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9

원주에서 근·현대 사상가 한자리에서 만난다 - 이로운넷



원주에서 근·현대 사상가 한자리에서 만난다 - 이로운넷






원주에서 근·현대 사상가 한자리에서 만난다

이로운넷 원주=김선기 주재 기자
승인 2019.09.16



사상가 다석·씨알·무위당 선생 사상 고찰을 위한 강좌와 포럼 잇따라 열려
원주 무위당학교, '근대 한국의 생명사상을 찾아서' 특별강좌 17일부터
무위당학교 생명사상포럼도 10월 10일 원주시립중앙도서관에서 개최

대표적인 한국 근·현대 사상가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강좌와 포럼이 잇따라 개최된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사상을 배우고 실천하고자 운영되는 강원도 원주의 무위당 학교(교장 황도근 상지대 교수)에서는 9월 17일부터 10월 8일까지 ‘근대 한국의 생명사상을 찾아서’를 주제로 특별강좌를 연다.

무위당학교 특별강좌 '근대 한국의 생명사상을 찾아서' 알림 웹자보.

특별강좌에서는 다석 유영모(1890 - 1981) 선생과 씨ᄋᆞᆯ 함석헌(1901-1989) 선생, 무위당 장일순(1928-1994)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다.

17일과 18일에는 대한성공회 윤정현 사제가 ‘다석 유영모의 생애와 사상’, ‘다석 유영모의 씨알들의 빈탕맞춰놀이와 우리말 유희’를 주제로 강연을 펼친다. 24일과 25일에는 한남대 김조년 명예교수가 ‘씨ᄋᆞᆯ 사상의 형성과정’, ‘씨ᄋᆞᆯ 사상과 평화세계’를 주제로 강연한다. 10월 1일에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무위당과 환대의 사상’을 주제로 강연하며, 10월 8일에는 조성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최시형에서 장일순으로’를 주제로 강연을 펼친다.

특별강좌는 매회 오후 6시30분부터 무위당기념관(원주시 중앙로83 밝음신협 3층)에서 진행된다.

10월 10일 13시 원주시립중앙도서관에서 개최되는 무위당학교 생명사상 포럼 알림 웹자보.

‘다석 유영모, 씨ᄋᆞᆯ 함석헌 그리고 무위당 장일순’이라는 부제가 달린 무위당학교 생명사상포럼은 10월 10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원주시립중앙도서관에서 개최된다.

△다석의 생애와 사상(정양모 신부) △말로 가르치지 않는 스승, 무위당(경희대 전호근) △씨ᄋᆞᆯ, 멈춰진 시간에서 생성하는 정신으로(김대식 함석헌 평화연구소 부소장) △함석헌과 찰스 테일러의 공동체주의(유현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연구위원장) △장일순의 모심과 동학의 侍(구태환 상지대 초빙교수)를 주제로 강연과 발표가 이어진다. 이후에는 황도근 교수의 사회로 종합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황도근 무위당학교장은 “다석과 씨ᄋᆞᆯ, 무위당 선생은 밖에서 활동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근·현대 사상가로 모두 탁월한 대중적 소통력을 가지고 있었고, 철학을 서민들과 함께하는 대중 강연과 자유로운 사유로 사상을 정립해 나갔으며 특히, 함석헌 선생과 장일순 선생은 시대정신과 서민들의 아픔을 몸으로 채화하고 저항하는 삶 속에서 사상을 실천했다.”라며 “외적인 급성장 속에서 정신적 가치관이 무너지는 현재 우리 사회 속에서 이분들의 사유와 철학을 통해 우리가 갈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이번 강좌와 학술포럼은 무위당학교와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HK+사업단이 공동 기획·운영하고 있다. 자세한 문의는 무의당 기념관(033-747-4579)으로 하면 된다.

류영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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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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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류영모, 오른쪽이 그의 제자 함석헌이다

류영모(柳永模 1890년 3월 13일 ~ 1981년 2월 3일, 서울 출생)는 한국의 개신교 사상가이며 교육자, 철학자, 종교가이다. 호는 다석(多夕)이다. 조만식, 김교신 등과 같은 세대로,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이현필 등의 스승이다. 다석(多夕)은 많은 세 끼(多)를 다 먹지 않고 저녁(夕) 한 끼만 먹는다는 뜻이다.[출처 필요]


목차
1생애
1.1출생과 성장
1.2기독교 신앙에 귀의
2결혼과 YMCA활동
3생애와 사상
4제자들
5지은 책
6가족
7함께 보기
8관련 서적
9참고 문헌
10외부 링크


생애[편집]
출생과 성장[편집]

1890년 3월 13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아버지 류명근과 어머니 김완전 사이에 맏아들로 태아났다. 5살때 아버지에게 천자문을 배우고 6살때 홍문서골 한문서당에 다니며 통감을 배웠다. 10세에 수하동 소학교에 입학하여 2년을 다니고 다시 한문 서당에 다녔다. 12살때부터 자하문 밖 부암동 큰집 사랑에 차린 서당에서 3년 동안 맹자를 배웠다.

기독교 신앙에 귀의[편집]

15세에는 YMCA 한국 초대 총무인 김정식의 인도로 개신교에 입문하여 연동교회에 다녔다. 경성일어학당에 입학하여 2년간 일본어를 공부했다. 1909년 경기도 양평양평학교에서 한학기동안 교사로 일하였다. 1910년 이승훈의 초빙을 받아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2년간 근무하였다. 1912년에는 기독교 사상가요 문인인 톨스토이를 연구하여 그 영향으로 기성교회를 나가지 않게 되었다.

톨스토이는 그의 짧은 소설들(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에서 드러나듯이,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은 교회에 나가는 종교행사의 충실한 참여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삶과 복음을 이웃에 대한 자비,정직한 노동, 양심적 병역거부, 악을 선으로 이기는 비폭력투쟁등으로 실천하는 삶이라고 이해했다. 일본 도쿄에 가서 도쿄 물리학교에 입학하여 1년간 수학하였다.
결혼과 YMCA활동[편집]

1915년 김효정과 결혼하였고, 이후 최남선과 교제하며 잡지 《청춘》에 '농우', '오늘'등 여러 편의 글을 기고하였다. 1919년 삼일운동 때에 이승훈이 거사 자금으로 기독교 쪽에서 모금한 돈 6천원을 아버지가 경영하는 경성피혁 상점에 보관하였다. 후에 이것이 적발되어 압수당하였으며 류영모 대신 아버지 유영근이 체포되어 105일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21년 조만식의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에 취임하여 일년간 재직하였다. 1928년 YMCA의 연경반 모임을 지도하기 시작하여 1963년까지 약 35년간 계속하였다. 1928년 이전에는 아버지의 경성피혁상점의 일을 도왔는데, 이후로는 아버지 유명근이 차려준 솜공장인 경성제면소를 경영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잡지 《성서조선》에 기고를 하였으며 이 일로 1942년 일제에 의해 종로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57일 만에 서대전 형무소에서 아들 의상과 함께 풀려났다. 해방 후 행정 공백기에 은평면 자치위원장으로 주민들에 의하여 추대되었다.
생애와 사상[편집]

정인보, 이광수와 함께 194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리기도 했던 류영모는, 1921년 오산학교 교장을 지내나 이후 은퇴하여 농사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노자》를 번역하기도 했다. 기독교를 한국화하고 또 유, 불, 선으로 확장하여 이해했다.[1] 그의 강의중 일부는 제자들에 의해 남아 있고, 해설과 함께 나오기도 했다. 강의들은 순우리말로 되어 있으나, 기발한 표현이 많고 함축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학자들은 류영모의 종교다원주의가 서양보다 70년이나 앞선 것에 놀라고 있다. 그의 종교사상1998년 영국에든버러(Edinburgh)대학에서 강의되었다.[2]

제자들[편집]

제자 중에서 가장 아끼던 이는 함석헌이었다. 함석헌의 씨알 사상은 류영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이 퀘이커로 종교적 외도를 한 것에 대해서 크게 나무라고 의절하였다. 류영모와 제자 함석헌의 사상은 2008년 8월호 《기독교사상》에서 특집기사 〈왜 유영모와 함석헌인가?〉로 소개되었다.[3]

지은 책[편집]
노자(늙은이)[4]

《다석강의》, 다석학회 엮음, 현암사
《다석일지》, 김흥호,
《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 상·하, 박영호, 두레
《제소리》(류영모의 강의록), 김흥호,
《다석 류영모 명상록》, 박영호 역·해, 두레
《다석 유영모의 동양사상과 신학》, 김흥호 , , 2002년
《잃어버린 예수》(다석 사상으로 다시 읽는 요한복음), 박영호 , 교양인 , 2007년
《다석 유영모》(동서 사상을 아우른 창조적 생명철학자) , 박재순 , 현암사 , 2008년
《나는 다석을 이렇게 본다》, 정양모, 두레, 2009년
《다석 마지막 강의》류영모 박영호, 교양인, 2010년

참고 문헌[편집]

중앙일보 2001년 4월 5일자
《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 (상)》, 박영호, 두레
2008년 8월호 《기독교사상》-특집:왜 유영모와 함석헌인가?, 대한기독교서회 p.18-75
道德經 함석헌 기념사업회

김창진: 쿠바 춤추는 사회주의



알라딘: 쿠바 춤추는 사회주의




쿠바 춤추는 사회주의 - 낭만쿠바와 사회주의쿠바 사이
지은이)가을의아침20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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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요?

190쪽
152*223mm (A5신)
266g
ISBN : 9791195265275



책소개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와 체 게바라 등이 이끈 1959년 쿠바혁명은 처음부터 ‘사회주의혁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처음에 민주주의혁명이요, 민족주의혁명이었다. 쿠바는 이제 “20세기 사회주의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지속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거의 마지막 실증적 답변의 사례로 보인다. 그것은‘사회주의’ 또는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입장에 따라 “아직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사회주의 쿠바” 또는“아직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침투하지 못한 후진국 쿠바”로 여겨진다.


목차


책을 펴내며
낭만쿠바와 사회주의쿠바 사이

김창진 | 쿠바는 어디로 가는가?
: 혁명과 황금시대, 고난의 시기와 경제개혁

빠벨외 김창진 대담 | 쿠바의 목소리
: 쿠바의 지식인, 지역사회활동가, 사업가들의 이야기

최윤오 | 쿠바 아바나광장의 ‘춤추는 사회주의’

김성보 |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쿠바의 농업협동조합

심성보 |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학교로 여기는 쿠바 교육

이현옥 | 누구를 위한 보건의료인가?
: 주민을 위한 쿠바의 1차의료 체계



저자 및 역자소개
김창진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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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및 사회적경제대학원 교수.
쿠바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미래의 향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저자는, 이외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경제 관련 저작으로 『퀘벡모델』, 『사회주의와 협동조합운동』, 『협동과 연대의 인문학』(편저), 『협동조합의 딜레마』(공역) 등이 있다. 다른 주제로 쓴 책으로는 『문명과 야만의 블록버스터: 영화로 보는 제국의 역사』, 『시베리아 예찬』, 『러시아의 선택』(공저) 등이 있다.



최근작 : <쿠바 춤추는 사회주의>,<사회주의와 협동조합운동 (반양장)>,<퀘벡모델> … 총 1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쿠바는 어디로 가는가?

소련에서 중국, 베트남까지

소련에서 중국, 베트남까지 국가사회주의 개혁의 길을
먼저 간 선배들이 있지만 쿠바 지도부는 그대로 따라가려 하지 않는다.
‘쿠바의 길’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혁명이 엄청난 사건이라면 개혁은 지난한 과정이다.
혁명은 초법적 사태이지만 개혁은 합법적 조율이 불가피하다.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와 체 게바라 등이 이끈
1959년 쿠바혁명은 처음부터 ‘사회주의혁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쿠바의 공산혁명을 이끈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라는
상투적인 문구는 쿠바혁명사를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게으른 자들의 블로그 제목에 불과하다.
그것은 처음에 민주주의혁명이요, 민족주의혁명이었다.

쿠바는 이제 “20세기 사회주의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지속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거의 마지막 실증적 답변의 사례로 보인다.
그것은‘사회주의’ 또는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입장에 따라
“아직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사회주의 쿠바”
또는“아직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침투하지 못한 후진국 쿠바”로 여겨진다.
낭만쿠바와 사회주의쿠바는 계속 행복한 살사를 추며 함께 갈 수 있을까? 접기







연구자들이 집필했음에도 쉽게 쓰였다. 옛 것이 그대로 잔존한 쿠바와 한국 시공 격차는 50년으로 느껴진다. 그 만으로도 이 책에 나온 쿠바는 알고 싶고, 보고 싶은 나라이다.쿠바를 여행하는 데서 나아가 쿠바를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Spaniard 2017-12-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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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사회주의와 협동조합운동 (반양장)



알라딘: 사회주의와 협동조합운동 (반양장)




사회주의와 협동조합운동 (반양장) - 혁명 전후 러시아의 국가와 협동조합 1905~1930
김창진 (지은이)한울(한울아카데미)2008-08-07






312쪽
152*223mm (A5신)
437g
ISBN : 9788946039384


책소개
1991년 말 소련의 붕괴 이후 사실상 사회주의는 운동으로서나 현실 체제로서 모두 실패한 것으로 선언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사회주의의 실패’라는 단순화된 테제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의 이상형을 상정한 채 현실적이고 역사특수적인 분석을 게을리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특수한 국가사회적 조건 속에서 실제 운동가들과 대중들이 염원했던 이상과 그것이 부딪혔던 현실적 장애물들을 세밀하게 분석해내고 있다.

특히 저자는 기존의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연구들이 도외시했던 ‘협동조합운동’에 주목하여 이것이 차르 체제와 전시 공산주의, 그리고 스탈린 체제하의 국가권력과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 러시아 사회주의 체제의 실패가 러시아 인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층과 도시 노동자층의 공통의 이해관계를 제도화하는 데 실패한 것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목차


서 문
서 장 러시아의 국가와 사회, 그리고 협동조합운동

1부 러시아의 협동조합 사상
제1장| 20세기 초반 러시아 협동조합운동의 이념
제2장| 차야노프의 협동조합 이론
제3장| 소비에트의 협동조합 개념: 레닌의 협동조합 계획과 부하린의 해석

2부 러시아의 국가·사회주의·협동조합운동
제4장| 차르 정부와 러시아 협동조합운동(1905~1914)
제5장| 제1차 세계대전과 혁명기의 협동조합운동(1914~1918)
제6장| 소비에트 국가와 협동조합의 운명(1918~1930)





저자 및 역자소개
김창진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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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및 사회적경제대학원 교수.
쿠바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미래의 향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저자는, 이외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경제 관련 저작으로 『퀘벡모델』, 『사회주의와 협동조합운동』, 『협동과 연대의 인문학』(편저), 『협동조합의 딜레마』(공역) 등이 있다. 다른 주제로 쓴 책으로는 『문명과 야만의 블록버스터: 영화로 보는 제국의 역사』, 『시베리아 예찬』, 『러시아의 선택』(공저) 등이 있다.



최근작 : <쿠바 춤추는 사회주의>,<사회주의와 협동조합운동 (반양장)>,<퀘벡모델> … 총 1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스탈린 체제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은 존재했는가
- 레닌과 부하린의 사회주의적 이상과 사회주의적 협동조합운동의 좌절된 역사 -

1991년 말 소련의 붕괴 이후 사실상 사회주의는 운동으로서나 현실 체제로서 모두 실패한 것으로 선언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사회주의의 실패’라는 단순화된 테제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의 이상형을 상정한 채 현실적이고 역사특수적인 분석을 게을리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특수한 국가사회적 조건 속에서 실제 운동가들과 대중들이 염원했던 이상과 그것이 부딪혔던 현실적 장애물들을 세밀하게 분석해내고 있다. 특히 저자는 기존의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연구들이 도외시했던 ‘협동조합운동’에 주목하여 이것이 차르 체제와 전시 공산주의, 그리고 스탈린 체제하의 국가권력과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 러시아 사회주의 체제의 실패가 러시아 인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층과 도시 노동자층의 공통의 이해관계를 제도화하는 데 실패한 것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기존 연구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성급한 일반화에서 벗어나 각종 고문서 자료들과 당시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협동조합 문건들을 통해 탄탄하게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성과 역사성을 더하고 있으며, 현실 사회주의가 겪어야 했던 비극적 운명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세계를 뒤흔든 페레스트로이카 막바지에 모스크바로 건너가 소련 체제의 붕괴를 목도한 저자의 눈을 통해 본 ‘현실 사회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당시 러시아 인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층은 과연 차르 전제정부와 사회주의 국가를 어떻게 바라보았으며, ‘평등’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사회주의 세력들은 이들의 염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국가건설에 이용했는가? 저자는 당시 농민들의 대다수를 포괄하고 있던 협동조합 운동과 국가권력의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단면도를 그려내고자 한다. 진실한 민주정치와 인민의 의지에 근거한 ‘민주공화국’을 외쳤던 농민과 협동조합운동가들의 이상과 염원이 볼셰비키와 스탈린 체제하의 국가권력과 충돌하면서 맞이한 비극적 운명은 비단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대중의 뜻을 반영하지 못하는 대의민주주의의 위기 속에 놓여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이 책은 시기적으로 상이한 사회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제정러시아 시기 전제정부, 1917년 2월 혁명 직후 자유주의적 임시정부, 그리고 10월 혁명 이후 소비에트 국가권력이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와 인민들이 결합한 사회·경제운동이었던 협동조합운동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시계열적으로 비교분석함으로써 근대 러시아의 형성 과정에 각인된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살펴보고 그 연장선상에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우선, 1부에서는 협동조합운동에 대한 사상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1장에서는 동업조합주의, 순수협동조합주의, 사회주의적 협동조합주의에 대한 비교분석을 통해 러시아 인텔리겐치아가 서유럽에서 태동한 협동조합이라는 사회적 무기를 이용해 어떻게 사회적 진보를 달성하고자 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서유럽에 비해 후진적인 상태에 놓여 있던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협동조합 운동가들이 지향한 최종 목표는 조합원들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넘어선 사회적 평화와 평등을 건설하는 것이었으며, 이들의 사상에는 일종의 유토피아적인 성격이 내포되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광범위한 대중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의 사회화에 기초한 변혁운동이기도 했다. 이어서 2장에서는 당대 최고의 농업경제학자였던 차야노프의 협동조합론과 ‘협동조합적 집산화’ 개념에 대한 분석을 통해 1920년대 신경제정책 시기 농업의 점진적인 사회화와 농민층의 자발적 사회주의화의 이론적 기초를 살펴본다. 3장에서는 마르크스, 레닌, 부하린에 이르는 근대 사회주의 사상의 맥락에서 협동조합의 사회경제적 위상을 살펴보고, 이들이 시대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협동조합관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조명한다. 레닌은 초기에는 협동조합을 평가절하했지만 1920년대 ‘신경제정책’ 시기에는 “토지가 사회화되고 공장이 국유화된 곳에서 협동조합이 전 사회를 포괄하면 그것이 곧 사회주의”라고 말할 정도로 협동조합운동을 사회주의 건설에 적극 이용하려 했다. 그의 사후 ‘마지막 볼셰비키’로 불린 부하린도 바로 그러한 레닌의 정치적 유언을 계승하여 ‘노농동맹에 기초한 평화적 이행’과 ‘사회 각 계층의 이해관계에 걸맞은 다양한 협동조합 체계로의 편입’이라는 사회주의적 협동조합 노선을 체계화했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상이한 정치사회적 조건에서 러시아 협동조합운동과 국가권력의 협동조합 정책이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실시한다. 구체적으로 4장에서는 제정러시아 말기 전제정부와 협동조합의 관계를, 5장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기와 혁명기의 협동조합운동의 역할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소비에트 정부하에서의 협동조합의 위상과 한계를 다룬다. 각 시기마다 협동조합은 상이한 흥망성쇠 과정을 거치지만 필자는 상이한 국가권력이 모두 협동조합을 대다수 인민을 포괄한 경제조직으로서 이용하려 했다는 점과 이들이 가진 사회운동적 성격을 폐기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고 말한다.
결국 1920년대 소비에트에서 전개된 치열한 권력투쟁의 결과 스탈린이 권력을 잡고 초고속 공업화와 강제적인 농업집산화 정책을 채택하면서 협동조합운동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더구나 내전 시기에 볼셰비키를 지지했던 대다수 농민들이 스탈린 체제에 반대하여 일으킨 봉기가 ‘사회주의 정부’에 의해 진압되는 과정에서 결국 ‘협동조합적 사회주의’ 노선은 최종적으로 폐기되었다. 필자는 이로 인해 스탈린 체제가 종말에 이르기까지 스탈린식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어떤 유의미한 사회주의적 대안도 현실성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결국 이를 통해 필자는 소련 인민의 대다수를 점했던 농민층을 적대시하고 농민과 도시 노동자층의 공통의 이해관계를 제도화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소련이 1920년대 말, 진보적인 사회주의 체제로의 진화에 실패했다고 결론 내린다. 1920년대 말~1930년대 초 스탈린의 강제적인 농업 집산화 과정에서 폐기된 협동조합적 사회주의 노선은 곧 스탈린식 ‘현실 사회주의’가 구조적으로 대안의 부재 상태로 전락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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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Social Concerns and Native Peoples

Yesterday I discussed the visionary statements we wrote during our Peace and Social Concerns committee meetings this summer at Iowa Yearly Meeting (Conservative).
One area of ongoing interest and concern is our relationships with Native peoples. The blog post at this link summarizes some past work of our Yearly Meeting regarding Native Americans: Iowa Yearly Meeting (Conservative) Friends and Indigenous Peoples. This has been the focus of my spiritual work, study and activities for several years now. Participating on the First Nation-Farmer Climate Unity March in September, 2018, was transformative for me. As a group of about forty Native and non-native people walked 94 miles over 8 days together, along the path of the Dakota Access Pipeline, I was blessed to make so many friendships. Now I have Native friends who can help me learn more about Indigenous life and spiritual practices.
As written below, we were fortunate to have Paula Palmer with us this summer, leading workshops related to “Toward Right Relationships with Native Peoples”. More about that can be found here: https://kislingjeff.wordpress.com/?s=toward+right+relationships. One important thing related to that was writing a land acknowledgement statement, describing the history of the land we are meeting on. I encourage Friends who don’t have such a statement yet to write one. Consulting with Native people in your area to help write, and verify the accuracy of your statement will help you build relationships with Native peoples.
Following is part of the Peace and Social Concerns Committee report that was approved this summer.
To this day we have not come to grips with fundamental injustices our country was built on, the cultural genocide and theft of land from Native Americans, the enslavement of African Americans and the legal justifications of bestowing rights and privileges on white land-owning men. The consequences of these injustices continue to plague our society today. And will continue to impact us until we do what is necessary to bring these injustices to light and find ways to heal these wounds.
Several Friends recently assisted Boulder Meeting Friend, Paula Palmer, to lead workshops and discussions as part of her ministry “toward right relationships with Native people.” Part of the tragedy of the theft of Native land is that some Native people don’t have the concept of land as property, belonging to a landowner. Rather they have a spiritual connection to Mother Earth, that the land is sacred and not something that can be claimed as property by anyone. Being forced to leave their land broke their spiritual bonds with the land.
Native people have asked us to begin work toward reconciliation and healing. The first step needed is truth telling, recognizing that injury or harm has taken place. One of the important parts of holding “right relationship” workshops is to determine which Native nations were on the land before white settlers arrived. The following Land Acknowledgement for Iowa was approved by the Meskwaki Nation. We encourage Friends to read this acknowledgement statement when meetings take place on the land called Iowa.
We begin by acknowledging that the Land between Two Rivers, where we sit and stand today, has been the traditional homeland for many independent nations. These include the Ioway and the Otoe, who were here since before recorded time. The Omaha and the Ponca were here, moving to new lands before white settlers arrived. The Pawnee used this land for hunting grounds. The Sioux, Sauk and Meskwaki were here long before European settlers came. Members of many different Indigenous nations have lived on these plains. Let us remember that we occupy their homeland and that this land was taken by force. Today, only the Meskwaki Nation, the Red Earth People, maintain their sovereignty on their land in the state of Iowa. They persevered and refused to be dispossessed of their home. Place names all over our state recognize famous Meskwaki chiefs of the 1800s like Poweshiek, Wapello, Appanoose, and Taiomah or Tama. We honor the Meskwaki Nation for their courage, and for maintaining their language, culture and spirituality. May our time together bring respectful new openings for right relationship to grow.
Iowa Land Acknowledgement Statement
Part of the healing needed relates to the forced assimilation that was attempted, and often time occurred, by kidnapping Native children and taking them to Indian Boarding Schools. This was the topic of Paula’s presentation at Scattergood Friends School and Farm. Some may question why this needs to be discussed today. The reason is for the truth telling, and to name how whiteness historically ignores the multigenerational trauma imposed upon indigenous people. Healing begins when truth telling begins. Multi-generational trauma affects Native people today. One Friend shared with a Native friend that he knew about the Quaker Indian Boarding Schools, and he was sorry for what happened. His friend then told about a phone call from his mother when he was at Standing Rock. She was very distraught because she recognized the rope used to tow a boat across a narrow channel of water, and it reminded her of the Indians using a similar boat and tow rope to help the Native children escape when white men came to take them to boarding schools.
Some Friends have been working to support the concept of an indigenous led Green New Deal. Iowa Citizens for Community Improvement (ICCI) is supporting the youth organization, the Sunrise Movement, that has been successful in moving toward a Green New Deal.

도리우미 유타카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



알라딘: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
도리우미 유타카 (지은이)지식산업사201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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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18,000원
판매가
17,100원 (5%, 900원 할인)



298쪽
152*225mm
56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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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학자의 눈으로 일제강점기 토목업을 둘러싼 조선 경제의 실상을 실증적인 방법론으로 탐구한 책이다.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에서 일제가 조선에 뒤늦게 투자를 시작하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선전했음을 지적한 도리우미 유타카 한국역사연구원 상임연구원은 이 책에서 그 장밋빛 발전의 허구를 낱낱이 파헤친다.


목차


머리말 5

서설 15
들어가는 말 : 다양한 체험담 _15 / 일제강점기 조선 경제에 대한 연구사 _18 / 조선인 빈곤의 원인은 무엇인가 _22 / 한국인의 빈곤은 자본주의 성립기의 보편적 현상인가 _25 / 당시의 일본의 경제 상황 _26 / 조선총독부의 재정 _28 / 산업조사위원회 _31 / 철도 부설과 산미증식계획 _32 / 자본주의 형성기의 일본 재정 _36 / 자본주의의 형성기의 한국 재정 _38 / 조선의 안행형 경제 발전을 무서워한 일본 _40 / 조선에 투자된 자금은 조선 거주 일본인이 독점 _42

제1장 1910년 이전 일본인 청부업자의 성장과 조선 진출
제1절_ 일본인 청부업자의 발생과 성장 45
일본 개국과 서양 토목기술의 습득 _45 / 외국인 기술자를 통한 토목기술 수용 _47 / 코르넬리스 요하네스 판 도른 _52 / 근대적 청부업의 등장과 발전 _56 / 회계법의 성립과 청부업의 난립 _57
제2절_ 일본인 청부업자의 조선 철도 건설 진출 65
일본 철도 건설의 정체 _65 / 조선에서 철도 건설의 시작과 경인철도 _67 / 경부철도의 건설 _73 / 경부철도의 속성 공사 _83 / 경의철도 공사 _85 / 한국 토목청부업자의 소멸 _87

제2장 조선총독부의일본인 청부업자 보호정책
제1절_ 재정지출에서토목 관련 비용의규모 91
조선총독부 예산의 토목 관련 비용 _91 / 식민지기의 재정 지출과 사회간접자본의 형성 _103 / 《조선청부업연감》에서 산출한 토목공사비 _110
제2절_ 일본인 청부업자 보호와 조선인 청부업자 억압 114
토목 정책의 목적 _114 / 토목 정책 기구 _115 / 발주입찰에 관한 법률 _117 / 기술주임제도와 철도국 청부인 지정제도 _121 / 억압받는 조선인 청부업자 _124
제3절_ 관리 출신 일본인 청부업자 134

제3장 일본인 청부업자의 이윤 창출 활동
제1절_ 일본인 청부업자 단체와 공사 예산 확보 활동 143
조선토목건축협회 _144 / 회계규칙 개정과 담합 문제 _148 / 산업조사위원회와 토목공사 예산 획득을 위한 동상운동 _150 / 산업 개발 4대 요항 결정 _157 / 동상운동의 시작과 관동 대지진 _159 / 와타나베 데이이치로의 동상운동 _162 / 제국철도협회의 건의 _168 / 조선철도촉진기성회 _171 / 제52회 제국의회의 법안 승인 _173 /
제2절_ 일제하 조선인 노동자의 저임금과 일본인 토목청부업자의 부당 이익 177
임금 미불 문제 _181 / 저임금과 청부업자의 부당 이익 _189
제3절_ 일본인 토목청부업자의 이윤 창출 사례 206
토목 담합사건 _206 / 일본의 담합 _210 / 조선의 담합 _214 / 담합에 대한 유무죄의 논리 _217 / 경성 토목 담합사건과 그 고찰 _222
제4절_ 일제하 수리조합사업과 일본인 토목청부업자들 229
토목청부업자가 본 수리조합사업 _237 / 식민지 조선 농가의 경제 상태와 견주어 본 수리조합사업 금액 _240 / 수리조합사업 공사금액 검토 _245 / 수리조합사업의 관리비 _247 / 수리조합사업과 일본인 지주의 이익 _251 / 일본인 토목청부업자와 일본인 지주의 유착 _253 / 일본인의 취직자리로서 수리조합 _258 / 수리조합의 대행기관 _261

제4장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분류와 반론
식민지 근대화론의 분류 _266 /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반론 _271

결어 279

참고문헌 286
찾아보기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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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도리우미 유타카 (鳥海豊)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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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다. 같은 대학 아시아 태평양 연구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은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일제하 일본인 토목請負業者의 활동과 이윤창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역사연구원 상임연구원이자 선문대학교 강사이다. 일본인들에게 무의식중에 형성된 혐한적 역사 인식을 바로잡는 강의로 한국학생들과 일본인 유학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주요 논저로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 31운동 100주년 기념 한일공동연구》(공저, 지식산업사, 2019), 〈일제하 수리조합사업과 일본인 토목청부업자〉,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분류와 반론〉 등이 있으며, 《東大生に語った韓國史》(李泰鎭 著, 明石書店, 2006)를 옮겼다. 접기


최근작 :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본학자의 치밀한 논증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의 근거를 실증적으로 비판하다
계량 분석 및 계층 간 이해?유착관계 포착으로 식민지 경제의 내막을 밝힌 화제작
수탈론의 발전적 계승이자 새로운 이론 정립의 서막

일본학자의 눈으로 일제강점기 토목업을 둘러싼 조선 경제의 실상을 실증적인 방법론으로 탐구한 문제작이 출간된다.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이태진.사사가와 노리카쓰 공편, 2019)에서 일제가 조선에 뒤늦게 투자를 시작하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선전했음을 지적한 도리우미 유타카 한국역사연구원 상임연구원(선문대학교 강사)은 이 책에서 그 장밋빛 발전의 허구를 낱낱이 파헤친다. 일본인으로서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차분한 사색과 일본학자 특유의 정치한 논리는 독자들을 이내 사로잡는다.

청부업자를 축으로 꿰뚫은 식민지 경제 발전의 허상

철도 등이 건설되고 근대적 법제가 도입되었음에도 왜 당시 조선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제 지배가 경제적으로는 조선에 도움이 되었으며 조선 빈곤의 책임을 전통 사회로 돌린다(《반일종족주의》). 그러나 저자는 그 반례로 재정 분야의 정치권력 개입 사례인 철도 및 수리조합사업에 주목한다. 일본인 토목청부업자들은 재정을 들여 조선 경제의 인프라를 확장시킨다는 총독부와 유착하여 많은 이익을 취하고 경인?경부철도 공사에서 보듯 조선인 청부업자들을 배제시켜 나갔다. 저자는 총독부 통계자료와 칙령은 물론, 당시 토목건축업협회 잡지의 실태 조사를 샅샅이 훑어 논지를 입증해 나간다. 이때 일제와 일본인 지주의 이익구조를 꿰뚫는 경제학자의 예리함이 돋보인다. 담합사건을 유죄로 하면서 정무통감 통첩의 형태로 지명경쟁입찰을 도입, 청부업자를 구제하는 ‘악의 시스템’을 고발하는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결국 조선으로 투자된 막대한 자금의 상당 부분은 일본인 청부업자와 지주의 손아귀에 들어가 조선인들은 가난에 허덕였던 것이다.

통계와 수치 그 행간을 읽다

허수열 교수도 지적한바(2017) 강점기 통계 문서들은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그럼에도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본인이 1945년에 작성한 표를 들어 강제징용 때 조선인 탄광부의 임금이 상당히 높았다고 주장한다(《반일종족주의》). 이에 저자는 통계 자료가 미처 제시하지 못하는 정황이나 데이터의 행간을 읽음으로써 식민지 경제의 민낯을 세세히 그려낸다. 조선인 노동자의 임금을 추정하면서 그 실태와 조선총독부 통계 자료 사이의 간극을 찾아내고, 체험담, 수기나 신문 보도 등을 근거로 일본인 청부업자 편에서 이루어진 조사의 한계를 밝히는 것이다. 임금 미지급과 그로 말미암은 저임금의 유지는 ‘보이지 않는’ 착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료 수치상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국가권력의 간섭?폭력이나 일본인끼리의 연대감 등은, 곧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언급하는 ‘일상의 자발적 거래’까지도 방해하는 장애물이자 ‘이중구조’를 고착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수탈론에서 부당 이익론으로

계량 분석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통계의 함정과 일상 거래의 경우의 수까지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정연태 교수가 지적(2011)한 ‘식민지 수탈론의 연구방법상의 낙후성이나 실증상의 한계’를 극복한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특히 근대화론자들의 비판을 받아왔던 ‘수탈’이라는 개념 대신 정치권력에 의한 경제 분야의 부당 관여, 부당 이익, 부당한 방치, 부작위 등 구조적 폭력을 직시하자고 제안한다. 제4장에 언급한 금융 분야에 대한 사례가 더해지고 조선 후기와 해방 후 경제 조사가 보강된다면, 앞으로의 저자 연구는 근대화론의 맹점을 효과적으로 타파하는 정론正論이 될 뿐만 아니라 이 시기 경제 연구의 신개척이 될 것이다.
최근 한일 관계가 전방위에 걸쳐서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반일’ 혹은 ‘친일’ 모두 현 상황을 타개하는 궁극적인 대안은 아닐 듯하다. 갈등의 근원은 과거사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아마도 가장 근본적으로 긴요한 첫걸음은 실사구시에 입각한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일 것이다. 따라서 ‘일본인도 납득할 수 있는 논리’를 제시하고자 한 이 책이 역사학계, 더 나아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파문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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