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하는 <자기부정>론
제가 야학을 시작했던 대학 1학년 79년 겨울. 가장 인상깊게 남은 선배의 말중에서는 <지식인들이 끊임없는 자기부정이 없으면 사회에 큰 해악이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아마도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함께 읽으면서 했던 말로 기억됩니다만, 이후 나에게 <자기 부정>은 지금까지 내 사고의 밑바닥에 큰 중심이 되어 항상 자신을 돌아보게하는 말이었습니다.
자기부정이란 타인(민중)을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과 쾌락을 내려놓고 흔쾌히 개인적 시련을 감내하는 일입니다. 아무튼 이후 나는 당시 야학 학생이었던 분과 결혼할수 있을까 하는 자기점검의 고민으로 보낸 소박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68년 일본대학과, 동경대 의대생들이 시작한 전공투운동의 대명사가 <자기 부정>론이 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가난한 지역주민들의 고통을 함께 하는 투쟁(오오지, 산리스카 투쟁)하면서 그들은 학교로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연구와 학문을 다시 매진하며 개인의 입신양명 계층상승을 위해 멀쩡히 공부하는 것, 그리하여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적대적 계급이 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견딜수 없는 자기 기만이라고 생각하며, 학생운동의 고민의 일단으로서 중요 의제가 된 것이 "자기 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졸업이후 가난한 사람, 가난한 국가를 착취하는 대학의 제국주의화를 반대하고 대학을 민중에게 돌리며 제국주의화를 해체하는 <반대학운동>을 기치로 했던 것이 바로 <자기부정>론이었습니다. 실제 위의 책은 사르트르가 65년 일본을 방문하여 3차례의 강연을 정리한 내용이라 일본 학생운동에 큰 영향을 준것이라고 유추해볼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의 경우도 과거 7-80년대 학생운동으로 수배와 투옥 이후 감옥에서 나와 제적된 이후 이른바 <존재이전>이라 하여 대거 노동현장으로 들어간 큰 흐름이 있었습니다. 졸업장이 없어야 흔들림없이 기득권을 벋어날수 있고 스스로의 존재를 하방하여, 그들을 위하는 (For)삶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With>하는 삶을 산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금강경공부를 하며 깨달은 것은 이 자기부정의 궁극은 부정했다는 의식까지 부정하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부정이 욕망과 결합하여 보상의식을 키워 타인과 자신을 고통에 빠뜨리기 때문이지요. 과거 그렇게 현장으로 하방한 경력이 또다른 기득권이 되어 개인적 계층상승욕망에 이용되는 경우가 종종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