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6

죽는 날 받아 놓았다지? (현대어로 거듭난 다석 유영모 시집 3) | 인터넷 기독교백화점 진흥천사닷컴

죽는 날 받아 놓았다지? (현대어로 거듭난 다석 유영모 시집 3) | 인터넷 기독교백화점 진흥천사닷컴




죽는 날 받아 놓았다지? (현대어로 거듭난 다석 유영모 시집 3)저: 유영모 발행일: 2021-04-12 · 대장간 규격: 135*200 · 304쪽






“온갖 지식과 정보를 쌓아놓고 그 부요함에 취해있다면 그 맛을 좇는 지식은 막힌 앎이다.”
<다석일지> 어렵기는 하늘을 찌르고 쉽기로는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하는 말 같은 다석 유영모선생의 시가 현대어로 다시 거듭났다.


<사흘 남은 오늘>
하늘로부터 받아놓은 글월에는
나의 죽을 날이 적혀있다.
1956년 4월 26일.
죽을 날 그리워함이 깊어 가는데
이제 글피로 다가왔다.
모름에 들어간다.
우리는 어제. 그제. 먼 그그제로부터 오니
오늘은 언제부터 인가?
그글피, 글피, 모레, 낼.
오늘은 언제부터 인가?
어제, 그제, 그그제로부터 이제로 오니
이제 가고오는 오늘 하루도
위로 나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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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하나에서 우주를 보라

대학생 시절에 함석헌 선생님을 통하여 다석 유영모가 함선생님의 스승임을 알게 되었다. 또 교회를 통하여 김흥호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다석이 또한 김흥호 선생님의 스승임을 알게 되었다. 함선생님은 잡지 「씨알의 소리」에서 다석을 소개하셨고 김선생님은 「사색」이라는 잡지를 통해 다석을 소개했다.
다석은 하루 한 끼만 드신다는 것과 날마다 살아온 날수를 계산하며 하루살이를 하신다는 소식이 인상적이었다. 김흥호선생님도 하루 한 끼만 드셨다. 그래서 나도 김흥호 선생님을 만난 지 10여 년 만에 스승으로 모시고 36세부터 한 끼를 시작했다. 결국, 일생 동안 다석의 신앙을 배우게 되었다. 이렇게 다석은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함선생님 출생일이 3월 13일로 다석과 같다고 했는데 나의 출생일도 3월 13일이라 어떤 인연이 느껴졌다.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다석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에 박영호선생님이 국민일보에 다석을 알리는 글을 오랫동안 연재로 실었기 때문이다. 이때 박영호 선생님이 다석의 충실한 제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 밖에 성천 유달영 선생이나 도원 서영훈 선생도 다석의 제자임을 알게 되었다. 2017년에 타계하신 서영훈 선생님은 다석을 처음 만났을 때 소감으로 ‘이 분이야말로 참 사람이다’ 하고 느꼈다 한다. 다석의 글을 볼 때마다 그분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의 글을 통해서 일생 참을 찾아 참되게 사신 분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참이란 무엇인가. 우선 거짓이 없는 것이요, 속임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참 말을 하는 사람이 참 사람이다. 날마다 수만 마디의 말을 하며 살지만, 그 속에 거짓이 얼마나 많은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거짓과 속임이 얼마나 많은가. 입에서 튀어 나오는 말을 깨어 성찰해보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수없는 거짓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참된 사람이 되려면 우선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 했다. 다석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속은 맘 가죽은 몸’이니 몸의 집착을 끊고 마음에 속지 말고 참의 빛으로 살자는 것이었다. 맘에 속지 않으려면 컴컴한 속을 빛으로 밝히라는 것이다. 밝은 속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빛이 참이다. 방이 빛으로 가득 참을 얻으려면 창문이 뚫려야 하고 방은 텅 비워야 된다. 다석은 텅 빈 마음에 얼의 창이 뚫려 참 빛으로 가득한 밝은 속알이 되자고 하였다. 밝은 속알이 되기 위해서 날마다 참을 그리며 살았다.
참을 그리며 사는 삶을 하루살이라 하였다. 하루를 진실하게 살자는 것이요 그 방법으로 일좌식을 실천하였다. 저녁에 하루 한 끼를 먹고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깨어 기도하고 낮에 정직하게 일하는 것이다. 진실의 가을에서 시작하여 밤의 겨울을 지나 아침의 봄과 정직의 여름을 살자는 것이다. 참의 열매가 진실이다. 진실은 거짓 없이 순수하고 깨끗한 것이다. 꾸밈도 없고 거짓도 없고 있는 그대로 천연이요 욕심도 없고 의도도 없고 그저 어린아이처럼 생명이 약동하는 무위자연의 모습이다. 이렇게 다석은 거짓 없이 깨끗하게 순수의 빛으로 사는 정직과 진실의 참사람이었다.
다석이 강연한 말씀을 글로 옮겨준 선생님들 덕분에 다석의 인격을 이렇게 조금이라도 짐작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말이나 글로써 그분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참 사람의 말은 없어지지 않고 길이길이 우리 속에 새로운 획을 긋고 새 깃을 일으킨다.
가가 함인숙과 유유 김종란의 수고 덕분에 이처럼 주옥같은 다석의 말씀들을 접할 수 있게 된 데 대하여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비록 다석의 말씀을 편린으로 접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참사람의 말은 참말이 되어 그 울림이 어디서나 가득 차고 피어난다. 피 한 방울로 온몸의 상태를 알 수 있듯이 진실한 말씀 한마디를 통해서도 우주의 참 진리를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티끌 하나 속에 온 우주가 들어있다는 이 진실을 깨닫는 기쁨이 모든 독자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두 분 편집자와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 감수 평산 심중식 >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유영모 (多夕 柳永模.1890~1981)
다석 류영모는 온 생애에 걸쳐 진리를 추구하여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른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이다. 젊어서 기독교에 입신(入信했) 던 다석은 불교와 노장老( 莊,) 그리고 공맹孔( 孟사) 상등 동서고금의 종교.철학 사상을 두루 탐구하여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뚫는 진리를 깨달아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정신적인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다석은 우리나라 3천재,5천재의 하나라는 말을 들었고,평생을 오로지 수도와 교육에 헌신하면서 일생동안‘ 참’을 찾고‘ 참’을 잡고 ‘참’을 드러내고 ‘참’에 들어간 ‘성인’이다.
이승훈,정인보,최남선,이광수,문일평 등과 교유했고, 김교신,함석헌, 이현필, 류달영 같은 이들이 다석을 따르며 가르침을 받았다.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철학자대회(2008년)에서 제자인 함석헌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소개될 만큼 다석의 사상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목차
일러두기
추천글
머리말·하나
머리말·둘
머리말·셋

1장 | 죽을 날
죽을 날 | 죽을 날 받아 놓았다지? | 사흘 남은 오늘 | 죽기로 작정한 날 | 코로 숨쉬는 사람이여 | 죽을 날짜를 트고 나가다 | 죽을 날을 하루 넘기고 | 함께 하심으로 | 올 해 1955년 | 진명학교 교장 이세정 | 끝만 따고 간다 | 전사자 잰 맥코니 편지 | 척하고 사는 세상은 아닐 터 | 오늘도 또 척한다 | 무엇이 걱정이냐? | 괜찮다는 말 | 오늘부터 9시 출근 | 어찌 그럴 수가! | 치통 다스리기 | 있다 가는 이 | 나의 사랑스런 책이여! | 모름부터 마침까지 | 진리대로 산 사람 | 마중과 배웅 | 죽을 뻔한 목숨이 산 것 | 바로 잡으면 | 탈의 빌미여! | 수수께끼 | 이제를 가질 수 없는 사람아 | 없어져야 믿게 된다 | 왜 오오? | 참으로 딱한 것이 | 빛난 새해 하루 | 높이 깊이 알아야 | 벌써 벌써 돌아왔을 게다 | 네 속의 마음 눈 | 심장의 노래 | 절로 울림이어라 | 복은 말없이 | 몸바빠, 맘바빠, 배바빠 | 사람이라는 코끼리 | 첫 새벽의 고백 | 꾀로 만드는 것 | 마음이 좋아라 하면

2장 | 트고 나가다
죽을 날짜 트고 나가다 | 꽃 중의 꽃은 불꽃 | 소용돌이 치며 | 생각이 죽은 나라? | 네가 참을 찾지 않는 것이 | 머릿골에 내려 계시느니라 | 수수께끼 같은 세상 | 나에게 주신 힘 | 아버지의 눈 | 세 번 생각 | 웃음도 닫고 입도 닫아 | 나를 찾는 길 | 나는 ‘하나’다 | 그립게 찾아지는 한 분 | 오는 맘도 태울 것 | 해 보면 어떨까 | 몸 벗고 살 수 있는 사람 | 맘 고쳐먹고 | 조히조히 살아왔으니 | 숨나무와 명나무 | 그리워하노라 | 맺는 이, 곧은 이, 굳센 이 | 인생은 신되는 길 | 이 세상에 부르짖노라 | 눈 뜨고 바로 보려는가? | 사람 노릇 다하면 | 마찬가지 | 까막눈 | ‘하나’를 사랑하는 이 | 저절로 | 저절로 살려 볼까나? | 만듬과 지음 | ‘학생 아무개’의 무덤 | 내가 크는 겁니다 | 드문 하루

3장 | 다시 산 날
다시 산 날! | 먹이시도다 | 예수 숨 쉬는 우리 | 아들을 뚜렷하게 하시고 | 사람 살리는 일에 힘쓸 때 | 눈에 보이는 세계의 사진첩 | 돌아가오 암! | 사람의 길 | 맨 꼭대기 | 고아원 찾아가는 길의 감회 | 목숨 말숨 | 섣불리 손대지 말고 | 쭉 빠지는 살을 보며 | 솟난 숨 | 숨 바다에 노닐다 | 몸맘 씻은 이 | 낯을 안 보려들면 | 뵈는 만큼 딱 그 만큼 | 우리 삶 또한 갈아 주오 | 그리스도록 | 낯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 꼭대기 | 곧아야 하겠소 | 제 때가 되어야 | 묵은 글 | 꼭지도 못 뗀 사람 | 아름아리 | 뒤집힌 세상 일 | 우리 님은 숨님 | 내버려두고 보는 가운데 | 육당 최남선 부고를 보고 | 신의 골짜기 | 노릿거리로만 여기고) | 하면 된다는 건 거짓말 | 철나자 젊음 | 우로 우로 옹글게 옹글게 | 냅다 밀어붙이는 것이 말 됩니까? | 울지 않고 어찌 하렵니까? | 알음장 얼음장 올음장 | 오름장 못 읽는구나 | 얼 찾는단 말 | 찬 바람 참 바람 | 죽음! 구름 뚫고 솟다 | 죽어도 살아도 아바디만! | 하지 마 | 낯 | 빛깔 | 아직 얼굴은 좋다 | 나는 살아있는 솟날 아이! | 잠잔 맛 믿는 맛 | 밖으로만 잘할 판 | 큰 소리 잘 치는 게 영웅 | 참으로 믿고 따라간 이 | 땅에 있는 이 아버지 | 모름을 받들어 | 좋고 좋다 | 속이 성해야 | 깨를 줍냐 | 마침의 삶 | 세상에 내치신 뜻 | 한 번이라도 놓여 봤더냐 | 착각하며 살기 때문에 | 누구나의 꿈

4장 | 누구나 알듯이
누구나 알듯이 | 있는 걸까? 없는 걸까? | 우리가 꺾인단 말인가? | 어찌 둘이랴 | 있과 없 사이 | 꿈에서도 걱정은 싫거든! | 결혼한 지 마흔 넷쯤에나 | 있으나 없으나 | 하나 둘 세다가 | 땅에서 사는 사람 | 죽자꾸나 살아볼 삶 | 열 가지 일깨움 | 스스로 저절로 | 묵은 흙도 새 땅 된다! | 더 밝아 가서 아득함 | 좀 있거나 좀 없거나 | 죽기 살기로 사는 모양 | 어긋난 셈, 바른 셈 | 다 우연인 때문이다 | 냄새 나면 좋을 수 없지! | 멋쩍은 일은 마라 | 돌아가자 밑둥으로 | 베짱이의 노래 | 눈물샘 풀어내어 | 새삼스레 싫다고 할 건가 | 싫지 않았던 삶 | 산다는 게 다 그런 겁니다 | 비로소 알겠습니다 | 여유있게 가는 이 | 내 나라 되네 | 쉬염쉬염쉬염 | 불 살려 사는 삶 | 처음 붙인 맛과 재미 | 어찌 저로 보는가 | 저가 밟고 간 무한궤도 | 셋 넷 다섯 열 | 생명줄도 자랄까 | 처음과 끝이 맞물려 | 나 밖에 나 말고는 | 남은 하루만이라도 | 지금을 맛보다 | 죽이고 살리는 자연의 이치

다석 유영모의 살아온 이야기
용어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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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 - *동광원 평산 심중식 원장님의 안내로 동광원을 둘러 보았다.

(3) Philo Kalia - *그립던 동광원 평산 심중식 원장님의 안내로 동광원을 둘러 보았다. 나는 동광원을 당시... | Facebook 2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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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던 동광원
평산 심중식 원장님의 안내로 동광원을 둘러 보았다.
나는 동광원을 당시 글을 쓰기 위해 공부했던 정경옥 교수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후 동광원을 마음에 그리기만 하다가 이번 가나안 종교 순례 여정에서 마침내 동광원을 가게 된 것이다.
정경옥 교수는 1930년대 감리교 신학교 교수였다. 감리교신학교에 부임한 지 5년만인 1937년 3월,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교수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진도로 내려갔다. 그는 후에 교수직을 포기하고 낙향한 이유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젖어든 타성과 타협의 생활 습관에서 오는 ‘영적 위기’ 때문임을 밝혔다.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지 5, 6년 동안에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봄이 되면 봄 과정을, 가을이 되면 가을 과정을, 그리고 겨울이 되면 겨울 과정을 해마다 같은 노트에 같은 방법으로 기계를 틀어놓은 것 같은 강의를 반복하는 동안에 해마다 말은 자라나 생명은 죽어서 스스로 독서도 하지 않고 연구도 끊이고 생활에 반성이 없으며 창작력이 진하였다. 날마다 사는 것이 외부에 있어서 광대(廣大)하고 내면에 있어서 외축(畏縮)하는 생활이었다. 나의 영은 나날이 황폐의 여정을 밟고 있었다. 기도를 하여도 마음속에 솟아 나오는 기도가 아니었고 노래를 불러도 혼이 들어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이것이 끊임없이 괴로웠다. 누가 무어라고 말하는 이는 없으나 나로서는 쓴 잔을 마시는 것 같이 괴로웠다. 내 몸이 세상에 알려지고 칭찬하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나는 더욱 괴로웠던 것이다.”(정경옥, “위기 ․ 흙 ․ 나”, <새사람> 7집, 1937.7, 11~12쪽.)
정경옥은 진도에 내려온 직후 화순 땅에 ‘도인’(道人) 칭호를 받던 수도자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만났다. 예수처럼 살았던 ‘도암의 성자’ 이세종(李世鍾)을 만난 것이다. 정경옥은 진도로 내려 온지 얼마 안 되어 이세종에 대한 소문을 듣고 화순까지 가서 그를 만난 것으로 보이며 그때 만난 이야기를 <새사람>에 “숨은 성자를 찾어”란 제목으로 발표하였다.(정경옥, “조선의 성자: 숨은 성자를 찾어”, <새사람> 7집, 1937.7, 30~37쪽.)
이세종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한국교회사에 어느 정도 상식을 지닌 사람이면 한국의 대표적 개신교 수도공동체인 동광원을 창설한 ‘맨발의 성자’ 이현필(李賢弼) 정도는 안다.(엄두섭, 『맨발의 성자 이현필 전』,) 그 이현필이 “도무지 따라 할 수 없었던” 스승이라 불렀던 인물이 바로 이세종이다.
이세종은 ‘득도’한 후 이름 대신 ‘이공’(李空)으로 불려지길 윈했다. 그는 전남 화순군 도암면 등광리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남의 집 머슴으로 살다가 결혼한 후 악착같이 재산을 모아 동네 부자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자식이 없어 아들을 얻기 위해 산당을 세우고 정성을 드리던 중 성경을 구해 읽고 ‘참 도’를 발견한 후 정성 드리던 것을 폐하고 산당에서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독수도(獨修道)에 들어갔고, 깨닫는 대로 말씀을 실천에 옮겼다.
이세종을 바라보는 정경옥의 경이로운 눈빛은 다음과 같았다.
“공[이세종]은 감각의 세계를 벗어나 영의 사람이 되고 말었다. 그는 동네 뒷산 깊은 암자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고 진리를 명상하는데 몰두하였다. 교회의 전통이나 교파의 신조나 제도의 구속(拘束)을 벗어나 그의 적나라한 영은 하느님의 말씀과 직면할 수가 있었든 것이다. 그는 어느 유명한 학자에게서 계통이 있는 사상의 체계를 전수한 것도 아니오 어떤 성경학자의 주석이나 비판을 참고한 것도 아니다. 그는 성경을 손에 들고 자기의 독특한 해석을 나리우고 성경을 통하여 자기의 독특한 영감을 받았다. 공이 성경을 연구하고 진리를 명상하는 동안 그 자기를 잊어버리고 시절이 바꾸이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철을 따라 옷을 바꾸어 입고 때를 좇아 음식 먹는 것을 잊었다.” <새사람>, 1937.7, 34쪽.)
정경옥은 이세종을 만나면서 도전과 희망을 읽었다. 서울 생활을 하면서 일과 사람에게 시달리고, 터무니없는 모함과 비난을 받으며 마음도 많이 상했지만, 모든 것을 훌훌 털고 고향에 내려 와 흙과 친하게 지내면서 마음을 어느 정도 다스린 후, 화순 땅 천태산 골짜기에서 ‘도를 닦는 예수꾼’ 이세종을 만나면서 자신이 당한 시련과 아픔, 고독과 눈물이 오히려 참 신앙의 길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진도로 돌아와 원서 대신 이세종식으로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예수를 재발견하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그는 이러케 살았다』이다. 그가 성경에서 발견한 예수도 한 없이 외로운, ‘고독의 성자’였다.
“한 제자는 그를 밀고하였고 한 제자는 그를 모른다고 하였으며 또 다른 제자들은 예수께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실 동안 잠을 자다가 예수께서 잡혀 가시는 것을 보고 사면에 흩어져 다라났다. 그러나 예수는 자기의 제자들이 다 어디로 가고 자기 혼자 남아 있다는 것이 외롭다는 것보다 사랑을 주어도 받을 이 없다는 것을 외로워하셨던 것이다.
그렇다. 신앙의 사람이 되려면 세상에서 친구가 없다. 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고독의 사람이요 눈물의 사람이다. 선견을 갖인 사람은 군중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세상은 사랑을 받으려고는 하나 사랑하려고는 하지 아니한다.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에 주기만 하면 말없이 떠나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은 될지언정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은 되지 말라. 세상 사람의 친구가 되기는 할지언정 세상이 너를 친구 삼으리라고 기대하지는 말라. 성도의 운명은 고독과 눈물이었나니 우리도 그 고독, 그 눈물을 맛보아야 한다.”(정경옥, 『그는 이렇게 살았다』, 131~132쪽.)
-(이덕주 교수의 ‘동광원’에 관한 글을 참조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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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ônatas Kim
    동광원에 다녀 오셨군요. 신대원 시절 절친인 동기 목사님과 둘이 동광원에 가서 이현필 선생의 제자분하고 담소를 나눈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이제는 소천하셨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 손미옥
    진정한 영적 지도자를 찾기 힘든 요즘 참 귀하고 그리운 분들이네요!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을 그리며...
    2
  • 김원
    저는 벽제에 있는 동광원에 자주 갑니다.
    2
  • 유용현
    훌륭하신 분을 소개받게 되어 감사합니다. 계속 관심을 갖고 그분의 글을 찾아 읽고 싶습니다🌻
    2
    Philo Kalia replied
     
    1 reply
  • 차흥도
    남원인가요?
  • 이규원
    오래 전 이현필선생님에 대한 글을 읽고 그리운 분이 되었는데 기억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Jongsoo Lim
    배웁니다. 공부합니다.
  • 이준협
    오래 전에 방문했던 기억이 소중합니다. 좋은 곳에 다녀오셨네요.
    • Philo Kalia
      이준협 네, 꼭 가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다녀왔습니다. 영적 인문지리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 이기동
    감명깊은 곳, 존경할 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