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6

메노나이트와 여름 바캉스!

메노나이트와 여름 바캉스!

메노나이트와 여름 바캉스!

메노나이트와 여름 바캉스!

- 문선주(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참으로 어색한 조합 아닌가?
급진적 제자도를 표방하며, 시대의 세속문화를 거슬러 성경적인 삶을 위해 대항문화를 형성하는 메노나이트들이 자본주의의 총아이자, 소비문화의 절정을 찍는 여름 바캉스를 즐긴다는 말은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전동 킥보드를 탄다든가, 고급 스테이크를 먹고 숭늉을 마시는 것처럼 영 어울리지 않는 조합임에 틀림이 없다.


자, 먼저 이 두 단어가 가지고 있는 괴리감을 이해하기 위해 정리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메노나이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16세기의 급진적 종교개혁을 이끈 아나뱁티스트1들의 후예들이다. 당시 기독교는 세상을 통치하는 국가권력의 핵심이자, 삶의 반경과 관계를 결정하는 법의 칼날이 되어, 저항할 수 없는 공기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아나뱁티스트들은 국가와 신앙의 경계에 분명한 선을 긋고 국가의 공권력으로부터 탈피하여 자발적인 개인의 신앙고백으로 신자가 되어 근원적인 개혁을 외쳤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뼈 속까지 들어있는 정신은 ‘비순응주의’이다. 그들은 성서적인 원리를 위해 시대정신에 저항했던 급진적인(radical)인 성향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21세기의 메노나이트들도 이 시대의 자본주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개인적 신앙보다는 공동체를, 패권에 의한 평화보다는 예수의 평화와 초대교회의 제자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바캉스라는 단어는 어떤 말인가? 바캉스라는 단어는 라틴어 vacationem에서 유래 되었는데, “여가, 자유, 의무에서 면제”라는 뜻이 있고 현대에는 더 나아가 ‘여행과 낭만’의 이미지로 자리매김을 했다. 일과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약간의 일탈을 누리는 바캉스는 그 단어를 듣거나 떠올리기만 해도 연상되는 즐거움과 흥분을 자아내는 힘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위축감과 소외감을 안겨주는 묘한 이중성을 가진 말이기도 하다. 요즘 사람들의 가치관이 ‘어떻게 일하고 성취 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소비하고 즐기느냐’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기에 바캉스는 소비의 한 형태로서 자본주의라고 하는 큰 동력을 움직이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고로, 바캉스는 빈부의 격차를 판가름해주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제 바캉스는 일로부터의 해방과 탈출이라는 고전적인 의미보다는 자본주의라는 커다란 보이지 않는 체계로의 흡수이자 자본주의가 만개시킨 소비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메노나이트와 바캉스의 조합을 다른 말로 해 본다면 자본주의라는 큰 흐름에 대한 ‘역류’와 ‘편승’이라는 나름의 충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노나이트들도 ‘여름은 덥고, 일은 버겁고, 쉬어야 회복되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바캉스를 떠난다. 특별히 자본주의의 메카인 북미지역에 많이 몰려 있는 메노나이트 사람들 모두가 일반개신교 사람들과는 현격한 차이를 두는 형태의 바캉스를 지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자본주의에 역류하는 ‘메노나이트식 바캉스’라고 볼 수 있는 사례들을 소개할 수 있다.


첫째는 공동체지향형 바캉스이다. 자본주의는 상품이라는 거대한 물결로 파도를 이룬다.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이웃이라 해도 그들과 일부러 교제를 나누지 않아도 돈만 있으면 필요한 상품을 구입하며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도록 개인주의로 몰아간다. 고로 바캉스도 자기결정, 자유, 선택 등을 강조하기 위해 고안된 상품으로서 조직생활과 규율로부터 한시적 탈출의 기회를 제공하는 혼행(혼자 하는 여행)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메노나이트들은 공동체를 더 공고히 하는 바캉스를 즐긴다.
예를 들어, 여전히 16세기 문화와 옷과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전기나 자동차 등 현대화된 기계문명을 거부하는 아미쉬 사람들은 플로리다의 어느 한 동네를 찾아, 자주 볼 수 없었던 다른 아미쉬 가족을 만나 밀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2 후터라이트 공동체의 젊은이들은 여름 채소 수확기에 다른 공동체에 가서 일을 돕는 목적으로 여행이 계획되기도 한다. 현대화된 교회를 중심으로 모이는 메노나이트사람들은 메노나이트교회모임, 예를 Mennonite General Assembly나 Mennonite Conference에 교회 대표자격으로 참석함으로 여름 바캉스를 대신했던 기억을 회자한다. 3 메노나이트에서는 교회의 대표를 평신도가 할 수 있다. 그들은 가족단위로 함께 메노나이트교회모임에 참석하여 성인들은 총회에서 필요한 안건을 다루고, 자녀들은 그들만의 즐거운 여름휴가를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과 보내게 된다. 여름의 뜨거운 뙤약볕이 오히려 자주 만날 수 없었던 형제자매들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다.
둘째는 갈등전환형 바캉스이다. 자본주의는 개인들을 즐거움과 안락, 오락의 세계로 초대한다. 거기에는 일상의 탈출과 더불어 ‘자기실현’을 약속하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휴가를 통해 난제와 책임이라는 현실은 잊고 축제와 환상과 모험의 시간으로 채우도록 유도한다. 온통 자신의 필요에만 집중해도 괜찮은 유예 받은 시간이 바캉스이다. 그러나 메노나이트들 중에는 휴가기간을 사용하여 스트레스해소가 아닌, 사회 내 갈등해소를 위한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 내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 Area)을 방문하여 그들과 교제하며,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경제최강국을 이룬 미국과 캐나다라 할지라도 이면에는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유기된 삶이 있다. 이들의 존재자체가 망각되는 시대에 어떤 메노나이트들은 매년 여름만 되면 장기간의 휴가를 내어 인디언들이 사는 보호구역을 찾는다. 대부분의 인디언 보호구역은 사막과 같은 황무지에 위치해 있고 물 부족을 경험하는 곳이다. 모두가 외면하는 땅에서 어떤 메노나이트들은 그들과 교제하며 인디언의 문화를 배운다. 뜨거운 사막 지대에서 조상들의 죄악을 직면하고 유기된 인디언의 존재를 기억하고 국가와 민족이 유발한 갈등을 전환하여 새로운 창조력으로 인디언의 문화와 가치를 재발견하는 메노나이트들의 바캉스는 결코 자본주의가 이끄는 이기적인 욕망에 제한받지 않았다. 인디언 보호구역 뿐 아니라, 갈등이 발발한 곳에 메노나이트들이 찾아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갈등을 완화하려는 평화활동가들의 노력은 이미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셋째는 자연친화형 바캉스이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필요와 편의를 극대화하는 소비문화를 위해서는 자연이 파괴되는 바캉스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근시안적인 눈앞의 이익을 좇아 위락시설이나 케이블카 설치에 눈먼 세상을 보거나, 해변에 돌아다니는 쓰레기의 방대한 양에 고통 받는 환경에 관한 소식을 들으면 바캉스는 자연파괴의 주범이라는 말을 확신하게 된다. 메노나이트는 교단차원에서 자연친화적인 Camp시설을 만들어서 청년과 청소년,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자연 속에서 신앙과 공동체성을 기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고 있다. 미시건의 Camp Amigo4, 인디애나의 Camp Friedenswald5 는 우리가족이 여름만 되면 놀러가던 대표적인 장소였다. 캠프장 주변의 산과 강과 호수 주변에는 위락시설이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일상을 벗어나 카누를 탄다든가 오두막 속에서 추억을 만든다든가 자연 속 벌레들을 살피면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심신을 쉬게 하는 게 전부이다. 자연 속에서 휴식하며, 자연이 주는 치유를 경험하고, 자연의 벗이 되는 경험은 ‘충전’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의라 여겨진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자본주의의 입김에 물들어 바캉스마저도 경로화되고 규격화되어 빈부의 격차를 확연하게 드러내며, 무엇인가를 소비해야 하는 소외와 배제와 착취의 삶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이런 시대에 비순응적인 삶의 궤도 속에서 바캉스조차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신앙의 제자도, 공동체, 평화의 가치를 반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이들의 바캉스에는 거나한 소비 대신 따뜻한 만남이 있었고, 소외와 배제 대신 경청과 화해의 노력이 있었고, 자연에 대한 착취 대신 자연과 함께 하는 평화가 있었다. 바캉스가 일상의 가치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다는 차원에서 메노나이트의 휴가는 일상에 대한 통찰력과 에너지가 배가되는 경험으로 풍성하다.


  1. 아나뱁티스트는 16세기 급진적 종교개혁을 일컫는 운동성이라면 메노나이트는 네델란드에서 메노 시몬스를 중심으로 시작된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한 분파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 둘의 차이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았고 동일한 공동체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 글의 메노나이트는 북미지역에 거주하는 아나뱁티스트 메노나이트들 중심의 사례임을 먼저 밝히는 바이다. [본문으로]
  2. “Where the Amish go on vacation" The New Yorker, 2018년 4월 17일, 2019년 8월 15일 접속, https://www.newyorker.com/culture/photo-booth/where-the-amish-go-on-vacation. [본문으로]
  3. “A Proper Mennonite Vacation" The Drunken Mennonite Blog, 2016년 8월 9일, 2019년 8월 14일 접속, https://slklassen.com/2016/08/09/a-proper-mennonite-vacation/. [본문으로]
  4. http://www.amigocentre.org/ 참조하라. [본문으로]
  5. https://friedenswald.org/ 참조하라. [본문으로]

1907 Anabatist Mennonite Biblical Seminary 총장 한국방문

복음과상황 모바일 사이트, “정의가 실현될 때 평화가 찾아옵니다”



“정의가 실현될 때 평화가 찾아옵니다”

기사승인 [344호] 2019.07.01  15: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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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4호 사람과 상황] 피해자 중심의 성폭력 사건 해결을 이끈 사라 웽어 쉥크 AMBS 총장

  
▲ 사라 웽어 쉥크 총장 ⓒ복음과상황 오지은
사라 웽어 쉥크 총장은 미국 아나뱁티스트 메노나이트 성서신학대학원(Anabatist Mennonite Biblical Seminary, AMBS)에 2010년 부임하여 10년간 재임해왔다. 교육학자인 쉥크 총장은 남편과 함께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1977년부터 1983년, 1986년부터 1989년까지 학생 및 교사로 있었다. AMBS 부임 전까지 이스턴 메노나이트 신학교(EMS) 교수로 15년간 재직했으며, 선교와 교회 개척, 교수법과 행정 분야에 걸친 쉥크 총장의 경험은 독특한 리더십 은사의 조합으로 나타났다.
그는 부임 1년 후, 15년 전 일단락된 세계적인 아나뱁티스트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의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 입장에서 재조사하고 다시 밝혀내는 결정을 내린다. 1997년 세상을 떠난 요더는 이미 그 전 해에 교회의 공식 징계 절차를 거친 뒤 복권된 바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여전히 고통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쉥크 총장은 피해자 중심의 진상 규명과 문제 해결,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 요더 문제를 다시 재조사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때부터 비로소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AMBS의 공식 사죄가 이뤄졌으며, 애통과 고백의 예배가 드려졌다. 안팎의 반대와 비판을 무릅쓴 이 결정 이후 이뤄진 진상 규명과 피해자들의 증언(말하기) 과정을 통해, 피해자들은 ‘진실이 드러났을 때 정의가 이뤄졌음을 느꼈다’고 비로소 고백하기에 이른다. 아울러 그들은 ‘정의가 이뤄질 때 평화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

인터뷰는 쉥크 총장이 강연 차 방한했던 5월 중순 공덕역 인근 카페에서 있었으며, AMBS 이사로 동행한 허현 목사가 통역을 맡았다.
― 첫 한국 방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와 친분을 맺으신 적이 있는지요?
한국교회와 직접 교류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현재 우리 신학교에 한국인 학생이 두 명 유학중인데, 과거에는 더 있었지요. 오래 전에 김홍석 형제 부부가 버지니아의 공동체에서 같이 살았었지요. 현재 허현 목사님이 우리 신학교 이사로 섬기시는데, 한국인 졸업생은 지난 15년 동안 16명 정도 나왔습니다. 그들은 제가 부임한 2010년 이전에 졸업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연결점이 있는 건 아니지만, 메노나이트 저널에 실린 글을 통해 한국 학생들이 뭘 하는지는 읽을 수 있었지요. 졸업생 중에는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orea Annabaptist Center, KAC) 총무를 맡은 분도 있고,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ennonite Central Committee, MCC)에서 사역하는 분도 있습니다. 졸업생들이 한국에서 리더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지난 5월 13일,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강연 중인 쉥크 총장. ⓒ복음과상황 이범진
― AMBS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입니다, 학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설립한 지 60년 된 신학교입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 메노나이트 교회를 섬기는 기관이자, 나아가 전 세계 아나뱁티스트들을 섬기는 교육기관이지요. 북미에서 다른 어느 신학교보다 가장 먼저 평화학을 가르쳐온 학교입니다. 사람들은 존 하워드 요더의 책을 많이 읽었겠지만, 실은 요더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아나뱁티스트 운동이 무엇을 지향하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리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졸업생 2,500명이 41개 나라에서 사역 중인데요. 우리의 미션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행하시는 화해 사역에 참여할 수 있게 리더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목회자로 훈련하는 M.Div. 과정이 있고, 평화학 석사 과정이 있으며, 기독교 교육 석사 과정으로 볼 수 있는 ‘크리스천 포메이션’(Christian Formation)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전 과정을 마칠 수 있는 학위 프로그램인 M.Div. Connect와 M.A. in Theology and Global Anabaptism을 신설했지요. 이와 같은 신학 훈련을 통해 우리는 초기 예수운동에서 나타난, 예수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제자도를 오늘 우리 시대에 재천명하는 사람을 세우는 데 목표를 둡니다.
― AMBS 외에 다른 아나뱁티스트 교육기관은 없는지요?
다른 학교도 있는데, 미국에서는 AMBS가 가장 오래된 학교라서 보통 메노나이트 신학교 하면 여기를 생각합니다. 미국 버지니아 주의 이스턴 메노나이트 대학교(Eastern Mennonite University, EMU)도 그중 하나인데, 여기서도 목회자를 양성합니다.
― AMBS라는 이름에도 나오듯, ‘아나뱁티스트’와 ‘메노나이트’를 함께 사용하거나 따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다른지요? 브루더호프나 아미시 등도 다 같은 아나뱁티스트인지요?
칼뱅주의에도 다양한 갈래가 있는 것처럼,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운동이 일어난 이후 이 운동에도 다양한 지류가 생겨났습니다.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제도화된 기독교 국가 체제를 벗어난 ‘자유 교회 운동’ 혹은 ‘민주 교회 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나뱁티스트 아래에 메노나이트나 아미시, 브루더호프 등 여러 지류들이 있는 것이지요.
― 공식적으로는 아나뱁티스트가 대내외 명칭인 셈이군요.
그렇지요. 아나뱁티스트는 하나의 큰 우산이라고 보면 됩니다. 장로교라는 우산 아래 다양한 교단이 있듯이 말이지요. 다시 말해, 아나뱁티스트는 장로교와 같은 큰 우산이고, 그 아래에 메노나이트, 브레드린(형제회), 아미시, 후터라이트 등이 핵심가치를 공유하는 교단적 의미를 갖습니다. 물론 한국교회의 교단과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제도적 기구라는 맥락에서는 상통합니다.
 
  
▲ "오늘날 젊은 세대들, 특히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교회에서 느껴지는 권력지향성이나 억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그와 달리, 이 세대 중에도 예수를 21세기에 재천명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성서를 평화적으로 다시 읽는 이들이 있습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과거 아나뱁티스트는 핍박을 받았던 소수 그룹이었는데요. 오늘날 북미주에서 아나뱁티스트 운동이 사회와 교회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교회가 권력으로부터 떠나는 운동, 교회가 권력을 소유하지 않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기독교 국가 체제에 대한 큰 반동이었던 셈입니다. 그 영향으로 국가로부터 분리된 교회가 생겨났고, 아나뱁티스트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더라도 오늘날의 자유 교회 전통이 여기에 속합니다.
아나뱁티스트 운동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어서 한 가지로만 이야기하긴 어렵기 때문에, 메노나이트가 크고 영향력 있는 그룹이라고 하여 아나뱁티스트를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를 들어 얘기하자면, 정치적으로 (진보-보수로) 양분되어 있는 미국 상황에서 메노나이트는 양극화되어 있는 것들을 화해시켜 나가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봅니다. 권력지향적이고 권력을 이용하기도 하는 기독교 상황에서 그들은 신선한 영향을 주는 메시지와 실천을 펼쳐왔습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 특히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교회에서 느껴지는 권력지향성이나 억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그와 달리, 이 세대 중에도 예수를 21세기에 재천명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성서를 평화적으로 다시 읽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환경에 대한 관심,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교회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와 소비주의 중심으로 흐르면서 세상과 별 차이 없이 동화되는 데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두 가지 이유로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메노나이트로 돌아오는 친구들이 많은데, 이들에게는 메노나이트에 매력적인 요소가 있는 듯합니다.
오늘날 북미의 대다수 교회는 예수를 가르치기보다 정부가 던진 정치적 이슈로 갈라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육하는 기관으로 AMBS의 미션을 재강조하자면, 예수의 가르침과 삶, 그리고 21세기에 재천명하고 따르려는 예수 제자도입니다.
― 미국뿐 아니라 한국교회에서도 젊은 세대들은 점점 더 교회로부터 멀어지는 현실입니다. 가족 전통과 가정 교육을 중시하는 아나뱁티스트 전통에서는 다음세대에게 신앙을 어떻게 가르치고 전수하는지요. 총장님 가정을 예로 들어주셔도 좋겠습니다.
다시 메노나이트를 예로 들자면, 일괄적인 하나의 방법만 있는 건 아닙니다. 잘 관찰해보면, 메노나이트는 가족끼리 강한 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위스와 독일, 러시아의 메노나이트들이 심한 핍박 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가족 안에서 연대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신자의 세례(침례)라는 것이 자연스레 가족 및 교회와 연결될 수밖에 없고, 젊은이들이 예수 따르는 길을 선택하는 쪽으로 북돋아주기 때문에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저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어떻게 기도하는지 가르쳐주었으며, 저를 교회에 데려갔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칠 때 하나님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노래를 같이 부르기도 하고 기도를 함께하기도 하지요. 생일에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이야기해주는데, 아이의 삶이 개인을 넘어 그 이전의 신앙 공동체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야기해줍니다. 교회의 주일학교 프로그램이 굉장히 좋아서, 아이들과 함께 자연과 숲에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성서 이야기도 나누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이 큽니다. 여기서 아이들의 개인 정체성과 공동체를 연결 지어 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을 사랑하는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우리가 세상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예수를 따르기 때문에 전쟁에 반대하고 세상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공동체를 통해서 심어주는 것이지요.
  
▲ "요더는 지적인 능력이 월등했던 인물로, 우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의 복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렇지만 복음의 능력은 복음 자체의 능력이지, 요더의 능력은 아니었습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아나뱁티스트는 평화신학이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혐오와 폭력, 테러, 양극화가 드세지는 현대 사회에서 아나뱁티스트의 평화신학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입니다. 폭력에 비폭력으로 반응하는 건 전혀 새로운 게 아닙니다. 수세기 동안 여러 세대를 거치며 예수의 삶을 따라 어떻게 폭력에 비폭력으로 반응할 것인지 계속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 방식을 계속 생각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문화적 종교적 인종적인 차이들이 계속 있어왔습니다. 이런 많은 차이들 앞에서 다리를 만들어 넘어가는 것이 평화 만들기의 핵심입니다. 그런 차이들을 넘어다니는 다리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바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최근 미국 내 유대교 회당과 이슬람 모스크, 스리랑카의 가톨릭교회에도 테러가 있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이런 폭력적인 세상에서 비폭력으로 맞서는 것, 인간을 인간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화를 더 알고 공부하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 요더가 이룬 놀라운 평화 연구 업적과, 오랜 기간 동안 행해진 그의 성폭력 사이 간극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나뱁티스트 내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냈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항상 선하지도, 항상 악하지도 않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지요. 요더는 지적인 능력이 월등했던 인물로, 우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의 복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렇지만 복음의 능력은 복음 자체의 능력이지, 요더의 능력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놓친 것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지만, 그 자신이 자기 죄성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 점이 우리를 실망케 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요더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은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의 능력’이라는 점입니다. 요더는 자기 죄에 함몰된 한 인간이었습니다. 지적으로 너무나 뛰어났기에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논리를 계발했고, 그 능력으로 성범죄가 자신에게는 문제가 안 된다고 스스로 속였습니다. 제 전임인 말린 밀러(Marlin Miller) 총장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요더의 잘못을 지적하고 이야기했지만,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계속해서 나름의 또 다른 논리를 펼치면서 사람들을 깨뜨리려 했습니다. 분명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습니다.
4년간 지역교회의 징계를 받은 이후 요더는 자신이 마치 변화된 것처럼 수려한 언어로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었지요. 피해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들이 괜찮아하는 줄 알고 그랬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자기 나름의 논리로 설명했습니다.
  
▲ "요더 문제는 대체로 '요더가 죄를 고백했고, 징계를 받았으며, 교회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로 정리되었습니다. 마치 모든 과정이 온전히 끝난 것처럼 말이지요. 이 이야기의 초점은 '죄인이 회개함으로써 회복되었다'는 데 맞춰진 것이었습니다. 가해자의 회개와 회복이 중심이었지 정작 '피해자의 회복'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거지요."  ⓒ복음과상황 오지은
― AMBS 총장으로 부임하신 이후에 요더 문제를 다시 다루기 시작하셨는데, 총장님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이 작용했던 것인지요? 요더가 사망한 뒤였지만, 안팎의 반대는 없었는지요?
타임라인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처음에 밀러 총장이 요더에게 권고했지만 듣지 않았고, 요더가 AMBS를 떠나 노트르담 대학교로 가서 풀타임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1984년입니다. 요더의 성범죄는 1992년에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학교 안에서만 다뤘기에 외부에서는 몰랐습니다. 여성들이 매체를 통해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지역 교회가 요더에 대해 4년간의 징계 프로세스에 들어가기 시작했지요. 1996년에 요더의 징계 과정이 끝나면서 교회는 요더가 되돌아와 글도 쓰고 가르칠 수도 있게 했습니다. AMBS가 아니라 교회가 그렇게 한 것이지요. 그리고 1997년에 요더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요더 문제는 대체로 “요더가 죄를 고백했고, 징계를 받았으며, 교회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로 정리되었습니다. 마치 모든 과정이 온전히 끝난 것처럼 말이지요. 이 이야기의 초점은 ‘죄인이 회개함으로써 회복되었다’는 데 맞춰진 것이었습니다. 가해자의 회개와 회복이 중심이었지 정작 ‘피해자의 회복’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거지요.  
제가 AMBS에 부임한 다음해에 피해자들이 “이건 끝난 일이 아니다. 사실이 다 드러나지 않았고, 제대로 사과도 받지 못했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아야 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실들이 있었고, 이를 어떤 식으로 처리했으며, 징계 과정은 어땠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더 문제를 다시 제기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 메노나이트 교회의 대표(executive director), 즉 한국교회로 치면 교단 총회장과 논의해서 이 이슈를 다시 이야기했고, 요더 사건에 대해 공개되지 않았던 AMBS 내부 처리 과정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피해자들을 인터뷰하여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할 수 있는 자리를 열었습니다. 물론 저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왜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는 거냐, 죽은 사람을 다시 파내서 부관참시하려는 거냐는 얘기였지요. 요더의 유가족에게 다시 고통을 안겨주려고 하느냐는 말도 들었지요. 
저는 요더를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당시 제가 AMBS와 관련이 없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연결된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여성이라서 피해자들에게 더 초점을 맞추고 그들에게 좀 더 다가가기 쉬웠던 것은 맞습니다. 요더의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는 제가 AMBS에 없었기 때문에 직접 관련은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AMBS는 죽은 조직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살아 있는 기관이며 제가 그곳의 책임자로 부임했기에, 책임 있는 조처와 사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요더 문제를 다시 파고들어가기 시작하자 그동안 한 번도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이제는 그만 하자’고 함으로써 억눌려 있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새롭게 드러났습니다. ‘많은 피해 여성들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진실이 드러났을 때 정의가 이루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요더 문제는 단순히 AMBS 내부에 국한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활동 범위가 워낙 광범위했기 때문에 MCC, 메노나이트선교네트워크(MMW), 미국 기독교윤리학회,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등을 포함하여 다섯 개 대륙에 피해자들이 흩어져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 나중에 피해자들이 “우리는 오랫동안 마음에 평화가 없었는데 이제야 평화가 이루어졌다”고 고백하는 말을 들었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피해자들이 정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 고백이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정의가 이루어질 때 평화가 찾아옵니다. 나중에 피해자들이 “우리는 오랫동안 마음에 평화가 없었는데 이제야 평화가 이루어졌다”고 고백하는 말을 들었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 한국교회에도 지도자들의 위계에 의한 성범죄가 있어왔지만, 대부분 가해자의 회개와 복귀 여부 등에 초점이 맞춰지고 피해자 중심의 해결 과정을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요더의 성범죄와 해결 과정이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한국교회 상황에 대해 제가 말할 자격은 없지만, 권력에 의한 피해가 자주, 많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상황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권력에 의한 피해는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권력에 가장 강력히 비판하고 대항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예수님은 권력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을 강력히 비판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권력을 잘못 사용한 결과, 사람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목회자는 힘이 있기 때문에 힘이 없는 이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목회자의 권력 오용은 심각한 범죄입니다. 목자가 양을 돌볼 책임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뿐 아니라 모든 선지자들이 공통되게 한 말이었습니다. 특히 약한 자들을 핍박하거나 억누르는 일에는 훨씬 더 큰 비판이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시사점입니다. 권력의 오용으로 피해자들이 생겼을 때는, 무엇보다 피해자의 말을 우선 경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통역을 맡은 허현 목사, 제럴드 쉥크 교수, 쉥크 총장.  ⓒ복음과상황 오지은
― 한국 사회는 작년 미투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면서 페미니즘이 중요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페미니즘을 위험한 사상인양 여기며 염려합니다. 총장님은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페미니즘에는 여러 갈래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성의 힘을 회복시켜주는 차원에서 페미니즘에 동의하고 또 강조하는 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함께 따르도록 부르셨습니다.
― 총장님에게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건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다양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째는 그분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는 사고뿐 아니라 몸으로 체화되어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마다 하나님의 뜻에 제 뜻이 맞춰지도록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오늘 하루 내가 예수를 따르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합니다. 또한 그 기도 시간에 성령께서 저를 조명하시고 인도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 아래서 내가 지금 해야 할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도 생각해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지요.
  
▲ "특별히 우리는, 예수님은 권력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을 강력히 비판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권력을 잘못 사용한 결과, 사람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신앙의 위기나 회의는 없었는지요?
저는 메노나이트 선교사였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 개척된 메노나이트 공동체에서 성장했는데, 사실상 오늘날 가장 많은 메노나이트가 에티오피아에 있습니다. 부모님은 그 에티오피아 교회를 오랫동안 섬겼습니다. 아버님은 현재 101세로 생존해 계시지요. 이런 배경 안에서 살아온 제게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제가 AMBS 총장이 됐을 때입니다. 총장을 맡게 되는 건 우리 가정에도 어려움이 될 만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나서서 리더가 되고자 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할 수 없이, 상황에 이끌려서 떠맡게 되는 사람이지요. 그랬기에 그 시기가 매일 아침 예수님을 따르기를 선택하는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옥명호 lewisist@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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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 권세리 [인터뷰] "평화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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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평화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기사승인 [344호] 2019.07.01  16:4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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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4호 커버스토리] '평화 일구는 언어' 가르치는 권세리 평화교육가

  
▲ "화해의 사역자가 되는 것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의 정체성입니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본명 쉐릴 웰크(Cheryl Woelk), 한국명 권세리. 캐나다 태생의 메노나이트이자 선교사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평화학과 교육학을 전공한 평화교육가이다. 러시아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메노나이트의 후손으로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평화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성장했다. 현재 숭실대를 비롯하여 평화대안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작년에 제2외국어로서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평화와 화해, 소통을 추구하도록 돕는 책, 《Teaching English for Reconciliation》(공저)을 펴내기도 했다. 인터뷰는 6월 11일 숭실대 인근 카페에서 통역 없이 이뤄졌다.
― 인터뷰 전 통화하면서 우리말을 정말 잘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캐나다 메노나이트 교회 연합회 소속으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에서 교육 선교사로서 일을 하면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당시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에서 평화 교육 담당으로 섬겼습니다. 그후 평화 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더 갖고자 미국 이스턴 메노나이트 대학원에서 평화학과 교육학을 전공했고, 2016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평화교육가이자 영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2011년부터 동북아평화훈련원(NARPI)이 매년 여름에 개최하는 평화교육(Peace Education) 과정을 진행해왔고, 올해는 피스북스의 평화대안대학에서 ‘평화의 언어’(English for Peacebuilding) 강의를 맡고 있어요. 또 숭실대학교에서 영어를 강의합니다.
― 어떤 계기로 평화교육가의 길에 들어섰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큰 영향은 교회입니다. 어려서부터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평화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그런 가르침에 따라 교회 내에서 평화를 주제로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어요. 자연스럽게 평화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죠. 제가 다닌 메노나이트 교회에서는 어려서부터 평화 교육을 하고, 여름 성경 캠프의 주된 주제도 ‘평화’였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평화의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대학을 다니는 과정에서 메노나이트의 평화신학과 역사에 대해 더 깊이 배우고 공부하게 되면서 평화교육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 주일학교 시절부터 교회에서 평화에 대해 가르쳤다는 얘기가 인상 깊습니다. 한국처럼 내전이나 분단 체제를 개인적으로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평화를 교육하는 일을 선택하신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들려주신다면요. 
제가 나고 자란 캐나다는 한국처럼 전쟁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역동적인 역사를 갖고 있어요. 특별히 캐나다 메노나이트의 경우, 유럽에서 핍박을 당하고 쫓겨나다시피 캐나다로 건너온 역사가 있지요. 그리고 당시 캐나다 땅에는 먼저 정착해 살고 있던 선주민(先住民, indigenous peoples)이 있었는데, 그들과 ‘세틀러’(settler, 이주민)로 불리던 메노나이트 사이에 갈등을 겪었던 역사가 있어요. 결코 평화로운 역사가 아니죠. 이런 역사적 배경에 대해 더 알게 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평화학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더 분명해졌지요. 메노나이트의 평화신학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를 따라 평화의 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핵심이에요. 전쟁뿐 아니라 화해할 상황은 정말 많지요. 수많은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더 많이 경험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메노나이트의 평화신학입니다. 그런 화해와 평화를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누릴 수 있도록 화해의 사역에 참여하는 건 기독교인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지요. 저에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마땅히 살아가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참여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렇다고 부담은 아니었고요. 메노나이트 신학에서 평화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평화는 우리 삶의 중심이고, 우리가 살아갈 의미이자 희망입니다. 평화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추구할 수밖에 없는 삶이죠.
―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평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필수’라는 말보다도 ‘정체성’으로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아요. 화해의 사역자가 되는 것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의 정체성입니다. 그것을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이루어낼까 고민하다 보면, 학문적 접근을 하거나 평화교육을 하거나 다양한 실천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아요.
― 앞서 얘기하신 메노나이트 교회의 주일학교 평화교육은 한국교회에는 굉장히 낯선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하나요?
메노나이트 교회의 주일학교 커리큘럼에는 평화에 대한 내용이 빠지지 않아요. 메노나이트 신학의 3가지 축은 공동체, 제자도 그리고 평화입니다. 성경 말씀을 배우고, 찬양하고, 요절을 외우는 것은 똑같은데 평화 관점을 교육하는 게 특징이에요. 모든 것을 평화 관점에서 보게 하는 것이죠. 예수님의 행동도 평화의 렌즈를 통해 보도록 해요. 이를테면, 시스템에 의해서든 권력자에 의해서든 핍박 받는 약자들을 예수님은 어떻게 보호하시는지 평화와 화해의 관점으로 보도록 가르치는 거죠. 예수님의 평화 관점으로 구약 성경을 읽도록 교육하고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니까, 우리는 싸워서는 안 된다는 자세를 배우지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단어인 자유, 사랑, 소망처럼 ‘평화’도 우리 일상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면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평화를 우리 일상과 삶에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할 수 있을까요?
평화는 공기와 같아요. 사실 평화는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공동체에 속하고 사회와 연결될 때마다 경험하는 거지요. 일상에서 평화를 위해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많고요. 평화가 인간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 돌아갈 수 있게 할 수 있는 행동들도 많이 있겠죠. 우리의 모든 선택은 평화 렌즈로 볼 수 있어요. 메노나이트 신학이 그 렌즈를 제공하지요. 예를 들어, 제 할아버지는 농부셨어요. 할아버지는 땅과 교감하며 농사짓는 일도 평화를 위한 일이라 여겼어요. 사람들에게 곡식을 제공하고,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지역의 다른 농부들과 협력하면서 건강한 삶을 일구는 그 자체를 평화 사역이라 하셨지요. 그것은 할아버지에게는 매일 경험하는 평화였고, 매우 현실적인 평화 사역이었죠. 제 경우는 언어를 배우는 데 관심이 있고, 교육하는 일에도 관심이 있어서 지금 영어 교육을 평화의 관점에서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거고요.
― 평화 관점에서 언어를 가르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요?
언어는 곧 의사소통이잖아요. 의사소통을 하다 보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죠. 그런데 언어로 평화를 이룰 수도 있는 거거든요. 특히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울 때는 단어 하나하나가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배우지 않으면 큰 갈등을 유발할 수 있지요. 그런 점에서 외국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도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는 내용을 담아낼 수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언어를 배우면서 평화의 언어도 함께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돈을 벌거나 취업을 하기 위한 목적의 외국어 공부가 아니라 타문화권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갈등보다는 평화의 기회를 만드는 언어를 배우는 것이죠. 
― 평화를 만들어내는 언어가 따로 있다는 말씀인지요.
특별히 정해진 그런 언어가 있다기보다 모든 언어는 평화로 가기도 하고, 갈등으로 흐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인간 사회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다만 갈등을 완화하거나 갈등에서 평화로 전환할 수 있는 것도 언어가 하는 일이잖아요. 평화를 만드는 사역에서 언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 메노나이트의 평화신학이 일반적인 평화 사상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
우리는 평화 자체가 하나님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사람, 모든 창조물이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평화를 추구하는 동기는 다 다를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종교나 문화적 배경이 다르더라도 추구하는 것이 평화라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모두 화해자로 부르셨기에 동기와 배경이 다른 것은 어쩌면 정말 작은 부분이 아닌가 해요. 서로 다른 점이나 차이점을 찾으며 염려하기보다는 화해의 길로 함께 가는 일에 힘을 모으면 더 좋겠지요. 차이를 말하자면, 메노나이트 안에서도 각기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평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에 의미가 더 큰 거죠.  
― 메노나이트 내의 입장 차이는 어느 정도인가요?
메노나이트 안에도 생각의 스펙트럼이 정말 넓어요. 메노나이트의 ‘평화신학’만을 떠올리며 그 기준으로 메노나이트 교회들을 들여다보면 예상 외의 모습들도 많이 발견될 겁니다. 북미에서 메노나이트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하나는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 신앙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500여 년의 역사 속에 메노나이트 교단 신자들이 형성한 문화적 그룹을 말하지요. 메노나이트 안에도 문화적 의미의 신자들이 있고 이들은 딱히 평화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각각의 메노나이트 교회 안에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다양한 이념의 교인들이 공존하고 있어요. 또 미국과 캐나다의 메노나이트가 서로 다르지요. 그러면서도 신학적 전통이 있기에 공통점들이 있는 거고요.
― 그러면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겠네요. 
맞아요. 어떤 이들은 매우 보수적이고, 어떤 이들은 매우 진보적이에요. 물론 ‘난민을 받아들이지 말자’는 메노나이트 교회가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못 들었어요.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환대로 맞이해야 한다는 입장인 거지요. 한국에서 왜 난민 반대 여론이 강했는지 정확하게 파악은 안 되지만, 메노나이트에는 역사적으로 난민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난민 이슈에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요. 제 할아버지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캐나다로 온 것이기 때문에 간접적이지만 난민 역사를 공유하고 있지요. 꼭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본 계명이 도움이 필요한 약자를 도와주라고 하신 거잖아요. 
― 난민 이슈 외에도 한국 사회에는 각종 혐오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사회에서 혐오를 만든 것도 언어의 힘입니다. 누군가 혐오의 스토리텔링을 시작하면 폭력적으로 사회 여론이 흘러가지요. 특정한 대상에 대해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내는데, 그건 ‘우리’와 ‘그들’을 분리하는 벽을 만드는 것과 같아요. 언어를 통해서 거대하고 강력한 벽을 만드는 것이죠. 한 번 세워진 벽을 허물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 사회의 특징이기에, 메노나이트 안에도 그런 벽을 만드는 언어와 이야기가 있어요. 평화 사역자들은 그런 것을 예민하게 인지하면서, 벽을 허무는 다른 이야기를 덧붙이고자 하지요. 
― 언어로서 혐오의 말들(hate speech)도 갈수록 거세지는 느낌입니다. 난민은 물론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무슬림 등을 향한 혐오의 언어가 우리 사회에 큰 벽을 세우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슬퍼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미움이나 혐오는 항상 ‘두려움’에서 시작하거든요. 스스로 그 두려움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 대상을 향해 폭력으로 드러납니다. 직접적인 폭력 행위가 아니더라도 언어 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두려움과 상처 있는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것이죠. “Hurt people hurt peopl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상처를 준다는 뜻이에요. 혐오 정서는 분명 인간의 죄로부터 나오는 거지만, 왜 두려움과 위협을 느끼는지 찬찬히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도 그 두려움이 극복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역사적인 이유나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 탓일 수도 있고요.
  
▲ "그곳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이 열어주실 평화의 길을 믿고 용기를 내는 거지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 두려움으로 인한 갈등 상황을 극복한 경험이 있는지요. 
제가 미국 버지니아 주 메노나이트 교회에 있었을 때도 종교간 긴장이 매우 높았어요. 미디어가 갈등을 부추기는 이야기를 쏟아내 종교 간 벽을 세우고 있었지요. 사람들은 타종교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고요. 그때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그 마을에 있는 유대교 및 무슬림 지도자들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유대교 회당과 무슬림 모스크, 메노나이트 교회당에서 공동으로 어린이 평화 캠프를 열었는데, 저도 그 캠프의 커리큘럼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아이들에게 평화 교육을 했어요. 미디어에서는 계속 무슬림은 나쁘다고 하는데, 캠프를 통해 아이들은 유대교인이나 무슬림이나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미디어와는 다른 이야기가 생겨났고 그것이 평화의 언어가 되었어요. 우리 현실을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갈등을 강화할 수도 있고,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두려움이 벽을 만들지만, 동시에 그 두려움으로 인해 벽을 허무는 어떤 시도도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벽을 넘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사실 두려움은 우리의 무지로 인해 생겨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고, 예수께서도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무셨잖아요(엡 2:14). 그렇다면 우리도 벽을 넘어가야 하는 거죠. 그곳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이 열어주실 평화의 길을 믿고 용기를 내는 거지요. 그 평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평화를 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용기를 내야죠. 사실 세 종교가 모여 어린이 캠프를 여는 것도 두려운 일이잖아요. 무슨 사고가 나지는 않을지, 주변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두려움은 끝이 없어요. 그럼에도 메노나이트가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거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혐오와 두려움의 벽을 허무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지요.
― 메노나이트 안에서는 성소수자 이슈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요?
메노나이트 교회 안에서도 성소수자 관련 갈등이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1970년대부터 그 논의는 계속 있어 왔어요. 메노나이트 교회는 교단이 무엇을 결정해서 교회에 내려보내는 방식이 아니에요. 교회 차원에서 중요한 이슈가 생기면, 교단이 일방적으로 투표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각 교회 교인들이 토론하고 논의해서 공동체로서 의사 결정을 하도록 하는 거죠.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그 과정 자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메노나이트 평화신학은 ‘하나님께서 모든 이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요. 제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캐나다에 머물 때, 성소수자 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어느 주의 메노나이트 교회가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을 정확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는데, 다른 교회들이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모든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대응했지요. 그래서 ‘경청 위원회’(Listening Committee)가 만들어졌고, 저도 그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위원들이 10명이었는데, 모두 제각각 성소수자에 관한 다양한 경험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그중 한 명은 성소수자였고요.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최대한 많이 들어보자는 취지였고, 어떤 하나의 입장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었어요. 그때 서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각 사람의 입장을 인정하게 되고, 나중에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게 되는 기적을 경험했어요. 그때 멤버들과는 지금까지도 연락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요. 관점이 다르고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상대의 입장을 귀 기울여 듣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피스빌딩’(peace building)이었다고 생각해요.
― ‘기적을 경험했다’는 얘기를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신다면요.
경청 위원회에 참석하여 매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 시간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구나’ 하고 느꼈어요. 저뿐 아니라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경험했어요. 그래서 늘 모임이 길어졌지요.(웃음) 다들 그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지 않았거든요. 갈등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갈등을 하나님이 주신 평화 안에서 잘 표현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 경청 위원회가 경험한 것을 각 교회도 경험할 수 있도록 ‘교회를 위한 리스닝 워크숍’(Listening Workshop)을 기획해서 지역의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진행을 했습니다. 물론 아무 결론을 내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워크숍을 경험한 교회로부터는 그런 비판이 없었어요. 열 사람이 하나의 같은 결론에 이르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고유한 이야기들이 인정되는 상황이 오히려 사람들을 평화롭게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라는 말씀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해요. ‘다양한 사람이 서로 존중하며 만날 때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신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귀 기울일 때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신다’는.
― 과거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한국 사회에는 남과 북 사이에 두려움을 심어주는 스토리가 유독 많고 파급력도 큽니다. 어떤 평화적 대응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저는 한국과 북한의 갈등과 트라우마에 대한 전문가는 아닙니다. 다만 갈등 상황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캐나다 메노나이트 커뮤니티는 최근에 식민지 역사와 관련해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세계가 얼마나 악했나요. 제국들에 의한 식민지 질서가 세계 곳곳에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낳았지요. 한국도 제국주의의 식민지 역사와 관련이 깊고, 전쟁도 그에 얽힌 비극이었고요. 지금 캐나다의 원주민(선주민)들은 매우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정말 심각한 처지에 놓인 이들도 있지요. 그런데 그런 상황들이 저같이 유럽에서 온 영어를 쓰는 백인 이주민들에 의해서 생겨난 일이라는 자각을 메노나이트 교회가 하고 있어요. 그동안 우리는 이러한 역사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들었어도 무시했어요. 그러나 최근 메노나이트 교회는 그 역사와 관련해 어떤 책임이 있는지 따져 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 있어요. 우선 정치적인 접근으로, ‘원주민 권리에 관한 유엔 선언’(The United Nations Declaration on the Rights of Indigenous Peoples, UNDRIP)을 캐나다 정부도 인정하게 함으로써 원주민의 권리를 회복하고 보장하는 법을 제정하기 위한 정치 행동을 하고 있고요. 우리 안으로는 캐나다 원주민이 땅을 빼앗기는 과정에서 메노나이트의 책임은 무엇이었는지 그 스토리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단순화하자면 “핍박당하는 피해자였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셔서 새 땅을 주셨다”는 기존의 내러티브에서 빠진 부분을 새로이 쓰는 거지요. ‘우리 마을은 사실 원주민들이 잠시 비운 사이에 캐나다 정부에서 원주민과의 조약을 어기고 제공한 땅이었다’ 같은 이야기 말이죠. 이런 역사적 사실을 메노나이트가 몰랐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어요.

 메노나이트 교단 내에서 이 문제를 놓고 함께 토론하고 학습한 뒤에 저희는 지역의 원주민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같이 식사를 하고, 음악회를 열고, 축제도 하면서요. 이제 시작이지요. 식민지 역사 때문에 우리 모두 하나님의 충분한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어요. 트라우마는 양쪽 모두에게 매우 크게 작용합니다. 남한과 북한도 그렇고, 캐나다 원주민과 메노나이트 이주민도 그렇겠지요. 그런 점에서 제가 한반도 문제는 잘 모르지만, 남북의 화해나 평화가 정치가들이나 정부만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나 정치인이 메시아처럼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요. 화해와 평화는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일이고요.
 
― 한국교회가 메노나이트 교회의 평화주의 전통에서 특별히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국에서 평화 교육을 해온 경험으로는, 아무리 좋은 교재나 프로그램이더라도 그 문화적 지역적 배경이나 뿌리, 맥락을 잘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식물을 하나 이식할 때에도 그 식물이 자라는 원래 지역뿐 아니라 옮겨 심을 지역의 환경도 살펴봐야 하잖아요. 그냥 좋은 교재나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섣불리 도입하다 보면 놓치는 게 많을 것 같아요. 하나님은 전 세계의 모든 교회에 역사하시는 분이시잖아요. 평화의 사역, 화해의 사역 또한 모든 교회를 통해 해나가시니까, 분명히 한국교회에도 필요한 도구들을 주실 거라고 믿어요. 물론 한국교회와 메노나이트 교회가 서로 평화에 관한 좋은 전통과 지혜를 나누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런 점은 배워야 한다’기보다는, 함께 힘을 모으고 연대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이지요.

진행 옥명호 편집장 lewisist@goscon.co.kr
정리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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