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6

테러리스트들에게 결여된 것은 emotional empathy가 아니라 intellectual compassion

테러리스트들에게 결여된 것은 emotional empathy가 아니라 intellectual compassion

希修·TUESDAY, 17 APRIL 2018·READING TIME: 3 MINUTES



[A] "교통사고로 죽은 애들을 어쩌라는 거냐?"
[B] "그러고도 니가 인간이냐? 니 자식이 죽었어도 그런 말 할 수 있냐?"


세월호 사고/사건 직후 나는 몇몇 분들과 함께 상황과 의문점들을 영어로 정리하여 외국 언론사들에 제보도 했고, 북미에서 나온 한국정부 규탄 성명서 초안작성에도 참여했고, 일일단식도 두 차례 했으며, 두 번에 걸친 오프라인 집회에서 직접 fact sheet 작성하여 배포했고, 행인들에게 달라붙어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요청 서명도 2백여 개 받아냈으며, 두 번은 주최측의 한 사람으로서 그 후엔 손님으로 해마다 세월호 행사에 참석해왔다 (- 내년부터는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런 나도 A의 말이 이해 간다고 한다면.. 난 아마 돌 엄청 맞겠지..


'이해'가 간다는 것은 '동의'한다는 것도 그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도 결.코. 아니다. 어떤 어떤 상황들에선 저런 얘기도 나올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나 혼자만의 추측은 가능하더라는 의미일 뿐.


정치의 'ㅈ'자도 이념의 'ㅇ'자도 모르는데, 때로는 국군이, 때로는 '빨갱이'가 마을을 점령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가족 중 한 사람이 '반역자' 내지 '반동분자'로 몰려 그야말로 개죽음 당하는 걸 본 이들이 한국에 얼마나 많은가. 제주에선 다들 4.3의 희생자임에도 불구하고 '빨갱이' 소리 들을까 두려워 "슬프다", "억울하다" 말도 못 한 채 수십 년을 살아왔다 하지 않나. 그야말로 거리에 나가 반정부 데모 한 번 한 적 없건만, 김기춘표 간첩조작의 '타겟'이 되어 형을 살거나 조사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둘이 아니었다. (최승호 감독의 "자백"을 보시기를.) 그런데, 국가의 폭력/기만의 희생자가 된 분들이나 그들의 가족 입장에서 세월호 유족을 본다면, 어쨌든 그 슬픔과 억울함에 많은 이들이 공감해주고 그로 인해 나라가 들썩이는 상황 자체가 일면 '부럽'고 '배아플' 수도 있지 않겠는지. 억울하다 슬프다 소리조차 입밖에 낼 수도 없었던 분들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맞다. 광주항쟁 희생자의 어머니들이 팽목항에 "그 마음 우리가 압니다. 기운내십시오"라는 메세지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저런 내용의 메세지였음)의 현수막을 내걸은 것을 분명 보았다. '사고'였든 '사건'이었든 가족 잃은 슬픔과 억울함을 경험한 분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더 절절히 세월호 유족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이니까.. 말기암으로 고통 받는 이를 앞에 두고도 내 손톱밑의 가시가 더 크게 보이는 것이 인간이니까..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아무리 소리 높여 도덕주의를 외쳐도 인간이 그렇게 생겨먹은 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 하니까..


인간이 본래 그렇게 생겨먹었으니 모든 걸 다 허용해줘야 한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극심한 학대 속에 자라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키워 여성만 보면 범죄를 저지르는 '싸이코'가 있다 할 경우, '그 누구도 저런 환경에서 자랐다면 저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고 해서 범죄를 저지른 그의 책임을 100% 면해줄 수는 없는 것. 내 말은 그저, 우리가 어떤 윤리적 미덕을 갖추고있다 해도 그건 단지 '운이 좋은' 덕분인지도 모름을 기억하면서 겸허할 필요가 있다는 것뿐. 영화 "해무"에 나온 그런 도륙을 내가 저지르지 않고 살아온 이유가, 내가 진정 '윤리적인 인간'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상황에 놓여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솔직히 확신 못 하겠더라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아우슈비츠에서조차 한 사람의 태도는 전적으로 그의 자유이자 책임이라고 Viktor Frankl은 말하지만, 아우슈비츠나 "해무"같은 상황에서 '주체적' '윤리적' 인간으로서 '존엄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내가 감히 헤아리기 힘들 만큼 험난하고 불운한 삶을 헤쳐왔기에 그 와중에 공감 능력도 윤리적 감수성도 훼손되어 내가 갖춘 윤리적 미덕을 덜! 갖춘 누군가가 있다 해서 그를 인격적 윤리적으로 재단할 수 있는 자격이 내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니 자식도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라는 악담을 퍼붓는 '도덕주의자'보다 차라리 좀더 '윤리적'이지 않겠는지 생각해보자는 거다. Again,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 판단은, 그 어떤 경우에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불가피한 최소한이지만 말이다. (정치인을 압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고, 나는 지금 일반 시민들을 설득하는 일에 대해 말하는 거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더라도, 'empathy' 혹은 '감정적 동일시'의 의미로 흔히 쓰이는 '공감'은 강요/설득한다고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어차피 아니다. 테러리스트들에게 결여된 것은 emotional empathy (감정적 동일시 능력)이 아니라 intellectual compassion (상대의 언행이 어떤 배경에서 나오는 것인지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며, '편향된,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감정 동일시' ( ='내 편'에게만 올인하고 '다른 입장'은 악마화하는 태도)야말로 테러리스트들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심리학자와 뇌과학자들이 말하고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어차피 설득으로 안 되는 emotional empathy 는 포기하고 intellectual compassion이라도 갖게끔 설득하려면 혹은 그러한 분위기를 형성해 나가려면, 세월호 유족을 이해 못 하는 이들에 대한 intellectual compassion을 나부터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말이다. "니가 우리를 이해 않고 비난만 하니 나도 니들을 이해 않고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 비난하련다"라는 태도로는 서로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뿐이니.


평화통일을 원하는 이들이나 무력을 써서라도 북한 독재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나, 둘 다 자신들은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원한다"고 말한다. 피차간에 인정을 않을 뿐, 양쪽 다 각자 자신들은 진심이고 자신들은 '합리적' '현실적'이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이 아무리 절실하다 한들, 자기 주장의 타당함을 스스로는 아무리 찰떡같이 믿고있다 한들, 그 감정/믿음만으로는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이 '아이'와 '어른'의 차이 아니겠나. 이 차이도 이해 못 한다면, 최소한 앞에는 나서지 말고 자기 스타일의 운동방식에 그냥 조용히 참여만 하는 것이,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이루는 데에 오히려 도움이 되련만. '내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그 참사를 기억 않는 것이고 내가 하는 방식으로 애도하지 않으면 애도하는 마음조차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오만하고도 유아적인 생각을 내비치는 사람을 보면, 자신의 윤리성/정의로움의 과시를 위해 감상주의에 탐닉하는 것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이루는 데에 장애만 자초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인간은 그저 각자의 수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면서 사는 것일 뿐이지만, 나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나는 나 개인이 아닌 내 진영의 '대표 사례'로 상대에게 보이리라는 점을 기억하고서 책임감 신중함 예의를 늘 유지해야 한다.


아기 잃고 우는 여인에게 석가가 보인 ‘공감’/’자비’는, 함께 울어주는 일이 아니라, “마을에 내려가 가족 친지 그 누구도 죽은 적 없는 집을 찾아내어 겨자씨를 빌려 오라”고 말한 것이었다. 요즘같으면 '싸이코패스'/'쏘시오패스'라고 돌맞을 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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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llectual Compassion Over Emotional Selective Empathy


(1) Emile Bruneau says, the problem of terrorists is not lack of empathy but selective empathy. For example, if you are too empathic with your fellow soldier who got injured or killed in front of your eyes in a war, you can become more cruel than anyone against your 'enemy', no matter which side is 'just'. In short, emotional identification with someone itself does not necessarily make you more 'moral' or 'ethical'.
https://www.nytimes.com/2015/03/22/magazine/the-brains-empathy-gap.html
(2) "Paul Bloom, a professor of Psychology and Cognitive Science at Yale University, makes the case for rational compassion rather than empathy. He argues that empathy is counter-productive because it enmeshes the empathizer in feelings that aren’t their own. Instead of taking on the problem as your own, having compassion means to understand where the person is coming from without adopting the emotion itself."
http://www3.forbes.com/leadership/13-things-socially-intelligent-leaders-do-differently/5/
(3) "Paul Bloom, a psychologist at Yale University, does disagree. His new book, “Against Empathy”, makes the provocative argument that the world does not need more empathy; it needs less of it. People are bingeing on a sentiment that does not, on balance,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Empathy is 'sugary soda, tempting and delicious and bad for us'. In its stead, Mr Bloom prescribes a nutritious diet of reason, compassion and self-control. To be clear, Mr Bloom is not against kindness, love or general good will toward others. Nor does he have a problem with compassion, or with 'cognitive' empathy—the ability to understand what someone else is feeling. His complaint is with empathy defined as feeling what someone else feels."
https://www.economist.com/news/books-and-arts/21715634-moral-psychologist-decries-culture-identifying-others-expense
The harsh fact is, to a woman crying over her child's death, the Buddha neither performed a miracle to bring the baby back to life nor commiserated with her. Instead, he told her to go find a family in which no one has ever died, so she can face and accept the reality that everyone has to die and that death is only a matter of sooner or later. Right, although we know that a death by a natural cause should only be accepted, knowing does not make doing any easier.
(2018.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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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 할게요.
http://www.ddanzi.com/index.php?mid=free&document_srl=509234761&statusList=BEST%2CHOT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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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22 April < 불교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

(3) Facebook













希修

22 April ·







< 불교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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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마음 다스리는 방법에 관심갖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물론 명상이 중요하지만, 실은 세상/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고방식 자체의 전환이 못지 않게, 어쩌면 더욱 중요하거든요.

그러지 않고 명상만 하면 심신의 긴장을 풀기 위해 진통제/안정제 복용하는 정도에 그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어서요.

(물론 심신의 긴장완화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만, 부처님은 팔정도의 첫걸음을 '정견', 즉 바른 견해/관점/사고방식이라 하셨죠.

결국엔 그 8가지/단계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지적 이해 → 계율의 실천 → 그리고 명상의 순서팔정도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정견'으로 되돌아가서 해탈이 완성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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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그래서 정견을 가지려면 부처님 말씀을 우선 공부해야 하는데,

부처님 말씀의 통번역자로서 타니사로(Thanissaro) 스님이 최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스님의 법문 인용구와 책 캡쳐로 제가 요즘 페북앨범들을 만들고 있고 이 스님의 법문을 올려 놓는 유툽채널도 있으니, 하나씩 차근차근 자세히 읽어/들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혹 공부하시다 잘 모르겠다 하실 때 댓글이나 메세지주시면,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드리겠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가르칠 정도는 결코, 절대, 못 되고 제 코도 석자입니다만,

입문자에게 영문 해석을 도와 드리거나 참고의 말씀 정도는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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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www.youtube.com/channel/UC6FSq_ptJ-I6aTHT-XA_e0Q (재생속도 조절 가능, 영문 캡션 available)

(2)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042727616099321/

(3)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074732186232197/

(4)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10771894960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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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COM

Dhamma Talks by Thanissaro Bhikkhu
This is the official youtube channel for Dhamma talks given by Ven. Thanissaro Bhikkhu at Metta Forest Monastery. Ven. Thanissaro and the Monastery are part ...


希修



https://www.facebook.com/groups/38495432577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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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5

지역사회와 민족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교회 <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 < 연재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지역사회와 민족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교회 <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 < 연재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지역사회와 민족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교회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 능곡교회

기자명 이근복
승인 2019.12.2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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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멈춤앞으로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을 기다리는 지금은 간절히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나라와 자신과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동시에, 극단적 분열과 대결을 넘어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경제적 불평등으로 고통당하는 가난한 이들과 비정규직들과 실업자들을 위해, 우리 사회 적폐가 된 한국교회의 진정한 개혁을 위해, 특히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는 한반도를 위해 마음을 다하여 기도할 때입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는 저서 <열린 손으로>(성바오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팔을 벌려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내맡길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47쪽)
"우리는 기도할 때, 자신과 하느님만이 아니라 이웃도 발견하게 됩니다." (67쪽)

10여 년 전 대전 목회자 인문학 모임에 초대했던 나태주 시인의 시 '기도'가 큰 울림을 줍니다.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면 /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 / 생각하게 하여 하옵소서
내가 추운 사람이라면 /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 생각하게 하여 하옵소서
더욱이나 내가 비천한 사람이라면 / 나보다 더 비천한 사람을 / 생각하게 하여 하옵소서
그리하여 때때로 / 스스로 묻고 / 스스로 대답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 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우연히 경기도 고양시 능곡교회(윤인영 목사) 교회당이 '기도하는 손'을 상징하고 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세 번 가서 카메라에 전경을 담으며, 이런 교회당을 세우고 기도하는 교인들의 간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교회 모교회로 지칭되는 새문안교회와는 달리 능곡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모교회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신앙 공동체입니다.

능곡교회 예배당. 이근복 그림

구한말 고양군 행주는 큰 항구에 방불할 만큼 중국 무역선과 호남 관서의 화물선으로 번성하던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한강에 제방이 없던 때라 홍수가 나면 행주는 고도가 되었고, 돛단배가 능곡을 지나 지금의 원당까지 왕래했다고 합니다. 새문안교회를 세운 언더우드 선교사가 열심히 전도하여 행주교회를 창립한 것은, 여기 행주에 세관 등 관청과 각종 거래처가 있어서 경기 북부 지방의 선교 기지로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능곡 사람 몇몇은 주일 아침이면 5리(2km) 떨어진 행주교회로 가서 예배하며 언더우드 목사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홍수나 한파가 있을 때 행주까지 예배하러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동네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복된 일이란 생각하여, 이기석 씨 집에 모여 언더우드 목사에게 교회 설립을 요청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선교사의 선물이 아니라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요청해 능곡교회가 설립된 것은 의미가 큽니다.

1893년 3월 첫 주일 아침, 언더우드 목사를 모시고 사산면 토당리 64번지의 이기석 씨 집에 모여 예배하는 것으로 '사산교회'(구 능곡교회)가 설립되었고, 교인 수가 점점 늘어납니다. 교인들이 간절히 기도한 끝에 1896년 이기석 씨 집에 초가 10칸 교회당이 건축되었습니다. 놀랄 만한 성장을 하던 능곡교회는 1916년 암울한 민족 현실을 타개하고 독립과 지역사회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보명학교를 설립했습니다. 1919년 3·1 운동에서 이 학교 유현경 선생을 중심으로 만세 운동이 확산되었고, 검거된 유 선생은 태장 60대를 맞고 26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둡니다.

한국전쟁으로 교회당이 소실되지만, 1955년 교인들 헌금과 미국 선교부 후원으로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당을 건축하고 헌당식을 거행하는데 함태영 부통령도 참석했습니다. 교회 개척에 열성을 내어, 1947년 원당교회를 비롯해 5개 교회를 개척하여 모교회로서 역할을 하고, 1996년 2월 본당 좌석 3000석 규모로 100주년 기념 성전을 준공했습니다.

능곡교회를 방문한 날, 친절한 송영균 장로님에게서 <능곡교회 120년사>를 받고 또 인도에 따라 예배당에 들어가 보니, 설교단 등이 모두 '기도하는 손' 모양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교회 주차장에 서 있는 고색창연한 종탑이 눈에 띄었는데, 능곡교회 120년사에서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이영길 장로의 '황금의 종탑'이란 글에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능곡교회와 함께 숨 쉬어 온 종탑의 역사가 어느덧 120년이 되었습니다. (중략) 그 밝고 환한 복음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능곡교회로 말미암아 비로소 고양 땅에 선교의 문이 활짝 열렸던 것입니다. 종소리를 들으며 우리 선조들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의 음성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즘 북미 관계가 악화되어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2년 전으로 되돌아 간 것 같아서 염려가 커지는 때인지라, 북한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기도하는 손' 모양의 능곡교회가 더욱 소중해집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교인들을 예수 제자로 훈련하며 지역과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소명을 감당하려고 힘쓰는 까닭입니다.

지난 9월, 노신학자 서광선 박사님은 <기찻길 나그네길 평화의 길>(한울)이란 자전적 책을 출간했습니다. 기차를 모티브로 인생과 학문의 여정을 기록한 작은 책에서 삶과 철학, 신학과 통일 운동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박사님의 간절한 꿈이 담긴 책 마지막 글이 기도로 읽혀지며,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우리 가족 모두 함께 평양행 기차에 오를 것이다. 평양으로 가서 순교자 아버지의 묘를 찾아 성묘하고, 평양 봉수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인사말을 통해 내가 다시 왔노라고, 내가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간증'을 하게 될 것이다. (중략) 90세가 되는 2020년에 아니면 그 이전에라도 나의 평생소원을 이루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나의 가차길 위의 나그네 인생도 마감될 것이고, 평화롭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숨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침략의 기찻길, 나그네길은 끊어지고, 이제 평화의 기찻길이, 새 시대와 함께 열리는 날을 꿈꾸면서…."

'기도하는 손' 모양의 능곡교회 교회당을 떠올리며, 새해는 한반도의 평화가 새롭게 열리길 '두 손 모아' 간구합니다.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는 매월 2차례 업데이트됩니다.

이근복 /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교회활력화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쳤다.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뿌리 깊은 일본 정계의 ‘파친코 커넥션’ - 시사저널 호수 1580

뿌리 깊은 일본 정계의 ‘파친코 커넥션’ - 시사저널





뿌리 깊은 일본 정계의 ‘파친코 커넥션’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승인 2020.01.26 10:00
호수 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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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명분 도박사업 활성화 추진한 아베 정부…의원들 카지노 스캔들 터지며 비판 직면

전쟁은 그 아비고, 운명은 그 어미다. 그리고 도박은 이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눈먼 버릇없는 아이다.’ 근대 일본 낭만주의 운동의 선구자 기타무라 도코쿠(北村透谷·1868~1894)는 도박을 맹목적이고 버릇없는 아이로 묘사했다. 도박이 부르는 폐해를 지적한 이 오랜 명언이 최근 일본 언론에서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뒷골목에 숨어 있던 ‘문제아’ 도박을 양지로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각종 사회적 병폐가 발생하고 있어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연합뉴스

뇌물 스캔들 중심에 선 ‘카지노 의원 연맹’

지난 연말 발생한 복합리조트(Integrated Resort·IR) 사업을 둘러싼 의원들의 뇌물 수수 사건이 일본 사회를 뒤집어놓고 있다. 일본 정계로 리조트 업계의 검은돈이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이다. 사실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는 일본 언론을 통해 계속 제기돼 왔다. 일본 정치에 뿌리 깊게 박힌 ‘파친코 커넥션’ 탓이다.

2010년 4월 일본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을 제외한 정당 출신의 의원 74명은 ‘국제관광상업 진흥 의원연맹’(일명 카지노 의원 연맹)을 결성했다. 당시 중의원 정수가 480명, 참의원 정수가 242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일본 의원 열 명 중 한 명꼴로 이 의원연맹에 속해 있었다. 이 연맹은 카지노 합법화와 파친코의 환금 합법화를 목적으로 발족했다. 현재는 무려 224명의 의원이 이 연맹에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불법이었던 도박을 합법화하겠다는 게 연맹의 목적이다.

이제까지 일본 파친코 업계는 ‘삼점방식’ 운영으로 법망을 피해 왔다. 삼점방식은 일본 파친코에서 이루어지는 특수한 영업 형태다. 파친코·경품교환소·경품도매상이 한 묶음이 되어 운영되는 형태로, 파친코에서 딴 경품을 현금화하는 시스템이다. 일본에서 도박은 금지돼 있다. 특별법으로 공익성을 인정받은 공영도박 경마와 경륜을 제외하고 금전이 오가는 노름은 불법이다. 따라서 파친코에서는 돈 대신 경품을 지급하고, 파친코 이용객은 이 경품을 경품교환소에 가져가 현금화한다. 그리고 경품도매상은 경품교환소에서 경품을 사들여 다시 파친코에 공급하는 형식이다. 이런 방법으로 법망을 교묘히 피해 왔지만 이제는 당당히 현금을 지급할 수 있는 합법적 도박장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파친코 점포 내에 설치된 은행 ATM 철거 등 규제 강화와 시대에 뒤처진 오락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이용객이 점점 줄면서 파친코 회사와 업장 모두 크게 감소했다. 1995년에는 전국에 약 1만7500여 점포에 이르렀던 것이 2018년에는 약 9100개까지 줄어들었다. 정치력을 이용해 현금 지급을 합법화하고 하향세인 파친코 사업을 회복시키겠다는 게 파친코 사업자들의 야심이다. 대규모 파친코 사업자들로 구성된 ‘일반 사단법인 파친코 체인스토어 협회’에는 ‘정치 분야 어드바이저’가 있다. 홈페이지에서 공개하고 있는 명단에는 2019년 11월 기준으로 자민당 의원 22명, 유신회 의원 7명, 국민민주당 7명, 입헌민주당 4명 등 총 40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중에는 ‘카지노 의원 연맹’에도 이름을 올린 의원이 적지 않다.

현재 일본 환경 부(副)대신과 내각부 부대신을 맡고 있는 이시하라 히로타카(石原宏高)에게도 2012년 파친코 업계와 관련한 스캔들이 있었다.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의 삼남으로 중의원 4선의 중진 의원이다. 이시하라는 2012년 12월에 실시된 제46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파친코 기계 제조회사 ‘유니버셜 엔터테인먼트’(UE)에 선거 지원을 요청하고, 사원들을 선거운동에 동원했는데 UE는 선거운동에 사원을 파견하고 급여를 지급했다. 선거법 위반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또 이시하라의 부인이 임원인 컨설팅회사에 UE가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2011년 6월부터 2012년 말까지 매달 100만 엔(약 1053만원)씩 총 1800만여 엔(약 1억9000만원)을 지급한 것이 2013년 3월 아사히신문의 취재 결과 밝혀지기도 했다. UE가 컨설팅 비용을 지급한 데는 현역 시절부터 카지노 추진파였던 아버지 이시하라 신타로의 영향도 컸다. 또 UE가 필리핀에 대규모 카지노 리조트를 건설하는 데 필리핀 정계와 연줄이 있는 이시하라 신타로의 도움을 받기 위해 법망을 피해 돈을 지급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시하라는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으며 카지노 의원 연맹의 주요 멤버이기도 하다.

실제 카지노 의원 연맹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2016년 12월 ‘특정복합관광시설구역 정비 추진에 관한 법률’(IR 추진법)이 생겼고, 2018년 7월에는 ‘특정복합관광시설구역 정비법’(IR 실시법)이 성립돼 형법이 정하는 도박죄에서 카지노를 제외해 일본에서도 합법적으로 카지노를 설치할 수 있게 됐다. 2016년부터 일본 언론은 카지노 지지파들이 주장하는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에 의문을 표하며 카지노 설치 추진을 비판했다. 2018년에 카지노가 합법화되자 마이니치신문은 ‘도박에 기대는 발상의 빈약함’, 아사히신문은 ‘도박 대국에의 위험한 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여전히 씻어낼 수 없는 카지노에 대한 근심’이라는 사설을 일제히 실어 카지노 해금을 비판했다. 이후 카지노 관련 논의는 잠잠해졌는데, 최근 발생한 의원들의 뇌물 수수 의혹이 다시 한번 논란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뇌물 수수 혐의로 1월14일 체포된 아키모토 쓰카사 의원을 비롯해 이번 스캔들에 등장하는 모든 의원이 카지노 의원 연맹 소속이다.
일본 후쿠시마현의 한 파친코 게임장 모습 ⓒ REUTERS

카지노 반대 54%…고민 깊어진 아베 정부

아베 신조 정부는 경제성장 전략 중 하나로 IR사업을 추진해 왔다. 스캔들이 불거졌는데도 계속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며, 리조트 유치 주체인 요코하마나 오사카 같은 지자체들도 적극적으로 유치 의사를 밝히고 준비 중이다. 지난 1월7일에는 ‘카지노 관리 위원회’를 예정대로 발족시켰다. 카지노 관리 위원회는 카지노 출입을 감시하는 시스템과 카지노에서 설치 가능한 게임의 종류, 기종에 관한 규칙을 만든다. 또 카지노 운영 사업자를 심사하고 면허를 부여하는 권한을 가진다. 이 위원회가 발족함으로써 카지노 설치의 첫발을 내디뎠다.

일본에서는 이미 도박중독자가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다. 도박죄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도박의 성격을 가진 파친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문제로 도박중독이 엄연히 존재하고 스캔들이 발생했음에도 꿈쩍 안 하는 일본 정부에 대한 비판이 어느 때보다 거세지고 있다. 뇌물 수수 스캔들을 계기로 카지노 사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NHK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IR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답변이 54%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25%)을 크게 웃돌았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월12일 NHK 방송에서 IR 관련 스캔들을 언급하며 “국민들에게 걱정과 불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신뢰와 이해 속에서 IR 정비법에 기초해 필요한 준비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NHK 여론조사 기준으로 지난해 8월 이후 내각 지지율이 점점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아베 총리가 어떻게 IR 스캔들을 헤쳐나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본#아베#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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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알라딘: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미래
브루스 커밍스 (지은이),조행복 (옮긴이)현실문화2017-11-30원제 : The Korean War: A History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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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416쪽
152*224mm
776g
ISBN : 97889656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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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선택
"화해로 가는 전쟁의 기억"
한국전쟁을 이해하는 방법은 여럿이다. 가장 익숙한 방법은 발발 이후 남한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북한에 대한 이해이고, 마찬가지로 잘 알려졌으나 남한에서 수용되기 어려운 남한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맞은편에 존재한다. 이외에도 대표적인 참전국 미국, 소련, 중국에 주변국 일본까지, 한국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기억은 여전하지만, 각 국가에서는 줄곧 하나의 기억만 강조되었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미국이든 피할 수 없는 오늘의 현실이고, 비극이 여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는데,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맞아 집필한 이번 책에서는 한국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기억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미국이 어떻게 세계의 경찰국가로 발돋움했으며, 그럼에도 왜 미국 내에서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으로 만들었는지, 그런 한편 북한과 여전히 다툼을 이어가는지를 성찰한다. 6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남한에서 한국전쟁을 새로 쓰고 기억한다면 이와 같은 태도가 꼭 필요하지 않을까. 계속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로 화해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 역사 MD 박태근 (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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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한국전쟁과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 석좌교수가 총정리한 한국전쟁의 모든 것. 새로운 사료를 반영하고 아주 쉬운 필치로 써내려 간 역작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발단과 전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저항세력'과 '부역세력' 사이에서 벌어졌던 대립,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의해 추진된 일본과 남한에서의 조치, 북한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관계 등 다양한 요소들의 영향을 되돌아보며, 이후 분단이라는 형태로 고착된 대결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지 폭넓게 살펴본다.

그리고 이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지 않는 이상, 그 연장선상에서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 위기를 풀 해법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분단이 고착되어 냉전이 만성화된 한반도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평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알려 준다. 바로 현재의 우리를 만든 분단과 전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목차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에 관한 찬사 _ 4
한국의 독자들에게 _ 9
들어가며 _ 18

1장 전쟁의 전개: 발발에서 휴전까지 _ 29
재래식 전쟁이 시작되다 _ 34
“중국인의 인해”: 북진 _ 55
중국이 가까이 있다 _ 57
전쟁의 연장 _ 66

2장 억압과 저항의 기억 _ 73
기원과 시작 _ 81
취해진 조치 _ 86
꼭두각시 _ 91
소련과 김일성 _ 97

3장 한국전쟁은 어떻게 잊혔나 _ 101
내전 _ 107
오, 얼마나 문학적인 전쟁인가 _ 111
중국인의 시각 _ 124

4장 반공주의 그리고 기억의 왜곡 _ 127
억압의 본능 _ 139
동양, 서양, 그리고 억압:
훌륭한 자들이 고정관념을 만드는 방식 _ 150
그림자가 드리우다 _ 156

5장 38도선 분리: 잊힌 점령 _ 159
군정 시기 한국 남서부 _ 173
삼척의 해방 _ 178
제주반란 _ 181
여수반란 _ 194
38도선을 따라 벌어진 전투 _ 202

6장 초토화된 한반도: 공습의 여파 _ 211
궁극의 폭격 _ 221
보랏빛 잿더미 _ 224

7장 학살의 기억 _ 229
정치적 계보, 혈연의 계보 _ 239
진실은 무엇인가? 한국의 스레브레니차 학살 _ 241
취해진 조치: 한국전쟁 중 남서부 _ 248
미스터 학살자 _ 253
북한이 저지른 잔학 행위 _ 256
취해진 조치: 북한 지역 점령 _ 262
전쟁의 유령들 _ 273
조사의 진실과 정치적 거짓말 _ 276

8장 ‘잊힌 전쟁’은 어떻게 미국과 냉전을 바꿔놓았나 _ 279
조지 케넌과 딘 애치슨 _ 283
군산복합체 _ 286
제국의 군도 _ 294
케넌인가, 애치슨인가? _ 297

9장 진혼곡: 화해의 길에 들어선 역사 _ 301
미국: 진혼곡은 없다 _ 307
두 개의 기억술: 한국과 이라크 _ 311
화해의 분위기 _ 314

감사의 말 _ 326
연표 _ 327
미주 _ 329
더 읽을거리 _ 375
찾아보기: 개념 및 내용 _ 385
찾아보기: 인명 _ 403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모스크바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가까운 장래에 한국전쟁이 다시 발발할 것인가를 묻는 학생의 질문에 적당히 대처하던 그날(2009년 7월 7일), 여러 신문에는 로버트 스트레인지 맥나마라의 사망에 관한 논평이 가득했다.




저자 및 역자소개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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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카고대학 석좌교수이며, 한국 근현대사와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연구해 왔다. 1960년대 후반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온 뒤 한국 현대사 연구에 몰두해 왔으며, 1981년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의 기원』은 국제정치학·사회학·역사학을 아우르는 학제적 접근을 통해, 전쟁의 발발과 전개에 대한 천착을 넘어 한국전쟁의 역사적·사회적 기원을 파고든 역작으로서 국내외 한국전쟁 연구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전쟁의 기원』 1권으로 미국역사학회의 존 K. 페어뱅크 상을, 『한국전쟁의 기원』 2권으로 국제연구학회의 퀸시 라이트 도서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제1회 후광 김대중 학술상과 2017년 제2회 제주4.3평화상을 수상했다. 국내에 번역된 주요 저서로는 『한국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미국 패권의 역사』 『김정일 코드』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백년의 변혁>,<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미국 패권의 역사> … 총 41종 (모두보기)

조행복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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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폭정>, <나폴레옹>, <20세기를 생각한다>, <재평가>, <세계 전쟁사 사전>, <1차세계대전사>, <독재자들>, <블랙 어스> 등이 있다.


최근작 : <유럽 바로 알기 (워크북 포함)>,<근대화와 동서양 (워크북 포함)>,<인물로 본 문화 (워크북 포함)> … 총 36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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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풍경의 생산, 풍경의 해방>,<비동맹 독본>,<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등 총 217종
대표분야 : 여성학/젠더 8위 (브랜드 지수 43,007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반도의 운명과 냉전의 양상을 결정한 한국전쟁,
지금도 계속되는 위기의 근원을 파헤친다!

한국 현대사 연구의 대가 브루스 커밍스가 총정리한 한국전쟁의 모든 것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북한과 미국 사이의 거친 설전, 남북한을 둘러싼 국내외 세력들의 대립 등으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국은 극단적인 대립과 애매한 평화 사이에서 요동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의 가능성은 아직도 멀어 보이고 ‘군사 옵션’의 가능성이 끊임없이 회자되는 지금, 한반도가 전쟁에 휩싸일 것이라는 두려움 또한 커져 간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의 시계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는 이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이 위기의 근원은 무엇이고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미래』는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고 평화를 향한 길을 다듬기 위한 디딤돌이 될 책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한국전쟁과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 석좌교수가 새로운 사료를 반영하고 아주 쉬운 필치로 써내려 간 역작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발단과 전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저항세력’과 ‘부역세력’ 사이에서 벌어졌던 대립,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의해 추진된 일본과 남한에서의 조치, 북한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관계 등 다양한 요소들의 영향을 되돌아보며, 이후 분단이라는 형태로 고착된 대결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지 폭넓게 살펴본다. 그리고 이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지 않는 이상, 그 연장선상에서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 위기를 풀 해법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은 분단이 고착되어 냉전이 만성화된 한반도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평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알려 준다. 바로 현재의 우리를 만든 분단과 전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둘러싼 기억을 다시금 살려 내고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분투할 때에야 우리는 현재와 같은 분단 상태를 딛고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은 내전이다

한국전쟁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단지 3년간의 비극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 대답은 1950년 6월 25일일 것이다. 하지만 브루스 커밍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파고든다.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1930년대 만주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벌어졌던 항일투쟁에서 찾는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은 두 세력으로 분열됐다. 바로 ‘항일세력’과 ‘부역세력’이 그들이다. 특히 만주에서 격렬한 유격대 투쟁을 벌였던 이들은 이후 북한 지도부의 핵심 계보를 형성했다. 반면 미국은 소련 주변부에 자생 가능한 정권을 배치하기 위한 ‘대大 초승달’ 전략에 따라 일본의 산업을 부흥시켰고 남한을 이에 연결시키고자 시도했으며, 이에 따라 부역세력의 복권이 이루어졌다. 많은 친일파가 청산되기는커녕 요직을 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서 커밍스는 ‘동서 냉전’이라는 현상의 이면에 ‘내전’으로서의 성격이 있음을 발견한다. 일제강점기부터 지속되어 온 대립이 미국과 소련 사이에 성급하게 그어진 38도선을 경계로 첨예화됐으며, 한국전쟁은 갈등이 거대한 규모로 폭발하면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 지도부가 강조하는 항일 경력은 여전히 북한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1950년 6월 25일이라는 시점과 3년간의 전쟁이라는 현상에만 치중하면 한국전쟁의 뿌리와 근원적 성격을 간과하게 되며, 이는 북한의 체제와 지도부를 이해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한국전쟁, 세계의 경찰국가 미국을 완성하다

한국전쟁은 상충하고 대립하는 두 경제체제, 즉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대결의 장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커밍스는 베트남전쟁과 달리 한국전쟁은 단순히 두 체제 사이의 대립을 반영하기만 한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세계의 경찰국가’로서 발돋움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으로 불린다. 여전히 중요한 전쟁으로 기억되는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쟁과는 달리 거의 거론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커밍스는 미국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방위비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많은 수의 상비군을 유지하게 됐으며, 광범위한 해외기지를 구축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전쟁은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1950년대에 출현하게 된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미국에게 있어 주요한 분기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미국을 전 세계에 광범위한 군사기지 네트워크를 지닌 ‘새로운 제국’으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 한반도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국이 소련/러시아, 중국, 일본 등의 강대국들과 격돌하고 때론 협력하는 핵심적인 지점이 되었다. 저자는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 분쟁의 핵심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많은 변화를 가져온 한국전쟁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 역설을 상기시킨다. 이는 전쟁 중에 발생한 학살과 공습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잔혹한 학살과 공습의 기억

한국전쟁에서 지워진 또 하나의 측면은 잔혹한 학살과 광범위한 공습이다.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 전역에는 인민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인민위원회는 일제가 사라지면서 나타난 행정의 공백을 메우는 자치기관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실제로 미군정 초기에는 이들의 활동이 인정되기도 했지만, 인민위원회는 이후의 억압 정책 속에서 광범한 유혈사태를 거치며 해산되기에 이른다. 남한에 수립된 정부는 경찰과 우익 청년단체를 이용해 폭압적인 정책을 펼쳤고, 이에 반발한 이들이 제주, 지리산, 여수, 순천 등에서 벌인 반란은 잔혹한 학살 속에서 잠재워졌다.
그런 점에서 한국전쟁 중 남한에서 벌어진 학살들은 해방 후의 학살과 분리될 수 없다. 커밍스는 이전부터 이뤄졌던 억압과 학살이 전쟁을 매개로 더 광범위하게 벌어졌음을 지적한다. 그는 대전 학살, 노근리 학살, 국민방위군 사건 등의 사례들을 통해서 이러한 참혹한 사건들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그리고 그 와중에 미군이 어떻게 가담했거나 이를 묵인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저자는 북한의 잔학 행위 또한 지적하면서 그들 역시 학살의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
전쟁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한 것은 바로 공습이다. 한국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한반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넘어서는 엄청난 양의 폭탄이 투하되었다. 한국 전역, 특히 북한 지역은 미군이 무제한적으로 퍼부은 공습에 의해 ‘달의 표면’처럼 변해버렸다. 도시가 초토화되었으며 민간인을 압박하기 위해 전쟁과 관계없는 댐과 저수지에 대한 공습 또한 이뤄졌다. 이와 같은 학살과 폭격은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잊힌 전쟁’이 될 수 없는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망각을 넘어 평화로 나아가기 위하여

한국전쟁은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한 채 ‘휴전’ 상태로 들어가 현재까지 그 상태가 고착되었다. 그리고 전쟁의 기억은 그대로 고착된 채 무의식적인 동시에 강요된 망각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남한에서 전쟁의 기억은 진영 논리에 따라 왜곡되고 억압되었다. 전쟁 이후로도 이어진 억압적인 정권 아래에서 남한 세력이나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들은 잊히거나 공산주의자의 탓으로 돌려졌다. 공산주의자라는 꼬리표는 연좌제에 의한 박해로 이어졌기 때문에, 남은 이들은 그저 망각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유령처럼 그들의 삶에서 다시 출몰하곤 했다.
북한에서 전쟁의 기억은 경직된 전체주의 체제를 낳았다. 일제와 부역세력의 만행, 한국전쟁 중 미군 및 “친일파가 장악한” 남한과 벌인 처절한 투쟁, 미군의 일방적인 공습에 의한 국토의 초토화는 적들에 맞서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보유한 ‘유격대 국가’를 낳았다. 전쟁의 기억은 끊임없이 소환되었고 다음 세대로 이어졌으며, 정통적인 입장에 반하는 어떤 의견도 용납하지 못하는 전체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데 동원되었다.
미국은 한국전쟁을 망각하는 쪽을 향해 갔다. 자신들이 주요한 행위자로 참여했으며 한국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에 비할 만한 대규모의 참혹한 전쟁이었음에도, 게다가 이를 통해 자국이 전 세계적인 패권국가로 거듭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잊힌 전쟁’을 상기하는 것을 피했다. 커밍스는 이 때문에 오늘날 미국의 대북정책이 역사적 무지와 역사의식의 부재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한반도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화해와 극복은 불가능한 것일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남한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진행한 역사적 작업들에서 발견한다. 커밍스는 진실화해위원회가 그동안 잊혔던 학살의 진상을 밝힘으로써 화해와 극복의 길을 열었으며, ‘미래를 여는 역사’를 통해 한국과 이웃 나라 사이의 불편한 진실들을 밝히고자 했음을 강조한다. “국내에서든 국가 간에든 진정한 화해는 오로지 역사적 진실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커밍스는 과거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이러한 이해 없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의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역사에 대한 미국의 망각은 역사의식 없는 강경한 정책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북한이 더욱더 과거에 고착되게 하고 유격대 국가를 공고히 하는 데로 나아갔다. 한편 이후의 남한 정부는 이전 시기에 일궜던 성과들을 후퇴시켰다.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복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지점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미래』는 우리가 역사적 기억을 평화로 가는 디딤돌로 삼을 때에야 비로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남북한을 둘러싸고 세계정세가 요동치는 지금 시대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논의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이 땅에서 같은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는 한 학자의 절절한 기록을 통해 우리 역시 평화로 나갈 힘을 얻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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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발발했던 유월이 지나갔고, 도올이 쓴 책 [우리는 너무 몰랐다]를 읽다가 브루스 커밍스라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도서관에서 그가 쓴 책을 보았을 때 이것도 인연인가 보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인데, 도올이 이 책을 출간되기 전에 커밍스로부터 받아 읽었다는 내용을 읽고, 커밍스가 우리나라와는 꽤 인연이 있구... 더보기
kinye91 2019-07-05 공감 (15) 댓글 (0)




2018년 들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통령 문재인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난 뒤, 잠시 50% 중후반의 지지율에서 다시 70%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남북회담을 아주 극찬했다. 이로써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2018년인 올해는 남북한 정부... 더보기
NamGiKim 2018-09-26 공감 (13) 댓글 (4)




책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었던 2010년 미국에서 출간됐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기원》 이후 새롭게 기밀 해제된 자료를 추가하는 등 한국 전쟁을 총정리했다. 그는 '미국인이 미국인을 위해 쓴 한국전쟁에 관한 책'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보면서, 내전을 초래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힘의 기원을 일본의 식민통치 시대까지... 더보기
사랑지기 2017-12-25 공감 (1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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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미국인이 쓴 이 책이 한국인,특히 좌파종북주의에게 무슨 성경마냥 떠받들어지며 아주 영향이 컸었다.이후 소련 등의 문서공개로 저자의 소설의 허구성이 밝혀지고 저자는 수정본을 냈지만 여전히 이책의 아류가 판을 치며 잘못된 인식을 지배하고있다. 많은 공감리뷰를보니 답답하다..
날짐승 2018-08-07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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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터 강렬합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국 사람보다 한국사를 더 잘 알고 공정하게 보는 학자입니다. 나아가 글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내용이며 번역이며 진정성으로 가득한 책 같습니다. 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책입니다.
2017-11-23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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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에 관한 저서를 읽고싶었는데 드디어 읽게되었다.
BRINY 2018-02-05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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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 』을 구할 수가 없어서 아쉬워하던 차에 이 책이 나와서 반가웠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먼 원인‘으로 1932년 만주국 건설을 들고있다. 그리고 ‘깊은 원인‘이 되는 제주민 학살사건,여순사건,미국내 정치상황 등 여러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원인,과정,결과, 그 이후..
독서중 2018-05-08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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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커밍스의 관점을 절대화할 필요는 없다. 어쨌거나 그는 미국인이고, 미국 주류학계의 시각에서 한국전쟁을 조망하는 학자일 뿐. 문제는 그의 해석에 대한 과도한 열광과 뒤이은 정체불명의 냉소이다. 그나저나 왜 정작 그의 두 주저는 제대로 번역되지 않는 것일까.
생쥐스뜨 2019-07-26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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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2018년 평창 올림픽이 개최된다. 올림픽 마스코트가 백호와 반달곰을 기반으로 제작된 캐릭터이다. 이 캐릭터를 보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단방에 생각한 것이 있었다. 곰과 호랑이는 한국인의 국조 단군신화에 나오는 존재이다. 단군신화는 한국인의 시작이고, 한국의 역사와 신화의 시작이다. 단군신화가 없다면 한국인이란 정체성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된 올림픽 역시 호돌이와 반달곰 캐릭터가 등장했다. 한국에서 단군신화를 결코 놓칠 수 없는 이유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단군신화의 중요성은 단순히 국제행사의 마스코트로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은 하나의 민족이지만, 국가는 2개로 분단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전신은 고종황제께서 반포하신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따온 말이고, 한국(韓國)은 고대 우리의 국가인 삼한(三韓)의 한(韓)을 가지고 온 것이다.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가? 한국이란 국가는 우리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우리는 남한(南韓)이라고 말하고, 저 위에 있는 정권은 북한(北韓)이라고 한다. 반대로 북한은 자신을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을 두고 북조선(北朝鮮)이라 하고, 우리를 보고 남조선(南朝鮮)이라 한다.



단어를 본다면 북한은 조선을 우리는 한국을 인용하는 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 이전의 역사 조선, 조선이란 국가가 단군조선을 계승한 점을 생각하면 국가의 이름에 아주 깊은 뜻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전쟁이나 전투에서 다른 국가와 민족보다는 같은 국가 내에서 같은 민족끼리가 더 잔인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부른다. 신화에서도 그리스비극 오이디푸스왕과 아가멤논왕의 가족이야기는 비극을 넘어 인간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같은 종족이기에 같은 형제이기에 갈등은 더욱 무섭다.



집안에서도 마을에서도 친하게 지낸 사람끼리 다투면 그 화가 더 심해진다.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을수록 증오와 복수는 깊어지는 게 인간이 가진 딜레마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4주년이 되고, 광복절은 61주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일제로부터의 광복과 한국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조선총독부에 의해 징용에 끌려간 청년들, 위안부 성노예로 끌려간 소녀들의 영혼은 안식을 찾지 못했다. 이들의 영혼을 위로받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영원히 독립국가라 말할 수 없고, 한국이 통일되기 전까지 한국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한국전쟁(韓國戰爭)은 종전(終戰)이 아닌 휴전(休戰)이다. 최근 북한 핵문제나 휴전선 귀순병사 사건을 보면서 우리에게 남겨진 지난날의 슬픔을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로부터 시선을 돌리면 안 된다. 조선을 잊는 것은 분단 이전의 한국을 버리는 것이고, 일제와 전쟁을 피해 멀리 외국 타향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고려인들을 버리는 것과 같다. 이 모든 비극의 씨앗은 그 당시 살아간 이들만 아니라 이들의 후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후예들은 아직도 우리라는 사실을 가끔 우리들은 망각한다.



예전에 형과 집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 집안은 일본제국주의에 많은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큰형님과 동생분이 징용에 끌려가고, 해방 후 돌아오신 할아버지의 큰형님은 그만 병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본래 집안이 양반가문이나, 몰락한 남인의 후예이기에 그 여파로 할아버지는 한자를 제대로 읽지 못한 농부였다. 그래서 한국전쟁 전후로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자유주의는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한국전쟁 시기 밤이면 늘 시골집 근처에 있는 저수지 들풀 사이에서 숨어 지냈다고 한다.



게다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아무 관련도 없는데도 빨갱이로 몰린 누명도 있었다고 했다. 비록 20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분이 살아온 인생은 순탄치 못한 굴레의 연속이었다. 징용에 끌려갈 뻔했으나, 스스로 몸을 자해하여 운 좋게 징용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가족의 비극적 시나리오에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을 읽었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도서로 가장 잘 읽은 서적은 박태균 교수의 <한국전쟁>, 김태우 박사의 <폭격>이었다. 한국전쟁사를 일방적인 관점이 아니라, 미국과 소비에트 러시아의 군사기밀해제문서를 다각적으로 정리하여 만든 도서이다.



전쟁은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전후맥락을 관찰해야 하고, 특히나 그 시대에 전쟁 당사국이 아닌 주변 국가의 정치군사적 갈등도 확인해야 한다. 한국전쟁을 시기적으로 잘 정리하고 풀이한 도서는 박태균 교수님의 서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한국전쟁에 가려진 분노와 역사적 관점은 브루스 커밍스와 김태우 박사의 책이다. 김태우 박사의 책에서 북한이 패배한 전쟁이 아닌 것처럼 보이나, 사실 북한은 상당한 피해를 받고 모든 것이 사라진 전쟁이라 말한다. 이에 반해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이기지도 못하고, 압록강에서 후퇴하여 패배한 전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승패가 나누지 못한 패배한 전쟁이라 말한다.



전쟁은 패배하지 않아도 패배라고 말하는 이유는 미국은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고, 그들이 저지른 행동들이 결코 떳떳하지 못했던 것이다. 최근 노근리 사건을 대두되고 있는데, 노근리 학살과 관련하여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한국전쟁에서 한국인이 300만명이 사망하고, 그 중 반 이상이 민간인이다. 한국인에 대한 학살이 미군도 그러하나 왜 자국민끼리 그럴까?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에서 미군과 중공군의 개입보다 한국인끼리의 혈전에 많은 생각을 보여준다.



전쟁의 시작은 1950년이 아니라 1932년부터란 점이다.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이 설립된 시기, 만주군관학교에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장교로 임관하고, 그 중 일부는 유명한 대한민국 육군 장군이 되었다. 대한민국 초기 육군 장군과 육군사관학교는 친일세력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들과 더불어 경찰과 관료조직은 친일파들이 메우게 되었다. 이들은 자국민에 대한 탄압이 무척 잔혹했고, 항일독립투사에 대한 탄압도 지독했다. 민간인 학살에서 보여준 만행은 이가 떨리는 정도이다.



어느 친일파 장교출신 육군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마을 소년을 산에 끌고 와서 10명 중 9명은 일본도로 목을 베고, 나머지 1명에게 죽은 9명의 머리를 가져가게 했다고 한다. 군부와 경찰에 대한 불신과 문제점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등장하고,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중에 가장 많이 몸담은 단체가 대종교이다. 대종교는 국조 단군을 모시는 민족종교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대종교 신자였다. 대종교 신자가 해방 후 서울에 오니 당시 자신을 지독하게 고문한 일본순사가 한국경찰이 되어 있었다.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김원봉 대장도 해방직후 일제시대 순사를 했던 친일파에게 잡혀 고문을 당하고, 북으로 넘어갔다.



따라서 친일파와 친일파에게 불만을 가진 한국인의 대립이 이미 1930년대부터 존재했고, 쥐잡이작전은 육군사관학교에 가장 인기 높은 전략이다. 그런데 그 작전의 기원은 일본군이 하일유격대를 처치하기 위해 고안한 고도의 전략이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은 대부분 중국 및 러시아 일대에서 활약했고, 사회주의 노선 항일투쟁가들은 중국 공산당과 협력하여 활동했다. 중국내전에서 조선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한국전쟁은 중국과 소비에트연방, 그리고 미국의 파워게임에서 시작되었으나, 이미 그 전초는 한국인 내부에 있었다는 점이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미국인이나, 은근히 한국사회와 역사, 게다가 문학과 신화 등 전반적인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의 갈등은 당시 전쟁만이 아니라 21세기에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책의 서문에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책을 바친다고 적었다. 반정부 인사, 평화중재자, 정치가로 활동한 그를 말이다. 지금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고 호남에 태어났고, 한국전쟁 전에 인민위원회 활동으로 빨갱이란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하지만 브루스 커밍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몸담은 곳은 공산주의 세력과 무관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닌 각종 인민위원회는 자생적 조직이라 말했다.



그런 증거는 미군의 문서에서 발견되었고, 당시 미군은 한국의 자체조직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으며, 이들을 공산주의와 같은 세력으로 보았다. 대표적인 학살사건은 제주도의 4·3사건이고, 당시 제주도 주민들은 아무런 통신장비도 없었기에 공산세력과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생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 미군과 서북청년단은 경찰세력으로 편입하여 민간인 학살을 주도했다. 아직도 제주도는 4·3사건의 비극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당시 몇 만명의 주민들이 살해당했고, 몇 만명의 주민은 일본으로 대피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은 아직도 일본에 있다고 한다.



빨갱이로 낙인찍히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에게 화가 미친다. 빨갱이라고 지목된 남자의 아내 여동생, 누나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윤간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희생자의 성기 안에 수류탄을 넣었다고 한다. 이 글귀를 보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 잔인함이란 인간으로 해서 안 될 경계선을 넘은 것이다. 3살짜리 어린 여자아이가 총에 맞아 울고 있으니, 총에 달린 검으로 그 아이의 목을 베기도 했다. 당시 8살 소년은 자신의 여동생이 억울하게 죽어간 모습을 보았다. 평생의 상처가 되어 부모의 이름조차 말하지 못하다, 드디어 21세기 (진정한 의미로) 민주주의 정부가 도래하면서 당시의 비극을 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미국은 한국에 대해 더 심각하게 대했다. 지금은 우방국가라고 하지만, 당시 한국전쟁 전후는 일본의 전진 군사국가, 일본의 전후경제 복구를 위한 체계로 보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군수물자 공장을 맡은 일본은 경제적으로 급성장을 했다. 미군에 의해 항복한 전범들은 일부 사형에 처해졌지만, 그들의 후손 대부분이 일본의 총리와 의원직을 차지하고 있다. 아베 신조를 비롯한 자민당 의원은 대부분 우익정치가 내지 군인들의 후손이다. 미국에게 가장 치욕을 당한 그들이 이제는 태평양 국가 중에서 미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



한국인들은 미국의 최고 우방은 한국이라 여기나, 사실은 일본이다. 동북아시아 미군기지 중 가장 핵심 전략은 일본 오키나와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괌은 미국의 영토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영토가 아닌 미군의 군사력은 일본에 많이 포진하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은 내전이고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된 전쟁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보여준 잔인성과 비극은 이미 뿌리내린 씨앗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나 북한군과 아무 관계없어도 단지 북한군의 의복을 세탁을 해준 이유로 많은 여성들이 살해당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 내지 사상 따위는 전혀 모르는 까막눈이며, 오로지 원하는 것은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량이었다. 이런 민간인들의 속성을 모르는 미군과 주변 강대국, 일제강점기 때부터 싹이 튼 원한과 공포는 광기의 도가니로 몰았다. 한국전쟁이 세계전쟁사 특히 항공전쟁사에서 가지는 의미가 중요한 점은 세계 2차 대전보다 한국전쟁에서 폭격기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활약했고, 폭격기는 각종 군사시설 및 산업시설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들을 죽이게 만들었다.



한국인은 대부분 흰색옷을 입으니 그들은 민간인인 것을 알아도 흰색만 보이면 무조건 폭탄을 투하했다. 민간인들에게 대피할 것을 권유해도 떠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있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농업에 종사하고, 집안의 조상이 산에 있기에 쉽게 고향을 버릴 수가 없었다. 여기에 만주군관학교 출신 친일파장교들이 수행한 독립군 토벌작전도 포함되어 있다. 간도나 만주의 조선인들은 몰래 독립군에게 식량과 군자금을 지원하는 지원세력이었다. 그곳 출신 청년들은 독립군의 용사가 되어 일제에 항거했다.



조선의 민간인을 친일파 조선인들이 무참하게 살해하였던 것이다. 이런 그들이 이승만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한국전쟁까지 이어졌다. 제주도 4·3사건 당시 제주도 주민들은 대부분 희생자의 친척들이었다. 이들의 증오와 복수심은 지금도 제주도의 한으로 남아있고, 이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 더 심한 억압과 폭력을 가한 것이다. 제주도만큼 심하게 압박을 받은 곳은 전라도지역이다. 전라도는 동학운동 시절 가장 착취를 많이 당한 지역이고, 외세가 가장 많이 초토화시킨 지역이다. 청일전쟁에서 전라도 지역이 많은 타격을 받았고, 일제강점기 시대에 가장 많은 곡식을 수탈당했다(왜 군산시가 항구도시로 성장했을 수 있는가?).



전라도 지역사람들이 폭압을 당한만큼 그들 역시 저항을 많이 했다. 그래서 제주도처럼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 많은 사람들이 갈등을 빚은 곳이었다. 지금 전라도 내부에서는 자신들끼리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하기보단 타 지역과 갈등을 빚고 있다. 518의 비극에서 아직도 빨갱이로 낙인이 찍히고 있는 그들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한국전쟁 전후의 한국사를 보면 항상 피해자가 악마나 마녀 내지 적으로 간주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나, 단지 그것은 살아남은 하나의 국가나 사회적 합의체이지 그 사회 내의 존재들이라면, 결국 역사적 진실은 다시 우리에게 찾아오는 법이다. 브루스 커밍스의 책을 보면서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다시금 떠오른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그것은 하나의 진실이다. 하지만 진실은 어느 관점에 따라 사실과 왜곡으로 변모된다. 20세기 한국에서 광주는 불온세력이 포진한 지역이라면, 21세기 현재 광주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킨 곳이다.



서평을 보자면 한국전쟁 전후로 민간인 학살을 한국인과 미군만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겠지만, 북한군 역시 민간인을 학살했다. 문제는 민간인학살을 하던 전범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부정한다는 점이다. 그 죄를 건들면 아직도 이데올로기적인 마녀사냥을 구가한다. 당시 한국전쟁의 전환점은 미군의 군사력이다. 미군은 2차 세계대전 시에도 국방력을 그렇게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군사력이다. 한국전쟁을 기해 미국은 방위산업체의 확대되고, 지금 미국의 방산업계는 세계 최고이다. 한국전쟁은 미국에게 있어서 2차 세계대전처럼 파시스트에게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 패권을 잡기 위한 싸움이다.



그 전쟁은 베트남전쟁도 이어지고, 냉전체계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당시 미국 상원위원인 메카시가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메카시즘은 미국정치와 사회를 숙청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고, 그 시기 한국은 공산진영과 전쟁을 벌였다. 브루스 커밍스의 책에 언급했지만, 더 자세한 것은 <폭격>이란 도서에 나와 있는데, 미군은 유색인종인 동양인을 상당히 무시했다. 일본 상공에 폭격을 하나 한국의 농촌을 폭격하는 심정이었다. 한국인도 그들에게 하나의 gook(동양인을 멸시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학살하고도 이기지 못한 전쟁, 게다가 민간인학살까지 저지른 일들이 한국전쟁은 미국에게 잊어진 전쟁이 되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미국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디어가 참 많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에게 베트남 그 자체가 적이나, 한국은 적이 아니라 반쪽자리 우방국이다. 압록강까지 올라가 흥남부두에서 쫓기듯 내려온 그들에게 한국이란 인상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두고 변증법적인 논리로 보자면, 한국전쟁 이전 일제치하에서 조선인들을 상대로 횡포를 부린 친일파와 그들과 대치한 민중의 갈등에서(방안에 가득 찬 메탄가스), 소비에트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 정체세력이 총(라이터)을 발사한 것이다.



1950년보단 못하나, 아직도 그 메탄가스는 여전히 우리 주변을 부유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은 정치적 세력으로 표출되며, 정당간의 대립은 한국전쟁과 그 이전에 존재했던 과거의 그늘에서 나오고 있다. 저자의 놀라운 관찰력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나올 때의 이야기도 알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부인 권양숙 여사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여의였다. 아버지는 사회주의 단체와 연계되어 있지만,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란 점에서 그가 실제 전쟁에서 한국군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과거를 가지고 색깔론을 상대편 후보가 펼쳤다. 그 시대가 한국전쟁이 끝난 지 54년이 넘어도 그런 말이 나왔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계속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면 한국전쟁의 불씨는 꺼질 수 없을 것이다. 당장 북한과의 대화를 해야 하나, 한국사회의 갈등은 국내외적으로 정치, 군사, 외교에 큰 갈등을 야기한다. 전 정권의 정부는 일제가 저지른 위안부 문제와 징용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려 했다. 당시 자국민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지울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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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7-11-22 공감(17)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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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학자의 한국전쟁 이야기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유월이 지나갔고, 도올이 쓴 책 [우리는 너무 몰랐다]를 읽다가 브루스 커밍스라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도서관에서 그가 쓴 책을 보았을 때 이것도 인연인가 보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인데, 도올이 이 책을 출간되기 전에 커밍스로부터 받아 읽었다는 내용을 읽고, 커밍스가 우리나라와는 꽤 인연이 있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도올과 아는 사이였다니.



이 책의 내용을 지금은 거의 다 잊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한국전쟁은 내전이었다는 그의 주장. 그러므로 누가 먼저 총을 쏘았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내전이라... 내전에 외국 군대가 개입한다? 이런 사례는 스페인 내전에서도 일어났었다. 공화파와 프랑코파의 손을 들어준 세계적인 전쟁이 바로 스페인 내전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우리나라 전쟁도 이런 내전이고, 세계 여러나라에서 각자 편을 드는 쪽으로 가담했다는 말이지. 여기에 누가 먼저 도발했느냐보다는 내전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살피고, 그 내전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상흔들을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커밍스가 이야기하는 것도 이것이고. 그가 펴낸 이 책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도 이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내전이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왜곡된 정보로 잘못 알려진 전쟁이었다. 아니 잘못 알려진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에게는 잊혀진 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이 미국에게 이런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으로 취급한다.



1950년대 후반 여섯 달 동안 방위비가 거의 네 배로 증가하면서 미국의 광범위한 해외 기지를 구축하고 국내에서 안보국가를 수립한 것도, 그리고 미국을 세계의 경찰국가로 만든 것도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325쪽)



이것이 미국에게 한국전쟁이 지닌 의미일 텐데도, 그들은 이기지 못한 한국전쟁,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전쟁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브루스 커밍스가 책을 썼다. 미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 최근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북쪽으로 갔다가 다시 왔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미국 대통령들은 북한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많이들 써먹는다. 악의 축으로 몰라 군비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써먹든, 북한과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인기를 얻는 데 써먹든 북한은 여러모로 미국 정치인들에게 수단이 된다.



아직까지는 유효한 수단, 그만큼 북한과 미국은 완전한 화해, 평화로 가지 못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있고, 적어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전쟁에 대한 위협에 시달리지는 않으니 다행이라고 하겠지만, 한국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이 바로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 아닌 유산인데... 이제는 한국전쟁을 넘어서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에 관한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전쟁의 기억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잘못된 기억은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것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왜곡한 정보를 유포했던 과거를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왜곡된 정보 중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한국전쟁 기간 동안에 곳곳에서 자행되었던 학살들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진실을 밝혀야 화해를 하고 용서를 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많이 알려진 노근리 학살 등을 포함해 많은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이 책에서 이런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는 예로 영암군 구림마을을 들고 있다.



2006년 마을의 원로들이 530쪽에 달하는 구림마을의 역사를 편찬하여 전쟁 중 사망한 이들의 명부를 가해자를 병기하지 않은 채 기록하고 합동 추모제를 후원하면서, 마을은 남한 전역에서 화해의 상징이 되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마을의 원로들은 전쟁이 끝난 뒤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밝히지 말고 복수를 하지도 말기로 공동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남한에서 이루어진 여러 조사의 목적은 책임을 묻거나 냉전의 싸움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 남한 사이의 화해를 도모하고 과거에 적이었던 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인식과 태도를 얻는 것이었다. 이해란 공감이 아니고 감정이입도 아니며, 단지 적의 행동을 이끈 원칙들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 원칙들이 용납하기 어렵다고 해도, 역사적으로 그 적에게 일어난 일에 관한 나의 지식과 크게 상충되더라도 상관없다. (318쪽)



이제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전쟁은 남과 북이, 그리고 남과 북, 미국, 중국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디딤돌이 되게 해야 한다. 서로를 비난하고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과거로 돌리고 미래의 원동력으로 삼는 지혜, 그 지혜가 발현되어야 하는 때가 지금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을 읽으며 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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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19-07-05 공감(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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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서평: 이제는 한국전쟁의 본질을 제대로 보아야할 때이다!>






2018년 들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통령 문재인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난 뒤, 잠시 50% 중후반의 지지율에서 다시 70%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남북회담을 아주 극찬했다. 이로써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2018년인 올해는 남북한 정부가 수립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48년 8월 15일에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고, 1948년 9월 9일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됐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단은 계속되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휴전 상태다. 남북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지만, 일반 국민들의 인식하는 한국전쟁에 대한 시각은 아직까지는 크게 달라지고 있지 않다. 즉 미국과 한국의 공식 견해인 “스탈린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 전쟁을 시작했는데 미국이 성공적으로 막아냈고 대한민국을 지켰다는 것이다.”로써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은 무조건 악으로만 간주되어야 하고, 대한민국은 선으로 간주돼야만 하는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것 같다. 대체로 우리 국민들이 이해하고 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거기까지 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국내에서 출판된 논문이나 서적들 중에는 대체로 우익적이고 보수적인 시각이 반영된 것들이 많다.



작년 12월 한국전쟁에 대한 권위 있는 연구자이자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비판적인 브루스 커밍스의 새 책이 한글로 번역되어 출판됐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은 80년대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가 2010년대 들어서 쓴 한국전쟁 서적이다. 분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한국전쟁의 핵심을 아주 잘 정리했고, 기존의 반공주의적인 시각에서 많이 벗어났다.



1. 미국에게는 잊혀진 전쟁



우리에게 있어서 6.25라고 불리는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됐다.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전쟁이다. 즉 어느 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전쟁이라는 얘기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전쟁에 대한 명칭은 각 나라마다 다르다. 대한민국의 경우 북한군이 T-34탱크를 몰고 내려온 날인 6월 25일에 시작됐다고 하여 6.25전쟁이라고 부른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곧바로 개입한 미국은 이 전쟁은 자신들이 지키고자 했던 국가 한국이라는 이름을 따서 한국전쟁(Korean War)라고 부른다. 이 전쟁을 먼저 시작한 북한의 경우 이 전쟁을 ‘미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남조선 괴뢰 도당을 몰아내는 전쟁’ 혹은 ‘민족해방전쟁’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북한은 이 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 칭한다. 반면 북한의 멸망할 위기에 놓이자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기치를 내걸고 100만 대군을 참전시킨 중국은 이 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부른다. 이렇듯 한국전쟁의 주축이 되었던 국가들 마다 이 전쟁을 부르는 명칭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시점부터 사실상 참전했던 미국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기 까지 전쟁에 참전했다. 많은 병사들이 한반도에 파병되었고, 전쟁기간동안 약 3만6천명의 미군이 전사했다. 수많은 병력이 동원되고 전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게 있어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다. 미국사회는 한국전쟁에 대해 그다지 크나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국전쟁이 잊혀졌다는 얘기는 미국 민중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제2차세계대전이나, 미국 민중의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베트남 전쟁에 비해 잊혔다는 얘기도 된다.



저자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에 따르면 체계적인 억압과 검열 때문이라고 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미국 사회는 매카시즘이라는 극단적인 반공주의에 빠져있었고, 수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자들로 낙인찍힐까봐 두려움에 떨던 시대였다. 따라서 그 전쟁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위험이 뒤따랐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소련의 핵개발로 인하여 미국사회는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한국전에 큰 장애물 없이 참전할 수 있었다. 매카시즘 덕분에 미국은 한국전쟁 반대세력을 크게 형성하지 않을 수 있었고, 한국전쟁도 1951년 춘계공세 이후 다시 38선 부근에서 벌어지는 고지 쟁탈전 위주의 전투로 바뀌고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미국 사람들 관심사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한국전쟁 시기 한반도에서 미국의 벌인 만행과, 1945년 2차세계대전 이후 조선반도에 들어온 미군정이 저지른 만행이 미국 내에서 크게 논쟁거리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 속에서 냉전 이후 미국은 북한이라는 나라를 악의 축으로 결정하는 실책을 범하였다.



2. 전쟁의 기원과 남북한 각 정부의 수립 과정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은 한국전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한국근현대사를 책에 아주 잘 정리했다. 브루스 커밍스는 “스탈린과 마오쩌둥으로부터 병력과 물자를 지원 받은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 대한민국을 기습했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한국전쟁 이전인 남북분단정부 수립과 해방 후 분단의 비극을 매우 잘 조명했다.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통치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식민지 통치 시기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했던 세력과 만주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세력이 나중에 분단 속에서 남북한 분단 정권을 수립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브루스 커밍스는 북한의 지도자이자 독재자이기도한 김일성과 북한 초기 내각 거두들의 항일무장투쟁을 잘 재조명 했다. 김일성이 후에 저지른 과오를 떠나서 그의 항일무장투쟁을 과장 없이 충실하게 재조명한 건 분명 대단하다. 커밍스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의 주류 정치세력들은 만주항일무장투쟁 세력들로 구성된 반면 대한민국의 주류 정치 세력들은 대체로 친일파들이었다. 이와 같은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은 일리가 없는 주장이 절대 아니지만, 한 가지 놓친 부분이 있다.



대한민국 초대 내각이 꼭 친일파들로만 구성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임시정부의 주석이라 할 수 있는 백범 김구가 대한민국 초대내각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외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적잖게 대한민국 초대 내각에 들어갔다. 신익희, 이범석, 이시영을 비롯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적잖게 대한민국 초대 내각에 참여했고, 사회주의자였던 죽산 조봉암도 대한민국 초대 내각에서 농림부 장관으로 활동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책에 서술하지 않은 부분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계열 세력들이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은 아니었고, 김일성을 중심으로 뭉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친일파들을 웬만큼 처벌했던 데에 비해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을 하나도 청산하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북한은 대한민국의 친일파 청산을 문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책 저자인 브루스 커밍스가 이 점을 놓치긴 했지만, 분단과 한국전쟁의 본질을 잘 파악했다는 점에선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브루스 커밍스는 해방 이후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만든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를 미군정이 해산한 것부터 시작하여 친일파들을 앞세워 각종 노동자 농민 투쟁을 피로 물들이고 대구와 제주도 그리고 여수 순천을 피바다로 물들인 미군정의 잘못을 아주 정확히 지적했다. 김종원을 비롯한 우익 파시스트들과 친일파들이 벌인 악행도 아주 잘 정리했다. 즉 미군정의 제국주의적인 정책을 일목요연하게 비판했다. 이와 같은 커밍스의 해석은 아주 정확하고 훌륭하다.



3. 전쟁의 성격과 민간인 학살



3년간 지속되던 한국전쟁은 민간인 학살로 얼룩져 있다. 전쟁 초기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에서 벌인 최악이 민간인 학살인 보도연맹 학살로 인하여 최소 30만 명이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학살됐다. 저자 커밍스는 미국의 동맹국 대한민국이 벌인 민간인 학살을 낱낱이 밝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군과 이승만 정부에 의해서 학살당한 사람이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의 학살로 인하여 죽은 사람의 숫자를 훨씬 능가한다고 한다.



저자 브루스 커밍스는 인민군의 양민학살 또한 책에서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그 또한 전쟁 시기 인민군의 저지른 양민 학살 또한 잘못된학살이라는 사실이라 책에서 알려주고 있다. 인민군에 의해 학살된 사람(민간인뿐만 아니라 포로도 포함된다.)은 한 몇 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다만 인민군의 학살은 국군이나 미군에 비하면 어느 정도 기준이 있었다. 2000년대 만들어진 진실화해위원회는 북한이나 남한의 좌익에 의한 처형도 똑같이 다루었는데, 그들의 조사에 의하면 공산주의자들의 잔학 행위가 전체 사례에서 대략 1/6에 지나지 않으며 이들이 사람을 가려가며 처형했다고 한다. 한 예로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과 그 협력자들은 서울, 대전, 청주 등지에서 수백 명씩 살해하여 전부 1100명을 살해했는데 대개는 억류되어 있던 경찰과 우익 청년단체 회원들이었다. 반면에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한 국군학살에서 수천구의 시신을 찾아냈는데, 이중 10살 미만의 어린이의 시신도 수십 구씩이나 발견되었다.



저자 브루스 커밍스는 자국인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 또한 낱낱이 밝혔다. 1950년 7월 미국 제1기병사단에 의해서 200명이나 되는 민간인이 노근리에서 학살되었다. 그리고 미군은 한국군의 노골적인 학살을 하도록 방지했고, 절대 막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제거하고자 했던 대상을 포로로 잡아 대책없이 넘기며 그들의 학살을 돕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한국전쟁 시기 미군이 저지른 최악의 민간인 학살은 무차별 폭격이라 할 수 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태평양전쟁 구역 전체에 투하된 폭탄 총량이 50만 3000톤이었다. 이중 20만 톤은 일본본토에 떨어졌다. 그러나 1950~53년까지 미국이 한국전에 참전하면서 퍼부은 폭탄의 량은 63만 5000톤이다. 거기다 북한에 쏟아 부은 네이팜 폭탄은 3만 2000톤이고, 이걸 다 합치면 66만 7000톤이 된다. 네이팜탄의 파괴적 효과는 베트남보다 북한에서 더 힘을 발휘했다. 그것은 북한 인구가 조밀한 도시와 도시 산업 시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 도시 60곳이 평균 43퍼센트 수준으로 파괴된 반면, 북한 도시와 마을이 파괴된 정도는 40~90퍼센트까지로 추산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한국전쟁 당시 미국은 북한을 무차별 폭격하며 북한이라는 땅을 ‘달의 표면과 같은 땅’으로 만들었다. 당시 미공군을 지휘했던 커티스 르메이의 증언에 따르면 100만 명이나 되는 민간인이 폭격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 수치가 과장이든 아니든 간에 미국의 인정사정 없는 폭격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죽은 것은 사실이다.



4. 이제는 반공주의적인 시각에서가 아닌 '한국전쟁이 왜 일어났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한국전쟁을 보아야할 때이다.



책의 저자 브루스 커밍스는 이 책을 통해서 “스탈린과 마오쩌둥으로부터 병력과 물자를 지원 받은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 대한민국을 기습했다.”와 같이 한국전쟁을 ‘누가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이나 견해에 반대하여 한국전쟁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리고 저자 브루스 커밍스는 지난 한국전쟁 시기 북한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미국이 저지른 무차별 폭격에 대해 조리 있게 비판했다. 이와 같이 그가 가지고 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시각은 분명 미국의 주류역사학계가 가지고 있는 시각과는 완전히 상반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국내에 있는 알라딘 인터넷 서점의 책 평점과 amazon(미국의 인터넷 소매점)에 나와 있는 이 책의 평점을 잠깐 찾아보았다. 두 사이트에서 이 책에 대해 평점을 매우 낮게 준 사람들이 이 책에서 문제 삼는 공통점은 ‘이 책이 좌편향 적이다.’라거나 저자가 ‘빨갱이’라는 것이다. 이렇든 이 책은 한국이나 미국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시각하고는 사뭇 다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을 평가 절하하는 세력들은 기존의 반공주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이후 전쟁의 위협은 한반도를 맴돌았다. 그리고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뻔 했다. 1968년 1,21사건과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때, 1994년 클린턴 정부가 북폭을 준비했을 때,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부시 정부 안에서 “북한도 공격해서 없애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리고 2017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은 화염과 분노에 휩싸일 것이다.’라고 했을 때 말이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긴장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늘상 일어났고, 한반도에 사는 국민들을 긴장관계로 몰아넣었다.



최근 들어 한반도는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전쟁을 불사하겠다던 북미관계도 차츰 완화되어 2018년 6월 12일에는 사상최초로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폴에서 개최되기 까지 했다. 소위 보수 꼴통으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가 김정은과 북한에게 보인 반응은 정말 의외였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과 남한의 대통령 문재인을 극찬했다. 그리고 얼마 전인 2018년 9월 18에는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어 평양을 방문했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 회담은 잘 진행되었다. 이번 정상 회담에서 김정은은 조만간 서울을 방문할 것이라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이번 회담에서 보인 반응은 아주 긍정적이었다. 작년의 북미관계를 고려해보자면, 생각하기 힘들었던 일이 올해 들어 일어났다. 이렇듯 한반도는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즉 한반도 관계가 다시 변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반 사람들이 인식하는 한국전쟁의 본질을 보지 못한 채 지극히 우익적인 관점에 빠져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바뀌듯이 한국전쟁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도 앞으로 보다 더 넓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과 같은 책들이 앞으로 더 많이 나와야 할 거고, 그런 책들이 대중들에게 많이 읽혀야 할 것이다. 이번 남북관계과 개선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한번 가져본다.



분단적폐 물리치고 가자 평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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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9-26 공감(13)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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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의 기원‘이후 새롭게 정리한 한국 전쟁








책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었던 2010년 미국에서 출간됐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기원》 이후 새롭게 기밀 해제된 자료를 추가하는 등 한국 전쟁을 총정리했다. 그는 '미국인이 미국인을 위해 쓴 한국전쟁에 관한 책'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보면서, 내전을 초래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힘의 기원을 일본의 식민통치 시대까지 확장한다.




"특히 불평등한 토지 보유, 한국인 중 일부는 항일 운동에 참여하고 다른 일부는 일본에 협력했던 것, 그리고 수많은 한국인이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일본의 방대한 산업화와 전시 동원 노력에 복무해야 했던 1935∼45년의 10년 동안 평범한 한국인이 겪은 경악스러운 혼란에 그 뿌리가 있다."(163쪽)



그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일본의 한국 식민통치 시기(1910~1945)의 특징이었던 계급 간의 분열과 항일투쟁의 분열에서 비롯된 내전이었다.



미국은 한국 전쟁을 통해 새로운 체계로 도약했다. 미국은 방위비를 대폭 늘렸고, 해외 기지를 광범위하게 구축했으며, 안보 국가를 수립했다. 미국을 세계의 경찰국가로 만든 것도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바로 한국 전쟁이었다.



한국 전쟁은 미국인이나 우리 모두에게 “잊혀진 전쟁”이 되었다. 한반도의 분단은 미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보수 진영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수단이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2016년 10월 21일 제주칼호텔에서 ‘미국의 책임과 제주의 학살'이란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그는 2017년 4월 제2회 제주4.3평화상을 수상했다.



특히 그는 한국 전쟁 중 벌어진 잔혹한 학살과 광범위한 공습에 대해 주목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미국이 투하한 폭탄의 총량은 120만 톤이었다. 미국은 한국에서 64만 5천 톤의 폭탄을 투하했는데(3만 2557톤의 네이팜탄은 별도), 이에 비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태평양 전쟁구역 전체에 투하한 것이 50만 3천 톤이었다. 북한의 22개 주요 도시 중에서 18개 도시는 최소한 50%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북한의 도시와 마을의 파괴 정도는 “40~90%까지로” 추산되었다.(226쪽) 저자에 따르면 북한 지역은 공습으로 '달의 표면'처럼 변했다.



저자는 최근 미국의 트럼프와 존 매케인 등 극우 진영이 북한을 겨냥하여 “화염과 분노”, “절멸”이라는 망령을 불러낸 것은 역사의식 없는 정치인의 소행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2017년 오늘날을 사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내전을 기록한 역사가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그는 “과거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이러한 이해 없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의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에 우리는 한국 전쟁을 새롭게 조명하는 한편, 남북한 공동체 차원의 화해를 모색해야 한다.



커밍스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넬슨 만델라에 비견되는 화해와 치유의 정치를 발견했다. 그는 이번 책을 김 전 대통령께 헌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2007년 제1회 김대중 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북핵 위기를 빠르게 푸는 방법? 저자에 따르면 북한이 요구하는 두 가지 사항, 즉 최종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한국 전쟁을 끝내고, 북한을 외교적으로 승인하는 것이다. 왜 미국은 이것을 거부할까? 이는 바로 러시아와 중국을 포위·압박하기 위한 군사적, 정치적 책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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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지기 2017-12-25 공감(11)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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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한국 전쟁을 진지한 학술 연구의 시초로 닦은 ‘한국 전쟁의 기원’의 저자이자 미국 시카고대 석좌 교수인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최근 출간작인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 을 일독했습니다. 그는 80년대에 미국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한국전쟁에 대한 수정주의적 입장을 견지했는데요. 박명림 교수를 비롯한 국내의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한국 전쟁에 대한 ‘실제 역사’가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최근에 러시아가 공개한 구소련 시절의 스탈린과 마오쩌둥, 김일성 간의 외교적 대화와 기록들이 공개되면서 당시 김일성의 행적이 낱낱이 검증되어 논란이 불식되었습니다. 1950년 초에 스탈린이 김일성의 요구를 잠정적으로 인정하면서 김일성이 주도한 북한군의 38선 이남 남진이 사실로 밝혀졌죠.

지금도 한국의 많은 관련 학자들은 커밍스 교수의 한국 전쟁론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밍스 교수는 특유의 노력으로 미국이 보유했지만 그동안 잊혀져 있던 수많은 한국 전쟁 자료들을 발굴해 내었기에 이 부분 만큼은 인정 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1999년에 공개된 남측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진 자료들이 일부 실려 있고, 책 후반부에 이 주제에 대한 글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제가 고교 시절에 배웠던 국사 교과서에도 나와있던 소쉬 ‘애치슨 라인’ 이 간접적으로 북한의 남침을 제공한 것으로 설명되는데, 커밍스 교수는 ‘한국 자체로서 대 공산주의 대결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는 것을 애치슨을 비롯한 트루먼 대통령이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것을 표면적으로 밝히는 것이 어려웠다. 그 이유는 이런 미국의 입장을 내세워 이승만이 겁없이 전쟁을 시작할까 두려웠기 때문” 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전쟁 기간 내에 맥아더와 트루먼의 대립은 익히 알려진대로 그러했지만, 숨어있던 내막은 트루먼이 맥아더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렸던 이유는 미국 정부가 핵폭탄 사용을 결정하면 햔직에 더 신뢰할 만한 지휘관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번역 출간된 데이비트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에서 보여지는 맥아더, 트루먼의 일련의 갈등의 본질을 잘못 끄집어 냈다는 것으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그외에도 핼버스탬이 미국 정부에 있어서 한국 전쟁에 대한 실제적 이해에 대해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커밍스는 받아들이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이에 애치슨의 표현대로 ‘한국 전쟁은 발발하여 우리(미국)를 구한 위기’ 였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봐야겠죠. 당시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싸여 있던 미국 정계에서도 이 한국 전쟁의 의미는 단순히 먼 아시아의 내전으로만 한정하기에는 어려웠을 겁니다. 더욱이 자신들의 태평양 안보에 있어서 중요한 일본을 재건하는데 한국전쟁을 십분 이용함으로써 미국의 정치권에게는 실로 적절한 위기였다고 해석하고 싶군요.

그리고 미국인들이 우리에게 갖고 있던 인종주의적 편견에 대해서도 2008년에 출간된 커밍스 교수의 공저 ‘악의 축의 발명’에서 언급된 공통된 인식이 들어가 있는데요. 특히 당시 남한에서 군정을 수립하고 거기에 참여했던 미군과 그 수뇌부들이 갖고 인종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데요. 제가 느끼기에는 제주에서의 사건, 여수와 대전, 수원 등지에서 자행되었던 한국군과 경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이러한 인종주의적 편견으로 인식되어 정치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은 당시 현지의 (권력을 지닌) 미국인들에 대한 비판입니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이승만 정권과 그에게 부역했던 권력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확인되지도 않은 사상의 껍데기로 싸잡아 처단해 아직도 진실과 화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는 미국에게도 공통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근리 사건에서 보여졌던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대응을 봤을 때 이러한 화해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지나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외에도 한반도 전체를 ‘달 표면’과 마찬가지로 만들었다는 미 공군에 의한 무차별 폭격과 먼 미래에 이라크에 대해 1945년의 한국과 거의 동일한 과오를 저질렀다고 자기 고백하는 미국인 커밍스 교수의 언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한국 전쟁의 진실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지만 커밍스 교수의 용기가 느껴지는 이 단행본은 조금이나마 우리가 과거의 동족 상잔의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약간의 논외지만 미일 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많은 미국의 연구자들과 학자들과 달리 일본에 의한 냉혹한 한국 식민 통치와 ‘아베는 근본적으로 고노 담화를 거부한다’ 고 평가하는 그의 진심은 약간의 학자적 양심을 느껴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역사와 진실을 날 것 그대로 마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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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17-12-09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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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70주년] 한국 전쟁의 기원을 찾아서







식민지 폭동을 지원하는 것부터 위성국을 무장침략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에서 사용된 공산주의자들 방식의 대표적인 예로 1950년 한국 전쟁을 들 수 있다. 1950년 6월 25일 러시아식 훈련을 받은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략했다. 남한에서 미군이 철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어느 면에서 한국 전쟁은 그 지역에 국한된 제한적인 전쟁(국지전) limited war였다... 한국 전쟁은 1953년 7월에야 끝났다.(p939) <전쟁의 역사> 中




<전쟁의 역사 A Histoty of Warfare>의 저자 버나드 로 몽고메리 (Bernard Law Montgomery, 1887 ~ 1976)가 한국전쟁에 대해 기술한 바는 적지만, 짧은 내용 안에 담긴 한국전쟁의 기원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반해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1943 ~ )는 한국 현대사에서 전면전으로서의 한국전쟁의 원인을 양측의 입장을 함께 제시한다.






1950년 6월의 전쟁 발발 상황에 대한 설명들 대부분은 완전히 방심하고 있는 적을 향해 북한이 새벽녘에 38도선 전역에서 공격을 개시한 듯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전쟁은 1949년에 많은 전투가 벌어진 바로 그 외진 옹진반도에서 시작되어 몇 시간 후에 38도선을 따라 동쪽으로 확산되면서 개성, 춘천, 동해안에 이른 것이다.(p364)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中




공식적인 미국사에 따르면, 옹진반도에서는 제17연대 병사들이 1950년 6월 24일, 25일, 조용한 여름밤에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 4시 정각에 너무나 급작스럽게... (대포와 박격포의 사격이) 굉음을 울리며 대한민국의 경계선을 침입하였다.(p364)... 북한의 공영 라디오 방송은 이와 다르게 발표했다. 남한 군대가 6월 23일 오후 10시에 은파산 일대를 포격하기 시작했으며, 곡사포와 박격포를 동원한 이 포격은 6월 24일 새벽 4시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p365)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中







브루스 커밍스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에서 1950년 이전에 남북간에 이미 많은 충돌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공간적으로 옹진반도가 전면적인 한국전쟁 확산의 진원지라면, 시간적 배경을 올바로 이해할 때 비로소 한국전쟁의 기원의 참다운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전쟁의 기원>은 이러한 시간적 배경을 보다 상세하게 서술한다. 본래 2권으로 이루어진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중 1권을 번역한 <한국 전쟁의 기원>에서는 해방 정국을 중심으로 그 원인을 보다 상세하게 고찰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 ~ )의 '동아시아 30년 전쟁'의 사관(史觀)을 통하는바를 발견한다 .

















만주에서의 항일 활약상의 인식은 한국 공산주의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긴요한 것이다... 만주를 배경으로 한인이 이룩한 최소한의 성공도 항일운동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대전 후의 한국에서 영도적 지위를 확보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p71)... 이러한 만주에서의 경험에 있어서 특히 언급해야 할 다른 요소 하나가 유격대들을 살해하는 데 기꺼이 참가할 한인들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한인(韓人) 수백 명이 사병 혹은 하급장교로 토벌작전에 가담했다. 일본신문들을 이들 한인들 사이의 대결을 크게 보도한 바 있다... 1950년 6월의 실상은 일본인들이 바람의 씨앗을 뿌렸으며, 한인들은 거센 회오리바람을 거둬들인 것이다.(p72) <한국 전쟁의 기원> 中




미국의 정책들은 개념과 결과에 있어서 식민 잔재의 완전한 재편성을 요구하는 한인들의 염원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리 의도한 바가 좋았다 하더라도 이러한 염원을 대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무지와 과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의 미국의 실패의 본질인 것이다. 그리하여 해방 후의 첫 해는 한인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에게도 하나의 시련을 제공했으며, 그 속에서 새로운 통치체제가 그 자체의 이익에 입각한 논리를 전개시켰다.(p541) <한국 전쟁의 기원> 中




일단 읽던 책은 마무리하고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전쟁의 기원을 정리하는 것도 의미있는 독서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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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6-13 공감 (39)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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