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5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1,2,3) - 에큐메니안 「농촌과 목회」49호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1) - 에큐메니안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1)한국생명농업의 현황과 과제
안재학 목사 | 승인 2011.04.29 09:45


1. 한국농촌지역의 상황과 국내 농업

한국의 농촌지역의 인구는 196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농촌의 젊은 세대들은 도시로 자신과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도시로 직업을 찾아서 나서는 일들이 빈번하였다. 1960년대 말, 7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의 농업 인구는 전체 인구의 70%에 달했지만 지금은 많은 것들이 변했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의 농촌지역은 많은 변화들이 있어왔다. 이러한 변화들은 한국의 농촌의 풍경들을 바꾸어 놓았다. 인구 통계 측면에서 보면 농촌의 남아 있는 이들은 노인 연령층이 대부분인 반면에 젊은 세대들은 도시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산업화로 인해 이농현상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농촌의 노동력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간 인력에 의지하던 많은 농사의 일들이 파종기나 수확기에 기계나 또 다른 기술들로 대체 되었다. 심지어 농경지에는 사람들보다도 기계들이 더 많이 보이는 진풍경까지 낳고 있는 현실을 목격한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한국의 농민들이 그들보다 잘 산다고 말을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옳은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환율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을뿐더러 한국농민들의 대다수들은 그들이 일 년 동안 벌어들이는 수입보다도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 농민들은 대단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으며 개별농가는 각각의 어려움에 봉착하여 있다. 특히 WTO 법안이 국회를 통과된 지 오래되었고, 농기계와 농약 비료 등을 구입하는데 있어서 대부분의 농민들은 정부나 농협에게 많은 대출을 받고 있다. 심지어 종자를 구입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기관으로부터 저리로 대출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변제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게다가 한국정부의 잘못된 농업정책은 농업을 포기하고 국내총생산량(GDP)을 높이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데에 그 어려움이 더하다고 할 것이다.

한국 농업의 두드러진 특색 중의 하나는 대부분의 농가가 적은 경작 면적을 가진 가족농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농민들의 평균연령이 고령화됨으로 위협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도시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전체 농업인구에서 60대 이상의 농민의 비율은 90년대 17.8%에서 2002년 38.2%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도시와 농촌지역의 소득의 격차를 더욱더 가속화시켰다. 특히나 자유무역과 같은 농업환경의 빠른 변화와 식품소비 패턴의 변화들은 한국 농업에 큰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한국의 식품 소비 패턴은 최근 눈에 띌 만큼 많이 변했다. 수많은 요인들이 이러한 변화들에 책임이 있다. 이러한 요인들 중에서 주목할 만 한 것은 노동시장에 있어서 여성의 참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력에 있어서 여성들은 시간적으로 압박을 받아왔다. 왜냐하면 그들은 심지어 노동의 끝난 이후에도 가사노동을 일상적으로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성들은 결과적으로 가족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편리함을 찾게 되었다.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가공식품의 수입이 증가 되었고, 이것은 가족들 혹은 소비자들의 주된 관심으로서 식품 안전의 문제를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시장의 변화는 농산물 공급체계에도 또한 영향을 주었다. 농산물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소비자들의 기호의 다양화는 생산주도의 시장에서 시장주도의 공급체계로 변화하게 되었다. 시장주도형 공급체계는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유통 등의 개발과 광고 등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기술력 또한 진전되었다. 시장주도형 공급체계는 시장의 상황을 강조하는 시스템이다. 만약 농업생산물이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생산품들은 농민들의 소득증대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계속)

* 이 글은 지난 해 11월 22-26일 스리랑카 캔디에서 열린 제2차 아시아기독교생명농업포럼에서 필자가 발제한 글(영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이 글은 「농촌과 목회」49호에도 실렸습니다.
==========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2) - 에큐메니안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2)한국생명농업의 현황과 과제

안재학 목사 | 승인 2011.05.06 09:29

댓글0

icon트위터

icon페이스북





2. 생명농업운동



첫째, 우리는 농산물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이러한 방식은 작물을 재배하는 생산적이고 대안적인 전략으로서 대체되어야 한다. 이것은 인체뿐만 아니라 지구, 토양, 물 등에 유용한 방법이다. 우리는 미생물들과 다양한 유기퇴비를 사용하며 이것을 우리는 유기농업이라고 부른다. 유기농업의 합리적 근거는 인간존재 자체의 생존을 위한 환경을 지속하는데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위해 지속가능한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미래세대를 위한 자연환경을 복원하고 회복하기 위한 숙고함 없이 자신들의 편리함을 위해 자원을 이용하고 착취한다. 이러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개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끔 만든다. 개발은 자연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에서 허용된다. 개발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대안농업이라고 부른다.



농사는 생명을 살리고 공급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생명들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농업무역에 있어서 농사는 점점 더 자연의 생명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미래세대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능력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복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우리자신의 생존을 위한 지구의 자연환경과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는 우리 없이 살아갈 수 있지만, 우리는 어머니 지구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신념에 바탕한 자연농업과 유기농업에 중점을 둔 농업이 시도되었고 그러한 방법들을 증진시켜나갔던 몇몇의 시민단체들이 있었다. 90년대 이전에는 한국에서 유기농업은 이러한 지속가능한 실천들이 확산되는 초창기였다.



한국농업은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화학비료와 제초제, 살충제 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화학비료의 의존도는 점차 감소하고는 있지만 농약의 사용은 여전히 크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 농업생산물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 사이의 요구들 혹은 관심은 높은 품질과 안전성이다. 사실 유기농산물에 대한 요구들은 증가하고 있다. (총생산량- 336,000톤: 전체 농산물의 2%, 23,000 가정, 25,000 헥타르: 2003년 통계)이러한 수치는 더욱 커지고 있고 유기농 농가의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관행농 인구의 10% 미만: 2010년 통계)



우리 유기농업의 상황은 미국이나 유럽의 많은 선진국의 유기농업에 대한 현황들과 견주어 보았을 때 초보적인 단계이지만 유기농산물의 생산과 유통은 전체 농산물과 비교했을 때 잠재적으로 사업적 전망이 있다.



한국에서 생명농업 운동은 조직적 그리고 개별적인 다양한 헌신들로 이루어졌다. 각 단체들을 언급함에 있어서 단체의 그룹들은 일반적으로 농촌지역에서 헌신하는 목회자 그룹과 농민들과 활동가 중심으로 이루어진 평신도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두 그룹들 중에서 목회자 그룹을 상세하게 소개하자면 첫 번째, 감리교 목회자들은 1985년도에 농촌목회자연합회를 결성하고 두 번째, 예장(통합)은 1987년에, 기장은 1989년에 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를 결성하게 이른다. 80년대 후반에 한국의 정치적인 논쟁점들은 대중매체를 장악하고 직접적인 폭력을 통해 국민들을 억압하는 군사정부의 잘못된 정책들과 얽혀서 꽤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처음에는 농촌목회자들이 정부의 농업정책과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서 거리에서 투쟁을 했다. 이것은 종국에는 농촌교회의 선교가 대정부 투쟁 일변도에서 보다 대안적인 방향을 찾도록 결심하는 데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곡물과 채소 정부수매에 대해 눈을 돌리고 집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관행농의 폐해 즉, 농약, 비료, 제초제 , 살충제 사용에 대해서 화제를 삼지 않았다. 그때에 농촌목회자들이 자발적으로 유기농업과 대안농업을 시작했고 권장하기 시작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1990년대가 시작하면서 농촌지역에서 생명공동체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또한 많은 협동조합들과 공동체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생명농업을 증진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많은 성공적인 이야기와 실패한 이야기들이 공동체 내부, 외부에서 보고되어지고 평가되어 진다. 어쨌든, 이것은 생명농업을 통한 지역공동체건설을 함에 있어서 한국의 현재적 진행상황이다.



반면, 평신도 그룹들 또한 생명농업에 매료되어 생명농업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이러한 단체들의 대부분은 기독교 신앙에 기반해서 그들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그룹에는 정농회, 가나안농군학교, 기독교농민회, 가톨릭농민회, 자연농업협회 등이 있다.



이 지점에 있어서 필자는 농촌선교를 위한 목회자 연합회(이하 농목)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하고 자 한다. 농목은 그들의 신앙고백을 통해 사회적 정의를 위해 싸워왔던 시대의 어두움에 저항해왔던 교회들과 목회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농목의 조직 및 개인들은 민중 운동을 함께 하면서 농촌의 인구가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목격했다. 80년대와 같이 여전히 농촌지역에는 남아있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이제 부모세대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혹은 도시로 이주해간 자녀들이 경제적 이유 혹은 이혼의 이유 등으로 자녀양육이 힘들어서 다시 시골의 노부모에게 자녀들을 내려 보내어진 소위 조손가정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아이들은 빈곤가정과 이혼가정이 겪는 아픔들이며 그들은 상처받은 영혼들이다.



농촌인구의 고령화는 한국과 같은 나라들에게는 주된 관심거리가 되었다. 아무도 농촌으로 이주하여 생업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도시로 이주하고 농업에는 관심도 없다. 더욱 나쁜 것은 젊은 한국 여성들은 대부분 도시로 이주했으며 이것은 농촌의 총각들의 결혼풍속에도 크게 영향을 주게 되었다. 최근에 이주여성들이 한국 농촌의 농민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이주여성들은 한국에서의 보다 나은 삶을 꿈꾸지만 실상은 그들의 바라고 꿈꾸었던 장밋빛 미래와는 거리가 먼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다문화 이슈는 최근 들어 새롭게 급부상하는 문제들이다.



최근에는 소수의 젊은이들이 농촌에 남거나, 농촌으로 돌아오는 경우들이 있다. 원래 농촌지역에 살던 젊은 자식들은 대부분 관행농에 익숙하고 관행농을 통해서 소득을 얻는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갈등의 소지가 있다. 특히 생명농업에 보다 집중하는 귀농한 젊은 농민들과 그러하다. 관행농과 생명농업이 농촌현장에서 현지인과 귀농인들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다. 어쨌든 귀농인구의 증가 숫자는 실제적으로 감소하는 농촌인구를 보전할 만한 숫자는 되지 못한다. 그래서 연대의 고리가 필요하고 도시와 농촌이 상생할 수 있는 장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도시교회들과 협력하여 생명농업을 증진하는 농촌교회들에 대해서 좀더 집중하려고 한다. 농촌교회는 자연과 평화로운 농촌지역의 공동체의 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교회가 공동체의 중심적인 역할체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현재, 도시교회들은 농촌교회들과 협력하여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청기지로서의 사명을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것은 농촌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도시의 삶은 존재하지도 못할 것이다. (계속)



=============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3)한국생명농업의 현황과 과제
안재학 목사 | 승인 2011.05.13 14:43


3. 지역공동체 만들기와 농촌교회의 역할


철학적인 사유와 신앙 운동으로써 생명농업에 있어서 본인은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개발에 집중하고자 하며 교회회원들의 실재적인 실천에 보다 관심하려 한다. 이들은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희망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는 지역의 주민들이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가능케 하는 힘은 인간의 권리뿐만 아니라 또 다른 창조물들에 대한 권리에 집중하는 공동체 내부로부터 나오는 공동의 힘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한국의 농촌지역에는 이러한 교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경제적 자원들은 그들이 지역에서 자신들의 선교적 사명들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작다. 이러한 경제적 자원들은 목회자의 생계조차도 책임지지 못할 정도의 수준인 경우도 존재한다. 교회의 대부분의 회원들의 나이는 고령들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요인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농촌교회들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한계들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측면으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농촌교회들이 제한적이고, 때때로 생명농업을 실천할 수도 발전시킬 수도 없는 그들의 무능력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공동체 안에서 생명을 회복하는데 헌신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며 그 능력에 기대어서 의존한다.

농촌교회의 생명농업의 운동은 농민들과 농촌공동체들, 그리고 자연을 둘러싼 많은 생명들의 해방을 선포하는 확고한 기초위에 서 있다. 농촌교회의 목회적 사명은 즉, 생명들을 보호하고 생명들에 봉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생명의 생산성이라고 부르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농촌의 자연환경은 식물과 동물, 나무 심지어 미생물들을 위시한 생명들로 가득차 있다. 이러한 다양한 생명들은 생산과 또 다른 생명들을 재생산한다. 이러한 순환 혹은 생명의 사슬들은 농약의 과다사용과 파괴적인 다른 수단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를 파괴하는 형태 혹은 모든 수단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정확하게 농촌교회의 역할이라 할 것이다.

둘째, 농촌교회의 또 다른 목회적 사명은 사회를 위한 공공의 의무감을 사람들로 하여금 증진시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정책들은 공동체의 공공선의 이러한 영역들을 공격하곤 한다. 

셋째, 농촌목회자들은 생명의 생태적인 가치들을 유지해야만 한다. 즉, 모든 유기적인 가치와 함께 협력하여 결합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넷째, 목회의 유연한 가치는 생명농업에 관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게 격려하는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을 향한 길을 찾기 위해 타자의 생명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다섯째, 농촌목회의 보편적인 가치는 생명의 균등성에 있다. 농촌교회의 능력은 공생공존하기 위해 생명의 균등성을 회복하는데 있다. 이러한 시의적절한 주제들은 목회적 사명에 있어 농촌교회들에게 요구되어져 왔다.

4. 한국의 환경적인 논쟁점들

최근, 한국의 환경 이슈는 4대강 개발 프로젝트에 집중되어 있다. 애초에 정부는 한반도를 관통하는 대운하 건설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그 계획에 대해 반대했고 많은 정치인들도 국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했다. 국민으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저항으로 말미암아 정부는 4대강(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을 개발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 개발의 목표는 홍수예방과 깨끗한 수자원의 확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들과의 합의없이 이러한 계획을 밀어 붙이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사업의 타당성 연구나 환경영향평가 등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미 이 사업에 대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책정하고 쏟아 붓는 반면 사회복지예산은 대폭 감축해 버렸다. 많은 환경단체들과 전문가들 또한 강들을 둘러싼 환경에 초래될 사업의 파괴적 결과에 대해서 경고했다. 그들은 많은 토종 물고기들이 강바닥을 깊이 파고 또 다른 물리적인 공사들로 인해서 멸종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을 차치하더라도, 그 강들과 인접해서 비닐하우스를 짓고 채소농사를 짓고 사는 많은 시설농가들이 있다. 이러한 정부의 개발사업으로 인해 강 주변의 많은 농민들은 다른 곳으로 농지를 옮겨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렇게 대체농지로 이주한 농민들은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정부에 의해서 농지가 다시 조정되기도 한다. 실례로는 한강 상류지역의 팔당의 유기농단지는 한국의 유기농에 있어서 최대 규모의 단지이다. 그리고 이 장소는 2011년 17차 세계유기농대회와 IFOAM의 대의원 총회의 개최 장소이기도 하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강을 둘러싼 이러한 종류의 개발을 볼 것이고, 이것은 한국 정부의 부끄러운 모습으로 비춰질 것이다.

이러한 4 대강 사업의 반응에 있어서 시민사회는 저항했고, 정부로 하여금 공사를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종교지도자들과 환경 활동가들은 이 사업의 거짓된 목적에 대해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보위에 올라가서 농성을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건설회사들은 정부의 말만을 듣고 개발사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은 교대로 금식기도를 진행하며 237일 동안 팔당유기농단지 물탱크 지붕위에서 금식기도를 이어갔다. 그들은 또한 20 여 일 동안 4 대강을 도보로 순례하며 그들의 저항을 이어갔다. 가톨릭 신부들도 매일같이 두물머리 한강변에서 매일 미사를 드렸다. (계속????)

* 이 글은 지난 해 11월 22-26일 스리랑카 캔디에서 열린 제2차 아시아기독교생명농업포럼에서 필자가 발제한 글(영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농촌과 목회」49호 jagafocus@hanmail.net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 생명농업지도자 후진양성 프로그램 진행 - 에큐메니안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 생명농업지도자 후진양성 프로그램 진행 - 에큐메니안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 생명농업지도자 후진양성 프로그램 진행2월21일-22일까지 포천 평화나무농장에서
편집부 | 승인 2019.01.19 18:57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대표 한경호 목사)이 다음 달 2월21일(목)부터 22일(금)까지 1박2일 간의 일정으로 “생명농업지도자 후진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장소는 경기도 포천 소재 “평화나무농장”이다. 2017년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은 이번으로 3회째를 맞이하게 된다.

▲ 지난 해 2017년 1회 생명농업지도자 후진양성 프로그램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 제공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국내의 젊은 농업 후계자들을 양성하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농촌과 농업을 이어갈 젊은 인재들을 찾는 것을 넘어 농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농업 일꾼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후진양성 프로그램은 주로 강의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 정호진 목사의 “생명농업의 성서적 고백”, 
  • 임기도 목사의 “농사이야기”, 
  • 한명재 목사의 “귀농, 귀촌에 대한 교회의 역할” 그리고 
  • 김준권 평화나무농장 대표의 “생명농업에 기반한 모범적소규모 복합영농” 등으로 이어진다. 

특히 교육기간 중 수제 햄, 베이컨, 소세지 가공실습이 이루어진다.

또한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은 국내 뿐만 아니라 아시아 생명농업지도자를 발굴·육성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올해 2019년 10월8일부터 11일까지 인도네시아 ‘마나도’에서 5차 아시아생명농업포럼을 인도네시아 교회협의회와 함께 진행한다. 이렇게 교육받은 아시아 농업지도자들을 초청 국내연수도 2회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특히 국내 후진양성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평화나무농장(대표 김준권)은 아시아생명농업훈련센터(Asia LGA Training center)로도 함께 운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김준권 대표는 아시아생명농업훈련센터의 소장을 겸하고 있다. 특히 평화나무농장은 소규모 복합영농의 가장 모범적 사례를 갖고 생산과 소비, 그리고 가공과 판매까지 직접 이루고 있다.
자세한 문의와 신청은 안재학 목사(010-2374-0190)에게 연락을 바란다.

▲ 2017년 1회 생명농업지도자 후진양성 프로그램 교육 모습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 제공


편집부 webmaster@ecumenian.com

[현장탐방]생명농업으로 “영성회복을 위한 나눔 공동체” 실현지를 가다. - 당당뉴스



[현장탐방]생명농업으로 “영성회복을 위한 나눔 공동체” 실현지를 가다. - 당당뉴스





[현장탐방]생명농업으로 “영성회복을 위한 나눔 공동체” 실현지를 가다.하나님의 뜻을 따라 제주생명농업재단을 설립한 오재길 선생님을 찾아서
류기석 | yoogiseo@yonsei.ac.kr





입력 : 2006년 01월 17일 (화) 00:00:00 [조회수 : 3174]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부분적으로 알고 느꼈던 실험적인 도시생활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살다가 반으로 접고, 문뜩 자연의 일부가 되려고 목가적인 시골풍경이 또랑또랑하게 남아있는 파주 배나무골 허름한 농가를 구입, 농촌과 농업을 위한 귀농을 소망할 때 기독교인으로서 정직하게 농사를 짓는 모임인 정농회를 알게 되었다.

그후 정직한 농업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교류를 위하여 정농회 정기수련회와 각종 행사에 참석하면서 여러회원들과 한국 유기농업의 선구자로 정농회를 만들고, 평생 땅을 사랑하신 오재길(86세) 선생님과 인연이 된 것이다.

때마침 제주를 방문할 기회를 얻어 마지막날 '영성회복을 위한 나눔 공동체'인 제주생명농업 현장을 방문했다.

화창한 아침햇살이 서귀포의 해안선을 따라 남제주군 표선면 가시리 제주생명농업 현장으로 향하는 우리들을 반겼다. 이국적인 풍경들과 구불구불한 길들이 잘 어울리는 농촌, 표선면에서 가시리 길은 확 트인 꽃길과 시원스럽게 펼쳐진 목장을 만나면서 더욱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돌에 새겨진 제주생명농업 이정표를 어렵사리 보고 도착한 현장엔 요즘 홍당무 수확으로 한창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오재길 선생님과 공동체식구들을 만났다.

3만평의 넓은 초지입구에는 유기농산물 가공공장을 비롯하여 중앙에 공동체숙소, 우측으로 다목적 공간과 식당 등이 일자형태로 자리잡고 있었다. 5억원을 들여 마련한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직접 약 3만평에서 유기 재배된 농산물과 지역 주민들의 유기 농산물을 이용해 음료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자식들의 안녕과 자신의 여생을 위한 재산축적이 아닌, 제주의 농촌에서 농업을 통한 농민이 땅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인 생명의 농업을 노년에 선택한 듯 하다.

아이들의 영성회복의 길은 청정 농산물 생산에 있다는 생각으로 유기농 농장과 유기농산물 가공공장, 농촌과 농업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유기농 교육센터를 마음의 고향 제주 땅에 남기고자 온 것이다.

오재길 선생님이 정직한 유기농업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지난 1970년대부터다. 추자도 출신인 그는 고향을 떠나 경기도 양주에서 생활하며, 여타의 유기농 단체보다 2년 앞선 1976년 그 곳 농민들과 함께 유기농 조직체인 ‘정농회’를 설립한 기독영농인으로 초대회장직을 14년간 맡기도 했다. 정농회 정관은 바로 성서였다. 그가 성서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선택한 삶이 정농이었고 정농의 방법은 생명농업이었다.

그가 유기농을 선택하게 된 것은 한국농업의 기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각종 자료를 통해 화학비료가 토양에도 안 좋고, 사람의 인체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친환경농업을 통해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야 앞으로 농업의 미래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지난 1964년 야산을 개간해 만든 1만5000평 규모의 농장에서 유기농법으로 각종 채소류를 재배하는 천보농리원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1999년 땅이 아파트로 개발되면서 불가피하게 새로운 농장을 논, 밭, 과수 등 3단계 조성의 꿈을 그리면서 물색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제주 출신 젊은이가 찾아와 제주의 농촌에는 아직도 무속신앙인과 정신질환자가 많음을 토로하면서 복음화 율이 낮고, 국제 자유지역으로 평화의 섬인 제주를 본격적인 생명농업의 메카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는 제주의 생명농업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하고 내려와 20억원을 출연, 제주영락교회 김정서 목사와 협력으로, 2002년 11월 제주생명농업재단을 설립했다.

국제자유도시 출범과 더불어 평화의 섬 제주가 친환경 농업의 적지라는 생각에서 표선면 가시리를 찾아, 일생을 바쳐 일구어온 유기농업 경험을 바탕으로 이 곳에 유기농산물을 직접 재배하고 이를 가공한 음료생산 공장을 설립키로 한 것이다.

그는 유기적인 방식의 농업을 위한 인재양성과 아울러 사양길에 접어든 밀농사를 추진할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장마철에 임박해 밀을 수확했는데, 최근에 조기 수확하는 방법이 개발됨에 따라 생명농업농장에서 시험재배 한 후 통밀가공제품을 생산해 낸다는 계획이다.

시범사업이 성공하면 그는 인근 농민들과 함께 농장형식의 협업체를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또 인근의 젊은이들을 농사 연수생으로 모집하여 체계적으로 유기농법을 교육하고 연구·보급할 예정으로 있다.

우리일행은 식당으로 안내되어 제주에서 생명농업을 하게 된 동기와 계획을 간단하게 듣게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이는 육류의 과소비로 폭력적인 성품을 낳았고, 영적 감성을 저해한다. 많은 동양의학연구자들이 동양의학은 하나님의 계시로 된 것이며, 인간으로서 가장 건강한 조건이 성립될 때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때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온순한 성품과 두뇌기능을 향상시키는 곡류와 함께 채식을 많이 섭취해야한다.” 라는 말씀으로 어린아이들에게 정직한 먹거리를 만들어 보급하시겠다는 농업의 당위성을 서두로 꺼내셨다.

또한 “동아시아는 비가 적당히 오는 기후로 고기류 섭취가 필요 없으며, 이에 비하여 서양기후는 비가오지 않아 고기류섭취가 필요하다. 쌀, 밀, 보리, 고구마, 감자들의 탄수화물은 사람인체내에서 단백질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인위적인 단백질의 섭취는 몸에 좋지 않다.” 고 토로했다.

계속해서 “현대의학의 맹점으로는 50대 후반 식사량을 줄이고, 영양소 높은 음식을 삼가며, 적게 먹고 소식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현대의 질병은 많이 먹고 못된 것을 먹어서 생긴 병이다. 또한 다각적으로 사용되는 식품첨가제의 허용기준치가 문제이다. 이는 가공식품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다양한 화학적인 성분들이 인체 내로 섭취되면 서로간의 상보, 상승하는 작용을 이루어 병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시험동물 취급하는 작금의 허용기준치 오류”를 지적하셨다.

그러면서 “농사하는 힘든 일은 크리스찬들이 해야 한다. 교회와 교인들이 앞장서라. 농사는 농사짓는 생산자와 소비하는 소비자 모두가 생명살림의 동반자로 중요하다. 성과는 하나님께 있고, 사람은 해야 될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또한 “유기농은 화화비료를 쓸 때보다 수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땅이 제대로 기능하면 수량은 오히려 늘어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제주는 정부의 평화의 섬 인증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닌, 제주도민 모두가 세계평화의 섬을 위한 고통분담을 해결해야 됨을 강조하면서 그곳에서 생산된 시선한 곡류와 채소류로 점심식사를 정공해 주셨다.

식사후 생명보전의 의무를 위한 농업터전과 각종 건물들을 둘러보고, 오재길 선생님의 사무실에서 차를 대접받았다. 그의 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인생역정을 전해들으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오재길 선생님께 지금 가장 절실하게 소망하고 기도하는 것에 대한 물음을 드렸더니,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그 질서에 부응하는 “영성회복의 길” 찾음을 힘주어 말씀하셨다.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유기농을 죽여야 미래농업 성장 가능하다?



유기농을 죽여야 미래농업 성장 가능하다?



유기농을 죽여야 미래농업 성장 가능하다?
[김성훈 칼럼] 관·학·언론계의 다국적기업 자본과의 유착관계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2014.08.05 07:21:45

유기농을 죽여야 미래농업 성장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확대경제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향후의 경제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왜 농업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는지, 왜 조지 소로스 같은 투자의 귀재들이 '나는 모든 것을 농업에 투자하겠다' 이렇게 나오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 이번 기회에 (우리) 농업을 우리 경제 수출의 효자산업으로 적극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국적 농약·농산물 수출회사들의 호구, 대한민국


세계 2차 대전 종료 후, 국지전 성격의 중동지역 전쟁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큰 전쟁이 없어져 현대 무기 제조 판매시장은 한계를 보였다. 한편, 경제성장으로 전 세계 식량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초국경 다국적 기업들은 농업과 식량의 상품화에 미래의 성장 동력을 찾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20세기 후반기부터 다국적 대기업 단위에서 종자개발과 농약 농자재 산업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선두에 선 몬샌토, 듀폰, 신젠타, 다우 등 다국적기업들은 GMO(유전자조작) 종자산업과 농약 등 화학산업에 뛰어들었다. 이와 동시에 '농업은 미래 성장 산업이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IT 산업에서 성공을 거둔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메린다 게이츠 부부가 몬샌토의 종자와 제초제 사업에 20%가량의 주식투자를 감행한 배경이다.


미국에 기반을 둔 몬샌토 사(社)의 경우, 세계 GMO 종자 및 제초제 농약판매의 75%를 장악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는 벌써 세계 제2위의 GMO 종자, 농약, 농산 식품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이들 다국적 화학기업들의 돈 밭이자 '봉'이 됐다. 대한민국이 이른바 '다국적기업의 호구(虎口)'가 된 셈이다. 이런 때 느닷없이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 성장 산업론"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국민들은 어리둥절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쳐 오는 동안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 23%대로 떨어져 쌀 자급률은 86%대로, 세계 최고 식량 부족국이나 다름없다. 특히 농가 소득은 지난 9년 동안 2005년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국적 기업과 유착한 식품/화학기업은 날로 부익부하는데, 정작 3농(三農, 농업·농촌·농민) 부문은 날로 낙후되고 있다.


최근 관·학·언론계로부터 2015년 쌀 완전개방 방침이라든지 한중 FTA와 TPP(태평양경제 동반자) 협정추진이 국익을 위한 대세인 양 맹렬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WTO 개방체제의 마지막 대안인 "친환경 유기농업"마저 사방에서 무참히 공격받고 있다.


"농업문제만은 시장경제 논리에 맡길 수 없고… 제가 직접 챙기겠다"고 공약했던 박 대통령이 느닷없이 농업의 미래 성장 산업론을 주장하고 나서니, 그 의중이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박근혜 정권의 정책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 2011년 4대강 사업으로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 "우리 이대로 농사 짓게 해주세요"라며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팔당 유기농 단지'에서 농성을 부렸다. ⓒ프레시안(최형락)

꽃이 피지 않고 새들이 노래하지 않는 '침묵의 봄'


화학 독극물 농약과 화학 비료로부터 지속가능한 지구생태계를 보전하고, 각종 생물의 종 다양성을 보호하며, 사람의 건강과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안으로 친환경 유기농업이 급속도로 범(凡) 세계화되기까지 한 여성 생태학자의 목숨을 건 농약피해 현장 고발이 있었다.


미국의 여류 생태학자인 레이첼 카슨 여사는 1962년 살충제와 제초제 등 유독물질로 꽃이 열매를 맺지 않고 새들조차 울지 않는 상황을 그린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출간했다. 농약의 가공할 만한 위력이 적나라하게 알려지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화학 및 농약전문 다국적 기업의 음해성 반박과 반대 로비에도 불구하고, 카슨 여사를 직접 만나 격려하는 등 국회의원들을 추동해 미국 땅에서 살충제 DDT와 BHC의 제조, 판매, 무역 중단을 선언했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도 이 조치에 동참했다. 뿐만 아니라, 농약 피해로부터 지구 생태계를 살리자는 뜻을 담아 '지구의 날(4월 22일)'을 선포했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맹신이 지구 생태계와 생명 농업계에 극독물을 만연케 한 결과, 땅과 물과 강과 바다의 생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인간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공동체의 안전성 보전에까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린 실상이 낱낱이 고발된 <침묵의 봄>은 '20세기를 움직인 10권'의 책 중에서 네 번째에 올랐다. <타임>은 레이첼 카슨 여사를 20세기의 중요 인물 100인으로 꼽기도 했다.


증산은 됐으나, 흑색혁명으로 끝난 녹색혁명!


우리나라는 세계적 흐름과 반대로, 60년대 후반 박정희 군사정권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이 강력히 추진되면서 대통령의 특별 관심으로 농업 생산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기 위한 '녹색혁명' 깃발을 높이 들었다. 다비성(多肥性) 다수확 품종의 화학농사와 농약 과다 의존형 관행농법을 '녹색혁명'이라 명명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군사독재 18년 동안 대망의 식량자급 달성 목표에 근접하게 됐으나, 산·하천·호수·바다는 화학물질로 심각하게 오염돼 후진국형 공업국가로 변신했다. 조국의 산하와 생태계 그리고 농업부문을 '흑색혁명'으로 뒤덮은 것이다. 거기에 세계 제1의 단위면적당 농약 및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국가라는 오명마저 떠안게 됐다.
다국적 기업의 맹독성 농약은 이들과 유착한 재벌이 앞장서 수입판매를 하고, 농업 관련 정부 기관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급했다. 특히 고온다습한 여름철, 무성히 자라는 잡초를 제거하고자 발암성 제초제(고엽제) 남용이 보편화되고 병해충 박멸을 위해 매해 고독성 농약이 살포됐다. 또한 정부 연구기관은 유전자 형질을 원천적으로 조작해 더 독한 제초제인 독극물을 무제한 불러들이는 화학 농법을 도입하는데 열을 올렸다. 역대 군사정권과 추진 강도는 약간 다르지만 화학물질 의존형, 이른바 관행농업이 이 땅에 뿌리내린 후과(後果)다. 지금 우리나라는 해마다 800만 톤에 가까운 GMO 콩과 옥수수를 수입 중이며, 소비자의 알 권리,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표시도 없다. 그저, 몇백만 톤의 GMO 가공식품이 대기업 식품회사에 의해 범람하고 있다.


21세기형 친환경·친자연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새 시대' 세계 조류에 역행하는 사태, 즉 종(種, species)과 생명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마실 물, 숨 쉴 공기, 생명의 땅이 오염돼 사람을 비롯한 각종 생물의 지속가능성과 삶의 질(quality of life) 향상에 중대 위기가 닥치고 있다. 대신 경제발전에 따라 의식과 소득 수준이 높아진 소비자들이 직접 나서 먹을거리 안전과 삶의 질 개선 문제에 대해 발언하기 시작했다. 레이첼 카슨 여사가 <침묵의 봄>에서 지적한 국민적 각성, 즉 살충제와 제초제(고엽제) 같은 화학 독극물로부터 환경 생태계와 가족의 건강 및 생명을 스스로 지키려는 의식화 단계로 진화한 셈이다.


정부 단위 '친환경 유기농 원년' 선포


국내외 사조(思潮)가 이처럼 변화하는 가운데, 1997년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대의 외환위기인 IMF 사태를 맞았다. 당시 '국민의 정부'는 국민 식생활 안전에 대한 대통령의 섬세한 독려에 따라 1998년 11월 11일 농업인의 날, '친환경 유기농업 원년'을 선포했다. 이는 문민정부 말, 국회에서 '환경농업육성법'이 통과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후 시행령을 만들고 '친환경농업 원년'을 선포한 것을 계기로, 농림부 산하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친환경농업정책과를 신설하였다. 제초제의 배제를 기본으로 하는 저농약·무농약·유기농(전환기 포함) 농산물 등급인증제에 차등의 직접지불 소득보상제도도 도입됐다. 동시에 먹을거리의 안전한 유통경로 확보를 위해 소비자협동조합법(일명 '생협법')도 제정 공포됐다.


참고로, 친환경농업 육성법과 유기농 원년 선포가 이뤄지기 20여 년 전부터 농촌 사회 곳곳 약 2000여 농가 단위로 착한 농민·정직한 농민들이 '바른 농업(正農會, 정농회)'과 '유기 농업 협회'를 자생적으로 만들어 활동해 왔다. 그때만 해도 정부의 지원은커녕, 증산 정책에 위배된다며 적지 않은 박해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현대적 유기 농업, 즉 생물과학 기술과 조상 대대로의 농법을 결합해 생산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도모하는 선구자적인 생명 농업을 꿋꿋하게 해오고 있다. 원경선, 류달영, 오재길, 홍순명, 정상묵 등이 그들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소비자시민모임, 소비자연맹, 주부클럽, 주부교실 등 먹을거리 안전에 대한 소비자 단체의 호응도 뜨거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맨 먼저 농업 생산자, 소비자 대표, 정부 대표를 중심으로 '농·소·정 위원회'를 꾸려 친 환경 정책의 추진 단계부터 진행 과정, 소비자 홍보, 도농 연대에 앞장서도록 했다. 이들은 '친환경 유기농 5개년 발전 계획'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수립했다.


다만, 고온다습한 우리나라 여름철에 무성히 자라는 잡초와 각종 병해충을 어떻게 하면 친환경적으로 다스리며 선의의 농민이 죄인이 되지 않게 할지는 정책 당국의 친환경농정 추진에 영원한 과제이다.


화학·농약 물신주의의 발호와 정책의 모호성


'친 환경 농업 원년 선포' 이후 16년, 친환경 인증 농가가 수적으로, 품목·면적·생산량 면에서 10%를 넘는 괄목할 성장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세계유기농대회(IFOAM 총회)를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경기도 남양주 양평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했을 정도다. 소비자의 인식과 관심도 선진국 수준을 능가할 정도로 높아져 친환경 농업인들의 지적 기술수준과 각오를 크게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개방 농정으로 국내 일반 농업은 쇠퇴일로를 걷고 있으며, 고령 부녀자화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 외세(주로 화학·농약·유전자조작(GMO) 초대형 다국적 기업)가 활짝 열린 신자유주의 한국 시장에 대거 진출, 대한민국의 관·학·재·언론계를 자본과 권력으로 유착시키고 있다. 식품(가공)산업도 외국 자본 및 기술과 제휴해 대재벌 회사의 주도 하에 국내산 원료를 멀리하고, 75% 이상의 재료를 값이 싼 GMO 포함 수입농축산물로 충당하고 있다.


사태가 이런데도,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와 관련기관은 친 환경 농정의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채 이를 과시할 숫자 놀음에 열중하고 있다. 자재 생산자 등 업체들은 친환경 농민들이 받게 될 보조금을 가로채는데 눈독을 들일 뿐이다. 또 민간 인증 기관들은 얄팍한 수수료 따먹기에 여념이 없다 보니, 묵시적으로 이들 삼자가 연대해 애꿎은 고령화·부녀화 된 농가에까지 친환경 유기농 인증을 받도록 끌어들이는 사례마저 빈번해졌다. 중앙 정부는 어떤 정권, 어떤 대통령과 어떤 농림부 장관이 들어섰느냐에 따라 친환경 유기 농업 정책의 강도에 있어 질적 차이가 커졌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친환경 유기농업은 증가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이명박근혜 정부는 친 환경 유기 농업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권은 4대강을 살린다는 명분하에, 유기 농업의 발상지 중의 한 곳을 짓밟고 4년 동안 끊임없이 박해했다. 농업 문제만은 직접 챙기겠다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친환경 유기농업과 관련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보이지 않는다.


자연 순환 원리에 따라 친환경 유기농업이 환경 생태계를 살리고, 소비자의 건강과 생명에 안전을 보장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저가 해외 농산물 수입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은 우리 농산물을 품질과 안전성으로 내세워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친환경 농정에 유난히 냉담하다. 예산도, 정책 프로그램도, 대(對) 농민 소통도 제자리 걸음이다.


GMO, 제초제, 맹독성 농약이 판치는 세상


더욱이 서울에 진출한 몬샌토 등 프랑켄슈타인(괴물) GMO 종자 및 농산물 수출 다국적 회사와 고엽제 수준의 제초제 및 고독성 화학 제품을 수출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기왕 EU 일부 국가와 북·남미 등의 국가에서 공작으로 일시 재미를 봤던 "유기농을 죽여야 GMO와 농약이 산다"라는 내부 방침을 공공연히 우리나라 관·학·언론계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목적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유기농 식품에 등을 돌리게 하고 화학농업과 유기농업이 '오십보백보'로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미 관·학·언론계에 충실한 장학생을 다수 심고 막대한 자금 살포를 아끼지 않는다.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기관 공직자 중에서는 "농약은 과학이다" "GMO도 GAP도 친환경이다"라는 해괴한 이론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이상한 관료들이 등장하고, 일부 친 GMO 언론인의 등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런 이상 기류에 대한 정책 당국자들의 반응은 대통령의 수첩 지시가 없어서인지, 무관심과 방관 또는 일부 동조화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드디어 공영방송이 '유기농 죽이기' 선봉에 나섰다. 한 PD가 1년 가까이 전국의 유명 유기농가를 찾아가 선진국에서는 과학적인 이유(흙 속 농약의 반감기 잔류 등)로 다루지 않는 화학 실험실 수준의 토양 중 농약 성분 찾아내기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농약 옹호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유기농 토양 내 잔류 농약을 발견, 대단한 발견인양 유기농업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7월 31일과 8월 7일 방영된 KBS <유기농의 진실>(2부작) 역시 공작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오래된 미래 농업’인 친 환경 유기 농업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참 유기농민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친환경 유기농 죽이기'가 박근혜 정부의 미래 성장 산업 육성 전략이 아닌지 의아해하면서….


(일부 내용은 <한국농어민신문> 8월 4일 자 '농훈칼럼'에 중복 게재됐습니다. 필자 주)

11 <생명평화마당> 9월 정기 월례포럼 “한국교회의 갱신과 새로운 교회운동”


 11 <생명평화마당> 9월 정기 월례포럼  “한국교회의 갱신과 새로운 교회운동” 

일 시: 2011년 9월 6일 (화) 늦은7시

장 소: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지하 이제홀 (서대문역 1/2번 출구)

사 회: 조언정 목사 (마실교회)

발 제:

√ 정재영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한국교회의 갱신과 새로운 교회운동

- 지역공동체 세우기를 중심으로”................................. p. 3



√ 이원돈 목사 (새롬교회)

“교회의 새로운 생태계로서 작은 교회를 주목하자!”........ p. 15



√ 양재성 목사 (예수살기,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예수살기>의 교회운동”............................................ p. 23



9월 포럼을 준비하며



늦더위가 한창입니다만, 이제 곧 가을을 맞이하게 될 터이고 금년 하반기를 지내게 될 것입니다. 작년 뜻을 모으고, 올해 조직체를 구성하여 사업을 펼치기 시작한 <생명평화마당>도 이번 가을에 소정의 결실을 맺고, 장단기적 안목과 계획을 가지고 내년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월례포럼은 <생명평화마당>의 근간을 이루는 사업입니다. 꾸준하게 펼쳐지는 월례포럼을 통하여 바라기는, 앞으로도 생명과 평화의 담론을 형성하고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의 빛으로 빛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생명과 평화의 빛깔을 내시고 계시는 여러분! <생명평화마당> 월례포럼에서 여러분의 빛을 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9월 포럼 취지



한국교회는 목이 마릅니다. “추락하기만 하는 한국교회, 왜소해져만 가는 교회운동, 대안이 없다는 말인가?” “예수 정신을 구현하면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교회모델이 무엇인가?” “건강한 교회운동의 방법론은 없는가?” <생명평화마당> 9월 포럼은 교회의 새로운 대안을 묻고자 합니다. 생명과 평화의 사상을 퍼뜨려야 할 1차 영역이 바로 우리들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사실, 생소한 주제도 아니며 이번에 단발적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는 그동안 생명과 평화의 사상으로 교회갱신을 실현하겠다는 일념으로 교회현장에서 유용하고 필요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논의를 해왔습니다. 이번 9월 포럼은 그것의 첫 걸음입니다. 무릎을 탁 치며 여럿이 뜻을 모으는 것이 희망의 빛이라 믿습니다. 환하게 빛나는 9월 포럼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알림



1. 오늘 순서를 맡아주신 분들과 9월 포럼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 모임안내1 : <교회위원회> 목회자모임 : 9월18일 (주일) 6시, 양평

3. 모임안내2 : “WCC 부산총회 준비를 위한 ‘생명정의평화’ 진영(JPL) 4차모임

: 9월23일 (금) 5시, 기사연 이제홀

4. <생명평화마당> 공식카페에 가입, 활동을 바랍니다. (http://cafe.daum.net/2010declaration)

5. <생명평화마당> 후원회원이 되어주십시오. (자동이체, CMS - 문의: 김지목 간사)

6. ‘2011 교회의 날’ 행사 : “평등한 교회 상상하기” 9월29일(목)-10월1일(토), 100주년기념관/이화여대

7. 이후 포럼 계획 (매달 둘째주 화요일 저녁7시, 기사연 이제홀)

-10월11일 : “교회와 사회변혁을 향한 신학의 개혁” / 발제-Philip Clayton (클레어몬트신학교 학장)

-11월 8일 : “종교개혁과 여성신학(가안)” / 발제-(미정) / 사회-이은선박사

-12월13일 : “기후붕괴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삶과 전망” / 발제-김준우박사 외



<생명평화마당> 실행위원회

권진관(성공회대 교수), 김경호(들꽃향린교회), 김기석(성공회대 교수), 김정숙(감신대), 김영철(새민족교회), 김은규(성공회대 교수), 김희헌(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실장), 박명철(연세대 교수), 방인성(뉴스앤조이 이사장), 손은정(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양재성(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윤인중(인천평화교회), 이원돈(부천새롬교회), 이은선(세종대 교수), 장윤재(이화여대 교수), 정상시(안민교회), 조언정(양평 마실교회), 조헌정(향린교회), 최소영(교회여성연합 총무), 최헌국(예수살기 총무), 한경호(횡성영락교회)

문 의: 김희헌 총무 (010-2250-2157) / 김지목 간사 (010-2213-9412)











“한국 교회의 갱신과 새로운 교회 운동[1]

- 지역공동체 세우기를 중심으로





정재영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 종교사회학)





1. 지역 공동체 운동의 필요성



현재 한국교회는 안팎으로부터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 3대 종교 중에 개신교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이후 특히 권위주의적인 교회 운영에 실망한 젊은 층이 급격하게 교회로부터 빠져나가고 있다. 또한 교회 간 불균형과 쏠림 현상으로 작은 교회는 더욱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다. 밖으로는 교회에 대한 공신력이 약화되어 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그다지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개신교의 공신력 약화는 교회의 활동이 공공성을 상실한 데에 기인한다. 한국 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공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임 있는 역할을 감당하기보다는 교세 확장과 교회 건물 건축, 교권 유지 등 세상과는 벽을 쌓고 자기들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에만 급급한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일련의 일들에서 볼 때 개신교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라기보다는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하나의 이익집단과 같이 여겨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사회와 소통하려 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진리를 선포하고, 상대방을 단순히 전도 대상자로 여기는 태도를 보여왔다. 절대 진리를 수호하는 입장에서는 전도의 대상자와 타협하기 어려우며 도덕적 우월감으로 상대를 낮잡아보기 쉽다. 이렇게 자신의 집단 안에 매몰된 사람은 더 넓은 사회의 지평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리하여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교회생활에 열심일수록 사회에 대한 의식수준은 더 떨어지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것은 한국 개신교가 더 이상 기존의 성장주의 패러다임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성장주의식 패러다임의 전환을 심각하게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교회 성장이 아니라 교회에 내실을 기하며 교회가 속한 지역 사회에서 공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이다.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는 전국 어디에서든지 심지어는 다른 교회 교인이라도 우리 교회에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교회가 속한 지역 사회에서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한다.

전래 초기 한국 개신교는 사회 부조리를 혁파하고 새로운 가치 질서를 제시하는 선구자의 역할을 감당했지만, 오늘날의 개신교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뿐, 공공의 선이나 선한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교회가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공공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의 해결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여야 한다. 성숙한 기독교인의 관심은 마땅히 공공으로 확장되고 공동체의 삶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한다. 성숙한 공동체는 자신의 존재를 두고 있는 더 큰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 의식은 닫힌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 사회를 향해 열린 공동체여야 한다. 교회는 기독교인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 사회와 소통하며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사회는 중앙 중심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지역으로 권력이 분산되고 풀뿌리로부터의 참여가 중시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 역시 절차상의 민주주의를 이룩한 이후에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시민 사회 관련된 의제들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시민 사회에 관한 의제들을 제기하는 노력에 참여해왔으나, 이러한 한국교회의 활동은 교회 안에 있는 일반 교인들의 활동이라기보다는 주로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과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목회자 중심이 아니라 평신도 중심의 기독교 운동이 전개될 필요가 있다. 특히, 시민 사회는 시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이고, 풀뿌리로부터의 실제적인 참여가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시민들이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고, 울타리 밖의 사회와 의사소통하며 참다운 시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거나 기껏해야 교회 안에서의 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대다수의 한국교회 구성원들이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참여자가 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개교회 구성원들이 시민 사회에 참여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교회가 속한 지역 사회의 의제와 현안에 관심을 갖고 활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시민 사회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지역 공동체 운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는 주로 지역 사회 개발 운동으로 지역 사회 주민들의 자주적인 참여와 주도적 노력으로 지역 사회의 경제·정치·사회적 조건의 향상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단순히 경제 발전이나 개발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 공동체 세우기’(community building)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통적인 촌락공동체는 붕괴되었고, 현대 산업 사회에서 조직 구조의 거대화와 관료주의화는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친숙성이 어렵게 하며 비인격의 인간관계를 초래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성과 인격의 상호성 또한 약해지고, 인간은 결국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는 예전의 공동체를 그리워하고 공동체 안에 안주하려는 욕구가 심화된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지역 공동체를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이 ‘새로운’ 지역 공동체는 교회와 시민사회가 만나는 지점을 제공한다. 현대사회에서 국가가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요구는 증대하는 대신에 정부의 예산부담은 줄여야 하는 추세가 뚜렷하므로 결국 기대어야 할 곳은 시민사회의 자발적 부문뿐이라는 기대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볼 때, 교회 역시 시민 사회에 속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인적, 물적, 제도적 자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교회가 한 축을 감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교회는 종래 시민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던 사회적 제도―학교, 가족, 정부, 회사, 근린집단, 전근대적 교회 등―가 제대로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생긴 사회적 공백을 메우고 지역공동체를 재조직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당위성을 지니게 되었을 뿐더러 현실적으로 그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2. 교회와 지역 공동체



지역사회라는 용어는 영어로는 ‘community’라고 하는 것으로 공동체라고도 불리는 사회학 개념이다. 이 community는 ‘공동’의 뜻을 가진 ‘common' 또는 ‘communal'과 하나로 통합을 이루게 하는 ‘unity'와의 합성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지역사회를 간단하게 정의 내린다면 “지리상의 근접성(지역성)과 사회 차원의 단일성(공동의식) 및 문화 차원의 동질성(공동규범)을 가지는 공동의 사회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역사회는 동질성을 가진 일정한 인구가 자연, 생태, 지리상으로 한정되고 근접한 지역에 살고 있으며, 역사 유산을 공유하여 단일한 의식을 가지고 있고 협동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사회이다.

이러한 지역 사회를 공동체화 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의 공동체 개념은 공간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다. 이렇게 장소의 의미는 내포되어 있지 않은 커뮤니티와 구별하여 지역 공동체는 일정한 지역을 공유하는 인간집단이라는 면에서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local community'의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곽현근: 128). 산업화의 결과로 전통의 공동체들이 와해된 상황에서 삶의 기반을 공유하는 지역 사회에 공동 의식에 터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지역 공동체는 과거에 자연발생으로 형성된 촌락공동체와 같은 자연적 공동체가 아니라 새로운 맥락에서 공동의 목적과 이념,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의도적 공동체로 이해되어야 한다(신명호 외: 53). 따라서 지역 공동체는 일정한 지리적 영역 안에 거주하는 지역의 구성원들이 목적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을 구축해 나가는 일련의 조직화된 활동을 전제로 한다.

교회 역시 교회가 터하고 있는 지역 사회에서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기업, 주민 등과 더불어 지역 사회의 주요한 구성원이다. 교회는 그 지역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진 개인들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 사람들을 위하여 세워진 기관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지역사회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교회 실존의 근거가 바로 지역사회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와 지역사회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교회는 지역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많은 경우, 지역사회의 쇠퇴는 지역교회의 쇠락으로 이어지며, 지역사회의 발전은 어김없이 지역교회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90년대 수도권 신도시개발 붐을 타고, 구도시지역 교회들이 신도시지역으로 대거 이주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교회와 지역사회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깊은 태생적 연관성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역사회의 욕구와 당면 문제에 대해 진지한 태도로 임하며, 그 해결을 위해 지역사회의 여러 구성원들과 다양한 형태로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는 최근 시민사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에 주목한다. 이전에는 주로 지역사회개발운동으로 지역사회 주민들의 자주적인 참여와 주도적 노력으로 지역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조건의 향상을 추구해왔다. ‘참여’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동체주의 운동 활성화가 필요해지면서, 지역 사회 구성원들의 ‘참여’와 다양한 기관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순히 경제 발전이나 개발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형성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개인주의 사회가 경쟁을 앞세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원리가 지배한다면, 공동체 운동은 배려와 관심으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추구한다. 마을 만들기는 바로 이러한 취지에서 지역 사회를 재구조화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마을 만들기 운동은 일종의 주민자치운동으로 여기서 ‘마을’이란 시민 전체가 공유하는 것임을 자각할 수 있고 공동으로 이용하며 활용할 수 있는 장을 총칭한다. 대부분의 도시 계획이나 도시 재개발 사업이 국가가 주도하는 사업이라면, 마을 만들기는 관 주도의 지역 개발 운동에 오히려 저항하며 주민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강조하는 것이 가장 큰 대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뜻에서 관변식, 학술적 한자어를 피하여 ‘마을’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이명규: 268-273).

그리고 ‘마을 만들기’란 그 공동의 장을 시민이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말한다. 이러한 마을 만들기는 ‘눈에 보이는 마을 만들기’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을 만들기’의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눈에 보이는 마을’이란 말 그대로 물질로 구성되어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마을을 뜻하는 것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을’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활동으로 형성되는 마을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을 만들기’는 ‘사람 만들기’를 포함하는데, 곧 시민의식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이 되도록 의식을 개혁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을 만들기 운동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시민의식은 기독교 정신과도 통하는 것이며,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의식을 형성하는데 기독교의 가치를 지향할 수 있도록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CHE 선교회와 같이 지역사회를 선교 대상으로 보는 관점도 등장하고 있다(스탠 롤랜드: 1장). CHE는 Community Health Evangelism의 줄임말로 총체적 지역사회 선교의 관점으로 특히 위생 환경이 열악한 제3세계 국가들에서 우물을 파주는 일 등을 통해 선교 지역의 필요를 채워주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제3세계 빈곤 국가에서는 이러한 지역 사회 개발이 중요한 선교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일정 수준의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 사회에서는 지역 개발보다는 공동체 마을 만들기에 보다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다만 도시에 비해 생활수준이 낮은 촌락 지역에서는 개발 전략이 함께 모색될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교회는 일차로 예배공동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 속에 존재하는 시민공동체이기도 하다. 하나의 의례행위로서 예배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천 윤리의 행위 지향성이 삶의 무대인 사회생활에서 표출되어 나타나야 한다. 특히 한국 교회는 개교회 내부 결속력은 강하지만, 다른 교회와의 협력이나 지역사회에서의 연계 활동은 부족하므로 이에 대한 노력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교회가 지니고 있는 물질과 제도 자원이 지역사회를 위해 효과 있게 활용될 뿐만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다른 교회나 시민 단체들과 협력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시민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지역사회가 기독교의 가치를 지향하게 될 뿐만 아니라 교회의 공신력도 회복하게 될 것이다.





3. 교회가 참여하는 지역 공동체 모델



지역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는 이를 주도해나갈 주민주도형의 협력 체계 곧 결사체 거버넌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결사체 거버넌스는 지역의 내생적 발전에 필요한 주요 자원을 동원하는 자발적 자원동원 체계이다. 이러한 자원 동원 체계로서 결사체 거버넌스의 원활한 작동은 참여주체자들 사이의 사회 자본의 크기에 달려 있다. 사회 자본은 조직 구성원들 상호간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조정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기본 동력인 신뢰, 규범, 가치 등을 의미한다(로버트 푸트남: 281). 그리고 이 사회 자본은 공동체 회복을 위한 원동력이 된다(Rosemary Leonard·Jenny Onyx). 따라서 이 사회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이 요구된다.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활공동체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타결하는 참여민주주의 훈련과 주민자치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들을 배양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지역 실정에 맞는 적절한 마을 만들기 사업을 발굴하고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 작업을 가능하게 해 주는 힘이 바로 신뢰와 협동, 자치와 참여라는 사회 자본이다(김영정: 14). 여기서 교회가 하나의 사회 자본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원자화된 개인들이 운동 경기를 보듯이 모여 있는 교회 구성원들이, 공공의 문제를 토론하는 사회관계를 발전하게 된다면, 시민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하나의 사회 자본으로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가 참여하는 지역공동체 모델을 도식화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먼저 운동의 제1 주체는 시민 곧 지역 주민이다. 그러나 행정기관과 지역 단체와의 협력은 필요하다. 행정 기관의 역할은 공동체 역량구축을 위한 조력자이자 지원자로서의 역할이다. 행정기관은 지역 내 공동체의 실체와 그 역할을 파악하고, 지역의 각 공동체 역량을 상호연결해주는 ‘네트워크 연결자’가 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역량은 내부 역량들을 상호 연계하고 결집했을 때의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김구: 74-75).





<그림> 교회가 참여하는 지역공동체모델



























지역 공동체 운동은 주민, 행정기구, 지역 단체가 함께 하는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여기서 지역 단체의 역할은 공동체 운동 주체들의 파트너십 속에서 이 운동의 지속성을 견인하는 성실한 중개자이자 매개자이다.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지역 단체 활동가들은 관련분야를 폭넓게 학습하고 종전의 감시형, 비판형, 이슈형의 행동양식보다는 참여형, 창조형, 대중형의 행동양식으로 적극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 지역 단체에는 지역 교회가 포함된다. 지역 교회 역시 지역 단체의 하나로서 교회가 가진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지역 공동체 운동을 견인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4. 지역 공동체 형성 전략



이제까지 공동체 형성을 위한 교회의 노력이 전혀 없던 것이 아니다. 한국 교회는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져왔고 또한 사역을 실천해 왔다. 이러한 활동들은 대개 사회사업, 사회봉사, 사회복지라는 개념으로 대별될 수 있다. 이러한 활동들이 매우 의미 있고 우리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해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은 많은 경우 복음전도의 수단으로 여겨져 온 것 또한 사실이다. 복음전도의 접촉점을 마련하고자 이러한 방법을 활용한 것이다. 또한, 도덕적 우월감 위에서 시혜를 베푸는 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기보다는 시혜자와 수혜자라는 비대칭적 관계에서 수혜자를 대상화해온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라는 관점에서는 특정인이 우월한 위치를 점하지 않고, 주종의 관계를 이루지 않는다.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교회 역시도 다양한 지역사회 구성원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다른 구성원들을 존중하며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인식론적 입장에서만이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복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가치 창조’이다. 사람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산업화 시기에 우리 사회는 성장과 개발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 생존 경쟁의 각축장이 되어왔다. 그러나 탈산업화 시기에는 환경 보존과 지속가능한 성장이 중시되고 경쟁과 배제보다는 배려와 포섭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이러한 탈산업화 시기의 가치는 기독교의 가치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가치를 창조하여 활성화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세우는 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역 공동체 세우기 전략은 지역 주민들이 나름대로의 특색을 유지하면서 공동의 의식을 형성하고 주체적인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일반적인 과정과 전략들은 꿈 그리기, 보물찾기, 사람 세우기, 공통의 의제와 일감 발굴하기, 관계 만들기, 민주적으로 협의하기, 더불어 나누기 등으로 나누어진다.[2]

지역 공동체 세우기는 먼저 ‘꿈을 그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일본에서 일평생 마을 만들기에 헌신한 전문가는 마을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꿈을 그리는 것’을 꼽았다. 꿈은 공동체의 회복, 아름다운 동네, 편리한 시설, 생태적 삶 등을 소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꿈을 그리고 전파하는 단계가 마을 만들기의 시작이자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기독교 정신과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이러한 꿈을 그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꿈은 기독교인들만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보물찾기’는 특정 지역이 가지고 있는 보물(흔히 쓰는 표현으로 자원)을 찾는 것인데, 이러한 보물을 찾는 경우 매우 큰 추진력과 탄력을 받게 된다. 보물을 소재로 하여 마을의 성장가능성을 발견하고 지향성을 설정하기도 한다. 마을이 전통적으로 구심점으로 삼아온 역사나 자랑거리가 마을의 보물이 될 수 있는데, 기후나 자연 경관과 같은 풍토적 가치와 역사 사건이나 문화유산과 같은 역사적 가치,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이나 행사, 축제와 같은 행위적 가치로 구분된다(다무라 아키라: 70:74). 특히, 비도시지역의 경우 지역 특산물이, 도시 지역의 경우 잊혀진 역사나 문화 유적 등이 좋은 보물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는 ‘에코뮤지엄’이라는 개념이 활용되고 있다. 에코뮤지엄이란 프랑스에서 1960년대 후반에 생긴 개념으로 불어의 에코뮈제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에코뮤지엄이라는 개념은 스웨덴의 스칸센 야외박물관으로 시작한 생활사 복원운동의 전시기법에서 처음 생겼고, 생활 전체를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집의 박물관’이라는 아이디어에서 기인했다(오하라 가즈오키: 19). 우리말로 번역하면 ‘생태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에코뮤지엄은 단순히 생태학에 관한 박물관이 아니라 박물관 그 자체가 지역에서 환경생활의 친화적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환경보전형 마을만들기’ 활동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윗글: 21-22).

이렇게 보면, 마을에는 공동체 운동의 자원이 되는 다양한 보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유후잉 마을은 한국 언론에도 많이 소개된 사례이다. 녹음이 우거진 분지형태의 온천지대에 위치하여 습온 식물의 보고였던 이 지역에 골프장 건설 붐이 불게 되었을 때 주민들은 ‘유후잉의 자연을 보호하는 모임’을 결성하여 자연 보호를 주장하며 폭넓은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대규모 자본과 외부 자본을 끌어들이지 않고, 료깐(여관) 경영자들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힘으로 친환경적인 생활형 관광지를 만들어 마을 자체가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는 박물관이자 관광지로 만든 것은 환경보전형 마을만들기의 매우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사람 세우기’는 현장 일꾼의 역할을 하는 지도자를 세우는 것과 주체적인 참여가 이루어지도록 참여자를 교육하는 것을 포함한다. 성실성과 공평성을 가진 일꾼도 중요하지만, 모든 공동체들의 주체적인 참여가 없이는 공동체 세우기는 불가능하다. 주민 대표가 주도하는 운동이 아니라 모든 주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주민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참여자들 모두 주인 의식을 갖도록 동기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구성원의 합의와 관심의 최대 공약수로서 공통의 의제와 일감을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통의 의제와 일감은 가능하면 많은 수의 구성원이 지지하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폭넓은 지지와 참여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의제와 일감을 설정하지 않고, 공공의 관점에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이해관계를 중시할 경우, 주민 운동이 자칫 지역 이기주의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례로는 동네 하천 살리기, 생태 농업과 같은 자연 생태 운동이나 마을 공유지 마련, 공동 자산, 트러스트 운동과 같은 공동체 회복 운동을 참고할 만하다.

‘관계 만들기’는 이웃 사이의 관계, 구성원 간의 관계를 만드는 것으로 공동체 회복을 강하게 지향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공동체로 단순하게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적인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이 함께 꿈을 나누며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도록 인격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에서 바자회 같은 활동을 할 때에도 교인들끼리 하기보다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주민들을 단순히 손님으로 부르기보다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함께 기획하여 진행할 수 있도록 하여 활동의 공동 참여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공동체를 지향하는 바람직한 태도이다.

다음으로 ‘민주적으로 협의’하는 것은 주민자치센터나 반상회 같은 정부 주도의 행정기구가 아니라 주민 위주의 자발적으로 풀뿌리로부터 참여하여 협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의사결정 기구로서의 민주적인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더불어 나누기’는 마을 만들기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중요한 요소이다. 지금까지 다양하게 시도되었던 정부 중심의 지원정책이 신뢰를 상실한 가장 큰 이유는 공평한 나눔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동체 운동의 성과가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참여자들 사이에 공평한 나눔이 이루어져야 하고, 필요한 재정 역시 투명하게 운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역 사회 활동을 효과 있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 구성원들의 지역 사회활동에 대한 인식과 참여 의향을 조사하여 지역 사회활동을 전담할 수 있는 전략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교회 소그룹을 TF팀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교회 전체가 지역 사회 활동을 하기는 어려우나 각종 소모임들이 지역 사회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더 자발성이 있고,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게 되어 많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이 소그룹 TF팀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를 조사하고 구체적인 공동체 세우기 전략을 모색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5. 운동 사례



지역 공동체 운동의 내용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단순히 지역의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약해져가는 현대 사회의 공동체 정신을 되살리고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 인간미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의제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단순한 봉사나 구제 활동보다는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토론할 수 있는 모임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참고할 만한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1) 생태 공동체 운동

1980년대 생협운동과 함께 벌어진 환경과 생태공동체 운동은 생태적 환경파괴가 급증한 최근까지도 높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생태 공동체는 유기농업을 중심으로 지역의 순환경제체계를 만들어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현대 거대 사회를 대체하는 대안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의 산물이다.

생태공동체운동센터에서는 생태성, 공동체성, 영성의 세 가지 기준을 강조한다. 여기서 영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생태성과 공동체성 만큼이나 중요한 기준으로 여겨진다. 생태공동체의 중심에 영성이 자리하고 있지 않으면 그 내용이 아무리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회 체계와의 차별성은 없어질 것이므로 공동체적 영성, 생태적 영성, 더 나아가 우주적 영성에까지 자아를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3]. 생태공동체가 종교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성은 종교와 깊이 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성적 생태공동체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의식적 노력과 자각을 강조한다(홍성태: 4).

웰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갈수록 커지면서 생태공동체의 가치는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이른바 신토불이와 유기농업만이 한국 농업의 실제 희망이라고 한다. 생태공동체는 이 희망을 기르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그러나 한국의 농촌은 공업적 농업으로 심하게 병들었을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멋을 잃은 척박한 곳이 되었다. 생태공동체는 한국의 농촌이 지니고 있던 생태문화적 경관을 되살려야 한다. 한농복구회나 함양 두레마을, 한생명공동체 등은 생태공동체의 좋은 보기가 되고 있으며 지역 경제에도 상당히 이바지하고 있다. 또한 강원도 화천의 토고미 마을과 충남 홍성의 문당리 마을도 환경 농업의 대표 사례로 뽑힌다.



(2) 녹색 가게 운동

1991년 서울YMCA 생활협동운동으로 과천생협 공동체가 형성되어 환경교육 및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보급을 위한 생협활동이 발단이 되어 시작한 녹색 가게 운동은 생활용품을 다시쓰고 바꿔쓰는 생활문화운동이다. 녹색가게는 우리 주위의 소비물품들을 교환하고 순환시켜 자원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대안적인 생활양식을 실천하여 녹색지역사회건설에 힘쓰는 지역 공동체 운동이다. 이러한 녹색가게는 구체적인 개인의 실천을 유발하며 개인의 실천이 사회공동체화 하도록 돕는 지역 공동체 운동의 센터로 주부 및 청소년, 직장인, 노인 등 다양한 연령층의 주민들이 '녹색가게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민주성과 투명성의 원칙아래 지역 주민 스스로 펼쳐가는 생활 환경 문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4]

또한 기아대책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자선가게라고 할 수 있는 <행복한 나눔>은 지역의 자원을 통해 운영되는데, 교회와 단체는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기부하여 매장을 열고, 각 지역 기관과 주민들의 자원봉사와 물품 기부로 운영된다. 각 지역 매장의 수익금의 50%는 지역의 필요를 리서치하여 진행되는 지역 복지 사업을 위해 사용되며, 50%는 기아대책의 해외 사업장을 통해 전세계 빈곤 퇴치를 위해 사용된다. 또한 지역 매장에서는 지역 내의 취약 계층(특별히, 여성)을 고용하여 지역의 고용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5]

그리고 한국 교계의 사회적 기업 중의 하나인 ‘사랑의 줄잇기 가게’는 자원봉사자들이 중고물품들을 깔끔하게 손질하여 싼값에 판매하고 수익금은 전액 공공복지에 사용한다는 100년 역사의 영국 채리티 샵의 운영 방식과 정신을 이어 한국에 접목한 가게이다. '사랑의 줄잇기 가게'는 새 옷을 싸게 구입해 80% 이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의류회사들이 스톡세일(stock sale·일명 땡처리)을 하는 이월상품이기에 가능하다.[6]



(3) 커뮤니티 비즈니스

지역 공동체 세우기의 한 사례로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앞에서 지역공동체 세우기 전략의 하나로 ‘보물찾기’에 대하여 말하였는데,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지역 사업을 기획하여 운영하는 것이 바로 일본에서 시도되고 있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1994년부터 일본에서 만들어서 사용하기 시작한 일본식 영어이다. 일본은 버블경제가 붕괴된 이후, 오사카를 중심으로 황폐화된 지역이 증가하는 등의 일본형 도시 공동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지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하여 도시 내부 문제 연구에 몰두하여 나온 것이 커뮤니티 비즈니스라는 단어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건강하게 만드는 주민 주체의 지역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나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와 달리, 주민 스스로 지역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비즈니스로 전개하려는 것이다(호소우치 노부타카 엮음, 20-21).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일반 기업과 크게 다른 점은 ‘지역을 위해서’ 또는 ‘사람을 위해서’ 일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영리추구를 제일의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해,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사회적 기업이 있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목적을 추구하여 영업활동을 수행한다. 일반 기업과 달리, 사회적 기업은 이타적 동기를 추진 동력으로 하여, 사회적 공헌을 사업으로 하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이 저소득 계층의 빈곤 극복을 목적으로 한다면,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지역 사람들을 통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효과는 다양하게 기대할 수 있다. 그것은 참여자의 일하는 보람과 자아실현을 통한 인간성의 회복, 다양한 지역사회 문제의 해결, 지역 문화 계승과 창조, 경제 기반의 확립 등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속성을 전제로 하면서 적자를 내지 않고 기업을 유지해 가는 것이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기업이 흑자를 내지 못하면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성공하고 지속적으로 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정신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 또한 매우 중요하다. 가격과 품질만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공헌과 환경보호, 인권존중 등을 고려해 이를 소비해 주는 고객이 있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조직,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기업이 두루 인정받고 이들이 서로 격려하고 연대하여 힘을 모아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지역공동체 운동의 사례로서 굳이 비즈니스를 논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와 기업의 개념이 지나치게 오염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는 자본 곧 돈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의미하고, 기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인 양 이해되고 있다. 근대 자본주의 사상의 주창자라고 할 수 있는 아담 스미스의 사상마저도 아전인수로 왜곡시킨다. 흔히 아담 스미스의 사상을 나타내는 저서로 「국부론」이 얘기되지만, 그의 사상은 「도덕 감정론」에 더 잘 드러나 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도 이상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근대 자본주의를 등장시킨 청교도 윤리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7]

우리는 이러한 자본주의 기업에 대하여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아니라 약자를 배려하고 소수자를 존중하는 태도로 기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최근에 기존의 자본주의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공동체 자본주의’이다. 공동체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성경적, 시대적 대안으로, 경제자유와 경제정의의 유기적 조화를 지향한다. ‘다 같이 더 잘 사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약자의 천부인권과 정직(Integrity)을 기본으로 하는 경제정의 하에서 개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가 최대한 보장되고, 창의적 방법에 의한 자발적 나눔이 문화가 되는 자본주의가 공동체 자본주의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동체 자본주의는 지역 공동체 운동의 전략적인 요충지가 된다. 왜냐하면 지역 사업조차도 지나치게 자신이 속한 지역의 이해관계만을 위해 전개된다면,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기여보다는 자기 지역만을 위한 사업으로 전락하여 자칫 지역 이기주의로 흐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 자본주의 정신은 지역 사업이 사회 약자를 배려하고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포섭하는 데 기여하도록 지침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 자본주의는 곧 청교도 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근대자본주의가 프로테스탄티즘에 의해 태동되었음과, 처음 태동될 때부터 이미 공동체 정신을 그 핵심요소의 하나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자본주의에 터한 지역 공동체 운동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본래 청교도 윤리에서 유래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되찾고, 왜곡된 자본주의로 인해 피폐화된 현대인들에게 공동체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은 기독교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 운동을 교회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회를 포함한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요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해서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지역을 활성화하고 공동체 의식을 일깨우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교회가 참여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관건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로 제시할 수 있는 사례가 아직은 거의 없으나 임실치즈마을은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인 1960년대에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와 예장 통합 교단의 심상봉 목사가 의기투합하여 마을의 빈곤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시작한 치즈 사업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임실치즈마을은 그 시작부터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재 운영위원회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으며 민주적인 의사결정으로 마을을 운영해 하고 있다.





6. 나가는 말



교회는 사회 안에 존재한다. 따라서 사회의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교회의 모습도 변하게 된다. 시대마다 특정한 역사 상황에서 특정한 교회의 생활과 형식이 나왔고, 역사상 특정한 신학자들이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교회관이 있었다. 따라서 근본으로부터 교회라는 개념은 주어진 각 시대의 교회의 형태에 의존하는 것이다. 한스 큉은 교회의 본질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형이상학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 가능한 역사 형태로만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교회관은 끊임없이 변하는 역사 상황에 대한 응답인 동시에 요구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모습은 교회 자체와 더불어 필연으로 계속되는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따라서 언제나 새로이 시도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자신들이 처한 시대를 개혁하기 위해 성서를 가지고 모든 것을 시험하고 그 원리를 적용하면서 그 당시의 문제에 답하는데 전력을 쏟았던 것처럼 이 시대에는 현재의 상황에 맞는 교회관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의 사회가 각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며 시민의 덕성을 중시하는 시민 사회의 성격을 강조한다고 할 때, 교회 역시 이러한 시민 사회에서의 역할을 중요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나치게 물질을 중시하는 경제주의식 사고와 약육강식의 무한 경쟁 체제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현존의 가치를 초월하여 성서가 제시하고 있는 본래의 기독교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가치 및 규범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교회가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가치와 규범에 따라 지역 사회에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때에 한국 교회는 우리 사회의 공공성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공동체는 지역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한국의 교회들은 대부분 교회가 속한 지역에서조차 환영받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더 이상 지역 교회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교인들도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오고 있을 뿐 아니라, 교회 역시 지역에 대한 관심이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스스로 공동체라고 하지만, 외부와는 단절된 채 안으로의 결속에만 집중한다면, 교회는 더욱 더 게토화 되고 ‘끼리끼리’의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폐쇄적인 종교성의 추구는 설사 그들만의 공동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다원화된 현대 사회의 지평에서 어떠한 기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교회는 지역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지역에 대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함이다. 교회는 교회가 속한 지역에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정의에 어긋나는 이 땅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고통에 처한 이웃들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으로 다가가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하여 좁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다.[정재영]





도움받은 글



곽현근, “현대 지역공동체의 의의와 형성전략,” 이종수 엮음, 「한국사회와 공동체」(서울: 다산, 2008).

김경동, 「급변하는 시대의 시민사회와 자원봉사: 철학과 과제」(서울: 아르케, 2007).

김구, “지역공동체 역량구축을 위한 정부의 역할,” 이종수 엮음, 「한국사회와 공동체」(서울: 다산, 2008).

김영정, “지역사회 공동체의 재발견: 공동체 복원 및 활성화 정책의 방향과 과제,” 「한국사회학회 심포지움 논문집」(2006. 5).

다무라 아키라, “지역 가치의 발견,” 「마을 만들기 실천」(장준호·김선직 옮김)(서울: 형설출판사, 2007).

다무라 아키라, 「마을만들기의 발상」(강혜정 옮김)(서울: 소화, 2005).

로버트 푸트남,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안 청시 외 옮김)(서울: 박영사, 2000).

롤랜드, 스탠, 「21세기 세계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정용길 옮김)(서울: 이레, 2003).

박영신, “공동체주의 사회과학의 새삼스런 목소리,” 「현상과인식」, 1998년 봄/여름호.

박영신/정재영, 「현대 한국사회와 기독교: 변화하는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의 역할」(서울: 한들, 2006).

베버, 막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서울: 세계, 1988).

시민사회포럼·중앙일보시민사회연구소 엮음,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서울: 아르케, 2002).

신명호 외, “도시 공동체운동의 현황과 전망,” 「도시연구」, 6호(2000년 12월).

오하라 가즈오키, 「마을은 보물로 가득차 있다: 에코뮤지엄 기행」(김현정 옮김)(서울: 아르케, 2008),

이명규, “일본에서의 마을만들기 운동과 대표사례,” 이종수 엮음, 「한국사회와 공동체」(서울: 다산, 2008).

이성록, 「새로운 공동체영역@제4섹터」(서울: 미디어숲, 2005).

이종수, “공동체와 마을 만들기,” 이종수 엮음, 「한국사회와 공동체」(서울: 다산, 2008).

장성배, “교회중심 지역사회변혁 모델,” 「신학과 세계」, 2004년.

정수복, 「시민의식과 시민참여」(서울: 아르케, 2002).

정재영, “시민사회 참여를 통한 교회의 공공성 회복,” 굿미션네트워크 엮음, 「시민사회 속의 기독교회」(서울: 예영, 2008).

정지웅·임상봉, 「지역사회개발학」(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조영달 엮음, 「한국 시민사회의 전개와 공동체 시민의식」(서울: 교육과학사, 1997).

종교사회복지포럼 엮음, 「시민사회와 종교사회복지」(서울: 학지사, 2003).

한국학중앙연구원 엮음, 「종교와 시민공동체」(서울: 백산서당, 2006).

호소우치 노부타카 엮음,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커뮤니티비즈니스」(서울: 아르케, 2006).

홍성태, “생태공동체와 교육공동체의 가능성과 한계,” 「한국사회학회 심포지움 논문집」(2006. 5),



Baggett, Jerome P., “Congregations and Civil Society: A Double-Edged Connection,” Journal of Church and State, 2002, 44권 3호.

Becker, Penny Edgell & Dhingra, Pawan H., “Religious Involvement and Volunteering: Implications for Civil Society,” Sociology of Religion, 2001, 62권 3호.

Mathewes, Charles T., “Reconsidering The Role of Mainline Churches in Public Life,” Theology Today, 2002, 58권 4호.

Robert D. Putnam, Bowling Alone: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New York: Simon & Schuster, 2000).

Robert Wuthnow, Christianity and Civil Society: The Contemporary Debate(Pennsylvani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6).

Robert Wuthnow, Saving America?: Faith-Based Services and the Future of Civil Society(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2004).

Virginia A. Hodgkinson 외, Giving and Volunteering in the United States 2001(Washington, D.C.: Independent Sector, 2001

Rosemary Leonard·Jenny Onyx, Social Capital and Community Building: Spinning Straw into Gold(Janus Publishing Company, 2005).





































“교회의 새로운 생태계로서

작은 생명 교회를 주목하자!”



이원돈 목사 (부천새롬교회,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





한국교회의 상황은 드디어 도저히 눈뜨고 볼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쓰나미 이후 간절히 선한 목자를 바라는 시대 이 시대의 백성들은 지금 내몰림과 따돌림이라는 처철한 목자 잃은 양떼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1. 두 개의 한국 교회



한국에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다고 한다. 대형 교회 그리고 대형 교회가 되고 싶은 교회. 교회 성장에 매몰된 한국 교회의 세태를 꼬집는 예리한 진단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형교회가 최근 큰 위기에 처해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산업화 시대의 무한 경쟁적 승자독식주의 교회를 대표하는 미국 성장주의형 대형교회의 대명사인 미국의 수정교회가 파산을 목격하고 그 여파로 우리나라의 초대형 교회 중에도 몰락 직전의 모습을 보임을 우리는 지금 다 함께 지켜보고 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 부러워하던 수정교회 그래서 한국 목사님들의 미국순례관광의 필수코스였던 성공적인 교회성장의 모델 수정교회를 앞으로 목사님들이 그곳을 방문하여 이렇게 하면 교회가 파산한다는 교회성장주의 운동의 몰락의 현실을 배우는 필수 코스로 자리 매김하여야할 처참한 처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2. 한국 교회의 이미지:

보수주의에서 근본주의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최근 노르웨이에서 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테러가 발생한 가운데 붙잡힌 테러범이 자신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밝히면서 `근본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노르웨이의 그는 근본주의자라고 한다, 그러면 근본주의자란 누구인가? 오늘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걸핏하면 가스통을 들고 나오는 분들이 계시고 단군 상의 목을 짜른다든지 지하철에서 거품을 물고 예수천당 지옥 불신을 외치는 이런 분들이 있는데 이러한 분들을 우리는 대게 극우 근본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불교 사찰에 들어가 불상에 십자가를 그려 넣는다든지 사찰 땅 밟기를 한다든지 하는 이러한 행동을 하는 분들을 우리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두렵게 하는것은 한국 개신교는 광신도, 십자군, 초딩, 개독교, 짝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지금 "한국교회는 '보수'적 경향을 넘어서 근본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한주간의 사회적 이슈는 무상급식 선거이었다. 이번 선거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번 서울시 무상급식 선거는 한국사회 진보측의 보편적 복지대 보수측의 선별적 복지의 한판 승부이었다. 그런데 결론은 진보측의 보편 복지의 한판승으로 결론이 났다. 무상급식 선거날 제 페이스북에 재미있는 후배글이 하나 올라왔다,

“이번 투표 최대의 패배자는 한국 개신교회다”

왜 한국 교회가 이번 선거의 최대의 피해자가 되었는가? 이번 선거에서 대형교회들이 무상급식 전면 시행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이것은 시장이나 회사처럼 사적기관이 아닌 공적인 기관인 교회가 할 일이 아니지 않는가?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일은 교회 스스로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적 이익 집단임을 자임하는 행위를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저지르고 있는것을 의미 한다. 과거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약자들 편을 들며 민주화운동에 나섰을때는 이런 욕을 먹지 않았다. 비록 기득권 보수진영으로부터 정치목사라는 말은 들었어도 국민전체로부터는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내놓고 가진자 기득권자들 편을 드는 일부 대형교회 보수 목사들 때문에 한국 기독교는 세상의 비웃움과 조롱거리가 되어버리는 세태가 되어버렸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공공적이고 보편적인 무상의 원리를 공격하고 무상의 원리가 확산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말하는 사람 들과 집단이 바로 대형교회의 보수목사들임을 보고 이들이 이번 선거에서 노골적으로 투표를 선동하고 보편적 복지와 무상 급식을 반대하는 편에 서는 것을 볼때 이들 이야말로 인간에게 무상의 은혜를 무한히 주시는 하나님과 대적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며 통탄을 금할 수가 없다.

더구나 내년 총·대선 앞두고 조용기목사와 금란교회 김홍도목사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등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교회 목사들을 내세운 우파 성향의 기독교 정당 결성이 추진되고 있다는 언론의 보고를 들을때 이들이 도대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오늘 한국교회 중 일부 대형교회들이 권력과 돈과 신도 수와 교회건물의 크기에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무엇인가? 교회가 공적이고 보편적인것을 잃고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선별적이 될때 교회가 정의를 잃어 버릴때 어떠한 심판이 임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3. 기후 생태계처럼 한국 교회 생태계도 급변하고 있다



최근 엄청난 폭우가 또 쏟아진다. 이렇듯 전례 없는 집중폭우는 기후변화의 양상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처럼 지금 지구촌의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음을 들어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교회의 생태계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우리는 올해 들어 산업화 시대란 무한경쟁 / 승자독식의 시대이었는데 그 폐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우리는 카이스트학생의 자살 모습을 보면서 이 산업화시대의‘생존경쟁-효율-속도-성과주의’가 파산하여 우리 모두를 자살로 몰고가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목격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이러한 산업화 시대의 무한 경쟁적 승자독식주의 교회를 대표하는 미국 성장주의형 대형교회의 대명사인 미국의 수정교회가 파산을 목격하고 그 여파로 우리나라의 초대형 교회중에도 몰락 직전의 모습을 보임을 우리는 지금 다 함께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생태계와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지금 산업화 시대가 황혼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대는 산업화시대를 넘어서 있는데 우리 한국 교회는 아직도 산업화 시대의 대형교회 신드롬에 옵티마이즈 되어 있다는데 있는 것이다.



3-1. 교회생태계의 변화



① 우리는 한국대형교회의 몰락과 기독교정권의 몰락 이후의 저성장시대의 한국교회를 준비해야 한다.



실천 신학 대학원의 은준관 박사님은 최근 한국교회를 이렇게 진단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선한 싸움이 아니라 교인을 쟁탈해야 하는 무서운 종교 전쟁터가 되었다. 여전히 우리는 교회 성장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학적 색맹이 되어 이 흐름의 비밀을 읽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스스로 영적으로 살려고 젊은이와 지식인이 교회를 조용히 떠나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제 메가 처치와 작은 교회 사이의 싸움이 아니다. 미래의 싸움은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 세대들과 교회가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가에 있다.

설사 2050년에 한국교회 교인 수가 400~500만으로 축소되는 불운이 온다 해도, 중요한 것은 그 400~500만 명이 하나님나라를 존재 이유로 하는 하나님의 백성인가, 창조적 소수가 되어 역사를 변혁해 가는 남은 자인가를 물어야 한다.



우리는 이 말씀이 이렇게 들린다. 우리 한국 교회는 한국교회의 크기가 몰락하고 한국교회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기독교정권의 몰락 이후의 저성장시대의 한국교회를 준비해야 한다.



② 사회적으로 소셜 테이너라고 하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목양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면 그동안 세상을 지배하던 산업화 시대의 무한 경쟁적 승자독식주의의 경쟁형 인간 이후에 이제 어떠한 인생이 들이 다시 탄생하고 있는가? 지금은 한 경쟁적 승자독식주의의 경쟁형 인간에서 이제 돌봄과 나눔과 섬김의 목양적 인간으로 돌아서며 그러한 인간형이 존경 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운데 이 돌보고 나누는 목양적 인간관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교회의 목사인가, 장로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인가, 교회인가?

소셜테이너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가? ‘소셜테이너’는 ‘사회적 발언을 하는 연예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최근 주목받는 소셜테이너는 단연 배우 김여진씨이다. 그녀의 이름 앞에는 ‘개념찬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 다고 한다.

그녀는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부당한 대우 소식을 듣고 홍익대학교 본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농성 중이던 이 학교 청소·경비노동자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녀는 트위터로 부지런히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소식을 실어 날랐고, 반찬을 실어 날랐으며, 트위터로 뜻을 모은 시민들과 함께 청소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광고를 신문에 실었다.

또 다른 분으로 정혜신 박사라는 정신과 의사가 있는데 이분은 자살의 위기에 직면한 쌍용 자동차 노조원을 심리상담을 하여 주었는데 그녀가 상당하는 동안에 그분들의 아이들을 바깥에서 정말 진심을 다해서, 정말로 열심히 놀아주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평택 쌍용차 해직자 가족을 찾은 가수 박혜경씨와 레몬트리 공작단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최근 신문기사에서 영화배우 김여진과 가수 박혜경씨 그리고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박사를 보며 이들이야 말로 파산된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시대의 신자유주의의 인간형이후 고치고 싸매고 치유하는 목양적 인간의 매력을 가장 잘 드러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태일 이후 185일을 고공농성을 하여 3만 명이 부산으로 집결하게 만든 김위원장이라는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 피조물이 등장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소셜테이너라고 하는 사회의 새로운 목양자가 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제는 교회도 성공만을 바라보고 서로 경쟁하는 낡은 시대의 삶의 가치를 버리고 서로 나누고 섬기고 돌보는 내양을 치는 목양적 삶을 사는 부활한 인생들로 새롭게 거듭나 부활 이후의 서로 나누고 섬기고 돌보는 삶을 신나게 출발하는 생명목회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③ 2013의 한국교회 WCC 총회 유치로 교회의 새로운 마당이 준비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세계 기독교인의 올림픽이라고 하는 2013 WCC 제 10차 세계 총회 부산에 유치하게 되었다. 한국 부산에서 열리는 제 10차 WCC 세계 기독인 대회는 우선 그 주제부터가 주목할 만다. 생명 정의 평화가 총회의 주제로 결정된 것은 바로 생명 정의 평화를 절실히 요구되는 바로 아시아와 한국의 상황이 반영된 주제로 환영할 만한 주제가 선정되었다.

둘째로는 아프리카의 파다레(열린마당)와 남미의 뮤티라오(Mutirao)에 이어 한국대회는 마당이라는 개념이 채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 부산 총회때 우리가 활용했으면 하는 우리 한국의 마당이란 무엇을 뜻하는 개념인가?



첫째로. 마당은 열린 소통 구조 이다. 한국 사회에서 마당이란 우선 가족공동체와 마을과 지역사회과 만나는 열린 소통 공간이듯이 이 마당 공간에서 어떻게 가족과 교회와 마을뿐만이 아니라 세계와 만날 수 있는가하는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마당 공간이 펼쳐져야 할 줄로 믿는다.

둘째로 한국의 마당에는 판이 벌려지고 그 판에는 해학과 소통과 해방의 맛이 있다.

셋째로 한국의 마당의 절정은 뭐니 뭐니 해도 갑자기 구경꾼과 관중이 무대에 뛰어들기 시작하고 배우과 관객이 어깨동무하고 하나가 되어 대동의 세상을 이루는 그야말로 해방의 절정을 맛보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우리는 이번 10차 세계 WCC 총회때 이 마당의 진행 절정에 관객들이 무대로 뛰어들고 주최측과 참여자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의 새로운 우주와 새로운 세상과 지구촌이 하나가 되는 우주적 드라마를 경험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5. 새로운 에큐메니즘 즉 공적 영성과 지역 에큐메니즘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교회 생명망을 짜기와 교회의 새로운 생태계의 탄생의 가능성이 있다.



한국교회는 목이 마르다. “추락하기만 하는 한국교회, 왜소해져만 가는 교회운동, 대안이 없다는 말인가?” “예수 정신을 구현하면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교회모델이 무엇인가?” “건강한 교회운동의 방법론은 없는가?” <생명평화마당> 9월 포럼은 교회의 새로운 대안을 묻고자 한다. 생명과 평화의 사상을 퍼뜨려야 할 1차 영역이 바로 우리들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는 그동안 생명과 평화의 사상으로 교회갱신을 실현하겠다는 일념으로 교회현장에서 유용하고 필요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논의를 해왔다.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는 지금 한국교회의 새로운 대안을 5가지 부분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운동을 생태적으로 연결하며 새로운 교회의 탄생을 그려보고 그것을 발전시켜 보려고 한다.



1. 지역사회 복지형 2. 교회시민사회형 교회 3. 생명생태형 교회 4. 도시창조형 교회 5. 교회 2.0 운동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 생명 평화 마당 교회 위원회에서는 이번 종교개혁주일 이후에 오늘 한국 교회의 생태계의 변화를 진단하며 대형교회 시대 이후 중소형 생명교회의 새로운 교회 패러다임과 생태계를 제안하려 하는 것이다.



1. 지역 에큐메니즘에 기초한 지역 사회 생명형 교회:

우리가 새로운 교회의 생태계를 생각할 때 가정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이제 교회를 지역과 사회에서 분리 격리 고립된 한 개교회의 단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교회는 스스로 고립되고 자폐된 한 개체 교회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지역과 마을과 자연과 우주와 생태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생태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교회의 생태계에서 이제 교회는 마을속의 지역 속에 교회가 되어야 하고 목회자는 교회의 목회자인 동시에 지역과 마을을 목회하는 지역 생명 목회자로 적극 나서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와 마을과 지역을 잇는 영적인 동시에 복지. 교육. 문화적인 지역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마을 한가운데로 공부방, 도서관, 복지관, 주민자치 센타 등의 복지 교육 생태계를 만들고 이러한 복지 문화적 생태계들을 교회의 영적 그물망과 서로 연결 소통할 때 교회는 마을과 지역을 살리는 영적 생명의 구원 망으로 다시 설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작은 교회일수록 지역 사회의 교회가 되어야 하며 자신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지역 사회를 위한, 지역의 교회나 마을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도 개 교회 목사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목사가 되어야 하며 지역 사회에 있는 자원을 연결하고 동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정보화시대의 다품종 소생산체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정보화 다품종 소생 산의 시대의 미래 교회는 작고 영향력 있고 창조적인 다윗과 같은 교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윗과 같은 미래 교회들은 작지만 아름답고, 작지만 자유롭고 창조적인 교회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작은 에큐메니칼한 생명 교회들은 창조적 작은 교회들로 작은 생명 생태망으로 지역을 파고들면서 실핏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고 덩치는 작지만 수많은 작은 다윗들로 분화하기도 하고 다시 연합 연대하기를 자유자재로 하는 에큐메니칼한 영성으로 무장된 작은 지역 생명 생태형 교회로서 작지만 강력한 영향력과 힘을 발휘하는 지역 에큐메니즘에 기초한 생명 생태적 영성의 생명 교회들이 될 것이다.



2. 공적 영성 상실로 게토화되는 한국 개신교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시민 사회형 교회 :

많은 한국 교회들은 개교회주의·기복주의, 이분법적인 사고에 젖어서 기독교 영성과 사역의 공적 측면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교회의 공적 영성의 미발달은 크게는 한국 개신교가 사회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을 방해하였으며, 작게는 성도 개개인이 사회 속에서 책임 있는 시민의 역활을 감당하는 것을 가로 막았다.

많은 신앙인들의 착각은 한국 개신교의 위가 개인적인 경건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데 있다. 개인적 경건은 하나님 앞에 개인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것이지만, 교회가 역사와 사회 속에서 사역을 감당해 나가기 위해서는 개인 경건만으로는 부족하다.

교회의 사역을 이끌어줄 시대적 세계관 신앙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는 개인적으로 경건한 목회자 혹은 교회라고 해서 공적 영성의 결핍 문제를 자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신학적인 성찰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한국 개신교의 패러다임을 기복적·성장지향적·개교회주의적 영성에서 공적 영성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한국 개신교의 영성 코드에 공적 영적을 담아내는 신학적 재구성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 지향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학준 교수 / 뉴브런스윅신학교)

우리는 향린교회 새민족교회 등 지금 이러한 교회의 공적 영성과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기 위한 교회들이 탄생하여 많은 이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건강한 의미에서 교회도 성장하고 있음을 보고 이러한 교회의 공적 영성과 사회적 책임이 최근 ‘2012 생명평화 기독교행동’으로 출범하며 새로운 한국교회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3. 농촌 지역 생명 생태 환경형 교회 : 생명농업포럼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한국 교회의 농촌교회에서 이미 생명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생명농업과 생명목회는 단순히 농법의 전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의 문제이고, 생명문화의 문제이고, 세계의 관계를 생명적 관계로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복음사역에 매우 중요한 본질적인 과제가 된다고 보는 생명 농업 포름이 존재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생명 생태 목회가 준비되어 오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최근 기후문제를 중심으로 생태계의 위기를 맞이하며 이러한 생명 생태형 농촌교회들의 존재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이러한 생명 생태형교회에 대한 관심이 농촌교회에서 출발하여 도시교회로 그리고 마을과 지역의 생명 생태 살리기 운동으로 확산되어 감을 우리는 감지할 수 있다.



“20-30명밖에 안 되는 농촌교회라도 목회자가 마을의 목회자로 생각하면, 목회적, 선교적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WCC 총회가 진정한 에큐메니칼 정신을 우리가 다시 한 번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공론화하고 공감하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피조물, 다른 인종, 다른 종단과 함께 사이좋게 잘 사는 것,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다시 한 번 크게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WCC 부산총회를 준비하는 농촌교회 좌담회 중 이태영 목사)



4. 도시지역 도시 창조 목회형 “지역을 변화시키는 창조적 도시목회”

(Creative Urban Ministry for Local Community)



지금 한국의 도시 교회의 일각에서는 "지역공동체 세우기와 마을 만들기"를 통해 도시 교회 공동체와 창조목회를 연구하는 공동체가 “도시 공동체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인 그룹으로 도시 공동체 연구소는 한국교회의 위기적 상황을 극복할 대안을 지역공동체를 세우는 지역교회운동에서 찾고자 새로운 도시교회 운동을 시작한다.

도시공동체 연구소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변혁적 능력을 상실한 한국교회의 영성을 회복하기 위해 지역사회를 섬기고 지역의 문화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이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지금 발생하는 모든 한국교회의 문제는 결국 신앙의 공적 책임에 대한 인식부재로 인해 나타난다고 보고, 우리 연구소는 궁극적으로는 교회가 지역과 삶의 현장으로 겸손하게 내려가서 공적인 책임을 다하며 지역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앙의 공적 표현, 실천, 공공신학의 구체적 실천, 교회의 정치적 책임, 사회와 지역에 대한 공적인 의사소통 등의 문제를 다루고 함께 토론하면서 앞으로 연구소가 어떻게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을지, 또 한국교회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5. ‘교회2.0목회자운동’



= 교회 목회도 2.0 시대, “개방, 참여, 공유, 소통”해야

: 참여 공유 연대 web 2.0 매체 혁명 소셜 네트웍크형 교회=



나도 이러한 교회를 다니고 싶다는 교회 소비자 운동과 소셜네트워크의 시대에 교회도 참여 공유 연대로 민주화 하여야 한다는 교회 민주화 운동이 젊은 목사님들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들 젊은 목회자들은 목회자 중심의 독단적인 교회 운영에서 벗어나 평신도 교인들이 교회 내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하는 민주적 교회 운영을 제일 큰 목회 방침으로 정하고 있다. 상호 평등한 의식과 협력적인 팀 사역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지도력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결론:



최근 성공회 신학대학의 신용복 선생님이 한 신문사와 대담을 하셨는데 거기서 참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늘 새로운 창조성은 늘 변방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외부와 바깥, 변방과 마이너리티가 대단히 중요 하다는 것입니다. 중심부는 언제나 기득권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중심부에서는 창조적인 변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인류역사의 전개과정을 보더라도 문명의 중심부는 늘 변방으로, 변방으로 옮아왔다.

왜 그러냐면 중심부는 늘 보수적 저항이 완고할 뿐 인데 반해, 변방은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새로운 것이 태동할 수 있는 창조의 지반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변화는 변방에서 오고 모든 새로운 에너지는 밖에서 온다는 것이다. 모든 에너지는 밖에서 변방에서 불어온다.

안철수 교수가 한국기업이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의 동물원에 갇혀있다고 하였듯이 한국교회도 지금 대형교회의 동물원에 갇혀있다. 이 동물원에서 탈줄해야 하고 한국교회에도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벤쳐 생태계가 탄생해야 하는데 그것이 중소형 생명형 교회들의 탄생이다.

혹시 우리 교회만 낡은 산업화 시대의 대량생산 체계를 닮은 대형 교회의 모습을 흠모하고 닮으려하여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작고 빠르고 창조적인 교회의 모습을 상상하며 세상과 새로운 소통을 꿈꾸는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생태계는 급변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산업화 시대에 한국 교회를 주도하던 대형교회 중심의 교회 성장운동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급격한 쇠퇴를 경험하고 있고 새로운 교회 생태계로서 공적 영성과 지역 에큐메니즘을 기반으로 한 교회의 새로운 생태계의 탄생과 새로운 교회의 생명망을 짜기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와 교회는 그 덩치는 크지만 이미 그 믿음과 도덕성과 사회성과 영성을 잃음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큰 걱정과 근심과 진통을 앓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서 오는 교회는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 두려움이 없는 교회라, 작지만 아름답고, 작지만 자유롭고 독립적인 교회들이 될 것이다.

이처럼 미래에서 오는 교회는 크고 멍청한 골리앗이 아니라 작지만 창조적이고 영향력 있는 다윗과 같은 교회로 올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공적 영성과 지역 에큐메니즘을 기반으로한 교회의 새로운 생태계의 탄생과 새로운 교회의 생명망을 짜기를 준비해야할 때이다.

첫째로 "산업화 시대의 개교회 성장 패러다임"을 넘어 정보화 시대에 창조적으로 지역과 소통하는 "지역 섬김형 생명 목회 패러다임"의 교회의 탄생을 기도해야할 때이다,

둘째로 나도 이러한 교회를 다니고 싶다는 교회 소비자 운동과 소셜네트워크의 시대에 교회도 참여 공유 연대로 민주화 하여야 한다는 교회 민주화 운동이 본격화 되어야 할 시기이다,

셋째로 최근 발생하는 모든 한국교회의 문제는 결국 신앙의 공적 책임에 대한 인식부재로 인해 나타난다고 보고, 지역공동체 세우기와 마을 만들기"를 통해 도시 교회 공동체와 창조목회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며 지역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헌신해야 할수 있는 새로운 에큐메니칼한 공적 영성을 준비할 시기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새로운 교회의 생태계를 준비하는 우리로서 가장 중요한 인식의 전환은 이제 교회는 교회와 마을과 지역과 지구촌을 잇는 공적 영성과 지역 에큐메니즘을 기반으로 한 교회의 새로운 생태계의 탄생과 새로운 교회의 생명망을 짜기를 준비해야 할 시기임을 자각하고 준비하여야 할 때라는 것이다.[이원돈]











































































“<예수살기>의 교회운동”



양재성 목사 (예수살기,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예수살기 창립선언문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누가복음 4:18-19)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종교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내 삶의 모든 것이 예수를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하나님께서 활동하시는 역사적 현장을 유기하고 예수를 따르는 삶을 개인화해버렸다. 역사를 외면하고 단지 종교 영역 안에 갇혀버린 기독교, 삶을 간과하고 단지 말의 잔치로 숨어버린 기독교는 지금 극심한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이 추락해버린 한국교회 모습은 어느 누구의 책임이라기보다 예수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우리들의 허물임을 고백하며 회개하는 심정으로 예수 살기의 새로운 운동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감히 ‘예수살기’라 이름 하였지만 우리가 예수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반성과 뉘우침에서 이 모임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를 믿는 자리에서 예수를 사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 믿기는 예수 알기에서 시작하여야 하며 예수 따르기, 예수 살기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예수는 우리의 전 존재가 자신을 따라 나설 것을 요청하셨다. 부자가 되기를 포기할 뿐만 아니라 부 자체를 포기하라고 하신다. 예수가 가르친 구원은 개인의 심리적 위안이나 죽은 후에 타계에서 이루어지는 구원만이 아니다. 예수의 구원은 개인의 경건과 사회적 성화, 더 나아가 우주적 성화까지 지향한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자가 기쁜 소식을 듣고,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고, 갇힌 자가 놓임을 받는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치유와 해방의 메시지였다. 그는 개인을 억압하는 부당함과 사회를 억압하는 불합리와 생명을 억압하는 불의함에 맞서 싸우셨다.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생명 평화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해 역사의 진보에 발을 맞추어 책임 있는 행동을 해나가고자 노력할 것이다.

실제로 참된 기독인은 역사의 고비마다 민족과 민중의 고난에 동참하며 예수를 따르는 삶의 순수성을 지켜온 양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할 무렵 기독교는 민족의 자주적 의지를 키워가는 온상이었다. 일제가 기독교신앙을 타계적, 초월적, 개인적 신앙으로 변절시키려는 의도에도 당시 전체 인구의 1% 정도에 불과한 기독인들이 전국적으로 3.1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살해, 구속, 부상당한 피해자 중 기독교인이 과반수를 넘어설 만큼 기독교는 3.1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또한 민족성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신사참배에 저항하며 의연하게 순교의 길을 가기도 하였다. 1970년대 유신 정권이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할 때에 기독교는 산업선교 등을 통해 이 땅에 고난 받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였고, 이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촉발시켰으며, 고난의 현장에서 탄생한 민중신학을 꽃피웠다. 한편 한국사회가 통일문제를 금기시하던 때에 한국교회는 해외에서 남북 교회가 만나 화해와 교류를 선언하고, 마침내는 1988년 한국기독교의 통일선언과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으로 이어지는 선도적 투쟁으로 통일운동의 물고를 트기도 하였다.

이렇게 기독교는 역사의 현장에서 가난한 민중과 함께 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역사의 고비마다 신앙 양심을 지켜온 사건들에 주목하고 이들에 의해 유지해 온 예수를 살아가는 전통을 계승해 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일제 강점기에 신사에 참배한 잘못, 해방 후 이승만 독재 정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잘못, 유신군부독재의 인권 유린ㆍ억압ㆍ학살을 묵인하고 동조해온 죄악, 아울러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에 동참하여 이웃나라에 고통을 가하는 죄악을 깊이 반성하고 회개하며 민족 앞에 사죄한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반성과 평가는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규정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이며, 한국교회가 참된 교회로 성장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는 상대적으로 민주화되었고 조금씩 사회의 성숙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교회는 여전히 비민주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져 반사회적, 반역사적, 반민주적인 길을 가고 있으며, 결국은 교회 내 윤리는 실종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자신이 예수의 길을 따르는 삶에 충실하지 못했으며 같은 길을 가는 동지들과 연대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이에 역사에 책임적 자세로 성실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기독인들이 모여 새로운 기독인의 모임 “예수살기”를 세운다. 우리는 이 공동체를 통하여 책임적인 삶을 살아가고자하며 다음과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나아가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출애굽을 통해 히브리 민중이 이룬 해방된 공동체를 추구한다.

독재와 억압의 표본이었던 애굽의 바로 아래서의 종살이는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였고 삶을 송두리째 파괴시켰다. 이에 야훼 하나님은 신음하던 떠돌이, 가난뱅이들, 노예들을 대표하는 히브리 민중들을 내 백성이라 칭하시며 그들을 해방시킬 것을 선포하셨다. 마침내 애굽과의 투쟁을 통하여 고통과 억압에서 히브리 민중들을 해방시킨 하나님은 해방자이며 그들이 이룩한 히브리 공동체는 해방공동체였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하는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 된다. 즉 민중을 섬기는 일이 기독교의 정신이다. 그것이 참된 기독인과 거짓 기독인을 구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우리는 비인간화, 반생명성을 기독교의 적으로 규정하며 인간과 생명을 억압하는 모든 세력에 대항한다.



둘째,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의 중심인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어간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기독교 신앙의 기반이다. 이 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 이것이 복음이다. 예수의 태어나심, 삶, 죽으심, 부활하심과 가르침이 복음의 내용이다. 그 예수가 평생 붙들고 사신 것은 하나님 나라였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여기에 충실했다. 그의 죽음도 십자가도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서였다. 궁극적으로 기독교 운동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다.

천사들은 예수의 태어나심이 하늘엔 영광이고 땅엔 평화라고 노래하였다. 예수는 생명을 주러왔고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긴 자를 고치시고, 소외당한 자를 세우시는 등, 생명을 살리고 일으키고 보전하는 일은 예수의 중심 사역이었다. 생명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이 시대에 생명을 살리는 일은 분명히 하나님의 일이다. 또한 예수는 평화를 주러왔다고 자신을 규정하셨다. 때문에 예수는 거짓 평화인 로마제국에 빌붙은 예루살렘 체제와 대결하여 성전을 숙정하셨다. 예수께서 평생을 두고 씨름하신 하나님 나라 운동의 두 기둥은 생명과 평화인 셈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생명과 평화의 나라다.



셋째, 우리는 성령의 역사와 교회의 정체성을 이룩하여 나간다.

초대 교회를 가능하게 한 것은 성령이었다. 성령께서 임재하시어 예수의 가르침을 생각하게 하셨고 예수를 따르게 하셨다. 성령은 사람들 안에 분열된 마음을 치유하여 하나되게 하신다. 성령의 역사는 우주가 하나님의 몸이며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의 지체로 한 형제요, 한 자매임을 보여준다. 초대교회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위임받은 공동체이다. 초대교회 안에서 종과 자유인, 이방인과 유대인, 여자와 남자가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갈라진 것들이 하나되는 화해는 공동체 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웃과 소외된 자들에 대한 무관심과 오만을 회개하고 그들과 자매, 형제 관계를 회복하는 운동이었다. 또한 성령은 무력한 자들을 일깨워서 세상을 변혁하도록 역사의 현장으로 뛰쳐나가게 하신다.



넷째, 우리는 정의ㆍ평화ㆍ창조질서보전에 앞장선다.

세계교회협의회는 그 중심 과제를 정의ㆍ평화ㆍ창조질서보전과 폭력극복운동에 두고 있다. 그것은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교회는 이 과제에 충실할 의무가 있다. 교회는 정의로운 사회를 세우고 평화공동체를 건설하고 창조질서를 보전하며, 폭력에 반대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을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예수살기 신앙고백문



우리는 해방의 역사를 통해 생명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며 (신론)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살아 참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기독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이 생명과 평화의 영임을 믿는다. (성령론)

우리는 예수의 몸인 교회가 생명, 평화 그리고 정의의 세상을 여는

하나님의 일꾼임을 믿으며 (교회론)

성서와 더불어 자연과 역사가 진리와 은총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성경론)

우리는 모든 생명이 자유로이 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믿으며 (하나님 나라)

예수를 따라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자세임을 믿는다. (제자도)





예수살기 행동강령



<개인>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을 성찰한다. (말씀)

우리는 날마다 교회개혁과 사회변혁을 위해 기도한다. (기도)

우리는 생명을 살리고 보전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세우는 일에 순명한다. (순종)

우리는 만물을 하나님께 하듯 지극한 사랑으로 대한다. (정체성)



<교회>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사유화하지 않는다. (공교회)

우리는 감사와 기쁨 그리고 두렵고 떨림으로 성례에 참여한다. (경외)

우리는 올바른 교회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한다.(개혁)



<사회>

우리는 고통 받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다. (이웃/봉사)

우리는 겨레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힘쓴다. (통일)

우리는 전쟁과 폭력을 반대하며 생명, 평화를 위해 일한다. (평화)

우리는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힘쓴다. (평등/정의)

우리는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힘쓴다. (인권)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불의와 위선에 저항한다. (정의/저항)

우리는 진리를 따르고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과 연대한다. (연대)

우리는 지구를 살리는 창조질서보전에 힘쓴다. (생태)

우리는 이웃종교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존중한다.(이웃종교와 대화 연대)





예수살기 운동 및 모임 수칙



1. 우리는 서로에 대하여 깊은 동지적 이해와 사랑을 가진다.

2. 우리는 운동의 자율성을 강조하므로, 어떤 전체주의나 자율성을 침체시키는 요소를 경계한다.

3. 우리는 운동의 통일성을 추구한다. 서로 믿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힘을 합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4. 우리는 운동의 역사성에 주의한다. 올바른 역사흐름과 거슬러 흐르는 운동이 되지 않도록 경계한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지니고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는 성찰과 분별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

5. 우리는 서로 다른 교파나 종교 단체에 대해서 포용성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대화하며 역사의 공동과제를 위하여 협력한다.

6. 우리들은 각자가 모임에 책임 있는 주체로 참여한다. 우리는 실천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월정 회비를 성실하게 납부하여 회원의 의무를 다한다. 매주 목요일을 기도의 날로 정하여 정해진 시간에 회원 상호간 기도의 만남을 가지며 매주 홈페이지(www.withjesus.or.kr)에 들어와 서로의 의견을 나눈다. 건강한 신앙과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학습을 열심히 한다.

7. 우리는 시간은 모두가 공유하는 공유물이므로 정확하게 지킴으로 남의 시간을 늦추거나 빼앗지 아니한다.[예수살기]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의 위상과 역할

<생명평화마당>은 그동안 기독교 사회운동 진영에서 그 위상이 어떠해야 하고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진지하게 논의해 왔습니다. 우선 월례포럼을 활동의 근간으로 두고, 신학위원회를 중심으로 대중을 확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차근히 내용을 축적해 왔습니다. 그것은 한국사회와 한국기독교의 모순과 폐단을 지적하며, 차세대 개신교의 개혁을 위하여 진지하게 자성하고 생명과 평화의 사역을 펼쳐내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구현하기 위하여, 한국교회 영역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당연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그 방안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하여 교회위원회의 활성화에도 역량을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의 위상

1. 한국교회는 개혁과 새로운 대안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포스트 메가처치의 대안으로 중소형교회가 할 수 있는 교회개혁의 건강한 모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일각에서 시도되고 있는 지역사회형 교회모델, 시민사회형 교회모델, 생명생태환경형 교회모델, 도시창조목회형 교회모델, 교회2.0목회자운동 등의 시도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러한 기류 속에서 <생명평화마당>이 지향하는 교회모델 또는 교회운동모델을 개발하고 확산시켜 나감으로써, 한국교회, 특히 중소형교회에 활력을 주고 목회의 신명을 더할 수 있어야 한다.

2. 작금에 있어서 교회개혁이란 무엇인가? 근본에 자리한 신앙관부터 개혁하고 진정성 있는 고백에서 기인한 본질적 개혁이어야만 한다. 외연만 그럴싸하게 바꾸는 시늉으로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실제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도출하고 실현가능하여 주효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3. 무너져 가는 한국교회를 새롭게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중소형 교회(농어촌, 도시빈민)모델로써, 실제적인 교회개혁을 이루어간다는 목표로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의 위상을 설정해야 한다.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의 역할과 활동계획

1. 우선 뜻을 같이할 수 있는 동역자 그룹을 형성해야 한다. 새로운 대안에 목말라하고 출구를 찾으려고 몸부림치며 힘겨운 목회를 하고 있는 중소형교회의 목회자들과 만남을 주선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안에서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목회방안을 연구하기 위하여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나가야 한다. 그 같은 자료들을 엮어서 신학위원회나 사회선교위원회와 함께할 논의자료로 제시할 수 있다.

2. 교회위원회 중소형교회의 모델정립의 완성도를 위해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생명평화마당> 월례포럼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월례포럼이 신학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꾸려가고 있지만, 이제부터는 교회위원회와 사회선교위원회가 번갈아서 주도해야 한다. 그럴 때 ‘신학-교회-선교’라는 삼각구도 안에서 내실 있는 포럼이 될 수 있다.

3. 교회위원회의 활동의 결과로 얻은 성과는 전국단위로 적극적으로 유포하고 확산시켜 내야 한다. 이를테면 ‘생명과 평화를 향한 교회개혁 선언’을 선포하고 전략적으로 지역을 순회하면서 함께 뜻을 가진 동역자들의 규합을 도모해야 한다.

4. 또한 이미 우리와 비슷한 내용으로 활동하고 있는 제 단체들과 동지적으로 연대하여 ‘생명평화의 목회’를 위해 힘을 보탤 수 있어야 한다.

5. 목회자 동지들과 끈끈한 정기모임을 기반으로 하고, <생명평화마당>의 내용과 조직을 바탕으로 하며, 연구하여 도출한 생명평화의 교회모델 또는 교회사역모델을 전국단위로 확산해 나가는 활동을 교회위원회 역할로 규명하고자 한다.

6. 창조적이면서 독창적인 모델을 연구하고 제시함으로써 한국교회의 미래적 대안을 마련하고 한국교회의 새로운 환경을 서서히 형성해가야 할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1] 이 글은 정재영 “교회가 참여하는 지역공동체 세우기의 이론적 기초,” 정재영·조성돈, 「더불어사는 지역공동체 세우기」(서울: 예영, 2010)의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2] 이 내용은 이종수, “공동체와 마을 만들기,” 이종수 엮음, 「한국사회와 공동체」(서울: 다산, 2008)의 23-30쪽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3] 생태공동체운동센터 홈페이지(http://www.commune.or.kr)에서 인용.


[4] 녹색 가게 운동 홈페이지(http://www.greenshop.or.kr)에서 인용.


[5] 행복한 나눔 홈페이지(http://www.giversmart.or.kr)에서 인용.


[6] ‘사랑의 줄잇기 가게’는 자원봉사자들이 중고물품들을 깔끔하게 손질하여 싼값에 판매하고 수익금은 전액 공공복지에 사용한다는 100년 역사의 영국 채리티 샵의 운영 방식과 정신을 이어 한국에 접목한 가게이다. ‘사랑의 줄잇기 가게’ 홈페이지(http://www.lovingline.org/)에서 인용.


[7] 이것은 막스 베버가 자신의 저작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서울: 세계, 1988)에서 전개한 핵심 논제이다.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2) - 에큐메니안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2) - 에큐메니안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2)한국생명농업의 현황과 과제
안재학 목사 | 승인 2011.05.06 09:29
댓글0
icon트위터
icon페이스북


2. 생명농업운동

첫째, 우리는 농산물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이러한 방식은 작물을 재배하는 생산적이고 대안적인 전략으로서 대체되어야 한다. 이것은 인체뿐만 아니라 지구, 토양, 물 등에 유용한 방법이다. 우리는 미생물들과 다양한 유기퇴비를 사용하며 이것을 우리는 유기농업이라고 부른다. 유기농업의 합리적 근거는 인간존재 자체의 생존을 위한 환경을 지속하는데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위해 지속가능한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미래세대를 위한 자연환경을 복원하고 회복하기 위한 숙고함 없이 자신들의 편리함을 위해 자원을 이용하고 착취한다. 이러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개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끔 만든다. 개발은 자연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에서 허용된다. 개발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대안농업이라고 부른다.

농사는 생명을 살리고 공급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생명들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농업무역에 있어서 농사는 점점 더 자연의 생명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미래세대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능력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복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우리자신의 생존을 위한 지구의 자연환경과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는 우리 없이 살아갈 수 있지만, 우리는 어머니 지구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신념에 바탕한 자연농업과 유기농업에 중점을 둔 농업이 시도되었고 그러한 방법들을 증진시켜나갔던 몇몇의 시민단체들이 있었다. 90년대 이전에는 한국에서 유기농업은 이러한 지속가능한 실천들이 확산되는 초창기였다.

한국농업은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화학비료와 제초제, 살충제 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화학비료의 의존도는 점차 감소하고는 있지만 농약의 사용은 여전히 크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 농업생산물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 사이의 요구들 혹은 관심은 높은 품질과 안전성이다. 사실 유기농산물에 대한 요구들은 증가하고 있다. (총생산량- 336,000톤: 전체 농산물의 2%, 23,000 가정, 25,000 헥타르: 2003년 통계)이러한 수치는 더욱 커지고 있고 유기농 농가의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관행농 인구의 10% 미만: 2010년 통계)

우리 유기농업의 상황은 미국이나 유럽의 많은 선진국의 유기농업에 대한 현황들과 견주어 보았을 때 초보적인 단계이지만 유기농산물의 생산과 유통은 전체 농산물과 비교했을 때 잠재적으로 사업적 전망이 있다.

한국에서 생명농업 운동은 조직적 그리고 개별적인 다양한 헌신들로 이루어졌다. 각 단체들을 언급함에 있어서 단체의 그룹들은 일반적으로 농촌지역에서 헌신하는 목회자 그룹과 농민들과 활동가 중심으로 이루어진 평신도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두 그룹들 중에서 목회자 그룹을 상세하게 소개하자면 첫 번째, 감리교 목회자들은 1985년도에 농촌목회자연합회를 결성하고 두 번째, 예장(통합)은 1987년에, 기장은 1989년에 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를 결성하게 이른다. 80년대 후반에 한국의 정치적인 논쟁점들은 대중매체를 장악하고 직접적인 폭력을 통해 국민들을 억압하는 군사정부의 잘못된 정책들과 얽혀서 꽤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처음에는 농촌목회자들이 정부의 농업정책과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서 거리에서 투쟁을 했다. 이것은 종국에는 농촌교회의 선교가 대정부 투쟁 일변도에서 보다 대안적인 방향을 찾도록 결심하는 데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곡물과 채소 정부수매에 대해 눈을 돌리고 집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관행농의 폐해 즉, 농약, 비료, 제초제 , 살충제 사용에 대해서 화제를 삼지 않았다. 그때에 농촌목회자들이 자발적으로 유기농업과 대안농업을 시작했고 권장하기 시작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1990년대가 시작하면서 농촌지역에서 생명공동체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또한 많은 협동조합들과 공동체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생명농업을 증진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많은 성공적인 이야기와 실패한 이야기들이 공동체 내부, 외부에서 보고되어지고 평가되어 진다. 어쨌든, 이것은 생명농업을 통한 지역공동체건설을 함에 있어서 한국의 현재적 진행상황이다.

반면, 평신도 그룹들 또한 생명농업에 매료되어 생명농업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이러한 단체들의 대부분은 기독교 신앙에 기반해서 그들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그룹에는 정농회, 가나안농군학교, 기독교농민회, 가톨릭농민회, 자연농업협회 등이 있다.

이 지점에 있어서 필자는 농촌선교를 위한 목회자 연합회(이하 농목)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하고 자 한다. 농목은 그들의 신앙고백을 통해 사회적 정의를 위해 싸워왔던 시대의 어두움에 저항해왔던 교회들과 목회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농목의 조직 및 개인들은 민중 운동을 함께 하면서 농촌의 인구가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목격했다. 80년대와 같이 여전히 농촌지역에는 남아있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이제 부모세대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혹은 도시로 이주해간 자녀들이 경제적 이유 혹은 이혼의 이유 등으로 자녀양육이 힘들어서 다시 시골의 노부모에게 자녀들을 내려 보내어진 소위 조손가정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아이들은 빈곤가정과 이혼가정이 겪는 아픔들이며 그들은 상처받은 영혼들이다.

농촌인구의 고령화는 한국과 같은 나라들에게는 주된 관심거리가 되었다. 아무도 농촌으로 이주하여 생업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도시로 이주하고 농업에는 관심도 없다. 더욱 나쁜 것은 젊은 한국 여성들은 대부분 도시로 이주했으며 이것은 농촌의 총각들의 결혼풍속에도 크게 영향을 주게 되었다. 최근에 이주여성들이 한국 농촌의 농민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이주여성들은 한국에서의 보다 나은 삶을 꿈꾸지만 실상은 그들의 바라고 꿈꾸었던 장밋빛 미래와는 거리가 먼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다문화 이슈는 최근 들어 새롭게 급부상하는 문제들이다.

최근에는 소수의 젊은이들이 농촌에 남거나, 농촌으로 돌아오는 경우들이 있다. 원래 농촌지역에 살던 젊은 자식들은 대부분 관행농에 익숙하고 관행농을 통해서 소득을 얻는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갈등의 소지가 있다. 특히 생명농업에 보다 집중하는 귀농한 젊은 농민들과 그러하다. 관행농과 생명농업이 농촌현장에서 현지인과 귀농인들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다. 어쨌든 귀농인구의 증가 숫자는 실제적으로 감소하는 농촌인구를 보전할 만한 숫자는 되지 못한다. 그래서 연대의 고리가 필요하고 도시와 농촌이 상생할 수 있는 장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도시교회들과 협력하여 생명농업을 증진하는 농촌교회들에 대해서 좀더 집중하려고 한다. 농촌교회는 자연과 평화로운 농촌지역의 공동체의 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교회가 공동체의 중심적인 역할체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현재, 도시교회들은 농촌교회들과 협력하여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청기지로서의 사명을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것은 농촌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도시의 삶은 존재하지도 못할 것이다. (계속)

* 이 글은 지난 해 11월 22-26일 스리랑카 캔디에서 열린 제2차 아시아기독교생명농업포럼에서 필자가 발제한 글(영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이 글은 「농촌과 목회」49호에도 실렸습니다.

안재학 목사 jagafocus@hanmail.net

곡성 자연순환생명농업, 일본 농업관계자들도 관심:곡성투데이



곡성 자연순환생명농업, 일본 농업관계자들도 관심:곡성투데이

곡성 자연순환생명농업, 일본 농업관계자들도 관심

정국열 | 입력 : 2009/08/26 [11:32]





곡성군(군수 조형래)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연순환생명농업이 국내 농업인은 물론 일본 자연농업협회와 환경보전형농업기술연구회 연수단이 현장을 다녀가는 등 국내외 농업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자연순환생명농업은 농가 스스로 친환경영농자재를 제조 사용하도록 해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쉽고 효율적으로 친환경농업을 추진할 수 있는 모델로 곡성군은 지난해부터 T/F팀 구성, 자재실습장 운영, 시범사업을 통한 연시회와 연찬회 등을 통해 내실있게 추진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 나주시, 강진군, 함안군 등 인근지역 농업인과 관계자들이 다녀갔으며, 특히 일본 자연농업협회와 환경보전형농업기술연구회 연수단 20명은 25일부터 2일동안 조한규 지구촌자연농업연구원장과 함께 자재실습장과 시설채소, 수도작, 축산단지 등 현지를 둘러보면서 자연농업 실천 과정상 문제점과 애로사항, 자연순응의 생리생태, 토착미생물 등을 활용한 무농약, 무제초, 무비료 친환경농업 등 자연농업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의견을 교류했다.

조형래 군수는 환영인사를 통해“농촌이 주어진 삶을 사는 곳이 아니라 일본․중국은 물론 나아가 미국․유럽의 농업인들과 경쟁해야 하는 무한경쟁의 터전이다.”면서 이번 방문으로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당부했다.

또한 일본 자연농업협회 사무국장인 히메노 유꼬씨는 “방문 일정동안 베풀어 주신 두터운 호의에 깊이 감사드리며, 한국의 자연농업이 곡성군에서 활짝 꽃 피우기를 기대한다.”고 방문 소감을 밝혔다.

유기농을 넘는 생명 역동 농업 (Bio Dynamics) – 웹진 「대산농촌문화」



유기농을 넘는 생명 역동 농업 (Bio Dynamics) – 웹진 「대산농촌문화」



해외농업기행-캐나다
유기농을 넘는 생명 역동 농업 (Bio Dynamics)2015년 12월 16일 by 신수경


퍼디난스 반드루스카 씨 Ferdinand Vondruska



캐나다 밴쿠버에서 휘슬러로 가는 길.
아름다운 만년설의 광경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고속도로가 있다. 태평양을 끼고 이어진 도로의 반대편에는 여름에도 꼭대기가 하얀, 이름모를 산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장관덕분에“See to sky(바다에서 하늘까지)”라는 별칭이 있는 도로를 타고 휘슬러로 가는 길, 스쿼미시 Squmish 라는 지역의 한 자락에‘하늘높은 줄 모르고’솟아있는 울창한 삼림 속에서 특별한 농부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삼나무 숲. 비포장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한 C-dar rodge farm. 이 농장의 주인인 퍼디난드 반드루스카 Ferdinand Vondruska는 스위스 출신으로 생명역동농업 Bio Dynamics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의 이론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농민이다. 이곳은‘생명역동농업’에 따라 생태학과 경제학적인 분석을 토대로 지속적인 토양을 관리하는 비영리기구인 C-dar Biodynamic Society의 현장 실습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생명역동농업은 식물의 생장이 단순히 햇빛의 광합성뿐 아니라 우주 전체가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화학비료와 농약의 과도한 사용으로 생태환경의 균형을 깨뜨리고 오염을 확산시키고 있는 현대 농업의 문제를 풀어내는 대안으로 토양의 복원과 생태순환농업을 강조한다.

반드루스카 씨가 키운 마늘(오른쪽)은 그 뿌리가 훨씬 길고 잔뿌리가 많다.

반드루스카 씨는 30년 전부터 생명역동농업을 전파해왔다.
“(처음) 멕시코 땅은 척박하고 화학물질에 심하게 오염돼서 냄새도 났습니다. 풀들은 아주 억셌구요. 5~7년 안에 황무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죠. 3년간 생명역동농업을 도입해 1억㎡의 땅을 되살렸습니다. 7년 후 그 땅에 나무 5만 그루 심었는 데, 나무의 1년 생존율이 종전 25%에서 90%로 높아졌습니다.”
반드루스카는 지금도 1년에 4~5번은 멕시코에 다녀온다.
또한 네팔의 카투만두,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에 가서 그 곳 토양을 다시 살리는 일을 한다고 했다.
“해마다 200명~700명의 농민들을 만나 생명역동농업을 교육합니다. 제가 안 가면 그 사람들이 다 (본인의 농장으로) 올텐데 그 사람들을 다 맞이할 수는 없지요.(웃음)”

농장을 돌면서 낯익은 풍경을 보았다. 그가 안내한 밭에서는
한참 마늘이 자라고 있었다. 흙은 그냥 보기에도 비옥했다. 그
흙을 파헤쳐 꺼낸 마늘에는 유난히 잔뿌리가 많았는데, 반드루 스카 씨는 물을 따로 주지 않고 자연의 섭리에 맡겨 마늘의 뿌리가 스스로 힘을 길러 땅속 깊숙이 그리고 넓게 내리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흙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뿌리는 흙속에 남아 흙을 살리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됩니다.”
생명역동농업은 일반 유기농과 비슷하지만 토양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한다. 바로‘증폭제’라고 불리는 것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병들어가는 지구를 회복시키는 유일한 방법이 흙과 생명을



생명역동농업은 일반 유기농과 비슷하지만 토양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한다. 사진은 ‘소똥증폭제’.

살리는 것이며, 501번부터 509번까지 아주 다양하고 특이한 방법으로 만든 9가지 다양한 증폭제를 이용한다.
그가 안내한 헛간 안에서 조금 희한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여러 개의 소뿔이 담긴 얼기설기 엮인 그물이 천장에 걸려있었다. 이것이 바로 501번 소똥 증폭제라고 했다.
암소뿔 안에 암소의 똥을 넣고 그물에 넣어 헛간 천장에 6개월간 두었다가 다시 땅속에 파묻어놓고 또다시 그것을 꺼내어 15배로 희석한 물에 넣어 일정한 횟수로 저어주어 작물에 뿌려주면 어린 식물의 생명력이 왕성해진다는 것.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정농회에서 정리해놓은 9가지의 증폭제와 반드루스카는 그 증폭제를 혼합한 또 하나의 증폭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509번이라 불리는 그 증폭제는 이집트 피라미드의 공식을 그대로 대입한 나무 피라미드 안에서 발효하여 사용한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엉뚱(?)하지만 이러한 증폭제가 실제로 흙을 재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는 이러한 농작물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에 증폭제를 집어넣어 만든 부식토로 유기농사를 지을 때 사용한다.
어느 것 하나도 버려지지 않는, 자연 안에서 모든 생명들이 제몫을 다하는게 하는 것, 그것이 생명역동농업이다.
반드루스카 씨는 올해로 일흔 살, 예순 한 살에 있다는 딸이 마침 맨발로 뛰어놀다가 우리 일행과 만났다. 그는 우주의 움직임과 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는 덕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농장 안에는 6명의 정원사가 있는데, 이들은 생명역동농업을 하기위해 배우는 사람들로 수확한 농산물을 스쿼미시 시장으로 내다 판다. 이렇게 생명역동농법으로 만들어진 농산물과 가공품에 데메터(Demeter)라는 상표로 유기농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일반 유기농산물과 혼동하는데서 오는 혼란을 막고 고유의 품질을 인정받기 위한 것이다. 이들에게서 반드루스카가 받는 임대료는 1년에 1달러. 그는 생명역동농업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게 하기 위해 2주간의 속성 교육과 매년 가을 세계 각 나라의 농업인이 참여하는 학술 행사도 펼친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비율대로 만든 나무 피라미드 속에 증폭제를 섞어둔다.한줌의 증폭제로 농장 전체의 땅을 회복할 수 있다.피라미드에서 발효된 증폭제1천년이 넘은 나무 밑둥을 이용하여 양봉을 한다.반드루스카 씨는 생명역동농업을 알리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미시 시장으로 내다 판다. 이렇게 생명역동농법으로 만들어진 농산물과 가공품에 데메터(Demeter)라는 상표로 유기농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일반 유기농산물과 혼동하는데서 오는 혼란을 막고 고유의 품질을 인정받기 위한 것이다. 이들에게서 반드루스카가 받는 임대료는 1년에 1달러. 그는 생명역동농업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게 하기 위해 2주간의 속성 교육과 매년 가을 세계 각 나라의 농업인이 참여하는 학술 행사도 펼친다.

농장 한 모퉁이에 쌓아둔 504번 쐐기풀 증폭제 앞에서 그는 말한다.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 연주자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악기를 조율합니다. 끽끽 뿌우뿌 하고 제멋대로 소리를 냅니다. 이윽고 지휘자가 들어오면 조용해지죠. 지휘자가 지휘봉을 휘두르는 순간, 아름다운 연주가 시작됩니다.
이 증폭제는 이런 지휘자의 역할을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리듬을 갖고 있습니다. 그 리듬 속에서 모든 생명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생명역동농업은 생명에의 외경과 자연이 주는 목소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며 유기농을 넘어 더 지속가능한 농업과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또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글·사진 신수경(skshin70@hanmail.net)

생명역동농업이란
생명역동농업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는 인지학이라는 정신과학의 창시자로서 1924년 카이저 링크 백작의 강력한 요청으로 100여명의 농민이 모인 가운데 2주간 강연을 하였다. 슈타이너의 강연 후 농민은 물론 원예업자, 과학자 등이 협회를 결성하였고 현재 활동을 하고 있다. 생명역동농법에서는 태양과 달을 포함한 각종 별들의 운행에 따른 농사력에 따라 농사 계획을 세운다. 태양의 광합성만이 식물의 생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일반론과는 달리. 생명역동농업에서는 식물의 생장이 달과 행성(우주)과 식물의 총체적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TAGS: 2011여름호

한국생명농업협회 최병칠 회장 / 생명존중 ‘땅’의 회복은 ‘퇴비’가 열쇠 - 기독신문



한국생명농업협회 최병칠 회장 / 생명존중 ‘땅’의 회복은 ‘퇴비’가 열쇠 - 기독신문



한국생명농업협회 최병칠 회장 / 생명존중 ‘땅’의 회복은 ‘퇴비’가 열쇠

김지홍 기자
승인 2005.11.30 00:00

30여년 유기농업 역사 일궈…가나안영농조합설립, 안전한 먹거리 지킴이로


최병칠 한국생명농업협회장은 땅과 땅속의 미생물 그리고 인간이 공존하는 농업연구에 헌신해 왔다. 인간을 건강하게 만드는 안전한 먹거리야말로 농업의 진정한 경쟁력이다. ‘흙’을 이야기하는 심정은 다소 착잡하다. ‘쌀 개방 반대’와 ‘식량주권 사수’를 외치는 농민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는 상황에서, 또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를 둘러싼 논의들이 복잡하게 뒤얽히고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상황에서 ‘흙’을 먹고 사는 일과 그 ‘흙’을 일궈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한국 유기농업의 ‘대부’격인 최병칠 회장(74·사단법인 한국생명농업협회)을 찾아가는 길에도 시위는 이어지고 있었다. 경기도 여주 시민회관 앞은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붉고 푸른 깃발로 넘실거렸다. 그 소요의 뒷편, 한적한 이면도로에 생명농업협회의 컨테이너 사무실이 있었다.
마침 그날 오후 여주군농업기술센터와 갖는 행사가 있어서 최 회장은 양복차림이었다. 연세대, 서울장신대, 아세아연합신대 등 오랫동안 강단에 서왔기 때문에 늘 양복차림이었을 터였지만, 그날 따라 그의 양복은 어딘지 모르게 그와 겉도는 것 같았다. 오히려 투박하고 두툼한 손이 그의 ‘본질’을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았다. ▲“생토생민(生土生民)이지!” 30여년, 한국 유기농업의 역사와 그 이력을 함께 해 온 그는 유기농법을 “생명농법”으로 정의한다. 그 생명농법이 지향하는 목표는 ‘생토생민’(生土生民), ‘흙을 살려 백성을 살린다’는 것이다. 그동안 유기농과 관련해 바른 먹거리의 중요성이나 음식물과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진 바지만, 최 회장이 생명농법을 이야기하는 것은 좀더 ‘근원적인 부분’과 맞물려 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유기농은 상업주의에 의해 그 의미가 상당부분 퇴색되고 있습니다. 농약을 덜 쓰고, 그래서 좀더 비싼 값을 받는다는, 정부가 말하는 환경농업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유기농의 핵심은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이고 흙의 힘을 살려 사람을 살리는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최 회장이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먹거리 생산의 주체인 농민들도 유기농을 그저 퇴비를 주는 것 정도로만 이해한다는데 있다. 물론 유기농이 지력(地力)을 살리기 위해 퇴비를 사용하는 것은 맞지만, 문제는 이 퇴비를 생산하는 ‘공장’에 있다. 퇴비를 생산하는 공장들이 이윤을 늘리기 위해 충분히 완숙되지 못한 퇴비를 판매하는 경우가 상당 부분 있고, 이로인해 오히려 농사를 망친 농민들이 유기농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진정한 유기농의 근간은 ‘생명존중 사상’이며 땅과 땅속의 미생물, 그리고 인간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기독교적 농법’이라고 믿고 있다. ▲‘농약 해독제’ 최 회장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농촌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뜻이 맞는 지인들과 경기도 산골짜기에 ‘의화농림기술학교’란 농장겸 학교를 만들어 농촌의 젊은이들과 함께 직접 농사를 지으며 교육도 시켰다.
그러던 그가 유기농에 접하게 된 것은 좀더 많은 공부를 위해 단기코스로 들어갔던 일본 농촌청년양성훈련학교에서. 최 회장은 그곳에서 일본 현대 농업의 설립자인 구로사와 도리조를 만나게 되고, 당시 96세의 거장으로부터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 흙 사랑’에 관한 의미와 한 권의 책을 소개받게 된다. 그 책은 세계유기농법의 출발점이자 중심지로 알려진 미국 로데일 농장에서 펴낸 <황금의 흙>(이 책은 1982년 최 회장에 의해 <유기농법>이란 책으로 국내에 소개된다).
이 책의 내용에 자극받은 최 회장은 일본을 돌아다니며 일본 유기농업의 1세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무릎의 관절염과 불면증, 협심증 등이 농약의 영향 때문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또 현미에 들어있는 피친산이 농약을 분해, 배설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조언에 따라 직접 현미를 먹고 그 효과를 직접 체험하기도 한다.
▲유기농을 위한 ‘문서선교사업’ 일본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정 회장의 이후 삶은 유기농이란 개념의 소개와 홍보, 그리고 실제적으로 유기농을 보급하는데 바쳐졌다. 하지만 현장 중심의 활동을 보였던 몇몇 국내 유기농 선구자들과 달리 그의 행보는 ‘문서선교’에 중점이 맞춰졌다.
직접 미국의 로데일 농장을 찾아갔던 그는 그곳에서 최초의 유기농 관련 서적인 <농업성전>(An Agricultural Testament, 영국의 생물병리학자 알버트 G. 하워드경(1873~1947)이 쓴 책으로 하워드경은 1900년경부터 퇴비연구를 시작, 1940년까지 40여년간 퇴비에 관한 연구만 계속했다. 이 책은 그의 40여년에 걸친 퇴비연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를 비롯, 몇 권의 유기농 관련 서적들 판권을 얻어다 국내에 소개하면서 유기농에 관한 체계적인 개념을 정착시켰고, 이후에는 연세대를 비롯, 대학 강단에서 유기농을 가르치는데 열정을 쏟았다. 또 1991년에는 유기농학회를 설립하는 등 관련 학회 조직을 통한 학문적 연구와 농민 교육을 통한 유기농 보급과 연구에 헌신해왔다. ▲퇴비에 건 ‘희망’ 최 회장은 이념적인 면에서 유기농의 핵심은 ‘생토생민, 균근공생’(동일한 피조물로서 모든 생명을 존중한다는것과, 땅속의 미생물과 먹거리가 함께 살아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회복되고 유지되는 것)이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실천은 ‘퇴비’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미 각종 농약과 화학비료에 오염되고 황폐화된 땅의 ‘힘’을 되살려내기 위해서는 퇴비가 가장 효과적인 지름길이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최 회장은 “병충해가 있기 때문에 농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농약이 있기 때문에 병충해가 생긴다”고 믿는다. 바꿔 말하면 ‘농약이 없으면 병충해도 없다’는 의미이다. 농약과 병충해는 서로 ‘동반자’ 관계에 있으며 농약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병충해도 강인해진다. 항생제가 강해지면 내성을 가진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최 회장은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열쇠’가 퇴비라고 주장한다. 퇴비는 퇴비가 썩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열을 발생하며 처음에는 40도 정도에 이르던 퇴비 내부의 열은 뒤짚기를 하면 60도, 또 뒤짚기를 하면 거의 70~90도에 가까운 온도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웬만한 병충해와 잡초씨들은 다 타죽는다. 이것이 퇴비가 완숙되는 과정인데, 이런 과정을 앞당겨 충분히 완숙되지 못한 퇴비를 주게되면 뒤늦게 발열과정이 진행되면서 식물의 뿌리를 태워 오히려 농작물이 죽는 낭패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자신의 이런 내용을 말로만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몇몇 지인들과 ‘가나안생명영농조합법인’을 설립, 구체적으로 이런 퇴비를 만들어내고 있다. ‘생물영양토’(Blue Green Soil)라고 이름붙인 이 퇴비는 최 회장이 스스로 주장해온 퇴비와 유기농에 대한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토양의 산성화를 막고, 땅속의 미생물은 살리면서 병충해는 막고, 생산성은 증대시키는 ‘안전한 먹거리’ 생산을 위한 든든한 지킴이로 만들어내고 있다.
최 회장은 이 퇴비가 각 농가로 보급되어 더 이상 화학비료와 농약의 폐해로부터 벗어나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유기농업과 자연농업



 영농기술 친환경유기농업친환경유기농업

최신생산경영기술


공유하기
네이버밴드 공유
카카오스토리 공유
facebook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프린트 하기
스크랩 하기
메일링 신청
제목        유기농업과 자연농업
유형        자연순환체계
분류        참고자료(교육자료)
링크          http://www.cbh.com.ne.kr/soil.htm
첨부파일          없음
작성자            관리자등록일2011-02-10조회수809
1. 기본요소
농림부 /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click
 유기농법

살균제,살충제,제초제등 화학합성농약과 화학비료,식물생장조절제,인공사료첨가제등을 전혀 사용하지않고 가축의 분뇨나 인광석,질소분말 등 자연광석분말등을 활용하는 농법
효소나 미생물을 외국(주로 일본)에서 구입해 들여오거나 타지역에서 배양된것을 활용

ㅇ 자연농법

자연법칙에 최대한 순응하는 농법으로 무경운,무제초,무화학비료,무농약등 거의 인공적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농업으로 퇴비 및 토착미생물 등을 활용하여 토양의 이화학적성질을 개선, 작물을 건강하게 키우므로써 농약과 비료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농법
그 지역 고유의 효소나 토착미생물을 활용

2. 기술체계의 비교

구 분
유 기 농 법
   자 연 농 법

 시   비
      유기질비료
     무   비
 생태보호관
     강건화
     무병충
 병충해방제
     미생물.기피식물 이용
     무농약

 제   초
    수작업
     무제초
 경   운
    천경(얇은 갈이)
     무경운
 작   부
    윤작,간작,혼작
     적시적작
 작   기
    적시재배,반촉성 억제재배
     적시재배

 규   모
  적정규모
     적정규모
 육   종
  재래종
     야생종
 노동력
  인력,축력,소규모 동력
     자연력
 축   산
  복합순환
     방목


자료 : 농진청, 환경보전형농업의 기술체계와 농가보급방안, P51

3. 유기농법의 실천기술
○ 토곡(흙누룩)의 제조 및 활용
    - 왕성한 토양미생물(효소균)의 작용에 의하여 토양의 단립화 상태가 입단화 됨
    - 토양중의 유기질분해를 촉진시키고 메탄가스의 발생을 막아줌

○ 속성발효퇴비의 제조
    - 토양미생물의 작용은 토곡과 똑같으나 미량요소가 보급되어짐
    - 토양이 활성화 되어 작물생장이 왕성하여지고 과실비대,당도,품질, 맛을 향상시켜 줌

○ 생력효소의 발효 및 활용
    - 퇴비를 뒤집어주지 않기 때문에 일손이 절감
    - 여타의 퇴비사용 효과는 호기성 발효퇴비와 유사함

○ 태양열이용 하우스토양 개량
    - 하우스내의 토양전체를 토곡화 시키면서 발효퇴비를 가장 손쉽게 다량 제조가능
    - 고온상태(60-70℃)가 지속되므로 각종 병원균이나 해충 또는 충란은 물론 잡초의 씨앗이나 뿌리가 완전히
       제거됨

○ 효소의 엽면살포
    - 날씨가 흐릴때나 우천,강설시 하우스내에 광선침투가 약한 것을 보충해 주는역할이 커 횟수가  많을수록
       좋음
    - 서리피해나 저온장애,고온장애등으로 잎이 죽어갈때 즉시 옆면살포를 실시함으로서 완전회복이 가능

○ 효소 수용액(수퍼엔자임,샛별등) 
    - 과수,과채류등이 병에 걸렸을대 뿌리에 충분히 적셔줄 수 있도록 파고 관주해 주면 질병확산이 방지

○ 톱밥 발효사료 제조 및 급여
    - 톱밥에는 각종 무기물이나 유기질이 볏짚,왕겨,산야초등에 비하여 4배 가까이 함유
    - 풍부한 미량요소의 섭취로 체증증가

○ 균(파워효소) 배양사료 제조 및 급여
    - 직접적인 사료비의 절감효과는 없는 반면에 톱밥발효사료 급여효과와 똑같은 간접효과를 가져옴


4. 자연농법의 기본원리
○ 자연의 섭리에 따른다

○ 필요한 영농자재는 주변에서 얻는다
    - 예: 토착미생물,천혜녹즙,아미노산,한방영양제등

○ 즐거운마음으로 과정을 즐긴다

○ “0”의 위치에서 관찰한다
    - 대부분의 농업인들은 가축이난 작물의 입장에서 보다는 농사짓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기술을 적용함

○ 상부상조를 기본으로 한다 
    - 잡초를 잡초끼리 경쟁을 시키면 뜻밖에 안정을 찾고 풀이 나지않게 할 수 있음


5. 협회현황

협회명
회장
전화번호
주        소
유기농업
류달영
  02-406-4462  셔울시 송파구 가락동 72-3 성원B/D 4층
한국유기농업협회
자연농업
박경조
  043-832-8777  충북 괴산군 청안면 운곡리
Korean Natural Farming Homepage

6. 실천농가 현황

농법별
농가명
전 화
품목
주    소
유기농법

  

  


  

  


자연농법

  

  


  

  


원본출처 : 농협중앙회          重要 친환경농법

자연농법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의 농법이다
 자연농법을 통한 대자연으로의 회귀
  "인간은 아무 것도 모르고 또 알지도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자연농법의 출발점이다. 이것은 농업 뿐만 아니라 참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자연 농법은 인위적인 지식과 행위를 버리고 무위의 자연에 맡기는 농사법이다. 신이 하는 농사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지식을 통해서 하는 현대 과학농법에서의 완전히 방향을 바꾸어, 신의 지구 경영에 참여하는 일이다.즉 신을 도와서 대지에 봉사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자연농법이란 사람의힘이나 지식을 더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인 자연 속에 파묻이고 자연과 함께 생생하게 살아가려는 농사법이다.어디까지나 자연이 주체로서 자연이 농작물을 기르고 인간은 그것에 봉사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과학농법이란 인간의 지식과 힘을 자연에 가하여 더 많은 수확을 올리려는 농사법이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주체이며, 자연을 최대한 이용하여 물건을 만들려고 하는 농사법이다.

자연농법은 무위자연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궁극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구심적인 농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최종적으로 인간이, 자연이 간직하고 있는 이치와 조화, 질서의 세계속에서 사는, 즉 참다운 사람(진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학농법은 욕망의 확대를 추구하므로 차차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나 원심적으로 팽창, 분열해 가지 않을 수 없는 농법이다.
따라서 과학의 발달에 따라 모든 것을 인간이 처리 해야하는 천수관음식 농법이고, 목표와 수단이 다양해 짐에 따라서 고생도 한없이 늘어 나게 된다.

자연농법은 자연의 도, 순수, 무위의 길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가 출발점이고 결론이고 수단이 된다. 즉 편하고 즐거운 농부의 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뿐더러 전혀 인위적인 것이 없는 달마 농법이기 때문에 땅을 갈지 않고(불경기), 비료를 안 주며(무비료), 농약을 안 치고(무농약), 잡초를 뽑지 않는 것(무제초)이 4대 원칙이다.

▒ 자연농법의 4대 원칙 ▒
  
1. 땅 갈지 않기
   
   흙은 갈면 나빠진다
      땅은 스스로 간다

  
2. 비료 안 주기
      
작물은 흙에 의해서 성장한다
      비료는 그 피해가 막대하다
      자연을 응시하라

  3. 잡초 안 뽑기
 
     잡초는 과연 존재하는가
      풀은 흙을 기름지게 한다

  4. 농약 안주기
 
     해충이라는 것은 없다
      새로운 농약 제품의 공해

농작물
은 인간이 인간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만들기보다 자연에 맡겨서 자연에 가까운 상태에서 생산시키는 것이 이상적이다. 왜냐하면 농작물은 그 자체 스스로가 어디에,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생장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 맡겨서 키워 보면 일반 사람들의 상상 이상으로 형태와 질이 모두 뛰어난 것이 나온다는 것은, 많은 작물을 섞어 뿌린 후 자연 재배하면서 관찰하면 잘 알 수가 있다.

 발췌 : [생명의 농업] 후꾸오까 마사노부 / 최성현 시오다교오꼬 옮김 / 정신세계사 / 1990
親環境農業育成法 ]-用語의 定義 

 
第2條(定義)  이 法에서 사용하는 用語의 定義는 다음과 같다.

 1. "親環境農業"이라 함은 農藥의 安全使用基準 준수, 作物別 施肥基準量 준수, 적절한 家畜飼料添加劑 사용등 化學資材 사용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고 畜産糞尿의 적절한 처리 및 再活用등을 통하여 環境을 보전하고 안전한 農畜林産物(이하 "農産物"이라 한다)을 生産하는 農業을 말한다.

 2. "親環境農産物"이라 함은 親環境農業을 영위하는 過程에서 生産된 農産物을 말한다.   

 3. "親環境農業技術"이라 함은 親環境農業을 영위하는데 이용되는 農法이나 理論 또는 資材의 生産方法등을 말한다.

즉 법에서 규정한 친환경농업이란 무농약ㆍ무비료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농법으로 화학비료나 합성농약 등 농자재 사용을 환경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수용능력 한계내에서 조절해서 사용하여 농업생산의 경제성 확보와 환경보전 그리고 농산물의 안전성을 추구하는 일거삼득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입니다.
 자연농업 관련도서 


    조한규의 자연농업
     -  환경농업입문서


    가장 한국적인 농사법인 자연농업에 대해 알기 쉽게 잘 설명되어 있어 일반인들도 이해하기쉽게 각종 사례를 소개함으로서 자연농업에 대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귀농으로 정착하는데 있어 훌륭한 길잡이가 되고 있으며, 일본에서 먼저 발표된 이책은 농업기술 선진국인 일본 농민들에게 필독도서가 되고 있다.

    발행처 : 도서출판 자연을 닮은 사람들
    가격 : 9,000원
    저자 : 조한규 지음


    흙이 살아야 밥상이 산다

    토양의 오염은 식탁의 오염으로 직결된다. 인스턴트 식품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주 내용으로 자연농업의 기본원리와 실제를 알기쉽게 설명하고 있다.

    발행처 : 도서출판 자연을 닮은 사람들
    가격 : 9,000원
    저자 : 조한규 감수, 최익근 엮음


    자연농업 자재 만들기

    농업에 필요한 영농자재를 손수 만드는 갖가지 방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내손으로 최고급의 자연농업 자재를 직접 만들어 활용해 보자.

    발행처 : 도서출판 자연을 닮은 사람들
    가격 : 11,000원
    저자 : 조한규 지음




    자연농업 - 아시아 환경농업 기술전문지(격월)

    구독료 : 1년(6권)에 35,000원 (재구독시는 30,000원)
    발행처 : 사단법인 한국자연농업협회
    문의 : 080-332-8777(무료)
    전화 : 031-227-8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