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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5

Kang-nam Oh 탈종교화 시대의 종교 [종교 없는 삶] 필 주커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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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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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종교화 시대의 종교

오강남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탈종교화 현상이다. 이른바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전체적으로 전통 종교와 상관없이 사는 탈종교인들의 숫자가 급증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탈종교가 현재 가장 급성장하는 종교 현상인 셈이다.
종교 인구가 미미한 유럽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도 종교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오죽하면 미국 성공회 주교 존 셸비 스퐁(John Shelby Spong) 신부는 미국에서 제일 큰 동창회는 ‘교회 졸업 동창회(church alumni association)’라고 했겠는가? 물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서 특히 10대에서 40대의 젊은 층, 그리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에게서 이런 탈종교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보고다.

왜 이런 탈종교화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우리 나름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장 주된 이유는 현대인들이 기복이나 상벌을 기본 전제로 하는 종교에 더 이상 매료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최근에 낸 <종교를 넘어서>라는 책에서 극락이나 천국, 지옥으로 사람들을 회유하거나 협박하는 종교는 이제 그 설득력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제 종교와 상관없이 인간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탈종교적 윤리(secular ethics)”가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종교가 완전히 무용지물인가? 종교사회학자 뒤르켐(Durkheim)의 영향을 받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사회심리학자 아라 노렌자얀(Ara Norenzayan)은 그의 책 <거대한 신들(Big Gods)>에서 한때 종교를 필요로 하는 시대, 종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수렵시대 이후 점점 인지가 발달되면서 사회관계를 넓혀 가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늘에서 인간들의 행동거지를 감시하는 거대한 감시자(Watcher)가 필요하다는 것을 감지하면서 신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오늘도 이런 신을 필요로 하는 사회나 사람들이 있다. 그런 믿음이 인간 사회가 오늘의 수준에 올라오기까지 일종의 사다리 역할을 했지만 이제 상당 수 앞서 가는 나라에서는 그 사다리를 걷어차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종교 없는 사회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미국의 기독교 설교자들에 의하면 종교 없는 사회, 신을 믿지 않는 사회는 어쩔 수 없이 혼돈과 무질서, 범죄가 창궐하는 흑암의 사회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종교 없는 삶>이라는 책을 낸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필 주커먼이 안식년을 맞아 덴마크에 가서 1년여를 지나면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실질적으로 ‘신이 없는 사회’인데도 불구하고 범죄율이나 부패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 나아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임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계를 둘러보면 신을 믿는 비율이 높은 나라들일 수록 번영과 평등, 자유, 민주주의, 여권, 인권, 교육 정도, 범죄 율, 기대수명 등에서 그만큼 덜 건강하다는 것이다. 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세계적으로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신을 가장 많이 믿는 이른바 바이블 벨트에 위치한 중남부 주들이 교육 수준이나 범죄율 등 여러 면에서 신을 가장 덜 믿는 서부와 동북부 주들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다고 한다.
영국의 저명한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은 그의 책 <신의 역사> 마지막 부분에서 전체적으로 미국이 유럽 국가들보다 도덕적으로 낙후한 것은 미국에 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 지적하고 있다.

주커먼은 전통적으로 받들어 오던 신을 믿고 종교적으로 열렬하게 살 때의 부작용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상세하게 열거하고 있다. 여기서 그의 주장을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그의 주장을 보지 않더라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그 부작용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칭 열렬하다는 근본주의 신자들의 경우 대부분 한번 받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줄 모르고 자연히 보수적이 된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닫힌 마음의 소유자들이 되어 모든 것을 흑백·선악 등 이분법적으로 보고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한다. 지금 극단적으로 흐르고 있는 몇몇 종교인들과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그들과 부화뇌동하는 일부 종교인들을 보라. 민주적이고 다원주의적인 현 사회에서 자기만 옳다고 고집하는 이런 배타주의적 정신으로서는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가 없다.
종교 없이 산다고 허무하게 살아야 하는가? 주커먼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실증적 자료를 통해 명확히 하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종교가 없어도, 신이 없어도,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없어야, 신이 없어야’ 잘 산다는 것이다.
 
숨 막힐 정도의 전통적 종교의 도그마에서 벗어나면 삶과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지금껏 당연히 여기던 것을 새롭게 보게 된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보고, 봄에 솟아나는 들풀 한포기, 바람에 나부끼는 잎 새 하나를 보고도 경이로움과 놀람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사소한 일상의 일에서부터 광대한 우주의 ‘경이로운 신비(awesome mysteries)’를 하나하나 발견하며 외경과 환희와 황홀함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아하!(aha!)’의 연속이다. 이렇게 종교를 넘어서 모든 것을 신기한 눈으로 보며 사는 삶의 태도를 저자는 ‘외경주의(aweism)’라고, 그리고 이런 태도로 사는 사람을 ‘경외주의자(aweist)’라 불렀다. 이것이 오늘에 절실한 ‘종교 아닌 종교’라는 것이다.








283Namgok Lee, 박길수 and 281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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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범

개인적인 이해로는 탈종교화라는 표현 자체에 공감하는데, 그 의미로는 그 종교의 본질을 알고 완전히 겪어 드디어 벗어나는 것과 그것을 모르는채 감정적으로나 사회적 현상으로, 일종에 종교로부터 도망치는 것 같은 개념으로는 안타까운 현상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진정한 탈종교화는 사실 그 종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제 종교를 알만큼 알아 그야말로 졸업하는 것같은 의미여야 한다는 이해구요. 그러기에 부정적이긴 하지만 오늘의 그런 근본주의자들의 행태들도 그런면에서는 일종에 반면교사가 된다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곧 종교의 폐해같은 경우로 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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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욱

탈종교 사회는 괜찮은데 반종교 사회가 되면 위험할지도 ...
저는 평소 종교모임과 종교조직을 구분하는데,
전자는 아직 필요성을 긍정하는 편이고 후자는 부정하는 편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종교적 모임과 종교적 조직이 다른 영향을 준다고 생각됩니다.
또 일상적 대화에서 종교의 가르침, 가르침에서 파생된 교리, 교리에서 파생된 문화, 그 종교문화에서 파생된 특정 사회문화가 구분없이 너무 혼합되어 사용되는게 아쉽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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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eop Kim

탈종교적 윤리(secular ethics)는 종교라는 틀에서 벗어나 온 영역에서의 윤리성 회복을 의미한다면 A. 카이퍼의 영역주권과는 연계될 수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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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금선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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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en Soo Park

종교를 등에업고 자행되는 악행들,,,, 우리나라는 유래없이 1년 365일을 종교로 시작해서 종교로 끝을 맺습니다. 신년기도회~~송구영신예배, 그리고 매일 새벽기도회,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토요예배, 주일예배, 각종 성서세미나, 계절마다 부흥회,,, 종교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 사회는 우리를 “개독교”라 부릅니다. 어떻습니까?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예수님이 종교입니까? 탈종교화라는 말에도 모순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죠. 교회에서 종교에 파묻혀 예배지상주의를 부르짖으며 “주여주여” 불러보지만 이 말씀이 대답을 합니다. 진작 우리나라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자면서 남북이 만난 2018년 4월27 눈물나는(개인적으로 눈물이 핑돌음)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그 주 4월 29일 예배때 담임목사 설교에서 일언반구가 없다. 통일기도회는 열자면서 이런일에는 성도들의 관심과 애정을 그리고 소원을 함께 해야하는데... 동감은 아니더라도 공감이라도 해야하는데...
종교는 공감을 뛰어넘어 동감으로 가야하는데 공감조차 없으니 누군들 종교를 갖고 싶겠는가?
위에서 언급한 탈종교화 된 서구 몇 몇 나라들이 더 따뜻하고 서로서로 돕고 아름답게 보이는데 당연히 탈종교화가 가속화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행해야...”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교를 갖지않는다고 종교가 없는것인가?
믿는 자, 믿지 않은 자를 구분하는 잣대가 종교의 유무로 판단한다면 참으로 어리석다.
참 이웃의 비유도 있지않은가?
탈종교화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예수님은 종교가 아니다.
종교보다 종교생활(행함)이 되어야하고 신앙이 좋아보이는 것보다 신앙생활(행함)을 함으로써 탈종교화로 진짜 예수님의 성품 본질로 돌아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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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호

아쉽게도 예수님은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종교가 되고말았습니다 이땅으로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을 하늘로 되돌려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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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e Jeong

감사합니다. 선생님 글로 Aweist, Aweism 이라는 새 단어 (나에겐) 를 만났습니다.
생각하지 않아도 알아서 숨을 쉬고, 신진대사를 포함한 모든 몸의일을 미묘하게 진행하고있는 나의 몸둥이를 내려다 보면 "신비" 하지 않을수 없지요. 선악의 구별보다는 우리 자체가 "Awesome!!! " 하다고 인지 (Awareness) 한다면....
신자와 비신자를 구별하는게 안타까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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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Sung Lee

종교없는 삶이 제일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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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Sung Lee

박진수! 오랜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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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kol Yu

거의 문맹이신 나의 할머님은 정규 교육을 받으신 적도 없으시고 절에도 다니시지 않으셨다.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 베프시고 가난한 친척에게 도움을 주셨다.부엌뒤에 나무밑에 정화수 떠놓고 비시는것이 그분의 유일한 종교 활동이었다..그분에게는 스님도 목사도 절도 교회당도 경전도 필요치 않았다.그리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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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hee Yoon

오늘 아침에 종교와 신, 그리고 신이 인간에게 주신 양심에 대해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 봤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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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ung-eun Park

‘경외주의자(aweist)’ 라는 말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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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종희

신존재의 유무문제보다. 신의 계시ㅡ복음에 대한 해석과 태도가 문제가되어야 할것 같습니다.샬롬
복음=Evangelism(예수 천당) 일변도에서
복음=Missio Dei(J.P.IC)로의 파라다임 전환.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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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기

탈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14살 중이처럼 피해의식에서 반항과 교만이 싹트는것 아닌가 사람은 자연과 순리에 순복 해야한다고 생각 합니다 오로지 주의 은혜로 잘 살았다 함이 없다면 평안이 올까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함으로 살아기자고합니다

2021/06/27

서적소개 – 원시 그리스도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게르트 타이센 / 대한기독교서회 / 1986.4.1) | 크리스천 라이프 - 에듀 라이프

서적소개 – 원시 그리스도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게르트 타이센 / 대한기독교서회 / 1986.4.1) | 크리스천 라이프 - 에듀 라이프

서적소개 – 원시 그리스도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게르트 타이센 / 대한기독교서회 / 1986.4.1)
– POSTED ON 03/25POSTED IN: 교민소식, 교회소식, 목회와선교, 문화스포츠, 세계와한국교계, 신앙칼럼, 신학논단, 에듀라이프, 전체기사, 크리스천라이프



서적소개
원시 그리스도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게르트 타이센 / 대한기독교서회 / 1986.4.1

게르드 타이쎈(Gerd Theissen)은 팔레스타인의 예수 운동에 있어서 사회학적 역할(sociological roles)들을 분석했다.

게르드 타이센은 신약의 사회학적 분석을 위해 본문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을 구성해 내는 세가지 양식비평의 방법을 제시한다.
첫 번째 것은 “구성적 방법(constructive method)”이다. 이 방법은 삶의 배경을 직접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는 본문들에 의존한다. 이것들은 대개, 우연히 언급되는 초기 기독교의 사회적 삶에 대한 신약의 본문들이다. 단체, 제도, 조직 등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사회 묘사적(sociographic)” 구절들은 거의 없다. 한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초대 교회 신자들의 공동체의 삶이 묘사되어 있는 사도행전 4:32-37이다. 다른 경우들은 대부분 개인과 개인의 배경, 지위, 역할 등을 적고 있는 “인물 묘사적(prosopographic)” 언급들이다. 여기서는 그러한 인물 묘사에 반영된 사회적 서술들을 유추해 내야 한다. 물론 그 기록들의 신빙성, 타당성, 대표성 등이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두 번째 방법은 “분석적 방법(analytic method)”이다. 여기서는 필요한 내용들을 사회적 실재를 전제하고 있는 본문의 양식으로부터 추론해 내는 것이다. 신약 성경에는 사회적 정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본문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신약의 사회학은 주로 이 “분석적 방법”에 의존해야만 한다. 사람들과 집단 사이의 갈등, 규범에 대한 논쟁, 종교적 상징과 비유들이 담긴 본문들을 자세하게 분석해 보면, 그러한 양식이 전제하고 있는 사회적 상황을 어느 정도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비교(comparative)”의 과정이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 집단들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나온 문헌들을 조사하는 단계이다. 물론 여기서도, 신약 본문을 대할 때 사용한 ‘구성’과 ‘분석’의 방법에 따라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초기 교회의 독특성은 “대조”(contrast)에 초점이 맞추어 관찰되고, 공통성은 “유추(analogy)”에 관심을 두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타이센에게 있어 예수 운동은 유대교 내에서의 팔레스타인 사회 갱신(更新) 운동이었다. 이 갱신 운동은 사회, 경제, 정치적 갈등에 의해 발생되고 고조된 사회적 긴장을 해소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타이쎈은 예수 운동의 내적 구조로서 세가지 역할들을 분석함으로써 자신의 연구를 시작한다. 방랑 전도자(wandering charismatics), 지역 사회 동조자(sympathizers), 그리고 계시의 부담자로서 인자(the Son of Man)가 그 세 역할들이다. 방랑 전도자들은 무숙자로서 가정과 소유물이 없는 것으로 특징지워지는 사도, 선지자 그리고 기타 다른 종류의 제자들이다. 그들은 윤리적 극단주의와 생생한 종말론적 기대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방랑 전도자들은, 자신들의 집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방랑 전도자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지역의 동조자들의 후원을 받았다. 인자라는 인물은 계시의 부담자로서 운동의 중심축이 된다.
그 다음 단계에는 예수 운동을 형성시키는데 기여한 팔레스타인 사회의 요인 분석이 따른다. 예수 운동은 유대 내륙지방의 사회적으로 소외된 중산층에 의해 시작되었다 (사회-경제적 요인). 그들은 임박한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함으로써 명목상의 신정(神政, theocracy)과 사실상의 귀족정(貴族政)에 반대하였다 (사회-정치적 요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기 정체감의 위기 속에서, 팔레스타인 사회는 규범의 강화(intensification)와 완화(relaxation)를 교차 발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교차발생으로 인해 유대교의 보편화가 진행된다.

예수 운동은 그렇게 팔레스타인 유대인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위기로부터 자라 나왔다. 한 사회가 위기에 직면할 때, 그로 인한 긴장을 극복, 감소시키려는 추세가 있다. 예수 운동은 “공격성(agression)을 수용하면서 극복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긴장을 해석하는 기능을 하면서 구성되었다. 그 기능의 수행은, “공격성에 대한 보상” (사랑의 계명, 용서와 화해), “공격성의 전가” (인자, 하나님, 귀신 등과 같은 대행의 주체와 객체들), “공격성의 전도(顚倒)” (하나님 은혜 선포의 내면화), 그리고 “공격성의 상징화” (십자가에 달린 예수) 등을 통해 수행되었다. 기능적으로 볼 때 팔레스타인의 유대 사회에서는 예수 운동이 실패를 겪어야 했다. 초기의 운동이 고조되는 사회적 긴장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사회가 더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운동이 팔레스타인을 넘어 긴장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헬라주의적 사회로 이행되면서 사랑과 화해의 비죤은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 목차

서언 = 5
제Ⅰ부 원칙
1. 사회학적 문제에 대한 연구사적 고찰 = 11
2. 종교적 전승들에 대한 사회학적 평가 = 50
3. 종교사회학적 연구에 대한 이론상의 문제점들과 원시 그리스도교의 분석 = 75
제Ⅱ부 복음서
4. 원시 그리스도교의 예수 말씀 전승에 관한 문학 사회학적 고찰 = 103
5. “우리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마가 10:28) = 134
6. 예수의 성전 예언 = 172
7. “폭력 포기와 원수 사랑”에 대한 사회사적 배경 = 195
제Ⅲ부 바울
8. 사도적 정당성과 생계 = 245
9. 고린도 교회의 사회계층 = 287
10. 고린도 교회의 강한 자들과 약한 자들 = 342
11. 사회적 통합과 성례전 행위 = 365
12. 그리스도론과 사회적 경험 = 394
부록
13. 게르트 타이센의 성서해석 방법론(존 슈츠) = 413
14. 원시 그리스도교의 방랑의 라디칼리즘(볼프강 슈테게만) = 435
15. 원시 그리스도교의 사회사에 관한 주요 참고 문헌 = 463
역자 후기 = 489

○ 저자소개 : 게르트 타이센 (Gerd Theissen)


1943년생. 신약학자. 1968년 독일 본 대학교에서 히브리서 연구로 박사 학위(Dr.theol)를 받고 1972년 원시 그리스도교의 기적 이야기에 관한 연구로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했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 교수를 거쳐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명예교수다. 글래스고 대학교,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등 7개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학술원에서 성서 연구 분야에서 커다란 공헌을 남긴 이에게 수여하는 버킷 메달을 받았다. 복음서 연구에 사회-수사학적 방법으로 접근한 대표적 신약학자로 꼽힌다.

저서로는 『예수 운동의 사회학』Soziologie der Jesusbewegung(1977, 종로서적), 『원시그리스도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Studien zur Soziologie des Urchristentums(1979, 대한기독교출판사), 『역사적 예수』Der historische Jesus(공저, 1996, 다산글방), 『복음서의 교회정치학: 복음서에 대한 사회-수사학적 접근』Gospel Writing and Church Politics(2001, 대한기독교서회), 『기독교의 탄생 : 예수 운동에서 종교로』Die Religion der ersten Christen(2000, 대한기독교서회), 『그리스도인 교양을 위한 신약성서』Das Neue Testament(2002, 다산글방) 등이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2021/06/23

文字를 넘어 신의 속나를 보라 ③-4 오강남 교수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

文字를 넘어 신의 속나를 보라 - 아주경제


文字를 넘어 신의 속나를 보라
황호택 논설고문·서울시립대 초빙교수입력 : 2021-01-27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 ③ 오강남 교수 <上>




아주경제와 유튜브 채널 '다석의 생각교실'이 공동 기획한 '내가 본 다석, 내가 들은 류영모'의 두 번째 인터뷰이는 비교종교학으로 명망이 높은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오강남 명예교수다. 코로나 19로 오 교수가 한국에 오지 못하고, 나를 비롯한 취재진이 캐나다로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줌(Zoom)을 이용해 인터뷰가 이뤄졌다.

대학을 갓 졸업한 유수민 인턴기자가 카카오톡 통화로 오 교수에게 줌 작동법을 코치하기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오 교수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나고 목소리가 들렸다. 음성 전달에서 캐나다와 서울 사이에 0.5초 정도의 시차가 있었으나 큰 불편은 없었다. 서울의 아주경제 스튜디오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오 교수의 서재를 연결해 화상 인터뷰를 두 시간 동안 진행하면서 세상이 '코로나 이전(BC·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C·After Corona)'로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캐나다로 두 사람이 출장 인터뷰를 갔더라면 5박6일 걸릴 일을 두 시간으로 단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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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릴레이 인터뷰'는 다석을 연구한 학자, 다석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제자 등 10 여명을 연속으로 만날 계획입니다. 인터뷰를 종이신문,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보도하고 나중에 책으로 펴내려고 합니다. 인터뷰를 4개 매체에 활용하는데요. 여기는 지금 아침 10시인데 캐나다 밴쿠버는 몇 시입니까?

“오후 다섯 시입니다.”

나는 2년 전 캐나다 밴쿠버를 방문해 부차트 가든 등을 주마간산으로 둘러본 적이 있다. 밴쿠버 섬(Vancouver Island)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태평양 연안에 있다. 남한 면적의 3분의 1 정도 되는 큰 섬이다. 기후가 온화하고 풍광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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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교수님의 최근 저서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를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세계적인 종교인 57명을 다루었더군요. 한국인으로는 류영모 함석헌 두 분이 들어있던 데요.

“한국에도 원효 지눌 이퇴계 이율곡 최수운 등 사상가들이 많지만 내가 두 분을 선정한 이유는 한국 종교의 가장 큰 특색인 기복(祈福) 종교를 타파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석학회 회장 정양모 신부는 ‘인도가 석가를, 중국이 공자를, 그리스가 소크라테스를, 이탈리아가 단테를, 영국이 셰익스피어를, 독일이 괴테를 각각 그 나라의 걸출한 인물로 내세울 수 있다면 한민족이 그에 버금가는 인물로 꼽을 수 있는 분이 바로 다석 류영모’라고 말했습니다. 좀 과한 것 같지만 다석 류영모의 위상을 잘 얘기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석 류영모 선생한테 직접 배우신 박영호 선생은 ‘다석은 인류의 스승으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석을 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분이 함석헌 선생입니다.”

-오 교수님은 표층(表層)종교와 심층(深層) 종교를 구분하는 말이나 글을 많이 쓰는데요.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집합을 금지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복신앙으로 번성한 표층종교의 종말을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표층종교와 심층종교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늘상 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다섯 살 정도까지는 산타가 정말로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와서 굴뚝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오고, 착한 일을 한 아이들에게 벽난로 옆에 달린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고 간다는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이런 믿음은 어린아이의 정신 발달 과정에 필요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한테는 그것이 1년을 기다리는 이유고, 착한 일을 하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자라 어머니가 양말에 선물을 넣는 것을 눈치 채면서 산타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믿는 대신 '산타 이야기는 식구들 사이에 서로 사랑을 나눈다는 뜻이구나, 나도 선물을 받지만 말고 부모님이나 동생에게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단계 올라가는 겁니다.
아이가 철이 들면 '산타 이야기는 가족 사이에 사랑을 베풀 뿐 아니라 온 동네에, 혹은 더 넓은 사회, 좀 더 넓게 세계의 불우한 이들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구나' 라고 깨닫게 됩니다. 좀 더 성숙하면 '불우한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만 사랑을 베푸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억울한 사람들이 없게 해야 한다, 환경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습니다. 산타 이야기는 하늘이 내려오고 땅이 화답하는 천지합일(天地合一), 신이 내려오고 인간이 화답하는 신인(神人)합일을 상징하는 이야기라는 깨달음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들의 산타클로스 믿음 수준에 머물러있다면 일종의 '종교적 발달장애'라고 할 수 있지요.
표층종교는 이기적인 나를 잘 되게 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헌금이나 보시를 하더라도 나와 내 식구가 현세와 내세에서 잘 되기 위해서, 기도를 할 때도 내가 잘 되도록 비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심층종교는 이기적인 나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내 속에 있는 신성, 불성, 참 나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나 혼자와 가족만 잘 되기만을 비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함께 잘되기를 바라는 결의를 다지는 심정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한 자 한 획도 가감 없이 믿어야 한다는 문자(文字)주의가 표층종교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을 하던데요. 문자주의가 왜 문제가 되는 거죠?

“류영모 선생은 이기적인 나를 '제나'라고 하고 내 속에 있는 참나를 '얼나'라고 했습니다. 제나에서 얼나로 바뀌는 것, 이를 제나에 죽고 얼나로 살아나는 죽음과 부활이라 할 수 있는데, 류영모 선생은 이를 '솟남'이라 하셨습니다. 류영모 선생님의 경우 어느 종교든지 이렇게 제나에서 얼나로 솟나게 해주는 종교는 모두 유익하다고 봅니다.

표층종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합니다. 교회나 절에서 한 얘기를 무조건 믿는 것은 맹신 광신, 미신으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 무조건적 믿음은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독립적 사고 능력을 박탈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심층종교는 이와 달리 이해와 깨달음을 강조해요. '보고 깨달아라'는 것이죠.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서 해방돼 무엇이 바른지를 계속 추구하는 종교, 열린 종교입니다. 무엇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새로운 눈뜸입니다. 부처님도 '무조건 믿지 말고 실험해보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여라',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 종교만 옳다'는 근본주의는 폭력

표층종교는 신은 하늘에 있고 인간은 땅에 있다는 식으로 신과 인간, 신과 세상을 분리하여 생각합니다. 이른바 이원론적 세계관입니다. 신의 초월(超越)만을 강조하지요. 심층종교는 신이 밖에도 있지만 내 안에도 있다고 봅니다. 어느 면에서는 신의 초월보다 신의 내재를 더 강조합니다. 신이 우리 속에 있는데, 우리 속에 있는 신이 바로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결국 '신과 나는 하나'라고 봅니다. 이런 사상을 강조하는 신관을 범재신론(汎在神論 ·panentheism)이라고 하는데, 동학(東學)이 이런 신관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한울님이 따로 계시지만 우리 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시천주(侍天主)라 합니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한울님이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끝내 나와 한울님은 하나다' '인간이 바로 신이다' 하는 것이 인내천(人乃天)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동학에는 '나만 한울님이 아니다. 내 이웃도 한울님이다' 하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정신도 있습니다.

표층종교는 문자주의를 고집합니다. 성경이나 여러 경전에 있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심층종교는 이와 대조적으로 '문자 너머를 보라', 류영모 선생님 용어로 '속나를 보라'고 합니다. 깨달음을 통해 신을 경험하는 일은 너무나도 엄청나 도저히 문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종교 경전은 결국 상징이나 은유를 통해 그 경험을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징적 은유적인 문자는 그 경험으로 인도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경험 자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걸 무시하고 '문자 그대로 믿어라' 라는 것은 성경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선불교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합니다. 문자에 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한국 기독교의 다수는 근본주의자들입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에 나온 것이면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문자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손가락만 보고 있으면 안 되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표층종교는 자기만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대합니다. 독선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 프란체스코 교황은 자기들만 옳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은 그 자체로 폭력적'이라고 했습니다. 남을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올바르지 못한 것이지요.”

-미국에서는 제일 큰 동창회가 교회 졸업동창회라는 말도 있다던데요. 교회 신자가 감소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교회보다 훨씬 재밌는 것이 많기 때문인가요?

“교회가 문자주의에 매달리면 그 문자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6일 만에 창조되었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태양 보고 '서라' 했더니 태양이 섰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을 성경의 문자 그대로 믿으라고 하면 요즘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심청전을 보면 심청이가 물에 빠져서 용궁에 갔다가 연꽃에 실려 송나라 황후가 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심청전의 메시지가 중요한 거지, 용궁이 정말 있느냐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성경의 메시지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이것이 중요한 거지 이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들을 그대로 믿으라고 하는 것은 현대인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소위 가나안 교인들이 많다고 하는데, 가나안은 '안 나가'를 거꾸로 한 말이라고 합니다. 가나안은 성경에 나오는 지명인데… 미국의 보수적인 목사가 쓴 책 제목이 입니다. 지금 기독교인이 죽고 나면 기독교인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교회도 졸업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동창회라는 말이 나온 거예요. 미국은 그래도 서방국가 중에 기독교인들이 많은 셈입니다. 북유럽 쪽은 기독교인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북구의 제일 잘 산다는 세 나라에는 실질적으로 '신이 없는 사회'라는 겁니다. 기독교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나 필요하지 그 외에는 별로 상관없는 사회가 된 거예요.”


다석 류영모와 그를 따르는 제자들. 왼쪽부터 방수원 현동완 류영모 김흥호 함석헌.

-이 인터뷰의 문패가 '내가 본 다석, 내가 들은 유영모'지요.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함석헌과 다석의 관계에 대해 말씀을 해주시죠.

“함 선생이 오산학교에 다닐 때 다석이 교장으로 오셨어요. 그 전에 평교사로 가서 한 몇 년 가르치다가 오산학교를 그만두고 나올 때 다석은 표층적(表層的)인 기독교를 버렸습니다. 두 살 아래인 동생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무리 기도를 해봐야 효험이 없어 기복신앙이 소용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톨스토이가 죽으면서 붐이 일었을 때 다석도 톨스토이에 관심을 갖고 그를 연구했습니다. 그 무렵 노자의 도덕경과 불경을 배웠습니다.

함석헌 학생이 교장으로 온 다석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석도 함 선생을 특별한 제자로 생각했습니다. 다석이 일제의 간섭으로 1년 만에 교장 노릇을 못하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함 선생이 배웅하러 나가는데 다석이 '내가 오산에 왔던 것은 함, 자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던가 보네'라고 특별한 관계임을 말했습니다. 그 후에 계속 사제 관계를 유지했는데 나이는 10살 차입니다. 생일이 똑같습니다.”
함석헌은 “내가 부족하지만 이만큼 된 것도 다석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당대에는 함석헌이 세속적으로 다석보다 유명했다. 그가 입만 열면 "다석이 나의 스승"이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석을 알게 됐다. 오 교수는 캐나다와 한국에서 여러 번 함석헌을 만나 깊게 교류하면서 다석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오 교수는 다석을 만나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생각한다고 책에 썼다.

-말년에 두 분 관계에 묘한 갈등과 결별이 생깁니다. 다석 제자인 박영호 선생이 쓴 <다석 전기>에 보면 함 선생의 여자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옵니다. 종교 지도자로서 여자 문제는 흠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께서 세계 종교인 57명의 반열에 함 선생님을 올린 뜻이 궁금합니다.

“조금 곤란한 질문인데 나름대로 대답을 해보겠습니다.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에 거론된 사람 중에 여자 문제와 관계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 겸 종교학자로 꼽히는 폴 틸리히도 여자 문제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실존철학의 대가 마르틴 하이데거, 인도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마하트마 간디도 여자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도 마찬가집니다.

함석헌의 스승으로 이름 높아진 다석

함 선생님의 문제를 알지만 그런 문제보다는 함 선생님의 심오한 사상, 실천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과(功過)가 있는데 저는 공을 보고 그 공을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론토에 사는 목사님이 나 보고 '폴 틸리히가 여자 문제가 있는데 왜 자꾸 인용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폴 틸리히의 깊은 통찰은 내가 종교를 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다석이 오산학교를 기독교 학교로 바꿔놓고, 설립자인 남강 이승훈 선생을 기독교인으로 만들고서 정작 본인은 나중에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함석헌 선생이 한때 따르던 무교회주의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요? 다석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과 탈(脫)종교화 현상은 다른 건가요?

“다석은 미리 깨달은 거죠. 문자주의적 믿음이 현대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거죠. 계몽주의 이전 시대에서는 목사나 신부, 종교 지도자들이 하는 말을 거의 그대로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몽주의 시대가 지나가고, 현대 과학 생물학이나 심리학 같은 학문이 발달하고, 특히 인터넷 속에서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데, 2천, 3천년 전의 세계관과 패러다임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교리를 강요하는 종교는 설득력이 있을 수 없죠. 지금 그런 걸 강조한다면 그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입니다. 더 이상 지탱하기가 힘들죠.
그런데 류영모 선생은 무교회주의자는 아니었어요. 함석헌 선생이 처음에는 김교신 등 무교회 사람들과 같이 <성서조선> 운동을 했습니다. 함석헌 선생도 무교회주의에 처음에는 호응했지만 나중에는 결별합니다.

일본인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신학은 소위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얻은 구원에 대한 감사’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대한 류영모 선생님의 해석은 완전히 달라요. 류영모 선생은 사상을 풀어갈 때 천(天) 지(地) 인(人) 삼재(三才)를 가지고 풀이합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에서 세로로 선 것이 사람이고 가로로 누운 것은 땅, 위의 점은 하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이냐, 인간이 땅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상징하는 표시'라고 풀이합니다. 대속(代贖)신앙이 아니라 자속(自贖)신앙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인데 정통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이 땅에 자기 아들 예수를 보내서 예수가 죽음으로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는다'는 식으로 해석합니다. 다석은 그게 아니예요. 하나님이 자기의 씨(신성)를 각 사람 속에 심어줬다고 해석합니다. 우리 속에는 전부 신성이 있고, 불교에서는 그걸 불성, 유교에서는 인성이라고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참나, 얼나 이런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하늘에서부터 주어진 씨라고 보는 것이죠.”

-미국에는 교회 신자들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말도 있습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며 예배를 드리면 스트레스가 줄고, 가깝게 지내는 교우도 생기고, 술 담배를 멀리하고, 성경 말씀을 생각하며 나쁜 유혹에 덜 빠지고… 그런 착한 신앙도 기복신앙, 표층 종교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겁니까?

가나안 교인과 안나가 교인


“저는 교회의 공동체적 요소를 좋게 생각합니다. 서로 가깝게 지내면서 돕고, 우의를 다짐하는 것은 좋습니다. 제 형님도 미국 LA에 사는데 교우들이 모여서 매일 아침 골프 치러 가고…. 세상에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은 교회 말고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형제나 일가친척도 그렇게 자주 만나지 않지요.

그러나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이해관계로 갈등과 소란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목사 편과 장로 편, 오래된 신도와 새 신도 편 등으로 편을 갈라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상당수 교인들이 교회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고 호소합니다. 그래서 '가나안' 교인들, 거꾸로 '안나가' 교인들이 많아지는 것이지요.

교인들이 오래 산다는 말이 정확한 통계에서 나온 말일까요. 교회에 안 나가는 북유럽 나라들의 평균 수명이 더 길 것 같은데요.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제가 LA 어느 목사님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목사 사모들의 경우 생명보험비가 더 높다고 하더군요. 스트레스가 아주 높기 때문이죠. 목사 사모라는 특수 위치 때문에 자기의 전공을 살리지도 못한 체 교회에 묶여 있어야 하고, 남편 목사가 여신도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도 신경 쓰이고, 그렇다고 불평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교회가 사교적이고 즐겁기 만한 모임이 아니고, 자기들의 이기적 '제나'를 추구하는 투쟁의 장소가 되기 쉽습니다. 이상적인 '얼나'를 찾는 장소로 적합한지 다시 생각해봐야죠.”

(인터뷰어 황호택 논설고문·정리=박하늘 인턴기자)

<오강남 교수 약력>
- 1941년 출생
- 1965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학사
- 196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석사
- 1970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박사과정 수료
- 1976년 캐나다 맥마스터대학교 대학원에서 '화엄의 법계연기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Ph.D)
- 1980~2006년 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비교종교학 교수
- 1986, 2011년 서울대학교 객원교수
- 1990~98년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
- 1991~96년 북미한국인종교학회 회장
- 저서 "도덕경"(1995, 개정판 2010), "장자"(1999년), "예수는 없다"(2001, 개정판 2017년)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2011, 개정판 2019) 등 다수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④ 오강남 교수 <下>






내가 오 교수와 처음 만난 것은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하던 2001년경이다. 오 교수는 그때 현암사에서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펴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기독교에 대해 새로운 개안(開眼)을 하는 느낌을 받고 동아닷컴에 칼럼을 썼다. 이 칼럼을 읽은 오 교수가 서울에 왔을 때 신문사로 찾아와 처음 만나게 됐다. 그 뒤로 나는 종교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그에게 전화나 메일로 자문(諮問)을 했다. <예수는 없다>는 2001년 5월 초판이 나온 이래 개정판까지 42쇄를 찍은 장기 베스트셀러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보면 정통 기독교인 중에는 오 교수의 안티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기독교 계통의 어느 목사가 ‘하느님 보호해주심으로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고, 설사 감염되더라도 성령의 불로 깨끗이 낫게 되리라’고 장담했는데 그 사람도 코로나에 걸렸어요. 트럼프처럼요. 오 교수가 최근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교회’라는 글에서 ‘교회에 모여서 코로나를 낫게 해달라고 합심 기도를 하는 그 집회 때문에 코로나가 더 확산된다’고 지적했던데요. 하느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은 건가요?

“전광훈 목사 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기도나 종교 행사와는 관계가 없고, 방역이 중요합니다. 마스크를 쓰느냐, 손을 잘 씻느냐, 혹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막을 수 있는 거지, 기도한다고 안 걸리는 게 아닙니다. 코로나가 ‘저주냐, 축복이냐’ 하는데 저주도 아니고, 축복도 아닙니다.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서 저주도 되고 축복도 된다고 봅니다. 코로나를 기도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모이면 점점 퍼지고 이건 저주가 돼요,

예수님은 "참된 예배는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고, 한두 사람이 모이는 곳에도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함께 모여 예배를 할 수 없다고 야단인데, 비대면으로 조용히 예배 드리고, 이런 기회에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 속의 얼나를 찾는다면 축복이겠지요. 내 속에서 우러나는 미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 혹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 얼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 글에서 코로나 이후 소위 기복(祈福)신앙, 유대교의 율법으로부터 내려온 인과응보 사상이 힘을 잃을 것 같다고 했는데요.

“하느님이 착한 사람에게 상 주고 나쁜 사람에게 벌 준다면 ‘코로나에 걸린 사람은 죄를 지어 그렇게 됐고, 걸리지 않은 사람은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그렇다’는 게 되죠. 코로나 걸린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것입니다. 세월호에서 죽은 순수한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인간이 겪는 행복과 불운을 신의 상벌(賞罰)로 가르는 것은 오늘날 먹히지 않는 사상입니다. 그걸로 사람을 협박하면 안됩니다. 달라이 라마가 <종교를 넘어>라는 책에서 “인간이 잘해서 나중에 극락 간다, 못해서 지옥에 떨어진다, 이런 식의 협박이나 회유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면 속에서 좋은 일을 하면 즐겁고 나쁜 일을 하면 스스로 고통이 되는 것을 감지하는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티베트불교의 성지 포탈라궁 앞에서. [사진=오강남 제공]

-오 교수가 한국에서 신흥종교가 번성한 데는 정감록 비결의 영향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데요. 이제는 국립공원이 된 계룡산에 옛날엔 불교, 기독교 계통 신흥종교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여기도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풍수설이 전해지고 비결서에 새 왕조의 터전으로 지목되면서 신흥종교들이 모여들었다는 거지요. 왜 기독교계 신흥종교들까지 십승지지를 찾아갔을까요.

“한국의 신흥종교는 대체적으로 혼합종교적(syncretic) 특색을 가집니다. 이것저것 필요하다면 다 받아들이지요. 예를 들어 절에 삼신각이 들어와 있다든가, 기독교에서 새벽 예배를 드린다든가 하는 것은 한국 샤머니즘적 요소가 들어온 것이라 봅니다. 정화수 떠놓고 장독대 앞에서 빌던 치성의 연장이죠.”

-한국 교회가 일제시대, 6·25 전쟁을 겪으면서 급성장했고, 서울에는 궁전같이 크고 화려한 교회들도 많은데요.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한국 교회는 복 받고 부자 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머리 둘 곳이 있는데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으리으리한 건물을 짓고 거기서 예수님을 찾는 것은 모순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한국 기독교 상당수는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황금을 섬기는 맘모니즘(mammonism)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 하면 대형교회를 떠올리기가 쉬운데, 내가 아는 몇몇 작은 교회의 목사님들은 참 존경스러워요. 교회를 나오는 사람이든 안 나오는 사람이든 아이들을 통학시켜주고, 어려움을 도와주지요. 상당수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제왕과 같죠. 천국에 가도 그보다 좋은 대접을 받긴 힘들 겁니다.”

-개신교 신자들이 다른 종교에 대해 대체로 배타적이죠. 왕왕 불상 훼손 행위를 저질러 사회적 물의를 빚는데요. 다석 사상은 기독교 유교 불교에다 노장 사상까지 들어가 있으니 정통 기독교 신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통 기독교인들이 거부감을 갖는 것은 사실이죠. 종교학을 창시했던 독일인 막스 뮐러가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한 말을 들려주고 싶군요. 여러 종교를 뒤섞고 혼합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내 종교라도 어떤 위치에 있는 건지, 어떤 가르침을 배우려고 하는 것인지, 서로 비교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스 큉은 '종교 간 대화가 없으면 종교 간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 간 평화가 없으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화를 해서 네 종교가 어떤 것인가, 내 종교가 어떤 것인가 알아야 합니다. 요즘은 타종교라는 말도 안 쓰고 이웃 종교라고 합니다. 이웃 종교가 서로 상생하고 도와주는 길벗으로서 살아가면 서로 좋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힘쓰게 됩니다.”

동서양 종합한 독창적 종교 사상

‘종교 없는 삶’의 저자 필립 주커먼(Phil Zuckerman)은 '오이즘(Aweism·경외주의)'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종교를 넘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신기한 눈으로 보는 삶의 태도다. 캐나다와 미국의 알래스카 주에서는 태평양에서 자란 연어들이 자신이 태어난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어 사냥꾼인 물개나 곰이 목을 지키는 위험한 여로다. 밴쿠버에 있는 오 교수의 집 옆으로도 태평양으로 통하는 개울이 있는데 10월이면 알을 낳기 위해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들을 만날 수 있다.

암컷들은 목숨을 걸고 수천km 떨어진 고향을 찾아와 알을 낳고 죽는다. 그러면 수컷들이 알을 부화시키고 따라 죽는다. 오 교수는 이것을 아하이즘(Ahaism)이라고 바꾸어 부른다. 봄에 파란 새싹이 땅을 뚫고 올라온다든가, 겨울에 앙상한 가지에서 꽃이 핀다든가 그런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서 대우주의 움직임이나 신비스러움을 발견할 때 ‘아하’하고 감탄하는 것을 ‘아하이즘’이라고 한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깨달음을 얻었을 때도 ‘아하’ 하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것을 아우른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기적인 것은 없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신은 어느 쪽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는가.
오 교수는 종교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산 밑에서는 약간의 나무와 꽃들이 보이지만 올라갈수록 멀리 호수와 넓은 들판이 보인다. 그 때 ‘아하!’ 하게 된다. 새로운 발견이다. 종교는 어느 면에서 ‘아하! 경험의 연속’이다.
“옛날에는 깨달음을 얻었다든가 심층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가뭄에 콩 나듯 했어요. 왜냐면 그때는 98% 이상이 문맹이었어요. 심층종교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앉아서도 미국, 유럽 유명한 교수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하이즘’ 혹은 심층에 접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 겁니다. 그러니까 ‘심층종교의 민주화’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항아리에 담겨 있다 1600년만에 이집트 사막에서 발견된 도마복음. 이집트의 고대어인 콥트어로 기록돼 있다.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농부가 밭에서 발견한 항아리 속에서 도마복음이 출현했습니다. 오 교수님은 도마복음 해설서도 썼는데요. ‘오강남 복음’이라고 혹평하는 목사들도 있더라고요. 도마복음은 기독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4세기경 니케아 공의회에서 승자가 된 아타나시우스 주교가 승리의 여세를 몰아 4복음서 외에는 모두 폐기처분 하라고 명령했는데, 나그함마디에 있던 사원에서는 나중에 다시 찾아보려고 그랬는지 항아리에 넣어서 땅에 묻었어요. 그러다가 1600여년이 지나 1945년에 발견되었는데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의 어록 114개만 기록되어 있어요. 행적에 관한 것은 없어요. 예수의 수난이라든가,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에 관해서도 없습니다.
도마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깨치라’고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은 ‘믿으라 믿으라 믿으라’ 그러잖아요? 그리고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도마는 믿지 못하는, 의심하는 도마(doubting Thomas)라고 나옵니다. 요한복음에 대비되는 도마복음은 믿음(pistis)이 아니라 깨달음(gnosis)을 강조합니다. 사람이 깨달아야만 거기에서 종교가 줄 수 있는 참된 청복((淸福)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도마복음의 특징입니다.

나의 ‘도마복음’ 풀이에 다석을 몇 번 인용했습니다. 도마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을 가리켜 자기 땅이 아닌 땅에서 노는 아이들과 같다고 했습니다. 땅 주인이 와서 땅을 되돌려 달라고 하니 그 아이들은 땅 주인이 보는 데서 자기들의 옷을 벗고 땅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합니다. 다석도 삶을 ‘놀이’로 보았습니다. ‘우리는 묶고 묶이는 큰 짐을 크고 넓은 ‘한데’에다 다 싣고 홀가분한 몸으로 놀며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종당에는 이 몸까지도 벗어 버려야 한다. 다 벗어 버리고 홀가분한 몸이 되어 빈탕 한데로 날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도마복음은 ‘홀로’를 강조하는데, 다석도 해혼하고 홀로 되심을 실행했다고 봅니다.

도마복음과 4복음서는 상당 부분 겹치지만 겹치는 부분도 의미를 달리합니다. 예를 들어 4복음서에서 양이 우리를 빠져나와 길 잃은 양이 되지 않습니까? 불쌍한 양이 되어서 예수님이 양을 안고 다시 우리로 들어온다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도마복음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길 잃은 양이 아니라, 99마리의 양들과 달리 너무 특출하기 때문에 거기에 그대로 섞일 수 없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스스로 그 무리를 탈출해서 자기 나름의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용감한 양입니다. 그래서 양을 찾았을 때 예수님이 ‘나는 아흔아홉 마리보다 너를 더 귀하게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도마복음은 용기를 가지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를 강조합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엘레인 페이젤스(Elaine Pagels) 교수는 도마복음 전문가인데, ‘도마복음이 만약 폐기 처분되지 않고 기독교 전통의 일부로 남아있었다면 지금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가 훨씬 쉬워졌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합니다.
도마복음에서 하는 예수님 말씀이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제 책 제목을 ‘또 다른 예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문 마지막에 ‘도마복음이 기독교와 불교를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99마리 이탈한 한 마리 양은 자유로운 영혼

-오 교수가 ‘교회를 지배하는 신학은 암흑시대라고도 하는 중세와 근대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하면서 ‘교회를 개혁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고 신학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아까 말한 대로 무엇보다 신관(神觀)이 바뀌어야 하는 거예요. 하늘 위에 계셔서 낮고 천한 인간을 보시면서 잘한 사람은 칭찬하고 못한 사람은 벌주고 나중에 죽어서 잘한 사람은 천당 보내고, 못한 사람은 지옥 보내고, 이런 식의 신관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걸 가지고 교회를 유지하는 방식은 아직까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통할지 모르지만 유럽 같은 데서는 안 되잖아요.
지금 젊은이들은 ‘나는 종교적이 아니다. 나는 영성적이다’하는 말을 씁니다. ‘전통적인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내 속 깊이의 영적인 영성에 주목하고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고 나를 찾겠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기독교의 신관과 성경관 역사관이 통째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21세기에 맞는 패러다임에 입각한 그런 기독교가 탄생해야지요. 그것이 제가 말한 심층종교적 요소를 받아들인 기독교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이 류영모 함석헌 선생이 지향한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종교 사상가인 레프 톨스토이의 초상

-다석 류영모의 기독교관을 보면 톨스토이가 상당히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요.

“톨스토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다석은 독창적이라서 어느 한 사람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명상해서 발견한 것을 독창적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소크라테스 괴테, 이런 사람들보다 어느 면에서 더 위대하다고 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사람들은 서양에서 태어나 서양 사상만 가지고 생각했어요. 공자나 노자는 동양 사상만 가지고 생각했고요. 다석은 동양 서양 한국까지 다 알아서 종합적인 사유를 했고, 특별히 한국말을 가지고 자신의 독특한 신학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빈탕 한데’라든가, ‘가온 찍기’라든가.
특히 하느님을 말할 때, 우리는 하느님이 계신다고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하느님이 ‘있다’고는 말하지 못해요.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신이 절대적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 없어요. 그렇다고 없다고 말하려니 그것도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노자의 경우는 ‘무’라고 하지만 류영모 선생은 둘을 합해서 ‘없이 계신 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는 불교의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말과 비슷한데요. 한문보다는 얼마나 우리한테 착 들어맞는 말입니까.”

-다석 류영모의 종교 철학과 사상이 표층종교적인 신학을 개혁하는 데 빛이 될 수 있다고 보는지요?

“그럼요. 류영모 사상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거기에 자극 받아서 새로운 설명 방법이 나와야죠. 새로운 세대에 의미 있는 방법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해석해주는 겁니다. 함석헌 선생은 ‘껍데기를 붙들고 있는 정통 기독교는 역사의 골목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한국에서 지금은 근본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얼마 안 가서 근본주의는 지탱할 수 없을 겁니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면 그 전 10년 사이에 종교인구가 300만명이 줄어들었어요. 어느 목사가 한국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교회 1만개 정도는 없어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넷 예배를 본다지만 교회에서 떨어져 있으면 헌금을 덜 하게 되니 종교는 앞으로 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는데 어쩌다 세계 각국의 종교를 비교연구하면서 때로는 개신교를 비판하는 길로 나가게 됐는지 궁금하군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30리를 걸어서 경북 안동읍 교회에 갔습니다. 바로 위의 형님이 서울에 있는 교회학교를 다니다 방학 때 내려와 종교와 성경에 대해서 얘기하니까 관심이 커졌어요. 그래서 중학교를 교회학교로 갔습니다. 중학교 1학년, 2학년까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흥미로웠는데 3학년 때 터는 의문 투성이였습니다. 종교에 대해서 뭔가 새롭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와중에 고등학교 때 루돌프 볼트만의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라는 조그마한 책을 읽었습니다. 유동식 교수가 번역한 그 책을 읽으면서 종교를 좀 더 객관적으로 알아보겠다는 마음에서 종교학과를 택했습니다. 그 당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분위기는 주로 서양 종교사상이나 종교철학을 가르쳤습니다. 거기서 대학원을 마치고 캐나다 유학을 가서 보니 그 학교는 서양종교와 동양종교를 반반씩 가르치고, 동양종교를 전공으로 하면 서양종교를 부전공으로, 서양종교를 전공으로 하면 동양종교를 부전공으로 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으로 나갈 때 세계종교를 가르칠 수 있는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그때 인도의 승려 용수(龍樹·150년경~250연경)의 중관론(中觀論)을 연구한 세계적인 학자 T. R. V. Murti 교수의 강의를 1년 들으면서 종교 이해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노장사상과 선불교를 공부하고 화엄 철학에 관한 학위논문을 쓰게 됐습니다. 기독교 교적을 자진해서 정리하고 나니 종교에 대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독자가 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죠. 그것 때문에 여러 가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새로운 시각을 발견했다는 사람들도 생기죠.”

종교 높이 오를수록 멀리 보인다

밴쿠버는 여름에는 덥지 않고 겨울에는 춥지 않은 동네다. 겨울이 되면 낮에는 7도, 여름에는 낮에 더울 때가 25도고 30도를 넘어가는 일이 없다. 겨울에는 비가 많이 온다.
“화상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밖에 비가 오고 있습니다. 그 대신 4월부터 10월 초까지는 한국의 초가을 같은 청명한 날씨입니다. 단점을 찾자면 여기는 일자리가 별로 없고 집값이 비싸지요. 그런데 밴쿠버 교민들 중에 여기가 999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천(1000)당에서 한 끗 모자란다고….”
오 교수는 서재의 블라인드를 걷으며 마운드 베이커의 산자락을 보여주었지만 서재 밖의 원경(遠景)은 줌 화면에 잡히지 않아서 아쉬웠다. 아들 셋에 손자는 네 명. 자손에 모두 ♂만 있다. 며느리 둘이 모두 한국계인데 북미에서 태어나 오래 살다 보니 평소에도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셋째 아들은 아직 결혼을 안 했는데 여자 친구가 중국계 싱가포르 출신이다. 공교롭게도 외할아버지가 한국계다. 두 남녀가 아마 한국계 DNA에 끌려서 가까워졌을 수도 있다.

내가 “50대 중반 무렵의 오 교수님을 처음 만난 것 같은데 지금 팔순에 접어들었죠”라고 묻자 “내년이면 80”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생에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말해주시죠. 이 답변을 끝으로 국제 화상 인터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쓴 책의 대부분은 제가 먼저 쓰겠다고 한 것은 거의 없어요. 어디서 부탁을 해서 쓰거나 연재를 한 것을 모아서 쓰거나 한 거죠. 지금도 여기저기 출판사에서 요청이 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책 쓰는데 바쳐야 할까요. 제가 쓴 책 중에 영어로 번역하고 싶은 책이 몇 권 있습니다. 여력이 있으면 그걸 번역하려고 생각 중이죠. 여기저기 강연 요청이 있는데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한 번도 못 갔습니다. 올 10월에는 한국 종교 발전 포럼이라고 하는 모임에서 강연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때까지는 상황이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골프도 열심히 치려고 합니다. 코로나 끝나면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물 흐르듯이 사는 게 제 라이프 스타일입니다.”(인터뷰어 황호택 논설고문·정리=박하늘 인턴기자)

2021/06/11

탈원전이 위험한 선택인 이유 :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탈원전이 위험한 선택인 이유 :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탈원전이 위험한 선택인 이유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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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정책 329호

글/안도현 (제주대학교 교수)

탈원전을 추진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원자력의 위험은 대처하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설령 원전 격납건물이 붕괴하는 극단적인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사고지역에서 모든 사람이 대피해야 할 정도의 재난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후쿠시마원전 사고 당시 가장 심각하게 방사능 오염의 영향을 받은 일본 토미오카에서 주민을 대피시키지 않았을 경우, 이 지역 주민의 기대수명이 두달반 단축된다. 런던에서 대기오염으로 단축되는 기대수명이 넉달반이다. 일본정부가 16만명이나 강제 이주시킨 결과 첫 3년간 1,121명이 신체적 정신적 고갈로 사망했다. 방사선 자체로 인한 사망은 1명도 없는데, 방사선 공포가 1천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원전이 지난 30여년간 화석연료를 대체함으로써 구한 생명이 180만명이다. 배출을 줄인 온실가스가 1976년이래 64기가톤이나 된다. 원자력을 포기하면 화석연료인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그만큼 대기오염과 기후변화에 취약해친다. 탈원전이 오히려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문제제기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는 속담이 있다. 작은 해를 피하려다 더 큰 화를 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노루를 피하다 호랑이를 만난다는 避獐逢虎(피장봉호)도 마찬가지다. 원전(원자력발전소)사고가 여우나 노루이고,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이 호랑이다. 대한민국의 탈원전 정책에 꼭 들어맞는 속담이다.

탈원전 정책은 원자력발전소의 신규건설을 중지하고, 기존 원자력 발전소도 순차적으로 폐쇄시키겠다는 정책이다. 정부 방침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는 2018년 6월 월성1호기 조기폐쇄하고 신규 원전 사업 백지화를 결정했다. 다만, 신고리 5,6호기의 경우 2017년 10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건설을 재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탈원전 선언을 했을 때만 해도 나는 그 선언1)을 환영했다. 원자력은 한번 사고가 나면 수습할 수 없으니, 도저히 해답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좀 더 깊이 자료를 살펴보던 중 혹시 내가 뭔가 잘못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쿨츠게작(Kurzgesagt)의 핵에너지(원자력) 찬반 설명 3부작 동영상에 접하면서다. 쿨츠게작은 독일어로 ‘간단한 요약’이란 뜻인데, 어렵고 복잡한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을 과학적 근거를 통해 쉽고 명확한 동영상으로 풀어 설명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핵에너지에 대해서도 원리를 설명하는 발제 동영상 및 반대와 찬성 동영상을 3편으로 만들어 제시했다.




원자력이 위험한 이유

원자력이 위험한 이유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2) 첫째, 핵확산 가능성이다. 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기술과 재료를 원전 건설 기술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구할수 있게 된다. 둘째, 핵폐기물과 오염문제다. 원전을 가동하면 사용후 핵연료가 생긴다. 비록 사용을 마친 연료지만, 충분히 연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방사능이 나온다.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연료로 다시 쓸수 있지만, 재처리를 통해 핵무기 원료가 확보되기 때문에 재처리가 허용된 나라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셋째, 원전사고로 인한 재난 가능성이다. 원자로의 노심이 녹는 중대사고가 발생해 격납건물이 폭발을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지면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주변 환경으로 누출된다. 1987년 구 소련 체르노빌,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했던 일이다.




원자력이 필요한 이유

원자력이 필요한 이유는 3가지가 있다.3) 첫째, 원자력이 생명을 구한다. 미국 NASA의 2013년 연구에 따르면 원자력이 1976년부터 2009년까지 33년간 약 180만명의 생명을 죽음으로부터 구했다.4)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사망자를 포함한 수이다. 원전이 생명을 구하는 주된 이유는 화석연료 사용을 대체해 대기오염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폐기물을 대기에 배출하는 가스나 석탄 등과 같은 화석연료와 달리 오직 원자력만 폐기물을 격리된 공간에 보관할 수 있다. 둘째, 원자력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 원전을 가동해 배출을 줄일 수 있었던 온실가스의 양은 1976년 이래 약 64기가톤이나 된다. 21세기 중반이면 원전이 줄일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은 추가로 80~240 기가톤이 될 전망이다. 셋째, 신기술의 개발이다. 원전사고나 핵폐기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차세대 원전 개발이 진행중이다. 가까운 시일내에 차세대 원전을 가동할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수십년 늦어도 수백년 내에는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핵폐기물을 수만년이나 보관해야 한다는 논리는 오류다.




재생에너지가 대안일수 없는 이유

태양광이나 풍력같은 재생에너지를 원자력 대안으로 삼으려하지만, 간헐성과 낮은 에너지밀도 때문에 원자력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간헐성이란 에너지를 24시간 안정적으로 생산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흐린날에는 태양광발전이 안된다. 바람이 안불거나 너무 센 날에는 풍력발전이 불가능하다. 우리에게는 이미 지난 2020년 7월과 8월 장마기간에 50일내내 비가오고 흐려 태양광발전이 무용지물이 됐던 경험이 있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산된 전기를 저장하는 수단이 필요하다. 수소가 유력한 저장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생산비용이 너무 비싸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수소를 저렴하게 생산하는 방법은 원자력뿐이다. 리튬전지와 같은 배터리에 저장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배터리 가격이 고가일 뿐 아니라, 국가단위의 전기수요를 감당할 만큼의 배터리 재료(희귀금속)를 조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재생에너지는 화력이나 원자력처럼 24시간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탈원전을 선택한다면 재생에너지의 사용은 화력발전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탈원전을 선택한 나라의 화석연료 의존도가 줄지 않고 있다. 가스의존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가스도 화석연료다.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을 배출한다. 특히, 가스는 채굴과 이송과정에서 메탄이 누설돼 기후변화에 석탄보다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재생에너지의 보조수단으로 화력발전소를 가동하면 오염물질이 더 많이 배출된다. 미국의 전력회사 듀크에너지(Duke Energy)의 분석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 증가가 대기오염을 악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5) 듀크 에너지는 태양광발전이 의도대로 대기오염을 줄여주는지 파악하기 위해 7개월간 발전소 운영과 대기오염과의 관계를 분석했다. 결과는 태양광발전이 대기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 배출 증가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산화탄소 감축에 기여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태양광발전으로 전기를 많이 만드는 한낮에도 오염물질이 증가했다. 이유는 태양광의 전기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는데, 그 변화에 맞춰 화력발전소의 가동과 중단을 반복해 열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에 거액을 투자해 대기오염을 악화시킨 셈이다.

재생에너지 투자가 오히려 대기오염과 기후변화에 취약하게 만드는 현상은 재생에너지에 투자를 늘린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국가별 탄소발자국(에너지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하는 정도)을 보면, 탈원전을 선택한 독일이 원전중심인 프랑스의 10배나 된다. 전기생산 배출요인(Grid Electricity Emission Factors; KgCO2e per kWh)이 프랑스는 0.047에 불과한데, 독일은 0.469나 된다.6) 재생에너지 투자로 석탄의존은 줄였지만, 화석연료인 가스 의존도가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7) 온실가스 배출정도를 지도에 시각화해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그림1). 녹색이 짙을수록 온실가스 배출이 적고, 갈색이 짙을수록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데, 재생에너지 투자에 적극적인 독일, 덴마크, 스페인은 갈색이고, 원전중심인 프랑스는 녹색이다.



<그림 1> 유럽 주요국가의 온실가스 배출정도 www.electricitymap.org/zone/DE

프랑스와 독일의 에너지원 구성을 1969년부터 2018년까지 비교해보면 프랑스는 원전의존도가 가장 높은데, 독일은 상위 3위가 석유, 석탄, 가스 등 모두 화석연료다 (그림2). 재생에너지에 거액을 투자했는데도 오히려 화석연료 의존도가 증가한 것이다.



<그림 2> 프랑스와 독일의 1969년부터 2018년까지의 에너지원 https://www.visualcapitalist.com/energy-consumption-by-source-and-country-1969-2018/

낮은 에너지밀도도 재생에너지의 근본적인 한계다. 에너지밀도란 단위 부피당 저장 혹은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말한다. 에너지밀도는 원자력이 가장 높다. 원자력 연료인 우라늄 1그램이면 석탄 3톤을 태워 나오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원자력은 에너지밀도가 높은 만큼 배출하는 폐기물의 양도 적다. 원전 1기가 수십년간 배출하는 폐기물은 실내체육관 정도의 공간으로 해결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는 에너지밀도가 낮기 때문에 산업공단 등에 공급할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발전기를 매우 많이 건설해야 한다. 그만큼 많은 토지를 소모해야 한다. 에너지밀도가 낮은데다 하루 4시간밖에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는 태양광으로 원전2기가 생산하는 만큼의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태양광패널(330W)이 1억장 이상 필요하다. 태양광패널의 두께가 4cm라면 두께만 계산해도 4,000km나 된다. 부산부터 시베리아 땅 끝까지 거리가 4,000km다. 토지는 한정된 자원이다.

간헐성과 낮은 에너지밀도 때문에 재생에너지는 매우 비싸다. 독일의 에너지전환 전문가들이 계산한 에너지투자수익률(EROI: Energy Return on Investment)은 태양광이 가장 낮고, 원자력이 가장 높다.8) 미국 시카고대학의 에너지연구소(EPIC)는 재생에너지가 가장 비싸다는 결론을 내렸다. 에너지비용을 계산할 때 사용하는 LCOE(Levelized Cost of Energy)는 간헐성비용(백업 용량 비용), 막대한 물리공간 비용(태양광 및 풍력발전부지 및 송전비용) 및 기저발전 조기퇴출 비용 등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비용을 제대로 산출할수 없다고 지적한다.9)




원전사고가 치명적이지 않은 이유

“그래도 원전 격납건물이 붕괴하는 초대형 사고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정당한 질문이다. 원전중대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99.99% 안전해도 사고가능성이 0%인것은 아니다. 만일 후쿠시마원전 사고같은 일이 산업시설 밀집지대인 남동해안에서 발생하면, 인근 산업공단을 비워야 할까? 원전중대사고가 한국에서 발생하면 국가경제의 붕괴로 이어질까? 과연 원전중대사고는 절대 발생해서는 안되는 사건일까?

위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판단기준이 필요하다. 그 판단기준이 J값(the Judgement or J-value)이다. 영국 브리스톨 대학의 필립 토마스 교수가 2012년부터 영국과 인도정부의 지원을 받아 NREFS (Management of Nuclear Risk Issues: Environmental, Financial and Safety)프로젝트로 개발한 지표다.10)

J값은 삶의 질 지표(Life Quality Index)를 이용해 어느 안전조치가 안전의 이익이란 측면에서 비용대비 가치가 가장 뛰어난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위험노출을 줄이는데 어느 정도의 비용을 투입하는 것이 윤리적인지 판단하는 경제지표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봉쇄조치의 효과성에 대해서도 사용한 도구다.

J값을 이용하면 원전 중대사고 발생시 대규모 주민이동조치가 과연 정당했는지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구소련과 일본정부는 5~10배나 많은 인원을 불필요하게 강제 이주시켰다. 최악의 원전사고인 체르노빌의 경우, 33만명을 강제 이주시켰는데, J값을 적용하면 3만명으로 국한했어야 했다. 후쿠시마는 16만명을 강제이주시켰는데, 전적으로 불필요한 조치였다(지진과 해일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방사능 오염의 영향을 가장 심각하게 받은 일본 토미오카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키지 않았을 경우, 주민의 기대수명이 두달반 단축된다. 영국 런던에서 대기오염으로 단축되는 기대수명이 넉달반이다. 후쿠시마의 기준을 적용하면 런던시민들도 모두 강제이주 대상이 된다. 지구상의 모든 대도시 주민이 강제이주 대상이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일본정부가 16만명이나 불필요하게 강제 이주시킨 결과 첫 3년간 1,121명이 신체적 정신적 고갈로 사망했다는데 있다. 즉, 방사선 자체로 인한 사망은 1명도 없는데, 방사선 공포가 1천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결어

탈원전을 추진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국민을 위협하는 요인은 원전이 아니다. 대기오염과 기후변화다. 탈원전은 대기오염과 기후변화를 악화시킨다. 탈원전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이 위협받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사실을 잘못 알면, 누구라도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면, 그 결정을 바꿔야 한다. 사실이 바뀌면 마음을 바꿔야지, 마음은 안바꾸고 사실을 바꾸려 해서는 안된다. 여우(원전사고)를 피하려고 굳이 호랑이(기후변화와 대기오염)와 마주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참고문헌>
1) 연합뉴스 (2017.6.19.). [전문] 文대통령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기념사. https://www.yna.co.kr/view/AKR20170619071500001
2) Kurzgesagt – In a Nutshell. (2015.4.1.). 원자력이 끔찍한 세 가지 이유! (2/3). https://www.youtube.com/watch?v=HEYbgyL5n1g
3) Kurzgesagt – In a Nutshell. (2015.4.1.). 원자력이 멋진 세 가지 이유! (3/3). https://www.youtube.com/watch?v=pVbLlnmxIbY
4) Kharecha, P. A., & Hansen, J. E. (2013). Prevented mortality and greenhouse gas emissions from historical and projected nuclear power. 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 47(9), 4889-4895. https://pubs.acs.org/doi/abs/10.1021/es3051197
5)North State Journal. (2019.8.14). Duke Energy application points finger at solar for increased pollution. https://nsjonline.com/article/2019/08/duke-energy-application-points-finger-at-solar-for-increased-pollution
6)Carbon footprint. (2019). Country specific electricity grid greenhouse gas emission factors. https://www.carbonfootprint.com/docs/2019_06_emissions_factors_sources_for_2019_electricity.pdf
7) Bloomberg. (2018.8.15). Germany’s Failed Climate Goals A Wake-Up Call for Governments Everywhere. https://www.bloomberg.com/graphics/2018-germany-emissions
8) Global Energiewende. (2014.9.4). EROI ranking of different power sources. https://energytransition.org/eroiranking/
9) Greenstone & Nath. (2019). Do Renewable Portfolio Standards Deliver? https://epic.uchicago.edu/wp-content/uploads/2019/07/Do-Renewable-Portfolio-Standards-Deliver.pdf
10) Watson. (2019.4.12). For The First Time, World Learns Truth About Risk Of Nuclear. https://medium.com/generation-atomic/for-the-first-time-world-learns-truth-about-risk-of-nuclear-6b7e97d435df

2021/06/05

Kang-nam Oh 몇 가지 질문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병마)는 물러가라”

Facebook: Kang-nam Oh

Kang-nam Oh
1itSptonshorored  · 
몇 가지 질문

얼마 전 어느 사려 깊은 분이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며 저와 다른 한 분 목사님께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자신은 현재의 기독교를 떠났지만 “참종교인, 참기독교인으로 깨우침의 길을 가고 싶”은데,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한 질문입니다.  많은 질문 중에서 제가 답할 수 있는 몇 개를 골라 답을 했습니다.  물론 제 답이 그분이 가진 문제에 대한 완벽한 대답일 수 없다는 것 이해합니다.  그런데 일반 패친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실 수 있으실지 궁금하여 여기 옮겨 봅니다.  본래의 질문은 제가 짧게 요약했습니다. 
=======
--영계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병마)는 물러가라”하여 병이 사라졌음을 제가 직접 체험했습니다. 알라나 무함마드의 이름으로도, 부처나 기타 다른 이름으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나요.

오강남 생각: 병이 기적적으로 낫는 체험은 여러 종교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그 체험을 일단 설명하려 하면 그 즉시 그것은 자기가 속한 종교적 사회적 배경에서 나온 해석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배경을 가지신 분은 물론 하느님이나 예수님이나 성령이 고쳐주신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스스로가 상제라 주장하는 증산교 교주 강증산은 하느님이나 성령이라는 용어를 빌리지 않고도 병을 낫게 했습니다. 힌두교나 불교에서도 ‘싯디’라고 하여 기적적인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불교도 일반 신도의 경우는 하느님이나 예수의 이름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피나 보살들의 도움에 의해 병이 낫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경우 하느님이나 성령 악령의 개입이라고 하는 기독교의 유신론적 설명은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정통 기독교에서처럼 인격적인 신을 상정한 해석도 가능하지요.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해석이라 주장할 수는 없겠지요.  

아시겠지만, 종교가 없는 분들은 암으로부터의 기적적인 치유를 spontaneous remission라고 하면서 신이나 초자연적 힘의 개입 같은 것을 상정하지 않고 심리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마치 옛날에는 간질병이 악귀가 들어서 생기는 일이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뇌세포의 변이에서 생긴 결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면에서 신을 개입시키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 비가 오느냐, 왜 경제가 엉망이냐, 왜 병이 들기도 하고 낫기도 하느냐 하는 등의 문제에 신을 가정하면서 신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됩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 기상학, 경제학, 의학, 과학 같은 것이 무의미하게 됩니다.  인류가 지금 같은 지식을 축적하게 된 것은 이런 알지 못했던 현상에 대한 설명 체계에서 신을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크게 일어나게 된 것은 예수의 부활승천 사건의 목격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부활이 없다면 교회에 모든 것을 바치는 우리는 불쌍한 자들이라는 바울의 생각이기도 한데, 부활승천은 전혀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요?

오강남의 생각:  고린도전서 15장에 바울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고 우리가 불쌍한 자들이라는 말을 했는데, 전체 문맥을 보아서 저는 육체적 부활보다 옛 사람에서 죽고 새 사람으로 부활하는 것을 더욱 강조한 것이 아닌가 여깁니다.  그 장 끝부분에 바울 스스로도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한 것을 보면 무덤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죽는” 매일 영적 죽음과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산 것을 자랑으로 겨긴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영적 죽음과 부활의 경험이 없는 삶은 헛것이라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안믿는 것보다 무한대로 더 낫다는 파스칼의 다소 드라이한 논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믿는 것이 삶 속에서도 낫다고 봅니다. 심층종교인이 누리는 평안 때문이지요.

오강남 생각: 신이 있다고 하는데 베팅했다가 없다고 해도 손해 볼 것이 별로 없는데, 신이 없다고 했다가 신이 있으면 완전히 망하게 되기 때문에 신이 있다고 믿는 쪽에 베팅하는 것이 좋고 그렇게 믿고 사는 것이 좋다는 파스칼의 “도박 논증(wager argument)”을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해드리는 것과 안 해드리는 것에 대해 하느님이 그렇게 신경 쓰실까 하는 문제가 있지요.  저는 하느님이니 천국 지옥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있으면 어느 정도 초기에는 믿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머리가 커지면서 믿기지 않는데 억지로 믿으려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억지로 믿으려 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존 레논의 <이매진>의 노랫말처럼 천국도 지옥도 종교도 없으면 싸울 일도 목숨 바칠 일도 없고 세상에 평화가 온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신이 존재하고 내세 심판이 있어야 현재의 도덕적 생활이 가능한 것 아닌가요?

오강남 생각: 임마누엘 칸트의 실천이성에 의한 신 존재 증명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캐나다 UBC 대학의 아라 노렌자얀 지음, 오강남 (해제) 김영사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 신은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가 악하는게 만드는가>를 읽어보시면 옛날에는 이런 신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 수렵채집 사회에서 공동사회로 발전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위에서 지켜보는 신’이 있어야 도덕적 생활이 가능하고 이로 인해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 그런 신은 필요 없다고 합니다. 덴마크의 경우 그런 신이 없어도 훌륭한 사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지요.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런 것을 믿는 것이 오히려 독자적인 결단에 의한 윤리 생활에 방해가 되고, 가난한 사람이 있어도 그것이 신의 뜻이라 치부하므로 인간들이 스스로 해결해보려는 복지 사회가 되는 데도 장애 요소가 된다고 합니다.  

필 주커먼이 쓴 <종교 없는 삶> (판미동, 오강남 해제) 나 기타 <신이 없이도 선할 수 있는가>류의 책들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책들입니다.   덴마크나 스웨덴 노르웨이 등 제일 경제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건전한 나라들은 실질적으로 “신 없는 사회”(이것도 필 주커만 책의 제목입니다.)라는 것입니다.  그 반대도 성립하는데 미국이 신을 믿는 사람들의 제일 많은데, 유럽 국가들에 비해 범죄율, 도덕성, 문맹율 등 여러 면에서 뒤진다고 합ㄴ다.  미국 국내에서만 보아도 루이지애나 등 교회출석율이 제일 많은 남부 바이불 벨트 주들의 범죄율이 가장 높고, 반대로 교회 출석율이 가장 낮은 북동부 버몬트 주나 서북부 오레곤 주가 범죄율이 가장 낮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감옥에 있는 죄수들 중 무신론자는 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감옥에 있는 죄수들의 통계수치를 보면 기독교인들의 범죄율이 다른 종교의 범죄율보다 높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팩트체크 부탁합니다.

3 comments
Seongdoo Cho
두번째 문제는 불교도들에게 윤회의 인정과 비슷한 문제인것 같습니다.
붓다재세시 단멸론이 도덕적 방종의 근거로 사용되었기에 배척 되었던것과 비슷하네요.
윤회와 업이 없이도 충분히 도덕적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굳이 윤회론도 필요가 없어지겠네요..
감사합니다.
 · Reply · 1 h
Guho Jo
불교의 성립 근거인 윤회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2021/05/24

알라딘: [전자책] 토지와 경제정의

알라딘: [전자책] 토지와 경제정의


[eBook] 토지와 경제정의 - 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대천덕 (지은이),전강수 (옮긴이)홍성사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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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제공 파일 : ePub(50.77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248쪽


목차


Ⅰ. 토지와 경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희년 / 자본과 이자 / 재산에 대한 율법 / '미쉬팟': 토지법의 시행 / 열왕(The Kings)과 토지 / 분열된 왕가 / 나봇의 포도원 / 지주의 신, 바알 / '바알주의'와 '여호와주의' / 아달랴 / 부자와 가난한 자 / 선지자들 / 신약성경 / 자유를 선포하라 / 진행 중에 있는 희년 / 교회와 토지 / 토지와 교회의 소명 / 기독교적 식민주의와 제3세계의 빈곤 / 영원한 경제

Ⅱ. 성경적 경제학과 헨리 조지
헨리 조지의 《노동의 조건》에서 / 이자와 인플레이션 / 첫 번째 편지: 성경적 경제학의 적용에 관하여 / 두 번째 편지: 토지세에 관하여

Ⅲ. 성경적 경제학과 한국 교회
한국을 위한 하나님의 해결책 / 영적 전쟁과 IMF / 한국인의 심성, 샤머니즘 / 통일을 대비한 한국 교회의 준비

Ⅳ. 성경 주석
미가서 6장 / 정의에 관한 복음서의 가르침

옮긴이의 말, 부록: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



저자 및 역자소개
대천덕 (R.A. Torrey)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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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중국 산둥 성(山東省) 지난(濟南)에서 장로교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과 한국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미국 데이비슨 대학에서 사회학과 교육학을,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건축노동자와 선원 등으로 일하며 사회생활을 익혔다. 후에 교파를 성공회로 옮겨 미국 남부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했으며, 1946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12년간 목회를 했다.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성 미가엘 신학원(현 성공회대학교)의 재건을 도와 달라는 요청으로 1957년 한국에 왔고, 하나님의 뜻하심에 따라 1964년 신학원장직을 사임했다. 다음 해인 1965년, 뜻을 같이하는 몇몇 동역자들 및 아내 현재인(Jane Grey Torrey)과 함께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척박한 땅 강원도 황지(현 태백) 하사미에 노동과 기도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예수원’ 공동체를 세웠으며, 2002년 8월 6일 타계할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하였다. 할아버지인 R. A. 토리 1세로부터 시작한 성령론과 헨리 조지의 원리에 토대를 둔 경제 이론 및 공동체에 관한 가르침은 그의 치열한 삶과 함께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주요 저서로 《대천덕 자서전-개척자의 길》, 《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토지와 경제정의》, 《나와 하나님》, 《우리와 하나님》, 《대천덕 절기 설교》(이상 홍성사),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전4권, 신앙계)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산골짜기에서 온 편지 5>,<산골짜기에서 온 편지 4> … 총 31종 (모두보기)

전강수 (옮긴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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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식민지 조선의 미곡정책에 관한 연구〉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신 있는 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졌지만, 대학원에서 일제강점기 한국경제사를 전공하고 해당 분야와 관련된 주제로 학위논문을 집필했을 만큼, 식민지 치하에서 벌어진 일제의 경제적 수탈에 관해 전문적 식견을 가진 학자이기도 하다. 특히 일제의 경제적 수탈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토지 수탈과 쌀 공출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국내외 사료들을 섭렵하며 일제의 수탈이 제도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고 치밀하게 자행됐음을 밝혔다.
그런 그에게 한때 동문수학하는 사이였던 이영훈, 주익종 등이 《반일 종족주의》와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 펼친 왜곡된 주장은 그냥 넘겨서는 안 될 학자적 소신의 변절이자 오만과 거짓으로 얼룩진 극우적 역사 인식 그 자체였다. 이 책을 통해 친일자학사관으로 점철된 《반일 종족주의》와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의 허점과 오류를 백일하에 드러내서, 역사적 진실을 널리 알리고 역사 바로 세우기에 일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집필한 책으로 《토지의 경제학》 《부동산공화국 경제사》 《부동산 투기의 종말》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공저) 《헨리 조지 100년 만에 다시 보다》(공저) 등이 있고, 《희년의 경제학》 《사회문제의 경제학》 《부동산 권력》(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접기


최근작 : <다시 촛불이 묻는다>,<《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부동산 공화국 경제사> … 총 22종 (모두보기)


평점 분포

8.0





예전부터 토지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 책은 나의 인생 방향을 바꿔놓고 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명확히 보여주었다. 기독교인이라면 필독서적으로 추천
다시시작하기 2013-09-06 공감 (3) 댓글 (0)



어느 정권이든 간에 항상 토지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그리스도인은 토지,부동산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대천덕 신부님의 유작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성경적 입장을 말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공산주의적 공개념과 유사해 보일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일수 있으나 이는 엄밀히 공산주의적 공유개념이 아닌 하나님의 ‘공의‘의 개념이다.
Dr.Slump 2018-08-25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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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나타난 토지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상가들의 이상향은 자유로운 개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개인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능력, 즉 많은 경우 적당한 토지를 소유한 자작농을 모델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일전의 일독한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 역시 '종교(사상적 일치), 농업, 자생적 예술'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적 삶을 제시하고 있지요. 많은 생태적 아나키스트들과 기독교 공동체주의에서 공동적으로 발견되는 이상향입니다. 유교 역시 그렇지요.

<토지와 경제정의>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토지는 하나님의 것으로 매매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토지의 위치나 생산성에 가치에 따라 과세 함으로써 토지의 가치가 모두 같아지겠지요. 현대적 표현으로 인간의 노동에 의해 추가적 가치를 생산한 것이 없는 토지에 대하여는 이익을 취할 수 없다 정도가 되겠지요. 같은 이치로 남에게 돈을 빌려주고 인플레이션 이상의 이자를 받는 것도 부당한 일입니다. 그래서 현대가 도래하기 전에 대다수의 곳에서는 이자놀이를 천박한 것으로 부도덕한 것으로 판단했지요.

이처럼 성서 속의 공동체의 경제관념에는 현재와 다른 관념이 하나 들어갑니다. 그것은 바로 도덕입니다. 현재와 같이 자본주의가 득세하기 전에 많은 경제연구는 도덕을 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안식년과 희년에 빚을 탕감해 주는 것, 모든 계약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과 같은 것 말입니다. 이것은 수천년 한곳에 이웃하며 살아가던 조상들의 해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웃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나의 공동체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고,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과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말입니다.

또하나 저는 성서에서의 토지권의 보장을 단순히 현재와 같은 '주거권' 혹은 '토지의 공개념'으로 보는 것은 다소 부족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성서가 생겨났을 때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보건데 생존을 위한 자립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보장해 주는 것, 어쩌면 현대의 '노동권'과 더 유사한 개념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책의 후미로 진행될 수록 비기독교는 부도덕 혹인 미개인 것으로 바라보는 듯한 시각, 한국 기독교에 대한 지나친 긍정은 읽는 동안 내내 불편하고 그만 읽고 싶은 마음을 불러왔습니다. 논리또한 성서에 있으니 진리이다 라는 식의 전개가 보여 다소 불편하더군요. 그래도 기독교 교리로 꼭 설득해줘야 납득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한번 읽어봐도 괜찮지 싶습니다. 혹은 기독교도 임을 자처하면서 종부세를 없애려는 MB이하 국회의원들이 한번 읽어봐도 좋지 싶습니다.

백성이 하늘인 세상을 꿈꾸던 정도전은 남의 밥을 먹는 사람은 남을 책임져야 하고 남의 옷을 입은 자는 남의 근심을 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의 밥 먹고, 남의 옷을 입는 자로서 실패하더라도 내가 선 자리에서 '새끼 놓고 누울 자리, 먹고 살만한 일자리, 일끝내고 노래 한자락 할 시간'을 얻을 때까지 싸우고 또 싸워야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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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8-10-2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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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기독교의 경제 개념에 대한 반성 및 성찰


기성 교단에서 자라고 기성 교단에서 교육을 받고 기성 교단에서 잠시 주일 학교 교사를 지냈던 저에게 대신부님의 글은 항상 마음 속 한 구석 비워져 있던, 채워지지 않았던 부분을 채워주셨습니다. 신부님의 유고작이 된 '토지와 경제정의'는 신부님 말년에 주장하신 올바른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친절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만,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는 분들과 특히 비기독교인들에게 이 책이 다소 어렵게 다가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토지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물론, 비기독교인들에게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경제 정의 실현을 위한 토지 제도 및 세제의 개편은 얼마든지 동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근대 국가 성립 괴정 중에 유럽과 미주, 호주에서 토지가치세 라는 이름으로 실현이 되었을 때 각각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얻은 엄청난 효과는 타 연구 보고서를 통해서도 입증된 사실입니다.
한편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한탄 되었던 부분은, 왜 기성 교단에서는 조국의 경제적 현실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 2000년 전엔 말씀하시고 경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왜 기성 교단은 성경에서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이 땅의 소명 중 하나인 공의의 실천과 실현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단지 예수 믿는다고 말 하는 사람의 확대에만 만족하고 있는 지...
마지막으로 대신부님의 말씀 중 기독교인이라면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을 적으며 정말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때에 이 땅에 공의와 정의가 흘러 넘칠 것 입니다.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물질적인 문제는 기도와 영적 전쟁이 없이는 해결될 수 없으며, 영적인 문제는 현실의 삶, 즉 실제적인 문제를 직면허지 않고는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
한국 교회가 성령과 말씀을 강조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실천과 그리고 사회정의 실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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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休 2010-04-1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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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토지와 경제정의

희년 공부모임

분야

토지


책 제목

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토지와 경제정의




작성자: 한형빈

제출일: 17.8.1.


<저자소개>




대천덕(REUBEN ARCHER TORREY III)신부는 중국 산둥 성 지난(濟南)에서 1918년 1월 미국인 장로교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과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북중국 미국인학교와 평양 외국인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미국 데이비슨 대학교와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성공회 남부신학대학원, 영국 성 어거스틴 대학원, 하버드 대학교,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도 수학했다.




건축일, 선원생활, 노동조합 활동, 정치 참여 등의 활동을 했고 성공회 성 키프리안 교회(ST. CYPRIAN EPISCOPAL CHURCH) 등에서 목회했으며, 1957년 성공회대학교의 전신인 성 미가엘 신학원의 재건립을 위해 한국에 입국하여 1964년까지 학장으로 일했다. 이듬해 강원도 태백에 성공회 수도원인 예수원을 설립해 초대교회의 사동행전적인 공동체 생활의 한국적인 터전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2002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대천덕 신부의 뒤를 이어 아들 벤 토레이(BEN TORREY, 한국명 대영복) 신부가 예수원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부인 현재인(JANE GREY TORREY) 사모는 2012년에 소천했다.




대천덕 신부는 성경과 성령에 의한 회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복음주의 전통에 서 있으면서도, 사회정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 신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경제학과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아주 사고팔지 못한다는 레위기 말씀에 근거해 성경에서 말하는 경제정의를 실천하고자 했다.





<책 목차>




Ⅰ. 토지와 경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희년

2. 자본과 이자

3. 재산에 대한 율법

4. '미쉬팟': 토지법의 시행

5. 열왕(The Kings)과 토지

6. 분열된 왕가

7. 나봇의 포도원

8. 지주의 신, 바알

9. '바알주의'와 '여호와주의'

10. 아달랴

11. 부자와 가난한 자

12. 선지자들

13. 신약성경

14. 자유를 선포하라

15. 진행 중에 있는 희년

16. 교회와 토지

17. 토지와 교회의 소명

18. 기독교적 식민주의와 제3세계의 빈곤

19. 영원한 경제




Ⅱ. 성경적 경제학과 헨리 조지

1. 헨리 조지의 《노동의 조건》에서

2. 이자와 인플레이션

3. 첫 번째 편지: 성경적 경제학의 적용에 관하여

4. 두 번째 편지: 토지세에 관하여




Ⅲ. 성경적 경제학과 한국 교회

1. 한국을 위한 하나님의 해결책

2. 영적 전쟁과 IMF

3. 한국인의 심성, 샤머니즘

4. 통일을 대비한 한국 교회의 준비




Ⅳ. 성경 주석

1. 미가서 6장

2. 정의에 관한 복음서의 가르침




옮긴이의 말, 부록: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


<책 간략 소개>




희년 제도에 대한 성경의 근거를 제시하고 인류 역사에서 어떻게 실행되었는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한 배경설명과 근거를 제시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짧은 글을 모아 낸 책이라 체계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탐욕과 불의에 기초한 바알의 토지법을 깨뜨리고 성경의 토지법을 실현하는 것은 대천덕 신부 필생의 소원이자 기도제목이었다. 성령과 말씀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에 서 있으면서도 사회정의에도 깊은 관심을 지닌 그는, 한국의 영적 문제와 사회 문제를 아우르는 강론과 사상의 깊이, 삶의 실천을 보여 주었다. 세간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공의로운 토지제도를 수립하라’는 제안을 담은 서신을 역대 대통령들에게 수차례 전하기도 했던 그가 말년에 이르러 더욱 치열하게 ‘외쳤던’ 성경적 토지제도와 경제정의 문제에 대해 연구한 이 글은 그의 오랜 소원과 기도가 담긴 유고(遺稿)인 셈이다. (출판사)




<책 내용 요약>




Ⅰ 토지와 경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희년



- 레위기의 토지법 (25장 23절)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 성경에는 임대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판다'라는 단어가 바로 '임대한다는 뜻'






2. 자본과 이자



- 자본 없이는 토지를 이용하기 어렵다.

- 성경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서로 돈을 빌려 주되 이자를 받지 말라고 말한다.

- 레위기 25장의 정신을 어느 정도 따르는 성경적 제도의 변형들 가운데 하나가 신용조합인데, 대출 이자가 대출 서비스 수수료에 불과하다.

- 덴마크에 토지가치세가 시행되었을 때 새로운 조세가 부과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토지가치세가 철폐되었을 때 세수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근로 계층이나 전문직 계층에 무거운 부담이 돌아가는 새로운 조세들이 도입되었다. 홍콩에서는 중간 부동산업자들이 토지의 임대 가치를 흡수하면서부터 세수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담이 돌아가는 판매세와 기타 조세들이 도입되었다. (24쪽)






3. 재산에 대한 율법



- 성벽이 있는 성내 가옥의 경우 무를 수 있는 권리가 일 년으로 한정 됨

- 레위인의 경우 언제든 무를 수 있는 권리가 있음 (무를 수 없는 경우 가옥은 희년에 돌려받음)

- 토지 주인이 하나님께 바친 토지를 무르지 않고 제3자에게 팔 경우, 희년이 돌아오더라도 그 토지는 성전에 귀속됨

-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산 토지를 하나님께 바친 경우, 희년이 돌아오면 그 땅은 원래 주인에게 되돌아감





4. 미쉬팟: 토지법의 시행



<시행된 근거가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 실제 모세오경의 율법이 조목조목 언급되는 경우 없음

- 성경 어느 곳에도 오므리 통치 이전에 여호와의 토지법이 철폐되었다거나 다른 법이 시행되었다는 말이 없음



<근거 1> 한 남자가 딸들만 두었기 때문에 친척들은 그 집 딸들이 시집가서 희년이 되면 시집간 지파로 땅이 넘어가지 않을까 우려한다는 내용이 등장함



민수기 36장 4절

이스라엘 자손이 희년을 당하여 그 기업이 그가 속한 지파에 첨가될 것이라 그런즉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 지파의 기업에서 아주 감삭되리이다



<근거 2> 토지가 가족별로 분배되었다는 사실을 지지해주는 구절이 등장함



사사기 11장 2절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근거 3> 룻기



- 엘리멜렉은 기근으로 황폐해진 토지를 헐값에 팔고(빌려주고)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감

- 10년 뒤 엘리멜렉과 두 아들은 죽고 아내 나오미가 며느리 룻을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옴

- 나오미에게는 토지 무를 권리가 있었으나 가난하여 여력이 없었음

- 대신 토지를 무를 친척을 찾음

- 토지를 무를 친척이 룻과 결혼해 죽은 아들의 상속자가 자라야 토지를 물려받을 수 있었음

- 보아스가 대신 토지를 빌리고 룻과 결혼함






5. 열왕과 토지






6. 분열된 왕가

- 아합 이전까지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토지법을 지키고 시행하려고 노력함



<근거 1> 솔로몬 왕



- 솔로몬왕이 즉위한 지 12년이 되는 해에 성전을 봉헌함

-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으로 즉위한 지 52년이 되는 해 (이스라엘 전체에서 왕으로 인정 받은 지 50년이 되는 해)



<근거 2> 아사 왕

- "함성과 쇠나팔 소리와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대하 15:14) 율법을 지키기로 맹세함



<근거 3> 아합 왕

- 아합 왕은 왕국에 ‘바알주의’를 들여옴




북아프리카에 카르타고의 식민지를 건설한 사람들은 엣바알의 직계 후계자들이었다. 마침내 로마가 페니키아의 바알주의 토지법을 채택하였는데, 그것은 포에니 전쟁 이후 카르타고에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로마에서 확립된 바알주의 토지법은 유럽, 영국, 그리고 서방 세계로 퍼져 갔다. 사실 페니키아식 토지 제도는 엣바알 이전, 즉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기 전의 가나안 땅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을 쓸어 버리도록 하셔야 할 만큼 땅이 더렵혀진 이유도 마로 그 바알주의 토지 제도 때문이었다 (41쪽)



왕하 17: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렘 2:7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출 23:24 너는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깨뜨리며 그들의 주상을 부수고



신 9:5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신 18:12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호 11: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7. 나봇의 포도원



- 나봇의 포도원 사건: 아합 왕이 토지에 대한 탐욕에 빠지고 이세벨이 페니키아의 (바알주의) 토지법을 이스라엘에 적용함 (열왕기상 21장)

- 아합이 나봇에게 포도원을 팔거나 다른 토지와 바꿔주겠다고 제안함

- 나봇은 여호와께서 땅을 주기를 금지한다고 이야기함

- 아합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근심에 빠짐

-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두로와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임

- 바알은 토지가 없는 농민들을 착취하여 세를 불림

- 이세벨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는 이유로 나봇을 죽임

- 왕이 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왕에 대한 불경죄였고 지주제를 정당시하는 바알에 대한 불경죄였음

- 엘리야가 아합에게 경고함

- 아합은 회개하고 이세벨은 예언대로 죽음



8. 지주의 신, 바알



9. '바알주의'와 '여호와주의'



10. 아달랴

- 아합의 누이 아달랴는 유다 왕 여호람과 결혼함

- 여호람과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가 대를 이어 왕이 되었다

- 아하시야 역시 아합 가문의 길을 따라 악을 행함

- 예후에게 붙잡혀 살해당함

- 아달랴는 예후의 개혁이 유다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왕족을 숙청함

- 아하시야의 누의 여호사브앗은 여호와의 제사장인 여호야다와 결혼함

- 여호사브앗은 아하시야의 어린 아들인 요아스를 구해 성전에 숨김

- 6년 뒤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왕으로 공포하고 아달랴는 죽임을 당함





11. 부자와 가난한 자

- 북왕국 이스라엘, 예후의 혁명으로 많은 지주들이 숙청됨

- 예후의 4대손 여로보암 2세, 번영

- 가난한 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로 뒷받침되었던 상류 계급의 생활 방식 (상아 궁전, 주연, 과식, 향락과 음악에 대한 탐닉)은 농부 출신 선지자 아모스에 의해 정죄당함





12. 선지자들



- 요엘: 나팔을 불고 금식과 회개를 선포하라고 촉구함

요엘 2:1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 미가: 오므리와 아합 때 여호와의 율법을 거부하고 토지법을 바꾸어 버린 일이 문제의 근원임을 밝힘

미가 6:16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을 지키고 그들의 전통을 따르니 내가 너희를 황폐하게 하며 그의 주민을 사람의 조소 거리로 만들리라 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을 담당하리라



- 이사야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이사야 5:8)



이번에는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의 징조는 이렇다. 금년과 내년에는 너희가 저절로 자라난 야생 곡식을 먹고 3년째에는 농사지어 추수한 곡식과 포도를 먹을 것이다. (열왕기하 19:29, 현대인의성경)



- 히스기야 왕: 희년 선포 → 앗수르 군대가 물러감 (열왕기하 18장, 19장)

(질문) 희년이 실천되었다는 내용 없음 / 희년이 선포된 내용 없음



- 시드기야 왕: 안식년 선포 → 부채탕감, 노예해방 → 바벨론 군대가 물러감



- 노예해방

시드기야왕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들과 계약을 맺었는데 그 계약은 자유를 선포하여 히브리인의 남녀 노예를 자유롭게 하고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과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노예를 풀어 주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는 왕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기들의 종에게 자유를 주었다. (예레미야 34:8-10)



- 그다랴 총독이 바벨론의 비호 아래 토지 개혁을 단행함



또 그는 살아 남은 자들을 모조리 바빌로니아로 잡아갔으며 그들은 거기서 노예가 되어 페르시아 제국이 바빌로니아를 정복할 때까지 그 곳 왕과 그 자손들을 섬겼다. 그래서 그 땅은 여호와께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70년 동안 황폐하여 7년마다 한 해씩 땅을 묵히는 안식년과 마찬가지로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역대하 36:20-21)



경호대장 느부사라단은 성 안에 남아 있는 백성들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들과 그 밖에 남은 백성들을 바빌로니아로 잡아갔다. 그러나 경호대장 느부사라단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다. (예레미야 39:9-10)



- 느헤미야



나와 내 형제들과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도 백성들에게 돈과 곡식을 빌려 주고 있습니다만 이제 그 이자를 받지 않도록 합시다. 여러분은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을 되돌려 주고 또 여러분이 착취한 돈과 곡식과 새 포도주와 감람기름의 100분의 1을 돌려 주십시오.' 그러자 그들은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되돌려 주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나는 제사장들을 불러 지도자들에게 자기들이 약속한 것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시키도록 하였다. 그런 다음에 나는 내 옷자락을 털며 '이와 같이 하나님이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집과 재산을 털털 털어 빈털터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모든 군중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으며 그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약속을 지켰다. (느헤미야 5:10-13)





13. 신약성경



- 공의(justice)와 의(righteousness)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 헬라어와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공의'가 500번 이상 사용되었는데 킹제임스 번역에서는 400회나 '의'로 번역됨



- 바나바: 레위인이었던 바나바는 토지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없었다

그때 사도들이 바나바(번역하면 위로의 아들)라고 부른 키프러스 태생의 레위 사람 요셉도 자기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에게 가져왔다. (사도행전 4:36-37)






14. 자유를 선포하라





15. 진행 중에 있는 희년






16. 교회와 토지



- 300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가진 것을 나누는 자발적 희년을 실천함




- 로마가 카르타고를 점령했을 때 바알의 토지법이 로마인들의 탐욕을 부추김

- 로마 참전 병사들은 카르타고 제국의 영토를 하사받음

- 기독교가 이러한 토지제도를 개혁하지 않음

- 북아프리카의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구호 아래 이슬람교도가 됨

(질문) 이슬람의 기원, 성경적 토지제도와 상관있는지

- 16세기 재세례파가 성경적 토지개혁을 요구함 →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박해함

- 잉글랜드 국왕은 영혼 구원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아일랜드인들의 토지를 강탈하여 자신들의 심복인 국교도와 장로교도들에게 하사함

- 기독교적인 유럽인들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를 땅에 굶주린 식민주의자들에게 분배하면서 비교적 공정했던 아프리카의 토지 제도를 붕괴시키고 바알 제도를 수립함

(질문) 아프리카의 토지 제도





17. 토지와 교회의 소명



- 교회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담당하는 그리스도의 몸

- 그리스도의 사역이란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도록 양육해 제자를 만드는 일,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투입하는 일



- 초기 기독교는 소수 집단으로 출발함

- 4세기 초반 통치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시작함

- 구약 성경은 고대 유대 사회에만 적용될 뿐 현재의 인간 사회와는 상관없다는 주장이 확산됨 (어거스틴)

- 인쇄술의 발달로 성경이 보급되면서 하나님이 현재의 세상에 관여하신다는 결론을 냄

- 교회는 토지를 갖는 일 그리고 또 하나의 지주로 전락해버리지 않는 일을 해야함 (토지 권력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





18. 기독교적 식민주의와 제3세계의 빈곤



- 교회가 대지주들의 손에 넘어간 이후 정치가와 성직자, 신학자들은 추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논했음

- 토지가 없는 대중이 봉기하여 이슬람과 공산주의를 받아들임

- 기독교국가들은 식민 제국을 건설함

- 기독교국가는 식민지를 착취하며 내세를 강조함

- 기독교국가들은 지주제를 통해 이득을 봄





19. 영원한 경계



- 덴마크, 호주, 미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뉴질랜드 등지에서 적용됨



<대만>

- 헨리 조지의 경제학을 실행해 옮긴 뒤 법을 바꾸지 않음

- 빚이 전혀 없는 순수 채권국이 됨



<덴마크>

- 조지스트의 원리를 따른 경제학이 시작되었으나 법이 조금씩 개정되면서 오늘날에는 조지주의적 법률을 찾아보기 어렵게 됨



<홍콩>

- 정부가 모든 지대를 징수함

- 이 때 빈곤은 없었으며 물가는 적당한 수준이었음

- 지금은 홍콩 부동산 임대가치의 3분의 2가 부동산업자의 수중에 들어감



<싱가포르>

임차권 투기를 허용함



<호주>

- 100년 전 헨리 조지의 가르침을 전폭적으로 수용함

- 대학에 돈을 주어 신고전파경제학을 가르치게 함



<미국>

- 피츠버그

- 펜실베이니아주: 복수세율 재산세제 적용 (토지분 재산세의 세율은 높이고 건물분 재산세의 세율은 낮추어 가는 개혁 방식)

-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의 몇 개 주에서 단일세 제도가 도입됨

(탐 존슨, 뉴튼 베이커 등 단일세론자들이 시장으로 등장함)

- 캘리포니아: 1978년 토지가치세율을 1퍼센트로 제한함 → 미국에서 가장 번영하던 주에서 가장 침체한 주로 전락함



<캐나다>

밴쿠버, 빅토리아





Ⅱ. 성경적 경제학과 헨리조지



1. <노동자의 상태> 중에서

- 인간은 물질적 욕구를 가지고 있음

- 이러한 욕구를 바탕으로 생산을 하고 생산에 따른 결과를 향유할 권리를 가짐 (사적 소유권)

- 소유권은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지만 소유자의 의사에 반해 권리를 빼앗을 수 없음

- 인간은 토지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음

- 인간은 토지 위에서 생산활동을 통해 물질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음

- 노동을 통해 얻은 가치는 개인이 소유하고 토지의 가치는 공적으로 징수해야함



2. 이자와 인플레이션



<이자>

- 레위기 25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대출금에 대해 이자를 청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함

- 중세에는 교회가 이자와 폭리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고 성경의 원리를 실천하고자 노력함

- 미국의 신용협동조합은 이자율을 낮게 설정해 대출을 해주고 있음

-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들은 물가 상승을 따라갈 정도의 대가만을 받고 자금을 빌려줌



<인플레이션과 하나님의 법>



너희는 재판할 때 공정하게 하라. 물건을 사고 팔 때도 서로 속이지 말며 공평한 도량형기를 사용해야 한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레위기 19:35, 현대인의성경)



여러분은 저울과 되를 속이지 말고 정확한 되와 저울을 사용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에서 여러분이 오랫동안 살게 될 것입니다. (신명기 25:12, 현대인의성경)



저울과 되를 속이는 자를 여호와께서는 미워하신다 (잠언 20:10, 현대인의성경)



너희는 정확한 저울과 되를 사용하라. (에스겔 45:10, 현대인의성경)



예루살렘 사람들아, 여호와께서 너희 성을 향해 외치시는 말씀을 들어라. 여호와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참 지혜이다. '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아, 들어라! 너희를 매로 치기로 작정한 자가 누구냐?

악인들의 집에는 아직도 부당하게 모은 재물이 있지 않느냐? 그들은 저울을 속이고 있다. (미가 6:9-10, 현대인의성경)



- 통화금융제도의 부정직성으로 화폐의 가치가 계속 떨어짐

- 노동의 가치가 떨어짐 (같은 노동을 하고도 대가를 적게 받게 됨)





3. 첫 번째 편지: 성경적 경제학 적용에 관하여



- 헨리 조지는 토지가치세를 주장함

- 대만: 톨스토이와 손문의 영향

- 한국과 일본: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이지만 토지개혁으로 경제성장

- 홍콩: 가장 부유한 정부가 됨, 토지 임대 수입으로 운영됨

- 정치 체제와 무관하게 성경의 토지법을 따른 나라는 성장함: 한국(민주주의), 일본(입헌군주제), 싱가포르 (약간 독재), 홍콩(식민지)

- 성경적 원리를 적용하면 전 세계의 빈민가와 빈곤이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침묵할 수 없음





4. 두 번째 편지: 토지세에 관하여



<성경적 토지 제도의 문제점>

- 충분히 적용되면 상당한 부를 가져옴

- 이후 사람들이 이 제도에 대해 말하기를 그침

- 다음 세대는 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게 됨

- 반대 세력이 제도를 바꿔버려 다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됨 (캘리포니아 주의 사례)





Ⅲ. 성경적 경제학과 한국 교회

1. 한국을 위한 하나님의 해결책

- 모든 공공비용을 충당할 정도로 토지세를 올리고 다른 세금을 철폐



2. 영적 전쟁과 IMF



3. 한국인의 심성, 샤머니즘



4. 통일을 대비한 한국 교회의 준비



Ⅳ. 성경 주석



1. 미가서 6장



- 영화 서머스비 토지문제를 다룬 영화



2. 정의에 관한 복음서의 가르침



유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5:5, 현대인의성경)



- 온유한 (meek)은 그리스어 프라우스(praus)에 해당하는데 그리스어 구약성경에서는 타페이노스(tapeinos, '낮은', '압제받는', '겸손한')와 혼용되지만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둘이 같은 단어임



의를 위해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다 얻을 것이다. (마태복음 5:6, 현대인의성경)



<질문>




1. 열왕기하 18장, 19장에 희년이 실천되었다는 내용이 있는지




2. 이슬람의 기원이 성경적 토지제도와 상관있는지




3. 식민지배 전 아프리카의 토지제도는 어떠했는지




4. 희년사상이 중요한 내용이었다면 성경에서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할 법도 한데 왜 이렇게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을까





<적용 & 제안하고 싶은 내용>







Action Plan


당장




1달

(홍보) 책에 인용된 성경구절 페이스북 홍보에 활용


1년

(콘텐츠) 무이자대출의 필요성에 대한 홍보 자료 제작 (Ⅱ-2. 이자와 인플레이션)


3년

(콘텐츠) 희년법에 대한 성경의 근거 정리 (강의, 홍보물 등에 활용)

(콘텐츠) 토지문제 다룬 영화 목록 작성 (강의, 홍보물 등에 활용) - 서머스비, 강남1970

(사업) 토지 권력을 가지고 토지의 가치 (지대)를 구성원과 공유하는 것


5년

(콘텐츠) 토지공개념이 적용된 해외 사례 정리 (강의, 홍보물 등에 활용)


10년

(콘텐츠) 당대 근동 국가의 토지제도 비교 (강의, 홍보물 등에 활용)

(콘텐츠) 제국주의시대 토지제도 비교 (강의, 홍보물 등에 활용)


30년




50년







<1부>

1.희년 (성경)

2.자본과 이자 -> 2부 2.이자와 인플레이션, 경제

3.재산에 대한 율법: 희년제도의 구체적인 내용 (레위기)

4번~12번; 구약

13번~14번; 신약

15.성경 속 희년 이야기 마무리

16번~18번; (고대)교회

19.근대정부사례 (지켜야 하는 것)




+9장부터는 읽기 쉬움




<2부>

1.토지공개념의 정당성

2.이자와 인플레이션

3번~4번. 토지공개념이 필요한 이유 (정치체제와 상관없이 적용 후)




<3부>

한국사회에 토지공개념이 적용되어야 하고, 그 주체가 교회가 되어야 한다.




<4부>

성경주석;

미가서: 정의 다음에 자비


















2012.12.3.~4. 읽고 정리한 내용
















이 책은 '예수원'으로 유명한 대천덕 신부가 쓴 책이다.


한국어로 출간된건 2003년인데, 원서로 쓰여진 건 언젠지 모르겠다.




머리말


여러 증거를 검토해 볼 대, 희년의 선포와 준수에 대한 규정을 포함한 레위기 25장의 토지법은 북이스라엘에서는 700년 동안, 즉 오므리와 아합 왕 시대까지, 유다에서는 그보다 100년 더 유지되었던 것 같다.


토지는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라는 헨리 조지의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누구라도 임의로 쓸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전혀 없다면 그는 갈취를 당한 것이고, 토지를 매매하는 사람들은 장물 거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자기 토지가 없는 사람은 생필품을 구입할 돈을 구하기 위해 토지를 소유한 사람에게 비굴하게 일자리를 구걸해야하며, 그 과정에서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토지 소유자의 처분에 맡겨지게 된다.(p10)


성경에서 말하는..
토지는 어느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눠 써야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오랜 시간 동안 지켜져 왔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틀리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Ⅰ. 토지와 경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장 희년


나는 이 책에서 토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소개하고, 또 그러한 가르침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실제로 지켜졌다는 증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단, 성경의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며, 성경의 여러 문서의 기록 연대에 대한 다양한 '비평이론'을 전혀 고려하기 않을 생각이다.(p15)


앞으로 증거가 무지막지하게 등장한다.....




먼저,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다룰 때에는 그들이 살았던 역사적인 정황도 함께 고려하려고 한다. 토지에 대한 율법의 규정은 아주 명료한데, 그 기본법은 레위기 25장에 들어 있으며 요지는 23절에 담겨 있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가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p16)




2장 자본과 이자


토지를 매각한다는 말은, 토지를 영원히 상실하고 예전에는 자신의 농장이었던 곳에서 새로운 소유자의 소작인으로 일해야 하며, 자신의 노동에서 나오는 소득의 절반을 새로운 소유자의 소작인으로 일해야 하며, 자신의 노동에서 나오는 소득의 절반을 새로운 소유자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때부터는 더 이상의 여유란 없으며, 토지의 옛 소유자는 이제 영원히 가난해지고 만다. 예측하지 못한 비상상황에 대응하거나 개량을 위한 자본을 억기 위해서 어떻게든 자금을 차입한 사람들은 이자를 지불하다가 인생을 끝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자가 너무 높아 여생을 이자 지불을 위해 허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서로 돈을 빌려 주되 이자를 받지 말라고 말한다.(p22)




많은 경제학자들이 토지를 자본에 포함시킨다는 사실, 토지를 별도로 다루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런 일은 도적질과 다를 바 없다. 자본은 '응축된 노동'이다. 그래서 자본은 누군가의 노동으로 만들어지며, 노동의 결과물을 축적한 사람이나 그에게서 그 결과물을 증여받은 사람의 소유이다. 반면에 토지는 인간의 노동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p23)




토지 그 자체, 위치(location)나 부지(site)의 기본 가치는 사회가 지대(토지나 자연자원의 사용료)로서 징수해야 한다.
...
토지가치세(Land Value Taxation)는 농민이 기울인 노력에 대해서는 전혀 과세하지 않는다. 단지 위치의 가치에 대해 지대를 부과할 뿐이다. 따라서 이는 실제로 조세가 아니라 사용료이다.
(p23-24)




3장 재산에 대한 율법


4장 '미쉬팟': 토지법의 시행


모세오경에 기록된 토지법이 실제로 시행되었는지 살펴본다.


1. 민수기 36장
한 남자가 딸들만 두었기 때문에 친척들은 그 집 딸들이 시집가서 희년이 되면 시집간 지파로 땅이 넘어가지 않을까 우려한다(p29-30)


2. 사사기 11장 2절
전 친족이 들고 일어나 사생아인 입다가 가문의 기업을 받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사연이 소개되고 있다. 이것은 민수기와 여호수아에서 자주 언급되는 바와 같이 토지가 가족별로 분배되었다는 시실을 지지해 주는 구절이다(p30)


3. 룻기
레위기에 나오는 율법이 이 이야기의 전체 배경이 되고 있다.(p32)




5장 열왕(The Kings)과 토지


6장 분열된 왕가


7장 나봇의 포도원


나봇의 포도원 사건은 아합 왕이 토지에 대한 탐욕에 빠지고 이세벨이 페니키아의 (바알주의) 토지법을 이스라엘에 적용한 일이 이 사건의 주요 내용이다.


8장 지주의 신, 바알


9장 '바알주의'와 여호와주의'


10장 아달랴


11장 부자와 가난한 자


12장 선지자들


많은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토지법을 위반하는 일을 규탄했으며, 메뚜기 데 재앙과 기근, 홍수 등 자연적, 초자연적 재앙을 맞게 되리라고 경고하였다.(p65)


13장 신약성경


14장 자유를 선포하라


15장 진행 중에 있는 희년


로마로부터 공인 받은 기독교는 토지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했고, 교회는 지주층이 되었다.


16세기에 재세례파가 성경적 토지개혁을 주장하지만 가톨릭과 기독교 모두 그들을 박해했다.


기독교적인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해 토지를 빼았았다. 그 결과 아프리카인들은 가난과 착취에 시달리게 되었다.


토지개혁을 실시했거나 토지가치세(토지는 팔아서는 안 되며 임대할 수 있을 뿐이라는 희년 개념을 현대화하려는 시도 가운데 한 가지)를 도입한 국가들은, 공산주의를 성공적으로 막아 냈으며 놀라운 번영을 누려왔다.(예를 들어 한국,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뉴질랜드, 호주 등)


16장 교회와 토지


교회는 왜 존재하는가?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담당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며,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초청하는 일이요,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도록 양육하여 제자로 만드는 일 뿐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고 최선을 다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그들을 투입하는 일이다.(p95)


초기 기독교인들은 재력도 권력도 없는 작은 소수집단으로 출발했다.


4세기 초반에는 통치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하나님 보다 권력에 관심이 있었다. ... 종교는 내세에만 관련이 있다고 보는 이러한 신앙관은 권력자들에게 이 세상의 지위를 제멋대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17장 토지와 교회의 소명


교회가 대지주들의 손에 넘어간 이후, 정치가와 성직자, 신학자들은 추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논했고 실제적인 문제는 조심스럽게 회피했다.


18장 기독교적 식민주의와 제3세계의 빈곤


식민 제국들은 지주제로 이득을 보았다.


식민주의자들의 뒤를 이어 곧 성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파했다. 어떤 복음일까?
"제국주의자들이 당신네 나라를 약탈하고, 당신들을 빈곤에 허덕이게 만들며, 당신네들의 자유를 빼앗도록 내버려 두시오. 당신들은 주님께서 내세의 삶을 주신다는 사실만 신뢰하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의 삶을 견딜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실 것이오."


많은 신생독립국가가 공산화한 까닭은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노력에서였으나 공산주의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그 나라들은 이슬람 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슬람에 무슨 경제 프로그램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이슬람을 통해 그 많은 세월 자신들을 착취하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을 분이다. 그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알고 싶다면, 교회를 불태우고 기독교인들을 암살하고 테러를 자행하는 일은 말할 나위 없고,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마호메트에 대해 폄하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믿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p105)

19장 영원한 경제


조지스트의 토지가치세 제도로부터 이득을 얻지 못하는 유일한 집단이 있다면 대지주들이다.


조지스트들은 가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괴감을 표명한다. 실제로 그 점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아주 불리한 위치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주들은 엄청난 재산을 이용해 언론과 대학, 대형 교단과 정부 부처들을 통제한다. 지주들보다 강한 세력은 하나밖에 없다. 하지만 조지스트들은 한 번도 이 사실을 정말로 심각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다. 그 세력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다. 그리고 성경적 경제학은 그분의 율법이다. (p116-117)




Ⅱ. 성경적 경제학과 헨리 조지


1장 헨리 조지의 <노동의 조건>에서


토지의 보유권이 노동 생산물의 사적 소유권을 손상하거나 부종하는 데까지 이르는 일은 결코 정당하지 않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평등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토지에 대한 배타적 보유권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정당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토지에 대한 보유권의 이점을 정의성과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노동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토지 자체의 가치를 공적으로 징수하기만 하면 된다. (p123)


2장 이자와 인플레이션


중세에는 교회가 이자와 폭리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고, 성경의 원리를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하나님은 이자가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리고 일하지 않고 돈을 버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계신다. 월급을 받기 위해 은행에서 일하는 것과 주식 보유자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점점 더 부유해지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돈 관리의 윤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개개인이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하ㅣ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기생충 같은 존재이다. 노동자가 그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 받아야 할 몫이 공제되어서 일하지 않는 사람의 주머니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착취이다.(p126)




정의(신용협동조합이 빚지지 않을 정도의 이자만 받는 일)와 자비(7년마다 부채를 탕감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법이 지켜진다면, 가난하나 사람이 거의 없는 건강한 경제로 변모할 것이 틀림없다.(p128)





오늘날 세상은 정확하고 정직한 도량형을 사용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그것은 통화금융 제도의 부정직성 때문에 손상을 입고 있다. 은행과 정부는, 마치 무에서 화폐를 창조한 후 그것이 가치라도 가진 것처럼 꾸민다. 그 결과 모든 나라에서 화폐의 가치는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노동자는 같은 금액을 가지고도 자신의 아버지가 살았던 것처럼 살 수 없게 되었다.(p130)


우와,, 이런 생각은 처음 본다. 물건의 크기, 무게를 재는 도량형. 예전에는 도량형을 통해서 물건의 가치가 결정되었다면 오늘날에는 화폐를 통해 물건의 가치가 결정되니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돈을 마구 찍어내서 노동의 대가인 화폐의 가치를 낮추는 것은 잘못된 것.




3장 첫 번째 편지: 성경적 경제학의 적용에 관하여


4장 두 번째 편지: 토지세에 관하여


바알 제도 아래에서는 지주가 토지를 엄청나게 축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임대료를 부과하여 지주들은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도 점점 부유해지며, 대신에 다른 사람들은 단지 일할 장소를 얻기 위해서 직, 간접적으로 무리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니 자연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p146)


우리는 생산의 두 가지 요소가 토지와 노동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본'이라 불리는 것은 응축된 노동이며 과거에 생산적 노동으로 벌어들인 돈을 저축한 것입니다. 실제 토지의 가치에 부과되는 세금인 부지 가치세를 의미있게 사용하면, 정부는 공공경비를 조달할 수 있는 동시에 토지 가격을 경쟁력 있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p150)






Ⅲ. 성경적 경제학과 한국 교회


1장 한국을 위한 하나님의 해결책


모든 공공비용을 충당할 정도로 토지세를 충분히 올리고 다른 모든 세금은 철폐.
...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것, 즉 토지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고 인간의 노동 생산물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음.
...
이 방법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는 행위이므로 하나님의 복을 가져다 준다.
인간 노력의 생산물에 대한 세금을 삭감하기 대문에 생산비는 낮아지고 그에 따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은 높아진다.
토지에 대한 세금을 올리면 토지가 더 많이 시장에 나오게 되므로 토지 비용은 낮아지고 따라서 사업하는 데 드는 비용은 더욱더 낮아지게 된다.
조세 제도의 같은 변화는 수익성이 없던 사업을 수익성 있게 만든다.
복잡한 정부 규제가 사라지고 뇌물 수수의 유혹도 없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정책을 시행한 예는 다음과 같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홍콩, 미국의 알래스카.




토지의 가치에 세금을 부과하는 일은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도로와 운하를 건설하고, 전기ㆍ물ㆍ전화ㆍ관개ㆍ기타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며, 인근의 다른 토지를 개발하여 토지에 접근 가능성과 이용 가능성 그리고 편의성을 부여하는 것은 사회인데, 토지 자체는 이 사회에 의해 창출되는 가치 외에는 다른 가치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토지세는 사회가 해당 토지를 가치 있게 만드는 데 투자한 것을 그 사회에 환원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p164)




2장 영적 전쟁과 IMF


3장 한국인의 심성, 샤머니즘


4장 통일을 대비한 한국 교회의 준비








Ⅳ. 성경 주석


1장 미가서 6장


2장 정의에 관한 복음서의 가르침


마태복음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은 빼앗긴 당을 되찾는다는 뜻이다.
이 일은 '희년'에 일어난다.


마태복음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잇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의'(righteousness)는 '정의'(justice)로 번역해야 옳다.






개인적으로, 이 앞에 읽었던 '희년, 한국 사회, 하나님 나라'가 더 깔끔한 구성인 것 같다. 내용 전개면에서도 그렇고..


어쨋든.. ㅎ 이분도 이런 주장을 하셨다니!


몰랐던 새로운 사실.


하루 속히 이런 제도가 시행되면 좋겠다.


201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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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_공_ 2018-01-0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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