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6

풀뿌리운동사례

풀뿌리운동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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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과 정치는 하나다 -<과천풀뿌리> 사례

    생활과 정치는 하나다.- <과천풀뿌리>를 둘러보다.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과천풀뿌리가 만들어가는 세상 우리는 '풀뿌리'입니다. 풀뿌리는 작습니다. 그러나 생명력이 있습니다. 거친 땅덩이에 평화, 환경, 인...
    Date2016.04.22 By새날 Reply0 Views2087 file
  2. ‘풀뿌리 활동가 총회’를 아시나요?

    ‘풀뿌리 활동가 총회’를 아시나요? 정리: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사진 출처: webzine.welfare.seoul.kr)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노원의 <마들주민회>에서 일하는 이지현 대표로부터 ‘풀뿌리 활동가 총회’라는 말을 들었다. ...
    Date2015.04.15 By새날 Reply0 Views1552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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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운동가 출신 여성 시장과 풀뿌리 시민운동의 협력(일본 시가현 사례)

    이 글은 임경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의 일본 시가현 탐방 내용을 일지 형식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시민운동가 출신 여성 도지사가 급진적인 탈핵 드라이브를 주도하고 있고, 풀뿌리 시민운동이 지방분권의 핵심 파트너가 되는 구상을 실천하...
    Date2014.03.03 By풀자연 Reply0 Views2473 file
  4. [청소년을 만나는 사람들] ④허일정 - 자립과 행복을 찾아 나선 우물 밖 청개구리들

    [청소년을 만나는 사람들] ④허일정 자립과 행복을 찾아 나선 우물 밖 청개구리들 정리 : 제갈임주 (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 <더체인지>에서 주관하는 ‘모떠꿈 워크숍’에서 한 청소년을 만났다. 춘천에서 온 17세의 허...
    Date2013.11.06 By풀자연 Reply0 Views5105 file
  5. 초인을 기다리지 않는 옥천의 주민자치

    초인을 기다리지 않는 옥천의 주민자치 - 안남면을 중심으로 - 제갈임주(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인터뷰 : 황민호 (마을연구소 안남 연구원 / 전 옥천신문 편집장) ‘원주’하면 떠오르는 장일순 선생처럼 세상에 널...
    Date2013.08.30 By풀자연 Reply0 Views5888 file
  6. 일자리를 넘어 청년들의 '설 자리'를 만드는 <청년일자리허브>

    [운영위원 소개④] 임경진 이음 운영위에서 임경진 위원이 발표한 내용을 올립니다. 자기 소개를 해달라 했더니 <청년일자리허브>에 대한 설명만 가득~! 아마도 임경진 샘 머릿속에는 청년과 허브로만 채워진 게 아닐까 싶네요. <청년일자리허브>...
    Date2013.06.11 By시냇물 Reply0 Views2198 file
  7. [청소년을 만나는 사람들] ③ 오일화Ⅱ-돌봄의 교육과정을 구현하는 함께여는청소년학교

    [청소년을 만나는 사람들] ③ 오일화Ⅱ 돌봄의 교육과정을 구현하는 함께여는 청소년학교 - 사랑․자신을 향한 도전․세상과의 만남 - 2012. 7. 18 제갈임주(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 인터뷰: 오일화(성남 함께여는청소년학교 대표) 장...
    Date2013.04.23 By시냇물 Reply0 Views3145 file
  8. [청소년을 만나는 사람들] ③ 오일화Ⅰ-청소년의 성장을 돕는 지역의 울타리, 성남청소년지원네트워크

    [청소년을 만나는 사람들] ③ 오일화Ⅰ   청소년의 성장을 돕는 지역의 울타리, 성남청소년지원네트워크   2012. 7. 18  제갈임주(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 인터뷰: 오일화(함께여는청소년학교 대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성남...
    Date2013.04.23 By시냇물 Reply0 Views1850 file
  9. 가난하게 함께 살아가는 동자동사랑방

    가난하게 함께 살아가는 동자동사랑방 제갈임주(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 인터뷰: 조승화(슈아) / 2012.6.29 지난 5월 홍대입구의 어느 한 공간에서 스무 명 남짓한 인권, 풀뿌리 활동가들이 모였다. 그동안 개별적인 만남은 있었어도 이렇게 집단...
    Date2013.04.10 By시냇물 Reply0 Views2827 file
  10. [청소년을 만나는 사람들] ②김지수

    [청소년을 만나는 사람들] ② 김지수 (당동청소년문화의집 관장) 2012. 6. 7 정리 : 제갈임주 (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 "지역사회라는 공간은 이런 예상치 않은 만남과 나눔이 있는 곳이다. 오늘도 그 소중한 땅에서 아이들을 고민하면서 ...
    Date2013.04.09 By풀자연이음 Reply0 Views1320 file
  11. 자원활동 17년차, 하고픈 대로, 즐겁게...

    [신임 운영위원 소개③] 세 번째 발표자는 김광원 운영위원입니다. 공사판의 노동을 생업으로 삼고 17년간 자원활동을 하며 살아온 한 청년의 이야기랍니다. 요즘은 수원참여예산네트워크를 비롯한 지역활동으로 신나게 지내는 것 같네요. 그 활기를 이음...
    Date2013.03.13 By시냇물 Reply0 Views1625 file
  12. 문화와 예술이 問安하는 산호여인숙

    [신임 운영위원 소개②] 두 번째 발표는 서은덕 운영위원의 차례였습니다. 요건 은덕님의 레알 목소리...로 들어야 제 맛인데 글로 풀어 설명을 드리려니 안타깝네요. 털털하고 개성 넘치는 그녀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문화와 ...
    Date2013.03.12 By시냇물 Reply0 Views6319 file
  13. 마을살이 2년, 그리고 이후

    [신임 운영위원 소개①] 지난 2월 26일 있었던 이음 총회에서 신임 운영위원들이 이그나이트 형식을 빌어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개인에 대한 소개이자 각자의 지역활동이기도 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첫 번째 순서는 김승수 운영위원이네요...
    Date2013.03.12 By시냇물 Reply0 Views2264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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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지역 네트워크운동 조사 보고

    천안지역 네트워크운동 조사 보고 -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과 <미래를 여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 정리 : 김현 (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 만난 사람 : 진경아(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김영미(미래를 여는 아이들) 조사자 : 김...
    Date2013.01.25 By풀자연이음 Reply0 Views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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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지역 네트워크운동 조사 보고

    관악지역 네트워크운동 조사 보고 정리 : 김현 (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 만난 사람 : 홍선(관악사회복지), 이주희(관악사회복지), 이명애(난곡주민도서관) 조사자 : 김현/이창림/이해정 날짜 : 2011년 5월 20일 ※ 관악지역 네트워크운동을 조...
    Date2013.01.25 By풀자연이음 Reply0 Views2222
  16. 다양한 실험과 이웃을 품는 도심의 활력소-문래옥상텃밭

    다양한 실험과 이웃을 품는 도심의 활력소-문래옥상텃밭 * 정리 : 제갈임주(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인터뷰 : 강내영 (이음 운영위원, 문래동 주민) <문래옥상텃밭>은 서울 문래동 예술촌 한 건물 옥상에 자리하고 있다. 문래역 근처에...
    Date2012.11.04 By시냇물 Reply0 Views6129 file
  17. 도시속 아파트공동체, 파주 교하1차 월드메르디앙 아파트

    도시속 아파트공동체, 파주 교하1차 월드메르디앙 아파트 지난 8월30일 <좋은예산센터>에서 주최한 ‘주민이 결정하면 행복해진다’ 첫 번째 사례발표회가 있었습니다. 주민이 예산을 결정하여 지역의 변화를 이끈 사례로 충북 옥천군 안남면과 경기 파주시 ...
    Date2012.11.04 By시냇물 Reply0 Views2677 file
  18. [청소년을 만나는 사람들] ① 박병선과 이주희

    [청소년을 만나는 사람들] 박병선과 이주희 2012. 4. 13 / 관악사회복지 사무실 정리 : 제갈임주 (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 박병선 ... 과천 시민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태 만든 <맑은내 방과후학교>에서 7년간 교사로 일했다. 한 때는 맑은내에...
    Date2012.04.27 By풀자연이음 Reply0 Views3573 file
  19. 여성주의와 의료생협의 만남

    여성주의와 의료생협의 만남 <살림의료생협> 제갈임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 인터뷰 : 유여원 (2012. 1. 11) 전국의 ‘의료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은 220여 곳, 이 중 대부분은 무늬만 의료생협이다. 3백 명의 출자자...
    Date2012.04.05 By시냇물 Reply0 Views3403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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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로 또 같이, 부산 풀뿌리 네트워크

    따로 또 같이, 부산 풀뿌리 네트워크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6월 민주화 운동과 풀뿌리의 만남 4.19 의거, 5.18 광주 민주화운동, 6월 민주화운동 등 우리 현대사에서 굵직굵직한 민주화운동의 역사들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운동에 참여한 주...
    Date2012.01.10 By풀자연이음 Reply0 Views2109
  21. "참여예산을 상상하라!!" 사진 감상하셔요~~~

    지난 6월1일, 금천구청에서 있었던 "참여예산을 상상하라!" 전국 참여예산워크숍이 개최된 바 있습니다. 연인원 140여 명의 활동가, 공무원, 지방의원 등이 참여하여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관련 자료집은 '풀뿌리아카이브' 게시판 '참여예산'에 올렸습...
    Date2011.06.03 By풀자연이음 Reply0 Views3510 file
  22. 도시공동체 사례,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도시에서의 공동체 실험,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 이 글은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에 대한 다각적인 조사를 통한 조사보고서가 아니다. 이 글은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식구 중 초창기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해 온 안기홍씨...
    Date2010.03.23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4330 file
  23. 젊은 활동가와의 만남 ③, 대구참여연대 정희성 간사와의 만남

    젊은 활동가와의 만남 ③ 대구 참여연대 정희성 간사와의 만남 이 호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1. 지역 시민운동단체에서 일하는 젊은 활동가들은 대체 어떤 계기와 경로로 시민운동에 발을 담글까? 과거와 같이 학생운동을 거쳐 시민운동으로 넘어...
    Date2010.03.09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4213 file
  24. 젊은 활동가와의 만남 ②, 부천 Y 김동해 간사와의 만남

    젊은 활동가와의 만남 ② 부천 YMCA 김동해 간사와의 만남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1.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활동가들과의 만남을 위해 주위에 적절한 활동가를 소개시켜 달라는 요청을 하다 소개받은 이 중 한 명이 부천 YMCA 에서...
    Date2010.02.19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3522 file
  25. 젊은 활동가와의 만남 ①, 관악사회복지 이주희 간사와의 만남

    젊은 활동가와의 만남 ① 관악사회복지 이주희 간사와의 만남 이 호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1. 평상시에 내가 나이가 들었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 활동가들과는 개인적 만남이 없었다는 생각이...
    Date2010.02.10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4182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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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속으로 나아가려는 야마기시 공동체

    세상 속으로 나아가려는 야마기시 공동체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야마기시즘, 공동체와의 우연한 만남 지난 해 말까지 몇 사람과 공동으로 풀뿌리운동 활동가 교육 관련 보고서를 내기로 했었다. 시간이 지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강...
    Date2010.01.14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4035 file
  27.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사는 길"-[콩세알 나눔마당]을 찾아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사는 길 '콩세알 나눔 마을'의 권순호씨를 만나다 작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여름으로 들어서는 6월의 첫날. 날씨가 후덥지근했으나 그늘 밑에는 막바지 봄바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선선한 바람이 분다. 소규모 유기농을 하...
    Date2009.07.19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3209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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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뿌리운동사례]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③

    아줌마들의 즐거운 수다를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를 꿈꾸는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③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갈등의 발생과 극복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반 시민운동단체와는 좀 다르다. 조직적 체계를 갖추고 활동을 하기보...
    Date2009.06.22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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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뿌리운동 사례]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②

    ** 이 글은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로 연재할 글로, 세 번째까지 연재될 예정입니다. 아줌마들의 즐거운 수다를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를 꿈꾸는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②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모임의 위기와 ...
    Date2009.06.22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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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뿌리운동 사례]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①

    *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A4 13장이란 분량이 나왔다. 한꺼번에 싣기에는 읽기가 너무 지겨울 듯하여, 세 번에 걸쳐 시리즈로 싣고자 한다. 전체 목차는 아래와 같다. -.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 단비 이야기 -. 조직형성과정 -. 모임의 내용 -....
    Date2009.06.17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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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동네운동 이야기"-다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 박신연숙

    서울여성의전화에서 활동했던 박신연숙 국장님의 글입니다. 서울여성의전화가 동네단위 주민운동을 전개했던 내용들을 정리한 글인데요, 주로 동작구를 중심으로 여성들의 동네 활동을 정리한 것입니다. 참고하세요,. 25주년이야기_여성이살고싶은마을만들기.hwp
    Date2009.05.27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3011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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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위해 지역의 자원을 엮어라!!" - [미래를 여는 아이들]을 찾아

    작 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인터뷰 : 김소현(미래를 여는 아이들) 인큐베이팅 운동으로 잘 알려진 천안의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바로 이곳에서 잉태된 단체가 ‘미래를 여는 아이들’이다. ‘미래를 여는 아이들’의 창립 과정을 ...
    Date2009.05.19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2739
  33. [일본 풀뿌리운동 사례]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1)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세자키 마을만들기의 출발과 시민회의의 출범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가 조직된 배경과 과정, 그리고 그 주체에 대한 설명은, 모든 지역활동 사례에서도 그렇듯이, 한 사람을 중심으로 ...
    Date2009.03.26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4395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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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뿌리운동사례]반지하방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 인천 청학동 늘푸른 교실

    아래는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열악한 환경에도 성장해가는 아이들을 보면 즐겁다 인천 청학동 늘푸른 교실 김현 인천의 ‘청학동 늘푸른 교실’(이하 ‘늘푸른 교실’)은 99년 말에 처음 문을 열었다. IMF가 터진 얼마 후였고, 가난한 아이들...
    Date2009.03.13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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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어른을 키운다!- 맑은내 방과후 학교

    아이들이 어른을 키운다!! 과천 맑은내 방과후 학교 작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가장 살기 좋다는 과천에도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다. 물론 도시 규모가 작아(인구 7만) 저소득 가정 아동들의 절대 수는 적은 편이다. 양천구 목2동의 ‘나무...
    Date2009.03.04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2631
  36. 밤 10시 전자오락기 앞에 있던 아이 엄마 대신에 식사 챙겨줄 곳 찾았다

    아래 글은 오마이뉴스와 풀자연 이음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전지협의 도움을 받아 작성된 오마이뉴스 기획기사입니다. 매주 목요일 정도에 기사가 올라갈 예정이고 앞으로 약 10여 차례 지역아동센터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Date2009.02.25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2715
  37. [지역운동사례] "공간앞산달빛"에 대화가 흐르다.... - 대구 '공간앞산달빛'을 찾아 -

    ‘공간앞산달빛’에 대화가 흐르다 - 대구 ‘공간앞산달빛’을 찾아 - ▶ 날짜 : 2008년 5월 19일 ▶ 장소 : 대구 앞산달빛 ▶ 인터뷰 : 곽상수 실무자 ▶ 작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대구 남서쪽 방향에는 ‘앞산’이 솟아 있다. 이름만...
    Date2008.05.29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2937 file
  38. [지역운동사례] "돈 없이도 어울리는 세상? 과천품앗이가 꿈꾸는 세상!"-"과천품앗이"를 찾아

    돈 없이도 어울리는 세상? 과천품앗이가 꿈꾸는 세상! - 과천품앗이를 찾아 - ▶ 일 시 : 2008년 4월 18일(금) 오전 ▶ 장 소 : 과천 ▶ 인터뷰 : 박영미(과천품앗이 전 위원장) ▶ 작 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과천자원봉사센터...
    Date2008.05.14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2706 file
  39. [지역운동사례] "사람 냄새가 풍기는 인천 푸른샘어린이도서관"

    사람냄새가 풍기는 인천 푸름샘어린이도서관 - 날짜 : 2008년 4월 3일(목) - 장소 : 푸른샘어린이도서관 - 인터뷰 : 이혜경(희망을 만드는 마을사람들, 풀뿌리활성화위원장) - 작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인천의 ‘푸른샘...
    Date2008.04.08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2893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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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뿌리운동 사례보고] 마을에서 '초록'을 '상상'하는 아줌마들

    마을에서 ‘초록’을 ‘상상’하는 아줌마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글과 같이 한 사람을 인터뷰하여 한 조직을 소개/분석하는 글들은 자칫 한 조직의 성공과 실패의 과정과 원인을 한 두사람의 활동가에게 귀착시키는 듯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곤 한다. 그런...
    Date2008.04.04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2115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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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화폐의 모델, 대전 한밭레츠를 찾다!"

    지역화폐의 모델, 대전 한밭레츠를 찾다! 날짜 : 2008년 3월 20일(목) 만난사람 : 모래무지(상근자) 작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모래무지를 만나다 봄기운이 따뜻한 어느 봄 날 오후, 지역화폐운동으로 잘 알려진 대전의 ‘한밭레츠’를 찾았다. 잘 알...
    Date2008.03.26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1948
  42. "중촌동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 이야기"

    사람 냄새가 풍기는 마을만들기 - “중촌동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의 민양운 씨를 만나다 만난 날짜 : 2008년 3월 12일(수) 작 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얼마 전, ‘초록과 진보의 새로운 정당을 위한 집담회’에 대전여민회 민양운 ...
    Date2008.03.18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2055 file
  43. 풀뿌리운동 모범사례 : '어머니 지리산' 희망씨앗 찾기

    '어머니 지리산' 희망씨앗 찾기 <시민사회신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기획> 풀뿌리시민운동 모범사례를 찾아서 출처 : 시민사회신문 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1424 어리석은 사람도 머무르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고 하는 산이 있...
    Date2007.11.05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1774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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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부산 '희망세상' 사례-풀뿌리사례

    [2007풀뿌리응모]희망세상.hwp이 자료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매년 시상하는 풀뿌리공모상에 공모한 사례입니다. 부산의 '희망세상'이 주민들과 어린이도서관 만드릭 운동 사례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참고하세요.
    Date2007.10.23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1792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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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지역주민이 만들어가는 건강마을만들기"풀뿌리사례-인천

    [2007풀뿌리응모]지역주민이 만들어 가는 건강마을 만들기.hwp이 자료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매년 시상하는 풀뿌리공모상에 공모한 사례입니다. 인천의료생활협동조합이 주민들과 건강마을만들기 사례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참고하세요.
    Date2007.10.23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2207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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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성서공동체-담장허무는 엄마들'-풀뿌리사례

    [2007풀뿌리응모]성서공동체.hwp이 자료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매년 시상하는 풀뿌리 시민운동 사례공모에 제출된 자료입니다. (사)성서공동체FM이 제출한 이 자료 대구 성서공동체FM의 사례를 담은 사례입니다. 참고하세요.
    Date2007.10.23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1906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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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대전 어린이도서관 만들기 사례"-풀뿌리공모상

    [2007풀뿌리응모]마을마다 어린이도서관만들기를 통한 생활공동체기반구축.hwp이 자료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매년 시상하는 풀뿌리 시민운동 사례공모에 제출된 자료입니다. 대전시민사회연구소의 이름으로 제출된 이 자료는 어린이도서관 만들기를 통한 ...
    Date2007.10.23 By풀뿌리자치연구소 Reply0 Views1727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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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용인지역 이주민공동체운동"-풀뿌리공모사례

    [2007풀뿌리응모]용인지역이주민공동체와함께열어가는다문화지역공동체_한국CLC부설이주노동자인권센터.hwp이 자료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매년 시상하는 풀뿌리공모상에 선정된 이주노동자인권센터의 "용인지역 이주민공동체와 함께 열어가는 다문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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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운동 사례 - 세상 속으로 나아가려는 야마기시 공동체

풀뿌리운동 사례 - 세상 속으로 나아가려는 야마기시 공동체

세상 속으로 나아가려는 야마기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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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4 19: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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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나아가려는 야마기시 공동체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야마기시즘, 공동체와의 우연한 만남

지난 해 말까지 몇 사람과 공동으로 풀뿌리운동 활동가 교육 관련 보고서를 내기로 했었다. 시간이 지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강화도의 한적한 펜션에 처박혀 합숙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틀 정도 밤샘 작업을 하면 대충 일이 마무리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곳에 위치한 펜션을 찾아가 열심히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그 때 잠깐 펜션의 주인장이 고구마를 들고 우리가 일하는 방을 찾아왔다. 그래서 인사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주인장은 한국의 야마기시(山岸) 공동체, 즉 산안(山岸) 공동체에서 18년간 생활하였고, 현재는 야미기시 사상을 보다 잘 실천하기 위해 그 산안 공동체를 나와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분리된 일단의 공동체 식구들이 스즈까 라는 도시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모습을 자신이 새롭게 추구하는 공동체의 모델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급해 다음을 기약하며 이야기를 그 정도에서 마무리지었지만, 야마기시 공동체와 야미기시즘에 대한 기존의 관심을 좀 더 자세히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그 자리에 함께 했던 YMCA 연맹의 이필구 팀장이 얼마 후에 이 분을 인터뷰 하기로 약속을 잡아 함께 강화도를 다시 방문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매우 지대한 편이다. 이는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공동체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때로는 그 내용보다는 단지 공동체라는 이미지로만 활용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보니 공동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공동체가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무수한 논의가 20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고 회자되는 데에는 공동체가 가진 그 의미 또는 그 이미지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우리 현실에서 구체적인 공동체가 시도되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공동체는 단순한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현실태(現實態)로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자신들의 공동체를 유지해 온 사례들은 종교계의 수도 공동체를 제외하고는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우리 사회로 그 공간적 범주를 한정시키면 더욱 그렇다. 물론, 최근 생태공동체라는 지향으로 다양한 농촌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 역사는 아직 일천한 편이다.

그런데, 이러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생태공동체의 모델로 많이 거론되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가 있는데, 흔히 야마기시 공동체라고 하는 산안 공동체 바로 그 것이다. ‘산안(山岸)’은 야마기시의 일본 한자를 우리 이두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이는 산안 공동체가 일본에서 수입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게 해준다. 산안 공동체는 실제 일본의 야마기시 공동체가 한국에 수입되어 정착한 것이다.

이 글은 지난 18년간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생활했던 유상용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된 것이다. 물4764ee24cde3203c83c931f927eb5fa6.JPG론, 인터뷰의 목적은 야마기시 공동체와 야마기시즘, 그리고 최근의 야마기시 공동체의 새로운 흐름 등에 대한 관심이다. 하지만, 이 글은 야마기시즘에 대한 유씨의 최근 생각과 그로 인한 산안 공동체와의 결별, 일본 스즈까라는 도시에서 행해지는 야마기시 공동체의 실험 등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글이라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정도만으로도 풀뿌리운동에 대한 여러 시사점이 발견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인터뷰와 그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글은 인터뷰를 진행한 필자가 이해한 정도와 방향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즉, 이 글은 인터뷰에 응해주신 유상용씨와의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 사실이지만, 화자(話者) 중심이라기보다는 필자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정리한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혹시라도 이 글의 내용이 유상용씨의 입장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책임이다.

야마기시즘에 대하여

야마기시즘이란 야마기시 공동체를 처음으로 설립하고 그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야마기시 라는 사람이 생각하는 사상, 인생과 사회의 참된 모습에 대한 생각, 철학 등을 의미한다. 야마기시는 어린 시절 자신이 던진 돌에 맞은 어른이 불 같이 화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왜 화를 낼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이 의문이 후에 야마기시즘의 출발이라 할 수 있겠다. 야마기시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에 심취하였으나 분노와 대립보다는 호혜에 바탕을 둔 이상사회를 꿈꾸었다. 일본 공안에 쫓기던 시절, 한 농가의 양계장에 숨어들었다 닭들의 사회에서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발견하고 닭들을 통해 이상사회의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야마기시 공동체가 양계로 유명한 이유는 여기에서 연유된다. 그 후, 전쟁이 끝나자 1954년부터 인간 사회에 대한 실험으로 넘어갔고, 1961년에 여러 실험들이 모여서 야마기시 실현(實顯)이라는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야마기시즘은 그 사상을 실현하는 실현지로서 공동체를 제안하였고, 그 공동체를 통해 대안적인 참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인류 전체가 참된 사회로 진입하도록 하는 사상이다. 야마기시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상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야마기시즘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은 ‘무소유(無所有)’, ‘공용(共用)’, ‘일체(一體)’로 표현할 수 있다. 이는 단지 물질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음의 문제가 오히려 더욱 중요하다. 이 핵심적 사상을 조금만 더 풀어 설명해 보자.

무소유는 자연계가 원래 소유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소유라는 것은 사람들의 집착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나 사람의 상태를 자연의 것으로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소유라는 본래의 자연 상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공용(共用) 또한 자연의 원래 상태를 의미한다. 즉, 모든 사물은 본래부터 공용이었다는 것이다. 무소유는 ‘누가 가져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고, 공용은 누가 써도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소유와 공용은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갖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일체는 삼라만상 우주가 하나로 이어져있고, 본래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

야마기시즘은 바로 이러한 핵심사상을 인간 사회에도 적용시키자는 것이다. 즉, 인간사회도 인간만의 창작물이 아니라 자연에 의해 생겨난 것이므로, 인간사회도 자연의 진리와 상통하도록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야마기시의 깨달음은 진리가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진리는 적절한 방법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실현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시대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서 그것을 통해 진리와 이상을 사회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라 보았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도 하나의 계기에 불과하다. 야마기시즘의 핵심적 방법은 ‘연찬(硏鑽)’에 있다.

‘연찬(硏鑽)’이란 무엇을 고착된 것으로 단정하거나 고정함 없이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실천해 간다는 의미이다. 이는 개인이 사물과 사람, 그리고 사회 및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과제이기도 하다. 즉, 고정과 단정이 판을 치게 되면서 도그마가 강화되고 이로 인해 갈등과 대립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사회적 소통은 점차 사라진다. 소통의 소멸은 고정관념과 폐쇄적 도그마를 더욱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회에서 사람과 사물과 사회의 내면 즉 진실한 실체는 사라진다. 진리가 감추어진 사회인 것이다. 이 사회에서는 갈등과 대립이 점점 더 자신의 관성에 의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사물을 대립적으로 것으로,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배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속에서 창조적인 행위는 가능하지 않다.

야마기시즘은 사물과 사람, 그리고 사회, 세상을 기존의 사회적 통념으로 바라보지 않고, 새롭고 창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즉, 어떠한 사물에 대해서도 그 자체로서 대하고자 하며, 그 사물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연찬을 제안하고 실현하고자 한다. 따라서 야마기시즘은 결론이 아니라 사물을 보고 대하며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 한다. 연찬은 이를 제안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과 사회를 분리하지 않는다. 이 둘은 상호 깊은 연관을 맺으면서 함께 가기 때문이다.

흩어지는 공동체 - 다시 세상의 한 가운데로

야마기시 공동체는 공동체 밖 사회와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일반인들이 야마기시즘을 접하도록 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7박8일의 특강과 15일 간의 연찬학교이다. 특강이 야마기시즘에 대해 일회적으로 배우는 것이라면, 연찬학교는 야마기시즘의 핵심인 연찬을 계속해서 습득하는 과정이다. 15일 간의 연찬학교를 통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단정하지 않고 수렴해서 실행한 후 다시 의견을 모아 실행하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한다.

한국에 야마기시즘과 야마기시 공동체가 수입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새마을운동을 준비하던 박정희 정권 시절, 모범사례를 배우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 등이 외국 연수를 다니면서이다. 그러한 선진 연수지 중 하나가 일본 야마기시 공동체였다. 이 연수단 중 기능이 아닌 야마기시즘이라는 철학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한국에 돌아와서 양계기술 보급과 특강을 하였고, 야마기시 공동체를 만들다 실패하는 등의 연속적인 과정을 거쳤다. 그러던 중 1984년에 세 가구가 산안에서 야마기시 공동체를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늦게나마 야마기시 공동체가 우리 사회에 안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양계기술 보급이라는 경험이 크게 작용을 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산안 공동체에 위기가 닥쳤는데, 당시 두 가구만 남고 모두 공동체를 떠나가는 등 여러 우역곡절을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산안 공동체가 다시 활발히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에 학생운동을 경험한 80년대 학번, 후에 소위 386세대라 불리우는 이들이 산안 공동체에 대거 유입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다시 10년이 흐른 후 공동체 식구들 중 일부가 다시 공동체를 떠나는 등으로 부침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는 산안 공동체가 아직도 여러 부침을 겪는 과정에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공동체가 그러한 부침이 없다면 오히려 연찬의 의미인 고착・고정화의 함정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부침의 과정을 꼭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산안 공동체가 이러한 부침을 겪는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유씨는 초창기 산안 공동체를 건설하고, 1990년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공동체를 지키던 이들이 초창기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새로 유입된 이들과 입장 차이가 점점 더 커졌기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유씨가 최근 산안 공동체를 떠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입장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1년 동안 집중적인 연찬을 했지만 그 차이가 해소되지 않았다. 이에 유씨는 스스로 생각하는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습을 만들자고 결정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은 단지 유씨 개인의 결단만이 아니다. 유씨의 생각에 동의하는 비슷한 또래의 몇 가구도 곧 유씨와 행보를 같이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입장 차이의 핵심은 실현지로서의 공동체에 대한 생각에 있다. 유씨 등의 생각은 연찬이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안 공동체의 외부 사회와 교류가 매우 소극적이라는 것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즉, 야마기시즘은 사회적으로 야마기시가 생각한 이상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 진리가 충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외부 사회와 보다 밀접한 관련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이는 공동체에 대한 다른 접근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즉, 야마기시즘을 실현하는 것은 현재 만들어져 있는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식구들이 우리 사회의 각 부분에 들어가 연찬을 행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실현지(산안 공동체) 하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 실현지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상태에서도 그것이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현지에 안주하기보다는 사회 속으로 들어가 연찬을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시흥시 복음자리 마을에서 유지되던 복음자리 공동체를 ‘흩어지는 공동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박재천의 생각이나, 정토회의 ‘만인결사’와도 비슷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야마기시 공동체 실험 - 일본 스즈까 시 공동체

이러한 새로운 시도와 흐름은 한국의 산안 공동체에서만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고정된 실현지를 나와 보다 사회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연찬을 통한 이상사회 건설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은 일본 야마기시 공동체의 최근 흐름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후반 공동체 연찬회에서 도시에서도 이러한 실험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제안이 큰 힘을 받게 된 것은 야마기시의 글이 새롭게 공개된 데에 영향을 받았다. 야마기시는 생전에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담은 여러 글을 남겼는데, 이 글은 여러 지인들에게 뿔뿔이 흩어져서 남겨졌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야마기시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이들은 없었다. 그런데, 야마기시의 새로운 글이 공개되면서 야마기시의 사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겨났다. 즉, 야마기시는 실현지 자체를 만들고 발전시키고자 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이상적인 사회 건설을 지향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30 가구 전후가 도쿄 혹은 인근의 소도시로 나갔는데, 그 당시 이들의 구호는 ‘마을에서 거리로’라는 것이었다. 당시의 이 실험은 도시에서 살다가 휴일에는 실현지로 다시 돌아오는 형태와 도시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하는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 실험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도시에서의 새로운 시도가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그 구체적인 방식을 정하기 못한 채 당위성과 필요에 의해 그리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야마기시 사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실현지 고수파와 새롭게 사회 속으로 더욱 들어가야 한다는 파로 분리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는 대립적 분리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 단지, 현재 시점에서 중요한 개인적 삶의 방식과 사회적 실현방식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이에 2005년 경에 50가구 정도가 다시 실현지를 떠나 스즈까 시라는 도시로 나가 새로운 공동체 실험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도시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면서, 그동안 자신들이 연찬의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깨달음은 ‘연찬’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었다. 연찬은 사물을 고정 또는 단정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야마기시 공동체에서는 연찬 그 자체가 이미 고정・단정된 구조로 고착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연찬’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자는 제안도 있었다. 어차피 연찬이 형식이라면, 굳이 연찬이라는 독특한 명칭을 고수할 필요도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연찬학교가 가르쳐주는 깨달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겨나면서 시작되었다. 기존 연찬학교가 가르쳐 주는 깨달음은 ‘내가 보고 있는 사물을 단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내 생각이 사실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깨달음은 바깥의 사물이 그 자체가 사실이라는 것도 전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불교의 색즉시공(色卽是空)과 매우 유사한 깨달음이다. 색과 공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색을 색이라 하는 것도 진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실현지가 있다’ 라는 것을 인정하면 그것이 너무 소중한 것이 되어버리는 고정・단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정・단정이 실현지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집착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후 스즈까 시 공동체는 기존 실현지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 새로운 방식이란 기존의 공동체조차도 계속 있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의 구조를 만들려고 하지 않게 되었다. 구성원들 중 누구라도 어떤 모임에 나가고 싶지 않으면,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모임을 만들거나 참여하고 싶으면 그리 한다. 따라서 한 번 공동체를 만들면 그것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스즈까 시에서는 2005년경부터 매우 다양한 실험들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다양한 실험들의 핵심은 마찬가지로 연찬에 있었다. 연찬을 어떻게 일상 속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화두였다. 연찬의 방식도 인생을 알기 위한 연찬회, 자신을 알기 위한 연찬회, 사회를 알기 위한 연찬회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야마기시 공동체는 크게 네 가지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야마기시 회, 실현지, 시험장, 연찬학교가 그것이다. 야마기시 회는 야마기시즘을 실천하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실현지는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실현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실현지는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야마기시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왔다. 시험장은 연구와 실험을 통해 이상적 인간의 생활양식 및 사회적 실현방법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연찬학교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연찬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교육・훈련 받는 현장이다. 이 네 가지는 하나의 순환구조를 이룬다.

그런데, 실현지와 시험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스즈까 시로 이주한 이들과 같은 새로운 야마기시즘 해석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인식의 차이를 만들었다. 즉, 기존의 실현지 자체가 하나의 시험장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야마기시 생존 당시에는 사람들을 교육해서 이들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 연찬 공동체를 만들려는 생각에 시험장을 만들었으나, 사후 시험장 자체가 실현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스즈까로 이주한 사람들은 연찬으로 네트워킹 하는 사람들(KNI-Kensan Network International)이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였다. 이들에게 실현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연찬 커뮤니티이다. 그밖에 연찬과학연구소가 있고, 연찬 라이프 센터가 연찬학교의 역할을 한다.

연찬 커뮤티니 중 일단의 그룹(17명 정도)은 무소유를 중심으로 매우 긴밀한 생활공동체로서의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수입을 모두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만 공유한다. 그리고 이 결합은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이다. 따라서 부부라 하더라도 남편만 이 무소유 공동체에 가입할 수 있으며, 수입 공유는 부부가 합의하여 남편의 몫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식으로 다양한 결합 정도와 형태로 다양한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스즈까 시의 연찬 커뮤니티는 100가구 정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결합의 정도는 각자가 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연찬 라이프 센터는 연찬학교와 같이 연차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연찬을 지속적으로 교육・훈련하는 기능을 하는데, 도시에서 새롭게 그 형태가 바뀌었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기존의 직장을 그대로 다니면서, 집에서 숙식을 하지 않고 일정 기간 동안 숙식을 센터에서 하면서 연찬 수련을 받는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면서, 수유리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가 떠올랐다. 이들도 스즈까 시의 연찬 커뮤니티와 비슷한 형태의 공동체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도 스즈까 시의 연찬 커뮤니티 처럼 공동체 모임이 있고, 그 구성원 중 일부는 수입을 공유하는 긴밀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들은 각자 자기가 원하는 모임을 만들고 이를 공동체 식구들과 공유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은 그 모임을 자기 공동체 구성원들로만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도 개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는 스즈까 시의 연찬 커뮤니티보다 개방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더욱 발전해 있는 형태가 아닌가 한다.

현재 스즈까 시의 연찬 커뮤니티는 수익사업으로 도시락 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체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커뮤티니 구성원들의 생계 및 공동으로 생산활동에 종사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이 중 도시락 사업은 안정적으로 확장되고 있으며(3호점까지 냄), 이 성공을 통해 근교농업으로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즉, 직접 재배한 것을 도시락 재료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문제와 해답은 사람과 사회 모두에게 있다

일본의 초기 야마기시 공동체는 1970년대까지 농민들 중심이었다. 그 후 전공투 세대인 학생운동 출신들이 대거 들어왔고, 이들이 야마기시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주역이 되었다. 그 후에는 야마기시 공동체의 연찬으로부터 감명을 받은 이들이 대안적 교육에 관심을 갖고 야마기시 공동체에 많이 들어왔다. 모든 공동체가 그러하듯, 이런 과정을 통해 야마기시 공동체 내에서도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였고, 그 원인은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야마기시는 마음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를 동시에 고려하였다. 특정 사회 또는 집단의 시스템이 잘 마련되어 있으면, 일정 기간 동안에는 사람들 개인의 문제가 특별히 불거지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이 그 시스템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 시스템 자체가 하나의 구조로 고착화되고, 사람들도 그에 따라 고착화되거나 그와 정반대로 그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시스템과 사람들 각 개인의 에고는 동시에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지도력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지도력은 소수가 다수를 이끌어 나가는 힘을 의미한다. 하지만, 야마기즘에서는 이를 피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다. 즉, 지도자가 권력화 되지 않고 다른 이들의 결정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방법, 그러한 지혜로운 길을 터줄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탐구가 있어왔다. 이는 결국 시스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그에 참여하는 사람의 마음이 함께 성숙하고 발전해야 가능하다.

따라서 사회의 시스템을 이상적으로 만들어가는 것과 더불어 인간들의 내적 연찬을 통해 이상적 질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야마기시즘은 연찬을 통해 개인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성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현지 또는 조직은 없어질 수 있지만, 그보다는 사람이 성숙하게 남아있도록 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이들이 또 다른 실현지(조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공동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상태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꽃자리 펜션

현재 유씨는 강화도에서 ‘우리 꽃자리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유씨 가족의 생계를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이 공간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모습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사랑방과 같은 구실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1월 중순에 그러한 취지에 동의하는 이들이 우리 꽂자리 펜션에 모여 4박5일 간의 연찬회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우리 꽃자리 펜션에 대한 홍보를 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펜션 그 자체도 충분히 추천할 만하기 때문이다. 우리 꽃자리 펜션은 강화도에서도 깊숙한 산 속에 위치해 있어, 매우 조용하고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물론, 바닷가도 조금만 나가면 만날 수 있다. 그 곳에 가면 친절한 미소로 사람들을 맞는 주인장을 만날 수 있다. 방문자가 원한다면, 함께 산책을 하거나 고구마 등을 먹으며 공동체 또는 야마기시즘 또는 새로운 이상적 사회의 모습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83dc8d45a0be825d33d82c938449d10e.JPG 것이다.

그리고 조금만 시간을 보내면 주인장의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산안 공동체에서 만났다고 한다. 조용하지만 깊은 미소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그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주 귀여운 강아지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운이 더 좋다면, 건강하게 뛰어노는 주인장의 귀여운 두 아들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꽃자리 펜션: www.cochari.com, 010-3362-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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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스

2010.01.18 14:27:52

*.77.245.198



의도하지 않은 첫 만남이 이렇게 훌륭한 내용을 남기게 했군요^^ 야마기시가 생각보다 꽤 오랜 역사를 가졌네요. 양계장과의 인연도 재밌고, 무관해 보이는 우리나라 새마을운동과도 인연이 있네요^^ 스즈까...풀뿌리활동가들이 여유를 갖고 이곳을 찾아가봐도 좋을 듯 싶습니다. 일본에선 우익이 판을 쳐도, 이런 풀뿌리들의 저력은 우리보다 더 넓고 깊게 뿌리박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일 듯...

행복회야마기시회 | 야마기시즘 Yamagis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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研鑽科学 山岸巳代蔵 思想 研究 ヤマギシズムが正しく理解され、凡ての人の心に届くことを希っ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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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ever Happened to Yamagishi? Idealism, Nature and the Environment in Japan's Cooperative Agrarian Community | 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

Whatever Happened to Yamagishi? Idealism, Nature and the Environment in Japan's Cooperative Agrarian Community | 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





Whatever Happened to Yamagishi? Idealism, Nature and the Environment in Japan's Cooperative Agrarian Community

John Spiri



February 1, 2008

Volume 6 | Issue 2 | Number 0

Whatever Happened to Yamagishi?

Idealism, Nature and the Environment in Japan’s Cooperative Agrarian Community



John Spiri



Meet Yamagishi





Living quarters at the main Yamagishi Toyosato in Mie prefecture



The main task of Ikuhara Hideyuki’s full-time job is feeding the pigs at Yamagishi. However, he gets no salary for his efforts. In fact, he quit his job developing hi-tech industry developing hi-vision televisions

and gave up all his possessions for this lifestyle—and he couldn’t be happier.





Hideyuki Ikuhara quit his hi-tech job to be an unpaid pig farmer at Yamagishi



Welcome to Yamagishi, Japan’s most famous commune, in Toyosato, Mie Prefecture. The Yamagishi quest for happiness takes place in rural communities called jikkenchi—roughly meaning “a place to realize (Yamagishi) principles”—where people live with a decidedly anti-capitalist twist: no money and minimal possessions.





Seto Chinami, Yamagishi food preparer, believes Yamagishism leads to true happiness



“When I was a high school student, a teacher talked about alternative societies, based on true communism,” explained Seto Chinami, who prepares food at Yamagishi. “Years later I remembered his talk when I met a Yamagishi vendor. Impressed that people were putting their ideals into action, I gave Yamagishi a try.” Despite the fact that it eventually led to separation from her husband, she stayed on, and still believes that the Yamagishi way leads to true happiness.

Yamagishi History



In 1956 the founder Yamagishi Miyozo and original members pooled all their personal assets with the hope of realizing a spiritually superior society where members could attain happiness and change society. From the start their vision was an amalgam of organic agriculture, socialism, egalitarianism, and spirituality without religion. Inspiration came to Yamagishi the founder in the unlikeliest of places.

“Yamagishi had been a rebellious youth and under surveillance by the wartime Imperial secret police, “Ernest Callenbach writes. “On the run, he took refuge in a chicken house, where he passed the time observing what made chickens happy.” [1]



Members believe agricultural work and a simple lifestyle supported by other community members will satisfy all their needs, including financial needs. Indeed, if members are sick, Yamagishi pays the medical bills; if members wish to purchase something, and others agree, they purchase it. Yamagishi will even pay university tuitions—if the members agree.



Egalitarianism, as opposed to authoritarianism, is a major tenet of the Yamagishi movement. There are no bosses. Rather, each jikkenchi elects a number of new committee members. Disputes are settled by consensus. Ikuhara told of a recent problem with others on the pig farming team.



“One man had written a two week holiday on the calendar over New Year’s. The next day a coworker expressed his dissatisfaction. Shouldn’t he have consulted with us before claiming such a lengthy holiday? We agreed, so tomorrow we’ll go to speak with him about this matter.”



As one might imagine about a group living so counter to the dominant culture’s materialistic ways, their practices and philosophy have invited criticism over the years, and worse.



The Turbulent 1990s



Joining Yamagishi takes an enormous leap of faith. Still today, when members join they “invest” in the community, effectually forfeiting their personal assets. Yamagishi is, after all, a possession-less society. According to Katayama Hiroko, a Yamagishi spokeswoman, the amount they “invest” is determined through consultation, taking the new member’s life circumstances into consideration. Some may keep half their assets. Others may simply understate their assets; Yamagishi conducts no search of financial records. Under these circumstances a woman who later quit and sued Yamagishi “invested” a whopping 250,000,000 yen.



The litigant claimed she was brainwashed during Yamagishi’s training sessions. Yamagishi offers an eight day course open to the public called Tokkoh. During the session, which has no teacher, participants “share their ideology, worldview, and wisdom in order to investigate the best way to live,” according to Yamagishi promotional material. For those who complete that course and are seriously considering joining, there is a two week Kensan seminar which is more experiential than discussion-based.



Yamagishi actually rejected the litigant—twice—and finally accepted her onto a jikkenchi after her assurances that she believed in Yamagishi principles; she had originally cited struggles with her daughter as a reason for wanting to join.



In court, her claim that she was brainwashed was rejected, but she still won a settlement. Despite having signed a contract that released her claims to her assets, the court ordered Yamagishi to return approximately 50% of her original investment. She also claimed her disillusionment stemmed from the “extravagant” lifestyles of the Yamagishi leaders, which the court rejected as well, according to Katayama.



Katayama also rejects the notion that Yamagishi leaders live luxurious lifestyles and points out that they routinely return a portion of the “investment” to those who want to leave the jikkenchi, and even pay off the debts of new members who are broke. Thus, they don’t view the court’s ruling as a defeat.

For much of the 1990s Yamagishi had to deal with similar lawsuits brought about by a total of 31 disillusioned ex-members who, after quitting, demanded their money back. All litigants received some return of their original “investment,” with the average being 50%. The court cases dragged on for years hurting recruitment and its country-wide image.



The Yamagishi image has probably always been suspect in the eyes of the average Japanese. In the mid to late 1990s the mass media, and television specials in particular, highlighted perceived flaws in their child-raising methods. Kids would work in fields to gain experience with agriculture then head to a local public school—often without breakfast due to Yamagishi’s policy of eating only lunch and dinner. The fact that some kids got hungry before their 1pm school lunch, and others fell asleep, brought sharp criticism from mainstream society.



“Yamagishi is always looking for the best way to do things,” Sakai Kazuki an educator at Yamagishi explained, “and we frequently amend our practices. In that case there were some legitimate flaws in our approach, which we’ve corrected. Kids now only occasionally work in the fields, and we make sure they eat breakfast if they need to.” Sakai added that it’s ironic that now local schools bring local kids to Yamagishi to experience farm life while Yamagishi children have no set farming chores.



At least some of the criticism seems to spill into sensationalism, or vindictiveness. In a February 1, 2001 Japan Times article the headline blares, “Commune ordered to return ‘brainwashed’ woman’s cash” [2] –yet Katayama emphasizes that the court rejected the claim she was brainwashed in any way. Katayama also denies that the court upheld her “realization” that she “was simply a source of money and free labor,” as the article states. The article also fails to point out that Yamagishi rejected the woman twice, which sheds considerable doubt on the implication that they just wanted to get her money.



Raising Children





Yamagishi youth give a spirited taiko drumming performance



Even though Yamagishi has abolished farm chores for children, they still highly value experiential learning. A basic policy is “not to teach or bring up, but to learn or grow by students themselves.” Living on farmland and among farm animals gives children the foundation they need, it is believed.



Like their views of money and possessions, some ideas related to raising children are unorthodox by Japanese, and indeed, most other standards. When kids turn ten years old they generally move out of their parents’ apartment on the jikkenchi and into a dormitory with other Yamagishi kids. Parents maintain intimate ties, but from then on children are more a part of the community than an individual family. Boarding schools in Britain might work in a similar way, but children are still thought to primarily belong to the family rather than the school community. At Yamagishi, rather than direct parental authority, “all the adults are responsible for seeing to the welfare and safety of the children.” [3] Rather than idyllic, the results are, like the results of mainstream society, mixed.



“My three kids, who are now all grown, are all choosing to live in Tokyo rather than the jikkenchi,” Ikuhara confided. When asked whether he thought they had regrets or misgivings about their Yamagishi upbringing, he figured they did. “But they laugh about it. I think their feeling has less to do with being at Yamagishi and more to do with being children. Isn’t it common for kids to have misgivings as well as positive memories? I know I do about my childhood.”



Indeed, John Small writing for Kansai Time Out magazine observed, “At the Kumamoto Jikkenchi, one of the smaller communities with about 60 members, the children played with a lively curiosity showing an impressive degree of knowledge of the natural world.” [4] At the Mie jikkenchi the youth were respectful and active in various clubs including taiko, Japanese drumming.



Working at Yamagishi



Living with much fainter forces of parental authority is not the only way Yamagishi members live a more communal than authoritarian lifestyle. At the workplace there is no hierarchy to speak of. Rather, decisions are made after discussion via the “Yamagishi process”: proposal to dialog to discussion to agreement to reexamination. It took Ikuhara a while to make the adjustment from his job in the hi-tech industry to Yamagishi.



“The only negative point I’ve experienced since coming here,” he explained, “was overwork when I first arrived.” There was no boss or set working hours, he went on to explain, so he had to learn to work in harmony with his needs and the community’s. Since then he’s learned to rest when tired—a revolutionary idea for Japan’s overworked.



Seto, who is presently in charge of food preparation, emphasized consultation. “It’s my job to consult with cooks and others before deciding the menu.” While group consensus may be the preferred decision making method for all Japanese, at Yamagishi, it rules.



Yamagishi hires a number of outsiders to do agricultural work. At Toyosato alone, the main jikkenchi in Mie prefecture, some 140 outside laborers are employed. Of those, 22 are foreigners. The jobs, which pay 1,000 yen per hour for both Japanese and foreign laborers, have attracted a Brazilian-Japanese labor force, which generally perceives it as preferable to factory work (which has bosses who can be demanding if not petty). Produce, which is mostly organic, is distributed throughout Japan. Eggs are the main Yamagishi product. Some of it is quite upscale, like the cherry tomatoes which fetch a handsome price in Japan’s trendy supermarket sections.





Pounding rice into mochi at Yamagishi



Yamagishi and the Environment





Yamagishi feed for farm animals with discarded food like strawberry “Pocky” snacks shown here



Yamagishi is often compared to the Israeli kibbutz, or the “back to earth” communal movements of the 1960s. Each Yamagishi jikkenchi is an ecologically sound alternative to a materialistic society: Yamagishi produce is mostly organic; waste water is combined with pig urine to treat seedlings; recycling is maximized while consumerism minimized.



“We take the straw leftover from the rice harvest and feed the cows,” Naruse Yukishige, a rice farmer at Yamagishi said. “Then the manure becomes fertilizer for the rice fields. And we’re always looking for ways to refine the process.”



Callenbach, the author of ecological science fiction novels Ecotopia and Ecotopia Emerging, highly praised Yamagishi’s environmentalism after visiting the Mie jikkenchi and writing about them for Communities magazine. “Yamagishism thus may be only a small, bright, improbable lighthouse, shining out from a rocky coast on which our industrial society is about to go aground,” he wrote. “Still, it demonstrates that an equalitarian, secular, democratic social order is possible, and sustainable ecologically, and it thus deserves to be studied very carefully.” [5] His only criticism stemmed from Yamagishi’s reliance on fossil fuels, especially for driving. “I was shocked,” he wrote, “to see a parking area with about 50 vehicles, and people use them quite a lot.” [6]



Despite living a virtual zero-waste ecological ideal, environmentalism is not a tenet and members seem to steer clear of any ‘save the earth’ sort of discussion. Rather, the application of scientific principles in the quest for happiness is the core ideal, and living in harmony with the environment happens to satisfy that ideal.



Science and Spirituality



Yamagishi Miyozo always advised members to make religion “purely a personal matter.” A Yamagishi brochure states, "It is possible to change ways of thought without reliance upon God or Buddha. It is possible to do so scientifically, utilizing the capabilities of the human mind alone."



A manifestation of that philosophy is the aforementioned “Yamagishi process,” which relies on observation and consensus. A rigorous questioning of what is right and true permeates the jikkenchi. This scientific approach to every aspect of life attracted Nagase Kunio some 33 years ago. “Here we strive to figure what’s real, and what’s the best way of doing things,” he said, adding that personal happiness will lead to societal happiness.



Given Yamagishi’s dedication to scientific principles, it’s ironic that another common criticism Japanese lay on Yamagishi is that the communities are too religious. There are in fact no religious teachings or practices, either from the founder or from established religions. Their idealism, however, does have a spiritual flavor. The aim to realize a happiness that can spread throughout humanity certainly implies a moral foundation. And alcohol and tobacco, while allowed, seem relegated to relative obscurity.



“Religion/Spirituality is and isn’t related,” longtime member Miyachi Masayuki said. “We want to change society. We want everyone to realize happiness.” This is, of course, the ultimate aim of Buddhism and other religions, but the means is a possessionless community of individuals practicing sustainable agriculture rather than ritual or prescribed spiritual practices.



Yamagishi Globally



Several jikkenchi exist overseas in Korea, Thailand, Switzerland, Australia and the United States. In particular, Katayama spoke of the success of the Korea-based Yamagishi which includes a number of Korean members. In contrast, members of the Yamagishi in Thailand and the U.S. are all Japan-born, and the jikkenchi are extremely small. “Many Thai like to work and live on the jikkenchi, but they are not actually members,” Katayama said.



By commune standards, Yamagishi’s 50 years of existence is an admirable achievement, probably second longest in Japan after “Atarashiki-mura” (New Village) in Miyazaki prefecture, which opened in 1918.



While Toyosato in Mie prefecture is by far the largest jikkenchi, with over 400 members, some 32 other jikkenchi exist all over Japan with approximately 800 other members. In addition, Yamagishi sponsors a “Children’s Paradise Village” three times a year. It’s promoted as giving kids the chance to “get together as one-body” and draw out their natural abilities. Over 300 children from outside, along with over 100 Yamagishi children, participated last year to experience nature and develop relationships by communal living.



However, several jikkenchi have closed in recent years and the number of total members decreased during the lawsuit years. Is that indicative of the beginning of the end for Yamagishi? “Certainly not,” Nagase declared. “New members will start coming again. I’m sure of it.”



For more details about the eight day Tokkoh course , Children’s Paradise Village, or Yamagishi in general, contact Ms. Hiroko Katayama in English or Japanese at katayama_h@mula-net.com.



Notes



[1] Ernest Callenbach (2006). “Ecotopia in Japan?” Communities, #132, Fall 2006, p. 44.

[2] Japan Times (2001).

[3] Kansai Time Out (1999).

[4] ibid

[5] Ernest Callenbach (2006). “Ecotopia in Japan?” Communities, #132, Fall 2006, p. 45.

[6] ibid





John Spiri is an Associate Professor and writer at Tokyo University of Agriculture and Technology.



This is a revised and expanded version of an article that originally appeared in The Japan Times.  Posted at Japan Focus on February 15, 2008.

Whatever Happened to Yamagishi? Idealism, Nature and the Environment in Japan's Cooperative Agrarian Community | 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

Whatever Happened to Yamagishi? Idealism, Nature and the Environment in Japan's Cooperative Agrarian Community | 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



Whatever Happened to Yamagishi? Idealism, Nature and the Environment in Japan's Cooperative Agrarian Community

February 1, 2008
Volume 6 | Issue 2 | Number 0
Whatever Happened to Yamagishi?
Idealism, Nature and the Environment in Japan’s Cooperative Agrarian Community

John Spiri


Meet Yamagishi

Living quarters at the main Yamagishi Toyosato in Mie prefecture

The main task of Ikuhara Hideyuki’s full-time job is feeding the pigs at Yamagishi. However, he gets no salary for his efforts. In fact, he quit his job developing hi-tech industry developing hi-vision televisions
and gave up all his possessions for this lifestyle—and he couldn’t be happier.

Hideyuki Ikuhara quit his hi-tech job to be an unpaid pig farmer at Yamagishi

Welcome to Yamagishi, Japan’s most famous commune, in Toyosato, Mie Prefecture. The Yamagishi quest for happiness takes place in rural communities called jikkenchi—roughly meaning “a place to realize (Yamagishi) principles”—where people live with a decidedly anti-capitalist twist: no money and minimal possessions.

Seto Chinami, Yamagishi food preparer, believes Yamagishism leads to true happiness

“When I was a high school student, a teacher talked about alternative societies, based on true communism,” explained Seto Chinami, who prepares food at Yamagishi. “Years later I remembered his talk when I met a Yamagishi vendor. Impressed that people were putting their ideals into action, I gave Yamagishi a try.” Despite the fact that it eventually led to separation from her husband, she stayed on, and still believes that the Yamagishi way leads to true happiness.
Yamagishi History

In 1956 the founder Yamagishi Miyozo and original members pooled all their personal assets with the hope of realizing a spiritually superior society where members could attain happiness and change society. From the start their vision was an amalgam of organic agriculture, socialism, egalitarianism, and spirituality without religion. Inspiration came to Yamagishi the founder in the unlikeliest of places.
“Yamagishi had been a rebellious youth and under surveillance by the wartime Imperial secret police, “Ernest Callenbach writes. “On the run, he took refuge in a chicken house, where he passed the time observing what made chickens happy.” [1]

Members believe agricultural work and a simple lifestyle supported by other community members will satisfy all their needs, including financial needs. Indeed, if members are sick, Yamagishi pays the medical bills; if members wish to purchase something, and others agree, they purchase it. Yamagishi will even pay university tuitions—if the members agree.

Egalitarianism, as opposed to authoritarianism, is a major tenet of the Yamagishi movement. There are no bosses. Rather, each jikkenchi elects a number of new committee members. Disputes are settled by consensus. Ikuhara told of a recent problem with others on the pig farming team.

“One man had written a two week holiday on the calendar over New Year’s. The next day a coworker expressed his dissatisfaction. Shouldn’t he have consulted with us before claiming such a lengthy holiday? We agreed, so tomorrow we’ll go to speak with him about this matter.”

As one might imagine about a group living so counter to the dominant culture’s materialistic ways, their practices and philosophy have invited criticism over the years, and worse.

The Turbulent 1990s
Joining Yamagishi takes an enormous leap of faith. Still today, when members join they “invest” in the community, effectually forfeiting their personal assets. Yamagishi is, after all, a possession-less society. According to Katayama Hiroko, a Yamagishi spokeswoman, the amount they “invest” is determined through consultation, taking the new member’s life circumstances into consideration. Some may keep half their assets. Others may simply understate their assets; Yamagishi conducts no search of financial records. Under these circumstances a woman who later quit and sued Yamagishi “invested” a whopping 250,000,000 yen.

The litigant claimed she was brainwashed during Yamagishi’s training sessions. Yamagishi offers an eight day course open to the public called Tokkoh. During the session, which has no teacher, participants “share their ideology, worldview, and wisdom in order to investigate the best way to live,” according to Yamagishi promotional material. For those who complete that course and are seriously considering joining, there is a two week Kensan seminar which is more experiential than discussion-based.

Yamagishi actually rejected the litigant—twice—and finally accepted her onto a jikkenchi after her assurances that she believed in Yamagishi principles; she had originally cited struggles with her daughter as a reason for wanting to join.

In court, her claim that she was brainwashed was rejected, but she still won a settlement. Despite having signed a contract that released her claims to her assets, the court ordered Yamagishi to return approximately 50% of her original investment. She also claimed her disillusionment stemmed from the “extravagant” lifestyles of the Yamagishi leaders, which the court rejected as well, according to Katayama.

Katayama also rejects the notion that Yamagishi leaders live luxurious lifestyles and points out that they routinely return a portion of the “investment” to those who want to leave the jikkenchi, and even pay off the debts of new members who are broke. Thus, they don’t view the court’s ruling as a defeat.
For much of the 1990s Yamagishi had to deal with similar lawsuits brought about by a total of 31 disillusioned ex-members who, after quitting, demanded their money back. All litigants received some return of their original “investment,” with the average being 50%. The court cases dragged on for years hurting recruitment and its country-wide image.

The Yamagishi image has probably always been suspect in the eyes of the average Japanese. In the mid to late 1990s the mass media, and television specials in particular, highlighted perceived flaws in their child-raising methods. Kids would work in fields to gain experience with agriculture then head to a local public school—often without breakfast due to Yamagishi’s policy of eating only lunch and dinner. The fact that some kids got hungry before their 1pm school lunch, and others fell asleep, brought sharp criticism from mainstream society.

“Yamagishi is always looking for the best way to do things,” Sakai Kazuki an educator at Yamagishi explained, “and we frequently amend our practices. In that case there were some legitimate flaws in our approach, which we’ve corrected. Kids now only occasionally work in the fields, and we make sure they eat breakfast if they need to.” Sakai added that it’s ironic that now local schools bring local kids to Yamagishi to experience farm life while Yamagishi children have no set farming chores.

At least some of the criticism seems to spill into sensationalism, or vindictiveness. In a February 1, 2001 Japan Times article the headline blares, “Commune ordered to return ‘brainwashed’ woman’s cash” [2] –yet Katayama emphasizes that the court rejected the claim she was brainwashed in any way. Katayama also denies that the court upheld her “realization” that she “was simply a source of money and free labor,” as the article states. The article also fails to point out that Yamagishi rejected the woman twice, which sheds considerable doubt on the implication that they just wanted to get her money.

Raising Children
Yamagishi youth give a spirited taiko drumming performance

Even though Yamagishi has abolished farm chores for children, they still highly value experiential learning. A basic policy is “not to teach or bring up, but to learn or grow by students themselves.” Living on farmland and among farm animals gives children the foundation they need, it is believed.

Like their views of money and possessions, some ideas related to raising children are unorthodox by Japanese, and indeed, most other standards. When kids turn ten years old they generally move out of their parents’ apartment on the jikkenchi and into a dormitory with other Yamagishi kids. Parents maintain intimate ties, but from then on children are more a part of the community than an individual family. Boarding schools in Britain might work in a similar way, but children are still thought to primarily belong to the family rather than the school community. At Yamagishi, rather than direct parental authority, “all the adults are responsible for seeing to the welfare and safety of the children.” [3] Rather than idyllic, the results are, like the results of mainstream society, mixed.

“My three kids, who are now all grown, are all choosing to live in Tokyo rather than the jikkenchi,” Ikuhara confided. When asked whether he thought they had regrets or misgivings about their Yamagishi upbringing, he figured they did. “But they laugh about it. I think their feeling has less to do with being at Yamagishi and more to do with being children. Isn’t it common for kids to have misgivings as well as positive memories? I know I do about my childhood.”

Indeed, John Small writing for Kansai Time Out magazine observed, “At the Kumamoto Jikkenchi, one of the smaller communities with about 60 members, the children played with a lively curiosity showing an impressive degree of knowledge of the natural world.” [4] At the Mie jikkenchi the youth were respectful and active in various clubs including taiko, Japanese drumming.

Working at Yamagishi
Living with much fainter forces of parental authority is not the only way Yamagishi members live a more communal than authoritarian lifestyle. At the workplace there is no hierarchy to speak of. Rather, decisions are made after discussion via the “Yamagishi process”: proposal to dialog to discussion to agreement to reexamination. It took Ikuhara a while to make the adjustment from his job in the hi-tech industry to Yamagishi.

“The only negative point I’ve experienced since coming here,” he explained, “was overwork when I first arrived.” There was no boss or set working hours, he went on to explain, so he had to learn to work in harmony with his needs and the community’s. Since then he’s learned to rest when tired—a revolutionary idea for Japan’s overworked.

Seto, who is presently in charge of food preparation, emphasized consultation. “It’s my job to consult with cooks and others before deciding the menu.” While group consensus may be the preferred decision making method for all Japanese, at Yamagishi, it rules.

Yamagishi hires a number of outsiders to do agricultural work. At Toyosato alone, the main jikkenchi in Mie prefecture, some 140 outside laborers are employed. Of those, 22 are foreigners. The jobs, which pay 1,000 yen per hour for both Japanese and foreign laborers, have attracted a Brazilian-Japanese labor force, which generally perceives it as preferable to factory work (which has bosses who can be demanding if not petty). Produce, which is mostly organic, is distributed throughout Japan. Eggs are the main Yamagishi product. Some of it is quite upscale, like the cherry tomatoes which fetch a handsome price in Japan’s trendy supermarket sections.


Pounding rice into mochi at Yamagishi

Yamagishi and the Environment
Yamagishi feed for farm animals with discarded food like strawberry “Pocky” snacks shown here

Yamagishi is often compared to the Israeli kibbutz, or the “back to earth” communal movements of the 1960s. Each Yamagishi jikkenchi is an ecologically sound alternative to a materialistic society: Yamagishi produce is mostly organic; waste water is combined with pig urine to treat seedlings; recycling is maximized while consumerism minimized.

“We take the straw leftover from the rice harvest and feed the cows,” Naruse Yukishige, a rice farmer at Yamagishi said. “Then the manure becomes fertilizer for the rice fields. And we’re always looking for ways to refine the process.”

Callenbach, the author of ecological science fiction novels Ecotopia and Ecotopia Emerging, highly praised Yamagishi’s environmentalism after visiting the Mie jikkenchi and writing about them for Communities magazine. “Yamagishism thus may be only a small, bright, improbable lighthouse, shining out from a rocky coast on which our industrial society is about to go aground,” he wrote. “Still, it demonstrates that an equalitarian, secular, democratic social order is possible, and sustainable ecologically, and it thus deserves to be studied very carefully.” [5] His only criticism stemmed from Yamagishi’s reliance on fossil fuels, especially for driving. “I was shocked,” he wrote, “to see a parking area with about 50 vehicles, and people use them quite a lot.” [6]

Despite living a virtual zero-waste ecological ideal, environmentalism is not a tenet and members seem to steer clear of any ‘save the earth’ sort of discussion. Rather, the application of scientific principles in the quest for happiness is the core ideal, and living in harmony with the environment happens to satisfy that ideal.

Science and Spirituality
Yamagishi Miyozo always advised members to make religion “purely a personal matter.” A Yamagishi brochure states, "It is possible to change ways of thought without reliance upon God or Buddha. It is possible to do so scientifically, utilizing the capabilities of the human mind alone."

A manifestation of that philosophy is the aforementioned “Yamagishi process,” which relies on observation and consensus. A rigorous questioning of what is right and true permeates the jikkenchi. This scientific approach to every aspect of life attracted Nagase Kunio some 33 years ago. “Here we strive to figure what’s real, and what’s the best way of doing things,” he said, adding that personal happiness will lead to societal happiness.

Given Yamagishi’s dedication to scientific principles, it’s ironic that another common criticism Japanese lay on Yamagishi is that the communities are too religious. There are in fact no religious teachings or practices, either from the founder or from established religions. Their idealism, however, does have a spiritual flavor. The aim to realize a happiness that can spread throughout humanity certainly implies a moral foundation. And alcohol and tobacco, while allowed, seem relegated to relative obscurity.

“Religion/Spirituality is and isn’t related,” longtime member Miyachi Masayuki said. “We want to change society. We want everyone to realize happiness.” This is, of course, the ultimate aim of Buddhism and other religions, but the means is a possessionless community of individuals practicing sustainable agriculture rather than ritual or prescribed spiritual practices.

Yamagishi Globally
Several jikkenchi exist overseas in Korea, Thailand, Switzerland, Australia and the United States. In particular, Katayama spoke of the success of the Korea-based Yamagishi which includes a number of Korean members. In contrast, members of the Yamagishi in Thailand and the U.S. are all Japan-born, and the jikkenchi are extremely small. “Many Thai like to work and live on the jikkenchi, but they are not actually members,” Katayama said.

By commune standards, Yamagishi’s 50 years of existence is an admirable achievement, probably second longest in Japan after “Atarashiki-mura” (New Village) in Miyazaki prefecture, which opened in 1918.

While Toyosato in Mie prefecture is by far the largest jikkenchi, with over 400 members, some 32 other jikkenchi exist all over Japan with approximately 800 other members. In addition, Yamagishi sponsors a “Children’s Paradise Village” three times a year. It’s promoted as giving kids the chance to “get together as one-body” and draw out their natural abilities. Over 300 children from outside, along with over 100 Yamagishi children, participated last year to experience nature and develop relationships by communal living.

However, several jikkenchi have closed in recent years and the number of total members decreased during the lawsuit years. Is that indicative of the beginning of the end for Yamagishi? “Certainly not,” Nagase declared. “New members will start coming again. I’m sure of it.”

For more details about the eight day Tokkoh course , Children’s Paradise Village, or Yamagishi in general, contact Ms. Hiroko Katayama in English or Japanese at katayama_h@mula-net.com.

Notes

[1] Ernest Callenbach (2006). “Ecotopia in Japan?” Communities, #132, Fall 2006, p. 44.
[2] Japan Times (2001).
[3] Kansai Time Out (1999).
[4] ibid
[5] Ernest Callenbach (2006). “Ecotopia in Japan?” Communities, #132, Fall 2006, p. 45.
[6] ibid


John Spiri is an Associate Professor and writer at Tokyo University of Agriculture and Technology.

This is a revised and expanded version of an article that originally appeared in The Japan Times.  Posted at Japan Focus on February 15,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