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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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의 신학사상, 다석 유영모와 함석헌을 중심으로 (박재순)

글쓴이 : 관리자 날 짜 : 11-01-31 04:54 조회(7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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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 #1 : 박재순-안병무_신학사상_유영모_함석헌_중심으로.pdf (437.6K), Down:64, 2011-01-31 04:54:47








다석 유영모와 함석헌 그리고 안병무의 신학사상의

연속성과 차이를 알 수 있는 좋은 연구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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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구약] 출애굽 해방 사건의 구약신학적 의미 (김이곤) 미선이 7641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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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불교와 기독교의 역사적 대논쟁 (석오진) 미선이 8667 06-02

60 마음의 지도(맥그로이) 미선이 9321 05-22

59 관상기도를 비롯한 그리스도교의 영성수행 방법들(이건종) 미선이 9247 05-02

58 이슬람의 영적 가치관과 생활 속 수행 (이희수) 미선이 611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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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다원사회 속에서의 기독교 (정진홍) 미선이 7660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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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자료강추!] 인도철학사 (길희성) 미선이 766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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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강추!] 부자들의 성녀, 마더 데레사 (채만수) (3) 미선이 16175 04-22

50 존 캅의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 (유정원) 정강길 8467 05-20

49 진정한 유일신론은 다원론 (김경재, 오강남) 정강길 9980 04-28

48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인간현상』을 읽고서... 정강길 11174 04-27

47 이안 바버가 보는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 유형 (김흡영) 정강길 11873 07-16

46 세계화 시대, 남미해방신학의 유산 (장윤재) 정강길 8610 01-07

45 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김경재) 관리자 7701 11-12

44 竹齋의 현재적 그리스도론 (김경재) 정강길 7734 05-06

43 경험은 믿을만하며, 완전한 지식을 제공하는가 (황희숙) (1) 미선이 7878 01-07

42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 '갈릴리 복음'으로 돌아가야 산다! (김경재 교수) 미선이 7219 01-06

41 혼란의 시대: 종교, 무엇을 할 것인가? (정진홍 교수) (1) 관리자 7939 12-15

40 진리란 무엇이며, 내가 믿는 것이 반드시 진리인가 (한전숙) (1) 미선이 8210 12-01

39 “복음주의, 알고 보면 기득권주의” (1) 미선이 6573 11-28

38 기존 기독교인이 동성애혐오증을 가장 크게 지녔음을 말해주는 조사자료들 미선이 6479 11-28

37 영성에 대한 원불교 교리적 고찰 (백준흠) 미선이 6586 11-21

36 '죄'와 '구원'에 대한 전통신학의 한계와 과정신학적 해석 (김희헌) 관리자 7339 11-02

35 영성과 영성수련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정강길) (3) 관리자 7181 11-02

34 21세기의 종교-새로운 영성을 위하여 (길희성) (1) 미선이 7802 10-15

33 현대 무신론에 대한 신학적 이해 (오영석) 미선이 6725 10-14

32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기독교 배타주의 (이숙진) (1) 치노 8562 10-01

31 [기조강연 전문]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은 어디서 오나? (길희성) (1) 관리자 7667 10-01

30 [참조] 세기연의 월례포럼 자료들은 '세기연 월례포럼' 게시판에 따로 있습니다. 관리자 6259 07-29

29 SBS'신의 길 인간의 길' <제4부 길위의 인간> 전문가 인터뷰 정리 미선이 9996 07-29

28 프레크 & 갠디, 『예수는 신화다』(국역판 전문) (4) 미선이 9878 07-20

27 다양한 역사적 예수 연구 학자들의 SBS취재 인터뷰 내용 미선이 8262 07-06

26 제국의 폭력에 맞서는 해방을 위한 신학 - 김민웅 마루치 7688 05-21

25 [펌] 탈신조적 그리스도교에 대한 꿈 (1) 고돈 린치 7828 02-27

24 역사적 예수 제3탐구의 딜레마와 그 해결책 (김덕기) 정강길 7672 02-21

23 희랍 동성애의 특성과 사회적 역할 마루치 7145 02-15

22 몰입 (나에 대한 최고의 순간이자 그것 자체가 행복인 순간) 관리자 8107 09-12

21 예수 교회 예배 주보 표지를 장식할 '예수 이후의 예수들' 관리자 8286 08-03

20 하나님 나라 운동의 전초기지, 공동체 운동에 대한 좋은 자료들 관리자 9872 07-02

19 잃어버린 예수 : 예수와 다석(多夕)이 만난 요한복음 (박영호) 관리자 11916 06-27

18 김경재 - 한국교회와 신학의 회고와 책임 정강길 7487 06-06

17 이성정 - 함석헌의 새 종교론에 대한 연구 (강추!) 관리자 9408 01-27

16 행복 보고서 정강길 8318 01-18

15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3) 성직자 및 종교단체에 대한 평가 관리자 7202 01-06

14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2) 한국인의 종교관과 의식구조 관리자 9622 01-06

13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1) 한국인의 종교실태 관리자 9017 01-06

12 우리나라의 3대 종교-불교/개신교/천주교- 분포 지도 (*통계청) 관리자 16344 12-15

11 종교 인구 20년간 어떻게 변했나? (*통계청) 관리자 13874 12-15

10 한국 종교계는 치외법권지역인가? 관리자 9247 11-24

9 보수 기독교인들 특히 C.C.C가 널리 전파하는 <4영리> 자료 관리자 12002 10-27

8 최근 예수 연구의 코페르니쿠스적 변화 김준우 11455 10-21

7 기독교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강추) 돈큐빗 9879 10-07

6 정치적 시각에서 본 붓다의 생애 (잠농 통프라스트) 관리자 9587 10-04

5 숫자로 보는 한국 장로교의 정체 (3) 이드 16476 06-21

4 기독교 사상사를 결정지은 니케아 회의, 그것이 알고 싶다! (강추) 미선이 13672 05-31

3 [펌] 니케아 회의 시대 (313-590) 관리자 16959 05-30

2 [펌] "미국은 神이 지배하는 나라가 됐는가?" (1) 미선이 8473 05-17

1 [유다복음서 전문] 유다는 왜 예수를 배반했을까? 미선이 16361 04-28



씨알 사상 전문 과정 9월 13일(토)부터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 강사

씨알 사상 전문 과정 9월 13일(토)부터 < 사회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씨알 사상 전문 과정 9월 13일(토)부터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 강사...매월 둘째 주 토요일 수업
기자명 안창도  승인 2014.08.0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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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씨알

2014.8.8(금)

 
안녕하십니까?

 
"나라를 바로잡기 위하여 한번 모험을 할 전략적인 지점이 셋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부(富)가 그 하나요, 권(權)이 또 하나요, 그 다음은 지(知)다. 그러나 이 셋 중에 반드시 골라야 하는 것은 지(知)란 말이다."(함석헌)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로 나뉘어진다고 합니다. 어찌 대한민국만 달라져야 하겠습니까? 씨알(民)인 우리가 바뀌어야 하겠지요. 이를 위해 우리는 함석헌 씨알님의 사회 변혁 전략 중에 지(知)를 선택했습니다.
통일한국, 동아시아 생명 평화의 바탈을 박재순 박사와 함께 키워보지 않으시렵니까?

 
 
>> 제1기 1학기 씨알 사상 전문 과정 가을학기 입학 안내 <<

 

뒤로멈춤앞으로
본 강좌는 씨알사상을 깊이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기르는 과정입니다. 매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2년 4학기 과정으로 주말에 씨알사상 집중강좌를 엽니다. 매월 1회 둘째 주 토요일 오후 2~6시에 강의와 토론으로 진행합니다. 3회 강의를 마치고 1회는 1박 2일 수련모임을 갖습니다. 2년 4학기 과정을 마치면 씨알재단 이름으로 마침보람을 주고 씨알사상을 가르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합니다.
 

 
 
<교육 목적>

 
씨알 사상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운동을 이끌 사람을 길러 낸다.
유영모·함석헌의 씨알 사상을 몸과 맘에 체득하여
생명과 평화의 영성을 바탕으로 생명과 평화운동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게 한다.
유영모와 함석헌의 제자로서 씨알의 삶과 정신을 이어간다.
유영모와 함석헌의 책들을 함께 읽고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고 이끌어 가는 사람을 기른다.

 

 
 
<수업 방식>

 
 1시간 강의, 1시간 대화와 토론으로 진행합니다.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이 되게 합니다. 학기 중에 1박2일의 수련 과정을 갖습니다.

 

 
 
<수강 신청 안내>

 
* 수업 기간 : 9월 13일(토) ~12월 13일(토)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 2~6시
* 장소 : 씨알재단 강의실(종로구 계동 2길 26 202호)
       - 안국역 3번 출구에서 300미터, 현대사옥 뒷길 3층 건물(1층 충주비빔밥)
* 수강료 : 학기당 10만원(*교재와 참고 도서는 각자 구입합니다.)
* 강사 : 박재순 박사(씨알사상연구소 소장)
* 모집인원 : 선착순 20명(수강 인원 10명 이내이면 폐강)
* 신청 마감일 : 2014년 9월 6일(토) 오후 6시
        - 상단에 파일첨부 누르시면 신청서가 있습니다.
* 신청서 보내실 곳: 이메일 crlife@hanmail.net/팩스 0303-0279-5157
* 문의: 재단법인 씨알 사무국 (02-2279-5157)

 
 
<강사 소개>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 소장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신대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장, 한신대 연구교수, 성공회대 겸임교수,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씨알사상연구회 회장을 지냈고, 재단법인 씨알 상임이사, 씨알사상연구소 소장, 다석학회 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씨알 사상>(문화관광부 우수 교양 도서), <다석 유영모>(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모색: 씨알 철학과 공공철학의 대화>(공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유영모 함석헌의 사상과 철학>(공저), <씨알 생명 평화>(공저), <민족의 큰 사상가 함석헌>(공저), <함석헌 사상을 찾아서>(공저), <민중신학과 씨알사상>,<한국생명신학의 모색>,<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디트리히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적 하나님 이해>,<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가 있으며, 역서로는 <조직신학>, <사랑과 노동>,<창세기>,<마르코복음>,<주님>(공역)이 있습니다.    

 
 
>> 제1기 씨알사상 전문과정 학기별 교육과정 <<  

 
> 2014년 가을 1학기~2016년 봄 4학기 <

 
 
<2014년 가을 1학기: 씨알 사상의 형성과 배경>

 
1 생명진화와 씨알 생명과 역사의 씨알(9월 13일)
2 한국근현대사: 동서문명의 만남과 민중의 자각 (10월 11일)
3 안창호 이승훈의 교육입국운동: 민을 섬기며 주체로 세우는 교육 (11월 8일)
4 삼일운동과 씨알사상: 민주, 민족자주, 세계평화 (12월 12~13일 수련모임)

교재: <씨알 사상>(박재순, 나녹 2010)
참고도서: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박재순, 홍성사 2013)
         <씨알사상 씨알누리> (씨알사상연구소 2012)

 
 
<2015년 봄 2학기: 유영모의 씨알 사상>

 
1 유영모의 삶과 씨알 사상

천지인 합일 체험과 구경각
민의 생명 속에서 하늘을 봄
천자(天子)인 민의 삶과 정신을 깊이 파서 하늘에 이르게 함
하늘과의 부자유친(父子有親)

2 생각: 생명의 자각(生-覺)

몸에서 깨어, 캐내는 생각
존재의 끝을 불사르는 생각
나를 낳는 생각
신과 소통하고 사귀는 생각: 기도와 생각, 모름을 지킴

3 몸성히 맘 놓아 뜻 태움
몸, 맘, 얼(精氣神)의 인간학: 몸에서 맘으로 맘에서 얼로
‘몸성히’의 비결: 밥과 숨, 숨과 피를 잘 돌림
맘 놓아: 안심입명(安心立命), 목숨과 천명(天命), 숨 나무와 명(命) 나무
뜻 태움: 얼과 뜻을 태움, 불태움과 타고 올라감

4 가온 찍기와 줄곧 뚫림

가운데와 적중
점심(點心), 마음에 점찍기, 무등(無等) 세상
위로 하늘과 통하고 옆으로 이웃 만물과 통함
빈탕한데의 큰 자유

교재: <다석 유영모>(박재순, 현암사 2008)
참고도서: <다석전기>(박영호, 교양인 2012)
        <유영모의 철학과 사상.(박재순, 한울 2013)
        <나는 다석을 이렇게 본다>(정양모, 두레 2010)

 
 
<2015년 가을 3학기: 함석헌의 씨알 사상>

 
1 함석헌의 삶과 씨알사상

민족사의 고난과 구원
한국현대사의 중심과 선봉
동서문명의 만남과 민의 자각
민주와 평화

2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엘리트 영웅주의, 메시아주의를 넘어서
자각과 실천
하는 생각, 나는 생각
본능과 지성과 영성의 통합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로 뚫고 역사의 뜻을 깨닫고 밝힌다.

3 씨알이 나라다

씨알이 나라의 주권자이고 헌법의 주인이다.
민주 정신과 사회 기풍의 확립: 정신 혁명과 의식 개혁

4 국가주의를 넘어서 세계 평화와 통일로

교재: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박재순, 한울 2013)
참고서: <함석헌 평전-신의 도시와 세속도시 사이에서>(김성수,삼인 2011)
       <씨알 함석헌 평전>(이치석, 시대의 창 2005)

 
 
<2016년 봄 4학기: 씨알 사상의 핵심과 기본 내용>

 
1 사람: 생명과 역사의 씨알
       내가 씨알이다. 사명과 의무가 권리보다 앞선다.
       무한책임, 희생과 상생

2 종교: 직립과 귀천(歸天)
      자기부정과 초월
      생명 진화와 역사의 사다리

3 정치: 씨알이 나라다
      주체와 전체의 일치
      국가와 세계 평화

4 자치와 협동의 나라, 21세기 시민운동

대의제와 직접민주주의, 서로 다름과 하나로 돌아감,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정의와 평화의 원리와 기준(주체와 전체), 서로 주체와 공동체의 실현: 하나 속에서 전체를 보고 전체 속에서 하나를 봄, 입장 바꿔 생각하기


교재: <씨알사상>(박재순, 나녹 2010)
참고도서: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박재순, 홍성사 2013)
         <씨알사상 씨알누리> (씨알사상연구소 2012)

 
 
오시는 길

 
서울시 종로구 계동2길 26 202호 씨알재단 사무실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오셔서 20여 미터 직진. 현대사옥 지나기 전 골목으로 들어서서 200여 미터 전진해서 사옥 건물이 끝나는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언덕을 올라오면 언덕 위 3층 건물(1층 충주비빔밥)

문의처: 02)2279-5157      

교회와신앙 계시는 계속되고 가시적 재림은 없다 한국 퀘이커교를 진단한다 ②/ 교리와 현황

교회와신앙
계시는 계속되고 가시적 재림은 없다
한국 퀘이커교를 진단한다 ②/ 교리와 현황
2006년 05월 08일 (월) 00:00:00 전정희 기자  gasuri48@hanmail.net
   
“나는 갈수록 퀘이커가 좋습니다. 좋은 이유는 그들은 형식을 차리지 않기 때문이요, 교리나 신학 토론에 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사도 없고 신부도 없고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겠다는 것도, 누가 뉘게 배우겠다는 것도 없이, 그저 살림을 통해서 하는 전도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종교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고, 속이 넓으면서도 정성스럽습니다. 누가 와도, 불교도가 오거나, 유니테리언이 오거나, 무신론자가 온다 해도, 찾는 마음에서 오기만 하면 환영입니다. 그러니 참 좋지 않습니까?”  

한국의 대표적 퀘이커교도였던 함석헌의 ‘퀘이커 예찬’이다. 퀘이커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이들은 일정한 교회 제도를 택하지 않았기에 큰 조직체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반면 그들은 개인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가서 많은 동조자를 얻어 현재까지 그들 특유의 방법으로 모임을 가지며 교세를 확산시키고 있다. 동시에 한국교회 종교다원주의 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해왔다. 이에 퀘이커교의 발생배경과 근본사상 그리고 한국전래와 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역사적 배경

16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종교개혁 운동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켰다. 영국 교회가 로마 천주교회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본 많은 신도들이 자기들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개혁운동을 일으켜 17세기에는 영국교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었다. 그들을 분리주의자(The separatists)라고 부른다. 그 중에는 장로교회, 침례교회, 회중교회 등이 있었다. 이들 분리주의자들은 후에 주로 미국을 발판으로 큰 교파로 발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분리주의자들 중에 특이한 그룹이 있었는데 그것이 1647년 영국인 죠지 폭스가 창시한 ‘친우회(Friends)’ 또는 ‘퀘이커단(Quakers)’이다.

이들은 신조, 성직자, 또는 기성교회가 지니고 있는 그 밖의 다른 형식 없이도 하나님을 직접 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집회를 가질 때 ‘내면의 빛’ 또는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신성’을 조용히 기다리며, 특히 사회 개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크롬웰에 따르면 퀘이커교도들은 ‘난잡하고 무질서한 예배의식 때문엷 가는 곳마다 박해를 받았다. 450명 이상이 퀘이커 조례(1662)와 그와 유사한 규제법으로 영국 감옥에서 죽었다. 그러나 1681년 영국의 왕 찰스 2세는 퀘이커교 지도자 윌리엄 펜에게 있었던 빚 대신 그에게 웨스트뉴저지 개발권을 주었고, 새로운 식민지 펜실베니아(펜의 아버지 이름을 따서 지음)는 동료 퀘이커교도들의 신앙의 자유를 위한 안식처가 되었다.

2. 퀘이커교의 교리

첫째, 퀘이커교는 그들 특유의 예배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예배라고 할 수 있는지도 논의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무언(無言)을 지킨다. 침묵(명상)을 계속하는 동안 그들은 성령의 내림을 기다린다.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나 누구든지 그 자리에서 성령의 내림과 사역이 있으면 받은 영감을 말한다. 17세기에 이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영감을 받을 때 전신이 떨었다 해서 ‘진동자(Quaker)’라는 별명을 얻었다. 만약 영감을 받은 사람이 없으면 무언으로 그 모임은 끝난다. 그들은 직접적 영감을 중시하여 언제든지 새 계시를 받는다고 한다. 함석헌은 “퀘이커의 명상은 동양의 참선처럼 개인적인 명상이 아니라 단체적인 명상이다. 퀘이커들은 단체로 명상할 때 하나님이 임재한다고 믿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와 같은 퀘이커교의 예배형태에 대해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구 교수(조직신학)는 “과연 퀘이커 모임 가운데 있는 것이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인가 하는 것이 문제”라며 “그들은 때때로 성경과 예배 중에 성령의 영감을 구분하여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퀘이커 사람들은 계속적인 계시(continuing revelation)를 말하는 결과를 내고 만다”고 지적한다. 즉, 퀘이커교도들은 요한복음 1장 9절~18절에 근거해 ‘보편적인 내면의 빛(the universal Inward Light)’을 중요시하면서 이것으로 계속적으로 진리를 계시해 준다고 주장하지만 이 본문이 그런 뜻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모든 신비주의를 허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퀘이커교는 성서가 모든 종교체험에 관한 가장 우수한 문학적 표현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안에 불변의 진리가 있거나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퀘이커에 따르면 “성서는 원천에 관한 방향 제시는 되나 원천 자체는 아니다. 그 원천은 오히려 성령 또는 각자의 내부에 있는 ‘영적 빛’이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내적으로, 직접적으로 자기 안에 내주하는 성령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국성서대학교대학원장 김호식 교수(조직신학)는 “퀘이커는 성경보다 자기들이 직접 받은 계시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면에서 문제다”며 “이에 반해 개신교는 66권 성경이 모든 신앙의 궁극적인 기준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아래 박스 기사 참고).

셋째, 퀘이커교는 내적 계시를 중시하고 성서를 격하시키기 때문에 어떤 교리나 신앙고백서를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모든 신학적 사변의 무거운 짐을 바닷가에 다 버렸다고 자랑한다. 퀘이커호주연회에서 펴낸 <청소년을 위한 퀘이커 신앙 안내서>의 교리적인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모든 외적인 전쟁과 싸움을 무조건 반대한다. 따라서 군대에 들어간다거나 전쟁준비 작업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한다(양심적 병역거부).”
“우리는 노예제도, 인종차별을 반대한다.”
“우리는 모든 어린이는 태어나는 순간 하나님의 권속의 일원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세례를 받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일은 외적인 성례전 없이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례전을 갖지 않는다.”

“우리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부분이 있다. 그것은 ‘씨’, ‘속의 빛’, ‘사람의 영’ 등으로 불려왔다. 그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떤 인종이나 종교에도 상관없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 속에 있는 영을 계발하고 진리를 더 열렬하게 추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매우 가까이 나아갔다. 이들 중에는 이집트인 악나톤, 인도 왕자 석가모니, 중국 신비주의자 노자, 유대인 이사야 등이 있다.”
“우리는 비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배척하지 않는다. 우리는 힌두교나 유교 또는 그밖의 다른 종교나 철학이 하나님께 향하는 또 다른 길을 보여 주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과 실천을 존중한다.”

이와 같은 퀘이커교의 교리에 대해 이승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퀘이커교도들은 대개 삼위일체 교리, 전전 타락 교리, 죄의 전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교리 등을 거부하고, 성례가 불필요하다고 본다. 초기 퀘이커 교리는 Robert Barclay(1648~1690)가 쓴 「Apology for the True Christian Divinity」(Amsterdam, 1676)에 요약되어 있고, 19세기 초에 와서는 그들 안에 있던 청교도적이고 재세례파적인 요소들을 모두 버려 버리고 19세기의 지적 정황에 맞게 자신들의 사상을 다시 표명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퀘이커는 두 종류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복음주의적 퀘이커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 비복음주의적 퀘이커이다.

주로 Joseph John Gurney(1788~1847)의 영향 하에서 나타난 복음주의적 퀘이커는 성경의 무오성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으며, 그것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계속적인 계시와 철저한 평화주의(doctrinal pacifism), 그리고 내면의 빛을 통한 구속과 조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퀘이커들은 목사를 임직시키지는 않지만, 목사를 청빙하기는 한다. 또한 순서를 따라 드리는 예배를 하기도 하는데, 이런 복음주의적 퀘이커의 표준적 진술은 ‘리치몬드 선언’(1887)이다.

현대 비복음주의적 퀘이커주의는 부분적으로는 18세기 정적주의적 퀘이커 사상(quietist Quakerism)에서 연원한 것으로 합리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것과 신비적인 것을 결합시킨 사상이다. 보편적 내면의 빛 교리를 확장시켜 모든 종교에 그 빛이 작용하고 있다고 하며 모든 종교들은 다 조화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류는 다 하나라고 믿기에 이런 분파의 퀘이커는 평화 운동과 사회봉사 활동에서 매우 활동적이다.”

넷째, 퀘이커교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두 가지 종자가 있다고 믿는다. 이는 죄의 종자와 신적 종자다. 죄의 종자는 인간 자신으로부터 싹이 트나, 신적 종자는 신으로부터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것을 ‘하나님의 심방’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심방의 하루 또는 한 때를 주어 그가 구원을 얻어 그리스도의 죽음의 열매에 동참하게 한다. 이 하나님의 심방의 때를 가지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 마음속에 비치는 빛에 항거하는 사람은 멸망받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은 아직 미완성이다.

또, 퀘이커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아담의 죄값이 전가되어 있지 않다. 사람이 다 같은 불복종의 죄를 범하고부터 비로소 죄책이 생기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까지 원죄의 책임을 지우는 교리는 잔인하고 자연과 하나님의 자비와 의에 어긋나는 견해다.

이승구 교수는 이에 대해 “이와 같이 아담의 죄의 전가를 거부하는 퀘이커교는 결국 펠라기우스적인 구원론을 주장하게 되고, 그 구원의 방도는 내면의 빛에 순종하는가의 여부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섯째, 퀘이커교의 교회는 ‘거룩한 빛,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증거를 순종하는’ 모든 사람으로 구성한다. 그 안에는 이미 죽은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교도(異敎徒)와 터키 사람과 유대 사람도 다 포함되어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눈을 뜨고 은혜의 선물의 정도에 따라 서로 가르치고 교육하고 배려한다. 이것이 교회다. 그런데 외적 신앙고백과 외적 의식이 없으면 교회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다면(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지목) 그들은 악마의 꼬임에 빠져 있다.

이와 같은 퀘이커교의 주장에 대해 이승구 교수는 “초기 퀘이커 사상가인 죠지 폭스는 가시적 교회의 배교가 신약 성경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며 배교한 교회에 천주교회와 개신교 모두를 넣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께서 이제 ‘참 교회’를 모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주장했다. 그 함의는 이제 내면의 빛을 추구하는 이들이 참 교회라는 것이고, 자신들과 이교도 가운데서 이 내면의 빛에 순종하는 이들은 모두 참 교회에 포함된다는 주장이다. 후에 현대 비복음주의적 퀘이커에서는 이런 생각이 더 확대되어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섯째, 퀘이커교는 자타가 공인하는 평화주의자이다. 따라서 퀘이커교가 병역과 선서를 거절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과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봉사적 사랑으로써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이 점이 다른 기독교신비주의자들과 다른 점이다.

3. 퀘이커교의 한국 전래와 현황

처음 퀘이커가 한국에 전해진 것은 6.25전쟁 직후다. 1953년 전북 군산의 도립병원에서 구제활동을 폈던 미국과 영국의 퀘이커 의사들을 통해 처음 퀘이커를 접한 군산 사람들이 그들의 침묵예배에 참석하면서 한국 퀘이커가 탄생했다. 퀘이커 봉사자들이 떠난 이후에도 한국인들끼리 자체 모임을 계속해 한국 퀘이커 1세대가 출현했으며 최초의 한국인 퀘이커는 이윤구였다.

1960년대 ‘사람이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 가는 것보다 세상의 평화와 사회정의를 이루는 일에 힘이 모아져야 한다는 데 공감한 함석헌의 가담으로 퀘이커는 한때 크게 부흥했다. 함석헌은 본래 장로교 신자였으나 일본에 건너가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자가 되었다가 사회에 대한 그들의 소극적 신앙태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퀘이커교로 옮기게 되었다. 그 후 퀘이커 지도자였던 브린튼의 영향을 직접 받아 그것을 생활화하는 가운데 한국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 퀘이커교는 1989년 함석헌 타계 후 내부 혼란과 갈등을 빚으며 10년이 넘도록 예배모임조차 없었다.

2000년대에 들어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가 미국 펜들힐에서 정식 퀘이커교도가 되어 귀국한 이후 한국퀘이커에도 활기가 생겼다. 옛 퀘이커 멤버들을 중심으로 원상 복귀를 위해 노력해 다시 모임을 갖게 된 것이다. 현재 서울 신촌의 모임에는 약 50여명의 교도들이 있고, 곧 대전에 모임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박성준 교수는 “21세기의 문턱에서 민중신학을 다시 생각한다”는 글을 통해 퀘이커교와 민중신학의 연합을 시도한다. 그는 죠지 폭스는 ‘예수가 이미 재림한 사실을 알리려 했던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죠지 폭스는 거듭 거듭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들을 몸소 가르치시기 위해 오셨다(Jesus Christ is come to teach his people himself)’라고 외쳤다. 이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이 ‘the Second Coming of Christ’를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가 하시 하처에 육신적으로 재림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민중의 마음속에 이미 ‘내면의 빛’, ‘씨앗’, ‘하나님의 영’이 들어 있음으로 이미 ‘그리스도’가 와 계신다는 것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박 교수는 계속해서 “죠지 폭스의 새 진리를 따라 새 사람으로 변화된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는 것, 그리스도가 그 시대와 사회의 불의와 폭력에 도전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며 “그러므로 내면의 빛과 씨앗, 영을 통한 그리스도의 재림이란 단지 사적인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닌, 변화된 남녀들이 새 삶의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따를 때, 밖으로 사회와 역사 속으로 나아가는 종말론적 운동을 뜻했다”고 해석한다.

이승구 교수는 박성준 교수의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결국 그리스도의 가시적 인격적 재림을 부인하는 것으로,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르다”며,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대로 살고 이 세상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강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갈 2:20), 바울을 따라 우리가 이렇게 말할 때에도 바울은 그리스도 자신과 성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인의 질적인 차이를 분명히 했으며, 우리는 그 점을 매우 강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우리들의 성령님의 은혜 아래서의 삶과 사역의 질적인 차이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결국 그리스도 사역의 독특성을 파괴하게 된다”며 “우리 안에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반(反)하는 것으로, 이는 그리스도의 문자적, 신체적, 인격적 재림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또 “함석헌은 1970년대 초 퀘이커의 회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씨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전개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지만, 그의 씨알 사상의 핵심 내용은 퀘이커 사상과 흡사하다”며 “민중신학의 창시자 격인 서남동과 안병무에게 미친 씨알 사상의 영향을 생각할 때, 민중신학과 퀘이커 사상의 만남은 일찍이 이뤄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승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함석헌 선생님은 무교회주의사상과도 오랫동안 관련을 갖고 계셨고, 1970년대에 퀘이커 회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종교적으로 자기 나름의 길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퀘이커 사상을 항상 변해 가는 것으로 정의하지 않는다면 그를 충실한 퀘이커라고 하기는 어렵다. ‘씨알’ 사상은 퀘이커 사상 보다 더 오래 전부터 영글어진 것이 분명하며, 퀘이커 사상과 민중 신학을 연관시키는 것은 흥미롭기는 하나(따라서 학자들이 그런 논구를 할 수는 있으나) 그리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  참고도서 -----
김나미, <이름이 다른 그들의 신을 말하다>, 2005
김남식, <일제하 한국교회 소종파 운동 연구>, 새순출판사, 1987
김성봉, <빈야드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교회와신앙, 1996
김영태, <신비주의와 퀘이커 공동체>, 인간사랑, 2002
이종성, <교회론(1)>, 대한기독교출판사, 1989
함석헌, <현대의 禪과 퀘이커 신앙>, 삼민사, 1985
박성준, “21세기의 문턱에서 민중신학을 다시 생각한다”, <신학사상>109집, 2000
<브리테니커 대백과사전>, 2002  

직접 계시 중시, 교회 조직 거부 "이단성"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보는 퀘이커교

퀘이커교의 이 같은 예배 형태에 대해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개신교 신학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노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성서대학교의 이호우 교수(조직신학)는 “퀘이커는 주관적인 성령의 계시, 임재, 조명을 부르짖다가 교회조직과 성경해석, 성경연구, 심지어 일반적 예배조차 거부한다”며 “이것은 최근 범종교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영성수련과 일맥상통한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성령의 빛 또는 내적 조명을 강조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영성을 계발하고 신(하나님)과의 체험을 이룬다는 측면은 최근 동양철학적인 명상이나 마음 수련 즉, 뉴에이지 운동과 상당히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개인적인 성령의 조명하심도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역사나 교회 공동체에게 임하는 해석적인 측면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신대대학원 최덕성 교수(역사신학)는 “퀘이커교도들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부각되어야 할 것은 신앙의 외형성(externality)에 대한 부정과 내면성(internality)에 대한 집착”이라며 “서양인의 사고양식인 플라톤주의 이원론에 바탕을 두고서 영국교회에 대한 혐오감을 가진 사람들이 외형적인 요소들, 교회라고 하는 조직(헌법, 규례 등), 성찬이라고 하는 물질요소들, 교리나 신학이나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규범들을 거부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규정지었다.

특히 최 교수는 “부패한 지상교회의 조직이 가진 모순과 횡포를 고려하면 이들의 주장이 이해는 된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우리가 연약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에서 외형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성경이 외형적 요소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최 교수는 “로마가톨릭처럼 외적 요소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는 퀘이커교도들의 주장은 합리적인 면에서나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아도, 그리고 ‘역사적 교회’라는 것을 검토해 볼 때도 호소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성서대대학원장 김호식 교수(조직신학)는 “퀘이커는 경험주의적인 신앙노선에서 성경보다 자기들이 직접 받은 계시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면에서 이단이라고 취급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개신교는 66권 성경이 모든 신앙의 궁극적인 기준이라고 믿는다”면서 “퀘이커는 계시의 현장성을 믿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성경과 대등한 종류의 계시를 주신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성경의 정경성을 부인하는 면에서 이단이라고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퀘이커는 성령을 받으면 경련을 일으킨다든지, 신체 구조상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측면에서 빈야드와 오순절 운동과 같은 계열의 ‘성령운동자들’이다”라고 평가절하했다.

김 교수는 특히 “인본주의 신학 즉, 자신들의 이성적인 판단이나 경험을 기준으로 이론을 전개하는 미국이나 남미의 ‘해방신학’이 한국에서 ‘민중신학’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며 “퀘이커교 운동이 현대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퀘이커는 평화주의자’라는 인식에 대해 “평화를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적국이 침략해 올 때 방어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평화주의는 문제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속의 천신기 - 월간<인산의학>【인산가 초대석】이현도 천신기 총재 “인산가 · 김윤세 회장 氣 수치 144 주변의 氣 몰리고 있어 당분간 융성” ( 2019.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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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인산의학>【인산가 초대석】이현도 천신기 총재 “인산가 · 김윤세 회장 氣 수치 144 주변의 氣 몰리고 있어 당분간 융성” ( 2019.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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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상헌 사진 한준호




함양 인산가 기氣 측정한 이현도 천신기 총재

“인산가 · 김윤세 회장 氣 수치 144

주변의 氣 몰리고 있어 당분간 융성”




인산가는 지난해 코스닥 상장으로 죽염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처럼 인산가가 해를 거듭하며 성장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경남 함양에 있는

인산가의 기氣를 측정한 이현도 천신기天神氣 총재가 그 이유를 직접 밝혔다.

.글 한상헌 . 사진 한준호





“기는 첨단 물리학… 가장 높은 수치가 144”

“요즘 인산가의 기운이 가장 좋을 때입니다. 한창 성황을 이룰 때죠. 주변 산천의 기氣가 모이고 있어 지금이 144라는 가장 높은 수치가 나옵니다.”

인산가를 방문해 기를 측정했다는 이현도(80) 천신기 총재는 인산가의 성장 이유가 “좋은 기운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산가 전주지점에서 만난 그는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직접 운전을 하고 다닐 정도로 건강했다. 전국을 다니며 활동을 하는 터라 인터뷰 약속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시간 조정 끝에 어렵게 마주했다.

이 총재는 지난 4월 경남 함양의 인산가를 방문해 그곳의 기를 측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무려 ‘144’가 나왔다. ‘144’라는 수치는 기를 측정해 나올 수 있는 최고치다. 이날 김윤세 인산가 회장의 기도 측정했는데 마찬가지로 144가 나왔다.

“기를 미신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은데 기는 첨단 물리학입니다. 미시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이죠. 기를 측정할 때 가장 높은 수치가 144입니다. 세상 모든 만물에는 기가 있으며 심지어 죽염도 만든 날에 따라 기 수치가 달라요. 144는 기가 가득하다는 것으로 무엇을 해도 다 잘될 겁니다.”

천신기는 초대 총재인 지암 이원홍 박사에 의해 시작된 기를 연구하고 수련하는 모임이다. 144는 《성경》 신약 요한계시록 21장 17절 “그 성곽을 측량하매 144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라는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다. 《성경》뿐만 아니라 단군 관련 기록과 고주몽이 남긴 기록에서도 144라는 숫자가 등장한다고 이 총재는 말했다.





“인산 선생을 누구와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존경하는 김구 선생과

함석헌 선생을 반반 섞어놓은

듯한 훌륭한 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애국정신과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병을 고쳐주더라도 어려운

사람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 등

활인구세를 몸소 실천하신

분이다”


이현도 천신기 총재


“남에게 베풀며 살면 계속 승승장구”

기자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이 총재는 김윤세 회장의 기를 측정해 보겠다며 가슴에서 기 측정기인 엘로드를 꺼냈다.

“지금부터 김윤세 인산가 회장의 기를 측정하겠습니다. 김윤세 회장 ‘기’”라고 외치자 엘로드가 부채꼴 모양으로 활짝 펴졌다.

“20, 40, 60, 80, 100, 110, 120, 130, 140, 141, 142, 143, 144.” 이 총재의 카운트에 따라 안테나 모양의 엘로드가 각도를 좁히며 움직였다. 그리고 ‘144’를 외치는 순간 두 개의 바늘이 서로 겹쳐졌다.

원격으로도 기 측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신기했다. 《신약》 책의 기를 측정했더니 120이 나왔다.

“144는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수치인데 인산가에서 144가 나와 나도 놀랐습니다. 4년 전에 쟀을 때는 89가 나왔거든요. 기 수치가 상승했다는 것은 지금이 인산가의 맥시멈 포인트Maximum Point·최고점라는 것입니다.”

인산가의 기가 상승한 이유를 묻자 그는 “인산가에 가보니 주변 산세의 기운이 그곳으로 모이고 있었다”며 “기가 올라가니 당분간 발전하고 융성해질 것”이라고 했다. 기가 꺾여 하향 곡선을 탈 수도 있으니 지속·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상승기류를 타 성수기에 왔는데 (기가) 잠깐 꺾이면 그때부터 어려울 수 있어요. 최고점일 때 처신을 잘 해야 합니다. 김 회장이 앞으로 봉사활동 등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해요. 기업 경영 외적인 부분에서 남에게 베풀며 살면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겁니다. 내리막길을 걷다가도 다시 기가 올라갈 거예요.

​​

《신약》 책 보고 인산에 매료돼 함양 찾아가서 만나



이현도 총재는 인산 김일훈 선생과도 인연이 깊다. 젊은 시절 삼성 공채 2기로 입사해 서울 본사에서 근무했던 그는 어느 날 서점에서 우연히 《신약》 책을 보고 인산 선생의 일생에 매료돼 직접 함양을 찾아갔다고 한다.

“평소 국가관이 뚜렷해 독립운동하신 분들을 존경해 왔는데 의술도 뛰어나고 독립운동까지 했다고 하니 어떤 분인지 만나 뵙고 싶었어요.”

당시 함양은 멀었다. 물어 물어 찾아간 인산 선생의 작은 집은 병자들로 북적였다. 한참을 기다리고서야 인산 선생을 대면할 수 있었다.

“내가 병 고치러 온 줄 알고 ‘어디가 아파 왔어’라고 묻기에 ‘인산 선생님의 정신을 배우려고 왔습니다’라고 하니까 옷매무새를 고친 후 바로 앉으시더니 ‘이 일을 한 지 20년이 넘는데 자네 같은 이는 처음이네’라며 반가워하셨습니다. 그때부터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일생을 이야기해 주시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죠. 한참을 이야기했는데 옆에서 기다리는 병자들에게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인산 선생을 찾아가 만나 뵈었다고 한다. 인산 선생이 직접 전화를 걸어 함양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인산 선생의 첫인상을 묻자 “나에겐 아주 후덕한 분이었다. 말씀을 참 잘하셨는데 얼마나 따뜻하고 부드럽고 자상한지 모른다. 그런데 병자들이 불의하거나 이치에 어긋나는 말을 하면 바로 호통을 치셨다. 호랑이라는 별명이 딱 맞는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



이 총재는 인산 선생을 만나 배운 것이 많다고 했다.

그는 “인산 선생을 누구와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존경하는 김구 선생과 함석헌 선생을 반반 섞어놓은 듯한 훌륭한 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며 “애국정신과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병을 고쳐주더라도 어려운 사람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 등 활인구세를 몸소 실천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총재는 김윤세 회장도 지금처럼 인산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가에 봉사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베풀며 살 것을 당부했다.

그는 “인산가는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을 위해 죽염을 만드는 회사이니 앞으로도 잘될 것”이라며 “인산 선생의 활인구세 정신을 널리 알리고 실천하는 기업으로 후대에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천신기 天神氣 란


© 우주 공간에 가득 차 있는 모든 파워와 에너지를 ‘기氣’라고 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모든 생물에 들어 있는 기를 ‘천신기God-power’라고 한다. ‘천신기’ 측은 이를 물리학 이론인 양자역학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 개의 세포는 수천 개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고, 원소는 수많은 분자, 분자는 수천 개의 원자로 돼 있다.

원자에는 원자핵이 있으며 그 핵 안에 양성자와 중성자, 원자구름이 있다. 양성자는 ‘플러스 전하’, 전자구름은 ‘마이너스 전하’만 가지고 있고 중성자는 강한 쪽에 붙게 된다. 원자핵 밖에는 전자가 타우Tou라는 소립자로 뭉쳐 있는데, 모두 마이너스 전하만 가지고 있어 서로 떨어지려 한다. 이 움직임을 파동波動이라고 한다. 파동과 파동이 뭉치면 진동振動이, 진동과 진동이 뭉치면 파워가 된다. 파워와 파워가 만나면 에너지가 된다. 파동과 진동, 파워, 에너지를 모두 합해 ‘기’라고 부른다. 기를 서양에서는 ‘파워’ 또는 ‘스핀Spin’이라고 하고, 동양에서는 ‘기’ 또는 ‘회로’라고 한다. 기독교는 ‘성령聖靈’, 불교는 ‘비로자나불’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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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의 즐거움 < 여성현장 < 여성 < 기사본문 - 한국농어민신문

단식의 즐거움 < 여성현장 < 여성 < 기사본문 - 한국농어민신문

단식의 즐거움
기자명 한국농어민신문   승인 2011.11.11 11:54  신문 1823호(2006.01.0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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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위해 굶겠다고모인 사람들…

가벼워지는 몸과맑아지는 정신창자 비운만큼마음도 비워 세상사에 부대끼다보면 자신을 놓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불현듯이 떠 올리게 되는 생각이 하나 있으니 유서 깊은 명언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위해 먹느냐”이다. 못마땅한 일을 견뎌내야 할 때마다 하는 자조 섞인 푸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그런데 살기위해 굶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보다 잘 살기위해 굶겠다는 이 사람들과 나는 두 주째 함께 지내고 있다. 나는 굶지 않고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는 고로 이 무리들 중에서 제일 배부른 사람인 셈이다. 여러 날 굶어 피골이 상접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냄새가 폴폴 나는 만두를 가져가서 먹는 맛은 상상을 초월한다. 전라북도에서 제일 경관이 뛰어난 옥정호를 끼고 서 있는 임실군 환경교육관을 빌려 작년 12월 24일부터 1주일 동안 전국귀농운동본부 주관으로 단식수련이 있었고, 곧이어 대전에 있는 ‘평화의마을’이 주관하는 ‘새해영성단식수련’역시 1주일 기간으로 진행되고 있다. 두 행사에 다 나는 강사로 참여하였는데 우리 집에서 가깝다보니 내가 맡은 시간 외에도 집을 오가면서 여기서 머무는 시간이 많다. 이름 높은 선생님들이 하는 영성강좌는 새해 다짐을 하는데 더 없이 은혜롭다. 함석헌선생님을 모시고 씨알농장에 계셨던 김복관할아버지의 귀한 말씀도 들을 수 있었고 어제는 ‘풍경소리’를 발행하시는 김민해 목사님도 오셨다. ‘생명평화결사 탁발순례’중인 도법스님도 법문을 하셨다. 원광보건대의 요가선생님이 파트너요가를 지도하실 때는 사람들이 굶는 사람답지 않게 생기가 넘치기도 했다. 우리민족의학을 보급하고 계시는 정호진목사님은 사흘 전에 와서 한나절 강의를 했었다. 굶겠다고 모인 사람들은 신분과 지위의 높낮이, 남녀노소를 다 아우른다. 왜 굶는지 이유도 다양하고 참여하게 된 계기도 제 각각이다. 사랑에 실패하고 학교 성적도 형편없어진 어느 고등학생은 마음 좀 추스르기 위해서 왔다고 하여 참석자들을 배꼽잡고 웃게 했다. 첫사랑도 아니고 두 번째 사랑이란다. 이제 고 1인 그 남학생은 단식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자주 다투기만 하던 엄마와 꼭 화해하고 싶다고 했다. 중3인 여학생도 있다. 작년에 문경으로 귀농한 후배 부부도 여기서 만났다. 도시형 대안학교인 ‘이우학교’ 학부형을 만나 아는 사람들의 안부를 두루두루 주고받는 시간도 즐겁다. 전교조 현직 교사가 몇 분 계셔서 아이들 교육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뜻을 세우고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끊어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일들을 만나게 된다. 이때 명상과 행공을 하면 가벼워지는 몸과 맑아지는 정신은 기본이고 세상일들이 투명해진다. 마음을 비우기 위한 방법 중에 창자를 비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친구 중에서도 제일 끈끈한 친구는 배곯을 때 함께 한 친구라 하지 않던가. 한 두 끼도 아니고 며칠씩이나 배를 쫄쫄 굶어가며 맺은 인연들은 값진 삶을 살아가는 동반자가 되리라.
한국농어민신문webmaster@agrinet.co.kr

고도원의 아침편지 - 사람과 역사 선무도는 선요가, 선호흡, 선기공, 선무술, 함께 수련

고도원의 아침편지 - 사람과 역사








2018.3.8.목







사람과 역사
가슴속에는
항상 타오르는 불덩어리를 품고,
마음은 형용할 수 없는 것에 목이 말라 하며,
무엇을 추구하는지, 어디로 어떤 모색을 하는지,
그러나 몸은 구르면서, 걸리면서,
넘어지고는 또 일어나며,
일어났다간 또 넘어지는
것이 사람이다.
역사다.


- 함석헌의《뜻으로 본 한국역사》중에서 -


* 앞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넘어지고, 일어서고, 구르면서, 걸리면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러나 목표와 방향이
뚜렷해야 합니다. 무엇을 추구하는지, 어디로
가고자 하며,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색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이고,
역사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목표
#방향
#사람
#역사
#불덩어리
- 옹달샘 '선무도 워크숍'(6기) 신청 안내 -



내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건강과 행복을 안겨다 주는 중요 요건입니다.

선무도는
선요가, 선호흡, 선기공, 선무술,
이렇게 정적인 부분과 동적인 부분을
함께 수련하여 몸과 마음의 조화를
이루어가는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수련입니다.


이번 선무도 워크숍 6기에서는
'균형'이라는 주제로 선요가(오체유법)와
선호흡을 중점으로 진행하며, 조화로운 몸짓인
선무술(무예)을 함께 경험하시게 됩니다.

'선요가'(오체유법)는 우리의 몸을
머리, 등, 배, 팔, 다리 이렇게 다섯 군데로 보고
이 오체를 유연하고 부드럽게 만들어가는 수련입니다.
선요가의 한 동작 한 동작에 집중하다 보면
내 몸의 균형을 알아가고 맞춰가는 것을
저절로 경험하시게 될 겁니다.

그와 함께 '선호흡' 수련은
일상에서의 긴장, 스트레스로 인한
불규칙적이거나 균형이 흐트러진 호흡을 바라보고
안정시켜 마음 또한 맑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수련법입니다.

호흡, 몸의 균형을 찾으면
1) 기혈순환이 원활해지고
2) 차가웠던 손, 발, 아랫배가 따뜻해집니다.
3) 내 몸의 따뜻함은 심신의 안정을 찾게 해주며
4)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회복해는데 도움이 됩니다.

수련을 하면서 고요히 멈추고(止)
바라보면서(觀) 몸의 굳어있는 부분을 찾고
선요가와 호흡으로서 균형을 맞춰가며, 우리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조화로운 몸짓인 무예까지...
선무도 워크숍에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 옹달샘 '선무도 워크숍'(6기) 신청 안내 -

* 참여대상: 선무도에 관심있는 초등학생 이상 남녀 누구나
* 일정: 3월23일(금)~25일(일) 2박3일
* 참가비: 28만원(1인 기준)
* 참여방법: 아래<옹달샘 '선무도 워크숍' 신청하기>버튼이나
옹달샘 홈페이지에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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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있는 인생 함석헌 『너 자신을 혁명하라』

보람있는 인생 함석헌 『너 자신을 혁명하라』


좋은 글
보람있는 인생 함석헌 『너 자신을 혁명하라』by 일신우일신 도생 2019. 8. 18.


보람 있는 인생(人生) - 함석헌 『너 자신을 혁명하라』 中














실천적인 삶, 행동하는 삶을 살았던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통해 '존재와 삶의 변화'를 전한 책입니다.





『너 자신을 혁명하라』의 엮은이 김진이 함석헌 선생의 글을 책을 내면서 선생의 글이 책을 읽는 사람 모두에게 인생의 생명수가 되어 오롯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지치고 피폐해진 영혼을 적셔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습니다.





정치인, 종교인, 학자 등 모든 민중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개혁하고 실천적인 사회변혁과 혁명을 통해 자신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보람 있는 인생을 위한 자기성찰의 글을 모은 책입니다.

























함석헌 선생이 말씀한 명상은 씨알 선생이 독창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기도, 불교의 참선, 도교의 수련 등과 같은 것으로 자기성찰을 통해 자신의 근본적인 변화를 시작으로 민중이 주인이 되어 시대적 변화의 사회혁명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제시하여 보람 있는 인생을 제시한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장처(長處)와 단처(短處)가 있기 마련인데, 함석헌 선생은 명상을 통해 나의 장점과 단점을 꿰뚫어 보고 단점은 혁명하고 장점은 더 극대화하는 실천적인 삶을 통해 나와 사회혁명을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던져준 화두(話頭)는 사회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모든 문제의 근원을 자신의 문제로 보고 어지럽고 뒤엉켜 있는 몸과 마음을 해방하는 혁명을 하라는 것입니다.







『너 자신을 혁명하라』는 부담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면서 깊이 있게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책으로 씨알 함석헌 선생의 명상집을 엮은이가 주관적으로 편집한 책입니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의 여러 글을 읽는 독자에 따라 평가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함석헌 선생의 가치관과 선생이 우리에게 던져준 메시지를 느끼는 데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입니다.























『너 자신을 혁명하라』

우리 현대사의 독창적인 사상가 씨알 함석헌 선생의 글





생(生)은 그저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생물은 몰라도, 적어도 인생(人生)은 방향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다.

왜 사느냐가 문제다.





그리고 그 조건을 결정하는 것이 보람이다.

그럼 보람은 어디서 오나?

문화라는 것이다.

문(文)이 있어야 보람이 있다.





생(生)은 바탕이다.

비단이 아무리 고와도 무늬를 놓아야 정말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생(生)도 그렇다. 생이 귀하지만,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는 그 뜻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 생을 써서 무슨 뜻을 드러내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그 생이 보람이 있어진다.





뜻은 무슨 뜻인가?

뜻은 하나다. 영원이다. 무한이다. 참이다. 하나님의 뜻이다.

그것을 하는 것. 나 아니고는, 내 뜻 아니고는, 문은 있을 수 없다.





땅 위에 금을 긋고 물 위에 돌을 던지듯이, 자연 위에 금을 그어 뜻을 드러내는 것은 나의 뜻이라는 끝이다.

그것은 글월이라, 그림이라 한다.

내 뜻을 써서 '그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출처: https://gdlsg.tistory.com/1023 [이도경세 이의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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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5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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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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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평전을 읽고

The Ch5 Studio


함석헌 평전을 읽고 작성일 2005-11-04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나에게 매우 큰 영향을 주었던 책이 4권 있다.

첫번째 책은 솔로몬의 저서로 알려진 서양 성경책에 수록된 "전도서".
나의 10대 시절에 지대한 영향을 준 기독교의 영향 탓이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그 첫 구절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음악을 가까이 접하기 시작하면서 접하기 시작한
서양의 미학과 관련된 책들... 그 중에서 거의 필이 딱 꽂힌 책이
바로 톨스토이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톨스토이의 유명한 저작은 아니지만
당시에 이 책이 주었던 영향력은 대단했다.
한마디로 예술한답시고 개폼 똥폼 잡는 게 오히려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없고,
나아가 참된 예술은 단순하고 소박한 것 안에 있다는 얘기.
논리 정연한 듯 보이기는 하되 정작 내용이 공허한 여타 미학책들과는
그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고, 논리를 넘어선 어떤 아우라(aura)를 느끼게 된다.

그 다음으로는 "도덕경"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도덕경은 서양 철학책처럼 말 자체가 어려운 책은 전혀 아니다.
도덕경은 간결하다.
그렇기 때문에 도와 덕을 말하는 데 그토록 자연스러울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톨스토이란 분이 원래 도덕경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니
내가 도덕경을 전혀 몰랐던 상태에서도 톨스토이의 글을 읽고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 또한 이러 저러한 사정을 알게 되니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그리고 이 책으로 인해 정신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느껴
몸 수련으로서 무술을 시작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껸에 이어 태극권을 하게 된 이유 또한 도덕경의 영향을 배재할 수 없다.

도덕경을 몸으로 알고자 하는 것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말할 수준은 결코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는 곳에
'길'이 있으리라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 책은 "금강경"이다.
이 책의 내용은 내가 거의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어떤 어렴풋한 이미지로 상상만 해 볼 뿐이다.
그러나 한가지... 강을 건넜거든 그 강을 건너기 위해 사용했던 뗏목을 버려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늘 염두에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연 내가 오랜 세월 갈고 닦은 그 무언가를 뗏목을 버리듯 과감하고
미련없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을지 나의 미래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김성수 지음의 "함석헌 평전"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깜짝 놀랐다.
그냥 기독교 교회의 목사님 같은 분인줄로만 알았는데
기독교로부터의 지대한 영향, 톨스토이의 사상, 유교 경전 및 도덕경 그리고 불경...
우연하게도 내가 영향을 받는 사상의 궤적과 거의 일치된 삶을 살다 가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기가 통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와 동시에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최소한 잘못된 길은 아닌가 보다는
안도감도 생긴다.

그의 평전으로 인해 기독교 중 퀘이커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고,
왜 한국의 교회가 그토록 지나친 친미 성향을 갖게 되었는지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된다.
여러가지 복잡한 시대적 상황이 얽혀 있으므로 짧은 글로는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없지만 어쨌든 일제 시대의 기독교는 전통적 유교 관습을 탈피할 수 있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였던 것 같고, 게다가 미국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관계로
일제의 간섭을 받지 않는 상당히 드문 조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뛰어난 사상가였을 뿐만 아니라 일제를 거쳐 한국의 여러 독재 정치를 거치는 동안
그가 보여준 행보 또한 깊이 머리를 숙이게 된다.
이런 인물을 여지껏 내가 이름만 간신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다.
함석헌이야말로 내가 생각해 왔던 바로 그런 기독교인인 것 같다.
기복신앙적 요소와 재정적 부패, 유일신 사상을 기본으로 한 원리주의에 의해
독단으로 치달아 버린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잣대로는 그를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함석현 평전에 두어번 반복해서 나온 듯 하여 기억에 남은 구절로
"평화는 할 수 없다고 안하고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어도 해야 하고 할 수 없어도 해야 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개인의 입장에 따라 여러가지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한 말이 될 수 있을텐데
나는 이 말을 자신이 가려는 길의 최종 목표에 마음을 둘 것이 아니라
길을 가고 있는 그 순간 순간에 집중하고 늘 깨어 있는 정신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것이 정신을 자주 잃고 본질이 아닌 곳에 정신을 쉽게 빼앗기곤 하는
나에게 당장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48] 난초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48>

난초

김지하 시인 | 2003-03-20

나는 난초를 '그리지' 않는다. '친다.' '침'은 '그림'과 달리 몸으로 보자면 일종의 '기운갈이'다. 땅인 왼손은 방바닥을 짚고 하늘인 오른손은 허공에 자유롭게 놔두어 사람인 몸과 마음의 중심 기운이 종이의 공간 위에 '신중'하고 '진득'하면서도 '가볍고' '날렵하게' 순간순간 뻗어나가게 하는 것이 바로 치는 것이다. 
그래서 '난치기'가 일종의 기수련(氣修鍊)이 되는 것이니 '사군자'라 이름하고 '먹참선'이라 높여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십여 년 전 그 무렵 이 '먹참선'을 내게 권한 분이 바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니 선생 자신이 난초치기를 하나의 수련으로 생각하시는 서예가였던 것이다.


"내가 말이야. 5·16 뒤에 3년간 옥중에 있다 나왔더니 말일세. 이상해! 좌불안석이야. 어디서 부르는 데도 없는데 갈 곳이 많단 말이지.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이 사람 만나 떠들고 저 사람 만나 떠들고 난리지. 난리야! 그러니 실수는 따놓은 당상이지 뭘! 그래 가만히 생각해보는데 그때 내 스승이신 차강(此江) 선생의 가르침이 기억난 거야. 그럴 땐 난초를 치라는거지. 그리지 말고 쳐라! 난초를 치면 여러 시간을, 때론 하루 이틀을 꼬박 궁둥이를 방바닥에 붙이게 돼! 그리고 '기운갈이'를 해서 마음이 텅 빈 가운데 난초만 계속 집중하게 된단 말이야! 그러니 어딜 가도 오래 있질 않게 되고 집에서 은둔하는 날이 많게 되지. 말도 적어지고 말이야. 난초가 잘 되면 친구나 후배들한테 나눠주고 잘 안 되면 될 때까지 치고……. 알아들었나? 그걸세!"

물론 나는 대학에서 사군자를 배웠다. 그러나 '먹참선'으로서의 난초치기를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선생님은 또 이런 말씀도 하셨다.

"자네는 쉬운 일은 재미없어 못해. 그러니 사군자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난초부터 하는데, 난초 중에도 제일 어려운게 표연란(飄然蘭)이야. 바람에 흩날리는 난초지. 청(淸)나라 때 난초명인이 정판교(鄭板橋)란 이인데 그이가 왈, '표연일엽 최난묘(飄然一葉 最難描)'라 했어. '바람에 흩날리는 한 잎이 제일 묘사하기 어렵다'란 말인데 이때 한 잎(一葉)은 장엽(長葉), 가장 긴 이파리를 뜻하지.

난초는 이 긴 이파리부터 치는 거야. 이것이 바람에 흔들리게 하려면 '삼절(三折)'을 써야 돼. 삼전(三轉)이라고도 하지. '세 번 휘어진다'는 뜻인데 가느다랗다가 굵었다가 다시 가느다랗게 세 번 변하는 걸 말해! 바람에 흩날리는 느낌을 주지. 이게 좀 어려운데 이걸 해야 자네가 흥미가 붙을 걸세! 어려운 것부터 해서 쉬운 쪽으로 가란 말이야!"


표연란!

나의 표연란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표연란의 핵심은 운동과 위상을 동시에 측정 못한다는 불확정성원리에 거꾸로 가닿아 있다. 불확정성은 상상이나 직관에 의해 넘어설 수밖에 없으니 바람과 난초를 동시에 포착하는 것이 바로 예술로서의 표연란이며 표연란을 '바람의 항구'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부르는 곳 없는데 갈곳이 많다?

이 사람과 떠들고 저 사람과 떠들고?

실수는 따놓은 당상이라?

실수가 뭘까?

제1군사령부의 대령들이 경고해온 '다시 행동'이나 '다시 모의' 같은 게 아닐까? 더욱이 부르는 곳이 없는 게 아니라 부르는 곳, 즉 반정부조직의 수괴로 취임하라든가 대학에서 데모 직전에 선동연설을 하라든가 이렇게 부르는 곳이 많고 또 많았으니 거기에 일일이 응하다가는 뼈도 못 추리게 생긴 것이 그 무렵의 나의 상황이었다. 문제는 내 스스로 거길 가야 한다는 공연한 책임감에 붙들려 있음이었으니.

아아! 절집이나 산으로 가는 길도 막혀버린 속에서 난초 이외엔 내 마음을 잡을 길이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선생님이 주시는 종이와 붓과 먹과 벼루들 앞에 곧게 앉아 곧바로 '먹참선'을 시작하였다.

몽둥이 아니면 긴 작대기든가 뱀이었다. 그것은 난초가 아니었다.

잘 돼서가 아니라 잘 안 되어서, 그러나 그렇게 몇 시간이고 안 되다가 문득 난초 비슷한 선(線)이 나타나기도 해서 안달이 나 내내 포기를 못하고 더욱더 달라붙게 되는 그 이상한 집착의 날들이 시작되었다.

따로 떨어진 별채의 내 방에는 그뒤로 불켜진 밤이 많아졌다. 밤새 난초를 치다가 새벽 푸르름이 창호지에 묻어올 때 눈앞에 펼쳐진 텅빈 종이의 허공 앞에서 말라르메의 흰 원고지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과 괴로움, 그러나 기이하고 기이한 웬 향기가 얼풋 코끝을 스치는 그런 밤샘의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때론 희한하게도 멋들어진 잎사귀나 꽃들이 불현듯 나타났으니 그럴 땐 벌떡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덩실덩실 혼자서 춤을 추기도 여러 번이었다.

선생님이 가끔 오셔서 중요한 대목대목을 지도해주셨으니 시간이 흐르면서 내 난초는 어떤 꼴을 틀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괜찮다는 인가를 받은 뒤부터 벗이나 후배들에게 선물로 주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소문이 나서 민주화운동에 필요한 자금이나 사무실 비용을 염출하는 데에 내 난초를 팔아대는 것이 한 유행이 되었다. 그래 한꺼번에 열 장, 스무 장씩 쳐야 했다.

치는 것 자체가 피곤하기도 했지만 신경쓰이는 것은 그렇게 몇십장씩 가지고 가서 판 대가로 돈을 마련한 뒤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그 친구들이 내뱉는 비아냥이 즉시즉시 내 귀에 들어오는 일이었다. 그 무렵 원주는 이미 민주화운동의 전전선에 걸친 사통팔달의 허브 지역, 혹은 메카가 돼 있었던 것이다.

"제가 언제부터 선비가 됐다고 난초야, 난초가……?"

"우리가 도움받는 건 사실이지만 그 친구 이젠 완전히 반동이 됐어. 지가 무슨 양반이라고 난초야 난초가……?"


몹시 화가 나서 술을 퍼마시는 내게 선생님은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다.

"좋은 일 하는 것을 남이 알아주는 순간, 그 좋은 일은 이미 대가를 받는 것일세. 욕을 좀 먹게! 그러면 자네가 한 일이 하늘에서 표창받게 되네."

그 무렵 나의 견인력은 아마도 선생님 덕이 제일 클 것같 다. 인내, 또 인내! 나의 견인을 표현한 '코믹 달마(達磨)'도 많았으나 사람들은 못 알아보았다. 나는 난초 이외에 내 스타일로 변형된 달마, '코믹 달마'도 치게 되었으니 난초보다 도리어 그것이 더욱 인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난초와 달마가 안 간 데가 없었다. 국내의 도시, 도시들은 물론, 일본, 미국, 유럽에까지 안 간 곳이 거의 없었으니 치기도 어지간히 많이 쳤던 것같다.

언젠가 창작과비평사 사무실에서 고인이 되신 민병산(閔丙山) 선생을 뵈었을 때 그이는 거의 잡초나 다름없는 나의 초기 난초를 올려다보며 왈,

"아주 많이 많이 남들에게 주어도 시간이 흐르면 조금밖에 안 남는 게 그림이야. 많이 그려서 많이 주게나! 그러면 늘어! 어쩔 수 없어서 자꾸 그려주다 보면 저도 모르게 기량이 는단 말일세. 알겠는가?"

김지하 시인

무위당 장일순 [지리산생태 영성학교] 여류 이병철 선생님 편지와 알림내용

무위당 장일순


[지리산생태 영성학교] 새해 맞이 정화와 축복 일정 알림
여류 이병철 선생님 편지와 알림내용


나마스테, 어느새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군요. 그간 평안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갑짝스런 제 메일을 받고 의아한 분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이렇게 한꺼번에 몇분들께 메일을 보내보기는 처음입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몇 분 도반들과 함께 몇 년 전부터 제가 스승으로 모시는 분의 권유에 따라 "지리산 생태영성학교(처음엔 지리산 마음학교)"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해까지는 이 학교의 이름으로 한겨레신문사와 함께 부정기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습니다. 한겨레신문사가 홍보를 맡고 저희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형태였지요.

그런데 그런 형태의 진행방식이 저희 운영 취지와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부터는 그냥 인연에 따라 흘러오고 있는데 이번에 새해맞이를 위한 '정화와 축복' 프로그램을 다시 마음 모아서 진행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문제는 이 프로그램을 알릴수 있는 적당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생각나는 몇 분들께먼저 메일을 보내서 좀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이 메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새해맞이 비움의 잔치라는 이름으로 공동단식이라든지 또는 한겨레와 함께한 새해맞이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 왔는데 이번에는 이를 좀 보완하여 새로운 한 해를 새롭게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몸과 마음을 함께 정화하고 축복하는 내용으로 만들었습니다. 제 단순한 생각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무엇을 새롭게 배우고 익힌다는 것보다는 좋은 마음을 품은 좋은 인연들이 함께 모여 한해를 보내고 보다 밝고 맑은 마음으로 새해를 함께 맞이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더 소중한 의미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혹시 지인들이나 주변에 인연이 닿는 분이 계시면 이 프로그램을 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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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생태 영성학교] 새해 맞이 정화와 축복 일정 알림


새해맞이 정화와 축복

지리산생태영성학교는 지난 한 해를 고맙게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생기있게 맞이하기 위한 새해맞이 정화와 축복'의 과정을 마련했습니다.

◈ 새해맞이 정화와 축복에서는 몸과 마음을 함께 닦아온 옛 선인들의 성명쌍수(性命雙修) 공부법을 바탕으로 밝은 에너지 속에서 즐겁고 기쁘게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정화합니다.

- 밝은 에너지 속에서 서로를 섬기고 모십니다.

- 몸을 비우고 맑게 하는 정화의 음식으로 함께 합니다.

- 선가의 기공, 보법 등 몸을 맑히고 틀을 바르게 짜는 수련을 합니다.

- 빛과 사랑의 명상법을 중심으로 합니다.


- 지리산으로 이어 흐르는 덕유산 화림동 계곡의 맑은 기운과 빼어난 풍광과 함께 합니다.

(화림동계곡은 해발 1,508m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강 상류 금천이 서상-서하를 흘러내리면서 냇가에 기이한 바위와 담과 소를 만들고 농월정에 이르러서는 반석위로 흐르는 옥류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팔담 팔정의 우리나라 정자문화의 메카입니다.) - 다볕자연학교의 새로 지은 쾌적하고 따뜻한 한옥 숙박시설을 사용합니다.

⊙ 주요내용

첫째 날 : 내려놓기(맞이하기/몸 추스르기/맛사지/비우고 내려놓기/절하기/감사하기/촛불기도)

둘째 날 : 정화의 장(화해와 용서)/감성 일깨우기풀어내기/몸 추스르기2/빛 밝음 명상1/비우고 내려놓기 2/화해의 언덕/보법 산책/용서청하기

셋째 날 : 치유의 장/몸 추스르기3/빛 밝음 명상3/치유명상/보법 산책/자비의 손/몸에 말 걸기

넷째 날 : 깊은 만남, 새해 설계/몸 추스르기4/빛 밝음 명상4/보법 산책/깊게 만나기/축제/새해소망 나누기/ 촛불의식

다섯째 날 : 새해맞이, 사랑과 축복/세배/미소명상/기도문, 만트라 작성하기/가슴열기/만트라 나누기/서로 축복하기/감사와 축복


◈ 때

2012년 12월 28일(금) 늦은 2시부터 2012년 1월 1일(화) 늦은 2시까지(4박 5일)

◈ 곳

다볕자연학교(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858 /봉전길 62)

//dagreen.or.kr .055-964-3773, 010-4029-3398, 070-4159-3773

◈ 참가비: 30만원 기준(계좌번호 : 농협 351 0339 8022 03 예금주 정현숙)

참가신청(메일, 댓글, 전화 등)하시고 입금해주시면 됩니다.

◈ 준비물: 가볍고 편안 옷, 바람막이 옷, 세면도구, 속옷. 필기구, 개인 컵

지리산생태영성학교 070-8867-0680, 010-9320-6751, 011-9823-6260

작성자정견 등록일2012.12.10 조회수1707

무위당사람들 [66호] 지나온 10년 앞으로의 10년

기획 - 내용보기

 [66호] 지나온 10년 앞으로의 10년
등록자 교육담당등록일자 2019.02.14
IP 59.29.x.153조회수 951

진행_원상호 편집위원장
 
참석_성락철 무위당사람들 이사장, 황도근 무위당학교장, 심상덕 무위당기념관장,
       김찬수 무위당사람들 기획관리이사, 장동영 무위당학교 운영위원장,
       박설희 무위당사람들 사무국장, 황진영 무위당사람들 사업팀장
 
정리. 편집위원회
 
 
“이때까지 추구한 게 의미가 없으면
소리 없이 버려야 한다.
10년을 쌓았건 20년을 쌓았건
그게 모래성이라는 걸 알았으면
허물 줄도 알아야 한다.
집착(執着)이 병통(病痛)이다.”
-무위당 어록 중에서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이 올해로 법인 설립 10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잘한 일도 많았지만 미숙했던 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추구한 것이 의미가 있고 모래성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면 앞으로의 10년도 묵묵히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 일꾼들이 지난 1월 17일 무위당기념관에 모여 지나 온 10년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보며 비전을 공유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10년이 그랬듯 앞으로도 무위당 선생님의 사상과 삶의 실천 방식 등 기본 정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생명과 평화, 협동, 연대의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중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지나 온 10년의 성과와 성찰
 
진행자
: 안녕하세요. 어느덧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이 법인으로 전환된 지 10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선 지나 온 10년을 돌아보며 성과와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성락철 이사장
: 무위당 선생님은 생전에 당신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후학들이 그 말씀을 따르느라 10여 년을 허비한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선배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속상한 일도 많아요. 협동운동과 생명운동으로 한정해 놓고 일을 한 것 같다는 말입니다. 사실 선생님은 생명운동, 협동운동보다 훨씬 더 큰일을 하신 분이죠.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했어요. 신협운동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단 말입니다.
 
제가 예전 어느 날 선생님을 찾아가서 투정을 부릴 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야, 이놈아, 신협운동이 너 그렇게 우습게 보이는 게 아니다. 신협운동을 통해 민주화 교육을 시키겠다는 말이야”라고요. 박정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게 데모한다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며 농촌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신협 조합원들에게 민주화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것이 하나로 귀결돼 민주화가 되어가는 과정의 그림을 그리신 겁니다.
 
표면적으로 선생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절에 신협운동을 하신 거예요. 선생님은 생명운동, 협동운동, 한살림 운동만 한 것이 아닌 거죠.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그 밑에서 일했던 분들도 암암리에 와서 지도받고 그랬어요. 그 일들을 모두 기록해 놓은 분도 계시고요. 올해부터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부분을 좀 더 알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올해 가장 중요하게 해보고 싶은 사업으로 지학순 주교님과의 관계를 재설정해 발굴하고, 기록하고 알리는 부분입니다. 민주화와 관련된 아주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기록한 분이 기록물을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장동영 운영위원장
: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에 대해 원주 내에서는 소위 ‘그들만의 리그’라거나 ‘좌빨’이라는 등의 인식이 남아있는 것 같아 이를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할지 고민입니다. 최근에 어떤 회의에 참석했는데 그중 비중 있어 보이는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무당인지 무위당인지 아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왜 이렇게 비중 있게 다루냐”고요. 조금 당황스러웠고 이 말을 들으니 고민도 많이 됐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말입니다. 슬기롭게 잘 풀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무위당학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교육과 관련해 말하고 싶습니다. 무위당학교가 지금보다 좀 더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이 역시 고민을 많이 해야 될 것 같아요. 무위당 선생님은 담론을 많이 이야기 하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신협에 들어와서 보니까 필요할 때는 담론을 던지셨지만, 어떤 사안을 풀어가는 데 있어서는 무위당 선생님과 지학순 주교님이 굉장히 치열하고 섬세하게 고민을 하셨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부분을 못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부분에 좀 더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외부에서 볼 때 무위당사람들에서는 담론만 던지고 있지 않느냐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무위당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실패하더라도 만들어가고 개척해나가는 것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바람이 있습니다.
 
황도근 무위당학교장
: 지나 온 10년을 뒤돌아보면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이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무위당만인회는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전국적으로 화두를 던졌다면 무위당사람들은 뒷일을 거의 다 했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분이 동주 심상덕 선생님입니다. 서화 전시회를 위한 서포터 기관일 정도로 열심히 하셨습니다. 무위당사람들 최고의 일 중 하나는 2009년부터 전국 전시회를 다니며 서포터 역할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 역할이 지금의 무위당사람들이 존재하는 기본 동력이라고 생각됩니다.
 
지역은 늘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미움도 사랑도 바로 옆에 있듯이 말이죠. 지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지만,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서화 전시회가 가장 큰 성과 중 하나고 이와 함께 무위당 서화자료집을 낸 것은 지난 10년 무위당사람들의 가장 큰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이 생기면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것이 바로 무위당학교입니다. 무위당학교는 원주에서 제법 자리잡는 데 성공한 것 같아요. 서화전시회는 전국에 알리는 데 성공했고, 무위당학교는 원주에서 인식을 바꾸는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운영위원들의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 분들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무위당 모임이 지역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가 된 것 같아요.
 
무위당학교는 앞으로도 지역 사람들을 위한 소통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정적인 일처리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의 초창기 행정은 약간 뒤죽박죽이었어요. 예산도 1억이 좀 안됐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산이 2억 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예산이 더 급격하게 늘어날 가능성이 많아요. 지금까지 무위당사람들의 사무국이 힘들었던 것은 대외적인 일과 내부 행정을 동시에 하다보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무위당사람들 사무국은 일하기 굉장히 어려운 곳이라는 겁니다. 전국 단위로 일을 해야 하고, 어르신도 모셔야 합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은 사무국에서 일하는 국장님이나 실무자 분들이 꿋꿋하게 잘 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점을 지적할 수도 있지만 잘한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우리 스스로 서로 칭찬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심상덕 관장
: 이제 곧 무위당 선생님 25주기를 맞이합니다. 매년 기일 행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사무국 직원들이 외부에서 치러지는 1박 2일 행사 때 반드시 동행했으면 좋겠어요. 하루를 같이 묵고, 먹고,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분들과 잘 알게 됩니다. 다른 행사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무위당 선생님 기일 행사 때 손님이 오면 사무국 실무자들이 외부 손님 3분의 1은 모르는 것 같아요.
 
공식적인 명함을 가지고 있는 분이야 당연히 알겠지만 그 외에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거든요. 밖에서 1박만 해도 그 주변 사람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무위당 선생님은 생전에 어떤 손님이 오시든 사람들을 불러 인사 시키고, 함께 동행하고, 식사하고, 잠도 여자는 여자 집에, 남자는 남자 집에 모셨어요. 그 다음날 아침도 될 수 있으면 댁에서 대접하고, 그것이 안 되면 함께 모여 해장국을 먹기도 했죠. 이런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끈끈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이 싹틀 수 있었던 거죠. 그 덕분에 우리도 어디를 가면 그 분들이 똑같이 대접을 해줘요. 어디든 그분들이 계시는 곳을 가면 내 집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잘해주시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해주는 분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라도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원주에 오겠다고 전화가 오면 재워주고, 밥을 대접하고, 숙박 장소도 알아봐 주고, 그곳으로 직접 모시기도 하고 그래요. 손님이 오면 다른 건 못해도 두부와 묵, 막걸리를 싸들고 찾아갑니다. 그러면 굉장히 좋아하고 잊지 못하는 거예요. 이런 역할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찬수 기획관리이사
: 김정남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국에 내로라하는 독립운동가와 유명한 인물에 대한 기리는 모임도 있고, 기념사업회도 있지만 전국에서 가장 활발하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 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위당사람들 10년의 성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1세대 어른부터 같이 일하는 이사님, 실무진들의 자기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다른 이사님들보다 무위당사람들에 합류를 굉장히 늦게 했습니다. 원주의 여러 단체에서 같이 일하자고 했는데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무위당 선생님 일은 친한 친구가 핵심적으로 하고 있어서 합류하게 됐습니다. 제가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까 인물에 대한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어요. 무위당 선생님은 굉장히 콘텐츠가 풍부한 분이셨고 저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한테 늘 이야기 합니다. “원주는 앞으로 무위당 선생님 때문에 먹고 살 거다”라고 말이죠. 왜냐하면 스토리텔링이 무궁무진할 뿐 아니라 무위당 선생님은 우리 현대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나 감옥 생활, 민주화 등 거의 모두 우리 현대사와 관여가 돼 있어요. 이것은 원주로서 큰 유산입니다. 이런 사실을 원주사람들이 아직도 인식을 못하는 것 같아 굉장히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 다음 정말 잘해온 것을 저는 세 가지로 봅니다. 첫 번째가 무위당사람들 소식지인데요. 김삼웅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이분은 무위당사람들 소식지가 없었다면 무위당 선생님 평전을 못 썼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안에 무위당의 역사를 비롯해 인터뷰와 글을 보면 다 들어 있다는 겁니다. 소식지에 대한 평가를 굉장히 좋게 해주더라고요. 첫 권부터 봐도 몇 장 안 되지만 굉장히 내공이 깊은 소식지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4년 동안 편집장을 하면서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소식지에 대한 일만 했어요. 매일 말입니다. 그 정도밖에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또 하나는 역시 서화 자료집에 대한 겁니다. 지난해 심상덕 관장님을 따라 다녀봤는데 저 같으면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작품이 있다는 소리에 생판 모르는 집 찾아가서 초인종을 누르는 일을 10년 넘게 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에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죠. 마음속으로 정말 존경하고, 누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해내신 것이라고 봅니다.
 
다음은 무위당학교입니다. 저는 인문학아카데미 같은 것을 예전부터 추구해왔는데요. 무위당학교 일을 하면서 ‘무위당 선생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교육 이념을 실현하는 굉장히 좋은 학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건도 안 좋고 하다 보니 봄· 가을 두 번 정도밖에 할 수 없습니다만 거기에 최선을 다했어요. 실무자나 담당자는 굉장히 어려웠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10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진행자
: 지금까지 지나 온 10년을 뒤돌아봤습니다. 무위당 선생님이 한 많은 일들 중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분야가 없어 안타까웠다는 말씀도 있었고요. 또 외부 인사에 대한 모심의 역할을 하는 분들이 없어 아쉬웠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무위당학교가 좀 더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제안과 서화집 발간의 큰 결과물에 대한 성과, 전국 전시회를 통한 전국화에도 기여했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고생한 사무국의 실무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지금부터는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황도근 교장
: 서화 전시회 등 10여 년을 노력해서 얻은 큰 자산을 가지고 앞으로의 10년은 패턴이 좀 달라져야 될 것 같습니다. 전시회 등의 스타일보다 무위당의 사상과 접목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영상도 있을 수 있겠고요. 그렇게 전환하는 시기가 올해부터 진행됐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올해부터는 전시회를 열거나, 무위당 선생님을 소개할 때 서화만 가지고 이야기하지 말고 더욱 다양한 형태로 모든 행사들이 진행되었으면 해요. 무위당 선생님의 사상과 시대정신, 미래에 대한 비전 등 다양한 형태로 말입니다. 심상덕 관장님을 중심으로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새롭게 디자인할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아닌 새로운 사람이 주관하게끔 무대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보는 시각이 다르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디자이너를 통해서 제2의 전시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면서 세 가지 정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무조건 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조직이 커지면 돈과 명예, 두 가지가 다가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조직이 커지고, 생명협동교육관이 생기고, 국가 예산도 받으면 상당한 명예가 걸린 일이 되어버리죠. 이 때문에 내부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 무위당 선생님의 기본 정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외부에서 볼 때 무위당 선생님 자체보다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 안에서 일하는 실무자를 쳐다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내부 수련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정기적으로 내부 토론회를 자주 해서 스스로 다져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부 실무자들이 외부로부터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무조건 새사람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려 있는 조직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무위당 선생님의 정신운동, 사상운동이 퍼져나가는 것이 중요하니까 누가 오더라도 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중심축은 흔들리지 않아요. 왜냐하면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에는 어르신들이 있으니까 결코 흔들릴 조직은 아닙니다.
 
세 번째로 10년을 기획하는 분들은 과거 관성을 바꾸려고 해야 합니다. 어른들이 했다고 해서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이 그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끔 열려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밖에서 많은 지원을 받더라도 공격을 받지 않아요. 무위당 선생님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끼리의 리그가 안 되게끔 하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끼리 리그를 하다가 정치상황이나 외부 환경이 바뀌었을 때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무위당학교는 지금과 같이 시민강좌로 가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대안교육이 되어야 해요. 앞으로 모든 교육은 무너질 것이기 때문에 무위당학교를 사회화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국을 모두 네트워크화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지역마다 대안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과 새롭게 연결하고 연대해서 큰 흐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상덕 관장
: 무위당 서화집이 8집까지 나왔어요. 올해는 1집에서 8집까지 작품이 나오게 해준 소장자들을 찾아가 작품을 잘 간직하고 있는 지 돌아보고 싶어요. 그동안 기증해달라는 소리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기증을 해준다고 해도 어디 걸어 놓을 때도 변변치 않고 그래서 큰 숙제였어요.
 
올해는 행구동 생명협동교육관도 준공을 한다고 하니 일단 그 핑계로 기증을 받아볼 생각입니다. 또 한 가지는 무위당기념관 창고 안에 작품이 있는 데 예산을 세워서라도 잘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봤으면 좋겠어요.
 
박설희 사무국장
: 앞으로의 역할이나 사업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우선 요즘하고 있는 작업은 그동안 나온 서화집 1집에서 8집까지 수록돼 있는 모든 작품을 데이터베이스(DB)화 하는 것이에요. 현재 2집만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분실사고도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바코드 같은 것도 정해서 무위당기념관에 들고 나는 것을 잘 정리하고 소장 작품도 잘 목록화해 전시회든지, 연구 자료로 쓸 때 바로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원로분의 책도 엑셀 작업은 돼 있는 데 마땅한 서가가 없어 묶어놓기만 했어요. 이런 자료 목록들을 연구 자료화 할 수 있게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을 정리하면서 느낀 건 심상덕 관장님이 그동안 많이 노력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종류별로 기증자가 누구고,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등에 대한 정보가 디테일하게 잘 입력돼 있었어요.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하셨구나, 자료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사무국에서 심 관장님의 뒤를 이어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무위당학교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한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무위당사람들이나 무위당학교에 애정을 가지셨던 분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주십니다. 그런 의견을 많이 들어야겠어요. 생명협동교육관 관련해서 만인회 분들 뵈러 다니실 때 저도 되도록이면 꼭 같이 다니고 싶습니다. 큰 그림을 같이 그려줄 분들 얘기를 많이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랬을 때 우리가 뭔가 제안하고, 시작할 때도 그 분들의 의견이나 고민을 받아 안고 그걸 녹여내 하는 것이라고 많은 분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야 우리가 앞으로 뭔가를 진행하면서 앞서 나갈 때, 그동안 고생하신 분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응원하면서 잘한다고 애정을 가져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을 할애해서 정기적인 토론회나 학습모임 등을 통해 우리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사업적으로, 일적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정신 등 소양을 쌓아야 버틸 수 있고, 오래 지속할 수 있고, 좀 더 창의적이고, 좀 더 주도적인 활동들이 나올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일의 책무성이 높아지는 만큼 우리가 견딜만한 기본 정신, 이런 것들을 잘 할 수 있게 저희 자체적으로 그런 것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역할을 잘 받아 안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한편으로는 그런 것도 하고 싶어요. 최근 지방분권화 얘기도 그렇고 지역자치, 마을공동체, 도시재생이든 굉장히 여러 단위의 지역 모임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공동체 운동, 지역자치를 표방하는 많은 운동들이 있는데 원주에서 그렇게 해오던 면모들이 운동사적 관점으로 잘 번역이 돼서 후배들이 잘 새길 수 있도록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얼마 전 원로님에게도 물어봤는데 “노동운동, 빈민운동, 농촌운동, 도시문제 해결과 같은 분과별 운동이 많았는데 무위당 선생님은 원주에 있었지만 운동의 큰 틀 자체를 성찰하시고 새로운 전망을 내놓으셨다”라고 하셨어요. 운동사적 관점에서 지금의 시민단체 등 시민사회 운동을 하는 후배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주신 거 같아요. 이런 이야기들도 세상에 잘 발신이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제가 교류하고 있는 연구자들과 자료를 모아서 공부하는 모임을 작게라도 해서 세미나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시회나 무위당학교 모두 위에서, 중앙에서 지시하는 형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발적인 마음들이 모여서 지역모임들이 꾸려졌거든요. 이것이 무위당 선생님 운동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의 운동도 그렇게 돼야 될 것 같습니다.
 
봉산동 도시재생과 결합하고, 심상덕 관장님은 원주초등학교와 연결되는 등 지역과 밀착한, 사회적인 흐름들이 구체적으로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잘 만들어지고 있구나. 그동안 해온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사상에 대해서 교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연구모임 등 다양한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갈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김찬수 기획관리이사
: 생명협동교육관이 생기면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많은 분이 생각하고, 꿈꾸는 다양한 교육에 대한 커리큘럼이 생길 것입니다. 생명 협동에 대한 교육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그런 조건을 만들어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무위당사람들은 이제 태동기를 거쳐 거침없는 전개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발전기까지 오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발전기로 도약하기 위한 전환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전환기를 잘 넘기면 정말 무위당사람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을 하다보면 정체기도 오고 힘든 시기도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들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생명협동교육관은 다음 세대가 활기차게 활동할 수 있는 장으로 우리가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동륜 선생님이 남편인 황도근 교수에게 ‘당신은 정사각형 네모를 원으로 생각하고 굴리고 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정사각형도 계속 굴리다보면 모서리가 깎이기 마련이지요. 저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다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 중 쉬운 건 하나도 없습니다. 앞으로 10년도 그 생각으로 저에게 주어진 일을 하겠습니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하면 위로가 됩니다.
 
황진영 사업팀장
: 요즘 실무자로서 정체성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는 왜 ‘무위당사람들’과 함께하는가? 그 정체성을 찾는 것이 동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어디서 일하든지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와 조직이 함께 간다고 생각하기 위해 지금은 저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와 내년까지가 조직도 그렇지만 실무자에게도 중요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저는 무위당사람들에 합류한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일하면서 번뇌도 가끔 있어요. 이런 부분들을 주위에서 잘 이해해주고 보듬어줘 일할 수 있었습니다. 무위당 선생님의 기본 정신을 실무자들이 잃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정기적인 토론과 학습도 좋지만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무위당 선생님의 사상과 삶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위당 선생님 사상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무위당 선생님이 남겨놓으신 유산을 가지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등 실무자로서도 체험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 것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진행자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10년은 역시 두 가지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가 새로운 변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무위당 선생님의 기본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더욱 애써야 된다는 것 같습니다.
 
이제 올해 안으로 행구동에 생명협동교육관이 준공되면 지금보다 할 일은 배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더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직이 커지고, 규모도 방대해지겠지만 무위당 선생님의 기본 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을 잘 이겨내고 선생님의 사상과 시대정신이 올곧게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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