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1

[알라딘서재]<양의 노래>

[알라딘서재]<양의 노래>


양의 노래 - 가토 슈이치 자서전
가토 슈이치 지음, 이목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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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리뷰는 일반적으로 객관성을 지향하는 서평쓰기’ 방식을 따르지않았다오히려 좀더 주관적인 독후감에 가깝다책을 소개하고 판매를 고려한서평쓰기보다는 책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책과 나와의 밀당과정을써보고 싶었다글의 구성은 다소 느슨한데이유는(사실은 졸렬한 글쓰에대한나의 변명책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하나의 생각이 들면 그걸 붙들고 남겨둔 메모를 그러모았기 때문이다.


    <양의 노래> 받자마자 명절 연휴 사흘  뜨겁게 읽어 나갔다  대부분의 원고는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리버럴리스트였던 가토 슈이치가 1960년대 후반저자가 40대일  쓰여졌다저자의 어린시절부터 중년까지 (1920년대 -1960년대) 대부분을 이루고나머지 30 정도(1990년대 까지) 간략하게 그동안의 경과보고를 포함하고있는 자서전이다가토 슈이치는 어려서부터몸이 허약하여 책을 좋아하게되었다고 한다문학소년이  조숙한 아이는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었고아울러 여러 문인예술인들과 교류하며 당대의지식인으로서 성장하였다. <양의 노래> 저자가 독자적인 눈으로 세상의 부조리와 거짓에 어떻게 대면하고이와 길항하여 저자의 지적 발견과 사상적 성숙이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대해 담담하게 기술하고있다특히 태평양 전쟁 전후수많은 일본의 예술인문인지식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20세기 전반 일본 지식인들의 세계를 자발적 아웃사이더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양의 노래> 마치 미국 현대사의 장면들을  개인의 이야기와 곁들여 집약해놓은 영화 <포레스트 검프> 보는  했다 개인이 고국 일본  아니라 세계 역사의 소용돌이  복판에서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목격하고 흐름을  몸으로 체험한 기록이기 때문이다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이르러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미공군의 도쿄 공습 당시 저자는 도쿄에 있었으며하루 아침에 사라진 도시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의사로서 방사선에 피폭된환자들의 혈액을 직접 관찰하고다친 환자들을 치료하는 활동도 하였다한편, 1968 8 체코의 프라하의 ’ 당시 소련의 전차가 체코로 침범해오기 직전 가토 슈이치는 불과 수일 전에 프라하에 있었다 자서전을 쓰던 60년대에 저자는 캐나다 밴쿠버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당시에 케네디 대통령이암살되기도 하였다.
   가토 슈이치는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건들에 대해 근저에까지 내려가 사건들의 의미를 철저히 따져 묻고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이를 해석하려는노력을 평생 지속했다이는 저자 자신이 어느 민족국가에 속하는  특수성의 제약을 뛰어 넘어 모든 가치 앞에 인간이라는 기준을 두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이는 나에게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다가토 슈이치는 평생을 인간의 가치 회복을 위해  목소리를 내었던 지식인었다고   있겠다.
   
◈ 가토 슈이치의 어린 시절  가정환경
   가토 슈이치의 어린시절과 가정환경을 살펴보면 아웃사이더 지식인 형성하는 여러 요인들을 발견할  있다가토 슈이치의 부모님들은 부모로서의 권위를 자녀들에게 절대 강요하지 않았으며특히 아버지는 의사로서 바쁘게 일만하는 것이 아니라문학책을 읽고피리를 불줄 알았으며 아들과 친밀한 대화를  아는 가장이었다작은 부정에도 민감하고불의에 저항하는 품성은 가정교육가정의 분위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미 어린 시절에 자리잡은 것으로보인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여긴 부분은 가토 슈이치에게 어린 시절 최초의 영웅일본 문인이 아니라 찰스 다윈이라고 밝힌 대목이었다찰스 다윈의 저작에대해 가토 슈이치는 “...... 그것은 거의 시적인 감동이었고…(중략)…어린 나는 속에서 자연과학을 배운게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즐거움을 알았던 .”이라고회상하고 있다 책읽기 지식을 얻는 활동보다도 사유를 자극하는’ 즐거움을 주는 활동이었던 모양이다.
   한편 태평양 전쟁 이전저자는 수재들이 모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다양한활동을 하게 된다예를 들어 다양한 문학책 읽고연극과 음악에 접하며격렬하고 집요하게 토론하고 질문하는  지적정신적으로 끊임없이 성장했음을  있다대학입시에만 올인하여 소진되어가는 요즈음 고등학생들의 학교 생활 모습과 너무나도 다른 조숙한 모습에 놀랐다.
   학창시절에 전통 일본 문학  세계 문학을 읽고 토론함으로써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을 이해하는 눈을 키울  있었던 것도 어떤 면에서는 제국주의 일본이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기위해 마련한 번역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부분에 있어서는 장단이 있겠고논쟁의 여지가 있을  있겠으나, 100년전에 이미 존재한 엄청난 번역 문학 기억해내는 부분에서는 우리 사회와  격차를 느낄  있었다.

 가토 슈이치에게 미친 예술의 영향_연극과 음악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어려서부터 문학책을 즐겨읽었던 가토 슈이치는 더욱폭넓은 예술 장르에 접하게 된다연극과 음악미술이 대표적인 예인데다양한예술과의 접촉은 가토 슈이치에게 평생동안 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으며 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저자는 전통 문학  아니라 일본의전통 연극을 통해 보편적인 예술로서의 연극 발견하는 경험을 다음과 같이기록하고있다.
   나는 전쟁 기간에 스이바도바시의 노가쿠당에서  발견했던 것이 아니라연극이라는 단어의 궁극적인 의미를 발견했던 것이다. (중략)……배우의 육성이 과연 얼마나 아름다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작은 동작 하나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이야기   있는가 하는 것이다. (중략)……실제로   나는 거의 세계 극장에서 일류 연극을 보게 되었지만그것은 내가 먼저 우메카와 만자부로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곤고 이와오가 추는 춤을 보았기 때문이다결코  반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양문화에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한국인의 눈에는 우리 문화가 보잘것 없는것으로 보일지 모르겠다이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문화와 바탕을 이루는 태도 혹은 정신에대해 감탄하고 애정을 가질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아닐까그런 점에서 우리는 정신적인 단절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곤한다우리의 문화에대한 애정마져 갖지 못한 , ‘타자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여기에 나에 대한 존중 것에대한 사랑이 제대로 싹틀  있을까나는 우리의 에대한 지식을 배우는  이전에 우리의 것에 대한 애정 갖는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연극에서 나아가 가토 슈이치는 피아노 음악을 통해 예술의 세계를   새롭게 발견했다특히 전통적인 일본의 가극과 연극을  아는 상태에서 세계에 나갔을  예술에 대한 눈을 더욱 키우고시야를 넓히는 경험을 얘기한다이러한경험 이후  다시 고국 일본의 예술을 접하며 성숙해진 눈으로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다예술의 보편성을 이해하고 전통 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다고  있겠다저자가 유럽으로 갔을  서양에서발견한 예술의 형식은 연극 뿐이 아니니라 회화조각  건축의 세계였다결국 가토 슈이치에게 있어 문학연극음악미술 등의 예술은 평생의 기반이  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예술은마치 몸의 일부 처럼때론 세계를 해석하는 눈으로서 가토 슈이치와 평생 함께했다고   있다.

 주변인으로서 삶을 선택하다
   의사로서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가토 슈이치는 중년의 나이에 의학을 그만두고 문필가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자발적 아웃사이더로서 삶을 선택한 결정의 이유가 나에겐 놀랍기만하다.
   병원을 오가며 밤새워 글을 쓰면서 (그림을 보고 글을 읽고 시간을 들이는)그런 짬을 낼 수는 없다. 나는 의학 연구실에서 생활해왔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런 이유로 연구실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략)……의학 연구는 전문화의 극단을 달리던 학문이다. 일에 몰두하면서 1년을 보낸 뒤, 나는 종종 그 1년을 마치 없었던 시간처럼 느꼈다. 1년 동안 오고 간 계절과, 주변 세계에서 벌어진 사건 전부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연구실 바깥의 나는 산사람이 아니었다. (중략)……나는 시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또 주변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혈액학 전문가에서 문학 전문가로 변신한 게 아니다. 전문 영역을 바꾼 것이 아니라 전문화를 폐기한 것이다. 그리고 내심 비전문화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뜻을 세우고 있었다.
   이는 일본의 또 다른 지식인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다니다가 갑자기 그만둔 이유와도 비슷하다다카시는 직장생활을 바쁘게 하면서 읽지 않고 쌓여가는 책을 두고볼 수 없었노라 고백했다다카시 역시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삶이 아니라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삶을 선택하겠다고 했다그런 면에서 가토 슈이치의 포부 또한 다치바나 다카시와 유사하다.
  
 이방인으로서의 시선_정신적 자유의 추구
   파리를 산책하고 사유하기를 좋아했던 발터 벤야민처럼 산책하는 이방인으로서 가토 슈이치의 면모도 흥미롭다.
   “’일본관시절나는 파리 시가를 즐겨 걸어다녔다그곳엔 내가 그때까지 살았던 공간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공간이 있었고 공간의 질서감은 아무리 바라봐도 싫증나지 않았다아무 용무도 없으면서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거리를 거닐며 돌아다닌걸까. 지금 회상해봐도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중략)..어쩌면 나는 그곳에서 외재화外在化되었다. 다시 말하면 감각적으로 대상화된 한 문화의 핵심을 보고 있던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중략)……그러나 누구에게나 공통되었던 것은 매사에 도쿄와 파리를 비교해 생각하는 습관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집단이 보여줄 수 있는 부조리함과 폭력성에 저항감을 가졌던 가토 슈이치의 시선은 자신이 속한 사회속에서 주변인 혹은 경계인여행자의 시선으로 옮겨가고 있다노년이 된 가토 슈이치는 자신을 모습을 회고하며주변인으로서의 삶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또 어떤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은 나는, 개인으로서 한 시민으로서 늘 일본 사회의 주변에 머물렀다. 우연과 주변사정이 절로 나를 그렇게 만든 측면도 확실히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의식적으로 그런 위치를 선택했던 측면도 있다. (중략)……또 오랜 외국생활이 거의 필연적으로 일본에서의 나를 사회적 영향력의 중심에서 멀어지게끔 했던 것도 분명하다. 사회의 주변에 살면 영향력을 잃는다. 그러나 정신의 자유를 최대한 누릴 수 있다.소용돌이 한복판에 선 사람은 전체 상황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조망하기가 곤란할 테지만, 주변이라는 위치는 전체 상황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이해하는 목적에서는 무척 용이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주어진 환경을 바꾸기보다는 먼저 그 환경을 이해하기를 원했는지 모른다.
   정신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길 원했다는 점은 물질적 부가 넘처나는 대신 개개인이 누릴 수 있는 사색적 삶을 박탈당한 우리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가토 슈이치는 이미 반세기도 전에 이렇게 바쁘고 소진되는 삶에 저항했다.
   태평양 전쟁이 그 절정으로 달려갈 때 일본의 언론과 정부는 거짓 선전과 과장된 구호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었다가토 슈이치는 주변인의 시선으로 이러한 사회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었다. 예컨대 일본인들이 서양의 양식과 적성국의 언어를 읽고 공부하는 것에 대한 반감기류를 들 수 있다. 태평양 전쟁 이전에 양복을 입고 신세대임을 과시하듯 활보하던 거리가 국민복으로 획일화되어갔기 때문이다.
   또한 태평양 전쟁 직후 새로운 사회 국면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에대한 기록은 우리가 겪은 한국 전쟁과  이후의 사회상의 그것과도 너무나 유사한  같다.
   수완있는 여자들은 점령군 장교에게 줄을 대서 ‘PX’에서   옷을 입고 시영승합버스라도 타고 다녔는데그들의 얼굴은 의기양양 절정의 기쁨으로 빛나는 보였다전화로 폐허가된 도쿄에서는 그럴싸한 치장대신 진실이 있었고일부러 만들어낸 겉치례 대신 본바탕 그대로인 인간의 욕망이 식욕물욕성욕까지고스란히 거리낌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무시무시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울러 우리가 산책하는 이방인의 눈으로 여행을 한다면, 관광객이 아닌 새로운 눈으로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고 사유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가토 슈이치는 여행자란 그 지역 사람들과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에서 다른 의미를 읽어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일상의 습관 체계로부터 벗어난 여행을 통해 나는 내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여행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을 낯설게 보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따라서 내가 속한 사회, 체제의 내부와 외부에서 나를 바라보고 고찰해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예술 및 역사에대한 이해가 이 작업의 틀이 되어 줄수 있다고 믿는다.
   가토 슈이치는 여행이 줄 수있는 혜택으로 주어진 조건의 한계를 벗어나 선택에 의해 정신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왜 외국의 도시를 찾았던 걸까? 아마도 그것은 환경에 대한 호기심이 유달리 강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태어난 해는 1919년이지만, 만일 1819년에 태어났더라면 어떤 환경을 경험했을까? 이 물음은 역사에 대한 회고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도쿄였는데, 만일 그곳이 베이징이나 멕시코시티였더라면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이 물음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유혹이다. 인생은 우연으로 가득하다. 우연으로부터 받은 내적 조건은DNA이고 외적조건-그것은 다시 내면화되어 한 인간의 형성을 결정할 것이다-은 특히 태어난 시간과 공간이다. 그런 조건의 특수성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며 초월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적 수준에서 혹은 역사적 지식을 통해서 또는 환경의 선택을 통해서 조건의 특수성에 도전하는 것은 정신적 자유의 증언이리라.
   앞서 언급했듯이 정신적 자유를 최대한 누리기 위해 의사의 신분을 폐기하고 문필가가 되기로한 저자에게 여행은 마음껏 숨실 수 있는 신선한 공기'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주어지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당신에게 무엇이 보이고 거리의 풍경은 어떻게 보이겠는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미군의 도쿄 공습이 엄습해오는 분위기에서 가토 슈이치는 도쿄의 평온한 일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경험을 기록한다.
   도쿄는 아직 폐허가 아니었지만, 나는 눈 앞에 있는 거의 모든 것에서 도쿄가 폭격으로 불탄 뒤의 황량한 폐허로 변해버린 환상을 겹처서 본 적이 있다.그러자 갑자기 모든 것이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과일 가게 앞에 쌓인 과일, 겨울 오후의 햇살, 산시로 연못 부근의 고요한 양지, 석양의 해, 혼고 거리의 책방과 카폐 창에 켜지기 시작한 불빛, 헌책방 안쪽에서 화로를 끼고 장부를 들여다 보던 가게 주인 등의 모습은 연합군의 공습 직전 가토 슈이치가 새롭게 바라본 일상의 모습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채 주변의 일상이 조만간 폐허가 될 것을 예감하면서도 그 순간 아름다움을 보았던 지식인의 심정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가토 슈이치의 이러한 감수성과 여행자로서의 시선 뿐아니라 세계를 여행하며 만나게 된 지역의 지식인들과 대화 및 토론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믿음과 관점이 더욱 성숙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안과 밖에서 현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저자가 학창시절부터 부지런히 교양을 쌓고 수많은 문인 및 예술인을 만나 영향을 주고 받으며 스스로 세계를 바라보고 의문을 던지는 일을 끊임없이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하워드 진과의 대비
   미군의 도쿄 공습 당시 지상에서 역사를 목격하던 젊은이의 눈에 비친 대목을 읽으며 나는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의 한 명이었던 하워드 진을 떠올렸다하워드 진은 노엄 촘스키와 함께 미국의 양심을 대변했던 지식인으로1922 (가토 슈이치는 1919년 생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청소년시절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자본론>을 읽고 현실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던 하워드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 폭격기 조종사로 임무를 수행했다하워드 진은 당시 폭격 임무를 수행하며 폭탄이 투하되는 목표 지점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지 않았다고 했다이후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고 제대 후 당시의 경험을 성찰하게 되었다폭격으로 인해 희생되었을 사람들부상자들과 이들의 고통에대해 자신이 한 일을 깨닫고 반성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당시 미국의 적성국인 일본의 국민이었던 가토 슈이치그는 엄청난 양의 폭탄이 도시에 투하될 때 도쿄의 한 복판에 있었던 것이다한 사람은 하늘에서 죽음을 몰고오고다른 한 사람은 땅에서 죽음에 직면한 상황나는 훗날 공통적으로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위해 발언하고 활동했던 이 두 지식인이 적으로서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던 역사의 아이러니를 떠올렸다.

 타협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가치 & 반전주의자로서의 면모
   가토 슈이치는 인간에게서 선과 악을 결정하지 않았다전차 안에서 마주하던 사람좋아보이는 아버지, 남편은 어제까지 중국 대륙에서 사람을 죽이고 있던 존재인지 모른다고 독백한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판정하는 일에 의문을 제기했다.
   많은 인간을 악마로도 만들고 천사로도 만드는 사회 전체, 그 역사와 구조를 고찰하는 편이 더 온당할 거라는 판단에 도달했던 것 같다. 그것은 즉흥적으로 떠올린 생각이 아니었다. 당시 내 생각은 이후 내 사고방식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어떤 인간도 악마가 아니기에 나는 사형에 반대하며, 전쟁은 어떤 인간이라도 악마로 만들기에 나는 전쟁에 반대한다고.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과학자로서의 인식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가치 문제다. 매일 폭격 아래 아이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논의의 결론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분노하라> 저자 스테판 에셀은 부조리함에 대해 용인하거나 참지 말고 인간으로서의 분노 표출해내라 촉구했다우리는 부당한 일에 분노하기 잊고, ‘짜증  쌓여가는 현대 사회 속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반문해본다가토 슈이치도 옳지 않다고 믿는 일에 분노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니까 알고 싶지 않다 인간과 그래도 알고 싶다 인간이 있을 것이다나에겐 전자가 틀렸다는 논리는 없다다만 나는  자신이 후자에 속한다는 것을 기억할 뿐이다. … (중략) 25만명의 어린아이…(중략나에겐  멀리 있는 아이들의 죽음이 마음에 걸렸었다전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나는  일에 분노하고  일로 흥분한다…”
   가토 슈이치가 느꼈을 분노와 흥분에는 인간의 존엄을 짓밟을  있는 모든 사항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고 하는 바램이 들어있었다나아가 가토 슈이치는 그래도 알아야 한다라고 나에게 호소하고 있다평범한 시민으로서 우리 모두가생업을 뒷전으로 하고 시위의 현장에 나갈 수는 없다하지만 과거에 어떤 일이벌어졌는지 혹은 나와 동떨어진 곳일지라도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에 관심을 가져야하며 우리가 인간임을 잊지 않기 위해 스스로 판단하고 문제를 붙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고있다.
   현재 일본 후쿠시마 지역의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우경화 강경파 득세와반한반중 분위기의 역전 현상을 이해하는데  가지 실마리를 주고 있다전쟁 아니라 자연재해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들이 있은 정부  권력자 그리고그에 편승한 미디어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하고 의문을 던질 기회를 노골적으로 박탈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알게 모르게 용인하고 결과적으로 부추기는 것은 결국 우리의무관심 내지는 알고 싶지 않다라고 회피하는 마음가짐일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 그래도 알려고 노력해야한다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재일 조선인으로서 일본의 대학교수가 된 서경식 교수는 최근의 저서 <내 서재 속 고전>에서 바로 가토 슈이치의 자서전 <양의 노래>를 본인의 고전으로 선택했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가치는 가토 슈이치가 확신하고 있었던 것만큼 부동의 것일까.아우슈비츠 이후, 그리고 지금도 매일매일 그 가치는 근저에서부터 위협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미 분명해지지 않았는가. 가토 슈이치의 저서를 내가 고전의 반열에 올린 것은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무릇 고전이라함은 외부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 속에서 어느 순간 다가와 책이라는 도끼로 머리를 치듯 그렇게 충격을 주는 책이 아닐까. 아울러 시간이 지나 다시금 돌아가게 만드는 그런 책, 그 때마다 선명한 깨달음과 새로운 인식을 줄 수 있는 책이 고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제 설레는 마음으로 내 고전의 세계에 첫 발을 내 딛은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며 머리 속에 떠오르는 문구가 있는데가토 슈이치가규수 탄광에서 광부들과 함께 갱도 안으로 들어가본 이후 남긴 말이라고 한다. “방관자로서의 판단은 항상 불가능하다따라서 방관자이기를 그만두지 않으면안된다.” 일본의  지성인이 지금  삶에서 좀더 능동적인 삶의 주체로서 깨어있으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유럽의) `중세`는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것만큼은 도쿄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중략)... 드디어 나는 중세 이래로 프랑스 문화가 면면이 이어져 오늘에 도달한 사정은, 일본 문화가 가마쿠라 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는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348면)
나는 일본어와 프랑스어를 섞어가면서, 이를 표현 전체가 시사하는 바 일종의 심리적 상태를 나 스스로 형용하려 했다. 일상생활의 습관 체계 밖으로 내던져졌을 때, 나는 내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내 감정생활의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과연 나는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희생하며 또 무엇을 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걸까? (386면)
인종 우열 논쟁의 거의 모든 것은, 요컨대 논자의 지식 부족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불행은, 지식의 부족이 종종 역사를 움직여왔다는 사실이다. (414면)
도쿄에서 의사 일을 시작한다면 너무 바쁜 나머지 자아를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자아를 망각하지 않고 다시 자아를 발견하는 것, 그 발견을 위해 잠시 나 자신과 만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43면)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과학자로서의 인식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가치 문제다. 매일 폭격 아래 아이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논의의 결론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516면)
매일 푸른 하늘 아래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들의 입장을 거부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때 나는 그들이 틀렸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 그들의 입장은 모두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방관자로서의 판단은 항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방관자이기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된다....(449면)



2016/10/10

新渡戸稲造脚注

新渡戸稲造脚注



新渡戸稲造『武士道』について【脚注】
(1) 本論稿は、科学研究費「基礎研究」「価値語の様態とその構造」(研究代表者野崎守英)の第3回共同研究集会(2001・9・28。於自治医科大学)で行われた発表に基づき、これを改稿したものである。佐藤全弘訳『武士道BUSHIDO The Soul of Japan 日本のこころ 日本思想の解明』(2000年教文館)――以下、佐藤2000と略記する――に主として従い、英語原文としては佐藤氏の訳書がこれによった全集版第12巻(1969年教文館)を参照する。
(2) 佐藤2000、26頁注1。
(3) "That way
Over the mountain, which who stands upon
Is apt to doubt if it be indeed a road;
While if he views it from the waste itself,
Up goes the line there, plain from base to brow,
Not vague, mistakable! What's a break or two
Seen from the unbroken deserts either side ?
And then (to bring in fresh philosophy)
What if the breaks themselves should prove at last
The most consummate of contrivances
To train a man's eye, teach him what is faith ?"
Robert Browning,
Bishop Blougram's Apology.
(4) "There are, if I may so say, three powerful spirits, which have, from time to time, moved on the face of the waters, and given a predominant impulse to the moral sentiments and energies of mankind. These are the spirits of liberty, of religion, and of honor."
Hallam,
Europe during the Middle Ages.
(5) "Chivalry is itself the poetry of life."
Schlegel,
Philosophy ol History.
(6) ペンシルベニア州の古都、アメリカ独立宣言の街フィラデルフィアの中心にある市庁舎の塔の上にはこの町の設立者であるWilliam Pennの像が建っている。Williamの父はイギリス海軍の提督であった。その功績に報いるため当時の英国国王Charles IIはQuaker教徒となったWilliamにペンシルベニア州全土を毎年ビーバーの毛皮2枚と発見された金銀鉱の5分の1を王に捧げるという条件で与えた(1681年)といわれている。
(7) Friedrich Schlegelの最後期の著作(1828年、56才の時)であり、そのカトリックへの改宗(1808年)後、メッテルニヒ体制のもとにあったウィーンで行った最晩年の講義(翌1829年死去)にもとづくこの著作に新渡戸がどのような態度で関わっていたのかはわたしには謎である。しかも英訳で400頁を越える浩瀚なこの著作から新渡戸は上記の一行を見事に引き抜いているのである。
(8) おそらく、Hallamの中世史への関心も上述のイギリスの中世復興運動の一端だったのだろうと想像されるが、さしあたり、このHallamの書物を見ていないので、はっきりしたことが言えない。
(9) クラークが種をまいた札幌農学校に共に育ち、クラークの残した「イエスを信ずるものの誓約」に署名し、「福音主義教会の洗礼をうけ、一員となる」というその誓約に従ってメソディスト教会宣教師から共に函館で1878年に受洗した内村と新渡戸という二人の先覚者が、やがて踏む道を異にするとはいえ、渡米後ともにQuakerismの影響をうけ、教職制度を保つ正統の「福音主義教会」から離れていったのは興味深いことである。新渡戸のこの最初のキリスト教との出会いについては宮本信之介「若き新渡戸稲造の信仰」、小泉一郎「新渡戸博士とクェーカー主義」(ともに『新渡戸稲造研究』東京女子大学新渡戸稲造研究会著、春秋社、1969年に所収)、松隈俊子『新渡戸稲造』(みすず書房、1969年)に詳しい。
(10) これはまた戦前の旧制高校における「教養主義」を規定するものでもあっただろう。
(11) この詩は1855年(Browningは43才)にMen and Women という題で発刊された詩集の中に収められており、この詩集はBrowningの詩才を広く認めさせるものになったという。
(12) Cf. MEN AND WOMEN,BY ROBERT BROWNING, WITH INTRODUCTION AND NOTES BY KENJI ISHIDA AND RINSHIRO ISHIKAWA, KENKYUSHA, 1956, pp. 122-3.
(13) 「教育勅語」はこの儒教道徳の綱領を主調として構想されている。ほぼ同時代に成立し、その後の日本の教育システムの基本となったこの「教育勅語」の路線とはまったく無関係に新渡戸が日本の道徳性を構築して見せたのは新渡戸の非凡な点であり、そこに本書のすぐれた点がある。「五倫」「五常」という人倫を形成するなんらか実質的な綱領が「忠孝」という抽象的な国家主義的路線に溶解してしまうところに、儒教道徳の弱点があり、それが大日本帝国の悲劇を導くもととなったとも考えられるが、新渡戸は同時代の人でありながら、この路線からは自由であった。
(14) アリストテレスでは「正義(dikaisyne)論」は「公平(epieikeia)論」を含むものとして展開されている。そこから、「正義(dikaiosyne)」 と「親愛(philia )」が「市民の共同性(politike koinonia )」を作り出すものとなる。そこに「人間性(humanity)」の基盤が構成される。
(15) 神において、「正義」と「慈しみ」は一致するものとなる。
(16) Cf.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II. quaestio 55 art. 4 ad quartum.
(17) ここで引用されている『孟子』告子篇の後段(164)で、孟子の説く仁義はこのような身分関係によって説明されている。
(18) この時期の新渡戸の揺れ動く心中をあらわす言動と、新渡戸を取り巻いていた内外の緊迫した情勢については、ジョージ・オシロ『新渡戸稲造 国際主義の開拓者』(中央大学出版部刊、1992年)199―245頁、第8章 晩年 1927―33(昭和2―8)に詳しい。

ヒューマニスト/その人の生き方考え方54/小泉文子

ヒューマニスト/その人の生き方考え方54/小泉文子


(人生の贈りもの)小泉文子(91):1(2013年11月5日朝日新聞)
幼児教育者

■親の望みを詰め込みすぎてはダメ

――幼稚園の入園試験が開かれる季節です。水戸市の少友幼稚園の園長として先駆的な教育をされ、新渡戸稲造らの提案でできた「普連土(ふれんど)学園」(東京都港区、中学高校)の学園長もされました。昨今の幼稚園選びをどう思われますか。

幼児の魅力はすごいものです。精神の柔らかさというか、大人の想像を超えた可能性を、その子その子が持っている。これから芽を出す宝物です。ところが、私が園長を始めた1980年代にはすでに何でも早く教える風潮が広がり、入園前から塾やお稽古にお通いになるご家庭が出てきた。幼稚園も、通園バスに給食、延長保育、課外教育……とお母様の望むものを詰め込む。大人にも子どもにも、静かにじっくりと何かをする姿勢がなさすぎると感じます。

――園長になって一切の号令をやめたそうですね

「前にならえ」「気をつけ」のような号令で動く習慣はすべてやめました。号令をかけなくても、静かな音楽を流し先生がじっと座っていれば、子どもたちも静かに座ります。戦前、戦中を体験した私は、幼いころから号令で動くよう植え付けることに恐怖に近い感じを持ちます。並ぶ順序は自由、列が曲がってもいい。東京女子高等師範学校(現お茶の水女子大)で教わったフレーベル教育の倉橋惣三先生は「幼児の中の流れを止めてはならない」と言われてます。幼児期は自由に遊ぶことと、人の話を聞くことが大切なんです。

――名簿もいち早く男女混合にされました。男女同権や女性の社会進出を唱えられてきましたが、働く女性の子は幼稚園への入園は難しいのが現状です。

短くとも3年間、いや就学前まで、働く女性が育児に専念できる環境が必要です。企業や社会がそこを整えなければ、真の男女同権といえません。「預ける」のは教育ではないし、「イクメン」もよろしいですが、母親の愛情は何物にも代え難い。人間は生物です。おっぱいに触れて飲んで、その安心した感覚を土台に、あたたかい家庭の中で育ちます。仕事だけでなく、子育ても、あらゆることに女の人は賢くあってほしい。
女性が子育てをするのは、社会にとってもプラスですよ。子どもによって訓練された女性が、どれほど素晴らしい力を持つか。何より忍耐力がつくし、何事も即時即決で対応せざるを得ないので判断力もつきます。それを女性のキャリアとして認めてほしいですね。(聞き手・宮坂麻子)
     ◇
こいずみ・ふみこ 1922年、東京生まれ。東京女高師卒で高校教師に。婚約者が言論弾圧の「横浜事件」で獄死。アルツハイマーの夫を十余年、在宅看護しつつ、幼稚園長を務める。著書に「幼児はあらゆる種子の萌芽(ほうが)を孕(はら)む」「もうひとつの横浜事件」(いずれも田畑書店)など。

http://digital.asahi.com/articles/TKY201311050189.html?iref=comkiji_redir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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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の贈りもの)小泉文子(91):2(2013年11月6日朝日新聞)
■戦中獄死した婚約者 50年経て消息を追う

――戦時下最大の言論弾圧「横浜事件」で婚約者の浅石晴世さんが拷問の末に獄死。中央公論や朝日新聞記者ら約60人が逮捕された事件は、その後も再審請求が続きます。なれそめは?

母同士が師範学校の友人でした。母は小学校の先生。父は「ダイナマイト」と呼ばれる怖い高校の地理歴史の教師でしたが、亡くなった時には大勢の教え子が集まり、互いに「僕が一番愛されていた」と自慢し合うような人。上の兄は海軍兵学校、下の兄は横浜正金銀行ですから、左翼的な家庭ではありません。ただ母はロマンチストでしたから、浅石さんのような物静かで真っすぐな青年が気に入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婚約当時は東京女子高等師範学校で生物を学ぶ、元祖「リケジョ(理系女子)」でした

私は幼いころからおしゃべりが苦手で、数学が大好きだったんです。でも数学に進んで頭ばっかりになってはいけない、人間は生物だから生物学を選ぼうと。幼いころ、国内外の名作を集めた「小学生全集」を読むのが好きでしたから、その時の生命への感覚や感動が残っていたのかもしれません。ところが入学してエンドウ豆の根の生長点細胞を見るために、プレパラートを作っている時、突然、こんなことに時間をかけてはいられない、もっと人間の命そのものを考えなくては時間がもったいないと。許す限り読書しました。

――出版された「もうひとつの横浜事件」はラブストーリーで当時の矛盾を訴えています

婚約した半年後に突然、婚約破棄を告げられました。「いよいよ時局が切迫し、僕には君を幸福にすることができなくなった」「どうしても別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手紙に書かれていて。5カ月近くたって、今度は「僕とは何のかかわりもなかったことにしてほしい」と2通目が届いた。「昭和塾」に入ったことは聞いておりましたが、ほかは何も知りませんでしたし、ただふられたと。終戦後になって初めて、朝日新聞の記事で、彼が検挙され、獄中で拷問を受けて、亡くなっていたことを知りました。

――消息をたどり始めたのは1991年ごろからですね

事件の再審請求に対し、最高裁が事実を調べないまま棄却した判決の記事を見て、初めて怒りで体が震えました。おかしいですね。92年に私の本が出るとすぐ公安調査庁か警察かの方が2人、訪ねてきました。「この本書きましたね。これからも書きますか?」と尋ねられたので、「事実のことはすべて書きます」と申し上げました。失恋物語なのに。戦後50年近くたってもこういう時代なのだと驚きました。(聞き手・宮坂麻子)

http://digital.asahi.com/articles/TKY201311060323.html?iref=comkiji_redir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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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の贈りもの)小泉文子(91):3(2013年11月7日朝日新聞)
■夫の看護 10年たって懐かしむ気に
 
――英文学者で東大でも教えた小泉一郎・学習院大名誉教授と結婚されました。ところが一郎さんがアルツハイマーを発症し、十余年にわたる在宅看護が始まります。話題になった看護日記「ほかに何ができたろう」を読ませて頂きましたが、壮絶ですね
 
お読みになってくたびれませんでした? 夫とは、私が都立三田高校の教師をしていた1947年に、先輩の紹介で結婚しました。娘と息子に恵まれ、私も同じ宗派「クエーカー(キリスト友会)」に入会しました。子育てを終えた80年、一緒にスイス旅行に出かけた時、おかしなうそをつくな、と気付いたんです。行ってもいない場所を何度も訪れたように話して。思えば何年か前からうそが多くなった気もします。帰国後もお友達の家がわからなくなったり心房細動で苦しんだりしてました。

――その翌年、脳梗塞(こうそく)で倒れてしまいました

でもアルツハイマーとは診断されませんでしたが、幻聴、幻覚、失禁……の日々になりました。着替えをしようと言っても聞いてくれません。一番大変だったのは徘徊(はいかい)です。手足も言葉も不自由はありませんから、昼夜を問わず鍵を開けて出て行ってしまう。でも帰れない。止めれば杖を振り回して怒りますし。大の大人が内から開けられない鍵をつけるのは本当に難しかった。施設を訪ねたこともありますが、夜中に窓から出て行くので、3日目には「とてもお預かりできません」と帰されてしまいました。

――途中からは達観されたような感じを受けました

専門病院では手足をベッドに縛りつけると言われました。考えていることもわからないし、もう好きにさせてあげよう、と思ったんです。当時は園長でしたし大変で、午前と午後は他の方に来て頂き、夜は私が見ました。夜中にすごい数の本を2階から1階へ下ろしたり、本のページをすべて半分に折り曲げて分厚くしたり。戻してもきりがない。いろんな「オイタ(いたずら)」をするんです。深夜徘徊についていくのも疲れている時はやめました。私が留守の時は、息子夫婦に泊まってもらうこともしました。遠慮があるのか息子の時はおとなしかったとか。この前、認知症の夫が線路に入ってひかれ、その妻と長男に、列車が遅れた賠償を命じる判決が出ましたが、裁判官に私の本を読ませておけばよかったと思います。

――出版はレーガン元大統領が同じ病と発表した年。「励まされた」という声も多く届いたとか

夫の退職金を半分もらって離婚しようと思っていたけどやめました、という方もいましたね。お子さんがいじめを受けて統合失調症になった方からも「励まされました」と連絡がありました。どうにもできない病気を看護する家族は本当に追いつめられますから。

――91年10月に他界されます

ああ、解放された。それだけでした。夫がやり残していた翻訳を完訳して本にしたのはそれから10年近く後。ようやく懐かしむ気になれたんです。(聞き手・宮坂麻子)

http://digital.asahi.com/articles/TKY201311070247.html?iref=comkiji_redir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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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の贈りもの)小泉文子(91):4(2013年11月8日)
■どう生きるか、本には発見がある

――いまも机の上に、何冊もの本がおありですね

東京女子高等師範学校の学生だった時にプラトンの「ソクラテスの弁明」を読み、How to live? どう生きるかということに目覚めました。ソクラテスのような生き方ならできるかなあ、と。そう思ったのはなぜなのか。先日、「ソクラテスの弁明」を再び読んでみたんです。当時は岩波文庫だったので、今度は違う出版社の二冊を読みました。三冊読むといろんなことが見えてきます。「思いこみを捨てて現実を見る」とか「成り行きに任せて生きる」とか「魂に正直に」とか。「フランクリン自伝」も読んだら、そこにもどう生きたらいいか書いてあった。飽くほど食べてはいけない、沈黙、自他に益なきことを言わぬ……。その最後に「イエスとソクラテスを見習え」とあって、うれしくなりました。本にはいろんな発見があります。時間のある年寄りの特権ですね。

――戦後、水戸市のクエーカー(キリスト友会)会堂で、茨城県東海村の原子力研究所(現・日本原子力研究開発機構)の若い方々を交えて、英会話グループをされていた時期があったとか。原発について、どのようにお考えですか

日立製作所などいろんな若い方が集まっていました。原子力研究所ができたころは、私も素晴らしい施設だと友人を案内しましたし、今も原子力の研究自体はいいことだと思います。人への影響や害をきちんと研究し、公表することは大切です。でも、原発を持つのは反対。人間にコントロールできないことは、今回の事故でもチェルノブイリでもはっきりしているわけでしょ。それを閉じこめるのは人間のおごりです。

――幼児教育のお立場からはどうですか

茨城県産は子どもに一切食べさせないという方もいますね。風評被害の広がりは、それはそれで問題ですが、でも子を持つ親として神経質になるのは当然かもしれません。私も大好きな猫がいなくなり、次を飼いたいのですが、もし事故で逃げることになったら連れていけずかわいそうだから、飼えずにいます。放射能に関する公式発表がどこまで本当なのかも、なかなか信用できません。戦争中はみんなだまされましたから。

――子どもを守る責任はやはり親にありますか

もちろんです。家庭は基本的にプライベートなものです。「子ども手当」だなんだと言われ、子育ては国や社会が責任を負ってくれるもの、と勘違いし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人間は社会生活をする動物として、国や社会の維持のために法律を作りました。しかし、戦前の日本のように徴兵制度ができると、いやでも戦うための兵隊にされるのです。愛する家族や隣人のためではなく。戦争経験者が次々亡くなる時代です。ご家庭でよく考えてみてほしいですね。(聞き手・宮坂麻子)=おわり

http://digital.asahi.com/articles/TKY201311080246.html?iref=comkiji_redir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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ほかに何ができたろう
―アルツハイマー患者の在宅看護日記 
単行本 – 1994/10
小泉 文子  (著)


アルツハイマーの夫との10年にわたる在宅看護日記。「
老いる」ということ、「生命の尊厳」を問いかける。
登録情報
単行本: 298ページ
出版社: 日本看護協会出版会 (199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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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つ星のうち 3.0認知症家族を持つ娘として…。
投稿者 Amazon カスタマー 投稿日 2015/9/18
形式: 単行本 Amazonで購入
チョッとした欠乏症?物忘れ?初期の時点では認知症と判断できない…そのような異変から克明に日記に綴られ出版され、認知症家族を持ち始めたばかりの私には、勉強にもなりました。認知症を患っている本人にも何かしら意志があるから?行動を起こそうとする…負の予感を先回りして阻止するのも時として逆効果にもなりうる。認知症患者の脳はどうなっていくのか?介護する側として考えさせられた一冊でしたが、徘徊をする御主人の財布に20000円を常に入れておくとか、頻繁に外食するなど…ギリギリの生活をている家庭では不可能…余裕のある家庭だから可能なことだと思いました。著者の奥様の大層な御苦労は汲み取れましたが、自分に置き換えると、どこまで自分は介護が出来るのだろう?と…考えずにはいられ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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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つ星のうち 3.0なんとも複雑でした。
投稿者 まいまい 投稿日 2013/12/28
形式: 単行本 Amazonで購入
私自身夫を介護中、時代が大分違っているなーと思いつつも、義務感のような気持ちで読みました。作者の気性・性格に何か違和感を感じてしまいましたが、なんとか読み終え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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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うひとつの横浜事件―浅石晴世をめぐる証言とレクイエ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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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16(火) 午後 1:55 裁判・法律 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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横浜事件は、様々な青春をたいへん残酷な形で無為にしていった。未来を思ういたって真面目な魂も犠牲にした。
 
 小泉文子は横浜事件で獄死した浅石晴世の婚約者として知られている。
 しかし戦争は、もっと大きな影を落している。長兄は南太平洋で特攻死しているし、小学生の教え子の中には広島に租界したのち消息不明になっている者もいる。

 小泉と浅石の母同士が同級生で、ごく自然に愛し合い婚約した。しかし、浅石は「幸福にすることができなくなった」という手紙によって一方的に7か月間続いた婚約を破棄する。その他の説明は全くされなかった。小泉の慟哭が伝わってくる。その婚約破棄は、本書により細川嘉六が逮捕された翌日だったことがわかる。

 旧版は1992年に刊行され175ページであるが、この17年後に刊行された増補新版は335ページもある。この増ページは、あたかも亡くなった浅石が残したものとも思えるのだ。その奇縁、奇遇は横浜事件に関心がある者を多いに刺激する。

 浅石の旧制高校で親友だったT氏(本書では実名)が同窓会誌で浅石に触れた文章を著しており、それを再審請求弁護団のU弁護士(同)が偶然手にするが、それは自宅近くの図書館の廃棄図書からの発見であった。

 それが契機となり、小泉文子とT氏は会うことになる。小泉はT氏が持参したアルバムで浅石の写真を見たり、親友の思い出話しに浸る。

 またU弁護士が浅石という同姓ということだけで、友人である青森のA弁護士(同)に書簡を送ったところ、浅石の親戚筋にあたることが判明する。元々浅石家は東京空襲で家を焼失し、弟の戦死と兄弟とも未婚で亡くなっているため親戚縁者を探すことは困難と思われていたのである。

 そして、墓所が分かる。そして50年以上の時を経て墓参が実現する。

 他に2000年に浅石と旧制中学で同級であり、浅石の父の教え子でもあったTN氏(同)から手紙が来る。TN氏は大和氏(A弁護士の父)の訃報記事を新聞で偶然目にし「青森、浅石」のキーワードだけでA弁護士に手紙を書き、TN氏はA弁護士から小泉文子の存在を知り、手紙を書いたのだ。

 2003年にはキリスト友会会堂で川田定子の姪のTO(同)にも会う。

 これは奇遇、奇縁なのであろうか…浅石晴世が現代に向けて語りかけているように思えてならない。

田畑書店2009年8月15日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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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つ星のうち 5.0喪うことで、見えてくるものがある。
投稿者 紫 麻乃 投稿日 2010/2/15
形式: 単行本
 「横浜事件」は、第二次世界大戦中に起こった言論弾圧事件です。
 詳しくは、ネットで検索してみてください。
 小泉先生の本は、「人を喪(うしな)う」ことの痛切さを教えてくれます。
 小泉先生は、「横浜事件」で婚約者を喪いました。
 そして、この本を書いている最中に、配偶者を喪われています。
 人を喪うことの痛みを通じて、ともすれば歴史の彼方(かなた)に忘れ去られてしまいそうになる事どもを、この世に留めておくことができるのです。
 機会がありましたら、この本を手にとってみてください。
 わたくしにこの本を与えてくださった方に、感謝してお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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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 HIST 347: Quakers in East Asia (HC) [Fall 2014] - Research Guides at Tri-College Libraries

Japan - HIST 347: Quakers in East Asia (HC) [Fall 2014] - Research Guides at Tri-College Libraries

Philadelphia Yearly Meeting Japan Committee


The Friends Yearly Meeting in Philadelphia began mission work in Japan in the 1880s, and materials in our collections cover through the 1970s. Philadelphia Quakers supported the creation of a Tokyo Friends Center (largely for visitation), Girls' School, several Monthly Meetings, and eventually the Japan Yearly Meeting. Activities in Japan were first overseen by the Women's Foreign Missionary Association, and many of the early missionaries and teachers were also women. Listings in the individual manuscripts section on the right include papers of those who worked at the Girls' School and Friends Center. The Japan Committee records include correspondence, meeting mintues, reports, statistics, financial records, work applications, and photographs.

Manuscript Materials


Secondary Sources - HIST 347: Quakers in East Asia (HC) [Fall 2014] - Research Guides at Tri-College Libraries

Secondary Sources - HIST 347: Quakers in East Asia (HC) [Fall 2014] - Research Guides at Tri-College Libr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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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 347: Quakers in East Asia (HC) [Fall 2014]: Secondary Sources

Publications about Quaker Missions in Japan

つのぶえ 書名別(に:日本)

キリスト教書専門店
(キリスト教書, 一般書) 
http://www.tsunobue.jp/
古書店つのぶえ
〒653-0842
神戸市長田区水笠通1丁目1-38
TEL(078)766-4700

JR神戸線新長田より北へ400メートル、山陽電鉄西代駅下車すぐにあるのが 古書店つのぶえです。 インターネットWWWホームページでは、キリスト教古書目録の掲載、 他の古書店ホームページ紹介などを積極的に行っております。


つのぶえからのお知らせ (情報は毎週日曜日に更新しております)

●キリスト教書50冊を目録へ追加しました。 (目録追加分)(2016/10/09)。
●メールニュース記載の代引手数料および振込手数料の記載を修正しました(2015/09/13)。
●目録掲載数は11,068冊です(2016/06/26現在)。
ホームページ変更履歴

つのぶえ 書名別(に:日本)



607-49395日本友会の歴史 (宣教七十年後から)編集委員会編キリスト友会日本年会1997¥2000A5,245p (写真8p)


quaker-japan.sakura.ne.jp/boo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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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年会の出版物書名著者(訳者)発行日定価



クエーカー三百年史 ~その信仰の本質と実践~ハワード・ブリントン(高橋幸子訳)

1988.01.31 (第4刷)1,000



クエーカーの信仰に生きた人々エルフリダ・バイポンド(鞍馬菊枝訳)1976.12.25
(再版2001.06)1,000



クエーカーの宗教哲学ハワード・ブリントン(鞍馬菊枝訳)1985.08.20  1,500



私の信仰小泉一郎1956.11.10  100



基督友会七十年史基督友会日本年会1957.11.05基督友会の実践ハワード・ブリントン(鞍馬菊枝訳)1955.08.0  1500



日本友会の歴史~宣教七十年後から~編集委員1997.11.01  1,000



永遠なる泉を汲みてワイダー・クエーカー、フェロシップ、アメリカフレンズ奉仕団
(石谷行、渡辺昭雄・宣子共訳)1999.07.0  1300


小泉一郎 - Wikipedia

小泉一郎 - Wikipedia



小泉一郎

小泉一郎(こいずみ いちろう、1912年-1991年10月21日)は、英文学者。 茨城県水戸市生まれ。1937年東京帝国大学文学部英文科卒、41年同大学院(旧制)満期修了、副手、水戸高等学校教授、茨城大学文理学部助教授、東京女子大学教授、学習院大学文学部教授。1983年定年退任、名誉教授。

著書[ソースを編集]

  • 『英文の読み方 現代英文についての演習』培風館 1960
  • 『神と人とのあいだ 近代日本文学試論』笠間書院 笠間選書 1975

翻訳[ソースを編集]

  • エリザベス・グレイ・ヴァイニング『皇太子の窓』文芸春秋新社 1953
  • キャスリン・レインブレイク』英文学ハンドブックー「作家と作品」シリーズ 研究社出版 1957
  • エマソン選集 第3 生活について』日本教文社 1961
  • 『エマソン選集 第7 たましいの記録』日本教文社 1961
  • ポオ全集 第1巻』ハンス・プファアルの無類の冒険 約束ごと メッツェンガーシュタイン 東京創元新社 1963
  • 『ポオ全集 第2巻』催眠術の啓示 ミイラとの論争 ヴァルドマアル氏の病症の真相 フォン・ケンペレンと彼の発見 東京創元新社 1963
  • 『世界文学全集 第14 (ポオ,ホーソン)「アッシャー家の崩 大渦の底へ 黒猫」講談社 1969
  • トマス・ケリー『内なる光 信仰の遺言』小泉文子共訳 教文館 1999

参考[ソースを編集]

  • 『神と人とのあいだ』著者紹介 
  • 朝日新聞訃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