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9

세계문화탐방2 | 인도 "깨달음의 길을 걷다" : 네이버 카페

세계문화탐방2 | 인도 "깨달음의 길을 걷다" : 네이버 카페



세계문화탐방2 | 인도 "깨달음의 길을 걷다"|공지사항
전체공개2015.02.01. 21:04
인도 불교문화탐방_8대 성지순례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에서는 2013년 그리스도교유적탐방(그리스/터키)에 이어 시즌2로 붓다의 발자취를따라가는 불교문화 명상여행을 진행합니다. 8대 불교성지를 비롯하여, 세계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아그라의 타지마할과 갠지즈강을 순례하고, 간디의 생가를 경유합니다. 

2500년전 붓다가 나고, 성불해 법을 펼치고, 입멸하신 경건한 장소에서 길벗들과 함께 새로이 "아하!"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입니다. 혼돈과 깨달음의 땅, 인도에서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좋겠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기대합니다. 문의 및 신청은 아래 협찬 여행사로 하시면 됩니다.

다함께 "경계 너머, 아하!"


♣ 기     간  :  2015년 10월 2일 ~ 10월 11일 (9박10일)

♣ 순례코스  :  인천-델리-바라나시-녹야원-부다가야-라지기르-바리샬리-쿠시나가르-룸비니-
                  쉬라바스티-아그라/타지마할-델리(간디 생가/국립박물관)-인천
                  

♣ 신청방법  : 계약금 30만원, 여권, 사진3장(인도비자용)
   * 여권 사본을 팩스 발송하신후, 여권과 사진 3장을 등기로 우송해 주십시오.
      (팩스번호 : 02-725-5006/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110-32 우정에쉐르 1305호)
   * 여권 만료기간이 출발일 기준 6개월 이상 남아있어야 합니다.
  * 계좌 | 농협 301-0088-7942-11 (주)케이투어

♣ 담 당 자  :  이정효 주임 010-2251-2290 / 김남규 팀장 010-3048-4008
                                           02-730-4008

♣ 인도비자 발급필요서류
  1. 예약과 동시에 여권사본을 보내주세요.
  2. 인도 입국시에는 인도비자를 발급받으셔야 합니다.
     준비서류 : 5cm*5cm 흰배경 사진으로 최근6개월 이내 사진 3장 필요합니다.
  3. 여권원본과 준비된 사진3장은 출발일 기준 20일전까지 보내주세요.

♣ 여행일정
팀 명
“ 인도 성지순례 10일 
출 발 일
2015년 10월 2일 ~ 10월 11(10)
동 참 금
  \ 2,490,000
포 함
항공호텔차량전 일정공양한국어 가이드입장료, 1억원 여행자보험
인도비자(80,000), 네팔비자($25), 물 값기사 가이드 팁
불 포 함
개인 지출비
특 전
-인도특식 제공 -인력자전거 릭샤체험
-사르나트박물관
일자
출발/도착
교통편
시간
주요방문지 및 내용
공양
1
10/02
인천공항
홍콩경유
델 리
AI317
11:30
13:50
21:35
인천국제공항 3층 J카운터 집결
인천공항 출발(홍콩경유-기내대기)
델리 인드라국제공항 도착
(인도는 한국보다 3시간30분 늦습니다.)
석식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기내식
:기내식
HOTEL : Piccadilly hotel 혹은 동급
2
10/03
델 리
바라나시
AI416
전용차량
전일
10:30
11:45
델리-바라나시
:호텔식
:현지식
:호텔식
호텔 조식 후 공항으로 이동
델리출발
바라나시 도착
설법지 녹야원으로 이동
*최초설법지 녹야원 참배
-다메크스투파
-부처님 최초안거장소-대표적 아쇼카석주
-사르나트박물관 관람(사르나트양식을 관람)
*보트타고 겐지스강 순례
(겐지스강 수행 및 순례객과 및 항하사다비장여러 가트방문)
호텔석식 후 휴식
HOTEL : Clarks HOTEL 혹은 동급
3
10/04
바라나시
부다가야
전용차량
전일
바라나시-부다가야
:호텔식
:현지식
:호텔식
호텔 조식 후
위대한 성불처 마하보디대탑 참배
-7.7일 지내신 장소들
1-성불을 위해 앉으셨던 금강좌와 성보리수
2-보리수를 응시하시고 축복을 주신 자리
3-포행자리 4-보석처럼 오색이 발한 장소
5-법구경설법지 6-무칠란다연못
7-라자야타나나무 전법의 길을 택하신 장소
*수자타 공양지 참배
석식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HOTEL : NiranJana HOTEL 혹은 동급
    
일자
출발/도착
교통편
시간
주요방문지 및 내용
공양
4
10/05
부다가야
라지기르
나란다대학
라지기르
전용차량
전일
부다가야-라지기르-나란다대학-바이샬리
:호텔식
:현지식
:호텔식
호텔조식 후 라지기르로 이동
*법화경 설법지 라지기르 순례
-영축산:사리불아난다수행동굴-부처님향실-지바카병원터-빔비사라왕 감옥터
-불교계 최초의 절 죽림정사
중식 후 나란다대학으로 이동
*5세기 굽타왕조때부터 융성한 최초의 불교대학
나란다대학 순례
-사원-승방-강의실-키친-사리불사리탑-우물 등
석식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HOTEL : Sidhartha HOTEL 혹은 동급
5
10/06
라지기르
바이샬리
쿠시나가르
전용차량
전일
라지기르-바이샬리-쿠시나가르
:호텔식
:현지식
:호텔식
호텔조식 후
바이샬리로 이동도착 후 참배시작
*리차비왕국이며 유마거사고향 바이샬리*
-아쇼카석주 -다문제일 아난다사리탑
-부처님 마지막 안거처 -비구니스님 승원터 등
쿠시나가르로 이동/도착 후
*열반지 쿠시나가르 참배
-사라쌍수-열반당-아쇼카탑-아니룻다사리탑 이동
*다비장
모든 현상은 한시도 고정됨이 없이 변한다는 것
이 곧 생하고 멸하는 생멸의 법이니이 생멸에
집착함을 놓으면 곧 고요한 열반의 경지에 이르
는 것이다.
석식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HOTEL : LOTUS NIkko HOTEL 혹은 동급
6
10/07
쿠시나가르
룸 비 니
전용차량
전일
쿠시나가르-룸비니
:호텔식
:현지식
:사찰식
호텔 조식 후
룸비니 이동 도착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 참배
-마야데비당(부처님 출생하신 자리)
-아쇼카석주-무우수
석식 후
대성석가사(한국사찰투숙 및 휴식
-세면도구 준비
HOTEL : 대성석가사
일자
출발/도착
교통편
시간
주요방문지 및 내용
공양
7
10/08
룸비니
쉬라바스티
럭나우
전용차량
전일
룸비니-쉬라바스티-럭나우
:사찰식
:현지식
:호텔식
사찰 조식 후 쉬라바스티로 이동
*과거 코살라국 수도 쉬라바스티 순례
-금강경설법지 기원정사 참배
-사위성내 앙구리말라-수닷타장자집터
럭나우로 이동 도착 후
석식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HOTEL : Lineage HOTEL 혹은 동급
8
10/09
럭나우
아 그 라
전용차량
전일
럭나우-아그라
:호텔식
:현지식
:호텔식
호텔 조식후
아그라로 이동 도착 후
무갈제국의 황도 탐방 시작
*세계 7대 불가사의 타지마할무갈제국의 사쟈한왕이 부인을 위해 22년간 건설한 왕비를 위한 릉)
*무갈제국의 철웅성, 아그라성
-악바르/자항기르/샤자한왕의 거처 및 주요기간
석식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HOTEL : Clarks HOTEL 일급호텔
9
10/10
아그라
델 리
전용차량
AI310
전일
23:15
아그라-델리
:호텔식
:현지식
:현지식
호텔 조식 후
델리 이동 도착 후 중식
*간디선생생가
*국립박물관관람-부처님사리친견및 인도역사보기
델리 인드라 공항출발(홍콩경유-기내대기)
HOTEL : 기내박
10
10/11
인천공항
12:05
인천공항 도착 후 해산
(감사합니다성불하십시오.)
:기내식
*현지일정은 항공과 현지사정에 따라 다소 변경될 수 있습니다.

인도는 나에게 무어라 말을 걸까.....


인도의 불교와 문화탐방
                                 다양한 문화와 융합된 나라 인도.
                                 한없이 기도하는 갠지스강의 수행자들.
                                 종교적 삶과 문명의 삶 그 사이를 찾아.

인도 [ India ] 

 부처님이 태어나고, 깨닫고, 설법하고, 열반에 든 인도의 드넓은 땅은 불자들에게는 마음의 고향과 같다. 불교의 탄생지 인도는 불자로서 평생에 꼭 한번 참배하고 싶은 나라이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로 떠나보자.

 인도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며 신비한 매력을 발산한다. 불교와 힌두교, 시크교, 이슬람교, 자이나교등을 비롯해 근세에 큰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여러 성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종교 그룹 등의 수 많은 종교인들은 각각의 독특한 종교예술과 풍부한 정신문화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종교의 수많은 신들을 기리는 다채로운 축제가 1년 내내 펼쳐진다. 가히 축제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각양각색의 삶의 모습은 인도 순례에 멋과 흥미를 더해준다.

인도의 불교 성지


 인도순례는 부처님의 주요 발자취가 남아있는 8대성지와 그 밖의 성지 그리고 불교 문화 유적 참배로 이루어진다.  8대 성지는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 정각을 이룬 부다가야, 최초로 법을 설한 사르나트(녹야원), 최초의 사찰 죽림정사가 세워진 라지기르(왕사성), 유마거사의 고향이자 최초의 비구니 마하파자파티가 출가한 바이샬리, 금강경 설법지 쉬라바스티(사위성), 부처님이 도리천에서 설법을 하고 내려왔다는 상카시아, 부처님의 열반지 쿠시나가르로 이뤄진다.

그 밖의 성지로 싯다르타 태자가 유년기를 보낸 카필라성, 가사를 받았다는 케사리아 대탑, 불교 3대 양식 중 마투라 양식을 볼 수 있는 마투라 박물관 등이 있다.

불교 문화 유적지로는 불교미술의 보고인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 탑의 기원인 산치 대탑, 최초의 불교대학 나란다대학 터, 『티벳 사자의 서』를 지은 파드마삼바바의 흔적이 남아있는 라닥, 중관사상의 대가 용수보살이 살았던 나가주나콘다,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 등이 있다.

탄생지 룸비니 

출생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 - 네 번의 탄생 룸비니는 카필라국의 정반왕과 마야부인의 태자로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곳이다. 마야부인은 당시의 풍습에 따라 출산차 친정 콜리성으로 가던도중, 이곳에서 싯다르타태자를 낳았다. 룸비니는 부처님이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전법을 하고 길에서 열반에 든, 위대한 길의 삶을 시작한 곳이다. 부처님이 이생에 태어난 것이 첫 번째 탄생이라면, 생로병사의 해법을 찾아 카필라성 동문을 넘어 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것이 두 번째 탄생일 것이다. 동문에 앉아 부처님의 출가 정신을 생각하다보면, 불법에 의지해 바른 삶을 살겠다는 서원이 굳건해진다. 이처럼 순례는 부처님의 거룩한 행법을 조금이나마 따라하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네팔에 위치한 룸비니는 유네스코에 지정된 세계유산이다. 아기부처님이 첫발을 내디딘 자리를 기리기 위해, 3년 전 복원불사를 했다. 이곳에 서면 부처님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 전율과 감동에 휩싸이게 된다. 룸비니에는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아쇼카왕  석주(石柱)가 남아있다. 석주에는 기원전 250년경 부처님의 탄생지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아쇼카왕이 방문했고, 이 지역 백성들에게 세금을 감면해준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주위에는 한국 사찰인 대성석가사를 비롯해 네팔, 티벳, 미얀마, 베트남, 일본, 중국, 프랑스, 태국등의 사찰이 있어, 한나절 정도 투자하면 세계 각 국의 불교를 체험할 수 있다.

 󰁿 아쇼카석주
BC 249년 당시 인도를 통일했던 아쇼카왕이 룸비니에 세운 돌기둥. 
2천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불교의 역사와 부처님의 탄생의 역사를 증명하듯이 당당하게 서 있다. 돌기둥에 세겨졌던 마상(馬像)은 사라졌지만 당시의 아쇼카왕이 참배하고 세운
돌기둥에는 [카로슈티] 문자로 기록된 4줄이 세겨져 있다. 이로 인해 전설속의 부처님의 탄생지가

아닌 실제 역사적 사실임을 아쇼카 석주가 증명하고 있다. 
19세기말에 돌기둥의 부러진 상이 발굴됨에 따라 2,500년 이전에 싯타르타 탄생지임이 확인된 것이다. 만일 룸비니 동산의 아쇼카 석주가 발굴되지 못했더라면 부처님의 탄생지가 룸비니의 어디쯤인지 알수가 없어 전설속에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 마야데비당 (마야부인사원)
만삭의 몸을 이끌고 친정으로 가시던 중 룸비니에서 몸을 푸신 마야데비당이다.

 󰁿 목욕터 싯다르타 연못
 마야데비당 사원 바로 뒤편의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셨던 싯다르타 연못이다.

 󰁿 무우수나무
싯다르타 연못 건너편, 마야부인이 아기부처님을 아무 고통없이 낳는 순간 팔을 들어 올려 
잡았던 나무. 무우(無憂)는 나무 이름으로 근심 걱정이 없다는 뜻이며, 수(樹)는 큰 나무이다.

깨달음의 땅 “부다가야" 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부다가야는 가야성외곽의 고행림에서 고행하며 극도로 쇠약해진 싯다르타는 니련선하(네란자라)강에서 목욕을 한 후 수자타의 공양(우유죽)을 받는다. 공양을 받고 기력을 회복한 싯다르타는 니련선하 강변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 전생의 선업과 수행의 힘으로 위대한 성불을 이루었다. 성불한 후 일곱곳에서 7일씩 정진을 하셨는데, 지금도 그 자리가 여법하게 보전되어 있다. 이곳은 성지 중에서도 최고의 성지이다. 부처님처럼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본래 불성을 찾아 명상에 잠겨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금강좌와 보리수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보리수나무_이 보리수나무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지켜본 그 나무의 후손이라고 전해진다. 현재 마하보디사원을 지키고 있는 이 보리수나무는 1876년 폭풍으로 쓰러졌지만 그 고목에서 싹이 나와 자라난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 스리마하보디 사원에서 옮겨 심은 것이라는 설도 있다.  
 아누라다푸라 스리마하보디사원 _ 부왕인 아쇼카왕의 명령으로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파한 
상가밋타스님이 부다가야에서 가져온 보리수를 심은 사원

󰁿 마하보디사원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자리에 세운 높이 52m에 달하는 피라미드형 사원이다. 부처 성도 후 약 250년이 지난 기원전 250년경 아쇼카왕이 보리수나무 옆에 마하보디 대탑을 세우고 부처가 앉았던 그 자리에 금강좌를 조성했다.

설법의 땅 “바라나시“ 

바라나시는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 남동부에 있는도시. 원래는 "빛나다"라는 뜻인 카쉬로 불리어 온 곳이다.힌두교도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7개 도시 가운데 하나로 갠지스 강의 왼쪽 둔덕에 자리잡고 있다. 옛날부터 사람들이 거주해온 세계 최고(最古)의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갠지스 강 중류에 아리아인들이 처음 정착한 것이 시작이 되었다 .BC 2,000년경 아리아인들이 종교와 철학의 중심지이자 모슬린. 견직물. 향수. 상아제품. 조각품 등으로 유명한 상업 및 산업의 중심지였다. 석가모니가 활동하던 시대 (BC 6세기)에는 카시 왕국의 수도였으며 가까이에 있는 샤르나트는 그가 처음으로 설법을 한 곳이다. 인도 순례에 나섰던 중국의 고승(高僧) 현장(玄奬)은 635년에 바라나시를 방문한 후에 이 도시가 종교. 교육. 예술 활동의 중심지로서 갠지스 강서쪽 기슭을 따라 5km가량 뻗어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했다.

 󰁿 갠지스강
인도인 성수 바라나시 갠지스강변에 도착하는 순간 어느덧 과거시대 종교의 시대에 빠져버린다. 장엄하게 흐르는 저 강물. 그 위에 둥둥 떠내려가는 수줍움 없는 벌거벗은 시신 그 위에 앉은 까마귀. 아랑곳 않고 성수에서 목욕재계하는 수천 명의 순례자들 속에서 그저 멍할 따름이다
나룻배를 타고 유유히 저어 항하사 모래를 한줌 싸아 다시 유람을 하다 보면 멀리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가까이 가면 화장하는 곳이 보인다. 장작위에 시신을 올리고 다시 장작을 쌓은 후 의식 그리고 불을 지핌.육신은 한줌의재와 그리고 연기로 사라질때 육신과 삶의 의의를 찾아 깊은 상념에서 헤메인다.

󰁿 강과 강변의 갓트(Ghat) / 항하사
갓트란 육지에서 강으로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계단을 말한다. 바라나시의 수십개의 갓트에서는 해가 뜰 무렵 많은 수행자들이 강물에 몸을 담그며 목욕을 하거나 명상에 잠기거나 의식을 치룬다. 붉은 해가 떠오르는 갓트에서의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지켜보는 것 또한 바라
나시에서 꼭 빼 놓으면 안 될 경험이다.
많음을 나타낼 때 비교되는 항하사 모래는 여러 경전에 나와 있다. 갠지스강 갓트에서 강 건너편에 보이는 모래섬지역이 이곳이다. 배를 타고 20분 정도 강을 가로질러 도착하면 입자가 고운 모래섬 항하사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업을 씻을 수 있다고 한다.

󰁿 사르나트
부처님께서는 정각을 얻으신 후 칠주간 명상에 잠기셨을 때 하늘에서 재석천이 하강,그 크나크신 깨달음을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여 주실 것을 간청하매 부처님께서 첫 설법의 대상으로 녹야원(사르나트)에서 수행중인 교진여등 5명의 수행자들로 정하시고 부다가야로부터 걸어서 사르나트에 도착, 부처님께서 5제자를 상대로 첫 설법(4제와 8정도)을 행하심으로써 불법의 법륜을 최초로 굴리신 바로 그 장소에 아쇼카대왕이 건립한 다메크대탑을 건립하셨는데 그 후 많은 사원이 조성되었으나 11C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파괴되고 오늘 날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사르나트박물관
인도의 사르나트 양식의 대표적 박물관이다. 녹야원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엔 녹야원에서 
발굴된 아쇼카석주의 상륜부가 있는데 인도 국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4마리의 동물은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소는 석가족, 사자는 사자후, 코끼리는 부처님 도래, 말은 출가를 뜻한다고 
한다. 그밖에 좌측 회랑끝에 모셔진 좌불상은 사르나트양식를 대표하는 불상으로 영축산 향실에서 발굴되었다 하며 중앙회량에 원형상은 일산으로 우담바라 꽃을 형상하고 있고 우측회량 끝에는 힌두교의 삼신 중 파괴, 재창조의 신 시바신이 모셔져있다.

◑다메크대탑 (DHAMEKH STUPA)
“다메크” 진리를 본다는 뜻의 다메크대탑은 벽돌로 조성된 원통형 건물, 아랫부분은 직경 26m이고, 아래에서부터 높이 13m는 석조로 둘러져 있고, 기하학적 문양과 당초문이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8방에는 불감이 있으며, 윗부분은 직경이 줄어들면서 붉은 벽돌로 쌓여져 있다. 아쇼카 왕조시대에 축조되어 굽타왕조 시대에 증축 되었으나 지금은 윗부분이 붕괴되었다. 그 탑뒤에 있는 아쇼카왕이 세운 석주의 기단부와 승원 터, 승방 등이 최근 발굴 되었다.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도 방문의 의의가 깊은 곳으로 B.C 3세기에서 12세기 간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음. 바라나시 공항에서 32KM 바라나시 시내까지는 10.4KM의 거리이다.


포교의 땅 “라지기르” 

죽림정사와 영축산이 있는 라지기르 왕사성으로 잘 알려진 라즈기르는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의 초청을 받은  부처님께서 1,000여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가셨던 곳이다. 빔비사라왕의 정성어린 지원과 신심에 힘입어 불교교단은 왕사성에서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불교 최초의
사원이었던 죽림정사와 『법화경』 의 배경이 되는 영축산 역시 이곳에 있다. 영축산 정상에는 부처님께서 계시던 수행처인 향실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대(臺)가 있다. 중국에 불교를 전한 가섭마등과 축법란은 오늘날 중국의 오대산이 인도의 영축산과 닮았다고 해서 오대산이라 했다
고 한다. 이외에도 라즈기르에는 왕실과 부처님의 주치의였던 지바카의 병원 터, 아들인
아자타사트루에게 감금된 빔비사라왕이 최후를 맞이했던 감옥 터가 있다.

󰁿 영축산

5개의 능선, 바로 우리의 산 오대산과 일맥하는 것으로 이곳에서 문수사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영축산은 법화경의 서품에 나오는 수 많은 불보살님들의 수행처이며 배경이다. 빔비사라왕길을 따라 걸으며 부처님께서 주석하신 향실이 나온다. 향실 밑으론 아난존자 사리불존자 마하가섭존자의 동굴이 지금도 남아 있다. 
영축산 향실의 위치는 왕사성을 굽어 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 오대산 적멸보궁자리와 같은 지형을 가지고 있다. 향실을 중심으로 총 오대가 있다. 이곳이 한국 오대산 중국 오대산의 모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부처님 말년을 법화경을 설하셨는데 법화경의 주 내용은 부처님께서 수 많은 제자들에게 내세에 부처가 될거라 수기를 주시는 것이다. 향실에 앉아 법화경 사구게를 간파한다면 이는 곳 부처님의 수기를 받는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옛 왕사성터를 바라보며 사구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여 보는 기쁨은 이 자리에 와서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 죽림정사(竹林精舍)

불교계 최초의 절이다.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기에 죽림정사라 한다. 다른 유적지에 비해 발굴이 거의 되지 않은 상태다. 입구의 작은 법당과 스님들 목욕터가 다라 할 수 있지만, 이곳저곳을 거닐다 보면 부처님과 1,250제자들의 여법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현재 태국스님 한 분이 머물면서 복원에 큰 뜻을 두고 계신다 한다.

󰁿 나란다대학

라즈기르에서 40분 정도 이동하면 세계최초의 불교종합대학인 나란다대학 터에 도착할 수 있다. 나란다대학은 탁실라, 비끄라마실라와 함께 3대 불교대학이었다. 굽타왕조가 다스리던 5세기경에 조성되기 시작한 나란다대학은 입학이 무척 어려웠지만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나라와 백성들의 보시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용수(龍樹, Nagarjuna), 무착(無着, Asanga), 파드마삼바바
(Padmasambhava), 현장과 같은 대학자와 고승들 역시 이곳에서 수학했으니, 이곳의 학문적 깊이
가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전성기의 나란다대학은 가로 10km, 세로 5km의 면
적에 일만여 명의 스님들이 공부했다. 하지만 11세기에 이르러 이슬람 세력의 침략으로 인해 불
타고 말았는데, 그 불길이 6개월 동안 보였다고 한다.


교단본부의 땅 “쉬라바스티” 

정글 속에 잠든 영화로운 도시 쉬라바스티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에서 차로 네 시간가량 달리면 사위성, 곧 쉬라바스티에 이른다. 쉬라바스티는 마가다국 다음으로 강성한 나라였던 
코살라국의 수도로,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 머무르셨던 사원인 기원정사가 이곳에 있었다.그 옛날 사위성이 누렸던 영광은 정글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지만, 그 성터 안에서는 앙굴리말라의 스투파와 수닷타 장자의 스투파를 만나 볼 수 있다.

󰁿 수닷다장자집터

수닷타 장자는 아들결혼문제로 왕사성의 처남 집에 들렀다가 부처님을 만나 일대사 인연을 맺게 되어 바로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게 되어 마침내 한평생 재가신도가 되겠다는 서약을 하게 된 곳이다.

■ 천불화현지(千佛化現地) 쉬라바스티에서 부처님께서는 당시 자이나교 및 외도들의 사상이 팽배해 수많은 기적을 드러내 보이셨다. 이곳에 보이신 천불화현의 기적은 많은 불교미술상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천불화현지는 부처님께서 이내 이곳을 떠나 하늘세계 도리천에 오르셔, 이후 상카시아로 하강하시게 된다.


󰁿 앙구리말라집터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의 아힘사카라는 이름을 가졌다.
어리석은 탓으로 많은 생명을 죽여 씻어도 씻기지 않는 피 묻은 손가락을 모아 ‘앙구리말라’라는 이름을 얻은 그의 집터이다. 부처님께 귀의하여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 기원정사

인도 불교성지중에서 기수급고독원으로 알려진 기원정사.
기원정사내에는 “아난다 보리수(菩提樹: Bodhitree)”라는 나무가 있다. 기원정사는 사위성의 급고독 장자가 크나큰 원을 세워 바사익 왕의 태자인 기타태자의 동산에 부처님이 안거할 수 있는 정사를 짓고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는 설화가 유명하다. 수닷타장자의 보시로 창건한 곳으로 부처님께서 17안거를 지내셨으며 금강경을 설하신 곳이다.

도리천에서 내려온 땅 “상카시아” 

부처님의 생모인 마야부인에게 도리천에서 3개월간 설법을 하고 내려온 곳으로, “효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이다.
마야부인이 출산 후 일주일만에 세상을 뜨자, 이모가 부처님을 키웠고(자매가 함께 시집을 왔었다) 이모는 싯타르타 태자가 정각을 깨달아 부처가 된 후 고향인 카필라성에 왔을 때, 스스로 삭발을 하고 500명의 여인들을 이끌고 바라나시까지 쫓아가 출가를 하여 깨달음을 얻었지만, 낳아주신 어머니는 그러한 법을 만나지 못했기에 부처님 스스로 도리천에 올라 간 것이다.
부처님이 성도 후 살아있는 사람들은 많이 교화를 했지만, 죽은 사람들에게 교화한 적이 없었기에 스스로 도리천에 올라가 3개월간 설법을 하여 많은 천상 사람들을 위하여 깨달음의 길을 열고 도리천에서 내려올 때 상카시아로 하강하였다고 한다.
훗날 아쇼카왕이 이곳에 많은 탑과 대규모의 사원들을 건립하고 아쇼카석주를 세웠으나, 지금은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지지 않아 흔적이 없고 단지 불교 유적지로 추정되는 탑 위에 힌두사원을 세워 링감을 모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마지막 여행의 땅 “바이샬리” 

열반의 여정이 시작된 바이샬리 나란다대학 터를 떠나 갠지스강을 건너 4시간 정도 이동하면 리차비족이 세운 도시였던 바이샬리가 나온다. 바이샬리에는 최초로 세워진 불사리탑의 유적이 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그 사리는 여덟 개의 나라에 나누어졌는데, 그 가운데 리차비족에게 분배된 사리가 이곳의 사리탑에 모셔졌다. 바이샬리에는 가장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아쇼카왕의 석주로 남아 있다. 이 석주 위에 있는 사자상은 부처님이 열반에 든 쿠시나가르 쪽을 바라보고 있다. 
바이샬리는 부처님께서 마지막 안거를 보내면서 자신의 열반을 예고했던 곳이다. 경전에서는 부처님께서 입멸지인 쿠시나가르의 마지막 여행을 시작하면서 “내가 바이샬리를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부처님 사후에 바이샬리는 불교사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불교교단이 10사에 대한 논쟁을 둘러싸고 보수파인 상좌부와 진보파인 대중부로 분열하게 되는 제2차 결집이 이곳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 아쇼카석주

마우리아(Mauryan)왕조 아쇼카왕의 명령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새겨 넣은 석주이다. 석주의 기둥머리에는 모형이 올려져 있고 사자상의 원형은 편재 사르나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자상의 기둥머리는 종 모양의 연꽃 위에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코끼리ᐧ말ᐧ황소ᐧ사자 네 마리의 동물과 법륜(Dharma wheels)을 의미하는 수레바퀴 네 개의 조각된 원형의 판이 올려져 있고, 맨 위에는 네 방향의 전지역으로 아쇼카의 법이 미치는 것을 의미해 네 마리의 사자가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모양이다.
이 사자상은 인도의 국가 문장으로, 인도지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 다른 아쇼카 석주는 바이샬리(Vaishali) 지방의 불교수도원에 위치하며 기둥머리에 북쪽을 향한 한 마리의 사자상이 올려져 있다.

열반지 “쿠시나가르” 

사라쌍수가 기억하는 마지막법문 쿠시나가르 바이샬리에서 쿠시나가르까지는 차로 다섯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부처님 재세시에는 무척 먼 길이는데, 부처님께서는 열반으로 가는 그 마지막 길을 3개월 동안 걸어서 가셨다. 쿠시나가르에서 부처님께서는 자등명 법등명의 마지막 법문을 하신 다음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현재 쿠시나가르에는 미얀마 스님들이 1920년대에 세운 열반당이 이곳을 찾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 열반당에는 5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부처님의 열반상이 모셔져 있다.
󰁿열반당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열반당.
당내에는 열반상이 모셔져 있다. 길이 6.1m로 부처님의 상호는 보는 각도에 따라 세 가지로 다르게 보인다.  11C에 조성된 열반당 기단부분엔 세분의 상이 모셔져 있는데 왼쪽부터 마지막 공양녀 “춥다”, 마지막 제자 “시봉”, 아난다 순으로 되어 있다.


󰁿사라쌍수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 사라나무 두 나무 사이에 열반을 드셨는데 그 두 나무를 사라쌍수라고 한다. 현재 사라쌍수를 기념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놓았다.
󰁿다비장

원래 왕족들의 다비처였지만 부처님을 위해 이곳을 보시했다고 한다. 현재 다비장소엔 사리탑이 모셔져 있고 탑 돌이하기에 좋은 곳이다. 부처님열반소식을 듣고 달려온 상수제자 마하가섭의 부처가 모셔져 있다.

종교 너머, 아하! 뉴스레터 발간사_이사장 오강남 : 네이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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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너머, 아하! 뉴스레터 발간사_이사장 오강남 | 공지사항

전체공개 2013.05.30. 19:56

녹명(svad****)

카페매니저 1:1대화

http://cafe.naver.com/yooyoonjn/207  주소복사



비영리단체 <종교너머, 아하!>의 뉴스레터 발간을 충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일을 위해 특히 애써 주신 운영위원장 성소은 님과 운영위원 최지영 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면 작년 9월 창립 기념식을 가진 이래 <녹명종교나눔터>라는 이름에서 <종교너머, 아하!>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제 어엿이 뉴스레터까지 정기적으로 발행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도록 보이게 보이지 않게 도와주신 고문님들, 이사님들, 감사님, 운영위원들, 그리고 이 모임에서 주관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동참해주신 모든 길벗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모임의 이름 ‘종교너머, 아하!’에는 우리가 처음 목적했던 의도를 나타내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우선 ‘종교너머, 아하’라고 하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각 종교의 울타리를 넘는다는 뜻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각 종교들은 서로 각자의 울타리를 치고 제각각 그 울타리 안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울타리 안의 세계만 오로지 유일한 진리의 영역이라는 배타적 태도를 보이며 그 울타리를 넘어보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종교너머, 아하!>는 각 종교들이 이런 울타리를 넘어서 서로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 싶었습니다.



종교 간의 대화 없이는 종교 간의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 간의 평화가 없이는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한 말과 같이 우리는 자기 종교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현 한국 종교계에 조그마한 소통의 물고를 트고 서로 사귀며 대화할 수 있기를 바라고, 이것이 한국 사회, 나아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이 되리라 믿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지금껏 자기 울타리에 갇혀 남의 종교에 대해 전혀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태도로 일관하던 종교인들이 울타리를 넘어서 이웃 종교와 대화할 때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감격으로 ‘아하!’를 외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둘째, ‘종교너머, 아하!’에는 현재의 제도적이고 개별적인 종교를 넘어가 본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느 면에서 통속적으로, 그리고 천박하게 이해된 대로의 종교, 자본주의의 물질제일주의에 경도된 기복 종교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도 최근에 쓴 그의 책 '종교를 넘어'�에서 “사람들이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분명 종교가 도움을 줄 순 있지만 종교 또한 잘못 이용될 때는 갈등과 분열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고 하고, 이런 종교를 뛰어 넘어 “내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작년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어느 사찰을 방문하여 그곳 큰 스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나 같이 촌에 박혀 있는 사람이 뭐를 알겠소.”하면서도 몇 마디씩 던지는 말씀이 모두 진리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중에 아직도 귀에 쟁쟁한 것은 “불교고 기독교고 ‘종교’로서의 기능은 이제 지나갔지요.  밖에 나가 밭을 갈고 있는 촌로에게 물어보세요.  부처님께 빌고 하느님께 빌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가 하고.  이런 식으로 무엇이든 빌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던 ‘종교’는 이제 그 명을 다 했지요.”  그 큰 스님이 바라는 것도 ‘종교너머’가 아니었던가 하는 것입니다.



현재 서양 젊은이들 중에는 “I am not religious, but spiritual.”이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지금까지의 인습적이고 형식적인 ‘종교’가 궁극적인 해답을 가져다주리라는 기대를 접고, 이런 종교를 넘어 종교가 본래 인간에게 주려고 했던 그 ‘속내’, 그 심층, 그 영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종교너머, 아하!>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뜻을 묶어보려는 시도인 셈입니다.  종교인들이, 특별히 종교가 없더라도 종교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모두 자기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과 손잡고 오손도손 이야기하면서 종교의 속내, 그 깊은 영적 차원을 발견해 나가자면서 계속 아하!를 외치는 경험을 해 보자는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의 말씀처럼, 자비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 ‘하룻밤 새’에 이루지지도 않고, 또 우리의 작은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각’을 통해서, 그리고 ‘교육’을 통해서 ‘서서히’ 다가올 것이라 그의 확신에 동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1) 함께 생각하고, 2) 함께 자라나고, 3) 함께 나누는 일을 해 나가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세계 종교 개관이나, 노자, 장자 등 개별 종교 사상의 연구를 비롯, 종교 체험 여행, 명상 수행 등의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큰 행사로서 9월 말에 있을 그리스, 터기 세계종교문화 답사 1차 여행을 꾸미고 있습니다. 



<종교너머, 아하!>는 현재 사단법인 등록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등록을 위한 기본 자금이 5천만 원이라고 합니다.  이 자금을 만들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저희의 뜻에, 그리고 저희가 하는 일에 뜻을 같이 하시려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라고, 또 될 수 있으면 후원회원이 되어 주시기 부탁합니다.



끝으로 이 뉴스레터가 회원 상호간의 더욱 원활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종교너머, 아하!>가 추진하려는 일을 더욱 효율적으로 이루어 가는 데 도움을 주는 매체로 꾸준히 발전해가길 기원합니다.

함께 하시는 분들 | 녹명종교나눔터가 "종교너머, 아하!"로 자라났습니다 : 네이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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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시는 분들 | 녹명종교나눔터가 "종교너머, 아하!"로 자라났습니다|공지사항
전체공개2013.01.19. 15:00
 

존경하고 사랑하는 길벗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2013년 계사년이 열리고, 모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희망과 꿈을 위해 열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올해를 상징하는 검은 뱀은 치유와 위로의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누구랄 것없이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입니다.

닫혀있는 생각이 아픔을 자아내고, 불통을 야기하지요. 
올해는 '여는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여는 일은 분리시키는 벽을 허물고, 틀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합니다. 
막힌 담이 허물어질때 나와 이웃의 진정한 만남과 이해가 선물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

이런 바람으로 2012년 9월2일 녹명종교나눔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여러분들과의 아름다운 만남과 자라남이 있었습니다. 축복이었습니다.
이제 '태동기'를 지나 튼튼하게 자라나고자 합니다. 

내부 조직을 개편하고, 힘을 실어주시는 고문과 이사진으로 대폭 넓힐 수 있었습니다.

* 함께 하시는 분들

   이사장       오강남 |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상임고문     김성곤 |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노영찬 | 워싱턴 조지메이슨대학 교수
                   도   법 | 실상사 회주, 조계종 자성과 쇄신결사추진본부장
                   미   산 | 상도선원장, 중앙승가대학 교수
                   민영진 |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이재정 | 신부, 성공회대 교수
                   외 1명
                   (이상 7명, 가나다 순)

   이사          강신영 | 의사
                   김기호 | 명상가
                   김도원 | 한터울 대표
                   김진호 | 목사,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장
                   김용휘 | 천도교 사무국장
                   문인숙 | 수녀, 부산 예수공부 지도
                   박은주 | 출판사 김영사 대표
                   박찬욱 | 밝은사람들연구소 소장
                   성해영 | 서울대 HK 연구교수
                   이봉원 | 이사
                   이영환 |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정용희 | 한신실리콘 대표, 부산 예수공부
                   조동섭 | 백산인터내셔널 대표
                   조성백 | 서안 대표
                   차춘희 | 부산 예수공부 회장
                   최인영 | 의사
                   (이상 16명, 가나다 순)

   감사          이영종 | 변호사

   운영위원장  성소은

   운영위원     최지영 | 정광선 | 하석범 

..................................................................


지난 1월15일 첫 확대이사회의를 통해 올해 진행될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보고와 개칭에 대한 승인이 있었습니다. 이로써 정식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향후로는 "종교너머, 아하!"를 지향하는 어울림과 열림의 장이 될 것입니다.

길벗 여러분과 함께 하는 새로운 눈 뜸의 체험을 기대합니다. 

아하! 아하!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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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북리뷰 - [50]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황진이ㆍ문화영

연구원 북리뷰 - [50]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황진이ㆍ문화영



1. 저자에 대하여


문화영
외국어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대한적십자사, 국회 등에서 근무했다. 30대에 이미 여성개발원 국제협력담당 책임연구원으로 활약하였고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다. 그러던 중 중년의 39세의 한창 때 수련에 전념하며 승승장구하던 직장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나왔다고 하나 솔직한 그 내막은 아닌 듯도 하다. 이후 선계의 스승이신 천강(天降)선인을 만나 선계수련의 맥을 전수받았다고 하며 1994년 본성을 만난 후 지속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는 견성 즉 깨달음은 수련의 ‘입학’에 불과하며 우주(본성)와 100% 합일을 이루는 것이 되어야 공부의 끝이라고 주장한다. 
그간의 수련 과정은 [선계에 가고 싶다]와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출간되었는데 이들 책에서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련세계의 일들을 손에 잡히듯 풀어놓았다고도 한다. 특히 인간의 생성원리, 사후세계, 우주, UFO, 기(氣) 등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아놓았다. 한편 KBS 라디오 ‘KBS 무대’에 방송작가로 데뷔하여 수백여회의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하고 1996년 ‘다큐멘터리 홍범도’로 제23회 한국방송대상에서 라디오 드라마 부문 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다. 99년부터는‘수선재’에서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현재 수선재 홈페이지(www.soosunjae.org)에 실화소설 [메릴린스에서 온 선인, 토정 이지함!]을 연재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파크 참조] 

그래서 명상수련가이자 작가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30대 후반에 모든 것을 버리고 본격 명상에 든 이후, 금촉이라는 고난도 수련과정을 통해 각(깨달음)을 완성했다고 전한다. 
지난 ‘98년, <선계에 가고 싶다>라는 책을 읽고 모인 몇몇 제자들의 요청으로 수련지도를 시작한 이래 명상학교 수선재의 명상가로 활약하였으며, 최근에는 여행과 집필을 병행하며 제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저서로는 <무심>, <여유>, <선계에 가고 싶다>,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천서0.0001> 등이 있다. 


* 명상학교 수선재 

명상학교 수선재는 건강과 정신적 풍요로움을 위한 대중적인 명상은 물론 생활 속 깨달음을 지향하는 선계수련 과정까지 운영하는 전문 명상학교라고 한다. 
저자는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단계적인 명상 프로그램을 통해 명상의 대중화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고 하며 인간, 자연, 하늘이 하나 되는 선(仙)문화 운동을 펼쳐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고급 선계수련 과정인 상ㆍ중ㆍ하단이 완성된 전인(全人)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호주, 남아공 등 세계 각국에서 이천여 명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명상을 배우고 있노라 소개하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참조] 


황진이黃眞伊 
조선시대의 시인 겸 명기(名妓).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대표작으로 《만월대 회고시》, 《박연폭포시》 등이 있다. 

별칭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 명월(明月) 
출생지 개성 
주요작품 《만월대 회고시》《박연폭포시》《봉별소양곡시》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 명월(明月). 개성(開城) 출생. 중종 때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고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相思病)으로 죽자 기계(妓界)에 투신, 문인(文人) ·석유(碩儒)들과 교유하며 탁월한 시재(詩才)와 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修道)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天馬山) 지족암(知足庵)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破戒)시켰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徐敬德)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제관계(師弟關係)를 맺었다.

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정을 나누고 벽계수(碧溪守)와 깊은 애정을 나누며 난숙한 시작(詩作)을 통하여 독특한 애정관(愛情觀)을 표현했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서경덕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작품으로 《만월대 회고시(滿月臺懷古詩)》《박연폭포시(朴淵瀑布詩)》《봉별소양곡시(奉別蘇陽谷詩)》《영초월시(咏初月詩)》 등이 있다. - ⓒ 두산백과사전 


2. 내 마음속에 들어온 글귀


책머리에 
황진이라는 분이 40세쯤 되어서 돌아가셨다고 그러는군요. p15
그런데 기생이지만 이분의 문학사적인 위치 때문에 이분을 무시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국문학계에서는 조선 500년을 통틀어 황진이를 따라가는 시조시인은 없다고도 합니다. 
한시에서는 허난설헌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평도 있고요.
그래서 특히 국문학자들이 역사 인물 중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인물이 황진이입니다. 
누가 찾아보니까 논문이 한 천여 편 된다고 그러는군요.
그런데 이분의 작품은 많지도 않습니다. 
시조 여섯 수에다 한시 여덟 수 이런 정도인데. 
한시는 잘 나와 있지도 않고 찾아야 되죠.

그 시조 여섯 수를 가지고 그렇다는 거죠.
이분의 기생으로서의 명성보다는 
그 사람이 남긴 작품이 두고두고 향기를 발하는 거예요. p16

공부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는 거예요. p17


프롤로그/ 
모노드라마 선악과는 무엇일까?

중국 당나라 때 측천무후와 고종의 외동딸인 태평공주
그녀는 육촌 동생인 당 현종에 의해 죽음을 당했더군요.
양귀비로 유명한 그 왕 말예요. p32

생로병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누구 마음대로 되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하려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랍니다. 

저는 자살하기 위해 사니까요.
히히...

의문이 생기면 풀릴 때까지는 저와 상대방을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달달달 지지고 볶으니까요.
참 안 좋은 성격이죠.
하지만 배 안의 짓이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겠죠. p33

예나 지금이나 저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 남자를 두 여자가 나누어 가지는 상황에는 늘 분노한답니다. 
한 여자를 두 남자가 나누어 가지는 일에는 부러움을 느끼면서도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편의 말을 종합해 보았죠.
어쩌다 그렇게 되었고, 남자는 평생 한두 번 바람이 나게 마련이며, 제가 잘못한 점이 없다고 했고, 두 여자를 다 데리고 살고 싶다... p38

내 사전에 이혼이라는 말은 없어
남편이 화를 내며 말하더군요.
그렇고 그런 삼류 얘기죠.
허나 다들 비슷한 모양새로 살고 있는 거잖아요. 
이혼을 강행하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아이들을 절대 줄 수 없으며 만나지도 못하게 하겠다고 하더군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라니까요.
그때는 법이 어떤 상황에서건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던 때였습니다. p40

남편이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있는 게 나아.
의논할 상대라도 있는 거잖이...
과부로 오래 살아오신 어머니의 경험담이 이 한마디에 녹아 있더군요.
결혼할 때에도, 그 이후에도 남편의 무질서한 생활태도를 몹시 싫어하시던 어머니의 이 말씀에 많이 고민했죠. p41

속절없이 사랑에 몰입하는 여자들의 속성은 사랑 때문에 인생 전체를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하는 가 봅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결코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죠? p44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산을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 손가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 것은 p58

여성은 항상 어머니의 마음으로 남성을 품어야 하며 그러한 속에서 아들 같으면서도 여인 같기도 하고 아버지 같기도 한 느낌이 살아나오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를 상대할 경우 반드시 유념해야 할 부분은 역할에 있어 절대로 남성이 여성보다 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지는 하늘과 땅이 동시에 존재하였으되 발아의 과정은 모두 땅이 담당하였음을 생각해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씨앗은 하늘이 주되 그것을 살려내는 것은 여성의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성의 기본은 모성이며 모성을 기본으로 하는 한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실패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근본적으로 모성이며 여성만이 온전히 할 수 있는 중의 하나입니다. p62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수많은 남성들과 사랑을 나누고 가슴을 앓아야 했던 과정은 모친의 마음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겪어 넘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과의 사랑을 전부 아들을 여러 명 둔 것 같은 기분으로 받아들였으므로 진실한 사랑을 하면서도 아픔을 나름대로 온전히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그들이 다른 여성과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다독여 주고 바라보는 즐거움까지도 저의 것이 될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여성이므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p63

하지만 결국 완전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지요. 그것은 곧 모든 것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우주이니까요. p64

황 선배가 가장 사랑하신 분은 지족선사였다는 군요. p65

남자 없이 , 성性 없이 사는 고난도의 삶을 통해 겸손을 알게 하시려고 하셨던 것이겠죠.

이제는 나이도 어지간히 먹었으니 여자로서는 접고 자유를 추구하는 오직 ‘인간’으로서만 살고자 합니다. p68

황진이, 선악과를 말하다 - 황진이와의 대화
제 1장 황진이, 삶을 말하다
부친은 선비, 황이黃伊
“저는 원래 진眞이라고 불렸으나 나중에 제 스스로 아버지의 아름 끝 자를 한 자 붙여 진이 眞伊라고 불렸습니다.”

출생: 1511년 6월 생
부친: 시골의 선비로서 조용한 가운데 나름의 학식을 갖춘 분입니다. 거의 말이 없으셨으나 마음속으로는 사랑이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저를 퍽 아껴 주셨으나 소실의 딸이므로 내놓고 귀여워해주시지는 못하셨습니다. p75

아버지의 직업은 무엇이었는지요?
선비로서 초시에 급제하기는 하였으나 벼슬을 한 적은 없고, 농토가 있어 일꾼들이 농사를 지어 생활하였습니다. 부유하지 않고 그런대로 살았습니다.
음주가무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라 아주 조용한 편이셨습니다. 

형제들은 어떠했는지요?
본 부인에게서 아들이 두 명 있었고 그리고는 저 이렇게 셋이었는데 오빠들과는 별로 대화가 없이 자랐으므로 그저 있었다는 정도 외엔 별 기억이 없습니다. p76

성장과정은 어떠했는지요?
집에서 모친과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기생이 되려고 나가기 전에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대로 평범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모친과는 언제까지 있었는지요?
어머니는 15세 경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로 집에 있기가 불편하여 어디로든 나가야 할 형편이었으므로 방편을 생각하던 차 기생이 된 것입니다. 
저로서는 그때까지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독서를 통하여 나름대로 알고 있었으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생각이 있던 차 모친께서 향천하셨으므로 저의 길을 간 것이지요. p77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황 선인을 보필했던 여성은 누구였는지요?
자랄 때는 전속 몸종이 없었고 기생이 되고 나서 서너 명의 몸종이 있었으나 오래 두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몸종은 신월이라고 하였는데 6년 정도 데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로 제 몸종들은 남정네들이 붙여주었던 것이지요.
그들이 제 심부름을 하기는 하였으나 마음을 깊이 줄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고 그저 할 일이나 하였을 뿐이지요. p78

*** 기생의 몸종은 오늘날의 개목걸이?

* 황진이의 출생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담긴 자료가 없고, 여러 책에서 신비로운 설화처럼 전하고 있다. 이덕형(李德泂, 1566~1645)의 <송도 기이(松都記異>)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황진이의 어머니는 현금(玄琴)이었는데 자색이 매우 고왔다. 나이 18세에 병부교 아래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 다리 위에 한 사람이 있으니 용모가 단아하며 의관이 화려했다. 현금을 내려다보며 미소도 띄우고 손으로 가리키기도 하여 현금의 마음이 동하였는데, 문득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해질 무렵에 빨래하는 여인들이 모두 간 후에 다시 나타나서는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다리 아래로 내려와 물을 청하기에 떠주었다. 반쯤 마시다가 돌려주면서 “그대도 마셔보라”하기에 현금이 받아서 마시니, 물이 아니고 술이었다. 그리하여 합환주(合歡酒)가 되어 둘이서 깊은 인연을 맺으니 이로 말미암아 탄생한 것이 진이였다. 

* 약간 추가된 내용이 김이재(金履載, 1767~1847)의 <중경지(中京誌)>에 나온다.

그 뒤 소년은 이름도 안 밝히고 가버렸다. 생각건대 선인이라고 여겨졌다. 과연 임심이 되어 진이를 낳았는데, 해산 때에 기이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 차 사흘 동안 걷히지 않았으니, 즉 이는 선녀라... 어찌 황(黃)이란 성이 있겠는가?

* 김택영(김책영. 1850~1927)의 <숭양기구전(菘陽耆舊傳)에는 ‘황진사의 서녀(庶女)’라는 언급이 있다. 

이는 황진사의 서녀이자 진사의 첩이 현금이었다. 그가 병부교 아래에서 물을 마셨는데 감응하여 임신이 되어 진이를 낳았다. 방 안에 이상한 향기가 사흘간을 머물렀다. 

* 허균(許筠, 1569~1618)의 <성옹지소록 (惺翁識小錄)>에는 ‘맹인의 딸’이라는 언급이 있다. p79

잣나무배
저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잣나무배
몇 해나 이 물가에 한가로이 매였던고
뒷사람이 누가 먼저 건넜느냐 묻는다면 
문무를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 p84

제 경우에는 인간의 몸을 가진 자녀를 둔다는 것은 한 남자에게 매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지요.
어떠한 한 남성을 평생 사랑한다는 것은 곧 제 공부의 미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어요. p88

사람들이 그를 일러 선녀라 하였다
방에서 향내가 났었다는 데 무슨 냄새였나요?
향내는 선인으로서 수련을 하다 보면 나는 향내였지요.
선향仙鄕이었습니다.
호흡을 열심히 하다보면 인체에서 분비되는 물질이 있고 이 물질은 인간을 가장 향기로운 상태로 인도하지요.
호흡을 열심히 할 경우에 무심 상태에서 분비되는 것으로서 인간의 모든 병까지도 나을 수 있게 하는 물질입니다.
화학적인 변화로 가능한 병은 나을 수 있지요.

호흡을 통하여 만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물질의 분비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이 물질의 분비가 가능한 이유는 신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 L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p88

반달을 노래함
누가 곤륜산 옥을 깎아내어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
견우와 이별한 후에 
슬픔에 겨워 벽공에 던졌다오 p91

* 황진이가 서화담 간에 주고받았다고 하는 시조 두 수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만중운산)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 화담 서경덕

내 언제 무신(無心) 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 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 황진이 p119

* 황진이가 벽계수를 유혹하며 불렀던 노래가 아래의 시조이다.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사랑의 정한을 노래한 황진이의 시조

어져 내 일이야 그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p 123



3. 내가 저자라면 

명상을 하며 황진이와의 대담형식을 통해 나눈 저자의 궁금증과 주장을 펴나간 책이다.

하나, 책을 팔려면 저자나 출판사는 적당히 사기를 칠 줄 알아야만 한다?

방식이야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겠지만 인터넷에 나와 있는 저자소개란에 쓰여 있는 저자가 명상에 몰입한 계기 옳지 않게 기록 되어 있는 것 같다. 이혼하고 배반당해 실연을 극복하기 위해 명상에 빠져들었다고 하면 독자들이 쉽게 다가가지 않고 외면할 것이어서 그러한가?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붙여가며 저자의 경력이 마치 저자 글의 가치인양 떠벌이고 있지만 이 책의 프롤로그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내용이 다르게 나와 있지 않은가.

책 내용의 서두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두 남자로부터의 상처에 대한 상심으로 오래 갈등하며 아파하다가 명상에 더욱 심취하게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고 원치 않았던 자신의 일련의 상황들에 대한 인간적인 경험들과 의문을 풀어보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스며져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꼭 그것 때문에 명상을 하게 되었다고는 말하고 있지 못하지만 저자가 첫 번째 남편의 단순한 불륜을 넘어선 장기간에 걸친 지독한 속임수에 심한 모욕감과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고, 감쪽같이 두 집 살림에 오래 동안 속아 살아온 분노로 인해 심적 고통과 함께 실제로 육체의 병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는 점과, 그로인해 병명도 잘 나타나지 않는 유방이 부풀어 오르는 심한 통증에 시달리며 심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웠고 명상으로 인해 차츰 회복되었다고 그 신기함을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살다보니 그녀 역시 첫 번째의 전 남편과 같은 방법으로 삶을 살게 되는 것에 대해 고뇌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거하며 사귀던 남자가 기막히게도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림으로써 결국에 아내가 있는 남자와의 불륜의 관계를 가지며 청산하지 못하고 살다가 마침내 용단을 내리고 혼자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노라 독자가 짐작해 볼 수 있도록 솔직하게 적어놓았다. 그리고 저자는 명상을 위해 사회적 신분 모두를 내려놓았다고 이 책에서는 밝히고 있지 않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 책은 선계를 파동으로 교환할 정도로 신성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럴 듯한 이유보다는 진솔한 진정성을 갖추지 않은 표현은 자칫 독자를 우롱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것이기에 말이다. 

어느 저자소개에는 무조건적으로 오로지 명상을 위해 모든 것을 일순간에 초개와도 같이 버린 것처럼 표현되어 있었으니 이는 독자를 유인하기 위한 출판사나 대행 회사 측의 저의로 보인다. 그것은 저자에 대한 참신성을 애초부터 의심하게 하는 것을 도울 뿐이라고 생각된다. 책이나 읽어보고 쓴 것인지 모르겠다. 지나친 상업주의적 발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작가적 양심으로 헤쳐 볼 수 없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전 이력을 밝히기보다 그럴 듯한 이력을 내세우기를 좋아하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소위 간판 하나로 편히 먹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이러한 현실을 지극히 너무나도 많이 뼈저리게 느끼고 당해온 터라 내 조카의 대학입시 때에는 학벌이 신분을 표방해 주는 이 사회의 논리를 간과하지 않고 설명해 주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사회의 통념과 구조 속에서는 아직까지 대단히 유효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이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지 않은가. 

결국에 출판과 매출이라는 것은 글보다 기획과 홍보라고 말하는 어느 선배의 한에 서린 듯한 주장도 결코 예사롭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런 경우도 복불복福不福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두울, 나는 황진이의 시조를 좋아하고 그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대담하고 대단한 예기를 가지고 남존 여비 시대에 신분상 하위직의 기녀로서 남자를 후려 대는 솜씨가 능숙 능란 가히 일품이기 때문이다. 당대의 내놔라하는 여간한 남자들은 일명 기녀 황진이에게 쭉도 못된다고 할 수 있으니 그의 배포와 깡다구가 멋져 보이기까지 한다. 시대를 잘못만나 그렇지 요즘 같은 세상을 만났더라면 멋진 로비스트로서 크게 한몫 당당히 해내며 일을 내도 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재능이 치마 속 감춰진 부분에만 국한했던 것이라면 물론 어우동 쯤으로 항간의 흥밋거리나 될 뿐 재미없었을 것이다. 허나 그는 우리 문학사에 유유자적 만만히 그 흔적을 들어내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글을 쓴 저자 문화영도 아마 그 점을 높이 사서 이 정도라면 선계에서 노니는 신선들의 지상 왕림 행차라고 할만도 하리라 생각했나 보다. 그러나 저자의 수련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종의 배 아픔과도 같은 빈정댐의 일환인지 마치 하느님이나 부처님 앞마당에서 노니는 듯 자신을 그리 신성시 하는 것에 대해서는 책을 다 읽고 나니 더욱 납득이 가지 않음을 어쩌랴. 이 책에 드러남으로 봐서는 저자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음은 과연 나의 명상의 명자도 모르는 수련에 무지함의 극치의 발로 때문일 것인가?

세엣, 나는 아직 책 고르기에 능숙하지 못하다 

연구원 수련 동안은 지정 목록이 있어서 참 편했고 좋았다. 좋은 책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홀로 자신의 고독을 향해 가야하는 요즈음에는 평소에 책읽기가 잘 훈련되지 않아 그런지 아직도 대형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구입하려고 하면은 많은 사람들의 열기와 빼곡히 들어찬 책들을 보며 이내 현기증을 일으키고 돌아오고는 한다. 어떨 때는 그 수많은 책들 가운데 읽고 싶은 책들을 찾아가며 조금 살펴보다가 금방 지쳐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찬찬히 그 책에 대해 마음 편히 살펴보기가 조급한 성질 때문에 그런지 쉽지가 않고, 설령 몇 권을 살펴보다가는 마음이 편하기보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내가 과연 이 많은 책들 가운데 끼일 수 있는 나만의 책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의심이 드는가 하면 금세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책들을 보면서는 그 꼴이 마치 내 모습일 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까지 하면서 순간 기가 팍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소 편하고 수월하게 인터넷 서치를 통해서 한꺼번에 몇 권씩 구입해 놓고 한동안은 아무 고민 없이 읽는 방법을 선택하고는 하였다. 그것이 즐거운 마음으로 발품을 팔러 나갔다가 공연히 매정한 현실에 부대끼며 자신감을 상실하고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것보다 낫다고까지 생각해 버리기까지 했다. 차라리 냉정한 현실을 눈에 안 보이게 하고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볼 수 있을 거라는 기분 좋은 착각에 잠시 빠져들기도 하노라면 단순히 글쓰기 작업에 집중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욕심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인터넷을 이용한 서치도 미숙해 그런지 좀처럼 만만치도 않거니와 저자 소개나 출판사에서 주장하는 책에 대한 서평만으로는 사실 신뢰성 있는 내용을 쉽게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너무 그럴 듯하게 소개되어 있는 책들이 많아서 말이다.

네엣, 이 책의 다른 구성 다른 주장에는 의도된 억측의 몽상적 사기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구입해서 읽고 있는 특히나 이번에 읽은 이 책은 다른 책들 같지 않게 좀 특이한 형식을 취한 책이다. 어느 면은 약간 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어느 부분의 목차가 황진이와의 대화라고 또렷이 적혀 있다. 자서전들을 읽고 있던 중 평소에 관심이 있던 황진이에 대한 자전적 성격의 글인 줄 알고 선택해서 읽었는데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 난감하기도 하다. 저자가 마치 대필한 듯한 선계의 대화방식으로 글을 엮어 나가면서 저자의 주장을 담아냈으니 독특하기도 하고 무언가 언뜻 사기 당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시대를 초월한 거침없는 여성성을 불러들이고 뭇 사내들을 거친 황진이라고 하는 희대의 기생이며 문필가이기도한 역사속의 인물에 자신을 투영시키기도 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의문점을 풀어간 형식이 독특하고 흥미로운 한편, 자신의 주장으로서는 미흡할 수밖에는 없는 나름의 좀 엉뚱한 듯한 신선사상과도 같은 명상을 선전하거나, 죽은 사람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감정이입을 시켜놓고 마치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억지로 끼워 놓고는 맞는 것인 양 강요하는 구조를 끌어들인 것은 아닌가하고 자못 의아스럽기도 하다. 남다른 빼어난 이력을 가지고 그토록 글쓰기로 돈을 잘 벌었으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까지 올라 그 수입으로 교제하던 이성의 생활비를 지원할 정도로 활발한 글쓰기를 했다는 작가의 고백이 약간 의심스럽기까지 한 것은 나의 너무 지나친 고정관념에 치우친 의구심에 불과한 것일까? 하여 다시 저자에 대한 써치를 해봐도 나름 여러 권의 책을 썼고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확인까지는 할 수 없지만 나와 있는 대로라면 책의 반응도 높은 것으로 되어있으니 아이러니하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기 글에 대한 주장을 싣기보다 남을 빌어 어느 당위성만 가져오려고 하는 얄팍한 일면도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한 맛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명상학교 수선재라고 하는 홍보책자에 불과한 유인물 배포를 대하는 듯 한 자칫 노골적이고 지나친 선전물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혼돈스러움이 들기도 한다. 

명상을 통해 실제로 역사속의 인물들 가운데 선인이 된 자들을 만나고 미묘한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기라도 한 듯 글을 실었고, 어느 누구와도 명상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저자가 주장하는 명상의 높은 단계에까지 도달하게 되면 동급의 대화와 신선과도 같은 삶으로서 이 시대와 세상을 조롱하며 살 수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함이다. 마치 지상에서는 쉽게 그 해답을 찾지 못하니까 신성하고 영험한 초능력의 신비와도 같은 주장을 펴는 것으로 벅찬 감동보다는 의도된 조작이라는 염려가 들기도 한다면 내가 너무 수양이 안 되어 지나친 의심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어느 부분 저자의 잣대에 따라서 사실과는 달리 심한 굴절과 왜곡 현상이 나타날 수 있겠다 싶어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그 불가능하고 불합리하며 부도덕할 수도 있을 법한 약간의 의도된 과장의 파렴치함이라 여겨지기도 하고, 선계를 넘나드는 신성을 상황적으로 설정해 놓고 마음껏 요리해댄 느낌도 없지 않다. 따라서 글쓰기의 한 방편으로서의 시도는 유의미할지라도 이러한 방식을 선택하여 자신의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한 면들을 교묘히 회피해 나갔다고 하는 반론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 지 궁금하다. 톡 까놓고 말하자면 사이비 교주의 간증 같으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대화체를 통해 문답식으로 궁금증을 풀어내는 형식을 취하니 내용이 쉽게 읽혀 가독성과 전달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되고, 어렵지 않게 글을 끌어가는 힘은 저자의 타고난 능력으로 보인다. 또한 질문의 요지만 몇 개 간추려 살을 부치고 중간에 필요하다 싶은 부분은 상세설명을 위해 좀 더 고증학적인 자료들을 첨가해 가며 역사적 자료로 뒷받침해나간 점도 사실증명을 하는 듯 설득력을 높여 주었고 그러는 사이 쉽게 뚝딱 책 한 권이 완성된 느낌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가 주장하는 명상과 운영하고 있는 수선재의 사상을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일반 독자라고 한다면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어야 하고, 읽고 나서도 석연치 않은 구석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드니 일반 대중을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으리라.

작가가 치료의 한 방편으로 명상을 택하여 병과 고통을 치유하고 자신의 내면의 맑음을 끌어내어 선계에 비유한 것 까지는 이해가 가나, 그것을 지극히 몽환적 논리로서 마치 자신이 신선계를 넘나드는 신선인양하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기 최면적 주장을 펴는 모습은 매우 어설프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섯, 출판사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노가 치밀다

출판사의 성의 부족인지 활자가 일정하게 구도 잡히거나 배열되지 않음은 얼렁뚱땅 책을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기도 하고 어느 일면 자기들만의 잔치에 초대를 하며 독자를 아랑곳 하지 않고 지들끼리 노는 듯한 인상을 풍기게 할 만큼 여러 대다수의 일반 독자를 위한 배려가 매우 부족한 무성의한 편집이란 생각이 들어 짜증이 일 정도이다. 

본문에 따로 삽입 형식을 취한 고서 자료를 인용한 부분의 글과 지면과 색깔은 독자의 시야를 극도로 피곤하게 만들어서 여간 피로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또 고서의 자료를 있는 그대로 베끼며 상당부분의 지면을 할애했음에도 오히려 교묘히 그 자료들은 그저 참고 자료일 뿐이고 저자의 주장만이 옳은 양 활자를 구성한 의도도 얄팍한 상술로 여겨진다. 좀 더 중요한 자료는 죽이고 자신의 주장만 전면 부각 시키려는 의도가 탐탁치 않게 여겨진다.

해서 이런 식으로 책을 만드는 기획자와 만나서는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동안 읽은 책 가운데 한마디로 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법 많은 책을 쓴 저자의 사상이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저자 조사를 신중히 잘하라고 이르셨던 게로구나 하고 새삼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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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인용구절을 아직 다 못 채웠는데 자꾸 차일피일 미루게 되어 먼저 올려본다. 황진이가 남긴 시구절과 그에 대한 일화들을 옮겨보고 싶은데 꾀가 난다. 나를 강제하기 위함이다. 외출할 일이 있으니 돌아와 약속을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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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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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8.04.16 13:24:28*.67.52.204
어째.... 좀 .... 그렇네요...

이 놈의 명상 바람은 언제 좀 가시려나?

살기 어려워지면 원래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법이긴 하지만,

요즈음은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추세라서...

에고.. 한 숨만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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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4.17 20:01:45*.247.80.52
기어이 다 해냈구나. 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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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
2008.04.18 08:37:54*.180.231.71
이러니 쌍코피가 터지는 게 당연하지.

이정도 북리뷰를 쓸려면 일주일은 쏜살같이 날려야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