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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바드 기타 | 바가바드 기타 -제10장 거룩하신 능력
작성자 바보새 16-01-28 09:32 조회1,2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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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거룩하신 능력
거룩하신 주 말씀하시기를
1. 억센 팔을 가진 자야, 다시금 나의 지극히 높은 교훈을 들으라. 네게 유익이 되기 위하여 사랑하는 너에게 내 그것을 말하리라.
2. 천신의 무리도 대성자들도 내가 어디서 났음을 알지 못하나니, 나는 모든 점에서 천신, 대성자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3. 나를 남도 없고 시작도 없으며 누리의 대창조주로 아는 사람, 그 사람은 반드시 모든 죽을 인생 속에서 미혹에 빠지지 않고, 일체의 죄악으로부터 해탈됨을 얻을 것이니라.
대창조주 마헤슈바라(Maheshvara)
죽을 인생 응사자(應死者).
지극히 높으신 브라만(Parabrahman), 혹은 거룩하신 주는 천신들이 있기 전부터 있었고, 천신들은 그후에 와서야 생겼다는 사상은 이미「리그 베다」의 나사디야 수크타(Nasadiya Sukta) 속에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말하자면 서론이고, 크리슈나는 이제 자기가 어떻게 모든 세계의 창조주 이슈바라임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틸라크
우리가 모든 것을 홀로 하나인 초월적 실재에서 갈라져나온 것으로 볼 줄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모든 더듬고 헤맴을 면하게 된다.―라다크리슈난
4. 이성, 지식, 혹하지 않음, 참음, 참, 자제, 안정, 즐거움, 괴롬, 있음, 안 있음, 두려움, 안 두려움,
이성 부디 (buddhi)
지식 즈나나(jnana).
혹하지 않음 아삼모하이(asam-mohah),의심 없음.
참음 크샤마(kshama), 관대함(forgiveness)
참 사챠(satya), 진실.
자제 다마(damah) , 감정 조절(control of the senses).
안정 샤마(shamah), 기분 조절(control of the mind).
있음 바바(bhavah), 태어남(birth).
안 있음 아바바(abhavah), 죽음(death).
5. 불살생, 평등심, 만족, 고행, 자비, 명예, 불명예는 다 나에게서만 나가는 산 것들의 가지가지 특성이니라.
불살생 아힘사(ahimsa),비폭력.
평등 사마타(samata).
고행 타파(tapah).
자비 다나(dana).
특성 바바(bhavah),성질, 천성(nature),
바바(bhavah)란 말은 상태(condition), 상황(state), 또는 성격(temperament)을 뜻한다. 삼캬 철학에서는 이성(reason)의 바바들과 몸(body)의 바바들을 구별해서 말한다. 삼캬에 의하면 정신(spirit)은 활동하지 않는 것이고 이성은 프라크리티에서 변하여 나오는 것이므로 그들은 말하기를 속몸(subtle body) 속에 있는 이성의 가지가지 상태 혹은 바바들은 그 속몸들 이 탸가지고 나게 되는 새니 짐승이니 하는 가지가지의 출생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한다. 위의 두절에서 말하는 바바들은 아무래도 그런 의미에서 쓴 말일 것이다. 그러나「베단타」에서 말하는 대로, 있는 것은 파라마트만(paramatman)의 형체로 존재하는 오직 하나의 영구불변의 원리뿐이다,
그 파라마트만은 물질과 정신을 다 초월한 것이므로. 그리고 이 볼 수 있는 전우주는 나사디야 수크타에 있듯이 파라아트만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창조욕의 결과로 나온 것이므로 베단티스트들이 말하듯이 마야 속에 나타나는 이 세계의 모든 창조물은 다 지극히 높으신 브라만의 정신적 바바들이다. ―틸라크
6. 옛날의 일곱 대성인들과 또한 네 마누들도 나의 바탈로 됐으며 나의 마음에서 나간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창조물은 다 그들에게서 나온 것이니라.
대성인들 마하르샤야(maharshayah).
마누(Manu) 인류의 조상이라는 사람, 마노왕(摩奴王).
세계 로카(loka).
이 절에 씌어있는 말들은 쉬운 것이나 이 속에 나오는 전설적 인물에 대해서는 주석가들 사이에 의견의 차이가 많다. 특히 그 ‘옛날’ 이라는 단어 또 ‘네’ 라는 단어를 어디다가 붙여서 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다. 일곱 대성인 즉 일곱 사람의 위대한 리쉬(Rishi)는 누구나 잘 아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브라마데바의 칼파(kalpa)는 14만반타라(manvantara)로 되어 있는데, 그 각 만반타라의 마누 신과 일곱 성인들은 각각 다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주석가들은 그 ‘옛날’이라는 말을 일곱 성인에 대한 형용사로 보고 이 절을 해석하기를 이 일곱 성인은 현재 우리가 사는 바이바수바타 만반타라(vaivasvata manvantara) 전에 있었던 차크슈샤(Cakshusha) 만반타라의 일곱 성인이라고 한다. 그 일곱 성인이란 곧 브리구(Bhrigu), 나바(Nabha), 비바수반(Vivasvan), 수다마(Sudhama), 비라쟈(Viraja), 아티나마(Atinama), 사히슈누(Sahishnu)인데, 내 생각으로는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문맥으로 보아서「기타」를 말해준 것이 우리가 사는 현재의 바이바수바타 만반타라 전의 만반타라 일곱 성인에게 한 것이라고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일곱 성인은 현재의 만반타라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이름들은「마하바라타」에 있는 산티파르바(Santiparva) 속의 나라야니요파캬나(Narayaniyopakhyana)에 이렇게 씌어 있다. 마리치(Marici), 안기라사(Angirasa) 아트리(Atri), 풀라수챠(Pulastya), 풀라하(Pulaha), 크라투(Kratu), 바시슈타(Vasishtha)다. 내 생각으로는 이것이 이 절에서 말하는 일곱 리쉬들일 것이다. 왜냐하면,「기타」가 지지하고 있는 것은 나라야니야, 즉, 바가바타 신앙과 그 의식들이기 때문이다. 그담은 ‘옛날의 네’ 라는 말을 ‘마누’ 에 붙여보려는 해석은 어느 정도로 옳으냐 하는 것을 보기로 한다. 만반타라는 전부 해서 열 넷인데, 거기 열 네 마누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두 조로 갈려서 각각 일곱씩으로 되어 있다. 그 첫 일곱을 슈바얌부바(Svayambhuva), 슈바라치사(Svaracisa), 아우타미(Auttami), 타마사(Tamasa), 라이바타(Raivata), 차크슈샤(Cakshusha), 바이 바수바타(Baivasvata)라 하는데, 그중 여섯은 이미 지나갔고, 지금 일곱째 바이바수바타 마누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그것이 끝나면, 그 다음 오는 마누들은 사바르니 마누들이라 하는데 그 이름은 이렇다. 사바르니(Savarni), 다크샤사바르니 (Daksha-Savarni), 브라마사바르니(Brahma-Savarni) 다르마사바르니(Dharma-Savarni), 루드라사바르니(Rudra-Savarni),데바사바르니(Deva-Savarni), 인드라사바르니(Indra-Savarni)다. 각 조마다 일곱 마누가 있다면「기타」가 각 조에서 처음 넷만을 든 이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브라만다 푸라나」의 기록에 따라 사바르니 마누 중 첫 마누 다음의 네 마누는 동시에 지어졌기 때문에 「기타」가 말하는 넷이라는 것은 이것을 가리킨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거기 대하여는 또 이런 반대가 있다. 즉, 사바르니 마누들은 미래에 올 마누들인데 이 절에서는 모든 창조물들이 지어졌다고 과거사를 썼으니 그것을 거기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의 네’ 라는 말은 어느 다른 네 리쉬들이나 혹 다른 인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그러면 그 넷이 누구냐 하는 문제가 일어난다.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사나카(Sanaka), 사난다(Sananda), 사나타나(Sanatana), 사나트쿠마라(Sanatkumara)의 네 리쉬를 들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은 출가승으로 태어나서 후손을 두기를 거절했으므로 브라마데바의 분노를 샀으니, “모든 창조물이 그들에게서 나갔다는 말을 적용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 그 ‘옛날의 넷’은 누구냐? 내 의견으로는 그것은 바가바타 신앙의 전통에 의해서 풀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바수데바(Vasudeva)와 삼캬르사나(Samkarsana)와 프라줌나(Pradyumna)와 아니룻다(Aniruddha)다. 이것을 합하여서 차투르뷰하(Caturvyuha)라고 한다……
이 넷은 언제나 독립해 있지 않다. 그 네 뷰하(Vyuha)는 독립한 최고 주재의 네 바바들, 네 상태다. 그 최고의 주재는 곧「기타」7장 19절에서 말하는 바수데바다. 이렇게 풀어보면 ‘옛날의 넷’이란 바가바타 신앙에서 말하는 일곱 대성인 전에 있었던 차투르뷰하 등 네 뷰하를 가리키는 것이다. ―틸라크
이것들은 세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천을 맡아가지고 있는 힘들이다. 마누는 전설에 의하면 새 우주가 시작될 때마다 있는 맨 처음의 사람이다. —라다크리슈난
크리슈나는 여기서 우주 인종의 보계의 개요를 말한다. 브라마가 히라냐가르바(Hiranyagarbha)라는 지극히 높으신 주의 능력에서 탄생된 맨첨의 조상이고, 그 브라마에서 일곱 대성인이 나왔고, 그들보다 전에 사나카, 사난다, 사나타나, 사나트쿠마라의 네 성자가 있었고, 그리고 마누들이 나타났다. 이들 25 명의 성자들을 전우주 생류의 족장들(Partriarchs)이라고 한다. 각개의 우주 안에는 무한수의 우주와 무한수의 천체들이 있으며 각 천체는 각종각색의 생류로 가득 차 있다. 그 생류들은 다 이 25족장에서 나왔다. 브라마는 천년 동안 천신들에게서 고행을 닦은 후 크리슈나의 은총에 의해 깨달음을 얻어 창조의 능력을 갖게 된다. 그런 다음 브라마에서 사나카, 사난다, 사나타나, 사나트쿠마라가 나오고, 그 다음 루드라가 나오고, 그 다음 일곱 성인이 나오고, 그렇게 하여 모든 브라만족, 크샤트리야족이 지극히 높으신 신성(神聖)에서 나왔다. 브라마를 피타마하(Pitamaha) 곧 할아버지라 부르고, 크리슈나를 파라피타마하(Parapitamaha) 곧 할아버지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스와미 프라부파다
7. 나의 이 영광과 능력을 참으로 아는 자는 누구나 흔들림 없는 요가로 (나와) 하나됨을 얻을 것이니, 이것은 다시 의심 할 여지가 없느니라.
영광은 원어로는 비부티(vibhuti)인데 이를 라다크리슈난(glory), 간디(immanence), 틸라크와 마하데브 데자이(manifestation)는 각각 다르게 번역 했다. 라다크리슈난의 경우는 무한히 나타내는 풍부의 영광을 뜻하는 것이고, 간디의 경우에는 그것이 무한히 내재하는 힘이라 해서 그 말을 택했으며, 틸라크와 마하데브 데자이는 그 나타난 것을 두고 그렇게 했다. 특히 마하데브 데자이는 비부티를 단수(power 혹은 immanence) 때와 복수(manifestation) 때를 각각 다르게 했다. 다까구스(高楠順次郞)는 능력이라 번역하고 그 다음의 요가(다른 이들이 power 라 번역하는 것)를 환력(幻力)이라 했다.
정신적 완성의 절정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가지가지의 풍성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정성된 섬김은 불가능하다. 일반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은 위대하시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어떻게 위대하시냐 하는 것을 사실로 안다면 자연히 하나님 앞에 완전히 항복하는 마음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러면 자연 정성된 예배를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스와미 프라부파다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어야만 능히 그 바탈을 다할 수가 있으며, 능히 그 바탈을 다할 수 있으면 능히 사람의 바탈을 다할 수가 있고, 능히 사람의 바탈을 다할 수 있다면 능히 몬의 바탈을 다할 수가 있고, 능히 몬의 바탈을 다할 수 있다면 능히 하늘 땅의 변화하고 나게 함을 도울 수 있고, 하늘 땅의 변화하고 나게 함을 도울 수 있으면 하늘 땅으로 더불어 셋이 될 수 있느니라. (唯天下至聖 爲能盡其性 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性 則可以賛天地之化育 可以賛天地之化育 則可以與 天地參矣) ―「중용」
8,나는 모든 것의 근본이다. 모든 것이 내게서 나오느니라. 지혜 있는 자는 그것을 알아 마음을 온전히 해 정성으로 나를 예배한다.
9. 마음을 내게 모으고 목숨을 내게 바치며 서로 일깨워주고 서로 내게 대하여 이야기하면 언제나 만족하고 즐거움에 차 있게 되느니라.
10. 그 정신이 언제나 통일되어 사랑의 기쁨으로 나를 예배하는 그들에게 나는 이성의 요가를 줄 것이니 그들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게로 와 이를 것이다.
이성(理性)의 요가 부디요가(buddhi-yoga), 지성적 요가(yoga of reason, yoga of intelligence)
여기서 부디요가라는 말은 매우 중요하다. 제2장(39절)에서 크리슈나가 아르쥬나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는 가운데 부디요가의 길을 가르쳐 준다고 한 말이 있는데 이제 여기서 그것을 설명한다. 부디요가는 크리슈나 의식 속에서 하는 행동이다. 그것의 최고의 지성이다.
부디는 지성(intelligence)이란 뜻이고 요가란 신비적 행동, 혹은 신비적 올라감이다. 사람이 본향,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힘써 정성된 예배 가운데 온전히 크리슈나 의식에 이르면 그 하는 행동이 부디요가다. 말을 바꾸어 한다면, 부디요가란 이 물질세계의 얽매임에서 빠져나가는 길이다. 나가는 목적은 크리슈나에게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신자와 진정한 정신의 스승의 결합이 필요하다. 먼저 목적이 크리슈나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길은 서서히 그러나 점점 나아가는, 오르는 방향으로 열린다.
만일 인생의 목적은 알면서도 행동의 결과에 집착하고 있으면, 그는 카르마요가(karma-yoga)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목적이 크리슈나인 것은 알면서도 크리슈나를 깨닫기 위해서 하는 명상에만 빠져 있다면, 그는 즈나나 요가(jnana-yoga)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목적을 알고 온전히 크리슈나 의식과 헌신하는 믿음에서 크리슈나를 찾는다면 그는 바로 박티요가(bhakti-yoga) 곧 부디요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온전한 요가다.
만일 진정한 스승도 있고 정신적 단체에 속해 있기도 하면서도 진보할 만한 지식이 부족한 때는 크리슈나는 속에서 그에게 교훈을 주어 어려움 없이 궁극의 목적을 지향해 나아가게 한다. 자격은 다만 언제나 크리슈나 의식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과 또 사랑과 헌신으로 모든 봉사를 해야 한 다는 일이다. ―스와미 프라부파다
11. 나는 오직 그들에 대한 자비의 마음에서 그들의 바탈 속에 머물러 있어 빛나는 지혜의 등불로 무지에서 나오는 어두움을 깨쳐준다.
‘그들의 바탈 속에’(atma-bhavastho)라는 귀절을 라다크리슈난은 “나의 참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서”라고 해서 “그들의 깊은 바탈 속에 머물러 있어” 하는 다른 사람들의 번역과 반대되는 듯이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참 바탈은 브라만이 지닌 마음의 참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서 보면 내 바탈이지만, 하나님의 자리에서 보면 그가 자기의 참을 나타내시는 것이 곧 우리가 우리의 바탈을 보는 것이다.
아르쥬나 말하기를
12.당신은 지극히 높으신 브라만이요 지극히 높으신 거처시며, 지극히 높으신 정결자시고, 으뜸이요 초월적인 인격이요, 나시지도 않고 두루 뚫어 계시는 맨첨의 주이시라고,
지극히 높으신 브라만 파라브라만(parabrahman)
지극히 높으신 거처 파라다마(paradhama).
지극히 높으신 정결자 파비트라 파라마바반(pavitra paramabhavan).
맨첨의 주 아디 데밤(adi-devam).
13. 모든 성자들이 당신에 대해 말했으며, 나라다, 아시타, 데발라, 브야사 같은 천신 성자들도 그렇게 했고, 또한 당신 몸소께서도 지금 그렇게 선포하셨사옵니다.
나라다(Narada), 아시타(Asita), 데발라(Cevala), 브야사(Vyasa)는 천신들.
14. 오, 크리슈나시여, 저는 당신께서 제게 말씀해주신 것을 모두 다 참이라고 믿습니다. 그러하오나, 오, 바가반이시여, 당신의 나타나심은 신들도 귀신들도 모릅니다.
바가반(Bhagavan) 신성(神性)을 의미함.
15. 오, 으뜸이신 분이시여, 참으로 당신 몸소께서만이 당신을 당신에 의하여 아시옵니다. 만유의 근본이시요, 모든 산 것들의 주시요, 신 중의 신이시요, 우주의 주이신 이시여.
으뜸이신 분 푸루쇼타마(Purushottama).
우주의 주 자가트파테(Jagat-pate).
16. 당신의 참으로 검스러운 그 능력을 저에게 자세히 말씀해주시옵소서. 당신은 그 능력으로 이 모든 우주를 뒤덮으시고 그 속에 머무시오니.
17. 오, 요가의 주시여, 제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알 수 있습니까? 또 제가 어떻게 가지가지의 당신 모습에서 항상 당신을 생각할 것이옵니까. 오, 거룩하신 주시여?
요가의 주 요긴(yogin).
창조주로서의 덕에서 볼 때 크리슈나는 지극하신 요긴이다. 아르쥬나는 자연의 어떤 모양 속에 크리슈나의 모습이 더 자세히 나타나 있는가 알고 싶어서 물은 것이다. ―라다크리슈난
아르쥬나가 거룩하신 주의 가지가지의 나타남의 모양에 대하여 물은 것은 그 가지가지 나타남 그것에 대해 명상하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그 모든 가지가지 나타남을 모든 것을 뒤덮은 최고 주재로 보기 위해서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크리슈나는 이미 다른 데서 정성된 신앙의 길에서 볼 때는 어떤 곳에서나 최고의 주재는 오직 한분이시라 믿는 것과 최고의 주재의 가지가지 나타남의 모습을 보아 서로 다른 신으로 보는 것과의 사이에는 참으로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틸라크
18. 오, 쟈나르다나시여, 당신의 능력과 나타나심을 다시 더 자세히 일러주시옵소서. 저는 참으로 넥타르 같은 당신의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쟈나르다나(Janardana) 무신론자를 죽이시는 이, 크리슈나의 칭호의 하나.
넥타르 암리탐(amritam, 감로(甘露), 생명을 주는 말씀.
「기타」는 브라만과 세계 사이, 말로 할 수 없는 실재와 불완전한 그 표현 사이에 반대되는 대립을 두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주 포괄적인 정신적 견해를 준다. 그것은 물론 결정지어 설명할 수 없는 것, 나타나 뵈지 않는 불변의 것, 생각할 수 없는 것, 즉 절대적이어서 모든 경험적 결정을 뛰어넘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절대적인 이를 예배하는 것은 몸을 가진 존재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궁극자에게 접근하는 것은 그것이 세계와의 관계를 통해 하는 것이 보다 더 쉬운 일이요, 더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궁극자는 다방면적인 자연의 작용을 감찰하며 개개의 피조물의 혼속에 거해 계시는 인격적인 주시다. 최고의 브라만(Parabrahman)이 최고의 주재자(Paramesvara), 즉 사람의 속과 우주 속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렇지만 그의 바탈은 가지가지의 성장적(becomings)인 것으로 가리워 있다. 사람은 자기와 하나님이 하나인 것, 또 그의 만유와도 하나인 것을 발견 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다크리슈난
거룩하신 주 말씀하시기를
19. 그렇다. 내 네게 참으로 나의 거룩한 나타나 뵘들을 말하리라. 그러나, 쿠루족의 으뜸가는 자야, 그것은 주요한 것뿐이니라. 나의 풍성함에는 한이 없기 때문이다.
최고 주재자 형상에 대한 묘사는「아누 샤사나파르바」(Anu shasanaparva, 14:311∼321)와「아누 기타」(아슈바 43~44)에도 나와 있다. 그것은 대체로 여기 나타나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기타」의 것이 훨씬 더 아름답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것들과는 다른 어떤 것에서 옮겨 쓴 것일 것이다. 가령 예 든다면, 같은 묘사가「바가바타 푸라나」15장에 거룩하신 주가 우다바(Uddhava)에게 말해주는 데 나와 있고, 거기에 그것이 이 장에 묘사된 것과 같다는 말이 적혀 있다. ―틸라크
크리슈나의 위대와 그의 풍성을 다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개인의 감각이나 혼은 불완전한 것이므로 크리슈나의 일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정성된 신앙 있는 사람들은 크리슈나를 그래도 이해해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원리에 의하여서 어떤 특정한 시간이나 생활 상태에서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도, 크리슈나의 문제는 참으로 오묘한 것이어서 그들에게는 감로(甘露, 넥타르)같이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그 맛을 본다. 크리슈나의 풍성한 성격과 그의 가지가지의 능력에 관해 토론을 하는 가운데 그들 정결한 헌신자들은 초월적인 희열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기 관해 듣고 토론하기를 원한다. 크리슈나는 목숨 가진 것들은 자기의 풍성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자기 능력의 주요한 나타냄만을 말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비인격신론자(非人格神論者)나 범신론자(汎神論者)는 지극히 높으신 주의 예외적인 풍부나 그의 거룩하신 능력의 나타남을 이해할 수 없다. 물질계에서나 영계에서나 그의 능력은 가지가지의 현상 속에 골고루 퍼져 있다. 이제 크리슈나는 이 아래 있어서 보통의 인간으로서 직접 인식할 수 있는 것을 말해준다. —스와미 프라부파다
20. 구다케샤야, 나는 모든 산 물건들 피조물들의 속에 있는 자아요, 나는 또 모든 산 물건들의 맨첨이요 중간이며 또 나중이니라.
구다케샤(Gudakesha) 머리터럭 짙은 이, 아르쥬나의 칭호의 하나.
21. 나는 아디챠들 중의 비슈누요, 나는 광명 중의 이글거리는 태양이요, 나는 마루타스들 중의 마리치요, 나는 별들 중의 달이다.
아디차(adityas) 아디차는 해라는 말인데「베다경」에는 열두 해가 있다 했다.
마리치(Marici) 천계(天界)를 다스리는 신.
마루타스(Marutas) 바람 신들. 일곱, 혹은 마혼 아홉 신들이 있다고 믿었다.
22. 나는「베다」중의 사마요, 천신들 중의 인드라요, 감각 중의 마음이요, 산 물건 중에서 생각이다.
사마(Sama) 사마(沙磨) 유명한 4베다 중의 하나인데 이것을 주로 든 것은 그것이 아름다운 노래이기 때문인 듯.
감각 눈, 귀, 코, 혀, 살갗, 마음.
생각 체타나(cetana), 생물 속에 있는 생기의 움직임, 사상, 의식.
23. 나는 루드라들 중의 삼캬라요, 야크샤와 라크샤사들 중의 쿠베라요, 바수들 중의 아그니요, 산봉우리 중의 메루다.
루드라(Rudra) 황신(荒神).
삼캬라(Samkara) 시바(Shiva), 파괴신(破壞神).
야크샤(Yaksha) 야차(夜叉).
라크샤사(Rakshasa) 나찰.
쿠베라(Kubera) 보신(寶神).
바수(Vasu), 세천(世天).
아그니(Agni) 화신(火神).
메루(Meru) 그 속에 보물이 많이 묻혀 있는 것으로 유명한 곳, 수미산(須彌山).
24. 프리다의 아들아, 알아들어라. 나는 사제들 중의 머리인 브리하스파티요, 군대 장관 중의 스칸다요, 강과 바다 중의 대양이니라.
브리하스파티(Brihaspati) 기도주(祈禱主).
스칸다(Skanda) 위태천(韋駄天).
25. 나는 위대한 성인들 중의 브리구요, 소리 중의 외마디 낱말 ‘옴카라’요, 희생 중의 침묵 희생이요, 움직이지 않는 것 중의 히말라야며,
성인 마하리쉬(maharishi).
브리구(Bhrigu), 일곱 성인 중의 하나.
옴카라(om-kara), 암(掩).
침묵 쟈파(japa), 침묵명상.
히말라야(Himalayah) 히말라야 산, 거대함을 나타냄.
“나는 희생 중의 침묵 희생이요” 하는 말은 참으로 중요한 말이다.「아누 기타」(Anu-gita)에 이런 말이 있다. 모든 희생(yajna) 중에 ‘하비’(불 속에)로 하는 희생이 가장 귀중한 것이다. 베다의 의식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신심의 길에서는 나마 야즈나(nama yajna), 즉 침묵희생(japa-yajna)이 하비르 야즈나(havir yajna)보다 더 귀중한 것이므로「기타」에 “모든 희생 중의 침묵 희생”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마누는 어떤 곳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어떤 일을 했거나 말았거나, 그는 자파(침묵명상)에 의하여서만 해탈에 이른다.
자파는 하나님의 이름을 계속 외는 일이다. 헌신적인 신앙을 말하는 이 대목에서「기타」는 하나님의 이름을 외는 희생을(간단하게는 찬송의 희생이라 한다) 가장 좋은 길로 가르치고 있다. ―마하데브 데자이
26. 나는 모든 나무 중의 아슈바타요, 모든 성도 중의 나라다요, 간다르바 중의 치트라라타요, 싯다들 중의 카필라 무니니라.
아슈바타(ashvatta) 보리수(菩提樹).
나라다(Narada) 모든 리쉬들 중가장신심이 깊은 성자로 알려져 있는 이.
간다르바(Gandharva) 악신(樂神).
치트라라타(Citraratha) 가장 노래 잘하는 신.
싯다(Siddha) 완전한 지경(成滿位)에 간 사람.
칼리파 무니(Kalipa Muni)는 은둔해 있는 성자를 가리키는 칭호인데 일반으로 크리슈나의 화신으로 믿어지고 있다. 그의 교리는「슈리마드바가바타」속에 나와 있다. 그런데 후대에 와서 또 다른 칼리파로서 유명해진 사람이 있으나 그의 교리는 무신론적이므로 이 칼리파와는 아주 반대 되는 입장에 서 있다. ―스와미 프라부파다
27. 나를 말 중의 웃차이슈라바스로 알라. 그것은 바다를 흔들 때에 났느니라. 나는 왕코끼리 중의 아이라바타요, 사람 중의 왕인 것을 알라.
웃차이슈라바스(uccaihshravas, 天馬)는 인드라신의 말인데, 신들이 아므리타(amrita,죽지 않게 하는 효력을 가진 神酒 혹은 甘露)를 얻기 위해 바다를 흔들어 저었을 때에 나온 열 네 가지 물건 중 하나다. 아이라바타(airavata)도 그중의 하나다. ᅳ마하데브 데자이
신심 깊은 천신들과 아수라들이 한번 여행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 여행 중 넥타르와 독약이 터져 나왔다. 독약은 시바신이 마셨고, 그 신주에서 여러 가지 산 물건들이 나왔는데 그중에 웃차이슈라바스라는 말이 있었고, 또 다른 동물이 하나 나온 것이 아이라바타라는 코끼리였다. 이 두 동물은 신주에서 나왔으므로 특별한 뜻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들은 다 크리슈나를 나타내는 것이다.
인간 중에서는 왕이 크리슈나를 나타내는 것이다……마하라자 유디슈트라, 마하라자 파리크시트, 주 라마 같은 이들은 언제나 백성들의 안녕만을 위해 걱정한 의로운 왕들이다.「베다경」에서는 왕을 하나님의 대표자로 알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종교의 부패로 인하여 왕조는 타락하고 다 무너졌다. ―스와미 프라부파다
28. 나는 무기 중의 벼락이요, 소 중의 여의우요, 생식케 하는 힘 중에서 사랑의 신이요, 뱀 중의 바수키다.
벼락 바즈라(vajra), 금강저(金剛杆)
여의우(如意牛)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주는 암소.
사랑의 신 칸다르파(Kandarpa), 카마(Kama), 애신(愛神).
바수키(Vasuki) 바수길룡(婆修吉龍).
21 나는 용족 중의 아난타요, 물 속에 사는 것 중의 바루나요, 조상들 중의 아리야만이요, 제어자(制御者) 중의 야마다.
용족(龍族) 나가(nagas), 하늘에 있는 뱀들, 용(龍).
아난타(Ananta) 무종용왕(無終龍王), 나가들 중 가장 크고 위력 있는 것.
바루나(Varuna) 수천(水天), 모든 해신(海神, 바다에 있는 뱀) 중 가장 크고 무서운 것.
야마(Yana) 야마천(夜摩天).
바수키를 뱀의 왕이라 하고 아난타를 용 중의 왕이라고 하는 말은「아마 라코샤」(Amarako놈)나「마하바라타」속에 나와 있다. 그러나 뱀과 용의 분명한 구별은 없다.「마하바라타」의 아스티코파캬나(Astikopakhyana)에는 둘을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슈리다라」(Sridhara) 주석서에는 뱀은 독이 있고 용은 독이 없다고 했다.「라마누쟈바샤」(Ramanujabhashya) 속에는 뱀은 머리가 하나지만 용은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그 구별들은 내게는 다 옳지 않아 보인다.
어떤 데 보면 용들 중에 큰 것을 들 때 아난타도 바수키도 다 나와 있고, 또 둘 다 머리도 여러 개고 독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다만 아난타는 붉은 빛깔이라 했고 바수키는 누런 빛깔이라고 했다. ―틸라크
30. 나는 귀신들 중의 프랄라다요, 헤아리는 자 중의 시간이요, 짐승 중의 수왕이요, 새 중의 금시조다.
귀신 다이챠(daitya) 악마(demon)
프랄라다(Prahlada) 신심 깊은 신자로 크리슈나를 대표함.
수왕(獸王) 므리겐드라(mrigendrah) 사자.
금시조(金翅鳥) 바인나테야(vainateyah), 힌두교 전설에서는 이 금시조가 그 날개 위에 비슈누신을 태우고 있다고 한다.
디티(Diti)와 아디티(Aditi)는 두 자매였는데, 아디티의 아들들을 아디타야라 불렀고 디티의 아들들은 다이타야라 불렀다.
아디타야들은 모두 신앙 깊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다이타야들은 모두 믿지 않았다. 프랄라다는 다이타야 가정에 났으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열심있는 신자였다. 그러한 신앙으로 인해 그를 크리슈나의 대표자라 한다. ―스와미 프라부파다
프랄라다는 신앙의 모범으로 온 인도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는 아버지가 노(怒)를 발하는 데도 불구하고 신앙을 버리지 않기 위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시련을 이겨냈다. ―마하데브 데자이
31. 나는 정결케 하는 자 중의 바람이요, 무사(武士) 중의 라마요, 물고기 중의 마카라요, 흐르는 강물 중의 쟈나비다.
마카라(makarah) 마갈어(摩竭魚), 상어, 악어(alligator).
쟈나비(jahnavi) 갠지즈 강.
32. 아르쥬나야, 나는 창조에 있어서, 그 맨첨이요 나중이며 또 그 중간이요, 밝힘 중에서 자아에 대한 밝힘이요, 변론자들에 있어서 올바른 대화이며,
밝힘 비쟈(vidya), 명(明), 과학(science), 학문.
자아에 대한 밝힘 아쟈트마비쟈(adhyatma-vidya), 내명(內明).
올바른 대화 바다(vadah).
학문 중에서 나는 자아에 대한 학문이다. 자아에 대한 학문은 최고선에 이르는 길이다. 그것은 단순한 지적 활동이나 사회적 모험이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지혜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므로 깊은 종교적 확신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자아에 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우리로 하여금 실재를 뚫어보지 못하도록 가리는 무지를 극복하게 한다. 그것은 플라톤의 말로 하면 보편적인 학문이다. 그것 없이 단순히 부분적으로 하는 학문은 미혹케 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말했다. “일반적으로 학문은, 그 속에 만일 최고의 것을 포함하지 못한다면, 이익이 되는 일은 별로 없고, 도리어 자기를 해치는 일이 많다.” ―라다크리슈난
33. 나는 글자 중의 ‘아’자요, 합성에 있어서 드반드바요, 불멸의 시간이요, 그리고 나는 두루 사방에 얼굴을 향하고 있는 창조주니라.
아자(字) 산스크리트 글자 중 첫 자.
합성(合成) 두 말, 혹은 두 물건이 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일.
드반드바(dvandva) 둘이 합하되 어느 하나가 우세하고 다른 것이 열세한 것 아니라 꼭 같은 자격으로 합함.
34. 나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죽음이요, 또 모든 것을 나게 하는 근원이다. 나는 여성에 있어서 이름남이요, 아름다움이요, 말이요, 기억이요, 지성(知性)이요, 정절이요, 참고 견딤이니라.
35. 마찬가지로 나는 노래 중에서 브리하트사마요, 찬미 중에서 가야트리요, 달 중에서 마르가슈르쇼, 계절 중에서 꽃피는 봄이다.
규격을 맞춘 시 중에서 가야트리 만트라(Gayatri mantra)가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상당히 숙련된 브라만이어야만 부른다. 가야트리 만트라는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것은 지극히 높으신 주를 나타낸다. 그 만트라는 영적으로 깊은 지경에 이른 사람이어야만 부를 수 있고, 그것을 불렀을 때 그는 초월적인 경지에 들 수 있다. 그 만트라를 부르려면 우선 물질세계의 법칙에 의하여 완전한 지경에 가지 않으면 안된다. 베다 문명에서 가야트리 만트라는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그것을 브라만의 소리로서의 화신이라고 믿었다.
인도에서는 동짓달 섣달(marga-shrsho)에 모든 곡식을 거둬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때를 가장 즐거운 시기로 알았다. 봄은 덥지도 춥지도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꽃이 만발하고, 봄에는 크리슈나를 기념하는 의식이 많다. 그러므로 가장 즐거운 때요, 지극히 높으신 크리슈나를 드러내는 때라 믿었다. ―스와미 프라부파다
36.나는 부랑자의 도박이요, 번쩍 하는 자의 광명이다. 나는 승리요, 결정이요, 선한 자의 선이다.
37. 나는 브리슈니족의 바수데바요, 판두족의 아르쥬나며, 성자 중의 브야사요, 시인 중의 우샤나다.
크리슈나는 지극히 높으신 신의 본체시고, 바수데바(Vasudeva)는 크리슈나의 직접적인 발현이다.
판두족 중에서는 아르쥬나가 가장 잘났고 용맹이 있었으며 인간 중의 으뜸이다. 그러므로 크리슈나를 대표한다.
「베다」경전을 통하는 무니 중에서는 브야사가 가장 훌륭하다. 그는 이 칼리 시대에「베다경」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여 보통 사람이 알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는 크리슈나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카비(kavis)는 무엇이나 통달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다. 그 카비들 중에 우샤나(Ushana)는 귀신들을 다스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지성이 지극히 높고 통찰력이 있고, 정치적이요 또 영적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크리슈나의 대표자다.
38. 나는 다스리는 자의 징벌이요, 승리자의 좋은 계책이요, 비밀의 침묵이요, 지혜자의 지혜니라.
39. 아르쥬나야, 모든 창조물에 씨가 있다면 그것은 나요, 움직이는 또 움직이지 않는 모든 물건 중에 나 아니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느니라.
40. 위대한 적을 정복하는 자야, 나의 거룩한 능력의 나타남에는 끝이 없느니라. 내가 지금 여러 가지로 설명한 것은 다만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이니라.
41.어떤 것이거나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능력있는 것이 있거든, 그것은 내 광명의 단편으로 된 것이다.
42.그러나 아르쥬나야, 이 많은 것을 네가 다 알아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는 이 온 누리를 내 한 조각으로 뒤덮어 지지 하고 있느니라.
한 조각 에캄쉐나(ekamshena), 한 부스러기, 단편.
하나이신 하나님이 산산조각이 난단 말 아니다. 이 우주는 무한의 부분적 계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요, 그의 영광의 한 가닥 광채로 비쳐진다는 말이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초월적인 빛은 이 우주를 뛰어넘어, 시간 공간을 뛰어넘어서 충만하고 있다. ―라다크리슈난
이것이「바가바드기타」에 이르는「우파니샤드」의 제10장 거룩하신 능력의 끝이니, 이는 브라만의 지식에 있어서 요가를 가르치는 크리슈나와 아르쥬나의 문답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