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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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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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제정된 창가학회의 깃발[1]

1. 개요2. 역사3. 조직 구성 및 활동
3.1. 직책
4. 법화경 중시
4.1. 니치렌
5. 교세6. 교육기관7. 인식
7.1. 교단 내 유명인7.2. 한국과의 관계
7.2.1. 기성 한국 불교계의 시각7.2.2. 기타 종교의 시각7.2.3. 친한/혐한 논란을 둘러싼 각계의 반응7.2.4그것이 알고 싶다 '남묘호렌게쿄-한국 창가학회(SGI)' 방영
7.3니코니코 동화에서
8. 기타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そうがっかい
일본의 승려 니치렌(日蓮, 1222년~1282년)[2]이 주창한 불법(仏法)을 신앙의 근간으로 하는 불교계열의 신흥종교단체다.

1930년 11월 18일에 창립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국제창가학회[3], 영명은 SGI(Soka Gakkai International)다.[4] 1930년 11월 18일 설립 당시에는 명칭이 창가교육학회였고, 1947년에 창가학회로, 다시 1960년대 초에 국제창가학회(SGI)로 바뀌었다.

창가(創價, Soka)란 가치를 창조한다는 의미이다. 학회(學會, Gakkai)는 배우는 모임이라는 의미. 결국 종합하면 창가학회라는 조직명은 '가치를 창조하고, 배우기 위한 모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5]는 그들이 수행으로써 부르는 일종의 기도문이며,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이름을 남묘호렌게쿄라고 오해하지만[6] 이는 정식 명칭이 아니다.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なむみょうほうれんげきょう)의 일본식 발음인 '나무묘호렌게쿄'에서 유래한 것으로 묘법연화경에 '귀의'[7]한다는 의미다.

본부는 도쿄도 신주쿠구 시나노마치에 있다.[8] 한국의 본부는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에 위치하였고, 근방에 신도림역이 있다.

2. 역사[편집]

창가학회는 처음엔 종교단체가 아니라 창가교육학회(創價敎育學會)라는 교육자들의 모임이었다. 창가(創價)란 '가치를 창조한다'는 뜻으로,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1871~1944)가 가진 교육 철학이 가치창조였다. 창가교육학회의 회원은 모두 각자 자신의 현장에서 마키구치의 창가교육을 실험하고 검증하며 교육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마키구치 쓰네사부로는 자신의 독창적인 교육이론을 자신의 애제자 도다 조세이(戸田城聖)와 함께 체계화하여 남기고자 했다. 그래서 출판한 책이 바로 '창가교육학체계'이며 이 책의 발간일인 '1930년 11월 18일'을 훗날 창가교육학회의 창립일로 정했다.

그런데 창가교육학체계가 발간되기 전인 1928년, 마키구치와 도다는 함께 니치렌 불법에 귀의하게 된다. 이는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의 '가치론'과 '가치 창조'라는 교육이념이 니치렌 불법 사상과 매우 깊이 공명했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을 '아이들의 행복'에 두고 교육 이론을 전개하여 만들어진 창가교육은 '만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법화경 철학과 매우 닮은 점이 많았다. 마키구치는 환갑에 이르러 고민 끝에 니치렌 불법에 귀의하게 된다. 이때부터 창가교육학회는 창가교육의 근저에 니치렌 불법의 사상과 수행을 두었다.

1947년에 도다 조세이가 조직을 창가학회로 개명한 후에는 니치렌 불법의 사상을 배우고 실천하는 종교단체로 거듭나게 된다. 도다는 20세기 초 앙리 베르그송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 떠오르던 생명주의를 통해 니치렌 불법을 이해하려 했고, '법신불(法身佛)은 곧 생명 그 자체'라고 보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붓다는 생명력 그 자체이며, 현세의 이익을 실현시켜 준다. 이로 인해 창가학회는 불교계 단체 중에서도 유독 현세구복적이고 현실참여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1282년의 니치렌의 죽음 이후 니치렌 선사의 주장을 따르는 일련종(日蓮宗)[9]이 생겨났다. 일련종의 수십가지[10] 분파 중 하나가 일련정종(日蓮正宗)이다. 일련정종은 후지산에 위치한 대석사(大石寺)를 거점으로 하는, 니치렌이 직접 정한 본제자 여섯 명[11] 중에서 닛코(日興)가 세운 종파이다.

이 일련종과 일련정종 대석사(다이세키사)의 창건까지의 경위를 대략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282년 10월 13일 니치렌은 부슈의 이케가미[12]에서 생을 마쳤다. 당초, 니치렌 대선사의 묘소는 본제자 6명을 비롯하여 총 18명이 매달 교대로 지키는 윤번제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 윤번제는 지켜지지 않았고, 이미 3회기 무렵이 되자 닛코를 제외한 나머지 17명은 모두 찾아오지 않았다. 닛코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지두나 가마쿠라 막부 관리와 영합하여 자신을 천태사문이라 칭하고 니치렌 대선사의 글을 불태우거나, 물에 빠뜨려 지워버리는 폭거를 저질렀다. 결국 닛코는 일련종의 타락을 우려하여 니치렌의 저작[13]을 전부 모아 미노부를 떠났고, 후지산 일대에 일련정종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대석사(다이세키사)를 짓는다.

그렇게 일련종에서 일련정종으로 떨어져 나옴으로써 종교의 타락을 막는가 싶었지만, 제3대 법주인 니치모쿠(日目)의 죽음 이후 600여 년간 일련정종 또한 본래 미혼이어야 할 법주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고, 신도들에게 의식을 강요하여 돈을 빼앗는 등 종교적인 부패가 진행되어왔다.

그중에서 특필할 만한 사건이 바로 20세기 일본의 군국주의에 의하여 국가신토라는 사상 초유의 사상통일정책에 굴복하여 신찰을 허용하려 했던 일이다. 일제 군국주의 시절에 일본 정부가 신토(국가신토) 중심의 사상 통일과 종교 통일을 추진하자 이에 겁먹은 일련정종의 승려들은 '신도의 천조태신은 근본이고, 부처는 그림자'라는 주장의 신본불적론(神本佛迹論) 등의 주장을 하여 이에 반하는 어서(御書) 중 14곳을 스스로 삭제하는 추태를 부리기도 했다.[14]

그러나 이 당시(1940년대 초) 재가 조직(창가교육학회)의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와 그 제자인 도다 조세이는 니치렌 불법의 사상에 따라 신념을 굽히지 않고 이에 철저히 저항하며 신찰을 거부했다. 따라서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혐의와 천황에 대한 '불경죄'라는 두 가지 명목[15]으로 투옥(1943년 7월 경)되었고, 마키구치 쓰네사부로는 투옥 약 1년 4개월 후, 1944년 11월 18일[16]에 옥사했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7월 3일에 혼자 병약한 몸으로[17] 출옥한 도다 조세이는 창가교육학회를 '창가학회'라고 이름하였다.[18] 그 후 도다 조세이는 1958년 임종까지 단 10년 동안 80만 명에 이르는 조직으로 발전시켜 종교 단체의 기반을 다졌다. 그 뒤를 이은 제3대 회장 이케다 다이사쿠 이후 창가학회는 더욱 급속히 성장하여 일본에서만 1000만이 넘는 인구가 신앙하는 거대 종교 단체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19]

일련정종에서는 1979년 66대 법주가 의문스럽게 죽고 난 이후 66대 법주의 유언장에서 자신을 법주로 하라고 했다고 주장하는 닛켄이 그 증거인 유언장조차 보이지 않고 67대 법주 자리를 탈환한다. 그리고 돌연 회장이었던 이케다 다이사쿠를 파문하고 회원들을 만나는 것을 금지한다. 승려는 위, 재가신도들은 아래라는 오만한 사고방식을 깨지 못한 닛켄은 신도들이 자신을 숭배하기보다 오히려 일개 재가신도에 불과한 이케다 다이사쿠를 창가학회의 지도자로서 존경하자 그를 질투한 것이다. 게다가 창가학회 회원들에게도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이케다처럼 파문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하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창가학회 회원들은 그 일을 계기로 일련정종과 연을 끊어 창가학회가 독립된 단체가 되었다. 일본의 패전 이후 국가신토에 의해 초토화되었던 일련정종은 한때 창가학회 회원들의 기증으로 전쟁 전의 수십 배 수준으로 급속히 번영했지만 이 파문사건 이후 창가학회와 단절되고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다.

3. 조직 구성 및 활동[편집]

이 종교단체는 니치렌의 어록을 모은 책인 어서(御書)를 교리의 근본으로 하며, 회장의 말은 중요시하되 교리로 받들지는 않는다.

니치렌의 어록이자 창가학회의 교리의 근간인 어서(御書)에는 1359쪽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선구(先驅)는 니치렌(日蓮) 일인(一人)이로다.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도 들어가리라."라는 문장이 있다. 니치렌의 뒤를 이은 직제자인 닛코는 후대의 제자들에게 주의사항을 명시한 '닛코유계치문'에서 "때의 관수(貫首)라 할지라도 불법(佛法)에 상위(相違)하여 기의(己義)를 세우면 이를 받아 들이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하여 종교지도자의 말씀이더라도 불법정신이나 교리에 위배한 언사를 할 경우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즉, 회장의 지도보다 어서가 우선이다. 현 명예회장인 이케다 다이사쿠도 창가학회원에게 이렇게 지도했다.
"불법의 근본인 스승은 니치렌 대성인이시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어서를 깊이 배독해야 한다."
(1990년 11월 7일)

"창가학회는 영원히 '대성인 직결'이다. 어본존 근본이자 어서 근본이다. 이 신심이 있기 때문에 이전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한편 닛켄종은 대성인보다도 현재의 법주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착오의 뿌리가 있고 전락(轉落)하는 원인이 있다."
(1993년 9월 9일)
회장인 본인이 창가학회의 교주는 자신이 아니고 니치렌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리고 일련정종(닛켄종)은 이를 어기고 교주인 니치렌보다 법주인 닛켄의 말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종교단체가 닛켄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집단으로 변질되었다고 지적했다.

허나 현 회장인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은 사실이다. 발간 잡지인 법련이나 화광신문을 보면 내용의 이케다 다이사쿠의 어록이나 행적에 관한 내용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그러므로 이케다 다이사쿠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신도도 일부 존재하기도 한다.

본래는 후지산 대석사[20]에 위치한 일련정종[21]을 외호하는 단체였다. 하지만 이 일련정종의 재가신자(평신도) 집단으로 활동했던 창가학회는 일련정종과의 갈등 끝에 일련정종으로부터의 파문이라는 형태로 결별하여 1991년부터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 되었다. 자세한 과정은 바로 위의 '역사' 단락을 볼 것.

이는 오히려 창가학회가 순수한 재가신도 집단으로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현재는 창가학회의 규모가 훨씬 큰 편. 양 종파간 대립에 관해 90년대 후반에 법정 소송에서 창가학회가 승리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일련정종에서 축출된 부분에 관한 사건은 아니고 일련정종과 닛켄 자신의 범죄에 관한 것이다.[22]

조직 구조는 전형적인 피라미드형인데 조직 운영상의 편의로 인해 피라미드식으로 운영하는 것일 뿐 회원들 간에 따로 상하로 구분짓지는 않는다.[23] 전국 간부들은 수도권 지역에 밀집해있다. 간부는 별도의 경제적인 지원이 전혀 없는 봉사직이다.

매주 한 번씩 화광신문(和光新聞)이란 기관지와 월마다 법련이란 책을 발행하는데 내용은 '어서'에 대한 강의, 이케다 다이사쿠 스피치, 창가학회 회원들의 활동 등이 들어간다. 일반 가정이나 대학에서도 접할 수 있고,[24] 은행이나 관공서 같은데도 하나씩 던져놓고 가므로 오며가며 본 사람들도 꽤 많다.[25] 일본 내의 기관지는 세이쿄신문(聖教新聞)이다.[26]

참선방식이 좀 독특한데, 본래 "호흡 및 (호흡, 의식)관찰"로 대변되는 기존의 불가의 참선이 아니라, '자세를 취하고 묘법연화경을 독송하는 방식'에 더 가깝다. 내부에 '어본존'[27]을 놓은 '불단'[29]을 바라보고 정좌를 하거나 의자에 앉아 수주[30]를 낀 합장한 손을 가슴 높이에 둔 자세로 '남묘호렌게쿄'를 연달아 제창하는 것을 "창제"[31]라고 한다.[32] 창제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창제 횟수가 많을수록 좋다는 이유도 있지만 집중명상의 효과도 있어서 그렇다. 이는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으로서 급속한 신도증가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불법과 생활은 같다.'"라는 신조로 자신들이 직업에서 노력하며 종교활동과 함께 병행하면서 이룬 성과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종교활동 외에, 자신들의 구체적인 노력을 굉장히 강조하는 편인데 '올바른 불도수행과 실질적인 노력을 함께 병행하면 틀림없이 좋은 성과가 나온다'고 하며 이를 조직 차원에서 세심하게 관리해주고 격려해준다.

기원은 '이렇게 되게 해주세요.'보다는 '반드시 해내겠습니다.'라는 맹세를 하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여타 다른 종교에서 신에게 기원하는 것과 달리 내가 해내겠다라고 외치는 것은 석가모니의 말씀과 자신의 수양을 강조하는 불교의 측면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도 원래 서원(誓願, 산스크리트어 praṇidhāna, 팔리어 paṇidhāna[33])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34]

회원들끼리의 유대관계가 무척 깊은 편이다. 그리고 조직 내에선 회원들간의 이해관계나 금전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굉장히 엄하게 관리하는 편인데, 특히 보험이나 영업 목적으로 회원에게 접근한다면 바로 퇴출이다. 교회처럼 이성 간의 교제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활동도 굉장히 엄하게 단속하는 편이기에 조직력이 비상할 정도로 뛰어난 편이다. '부인부, 장년부, 남자부, 여자부, 미래부'와 같이 성별과 연령대에 따라 세심하게 부서를 구분하여 여타 종교보다 섬세하고 은밀하게 포교한다.[35]

창가학회는 종교라기 보다는 조직으로써의 색을 더 뚜렷하게 지니고 있으며[36][37], 종교활동 이상으로 사회활동을 강조한다.[38][39][40] 학회[41]는 매일 열리며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뉘어서 진행된다. 시간은 대체로 1시간 전후로 끝이 난다. 참선[42] 방식이 굉장히 특이한데, 불교에서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듯 '남묘호렌게쿄'를 외운다.[43]

창가학회를 알리는 포교활동을 광선유포라고 하는데,기관지 등을 통해 '올해 광선유포 목표 3,000명'과 같은 식으로 대대적으로 장려하는 편이다. 포교활동 방식은 사람간의 1대1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여타 종교가 포교활동에서 사회적 문제[44]를 야기하는 것에 반해 은밀한 포교[45]를 지향한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한국에 있는 모든 관련 시설들을 선제적으로 폐쇄했으며 한동안 일체 포교활동과 회원들의 활동도 전면 금지했다. 2022년 들어서는 각종 앱을 통한 비대면 방식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3.1. 직책[편집]

지역내 SGI 문화회관의 인원들은 소년부, 소녀부, 남중등부, 여중등부, 남고등부, 여고등부(이하 미래부), 남자부, 여자부, 장년부, 부인부 등으로 나뉘며, 미래부장, 부인부장 등의 이름으로 부서를 담당한다. 그리고 지부장이라는 직책도 있다. 지부총회라는 행사를 큰 행사로 간주하는 듯 한데, 이름만 봐서는 지부장이 관여하는 것 같다. 회관에서 간부를 맡으면 보성회라는 모임에 배속되는 것 같다. 보성회는 회관 내 당직 근무자로 추정된다.

4. 법화경 중시[편집]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한국 불교에서는 흔히 법화경(法華經)이라고 줄여부르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가지 언어로 번역되고 관련 문화 유산도 많아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대승불교 경전이다. 다른 경전들과 마찬가지로 대략 서기 1세기쯤부터 석존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제자들이 글로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법화경은 총 10권이며, 개경인 무량의경과 결경인 보현보살행법경(普賢菩薩行法經) 각각 1권씩을 제외하면 총 8권 28품(品, 경전에서 장(章)의 구분을 나타내는 말)으로 구성되어 있다.[46] 권의 수와 품의 수는 듣기에 서로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권 수는 법화경 제0이라고 하고 품은 품의 제목을 이야기 한 후 제00이라고 품의 수를 이야기 한다.[47]

원어인 산스크리트어로는 सद्धर्म पुण्डरीक सूत्र (saddharma puṇḍarīka sūtra / 삿다르마 뿐다리까 수뜨라)[48] 정도의 발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한어로 묘법연화경이라고 번역한 사람이 구마라습(鳩摩羅什)이다. 묘법연화경은 200가지가 넘는 한역 법화경 중에서도 최고의 문학성과 가치를 인정받으며 원작의 의미를 더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이유가 재미있는데, 구마라습은 혼자 혹은 소수의 지식인들끼리 모여 번역한 것이 아니다. 수백 명의 제자들에게 산스크리트어로 된 법화경을 강의하면서 함께 적절한 번역을 토론하여 번역을 진행했다고 한다. 따라서 딱딱하지 않고 대중들의 마음에 더 잘 와닿는 아름다운 비유와 예술성을 살린 것이 일품이다. 예를 들어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는 제목의 '묘(妙)'라는 글자만 하더라도, 원어에서는 '살(바르다)'이라는 글자였으며 이를 다른 번역가들은 정(正, 바르다)이라는 글자로 번역했으나 구마라습은 묘(妙, 묘하다, 불가사의하다)라는 글자로 번역함으로써 정(正)이라는 글자가 가진 갑갑함을 없애면서도 법(法)의 고귀함을 살리고, 또한 불가사의하다는 뜻의 심오함을 내포하여 독자들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구마라습의 번역으로 인해 법화경은 '본전의 내용을 왜곡했을 가능성'과는 별개로 일단 동양에서 대히트를 치는 데에는 성공했다. 따라서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와 일본의 문화유산에 법화경의 사상이 남겨진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불국사[49]

법화경은 워낙 민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법화경을 신앙하는 사찰은 한국에서도 아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연꽃은 불교의 상징 꽃이라 이 연꽃으로 사찰 주변을 장식해 놓는 경우가 많은데,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연화가 바로 이 연꽃을 의미한다.[50][51] 부처를 형상화한 그림에서도 부처가 연꽃 위에 앉아있거나 연꽃을 들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석존이 연꽃을 자신의 깨달음을 대변하는 꽃으로 여겨 소중히 했기 때문이다.

창가학회의 교주 니치렌은 법화경을 지극히 중요하게 여겼으며 한어인 묘법연화경뿐만 아니라 산스크리트어로 된 법화경 원문까지 공부한 듯 하다.[52] 사실, 당시 승려라는 직업은 종교인이기도 했지만 경전을 읽기 위해 중국어나 인도의 언어에도 능통하다보니 상당한 지식인 층에 들었으며 대부분의 승려들이 각종 국가 업무에서 통역사 역할도 수행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법화경만 공부한 것은 아니고 일본 전역의 사찰을 돌며 화엄경, 아함경, 방등경, 반야경, 열반경, 정토삼부경, 대일경, 정명경, 대집경 등 당시 일본 각지에 있는 모든 경전을 젊은 나이에 독파했다. 그뿐만아니라, 용수의 대지도론이나 중국 천태대사 이후의 마하지관, 법화현의 등 주석서까지 방대하게 공부했다.[53] 전부 법화경의 서분과 유통분으로서.[54][55]

창가학회는 석가모니[56]의 법화경에 따라 모든 민중들이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니, 더 나아가서 사실은 모두 '지용보살(地涌菩薩)'[57]이라는 부처인데 겉으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성불의 원리를 설명할 때 고생을 거듭하는 수행을 통해 중생이었던 자신이 부처로 바뀐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감추어져 있는 부처의 생명을 열어서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행복의 원리를 설명할 때도 자신의 행복을 부처에게 대신 가져다 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가능성을 열어 자기가 쟁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전자와 같은 '기복신앙(祈福信仰, 행복을 자기가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가져다주기를 기다리는 신앙)'을 '일흉(一凶)'이라고 말하며 엄금한다. 이와 같은 법화경 철학과 교리를 가진 탓에 창가학회는 모두가 신앙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신앙생활과 함께 자신의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을 중시하고 서로 격려한다.

창가학회의 교주 니치렌은 법화경의 제목을 따 '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독송하는 창제행(唱題行)[58]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불성[59]을 몸에 나타내어 이번 생애에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60] 일본어에 따라 읽으면 "남묘호렌게쿄"가 된다. 창가학회는 이 남묘호렌게쿄를 신앙하는 단체이므로, 니치렌의 저술을 모아 정리한 '어서(御書)'를 법화경보다 훨씬 더 많이 인용하며, 이를 공부한다. 니치렌은 그 누구보다도 법화경을 소중히하고 깊이 공부했기에 이 니치렌의 저술인 어서는 법화경의 해석과 인용이 주이며, 경전의 원문을 중시하여 어서공부는 그대로 법화경 공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법화경은 방대하기 때문에 모든 내용을 다 독송하는 경우는 드물며, 주로 2방편품과 16여래수량품만을 일본어로 독송한다.[61] 이를 근행(勤行, 곤교)이라고 한다. 이 두 품 중에서도 2방편품의 십여시, 16여래수량품의 자아게는 특히 중요하게 다뤄지며 상세한 해설이 따라붙는다. 근행은 방편품-종 울림-자아게-종 울림-제목-종 울림-제목삼창-어본존에 보은감사-제목삼창-삼대 회장[62]에 대한 보은감사-제목삼창-세계 광선유포 기원문과 회향-회향 중 종 울림-제목삼창-광선유포 기원문 마무리-제목삼창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그 외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구절로는 20상불경보살품의 24자 구절이 있으며,[63] 이를 학회 내부에서는 "24문자의 법화경"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창가학회의 교주가 석존이고 니치렌은 법화경을 공부한 일개 승려일 뿐이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니치렌은 법화경을 비롯한 모든 경전을 섭렵한 후에 석존의 불법이 힘을 잃게 되는 말법(末法)에는 기성불교를 깊이 믿을수록 오히려 불행이 깊어진다고 통찰했다. 법화경에서는 석존 멸후 인간들의 성격이 더러워지는 말법시대에 다시 태어나 새로운 불법을 넓힐 것을 석존에게 약속하는 '지용보살(地涌菩薩)'이 출현하는데 니치렌은 법화경을 읽고 자신이 지용보살로서 법화경에 비침된 '남묘호렌게쿄'라는 법을 넓힐 사명이 있음을 자각했다. 그래서 만으로 서른 한 살이었던 1253년 음력 4월 28일 정오의 시각에 세이초사라고 하는 당시 일본 최고의 사찰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를 입종선언(立宗宣言)이라고 하여 니치렌 불법의 시초가 되는 날로 정했다. 말법(末法)[64]인 지금은 석가모니가 이미 과거불이 되었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가피력에 의탁해보아야 공허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리 때문에 대한불교 조계종 등에서는 창가학회가 석가모니를 부정하고 있다며 창가학회를 불교(佛敎)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창가학회는 자신들이 석가모니를 부정한다면 애초에 석존의 가르침인 법화경을 이토록 중시하고[65], 남묘호렌게쿄[66]라고 말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을리 없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석존의 예언이었던 '투쟁견고(鬪爭堅固) · 백법은몰(百法隱沒)'[67][68]에 따르는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자신을 지용보살이라고 자각하여 행동한 창가학회 교주 니치렌처럼, 창가학회 회원 모두가 내증(內證)의 경애[69]는 지용보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묘호렌게쿄라는 말법의 법화경을 믿고 실천하여 타인에게도 알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한 마디로 창가학회는 법화경을 중시하되, 니치렌 대선사의 어록인 어서를 근본으로 하여 법화경을 읽는다. 창가학회에서는 이와 같은 니치렌 기준의 법화경 독해를 "문저(文底)에서 읽는다"고 표현한다.

4.1. 니치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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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렌은 법화경 제일주의를 주장해 법화경(묘법연화경)을 제외한 다른 경전은 모두[70] 임시방편의 가르침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는 법화경에 나와있는 "사십여년 미현진실(四十餘年 未顯眞實)[71]", "정직사방편·당설무상도(正直捨方便·當說無上道)[72]”, "이금당(已今當)[73]" 등의 내용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당시는 일본 전역에 정토삼부경, 대일경, 아함경, 화엄경, 반야경 등의 다양한 경전을 믿는 불교가 대단히 융성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발언은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또한 상대가 불도를 어지럽히고 자신의 명문명리를 위해 불법을 이용하는 악승(惡僧)이라면, 잠시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접어두더라도 죄업이 아니라는 이론도 펼쳤다. 단, 생명을 중시하는 불교이기 때문에 당연히 살인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에게 보시(밥이나 재물을 공양하는 것)를 중단하여 승려로서는 더이상 살아갈 수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74] 등 곳곳의 저서에서 설명했다.

니치렌은 어릴 때 출가하여 사찰을 돌아다니며 수학했으며 그 유학의 계기는 두 가지 의문 때문이었다. 하나는, 그 당시 일본은 불교가 많이 융성한 불교국가였는데 "왜 자연재해가 심하고 기아와 전염병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으며, 1221년 막부와 조정의 대립으로 조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왜 불교 승려들의 기원을 등에 업은 조정이 막부의 무사들에게 패배하여 쫓겨났는가"[75]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교주 석존은 단 한 명인데 현재 불교의 가르침은 왜 수십 가지로 나뉘어져 서로 대립하는가"였다.

전국 각지를 돌면서 수많은 경전을 독파한 니치렌은 그 이유가 당시의 일본이 불교국가이긴 하지만 불교를 잘못 신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전염병이 돌며, 내전이 일어나고, 불교의 기원이 힘을 잃어 조정이 패배하고, 불교 종파가 갖가지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는 등 당시 일본 사회의 어지러운 모습들은 전부 석존이 예언했던 '말법'이라는 시대의 모습과 완벽히 일치한다고 통찰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석존이 예언했던 말법시대에 태어났다는 점을 인지한 후, 석존이 예언한 대로 말법시대의 새로운 불법이 도래해야 한다는 것까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처음 일으켜 넓히는 일은 다름 아닌 자신의 역할이라는 점을 자각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1253년 4월 28일 정오의 시각, 세이초사(清澄寺)에 모인 대중들 앞에 '남묘호렌게쿄'라는 말법의 법화경을 처음 선언했다. 그날의 입종선언(立宗宣言) 이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약 30여년간 온갖 종파의 지도자 결탁한 권력자들의 탄압을 받았다. 머리에 칼을 맞거나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76] 그의 제자들도 법화경을 신앙한다는 이유로 그 지방의 권력자에게 끌려가 고문당하다가 참수되고,[77] 니치렌 본인은 사형장에 끌려가거나[78] 두 번이나 유배 당하는 등[79] 갖은 고생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이런 모든 괴롭힘들은 당시 권력자와 결탁한 기성불교 지도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니치렌을 국주에게 모함하고 암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치렌 자신은 평생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위해를 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사형장에 끌려가서도 참수당하기 직전에 모함이 드러나 풀려났고, 두 번의 유배도 모두 각각 2년 정도 귀양가 있다가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다사다난한 인생이었지만 그는 말년엔 강의도 하고 후배도 육성하고 저작을 남기다가 1282년 10월 13일 제자의 집에서 요양하던 중에 편히 눈을 감았다고 한다.

입종 선언 이후의 그의 고생스러운 일생은 창가학회 회원이 아닌 일반인들조차 어떤 색다른 감명을 받을 정도로 스펙타클한 것이어서 그의 일생은 드라마와 역사서, 영화 등에서도 다룬 작품이 많다.

그러나 그가 한 일들을 살펴보면 그럴만했다 싶기도 하다. 니치렌은 1260년에 발표한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릿쇼안코쿠론)에서 나의 교리만을 국교로 삼고 여타 종파를 모조리 없애야 하고 이것을 거부하면 외세가 침공하는 등 환란을 겪을 것이다라고 하여 유배를 갔다. 이후 유배에서는 어찌어찌 풀려나게 되었는데, 마침 여몽 연합군이 일본을 침공하자, 이때에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 하다가 종국에 사형선고까지 받은 것이다.[80]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니치렌이라는 인물에 대해 평생 연구하여 책까지 낸 어느 학자는 비종교인으로서 그의 주장이나 종교적 논의에 대해서는 논외로 치더라도 박해에 굴하지 않는 신념이나 의지만큼은 일본 역사 속 인물 중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라고 평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런 점에서 일본 역사에서 큰 영향을 끼친 승려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5. 교세[편집]

창가학회에서는 전 세계 192개국에서 활동한다고 밝히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 신자수는 약 1200 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본가 일본에서는 웬만한 일본인은 다 안다. JR그룹 시나노마치역에서 내려서 조금만 걸어가면 근처 건물 대다수가 창가학회 관련 건물들이다.

일본의 집권여당인 자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이 창가학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애초에 시작은 창가학회에서 비롯되었으나, 종교의 정치 개입 논란이 일본에서도 지속되어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창가학회에서 떨어져나왔다. 물론 일반인들은 여전히 창가학회 영향력이 큰 정당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긴 하다. 편견인지 진실인지는 내부자들만 알 일.

한국에서는 일본 종교로는 천리교와 함께 거의 유이하게 뿌리내린 케이스인데, 2022년 기준 창가학회 측이 밝힌 바로는 추정 신도 수가 150만 명이 넘는다고 하지만 신도 수 통계가 으레 그렇듯 과장이 있어 보인다. 한국의 기성불교계는 '주변 지인들의 권유로 이름만 걸어놓은 유령 교인이 허다하기 때문에 50만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실제로 다른 종교들도 기성불교의 주장을 납득하고 있다. 당장 SGI 본건물이 거대한 사이즈 대비 자주 유령건물 상태라는 점이 이를 입증하는듯. 물론 항상 관리하고 경비가 서있다.

통계청에서 주관하는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불교와 같은 항목, 혹은 기타로 처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수를 알기 어렵다.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개신교와 가톨릭 이외의 종파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창가학회의 회원이 되려면 해당 지역 문화회관에서 간부와의 대화를 통해 회원서를 작성하면 된다고 한다.

불교의 세가 상당히 미미한 아메리카 지역에도 창가학회 신도 수가 의외로 있는 편이다. 창가학회의 전신인 일련종 자체가 피지배층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교단이다보니 상류층보다는 하류층에서 믿는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6. 교육기관[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창가대학 문서
 참고하십시오.
창가학회의 3대 회장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1928 ∼ )가 창립한 소카대학(創価大學)이 도쿄 하치오지시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앨리소 비에조 두 곳에 위치해 있고, 국내에 학교법인 창가학원을 설립하여 서울 동작구에서 '행복유치원'이라는 유치원도 운영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도 유치원을 설립한 전례가 있는데, 한국이 일본홍콩말레이시아싱가포르브라질에 이어 여섯 번째라고 한다. 유치원에서는 따로 종교와 관련된 활동은 하지 않는다.##

7. 인식[편집]

내부적으로 많이 성장한 종교이지만, 초기엔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그리 좋진 않았다. 아무래도 신흥종교가 흔히 그렇듯 전통층에선 적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많은지라 더 그렇다.

한국창가학회(남묘호렌게쿄,한국SGI)는 한국 사회에서 왜색종교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당장 1964년 정부(문교부)는 창가학회(남묘호렌게쿄)가 간접적인 정신침략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창가학회'에 대해 포교금지 조치를 취했다. 또한 1978년엔 주요 언론사들로부터 왜색이 짙은 사이비 종교가 한국을 침략한다며 십자포화를 받았다.

2000년 들어서는 통일교가 포문을 열고 MBC 'PD수첩'을 통해서 '대순진리회' 등 신흥종교가 안좋은 의미[81]로 공중파를 타면서 2005년 SGI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이목이 집중되었다. 학회에 국회의원 여럿이 얼굴을 비추면서 일본처럼 정치에 개입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7.1. 교단 내 유명인[편집]

7.2. 한국과의 관계[편집]

한국 지부의 본부가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에 있으며, 바로앞 버스정류장의 명칭은 한국 SGI.[86] 전국의 본산이니만큼 국내 웬만한 사찰 못지 않게 매우 큰 건물로 지어져 있고 교통편은 신도림역 3번출구에서 10분을 걸어오거나 5611번[87] / 5619번 / 6411번 / 6511번 / 영등포09번[88] 버스를 타면 된다. 본부 옆에는 창가학회에서 발간하는 화광신문사가 있으며, 그 옆에는 대한산업안전협회[89]가 있다. 언급하듯 교통편이 잘 된 편이지만 지방에서 본부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고 대다수가 단체로 오기 때문에 관광버스를 대여해서 단체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요일에는 어마어마하게 북적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시끄럽거나 통행에 방해되는 경우는 적으니 안심해도 된다. 다만 멀지 않은 곳에 결혼식장이 세 군데나 있고[90] 결혼식장 버스가 보통 KSGI 앞 갓길에 대기 때문에 결혼식 버스와 KSGI 버스 간 주차 문제로 통행에 혼선을 빚는 경우가 있다.

의외로 국내에 뿌리 내린 역사가 긴 편이다. 한국에는 1960년대에 들어와 언론을 통해 대중에 알려진 것은 1978년으로, 동아일보에서 왜색이 짙은 일본 종교가 국내에 상륙했다며 비판하는 기사가 나왔다. 이 때 비판 논조는 "이젠 종교도 일제가 들어오는가."였다. 1964년 1월에는 문교부에서 창가학회의 포교를 금지하기도 했다. 정부에서 특정 종교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제재를 가하는 것은 독일이나 프랑스 등 다른 나라들에서도 더러 있는 일이다.[91] 군, 읍 단위의 작은 행정구역에서도 한 개 이상의 지부를 가지고, 각 지역마다 문화회관 형태의 건물이 구비되어 있다. 회관은 대부분 좌담회 형식으로 백여 명쯤 모임을 크게 가질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지역 회관이 없는 지역에선 좌담회와 같은 정기 모임을 상호 회원들의 집에서 쉽게 치를 정도로 결속력이 강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원들은 모임을 갖는 데 어려움을 겪진 않는다.

한국SGI에서는 니치렌의 어서 번역본을 제공하는데, 원문의 중세 일본어를 한국어로 일대일 직역하면서 실질적 형태소인 한자어는 일본식 그대로 남겨두다 보니 가독성이 좋지 않다. 영어로 번역된 어서는 아예 영어권 독자가 읽기 편하도록 어순이나 단어 선택을 다시 했기 때문에 읽기가 한결 수월하다.

참선 방식에서 제목을 올릴 때 제창하는 남묘호렌게쿄(나무묘법연화경)의 끝 글자가 "쿄"로 종교 이름 끝에 붙이는 '교'와 유사하여 종교 자체의 이름을 '남묘호렌게쿄교'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마저도 한국인에게는 특이하게 느껴지는 발음 때문에 몬데그린화 되어 '남녀호랭이교', '남녀호랑갱이교, '남녀호랑개교'로 바뀌기도 한다(...). 사실 초반엔 '남묘호랑개교'라고 알려졌는데, 이 발음이 한국어로 듣기에는 이질적이라 유명세를 탄 것.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정식 명칭이 아니며 정식 명칭은 국제창가학회 혹은 SGI이다.[92]

7.2.1. 기성 한국 불교계의 시각[편집]

창가학회가 일련정종과 다른 종교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1960년대에 창가학회가 한국으로 유입된 이후 청담, 성철, 법정과 같은 고승들이 정확히 어떤 종교인지 불교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많은 스님들은 '남묘호렌게쿄'라는 언어에 대해 비판을 내고는 한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면서 유언하시기를 "나의 설법은 모두 각자 그 나라 언어에 맞게 하여라"고 했는데 창가학회는 한국에 들어왔음에도 나무묘법연화경이라 하지 않고 '남묘호렌게쿄'라는 일본어로 하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

조계종에서는 창가학회를 "왜래신종교 종단"으로 취급하고 있다. 동국대학교를 비롯한 곳에서도 학보를 통해 부정적 시각을 보이는 편이다. 2016년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원 학보 44권에 나온 내용. 다만 '동국대 문화연구원'의 의견이지 조계종과 동국대학교의 공식 의견이라고 보긴 어렵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부정적인 기조가 있었다.법보신문의 내용. 2004년 기사. 주간 불교에서도 오래된 기사이긴 하지만 왜색불교를 우려한다고 했다. 역시 2004년 기사.

2010년대 들어선 불교계에서도 우호적인 언급이 나오고 있다. 일련종에서 출발한 재가불자 중심의 신흥불교운동단체인 창가학회(SGI)의 역동성과 다변화적 움직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2017년 현대불교 기사.

2018년 불광미디어 기사에선 "SGI는 미국내의 불교단체 중 인종적으로 가장 다양한 불교 조직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에는 이케다 회장이 1960년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온 데에서 출발한다"고 밝히고 있다.

2019년 법보신문 기사에선 "SGI(창가학회)의 명예회장인 이케다 다이사쿠는 유관순 열사를 한국의 잔 다르크로, 한국을 문화대은인의 나라라고 칭송해 여러 단체에서 표창을 받기도 했다"며 한국불교가 SGI(창가학회)를 아베 내각의 폭주를 막는 활인검으로 활용할 방법은 없는지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7.2.2. 기타 종교의 시각[편집]

천주교와 개신교 등에서는 딱히 관심이 없다.[93] 교계 차원이 아니라 개별 교회에서는 뭐라 하는 경우도 있다. 웬만한 신자들은 왜색종교 취급하며 이단시하며 목사 개인적인 견해로 창가학회를 '이단'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다만 교단 총회에서는 이단 판정을 내리지 않았는데 상당수 나이 든 신자들은 창가학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창가학회가 일본에서 생긴 종교라는 이유로 중노년층 세대의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7.2.3. 친한/혐한 논란을 둘러싼 각계의 반응[편집]

과거 SBS에서 이 종교에 대한 르포(그것이 알고 싶다)가 있었는데, 표면적으로 이케다 명예회장이나 당 종교의 대한(對韓)감정이 친한이라고는 하지만, 2차대전 때 알려진 이케다의 신사참배 거부 동기의 진실 등을 캐냄으로써 '사실은 그다지 친한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가 있다. 그러나 도리어 일본 본토의 혐한층에서는 창가학회의 친한정책이나, 민주당이나 재일교포 단체 등과의 연관성 등 음모론에 가까운 논거를 들어서 대표적인 친한단체라고 까고 있다. 이에는 창가학회가 일본어 출판물에서 日韓대신 韓日을 써왔으며, 또 한국 내에서 반일집회를 주최한 사실이 몇 차례 발각된 데에 기인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내의 SGI까들은 이케다 명예회장도 한국계라는 설을 퍼트리는데, 지들 맘에 안들면 일단 재일드립부터 치고 보는게 혐한이라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의 본명도, 지대작(池大作)이라는 설과 성대작(成大作)이라는 설이 있으며, 지대작이라는 설에 따르면 목포 출신의 승려라고 한다.[94] 그리고 부인 이케다 카네코(池田香峯子)가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2004년도에 세이쿄신문에 보도된 적도 있었다. 물론 그 유명한 이토 히로부미조차도 가족이 모두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은 게 남아있는 것처럼 한복 입고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한국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결국 한일 양국의 반대파들은 창가학회가 서로 자기 편이 아니라고 하는 형국이다. 다만 이케다 명예회장은 공개적으로 한국을 긍정하는 발언을 많이 하긴 했다. 강연과 대화에서 유관순과 안창호의 훌륭함을 강의하고 한국을 '문화 대은인의 나라', '형님의 나라'로 공개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를 일한(日韓)이 아닌 한일(韓日)로 표현하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한국>이라는 서적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케다 명예회장은 그 자신이 유년기 전쟁을 겪은 세대이고 또 그로 인해 형제를 잃은 경험도 있으니 이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독립유공자협회에서는 특별현창을 수여하고[95], 2009년에는 한국 정부로부터 화관문화 훈장을 수여받기도 하였다.[96] 독립유공자협회에서 현창을 수여한 것을 보면, 최소한 역사 인식에서는 과거 일제의 부정적인 역사를 청산하려는 양심적인 일본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본토의 '혐한'층이 창가학회를 싫어하는 이유는 초대회장 때부터 창가학회가 군국주의에 대놓고 항거했기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일본 정부는 모든 종교들을 '천황 중심' 신토로 통일하기 위해 종교단체에 압박을 가했는데, 이 때 당시 군부의 압박이 가해진 일본 전역 1,500여개 종교단체 중 반대한 종파는 불과 5곳에 불과했다. 그 중 간부가 체포된 곳은 총 3곳이었고 2곳은 취조 후 신토로 전향하여 풀려난데 반해, 군국주의에 반대하다 교주가 사망하고 조직이 붕괴된 곳은 창가학회뿐이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엔 오모토 탄압사건이 훨씬 유명해서 이 사건은 잘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이때 오모토나 창가학회 말고도 군국주의를 거부하다가 치안유지법에 박살난 신흥종교나 신사가 한두 개가 아니긴 했다. 또 군국주의에 항거하다가 교주가 사망한 종교는 창가학회뿐이라고는 하지만, 이 당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 당해서 감옥에서 옥사한 신흥종교, 신사 관계자는 제법 많았다. 오모토에서는 교단이 초법적 탄압을 받았으며, 고문의 여파로 3대 교주의 남편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일 정도였다. 단, 교주 본인이 탄압받아 사망한 경우는 창가학회가 유일하다. 그러다보니 창가학회 교세가 급성장하면서 현대 들어 주목받고 있는 것.

2012년 9월 경에는 이케다 명예회장의 저서 <감사합니다 한국>이 도서 베스트셀러 순위 12위에 랭크되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 이케다 명예회장은 일본인들이 한국의 역사에 끼친 누를 사죄하고 한국을 문화 대은인의 나라라고 부르고 있다. 또 한국 젊은이들이 자신의 역사, 특히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를 잘 알아야 한다고 하는 지배국이었던 일본의 입장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한일관계가 영 좋지 않은 시기에 일본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이케다 회장의 태도가 한국인에게는 너무나도 낯설었기에 적잖은 충격을 가져왔다.

일본의 인터넷 언론 J-CAST에서 이를 다룬 기사가 나왔다. 번역된 기사.

7.2.4. 그것이 알고 싶다 '남묘호렌게쿄-한국 창가학회(SGI)' 방영[편집]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2005년 8월 27일, '남묘호렌게쿄 - 한국 창가학회(SGI)를 어떻게 볼 것인가'(352회)를 방영했다. SBS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시 볼 수 있다.

방송에서 다룬 창가학회에 대한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창가학회가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고 있는 만다라 안에는 일본의 개국신과 가야를 침공했던 장군(八幡大菩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결정문]
  • 일본에서 창가학회가 각종 사회적 문제와 사건을 일으킨바 있다는 것[98]
  • 한국 창가학회 역시 정관계와 결탁하여 불법적인 사기를 벌인 사건[99]
  • 지난 국내 선거에 한국 창가학회 신도가 대규모 동원되었다는 내부고발이 있다는 것[결정문]
  • 영국과 프랑스 언론에서 '창가학회가 화합과 인간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라고 볼 수 없다'고 보도했다는 것
  • 창가학회 초대회장이 '일본의 침략전쟁 원인이 창가학회를 믿지 않은 피해국가들에 있다'는 망언을 했다는 것[결정문]
  • 창가학회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이 어렸을 때부터 '천하를 손안에 쥐겠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그의 에세이에서 자신을 '국왕이자 대통령이며 최고 권력자'라고 표현했다는 것
  • 더불어 이케다 회장의 공식발언 중에는 '사악한 행위에 대한 원수를 갚는다, 악행, 사악한 악행의 원수를 갚는다, 비겁한 자를 때려눕혀라, 때려 쓰러뜨려라' 등의 종교인답지 않은 잔인하고 과격한 발언이 있다는 것
  • 일본에 창가학회 피해자 모임이 있으며 창가학회를 탈퇴한 신자에게 협박성 우편물이 보내졌다는 것[102] 등이다.

방영되기 전 한국 창가학회(한국SGI)는 SBS측에 해당 방송을 금지하는 요구를 해 왔다. 또한 방송 당일에는 SBS 앞으로 한국 창가학회(한국SGI) 신도 1만여명이 몰려온다는 첩보에 방송사 주위에 전경 4천여명이 동원되었고 이로인해 목동 일대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그리고 해당 회가 방영된 후 그것이 알고 싶다 게시판에는 한국 창가학회(SGI)를 비난하는 글과 이에 반박하는 신도들의 글이 올라와 논쟁을 벌인 바 있으며, 한국 창가학회 신도들이 SBS 본사 앞으로 몰려와 사과 방송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지기도 했다.

이후 창가학회측은 언론중재위원회에 언론조정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인해 다음과 같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결정문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27일 방영된 “남묘호렌게쿄, 한국 SGI를 어떻게 볼 것인가!” 프로그램에 대한 언론중재위원회 직권조정결정문입니다. 충청대학의 공식문서에 의하면 충청대학은 지난 1998년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SGI회장에게 창가대학의 설립자로서 세계평화 및 문화, 교육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여 왔고 국제적으로도 탁월한 학문적 업적과 덕망이 높아 세계 문화에 공헌한 공로로 명예교수 학위를 수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국SGI는 한국 국내 정치나 선거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이케다 다이사쿠 SGI 회장의 지시를 받아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사실도 없으며, 또한 한국SGI는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쳐 한국에서 전래된 법화경을 바탕으로 하는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불교를 신봉하고 있어 왜색종교가 아니며, 만다라에 나오는 천조대신과 팔번대보살은 SGI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고 있지 않고, 마키구치 창가학회 초대 회장이 대동아전쟁의 책임을 한국 등 피해 국가들에게 있다고 전가한 사실은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문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7.3. 니코니코 동화에서[편집]

창가(唱歌)학회

일본 안티들은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를 이케다 이누사쿠(池田犬作)로 부르면서 까고 있다. 니코니코 동화의 몇몇 에어모토씨 동영상에서 "犬作"같은 코멘트를 볼 수 있다. 에어모토씨가 창가학회 관련 동영상이라 종종 이 사람의 얼굴이 나오기 때문이다. 혐한초딩 덕분에 혐한하고도 상당히 엮인다.

이케다 다이사쿠 뿐만 아니라 SGI와 관련된 각종 영상들을 소재로 SGI를 까기 위한 동영상들이 많이 만들어져 업로드되고 있는데,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는 주말의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애니메이션들의 이름을 따서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도로키'[106], '컬트의 헌금술사 PRESIDENTAL CULITST'[107], '켄킨!'[108] 등의 이름으로, 이런 류의 패러디 동영상을 TV 애니메이션 한 편 분량(대략 23~25분)으로 모아놓은 동영상이 꼬박꼬박 올라오곤 한다. 이러한 동영상은 오프닝과 엔딩마저도 제대로 패러디로 만들어버리는 편이다(...).

니코니코 동화에서는 보통 '기타(その他)' 카테고리에 올라오다가, 2008년 12월경 'ひとこと動画(히토코토도가, '한 소리 동화(동영상)', '한 마디 동화'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라는 정체불명의 카테고리가 생겼을 때 그 쪽으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 히토코토동화=히○○토동화=히사모토동화라는 황당한 이유였다. 히토코토동화가 히사모토동화가 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운영측에서는 히토코토동화 카테고리를 포함한 이런저런 카테고리를 모아 '예의 그거'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자세한 정보는 에어모토씨 참조.

8. 기타[편집]

  • 한국SGI 산하에는 빅토리아 윈드오케스트라, 신세기 파이오니아 윈드 앙상블, 한강 윈드 오케스트라, 해돋이 합창단, 라이온 코러스 등 많은 문화 단체를 두고 있는데, 이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문화단체가 각국 SGI 산하에 있다고 한다.
  • 홍콩97의 스탭롤에도 이 단체의 이니셜이 나오는데, 이 이니셜이 실제로 이 종교 집단인지, 그리고 왜 스탭롤에 끼어 들어갔는지는 불명. 근데 이 게임의 상태를 생각하면 제작자가 허가받지 않고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문예춘추에 의하면, 일본에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아브라함 계통의 일신교 신자가 드물게 된 여러 가지 원인중 하나라고 하며, 정확히는 전쟁 이후에서도 계속 그 원인으로 기능하게 된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즉 쇼와시대에 갑툭튀한 창가학회가 본의 아니게 기독교의 종교적 사회 순기능 역할까지 해서 그렇다는 듯. (번역1번역2)
  • 잭 니콜슨 주연의 1973년 영화 마지막 지령에 해당 종교와 교인들이 등장하고, 작품 내에서 여러 번 언급된다.
  • 사이비라고 인식되는 경우도 있는데, 일단 사이비 종교의 대표적인 문제인 교주 신격화, 돈 문제, 비상식적 행위는 아직 사회적으로 크게 보고된 적은 없다. 심지어 공양비도 직장인의 경우 연말정산에 기부항목으로 처리할 수 있다. 종교 교리를 따지는 사람들에 따라선 이단으로 볼 수는 있겠으나, 이단과 사이비는 의미가 다른 말이긴 하다. 다만 일부 국가에서 창가학회를 불법 단체로 규정한 경우는 있다고 한다.
  • 2022년 3월 9일, 20대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의 21년 5월 29일 강릉 외가 방문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해당 링크에 나온 외가에 있는 한 액자에 南無妙法蓮華經(나무묘법연화경)이 쓰여있어 왜색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다만 윤석열의 외가와 창가학회는 관계가 없다. 애초에 묘법연화경을 외는 종파가 한둘인 것도 아닐 뿐더러, 창가학회는 이미 일련종-일련정종 시절부터 액자에 南無妙法蓮華經이라고 적어서 걸어놓는 관습이 없었다고 한다.
  • 임진왜란(1592) 시기에 일본 배들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배를 타고 한반도에 건너왔는데, 이들이 이용한 배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 써있는 깃발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임진왜란 당시 각 왜군 장수들은 스스로를 상징하는 깃발(軍旗)을 달았는데, 일련종의 일파인 '미노부파' 신도였던 가토 기요마사가 자신의 군기에 무사히 살아 돌아갈 수 있도록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써넣었던 것. 다만 이 사례 역시 윤석열 외가 사례와 비슷하다. 선술했듯 창가학회에는 남묘호렌게쿄라고 적어서 복운을 비는 관습이 없다. 가토 기요마사의 그런 행동은 전쟁에 나가는 장수로서 무사귀환을 기원하기 위한 목적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또 묘법연화경은 일본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가장 많이 읽힌 불교 경전 중 하나였다.
  • 2005년 5월 15일,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2005 나라사랑대축제를 개최했다. 가수 인순이, 주얼리, 김덕수 사물놀이 패 등이 참여했다.

9. 관련 문서[편집]


[1] 깃발 색상이 루마니아의 국기와 동일하다. 좀 더 정확히는 루마니아 국기 색상에 채도만 조금 올린 모습이다.[2] 창가학회에서는 니치렌 대성인(Nichiren Daishonin)으로 부른다.1222년 2월 16일 출생하여 만 60세인 1282년 10월 13일까지 살았다. 여러모로 일본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는 음력이며 아래 내용 중에도 근대 이전의 날짜들은 전부 음력이라고 보면 된다.[3] 한국홈페이지.[4] 한국에서는 Korea의 앞글자를 넣어 KSGI라고 한다.[5] 묘법(妙法)의 이름이자 우주생명의 근본원리와 법칙으로, 이름의 뜻을 해설하자면 '남무(南無)'는 범어로, 한자로 풀이하면은 귀명(목숨을 바친다)를 뜻하고, "묘호(妙法)"는 미혹함과 깨달음을(일개 범부의 생명은 보잘것 없어보이나, 그 속에서는 부처의 생명인 불계도 자리잡는다라는 것), '렌게(蓮華)'는 우주와 만물을 꿰뚫는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내재된 인과구시의 법칙을 뜻하는데, 예시로 사람이 화가 났을 때 동시에 인상이 변하는 것처럼, 원인과 결과가 함께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 봄에 씨앗을 뿌리면 가을에 열매를 맺는 것 또한 원인과 결과가 그 때를 달리하고 있기에 '인과이시'라고 하는 것이며, 좀 더 깊이 파고들면은 에 씨앗을 뿌렸을 때는 가을에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결과가 이미 내포되어져 있기에 결국에는 인과구시라고 부르며, 그렇기에 창가학회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존재하는 지금 이 순간과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라고 주장 및 가르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쿄(經)'은 우주 삼라만상의 언어와 동작을 포함하는 것으로, 현명한 사람의 언행도 쿄이고, 어리석은 범부의 외침도 쿄에 해당되며,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목수는 목수대로, 기술자는 기술자대로 쿄를 읽다고 보는 것이라고 한다. 이 남묘호렌케쿄는, 우주를 움직이게 하는 근원의 에너지이면서도, 곧 만물을 변화시키는 근원으로, 이 묘법(남묘호렌케쿄)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능히 만물을 움직일 수가 있는데, 그 이유는 이 남묘호렌케쿄가 바로 우주를 움직이는 리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이 묘법으로 기원한다면, 우주의 법칙상 불가능한 일(대성인이 예시로 든 '대지를 가르켜서 빗나가는 것','허공을 동여매는 자가 생김','조수의 간만이 없는 일이 발생','해가 서쪽으로 돋는 일')이라고 해도, 소우주인 자기자신과 대우주의 생명과 기어를 맟추어 돌아가게 함으로써로써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능히 반드시 이루게 할 수가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묘법으로 기원한다면은 그 어떠한 괴로움도 이겨내는 것이 가능한 무한한 힘이 생겨나며, 기원을 이루게 하여 전 우주에 존재하는 제천선신과 불보살들이 움직이게 되기까지 한다고 한다. 거기에, 이 묘법으로 기원하는 것 자체가 전 우주에 울러 퍼져, 전 우주의 에너지를 몰고 돌아오게 한다고 한다.[6] 심지어 과거 한국에서는 '남묘호렌게쿄'의 발음이 와전된 이름인 '남묘호랑교' 내지는 '남녀호랑이교/남녀호랑갱이교/남녀호랭이교'(...) 등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으며, 지금도 나이 많은 어르신들 중에도 이 종교의 이름을 '남묘호랑교'라고 알고 있는 분이 상당히 많다.[7] 나무(南無)는 산스크리트어의 나마스라는 말을 한자로 음역한 것으로, '귀의(歸依, 믿고 따른다는 뜻을 가진 불교용어다. 귀명(歸命)이라고도 한다.)'와 같은 말. 한자 독음 자체는 "남무"지만 불교 용어로는 "나무"라고 읽는다. 나무아미타불의 나무도 같은 나무다. 다만 한국SGI에서는 나무묘호렌게쿄가 아니라 남묘호렌게쿄로 표기하고 있으며#, 글로벌 사이트에서도 Nam-myoho-renge-kyo라고 하고 있는데# 원류가 된 일본어 표기를 존중한 듯 보인다. 근대 이전의 일본어에서 む는 ん 발음으로 읽는데 이유는 역사적 가나 표기법을 참조.[8] 시나노마치 역에서 내리면 바로 갈 수 있다. 참고로 도쿄 신국립 경기장메이지진구 야구장,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 나온 육교가 이 근처에 몰려있다.[9] 일본어 발음은 니치렌슈[10] 현재 일련정종을 포함하여 약 30여 개 정도의 분파가 있다고 한다.[11] 1282년 10월 8일에 닛쇼(日昭), 니치로(日郞), 닛코(日興), 니코(日向), 닛초(日頂), 니치지(日持)로 정했다.[12] 현재 도쿄도 오타구[13] 소식문(편지)과 논문 그리고 초(抄) 등. 지금은 니치렌대성인 어서전집(日蓮大聖人 御書全集)이라는 책에 집대성되어있다. 안타깝게도 편지 중에는 수신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14] 어서는 창가학회 및 일련정종을 비롯한 니치렌종(日蓮宗)의 교리의 근본이다. 자종의 교리를 삭제하는 행위는 종교적 신념도, 자존심도 완전히 버린 비굴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 행위가 창가학회가 일련정종으로부터 독립하는 근본적인 계기가 된다.[15] 참고로 일제강점기 많은 독립운동가와 일본의 지식인, 종교인, 아나키스트들도 함께 이 죄목으로 잡혀들어갔다. 얼마나 부조리한 악법이었는지 알 수 있는 사례. 당시 미쳐 돌아가던 일본제국의 입맛에 맞지 않던 수천, 수만의 지식인, 언론인, 종교인들이 사상범이라고 불리며 이 죄목으로 투옥되었다. 그리고 국가신토의 부정과 그에 따른 불경죄는 타 종교들에게도 입막음 수준이였는데. 메이지 시대 신흥 3대 종교에서도 세력이 가장 컸던 오모토도 현세 부정의 교리와 급진파들의 교단장악으로 인해 정부에서 불경죄 명목으로 1차와 2차 오모토 사건을 일으켜 교단 자체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16] 놀랍게도 자신의 필생의 저서인 '창가교육학체계'의 발간일에 옥사했다. 이는 창가학회의 창립일이기도 하다.[17] 출옥 전 약 75kg이었던 몸이 45kg 미만으로 줄었다고 한다. 키가 큰 편이었던 그의 체격에 비하면 뼈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물자가 귀한 전시였고 일본의 국민 대다수가 제대로 먹지 못할 때 범죄자 신분이었던 그에게 제대로 된 식사가 나올 리가 없었다. 영양실조뿐만 아니라 류머티즘 등의 온갖 병을 옥중에서 얻었다고 한다. 결국 도다 조세이는 이때 얻은 병들로 인하여 향년 58세에 사망했는데 인간의 평균적인 수명에 비하면 상당한 단명이다.[18] 이는 '니치렌 대성인의 남묘호렌게쿄라는 근본법은 본래 교육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생활을 아우르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19] 그에 반하여 일련정종은 닛켄이 법주 자리를 빼앗은 이후 교세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현재 창가학회에서는 그런 닛켄종에서 자연히 분리되어 종교의 타락을 피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다.[20] 다이세키사(大石寺)라고도 한다. 일련정종의 거점.[21] 창가학회에서 부르는 명칭은 '닛켄종'이다. 아베 닛켄(阿部日顕, Abe Nikken, 1922~2019)은 일련정종의 67대 법주인데 창가학회에서는 일련정종이 닛켄의 사리사욕을 위한 교단으로 변질되었다고 보고 닛켄종이라고 부른다. 창가학회와 일련정종의 분리가 진행된 것도 닛켄 법주 시기이다. 아베 닛켄의 아버지는 아베 니치카이(阿部日開)인데, 60대 법주였다.[22] 닛켄은 자신의 거짓말로 최고재판소에서 2차례 배상금을 물었다. 명예훼손 사건에서 30만엔을 배상했고, 시애틀 사건을 둘러싼 소문에서는 닛켄과 종문에 연좌해서 400만 엔의 배상을 명하는 판결이 확정되어 있다. 이 밖의 사원 반환 재판은 종문측 패소. 유골 불법투기 사건은 대석사가 패소. 기생 사진 재판도 종문 측 전면 패소로 종결되는 등, 닛켄과 일련정종은 최고재판소로부터 7번이나 단죄를 받았다.[23] 회원끼리는 나이와 직업, 성별, 조직에서의 역할에 관계없이 서로 존댓말을 한다. 이는 '모든 사람은 전부 부처'라는 그들의 교리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초등학생과 중학생에게도 50대 어른이 존댓말을 하는데 이를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꼭 존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종교활동 중에는 꼭 존댓말을 쓸 것을 권하지만 서로 친해진다면 종교 외적인 일에선 말을 놓더라도 큰 상관은 없다.[24] 대학교 동아리방마다 한 부씩 넣어주는 학교도 있다.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대학가에 포교활동을 하는 것이다.[25] 화광신문을 왜구신문이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나보다. 和光와 倭寇는 일본어로 "와코", 즉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26] 화광신문의 옛 이름도 '세이쿄타임즈'이다. 한자는 물론 똑같다.[27] 御本尊(ごほんぞん). 법화경 내용을 수지한 종이. 더욱 상세히 설명하자면 불교에서 나오는 생명론인 십계를 문자로 나열해 놓은 모습이다. 석가모니가 말했던것은 모든 사람이 가진 부처의 생명을가지고 있다라는 것이었는데 이를 말법시대에 들어와 처음으로 누구나 자신의 생명10가지중 가장 상위의 불계의 생명을 용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창시한것이 니치렌 대성인인데, 니치렌은 이 만다라를 보고 '남묘호렌게쿄(법화경의 뜻대로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봉창하면 불계의 생명을 용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28] 창가학회 측에서는 최초로 니치렌 대성인이 만든 만다라를 목판본으로 하여 일반 가정집에 하부받아 민중불법이 가능하게 만든 단체가 창가학회라고 보며, 이에 반해 일련종은 하부비용을 받거나 티셔츠에 만다라를 인화하여 파는 등 기존의 취지를 상실하고 승려만이 만다라를 취급할 수 있다는 등 승속차별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을 비판한다.[28] 봉창은 일본어로만 하는데, 이는 일본어식 발음이 우주의 리듬에 합치하기 때문이라고 창가학회 측에서는 설명한다. 비슷하게 6음절 진언인 옴 마니 반메 훔과 비슷한 이유인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니치렌은 진언을 외우며 수행하는 이들을 마구니로 보았다.[29] 仏壇(ぶつだん). 개개인이 구입해서 쓰는 형태라 크기가 다양하다. 회관은 대개 2~3 m 크기의 불단을 사용하는데 반해 일반 회원의 가정에서는 작은 불단을 사용하거나, 별도의 불단 없이 벽을 불단으로 삼는다.[30] 数珠(じゅず), 근래에 '염주'라고 용어를 바꾸었다.[31] 唱題行(しょうだいぎょう, 창제행). 이는 제목을 봉창한다는 의미이며 남묘호렌게쿄의 묘호렌게쿄라는 글자가 묘법연화경(묘호렌게쿄)의 제목이자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제라는 말 대신 제목을 부른다고 말하기도 한다.[32] 제목(題目, だいもく)이라는 것은 일본 불교에서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맛의 달인에서도 "나무묘법연화경"이라며 제목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백귀야행에서도 견신이 원조사 승려에게 자신은 착한 요괴인데 "제목"으로 괴롭힌다고 불평하는 장면이 나온다.[33] 어원은 '마음을 (어딘가에) 고정시켜 두고 진실된 자세로 강렬히 소망하다'라는 뜻이다.[34] 상좌부 불교에서도 바람(icchamāno), 성스러운 추구(聖求, ariya-pariyesana), 결의바라밀다(adhiṭṭāna-pāramitā) 등 서원과 일부 유사점을 지닌 개념이 언급된다. 특히 결의바라밀다는 지혜를 일으키고야 말겠다는 결의,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결의, 기필코 보시를 베풀겠다는 결의, 열반에 이르고야 말겠다는 결의의 4가지로 구성되어 있어 대승불교의 사홍서원과 유사하다.[35] 비슷한 상황이나 나잇대에서 느끼는 공감, 고민 등을 적극적을 활용하여 관계를 만들고 지인으로까지 자리잡는다.[36] 학회에 참여하여 과거 70~80년 대 일본의 예배 영상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영상 내에서도 '조직'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며, '우리의 스승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창가학회라는 것이다'라며 분명히 말하고 있다.(과거 조선의 붕당인 동인, 서인과 비슷하다.)[37] 실제로 한국 SGI 홈페이지에 소개된 역사 소개글에도 '조직'이라는 표현을 쓴다.[38] 대략적인 비율은 사회활동:종교활동=3:1[39] 창가학회 제2대 도다 조세이 회장은 "일은 3인분, 신심은 1인분으로 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신앙생활에서 제 몫을 다 하면서 일은 남들보다 몇 배로 해내야 한다는 의미. 사실 이 의미보다는 종교활동을 한다고 일에 소홀하여 주변의 신뢰를 잃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일을 최선을 다해 한 뒤 종교활동을 하라는 것이다.[40] 대부분의 종교가 종교활동에 더 치중되어 문제가 되는 반면 사회활동을 적극 권장한다는 점에서 반감이 덜하다.[41] 예배, 법회[42] 기도[43] 학회를 마칠 때도 교회에서 기도를 마치고 '아멘'을 하듯이 '남묘호렌게쿄'를 외치고 절하는 것을 3번 반복하고 반배한다.[44] 신천지가 되거나 인식이 나빠지는 것, 교회의 방문 포교 등으로 인한 종교 거부감 형성 등[45] 화광신문같은 월간지나 법련같은 기간지 책자를 작게는 대학 동아리방에서 부터 은행 등 각종 관공서에 잡지에 섞어놓는다.[46] 품을 전부 나열하자면, 1서품 / 2방편품 / 3비유품 / 4신해품 / 5약초유품 / 6수기품 / 7화성유품 / 8오백제자수기품 / 9수학무학인기품 / 10법사품 / 11견보탑품 / 12제바달다품 / 13권지품 / 14안락행품 / 15종지용출품 / 16여래수량품 / 17분별공덕품 / 18수희공덕품 / 19법사공덕품 / 20상불경보살품 / 21여래신력품 / 22촉루품 / 23약왕보살본사품 / 24묘음보살품 / 25관세음보살보문품 / 26다라니품 / 27묘장엄왕본사품 / 28보현보살권발품. 1~14품의 전반부를 적문, 15~28품의 후반부를 본문이라고 하여 후반부를 더 중시한다. 2방편품과 16여래수량품은 법화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품이며 각각 적문과 본문의 핵심이다. 나머지는 모두 지엽(枝葉)이다. 법화경 적문과 본문 각각을 서분과 정종분, 유통분으로 나눌 수도 있고 법화경 28품을 셋으로 나눌 수도 있다. 또한 법화경을 정종분으로 하여 개경을 서분, 결경을 유통분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위에서 말한대로 법화경 총 10권을 정종분으로 하여 그 이전의 경전을 서분, 열반경은 유통분으로 할 수도 있다. 이처럼 경전은 부분 속에 전체를 갖추고 전체가 부분이 되기도 하는 프랙탈을 이룬다.[47] 예를 들어서 법화경 1권에 해당하는 제2품인 방편품의 경우엔 '법화경 제1, 방편품 제2'라고 부른다. 수량품의 경우엔 6권에 있고 제16품이므로 '법화경 제6, 여래수량품 제16'이 된다.[48] 단어마다 구분하여 해석하자면 'sad'은 한국어로 '올바른'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한역에서는 정(正, 바르다), 묘(妙 묘하다, 오묘하다) 등으로 번역한다. dharma는 한국어로 법, 법칙을 뜻한다.(달마대사의 달마와 같다.) puṇḍarīka는 한역에서 연화라고 번역되듯이 연꽃을 뜻한다. sūtra는 경(經), 경전을 의미한다.[49] 불국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석가탑, 다보탑은 법화경 허공회의식에서 석가불과 다보불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탑으로 형상화한 것이며 전체적인 형상과 구도가 법화경과 매우 밀접하다.[50]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연화라는 단어는 법화경을 비유적으로 상징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법화경의 이름이기도 하다. 법화경의 전승에서는 석존이 묘법연화경이 연화라는 꽃과 닮았다고 하여 '연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므로 연화 그 자체가 경전의 이름이다.[51] 영어권에서는 법화경을 연꽃을 뜻하는 'Lotus'와 경전을 뜻하는 'Sutra'와 뜻이 결합하여 'The Lotus Sutra'라고 부른다. 번역하면 그냥 연꽃 경전이다.[52] 그의 어록인 어서에는 법화경의 비유에 등장하는 내용을 한역 묘법연화경과 산스크리트어로 된 법화경을 비교하여 차이를 상세히 묘사하는 글도 남겨져 있다.[53] 심지어는 한 신자의 어린아이에게 유교의 가르침에 대해 가르치는 글도 있고 논어, 소학, 대학 등의 글도 인용하여 말하는 것으로 보아 불교경전에 한하지 않고 당시의 각종 서적을 폭 넓게 공부한 듯 하다.[54] 일반적으로 불교 경전은 그 내용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마치 지금의 글쓰기가 처음 중간 끝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경전도 각각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이라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당연히 정종분에 해당하는 내용이 그 경전의 가장 중요한 핵심부분이다. 하나의 경전을 서분, 정종분, 유통분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기본적인 구분법이지만 석존의 50여 년 일대성교를 통틀어 보았을 때도 법화경을 정종분으로 본다면 법화경 이전의 가르침을 서분, 법화경 이후를 유통분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더욱 일반론적인 의미로 넓혔을 때, 어떤 주장이나 핵심을 정종분이라고 보았을 때 그 밑바탕이 되는 근거나 일체의 지식을 서분으로, 주장의 개별화된 사례나 구체적인 응용이 되는 지식은 유통분이라고도 이야기할 수도 있다. 니치렌은 다양한 경전과 주석서들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읽은 것이 아니라 결국 법화경을 객관적으로 남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공부한 것이다.[55] 그의 저작을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살펴 보아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출처와 인용을 근본으로 논의를 전개시켜 나가는것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용수, 천친, 남악, 천태, 장안, 묘락, 전교와 같은, 아주 유명한 대논사들의 저서를 권과 장 수까지 정확하게 인용하고 또는 타종인 염불종의 호넨이 쓴 선택집이나 선종, 율종, 진언종, 등의 논사들의 책까지 공부해서 오히려 타종의 교리를 그 종파의 전문승려보다 잘 기억하기도 하며 법론 대결에서 상대방이 헷갈려서 실수로 잘못 인용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은 후 반박하는 글까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56] 창가학회에서는 '석존'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57] 땅(地)에서 솟아(涌) 나타난 보살로 법화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는 부처다. 종지용출품 제15에서 땅에서 솟아올라 나타난 후 촉루품 제22에서 석존의 불법을 의탁받아 말법에 넓히기로 약속하고 다시 땅으로 들어간다. 그 경지는 오히려 석존보다 높다고 묘사될 정도로 심원하지만 겉으로는 부처가 되지 못하여 계속 수행을 하는 보살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처이지만 보살이라고 불린다. 또한 그 숫자가 육만항하사(六萬恒河沙, 겐지스 강 모래알 수의 육만 배.)나 된다고 하고 각각의 지용보살들이 제각각 다시 1명에서 6만항하사의 권속(眷屬, 식구)을 데리고 다닌다. 법화경 신앙하는 불교종파는 많이 있지만 이 지용보살을 현 시대에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이라고 파악하고 행동하는 단체는 니치렌 불법이 유일하다.[58] 니치렌은 세친과 용수 등도 창제를 했으나, 혼자서만 하는 선에서 그칠 뿐 널리 가르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59] 부처가 갖고 있는 성품이나 성질을 뜻한다.[60] 비슷한 경우는 한국에도 존재하는데 바로 삼국시대의 나무아미타불이 그것. 지금도 이 말은 한국 화엄종의 대표 문구이며 화엄종을 수용한 조계종 역시 이것을 주로 쓰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나무아미타불의 뜻은 아미타불이라는 부처를 믿고 따른다는 뜻으로 이것만 외면 다음 생에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깨끗한 땅이라는 뜻으로, 극락과 같은 말이다.)에서 왕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이를 대중화한 것이 원효, 근본이 되는 경전은 정토삼부경이다. 밀교 계통에도 흔한 일이라 티벳 불교에서 "옴 마니 반메 훔"을 무수히 독창하는 것도 같은 취지다.[61] 이는 창가학회의 왜색 논란과 관련해서 자주 지적되는 요소이다. 창가학회에서는 대외적으로 '니치렌 대성인이 일본어로 독송했기에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창가학회의 교세 확장 역사를 되짚어 보면 외국인 신자들이 영험을 보기 위해서 일본어로 독송하던 습관이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보는 쪽이 좀더 사실에 부합한다.[62]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도다 조세이, 이케다 다이사쿠.[63] "나는 깊이 그대들을 공경하여 감히 가볍게 여기거나 업신여기지 않는다. 그 까닭은, 그대들이 다 보살의 도를 행하여 마땅히 성불할 것이기 때문이다.(我 深敬汝等 不敢輕慢 所以者何 汝等 皆行菩薩道 當得作佛)"[64] 석존이 예언한 것으로 석존 멸 후 1000년간을 정법, 그 다음 1000년은 상법, 그 다음의 영겁에 걸친 시간을 말법이라고 정했다. 말법의 시대에는 석존의 영향력이 전부 사라져서 기성불교를 신앙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하였다. 이를 통틀어 정상말의 삼시(三時)라고도 한다. '세상이 말세다.'라는 말이 있는데 말세, 말대라는 말 모두 이 말법과 같은 뜻의 불교 용어다. 석존의 입멸년도가 계산 방식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뉘는 탓에 불분명한지라 말법의 시작 또한 다소 불분명하지만 대략 불기 2500쯤에 해당된다고 추정되는 현재는 어떤 계산법으로 계산해도 이미 말법에 접어들어있다고 판단된다. 현재는 말법이 시작한 지 대략 수백 년이 지난 시점이다.[65] 니치렌의 어록을 모은 어서를 보면, 니치렌은 석존의 경전인 법화경을 필두로 하여 다양한 경전의 글을 인용하며 철저히 경전 근본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니치렌의 석존의 가르침을 가장 소중히 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또한 석존의 유언으로 알려진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법에 의하되 사람에 의하지 말라. 즉, 사람의 말이라도 경전 등의 근거가 없는 말은 받아들이지 말라.)'을 니치렌 자신이 매우 중시했다는 점을 들어 니치렌의 석가모니 존중양상을 증거하기도 한다.[66] 묘법연화경(묘호렌게쿄)에 귀의(나무)한다는 의미.[67] 위의 정법, 상법, 말법이라는 시간의 구분에서, 말법의 시대가 도래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서로 다투며, 백법(百法, 바른 가르침)이 은몰(隱沒, 자취를 감춘다)한다'는 뜻이다. '견고'란 부처의 예언은 틀림 없다는 의미다. 이 예언은 대집경(大集經) 제55권에 나온다.[68] 창가학회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핵무기의 사용과 냉전시대, 끊임없는 3차대전의 위협, IS의 테러행위 등은 모두 이 말법시대의 양상인 투쟁견고 · 백법은몰이라고 파악한다. 따라서 입정안국(立正安國)을 호소한 교주 니치렌의 주장과 같이, 올바른 사상과 철학과 종교가 세계민중에게 받아들여지는 일이 인류의 평화를 위해 인류의 갈등과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이고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한다.[69] 境涯, 수행으로 얻은 위치나 상태. 경지, 경계와 비슷한 뜻.[70] 법화경보다 나중에 설한 가르침인 열반경도 포함해서.[71] 40여년 동안 아직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72]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오직 무상도를 설함[73] 과거, 현재, 미래라는 뜻으로 법화경의 개경(開經)인 무량의경(無量意經)에서 나온 말이다. 무량의경에서 과거에 설한 경전들과 지금 이 경전(무량의경), 그리고 법화경 다음에 설할 경전(열반경)은 모두 법화경보다는 못하다고 말하는 구절을 가리킨다. 이금당(已今當)의 삼설(三說)이라고도 한다. 동아시아 종파불교에서는 소의경전을 설정하여 '미증유법(未曾有法,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가르침)'에 의거해 자신의 경전이 최고라는 식의 설명을 왕왕 하곤 했는데, 이금당의 어조는 특히 좀 더 강한 감이 있다. 창가학회도 물론 자신들의 소의경전인만큼 법화경을 최고로치며, 시간 순서상 막바지에 설해진 것임을 들어 이전 경전들보다 상위일 수 밖에 없다는 맥락의 주장을한다. 다만, 법화경보다 나중에 설해졌을 수 밖에 없는 대반열반경(부처의 입멸 때를 묘사한 경전이므로)에 대해서만은 이 규칙을 철회한다. 법화경은 다소 파격적이다 싶을정도로 스스로를 높이므로, 이 점을 신봉하여 소의경전 삼았던 대승 종파가 상당수 있어왔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이 경전의 산스크리트어 원본이 존재하지 않고 한문역만 확인된다는 점 때문에 학계에서의 위경 논란이 매우 심하다. 때문에 대승의 입장에선 양날의 검이기도 하며, 실제로 대승안에서 이 문제로 인한 분열과 논쟁이 상당하다.[74] 당시(1260년 7월 16일)의 막부 최고 권력자인 호조 도키요리(北条時頼)에게 제출한 논문으로, 입정안국(立正安國)이란 ‘정(正)을 세워서 나라를 평안케 한다’는 것. 자신(니치렌)을 집의 주인으로, 호조 도키요리를 길을 지나가던 나그네로 대입하여 표현한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국토의 재난을 한탄하는 것에 응대하여 주인이 그 고민을 자신도 하고 있었다고 밝히고 입정안국의 원리를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그네는 처음엔 주인의 파격적인 사상에 반발하여 욕하며 떠나려고 했지만 끝에는 수긍하고 "다만 나만이 믿을 뿐 아니라 타인의 잘못도 훈계하리라"하고 다짐하며 내용이 끝난다. 니치렌은 국주간효(國主諫曉, 나라의 주권자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정의를 밝혀 간언하는 일)를 평생 세 번이나 했는데 입정안국론은 이 중 처음에 해당하며 가장 유명하다. 이 논문은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있다.[75] 즉, 불교가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종교라면, 왜 불교가 이토록 융성한 일본의 민중은 불행하게 살고있는가[76] 고마쓰바라 법난[77] 1279년 9월 21일 아쓰하라 법난. 이는 니치렌의 출세의 본회이기도 하다. 자세한 것은 성인어난사 참조[78] 다쓰노구치 법난. 이 법난을 계기로 발적현본 했다.[79] 이즈 유죄, 사도 유죄.[80] 다만 당시 조정 내에 니치렌을 지지하는 대신들이 있었던 덕에 그는 감면되어 다시 풀려났다.[81] 사이비, 이단, 범죄 등.[82] 의외라면 의외로 전원이 학회원인 것은 아니다. 공명당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창가학회와의 관계를 단순 지지단체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당세 확장을 위해 비학회원 정치인도 다수 영입했다. 최초의 비학회원 의원인 쿠사카와 쇼조 의원 역시 사회당에서 영입된 케이스.[83] 불교를 믿게 되었다는 2004년 기사가 있는데, 그 불교가 사실 창가학회다.[84] 부모님은 일본 창가학회 기관지인 세이쿄 신문사의 임원이라고 한다. 또한 본인이 직접적으로 밝힌 적은 없으나 매체에 나온 어릴 적 사진의 교복 등으로 보았을 땐 창가학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교복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관련된 학교를 다녔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소카 중학교 및 고교 출신이다.[85] 일본에 진출했던 것도 이런 영향이 있었을거라고 보기도 한다. 여러 논란만 남기고 안좋게 끝난게 문제였지만.[86] 한국지부는 과거에 'SGI 한국불교회', '불교문화회관'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87] 서울미래초등학교 정류장[88] 영등포역 방향만 경유, 거리공원.구로신협본점 정류장[89] 약칭 KISA, 한국인터넷진흥원과는 별개다.[90] 신도림역 옆에 있는 테크노마트에 두 곳, 구로역 옆 리치몰(구 나인스애비뉴)에 한 곳이 있다.[91] 예를 들면 사이언톨로지나 통일교는 나라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 나라들에서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92] 하지만 이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그냥 남묘호렌게쿄 믿는다고 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93] 천주교와 개신교계에서 말하는 '이단'이란 기독교계 종교에서 갈라진 이단들 뿐 아니라 사이비 종교를 포함하기도 하는데, 타종교계나 신흥종교의 경우 기독교에 적대적이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한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94] 목포는 불교 일련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지역이고, 일본인 일련종 교도의 출입이 꽤 있는 편이다.[95] 창가학회의 초대 회장인 마키구치 쓰네사브로는 군국주의에 항거해서 옥사했다. 죄목은 당시 독립투사들이 받은 죄명과 같은 불경죄, 치안유지법 위반.[96] 연합뉴스 2009년 11월 18일 기사.[결정문] 97.1 97.2 97.3 아래의 결정문으로 반박[98] 부정투표 및 일개 종교 회장의 직간접적인 선거 개입 등[99] 충북 진천군 SGI거리 조성 사기 사건 - 한 군위원이 한국SGI와 결탁하여 마을 이장들의 사인을 위조하여 마을거리 이름을 'SGI거리'로 만들려고 한 불법사기 사건[102] 우편물의 내용 - 해골그림에 악인박멸 기원이라고 적힘, 탈퇴자의 죽음을 바라는 동지가 몇 만명이 있다고 적힘[103] 이 결정문은 제작진측의 방송 내용에 대한 사과나 언론중재위원회가 방송 내용이 틀렸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방송 내용에 대해서 상대측 입장은 이러하니 이에 대한 내용도 시청자들한테 보도하라'는 결정이다. SBS는 결정문에 의해 다음 회차 방송 전 위와 같이 보도하였다.[104] SBS의 1시간의 방송분량에 대해 창가학회의 입장을 약 2분 정도로 방영하였으며 이에 대해 각자가 판단할 것.[105] 창가학회는 몇가지 사안에 대해서 위와 같이 입장을 밝혔으며 나머지 방송 내용(일본내 사건사고, 피해자 모임, 충북 진천군 SGI 거리 조성 관련 사건 등)에 대한 입장은 결정문에 나타나지 않았다.[106] '에어모토씨' 동영상의 주인공인 일본 연예인 히사모토 마사미가 SGI 관련 동영상에서 했던 もうダブル驚きですよね("모우다부루오도로키데스요네"라고 읽으며, 구체적인 맥락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를 배제하고 말 뜻만 해석하면 "두 배로 놀랍군요!" 정도의 뜻)에서 유래.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의 패러디물이다.[107]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도로키'의 후속 방송(...)으로, '강철의 연금술사 FULLMETAL ALCHEMIST'의 패러디물이다. SGI가 세간에서 '컬트 교단'이라고 조롱받고 있는 것이 이름의 유래 중 하나이다. 다른 유래는, SGI로부터 이케다 다이사쿠로 흘러간 헌금이 공명당과 SGI의 연결성과 정교일치 방침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일본의 한 참의원(상원의원 정도에 해당)이 2007년 당시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언급했던 'P헌금'이라는 표현이다.[108] '케이온!'의 패러디물. 이 역시 각주의 'P헌금'이라는 표현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켄킨(けんきん)'은 '헌금'이라는 단어의 일본식 발음.[109] 이 이름을 가져다 쓴 동명의 인디 아티스트가 있었으나, 사실은 권용만이 초기 창작하던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었던 프로젝트 밴드중 하나였다고 한다. 당시 권용만은 영생교 소재를 가져다 풍자하기도 했다.

불교경전개설 – 디지털 불교

불교경전개설 – 디지털 불교

불교경전개설
불교경전개설

– 목 차 –

1) 대장경의 결집

2) 대승경전의 결집

3) 대장경의 조직

4) 참경과 거짓경

5) 입문적인 경전

6) 한국의 불경

7) 율전부

8) 범종파적 소의경전

9) 정토삼부경

10) 호국삼부경

11) 미륵경전

12) 선의 소의경전

13) 한국통불교의 소의경전

14) 일반적인 신앙경전

15) 대장경해설 전반

16) 한글팔만대장경 목록

17) 경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대장경이란 말은 불교성전 일체의 총칭이란 뜻으로 일체경이라고도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모은 경과 불제자들이 지켜야할 수향덕목을 모은 율(律)과 마명, 용수, 천친 같은 보살 논사들이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교리를 모은 논의 3장이란 뜻으로 3장경. 장경이라고도 한다.

대장경의 원본은 sanskrit로 기록된 범어본과 파리어로 기록된 파리어본이 두 가지로 구분된다. 산스크리트어는 인도 고대의 표준문장어였다. 이것을 번역하여 범어라고 하는데 그 뜻을 하늘 나라말, “하나님의 말”이란 뜻이며 완성이란 의미를 지닌다. BC. 6C경부터 문자가 있었다고 하고 B.C 3C경에 문법학자 <바니니>에 의해 범어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범어는 인도 고대 사회에 있어서 지식계급, 지도계급에서 사용하던 어문이었다.

이에 대한 일반 서민계급, 노예계급, 교육, 지식부재의 사회에서 사용하던 속어를 prikrt(르라크리트)라 했는데 그 말은 자연생이란 뜻으로 소승불전의 원어인 파리어를 가리킨다.

산스크리트어 장경은 원본으로 하여 번역한 대장경에는 한역장경, 서장장경이고 또 한역과 서역장을 원본으로 하여 번역한 대장경에는 몽고장경, 만국장경, 일본장경과 우리나라의 팔만대장경등이 있다. 그 가운데 산스크리트어의 범본장경은 그 대부분이 한역된 한자경전으로 전해오고 있을뿐 많은 양의 원본 반 이상이 망실되어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범본불전에 의지하는 불교국은 대승권으로서 중국, 서장, 몽고, 한국, 일본 등의 인도 북방지대에 속하므로 북방불교라고도 한다. 파리어계의 장경은 주로 스리랑카, 버어마, 태국 등의 남방으로 전해졌으므로 이것을 남방불교라고 한다. 남방불교는 불멸후 300년 경에 인도천하는 처음으로 통일한 아쇼카왕(B.C 2C)이 8만 4천탑을 세우고 제3차 결집등 많은 불사를 이룩하고 희랍의 국가에 까지 전도승을 파견할 때 세일론(스리랑카), 버마등지에는 수나가, 율다라, 마혜다, 스마나 등이 맡아서 포교하도록 했는바, 그 뒤 이 지역에는 파리어계의 장경이 전해졌던 것이다.

1. 대장경의 결집(아함, 남방)

세존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는 모든 것을 부처님에 의해 직접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 멸도후에는 불제자들이 각각 기억하고 있는 부처님의 설법을 정리해서 성문화 할 필요를 느꼈다. 부처님의 유교가 흩어지지 않게 해야하고 그 유법에 따라 교전을 확립해야 되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제자들이 모여서 부처님께 들은 법문을 외워내어 교법을 완성하고 성전을 편찬하는 결집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모여서 불법을 결집하는 큰 일을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려 4회 내지 5,6회 네 차례 걸쳐서야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제1결집](5백결집, 왕사성 결집)

부처님의 상수제자이신 마하가섭존자가 회의를 소집하여 5백인의 대아라한(유능한 비구)들이 왕사성의 교외에 있는 칠엽굴에서 아난존자는 경을 외워내고 우팔리존자는 율을 외워내어 대중이 검토결정해서 교단의 이름으로 편집결정했다. 이것을 혹은 5백결집, 왕사성결집, 상좌부결집이라고도한다. 여기에 굴내결집, 굴외결집 두가지 결집설이 있는데 이것은 뒤에 상좌부가 된다.
[제2결집](7백결집)

석존멸후 100년경에 계율에 대한 이견이 생겨서 비사리성에 모여 장로야사를 중심으로 율장을 보완 편찬하였는바 이때 열가지 그릇된 법을 주장했다. 이로인해 두 부파로 갈라지게 되었다(대중부와 상좌부).
[제3결집](천인결집)

블멸후 200년(혹은 300년)경에 아육왕이 호법하여 목건련제수존자를 상좌로 파탈리푸트라에 일천비구가 모여서 삼장을 확정하다. 이때는 아육왕이 불교의 신자이므로 외도들이 의식이 궁핍해지자 불제자의 차림을 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등의 사건이 일어나므로 이런일에 대처하려는 것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기도 하였다.
[제4결집]

불멸후 400년경(혹은 불멸 600년경, AD.2C) 카니시카왕의 호법아래 협존자와 세우보살을 법주로 하여 가습미라성에 500비구가 모여 삼장의 주석을 붇이는 제4결집을 했다. 그것이 바로 대비바사론 이라고 하는데 남방불교에서는 이것을 의문시 한다.

2. 대승경전의 결집
대승불교의 출현은 곧 대승경전의 출현과 때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대승경전 가운데 제일먼저 출현한 것이 반야경계의 경전으로 밝혀졌으며 대체로 불멸후 삼백년이후 4,5백년경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뒤에 이어서 방등부의 경전들, 그리고 불멸후 6백년경에 법화부가 화엄부의 경전은 불멸후 7백년경에 차례로 출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경들이 출현내지 유행되기 시작한 곳은 간다라, 카슈미르 지방 곧 대월지국이었다.

3. 대장경의 조직
부처님일대를 다섯시기로 나누어 분석하는 법을 오시교라한다. 여기에 천태의 5시교, 화엄의 5시교, 열반종의 5시교 등의 구별이 있다.

천태오시교 – 화엄시, 녹원시(아함), 방등시, 반야시, 법화.열반시

열반오시교 – 삼승별교, 삼승통교, 억양교, 동귀교, 상주교

화엄오시교 – 인천교(아함), 반야유마, 법화경, 열반경, 화엄경

4. 참경과 거짓경
경에는 부처님이 실제로 말씀하신 직경과 뒷사람이 거짓으로 조작해서 만들어진 위경(僞經)과 그것 저것이 확실치 않아서 부처님의 진설로 볼수 없지만 교리적 내용으로 보아 어긋나는 정도가 심하지 않은 의경(疑經)이 있다.

5. 입문적인 경전
1) 천수경(관음신앙)

불교의 진리에 입문하는 첫걸음은 대개 신앙의 문을 통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때에 필요한 경전이 바로 이 천수경이다.

천수경은 약칭으로 부르는 경명(經名)이고 갖춘 이름으로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다라니경이라고 한다. 이 경은 본래 당나라 가범달마에 의해 번역된 역본이 유통되고 있으며 생략하여 천수경 또는 천수 다라니경 이라고도 하며 송나라 사명존자에 의해 널리 유포되어 그 효험이 많은 것으로 전한다.

현재의 천수경은 7가지 경전이 합쳐진 것이다.
2) 반야심경(공사상)

반야심경은 교리적 철학적 입문서이지만 이 경속에 실려있는 교리적 내용으로 봐서는 반드시 입문서적이라 할 수 없다.

260자밖에 되지 않은 가장 짧은 경문 가운데 대소승.제경의 취지로 간결하게 담뿍담고 있을뿐 아니라 조석예불을 비롯한 대소의식에는 물론 식사시에까지 이 심경은 지송되고 있어서 초 종파적으로 소의하는 경중의 경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유포되고 있는 것은 당나라 현장삼장의 번역이며 일본이나 중국등지에서도 이 현장본을 지송한다.

6. 한국의 불경
사미의 교과

1) 초발심자경문

불문에 출가했어도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어린이는 마음과 몸이 연약하므로 고된 비구의 수행을 다 따라 할 수 없다. 그래서 계율도 아주 기초적인 10계만을 지키게 하고 하기 힘든 난행과 고행은 하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예습적인 수도기간의 납자들을 불교에서는 남자는 사미, 여자는 사미니라 이름한다. 성년이 되었더라도 늦게 출가하여 아직 구족계를 받지 못했으면 역시 사미다. 사미는 주로 출가수행 생활에 심신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계율을 익히는 일에만 전념해야 한다. 따라서 사미가 처음 배우는 교과들도 모두 간단한 계와 언행, 어른 앞에서 하는 몸가짐. 식사하고 잠자는 일 등에 관한 교육 그리고 발심, 경책 등을 돈독히 하는 글들인데 우리나라에서느 그 첫째번 교과가 바로 이 초발심 자경문이다.

초발심자경문은 고려 보조국사의 계초심학입문과 신라 원효대사의 발심수행장, 그리고 고려말(혹은 신라말) 야운비구의 자경문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 이름한 것이다.
2) 치문경훈

<치문>이란 검은 옷을 입은 승려의 세계란 뜻이니, 치자의 본래의 뜻은 <검다><검은빛>이 있는데, 변하여 승려를 뜻하는 자의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불문의 대명사로 <치문>이란 말을 쓰게 된 것은 불교의 도입과 거의 같은 시기가 아닌가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치문하면 불문을 가르키는 것으로 쓰이며 <치문경훈>이란 책명은 [불문에 들어온 사람들을 경계하고 훈계한다] {승려가 삼가고 지켜야할 길]이란 뜻이 된다.

이 치문경훈은 본래 고승대덕이 제자나 후대인을 훈계하고 동료와 자신의 수행을 독려 경책한 훈계. 좌우명. 서장 등을 집대성하여 초학사미로 하여금 익히게 했던 것이다.

조선초에 사미과 교재로 채용된 것이라 전해진다.
3) 사미율의

사미율의라 함은 <사미>가 지켜야 할 10계와 의식 크고 작은 행동거지를 일컫는다. 사미는 범어 srama nneraka의 음역을 줄인 말이니 번역하면 악을 쉬고 자비를 실천한다. 장차 비구가 되기 위해 부지런히 닦고 책려한다는 내용이다.

사미가 지켜야 할 열가지 계목에 대한 해설과 의식. 예불. 위의 등에 대한 규범을 실고 있는바 세수하고 잠자는 일, 밥 먹고 대소변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일거일동에 대한 자세한 규범들로 짜여져 있다.

사집과 교과
4) 서장(서장)

서장은 대혜서장이라고도 하며 대혜종고(1088 – 1163, 송나라)선사의 편지를 모은 책을 이름한다. <대혜서>는 42인의 편지글 62통으로 엮어져 있으며, 그 주된 취지는 삿된 지견을 깨트리고 정법의 눈을 열어 주려는 것이다.

이 서장이 어느때에 우리나라에서 판각되었느냐 하면 고려말기 부터이다.
5) 도서

선원제전집도서를 줄여서 도서라고 부르는데 중국 화엄종 제5조이며 초기에 크게 융성했던 하택종의 제5조이기도 한 규봉종밀선사(780 – 841)의 저술이다.

1500년 전후에 우리나라에 전래된 듯하다.

도서의 핵심은 선과 교의 본 뜻은 둘이 아니라는데 있다.
6) 선요

선에 대한 요의를 설명했다는 뜻이며 고봉원묘(1238 – 1295)화상의 저서이니 고봉은 달마로부터 제 18대, 임제종의 개조인 임제의 17대법사이다. 간화선법이 한참 유행할때의 대선장이다.
7) 절요

절요한 법집별행록 절요병입사기의 약칭이니, 지눌 보조국사의 저술이다. 그 내용은 법에는 변하지 않는 불변이 본체계와 인연에 따라 나타나는 가변적인 작용의 두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는 두가지 문이 있으니 본체계의 진리를 단번에 증득하여 깨닫는 돈오와 그 뒤에 점차 닦아서 보임이 수행을 더함으로 단계를 거쳐 깨달음을 얻는 점오의 문이있다.

사교과 교과
8) 능엄경

능엄경은 약칭이고 구체적인 경명은 대불정여래밀인 수증요의 제보살 만행수능엄경 또는 대불정수능엄경이라고도한다. 경의 뜻을 간추리면 무한하게 크고 무상최극의 절대한 깨달음을 성휘하신 부처님이 되기 위해 닦는 보살들의 완전무결하고 견고무비한 6도만행의 수행법을 말씀하심 경이란 뜻이 된다.
9) 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이란 여러 대승경전의 진리를 통론적으로 체계적으로 논리를 세워 밝힌 글이란 뜻이다. 저자는 중인도 마가다국 출신의 마명보살(100년경)이다. 대승불교사상을 체계화하고 최초로 크게 선양하였다.
10) 원각경

원각경은 줄인 이름이며 자세히는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이라 한다. 대승의 최후구경인 원돈(圓頓=원만하고 단번에 최후의 진리를 깨닫는 것)의 진리를 말씀하고 그 깨달는 법과 수행하는 법을 기록한 경이다.

어느때 여래가 <신통대광장>이란 삼매에 드시어 모든 것이 하나인 不二의 경지에서 10만의 대보살과 함께 계시었는데, 문수.보현.보안.미륵 등 12보살과 더불어 문답하신 내용으로 되어 있다.
11) 금강경

금강경의 구체적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고 금강반야경이라고도 한다. 금강과 같이 단단하고 밝은 완전한 반야의 空智로 열반을 성취하고 보살행을 하여 불타가 된다는 뜻의 이름이다.

대교과 교과
12) 화엄경

화엄경은 약칭이며 원래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이다. 번역된 화엄경중 현존하는 것은 80권(당, 실차난타, 신역), 60권(진, 불타발타라) , 40권(반야삼장)이 있다.

이 경의 요지는 대승보살도 사상을 구체적으로 보인것인데 불타가 처음 성도한 것으로 부터 부사의한 불타의 과덕과 그 경계를 가장 장엄하게 문학적으로 찬술했고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52위의 보살계통이 있음을 교리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만나 대승보리심을 일으킨뒤 52명의 선지식(부처님의 지혜와 덕을 갖춘이)을 찾아 무궁무진한 불법을 묻고 보살도를 닦아 마침내 부사의 해탈경계를 성취하는 입법계품으로 끝맺는다.

수의과 교과
13) 법화경

현재 유행하는 경본은 구마라습(407)삼장이 번역한 7권 28품으로 된 묘법연화경이다. <묘법연화경>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을 밝히는데 그 요지가 있다. 일체중생이 다 갖추고 있는 불지견을 열어 주어서 해탈케하는 일대사인연이 바로 그것이다.
14) 경덕전등록

경덕전등록은 생략하여 전등록이라고도 하는바, 부처님의 법을 이어 받아서 불법을 길이 후세에 빛낸 법통을 기록한 저서라 하겠다. 전등이란 바로 <진리의 등불을 전한 기록>이란 뜻이고 경덕은 중국 송나라 연호이다.
15) 선문염송

선문염송이란 선문에서 들어보이고 게송을 읊어서 현묘한 진리를 일깨워 준다는 뜻이다. 저자는 진감국사 혜심(고려, 1178 -1234)이다.

화두에 대한 설명과 주석으로 되어있다.

7. 율전부
1) 범망경

범망경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줄인 이름이고 갖춘 이름은 범망경 노사나불설 보살심지계품제십이라한다.

보살이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 실천덕목 곧 대승계율을 담고 있어 대승의 모든 종파에서 소의 율전으로 되어 왔다. 이 범망경의 대승계는 재가, 출가를 막론하고 두루 통용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2) 사분율

사분율이란 출가한 비구가 불법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계율에 관해 자세히 기록한 60권의 율전을 일컫는다.

곧 비구의 250계와 비구니 348계를 말하는데 이를 소승율장이라하고 보살계는 대승율장이라 하며 또 대승율장은 중생의 마음이나 불보살의 마음의 근본핵심인 心地자리를 동일한 것이며 이 심지를 계발하여 잘 지키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근원적인 원리에 의해 베풀어진 것이므로 이 계라하고 성도즉시 한꺼번에 말씀하셨다하여 돈계라 하지만 소승계는 허물을 범하는 자가 생기면 그때 그때 마련된 계이므로 점계라하고 낱낱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말했다하여 구족계라 한다.

8. 범종파적 소의 경전
1) 유마경

유마경의 갖춘이름은 유마힐소설경이나 13권으로 구마라습삼장이 번역했다(405).

정명경, 불가사의해탈경이라고도 하는데 유마힐 거사가 설한 경이란 뜻이고 불가사의하여 가희 생각이나 언설로는 헤아려 볼수 없는 해탈경계의 진리를 설한 경이란 뜻이다.
2) 대반열반경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의 돌아가심에 대한 경이란 뜻인데 그러나 단순한 부처님의 돌아가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사왕래가 끊어진 절대무위 경지에 돌아감을 뜻하는 열반이다. 여기에 대승의 열반경과 소승의 열반경이 있다.

9. 정토삼부경
1) 아미타경

아미타경. 불설아미타경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미타경. 호렴경. 소경이라고도한다.

구마라습삼장이 번역한 아미타경1권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

상권에서는 아미타불의 인과와 그 48대원을, 하권에는 중생이 아미타불 정토에 태어나려면 염불. 제행의 두가지 방법이 있음을 설하고, 받게 되는 과보에 대해 설했습니다.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면 극락에 태어난다는 타력신앙을 설하고 있다.
2) 무량수경

대경, 쌍권경, 관무량수경이라고도 한다.

무량의경이란 무량수불의 과거보살 일때의 인행을 기록한 경이란 뜻이니 무량수불은 곧 수명이 한량없다는 아미타불을 가르킨다.

아미타불과 그 화신인 관음.세지의 두 보살, 극락정토의 장엄을 구체적인 마음의 대상으로 관하는 법을 설한, 타력신앙의 진실성을 밝힌 경입니다.

3) 관무량수경

관무량수불경, 무량수불경, 십육관경, 관경 등의 이름으로 불리운다.

열여섯가지 관법에 의하여 아미타불을 관하고 극락세계는 관념불이라 할 수 있는 관법이 있으므로 <관무량수경> 또는 <관경>이라고 한 것이다.

10. 호국삼부경
1) 법화경

묘법연화경의 천태종의 주된 소의 경전일 뿐만 아니라 삼부경의 하나로써 나라의 안위와 번영을 위해 이 경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이 무량하다고 했다.
2) 인왕경

인왕경은 약칭이고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 또는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이라고 한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16국왕으로 하여금 그 나라를 보호하고 편안히 잘 다스리게 하기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수지하라고 말씀하신 경전이다.
3) 금광명경

부처님께서 기사굴산에서 신상보살을 위해 부처님 수명이 한량없음을 말씀하셨고 그리고 견로지신을 위한 찬탄하시는 게송과 4천왕, 대변천신, 공덕천 등을 위해 이경이 위대한 뜻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경의 왕이 될만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11. 미륵경전
1) 미륵상생경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이라하며 미륵보살반열반경. 관미륵경. 하생경이라고도 한다.

미륵보살이 도솔천에 왕생한다는 내용.
2) 미륵하생경

이 다음세상에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에 도솔천에서 인간세상에 태아나시어 석가세존과 출가, 성도하시고 설법하시는 일을 기록한 경이란 뜻이며 관미륵보살하생경, 미륵성불경, 미륵당래하생경이라고도 한다.

12. 선종의 소의 경전
1) 능가경

능가경의 갖춘이름은 입능가경이며 7권또는 10권에 이르는 방등부의 경전이다.

이 경은 五法 三性 八識 二無我에 대한 진리를 갈파한 경으로 선종의 초조인 달마대사도 이 경이 선의 종지와 계합하는 것으로 보고 2조 혜가에게 이 경과 함께 법을 전했다고 하며 금강경과 함께 선종의 소의 경전으로 되기도 했다.
2) 신심명

신심명은 3조 승찬대사께서 중생이 본래 부처인 뜻을 전한 불조의 대도를 널리 유통시키기 위해 전술했다고 한다. <신심>이란 마음이 결정되어 의심치 않음을 말하며 마음 전체가 믿음뿐이어서 믿는 주체와 믿는내용의 대상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또 명이라 함은 마음에 새기어 두는 좌우명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신심명>이라 함은 믿음과 마음이 둘이아닌 신심불이의 절대의 지도를 뜻한다.
3) 육조단경

육조단경은 육조대사법보단경의 약칭이니 선종의 제6조 혜능대사의 설법, 어록을 그의 제자 전해 1권으로 편집한 것이 전해온다.

약하여 법보단경, 단경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10문이 있다.
4) 증도가

증도가는 당나라 6조 혜능대사의 5대제자중의 한 사람으로 영가현각대사의 저술이다. 그래서 영가증도가 라고도 하는데 자기가 닦아서 증득한 마음 자리의 경지를 노래로 읊었다는 뜻이다.

이 책은 많은 선문학서 가운데 그 내용과 더불어 문장력이 절묘한 것으로 인정되어 고래로 많이 수지독송되었다.

13. 한국통불교의 소의경전
1) 십문화쟁론

신라의 원효대사가 저술한 2권으로 된것.
2) 금강삼매경론

신라의 원효대사가 저술한 것.
3) 법성게

법성게는 진리의 요체를 간단한 게송으로 읊어서 표시했다는 뜻이니 신라의 화엄종 초조 의상대사(625 – 702)가 화엄의 요의를 210자의 글에 뽑아엮은 명문이다. 칠언절구로된 이 글은 우리나라 불교각종 의식에 빠짐없이 수지되어 왔으며 특히 제례의식에는 반야심경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4) 보조법어

정혜결사문, 수심결, 진심직설, 법집별행록절요, 화엄론절요, 원돈성불론, 간화결의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의 문집.
5) 선가구감

조선조 서산대사(1500 – 1604)의 저술이다. 이조 불교의 교과서가 되다시피하였고 중국, 일본에까지 알려진 명저로 평가되었다.

14. 일반적인 신앙경전
계율에 관한 경전
1) 영락본업경

요진의 축불렴삼장이 번역했으며 <보살영락본업경>이라고도 하며 약하며 <본업경>이라고도 한다.

42현성의 보살이 닦아나가야 할 단계적이고 필수적인 수행, 현재의 성현으로서 과위를 성취하는데는 아득한 과거세로부터 청정한 계율을 닦고 중생을 위해 6도만행을 닦는 원인적인 업행이 있다고 하여 <보살영업본업경>이라 한 것이다.
2) 우바색계경

북량의 담무참삼장이 번역했으며 일명 성생경이라고도 하는데, 전편 7권 28장으로 되어있다.

대승율에 속하며 삼귀오계에 대해 말씀한 내용으로 세속에 있으면서 불법을 받드는 재가 남자가 지켜야 할 계율적인 교법을 말한다.

효도에 관한 경
1) 목련경

대목견련경이라고도 하며 불설목련경이라고도 한다. 송나라때 법천삼장의 번역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아마도 우란분경을 원본으로 하여 다른 불제자의 효행을 대목련의 그것에 얹어서 엮은 경으로 보인다.
2) 우란분경

이 경은 목련존자의 소청에 의해 하안거 정진이 끝난 7월15일, 자자일에 대중승려에게 공양하여 일곱세상과 금세의 돌아가신 부모를 구제하는 내용이다. 백미의 음식과 과일을 갖추어 시방의 불보살과 대중승들에게 공양하므로 지옥에 떨어진 부모의 망령을 건저 낸다는 이 경의 뜻이 오늘날 행하는 우란분재, 우란분회의 뜻이되었다.
3) 부모은중경

부모의 은혜가 무겁고 깊은 뜻과 그 은혜를 갚고 죄를 소멸하는 법을 간곡히 말씀한 효도의 극치를 말씀한 경이라 하겠다.

타력 신앙적인 경
1) 약사여래 본원경

수나라 달마굽다 삼장이 번역한 경전으로 줄여서 <약사경>이라고 한다. 약사여래가 동방에 불극정토를 건설하였는데 그 나라이름이 정유리국이라하며 12가지 대원을 성취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하는데 온갖병을 고쳐주고 마지막에는 생사의 근원이 되는 무명 그 마음의 근본병을 고쳐주어서 모두 다 성불하게 한다는 약사정토신앙의 경전이기도 하다.
2) 지장경

지장보살본원경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실차난타삼장 번역으로 2권이 있다. 부처님이 도리천에서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신 내용인데 지장보살을 부르시어 지장보살이 백천방편으로 6도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죄를 짓고 온갖 지옥고통받는 중생들을 평등하게 제도하게 제도하여 해탈케하려는 지장보살의 큰 서원을 말씀하신 내용이다.
3) 팔상록

팔상록이란 부처님의 8상을 기록했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신앙경전
1) 승만경

승만경은 승만사자후 일승대방 편방광경의 줄인 이름이다. 송나라 구나빌타라삼장이 번역,

부처님이 대승의 진리를 승만이라는 부인으로 하여금 설명하도록 한 경이다.
2) 선생경

선생동자가 바라문의 법을 따라 매일 아침 세수 목욕하고 6방을 향해 예경하는 것을 보시고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설법하신 것이 이 경의 줄거리다. [조부모를 위해 동방을 보고 다섯가지로 예경하고, 스승을 위해 남방에 다섯가지로 예경하고, 아내와 가족을 위해 서방을 보고 예경하고, 부하를 위해 북방을 보고 예경하며 스님이나 도닦는 이를 위해 사방을 보고 다섯가지로 예경하면 죽어서 천상에 나게 되리라]고.
3) 나선비구경

나선비구경은 B.C 2세기경의 나선비구가 북인도로 정복한 희랍의 왕자 미란타를 불교에 귀의시키고 진여연기의 깊은 뜻을 담은 귀중한 경전이다.
4) 법구경

법구경의 법은 모든 경전을 의미하고 구는 경전에 있는 진리의 말씀을 의미한다.

불교의 진리를 간단명료하고 평이하게 엮었고 금구명언으로 되어서 실제의 생활과 비교하여 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 특징이다.
5) 사십이장경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전이 들어올 때 맨 처음 전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후한의 가섭마등, 축법란 삼장이 함께 번역한 한권으로 된 단일본이다. 수행하여 증득하는 과위와 선악의 업보, 인명의 무상등 불교의 요지를 42장으로 나누어 편집한 출가자를 위한 교훈집이다.
6) 현우경

현우인연경이라고도 하며 범부와 성인의 인연비유의 행적을 재미있게 엮은 내용이다.
7) 옥야경

옥야는 기원정사를 세운 수달다 장자의 자부이름이다. 그 자부는 친정이 큰 부호로 권세가 높음만 믿고 시부모와 남편을 공경할 줄 몰랐다. 부처님은 장자의 청을 받고 신통과 설법으로 그를 교화하여 마침내 부처님께 귀의해서 계를 받았으며 그 뒤로 부덕을 잘 준수하여 모범적인 현모양처가 되었다는 설화가 실린 경이다.
8) 대비경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즈음에 대범천왕과 제석천왕과 가섭,아난등에게 바른 신심, 바른 법을 전하도록 부촉하신 경이다.

9) 숫타니파아타

길고 짧은 시로 된 경전이며 중간에 산문도 더러 섞여 있습니다. 총 5장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법구경]과 더불어 주옥 같은 말들이 담겨 있습니다.
10) 자타카

22권 547편의 본생담으로 된 경입니다. 자타카란 본래 특별한 형식과 내용을 갖춘 불교문학의 한 장르를 일컫는 말입니다. 석존이 탄생하기전의 전생이야기, 부처가 되기 전 보살로서 수행하던 모습 등 과거세에 쌓은 공덕의 인과로 부처가 된 이야기들이 실린 경입니다.
11) 백유경

총 98가지의 비유, 우화를 모은 경입니다. 비유나 우스운 이야기를 통해 바르게 살고, 불교의 기본적 교리를 이해하게 한 경입니다.
12) 유교경

석존께서 입멸에 즈음하여 제자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는 광경을 적은 경입니다.
13) 관음경

본래 독립된 경이었으나 후에 [법화경] 제 25품으로 흡수되었습니다. 관음 신앙의 가장 대표적인 경전으로서 관세음보살이 32신을 나타내어 중생의 재난을 구하고 소원을 이루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14) 무량의경

법화삼부경(무량의경, 법화경, 관보현경)중의 하나이며 법화경을 설하기 위한 서설이라고 할수 있는 경입니다. 따라서 내용도 법화경의 요점에 바탕을 두고 구성괴어 있습니다.

15. 대장경 해설전반
1) 아함부

아함경이라 함은 소승경의 모든 경을 총칭하는 말이다. 아함이란 팔리어 Agama로 표기하며 뜻은 전해내려온 부처님 말씀을 모아서 완성했다는 의미의 성전입니다.

내용은 주로 사성제, 팔정도, 12연기 등 불교의 기본사상에 관한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아함경종류는 4종류가 있습니다.

장아함 – 비교적 긴내용만을 추려서 엮은 경

중아함 – 중간정도의 길이 경을 모아 엮은 경

증일아함 – 법수에 따라 설한 경.

잡아함 – 짧은 내용을 모아 엮은 경
2) 본연부

부처님이 아득한 과거세의 영겁다생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자아의 완성을 위한 보살행을 한 일종의 고사, 전생설화 등을 말한다. 이에 관계되는 경들을 모아서 본연부라 이름하여 모은 경 분류법이다.
3) 반야부

대승불교 초기의 경전으로 공사사을 설한 경전으로 반야경과 금강경등이다.
4) 법화, 열반부

5) 화엄부

6) 보적부

대보적경을 말한다. 보살이 수행하는 법과 장차 미래세에 부처가 되어 중생을 어떻게 제도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받는 수기성불 등에 관한 경전을 말한다.
7) 대집부

방등대집경이라 한다. 그 뜻을 대집부에 해당하는 모든 경을 다 모아서 한데 엮었다는 뜻이다.
8) 밀교부

대일경 – 당 선무외삼장이 번역했으며 구체적인 경명은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이라 한다. 전경이 7권으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경의 본문은 6권이고 공양하는 순서와 방법에 대한 의식1권으로 나눌수 있다. 대일여래가 부사의한 위신력으로 스스로 증득한 법신 자체의 경지를 말씀하신 경전이다.
금강정경 – 불공삼장의 역본이 유통되고 이음.

금강정일체여래진실섭대승대교왕경이 있다.
9) 율부

계율에 대한 불전을 모았다는 뜻이다.
10) 논부

논은 범어 아비달마의 번역이며, 경과 율의 대의를 편찬한 것으로 교리연구에 있어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이해의 관문으로 일컬어 진다.

16. 한글팔만대장경 목록
01. 장아함경

02. 중아함경 1 – 3

05. 잡아함경 1 – 3

08. 별역잡아함경

09. 증일아함경 1 – 2

11. 대루탄경 (외)

12. 불반니원경 (외)

13. 아라한구덕경

14. 비화경(외)

15. 불본행집경 1 – 2

17. 찬집백연경

18. 현우경(외)

19. 출요경(외)

20. 법구경(외)

21. 대반야경 1 – 20

41. 법화경

42. 화엄경(60권본) 1 – 3

45. 화엄경(80권본) 1 – 3

48. 화엄경(40권본)

49. 열반경 1 – 2

51. 대방등대집경 1 – 2

53. 대애경(외)

54. 아차말보살경(외)

55. 대집회정법경(외)

56. 현겁경(외)

57. 유마경(외)

58. 입능가경(외)

59. 정법염처경 1 – 3

62. 사분율 1 – 3

65. 선견율비바사

66. 구사론 1 – 2

68. 중론백론

69. 현양성교론(외)

70. 대승기신론소별기

71. 부휴당집(외)

72. 선문염송 1 – 5

77. 조당집 1 – 2

79. 전등록 1 – 3

82. 무용당집(외)

83. 백곡집, 월저당집

84. 법원주림 1 – 5

89. 경율이상 1 – 2

91. 본생경(쟈아타카) 1 – 5

96. 대보적경 1 – 5

101. 대지도론 1 – 5

106. 종경렵비담팔건도론

176. 아비달마발지론

177. 아비담심론

178. 아비달마순정이론 1 – 4

182. 아비담비바사론 1 – 3

185. 사리불아비담론 1 – 2

187.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

189. 근본설일체유부니타야목득가

190. 근본설바답율섭

191. 마하승지율 1 – 2

193. 성유식론

194. 대방광십륜경

197.해탈도론

17. 경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우리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경전을 어떻게 읽어야하는가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 경전의 성립 시기와 그 당시의 사회상황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경전 성립의 사회적 배경은 경전 자체의 내용과 더불어 경전 속에서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 경전을 편찬한 주체자들이 어떠한 입장을 지닌 이들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의 윤곽을 제공해 준다.

둘째, 각 품의 특징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승경전들은 대개 여러 품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러한 각 품의 차이와 특징을 파악하는 것은 그 경전의 전체적인 구도를 조감하는데 확실한 도움을 줄 것이다.

세째, 경전 속에 등장하는 비유와 상징들에 대해 현대적인 해명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대승경전들은 부파불교시대를 거쳐 성립되었다. 따라서 직설적인 기술이 얼마나 심하게 왜곡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피부로 느꼈던 이들이 대승경전의 편찬자들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무수한 상징과 비유를 통해 자신들의 뜻이 시대를 초월해서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와 같은 비유와 상징들은 우리 자신의 현실 속에 재해석될 때에만이 그 생명을 되찾는 것이다.

끝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주석가들의 견해에 얽매이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모든 주석가들의 주석은, 결국 그들 시대 속의 해석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대의 해석임을 명심해야 한다. 선가(禪家)에서 전해오는 불립문자(不立文字)도 본래의 뜻은 주석에 얽매이지 말고 주체적으로 경전을 보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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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리어 경전과 대승경전의 사상적 차이 / 박경준 < 상좌불교 < 특집 < 기사본문 - 불교평론

빠알리어 경전과 대승경전의 사상적 차이 / 박경준 < 상좌불교 < 특집 < 기사본문 - 불교평론

빠알리어 경전과 대승경전의 사상적 차이 / 박경준
기자명 박경준
입력 2010.10.11


―《숫따니빠따》와 《법화경》을 중심으로

1. 머리말


박경준 교수오늘날의 세계불교는 크게 남방불교[또는 남전불교]와 북방불교[또는 북전불교]로 이분된다. 남전불교는 동북아시아에서 일반적으로 소승불교라 불려 왔는데, 현재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서 신봉되고 있다. 이들 국가의 불교도들은 스스로를 ‘테라와다(Theravāda: 長老의 道, 上座部)를 믿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테라와딘(Theravādin)’이라고 부른다. 북전불교는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네팔, 부탄, 티베트, 러시아(의 일부 지방), 몽골, 중국, 베트남, 일본 등에 퍼져 있으며, 이 지역의 불교도들은 자신들의 불교를 ‘대승불교’라 부른다. 대승불교도들은 전통적으로 자신들의 불교가 ‘대승(大乘, mahā-yāna)’이라는 점에 지대한 자긍심을 지녀 왔으며 남전불교를 소승불교로 폄하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대승’에 대한 신념과 긍지는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대략 네 가지 배경과 원인이 있다고 추정된다. 첫째는 일불제자(一佛弟子)인 불교도들이 이제는 소승과 대승의 대립을 극복해야 한다는 대승적인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둘째, 불교 교리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일반화되면서 대승경전은 부처님의 직접적인 설법이 아니라는 주장과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불교국가 간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넷째, 일부 스님들과 재가불자들 사이에 ‘간화선’의 효능에 대한 회의가 증대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후반, 스리랑카와 태국 및 미얀마 등으로부터 ‘위빠사나’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2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위빠사나 수행을 중심으로 한 테라와다불교는 스님들과 재가불자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으면서 널리 확산되고 있다. 현재 위빠사나 수행은 ‘보리수 선원’ ‘마하보디 선원’ ‘호두마을’ ‘한국마하시선원’ 등을 비롯한 30여 개의 단체와 도량에서 체계적이고도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마침내 2008년 12월 31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사)한국테라와다불교(Theravada Buddhasasana in Korea)’ 설립에 관한 등록을 완료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테라와다불교는 이제 한국에서 또 하나의 불교 종단 내지 교단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공식적인 불교 종단이 60여 개 이상 있다. 하지만 테라와다불교 종단은 그 전통과 의례, 수행 또는 생활 방식이 독특하여 우리 불교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제 우리는 테라와다불교와 대승불교가 과연 사상적으로 또는 교리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그동안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행해진 소승불교에 대한 도식적인 이해와 평가를 잠시 접어두고 테라와다불교의 정전(正典)인 빠알리어 경전과 대승경전의 내용을 직접 비교해 보고자 한다. 하지만 빠알리어 경전과 대승경전은 양적으로 너무 방대하여 본고에서는 우선 《숫따니빠따》와 《법화경》의 내용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숫따니빠따》는 그 성립이 가장 오래된 경전 중의 하나로 불교 경전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고 《법화경》은 대승의 특성이 잘 집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의 대중적 대승불교 신앙을 대표하는 경전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2.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갈등과 대립

고타마 붓다에 의해 창설된 불교 교단은 부처님 재세 시는 물론 불멸(佛滅) 후 약 100년까지는 일미화합(一味和合)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불멸 후 100년경, 교단이 처한 상황이 변하면서 계율에 대한 입장 및 사상적 견해가 엇갈림으로써 교단은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로 분열된다. 이것을 불교사에서는 ‘근본분열’이라고 칭한다.

이 근본분열 이후에도 수백 년 동안 지말분열이 계속되어 교단은 무려 18부파 내지 20부파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부파불교 시대에는 현학적 아비달마와 형식적 계율주의가 주류를 이루면서 종교적 생명력과 대중과의 유대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부파불교 시대의 일부 출가자들은 출가자의 본분을 망각한 채 파계를 일삼고, 일부는 권위주의에 빠져 불교를 사원과 출가자의 전유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대승불교운동은 이러한 기존의 부파불교 교단을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부처님에게로 돌아가자’ 혹은 ‘불교의 참정신을 회복하자’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집단적 불교혁신 운동이었다.

이에 부파불교인들은 크게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고, 특히 교단의 역사적 정통성을 중시하는 보수파와 파계를 일삼던 사이비 승려들은 새로운 불교운동에 격렬하게 반발하여 이를 방해하고 박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일천제(一闡提, icchantika)의 관념과 사상 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일천제는 흔히 ‘단선근(斷善根)’이라고 번역되듯이 참으로 극악무도하여 모든 선근이 끊어진, 그래서 영원히 성불할 수 없는 존재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 일천제 사상에는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발견된다. 첫째, 일천제라는 단어가 일반 사회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불교계 내에서만 사용되었다는 점, 둘째 일천제에 해당되는 용어가 원시경전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 《열반경(涅槃經)》 등의 대승경전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점, 셋째 일천제가 오무간죄(五無間罪, 五逆罪)나 사중금(四重禁, 4바라이죄)을 범한 자보다 더 악한 존재로 정의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첫째와 둘째 내용에 의거해 추정해 보면, 일천제는 대승불교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우선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승불교와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서 5무간죄나 4중금의 죄악을 지은 사람들보다도 사악한 존재란 과연 어떤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일까. 《열반경》에서는 대승방등(大乘方等) 경전을 천마파순(天魔波旬)의 설이라 비방하고, 부처님을 비난하고, 법은 구하지 않고 이익만 구하며 겉으로는 위의를 갖추고 성인(聖人)의 행세를 하는 삿된 비구들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들을 일천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열반경》은 여법하게 수행 정진하며 대승법을 설하는 법사(法師)를, 파계한 비구들이 칼과 막대기로 위협하는 사태마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더욱이 《불성론(佛性論)》에서는 일천제를 설명하여 “대승을 증오하고 거부하는(憎背大乘) 것이 천제장(闡提障)이다.”고 하고 있고, 《보성론(寶性論)》에서도 “대승을 비방함을 일천제장(一闡提障)이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일천제란 구체적으로 ‘부파불교 교단 소속의 비구로서 파계를 일삼고 교단 내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며 특히 대승불교 운동을 극렬하게 박해했던 사이비 승려들’임을 알 수 있다. 대승불교인들이 이들을 4중금이나 5무간죄를 저지른 사람들보다도 더 극악한 무리라고 한 것은 결국 대승불교 흥기 당시에 있어서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갈등과 대립이 얼마나 심했었는가를 반증해 주고 있다 할 것이다.


3. 《숫따니빠따》와 《법화경》의 비교

1)《숫따니빠따》와 《법화경》 개요

《숫따니빠따》는 가장 오래된 경전의 하나로 초기경전이 ‘구전(口傳)’에 의해 전승되었음을 짐작게 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형식의 경전이다. 《숫따니빠따(Sutta-nipāta》는 그 경명(經名)처럼 경(Sutta)의 집성(nipāta)이라는 의미에서 흔히 《경집(經集)》이라고도 불린다. 《경집》은 아마도 이 경의 각장이 각각 독립된 경전으로 전해지다가 어느 땐가 하나의 경으로 합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이 경은 다섯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을 단위(개별) 경전으로 구분하면 70경이 되며, 이것을 다시 게송으로 세분하면 1,149송이나 된다. 이 가운데 제4장 ‘여덟 편의 시’는 일찍부터 16경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지겸(支謙)이 한역(漢譯)한 《의족경(義足經)》(2권)은 바로 이 장에 해당되는 경전이다. 《숫따니빠따》에는 《의석(義釋, Niddesa)》이라고 하는 오래된 주석서가 있는데, 이것은 제1장 제3경과 제4장 및 제5장의 내용에 대한 어구(語句)의 주해다.

《법화경(法華經)》은 산스끄리뜨본 《Saddharmapuņḍarikasūtra》의 한역으로〔sad-正 또는 妙, dharma−法, puņḍarika−蓮花, sūtra−經〕, 축법호(竺法護)는 이것을 《정법화경》으로, 구마라집은 《묘법연화경》으로 번역하였는데, 구마라집의 번역본이 일반화되어 《묘법연화경》이 대표적인 경의 이름이 되었다. 《법화경》은 이 《묘법연화경》의 약칭이다.

이 경의 한문 번역은 여섯 종류가 있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3종이다. 서진(西晋)의 축법호가 번역한 《정법화경(正法華經)》(10권 27품), 요진(姚秦)의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7권 28품), 수(隋)의 사나굴다(闍那堀多)와 달마급다(達磨笈多)가 공역한 《첨품(添品)묘법연화경》(7권 27품)이 그 셋이다.

이 경은 그동안 티베트어, 위구르어, 서하어, 몽고어, 만주어 등 중앙아시아 권역의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넓은 지역에 보급되었다. 근래에는 일본어, 프랑스어, 영어 등으로도 번역되어 유포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조 세조 때의 언해본을 비롯하여 여러 현대 한글 번역본이 유통되고 있다.

《법화경》에 대한 연구는 서역 지방과 티베트를 거쳐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크게 성행하였다. 수많은 주석서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천태(天台) 대사 지의(智顗)가 지은 법화삼대부(法華三大部)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매우 뛰어나 가장 권위 있는 주석서로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천태 대사는 법화삼대부, 즉 《법화현의(法華玄義)》 《법화문구(法華文句)》 《마하지관(摩訶止觀)》을 통해 《법화경》을 주석하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사상을 새롭게 구축하고 있기도 하다.

《법화경》은 일시에 이루어진 경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최초의 《법화경》은 오늘날과 같은 규모가 아니라 8품 내지 10품 정도로 구성된 소규모의 경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지금의 제1 서품의 일부, 제2 방편품과 제3 비유품이 먼저 성립되고, 다음으로 제11 견보탑품의 전반부와 제13 권지품의 일부가 추가된 후, 다시 제15 종지용출품, 제16 여래수량품과 제21 여래신력품이 성립되어 8품이 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제17 분별공덕품 및 제20 상불경보살품이 첨가된 총 10품으로 이루어진 경전이 되었을 것이다.

2) 두 경의 구성 또는 형식

불교 경전은 대부분 육성취(六成就)를 갖추고 삼분(三分)으로 구분된다. 육성취란 경전 성립의 기본 요건으로서 신성취(信成就)[如是], 문성취(聞成就)[我聞], 시성취(時成就)[一時], 주성취(主成就)[佛], 처성취(處成就)[在某處], 중성취(衆成就)[與大比丘衆 某某俱]의 여섯 조건이다. 삼분이란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을 말한다. 서분은 그 경전을 설하게 되는 연유와 배경을 설하는 부분이고, 정종분은 그 경전의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중심 내용을 설하는 부분이며, 유통분은 경전의 이익과 공덕, 홍포와 선양에 관해 설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숫따니빠따》를 구성하고 있는 70편의 경전들 가운데는 이와 같은 육성취와 삼분의 형식을 갖춘 경전들보다 갖추지 못한 경전들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제1장 사품(蛇品)의 제1경 《뱀》의 경우를 보도록 하자. 이 경은 짧은 내용의 17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제1 게송과 제17 게송은 각각 다음과 같다.

뱀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약으로 다스리듯, 치미는 화를 삭이는 수행자는 이 세상(此岸)도 저 세상(彼岸)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1)

다섯 가지 덮개(五蓋)를 버리고, 번뇌가 없고 의혹을 뛰어넘어 괴로움이 없는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17)

이들 내용 속에서는 육성취의 내용도 삼분의 형식도 발견되지 않는다. 거두절미하고 붓다가 제자들에게 직접 전하는 가르침만 게송의 형식으로 열거되어 있다.

물론 육성취와 삼분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경도 있다. 예를 들면 제1장 제4경 《밭을 가는 바라드바자》는 육성취의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고 서분, 정종분, 유통분의 형식도 잘 갖추고 있다. 또한 제2장 소품(小品) 제14경 《담미까》와 같이 서분, 정종분은 있는데 유통분은 없는 경우도 있다. 《숫따니빠따》에 나오는 서분과 유통분의 내용은 잡아함의 경우처럼 대체적으로 간략하고 소박하다. 먼저 제2장 제14경 《담미까》의 서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 고독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었다. 그때 담미카라는 재가 신도가 오백 명의 신도들과 같이 스승께 와서 예배한 뒤 시로써 여쭈었다.(제376 게송 바로 앞)

다음은 제3장 대품(大品) 제12경 《두 가지 관찰》의 유통분의 내용이다.

스승〔Bhagavat, 世尊〕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은 기뻐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이 설법이 있을 때 육십 명의 수행승들은 집착이 없어져 마음이 더러움에서 해탈되었다.(제765송 바로 뒤)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숫따니빠따》의 경전 내용들은 대부분 사실에 바탕한 것으로 간략하고 소박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에 반해 《법화경》은 육성취의 내용은 물론 삼분의 형식도 확실하게 갖추고 있고 그 분량도 광대하다. 《숫따니빠따》의 내용이 대부분 현실에 바탕한 것인 데 비해, 《법화경》의 내용은 비사실적 또는 초현실적인 부분이 많고 문학적 내지 희곡적인 성격도 강하다. 예를 들어 ‘서분’에 해당되는 ‘서품(序品)’의 내용만 보더라도 그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서품에서는 육성취 중에서 특히 중(衆) 성취를 이루고 있는 대중이 실로 다양하고 장엄하다. 먼저 비구중(衆)은 일만 이천 명인데, 이는 일반적인 1,250인의 거의 10배에 달하는 숫자다. 그중에서 구체적으로 가섭, 사리불, 목건련, 아난, 라훌라 등 21명의 제자들 이름을 밝히고 있다. 마하파자파티와 야소다라를 비롯한 비구니중도 6천 인이다. 보살마하살 대중은 8만 명으로 그중 문수보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미륵보살 등 18명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도리천의 석제환인도 2만 명의 권속들과 함께하고 수많은 천자(天子)들도 동석하였다. 용왕, 긴나라 왕, 건달바 왕, 아수라 왕, 가루라 왕 등의 무리와 더불어 아사세 왕도 여러 백천 권속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세존은 이 모든 대중들을 위해 《무량의경(無量義經)》을 설하고 무량의처 삼매에 든다. 이때 여섯 가지 기이한 상서가 나타난다.

이때 하늘에서는 만다라꽃, 마하만다라꽃, 만수사꽃, 마하만수사꽃들이 비오듯 내려 부처님과 모든 대중 위에 뿌려졌으며 부처님의 넓은 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중략)…… 이때, 부처님께서는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으로 광명을 놓으시어 동방으로 일만 팔천 세계를 두루 비추시니, 아래로는 아비지옥에 이르고 위로는 아가니타천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법화경》의 서분 내용은 《숫따니빠따》의 그것과 큰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천태 대사에 따르면, 《묘법연화경》은 ‘2문(門) 6단(段)’으로 구성되어 있다. ‘2문’이란 적문(迹門)과 본문(本門)을 말하는데, 적문이란 이 땅에 자취를 남긴 석가모니불이 세 가지 방편을 통해 일승(一乘)의 한 가지 진실을 밝혀, 이승(二乘), 즉 성문과 연각도 성불할 수 있음을 알리고 그 길을 제시한 부분이다. 제2 방편품을 중심으로 설해지는 적문의 핵심 주제는 한마디로 ‘일승묘법(一乘妙法)’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이란 이 땅에 출현한 석가모니불을 초월하여 실재하면서 중생을 구제하는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본불(本佛)을 밝힌 부분이다. 제16 여래수랑품을 중심으로 설해지는 본문의 핵심 주제는 ‘구원본불(久遠本佛)’이라고 할 수 있다. 천태 대사는 이 적문과 본문을 각각 서분, 정종분, 유통분의 삼분으로 나누어 전체를 6단, 즉 6분으로 구분한 것이다.

3) 불타관 비교

(1)《숫따니빠따》의 불타관

가. 인간으로서의 붓다

《숫따니빠따》에 나타나는 석가세존의 모습은 한마디로 인간으로서의 붓다, 즉 ‘인간 붓다’라고 할 수 있다. 세존은 코살라 국의 속국인 히말라야 기슭의 ‘석가족’ 출신이다. 감자왕(甘蔗王)의 후예로서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카필라성에서 보낸다. 강보에 싸인 아기 붓다는 “머리 위에 흰 양산을 가리고 빨간 모포에 싸여 있는 황금 보물 같은 아기”로 묘사된다. 그는 “집에서 사는 생활은 비좁고 번거로우며, 먼지가 쌓인다. 그러나 출가는 널찍한 들판이며 번거로움이 없다”고 생각하여 출가한다. 출가 후 6년 간의 용맹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고 생사윤회에서 해탈하여 열반을 성취한다. 이러한 경지에 대한 다음의 설명은 《숫따니빠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태어나는 일은 이제 끝났다. 청정한 행은 이미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 마쳤다. 이제 다시는 이러한 생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깨달음을 얻고 열반을 성취한 석가세존은 종종 ‘눈을 뜬 분’ ‘진리의 주인’ ‘눈이 있는 이’ ‘인류의 최상인’ ‘위대한 영웅’ ‘신성한 분’ ‘애착을 떠난 분’ ‘번뇌의 화살을 꺾어 버린 분’ ‘악마의 군대를 쳐부순 이’ 등으로 불린다. 이렇게 깨달은 붓다도 때가 되면 속옷과 겹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탁발을 하며 우유죽을 드시기도 한다. 외아들 라훌라에게 경책할 때는 사랑과 엄격함이 함께 묻어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처럼 《숫따니빠따》의 붓다는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 ‘인간 붓다’로 그려지고 있다.

나. 스승으로서 붓다
《숫따니빠따》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이, ‘혹은 눈이 있는 사람들은 빛을 볼 것이다’ 하고 어둔 밤에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시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밝히셨습니다. 저는 당신 고타마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교법과 수행승의 모임[僧伽]에 귀의합니다.

위의 비유들, 즉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이” “어둔 밤에 등불을 비춰주듯이”가 의미하는 바는 모두 스승으로서의 붓다이다. 붓다는 사람들을 직접 구제해 주는 신도 아니고 신적 존재도 아니다. 붓다는 길을 가리키는 안내자요, 병을 처방하는 의사며 중생을 가르치는 스승일 뿐이다. 그는 스스로 깨닫고 증명하여 천신과 악마를 포함한 이 세계와 사문, 바라문,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가르침을 베푼다. 붓다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고, 말과 뜻이 잘 갖추어진 가르침을 설한다. 그리하여 그는 참사람, 깨달은 사람, 지혜와 행을 갖춘 사람, 행복한 사람, 세상을 알아버린 사람, 위없는 사람, 사람들을 길들이는 이[御者], 신과 인간의 스승, 눈뜬 사람, 거룩한 스승이라고 불린다. 《숫따니빠따》의 가르침은 결국 출가수행자 또는 제자들을 향한 스승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모든 탐욕과 번뇌를 여의어 생사윤회의 사슬을 끊고 해탈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한다.

다. 신화적 존재 또는 초인으로서의 붓다

이와 같이 《숫따니빠따》에 나타나는 붓다의 모습은 대체적으로 인간적이지만, 초인적인 붓다의 모습도 간혹 발견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아시타 선인이 어린 싯다르타 태자의 관상을 보고 난 후, “이 아이는 평범한 상이 아닙니다. 주의해서 길러주십시오. 이 왕자는 깨달음의 궁극에 이를 것입니다.”라고 한 말 속에 암시되어 있다. 아시타가 본 싯다르타 태자의 특별한 상은 다름 아닌 32상이었음을 《숫따니빠따》의 다른 게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베다 가운데 서른두 가지 완전한 위인의 상이 전해져 있고, 차례로 설명되어 있다.(1000)

몸에 이런 서른두 가지 위인의 상이 있는 사람, 그에게는 두 가지 앞길이 있을 뿐, 셋째 길은 없다.(1001)

만약 그가 집에 머문다면 이 대지를 정복하리라. 형벌에 의하거나 무기에 의존함이 없이 법으로써 통치한다.(1002)

또 그가 집을 나와 집 없는 사람이 된다면 덮여 있는 것을 벗기고, 더 없이 놓은 눈뜬 사람,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된다.(1003)

위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인도에서는 고대부터 일종의 메시아 사상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메시아는 32상이라는 특별한 외모를 타고나는데, 그가 세상에 머문다면 온 세상을 법(dharma)에 의해 통치하는 위대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고, 출가한다면 깨달음을 성취하여 여래(如來)가 된다는 것이다. 붓다의 32상에 관한 언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제3장 제7경 《세라》에 의하면, 부처님은 ‘세라’라는 바라문이 부처님의 특별한 서른 가지 상은 확인했지만 음마장상(陰馬藏相)과 광장설상(廣長舌相)은 보지 못해 의심하는 것을 보고, 신통력으로 감추어진 음부(陰部)를 볼 수 있게 하고 동시에 혀를 내밀어 두 귀와 이마까지 닿도록 하여 의심을 풀게 하였다.

이 32상을 사실대로 이해한다면 부처님은 분명 보통 인간과는 다른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32상을 지혜와 자비, 그리고 덕과 인격의 상징으로 이해한다면 또 다른 해석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상징이라 하더라도 32상에 관한 이야기는 부처님을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초인적 존재로 바라보는 입장을 반영한다고 할 것이다.

또한 《숫따니빠따》에는 과거7불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과거불 중의 한 분인 가섭불과의 대화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과거불 사상은 석가모니불에 그 기원을 둔다고 볼 수 있지만, 과거불을 메시아 사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석가모니불은 초인적 구세주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때 세존이 바라드바자 바라문으로 하여금 우유죽을 물 속에 버리게 했는데, 곧바로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서 많은 거품이 끓어오르자 바라문이 두려워하면서 세존께 귀의했다는 일화도 눈에 띈다. 이러한 일화도 붓다의 초인적 모습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2) 《법화경》의 불타관

가.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붓다

《숫따니빠따》의 붓다는 부분적으로 초인적인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의 인간 붓다이다. 기원전 6세기경 석가국의 카필라성에 아버지 정반왕과 어머니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자로 태어난 그는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는다.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하여 노력한 끝에 깨달음을 성취한 후, 수십 년간 전법교화의 삶을 살다 80세가 되어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든 역사적 인간이다.

하지만 《법화경》에서는 이러한 인간 붓다의 정체성에 대한 놀라운 비밀이 폭로된다. 석가세존은 보드가야에서 처음 붓다가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겁 전에 깨달음을 성취한[구원실성] 본래부처[본불], 다시 말해 구원본불(久遠本佛)이라는 것이다. 석가모니불은 중생들에게 불지견(佛知見)을 개(開)·시(示)·오(悟)·입(入)하기 위한 근본원(根本願)을 가지고 태자의 몸으로 화현하였고, 열반에 들지도 않았지만 일부러 열반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이며, 여래의 수명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법화경》 제16 여래수량품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설해져 있다.

너희들은 여래의 비밀과 신통력에 대하여 자세히 들으라. 일체 세간의 하늘과 인간 그리고 아수라들은 모두 석가모니불은 석씨 왕성을 나와 가야성 가까운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선남자들아, 내가 성불한 지는 한량없고 가없는 백천 만억 나유타 겁이니라 ……(중략)…… 그로부터 나는 항상 이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설법하여 교화했고, 또 다른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 국토에서 중생을 인도하여 이익되게 하느니라……(중략)…… 이와 같이 내가 성불한 지는 참으로 오랜 옛날부터였으며 수명이 한량없는 아승지겁이므로 이 세상에 항상 머물러 멸하는 법이 없느니라……(중략)…… 나는 그대들에게 내가 곧 멸도(滅度)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참 멸도가 아니며, 여래는 이런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느니라.

여래수량품의 비유에 의하면, 여래의 수명은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보다 훨씬 더 많다. 오백진점겁이란, 어떤 사람이 오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의 삼천대천 세계를 부수어 가는 티끌로 만들고, 그 티끌을 동방으로 오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의 국토를 지날 때마다 하나씩 떨어뜨리는데, 이렇게 해서 그 티끌이 다 없어질 때까지 지나온 국토는 물론 티끌을 떨어뜨리지 않은 국토까지 모두 합하여 다시 가늘게 부수어 티끌을 만든다고 가정할 때, 그 모든 티끌 수만큼의 겁에 해당된다.

아무래도 이 오백진점겁의 비유는 붓다의 실제 수명을 추정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붓다의 생명이 영원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대승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불신(佛身)을 크게 법신(法身), 보신(報身), 응신(應身)으로 나누는데 이 삼신설(三身說)은 《법화경》 이후에 정착된 사상이다. 그런데 이 《법화경》의 구원실성의 본불은 법신의 측면과 보신의 측면을 겸비하고 있어 흥미롭다. 구원본불을 영원한 생명의 본래부처[本佛]로 본다면 그것은 법신의 개념에 가깝고, 비록 구원겁 이전이라 하더라도 성불의 시점을 인정한다면 보신의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구원본불은 이러한 법신과 보신의 성격을 함께 아우르고 있기에 종교적 생명력이 더 강한지도 모른다.

나. 구제자로서의 붓다

석가모니불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구원본불의 응화신(應化身)이다. 앞에서 인용한 것처럼 구원실성의 본불은 이 사바세계에 상주하여 끊임없이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한다. 하지만 불지견이 없는 범부 중생의 안목으로는 구원본불의 그러한 실천행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믿기도 어려울 뿐이다. 《법화경》은 이러한 이유로 민중이 더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을 제시한다. 《법화경》 제25 관세음보살보문품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설해져 있다.

선남자야,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여러 고뇌를 받을 때에,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께서 즉시 그 음성을 듣고 그들로 하여금 다 해탈을 얻게 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들면 그 사람이 혹시 큰 불 속에 들어가더라도 불이 그를 태우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관세음보살의 신통한 위력 때문이니라.

불교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흔히 ‘사바세계(sahaloka)’라고 한다. 이 세상에는 잡다한 것들이 모여 있고[雜會土], 따라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아 참고 견디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勘忍土]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특히 힘없는 민중의 삶은 더욱 고달프고 열악하기 일쑤다. 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기 쉬운 곤경을 칠난(七難)이라고 한다. 화난(火難), 수난(水難), 풍난(風難), 검난(劍難), 귀난(鬼難), 옥난(獄難), 도난(盜難)이 그것이다. 또한 단란한 가정을 이루려면 자식도 필요하고 직업도 필요하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소원을 갖기도 한다.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여러 재난으로부터 중생을 구하고, 중생의 갖가지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온갖 방편을 동원한다.

선남자여, 만일 어떤 국토의 중생을 부처님의 몸으로 제도해야 할 이에게는 관세음보살이 곧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어 설하고, 벽지불의 몸으로 제도해야 할 이에게는 곧 벽지불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고……(중략)…… 집금강신의 몸으로 제도해야 할 이에게는 곧 집금강신의 몸을 나타내어 그를 위해 법을 설해 주느니라.

이처럼 관세음보살은 33응신(應身)을 나투어 중생을 구제한다. 위기와 곤경에 처한 중생의 입장에서는 관세음보살을 칭명하기만 하면 된다. 참으로 쉽고 편리한 방법이다. 특히 민중들 사이에서는 관세음보살에 대한 믿음이 널리 퍼져 갔다. 이러한 믿음은 마침내 이른바 ‘관음 신앙’을 성립시켰으며, 관세음보살의 칭명으로 부사의한 효험을 보았다는 수많은 영험담도 쏟아져 나왔다.

요컨대, 중생구제의 화신이라 할 이 관세음보살은 부처님의 또 다른 이름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법화경》에서의 붓다는 바로 이러한 구제자로서의 붓다라고 할 수 있다.

4) 두 경의 사상적 차이

(1) 《숫따니빠따》의 불교 사상적 특징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숫따니빠따》는 실로 소박하고 원시적인 형태의 경전으로서 석가세존의 육성의 가르침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다. 따라서 《숫따니빠따》는 테라와다불교의 사상적 원형이 담겨 있는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테라와다불교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숫따니빠따》의 몇 가지 사상적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가. 법수화 또는 조직화되지 않은 교리

《숫따니빠따》의 가장 큰 특징은 소박한 형태에 있다. 다시 말해 이 경전 속에는 붓다의 가르침이 아직 조직화되거나 체계화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불교교리의 기본 용어들, 이를테면 3법인, 4성제, 5계, 5온, 6근, 6경, 12처, 8정도, 12연기 등의 용어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3법인의 내용도 한곳에 함께 설해져 있지 않고 여기 저기 산재해 있다. 4성제의 내용도 그 기본 틀만 있지 그에 대한 설명은 없다. 예컨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하는 것이 하나의 관찰이고 ‘이것이 괴로움의 그침이다. 이것은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이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5계에 관련해서는, 그 내용은 제394송에서 제398송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설해져 있는데 막상 ‘5계’라는 용어는 보이지 않는다. ‘8재계’도 그 내용은 설명되어 있는데 아직 용어 자체는 보이지 않는다. ‘여덟 부분으로 된(consisting of eight parts)’ 재계라고 느슨하게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5온은 그 내용마저도 발견되지 않고, 6근을 말할 때는 그냥 6(six)이라고만 하고 있다. 6경과 관련된 내용은 제171송에 여섯 가지 욕망의 대상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제974송에는 색, 성, 향, 미, 촉의 다섯 가지 명칭만 나온다. 8정도에 관련된 전체적인 내용은 눈에 띄지 않는다. 연기법이라든가 12연기와 같은 용어도 발견되지 않는데, 다만 제3장 대품 제12경 《두 가지 관찰》의 내용 가운데 무명(無明), 행(行), 식(識), 촉(觸), 수(受), 애(愛), 취(取)의 용어가 나온다. 이들의 관계에 대한 언급도 없을 뿐만 아니라 명색(名色), 육입(六入), 유(有), 생(生), 노사(老死)의 항목도 빠져 있지만, 이러한 가르침이 기초가 되어 후일 ‘12연기’가 정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가세존이 이러한 전문용어나 법수(法數)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이러한 용어들 중에는 아비달마 불교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적극적으로 사용된 것도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세존은 번쇄한 교리의 체계화 또는 조직화보다는 그 ‘대기설법(對機說法)’의 방법으로 보아, 그때그때 상대에 따라, 주제나 문제에 따라 실질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효과적인 대화와 가르침을 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가르침의 내용이 중요하지 가르침의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닐 터이다. 그리고 그 ‘이름’은 종종 실체적 진실을 왜곡하고 현학과 사변에 빠지게 하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후일 아비달마불교의 병폐에서도 입증되고 있으며, 대승의 초기경전인 《반야경》에서는 이름과 개념에 대한 집착을 강력하게 경계하고 있다.

나. 금욕적 출가수행의 독려

《숫따니빠따》를 관통하고 있는 대주제 중의 하나는 ‘출가수행’이다. 출가수행의 목적은 고통과 번뇌를 여의고 생사의 윤회가 없는 열반을 얻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식과 아내에 대한 애착도 버려야 하며 무엇보다도 욕망[탐애]을 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롭지만 끝내는 우리를 고통과 번뇌 속으로 빠뜨리고 만다. 그래서 경전은 특히 ‘성교’를 경계한다.

독신을 지키고 있을 때에는 지혜로운 분이라고 인정받던 사람도, 성교에 빠지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처럼 괴로워한다.(820)

성자는 이 세상에서 앞뒤로 이러한 재난이 있음을 알아 굳게 독신을 지키고 성교에 빠지지 마라.(821)

성자는 온갖 욕망을 거들떠보지 않으며 이를 떠나 살기 때문에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 욕망을 여읜 출가수행이 실로 당당하고 자유롭고 청정한 길임을 경전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71)

《숫따니빠따》는 욕망을 경계하면서 우리 몸의 아홉 구멍에서는 끊임없이 더러운 오물이 흐르고 있음을 주시해야 하고, 죽어서 시체가 되면 부패하여 악취가 진동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육체를 비롯한 모든 세속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선의 길임을 일관되게 가르친다. 그리고 “마치 하늘을 나는 목이 푸른 공작새가 아무리 애를 써도 백조를 따를 수 없는 것처럼, 집에 있는 이는 세속을 떠나 숲속에서 명상하는 성인이나 수행자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다. 자비사상

우리는 흔희 소승불교는 자기중심적이고 자리주의(自利主義)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관념과 잘못된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뜨려 주는 한 경이 있다. 제1장 사품 제8경 《자비》라는 이름의 경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또는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거나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147)

또한 온 세계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를 행하라. 위 아래로, 또는 옆으로 장애와 원한과 적의가 없는 자비를 행하라.(150)

경은 계속해서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아끼듯이”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가지라고 설한다. 또한 재가자의 행위 규범을 설하는 가운데, 산 것을 몸소 죽여서는 안 되고 남을 시켜 죽여서도 안 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이는 것을 보고 묵인해도 안 된다’고 가르친다. 마찬가지로 남이 도둑질하는 것을 묵인해도 안 되며, 거짓말하는 것을 묵인해도 안 된다. 이러한 가르침은 인간과 사회 및 자연에 대한 관심과 자비를 강조하며, 이것은 결국 이타주의(利他主義)와 접목된다고 보인다. 이러한 이타적 사상은 이미 대승(大乘)의 이념과 정신을 배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숫따니빠따》에는 이 밖에도 다양한 가르침이 설해져 있는데, 그 기저를 이루는 것은 업사상과 윤회사상이다. 경은 바라문이라 하더라도 나쁜 행위를 하면 현세에서 비난을 받고 내세에는 나쁜 곳에 태어난다고 한다. 특히 지옥에 대해서는, 화염지옥, 칼날지옥, 홍련지옥 등 여러 지옥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업과 윤회의 관념은 세존 당시 인도 사람들에게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세존은 이것을 수용하여 불교적으로 해석하면서 더욱 강조했던 것이다.

(2)《법화경》의 사상

《법화경》에는 초기 및 부파불교 사상은 물론 대승의 공 사상 등 다양한 사상이 포괄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면의 제한상 《숫따니빠따》와의 비교 작업에 의의가 큰 핵심 사상들에 대해서만 논의하기로 한다.

가. 제법실상(諸法實相)

《법화경》 방편품에 의하면,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고 한량이 없어, 그 지혜의 문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렵다. 그리하여 일체 성문이나 벽지불로서는 알 수가 없다. 이처럼 부처님이 성취한 가장 희유하고 난해한 진리가 바로 ‘제법실상’이다. 이것은 오직 부처님들만이 깨달아 알 수 있는 진리이다. 제법실상은 ‘제법의 실상’ 또는 ‘제법은 실상이다’의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여기서 실상의 구체적 내용이 바로 ‘10여시(如是)’이다.

10여시는 이러한 모양[如是相], 이러한 성질[如是性], 이러한 잠재력[如是力], 이러한 기능과 작용[如是作], 이러한 직접적 원인[如是因], 이러한 간접적 원인[如是緣], 이러한 결과[如是果], 이러한 과보[如是報], 이러한 상부터 보까지가 모두 궁극적으로 평등함[如是本末究竟等]이다.

제법실상론은 모든 사물과 존재를 단순히 피상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물과 존재[諸法]를 중도(中道), 진공(眞空), 묘유(妙有)의 관점에서 유기적이고 역동적으로 파악한다. 천태종에서 공(空)·가(假)·중(中) 삼제가 원융하다는 ‘삼제원융’ 사상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훗날 천태지의(天台智顗)는 이 십여시를 기초로 ‘일념삼천(一念三千)’의 세계관을 확립하게 된다.

어쨌든 제법실상의 진리는 제법을 삼제원융의 관점에서 그대로 인정하고 수긍함으로써 현실 긍정에 바탕한 적극적인 대승적 실천의 동력이 된다.

나.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

우리는 이미 제2장에서 부파불교도와 대승인들의 심각한 대립상을 ‘일천제’라는 개념을 통해 살펴보았다. 대승인들은 기존의 부파불교인을 소승이라고 폄하한다. 소승에는 성문승과 연각승이 포함되며 이 둘을 통칭하여 ‘이승(二乘)’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대승은 보살승이라 이름하며 후일 현수(賢首)와 천태(天台) 등의 일승가(一乘家)에서는 대승을 권대승(權大乘)과 실대승(實大乘)으로 나누고 보살승을 권대승, 일불승(一佛乘)을 실대승으로 구분한다. 그리하여 일승가에서는 《법화경》 〈비유품〉에 나오는 삼거화택(三車火宅)의 비유에서 양거(羊車)는 성문승, 녹거(鹿車)는 연각승, 우거(牛車)는 권대승, 대백우거(大白牛車)는 일불승에 각각 배대한다. 요컨대 ‘회삼귀일’이란, 붓다가 우치한 중생들을 위해 방편으로 삼승을 열어 보이지만 결국은 그것들을 회합시켜 일승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일승은 불승 또는 일불승이라고도 하는바, 일승은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으며 붓다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일체 중생을 부처가 되게 하는 오직 하나의 진실한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삼승은 방편, 일승은 진실이다. 소승과 대승의 갈등이 심각한 시대 상황에서 《법화경》은 성립하였다. 《법화경》은 방편 사상을 매개로 하여 일승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그 갈등을 해결하려 한 것이다. 따라서 ‘회삼귀일’ 사상의 본질은 융화와 화해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다. 수기(授記) 사상

수기란 붓다가 보살, 연각, 성문을 비롯한 여러 중생에게 미래 어느 땐가 반드시 성불할 것임을 예언[記別]하는 것이다. 수기 사상은 특히 《법화경》에서 매우 비중 있게 설해지고 있다. 제6 수기품(授記品)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 제8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授記品) 제9 수학무학인기품(授學無學人記品) 등에 수기에 관한 가르침이 집중적으로 설해지고 있다. 수기 사상은 ‘일불승’에 대한 믿음을 깊고 굳건히 하며 ‘성불’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고취시키는 교설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법화경》에서는 여성에게도 수기가 베풀어진다. 석존은 이모인 마하파자파티 비구니에게는 장차 ‘일체중생희견여래’가 될 것이라 수기하고, 라훌라의 어머니인 야소다라 비구니에게는 ‘구족천만광상여래’가 될 것이라 수기한다. 나아가 세존을 살해하려고까지 했던 제바달다에게도 “한량없는 겁을 지나 반드시 성불하리니 그 이름은 천왕여래·응공…… 천인사·불세존이리라.”고 수기한다. 이것은 대승의 평등 및 자비의 이념을 웅변해 주고 있다 할 것이다.


4. 빠알리어 경전과 대승경전의 사상적 차이

위에서 《숫따니빠따》와 《법화경》을 중심으로 살핀 것처럼 빠알리어경전과 대승경전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분명한 차이점도 보인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불타관의 차이, 그리고 출가와 재가를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일 것이다.

빠알리어 경전은 대체적으로 부처님을 생신불(生身佛), 즉 부모로부터 태어난 역사적 인간으로 바라보는 입장에 서 있고, 대승경전은 일반적으로 법신·보신·화신의 삼신불(三身佛)을 설하면서도 법신(法身)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재신(自在神)을 인정하지 않고 ‘진리 그 자체[Dharma]’를 중시하는 불교사상의 특성에서 연유한 것임을 말할 필요도 없다. 또한 그 차이는 빠알리어 경전은 석가세존의 구체적인 생애와 직접적인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는 데 반해, 대승경전은 붓다 입멸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성립하여 석존과의 시간적 간격이 컸던 사실에 기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출가와 재가 문제에 대해서는, 빠알리어 경전은 출가 지향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 대승경전은 출가와 재가를 크게 문제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 테라와다불교 국가에서 스님은 반드시 독신이지만, 대승불교 국가에서는 결혼을 허용하기도 한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미즈노 코겐(水野弘元)은 일찍이 상좌부적(上座部的) 아비달마불교와 초기 대승불교의 특징적 차이를 다음 여섯 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첫째, 전자는 아라한을 목적으로 하는 성문사상[聲聞乘]↔후자는 성불을 목적으로 하는 보살사상[菩薩乘].
둘째, 전자는 업보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타율주의[業報思想]↔후자는 성불의 원행(願行)을 위해 스스로 악취(惡趣)에 나아가는 자율주의[願行思想].
셋째, 전자는 자기 한 사람의 완성을 위해 수양하고 노력하는 자리주의[小乘]↔후자는 일체중생을 구제하고 사회 전체를 정화 향상시키는 이타주의[大乘].
넷째, 전자는 성전(聖典)의 언구에 얽매이고 사물에 구애 집착하는 유(有)의 태도[有思想]↔후자는 모든 행동은 반야바라밀의 공무소득(空無所得)의 태도[空思想].
다섯째, 전자는 이론적·학문적 경향이 짙고 그 이론에는 실천과 관계없는 희론이 적지 않음[이론적]↔이론과 학문보다도 실천 신앙을 중시[실천적].
여섯째, 전자는 출가적, 전문적이면서도 소승적·세속적인 낮은 입장[전문화, 출가불교]↔재가적(在家的), 대중적이지만 그 경지는 제일의적(第一義的)인 높은 입장[일반화, 재가불교].

위의 분석 비교는 대체적으로 무리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점이 있다. 그것은 아비달마불교와 초기 근본불교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고 있는 초기경전에는 아비달마불교적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 또는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초기경전 속에서 아비달마불교와 초기 근본불교를 정확히 가려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의 주의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일례로, 아라한이 개인적인 자리(自利)만을 추구한다는 주장은 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주장이 아비달마불교 시대의 아라한에 한정된 것이라면 몰라도 부처님 당시의 아라한에게까지 적용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부처님 당시 석존의 제자인 아라한들은 그들 자신만의 깨달음을 추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비구들이여, 이제 길을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두 사람이 함께 가지 마라.”라는 붓다의 유명한 ‘전법선언’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전법선언’을 실천하였고, 그리하여 불교는 새로운 종교로서 당시 인도 사회에 확산될 수 있었다. 요컨대 석존 당시의 아라한들은 자리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이타행까지도 추구했던 것이다.

불교 승가는 결코 사회와 결별한 은둔자들의 집단이 아니었다. 월폴라 라훌라의 주장에 따르면 상가는 자신의 정신적·지적 발전뿐만 아니라 또한 타인에 대한 봉사에 일생을 기꺼이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탁발에 의한 생활 방식 때문에라도 그들은 은둔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또한 마쓰다니 후미오는 그의 《근본불교와 대승불교》에서 근본불교와 대승불교를 다음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전자는 상구보리(上求菩提)라는 의미에서 개인의 도(道)이고 후자는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는 의미에서 대중의 도이다.

둘째, 전자는 법(法)을 논함에 있어 분석적 방법을 중시하고 후자는 직관적 방법을 중시한다.

셋째, 전자는 의식의 측면을 강조하고 후자는 무의식의 측면을 강조한다.

넷째, 전자는 아라한지향적이고 후자는 보살지향적이다.

다섯째, 전자는 이성(理性)을 중시하고 후자는 감성(感性)을 중시한다.

이에 대해 상세히 논의할 여유는 없다. 다만 여기에 ‘열반’의 문제에 대해 간략히 부연하고자 한다.

열반은 불교의 최고선이자 궁극적 목표이다. 따라서 열반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불교의 방향과 성격도 달라지게 된다. 근본불교는 대체적으로 ‘회신멸지(灰身滅智)’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을 궁극적 이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고, 대승불교는 법상종(法相宗)에서 말하는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을 최고선으로 삼는다. 무주처열반은 무여열반이 자칫 ‘허원적멸(虛遠寂滅)’에 빠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창안된 개념이다. 무주처열반은 현법열반(현재열반, diṭṭha-dhamma-nibbāna)과 유여열반(有餘涅槃)의 개념을 바탕으로, 더욱 역동적이고 대승적인 개념의 열반으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5.맺음말

테라와다불교는 방대한 빠알리어 경전에 그 사상적 기초를 두고 있고, 대승불교는 방대한 대승경전에 그 사상적 기반을 두고 있다. 《숫따니빠따》는 그 빠알리어 경전 중의 한 작은 경전에 불과하고, 《법화경》은 수많은 대승경전 중의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숫따니빠따》는 테라와다불교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고 《법화경》은 그 어떤 대승경전보다도 대승의 이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이 두 경전을 선택하여 그 내용을 살피고 몇 가지 특징적인 차이점을 비교해 보았다. 하지만 이 두 경전은 모두 ‘불교경전’이기에 근본적인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그 공통분모는 깨달음, 업과 윤회, 해탈과 열반, 지혜와 자비 등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통분모가 있기에 테라와다불교와 대승불교의 융화 또는 접목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테라와다불교와 대승불교는 갈등과 대립을 겪기도 하였지만, 불교의 근본정신 및 시대정신에 비추어 볼 때 이 두 가지 불교 전통은 어떤 방식으로든 공존하게 될 것이고 또한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의 세계는 ‘글로벌’ 시대이고 ‘다양성’의 시대이다. 교통과 통신의 첨단화로 세계 각국의 교류는 더욱 활발해지고, 직·간접적인 다양한 문화의 이해와 체험으로 사람들은 서로 친숙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지구촌’의 시대요 ‘인간 가족’의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테라와다불교와 대승불교는 자연스럽게 만나 어울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테라와다불교와 한국의 대승불교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테라와다불교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주지주의적이고 자력적 구제를 추구하는 열반 지향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붓다와 불교 상가에 대해 보시하고 공양함으로써 현세와 내세의 공덕을 쌓으려는 공덕 지향적 측면이다. 한국불교에도 간화선 수행과 같은 자력적 불교의 흐름과 각종의 불공과 기도를 통한 제불보살의 가피를 추구하는 기복적인 흐름이 병존한다.

이러한 기복적 특색은 테라와다불교와 한국불교를 쉽게 어울리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출가수행자의 생활 방식 등에는 적지 않은 간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스님들은 이제 탁발에 의해 생활하지 않으며, 탁발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테라와다불교에서는 탁발은 아직 살아 있는 전통이다. 현재 한국의 테라와다불교 교단에서는 스님들이 직접 거리로 탁발하러 나서는 방식이 아닌, 신도들이 사찰로 공양물을 가지고 가서 스님들께 공양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테라와다불교가 더욱 확산되고 일반화된다면 스님들이 직접 탁발하러 거리로 나설 수도 있고,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한국의 생활 환경 특성상 언젠가는 스님들이 직접 공양을 마련해야 할지도 모른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인위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문화는 상당한 시간을 두고 생성되고 변화하기 때문에 탁발 문제는 열린 마음으로 좀 더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흔히 뗏목에 비유되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비유된다. 이것은 가르침 자체가 절대적 진리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불교적 가르침의 유연성으로 인하여, 전통적 테라와다불교와 한국 대승불교의 만남은 변증법적 진전을 이루어 새로운 차원의 불교, 이를테면 신승(新乘, Navayāna) 또는 신대승의 불교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테라와다불교가 개인적 수행만을 강조하거나 한국불교가 대승이라는 미명하에 개인적 기복만을 추구한다면, 불교는 결국 사회와 역사로부터 소외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오늘날 아시아 및 구미 여러 나라에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해 가고 있는 인간불교, 참여불교의 흐름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



박경준 /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박사학위 취득. 논문으로 〈불교적 관점에서 본 자연〉 〈노동소외 극복을 위한 불교적 접근〉 〈불교사상으로 본 사회적 실천〉 〈생산과 소비에 대한 불교의 기본 입장〉 등이 있다. 역·저서로 《민중불교의 탐구》(공저) 《원시불교 사상론》 《불교사회경제학》 등이 있다. 본지 편집위원장.

묘법연화경이란 무엇인가 : 각원사 임기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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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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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원사임기영 ・ 2018. 12. 1


‘누구나 다 부처님’ 초대승적 사상 담겨 수많은 불보살 출현…장대한 드라마 / <법화경>이라는 이름 을 처음 접한 것이 1957년경이니까 40여년쯤 전 일이다. 그 무렵 불교사상 강의를 듣기 위해 대각사의 청년단체모임인 대각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때 모임의 부회장인 황대법선 보살님께서 <법화경>에는 굉장한 부처님세계가 전개되고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당시는 요즘처럼 경전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뿐 아니라 한문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접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안진호 선생님이 <묘법연화경>을 출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법화경>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줄여 부른 이름이다. 초발심의 도반들이 성북동 계곡에 있던 안선생님의 조그만 기와집을 방문했고 그때 나도 한질 구입했다. 별로 경전에 대한 지식도 없으면서 ‘귀중한 진리가 있다’라는 주변의 권유로 나도 두터운 양장본으로 된 상하 두권을 샀다. 기독교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가 불교에 귀의했던 황보살님은 이 경전을 읽고 법화신앙에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고 했지만 당시에 나는 전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냥 종교적 세계에 대한 막연한 기대만을 지닌 채 나의 서가 가장 끝자리에 <법화경>을 모셔 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법화경>을 가까이 하게 된 것은 천태와 법화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 근래 십여년간의 일이다. <법화경>의 본 경명은 <삿드 달마 푼다리카 수트라> 이다. 바른 법을 흰 연꽃에 비유하고 있는 경이다. 바른법을 묘법(妙法)이라고 번역했다. 흰 연꽃은 진흙탕인 연못에서 핀다. 오염된 현실에서 올바른 부처님법을 실현하는 대승불교의 실현자를 흰 연꽃으로 상징한 것이다. <법화경>은 초기 대승불교경전을 대표하고 있다. 이 경을 보면 초기대승불교운동이 얼마나 격렬한 활동을 전개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초기 불탑신앙은 재가불교신자들이 중심이 되었으나 시대를 거쳐옴에 따라 출가와 재가의 구별없이 혼연한 사부대중이 참여하게 되면서 대승불교운동이 활발해지게 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이 가운데서 새로운 경전의 결집을 지향하는 그룹 가운데 혁신적인 신앙운동을 전개한 것이 법화신앙인들이었다.
그러므로 <법화경>에서는 기존의 소승불교인이라고 하는 성문이나 연각을 얕보는 일없이 모두 대승보살로 인도하려는 의지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말하자면 일체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념보다는 일체중생이 모두 다 성불한다 라는 초대승적인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 다시말하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모든 사람이 다 부처님이라는 대전제를 보여 주는 것이 이 경이다.그러기 때문에 수많은 부처님이 출현하고 수많은 보살의 명호를 <법화경>에서 읽을 수 있다. 수많은 부처님이 계신 것은 중생의 수가 무수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시방세계에 충만하시다. 과거세상에도 미래세상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빛으로 충만하다. <법화경>을 읽으면 실로 장대한 드라마를 연상케된다. 부처님은 세상 안팎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의 마음속에 충만하신 생명이시다. 이 생명의 부처님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불자라고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부터 ‘법화회’가 사찰에서 열렸고, 수많은 고승들이 <법화경>을 독송하고 연구하여 많은 영험담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이 경을 서사(書寫)하고 마음에 새겨 읽고 외우며 주변인들에게 설법해 주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와같은 이들을 ‘법사’라고 하고, 이 설법하는 분들을 ‘여래의 사도’라고 하였다.여래의 사도는 여래의 방에 들어가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 사부대중을 위해 법을 설한다. 여래의 방은 자비심이요, 옷은 온유하게 참아내는 마음이요, 여래의 자리는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고 비운 마음자리이다.<법화경>은 중국에서는 천태종의 주요 소의경전이 되었을 뿐 아니라 삼론종 법상종 열반종 등 모든 조사들이 소중히 하였다. 특히 일본에서는 법화신앙이 큰 주류의 하나로서 <법화경> 연구가 크게 성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보다 좀 약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불교인의 신앙관의 저변을 흐르고 있는 큰 맥은 법화신앙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법화경>이라는 이름 을 처음 접한것이 1957년경이니까 40여년쯤 전 일이다. 그무렵 불교사상 강의를 듣기 위해 대각사의 청년단체모임인 대각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때 모임의 부회장인 황대법선 보살님께서 <법화경>에는 굉장한 부처님세계가 전개되고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당시는 요즘처럼 경전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뿐 아니라 한문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접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후 안진호선생님이 <묘법연화경>을 출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영자<동국대 불교대학원장>
 
부처님께서 무량의처삼매에 드시니 하늘에서 가지가지 꽃이 뿌려지고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큰 광명을 놓으시는 등 헤아릴 수 없는 신통변화를 나타내시니 미륵보살이 대중을 대표하여 문수보살에게 그러한 신통변화가 나타난 까닭을 물었다. 문수는 과거의 부처님이 <법화경(法華經)>을 설할 때 반드시 이러한 상서가 나타났는데 이제 또 그러하니 <법화경>을 설하실 게 틀림없다고 대답한다. ‘서품’에 나오는 이 말은 과거의 부처님이 항상 <법화경>을 설해 왔다 하여 이 경의 특별함을 강조하고 있다.

<법화경>은 <묘법연화경>을 줄여 부르는 말로 범어 이름은 삿다르마 푼다리카 수트라(Sadharmapundarika-sutra)이다. 연꽃이 물에 자라되 물에 젖지 않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뜻을 묘법이라 하여 붙인 말이다. 한역본에 7가지가 있으나 구마라습역의 <묘법연화경>이 가장 널리 유통되었으며, 달마급다의 역은 <첨품묘법연화경>으로 제명되었고, 또 법호가 번역한 <정법화경>도 유명하여 이의 3본이 번역이 잘 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예로부터 “뭇 별 가운데 달이 으뜸이듯이 수많은 경전 가운데 법화경이 으뜸”이라고 한 경의 말을 인용, 이 경이 최고의 경전이라고 주장해 오기도 했다. 이 경을 의지하여 생긴 종파도 여러 개며 중국불교사상 유명한 천태지의(天台智)대사의 천태교관은 <법화경>을 연구하여 수립한 것이다. <화엄경>과 쌍벽을 이루어 <법화경>은 천태교학의 체계를 성립시키고 <화엄경>은 화엄교학의 체계를 수립하여 중국 교학사상 가장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천태교학 정돈…화엄경과 쌍벽 적문.본문으로 구성…총 28품

28품으로 되어 있는 전체 경문의 전반 후반을 적문(迹門)과 본문(本門)으로 구분하여 제법 실상의 이치를 천명하였는데 적문에서는 ‘방편품’이 가장 중요하고 본문은 ‘여래수량품’이 가장 중요한 품이다. <법화경>을 실교법문(實敎法門)이라 말하면서 삼승(三乘)의 방편으로 설한 권교(權敎)를 모아 구경 일불승(一佛乘)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으로 대의를 삼는다. 이를 회삼승귀일승(會三乘歸一乘)이라 말해왔다. ‘방편품’에서 부처님의 일대사 인연을 밝힌 대목과 제법실상을 밝힌 10여시설(十如是說)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사리불이여, 모든 부처님들은 일대사 인연 때문에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 중생들로 하여금 여래의 지견을 열어주고, 보여주고, 깨닫게 해주고, 들어오게 해주기 위하여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 10여시설을 근거로 하여 천태 지자대사는 일념삼천설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여래수량품’에서 부처님은 이미 구원겁 전에 성불하셨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내가 정반왕궁에 태어나 출가하고 수도하여 도를 이루었다고 알고 있지만 나는 이미 구원겁 전에 성불하였느니라.” 본래성불의 이 이치를 바로 아는 것이 여래의 지견을 얻는 것이요, 이것이 바로 일승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여 진정으로 바라는 바는 중생이 무상보리를 이루는 것이다. 그 외에 어떤 것도 구경목적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성불의 길이 어디에 있는가? 천차별 만차별의 방편이 있을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경의 사구게(四句偈)에서 밝혀 놓은 실상법문을 깨닫는 것이다. “천지 만유는 본래부터 항상 적멸한 모습 그대로다.(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불자가 도를 닦고 나면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리라.(佛子行道已 來世得作佛)”
제법이 본래 적멸상이란 이 말씀이 일승의 묘법이다. 결국 고요한 적멸의 모습 그 하나를 보여 주신 것이다.
 
대승불교경전의 하나. 천태종, 일련종의 중심 성전. 원제는 산스크리트어로 『사다르마푼다리카 수트라』(백연화처럼 올바른 가르침). 산스크리트 원전, 티벳어역 및 한역 3종이 현존한다. 한역은 축법호역 『정법화경』, 쿠마라지바 역 『묘법연화경』, 사나굴다 달마급다 공역 『첨품묘법연화경』인데,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쿠마라지바 역이다. 27(또는 28)장으로 되어있는데, 제2장 <방편품>을 중심으로 한 부분이 가장 일찍 성립하고, 그 사상은 <개삼현일(開三顯一)>, <개권현실(開權顯實)> 등이라고 한다. 즉 불은 중생의 근기(根機)에 응해서 삼승의 가르침을 펼쳤는데, 궁극적으로 진리는 단 하나라고 하여서, 종래의 대승ㆍ소승의 대립의 지양통일을 도모하고 있다. 늦게 성립한 후반 부분의 중심은 <여래수량품(如來數量品)>으로, 여기에서는 보리수 밑에서 성불한 석가는 가짜 모습으로, 실은 오백진점겁(五百塵点劫)이라는 태고에 성불했다고 하며, 영원의 불의 이상을 밝히고 있다. 최후의 6장은 가장 새로운 것인데, 그중에서 관음의 신앙을 주장하는 <관세음보살보문품>은 『관음경』으로서 독립해서 존중되었으며 중국에서는 천태 지의가 『법화현의』, 『법화문구』의 2대 주석서를 저술하고, 본경을 제경 중에서 최고의 진리를 주장한 것으로서 존중했는데 경의 전반을 <적문(迹門)>, 후반을 <본문(本門)>이라고 하는 것도 지의에 의해서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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