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1

홍정길 목사 설교에 대한 강경민 목사의 변론

홍정길 목사 설교에 대한 강경민 목사의 변론





홍정길 목사 설교에 대한 강경민 목사의 변론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기업 박사님께

강경민 (newsnjoy@newsnjoy.or.kr)
승인 2019.08.30 18:21



사랑하는 남기업 박사님. <뉴스앤조이>에 기고하신 '민족·역사 품지 못한 홍정길 목사의 설교'를 정독했습니다. 박사님의 신학적 정체성과 역사관에 전폭적으로 동감하고 찬사를 보냅니다. 그럼에도 반드시 짚어야 할 실체적 진실이 간과되는 현실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기업 박사님은 제가 사랑하고 아끼는 존경스러운 후배입니다. 홍정길 목사님은 제가 진실로 존경하는 영적 아버지와 같은 분입니다. 두 분 생각이 너무나 차이가 나는 것처럼 인식되는 상황이 참 안타깝습니다.

'민족·역사 품지 못한 홍정길 목사의 설교'를 통해 제기하신 내용은, 문재인 정부를 향한 홍 목사님의 비판과 염려가 성서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상당 부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유감이라면, 설교 한 편에 홍정길 목사님 삶과 사상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것처럼 인식되는 지점입니다. 비판받는 것은 어찌할 수 없지만, 그것이 한 사람의 삶과 인격 전체를 부정한다면 당사자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강경민 일산은혜교회 목사. 뉴스앤조이 최승현




홍 목사님께서는 문재인 정부 역사관을 비판하시면서, 예컨대 '지금 한국이 겪는 위기의 핵심은 북한 핵 문제이거늘 북한 핵을 젖혀 놓고 일본과 싸울 때냐?'라고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그 싸움에 민중을 끌어들인 태도가 마치 동학혁명 시절 지도자들이 민중에게 진실을 말하기보다 목적 달성을 위해 민중을 선동했던 상황과 비슷하다는 논리를 펴셨습니다. 그 결과, 허다한 농민들이 아깝게 죽어 갔다 하셨습니다.

이에 남 박사님은 동학혁명을 실패한 혁명처럼 인식하시는 홍 목사님 견해를 반박하셨습니다. 저 역시 동학혁명에 대한 홍 목사님 진의가 무엇인지도 사실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청중 앞에서 깊은 역사적 성찰 없이 동학혁명을 폄훼하셨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연장선에서 던진 '1919년 4월 11일이 임시정부 수립일이지 어찌 건국 기념일이냐?' 하는 문제 제기도 성급한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학계 결론이 도출되지 않았을더러, 정치적 편향성이 극복되지 않은 문제이니만큼 1919년 4월 11일은 '임시정부 수립일', 1948년 8월 15일은 '정부 수립일' 정도로 정돈하는 게 상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단정하면, 일제에 강탈당한 뼈아픈 역사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독립운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없어지고 정부 수립 이후 누가 건국에 기여했느냐 하는 단순 주제만 부각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친일파들이 선호하는 역사관입니다.

이 나라 현대사에서 친일 세력을 제거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근원적인 역사 왜곡을 불러왔는가 하는 문제는 이미 합의된 역사 인식이라는 생각이 남 박사님과 저의 공통점입니다. 이 점에서도 홍 목사님의 현대사에 대한 역사 인식 방법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점은 유감입니다.

친일파 척결에 대한 홍 목사님의 역사 인식이, 예컨대 기독교계에서 그렇게 존경을 받고 있는 김활란 여사 같은 분들의 친일 행위를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애국 애민 정신이었다고 평가하는 역사 인식과 동일한 것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김활란은 조국 독립을 비현실적 환상으로 단정하고 대한의 젊은이들에게 충실한 황국신민이 되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남 박사님의 근현대사 인식에 깊이 동감을 표합니다. 이 나라가 오늘날처럼 산업화·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위대한 역사를 갖게 된 것은, '동학혁명 – 3·1 운동 – 4·19 혁명 – 전태일 열사의 희생적 죽음 – 5·18 민주화 운동 – 6·10 항쟁 – 촛불 혁명'으로 이어지는 자유와 정의를 위한 피눈물 나는 싸움의 결과였다는 역사 인식에도 전폭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보지 못한 역사의 맥을 동시에 직시하고 드러내고 감시해야 합니다. 역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은혜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 섭리 안에 있는 역사의 비밀을 하나하나 캐내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역사를 은혜로 규정하는 것이 곧 몰역사적 태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통치에서 정의와 공의를 빼면 남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이 바벨론 유수에서 해방될 때 그들이 부른 노래, 고백한 신앙이 시편 126편입니다. 그들은 해방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대사(은혜)라 노래했지만, 70년 포로 생활 내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들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역사를 자유와 정의를 위해 피눈물을 뿌린 자들이 거둔 열매라고 보는 남 박사님 시각이나, 역사를 하나님 은혜라 일컫는 홍 목사님 시각이 반드시 대립된 것만은 아닙니다. 더더욱 제가 아는 홍 목사님 생각이나, 남 박사님 생각은 다른 것보다 같은 지점이 훨씬 많습니다. 저는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홍정길 목사님은 강남에서 50년 목회 생활을 하셨습니다. 목회자는 자기가 목회하는 사람들 삶과 사고에서 완전히 자유할 수 없습니다. 이는 어쩌면 운명적인 것입니다. 제가 남서울교회에서 홍 목사님과 함께 목회할 때, 지역 정서 때문에 얼마나 괴로운 일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중견 안수집사님과 사회적 관점을 이야기하다가 "홍 목사님이 중도 우파라면 저는 중도 좌파 정도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상상 속에서 '중도 좌파'라는 말은 '빨갱이'로 자동 인식이 되었고, "강 목사가 스스로를 '빨갱이'라 했다", "교회에 빨갱이가 들어와 있다"고 소문내고 다녀서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너무 힘들어 홍 목사님과 의논했더니 "강 목사가 빨갱이 아닌 것을 내가 아는데 무슨 상관이냐?" 하시며, 일일이 대꾸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제가 남서울교회 사역자로 있던 1986년 6월, 남서울교회에 복음주의권 진보 그룹인 '복음주의청년연합'이 결성되었고, 교회에서 수없이 실무 협의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민중신학자로 널리 알려진 서광선 박사와 요즘 보수(수구) 신학의 아이콘처럼 인식되는 김영한 박사 간의 신학 논쟁이 벌어진 곳도 남서울교회였습니다.

6·10 민주 항쟁 때는 홍정길 목사님도 명동에 나가 경적 시위에 동참하셨습니다. 그해 6월 30일경 남서울교회 교역자 대부분이 동의하는 교인분들과 교회에서 터미널까지 '직선 개헌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계획을 면밀히 세웠습니다. 모임은 양승헌 목사가 주도했고 홍 목사님에게는 알리지 않기로 결정하고 거사를 추진했는데, 6·29 선언으로 무산됐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의 대사회적 섬김을 사회적 봉사(Social Service)와 사회적 행동(Social Action)으로 구별하기도 합니다. 사회적 행동 없는 사회적 봉사가 비판받기도 합니다만, 사회봉사가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거룩하고 아름다운 전통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홍정길 목사님께서 50년간 목회하신 남서울교회와 남서울은혜교회가 보여 준 사회봉사 정신(실적)은 타 교회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농어촌교회와 소외자들을 찾아 섬기는 남서울교회의 흔적은 가히 '예수의 흔적' 자체였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북한도 도왔습니다. 홍 목사님은 50여 회 평양을 다녀오셨지만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당국자나 주민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도우려면 홍정길 동무같이 하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장애인들을 섬기는 남서울은혜교회의 정신과 실천은 100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홍 목사님의 이념적 스탠스는 '중도 우파'가 맞습니다. 제자인 저나 이문식 목사(광교산울교회)는 중도 좌파입니다. 홍 목사님과 우리가 모이면 좌우 논쟁이 치열(?)합니다. 동료들이 염려할 정도입니다.

홍정길 목사님께서는 저나 이문식 목사를 아십니다. 사회변혁 태도에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 방식이 조금은 래디컬하다고 생각하십니다.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넉넉히 공존합니다. 우리가 좌파라는 사실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홍 목사님께서 좌파 정부를 향한 기우가 너무 깊다는 점을 우려합니다. 그럴수록 저와 이문식 목사 역할이 커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러나 엄혹한 시절 목사님은 독재 정권을 비판했고, 촛불 혁명을 지지했으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공적으로 요청했습니다.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 뉴스앤조이 이용필




지금 한국은 사회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생각을 조금도 관용하지 못하는 '극한 사회'입니다. 제가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이번 설교로 홍 목사님 생애 전체가 매도되는 것입니다. 홍 목사님의 삶과 사상은 김진홍·서경석 목사님과 전혀 견줄 수 없습니다. 제가 좋아했지만 존경할 수 없었던 '4인방'이라 불리던 분들과도 다릅니다. 달라도 많이 다릅니다.

최근 열왕기서를 묵상하다가, 남유다 아사왕 이야기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아사왕은 41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자신의 아버지와 달리 유독 다윗왕을 닮았습니다.

열왕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왕상 15:11),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왕상 15:14)고 했습니다. 아사왕 36년, 북이스라엘(바아사)의 침략을 받고, 아람 왕 벤하닷에게서 도움을 받아 물리쳤다고 역사적 사실을 기술했지만(왕상 15:17-22), 열왕기 기자는 아사왕의 행위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일언반구도 진술하지 않았습니다.

역대기 기자 진술은 많이 다릅니다. 역대기 기자는 아사왕에 대한 기록을 열왕기보다 많이 남깁니다. 역대하 14~15장 전체가 아사왕의 선한 믿음과 행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증언입니다. 그런데 아사왕 36년에 북이스라엘(바아사)의 침공을 받은 이야기가 역대하(16:1-8)에도 열왕기와 똑같이 기록됩니다. 거기서 역대기 기자는 그때 아사왕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저버렸다고 심히 책망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대하 16:9)."

열왕기 기자는 바아사 침략을 받은 아사왕이 군사·외교적으로 대응한 일을 단순한 사건으로 기록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아사의 군사·외교적 대응을 하나님을 중대하게 배신한 일로 해석했습니다. 두 기자의 관점 차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는 신학적 통찰력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저는 아사왕이 통치한 41년 전체에 주목했습니다. 41년이라는 긴 세월 중 36년은 아사왕에게 거의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5년, 아사왕이 북이스라엘 침공을 받았을 때도 나쁜 놈은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였다는 점이 열왕기 기자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매우 엄중했습니다. 36년을 흠 없이 지냈지만, 마지막 5년의 실수를 그냥 넘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역대기 기자 관점으로 홍 목사님 생애와 사상을 비판하거나, 열왕기 기자 관점으로 홍 목사님 생애를 칭송할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남 박사님을 비롯한 젊은 후배들에게 간곡한 마음으로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생애와 사상을 평가할 때, 좀 더 길고 차분하게 그분의 삶 전체를 보자는 것입니다. 홍 목사님의 삶과 사상은 한국교회, 특별히 '하나님나라'를 사모하는 순전한 청년들에게 허다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홍 목사님은 풍성한 신앙적 유산을 남긴 분입니다.

동학혁명, 3·1 운동,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10 항쟁 없이는 촛불 혁명도 없다는 역사 인식이 당연한 것처럼, 한국교회사에 대한 깊은 이해는 오늘날 교회 현상을 이해하는 필수 교양입니다. 새로운 신학적 관점을 도구화해서 믿음의 선배들을 도매금으로 비판한다면,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사람들입니까.

유교적 전통 차원에서 무조건 선배들을 존경하라고 강요하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진리를 묵상하면서, 아닌 것은 '아니다' 하고 옳은 것은 '옳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단편적 현상을 보고 '너도, 그도 모두 한 그물에 든 고기'라는 식의 역사 인식 태도는 역사의 단절 속에서 독불장군만 득실거리게 할 것입니다. 역사나 개인을 통해 배울 것은 무엇이고, 단절할 것은 무엇인지 숙고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시대가 아무리 급속히 변한다고 해도, 한 시대를 보듬고 치열하게 살았던 원로들이 보여 주는 혜안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경청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냉소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지저분한 양비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균형 감각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균형 감각 말입니다.

홍정길 목사님께서 좌파 정권을 향한 지나친 기우로 역사 해석에서 균형을 잃은 부분이 있다는 점은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저는 그것이 홍 목사님 세대의 운명적 한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주의권 젊은이들이 홍 목사님 같은 우파 지도자(선배)에게서 물려받아야 할 유산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귀한 유산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한배를 타고 역사의 격랑을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지도자들이나, 사랑의교회에 가서 반역사적이면서 냉소적인 유머(?)로 순진한 청중을 웃기는 선동자들은 우리 동역자일 수 없습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겸손히 무릎을 꿇으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환히 보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기업 박사님. 모든 일에서 진보를 이루어 가시길 기대합니다.

강경민 / 일산은혜교회 담임목사, 평화와통일을위한연대 상임운영위원, 남북나눔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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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역사 품지 못한 홍정길 목사의 설교
속죄 일변도 복음 이해의 한계, 왜곡된 역사 인식 불러와

남기업 (newsnjoy@newsnjoy.or.kr)
승인 2019.08.2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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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에 신앙을 갖게 된 내가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원로) 설교를 처음 들은 곳은 1993년 여름 충남 태안의 몽산포해수욕장으로 기억한다. 당시 홍 목사를 소개했던 분은 2009년 소천하신 김준곤 목사였다. 그분은 홍정길 목사를 우직하게 걸어가는 '소'에 비유하면서, 한국교회 미래가 홍 목사 어깨에 달렸다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높이 평가했다.


당시 나는 홍정길 목사의 설교에 전율했다. 눈물을 흘리며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홍정길 목사 설교를 들은 기억이 없다. 그러던 중 며칠 전 8월 11일 남서울은혜교회에서 홍 목사가 설교한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를 보게 됐다. 기사로 접한 그의 설교에 전혀 동의가 되지 않았다. 대체 어떤 설교인가 궁금해, 설교 전문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마음은 더 무거워졌고, 고민하다가 펜을 들었다.



진정성 있는 설교였지만…




그대로 녹취한 설교문을 읽어 보니, 홍정길 목사가 설교 원고를 작성해 교인들에게 배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광복절을 앞둔 홍 목사 마음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일 것이다. 한번 듣고 잊어버리지 말고 여러 번 읽어 보라는 뜻이리라. '나라가 이렇게 가면 큰일 나겠구나', '한국교회를 이렇게 두면 안 되겠구나' 위기의식을 안고 강단에 오른 것 같다.

설교 본문도 신명기였다. 신명기는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모세가 출애굽 2세대를 향해 당부한 세 편의 설교로 구성돼 있다. 가나안에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호소하는, 그러면서 경고하기도 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율법서다. 홍정길 목사 마음도 모세와 같았으리라. 적어도 진정성과 간절함은 모세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홍정길 목사. 뉴스앤조이 이용필




그러나 간절함과 진정성이 설교 내용,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홍 목사의 설교 전문을 읽어 보면, 외람되지만 심란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홍 목사의 설교에서 느껴지는 '복음'은 '민족'과 '역사'를 품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는 게 나의 솔직한 평가다.

홍정길 목사는 문재인 정부의 두 가지를 걱정하는 듯했다. 하나는 일본과의 관계, 다른 하나는 현 정부의 역사 인식이다. 이 둘은 연결되어 있다.

홍 목사는 문재인 정부가 현재 일본과 벌이는 경제 전쟁을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적어도 전쟁을 하려면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처럼 이기는 전쟁을 해야 하고, 백성(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실패한'(?) 동학혁명처럼(적어도 설교에서는 동학혁명을 실패한 운동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무모하고 나라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정책 추진이 그릇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단정한다. 현 정권 담당자들이 대한민국 20세기 역사를 실패의 역사, 반칙과 특권의 역사로 본다는 지적이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과거를 적폐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치워 버려야 할 적폐"라고.

홍 목사에게 20세기 대한민국은 어떤 역사일까. 기적의 역사다. 한국전쟁에 16개국이 참전한 것도 기적이고, 전쟁의 폐허 더미에서 경제 발전을 이룬 것도 기적이며, 정치적 민주화(자유화)를 달성한 것 역시 기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이 모든 기적과 발전에 정신적 기초를 놓은 곳이 바로 한국교회라고 강조한다. "100만 성도가 1000만 성도로, 5만 9000의 마을마다 교회가 우뚝 서며 나라를 위해 기도"한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홍정길 목사의 해법 역시 기도일 수밖에 없다. 역대하 7장 14절을 읽으면서 "비상한 시대"에는 "비상하게 기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복을 주실 것이며,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인 북핵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기적의 역사'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나도 대한민국 역사를 기적의 역사라고 본다. 홍 목사가 비판하고 걱정하는 것처럼 "빈한한 역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적의 역사를 만든 동력이 어디서 왔느냐는 것이다. 나는 아래로부터 일어난 자유를 향한, 정의를 향한 끊임없는 '저항'이 기본 동력이었다고 본다. 그 시초가 홍 목사가 폄훼한 동학혁명이라고 주장한다.

표면상으로 동학혁명은 실패했다. 그러나 역사는 이어 가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자주성을 확보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신분제를 완전히 철폐하고 골고루 평등하게 잘사는 세상을 형성하고자 분연히 일어선 동학혁명이 있었기에 25년 후 3·1 혁명이 가능했다.

위대한 3·1 혁명의 정신은 4·19 혁명으로, 이는 다시 1970년 11월 13일의 전태일 열사에게로, 전태일 정신은 1980년 오일팔민주화운동으로, 광주의 대동 정신과 항쟁 정신은 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2016년 촛불 혁명도 이를 이어받은 결과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자유와 정의를 향한 항쟁의 역사, 프랑스 파리코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윤리성을 품은 빛나는 저항의 역사가 바로 홍 목사가 말한 "찬란한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럼 경제 발전은 어떻게?"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경제 발전도 궁극적으로 정의가 확립된 만큼 가능하다. 성경은 도덕법칙을 말하는 정의와 경제법칙을 말하는 효율은 하나라고 말한다. 정의로울수록 효율적이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말이다.

단적인 예로 1950년 3~5월에 단행한 농지개혁을 생각해 보라. 농지개혁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정의로운 개혁 조치임은 분명하다. 정의로운 농지개혁을 통해 소작농이 자영농이 되었고, 교육열에 타올라 유능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었으며, 작은 밑천으로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과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이 대한민국의 빛나는 산업화는 농지개혁이 성공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정의로움은 무엇인가. 기여한 만큼 가져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기 생각과 정치적 의사 표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신상필벌의 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개인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되고 새로운 생각이 바로 시도될 수 있다. 그러면서 경제 발전이라는 결과가 주어지는 것이다.

경제 발전의 핵심 변수인 기술 발전, 유능한 노동력, 자본축적 등은 정의가 확립될수록, 인권이 존중될수록 가능성이 높아지고 성과가 고르게 분배된다. 이것이 다시 생산적 노력의 자양분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현실화는 끊임없는 아래로부터의 요구로, 즉 정의와 자유 실현에 헌신한 사람들과 불의에 희생당한 이들의 고통에 능동적으로 응답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결론적으로 자유·정의의 요구와 실현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독재 때문에 경제가 성장한 것이 아니다. 독재인데도 경제가 성장한 것이다. 경제 발전은 박정희처럼 입법·사법·행정을 다 틀어쥐고 말 안 듣는 사람을 방망이로 두들겨 패야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의와 발전은 하나다!

우리 사회에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은 것인가. 원인의 원인을 파고들면 결국 친일·독재와 만나게 된다. 해방 후 친일파들은 청산되지 않았고 반공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독재 주체 혹은 적극적 부역자로 변신했다. 한국 사회에서 반칙과 특권의 대명사인 재벌과 거대 언론, 부패한 공권력의 기원을 찾아보면 어김없이 일제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조직화하고 말과 글로 사람을 설득하고 깨우려 애쓴 사람들, 추수에 대한 소망 없이도 자유와 정의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이 흘린 눈물과 깊은 한숨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고 본다. 이 과정에 소수 기독교인과 다수 비기독교인이 참여했다.

역사를 이렇게 보면 우리가 감사할 대상은 무한정 늘어난다. 하나님께만 감사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다. 중국인들의 감사 대상과 한국인들의 감사 대상은 달라야 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동학혁명에서부터 촛불 혁명까지 120년 넘게 이어진 저항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이 감사 대상이다. 그들의 헌신이 내 존재 기반이었다고 고백해야 한다. 그런데 홍 목사의 신앙 체계에는 이런 고백이 들어설 장소가 없어 보인다.

홍정길 목사가 자유화·민주화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이것은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홍 목사가 아무 두려움 없이 정부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는 것도, 사실 비기독교인들이 독재 권력에 목숨을 버려 가며 저항했기에 가능하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비기독교인의 헌신이 '설교의 자유'를 보장해 준 것이다.



축소된 복음 이해가 초래한
역사 왜곡




홍 목사가 말하는 복음은 민족과 역사를 품기에 한계가 너무 크다. 냉정하게 말해서 품지 못할 뿐 아니라 역사를 왜곡하기까지 한다. 하나님나라를 세우려 애쓰는 사람들을 꾸짖는 결과를 초래한다. 왜일까?

나는 그 원인을 구약과 무관한 속죄 일변도 복음 이해에 있다고 본다. 시내산 율법과 선지자 사역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도, '율법의 완성' 관점에서 복음을 이해하지 않기에 초래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복음이 이렇게 축소되면 율법이 말하는 거룩한 나라(새로운 사회)를 향한 전망을 상실한다. 우리 사회와 역사를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해 행동할 입각점을 잃어버리게 된다. 구약 시내산 율법은 거룩한 사회를 지속할 법적 체계다. 율법의 정신과 예수님 말씀을 묵상하면 오늘날 우리 사회와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말해, 파편적·분절적으로 인식됐던 우리 역사와 사회적 현실이 하나의 문맥으로 정리되는 일이 벌어진다.

아쉽게도 홍 목사 설교에는 이런 복음의 광대함과 위대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율법의 완성으로 복음을 이해하면 복음의 한가운데에 '정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의는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을 넘어, 강도 만난 사람 도와주는 것을 넘어, 고아와 과부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강도가 안 나오도록 하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그게 바로 정의다. 나아가 율법을 깊이 묵상하면, 정의를 세우는 것이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 관점에서 대한민국 역사를 보면 자유를 향한 쉼 없는 행진, 그 행진에 동참한 무수한 사람의 헌신이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이를 복음으로 넉넉히 품어 안을 수 있으며, 감사하게 된다.

돌고 돌아 결국 복음으로 돌아왔다. 홍 목사가 동학혁명을 폄훼한 것도, 한국전쟁을 극복하고 경제 발전과 정치발전을 동시에 이룬 근인을 신자들의 기도였다고 보는 편협한 시각도, 구약 시내산 율법과 선지자들의 외침을 배제한 복음 이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홍 목사가 (시내산) 율법의 완성으로 복음을 이해하고 깊이 묵상했다면 기적의 역사, 찬란한 역사에 대한 해석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감사 내용도 달랐을 것이다. 당연히 기도와 참회의 내용도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남기업 / 희년함께 공동대표,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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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목사님, 왜 이러세요?
광복절 전후 대중을 분노하게 한 설교

장명성 기자 (dpxadonai@newsnjoy.or.kr)
승인 2019.08.23 09:27

[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광복절 전후로 교회 강단에 선 목사들이 부적절한 발언을 쏟아 냈다.


김양재 목사(우리들교회)는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촉발된 불매운동, 반일 운동을 감정적이라고 지적했고 "(한일 관계 관련) 팩트를 말씀드리겠다"고 했지만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다. 김진홍 목사(두레기도원)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청와대에 주사파가 모여 있다"는 극우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홍정길 원로목사(남서울은혜교회)는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건국일이고, 올해가 건국 71주년이라고 강조하면서, 축하해야 할 날에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자고 외치는 한국 정치가의 증오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명 목사들의 설교 내용이 알려지자 소셜미디어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최종원 교수(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는 "역사 인식이라고 할 수조차 없는 빈한한 인식을 가지고 궤변을 했다"며 날카롭게 비판했다. 논란이 된 설교들과 비판적 반응을 영상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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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nciliAsian - Peace making in Korean Peninsula the personal and poli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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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hope to connect with you next weekend (9/14-9/16) if you are near Fresno or Reedley, CA. Thank you Mennonite Peacemakers, Reedley Peace Center, and Mennonite Community Church for organizing these ev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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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a and the Korea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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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A & RESILIENCE in the Korean Church
트라우마에 어떻게 공동체적으로 접근할 것인가?

저희 ReconciliAsian(아시안화해센터)에서는 2018년 9월 20일-22일까지 이민교회와 트라우마 세미나를 진행됩니다. 지금 가장 큰 선교지는 트라우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의 영향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민교회 안에 일어나는 갈등은 트라우마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트라우마에 공동체적으로 접근하면서 상담심리, 갈등전환, 영성과 회복적정의를 조합해 훈련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민교회에 매우 적절한 훈련이 될 것입니다.


강의는 한국어로 진행되고 강사는 김지혜 (가정상담가, AMFT-Fuller Seminary); Sue Park-Hur(Denominational Minister, Mennonite Church USA)로 트라우마 전문 훈련가들입니다.

일시: 9월 20-22일 (목-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장소: Fuller Theological Seminary, Pasadena
참여: 누구나 (선착순 20명)
등록비: $200
문의: reconciliasian@gmail.com; 213-255-8886

w/ Jeehye Kim Sue Park-Hur


Counting down for Trauma and the Korean Church workshop that begins this Thursday! We are praying for those who have signed up and for our time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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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C welcomes North Koreans to Manitoba | Mennonite Central Committee Canada

MCC welcomes North Koreans to Manitoba | Mennonite Central Committee Canada





CARMAN, MANITOBA

MCC welcomes North Koreans to Manitoba

Building relationships with families and farmers in Canada

CARMAN, Manitoba – In those first few minutes after arriving at Syl’s Restaurant in Carman, members of the delegation from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also known as North Korea) sit at the edge of the outdoor eating area. Then they see local resident Rene McFarlane at a picnic table with her son, Lane. The North Koreans move toward McFarlane and with the help of a translator, a conversation about families in both countries begins.
Chris Rice, MCC’s representative for Northeast Asia, calls this opportunity to build relationships person-to-person “a gift on the pathway to peace.”
“It may be the only place in the world that day where a Canadian and a North Korean engaged one another in this way, talking family to family,” Rice says. “In this way, small but powerful seeds of hope are planted.”
The delegation was one of two that came to Manitoba in the summer of 2018. Hosted by MCC, the delegations focused on learning about agricultural research and farm practices in the province.
In June, officials from the Korean Canadian Cooperation Agency visited a University of Manitoba agricultural research station and a local farm.
Ambassador Ri Yong Phil from the DPRK Mission to the UN in New York was part of the delegation. He says there are similarities in climate between the province and North Korea, but there are also significant differences.
“We have limited arable land and we cannot leave it vacant. We have no option but to plant corn and rice,” he says. “So, we can learn about conservation agriculture in Canada and about ways of co-operating between countries.”
The second delegation in July, mostly agricultural scientists from DPRK, was led by Mr. Kim Sang Il, who specializes in genetics, crop breeding and crop management. The delegation spent time with several agricultural scientists and visited a large organic commercial farm. Kim says North Korea and Manitoba have some common farming practices, but the age of their soils is very different.
“Manitoba has younger soil, more humus content. It hasn’t been in production as long,” he says. “In DPRK we have farmed for several thousand years and our soil is degraded. We are very much concerned with this.”
Kim say that’s why North Korean scientists are interested in how Manitobans restore and nourish farmland.
“Science is our common language, a universal language,” he says.  “After we go back to DPRK we will work out a plan and implement it. And now that we know Canadian scientists, we can talk to them about it.”
MCC has worked in DPRK since 1995 and currently provides canned meat for three pediatric hospitals and other material support for tuberculosis and hepatitis care centres. Working through the Korean Canadian Cooperation Agency (KCCA), Rice and other MCC staff visit DPRK regularly. KCCA officials have visited Manitoba twice in the past few years.
“Regardless of the politics of the situation, there’s a common mission, a moral imperative of compassion for the vulnerable,” Rice says.
After 70 years of isolation and historical tension between the DPRK and the United States, Rice says Americans and North Koreans are “profoundly misinformed about each other.” MCC hopes to change that by giving people the space to build relationships person-to-person. While that’s not currently possible in the U.S., it can happen in Canada.
“It’s seeking change through contact,” Rice says. “In exposing multiple stories about North Koreans and in North Koreans relating to others, we can imagine that the way things are right now is not the way it has to be in the future.”

(3) ReconciliAsian - 갈등상황 속에서 공통점과 진실 찾기 (1) - David Augsburger 외 w/ Hyun H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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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nciliAsian
27 October 2018 ·


갈등상황 속에서 공통점과 진실 찾기 (1) - David Augsburger 외 w/ Hyun Hur

갈등 상황이 찾아오면 서로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극과 극으로 치닫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공통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때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대화를 한다면, 양쪽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양쪽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것들, 양쪽 모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자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모두가 함께 공유하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들과 이점들에 대해서 듣고, 발견할 줄 아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공통점들을 명시하고, 공유하는 생각들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여덟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공통점과 진실을 찾는다는 것은 진정으로 공유된 무언가를 찾는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로 다른 두 견해는 서로 맞물려 있는 두 개의 동그라미를 연상시킵니다. 각각의 동그라미는 이슈에 대한 특정 입장을 표명합니다. 하지만 동그라미 두 개가 교집합처럼 겹쳐있는 부분은 두 입장의 공통점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먼저 각각의 동그라미가 어떤 이슈를 지지하기 위한 생각, 신념, 가치들을 논리 정연하게 갖추고 있는 완전한 동그라미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곧, 우리는 상대방의 입장이 온건하며 진실되다는 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난 후에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 찾아봐야 합니다.

2) 공통점과 진실에 관한 이야기(conversation)를 대화(dialogue)라고 합니다.

대화(dialogue)는 논쟁(debate) 과는 전혀 다르다. 논쟁은 자신의 의견은 옳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옳지 않다는 것을 설득시키기 위한 노력입니다. 하지만 대화는 어떠한 견해와도 상관 없이 모든 인간은 존중 받을 가치와 위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또한 대화는 이해 받기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려고 하고, 내 견해가 도전 받을 지라도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입니다. 대화는 내 의견을 분명하게 피력하는 것뿐 아니라 상대방 역시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웃 사랑의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3) 공통점과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은 타협도 희생도 아닙니다.

타협이나 희생은 해결책이 될 수는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온전한 과정은 아닙니다. 타협은 문제 해결 방법(means)이 아니라 문제의 종결(end)입니다. 희생은 통찰과 공감을 얻는 과정(process)이 아닌 단순한 해결책(solution)이 되버립니다. 공통점을 찾는 다는 것은 대립되는 의견 사이에서 중간 정도의 타협안을 찾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진정으로 공유하는 가치와 관심사들을 명시하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도 의견을 바꾸거나 희생하라고 강요 받지 않습니다. 다만 서로를 이해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동의 사항들을 찾고, 존재하지도 않는 거짓 동의 사항들을 받아들이는 척하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