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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8

김태창 교수의 [일본에서 일본인들에게 들려준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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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is with Taecha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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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생활] 김태창 교수의 <일본에서 일본인들에게 들려준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 - <정산 송규>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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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우선 <공공철학>이라는 말부터 이해하여야 하는데, 그 설명이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 아래와 같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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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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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철학이란?
<공공철학>이란 ‘멸사봉공’(滅私奉公)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국가 중심, 제도 중심 혹은 집단 중심을 지향하는 사유 형태를 지양하고, 아울러 그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개인 중심, 이성 중심 혹은 자기 중심의 ‘멸공봉사’(滅公奉私)적인 성향도 견제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양자를 매개시키고 조화시켜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모두 살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도모하고 지향하는 ‘활사개공’(活私開公)의 철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철학은 ‘성인’이나 ‘신’이 아닌 ‘시민’들이 스스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시민사회에 걸맞은 21세기형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전통시대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의 사상 자원을 ‘공공성’(公共性)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일관되게 해석하고 있다. 그것도 중국과 일본과 한국에 직접 가서 그곳에서 활동하는 학자, 운동가, 시민들과 얼굴을 맞대면서, 마치 한판의 마당극을 펼치듯이 생생한 철학적 대화를 하는 가운데 철학적 담론들을 펼치고, 빚고, 쌓아가고 있다. 한 일본인 학자는 이를 “대학을 뛰쳐나온 공공인문학”이라고 명명하였다.
대화와 소통의 공동(共動=함께 움직임)의 산물
이 책의 텍스트들은 독특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김태창은 사색을 통해 하나하나의 담론들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대담이나 방담, 토론)와 강연(질의 응답) 등을 끊임없이 전개해 가며 훈련된 기자(記錄者)로 하여금 그 과정을 치밀하게 정리하도록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초고를 다듬고 벼리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김태창이 전개하는 <공공철학> 시리즈의 텍스트들이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은 박제화된 담론이 아니라 생생하게 지금-여기의 호흡을 담고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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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시리즈 중 <한국> 편
이 책은 5권으로 기획된 시리즈 중에서 <한국> 편에 해당하는 것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고금의 사상가들을 전통적인 <한사상>과 현대적인 <공공성>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사상을 일본에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알리는데 힘쓴 것으로도 이름이 높다.
원효나 정약용과 같은 저명한 한국사상가는 물론이고, 한국에서조차 소홀히 되고 잊혀지고 오해받기 쉬운 최한기나 최제우, 강증산, 송규 또는 유영모나 함석헌과 같은 현대사상가, 그리고 최근에는 조선시대 국가경영의 보고인 조선왕조실록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상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현대적으로 2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교토포럼>과 그 소식지인 '공공적 양식인'을 통해서 꾸준히 알리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이러한 일련의 활동의 한 결과물이자 보고서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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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원효──── 41
제2장│화담 서경덕──── 91
제3장│퇴계 이황──── 141
제4장│율곡 이이──── 179
제5장│남명 조식──── 213
제6장│ 하곡 정제두──── 243
제7장│다산 정약용──── 271
제8장│혜강 최한기──── 303
제9장│수운 최제우──── 351
제10장│증산 강일순──── 385
제11장│정산 송규──── 409
제12장│다석 류영모──── 429
제13장│신천옹 함석헌────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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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거울로서의 역사 - 왜 오늘의 일본인이 한삶과 한마음의 공공철학 이야기를 들어야하는가?>

기록자 후기: 
<지금의 일본에서 한철학과의 대화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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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철학 시리즈
01 교토포럼에서 이루어진 공공철학 대화
02 중국에서 중국인들과 나눈 공공철학 대화
03 일본에서 일본인들과 나눈 공공철학 대화
04 한국에서 한국인들과 나눈 공공철학 대화
05 일본에서 일본인들에게 들려준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本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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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이 공공철학 시리즈는 일어로는 20권이 나왔는데, 한국어로는 5권이 나올 기획이 되어있으나, 2권 (3,5) 만 나왔고, 내가 이 두권을 샀다. 제5권이 한국편인데, 한국(철학)사상사처럼 쓰여있다. 다른 한국철학사와 다르다면 이 책에서는 철학사상 만이 아니라 각 인물의 삶이 <공공철학하기>에 어떻게 관계되었는지의 설명이 있다. 12 인물이 나오는데 처음부터 읽지 않고 제일 들어보지 못한 인물인 <정산 송규 (1900-1962)>에 대하여 부터 읽었다.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 다음에 두번째 "종사"가 된 분이라고 한다. 박중빈에 대하여는 과거에 읽어본 적이 있는데, <정산 송규>, 또는 <송규>, <송정산>이란 이름은 처음들어본다. 책에 나오는 다른 인물에 비해 가장 짧게 16쪽으로 나온다.
 
- 호기심을 가지고 읽었는데 나에게는 놀란만한 인물과 사상이다. 이전에 (소태산) 박중빈에 대한 글과 평전을 읽었는데 이번에 <정산 송규>에 대해 읽은데서 얻은 만큼의 강한 인상은 얻지 못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인물이 달라서 일 수도 있고, 또 이 글은 저자가 일본인에게 한국의 인물과 사상을 소개하느라고 <(서양인이 아닌 동아시아인) 외국인>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써저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원불교의 창시자 박중빈의 단계에서는 <물질은 개벽되었으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슬로건을 내걸은 생활불교운동이 나왔다.송정산은 박중민의 사상을 본받으며 한층 발전시켜 <상동상호>로 부터 <보은상생>에 이르는 상생사상을 강조했다고 한다.

- 첫째로 다른 종교들은 근본을 추구해보면 같은 도를 설하고 있다며, 종교간 존중과 대화를 위한 논리기반을 제시하려고 했다. 그것을 <공공하는> 대화적 시점이라고 한다.
 
둘째로 모든 인종이나 생령이 <근본적으로는 같은 기로 결합>되어있다고 <천지를 부모로 삼고 우주를 일가로 하는> 입장에서 바라보자고 한다. 민족이나 국가중시보다 인류애 실현을 위한 <세계주의>와 <우주만물 공동체>에 대한 <보은>의 마음으로 보답하자고 한다.
 
셋째로 <개인간 집단간 민족간의 한이나 맺힌 강정이 해소된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시대, 즉 <후천개벽>을 이루자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상화를 통한 상생에로의 대전환>의 기도인데 그 방법으로 <보은공동체의 공동구축>이 필요하다고 한다.
 
- 현재 한국에서는 평화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반미> <반일>, 반 <토외>, 반윤, 등을 외치는데, 송정산이 말하는 상생의 세계에서는 생각과 의견이 다른 모든 그룹과 함께 일하여 한단계 더 높은 곳에서 화합을 이루어야한다고 한다. 나는 물론 이글을 읽기 전부터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기는 했으니 더 이론화되어있는 이 사상을 설명하는 김태창의 이 글을 만난 것은 방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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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 송정산
- 사진 3: 이 책은 일본에서의 강연을 글로 옮기고,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라서 일어로는 책이 없는 듯하다.



All reactions:19崔明淑, Sung-Deuk Oak and 17 others

崔明淑
Sung-Deuk Oak
Soon Ae Choi
Paul Dongwon Goh
Hyuk Bom Kwon
유상용
임덕수
박길수
Insu Bae
이재봉
Jongrak Kim
Kyungnam Kim
Gs Yoo
주용현
Joy Ricci
Gokin Moo-Young
Hidetoshi Takenaka
민속원
Minchang Francis Kang


이찬수 - 한국에서 '철학'은 으레 '서양철학'이고 우리의 사상은 '한국철학', '동양철학' 등

(1) 이찬수 - 한국에서 '철학'은 으레 '서양철학'이고 우리의 사상은 '한국철학', '동양철학' 등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 Facebook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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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철학'은 으레 '서양철학'이고 우리의 사상은 '한국철학', '동양철학' 등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서야 그 자리가 확보된다.
음악도 으레 서양음악이 기준이고, 우리의 음악은 '국악'이다.
미술도 뭐도 다 그렇다.
기준이 서양이고, 한국의 것은 그에 종속적이다.
일본에서의 상황도 대체로 비슷하다.
그런데 니시다 철학, 그에게서 비롯된 교토학파 철학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일본에서 비롯된 철학이지만 그것도 대승불교적 세계관과 통하는 사유체계이지만, 대부분 서양철학적 언어로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그 지시하는 세계는 서양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넘어선다.
그런 철학을 이미 100년전에 확립했다.


원효나 지눌, 퇴계나 율곡, 최한기, 최시형이나 유영모, 함석헌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 하이데거,  제임스, 프로이트, 기독교 신학 등 전형적인 서양의 언어로 재해석하며 재구성할 수 있을까.
부지하세월이다.
대안연구공동체를 이끄는 김종락 선생님께서 내일부터 시작되는 강의 "니시다 철학 깊이 읽기'를 아래와 같이 소개해주셨다.
일본에 대해 감정만 앞세우거나 임기응변식 대응요법 말고, 무언가 그 심층적 세계를 차근차근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Jongrak Kim

  · 
신문기자 시절, 관심을 가졌던 해직 교수 몇 분이 계신다. 한 분은 도울 김용옥 선생, 또 한 분은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또 한 분은 이찬수 강남대 교수다. 

어쩌다 도올 선생과 논쟁을 벌이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당시 내가 일하던 신문의 기자로 모시게까지 된 이야기는 접어두자. 그 인연으로 그가 대안연 특강을 하게 된 사연도....

김민수 교수는 서울대 미대 초대 학장이었던 장발의 친일 이력을 거론하며 기존 권력의 역린을 건드리다 재임용에서 탈락한 케이스다. 6년에 걸친 복직 투쟁 끝에 대법원에서 승소해 복직에 성공했다. 

그가 해직 당시 나는 수시로 복직 투쟁 기사를 쓰는 한편, 그를 객원기자로 모셔 <김민수의 한국 도시문화 탐험기>라는 문패로 격주 전면 기사를 연재했다. 그리고 이때 그가 밤을 새워가며 쓴 글은 훗날 무게있는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이찬수 교수는 2003년 EBS 교양프로그램 ‘톨레랑스’에서 종교간 조화와 관용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법당에서 절했다는 이유로 2006년 강남대 교수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당시 내가 재직하던 신문은 더 이상 해직 교수의 복직 기사를 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교수와의 인연은 그가 복직소송에서 승리한 뒤, 내가 대안연을 개설한 뒤 시작되었다. 그를 모셔 동양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불교철학의 핵심을 기독교 신학의 중심 개념과 비교하는 강좌를 열었던 것이다. 

이 강좌는 백성호 기자가 취재해 중앙일보 문화면 톱으로 썼는데, 이것이 포털사이트 ‘다음’의 메인 화면에 올랐다. 덕분에 기사가 나온 날 나는 하루 종일 울려대는 수십 통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뒤 강남대를 떠나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성공회대, (일본)코세이가쿠린, 중앙학술연구소 난잔대학 등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던 그는 한동안 보훈교육연구원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글쓰고 강의하는 학자의 본업으로 돌아온 그가 오는 수요일(9일) 오랜만에 대안연에서 강의한다. 이번 강의 주제는 일본 최초의 근대 철학자이자 대표적인 철학자인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의 사유다. 

알려지다시피 니시다는 저 유명한 교토학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메이지 유신 이후 세계적 철학자의 반열에 오른 최초의 일본인. 니시다의 철학으로 박사논문을 쓰기도 했던 이찬수 교수는 “일본적 사유의 정수는 무엇인지, 구미에서 왜 교토학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지, 왜 일본은 제국주의적 침략의 길로 나섰는지, 왜 여전히 사과를 하지 못하는지 등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니시다의 철학은 “오늘의 일본과 동아시아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 열쇠”로 오늘의 일본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니시다와 교토학파가 더 연구되어야 한다는 거다.

오랜만에 여는 이찬수 교수의 강좌에 선생도 아닌 내가 긴장된다. 단순한 학자를 넘어 존경하는 분의 강의인 만큼 좋은 분들이 왔으면 좋으련만~~

2023/07/29

영원한 보석 , 마가레타 폰 보르직 2010 Juwel des Lebens

우리출판사














영원한 보석
출간일 2010.9.27
저자 마가레타 폰 보르직 역저. 김명&

규격 신국판(154×200)
ISBN-10
ISBN-13 978-89-7561-299-2
정가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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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그리스도교의 세계로 읽는 법화경 『영원한 보석』. 기독교와 불교를 접목하여 두 종교의 공통점과 메시지를 담아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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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의 글
한국어판을 내면서/ 마가레타 폰 보르직
종교 간 대화의 보석이 되길 기대하며

  • 법화경과 붓다의 위대한 선언

  • 불타는 집의 비유
  •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 약초의 비유
  • 마술도시의 비유
  • 옷 속 진주의 비유
  • 왕의 보석의 비유
  • 여래의 수명
  • 관세음보살의 우주적인 문

각주
참고문헌
1~3판 서문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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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보석』(원제: 『Juwel des Lebens』, 삶의 보석)은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유럽의 문화가 그의 영적 뿌리를 다시 찾기를 원하면서, 불교의 명상적 의식이 접목되는 과정에서 출현한 독일 최초의 법화경 번역서다.

그동안은 주로 팔리경전을 토대로 하는 남방불교와 일본의 선불교, 티벳불교 관련 불서들이 소개되긴 했지만 대승불교의 한문불전(佛典)은 독일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시점이었다. 이러한 때 법화경의 비유를 뽑아 정리한 『영원한 보석』과 법화경의 한역 원전을 번역한 보르직의 독일어판 『법화경-경이로운 법의 연꽃에 관한 경전』의 출간은 독일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두 책은 출간 이후 개정을 하며 거듭 오늘날까지도 법화경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

이렇듯 보르직의 법화경 관련서들이 꾸준히 읽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영원한 보석』은 그 답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길과 붓다의 길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저자의 사상적 확장 혹은 종교적 해석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까닭이다.

저자 보르직은 중생구제를 위한 붓다의 무조건적인 자비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은총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방편을 통한 자비와 은총이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만날 수 있는 교차점이며, 바로 그곳이 종교인들의 신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함을 암시해 주고 있다.
『영원한 보석』은 그리스도교와 만날 수 있는 ‘자비와 방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법화경의 다양한 비유들을 한데 모아 엮었다. 자비와 방편은 ‘은총과 육화’라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과 공유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방편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다양한 종교와 종파들이 갈등 없이 평화공존 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영원한 보석』은 법화경에서 선별한 6개의 비유와 2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중생을 구제하려는 붓다의 자비가 그 핵심을 이룬다.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보석’은 붓다의 자비가 담겨 있는 법화경을 의미한다. 법화경에서 붓다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가 '보석'인 것이다. 그 메시지의 목표는 ‘내가 붓다임’을 깨닫는 것이며, 이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최고의 경전이 법화경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법화경이 다른 어느 경전보다도 ‘최고의 경전’이라는 것이 거듭 강조된다. 붓다는 듣는 사람의 근기에 맞게 설법을 하였는데, 최고의 경전 법화경 이외의 경전들은 ‘방편’으로써 주어졌다는 것이다.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에게는 ‘작은 수레’(소승)가, 보살에게는 ‘큰 수레’(대승)가 주어졌다.
「왕의 보석의 비유」에서는 “저 힘 있는 왕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빛나는 보석을 마침내 선물한 것과 똑같이 나는 최후의 경전으로서 법화경을 준다.”(160쪽)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붓다는 법화경을 ‘왕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보석’에 비유한다. 이 보석은 최후에 가장 큰 공신에게 건네주는 ‘은총의 선물’로서 ‘내가 붓다’임을 깨닫게 하는 ‘최고의 안내자’다. 이것은 「마술도시의 비유」에서의 안내자이고, 「불타는 집의 비유」에서의 아버지이며,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에서 다시 찾은 아들에게 모든 보화를 넘겨주는 아버지다. 이들 비유의 목표는 중생의 성불(成佛)에 있으며, 이 목표를 위해 붓다가 사용한 것이 방편이다. 붓다는 듣는 이의 근기에 맞게 방법을 달리하여 법을 전하였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방편)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방편의 필요성과 다양성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 이 책의 말미에 있는 「관세음보살의 우주적인 문」이다. 중생구제를 위해 무한한 방편을 사용하는 관세음보살의 빛나는 자비는 이 책의 절정을 이룬다.
인간 자신의 힘만으로는 열반에 들 수 없기에 붓다는 자비의 방편을 통해 중생들의 성불(成佛)을 위한 대각성(大覺醒)을 돕는다. 이 ‘방편’이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육화로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중보자’로서 세상에 들어온다. 이 ‘육화된 중보자 예수’의 모습이 바로 붓다의 방편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불타는 집’에서 아들들을 구하려고 사용한 ‘수레’와 같다.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에는 “나는 마음속으로 결코 기대하지 않았다. 이 값비싼 보석이 마치 저절로 들어온 것 같다!”(93쪽)는 아들의 고백이 있다. 자력종교로만 알려져 있는 불교에도 신앙의 타력적인 요소가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기대하지 않은 값비싼 보석, 저절로 들어온 그것이야말로 붓다의 자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인 것이다. 「약초의 비유」에서 붓다는 “생명을 주는 비를 쏟아 붓는 큰 구름"(113쪽)이라고 비유한다. 세존(世尊)은 모든 메마른 중생들 위에 축복을 붓고, 중생들을 모든 고통으로부터 구해 내며, 중생들이 세상의 기쁨과 열반의 기쁨을 얻도록 축복하는 자비와 구제의 붓다다.

『영원한 보석』은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경전을 통한 대화의 장을 열어주고 있다. 그동안 종교 간의 대화가 추상적, 관념적, 교리적인 방향에서 진행되어왔다면, 이 책은 경전을 통한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는데 있어서 그 의미가 자못 크다. 타종교의 경전을 읽고 그들의 지혜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한 종교의 『영원한 보석』을 넘어 ‘종교 간 대화의 보석’을 우리에게 선물한 것이다.





역저자 / 마가레타 폰 보르직
마가레타 폰 보르직은 1944년에 독일 바이에른주 펠덴(Velden)/필스(Vils)에서 출생하였다. 독일의 뮌헨, 보쿰,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과 일본학, 중국학, 철학, 신학 등을 전공하였고, 1974년에 뮌헨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영원한 보석>은 중국어에서 독일어로 옮긴 최초의 법화경 번역서다. 한편 1999년, 법화경 전문을 번역하여 출간한 『법화경-경이로운 법의 연꽃에 관한 경전』은 2010년 현재 중판을 거듭하며 독일에서 대승불교를 만나는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
그밖에도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대화를 위한 여러 간행물을 펴낸 바 있는 저자는, 독일 상트 오틀리엔 수도원(Erzabtei St. Ottlien)에서 주관하는 <종교 간 수도자의 대화>에 오랫동안 참여하며 그 자신의 앎을 삶 속에서 실천해 온 참 종교인이다.

역자 / 김명희
1962년 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종교학 석사학위(Magistra Artium)를 취득한 뒤, 뮌헨대학교에서 원효의 화쟁사상을 주제로 한 「일심 안에서의 화쟁: 종교 다원화의 해석학에 대한 원효의 기여」로 신학박사학위(Th. D.)를 받았다.
2010년 현재 서강대 신학연구소 연구원이며 감신대, 서강대, 서울장신대, 성공회대, 한남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 전공분야는 종교 간의 대화로 특히 그리스도교와 불교와의 대화에 관한 연구가 중심이다.
논저로는 「종교간 대화에 관한 폰 부뤽의 해석학」 「교신과 조신의 대승적 믿음을 통해 본 종교간 대화의 해석학」 「종교 ∙ 폭력 ∙ 평화: 요한 갈퉁의 평화이론을 중심으로」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선종(불교) - 나무위키

선종(불교) - 나무위키

선종(불교)

최근 수정 시각: 
禪宗
Zen
Chán

1. 개요2. 특징3. 역사
3.1. 고대3.2. 중세3.3. 현재
4. 선종의 교파5. 타 국가의 선종
5.1. 일본 선종
6. 여담7. 창작물

1. 개요[편집]

중국 대륙에서 5세기에 발전하기 시작한 대승 불교의 한 종류.

2. 특징[편집]

선종은 종파 면에서는 대승 불교의 한 갈래로 분류되며, 대승 불교와 같이 '불성(佛性)'[1]을 중요시한다. 초기 불교에서는 불성을 찾는 것이 절대적인 목표가 아니었다. 초기 불교에서 그나마 불성에 가장 가까운 개념은 '열반으로 가는 데 필요한 순수한 마음' 정도가 전부라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불성을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표현한 것이지, 특정한 존재론적 개념을 상정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인도 불교에서 별 인기가 없던 불성 개념이 동아시아 등지에서 크게 확산된 데 기여한 경전은 법화경이라고 한다.

초기 선종은 설일체유부의 수행법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2] 후대에 생겨난 몇 가지[3]를 제외하면, 선종은 여전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심념처 수행을 기반으로 하는 등 여러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 한국 선종의 대표인 조계종에서도 대승 불교의 경전인 금강경을 소의경전(근본경전)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심전심, 불립문자(不立文字)[4], 견성오도(見性悟道)[5]를 중심 가르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교종과 비교되며, 그래서 참선과 수행을 중심으로 한다. 사실 등장부터 수행과 직관을 중시하는 것이 도교 등 타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으며, '염화미소'라는 유명한 선종의 일화가 등장한 경전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은 위경이라는 설이 주류인 등 교종 계통의 불교와 많은 배치점을 보여 성향에 따른 분류에서는 교종과 따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불교는 힌두교 등과 함께 인도 계통 종교로 묶인다.

수행 방법에 따라 묵조선과 간화선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묵조선은 좌선을 중심으로 하며, 당장 깨달음을 추구하기보다는 자기 마음 속에 내재된 자성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방식이며, 조동종 쪽의 수행법이다.[6] 반면 간화선은 특정한 하나의 화두(話頭)에 대한 강한 의심을 통해 한 순간에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며, 임제종의 방식이다. 한국의 선종은 대부분 임제종의 영향을 받아 화두 수행을 하는 곳이 많다.

다른 특성으로, '노동'을 중시한다는 점이 있다.[7] 선종에선 노동 또한 수행의 일종이라고 보고, 수행자가 직접 일을 해서 자급자족하는 것을 중시했다. 이러한 뜻을 담은 선종의 문구가 있는데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즉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이다. 이 문구는 당나라의 고승인 백장(百丈)이라는 선종 승려가 했다는 발언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선종(남선종)에서는 다른 종파에 비해 탁발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기며, 덕택에 삼무일종법난에서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종파가 되었다.

3. 역사[편집]

3.1. 고대[편집]

중국에 온 서역승 달마대사로부터 시작된 불교의 종파. 선종 내에서는 인도에서 법맥이 이어져 중국에 전래됐다고 보지만, 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자세한 것은 달마 항목 참조. 선종은 이후 6대 조 혜능에 의해 발전하였다.

한국에서는 신라 때 원효와 의상으로 대표되는 교종불교가 발달했으나 신라 하대 선종의 출현으로 신라 말의 혼란은 더더욱 가중되었는데, 신라계 중앙귀족들은 왕실의 지원을 받는 교종(5교)을 신봉했다면 삼한계 지방 호족들은 신라의 원신라계 우대정책에 반발하여 중앙에 대한 악감정으로 누구나 부처가 될수있다는 교리를 지닌 선종(9산)을 추종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부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석가모니 부처가 아닌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증득한 자를 말한다. 하지만 궁예는 선종의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교리를 악용하여 스스로 미륵불이라 자처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 미륵불이라 자처하던 궁예가 타락하고 멸망하게 되자, 왕건의 고려는 초반에 선종 세력의 후원을 많이 받았음에도 정작 국가의 지원을 받는 호국불교 교종을 국가이념으로 삼아 선종을 박해하였는데, 귀족 지배층 입장에서는 전통을 중시하는 교종 쪽이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 고종 시기 대각국사 의천은 선종을 매우 증오하여 선종을 사문난적이라 표현하며 조선 연산군의 파불에 가까울 정도로 박해를 가한다. 하지만 아무리 위에서 박해를 해도 대중의 지지는 선종쪽이 더 높았기 때문에 선종의 씨를 말리는것은 불가능했다. 이 교종과 선종의 대립은 12세기 후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고 숭유억불 방향으로 나가면서 왕실의 불교 지원이 크게 줄어들게 되고 이로 인하여 그동안 지배층의 후원으로 유지되던 정통 교종이 몰락하면서 오히려 선종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한국사에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후 도의선사(9산중 가지산파)에 의해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종 전체로 봤을 때 제일 먼저 들어온 시기는 서기 8세기 후반에 신행대사가 단계적 깨달음을 중시하는 북종선을 들여온 것이 최초다. (도의선사는 우리가 잘 아는 돈오=즉각적 깨달음을 강조하는 남종선을 들여왔다.)

선종이 들어오던 서기 820년대, 이 시기는 한국사의 3대 반란으로 칭해질 만큼 기세가 무시무시했던 그 유명한 김헌창의 난이 일어났던 시기고 그 규모는 신라 9주 중 4주를 점령할 만큼 막강했으나 상당히 빨리 진압된다. 거기다가 일부 주에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공로로 7년간 면세[8]의 혜택을 주었을 정도다. 그 정도로 이 시기까지만 해도 신라 정부의 여력이 충분하고 권위도 있었기 때문에 민중들 입장에서도 권위에 의지하지 말라는 선종의 가르침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북종선은 말할 필요도 없이 더 주목받지 못했다.

때문에 도입되던 당시에는 선종이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신라 말기인 서기 890년대 이후, 흔히 말하는 국가 막장 테크 시기에 구산선문이 소율희 등 몇몇 호족들의 지원을 받고 성장하면서 보편화되었다.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신라 정부는 선종과의 제휴를 시도했다. 이유는 선종을 통해서 떨어지는 권위를 다시 세우려고. 물론 호족의 지원이 더 커서 선종 측은 이를 거절했다. 일본에는 남송을 통해 12세기경 유입되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성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간단하게 말해 원효대사의 정토종(법성종)보다도 파격적인 효과를 불러온다. 그 때문인지 '무식한' 호족과 무신정권기의 무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9] 때문에 최충헌 시기 지눌과 같은 승려가 무신정권의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고 한다.

호족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선종을 지원할 경우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쉬웠다는 점, 그리고 교리가 그들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선종은 교종과 달리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일종의 열린 교리를 내세웠는데, 이를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면 도 누구나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당연히 이는 풍수지리와 함께 자신들의 봉기를 정당화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반면 교종(특히 화엄종)은 권위를 강조하기 때문에 현 신분제도를 정당화 하는 경향이 커서 왕실과 귀족사회에서 인기를 끌었다.

3.2. 중세[편집]

고려 중반기가 되면 교종과 선종을 합치려는 노력이 자주 일어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왕족 출신의 의천이 만든 천태종(교종 중심의 통합)과 지눌 국사의 조계종(선종 중심의 통합)이다. 지금의 한국 불교는 조계종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교종보다는 선종에 가까운 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교단의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티베트 불교가 원나라를 거쳐 들어와 불교계의 사치가 심해진다. 경천사 10층 석탑이나 다포식 건물의 화려한 장식은 이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자 보우가 남아있던 구산선문의 전통을 임제종의 이름 아래 통합하려 했으나 좌절되었다.

다만, 교종과 선종이란 표현은 조선 세종대왕 때에 와서야 보편화된 것이다. 화엄종, 법상종을 비롯한 경전을 중시하는 4개 종파는 교종으로, 나머지는 선종으로 분류되었다. 신기한건 천태종이 선종에 들어갔다. 천태종은 크게 분류하면 교종이고 정확히 분류하자면 밀교적 성향이 많이 포함된 교종이다. 한국에서 이런 특이한 분류가 생긴 건 과거 의천이 불교 교단 통합 운동을 할 때 선종 계열 종파들을 천태종 쪽으로 흡수시켰기 때문. 당연하지만 이때 의천의 정책에 반대하여 통합하지 않은 선종 종파들도 있었다.

3.3. 현재[편집]

2000년 숭산선사가 충청남도 계룡산 자락에 위치해 있는 곳에 세운 무상사라는 선 사찰이 있다.

4. 선종의 교파[편집]

  • 북종선 - 현재는 대가 끊겼다. 점진적인 깨달음을 중시한다.
  • 남종선 - 순간적인 깨달음을 중시한다. 현재 남아 있는 선종은 전부 남종선 계열.
    • 위앙종
    • 임제종 - 간화선(看話禪)을 중시하는 종파, 한국의 조계종도 이 분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도 조동종에 비해서는 2인자이지만 잇큐씨 이야기등 꽤나 많은 족적을 남겼다. 일본 임제종 이름으로 여러 분파가 존재하며, 그중에서 묘신지파가 가중 크다.
      • 황룡파
      • 양기파
    • 조동종 - 묵조선을 중시하는 종파. 조동종은 일본으로 전해진 후 그곳에서 가장 큰 선종 종파가 되었다.[10]
    • 운문종
    • 법안종
  • 우두선 - 우두법융(牛頭法融) 선사로부터 비롯된 교파. 교리나 수행법 면에서는 대승 불교의 중관학파의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 당나라 초기에 대가 끊겼다.

5. 타 국가의 선종[편집]

베트남에서도 선종이 전해지는데, 중국 선종의 3대 조사 승찬과 함께 수행하던 인도 승려 비니타루치(Vinitaruci)가 베트남에 선종을 처음 전파했다고 한다. 베트남 선종에서도 화두를 활용했지만, 수행 방법으로는 염불선[11]이 지배적이었다. 베트남식 선불교를 서구인들에게 맞게 가다듬어 세계로 전파한 사람으로는 틱낫한이 있다.

참고로 마하가섭 존자가 1조고 28조가 보리달마이며 고려말 태고보우 선사가 57조이고 조선시대에 67조 환성지안 조사가 유배 뒤 법을 전하지 못해[12] 맥이 끊겼으나 현재 그 맥을 이었다고 주장하는 계열이 꽤 있다.

5.1. 일본 선종[편집]

일본 불교에서 선종은 가마쿠라 막부 시대에 도겐(道元) 등이 중국에서 들어온 후 불교의 한 종파로서 크게 융성하였다. 한국과 달리 묵조선이 주류임도 특징. 특이한 점은 일본의 선종이 다도와 건축(예:긴카쿠지), 가레산스이 정원 등 문화적인 면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줬다는 사실이다. 인테리어 등에서 말하는 젠 스타일(Zen style)의 젠이 선종의 선이다. 주류 타종파에 비해서 규율이나 법도가 느슨하고 너그러운 편이라서 수행강도도 비교적 강하지 않다.[13]

상기했듯 서구권에 초창기에 들어간 불교 종파 중에 일본식 선종도 있었다. 미국에는 '2명의 스즈키'로 불리우는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 1870-1966)와 스즈키 순류(鈴木俊降 1905-1971) 선사가 포교했고, 유럽에서는 데시마루 다이센(弟子丸泰仙 1914-1982) 선사가 일본식 선불교를 퍼뜨렸다. 1960년대 당시 68혁명세대같이 당대 기성세대에 저항적이었던 젊은이들 사이에 팽배했던 반기독교 감정과 결합하여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에도 진지하게 절에 다니지는 않아도 참선을 하는 유럽인들은 꽤 많다.

일본 조동종과 임제종은 각각 도쿄도 그랜드호텔[14][15]과 하나조노 회관(花園会館)이라는 숙박시설을 소유했다.


일본 조동종에서는 절 안에서 수행하는 승려들 중 짬(?)이 가장 많은 승려를 수좌(首座)라, 수좌를 인정하는 의식을 법전식(法戦式)이라고 부르는데 그 분위기가 정말 이름 그대로 살벌하다. 주지승과 짬 많은 일반 승려가 화두를 서로 나누는데 마치 싸우듯이 화두를 한다. 조동종은 묵조선식 지관타좌 참선을 주로 하지만, 이 법전식에서만큼은 공안을 주고받는다. 법전식은 한국 불교 용어로 공개 법거량(法擧揚)에 해당한다.[16]

수행 분위기도 조동종은 매우 엄격하고 임제종은 상대적으로 널럴한 편이다. 메이지 유신 당시 개혁 정책의 영향으로 대처는 가능하나 정토종이나 진언종처럼 육식은 개인 사찰에서 사사롭게 하는 정도만 용인하며, 수행도량에서는 채식만 가능하다.


위 두 종단 외에 보화종(普化宗)이란 종단도 있다. 규모는 작지만 일본 내에서는 바구니 같은 것을 뒤집어 쓰고 샤쿠하치(일본식 퉁소)를 불며 탁발하는 허무승(虚無僧)[17]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다른 선종 종단들과 달리 머리를 기를 수 있다.[18] 장삼을 입고 텐카이(天蓋)라는 바구니 비슷한 삿갓을 써서 얼굴을 가린 채로 퉁소를 불면서 각처를 떠돌며 수행한다. 이런 외형적인 특징이 너무나 강렬해서 규모는 작은데도 인지도는 높다.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일본 사극 드라마나 영화, 게임 등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곤 한다. 필요에 따라서 무술을 배워 나라가 어지러울 때에는 승병으로서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6. 여담[편집]

  • 1994년에 창설된 신흥 민족종교 '선불교(仙佛敎)'와는 한자가 다르다. 단월드와 얽힌 선불교도 이 신흥종교를 가리킨다. 선종과 관련이 없는 별개의 종교이니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 매우 드물지만 일부 불교계 종립대학에는 선종의 사상, 역사 등과 선 수행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학과인 선학과가 존재한다. 엄밀히 말하면 선학은 불교학의 한 갈래이므로, 불교학과에서도 선종에 대해 배울 수 있긴 하다. 선종을 여러 불교사상 중 하나로 다루고 넘어가느냐(불교학과), 선종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심층적으로 파고드느냐(선학과)의 차이. 현재 국내에 선학과가 설치된 대학은 조계종 종립대학인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뿐이다.[19] 외국까지 범위를 넓혀 보면 일본 조동종 종립대학인 고마자와대학에도 선학과가 설치되어 있다. 이쪽은 학부 전공.

7. 창작물[편집]

  • 코무소맨 - 록맨 & 포르테: 미래에서의 도전자
    초반 4보스중 한명으로 등장한다. 항목 참조.
  • 목수 겐씨 PSP 버전
    클리어 특전으로 해금되는 의상중 하나로 등장하는데 기본공격이 음파공격인데 버튼을 누르면 퉁소를 불어서 나오는 글자로 공격한다.
  • 코무하치 - 성수전대 긴가맨
    문어 + 코무소(허무승)을 합친 캐릭터. 성수전대 긴가맨 12화~13화에 등장하는 부드 마인중 직속의 바르반 마인. 머리에 신도가사를 쓰고 퉁소를 불어서 나무들을 썩게 만드는 작전을 진행하고 허리춤에는 단검을 차고 있다.
  • 모치즈키 소카쿠 - 아랑전설 3
    3편부터 첫 등장한 보화종 주지스님의 캐릭터. 수라 사냥을 떠나는 퇴마사이기도 하다. 챙이 긴 형태의 신도가사를 쓰고 지팡이 (석장)을 든것으로 보아서 선종 스님의 복장과 완전히 똑같다.
  • 음인 우파 - 세계닌자전 지라이야
    제 6화에 등장. 냉혹 비정한 악의 닌자인 음인 일족의 생존자. 일족을 멸망시킨 토가쿠시류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요마 일족이 고용하였다. 퉁소를 불면서 상대를 조종하는 세뇌능력과 안개를 발생시켜서 환상의 닌자군단을 출현시키는 비술 마계진 이라는 요술을 부린다. 해당 편에서 단 1화만에 지라이야에게 쓰러졌지만 요마일족의 두령인 귀인 도쿠사이에 의해서 32화에 재등장한다. 이때는 오체가 재결합하여 사이보그 재생 우파로 부활하여 St. 필리핀 여자 학원 해변 기숙사에 있는 초능력 소녀를 찾아서 졸개로 만들기 위한 유령 소동에 이용되었다.
    여담으로 슈트액터는 세키 요우지, 성우는 오오미야 테이지가 담당했다.
  • 보화종의 승려 사부로타 - 쾌걸 즈밧토
    1977년에 토에이가 제작한 변신히어로 특촬물인 이 작품의 제 13회인 소년 킬러의 발라드에 등장했으며 담당배우는 나카이 케이스케.
    해당 편에서 등장하는 범죄조직 다카의 하부 조직집단인 사소리 구미(전갈 조)의 보스인 독 사소리(독 전갈)의 경호원(요짐보)으로써 전형적인 허무승의 복장을 하고 있다. 퉁소에 화살을 결합시켜서 석궁의 형태로 사용하는 퉁소 보우건을 사용한다. 주인공인 하야카와 켄과 솜씨의 대결을 할때는 인질로 잡은 여성의 머리위에 풍선을 올려놓고 화살을 쏘아서 맞추는 대결을 펼쳤다. 후반부에는 즈밧토로 변신한 하야카와 켄과 싸울땐 허리춤에 숨겨진 긴 단검으로도 맞서 싸웠지만 끝내 패배하고 쓰러진다. 쓰러질 당시에 드러난 맨 얼굴에는 카부키 형식의 빨간 화장이 되어있다.
  • 포 아너 - 쿄신
    이름 자체가 불교에서 추구하는 경지인 허심(虛心)이며 착용 가능한 장비중에 허무승의 텐가이가 있다.
[1] 때로는 불성(Buddha-dhātu)이 여래장(Tathāgatagarbha)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인도불교의 여래장 사상이 동아시아불교에서 불성 사상 전개되는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즉 선종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여래장 사상이 나온다.[2] '자성(自性)'도 설일체유부에서 강조하는 개념이다. 단, 삼세연기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설일체유부의 자성 개념과는 달리, 선종의 자성 개념은 유식학파와 여래장 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수행자의 청정한 본연의 마음 상태와 '연기를 통한 자각을 수행자 스스로 이뤄낼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다.[3] 임제종의 화두수행 등.[4] 문자로는 도를 설명할 수 없다는 뜻.[5] 진리는 스스로 개인적인 심적 체험을 통해 깨닫는 것이라는 뜻.[6] 물론 묵조선이라고 화두수행을 아주 안 하는 건 아니다.[7] 가톨릭 베네딕토 수도회를 창시한 성 베네딕토와 비슷한 면이다. 베네딕토는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고 가르쳤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베네딕토회의 모토이다.[8] 이 단어를 강조하는 이유는 890년 이후에 일개 지방의 독립선언도 못 막는 상황과 너무 대비되기 때문이다.[9] 이 표현은 조금 비약이긴 하다. 교종은 본래 문벌귀족 사회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무신정권으로 문벌귀족 사회가 무너지자 이들을 지원했으며 심지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10] 티베트 불교와 함께 서구권에 가장 먼저 들어간 불교도 일본식 조동종이었다.[11] 염불을 하면서 '염불하는 이것이 무엇인가?'를 관찰하는 것.[12] 제자 스님이 깨달았음을 인정하고 일종의 후계자로 삼는 행위. 인가라고도 한다.[13] 단, 널널한 건 임제종 쪽이며, 조동종은 군대를 연상시킬 만큼 생활 규율만은 엄격한 편이다. 물론 신참 승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 짬이 쌓이면 개인 생활공간에서만큼은 매우 널널해진다.[14] 도쿄 타워 근처에 있는데 조동종 총무원이 이곳에 있다.[15] 실질적 본부라 할 수 있는 대본산은 요코하마시에 위치한 소지지와 후쿠이현에 위치한 에이헤이지, 두 곳이 있다.[16] 다만 한국의 법거량과는 달리, 일본의 법전식은 요식행위화되어 있기에 미리 대본을 외워두고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17] 일본식 발음은 코무소-(こむそう)이다.[18] 따라서 일본 창작물에서 공작왕의 주인공 공작이나 이누야샤·반요 야샤히메의 미로쿠 같이 머리를 기른 승려 캐릭터가 나오는 것은 고증 오류가 아니라 이러한 현실을 고증한 것이다.[19] WISE캠퍼스(구 경주캠퍼스)의 경우 대학원 불교학과 내의 선학 전공으로 존재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서울캠 학부에도 선학과가 있었으나, 인도철학과와 함께 불교학부로 통폐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