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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6

[알라딘]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 퇴계ㆍ다산ㆍ동학의 하늘철학, 조성환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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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 퇴계ㆍ다산ㆍ동학의 하늘철학
조성환
(지은이)소나무2022-06-02





























전자책 미리 읽기

전자책정가
17,600원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기본정보
파일 형식 : ePub(3.83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 252쪽

책소개

‘하늘(天)’ 관념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하는 사상사적 시론이다. 
이 시론은 종래의 한국사상사 기술이 중국사상사라는 거대한 숲에 가려져 그 독자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데 소홀해 있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흔히 조선사상사는 중국 주자학의 수용과 전개라는 구도로 서술되곤 한다. 

그래서 주자학의 용어를 원용한 ‘주리론-주기론’이라는 다카하시 도오류식의 분석틀을 사용하거나, ‘중국성리학의 조선화’라는 유학사의 맥락에서 기술되어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만약에 그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굳이 ‘한국철학’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한국 땅에서 벌어진 현상이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라면, 그냥 ‘동아시아유학사’ 내지는 ‘조선유학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의 근저에는 “과연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대단히 본질적이며 상식적인 물음이 깔려 있다. 
  • 과연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 그리고 그것은 왜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기본적인 동기다.


(李信)이신의 묵시의식과 토착화의 새 차원 - 슐리얼리스트 믿음과 예술 - 크리스챤하우스

(李信)이신의 묵시의식과 토착화의 새 차원 - 슐리얼리스트 믿음과 예술 - 크리스챤하우스



(李信)이신의 묵시의식과 토착화의 새 차원 - 슐리얼리스트 믿음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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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명 (李信)이신의 묵시의식과 토착화의 새 차원 - 슐리얼리스트 믿음과 예술
소비자가 19,000원
쪽수 508p
제품 구성 낱권
출간일 2021-12-02
목차 또는 책소개 상세설명참조



‘돌’의 소리를 듣고 외쳤던 혁명가, 이신(李信)

이신(李信, 1927~ 1981)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그는 목사이자 화가, 시인이었다. 아니, 자신의 능력과 재능으로 사회와 신앙의 패러다임을 바꾸려 했던 혁명가였다.
그는 돈과 직위와 건물과 도그마를 우상화하는 것을 멀리하고 본질을 추구하는 뛰어난 화가이자 목사였지만 한국 교회의 주류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다. 박사 출신이지만 낮은 삶을 살아가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본질 신앙을 그림에 담아내며 평생 ‘한국적 그리스도교’ 꿈을 꾸었다.
본서는 이러한 故 이신(李信, 1927~1981) 목사의 신학, 시 그리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특별히 소천 40주기를 맞아서, 그의 자녀들과 정신적 후예들이 그가 남긴 신학적 그리고 예술적 유산를 기억하며 글을 썼다.
이신 목사는 산동네에서 정신지체아들을 모아 함께 그림을 그리고, 글을 모르는 부녀자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괴산의 산골에 손수 돌을 주워 아름다운 교회를 지었고, 새벽이면 냉수마찰을 한 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화폭에 담았다. 이신은 천재적인 감수성을 지닌 예술가였고 멋쟁이였다. 스스로 자처한 곤궁함 속에서 안빈낙도하며 살면서도 한국 기독교를 위해 큰 외침을 남겼다.
본서는 한국 교회사 이 같은 큰 족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주류교회에 속해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신 목사의 삶과 초현실적 신학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그림과 시(詩)를 통하여 내면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그의 예술적 파토스와 구도적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예술신학을 향한 새로운 문을 열어 주고, 시는 노래가 된다.
본서는 역사적으로 외세의 억압과 침략으로 늘 깨달음 없이 사대주의의 노예가 된 한민족을 안타까워하고 ‘신앙마저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밥이 아니라, 물질화하고 경직화해 창조적 상상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외쳤던 선각자의 삶을 통하여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방향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본서는 진정 코로나 국면의 시대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 신앙을 넘어 한국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다.



차례


책을 펴내며 / 이은선

1부 󰠃 이신 신학의 새 차원 — 묵시의식의 토착화
토착화, 기독교사회주의, 그리스도환원운동, 이들 통섭의 토대로서이신의 슐리얼리즘 신학 ― 한국 신학 광맥 다시 캐기 __ 이정배
참된 인류세(Anthro-pocene) 시대를 위한 이신(李信)의 영(靈)의 신학— N. 베르댜예프와 한국 신학(信學)과 인학(仁學)과의 대화 속에서 __ 이은선

2부 󰠃 이신의 슐리얼리즘 신학의 전개
묵시문학과 영지주의 ― 이신(李信)의 전위 묵시문학 현상 이해를 중심으로 __ 조재형
벤야민과 이신의 해방과 영성을 향한 신학적 구조 ― 이신과 벤야민의 초현실주의 신학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__ 최대광
동양 미학의 관점에서 본 이신의 슐리얼리즘 신학― ‘망(望, 網, 忘)의 신학’적 관점에서 __ 이명권

3부 󰠃 이신의 시와 신학
이신의 묵시 해석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 ― 시를 중심으로 __ 김성리
이신의 내면세계 ― 그의 시(詩) 작품으로 본 예술적 파토스와 구도적 누미노제(Numinose) 지향(志向)의 고찰 __ 최자웅
짙은 그리움이 깊은 고요를 만나 ― 이신의 시(詩)가 노래(歌)가 되다 __ 이혁

4부 󰠃 이신의 그림과 예술 신학
한국 초현실주의 미술사에서의 이신 __ 심은록
‘하나’로 솟난 감흥의 신명 ― 이신(李信)의 ‘님’ 회화론 __ 김종길
“묵시적 초현실에 비친 자화상” ― 이신의 미술작품에 대한 묵상 __ 하태혁

참고문헌



저자소개

표지 그림 해제

저자 소개

김성리 문학박사,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김종길 미술평론가,
경기도미술관 DMZ아트프로젝트 전시예술감독
심은록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리좀-심은록 미술연구소 소장
이명권 코리안아쉬람 대표, 서울신학대학교 동양사상 강의
이은선 한국信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명예교수
이정배 현장아카데미 원장,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역임
이 혁 의성서문교회 목사, 시노래 작곡가
조재형 케이씨대학교 강사, 환원연구회 회장
최대광 공덕감리교회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객원교수
최자웅 시인, 신부, 종교사회학박사,
코리안 아쉬람 인문예술원장
하태혁 단해교회 담임목사, U.H.M.GALLERY 단해기념관 부관장

엮은이
<한국信연구소>
‘한국信연구소’는 2016년 강원도 횡성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근거를 두고 시작한 ‘현장(顯藏)아카데미’의 한국 신학 연구소이다. 동북아시아 사상적 전통인 聖 性 誠의 정신에 근거해서 ‘한국적 믿음의 통합학’(한국信學, Korean Feminist Integral Studies for Faith)을 지향하면서 2020년 7월에 개소하였다. 한국 토착화 신학의 전통에서 특히 목사이자 신학자, 초현실주의 화가였던 이신(李信, 1927-1981)의 신학적, 예술적 유산을 중시하고, 그로부터 한국 종교사상 전통과 서구 기독교 문명과의 대화를 주로 한다. 여성주의적이고, 교육인문학적인 성찰과 실천을 중시하면서 ‘한국적 인지학’(Korean Anthroposophy) 등, 21세기 인류세 문명을 위한 대안의 길을 찾고자 한다



본문 속으로

우리는 그를 진정 한국 사상사에서 고유한 동서 통합의 묵시 사상가이고, 그 일을 통해서 누구보다도 자신의 현실을 아파하며 거기서의 화해와 화평을 구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원했다. 그래서 ‘이신 40주기 준비위원회’라는 모임을 구성했고, 2020년 9월 24일(목) 20여 명의 위원이 처음으로 만나서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 같이 모인 사람 중에는 신학자뿐 아니라 문학평론가, 미술평론가, 이신의 옛 제자 목회자들이 있었고, 이후 여러 기회에 모임은 점점 커졌다.
_ “책을 펴내며” 중에서

그의 근원 의식은 형식(교리)과 제도를 거부했고 성령을 통해 주체(비서구)적 사유를 토발시켰다. 크고 작은 교회에서 목회했고 신학교에서 가르쳤으나 그는 선교사들에 종속된 그리스도 교단에서 늘 상 자발적 비주류였다. 이른 죽음 탓도 있겠지만 지금도 당시 이신의 족적은 상당 부분 가려졌고 저평가된 상태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살아생전 환원운동의 근원성을 주체적으로 회복시키고자 했으며 자생적으로 시작된 환원운동의 본질과 가치를 동시대적 언어로 되살려내고자 애썼다. …

오히려 인간은 “소우주”이지 우주의 계층적 단계나 일부가 아니고, ‘전체’는 구체적인 인격의 자유와 영(spirit)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지 관념적 보편이나 자연 일반에서가 아니라는 것을 깊이 통찰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보편적인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이고, 또한 가장 구체적인 것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다”라는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 다시 인간에 의해서 참된 지구 생명 공동체가 회복되고, 그래서 지구 생명체의 ‘마음’(心)으로서의 인간의 회심과 역할을 통해서 지구 생명 공동체가 함께 ‘정신화’(靈化)하고, ‘인격화’하며, 보다 포괄적이고 심층적으로 ‘주체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희망하며 제안한다.
_ “1부 _ 이신 신학의 새 차원 — 묵시의식의 토착화” 중에서

그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란 하나 되는 따뜻한 삶이다. 자기를 드러내어 갈라진 그 현실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이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자고 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 갈라지는 것은 곧 그리스도에 대한 왜곡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예수 안으로 들어가 모두가 하나되는, 이 따뜻한 삶의 자리가 바로 이신이 꿈꾸는 하나님 나라다. 이것이 not yet 곧,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니 분열의 현실을 부정하고, 하나님 나라의 미래로 향해 나아가는 운동이 그의 슐리얼리즘 신학의 메시아니즘인 것이다.
_ “2부 _ 이신의 슐리얼리즘 신학의 전개” 중에서

이신은 이런 현상을 산문 <돌의 소리>에서 “현실적으로는 ‘돌’이 소리 지를 수 없는 것이지마는 그런 초현실로는 길가에 ‘돌’도 소리 지를 수 있는 것이고 또 응당 그렇게 의식구조를 어차피 돌이켜 놓은 것이니 ‘떳떳한 이름’이라고 생각해도 좋”은 것으로 설명한다. “돌이 소리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무엇인가 결정적인 것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 절대의 것을 탐색하는 사람들에게 문제”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눈에 보이는 것만 탐색하는 역사의 시간에 있는 사람들은 초월의 시간이 지니는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_ “3부 _ 이신의 시와 신학” 중에서

이 현실주의 선언문은 이후 민중미술의 첫 불씨가 되었다. 이신은 “전위 묵시문학의 신학”의 서론에서 프로스트(Stanly Frost)의 말을 빌려 “묵시문학은 본질적으로 권위에 대한 일종의 저항문학”이라며, “그 사유 방식의 고유한 급진적인 성격 때문에 묵시문학에는 분명히 역동성이 있었다. 역동성을 나타낸 역사상의 구체적 사례들은 일부 학자들이 묵시문학적 공동체라고 기술하는 에세네(Essene) 공동체와 열심당(Zealots) 운동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인식은 그의 작품세계가 ‘저항’과 ‘역동성’을 가진 현실주의 미학과도 연결될 수 있음을 은연 중 제시한다.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와 인류 종교의 미래 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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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기독교의 대화와 인류 종교의 미래

기자명 이은선 한국信연구소 대표
승인 2022.12.15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 
신학神學에서 신학信學으로 22




지난 1년간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라는 제목 아래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진행해왔고, 이제 22회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오래전 서구 기독교 신학의 한복판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만난 동아시아 한국 유교의 보화들과 대화하면서 나름으로 이 대화가 인류 문명의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 왔다. 

지난 글들에서 본인은 동아시아 유교 기원과 전개에서 한국 유교가 단지 수동적이었거나 외래로부터 전해 받은 것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토대로서 역할을 했고, 특히 매우 고유하게 조선적 유교로 전개되어 왔음을 말했다. 또한, 유교 문명은 토착 지역의 오랜 무교(巫敎)나 도교(道敎)적 토양에서 함께 성장하면서 인도 문명으로부터 전해진 불교와 깊게 대화하며 신유교(新儒敎, Neo-Confucianism)로 전개된 것을 살폈다. 조선 유교는 특히 이 신유교의 확장이고, 그러므로 이 신유교와 더불어 서양 문명의 두 토대인 유대 히브리 정신과 그리스·로마 정신 위에서 성장한 서학(천주교)이나 개신교(프로테스탄트) 기독교와 대화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인류 문명의 거의 모든 종교 전통과 대화하는 것이 됨을 본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21세기 세계정세를 보면 미국과 중국이라고 하는 세계 두 헤게모니 사이의 각축이 치열하고, 그 둘의 관계 맺음에 따라서 인류 전체의 미래가 크게 좌우될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가운데 한반도 땅에서는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이상의 모든 종교 전통들이 여전히 활발히 역동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볼 때도 이 땅에서의 유교와 기독교, 그중에서도 이제까지 본 연재가 주로 초기 서학(천주교)과의 만남에 집중했다면, 마무리로 현대 개신교와의 만남을 잠깐이라도 살펴보는 것이 인류 종교의 미래를 그리는 일에서 무익하지 않으리라 본다. 

1884년경 아펜젤러나 언더우드, 알렌과 스크랜턴 등의 서양 선교사들 입국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개신교는 유교와의 만남에서 주로 전격적인 개종(改宗)을 주장했다. 거기서 기독교 신앙은 주체가 되고 유교는 그 신앙의 보완자가 되어 최초의 개신교 신학자라 할 수 있는 정동감리교회 초대목사 탁사 최병헌(濯斯 崔炳憲, 1858-1927)의 『만종일련(萬宗一臠, 1922)』도 그랬지만, 칸트 『순수이성비판』을 번역해 냈고, 칼 바르트를 사사한 후 단군 이야기를 기독교 삼위일체 이야기와 견주기도 한 해천 윤성범(海天 尹聖範, 1916-1980)의 ‘誠의 신학’도 유사했다. 이어서 본인이 한국의 한 토착화 신학자로 보고자 하는 원초(原草) 박순경(1923-2020)의 ‘(민족)통일신학’도 히브리 유대 민족의 창세기 연원을 동이족 창세기에서 찾기도 하지만 마침내는 그 모든 역사가 히브리 기독교의 ‘하나님’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박순경,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2014; 이은선,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한국적 信學의 관점에서, 한민족통일신학연구소 엮음, 『원초 박순경의 삶과 통일신학 톺아보기』, 2022).



이런 가운데 일련의 개신교 사상가들은 훨씬 더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한국 유교 전통을 내면화하면서 나름의 고유한 신학과 종교의식을 펼쳤다. 요사이 더욱 찾아지고 있는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 1890-1981)는 유불도 삼도(三道)뿐 아니라 대종교 『삼일신고(三一神誥)』나 『천부경(天符經)』 등의 언어를 깊이 체화해서 지금까지 어느 개신교 신학자도 넘지 못한 전통기독교 기독론의 배타주의를 나름으로 넘어섰다. 그는 유교 『중용(中庸)』의 중(中) 개념이나 『대학(大學)』의 민(民)을 예수의 그리스도성을 지시하는 언어로 해석해서 그 그리스도성이 단지 2천 년 전 유대인 청년 예수에게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부여된 하늘적 ‘씨앗’과 ‘바탈’로 보았다(이정배, 『유영모의 귀일(歸一)신학』, 2020). 다석의 제자로서 함석헌(咸錫憲, 1901-1989)은 스승보다 훨씬 더 탈종교적이고 보편의 언어로써 이 세상의 현실과 정치, 역사 속에서의 하늘 영(靈)의 활동과 ‘씨알’의 역동적 활동을 강조했다. 본인이 그래서 참된 한 “仁의 사도”라고 파악한 그는 염재신재(念在神在, 생각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라는 말을 좋아하는 스승 유영모처럼 온 우주의 “영화(靈化)”를 말하며, 씨알의 핵심을 사유하는 일(思,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로 보았다. 본인은 여기서 깊은 맹자적 전승을 보고, 또한 그가 민족 개조에서의 정치와 종교의 합작과 “혁명의 명(命)은 곧 하늘의 말씀이다”라면서 그 명을 공자의 천명(天命)과도 연결하는 일 등이 유교 맹자적 의(義) 의식과 잘 연결되는 것을 본다(이은선, “인(仁)의 사도 함석헌의 삶과 사상”,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2016).



그런데 사실 이들 모두에게 먼저 큰 영향을 준 사상가는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鎬, 1878-1938)였다. 보통 개신교 사상가로 알려졌지만, 그 삶과 사상에서의 유교적 뿌리와 전개는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그의 흥사단(興士團) 운동이 그것인데, 유교 중용(中庸)과 성(誠)의 점진(漸進)의 덕을 민족 독립과 자주뿐 아니라 인류 공동체 미래를 위해서 참된 영적 생활 공동체 운동으로 펼치고자 한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김교신(金敎臣, 1901-1945)의 ‘무교회’ 운동이 있다. 지난 편에 본 유교 개혁가 이병헌은 유교 종교화로서 공교회(孔敎會) 운동을 주창했지만, 김교신은 오히려 ‘무교회’ 신앙을 강조했다. 그는 신생 한국 개신교가 서구에서 만들어진 각종 교단과 교권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보고서, 참 신앙이란 그렇게 눈에 보이는 교회에 속하는 일과는 상관없이 스스로가 성서를 읽고 해석하면서 민족적 현실에 참여하며 “날마다 한 걸음(日步)”씩 나가는 구도 정신으로 파악했다. 유교 남성들이 당연시해왔던 호(號)를 붙이는 일도 일종의 특권 의식으로 보아 거부했는데, 그와 함석헌, 송두용 등이 함께 창간한 월간지 『성서조선』은 대쪽 같은 선비 정신과 독립 기독교 신앙이 함께 일구어낸 뛰어난 열매라고 생각한다(김정환, 『金敎臣, 그 삶과 믿음과 소망』, 1994).

1974년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선언’으로 또 다른 한국 기독교의 독립 정신을 강조한 이신(李信, 1927-1981)은 무교회가 아니라 한국 교회의 근본적인 갱신을 통해 그 뜻을 이루고자 했다. “신앙마저 남의 나라의 종교적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그는 서구 교회로부터 온 교단과 교권의 분열을 넘어서 초대 교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을’ 주창했다(이신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358쪽 이하). 
또한, 특히 신앙의 영적 역동성과 전위성을 강조했는데, 히브리 신구약 중간기 묵시문학에 나타난 하나님 신앙의 시대 전복적 의식과 전적 새로움에 대한 간구가 시대와 민족, 문화 등의 차이를 넘어서 새롭게 지속적으로 영(靈)의 ‘동시성’으로서 역동하는 것에 대한 큰 믿음(信)을 가지고 있었다. 그 믿음과 신뢰를 그는 인간 인식 연구에서 불모지와 다름없는 ‘상상력(imagination)’과 ‘환상(fantasy)’으로도 이해했는데, 예수의 하나님 의식, 키르케고르나 본회퍼의 고독과 저항의식, 한반도 최제우의 민중의식, 20세기 미래 전위파 예술 운동 등에서도 유사하게 재현되는 것을 보는 정도로 그의 하나님 영(성령)의 역동성에 대한 감각은 포괄적이고도 포함적이었다. 그리하여 본인은 그러한 이신의 사유가 16세기 조선 신유교 성리학의 창조에서 전위적인 역할을 한 퇴계의 천명(天命)이나 리도(理到) 의식과도 잘 통한다고 보고 그 둘의 사유를 우리 시대를 위한 참된 신학(信學)의 의미로 해석하고자 했다(이은선 외, 『李信의 묵시의식과 토착화의 새 차원-슐리얼리스트 믿음과 예술』, 2021, 129쪽 이하).

21세기 오늘은 지금까지 인류 문명이 소중히 가꾸어온 정신성(理)과 온갖 드러남의 다양성 속에 내재하는 초월적 인격성(命), 그리고 모두가 하나라는 지속하는 기반으로서의 공동체성(仁)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힘을 주어서 한 존재의 존엄이나 권리가 이미 그가 여기 지금 단순히 태어나 있다(natality/生理)라는 탄생성의 단순하고 직접적인 사실 속에서만 찾는 일을 감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어떤 종족이나 국가, 종교나 문화의 소속 여부에 따라 그것을 조건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르게 말하면, 오늘 우리는 이제 인류 보편 종교(religio catholica/眞敎)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것이고, 본인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이러한 보편 종교(common religion)의 이상이 어느 경우보다도 한국 (신)유교와 기독교의 만남에서 잘 찾아질 수 있다고 보는 바이다. 예를 들어 ‘易·中·仁’ 이나 ‘聖·性·誠’ 등의 언어 쌍과의 대화인데, 이 언어들은 전통 기독교의 신론(神論)과 구원론, 교회론(성령론)을 훨씬 더 보편적이고 탈종교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더욱 포괄적이고 세속적으로 말해보면, 이미 동학의 최제우 선생도 밝힌 바 있는 ‘誠·敬·信’의 세 언어가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보기에 아직 깊이 천착 되지 못한 무의식의 영역이나 여전히 큰 보편 속에 통합되지 못한 우리 삶에서의 성차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물음이 남아있다. 미래의 보다 생명 살림적인 한국적 보편종교(天地生物之理/心)로서의 한국 신학(信學)을 위해 씨름해야 하는 주제라고 여기며 본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끝)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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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이 땅에서 공공철학하기(1) – 다시개벽 한국인이 추구한 공공성은?

이 땅에서 공공철학하기(1) – 다시개벽



이 땅에서 공공철학하기(1)




-‘공공’이란 무엇인가?


글: 조성환


이 글은 개벽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공공성’의 유행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공공성’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가령 구글에서 ‘공공성’으로 검색해 보면, ‘법률의 공공성’이나 ‘의료의 공공성’또는 ‘교육의 공공성’이나 ‘건축의 공공성’, ‘금융의 공공성’과 같은 용례가 나오는데, 이에 의하면 ‘공공성’은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만능어’처럼 보인다.
마치 조선시대에 성리학에서 ‘리(理)’라는 말이, ‘사랑[愛]의 리’, ‘효도[孝]의 리’, ‘마음[心]의 리’, ‘사물[物]의 리’와 같이, 어디에도 적용할 수 있었던 것과 유사하다. 성리학에서 ‘리’는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그러나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른, 당위적 ‘가치’를 의미하였다. 모든 사물에는,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에게는, ‘그렇게 있어야 할 모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리’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마찬가지로 ‘공공성’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지켜야 하는, 어떤 분야에도 두루 적용되는, 공통의 덕목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 덕목이 모종의 이유에서 잘 지켜지지 않고 있고, 그래서 ‘공공성’이라는 말이 일종의 화두처럼 쓰이는 느낌이다. 가령 세월호 사태가 있은 지 얼마 후, 〈공공성 꼴찌 국가 한국…세월호와 ‘공공성’〉이라는 제목의 뉴스가 보도되었는데(2014.11.7. SBS 인터넷판 뉴스 「취재파일」). 이 보도에 의하면, SBS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1년 동안 공동 연구한 결과, 세월호 사태의 원인은 한국 사회의 공공성이 낮은 데에 있었고, 실제로 OECD 국가들의 순위를 매겨 본 결과 한국의 공공성은 꼴찌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공공성’에서 찾은 대표적인 예이다.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공공성’이라는 말의 유행과 더불어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원초적인 질문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가령 조원희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매일노동뉴스》 2006.08.20.), 조한상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책세상, 2009), 이노우에 타츠오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초청강연회, 2010.11.05.), 정태인 「공공성이란 무엇인가」(《공무원U신문》 2014.11.17) 등이 그것이다.
이 공통된 물음이 말해주는 것은 ‘공공성’이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공공성이 중요한지는 알겠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고, 그래서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여기에는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더 깊은 철학적 의미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즉 ‘공공성’이라는 말 속에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더 나아가서는 ‘정치’나 ‘경제’의 핵심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 논의에서 공통된 것은 ‘공공성’ 개념을 논하는 데 있어 하나같이 서양의 ‘public’ 개념을 출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공공성’을 ‘publicity’나 ‘publicness’의 번역어로만 이해하지, 원래 동아시아사상에서 논의되어 온 ‘공공성’ 개념은 전혀 고려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실은 ‘공공성’ 개념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부분의 인문학적 논의에서 보이는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는 서양의 ‘publicity’에 해당하는 개념이 없었을까? 다시 말하면 ‘publicity’의 번역어로서의 ‘공공성’ 개념은 어떻게 해서 탄생한 것일까? 그것은 원래부터 한자문화권에 있던 말일까? 아니면 번역을 위해서 만들어진 말일까? 이하에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의 일환으로 동아시아 고전에 나오는 ‘공공’ 개념을 추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을 한국에서의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즉 한국 사회에서의 공공성 문제를 생각하는데 있어 첫걸음으로 삼고자 한다.

‘공공성(公共性)’ 개념의 기원

먼저 ‘공공성’이라는 말을 분석해 보면 ‘공공’+‘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성(性)’이란 ‘인간성’, ‘특수성’, ‘형평성’과 같이 명사 뒤에 붙어서 ‘어떠한 성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공공성’이라는 말도 일단 ‘공공의 성질’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공공’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귀착된다. 즉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아시아사상사에서의 ‘공공’ 개념에 주목한 학자는 일본에서 활동한 공공철학자 김태창이다. 그는 동아시아 고전에 나오는 ‘公共’ 개념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공공철학’을 건립하고자 하였다. 김태창의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동방의 빛, 2010)에 의하면, 한자어 ‘公共’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처음 등장한다. 구체적으로는 『사기』에 수록된 「장석지(張釋之) 열전」에 처음 나오는데, 장석지는 한나라 문제 때에 법을 총괄하는 직책을 맡고 있던 고위 관리였다. ‘공공(公共)’ 개념이 최초로 나오는 문맥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한나라 문제(B.C.202~B.C.157)가 궁궐 밖을 행차하다가 마침 다리를 건너려고 하는데 갑자기 다리 밑에서 한 사람이 뛰쳐나오는 바람에 문제가 타고 있던 말이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문제는 무사했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황제가 말에서 떨어져 큰일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문제는 즉시 장석지에게 다리 밑에서 뛰쳐나온 사람을 심문하라고 명령했다.
장석지가 자초지종을 묻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황제의 행차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다리 밑에 숨었습니다. 한참을 있다가 행렬이 다 지나간 줄 알고 나왔는데 아직 행렬이 다리를 건너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에 장석지는 황제의 행차를 방해했으므로 법률에 따라 벌금 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문제는 황제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죄에 비하면 형벌이 너무 가볍다면서 크게 화를 냈다. 이에 대해 장석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법이란 천자가 천하와 함께 공공(公共)하는 바입니다.”
이 말은 문맥상으로 볼 때 제아무리 천자라 할지라도 법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지켜야 한다는 뜻임을 추측할 수 있다. 여기에서 ‘공공’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데, 그 의미는, 앞의 ‘공公’은 ‘모두’ 또는 ‘공평하게’를 뜻하고, 뒤의 ‘공共’은 ‘함께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모두와 공평하게 함께한다”는 정도의 뜻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핵심은 뒤의 ‘함께한다(共)’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앞의 ‘공(公)’은 ‘함께한다’를 수식하는 부사 정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분석해 보면, ‘공공’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함께한다’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공공’이 동사로 쓰였다면 여기에 ‘성’이 붙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왜냐하면 ‘성’이란 말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대개 명사에 붙어서 추상명사를 만드는 어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성’이란 ‘공공하는 성질’, 다시 말하면 ‘모두와 함께하는 성질’이라고 이해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고전적인 의미의 ‘공공’에서 보면, “한국이 공공성이 낮다”고 한다면 “한국인들은 모두와 함께하는 성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된다. 뒤집어 말하면 ‘모두’가 아닌 ‘일부’하고만 함께하거나, 아니면 ‘자기’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공공철학을 다룬 도서들: 왼쪽부터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김태창 저 / 조성환 역, 도서출판 동방의빛, 2010),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기획, 조병희, 이재열, 구혜란, 김지영 저, 한울아카데미, 2015),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조한상 저, 책세상, 2009), 『일본에서 일본인에게 들려준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김태창 구술/야규 마코토 기록, 정지욱 역,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2)]


우주론적 차원의 ‘공공’

‘공공’ 개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사기』로부터 약 1000년 뒤인 성리학에서의 일이다. 성리학에서는, 『사기』에서와 같이 “법을 공공한다”는 용례 이외에도, “리를 공공한다”는 의미에서의 ‘公共之理(공공지리)’라는 말을 쓰고 있다. 여기에서 ‘리’는 앞에서 말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대해 쓰는 말이다. 즉 법과 같이 단지 인간 사회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에 대해 쓰이는 개념이다.
그래서 ‘공공지리’란 “모든[公] 존재가 공유하는[共] 리”를 말한다. 이것을 줄여서 ‘공리(公理)’라고도 한다. ‘공리’는 근대에 서양문물을 받아들일 때 ‘axiom’의 번역어로 채택된 말이기도 하다. 수학에서 axiom이 “어디에나 두루 적용되는 증명이 불필요한 자명한 진리”를 의미하듯이, 전통시대에 ‘공리’ 역시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존재원리 같은 것을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오늘날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가치중립적인 법칙이나 원리를 말하였던 것은 아니다. 즉 뉴턴 물리학에서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유클리드 기학학에서의 ‘평행선 공리’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리’에는 무엇보다도 가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즉 그것을 실천하면 우주의 조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경우에 한해서 ‘리’라고 한 것이다(Brook Ziporyn 참조).
대표적인 예가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다. ‘공’은 그 원리를 체득하면 해탈을 이룰 수 있고 다른 존재와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리’이다. 그리고 ‘공’이라는 ‘리’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공공지리’, 즉 ‘공리’이다. 붓다는 이 ‘공리’를 몸소 깨닫고 중생을 위해 설파했기 때문에 중국의 성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아울러 인도의 ‘불도(佛道)’가 유교와 같은 중국의 공식적인 ‘가르침’, 즉 ‘불교(佛敎)’로 격상될 수 있었다.
이러한 흐름에 자극을 받아 성립한 성리학에서는 고대 유학의 ‘인(仁)’을 ‘리(理)’로 격상시켰다. 즉 맹자에서는 ‘인(仁)’이 타자의 아픔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라고 하는 인간의 심리현상으로 이해되었는데, 12세기의 주자에 가면 그것이 “우주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天地生物之心]이라고 하는 우주론적 원리, 즉 ‘공리’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즉 인간의 마음이 우주의 마음으로 확대된 것이다. “인(仁)은 사랑의 리(理)이다”[仁者愛之理]라고 하는 주자의 말은 이러한 변화를 말하고 있다.

‘공공’의 세속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쓰는 ‘공공성’이란 개념은, 앞에서 소개한 용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주론적 차원에서의 ‘공공’이 인간사회의 영역으로 한정됨과 동시에 동사에서 명사로 그 쓰임이 변질되어 탄생한 말이다. 이와 같이 ‘공공’ 개념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세기 초의 일본에서의 일이다. 야마와키 나오시에 의하면, 일본의 윤리학자 와츠지 테츠로(和辻哲郎)는 1930년대에 『윤리학』이라는 저서에서 ‘公共性’이라는 개념을 처음 썼다고 한다.
그런데 와츠지는 ‘공공’을 추상명사화함과 동시에 그것이 적용되는 영역을 ‘국가’로 제한시켰다. 즉 공공성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장을 ‘국가’로 한정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도 ‘윤리’적 차원으로 축소시켰다. 주지하다시피 1930년대는 일본이 중일전쟁을 전후로 이른바 ‘전시체제’에 돌입한 시기이다. 즉 국가주의가 절정에 달한 시점이었다. 이때 탄생한 ‘공공성’ 개념이 ‘국가’를 핵심으로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 결과 전통시대의 ‘리(理)’의 자리에 ‘국(國)’이 들어가게 된다.
이때 생겨난 말이 “멸사봉공(滅私奉公)” 즉 “사(私)를 멸하고 공(公)을 받든다”는 개념이다. 다시 말하면 “공(公)을 위해서 사(私)는 희생되어도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때의 ‘공’은 이제 ‘리’가 아닌 ‘국’으로 제한된다. 그래서 ‘멸사봉공’은 달리 말하면 국가를 위해서라면 개인은 희생되어도 된다고 하는 국가지상주의적인 표어를 의미한다.
당시에 일본은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살 특공대를 만들어 미국과 싸우게 했는데, ‘멸사봉공’은 이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사용된 일종의 슬로건이었다. 또한 ‘멸사봉공’은 일제시대에 우리나라를 다스렸던 일본 총독의 연설 속에 나오는 말로도 유명하다(〈이순신 장군이 ‘멸사봉공’? 뜻이나 알고 쓰나〉, 인터넷판 《오마이뉴스》 2012년 12월 5일자). 이 연설은 일본이라는 나라[公]에 대한 봉사[奉]만이 최고의 가치라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후에 이런 생각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지게 되는데,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나라를 위해서, 또는 회사를 위해서, 또는 조직을 위해서라면 개인은 희생되어도 된다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공(公)’은 주로 ‘정부’나 ‘관청’ 등을 나타내는 말로 제한적으로 사용되게 된다. ‘공직자’, ‘공무원’, ‘관공서’, ‘공기업’, ‘공익’과 같은 말이 대표적인 예이다. 반면에 국가나 사회를 뛰어넘어서 모두가 함께하는 것에 대해서 ‘공(公)’을 쓰는 일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공(公)’ 하면 곧바로 국가나 정부를 떠올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아울러 이때부터 ‘공공’이라는 말도, ‘공공 기관’이나 ‘공공 정책’과 같이, 국가로서의 ‘공(公)’을 나타내는 말로 의미가 한정된다.

나는 이것을 ‘공공의 세속화’라고 부른다. 국가를 넘어선 우주론적 차원의 ‘공공’이 국가적 영역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국가와 국가를 잇는 사상적 고리는 끊어지게 되고, 인간의 문제를 우주의 차원으로까지 확장시켜 생각하는 사고는 소멸하게 되었다. 흔히 근대의 폐단으로 지적되는 인간중심주의, 생태문제, 국가주의 등은 모두 공공의 세속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과제는 이 세속화된 ‘공공’을 어떻게 하면 다시 자연의 영역, 우주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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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추구한 공공성은?




-하늘은 모든 종교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에 동화되지 않는 한국적 영성을 대변한다


글: 조성환


이 글은 개벽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시대의 키워드 생명과 소통

지난 학기에 대학에서 “한국철학사” 수업을 막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어떤 외국인 여학생으로부터 내 수업을 청강하고 싶다는 메일이 왔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알고 보니, 현대 한국사회를 연구하는 한국계 미국인 학생으로, 다년간 한국을 필드워크면서 제일 많이 접한 단어가 ‘생명’과 ‘공공성’인데, 내 수업계획서에 “생명과 공공성 그리고 하늘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철학사에 접근한다”고 되어 있어서 청강을 신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공성’은 대개 공개성, 공정성, 공평성, 공익성 등을 포괄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어원적으로는 서양어의 ‘public’에 기원하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근대 시민사회의 핵심 “가치에 기인하고 있다. 그런데 이 외국인 학생의 한국 사회 분석은, 한국인들에게 있어 공공성은 무엇보다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세월호 사태를 분석하면서 ‘공공성’이라는 말이 화두로 등장한 것도(가령 2014년 11월 9일 sbs 뉴스 “공공성 꼴찌 국가 한국 – 세월호와 공공성”), 일차적으로는 어린 ‘생명’들이 무참히 죽어 가는 사태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한편 ‘생명’과 더불어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또 다른 말은 ‘소통’이다. ‘소통’은 특히 정치인들에 대해 요구되는 덕목이기도 하다. 현 대통령의 가장 큰 단점으로 ‘불통’이 지적되고 있다는 사실은, 뒤집어 말하면 ‘소통’이야말로 한국인들이 생각한 공공성의 핵심 가치 중의 하나임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명’과 더불어 ‘소통’을 한국인이 추구한 공공성의 핵심 가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생명과 소통, 이 두 가지 가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개념이 바로 ‘하늘’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생명과 소통 그리고 하늘 개념을 바탕으로 한국인이 추구한 공공성을 탐색해 보고자 하는 시론이다.

생명과 공공성

태종실록이나 세종실록을 읽다보면 “호생지덕”(好生之德)이라는 말을 종종 접하게 된다. “호생지덕”이란 말 그대로 “생명을 좋아하는 덕”이라는 뜻이다. 이 말이 자주 반복되는 이유는 왕의 최고 덕목이 ‘생명존중’–우리말로 하면 ‘살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한 고을에 굶어죽는 자가 발생하자 그 고을 수령에게 곤장 100대라의 형벌을 내렸다고 한다.
이것은 위정자의 가장 큰 임무를 백성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으로 인식했음을 말해준다. 세종실록에 유독 ‘안민’(安民=백성을 편안하게 한다)이라는 말이 자주 보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리라. 작년에 송파 세모녀 자살사건이 발생했을 때에 그 어떤 공직자도 책임졌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을 보면, 공공성의 의미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근대 사회에서 개인의 생명보호는 1차적으로 개인의 몫인 것이다.
조선시대에 ‘병원’이라는 말 대신에 ‘활민원’(活民院)이나 ‘제생원’(濟生院)이라는 말이 쓰였다는 사실도 공공성의 핵심에 ‘생명’이 놓여 있음을 엿보게 한다. ‘병원’은 말 그대로 “병을 다루는 곳”이라는 지극히 기능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어휘이다. 이에 반해 ‘활민’이나 ‘제생’은 “생명을 살린다”는 가치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생명존중사상이 드라마틱하게 장면이 바로 퇴계이다. 퇴계는 말년에 증손자 창양을 보았는데, 불행히도 손자며느리의 젖이 부족하여 창양은 영양실조 증세를 보였다. 그때 마침 퇴계가 데리고 있던 여종 학덕이 아이를 낳았다. 이 소식을 들은 손자 안도(=창양의 아버지)가 퇴계에게 여종 학덕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엄마 대신 여종의 젖을 창양에게 먹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퇴계는 <근사록>이라는 유교 경전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남의 자식을 죽일 수 없다”며 여종 학덕을 보내지 않았다. 결국 창양은 영양실조로 죽고 말았다. 퇴계는 증손자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다.
우리는 흔히 ‘퇴계학’하면 ‘경학’(敬學)을 떠올린다. 여기서 ‘경학’이란 하늘이나 천리(天理)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퇴계의 ‘경’은 타인을 향한다. 그것도 신분이 미천한 노비를 대상으로 한다. 여기서 우리는 퇴계의 경학이 수기(修己=자기 수양)를 넘어서 경인(敬人=타인에 대한 공경)의 차원으로까지 나아가고, 그 바탕에는 생명 존중 사상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철학사에서 ‘경인’ 사상은 19세기 동학에서야 비로소 뚜렷하게 제기된다.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는 “시천주”(侍天主), 즉 “모든 존재는 다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고 하였고, 그 뒤를 이은 해월 최시형은 “어린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하늘님을 때리는 것이다”라고 설파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동학에서 말하는 ‘하늘님’은 곧 ‘생명력’ 그 자체를 말함을 알 수 있다. 하늘님은 우주적 생명력을 인격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그 우주적 생명력이 개별적 존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시천주”라고 말한 것이다. 동학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은 이 우주적 생명력에 대한 존중에 근거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동학의 ‘경인’ 사상의 단초가 이미 퇴계에게서 배태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동학의 생명 존중 사상은 퇴계사상을 잇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퇴계의 신분을 뛰어 넘은 생명사상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노비도 천민(天民=하늘의 백성)이니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한 세종의 말(26년 윤7월 24일)과도 상통한다. 유학과 동학, 임금과 백성이라는 이념적, 신분적 차이를 뛰어 넘어 이것들을 이어주는 개념이 바로 ‘생명’인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세종의 ‘천민’(天民)이나 퇴계나 동학의 ‘경천’(敬天)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에 대한 외경이 깔려 있다.

소통과 공공성

신라시대의 사상가 최치원은 화랑정신으로 ‘풍류’를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중국의 유교·불교·도교의) 삼교를 포함하고(包含三敎) 뭇 생명들과 직접 접하며 교화한다(接化群生).” 여기서 ‘포함’의 의미에 대해서 김동리의 형인 범부 김정설은, 단순히 삼교를 조화시키거나 절충한 결과가 풍류도라는 뜻이 아니라, 신라 고유정신인 풍류가 먼저 있고 그 안에 이미 중국의 삼교가 들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김범부 <풍류정신과 신라문화>). 한편 신학자 이정배 교수는 ‘포함’을 한국인들이 외래문명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라고 해석하였다. 달리 말하면 배제를 거부하고 조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 두 견해는 우리가 한국의 독특한 사상들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던져준다. 즉 ‘포함’이라는 말은 한 사람에게서 복수의 종교적 아이덴티티가 있을 수 있고, 그런 종교적 다원성을 가능하게 하는 사상적 풍토가 바로 ‘풍류’라는 것이다. 이 풍류는 우리 말로 하면 ‘멋’의 다른 말이고, ‘멋’의 의미는, ‘포함’이라는 말을 염두에 두면, 서로 다른 것들이 조화를 이룬 상태이다.
이 이질적인 것들의 조화로서의 풍류정신을 멋있게 실현시킨 인물이 바로 조선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다. 오늘날의 한국학계는 다산의 사상 체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놓고 크게 두 가지로 입장이 갈리고 있다. 하나는 그가 완전히 서학(=천주교)에 경도되었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근본적으로 유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즉 다산이 천주교에 더 경도되어 있었느냐, 아니면 유교에 더 가까웠는가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의 핵심에는 ‘상제’(上帝) 개념이 있다.
‘상제’는 지금식으로 말하면 ‘인격적인 신’으로, 공자 이전의 문헌인 『시경』이나 『서경』에서 자주 나오는 개념이고, 이후에는 16세기의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 천주교를 전파시키기 위해서 쓴 한문교리서인 『천주실의(天主實義)』에 ‘God’의 번역어로 채택된 개념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산이 『논어』에서 강조되는 ‘천(天)’이나 주자학의 핵심 개념인 ‘리(理)’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제(上帝)’를 선호한 것을 두고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하나는 원시유학으로 돌아가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천주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잠깐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즉 다산은 “유학자인가? 서학자인가?”라는 양자택일식의 물음에서 벗어나서, 최치원의 ‘포함’ 개념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다산은 유학과 서학을 아우르고자 한, 즉 어느 한쪽을 버리지 않고 서로 소통시키고자 한 사상가였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달리 말하면 다산에게는 처음부터 종교적 아이덴티티가 하나로만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복수로 존재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화랑들에게는 최소한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라는 세 개의 종교적 아이덴티티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사상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일제시대의 종교사가인 이능화의 『백교회통』(1912년)이다. “백교회통”이란 말 그대로 “모든 종교가 장애 없이 서로 통한다”는 뜻으로, 화엄불교식으로 말하면 “백교무애”(百敎無碍) 또는 “교교무애”(敎敎無碍=종교와 종교 사이에 장애가 없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능화가 종교 간의 회통의 가능성을 ‘하늘’ 개념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세계의 모든 민족종교는 다 하늘을 그 중심에 두고 있다”(悉皆以天爲主)고 하면서 종교 간의 회통 가능성을 설파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늘’이 종교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일종의 ‘마당’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정약용에게 있어 유학과 서학의 조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도 전통적인 ‘하늘’ 개념이 아니었을까? 다시 말하면, 다산은 유학의 ‘天’이나 서학의 ‘God’, 혹은 양자에 결쳐있는 ‘上帝’ 개념을 한국인의 ‘하늘’ 개념으로 회통시킨 것이 아닐까?
이러한 추측은, 한반도에 관한 최초의 공식적인 기록이 고대 부족국가들의 전국적 규모의 제천행사, 즉 모든 백성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하늘에 제사지내는 의식이었다는 점과 결부시켜서 이해하면 한층 설득력이 더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하늘은, 황제나 천자와 같은 한 사람이 독점하는 하늘이 아니라, 모든 이가 공유하는 가치이자 동시에 모든 이를 하나로 묶어 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학이라는 중국적 사상이 힘을 잃어가던 19세기에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사상을 기치로 내건 동학이 “서학과 동학은 모두 천도(天道)라는 점에서는 같다”면서 천주교와의 회통을 ‘하늘’ 개념에서 찾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능화가 종교사가의 입장에서 종교 간의 회통을 말하였다고 한다면, 바로 뒤에 나온 원불교는 실제로 종교 당사자의 입장에서 종교간의 융통을 실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원불교 재단인 원광대학교의 한복판에 인류의 4대 성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부터 추측할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정작 원불교의 창시자는 이 안에 들어가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원불교를 상징하는 ‘원’의 이미지는 이러한 서로 다른 종교들을 ‘포함’하는, 혹은 서로 소통하게 하는 하나의 ‘마당’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원’은, 이능화식으로 말하면 ‘하늘’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러한 사상 하에서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은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와 증산도의 창시자인 강증산을 모두 ‘개벽’을 설파한 선지자로 극찬하였다. 여기서 ‘개벽’이란, 글자 그대로는 “하늘과 땅이 열린다”는 뜻인데,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는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뜻으로 재해석하였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원불교가 종교 간의 대화에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한국사상사적 배경에서이리라.

하늘에 주목해야 할 때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한국사상사에서 ‘하늘’은 때로는 생명존중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하고, 때로는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전자의 예는 세종이나 동학에서 찾아볼 수 있고, 후자의 예는 동학이나 원불교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학의 ‘하늘’ 개념은 양자가 접해 있는 접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의 사상 형태가 기본적으로 공자나 노자 혹은 붓다로 대변되는 ‘성교’(聖敎=성인의 가르침), 혹은 이러한 성인이 설파한 ‘도교’(道敎=도의 가르침)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한다면, 한국의 경우에는 ‘천교’(天敎=하늘의 가르침)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건국신화인 단군이 천신의 아들이고, 동학의 다른 말이 ‘천도’이며, 동학을 비롯하여 일제시대에 탄생한 민족종교들, 가령 대종교나 증산교 혹은 원불교 등에서 모두 ‘천제’(天祭=하늘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은 ‘하늘’에 대한 한국인의 외경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표적인 유교경전인 『중용』 제1장에서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다”면서 도의 불가분리성을 강조하고, 서양의 대표적인 근대사상가인 파스칼이 『팡세』에서 “신과 함께하지 않는 비참함과 신과 함께하는 최고의 행복”을 논하면서 신과의 불가분리성을 설파하였다고 한다면, 한국의 퇴계는 “상제(=하느님)는 잠시도 떠날 수 없다”고 하였고, 동학의 최시형은 “하늘과 인간이 함께 하는 구조는 잠시도 떠날 수 없다”고 하면서 하늘과의 불가분리성을 설파하는 점은, 각 문명권 간의 좋은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중국의 ‘도’가 질서나 지침을 상징한다면 한국의 ‘하늘’은 생명과 포용을 의미한다. 하늘이 주는 애매모호함은 일신교처럼 배타적이지도 않고 유학처럼 위계적이지도 않으며 성리학처럼 이성 중심도 아니다. 하늘은 모든 종교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에 동화되지 않는 한국적 영성을 대변하는 말이다. 그것은 한국인이 추구한 공공성의 최종적인 근거이자 목표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인 윤동주의 『서시』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고 시작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이 ‘하늘’에 해당하는 일본어나 영어가 부재한다는 사실은 외래사상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한국사상의 독특성을 말해준다.
해월 최시형 선생이 이 시대를 살았다면 세월호 사태를 보고서 “하늘님을 죽였다”고 개탄을 했을 것이고, 이능화가 이 시대를 살았다면 타 종교를 거부하는 배타적인 종교인들에 대해서 ‘하늘의 상실’을 느꼈을 것이다. 사회 각층에서 공공성의 상실이 우려되는 오늘날, 우리 전통사상에서의 ‘하늘’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보면 어떨까?

* 이 글은 『월간공공정책』 119호(2015년 9월호), 한국자치학회, <공공단상> 78~82쪽에도 게재되었다.

관련









2022/10/26

이것이 K정신이다 : 연재 한겨레

[한겨레-플라톤아카데미 공동기획] 이것이 K정신이다 : 연재 : 뉴스 : 한겨레



[한겨레-플라톤아카데미 공동기획] 이것이 K정신이다
UPDATE : 2022-10-26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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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리스트
2] 하늘 품은 한민족의 흥과 정, 서양사상과 회통해 만물 살려
‘우리’라는 흔한 말의 힘, 다툼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줘
“사익과 자기 명리에 빠지면 결국 불심도 민심도 멀어질 뿐”
“대동사회 꿈꾼 공자의 유학, K인문의 틀 다져”
인문 사상 종교, 중국서 꽃 피고 한국서 열매 맺어
한류 ‘빅뱅’ 만든 한국인의 기질은 이것에서 왔다
한국인은 ‘회통’ 능력자…4차혁명 날개 달고 한류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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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빅뱅’ 만든 한국인의 기질은 이것에서 왔다

등록 :2022-06-07 18:16수정 :2022-06-08 02:32
조현 기자
 
[이것이 K-정신이다]
②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가무 즐기는 ‘무당열정’에 ‘인문학 교육’, 한류에 작용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두번째는 국제한국학회 회장이자 ‘한국문화중심’ 대표인 최준식(66)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미국 템플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1992년부터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한 최 교수는 이미 1990년대 중반에 국제한국학회를 설립한 데 이어 10년 전엔 한국 문화가 중심이 된 복합문화공간인 ‘한국문화중심’(K컬처센터)을 만들어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경복궁 옆 한국문화중심 사무실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그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을 경계한다. 종교학이나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기득권의 압력이 두려워 샤머니즘에 대해 애써 무시로 일관하는 것과 달리 샤머니즘, 즉 무기(巫氣)와 신기(神氣)야말로 한국인의 근본적인 기질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데서부터 이를 알 수 있다. 그는 샤머니즘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무속’이라는 용어 대신 ‘무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한국인의 주요 특질로 유교 인문학적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한 문기(文氣)와 무교적 신기를 꼽는다. 그는 <문기> <신기> <세계를 흥 넘치게 하라> 등 책을 통해 한류의 힘의 뿌리를 말해준다.

최 교수는 먼저 ‘한국인은 누구나 반쯤은 무당’이라고 본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를 때는 700만명이 거리로 나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온 국민이 금을 모으고, 관광버스에 타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네다섯시간 내내 날뛰고, 전국의 노래방에서 밤마다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 밤새 뛰는 무당을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무교는 과거엔 권력과 불교와 유교에 의해 변방으로 밀려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이들과 기독교인들에 의해 잡신 덩어리 정도로 폄하됐지만, 한국인은 무교를 한번도 버린 적이 없다”고 평한다. 대표적 유교 마을인 안동 하회마을 한가운데는 당산나무가 버티고 있고, 교회에서 하는 부흥회에서 30~40분간 노래만 하다가 결국 망아경(忘我境) 속에서 통성기도와 방언을 하는 것이 굿판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은 평소엔 자기 종교를 신앙하다가도 문제에 부딪히면 주저하지 않고 쉽게 무당을 찾는다는 것이다. 또 낮엔 유교 선비처럼 지내다가 밤이 되면 무당이 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화된 나라에서 무당이 여전히 20만~30만명이나 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름이 <무릎팍도사>와 <물어보살>이어도 생소할 게 없는 것은 무기가 우리 피에 흐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한류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류 뒤에는 문화적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한국이 최근에야 단군 이래 처음으로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주장에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한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전 한국외대 교수가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라는 책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은 서양인들에게는 미지의 땅이었지만, 삼국시대부터 17세기까지 세계 13대 선진국 가운데 하나였고, 한국이 후진국이었던 기간은 불과 100~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 인류사 최고의 문자인 한글을 만들고, 정보산업의 총아인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만들고, 오늘날로 치자면 하이테크급 기술로 고려청자를 만들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같은 세계 최고 최대의 기록문화를 남기고,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인문학을 익힌 힘이 있었기에 최단시일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대금을 불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국인이 가진 문기는 어디에서 왔나?

“조선의 인문학은 최고 수준이었다. 서당에 처음 가면 천자문부터 배운다. 이어 소학 같은 윤리서와 역사서를 배우고, 사서, 삼경, 주역까지 배우는 인문학적 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어디 있었나.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습격한 프랑스 군인들이 허름한 민가에도 집집마다 책이 있는 것을 보고 열등감을 괜히 느꼈겠는가. 한국인은 교육에 미친 나라다. 부처나 예수가 와도 교육열을 잠재울 수 없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나라가 됐고, 산업화와 민주화에 활용할 인재들이 나왔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인 아이큐(IQ)는 그런 교육열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무기의 열정에다가 브레인까지 더해졌다. 그러니 2011년 한국에 와본 워런 버핏이 ‘한국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고 한 것이다.”



―한국이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까지 이룰 수 있었던 힘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필리핀이 미국의 식민지였으니, 미국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주인공은 필리핀이 아니었다. 조선은 명나라나 청나라보다 더 우수한 통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체제 안에서 공식적으로 왕을 감시해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왕에게 직언할 수 있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통령 주변에 딸랑이들만 있는 현대보다도 최고 권력자에게 ‘아니되옵니다’ 하던 시대였다. 설사 왕이 받아주지 않아도 목숨을 걸고, 귀양을 마다치 않고 저항했던 정신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세계적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지구상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가장 이상적인 나라로 코리아를 들지 않는가.”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가 한류에 기여했다고 보는 이유는?

“한국인은 우리 집, 우리 딸, 우리나라라고 한다. ‘우리 남편’이라고 하지 ‘내 남편’이라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 ‘내 남편’이라고 하면 ‘너만 남편 있냐’고 비웃는다. 물에 빠져서도 개인주의인 서양인들은 ‘헬프 미’(나 살려)라고 하지만, 한국인은 ‘사람 살려’라고 한다. 한국인은 모임에서도 형, 동생처럼 가족 호칭으로 부르며 친족공동체화한다. 그런 가족 중심의 집단주의여서 한국의 아이돌도 연습생 시절 집단의 규율에 따라 그 힘든 훈련을 견뎌내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가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특징은?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게, 중국에서 압록강 하나만 건너면 언어와 말과 문자뿐 아니라 음식이나 옷차림이 달라지고, 특히 음악의 박자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통음악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은 기본적으로 4박자인데, 한국은 3박자다. 정원을 만들 때도 중국이나 일본은 철저히 인간의 손이 타게 인간 위주로 만들지만, 한국은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만들려고 한다. 뇌 구조로 비유하자면 일본은 좌뇌, 즉 논리적이지만, 한국은 우뇌, 즉 감성적이다. 일본의 전통음악계에서는 스승의 것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퇴출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판소리에서 ‘사진소리’, 즉 스승의 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한국인들의 핏속에는 자유분방함과 창조에 대한 희구가 있다.”



―한국인의 가장 주요한 기질적 특징을 무기와 신기로 본 까닭은?

“한국과 중국, 일본 동북아 3국은 유교와 불교를 공유하고 있다. 다른 것은 무엇인가. 중국은 도교, 일본은 신도, 한국은 무교다. 여기서 세 나라가 달라진다. 도교, 신도와 달리 한국 무교는 시종일관 노래와 춤을 종교의례로 삼는다. 외국인 제자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면 일본인들은 박수 치며 논다. 한국인들이 길길이 뛰며 노는 것을 보면 ‘저렇게 노는 사람은 한국 사람밖에 없다’고 놀라워한다. 유세 현장에서도 노래와 춤을 하지 않느냐. 월드컵 경기 때 집단적 망아경 속에 들어가 한국인들이 뿜어내는 열광적인 에너지를 보라. 그 무서운 신기가 지금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방탄소년단 슈가의 ‘대취타’ 뮤직비디오 장면.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한국인의 한국 문화에 대한 태도는?

“너무 모른다. 전세계인들이 한류에 열광하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한국 문화에 무지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오해를 시정해주지도 못한다. 방탄소년단(BTS)의 슈가가 ‘대취타’를 불러 전세계 아미들이 한국의 전통악기와 음악을 궁금해해도 국악을 모르니 설명을 못 해준다. 블랙핑크가 ‘하우 유 라이크 댓’이란 노래를 부르며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입고 춤을 추어 세계 팬들이 한복에 관심을 가질 때 한복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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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사상 종교, 중국서 꽃 피고 한국서 열매 맺어

등록 :2022-07-06 08:00수정 :2022-07-06
[이것이 K정신이다]
③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이선경 차기 주역학회장 부녀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과 이선경 차기 주역학회장 부녀.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세번째는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과 이선경 차기 주역학회장 부녀다.








이동준(85)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장 겸 유학대학원장,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장을 지냈고, 한국사상연구원 설립자이자 원장이다. 그의 집안은 한국 철학의 기둥이다. 부친 학산 이정호(1913~2004)는 ‘정역’(조선 후기 김항이 <주역> 원리를 독자적으로 이해해 주창한 역학사상) 연구의 일인자였다. 학산의 애제자이자 도반이고, 이 교수의 손윗동서인 류승국(1923~2011) 전 정신문화연구원장은 우리 문화의 원류인 동방문화를 밝힌 주역이었다. 이 교수의 딸 이선경(55) 박사는 대만국립정치대학에서 주역을 연구한 뒤 <한국주역대전> 편찬팀장을 거쳐, 차기 주역학회장으로 선임된 상태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과천에서 부녀를 만났다. 이 교수가 지어 40여년을 산 단독주택은 학산이 말년에 함께 머물고, 류승국이 자주 드나들던 집이다.

학산은 일제강점기 경성제대 법문학부 조선어과를 거쳐 의예과에서 의학도 공부한 수재였다. 해방 뒤 일석 이희승이 서울대에 국문학과를 재건하자며 그를 세번이나 찾아왔으나 응하지 않았다. 대신 계룡산에 들어가 3년간 정역을 만든 김항의 조카 덕당 김홍현으로부터 정역을 전수하였다. 그가 세상에 드러낸 정역은 조선의 패망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민족적 자존감이 꺾인 한민족에게 희망의 싹을 틔웠다. 우리나라가 세계 변화의 중심이 되어, 조화로운 화합 시대인 후천 시대로 세상을 이끈다는 정역은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국수주의자들의 뜬구름 잡는 소리쯤으로 치부되기도 했으나, 한국이 선진국이 되고 한류가 세계를 휩쓸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 교수는 사상과 문화에 대해 “중국에서 꽃이 활짝 핀다면 한국에선 열매를 맺는다”며 한국 정신을 ‘다양성의 조화’라고 결론짓는다.



정역 연구의 일인자였던 학산 이정호.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한국 사상은 오랜 세월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때로는 상반된 길을 달렸지만, 궁극적으로 이질성의 통합과 다양성의 조화라는 특징을 지녔다. 천지인 삼재라든가, 유불도 삼교를 포함한 풍류도 등 고대 정신에도 포용성과 통합성이 두드러진다. 또한 형이상의 정신과 형이하의 물질의 양면적 사고가 깔려 있으며, 어느 일면으로 기울어지다가도 다시 양면으로 통합하는 성격을 지닌다. 유불도(교) 모두가 이 땅에 들어온 뒤 그랬다. 한국 사상이 지향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명의 존엄과 인격의 존중이다. 그것이 한국인의 성격과 가치관의 중핵이다.”

그는 또 “한국인들은 평화와 인(仁·사랑)을 지향하면서도, 기질적으로는 의리를 중시하는 선비정신이 깊게 뿌리박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무사도 정신이 지배하고, 중국은 좋아도 싫어도 ‘하오하오’ 하며 원만한 군자를 지향한다면, 한국인은 백이숙제와 같은 의리학파가 뿌리내려 불의에 항거하는 선비정신이 강하다. 그래서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지만, 돈을 준다고 해서 반드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돈을 줘도 ‘누굴 거지로 아느냐’면서 돈을 내던지는 게 한국인이다. 학문을 하면서도 목숨을 내거는 게 선비다. 가치중립을 지향한다면서 누군가 자기 새끼를 죽이고 있는데도 ‘난 <중용>이나 읽을게’ 해선 선비라 할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중봉 조헌과 700명의 의사를 보라. 700명은 무사나 농부가 아니라, 모두가 선비였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싸운 것이다.”

이선경 박사는 “우리나라엔 경학 고문헌 가운데 역(易)에 관한 것이 가장 많을 정도로 고대부터 정신의 저류에 주역을 비롯한 역의 사유 방식이 흐르고 있었고, 근대에 정역의 등장으로 또 한번 사고 전환의 일대 계기를 맞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문일답이다.



1975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명륜당에서 류승국의 박사학위 수여식 때 학산 이정호와 류승국 전 정신문화연구원장.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한국 철학에 역이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고 보는 까닭은?

이선경(이하 경) “한국, 한국인의 사유 방식에서 역학적 사고방식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훈민정음과 태극기를 봐도 그렇다. 류승국은 갑골문을 통해 상고대 동이의 ‘인방족’과 ‘어질 인(仁)’이 한국사상문화의 시발점이라고 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어질 인(仁)’의 인도주의는 단군신화, 최치원 풍류도, 성리학의 태극, 훈민정음, 동학의 인내천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정역에서는 황극이라는 인간론으로 점을 찍었다. 중국에서 황극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표준이었지만, 정역이 말하는 황극은 보통의 인간이 절대주체로 선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18째 아들인 담양군의 13대손인 연담 이운규로부터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남학 창시자 광화 김치인, 일부 김항 세분이 동문수학했다고 하는데?

이동준(이하 준) “연담이 세분을 불러서 이걸 하라고 했다기보다는 최제우는 선도를 중심으로 법을 펴고, 김치인은 불교를 중심으로, 김항은 유교를 중심으로 법을 펴는 특별한 사명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진실은 다 알 수 없다. 연담은 실학자 이서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2006년 ‘학산 이정호와 정역’에 대해 학술 발표를 하고 있는 류승국.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정역은 어떻게 공부를 했나?

준 “학산과 도원(류승국) 등 8~9명이 계룡산 향적산방에 모여 밤엔 영가(음·아·어·이·우 노래)를 하고, 무도(춤)를 했다. 무도를 하다 신명이 나면 튀어 오른다. 영가 무도를 하면 동물과 자연물도 감응한다고 했다. 영가를 하면 그 소리를 들은 호랑이가 찾아왔다가 사람이 눈에 띄면 휙 사라진다고 했다. 겨울에 나가 보면 눈 위에 큰 발자국이 있었다.”

―정역이란 무엇인가?

준 “김항이 36살 때 연담 이운규에게 화두를 받고 54살에 정역의 세계를 깨쳤다. 복희 문왕 팔괘는 봄여름, 정역은 후천 시대인 가을 결실기를 제시한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간방(艮方)이 정역에서 중심이 되면서 간방 중심의 세상이 열리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봄여름 성장기엔 경쟁이 심해 모순이 대립해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다툼이 없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어른이 된다. 그런 여름이 가야 가을이 온다. 진(팔괘의 ‘震’, 현실에선 중국)이라는 것은 번성하고 화려하게 드러난다. 정역에서 보면 중국이 꽃이라면 우리나라는 열매다. 중국에서 핀 꽃들이 여기에 와서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다.”

―단군 이전 ‘구이’족이 가진 동방문화의 기반에서 유불도와 기독교까지 받아들여 통합했다고 했는데?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이 부친인 학산 이정호가 역의 원리로 밝혀낸 훈민정음의 원리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준 “강자가 약자를,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억음존양(抑陰尊陽)의 모순과 갈등을 극복함으로 말미암아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정역에서는 조양율음(調陽律陰, 음양의 조화)의 시대가 온다고 봤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음의 시대가 지나면 양의 시대가 도래한다. 고려 시대엔 가요와 문학이 발달했다. 조선 시대는 고려의 문화예술을 당하지 못했다. 반면 고려는 조선 시대의 철학을 당하지 못한다. 고려는 악이 발달했고, 조선은 예가 발달했다. 고려 말에 자유로움이 심해져 너무 문란해지니 조선 시대는 예법으로 다스린 것이다. 그러자 학문·철학은 발달했지만 부드러움은 사라졌다. 다시 뼈에 살을 붙여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음악, 무용, 연극 등 예체능이 보완되어야 영육쌍전(정신과 육신의 균형 있는 발전)으로 온전해진다.”

―학산이 말한 훈민정음의 핵심은?

준 “훈민정음 해례본 제자해(制字解)에 ‘천지의 도는 하나의 음양오행일 뿐’이라고 했다. 해례본은 역리와 성리학으로 설명되니 언어학만으로 해명이 어렵다. 1940년대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엔 훈민정음의 원리를 알 수 없었다. 1970년대 초 국립중앙도서관이 세계에 알릴 첫번째 우리 책으로 훈민정음을 정한 뒤 이창세 관장이 국문학자들을 찾아다녀도 역학을 모르니 제대로 해설할 수 없었다. 그러자 일석 이희승이 대전으로 학산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훈민정음의 구조 원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정음 글자에는 음양, 오행, 천지인 삼재 그리고 하도의 원리가 들어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뿌리 깊은 인도주의 정신 및 영육쌍전 사상이 뼈대가 되는 원리가 담겨 있다.”



2019년 미국 캔자스대학에 방문교수로 간 이선경 박사가 한국 사상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태극기의 원리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경 “류승국이 ‘우주 만유의 근원이 태극인데, 내 주체가 남의 주체이니 남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한 것은 기초적인 설명이다. 태극 모양은 동지부터 하지까지 밤낮 길이의 변화를 말한다. 45도 각도로 줄어들고 늘어나는 비율을 그리면 자연의 리듬을 따른 태극 문양이 된다. 태극 문양은 우리 고대부터 있었다. 태극을 중국 것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음악에서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기본적인 틀이지 피타고라스가 만들었다고 그리스 것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역도 보편적인 사유의 틀이다. ‘기원이 어디냐’보다 그것이 우리 삶 속에서 무엇을 변화시키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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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사회 꿈꾼 공자의 유학, K인문의 틀 다져”

등록 :2022-08-03 
조현 기자
[이것이 K-정신이다] ④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


한학자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네번째는 김언종(70)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다.




한글전용이 대세를 이루고 한자는 갈수록 읽을 기회조차 줄고 있다. 그러나 한자는 여전히 지울 수 없다. 국회에서도 이모(이아무개)를 이모(어머니의 자매)로 혼동하는 일이 벌어질 만큼 한자를 모르면 여전히 언어 소통에 장애가 크다. 전국의 지명과 산과 강이 하나같이 한자 뜻으로 이뤄졌고, 이름도 한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수천년 역사와 고문헌, 문학도 절대다수가 한자 기록문이다. 한자와 유학을 두 다리 삼아 살아온 김언종 교수를 지난달 26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서재 도가재(道可斎)에서 만났다. 도가재는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인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공자를 꼽을 정도로 천생 유학도다. 한국고전번역학회 회장과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평생 한문을 업으로 삼은 그는 <한자의 뿌리>, <한자어 의미 연원사전> 등의 저서와 <한자의 역사>, <역주 시경 강의>, <혼돈록> 등의 역서를 낸 한학자다.

하지만 왕십리역 부근의 오피스텔에 자리한 서재에서 전자칠판을 비치해놓고, 멋진 모자를 쓴 채, ‘한잘알’이란 유튜브도 혼자 운영하며 현대식으로 한자 공부를 하길 그는 권한다.

“여전히 국어사전도 70% 이상이 한자어다. 가령 분수나 대수, 기하학 같은 수학 용어들도 한자를 알면 이해가 빠르다. 한자를 모르면 뜻은 모른 채 소리만 따라 하는 앵무새가 될 수 있다.”

그는 “한문 뜻글자는 칡뿌리처럼 곱씹으면 씹을수록 진국이 우러나기에 철학적·인문학적 사유를 깊게 해서 샤머니즘 감성에 치우친 한국인의 감성적 기질을 이성적으로 보완해주었다”며 “산골까지 서당이 생겨 당대 유럽보다 오히려 지식층을 두텁게 해서 케이(K)인문의 틀을 다져주기도 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를 한자나 유학 근본주의자로 알면 오해다. 그는 유학의 본고장 안동 출신이면서 다산 정약용이 변화를 거부한다며 칭했던 ‘안동답답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는가 하면, 유학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김언종 교수의 서재인 도가재 편액. 김언종 교수 제공―우리에게 유학은 무엇인가?

“유학이 2000년간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교 국가인 조선시대의 식자들은 3경(시경·서경·역경)까지는 다 능숙하게 알지 못해도, 사서(논어·맹자·중용·대학)를 안 읽은 사람은 없었다. 공자는 차별 없이 남을 자기처럼 아끼는 살 만한 대동사회를 만들려고 했다. 공자의 생활철학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실천만 한다면 계층 차이와 상대적 빈곤, 전쟁 같은 세상의 문제가 일거에 해소된다. 그러나 유학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고급 공무원들과 국민의 20% 정도 되는 양반들의 이념에 머물렀다. 조선시대 백성의 40~50%는 노비나 상민이었는데, 차별받는 이들이 유학을 좋아할 리 없었다. 공자는 대문 밖에 나가면 모든 사람을 귀빈으로 대하라고 했다. 그가 ‘똥 푸는 사람’이어도 말이다. 백성들을 부리더라도 황제가 제후를 대하듯 하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중봉 조헌을 비롯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노예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다. 한양에서 벼슬을 하면 통상 200~300명의 노비를 거느렸다. 다산 정약용조차 <목민심서>에서 ‘민란을 쉬 진압하지 못하는 것은 노비 숫자가 적기 때문’이라고 했을 정도다. 아버지가 양반이더라도 어머니가 천한 신분이면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도록 한 종모법을, 서얼 출신인 영조가 종부법으로 바꿔 양반인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게 한 뒤 노비가 적어져서 민란을 진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임진왜란도 지도층들이 싸운 것이 아니라 서애 류성룡이 꾀를 내어 노비들에게 면천을 시켜주겠다고 구슬려 노비들을 동원해 극복한 면이 있는 것이다.”

―유학은 왜 제사와 문화엔 남았지만 국민들의 마음에서 멀어졌나?

“조선시대 유학의 영향은 고급 공무원과 양반들에게만 해당됐다. 조선의 지배자들이 공자의 뜻을 거슬러 노비와 상민, 서얼, 여성을 차별하고, 자기들만이 부와 권력을 독차지하는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오히려 무속과 무속화한 불교에서 위안을 얻었다. 사마천의 <사기>의 ‘공자세가’를 보면, 야합이생(野合而生)이라고 했다. 70살 가까운 아버지 공흘과 10대 후반의 어머니 안징재가 야합, 즉 정상적인 혼인이 아닌 관계를 가져 공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공자야말로 처는커녕 첩의 자식도 못 된 셈인데, 공자를 하늘처럼 받드는 사람들이 그렇게 차별을 자행했으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유튜브 ‘한잘알’에서 논어를 강의하고 있는 김언종 교수. 유튜브 ‘한잘알’ 갈무리―공자의 유학이 왜 변질되었나?

“공자는 휴머니스트이자 유머가 풍부한 분이었다. 그런데 주자는 강력한 불교를 밀어내기 위해 공자를 석가모니와 같은 절대적 초월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공자의 부드러운 유머를 지우고, 의도적으로 공자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공자의 제자였던 자로와 번지마저 희화화시키기도 했다. 빈천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지만 공자는 가난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며 안빈낙도를 권했다. 그런 실천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여섯번이나 했으며 훗날 다산이 ‘청백리의 표상’이라 칭송했던 오리 이원익은 ‘물질은 남에게 양보하고, 정신적인 것을 가져라’ 하며 이를 실천했다. ‘힘든 일엔 앞장서고, 나눠 먹을 때는 뒤에 서라’는 공자의 말씀을 실천한 것이다.”

―다산을 비롯한 탁월한 인물들이 실학을 주창했는데 조선은 패망했다. 한국실학학회 회장도 한 다산 전공자로서 이를 어떻게 보는가?

“노론과 남인 집권세력에서 소외된 이들이 실학파와 이용후생학파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히 소외돼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 시대를 극복해보려 애를 썼지만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쳐 변화의 동력이 되지 못했다. 성호 이익의 책도 출판조차 되지 못하고, 다산의 책이 출판된 것도 1930년대에 와서였다.”



한학자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조선 패망 이유를 어떻게 보는가?

“견제세력이 없으면 나라가 힘들어진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아무리 바른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으니 속이 터져서 49살에 돌아가신 것인지도 모른다. 훌륭한 인재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왔어도 그걸 활용 못하니 국란을 맞은 것이다. 서인 가운데 노론들이 막 나갈 때 젊은이들이 소론을 만들어 견제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이미 숙종 때부터 막 나가 더 일찍 망했을 수 있다. 영조·정조 때까지는 그나마 당파가 있어 견제가 됐다. 뱀눈은 앞만 보지 위와 옆을 못 본다. 순조 때부터는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의 세도정치로 견제세력이 사라져 뱀눈들이 지배했다. 일제 식민사관이 가르친 대로 당파싸움 때문에 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다. 왕 앞에서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했던 선비 정신이 사라지고, 당파와 견제와 비판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뱀눈들이 전횡을 일삼다가 망한 것이다. 나도 아내가 견제하지 않았으면 좋아하는 막걸리만 마시다가 몸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시대에도 한자가 필요한가?

“한 정치인이 무운을 빈다고 한 것을 두고, ‘승리하기를 빈다’가 아니라 ‘운이 없기를’이라고 해석해 웃음을 산 적이 있다. 한자 뜻을 모르면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안 쓰고 사물을 보는 것과 같다. 한자 뜻을 알면 기미독립선언서를 한글로 읽어도 뜻을 알 수 있지만 한자를 모르면 읽을 줄 알아도 그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일본이 중국과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데도 왜 한문을 함께 쓰겠는가. 우리도 한자를 2000자만 알면 나머지는 유추해서 알 수 있어서 그 유익함이 무궁무진하다. 세종대왕이 말한 ‘어린 백성’ 즉 ‘어리석은 백성’이 되지 않으려면 한자를 알 필요가 있다. 한자는 2000년 이상 우리나라에서 국어 구실을 했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 세계 속에 한자는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한국인들이 ‘음주가무’에 능한 기질대로 영화와 드라마, 케이팝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만약 한자 공부를 해 깊이를 더한다면 철학과 문학 면에서도 세계적으로 드날릴 수 있을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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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익과 자기 명리에 빠지면 결국 불심도 민심도 멀어질 뿐”

등록 :2022-08-31 08:00수정 :2022-08-31 09:28
조현 기자
[이것이 K-정신이다] ⑤ 40여년째 은둔 수행중인 현기스님

눈도 막고, 귀도 막고, 마음이 목석이 될 만큼
진심을 가지고 일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일념이 중생의 병을 낫게 합니다.
누가 누구를 시킬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승려들까지도 약자들을 패대기치고,
힘 있는 사람에게만 붙는 것은 왜일까요?
돈 없고 권력 없는 그 민심이 곧 불심인데.

지리산 상무주암 현기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다섯번째는 지리산 상무주암에 40여년째 은둔 수행 중인 현기(82) 스님이다.






경남·전남·전북 3도 800리에 걸쳐 있는 지리산은 예부터 금강산·한라산과 함께 신의 거처인 삼신산의 하나인 민족의 영산으로 꼽힌다. 국립공원 1호이기도 하다. 지리산은 태초의 여신인 마고할미의 전설을 품고 있다. 천왕봉엔 마고할미를 모신 성모사가 있고, 노고단은 마고할미에게 매년 제사를 지낸 곳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다름을 아는 산’(지리산·智異山)이란 이름처럼 동과 서, 호남과 영남이 함께 어우러지고, 다른 종교·사상까지 품는 어머니 산이었다. 불교에서는 지리산을 지혜의 상징인 대지문수사리보살의 줄임말로 여기고, 문수보살이 1만 권속을 거느리고 상주하는 이 산에 깃들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롭게 된다고 믿는다.



상무주암에서 보이는 지리산. 조현 종교전문기자

그러나 어찌 지리산뿐일까. 전국 곳곳의 명산엔 하늘과 도(道)가 통하기 위해 심산유곡에 은거하며 치열하게 수도한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반도는 그야말로 어디나 수도처였다. 그래서 불교학자이기도 한 문광 스님은 한반도의 풍수를 수도자가 좌선하는 모양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육체적·현실적 쾌락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 일하고 전쟁하는 데 쓰는 에너지 이상으로 하늘과 자연과 소통하며, 정신적 깨달음을 위해 심혈을 쏟는 수도자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곳은 우리나라 말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뭇별처럼 많은 이들이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은거하며 수도했던 지리산에서 현대에 들어 가장 오랫동안 은둔하며 수행한 자가 머문 곳이 해발 1100m 고지 상무주암이다. 지난 4일 현기 스님이 홀로 40여년을 지낸 상무주암에 오르는 길은 설렘이 고행으로 바뀌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백무동 계곡을 거쳐 마천면 삼정리에서 상무주암에 오르는 직선 길은 시종일관 급경사다. 음식물이 귀한 심산에서 수행하는 노승을 위해 음식을 메고 가다 보니, 경사는 덜하지만 멀다는 영원사 뒷길을 택해 올랐다가 조난을 당할 뻔했다. 때마침 장맛비까지 만나 천신만고 끝에 상무주암에 도착했다.



현기 스님의 참선 정진하는 모습. 조현 종교전문기자

“스님은 어찌 이런 곳에 머물러,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합니까.”

중생의 푸념에, 현기 스님은 “스스로 그런 것을 난들 어찌하겠는가”라고 껄껄 웃으며, 지리산 같은 품으로 맞는다. 암자의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약수가 중생의 갈증을 녹인다. 갈증과 갈애가 깊지 않다면 어찌 이토록 시원한 감로수를 맛볼 수 있을까.

“한번 (깨달음이) 확연하면 다시 어두워지지 않는데, 어찌 다시 어두워진 것입니까?”

현기 스님이 죽비를 날린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상무주암에 올라온 사람 가운데 이렇게 산을 몇번이고 오르락내리락한 이는 처음이라는 것이고, 더구나 16년 전이긴 하지만 두번이나 왔던 길을 이토록 헤맸으니, 죽비가 아니라 몽둥이라도 맞고 정신을 차려야 할 터였다.

“백일청천(白日靑天·밝은 해가 비치고 맑게 갠 푸른 하늘) 대낮에 꿈을 꾼 것이 아닙니까.”

“원래 누구나 청정한 법신(法身·진리의 몸인 붓다)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번뇌망상에 물들어 미망으로 헤맬 수 있습니까?”

“지금 그대에게서 나는 그 소리, 그 소리엔 아무런 때가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꿈을 꾼다면, 어떻게 그 꿈에서 깰 수가 있습니까?”

“눈만 뜨면 됩니다.”

“대낮에 눈을 뜨고도 현혹돼 코 베이는 게 중생의 미망 아닙니까.”

“그렇게 눈을 뜨고도 꿈을 꾸는 사람은 눈을 막아야 합니다. 큰 절에 가면 차안당이 있는데, 차안(遮眼)이란 ‘눈을 막는다’는 뜻입니다. 눈도 막고, 귀도 막고, 마음이 목석이 될 만큼 염불이나 화두를 진심을 가지고 일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일념이 중생의 병을 낫게 합니다.”



상무주암 한쪽에 있는 삼층석탑. 조현 종교전문기자

현기 스님이 40여년 전 이곳에 홀로 올라와 일체의 세연을 끊고 정진한 것도 눈과 귀를 막고 일념 정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상무주암 마당 한쪽엔 조그만 삼층석탑이 있다. 현기 스님이 고려 고종(1192~1259) 때 각운 스님에 관한 설화를 들려준다.

각운 스님이 이곳에서 선서(禪書)인 <선문염송설화> 30권을 쓸 때다. 이 고지에 올라올 때 가져온 붓이 다 닳아 더는 글을 쓸 수가 없었는데, 한겨울 눈이 내려 산에서 내려갈 수도 없었다. 그때 족제비 한마리가 마당에 와서 열반했다. 그 족제비를 묻어주고, 그 꼬리를 붓으로 삼아 명저를 완성할 수 있었다. 각운 스님이 설화를 완성하자 붓 끝에서 물방울처럼 사리가 떨어져 내렸다. 삼층석탑은 그 ‘필단(筆端)사리’를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정신을 한곳으로 모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음)을 말해주는 설화다.

상무주(上無住)의 상(上)은 부처도 발을 붙일 수 없는 경계요, 무주는 머무름이 없다는 뜻이다. 상무주암 마루에 앉아 스님과 문답을 나누는 사이 ‘지혜의 나툼’ 반야봉 위로 구름이 흘러간다. 법신이란 상(相)에도, 번뇌망상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푸른 하늘에 허공법계가 열린다.



현기 스님이 손수 개간해 가꾼 밭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국 불교의 상징 같은 존재인 고려 보조지눌국사는 상무주암에서 수행해 깨달음을 얻고, 이곳을 ‘납승귀납처(衲僧歸納處) 천하제일갑지(天下第一甲地)’라고 했다고 한다. 누더기를 입은 청빈한 이가 수도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현기 스님도 손수 산을 개간해 공양하며 살아왔다. 그 신산한 삶을 나뭇등걸 같은 손이 말해준다. 그사이 밖은 몰라볼 정도로 변했지만, 이 깊은 산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처음 올라왔을 때만 해도 아침이면 눈밭에서 무슨 동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큰 발자국이 발견되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발자국은 사라지고 오소리와 족제비만 남았다. 두번은 지리산에 방사한 곰이 공양간 문을 열고 들어오고, 어느 때는 노루가 자주 밭을 헤집어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날 낮엔 모처럼 진주에서 상무주암을 찾은 두쌍의 부부가 스님이 만들어 평생 가꾼 경사진 밭에 울타리를 두르는 울력을 했다. 노동한 불자들의 중노동을 위로하는 기자의 말을 옆에서 들은 스님이 말했다.

“나무 천수천안관자재로다. 관세음보살님은 천수천안, 즉 손이 천개고 눈이 천개여서 관자재(세상 모든 것을 잘 보살핌)라고 합니다. 다 자기 얼굴에 자기 눈, 자기 귀, 자기 손발을 가지고 관자재하게 일하는 것이니, 누가 누구를 시킬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지리산 상무주암 현기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이제 그도 중노동이 힘에 부치는 노승임을 부인할 길이 없다. 그는 꽃이 피면 꽃이 피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좋았지만, 지금은 눈이 녹고 봄 햇살이 비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신만은 여전하다. 상무주암의 수행자들은 새벽 2시면 모두가 깨어난다. 새벽 3시면 3배로 간략히 예불을 마치고, 선(禪) 수도처답게 누구나 참선한다. 홀로 있으나 함께 있으나 변함없는 수도승의 일상이다. 2시간의 새벽 참선을 마친 뒤에도 여전한 어둠 속에서 뭇별들을 조우할 수 있다.

“바깥세상에서는 이익과 명리를 위해 달리는데 스님은 왜 이토록 오랫동안 척박한 곳을 지킨 것입니까?”

“지킨 것도 아니고, 오랜 것도 아니고, 별로 할 게 없고, 쓸모 없는 중이다 보니, 그런 게지요.”



지리산 해발 1100m 고지에 있는 상무주암. 조현 종교전문기자

그러나 어떻게 안과 밖이 둘이겠는가. 보조국사는 상무주암에서 견성한 뒤 무신 집권과 몽골의 침략으로 극심한 사회혼란과 타락한 불교를 극복하기 위해 하산해 불교혁신운동인 수선결사를 결행했다.

“정치인과 언론인뿐 아니라 승려들까지도 약자들을 패대기치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에게만 붙는 것은 왜일까요?”

그 물음 속에서 뭇 중생들에 대한 관심과 연민까지 거둘 수 없는 은둔승의 마음이 전해진다. 그는 “돈 없고 권력 없는 그 민심이 곧 불심”이라며 “사익과 자기 명리에 빠지면 결국 불심에서도 민심에서도 십만팔천리 멀어지게 될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더구나 “이제 시공을 넘은 과거·현재·미래와 9만리 먼 곳이 이 휴대전화 하나에 다 담긴 이치를 수천년 전부터 화엄경이 다 설파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 본마음인 보광명지(普光明知·널리 퍼진, 빛과 같은 밝은 앎)를 깨달으면 굳이 수만리 밖에 나가지 않아도, 시공간이 자기 손안에 있음을 안다는 것이다. 은둔 암자와 도시, 번뇌망상과 깨달음,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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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흔한 말의 힘, 다툼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줘

등록 :2022-09-28 
조현 기자 
[이것이 K-정신이다] ⑥ 이기동 전 성균관대 대학원장

이기동 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여섯번째 성균관대 유학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낸 이기동(71) 교수다.


이기동 교수는 성균관대 유학과와 대학원을 마치고,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공부한 뒤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대만 국립정치대학과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그는 최근 <유학 오천년>(성균관대학교출판부 펴냄)을 정리해 5권의 책을 펴냈다. 이 방대한 저술은 동국 18현 중 한 사람인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하서재단의 김재억 감사가 “재단이 뒷받침해줄 테니 ‘유학 오천년’을 총정리하는 집필을 해달라”고 부탁해서 이뤄졌다. 하서재단이 수많은 유학자 가운데 그를 선택해 중국·한국·일본·베트남의 유학사상과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게 한 것도 의미 있지만, 이 ‘유학 오천년’의 출현은 새 시야를 열어주는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유학이 중국의 학문이라는 관점을 되풀이하기보다는, 한민족이 유학과 동양학의 주체라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있다. 특히 그는 동아시아 가치의 주축인 유학의 발원이 중국이 아니라 고대 동이족이 살던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미 3년 전 <환단고기> 해설서를 펴낸 바 있다. 단군을 비롯한 한민족의 고대 역사와 철학을 담은 <환단고기>는 주류 사학계가 위서라며 금기시해서 학자들이 언급하고 싶어도 사이비 학자로 찍힐까 두려워 언급하기를 꺼리는 책이다. 그런데도 대표적인 동양철학자 중 한명인 그가 책까지 펴낸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그의 성정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자신도 남의 말만 듣고 금기시하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환단고기>를 제자들과의 공부 모임에서 우연히 함께 읽으면서, 그동안 수십년간 학자로서 풀리지 않던 유학과 철학의 의문들이 단박에 해소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한민족 고대 철학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국인의 정신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사람을 인자(仁者·어진 이)와 지자(知者·지혜로운 이)로 분류하는데, 둘은 삶의 원리가 다르다. 애초 한국인은 인자다. 인자는 본질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을 만났을 때 ‘너다, 나다’ 분리하지 않고, ‘우리’라는 말을 쓴다.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아니까. ‘사랑한다’도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고 하지 않고 그냥 ‘사랑한다’고 한다. 왜 ‘아이’와 ‘유’를 생략하는가. 사랑하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반쪽을 만나면 ‘반쪽 같다’는 의미로 ‘반갑습니다’라고 한다. 인자와 달리 지자는 ‘나는 나, 너는 너’로 철저히 상대와 나를 분리한다. 철저하게 ‘나는’을 강조한다. 이들은 남남끼리 사니, 기본적으로 삶이 경쟁이다. 따라서 물질적으로는 발전하고, 서로 이기려고 무기도 개발해 발전하지만 너무 경쟁만 하고, 서로 멀어지다 보니 외로워진다. 모두를 ‘하나’로 보는 우리와 달리, 각각 남남이라고 하면 열명이 모이면 10분의 1, 100명이 모이면 100분의 1, 70억명이 모이면 고작 70억분의 1이다. 그러니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을 별로 문제시하지 않는다. 또 남남은 마음보다 몸 중심이다. 따라서 배가 고플 때는 내 몸 챙기려 열심히 사는데, 배가 부르고 넉넉해지면, 잠깐 살다가 마는 몸이란 존재에 대해 허무주의에 빠진다. 그러면 외로움을 못 견디고 마약 중독자가 되기도 한다.”



이기동 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그는 <오징어 게임>이나 <수리남> 같은 드라마나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같은 아이돌 등 한류가 뜨는 배경에는 이런 한국인의 독특한 ‘우리 정신’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인은 본래 ‘하나’와 ‘우리’라는 의식이 강하다. 어질 인(仁)을 보면 ‘두 사람’이란 뜻이다. 미국이나 일본·중국에서 지내봤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술 생각이 나면 혼자 술집에도 가고 식당에도 간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원래는 좀체 홀로 안 가고 함께 갈 친구를 찾는다. 한국 드라마에선 사랑하는 사람이 위기에 빠지면 목숨을 던지곤 한다. <미스터 션샤인>(tvN)을 보면 한 여자를 세 남자가 사랑하는데, 한 여자를 위해 세 남자가 모두 목숨을 바친다. 그런데 남자들이 죽는 장면을 보면 그들은 행복해하며 죽는다. 이를 보면 나도 저런 사랑 한번 받아 봤으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남남끼리 경쟁과 다툼에 지친 세계인들에게 이처럼 하나 되는 사랑은 열망을 불러온다.” 다음은 이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통상 한국인을 ‘한’(恨)의 민족이라고 하는데, 그 한은 외침을 많이 당해 생긴 것이라는 설이 많은데 그런가?

“중국에 <독단>이란 책이 있는데, 그 책에 ‘천자’(天子·하늘의 아들)라는 말은 이적(夷賊·오랑캐)에서 나왔다고 되어 있다. 오랫동안 동이족에게 뒤처졌다가 전성기로 나아가던 중국인들은 동이족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동이족을 오랑캐로 낙인찍었다. 그런데 동이족은 모두가 다 천자라 칭했는데, 중국에선 황제에게만 갖다 붙였다. 목은 이색은 ‘천인무간’(天人無間·하늘과 인간 사이엔 간극이 없음)이라고 했고, 퇴계 이황은 천아무간(天我無間)이라고 했다. ‘하늘과 나 사이엔 간격이 없다’는 뜻이다. 동학은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했다. 이처럼 내가 하늘인데 현재 이 모양이라면 원래 하늘 모습을 회복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렵다. 그것이 한으로 나타나 수양을 철저하게 해서 본래 모습을 회복하려고 한다. 우리 문화는 한을 푸는 한풀이 문화다. 서양 문명에 물들어 돈을 벌고 권력을 쥐어야 한이 풀릴 줄 알고 치열하게 열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의 한은 그렇게 해서 풀리지 않는다. 한국인의 한은 우리가 하나라는 본질인 한마음을 회복해야 풀린다. 그것이 원효의 ‘일심철학’이고, 퇴계와 수운의 철학이기도 하다.”




―주류 사학계가 인정하지 않은 <환단고기> 해설서를 낸 이유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을 성이라 함)은 주자학의 핵심인데 <환단고기>에서는 하늘의 마음을 성이라 하고, 이것은 ‘살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즉 하늘은 만물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보다 명쾌한 말이 있는가. 만약 위서라면 누구나 다 아는 말을 뒤집을 수 없다. 너훈아는 나훈아와 비슷하게 노래를 부르지 전혀 다르게는 안 부른다. <환단고기>를 너무 국수주의적으로, 고토를 회복하자는 민족주의적 시각으로만 본 이들 때문에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의심받게 된 측면이 있지만, <환단고기>는 민족을 넘어 드넓은 철학을 담고 있다. <환단고기>에서 너무나 놀라운 철학들을 계속 발견하게 되면서, 왜 남의 말만 듣고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가 학자로서 참회를 했다. 기독교를 욕하는 사람들 가운데 4복음서도 안 읽어보고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논어>도 안 보고 유교를 욕하는 분들도 있다. 적어도 학자라면 한번 읽어보고 비판도 해야 한다. 예컨대 추사 서책이 새로 나와 종이 감정사가 보고 추사 때 종이나 먹이 아니니 가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예가가 보니 추사 글씨가 틀림없다. 그래서 상세히 살피니 쥐가 갉아먹은 부분을 후대에 덧대기도 했다는 것이 판명될 수 있다. 따라서 추사 글씨를 감정할 때는 종이나 먹 감정사가 아니라 서예가의 감정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환단고기>도 그동안 철학자가 감정하지 않았다. 철학적으로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환단고기>를 보고 나서는 한국인이 더 위대하게 보인다. ‘이런 위대한 철학을 가진 민족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현대 지구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이다.”

―보통 현대인들에게 학문이란 지식을 쌓는 것이라고 할 텐데, 마음공부라고 보는 까닭은?

“몸 중심, 마음 중심의 세상이 반복되는데 서구 근세 철학이 세계를 지배한 뒤로는 몸이 중심이 됐다. 하늘 마음을 부정하고, 인간의 마음이 몸속에 있다고 규정하면, 너와 나의 마음은 몸이 다르니 달라져 버린다. 하나가 아니다. 그래서 상대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표현을 해야만 한다고 한다. 몸이 다르니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욕심을 채우려고 하니 다투게 되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전개된다. 그래서 규칙과 법을 만들고, 지식을 쌓아 싸움에 대비한다. 그러나 행복하지가 않다. 결국 불행에서 나오려면 마음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욕심도 있지만 본래 마음, 하늘 마음, 세상 전체를 하나로 여기는 우리라는 마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 본래 마음을 회복하는 마음공부야말로 진정한 학문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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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품은 한민족의 흥과 정, 서양사상과 회통해 만물 살려

등록 :2022-10-26 07:00수정 :2022-10-26 07:24
조현 기자 
⑦ 이정배 목사. 이은선 명예교수 부부

강원도 횡성 현장아카데미에서 이은선·이정배 교수 부부.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일곱번째는 이정배(67) 목사(전 감신대 교수)와 이은선(64) 세종대 명예교수 부부다.




지난 17일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갑천로 760번길 깊은 산골 현장아카데미를 찾았다. 부부 신학자와 인연이 깊던 류승국(1923~2011·전 정신문화연구원장) 교수가 작명한 ‘현장’은 주역 계사전의 현저인(顯諸仁) 장저용(藏諸用)에서 따온 말로, ‘천지의 도는 일상의 쓰임 속에 감춰져 있어서 사람들이 매일 쓰면서도 알지 못하고, 인(仁)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의 진리만을 내세워 다른 주장들을 배척하며 갈등하지 않고, 사람과 삶과 자연의 도와 조화하기 위한 신앙과 학문을 지향하는 곳이 바로 현장아카데미다. 부부가 현직에 있던 20여년 전 화전민이 살던 집과 땅을 인수해 주말마다 땀 흘려 개간하고, 나무를 심어 단장한 이곳은 수도원 문화가 부족한 개신교의 옹달샘이 될 만하다.


이정배 교수는 감신대 교수와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장, 한국조직신학회장, 한국문화신학회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장직을 역임했다. 이은선 교수는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여성신학회 회장, 한국유교학회와 양명학회 부회장을 거쳤다. 부부는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알베르트 슈바이처를 계승한 프리츠 부리 교수의 지도로,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를 공부한 변선환·신옥희 부부의 뒤를 이어 기독교와 유교의 대화를 공부했다. 따라서 윤성범(1916~80)과 변선환(1927~95)이 연 토착화 신학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미의 보수 신학이 이식돼 주류를 형성해 전세계에서 가장 배타성이 높은 한국 개신교 풍토에서 ‘열린 신학’을 하기란 ‘닫힌 신학’을 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 힘이 드는 일이다. 부부의 스승 변선환은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며 종교 다원주의를 주창했다. 그러나 교회 권력을 쥔 보수 목사들은 1992년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한 그의 말만을 부각시켜 그를 ‘적그리스도’, ‘사탄’으로 매도하며 중세식 종교재판을 감행해 감신대 학장과 목사직, 교수직에서 파면당하게 하고 강제출교시켰다. 달걀로 거대한 바위와 싸우던 변선환은 몇년 뒤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변선환은 떠났지만 그가 ‘노다지’(금광)이자 ‘노터치’(내 제자들만은 손대지 마라)라고 한, 부부를 포함한 제자들은 오는 3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종교재판 30년, 교회권력에게 묻다’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어 부끄러운 기독교 역사를 공론화할 계획이다.



이은선 교수의 선친으로 신학자·목사이자 화가, 토착적 영성가였던 이신(1927~81)은 변선환과 ‘절친’이었다. 부부는 변선환과 이신의 주선으로 맺어졌다. 현장아카데미엔 이신이 탐독하던 고서적을 비롯해 동서양을 가리지 않은 수천권의 장서들이 빼곡하다. 크리스천이면서도 동서양 사상의 진수를 꿰뚫었던 유영모(1890~1981)와 함석헌(1901~89) 사제를 따르는 이들답다. 이정배 교수는 다석 유영모의 유고집으로 밤을 지새우며 다석 사상을 정리해 <빈탕한데 맞혀놀이>와 <유영모의 귀일신학>을 펴낸 바 있고, 이은선 교수는 함석헌이 창간한 <씨알의소리>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따라서 부부 신학자에게는 외래 종교가 아닌, 한국인의 심성 속에 애초 있었던 기독교를 발견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토착적 기독교 사상·영성가들의 가르침과 삶이 녹아 있다.

부부를 비롯한 한국문화신학회 회원 20명은 한류 초기인 2011년 이미 <한류로 신학하기>란 책을 펴낸 바 있다. 당시 후학들은 한류가 ‘한국적인 본질’보다는 세계의 것을 합친 ‘하이브리드’(혼합물)여서 세계에 잘 먹히는 것 아니냐는 반박을 하기도 했지만, 공간적으로 세계와 혼종된 것도 있으나, 시간적으로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혼종된 것도 있으니 그 차원에서 한류를 신학적으로 살펴보자는 데는 동의해 논의가 진행되면서 출간에 이르렀다.

“돌덩이처럼 백년 천년 잘 변하지 않을 만큼 자아동일성을 가진 것들도 있지만, 처음엔 조그만 것이 다른 환경과 만나 덧붙여지며 확대되는 동일성도 있다. 그것마저 부인하면 이스라엘 민족에서 시작된 조그만 정체성이 확대되어서 오늘날 거대한 기독교 문명을 이룬 성경도 다 부인할 수밖에 없다.”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산골에 있는 현장아카데미. 조현 종교전문기자

이런 이정배 교수의 말을 이어 이은선 교수는 “종교학자 황필호 교수가 한국인들은 종교를 바꿔도 개종(改宗)한 것이 아니라 종교를 덧붙인 가종(加宗)이라고 했는데, 유교인이나 불교인이 기독교를 만나면, 불교적으로 생각한 것을 다 버리고 새롭게 기독교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고, 그 이전 것에 새로움을 더했다”고 보았다. 통상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과 동학의 개벽사상을 유교와 단절시켜 이해하지만 이은선 교수는 서학도 동학도 모두 유학의 내적 발전으로 본다. 그런 차원에서 기독교도 다르지 않다. 유교 선비들 가운데 크리스천이 된 이들은 유교를 버린 것이 아니라 인격의 하나님을 발견하는 동기를 기독교에서 얻으면서 유교적 이상을 좀 더 빨리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런 열린 생각은 특정 종교나 종파를 넘어 근원을 찾는 성향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은선 교수는 “죽으면 천당 아니면 지옥에 간다는 식의 현대 한국 기독교의 단차원적 신앙이 교권주의자들의 사유 없는 신앙과 목회자 타락을 부추긴 한계를 노출했다”며 “소위 성직자나 지식인만이 아니라 모두가 군자가 되고 성인이 되는 길을 추구한, 선조들의 유교적 사유를 회복해 사유하는 신학이 될 때 과거의 한국 종교사상뿐 아니라 미래 과학 문명과도 보다 더 잘 회통되는 기독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정배 교수는 “기독교인들이 이 땅을 선교한 것 같지만 이 땅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이라는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의 말처럼, 불교와 유교를 받아들였다가도 본질을 잃으면 거부하는 것처럼 기독교도 받아들였다가 버릴 수 있는 것이 우리 민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적 고유성을 흥과 정으로 정리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엔 단군 신화와 같은 천지강림신화와 박혁거세 신화와 같은 난생설화가 동시에 있다. 산의 수렵문화에서 나온 천신신화와 농경문화에 나온 난생신화가 함께한다. 하나는 초월적이고, 하나는 내재적 발전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배 교수는 “이 두가지에서 <천부경>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인간이 하늘과 땅과 하나다)이 나왔다”며 “대종교를 연 나철과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신채호가 지닌 한민족 고유사상의 맥을 이은 다석 유영모도 이 사상을 통해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 인간들도 모두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라며, ‘없이 계신 하나님’을 인간 개개인의 마음(바탈)에서 찾아 누구나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면서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고 전했다.

“우리는 인간이 본래 하늘(하나님)을 품고 있으니, 신(神)이 (안에서) 난다. 신나면 흥이 발동한다. 고통이 심해져 흥이 단절되면 한이 된다. 흥이 깨진 상태가 한인 것이다. 그 한을 치유하는 것이 정이다. 이 정은 기독교적 공동체성과 만난다.”

이정배 교수는 “우리 안에 하늘 의식이 있었기에 기독교의 하늘을 이해하고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며 “초월적 하늘(신)만이 아니라, 사람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동학과 같은 내재적 천(天)을 받아들일 때 기독교가 한국의 문화와 더 깊게 만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은선 교수는 “흥이나 풍류보다 더 근원적인 한국정신은 생(生·살림)”이라며 “유교에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만물을 살리는 마음)이 있는데, 만물을 관장하는 이치인 리(理)에 대한 우리 민족의 생각은 ‘만물을 살리는 생리(生理)’였다. 기독교의 성령의 역사도 살아 있는 역동적 살림”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박경리의 <토지>에서 볼 수 있듯이 고난 속에서도 공동체와 주변 사람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항상 같이하며 어떻게든 살려내 고난을 이겨내고 그 속에서 참된 꽃을 피워내는 살림 의식이 우리에겐 있다”고 말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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