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4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위키백과, Rabindranath Tagore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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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빈드라나트 타고르 
রবীন্দ্রনাথ ঠাকুর
1909년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작가 정보
출생1861년 5월 7일
영국령 인도 제국 서벵골주 콜카타
사망1941년 8월 7일(80세)
영국령 인도 제국 서벵골주 콜카타
언어벵골어영어힌디어
직업시인, 극작가, 소설가, 화가, 역사가, 철학자, 힌두교 사상가, 작사가, 작곡가, 교육자, 저술가
학력영국 런던 대학교 법학과 중퇴
종교힌두교
활동기간1871년 ~ 1941년
장르시문학, 희곡철학
수상1913년 노벨 문학상 수상
1976년 방글라데시 명예 시민권 추서
배우자므리날리니 데비(Mrinalini Devi)
자녀슬하 4남 1녀(그 중 맏딸 레누카 타쿠르)
형제형 13명, 남동생 1명
서명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벵골어রবীন্দ্রনাথ ঠাকুর [ɹobin̪d̪ɾonat̪ʰ ʈʰakuɹ] 이 소리의 정보듣기 1861년 5월 7일 ~ 1941년 8월 7일)는 인도의 시인 겸 철학자이다.

주요 이력[편집]

그는  콜카타에서 배다른 15형제 가운데 열셋째아들로 출생하였다. 영국 런던 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y Collge London: UCL)에 유학하여, 법학과 문학을 전공하였다.

1913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후 1929년일본을 방문하였다.

타고르는 이 밖에도 방글라데시의 국가와 인도의 국가를 작사·작곡하였으며, 그가 시를 짓고 직접 곡까지 붙인 노래들은 로빈드로 숑기트(Rabindra Sangit)라고 하여 방글라데시와 인도 서벵골 주를 아우르는 벵골어권에서 지금도 널리 불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간디에게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초등학교 고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주요 경력[편집]

학력[편집]

명예 학사 학위[편집]

  • 1916년 영국 런던 대학교 법학과 명예 학사 학위
  • 1917년 인도 캘커타 대학교 명예 벵골문학 학사 학위

명예 박사 학위[편집]

사후 서훈[편집]

주요 작품[편집]

타고르가 쓴 시작품 중 일부[편집]

타고르가 쓴 시 중 일부이다.

আমার এ গান ছেড়েছে তার সকল অলংকার,
তোমার কাছে রাখে নি আর সাজের অহংকার।
অলংকার যে মাঝে পড়ে মিলনেতে আড়াল করে,
তোমার কথা ঢাকে যে তার মুখর ঝংকার।


তোমার কাছে খাটে না মোর কবির গর্ব করা,
মহাকবি তোমার পায়ে দিতে যে চাই ধরা।
জীবন লয়ে যতন করি যদি সরল বাঁশি গড়ি,
আপন সুরে দিবে ভরি সকল ছিদ্র তার।
아마르 에 간 체레체 타르 쇼콜 올롱카르
토마르 카체 라케 니 아르 샤제르 오홍카르
올롱카르 제 마졔 포레 밀로네테 아랄 코레
토마르 코타 다케 제 타르 무코로 종카르


토마르 카체 카테 나 모르 코비르 고르보 코라
모하코비 토마르 파에 디테 차이 제 도라
지본 로에 조톤 코리 조디 쇼롤 바시 고리
아폰 슈레 디베 보리 소콜 치드로 타르.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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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빈드라나트 타골

출처 : 무료 백과 사전 "Wikipedia (Wikipedia)"
라빈 드라나트 타고르
রবীন্দ্রনাথ ঠাকুর
탄생1861년 5월 7일 영국령 인도 제국 벵골 관구 영어판 ) , 콜카타
영국령 인도 제국의 국기
사망1941년 8월 7일 (80세몰) 영국령 인도 제국 벵골 관구 영어판 ) , 콜카타
영국령 인도 제국의 국기
직업시인 , 소설가 , 사상가 , 음악가 , 화가
언어벵골어 , 영어
국적영국령 인도 제국의 국기 영국령 인도 제국
문학 활동벵골 르네상스 영어판 )
대표작『기탄자리』『벵골의 수행자』『소년의 날들』『정원사』『우체국』
주요 수상 경력노벨 문학상(1913년)
서명
 위키 포털 문학
템플릿 보기
노벨상 수상자노벨상
수상년: 1913년
수상 부문: 노벨 문학상
수상 이유 : 서양 문학의 일각을 이루는 영어로 생각하고 표현된, 지극한 기교에 의한 그의 깊고 민감한, 선명하고 아름다운 운문에 대해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영어 Rabindranath Tagore , 벵골어 : রবীন্দ্রনাথ ঠাকুর 힌디어 : 1 년 5월 7일 - 1941 년 8월 7일 )은 인도 시인 , 사상가 , 작곡가 . 시성(코비글 কবিগুরু)로서 매우 존경을 받고 있다. 1913년 에는 『기탄자리 영어판 )』에 의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 . 이것은 아시아인 에게 주어진 첫 노벨상 이기도 했다.

인도 국가 의 작사·작곡, 및 방글라데시 국가 의 작사자로, 타골 국제대학 의 설립자이기도 했다.

평생 편집 ]

전반생 편집 ]

타골은 1861년 5월 7일, 벵골주 칼카타 의 명문 타고르가에 15명 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14번째 아이로 동생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타고르가는 타고르의 할아버지 다르카나트 타고르의 대에 칼카타 유수의 대상인으로서 성장한 집이며, 또 아버지의 데벤드라나트 타고르 영어판 ) 도 종교가로서 유명하며, 힌두교 개혁 운동 영어판 ) 의 하나 브라후모·사마지의 톱을 맡고 있었다. 라빈드라나트는 태어나면서 브라흐모 서머지의 회원이었지만, 그 활동은 극히 일부의 엘리트의 것에 지나지 않고, 일반 대중의 종교심과 괴리하고 있다고 느꼈다 [2] .

아내 Mrinalini Devi와. 1883년

어렸을 때부터 시작을 능히 했지만, 영국류의 엄격한 교육에 익숙하지 않고, 3개의 학교를 드롭 아웃한다. 1878년 , 17세에 영국 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UCL)에 유학, 1년 반을 보내지만, 졸업에는 실패했다. 영국 유학에서 그렇게 얻는 곳은 없고, 집안에서는 여전히 즐거운 존재였다 [3] .

아버지의 데벤드라나트는 아들에게 소대를 갖게 하고, 1883년에 타골은 무리날리니 데비와 결혼한다 [4] . 1890년에는 시라이드호에 있던 타고르가의 영지 관리를 실시하게 되어, 농촌 생활을 시작했다 [5] . 여기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최하층 사람들에 의한 벵골 지방의 연예·수행자 집단 바울 의 전설적 존재 라롱 포킬을 만나 바울의 노래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3] [6] . 타골은 2600곡이 넘는 노래를 남겼지만 방글라데시 국가 ‘ 우리 황금의 벵골 ’(Amar Sonar Bangla)을 포함해 바울의 선율을 그대로 유용한 노래도 적지 않다 [3] . 시작이나 문필 활동에서는 사회의 최하층 사람들의 지혜·문화를 말하고, 바울의 풍요를 소개했다 [2] [7] .

후반생 편집 ]

타고르는 곧 자신의 학원을 만드는 구상을 갖게 되어, 아버지의 데벤드라나트가 도장을 열고 있던 칼카타의 북서에 해당하는 샹티니케탄 에 1898년부터 교사의 건설을 시작해 1901년 에 야외학교를 설립 [8] . 이 학교는 1921년에는 대학이 되어 [9] , 1951년에는 인도 국립으로 되어 현재의 비 슈바 바라티 국립대학 이 되었다. 1902년 에는 인도를 방문한 오카쿠라 텐신과 친교를 맺고, 1913년 의 텐심의 죽음까지 그 교우는 계속되었다. 1902년에는 아내 무리나리니를 잃고 있다 [10] .

1905년 에 영국이 벵골 분할령을 내면서 반대 운동의 선두에 섰지만, 이윽고 정치로부터 몸을 끌었다 [11] .

1909년 벵골어 시집 ' 기탄자리 '를 스스로 영역해 간행한다. 이것은 시인의 예이츠 에게 극찬되고 평판이 되었다(예이츠는 이 시집의 서문도 주고 있다).

1913년 , 타고르는 아시아인으로서 최초의 노벨상 이 되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인도의 고전을 스스로의 인도 영어로 소개한 것으로 수상했지만, 이것은 후년이 되어 인도 영어가 세계에서 통용하는 것의 근거로서 영어 교육학의 세계에서 거론되고 있다 [12] . 다음 1914년 영국 정부에서 나이트 에 서었지만, 1919년에는 암릿살 사건 에 항의하여 이를 돌려주고 있다 [13] .

1916년 에는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의 국가주의 를 비판했다 [14] . 이때 친교가 있던 오카쿠라 텐신의 무덤을 방문하여 텐신 연고의 육각당 에서 시를 읽었다 [15] .

또한 마하토마 건디 등의 인도 독립운동 을 지지하고(간디에게 마하토마=위대한 영혼, 존칭을 준 것은 타골 이라고 한다 . ) 심지어 깊었다. 마하토마 건디 와 마찬가지로 마리아 몬테소리 의 인도 체재시에는 몬테소리와의 교류를 거쳐 몬테소리 교육 을 진정한 평화 교육 과 칭찬, 강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17] . 독일의 노벨상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 는 동양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1941년, 80세에 사망했다 [18] .

영향 편집 ]

타골의 사후에도 그 문학에 대한 평가는 높고, 인도 방글라데시를 불문하고 벵골인에게 사랑받아 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 . 1950년 1월 24일 에는 독립된 인도 의회에 의해 타골이 벵골어 로 작사하고 작곡한 자나 가나 마나가 인도 국가에 채용되었다. 또 파키스탄이 민족·지역 대립에 의해 동서에서 격렬한 대립이 일어나게 되면, 동 파키스탄 은 정체성을 벵골어로 요구하게 되어, 벵골어 세계에서 낳은 최대의 시인인 타골의 평가도 높아지고 있다 했다. 1970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시에는 타골이 1905년 에 작사한 ' 우리 황금의 벵골이 '가 방글라데시 해방군에 의해 부르게 되고, 독립 후인 1971년 1월 16일 에는 정식으로 국가 로 채용 [20 ] . 또, 벵골 출신의 거장인 영화 감독 의 사타짓 레이 는, 타골의 작품에 근거한 영화도 많이 제작하고 있어 [21] , 1961년에는 타골의 생애를 계속한 다큐멘터리, 「시성 타골 영어판 )」을 제작했다.

일본과의 관계 편집 ]

1916년 방일시 타고르(중앙). 오른쪽 끝에 요코야마 다이칸 .
1916년의 방일시, 카루이자와에서 학생을 앞에 명상 지도를 실시하는 타골.

일찍부터 일본 에 대한 관심도 깊고, 오카쿠라 텐신· 가와구치 케이해 · 노구치 요지 로 등과의 친교가 있어, 일본인 의 자연을 사랑하는 미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5도에 걸쳐 방일하고 있다.

1916년, 타고르가 일본에 왔을 때, 일본 여자대학교 창립자의 나루세 인조 의 초대를 받아 일본 여자대학교에서 7월에 강연을 하고, 또한 8월에 카루이자와 를 방문( 미쓰이 저택에 체재), 일본 여자대 학교가 매년 실시하고 있던 수양회에 강사로서 초대되어, 학생을 전에 「명상에 취해」라고 하는 강연이나 명상 지도를 행하고 있다 [22] [23] .

타골은 1924년 3번째 방일 때 제1차 세계대전 하의 대화 21조 요구 등의 행동을 '서구 문명에 독한 행동'이라고 비판하며 만주 사변 이후 의 일본의 군사 행동을 「일본의 전통미의 감각을 스스로 부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24] .

타고르는 중국에 대해 “중국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확실히 유지하고 있다. 어떤 일시적인 패배도 중국의 완전히 깨어난 정신을 결코 밀어낼 수 없다” [25] 라고 말했다. 타고르의 이러한 일본 비판에 대해 친구이기도 한 노구치 미지로와는 논쟁이 되었다 [26] . 노구치는 일본은 중국을 침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주구와 싸우고 있다고 했다 [27] .

1929년을 마지막으로, 타고르는 일본을 방문하지 않았다 [24] .

1959년, 동양대학 학장 오쿠라 쿠니히코 , 평론가 야마무로 시즈카 , 히라 범사의 시모 나카 야사부로 , 나카무라 모토 등에 의해, 타골 기념회·타골 연구소가 설립. 타골 연구와 벵골어 강의가 열렸다. 1961년에는 타골 탄생 100년 축제가 개최, 아폴론사로부터 '기턴자리' '타골 철집'이 출판되었다.

1980년, 타고르 탄생 120년에 해당하는 이 해, 고라토미 일본 타고르 협회장들이 중심이 된 시성 타고르상 설립 위원회에 의해, 나가노현 가루이자와마치의 아오이 고개의 전망대에 다카다 히로시 아사쿠타고르상」이 건립 했다. 배후의 벽 에 타골의 말 "인류부전"의 문자가 적혀 있다 [22] .

1981년, 모리모토 타츠오 가 중심이 되어, 「타골 전집」이 출판되었다 [24] .

저작 (일본어 번역) 편집 ]

  • 타고르시집 기탄자리( 와타나베 테루 히로역 , 이와나미 문고 , 1977년), 종종 재간
    • 원판은 「타골저작집 제3권」아폴론사(전7권)
  • 기탄 자리
  • 인간 종교 (모리모토 타츠오
    • 각·원판은 “타골저작집” 제3문명사(전 11권+별권 연구)
  • 타고르 사생의 시(모리모토 타츠오 편역, 인간과 역사사, 신판 2011년)
  • 기탄자리 노래의 속삭임 타고르시집(카와나 스미역, 풍매사, 신판 2017년)
  • 망설이는 새 타골 시집(카와나 스미역, 풍매사, 신판 2015년)
  • 螢 타고르 시집(가와나 스미역, 풍매사, 2010년)
  • 벵골의 고행자(우치야마 마리코 번역, 미치야 , 2006년)
  • 망설새들(우치야마 마리코 번역, 미치야, 2008년)
  • 어머니(우치야마 마리코 번역, 미치야, 2011년)
  • 우리 황금의 벵골요(우치야마 마사코, 미치야, 2014년)
  • 기턴자리 (우치야마 마사코, 미치야, 2019년)
  • 초승달(우치야마 마사코, 미치야, 2021년)
  • 어린 아이 보라나토(고베 토모코역, 고베 루미코(그림), 이오다테 서방, 2022년)
  • 소년 시대(오니시 마사유키·해설, 메콘, 2022년)
  • 정원사 산문시집(우치야마 마사코, 미치야, 2024년)

관련 서적 · 영화 편집 ]

각주 편집 ]

  1.  「노벨상의 백년 창조성의 모습」p107 울프・라숀편 쓰가네・레이니우스・토요코역
  2. b 세인 1999 , p. 173.
  3. c 단바 쿄코 “ 노래의 대지, 벵골~바울과 코비건~” 도쿄 외국어 대학 종합문화연구소 기관지 “종합문화연구 vol.21
  4.  『타골(사람과 사상 119)』 p78 탄바 쿄코 시미즈 서원, 2011년 5월 16일
  5.  『타골(사람과 사상 119)』p223 탄바 쿄코 시미즈 서원, 2011년 5월 16일
  6. ↑ 바울의 노래 유네스코·아시아문화센터
  7. ↑ Sen 1999 , p. 162.
  8.  「타골(사람과 사상 119)」p87 탄바 쿄코 시미즈 서원, 2011년 5월 16일
  9.  『타골(사람과 사상 119)』 p90 탄바 쿄코 시미즈 서원, 2011년 5월 16일
  10.  『타골(사람과 사상 119)』p13-14 탄바 쿄코 시미즈 서원, 2011년 5월 16일
  11. ^ 신도승·마에다 전학·에지마 게교 등 감수 “남아시아를 아는 사전” p423 헤이린사, 1992.10, ISBN 4-582-12634-0
  12. ^ 스에노부 유이 『일본 영어는 세계에서 통한다』〈평범사 신서〉 2010년 ISBN 9784582855357 p148
  13.  『세계역사총서 방글라데시의 역사』 p137 호리구치 마쓰시로 아카시 서점 2009년 8월 31일 초판 제1쇄 발행
  14.  “일본 기행” “타골 저작집” 제10권, 제3문명사
  15.  기타이바라키시 사편씨 위원회 편(1987):191 - 192페이지
  16.  「노벨상의 백년 창조성의 모습」p108 울프・라숀편 쓰가네・레이니우스・토요코역 주식회사 유니버설・아카데미・프레스
  17. ↑ Selected letters of Rabindranath Tagore from Cambridge University Press, Oriental publications 53, edited by Krishna Dutta and Andrew Robinson.
  18.  「타골(사람과 사상 119)」p240 탄바 쿄코 시미즈 서원, 2011년 5월 16일
  19.  「타골과 벵골 문학」p126-127 탄바 쿄코(「인도 문화사전」소수) 인도 문화사전 제작위원회편 마루젠 출판 2018년 1월 30일 발행
  20. ↑  더 알고 싶은 방글라데시  p119
  21.  "인도 현대사 1947-2007 하권"p469 라마챈드라 구하의 사토 히로역 아카시 서점 2012년 1월 20일 초판 제1쇄
  22. ↑ b “제56회·인류부전 시성 타고르 기념상” ( https://karuizawa-news.org/bknum/151218-148.pdf).+ 가루이자와 뉴스 . (2015-12-18).
  23. ^ 야마네 토모코 「미야자와 겐지 여동생 토시의 개척한 미지 - 「은하 철도의 밤」을 향해」아사분샤, 2003년, pp.51 - 52
  24. ↑ c 프로 맥주·비카슈·샤커 “ 타골과 오카쿠라 텐신의 만남으로부터 100년 ” “메르마가 국제 평화” 제4호, 2002년 12월 15일. 원래 2012년 1월 20일 현재 아카이브 . (archive.org)
  25.  “일본의 노구치 요지로에의 편지”, 아내 카즈오 저, “인류의 지적 유산 61-타골” 코단샤
  26.  전 게시 “일본의 노구치 요지로에의 편지”
  27. ^ 오사와 요시히로 「타골의 내셔널리즘 비판--제1회 일본 방문(1916)을 둘러싸고」『비교 문학』1981. 스즈키 사다미 「전후 사상은 일본을 읽어 왔다 근현대 사상사 재고」 히라 범사 신서

참고 문헌 편집 ]

  • 기타이바라키시 사편 씨 위원회 편 「기타 이바라키시 역사 시모노마키」 기타이바라키시, 1987년(쇼와 62년) 6월 25일, 849쪽.
  • 쿠시티 모한 세인 영어판 )『힌두교 - 인도 3000년의 삶의 방식・생각법』 나카가와 마사유역, 코단샤 현대 신서 , 1999년. ISBN  4-06-149469-4 .

관련 항목 편집 ]

외부 링크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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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indranath Tagore

Page semi-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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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indranath Tagore

Native name
রবীন্দ্রনাথ ঠাকুর (Bengali)
BornRabindranath Tagore
7 May 1861
CalcuttaBengal PresidencyBritish India
(present-day KolkataWest BengalIndia)
Died7 August 1941 (aged 80)
CalcuttaBengal PresidencyBritish India
(present-day KolkataWest BengalIndia)
Pen nameBhanusimha
Occupation
  • Poet
  • novelist
  • writer
  • dramatist
  • essayist
  • story-writer
  • playwright
  • composer
  • philosopher
  • social reformer
  • educationist
  • linguist
  • grammarian
  • painter
Language
CitizenshipBritish India (1861–1941)
PeriodBengali Renaissance
Literary movementContextual Modernism
Notable works
Notable awardsNobel Prize in Literature
1913
Spouse
(m. 1883; died 1902)
Children5, including Rathindranath Tagore
RelativesTagore family
Signature
Close-up on a Bengali word handwritten with angular, jaunty letters.

Rabindranath Tagore FRAS (/rəˈbɪndrənɑːt tæˈɡɔːr/ pronounced [roˈbindɾonatʰ ˈʈʰakuɾ];[1] 7 May 1861[2] – 7 August 1941[3]) was an Indian poet, writer, playwright, composer, philosopher, social reformer, and painter during the age of Bengal Renaissance.[4][5][6] He reshaped Bengali literature and music as well as Indian art with Contextual Modernism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Author of the "profoundly sensitive, fresh and beautiful" poetry of Gitanjali,[7] he became in 1913 the first non-European and the first lyricist to win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8] Tagore's poetic songs were viewed as spiritual and mercurial; where his elegant prose and magical poetry were widely popular in the Indian subcontinent.[9] He was a fellow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Referred to as "the Bard of Bengal",[10][5][6] Tagore was known by sobriquetsGurudebKobiguru, and Biswokobi.[a]

Bengali Brahmin from Calcutta with ancestral gentry roots in Burdwan district[12] and Jessore, Tagore wrote poetry as an eight-year-old.[13] At the age of sixteen, he released his first substantial poems under the pseudonym Bhānusiṃha ("Sun Lion"), which were seized upon by literary authorities as long-lost classics.[14] By 1877 he graduated to his first short stories and dramas, published under his real name. As a humanistuniversalistinternationalist, and ardent critic of nationalism,[15] he denounced the British Raj and advocated independence from Britain. As an exponent of the Bengal Renaissance, he advanced a vast canon that comprised paintings, sketches and doodles, hundreds of texts, and some two thousand songs; his legacy also endures in his founding of Visva-Bharati University.[16][17]

Tagore modernised Bengali art by spurning rigid classical forms and resisting linguistic strictures. His novels, stories, songs, dance dramas, and essays spoke to topics political and personal. Gitanjali (Song Offerings), Gora (Fair-Faced) and Ghare-Baire (The Home and the World) are his best-known works, and his verse, short stories, and novels were acclaimed—or panned—for their lyricism, colloquialism, naturalism, and unnatural contemplation. His compositions were chosen by two nations as national anthems: India's "Jana Gana Mana" and Bangladesh's "Amar Shonar Bangla" .The Sri Lankan national anthem was also inspired by his work.[18] His Song "Banglar Mati Banglar Jol" has been adopted as the state anthem of West Bengal.

Family history

The name Tagore is the anglicised transliteration of Thakur.[19] The original surname of the Tagores was Kushari. They were Pirali Brahmin ('Pirali' historically carried a stigmatized and pejorative connotation)[20][21] who originally belonged to a village named Kush in the district named Burdwan in West Bengal. The biographer of Rabindranath Tagore, Prabhat Kumar Mukhopadhyaya wrote in the first volume of his book Rabindrajibani O Rabindra Sahitya Prabeshak that

The Kusharis were the descendants of Deen Kushari, the son of Bhatta Narayana; Deen was granted a village named Kush (in Burdwan zilla) by Maharaja Kshitisura, he became its chief and came to be known as Kushari.[12]

Life and events

Early life: 1861–1878

Young Tagore in London, 1879

The last two days a storm has been raging, similar to the description in my song—Jhauro jhauro borishe baridhara  [... amidst it] a hapless, homeless man drenched from top to toe standing on the roof of his steamer [...] the last two days I have been singing this song over and over [...] as a result the pelting sound of the intense rain, the wail of the wind, the sound of the heaving Gorai River, [...] have assumed a fresh life and found a new language and I have felt like a major actor in this new musical drama unfolding before me.

— Letter to Indira Devi.[22]

The youngest of 13 surviving children, Tagore (nicknamed "Rabi") was born on 7 May 1861 in the Jorasanko mansion in Calcutta,[23] the son of Debendranath Tagore (1817–1905) and Sarada Devi (1830–1875).[b]

Black-and-white photograph of a finely dressed man and woman: the man, smiling, stands with the hand on the hip and elbow turned outward with a shawl draped over his shoulders and in Bengali formal wear. In front of him, the woman, seated, is in an elaborate dress and shawl; she leans against a carved table supporting a vase and flowing leaves.
Tagore and his wife Mrinalini Devi, 1883

Tagore was raised mostly by servants; his mother had died in his early childhood and his father travelled widely.[29] The Tagore family was at the forefront of the Bengal renaissance. They hosted the publication of literary magazines; theatre and recitals of Bengali and Western classical music featured there regularly. Tagore's father invited several professional Dhrupad musicians to stay in the house and teach Indian classical music to the children.[30] Tagore's oldest brother Dwijendranath was a philosopher and poet. Another brother, Satyendranath, was the first Indian appointed to the elite and formerly all-European Indian Civil Service. Yet another brother, Jyotirindranath, was a musician, composer, and playwright.[31] His sister Swarnakumari became a novelist.[32] Jyotirindranath's wife Kadambari Devi, slightly older than Tagore, was a dear friend and powerful influence. Her abrupt suicide in 1884, soon after he married, left him profoundly distraught for years.[33]

Tagore largely avoided classroom schooling and preferred to roam the manor or nearby Bolpur and Panihati, which the family visited.[34][35] His brother Hemendranath tutored and physically conditioned him—by having him swim the Ganges or trek through hills, by gymnastics, and by practising judo and wrestling. He learned drawing, anatomy, geography and history, literature, mathematics, Sanskrit, and English—his least favourite subject.[36] Tagore loathed formal education—his scholarly travails at the local Presidency College spanned a single day. Years later he held that proper teaching does not explain things; proper teaching stokes curiosity.[37]

After his upanayan (coming-of-age rite) at age eleven, Tagore and his father left Calcutta in February 1873 to tour India for several months, visiting his father's Santiniketan estate and Amritsar before reaching the Himalayan hill station of Dalhousie. There Tagore read biographies, studied history, astronomy, modern science, and Sanskrit, and examined the classical poetry of Kālidāsa.[38][39] During his 1-month stay at Amritsar in 1873 he was greatly influenced by melodious gurbani and Nanak bani being sung at Golden Temple for which both father and son were regular visitors. He writes in his My Reminiscences (1912):

The golden temple of Amritsar comes back to me like a dream. Many a morning have I accompanied my father to this Gurudarbar of the Sikhs in the middle of the lake. There the sacred chanting resounds continually. My father, seated amidst the throng of worshippers, would sometimes add his voice to the hymn of praise, and finding a stranger joining in their devotions they would wax enthusiastically cordial, and we would return loaded with the sanctified offerings of sugar crystals and other sweets.[40]

He wrote 6 poems relating to Sikhism and several articles in Bengali children's magazine about Sikhism.[41]

  • Poems on Guru Gobind Singh: নিষ্ফল উপহার Nishfal-upahaar (1888, translated as "Futile Gift"), গুরু গোবিন্দ Guru Gobinda (1899) and শেষ শিক্ষা Shesh Shiksha (1899, translated as "Last Teachings")[41]
  • Poem on Banda Bahadur: বন্দী বীর Bandi-bir (The Prisoner Warrior written in 1888 or 1898)[41]
  • Poem on Bhai Torusingh: প্রার্থনাতীত দান (prarthonatit dan - Unsolicited gift) written in 1888 or 1898[41]
  • Poem on Nehal Singh: নীহাল সিংহ (Nihal Singh) written in 1935.[41]

Tagore returned to Jorosanko and completed a set of major works by 1877, one of them a long poem in the Maithili style of Vidyapati. As a joke, he claimed that these were the lost works of newly discovered 17th-century Vaiṣṇava poet Bhānusiṃha.[42] Regional experts accepted them as the lost works of the fictitious poet.[43] He debuted in the short-story genre in Bengali with "Bhikharini" ("The Beggar Woman").[44][45] Published in the same year, Sandhya Sangit (1882) includes the poem "Nirjharer Swapnabhanga" ("The Rousing of the Waterfall").

Shelaidaha: 1878–1901

Tagore's house in ShilaidahaBangladesh

Because Debendranath wanted his son to become a barrister, Tagore enrolled at a public school in Brighton, East Sussex, England in 1878.[22] He stayed for several months at a house that the Tagore family owned near Brighton and Hove, in Medina Villas; in 1877 his nephew and niece—Suren and Indira Devi, the children of Tagore's brother Satyendranath—were sent together with their mother, Tagore's sister-in-law, to live with him.[46] He briefly read law at University College London, but again left, opting instead for independent study of Shakespeare's plays Coriolanus, and Antony and Cleopatra and the Religio Medici of Thomas Browne. Lively English, Irish, and Scottish folk tunes impressed Tagore, whose own tradition of Nidhubabu-authored kirtans and tappas and Brahmo hymnody was subdued.[22][47] In 1880 he returned to Bengal degree-less, resolving to reconcile European novelty with Brahmo traditions, taking the best from each.[48] After returning to Bengal, Tagore regularly published poems, stories, and novels. These had a profound impact within Bengal itself but received little national attention.[49] In 1883 he married 10-year-old[50] Mrinalini Devi, born Bhabatarini, 1873–1902 (this was a common practice at the time). They had five children, two of whom died in childhood.[51]

Tagore family boat (bajra or budgerow), the "Padma".

In 1890 Tagore began managing his vast ancestral estates in Shelaidaha (today a region of Bangladesh); he was joined there by his wife and children in 1898. Tagore released his Manasi poems (1890), among his best-known work.[52] As Zamindar Babu, Tagore criss-crossed the Padma River in command of the Padma, the luxurious family barge (also known as "budgerow"). He collected mostly token rents and blessed villagers who in turn honoured him with banquets—occasionally of dried rice and sour milk.[53] He met Gagan Harkara, through whom he became familiar with Baul Lalon Shah, whose folk songs greatly influenced Tagore.[54] Tagore worked to popularise Lalon's songs. The period 1891–1895, Tagore's Sadhana period, named after one of his magazines, was his most productive;[29] in these years he wrote more than half the stories of the three-volume, 84-story Galpaguchchha.[44] Its ironic and grave tales examined the voluptuous poverty of an idealised rural Bengal.[55]

Santiniketan: 1901–1932

Posed group black-and-white photograph of seven Chinese men, possibly academics, in formal wear: two wear European-style suits, the five others wear Chinese traditional dress; four of the seven sit on the floor in the foreground; another sits on a chair behind them at centre-left; two others stand in the background. They surround an eighth man who is robed, bearded, and sitting in a chair placed at centre-left. Four elegant windows are behind them in a line.
Tsinghua University, 1924

In 1901 Tagore moved to Santiniketan to found an ashram with a marble-floored prayer hall—The Mandir—an experimental school, groves of trees, gardens, a library.[56] There his wife and two of his children died. His father died in 1905. He received monthly payments as part of his inheritance and income from the Maharaja of Tripura, sales of his family's jewellery, his seaside bungalow in Puri, and a derisory 2,000 rupees in book royalties.[57] He gained Bengali and foreign readers alike; he published Naivedya (1901) and Kheya (1906) and translated poems into free verse.

In 1912, Tagore translated his 1910 work Gitanjali into English. While on a trip to London, he shared these poems with admirers including William Butler Yeats and Ezra Pound. London's India Society published the work in a limited edition, and the American magazine Poetry published a selection from Gitanjali.[58] In November 1913, Tagore learned he had won that year's Nobel Prize in Literature: the Swedish Academy appreciated the idealistic—and for Westerners—accessible nature of a small body of his translated material focused on the 1912 Gitanjali: Song Offerings.[59] He was awarded a knighthood by King George V in the 1915 Birthday Honours, but Tagore renounced it after the 1919 Jallianwala Bagh massacre.[60] Renouncing the knighthood, Tagore wrote in a letter addressed to Lord Chelmsford, the then British Viceroy of India, "The disproportionate severity of the punishments inflicted upon the unfortunate people and the methods of carrying them out, we are convinced, are without parallel in the history of civilised governments...The time has come when badges of honour make our shame glaring in their incongruous context of humiliation, and I for my part wish to stand, shorn of all special distinctions, by the side of my countrymen."[61][62]

In 1919, he was invited by the president and chairman of Anjuman-e-Islamia, Syed Abdul Majid to visit Sylhet for the first time. The event attracted over 5000 people.[63]

In 1921, Tagore and agricultural economist Leonard Elmhirst set up the "Institute for Rural Reconstruction", later renamed Shriniketan or "Abode of Welfare", in Surul, a village near the ashram. With it, Tagore sought to moderate Gandhi's Swaraj protests, which he occasionally blamed for British India's perceived mental – and thus ultimately colonial – decline.[64] He sought aid from donors, officials, and scholars worldwide to "free village[s] from the shackles of helplessness and ignorance" by "vitalis[ing] knowledge".[65][66] In the early 1930s he targeted ambient "abnormal caste consciousness" and untouchability. He lectured against these, he penned Dalit heroes for his poems and his dramas, and he campaigned—successfully—to open Guruvayoor Temple to Dalits.[67][68]

Twilight years: 1932–1941

In Germany, 1931
Last picture of Rabindranath, 1941

Dutta and Robinson describe this phase of Tagore's life as being one of a "peripatetic litterateur". It affirmed his opinion that human divisions were shallow. During a May 1932 visit to a Bedouin encampment in the Iraqi desert, the tribal chief told him that "Our Prophet has said that a true Muslim is he by whose words and deeds not the least of his brother-men may ever come to any harm ..." Tagore confided in his diary: "I was startled into recognizing in his words the voice of essential humanity."[69] To the end Tagore scrutinized orthodoxy—and in 1934, he struck. That year, an earthquake hit Bihar and killed thousands. Gandhi hailed it as seismic karma, as divine retribution avenging the oppression of Dalits. Tagore rebuked him for his seemingly ignominious implications.[70] He mourned the perennial poverty of Calcutta and the socioeconomic decline of Bengal and detailed this newly plebeian aesthetics in an unrhymed hundred-line poem whose technique of searing double-vision foreshadowed Satyajit Ray's film Apur Sansar.[71][72] Fifteen new volumes appeared, among them prose-poem works Punashcha (1932), Shes Saptak (1935), and Patraput (1936). Experimentation continued in his prose-songs and dance-dramas— Chitra (1914), Shyama (1939), and Chandalika (1938)— and in his novels— Dui Bon (1933), Malancha (1934), and Char Adhyay (1934).[73]

Clouds come floating into my life, no longer to carry rain or usher storm, but to add color to my sunset sky.

 —Verse 292, Stray Birds, 1916.

Tagore's remit expanded to science in his last years, as hinted in Visva-Parichay, a 1937 collection of essays. His respect for scientific laws and his exploration of biology, physics, and astronomy informed his poetry, which exhibited extensive naturalism and verisimilitude.[74] He wove the process of science, the narratives of scientists, into stories in Se (1937), Tin Sangi (1940), and Galpasalpa (1941). His last five years were marked by chronic pain and two long periods of illness. These began when Tagore lost consciousness in late 1937; he remained comatose and near death for a time. This was followed in late 1940 by a similar spell, from which he never recovered. Poetry from these valetudinary years is among his finest.[75][76] A period of prolonged agony ended with Tagore's death on 7 August 1941, aged 80.[23] He was in an upstairs room of the Jorasanko mansion in which he grew up.[77][78] The date is still mourned.[79] A. K. Sen, brother of the first chief election commissioner, received dictation from Tagore on 30 July 1941, a day before a scheduled operation: his last poem.[80]

I'm lost in the middle of my birthday. I want my friends, their touch, with the earth's last love. I will take life's final offering, I will take the human's last blessing. Today my sack is empty. I have given completely whatever I had to give. In return, if I receive anything—some love, some forgiveness—then I will take it with me when I step on the boat that crosses to the festival of the wordless end.

Travels

Jawaharlal Nehru and Rabindranath Tagore, February 1940

Our passions and desires are unruly, but our character subdues these elements into a harmonious whole. Does something similar to this happen in the physical world? Are the elements rebellious, dynamic with individual impulse? And is there a principle in the physical world that dominates them and puts them into an orderly organization?

— Interviewed by Einstein, 14 April 1930.[81]

Rabindranath with Einstein in 1930
Group shot of dozens of people assembled at the entrance of an imposing building; two columns in view. All subjects face the camera. All but two are dressed in lounge suits: a woman at front-center wears light-coloured Persian garb; the man to her left, first row, wears a white beard and dark-coloured oriental cap and robes.
At the Iranian Majlis (parliament) in TehranIran, 1932

Between 1878 and 1932, Tagore set foot in more than thirty countries on five continents.[82] In 1912, he took a sheaf of his translated works to England, where they gained attention from missionary and Gandhi protégé Charles F. Andrews, Irish poet William Butler YeatsEzra PoundRobert BridgesErnest RhysThomas Sturge Moore, and others.[83] Yeats wrote the preface to the English translation of Gitanjali; Andrews joined Tagore at Santiniketan. In November 1912 Tagore began touring the United States[84] and the United Kingdom, staying in Butterton, Staffordshire with Andrews's clergymen friends.[85] From May 1916 until April 1917, he lectured in Japan[86] and the United States.[87] He denounced nationalism.[88] His essay "Nationalism in India" was scorned and praised; it was admired by Romain Rolland and other pacifists.[89]

Shortly after returning home, the 63-year-old Tagore accepted an invitation from the Peruvian government. He travelled to Mexico. Each government pledged US$100,000 to his school to commemorate the visits.[90] A week after his 6 November 1924 arrival in Buenos Aires,[91] an ill Tagore shifted to the Villa Miralrío at the behest of Victoria Ocampo. He left for home in January 1925. In May 1926 Tagore reached Naples; the next day he met Mussolini in Rome.[92] Their warm rapport ended when Tagore pronounced upon Il Duce's fascist finesse.[93] He had earlier enthused: "[w]without any doubt he is a great personality. There is such a massive vigor in that head that it reminds one of Michael Angelo's chisel." A "fire-bath" of fascism was to have educed "the immortal soul of Italy ... clothed in quenchless light".[94]

On 1 November 1926 Tagore arrived in Hungary and spent some time on the shore of Lake Balaton in the city of Balatonfüred, recovering from heart problems at a sanitarium. He planted a tree, and a bust statue was placed there in 1956 (a gift from the Indian government, the work of Rasithan Kashar, replaced by a newly gifted statue in 2005) and the lakeside promenade still bears his name since 1957.[95]

On 14 July 1927, Tagore and two companions began a four-month tour of Southeast Asia. They visited Bali, Java, Kuala Lumpur, Malacca, Penang, Siam, and Singapore. The resultant travelogues compose Jatri (1929).[96] In early 1930 he left Bengal for a nearly year-long tour of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Upon returning to Britain—and as his paintings were exhibited in Paris and London—he lodged at a Birmingham Quaker settlement. He wrote his Oxford Hibbert Lectures[c] and spoke at the annual London Quaker meet.[97] There, addressing relations between the British and the Indians – a topic he would tackle repeatedly over the next two years – Tagore spoke of a "dark chasm of aloofness".[98] He visited Aga Khan III, stayed at Dartington Hall, toured Denmark, Switzerland, and Germany from June to mid-September 1930, then went on into the Soviet Union.[99] In April 1932 Tagore, intrigued by the Persian mystic Hafez, was hosted by Reza Shah Pahlavi.[100][101] In his other travels, Tagore interacted with Henri BergsonAlbert EinsteinRobert FrostThomas MannGeorge Bernard ShawH.G. Wells, and Romain Rolland.[102][103] Visits to Persia and Iraq (in 1932) and Sri Lanka (in 1933) composed Tagore's final foreign tour, and his dislike of communalism and nationalism only deepened.[69] Vice-president of India M. Hamid Ansari has said that Rabindranath Tagore heralded the cultural rapprochement between communities, societies and nations much before it became the liberal norm of conduct. Tagore was a man ahead of his time. He wrote in 1932, while on a visit to Iran, that "each country of Asia will solve its own historical problems according to its strength, nature and needs, but the lamp they will each carry on their path to progress will converge to illuminate the common ray of knowledge."[104]

Works

Known mostly for his poetry, Tagore wrote novels, essays, short stories, travelogues, dramas, and thousands of songs. Of Tagore's prose, his short stories are perhaps the most highly regarded; he is indeed credited with originating the Bengali-language version of the genre. His works are frequently noted for their rhythmic, optimistic, and lyrical nature. Such stories mostly borrow from the lives of common people. Tagore's non-fiction grappled with history, linguistics, and spirituality. He wrote autobiographies. His travelogues, essays, and lectures were compiled into several volumes, including Europe Jatrir Patro (Letters from Europe) and Manusher Dhormo (The Religion of Man). His brief chat with Einstein, "Note on the Nature of Reality", is included as an appendix to the latter. On the occasion of Tagore's 150th birthday, an anthology (titled Kalanukromik Rabindra Rachanabali) of the total body of his works is currently being published in Bengali in chronological order. This includes all versions of each work and fills about eighty volumes.[105] In 2011, Harvard University Press collaborated with Visva-Bharati University to publish The Essential Tagore, the largest anthology of Tagore's works available in English; it was edited by Fakrul Alam and Radha Chakravarthy and marks the 150th anniversary of Tagore's birth.[106]

Drama

Tagore performing the title role in Valmiki Pratibha (1881) with his niece Indira Devi as the goddess Lakshmi

Tagore's experiences with drama began when he was sixteen, with his brother Jyotirindranath. He wrote his first original dramatic piece when he was twenty — Valmiki Pratibha which was shown at the Tagore's mansion. Tagore stated that his works sought to articulate "the play of feeling and not of action". In 1890 he wrote Visarjan (an adaptation of his novella Rajarshi), which has been regarded as his finest drama. In the original Bengali language, such works included intricate subplots and extended monologues. Later, Tagore's dramas used more philosophical and allegorical themes. The play Dak Ghar (The Post Office; 1912), describes the child Amal defying his stuffy and puerile confines by ultimately "fall[ing] asleep", hinting his physical death. A story with borderless appeal—gleaning rave reviews in Europe—Dak Ghar dealt with death as, in Tagore's words, "spiritual freedom" from "the world of hoarded wealth and certified creeds".[107][108] Another is Tagore's Chandalika (Untouchable Girl), which was modelled on an ancient Buddhist legend describing how Ananda, the Gautama Buddha's disciple, asks a tribal girl for water.[109] In Raktakarabi ("Red" or "Blood Oleanders") is an allegorical struggle against a kleptocrat king who rules over the residents of Yaksha puri.[110]

ChitrangadaChandalika, and Shyama are other key plays that have dance-drama adaptations, which together are known as Rabindra Nritya Natya.

Short stories

Cover of the Sabuj Patra magazine, edited by Pramatha Chaudhuri

Tagore began his career in short stories in 1877—when he was only sixteen—with "Bhikharini" ("The Beggar Woman").[111] With this, Tagore effectively invented the Bengali-language short story genre.[112] The four years from 1891 to 1895 are known as Tagore's "Sadhana" period (named for one of Tagore's magazines). This period was among Tagore's most fecund, yielding more than half the stories contained in the three-volume Galpaguchchha, which itself is a collection of eighty-four stories.[111] Such stories usually showcase Tagore's reflections upon his surroundings, on modern and fashionable ideas, and on interesting mind puzzles (which Tagore was fond of testing his intellect with). Tagore typically associated his earliest stories (such as those of the "Sadhana" period) with an exuberance of vitality and spontaneity; these characteristics were intimately connected with Tagore's life in the common villages of, among others, Patisar, Shajadpur, and Shilaida while managing the Tagore family's vast landholdings.[111] There, he beheld the lives of India's poor and common people; Tagore thereby took to examining their lives with a penetrative depth and feeling that was singular in Indian literature up to that point.[113] In particular, such stories as "Kabuliwala" ("The Fruitseller from Kabul", published in 1892), "Kshudita Pashan" ("The Hungry Stones") (August 1895), and "Atithi" ("The Runaway", 1895) typified this analytic focus on the downtrodden.[114] Many of the other Galpaguchchha stories were written in Tagore's Sabuj Patra period from 1914 to 1917, also named after one of the magazines that Tagore edited and heavily contributed to.[111]

Novels

Tagore wrote eight novels and four novellas, among them ChaturangaShesher KobitaChar Odhay, and NoukadubiGhare Baire (The Home and the World)—through the lens of the idealistic zamindar protagonist Nikhil—excoriates rising Indian nationalism, terrorism, and religious zeal in the Swadeshi movement; a frank expression of Tagore's conflicted sentiments, it emerged from a 1914 bout of depression. The novel ends in Hindu-Muslim violence and Nikhil's—likely mortal—wounding.[115]

Gora raises controversial questions regarding the Indian identity. As with Ghare Baire, matters of self-identity (jāti), personal freedom, and religion are developed in the context of a family story and love triangle.[116] In it an Irish boy orphaned in the Sepoy Mutiny is raised by Hindus as the titular gora—"whitey". Ignorant of his foreign origins, he chastises Hindu religious backsliders out of love for the indigenous Indians and solidarity with them against his hegemon-compatriots. He falls for a Brahmo girl, compelling his worried foster father to reveal his lost past and cease his nativist zeal. As a "true dialectic" advancing "arguments for and against strict traditionalism", it tackles the colonial conundrum by "portray[ing] the value of all positions within a particular frame [...] not only syncretism, not only liberal orthodoxy but the extremist reactionary traditionalism he defends by an appeal to what humans share." Among these Tagore highlights "identity [...] conceived of as dharma."[117]

In Jogajog (Relationships), the heroine Kumudini—bound by the ideals of Śiva-Sati, exemplified by Dākshāyani—is torn between her pity for the sinking fortunes of her progressive and compassionate elder brother and his foil: her roué of a husband. Tagore flaunts his feminist leanings; pathos depicts the plight and ultimate demise of women trapped by pregnancy, duty, and family honor; he simultaneously trucks with Bengal's putrescent landed gentry.[118] The story revolves around the underlying rivalry between two families—the Chatterjees, aristocrats now on the decline (Biprodas) and the Ghosals (Madhusudan), representing new money and new arrogance. Kumudini, Biprodas' sister, is caught between the two as she is married off to Madhusudan. She had risen in an observant and sheltered traditional home, as had all her female relations.

Others were uplifting: Shesher Kobita—translated twice as Last Poem and Farewell Song—is his most lyrical novel, with poems and rhythmic passages written by a poet protagonist. It contains elements of satire and postmodernism and has stock characters who gleefully attack the reputation of an old, outmoded, oppressively renowned poet who, incidentally, goes by a familiar name: "Rabindranath Tagore". Though his novels remain among the least-appreciated of his works, they have been given renewed attention via film adaptations by Ray and others: Chokher Bali and Ghare Baire are exemplary. In the first, Tagore inscribes Bengali society via its heroine: a rebellious widow who would live for herself alone. He pillories the custom of perpetual mourning on the part of widows, who were not allowed to remarry, who were consigned to seclusion and loneliness. Tagore wrote of it: "I have always regretted the ending".[citation needed]

Poetry

Title page of the 1913 Macmillan edition of Tagore's Gitanjali
Three-verse handwritten composition; each verse has original Bengali with English-language translation below: "My fancies are fireflies: specks of living light twinkling in the dark. The same voice murmurs in these desultory lines, which is born in wayside pansies letting hasty glances pass by. The butterfly does not count years but moments, and therefore has enough time."
Part of a poem written by Tagore in Hungary, 1926

Internationally, Gitanjali (Bengaliগীতাঞ্জলি) is Tagore's best-known collection of poetry, for which he was awarded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in 1913. Tagore was the first non-European to receive a Nobel Prize in Literature and the second non-European to receive a Nobel Prize after Theodore Roosevelt.[119]

Besides Gitanjali, other notable works include ManasiSonar Tori ("Golden Boat"), Balaka ("Wild Geese" — the title being a metaphor for migrating souls)[120]

Tagore's poetic style, which proceeds from a lineage established by 15th- and 16th-century Vaishnava poets, ranges from classical formalism to the comic, visionary, and ecstatic. He was influenced by the atavistic mysticism of Vyasa and other rishi-authors of the Upanishads, the Bhakti-Sufi mystic Kabir, and Ramprasad Sen.[121] Tagore's most innovative and mature poetry embodies his exposure to Bengali rural folk music, which included mystic Baul ballads such as those of the bard Lalon.[122][123] These, rediscovered and re-popularized by Tagore, resemble 19th-century Kartābhajā hymns that emphasize inward divinity and rebellion against bourgeois bhadralok religious and social orthodoxy.[124][125] During his Shelaidaha years, his poems took on a lyrical voice of the moner manush, the Bāuls' "man within the heart" and Tagore's "life force of his deep recesses", or meditating upon the jeevan devata—the demiurge or the "living God within".[22] This figure connected with divinity through appeal to nature and the emotional interplay of human drama. Such tools saw use in his Bhānusiṃha poems chronicling the Radha-Krishna romance, which was repeatedly revised over seventy years.[126][127]

Later, with the development of new poetic ideas in Bengal – many originating from younger poets seeking to break with Tagore's style – Tagore absorbed new poetic concepts, which allowed him to further develop a unique identity. Examples of this include Africa and Camalia, which are among the better-known of his latter poems.

Songs (Rabindra Sangeet)

Tagore was a prolific composer with around 2,230 songs to his credit.[128] His songs are known as rabindrasangit ("Tagore Song"), which merges fluidly into his literature, most of which—poems or parts of novels, stories, or plays alike—were lyricized. Influenced by the thumri style of Hindustani music, they ran the entire gamut of human emotion, ranging from his early dirge-like Brahmo devotional hymns to quasi-erotic compositions.[129] They emulated the tonal color of classical ragas to varying extents. Some songs mimicked a given raga's melody and rhythm faithfully, others newly blended elements of different ragas.[130] Yet about nine-tenths of his work was not bhanga gaan, the body of tunes revamped with "fresh value" from select Western, Hindustani, Bengali folk and other regional flavors "external" to Tagore's own ancestral culture.[22]

Rabindranath Tagore reciting Jana Gana Mana

In 1971, Amar Shonar Bangla became the national anthem of Bangladesh. It was written – ironically – to protest the 1905 Partition of Bengal along communal lines: cutting off the Muslim-majority East Bengal from Hindu-dominated West Bengal was to avert a regional bloodbath. Tagore saw the partition as a cunning plan to stop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he aimed to rekindle Bengali unity and tar communalism. Jana Gana Mana was written in shadhu-bhasha, a Sanskritised form of Bengali,[131] and is the first of five stanzas of the Brahmo hymn Bharot Bhagyo Bidhata that Tagore composed. It was first sung in 1911 at a Calcutta session of the Indian National Congress[132] and was adopted in 1950 by the Constituent Assembly of the Republic of India as its national anthem.

Sri Lanka's National Anthem was inspired by his work.[18]

For Bengalis, the songs' appeal, stemming from the combination of emotive strength and beauty described as surpassing even Tagore's poetry, was such that the Modern Review observed that "[t]here is in Bengal no cultured home where Rabindranath's songs are not sung or at least attempted to be sung... Even illiterate villagers sing his songs".[133] Tagore influenced sitar maestro Vilayat Khan and sarodiyas Buddhadev Dasgupta and Amjad Ali Khan.[130]

Art works

Black-and-white photograph of a stylised sketch depicting a tribal funerary mask.
Primitivism: a pastel-coloured rendition of a Malagan mask from northern New Ireland, Papua New Guinea
Black-and-white close-up photograph of a piece of wood boldly painted in unmixed solid strokes of black and white in a stylised semblance to "ro" and "tho" from the Bengali syllabary.
Tagore's Bengali-language initials, the letters র and ঠ, are worked into this "Ro-Tho" (of RAbindranath THAkur) wooden seal, stylistically similar to designs used in traditional Haida carvings from the Pacific Northwest region of North America. Tagore often embellished his manuscripts with such art.[134]

At sixty, Tagore took up drawing and painting; successful exhibitions of his many works—which made a debut appearance in Paris upon encouragement by artists he met in the south of France[135]—were held throughout Europe. He was likely red, green color blind, resulting in works that exhibited strange color schemes and off-beat aesthetics. Tagore was influenced by numerous styles, including scrimshaw by the Malanggan people of northern New IrelandPapua New GuineaHaida carvings from the Pacific Northwest region of North America, and woodcuts by the German Max Pechstein.[134] His artist's eye for handwriting was revealed in the simple artistic and rhythmic leitmotifs embellishing the scribbles, cross-outs, and word layouts of his manuscripts. Some of Tagore's lyrics corresponded in a synesthetic sense with particular paintings.[22]

Surrounded by several painters Rabindranath had always wanted to paint. Writing and music, playwriting and acting came to him naturally and almost without training, as it did to several others in his family, and in even greater measure. But painting eluded him. Yet he tried repeatedly to master the art and there are several references to this in his early letters and reminiscence. In 1900 for instance, when he was nearing forty and already a celebrated writer, he wrote to Jagadish Chandra Bose, "You will be surprised to hear that I am sitting with a sketchbook drawing. Needless to say, the pictures are not intended for any salon in Paris, they cause me not the least suspicion that the national gallery of any country will suddenly decide to raise taxes to acquire them. But, just as a mother lavishes most affection on her ugliest son, so I feel secretly drawn to the very skill that comes to me least easily." He also realized that he was using the eraser more than the pencil, and dissatisfied with the results he finally withdrew, deciding it was not for him to become a painter.[136]

Face of a woman, inspired by Kadambari Devi.[137] Ink on paper. National Gallery of Modern Art, New Delhi

India's National Gallery of Modern Art lists 102 works by Tagore in its collections.[138][139]

In 1937, Tagore's paintings were removed from Berlin's baroque Crown Prince Palace by the Nazi regime and five were included in the inventory of "degenerate art" compiled by the Nazis in 1941–1942.[140]

Politics

Photo of a formal function, an aged bald man and old woman in simple white robes are seated side-by-side with legs folded on a rug-strewn dais; the man looks at a bearded and garlanded old man seated on another dais at left. In the foreground, various ceremonial objects are arrayed; in the background, dozens of other people observe.
Tagore hosts Gandhi and wife Kasturba at Santiniketan in 1940.

Tagore opposed imperialism and supported Indian nationalists,[141][142][143] and these views were first revealed in Manast, which was mostly composed in his twenties.[52] Evidence produced during the Hindu–German Conspiracy Trial and latter accounts affirm his awareness of the Ghadarites and stated that he sought the support of Japanese Prime Minister Terauchi Masatake and former Premier Ōkuma Shigenobu.[144] Yet he lampooned the Swadeshi movement; he rebuked it in The Cult of the Charkha, an acrid 1925 essay.[145] According to Amartya Sen, Tagore rebelled against strongly nationalist forms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he wanted to assert India's right to be independent without denying the importance of what India could learn from abroad.[146] He urged the masses to avoid victimology and instead seek self-help and education, and he saw the presence of British administration as a "political symptom of our social disease". He maintained that, even for those at the extremes of poverty, "there can be no question of blind revolution"; preferable to it was a "steady and purposeful education".[147][148]

So I repeat we never can have a true view of man unless we have a love for him. Civilisation must be judged and prized, not by the amount of power it has developed, but by how much it has evolved and given expression to, by its laws and institutions, the love of humanity.

— Sādhanā: The Realisation of Life, 1916.[149]

Such views enraged many. He escaped assassination—and only narrowly—by Indian expatriates during his stay in a San Francisco hotel in late 1916; the plot failed when his would-be assassins fell into an argument.[150] Tagore wrote songs lionizing the Indian independence movement.[151] Two of Tagore's more politically charged compositions, "Chitto Jetha Bhayshunyo" ("Where the Mind is Without Fear") and "Ekla Chalo Re" ("If They Answer Not to Thy Call, Walk Alone"), gained mass appeal, with the latter favored by Gandhi.[152] Though somewhat critical of Gandhian activism,[153] Tagore was key in resolving a Gandhi–Ambedkar dispute involving separate electorates for untouchables, thereby mooting at least one of Gandhi's fasts "unto death".[154][155]

Repudiation of knighthood

Tagore renounced his knighthood in response to the Jallianwala Bagh massacre in 1919. In the repudiation letter to the Viceroy, Lord Chelmsford, he wrote[156]

The time has come when badges of honour make our shame glaring in the incongruous context of humiliation, and I for my part, wish to stand, shorn, of all special distinctions, by the side of those of my countrymen who, for their so-called insignificance, are liable to suffer degradation not fit for human beings.

Santiniketan and Visva-Bharati

Kala Bhavan (Institute of Fine Arts), Santiniketan, India

Tagore despised rote classroom schooling, as shown in his short story, "The Parrot's Training", wherein a bird is caged and force-fed textbook pages—to death.[157][158] Visiting Santa Barbara in 1917, Tagore conceived a new type of university: he sought to "make Santiniketan the connecting thread between India and the world [and] a world center for the study of humanity somewhere beyond the limits of nation and geography."[150] The school, which he named Visva-Bharati,[d] had its foundation stone laid on 24 December 1918 and was inaugurated precisely three years later.[159] Tagore employed a brahmacharya system: gurus gave pupils personal guidance—emotional, intellectual, and spiritual. Teaching was often done under trees. He staffed the school, he contributed his Nobel Prize monies,[160] and his duties as steward-mentor at Santiniketan kept him busy: mornings he taught classes; afternoons and evenings he wrote the students' textbooks.[161] He fundraised widely for the school i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between 1919 and 1921.[162]

Theft of Nobel Prize

On 25 March 2004, Tagore's Nobel Prize was stolen from the safety vault of the Visva-Bharati University, along with several other of his belongings.[163] On 7 December 2004, the Swedish Academy decided to present two replicas of Tagore's Nobel Prize, one made of gold and the other made of bronze, to the Visva-Bharati University.[164] It inspired the fictional film Nobel Chor. In 2016, a baul singer named Pradip Bauri, accused of sheltering the thieves, was arrested.[165][166]

Impact and legacy

Bust of Rabindranath in Tagore promenade, Balatonfüred, Hungary
Rabindranath Tagore statue in Dublin, Ireland

Every year, many events pay tribute to Tagore: Kabipranam, his birth anniversary, is celebrated by groups scattered across the globe; the annual Tagore Festival held in Urbana, Illinois (US); Rabindra Path Parikrama walking pilgrimages from Kolkata to Santiniketan; and recitals of his poetry, which are held on important anniversaries.[84][167][168] Bengali culture is fraught with this legacy: from language and arts to history and politics. Amartya Sen deemed Tagore a "towering figure", a "deeply relevant and many-sided contemporary thinker".[168][146] Tagore's Bengali originals—the 1939 Rabīndra Rachanāvalī—is canonized as one of his nation's greatest cultural treasures, and he was roped into a reasonably humble role: "the greatest poet India has produced".[169]

Tagore was renowned throughout much of Europe, North America, and East Asia. He co-founded Dartington Hall School, a progressive coeducational institution;[170] in Japan, he influenced such figures as Nobel laureate Yasunari Kawabata.[171] In colonial Vietnam Tagore was a guide for the restless spirit of the radical writer and publicist Nguyen An Ninh[172] Tagore's works were widely translated into English, Dutch, German, Spanish, and other European languages by Czech Indologist Vincenc Lesný,[173] French Nobel laureate André Gide, Russian poet Anna Akhmatova,[174] former Turkish Prime Minister Bülent Ecevit,[175] and others. In the United States, Tagore's lecturing circuits, particularly those of 1916–1917, were widely attended and wildly acclaimed. Some controversies[e] involving Tagore, possibly fictive, trashed his popularity and sales in Japan and North America after the late 1920s, concluding with his "near total eclipse" outside Bengal.[9] Yet a latent reverence of Tagore was discovered by an astonished Salman Rushdie during a trip to Nicaragua.[181]

By way of translations, Tagore influenced Chileans Pablo Neruda and Gabriela Mistral; Mexican writer Octavio Paz; and Spaniards José Ortega y GassetZenobia Camprubí, and Juan Ramón Jiménez. In the period 1914–1922, the Jiménez-Camprubí pair produced twenty-two Spanish translations of Tagore's English corpus; they heavily revised The Crescent Moon and other key titles. In these years, Jiménez developed "naked poetry".[182] Ortega y Gasset wrote that "Tagore's wide appeal [owes to how] he speaks of longings for perfection that we all have [...] Tagore awakens a dormant sense of childish wonder, and he saturates the air with all kinds of enchanting promises for the reader, who [...] pays little attention to the deeper import of Oriental mysticism". Tagore's works circulated in free editions around 1920—alongside those of PlatoDanteCervantesGoethe, and Tolstoy.

Tagore was deemed over-rated by some. Graham Greene doubted that "anyone but Mr. Yeats can still take his poems very seriously." Several prominent Western admirers—including Pound and, to a lesser extent, even Yeats—criticized Tagore's work. Yeats, unimpressed with his English translations, railed against that "Damn Tagore [...] We got out three good books, Sturge Moore and I, and then, because he thought it more important to see and know English than to be a great poet, he brought out sentimental rubbish and wrecked his reputation. Tagore does not know English, no Indian knows English."[9][183] William Radice, who "English[ed]" his poems, asked: "What is their place in world literature?"[184] He saw him as "kind of counter-cultur[al]", bearing "a new kind of classicism" that would heal the "collapsed romantic confusion and chaos of the 20th century."[183][185] The translated Tagore was "almost nonsensical",[186] and subpar English offerings reduced his trans-national appeal:

Anyone who knows Tagore's poems in their original Bengali cannot feel satisfied with any of the translations (made with or without Yeats's help). Even the translations of his prose works suffer, to some extent, from distortion. E.M. Forster noted [of] The Home and the World [that] '[t]he theme is so beautiful,' but the charms have 'vanished in translation,' or perhaps 'in an experiment that has not quite come off.'

— Amartya Sen, "Tagore and His India".[9]

Museums

Jorasanko Thakur BariKolkata; the room in which Tagore died in 1941.

There are eight Tagore museums, three in India and five in Bangladesh:

Jorasanko Thakur Bari (BengaliHouse of the Thakurs; anglicised to Tagore) in Jorasanko, north of Kolkata, is the ancestral home of the Tagore family. It is currently located on the Rabindra Bharati University campus at 6/4 Dwarakanath Tagore Lane[187] Jorasanko, Kolkata 700007.[188] It is the house in which Tagore was born, and also the place where he spent most of his childhood and where he died on 7 August 1941.

List of works

Who are you, reader, reading my poems a hundred years hence?
I cannot send you one single flower from this wealth of the spring, one single streak of gold from yonder clouds.
Open your doors and look abroad.
From your blossoming garden gather fragrant memories of the vanished flowers of an hundred years before.
In the joy of your heart may you feel the living joy that sang one spring morning, sending its glad voice across an hundred years.

The Gardener, 1915[189]

The SNLTR hosts the 1415 BE edition of Tagore's complete Bengali works. Tagore Web also hosts an edition of Tagore's works, including annotated songs. Translations are found at Project Gutenberg and Wikisource. More sources are below.

Original

Original poetry in Bengali
Bengali titleTransliterated titleTranslated titleYear
ভানুসিংহ ঠাকুরের পদাবলীBhānusiṃha Ṭhākurer PaḍāvalīSongs of Bhānusiṃha Ṭhākur1884
মানসীManasiThe Ideal One1890
সোনার তরীSonar TariThe Golden Boat1894
গীতাঞ্জলিGitanjaliSong Offerings1910
গীতিমাল্যGitimalyaWreath of Songs1914
বলাকাBalakaThe Flight of Cranes1916
Original dramas in Bengali
Bengali titleTransliterated titleTranslated titleYear
বাল্মিকী প্রতিভাValmiki-PratibhaThe Genius of Valmiki1881
কালমৃগয়াKal-MrigayaThe Fatal Hunt1882
মায়ার খেলাMayar KhelaThe Play of Illusions1888
বিসর্জনVisarjanThe Sacrifice1890
চিত্রাঙ্গদাChitrangadaChitrangada1892
রাজাRajaThe King of the Dark Chamber1910
ডাকঘরDak GharThe Post Office1912
অচলায়তনAchalayatanThe Immovable1912
মুক্তধারাMuktadharaThe Waterfall1922
রক্তকরবীRaktakarabiRed Oleanders1926
চণ্ডালিকাChandalikaThe Untouchable Girl1933
Original fiction in Bengali
Bengali titleTransliterated titleTranslated titleYear
নষ্টনীড়NastanirhThe Broken Nest1901
গোরাGoraFair-Faced1910
ঘরে বাইরেGhare BaireThe Home and the World1916
যোগাযোগYogayogCrosscurrents1929
Original nonfiction in Bengali
Bengali titleTransliterated titleTranslated titleYear
জীবনস্মৃতিJivansmritiMy Reminiscences1912
ছেলেবেলাChhelebelaMy Boyhood Days1940
Works in English
TitleYear
Thought Relics1921[original 1]

Translated

English translations
YearWork
1914Chitra[text 1]
1922Creative Unity[text 2]
1913The Crescent Moon[text 3]
1917The Cycle of Spring[text 4]
1928Fireflies
1916Fruit-Gathering[text 5]
1916The Fugitive[text 6]
1913The Gardener[text 7]
1912Gitanjali: Song Offerings[text 8]
1920Glimpses of Bengal[text 9]
1921The Home and the World[text 10]
1916The Hungry Stones[text 11]
1991I Won't Let you Go: Selected Poems
1914The King of the Dark Chamber[text 12]
2012Letters from an Expatriate in Europe
2003The Lover of God
1918Mashi[text 13]
1928My Boyhood Days
1917My Reminiscences[text 14]
1917Nationalism
1914The Post Office[text 15]
1913Sadhana: The Realisation of Life[text 16]
1997Selected Letters
1994Selected Poems
1991Selected Short Stories
1915Songs of Kabir[text 17]
1916The Spirit of Japan[text 18]
1918Stories from Tagore[text 19]
1916Stray Birds[text 20]
1913Vocation[190]
1921The Wreck

In popular culture

See also

References

Gordon Square, London
Gandhi Memorial Museum, Madurai

Notes

  1. ^ Gurudev translates as "divine mentor", Bishokobi translates as "poet of the world" and Kobiguru translates as "great poet".[11] 
  2. ^ Tagore was born at No. 6 Dwarkanath Tagore Lane, Jorasanko – the address of the main mansion (the Jorasanko Thakurbari) inhabited by the Jorasanko branch of the Tagore clan, which had earlier suffered an acrimonious split. Jorasanko was located in the Bengali section of Calcutta, near Chitpur Road.[24][25] Dwarkanath Tagore was his paternal grandfather.[26] Debendranath had formulated the Brahmoist philosophies espoused by his friend Ram Mohan Roy, and became focal in Brahmo society after Roy's death.[27][28]
  3. ^ On the "idea of the humanity of our God, or the divinity of Man the Eternal".
  4. ^ Etymology of "Visva-Bharati": from the Sanskrit for "world" or "universe" and the name of a Rigvedic goddess ("Bharati") associated with Saraswati, the Hindu patron of learning.[159] "Visva-Bharati" also translates as "India in the World".
  5. ^ Tagore was no stranger to controversy: his dealings with Indian nationalists Subhas Chandra Bose[9] and Rash Behari Bose,[176] his yen for Soviet Communism,[177][178] and papers confiscated from Indian nationalists in New York allegedly implicating Tagore in a plot to overthrow the Raj via German funds.[179] These destroyed Tagore's image—and book sales—in the United States.[176] His relations with and ambivalent opinion of Mussolini revolted many;[94] close friend Romain Rolland despaired that "[h]e is abdicating his role as moral guide of the independent spirits of Europe and India".[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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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Primary

Antholog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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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ore, Rabindranath (1984), Some Songs and Poems from Rabindranath Tagore, East-West Publications, ISBN 978-0-85692-055-4
  • Tagore, Rabindranath (2011), Alam, F.; Chakravarty, R. (eds.), The Essential Tagore, Harvard University Press (published 15 April 2011), p. 323, ISBN 978-0-674-057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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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s

Trans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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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ore, Rabindranath (2004), Particles, Jottings, Sparks: The Collected Brief Poems, translated by Radice, W, Angel Books (published 28 December 2004), ISBN 978-0-946162-66-6
  • Tagore, Rabindranath (2003), Rabindranath Tagore: Lover of God, Lannan Literary Selections, translated by Stewart, T. K.; Twichell, C., Copper Canyon Press (published 1 November 2003), ISBN 978-1-55659-196-9

Secondary

Articles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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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yyub, A. S. (1980), Tagore's Quest, Papyrus
  • Chakraborty, S. K.; Bhattacharya, P. (2001), Leadership and Power: Ethical Explorations, Oxford University Press (published 16 August 2001), ISBN 978-0-19-565591-9
  • Dasgupta, T. (1993), Social Thought of Rabindranath Tagore: A Historical Analysis, Abhinav Publications (published 1 October 1993), ISBN 978-81-7017-302-1
  • Datta, P. K. (2002), Rabindranath Tagore's The Home and the World: A Critical Companion (1st ed.), Permanent Black (published 1 December 2002), ISBN 978-81-7824-0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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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

Tex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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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Thought Relics, Internet Sacred Text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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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샨티니케탄으로 건너 간 한국의 소리 - 오마이뉴스

인도 샨티니케탄으로 건너 간 한국의 소리 - 오마이뉴스

인도 샨티니케탄으로 건너 간 한국의 소리

정혜자(mirabohj)등록 2007.02.02 09:42수정 2007.02.0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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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바바라티 대학 교정에 붙어 있던 공연포스터 ⓒ 임광호재)아시아문화교류재단은 한국과 인도의 문화 교류를 위해 공동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 첫 번째 작업으로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세운 학교 샨티니케탄을 방문하여 우리의 음악을 선보이는 공연을 하기로 했다.

지난달 12일 한국시간 새벽 4시에 출발하여 하루를 꼬박 비행기에서 버티고, 현지시각 밤 10시 캘커타에 도착, 잠만 자고 아침에 기차를 타고 이곳, 샨티니케탄에 왔다.

공연장의 상태를 보는 순간 스태프들의 입은 떡 벌어졌지만 어쩔 것인가. 이미 포스터는 샨티니케탄 교정과 비스바바라티 대학 곳곳에 붙었고, 홍보 전단도 2000장이나 뿌려진 것을.

청소를 언제 했는지 모를 정도로 문짝과 창틀, 무대 위에는 먼지가 수북 했다. 천장 구조물 위에 늘어진 거미줄은 바로 전에 '전설따라 삼천리'를 찍은 세트장처럼 보였다.

그래, 우리는 확실히 인도에 왔구나. 관중석 상태도 마찬가지. 한켠에 놓인 간이의자 200여개와 얇은 천이 덮인 시멘트 바닥이 전부였다. 이 공연장의 이름은 나띠야 골(Natya ghal, 춤의 방).

@BRI@현지인과 스태프들이 달려 들어 청소를 하고 한국에서 공수해 온 빔 프로젝트도 여러 시도 끝에 간신히 설치. 음향, 조명도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별반 나아진 것 없는 1960년대식 어설픈 무대 위에서 풍물패 '얼쑤'는 리허설을 시작했다.



공연장의 열어 놓은 문 사이로 현지 인도인들의 호기심 어린 얼굴들이 나타나고 이름모를 새도 날아들었다. 이러다가 공연장으로 소가 들어올 수도 있겠군. 이미 공연장 바깥을 어슬렁거리던 소를 본지라 괜한 노파심도 들었다.

인도 현지 시각으로 13일 저녁 6시. 200미터쯤 떨어진 큰길에서 길놀이를 시작으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Ms. Sabuj Koli Sen(타고르 박물관장)의 "타고르 선생님 당시 한국과 인도는 자주권을 상실해 똑같은 정치적 상황에 놓여있었다. 이번 교류를 통해 타고르 선생님이 예언하신대로 한국, 동방의 등불이 환하게 켜지기를 바란다"고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공연팀 유상호(47·재즈 연주자)의 아리랑 연주가 나띠야 골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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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장구 공연중인 얼쑤 공연단 ⓒ 임광호그 마지막 가락을 타고 들릴 듯 말 듯 시작된 장구 가락이 서서히 힘과 속도가 더해가며 관객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절반이 넘게 비어 있던 의자가 점점 채워졌다. 달고, 내고, 맺고, 푸는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며, 우리의 피속에 흐르는 '신명'이 그들에게 전달된 듯 박수소리가 커지고 휘파람 소리까지 들렸다.

머나먼 이국에서 듣는 사물놀이는 우리네 재즈였고, 우리네 오케스트라였으나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어느새 의자는 꽉 차고 심지어 얇은 천이 깔린 맨 바닥에 나란히 앉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인도를 관광 온 듯 보이는 금발의 외국인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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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을 감상중인 샨티니케탄 학생들 ⓒ 임광호마지막 순서인 판굿. 이 순서에는 12발(약 12m) 상모놀음이 하이라이트다. 머리에 상모를 쓰고 나타난 놀이꾼의 손에서 스르륵 열두발의 끈이 공중에 풀어지자 관중석에서 "와우~!!" 환호성이 터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주변이 칠흙같이 어두워졌다.

전기가 나가버린 것이다. 분명 예정에 없었던 사고인데 마치 예정된 퍼포먼스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미 관중석은 우리의 '신명'에 빠져있었다. 관중석 여기저기서 핸드폰 불빛과 랜턴 불빛이 보였고 격려의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인도의 맨 얼굴, 그 입이 열리고 사귀고 싶다는 속삭임을 듣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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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샨티니케탄 현지 여학생들, 마두리, 얼쑤의 협연 ⓒ 임광호10분여의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조명이 밝혀졌다. 다음 차례는 샨티니케탄 현지 예술팀 '마두리'의 노래와 연주. 타고르의 시에 곡을 붙인 남녀혼성중창이었는데 성가 느낌이 들었다. 샨티니케탄 여학생들의 인도 전통춤이 다음으로 이어졌다.

이국적이지만 화려한 인도 의상과 유연한 몸놀림에 사절단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춤을 추는 무용수들은 샨티니케탄에 유학 중인 한국인 허다솜(16)양과 그녀의 같은 반 친구들이었다. 나중에 다시 만난 다솜양은 "이번 사절단의 공연으로 인해 학교 내에서 한국의 이미지와 위상이 높아져서 본인의 자부심도 굉장해졌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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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끝나고 기립 박수를 보내던 현지 주민들 ⓒ 임광호한국 공연단 '얼쑤'와 '마두리'의 협연이 대미를 장식했다. 정전으로 인해 보지 못했던 12발 상모를 보여주자 관중들은 무대 앞으로 몰려들어 박수를 쳤고, 공연이 끝났음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광주아시아문화교류재단 이사장 현장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광주는 민주의 성지로서 평화의 마을 샨티니케탄과 많이 닮아있다. 이번 공연이 광주의 민주 정신과 샨티니케탄의 평화정신이 조화롭게 만나 활발한 교류 활동을 펼치는데 촉매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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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사절단과 현지 공연팀의 기념사진 ⓒ 임광호이번 교류 프로젝트의 기획자 박양희(42·샨티니케탄 출신, 한국 거주)씨는 "우리네 북소리가 쿵쿵 울릴 때마다 그 울림이 바로 인도인의 가슴에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각인되기를 희망 한다"고 전했다.

사시사철 커다란 나무그늘 아래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수업을 하는 학교, 교정에 온갖 나무들과 동물들이 함께 자유롭게 어우러진 학교,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함께 하는 마을, 샨티니케탄. 그 평화의 마을에 울려퍼진 우리 소리를 통해 두 나라의 교류가 가능함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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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인문학 여행 이야기 8 – 산티니케탄(Santiniketan): 영원한 시성 타고르- 비스바 바라티 대학(Visva- Bharati University ), 타고르 문학(Tagore literature)

인도 인문학 여행 이야기 8 – 산티니케탄(Santiniketan): 영원한 시성 타고르- 비스바 바라티 대학(Visva- Bharati University ), 타고르 문학(Tagore literature)

인도 인문학 여행 이야기 8 – 산티니케탄(Santiniketan): 영원한 시성 타고르- 비스바 바
라티 대학(Visva- Bharati University ), 타고르 문학(Tagore literature)

“내 마음속의 학교는 하나의 행복한 가정인 동시에 신성한 사원이어야 한다. 가르침은 경
건한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경건한 삶의 기억을 신에게 바치기 위해서 번거로운
곳이 아닌 산티니케탄을 교육 장소로 선택했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산티니케탄Santiniketan 자연학교 비스바 바라티 대학VisvaBharati

이번 여행은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였으며 화가였고, 교육자이기도 했던 타고르, 그리고 1913년 동양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타고르의 정신이 새겨져 있는 산티니케탄이다. 콜카타에서 154km 떨어진 북서쪽에 있는 작은 시골 마
을이다. 이곳은 19세기 중엽까지는 세속을 떠나 수행의 터로서 산티니케탄아스라마라 불렸다고 한다. 벵골어로 ‘평화의 땅’이라는 뜻인 산티니게탄은 인도를 대표하는 자연 교육 마을이다. 샨티니케탄(Santiniketan)에는 비스바 바라티 (Visva-Bharati)라는 학교가 있다.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는 산티니케탄에서 1901년에 인도 전통학교 ‘아쉬람(Ashram)’ 형태로 5명의 학생과 함께 작은 숲 속 학교로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비스바 바라티의 시작으로 보면 된다. 당시에는 시험도 없었고, 학비도 없었다. 그 뒤 거듭 발전을 걸쳐 1921년에 비스바 바라티대학이 설립되었다. 이제는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과정을 가진 국립대로서 인도 교육의 요람으로 성장했고 이곳에 타고르가 남긴 유품과 관련 자료를 가장 많이 보관한 곳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인도가 국부로 여기는 타고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
는 인도가 낳은 사상가이자 철학자이다. 또한,
미술, 음악 등에 조예가 깊은 예술가이기도 했
다. 그는 1861년 5월 7일 콜카타의 명문 브라
만 가정
에서 막내로 태어났고 이미 여덟 살 때 처음 시를 섰고 열다섯 살 때부터 시작(詩
作)을 시작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성의 자아(自我)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우
고 개발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면서 자격증만을 얻
으려는 비교육적 대학 제도에 큰 실망을 하고 끝내 변호사 공부를 포기한다. 그리
고 문학 작품을 탐독하기에 이른다. 특히, 어릴 때부터 ‘기탄잘리(Gitanjali)’와 벵
골어로 서정시들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1890년에는 첫 시집 '마나시(Manasi)
도 출판하기도 했고 희곡 작품도 발표할 정도로 문학에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타고르의 시작(詩作)은 그 당시 인도인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그 이유는 상층
지배계급 표준어인 고전적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지방 속어로 간주하여 경시를
받았던 벵골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노벨문학상 수상의 소감에서 ‘모국어인 벵골어를 잘 유지하는 데 공헌한 점’이라고 할 정도로 타고르는 벵골어를 사랑한 듯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렇다면 과연 타고르(Tagore)가 그리는 학교는 어떤 학교였을까? 아마 자연과 함께하는 숲속 학교일 것이다. 수업은 항상 자연과 함께 이루어져 아이들이 자연의 섭리를 배우도록 인도하는 학교 말이다. 이런 교육 방법은 획일적인 학습을 탈피하여 스스로가 해답을 찾아가도록 이끄는 방법으로 그들 자신 고유의 본성과 재능을 스스로 발현되도록 돕는 데 있다. 실제로 필자가 방문할 당시에도 숲 속 나무 아래에서 편안하게 아이들과 선생이 수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화롭게 커다란 망고나무 그늘에서 말이다. 마치 한국에서 가끔 하는 야외 수업을 보는 듯했다. 게다가 특이한 것은 학교를 오고 가는 이동 수단도 거의 자전거를 주로 이용한다. 이 모든 것이 학교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되는 듯 보인다. 캠퍼스 안과 주위에는 여전히 진흙 벽과 초가지붕이 존재하여 한국의 옛날 시골 풍경을 보는 것 같다. 필자가 언
뜻 보기에도 학교 전체 분위기가 자연 친화적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학교가 학문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벵골에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깊은 경의를 표할 정도로 비스바 바라티(VisvaBharati)는 학문적이고 특출하다. 이것은 아마 타고르의 독특한 교육철학 때문일 것이다.
타고르(Tagore)는 아마 유년 시절 일방적인 교육에 불
만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인도에 도입한 서구식 교육
방식에 염증을 느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존의
학교들과는 다른 교육이념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려는
사명감을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샨티니케탄
(Santiniketan)에 작은 학교를 만들었다. 비스바 바라
티 말이다. 교실 벽에 갇힌 교육에 문제를 잘 알고 있어
서인지 숲 속 교육을 지향하고 실천한 것이다. 간디도
타고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데미안』을 쓴
헤르만 헤세도 기존의 교육 패러다임과 교육 방법론을 비판하면서 폭넓은 책 읽기와 열정적 글쓰기를 통해 자아실현의
여행길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실천했다. 이성과 감성의 상호보완을 끌어냄으로 말이다. 타고르 말을 들어보
면 그의 교육철학을 알 수 있다. “무엇을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배운 것만 기억한다.” 교육에 대한 타고르의 생각은
모든 사람은 천재이고 모든 학생이 한꺼번에 성장할 수는 없다는 논리이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사람마다 자신만
의 강점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Viva-Bharati에서 새로운 학습시스템을 고안했는지도 모른다. 이 학습
시스템의 특징은 학생과 교사가 모두 만족할 때까지 프로그램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비스바 바라티
(Visva-Bharati) 학교 근처에는 학교 선생들이 거주하는 구루뽈리라는 곳이 있어서 학생들이 필요할 때 시간과 관계없
이 언제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 가족처럼 말이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비스바 바라티(Visva-Bharati)에서는
선생님을 다다(오빠), 디디(언니)라고 부른다. 음식점 주인, 인력거도 모두 ‘다다’ 거나 ‘디디’라는 사실이다. 직업에 상
관없이 호칭이 같다. 아마 비스바 바라티에서 교육은 일방적 가르침이 아니라 삶의 지혜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모든
것은 타고르의 뜻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타고르의 가르침이 비스바 바라티 곳곳에 배어있는 듯
하다. 왜 우리는 교육이 남과 경쟁하는 것만이라고 생각하는가?
과연 경쟁 없는 교육이 가능할지 묻는다면, 샨티니케탄의 비스
바 바라티가 바로 그런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잘하는 것보다는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하도록 가르치는 학교, 경쟁보단 협력을,
지식보다는 지혜를 전달하는 곳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런 인
도인의 교육은 유대인의 교육과 유사하다. 유대인 탈무드 교육
말이다. 탈무드 교육의 핵심은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도인들도 자신의
지식을 쌓고 축적된 지식을 가지고 토론을 통해 이를 종합하여 지혜를 터득한다. 그리고 그 지혜를 지속해서 발전시켜
잠재력을 개발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타고르는 이런 말을 했다. ‘어리석은 자는 서두르고 영리한 자는
기다리고 현명한 자는 정원으로 간다’라는 말처럼 비스바 바라티가 세계화 속에서 변함없이 그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현재 비스바 바라티라는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는 파타바반, 미술대학인 깔라바반, 중국어 대학인 치나바

반 등 마을 곳곳에 총 51개의 단과대학 및 교육기관이 분포해 있다. 하바드대학교 교수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
미르티아 센(Amartya Kumar Sen)이 유년 시절 수학했던 학교이기도 하다.
타고르 시집 기탄잘리
여기서 우리는 타고르의 시 세계를 탐험해 보자. 타고르에게 언어가
무기였다. 즉 벵골어 말이다. 그는 자기 민족적 언어인 벵골어의 위
상을 시를 통해 세계적으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지금은 인도의 가
장 위대한 문학 전통이 되었다. 1910년에 처음 출판된 타고르의 유
명한 시집『기탄잘리』도 벵골어 되어있다. 『기탄잘리』는 157편의
서정시를 묶어 여기에 57편을 추리고 여기에 다른 시를 첨가하여
모두 103편을 영어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1912년에 영국에서 다
시 출판했다. 무명의 인도 시인이었던 타고르에게 동양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시집도 바로『기탄잘리』이다.『기탄잘리』는 인간과
신의 관계를 사랑하는 연인의 관계로 승화한 103편의 산문시를 담
고 있다. 주로 신, 고독, 사랑, 삶, 여행을 노래한다. 벵골 지방에는 '바울'이라는 떠돌이 음유시인들이 이었는데 타고르
는 이들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거리에서 신과 진리를 말하고 시를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여기서 기탄잘리
의 ‘기트(GIT)’라는 뜻은 노래이고, ‘안잘리(ANJALI)’는 두 손 모아 바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기탄잘리는 ‘님에게 바치
는 노래’라는 의미로 여기에서 ‘님’은 신이고 연인이며 자아이다.
구미전자공고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존재 인도 기후위기 김삼식 텃밭
구미 타자 힌두교 체육대회 정치
단호박 권력 국립2회 상추 사유화
뜨르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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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댓글
댓글 감사합니다 따뜻한 봄날 맞이하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춘분 추분이 빨간날이…
일본은 춘분 추분이 빨간날이라 오늘 휴…
댓글 감사합니다 봄입니다 따뜻한 봄날 …
<기탄자리> 제35 번째 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이다 이 시는 타고르가 영국에 항거하는 인도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쓴 시로서 우리나라 일제 식민지 시대를 연상케 한다 감상해 보자
마음에 두려움 없이
머리를 높이 치켜들 수 있는 곳
지식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곳
작은 칸으로 세계가 나누어지지 않는 곳
말씀이 진리의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곳
피곤을 모르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 뻗는 곳
이상의 맑은 흐름이
무의미한 관습의 메마른 사막에 꺼져 들지 않는 곳
님의 인도로 마음과 생각과 행위가 더욱 발전하는 곳
그런 자유의 천국으로
나의 조국이 깨어나게 하소서, 나의 임이시여.
타고르의 동양적 감수성과 영적인 세계관은 당시 서구 사회에 큰 충격을 줄 만큼 대단했다고 한다. 흔히 타고르의 예술
세계는 우파니샤드의 철학에 뿌리내리고 있다. 우파니샤드는 대략적인 내용은 다른 지면에서 다룰 예정이다. 영국 식
민지 당시 그는 우파니샤드에서 주장하는 개인의 해방을 민족의 해방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이다. 그에게 있어 민족의
해방은 곧 개인의 해방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었을 것이다. 또한, 타고르는 간디와 함께 인도 국부로 존경받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는 인도, 방글라데시의 국가 작사도 했고, 예이츠, 에즈라 파운드, 로맹 롤랑 등 서양 문인들뿐
아니라 과학자 아인슈타인과도 교류하였다. 그리고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에게도 동양철학을 가르칠 정도로 다방면에
지식이 해박했다. 문학도 그랬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예이츠는 1912년에 타고르의 시 원고
를 읽어보고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기탄잘리’를 두고 인간 존재의 본연을 다룬 책으로 “누구나 읽지 않을 수 없는 마력
을 지녔다”라고 격찬했다. 다음은 예이츠 말이다. “나는 여러 날 동안 이 번역된 원고 뭉치를 가지고 다니면서 기차 안에
서도, 버스에서도, 혹은 식당에서도 읽었으며, 또 낯선 사람이 내가 얼마나 감동하는지 알아볼까 두려워 가끔 그 원고를
덮어두어야 했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시집이 출간되자마자 영국을 통해 온 유럽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예
이츠의 추천 덕분에 마침내 타고르는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 패자의 노래The Song of the Defeated
이쯤하고 우리는 잠시 고개를 돌려 우리나라와 연관된 타고르 시에 대해서 알아보자. 아주 흥미로울 것 같다. 타고르는
최남선의 요청으로 한국에 대한 두 편을 시를 썼다고 알려졌다. <동방의 등불>과 <패자의 노래>이다. 하지만 <패자의
노래>가 최남선이 요청한 시로 알려졌지만, 그 이전에 이미 시집에 있던 시로 밝혀졌고 <동방의 등불> 역시 출처가 예
매한다는 학계의 주장이다. 타고르는 1929년 4월에 일본 도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문학 강연을 했다. 이때
동아일보사의 도쿄지국의 기자가 타고르를 만났다고 한다. 그 기자는 타고르에게 한국을 방문해 줄 수 없느냐, 고 질문했고 타고르는 방문 요청은 고맙지만, 일정상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동방의 등불>을 써 주었다고 한다. 그
는 캐나다를 가는 도중에 일본에 들렀다.
《패자의 노래》도 1916년 타고르의 첫 번째 일본 방
문 시『청춘』을 발간하던 최남선의 부탁을 받아 『청
춘』의 기자가 타고르를 만났던 일본 유학생 진학문의
요청으로 타고르가 당시 우리나라 ‘조선’에 보냈던 시
이다. 때마침 도쿄에 머물고 있던 최남선은 제국대학
강연회에서 타고르를 만났고 한 달 뒤에는 유학생 진학문이 요코하마에서 타고르와 두 차례 면담했다고 한다. 얼마 후
타고르는 약속대로 자신의 사진과 친필 사인, 그리고 시를 보내왔다. 이듬해 소개된 시가 ‘패자의 노래’이다. 이 시는
1917년 『청춘』의 11월호에《쫓긴 이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영문 텍스트와 함께 번역, 소개되었다. 패자의 노래’ 원제
는 ‘The Song of the Defeated’다. ‘박진영 성균관대 교수에 의하면 이 시는 타고르가 새로 지은 것이 아닐뿐더러 식민
지 망국민을 노래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조선’을 위해 별도로 쓴 시가 아니라 1916년 1월 1일에 발간된 『열
매 모으기』(Fruit Gathering)에 85번째로 수록된 시라는 것이다. 아마 타고르는 일제 점령기에 패자가 누구를 가리키
는지 분명히 알았고 그래서 고심해서 그 시를 골랐음이 틀림없다.
패자敗者의 노래 타고르18611941
퇴각의 길목을 지키면서 패자의 노래를 부르라고
선생은 나에게 요구하나니
패자란 남몰래 선생이 사랑하는 약혼녀이기 때문이어라.
어두운 빛 너울을 그녀가 쓰고서 사람에게 얼굴을 가리나!
가슴 안에는 어두운 빛에 빛나는 보석을 간직하였도다.
그녀는 밝은 빛에 버림 당했거니와 밤에는 반짝이는 눈물을 흘리며
이슬에 젖은 꽃 손에 들고 바라고 있네.
신에게 광명을 가져다주기를 말없이 눈을 내리감은 채로
바람과 함께 불평의 소리 나도는 그의 집을 그녀는 뒤로하였네.
그러나, 별들은 고욕을 나타내는 사랑스러운 얼굴을 지닌
그녀의 영원한 사랑의 노래에 억양을 준다….
고독의 방문이 열렸구나, 부름이 왔네,
그래서 가슴을 두근거리네, 어두운 가운데서, 뜻있는 시각의 불안 가운데서.
타고르 입장에서 인도와 마찬가지로 조선도 ‘the Defeated’(패자)의 나라였다. 이 시에서 ‘패자’는 신이 비밀히 찾는 신
부이며 낮에는 버림 당했지만, 밤은 이슬 젖은 꽃들과 함께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역설적
으로 이 시는 패배나 모욕을 강조하기보다는 식민지 무력 정복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타고르만큼 아
시아에서 알려진 시인은 거의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는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문어체인 고대 산스크리트어에서 벗
어나 구어체 문장을 주로 사용하여 시문학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 결과 훨씬 감동적으로 다가온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서정적인 시풍 역시도 모든 사람에게 큰 감동을 안겨 주었다. 또한 민중들의 삶을 반영한 단편소설들도 최고의 걸작들
이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가 친숙하다. 타고르가 건너 준 쪽지에는 어떤 제목도 없었다고 한다.
처음에 주요한 역시도 《조선에 부탁》이라는 제목을 그냥 붙었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주요한이 선택한《동방
의 등불》,《동방의 등촉》, 《동방의 불빛》 등이 이 시의 제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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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제《동방의 등불》을 음미해 보자
동방의 등불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 bearers
And the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of the East
타고르가 조선을 위해 써준 이 짧은 시에는 평소 그가 동방(the East)에 대해 가지고 있던 견해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민족주의』(Nationalism, 1917)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동방에서 영원한 빛이 다시 빛날 것이다. 동방은
인류 역사의 아침 태양이 태어난 곳이다. 아시아의 가장 동쪽 지평선에 이미 동이 트고 태양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는 나의 선조 현인들처럼 다시 한번 온 세계를 밝힐 동방의 일출에 경의를 표한다.”라고
하면서 동방에 대해 예언자적인 기대를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아래는 타고르의『기탄잘리』 일부분이다. 타고르의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1
당신은 나를 영원하게 하셨으니, 그것이 당신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
한 배를 당신은 끊김 없이 비우시고 신선한 생명으로 영원히 채우고
있습니다.
이 가냘픈 갈대의 피리를 당신은 언덕과 골짜기 너머로 지니고 다니
셨으며, 이 피리로 영원히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당신의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손길에 나의 작은 가슴은 즐거움에 젖어 들어
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리를 외칩니다.
그칠 줄 모르는 당신의 선물을, 나는 이처럼 작은 두 손으로 받아 들
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은 지나가도 당신은 여전히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채울 수 있는 자리는 나에게 남아 있습니다.
2.
당신이 나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명령하실 때, 나의 가슴은 자랑스러움으로 인하여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나의 생명 속에 들여있는 거칠고 어긋난 모든
것들이 한 줄기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녹아들고 있습니다.
나의 찬미는 바다를 날아가는 새처럼 즐겁게 날개를 펼칩니다.
나는 당신이 나의 노래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오직 노래를 부르는 사람으로 내가 당신 앞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활짝 펼친 내 노래의 날개 끝으로 나는 감히 닿을 수 없는 당신의 발을 어루만집니다.
노래를 부르는 즐거움에 젖어서, 나는 자아를 잃어버리고 나의 주인 당신을 친구라고 부릅니다.
3
당신이 어떻게 노래를 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고요한 기쁨 속에서 나는 언제나 당신의 음악에 귀
를 기울입니다.
당신이 부르시는 노래의 빛이 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당신의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거룩한 생
명의 숨결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성스러운 음악의 물결이 온갖 장애물을 넘어 달려갑니다.
나의 마음은 당신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헛되이 가슴만 태우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지금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나의 말이 노래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끊임없이 물결치는 음악의 함정에
나를 빠지도록 만들었습니다.
4.
내 생명의 근원이여, 나는 언제나 몸을 깨끗하게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길이 나의 몸을 어루만지고 있
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나 내 생각에서 모든 거짓을 씻어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깃들여 있는 이
성의 등불에 불을 밝힌 진리가 당신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가슴에서 모든 죄악을 물리치고 사랑이 피어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 가슴 장 깊은 곳, 그
곳에 당신이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나의 행동으로 나타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행동하는 힘을 주는 것으로 당신의
권능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타고르의 정신적 터전인 산티니
케탄(Santiniketan)을 둘러보고 흔적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의 교육철학
과 우리나라와 관련된 시도 음미해 보았다. 여전히 놀라움은 타고르의 종
교가 힌두교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나 문학에서 어느 한 특정 종교의 냄
새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의 작품에도 아주 보편적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인에게 거부감이 없는 것 같
다. 또한, 인도에서 타고르라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훨씬
더 존재감이 있다. 시뿐만 아니라 소설, 희곡, 음악, 회화, 사상, 철학 등
모든 방면에서 인도인에서 영향을 끼쳤고 공헌도 했다. 그리고 동양인으
로 최초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명성답게 서울 대학로에도 타고르 흉상이 동방의 등불 시비와
함께 서 있다. 그리고 해마다 남이섬에서는 타고르 탄생 기념행사도 개최한다. 타고르 그림 작품이 전시되고 신과의 교
감, 자연의 생명력에 심취했던 타고르의 이미지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게다가 타고르가 작곡한 댄스 드라마도 선보이
고 인도 전통춤 까닥(Kathak) 댄스 공연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라고 한다. 좋은 축제인 듯하다.
주인도 한국문화원 한국실에서도 타고르 시집 ‘기탄잘리’의 한국어 번역본, ‘동방의 등불’이 실린 한국 교과서와 신문 사
본, 타고르 관련 한국 도서 등이 전시되고,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과 결혼한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 관련 설화, 고대
인도를 답사하고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신라 승려 혜초 등 양국의 문화교류 역사 등도 소개하기도 한다. 타고르
가 산티니케탄을 교육 장소 택한 이유인 “내 마음속의 학교는 하나의 행복한 가정인 동시에 신성한 사원이어야 한다. 가
르침은 경건한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라는 글과 함께 산티니케탄(Santiniketan) 타고르의 흔적을 뒤로하고 이제 다
음 여행 목적지인 인도 인문학 여행 아홉 번째로 남인도 마드라스(첸나이)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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