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0

한울안신문/마음공부/원불교 마음챙김 Chris Krageloh

한울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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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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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챙김] 자연과 인간 Nature and humans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 2020-10-08 22:44
[원불교 마음챙김] 웰빙을 위한 단련법(Discipline for Wellbeing)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 2020-09-06 19:57
[원불교 마음챙김] 분노 그리고 작업취사_Anxiety and choice in action
원선일 예비원무 | 2020-08-11 12:13
[원불교 마음챙김] [원불교 마음챙김] 불안과 삼학수행
원선일 예비원무 | 2020-07-08 11:34
[원불교 마음챙김] 마음의 걱정과 몸에 대해
원선일 예비원무 | 2020-06-10 09:40
[원불교 마음챙김] 위기로부터 얻어지는 은혜 Good things coming from any Crisis
원선일 예비원무 | 2020-05-13 13:19
[원불교 마음챙김] 고립된 존재에 있어서의 마음챙김
원선일 예비원무 | 2020-04-08 00:22
[원불교 마음챙김] 원불교와 심리학에서 일기기재의 유사성
크리스 크레겔로 | 2020-03-18 14:28
[원불교 마음챙김] 원불교와 심리학의 관계
크리스 크레겔로 | 2020-02-11 19:43
[오피니언] 운명처럼 다가온 원불교
크리스 크레겔로 | 2020-01-08 14:59
[교화Talk] 원기105년 한울안신문 개편 방향
강법진 편집장 | 2019-12-2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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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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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 Nature and humans
자연과 인간 Nature and humans

This month’s article is about nature and humans. Here, I mean nature as anything that is not artificial or created by humans. Of course, we are actually also part of nature, but we have now started to modify our environment in such radical ways that it starts to differ from the environment in which
원불교 마음챙김 |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 2020-10-08 22:44
웰빙을 위한 단련법(Discipline for Wellbeing)
웰빙을 위한 단련법(Discipline for Wellbeing)

수행이란 어쨌든 전적으로 즐거워야 한다.그렇게 될 때 생의 모든 부분이 오직 거기에 몰입되기 때문이다.웰빙이란 삶의 전체가 균형에 맞고 나와 타자 간에 이익이 되는 것을 뜻한다.오클랜드교당에는 영어로 된 큰 간판 싸인이 있다. ‘마음챙김과 웰빙을 위한 원불교 센터’이다. 이 이름은 교당을 정식으로 열기 전에 교무님과 오랫동안 다양한 토론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교무님이 나에게 원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할 때, 종종 웰빙(정신의 건강과 복지)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래서 원불교 이름 뒤에 웰빙을 붙이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겼다
원불교 마음챙김 |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 2020-09-06 19:57
분노 그리고 작업취사_Anxiety and choice in action
분노 그리고 작업취사_Anxiety and choice in action

지난 호에서는 삼학을 아는 것이 어떻게 분노를 조절하는 데 적용이 되는지에 대해 다뤘지만, 이는 단지 정신수양과 사리연구에 한정해 다뤘다. 이번 호에서는 수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분노를 다스리는 것과 관계가 있기도 한 ‘작업취사’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Last month, I talked about how the threefold learning can be applied to dealing with anxiety, but I was only able to discuss the first two, namely cultivati
원불교 마음챙김 | 원선일 예비원무 | 2020-08-11 12:13
[원불교 마음챙김] 불안과 삼학수행
[원불교 마음챙김] 불안과 삼학수행

“여기 내가 이렇게 다시 불안한 생각이 왔구나.”하지만 단지 지켜보기만 하면, 그 생각은 곧 얼마 지나지 않아,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지속적으로반복되는 걱정의 수레바퀴를 멈추어 조절할 수 있는능력이 생겼다는 말이지요.In last month’s article, I discussed how the effect of anxiety can be seen in our body. Making simple changes to our body can have powerful effects on our mood. For ex
원불교 마음챙김 | 원선일 예비원무 | 2020-07-08 11:34
마음의 걱정과 몸에 대해
마음의 걱정과 몸에 대해

저는 다시 몸에게 아침에 가장 우선순위는두렷한 마음을 가지고 몸을 이완시키는 것에전념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그리고 바쁜 하루를 보낸 날에는,저 자신을 안정시키고 잠자기 전 제 몸에게이제는 휴식할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이것이 곧 제 무시선 수행의 일부분입니다.이번 호는 우리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세계적 유행병과 그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불확실성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약간의 불안감을 경험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불안은 몸과 마음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느낄
원불교 마음챙김 | 원선일 예비원무 | 2020-06-10 09:40
위기로부터 얻어지는 은혜 Good things coming from any Crisis
위기로부터 얻어지는 은혜 Good things coming from any Crisis

Covid-19의 위기로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그에 따라 나와지는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서 조명해보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물론,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킨다는 것이 부정적인 면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인식해 나갈 필요가 있지만, 이 또한 이 세상의 긍정과 부정적인 측면이 서로 엮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일원상 서원문에서 ‘은생어해’와 ‘해생어은’으로 명시하고 있다.아마도 현재 각 세계로 퍼져 있는 봉쇄령(lockdown)의 가장 분명한 효과는 그것이 어떻게 자연환경에 영
원불교 마음챙김 | 원선일 예비원무 | 2020-05-13 13:19
고립된 존재에 있어서의 마음챙김
고립된 존재에 있어서의 마음챙김

어떻게 우리는 서로가 함께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 혼자 방안에서오랫동안 선을 하겠다고 시도해 왔다. 이러한 수행은사회적 고립을 가능하게 했다. 원불교가 나에게 가르친마음공부는 그 이상이었다. 사사불공(事事佛供)의 정신!당신의 마음공부가 자신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지만,이는 또한 다른 이들을 살피라는 것을 의미한다.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퍼지는 가운데 우리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사회가 붕괴되는 비극을 맞이하고 있다.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심각한 어려움을 겪
원불교 마음챙김 | 원선일 예비원무 | 2020-04-08 00:22
원불교와 심리학에서 일기기재의 유사성
원불교와 심리학에서 일기기재의 유사성

원불교에서의 수행 중 중요한 한 가지는 일기를 기재하는 것이다. 이 일기법은 형식적이고 정련화된 수행법이며, 통찰과 지혜를 개발시킨다는 면에서 다른 수행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기를 어떻게 기재하는지는 교전에 잘 설명되어 있다. 선이나 다른 수행과 같이 일기법 또한 일기를 기재하는 습관을 일상화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일기 쓰는 습관을 갖기 위해 처음에는 잘 시작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그 횟수가 줄고 만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일기 쓰는 습관을 계속 유지시키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일기법은 우
원불교 마음챙김 | 크리스 크레겔로 | 2020-03-18 14:28
원불교와 심리학의 관계
원불교와 심리학의 관계

이번 호에서 나는 원불교와 심리학의 관계에 대해 조명해 보고자 한다. 두 가지 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생됐다고 볼 수 있다. 원불교는 20세기 초에 창시됐고, 심리학의 이론도 19세기 말에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둘 다 훨씬 이전의 역사와 연결돼 있다. 원불교는 전통과 종교 그리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아시아의 철학과 연결되어 있고, 심리학은 서양 심리학에 바탕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음을 연구하는 실험적인 방법을 사용하면서 과학화됐다. 비록 현재는 사회과학에서부터 신경과학에 이르기까지 전 학문분야를 포괄하고
원불교 마음챙김 | 크리스 크레겔로 | 2020-02-11 19:43
운명처럼 다가온 원불교
운명처럼 다가온 원불교

나의 이름은 크리스 크레겔로(Chris Krageloh)이고 법명은 원선일이다. 나는 2010년에 입교해 법명을 받았다. 독일에서 1978년에 출생해 일본으로 건너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일본에 대한 기억이 많아서인지 아시아 문화에 대해 항상 깊은 인연이 있는 듯했다. 8세 때 다시 독일로 돌아가 지내다가 18세 때 뉴질랜드로 건너가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때 부인인 Annie(법명 원선화)를 만났고, 현재 11살인 아들 아난다(법명 원법전)와 살고 있다.나는 어린 시절 철학과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심리학은
오피니언 | 크리스 크레겔로 | 2020-01-08 14:59
원기105년 한울안신문 개편 방향

[한울안신문=강법진] 한울안신문은 원기105년(2020)에 창간 25주년을 맞이한다. 올 한 해 수고해 준 필진 황상원·박세웅·김도연 교무와 조담현·김도경·조은혜·전낙원 교도에게 감사드린다. 내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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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다가온 원불교
 크리스 크레겔로 승인 2020.01.08 14:59 호수 1156 댓글 0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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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챙김1
나의 이름은 크리스 크레겔로(Chris Krageloh)이고 법명은 원선일이다. 나는 2010년에 입교해 법명을 받았다. 독일에서 1978년에 출생해 일본으로 건너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일본에 대한 기억이 많아서인지 아시아 문화에 대해 항상 깊은 인연이 있는 듯했다. 8세 때 다시 독일로 돌아가 지내다가 18세 때 뉴질랜드로 건너가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때 부인인 Annie(법명 원선화)를 만났고, 현재 11살인 아들 아난다(법명 원법전)와 살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철학과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심리학은 사색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학문이라 공부했고, 현재는 뉴질랜드에 있는 오클랜드대학 공학과에서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는 이런 분야에서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고 연구할 수 있다는 면에서 참 행운아인 것 같다. 내가 연구하는 분야 중 몇몇은 삶의 질, 웰빙 그리고 마음챙김에 대한 것들을 다루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일본에서 불교를 경험했고, 도교의 <도덕경>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던 어느 날, 에스페란토 잡지를 읽던 중 원불교 에스페란토 활동-김상익 교무 외-을 접하게 됐고, 잡지에 실린 일원상에 대한 글귀가 호기심을 자극해 곧 빠져들게 됐다. 나는 바로 뉴질랜드 지역 원불교 센터로 연락을 하게 됐고, 다행스럽게 안정명 교무님이 나에게 몇 가지 책을 보내줬다. 직접 뵙기도 전에 말이다.

나는 책을 받자마자 엄청난 흥미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고, 곧 이 교리가 나와 딱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교리 안에 있는 불교와 도교의 관점을 동시에 알게 됐다. 이후에도 유교적 관점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는 현재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내가 원불교 교전을 펼쳤을 때, 두 가지가 참 인상 깊었다. 첫 번째는, 일원상 서원문이 곧 진리를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진리를 찾기 위해 다른 책과 경전을 더 볼 필요가 없음을 느꼈고, 마치 정신의 안식처인 집을 만난 듯했다. 두 번째는, 교전 앞면에 나와 있는 거북이를 닮은 교리도였다. 내가 어릴 때부터 거북이를 가장 좋아하는 동물로 꼽았는데, 그래서인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비록 원불교의 구체적인 가르침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 교리(교리도)가 내가 읽어야 할 텍스트임을 재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원불교 교리를 책을 통해 배우면서 지속적으로 근산님(안정명 교무)을 뵙게 되고 나는 점점 원불교에 감사하게 됐다. 특히 나처럼 현대 심리학을 하는 사람에게 교리의 사실적인 면은 더 마음 깊이 다가왔다. 대종사의 지도 아래 마음훈련을 받는 것들이 이미 그전부터 지속돼 왔겠지만! 미신을 피하고 사실적 수행을 한다는 면에서 원불교 철학은 근대 과학과 더욱 부합된다.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원불교를 더 알게 하고, 다른 세계 사람들과 공유해서 더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운 가르침을 전하고 싶게 만들었다.

어느 날, 나는 원무에 대한 뜻을 전했고, 마치 내 운명인 것처럼 선택하게 됐다. 현재는 근산님의 지도에 따라 예비원무 훈련 중이다. 곧 있으면 내가 일반법회 설교도 하고, 법회나 의식 등에 책임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으며, 인근 사람들에게 저녁 선방을 지도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나는 원불교 수행을 대학 내에서도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의 연구는 주로 마음챙김과 명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의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와도 함께 일하며 몇 년째 도움을 주고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한울안신문>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원불교의 독창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공유하고 싶다. 앞으로는 원불교 교리와 심리학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 ‘도덕성 함양을 위한 수행의 측면’을 중심으로 얘기하면서, 원불교가 어떻게 서양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전하고자 한다.


(영어 원문)

It is my great pleasure to have a chance to contribute to this magazine. My name is Chris Krägeloh – my dharma name is Won Seonil (원선일). I received my dharma name in 2010, so next year will be my 10th year as a Won Buddhist member. I was born in Germany in 1978, but spent several years during my early childhood in Tokyo, Japan. When I was almost 18, I moved to New Zealand, where I finished my high school and university. It is also during that time that I met my Thai wife Anni (원선화). We have a son called Ananda (원법전), who is now 11 years old. 

From early on, I was interested in philosophy and psychology. At university, I decided to study psychology, as I thought that philosophy needs to start with an understanding of the person who is doing the philosophising. So, I am now a psychology professor at Auckland University of Technology in New Zealand. I am lucky that I am able to teach and do research in areas that I am passionate about. Some of my research areas are quality of life, well-being, and mindfulness.

Even though I was familiar with Buddhism for a long time, I was initially much more fascinated with Daoism, particularly the Daodejing. One time, I read an Esperanto magazine and saw the work that Esperanto Won Buddhists did (for example, Kim Sangik Kyomunim). I was intrigued to see that they were writing about Ilwonsang, which made me very curious. I then decided to contact the local Won Buddhist group. An Joungmyoung Kyomunin then genereously sent me a few books by mail – even before I met him. I looked at the books with great interest, and I could immediately see how it fits with me. I could see Buddhist and Daoist ideas coming together. Later, I also learned more about Confucianism, which I now also find very interesting.

When I opened the Kyojeon for the first time, there are two things that made an immediate impression on me. First of all, I could feel that the Seoweonmun was directly speaking about the truth. I felt that I don’t need to keep searching further in books and scriptures and that I have arrived home. Secondly, I saw the doctrinal chart on the first page shaped like a turtle. Since turtles have been my favourite animal since I was a child, it felt very special to me. Even though I knew that I had to study much more to understand all the detail of the Won Buddhist teachings, this sign re-assured me that this is the right text to read. 

As I kept learning more about Won Buddhism through books and meeting regularly with Kuensannim (An Joungmyoung Kyomunim), I started to appreciate Won Buddhism more and more. I particularly liked the practical focus of the teachings, which reminded me of modern psychology. The techniques of mind training by Sotaesan Daejongsa have definitely been ahead of their time! The philosophy of Won Buddhism also fits in much better with more modern scientific theories because of the attitude to avoid superstitions. All of this inspired me to want to learn much more about Won Buddhism and tell the world about these beautiful teachings so that more people can benefit. One day, when I had a meeting with Kuensannim, he mentioned the option of becoming a Wonmu. I didn’t have to think about it much – it felt like a logical choice for me and as if it was my destiny.

With Kuensannim’s (An Joungmyoung Kyomunim) guidance, I am now training as a Wonmu. This means that I am giving regular dharma talks and take increasingly more responsibilities in conducting dharma service or giving guided evening meditation sessions for the community. At the same time, I am trying to link my university work to my Won Buddhist practice. My research work focuses a lot on mindfulness and meditation. I have also had the pleasure to work together with the Institute of Mind Humanities at Wonkwang University, and I have contributed to their international conferences for several years now. 

For this magazine, I would like to share some of my ideas about the uniqueness and beauty of Won Buddhism. Future contributions will highlight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Won Buddhism and psychology, such as in ways of practising and the role of morality. I hope that you will enjoy seeing how Won Buddhism may be perceived by Westerners and even combined with a Western perspective.

번역/ 황상원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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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와 심리학의 관계
 크리스 크레겔로 승인 2020.02.11 19:43 호수 1160 댓글 0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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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챙김2
이번 호에서 나는 원불교와 심리학의 관계에 대해 조명해 보고자 한다. 두 가지 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생됐다고 볼 수 있다. 원불교는 20세기 초에 창시됐고, 심리학의 이론도 19세기 말에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둘 다 훨씬 이전의 역사와 연결돼 있다. 원불교는 전통과 종교 그리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아시아의 철학과 연결되어 있고, 심리학은 서양 심리학에 바탕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음을 연구하는 실험적인 방법을 사용하면서 과학화됐다. 비록 현재는 사회과학에서부터 신경과학에 이르기까지 전 학문분야를 포괄하고 있지만 말이다.

대학교에서 심리학 수업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은 보통 얼마나 많은 통계자료를 배워야 하는지를 알면 깜짝 놀란다. 이는 심리학이 정확히 통제된 경험에서만 이야기하는 학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들에 대해서도 많은 고려를 하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심리 연구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심리적인 구성이라 불리는 지성, 자아존중감, 양심과 분노 등) 것들의 여러 변화 요소에 근거해 이론을 체계화한다.

실질적인 사례를 들자면, 심리학은 대개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지에 대한 예상과 설명을 통해 이론을 발전시키기 시작한다. 그래서 심리치료는 소위 과학적 수행의 모델이라 불리는데, 즉 심리학자들은 과학자들처럼 생각하고 오직 실질적인 증거로 상담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데 한해서 이론을 적용시킨다. 근거나 증거가 없는 것들은 심리학적으로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론이 완전히 소실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비효과적이고 미신적인 연구들이 버려지기도 했고, 이것은 오랫동안 심리학과 종교 간의 관계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기 심리학자들은 종교를 미신적이라 말하며, 과학에 근거한 치유로서 대체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0~20년 동안 심리학에서, 종교적 믿음의 중요성은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뿐 아니라 목적과 희망을 가지는 측면에서 점점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음챙김과 명상은 현재 건강에 대한 혜택으로 폭넓게 인식되고 있고, 특히 불교 심리학에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2019년 2월에 우리 대학 연구팀은 대규모의 국제 마음챙김 학회를 뉴질랜드에서 개최했다. 이 학회는 ICM이라고 불리며 호주, 노르웨이, 터키, 미국, 독일, 중국 그리고 한국 등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250여 명이 참여했다. 우리는 좌산상사를 원불교 마음챙김의 측면에서 대표 강사로 초청하는 특혜를 얻게 됐다. 그 이후 유무념 공부와 기록에 의한 마음공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나는 좌산 상사를 강사로 소개하면서, 이러한 시스템은 현대 심리학에서 더욱 개발돼야 한다고 더욱 부각시켰다.

불과 10여 년 전에는 불교 마스터 수행자가 심리학 학회에서 대표 강사로 초청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좌산상사의 방문과 그 관심은 매우 의미심장했고, 심리학과 불교와의 좀 더 긴밀한 조명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읽혔다.

원불교는 특히 현대적 관점의 재조명과 이성적 믿음과 관련된 대화의 장에 적합한 종교다. 내가 앞에서 언급했듯, 원불교의 마음공부 방법은 심리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사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매우 분명하고 실천적 결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심리학자들도 다른 분야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마음챙김(유무념공부)을 실행할 때의 도덕성의 역할에 관한 분야이다. 이러한 영역은 전통적으로 종교가 관여해온 분야이지만, 현재는 심리학적 문헌들에서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팀에서도 자주 언급돼 왔다. 나는 마음인문학과 마음챙김에 있어서 도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적을 띤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함께해 왔다. 앞으로도 심리학과 불교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계속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번역_황상원 교무

 

(원문)

In this month’s article, I would like to reflect on the relationship between Won Buddhism and psychology. Both have been around for approximately the same amount of time. Won Buddhism was founded at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and the discipline of psychology emerged towards the end of the 19th century. Of course, both expanded on thinking that reached back much further. Won Buddhism is linked to the traditions, religions, and philosophies of the culturally rich East. Psychology has its origins in Western philosophy but then became a science that used experimental methods to study the mind, although it now includes a whole spectrum of sub-disciplines ranging from social sciences to neuroscience.

First-year psychology students at university are often surprised to find out how much statistics they will need to learn. This is because psychology is a subject where it is not easy to conduct tightly controlled experiments, and there are many factors influencing how we behave. Quite often, psychology researchers are trying to make predictions based on variables that are not directly visible – so-called psychological constructs. Examples include intelligence, self-esteem, conscientiousness, and anxiety. To address a particular issue, psychology usually starts by developing theories to explain and predict how humans think, feel, or behave. Based on these theories, psychological therapies can then be developed. Clinical psychologists thus follow the so-called scientist-practitioner model, which means that psychologists are supposed to think like a scientist and only implement interventions that have demonstrated evidence to have a positive effect.

Anything that cannot be verified easily through evidence therefore gets challenged by psychology and even completely dismissed. While this means that some ineffective and superstitious practices have been abandoned, for a long time it meant that there was a difficult relationship between psychology and religions. Early psychology often considered religion as a superstition and tried to replace it with its science-based therapies. Also, psychology has been applied with a very large range of different populations. So, in order to be suitable for people with all sorts of backgrounds and beliefs, psychology often had to be neutral or secular, and references to religion were therefore usually avoided.

During the last 10 to 20 years, the importance of religious beliefs, particularly the role of meaningfulness, sense of purpose, and hope, has become recognised more and more in psychology. Mindfulness and meditation are now also widely accepted as providing health benefits, and there is even growing interest in Buddhist philosophy. At the beginning of 2019, my research group organised a large international mindfulness conference in New Zealand. International Conference on Mindfulness - Asia Pacific, where more than 250 people participated, of which approximately half came from overseas, such as Australia, Norway, Turkey, USA, Germany, China, and South Korea. We were privileged to have Chwasan Sangsanim as a keynote speaker to present a Won Buddhist perspective on mindfulness. The presentation was very well received. Afterwards, there was quite a bit of interest in the mind studies watch where you record instances of mindfulness and absentmindedness. As I introduced Sangsanim as a speaker, I mentioned that this system looks like something that could also have been developed by modern psychology.

More than 10 years ago, it would have been unthinkable to have a Buddhist master speak at a psychology conference. Sangsanim’s visit was very important as it signals the start of an interesting time where there can be closer exchanges between psychology and Buddhism. Won Buddhism is particularly suitable for this dialogue because of its modern outlook and rational beliefs. As I mentioned, the mind study techniques by Won Buddhism can be studied and applied by psychologists because they are focused on clear and practical outcomes. However, there are also other areas where psychology needs to do more work. One such area is the role of morality in mindfulness practice. This has traditionally been the domain of religions, but is now increasingly explored in the psychological literature. This debate has also been initiated by the Mind Humanities Institute at Wonkwang University. I have had the pleasure of working with the institute on several projects that aim to highlight the importance of morality in mindfulness practice. When I attended an international conference there in November last year, I was very impressed with the achievements of the institute, not only in terms of research outputs but also in terms of service to the community. More work like this is required to build closer links between psychology and Buddhism.

Won Buddhism is particularly suitable for this dialogue because of its modern outlook and rational beliefs. As I mentioned, the mind study techniques by Won Buddhism can be studied and applied by psychologists because they are focused on clear and practical outcomes. However, there are also other areas where psychology needs to do more work. One such area is the role of morality in mindfulness practice. This has traditionally been the domain of religions, but is now increasingly explored in the psychological literature. This debate has also been initiated by the Mind Humanities Institute at Wonkwang University. I have had the pleasure of working with the institute on several projects that aim to highlight the importance of morality in mindfulness practice. When I attended an international conference there in November last year, I was very impressed with the achievements of the institute, not only in terms of research outputs but also in terms of service to the community. More work like this is required to build closer links between psychology and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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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와 심리학에서 일기기재의 유사성
 크리스 크레겔로 승인 2020.03.18 호수 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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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챙김3

원불교에서의 수행 중 중요한 한 가지는 일기를 기재하는 것이다. 이 일기법은 형식적이고 정련화된 수행법이며, 통찰과 지혜를 개발시킨다는 면에서 다른 수행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기를 어떻게 기재하는지는 교전에 잘 설명되어 있다. 선이나 다른 수행과 같이 일기법 또한 일기를 기재하는 습관을 일상화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일기 쓰는 습관을 갖기 위해 처음에는 잘 시작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그 횟수가 줄고 만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일기 쓰는 습관을 계속 유지시키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일기법은 우리들의 반복되는 일상을 유지시켜 주기도 하지만, 반조와 자기개발에 굉장한 힘을 주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할 때, 정말 쓸 것이 별로 없었고, 대체로 내가 했던 일이나 내 주위에 일어난 사실들에 대해 쓰면서 마무리 짓곤 했다. 여러분도 계속 그렇게 써 나가다보면, 마침내 변화라고 여겼던 몇 가지 에피소드 (예를 들면 당신이 어떤 환경에 어떻게 반응했고, 왜 그렇게 느꼈는지에 대해서)에 대해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심리치료에서 일기를 쓰는 것은 종종 상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 일기의 활용은 오랫동안 좀 줄어드는 기세도 있었으나 다시 더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하는 추세이다. 기초 심리단계에서 일기는 어떤 증상이 일어날 경우 상세히 받아적어 모니터링하는 데 사용되곤 했다. 일기 기재는 당신의 생각을 분석하는 데 또한 도움을 주고 일련의 영감을 안겨준다. 

또 다른 일기 기재의 장점은 나의 생각을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이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정성을 들여 글을 쓰려 할 때, 결과적으로 우리의 생각은 종종 더 명확해짐을 보게 된다. 이또한 심리치료에 유용히 사용돼 왔다. 아마 여러분도 이러한 일기법을 사용하다보면 삶이 더 발전적으로 나아감을 알게 되고, 향후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내가 설명한 것보다 더 많은 장점들이 있다. 일기를 기재하는 것이 문제를 다루거나 당장 눈앞에 직면한 변화에 도움을 주는 것만 은 아니다. 지속적인 일기의 기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인식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당신 자신뿐 아니라 당신이 속한 세상도 지혜롭게 살아가는 능력을 심어준다. 심지어 당신이 현재 자주 하는 일뿐 아니라, 결국 세상을 보는 자세까지도 변하게 한다. 

당신이 만약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산책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기회를 가질 것이다. 시를 쓰고 싶다면, 어떠한 감정이 일어날 때 습관적으로 시에 대한 영감을 받으려 할 것이다. 

나는 이를 사진작가와 시인의 ‘마음설정’이라 칭한다. 즉, 습관적으로 일기를 기재하는 것은 '지혜로운 마음설정'을 본인이 기획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일기기재를 자주한다는 것은, 당신이 자동적으로 일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모든 삶의 상황에서 무엇을 기재할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습관화 된 일기 수행으로, 당신 자신이 점점 더 많은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일기법 수행을 통하여 당신의 생각은 점점 더 구체화되어 안정적이 된다. 당신은 전에 하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인식하기 시작할 것이고, 점점 더 궁금해질 것이다. 일기법을 통해 지혜를 개발시키는 것이 곧 당신 삶의 새로운 습관이 될 것이다!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오클랜드교당
예비원무
 

[원문]

Similarities between keeping a diary in Won Buddhism and Psychology

One important practice in Won Buddhism is that of keeping a diary. I deliberately call this a practice as it has a certain formal and disciplined aspect, and it goes hand in hand with other types of practices that are meant to develop insight and wisdom. The instructions on how to keep a diary are presented in the kyojeon, and like many other practices, such as meditation, it usually takes a while for people to establish diary writing as a habit. Like any habit, they need to be nourished, and we might start writing the diary frequently but then go through a period where we are doing it less often. However, it is important to keep trying to keep it up. Not only does it help us set up a daily routine, but it is also a powerful tool for reflection and self-development.

When I first start writing a diary regularly, I might find that there is little to write, and I end up writing largely about facts such as what I did and what happened around me. If you keep going with it, you will eventually start to write about some episodes that you found challenging, such as how you reacted to certain circumstances or why you felt a particular way. These give you an opportunity to re-live some of the events and see them from a distance. This is particularly the case when you write them down after a few hours have passed, when you had some time to calm down. It is also a good way to practise compassion, as you might try to forgive yourself and others, and try to understand why things happened the way they did.

In psychological therapy, diary writing has often been used to help people. For a while, it has been applied less, but it is now starting to have a comeback. At the most basic level, diaries can be used for monitoring such as noting down when symptoms occur. For example, you could write down the situations when you get angry or how often you had some distressing thoughts. In addition to this, however, diary writing can also help you analyse your thoughts (like a mirror for your thoughts) and give you insight. This is when you write short stories and try to explain why you may have behaved in a certain way. It has also been used to help people take on different perspectives (try to imagine you are somebody else).

One other advantage of diary writing is that it helps me structure and organise my ideas. When we speak, we often change topics quickly, and quite often we don’t even finish our sentences. When we write, however, we need to make a focused effort, and our thoughts often become clearer as a result. This can also be useful in therapy. When the client then sees a psychologist, they already have their concerns structured and grouped together rather than giving all information in no particular order. You can also see progress that you have made and thus use that information to make future goals.

However, there are more benefits than what I have just described. Writing a diary isn’t only about helping you deal with problems and challenges that you have right now. A regular practice of diary keeping also automatically changes your perception and grows more wisdom, starting with yourself and including more and more parts of the world. What you do often, also eventually affects how you see the world. If you are an architect and you travel to a new country, you look more at buildings. If you are a fashion designer, you will look more at people’s clothes. If you are a parent, you look at how other people interact with their children. We can’t help that – it is natural. But this also applies to our hobbies and habits. If you like to take photos, then you see opportunities for beautiful photos when you go for a walk. If you like to write poetry, you see inspiration for poems when you have certain emotions. I call this the photographer’s or poet’s mindset. In my opinion, regular diary writing gives you a “wise mindset” because, if you do it often, you automatically start thinking about your diary and what to write in everyday life situations. You might start carrying a little notebook with you at all times to write something down, or you might use your smartphone.

With a regular diary practice, you will see great changes over time. Gradually, your thoughts become more sophisticated and subtle. You will start to notice things that you haven’t before, and you become more curious. Developing wisdom then becomes your new habit.

 

3월 20일자

Tag#크리스크레겔로#원불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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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마음공부 원불교 마음챙김
고립된 존재에 있어서의 마음챙김 Mind practice in self-isolation
원선일 예비원무
승인 2020.04.08 00:22
호수 1166

원불교 마음챙김4

https://www.youtube.com/watch?v=eB9kePD8oCU&feature=emb_l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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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우리는 서로가 함께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인가? 
  •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 혼자 방안에서 오랫동안 선을 하겠다고 시도해 왔다. 
  • 이러한 수행은 사회적 고립을 가능하게 했다. 
  • 원불교가 나에게 가르친 마음공부는 그 이상이었다. 
  • 사사불공(事事佛供)의 정신!
  • 당신의 마음공부가 자신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지만,
  • 이는 또한 다른 이들을 살피라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퍼지는 가운데 우리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사회가 붕괴되는 비극을 맞이하고 있다.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나는 현재 뉴질랜드에서 4주간의 국가 봉쇄령이 시작된 첫날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이곳은 다른 나라에 비해 바이러스가 늦게 도달했지만, 바이러스 발생한 숫자가 그다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제재는 일찍 시작됐다. 세계적으로 대략 25억의 인구가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의 제재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는 전 인류의 약 1/3가량 되는 숫자이다.

이러한 건강에 대한 위기는 향후 우리가 미래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게 할 것이다. 혹은 적어도 이미 해오고 있었던 성장의 일부분에도 속도를 가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은 온라인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시스템의 증가를 포함한다. 나도 오클랜드 대학으로부터 온라인으로 강의할 수 있게 강의를 재구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현재 나의 아들은 비디오 컨퍼런스 콜로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과 만나고 있고, 아내 또한 별도의 컴퓨터로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 우리 가정은 흔히 말하는 인터넷 카페를 집에서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응급상황이 결국에는 지나가겠지만, 이 기간에 만들어진 새로운 많은 종류의 습관들이 차후에는 우리 곁에 남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측면의 관심사를 발견하게 될 것인데 예를 들면, 집에 머물면 안전성과 편리성이 더욱 증대된다는 이유로 더욱 그렇게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이다.

그런 반면에 우리는 새로운 변화도 맞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벌써 더 많은 재택근무를 통해 점점 더 고립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바이러스의 영향이 그 가중치를 더해 가고 있다. 각국의 나라들은 우울증과 분노를 가진 사람들의 확률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고, 이러한 정신적인 문제들이 증대되는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타인으로부터 고립되기 때문에 형성되었다는 증거들이 보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울증의 소용돌이는 인간의 조절영역 밖에서 존재하게 될까? 혹은 우리의 기술을 활용해 현재 우리에게 일어나는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나는 웹사이트나 스마트폰 같은 기술을 사용해 심리학적인 치료를 전달하는 내용에 관한 주제로 책의 한 부분을 쓴 적이 있었다. 그것은 eHealth라고 불렸다. 이들의 대부분은 상담사가 일대일로 내담자를 만날 필요가 없었고, 그 효과도 전통의 치료법만큼이나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입증이 나타났다.

하지만 계속 보고된 바에 따르면, 모든 이에게 잘 적용되는 실례가 되지 못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시도를 하다가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직접 내담자를 응하지 않고 하는 상담이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여전히 상담사들은 직접 일대일 면담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현상은 점점 더 줄어들고, 온라인 치료를 선호하는 경향에 따라 관심과 효과는 더 증대할 것이라 여겨진다.

많은 연구가들이 현재 온라인을 바탕으로 한 명상과 마음챙김의 효과를 내놓고 있다. 예를 들면 뉴질랜드에서 우리 연구 그룹은 대학생들과 한 교실에서 정기적으로 만나서 명상을 지도하는 교사들과 비디오 컨퍼런스를 통해 만나는 실험을 도입했다. 이 학생들은 몇 주 후 점점 더 스트레스에 적게 노출되었으며, 이는 명상이 오직 개인에게 온라인으로 가르쳐졌을 때보다 훨씬 더 기대효과가 컸다. 추측하건대, 이 프로그램이 학생들에게 일정 기간 명상교실에 오는 노력을 더하였고, 또 서로 간에 지지를 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이는 사람들이 교당에 와서 함께 선을 할 때와 같은 효과를 가지는 것과 같다. 함께 선을 할 때 훨씬 더 힘 있는 결과를 도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향후 온라인 명상과 마음챙김 프로그램의 새로운 국면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어떻게 우리는 서로가 함께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 혼자 방안에서 오랫동안 선을 하겠다고 시도해 왔다. 이러한 수행은 사회적 고립을 가능하게 했다. 개인의 명상 수행에서 이러한 측면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원불교가 나에게 가르친 마음공부는 그 이상이었다.

사사불공(事事佛供)의 정신! 이는 현재 나의 친구가 혹 고립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체크 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특히 바이러스로 인해 어려운 이 시점에 말이다. 당신의 마음공부가 자신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이는 또한 다른 이들을 살피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함께 건강한 마음공부를 함께해 나가기를 염원해 본다!

*아래는 크리스 원고의 원문이다.

Mind practice in self-isolation

The spread of Covid-19, the loss of lives, and the disruptions for society is tragic. Let us all pray for those who have lost their lives, for their families, and for all those who are experiencing severe hardship as a result of this.

I am writing this article during the first day of lockdown in New Zealand. Here, the virus reached us relatively late, but our lockdown started when the number of cases was still not very high. It has been reported that there are currently approximately 2.5 billion people around the world in either partial or full lockdown. This is about a third of whole humanity!

It is likely that this health crisis will have fundamental effects on how we do things in society in the future – or at least it will speed up some of the developments that have already been happening. For me personally, this includes a move towards increased online-based teaching. I have been asked by my university to re-structure my courses for online delivery. My son is now doing videoconference calls with his school teachers and classmates, and my wife is also doing her work on a separate computer. Our home is starting to look like those internet cafés that used to be commonly found.

Of course, the emergency situation will eventually pass, but it is likely that many of the new habits we formed during this time will stay with us. We will discover new aspects that are attractive, such as increased safety and convenience by staying at home more. However, we will also face new challenges. People have already started to be more and more isolated as a result of working from home more, and it looks likely that this trend will now accelerate. In many countries, rates of depression and anxiety have already been increasing dramatically, and there is evidence that much of these psychological problems are because people have become very isolated from each other. So, will depression spiral out of control? Or can we use the same technology that contributed to this problem in a way that it now helps us?

A couple of years ago, I wrote a book chapter about the use of technology such as websites and smartphones to deliver psychological therapy – sometimes called eHealth. Most of these do not require the client to meet the psychologist face to face, and the evidence indicates that these approaches can be just as effective as traditional therapy. However, what is often reported that a lot of people tend to drop out, which seems to indicate that it doesn’t work well for everyone. So far, this hasn’t been a problem, because people usually still have face-to-face therapy available as an alternative. But this may be the case less and less so, and therefore improving the attractiveness and effectiveness of online therapies has become a priority.

A lot of research has now been conducted about the effect of online-based teaching of meditation and mindfulness. For example, our research group in New Zealand got university students to meet regularly in a classroom while the meditation teacher was joining via videoconference. The students reported much less stress after a few weeks, and the results appeared to be larger than when meditation is only taught online. I suspect it is because the programmes forced students to have a routine, make an effort to come to a meditation class, and they had social support. It might be same effect when people get together in a kyodang for meditation – there is something more powerful when meditating it together. And this will be precisely the challenge for the next phase of online meditation and mindfulness programmes: How can we make sure people still feel connected with each other? Many people can try to lock themselves in a room and meditate for a long time. This kind of practice is possible in social isolation. And, yes, your own personal meditation practice is certainly important. However, what Won Budddhism taught me is that mind practice is more than that. Every act is a Buddha offering. This includes calling a friend to check whether they are lonely – and this is particularly important in this difficult time. Your own mind practice starts with you, but it also means looking after others. Let’s cultivate healthy minds together!
크리스크레겔로(원신일)
오클랜드교당 예비원무

4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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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로부터 얻어지는 은혜 Good things coming from any Crisis

 원선일 예비원무 승인 2020.05.13 호수 1169

원불교 마음챙김5
크리스 크레겔로오클랜드교당 예비원무


Covid-19의 위기로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그에 따라 나와지는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서 조명해보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물론,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킨다는 것이 부정적인 면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인식해 나갈 필요가 있지만, 이 또한 이 세상의 긍정과 부정적인 측면이 서로 엮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일원상 서원문에서 ‘은생어해’와 ‘해생어은’으로 명시하고 있다.

아마도 현재 각 세계로 퍼져 있는 봉쇄령(lockdown)의 가장 분명한 효과는 그것이 어떻게 자연환경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부분일 것이다. 대부분 지역에서 교통 소음과 오염이 감소했고, 세계 많은 지역에서 사라졌던 동물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태국의 유명한 해안가에 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몇 해 동안 거북이들이 알을 낳지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 거북이들의 숫자가 늘어가고 있다. 인도에서는 사람들이 푸른 하늘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뉴질랜드 봉쇄령으로 인해, 우리는 가족과 함께 운동할 수는 있지만, 가족이 아닌 다른 이들과는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비록 늘어난 사람 수 때문에 내가 그들을 피해서 걸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신선한 공기를 맞는 것을 보는 것이 즐겁다.

바깥의 환경은 줄어든 교통 체증과 아름다운 계절 속에 더 좋아지고 조용해져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폭풍우 같은 구름이 사람들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것 같다. Covid-19라는 뉴스가 때론 우리와는 여전히 가깝지 않은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걱정은 줄지 않는다. 동료들과 대화를 해 보면 모두가 결과적으로는 더 나쁜 소식들, 경제적인 문제나 직업의 상실 등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금은 안전하게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있지만 결국 봉쇄령의 나쁜 측면을 보게 될 것이라며, 그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데 더 힘들 수도 있다고 한다.

한 가지 예측하기 쉬운 것은 소위 습관이라는 것은 미래로부터 다가오는 난관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데 가장 강력하다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돈이 항상 부족해 작은 물건이나 적은 돈에서도 행복했던 경험이 있었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겨내기 쉬울 것이다.

나는 한국 방문 중, 사람들이 무언가 짓기에도 협소한 땅에 채소를 키우기 위해 쓰는 것을 볼 때마다 감명을 받는다. 이런 습관들은 사람들이 식물을 키워내는 기술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에 도움이 된다. 돈을 모으는 것보다 이런 습관들이 바로 어려운 난관에서 우리를 보호해준다.

재정적인 부분에서, 우리는 때때로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돈을 빌려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거나 집을 살 때이다. 당신은 그때 단순히 불운한 시간적 운명으로 경제적 침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돈과 달리, 습관은 일반적으로 당신 옆에 늘 머물러 있다. 이것은 당신이 경제적 위기를 겪은 후 즉각적으로 다시 일상으로 바로 돌아오는 데 도움을 주고, 당신 곁의 이웃을 돕기도 한다. 

뉴질랜드에서, 코로나로 인한 제재가 시작되기 전에 다 팔려간 상품 중 하나도 야채 씨앗이었다.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정원 일을 가르쳐 주는 사람들도 늘었다. 봉쇄령이 끝난 후 수확한 과일과 채소를 가족, 친구 혹은 이웃들과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란다. 정원이 없는 사람들은 정원일 대신 새로운 요리 실력을 갖추게 되었을 수 있고, 레시피를 공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정원 일을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는 소셜 미디어 그룹들이 더 많이 늘고 있고, 제재령이 걷어지면, 우리는 희망적으로 우리 가족들이나 친구들, 이웃들이 과일과 야채를 서로 주고받는 환경에 놓이게 될 것이다. 정원이 없는 이들도 여전히 새로운 기술 특히 식재료나 요리하는 법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가 자신과 타인들에게 난관 속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습관을 창조하고 있길 바란다. 더불어 먼 미래까지 준비하고 계획할 수 있는 지혜까지 얻길 바란다. 일원상 서원문은 우리에게 좋은 결과들이 항상 해로운 일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직면한 상황들이 가진 어려움에 주의 깊게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우리 환경이나 사회에 일어난 모든 긍정적인 일들이 단기적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 함께 살기 좋은 아름다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도록 유의해야 한다.


(크리스 크레겔로의 원문)

As we are getting used to the new situation that we are finding ourselves in as a result of the Covid-19 crisis, there are many opportunities to reflect on any positive things coming out of this. Of course, highlighting the positives does not mean one disregards the negatives. We need to continue to recognise what is going on around us, but also remember how positives and negatives are intertwined. The Ilwonsang Seoweonmun mentions this clearly through은생어해and해생어은.

Perhaps one of the most obvious effects of the widespread lockdown is how it is affecting the natural environment. Traffic noise and pollution in our neighbourhoods has decreased substantially, and there are reports from many parts of the world that animals reclaim areas that they had been pushed away from. For example, many of the popular beaches in Thailand had been so full with people that turtles had not laid eggs there for many years. But this is now changing, and hopefully turtle numbers will grow again as a result. In terms of air quality, it is also amazing to see that changes can happen within a fairly short period of time – there are reports of places in India where people are now finally able to see a blue sky again. 

According to New Zealand lockdown rules, we are able to do exercise with household members but need to keep distance from others. But because we have been having the most glorious autumn weather and because people are forced to stay home and don’t commute to work, they appear to have much more time to go for walks. It is really noticeable for me because I take my dog for a walk in the morning and evening. Even though having more people around makes my walks slightly more difficult as I now have to make an effort to avoid them, I am happy to see so many people being active and getting fresh air. I hope that these people’s new habits will stay and that they will still be active even after the lockdown.
The outside environment may appear nice and calm with little traffic and beautiful weather, but it seems that storm clouds are rising in people’s minds. To many of us, the news about Covid-19 are still distant, but they can nevertheless create anxiety. However, when speaking to colleagues, everyone is expecting more bad news to arrive eventually, such as economic problems and job losses. It also feels a bit like a bad dream where we seem to live in a safe bubble at the moment but will finally wake up to see the bad effects of the lockdown. And it can seem difficult to prepare for the future, because it is so hard to predict.

One thing that is easy to predict, though, is what sort of habits are the most powerful ones to protect us from future hardship. If you have always been frugal with your money and tended to be happy even with simple products or small amounts, you will find it easier to cope in more difficult economical situations. When I visit Korea, I am always impressed to see that people grow vegetables in small strips of land that are too small to build anything on. It may not be enough to generate a lot of food, but it makes sure people don’t forget the skills of growing food. This is the sort of habit that protects us from hardship even more than saving money. With finances, you sometimes have to take risks such as when you borrow money to start a new business or buy a house. You can then be affected by economic downturn simply because of unfortunate timing. However, unlike money, habits will generally stay with you. And this helps you bounce back quickly after a crisis and help others around you. In New Zealand, one of the things that sold out before the lockdown is plant seedlings for vegetables. There are more people now in social media groups that teach others about gardening, and after the lockdown, we will hopefully be in a situation where we can to exchange fruit and vegetables with our family, friends, and neighbours. People, who don’t have gardens may still benefit from having learned new skills on how to cook and share recipes with others.

So, now that we are hopefully creating new good habits for ourselves and others to prepare us from any upcoming hardship, let us also be a step ahead and think longer term. The Seoweonmun tells us that good outcomes can always change back to bad ones. So, we have to be vigilant with everything we do. We need to think of ways to ensure that any positive changes for our environment and society that are happening now are not just short term but that we build a beautiful and happy world to live in for us all and future generations. 

 

5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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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걱정과 몸에 대해
 원선일 예비원무 승인 2020.06.10  호수 1173 

원불교 마음챙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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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다시 몸에게 아침에 가장 우선순위는
  • 두렷한 마음을 가지고 몸을 이완시키는 것에
  • 전념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그리고 바쁜 하루를 보낸 날에는,
  • 저 자신을 안정시키고 잠자기 전 제 몸에게
  • 이제는 휴식할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이것이 곧 제 무시선 수행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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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는 우리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세계적 유행병과 그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불확실성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약간의 불안감을 경험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불안은 몸과 마음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먼저 이번 호는 몸의 수준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음 달에는 마음 속에서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무시선을 실천하고 싶다면, 몸과 마음 둘 다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쉬고 있을 때는 마음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일상 생활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몸과 마음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 우리는 일상의 가장 기본적인 일들-이를 닦거나 외출 준비를 위해 단장하거나 혹은 배가 고프거나 지치거나 피곤할 때-을 챙길 때 유일하게 우리 몸을 의식하게 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아프거나 통증이 있을 때 우리 몸에 더 집중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에 허리와 어깨가 아플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운동을 좀 하고 일을 할 때 바른 자세를 취하려고 하지만, 통증이 사라지면 그런 생각이 더 이상 없어지고, 다시 좋은 자세를 취하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저의 무시선 수행의 일부는 자세를 살피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몸이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돌봐서 건강한 마음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최근에, 저는 몸과 마음이 얼마나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는 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체험을 했습니다. 저는 주로 논문이나 책을 쓰는 일 혹은 학생들이 쓴 논문의 초안이나 과제를 읽는 일을 거의 매일 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면 제 일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 일은 주말이나 휴일에 맞춰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집에서 몸과 마음을 충분히 이완하여 편하게 쉬어야 할 시간에도 집에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봉쇄령도 있었기에, 요즘은 집에서 거의 매일 일을 하게 됐는데, 언제 휴식을 취해야 하고 언제 일을 해야 하는지 몸에서 더 이상 신호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제 집이 사무실로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쉼터로써의 역할을 못하게 된 겁니다.

그 외에도,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업데이트 소식을 자주 접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들이 저를 조금씩 불안하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정신적으로 그다지 긴장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불안은 제 몸 속에 있었던 겁니다. 하루 중 대부분은 심장 박동수가 높아져 불안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늦은 밤 화상 회의를 자주 하면서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지 않으니, 제 몸은 더 이상 일하는 시간인지 쉬는 시간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또한 잠들기 직전에 뉴스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실수를 계속 범하고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잠들기 전 편안한 마음을 주지 못했습니다.

시차 때문에 뉴질랜드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전 세계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기에, 제가 잠에서 깰 때쯤엔 많은 뉴스가 보고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아침 선 전에 뉴스를 확인하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제 몸은 낮이고 밤이고 심지어 잠자는 동안에도 종종 깨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제 실수를 알아차렸을 때, 저는 재빨리 아침 선을 최우선 순위로 두는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단순한 연관성을 통해 일을 합니다. 우리가 자주 뭔가를 할 때, 우리의 몸은 예상하고 그에 따라 반응을 보입니다. 보통 우리가 일어나기 약 한 시간 전에, 우리 몸은 하루를 준비하기 위한 스트레스 호르몬을 배설합니다. 이것은 종종 몸이 예상하고 있는 바탕에서 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늦잠을 자서는 안될 중요한 일이 다음 날에 있을 때 우리 몸은 종종 알람 시계가 울리기도 전에 깨어납니다. 제 몸은 아침부터 긴장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리고 나서 하루의 시작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어납니다. 이것이 선을 최우선으로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저는 지금 다시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첫번째 일은 맑은 마음을 가지고 몸을 이완시키는 것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을 제 몸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쁜 하루를 보낸 후에는, 자기 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 몸에게 이제는 쉴 때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제 무시선-언제 휴식을 취해야 하고 언제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를 기억하는 것-수행의 일부분입니다.

번역/ 황상원 교무, 오클랜드교당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오클랜드교당예비원무


(영어 원문)

Anxiety and the body 
 
In this month’s article, I would like to say a few things about the importance of listening to our body. During these difficult times of the pandemic and the resulting economic and social uncertainty, it is not unexpected to be experiencing some anxiety. Such anxiety can be felt at two levels – the body and mind. This time, I would like to talk about anxiety felt at the level of the body, and the month after, I will talk about anxiety felt in the mind.
If we want to practice timeless Zen (mushi seon), then we need to be aware of both the body and the mind. When we are at rest, we tend to focus on the mind, but when we are in action such as in everyday life situations, it is important to remember both our body and our mind. Most of the time, we are aware of our body only when we take care of daily basic necessities such as brushing our teeth, grooming ourselves to get ready to leave our home, or when we feel hungry, exhausted, or tired. Sometimes, we might also have aches or pains, and that forces us to pay attention to our body more. For example, because I spend too much time working in front of a computer, I often feel back and shoulder aches. That reminds me to do some exercises and adopt a good posture when working, but when my pain is going away, that reminder is no longer there, and I often forget to look after my posture again. So, part of my timeless Zen practice in action is to try to have an awareness of my posture, to look after my body so that it stays healthy, which will also lead to a healthier mind.

Recently, there is something that I have experienced that reminded me again how much body and mind are connected. Because my work is very often ended such as writing articles and books or reading through thesis drafts and essays from students almost every day, it feels like my work never ends. I often can’t finish my work on time for the weekend or holiday, and therefore it has become a habit to do a lot of work at home and during a time when I should just give my body and mind some time to relax. And because we have had lockdown, I was now working from home every day, and there was no longer a clear signal for my body which environment means relaxation and which environment means work. In other words, my home started to feel like an office to me and no longer a place to rest. In addition to that, I was often reading the news about updates related to coronavirus, and I think the news have started to make me nervous. Even though I actually didn’t feel very nervous mentally, the anxiety was in my body. For most of the day, my heart rate was up and I felt uneasy.

After a while, I realised what I have done wrong. I was working unpredictable hours (often videoconference late in the evening), so my body did not have a clear signal when it was time to work and when it was time to rest. I also made the mistake of checking the news right before going to sleep, which didn’t give me a relaxed mind before sleeping. Because of time differences, a lot happens around the world when New Zealand is asleep, so when I wake up there are usually a lot of news reports. So, I was tempted to check news before I started my morning meditation. In other words, my body was often in a state of alert during the day and even around sleep time. Immediately after I woke up, the news made me nervous, which means that my morning meditation was also low quality because I had to calm myself down.

When I noticed my mistake, I quickly changed my habit back to giving morning meditation the top priority. Our bodies work through simple association. If we do something often, our body creates expectations and reacts accordingly. Around one hour before we normally wake up, our body excretes a stress hormone that makes us get ready for the day. This is often based on expectation. So, for example, when we have an important event for which we must not sleep in, our body often wakes up even before the alarm clock. And this is maybe what was happening to me. My body got used to getting nervous in the morning, and then made me wake up feeling stressed from the beginning of the day. That is why it is important to make meditation the top priority. I am now again teaching my body that the first thing in the morning is dedicated to a clear mind and a relaxed state of the body. And after a busy day, I try to calm myself down before sleeping to tell my body that it is time to rest. For me, this is part of my timeless Zen practice – remembering when it is time to rest and when to be in action.

Tag#몸#마음#시그널#불안#무시선#통증#컴퓨터#뉴스#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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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챙김] 불안과 삼학수행
 원선일 예비원무 승인 2020.07.08 11:34 호수 1177 댓글 0페이스북

원불교 마음챙김7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오클랜드교당 예비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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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 내가 이렇게 다시 불안한 생각이 왔구나.”
  • 하지만 단지 지켜보기만 하면, 그 생각은 곧 얼마 지나지 않아,
  •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지속적으로
  • 반복되는 걱정의 수레바퀴를 멈추어 조절할 수 있는
  • 능력이 생겼다는 말이지요.

In last month’s article, I discussed how the effect of anxiety can be seen in our body. Making simple changes to our body can have powerful effects on our mood. For example, sometimes when I am doing computer work, I notice how my shoulders are crouched together. When I then just try to relax my shoulder, I am starting to feel less stressed. So, simply by relaxing my posture, my mind also gets calmer.

지난달에는 어떻게 불안이 우리 몸에 작용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몸에 간단한 변화를 주기만 해도 일상의 기분에 강력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끔 컴퓨터로 일을 하고 있을 때, 저는 제 어깨가 굽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바로 어깨의 긴장만 풀려고 했을 뿐인데도, 스트레스가 좀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단순히 제 자세의 긴장을 풀었는데, 마음도 또한 고요해지는 것이지요.

I would now like to continue by discussing anxiety that is more persistent and that needs more work than simple changes to body posture. This tends to come from more long-term worries, such as worries about job, health, and family, and it can also include feelings of guilt and shame after having made a mistake in the past. Such anxiety generally leads to a tendency to keep thinking about the issue repeatedly, even when you should be doing other things. You become unattentive and absentminded and you start to enjoy things less. You will lose the ability to appreciate precious moments with family and friends or enjoy beautiful things in nature. If it carries on for a long time, this lack of enjoyment will often lead to depression. If your distress is very strong, always seek professional help. But here I will outline how mind practice can help you achieve happiness in the long term.

지금부터는 단순한 몸의 변화로 영향을 주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끊임없이 반복되는 감정인 ‘불안’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불안은 보다 더 긴 시간 동안 형성되는 걱정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예를 들면 직장, 건강, 가족에 관한 걱정이라든지 혹은 과거에 실수를 경험한 후에 느끼는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에 대한 느낌도 포함합니다. 이렇게 일어나는 불안은 일반적으로 경험한 그 사건들을 계속 반복해서 생각하는 습관으로 이끕니다.

점점 집중력이 떨어지고 방심으로 이어지며, 하는 일에 대한 흥미를 잃어갑니다. 가족과 친구와 지녔던 소중한 시간들, 자연 속에서 감사하기를 즐겼던 습관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만약 이런 증상들이 오랫동안 지속한다면, 삶의 즐거움이 부족해 우울증으로 종종 연결되지요. 만약 괴로움이 깊다면, 항상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는 어떻게 마음공부가 장기적인 측면에서 행복감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개요를 설명해보 고자 합니다.

In Won Buddhism, the threefold practice (삼학) is particularly relevant when we are talking about dealing with anxiety. First, cultivation of spirit (정신수양) provides you with a strong basis from which to address anxiety. Through regular meditation that focuses on your breath, you develop the skill to concentrate and control your mind. You don’t need to wait until you have become a meditation master who can concentrate for hours or days. Even beginners can see amazing effects after a short time. You can make powerful changes already even with just a little bit extra control over your mind. The key here is to carry your concentration skills into everyday life through timeless zen (무시선). For example, you can remind yourself throughout the day to check whether your breathing is rapid or deep, whether your posture is stiff or relaxed, and whether you are currently being distracted by irrelevant thoughts.

원불교에서는 삼학수행이 특히 우리가 불안을 다루고자 할 때 적절합니다. 먼저, 정신수양은 여러분에게 불안이 나타나는 것에 대한 이유를 알아차리게 해줍니다. 호흡에 초점을 맞춘 일상의 명상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마음을 집중하고 조절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줍니다. 그렇다고 꼭 몇 시간이나 며칠을 집중하는 명상 마스터가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심지어 초보자도 짧은 시간 안에 놀라울 만한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요.

마음을 조금만 조절함으로써, 강력한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여기 여러분의 집중 능력을 일상의 삶 속에 옮겨 놓는 주요키가 바로 무시선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 자신 스스로 일상의 호흡이 빠른지, 깊은지 자세가 굳었는지, 이완됐는지, 혹은 여러분의 쓸데없는 생각들로 현재 흩어지진 않았는지 반조해 볼 수 있습니다.

However, you have to be careful that you don’t just limit your practice to what I have just described. If you are not careful, you could actually be creating more anxiety by becoming more aware of negative thoughts and feelings. There is the danger that you become overwhelmed. To avoid this issue, make sure you consult an experienced practitioner. What is important to understand is that your practice would be incomplete if you didn’t also try to find out why you have anxiety and why you think the way you do. This leads me to the next part of the threefold learning, the inquiry into human affairs and universal principles (사리연구). Applying this to our example of anxiety, you would try to understand the reasons for your anxiety. If you keep regular notes and write your diary, you will find out gradually what situations make you feel anxious, and with time, these insights will become more and more detailed and subtle. One practice is to watch your feelings without immediately reacting. In Buddhism, this is called vipassana practice, and in Won Buddhism, it is cultivated through timeless zen (무시선) where you try to study your mind when it is in action.

하지만 제가 방금 설명한 것으로 자신의 수행에 한계를 짓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약 주의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더 많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릴수록, 실질적으로 더 많은 불안이 쌓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더 격한 감정에 압도되는 위험이 있지요.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지자들에게 지도를 받는 게 좋습니다. 자신이 왜 불안을 안고 살고 있고,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불완전한 수행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차릴 때, 삼학공부의 다음 단계인 사리연구 공부로안내할 수 있습니다. 불안을 예로 들었을 때, 불안이 생긴 이유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만약 일기장에 주기적으로 메모하고 기재해간다면, 내가 어느 순간들에 불안을 느끼는지 알게 되고, 통찰력이 점점 상세해지고 안정될 것입니다. 한 가지 수행은 여러분의 감정을 즉각적인 반응 없이 지켜보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위빠사나 수행’이라 하고, 원불교에서는 경계 속에서 마음공부 하는 ‘무시선’을 통해 길러지게 됩니다.

This means simply being aware of your anxiety and seeing how feelings come and go. You will see such thoughts as fleeting phenomena, a bit like clouds that pass in the sky. You learn that you can distance yourself from these thoughts and don’t be affected by them. For example, you might say to yourself “here I am having this anxious thought again”. However, you just watch, and not long after, you see that it is gone. This means you have managed to break the cycle of continuing to worry about things where one worrying thought leads to another. Of course, this skill takes time to acquire, but you also need develop a compassionate and patient mind. Won Buddhism will always stay with you, so there is no need to rush. Next month, I will talk about the third part of the threefold practice.

간단히 말하면 불안을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감정이 오고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때론 생각이 하늘에 스쳐 지나가는 구름떼처럼 떠다니는 현상처럼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이러한 생각들에서 떨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스스로를 느끼게 되겠지요. 예를 들면, 스스로 이렇게 말하게 될 수도 있지요. “여기 내가 이렇게 다시 불안한 생각이 왔구나.” 하지만 단지 지켜보기만 하면, 그 생각은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걱정의 수레바퀴를 멈추어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말이지요. 물론, 이러한 기술은 시간이 흘러야 얻어지지만, 자비로움과 인내심 또한 길러야 합니다. 원불교의 가르침은 늘 여러분과 함께 할 것이니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 달은 삼학 수행의 세 번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오클랜드교당 예비원무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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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그리고 작업취사_Anxiety and choice in action
 원선일 예비원무 승인 2020.08.11  호수 1181 

원불교 마음챙김8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오클랜드교당 예비원무
지난 호에서는 삼학을 아는 것이 어떻게 분노를 조절하는 데 적용이 되는지에 대해 다뤘지만, 이는 단지 정신수양과 사리연구에 한정해 다뤘다. 이번 호에서는 수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분노를 다스리는 것과 관계가 있기도 한 ‘작업취사’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Last month, I talked about how the threefold learning can be applied to dealing with anxiety, but I was only able to discuss the first two, namely cultivating the spirit (정신수양) and inquiry into human affairs and universal principles (사리연구). This month, I will talk about choice in action (작업취사) as the remaining part of this important practice, and again in relation to dealing with anxiety.
 

삼학 중 작업취사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습득된 두 가지(수양, 연구)의 힘으로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한 행동을 어떻게 취사로 적용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다. 즉 취사란 도덕적이면서도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취사는 누군가를 해롭게 하거나 삿되게 빼앗으면 안 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혹자는 어떤 행동이든 성냄이나 탐욕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얘기한다.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그러한 행동이 틀리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취사하는 주요 이유는 훈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예를 들어보자.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어느 정도의 자비나 훈계를 주는 것이 최선인지를 (취사)결정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According to choice in action of the threefold learning, we need to learn how to apply what we have developed through the other parts in order to make choices that result in beneficial outcomes for ourselves and other beings. This means actions that are ethical and promote well-being. Many such actions are obvious to identify, such as refraining from doing harm or stealing. In fact, one may even simplify and say that any action is to be avoided that is motivated by anger and greed. Even young children understand that such behaviours are wrong, and the main reason that these to occur is due to lack of discipline. Other times, however, it is harder to work out what the right course of action is, such as when determining what level of compassion or strictness is best when educating children. Such choices are then guided by experience, wisdom, and insight.
 

<원불교전서>에서 취사란 육근(눈·귀·코·혀·몸·마음)을 작용할 때 활용해 쓰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분노가 일어날 때 취사를 실행한다는 것은 먼저 마음에서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즉,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생각을 제어하고 이를 줄어들게 하는 바른 취사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때 우리는 마음챙김으로 단순히 반복되는 생각들을 주시하면서, 꼭 필요하지 않음에도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불안을 일으키는 내 안의 마음을 바라봐야 한다. 그 마음을 바라볼 때 불안은 곧 사라지며, 도움이 되고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준다.

The Won Buddhist scriptures explain that action means the functioning of the six sense organs, namely eye, ear, nose, tongue, body, and mind. When applying choice in action to anxiety, mind is something we need to work on first. We thus need to make the right choices by discarding thoughts that increase anxiety and encouraging thoughts that decrease anxiety. That doesn’t mean that we ignore problems, but we must realise that there are certain things that we can do something about but there are some things we cannot change. We then use mindfulness of our thoughts to simply observe repetitive thoughts that are not useful but only make us nervous. We then see them fade away, leaving us room for thoughts that are helpful and healthy.


또한 작업취사는 궁극적으로는 타인이나 다른 생명체에게도 이로움이 돌아가게 하기 위함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심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다른 이를 돕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분들에게는 이것이 매우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혹 우리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의 의무를 태만할 때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기억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열정적으로 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없다. 다만 때에 따라서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Even though choice in action (작업취사) is ultimately about benefiting other people and animals, you need to start with yourself so that you are in good health to help other beings. For some people, this may seem very difficult to do. We may think it is selfish to focus on ourselves. That may be so if we neglect our duties, but remember that you don’t benefit anybody if you burn out. This sometimes takes some time to resolve.
 

예를 들면, 여러분이 여러 해 동안 여러 가지 과중한 일들을 다루느라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는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이 세운 높은 가치 기준으로 스스로 완벽주의자가 되고자 했기에 힘든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과제에 본인 스스로 “네”라고 답하고 받아들였기에, 항상 100% 만족해서 할 수 없었던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실망하며 끝났을지도 모른다. 만약 여러분이 사리연구를 실천하며 충분한 성찰을 했더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가 얼마만큼인지, 또 실질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를 알아서 계획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For example, over the years, you may have loaded yourself with too many tasks to handle. On top of that, you may also have high standards and may even be a perfectionist. But because you have said yes to too many things, you end up disappointing yourself and others because you cannot do your 100% best each time. If you have generated enough insight through your 사리연구 practice, you will understand how much you can do, and you plan more realistically, knowing that things often take more time than initially thought.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 종종 바쁘다고 말하는 것의 문제점은 그 사람들이 (당신이) 바쁘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사람들은 항상 바쁘다고 말한다. 그때 여러분은 이것이 진짜일까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사실과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바쁘다고 말하는 것에 식상해 한다는 의미)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과도한 스트레스에 지쳐서 그리고 오랫동안 너무 바쁘게 살아온 삶에 지쳐있을지도 모른다. 이럴 땐 정말 사고가 생산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여기서 주요하게 다뤄야 할 것은 바른 취사를 한다는 것은 외부 상황에 기초하지 않고, 당신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들에게 안정을 주고 돕고자 하는 의도로 정중하게 말을 건넨다면, 사람들은 감사를 느끼고 본인 스스로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동물에게 좋은 일을 행했을 때, 자신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실질적 증거들도 여럿 나와 있다. 자선단체에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장수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이러한 사람들은 삶의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줄 수 있다.

The problem with saying to other people that you are busy is that most people can’t tell whether it is true or not. At my workplace, people used to say that all the time, and then you start to wonder whether this is really the case. In some cases, however, people may be burnt out after having felt stressed and busy for a long time, and then they are simply not productive. So, what really matters here is that you then make the right choices in the behaviours that are externally based – such as what you say and what you do. If you focus on fewer things and try to do them well and with the genuine intention of helping others, people around you will appreciate it, and you will also feel better. There is a lot of evidence that doing good things for other people and animals is healthy for you. Research has shown that people who volunteer for charitable organisations live longer and healthier lives. This is probably because you may realise first hand that you are not alone in the world with challenges in life, and you can be inspired by people who may even have it tougher than you.
 

다만 기억해야 한다. 작업취사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건강과 다른 이를 살피는 사이에서 중도를 잘 잡는 것이라는 사실을! 마음공부 잘 합시다!

But do remember to find the right balance between looking after your own health and those of others through continued practice of choice in action (작업취사). 마음공부 잘 합시다!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오클랜드교당 예비원무뉴질랜드 오클랜드 공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원불교 마음챙김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오클랜드교당 예비원무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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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을 위한 단련법(Discipline for Wellbeing)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승인 2020.09.06 호수 1185 

원불교 마음챙김9_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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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이란 어쨌든 전적으로 즐거워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생의 모든 부분이 오직 거기에 몰입되기 때문이다.

웰빙이란 삶의 전체가 균형에 맞고 나와 타자 간에 이익이 되는 것을 뜻한다.

오클랜드교당에는 영어로 된 큰 간판 싸인이 있다. ‘마음챙김과 웰빙을 위한 원불교 센터’이다. 이 이름은 교당을 정식으로 열기 전에 교무님과 오랫동안 다양한 토론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교무님이 나에게 원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할 때, 종종 웰빙(정신의 건강과 복지)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래서 원불교 이름 뒤에 웰빙을 붙이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겼다. 이번 호는 원불교 수행에 있어 웰빙의 중요성에 대해 반조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웰빙이란 영구적이며 모두를 감싸 안은 상태에 대한 일종의 표현이다. 모든 면에 있어서 이 단어는 우리의 사은을 인식하게 하고, 고요하고 감사한 태도로 행동하게 한다. 웰빙은 일원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다는 것을 기억하게 한다. 그러면, 우리가 웰빙을 수행한다고 할 때 실지로 어떻게 한다는 뜻일까?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더 열정적이거나 덜 열정적인 기간이 있다. 원불교 마음공부도 다르지 않다. 일상에서 매일 선하기를 우선순위로 놓고 다른 의무나 활동은 그다음으로 세우는 것이 쉬울 때도 있지만, 종종 무기력하거나 게으를 때도 있다. 아마 여러분이 개인 수행을 느슨하게 하는 것이 더 괜찮다고 여겨진다면, 혹은 일이나 가족 간에 해야 하는 의무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기 때문에 마음공부를 얼마간 넘어가도 된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모든 숙련된 원불교 수행자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왔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여러분의 단련을 증진시키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항상 하고 싶지 않은 일까지도 제대로 마무리 짓도록 단련해 왔다. 이런 단련들은 어려운 일을 극복해내는 능력을 진작시키고, 편리하고 게을러지는 일은 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이런 모든 것들은 다 좋다. 왜냐면 어쨌든 단련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안목으로 볼 때, 수행이란 어쨌든 전적으로 즐거워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정말 생의 모든 부분이 오직 거기에 몰입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최근에 겪은 한 경험에 비추어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교당에서 우리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에 선방을 운영한다. 올해는 특별히 참석률이 높았고, 나의 역할은 한국인이 아닌 참가자들을 돌봐주는 것이었다. 나는 대체로 1시간 동안 이뤄지는 긴 선방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지는데, 가끔 졸릴 때는 그렇지 못하다. 그때는 대개 직장에서 종일 일이 많았다거나 또는 가족의 의무까지 마치고 선방에 왔기 때문이다. 즉 일찍 일어나서 일하고 조금도 쉬지 못하고 선방에 오면 그렇다.

나는 선방 중에 졸리기 시작하면 그 순간을 수행을 단련시키는 기회가 왔음을 알아차린다. 모든 수단을 다해 최대한 깨어있고자 했고, 꾸벅거리는 졸음에 빠져들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깊은 삼매에 들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위해 뭐든지 하려고 노력했다. 짧은 낮잠을 자기도 했지만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결국은 나를 피곤하게 하는 삶의 스타일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말해, 웰빙을 지키면서 일을 한다는 것은 하루 전체를 두고 계획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행동은 연결되어 있고, 단련이라는 것은 별도의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웰빙이란 삶의 전체가 균형에 맞고 나와 타자 간에 이익이 되는 것을 뜻한다. 웰빙을 양성하는 균형적인 노력이 이른바 내가 부르기 시작한 ‘웰빙을 위한 단련법’이다.

At the Auckland Gyodang, we have a large sign that displays the following name in English: “Won-Buddhist Centre for Mindfulness and Wellbeing”. This name is the result of several discussions I had with Geunsan-nim before the opening of our Gyodang. When Geunsan-nim had been teaching me about Won Buddhism, he often referred to the importance of wellbeing, so it only makes sense to name our centre that way. In this month’s article, I would like to reflect on the importance of wellbeing in Won-Buddhist practice.

When speaking about wellbeing in Korean, Geunsan-nim often uses the word “jal” (잘). I always have the picture in my mind of his face expression when he pronounces the word. When he finishes with the final sound (ㄹ), he ends with a gentle smile, and his eyes light up. For me, that describes the meaning of the word very well. Wellbeing is about a state that is long-lasting and all-encompassing. It is not always about immediately feeling good or being without pain. It is about recognising the four graces in everything – and doing this in a serene and grateful manner. It is about remembering that Ilwon is utterly perfect, selfless and complete (원만 구족 지공 무사). So, what does it actually mean when we want to do our practice for wellbeing?

With any regular activity we do, such as starting a new exercise or nutrition program, we encounter periods where we are naturally more enthusiastic and sometimes less. This is not different for Won-Buddhist mind practice (마음공부). You may find yourself in a period where you find it easy to prioritise your daily meditation and plan your other duties and activities around that. You may also be motivated to keep a regular diary and record periods of mindfulness and absentmindedness throughout the day. Other times, however, you may get lethargic and lazy. Perhaps you think it is OK to be more relaxed about your practice, or you might be too busy with work and family duties that you think you have plenty of reasons to skip some of your mind practice. All of this is very normal, and I would say every experienced Won Buddhist will have gone through this, as well. So, what are we supposed to do?

A common reaction is to try to increase your discipline. From childhood, we are told to learn to be disciplined to complete tasks that we might not always want to do, and discipline helps us to improve as we get used to enduring hardship and abandoning convenience and laziness. All of this is fine, and it is necessary to be disciplined. However, in the long run, you need to turn your practice into something you utterly enjoy. Only then will you truly stick with it for the rest of your life. So, how do you do that?

I would like to use an example from my own recent experience. At our Gyodang, we offer evening meditation classes every Wednesday and Friday evening. Especially this year, we have started to get very good attendance, and my role is to look after non-Korean participants. I typically find these 1-hour long sessions very refreshing, but there have been some periods of time where I was very drowsy. This is usually because I had a long day at work and then also family commitments, which means I had to wake up early and didn’t get any rest. 

First, I saw this situation of being drowsy during meditation as an opportunity to practise discipline. I have tried all sorts of tricks to stay alert and learn what to do so I don’t drift off. However, after a while I realised that I am missing out on opportunities to have deep concentration, and I need to do something about it. Once or twice, I took a nap in the afternoon before the meditation session, but this wasn’t a regular option, because I often didn’t have enough time for that. So, I realised that my whole routine and lifestyle is what makes me tired. If I get more sleep at night, and more regularly, I will not feel drowsy in the evening. Perhaps I can try to find ways to work smarter or faster so that I don’t have to wake up so early to get everything done? In other words, I realised that working on wellbeing is something ongoing that you need to think about and plan the whole day. Every activity is connected, and discipline shouldn’t just be during isolated moments. I don’t want to disappoint people in my meditation class, so I need to work on all parts in my life routine to make sure it is balanced. Wellbeing is therefore when your whole life is in balance so that you can work for the benefit of yourself and others. This balanced effort to cultivate wellbeing is what I have started to call “discipline for wellbeing”.

 원불교 마음챙김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오클랜드교당 예비원무
오클랜드 공과대 심리학과 교수
 
9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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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 Nature and humans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승인 2020.10.08 호수 1189 

원불교 마음챙김 10
This month’s article is about nature and humans. Here, I mean nature as anything that is not artificial or created by humans. Of course, we are actually also part of nature, but we have now started to modify our environment in such radical ways that it starts to differ from the environment in which we evolved as a species. We have therefore started to speak of nature or the natural environment as something separate from us. Nowadays, where many of us spend most of the lives in cities and built-up environments, we have also developed an understanding of nature as something healthy and good and something that we long for.

이번 달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자연이란 어떤 것이든 인공적이지 않고 인간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닌 것을 뜻한다. 물론 우리는 실질적으로 자연의 일부분이지만, 환경을 근본적으로 너무 많이 바꾸어 놓아서, 종으로서 진화한 환경과 너무 다른 상태에 이르렀다. 따라서 자연 또는 자연적인 환경을 우리와 분리시켜 얘기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삶을 도시나 잘 짜여진 환경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 우리는 또한 자연을 건강하고 좋은 것으로, 우리가 갈망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eing humans, most of us take many good things for granted and only really appreciate things when they are becoming rare. When I was a child, there were many more insects around. I remember that, after a long car ride on the motorway, the windscreen and the front of the car was full of dead insects that had collided with the car. These days, cars are still very clean even after a long road trip. So, what happened to the insects? There are many speculations why, but most of them suggest that it is because of all the chemicals that are used by humans. Because of that, I now try to grow more flowers in the garden and even keep a stack of leaves and sticks around to attract insects.

인간이기에, 대부분의 우리는 주어진 좋은 것들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여기고, 그것들이 희귀해질 때만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정말 많은 곤충들이 주위에 있었다. 고속도로를 오래 달리다 보면, 차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곤충들로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날에는 자동차를 (고속도로에서) 오래 운전해도 여전히 깨끗하다. 과연 곤충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여러가지 추측이 있지만, 대부분은 인간에 의해 사용되는 많은 화학용품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나는 현재 정원에서 꽃을 더 키우기 시작했고 곤충들이 살 수 있도록 잎들을 많이 쌓아 놓는다.

 

When visitors come to New Zealand, they often comment how green everything is around here, but when you look closely, you can see that it is nature that is arranged and controlled by humans. Many gardens are well groomed, with gardeners focusing on every detail to make it look how they want it to be. Unfortunately, that means that many weeds and herbs are considered undesirable. Instead of accepting dandelion and wild flowers as part of nature, many people make their garden look like a golf course. In addition to that, the city council uses a lot of weed killer in the streets so that the curbs look tidy. The excess weed killer then flows elsewhere, and who knows where all this poison will eventually end up?

뉴질랜드에 방문객이 찾아오면, 모든 곳이 녹색으로 뒤덮여 있는지에 자주 언급하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에 의해 잘 정렬되고 통제되는 자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정원들은 정원사들에 의해 모든 부분에서 어떻게 보여지고 싶은지에 구체적으로 초점을 맞춰 잘 손질되어 있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잡초와 허브들은 달갑지 않게 여긴다. 민들레와 야생꽃들이 자연의 일부로서 수용되는 것 대신에, 많은 이들이 자기의 정원을 골프코스처럼 보여지게 만들기에 바쁘다. 더욱이 시의회에서 길에 잡초 제초제를 많이 사용하여 길 모퉁이조차 깔끔하게 보이게 한다. 과도한 제초제 사용으로 그것이 어디든 흘러들 때, 이런 모든 독성의 성분들이 결국 어디로 가서 종지부를 찍을지 누가 알겠는가?

 

So, when you look beyond the surface of such highly controlled gardens, it really only gives you the illusion that you are in nature. If we really want to nurture and appreciate nature, should we not try to stop controlling it so much? Should we not appreciate nature for what it is really like instead of how we want it to look?

고도로 통제된 정원의 표면 너머를 바라보면 실제로 당신이 자연 속에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만약 여러분이 정말 자연을 자양시키고 감사하게 여긴다면, 극도로 자연을 통제하는 것을 멈추려는 시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보여지는 자연 대신에 정말 있는 그대로 있어지는 자연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Of course, gardening and planting vegetables will always involve an element of modifying where and when certain plants grow. But when we do it, we need to remember to remain in harmony with it and not to be too controlling. For readers in Korea, I cannot recommend anything specific because gardens and the environment are very different there. But I encourage you to reflect on the impact that your behaviour is having and whether you are really noticing nature as it is or only see it as an reflection of how you want it to be.

물론, 원예 및 채소 심기에는 항상 특정 식물이 자라는 장소와 시기를 수정하는 요소가 포함된다. 하지만,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그것과 조화를 유지하고 너무 통제하지 않아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원예와 환경이 뉴질랜드와 다르기에, 한국의 독자들에게 특별한 방안을 제안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본인의 행동에 의해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말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아니면 원하는 방식의 반영으로만 보는지에 대한 반성을 권하고 싶다.

 

When Hotawon-nim (An Seongju Kyomunim) took me to Yeongwang a while back, it left a long-lasting impression on me. She took me for a walk with other kyomunims in the beautiful landscape. And while there were gardens, there was enough wild uncontrolled nature. Every now and then, one or two of the kyomunins were gone, and I was looking around for them. The next moment, they came back to the path carrying some herbs or plants – not much, just a little bit to enjoy and perhaps have for dinner. This reminded me to maintain a balance and stay in harmony with nature.

동전주교당 안선주 교무님이 오래 전 나를 영광으로 데리고 가셨을 때, 나는 실지로 오랫동안 충격을 안게 됐다. 교무님은 다른교무님들과 함께 아름다운 곳을 산책시켜 줬는데, 아름다움이 가득한 정원 안에 통제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가득히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교무님들 중 한두 분이 사라지시곤 하셔서 두리번 거렸다. 곧 교무님들께서 길가에 있던 약초와 식물들을 들고왔다. 저녁 식사에 필요한 정도, 많지 않은, 정말 꼭 필요한 만큼만 가져왔다. 이는 나에게 자연과 균형을 유지하며 조화롭게 사는 법을 상기시켜 줬다.

 

Nature is utterly fair and impartial. It follows a certain regularity that we need to recognise. If we really want to enjoy and appreciate nature, we need to accept it and not try to impose our will on it so much. This is a way to reciprocate the grace received from heaven and earth.

자연은 지극히 공정하고 사가 없다. 자연은 우리가 인식할 필요가 있는 일련의 규칙을 따라 움직인다. 만약 우리가 정말 자연을 즐기고 감사하고 싶다면, 우리 의지대로 자연을 강요하지 않고 수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천지에게서 받은 은혜에 보은하는 방법이다.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오클랜드교당 예비원무
오클랜드 공과대 심리학과 교수
 

10월 16일자

Tag#원불교 마음챙김#


원불교와 심리학에서 일기기재의 유사성 - 한울안신문 크리스 크레겔로

원불교와 심리학에서 일기기재의 유사성 - 한울안신문



원불교와 심리학에서 일기기재의 유사성

크리스 크레겔로
승인 2020.03.18 14:28
호수 1163

원불교 마음챙김3

원불교에서의 수행 중 중요한 한 가지는 일기를 기재하는 것이다. 이 일기법은 형식적이고 정련화된 수행법이며, 통찰과 지혜를 개발시킨다는 면에서 다른 수행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기를 어떻게 기재하는지는 교전에 잘 설명되어 있다. 선이나 다른 수행과 같이 일기법 또한 일기를 기재하는 습관을 일상화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일기 쓰는 습관을 갖기 위해 처음에는 잘 시작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그 횟수가 줄고 만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일기 쓰는 습관을 계속 유지시키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일기법은 우리들의 반복되는 일상을 유지시켜 주기도 하지만, 반조와 자기개발에 굉장한 힘을 주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할 때, 정말 쓸 것이 별로 없었고, 대체로 내가 했던 일이나 내 주위에 일어난 사실들에 대해 쓰면서 마무리 짓곤 했다. 여러분도 계속 그렇게 써 나가다보면, 마침내 변화라고 여겼던 몇 가지 에피소드 (예를 들면 당신이 어떤 환경에 어떻게 반응했고, 왜 그렇게 느꼈는지에 대해서)에 대해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심리치료에서 일기를 쓰는 것은 종종 상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 일기의 활용은 오랫동안 좀 줄어드는 기세도 있었으나 다시 더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하는 추세이다. 기초 심리단계에서 일기는 어떤 증상이 일어날 경우 상세히 받아적어 모니터링하는 데 사용되곤 했다. 일기 기재는 당신의 생각을 분석하는 데 또한 도움을 주고 일련의 영감을 안겨준다.

또 다른 일기 기재의 장점은 나의 생각을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이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정성을 들여 글을 쓰려 할 때, 결과적으로 우리의 생각은 종종 더 명확해짐을 보게 된다. 이또한 심리치료에 유용히 사용돼 왔다. 아마 여러분도 이러한 일기법을 사용하다보면 삶이 더 발전적으로 나아감을 알게 되고, 향후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내가 설명한 것보다 더 많은 장점들이 있다. 일기를 기재하는 것이 문제를 다루거나 당장 눈앞에 직면한 변화에 도움을 주는 것만 은 아니다. 지속적인 일기의 기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인식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당신 자신뿐 아니라 당신이 속한 세상도 지혜롭게 살아가는 능력을 심어준다. 심지어 당신이 현재 자주 하는 일뿐 아니라, 결국 세상을 보는 자세까지도 변하게 한다.

당신이 만약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산책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기회를 가질 것이다. 시를 쓰고 싶다면, 어떠한 감정이 일어날 때 습관적으로 시에 대한 영감을 받으려 할 것이다.

나는 이를 사진작가와 시인의 ‘마음설정’이라 칭한다. 즉, 습관적으로 일기를 기재하는 것은 '지혜로운 마음설정'을 본인이 기획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일기기재를 자주한다는 것은, 당신이 자동적으로 일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모든 삶의 상황에서 무엇을 기재할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습관화 된 일기 수행으로, 당신 자신이 점점 더 많은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일기법 수행을 통하여 당신의 생각은 점점 더 구체화되어 안정적이 된다. 당신은 전에 하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인식하기 시작할 것이고, 점점 더 궁금해질 것이다. 일기법을 통해 지혜를 개발시키는 것이 곧 당신 삶의 새로운 습관이 될 것이다!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오클랜드교당
예비원무



[원문]

Similarities between keeping a diary in Won Buddhism and Psychology

One important practice in Won Buddhism is that of keeping a diary. I deliberately call this a practice as it has a certain formal and disciplined aspect, and it goes hand in hand with other types of practices that are meant to develop insight and wisdom. The instructions on how to keep a diary are presented in the kyojeon, and like many other practices, such as meditation, it usually takes a while for people to establish diary writing as a habit. Like any habit, they need to be nourished, and we might start writing the diary frequently but then go through a period where we are doing it less often. However, it is important to keep trying to keep it up. Not only does it help us set up a daily routine, but it is also a powerful tool for reflection and self-development.

When I first start writing a diary regularly, I might find that there is little to write, and I end up writing largely about facts such as what I did and what happened around me. If you keep going with it, you will eventually start to write about some episodes that you found challenging, such as how you reacted to certain circumstances or why you felt a particular way. These give you an opportunity to re-live some of the events and see them from a distance. This is particularly the case when you write them down after a few hours have passed, when you had some time to calm down. It is also a good way to practise compassion, as you might try to forgive yourself and others, and try to understand why things happened the way they did.

In psychological therapy, diary writing has often been used to help people. For a while, it has been applied less, but it is now starting to have a comeback. At the most basic level, diaries can be used for monitoring such as noting down when symptoms occur. For example, you could write down the situations when you get angry or how often you had some distressing thoughts. In addition to this, however, diary writing can also help you analyse your thoughts (like a mirror for your thoughts) and give you insight. This is when you write short stories and try to explain why you may have behaved in a certain way. It has also been used to help people take on different perspectives (try to imagine you are somebody else).

One other advantage of diary writing is that it helps me structure and organise my ideas. When we speak, we often change topics quickly, and quite often we don’t even finish our sentences. When we write, however, we need to make a focused effort, and our thoughts often become clearer as a result. This can also be useful in therapy. When the client then sees a psychologist, they already have their concerns structured and grouped together rather than giving all information in no particular order. You can also see progress that you have made and thus use that information to make future goals.

However, there are more benefits than what I have just described. Writing a diary isn’t only about helping you deal with problems and challenges that you have right now. A regular practice of diary keeping also automatically changes your perception and grows more wisdom, starting with yourself and including more and more parts of the world. What you do often, also eventually affects how you see the world. If you are an architect and you travel to a new country, you look more at buildings. If you are a fashion designer, you will look more at people’s clothes. If you are a parent, you look at how other people interact with their children. We can’t help that – it is natural. But this also applies to our hobbies and habits. If you like to take photos, then you see opportunities for beautiful photos when you go for a walk. If you like to write poetry, you see inspiration for poems when you have certain emotions. I call this the photographer’s or poet’s mindset. In my opinion, regular diary writing gives you a “wise mindset” because, if you do it often, you automatically start thinking about your diary and what to write in everyday life situations. You might start carrying a little notebook with you at all times to write something down, or you might use your smartphone.

With a regular diary practice, you will see great changes over time. Gradually, your thoughts become more sophisticated and subtle. You will start to notice things that you haven’t before, and you become more curious. Developing wisdom then becomes your new habit.

마음공부로 삶의 문제 해결하자 < 교화 < 뉴스 < 기사본문 - 원불교신문

마음공부로 삶의 문제 해결하자 < 교화 < 뉴스 < 기사본문 - 원불교신문


마음공부로 삶의 문제 해결하자

기자명
입력 2004.03.23
호수 1096

▲ 김보명 교무

원기100년, 이제 14년 남은 역사적인 시점 앞에 우리들은 놓여있다. 앞으로 14년 후 이 세상과 우리 원불교는 어떻게 변화해 있을까? 그 변화의 흐름을 우리는 어떻게 지향해나가야 할까? 그리고, 그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대종사님은 역사 흐름의 두 물줄기를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으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종교로서 원불교가 담당해야 할 부분을 정신개벽으로 파악하시고 그 작업을 착수하신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다.

세상과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의 주체가 되는 것은 마음이다. 한 개인에 있어서도 결국 마음이 그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다.

개인과 세상과 역사의 주체가 되는 이 마음을 공부해서 개벽의 소식을 이뤄나가는데 개인과 세계의 구원이 있는 것이다.

우리 회상은 교화와 교육 자선 등 전 분야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모든 사업에 정신개벽이라는 기조가 생략되어 있다면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인 것 같다.

만법을 통하여 한마음 밝히자는 대종사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앞으로 내가 어느 분야에서 활동을 하건 그 일을 통해 내 마음을 공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올 해 새로운 임지에 부임해서 청소년들과 다음 두 가지로 공부하자고 하였다. 하나는 ‘교당과 내 현실생활을 하나로’이고, 하나는 ‘마음공부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교화현장을 경험하면서 절실히 느낀 것은 마음공부와 현실생활과의 연결 작업이다.

대종사님은 정신개벽이라는 대명제를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해 실현하시고자 하셨는데, 시대가 발달할수록 진실로 자기와 직접 관계가 있고 사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라야 수용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마음공부와 자기와의 관계를 쉽게 알도록 하고 그 공부의 형식은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공부 프로그램의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가 필요함을 절감한다. 교법이라는 하드웨어에 ‘마음공부의 효과적인 소프트웨어’를 그 시대와 구성원들에게 적절하게 가공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점은 후진으로서 참으로 감사한 부분이다.

원기100년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요 숙제이다. 그 길을 정신개벽이라는 대명제 아래, 마음공부(대종사님의 본의에 가장 부합되는, 시대와 대중과 생활에 가장 적절한)에 대한 프로그램화와 실질적인 훈련으로 인류의 정신을 개벽하여 광대무량한 낙원을 이루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도봉교당 보좌교무>

[마음공부] 긍정과 감사의 올바른 사용법/긍정_감사도 잘못하면 독이 된다/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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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 나는 누구인가?/내가 바로서야 행복합니다/소유인가 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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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 삶에 자신이 없고 외로움이 밀려올 때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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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쓸 데 없는 생각만 없으면 날마다 좋은 날/부처님의 가르침/차나 한 잔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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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가족 때문에 힘들 때 꼭 보세요/가족 갈등/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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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 인생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생활속 마음공부 방법/무시선_생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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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밑마음/잠재의식_무의식을 재설정하는 방법/잘못된 업의 패턴을 바꾸는 방법/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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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 집착의 의미_내려놓는 방법/행복을 원한다면_생각에서 빠져나와 현실과 만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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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인생이 힘들고 원망스러울 때/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꼭 보세요/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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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카르마 해결 방법/처처불상/우주 만물이 찐부처/용서할 권리가 업을 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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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겸손의 힘/겸손의 의미_효과/겸손과 열등감_자존감/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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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 윤회 전생 인과는 있을까요?/윤회와 마음공부/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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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와 전생, 인과는 있을까요? 
인생이란 한 번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육신은 변함에 따라 흩어지지만
윤회 전생 인과의 주체가 되는 
영식 즉, 마음은 영생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마음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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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카르마 운명 업보 마음 총정리/카르마를 경영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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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감사와 참회 소망 다짐의 기도 명상 / 감사하고 참회하며 원하고 바랍니다 /2020년 9월의 기도 _ 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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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긍정과 감사의 올바른 사용법/긍정_감사도 잘못하면 독이 된다/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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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누구나 인생에 고비는 온다/조급하지 말고 분발하며 나아가자/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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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너그러운 사람/수용과 소통/대인관계/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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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대인관계/자기로부터의 혁명/자기변화/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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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 마음공부 하는 사람의 꿈_서원/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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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삶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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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괴로움의 이유와 해결책/대인군자의 마음공부/채근담/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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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려면/있는 그대로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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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마음공부] 그남자 그여자가 만나는 이유/부부_남녀 갈등의 원인과 해결/진정한 사랑/결점인 채로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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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당신은 최고입니다/마음공부하면서 달라진 점/불완전한 채로 완전/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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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행복의 비밀/행복을 위한 세가지 비밀/근심 걱정없이 사는 방법/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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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 힘power을 키웁시다/원불교 자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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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단단한 자존감을 얻으려면/내가 내 인생의 주체가 되는 길/정신수양/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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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마음이 웃으면 인생이 웃는다/마음과 인생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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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편 '일상속에서 수행을 통해 행복을 찾으세요'

제499회 자기 변화를 위한 수행(법문)

마음공부가 몸공부, 몸공부가 마음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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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의 '몸살림' 이야기<6> 제몸 제가 책임지기

김철 몸살림운동가  |  기사입력 2005.05.14. 09: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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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꼭대기에서 곤두박질치다** 
 

무애스님은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는 지독한 경험주의자였다. 세상에 신비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경험에 의해 알 수 있고 또 풀 수도 있다고 보셨다. 필자가 4년 동안 스님과 함께 기거하면서 배운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을 가르치는 데도 무애스님은 경험주의자답게 가르치셨다.

스님과 함께 기거하던 첫 해 가을에 스님이 이상한 행동을 보여주셨다. 요즘 무협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큰 소나무 꼭대기로 올라가시더니 부러지지 않을 만한 굵기의 가지에 앉으셨다. 처음에는 살살 구르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세게 구르셨다. 소나무 가지가 위로 아래로 크게 철렁거렸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 훌쩍 날아 다른 소나무 가지 위에 사뿐히 앉으셨다.
 
몇 번을 이렇게 하시더니 내려오셨다. 참으로 신기하게 보였다. 뭔가 설명이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얼마 후에 또 똑같은 것을 보여주셨다. 나는 첫 번 볼 때에는 어안이 벙벙해서 입만 벌리고 보았지만, 이번에는 스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유심하게 살펴보았다. 첫해 가을 동안에 서너 번은 스님께서 이 소나무에서 저 소나무로 날아다니는 것을 본 것 같다. 몇 번 보니 필자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이 날래기로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던 때였다.
 
겨울이 지나고 어느 봄날 스님께 나도 한번 해 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스님께서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스님이 올라가신 적이 있는 소나무 가지 위에 올라가 살살 구르다가 점점 더 세차게 굴렀다. 가지가 가장 밑으로 내려갔다고 생각되는 순간 힘을 최대로 주어 굴러 다른 나무의 가지로 날았다. 그 순간 날았다고 생각했는데, 필자는 나무 아래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한동안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가지와 줄기가 연결되는 지점이 부러져 솔잎과 함께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스님께서는 내 얼굴 위에서 살짝 웃음을 띠고 내려다보고 있으셨다. 나는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다. ‘이놈의 영감쟁이가 남은 아파서 죽겠는데, 무엇이 좋다고 혼자서 웃고 지랄이야!’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좀처럼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엉덩이에 허리, 다리까지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저 나쁜 놈의 영감쟁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1주일을 누워지내다시피 한 후에야 통증이 가라앉아 겨우 운신을 할 수 있었다. 스님께 어찌 된 연유인지 물어보았다. 스님은 사뿐하게 날았는데, 왜 나는 안 되는 것이냐고. 스님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나무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가을의 나무는 봄부터 성장하면서 영양분을 빨아들여 탄력이 있지만, 겨울에 얼었다가 봄에 녹아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무는 탄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탄력이 하나도 없는 나무 위에서 한껏 힘을 주니 꺾이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말씀이었다. 
 
그러면 왜 말리지 않았냐고 따졌다. 내가 떨어질 것을 뻔히 알고도 무책임하게 올라가 보라고 한 것은 무슨 나쁜 심사가 있어서가 아니냐고,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몰아쳤다. 나는 정말로 화가 났다. 분명하게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사람은 정말로 나쁜 사람이다. 
 
스님은 여전히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너는 죽지 않았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잘된 것이고, 호되게 당했으니까 다음부터는 봄에는 나무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기가 찼지만, 스님 말씀에 전혀 일리가 없지도 않은 것 같았다. 
 
스님은 이런 분이었다. 머리로 하는 경험은 진정한 경험이 아니라고 보시는 분이었다. 몸으로 겪어 보면 확실하게 알지만, 머리로 알면 호기심이 발동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될 일도 해 볼 수 있게 된다고 보시는 분이었다. 몸으로 겪은 경험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경험이라고 보시는 분이었다. 
 
***삶지 않은 독버섯은 씹어도 뱉어 낸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픈 사람이 오거나 어디 아픈 사람이 있으니 와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를 제외하면 스님께서도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이렇게 한가할 때에는 산에 올라가 약초를 캐는 게 중요한 일과였다. 덕분에 필자도 힌약에 대해서는 조금은 귀동냥으로 배웠다. 어느 날 약초를 캐다가 보랏빛으로 아주 아름다운 열매를 발견했다. 앵두보다 조금 작았는데, 필자는 그 아름다운 빛깔에 황홀해졌고, 먹고 싶은 마음까지 동했다. 
 
스님께 여쭈어 보았다. “이것 먹어도 되는 거예요?” 스님의 대답은 이때에도 역시 간단했다. “먹어 봐.”
열매를 두 개 입에 넣고 씹었다. 그리고는 화들짝 놀라서 씹은 열매를 뱉어 냈다. 입안을 쏘았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았다. 둔기로 입안을 강타당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입안이 너무 아프니 저절로 뱉어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금방 입천장에 물집이 생기고 입이 퉁퉁 부었다. 
 
이때에도 화가 났다. “아니, 이런 열매를 먹어 보라고 하시다니요?” 스님의 답변은 이때에도 간단했다. “죽지 않았잖아.”
 
맞다. 죽지는 않았다. 죽지는 않았지만 이후 1주일간은 입안이 헐어 상당히 고생을 했다. 
 
스님이 설명을 해 주셨다. 독이 있는 열매나 식물, 심지어는 독버섯까지도 그냥 씹으면 절대로 삼키지 않게 돼 있다고 하셨다. 그 독성을 우리 입이 맛으로 알아채고 바로 뱉어 내게 돼 있다는 것이었다. 이게 자연의 섭리라는 것이었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이렇게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삶으면 입이 독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먹고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독버섯을 끓여 먹고 죽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생으로 먹고 죽었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인공이 가해질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던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스님이 필자를 가르치실 때에는 모두 직접 몸으로 체험함으로써 배우도록 하셨다. 때문에 몇 번 곤경에 빠져 고생한 적도 있지만, 그 덕분에 확실하게 몸으로 익히게 되기도 했다. 
 
물론 스님께서 철저하게 경험에 의존해서 가르치셨기 때문에 필자도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못했다. 모든 가르침이 개별적인 사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한계는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필자는 만 가지 병 각각에 대해서는 답을 줄 수 있지만, 이것을 전체적으로 체계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체계화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몸으로 느끼는 공부를 하자** 
 
우리 선현들은 원래 마음과 몸은 하나라고 보았다. 그래서 둘을 합쳐 ‘맘’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 둘은 하나이면서도 둘이었고, 또 둘이면서도 하나였다. 원효대사의 말씀대로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였다.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해서는 추후에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하고, 어쨌든 그래서 선현들은 공부를 크게 마음공부와 몸공부로 나누어서 보았다. 그러나 이 둘은 또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공부가 몸공부였고 몸공부가 마음공부였다.
 
그런데 서양 문명이 이 사회의 주류 문명이 되면서부터 마음공부와 몸공부는 뒷전으로 밀리고, 지식공부가 공부의 모든 것으로 바뀌었다. 지식은 우리의 몸과 마음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소위 ‘객관적인’ 것이다. 이러한 지식의 습득은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 무한경쟁의 세계에서 싸워 이기는 데 큰 도움이 돼 왔다. 
 
그러나 삶이 편리해진 반면 사람들은 예전에 없던 현대병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경쟁에서 이겨 봐야 삶의 질은 높아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마음공부와 몸공부를 되살려 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질 높은 삶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몸살림운동은 몸을 건강하게 함으로써 마음까지 열리게 하자는 운동이다. 몸이 쾌적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남들과 싸우지 않고, 오히려 나누면서 그야말로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공부는 몸공부에서 시작돼야 한다. 바른 자세를 잡는 법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몸공부는 몸으로 느끼는 공부가 돼야 한다. 무애스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몸의 경험을 통해서 자기 몸에 대해 샅샅이 알게 되고 또 스스로 느껴야 한다. 몸이 아프면 내 몸을 전문가에게 맡기고 낫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아! 이것 때문에 아픈 것이구나 스스로 알고, 그러면 스스로 나을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는 많이 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몸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몸을 알면 병을 없앨 수 있는데, 몸을 알 생각은 하지 않고 병만 탓한다. 병은 자기 자신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이 잘못된 자세를 가졌기 때문에 병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은 자기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몸을 의사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자기 몸에 대해 자기 자신이 책임을 지게 하는 운동, 이것이 바로 몸살림운동이다. 
 
***필자** 
 
1949년 서울 생 
저서 <몸의 혁명>(백산서당 간) 
연락처(momsalim.or.kr)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30329#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마음공부, 세상적으로 or 성경적으로? : 목회/신학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마음공부, 세상적으로 or 성경적으로? : 목회/신학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마음공부, 세상적으로 or 성경적으로?
김영빈 기자   ybkim@chtoday.co.kr   |   입력 : 2003.06.16 08:06




안점식 교수, 마음공부 신드롬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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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마음공부는 맡기는 것이고 세상적 마음공부는 관조하는 것이다."

틱닛한 등으로 대표되는 티벳 불교나 힌두교, 원불교 등에서 소개하는 마음공부가 근래 들어 더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불안하고 각박한 세태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이러한 열풍 속에서 헤아려볼 수 있는 듯 하다.

기독교인들은 세간의 마음공부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안점식 교수(한국해외선교훈련원)는 세상적 마음공부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비판하며 성경적 마음공부를 소개했다. 그는 성경적 마음공부가 현대인들에 대한 복음전도의 새로운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교수가 '마음공부 신드롬, 어떻게 봐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월간 '목회와 신학' 6월호에 기고한 글을 살펴보자.

세상적 마음공부에 대한 성경적 고찰
안 교수는 마음공부를 성경적 관점에서 이해해보고자 했다. 우선 일반은총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마음공부를 통해 인간의 마음에 대한 보편적인 원리를 추출해낼 수 있다. 그런 반면 마음공부에는 인간의 죄성과 반역성, 그리고 사탄의 역사와 영향력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안 교수는 세간의 마음공부의 주요 가르침들을 살펴보면서 이를 성경적 관점에서 평가했다.

첫째, 마음공부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통제하려고 하는 마음을 포기하라"고 한다. 안 교수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조종하려는 태도를 포기하는 것은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나, "기독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앞에서 통제권을 하나님께 넘겨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하나님의 절대 통치를 깊이 묵상, 고백하므로만이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생각이나 감정을 그래도 관조하라"고 말한다. 생각이나 감정을 관조하는 것을 통해 만물이 덧없이 변화하는, 즉 집착할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이에 대해 "생각과 감정의 잘못된 전개를 중지시켜주는 효과가 있다"며 그러나 "기독교에는 인간 스스로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는 것 외에도 하나님이 생각과 감정을 주관하시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셋째, "선악, 옳고 그름, 나와 너를 분별하지 말라"고 한다. 즉 가치판단을 중지한 도덕적 상대주의를 반영한다. 안 교수는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한 이사야 5:21을 인용하며 위와 같은 가르침은 성경의 도덕적 절대주의에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넷째,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하다"고 한다. 본래 마음에는 죄가 없기에 마음공부는 진리인 마음에 그 기반을 두며, 죄의식을 갖는 것은 어리석게 여긴다. 그러나 기독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렘 17:9)이라고 선언하며 이런 생각에 정면 도전한다.

하나님공부와 마음공부
안 교수에 따르면, 불교나 힌두교는 고통을 제거하는데 주안을 둔다. 여기서는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고 봐 생각과 감정의 주체인 개인이 마음을 공부하고 다스리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성경도 잠언 4:23, 잠언 16:32 등에서 마음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고통 제거가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죄의 문제다(호 4:6, 호 6:3, 6, 엡 1:17). 안 교수는 "기독교는 마음공부가 아닌 하나님공부를 지향하는 종교"라고 평했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은 세상의 것과 질적으로 다른 평안을 주시기 원하시며(요 14:27) 그 분 안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우리 안에도 충만하기를 원하신다(요 15:11).

특히 안 교수는 기독교가 "단순히 수양하기 위한 종교가 아닌 문화명령과 지상명령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는 종교"라고 강조했다. 즉 기독교는 타종교들과 다르게 초월성 뿐 아니라 역사성을 강조하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마음공부는 마음을 편케하는 테크닉을 제공할 뿐 사명을 제시하거나 경배하고 순종해야 할 절대신을 등장시키지도 않아 사람들을 '편하게' 해 준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마음을 다스려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실현하기 위해 부름받았다. 안 교수에 따르면, 기독교에서 사명과 영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에 그리스도와의 동행이 기독교적 마음공부의 핵심이다.

성경적 마음공부
안 교수는 불교의 선사들은 화두를 숙고해 깨달음을 얻고 이를 내면화한다며, 기독교인들도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해 이를 내면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타종교의 수행방식을 기독교 영성훈련에 활용해보려는 최근의 시도들에 대해, 이런 방식은 혼과 육에서 출발하는 수행법으로(이는 하나님과 관계하는 자리인 영이 죽어있기 때문이다) 늘 마음, 호흡, 몸 자체에 집중하기에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집중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요즘 유행하는 내적치유 역시 심리학과 기독교의 결합으로 하나님보다 나 자신에서 지나친 관심을 집중시키는 부작용을 나을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안 교수는 성경에도 마음공부와 관련된 구절들이 많다며(특히 지혜서에) 성경이 말하는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성경에서 하나님공부와 마음공부는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성경적 마음공부는 내 안의 죄에 대한 깊은 자각에서 시작된다.

자아가 파쇄된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 안에서 깊은 평안을 맛보게 된다고 한다.

안 교수는 성경적 마음공부는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자신의 통제 욕구를 내려놓고 기도, 간구,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올려드릴 때(빌 4:6)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빌 4:7)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적 마음공부의 최고봉을 '성령충만'으로 꼽으며, 성령충만하면 성령이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시게 된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기독교인들이 세간의 마음공부를 한다는 사람만큼만 열심을 낸다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될 뿐 아니라 나아가서 그들 이상으로 마음을 다스려서 평안한 마음, 거룩한 마음,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 기도시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묵상하고 인격을 실어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난 후 나에게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하나님께 올려서 맡기는 것이 요구된다.

제언
"한국 복음주의 교회는 전도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온 결과로 영적 성숙을 결여해 사회의 존경을 잃어버리고 단순히 공격적인 종교로 인식되는데 이르렀다. 성경적인 마음공부를 발전시키는 것은 한국적 신학, 상황화 신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불안과 두려움, 스트레스 가운데 높여있는 현대인들에게 복음전도의 접촉점이 될 것이며 한국기독교의 영적 성숙을 고양하는 의미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마음 공부 - 경북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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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김살로메(소설가)등록일 2014.12.29 02:01게재일 2014.12.30 댓글 0기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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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맘속 평화를 갈망한다. 모든 문제는 화평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왜 심리적으로 한결 같은 평화가 지속되지 않는 걸까. 욕심 때문이다. 모든 화의 근원은 욕심이다. 미운 사람이 생기는 건 내 욕심에 그가 차지 않기 때문인 거고,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도 내 욕심이 부른 화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조절되지 않는 게 사람이다.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이라며 조물주는 인간의 그런 행동을 느긋이 즐긴다.


평화를 바란다면 우선 기대할 것이 없어야 한다. 기대할 것, 즉 기댈 곳이 없으면 절로 평정심은 따라온다. 산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새벽녘에 금궤 덩이가 머리맡에 놓여 있기를 바라고, 방주를 지휘하는 노아처럼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나만 선택해줄 것 같은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평정심은 이내 허물어진다. 일단 평정심을 유지하기만 하면 사물이나 상대에게 흔들림이 없게 된다. 그 무엇이 내 곁에 없어도 살 수 있고, 그가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게 된다. 중심이 잡힌 그 마음이면 비로소 사물이나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일상의 괴로움 대부분은 그 무엇이 내 곁에 없어서 그렇고, 그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 그렇다. 모든 건 내 편협한 생각의 우물에서 비롯된다. 그 물은 깨끗하지도 향긋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내 우물만은 그럴 것이다, 라고 믿고 싶어 한다. 갇혀 있는 상태에서 열린 상태로 만드는 부단한 마음의 노력 그것이 곧 중심을 찾는 길이다. 중심이 잡히면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중심을 향하는 공부가 마음공부이다. 그것만 제대로 되면 사물 때문에 번잡할 일도 사람에게 흔들릴 일도 없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그의 책이고 벌어지는 사태는 그의 선생이며 위대한 행동은 그의 웅변이다.` 매콜리가 한 말이다. 올 한해 내 마음이란 책에도 많은 선생이 다녀갔다. 숱한 선생이 다녀갔지만 아직 위대한 행동인 웅변의 단계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터진 목으로 웅변이 되어 나오도록 하는 길, 그 마음의 중심 길에 닿기 위해 남은 날도 정진할 따름인 것.

일상생활의 마음공부 -유무념 공부를 중심으로- < 한국종교교육학회 < K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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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s : Mind Practice in Daily Life: With a Special Focus on the Practice of Checking Mindfulness and Unmindfu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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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 Jin Young Jang )
발행기관 : 한국종교교육학회
간행물 : 종교교육학연구 37권0호
간행물구분 : 연속간행물
발행년월 : 2011년 12월
페이지 : 111-134(24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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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념 무념 유무념 공부 마음공부 상시일기 무시선 무처선 Mind Practice Mindfulness Unmindfulness Practice of Checking Mindfulness or Unmindfulness Keeping a Daily Dairy Timeless Son Placeless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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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마음에 대한 관심은 학문적·이론적 영역을 넘어서 경험적·실천적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문적인 훈련기관을 찾아 일상의 생활과 세속의 인연을 끊고 자신의 마음만을 집중하는 ``정기(定期)의 공부``도 중요하지만, 일상의 가정과 직장을 떠나지 아니하는 ``상시(常時)의 공부`` 즉 ``일상생활의 마음공부`` 또한 중요하다. 원불교는 불교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를 지향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출가와 재가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 불법(佛法)을 공부하고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그 공부법으로 ``훈련법(訓練法)``을 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유무념(有無念) 공부``는 일상생활의 경계(境界)에서 응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공부법 중 하나이다. 유무념 공부는 첫째 ``하자는 조목``과 ``말자는 조목``의 ``유무념 조목``을 미리 정하는 ``준비공부``, 둘째 실제 경계 상황에서 미리 정한 조목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실행공부``, 셋째 이때 취사하는 주의심을 가지고 한 것을 ``유념(有念)``으로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무념(無念)``으로 하여 매일 대조하여 그 공부 정도를 살피는 ``반조공부``로 이루어진다. 이는 각각 「상시훈련법」 「상시응용 주의사항」의 2조, 1조, 6조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 유무념 공부의 패턴이 상시공부의 기본 패턴[2조→1조→6조]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유무념 공부의 범위도 동·정을 반복하며 확대될 수 있으므로 구경에는 무시선(無時禪)·무처선(無處禪) 공부와 연결될 수 있다. 유무념 공부는 1925년경 일상생활에서 마음공부[상시공부]를 점검하기 위하여 ``유념무념대조법(有念無念對照法)``을 실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1928년경 단원들의 ``일기성적조사법(日記成績調査法)``이 정식으로 시행되면서 유무념 공부는 일기법보다 초보적이고 낮은 수준의 공부법으로 인식되거나, 일기법 시행 이전의 예비단계 공부로 인식되는 경향이 자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무념 공부는 깊은 단계에 이르게 되면 그 양상이 사뭇 달라진다. 즉 초입 단계에서는 외부의 경계에 따라 유념·무념을 조사기재하는 대조공부가 주를 이루는 반면에 공부가 능숙해진 단계에서는 내면의 심경에 따라 그 대조 범위가 크게 늘어나 동할 때나 정할 때나 항상 본래 마음[공적영지의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고 심신(心身)을 사용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처럼 유무념 공부는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본래 마음을 떠나지 않고 살아가는 공부를 하고, 일상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공부 패턴을 제시하여 경계 속에서 삼학병진(三學竝進)의 취사 실행을 하며, 동시에 공부가 깊어질수록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무시선·무처선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한다.
In modern society there is a growing preference for studying the mind from an experiential or practical level, rather than from an academic or theoretical one. Although it is important to engage in ``Periodic Practice`` (Fixed-Term Training) by entering a professing training center and temporarily leaving behind one`s routine life, what is equally important is setting up a ``Regular Practice`` (Daily Training) or a ``Mind Practice in Daily Life,`` that integrates and is carried out in one`s life without abandoning one`s home or work environment. Won-Buddhism established a teaching based on the buddhadharma suitable for this era, lifestyle, and public. Sotaesan enacted the ``Dharma of Training`` in order to study the buddhadharma and apply it in one`s life regardless of whether one is ordained or lay. Among his teachings, Sotaesan taught the ``Practice of Checking Mindfulness and Unmindfulness`` (abbreviation. PMU) designed to directly study the mind when faced with ``Sensory Conditions (境界)`` in daily life. PMU follows three requirements: First is ``preparation practice,`` which means setting up in advance ``an article to do`` and ``an article not to do.`` Second is ``action practice,`` which means going on with one`s daily activities keeping in mind the pre-defined articles and ``making choices with sound thought.`` Third is ``reflection practice,`` which means investigating one`s level of study by accessing whether one was ``mindfulness`` (有念), if making choices with heedfulness or ``unmindfulness`` (無念), if making choices without heedfulness. These three points correspond with articles [1, 2, 6] of the ``Items of Heedfulness in Daily Applications`` in the section called ``The Method of Daily Training.`` Therefore, the PMU contains the basic pattern [or article 2.→article 1.→article 6. in ``Item of Heedfulness in Daily Applications``] of daily study. Furthermore, the scope of the study expands by repeating ``when to act`` and ``when to rest,`` finally connecting mind study with the teaching on ``Timeless Son (無時禪)·Placeless Son (無處禪).`` The PMU that carries out ``The Method to Assess Mindfulness or Unmindfulness`` was practiced most widely in small edification groups composed of ten people called Tan around 1925. However, ``The Method of Keeping a Dairy`` formally took effect around 1928, and since that time up until now ``The Method to Assess Mindfulness or Unmindfulness`` has been considered a more basic method than that of keeping a diary. However when the PMU is practiced at a deep level it takes on a completely new aspect. At the beginners level, the PMU depends on outside sensory conditions, but at the level of an adept, that practice depends on the inner state of the mind. So the scope of access greatly expands and the person at this level only studies how they are using their mind and body when in action or at rest without having to leave the original mind [or the self-nature of the void or calm and numinous awareness]. Therefore it becomes a living practice in which a person does not leave their original mind in daily life. PMU presents the most basic patterns in everyday life, making choices in action to progress the threefold study together, at the same time. And ultimately, anyone can do ``mind practice`` regardless of time or place.
UCI(KEPA)
I410-ECN-0102-2012-200-002875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