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5

알라딘: 이사부 이사부 이도흠 (지은이)

알라딘: 이사부



이사부  이도흠 (지은이) 2010-10-12



456쪽



책소개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의 작가 이도흠의 역사소설.

작가가 창안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은 화쟁기호학을 바탕으로 신라 중대의 사회문화, 정치, 이데올로기, 세계관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면서 신라 중대 역사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했다.

화쟁기호학이란 간단히 말해 원효의 화쟁사상을 통해 서구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통합하여 하나의 사상으로 아우른 이론.



풍류도와 신라의 역사, 사회문화를 이사부를 중심으로 한데 아우르는 소설이다.

신라 중대 사회의 기반 사상이었던 풍류도, 그 풍류도의 기반 위에 받아들여진 불교.

소설은 불교가 어떻게 신라의 사회 속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풍류도와 불교가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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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 마당: 봄-天

내물마립간을 계승한 지도자, 잇마로

옥진아씨와 시를 주고받다

산행

실직주의 젊은 군주, 김태종

사자 두 마리로 우산국을 정벌하다



두 마당: 여름-地

원종과 왕위를 놓고 다투다

조카 이차돈, 불법을 위해 몸을 사르다

풍류장군이 법흥왕과 불교를 논하다

고마나루에서 불상을 접하다

금관가야가 절로 신라가 되리라



세 마당: 가을-人

아단성에서 아리수를 바라보다

지소태후와 천년의 사랑을 하다

상대등 철부와 싸우다

지소태후와 신국을 다스리다

풍월도를 만들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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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팔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주름살이 느는 것을 서러워하기보다 동네 어귀 커다란 느티나무처럼 기품이 더해짐을 흐뭇해하고, 점점 기억력이 떨어짐을 슬퍼하기보다 먼바다처럼 생각이 더 깊어짐을 기뻐하고, 글 읽는 시간이 차츰차츰 짧아짐을 안타까워하기보다 권태로운 소처럼 적은 글로도 많은 의미를 되새김질할 수 있음을 흐뭇해하고,나이는 먹는데 더 높이 오르지 못하고 많이 갖지 못함을 안달하기보다 비보 숲처럼 낮은데 처하여 많은 이들 품을 수 있음을 즐거워하고,차츰 사람들이 멀어져감을 쓸쓸해하기보다 겨울 끄트머리에 먼길 떠나는 기러기떼처럼 함께 길을 걷는 사람 사이 정이 더 도타워짐에 거늑해지고, 사랑하고 베푼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음을 탓하기보다 바라지 않고 베풀 수 있는 사랑이 가득함에 가슴 벅차고, 많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함을 쑥스러워하기보다 한 노래를 더 원숙하게 부를 수 있음을 흥겨워할지니,세상이 정 모질고 몰강스레 두들기더라도 어두울수록 별이 맑게 반짝이듯 고통이 클수록 깨달음이 깊어짐에 기꺼워하자.  접기 - 목련엔딩



그리그리 또 그리 버티다 정녕 힘들거든, 아무리 삶이 곤고해도 기댈 언덕이 있는 한 그 삶은 의미로 빛나리니,

철없이 늙은 아내든 늙은 벗이든 찾아 술잔을 기울이거나, 늘 아름다운 저 산속 숲가에 고요히 앉아 능선과 하늘이 만들어준 여백에 쉼없이 기억을 수놓는 구름을 온몸으로 들이마시고 뱉으며 환희심으로 가득한 나를 다시... 더보기 - 목련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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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이사부! 평생을 풍류에 몸을 담고 달밤에 춤을 추듯 땅따먹기를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과 한 여인을 사랑하여 지극하게 섬긴 이다. 광개토대왕보다 더 너른 땅을 사람을 죽이지 않고 아우른 대장군이었으며, 장보고에 앞서서 동해를 다스린 해상왕이었으며, 백성과 부하들을 신바람 나서 일하고 싸우고 어울리게 하는 이상적인 한국형 지도자였으며, 신라 최고의 꽃미남이었으면서도 오로지 지소태후하고만 천년에 남을 사랑을 한 정절남(貞節男)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보름달이 떠오르면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여 몸이 우주와 일체를 이루는 풍류를 즐겼고 자신에 철저했고 자신이 믿은 바를 끝까지 밀고 갔다.



이사부는 신라의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직계 왕족이다. 그러나 왕위를 사촌 형님인 원종에게 양보하고 한평생 풍류도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간다. 스무 살에 실직주 성주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갈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사부는 야밤에 몰래 잠입하여 실직주에 쳐들어온 말갈족의 장수 마골타의 목을 베어버린다. 그리고 나머지 군사들에게는 투항할 것을 권유하고 그대로 살려 돌려보낸다. 여기서 이사부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전쟁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게 된다. 그 후 미실의 할머니인 옥진아씨를 만나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싹틔우지만 이루어지지는 못한다. 후에 이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실직주의 군주가 되어 바른 다스림을 펼친다. 서역에서 수입한 사자 두 마리로 우산국을 정벌했고 왜와의 관계를 개선시켰다. 그는 조카 지몰혜(훗날의 지소태후)를 만나 천년의 사랑을 하게 되고 이는 지소태후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소지왕계, 풍류도, 탁부의 수장인 이사부는 지증왕계, 불교, 사탁부의 수장인 법흥왕과 철저히 맞선다. 그는 법흥왕과 어떻게 대결하고 화해할 것인가. 이사부의 조카인 이차돈은 둘 사이의 대립에서 어떤 구실을 할 것인가. 불교는 풍류도와 대립하다가 어찌 신라인의 마음에 스며들어 풍류도와 한데 어울려 찬란한 신라 문화를 이루는가. 사람을 죽이지 않는 전쟁을 수행한 이사부가 어떻게 하여 광개토대왕보다 더 너른 땅을 점령하여 삼국 통일의 기초를 놓는가. 이 소설은 그 과정과 수수께끼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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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도흠 (지은이)



한양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학연구소 소장, 계간 『문학과 경계』 주간, 민교협 상임의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기호학회 회장,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지순협 대안대학 이사장 재임 중. 지은 책으로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등이 있다.

수상 : 2016년 유심작품상



최근작 : <과학기술 글쓰기>,<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교사 인문학> … 총 28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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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지은이)의 말



향가와 『삼국유사』와 풍류도를 연구하는 인문학자인 내게 신라 중대 사회, 특히 불교와 풍류도가 맞서다 하나가 되는 과정은 오랫동안 관심사이자 수수께끼였다. 화쟁기호학을 이용하여 역사적 사실이 거울처럼 반영된 텍스트인 반영상과, 프리즘처럼 상상과 무의식으로 굴절된 텍스트인 굴절상을 종합하면서 세계관과 사회문화와 역사와 주체를 아우르며 살폈다. 그러자 그 시대의 비밀들이 오십칠 년간이나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이사부를 계기로 술술 풀렸다. 그때의 황홀감은 무당에게 신이 내리고 춤꾼이 흥의 정점에 이르는 그 순간과 같으리라.

(……)

나는 인문학자다. 아직은 소설가라 하기엔 부끄럽다. 『삼국사기』를 중심으로 놓고 『삼국유사』, 『화랑세기』, 『일본서기』, 봉평비문 등 금석문과 발굴보고서를 종횡으로 연결하며 사실과 사실 사이의 추론과 상상은 허용하였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

이사부가 ‘사람을 죽이지 않고 이기는 전쟁’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꾸었다면, 나는 ‘역사적 진리’와 ‘실존적 성찰’을 종합하고 ‘악당이 없이 갈등을 형성하고 서사가 꾸며지는 소설’이라는 무모한 꿈을 꾸었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신라를 키운 영웅, 풍류도를 사랑한 大人, 대장군 이사부!

그는 몸과 우주를 하나로 아우르는 풍류랑이었다!



신라의 사회문화, 정치, 이데올로기, 세계관의 총체적 재구성!



지금껏 우리가 알던 신라 장군 이사부는 빙산의 일각!

철저한 고증에 기인한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풍류도와 대장군 이사부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광개토대왕보다 더 너른 땅을 사람을 죽이지 않고 아우른 대장군, 장보고에 앞서서 동해를 다스린 해상왕, 백성과 부하들을 신바람 나서 일하고 싸우고 어울리게 하는 이상적인 한국형 지도자, 신라 최고의 꽃미남이었으면서도 오로지 지소태후만 바라보고 천년에 남을 사랑을 한 정절남! 무엇보다 그는 내 몸 안의 신과 몸 밖의 신이 하나로 어우러져 지극한 흥(興)에 이르는 풍류랑이다!



장군 이사부를 드라마로 만나다!

저자는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를 출간한 후 주변에서 조금만 살을 붙이면 소설이 될 듯하니 『삼국유사』를 소재로 소설을 써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강원도 영상사업단장인 이상근 씨도 그중 한 사람인데, 여러 해 전부터 이사부 장군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제안을 하였다고 한다. 이에 저자는 소설은 내 직분이 아니라고 매번 거절하다가 드라마 섭외를 할 수 있도록 시놉시스라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작업을 시작했다. 이를 만들다가 저자는 차츰 이사부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려들어 갔다.



신라의 사회문화, 정치, 이데올로기, 세계관의 총체적 재구성!

소설 『이사부』는 저자가 창안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은 화쟁기호학을 바탕으로 신라 중대의 사회문화, 정치, 이데올로기, 세계관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면서 신라 중대 역사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했다. 화쟁기호학이란 간단히 말해 원효의 화쟁사상을 통해 텍스트와 사회문화적 맥락, 마르크시즘과 형식주의, 칸트의 자율적 미학과 헤겔의 타율적 미학 등 둘로 갈라져 대립하던 것을 한데 아우른 이론이다. 당대의 사회문화와 세계관, 이데올로기 등을 하나로 아울러 문학작품을 연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풍류도와 신라의 역사, 사회문화를 이사부를 중심으로 한데 아우르는 소설 『이사부』도 이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동안 알고 있었던 신라 장군 이사부가 아닌, 풍류도의 종(宗)으로서의 이사부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당시 신라인들의 삶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21세기 새로운 비전 생명과 어울림, 풍류도에서 뿌리를 찾다!

소설 『이사부』는 신라시대의 장군이자 정치가, 사상가였던 이사부에 대해 ‘울릉도를 정복한 장군’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는 독자들의 선입견을 깨고 이사부의 낯선 실체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따라 풍류도라는 사상을 기저에 깔고 있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풍류도 사상이며, 풍류도는 이사부의 세계관이자 당대 신라의 지배적 세계관이다. 또한 21세기의 새로운 비전인 생명, 생태사상과 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니, 통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생태사상, 어울림, 아우름이라는 개념의 원류가 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두르러지는 점은 어울림을 강조하는 것이다. 신라 중대 사회의 기반 사상이었던 풍류도, 그 풍류도의 기반 위에 받아들여진 불교. 소설에서는 불교가 어떻게 풍류도와 맞서다가 신라의 사회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풍류도와 불교가 자연스럽게 하나로 어우러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앞장서서 비판하고 있는 저자가 모든 생명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꾸고,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어 그 어느 때보다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는 한국사회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새로운 비전으로 한데 어울려 모두가 신명나게 살아가는 사회를 이루려는, 한국적 유토피아의 꿈을 이사부를 통해 잘 형상화하고 있다. 역사는 과거의 지혜를 통해 오늘을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다. 이사부를 통해 우리는 오늘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고 남과 북,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인간과 자연이 한데 어울리는 세상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접기



마이리뷰

   

신라 중대를 관통한 풍류랑 이사부



여기 또 하나의 역사적 인물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고증과 상상의 소설화 작업을 통해서 다가올 때, 역사소설은 재미는 물론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가치라 해서 무언가 거창할 것 같지만 의외로 소소하다. 개인적인 단상이긴 해도, 여기서 가치란 해당 인물에 대한 깊이알기로 얻게 되는 그 어떤 '뿌듯함' 같은 거다. 물론 저마다 역사적 지식의 간극 때문이라도, 이 가치는 천양지차로 나눌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역사소설은 얽히코설킨 위인들이 사건들을 펼쳐내며 우리네 인생사를 투영시킨다는 점에서 참 '교훈적'이다. 그런 교훈과 어떤 울림으로 다가온 한 권의 역사소설이 있으니 <이사부>다. 이사부? 순간 누구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울릉도 동남쪽...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그 유명한 노래가사를 생각해 본다면, 그 우산국을 정복했다는 이사부가 맞다. 그렇다. 바로 신라장군 이사부의 일대기를 그려낸 역사소설인게다. 그러면서 아직은 소설가라 하기엔 부끄럽다며 자신을 인문학자로 소개한 저자 '이도흠' 문학박사의 머리말이 이 역사소설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이사부! 평생을 풍류에 몸을 담고 달밤에 춤을 추듯 땅따먹기를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과 한 여인을 사랑하여 지극하게 섬긴 이다. 그이는 광개토대왕보다 더 너른 땅을 사람을 죽이지 않고 아우른 대장군이었으며, 장보고에 앞서서 동해를 다스린 해상왕이었으며, 백성과 부하들을 신바람 나서 일하고 싸우고 어울리게 하는 이상적인 한국형 지도자였으며, 신라 최고의 꽃미남이었으면서도 오로지 지소태후하고만 천년에 남을 사랑을 한 정절남(貞節男)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보름달이 떠오르면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여 몸이 우주와 일체를 이루는 풍류를 즐겼고 자신에 철저했고 자신이 믿은 바를 끝까지 밀고 갔다. 무엇보다도 그는 내 몸 안의 신과 밖의 신이 하나로 어우러져 지극한 흥(興)에 이르는 풍류랑이었다.



자, 그렇다면 이사부 이야기 속으로 한 번 들어가보자~



이사부는 처음부터 '이사부'로 나오질 않는다. 그는 지대로왕(지증왕)의 동생 아진종과 어머니 보옥공주에서 태어난 김상종이다. 즉, 지증왕이 큰아버지인 셈. 그런데 김이종과 김태종, 종국엔 내물마리한을 잇는 우두머리 '잇마로'라는 인물로 대변되며 그가 신라 왕권을 잇는 직계 혈통임을 강조한다. 감이 온다. 그런 걸출한 신분임에도 모든 걸 내던지며 권력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왕들을 보필하고 한 여자 지몰혜(지소태후)만을 진심으로 사랑한 신라 중기를 관통했던 초절정의 풍류남. 이런 역사적 설정이 이 소설에 지배적으로 깔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역사소설이 그러하듯이, 역사적 씨날들을 끼어 맞추듯 사건과 사고를 전개시키며 주인공 인물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이사부 스무살 시절, 신라 변방의 실직성 군주 아진종과 어머니가 말갈족의 장수 마골타에게 죽게 되면서, 이사부는 야밤에 몰래 잠입하여 마골타의 목을 베어버린다. 그리고 나머지 군사들에게는 투항할 것을 권유하고 그대로 살려 돌려보낸다. 여기서 이사부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전쟁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게 된다.



"정녕 사람을 죽이지 않고 이기는 전쟁은 불가능한 꿈일까"하는 다소 이상적인 사상이 깔리게 되고, 실직군의 군주가 된 이사부는 1대 풍월주였던 위화랑의 딸 옥진궁주와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운치있는 운우지정이 정통 멜로극을 연상시키듯 펼쳐진다. 비서격인 미해를 주조장으로 과힐부절은 장사로 승격시켜 실직성의 백성들을 위무해 7년 여간 잘 다스리고 정비해 군주다운 면모를 보인다. 이후엔 하슬라주(지금의 강릉)까지 통치하고, 그 과정에서 우산국(지금의 울릉도)을 정복시킨 설화가 재밌게 그려진다. 사자 두마리를 풀어서 사자탈을 쓰고 우혜왕을 굴복시켜 우산국을 정복한 신라장군 그 이사부였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왕위 계승 다툼이 벌어진다. 거시기가 지대로 컸다는 지대로 지증왕은 60살이 넘어서 정변을 일으켜 왕위를 거머쥔 인물이다. 그만큼 늦게나마 야심이 많은 인물인데, 내물왕계의 직계정통을 잇는 비춰마리한(소지마립간, 소지왕)계가 지증왕으로 인해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으니, 바로 방계인 지증왕이 전면에 나서고부터 지증왕계가 법흥왕(원종, 모즉지태왕), 진흥왕(심맥부지), 진평왕으로 이어지며 계속 왕위에 오르게 된다. 물론 이사부도 원종과 마찬가지로 습보 갈문왕의 후손이지만, 내물마립간의 직계인 소지마립간의 정치적 아들로 발탁된 '마복자'로 마복칠성의 수장격이었다. 그렇게 강력한 권력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사촌형 원종과의 왕위 다툼이 벌이는 과정에서 화백회의 결정에 따라서 스스로 왕권을 포기하는 대인배 기질을 보인다. 원종이 즉위한 법흥왕은 재위 7년차에 자신의 지증왕계를 성골로, 비춰마리한계를 진골로 선포하며 왕권계승의 지도를 바꾼다. 그러면서 그의 시호대로 불교에 심취해 제대로 불심를 심는데 올인. 이때 이사부의 동생 길승의 아들 이차돈이 나서서 불심을 작렬하며 순교한다. (돈의 화신 이차돈 말고..) 하지만 이사부는 풍류도를 고수하는 입장에서 법흥왕과 불교 전파 논쟁을 펼치며, 그의 외교력으로 백제 등과 화친을 맺고 금관가야의 구혜왕까지 포섭하는 활약을 펼친다. 고구려 안장대왕과 한주부인의 눈물없이 못보는 설화적 애절함까지..



신라 중대를 관통하며 시대를 풍미한 진정한 풍류랑 '이사부', 그를 만난다.



법흥왕의 장녀이자 정비 보도왕후 사이에서 낳은 지몰혜(지소태후)의 등장으로 이사부와의 멜로가 본격 펼쳐진다. 지몰혜가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영특하면서도 나름 발칙했다. 서른살 가까운 나이 차이에도 당숙인 이사부를 정인으로 삼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이게 가능한 것일까 싶지만, 저자가 언급한 여러 역사적 기록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여하튼 '이사부' 속 새로운 주인공격인 지소태후가 중반 이후 전면에 나선다. 그렇게 이사부와 평생을 같이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대왕마마의 분부대로 아비의 동생인 입종갈문왕과 혼인해서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진흥대제 진흥왕(심맥부지)이다. 또 하나는 숙흘종이고. 하지만 당숙 이사부와도 결국 통정해서 낳은 자식이 둘 있었으니, 딸 숙명과 아들 세종(의종)이다. 이 세종은 미실의 남편이기도 하다. 즉 이사부는 미실의 시아아버지로서 미실은 이사부가 한때 스치며 사랑했던 옥진궁주의 손녀이자 며느리가 된 것이다. 법흥왕이 말년에 불법에 귀화해 '법운'스님으로 법명해 죽음을 맞이하면서 7살 밖에 안 된 손자 심맥부지 진흥왕이 정권을 이양한다. 이때 모후인 지몰혜가 섭정을 하고 이사부가 보좌하는 하는 식으로 정권을 유지해간다. 상대등은 끝내 고사하고 병부령 자리만 제수받고, 국사편찬에 '거칠부'를 파진찬 직책으로 모시고 신라 재건에 박차를 가한다.



이때부터 진흥왕은 대왕다운 면모로 바뀌고 스무살이 된 재위 14년차에 아리수(지금의 한강) 일대를 경략하며, 15년차엔 백제와 전투를 벌이던 중 아끼던 장수 '비차부'가 죽자, 백제 성왕을 잡아서 목을 베는 살벌한 공을 세운다. 그리고  이듬해엔 너른 영토를 자랑코자 국경지대에 네가지 비석을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진흥왕 순수비다. 위화랑 때부터 이어져온 풍월주 모랑이 객사하자, 4대 이화랑(위화랑의 아들)이 자리를 물려받고, 이사부는 풍월도를 대표하는 관록의 최고 수장격으로 계속 버티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한마디로 최고의 어르신 같은 거?! 옥진의 손녀이자 이사부의 며느리 '미실'이 짧고도 강렬하게 등장하며 인상을 남긴다. 진흥태왕의 색공지신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그녀는 말 그대로 색기충만의 색실공. 그런 와중에 지소태후는 태자 자리에 욕심에 나서, 이사부 사이에서 낳은 숙명을 진흥제에게 바치고 둘 사이에 낳은 '정숙'을 태자로 책봉해 달라는 권력욕을 드러낸다. 왜냐? 진흥왕의 정비였던 사도왕후가 대원신통의 출신이라 그 미천함에 평생 정인이자 진골정통 이사부의 자식을 앉히고 싶었던 것. 하지만 미실의 이모이기도 한 사도왕후도 만만치 않았다. 숙명이 진흥왕 보다는 이화랑과 사통해 출궁 당하면서 사도가 뒤늦게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진평왕의 형 '동륜'이다.



진흥왕 재위 23년 562년, 이사부는 일흔이 넘긴 나이에 대가야 정벌에 나서며 16살 꽃다운 나이에 전투에 참가한 사다함의 그 용맹과 기상에 한껏 고무되며 그를 새긴다. 귀당비장 사다함이라.. 하지만 그는 바로 요절하고 말았으니 그의 나이 17살이었다. 한편 출궁당한 숙명이 이화랑과 원광과 보리를 낳고, 세종은 미실 사이에서 하종을 낳으면서 가계도가 나름 풍성해지고 이사부는 서서히 역사 뒤켠으로 물러난다. 진흥27년에 동륜을 왕태자로 책봉하지만, 몇 년 뒤 동륜이 개에 물려서 죽는 어이없는 변고가 생긴다. 그 내막에는 미실과 미생이 연루됐으니, 미실은 바로 출궁당해 풍월주 남편 세종도 물러나 둘은 촌가로 쫓겨난다. 결국 이래저래 가족사의 우환 속에서 아흔이 다 되가는 이사부, 그리고 환갑 즈음에 역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던 지소태후는 그렇게도 평생 그리던 정인 이사부 품안에서 죽고, 이사부 또한 모든 걸 내려놓고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가 인생을 갈무리한다. 바람처럼 살다가 흙으로 돌아갈지니..



이렇게 <이사부>는 그가 살았던 신라시대 중기를 대표하고 관통하는 중심자로 내세우며 그려낸 역사소설이다. 5~6세기에 걸친 신라의 변혁기가 아닌, 아직은 고구려와 백제의 위세에 눌린 상태에서 왕위 계승의 지형 변화가 시도된 지증왕때부터 법흥왕-진흥왕까지 지증왕계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며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삼국의 전투 보다는 신라 내 미묘했던 왕위 계승 문제와 불교 전파, 그리고 진흥왕의 신라제국 초석 다지기 등이 역사적 사실 위에 얹혀지고, 이사부가 그 중심에서 관여하며 나선 모양새로 그려내고 있다. 옥진궁주와 질풍노도와 같았던 애정행각과 영원불멸의 모토로 지소태후와 사랑 얘기 등이 상상으로 입혀져 가공적으로 살을 붙였다. 물론 이사부를 전체적으로 감싸고 있는 '풍류도'가 이 소설 근저에 깔려있다. 풍월도 혹은 선도(仙道)라고도 하며 고대 한국의 전통사상으로서 삼국시대 특히 신라에서 지배적 세계관으로 자리잡은 걸 중간마다 언급하며 인문역사서의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종국엔 신라 중대 사회의 기반 사상이었던 풍류도와 신라의 역사와 사회문화를 '이사부' 인물을 중심으로 한데 아우르는 역사소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소 독특한 제목의 인문역사서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를 썼던 작가 이도흠은, 역사소설 <이사부>에선 스스로 창안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은 일반인들에겐 너무 낯선 화쟁기호학(간단히 말해 원효의 화쟁사상을 통해 서구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통합하여 하나의 사상으로 아우른 이론)을 바탕으로 해 신라 중대의 사회문화, 정치, 이데올로기, 세계관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면서 신라 중대 역사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그런가, 본 역사소설은 다소 어려운 측면도 있다. 재미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때론 '이사부 평전'에 가까울 정도로 인문학적인 냄새가 곳곳에 배여있다. 센치한 척 운치를 떠는 문학적 수사 또한 서슴지 않는 등, 이야기가 다 끝난 후에도 책 말미에 부록으로 <삼국유사>, <삼국사기>, <신라본기>, <화랑세기> 등 문헌참고는 물론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화의 역사적 근거'를 제시한 장만 보더라도 이건 날림으로 쓴 게 아니라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주목받지 못한 인물의 일대기라 더욱 그러했을지도..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사부를 단순히 신라장군에 그치는 게 아닌 그 시대를 관통하며 진정한 풍류랑으로서 풍미했음을 각인시킨다. 그것이 본 역사소설의 특색이자 강점이 아닐까. 하드하면서도 한편으론 소프트한 몽롱함 속에 이사부는 그렇게 흥미롭게 그려졌으니, 다 읽고 나면 '이사부'가 매력적인 인물임을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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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강호 2013-03-2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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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불교, 정치를 말하다Buddhism and Political Theory

알라딘: 불교, 정치를 말하다




불교, 정치를 말하다   
매튜 J. 무어 (지은이),박병기,이철훈 (옮긴이)CIR(씨아이알)2020-09-21





불교의 이해 주간 11위|
Sales Point : 480 



280쪽
152*224mm
532g

--
책소개
불교는 전 세계의 수억 명이 믿는 큰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서양 정치사상가들의 불교에 대한 무관심으로 불교와 정치이론이 초점을 둔 연구물들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시민사회에서 정치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시민들은 그 정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양의 정치이론으로 제한된다면 시민들은 편향적인 시선으로 정치를 받아들이게 되는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에 책은 정치이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양의 정치이론만이 아닌, 불교라는 종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목차


서 문: 불교와 정치사상
개 관
정치이론은 무엇인가?
불교는 무엇인가?
왜 이 세 가지 요소인가?
빨리어와 산스크리트의 주석

I. 불교의 정부론
1. 정부론과 초기불교 정치이론
관련 초기 경전들
초기불교의 정부론
초기불교의 정치이론

2. 전통 불교의 정부론
󰡔마하바스투(The Mahāvastu)󰡕
상좌부불교의 경전들
전통시기 대승 불교의 경전들
전통기 금강승불교 경전들
결 론

3. 불교의 근대화, 1859년에서 1950년까지
주요 국가들의 변화 과정
결 론

II. 불교의 정치이론
4. 극복하기와 내려놓기_자아와 정치에 관한 니체와 불교의 관점
자 아
불교의 무아론
니체의 자아론
니체의 자아 Vs. 붓다의 자아
무아의 정치학

5. 동서양의 제한적 시민성 이론들
제한적 시민성 이론의 위상
불교 정치이론
서양의 제한된 시민성 전통
결론: 이것은 적절한 시민성 이론인가?

6 불교와 자연주의 윤리학, 정치
초기불교 윤리
초기불교의 메타 윤리
실용주의와 자연주의, 정치
결론: 비교 정치이론의 성과

7. 21세기 불교 정치이론
세 가지 핵심 요소
불교 정치이론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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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매튜 J. 무어 (Matthew J. Moore)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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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6년부터 캘리포니아 폴리텍 주립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된 교육 및 연구 분야는 정치이론으로서 이상 정부론, 공법(公法), 다원주의, 불교 정치사상, 비교정치학, 법철학 등이다. 주요 저서로는 Buddhism and Political Theory(Oxford University Press, 2016), Comparative Political Theory in Time and Place(Palgrave Macmillan, 2017) 등이 있다.


최근작 : <불교, 정치를 말하다> … 총 3종 (모두보기)

박병기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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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수료했다.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5년제)을 수학했고, 전주교육대학교 교수(초등교육연구원장)를 거쳐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교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종합교육연수원장을 맡고 있고, 교육부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장,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과 도덕교육 1, 2』(공저),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문광부우수학술도서)와 『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세종도서) 등이 있고, 역서로 『철학의 과업』(공역), 『도덕...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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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훈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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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원대학교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윤리교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도덕수업, 어떻게 해야 할까?』(공저),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 및 교사용 지도서, 고등학교 『통합사회』 교과서 및 교사용 지도서 등이 있다. 역서로는 『도덕철학과 도덕심리학』(공역), 『착한 사람은 행복한가』(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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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서양 정치이론과 불교 정치이론,
두 전통 간의 연계성과 차별성에 대한 이해

그동안 비교정치학 연구는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슬람 정치사상, 유교 정치사상, 아프리카 정치사상 외에도 여러 전통에 뿌리를 둔 정치사상들에 관한 수많은 논문과 단행본이 출판되었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전 세계에 수억 명이 믿는 네다섯 번째로 큰 종교이자, 아시아에 캄보디아와 부탄, 태국, 티베트 망명정부와 같이 불교 정치이론에 기반하여 조직되고 그 정체성이 규정되는 여러 나라가 있음에도, 불교와 정치이론에 초점을 둔 연구물들은 사실상 전혀 없는 실정이다.
불교 정치이론은 서구 정치이론가들이 관심을 갖는 동일한 주제들을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한 주제들에서 서양 사상가들과는 뿌리 깊은 차이를 보이며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례에서 불교의 위상을 살펴보면, 서양의 정치사상보다 더 깊이 고민되고 논쟁적이었으며, 논리적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충분히 논의하고 실제 정치적 실천과 실험을 더 많이 지속하고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해보면, 서양 이론가들은 불교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워야 할 뿐만 아니라, 불교로부터도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불교 정치이론은 서양철학의 전통 위에서 구성된 사회적 삶과 확장된 정치적 삶 일부를 설명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로 하여금 학술 논의의 장과 실제 사회적 삶에 내재된 윤리를 성찰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불교 정치사상은 단지 서양 전통에서 찾아볼 수 없는 관심에 대한 미지의 비서양 전통으로서뿐만 아니라, 모든 서양의 정치이론가들에게 풍부한 전통과 날카로운 도전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목표는 서양 정치이론가들에게 불교 정치이론의 전통을 소개하는 데 있다. 특히 두 전통 간의 중요한 연계성과 차별성에 대해 논의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또한 불교적 이상사회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불교정치이론 연구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 책은 불교에 관심이 있는 다른 학자들에게 로드맵을 제공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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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 and Political Theory Hardcover – 11 August 2016

by Moor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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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dle

$115.45







 Despite the recent upsurge of interest in comparative political theory, there has been virtually no serious examination of Buddhism by political philosophers in the past five decades. In part, this is because Buddhism is not typically seen as a school of political thought. However, as Matthew Moore argues, Buddhism simultaneously parallels and challenges many core assumptions and arguments in contemporary Western political theory. In brief, Western thinkers not only have a great deal to learn about Buddhism, they have a great deal to learn from it. To both incite and facilitate the process of Western theorists engaging with this neglected tradition, this book provides a detailed, critical reading of the key primary Buddhist texts, from the earliest recorded teachings of the Buddha through the present day. It also discusses the relevant secondary literature on Buddhism and political theory (nearly all of it from disciplines other than political theory), as well as the literatures on particular issues addressed in the argument. Moore argues that Buddhist political thought rests on three core premises--that there is no self, that politics is of very limited importance in human life, and that normative beliefs and judgments represent practical advice about how to live a certain way, rather than being obligatory commands about how all persons must act. He compares Buddhist political theory to what he sees as Western analogues--Nietzsche's similar but crucially different theory of the self, Western theories of limited citizenship from Epicurus to John Howard Yoder, and to the Western tradition of immanence theories in ethics. This will be the first comprehensive treatment of Buddhism as political theory.





Hardcover : 208 pages

Product Dimensions : 23.88 x 1.78 x 16.26 cm

Publisher : Oxford University Press USA (11 August 2016)

Language: : English

ASIN : 0190465514

Product description

Review

"Moore breaks new ground in two academic disciplines: Buddhist studies and political science, particularly in the area of political theory. Moore initiates a much-needed critical conversation between Buddhist and Western thinkers about the nature of the self, ethics, and the value of political engagement. In this way, this book breaks new ground in political theory particularly and Buddhist studies in general. Summing up: Essential." --P. O. Ingram, Pacific Lutheran University (Emeritus) "What do the ancient teachings of Buddhism have to do with politics and political theory in the twenty-first century? In this lucid and inspiring text Matthew Moore illuminates entanglements between images of the self, the ontological dimension of life, an invitational ethos, and an enlightened perspective on politics. Moving back and forth between classic teachings and contemporary theorists, Moore makes an indispensable contribution to political thought." --William E. Connolly, author of "The Fragility of Things: Self-Organizing Processes, Neoliberal Fantasies, and Democratic Activism" "A fascinating and long-overdue contribution to political theory. Moore effectively reminds us that Buddhist thought is valuable as a rich tradition in its own right, but also that it is an important and challenging conversation partner for Western political thinking. Western thinkers, he argues, have a great deal to learn not simply about Buddhist political thought, but also from Buddhist political thought. This book promises to further expand our ever-contested definition of what constitutes political theory, while offering a roadmap for those interested in engaging with this important tradition." --Farah Godrej, author of "Cosmopolitan Political Thought: Method, Practice, Discipline" "Matthew Moore's Buddhism and Political Theory is a ground-breaking contribution to the growing literature on comparative political thought that situates Buddhism centrally in scholarly debates long dominated by Western traditions. The book introduces unfamiliar readers to Buddhism and the history of Buddhist theories of government, from the earliest accounts of Buddha's teachings to 20th century practices, and from Burma to Thailand to the Tibetan government in exile. This platform allows Moore to inaugurate a critical conversation between Buddhism and Western thinkers about the nature of the self, ethics, and the value of political action that opens up a rich terrain for political theorists to explore." --Michaele L. Ferguson, author of 'Sharing Democracy'

About the Author

Matthew J. Moore is Associate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at California Polytechnic State University, San Luis Obispo.



---

Is Buddhist Political Thought Worth the Trouble?

38 Pages Posted: 2 Aug 2014

Matthew J. Moore

California State Polytechnic University, San Luis Obispo
Date Written: 2014


Abstract

Let’s start with the cynical appraisal of Buddhist political thought today. On this view, today there is no Buddhist political theory at all, merely Western political theory with a decorative veneer of Buddhism. Admittedly there was a distinctively Buddhist political theory from roughly the fourth century BCE until roughly 1850 CE, but that theory embraced absolute monarchy and was underwritten by dubious claims to occult knowledge and fanciful cosmologies that envisioned the axis around which the universe turned passing directly through the throne of whichever king was paying the astronomers. In any event, that political theory was partially destroyed and partially abandoned as a result of globalism and colonialism. Whereas in 1850 all Buddhist-majority countries were absolute monarchies, by 2000 all of them had some form of republican government or constitutional monarchy, justified more or less explicitly by reference to European models and ideals. From this cynical vantage point the invocation of Buddhist symbols and traditions is a face-saving window dressing covering over the wholesale abandonment of the Buddhist political tradition in favor of Western approaches to politics. Even if there were Buddhists today who continued to advocate the traditional Buddhist political theory, they would be laughable anachronisms. On this view, Buddhist political theory is of interest only to historians and antiquarians.




--




























불교평론 명법 홍사성 이도흠 허우성 송현주 응철 이혜숙 박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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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i Buddhist Texts : Rune E. A. Johansson : Free Download, Borrow, and Streaming : Internet Archive

Pali Buddhist Texts : Rune E. A. Johansson : Free Download, Borrow, and Streaming : Internet Archive






Pali Buddhist Textsby Rune E. A. Johansson


Publication date 1981Topics Pali Language, Sanskrit, The Dhamma Library, Pali Course, Dhamma, Buddha, Nikaya, Sutta, Theravada, Tipitaka, Tripitaka, Digha Nikaya, Majjhima Nikaya, Samyutta Nikaya, Anguttara Nikaya, Khuddaka Patha, Pali Canon, Bhikkhu, SanghaCollection opensourceLanguage English

A language drills book by Rune E. A. Johansson

Full text of "Pali Buddhist Texts" Explained to the Beginner Rune E A Johan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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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Dynamic Psychology of Early Buddhism (Scandinavian Institute of Asian Studies): Rune E.A. Johansson: 9780700701148: Amazon.com: Books











David Loy - Wikipedia

 David Loy - Wikipedia

David Loy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David Robert Loy (born 1947) is an American scholar, author and authorized teacher in the Sanbo Zen lineage of Japanese Zen Buddhism.[1][2]

Contents
1Biography
1.1Early life
1.2Zen studies
1.3Career
2Publications
3Personal life
4References
5External links


Biography[edit]

Early life[edit]

Loy was born in the Panama Canal Zone. His father was in the U.S. Navy so the family traveled a great deal. He attended Carleton College in Minnesota, and spent his junior year abroad studying philosophy at King's College London. After graduation in 1969 he moved to San Francisco and then to Hawaii where he began to practice Zen Buddhism.[1]
Zen studies[edit]

In 1971, he began practicing Zen with Yamada Koun Roshi and Robert Aitken in Hawaii.

In 1984 Loy moved to Kamakura, Japan to continue Zen practice with Yamada Koun Roshi, director of the Sanbo Kyodan.

He completed formal koan study in 1988 with Yamada Koun and received the dharma name Tetsu-un, "Wisdom Cloud".[3]

Career[edit]


Loy's main research interest is the dialogue between Buddhism and modernity, especially the social implications of Buddhist teachings. In addition to academic lectures, he offers workshops and leads meditation retreats in the U.S. and internationally.

Loy received an M.A. in Asian philosophy from the University of Hawaii in 1975, and his Ph.D. in philosophy in 1984 from the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4]

He was senior tutor in the Philosophy Department of Singapore University from 1978 to 1984.[5]

In 1990[5] Loy was appointed professor of philosophy and religion at Bunkyo University in Chigasaki, Japan until January 2006, when he accepted the Besl Family Chair of Ethics/Religion & Society, a visiting appointment with Xavier University in Cincinnati, Ohio that ended in September 2010.[4]

In June 2014 Loy received an honorary doctorate degree from Carleton College, his alma mater, for his contributions to Buddhism in the West. In April 2016 Loy returned his honorary degree to Carleton College to protest the institution's investment in fossil fuel-producing organizations.[6]

Loy offers lectures, workshops, and retreats on various topics, focusing primarily on the encounter between Buddhism and modernity: what each can learn from the other. He is especially concerned about social and ecological issues.

Publications[edit]

In addition to many scholarly papers and popular articles, Loy is the author of several books on comparative philosophy and social ethics, including:

Nonduality: A Study in Comparative Philosophy (New Haven, Conn: Yale University Press, 1988). A softcover reprint edition was published by Humanities Press in 1997. A softcover reprint edition was also published in 2019 by Wisdom Publications, with the revised title Nonduality: In Buddhism and Beyond. A German language edition (translation by Clemens Wilhelm) was published as Nondualität: Über die Natur der Wirklichkeit by Krüger, Frankfurt, in 1998. A Spanish language edition (translation by Fernando Mora and David Gonzalez Raga) was published as No dualidad by Kairos Press in 2000. Reviewed by Robert Zeuschner[7] and by Karl H. Potter.[8]


Lack and Transcendence: The Problem of Death and Life in Psychotherapy, Existentialism, and Buddhism (Atlantic Highlands, New Jersey: Humanities Press, 1996). Awarded the 1999 Frederick J. Streng Book Prize by the Society for Buddhist-Christian Studies, for best book of the year. A softcover edition was published by Humanity Books (an imprint of Prometheus Press) in 2000. (review review 2)

A Buddhist History of the West: Studies in Lack (SUNY Press, 2002).
The Great Awakening: A Buddhist Social Theory (Boston: Wisdom Publications, 2003). A Spanish language edition (translation by Vicente Merlo) was published as El Gran Despertar: Una teoria social budista by Kairos Press in 2004. A Czech translation was published as Velke Probuzeni by Eugenia Press in 2006.

The Dharma of Dragons and Daemons: Buddhist Themes in Modern Fantasy (Boston: Wisdom Publications, 2004). Co-authored with his wife Linda Goodhew. Finalist for the 2006 Mythopoeic Scholarship Award in Myth and Fantasy Studies.

Money, Sex, War, Karma: Notes for a Buddhist Revolution (Wisdom Publications, 2008). Translated and published in Spanish, Italian, French, Dutch, Korean, Thai, Japanese, and Estonian.

Awareness Bound and Unbound: Buddhist Essays (SUNY Press, 2009).
The World Is Made of Stories (Wisdom Publications, 2010).
A New Buddhist Path: Enlightenment, Evolution, and Ethics in the Modern World (Wisdom Publications, 2015).

Ecodharma: Buddhist Teachings for the Ecological Crisis (Wisdom Publications, 2019).

Nonduality focuses on the nonduality of subject and object in Buddhism, Vedanta, and Taoism, with reference to several Western thinkers including Wittgenstein and Heidegger. The main argument is that these three Asian systems may be different attempts to describe the same (or very similar) experience. The categories of Buddhism (no self, impermanence, causality, eightfold path) and Advaita Vedanta (all-Self, time and causality as maya, no path) are "mirror images" of each other. Ultimately it becomes difficult to distinguish a formless Being (Brahman) from a formless nonbeing (shunyata). Buddhism can be understood as a more phenomenological description of nonduality, while Vedanta is a more metaphysical account.

Lack and Transcendence: The Problem of Death and Life in Psychotherapy, Existentialism, and Buddhism brings the three traditions together in a synthesis receptive to the insights of each regarding the fundamental issues of life and death and death-in-life. The Buddhist denial of a substantial self implies that our basic problem is not fear of death but fear that we don't really exist. In response, we become obsessed with "reality projects" (compare Becker's "immortality projects") that often make things worse. Later chapters explore the philosophical and psychological implications.

A Buddhist History of the West is not a history of Buddhism in the West but a Buddhist perspective on the development of Western civilization. The Buddhist claim that the (sense of) self is haunted by a (sense of) lack has important historical implications, affecting the ways that (for example) freedom, progress, science, economic and political development have been understood and pursued.

The Great Awakening: A Buddhist Social Theory develops the social implications of Buddhist teachings for our understanding (and response to) collective forms of dukkha (suffering). Today the "three poisons" – greed, ill will, and delusion – have been institutionalized. There are discussions of poverty, economic development, and corporate capitalism; Buddhist perspectives on the war on terror, our criminal justice system, and the connection between Zen and war; and essays addressing technology, deep ecology, and our relationship with the biosphere.

The Dharma of Dragons and Daemons: Buddhist Themes in Modern Fantasy examines the ways that spiritual themes (for example, good and evil, sin and redemption, friendship, time, war and violence, creativity, the meaning of life, the meaning of death) are treated in some of the classics of contemporary fantasy: The Lord of the Rings, Ende's Momo, the anime of Hayao Miyazaki, Pullman's His Dark Materials, and Le Guin's Earthsea.

Money, Sex, War, Karma: Notes for a Buddhist Revolution is a series of short essays that begins with the essential teaching of the Buddha: the connection between suffering and the delusive (sense of) self, usually experienced as a sense of lack. Subsequent essays discuss the implications for the ways we understand money, fame, karma, food, sexuality and romantic love, consumerism, ecology, war, and social engagement.

Awareness Bound and Unbound: Buddhist Essays is a collection of related essays on Buddhist and comparative issues, including language, truth and deconstruction; Taoism, Christianity (Swedenborg, The Cloud of Unknowing), and postmodernism; the karma of women; violence,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war on terror.

The World Is Made of Stories is a sequence of "micro-essays" and quotations that offer a new way of understanding Buddhism and a new Buddhist understanding of the Way, consistent with what Buddhism says about the human predicament and how it can be resolved. If the self is composed of the stories one identifies with and attempts to live, karma is not what the self has but what the sense of self becomes, as we play habitual roles within stories perceived as objectively real.

A New Buddhist Path is in three parts, which address the meaning of enlightenment, the nature of evolution, and the nonduality of individual and social transformation.

Ecodharma: Buddhist Teachings for the Ecological Crisis addresses the ecological implications of Buddhist teachings for our present situation. German and Spanish translations are forthcoming.

Loy is also the editor of Healing Deconstruction: Postmodern Thought in Buddhism and Christianity (Atlanta, GA: Scholars Press, 1996), with essays by Roger Corless, Philippa Berry, Morny Joy, Robert Magliola, and David Loy; and 


the co-editor (with John Stanley and Gyurme Dorje) of A Buddhist Response to the Climate Emergency (Wisdom Publications, 2009), which includes contributions by the 14th Dalai LamaThich Nhat Hanh, the 17th KarmapaRobert AitkenJoanna MacyBhikkhu BodhiJoseph GoldsteinMatthieu Ricard, Lin Jensen, and many others.

Loy appears in the 2003 documentary Flight From Death, a film that investigates the relationship of human violence to fear of death, as related to subconscious influences. He also appears in two documentary films by the Planetary Collective: "Overview" and "Planetary."

Personal life[edit]

He is married to Linda Goodhew, formerly an associate professor of English literature at Gakushuin University in Tokyo, Japan, and co-author of "The Dharma of Dragons and Daemons." They live near Boulder, Colorado, and have one son, Mark Loy Goodhew.


References[edit]

  1. Jump up to:a b "Lack and Liberation in Self and Society An Interview with David Loy".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07-10-07. Retrieved 2007-10-22.
  2. ^ David Loy Interview Archived 2011-04-13 at the Wayback Machine - Sweeping Zen
  3. ^ "Lack and Liberation in Self and Society: An Interview with David Loy".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07-10-07. Retrieved 2007-10-22.
  4. Jump up to:a b "Previous Besl Family Chair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10-11-02. Retrieved 2010-10-28.
  5. Jump up to:a b David Loy webpage
  6. ^ Weyhe, Philip. "International lecturer returns honorary Carleton degree in protest of fossil fuel investments". Retrieved 2016-06-28.
  7. ^ Review author[s]: Robert B. Zeuschner. Buddhist-Christian Studies, Vol. 10, 1990 (1990), pp. 300-302. doi:10.2307/1390225
  8. ^ Review author[s]: Karl H. Potter. Philosophy and Phenomenological Research, Vol. 51, No. 3 (Sep., 1991), pp. 733-735 doi:10.2307/2107905.
External links[edit]
David Loy Organisation

붓다는 현대과학 문제 어찌 풀까 : 뉴스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모바일

붓다는 현대과학 문제 어찌 풀까 : 뉴스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모바일

불교의 핵심 진리인 중도(中道)를 통해 현대 과학문명이 야기한 문제점들을 극복할 가치를 모색하는 포럼이 열린다

조현 기자

등록 2019-10-08



불교의 핵심 진리인 중도(中道)를 통해 현대 과학문명이 야기한 문제점들을 극복할 가치를 모색하는 포럼이 열린다.



 (사)고요한소리(공동대표·하주락,변영섭)가 오는 12일 오후1시30분부터 오후6시까지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중도와 과학-이 시대의 가치’를 주제로 한 ‘중도포럼’이다.



 이 포럼을 여는 <고요한 소리>는 회주 활성 스님이 1987년 창립해 근본불교를 중심으로 불교철학, 심리학, 수행법 등 실생활과 연관된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간행물을 꾸준히 내 불교계에 소리 없이 큰 파문을 확산시킨 불법 홍포의 주역이다. 중도포럼은 <고요한 소리> 간행 30돌을 맞은 2017년부터 매년 한차례씩 열고 있다.



 이번 포럼에서는 활성 스님이 ‘과학과 불법(佛法)의 융합’을 주제로 발제법문을 하고, 상도선원장 미산 스님을 좌장으로 해 세 전문가의 발표와 종합토론이 이어진다.



 <고요한 소리>에서 30년간 봉사를 해온 공동대표인 변영섭 전 문화재청장은

 “오늘날 현실과 가상이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변혁기를 맞아 “‘인공지능’(AI)와 로봇이 일상화하고, 유전자 편집 기술로 생명체를 개조할 수 있는 미래는 기대와 함께 우려를 낳고 있다”면서 

“과연 21세기에 과학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인류가 진정 사람다운 사람살이를 할 수 있도록 향상하는 길은 무엇인지, 인류가 새롭고 큰 눈을 뜰 수는 없는 것인지, 질문을 던져보는 계기를 주는 포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는 ‘불교의 중도 개념과 현대과학 사상’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중도 개념을 현대과학의 공간 개념 발전과정과 연관해 논의하고,

다시 일체개공의 의미를 현대과학의 물질 개념과 연관해 살펴본 뒤 불교의 무아개념을 현대과학의 온생명 이론을 바탕으로 재해석한다.



 또 이경민 경북대 의대교수는 ‘뇌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기억이나 감정 등 뇌 기능을 제어하는 기술까지도 개발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가치,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뇌 과학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과학자의 입장에서 살펴본다.



이와 함께 미산 스님은 ‘중도, 실천이 먼저다:팔정도와 명상과학을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에 대해 발표한다. 미산 스님은 팔정도의 중도 실천이 어떻게 인공지능 시대에 적합한 사회적 가치 실현의 열쇠가 될 수 있는 지를 명상과학의 입장에서 고찰하게 된다.



 초전법륜경은 중도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여래가 깨달은 ‘중(中)의 걸음(中道)’, 눈을 밝히고 앎을 밝히는 것, 고요로, 수승한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나아가는 그 치우침 없는 걸음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성스러운 여덟가지 요소의 길’(聖八正道)이다.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이다.”





원문보기:

http://m.hani.co.kr/arti/well/news/940923.html#csidx418e5335444b377a21bb5a610ab125c

2020/10/14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 중앙일보

[박정호의 문화난장]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 중앙일보


[중앙일보] 입력 2020.09.03
기자

박정호 기자 사진박정호 기자

이사야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선지자다. 그의 예언을 적은 ‘이사야’ 53장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음을 당한 메시아 예수를 노래한다. 다음은 ‘이사야’ 53장 5절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흔히 ‘고난받는 종의 노래’로 불리는 대목이다.

청파교회 목사의 반성문
“건물 중심 신앙 돌아봐야”
로마 전염병 물리친 신앙
사랑·희생정신 회복해야

서울 청파교회 김기석(64) 담임목사는 이 구절을 인류 역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꼽는다. 위기의 시대, 인생의 숭고함과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준다는 이유에서다. 이 노래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에 탄생했다. 바빌론 유수(幽囚) 때다. 기원전 587년 유대인이 신바빌로니아 제국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후 50년 기간을 가리킨다. 팝그룹 보니엠의 히트송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도 떠오른다.

할리우드 스타 멜 깁슨이 연출한 종교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의 한 장면. 인류의 죄를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12시간을 다뤘다. [중앙포토]

김 목사를 갑자기 불러낸 것은 코로나19 때문이다. 지난 7월 초순 유튜브에 공개된 그의 ‘코로나 시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설교 영상이 화제다. 조회 수 65만을 넘어섰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의 소임을 말하고 있다. 특히 제2차 대감염의 큰 원인으로 지목된 일부 교회의 대면 예배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김 목사는 우리는 지금까지 건물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반성한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가 된다. 예배 공간이 무너졌어도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할 수 있다고 권한다. “대면 예배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너 교회에 왜 안 왔어’ 하실 리가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가 곧 예배의 자리”라고 말한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김 목사는 바빌론 포로 중 한 명인 다니엘을 예로 든다. 다니엘은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멀어졌지만 바빌론 다락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난 창문에 앞에 엎드려 하루 세 번씩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주어진 삶의 형편에 맞게 자기 정체성을 지켰다.

김 목사에 따르면 코로나19는 우리가 우리에게 벌을 내린 것이다. 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잘 믿고 잘 사는 법을 보여주었다. 이 위기를 극복할 능력도 주었다. 그것은 희생과 사랑의 예수 본연의 정신을 회복하는 데 있다. 자연을 망치고, 욕망만을 키워온 우리의 방만한 생활양식을 혁명적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

지난달 30일 김 목사의 온라인 주일 설교는 더욱 구체적이다. “교회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현장 예배를 드리지 못해서가 아니라, 예수 정신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위험에 빠뜨리면서 예배 현장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또 그것을 참믿음으로 포장하는 이들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아픔과 상처를 당신으로 온몸으로 받아 안으셨습니다.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 마음을 잃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절절한 신앙고백이다. 김 목사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내자”고 했다. 종교학자 로드니 스타크의 『기독교의 발흥』을 인용했다. 서기 165년과 251년 두 차례 역병이 로마를 흔들었는데, 이때 기독교인은 다른 종교인과 달리 아픈 자를 돌보고, 목숨마저 내놓는 사랑과 선행을 펼쳤다. 변방에서 출발한 기독교가 세계적 종교로 발돋움한 역사적 배경이다. 신학자 톰 라이트도 『하나님과 팬데믹』에서 로마 전염병에 대처한 기독교인의 전통이 계속돼 이후에도 가난한 이를 위한 병원과 호스피스가 세워졌다고 적시했다.

김 목사는 문학에 밝은 이 시대 영성가로 꼽힌다. 지난 30일 설교에서 함민복 시인의 ‘말랑말랑한 힘’을 들려주었다. ‘배가 흔들릴수록 깊이 박히는 닻, 배가 흔들릴수록 꽉 잡아주는 닻밥’이다. 김 목사에게 닻은 물론 하나님이다. “교회의 잔해를 바라보는 것 같은 나날입니다. 아프고 쓰립니다. 지배와 억압의 로마제국에 살면서도 섬김과 나눔과 돌봄을 통한 평화를 꿈꾸었던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어컨의 ‘동굴의 우상’이 있다. 일부를 보고 전체를 평가하는 오류를 경계했다. 한국 교회를 ‘공공의 적’으로 내모는 것도 문제지만 기독교인의 자성 또한 절박한 요즘이다. 한국 종교인 2150만 명 가운데 절반 가까운 967만 명이 개신교인 아닌가. (2018년 문화체육부 조사) 이번 주말엔 당국과 교회의 부질없는 충돌을 보고 싶지 않다.

박정호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박정호의 문화난장]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Please call me by my true names - Plum village song (lyrics + song meaning)

[이충걸의 세시반] 왜 이성은 감정을 이기지 못할까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이충걸의 세시반] 왜 이성은 감정을 이기지 못할까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왜 이성은 감정을 이기지 못할까

등록 :2020-09-13 17:20수정 :2020-09-14 02:38


스무살 청년이 ‘이충걸의 세시반’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이충걸 ㅣ 에세이스트




다들 걱정이 커지다 못해 걱정하는 것을 걱정하는 ‘메타 근심’에 사로잡혔다. 이때 나의 불안은 보다 사적인 것이 되었다. 무감동한 것, 신세 지는 것, 거절하는 것,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 아예 귀찮아하는 것, 그 대가로 한없이 편협해지는 것. 혼자 있을 땐 부적응 메커니즘이 자꾸 움직여 내 자신에 대해 최악의 비평가가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을 보면 아예 <지옥의 묵시록> 커크 대령처럼 “공포, 공포 그 자체!”라고 읊조리게 된다.


얼마 전, 오래 알던 친구와 처음으로 불편해졌다. 그렇게 잘 꾸미고 문화적으로도 세련된 사람이 여럿 모인 자리에서 누가 봐도 명백한 가짜 뉴스를 꺼내며 분개하는데, 조심조심 골목길을 다니다가 급발진으로 전봇대를 들이박은 차를 보듯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가 그 주장의 몇가지 오류를 반박하자 그는 전혀 다른 사람 다른 얼굴로 으깨버릴 듯 나를 노려보았다. 어떤 논거를 제시해도 그는 그 망할 ‘신념’을 수정하지 않았다.

한동안 골치가 아팠다. 그가 원래 양식이 없는 사람이었는지, 편견이란 그렇게 강력한 건지, 일단 방향을 정한 생각은 저렇게까지 끈질긴 것인지. 어쩌면 놀랄 일도 아니었다. 서로의 데이터가 일반화되기에는 사고의 지점 자체가 떨어져 있는데다, 주장의 옳고 그름이란 각각의 만족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철학책을 완독한, 어떤 시스템에도 물들지 않은 대학원생에게서 완전히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았을 때, 사회적으로 추앙받는 어른이 광화문에서 성조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두가 숭상하는 이성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믿음을 뒷받침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반박하는 정보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확증 편향―비틀린 사고 형태 중 유달리 일목요연하게 정리된―은 너무 잦아서 거의 교과서에 실릴 주제 같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세상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매일 쓰는 자물쇠의 원리 하나 모른다. 밥그릇보다 자주 쓰는, 물이 가득한 도자기 볼, 손잡이를 내리면 그 안의 모든 것이 물과 함께 파이프로 빨려간 뒤 다시 하수도로 내려가는 변기의 작동 원리는 말할 것도 없다. 평생 수백만번 들었던 일반 상식, 가을 하늘이 왜 파란지도 모르면서 한번 생각이 꽂히면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는 부동산 투기에 밝은 신부, 손등에 털이 난 수녀를 상상하지 않는다. 고정관념이란 개인의 경험과 집단의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지고, 우연과 상황의 필터 속에서 합의되는 것. 누가 어느 모임에서 “방송국 피디는 다 속물”이라고 비난했다 치자. 스스로 뚜렷한 사회 공개념을 가진 피디가 거기 앉았다면 그 비난으로부터 모든 피디를 엄호할 것이다. 만약 차선을 다투던 상대가 학교 선배였다는 걸 알면 당장 적대감을 철회할 것이다. 판단의 농도는 그렇게 개인의 이해에 달려 있으니까.

사실 작동법을 모르고 변기 물을 내리는 것과,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특정 법안에 찬성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어떤 사안에 대한 누군가의 관점에 뚜렷한 근거가 없다면 그것에 동의하는 사람의 의견 또한 근거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입증할 수 없는 논리라 해도 지지자가 생기는 순간 기세등등해진다. 숫자는 무기가 되니까. 문제는,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깊은 이해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자기 믿음을 격려해주는 정보 앞에서만 분출하는 도파민의 기쁨! 결국 세상에는 두 종류의 갈등만 남았다. 나의 이해와 관련된 갈등, 전혀 무관한 죽기 살기 갈등.

나라 전체가 누구도 운영하지 않는 방대한 실험실에 던져졌으나 어떤 자료 어떤 문헌도 처음 겪는 불안을 없애주지 않는다. 더 불안한 것은 스마트한 줄 알았던 지식인들이 역병의 잠식 속에서 반쯤 잊힌 사냥개, 도깨비 가발을 쓴 유령, 사상을 매춘하는 복화술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들은 멍청함으로 말을, 제스처로 언어를 삼았다”. 왜냐하면 이성이란 지성의 열매가 아니라 직립보행이나 세가지 색깔을 식별하는 것처럼 진화의 생리적 특징이라서 이성을 되찾고 싶다면 우리가 원숭이로 출발한 아프리카 사바나로 가야 할 것이다. 자연도태가 따라잡기에는 환경이 기절초풍 속도로 변하고는 있지만.

아무리 책을 읽어도 타인들의 이성이 어디서 끝나는지, 나의 이해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건, 사람들은 새로운 도구를 발명하는 동시에 새로운 무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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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이충걸의 세시반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61940.html?fbclid=IwAR0B8eJifgDecDPNhls9rTCFcF7beWcUOyYNxiRFXzBJ7ryq_Fm8ZwWVflA#csidx4fa766cc629837cbfa9d975f3ed16e1

자비명상 개발해 상처 난 마음 찾아가는 ‘힐링멘토’ 마가 스님:매일종교신문

자비명상 개발해 상처 난 마음 찾아가는 ‘힐링멘토’ 마가 스님:매일종교신문


자비명상 개발해 상처 난 마음 찾아가는 ‘힐링멘토’ 마가 스님
오늘 내가 뿌린 씨앗이 미래의 열매…자비명상은 ‘善業 쌓는 법’ 깨닫는 수행”

기사입력: 2020/02/06

문윤홍 대기자

오늘 내가 뿌린 씨앗이 미래의 열매…자비명상은 ‘善業 쌓는 법’ 깨닫는 수행”

스무 살의 청년은 1년간 모은 수면제를 열 알, 스무 알씩 입안에 털어 넣었다. 오대산의 아름다운 설경(雪景)이 가물가물해지며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내가 자살하면 아버지가 평생 후회하면서 살겠지’하고 아버지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하기 위해 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일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죽어가는 청년을 발견해 월정사로 옮긴 한 스님이 3일 만에 깨어난 그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네는 부처님 가피로 다시 태어났으니, 여생은 부처님에게 바치게나.”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 고단한 삶에 지친 대중이 그를 찾는다. 그가 쓴 『알고 보면 괜찮은』이라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가 중앙대에서 강의한 ‘내 마음 바로보기’(3학점)는 ‘1초 마감’으로도 유명하다. 수강 신청 시작과 함께 곧바로 마감되기 때문이다. 그가 설파하는 ‘자비 명상’은 미움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하나의 힐링(healing) 창구로 자리매김했다. 마가 스님에 관한 이야기다.



‘국민 힐링멘토’로 통하는 마가 스님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석가모니 부처님의 첫 설법의 말씀대로 우리는 각자 존귀한 존재이다. 그 존귀한 각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을 안고 육도를 건너야 하는 고단한 존재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그 고단한 삶 속에 살고 있다. 그나마 우리에겐 부처님이 일러주신 ‘길’이 있어 ‘지금 이 순간’을 또 맞이한다.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이 지금 이 순간의 인연을 짓는 것으로, 마음 하나하나가 서로 무관하지 않다. 그 연기(緣起)에 일찍이 눈뜨고 대중의 마음을 살펴온 이가 있다. 시대의 화두가 되어버린, 아니 이제는 화두라고 할 것도 아닌 ‘힐링’을 일찍이 부처님의 글자로 시작한 사람이다. ‘자비명상’이라는 수행법으로 대중의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고, 그 마음에 불법(佛法)을 심고 있는 (사)자비명상 대표 마가 스님이다. 마가 스님은 혜민·법륜 스님 등과 함께 이 시대의 힐링멘토로 꼽힌다.


‘자비명상’의 탄생



2005년 7월1일, 장맛비가 내리는 충남 공주 마곡사에 28명의 대중이 모였다. 모두 아픈 사람들이다. 마음이 아픈 이들이다. 그들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부처님을 찾았다. 그들을 맞은 이는 당시 마곡사 포교국장 마가 스님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이제 마가 스님에게 달렸다.



연화당에 모여 앉은 참가자들에게 마가 스님은 각자의 이름을 새로 지어보라고 했다. ‘물망초’, ‘무념무상’, ‘허공’ 등 참가자들은 새로 지은 이름으로 이름표를 고쳐 달았다. 그 이름 속에는 많은 사연들이 담겨있었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스님은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었고, 이름 하나로 그들은 새롭게 태어났다.



저녁 예불을 마친 뒤에 스님은 법당에 마주 앉은 참가자들을 두 줄로 눕힌 후 ‘김밥말기’를 제안한다. 적막이 흐른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의 몸 위를 구르는 것이다. 스님의 재촉에 참가자들은 서로의 몸 위를 구르기 시작한다. ‘상처 없는’ 상처를 안고 온 이들, 서로의 상처 위를 구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참가자들의 눈빛은 분명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리자 스님은 참가자들을 절 밖으로 내보낸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절 근처를 걷게 했다. 한 사람은 눈을 감고 상대방의 손에 의지해 걸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마가 스님의 ‘이심(以心)’은 무엇이고, 길을 걷는 참가자들의 ‘전심(傳心)’은 무엇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그 짤막한 길이 결코 짧지 않은 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지난날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는 것, 1초 1초가 가볍지 않은 일이다. 산책을 끝으로 첫째 날의 일정인 ‘마음 열기’가 마무리됐다.



새벽 3시, 새벽예불이다. 그리고 108배(拜)를 한다. 참가자들은 잠이 채 가시지 않은 몸으로 예불을 올리고, 집전하는 스님의 죽비에 맞춰 절을 시작했다. 누구를 위한 절이며 무엇을 위한 절인가.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1배 또 1배, 문 밖 어둠처럼 1배, 1배는 그저 어둠일 뿐이다. 하지만 잠시 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쁜 숨과 숨 사이에 ‘나’가 서서히 들어서기 시작한다. 상처와 관련된 시간들이 거친 호흡을 타고 들락거린다. 이제 절은 각자의 몫이다. 참회의 시간, 용서의 시간, 성찰의 시간이다. 미움, 원망, 그리움, 안타까움 등 번뇌들이 몰려온다.



아침 식사 후 ‘가족 긍정 명상’이 이어진다. 가족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역시 시간이 흐르자 참가자들은 많은 감정들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미움과 용서, 원망과 사랑이 교차한다. 마침내 눈물이 터져 나온다. 참가자들은 맨발로 젖은 산길을 걷는다. 상처가 각자의 몫이듯 길은 각자의 것이다. 치유를 향해 걷고 있다.



저녁 공양 후 참가자들은 노래에 맞춰 온갖 몸짓으로 망가진다. 마음껏 망가진 ‘나’를 통해 ‘상처’는 또 한 번 출렁인다. 그 출렁임으로 각자는 어딘가에 가 닿고 있는 듯했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난 후 이제 ‘유서’를 쓰는 시간이다. 20분 후에 죽는다는 가정 아래 참가자들은 유서를 써야 한다. 그동안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상처’는 얼마나 큰 것이었던가. 얼마나 단단한 것이었던가. 하지만 죽음 앞에서 마주한 그 상처들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유서를 써내려가던 참가자들은 하나 둘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눈물 속엔 용서와 화해, 믿음과 사랑, 참회와 새로운 서원이 들어있었다. ‘물망초’ ‘무념무상’ ‘허공’ 그들은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마지막 셋째 날 일정은 ‘다시 일상으로’이다. 지금의 생(生)은 지나온 생의 인과(因果)에서 온 것이며, 다음 생 역시 지금의 인과에서 비롯될 것이다. 어제 죽음을 체험함으로써 참가자들은 지난 생을 기억할 수 있고, 지난 생을 기억할 수 있는 덕택에 새로운 오늘과 내일을 생각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보게 된 참가자들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의 존재인 ‘나’를 깨닫는다. 각자는 존귀하고, 내가 존귀한 만큼 모두가 존귀함을 깨닫는다. 이제 모두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은 참가자들은 서로에게 3배를 올린다. 그리고 존경과 자비의 마음으로 서로를 안아준다. 2005년 마곡사에서 진행된 ‘마가 스님의 자비명상 템플스테이’ 장면들이다. 마가 스님의 ‘자비명상’은 그렇게 해서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출가, 그리고 願力…마곡사 인연으로 ‘자비명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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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스님은 스무 살 때 평창 월정사로 출가했다. 스무 살의 청년은 삶에 미련이 없었다. 그 뿌리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었다. 스님은 일찍부터 아버지와 멀었다. 힘겹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자아를 가지기 시작한 청년은 삶보다는 죽음 쪽으로 기울었다. 스님은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제일 먼 곳이라고 생각한 강원도 오대산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삶을 버렸다. 하지만 청년은 삶을 떠나지 못했다. 약을 먹고 쓰러져 있는 청년을 월정사 노(老)스님이 발견해 살렸다. 청년은 바로 그 자리에서 출가했다.



청년은 월정사를 나와 합천 해인사, 부산 범어사를 거쳐 서울 도선사에 바랑을 풀었다. 그리고 현성 스님을 은사로 모셨다. 군복무를 마치고 도선사로 돌아와 계(戒)를 받은 마가 스님은 속리산 복천암을 시작으로 문경 봉암사, 부산 해운정사, 예산 수덕사, 정혜사 등에서 다섯 철을 난다. 하지만 특별한 ‘소식’은 없었다.



선방생활에 지친 스님은 도반들과 함께 인도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출가한 지 10년째였다. 성지순례는 원만하지 못했다. 서로 뜻이 맞지 않은 도반들은 각자 순례의 길을 나서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에 홀로 남은 마가 스님은 일주일 동안 게스트하우스 밖으로 나서지 못했다.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스님은 일주일 동안 홀로 있으면서 자신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는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살고 싶어 발버둥치는 ‘나’를 보았다. 그 순간 환해지더라”고 했다. 스님은 다섯 철 안거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공부를 일주일 동안 인도의 게스트하우스 작은 방에서 경험했다. 작은 ‘소식’이었을까. 가슴이 뛰었다. 출가자로서 처음으로 무언가와 만난 스님은 점검과 지도를 위해 스승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귀국한 스님은 제방의 어른스님을 찾아 나섰고, 마침내 곡성 태안사에서 청화 스님(1924~2003, 이 시대 대표적 수행승)을 만났다. “자네는 출가 전에 어떻게 살았나?”



그 순간 스님은 숨이 탁 막혔다. 큰스님의 물음에는 큰 가르침이 들어있었다. 스님은 큰스님의 질문을 받자마자 출가전의 삶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다시 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그 안에는 다시 ‘아버지’가 있었다. 이름과 옷만 바뀌었지 아직도 지난날을 끝내지 못한 것이다.



어느 날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 고맙습니다. 청화 스님 고맙습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라고 가슴 속에서 말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일주일을 울었다.



스님이 청화 스님 곁에서 머문 지 한 달 반이 지났을 때였다. 스님은 마음속에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걷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청화 스님은 “이제 자네는 됐네. 그 마음으로 세상에 나가서 원 없이 보살행을 하게”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마가 스님은 세상에서 대중과 나눌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못난 놈을 부처님이 받아주시고, 많은 시주은혜들이 있어 이 자리까지 왔다. 그 은혜 다 갚지 못하고 간다면 큰 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생에 밥값 다하고 가겠다”고 발원했다.



마가 스님의 ‘자비명상’은 본인의 삶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경험한 아픔과 그 아픔에서 벗어난 경험이 녹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수행은 이론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의 응어리를 푸는 작업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사)자비명상 대표 마가 스님





자비명상’의 태동… 중앙대 교양과목으로 채택


2002년 마가 스님은 어머니의 병환 소식을 듣고 어머니를 찾는다. 노모는 불편한 몸으로 머리를 깎고 찾아온 아들을 위해 밥을 짓는다. 밥상을 받은 아들의 눈에서는 끝없이 눈물이 흐른다. 스님은 출가하고 난 후 처음으로 ‘주지’에 대한 생각을 품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곡사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소임 대중이 필요했던 마곡사가 구인(求人)공고를 냈다. 2년 동안 소임을 맡아주면 사찰을 주겠다는 조건도 있었다. 스님은 마곡사로 달려갔다. 마가 스님의 ‘자비명상’은 스님이 마곡사 대중이 되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일과가 너무 무료했다. 그래서 법공양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마곡사를 찾은 대중에게 법구경(法句經)의 한 구절씩을 적어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자비명상의 시작은 바로 그 법구경에서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다. 법구경 한 구절에서 감화를 받은 사람들이 다시 마곡사를 찾았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데리고 오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은 ‘무리’가 되었고, ‘자리’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처음엔 차(茶)자리를 만들어 함께 했고 새벽예불체험, 범종타종체험 등 작은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다. 자비명상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스님은 모여드는 사람들을 모아서 템플스테이를 시작했다. 찾아오고 머물다보니 템플스테이가 된 것이다. 스님은 그때부터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살아온 삶으로 대중의 마음을 읽기 시작했다.



‘이혼자를 위한 템플스테이’, ‘실직자를 위한 템플스테이’, ‘60대를 위한 템플스테이’ 등 마가 스님의 템플스테이는 하루하루 진화했다. 바로 그때였다. 2004년 마가 스님의 이름이 산문(山門) 밖으로 알려지게 됐다. 중앙대학교 관계자가 마가 스님의 템플스테이를 보고 교양 선택과목으로 채택한 것이다. 종립대학도 아닌 일반대학에서 3학점짜리 정규과목으로 채택한 것이다. 교과제목은 ‘내 마음 바로 보기’이다. 자비명상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스님은 자비명상으로 하고 싶었지만 학교 측에서 종교적이라는 의견 때문에 이름을 바꾸었다. 만약 학교 측에서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면 자비명상의 탄생은 좀 더 앞당겨졌을 것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정원 150명의 수강신청이 10분 만에 마감됐다. 지원자가 많아 야간 강좌까지 개설됐다. 정원 150명으로 시작된 강의는 9년 후에 1500명으로 늘어났다. 스님 7명이 투입됐다. 9년 째 강의를 마지막으로 강의는 종료됐다. 그동안 스님의 강의를 들은 학생은 약 2만 명에 달한다.



쉼 없는 프로그램 개발



마가 스님의 자비명상은 자신에 대한 자비심을 바탕으로 모든 존재에게 자비심을 확장시켜 이타적이고 평온한 마음에 이르게 한다. 또 명상과 상담의 장점을 살려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개발한 명상법이다. 삶과 어우러지며 소중한 나를 찾아가는 마음치유 명상이다. 마음을 열고, 알고, 나누는 명상으로, 화와 불안을 다스리고 건강하게 터트리는 방법과 자기 안에 깊숙이 내재된 긍정심과 자신을 사랑하는 법,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심을 기르는 법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자비명상은 이 순간 선업공덕(善業功德)을 짓고 있는지, 불선업을 짓고 있는지 알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지금 이 순간 깨어있음을 알아차리게 하는 역할과 인과법을 바르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인과를 모르고 살기 때문에 세상이 복잡해진다. 부처님의 인과법을 안다면 좀 더 조심스럽게 살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연기법의 핵심은 계를 잘 지키는 것, 그리고 수행은 지금 이 순간 선업공덕을 쌓는 것”이라고 했다.


마가 스님은 언제부턴가 이 시대의 ‘힐링 멘토’로 불리우고 있다. 2013년부터 매일 아침 인연지인들에게 ‘오늘의 명상’을 발송하고 있고, 2015년부터는 ‘53선지식을 찾아 떠나는 선재동자의 명상여행’을 이끌고 있으며, 2016년부터는 문화관광부가 인증한 ‘청소년을 위한 EGG 깨뜨림’, 2018년부터는 ‘나를 바꾸는 100일’ 수행 법회를 현성정사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2018년 1월 상처입고 지친 청춘들에게 직접 다가가기 위해 서울 노량진에서 고시와 공무원 시험을 등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쉽터 ‘마음충전소’를 열었다.



취업난 등으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이 시대 청년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공간이다. 단 하나뿐인 자신을 소중히 하고 사랑하는 방법, 자신을 아껴주는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 그리고 이를 통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의 마음을 베푸는 방법을 널리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그렇게 쉼 없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마가 스님은 또 하나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마음카드’다. 49장의 그림 카드로 구성된 ‘마음 카드’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중간 역할로서 자신의 내면 통찰에 대한 도움을 주기 위한 도구이다. 더불어 자신을 둘러싼 관계와의 조화로운 관계 형성을 위해 지혜를 주는 수단으로 제작되었다. 스님은 그밖에도 다수의 방송프로그램과 저서를 통해 힐링 멘토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 마가 스님의 베스트셀러 저서 『알고보면 괜찮은』
●내 마음을 제3자의 시선으로 보라…참으면 병이 되고, 터트리면 죄가 된다



마가 스님에게 가장 큰 아픔은 가족이었다. 스님의 아버지는 그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이웃집 아주머니와 바람이 나서 도회지에서 살림을 차렸다. 아들 없이 며느리와 살아야 했던 그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남편에게 버림받아 괴로우면서도 4남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 스님의 형제들은 우울한 집안 분위기를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가 나고 자란 전남 고흥은 동네 초등학교 소풍날이 되면 온 가족이 따라 나섰던 곳이다. 스님은 소풍날,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도시락을 준비해 놓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마을 뒷산으로 내달렸다. 주워든 소나무 가지를 들고 쭈그려 앉아 땅바닥을 헤집으며 눈물을 한 바가지씩 쏟았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자라면서 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이들에게 전이됐고, 그는 어린 시절에 아무런 이유 없이 종종 친구들을 때렸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시절 도회지에서 교육을 시키고자, 그를 광주광역시에 사는 아버지 집으로 보냈다. 그의 방황은 극으로 치달았다. 가족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에, 어머니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는 새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뒤섞여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말썽을 부리기 일쑤였다.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노란 브리지 머리를 한 누나의 뒤를 쫓아가 다니기 시작한 교회였다. 마가 스님은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고, 아버지가 이에 반대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가슴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겠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다.



그런 그가 승려가 되어서 과거 자신의 모습과 같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힐링 멘토가 되었다. 스님은 포교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자기 내면의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국인은 체면을 중시하고 인내하고 사는지라, 무언가를 마음속에 켜켜이 쌓아둔다. 썩고 곪은 것이 한계에 다다라서 아플 때가 되어서야 그 마음을 보게 된다. 토해내야 하는데 제대로 토하는 법을 모른다. 그러다보니 엉뚱하게 다른 이에게 불똥이 튀어 ‘묻지마 범죄’가 생긴다. 참으면 병이 되고, 터트리면 죄가 된다. 이런 모든 것을 알고 나면 사라진다. 대체로 막힌 가슴을 뚫기는커녕, 무엇이 가슴을 막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괴롭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는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후에도 아버지를 증오했다.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정체 모를 화 때문에 수행을 할 수가 없었다. 머리카락만 잘라냈지 마음속의 화를 자르지 못한 것이다. 가슴을 옥죄는 정체인 ‘아버지’를 인정하고, 토해낸 다음에야 자비로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스님의 말에 따르면, 지금 내가 있고, 내 마음속에는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은 ‘나를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고 ‘누구는 틀리다, 누구는 맞다’고 한다. 그런 내 마음을 제3자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명상이다. 내 마음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한편으로는 재미있다. 나는 여기에 그대로 있는데, 그 마음이라는 녀석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혼자서 난리가 난다. 그런 내 마음을 한참 바라보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명상은 지금 이 순간, 깨어 있는 채로 내가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예를 들면, 김연아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서면 아나운서가 중계를 한다. “김연아 선수, 노란색 옷을 입고요. 첫 번째 점프를 성공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식으로 나의 내면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 내가 말을 하네”, “화를 내고 있네”, “걷고 있네”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그렇게 자꾸 하다 보면 지금 내가 화를 내는 것인지, 내 마음속의 무언가가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 보인다. 더 나아가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마가 스님의 화법은 여느 스님과 많이 다르다. 어려운 불경의 구절을 인용하지도, 선문답(禪問答)을 하지도 않는다. 머리를 깎지 않고 회색 법복을 두르지 않았다면, 그저 인생살이 선배와의 대화쯤으로 여겼을 터다. 그가 젊은이들의 ‘힐링멘토’가 된 것은 격식 없음이 한몫했을 것 같다. 마가 스님의 ‘마음속 응어리 풀기’를 진심으로 느끼려면 잠시 그의 인생을 엿봐야 한다. 스님은 “내가 겪어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사람들 마음속의 응어리를 잘 안다”고 했다.



▲ 마가 스님은 불교계의 최고 인기 힐링강사 중 하나다. 사진은 2013년 11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한 인도 쿠쉬나가르에서 불교성지순례자들을 명상으로 이끄는 마가 스님.





증오했던 아버지 용서하면서 세상이 자비롭게 보여





마가 스님의 명상은 ‘자비명상’이다. 마음의 상흔(傷痕)을 바로 보고, 이를 풀고, 그리고 타인에게 이를 베푸는 명상이다. 그런데 마가 스님은 승려가 된 뒤 10여 년 가까이 내면의 나를 찾지 못해 방황했다. 전남 곡성 태안사에서 아버지를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시켜달라고 명상한 어느 날, 저녁 예불을 마치고 석양이 물든 경내에서 스님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스님의 입에서 이 한마디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 말을 내뱉고 나니 그간 스님을 억누르고 있던 앙금이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시야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세상이 한없이 자비롭게 보였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내게는 선지식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살아있다는 것이 진실로 행복했다. 이는 “큰 스님(청화 스님)이 제게 보내준 따뜻한 자비의 마음 덕분이었다. 산에서 불경만 욀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 알려주고 줘버리고 가자는 생각에 세상으로 내려왔다”고 고백한다. 마가 스님의 믿음 중 하나는 내 안에 사랑과 자비가 가득하면 그 사랑이 넘쳐 상대에게 흘려간다는 것이다.



마가 스님이 개발한 자비명상은 템플스테이가 태동하기 전인 지난 2002년 공주 마곡사에서 ‘자비명상 템플스테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스님이 개발한 자비명상은 청문회, 유서 쓰기, 걷기 명상 등 여러 가지로 행해진다. 청문회는 일종의 역할극인데, 참가자들이 서로 궁금한 것들을 묻고 답하면서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요소들과 화해를 한다. 참가자들에게 유서를 쓰게 하는 이유는 죽음이 바로 자기 곁에 있다는 사실, 또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걷기 명상은 맨발로 하는데,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고 ‘지금 이 순간 깨어있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스님은 “자비명상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팔짱을 끼고 사찰을 내려가는 가족의 모습을 지켜볼 때 가슴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마가 스님의 자비명상이 우리 사회에 급속도로 전파되면서, 중앙대에서 ‘내 마음 바로 보기’ 강의를 요청했다. 지난 2003년 첫해에 150여 명이었던 수강생이 지난 2011년에는 1500명까지 늘어 스님 다섯 명이 수업을 나눠서 진행해야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수업 중에 강조한 것은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대학생은 예비 직장인이다. 오래지 않아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당사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청정한 자아(自我)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임제 스님의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했다.



●명상을 통해 흩어진 마음 다잡아야



그러면 구체적으로 명상은 어떻게 해야 할까. 스님은 명상하는 자세 등에 관해 자세히 알려준다. 먼저 힘을 빼고 목과 어깨, 팔다리를 가볍게 흔들어준다. 온몸의 힘을 빼고 자리에 앉아서 허리를 곧게 세우고 가슴을 편다. 편하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쉰다. 두 번째 숨을 쉴 때에는 눈을 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느껴본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애들이 떠들면 칠판을 두드리면서 ‘주목~’이라고 말하지 않나. 그렇게 내 마음에 ‘주목~’을 외쳐보라. 숨을 마시고 내쉴 때마다 외국에 가고, 100년 후의 미래로 향하던 마음을 붙잡아보라. 돌아다니는 그 다심(多心)을 일심(一心)으로 만드는 것이 명상의 요체다. 그렇게 명상을 하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라. 아나운서가 경기를 중계하듯이, 이 순간 내가 깨어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곧 자기를 보는 것이고, 생각의 노예에서 나를 벗어나게 한다. 명상을 통해 내재돼 있는 DNA가 드러난다. 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내 안의 응어리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밥을 먹는 순간 밥을 먹음에 깨어 있고, 공부하는 순간 공부하는 것에 깨어 있으면 삶이 달라진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참된 나임을 느낄 수 있다. 명상을 통해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봤다면, 이제는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정말 내 인생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도 마가 스님은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 한다. 불행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불교에서는 신(身)·구(口)·의(意)의 삼업(三業)을 중시한다. 지금 이 순간의 행동, 말, 생각이 과연 행복을 추구하는 목표와 맞닿아 있는가를 살펴보라. 행복한 결과를 원한다면, 그 결과만 추구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의 근간이 되는 행동과 말, 생각을 바꾸고 이를 따를 때 결과가 바뀐다”고 말했다.



부처님 말씀에 과거에 뿌린 씨앗은 현재의 나이고, 오늘 내가 뿌린 씨앗은 미래의 열매가 된다고 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나의 미래가 바뀐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막연히 미래에 행복하고 싶다는 것은 안 된다. 그래서 스님은 “불교는 삼업을 닦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저도 그것을 끝낸 뒤에야 비로소 편해졌다”고 했다.



●종교 때문에 힘들다면 그 종교를 내려놓아야



마가 스님의 법명은 다소 생소하다. 한 번 들으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그가 미얀마 선원에서 받은 산스크리트어 법명 마가(Magga)는 ‘걸림 없이 길을 가는 자’라는 뜻이다. 거침없는 그의 성격과 꼭 닮았다. 스님은 “이름을 말하면 기독교 신자들이 ‘마가복음’이 연상된다며 좋아한다”고 했다. 불가와 인연을 맺기 전에는 기독교 목회자를 꿈꾸었다고 하니, 그는 종교인으로 살 운명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교회를 다녔다.



스님은 요즘도 교회에서 배웠던 노래를 법회에 응용하고 있다. 교회에 음악이 없었다면 한국 사회에서 이 정도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불교도 하루 빨리 기독교의 음악을 벤치마킹해서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노래를 같이 부르고, 손뼉을 치는 과정에서 속에 맺힌 응어리가 많이 풀어진다는 것이다.



불교와 기독교는 공생(共生)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데 그는 종교 때문에 갈등하거나, 힘든 이들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해줄까. 스님은 “어떤 사람이 여행 중 힘든 상황에서 큰 강을 만났다. 그 강을 혼자 건너려고 하는데 마침 뗏목이 보인다. 그 뗏목에 의지해 무사히 강을 건넜다. 지혜로운 사람은 뗏목을 강가에 내려놓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에 갈 길을 간다. 그러나 우매한 사람은 뗏목이 정말 고마웠기 때문에 지고 간다. 어깨에 지고 가면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자기가 가야 할 길은 잊게 된다. 종교는 뗏목과 같은 역할을 한다. 종교를 가져서 힘들다면 종교를 갖기 이전으로 돌아가면 된다. 종교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지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내면에는 불성(佛性)이 있다고 믿는다. 종교에 너무 심취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마가 스님의 말에 따르면 종교에 심취한 광신도들을 보면 그중 90%는 자기 안의 갈등, 집안에 불만스러운 경우가 많다. 본인의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종교를 통해서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현재의 불만스런 자신의 처지에서 탈출하고자 종교에 몰입하고, 그걸 통해서 힐링을 하려고 한다. 그래선 안된다. 이런 걸 보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꼭 맞는 말이다. 그릇된 인간 행동의 원인을 찾아가면 거기엔 온전치 못한 가정이 있다. 부자로 살고 싶으면 먼저 아버지와의 관계를 풀어야 한다. 그래서 스님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고 싶으면 어머니와의 관계를 풀고,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배우자와의 관계를 먼저 풀어라. 상처를 마음속에 단단히 가두면 응어리를 풀 수가 없다. 제가 광신도 얘기를 언급했으니 본인이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은 화가 치밀 것이다. 제게 따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꼭 말하고 싶다. 그렇게 말하는 제게 옳다 그르다 하지 말고, 화가 나는 본질이 무엇인지 쳐다보라”고 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진리다



마가 스님은 가족 간의 관계, 특히 아버지와의 오랜 불화로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 하지만 그걸 승화해서 이제 불제자로서 중생 구제에 힘쓰면서 상처 난 많은 사람들의 힐링멘토가 됐다. 그는 결국 가족 간의 화목. 즉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야말로 진리라고 역설한다.



스님은 이런 비유도 했다. 개 중에도 간이 작은 치와와는 바람만 불어도 짖는다. 그러나 불도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정 불안하면 물어버리면 되니까. 내면의 힘은 그런 것이다. 껍질이 두꺼운 나무일수록 속살이 부드럽다. 적의 침투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껍질로 에워싼 것이다. 어떤 일에서 떠드는 사람은 실제로 약하기 때문에 강한 척하는 것이다. 혹시 주변에서 권위주의에 뒤덮여서, 무작정 자기 목소리 내기에 열을 내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렇게 생각하라. ‘저 사람 안에 부드러운 내면이 있을 것이다’라고. 그러면 그 사람과 소통이 될 것이다. 항상 현재 내 주변의 관계를 먼저 편하게 풀도록 하라. 증오로 30여 년을 살았던 스님이 홀가분해질 수 있었던 것은 가족과의 관계를 풀면서 부터였다고 한다.



그러면 가족 간에 화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가 스님은 아버지와 화해하는 과정에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부모의 은혜가 크고 깊음을 설명하는 불교경전)의 구절을 가슴 깊이 담았다.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메고 히말라야를 백 번, 천 번 돌아 살갗이 터지고 뼈가 부서진다 할지라도 부모의 은혜에는 미칠 수 없다’는 구절이다. 결국 아버지와의 화해를 통해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스님 자신이었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집중하지 말라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가까운, 내 가족과의 관계를 제대로 바로 세우는 것이다. 『숫타니파타』(불교의 경전집)는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아끼듯이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내라’고 했다. 마가 스님은 “제 어머니는 ‘스님’이라고 저를 부르면서도 마치 초등학생 아기를 보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에 자비를 베풀면 된다. 결국 어머니는 부처님”라고 말했다.



그러면 마가 스님은 정말 화가 안 나고 행복할까. 그는 “한없이 행복하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매일 매일이 보너스”라고 강조했다.



▲ 자비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매일 매일이 보너스라고 말하는 마가 스님





신학대학에서 공부한 마가 스님 마가 스님은 기독교계 신학대학인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를 공부했다. 길희성(吉熙星) 서강대 명예교수와 얘기를 하다가 무릎을 탁 치고 결정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길 교수는 평생 대학 강단에서 불교를 가르쳤다.



어느 날 문득 길희성 교수가 “목사들은 불교 공부를 많이 하는데 왜 스님들은 기독교 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서양 2000년의 문화는 기독교 문화가 아닌가. ‘왜 스님들이 동양에만 심취해 있어야 하나’ 싶어서 신학교 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에게 쉽사리 문을 열어주는 신학대는 없었다. 세례 교인에 한해 신학과에 입학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서다. 결국 스님은 문턱이 없는 한신대 종교문화과에서 공부했다. 마가 스님은 “신학 공부하기를 참 잘한 것 같다. 내 말년을 아름답게 만드는 초석을 다졌다”고 말했다.



스님은 오래전부터 친교를 맺어온 최일도 목사, 김영택 신부 등 이웃 종교 성직자들과 만나 함께 교도소와 고아원 등 불우시설을 방문하는 일도 이어오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이들과 함께 KTV에 출연해 ‘멘토링 토크쇼 시대공감 Q’를 진행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서로 틀리다고 하면 싸움밖에 일어날 것이 없고, 다른 점을 인정하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힐링 멘토도 아프다



‘국민 힐링멘토’로 불리는 마가 스님이지만 스님 역시 천상천하의 ‘유아독존(唯我獨尊)’이다. 스님도 아플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부처님 전에 무릎 꿇고 앉는다. 그리고 “부처님,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하고 묻는다고 한다. 스님은 “그렇게 묻는 것이 저의 위로이다. 출가자로서의 힐링은 그것뿐이다. 부처님께 묻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마가 스님의 힐링멘토는 부처님이다. 결국 부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제가 하는 모든 노력들은 이미 부처님이 주신 것들이다. 종교가 양적인 팽창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기 수행이 철저해야 다른 사람을 제도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쉬운 진리”라고 말했다.



스님은 자기 수행을 ‘너무나 쉬운 진리’라고 강조했다. 일주일 동안 눈물을 쏟아내고 난 후 가슴 속의 모든 것을 비워낸 힘겨운 시간이 있었기에 마가 스님은 대중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점점 마음을 쓸 수 없는 세상이다. 함께 사는 길이 내가 사는 길이다.



마가 스님이 전하는 화를 풀어주는 1분 명상법



1. 명상에 들어가기 전 2~3분 동안 선 자세로 힘을 빼고 목과 어깨, 팔다리를 가볍게 흔들어준다.

2. 온몸의 힘을 빼고 자리에 앉는다. 허리를 곧게 펴고 가부좌나 반가부좌로 바닥에 앉거나, 등받이에서 등을 살짝 떼고 곧은 자세로 의자에 앉는다. 눈을 지그시 감는다.

3.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느낀다. 숨이 쉬어지는 대로 가만 두고서 그저 느끼기만 한다.

4. 마음이 방황하더라도 자기를 비난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숨으로 마음을 부드럽게 돌린다.

5. 가슴 한가운데에 마음을 둔다. 마침내 마음이 조용한 연못처럼 고요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초조해하지 말고 숨에 조용히 마음을 모은다.

6. 1분이 지나면 눈을 뜨고서 눈에 들어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틈틈이 혹은 삶의 문턱을 만났을 때 이렇게 1분을 보낸다. 이 1분이 흔들리는 삶을 잡아주는 닻이 되어줄 것이다.



마가 스님은

1961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광주 금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9년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 한신대학교 종교문화학과 석사를 마쳤고, 중앙승가대학교 실천승가학 박사과정도 마쳤다. 1981년 월정사에서 출가했으며, 1982년 현성 스님을 은사로 도선사에서 정진했다. 법주사 복천암 등에서 5안거를 성만했다.

2002~2005년 마곡사 포교국장 재임 시 ‘자비명상 템플스테이’를 개발·운영했으며, 이를 현대자동차, 삼성, 우미건설, 신한은행 등에서도 진행했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중앙대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2013~2015 동국대 정각원 교법사를 지냈다. BBS불교라디오 ‘마가 스님과 함께하는 자비명상’을 비롯한 다수의 방송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알고 보면 괜찮은』, 『내 마음 바로보기』, 『내 안에서 찾는 붓다』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