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5

알라딘: [전자책] 나는 심플하게 살기로 했다 :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40대 기억력 수업



알라딘: [전자책] 나는 심플하게 살기로 했다 :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40대 기억력 수업


나는 심플하게 살기로 했다 :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40대 기억력 수업 -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40대 기억력 수업
스가와라 요헤이 (지은이),하진수 (옮긴이)북로그컴퍼니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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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13,000원 11,700원 (650원)
전자책정가
9,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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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216쪽
가능 기기 : 크레마 그랑데, 크레마 사운드, 크레마 카르타, PC,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폰/탭, 크레마 터치, 크레마 샤인
ISBN : 9791187292517


책소개
<나는 심플하게 살기로 했다>는 이처럼 획기적이고도 반가운 주장을 담은 책이다. 작업치료사로서 오랜 기간 뇌의 재활과 뇌 활성 연구를 해온 저자는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마흔 이후 변화하는 뇌의 시스템과 기억법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을 알려준다.
1장과 2장에서는 기억법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와 근거, 바로 활용해볼 수 있는 7가지 기억법을 설명한다. 3장에서는 즉시 기억력 좋아지는 5대 생활 법칙 15개 요령을, 4장에서는 ‘기억’과 관련된 실질적인 고민 7가지의 해결법을 제시한다. 5장에서는 마흔의 기억법이 가진 잠재력에 대한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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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40대 기억력 수업

1장 머리가 아닌 몸으로 기억하라
당신이 자꾸 깜박하는 까닭
몸으로 외우면 절대 잊지 않는다
배운 것은 바로 써먹는다
새로운 도전을 실수 없이 해내려면
칼럼 _ 몸으로 기억하게 가르치는 법

2장 복잡한 세상, 효과적으로 기억하라
쓸데없는 정보를 차단한다
기억하려면 먼저 잊어야 한다
잊기 위해 적는다
‘두 번째 기억’을 남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소리 내어 말한다
싫은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수정한다
이상적으로 상상하고 행동하고 잔다
칼럼 _ 끝없이 이어지는 근심 걱정 차단법

3장 즉시 기억력 좋아지는 5대 생활 법칙
시간의 법칙
⁕ 9시에 기억하고 16시에 잊는다
⁕ 낮잠도 전략적으로 잔다
⁕ 자정 이후까지 깨어 있지 않는다

장소의 법칙
⁕ 책상에 쓸데없는 물건을 두지 않는다
⁕ 싫은 장소에서 가슴 설레는 이야기를 한다
⁕ 좋은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화장실에 간다

수면의 법칙
⁕ 중요한 것은 잠들기 직전에 외운다
⁕ 일기는 '아침'에 쓴다
⁕ 악몽도 기억 향상에 필요하다

식사의 법칙
⁕ 공복일 때 기억력이 좋아진다
⁕ 식사로 뇌의 리듬을 바로잡는다
⁕ 씹을수록 기억력이 좋아진다

언어의 법칙
⁕ 기억의 카테고리들을 잇는다
⁕ 기억에 ‘말의 태그’를 단다
⁕ 말을 제대로 끝맺는다

칼럼 _ 집중력의 시작, 4분 30초

4장 상황별 기억 법칙
얼굴과 이름을 잘 못 외울 때
읽은 내용을 잘 기억하고 싶을 때
아이디나 비밀번호를 잘 못 외울 때
수집한 정보를 잘 못 활용할 때
길을 심하게 헤맬 때
긴장해서 머릿속이 하얘질 때
꼭 남기고 싶은 기억이 있을 때
칼럼 _ 자신이 습득한 요령을 남에게 어떻게 가르칠까

5장 당신 뇌의 잠재력을 믿으라
정보의 양으로 정신력을 관리한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강하다
메타 기억을 단련해 미래를 읽는다
최고의 성과를 내는 비결

에필로그 / 기억은 미래를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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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16 뇌는 이렇게 중요도와 상관없이 모든 기억을 뒤죽박죽 보관하는데다가 용량에도 한계가 있다. 그 어떤 노력을 한다 해도 뇌의 기억 용량을 늘릴 수는 없다. 마구 욱여넣은 기억이 일정한 양을 넘어서버리면, 그때부터는 아무리 애를 써서 외우려고 해도 조금도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중요한 일을 떠올릴 때는 ‘... 더보기
P. 18 뇌는 중요한 기억과 그렇지 않은 기억을 따로따로 저장하지 않는다. 한데 뒤섞어 저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저장된 기억으로 가득 차면 뇌는 더 이상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니 뇌에 여유 용량을 만드는 것이 잘 기억하는 첫걸음이다.
뇌에 여유 용량을 만들려면 ‘머리의 기억’을 ‘몸의 기억’으로 바꿔야 한다. 새로... 더보기
P. 46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지금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이 기억하느냐가 아니다. 몸과 머리가 익힌 것을 얼마나 제대로 활용해 성과를 올리느냐가 중요하다. 아직도 자신을 시험 전날 밤, 암기 과목을 달달 외우는 학생이라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 골라서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뇌에... 더보기
P. 61 사람의 뇌는 말을 하면서 동시에 구체적으로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예행연습을 한다. 그렇게 머릿속으로만 예행연습을 해도 몸은 실제 행동과 똑같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실제로 몸을 움직일 때는 두 번째로 하는 일처럼 능숙하게 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은 ‘몸의 기억에 대한 예행연습’이라고... 더보기
P. 83 하루 중 기억력이 가장 좋아지는 시간은 잠자리에서 일어난 지 3시간 뒤와 10시간 뒤다. 오전 6시에 일어난다면 오전 9시와 오후 4시에 기억력이 가장 좋아진다. 그리고 이때는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이 출근해서 하루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과 일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힘을 내는 시간일 것이다.
이 소중한 시간에 뭘 하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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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스가와라 요헤이 (菅原洋平)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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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저명한 작업치료사. 국제의료복지대학교를 졸업하고 민간병원 정신과에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발달과정에서 장애를 입은 환자가 스스로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있게 돕는 정신작업치료사로 활동했고 국립병원에서 두뇌 재활 전문 치료사로 일했다.
두뇌 기능을 활용한 인재 개발 플랜 유크로니아㈜를 설립, 베슬리 클리닉(besli.jp)에서 수면장애를 진료하는 한편, 텔레비전 매체와 잡지, 기업 연수, 전국 강연 등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수많은 연구 결과와 치료 사례를 통해 몸과 뇌의 리듬, 사회생활의 리듬을 일치시키면 작업 효율이 높아지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 내용을 책으로 정리했다. 《일 잘하는 사람의 두뇌 리듬》은 다양한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는 시간 사용법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굿바이, 나른함》《나는 심플하게 살기로 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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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일 잘하는 사람의 두뇌 리듬>,<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나는 심플하게 살기로 했다> … 총 7종 (모두보기)

하진수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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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자대학교에서 문예창작과 언론영상학을 복수 전공했다. 졸업 후 편집과 기획 일을 하다 번역의 매력에 빠져 바른번역 일본어 출판번역 과정을 수료한 뒤, 일본 도서 기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최고를 만드는 하루 사용법』, 『어중간한 나와 이별하는 48가지 방법』, 『나는 심플하게 살기로 했다』, 『크리티컬 씽킹』, 『논어로 망한 조직, 한비자로 살린다』, 『경쟁의 법칙』, 『회사에서 잘 나가는 중간의 기술』, 『돈을 좋아하는 사람 돈이 좋아하는 사람』, 『라멘이 과학이라면』 등이 있다.


최근작 : … 총 4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왜 아무리 외워도 머릿속에 남지 않을까?
왜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날까?
기억력 걱정하기 시작하는 40대를 위한 책!!

인간의 수명이 100세까지 늘어난 현대 사회에서 마흔은 아직 가능성이 많은 나이다. 더 공부해서 직업이나 미래를 바꿀 수도 있고, 현업에서도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활발히 일할 수 있다.
그런데 넘치는 의욕과 달리 40대에 접어들면 스스로 위축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맘처럼 따라주지 않는 기억력 때문! 업무 관련 책을 열심히 읽어도 머리에 남는 게 없고, 자기계발을 위해 학원에도 다녀보지만 돌아서면 대부분 잊어버린다. 이럴 때 대부분은 나이 탓을 한다. “옛날엔 한 번만 읽어도 다 외웠는데, 이제 머리가 굳었나 봐.”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네.” 하면서.
그러나 나이 때문에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기억력을 ‘암기력’으로 착각하고 여전히 10대, 20대 때처럼 무조건 외우려고만 하는 우리의 습관이다. 나이에 맞게 ‘기억법’을 바꿔주면 50대, 60대 이후에도 기억력에 아무 문제가 없다.
<나는 심플하게 살기로 했다>는 이처럼 획기적이고도 반가운 주장을 담은 책이다. 작업치료사로서 오랜 기간 뇌의 재활과 뇌 활성 연구를 해온 저자는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마흔 이후 변화하는 뇌의 시스템과 기억법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을 알려준다.
1장과 2장에서는 기억법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와 근거, 바로 활용해볼 수 있는 7가지 기억법을 설명한다. 3장에서는 즉시 기억력 좋아지는 5대 생활 법칙 15개 요령을, 4장에서는 ‘기억’과 관련된 실질적인 고민 7가지의 해결법을 제시한다. 5장에서는 마흔의 기억법이 가진 잠재력에 대한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정보 단식’과 ‘몸의 기억’을 활용하라!
기억법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

이 책에서 특히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것이 바로 1~2장에서 다루는 ‘정보 단식’.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쏟아지는 정보에 노출되어 있을 뿐 아니라, 빠르게 변하는 정보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불안감마저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러나 뇌의 용량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 집어넣다 보면 어느 순간 용량 초과로 더 이상 아무것도 저장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정보를 차단하고 비워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즉, 100세 시대를 준비하려면 일단 머릿속부터 심플하게 리셋해야 한다는 얘기.
이렇게 뇌에 여유 용량을 만들었으면 앞으로 기억할 중요한 정보들은 ‘몸의 기억’으로 저장해 뇌가 차지하는 용량을 줄여주라고 한다. 무조건 읽고 외우는 방식의 ‘암기’가 머리의 기억이라면, 몸의 기억은 습득한 정보를 몸으로 직접 활용해봄으로써 ‘근육의 움직임’에 저장하거나 청각, 시각 등의 감각기관을 활용해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몸의 기억은 뇌 용량을 거의 차지하지 않을 뿐 아니라, 평생 절대 잊히지 않으며 다시 기억해내기도 쉽고 응용하기도 쉽다는 장점이 있다.

즉시 기억력 좋아지는 5대 생활 법칙 대공개!
시간, 장소, 수면, 식사, 언어의 습관만 바꿔도
기억력에 자신이 붙는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오랫동안 지속해온 작은 습관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 말하는 사소한 습관이 기억력을 점점 나쁘게 만들기도 하고, 좋아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누구나 매일 접하는 5가지 생활 법칙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 ‘즉시’ 기억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원리는 ‘머리의 기억’과 ‘몸의 기억’을 적절히 활용하는 15가지 요령에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몸에는 ‘체내 시계’라는 시스템이 있어서 이 스케줄을 잘 이용하면 뇌와 몸의 능력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직장인의 경우 기상 후 3시간 뒤인 9시에 기억력이 가장 활발하므로, 이 시간대에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한다. 또한 기상 후 18시간이 지나면 기억력이 급속히 떨어지므로, 그 전에 잠자리에 들라고 한다. 이 외에도 잠을 자는 동안 ‘기억의 최적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뇌를 활용해 ‘뇌의 여유 용량’을 늘리고,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들을 잘 외우는 법, 뇌의 활동을 돕는 식사법, 뇌의 기억을 몸의 기억으로 바꾸는 언어의 습관 등을 자세히 다룬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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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심플하게 사는 것에 초점이 아니기에 읽어보고 싶어요!
페넬로페 2017-02-2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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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할수도 없는 일들을 깜박하고,슬쩍 두려움이 등 뒤로 으스스 밀려온다,나 정말 아직 괜찮은걸까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용기를 내서 말이다..
inpola 2017-02-2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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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깜빡깜빡하는 요즘..농담으로 알츠하이머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로 하지만..
너무많은 정보의 홍수속에 정말 중요한것들을 잊지않고 기억하는 법이 절실한 요즘.. 이책이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acacia84 2017-02-19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할아버지 위해 6년간 ....... "그의 글 지키고 싶어" > 자유게시판 | 바보새함석헌

할아버지 위해 6년간 ....... "그의 글 지키고 싶어" > 자유게시판 | 바보새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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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할아버지 위해 6년간 ....... "그의 글 지키고 싶어"
작성자 바보새 19-01-03 14:54 조회295회 댓글0건


할아버지 위해 6년간 무보수 작업... "그의 글 지키고 싶어"
[인터뷰] '함석헌문집' 전자책 42권 펴낸 함석헌 선생 외손자 정현필씨
19.01.01 21:57l 김성수(wadans)

함석헌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시절, 함석헌의 차남 우용씨, 며느리 양영호씨, 외손자 정현필씨(오른쪽부터). ⓒ 정현필

지난 2009년 <함석헌저작집> 30권이 세상에 나왔다. 이 저작집은 지난 1980년대 발간된 <함석헌전집> 20권을 증보해 30권으로 발간한 것이었다. 하지만 저작집에 오류가 상당수 발견돼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 한길사에 판매금지를 요청했다. 그 후 한길사와 함석헌기념사업회는 수차례 회의 끝에 저작집 30권 판매를 중지하고 책방에서 모든 책을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동안 함석헌(1901~1989) 사상에 목말라 있는 독자들 중엔 기존 전집과 저작집이 절판, 판금돼서 시중에서 아예 구할 수 없다는 불만이 많았다. 그러던 중 지난 2018년 12월 30일 <함석헌문집> 전자책 42권이 세상에 나왔다. 이 문집을 펴낸이는 함석헌 선생의 외손자이자 주캐나다 동포 정현필씨다.

정씨는 한국에 있을 때 많은 질문을 받았다. "함 선생님을 공부하려 해도 책을 구할 수 없다, 언제 전집이 나오느냐?" 그래서 그는 지난 2013년부터 자신이 캐나다에서 운영하는 'ssialsori.net'에 함석헌 선생의 글을 모두 공개하고 있다. 함석헌의 글을 접하기 원하는 독자는 누구든지 방문해 볼 수 있다. 특히 함석헌을 연구하는 학자나 공부하는 학생에게 정씨는 제한적으로 이번에 그가 만든 <함석헌문집> 전자책을 공개하고 있다.

기자가 이런 정씨에게 물었다. "함석헌 할아버지의 어떤 면이 그렇게 좋아서 지난 6년간 무보수로 이런 엄청난 일을 했나?"

"지난 1985년 나는 위급한 심장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함석헌 할아버지는 수술 중인 나를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시면서 수술이 잘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저 애는 부활했다'고 말씀했다.

지난 1986년 캐나다로 이민왔다. 2년 후인 1988년 할아버지가 병환으로 입원했을 때 한국의 병원에서 뵈었다. 당시에는 정신이 분명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나를 보고 알아보셨다. 첫마디가 '현필이 너 뭘 할래?'라고 하셨다. 그 두 말씀은 지금까지 나를 사로잡고 있다. 할아버지를 통해 내게 주시는 하늘의 소리라 믿는다. 그 두 말씀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앞으로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결국 그는 할아버지 함석헌이 손자인 그에게 한 말, '저 애는 부활했다'와 '현필이 너 뭘 할래?'에 사로잡혀 지난 6년간 혼자 힘으로 <함석헌문집>을 만들기 위해 온몸으로 씨름한 것이다.

함석헌 주변에는 기라성 같은 교수, 박사, 변호사 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감히 내로라하는 학자들도 하지 못했던 <함석헌문집> 42권을 아이러니 하게도 자영업자 생활인인 그가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그가 보내 준 자료를 읽어 봤다. 각고의 정성을 곳곳에 느낄수 있었다. 그는 지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에 잠시 돌아와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다음은 지난해 12월 29일부터 정 선생과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할아버지의 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정현필 선생이 펴낸 <함석헌문집> 전자책 중 일부ⓒ 정현필

- 전자책을 만드는 데 무려 6년이 걸렸다. 처음에 이 책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동기가 무엇인가.
"지난 1986년 캐나다로 이민와 자영업을 하다 1999년부터 캐나다에서 함 선생님에 대한 웹사이트를 운영했다. 이일이 인연이 돼 지난 2007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문영(1927~2014) 이사장의 부름으로 그해 서울로 나가 함석헌기념사업회 사무국장으로 일을 하게 됐다. 그때 서울을 나갈 때는 기념관 (건립)을 생각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면서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지난 2009년 한길사에서 <함석헌저작집> 30권을 출판했다. 그러나 출판 과정에서 함 선생님의 글이 원문과 다른 오류가 있음을 알게 돼 판매를 중지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때부터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 함 선생님의 전집을 새로 출판해야 한다는 뜻이 모아졌다.

그동안 자료실을 만들어 관련 자료들을 다양하게 모아 놓은 것과 각 도서관과 중고책방을 뒤져 함 선생님의 글을 찾았다. 또 자료 중에 있는 녹음테이프를 녹취해 출판을 위한 기본 자료들을 갖추기 시작했다.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할 때는 함 선생님 기념관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자료를 모으던 중, 한길사에서 출판된 저작집이 잘못되는 것을 보면서 그때 생각을 고쳤다.

유품이나 전시하는 기념관보다는 함 선생님의 정신이 지켜지고 살아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생전에 남기신 글이 온전히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집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이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이사장이 다른 분으로 바뀌면서 사무국장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자료실에 모아진 함 선생님의 글과 녹음자료 등을 컴퓨터 파일로 준비하여 지난 2012년 캐나다로 돌아와 개인적으로 전집 작업을 계속했다. 지난 2016년에 전집출판을 위해 작업된 것을 가지고 한국을 방문해 함석헌기념사업회에 전집출판을 해야 한다는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기념사업회 사정으로 이 일이 진행 못됐고 나는 다시 캐나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와서 계속해 전집 출판을 위해 편집을 했고, 지난해 12월 전자책 42권을 완성했다. 책을 한 권씩 만들어서 내가 운영하고 있는 바보새함석헌(ssialsori.net) 웹사이트에 공개해 함석헌 선생을 연구하는 분들에게 부분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을 생활로 가르치신 분"


80년 대 함석헌ⓒ 정현필

- 어려서부터 보아온 외할아버지 함석헌은 어떤 분이었나? 특별히 생각나는 에피소드 몇 가지를 소개하면?
"손주들에게는 남들과 같은 할아버지는 아니었다.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이었다. 항상 주위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았고 그래서 우리 손주들은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멀리 떨어져 계신 분으로만 알고 있었다. 화를 내거나 손주들에게 혼을 내는 일은 없었다. 화를 낸다는 것은, 글 쓰실 때 아이들이 떠들면 조용히 하라는 정도였다. 언젠가 미국에 사는 누님과 대화 중에 '우리는 할아버지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없으나 할아버지는 그분의 삶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다'는 말을 하면서 한 예를 들었다.

교회의 여러 어른들과 어떤 자리에서 지난 50~60년대 옛날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남녀평등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할아버지네 집에서는 찾아온 손님이나, 아이들이나, 여자나, 일하는 가정부 아주머니나 모두 한 밥상에 할아버지와 함께 둘러앉아 같이 식사를 했다'고 했는데, 그 말에 놀라는 분들이 있었다고.

그때까지도 어른과 아이들은 구별되고, 남자와 여자, 주인과 일하는 분들은 같은 밥상을 쓰지 않았다고 하면서 놀랍다고 했다 한다. 그때 누님 말은, 우리는 그런 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라왔는데 그런 것이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겨주신 큰 선물이라고 했는데 그런 점에서는 나 또한 같은 마음이다. 그때는 멋모르고 자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삶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셨다. 할아버지는 자유와 평등을 생활로 가르치신 것 같다."

- 이 책을 만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다만 아쉬운 것은 평소 함 선생님이 우리말 쓰기 운동을 많이 하셨으니 제목을 우리말로 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한문을 잘 모른다. 굳이 한문을 쓸 경우 우리말 뒤에 괄호로 표기하면 젊은이들이 더욱 쉽게 함 선생님 글에 접근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집의 제목을 만들 때 고민을 했다. 우선 1980년대 <함석헌전집>과 2009년 <함석헌저작집>과는 구별돼야 했기 때문이다. '信天翁咸錫憲文集'이라 했는데 특별이 한자를 쓴 것은 별 뜻이 없다. 전집, 저작집이란 말을 다시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문집(文集)이라 했다. 함 선생님의 호가 신천(信天)이어서 신천을 넣자고 하다 보니 한자표기가 됐다.

그러나 책 내용은 한자를 모르는 젊은이들을 위해 한글로 표기를 했고 한자를 표기해야 하는 경우는 괄호를 사용했다. 함 선생님의 글은 1930~1950년대에는 한자 표기가 많은데, 그 이후는 동양고전이 아닌 경우는 모두 한글을 쓰셨다."

"다양한 할아버지의 글을 발로 뛰면서 새로 찾아냈다"


정현필 선생이 운영하는 ssialsori.net 웹페이지. 이곳에서 <함석헌문집>을 볼 수 있다. ⓒ 정현필

- 이번의 <함석헌문집>과 기존의 <함석헌전집>, <함석헌저작집>과의 가장 주목할 만한 차이점은 무엇인가? 또 전집과 저작집에도 포함되지 않은, 미처 수록되지 못한 글이 이번 문집에 상당수가 있다고 했는데 그러한 글은 주로 어떠한 글인지? 또 왜 그런 함석헌의 글이 기존의 전집과 저작집에는 수록되지 못한 것인가.
"<함석헌문집>은 평균 350쪽 분량의 책 42권으로 되어 있다. 양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기존 전집이나 저작집에 수록이 되지 않은 글이 상당량이 있다. 기존의 전집이나 저작집엔 초기 함 선생님이 <성서조선>에 발표하신 글 중에 몇 개가 빠져 있고, 김교신 선생님의 글을 함 선생님 글이라 해서 전집과 저작집에 수록하는 실수를 하고 있다.

또한 옛글자인 깉다('남다'라는 뜻)를 잘못 표기하는 경우가 여러 곳에 나온다. 논리(論理)를 윤리(倫理)로 잘못 표기하는 편집에 실수가 여러 곳에 있고, 1970년대 <씨알의 소리>에 발표한 글은 당시 정권에 의해 삭제된 부분을 살리지 않고 그대로 낸 경우도 있다. 새로 찾은 시, 새로 찾은 좌담, 특히 1963년 7월 <사상계> 주최 귀국강연회 원문은 어디에서도 없었는데 녹음강연을 구해 녹취 후 이번 문집에 수록했다.

그 외에 외국 방문 중 현지에서 강연하신 녹음을 구해 녹취 후 수록했고, 신문이나 잡지에 투고하셨던 글도 새로 찾아 수록했고, 중앙신학에서 요한복음 강의하신 내용도 녹취해 3권 분량으로 수록했다. 또 출판사가 자의로 고쳐 편집한 내용을 가능하면 발표하셨던 초고대로 복원해 원문을 훼손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편집했다.

함 선생님과 서신을 나누신 분들이 편지를 기증해 많은 양의 편지가 이번 문집에 수록돼 기존의 한 권에서 두 권으로 편집했다. 또한 한국에 있을 당시 국회도서관, 국립도서관, 대학도서관등 주요 도서관을 검색해 다양한 함 선생님의 글을 발로 뛰면서 새로 찾아냈다. 아직도 미처 찾아내지 못한 함 선생님의 글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함석헌은 어느 한 단체의 함석헌이 아니다"


정현필 선생, 부인과 함께ⓒ 정현필

- 이 전자책을 종이책으로도 출판하면 독자들을 위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전자책을 종이책으로도 출판할 계획은 없는지?
"이 전자책을 만든 이유는 최종적으로 종이책을 출판하기 위해서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함석헌 선생님은 어느 한 단체의 함선생님이 아니다. 이제는 흩어져 있는 단체들이 뜻을 모아 총력을 들여서 이 전집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일을 몇 년간 해온 목적은 이 자료가 기초가 돼 전집 출판에 밑거름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편집 작업을 해오면서 느낀 점은 지난 2009년 한길사에서 출판된 저작집의 오류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함 선생님의 글이 지켜지고 후세에 전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출판될 모든 함석헌 선생의 글에 '표준 기준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연구하는 학자들이 편집위원회를 구성해 책을 출판할 때에 따라야 하는 여러 기준을 세우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 세우고 변질되지 않게 잘 지켜내는 기준서를 준비하여 이에 따라 전집이 출판돼야 한다. 이 일을 위해 내가 만든 '전자책'과 '연대별 목록', '전집-저작집-문집 비교목록' '함 선생님 고유 어휘사전'등이 이 기준서를 만드는 기초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원해 2019년 2월에 전집 출판을 목적으로 한국 방문을 계획 중이다. 지금 현재는 어떻게 일을 진행할지 아무 계획도 없고 이에 따르는 재정도 전혀 없다. 함께 일을 할 동지도 없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부딪쳐 보고자 한다."

-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는 지난 2010년부터 함석헌전집을 다시 출판해야 한다는 뜻을 세웠으나 지금까지 전혀 진행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참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나를 포함 그 누구도 함석헌 선생님의 모든 것을, 전체를 완전하게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고 생각한다. 이제 선생님을 따르는 모든 분들이 그런 점을 인정하고 자기만이 진정한 제자라는 오류에서 벗어나 힘과 뜻을 합쳐서 그분이 말씀하신 씨알을 말로만 하지 말고 삶으로 살아내기를 희망한다. 사심(私心)을 버리시기를 바란다."

- 지난 6년간 타향에서 혼자 힘으로 이 문집 만들기 작업을 하면서 심한 어려움과 고초가 많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힘든 작업을 하면서 느낀 애로사항과 가장 힘들었던 경험을 몇 가지 소개하면?
"왜 이 전집 출판을 해야 하는지, 왜 중요한지를 이해 못하는 것, 함 선생님을 따르는 제자라고 자칭 말하는 분들이 자료를 소중하다고 꼭 지키고만 있지 그것을 통해 다른 무엇으로 활용할 생각을 못하는 것, 장자 노자 테이프를 녹취해 글로 출판해야 하는데 '형산에 박옥'이라 하며 쳐다만 보고 있는 것 등이 마음 아팠다."

"우리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갈 길을 밝혀 보여준 함석헌의 사상"


생전의 함석헌ⓒ 정현필

- 한국에는 지금 함석헌기념사업회,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연구소, 씨알사상연구원, 씨알재단 등이 있고 미국에는 함석헌사상연구회 등이 있다. 이런 단체들이 향후 <함석헌문집> 종이책 발간을 위해 지원할 길이 있다면?
"이 일을 하면서 캐나다에 있기 때문에 직접 자료를 찾지 못하는 아쉬움이 너무 많다. 지금이라도 함 선생님과 관련 단체에서 이 점을 고려해서 글을 찾는 일에 적극적으로 시간과 재정을 투자한다면 더 많은 글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서신과 녹음테이프를 대대적으로 홍보해 기증 받으면 더 많은 자료가 나올 것이다.

함석헌기념사업회에 조의영, 조형균 두 분이 기증해 보관하고 있는 노자 장자 테이프는 하루빨리 녹취작업을 해 책으로 출판해야 한다. 함 선생님의 후기사상을 연구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돼야 한다. 함 선생님 관련 여러 단체에서 행하는 어느 행사보다도 이 전집을-노자 장자를 포함-출판해 그분 사상이 온전히 후세에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 선생님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 하셨을 때 그 '뜻'을 제대로만 이해하고 실천 한다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 '뜻'만 모아지면 무슨 일이든 다 이룰 수 있다. '뜻'을 팔 생각은 그만하고 이제는 '뜻'을 세울 때다."

- 21세기 오늘을 사는 젊은 세대가 왜 20세기를 살다간 함석헌의 삶과 사상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삼사십 년 많게는 오십 년 전에 쓰신 글을 읽다보면 현세대를 놓고 하시는 말씀이란 생각을 많이 했다. 옛날 인류의 조상들이 남긴 고전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갈 길을 밝혀 보여주시는 함석헌의 사상이 가깝게는 남북의 갈등문제, 평화통일, 더 나아서는 인류의 평화에 대해 분명 우리 젊은이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함선생님이 말씀하신 '우로 돌아 앞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그분의 글을 통해 우리가 역사 속에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 '우로 돌아 앞으로!'는 함석헌의 표현으로 "떨어졌던 자가, 행렬에 '우로 돌아 앞으로'의 명령이 내릴 때는 앞장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뜻. 성경에 나오는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와 상통하는 의미라 할 수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ss_pg.aspx?CNTN_CD=A0002500344&PAGE_CD&CMPT_CD&fbclid=IwAR2tBDtLNxSAutU0L-yznaRRNuaR8QNNq5juKTa5ENWmKEJxd6nRg3EYfCM

2019/10/04

다석 류영모의 생명사상

다석 류영모의 생명사상
윤동주


들어가는 말

반생명적인 인명경시(人命輕視)와 환경파괴(環境破壞)등이 우리 사회 안에 만연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고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석 류영모의 생명사상을 통해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유지 본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나를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1. 류영모의 생명1)체험

류영모의 일생은 전도자로 말씀 사룸이 그의 생명이다. 류영모는 하느님께 뚫린 마음과 사람에게 깊은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그의 속알은 정직이요, 그의 말씀은 진실이다. 그는 '구삼(九三)'2)을 자기의 운명으로 생각했고 생명으로 알고 열심히 살았다.

선생은 67세에 세상을 떠나기로 생각하고 그가 아끼던 김교신이 죽은 다음해 4월25일 다음날을 자기의 죽는날로 정했다. 그 이후 선생은 더욱 정직하고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 다석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다석일지 속에는 시조형식, 한시형식으로 3000수가 있고, 자신의 깊은 생각과 높은 뜻을 한글로 풀이했기 때문에 그 모습이 사뭇 독특하다.3)

류영모의 생명체험은 그의 독특한 언어 표현에서 알 수 있다.

선생은 52세 되던 1월 4일 김교신의 <성서조선>에 "부르신지 38년만에 믿음에 드러감"이란 글을 내었다.

이것을 생명의 첫번 경험으로 계소리라고 했다.

그 후 14년간 '가온소리'가 계속되고 66세가 되는 때에 '제소리'가 시작되었다. '계소리'는 선생의 우주관이요, '가온소리'는 선생의 세계관이요, '제소리'는 선생의 인생관이다.

'계소리'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요,

'가온소리'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요,

'제소리'는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라고 할 수 있다.



천명지위성은 무극이태극이고,

솔성지위도란 일음일양지위도이며 바로 이것이 수도지위교다.

'태초부터 함께 계심'이 계소리요,

'올끈이로 생각이오니'가 가온소리요,

'온끝까지 말씀사름'이 제소리다.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도에 통하여 생명을 나타낼 수 있다.

한글로는 ㅁ, ㅂ, ㅍ. 이다.

땅에서 물이 올라오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동화작용을 일으켜 풀이 된다. 사람은 하늘과 땅이 합쳐진 생명의 仁이다. 진리와 도가 통하여 생명이 된다.

류영모는 올끈이4)라고 해서 일일 일식을 시작했다.
일식(一食)과 명상(一坐)은 류영모 선생이 죽기까지 실천한 것이다.
인심을 줄이는 것이 일식이요 도심을 늘리는 것이 명상이다.

인심과 도심의 모순을 통일 하는 것이
유정유일 윤집궐중 즉 자중정(自中正)이다.
이것이 가온소리이다.

가온소리는 십자가의 도로서 매일 실천하는 계율(戒律)이다.
그러나 계율이라고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해야 한다.

일식 일좌 역시 무위자연으로 해야 함을 선생은 말하고 있다.
이것들을 간단히 요약하면 '가온찌기 그저 제게로부터'5)이다

또한 선생님에 의하면 요한복음 17장 3절의 하느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셨다.

하느님을 '계소리', 그리스도를 '가온소리', 계소리와 가온소리 후에 저절로 나오는 것이 '제소리'다.

이렇듯 말씀이 생명이기에 말씀을 안먹을 수 없다.
먹는 문제는 절대지만 남녀문제는 상대요,
생각하는 것은 절대지만 가르치는 것은 상대다.
절대없이 상대 없고 상대 없이 절대 없다.
그래서 류선생님은 52세에 해혼(解婚)식을 하셨다.

선생님은 맹자의 사상(四象) "일음일양(一陰一陽), 춘하추동(春夏秋冬), 천지수화(天地水火), 인의예지(仁義禮智)"에서 성(性)이라 할 수 있는 인의예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은 바탈(性)은 감성(感性), 오성(悟性). 이성(理性), 영성(靈性)이다 이것을 현대적 언어로 하면 예술, 과학, 철학,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류영모 선생은 이것을 '환빛', '펴참', '얼뜻', '숨김'이라고 하였다. 선생님은 이에따라 인(仁)의 삶을 '치키티피히'6)라고하셨다. 선생은 인간의 바탈을 꼬끼리7)로 비유하여 설명하시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숨김8)을 강조하셨는데 숨김(기체생명으로서 보는 생명)은 숨은 생명 김은 영원하여 영원한 생명도 되고, 숨은 은밀 김은 은밀히 숨어 계시는 없이계시는 님도 된다. 또한 숨김을 독수리9)에 비유하여 설명하시기도 한다.

독수리의 몸은 뼈에 바람이 들어가 허공과 하나되어 며칠이라도 떠 있을 수 있는 것을 선생은 빈탕10)과 하나가 되어서 노닐게 된다고 보았다.


2. 생명의 의미

류영모 선생은 생명을 無常生 非常命 生必無常이요, 命是非常이다. 라고 하셨다. 언제나 삶이 덧없어도 목숨 같이만 이라고 하셨다.

목숨은 지성불식(至誠不息)이다.
자면서도 숨을 쉬고 깨면서도 숨을 쉰다.
마찬가지로 말숨은 살아서도 말숨 쉬고 죽어서도 말숨 쉰다.
이 말숨은 생사를 초월하고 유·무의식도 또한 초월한다.

그런데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겠다고 몸부림치면서

살다 죽는 것은 멸망이지 생명이 아니라고 한다.

사람은 백년을 산다고 해도 3만6천일 숨은 9억번을 쉬고 끝이난다. 사람이 숨을 잘쉬는 것 호흡을 잘 하는 것이 생명이다.

이 호흡은 마치 문처럼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으로 문은 잘 맞고 돌쩌귀는 잘 돌아야 한다. 여기서 잘 돌아야 하는 것을 중(中)이라 했고, 잘 맞는 것을 정(正)이라 했다.

이런 생명있는 사람은 나고 죽어가며 문화로 꽃피우고 있다.



류영모는 중정(中正)을 팽이에 비유한다.

중심을 잘 잡아 돌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쓰러져 무너지고 만다.

언제까지나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상처중(知常處中)하기 위해서는 채찍을 쳐서 돌려야 한다. 하느님의 채찍이 바로 도(道)라고 하며, 자신이 스스로 바로잡는 것은 수신(修身)이며, 자치(自治)이고, 자유(自由)이다.



하느님을 알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지상처중(知常處中)이다. 지상처중은 주인이요 언제나 세상을 이기면 그곳이 천국이다.

생명은 자기를 알고 자기를 이기는 것이 인간생명이다.

또한 생명은 지혜와 사랑과 정직과 진실이다.

생명은 무비(無非)이다. 무는 하늘처럼 큰 것이요, 비는 땅처럼 강한 것이다. 무는 사랑이요, 비는 지혜이다. 정직은 의(義)요, 진실은 인(仁)이다. 여기서 진실은 생(生)이요, 정직은 사(死)이다.



류영모선생의 생명(生命)이란 한시가 있어 소개한다.



생명(生命)



天命是性命 천명은 내 속에 들어와 성명이 되고
革命反正命 혁명은 언제나 정명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요
知命自立命 지명은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고
使命必復命 사명은 하느님께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에서 와서 땅을 이기고 정신을 일깨워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생명이다.11)


3. 생명의 내용

류영모 선생은 숨을 우선 목숨과 말숨으로 나눈다.

그러나 목숨과 말숨에는 얼숨12)이 더해진다.

목숨은 기(氣)가 통하고, 말숨은 이(理)가 통하고, 얼숨은 신(神)이 통한다. 인간의 목적은 이 세상을 떠나서 하늘나라로 가는 것인데 하루가 끝나면 잠자는 숨이요, 인생이 끝나면 d안식의 숨이며, 세상이 끝나면 믿음의 숨이다. 이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내가 바라는 숨은 영원한 나라의 영원한 숨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선생은 매일같이 냉수마찰과 심호흡을 하고 맨손체조와 몸 전체를 마찰한다.

이것을 통해서 선생은 호연지기(浩然之氣)가 꽉 차있는 지강지대(至剛至大)의 기체가 되어야 언제나 쉬지 않고 생각의 숨을 쉴 수가 있다고 하셨다. 즉 육체를 강하게 하는 목숨이 건강해야 생각의 숨인 이치의 숨이 말숨을 깨치게 할 것이다.



말숨은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말씀이다.

그리고 말숨을 통해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성령의 역사다.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쉬지 않고 생각해야

성(誠)에 도달 할 수 있다.

성에 도달하여 깨어나면 그 때부터 얼숨을 쉬게 된다.

얼숨을 도(道)라고 하고 신통(神通)이라고 하고

일이관지(一以貫之)라고 하고 일음일양이라고 한다.



류선생님이 삶으로 보여주신 것이 바로 '일식, 일언, 일좌, 일인'이었다. 이것이 얼숨의 삶이었으며, 얼숨을 통해서 하루살이를 살았다.

어제도 아닌 내일도 아닌 오늘 하루를 살았다.



하루살이 인생은 죽음으로부터다 라고 하셨다.

인생이 진짜로 깨어나는 것은 죽음뿐이다.

죽음은 '주구음', 주(主)님과 그리스도를 움켜잡는 일이다.

죽음의 과정을 숫자로 표현하였다. "10, 20, 30, 40, 50, 60, 70", "열려 슴을 설어 마라 쉬여 이여 쉬여 이루리라"라고 말하셨다.



그러므로 하늘 숨을 쉬고 천명의 숨을 쉬는 한말씀이 숨김이요 영원한 생명이다.



4. 생명의 보기

류영모 선생은 한글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24자만 쓰고있는 지금의 한글을 28자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글은 변증법적 발전으로 된 글자로 'ㅁ ㅂ ㅍ' '물, 불, 풀', 'ㅅ ㅈ ㅊ' '삶, 잠, 참'에 지금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   ㅎ ㅎ'등을 다시 변증법적 구조에 맞추어 넣어야 한다고 한다.한글의 근본은 'ㅡ, ㅣ, •'로 'ㅡ'는 세상 'ㅣ'는 세상을 꿰뚫고 곧장 올라가는 정직 고디 신(神), '?'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평등과 독립과 박애의 상징으로 본다.

그리고 우리의 자음(子音)을 하느님의 한나신 아들 독생자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보혈의 꽃피를 흘리는 구원의 메시지로 보았다.



기니 그리스도께서
디리미 십자가 위에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것
비시이지 보이지 않느냐
치 인류를 치켜올리고
티 인류의 좁은 속을 티워 깨치고
피 진리의 꽃 보혈의 꽃을 피우고
히 무한한 하늘나라에까지 끌어 올린다.

모음(母音)으로는 우주의 어머니이신 한우님이 인류를 부르는 소리라 하였다.

ㅏ ㅑ 아해드아
ㅓ ㅕ 어서
ㅗ ㅛ 와요
ㅜ ㅠ 우흐로
ㅡ ㅣ 세상을 꿰뚫고 곧이 곧장
• 아버지께로 오라

이와같은 하느님 아버지 마음을 그린 모음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자음과 모음을 아는 것은

하느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계소리와 제소리로 합쳐진 한글은 그대로 바른 소리(正音)이요

가온소리(中音)이다. 중정(中正)이 생명의 핵심이요 한글은 생명의 글이라는 것이다.



선생은 또한 한글 속에 인류를 구원하는 복음이 있다고 생각했다.13) 그래서 한민족의 사명은 한글을 세계화 하는 일이다.

한글 속에 숨어있는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거룩한 빛을 찾아내어 인류를 살리는 것이 우리에게 부과된 사명이며, 우리 한글의 구조 속에 인류를 살릴 수 있는 빛과 힘이 있기에 우리의 한글은 산 글이요 영원한 말씀이며 영원한 생명이다. 말씀은 존재의 집이다. 한글은 존재의 집이요 진리의 빛이다.



나가는 말

이상으로 다석 류영모의 생명사상을 살펴보았다. 선생의 큰 뜻을 우리가 헤아려 알기는 너무나도 부족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우리의 가슴에 다가오는 그의 생명에 대한 생각들은 너무나도 각인이 되어 그의 생각을 좇아갈 수 밖에 없다. 하느님을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것이고 영원한 생명은 포괄적인 숨쉼이며, 숨쉼을 잘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 것을 알았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생명사상을 우리의 한글과 연과지어 생각했던 선생의 사상은 너무나도 놀랍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난해한 그의 글들을 이해하기란 역시 버거웠다. 하지만 그의 제자들을 통해 어느정도 이해 가능한 글들로 나온 것이 천만 다행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생명이든지 그 생명에 대한 존중과 보존을 해야할 의무와 책임을 가진 생명체인 것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의 뜻을 안 선생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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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성서에서 생명(生命, vita)에 해당하는 개념은 히브리어 '하임( )'과 그리스어 '조에( )'이다. 구약의 하임은 다양하게 작용하는 생명력의 정수로서 신체적이고 기관적 생명을 뜻한다. 신약성서의 조에는 본래 동물과 인간, 그리고 식물등 유기체의 신체적 생동성을 뜻한다.심상태, {생명연구(물리적 환경과 생명에 대한 신학적 고찰)}, (생명문화총서2집), 생명문화연구소, 1994, p.19.
그렇지만 생명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위해서는 각주12번의 것과 같이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2) 구삼이란 {주역}, 건괘, 93의 종일건건(終日乾乾)이다.
구삼에 말하기를 군자는 종일 일하고 저녁에는 잔다.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배우고 가르치는 것인데 배우는 것은 자기를 바로잡자는 것이고 가르친다는 것은 하늘나라를 이루자는 것이다. 가르칠 때는 고만하지 말고 배울 때는 욕심 내지 말라. 배우고 가르치고 때가 오면 쉬고 자면 아무 문제가 없다. 배운다는 것은 생각을 바로잡자는 것이고, 가르친다는 것은 말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나를 바로잡아도 남을 바로 못 잡으면 아무 쓸데가 없다. 배우는 것은 나를 바로잡는 것이요 가르치는 것은 남을 바로잡는 것이다. 종일 바쁘고 저녁에는 쉰다. 가르칠 때 교만하지 말고 배울 때 욕심내지 말고 성인을 닮아 가고 하느님 나라를 세워간다. 이것이 구삼 군자 종일 건건이라는 것이다.
김흥호, {다석일지공부4}, (김흥호전집 류영모 명상록 풀이), 2001. pp.377-378

3) ㅡ l ?   ? l o

    예?예?예, 예: 옛! 가 까 와 가 까 오 니!    
    예: 옛 날! 계: 갓 날! 내 온 날! 제 온 날!    
    계 바 로 졔 계 를 가 온 인 가 ?? 노 라.
으이아 가온 아이으 으는 세상, 이는 세상을 뚫고 솟아나와, 아는 아버지께 간다. 아버지께 가서 아버지 품 가운데 안기면 아이, 내가 한없이 평안하고 만족스럽다. 가오가온, 가고가라, 예예예, 여기를 예어 나가 예옛, 예를 정말 빠져나가라. 그러면 하늘나라에 가까워, 가깝게 오니 그곳이 가온이요 하느님 마음속이다. 가고 가고 가서 예, 옛날 여기를 예어 빠져나간 순간이 하느님 아버지 계 갓날이요, 내가 온전해진 날이요 제가 올라간 날이다. 가온가온, 가고 가라. 아바계가 바로 계계다. 아버지 계신 데가 아들 있는 데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이 가온인가 하노라.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 가온이요 중(中)이다.
김흥호, {다석일지공부5}, (김흥호전집 류영모 명상록 풀이), 2001. pp.421-422.

4) 이끗

이끗이 이끗이 나는 영원한 생명인 이의 영원한 생명의 한끝이다.
올 끈이로 올(理) 끈(斷) 이(續)로 이치를 생각하고 단행하고
온 끝에까지 온세께의 끝까지
말씀 사르므로 말씀을 전함으로 사명을 삼으니,
생각이오니 생각하는 나는
맨 첨부터 태초부터 나는
함께 계심 하느님과 함께 계시는 나라.
몬있은 끗으로 物存在中心 물질세계는 공간적이요 가운데 중심이 있고
숨있는 홓끗으로 命存在上元 정신세계는 시간적이요 처음에 중심이 있다. 처음이 꼭대기인가 한다.
말씀도 영원하고 생각도 영원하고 하느님도 영원하고 나도 영원하다.

5) 가온찌기

(講) 心線路
接境이오 一線이다.
前進이 一路다.
直上 一點心

 찌기 가온찌기는 진리의 자각이다.
잇다감 생각 모든 생각이 다 가고 있다.
그저 도(道)
나 므름 업시 물음 없이
제게로브터 도(道)로 부터
김흥호, {다석일지공부1}, (김흥호전집 류영모 명상록 풀이), 2001. p.174.

6) '치키티피히'란 치고 키우고 티우고 피우고 문한해져서 빈탕한데를 체우는 것으로 즉 가르치는 것이다.

7) 코기리

사람이란 코끼리 보내실제
새끼코기리 세 마리 딸리윗스니
1. 머리통 코기리는
참을 차져 오는 이를 태워 가지고 오라시고
2. 염통 코기리는
잘을 차져 오는 이를 태워가지고 오라시고
3. 눈코배기 코기리는
아름다움을 차져 오는 이를 태워가지고 오라시고
그럼 어미 코끼리는 뭘 실고 오라신가
숨기리 살길 차자 오는 이를 태워 오라셧지
그러믄 우리들을 다 다려 간다는 말슴인가
  참 잘 살 아름답게 기리길 길로 말슴
사람의 본체는 무엇일까.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람의 코기리(꼬끼리, 象)는 무엇일까. 사람은 큰 꼬기리와 세 마리의 작은 코기리로 구성되어 있다. 머리는 진리, 염통은 도덕, 눈 코는 예술, 그리고 어미는 영원한 생명 종교다.
김흥호, {다석일지공부 1}, (김흥호전집 류영모 명상록풀이), 2001. pp.404-405.

8) "숨ㅅ김을 받고 얼뜻을 맡고  은 사람아 제 바탈을 바로 타고  다면 환빛을  에서만 보며 펴참을 바람에서나 보고 잇스랴." "하늘은 너의 가멸! 한우님은 우리 아 지! 한늘을 희어 펴서 얼뜻을 채려 듦이 참 아닐랴. 참 챔으로 참을 볼 것 아니랴. 누리를 거짓이라 말나, 네가 참을 찾지 안는 것이 누리를 거짓되게  뿐이니라." 가슴에 숨김을 받고 사람은 배에 얼뜻을 맡고 가는 것이 사람이다. 숨김이라는 생명과 얼뜻이라는 사명을 가온찍이 합일한 것이 사람이다. 생명사명의 합일이 천명이다. 천명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자기의 본성, 지성,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이성을 바로 타고 머리로 깊이 생각하며 간다면 천명과 성이 하나가 될 수 있다. 태양과 씨알이 하나가 되듯 바탈이 터서 나무가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생명의 잎과 바탈의 꽃과 얼뜻의 열매를 열리게 할 수 있다. 싹이 터서 가온찍이 나무가 된다면 환빛을 해에서만 받고 펴참을 바람에서만 받겠느냐. 환빛을 해에서 받고 꽃을 피우고 펴참을 바람에서 받고 잎을 무성하게 하겠느냐. 이하 줄임
김흥호, {다석일지공부 1}, (김흥호전집 류영모 명상록풀이), 2001. pp.404-405.

9) 독수리는 무서운 눈빛으로 전체를 뚫고 감시하면서 땅을 기는 토끼나 거북이도 놓치지 않는다. 이것이 독수리의 눈이다. 독수리의 발은 아무리 험한 기암괴석도 움켜잡으념 놓치지 않는다. 날개는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다. 그리고 독수리의 몸은 뼈 속에 바람이 들어 허공과 하나가 되어 며칠이라도 떠 있으 수가 잇다. 몸은 성(性), 눈은 진(眞), 발은 선(善), 날개는 미(美)다. 진은 때어남이요, 선은 일어섬이고, 미는 날아감이다. 통일과 독립과 자유를 영체의 작용으로 본 것이다.

10) "빈탕(空) 한 (與) 맞혀(享) 노리(富)"
날 수 없는 불닫힌 몸둥이 매달린 나 얼이 묻언 꿈틀더니
맑혀 말 마음만큼 맞난 내 날라 나 비롯 븬탕 계에 한  졔를 보알다.
븬탕 마음 한 나 뵈압 옿로 올나 내 깃븐
此身享終臥, 將予享遙遊
身 世, 予 享
이름 누리, 올나 노리

11) 김흥호, {다석일지공부4}, (김흥호전집 류영모 명상록풀이), 2001. p.161.

12) 얼숨은 성령으로 말할 수 있다. 성령은 구약성서의 루하( )란 단어로 희랍어로는 프뉴마( ) 라틴어로(spiritus) 게르만어로(Geist)로 표현된다. 그러나 희랍어나 라틴어나 영어나 독일어가 말하는 영은 물질과 영이 대립하는 비물질적인 것으로 나타낸다. 하지만 히브리어의 루하( )는 그 의미가 너무도 다양하지만 인간과 동물 속에 있는 생영의 숨과 생명의 힘을 뜻한다. 또한 '하느님의 현존의 사건'으로 몰트만은 이해한다.
J. 몰트만, {생명의 영}, 김균진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92. pp.62-64. 참조

13) 께케 깨캐

깨오 캐오 께올케 올나갈이들 들을 말슴
이제 저마닥 나갈 말슴 밖에야 뭘 찾으리
한웋님 우리 머리웋 께케깨캐 깰이 웋
아 어 오 우
ㅏ ㅓ ㅗ ㅜ ㅡ ㅣ ? 우리   나갈 말슴
께케깨캐 우리  한웋님께 올케 나감
깨여서 캐여나가만 맛맞맟임 잇 리
ㄱ은 하늘을 그리워한다는 뜻. 께는 하느님께, 올케는 올바로, 깨 깨여서, 캐 진리를 캐내여, 깰이 위 위로 깨어나는 것이 올라가는 길이다. ㄱ이 ㅋ이 되고, 깨가 캐가되고, 그것만 알아도 ㄱ 한 자만 알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
김흥호, {다석일지공부2}, (김흥호전집 류영모 명상록풀이), 2001. pp.25-26.

命 목숨 명


命목숨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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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한자사전 e-한자

1. 목숨, 생명(), 수명()
2. 운수(), 운()
3. 표적(), 목표물()
4. 명령(), 분부()
5. 성질(), 천성()
6. 말, 언약()
7. 규정(), 규칙()
8. 가르침
9. 작위(), 작위()의 사령서나 그 신표(: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서로 주고받는 물건)
10. 하늘의 뜻, 천명()
11. 도(), 자연()의 이법()
12. 호적()
13. 명령하다(--)
14. 가르치다, 알리다
15. 이름짓다, 이름을 붙이다
----------------
단어 뜻풀이
①목숨  ②운명()


제공처: ㈜오픈마인드

회의문자

입구(☞입, 먹다, 말하다)(령)의 합자(). 입(☞)으로 뜻을 전한다는 뜻으로, 곧 임금이 명령을 내려 백성을 부린다는 뜻으로 쓰임.

자원(字源)

회의문자


命자는 ‘목숨’이나 ‘명령’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命자는 亼(삼합 집)자와 口(입 구)자, 卩(병부 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亼자는 지붕을 그린 것으로 여기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을 그린 卩자가 더해진 命자는 대궐에 앉아 명령을 내리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상관이 내리는 명령은 반드시 목숨을 걸고 완수해야 한다. 그래서 命자는 ‘명령’이라는 뜻 외에도 ‘목숨’이나 ‘생명’이라는 뜻이 파생되어 있다.

いのちを考える三つの視点


一隅を照らす運動とは
実践3つの柱と一隅を照らす日


いのちを考える三つの視点
1.生命 いのちを考える三つの視点
1.限りあるいの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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誰もが大切であると認める生命。大切なものならずっとそのままでいてくれたらいいのにと思いますが、必ずいつかは消える仕組みになっています。生命は、はかなく、いずれ必ず消えてしまう、寿命や他の原因で死んでしまう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仏教では諸行無常といいます。

さて、今日の食事は何でしたか。ご飯、パン、お肉、魚、野菜…。中には精進料理やベジタリアンという方もいるかもしれませんが、野菜や植物も生命があり、その生命をそれぞれの一隅で立派に生きていたに違いありません。

厳しい見方をすれば、いくら人間が共生と声を上げて主張しても、生命を大切にと訴えても、私たちは他の生命を奪わずには生きていけないのも明白な事実です。またこのことは大自然の営みにおいて、生きもの同士の連鎖があるように、他のどんな生きものも同様です。

一方、他の生命を奪うという点に関しては、結局は人間の身勝手であり、エゴです。そもそも常日頃からどんな生きものの生命も、できるだけ失わないように努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うは言っても、例えば腕にとまった蚊をたたかなければかゆくなってしまいます。食事を取らないと飢え死にしてしまいます。また樹木を伐採して家を建てたり、家具を調製したり、緑の山野にブルドーザーを入れて宅地開発を行ったりしていかなければ人間の住むところが足りません。人間が自然を犠牲にしなければ生きていけないという宿命と現実は心に留めるべき痛みと言えるでしょう。

だからこそ、いろいろな生命の恵みによって生かされている、そのおかげをいただいているという感謝の心を持ち、そのような人間らしい反省の中から、私たちは分相応ということを意識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そのためには、まずもって自分の生命の大切さを知らねばなりませんし、そうでないと同時に他の生命も尊重できないでしょう。

人生は一度きりで、自分の生命は自分に与えられた時間とも言えます。その一人ひとりの生命は誰でも等しく限りがあることは、当たり前のことです。限りある生命であるからこそ尊厳があり、自他の生命を大切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う考えますと、使命というように自分のため、人のため、社会のために何らかの命(めい)を与えられて生きていることを体し、今の自分の役割(一隅)において毎日を生き生きと暮らないともったいないと思え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2.リレーされるいのち


あるお家で赤ちゃんが誕生しました。「よく生まれてきたね。生まれてくれてありがとう」と、両親をはじめとする家族は赤ちゃんを迎え入れ、新しく家族が増えたお祝いをします。

生命の誕生という神秘と不思議に一喜一憂した経験をもつ方も多いと思います。その「生まれてくれてありがとう」という誕生を感謝祝福する気持ちやメッセージに始まり、親から子どもへ様々な言葉や形の愛情が注がれ、そうして子どもが「生きている」という自己確認ができ、親子の絆というものがその後の人生を心の奥底で支える基礎となることでしょう。

人はみな生から始まって死に至りますが、生を次代に委ねることによって生がつながっています。つまり、「リレーされるいのち」とは、人間として、種族として、家族として継承される生命ということです。家族でいいますと、祖父母、父母、子、孫というように続いているいのちです。

私たちが先祖や子孫のことを想い起こすことができるのは、せいぜい3世代くらいまででしょうが、私が今ここにいるということは、何はともあれ2人の父母がいたからです。その親がまた2人ずつで4人というふうに倍々に増えていきます。父母、祖父母、曾祖父母と世代をさかのぼればのぼるほど、ご先祖様の数はふくれあがっていきます。これを続けて計算していくと20代前には100万人を超え、とんでもない数字になります。実際はいろいろと複雑に絡み合っているのですが、こうして考えますと人類みな兄弟、ご先祖様はみな同じ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人間同士も、すべてのいのちも同じつながりがあるのです。ですから、いのちあるものはみな兄弟と意識できれば、人間同士が傷つけあったり、他の生命を粗末に扱ったりということもなくな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また、草花が生長することについて考えてみましょう。毎年春になるとタンポポが可憐な花を咲かせます。花から綿毛が飛ぶまでの営みをみると、自然の中に尊い生命が厳然と存在することに気づかされます。タンポポは花が終わると苞を一旦閉じ、種をつくり、その間に茎は種たちが風に乗って少しでも遠くへ行けるようにと生長します。やがて丸い綿毛ができると春風に乗って、一つずつ次の生に向かって飛び立ちます。死後に自分の生命の種を維持保存し、次代をつくりだそうとする不思議なサイクルで、いのちの種が継承され、営みが続けられるのです。

タンポポのような小さな草花もアリのような虫も私たち人間も、みな同じ生命の持ち主であり、その生命力は遠い先祖からはるか未来へリレーされていくいのちなのです。私たちは、あらゆる生命の誕生を喜ぶことはもちろん、人間のみならず、動物や植物の生命のつながりや重さをかみしめたいものです。
3.永遠のいのち


「人は死んだら終わりなのでしょうか?」いいえ、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心としてのいのち、魂としてのいのちは無限であり、永遠のいのちです。このいのちの無限のつながりあいは、人間同士だけのことではありません。仏教では一切衆生といいます。この場合の衆生とは生きとし生けるものすべてのことを指し、動物も植物も、みんな私たち人間と同じいのちが繋がっていると考えるのです。

人間は言葉を持ち、過去や未来を、また見えないものをイメージする能力(想像力)を持っていますし、物事に対して感情を持つことができます。人の心の中に生き続けるいのちがあります。

例えば、最愛の親を亡くした時、悲しみにあふれると同時に想い出がいっぱい残っていると思います。いろいろな親のイメージが走馬燈のようにあらわれ、これまで自分を育ててくれ、共に生活してきた親の恩に対して感謝の念を持つはずです。想い出は家族や友人の心の記憶にしっかりと刻まれて生きています。こうした気持ちこそが、たとえ人が死んでも、肉体は滅びても、その人が新しく生きはじめるいのちといってもい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また、最近感動した本や映画はありませんでしたか。映画や文学作品、絵は人々に感動を与え、勇気を奮い立たせます。その作者は他界したかもしれませんが、素晴らしい文学作品はいろいろな人に読み継がれています。さらに博物館や美術館の展示物は時空を超えて私たちに感動を与え、見た者はその時代時代の生き様や息吹を自ずと感じ、イメージをかきたてます。悠久のロマンあふれる古代遺跡や建築、様々なジャンルの音楽や芸術もしかりです。それらはみんな魂が宿っているからであり、それを人々は認め、忘れません。

山鳥の ほろほろとなく 声きけば 父かとぞ思ふ 母かとぞ思ふ
(『玉葉和歌集』)

これは奈良時代に活躍した行基菩薩(668-749)の和歌と伝えられていますが、山鳥がほろほろと鳴く声を聞くと、輪廻転生(りんねてんしょう)は人間だけでなく、今鳴いている山鳥も、もしかしたら私の父や母ではないだろうかと思う、と詠んでいます。日本人は自然を崇拝し、山を祖霊の宿る神聖な場とみなし、森羅万象のすべて、海や川、土の中にも大いなるもの、聖なるものが秘められていると感じ、それに畏敬の念を抱いてきました。

「山川草木悉皆成仏」という日本仏教の思想は、すべてが平等で、生けとし生きるものがお互いに寄りあって生きることを説く『法華経』の世界観と、八百万(やおよろず)の神といわれるような日本の神々の思想とが融合し、日本独特の仏教として形成されました。人間だけではく、動物も植物も山も石ころも風も雨も雪も全部役目を果たすためにあり、持ちつ持たれつの関係でいろいろないのちが共存しているという思想です。山も川も草も木も仏であり、全ての生きとし生けるもの森羅万象すべては仏の声であり、姿であり、いのちであると考えてきたのです。

個々には永久的ではないけれども、滅したのち次のものに生まれ変わる生命循環(仏教でいう転生)という流れの中で永遠です。この思想によって本来この世の一切は大宇宙(仏)の営みのひとつの形として生じたみな等しいいのちととらえることができ、因と縁でお互いに助け合いながら自然のバランスを保ってきたすべてのものに、私たちはいのちや心を感じます。日本仏教における自然主義ともいうべき共生(とも生き)の原点はここにあります。だからこそすべての生きものはお互いを生かしあ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認識が生まれてくるのです。

大自然すべてが仏法の尊い姿で、少しもうそ隠しがなく、目の前に堂々と現われている真理を無心に眺める時、全てを包む大きな意味でのいのちの中に生と死を深く見つめ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私たちが生かされて生きているという、永遠のいのちとのつながりをふまえてこそ、初めて万物にいのちなり魂なり心なりを大いに感受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1.生命


生ききるいのち

人間の取り分

いのちを考える三つの視点

2.奉仕
「ありがとう」と「おかげさま」

生活、生命、人生の違いは何ですか? - Quora



生活、生命、人生の違いは何ですか? - Quora




生活、生命、人生の違いは何ですか?

















12件の回答

日向 ジョン (John Himuka), 元経営コンサルタント
9月 23 2018に回答しました · 執筆者は914件の回答を行い、19.9万回閲覧されています





Question added by Pandian Murugan.”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life and living? ” #364867010 · Thank · Report · 29 Jan 2018 2:17 AM

生活、生命、人生を英語ではlive, livingとlifeですが日本語の場合、基の単語が変化しないで二つの漢字がそれぞれ意味を持って書かれます。中国語の漢字も英語と同じです。

日本語の場合、使われる漢字の意味でその単語が何を言わんとしている事が解ります。

生活=生きている物(体)を活動させる事です。

生命=生きている物(体)に心(魂)が宿る事です。

人生=生きている物(体)が人間として歩む事です。

生=LIVEです。命が入って=LIVING。 人が入って=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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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ji Sekiyama, 総合電機メーカーに勤務 (1977-2016)
回答日時: 2019/01/07 · 執筆者は113件の回答を行い、1.1万回閲覧されています




なるほどそう言われてみれば、日本語ではそれぞれの意味で異なる単語を使っていますが、ヨーロッパ言語では、Vita, Vie, Vida, Life、どれも 一つの単語が生活、生命、人生の意味を持ってるんですね。

ヨーロッパでは、これらの3つの意味の境目があまりはっきりしておらず、同じようなものだということなのかも知れません。生物の死の対立概念としての生命は別にして、生活と人生は確かに定義として区別しにくいように思います。自己流の解釈かも知れませんが、

生活:朝起きてから1日の活動を経て、眠りまた朝起きるまでの、毎日の人間としての(あるいはその他の生物の)営みを指す言葉。

生命:人間に限らす、全ての生き物が生まれてからの死に至るまでの活動を可能にさせる生命体のもつ根源的エネルギーを指す言葉。

人生:人間の生まれてから死ぬまでの行程全体を指す言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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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ezumi Inoue, 明治大学卒業 (1991年)
回答日時: 2019/01/07 · 執筆者は3.4千件の回答を行い、219.2万回閲覧されています




LIFEの訳語ですよね。難しいですね。
生活は「日々の暮らし」です。やや特殊な使い方として家庭生活とか結婚生活というようにある状態を区切るために用いられることがあります。ただ普通は職業生活とか会社生活とは言わないので、プライベートであるという含みがあります。ただ教師生活などと職業につく場合もあり、この時には教師という職業が人生の大切な部分を占めていたという含みがあります。対応する大和言葉は「くらし」です。生命との違いは暮らしがいろいろな活動(ご飯を作ったり、買い物をしたり、掃除をしたりすること)の積み重ねだということです。
生命は「生きていること」と「生きているもの」の両方の意味で使われます。対応する大和言葉は「いのち」と「いきもの」です。つまり二つの概念で使われます。いのちもいきものも状態なので行動の積み重ねではないです。
人生は人が生まれてから死ぬまでの時間の区切りです。状態でも行動でもなく時間の区切りについた名前です。なぜか人生には大和言葉がないです。

この中では生命が難しいかもしれません。生命を維持するとか生命を奪うといった場合には心臓と脳が動いていて活動している状態(いのちがあること)を指しますが、生命を殺してはいけないというといきもの(いきているもの)を殺してはいけないという意味にな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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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uyuki Yatsu, MBA General Management & Entrepreneurial Management, Harvard Business School
回答日時: 2019/01/07 · 執筆者は827件の回答を行い、35.5万回閲覧されています




あ、そういえば英語にすると全部lifeですね。この日本語版は日本語で答えないとルール違反だそうなので、日本語で答えますよ。難しくてもご容赦を。

生活というのは、実際の日々の暮らしのことです。例えば、悲しい例ですが「生活していくお金が無い」とかね。

生命ってのは、もろに命の事ですよ。「山登りをしてたら、生命の危機に瀕した」とかね。

人生ってのはね、重たい言葉だ。人の一生、生き方の事。「お前、たまには人生の事を真剣に考えてみろよ」みたいな。

どうです、全然意味が違いますよね。なんで英語は全部lifeなんだか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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淺見 和宏 (Kazuhiro Asami), 内部監査室長 (2017〜現在)
回答日時: 2018/09/22 · 執筆者は1.3千件の回答を行い、23.2万回閲覧されています




生活 … 日々の暮らし、またはその内容。

生命 … 生きているものに備わっている何か。死ぬとなくなるらしいモノ。

人生 … 生まれてから死ぬまでの、人の歴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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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與 雅之 (Fukuyo Masayuki), フォトグラファー (2017〜現在)
回答日時: 2018/09/25 · 執筆者は276件の回答を行い、1.6万回閲覧されています




他の方が回答されているものと重なる箇所があるかも知れませんが…個人的な考えです。

生命…人生(後述)の主役

生活…生命(主役)のログ

人生…ログ(生活)の総まとめ。生命が死を迎えてからのみ、真のログになる

このような感じで考えています。

人生、なんて言葉はよく多用されますが、個人的には自分の人生がどうであるかを考えることに意味はないと思っており、今の自分が進んできた道こそが人生であり生きているうちは人生への結論が出せないので、死ぬまでは人生とはどういったものだったか自分に理解できるはずもない、と思っています。

なので、人生を語る際は大体自分の人生についてではなく他人の人生についてであったりするのではないか、とも思っています。

自分の人生をこうであったと生きているうちに残すことは今後の生をそこで終えてしまうように感じで(未来を諦める)思えてしまうので個人的にあまり好きで無いだけなのですけど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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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do Yasuhiro, 株式会社エナ・ストーンの代表取締役(だいひょうとりしまりやく) (2016〜現在)
回答日時: 2018/10/03 · 執筆者は3.5千件の回答を行い、52.3万回閲覧されています




生活 = Life

生命 = Soul

人生 = Life …おや?

生活とは人間における日々の暮らしを指します。

生命とは生物にあると思われている生物を活動させるに相当する「何か」。

人生とは人間が歩んでいく存命期間のこと。

です。
閲覧数: 64件 · Riccardo Toscanoさんがリクエストした回答



金子 良事, 阪南大学の准教授 (2018〜現在)
回答日時: 2019/01/07 · 執筆者は377件の回答を行い、2.8万回閲覧されています




英語だとlifeで一緒ですね。生活と人生はそのままだと人間に限定されます。もちろん、猫の生活のようにも使えますけど、それはある種の擬人化的な表現なので、基本は人です。この二つは、生活の方が短期で、人生の方が長期(というか生まれてから死ぬまで)、というのが基本だと思います。両方、考え方という意味で哲学と結びつきますが、日本だと人生の方が結びつきやすいですね。アメリカのプラグマティズムと違って、実践的なことから離れることも多いです。たとえば禅による気付きのような。もちろん、禅自体には精進生活という生活スタイルが入ってるんですが、座禅による観想みたいなものになりがちです。これに対して生命だと、人間に限定しませんし、日本語の語感だと、ありとあらゆる生き物という感覚ですね。
閲覧数: 54件 · Riccardo Toscanoさんがリクエストした回答



Masahiro Ishii, アメフトと波乗りが好きな、在宅フリーランサー
回答日時: 2018/09/23 · 執筆者は2.8千件の回答を行い、33.7万回閲覧されています




生活とは、日々の暮らし

生命とは、与えられた時間

人生とは、与えられた時間の使い方

そんなイメージで捉えているように思います。
閲覧数: 79件 · Riccardo Toscanoさんがリクエストした回答



鈴木 亜紀彦 (Akihiko Suzuki), プログラマ (1987〜現在)
回答日時: 2018/09/22 · 執筆者は8.8千件の回答を行い、57.4万回閲覧されています



生活:暮らしていること
生命:生活現象が行える状態
人生:人の一生
閲覧数: 56件 · 1人の高評価した人をみる · Riccardo Toscanoさんがリクエストした回答



北家 正彦 (Masahiko Kitaya), Asao Language SchoolのProduct Manager (2014〜現在)
回答日時: 2019/01/07 · 執筆者は552件の回答を行い、2.4万回閲覧されています




生活はeveryday life、生命はlife per se、人生はyour life as in story since you were born til die、のイメージです :)
閲覧数: 35件 · Riccardo Toscanoさんがリクエストした回答



Sakaue Makoto, タスカジの家政夫 (2017〜現在)
回答日時: 2018/09/24 · 執筆者は3.5千件の回答を行い、10.9万回閲覧されています




生活は、生きるための活動。

人生は、生きている世界をどう生きようか、自分なりにやってきた結果。

生命は、生物の命。
閲覧数: 50件 · Riccardo Toscanoさんがリクエストした回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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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생활의 차이 " 

www.relnet.co.jp/kokusyu/brief/kkouen3.htm



오사카 국제 종교 동지회 헤세이 십 년도 제 1 회 회의 강연
「생명과 생활의 차이 "
 

단백질 연구의 연구소 이사, 오사카 대학 위안
이즈미 규칙



* 뜻밖의 연구자에

지금, 소개에 보관했습니다 샘입니다. 나는 이렇게 머리를 말아 있기에 이런 이야기를하겠습니다 때 종종 교직자로 오인되는 것입니다 만, 이것은 완전히 위생상의 관점에서 (회장 웃음) 이런 (까까 머리)를하고 있다고하는 나름입니다.

내 경력을보고 주시면 압니다 있도록 대학의 교수가된다는 것은 자타에ゆめゆめ생각도 계십니다 않았습니다 만, 인생을 대각선으로 건너갔습니다하여 깨달았 으면 결국, 드디어 대학 로 가장 긴 삶을 "이제 그만 아닌가 응. 그만 아닌가 응"라고 생각하면서 보냈다는 나름입니다.

학력도 경력도 오사카 대학 이학부라고하는 「과학 연구」와 전혀 무관 한 사람이 학부의 직원이 된 것이 있기 때문에 평생 이학부의 연구라는 것은 어디 이른바 '회사의 화학 연구 " 와 '대학의 화학 연구 "와 다른가? 라는 곳에서 매우 고민 것이 있습니다.

내 운명의 장난이라고하여 일본의蛋단백 박 질 연구의 선구자로 불리는 오사카 대학 총장을 역임했습니다 아카 호리 시로 선생님의 은퇴에 단백질 연구소의 강좌의 흔적을 잇는 매우 기구한 운명을 걸었다 같은대로입니다. 그런 속에서 나는, 아무래도 물리 연구하는 것은, 응용 연구와 달라서 또는 약학 연구 라든지 공학부 응용 화학의 연구와는 달라서, 이학부의 연구라는 것은 자신의 철학을 화학으로 표현하고가는, 혹은 물리적으로 표현 해 나가는 것이 본래의 물리 연구 아니냐는 것, 나 자신은 생각 도착한 뜻입니다.

나는 종전 직후에 회사 (다케다 화학)에 들어가서, 진주 군의 맥아더의 명령으로 노동 조합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야한다는 것, 노동 조합을 만들기 위해 소위 "마르크스 = 레닌주의 "또는"유물론 "이라는 것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라고하는 것으로, 어느시기 나 자신도 매우 유물론적인 사고 방식에 매료되어 있었다고 뜻입니다.

그것이 사소한 곳에서 친구에게서 억지로 인원수 맞추기 요청해서, 미타心月원이라는 비교적 큰 선사가있는 것입니다 만, 거기에서 참선 회에 "하룻밤이라도 좋으니까, 어쨌든 두수 만 와주 "라고 인장 백지되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불교라는 것에 만난 것이 있습니다. 그 때의 첩이 모치다 간도 노사는 - 코마 자와 대학의 교수를하고 있었다고 생각입니다 만 - 아주 유명한 첩이어서 그 만남도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 철학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음, 조금 창을 꺼내자 않았기 때문에 고마운 인연이었습니다.


* 불교의 깨달음과 자연 과학의 관계

소개도있었습니다 만, 자연 과학을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매우 종교와 먼 것처럼 생각 될지도 모릅니다 만, 특히 불교와 자연 과학은 - 과학자 본인이 자각하는 시내에 관계 없이 - 아주 가까운 감각으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매료되었습니다 것은 불교의 깨달음이라는 것과 과학적 발견을하기 직전의 순간과는 닮은 상황 인 것은 아닐까,라고하는 것으로, 내 자연관이라는 뭐든지 소방 자연을 보는 시각을 불교 철학의 '유이 난쟁이 식별 임계」에 둔 뜻입니다. 그런 것으로, 「유식」라고하는 것은, 아직도 "나는 이해하고 있다고 유식이 옳은지 잘못 있는지 분명히 말해 줄 사람도없는 나름입니다 만"유식이라는 것을 내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내 자연관으로 연구 생활을해온 나름입니다.

여기에 써있는 나의 저서 「과학자의 설교 불교와 철학 - 창조와 국제화를 위해 -도 오사카 대학 재직 중에東大出版会에서 "꼭 써 달라"고 잘 알려져있었습니다 만 나는 "교직자도 아닌 것이 맞는지 틀리거나 알지 않아 보장이없는 것은 서양書かんわ"고 있었다고 합니다만, 소란스럽게 설득 할 수 있었으므로, 무심코 난처한으로 "정년 퇴임하고 후라면 쓰고 다가오는거야. "라고 한 것이 운에 대해서는 것으로, 사실 이런 책을 쓰지 않을 수없는 나름 됐다는 뜻입니다. 그런 것으로, 니시 타니 케이지 선생님에게 처음 뵌 것도 그런 것이 하나의行きがかり이어서 지금 코루모스 (현대의 종교의 역할 연구회)으로도 국적을 두지 해주고있다라고하는 나름입니다.

이제 "생명 공학의 전문가"라고 소개되고있었습니다 만, 내 본직은 유기 화학입니다. 나아가 나의 작은 발견하에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 같은 학문이어서, 여러 학문의 경계 -보다는 교차로 같은 곳 -에있는 직장에서 설명 사양이 없도록 마라 일을하고 있습니다 만, 뭐 원래는 유기 화학입니다. 내가 생화학적인 일에 아마추어 털이 난 정도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것은, 하나는 단백질 연구소 가운데에서 내 강좌 연구실 놓여져 있다고 직무상의 위치 다만, 생화학 및 물리적 또는 물리 화학적 및 또는 생물 공학과 의학 라든지 그러한 곳과의 교점 다만 인터페이스 같은 이른바 '통역'을하고있는 것 같은 직무 역할 분담도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주위에있는 사람이, 생화학 또는 의학 관계로 매우 많다는 것이 일반적인 유기 화학자보다 생화학 조금 상세한라고하는 것이어서 그만큼 "생명 공학 전문 '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어쨌든, "아마추어 같아 있다고"라고 이해를 바랍니다두면 좋을까 생각 마땅합니다. * 어려운 '생명'의 정의 절임


 

그런데, 오늘 이야기의 주제입니다 그러나 얼마전 미야케善信씨 쪽에서 "뭔가 생명 (문제) 또는 장기 이식이나 그런 것을 말해주지 않을까?"라는 말이있어서 이 이력서에 써 있습니다 것만으로도, 제대로 이야기하려고하면 몇 시간을 필요로 할 정도로 매우 까다로운 분야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 나 자신이보고있어서, 종교인 여러분 분 또는 일반 여러분 분도 포함 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에서 생화학을하고 있다고 의학 관계의 사람들도 포함해서,이 '생명'이라는 것의 가지고 차이점을하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의학 관계 쪽에서 반대로 "종교적인 관점에서 생명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라고 모두에서"이야기를 해달라 "을 불리는 것도 그러한 관계에서 마땅 있습니다.

내가 여기 (이력서)에 써 있듯이, "장기 이식"- 특히 "심장 이식"- 일반 장기 이식이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히 문제가되었다는 것은 심장 - 이른바 생체 장기 - 이식 중심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脳死臨調"같은 걸로 여러가지 "뇌사 문제 '와'생체 장기 이식"과 뒤죽박죽이되어서 "죽음"의 정의를하지 않고 논의를했다는 것이 현실 아닌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요, '생명'이라는 것에 대해 이해의 정의 이른바 '생명'의 정의를하지 않고脳死臨調은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여기가 혼란스러워하는 한 "그것으로는 절대로終束리가 없다"라고 나는 생각 마땅합니다. 어디가 제일 '생명'이라는 것에 대해 이해가 어려운 말씀 드리면, '생명'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달라고하면 알 수 있듯이, '생명의 생명 현상의 특성 "이라고 써 있습니다. 그래서 또한 '생명 현상'까지 걸리면 "생명의 속성"이라고 적혀있다. 이것으로는 "닭이 달걀보다 먼저 나」라고 쓰고, 한쪽에서"달걀이 닭보다 먼저 나 "라고 만송 반대를 쓰고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으로는 전혀 의미를 만들어 않습니다 뜻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하면 '생명'이라는 것은 주체적으로 우리 모두가 자신의 '생명'이라는 것을 누구 한 사람으로 느끼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생명'이라는 것을 본 사람도 그 때 실제로 "어떤 걸や」라고하는 것을 말할 사람도 없다는 것이 「생명」입니다. 것은 '생명'이라는 것은 상당히 추상적 인 존재라는 것으로, 이야기가 매우 복잡하게된다는 것이 '생명'의 문제 일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분은 종교계의錚이렇게錚것 한인 분이이므로, 나보다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생명'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먼저 의학적 또는 과학적으로 오히려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멸치하시면 과학적으로 말한다 있다고 '생명'이라는 것은 '생명'그 자체 아닙니까. 이른바 '생명 현상'입니다. 의사가 청진기를 대고 "이제 죽었다 '혹은'아직 살아있다"고 자주하는데, 아무것도 '생명'그 자체를보고 말한다 있기 때문에なはくて이른바 '생명 현상' 즉 심장이 움직이고 있다고 하나 움직이고 계십니다 않거나 맥이 있을까 없을까라고하는 것으로, 그것을 판단하고 있다고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생명 현상을 통해 "거기에 생명이있다 '는 것을 알 수있다 것이'생명 '이라는 것이에요.

따라서 과학이 취급하고있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생명 현상'입니다. 그것을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다고 생명 자체를 과학적 해명하고 있다고"고 이해되는 곳에 이야기가 까다로워지는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 현상이라는 것을 이것을 '생명'자체, 만약 대체하면 '생명'은 여러가지 레벨 수 온다는 이상한 일입니다. "뇌사 문제"가 소란스럽게 알려져 있었다고 무렵에 "과학이 더 진행되면 ......」또는 「과학이 명확하게 생명을 잡아 않기 때문에, 소위 생명이 규정 할 수 없다」라고하는, 그런 착각을 대부분의 사람 가되어 있었다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과학이 진보할수록 과학으로 말하면 '생명'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없는 것이되어가는 것으로 있습니다. 예를 들어, "뇌사"라고하는 것, 혹은 '식물 인간'이라는 같은 상태가 나타났다는 것은 '의학이 발전했기 때문 "입니다. 특히 "뇌사"의 경우는 "직접 호흡하고 자율적으로 자신의 몸을 컨트롤하는 능력을 잃어 가고있다"것입니다.

여러분은 "심장이 멈 추면 즉시 죽는다」라고 생각하고 계시지 만, 심장이 멈 추면 왜 죽는 말씀 드리면 심장이 멈 춥니 다 이윽고 또 혈액이 환지지 않도록되어 몸 중 가장 산소를 소비하는 것은 뇌에 있지만 뇌는 대체로 열 다섯 분 정도의 혈액 순환이 정지하면 더 이상 원래 상태로 돌아 오지 않는 상태가되어 버린다. 것은 눈의 미간 단지 뒤편에게 사과의 응어리 같은 모양의 시상 하부라는 곳이 있고, 그 안쪽에, 뇌간이라는 작은 장소가 있으며,이 부분이 몸 전체의 컨트롤을하고 이분. 모든 신경이 통과하고 있다고 그냥 심과 같은 곳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뇌간)가 정지하면 우리 몸을 만들고 있다고 장기 - 심장이나 근육 이라든지 여러 가지를, 통있어서의 측판이나 바닥 판 이라든가 부분에 비유하면 그냥 뇌간이라는 것은 침대 '사고 뭉치'같은 것이 었 그것을 모두 함께 있다고 그런 기능을 가지고있는 것이 뇌간입니다. 거기가 심장이 멈춰 몇 분 내지 수십 분 만에 뇌간의 기능이 멈춰 "뇌사"와서 그리고 뇌사가 와서 또 잠시 후 호흡이 멈추고 모두가없이 쏘아 멈춰지고 천천히 몸 전체에 죽음이 미치고가는 것이되는 셈입니다.

옛날에는 강제로 호흡을시키는 방법이 없습니다. 심장이 멈 춥니 다하면 전기 충격을 주어 다시 한번 심장을 달린다는 같은 수 없습니다 때문에 심장이 멈 추면 필연적으로 "뇌사"이 방문 - 뇌간의 기능을 잃을 " 뇌사 '라는 것입니다 만 - 그러나 "뇌사가왔다 때문에, 즉, 죽음이 온다"라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 "진짜 죽음 '이 찾아 오는 것으로 있습니다.

따라서 예전에는 심장이 멈 추면 더 이상 의학적으로 구하는 길이가 없었기 때문에, 뭐 말하면 "임종입니다. 대단히 유감이었습니다"라고 의사가 말하면, 만사 혼란없이 것은 끝나 있었다고 것은 있습니다. 지금은 강제로 호흡을시키고, 심장을 움직이거나 여러가지 일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중추 (뇌간)을 제어 할 수 없게되었습니다해도 심장과 폐의 기능을 이동할 수 인위적으로 수 수 있었기 때문에, 게다가 영양 분들은 모두 주사로 단백질에 대한 대안을 주입 할 수있게되었습니다.

이것은 나 자신이 약방으로 단 하나 해본 적이 있지만, 단백질을 대체 아미노산 수액라는 것이 있습니다 만, 여러분이 질병을 오래되었습니다해도 하나도 살을 빼기없이 고기를 먹고 없이 건강하게 살 수는 이것은 아미노산 링거를 하니까 그러나, 그 물방울을 일본이 최초로 개발 한 걸이지만, 그것을 계기를 만든 것은 어떤 성분 중 하나만 결정 에 할 수 없었던 것을 만드는 방법을 내가考えつい했다고 할까, 찾았다 고 할까, 그런 것을 계기로 지금 전세계 아미노산 수액이 사용되고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이것을 발명 좋았 걸까, 나빴던 건가 ... 자신이 그런 상태가되면 "使わんとい달라"고 말하고있다 (회장 웃음) 만 ... 밥을 먹자는 의식도없고 소변에 가자는 의식도없고 아무것도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능동적으로 호흡을하고 심장을 움직이는 능력 만큼은 자신이 잘 할 수있는 것은 그래서 영양제를 강제로 넣어 주면 생명은 유지할 수있다. 이러한 상태에있는 것이 「식물 인간」입니다. 이런 상태가 된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죽을'이라는 점에서 좀 더 자세히 생각갑니다하면 "생명 현상이라는 것이 생활 그 자체이다"고 대체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말씀 드리면, 여러 수준의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 이력서도 쓰고 있습니다 만, "개체"라고 써있는 것은 우리 몸 통째로입니다. 통째로 생명라며 이것이 벌써 "뇌사"라든지 혹은 '식물 인간'과 개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라는 것이되면, 거기가 까다로워하게된다.

그리고 장기 이식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라고하면 뇌 세포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입니다. 몸에서 가장 사용하고있다. 여러분도 좀 상상외이라고 생각 합니다만, 우리 몸에서 가장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뇌이에요. 결국 컴퓨터 전력 공급 같은 걸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우리가 전쟁 중 팔에 총탄이 명중했을 때도, 팔을 속박하고 혈액을 멈추어도 세 충분히 한번 쯤 속박을 풀고 피를 흘려 주면 하루 이틀 지혈 해서라도 어떻게 든 갈 것입니다. 그런데 뇌는 - 요즘 목을 매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만 (회장 웃음) - 목을 매을하면 일곱 ~ 여덟 분 모두 '저 세상'에 갈 것이다. 왜?라고하면, 뇌는 많은 산소를 소비하고 있다고 것을 그것이 빠탓과 멈 추면 지요 조직 전체가 안되고 버리기 때문입니다. 손과 발 등은 점차적으로 산소를 사용하시는한다. 멈 추면 멈춘 것 말이죠 서서히 사는 것이 있습니다 만, 뇌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에요.

그런 것으로, 뇌가 소실 되어도 심장과 신장 등은 그렇게 쉽게 생명 현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기 수준에서는 "뇌사"이 찾아왔다해도 매우 긴 장기라면 몇 시간 수십 시간도唐牛살아 있다고. 내가 살고있는 지역 (효고현 산다시)는 지난 십 오 년 정도 전까지는 매장이었습니다 만, 매장의 무덤을 무엇인가의 여파로 관에 구멍을하거나하면 "머리 머리를 면도 들어 있던 것 것이나인데, 대단한 머리카락 만 뻗어 있었다고 "는 말 것과 있습니다. 있는 따위는 피부 조직은 조직 으로서는 매우 오랜 기간 살아 있다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되면, "장기 수준에서의 죽음 '이라는 것, 혹은"생명 현상 "이라는 것은"몸 전체와 관계가 있고, 또한 관계가 없다 "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 유전자는 생활 또는 물질인가?

이른바 생명 과학 (생명 과학)가 발전하면 문제가 오히려 점점 복잡 해지는군요. 예를 들어, '수정란'이 있다고합니다. 이미 정자를掛け合わし계란, 그것이 몇 년이든 저장할 수있는 것입니다. 현실에 축산의 세계에서 또 밥 먹듯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축산 업계에서는 젖소의 수정란은 매매되고 있다고. 드라이 아이스에 냉장 수송하여 전세계 교역하고 있다고 현상이있는 것입니다. 그럼이 '수정란'은 제대로 해주면 현실에 그 때 소 한마리하기 때문입니다 ...
또는 인간도 "체외 수정"미국에서 당당 또 장사를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되면, 수정란을 생명 현상이라고 파악하면 '생명'가 있는지 없는지 심히 까다 롭다. '수정란'에 '생명'이 있다며 그렇다면 그 수정란이되기 직전의 계란과 정자에 '생명'이없는 것인지라고하면, 이것도 '정자 은행'라고해서 미국에서 장사되어 봐. "이것은 수학에 강한 사람의 정자 나"라든지 "이것은 〇〇에 강한 녀석이야」라든지, 또 씨앗 가게와 함께 이예요. 그런 상황이 온하면 정자라는 것은 정자 만이 한 사람의 생물이되지 않지만, 그러나 계란掛け合わし하면 한 사람의 '생명'이된다. 그러면 "이 생활이 있는가는지 어떤지 ......." 이렇게되어 있습니다하면 심히 '생명'이라는 것은 이런 생명 현상이라는 것을 '생명'으로 대체 보면 복잡 해지는 것이군요.
그것은 (체외 수정) 정도의 거리입니다 그리고 아직 여러분의 상식 곳입니다 만, 최근 문제가되고 있다고 '클론'이 오면 더 문제가 까다로워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복제"라고해서도 여러가지 클론이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되는 것은 '체세포 복제 " 이것은 우리의 몸은 수십 조하는 세포에서 할 수 있습니다 만, 그 세포 하나 하나에 모두 유전자를 한 세트 가지고있는 것 같은 거예요. 그 한 쌍의 유전자는 우리의 몸을 건축하기 위하여 필요한 설계도가 완전히 다 들어있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론에서 말하면, 내 몸은 수십 조라고 난을 건설하기 위하여 필요한 설계도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단지 문제는 예를 들어, 피부가되어있는 세포의 설계도는 피부가되는 부분 만 남기고 다른 모든 유전자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같은 정보가 나오지 않습니다 것처럼 차단되어있는 것 입니다. 그러한 것이 과연 이것을 풀어 한마리의 "생물"을 "만들어내는"수 있을까하는 문제가있었습니다 만, 최근 영국에서 "양이 체세포 복제 기술로 탄생했다"고 활발히 보도되고 있었으므로 여러분이 아시는 것 같아요. 그건 말이죠, 젖꼭지 곳의 세포에서 양 한 마리를 빚어 낸 이유입니다. 이 구조는 "미분화"라고해서 - 수정 후 발생 단계에서의 세포가 손가락으로 변해 간다 든가 뇌 변해 간다 든가, 그러한 아직도 방향성이 나와 계십니다 않은 세포를 " 미분화 "라고하는데 - 이른바 그 안에 특정 목적에 응하기 위하여 차단되고 계시는 없다는 같은 상태입니다.

이른바 '수정란'는 한 쌍의 유전자에서 계속적으로 세포 분열을 반복 해가는 것입니다 만, 인간의 경우이며 3 개월 지나면 우리의 뇌 세포가 모두 준비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임신 삼 개월의 태아가 가지고 있다고 태아의 뇌 세포가 줄어들 수 있어도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 하나의 세포가 점점 커져 갈만한 것입니다.

따라서 "미분화 '라는 것은 DNA 중에서'뇌 될 설계도 만 사용"고 또는 "손이되는 설계도 만 사용"며, 그러한 사령관이 아직 나오지 계신 없다. 그런 상태 "무엇이든 달라질 수있다"세포 "미분화"라고 만, 그것이 젖꼭지 부근에있는 이유예요. 그 안에 유전자를 채취하면 그냥 수정란 속의 유전자와 똑같은 것이있는 것으로하고 그것을 사용해서, '돌리'라는 이름의 양의 복제 수 문제가 일어난 것은 뭐든지 입니다. 이것이 지금 소에서도 이루어지고있다. 이것은 아무것도 인간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되면, "세포 하나 하나에 생명이 있나?"라고하면, 또는이와 유전자하게되면, 이것은 또 현재 우리의 분류에서는 「유전자 (DNA)은 화학 물질 "이되어있는 것으로하고, 유전자를 생명체라고는 생각하고 계시는한다. 유전자라는 것은 냉동 해두면 무한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할 수있다. 현재는 "단순한 물질"로 간주 될 수있는 거라고 ... 생명체와 물질의 중간으로 바이러스보다 여전히 물질적 인 것으로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유전자는 생명이 있는가?"라고하면 좀 리가 모른다. 말하는 것으로, 이른바 생명이라는 것은 생명 현상을 생명으로 오인하면 매우 까다로운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다고 생명과 일반인이 생각 생활, 또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말하는 생명과 상당한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이 이야기에서보실 수 느냐고 생각 하지만 ...


* '죽음'은 '생명'의 끝인가?


그리고 이번에는 생명을 "살아 있다고하는 증거"라고하면, 반대의 '죽을'라는 것, 즉 뒤편에서보고하면 이력서에는 "죽음의 의미에 대해"이라고 써 있습니다 만, 과학적으로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라고하면 "개체 수준에서의 죽음 '이라는 것은 단순한 생물과 무생물, 이것은 들렀다가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종교가 전파 죽음'이라는 것은 '필연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죽음은 생명의 종말 '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각 것으로서, 난 코루모스 (현대의 종교의 역할 연구 모임)에서도 흔히 말하는 데요 종교인 분들은 "저승이있다"고 말했다 버리는 것 뭐든지 매우 오도하고 있다고. "저 세상은 있다고 생각 해요"라고한다. 아무도 알지 않아입니다. お釈迦씨도 "알지 않아"라고 있다고합니다. 종교의 입장은 어디 까지나 "있다고 생각 해요"라고한다.

한편 과학자 "저승은 없다"왜냐하면 실수예요. 아무도 "저승이 없었다"보고 받고おらんわけ이기 때문에 "저승이 없다 '는 것도 말할 수없는 이유예요. "없는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이유예요. '있다'고 단언하고 "없다"고 단언 할 종교와 과학이 단절되어 있다고 매우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합니다.

과학을하고 있다고는 "나는 알지 않지만, 세상은하지 않도록한다"고 거기까지 갔어두면 좋은데, 그것을 "있다니 생각하는 것은 비 과학적이다 '라는 하면 심히 수 온화 없게된다. 아무도 "내세가 없다"고 과학적으로 증명 한자는おらんわけ에서 저승에서 돌아온자는おらんわけ에서 그래서 "역시없는 있질 않습니다"라고お釈迦씨가 알려져 있다고거야 하지만, 가장 과학적으로도 정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금 이야기가 날아 왔는데, 문제는 과학은 '죽음'이라는 것은 '생물과 물질과를 구분 한 사건 "이라고 단순히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다. 과학이 가장 문제로 이분은 개체의 생명 개체의 죽음이라는 것이 있고, 종의 생명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존재가있는 까닭입니다. 종류의 생활이라는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무엇보다 인간 만이往生際이 나쁩니다거야. 인간 이외의 생물은 모두 종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생명'이있는 이유예요. 사마귀 수컷 따위는 씨앗을 넣은 후에는 암에 영양을 내기 위하여 먹혀 버린다. 자신의 '생명'은 자손 종의 생존을 위해 모든 지출 있다고. 인간 만이往生際이 나쁘다.


* 종교는 '사랑'의 매매를하지 마라
그런데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곳 (국제 종교 동지회)입니까 말할 수 있습니다 만, 이것을 말하면, 일반 종교인 여러분으로부터 맹렬하게 반대된다고 생각 합니다만, 곧 "인권이 어떻게의"라든지, "사랑이 어떻게의」라고 말해있어서, 그래서 과학자는 정말 죽음이라는 것의 중요성을하려해도 할 수 없다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것도 이것 또한 매우 비극적 인 일이지만,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것도 종교인, 특히 기독교적인 사랑이라는 생각으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심장을 제공합니다"라고하는 일이 있어도, '사랑'이라는 것은 나의 이해는 사랑이라는 것은 성경을 믿는자는 기독교에 의하지 않고, 이슬람교 유대교로도, 그것을 믿는 자 속에서 처음 사랑은 주어지는 것이다 것이 리라 생각 합니다만, 그 '사랑의 매매'를하는 곳이 얘기를 꼬이게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 경건한되는 기독교되어 이른바 "일신교"신자의 경우이지만, 이것은 극단적 많습니다 만,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저런 생각 (주 : 수술이나 수혈을 거부)이 나오고 당연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 지나친 생각은 혈액 같은 것은 난보도 재생산되기 때문에 "그것은 였으면 드리는 '라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이와 심장이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심장을 갖고 싶다」라고하는 사람은 "공급자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고"것으로하고, 그럼 심장을 제공하는 사람의 입장은 어떠 할까 라고하면 "기다리는 입장이된다"는 것.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사랑'을 전파 기독교 진실한 신자 였다면, 그러한 제의 (내 심장을드립니다)이 있어도, 나는 "내 사퇴합니다"라고해서는 나이 카이 있구나라고 생각 합니다만, '사랑'이라는 것이 매매되는 곳에 최근 이런 것이 많아습니다 마라.

이것이군요, 뭐,별로 말하면 상태 나빠졌 때문에 말하지 않지만, "인간 만이 종의 생존이 어려워지는 방향으로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고"같은 상황이되어 이분라고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 관계로 특히 생각 싶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매우 냉혹하다"며 이렇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만, 과학은 어디에 이른바 '생명의 존엄'을 인정 지내고있는 말씀 드리면, "개개인의 생명이라는 것은 종의 생존 위해있다. 개체의 죽음이라는 것은 종의 생존을 위해 죽음이있는 것이지, 그러한 의미에서는 매우 당당한 것이다 "라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고이며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이십년 정도 전에 교과서에 나오고있었습니다 만, 최근의 고등학교 교과서를 한두 권 봐도 그런 것을 써있는 교과서가 없어지고 있다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생명관이 결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우리의 '생명'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라고하면, 방금 좋다했듯이, 침대 둘은 우리의 몸과하면, 그 측판 바닥 판과 같은 것이 우리 기관이며 피부이며, 소위 근육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시면 뇌간이라고하는 것으로, 하나의 테 다가가 빠져 모두가 "침대는 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기능 "을 위해 모두가 통일되고 있다고. 그 때 저절로 그 통 속에 담수 칭송 오는 것이 '생명'일까라고, 그렇게 이해하고 싶다.


* 생명을 기리는 통

그래서 그 판의 한 장이 부족도 '생명'은 모이지 않습니다하려고하고 바닥이 빠지면 한번 해보려고하고 침대 테 다가가 분리되면, 이것은 또 순간적으로 담수 기릴 수있는 것이 없어 질 것입니다. 가득 채워지고있는 것이 청주인지 와인인지 무엇인지는 통이 놓여 있다고 환경이나 경력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이 소위 우리가 실감하는 곳의 '생명'이 아닌 것일까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의학이나 과학이 발전해서도 생명이라는 것 - 우리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곳의 '생명'이라는 것 -는 해명 할 수 없다. 그러면, 의학이나 과학이 발전하면, 무슨 일을 할 수있게 될까라고하면, 한 장 한 장의 판자가 '생명'이라는 하나의 침대에서 무슨 역할을 지내고있는하는 역할을 해명 하고 서로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재질로되어 있다고하거나, 거기 널 어디 썩어 수 있다고인가, 왜곡 수 지내고있는 것은解소요됩니다. 이른바 '생명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통」에서 생명이 새어 뻔하면 "어디에 원인이있어 누설 걸고있다?"라는 것은 해명도,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가 ? "는 난보 진보해도 모르는 법이다. 하면 이런 식으로 이해 해주시면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의학 관계 및 생물 관계의 사람이 이야기를 말하면, 「이즈미 씨, 홍마に그렇게 나 "라고 바로 여러분 분과 전혀 대상으로 생화학 등을하고 있다고는 무심코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고 라고하는 것입니다.


* 불교가 가장 과학적

나보다 여러분 분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있지만 그러면 불교의 설교 '생명'이란 - 각 종파에서 말씀 있다고 할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만 -이 과학이 매우 진보 한 시대에 내 자신이 열심히지고 불교에 대해 지금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것은 "お釈迦씨가 말하는 있다고 것은 지금의 과학이라는 것과 친숙한. 모순 않고있다 "고, 말할라고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부러 만송 반대와 같은 표현 만되기 때문에 불교는 지금의 시대에서 모두 오해를 받고, 그리고 일본인의 종교 감이 상실 해가는 것 같다입니다.

나는お釈迦씨의 말한 데서 출발하고, 각 교단의 설교 있다고 할 ... 아까도 말했지만 "제행 무상 또는"고 난보 이론이 알고 있고 또한 자신의 '생명'이 내일 없어 질지 알지 않아 때 "찰나 소멸 또는"라고 태연하게 꺾어되면 하늘 사람과없는 예요. "나의 생명은 어떻게なんねん? 죽으면 어떻게なんねん?"그런 식 때에 구원의 안 돼 것이 종교이다라고 생각하면 그 때 비로소 그 현장에있는 다양한 종파의 여러분이 말하는 하시는 일이 살아 온 이유예요.

그것보다 이전에 먼저 결론을 발행되기 위하여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이런 과학 만능 사상의 시대에 오히려 난감 뜻이에요. 교과서에도 생명과 생명 현상은 전혀 혼동 적혀있는 것 같은 거예요. "생활의 합성이있다"라던가 ... 농담이 아니다. 생명의 합성 따위있는 것이 아니 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의 합성이있다"라든지, 여러가지 일을 쓰고 있습니다 때문에, 모두 잘못된 과학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종교인이 점점 방향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하면 매우 여러분이 멀어 버린다. 역시 한 번お釈迦씨가 말한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것은 나!」라고 실감 할 수있어 또 한번 시작되면, 모두가 납득 해 줄 것 아닌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게 말이죠, "생사一如」나 「찰나 소멸"나에게 그런 것으로 난보 "깨달음이 열"과와 등없는 말을해도 평범한 인간이 그런 알았다는, "당신은 암으로 조금 어렵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태연 죽을 것 같은 사람이라면, 상당히 여하튼 취하 생각 마라. 역시 그런 경우는 「정토가 있구나 "라든지, 그러한 구원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그 곳에서 시작가는 ... 그 근처를 상당히 잘 생각하지 않으면 오해의 소지 뿐이다 내가 생각합니다.

나는お釈迦씨가 알려져 있다고 것이 가장 과학에 있고,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지금의 젊은 사람을 이길 사람에게 이야기를해도 누구도 반박 할 수있는 것 는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찰나 소멸"혹은 "제행 무상"라든지 그러한 같은 문제는 우리 자연 과학을하고 있다고들은 매일 이른바 '몸소 경험'하지 않으면 안 돼 있습니다.


* 과학적 발견과 「인연」
의외로 여러분 분은 자연 과학자는 그런 것과 무관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위 말로서 모르는뿐입니다. 「인연」라든가 「인연의 신비」이라든가 그랬더니 '발견'과 '발명'따위군요. "어째서 너는 그것을 발견 할 수 있었던 거 였나?"라고 묻는다면, 발견도 이상한 걸 밖에 좋게가 없습니다군요 ... 내가 연구하고 촉매 화학에서도 그렇습니다 만, 예를 들어, 폴리에틸렌 - 비닐 봉투 - 석유 에틸렌이라는 성분에서 건축되는 화학 물질이며, 촉매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기하게도 " 가장 먼저 발견 된 촉매가 가장 좋았다 "는 것이 이십 년 뒤쯤 하나의 촉매가 찾아 내에서 때문에, 수백 명, 수천 명, 수만 명의 사람들이 엄청난 시간이 지남에 추가 실험을하여 이십년 나중에 "가장 먼저 찾아낸 촉매의 조합의 비율이 가장 좋았다"라고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유예요 .

뭐, 「인연」라는 이야기를하면, 우리 과학자, 나 같은 화학자 따위는 특히 그렇습니다 만, 화학자 뭘 지내고있는라고하면 새것을 건설보다는 또한 새로운 인연을 요구하고 있다고뿐입니다. 원료는 약방에 모두있는 것이예요. 이것을 어떻게 유 식으로 조합하여 여러 번에 온도를 올리고, 왜 ......라고. 결국 그 '인연'을 찾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하고 있다고하는 것으로, 이런 것을 말하면 "아 그건 과연 그렇게 이네"고 그것이 인연 주문했다고 ... 그리고, 불교 말합니다 곳의있는 그대로예요. "제법 무아"이라고합니까 "법"이라는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것이 아니라, 인식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인식의 대상이라는 것은 "한정해야 누구도 없다"고 ... 이것은 창조 교육의 경우에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모두 "물건을 제한 해 버린다」라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여기있는 곳에 컵을"컵 "고 말해 한 발견의 단서를 잡고에서 펼치려면 교육 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것입니다. 교육 지식이 많을수록 확장은 매우 넓고 웅장한 완벽하게되어가는 것이에요. 그런데 처음의 단서는 교육과는 전혀 무관 한, 아래로 손 다른 때 교육이있을수록 그것에 묶여 새로운 것을 찾아지지 않는다. 이 컵이 "컵"이어야한다 필연성은 아무것이 컵은없는 이유예요. 우리의 일상 생활이 바로お釈迦씨가 말하는 있다고 할そも노모 절실히 생각하면서 연구를하고있는 것 같은 거예요.

극단적 인 예는 "양자론"따위하게되면 다른 인식 자체입니다. "전자"라고 있다고하더라도 전자를 입자로 보게하고 감행하면 입자와 외모 빛이나 생각하고 우리의 눈으로보고 잡는에서 빛이나 보이는 것입니다구나. 지금 전화가 점점 이른바 '광통신'로 바뀌어 가고 있지만, '빛'도 전파하고 보니 빛이 없음에 전파 인 셈입니다. 입자로 관찰하려고하면, 광자로 관측 할 수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관찰하는 것은, 자신의 주관으로 물건을 보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과학자들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하면 "唯ゆい식별 임계"이 뭐니 있다고 할 자체. 자신의 세계는 자신의 기억을 통해보고 있다고 뭐든지로서 그 기억을 제외했을 때, 새로운 다른 것을 가지고 오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셈이에요. 그러므로이 빛도 입자와 전파 나 말한다 있습니다 만, 셋째, 넷째 더 가능성은 무한 것 입니. "제법 무아 '입니다. 그것을 우리 과학자의 창조성이라는 것의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 일본인의 생명관 대단한 옆길 수있었습니다 만, 그런 것으로, 우리의 "생명관」- 일본인이 '생명'이라고 온 것은"자신에게 둘도없는 것 "에 대한 이른바 '이야 "이라고합니까 주체적 인 존재 모습. 그것은 일본인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고 '생명'는 않겠 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뒤집어하면 팔백萬800만의 신들입니다. 이제 나무도 바위도 화장실도 모두 일본은 신 씨 투성이예요 ... 것은 일본 슈퍼 우상, 즉 "悉有불성 치통 불성 '입니다. 이것은 매우 다신교의祖霊믿음으로 인도하는 셈이고, 그것은 반대로, 불교의 '悉有불성'이라는 것도 무한이기 때문에,悉有불성에 거의 겹치는 것으로 있습니다. 그것이 「일본인의 생명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른바 '일본인의 생명관」라고하는 것은 불교의 생명관 또는 신도의 생명관의 그 틈에 그것이 이른바'일본인의 생명관」로 표현오고있는 것 아니냐과 반대로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의사 친구에게 "너희들의 생각 있다고 생명은 객관적으로보고 있다고 생명이며, 가족이든지 본인이 생각하고 있다고 생명은 둘도없는 생명이야"라고 말하는 것 입니다. "그것을 비록 죽은 것이 사실 이겠지만, 아이를 죽게 한 막 부모에게 즉시"너의 아이는 죽은거야 "라고 그런 살생하는 것을 말한다 걸로 없다"라고하면 역 의사가 "과연, 그런 경우에 정말 생명이라고해도 대단한 차이가 있습니다구나 ......"라고하는 것이, 반대 쪽에서 듣기입니다.

다만 시간이갔습니다 때문에 일단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또 무엇이든지 매우 제멋대로 말하고 있으므로, 여러가지 의견이든지 있으시면 말씀해달라고하면, 또한 상당히입니다. 일단 이것으로 끝나지하겠습니다.


* 질의 응답

사회 : 이즈미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희 종교의 현장 안에있는 것으로서 조예가 깊은 이야기를承わり또한 오늘 참가자의 면면을 봐주고, 불교, 기독교 그리고 신도, 각각의 사람이 제대로 취해지기 질문이있다 같이 이야기를 전개 해 주셨습니다 때문에 각각에 의견이나 질문 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잘 부탁합니다.

편두통 오카 : 스 미요시 타이 샤 권한 궁사의 카타 오카友次입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감명 깊게 방문 있었다고 합니다만, 조금 빠져 있었다고 생각하는 부분 - 즉 '안락사'문제에 대해 선생님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까요?

 그것 앞에서 "처음에는 유물 론적 사고 수 취했다 았지만, 불교와 만나 조금 생각이 달라"고 하셨는데, 내 중학교의 동급생으로, 교토 부립 의대 병리학을 전공 한 셨습하여 대학에 남아 "인간은 세포 덩어리이다"고 역설 해 마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만, 어느새 변심했는지 모릅니다 만, 현재 돗토리 산골 무의촌에 참배있어서, 그곳의 농촌 분들의 진료 칠십 몇 살입니다 그러나, 아직 건강하고 있습니다 만, 그런 심경을 방문하고 싶다는 것. 그 두 가지를 밟아서 종교와 의학 또는 과학은 양립 할 수 있는지 여부? 또는 최근의 "복제 인간"의 문제 등 유전자
伝子공학에게도いろいな의견이 있습니다 있겠지만, 그런면에서 이즈미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요? 이상 세 점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있지만.

샘 : "종교와 과학에 접점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기독교에서도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정말 기독교를 이해하면 어떤 접점이있는 것은 없을까 생각 합니다만, 적어도 불교에서는군요, 이것은 명확하게 접점이 있습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만, 직교하여 접점이 있습니다. 나는 그 접점은 '제행 무상' '제법 무아'가 하나의 접점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차원을 아흔도 회전 바른다. 그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면 그것은 '유식'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종교인 여러분 분 앞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만, 불교의 경우 "깨달음"이라는 걸 말이죠, 도저히가 아니지만 속세의 인간으로부터하면, 속세의 인간이 강 가장자리에 서 내려서 소위 "그릇 속에 물이 들어 있다고합니까? 계시지 않은가?"라는 것과 같고, 그 "깨달았다"라고하는 것이 과연 정말 깨달았는지?

내용물이 들어 있다고하거나 오란 것인가? 는 영원히 알지 않아 할 것이어서 그것보다 난 적어도 사상과 철학이라는 곳까지라면 확실히 누구나 납득하기 때문에는 아닐까 ... 그리고 나는 그 때 종교로의 전환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이있는 전환점을 맞이했을 때, 그것은 처음 종교로 정말 전환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이 거기에 이르는 경로가 지금은 단절 해 버리고 있다고. 이것이 매우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안락사의 문제 '라는 것은 일반적으로'존엄 사 '와'안락사 '와을 착각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땅합니다. "안락사"는やぱし나는 매우 상태 나쁜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요는 "안락사"라는 것은 의사가 어떤 인위적인 방법으로 이른바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기 때문에 ... 한편 '존엄 사'라는 것은 제가 말씀 드렸던 것처럼, "(연명으로) 아미노산의 수혈 같은 것이 다해야있어 줘」라고하는 것은 이군요, 또 어차피 원래대로 돌아 가지 않으며 때문에 있으면 인간은 물건이 먹고られん있게되어 점점 탈수되어 가면 이구나, 비교적 "쉽게 죽을"좋은 거에요. 그것을 "이제이란"라고 취하는 곳에 점점 수분을 넣는 때문에 이른바 '고통'이 늘어날 뿐이고, 그래서 나 같은 의학 관계의 인간 잖아요 그러나, 그러한 곳에 가까운 사람 (의사 ) 따위는 "(자신의 때) 다른 극진한 것은せんとい달라"고 말하는 것이 자주 묻는 우스갯 소리입니다. 그래서 이른바 '존엄 사'라는 것은 '자신이 사는에値せ않습니다 같은 삶 싶지 않다 "고 ... 그래서 "불필요한 치료는하지 말아 줘 '라는 것이'존엄 사 '이며, 이것은 나 자신도 말이죠, 존엄성을 가지고 죽고 싶은 생각합니다. 의외로 "자연스럽게 죽는다"고 비율하게 편합니다 해요 ... 그것을 무리 (말기 의료 행위)하기 때문에 점점 힘들어 되구요 마라. 나는 '존엄 사'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관에 의해 "철저하게 마지막 기회를 여전히 기다릴거야"왜냐하면 그것도 본인의 삶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두통 오카 : 조금 그 심경을 묻고 싶습니다 ... 선생님의 유물론적인 사고 방식이 어떤 여파로 종교적 견해 바뀌 었는지는 심경을 들려 해 바랍니다 싶습니다 ... 샘 지금은 왜 과학과 불교는 접점이 있는가하면, '무상'라든가 '제법 무아'라든지 이런 일은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유물론적인 견해예요구나 ... "제행 무상 '이라는 것은 과학 자체가 일상 증명하고 있다고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과학은 전혀 부정하기는 커녕 모든 긍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식'의 역설하고 있듯이 "우리 각자가 다른 세계를보고 있다고」라고, 이것도 과학적으로 올바른 것입니다. 

따라서 단지 그것이 과학의 경우, 그것은 멈추는 것이군요. 적어도 내가 지금 시끄럽게 기회있을 때마다 말도 있다고 것은 교육 속에서 그것을 실존 적 수준으로 되돌려 가르쳐 않은 곳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신진 대사를 반복하고 있다고구나 '라는 것을 가르쳐 또는"유전자의 문제'에서도 가르쳐 채로 있으면, 지금의 교육은 교육부에서도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 아닐까 응 " 라며 "도대체 왜 생명이 소중한군요?"라고 아이를 추궁했을 때, 대답 할 수가 없다 이유입니다 ... 

왜인가하면, 역시 적어도 교육 속에서 실존까지 되돌려 놓지 같은 아칸 생각합니다. "유전자는 이렇게 된 걸 것이나"고 가르치면, 그 다리로 "너 자신의 생명은 그런쪽으로에서 이루어지고있는거야"라고 말하는 식으로 가르 칠 수있는 거죠. 또는 "제행 무상"나이라는 것을 가르쳐 때도 "너 자신도 그렇구나」라고하는 곳까지 교육 해두면, 이것이 본래의 교양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결여 있다고 좋은 거에요. 

그래서 반대로 종교라고하는 것은, 지금 그것을 주체적으로把버릴 걸 것이지 종교라는 것은 예를 들면 불교이라면 자신의 마음의 더러움, 번뇌의 덩어리의 걸쭉한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함에있어서 그것이 처음 원리와 도덕 역할을 해 온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고 종교의 뒷받침도 아무것도없이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나"라고 말할 것이다 때면서 한쪽에서는 아이들에게 치킨을 폿뽀폿뽀 먹여 돌보지하고있는 부모와 학교가 아이들 에 "생명이 소중한 나"라고たかて"닭의 생명은 아무래도 요하고"이군요 "친구의 목숨 만은 소중히 탓"이라고 그런 말을 누가 납득하는 걸합니까 .... 

나는 역시 전후 교육이 결여 있다고는 "교양 교육"의 정의가되지 않은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양 교육'이라는 것은 대학에서 「지식의 폭을 넓히는 "라며 지금의 교육 심의회의 논의를 듣고 있고해서 왠지 일부러 종교적인 발언을 피해 갈 하듯 된 있다고하는 곳에, 그야말로 공허한 말뿐인 논의이며, 저런 일 난보 짓을했는지는, 아무 것도하지 않습니다 생각합니다. 동시에, 나는 종교인 여러분에게도 말하고 싶은데, 그런 어려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일단 불단에 손을 모아,寝しな에 다시 손을合わし, 어쨌든 그만큼 시도해なはれ"라고 것도 전혀 어렵지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과"어쨌든 그것만으로도 실행 해보고있다 "고 그 정도의 운동이라도 당하면 어떨까라고 생각 합니다만 ... 어느 쪽도 아니예요. 그런 걸요 모두 무책임한 걸예요 ... "기도의 중요성"やなん및 말한다 도리뿐 말을 지내고 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나는 불교와 과학은 훌륭한 접점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회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조동종의 위대한 선생님 두 분이 넘어 져서 계십니다 만, 뭔가 없지 않겠습니까? 상당히 불교 쪽이 분이 좋다 그래야 칭찬 해 주셨다 고 생각 합니다만 ... 기독교의 선생님에게 물으면 꾸중을받은 것 같아서, 불교 측의 선생님, 질문 없을까요?

뽕나무하라 : 헤이지주지 쿠와 바라亮三입니다. 내가 다이쇼 열네 년 출생으로하고 태평 전쟁 당겨진 걸로 그 당시 해군에 내려했지만 그곳의 교육이라는 것은 철저한 자연 과학 교육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날씨 같은 것도 당해서되었습니다 즈음은 자연 속에 '생명의 숨결'등은 일절 느끼지 않고 모든 것을 물화하고 이것을把테, 그런 후 함선 나 항공기를 취급했습니다. 타고있는 인간은 주체적 인 인간이더라도, 취급 물질이 이것은 또 철저한 기계적, 물리적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으로 머리가 굳어 버려서 젊은 때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집이 사원 이었기 때문에 조동종의 에헤僧堂에서 일년 정도 제대로 귀에 박히도 록되어 다음에 코마 자와 대학을 나와 불교학을 배우고, 그래서 부족 때문에 교토에 신제 대학원이 수 년도에 원서를 내고 넣어 주셔서, 니시 타니 케이지 선생님 밑에서 10 년 정도 신세를 여기에서 배웠습니다 것은 주체성의 철학입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것을 규명 해 가면 전부 주체적 인 것이 뿌리에 있고, - 아주 말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하지만 - 그런 세상이 종교의 세계라고 ...

한편, 물질 세계와 종교의 세계와는 의사가 말씀 "장기를 제공한다"는 입장과 "생명을 소중히해야한다"는 입장입니다 만, 아까 차를 마시고 이분 때 이즈미 선생님 말씀 드린 것입니다 만, 뭔가 오십 년 전부터 자연 과학과 종교와의 교점은 그대로 평행선을하여 가장 중요한 곳 (진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듯한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일이 힐끗 뜬 거예요.

이제 이야기를 들었 듯이 "죽음"은 "생물에서 무생물 또는 물질로 전환"입니다 이것이 순간이다 든가 - 순간과 시간의 폭이 없는지 순간이라고합니다 그러나 군요 - 그 사이에 주체적 인 인간으로 뭔가 느낄 것인가? 아니면 느끼지 않는 것인가? 라는 곳에 대해 이즈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하면서 그 죽음 "찰나"그러므로 소위 시간으로 점 때문에 경과하지 않아요 그 순간에 주체로서 살아있는 인간은 뭔가 느끼는 것인지 느끼지 않는 것인가 ? 그런 방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 ...

이즈미 : 나는 "찰나 소멸 '이라는 것이 가장 올바른 사고 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흔히 말하는 데요, "찰나 소멸 '과'무상 '이라는 개념은 점과 선이라고하는 관계, 이른바"시간 축 "속에서 물건을 생각하면'무상 '가 있으며 주체적으로 생각하면 "찰나 소멸"일까라고 생각합니다. 것은 '점과 선'의 관계는 '선'의 절단면 = '점'은 면적도 폭도없는 걸입니다. 그러나 '점'은 '선'의 요소 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점과 선 관계"를 수학적으로 말하면, "점은 선 절단하다"는 겁니다. 한 개의 막대가 있고, 부러진 경우 접은 곳 (시점)이 보장 있는데요, 접은 막대기와 막대 사이에 아무것도없는 이유예요.

이것이 '점과 선 관계 "이며, 이것이 우리의'생명 '의 무상되는 지금의 순간과 그 때 무상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와의 관계 일까 생각합니다 ... 본래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역시 「찰나 소멸 "라는"지금이 모든 "이라는道元의 사고 방식에 나는 몹시惹갈린 것처럼 생각합니다. 모든 과거의 인연은 현재에 응축되어있는 것이지 미래의 결정은 모두가 "지금"에 달려 있다는 것. 그리고 확실하게있는 것은 "지금"이외 아무 것도 보장이 없다는 것. 이것은 단지 양자 이론의 "불확정성 원리"등이 거기에 가까운 곳을 말도있는 것 것이어서, 이른바 하나의 요소 (요소), 예를 들어 시간을 정확하게 읽으려고하면 위치를 읽을 수없는, 위치를 정확하게 읽으려고하면 시간을 특정 할 수 없게된다고 ... 그것은 바로 그와 같은 말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리학을하고 계시는 분들은 매우 불교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많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회 :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섯 분 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질문 없습니까?

뽕나무하라 : 청풍 고등학교 쿠와 바라昭吉입니다. 若輩에게 아무것도 알지 않습니다 만, 나 자신,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알지 않습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이 세상에는 동물도 있고 식물도 있고 미네랄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모두 '생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의 (근원적) 생명"에 대 통일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우주 자체도 지구도 태양도 달도 뭔가 큰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때문에는 없을까라고 ....... 그런 식으로 나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인간이 육체를 가진 의미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지? 그 말할 곳을 이즈미 선생님의 견해로 알려 주시면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 나름대로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난 의미는 육체를 가지고있는 의의는 여기에있는 것이라고 ... 그래서 이렇게 이런 모임에 나가서 열심히 자신 안에 생명을 태운다고하거나 찾고있는 것은 있습니다 만, 그런 곳에서 육체를 가진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곳을 선생님의 견해를 묻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샘 : 이런 내 자신 종교인에 없기 때문에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른바 '자신의 존재가 의미가 있는지? "그것은 자신이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른 생물도 아마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 하거든요. 내 아주 친한 친구인데 "세포 융합"을 찾아 오카다 요시오는 선생님이 내립니다 만, 그분이 잘 말하는데, "생물은 열심히 살아 있다고 응이나. 뼈 저리게 알 '과 ... 이것은 생물을 다루고 있다고 통째로 취급하는 사람 일수록 그런 것을 말합니다. 인간 만 열심히하게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생물도 열심히하게 살아 있다고구나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고 ... 그래서 그런 점에서 인간 만이 특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은 이른바 '큰 대뇌 신피질 "을 가지고있어서,"말씀 "을 가지고 있다고하지만 위해, 우리는 시간의 관념이 있다는 것. 거기에 우리의 삶의 의미 라든지, 문제 라든지가 나올 것이고, 어쩌면 우리에게 시간 감각이 아니었다면, 그때 그때를 그저 열심히되어 살아가는 것 이외는 없다고 생각 입니다.

라는 것이되면, "어떻게해야합니까?"라고 생각하는 자신도 번뇌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시간 관념이 있기 때문에 번뇌가 발생하고 능숙한 걸 먹으면, "이것을 내일도 먹고 싶다"는 욕구도 발생하는 이유입니다. 욕망이라는 것은 시간 감각이 있어야 비로소 욕망이 나올 것입니다. 나는 인간만큼 '고뇌'가 있고, 다른 생물은 아마도 '통증'밖에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가 "이 상처 내일 움 할까?"라고 걱정 잡는 얼굴을 본 적이예요. 인간 만이 "나는 죽을 것이 아닌가?"라고 작은 상처에도 "이것은 화농하는 것은 아니다 것일까?"라고 고민하는 이유입니다. 라고하는 것은, 우리는 시간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하게 산다는 것에 의미가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그것이 전부는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회 : 감사합니다. 그냥 시간이되었습니다.

오늘은 이즈미 선생님에게 '생명'의 전체 성이라는 것을 대해서, 그 '삶'과 '죽음'과 우리가 단순히 생각을 나눌 게 아니라, '삶'과 '죽음'과 모두 포함 이분 것이 큰 의미에서의 '생명'이며, 개체의 부분에서도 세포 레벨에서 또는 종류는 큰 레벨이되면 "개라는 것의 죽음 '이 전제가되고"씨라고하지만 삶 '이 완수되고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러한 넓은 의미의 "생명의 전체 성'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불교로 말하면 곳의 '생로병사'를 넘어선 같은 경지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 같은 생각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