셋째로, 민중신학은 ‘사건’의 신학을 보완하기 위해 ‘사건’과 ‘日常’을 손의 앞뒤면 처럼 설정하여, 사건과 일상이 갖는 각각의 의미와 함께 둘 사이의 긴밀한 상호관련성을 올바르게 밝힐 필요가 있다. 민중은 1970년대, 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연쇄적으로 분출하는 활화산 기슭에서, 또는 언제 터질지 모르게 꿈틀대는 화산맥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민중은 아마도 더 많은 일상의 시간을 너른 들녘을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갈 수도 있으며 때로는 여름 한철 가뭄에 강바닥으로 스며들어 소리 없는 지하수로 흐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땅 속으로 흐르는 지하수가 없다면 장대비가 아무리 퍼부어도 샘의 분출은 있을 수 없다. 물이 콸콸 솟는 샘은 실은 땅 속을 흐르는 저류(the underground stream)와 연결되어 그것에 의해 지탱되고(sustained) 있는 것이다. 사건과 일상의 관계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사건’의 신학에 균형을 가져다주는 ‘민중적 일상’의 신학화가 요청된다.


넷째로는, 민중 공동체 운동이다. 이거, 저 70년대, 80년대부터 귀가 아프게 들어왔던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그러나 질적으로 다른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민중이란 무엇인가? 공동체란 무엇인가? 운동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근본적으로(radically) 다시 묻고, 다시 시작해야 하겠다.






二. 민중 이해의 새 지평


1. 민중신학의 先驅: 함석헌의 씨 사상


함석헌은 씨의 은유로 역사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根幹이 되는 사람, 곧 민중을 나타내고자 했다. 민중은 씨이다. 태어난 그저 그대로인 씨, 풀씨 같은 존재. “씨이란 다른 거 아니고 자연이지요. 문명은 결국은 자연에서 멀어져 가는 방향이고(참 문명이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러니깐 지금은 사람의 큰 잘못이 자연을 잊어버리고 자연에 반항하고 하는 건데, 근본의 절대적인 의지랄까 그게 곧 자연인데, 자연 속에 있는 건데----”(“씨의 소리, 씨의 사상” <씨의 소리> 76년 9월호)


씨은 이 끝에서 보면 있는 그대로인 ‘나’이고 저 끝에서 보면 하나님이라고 한다. 결국 민중 곧 씨과 하나님은 이 끝과 저 끝으로 서로 연결된, 둘이 아닌 한 <>이다.


“민중이 뭐냐? 씨이 뭐냐? 곧 나다. 나대로 있는 사람이다. 모든 옷을 벗은 사람, 곧  사람이다. 은 실(實), 참, real이다.............정말 있는 것은, 은, 한  뿐이다. 그 한 이 이 끝에서는 나로 알려져있고, 저 끝에서는 하나님, 하늘, 브라만으로 알려져 있다.”(“씨의 설음”, 함석헌 전집 제4권, 66면)


나아가, 함석헌은 씨의 속에 있는 것 곧 씨의 ‘혼’을 불러내자고 한다. 그렇게만 하면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우는 것 같은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속에 있는 것을 어떻게 불러내느냐가 문제다. 속에는 다 개인의 행위와 역사의 사건으로 영향을 입지 않는, 입힐 수 없는 혼이 잠자고 있다. 그것을 불러내기만 하면 된다...........씨 속에 잠을 자고 기다리고 있는 나라가 있다. 그것은 일할 터를 찾고 일할 거리를 기다린다. 그것을 능히 알아 불러내어 동원하면 산을 옮길 수 있고 바다를 메울 수 있을 것이다.”(“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함석헌 전집 제4권 129면)


이와 더불어, 씨은 마땅히 ‘남의 종교’가 아닌 ‘내 종교’를 가져야 한다. “(불교와 기독교가) 다 위대한 종교지. 하지만 남의 고래등같은 기와집은 우리 초가삼간 보다 작은 집이다. 내 종교가 큰 종교지, 내 것이 되지 못한 종교...........종교의 허울이 무슨 위대한 종교일 수 있을까? 제 종교만이 큰 종교다. 제 종교를 가진 한 사람만 있어도 온 세상이 다 구원될 것이다.”(“씨의 설음”, 전집 제4권 65면)


“큰 것은 하나님이요, 큰 것은 나다. 하나님과 직접 연락된 내가 ‘한’ 곧 큰 것이요, 그 직선을 종축으로 삼으면 온 우주를 돌릴 수 있다. 그러니 나에게까지 뚫리지 못한 종교, 나와 하나님을 맞대주지 못하는 종교는 참 종교 아니다. 나의 종교가 종교다. 교도(敎徒)가 있는 것은 종교 아니다. 참 종교는 한 사람의 신자를 가질 뿐이다...........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하라..........아무도 이 결혼의 중간에 서지 마라.”(“씨의 설음”, 전집 제4권, 65면)


민중은 자기 속 깊이에 계신 하나님, 그 창조적인 생명과 무한한 힘의 源泉에 깊숙이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민중 곧 씨은 자기 속의 하나님을 직접 만나야 한다. 그 하나님을 모시고 섬겨야 한다. 내 안의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해답을 간절히 구하고 거기에 맞추어 각자 자기의 삶의 방향과 목적을 재정립하고 자신의 생애를 통해 이를 관철해야 한다.


씨 속에, 곧 내 속에 잠을 자고 기다리고 있는 나=하나님(‘나라’, I am.)을 일깨우고 ‘불러내자.’ 그리하여 하나 하나의 씨은 함께 새 시대, 새 나라를 바로 지금 새 천년의 시작과 함께 힘차게 열어가야 한다.






2. 퀘이커 사상과 민중신학의 만남의 가능성


퀘이커는 17세기 중엽 영국에서 일어났다. 그 시대는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격동의 시대, 혁명과 변화의 시대였다. 당시 영국 국교회에서는 외적인 종교의식에 중점을 두고 있었고, 국교에 반대하는 침례파와 장로회파의 교회들은 신앙을 성경의 권위나 공식적 신조와 대체로 동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교의식이나 신조에 염증을 느끼게 된 수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갔다. 혹은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사람들은 개인적 체험의 종교,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갈구하고 있었다.


죠오지 폭스(George Fox, 1624-1689)도 그런 사람들--당시 영국에서는 그들을 ‘구하는 자들’(seekers)이라고 불렀다--중의 하나였다. 어릴 적부터 그는 매사에 진지하고 성실했다. 製靴工의 徒弟, 소먹이 목동 등으로 지내는 동안 홀로 고요한 묵상에 잠기는 습관을 익혔고, 성경을 읽고 깊이 생각에 잠겼으며, 온 피조세계의 오묘하고 미세한 소리에도 예리하게 반응하곤 했다. 열 아홉 살 때에 집과 부모의 곁을 떠나 절절한 목마름으로 진리를 찾는 영적 여행(spiritual journey)에 나섰다. 4년간의 영혼을 달구는 숱한 시험과 연단 끝에 Pendle Hill이라는 작은 山頂에서 그는 드디어 진리를 깨닫고 환상(vision)을 보았다. 그때의 경험을 그는 이렇게 썼다:


“그들(성직자들)에게 걸었던 나의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그리하여 외적으로는 내가 의지할 아무 것도 없게 되었을 때, 내가 어찌 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바로 그때 나는 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 예수가 계시니, 그는 너의 처지에 맞게 말씀하신다.’(‘There is one, even Christ Jesus, that can speak to thy condition.’)라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듣자 내 가슴은 歡喜雀躍하였다. ........ 주님을 향한 나의 갈구,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지식에의 열망은 더욱 거센 불길로 타올랐다.” (Fox, 11)


그가 얻은 다음과 같은 진리는 재래적이고 인습적인 신조들(creeds)과 날카롭게 충돌하는 것들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하나님의 그것을 지니고 있다.”(that of God in everyone) 이것이 퀘이커 신앙의 精髓이다. 우리 각자의 깊은 속에 하나님의 씨앗(the Seed), 하나님의 영(the Spirit), 그리스도(the Christ), 내면의 빛(the inner Light)을 지니고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직접--즉 성직자나 교회의 儀式이나 어떤 다른 매개 없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역사적인 예수가 기름부음을 받아 (신적인) “그리스도”가 되었듯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 계시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고 영속된다는 것(the continuing revelation). 이것이 그의 새로운 깨달음의 내용이었다. 자기 자신 속에 불타오르는 이 깨달음(revelation)을 지니고서, 죠오지 폭스는 세상를 향해서 힘차게 선포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회개하고 돌아섭시다. 자기자신 안에 계신 하나님을 스스로 발견하고 그러한 (즉 하나님을 모신) 존엄한 존재로서 살아갑시다.”라고.


그 깨달음을 근거로 그는 오늘날 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 (Quaker는 별명이다.)로 알려진 신앙적 結社의 기치를 올렸다. 죠오지 폭스는 거듭 거듭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들을 몸소 가르치시기 위해 오셨다.”(Jesus Christ is come to teach his people himself.)라고 외쳤다. 이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이 ‘the Second Coming of Christ'를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가 하시 하처에 육신적으로(physically) 재림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민중의 마음 속에 이미 ‘내면의 빛’, ‘씨앗’, ‘하나님의 영’이 들어있음으로 해서 이미 ‘그리스도’가 와 계신다는 것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죠오지 폭스의 새 진리를 따라 새 사람으로 변화된(transformed)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는 것, 그리스도가 그 시대와 사회의 불의와 폭력에 도전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내면의 빛과 씨앗, 영을 통한 그리스도의 재림이란 단지 私的인 내면의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변화된 남녀들이 새 삶의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따를 때, 밖으로 사회와 역사 속으로 나아가는 종말론적 운동을 뜻했다. 초기 퀘이커들(Early Friends)은 당대의 사회에 불을 지피는 불씨의 전령이었다. 그들은 만나는 모든 사람, 온갖 종교집단, 모든 사회조직에 불을 붙였다.


죠오지 폭스는 17세기 영국인이었지만 오늘의 우리들과 우리 시대를 위해서도 빛을 던져주는 사람이다. 그는 과거의 사람만이 아니라 현재의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깊은 개인적 경험과 메시지, 그리고 초창기 퀘이커들의 묵시록적인 삶과 행동은 우리 시대의 긴박한 필요에도 절실하게 말을 걸어오는 보편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함석헌은 1970년대 초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의 펜들 힐(Pendle Hill; A Quaker Center for Study and Contemplation)에서 퀘이커의 회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씨 사상을 전개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지만, 나 자신이 비교 검토해 본 바로는 그의 씨 사상의 핵심 내용은 퀘이커 사상과 酷似하다. 민중신학의 창시자 격인 서남동과 안병무에게 미친 씨 사상의 영향을 생각할 때, 민중신학과 퀘이커사상의 만남은 일찍이 이뤄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민중신학이 민중의 ‘恨’과 더불어 민중 한 사람 한 사람 속의 ‘빛’, ‘영’, ‘그리스도’에 주목할 수 있다면 주체로서의 민중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민중을 세계와 역사의 중심에 세우는 데 새로운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3. 동학의 전통으로부터 배우기:


우리는 이제 19세기 말엽 한반도에서 출현한 동학운동, 그 중에서도 1860년-98년의 水雲 崔濟愚와 海月 崔時亨, 그리고 갑오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난 후 동학의 재건을 의도했던 甑山 姜一淳의 사상과 실천에 주목할 차례다.


동학은 19세기말, 조선의 봉건제가 한계에 도달, 근대사회로 이행되기 시작하는 세기말적인 일대 전환기에 피어난 한국사상문화종교의 꽃이고, 조선의 근대역사가 시작되는 發源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1) 동학이 창시되던 1860년 당대의 조선의 현실에 대한 수운의 인식은 개인과 사회, 국가와 세계 질서의 모든 차원에서 총체적 위기 그것이었다. 조선왕조는, 지배층의 부패와 타락, 신분제의 문란(紊亂), 도탄(塗炭)에 빠진 민중의 잦은 봉기와 사회적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몰락의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서양세력의 동아시아 침략으로 과거의 중국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고 구미제국의 근대문명이 압도해오는 가운데, 전통적 종교인 儒佛仙은 정신적 지주나 새로운 사회이념의 기능을 이미 상실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윤리와 가치규범의 붕괴, 사상의 혼돈, 민중의 정신적 방황이 극도에 달한 시대였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조선사회에는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여 민중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있었다.


절망과 암흑의 시대, 바로 그 한가운데서, 수운은 先天문화 질서의 종말과 후천개벽의 새 문화, 새 시대의 도래를 예감했다. 수운은, 동양문명의 해체와 몰락, 서양문명의 침략적 폭력성을 확인하면서, 전통적 지배이념인 朱子學을 대체할 새로운 道學을 갈구했다. 그는 前人未踏의 새 길, 동서양의 기존의 종교와 사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원리를 찾아내어 新天地, 新文明을 구현하고자 고난에 찬 구도의 길을 홀로 걸었다.


“庚申年에 이르러 전하여 오는 말을 들으니 서양사람들은 한울님을 위한다는 뜻으로 부귀는 취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천하를 쳐서 빼앗아 그들의 교회당을 세우고 그들의 교를 널리 퍼뜨린다는 것이므로, 나는 과연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되었느니라.”<東經大典, 前編 五>


“서양사람들은 전쟁을 하면 이기므로 쳐서 빼앗아 그들의 뜻대로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다. 이리하여 천하가 다 멸망한다면, 어찌 입술이 상하여 없어지면 이가 시려 견디기 어려운 것과 같이 되지 아니하겠는가.” <東經大典, 前編 九>





본격적인 구도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6년째 되던 1860년 음력4월, 그의 나이 37세 때 그는 결정적인 종교적 체험을 통해 得道에 이른다. 그의 신비체험은 한울님 마음과 하나가 된 경지에서 ‘天語’를 듣게 된 것이었는데 그것은 한울님과의 사이에 문답 형식으로 여러 달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 내용을 냉철히 반성 체득하면서 일년 여에 걸쳐 동학의 신관, 세계관, 인간관, 修行法 등을 글로 체계화해 나갔다. 득도한 이듬해(1861년) 6월부터 그는 布敎에 나섰다. 득도로부터 체포되기까지 불과 2년 6개월 사이에 수운은 漢文體의 <東經大典>과 한글로 된 <용담유사(龍潭遺詞)>를 저술하여 후세에 전하게 되었다.


수운의 가르침은 고통과 시련에 찬 현실을 극복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역사를 이 땅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그 시대의 민중들의 가슴에 심었다. 사방에서 그의 소문을 듣고 그의 거처인 경상북도 慶州 龍潭亭으로 찾아오는 민중들이 줄을 이었다. 그들은 수운의 가르침을 듣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를 따랐다.


1864년 3월 수운은 41세의 나이로 斬首刑에 처해졌는데, 세상을 어지럽게 한 邪術의 傀首라는 죄목이었다.


수운의 제자이자 동지였던 해월은 道統 承繼 후 殉道할 때까지 30여년 간 가시밭 길을 걸으며 조선 땅에 동학을 뿌리내리게 하는 데 헌신했다. 그는 ‘人乃天’, ‘事人如天’의 교의로써 교도들을 지도하는 한편, 지배권력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接’조직을 확장해나가다가 1898년(72세) ‘左道亂正’의 죄목으로 스승 수운의 뒤를 따라 교수형에 처해졌다.


2) 동학의 인간 이해의 핵심은, 사람은 한울님의 신령한 본성을 몸 안에 모시고 있는 신령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데 있다. 사람이 곧 한울님, 한울사람, 섬김 받아야 할 신령한 존재이다. 사람은 자신이 이러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될 때 자기 자신과 타인을 지극히 공경(敬人)하게 되고 한울님을 공경(敬天)하게 되며 한울님의 뜻을 이 세상 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주체로서 바로 서게 된다. 즉 현재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분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사는 신령한 인격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한울사람(God's person)을 통해서만 사회와 세상의 聖化(한울나라의 실현)가 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주체성은 우주 가족의 일원으로서 더 큰 생명인 우주를 어버이로서 섬기며(敬物), 우주 자연계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相生(서로 살림)의 삶을 살아야 하는 책임적 존재이다.


동학에서는 지금까지 저 밖에 있는 신(God without)을 향해 놓았던 祭床과 位牌를 나를 향해(向我) 돌려놓도록 하는 새로운 祭祀法을 창안했다. 이것을 ‘向我設位’라고 하는데, 저 밖에 있는 초월적 신을 상정한 인류 문명 문화 樣式의 일대전환과 정신개벽을 이로써 상징한다.


또한 ‘同歸一體’라고 하여 후천개벽운동의 동반자들의 공동체, 새 인간(한울사람), 새 천지(한울나라)의 비전을 가지고 인류문명사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자 하는 신령한 도덕적 주체들의 공동체를 제시한다. 이 공동체는 타종교 공동체의 전통을 존중하며 관용의 정신과 개방적 태도로써 후천개벽의 역사를 창조해나가는 길동무(道伴)들의 공동체이다. 동학에서는 특히 생활의 주인이자 新天地 창조의 주역으로서의 여성의 지위가 강조된다.


3) 강증산은 스무 살 무렵에 동학당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甲午동학혁명이 실패한 뒤, 시체가 가득 널려진 폐허의 강산을 여러 해에 걸쳐 편력했다. 그때에 그는 구천에 사무치는 울부짖음과 살을 저미고 뼈를 깎는 민중의 고통을 보았으며 민중이 그 얼마나 절실하게 생명의 회복을 바라고 있는가를 사무치게 절감했다. 따라서 간증산은 자기의 목표를 동학의 동세개벽 실패 이후의 민생의 재건과 활인(活人)에 두게 되었다.


갑오동학혁명이 민중반란의 조직적 확대를 통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혁파함으로써 후천개벽을 실현하려 했다면, 강증산의 실천은 하나 하나의 이름 없는 민중들의 그날 그날의 먹고, 살고, 입고(衣食住), 고통받고, 병들고, 죽고, 두려움과 굶주림과 죽임 당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구체적인 삶, 곧 민중생존을 중심으로 하여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매일 매일의 自助 自活의 작은 공동체 건설과 협동생활의 조직을 통해 후천개벽을 실천해 나가는 방향이었다.(김지하 사상기행, 2권, 206-9면 참조)


그렇다면 강증산의 사상과 실천은 ‘민중적 일상’의 신학화를 꾀하려는 우리들의 작업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사람은 한울님의 신령한 본성을 몸 안에 모시고 있는 신령하고 존엄한 존재라고 하는 동학의 인간관은, 매개 사람 속의 빛, 영,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퀘이커 사상과도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다. 민중신학은 퀘이커 사상의 인간이해로부터 배움과 동시에 동학의 인간관을 민중이해에 적극 도입함으로써 민중의 대상화, 객체화를 극복하고 민중의 ‘주체화’에 진실로 기여하는 큰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三. 민중적 영성론의 가능성:


1. 영어권에서도 spirituality란 말이 등장한 것은 지난 30년 어간의 일이라 한다. 이렇게 새로운 말이고 보니 한국에서는 그 용법이나 의미를 둘러싸고 적잖은 오해와 혼선이 있기 마련이었다. 처음에는 이 말이 카리스마 집회나 성령파 교회들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연유로 해서 민중신학자들은 애써 이 말을 기피했고 금기시하는 경향마저 있었다. 80년대에 들어와 남미 해방신학 쪽에서 spirituality라는 범주를 사용하여 심도있는 신학작업을 전개하는 것은 보고서야 새로운 관심과 눈으로 이 말을 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중신학 내부에서 spirituality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는 아직 드문 것 같고, 여전히 개념의 혼란이 가셔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 자신 아직 본격적인 공부가 부족하여 spirituality의 정의조차 내리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지만, 민중적 영성론의 필요성과 가능성의 예감만은 절실하다.


2. 함석헌은 씨의 속에 있는 것 곧 씨의 ‘혼’을 불러내자고 했다. 그렇게만 하면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우는 것 같은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씨의 혼’이라. 혹시 이것이 바로 민중의 영성 아닐런지? spirituality는 사람의 존재 깊은 곳에서 그 존재를 관통하고 그 존재를 떠받치고 그 존재를 推動하는 영적 힘, 에너지, 불꽃과 같은 그 무엇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간에, 우리가 종교적이든 아니든 간에,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spirituality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spirituality는 기독교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다. 따라서 불교인의 영성, 무신론자의 영성도 있을 수 있다.(나는 사실 감옥에서 무신론자들의 심오한 영성에 무수히 접했다.)


3. 민중이 갈구해 마지않는 구원과 해방에의 타는 목마름이 바로 민중의 영성 아닌가. 나는 앞에서, 민중신학은 민중의 이 목마름을 ‘민중의 거룩한 갈망’(the holy longing of minjung) 또는 ‘민중 영성’(minjung spirituality)이라는 범주로서 다루어 볼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민중신학이 민중의 ‘恨’이라는 범주로 다루어온 영역과 크게 겹치는(overlap) 영역이어서 민중의 恨과 민중 spirituality의 관계와 구조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4. spirituality는 우리의 日常과 분리될 수 없다. 우리의 욕망과 애정, 고통과 슬픔, 고독, 야심과 좌절감, 불안과 초조, 공포와 희망 등등, 이 하나 하나가 spirituality와 깊이 관련된다. 어떤 사람의 영성은 그가 자기 속의 그 영적 에너지 혹은 불꽃을 가지고 실제로 현실 속에서 무엇을 행하는가와 깊이 관련된다. 즉 spirituality는 신앙이나 종교성과 관련된 것 이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매일 매일의 일상과 관련된 것이다. 사랑(compassion)과 자비(mercy), 평화와 화해를 간절히 구하는 마음, 참된 민주주의와 사회적 정의를 갈구하는 정치적 각성, 깨어있는 양심, 도덕적 민감성 등은 민중적 영성의 불가결한 요소들(integral elements)이다.


5. spirituality는 개인적인 것 만이 아니다. 개인적인 것임과 동시에 사회적, 공동체적인 것이다. ‘나의 영성’과 동시에 ‘우리의 영성’이 존재한다. 개인주의에 물든 사회와 그 문화(individualistic culture)에서는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에 촛점이 맞춰지기 쉽다. 그래서 개인적 영성은 자칫하면 ‘개인주의적 영성’으로 頹落할 수 있다. 개인적 영성에만 집착하거나 매몰되면 영적 개인주의와 영적 이기주의에 빠질 수 있고 영적 우상숭배의 위험에 떨어질 수 있다. 반면에 공동체적 영성의 경우에는, 개인의 영적 생활(personal spiritual life)에 기울이는 집중력이 떨어질 때, 영적 메마름과 세속화라는 또 다른 위험이 있다.


개인의 영적 체험과 공동의 영적 수련은 상호 의존적이다. 서로 보완하고 서로 북돋아 준다. 민중신학은 개인의 영적 체험 또는 개인적 영성수련과 공동체적 영성 또는 영적 공동 생활(spiritual life together)에 같은 비중을 두어 이 양자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공동체적 영성은 함께드리는 예배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각자가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친 영적 생활의 밀도는 함께 드리는 예배의 質을 좌우한다. 하나님에게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묵상과 기도가 쌓이고 쌓여서 깊이를 더해갈 때, 개인과 공동체의 영성을 고양시켜주는 높은 질의 예배를 드릴 수가 있다.


6. 밥상(식탁)공동체는 공동체적 영성의 실천 모델이 되며 민중적 영성의 엣센스를 집약한 것이다. 민중신학은 해월의 밥 사상과 향아설위의 밥상 차리기로부터 배우면서 다음과 같이 相生의 식사예법을 고안할 수 있을 것이다.


(1)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다. (2)원을 그리고 둘러앉는다. (3)기쁨과 감사에 넘치는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 손을 잡고 잠시 묵상(또는 짧게 한마디씩 기도)한 후 함께 담소하며 서두르지 않고 즐겁고 느긋하게 식사한다. (4)설거지도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참여한다. (5)음식찌꺼기는 버리지 않고 따로 모아서 거름으로 쓴다.


7. 민중적 영성은 서로 모시고 섬기는 相生의 영성이다. 그 엣센스는 겸허하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깊이 귀기울여 듣는 데(敬聽, mindful listening) 있다. 나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열어 놓고 하나님에게, 자연에게, 그리고 사람에게 고요히, 정성을 다해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민중신학에는 이 敬聽의 영성이 부족하지 않은가 여겨진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서 억눌린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증언자의 역할을 자임하다보니 민중, 씨에게 귀기울여 듣는 마음의 餘白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기독교는 ‘말하는’(preaching) 종교지 ‘듣는’(listening) 종교가 아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큰 약점의 하나다. 하나님과 자연과 사람이 관계의 그물에 얽혀 서로 연관되어 있고 상호의존하고 있는 이 우주와 세계 공동체 안에서 ‘敬聽의 spirituality’가 없이는 相生의 관계를 창조해나갈 수가 없다. 이제 21세기와 새 천년의 입구에서 기독교는, 그리고 민중신학은, 말하는 ‘입’으로부터 듣는 ‘귀’로의 radical한 파라다임 전환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


8. 예언자적 선포(prophetic speaking)는 중요하다. 그러나 예언자적 경청(prophetic listening)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예언자적 경청은 권력과 富에 억눌리고 빼앗겨온 자연과 민중, 곧 씨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씨에게 경청한다 함은 하나님께 경청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 같을 때, 더 깊숙이 귀를 기울여 고요히 기다려 보라. 소리 아닌 소리가 내 마음의 귀에 들려오지 않는가. 민중인 씨(들)에게 말과 설교를 가지고 가는 대신에 마음의 귀를 가지고 가본 사람은 안다. 경청하는 사람이 자신의 계획이나 용건, 판단이나 충고 따위를 완전히 접어놓고, 오로지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나를 내맡기는 방법으로 귀를 기울일 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계가 둘 사이에 싹튼다는 것을.


듣기에만 길들여져 있는 것으로 보였던 씨이, 그래서 자기 주견이나 이야기 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듯이 보였던 민중이 비로소 가슴을 열고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놓기 시작할 때, 그(들) 자신 조차도 의식하지 못했던 놀라운 지혜와 꿈과 비전이 엉킨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려 나오지 않던가. 이 새로운 관계, 새 카이로스 속에서 상처가 아물고 한풀이가 시작된다. 씨이 제 이야기에 스스로 격려를 받고 힘이 북돋아져 현재의 곤경을 박차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열리고 문제에 해답이 주어진다. 이것이 바로 함석헌이 말한 “씨의 혼(魂)을 불러내는” 방법이 아닐까.





四. 21세기, 새 천년기에 민중은 어떻게 살 것인가?


-- 민중적 삶의 양식으로서의 ‘살림 공동체’ --


공동체 운동은 개인과 민족의 생존(survival)을 위해, 우리들의 문화와 지구 자체의 존속을 위해 비상히 중요하다. 현대 사회와 현대적 생활양식은 자연적 내지 가족적 공동체를 해체한 결과이다. 현대인의 삶은 파편화되었고 공동체 감각을 잃어버렸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고립되어 있고 까닭 모르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한편 그들은 사랑받고 싶어하고 함께 살아갈 동반자를 찾고 있으며, 꿈과 理想을 서로 나눌 친구를 필요로 한다. 한마디로, 현대인은 공동체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절실히 필요한 공동체, 그 중에서도 민중적 삶의 양식으로서의 공동체는 어떤 내용, 어떤 모습의 공동체일까? 우리는 김지하가 먼저 주목해서 그의 생명사상 체계 속에서 중요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던, 그리고 안병무가 몹씨도 아꼈던 아름다운 우리말 ‘살림’을 붙여 ‘살림공동체’를 구상해 볼 수 있다. ‘살림’이란 무엇인가?


살림은 相生 즉 서로 살리기, 살림은 生命敬畏, 살림은 죽임의 반대, 살림은 물질의 나눔, 살림은 상호존중, 살림은 차이와 다양성의 존중, 살림은 거룩한 경청, 살림은 섬김, 살림은 그저 우리네 살림살이. 그럼 살림공동체는?


나는 살림 공동체의 살림살이를 다음의 7가지 원리로 정리해 본다.


첫째로,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과 조화이다.


김지하식 표현을 빌리면, “개별 인격들의 자유로운 전체인 민중”의 공동체이다.


살림 공동체 안에서는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이 존중된다. 개인의 자율성과 창조성이 진정으로 존중된다. 그러나 그 개인들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전체를 형성하되 그 전체가 또한 자유와 창의성이 넘치는 탄력적인 전체를 이룬다. 이 자유로운 전체인 살림 공동체 안에서는, 개인의 창의성(individual initiative)과 공동생활(corporal life)의 규율이 조화를 이루며 개인적 생활영역과 공동 생활영역이 공존하고 균형을유지한다.


둘째로, 다양성과 차이가 존중된다. 인종, 성, 피부색, 민족, 종교, 사상, 문화, 언어, 음식, 관습 등에 있어서의 차이와 다양성이 권장되고 존중된다.


셋째로, 깊은 영성적 修行(spiritual practices in depths)과 활발한 사회적 관심과 행동(social concern and action) 간의 균형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이 균형을 강조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면, 영성적 수행을 통해 사회적 불의와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에 의해 야기되는 고통에 대해 민감해지도록 노력하면서,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동참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 일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배우려고 노력한다. 또한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이나 지구상의 다른 種(species)의 고통을 이용해서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며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힘쓴다.


넷째로, 일의 평등성(equality at work)을 추구한다. 공동체 내에서 일과 역할의 기능적 분화가 인정되나 신분이나 지위의 개념은 인정되지 않는다. 역할의 기능적 분화가 가져올 수 있는 공동체 성원간의 평등성의 저해 또는 약화를 방지하기 위한 방도가 강구되며 평등성을 높이기 위한 다방면적인 노력이 경주된다.


다섯째, 공동체성원 간의 인간관계는 동학의 ‘侍’(모심)을 기본정신으로 한다. 즉 누구든지 사람을 대할 때 그 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모시는 마음과 자세로써 대한다. 이것은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에 통하고, 베트남 출신의 스님 Thich Nhat Hanh이 강조해 마지 않는 ‘정념’(正念; ‘mindfulness’)와 일치하는 것이다.


여섯째로, 質素한 삶(plain life)을 산다. 질소한 삶이란 (1)자원과 물자를 아껴 쓰고 사치를 하지 않으며, (2)경제적 정의에 우선적 관심을 갖고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편에 서려고 노력하며, (3)기도와 묵상을 생활화한 삶의 방식을 말한다. 질소한 삶은 단순함(simplicity)을 소중히 여기고 餘白이 있는 삶을 사랑한다. 여기서 여백이라 함은, 일을 너무 많이 하거나 너무 바쁘게 살지 않고, 남을 위해 일하면서도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알맞게 남길 줄 아는 여유를 말한다. 또한 너무 많이 말하지 않고 남이 말할 여지를 남기며 언제나 상대방에게 조용히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현대인의 삶의 병적 奔忙을 경계하면서 우리는 이따금 물어야 한다. “말씀이 들릴 만한 고요함이 있는가?”(Are there enough silence for the Word to be heard?)


일곱째로, 축제가 있는 공동체를 가꾼다. 축제(festival)와 祝賀(celebration)는 공동체 생활의 한 中心軸이다. 축제와 축하는 우리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생활의 시련과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힘을 북돋아준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유한 나라 사람들 보다 축제를 더 사랑한다. 부유한 나라 사람들은 축제의 감각과 기술을 상실했다. 그것은 공동체의 전통을 상실한 것과 관계가 있다. 축제는 음식을 나누는 것과 함께 공동체 성원들에게 공동체의 참 의미를 손으로 만지듯이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축제는 생활 속에 일어나는 마찰과 사소한 분쟁의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내는 청량한 바람이 된다. 축제 속의 환희와 엑스타시(ecstasy)의 요소는 생명의 흐름이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성원을 관통해서 흐르게 해주며 우리들의 가슴을 하나로 묶어 준다. 축제는 육체와 감각의 기쁨을 영의 기쁨에 연결시켜 주는 경이로운 시간이다. 따라서 축제는 공동체 생활에 필수적 요소이다.


살림 공동체는 대안적 문화로서의 음악, 詩, 춤, 노래, 이야기, 연극 등을 적절히 생활 속에 도입한다. 노약자나 장해자 등 누구나 쉽게 배워서 출 수 있는 춤(universal dances)을 개발하고 쉬운 춤사위에 공동체의 정신을 나타내는 소박한 말을 붙여(곡에 가사를 붙이듯이) 일하는 틈틈이 함께 추기도 한다.





五. 에필로그


나는 미국 펜실바니아주에 있는 Pendle Hill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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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호익

November 26, 2005
*.218.50.53
五. 에필로그
나는 미국 펜실바니아주에 있는 Pendle Hill이라는 퀘이커의 공동체에서 지난 한해를 보냈다. 위에서 제시한 공통체像은 그 Pendle Hill을 모델로 하여 대체적인 윤곽을 그려본 것이다. 다만 Pendle Hill을 좀 더 민중적인 쪽으로 끌어당겼다고 할 수 있겠다.
살림공동체의 7가지 원리 하나 하나를, 구원과 해방을 절절히 갈망하는 민중의 가슴과 눈으로 읽으려고 노력하면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원리들을 구체적인 공동체운동에 응용할 때에는 내가 몸담고 사는 사회현실과 자신의 문화전통, 그리고 공동체의 조건에 맞추어 창조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중심부가 아닌 아시아 대륙의 동쪽 한 주변부에 떨어진 작은 씨들의 눈이 지금 터지고 있다. 민중이라고도 불리는 이름 없는 사람들, 그들이 자신 속에 모시고 있는 하나님에 눈떠 깨어나고 있다. 그들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근본이다. 씨들은 자신의 문화와 사상과 전통에 돌아가 그 토양에 튼튼히 뿌리를 내릴 것이다. 나아가 그들을 에워싼 동양과 서양의 온갖 문화, 문명, 사상, 전통들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하여 그들 자신의 잠재력, 생명력을 꽃피워 나갈 것이다.
바야흐로 21세기, 새 천년의 새 문명, 새 문화, 새 인류의 도래를 예비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 곧 ‘살림 공동체’의 창조라는 가슴 뿌듯한 과제가 아시아의 민중에게 맡겨져 있다. 이 창조에서 민중신학의 몫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이 민중신학의 새로운 전개 가능성의 단초만이라도 전달할 수 있었다면 다행이겠다.



<참고 문헌>
*Larry L. Rasmusen, ‘Earth Community Earth Ethics’, 1996, Orbis
*Ed. by Martin O'Connor, ‘Is Capitalism Sustainable?’, 1994, The Guilford Press
*Helena Norberg-Hodge, 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 1991, Siera Club Books. (한국어역: ‘오래된 미래’, 녹색평론사)
*Jean Vanier, ‘Community and Growth’, 1989, Paulist Press
*‘Faith and Practice’, 1997, Philadelphia Yearly Meeting
*Thomas R. Kelly, ‘A Testament of Devotion’, 1941, Harper Collins
*John Punshion, ‘Encounter with Silence’, 1996, QHS
*C. G. Jung, ‘Memories, Dreams, Reflections’, 1973, Vintage
*Douglas Gwyn, ‘The Covenant Crucified -Quakers and the Rise of Capitalism-’, 1995, Pendle Hill
*Edited and Introduced by Douglas V. Steere, ‘Quaker Spirituality, selected writings’, 1984, Paulist Press
*Patricia Loring, ‘Listening Spirituality’, 1999, Loring
*Ed. by David Cren and Eric & Helen Ebbeson, ‘Living Simply’, 1981, The Seabury Press
*Mark A. Burch, ‘Simplicity’, 1995, NSP
*Grace Kuto, ‘Harambee, African Family Circle Cookbook’, 1995, Book Partners
*Thich Nhat Hanh, ‘The Miracle of Mindfulness', 1975, Beacon Press
*Thich Nhat Hanh, ‘Living Buddha, Living Christ’, 1995, Riverhead Books
*咸錫憲全集, 1987, 한길사
*김지하전집(5), ‘생명, 이 찬란한 총체’, 1991, 동광출판사
*한글 東經大全, 1991, 동학연구원
*金芝何 思想紀行, 전2권, 1999, 실천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