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9

2011 모심으로 가는 길 김지하

피플[신동아 창간 80주년 기념 릴레이 강연 |

 ‘한국 지성에게 미래를 묻다’ ① 김지하]

모심으로 가는 길

“남성은 여성에게 큰절을 하면서 수천 년간의 죄업을 씻어라”

입력 2011.06.21 / 622호(p38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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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아’는 창간 80주년 기념으로 한국 대표 지성들의 릴레이 강연회를 마련했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2012 4월까지 1년간 계속되며 강연 내용은 신동아 지면에 실린다. 첫 회 연사는 김지하 시인이다. 김 시인의 강연회는 523일 오후 7시 반 서울 신문로 문호아트홀에서 열렸다. 강연에서 김 시인은 여성상위의 남녀평등을 강조하며 여성을 모시는 길이 후천개벽 시대에 인류가 사는 길이라고 설파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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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근 시 한 편을 먼저 인용한다.

열기(熱氣)그날 경기도 주최
세계생명문화포럼에서 호주여자
생태학의 발 플럼우드는
다섯 번을 똑같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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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지구의 대혼돈을 넘어서는 길은 단 한 가지. 인격-비인격, 생명-무생명을 막론하고 일체 존재를 다 같이 우주공동주체로 거룩하게 드높이는 모심의 문화, 모심의 생활양식으로 현대인간의 모든 생활을 철저히 변혁하는 길 그것뿐이다.

나는 그 뒤부터 어쩌면
발 플럼우드의 충실한 똘마니
어떠랴 서양의 한 젊은 여성의 뒤를 따라 동양의 한 늙은 남자가
중국이 세계에서 돈을 제일 잘 번다는 이 시기에 
도리어 철저히 따라감이 얼마나 보기 좋으냐!불교도 동학도 개벽역학도 모두 다 그 뒤다

나는 이제 한 여자의 피끓는 모심의
세계문화대혁명 주장을 따라 가다가 가다가
몇 번이나 죽을 각오가 돼있다
熱情 없이는 삶은 아예 없는 것
.

(
‘흰그늘의 산알소식과 산알의 흰그늘 노래’ p.211. 2010 7월 ‘천년의 시작’ 刊)

이 강연은 신동아가 기획한 지식인 대상의 교양강좌로서 강연자 자신의 전공에 토대를 둔 현대적 교양, 인류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혼돈, 대변혁의 시기인 현대의 동아시아·태평양 한반도의 한 개인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 도덕인 ‘모심’으로 가는 길과 그 길에서 조심할 것 몇 가지를 본인의 최근 열흘간의 일정을 통해 간략히 찾아보는 것이다.

현대 인류 최고의 도덕률

‘모심’이 무엇인가?

나는 천도교가 아닌 ‘나홀로 동학당’이다. 동학의 핵심교리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이고 그 실천윤리는 철저한 모심()이다. 그러나 모심은 단지 동학만의 윤리는 아니다. 2000년 전 나사렛 예수의 필사적인 사랑의 형식은 ‘섬김’이라는 이름의 모심이었고, 그보다 5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가 펼친 ‘나무(南無)’라는 이름의 회향(回向) 역시 모심이었다.

공자의 사단(四端)에서 인()은 의()에 앞서고 퇴계·남명의 영남학에서는 하늘로부터 인간에게 오는 성실()보다 인간이 하늘을 향해 바치는 공경()이 훨씬 중요하다.

이슬람은 아니 그런가?

이슬람 여성과 아기들은 지난 50년간의 지하운동을 통해 무하마드의 거룩한 첫 번째 메카시대 부인의 별명인 아크발라이 쇼크니아바(저 어둠 위에 참빛을!)의 한마디와 그에 대한 무하마드의 코란 제63절 하단의 기도 ‘저 어둠에 대해 진정한 존경심을 갖게 해주소서’의 둘째 마디를 끊임없이 외우는 ‘쎄벨리온()’ 운동을 통해 오늘 쎄벨리온과 똑같은 뜻을 갖는 재스민혁명의 놀라운 모심의 실천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과격한 젠더투쟁의 실패로 인해 이미 낡아빠진 남성가부장적 에코파시즘을 복권시킨 유럽 페미니즘은 오늘 도리어 그 고전적 신성성(神聖性)의 생동하는 해석방향에서 공양(供養)과 양육(養育)을 포함하는 ‘새크라리온(Sacralion)’이라는 ‘모심’을 들어올림으로써 유럽을 다시 한번 신선하게 하고 있다.

현대 유럽 최고의 영지주의자요 대안영성학교 발도르프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현대 인류 최고의 도덕률을 단 한마디로 ‘모심’으로 규정한다.

종말 뒤의 새 시대

모심!

종말적 개벽사태인 대혼돈 극복의 유일한 길을 모심으로 단정한 발 플럼우드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바로 그 모심 때문에 독거미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희생을 설명하는 ‘온난화’는 정당한 우주관인가?

지난해의 강추위나 지금의 일교차는 무엇이며 남극이 추워지고 북극이 더워지며 적도와 경도의 일치, 일본의 대지진, 화산 폭발, 쓰나미와 원전 방사능 누출과 지면침강, 미국의 토네이도와 사방에 번지는 수질오염과 해파리 등 죽지 않는 생명체의 등장, 이유 모를 심장해체로 갓난아기들이 돌발적으로 떼죽음당한 것과 며칠 전 보도된 바 제주에서 강남 가기 직전의 제비 3만마리가 한 군데 전선줄에 함께 모여 앉은 현상은 또 무엇인가?

개벽(開闢)이란 어휘 이외에 도대체 무엇으로 이 사태를 설명할 수 있는가?

그러나 짐승마저 모심을 지키는 이 현상은 또 어찌 해명해야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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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마리 제비가 모여 앉은 그 앉음새의 철저한 간격을 어찌 봐야 할 것인가? 그것은 모심의 한 형식이 아니던가?





김지하 시인의 강연회는 2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김지하 시인은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듬해 2월15일 형집행정지로 그가 석방되자 동료와 가족들이 목말을 태우며 교도소 앞을 돌고 있다.


‘매화산(梅花山).

?

‘준비하는 마음의 뜻으로!

아항!

저 기괴한 한계령과 얼마나 다른가?

공부하고 글 쓰는 시간 이외에는 며칠 동안 이 한계령과 비로봉과 매화산 이야기가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역시 모심의 비밀이겠다. 특히 내가 최근에 몰두하고 있는 ‘서기(瑞氣)의 미학’에 대한 미의식의 조건으로서의 ‘모심’과 연계된 것이다. 여기에 괴기(怪奇), 산숭해심(山崇海深)의 숭고와 심오 등이 모두 직결된다. 거기에 여성성과 모성의 현빈(玄牝)과 어린아이의 현람성(玄覽性)이 마땅히 그 기초를 이룬다. 머리에서 떠날 까닭이 없다.

이후 14, 16, 17일 이외에도 모심은 여러 형태로 나를 붙들고 있었다. 이 다음 모심에 관한 본격적인 글을 쓸 때 상세히 밝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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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를 치료해온 장병두(張炳斗) 선생이 서울에서 나를 아내와 함께 불렀다. 만나뵙자마자 대뜸 모심 이야기다.

“왜 화를 내는 거요. ?

“예.

“부인한테 왜 고분고분하지 않는 거요?

“때에 따라서 그런 일도….

“절대로 안 돼요. 부인은 큰 어른이고 선생은 아기요. 그것도 계집아이.

“그거….

“그래야 다 잘돼요! 몸도 낳고 일도 잘되고. 선생은 운이 커서 부인에게 화내기 십상인데 한번 화내면 그만큼 망해요 망해. 명심하세요.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웬일일까?

전 같으면 그 말에 화가 벌컥 났을 터인데 자꾸 웃음만 나고 화가 전혀 나질 않는다. 웬일일까? 생명이 예절을 좌우하는구나! 아하하!

이날 내 생각이 아니라 내 몸이 바로 ‘모심’을 익힌 것이다. 좌우간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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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돌아가신 이화여대 총장 김옥길(金玉吉) 선생을 생전에 나는 꼭꼭 ‘누님’이라고 불러 모셨다. 그 누님의 동상제막식 소식을 들었다.

문경새재 고사리 별장의 분수동산이었다.

아내와 함께 갔다. 200명 가까운 분이 오셨다. 김동길 교수의 주재로 기념예배가 있었다. 회식도 있었다. 많은 분이 참 친절하게 우리를 대해주었고 특히 아내에겐 얼마 전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때문인지 참으로 애틋했다.

나는 떠나도록 내내 한 가지만 생각했다.

‘지족(知足)’이라는 말이었다.

누님은 내가 원주에서 출옥한 뒤 남모르는 집안고통을 겪고 있을 때, 그중에도 아내가 말 못할 괴로움을 한껏 겪고 있을 때 고사리 별장으로 나를 부르셨다.

식사 후 누님은 분수가에 서서 곁에 있는 내게 이리 말씀하셨다.

“김 시인, 내가 저 분수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나?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내 잔이 넘치나이다.”“성경 속의…?

“음, 김 시인, 한자로는 그걸 뭐라고 하지?

“‘지족’입니다.

“그래 지족. 김 시인. 이제 지족할 수 없겠나?

“네에?

“최고의 시인, 최고의 혁명가, 최고의 사상가가 되었어. 이젠 그만 만족하라고.

“무얼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우리 영주(나의 아내) 언제 행복하게 해줄 건가?

“….

“언제 분가(分家)할 거야? 바로 지금 독립 안 하면 영주 죽어! 머리 빠지는 것 봐! 두 번이나 약 먹었잖아! 죽어. 이 사람아! 김 시인. 독립 안 하면 나 누님 안 할 거야!

벽력이었다. 누님은 그런 분이었다.

모심은 지족의 산물

나는 잔뜩 얼어서 늘 나를 위해 비워놓는 아래 뜰의 조그마한 골방 침대에 가서 누웠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꿈결에서다. 문경새재 꼭대기 신선봉에서 도적떼 애꾸눈 부자(父子) 난쟁이가 내려와 하나는 내 머리를 잡고 하나는 내 다리를 붙잡아 기운껏 위아래로 잡아당겼다. 찢어 죽이자는 거였다.

“아아악-.

소리 지르며 깨어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이 금방 들어왔다.

‘떠나라는 것이로구나!

머뭇거릴 틈도 없었다. 누님께 ‘떠난다는 것’ ‘독립한다는 것’ ‘지족한다는 것.’ 세 마디를 작은 쪽지에 써놓고 바로 일어서서 수안보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 거기서 바로 버스를 타고 전라도 광주로, 광주에서 해남으로 달렸다. 해남 작은 여관에서 원주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아이들만 데리고 내려와버려라. 차일피일하면 못 온다. 빨리! 그리고 단호하게!

마침 나의 모친은 하와이에 있었다.

이튿날 아내와 아이들이 왔고 해남 후배들을 시켜 낡은 고가(古家)를 얻기로 했다. 그 뒤로 곧 장모님과 함께 누님이 오셨다.

나를 보고 빙긋 웃고는 아무 말씀 없이 떠나셨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지족.

그렇다.

한계령은 내 마음속에 아직도 배회하는 꿈들, 야망들, 울분과 노여움들이었고 그 다음날의 비로봉은 바로 지족이었다.

아하 답은 나왔다.

모심은 지족의 산물이다. 내가 옛 꿈들, 야망들, 울분과 노여움을 다 털고 만족해야만 모두를 모시고 아내를 모시고 아기들과 여성들과 쓸쓸한 사람들과 고양이, 강아지, , , 산과 강물, 그리고 기계와 물건들. 끝내는 내 마음마저도 다 모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심은 립 서비스가 아니다! 먼저 남성 가부장제 전체의 역사적 한계에 지족해야 한다. 물론 진리 공부에 지족 따위는 아예 있을 수 없지만!

오일장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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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내가 원주에 내려간 뒤 새벽과 아침의 공부시간 이외에 가장 좋아하는 일은 세 가지. 토지문화관이 있는 회촌의 양안치(兩岸峙) 아래 오봉(五峰)에 가끔 가는 일. 원주 주변 산천들을 돌아다니며 공부하는 일, 그러고는 옛날 나 열세 살 때 목포를 떠나온 뒤 대학 때까지 내내 살았던 평원동, 봉천 냇가의 시궁창 판자촌, 그 가난뱅이 동네에 요즘 들어선 오일장에 닷새마다 꼬박꼬박 장보러 가는 일이다.

그 일이 그렇게 신나는 일이다.

나도 전에는 몰랐다.

옛 어른들은 그 오일장을 ‘희비리(喜悲離)’라고 부르셨다. ‘기쁨과 슬픔이 넘나드는 한울타리’의 뜻이다. 마치 내가 떠나온 목포의 밑바닥 뻘마당 하당(?)과 같은 희비리에서 서기 어린 백운산과 탈속한 미륵산 사이,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와서 살다간 귀래(歸來)와 원주의 대학들, 고등학교들이 밀집해 있는 흥업(興業) 사이의 토지문화관이 있는 양안치까지가 어찌 보면 나의 지난 삶 전체의 파노라마다.

바로 이 희비리 장바닥에 와 이빨 빠진 귀머거리 할머니들에게 들나물이며 고사리며 이것저것 반찬거리를 사들고 절룩절룩 집으로 돌아갈 때 나 스스로 깜짝 놀라곤 한다.

‘아! 이것이 참 모심이로구나!

여성상위의 남녀평등

그 뒤에 생각해보니 그럼 남자가 이제부터 여성 모심 뒤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달과 물과 그늘의 시대에 그 밑에 쭈그리기만 할 것인가?

바람직한 것은 ‘여성상위의 남녀평등’이다. 이 구조에서 남성이 창조해야 할 자기 일거리의 원칙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고 생각한다.

유럽의 저명한 과학철학자 라이프니츠는 그의 논문 ‘세 개의 태양에 관한 상상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바람직한 해의 기능은 앞으로 불의 추진력과 온도 중심의 Energy Bubble이 아니라 투명한 빛과 예감으로 가득 찬 Symtomm Aura로 변해야 한다.

그렇다.

동양에서는 예부터 이것을 태평성대라고 했다. ‘태양지정(太陽之政)’이다. 우리나라 고대의 천부경은 이것을 ‘태양앙명(太陽昻明)’이라 불렀고 이것을 화엄과 같은 뜻인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의 조건이라 했으며 그러한 개벽의 실행조건을 바로 ‘묘연(妙衍)’ 즉 여성과 아기의 생명, 생활 가치성, 즉 ‘달과 물과 그늘’의 생활창조의 적극성이라고 했다. 남성은 이제부터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훨씬 더 지혜롭고 훌륭해져야 한다. 버블이 아닌 아우라의 차원에서 말이다.

이 모든 나의 모심, 여성 모심이 꼭 어떤 여성 대권(大權) 지망자의 선전전 비슷하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럴 때 쓰는 한마디 시구절이 있다. 명말 중국의 한 떠돌이 중이 지은 환조판이환서면(還肇判而環瑞面). 허허허허허. 뜻은 ‘그거나 그거나가 아니다.’ 오대산 간통수(干筒水) 같다.

작자 이름은 ‘개미화(改微花)라 하는데 법명(法名) 같지 않다.

에에잇!

또 유식한 척! 헤헤헤헤헤. .제임스 러브럭은 한때 내가 존경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가이아 복수설’은 정당했는가? 북극 대피설은 온난화를 강조한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 결론 직후 북극은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원자력 대체에너지론을 편 지 몇 년이나 되었는가? 일본 원전사태에서 그리도 아득한 옛날 일인가?

스티븐 호킹의 ‘외계 도피설’은 또 어떤가? 그는 현대과학의 유럽적 상징이다. 그러나 제주 제비 떼 3만마리보다 더 나은가?

인간이 제비보다 더 모심의 능력이 없는 것인가? 제비보다 더 진화된 영성적 능력을 가졌다면 인간은 당연히 이 지구를 스스로 지키고 살려야 한다. 어디로 도피하겠다는 건가?

그 살림의 힘은 모심에 있고 모심과 살림만이 진정한 화엄개벽의 깨침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다. 그래야 종말 뒤의 새 시대를 맞는다.

전 국토의 도시화

나는 지난 46일 아침 중앙고속도로를 통해 버스 편으로 부산에 가는 도중 바로 이 ‘모심으로 가는 길’을 내내 생각했다. 똑같은 길을 그 지난해 2010년 봄 지인들과 함께 승용차로 간 일을 기억한 것이다. 무엇 때문이었나.

강원도 원주에서 경상도 청량산에 이르기까지 단 한 건의 생태파괴와 환경오염 사태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기적인가? 내가 미친 것인가? 아니면 박정희씨가 제 고향이라고 특별히 봐준 것인가? 아니라면 그가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나서인가? 도대체 그가 한 일에 천하의 욕쟁이 김지하가 이렇게 감격하는 사건이 일어나도 좋은 것인가?

길게 전문적 설명을 늘어놓지는 않겠다.

나는 박정희씨가 시작한 국토개발 이후 그 추종자들의 일관된 개발 방향을 명백히 알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당시의 중앙정보부장과 독대했을 때 그 방향에 대한 나의 질문에 단 한마디의 명쾌한 답변을 분명히 들었기 때문이다.

‘전 국토의 도시화.

물론 십승지(十勝地)가 많은 양백간(兩白間)에 동해안 쪽으로 중앙고속도로가 뚫린 것이 불과 4~5년 전 일이다. 그러니 당시는 개발이니 나발이니 따위가 아직 들어설 때가 아니었던 것도 안다.

그러나 서부 중부 남부 등 그야말로 전 국토의 너덜너덜한, 이른바 ‘도시화’니 ‘개발’이니 ‘혁신’ 따위에 진저리가 난 내 입맛 때문이었을까?

한마디로 ‘서기권풍수(瑞氣圈風水)’였다.

현대생태학에서 극히 이례적으로 모시듯 취급하는 ‘과밀초류지역(過密超留地域)’ 또는 ‘과소개활지구(過疎開豁地區)’ 요소들이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도대체 웬일인가? 나는 좀체 현상에 감동할 줄 모르는 평소와 달리 몇 번이고 차를 세웠고, 몇 차례고 무릎을 쳤다. 금방 현대생태학에서 관행적으로 쓰는 ‘모시듯 취급’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렇다! 내 마음 안에 잃어버렸던 내 조국의 산천에 대한 상서로운 모심의 기이한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가! 그 모심은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일본 여성들의 해방운동

대표적 십승지인 풍기(豊基)의 그 서늘한 소백산 바람과 아파트 따위 걸레조각이 일절 없는 민들레 벌판의 그 애틋함이 함께 노래 부르는 상서로운 감격으로부터 시작해서 영주 봉화 뒷산의 낭떠러지 초미(初眉)와 그 앞 벌판의 현불사(現佛寺), 그리고 그 날 그 길은 아니지만 역시 한 현상이라 할 양양 구룡령(九龍嶺) 아래의 미천골, 제천의 박달재를 싸고 있는 ‘천등산(天登山)’과 ‘지등산(地登山)’ ‘인등산(人登山)’의 각기 다른 기반강물들과의 기이한 풍수(風水)!

이들이 모두 다 동서양 생태학과 풍수학자들의 현장보고들을 훌쩍 뛰어넘은, 거의 기적 수준의 서기(瑞氣)였으니 모심의 대상이 아니려야 아닐 수 없었다.

이조 중·후기의 지질서인 신경준(申景濬)의 ‘산경표(山經表)’에 대강 이런 내용의 기사가 있다.

‘영주·봉화 뒷산의 낭떠러지 초미는 동해안에 첫 해가 떠오를 때 그 햇빛을 받아 바위 속의 광석들이 수많은 빛으로 반짝이며 은은한 음악을 일으키며 숨어 있던 웬 기운을 뿜어내 주변에 가득 찬 독기와 탁기들을 모조리 정화한다.

모심으로 가는 길
충북 제천의 관문인 박달재의 목조각 공원.

지금부터 10여 년 전 대구 매일신문 문화부는 전문인력을 동원해 이 기사의 진위를 엄밀히 검색한 결과 음악 사안인지 한두 가지를 빼놓고는 모두 사실과 일치함을 발견, 크게 기사화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무엇을 뜻하는가?

인간에 의한 저 너스레 많은 환경운동 따위가 아닌, 자연 스스로 자연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새롭고 진정한 생태자기치유운동의 압도적인 가능성이다. 어디 초미가 우리나라에만 있겠는가? 나는 지난해 언젠가 젊은 풍수학자 김두규 교수의 ‘조선풍수, 일본을 논하다’ 출판기념회에서 그 축하연설을 겸해 한·일 간 공동의 초미운동을 제안한 바 있다.

바로 그 초미운동을 통해 특히 일본열도의 지진, 화산과 지면 침강 경향을 원천적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자연 스스로의 자연융기 가능성을 찾으라고 강하게 제안하고, 그것이 바로 이제껏 억압당해온 일본여성들의 창조적 해방운동의 시발점이라고, 왜냐하면 일본의 유명한 여황(女皇)들인 덴무·지토 천왕들의 능혈과 똑같이 초미가 음혈(陰穴)이고 또 그 연속선상에 신라 역사가 선덕여왕을 포함한 삼대(三代)의 여왕 전통을 창조했다고 강조했으나 대답은 코웃음과 지금의 저 수만명 죽음의 난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아니나 다를까! 지금 일본의 그 동해안 마을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의 잘못인가? 그러고는 그 대답이 겨우 ‘독도는 일본땅’인가?

죽음의 바다,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엄밀한 풍수운기설(風水運氣說)에 의하면 독도는 분명 양혈(陽穴)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잘못인가? 양혈이라면 당연히 그 위에 초미운동이 배합되지 않을 때 지금 진행 중인 개벽의 첨예한 시기에 가서 몇 번이고 또 폭발할 수 있다. 독도의 폭발은 일반적인 바람과 물의 관성대로인 이른바 ‘사할린의 평화’를 여지없이 교란하고 일본의 자랑인 ‘근역성수(謹域聖水)’의 신화는 자취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래도 값싼 국토영유권 내셔널리즘밖에 갈 길이 없다고 믿는가?

반대로 초미의 음혈은 지금 ‘죽음의 바다’라고 하는 오호츠크해와 동해안과 일본해 현해탄(玄海灘)을 도리어 여름의 서늘함과 함께 겨울의 온화함을 유지하는 정역(正易)의 이른바 4000년 동안의 ‘유리(琉璃)의 세계’로 바꿀 강력한 조짐이기도 하다. 사철 해수욕은 물론이고 없어진 북어 대신 귀한 민어와 참치의 시절이 올 수도 있다.

서기(瑞氣) 아닌가! 모심은 자연스러운 솟아오름이다. 초미 앞 경건한 ‘우바이’(출가하지 않은 여성 불제자)들의 오랜 성지(聖地)인 현불사 또한 그렇다. 소의경전인 법화경(法華經)은 화엄경(華嚴經) 이전 최고의 생명의 약속이다. 이 괴질(怪疾)과 죽음의 시절에 땅 밑으로부터 솟는 거룩한 보살들이라 할 신성한 약초의 무성함을 계시받은 명말(明末) 서남부 중국의 ‘시공종(時工宗)’의 의학적 기적을 화엄경과 함께 일으킨 믿음이기도 하다. 캄보디아 정글에, 황량한 남아공(南阿共)의 밀림에, 심지어 로키와 안데스에서까지 약초 채취를 시도하는 유럽과 미국의 의료재벌들, 그 슈퍼박테리아의 참담함과 중국의 화학적 재배 복약물의 공포를 생각해보자.

오늘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의 원천지가 왜 하필이면 저 깔끔한 선비의 땅 안동인가? 독과 약의 상관은 신비에 속한다 하니 이 또한 모심의 조건이 아닌가! 그리고 이 또한 ‘우바이’들의 샘물인 법화경의 꽃 ‘종지용출품(從地湧出品)’이 상서롭게 흐르는 현불사의 존재 아닌가!

어떤가?

경상도 아첨이 너무 심한가?

천왕, 지왕, 인왕

그러면 강원도와 충청도 이야기도 한번 해볼까? 양양 구룡령 아래 깊이 감추어진 골짜기 끝의 약수구멍 ‘불바라기’의 미천골은 어떤가? 시뻘건 약수가 불치의 아랫도리 결림과 다리 저는 병 따위를 깨끗이 고친다. 전문 풍수는 이 역시 미천골이 사실은 미친골로서 음혈인 데서 발원한 기적이라고 주장한다. 어찌 생각하는가?

나는 이미 신문에 공개된 대로 정신병원에 열두 번 드나든 고질 정신질환자였다. 나를 완치시킨 것은 위대한 유럽과 위대한 중국의 술이 아니다. 백두산 천부의학을 배운 전라도 출신의 조선의술이다.

그 의술의 대강은 이렇다.

“생명도 조국도 세상도 천왕(天王)과 지왕(地王)과 인왕(人王)이 하나()로 통일돼야 건강해지고 좋아지고 해방되는데 문제는 삼왕(三王)이 다 있어도 맨 밑바닥에 있는 작대기 하나(), 즉 ‘물’, 수왕(水王)이 단단히 받쳐주지 않으면 삼왕통일(三王統一)은 불가능하다.

, 수왕은 무엇인가?

바닷물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우주생명의 비밀로서 이 힘이 물 위로 올라와야만 삼왕이 통일되는데, 마치 자라 입안에 먹이가 들어가서 오랜 세월 숨어 있다가 참으로 신묘한 힘을 가진 진국으로 변해서 밖으로 나와야 그 것이 곧 신약(神藥)이 된다.”박달재 이야기다.

박달재는 제천에서 충주로 가는 길목에 놓인 500m 높이의 고개다. 그런데 이 고개는 세 개의 산에 의지하고 있다. 800m 정도의 천등산과, 750m 정도의 지등산과, 600m 정도의 인등산이 그것인데 세 산은 거의 연속된다. 문제는 천부경처럼 천지인(天地人)의 이름을 가진 세 산이 모두 다 산 밑에 따로따로 세 개의 서로 다른 물길에 의지하고 있는 점이다. 천등산은 남한강, 지등산은 충주호, 인등산은 삼탄강을 끼고 있다. 이른바 천왕, 지왕, 인왕이 세 개의 서로 다른 수왕의 밑바닥을 얻어서 서로 연결하며 500m의 박달재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스민 혁명과 ‘촛불’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박달재의 박달나무는 단군의 나무, 바로 그 ‘단()’을 말한다. 고조선 역사에 의하면 바로 박달나무 아래에서 신시(神市)의 제사와 호혜시장 및 풍류, 화백의 모임, 바로 그 ‘모심’을 열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소수이지만 유럽과 미국의 중도혁신 경제학자들과 일본의 경제통 요사노 가오루, 교텐 도요오, 이나모리 가즈오 등은 ‘따뜻한 자본주의’ ‘착한 경제’ 또는 ‘축적순환과 장기 지속’ 그리고 ‘자비를 근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등 카알 플라니나 페르낭 브로델, 그리고 화엄경의 ‘동진부염 이생상도(同塵不染 利生常道)’ 등을 앞세워 ‘호혜, 교환, 획기적 재분배’를 추구한 옛 아시아의 신시 시스템의 현대화를 외쳐댔다. 그리고 일본 여성들은 ‘용녀(龍女)’ ‘역녀(歷女)’ 아메 요코와 같은 여성 중심의 경제사회 혁신을 들어올렸으며 미국 힐러리 그룹의 커피 파티나 유럽의 조안나 안젤리카의 ‘신의 우물’, 또는 뤼스 이리가라이의 ‘새크라리온’, 그리고 이슬람의 ‘아크발라이 쇼큐니아바(저 어둠 위에 참빛을!)’라는 이름을 가진 ‘쎄벨리온()’ 지하운동을 기초로 한 여성과 아기들의 ‘재스민 혁명’이 마치 우리나라의 2008년 ‘촛불’집회의 직접 영향을 받은 듯 거의 똑같은 유행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또 하나의 박달재 아닌가!

박달재에는 정도령이라는 이름의 골짜기 사당이 있다. 지금은 말라 있지만 깊은 물못이 있어 옛 신시나 솟대의 산상지유수(山上之有水), 즉 산 위의 물과 똑같다. 그리고 그 못 위에 서방대장군(西方大將軍)과 동방대장군(東方大將軍)의 두 장승 사이에 세 개의 놋잔(호혜, 교환, 획기적 재분배의 삼태극(三太極))을 세운 상석이 있고 사방에 돌덤부락을 쌓아올렸다. 의미심장하다.

옛 단군 무속 위에 동서양 융합과 삼태극이 결합되고 그 주장을 오두막에 사는 젊은 여성이 한다.

이것은 무엇일까?

박달재의 금봉이

예부터 박달재는 여성들의 통로였다. 여성들의 장터나 토속신앙의 통로를 천지인과 수왕이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장이 젊은 여성이다. 휴게소에는 여성장승들이 가득하다. 노래까지도 그러하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박달재의 금봉이야….

출세하려는 과거꾼이 그 고개에서 금봉이라는 한 여인에게 붙들려 출세를 포기한다는 노랫말의 뽕짝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정도령의 산시(山市·신림 쪽의 여성무속인들이 찾는 안덕사 굿당 등 치악산 산계열 등)와 반대편 남한강가 목계 선창마을의 유명한 파시(波市), 즉 산과 물 사이의 신시(神市) 여관이다. 이것은 현재 원주를 비롯해 전국 여기저기에서 다시 활발해지는 재래시장 5일장의 유행과 함께 앞으로 동아시아 태평양 신문명의 호혜시장(互惠市場)과 그 여성 주도의 시장소비판단력이 생산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창조적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이곳은 강원, 충청, 경기 세 지역의 물, , 길의 초점이다.

역사적으로는 신라, 예맥, 백제, 고구려, 발해 및 궁예의 태봉과 고려의 왕건이 서로 차지하고자 오래도록 갈등하고 또 융합했던 바로 그 땅이다.

그러나 막상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금봉이다. 과거 정치를 뛰어넘는 금봉이의 정치력은 무엇인가?

하도 커서 모심이니 서기(瑞氣)니 하는 말은 줄인다. 나는 치악산 구룡사는 물론이고 궁예의 둔거지였던 영원산성, 신라 최후의 왕 경순왕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귀래 미륵산 아래와, 문막후용의 견훤길과 삼거리의 중용 고구려탑, 황사영이 잡혀가 죽은 배론, 동학 지도자 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체지 호저 고산리와 임윤지당의 자리, 무장의 신평못과 박달재를 나의 학교로 생각하고 산다.역시 금봉의 정치력 공부가 핵심이다. 왜 박달재의 이쪽저쪽, 박달재의 산시와 목계의 파시 사이에 그리도 환하고 유려한 유교 예절의 ‘모심’이 빛나는 성취들과 모심의 증좌들이 농후한가? 목계 입구의 수많은 마을 이름이 왜 서계(書契)며 율리(律里)며 엄정(嚴正)이며 원월(圓月)인가? 왜 박달재의 제천 쪽 한말 선비 의병들의 본거지로 유인석(柳麟錫)과 유중교(柳重敎)의 고장인 공전리에 자양영당(紫陽影堂)이 그리도 거룩한가! ? 신시, 호혜시장, 비단 깔린 장바닥은 그런 곳이다. 그래서 돈 가는 데에 마음 간다고 했다. 그런 유형들은 중조선 일대에 많고도 많다. 나는 그곳, ‘모심’의 자리들을 찾아다닌다.

여성은 소비와 생산의 주역

무슨 공부를 하나?

표현은 그저 ‘모심으로 가는 길’이지만 자세한 것은 지금은 말할 수 없다. 차차 ‘모심으로 가는 길’ 시리즈로 발표할 것이다. 다만 박달재와 세 산과 세 물과 목계 선창마을을 다니며 항상 기억하는 경제학의 한 부분이 있음을, 그것이 금봉이와 연결돼 있음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폴 크루그먼의 ‘새로운 경제학 이야기’다. 여성은 현대경제학에서 소외돼 있다는 말은 전혀 옳지 않다. 왜냐하면 현대 경제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영역이 소비이고 소비판단이며 그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여성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그 역할의 창조적 확장과 유기적 연관의 확보과정에서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생산적 기능은 또한 엄청난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거의 원시적 상태에 가까운 경제학 가부장제 아래 묶여 있는 셈이다.

또 기억난다. 나의 전공 이야기다.

유럽 미학의 새 바람이다.

유타 베름케의 ‘미학과 경제’다. 그의 말이다. 오늘날 미학의 최전선을 이루는 것은 문화자본주의다. 문화자본주의는 문화를 원료로 하는 돈벌이나 문화적 의장이나 홍보수단 또는 브랜드를 일컫는 게 아니다. 그것은 칸트 미학의 이른바 판단력 비판의 영역인 것이다.

판단력 비판이 카를 폴라니가 신시의 현대화, 호혜시장 실현에서 제일 어려워한 획기적 재분배라는 정치적 중심성, 남녀 이원집정제 해결의 열쇠였기 때문이다.

또 있다.

바로 그 점에서 본다면 칸트로서는 족탈불급의 차원이 있으니 다름 아닌 우리나라 원효(元曉)의 판비양론(判比量論)이다. 나는 박달재의 바로 그 서방대장군이 다름 아닌 칸트이고 동방대장군이 곧 원효라고 생각하는 때가 많다.

농담 아니다.

그만큼 앞으로의 경제에서 핵심 미스터리는 획기적 재분배이고 그에 의한 호혜와 교환을 객관적 시장 패턴 속에서 현실화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화엄사상

지금도 세계 시장의 숨은, 그러나 곧 드러날 차원이 다름 아닌 섬세한 미학적 취미 판단 차원으로까지 발전한 여성 소비판단력이고 그에 토대를 둔 근원적인 재분배의 날카로운 획기성, 세목성, 혼돈성과 개체성, 그리고 심지어는 우연성이기 때문이다. 판단력과 비판력의 융합이 문화자본주의의 핵심이 된다. 그렇다면 나의 경제미학적 박달재는 농담은커녕 바로 서기, 그 자체요 당연한 모심의 차원인 것이다.

평등, 균등, 대동(大同) 위에 각자의 경제적 삶에 요구되는 천차만별이 이제는 하나로 이루어져 호혜와 교환의 이불이(移不移), ‘개체화하되 개체화 못함’의 이른바 월인천강(月印千江·달이 천 개의 강물에 다 따로따로 비침)과 일미진중함십방(一微塵中含十方·한 톨의 작은 먼지 속에 우주가 살아 있음)의 경제적 화엄사상이 반드시 와야 하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나의 전공은 미학이다.

간다.

부산으로 간다.

부산 경암(耕岩)교육문화재단 특강이다.47.

특강 내용의 몇 줄기를 요약한다.

“신령한 거북이 먼 바다를 바라본다(靈龜望海). 경암학술상 시상식이 열린 부산진 앞바다 동백섬의 풍수학적 비의(秘義). 조선조 정조 때 동래사람 정조신(鄭朝臣)의 ‘순수역수기(巡修歷水記)’ 중 ‘가변도서록(嘉邊島嶼錄)’에 다음 구절이 보인다.

신령한 거북이 먼 바다를 바라본다는 문구는 신령한 거북은 아득한 깊은 바다의 나이 많은 거북으로서 문득 햇빛 아래 떠올라 제 속에 가득 찬 것을 토해서 그윽한 먼 바다로, 바다 바깥의 푸른 새 하늘에까지 널리널리 그것을 퍼뜨린다는 뜻이다.

거북은 여성이고 그 속에 든 것은 오랜 고통이 약이 된 것을 뜻하며 먼 바다는 태평양이고 바다 바깥은 미래요 우주다.

아기들의 떼죽음

“나는 지난 시상식에서 박경리 선생의 소설 ‘김약국의 딸’ 중 넷째인 용옥이 가덕도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해 빠져죽고 그 뒤 시체가 인양되었을 때 가슴에 끌어안은 아기와 함께 그 품속 깊은 곳에서 십자가가 뚝 떨어지는 장면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의 예언성을 오운육기론(五運六氣論)의 ‘거북신령의 기운(龜靈跡)’으로,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미학원리를 ‘초ㅐ탁성(口卒啄性)’으로 설명했다.

“나는 또 대천재 김범부(金凡夫) 선생이 동래 국회의원 시절 하신 기이한 말씀 한 가지를 붙였다.

“정조신이 동백섬을 두고 먼 바다를 개척하는 거북이라 말한 것은 먼 바다가 독물로 들끓는 훗날 한울의 신약(神藥)을 거기 풀어 온 세상을 구할 여자와 아기들이 나온다는 뜻이었다.

“그 자리엔 소설가 김동리(金東里)와 시인 서정주(徐廷柱)가 함께했다고 한다.

“한울의 신약이 무엇일까? 바다는 지금 독물로 들끓고 있다. 일본의 대지진, 화산 폭발, 지면침강, 쓰나미에 원전방사능 누출까지 덮쳐 새떼와 물고기떼, 고래들이 무더기로 죽어간다. 사람만 죽어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인도는 서양에서 달려온 이른바 ‘현자(賢者)’들로 만원이라 한다. 그들의 소망은 딱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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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달력이 끝나는 내년 2012년 겨울 갑자기 전세계를 가득 덮을 거라는 무수한 아기들의 떼죽음에 어떻게 대응하며 또 그와 함께 시작될 인류문명사 전체의 대전환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현대세계의 문명 중심 허브는 분명 동아시아·태평양이다. 금융위기 직후 미국의 국가정보위원회는 전 세계 신문과의 공식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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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세계의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 권력과 자본의 중심이 서쪽(대서양)에서 동쪽(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 둘은 그럼에도 각 지역의 위상은 그대로 유지되는 다극체제가 형성돼가고 있다는 것.

모심의 주체는 여성과 아기들

똑같은 내용이 7년 전 미국, 일본, 중국, 북한, 남한의 동아시아 경제통 다섯 사람이 다섯 번에 걸친 장시간 비밀 경제회의에서 다음의 결론을 얻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EAST Rotterdam -the integrated network

‘동()로테르담’이란 네덜란드의 대서양 경제 문명의 허브인 로테르담이 동아시아로 옮겨왔다는 뜻이다. ‘동로테르담’이 어디인가? 한반도의 동남해안, 서남해안, 동지나해, 그리고 현해탄이다. 그 동남해안이 어디인가? 바로 이곳 부산이다. 그 밑의 설명구인 ‘the integrated network’는 무슨 뜻인가?

‘중심성이 있는 탈중심’이다

미국 쪽 공식 견해와 하나도 다름없다.

나는 7년 전 그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화엄경과 후천개벽의 정역(正易)과 그것을 실천하는 동학과 예수의 ‘모심’과 그 ‘화엄개벽모심’을 제대로 해석하고 정확히 전망하는 방법으로서 통치와 처신 중심의 주역 ‘추연법(推衍法)’ 대신 ‘여성과 아기들의 생명 및 생활 중심성의 법칙’인 천부경 81자의 ‘묘연법(妙衍法)’으로 상호 결합하는 공부를 해왔다. 이것이 곧 ‘모심 공부’다.

부산 특강의 요약을 끝낸다.

화엄경의 핵심은 ‘이불이(移不移)’의 ‘탈중심이로되 중심성의 법칙’이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달은 하나인데 천 개의 강물에 다 따로따로 비침’이다.그야말로 ‘획기적 재분배’의 신시는 호혜시장의 경제원리이며 ‘호혜와 교환’이 함께 움직이는 한 사회경제 아닌가! 이것이 ‘동로테르담’에 주어진 새로운 세계의 사회경제적 요구 아닌가!

이러한 화엄이 지금 다가오고 있는 개벽을 타고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 동아시아·태평양 신문명의 실재라면 이것을 실천하는 길은 어디에 있으며 이 길의 주체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 핵심 문제다.

모심! ‘모심’ 아닌가! 또 그 주체는 ‘여성과 아기들’ 아닌가. 그리고 다중(多衆)과 중생 아닌가!

4
8.

“여성도 성인이 될 수 있다”

나의 아내인 토지문화관 김영주 관장으로부터 바로 지금 쓰고 있는 이 글과 강연에 대한 잡지 ‘신동아’의 요청을 전달받았다. 나는 즉각 거절했다. 왜냐하면 아내의 요구는 주역이니 정역이니 또는 ‘산알’ 같은 경락학 따위, 그리고 ‘복승론(復勝論)’ 같은 동양생명철학 얘기는 빼고 하되 지금 우리나라의 문화나 지식인 상황으로 보아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니 꼭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화를 내며 거절했다.

뒷이야기는 좋은데 그것에 맞추려면 앞 이야기는 도리어 그 반대가 옳다는 내 속 의견이 있지만 평소 아내가 늘 하는 다음과 같은 말,

‘만날 민중, 민중 하면서 여성이나 아기들, 또 쓸쓸한 사람들 그 누구더러 들으라고 주역이니, 정역이니 산알이니 그 어려운 얘기를 혼자서 즐기느냐?

또 그 말이었기 때문에 우선 벌컥 화부터 냈다.

이것이 사단이었다.

‘모심으로 가는 길’의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화엄경도 후천개벽도 동학도 정역도 예수의 섬김도 천부경 81자도 사실은 모두 다 노자나 장자처럼 ‘여성 모심’을 전제로 하고 있고, ‘여성적 생명과 생활가치’를 그 해석과 전망 방향으로 이미 못 박고 있으며 동로테르담 허브의 ‘탈중심적 중심성’으로 마치 달과 물의 시대인 현대의, 태양력 중심의 윤달 체제, 365 4분의 1의 슈퍼버블시대가 아닌 정력(正曆), 달력 중심의 360일 무윤력 시대이고, 그러나 ‘달그늘’ ‘물개현상’ 그리고 ‘소산지기(疎散之氣)’의 용납 아래에서 파악되는 ‘흰그늘’의 시대이니 다름 아닌 ‘혼돈의 질서’요 왈, 동학의 ‘강태극(弓弓太極)’의 시절이라!

원주 주변 내 공부하는 산천 중 무장리(茂長里) 신명못가에 묻힌 여성 기철학자 임윤지당(任允持堂)은 가라사대.

‘여성도 열심히 공부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단(四端)도 칠정(七情)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폭탄발언을 한 정조 때 사람, 저 유명한 기철학의 호랑이 임성주(任聖周)의 누이동생이다.

아내와 장모님이 모두 좋아하던 여성 사상가다.

나홀로 동학당

원주에 돌아와서다.

오래도록 나 혼자 끙끙대며 애써온 ‘화엄개벽을 위한 여성 모심의 길’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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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집에서 정신없이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앵산(鶯山)으로 달린다. 앵산이 어디이며 무엇 하는 곳인가? 나는 애초 ‘나홀로 동학당’이라고 했다.

1894
년 겨울 갑오동학혁명이 실패하자, 동학 제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 선생은 남도권을 떠나 경기도 이천군 설성면 수산1리 앵산동에 숨는다.

?

단순한 피신이 아니었다.그 이전 제1대 교주인 수운 최제우 선생의 시 ‘남진원만북하회(南辰圓滿北河回·남쪽 별이 원만을 얻으면 북쪽 은하수가 제자리에 돌아온다)’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은하수 이야기는 후천개벽의 완성이고 별은 개벽행동의 첫 시작이다. 칠언절구(七言絶句)에서 시작과 끝에 남과 북이 있으면 가운데는 자연히 중()이 된다. 그러니 중조선의 원만한 조건을 말한다. 해월의 피신지가 그 뒤 이천, 여주, 양평, 남양주와 원주인 것은 결코 우연이나 단순한 피신 사정이 아니다. 바로 원만이다. 지형적 조건, 역사, 사람, 종교, 문화 등이 모두 연결된다. 정말 그런가?

날더러 과장이 심하다고 흉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내 직업이 시인인 것을 잠깐 잊어버린 사람의 주책이지만, 그것을 인정한다 해도 이것은 사실이다. 나는 최근 사람을 안 만난다. 그 대신 내가 만나는 것은 바로 소나무, , 강물과 벌판과 산이다. 이것도 거짓말 같은가? 외로운 삶의 형태에도 과장이 통하는가?

해월이 원주에서 체포당한 것, 탄허의 월정사 입정, 궁예의 영원산성 입산, 남조선 뱃노래의 주인공 강증산의 제자들 모임인 대순진리회 본부가 여주와 원주 사이에 자리 잡음. 모두 그렇다. 모두가 후천개벽과 화엄 연관행위다.

여성 월경과 ‘엄마를 부탁해’

‘원만’에서 가장 민감한 인간적 조건은 무엇일까? ‘여성 모심’이다. 해월의 중요한 가르침 중 두 가지가 이것이다

여성의 뾰족한 성질은 수천 년간 억압의 산물이니 이때마다 큰절을 하라. 절하면서 그 긴 세월 동안 쌓인 남자들의 죄업을 씻으라.

여성과 아기들은 후천개벽의 타고난 도인(道人)들이니 깊이 모셔라. 후천개벽은 북극의 태음(대빙산) 물의 변동(해빙)이고 그 물을 변동시키는 것은 여자들 몸속의 월경의 변동이다. 이를 모셔라.

마음에 안 들 것이다. 그러나 듣거나 말거나 개벽은 개벽이다.

어째서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 여자주인공들 가운데 악녀와 마녀가 그리도 많은가? 왜 소와 돼지, 닭과 오리, 물고기, 새떼가 그리도 많이 한꺼번에 죽는가? 이 두 가지는 무슨 관계인가? 왜 건강유지에 물이 가장 중요해지는가? 달에 6t의 얼음이 있고 혹성과 혹성 사이에 그린 포플러, 옐로 보넛 따위 수성(水性) 안개띠 같은 화이트홀이 압도하는가? 왜 태양흑점은 140일 이상 다운되는가? 유럽 통합천문대는 작년, 왜 지난 12년간 태양열이 최저로 내려갔다고 발표했는가? 왜 현대를 물의 시대라 하는가? 작년 늦가을 신문 보도에 따르면 ‘비경제권 여성 리더십이 전 인구 중 1270만명의 여성’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기록되는가? 반장, 이장, 동장 등을 여성이 맡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째서 신세대 사이에 ‘엄마’가 아이콘이 돼가고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저리도 인기인가?

나는 그날 앵산동의 앞 논 한가운데 있는 조그만 봉우리 ‘앵봉(鶯峰)’에 섰다. 해월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여자의 못난 점, 그 뾰쪽한 편성(偏性)은 ‘그늘’이고 여자의 잘난 점, 부드러운 엄마와 시장판에서의 날카로움은 ‘흰빛’이다. 네 미학사상은 바로 ‘흰 그늘’이고 ‘흰 그늘에 대한 모심’은 바로 너의 아시안 네오 르네상스의 ‘비결’이자 세계 문화대혁명의 ‘모토’다. 왜 안 지키느냐?

“권세를 여자에게 넘겨라”

아하!

나는 그길로 양평장터와 그 근처의 남한강 ‘두물머리’로 갔다. 장터는 해월 선생을 수발하던 28세의 동학당 여성 ‘이(蝨·본명 李水仁)’가 붙잡혀 반항하다가 찢겨 죽은 장소이고 두물머리는 그때 거기 숨어 있던 선생이 그 소식을 듣고 강 위에 뜬 희미한 초생달을 보면서 ‘이가이다(蝨爲李)’라고 울부짖었던 곳이다.

‘이가이다’란 말은 ‘밑바닥이 임금자리에 되돌아온다(已位親政)’라는 소리다. 먼저 ‘이’는 그 여성이 스스로를 낮춰 부른 별명이고, 나중 ‘이’는 그 여성의 본래 성()이 왕족(王族)이었던, 쫓겨난 전주이씨(全州李氏)란 뜻이다.

!

내가 두물머리 나루터에 서서 가슴에 칼이 꽂히는 아픔으로 기억한 말이 이것이었다.

기위친정.2008년 시청 앞 ‘촛불’에서, 튀니지와 예멘 등의 재스민혁명 기사에서 그 재스민이 곧 쎄벨리온()과 같은 뜻의 꽃이름임을 알았을 때 느낀 것이 모두 이것이다.

2005
년 정읍 대흥리 차경석의 집에서 강증산이 여러 남성 제자가 둘러앉은 바로 그 한가운데에서 그의 아내 고수부(高首婦)에게 식칼을 들고 누운 자기 배 위에 올라타고 ‘지금 당장 하늘, , 사람의 큰 권세를 나에게 모두 넘기시오!’라고 부르짖게 하고 자기는 밑에서 두 손을 싹싹 빌며 ‘네에, 잘못했습니다. 지금 당장 다 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한 뒤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라사대

‘이제부터 꼭 이렇게 하라!

이리 가르친 것이 모두 이것이다.

모심이다.

두물머리 곁이 저 유명한 다산 정약용의 ‘마재’다. 그가 평생 집착한 ‘정전법(正田法)’이 무엇인가? 마재에서 남한강을 끼고 원주로 원주로 한없이 오다 들른 강천면 부평리의 쓸쓸한 한 묘지, 선조 때 사람 한백겸(韓百謙)의 묘지임을 기록한 두 개의 돌비석 앞에 선다. 둘 다 무덤 아래의 돌거북이 기이하게도 머리를 획 꼬아 비틀고 있는 모양새다. 이상하다. 그가 반역자 정여립의 시체를 거두었기 때문인가? 그러나 나는 그보다도 그의 이름 ‘백겸(百謙)’이 곧 ‘지극한 모심’이리는 생각에 부딪힌다. 나의 한때 아호가 ‘노겸(勞謙)’임도 뒤따른 생각이다.

시루봉에서 비로봉으로

마재 정약용의 정전제(正田制)와 부평 한백겸의 기전제(箕田制)는 이제부터 나도 여러 지식인도 필히 비교 연구해야 할 ‘공()’과 ‘사()’ 사이의 올바른 ‘중도적(中道的) 경제구조’의 원형이다. 거기에 아마도 참다운 삶의 살아 있는 ‘모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선 내게는 그 이름 속의 ‘모심’이 아프게 새겨져온다.

4
9.

박달재다. 느끼고 생각한 것은 역시 대장군 상석 위의 세 개의 놋잔. 이른바 ‘삼태극’이요, 삼태극의 주인이며 밑받침인 물, 수왕, 이른바 과거꾼을 붙든 금봉이에의 모심이다.

4
10.

횡성을 지나 서석(瑞石)의 태기산을 지나 양양 구룡령 밑 미천골로 향했다. 모심을 새기기 위해서다. 그러나 ‘불바라기’는 공사 중이라 한다.

그곳에 공사라니 우습기 짝이 없었으나 돌아오는 길에 인제 쪽 한계령으로 들었다.

한계령.

기괴하고 무서운 산괴(山槐). 돌아오면서 내내 산이 내 넋에게 불편했다. 도저히, 산을 그리도 좋아하는 나지만 빈 마음으로 ‘모실 수가 없다.

두려움은 모심이 아니다. 조심과 무심이 모심임을 상식으로도 알지만 이 두려움만은 어쩔 수 없다.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생각해보자. 큰 문제가 아닐까.

4
11.

숙제는 나를 항상 분주하게 한다. 그러나 새벽 글쓰기와 아침나절 세 시간의 공부는 단 하루도 빠진 적이 없다. 오후 치악산 구룡사로 들어간다. 구룡사 뒤편의 치악산 왕초 비로봉(毘盧峰)은 참으로 아름답고 우아한 산이다. 마치 화엄경처럼. 그 근처의 학곡리 출신 사람에게 비로봉에 대해 듣는다.

‘왜 비로봉인가?

일반적으로 시루봉인데… 왜?

“왜 부인한테 화를 내는 거요?

이야기는 이렇다.

‘본디는 아홉 용이 절자리와 봉우리 근처에서 들끓었다. 물이 흥건해 시루봉이라 불렀는데 창건자 의상(義湘)스님이 큰 기도를 해서 흥건한 물이 빼어난 봉우리로 변했다. 그 뒤로 화엄경 주불(主佛) 비로자나 사상을 말없이 가르치는 비로봉으로 바뀌어 우아한 산이 되었다.

이 비로봉으로 오르기 위해 산길까지 이름이 바뀌었다. 어떻게?

09 [김지하칼럼] 우리 삶의 주체



광주일보



[김지하칼럼] 우리 삶의 주체
2009년 04월 01일(수) 23:59

내가 주체란 표현을 쓰자니 우습다. 똑 북조선 짝퉁 같아서다. 그러나 언어란 공용의 재산이다. 함부로 쓰는 자가 문제지 옳게 쓰는 사람이 잘못일 리는 없다.
옳게 쓰는 사람 그 사람은 또 옳게 사는 사람이기도 한 법이다. 누가 옳게 사는 사람일까? 옳게 산다는게 도대체 무엇일까? 오늘 우리 삶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 그것을 안다는 것은 그러나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것을 아는 길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들 삶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아는 일이다.
그래 그 주체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이 또한 그리 쉬운 대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문제이겠다. 어찌보면 유산자, 중산층, 비즈니스맨, 지식인들 같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노동자, 농민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들이 주체가 아니라고 대답하기 이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으니 어떻게 사는 사람이 주체냐 하는 것이고 그럴 땐 왜 그러냐 하고 묻는 속에서 그 사회적 삶의 바람직한 철학이 무엇이냐에 대한 그야말로 바람직한 철학적 대답이 나오는 법이다. 또 그것이 나올 때 바로 그 주체를 중심으로 한 삶의 삶다운 개선 행위가 시작되는 것이며 비로소 그 삶과 사회는 제대로 발전하게 되는 법이다.
과연 주체가 누군가? 그것은 시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면 이 시대는 어떤 시대이고 이 시대는 어떤 사람들이 주체로 되는 것일까? 이 시대를 쉽게 규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고 해서 또 그렇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과연 무엇인가?
나는 지난해 봄 서울 시청앞 촛불시위 때 이런 글을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기고한 적이 있다.“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주체가 나왔다. 그들은 인류역사상 단 한번도 주체가 돼 본적이 없는 ‘꼬래비들’, 즉 미성년, ?은 주부들, 그리고 비정규직이나 노인, 홈리스를 포함한 쓸쓸한 대중들이다”라고.
이제 과연 새로운 시대라고 부를만한 때가 시작되었는가? 되었다. 유럽 보수 경제학의 온상인 ‘마아가렛·대처룸’ 안에 그대로 앉은 채 영국 보수파 총리 고든·브라운이 왈, ‘워싱턴 콘센서스는 끝장났다. 이젠 보수도 진보도 그 하나만으로는 경제학도 정치학도 아무것도 아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고있다. 어찌할 것인가?’(런던 타임스)
워싱턴 콘센서스가 무언인가? 대처와 레이건이 합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장전략이다. 그것이 끝장났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시대가 아닌가? 독일수상 메르켈이 최근 동유럽의 대몰락을 보고 내뱉은 말이라고 한다. ‘유럽은 어두워지고 있다. 동쪽부터 컴컴해지고 있으니 이 밤은 과연 그 어떤 역사적인 종말일 것인가?’
이 시대를 혹자는 로마문명 붕괴의 6세기 후반, 유럽 르네상스 이후 중세 카톨리시즘 몰락의 17세기 중반에 비교하기도 한다. 요컨대 유럽에 대한 세계지배의 전체 역사가 끝난다는 뜻이다. 이른바 정역(正易)의 ‘기위친정(己位親政)’이다.
지난 3월 26일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뉴딜연합’세미나에서 좌우사회과학파 전원이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해 ‘아파트 거주자, 전업 주부, 노인, 입시준비생’이라고 입을 맞췄다. 바로 촛불의 주체들 아닌가!
예수복음의 그 ‘네페쉬하야들’이고 ‘예루살렘 입성’과 ‘무덤에서 부활하는 하늘나라의 주인공들’이며, 정역의 바로 그 ‘기위친정’때의 십일일언(十一一言)의 주체들 아닌가! 정말 새 시대 새 삶의 주체들이 이들 아닌가!
누군가 코웃음을 치며 ‘긴급한 위기 대응의 뉴딜 경우니까 그렇지’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그날 200여명의 좌우 사회과학자 거의 전원이 대체적으로 합의된 공론의 흐름이 이제껏 단 한번도 서양식 사회과학이 사회적 주체로서 다룬 적이 없는 바로 이들이야말로 이제부터 오고 있는 새 시대에는 참으로 새로운 사회과학 연구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과연 새시대는 새시대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시인·동국대 석좌교수〉

김지하 사상기행 푸른 자전거(산문&콩트) | 2005-



장재선의 문화노트 :: 문화일보 카페



김지하 사상기행 푸른 자전거(산문&콩트) | 2005-01-17 21:49:06

제이제이(jeijei2) http://cafe.munhwa.com/literarture/649




지난 64년 한일협정 비밀문서가 공개돼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당시 박정희정부는 국민의 개인보상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경협차관``을 얻어왔습니다. 그 협정이 김종필과 당시 일본 외상 오히라의 비밀메모에 의한 것임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과 같습니다. 김-오히라메모는 결국 박정권이 겨레를 팔아 몇 푼의 정권 유지자금을 빌려오는 데 합의한 것이었습니다.
이 문학노트의 자유게시판에 이풍호 시인께서 올려놓으신 김지하 선생에 관한 영문의 글에서도 나타났듯이 당시 김지하와 같은 열혈 대학생들은 한일협정에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후에 김지하시인은 저항가에서 생명 사상가로 심신의 위치를 바꾸지만, 그 생명사상이 어쩌면 64년 데모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해 봅니다.
다음은 몇 해 전에 김지하 사상기행을 읽고 쓴 서평으로 어느 지방신문사에서 펴낸 잡지에 실렸던 것입니다.

서평- 김지하 사상기행1, 2/ 이문구등 기록, 황지우 대담

민족사상으로 거듭날 때다

시인 김지하가 ‘사상기행’을 떠난 것은 84년 12월이었으나 그것이 책으로 묶여 나오기까지는 14년여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그것은 소설가 이문구가 정리한 당시의 녹취 노트가 없어졌다가 다시 발견된 사정 때문이었는데, 그렇게 오래 묵어서 세상에 나온 만큼 두 권의 책은 숙성의 도가 한껏 높아서 읽는 이로 하여금 그저 취하게 할 뿐, 무어라 떠들 엄두가 나지 않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 취한 느낌을 말하고자 하면서도 이 책이 가르쳐주는 길을 쭈욱 따라가면서 간간이 소회를 풀어놓는 것으로 대신할 따름이다.

‘사상기행’은 당시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 ‘생명운동’을 주창하고 있던 김지하가 남녘의 산하를 통해 그 실체를 만져보기 위한 것이었는데, 거기엔 이문구와 송기원, 임진택 , 장선우 등이 동참하고 기행 중에 송기숙, 황석영, 최창조 등이 합류한다. 이 책의 머리말에 소개된 대로 군사정권이라는 절망적인 어둠 속에서 빛을 모색하던 당대 지식인들의 눈물겨운 몸부림의 기록인 것이다.

나는 기억한다. 최루탄 내음이 가시지 않던 캠퍼스에서 선배들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나누던 이야기를. “ 김지하가 변했다더라, 이전처럼 투쟁에 나서지 않고 무슨 생명운동인가를 한다더라. ” 또 기억한다. 85년 봄에 학교 근처의 출판사가 주최한 백제문화기행에 함께 갔던 그 그리운 얼굴들을. 그 행로는 부여, 공주와 익산을 거친 것이었으므로 김지하의 사상기행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당시에 그런 기행을 뜻있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계획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어느 부분 군사정권의 덕분이었을 것이다.

김지하의 『사상기행』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역사의 숨결이 배어있는 우리 산하의 모습이 손으로 만져질 듯이 생생한 사진들인데, 그 것들의 한 켠에 그 곳에서 사색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일행의 모습을 또 하나의 컷으로 담아놓은 것은 절묘한 편집이라 하겠다. 기행은 서울의 운당여관이라는 곳에서 시작하여 옛 백제의 땅으로 접어드는데, 훗날의 지배자들에 의해서 백제역사가 졸렬한 것으로 각색되는 것에 대한 이문구의 토로는 절절하면서도, 능청스러운가 하면 통렬한 것이기도 하다.

일행은 계룡산에 다다라 그 ``산주로 군림해온 지 오래``라는 승려 송명초를 만나는데, 그의 미륵신앙에 관한 사설은 김지하와 대거리를 할 만 하다. “미륵불이 하강하기 전에 양귀왕(糧鬼王)이 먼저 나와 터를 닦는다”는 석가의 예언이 있는 바, 송명초는 지금 배가 큰 자들이 독과점을 하고 갈수록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빚어내고 있는 현실이 그 실증이라고 한다.
이 말을 책에서 읽을 때 필자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이가 있으니, 그는 『정역(正易)』으로 알려진 김일부 선생의 손자 제자뻘이 되는 원성 박상화 선생이다. 선생은 평생 민족사상을 연구하고 그것을 펴는데 평생을 바쳤는데, 우리같은 병아리 학도들을 만날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 달걀이 제대로 썪어야 부화하듯이 지구의 부도덕이 극치에 달하면 후천개벽이 가깝다는 소식이 올 것입니다. ”

김지하 일행이 갑오농민전쟁의 흔적을 더듬어가기로 했으니 공주의 우금고개를 밟고 논산 전주를 거쳐 수운 최제우의 ‘칼노래’가 들리는 남원의 교룡산성으로 향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일만명의 동학도에게 제복을 입혀 남원에서 운봉으로 진격했던 김개남포의 어마어마한 전투력.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남원이 양반도시가 아니라 상공업행위를 배경으로 한 물산축적이 가능한 아전도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해석. 김지하의 이러한 새로운 역사해석은 “여기는 동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라는 남원유지들의 말 때문에 역설적으로 설득력을 갖는다. 그것을 김지하는, 여기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를 패배로 보고 아예 지워버리려 한 ‘자기배신’으로 본다.

이렇게 씁쓸한 ‘배신의 현장’을 목격했지만, 남원까지 와서 한 자락의 판소리 듣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소리꾼 김은숙을 청해 <흥보가>를 듣고 임진택이 화답한 끝에 김지하가 그 유명한, 아무도 말릴 장사가 없는, 흘러간 유행가 메들리를 <황성옛터>로 끝맽었다.
김지하가 사숙한 19세기 사상가에 최수운, 김일부와 더불어 강증산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증산의 사상이 오늘날 종교의 형태로 포교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드물 지경이다. 그러나 김지하는 증산의 고향, 김제 금산사를 향해 가는 길에 이렇게 말한다. “ 증산을 과학적으로 실천적으로 받아들이려면 대중운동 형태로 받아들여야 해. 종교종단 조직종단 형태로 받아들여가지고는 그분 자신이 얘기했던 것을 거꾸로 이해하는 게 된다구. ”

이 말은 소설 『단(丹)』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우학도인’ 권태훈옹이 대종교의 총전교였던 시절에 내게 들려주었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 대종교는 종교가 아니야. 지금 외피를 그렇게 썼을 뿐이지. ”

김지하 일행은 금산사 경내에서 스스로를 ‘사도구니’라 칭하는 할머니 보살을 만나는데 그의 말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정도의 ‘도력’을 뿜는다. “ 내 참, 그래서 금산사 미륵님이 밟고 계신 솥에다가 모든 종교들을 다처넣고 푹푹 삶아서 시루에다 찌면 떡이 된다, 민족종교로다가 통일을 해야 한다, 민족의 얼을 찾아야 한다, 제가 그렇게 말했어요. ”

사상기행 2권에 실린 김지하와 황지우의 대담은 40대중반에 이루어진 기행을 50대말의 나이에 ‘우주적 사색’으로 되돌아보고, ‘단군사상’으로 세간에 표현되는 그 것의 실천적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로 읽혀진다. 황지우가 한마디 물으면, 김지하의 대답은 누가 표현했듯이 ‘호수에 돌던지면 물결이 일듯이 일파만파를 일으키며 ’ 읽는 이를 끌어들인다.
90년대 이후로 ‘신경증’ 때문에 많이 아팠다는 김지하가 그걸 극복하며 특별히 내놓은 것은 ‘단전호흡’이고 과거보다 더 강조하는 것은 민족재래의 경전 <천부경>과 후천세계 역으로 알려진 김일부의 <정역>이다. ( 김지하는 앞으로 ‘지하’란 이름대신 ‘영일(英一)’이라는 본명을 회복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천부경의 첫 귀절‘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을 생각하며 필자는 즐거워했다. )
필자가 이 대담에 취해 몽생(夢生)했지만, 다만 한 가지 섭섭한 것은 대담중에 ‘영가무도’란 말을 두차례 하면서도 원성 박상화 선생이 체계화한 ‘영가무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영가무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음아어이우’의 다섯 가지 소리를 통하는 우리 겨레의 전통 수련법을 ‘영가무도’ 라고 한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이 책에 나온 것과 최근에 가진 매스컴과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김지하는 앞으로 ‘신인간’을 주창하며 그 실천적 운동을 펴갈 것으로 보인다. ‘신인간’이란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줏대를 지니고 사상의 혼돈을 감당할 만한 사람을 말하는 바, 그 구체적 펼침은 앞으로 기대해 봐야 할 일이다.

이 대목서 우리 지식사회에 한 마디 하자면, 김지하의 ‘단군사상’에 그저 흠흠거리는 태도를 거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대한 사색의 결과가 겨우 그 ‘신화’에 기대는 것이냐는 태도는 지극히 서구 편향적인 시각일 따름이다.
프랑스에 있는 홍세화가『인물과 사상』6월호에 지적한 것처럼, 우리 지식사회는 파리에서 거들떠 보지도 않는 ‘포스트모더니즘 ’을 단지 거기서 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숭앙하고 말끝마다 포스트 운운 하는 사대주의 경향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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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50만부 베스트셀러 ‘한국사 이야기’로 역사 대중화 - 중앙일보



[삶과 추억] 50만부 베스트셀러 ‘한국사 이야기’로 역사 대중화 - 중앙일보




50만부 베스트셀러 ‘한국사 이야기’로 역사 대중화
[중앙일보] 입력 2020.03.19


이이화“나는 절반은 역사책 쓰는 사람이고 절반은 현실 속의 역사 운동가”라 했던 재야사학계의 거두 이이화(李離和·사진) 선생이 18일 오전 별세했다. 84세.





역사학자 이이화
단군 대제국 등 민족주의 비판
김구·이순신 우상화엔 경계고인은 사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50년 넘게 한국사를 연구하며 일반인 눈높이에 맞춘 책으로 역사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인물로 읽는 한국사』 『만화 한국사』등을 통해서다.

특히 해방 이전까지를 다룬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22권, 한길사) 는 1994년 집필을 시작, 10년 만에 완간했으며 20여 년 동안 300쇄, 50만 부를 찍었다. 개인이 쓴 한국 통사로는 최대 분량이다. 정치사가 아닌, 생활사와 문화사를 중심에 두고 역사 속 민중에 주목해 서술했다.

1936년 주역의 대가 야산 이달의 넷째 아들로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북 익산으로 이주한 뒤 부친에게 사서(四書)를 배웠다. 학교엔 다니지 못했다. 6·25 전쟁이 난 1950년 가출, 고학으로 광주고와 훗날 중앙대에 편입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다녔다. 대학 중퇴 후 술집 종업원, ‘불교시보’ 기자, 학원 강사 등을 하며 일간지 임시직을 거쳐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고전을 번역했다. 이후 서울대 규장각에서 고전 해제를 썼다. ‘허균과 개혁사상’ ‘척사위정론의 비판적 검토’ 같은 글로 명성을 얻었다.


고대부터 현대를 오가며 연구·서술한 고인은 비판도 받았다. 고인은 중앙선데이와 2015년 인터뷰에서 “(고대사로) 나를 역적 취급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 입장은 과학적 역사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군이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것과 같은 억설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구 선생과 이순신 장군에 대한 우상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역사 속 여성 인권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역사에선 민족 우수성보다 중요한 것이 진실”이라는 신념이 확고했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엔 단호한 대응을 강조하면서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앞세우는 민족주의 사관도 경계했다.

또 “나를 ‘좌빨’이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라고 했다. 자신을 재야 사학자라 부르는 데 대해 “나는 강단 사학과 정면 대결한 적 없다. 어느 쪽이든 엉터리 주장에 반대할 뿐”이라고 말했다.

고교 후배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이 선생은 고졸 출신으로 소신껏 연구해 일가를 이룬 인물이다. 역사의 아웃사이더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고 평했다.

단재상, 임창순 학술상을 받았고 2014년엔 원광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문제연구소장(2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유족은 부인 김영희 씨와 아들 응일 씨, 딸 응소 씨.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1일 오전 10시. 2072-2010.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삶과 추억] 50만부 베스트셀러 ‘한국사 이야기’로 역사 대중화

알라딘: 김지하의 수왕사

알라딘: 김지하의 수왕사



김지하의 수왕사 - 삼천 년을 짓밟혀 온 못난 백성들과 여인들의 역사 
김지하 (지은이)올리브(M&B)2013-11-27




7.0100자평(2)리뷰(0)


292쪽
152*210mm
40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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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류사 전체를 관통하는 거시 역사관으로 바라본 김지하 시인의 사상사. 저자는 "부권제가 지배했던 시대에 인류는 권력과 투쟁, 전쟁과 대결이 뒤엉킨 시대를 살아왔다. 하지만 인류는 지난 시절 짓밟혀온 여성과 어린이, 백성들이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이것이 후천개벽이고 대화엄세상"이라고 말하면서, 역사가 바야흐로 고대 모권제 시대에서, 3천년에 걸친 부권제시대를 거쳐 다시 달, 물, 여성, 어린이 중심의 모성 주도의 새시대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




목차


1. 3천년을 짓밟혀 온 못난 백성들과 여인들의 역사(水王史) ∥··· 15p

2. 스탠포드(Stanford University) 大學敎 특강 ∥··· 209p

3. LA 동포들 앞에서의 열여섯 가지 이야기 ∥··· 223p

4. 特別 寄稿 ∥··· 228p

5. 講演 - 다섯 척의 배 ∥··· 237p

6. 김지하의 바다 시 ∥··· 2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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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수왕(水王)역사의 출발점은 '모심(섬김)'

'모심'은 수왕(水王) 역사의 기점이다. 그리고 모심은 동학(東學)사상의 핵심이다. 또 모심은 묘연화엄개벽(妙衍華嚴開 闢)의 시작이다. 모심(섬김)은 예수 사상의 근간이고 퇴계, 남명의 영남학의 보물이다. 또불교적 합장(合掌)과 남무(南
無)의 길이다.
그 모심이 또한 위기에 부딪히고 있는 현대 세계 경제의 살길이기도하다. 아날학파(Annales School)의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은 '산업혁명이라는 비행기가 뜨려면 적어도 50여 년의 비행기를 만드는 준비 기간이 꼭 필요하다.'
라고 했다. 축적 순환의 장기지속이라는 콩종튀르 (conjoncture)가 바로 그것이다. 콩종튀르가 곧 모심이다. 아닌가?
지금이 바로 현대 신시(神市) 에로의 콩종튀르 시기가 아니던가?
3천 년을 짓밟혀 온 아이들과 여성들과 못난 백성들(玄覽涯月民)이 선, 후천개벽으로 한번 일어서려면 먼저 모심실천 이 철저히 요구된다.
수왕사(水王史)란 바로 이 역사요, 이 역사의 근현대 한민족적 흐름의 하나를 말한다.
나는 본디 동학당(東學黨)이다.
그러나 천도교가 아니고 '나 홀로 동학당'이다. 내 집안이 동학당이요, 그 이전엔 또 당취불교(黨聚佛敎)였다. 증조부와 조부와 조모 이야기다. 내 부친은 남로당(南勞黨)이 아닌, 수왕회 계열인 오성택 (吳成澤) 뒷개네의 공생주의(共生主義) 오목당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남로당으로 합당한 수왕(水王)빨갱이였다. 이 수왕사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느냐는
질문들이 나올 수 있는데 그 근원은 바로 우리 집안이다. 집안에서 들은 이야기의 순서를 숫자로 표기한다.
기억의 숫자는 역사적 상상력의 순서로서 심오한 의미가 있다. 기억이란 기이한 것이어서 지우려고 하면 서서히 지워
진다. 내가 한창 자랄 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애에 이롭지 못할 것 같아 이 기억을 지우려 노력했다. 그러다 광우병 사건이 났을 때 시청 앞 촛불을 접하며 다시 살아나기 시작해서 한편의 역사로 엮어졌다.
동학당 김이민(金以民)선생은 우리 집안의 6촌 할아버지 뻘로, 왜 지워진 기억이 다시 살아났을까? 아이들과 여성들과 못난 백성들의 화엄개벽이 시작되어서인 것이다. 실로 이제 수왕사는 시작이다. 도입부의 들쑥날쑥한 기록들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두고, 후반부의 무슨 공부 과제 같은 메모들을 숫자만 붙여 그냥 그대로 두는 까닭은 그것이 곧 수왕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한다. 수왕사는 이제 참으로 시작이다. 세계는 수왕사와 함께 선, 후천 융합 대화엄개벽과 함께 획기적으로 크게 변할 것이다. 그 뒤는 어찌될까? 우선은 일단 정역(正易)의 김일부(金一夫) 주장처럼 춘분(春分), 추분(秋分)이 중심이 되는 4천 년 유리세계(琉璃世界)가 올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월인천강(月印千江)과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
含十方)의 해인삼매(海印三昧)가 오지 않을까? 또 태양지정(太陽之政)이 오지 않을까?
다만 지금 당장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수왕사와 같은 지극한 모심,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거추장 스럽지만 수왕사 앞에 일부러 '모심'이란 두 글자를 강조해 넣는다.

원주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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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지하 (지은이)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196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등 시 5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황토≫(1970), ≪타는 목마름으로≫(1982), ≪남(南)≫(1984), ≪살림≫(1987) , ≪애린 1·2≫(1987), ≪검은 산 하얀 방≫(1987),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8), ≪나의 어머니≫(1988), ≪별밭을 우러르며≫(1989), ≪중심의 괴로움≫(1994), ≪화개≫(2002), ≪유목과 은둔≫(2004), ≪비단길≫(2006), ≪새벽강≫(20... 더보기


수상 : 2010년 영랑시문학상, 2003년 공초문학상, 2002년 대산문학상, 2002년 만해문학상, 1993년 이산문학상
최근작 : <흰 그늘>,<우주생명학>,<중심의 괴로움> … 총 8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수왕사(水王史)는 여성중심의 역사서이자 사상서다.

김지하 시인이 역사서를 펴냈다(올리브 M&B). 아주 독특한 역사서다. 저자는 역사를 인류사 전체를 관통하는 거시(巨視) 역사관으로 역사를 바라본다. 역사가 바야흐로 고대 모권제 시대에서, 3천년에 걸친 부권제시대를 거쳐 다시 달,물,여성,어린이 중심의 '모성' 주도의 새시대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지하에 의하면

"부권제가 지배했던 시대에 인류는 권력과 투쟁, 전쟁과 대결이 뒤엉킨 시대를 살아왔다.하지만 인류는 지난 시절 짓밟혀온 여성과 어린이, 백성들이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이것이 후천개벽이고 대화엄세상"이다.



수왕사의 뜻

수왕사란 '수왕' 의 역사라는 뜻인데 물은 음,여성을 의미하므로 '수왕'이란 쉽게 말하면 '여자임금'이다. 저자는 십수년 간의 자료조사와 답사 연구를 통해 1895년 4월 5일 동학의 2대 지도자인 해월 최시형이 중심이 되어, 수왕회(水王會)를 결성하였음을 밝혔다. 수왕회는 지하 비밀조직인데 9인이 참여했다.



孫天民 (손천민, 東學)

金以民 (김이민, 東學)

印正言 (인정언 ,南學)

奇世椿 (기세춘, 正易)

彬杉 和尙(금강산 당취두목)

乃紅 스님(모악산 수왕사 주지)

'민'(백두산 천부경 수련자)

蝨('이', 李水仁, 28세, 여성, 海月 수발 동학당)海月(최시형)이 그들이다.



수왕회는 해월 최시형선생이 양수리에 피신해 있을 때 수발을 들던 李水仁(스스로를 벌레'蝨'라고 부름, 동학당)이라는 여인을 수왕으로 등장시킨다.이수인이라는 여성은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세 이치는



"첫째. 모성(엄마 마음),

둘째, 밥,

셋째, 여성 몸의 월경(月經)이다."



라고 발언함으로써 여성이 역사의 주체인 동시에 모성이 역사의 핵심가치임을 선언한다. 앞으로 여성지도자들과 여성주도의 수왕의 시대가 온다는 뜻이다.

참가자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 수왕회는 전래되어온 유,불,선의 사상적 지도자들의 비밀조직이다.이 모임은 부권제 봉건권력인 이조 왕조의 감시를 피해 27차의 비밀 회합을 갖고 다가올 새 세상을 준비한다. 수왕회에서는 고조선의 국가사상인 천부경과 불교,동학과 정역 등 민족사상을 망라하여 연구한다.



수왕사에는 김지하의 집안 내력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본디 동학당(東學黨)이다. 그러나 천도교가 아니고 '나 홀로 동학당'이다. 내 집안이 동학당 이요, 그 이전엔 또 당취불교(黨聚佛敎)였다. 증조부와 조부와 조 모 이야기다. 내 부친은 남로당(南勞黨)이 아닌, 수왕회 계열인 오 성택(吳成澤) 뒷개네의 공생주의(共生主義) 오목당이었다. 그러다 가 나중에는 남로당으로 합당한 수왕(水王)빨갱이였다" 조선말기 평범치 않은 가족사가 자연스레 이 책에 스며들어 있다. 아니 어쩌면 이런 가족사는 수왕사를 연구하고 세상에 내놓는 동기이자 원동력일 수도 있다.



얼마전 세계를 휩쓸었던 '1%대 99%' 운동, 일본을 휩쓴 지진과 쓰나미, 겨울을 앞둔 11월에 필리핀을 강타한 사상유례없는 태풍 등 기상이변 등 은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된 또하나의 계기를 제공하였다.전 세계가 경제적 혼돈과 빈부격차, 금융회사,정부에 대한 분노를 접하며 저자는 이 세계적 혼란은 맑스주의의 부활이나 이른바 '따뜻한 자본주의'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환귀본처(還歸本處)를 통해 우리의 '지혜로운 과거'를 다시 살펴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해보자는 것이다.



섬강(蟾江)주변에서 시도된 동서양 사상의 융합

섬강은 횡성 평창 원주 일대를 흐르는 작고 아름다운 강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섬강을 둘러싸고 천주교와 실학, 동학과 화엄불교 등이 공존하며 밀접히 교류하고 융합을 시도했던 역사에 주목한다. 섬강에서 가까운 곳, 곤지암, 천진암에는 천주교의 성지가 있다. 정약용도 남양주출신이다. 해월선생을 중심으로 수왕회가 이 일대에서 활동했다.섬강은 사상사적으로 중요한 흐름을 품고 있는 곳이다. 해월선생이 한양에서 처형되었을 때 시신을 들쳐업고 내려가 여주에 묻은 이가 바로 천주교인 옹기장수 요섭(要攝)이었다.이에관한 오묘한 인연이 소개되고 있다.



식민사관이 말살한 우리 사상사(思想史)

이 책 곳곳에서 언급되어있다시피 전라도 일대에 광범위하게 번성했던 이른바 '남학밭'과 김일부 선생의 정역, 수운 최제우 선생의 동학,화엄불교와 천부경 산해경 등은 모두 우리 민족사상의 자산이자, 인류의 미래를 밝혀줄 수 있는 등불이다. 우리는 일제와 6.25를 거치며 근현대사의 심각한 역사적 사상적 단절을 경험했다. 일제와 해방이후 서구에서 유입된 좌우 이념들은 우리 심오한 민족사상을 누르고 감추고 왜곡해왔다. 일제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세우며 조선말기와 근대에 걸쳐 한반도를 후진적이고 피폐한 땅이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땅 한반도에는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를 융합, 재창조하고 인류의 미래를 설계하고 구상하는 원대하고 심오한 사상이 꽃피고 있었다. 사상뿐 아니라 미래의 주인인 여성 어린이 쓸쓸한 백성들에 대한 광범위한 교육과 모임, 사회조직 등이 결성되고 있었으니 계,품앗이(시간제 노동으로 협동하 는 노동방식),소쿠리(종교인, 지식인, 문화인, 선비, 승려의 모임) 등이다.게다가 정신 육체적 건강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춤(배꼽춤 등)과 수련(선수련)도 보급되었다.



이 책을 읽지않고 여성운동사를 말하지 말라

그동안 여성운동은 서양에서 유래된 페미니즘이 주도해 왔다. 하지만 서구의 페미니슴은 끝났다.서구 페미니슴의 젠더(Gender) 투쟁이 완전 몰락하고 남성 가부 장 반동(反動)과 사상사 역공(逆攻)이 지배하고 있다. '김지하의 수왕사'를 통해 빛나는 우리 여성운동사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는 천도교(天道敎) 여성 리더였던 주옥경(朱鈺卿) 최초의 여성명창이었다는 이화중선(李花仲仙) 최초의 여성 기철학자(氣哲學者) 임윤지당(任允摯堂) 송도 기생 황진이(黃眞伊),이조 초기의 프리섹스 여성 어을우동(於乙于同) 그리고 수왕사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박경리 작가의 문학세계가 소개되어 있다.



수왕사와 입고출신(入古出新)

수왕사는 논문이 아니다.학계에 최초로 제기되는 심오한 민족의 사상사다. 심각한 문제제기다. 수왕사는 역사적 혼돈과 자연적 대혼란을 극복하고 인류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재조명되어야 하는 엄연한 우리의 정신세계이고 역사적 사실이다.우리의 경험이다. 이것을 주목하고 재창조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자 김지하는 복고주의를 주장하지 않는다.그는 입고출신(入古出新)을 말한다.'옛것으로 들어가 새것을 내오자'는 것이 그가 십수년간의 각고의 노력끝에 수왕사를 쓴 이유일 것이다. 김지하의 스탠퍼드 대학 특강과 시 '바다' 등 부록편은 이 책의 독자들에 대한 선물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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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화엄경,벽암록,도덕경을 읽었지만, 못 알아먹겠다. 

madwife 2017-09-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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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쾌하다.옥편을 놓고 읽어나갔다.화엄경,법화경,벽암록,천부경,도덕경의 독서가있었기에 따라갔다.이시대의 새로운 정감록이요, 산상수훈이다.오탈자와 띄어쓰기 교정 덜 본 것이 옥에 티. 

완물상지 2014-02-10 공감 (0) 댓글 (0)


2020/03/28

Go for small-scale farming, not monoculture – DESERTIFICATION



Go for small-scale farming, not monoculture – DESERTIFICATION


Go for small-scale farming, not monoculture



Photo credit: Huffington Post

TO GO WITH AFP STORY ‘Lifestyle-China-farm-food-health,FEATURE’ by Fran Wang

A Chinese farmer tends to the crops at Ji Yunliang’s organic farm in the outskirt of Beijing on June 7, 2010. Ji Yunliang worked as a missile researcher at a large state-owned enterprise and later earned a doctorate in chemistry at a prestigious Beijing university — now, he is running a small, organic farm. In a country hit by a series of food safety scandals, the interest in organic produce is growing fast. | AFP via Getty Images
UN Report Says Small-Scale Organic Farming Only Way to Feed the World

by Nick Meyer | AltHealthWORKSSmall-Scale Organic Farming Only Way to Feed the World – Image: eatdrinkbetter.com – http://1.bp.blogspot.com/-ugzBfPw3V9o/UqgY4R-HzuI/AAAAAAAACqs/KyppgU5sXdw/s1600/496056329_cd5b0a5737_b.jpg

EXCERPT
Even as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continues to push for the use of more chemically-intensive and corporate-dominated farming methods such as GMOs and monoculture-based crops, the United Nations is once against sounding the alarm about the urgent need to return to (and develop) a more sustainable, natural and organic system.



That was the key point of a new publication from the UN Commission on Trade and Development (UNCTAD) titled“Trade and Environment Review 2013: Wake Up Before It’s Too Late,” which included contributions from more than 60 experts around the world.



——-

The findings on the report seem to echo those of a December 2010 UN Report in many ways, one that essentially said organic and small-scale farming is the answer for “feeding the world,” not GMOs and monocultures.

According to the new UN report, major changes are needed in our food, agriculture and trade systems, with a shift toward local small-scale farmers and food systems recommended.

Diversity of farms, reducing the use of fertilizer and other changes are desperately needed according to the report, which was highlighted in this article from the Institute for Agriculture and Trade Policy.

Source: althealthworks.com

See the text: Technologywater




Urgent need for a more sustainable, natural and organic farming system

In "Agriculture"

UNCTAD in favor of small-scale farming

In "Agriculture"


Author: Willem Van Cotthem

Honorary Professor of Botany, University of Ghent (Belgium). Scientific Consultant for Desertification and Sustainable Development. View all posts by Willem Van CotthemAuthor Willem Van CotthemPosted onMay 14, 2015CategoriesAgriculture, Desertification, food / food security, small-scale farmingTagsUNCTAD

Feature: Returning to organic farming: next generation of Chinese farmers - Xinhua | English.news.cn

Feature: Returning to organic farming: next generation of Chinese farmers - Xinhua | English.news.cn



Feature: Returning to organic farming: next generation of Chinese farmers

Source: Xinhua| 2019-02-07 18:41:36|Editor: Yurou
by Xinhua writer Luan Xiang
BEIJING, Feb. 7 (Xinhua) -- Wang Xin, 33, is a landscape designer by profession and farmer in practice. The strawberries coming from his organic plantation in the southern outskirts of Beijing are believed by his clients to be "the best of China."
Every day in Beijing, when men and women of his age are sucked in heavy traffic and endless meetings, Wang lives a life in the countryside, far from the maddening crowd.
He rises with the sun, works all day in the field or goes to farmers' market to sell fresh produce. At the end of the day, he goes to bed with sore muscles and falls into a deep sleep.
He does not take the time to consider whether it is hard work, preferring to get on with the job. "It has become a lifestyle. This is the life I chose to live."
In a country where food is so central to the culture, many well-educated city dwellers like Wang have returned to the countryside to dedicate themselves to fresher, healthier food.
RESEARCH FARMERS
Every Tuesday, Saturday and Sunday, Wang brings freshly-picked strawberries to the organic farmers' market in Beijing. The fruits are grown naturally in nutrient-rich soil, without use of fertilizers, pesticides, growth hormones or chemicals.
"I don't plan to be filthy rich, or I wouldn't have gone for organic farming," Wang said. With his firm athletic build and healthy tan, it is hard to imagine him the designer who used to spend days and nights in front of a computer screen.
Majoring in landscape botany, Wang has always been a plant lover. When he was 25, he realized his sedentary life made him put on weight, and he could no longer stand being an office drone. He quit his job, rented two plantation sheds in the suburbs and started his career from scratch.
On Tuesday, Wang presented this winter's first batch of fruit he planted in September. But work had begun in July, when he prepared all-natural organic matter to enrich the soil.
The formula has been perfected through years of research in collaboration with Beijing University of Agriculture, to simulate the formation of the fertile dark forest soil in Northeast China, known for its high crop productivity.
Logically, the true foundation of organic farming lies in soil content: if the soil is right - as a living organism with a complex organic structure - the outcome is safe and tasty food farmed without the need for fertilizing chemicals, according to Wang.
But quality produce is not the only objective. Wang hopes to build a production model that rehabilitates the soil itself - in regular plantations, the soil can degrade within a matter of years after being over-exploited.
Wang's work on the farm has not always been a smooth ride. But after a rough start he believes he has learned valuable lessons. He has gone back to the university and visited his colleagues in Tochigi Prefecture, Japan, to study the most modern organic farming techniques.
"For the organic farming to become truly sustainable, to revitalize the soil is key. I am certain that in three to four years, the soil that I have been reviving will keep getting healthier and healthier," he said.
Wang is not alone.
In Araxan, a semi-arid region located in northwest China's Inner Mongolia Autonomous Region, Ma Yanwei has spent years reinvigorating saline soil by applying water-saving methods to cultivate fruit and crops suitable for local conditions.
Sweet melon is the best-selling produce on Ma's farm. The sweetness of the melons comes from many years of study, experiment and hard work in the desert. Ma aims to find an ideal organic farming methodology to maximize the utilization of scarce water resources and mend the soil. "As long as the soil improves, it is natural to harvest healthy produce," Ma said.
In the last six years, he has seen more and more young people returning to the countryside to take on farming. In 2017 Ma set up a network for these new farmers to communicate, exchange experience and help each other. "So we could avoid longer detours and mistakes previously made by others," he said.
AN IDYLLIC FARM REBUILT
For 18 years, Zhang Zhimin, a former foreign trade expert, has been building an idyllic farm in the far southwestern end of Beijing to produce food and preserve biodiversity.
Zhang speaks several languages, so was designated to work in food imports and exports when China opened its market to the world outside. She believes that "agriculture is the art of man and nature working together."
On her bio-farm, the nature rules over man. Instead of eliminating weeds and pests, the wholesome biosphere works on its own to render seasonal harvests.
"Agriculture is the management of life, and life should be nourished by life itself," she said. On her farm Heaven's Blessings, trees, bushes, grass, insects, birds and cattle coexist in harmony. It is more like a habitat than a farm. In early summer she chops tender leaves and branches of weed under peach trees to feed the cattle and make room for the gramineous crops to thrive. In early autumn, she let cows roam free to finish the weeding.
In Wang's vegetable shed, the natural ecosystem works for the harvest to be healthy while no intervention from the outside is necessary.
"I have observed that the grass that coexists with the crops functions as a regulating factor of the microclimate by keeping the soil humid," Wang said.
Also, a native breed of spiders that leaves webs among the vegetables, feeds on the whiteflies that are usually hard to detect due to their miniscule size, preventing the need for harmful insecticides.
Wang has also gone back to ancient Chinese agricultural traditions to find inspiration to better coordinate human actions with nature, after learning the latest farming models in Japan, Germany and Israel.
At a "Farmers' Assembly" held in China Agricultural University (CAU) last month, Professor Meng Fanqiao with CAU's College of Resources and Environmental Sciences said organic/ecological farming is an important measure to improve the quality and safety of agricultural products.
"Organic/ecological farming is of vital significance for economic development as well as environmental protection in rural areas, for which it should play an imperative role in China's rural revitalization and the building of an 'ecological civilization,'" Meng said.
"The green development of the countryside is a strategy that goes hand-in-hand with the food supply security and the income level improvement," said Jin Shuqin with the Ministry of Agriculture's Research Center for Rural Economy. "To revivify ecology constitutes a crucial aspect of overall rural revitalization."
"It is our hope to promote healthy eating to become a mainstream choice, as well as the organic way to produce healthy foods," said Ma Xiaochao, project officer with Know Your Food, a self-publishing community focused on food sustainability.

UN Report Says Small-Scale Organic Farming Only...

UN Report Says Small-Scale Organic Farming Only...





UN Report Says Small-Scale Organic Farming Only Way to Feed the World

imageImage: eatdrinkbetter.com

Nick Meyer | AltHealthWORKS

Even as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continues to push for the use of more chemically-intensive and corporate-dominated farming methods such as GMOs and monoculture-based crops, the United Nations is once against sounding the alarm about the urgent need to return to (and develop) a more sustainable, natural and organic system.

That was the key point of a new publication from the UN Commission on Trade and Development (UNCTAD) titled“Trade and Environment Review 2013: Wake Up Before It’s Too Late,” which included contributions from more than 60 experts around the world.


The cover of the report looks like that of a blockbuster documentary or Hollywood movie, and the dramatic nature of the title cannot be understated: The time is now to switch back to our natural farming roots.

The New UN Farming Report “Wake Up Before It’s Too Late.”
The New UN Farming Report “Wake Up Before It’s Too Late.” Click here to read it.
The findings on the report seem to echo those of a December 2010 UN Report in many ways, one that essentially said organic and small-scale farming is the answer for “feeding the world,” not GMOs and monocultures.

According to the new UN report, major changes are needed in our food, agriculture and trade systems, with a shift toward local small-scale farmers and food systems recommended.

Diversity of farms, reducing the use of fertilizer and other changes are desperately needed according to the report, which was highlighted in this article from the Institute for Agriculture and Trade Policy.

It also said that global trade rules should be reformed in order to work toward these ends, which is unfortunately the opposite of what mega-trade deals like the proposed Trans Pacific Partnership (TPP) and the U.S.-EU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 (TTIP) are seeking to accomplish.

The Institute noted that these pending deals are “primarily designed to strengthen the hold of multinational corporate and financial firms on the global economy…” rather than the reflect the urgent need for a shift in agriculture described in the new report.

Even global security may be at stake according to the report, as food prices (and food price speculating) continue to rise.

“This implies a rapid and significant shift from conventional, monoculture-based and high-external-input-dependent industrial production toward mosaics of sustainable, regenerative production systems that also considerably improve the productivity of small-scale farmers,” the report concludes.

You can read more about the report from the Institute by visiting their website here.

Source: althealthworks.com

New UN report calls for transformation in agriculture | IATP



New UN report calls for transformation in agriculture | IATP





New UN report calls for transformation in agri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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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20, 2013
by
Ben Lilliston


Transformative changes are needed in our food, agriculture and trade systems in order to increase diversity on farms, reduce our use of fertilizer and other inputs, support small-scale farmers and create strong local food systems. That’s the conclusion of a remarkable new publication from the U.N. Commission on Trade and Development (UNCTAD).

The report, Trade and Environment Review 2013: Wake Up Before it is Too Late, included contributions from more than 60 experts around the world (including a commentary from IATP). The report includes in-depth sections on the shift toward more sustainable, resilient agriculture; livestock production and climate change; the importance of research and extension; the role of land use; and the role of reforming global trade rules.

The report links global security and escalating conflicts with the urgent need to transform agriculture toward what it calls “ecological intensification.” The report concludes, “This implies a rapid and significant shift from conventional, monoculture-based and high-external-input-dependent industrial production toward mosaics of sustainable, regenerative production systems that also considerably improve the productivity of small-scale farmers.”

The UNCTAD report identified key indicators for the transformation needed in agriculture:
Increasing soil carbon content and better integration between crop and livestock production, and increased incorporation of agroforestry and wild vegetation
Reduction in greenhouse gas emissions of livestock production
Reduction of GHGs through sustainable peatland, forest and grassland management
Optimization of organic and inorganic fertilizer use, including through closed nutrient cycles in agriculture
Reduction of waste throughout the food chains
Changing dietary patterns toward climate-friendly food consumption
Reform of the international trade regime for food and agriculture

IATP’s contribution focused on the effects of trade liberalization on agriculture systems. We argued that trade liberalization both at the WTO and in regional deals like the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 had increased volatility and corporate concentration in agriculture markets, while undermining the development of locally-based, agroecological systems that better support farmers.

The report’s findings are in stark contrast to the accelerated push for new free trade agreements, including the Trans Pacific Partnership (TPP) and the U.S.-EU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 (TTIP), which expand a long discredited model of economic development designed primarily to strengthen the hold of multinational corporate and financial firms on the global economy. Neither global climate talks nor other global food security forums reflect the urgency expressed in the UNCTAD report to transform agriculture.

In 2007, another important report out of the multilateral system, the International Assessment of Agricultural Knowledge, Science and Technology for Development (IAASTD), with contributions from experts from over 100 countries (and endorsed by nearly 60 countries), came to very similar conclusions. The IAASTD report concluded that “Business as Usual is Not an Option,” and the shift toward agroecological approaches was urgent and necessary for food security and climate resilience. Unfortunately, business as usual has largely continued. Maybe this new UNCTAD report will provide the tipping point for the policy transformation that must take place “before it’s too late.”
Filed under
Agri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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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tainable Agriculture
Free trade agreements

UN Report Says Small-Scale Organic Farming Only...



UN Report Says Small-Scale Organic Farming Only...



UN Report Says Small-Scale Organic Farming Only Way to Feed the World
Image: eatdrinkbetter.com
Nick Meyer | AltHealthWORKS

Even as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continues to push for the use of more chemically-intensive and corporate-dominated farming methods such as GMOs and monoculture-based crops, the United Nations is once against sounding the alarm about the urgent need to return to (and develop) a more sustainable, natural and organic system.

That was the key point of a new publication from the UN Commission on Trade and Development (UNCTAD) titled“Trade and Environment Review 2013: Wake Up Before It’s Too Late,” which included contributions from more than 60 experts around the world.


The cover of the report looks like that of a blockbuster documentary or Hollywood movie, and the dramatic nature of the title cannot be understated: The time is now to switch back to our natural farming roots.

The New UN Farming Report “Wake Up Before It’s Too Late.”
The New UN Farming Report “Wake Up Before It’s Too Late.” Click here to read it.
The findings on the report seem to echo those of a December 2010 UN Report in many ways, one that essentially said organic and small-scale farming is the answer for “feeding the world,” not GMOs and monocultures.

According to the new UN report, major changes are needed in our food, agriculture and trade systems, with a shift toward local small-scale farmers and food systems recommended.

Diversity of farms, reducing the use of fertilizer and other changes are desperately needed according to the report, which was highlighted in this article from the Institute for Agriculture and Trade Policy.

It also said that global trade rules should be reformed in order to work toward these ends, which is unfortunately the opposite of what mega-trade deals like the proposed Trans Pacific Partnership (TPP) and the U.S.-EU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 (TTIP) are seeking to accomplish.

The Institute noted that these pending deals are “primarily designed to strengthen the hold of multinational corporate and financial firms on the global economy…” rather than the reflect the urgent need for a shift in agriculture described in the new report.

Even global security may be at stake according to the report, as food prices (and food price speculating) continue to rise.

“This implies a rapid and significant shift from conventional, monoculture-based and high-external-input-dependent industrial production toward mosaics of sustainable, regenerative production systems that also considerably improve the productivity of small-scale farmers,” the report concludes.

You can read more about the report from the Institute by visiting their website here.

Source: althealthworks.com


Tags: sustainable farming less fertilizers urban farming managing water water

Meet the woman leading China's new organic farming army | Climate SOS | Al Jazeera



Meet the woman leading China's new organic farming army | Climate SOS | Al Jazeera

Meet the woman leading China's new organic farming army

Shi Yan's approach to organic farming is helping to break the country's "addiction to pesticides".
by Katrina Yu
25 Nov 2015






Thirty-three-year-old Yan is a trailblazer in Chinese agriculture and opened her farm, Shared Harvest, in 2012 [Katrina Yu/Al Jaze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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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jing, China - We'd been driving for an hour and a half since leaving central Beijing when the car suddenly slowed to a halt. "This isn't exactly where the GPS told me to go, but I think it's the place," says the driver.

I look out the window and see a simple wooden archway leading to a plain, one-storey building. The facade is bare except for some words painted in black capital letters. "Who is your farmer? Where does your food come from?" it reads.

"Yes," I reply. "This is definitely the place."



I've arrived at Shared Harvest, a 2.6-hectare farm in the countryside 70km north of the capital, to meet Shi Yan, its founder and chief executive. This is one of two Shared Harvest farms; the second is located in Tongzhou, half-an-hour away.

Yan greets me warmly, wearing a knitted green cardigan and long purple scarf. "Sorry I'm late. It's busy now because of the conference," she says.

Opened in 2012, Shared Harvest is not only a completely organic farm, it was also one of the first in China to follow the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CSA) model, where consumers buy meat and vegetables directly from producers. "We painted the question on the building ourselves," says Yan, "because in CSA, that is the core question."

A trailblazer in agriculture

Thirty-three-year-old Yan is a trailblazer in Chinese agriculture. As a young student at Beijing's Renmin University, she was concerned about the widespread environmental damage, such as soil erosion, being caused by chemical-reliant farming practices.




Earthrise - Take the Power Back




In 2008, she travelled to the US as an intern at Minnesota's ecological Earthrise Farm and to see CSA in action.

Being community-focused, CSA farms are run under organic or biodynamic principles. A key element of CSA is its shared risk, membership-marketing structure, which helps to financially protect farmers while linking them directly to consumers.

"I was searching for a real-world solution to this problem," says Yan. "But it changed my life. It wasn't only a workable business model, it's a lifestyle."

Shared Harvest is the result of what Yan learned during her six-month stint at the American farm, which covered everything from farming methods to member management. And the farm is not only her workplace, it's also the place where she held her wedding. At Shared Harvest, Yan walked down the aisle carrying a bouquet of broccoli instead of flowers and fed her guests dishes made from food grown on-site.

Today the farm supplies fresh produce to its 500 members living in the city.

"A lot of people don't know where their food comes from. It's a world far away, but CSA is about relationships. It's important for consumers to understand and build a relationship with farmers," says Yan.

When she first started Shared Harvest, few had heard of CSA. Now, there are more than 500 CSA farms in China. This month, Yan helped organise the sixth annual international and seventh national CSA conferences, which took place in Beijing.

Healthy methods

The farm prides itself on natural alternatives to synthetic pesticides. Instead of synthetic fertilisers, farmers use ash, hot pepper, and tobacco water to treat crop diseases, such as leaf spotting.

Farmers can spend half a day picking bugs off plants by hand, and on the rare occasion that crops are infected beyond repair, the team simply rips them out and starts again.

Yan tells me the key is managing the soil quality. "Take humans, for example," she says. "If you're healthy when you get a cold, you're able to recover naturally and faster. With farms, the most important thing is healthy soil. If the soil is carefully maintained, then the diversity and quality of the produce is also good and you can deal with problems better."

WATCH: Pesticide-free Farming in India & Eco-friendly fashion

But finding natural solutions can be tedious and labour-intensive, with some problems requiring weeks of individual attention. Unsurprisingly, Shared Harvest members pay a premium upfront for their weekly delivery. Supplies of vegetables, eggs and meat cost roughly three times more than that sold at ordinary supermarkets. It's expensive, but Yan believes 40 percent of Beijing residents can afford green produce. "It requires a different mind-set," she says.

And it's not only the consumers whom Yan hopes to convince. She's equally determined to educate Chinese farmers about organic practices. "We have to understand the mind of the farmer, and using pesticides is just like smoking. They're addicted to it," she says.

A costly addiction

Pesticides were first introduced in the 1970s, and quickly became a mainstay on Chinese farms thanks to easy access, low regulation and government subsidies. The agricultural industry gorged itself on chemical use in order to increase and maintain food output to sustain a growing population. However, the environment, and ultimately the consumer, paid the price.


Located in the suburbs of Beijing, an otherwise quiet outdoor shopping centre is transformed into a makeshift organic market [Katrina Yu/Al Jazeera]


After the famine experienced during the Cultural Revolution, "China was terrified of being hungry," explains Wang Jing from Greenpeace East Asia. "But now, the situation has changed, and we are witnessing 11 consecutive years of grain increase. Now, the concern is environmental damage and food safety."

This year, China was ranked as one of the world's worst safety violation offenders by the American food consulting firm, Food Sentry, which noted that pesticides were a major problem. Laboratory testing found that 32 distinct pesticides were found in Chinese foods, mostly produce, fruit and spices. A variety of studies have found a link between pesticides and a wide range of health problems, ranging from headaches and nausea to cancer and endocrine disruption. American research released in 2009 showed strong links between agrichemicals and birth defects.

But Greenpeace East Asia says that, while Chinese consumers are conscious of food safety problems, awareness about environmental impact is low. "Pesticides have polluted more than 100 million mu of arable land, that's more than six million hectares. And those pesticides have entered into the waterways and accumulated in the soil, and are even present in the air," says Wang.

But, she adds, the long-term implications for food production are equally as alarming. "The northeast region of China is known for being the most fertile, famous for what's called 'black soil'. But now, this region is losing one millimetre of black soil every year due to water, wind and meltwater erosion. And it takes 300 to 400 years for this to form naturally."

According to Greenpeace East Asia, urgent changes are needed to protect both China's food safety and security.

"It will be a disaster if China doesn't take responsibility to make a shift. There should be a diversion of public investment into a smarter way that considers sustainability," says Wang, adding that she would like to see more funding for CSA farming.

Building trust

Home to the world's largest agricultural system, China produces 20 percent of the world's food supply, the majority of which is wheat and grains, while owning only10 percent of its cultivated land.

Some trace China's organic farming origins to the 1990 government "Green Food" certification programme, which marked certain produce not as "organic" but rather, "high-quality and pesticide-controlled food". It was developments in this programme that later led to the formation of the country's first organic certification bodies.

According to organic trade fair Biofach, the penetration of organic produce in China remains a drop in the ocean, accounting for just 1.01 percent of total food consumption. But it's growing fast, with that number nearly triple 2007's 0.36 per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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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mentum can be felt at Beijing's weekly farmers' market. Taking place in the family-friendly suburbs of the city's northeast, an otherwise quiet outdoor shopping centre is transformed by the presence of hundreds of shoppers crowding the makeshift stalls of 40 organic suppliers.

I arrive to find market convener, Chang Tianle, on stage surrounded by children. It happens to be the market's fifth anniversary and a special programme has been organised. "I was asking them fun questions, like who's the youngest farmer here and who just gave birth to a baby. It's just to introduce our market and the ideas behind it. To support local producers, protect the environment etc," she later explains.

Started in 2010, the market began as a small arts project involving only a handful of organic farmers selling to a small crowd of expats and young Chinese.

Chang, a former journalist who joined the team four and half years ago, is credited with spreading the message of the farmers' market to the wider community. "At the beginning, people didn't really understand what we were trying to do and who we are. So we did a lot of education and advocacy via social media," says Chang.

Today the Beijing Farmers' Market attracts 1,000 customers each weekend and is supplemented by a permanent "Community Market" shop close by. Customers seem to fall largely into two groups: elderly Chinese and families with young children.

"The elderly come out of curiosity and keep coming because they say the food tastes more like the food they used to eat when they were young," says Chang. "But a typical farmers' market shopper is a young parent in their 30s who wants to know that the food they're feeding their family is safe."

At the market, Chang says, customers talk to farmers, and some even visit the farms. "It builds trust," she adds.



The elderly come out of curiosity and keep coming because they say the food tastes more like the food they used to eat when they were young. But a typical farmers' market shopper is a young parent in their 30s who wants to know that the food they're feeding their family is safe.

Chang Tianle, market convener


Within the cooperative, trust is key. Official organic certification in China is expensive and generally beyond the reach of most CSA farms. In lieu of certification, Chang says the market implements a strict screening process referred to as a 'participatory guarantee system', where members tour and inspect each other's farms. "It's not only a monitoring process, but also helps the farmers to learn from each other to improve their organic farming skills."

The first of its kind in China, the Beijing Farmers' Market has, over the years, been replicated in 10 other cities across the country. "We're happy to inspire people - to let them know that this is doable in China," says Chang. "We're a grassroots social enterprise, and we support local small farmers. Businesses tell consumers that bigger is better, but it's not true."

Tradition and reinvention

Also at the market is Jan Douwe van der Ploeg, a Dutch rural sociology professor. He's attending to give a talk on the topic of his new book, The New Peasantries, which argues that the preference for large Western-style industrial scale farms is short-sighted. "China is far better off with its own peasant farmers. They shouldn't artificially push scale enlargement," says Van der Ploeg.

During the 1990s, China's leaders and policymakers pushed for large-scale farming as a way to increase productivity, production, and increase farm income. During a "state of the nation" address, then-Premiere Li Peng explicitly referred to large-scale farming as the solution for increasing crop yields, pointing to successful large-scale mechanised farming experiments in southern Jiangsu province, northern Zhejiang and Beijing as models. However, even then, there was a recognition that large-scale farms were only feasible in economically developed areas where agriculture was not the main source of employment.

More recently, officialdom has acknowledged the value of remaining small. This year, a list of 50 farm policies was published by China's Ministry of Agriculture, referring to the development of scale or '"new-scale farmers", such as specialised grain producers, family farms and farming cooperatives. Funding worth 23.4 billion renminbi (about $3.8bn) was also allocated.

It is China's traditionally high number of farmers concentrating on smaller plots of land that Van der Ploeg refers to as the reason for China's "enigmatic" impressive productivity. "At the moment there is a contradiction because, in farming, so many chemicals are used. But using natural methods has traditionally been strong in Chinese agricultural history. And now, what there needs to be is a rediscovery of that art," he says.

When asked about China's urbanisation and the flight of young people from rural locations to the cities, Van der Ploeg says: "People think labour migration is at odds with farming, but many young people are interested in returning to the countryside. It's a kind of social phenomenon - a rejection of the corporate culture. The 'Xin Nongren' are reinventing farming."

New generation

Translated from Chinese, "Xin Nongren" means "New Farmers". The term is fondly applied to Yan and other young Chinese like her, who have quit jobs in the cities or elsewhere to devote themselves to sustainable farming.

Back at Shared Harvest, I'm introduced to a member of her team, another "new farmer", Wang Chong. The 24-year-old is responsible for leading the packing of produce into boxes to be delivered to farm members, as well as growing the produce in some of the greenhouses. "When I first arrived earlier this year, the winter melons were just sprouts. Now, they're about a metre high," he says proudly.


Over the past five years, Wang has been shocked by the amount of pollution and waste he has seen in the country [Al Jazeera]


Originally from China's south, Wang left his hometown as an 18-year-old to work, managing construction sites in the country's dry western region. Over those five years, he says he was shocked by the amount of waste and pollution he witnessed. "There were so many negative effects of construction, and the work itself was stressful and tiring. I decided to look for another direction."

Having grown up on a farm, Wang was interested in agriculture and was advised by a friend to contact Yan. "My friend told me that CSA offered farmers a better income than conventional farms, and I liked the idea of growing organic produce," he says.

Reliable statistics regarding the average earnings of Chinese farmers are difficult to find, but apprentice farmers at Shared Harvest earn 3,000 to 4,000 yuan (around $370 to $630) a month, which is comparable to workers in second or third tier cities employed in basic white collar work.

Wang quit his construction job for good to join Shared Harvest in March this year. Though his parents disapproved of his decision to return to the countryside, he says he hasn't looked back.

"I don't think there's anything low about being a farmer," muses Wang. "It's not like we don't have any pressure to do well, it's just a different kind of pressure. Working in other jobs, you might be staying up late and having a lot of anxiety. Here, it's about solving problems. For example, 'Are the chickens laying enough eggs? Is there an issue with the tomatoes?' This is the kind of stress I can deal with, and the work feels positive overall."

Wang is just one of a full-time team of 20 people who help Yan run Shared Harvest. Most of them are in their 20s, and Yan tells me they will most probably stay for one or two years before moving on. She says this a long enough time to build a foundation in organic farming and CSA, and also allows for a steady flow of new recru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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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eceive at least one inquiry a day from people wanting to come work here, and we don't have room for everyone. But for those especially determined, I tell them to come learn for a short while, then innovate and start their own thing."

Over the past five years, Yan estimates that more than 200 apprentice farmers have passed through her doors and started their own organic or CSA ventures. Many now partner with Shared Harvest through supplying produce from their own CSA farms. Yan blushes at the idea of being a mentor to so many, saying, "my colleagues joke that Shared Harvest is to farming what a military school is to the army, but I didn't plan that".

As a pioneer in China's organic farming movement, Yan seems to be leading a fast-growing army of new Chinese farmers. But she still believes that staying small is crucial. "Small organisations can adapt quickly and solve problems faster," she says, adding "small just refers to the ownership or management scale. After five years there are more than 500 CSA farms in China. When you put them together, they provide food for about half-a-million families. I don't think any one company could do that."

When it comes to solving the problem of agricultural pollution, Yan admits that CSA is only part of the solution. But at least now, the right people seem to be taking notice. Not only has a local district government agreed to sponsor this year's November CSA conference, last September, Yan was asked to write a report about CSA for China's Vice Premier Wang Yang.

"Interest is really growing, and it's not just on the surface. People are really passionate. Change won't be fast, but the impact is deep," says Yan. "CSA is not just a company or business, it's a social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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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L JAZE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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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7

"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 주장은 믿을 수 없다!



코나스넷



"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 주장은 믿을 수 없다!



광주사태를 취재했던 수백 명의 기자중 그런 의심을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Written by. 趙甲濟 입력 : 2008-11-09 오전 8:01:51



2년 전부터 한 탈북자가 "광주사태에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을 하고 일부 애국단체에서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 탈북자는 이렇게 주장했다.

<5.18사태 당시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우리 부대는 전투동원상태에 진입하라는 참모부의 명령을 받고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24시간 진지를 차지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긴급속보로 전해 들으면서 20여일 이상 출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치부 비 편제 서기로 자주 동원됐던 나는 나중에야 당시 제10군단장이었던 여병남과 7군단 참모장이었던 김두산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었고 희생도 많았지만 공로가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북한군 특수부대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광주에 특수부대가 침투 했었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 돌았다. 특수부대들에서 선발한 최정예 전투원 1개 대대가 해상을 통해 남파됐으며 그중 3분의 2가 희생되고 나머지 인원이 모두 귀대 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개연성이나 증거가 없다.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함이 타당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광주사태는 목격자가 많은 사건이다. 광주시민 수십 만 명과 진압군이 목격자이고, 수백 명의 직업적 구경꾼들, 즉 기자들이 취재했다. 외국 기자들도 많았다. 공개리에 일어나고 공개적으로 취재된 사건이다. 광주사태를 취재했던 나를 포함한 어느 기자도 북한군 부대가 개입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2. 광주사태에 개입한 북한군이 대대규모, 즉 수백 명이라는데, 이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을 당시 진압군(계엄군)의 장교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북한군의 출현에 대해서 보고하거나 주장한 사람이 없다.

3. 광주사태 사망자는 국방부 조사에 따르면 193명이다. 이들중 군인은 23명이고 경찰관이 4명이다. 군인 사망자 23명 중 10명은 공수부대에 대한 국군 교도대의 오인 사격으로 죽었다. 나머지 13명이 무장시민들이 쏜 총에 죽은 셈이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개입했다면 국군 사망자가 이 정도에 그칠 리가 없다.

4. 당시는 계엄령이 펴진 상태였다. 해안과 항만은 철저히 봉쇄되었고 공중감시도 정밀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어떻게 침투한단 말인가? 침투병력중 3분의 2가 희생되었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이들을 섬멸한 국군이 있을 것 아닌가? 무장간첩 한 명만 사살해도 부대 표창을 받는데 수백 명을 사살한 국군 부대가 이 자랑스런 사실을 숨겼단 말인가?

5. 全斗煥 정권하에서는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단서가 나오면 이를 반드시 확인했을 것이다.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6. 탈북자의 증언은 傳言에 불과하다. "내가 광주에 내려왔었다"고 나서도 믿기 힘든 판에 "카더라"란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7. 광주사태는 1980년 5월18일부터 시작되었다. 그 직후 광주 일원은 봉쇄되었다. 5월21일 계엄군은 광주시내에서 철수, 외곽을 포위했다. 이때 市外로 빠져나가던 시민들이 매복하고 있던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죽기도 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이런 상황에서 광주로 잠입했다면 국군과 대규모 전투가 발생했을 것이다. 정규군끼리의 충돌은 한 건도 없었다. 김일성(또는 김정일)이 5월18일 광주 상황 보고를 받고 특수부대의 출동을 명령했다고 해도 그 부대가 광주 부근에 나타나려면 빨라도 20일 이후일 것이다. 그때는 이미 광주가 철통같이 포위되어 있을 때였다. 수백 명의 북한군이 등장할 무대는 없었다.

6. 광주發 과장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사망자가 2000명이나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수 차례의 정부 조사로 부정되었다. 또 하나는 영화 '화려한 휴가'에 나오는 학살장면이다. 5월21일 정오 무렵 전남도청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비무장 시민들을 향하여 공수부대원들이 명령 일하에 일제 사격을 하여 수백 명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장면은 악랄한 空想이고 조작이다. 그런 학살도, 그런 사격명령도 없었다. 시민들이 차량을 탈취하여 공수부대원들을 덮쳤고, 현장에서 군인 한 명이 깔려 숨지자 군인들이 버스를 향하여 발포한 것이 본격적인 총격전의 시작이었다. 이런 미신에 북한군 개입이란 또 다른 미신을 추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正義는 진실에 기초해야 한다.

7. 애국단체들이 북한군 개입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위험하다. 진실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희망적 기대를 갖고 근거가 약한 의혹 수준의 첩보에 근거해서 행동하면 逆攻을 당할 것이다.(http://www.chogabje.com/)

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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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갑제


황만유 임천용씨 박모씨 또 누구더라.. 그사람들 증언은 그럼 뭡니까?</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2008-11-10 오후 11:52:42
00
pakwj3697


광주사태가 북괴 124부대 (피스톤부대)의 투입으로된 폭동이라고한 탈북 황만유씨의 증언이라면 진실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고 할수 있음으로 세밀한 조사와 분석으로 사실응 밝혀야한다고본다. 군인과 경찰이 매국노로 몰린 광주사태를 재조사해야한다고생각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2008-11-10 오전 9:55:23
00
치매여~~


왜? 갑자기 헛소릴 할까? 보수 얼굴하고서 좌파? 도라이? 미친? 헥까닥? 갑짜기 우끼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2008-11-10 오전 9:45:27
00
의심이...


소문일까? 그때도 그러말은 돌았었다. 풍문인지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그러나 진짜든 아니든 북한 개입여부는 확인 해보아야 할것이다. 국군을 위장해서 광주시민에게 혹시 ..그런생가도 들고. 반듯이 조사해볼 가치는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2008-11-10 오전 9:32:16
00
황장엽씨도,,,


광주사태에 북한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게더 이상한것이라고 말했죠,,조갑제씨는 결정적 순간에 배신을 때린다더니,,,전자개표조작도 없엇다고 우기질 않나,,,</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2008-11-09 오후 9:2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