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7

유교의 서(恕)를 통한 관계 치유 – 과거의 관계 속에서의 서( )恕 와 현대의 관계 속에서의 서( ) -恕 김민정(서강대학교)

 


[유교분과 1발표]

유교의 서(恕)를 통한 관계 치유

– 과거의 관계 속에서의 서( )恕 와 현대의 관계 속에서의 서( ) -恕

김민정(서강대학교)

서론

종교적 인간은 자신과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해나간다 소외감을. 느끼거나 치유가 필 요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자신과 자신 외의 세계와의 관계 정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 다 코로나라는. 최근의 상황은 인간관계에 대한 정의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타자와의, 관계 맺음에 대해 다 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이 글에서는 관계 속에서 타자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유교의 실천행위인 서(恕)를 통해 어떻게 지금 여기에

그 실천행위를 적용해볼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론

1. 인(仁)으로 향하는 길인 서(恕)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두드러지게 양극화된 선(善)과 악(惡)의 대결구도로 짜여지지도 않을뿐더러 한 사 람이 겪는 하루의 시간 속에서도 수많은 관계 속에서 선택과 결단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모여 사 회의 모습이 어렴풋이 큰 조류를 이룬다. 공자는 그 같은 수많은 선택의 목적지로 인간이라면 인(仁)한 사람 이 되어야 한다는 종교적 인간상을 세운다.

인(仁)에 대한 정의와 개념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유교의 이상에는 늘 인(仁)이 중심에 자리 한다. 공자는 부정의하고 어지러운 세상이 달라지길 원했지만 체제를 바꾸거나 지도자를 갈아치우는 형태로 고치려하기보다 인간 내면의 근본 변화로 달라지길 원했다. 그리고 공자가 말한 그 근본변화가 목표로 삼아 야 할 정점에는 인(仁)이 자리 한다.

공자는 一以貫之를 하는 방법이 충(忠)과 서(恕)에 있다고 설명한다 주자학적. 설명에 따르면 충(忠)은 자기 의 마음을 다하는 것으로 마음의 진정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고, 서(恕)는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까지 미치는 것이라 설명한다 정자. (程子)는 “자신으로써 남에게 미침은 인(仁)이요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미 침은 서(恕)이다...하늘의 명이 아! 심원하여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충(忠)이요 건도, (乾道)가 변화하여 각기 생 명(性命)을 마루고 있다는 것은 서(恕)이다. <중용 13장 의> 이른바 忠恕違道不遠이란 것은 바로 인간의 일을 배우면서 위로 천리를 통달하는 뜻이다.” )라고 했다. 忠과 恕를 마음의 실천규범으로 삼으면 저절로 하늘의 뜻과 통하는 인(仁)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서(恕)는 인(仁)을 이루는 방법이 된다 인간. 내면의 근 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다다라야할 목표가 인(仁)이며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서(恕)라 한다면 서 (恕)는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켜 사회적 유토피아인 평천하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누구나 소외받지 않 은 사회 하늘의, 도와 맞닿는 위로를 인간관계에서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상을 우리는 서(恕)에서 찾을 수 있 다. 그렇다면 유교에서 말하는 서(恕)는 무엇인가?

2, 유교의 서(恕) 서(恕)는 ‘己所不欲, 勿施於人, 즉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그러면. 온 나라 어디서든 원

망이 없고 지역사회 어디서든 원망이 없을 것이다.’2)로 대표된다.

그러나 서(恕)를 더 세분화하여 살펴보면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강요하지 않는 소극적인 양면 의 서(恕)3)인 은백률(silver rule)에 해당하는 서(恕)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도 적극적으로 베푸는4) 황 금률(golden rule)의 서(恕)가 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도 공통점이 존재한다 서. (恕)에는 반드시 ‘나 와’ ‘내가 아닌 타자(他者)’라는 관계가 전 제된다. 이 관계에서 타자에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하는데 서(恕)라는 기제가 발동된다. 먼저 적극적이든 소 극적이든 나의 경험과 감정과 익숙한 윤리 안에서 타자를 헤아리게 된다. 나를 준거로 해서, 내가 타자를 헤 아리고 그도 내가 원하는 일을 원할 것이라는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는 추정이 일어난다 그러고. 나서 적극적 으로 행동을 하는 황금률(golden rule)을 행할 수도 있고, 내가 싫어하듯이 다른 사람들도 싫어하는 행동을 내가 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타인을 도모 하는 은백률(silver rule)을 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 라는’ 한 개인의 기준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남이 못하는 것에 대한 몰이해, 그가 원하지 않 는 것을 원한다고 미루어 생각하는 착각 등 수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들은 나의 이해와 상대 의 이해가 맞아들어야 배려로써 효력을 발휘한다 그렇지. 않은 서(恕)는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거 나 오히려 상대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솝, 우화의 ‘여우와 학 에서’ 자기에게 맞는 그릇을 상 대에게 내놓는 행위는 상대가 받아들이기에 폭력이 된다 상대를. 중심으로 한 배려가 아닌 나를 기준으로 한 불순한 행위의 서(恕)로 오염 되어버린다 맛있는. 음식을 내 방식으로 미루어 상대를 대접하겠다는 선한 의도 가 선한 결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황용은 황금률에는 행동을 하는 사람과 피행동인(彼行同人)의 차이가 분명히 있고 하나의, 공통된 표준이 사용되는 것은 특수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5) 뿐만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참는 것 역시 내가 나에게 강요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

무조건적인 배려가 자신에게는 폭력으로 돌아오며 이것을 서(恕)로 미덕으로, 여기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가 말한 충서(忠恕)의 개념을 주자는 천도(天道)와 연결시켜 이야기 한다. 일반적인 감 정과 주관 속의 나를 미루어 생각하는 서(恕)가 아닌 도(道)와 거리가 멀지 않은 서(恕)라고 분명히 말한다.6)

 

也. ... 中庸所謂 『忠恕 違道不遠』 斯乃下學上達之義.

2) 『논어』 12:2.

3) 『논어』 15:23. ‘자공이 물었다. 종신토록 실천할 만한 한 마디 말씀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恕)이

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4) 『논어』 6:30.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통하고 싶으면, 남도 통해주는 것이다. 자기 처지로부 터 남의 처지를 유추해내는 것(能近取譬)이 인(仁)을 행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5) Yong Huang, 『A Copper Rule Versus the Golden Rule: A Daoist-Confucial Proposal for Global Ethics , (Philosophy East and West. 55(3) 2005), P.397.』

6) 『중용』 15. 忠恕違 道不遠 ,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

도(道)에 가까운 서(恕)란 자기 기준과 경험을 순수히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수양을 전제로 한 다 자기. 자신이 수양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나 라는’ 주관적 준거의 서(恕)는 상대와 자신에 대한 폭력이자, 비합리적인 기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수양한 서(恕)는 사람마다 내재된 천이 부여한 성스러운 이치를 드러내게 된다. ‘나 를’ 제대로 헤아리고 모든 사람들 안에 담보된 하늘의 이치를 깨닫지 않으면, 서(恕) 는 인(仁)으로 연결되는 객관성을 잃게 된다. 자신 안에 있는 천리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고, 자신을 도(道) 와 합일한 상태를 갖추어야 나를 미루어 타자를 배려하는 이타심이 제대로 발휘해 비로소 인(仁)과 합일(合一)을 이룬다고 볼 수 있겠다.7)

3. 서(恕)와 유교의 인간관계 서(恕)는 자신 하나의 수양에 국한한 개념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혹은, 우주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타자와의 관계까지 확장된다 다산. 정약용은 인(仁)을 관계성 안에서 해석했다. “‘인(仁)’이라는 명칭은 반드시 두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것이다. 가까이는 오교(五敎)  (부의(父義), 모자(母慈), 형우(兄友), 제공(弟恭), 자효

(子孝))에게서 멀리는 천하 백성에 이르기 까지 모든 사람과 그 사람이 그 본분을 다하는 것, 이것을 일러 ‘인 (仁)’이라고 한다.” 라고 말했다. 다산에게 있어서 인(仁)이란 효(孝), 자(慈), 충(忠), 신(信) 등 개개인이 상호 자신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상대 존재에 대해 행할 필수적인 역할윤리의 덕목의 총칭임을 알 수 있다.8) 인 (仁)은 혼자서 정의되는 개념이 아닌, 개인과 타자와의 관계에서 이끌어져 나온다. 이보다 훨씬 먼저 장재는 <서명(西銘)>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건을 아버지라 하고 곤을, 어머니라고 한다 나는. 여기에 아득하게 작지만 이에, 혼연히 그 가운데 있다. 그 러므로 천지에 가득한 것은 나의 몸이며 천지를, 이끄는 것은 나의 性이다. 백성은 나의 동포이고, 만물이 나 와 함께하는 친구이다 군주는. 내 부모의 적손이고 ,대신은 적손의 가상(家相)이다. 나이 많은 이를 존경할 때 는 내 어른을 섬기는 듯이 하고, 외롭고 약한 사람을 사랑할 때는 내 아이를 돌보는 듯이 한다. 성인은 덕에 합한 자이고 현인은 빼어난 자이다.”9)

<중용 에서> 공자는 “군자의 도가 네 가지인데 나는, 그 가운데 한 가지도 능하지 못하다. 자식에게 바라는 것으로서 아비를 섬김이 능하지 못하고, 신하에게 바라는 것으로서 임금을 섬김이 능하지 못하고, 아우에게 바라는 것으로서 형을 섬김이 능하지 못하고, 붕우에게 바라는 것으로서 내가 먼저 베풂이 능하지 못하다 .”10)라고 관계에 대한 유교적 프레임을 언급한다.

유교에서 관계에 대한 질서와 분별은 수없이 강조되고 있는데 부자(父子)ㆍ군신(君臣)ㆍ부부(夫婦)ㆍ장유 (長幼)ㆍ붕우(朋友) 다섯 관계는 가장 보편적인 유교적 인간관계 프레임이다 가까운. 관계의 질서가 잡히면 확 장된 관계에서도 화합과 편안함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대 시점에서 유교의 관계 프레임은 오륜을 기본으로 한 보수적 수직적 위계적인, , 관계이며 자유로운 교류가 배제된 관계로 평가된다 도교. 역시 유교가 내세우는 경계와 구별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가하였다 사실. 경계가 그어지고 개념이 생겨나면 그 개념을 세

 

7) 풍우란, 박성규역, 『중국철학사』. (까치, 1999), P.122. 송명도학의 육왕학파는 인간에게 본디 완전한 良知가 있고,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다 성인이다라고 가정한다.

따라서 인간은 오로지 자기의 양지를 따라서 행하기만 하면 절대로 그릇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8) 안외순, 『茶山 丁若鏞의 관용(tolerance) 관념 : 서(恕) 개념을 중심으로』. (동방학, 19, 2010), P,248.

9) 『장재』 서명(西銘) 乾稱父, 坤稱母, 予玆藐焉, 乃混然中處. 故天地之塞, 吾其體, 天地之帥, 吾其性, 民吾同胞, 物吾與也. 大君者吾父母宗子, 其大臣宗子之家相也. 尊高年所以長其長, 慈孤弱所以幼吾幼, 聖其合德, 賢其秀者也,

10) 『中庸』 13장 君子之道四 丘未能一焉 所求乎子以事父未能也. 所求乎臣以事君未能也 所求乎弟以事兄未能也 所求乎朋友先施之未能也

우려 했던 원의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소외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부부사이의 별(別)에 대한 해석이 그러하다 이덕홍은. 부부유별(夫婦有別)의 별(別)에 서 두 가지 의미를 파악하였다 하나는. 남편과 아내가 공동의 영역을 가지며 이는 타인으로부터 배타적인 영 역이다. 다른 하나는 비록 부부가 공동의 영역을 공유하나 일상생활은 남자는 밖에서 여자는 안에서 생활하 면서 안과 밖이 구분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 별(別)에는 ‘내외지간(內外之間)에 서로 함부로 하지 않는 다’(內外有別)와 ‘정해진 짝이 있어 서로 어지럽히지 않는다’(不相亂偶)라는 뜻이 함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덕홍은 전자의 방향으로 기울고 후자의 견해는 무시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문제점에 대해 애통해한다. 정호 는, 불상난우(不相亂偶)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지만 내외유별(內外有別)은 도(道)를 닦는 군자에게나 다그칠 수 있는 것이지 보통사람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 그만큼 부부사이 의 별(別)이 내포하고 있는 도리에는 상대를 미루어 이해하고 서로 공경하는 태도라는 진정성이 담긴 마음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관계 속에서의 인(仁)은 개인이 각각의 역할 속의 상대를 향한 쌍무호혜적(雙務互惠的)인 사랑이다. 정약용 은 인(仁)인이란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이다 라고.’ 하며 쌍무호혜적(雙務互惠的) 사랑을 기본으로 하였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관계적 존재, 공동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숙명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귀결은 제가와 치국은 물론 평천하(平天下)와 협만방(協萬邦)의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공자는 “군자의 도(道)는 비유하면 먼 곳에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로부터 하며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 로부터 함과 같다.” )라 하여 유교의 성인은 가까운 관계를 미루어 생각하여 먼 관계까지 인간이 가져야할 도(道)를 확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루어. 생각하는 서에는 결국 관계성이 설정되어 있고 서는 단순히 나의 경험과 주관을 미루는 차원이 아닌 하늘의 도(道)와 맞닿는 인간의 마음 안의 성(性)이 인(仁)에 방향 지워져 있어야 한다.

4. 현대 사회에서 ‘관계 변화와’ 그 안에서의 서(恕) 언어학자이면서 구조주의자인 소쉬르는 체계성의 테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체계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단순한 차이들을 임의로 한정함으로써 단번에 체계적인 차이와 대립들로 변환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녹색 신호등이 자신의 고유한 속성에 의해 어떤 가치를 부여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닌 다른 것과의 차 이 즉, 빨강 신호등과의 부정적 차별적 대립적, , 관계에 의해 특정한 가치인 ‘가다 라는’ 의미를 획득한다는 말 이다. ) 마찬가지로 유교의 관계도 많은 가능성들과 차이를 단순하게 오륜으로 한정해서 고유한 속성이 아 닌 대립적 관계 안에서 특정 가치를 부여했다.

현대 사회에서 부자(父子)ㆍ군신(君臣)ㆍ부부(夫婦)ㆍ장유(長幼)ㆍ붕우(朋友) 의 관계로 인간관계를 상정하 는 일은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저항도 강하다 공자가. 살던 시대의 사회적 관계보다 훨씬 다층적이고 중 층적인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고 각 개인의 관계맺음과 거기서 파생되는 역할도 너무나 다양하다. 지금 우리 가 이루는 사회적 생태계는 공자의 시대에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인터넷을. 비롯한 가상 공간에서 수많은 관심과 취미로 모이는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소셜 네트워크, 가정을 이루고 후손을 남기는 것에 대한 인식의 변화, 상하 위계적이었던 조직관계는 이익을 창출하는데 서로 도모하거나, 서로 상생하는 관계로 변화 되었다 또한. 가정 내에서도 여성이 경제력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남녀의 내외 차별이 아니라 서로 하는 일이 다른 것에 대한 이해와 공감 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더 이상 개인은 가족 안에서, 사회 안에서 제한되거나 자의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각 개인은 자신과 만 나 어떠한 관계를 이루는가의 ‘상호작용(相互作用, interaction)’에 의해 서로가 서로에게 정의된다. 그렇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과 세계마다 개인을 다른 정체성으로 인식한다. 다른 사람과 만나는 일면으로만 자신을 이해받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전인적인 모습의 ‘나 로’ 이해받지 못한다. 여기에서 개인들은 자신을 온전히 이 해받을 수 있는 ‘관계의 부재(不在)’와 근본적 외로움을 인식하게 된다.

인간관계 내에서의 서(恕)는 본인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나를 미룬다고 하는 상황이 다른 타자를 온전하 게 이해하는 완전함을 갖지 못한다. 또한 자신과 타자와의 ‘상호작용(相互作用’으로 정의하는 관계에서 심리 적, 사회적, 인지적, 철학적인 원리로는 ‘온전함 이라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만나는 접점의 이해관계마다 자신을 해석하고 정의내리는 부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전인적으로 봐 줄 수 있고 알아주는, 존재는 초월적인 신이나 전지(全知)한 존재로 소급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초월을 관 계 내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종교적이고 수양적인 면을 내포한 서(恕)가 있어야 한다. 단순한 타인에 대한 이 해가 아니라 사람 내에 있는 천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드러내고 적용하는 “천리(天理)를 담보한 서(恕)”, 즉 유 교의 이상적인 서(恕)는 루돌프 오토가 말하는 성스러운 본질을 갖는다.

우리는 현대 사회의 복잡한 관계 안에서 가능하면 모두가 행복한 좋은 사회를 꿈꾼다 이것은. 공자의 노력 처럼 체제나 지도자를 바꾸는 것이 아닌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야 가능하다 물론. 너무 이상적이고, 오래 걸리 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그러한 무리수에 투자를 한다. 그것만이 온전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도 이미 종교생활에는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상적이고. 교리적인 차원의 윤리 와 삶 현대, 세속사회와 맞지 않는 발걸음으로 걷는 기존 종교적 보수성 안에서 많은 신앙인들은 갈등과 긴장 을 겪었다. 그리고 종교생활이 종교시설이나 회당이 아닌 곳에서 이루어지며 명상과 신비, 같은 관심사 등의 무리로 기존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코로나라는 팬데믹이 우리를 성스러운 공간과 공식적 으로 결별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종교적 성인의 몫이 특정 종교적 색채 안에서 혹은 수도원이나 사당, 승가 에서 기대되지 않는다 성스러움의. 모순과 세속과의 긴장과 갈등이 복잡하게 공존하는 세계 안에서 개개인이 무가치한 가치들에서 가치 있는 것을 명확하게 그려내려는 시도들이 종교적 삶으로 자리 잡고 있다.16) 유교는 기존 종교가 갖는 보수성, 비타협성, 정형화된 인간관계 틀 등, 현대와 갈등을 갖는 모든 요소들을 가장 짙게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에게 유교는 화석화 된 과거의 유물에 불과하다는 편견이 강하다. 그러나 유교는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종교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특정 장소 특정,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 다는 점에서 생활 속의 종교라 볼 수 있다. 유교는 현실과 자신이 마주하는 관계 속에서 이상적인 삶을 실현 시키고자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천리를, 매 순간 실천하는 구체적인 예(禮)를 늘 작동 시킨다.

유교가 우리 시대에 맞는 관계를 다시 상정하여 개인 대 개인 개인과, 사회 인간과, 만물에 대한 관계의 프 레임을 ‘상호작용(相互作用)’에 설정하여 각기 만물이 가진 존엄성을 개체의 특성대로 이해한다면 천리를 담

 

16) McGuire, Meredith B, 『Lived Religion : faith and practice in everyday life』. (Oxford University, 2008), P.6.

보한 서(恕)를 중도(中道)에 맞게 내세울 수 있다 그렇게만. 하더라도 아직 잔재한 유교적 관계의 부작용, 서로 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소외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유교는 현실적 관계 안에서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성인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알려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 안에서는 세속 안에서 어떻게 성스러운 관계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여 공명을 이루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 유교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본다. 恕를 주관적 준거가 아닌 타자를 위한 진정한 배려와 이해로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 간의 의사소통과 통섭을 통한 오픈된 환경이 필 요하다. 과거의 유교 공동체가 맺은 관계 안에서 천리(天理)가 내재된 서(恕)를 현대화된 관계에 적용시킨다 면 유교적 관계가 가진 경직된 위계와 서열의 부정적인 모습을 거두고 인간의 상호호혜적(相互互惠的) 관계 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論語集註]

[論語古今註]

[中庸]

1. 풍우란, 박성규옮김 (1999) 『중국철학사』, 까치.

2. 양국영 (2006) 『유교적 사유의 역사』, 황종원외 옮김, 유교문화연구소.

3. Mc Guire, Meredith B (2008) 『Lived Religion : faith and practice in everyday life』. Oxford University.

4. 정정기, 옥선화 (2011) 『조선시대 가족생활교육에서 부부유별의 의미 간재 이덕홍의 ‘부부유별도 를’ 중심으로』, 가정과 삶의 질 연구.

5. 안외순 (2010) 『茶山 丁若鏞의 관용(tolerance) 관념 : 서(恕) 개념을 중심으로』, 동방학, 19.

6. 박지혜, (2015) 『유교사상에 나타난 사회성 교육 고찰』, 열린교육연구.

7. 최용호, (2012) 『구조주의 언어학과 차이의 언어학』, 프랑스학연구 59.

8. Yong Huang (2005) 『A Copper Rule Versus the Golden Rule: A Daoist-Confucial

Proposal for Global Ethics , Philosophy East and West. 55(3).』


원불교 마음공부에서 ‘대중(大中)’의 의미 임 전 옥(원광대학교)

 원불교 마음공부에서 ‘대중(大中)’의 의미

임 전 옥(원광대학교)

Ⅰ. 들어가는 말

Ⅱ. 원불교 마음공부

Ⅲ. ‘대중 의’ 용례 분석

1. 용례에 따른 분류

2. ‘대중 의’ 의미

3. 원불교 마음공부와 ‘대중’: ‘대중 의’ 특징

Ⅳ. 원불교 예비교무들의 ‘대중 에’ 대한 인식조사

1. ‘대중 의’ 의미에 대한 인식

2. 원불교 마음공부에서의 역할에 대한 인식 3. 원불교 예비교무 교육에서의 함의

Ⅴ. 맺는말

Ⅰ. 들어가는 말

원불교에서는 ‘마음공부 를’ 교리와 사상의 핵심을 담은 실천 방법으로 삼는다. 원불교 마음공부란 마음을 잘 알고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경계에 접하여 이 경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마음 객체적( 자아 을) 또 다른 마음 주체적( 자아 이) 지켜보면서 성품에, 비추어 반응하는 마음이 적절한 지 대조하는 과정을 말한다.  ) 말하자면, 경계를 접하여 성품 진공 에( ) 대조하여 바르게 판단하고 실행 하여 모두 은혜롭게 생활하자는 것이다. ) 여기서 경계란 내 정신 마음 을( ) 시끄럽게 하고 정신(마음)을 빼앗아 가는 사람, 관계, 사건, 사물을 말한다. ) 경계는 우리 삶의 여정에서 필수적으로 동반되며, 결 국 마음공부는 이 경계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경계에 반응하는 자신의 마 음을 공부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행위들이 제안되고 있는데 천만, 경계에 ‘끌려다니지 말고,’ ‘마음을 빼 앗기지도  말며,’ ‘마음 대중을 잡거나 주의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또한 경계에 임하여 때론 마음을 ‘돌 리기도 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이겨 나가기도 해야 한다.’ 때론 ‘경계를 따라 일어나는 나쁜 마 음의 싹을 제거하기도 하고,’ ‘착심을 놓기도 해야 한다.’4)

이 중에서 마음 대중을 잡는 것 즉, ‘대중 이라는’ 표현은 마음공부와 관련하여 원불교 초기교서를 비 롯하여 「정전」, 「대종경」 등 여러 교서와 자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전에서는 ‘대중(大中)’의 의 미에 대해 “⑴ 겉으로 대강대강 어림짐작하는 것, ⑵ 마음공부를 해가는 데 있어서 자기 마음속으로 어 떤 표준을 잡아가는 것 원불교에서는. 마음공부에 있어서 대중잡는 공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라 고 하고 있다. ‘대중잡다 의’ 일반적인 의미는 “(무엇을) 어림으로 헤아려 짐작하다” )임을 감안해보면, 이러한 일반적 의미에 더하여 원불교에서는 마음공부와 관련하여 좀 더 확장된 내용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음공부와의 관련성 나아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교서에서의, ‘대중 이라는’ 표현은 상당 히 개괄적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모호한 내용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대종경 제」 3 수행품 33장에서 “경계를 당할 때에 무엇으로 취사하는 대중을 삼으오리까” “세 가지 생 각으로 취사하는 대중을 삼나니” )에서의 대중은 취사를 할 때 어떤 것을 ‘표준하다, 기준하다’ 라는 의 미이지만, 「정산종사법어」 제7 권도편 46장 “우리가 세상에 출신하여 안위의 모든 경우를 당할 때에 그 가지는 바 정신이 오직 전일함이 평상심이니, 편안한 때에도 항상 조심하는 대중을 놓지 아니하 고” )에서의 대중은 ‘(어떤) 마음을 갖다, 마음을 지키다 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사전적으로 제시 된 의미에도 불구하고 세밀한, 시각으로 보면 두 표현 간에 서로 미묘하게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대중 이라는’ 표현과 관련된 이러한 문제점에 주목하고 대중에, 대한 좀 더 구 체적인 의미를 파악해보고자 한다. 먼저, 원불교 마음공부에 대하여 살펴보고, 다음으로는 교서 및 자 료에서의 용례들을 분류하고 분석함으로써, 대중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나아가, 학부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원불교 예비교무들이 실제적으로 대중의 의미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고 대중이, 자신의 마음공부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느끼고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Ⅱ. 원불교 마음공부

소태산 대종사는 100여 년 전, 원불교라는 새 종교의 문을 열면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 자” ) 하고 이를, 원불교 개교표어로 천명하였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정신 즉 마음이며, 마음에 힘이 있어야만 과학문명이라 대변되는 물질적 풍요에 끌려 중심을 잃지 않고 이를 선용하는 참 주인으 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는 마음공부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내포”  ) 하고 있다. 즉 원불교, 마음공부는 정신개벽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서, “개인의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 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마음사용 능력을 갖게” ) 하는 길이 된다.

마음공부는 한마디로 “마음을 바로 알고, 마음을 지키고 단련하며, 마음을 바로 쓰고 지혜롭게 쓰는 것” )을 말한다. 조명규와 이경열은 마음의 개념을 본래심과 분별심으로 구분하였으며, 본래심(참마 음 이란)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마음이며, 분별심이란 사량계교심⋅분별시비심⋅차 별심⋅분별망상심을 통틀어 말한다고 정의하였다. ) 본 연구에서도 조명규, 이경열의 연구에서와 같 이 기본적으로 마음을 본래심과 분별심으로 구분하는 관점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본래심은 일원상의 진리 그대로의 자리에서 나투어진 마음이라면 분별심은, 분리된 개별자로서의 나 자아 를( ) 중심으로 일 어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경계가 있을 때 분별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 본래심을 지키는 것, 또는 본래심을 회복하는 것 등은 마음공부의 중요한 측면들이다. 원불교 마음공 부의 특징은 특히 ‘은혜가 나타나는 것 에서’ 찾을 수 있는데 원불교, 교리의 핵심은 ‘은(恩)’이기 때문에 “은혜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마음공부의 핵심” )이 되어야 한다.

Ⅲ. ‘대중 의’ 용례 분석

1. 용례에 따른 분류

1) 방법

용례 분석에 사용된 교서 및 자료는 「정전」 ), 「대종경」 ), 「정산종사법어」 ), 『대산종사법어』 ), 『대종경선외록』 ), 『한울안한이치에』 ), 『대산종사법문집1,2,3,4』 ), 『원불교 교고총간』 전 6권 )이 었으며, 이 중에서 ‘대중(大中)’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곳은 총 47건이었다. 발췌 결과, 한 가지 법문이 나 글 속에서 두 번 이상 언급된 경우가 다수 있었는데 한, 법문 내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경우 외에는 다수의 언급을 한 항목으로 취급하였다 또한. 같은 법문이 서로 다른 출처에 중복 게재된 경우 에도 이를 한 항목으로 처리하였다. 출처 표기의 우선순위는 현재의 교서를 위주로 하였다. 그 결과, ‘대중 이라는’ 표현이 수록된 곳은 총 38개 항목으로 압축되었다 교서. 및 자료명과 수록 항목 수, 출처 는 다음과 같다 분류. 절차는 먼저 본 연구자가 문맥상의 ‘의미 를’ 고려하여 용례를 분류하였다. 다음으 로, 원불교학 전공 박사학위자 2인, 국어교육 전공 박사학위자 1인, 근무 경력 25년 이상의 원불교교 무 1인으로부터 분류 기준과 항목에 대한 점검과 조언을 받으면서 수정, 보완하였다.

2) 용례에 따른 분류 결과

38개의 항목들을 의미에 따라 분류한 결과,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되었다. 하나는, ‘표준하다, 기준하 다,’ 둘은 ‘(어떤) 마음을 갖다 지키다, ,’ 셋은 ‘살피다 알아차리다 넷은, ’ ‘관조하다, 반조하다, 밝게 비추 다 이다 분류’ . 결과, ‘표준하다 기준하다 의, ’ 의미에 해당되는 항목이 16개로 가장 많았고, ‘(어떤) 마음 을 갖다 지키다 에, ’ 해당되는 항목이 9개, ‘살피다 알아차리다 에, ’ 해당되는 항목이 9개, 마지막으로 ‘관 조하다 반조하다 밝게, , 비추다 에’ 해당되는 항목이 5개로 나타났다.

2. ‘대중 의’ 의미

대중은 첫째, 대중은 ‘표준하다, 기준하다 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산종사는 “측량하는 사람이 먼 저 기점을 잡음이 중요하듯이 우리의 공부 사업에도 기점을 잡음이 중요하나니” )라고 하면서 공부나 사업에 있어서 기점(基點)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대중이 갖고 있는 ‘표준하다, 기준하다, 근본으로 삼다 의’ 의미는 바로 마음공부에 있어서 기점을 잡는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기점은 기본 이 되는 곳이나 지점24)을 말한다.

대중이 담고 있는 의미 중 두 번째는 ‘(어떤) 마음을 갖다, 지키다 이다’ . 마음공부의 과정에서 강조하 는 것 중 하나는 어떤 마음을 놓지 않고 정진해가는 것인데, 두 번째 의미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의. 두 번째 의미는 삼매에 이르는 일념 또는 일심으로부터 마음공부의 과정에서 필요 한 자세와 뜻에 이르기까지 어떤, 마음을 지키고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대중의 세 번째 의미는 ‘살피다, 알아차리다 이다’ . 동정 간에 주의하는 마음을 놓지 않는 것으로, 매 순간 마음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여서 살피고 경계, 따라 일어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지켜보는 것을 말한다. 가능하면 찰나 간에라도 “방심을 경계하고 정념(正念)을 가지는 공부” )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대중은 의도를 가지고 주의를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이 핵심이다. ‘살피다, 알아 차리다 는’ 두 가지 차원으로 좀 더 세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마음의 흐름을 살피고 지켜보 는 ‘주의심을 놓지 않는 것이다 둘은’ . 그 주의심을 기울이는 정도가 충분히 민감해서 매우 사소한 흐름 까지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지각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의미는 ‘관조하다 반조하다 밝게, , 비추다 이다 여기에서의’ . 대중은 진리의 속성 과 보다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경계를. 대할 때마다 습관과 업력에 물들지 않은 자성의 영지 그대로 비추는 것을 말한다.

3. 원불교 마음공부와 ‘대중’: ‘대중’의 특징

마음공부와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대중을. , 마음공부에 적용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즉 같은. , 의미로 사용된 용례 내에서도 진리적인 차원과의 연관성이 보다 직접적으로 명시된 내용으로부터 마음공부의 과정에서 필요한 마음가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차원 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째 대중에. , 대한 네 가지 의미가 서로 중첩되는 측면을 가지고 있 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의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고 나아가 경계에서 마음공부에 적용하기 위 해서는 대중이 내포하고 있는 네 가지 의미의 핵심을 중심으로 볼 필요가 있고 이를, 실제 마음공부에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셋째, 마 음공부에서 대중이 갖는 가장 기본적인 특성은 ‘챙기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즉 대중은. , 기본적으로 마 음을 챙기는 것이 동반되는 과정으로, 불방심(不放心)하는 것을 말한다. 용례들을 통해 파악한 대중의 네 가지 의미는 모두 ‘방심하지 않는 것 이’ 전제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그 챙기는 마음의 지속성과 세밀함을 요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Ⅳ. 원불교 예비교무들의 ‘대중 에’ 대한 인식조사

1. 조사 및 분석 방법

대중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기 위한 도구로는 개방형 질문지를 사용하였다. 소수의 질 문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기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질문의. 내용은 ‘①원불 교의 교서 및 자료에는 마음공부와 관련하여 ‘대중 이라는’ 표현이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러한 ‘대중 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②‘대중 은’ 마음공부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 시나요?’였다. 83부의 질문지 중에서 성의 없이 작성된 4부를 제외한 79부가 분석에 사용되었다. 인식 조사의 응답에 대한 분석은 연구자의 1차 분석 후에 원불교학 전공 박사 1인 국문학, 전공 박사 1인과 함께 논의하면서 수정하였다.

2. 분석 결과

1) ‘대중 의’ 의미

예비교무들의 응답 내용을 분석한 결과, ‘대중 에’ 대한 자료의 용례 분석과 같은 내용의 네 가지 의 미로 분류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대중의. 네 가지 의미 중에서 예비교무들의 응답 비율이 가장 높은 것 은 ‘표준하다, 기준하다 로’ 전체 응답 중 47.2%를 차지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어떤) 마음을 갖다, 지 키다 도’ 40.6%의 반응비율로서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였는데, ‘(어떤) 마음을 갖다, 지키다 와’ 관련하 여서는 비교적 높은 반응비율뿐만 아니라 가장 다양한 표현 내용들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 다 다음으로는. ‘살피다 알아차리다 가, ’ 9.8%, ‘관조하다 반조하다 밝게, , 비추다 가’ 2.4%의 응답비율을 보였다.

2) ‘대중 의’ 역할

대중의 역할에 대해 예비교무들은 마음공부의 과정에서 대중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인식하 고 있었다. 대중의 역할에 대한 예비교무들의 응답 내용을 분석한 결과,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 었다 그. 내용은 첫째는 ‘목표 목적 방향, , 제시’, 둘째는 ‘표준 기준, 제시’, 셋째는 ‘마음을 살피고 지켜 보며 챙길 수 있도록 도와줌’, 넷째는 ‘중심을 잡게 함 이다’ .

3. 원불교 예비교무 교육에서의 함의

먼저 대중의, 의미와 관련하여 예비교무들이 그 인식의 범위를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대중의. 의미에 대한 분류 결과, 대중을 ‘표준하다, 기준하다 라는’ 의미로 지각하고 있는 비율이 가장 높고, ‘(어떤) 마 음을 갖다, 지키다 라고’ 지각하고 있는 비율이 그 다음으로 나타나, 전체 중 거의 88%에 이르는 높은 수준이었으며, 따라서 예비교무들이 대중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 라서 대중이 마음공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느끼고 있는 예비교무들이 대중의 의미를 보다 명확 하게 알고 자신의 마음공부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응답 비율을 보인 ‘살피다, 알아차 리다’ ‘관조하다 반조하다 밝게, , 비추다 의’ 의미까지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할 필요가 있다. . 다음으로, 대중을 마음공부와 표현하여 언급하게 될 때는 보다 분명한 의미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예비교무들은 기본적으로 『정전』, 『대종경』, 『정산종사법어 등의』 원불교 주요 교서들을 공부하면서 원문의 의미를 해석하고 마음공부를 통해 이를 체득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므로, 대중이라는 표현 역시 각각의 맥락과 상황 속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하여 학습할 필요가 있다 또한. 평소 생 활 속에서 마음공부와 관련하여 대중 잡는 공부를 지도할 때에도 대중의 의미가 교육자의 의도대로 전 달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Ⅴ. 맺는 말

본 연구에서 용례 분석을 통해 대중의 의미를 분류함으로써 보다 명확한 이해를 얻고자 했음에도 불 구하고, 그 확장성과 중첩된 의미들로 인해 여전히 용례 중에는 분류가 모호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 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보다 명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용례들 중에서 분명한 의미가 드러나는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모호하거나 지나치게 포괄적인 용례들을 제외시켜보거나,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법문을 중심으로 용례의 범위를 좁혀서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한점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마음공부와 중요한 연관성이 있는 대중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 악하였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원불교학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교서 및 교법을 바르고 명확하게 해석하는 일인 만큼, 대중과 같이 다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칫 모호하게 보일 수 있는 단어들의 의미를 파악하고 본의에 맞게 활용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중 요한 일이다 본. 연구가 그 여정에서 또 하나의 시도가 되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박정훈 편저, 『한울안 한이치에』, 익산: 원불교출판사, 1982.

백준흠, 「원불교 마음공부에 관한 연구」,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제28집, 원불교사상연구원,

2004. 원불교 법무실, 『대산종사법문집1: 정전대의』, 익산: 원불교출판사, 1986. 원불교 법무실, 『대산종사법문집2』, 익산: 원불교출판사, 1988. 원불교 법무실, 『대산종사법문집3』, 익산: 원불교출판사, 1988. 원불교정화사, 『원불교전서』, 익산: 원불교출판사, 1995. 원불교출판사, 『대산종사법어』, 익산: 원불교출판사, 2014. 원불교출판사, 『대종경선외록』, 익산: 원불교출판사, 1985. 원불교출판사, 『원불교 교고총간2,3,4권』, 익산: 원불교출판사, 1994.

이광정, 『마음수업』, 서울: 휴, 2011. 이경열, 「원불교의 마음공부」, 『종교학보』, 한국종교간대화학회, 2006. 장진영, 오용석, 「마음공부에 있어서 반조(返照)의 역할: 禪불교와 원불교를 중심으로」, 『공자학』, 제32호, 한국공자학회, 2017.

정정임, 「원불교 마음공부 기반 인성교육 연구동향과 그 과제」,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제69 집, 원불교사상연구원, 2016.

조명규, 이경열, 「원불교 마음공부 진행매뉴얼 개발」,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제62집, 원불교사 상연구원, 2014. 한내창, 「원불교 ‘마음공부’ 정의(定義)의 한 시도」,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제29권, 원불교사상 연구원, 2005. 원불교 대사전.

Daum 사전.


천주교 신자들의 사회참여에 관한 연구 정 규 현 ) • 오 세 일2

 분과】

[종교사회학분과 1발표]

천주교 신자들의 사회참여에 관한 연구

정 규 현 ) • 오 세 일2)

Ⅰ. 들어가는 말

오늘날의 종교는 세속화 담론을 넘어 공적 영역에서 다양한 참여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시민사회에 서 종교의 공적 활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현대. , 사회에서 ‘정교분리 의’ 원칙을 종 교인들에게 요구하는 입장이 있다 둘째. , 종교의 사회적 역할과 참여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관점이 있 다. 이렇듯 종교의 사회참여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시민사회의 공론장 안에서 논의되어 왔다.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개별 사안에 대한 종교의 사회참여는 시민사회에서 작동하는 공론장의 구조 안에서 그 역사 문화적‧ 국면의 특수성에 따라 정당성 여부를 평가받아 온 것이다 그런데. 종교의 사회참여 활동들은 역량 강화를 위 해 신자들의 지지와 동원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 각 종교는 사회참여 활동을 교리적 의식의 범주 안으로 포함하여 설명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고는 종교의 사회참여를 바라보는 두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가톨릭 신자들의 종교성과 미디어 활용3)을 중심으로 종교의 공적 역할과 사회문제에 대한 태도를 구성하는 요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경 험 분석에 있어서는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4) 조사 자료를 활용하였다.

Ⅱ. 이론적 배경

1. 정교분리

종교의 사회참여 특히, 정치적 개입과 영향력 행사를 거부하는 입장들은 그 이론적 근거로 정교분리를 제시 한다.

정교분리 원칙은 헌법 규정에 따른 법률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정교분리에 대해 제 20조에서 그 내용을 밝힌다 제. 20조 1항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와    항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 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조항을 통해 종교와 국가의 관계를 규정한다 다종교. 배경 하에 제정된 미 국의 정교분리 원칙 )에 영향을 받은 헌법 제20조의 입법 취지는 국가가 종교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종교사회학분과 1발표

우선으로 한다.6) 요약하면, 국가가 특정 종교를 국교를 삼거나, 정치적 기준에 의해 지나친 개입이나 차별을 금하고, 국가 주도의 종교 활동과 교육 등을 금하는 것이 골자이다.7) 하지만 2항의 ‘종교와 정치의 분리 가’ ‘종교와 국가의 분리 원칙’ 하의 정치체(polity)를 넘어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기에 이는 정교 분리에 대한 다방면의 해석을 낳게 하는 자구적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8)

이와 같은 정교분리에 대한 법률상의 포괄적 측면은 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종교의 정치에 대한 정교분리 의 의미를 추가적으로 살펴보게 한다. 가톨릭 교회는 교회법전과 문헌들을 통해 정교분리에 대해 해석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헌법 상의 ‘국가의 종교에 대한 정교분리의’ 중요성을 수용하면서9) 동시에 교회의 세속 권력으로의 정치관여에 대한 한계를 언급한다. 가톨릭 교회는 교회법 285조 3항, 287조 2항에 따라 원칙적 으로 제도 정치 또는 국가 권력 조직에 교회를 표상하는 성직자들이 직접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는 것에 대 해 가톨릭 교회는 정교분리적 관점에서 제약을 두고 있다.

정리하면, 헌법적 법률적, 차원에서 종교 전문가 지도자 를( ) 위시로 한 종교의 정치참여는 일정한 경계 안에 서 가능하고 권리로 보장받는다.10) 그러나 그 평가는 위와 같은 헌법 조항의 입법정신과 다르게, 해석적 쟁점 에 의하여 공론장의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강한 정교분리적 형태로서의 “성속이원론”11)과 상호불가침적 이해를 담고 있다.12) 즉 종교의, 사회참여를 반대하는 입장은 광의의 정교분리 이해 하에 공론장에서의 간접 적 개입과 시민사회적 활동으로서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태도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 다.

2. 공공종교

정교분리 관점에서는 종교의 사회참여에 대한 반대 논리를 주장하는데 반해서 종교의, 시민사회를 통한 공 적 역할의 필요성에 주목하는 관점도 있다. 종교의 공적 역할에 주목하는 입장은 공공영역에서 다양한 사회 주체들 간의 각축과 협의, 소통과 연대에 있어 종교 조직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과 역량, 고유성에 주목한 다 종교. 단체들은 정교분리의 구조 안에서도 공중, (public)과 시민사회 정부, 등 다양한 사회 주체들과 상호 작용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도 종교 조직은 공공영역의 갈등 조정자이자 사회적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 입 안에 힘을 쓰는 사회적 행위자로 이해될 수 있다.

종교 조직의 사회참여에 대한 이론적 근거는 공공종교와 시민종교에 있다. 카사노바는 종교가 근대사회에 서 분화된 제도(differentiated institutions) 간의 구조적 정당성과 개인의 불가침적 자유를 존중하면서 ‘시 민사회 의’ 공론장에서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고 합의하도록 이끄는 공공종교의 사회참여 모델을 제안한다.13) 근대성으로 인한 파편화와 형식적 합리화와 도구적 합리성이 만연하는 현대사회에서 “실질적 합리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4, 56 참조.) 이 두 해석은 모두 국가의 종교에 대한 조치와, 종교의 국가 규제에 대한 자유에 주안점을 둔다.

6) 강인철, “정교분리 이후의 종교와 정치: 의미와 동학”, 『민주사회와 정책연구』26, 2014, 148 참조.

7) 장영수, “종교인의 정치참여와 정교분리의 원칙”, 『고려법학』94, 2019, 5;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국가권력 과 기독교 , 민중사, 1982, 50-51 참조.

8) 강인철, 앞의 논문, 143 참조.

9)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인간 존엄성』 참조.

10) 장영수, 앞의 논문 참조.

11) 박문수, “새로운 교회와 국가 관계의 모색 - 『쇄신과 화해 』 2 항의 정교분리를 중심으로 -”, 『가톨릭사회과학 연구』13, 2001, 86.

12) 박문수, 앞의 논문, 86-87; 박진우 오세일· , "공공 영역에서 종교의 역할과 갈등:“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그리스도교 찬반 논쟁", 『사회이론』49, 2016, 133-167 참조. 13) Jose Casanova, 앞의 책, 57 219-220‧ 참조.

102

화”(substantial rationalization)  )를 추동할 수 있는 보편적 인권과 공동선의 가치를 담지하고 제안하는 공적 역할을 종교가 수행할 수 있다고 주창하는 것이다.15)

한편,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 작동하는 보편적이며 초월적인 가치는 벨라의 시민종교 차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벨라는. 사회 통합적 가치체계로서의 무형의 시민종교가 지향하는 ‘좋은 사회’(the Good Society)를 공 동선을 지향하고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사회로 보고, 그것은 시민들에 의한 민주주의 방식을 보편적 가치의 토대로 삼아 제도적 책무성과 평화와 번영, 자유와 정의를 지향함으로써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 벨라 는 종교가 이러한 시민종교적 공동선의 초월적 원리를 구체화하고, 사회적 응집력으로 결속시킬 수 있는 구 체적인 사회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 종교가 사회변동을 추동하는 근대성과 이를 기반으로 한 정치 세력 들과 맺는 “창조적 긴장”(creative tension) )이 제도 종교의 쇄신과 시민종교적인 초월적 사회 통합 원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가 사회참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는 교의적 성찰과 사회문화적 해석과 적용을 실제적으 로 통합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 본고는 종교의 사회참여의 역사적 예로서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를 살펴보고 자 한다.

3. 가톨릭 사회교리

가톨릭 교회는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특별히 제 차2 바티칸 공의회(1962-5)를 통하여 수세적이고 전투적인 자의식을 넘어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ty) )를 지향해 왔다 근대화된. 사회를 대면하며, 초월적 원리에 근거한 “종교적 성찰성” )을 바탕으로 현대사회의 한복판에서 ‘시대의 징표 를’ 읽고자 노력한 것이다. 카사노바가 지적한 대로 현대 사회에서 가톨릭 교회의 “실질적 합리화 를” 반영하고 ) 벨라가 말한 ‘창조적 긴장 을’ 통해 이룩된 제 차2 바티칸 공의회의 업적들 특히,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 을 통해 가톨릭 교회는 세 상 속에서 세상과 함께하는 교회로 자신의 위치를 수정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의 증진을 위하여 공적 영역에서의 사회참여의 필요성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숙고과 성찰 쇄신의, 내용들은 교리적 차원으로 내적 구조화를 이루었고 이는 체계적인 가톨릭 사회교리로 정리되었다.

사회교리는 “인간 존엄성의 원리”(교리서 1929-1933항 를) 기반으로 하여 실현 방식인 “공동선의 원리”(교 리서 1939-1942항),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구성원들의 “연대성의 원리”(교리서 1939-1942항), 공적 연대 의 수준과 협력을 조정하는 “보조성의 원리”(교리서 1878-1885항 라는) 네 가지 원리로 주축을 이룬다.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사회참여의 원리들을 바탕으로 사회 제 영역에 대한 성찰과 가르침을 혼인과 가정, 문화와 교육, 노동과 경제, 정치 공동체, 국제 평화 증진의 영역, 그리고 생태 환경 영역 등으로 세분화하여 제시한다 이를. 통해 포괄적인 사회원리체계를 확보하고 내적, 영역의 신앙과 공적 영역의 신앙을 하나로 통 합된 신앙 체계로 종합한다. 그리하여 정교분리 원칙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종교의 자유와 인간의 기본권,

종교사회학분과 1발표

공동선을 지향하는 종교적 도덕적, 사안에 대한 교회의 사회참여를 변증한다.22)

이러한 사회교리의 원리와 범위들을 바탕으로 본고는 사회교리의 이러한 영역 중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사 회참여 수용 요인을 살펴보기 위해 가톨릭 사회교리의 역사적 주제들을 한국사회의 역사적 맥락에서 ‘사회 복지’, ‘노동’, ‘환경’,‘민족화해 (통일)’,‘사회적 고통 다섯’ 개의 범주로 재구성하였다.

Ⅲ. 연구 방법

1. 연구 방법 및 대상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 조사는 약 10년 주기로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의 변화를 파악하는 가톨릭 내 대표적인 트렌드 조사이다. 본 연구에서는 가장 최근의 4차 조사를 분석자료로 삼았다. 조사 기간은 2016년 10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였으며, 대상은 20세 이상의 성인 신자들이었고,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자기기입식 방식을 통해 이뤄졌다 일반. 신자 대상 설문조사의 경우 1794명의 표 본을 수집했으며, 표본의 추출방법은 ‘층화계통추출법’23)을 사용하였다. 표본의 사회인구적 특성 중 분석에 는 성별 남녀( 4:6), 나이 평균( 49.77년), 교육수준 평균( 14.39년), 월 가구소득 평균( 459.87만원 을) 활용하였 다.

2. 측정 도구

< 표 1 >는 독립변수인 ‘종교성 과’ ‘교회 미디어 활용 빈도 의’ 기술통계량과 종속변수인 사회참여 의식의 차 원으로 ‘교회의 사회참여 변수와’ 사회교리에 따른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태도 의’ 기술통계량을 보여준다.

< 표 1 > 변수에 대한 기술 통계

N 최소값 최대값 평균 표준편차

독립변수

a) 종교성

1) 공동체 신자‧ 의식 (요인으로 묶음 – 신뢰계수(Cronbach's α) .696)

신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 1793 1 5 4.04 .78

본당 공동체 의식 1785 1 5 3.50 .84

2) 의례 참여 및 개인적 신심행위 (요인으로 묶음 – 신뢰계수(Cronbach's α) .857)

미사 참여 빈도 (일수) 1785 0 365 104.32 86.70

성체조배 빈도 (일수) 1716 0 365 34.57 66.34

묵주기도 빈도 (일수) 1772 0 365 148.46 154.88

성경 읽기/성경묵상 빈도(일수) 1750 0 365 98.16 128.56

아침 저녁기도/ 빈도 (일수) 1756 0 365 134.82 154.29

가정기도 빈도 (일수) 1742 0 365 101.75 142.54

자유기도/화살기도 빈도(일수) 1770 0 365 160.30 153.82

3) 교육 활동 참여

본당 주관 교육 1786 1 4 2.78 1.07

교구(지구) 주관 교육 1770 1 4 2.22 1.034

수도회 주관 교육 1765 1 4 1.89 .89

평신도 단체 주관 교육 1765 1 4 2.00 .93

방송 또는 인터넷 강좌 1755 1 4 1.86 .945

4) 금전적 기여

 

22)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 76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간추린 사회교리 <개정판>』 424항 참조.

23) 이에 대해 상술하자면, 우선 전국 교구 중 신자수 상위 7개 교구를 선정한 후, 수도권 몰림 현상을 막기 위해 상대적으로 지방 교구에 속하는 청주, 안동교구를 인천교구와 교체하여 교구별 층화를 실시하였다. 그 이후 해 당 교구 내 도농, 도심 외곽/ 지역을 고려하여 교구 내 특성을 대표할 수 있는 본당을 추출하였고, 본당 관할 지 역 세부 단위인 구역 반에서· 일정 간격으로 임의 표집하는 방식으로 표본을 확보하였다.

104


봉헌금 (주, 원) 1788 0 125,000 19,838.65 29121.86

b) 교회 미디어 활용 빈도

교회 TV (일수) 1677 0 365 27.99 78.75

교회 라디오 (일수) 1590 0 365 19.44 65.97

인터넷, SNS (일수) 1564 0 365 27.96 76.71

%

교회 신문 구독 유무 구독 하지 않음 구 독 1091 505 68.4

31.6

총 계 1596 100

교회 잡지 구독 유무 구독 하지 않음 구 독 1099 502 68.6

31.4

총 계 1601 100

주보 열독 정도 안 읽는다 대충 읽는다 관심 있는 부분만 읽는다 47

303

855 2.6

17

48

모두 읽는다 576 32.3

총 계 1781 100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 정보 획득 경로 교회 교육 프로그램 강론 사회 교리에 관한 문헌 교회 언론 일반 언론 72

440 80

285

719 4

24.7

4.5

16

40.4

일반 신자와의 대화 147 8.3

기타 37 2.1

총 계 1780 100

종속변수

a) 사회참여에 대한 태도

교회의 사회참여 1787 1 4 2.87 .79

b)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태도

복지재정 확충을 위한 증세 (사회복지) 1664 1 4 2.87 .72

노동조합의 결성과 활동 (노동) 1596 1 4 2.68 .76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 (민족화해) 1666 1 4 2.28 .87

핵발전 중지 (환경) 1561 1 4 2.92 .93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사회적 고통) 1653 1 4 3.23 .93

 

1발표

Ⅳ. 분석결과

1. 회귀분석

 

< 표 2 >는 각 변수들간의 관계를 OLS 다중회귀분석으로 분석하여 도출된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다 중공선성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Ⅴ. 나가는 말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통계 분석에 있어 ‘공동체 신자‧ 의식 과’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 입장 습득 경로’ 가 유의미하게 신자들의 사회참여 의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왔다. 여기서 ‘공동체 신자‧ 의식 정도가’ 사회참여 의식에 정적으로 유의미하게 상관되어 나타나는 결과는, 가톨릭 본당 문화 안 에서 형성된 ‘형제 자매 에’ 대한 ‘공동체적 관심 이라는’ 주관적 차원과 가톨릭 교회가 역사적이고 실제 적으로 자리잡아온 사회적 차원에 대한 긍지가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본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 입장을 습득하는 경로와 사회참여 요인 간 의 관계이다. 신자들이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공적 활동과 그 의미에 관심을 보이고 자발적으로 여 러 경로를 통해 이에 대한 정보를 습득할 경우 일반, 언론이나 신자끼리의 대화를 통한 습득보다 사회 참여적 의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교회는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의 자리’(Sits im Leben)에서부터 교회적 시각을 통해 사회현안을 살피고 해석할 수 있는 다방면의 경로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홍보한다면, ‘공공종교로서 교회의 자기인식 과’ 궤를 같이 하는 신자들의 사회참여적 의식과 태도의 강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결국 위의 두 변수를 제외한 종교성과 교회 미디어 활용과 같은 독립변수들의 영향이 미약하거나 일 관적이지 못 한 이유는, 교회가 신자들의 사회참여 의식의 형성과 성숙을 위해 사회교리를 교육하고, 신자들의 신앙생활 안에서 이를 연결 짓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함양하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하지 못한 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현실에 대해 신자들의 입장으로 관점을 전환하여 접근해 볼 필요도 있다. 종속 변수인 사회교리 가르침에 속하는 변수들은 대북지원 변수를 제외하고는 과반을 웃도는 동의를 보인 다. 그러면서도 해당 조사에서 교회의 사회참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율 또한 각각 2007년

29.9%, 2018년 28.3%로 일정 비율을 가지고 있기에  )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는 적어도 2000년대에 는 두 성향의 신자 집단이 일정 정도의 비율로 공존해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25)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신앙생활을 통해 형성되는 종교성 및 교회 미디어의 영향과 직접적인 관련 을 맺고 있지 않다는 것은 종교와 무관하게 자신이 가진 정치적 이념적 종교의, , 사회참여에 대한 성향 이 이미 존재하고, 이에 따라 사회 정치적 현안을 바라보며 교회가 자신의 태도와 성향에 동조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역으로 해석할 여지를 준다. 이러한 경향은 가톨릭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채 교 회의 윤리적 가르침에 대해 선호와 생각에 따라 선별적으로 수용하고 동조하는 ‘카페테리아 가톨릭시 즘’(cafeteria catholicism) ) 혹은 ‘윤리적 자율성’(ethical autonomy) )을 중시하는 현상과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정도삼매경 의 태벌(笞罰) 규정을 통해 본 중국불교교단의 한 특징 김보과(동국대학교 박사수료)

 【불교 분과】

[불교분과 2발표]

정도삼매경 의 태벌(笞罰) 규정을 통해 본 중국불교교단의 한 특징

김보과(동국대학교 박사수료)

Ⅰ. 율전의 한역과 계율 관계 위경의 등장

중국 남북조(南北朝, 420-589)시대는 중국불교의 계율 수용과 교단사적 시각에서 보자면 매우 의미 있는 시기이다. 4세기 중후반 시기부터 중국 불교도의 계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도에서부터 이어져온 불 교 전통의 율장(律藏) 한역에 대한 요구가 강해진다. 이런 흐름에 맞춰 여러 율전 문헌이 번역되다가 5세기 초에 구마라집 등에 의해 최초의 한역 광율인 십송율 (404-409)이 역출된다. 그리고 십송율 을 시작으로 불과 4반세기 정도의 짧은 시간에 사분율 (410-412), 마하승기율 (416-418), 오분율 (423-424)이 연 이어 한역되었고, 중국불교는 5세기 초중반의 시기에 4종의 광율을 갖추게 된다(平川彰[1960]1995, 171). 한편 소승율 )로 평가되는 광율과는 궤를 달리하는 보살계라는 새로운 흐름도 같은 시기에 중국불교의 남과 북에 전해진다. 412년에 북량(北涼)으로 온 담무참(曇無讖)이 보살지지경 을, 남쪽의 건강에서는 431년에 구나발마(求那跋摩)가 보살선계경 을 역출한 것이다.

이러한 광율과 보살계 경전의 역출과 더불어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이 있으니, 바로 계율과 관계된 위경 (僞經)의 등장이다. 아마도 계율 관련의 위경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경전을 들자면 보살계 경전인 범망경 을 들 수 있을 것인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경전은 450-480년 사이에 화북지방에서 성립된 것이라 보고 있 다(船山徹 2017, 18). 범망경 은 위경임에도 불구하고 성립직후부터 진경(眞經)과 다름없는 권위를 가지고 서 많은 학승들에 의해 연구되었고, 동아시아 삼국에서 불교도의 생활규칙으로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외에도 범망경 의 영향을 받은 보살영락본업경 이나 북위, (北魏)에서 제작된 제위파리경 등도 모두 계율 관계의 위경이다 그리고. 본 발표에서 다룰 정도삼매경(淨度三昧經)  ) 역시 앞서 언급한 위경들과 마찬가지 로 계율 관계 위경이며, 제위파리경 과 함께 북위에서 찬술된 서민경전으로서 주목을 받아왔다. 정도삼매 경 의 주 내용은 재계(齋戒)를 수지하면 선신(善神)이 수호하고 육재일(六齋日)과 팔왕일(八王日)에는 특히 여 법하게 계행을 받든다면 수명이 늘어나고 사후에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고 설한다(牧田諦亮 1976, 142 ;

249).

이처럼 남북조시대는 광율과 보살계 경전 등이 두루 갖추어져 율에 걸맞은 여법한 생활과 교단 운영을 위 한 기반을 이루게 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광율과 보살계만으로는 교단 운영이 충 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불교는. 율장 전래 이전부터 교단 운영을 위해 승제(僧制)라고 통칭되는 자 체적인 생활규약을 만들어 사용하였고 승제의, 제작은 율장 전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진다(선종의 청규 역시 큰 틀에서 승제에 포함된다). 더욱이 계율과 관계된 위경이 등장하였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본래 율장과 보살계 경전은 인도의 풍토와 당시 상황에 맞추어 찬술된 것이므로, 이것 이 인도와 다른 풍토와 시대적 배경을 가진 중국에서는 온전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즉 중국 불교교단에는 인도 전래의 문헌들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존재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찬술된 승제와 위경 문헌들을 통해 당시 중국불교도의 생활상의 모습과 특징, 또 문제점 등을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본. 발표에서 주목할 정도삼매경 역시 그런 입장에서 살펴봄으로써, 인도 불교와는 구별되는 중국불교교단의 특징의 확인해보려는 것이다. 이하 구체적으로 정도삼매경 의 태벌(笞罰) 규정과 이에 대한 당시의 비판 율장과의, 비교 등을 통해 논지를 전개하고자 한다.

Ⅱ. 정도삼매경 의 태벌 규정

앞서 언급하였듯이 정도삼매경 은 주로 오계의 수지와 재계의 복덕 등을 설하는 민중교화의 성격을 띠는 경전이다 그런데. 이 경전이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교단 내 규율 위반자를 대상으로 태벌을 규정하고 있다 는 것이다. 정도삼매경 에 대한 연구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 태벌에 대한 내용에 처음으로 주목한 이는 오 우치 후미호(大內文雄)이다(落合俊典 編 1996, 333 ; 大內文雄 2013, 27-31). 그는 정도삼매경 의 해제에서 정도삼매경 의 인용 용례를 서술하면서 당, (唐)대 율사로 유명한 도선(道宣)의 주저인 사분율산번보궐행사

초 이하( 행사초 로 약칭 에) 정도삼매경 의 태벌 규정이 비판적으로 인용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행사초 의 해당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삼세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언제나 모든 치벌(治罰)에는 다만 절복(折伏) · 가책(呵責)이 있을 뿐이며, 본래부터 매로 사람을 때리는 법은 없다. 최근 대덕과 중주(衆主) 를 보면, [대덕과 중주가] 안으로 도분(道分)의 받들어야 함도 없이, 덕이 없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타인을 잡고서 마음대로 매질한다. 또는 [벌 받는 자를] 대중과 마주 하게하거나 또 방 안에서 속박하여 끈으로 매달아 분수에 맞지 않게 때려서 다스린 다. …… 또 어떤 어리석은 스승은 정도경(淨度經) 의 300대의 복벌(福罰)을 인용한

다. 이것은 위경으로 사람이 만든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은 모두 옳지 않다고 한다.3)

(밑줄; 발표자 강조)

이것을 보면 도선 당시에 중국불교교단 내에서는 잘못을 저지른 자를 다스릴 때 율장에 설해진 부처님의 가 르침대로 행하지 않고 매로 때리는 방법 등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자들은 이렇게 직접적인

 

3) 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 卷1(T40, 33b-c), “自三世佛教每諸治罰但有折伏訶責. 本無杖打人法. 比見大德眾主, 內無道分可承. 不思無德攝他專行考楚. 或對大眾或復房中. 縛束懸首非分治打.……又有愚師引淨度經三百福罰. 此乃偽經人造. 智者共非,”

체벌을 가하는 근거로 정도경 , 즉 정도삼매경 을 인용해 복벌(福罰)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는 자들도 있 었다 하지만. 도선은 그 경전은 위경이므로 그에 근거하여 복벌을 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한 것이다. 여기서 도선이 비난하는 정도삼매경 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나의 법 중에는 대악인(惡人)을 받지 않는다. 말세의 때에 나의 제자가 지법(至法)을 받들지 않고, 명예를 이용하기 때문에 제자를 구하니, 악인 이 존재하도록 함에 이를 뿐이다. 악인이란 계를 범하고 방일하고 오만하며 금계(禁戒)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이다. 법과 율을 지키는 자는 법을 염려하면서 그들을 다스 린다. 작은 잘못은 그것을 볼기치는 것이 100대, 중간 잘못은 그것을 볼기치는 것 200대로 하여 그들을 복벌(福罰)한다. 중대한 잘못은 그것을 볼기치는 것 300대로 하 여 이를 복벌한다. 뉘우치지 않으며 잘못을 자백하지 않는 자는 멀리 그들을 쫓아내

버려야한다. ) (밑줄; 발표자 강조)

위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정도삼매경 은 법을 받들지 않고 계를 범하며 금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악 인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잘못의 경중에 따라 태벌 100대, 200대, 300대로 구분하여 다스리고, 그럼에 도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쫓아내야 한다고 치벌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이 짧은 문장에 의거 한 태벌의 징벌이 도선 당시 불교교단서 질서 유지의 근거로 인용되어 실제로 행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태벌, 즉 태형은 구체적으로 어떤 징벌일까. 중국 형법사에서 태형은 이미 전국시대에도 사용되 었던 형벌로 한나라 때에는 육형(肉刑) 가운데 하나였고 남북조시대에도 집행된 형벌이었다(張晋藩 2006, 221 ; 430-431). 이후 수당 시대에 새롭게 형벌이 개편되면서 오형(五刑) )의 하나로 속하게 되는데 당 법률 의 주석서인 당률소의(唐律疏議) 에서는 태형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태(笞)란 때리는 것이다. 또한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것이다. 사람에게 작은 허물이 라도 있으면 법으로 반드시 징계해야 하므로 [매로] 때리는 것을 가하여 부끄럽도록 함을 말하는 것이다. 한나라 때에는 태에는 대나무를 사용했으나 지금은 가시나무(楚) 를 사용한다. …… 태격(笞擊)의 형벌은 형벌이 가벼운 것이며, 시대에 따라 연혁(沿革)되어 [형벌의] 경중이 같지는 않다.6)

이에 따르면 태형은 작은 죄를 저지른 사람을 나무로 만든 매로 때리는 것으로 오형 가운데는 가장 가벼운 형 벌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형을 집행하는 이유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되어있 다. 또한 태형에 사용하는 매의 길이는 3척 5촌 약( 105cm), 손잡이 부분의 직경은 2分(약  mm), 끝부분의 직경은 1.5分(약 4.5mm)이며, 허벅지와 엉덩이 등을 나누어 때렸다고 한다 김택민( 2004, 95). 사용하는 매 의 크기나 때리는 부위를 생각하면 회초리로 때리는 모습이 상상된다.

이렇게 태형은 중국에서는 공식적인 형벌 가운데 가장 약한 것으로 고대서부터 일반적으로 시행되었고, 주 로 죄질이 가벼운 죄를 다스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죄를 지은 사람에게 부끄러움 을 가르치기 위해 태형을 실시한다는 그 시행 목적을 생각했을 때 이것은, 충분히 민간의 영역에서도 일반적 인 훈계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정도삼매경 이 제작된 시기에도 태형은 사회 전반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던 징벌 방법이었고 이런, 사회의 법률과 관습을 반영하여 복벌이라는 이름으로 경전 찬술의 한 소재가 된 것이라 생각된다.

Ⅲ. 율장의 벌칙 규정

문제는 도선의 말대로 율장에서는 이런 규장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교단 본래의 전통 적인 규범집인 율장에서는 범계한 승려를 징벌할 때 어떤 방법을 제시하고 있을까. 율장은 승려들이 승단생 활을 하며 반드시 실천해야 할 행동 규범들을 담고 있으며, 율의 규칙은 강제력을 가지고 있다. 율장의 구성 은 크게 경분별(經分別)과 건도부(犍度部)로 구분된다. 경분별은 승려가 지켜야 할 금계(禁戒)의 조문인 바라 제목차(波羅提木叉)와 각 조문의 제정 인연담, 정의, 구체적인 적용 예시 등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건도부는 구족계 포살 자자 안거, , , 등 주로 교단의 운영과 관련된 여러 갈마(羯磨)의 시행방법을 명시하고 있 다. 그러므로 율장의 벌칙 규정이라고 하면, 승려가 바라제목차를 위반하였을 경우와 교단 운영상에 문제가 되는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승려가 바라제목차를 범했을 경우인데 율의, 벌칙은 죄의 경중에 따라 5편 취7 (五篇七聚)로 정리된다. 5편은 바라이(波羅夷), 승잔(僧殘), 바일제(波逸提), 바라제제사니(波羅提提舍尼), 돌길라(突吉羅)이고, 7취는 5 편에 투란차(偸蘭遮)와 악설(惡說)을 추가한 것이다(平川彰[1980]2003, 251-258). 이것들은 죄의 경중이 다 른 만큼 죄를 범하게 되면 받게 되는 벌칙도 차이가 있다 먼저. 바라이는 음행, 살인, 투도, 대망어의 4가지 가 장 무거운 죄로 범했을, 경우 정규 승려로서의 자격을 잃게 되고 승단에 머무를 수 없게 된다. 다음으로 승잔 을 범했을 경우, 6일 밤 즉 일주일간의 근신 처분을 받아 별주(別住)하며 이, 기간 동안 승려로서의 많은 자격 을 정지당하고 정해진 행법을 실천해야한다 이후. 근신 기간이 무사히 끝나면 최소한 20인 이상의 승려들로 구성된 승단에서 출죄(出罪) 의식을 행할 수 있다 이러한. 바라이와 승잔은 중죄(重罪)로 취급되며, 이하 다른 죄들은 경죄(輕罪)로 다루어지며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죄에 따라 승단이나 2, 3명 혹은 1명의 다른 승려 앞 에서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것으로 회과할 수 있다.

다음으로 건도부에는 각종 징벌갈마가 나온다 지면상의. 한계로 하나하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징벌갈마는 승려의 악행을 방치하면 바라이와 승잔과 같은 죄를 범할 염려가 있는 경우에 승단 차원에서 부 과하는 갈마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징벌갈마를 받은 자는 승잔을 범했을 때와 유사하게 별주 조치가 취 해지고 일정한 행법을 수행하며 참회하도록 한다(佐藤密雄[1967]1991, 121). 이때 행법은 모든 징벌갈마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겹치는 규정이 많고 또한, 승잔을 범했을 때 행해야 하는 행법과도 공통점이 많으며 대강 다음과 같다. 다른 이에게 구족계를 주거나, 사미를 둘 수 없고, 비구의 경우 비구니를 교계할 수도 없다. 즉 승단 내 교육자로서의 역할이 정지되는 것이다 또한. 갈마와 그 갈마를 하는 자를 비난하거나, 청정한 승려가 하는 포살이나 자자를 방해해서도 안 된다. 사실상 승단 내 회의와 행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되는 것 이다 이외에도. 청정한 승려와 함께 지내지 못하고 승단의 변두리에서 생활하며 행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관 리 · 감독받게 된다(이자랑 2004, 286-290).

이상 살펴본 율장에 나타나는 벌칙 규정은 승단 추방, 일정 기간 동안의 근신 처분, 정규 승려로서의 권리 정지, 참회 요구 등으로 정리된다. 이처럼 율장에는 정도삼매경 의 태형처럼 신체에 직접적으로 고통을 가 하는 벌칙은 없는 것이다.

Ⅳ. 교단 내 체벌의 또 다른 사례

그런데 중국불교에서 교단 내 징벌 수단으로 체벌을 사용한 또 다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동진(東晉, 317-420)시대 도안(道安)의 경우이다 도안은. 반야학의 올바른 이해를 통한 격의불교의 극복에 힘쓴 인물로 유명한데 또한, 그는 여법한 교단 질서의 확립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앞서. 한역 광율이 역출되기 전에 중국 불교도는 교단 운영을 위해 승제라는 교단규범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하였는데 이, 최초의 승제라고 여겨지는 것이 승니궤범(僧尼軌範) 이고 그 제정자가 바로 도안이다.

이렇게 도안은 스스로 규범을 제정할 만큼 자신의 교단 내에서 엄격한 규율을 시행하였는데, 고승전

법우(釋法遇)전에는 이런 도안의 엄정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한 일화를 전하고 있다.

어느 때 한 승려가 술을 마시고, 저녁의 향을 피우는 일을 하지 못하였다. 법우는 다만 벌만 내릴 뿐 내쫓지는 않았다. 도안이 멀리서 그 일을 듣고, 대나무통에 가시 나무(荊) 하나를 담아 손수 봉하고 글을 써서 법우에게 보냈다. 법우는 봉한 것을 열 고 매(杖)를 보더니 곧 말하였다. “이것은 술을 마신 승려로 인한 것이다. 내가 [대중 을] 훈계하고 통솔함에 부지런하지 않았기에 [도안이] 멀리서 근심하여 선물을 보내신 것이다.” 즉시 유나에게 명하여 건추(犍椎)를 때려 대중을 모으고, 몽둥이가 든 통을 향등(香橙) 위에 두고 행향(行香)을 마쳤다. 법우는 이내 일어나서 대중 앞으로 나가 통을 향해 경례(敬禮)하였다. 이에 땅에 엎드려 유나에게 명하여 몽둥이로 3회 내려치 도록 하였고, 몽둥이를 통 안에 넣고 눈물을 흘리며 자책하였다. 그때 경내의 도속(道俗)이 탄식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그로 인하여 업무에 부지런한 자가 매우 많아졌 다.7)

법우는 도안 밑에서 출가한 제자로, 도안이 378년 장안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양양의 단계사(檀溪寺)에서 함께 체류하였다. 이후 법우는 도안과 헤어지고 강릉의 장사사(長沙寺)에서 지냈는데, 이때 대중들을 이끌다 가 위와 같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도안이 승니궤범 을 제정한 것은 바로 양양 시절로, 그곳에서 함께 생 활하였던 법우는 당연히 승니궤범 의 내용과 그것에 의거하여 생활하는 교단의 엄정한 분위기를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 법우에게 위와 같은 일이 발생하자, 도안은 제자를 교계하기 위해 통에 가시나무로 된 매를 담 아 보냈다. 그리고 도안이 보낸 통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법우는 스승의 의중을 알아채고, 유나로 하여금 그 매로 자신을 3회 내려치도록 함으로써 스승이 내리는 벌을 받은 것이다.

 

7) 高僧傳 卷5(T50, 356a), “時一僧飮酒, 廢夕燒香, 遇止罰而不遣. 安公遙聞之, 以竹筒盛一荊子, 手自緘封, 題以寄遇. 遇開封見杖, 卽曰, 此由飮酒僧也, 我訓領不勤, 遠貽憂賜. 卽命維那鳴搥集衆, 以杖筒置香橙上, 行香畢. 遇乃起出衆前, 向筒致敬, 於是伏地, 命維那行杖三下, 內杖筒中, 垂淚自責. 時境內道俗莫不歎息, 因之勵業者甚衆.”

여기서 우리는 법우가 통에 담긴 매의 용도와 벌을 받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아 마 이것은 양양 시절에 그런 벌칙 방법이 도안의 교단 내에서 행해졌음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나 아가 앞서 당률소의 에서 태형은 가시나무(楚)를 사용한다고 하였는데 도안이 보낸 것도 가시나무(荊)라는 점에서 이 일화에서 나오는 벌칙 역시 태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이런. 추측이 가능하다면 중국 불교교단 내에서는 이미 도선 이전에 꽤나 이른 시기부터 태형과 같은 체벌이 교계 목적으로 실행되었을 가 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정도삼매경 의 태벌 규정을 둘러싸고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았는데 분명, 태벌은 불교교단의 전통적 인 운영규범집인 율장에는 어긋나는 벌칙이다. 현재 우리가 율장을 통해 이해하고 있는 인도불교교단―적어 도 율장에 의거하는 한―내에서는 규율을 위반한 승려에게 신체에 직접적인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참회를 유도하고 속죄하도록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반해 중국에서는 정도삼매경 의 경설과 이 에 대한 도선의 비판, 그리고 일찍이 도안의 일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교단의 질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태벌과 같은 체벌이 시행되었다 율장에. 규율 위반자를 징벌하는 방법이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벌이 라는 이질적인 벌칙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필시 당시 중국불교교단에서는 교단 운영에 율장만으로는 채워지 지 않는 부분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교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천하였듯이, 이 사례 역시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어 정착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새로운 모습이자 인도불교교단과는 다른 중국불교교단의 한 특 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원전류

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 T40 高僧傳 T50

淨度三昧經 ZW07

唐律疏議

단행본 및 논문류 김택민, 2004, 동양법의 일반 원칙 , 서울: 아카넷. 이자랑, 2004, 「惡見 주장자에 대한 불교 승단의 입장(2)」, 大覺思想 Vol.7, 대각사상연구원. pp.275-299 佐藤密雄, [1967]1991, 초기불교교단과 계율 , 김호성(역), 서울: 민족사. 大內文雄, 2013, 南北朝隋唐期佛敎史硏究 , 京都: 法藏館.

落合俊典 編, 1996, 七寺古逸經典硏究叢書 第2卷 中國撰述經典 , 東京: 大東出版社. 張晋藩 2006, 중국법제사 , 한기종 외(역), 서울: 소나무.

船山徹, 2017, (東アジア佛敎の生活規則)梵網經: 最古の形と發展の歷史 , 京都: 臨川書店. 平川彰, [1960]1995, 율장연구 , 박용길(역), 서울: 土房.

, [1980]2003, 원시불교의 연구: 교단조직의 원형 , 석혜능(역), 서울: 민족사.


‘님 의’ 철학과 ‘지금-여기’ 한국 페미니즘 박지은(서강대학교 철학과)

 [한국종교분과 12발표]

‘님 의’ 철학과 ‘지금-여기’ 한국 페미니즘

박지은(서강대학교 철학과) 

1. 들어가며

가히 폭발적인 시대이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그 어느 때와 견주어 보더라도 가장 폭발적인 전개 중에 있다. 충돌하고, 소리치고, 생동하고 있으며, 치열하게 살아있다. 이를 ‘페미니즘 리부트(reboot)’라 호명하기도 한 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 페미니즘은 서구식 페미니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귀속되어 있다거나, 사회 갈 등을 조장하는 ‘빨간 맹아(萌芽)’로 작용할 뿐이라는 회의적인 시선들과도 마주하곤 한다.

한국 페미니즘은 이러한 시선들로부터 스스로를 규명해야하는 숙명을 안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지금’, 그 리고 ‘여기 에서’ 생동하고 있는 한국 페미니즘―조금 더 정확히 하자면 2010년대 중반 다시 태동한 ), 그리고 한국의 사회문화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하는’ 물음과도 상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언어’, 그리고 그 언어를 통한 ‘사유 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 ‘언어 의’ 단서를 오구라 기조의 저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에서 확인하였다 그는. 해당 저서에서 한 국 사회를 관통하는 ‘리 기- 시스템 을’ 제시하고 그것을, 한국 사회 내부로 가져와 설명한다 이. 글 역시 ‘지금여기 한국’ 페미니즘을 규명하는 작업에 있어서 오구라 기조의 방법론과 그가 말한 골자를 기반으로 하고자 한다 즉. 한국 사회문화 전반과 현재의 한국 페미니즘을 관통하는, 어떠한 철학적 언어를 살펴보고, 그것을 바 탕으로 한국 페미니즘 내 담론들을 전개하는 일련의 과정이 될 것이다.

2. ‘님 의’ 철학 : 리기 시스템으로 본, 한국의 도덕지향성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에서 오구라 기조(2017)는 ‘리 와’ ‘기 로’ ‘도덕 지향적 인’ 한국을 해석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여기에서 핵심이 되는 ‘도덕지향성 이란’ ‘도덕성 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이것을 “모든 언동을 도덕 으로 환원하여 평가 하는” 경향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몰도덕적(amoral)이고 현실주의적 경향이 강한 일본과 달리 경제 정치 국제관계, , , 등의 거시적 차원 과 더불어 개인을 둘러싼 일상의 미시적 차원까지 도덕이 자리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근원적 특성 으로 기능한다. 그는 한국의 도덕지향성은 전통적으로 추구해왔던 리(理) 지향성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하 며 한국사회, 구조 전반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리 와’ ‘기 를’ 기반으로 한 해석을 제시한다. 이때 ‘리 는’ 상 승  지향적 구조와 직결되는 순선하고 형이상학적인 도덕성으로, ‘기 는’ 상승을 위해 제어되어야 하는 형이하 학적 물질성으로 설명되는 기본적 시스템이 그 바탕이 된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이러한 리 기-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님 과’ ‘놈 의’ 구분이다. 오구라 기조(2017)에 따르면 ‘나 라는’ 중심을 기준으로 할 때, ‘님 이란’ 도덕을 체현한 ‘리 의’ 상징이라면 ‘놈 은’ 그와 반대 위치에 놓 인 ‘기 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도덕지향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님 이’ 되고자 하는 상승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놈 으로의’ 추락을 경계한다. 이러한 ‘님 과’ ‘놈의 구분은 도덕적인 구조를 넘어 일반 사회적· 차원으로도 확장 된다. 일상어 속에서 ‘님 과’ ‘놈 의’ 호명이 가져오는 심상 간의 차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로 미루어보았을 때 한국 사회에서 ‘님 은’ 소위 주류(主流), 주체로서, ‘놈 은’ 비주류, 객체로서 가시적·묵시 적으로 이해되며, 한국 사회의 도덕지향성은 곧 ‘님 으로의’ 지향성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때문에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철학은 다시 말해 리 기- 시스템을 기조로 하는 ‘님 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3. ‘님 의’ 철학으로 본 ‘지금 여기- ’ 한국 페미니즘

‘님 의’ 철학이라는 언어로서 ‘지금 여기 한국- ’ 페미니즘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먼저 한국 페미니즘의 새로운 태동과 전개를 ‘님 의’ 철학적 관점에서 돌아보는 것부터 선행하여 현재, 한국 페미니즘 내에서 활발하 게 논의되고 있는 세 가지 담론―탈코르셋 비혼 비출산· · ―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님 의’ 철학을 더 구체화하고 동시에, 한국 페미니즘에 대해 규명하는 시도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현재의 한국 페미니즘은 2015년 메르스 갤러리에서 비롯된 여성들의 경험적 발화 그리고,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에 대한 대중적인 공감을 기점으로 ‘다시’ 태동되었다고 볼 수 있다.2)

2015년 중동발 전염성 질병인 메르스 발발 당시 개설된 메르스 갤러리 )는 한국, 페미니즘 내에서 국내 ‘최 초 로’ 온라인상에서 여성들의 집단적인 경험이 발화되었던 공간으로 회자된다. 당시 성행하였던 온라인상의 여성혐오 표현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일상, 속의 여성혐오에 대한 경험적인 발화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며 다수의 여성들이 ‘여성으로서의 삶 에’ 대하여 발화하고 공유하는 장이 형성되었다. ) 혐오표현의 객체로 자리 했던 여성들이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경험의, 공유를 바탕으로 한 연대를 통해 발화의 주체가 된 것이다.

그 이듬해인 2016년, 강남역 번화가 건물의 공용 화장실에서 남성 범죄자에 의한 여성 살인 사건이 발생 하였다 사건. 발생 직후에는 ‘묻지마 살인 으로’ 보도되었으나 범죄자가, 화장실에 숨어 있는 동안 남성들이 몇 차례 화장실을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들어온 여성에게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 그리고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 는” 범죄자의 범행 동기 발언으로부터 해당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 로’ 다시 명명되었다. 이는 당시 한국 사회에 여성혐오의 실재를 일깨운 촉매가 되었다 특히. 여성들은 ‘여성으로서’ 살아온 경험에 대하여 반추하고 공유하며 ‘우연히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 는’ 역설적인 문장으로 한국 사회 내 여성혐오의 실 태를 비판하였다 관련하여.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추모 포스트잇이 천여 건 넘게 게시되기도 했다.

“여자친구에게 “너는 조심해 라고” 말하는 내가 너무 미웠다. #여성혐오범죄”

“우연히 살아남았다. 나의 이야기가 될 일이었다.”

“여성에 대한 혐오를 인식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에게 애도를”5)

2015년 메르스 갤러리, 그리고 2016년 ‘강남역 사건 은’ 여성들이 사회적 발화의 장을 형성하고 전개하는 주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자각과 자기 고백적 발화 공감을, 통한 연대의 장을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로부터. 촉발된 한국 페미니즘의 리부트란 젠더, 권력관계에서 객 체로 위치해 온 여성들이 자각을 통해 주체 즉, ‘님 으로의’ 상승을 향한 변혁을 시도함으로써 태동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한국 페미니즘의 전개에 관해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 담론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사 회문화적으로 형성된 여성성과 그것을 ‘수행 하도록’ 하는 사회적 규범을 사회구조적인 ‘코르셋 이라고’ 정의하 고 이를 적극적으로 탈피하고자 하는 탈코르셋 담론이 있다.

오구라 기조(2017)는 얼굴을 리기의 관계에 따라 ‘리의 얼굴 과’ ‘기의 얼굴 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전자는 ‘보는 얼굴’, 후자는 ‘보여지는6) 얼굴 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여성 남성의- 젠더화된 신체 규범을 사 유하자면 다음과 같은 논의의 전개가 가능하다. ‘리의 얼굴 은’ 평가로부터 독립적인 ‘주체의 얼굴 인’ 반면, ‘기 의 얼굴 은’ 평가에 종속된 ‘객체의 얼굴 과’ 같다. 또한 얼굴이라는 문자적 의미를 초월하여, 육체성을 총칭하 는 의미로서 ‘신체 의’ 층위로 확대하면 전자는, 평가와는 독립적인, ‘평가될 필요 없는’ 신체로, 후자는 평가에 종속적인, ‘평가 되는 것이 당연한’ 신체로 위치한다.

그렇다면 여성의 신체는 어디에 속하는가? 여성의 신체는 평가의 대상으로서 ‘객체의 신체 로’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신체는. 남성 신체와 여성 신체로 각각 젠더화 되고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된다. 남성 신체는 강인한 정복하는- , 공적 공간을 대표하는 신체로 규정되는 반면 여성 신체는 연약한정복당하는, 사적 공간에 머무는 신체로 위치한다. 더불어 여성 신체는 남성 신체와 달리, 남성적 시선이 내 면화된 관음주의 속에서 성적 대상화의 객체가 되기도 한다 여성. 대상 불법촬영 범죄, ‘n번방’, ‘박사방’ 등 디 지털 성 착취 및 유포 사건 역시 이와 연결되는 지점에 있다 이는. 젠더화된 신체 규범이 문제의식 없이, 왜곡 된 형태로 용인되어 온 결과이다.

따라서 남성 신체는 ‘리 에’ 가까운 ‘님 의’ 신체 즉, 평가로부터 독립적인 보편의 신체로 상정되는 반면 ‘기의 신체 로서’ 여성 신체는 대상화 되고 타자화 되며 부위별로, 등급을 매기듯 파편화됨으로써 항상 평가와 재단 아래 놓인다 이처럼. 전통적인 여성 신체는 ‘님 의’ 신체로 위치하기 어렵다.

현재 한국 페미니즘 내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탈코르셋 담론은’ 이러한 질서에 대항하는 흐름이라 할 수 있다. 리 기- 시스템으로 해석하자면 이는 전통적으로 ‘기의 얼굴’, 보여지고 평가되어야 하는 객체적 대상물 로 간주되어 온 ‘여성적 신체 들이’ 직접 리의 진영으로 나아가서 ‘님 이’ 되고자 하며, 종국에는 ‘보고-보여지 는’ ‘리의 얼굴 과’ ‘기의 얼굴 사이’ 간극을 타개하려는 움직임과 같다 이는. 거친 젠더 이분법을 바탕으로 남성

 

5)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나무연필, 2016

6) ‘보여지는 은’ 정확히 하자면 비문이나, ‘보임 의’ 객체가 된다는 의미를 말하고자 저자가 사용한 표현을 그대로 인 용하였다.

적 ‘리 의’ 세계와 여성적 ‘기 의’ 세계를 나누는 것을 경계하고자 하는 태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비혼/반혼 ) 담론―여기에서는 특히 이성애적 결혼 관계에 대한 것―이 있다. 오구라 기조 (2017)는 한국 공동체를 혈연 공동체로 묶는 것은 ‘피 즉’ 혈통이며 이것은, 공동의 환상에 의해 성립되는 ‘리’ 의 질서라고 보았다 특히. ‘부계의 피 를’ ‘리 의’ 질서로 중심화하여 그 혈통의 분화와 연결을 도식화한 결과물 로서 족보는 ‘리의 장치 라고’ 정의하였다 사실. 족보 그 자체는 현시점의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명시적 위엄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여전히, 부계 성을 따르는 것이 지배적인 한국 사회 문화에서는 족보의 기능이 압축 적 상징적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계 성을 따른다는 것은 부계의 ‘피’, 즉 부계 혈통 안으로 편 입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부터는 모계 성을 따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민법 제781조에서 제 항1 “자는 부의 성과 본 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 ), 제 항3 “부를 알 수 없는 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 )라고 명시된 바에서 알 수 있듯이 모계 성은 여전히 예 외적인 규정일 뿐이다. 이 점에서 부계 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리 의’ 질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알 수 있다 또. 일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말로 아버지의 가족은 ‘친(親)가’, 어머니의 가족은 ‘외(外)가 로’ 불린다는 점에 있어서도 ‘리 의’ 질서로 정렬된 한국의 가족 제도를 살펴볼 수 있다.

비혼 반혼/ 담론은 이러한 부계 중심의 혈연공동체 속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편입된 여성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다 남성 즉. , 혈연 공동체 내 기존 구성원과의 결혼을 통해 여성은 일종의 ‘제도적 합일 을’ 이루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비 혈연적 존재로’ 자리한다 부계의. ‘피 를’ 공유하지 않은 외부인인 셈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족보 안에서 현대적으로는, 부계 성을 따르는 문화 속에서, 여성의 존재는 사실상 부계 중심 혈연 공동체에 덧붙여진 곁가지와 같다. ‘리 의’ 질서에 완전히 편입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 지만 동시에 아내 며느리라는· 부차적인 역할에 따라, 부계 중심 혈연 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하여 ‘리 의’ 질서 속에 ‘편입된 것처럼 봉사할’ 것이 요구된다 결혼한. 남성은 대체적으로 모계 중심 혈연 공동체를 위해 어떠한 역할을 요구받지 않는, ‘백년손님 이라’ 불려온 것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때문에 현재 한국 페미니즘의 비혼 반혼/ 담론은, 살펴본 바와 같이 여전히 부계로 상정되는 ‘리 의’ 공동체 속 여성의 위치에 대한 인지―즉 개인적, 층위로는 설명되지 않는, ‘리 기 구조적- ’ 층위의 문제에 대한 자각과 도 같다 따라서.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족보문화 즉, 부계 중심으로 설정된 ‘리 의’ 질서에 편입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비혼 여성 1인 가구들 이 응집하여 장기적인 삶을 ‘따로 또 같이 살아갈’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추세 역시 여성, 스스로 비 혈연 공 동체라는 새로운 ‘리 를’ 형성하는 형태와 같다. 이는 전술한 바와 같이 ‘리 로’ 대표되는, 남성-남편의 혈연 공 동체에 편입되는 전통적인 결혼 제도 내 여성의 삶과는 구별되는 형태이다.

마지막으로 다룰 비출산 담론은 여성이 생득적으로 가지게 되는 재생산―즉 출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그 중에서도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권리 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고자 하는 선택이다 앞서. 결혼 제도를 통해 아 내로서의 여성은 부계 중심의 ‘리의 가족 에서’ 곁가지와 같은 존재로 위치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아내 로서의 여성에서 더 나아가, 어머니로서의 여성은 어떻게 위치하는지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구라 기조(2017)는 한국 사회 내에서 어머니는 전형적인 ‘기 의’ 존재로 여겨져 왔다고 말한다 즉. 어머니는 수직적 인 위계질서로 대변되는 ‘리 의’ 세계를 용서와 긍정으로 치유함으로써 ‘기 의’ 세계를 관장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리 와’ ‘질서 로’ 상정되는 아버지와는 상반되는 역할이다. 이와 유사한 ‘엄격한 아버지 와 상냥한 어머니 라는’ 유비는 오늘날에도 역시 통용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리 의’ 세계와 ‘기 의’ 세계가 지니는 공간성을 고려했을 때, ‘리 의’ 세계에 대응되는 아버지와 ‘기’ 의 세계에 대응되는 어머니 사이에서 리 지향성을 기준으로 하는 위계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것에는 ‘리 와’ ‘기 가’ 동시에 존재하지만 리, 지향성을 추구하는 한국보편의 철학을 고려했을 때 그러하다 리. 지향성에 따라 ‘리 의’ 세계는 보편이 되고 공적, 공간 역시 ‘리 의’ 세계 위에서 상정된다 자연히. ‘기 의’ 세계는 이차적이고 사 적인 공간으로 자리하는데, 이는 전형적으로 젠더화된 공사분리의 구조와도 같다. 사적 공간에서 ‘가정의 천 사 로서’ 아이들과 남편을 치유하고 돌보는 것 즉, 근현대의 현모양처 담론과도 떼어서 볼 수 없다.

바로 그 ‘리 지향성 기반의’ 질서와 젠더화된 리 기- 세계 분리를 거부하는 한 형태가 비출산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출산, 그리고 출산 뒤에 따르는 양육이 마땅히 여성과 남성 공동의 문제 임에도 불구하고 주로 그 당사자로 상정되는 것은 여성이다 특히. 출산으로 획득되는 ‘어머니 라는’ 지위는 모 성 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 하여 어머니로서의 여성이 공적 공간에 등장하는 것을 잠재적으로 제한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문제를 꼽아볼 수 있다 이는. 공적 공간에서 경제적인 노동을 하 는 가장 즉, ‘리 의’ 전형 아버지 남성과- 비교했을 때 사적, 공간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기 의’ 전형 어머니-여성 에게 가중된다 물론. 과거에 비해 남성 육아휴직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10)를 고려했을 때 그 변화는 감지 된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적 차원에서 확인되기 어려운 구조적, 층위에서 고착된 젠더 역할 모형이 여전히 존 재한다 이로. 인해 비출산을 선택함으로써 ‘기 의’ 세계에서 이야기되는 어머니로서의 여성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 현재 페미니즘 내의 화두인 것이다 더불어. 대다수의 여성들이 비출산을 선택함에 있어 경력 단절을 이 유로 든다는 점에서, 비출산이란 여성들이 공적 공간인 ‘리 의’ 세계로 나아가 ‘님 의’ 지위로 상승하고자 하는 적극적 선택의 발로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담론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한국 페미니즘의 정체성은 단지 ‘페미니즘 이라는’ 대문자에서 파생되 는 것이 아니라 ‘한국 이라는’ 역사적 사회문화적, 기반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 와 같이 현재 한국 페미니즘의 주된 담론들이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리 기- 시스템 그리고, ‘님 의’ 철학을 바탕 으로 사유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 이러한 담론들이 논의되는 장이 주로 한국 페미니즘 내부라는 점에서 역시 그러하다 북미와. 유럽 등지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 페미니즘에서는 위의 담론들 특히, 비혼과 비출산에 대한 논의들을 찾아보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에 대하여 윤김지영 교수는 해외, 특히 북미나 유럽권에서도 이 와 유사한 형태의 운동이 전개된 바 있었으나 현재 해외 선진국들은 남성 없는 결혼과 출산이 이미 제도적으 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대대적인 (이성 결혼제도의) 거부 운동이 일어나는 건 어려울 것11) 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양자가. 페미니즘이라는 대문자 정체성은 공유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사회문화적 기 반에서 발생하는 차이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한국 페미니즘은 단지 서구식 페미니즘을 답습 하는 형태가 아니라, 한국의 사회문화적 기반에 대한 자각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 내부의 독자적인 논의

 

10)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상반기 육아휴직자 통계 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남성 육아휴직자는 1만 4857명 으로 전체 육아휴직자 가운데 24.7%에 이르렀다. 육아휴직자 4명 중 1명은 남성인 셈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 다 34.1%나 증가했다. 출처는 “올해 육아휴직자 4명 중 1명 ‘아빠’”, 『서울 신문』, 2020년 8월 13일자,

2020.10.28. 검색

11) “[나는 강남역 세대입니다③] 비혼 비연애 비출산 비섹스· · · '4B' 운동이 분다”, 『여성신문』, 2020년 5월 1일자,

2020.10.28. 검색

를 이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혁의 전개 과정 안에서 한국 페미니즘은 갈등의 시발점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로부터 “한국 페미니즘은 사회적 분란을 조장한다 라는” 주장도 다분히 제기된다. 그러나 오구라 기조(2017)에 따르 면 지배적인 질서의 전복 즉, ‘리 가’ 전환되는 데에 있어서 갈등은 필수적이다 사회. 질서를 ‘리’, 그 안에서 이 루어지는 사회문화적 움직임을 ‘기 라고’ 한다면 도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한국 페미니즘은 기존의 성차별적 질서인 ‘리Ⅰ’의 지배 국면에서는 탁한 ‘기 라고’ 여겨졌던 여성들의 주변 부적 시선이 새로운 성 평등적 질서인 ‘리Ⅱ’의 국면을 맞으면서는 맑은 ‘기 로’ 자리함으로써 생기는, 변혁을 위한 일면의 갈등이다 또. ‘님 으로’ 위치하지 못하고 객체로 종속되어 있던 여성들이 기존의 피라미드형 권력 관계를 무너뜨리고, 그것을 다시 편평하게 쌓아올리고자 하는 회복과 재구성의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 국 페미니즘과 그것을 둘러싼 갈등은 단지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리를 추구하는 과정에 서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변혁의 양태라고 할 수 있다.

4. 마치며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님 의’ 철학을 기반으로 ‘지금 여기 한국- ’ 페미니즘의 태동과 전개를 살펴보았 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리 기- 시스템 안에서 한국 페미니즘이란 ‘님 으로’ 나아가는 지향성을 본질적으로 내재하고 또 실현하고 있다. ‘리’-‘님 의’ 세계 바깥에 위치했던 여성 및 소수자들이 적극적으로 ‘님 으로’ 상승 하고자 하는 지향성이 대두된다는 지점에서 지향성을 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한국 사회를 지탱 하고 있는 차별적 배제적인· ‘리 를’ 포용적인 ‘리 로’ 전복시켜 ‘님 의’ 사회로 진보하도록 하는 변혁을 시도한다 는 점에서 그 자체로 지향성을 적극적으로 실현한다고 할 수 있다. 정치인 출신 성 범죄자에게 죗값을 물은 미투 운동과 여성 연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을’ 이끈 불법촬영 규탄 시위,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을 이룬 낙태죄 폐지 시위 그, 외의 수많은 움직임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처럼 변혁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것을 규명하는 사유와 작업이 한국 페미니즘을 둘러싼 회의적인 시선 들에 단편적으로나마 답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페미니즘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 ―‘혐오 전쟁’, 폭넓은 연대의 부재 등―이 남아있다 수면. 아래 있던 물살들이 파도가 되어 바위를 부수고 있 지만 그에 안주하지 않고 그 다음 파도를 고대하며, ‘님 으로의’ 변혁을 향해 그 다음 물음을 던져야 할 때이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가? 그 변혁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님 의’ 철학이 규명해야 할 새로운 숙명이 될 것 이다.

참고 문헌

- 단행본 오구라 기조 저, 조성환 역,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모시는 사람들, 2017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나무연필, 2016

- 인터넷 뉴스 기사

“올해 육아휴직자 4명 중 1명 ‘아빠’”, 『서울 신문』, 2020년 8월 13일자

“[나는 강남역 세대입니다③] 비혼·비연애·비출산·비섹스 '4B' 운동이 분다”, 『여성신문』, 2020년 5월 1 일자

- 법령 국가법령정보센터


이상화의 시 세계와 생명 회복의 공간으로서의 '조선’ 유신지(경북대학교)

 이상화의 시 세계와 생명 회복의 공간으로서의 '조선’

유신지(경북대학교) 

1. 들어가며

이상화가 백조 창간호에 「말세의 희탄 을」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식민지 조선의 문인으로서 생활 했던 1920년대는 근대적 자아의 각성이라는 측면에서의 ‘내면 영혼 에= ’ 대한 탐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 던 시기였다. 근대적 주체가 각자의 내면으로부터 발견하기를 요구받았던 ‘영혼 은’ “‘자연 으로서의’ 자기 자신과 우주를 일치시키려는 표현적 통일에의 요구, 곧 낭만적 자아의 열망” )의 표상으로 오랜 기간 해 석되어왔으며, 동시에 이러한 경향이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다이쇼 생명주의(大正生命主義)’의 영향이라는 평가 아래 이상화의 시에서 드러나는 ‘생명 에’ 관한 관심 역시 ‘일본식 생명주의 의’ 연장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특히 유병관은 이상화의 문학 작품에서 빈출되는 ‘새 생명 을’ 그가 추구했던 핵심적인 가치로 보면서 이것이 일본에서 유행했던 ‘생명주의 사상’, 특히 ‘오스기 사사에(大杉榮)의 영향을 받은 것 으로’ 분석한 바 있다. ) 이는 기존의 이상화 시에 대한 ‘다양한 독법’ ) 중에서도 그가 주로 사용했던 ‘생명 과’ 관련된 단어들에 주목하여 이상화 문학이 베르그송의 생명주의 사상 내지 오스기의 아나키즘의 논리에 영향을 받았으며 이에 따라 이상화가 지향하는 ‘생명 이’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는 한편 새로움을 낳기 위 한 파괴의 일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해명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가 는 서구 유럽을 거쳐 일본에서 형성된 ‘생명주의 의’ 공식으로 이상화의 시를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한계 가 있다. 그러나 이상화의 시나 산문에서 드러나는 생명 지향의 사유가 ‘이식된 사조 의’ 틀로 분석할 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의 여지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은 서구 유럽과 일본이 마련한 틀에 의해 그 정체성을 강요받은 바 있다. 일찍이 일본이 ‘만국공법’ )의 논리를 내면화하여 내세운 ‘문명 반개- (半開)-야만 의’ 구도를 바탕

 

으로 조선을 ‘야만 으로’ 규정했을 때, 모든 ‘조선적인 것 은’ 일시에 거세되고 오롯이 식민자의 시선에 맞 추어 그들이 내세우는 ‘문명 이라는’ 우월함을 쫓을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상대적으로 일본에 비해 ‘야만’ 의 상태에 가까운 조선으로서는 보다 발전된 일본의 근대적 지식에 따라 법과 문학, 심지어는 생활 전 반에 걸쳐 타자의 시선을 빌려야만 ‘미개인 이라는’ 껍데기를 벗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비 교적 최근의 논의는 이상화 문학의 근간을 한국의 자생적 철학인 동학적 사유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 서 유의미하다. 이들 논의는 이상화의 시에서 사용되는 ‘어둠’ 속을 적극적으로 헤쳐나가 언젠가는 조선 에 빛이 도래할 것이라는 ‘후천개벽사상 을’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을 밝히고 있거나5) 그의 문학 작품을 동학의 핵심적 사유로 해석하면서 이상화 시에 나타난 서정성이 주체와 개체 간의 합일의 양상을 띠는 ‘상호주체적 서정성 의’ 양상을 띤다는 것을 보여준다.6) 이러한 논의는 서구 문예사조나 여타의 종교로는 채 해명되지 못했던 이상화 문학의 주요한 지점들을 한국 고유의 철학을 근간으로 삼아 이를 보다 구 체적으로 설명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 역시 이상화의 몇몇 작품들만을 분 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거나 혹은 그가 시나 산문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세계에 대한 인식을 ‘생명’ 과 관련된 단어들을 바탕으로 하여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본고는 이상화의 시나 평론을 통해 드러나는 시인의 세계 인식이 동학의 ‘후천개벽 과’ 닿아 있음을 밝히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아, 이를 통해 그가 시 작품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공간, 예컨 대 “새 세계”, “나라”, “청량 세계” 등에서 드러나는 ‘생명 지향 의’ 사유가 곧 이상화가 소망했던 ‘조선의 생명력 의’ 회복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그가 살아가던 일제강점기 ‘조선 이’ ‘각자위심(各自爲心)’의 죽음의 상태에서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새 생명 의’ 상태로 거듭나기를 지향하는 시인의 사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사실을 해명해볼 계획이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이상화가 활동 하던 시기에 문단에서 사용되던 생명 담론이 국외에서는 어떻게 사용되고 있었으며, 이것이 당대 조선 문단에서는 어떠한 의미로 수용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이것이 이상화의 문학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과 어떤 차별점을 갖는지를 검토해 볼 것이다. 나아가 3장에서는 지금까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이상 화의 시나 산문을 대상으로 하여 이상화가 지향하는 ‘생명 회복 의’ 양상이 동학의 핵심 사유와 어떤 관 련을 맺는지를 구체적으로 짚는 작업을 통해 그가 그리던 ‘조선 이라는’ 공간의 특이성에 대해 들여다보 는 것으로 논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2. 이상화가 바라본 조선의 ‘생명’

이상화가 태어난 20세기 초엽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이상화의 탄생 11년 전 야마가타 아리토 모(山縣有朋, 1838-1922)는 ‘제 회1 제국의회(1890)’에서 “조선 반도야말로 ‘대일본제국 의’ ‘생명선’”7)이 라고 주창했고, 그로부터 4년 뒤에는 청일전쟁‘ (1894-1895)’이, 1904년에는 러일전쟁이 발발하였으며 이 어 ‘한일병합에 관한 조약(1910.8.22.)’이 체결되었다.8) 이처럼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기 시작했던 시기 에 태어나 성장하였던 상화에게 ‘문학 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을까. 그가 1922년에 문단에 등

 

로니얼 , 삼인, 2012, 28-35쪽 참조.

5) 최호영, 「1920년대 초기 한국시에서의 숭고시학과 생명공동체의 이념」,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6.2. 6) 유신지 여상임· , 「이상화 문학에 나타난 시적 상상력의 근원 연구」, 어문논총 74호, 한국문학언어학회,

2017.12.31., 301-329쪽; 유신지, 앞의 논문.

7) 고모리 요이치, 송태욱 역, 앞의 책, 62쪽.

8) 강만길, 20세기 우리 역사 , 창비, 2007, 14-28쪽.

장하면서부터 줄곧 사용한 ‘영혼 이나’ ‘부활’, ‘신령’, ‘생명 과’ 같은 어휘는 무엇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일까. 그가 사용하고 있는 이와 같은 어휘들은 표면적으로는 20세기 초에 동아시아 전역에서 유 행하던 일본의 ‘다이쇼 생명주의 를’ 떠올리게 한다. ‘다이쇼 생명주의 는’ 일본의 문단에서 시인들이 “상 징주의를 비롯한 전대의 ‘전통 과’ 단절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담보” )하기 위해 도입한 ‘생명’ 개념을 핵심 으로 삼고 있는 담론으로 1910년대 후반 무렵부터 조선 문단에서 표출되는 ‘근대적 자아 성찰’, ‘종교적 신앙체험을 연상시키는 에피파니의 형상화 로’ 표상되는 낭만적 자아 담론을 확립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 다. ) 이때 일본의 생명주의의 핵심은 ‘국가 공동체 로’ 포섭되었던 제약에서 벗어나 인간 개개인의 내면 에 초점을 맞추어 개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자아를 각성케 한다는 데 있었다. 이상의 맥락에서 이상화 문학에서의 ‘생명 이’ ‘새로운 생을 창조하기 위한 파괴이자 동시에 낡은 것에 대한 반역 이며’ 동시에 ‘참 생명을 담지하는 신성한 자연 으로서’ 민족주의와도 결합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최근의 논의  )는 이상화 문학을 당대에 일본에서 유입되어 조선에서 유행했던 ‘생명주의 사상 의’ 측면에서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 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의 시 세계를 분석하는 것이 과연 가장 적합한 독법일까. 이상화가 도일하여 그곳 에서 한때 수학했고, 그가 사용하는 어휘들 역시 서구를 거쳐 일본에 유입된 ‘생명주의 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나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다이쇼 생명주의 가’ 이상화 문학 의 전반을 해명하기에 적합한가, ‘일본 체험’ 이전 유년 시절의 교육 환경은 그의 시 세계를 형성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가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해 이상화의 교유 관계 를 살필 때, 눈에 띄는 인사는 1927년 천도교의 핵심 인사였던 ‘홍주일 이다’ . 그는 일찍이 상화의 백부 인 소남 이일우 선생과 함께 ‘달성친목회 의’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이일우가 1904년에 설립한 근대식 교 육기관인 ‘우현서루 가’ 폐쇄되고 그 자리에 들어선 ‘강의원 의’ 운영을 맡기도 했다. 이때 이 강의원이 1915년에 상화가 경성중앙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유년 시절 교육의 전반을 담당했던 집안의 ‘사숙(私塾)’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리고 홍주일의 사망 직전까지도 이상화와 교류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홍 주일이 상화에게 끼친 영향력은 매우 컸을 것으로 추측된다.12)

個性과 社會와 時代-말하자면 이 세상과 接流가 업시 살어볼려는 마음이 잇으면 그는 하로 일 즉 한울로나 물미테나 사람업는 곳으로 가야할 것이다. 웨그러냐 하면 사람이 된 個性이 엇지 살까하는 觀察이 업고 個性이 살 社會가 엇더한가 하는 觀察이 업고 社會가 선 時代가 엇더하 다는 觀察이 업시는 적어도 이러한 觀察을 해보려는 努力이 업시는 그의 모든 것에서 사람다운 것이라고는 한아도 볼 수 업기 문이다. 사람다움이은 사람의 良心에서 나온 것이니 사람이 아니고는 차질 수 업는 이러한 美를 사람이 살  우에 가저오게스리 애쓸랴는 觀察이 업시는 사람 作者 노릇은 커녕 노릇을 안켓다고 함이나 다르지 안키 문이다.13)

인용문은 이상화가 개벽 에 발표한 「문단측면관 의」 일부이다. 이 평론에서 그는 당대 문단의 한계와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상화가 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그의 문학관을 알 수 있다. 평론에 따르면 이상화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문학가는 “시대 를” 바라보는 명확한 시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때 문학가는 반드시 시대를 ‘관찰하는 노력 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만 약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과 “접류(接流)”하지 않고, 즉 사회와 동떨어진 채 살아가려 한다면, 그는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람이, 문학가가 갖춰야 하는 것은 “관찰을 해보려는 노력 이며” 이것은 곧 “사람다운 것 의” 필수조건이 된다. 부연하면 이 “관찰 은” “사람의 양심” 에서 나오는, “사람이 아니고는 차질 수 업는 미 를” 이 땅 위에 현현하게 하는 힘이자 작가라면 마땅히 해야 할 “작자 노릇 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사람의 양심에서 나오는 미 라는’ 것은 무얼을 일 컫는 것인가.

生命다운 生命-내몸이 사는 맛을 못보든 그 자리서 일허 바렷든 내 生命을 내 몸으로 차저오 려는 그 때이다. 다시 말하면 남의 세상을 模倣한 量的 存在를 읇조리기보담 나의 세상을 창조 한 質的 生命을 부르지즐 다. 純眞한 藝術은 模倣性을 안가진 創造熱에서 난다든 말을 반성하 고 체험할 때다. (…) 朝鮮에도 生活이 잇고 言語가 잇는바에야 朝鮮의 追求熱과 朝鮮의 美化慾 곳 朝鮮의 生命을 表現할 만한 觀察을 가진 作者가 나올 만한 때이라 밋는다. 다시 말하면 오 늘의 朝鮮生命을 觀察한데서 새롭은 生活樣式을 構成할 곳 實感잇는 生命의 創造를 시험할 創作家가 나올 때라 밋는다.14)

상화는 해당 평론에서 다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명 다운 생명”, 곧 잃어버렸던 “내 생명 을” 찾아 “내 몸 으로” 가져오는 때가 바로 작가가 추구해야 마땅할 ‘생명 을’ 획득하는 순간이라고. 그리고 이때의 생명은 “남의 세상을 모방한 양적 존재 가” 아니라 “나의 세상을 창조한 질적 생명 이며” 이를 작품에 구 현하기 위해 작가는 조선의 ‘생활 과’ ‘언어 를’ 가지고 “조선의 생명을 표현 하기” 위한 관찰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상화가 판단했을 때 진솔한 문학이 목표로 해야 할 바는 다른 나라의 이론이나 내 용의 모방을 제거한, 순전한 ‘조선의 생명 에의’ 창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순진한 예술 의” 실현을 위 해 작가는 그의 창조력에서 “모방성 만큼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데, 이때의 ‘모방 의’ 대상은 “남의 세 상 이다” . 이를 통해 볼 때 이상화는 문학에서 다른 나라 문학의 내용이나 형식을 차용하는 것을 지양하 고 오롯한 ‘조선의 생명 을’ 표현해야 하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문학관을 가진 그였기에 두 달 뒤에 발표한 평론들에서 ‘근본적 의미에서 창작을 쓸 사람은 그 자신이 선지(先知)와 가튼 충분한 관찰’ 을 가지고 “‘새 세상을 보이거나’ ‘새 사리 를’ 보여야 할 것”15)이라고 비평하며 나아가 ‘시 에’ 대해서는 “가장 산듯한 생명의 발자국”16)이라 명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는 곧 생명의 자취 라는’ 선언. 여기에 서 상화의 명확한 시인관 역시 확인된다. 이를 요약하자면 시인이란 ‘다른 나라의 모방을 지양하고 자신 이 살아가는 세계의 생명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는 자 이다’ . 선구자와 같은 위치에 있는 ‘시인 이’ 이러한 작업을 통해 ‘조선의 생명 이’ 강인하게 분출되는 “새 세상 을” 창조해야 하는 사명을 갖는 존재라는 표현 으로 미루어 볼 때 이상화가 문학을 통해 나타내려 애를 썼던 ‘조선의 생명 을’ 적어도 외래에서 유입된

 

13) 이상화, 「문단측면관 창작- 의의 결핍에 대한 고찰과 기대」, 개벽 58호, 1925.4.1., 34-35쪽.

14) 이상화, 앞의 글, 앞의 책, 38-39쪽.

15) 이상화, 「지난 달 시와 소설」, 개벽 60호, 1925.6.1., 121쪽.

16) 이상화, 앞의 글, 앞의 책, 125쪽.

사상이나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새 세상 의’ 창조나 이 과정에서 추구해야 하는 “생명의 본질” ), 나아가 이 본질이 다시 사람이면서 자연의 한 성분”, “개체가 모든 개체들과 관계 있는 전부 이면서” 동시에 “개성을 소멸 시켜” “소아에서 대아” )로 나아가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했을 때 이러한 측면은 오히려 이상화가 성장 과정이나 자라서까 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동학사상을 상기시킨다.

3. 생명의 회복과 ‘새 세계 로서의’ 공간 지향성

수운 최제우는 동양의 전통과 서구의 근대성과의 접점에서 이 둘을 모두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동학 을 창도했다. 즉 외세 침략과 이로 인한 동양적인 질서의 붕괴 등의 국내외적인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자주적 근대성 의’ 발로가 바로 동학이었다. ) 동학의 ‘천인관(天人觀)’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하늘 과 인간 사이의 상호협력” )인데, 이때 인간과 대상의 상호 교류의 양상이 두 대상 간의 평등한 관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인간 내면에 깃든 ‘생명 에’ 그 초점을 맞추기 는 하나 그 순간 이루어지는 ‘화합 은’ 일본의 ‘생명주의 와’ 같이 인간의 ‘생명 을’ 밖으로, 즉 ‘자연 이라는’ 외연으로 확장시켜 “자아에 절대적인 권능을 부여”   )함으로써 형성되는 낭만주의적 인식론과는 다른 층 위에 있다. 즉 이 시기에 유행했던 ‘다이쇼 생명주의 가’ 갖는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개인’ 지향성은 동학 적 사유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던 것이었다. 이러한 양상은 이상화의 시 세계 전반에 드러나고 있는 데, 이 장에서는 아직 제대로 해명되지 못한 이상화의 시나 산문을 통해 그가 인식하던 ‘조선의 생명 을’ 분석함으로써 그가 회복하고자 했던 ‘새 세계 라는’ 공간의 성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 을 것이다.

사람은 한울을 떠날 수 없고 한울은 사람을 떠날 수 없나니, 그러므로 사람의 한 호흡, 한 동

정, 한 의식도 이는 서로 화하는 기틀이니라.22)

사람이 바로 한울이요 한울이 바로 사람이니, 사람 밖에 한울이 없고 한울 밖 사람이 없느 니라. (…) 한울과 마음은 본래 둘이 아닌 것이니 마음과 한울이 서로 화합해야 바로 시·정·지 (侍 定· ·知)라 이를 수 있으니, 마음과 한울이 서로 어기면 사람이 다 시천주(侍天主)라고 말할 지라도 나는 시천주라고 이르지 않으리라.23)

동학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 과’ ‘한울 은’ 동체다. 이 둘은 본래부터 서로 나뉘지 않은 상태로 ‘화합’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한 호흡’, ‘한 동정’, ‘한 의식’ 마저도 융합의 기틀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화합을 통해서만 ‘시 정 지· · (侍 定· ·知)’에 이를 수 있는데, 이는 ‘한울님을 몸 안에 섬겨, 그 덕에 합하여 마음을 정하면서 동시에 그 도를 알아 지혜를 받는 것’ )이다. 이 과정이 온전해야만 인간에게 내재한 ‘신령 이’ 밖으로 옮겨가는 ‘이(移)’가 발생하지 않고, 그래야만 ‘시천주’, 즉 ‘신령과 인간 및 우주 자연 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유는 다시 「권학가 를」 통해서도 발견된 다.

쇠운(衰運)이 지극(至極)하면 성운(盛運)이 오지마는/ 현숙(賢淑)한 모든군자(君子) 동귀일체(同

歸一體) 하였던가/ (…) 각자위심(各自爲心) 하단말가 경천순천(敬天順天) 하여스라25)

위 인용문에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단어는 ‘동귀일체(同歸一體)/각자위심(各自爲心)’이다. 동학에 따르 면 ‘각자위심’, 즉 자신만의 이기심으로 조화로운 “혼융체”26)에서 이탈하는 것을 지양하고 ‘동귀일체 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이 ‘동귀일체 는’ “하나의 같은 것으로 모두 돌아간다 라는” 의미를 지니는 단어로 ‘모든 이들이 본성을 회복하여 군자 사람이 되어 후천의 살기 좋은 세상을 이룬다 의’ 뜻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27) 앞서 ‘시천주 의’ 상태와 더불어 이 ‘동귀일체 를’ 이루어야 ‘하늘 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상서 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깨달음은 이상화의 시에서도 빈번하게 드러난다.

(가) 나는 남 보기에 미친 사람이란다/ 마는 내 알기엔 참된 사람이노라. (…) 사람아 미친 내 뒤를 따라만 오느라/ 나는 미친 흥에 겨워 죽음도 뵈줄테다.28)

(나) 사람아! 목숨과 행복이 모르는 새 나라에만 잇도다./ 세상은 罪惡을 늬우치는 마당이니/ 게서 어든 모 든- 것은 목숨과 함께 던져버려라./ 그때야, 우리를 기대리든 우리 목숨이

참으로 오리라.29)

(다) 산촌의 뼈만 남은 땅바닥 우에서/ 아즉도 사람은 수확을 바라고 잇다 (…) 농샤짓는 사람 의 목숨을 나는 본다. (…) 이 땅과 내 마음의 우울을 뿌술/ 동해에서 폭풍우나 소다저라-

빈다. 30)

(라) 내게로 오느라 사람아 내게로 오느라 (…) 눈물저즌 세상을 바리고 웃는 내게로 와서/ 아 생명이 변동에만 잇슴을 깨처 보아라.31)

인용문은 모두 이상화의 시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가 에서) 시적 주체가 보여주려고 하는 “죽음 은” 그 자체로 역설이다. 제목에서 추측하듯 시적 화자는 ‘선구자 의’ 옷을 입고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 는 자들에게 자기야말로 “참된 사람 이니” 먼저 열어가는 새 길을 따라오라고 명령하고 있는데, 그런 의 미에서 ‘죽음 은’ 부정이 아닌 긍정의 뜻으로 읽힌다. ‘죽음 이’ 단어 그대로 ‘생명의 정지 를’ 뜻한다고 했 을 때, 이는 (나 에서) 시적 화자가 대상의 ‘목숨 을’ 버리도록 종용하는 태도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며 이것은 (다 의) “뼈만 남은 땅” 위에 거주하는 사람의 “목숨 과도” 상통하는 단어일 것이다. 시적 화자는 (나 와) (다 에서) 아직 세상에 도래하지 않은 ‘새나라 에’ 진정한 ‘생명 이’ 있으며, 이는 부정되어야 할 ‘목

 

25) 천도교중앙총부 편, 「용담유사-권학가」, 앞의 책, 206-208쪽.

26) 이상화는 자신의 시나 산문에서 ‘융화 나’ ‘혼융 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했다. 「금강송가」에서 그는 “金剛! 너는頑迷한物도虛幻한精도아닌―物과精의渾融體”라고 표현하면서 시적 주체와 객체 간에 ‘합일된 생명 을’ 노래한 바 있 다. 이는 기존의 주관주의적인 서정성의 개념을 보완하는 ‘상호주체적 서정성 으로도’ 해명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서는 유신지, 앞의 논문, 2020을 참조. ‘상호주체적 서정성’ 이론은 박현수, 시론 , 울력, 2015, 312-318쪽을 참조.

27) 이에 대한 해석은 윤석산, 동경대전 , 동학사, 2009, 470쪽을 참조.

28) 이상화, 「선구자의 노래」, 개벽 59호, 1925.5.1., 39쪽.

29) 이상화, 「허무교도의 찬송가」, 개벽 54호, 1924.12.1., 13쪽.

30) 이상화, 「폭풍우를 기다리는 마음」, 개벽 57호, 1925.3.1., 53-54쪽.

31) 이상화, 「바다의 노래」, 앞의 책, 54쪽.

숨 이’ 져버린 후, ‘죽음 이’ 깃들고 ‘폭풍우 가’ 휘몰아친 후에야 열릴 새로운 하늘 아래에서 얻어지는 ‘참 생명 이라고’ 시적 화자는 믿고 있다. 이러한 측면은 동학의 ‘후천개벽사상 과도’ 상통한다. ‘후천개벽 은’ “변화하는 것이며 변화시키는” ) ‘개벽’ 사상을 가리키는데, 일찍이 최제우가 ‘다시 개벽 이라는’ 말로 막 힌 조선의 기운을 뚫고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혁을 추구한 바 있다. 즉 이와 같은 맥락에서 ‘후천개벽 은’ 새로운 하늘이 열린 뒤에야 도래할 ‘새로운 세계 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눈물젖은 세상 에서’ 의 생명 대신 ‘변동 에’ 의해 새롭게 주어지는 ‘생명 을’ 깨달아야만 ‘밤새도록 옵시사 빌었던 하늘의 꽃 밭’ )이 사람의 세상에도 펼쳐질 수 있으며, “자연과의 큰 조화에 나누이지 말아야만 비로소 내 생명을 가졌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비극은 이처럼 ‘하늘 과’ ‘자연’, 그리고 인간이 동귀일체의 한 성분으로 조화 를 이룰 때라야 극복 가능한 것이며 그랬을 때 비로소 죽음에 가까운 상태로 신음하는 조선의 생명은 회복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이는 시인이 궁극적으로 문학을 통해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생명 회 복 의’ 염원이라고 볼 수 있다. “한 편의 시 그것으로 새로운 세계 하나를 나허야 할 줄 깨칠 그 때”에 ‘우주에 다시 없을 너’ )로 존재할 수 있게 되며, 시인이 생명 회복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조선의 땅이, 그리고 조선 사람의 ‘생명 이’ 다시금 옛 허물을 벗고 새로운 하늘 아래 가장 바람직한 동귀일체의 상태 로 거주할 수 있게 된다.

4. 나가며

(생략)


만해의 유심 기획과 한국적 사유의 발현 홍승진(서울대학교)

 만해의 유심 기획과 한국적 사유의 발현

홍승진(서울대학교) 

1. 문제 제기

본고는 만해 한용운이 잡지 유심(惟心) 을 기획한 방식을 고찰함으로써, 향후 님의 침묵 으로 이어

지는 그의 문학 세계 저변에 한국적 사유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해명하고자 한다. 한용운은 1913년에 조선불교유신론 을 발간하고, 1914년에 대장경을 발췌하여 불교대전 을 편찬하였으며, 1918년에 유 심 을 펴냈다. 이후 1919년 3 1‧ 운동 참가로 수감 생활을 겪은 뒤에 집필한 시집이 님의 침묵 이다. 이를 보면 님의 침묵 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길목에 잡지 유심 이 놓여 있음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다.

이처럼 한용운이 편집과 발행을 도맡은 잡지 유심 은 한용운 문학 연구에 있어 중요한 매체임에도, 그 잡지에 관한 연구는 다소 부분적인 측면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선행 연구에서는 유 심 을 불교 잡지로 규정하였다. ) 불교 외의 사상적 지향성을 보이는 인물들이 유심 필자로 참여하였 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잡지를 단순히 불교 잡지로 규정하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유심 의 불교적 성격도 ‘어떠한’ 불교인지를 보다 더 섬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유 심 지의 기획은 한용운이 다양한 사유의 맥락들과 얽혀 있음을 보여주기에, 유심 의 기획 방식에 관한 연구는 님의 침묵 을 낳은 만해의 사상적 토대를 더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이해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 이다

본 논문은 유심 에 실린 글과 그 글의 필자 전체를 분석하여 잡지의 의미망을 조선불교와 천도교와 대종교의 세 가지 사상적 맥락으로 범주화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는 유심 필진 각각이 잡지 발행 당시에 어떠한 사상적 ‧ 학술적 그룹 속에서 활동하였는지를 밝히고, 각 그룹의 필자들의 글에 공통적으 로 나타나는 특성을 파악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잡지 이름인 ‘유심 의’ 함의, 잡지를 둘러싼 한용운의 사상적 교류와 인적 네트워크, 그 교류의 종합체로서 발현된 한국적 사유의 특징 등을 해명하고자 한 다.

2. 한국 수양 전통의 회통 ― 조선불교와 천도교와 대종교

유심 은 불교잡지가 아닌 수양잡지를 표방하였다. 한 신문기사는 “한용운 씨가 근대 청년에게 수양

 

의 眞諦를 계시고 야 獨力으로 창간 것 이” 유심 이라고 소개하였다. ) 또 다른 신간소개에 서는 유심 이 “유일 수양잡지로 其名이 漸高”해간다고 언급하였다. ) 유심 은 신문광고를 통해서도 스스로의 성격을 “수양잡지 라고” 천명하였다. ) 유심 을 불교잡지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유심 발행과 같은 시기에 불교 교단의 유일한 기관지가 발행되고 있었다는 점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유심 이전에는 신문관에서 발행한 수양잡지가 있었지만, 유심 이 나온 시점에 유심 이 “유일한 수양잡지 였다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유심 에 필자로 참여한 최남선은 소년

(少年) (1908년 11월 창간, 1911년 5월 폐간 에서) 청춘(靑春) (1914년 10월 창간, 1918년 9월 폐간) 으로 이어지는 수양잡지를 그가 대표로 있던 출판사 신문관(新文館)에서 간행하였다. 유심 제1호가 정 확하게 청춘 이 폐간되던 시점인 1918년 9월에 발행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유 심 을 불교잡지의 흐름이 아닌 수양잡지의 흐름 속에 위치시켜놓고 보면, 한용운이 이 잡지를 기획하였 던 의도가 더욱 명료히 드러난다.

제1호 제2호 제3호

崔麟 「是我修養觀」

崔南善 「同情바들必要잇는者ㅣ 되지말라」

柳瑾 「修進」

李光鍾 「惟心」 「善養良心」 「靜坐法」

寓山 頭陀, 朴漢永, 石顚 「優曇鉢花再現於世」 「惟心은卽金剛山이안인가」 「陁古兀의詩觀」

李能和 「宗敎와時勢」

金南泉 「心論」 「心의 性」

康道峯 「反本還源」

徐光前 「家庭敎育은敎育의根本」

金文演 「自己의生活力」

桂東 山人, 林圭 「學生의衛生的夏期自修法」 「人格修養의初步」

印度 哲學家 타쿠르 「生의實現」 「生의實現 (二)」

菊如 (양건식) 「悟!」 「悟!」

白龍城 「破笑論」

權相老 「彼此一般」 「彼何爲者오」

威音人 「惟心에」

小星 (현상윤) 「몬져理想을셔우라」

洪南杓 「勤勞라」

위의 표 중에서 최린, 최남선, 유근, 박한영, 이능화, 임규, 양건식, 권상로, 현상윤은 청춘 제14호 (신문관 창업 10주년 기념호 에) 집약된 신문관의 인적 네트워크에 해당한다.5) 이들 중에서 불교계 인물 은 박한영, 이능화, 양건식, 권상로이다. 최린은 천도교계 인물이며, 유근은 대종교계 인물이다. 이들은 최남선과 임규가 운영의 핵심을 맡은 신문관을 통하여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상윤은 신문관, 천도교, 대종교와 관계가 있다. 요컨대 이들의 연관성은 신문관을 중심으로 불교와 천 도교와 대종교의 흐름이 결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권두연은 신문관에서 출판한 서적들의 상당 부분이 “조선의 사상과 언어, 종교, 속담, 요리 등, 이른 바 ‘조선 것 으로’ 구성된다 고”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신문관에서 간행한 학술서 10권 중에서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 와 권상로의 조선불교약사 , 주시경과 김두봉의 말의 소리 와 조선말본 , 대종교의 서적인 신단실기 와 삼일신고 등이 조선의 사상과 언어를 다룬 것이라고 보았다.6) 이를 미루어보면, 유심 에 필자로 참여한 불교계 인물은 단순히 불교인이라기보다도 ‘조선적’ 불교를 지향한 이들로서 재 조명될 필요가 있다. 류시현에 따르면, 최남선과 이능화와 권상로는 1910년대에 ‘조선 이라는’ 단위에 입 각하여 불교를 연구하였는데, 이는 일본 및 중국불교와 변별되는 조선불교만의 특성과 장점을 규명하였 다는 점에서 조선학 연구의 일환에 해당한다고 하였다.7) 이와 같이 신문관의 특징은 조선학 연구에 있 었고, 이와 연관이 있는 유심 의 불교계 인물들은 불교를 조선적인 사상 ‧ 종교로서 인식하는 데 천착 하였던 것이다.

신문관의 인적 네트워크에 나타나지 않은 유심 의 불교계 필자들도 그러한 관점에서 효과적으로 이 해해볼 수 있다. 박한영 ‧ 백용성 ‧ 김남천 ‧ 강도봉 등은 조동종 전통의 일본불교로부터 임제종 전통의 조 선불교를 지키고자 하였던 흐름 가운데 있었다.

정신 ‧ 사상의 조선적 정체성에 대한 유심 의 지향성은 불교의 테두리에서 나아가 한국의 자생적 ‧ 토 착적 사유라 할 수 있는 천도교 및 대종교에까지 이른다. 천도교인 최린과 대종교인 유근을 필두로 최 남선, 이광종, 임규 등이 이러한 흐름 속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토착 사상을 이해함에 있어 서 중요한 점은 이 범주에 속하는 인물 각각이 명확하게 스스로를 천도교인 또는 대종교인으로 표명하 지 않을 수도 있으며, 한 인물이 천도교와 대종교의 두 흐름에 걸쳐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은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나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 등의 학문적 모임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조선왕 조의 통치이념이었던 성리학의 폐단을 극복하는 동시에 서구 일본- 문명의 침입으로부터 조선의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하였다. 천도교와 대종교는 유불도 ‧ 샤머니즘 ‧ 단군신앙 등과 같은 한국의 오랜 사유들에 바탕을 두는 동시에, 그와 같은 전통들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적극적 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3. 개벽사상으로서의 수양론

1) 물질문명에서 정신문명으로의 수양

“吾人이 최고지위를 점야 최대令名은8) 享은 물질적 문화에만 止이 안이오 其 根本과 源泉이 되

 良心을 善養에 在다 노라”9)

 

5) 청춘 의 필자 구성 및 인적 네트워크는 권두연, 앞의 책, 470~477쪽에서 자세히 정리하였다.

6) 권두연, 앞의 책, 329~330쪽.

7) 류시현, 「1910년대 조선불교사 연구와 조선학의 토대 형성」, 한국 근현대와 문화 감성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4, 39쪽.

8) “최대令名은 은” ‘최대令名을 의’ 오기인 듯하다 — 인용자 주.

9) 李光鍾, 「善養良心」, 惟心 제2호, 1918. 10, 36쪽.

物質文明은 人生究竟의 文明이 아닌즉 다시 一步를 進야 精神文明에 就믄 自然의 趨勢라 是로 由 면 物質文明이 人에 對야 幾分의 毒害를 與믈 推想기 不難도다 믈며 外地全盛의 物質文明의 餘波가 急潮와 가치 輸入, 輸入이라고 나니보다 寧히 侵入이라고  만한 朝鮮의 人이 엇지 그 毒害를 免기 容易리오 現今의 朝鮮人은 文明創造者도 아니오 繼續發明者도 아닌즉 아즉 被文明時代라 지 니 被文明時代에 在야 相當 修養의 實力이 無 者 驚感浮動야 滿腹의 心事가 金錢狂이 아니면 곳 英雄熱이라 . . .

徒勞의 金錢狂과 虛僞의 英雄熱은 다만 不平과 煩悶을 增加 而已니 何益이 有리오 是 立志不固 의 人이 갓 物質文明의 現象에 沈醉야 虛榮心을 挑發 所以라 故로 何人이라도 心的 修養이 無 면 事物의 使役者 되기 易니 學問만 有고 修養이 無 者 學問의 使役이 되고 知識만 有고 修養이 無 者 知識의 使役이 되나니라10)

“腦者 神之機關也라” . . . “天下 事物이 無因이면 不會니 汝之神은 無因而能生死乎아”11)

“前家의 梧桐은 法律的으로 形質的으로 그 주인에게 공헌 가치 幾圓의 金錢에 불과나 도덕적 으로 정신적으로 隣家의 余에게 惠波12) 及믄 실로 금전을 초월지라”13)

“극단적인 유물론자는 사람의 심리 작용은 경험의 흔적 인상이 뇌 속에 각인되어 생겨난 것일 뿐이라 고 말하며, 극단적인 유심론자는 반대로 세계 일체가 모두 마음이 만들어낸 데에서 비롯하며 마음이 아 니면 사물이 없다고 하여 양자 모두가 곧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에 빠진다.”14)

2) 동서양 전통 철학을 넘어서는 내재적 신성의 사유 이능화가 유심 에 실은 글은 표면적으로 유교와 불교와 기독교의 종지를 소개하고 비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심층적으로는 세 종교의 당대적 한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먼저 조선 유교는 주자학 수 입 이전(신라 ‧ 고려 과) 이후 조선 의( )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는 자유사상의 시대였으나 후자에 이르러 속박 사상의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후자의 선비들은 주자의 축음기, 남송(南宋) 유학의 복사판 [搨影板]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조선 불교는 조선왕조의 압박으로 인하여 대승이 아닌 소승에 그쳤으나, 오늘날에는 개개인을 교화 ‧ 제도하는 데 만족하지 말고 사회를 개선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조선에 들어온 기독교는 최근 들어 교리보다도 세력의 확장에 기울어져 ‘기독교만능주의 를’ 고취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이면에 서구 제국주의 라는 정치적 논리가 도사리고 있음을 경계한 것이라 할 수 있다.15)

“驚歎 만 無盡無量의 現象이 永遠의 法則에 從야 活動 此 絶對 世界에 반다시 其를 支配며 其를 創化 神이 有리라 그리야 其 神은 全知全能인 吾人의 精神作用과 唯一根底의 靈能이리라 卽 吾人은 小 神인 大 神의 所事를 執行 者로 吾人의 一切業務 摠 是 神聖 天職일지라”16)

“人의 人된 所以는 獸에 離하지 안이하는 肉이 안이오 神에 進向할 靈에 在하니 修養의 第一步는 獸에 離하지 안이하는 身軆에 置하나 修養의 根抵17)는 神에 進向할 精神에 置하지 안이치 못할지니 修身의

 

10) 韓龍雲, 「朝鮮靑年과 修養」, 惟心 제1호, 1918. 9, 6~7쪽.

11) 白龍城, 「破笑論」, 惟心 제2호, 1918. 10, 36~37쪽.

12) “惠波”는 ‘專波’의 오기로 추정된다 — 인용자 주.

13) 「前家의 梧桐」, 惟心 제3호, 1918. 12, 9쪽.

14) 李光鍾, 「靜坐法」, 惟心 제3호, 1918. 12, 19쪽.

15) 李能和, 「宗敎와 時勢」, 惟心 제1호, 1918. 9, 33~35쪽.

16) 崔麟, 「是我修養觀」, 惟心 제1호, 1918. 9, 18쪽.

本이, 이에 立하고 養德의 源이, 이에 發하느니라.”18)

“소위 神祕者 皆 吾人이 爲智識의 所限고 又 不肯可以硏究야 人々이 神祕之어 我亦神祕之로 다”19)

현상윤은 이상(理想)을 품는 것이란 “천국의 極樂園을 능히 지상에도 건설 수 잇다는 것을 확실히

자신하고 확실히 낙관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20)

3) 신체와 감각의 현실에 대한 긍정 임규는 학생 독자를 대상으로 한 글에서 “자기의 미숙 학과를 연습면셔 신체의 건강법도 강구 고 일변으로 정신수양에 주의를 가야 . . . 인물이 일층 상진(上進) 자 가” 되어야 한다고 요청한 다.21)

“身心에 엇지 二元이 有하리오 . . . 古來로 고행수도, 금욕단식, 그 身軆를 惡視하야 정신의 위안을 구하고쟈 하는 수양은 아모 功效도 無한 邪道”22)

“수양이라는 것은 육체와 정신을 固宜 함께 돌보는 것이라 . . . 정신의 나는 그 능력이 멀리 몸뚱이 의 나에게까지 미치는 것이로다”23)

4) 자유와 평화의 확장을 향한 진화론

“일체의 해탈을 득코자  자 먼져 자아 해탈지라 . . . 자아를 해탈믄 我의 자유에 在 이오” . . . “자기의 실천이 無면 허다 세월을 經더래도 前定의 이상향에 도달 日은 無리니 결국은 자기의 노력에 의야 心을 修며 性을 養야 實踐躬行의 향상을 圖메 在니“24)

“事에 臨하야 屈하지 안이하는 용자의 정신은 금일의 면학할 바이로되 그 殺伐粗暴, 身命을 視함을 草芥와 如히 하는 혈기에 至하야는 결코 피하지 안이치 못할지오”25)

“必 相讓相助야 互相間 발달을 期圖지오 不然 卽 生存競爭 裡에 立야 종내 退步를 면치 못지 니 此에 기인야 비로소 인류의 同情이라  것이 有니 동정은 즉 良心이 발현 단서라 노

라”26)

5) 민족성에 대한 自他 및 强弱의 관점

“人은 自來의 기회만을 待 者ㅣ 아니오 능히 기회를 促進고 時勢 창조 者ㅣ이리오”27)

“다만 究竟의 弱者와 究竟의 强者ㅣ 世上에 本無한즉 昨日의 强者ㅣ 或 今日의 弱者ㅣ며 今日의 弱者ㅣ 或 來日의 强者ㅣ리니 强弱이 을 밧고 날은 禍福이 한 임자를 밧고날이라”28)

 

17) “根抵”는 ‘根柢’의 오기인 듯하다 — 인용자 주.

18) 林圭, 「人格修養의 初步」, 惟心 제2호, 1918. 10, 24쪽.

19) 李光鍾, 「靜坐法」, 앞의 글, 15쪽.

20) 小星, 「몬져 理想을 셔우라」, 惟心 제3호, 1918. 12, 34쪽.

21) 桂東山人, 「學生의 衛生的 夏期 自修法」, 惟心 제1호, 1918. 9, 42쪽.

22) 林圭, 「人格修養의 初步」, 앞의 글, 22쪽.

23) 李光鍾, 「靜坐法」, 앞의 글, 20쪽.

24) 「自我 解脫라」, 惟心 제3호, 1918. 12, 3~4쪽.

25) 林圭, 「人格修養의 初步」, 앞의 글, 23~24쪽.

26) 李光鍾, 「善養良心」, 앞의 글, 34쪽.

27) 「遷延의 害」, 惟心 제3호, 1918. 12, 6쪽.

28) 崔南善, 「同情 바들 必要 잇는 者ㅣ 되지 말라」, 惟心 제1호, 1918. 9, 23~24쪽.

“자기의 생활 방침을 자기가 변득(辨得)기 불능고 타인을 의뢰은 토우(土偶) 목우(木偶)와 여(如) 무기체(無機體) 물(物)이니”29)

“徹悟 식견, 웅대 기상이 富 민족은 우승의 지위를 점령고 少 민족은 열패의 치욕을 자초 니 문명의 우열은 그 식견, 기상의 多少의 현상이니라 . . . 생존은 인생의 대희망이오 활동은 우주 의 대원리니라”30)

“로히 발흥야 니러나는 국민의게는 반드시 무슨 보아만31) 이상이 잇고, . . . 오늘날 我利 알 고 남 잇는 줄은 죠곰도 모르는 열강국의 叢中에셔 호을노 人道 주장고 정의를 절규는 져 米國 사람의게는, 십육칠세기경에 멀니 영국으로부터 이상적 생활을 作爲키 위야 신대륙으로 건너오던 (청 교도)32)들의 진실되고 결백 神子的 이상이 그 사상의 근17세기경 저를 일운 것”33)

류시현에 따르면, 현상윤은 제 차1 세계대전(1914~1918) 말부터 서구 근대 자본주의 문명을 반성하 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동양과 서양을 ‘약자 강자/ ’ 또는 ‘야만 문명 의/ ’ 이분법으로 판단하던 이전과 달리, 그 무렵 그는 동양의 정신문명과 서양의 물질문명 각각이 나름의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인식하였다는 것이다.34)

“그 보수주의 그 썩고 썩어서 구린 가 물큰물큰 나는 「석가나 공자나 야소가 될 수 업다 나가 엇지 감히 석가나 공자나 야소가 될 수 잇나 하는」 부패적 사상 나약적 퇴보적 절망적 고식적 病死적 구습을 快革고 「석가나 공자나 야소도 別人이 아니다 나도 면 그네와 가치 된다 그네와 가치 여 야 겟다 되여야 겟다」는 自任的 정신 적극적 활발적 전진적 實地적 진취적 향상적 정신 곳 다시 말면 生的 爲的 일심으로 勤勤勞苦여야만 복이 유 장래 神聖한 장래 쾌락한 장래가 우리의 압예

驅步驅步로 나옴니다”35)

4. 결론

본 논문은 유심 에 실린 글과 그 글의 필자 전체를 분석하여 잡지의 의미망을 조선불교와 천도교와 대종 교의 세 가지 사상적 맥락으로 범주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유심 필진 각각이 잡지 발행 당시에 어떠한 사상 적 ‧ 학술적 그룹 속에서 활동하였는지를 밝히고 각, 그룹의 필자들의 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을 파악 하였다 이를. 통하여 잡지 이름인 ‘유심 의’ 함의 잡지를, 둘러싼 한용운의 사상적 교류와 인적 네트워크, 그 교 류의 종합체로서 발현된 한국적 사유의 특징 등을 해명하였다.

 

29) 金文演, 「自己의 生活力」, 惟心 제1호, 1918. 9, 40쪽.

30) 權相老, 「彼何爲者오」, 惟心 제3호, 1918. 12, 31쪽.

31) “보아만”은 ‘볼만한 을’ 의미하는 듯하다 — 인용자 주.

32) 괄호 앞에 ‘protestant’에 해당하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지 않다 — 인용자 주.

33) 小星, 「몬져 理想을 셔우라」, 앞의 글, 35쪽.

34) 류시현, 「일제강점기 현상윤의 문명론과 조선 문화 연구」,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호남문화연구 제62집,

2017. 12, 170~176쪽.

35) 洪南杓, 「勤勞라」, 惟心 제3호, 1918. 12, 42~43쪽.


동학 천도교의 신관과 ‘님 의’ 영성 김용휘1)

 동학 천도교의 신관과 ‘님 의’ 영성 김용휘1)

1. 머리말

동학 천도교의· 신관에 대해 아직 많은 논란이 있다. 연구자들에 따라 동학 천도교의· 신관을 ‘일신관 으로’ , 때로는 ‘범신관 으로’ , 또는 이 둘이 결합된 ‘범신론적 일신관’, 또는 ‘범재신관 으로’ 제각기 다르게 해석한다. 심지어 신관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했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2) 수운 초기의 초월성이 강하던 신관이 해월에게 오면서 초월적인 경향이 배제되고 내재적인 경향만을 수용함으로써 범신관을 전개하였으며, 의암은 그것을 성리학적 논법으로 더 체계화함으로써 인격성을 제거하여 인내천 신관을 확립하였다고 평가되기도 한다.3) 이러한 논의가 일정한 의미를 가진다 하더라도, 동학 천도교· 신관을 외형적으로만 너무 단순하게 바라본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단순하게 규정해 버리면, 해월시대부터 동학교인들은 한울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생 각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천도교. 시대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교인 들은 한울님을 나와는 엄연히 다른 인격적 존재로 생각하고 신앙을 해 왔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물 론 천도교의 역사 속에서 교단, 내에서도 한울님에 대한 관념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인내천 을’ ‘사 람이 한울님이지 사람 외에 따로 한울님이 없다 는’ 무신론으로 해석하는 교인들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한 이돈화의 초기의 글에 근거하여 비록 무신론은 아닐지라도 한울님은 인격적 의지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고집 하는 교인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4)

 

1) 대구대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2) 대표적으로 최동희는 水雲의 신관은 초월적 인격신관으로 보고 있으나, 海月에 와서는 汎神論으로바뀐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義菴에 와서는 “天의 종교성을 없애고 철학적 체계를 갖추려고 했으며, 신앙의 대상이 아니고 단지 천지만물의 생성을 설명하기 위한 원리, 혹은 근원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 하여 탈인격화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최동희 유병덕․ , 韓國宗敎思想史 3 , 연세대출판부, 1999)

3) 이혁배는 수운의 신관에서부터 백세명에 이르는 신관을 분석하면서 초기 수운의 신관에는 초월성과 내재성이 같이 있지만 그래도 초월성이 더 강하던 신관이 해월에게 오면서 초월적인 경향이 배제되고 내재적인 경향만을 수용함으로써 범신관을 전개하였으며, 의암은 그것을 성리학적 논법으로 더 체계화함으로써 인격성을 제거하여 인내천 신관을 확립하였다고 보고 있다. 이후의 이돈화와 백세명 역시 수운의 초월적 경향을 포괄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지만 사실상 범신관에 가까운 신관에 머물렀다고 평가한다. 한마디로 수운의 신관이 지닌 초월적인 경 향과 내재적인 경향 중에서 전자가 배제되고 후자만이 부각, 발전되어 왔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혁배는 이것이 정당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경전적 근거에 입각하여 발전시키지 못하고 당시 시대적 정신과 상황에 지나 치게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라고 다소 비판적으로 보면서 초기의 신관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최근 천도교 일각의 움직임을 의미있게 언급하고 있다 이혁배.( , 「동학 신관에 대한 연구」, 종교학연구 , Vol.7, 1988)

4) 야뢰 이돈화에 의하면, 至氣라고 하는 우주의 실재가 무한한 진화를 거쳐 인간이라는 의식을 가진 존재를 내놓 았고, 신의 관념은 그런 인간의 의식 속에 있는 무궁의 관념 또는 전 진화의 과정을 스스로 관조하는 “지기적 생명의 자기 관조 라고” 한다. 그러므로 至氣라고 하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 외에 따로 의지와 의식을 가진 초월적이고 인격적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다.(이돈화, 新人哲學 ) 그러나 이렇게 보면 이돈화의 한울님은 신앙의 대상으로서 성립되기 어렵다. 비록 일신론처럼 어떤 절대자 창조주로서의․ 인격적 실

 

그러나 실제로 수도와 신앙을 열심히 하는 교인인 경우에는 내게 모셔져 있는 영적 존재(內有神靈)로서 한 울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물론. 그 존재가 바깥에 초월적으로 어떤 형상을 가진 초자연적 인격신이 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천도교인은. 한울님을 내 몸에 모셔져 있는 영적 존재로서 때로는 나의 정성스런 기원 (誠願)에 감응하며 때로는, 영부를 내리기도 하고 강화의 가르침도 내려주는 존재로 생각한다. 그리고 한울님 은 나의 생명활동은 물론 천지만물을 운행 화생시키는․ ‘우주의 근원적 생명 이자’ 만물 생성의 기운(至氣)이라 고 이해한다.

지금까지 동학 천도교의· 신관에 대해 오해가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동학 천도교를· 종교라는 알맹이에서 바 라보기보다는 경전의 문구만 따지거나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사상만을 추출하여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동학 천도교· 신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지 경전과 법설의 몇몇 구절만 가지고 따 져서는 안 되고 동학 천도교인들이, · 생활 속에서 직접 행하고 있는 수도와 신앙의 차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경전의 구절과 법설도 당시의 시대적 맥락과 함께 그 법설이 행해진 발화적 맥락도 함께 살펴보 아야 한다.

2. 수운의 시천주 체험과 그 의미

동학 천도교는․ 수운 최제우( , 1824-1864)의 ‘시천주(侍天主)’의 자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런데 이 자각은 단순한 사색이나 이성적 추론을 통해 얻어낸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얻어낸 것이다. 수운 의 한울님 체험은 일의적이지 않았다 이. 점이 동학 천도교의· 신관을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게 하는 이유이 다 수운은. 처음에는 한울님을 바깥에서 인격적인 상제의 목소리로서 경험했다.

“뜻밖에도 사월에 마음이 선뜩해지고 몸이 떨려서 무슨 병인지 집증할 수도 없고 말로 형 상하기도 어려울 즈음에 어떤 신선의 말씀이 있어 문득 귀에 들리므로.....”5)

「포덕문 에서는」 처음에 귀에 들렸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논학문 에서는」 “몸이 몹시 떨리면서 밖으 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고 안으로 강화의 가르침이 있으되, 보였는데 보이지 아니하고 들렸는데 들리지 아니 하므로 마음이 오히려 이상해져서”(身多戰寒 外有接靈之氣 內有降話之敎 視之不見 聽之不聞)라고 또 다른 체 험을 기술하고 있다. 귀에 들리던 목소리로 체험하던 한울님을 이제는 밖으로 접령하는 기운(外有接靈之氣)’ 과 안으로 강화의 가르침(內有降話之敎)’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월(최시형, 1827-1898)은 “밖 으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음과 안으로 강화의 가르침이 있음을 확실히 투득해야 가히 덕을 세웠다 말할 것이 며 그렇지 않으면 탁명이나 했다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6)이라고 했다 초월적인. 상제로 체험되던 한울님 체 험이 깊어지면서 밖으로는 기운의 떨림으로 체험되고, 안으로는 강화(降話)의 가르침으로 체험되었던 것이 다 이것이. 나중에 시천주 ‘시(侍)’의 풀이에서 ‘내유신령(內有神靈)’과 ‘외유기화(外有氣化)’로 정식화된다. 수운의 깨달음은 한울님이 실재하되 저, 하늘에 계신 초월적 인격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기(靈氣)

 

체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마음에 감응하는 영적 정신적․ 실재로서는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수양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야뢰 역시 초기의 입장과는 달리 후기로 갈수록 이런 靈的 感應體를 인정하고 靈蹟과 奇蹟 역 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천도교는 신에 대한 은총을 간구하기보다는 자기 마음의 수양을 통한 자력적 신 앙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래서 인본주의 종교이긴 하지만, 그 마음의 至誠에 때때로 감응하는 영적 실재를 부정 하진 않는다. 물론 그 실재는 至氣라는 우주에 편만한 氣이다.

5) 최제우, 동경대전 , 「포덕문」

6) 최시형, 해월신사법설 , 「심령지령」

로서 우주에 두루 존재하며 그, 영기가 나를 낳고 또한 내 몸에 모셔져 있다는 것을 깨친 것이다. 그러므로 한 울님은 사변적 증명의 대상이 아니며 바로, 내 몸에 모셔져 있음을 기운과 신령으로 체험해야 하는 존재이다. 소춘 김기전은 시천주 체험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주문을 외우려 할 적에 맨 먼저 가져야 할 것은 이 ‘송주 에’ 대한 의욕이다. 어 떻게 하든지 이 주문 속에 씌어 있는 그대로의 지기대강(至氣大降)을 얻고 내유신령을 증 험하고 지화지기(至化至氣)를 체득해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욕이다. 그래서 이 삼칠(三七) 자를 체험해 보는 일을 자기 평생의 일대사(一大事)로 꼭 인정하는 그것이다. 삼칠자의 체 험은 곧 시천주의 체험이요, 시천주의 체험은 곧 내유신령의 무궁생명의 체득이니, 이것이 인간 일생의 큰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7)

한편 김경재는 수운의 시천주 체험은 “단순히 정신과 구별되는 신체의 체험이 아니라 그것이 통합된 구체 적이고 전일적인 몸으로 체험되고 그, 생명체 심령의 중심부에서 체험되며 그, 몸 안에 신령한 궁극적 실재가 현존한다는 체험 이라고” 한다. 이 체험을 통해 인간생명을 영험하게 하고, 투명하게 하고, 황홀하게 만들면 서 일상적인, 인식론적 주객구조를 돌파하게 하는 체험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한다.8)

동학 천도교는· 무사불섭(無事不涉), 무사불명(無事不命)하는 한울님의 실재성을 믿고 그 한울님을 내 몸에 서 내유신령(內有神靈)과 외유기화(外有氣化)로서 체험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외유접령지기와 내유강 화지교를 체험함으로써 ‘시천주 의’ ‘참뜻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참된 경천(敬天), ’모심 의‘ 실천은 바로 이 체험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모심 에’ 대한 세 번째 풀이인 ‘각지불이(各知不移)’는 한울님의 내유신령과 외유기화가 나의 생명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한울로부터 옮겨져서는 나의 생명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온전히 자각하는 것이다 또는. 다른 그 무엇으로도 옮길 수 없는 자기만의 독특성을 깨달아 실현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 다 그래서. 수운은 시(侍)를 내유신령 외유기화 각지불이의, , 세 차원에서 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9)

수운의 한울님 모심 체험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나중에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즉 한울님 마음이 본래 나의 마음(心靈, 心卽天)이라는 자각으로 또, 최종적으로는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나 라는’ 본래 나와 한울 이 둘이 아니고 하나였다는 것, 즉 인내천(人乃天)의 자각으로까지 그 체험이 확장되고 깊어진다. 이런 점을 잘 살피지 않으면 동학 천도교의· 신관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앞에서처럼 일의적으로 파악하거나, 시대 에 따라 신관이 바뀌었다고 오해를 하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동학 천도교의· ‘한울님 개념은’ 일의적이지 않다 체험이. 깊어짐에 따라 또, 수도의 단계에 따라 한울님에 대한 관념이 깊고 풍부해지며 최종적으로는, 비이원성, 영원성, 무궁성에 대한 자각으 로 나아간다는 것을 잘 살펴야 하겠다.10)

4. 해월 최시형의 ‘님 의’ 영성 시천주는 내 안에서 신령한 한울의 생명과 신성을 발견함과 동시에 내가 전체 우주의 뭇생명들과 깊이 연

 

7) 소춘김기전선생문집 편찬위원회, 소춘김기전선생문집 3 , 국학자료원, 2011, 137쪽. 8) 김경재, 「수운의 시천주 체험과 동학의 신관」, 동학연구 제4집, 29쪽.

9) 최제우, 동경대전 ,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10) 여기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보라. 졸고, 「동학 신관의 재검토 수양론적- 관점에서 본 신관」, 동학학 보 , 제 권 호9 1 2005년 6월.

결되어 있다는 주체의, 존엄성과 생명의 연대성에 대한 자각이다.(內有神靈, 外有氣化) 또한 이런 생명의 연대 성과 떨어져서 나의 생명의 유지될 수 없음에 대한 통렬한 자각이다.(各知不移) ) 이 시천주가 해월에게 가서 는 의미의 확장이 일어난다 수운의. ‘님 은’ 이제 내유신령과, 외유기화, ‘오심즉여심 의’ 무궁성에 그치지 않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까지도 확장된다.

해월은 스승으로부터 이 천도의 이치와 시천주의 체험을 전수받는 한편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기 위 해 수배를 피해 도망을 다니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수도에 정진했다 이. 수도의 과정을 통해 그의 눈 은 점점 더 깊어져서 단지 물리적인 세계의 형상을 보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이 드러나기 이전, 그 공간 안에 담긴 생명의 흐름과 신성을 보기 시작했다. 그에게 자연은 산과 강과 들로 이루어진, 많은 부분이 텅빈 창공 으로 이루어진 그런 물리적 세계가 아니었다.

그에게 자연은 생명의 끊임없는 유동과 숨겨진 높은 의식적 차원들과 빛나는 신성으로 가득 찬 살아있는 세계였다 심지어는. 그 안에 있는 작은 돌멩이 하나 풀, 한포기에도 생명과 의식이 잠복해 있는 그, 자체로 존 중받아야 할 아름답고 거룩한 ‘물(物)’이었다 그에게. 생물 무생물이라는, 구분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더 본질 적인 차원에서 그들은 비록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안에 생명과 의식을 함유하고 있는, 나아가 본 래 우주의 하나의 영을 함유하고 있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모두 하늘(天)이었으며 ‘님 이었다’ . 이를 그 는 ‘물물천, 사사천’(物物天事事天)  )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물 과’ ‘일 자체를’ ‘님 으로’ 본 것이었다 이. 물에는 무기물까지 포함하는 것이며 일을, ‘님 으로’ 보았다는 것은 인간의, 노동 자체를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 다.

이런 감각은 점점 더 예민해져서 아침의 새소리를 들으면서도 ‘시천주 의’ 소리로 느꼈고, 어린아이가 나막 신을 신고 땅을 쿵쿵 밟는 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였다 이제. 그에게 자연은, 천지는, 말 그 대로 어머니였으며, 아버지였다. 생명은 육신의 부모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다.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생명 은, 그리고 영은 하늘로부터, 천지로부터 온다. 그렇기에 천지가 나의 부모인 것은, 근원적인 차원에서 그에 겐 부인할 수 없는 진실로 느껴졌다. 그는 그것을 마치 잃어버린 부모를 다시 찾은 감격으로 ‘천지를 부모님 처럼 섬겨야 한다 고.’ 역설했다.13)

그러므로 이는 단순히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차원의 환경론자들이나 지구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봐야한 다는 생태론자들과도 엄연히 구분될 뿐 아니라 원리적, 차원에서 ‘건칭부곤칭모 를’ 언급했던 성리학자들과도 구분된다 해월은. 천지의 더 깊은 차원을 들여다 본 것이다. 아직 주름져서 펼쳐져 있지 않은 드러난, 차원을 가능하게 하는 숨겨진 질서를 불연이면서, 기연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만물 화생의 이치 를’ 그는 온몸으 로 체득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해월에게 천지자연은 비어 있는 공간도 아니고 기본, 입자들의 단순한 물리적 총합도 아니다.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우주적 생명이자 모든, 만물을 낳는 생명의 근원 영적, 활력과 기운으로 가득 차 있는 유기 적 생명체일 뿐 아니라 받들어 모셔야 할 ‘님 이었다 또한’ . 그 님은 나의 마음과 기운에 감응하는 하늘마음이 자 하늘기운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수운의 시천주는 해월에 와서 그 의미가 확장되어 모든 만물이 거룩한 하 늘을 모시고 있으며 나아가, 천지 자체가 하늘님이라는 사유로 확장되면서 생명철학적 성격이 분명해졌다. 한편 해월은 시천주라는 표현보다는 ‘심즉천’ )과 ‘양천주’ )를 더 강조한다. ‘내유신령 보다는’ ‘심즉천 을’ 강조하는 해월에게 ‘천 은’ 초월적 절대자라기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내재하고 있는 마음의 본체 또는, ‘심령 의’ 의미가 일차적이다. 그에게는 마음이 곧 가장 일차적으로 모셔야 할 거룩한 ‘님 인’ 것이다. 마음을 떠나 따로 섬겨야 할 ‘님 이’ 없다. 마음이 편치 못하고, 탐욕과 분노, 두려움과 원망 같은 온갖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있 으면서 공중의 하늘만 섬긴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서 늘 맑고 밝고 온화하고 편안한 마음을 만드는 것이 모든 일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음 보호하기를 갓난 아기 보호하듯이 하며 엷은, 얼음을 밟듯이 하라고 했던 것이다. ) 마음이야말로 가장 먼저 모시고 섬겨야하 는 ‘님 이었던’ 것이다 해월의. 유명한 삼경(三敬), 즉 경천 경인 경물은· · 섬겨야 할 ‘님 이’ 누구인지를 잘 보여준 다고 하겠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삼경에서 첫 번째인 경천이, 공중의 하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 의 중심인 마음을 섬기는 것이란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해월에게서 무엇보다도 앞장서서 섬겨야 할 님은 바로 가난하고 빈천한 자들이었다. 가장 소 외받고 억압받는 이들이 그에겐 가장 받들어 모셔야 할 거룩한 ‘님 이었다’ . 노비, 백정, 종들은 말할 것도 없 고, 당시 며느리들도 천대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벼짜는 며느리가 한울님’  )이라는 유명한 법설 을 남기기도 하였다.

내가 청주를 지나다가 서택순의 집에서 그 며느리의 베 짜는 소리를 듣고 서군에게 묻기 를 「저 누가 베를 짜는 소리인가 하니」 , 서군이 대답하기를 「제 며느리가 베를 짭니다」하는 지라, 내가 또 묻기를 「그대의 며느리가 베 짜는 것이 참으로 그대의 며느리가 베 짜는 것인가 하니」 , 서군이 나의 말을 분간치 못하더라. 어찌 서군뿐이랴. 도인의 집에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 이르지 말고 하늘님이 강림하셨다 말하라.18)

이 ‘베짜는 한울님 의’ 일화는 계급과 귀천, 남녀노소를 떠나 모든 차별적 관계를 혁파하라는 것이며, 특히 당시 남존여비의 현실에서 여성에 대한 모든 차별적 시선을 거두고 ‘님 으로’ 높여 받들라는 엄중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유교적 가부장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도전이 바로 동학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누구보다도 무시당하고 차별받던 아이들에게 주목하여 “아이가 바로 한울님”이라고 하였다. 당시에는 매를 맞고 학대당하는 아이도 많았다 어린이의. 인권이라는 것은 없었다. 영아사망률도 높 았고 한집에서, 보통 7-8명의 아이들을 낳기에 오늘날같이 아이들을 애지중지할 여유가 없었다. 해월은 그런 애물단지같은 천덕꾸러기 “아이들이 바로 ‘한울님 이니’ 절대로 때리지 말라” )고 하였다 굉장히. 평범한 가르 침 같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엄청난 혁명 같은 가르침이었다. 실제로 해월의 이 가르침이 1920년대 김기 전 방정환의, 어린이 운동으로 계승되었다.

요컨대 해월은 천지를 곧 ‘님 으로’ 보는가 하면 모든 사물 하나하나를 ‘님 으로’ 보고 특히, 천대받는 며느리, 어린이, 빈천자를 ‘님 으로’ 보았다. 또한 수운의 ‘내유신령 을’ 나와 다른 초월적 존재로 보기보다는 본래의 나 의 심령으로 이해함으로써 나의 마음을 떠나 한울이 따로 없고 마음이, 곧 한울(心卽天)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내 마음을 ‘님 으로’ 섬기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상의 수도로서 역설했다. 이러한 해월이 천지만물을, 빈천한 자를, 여성을, 어린이를 한울 님 으로‘ ’ 높여 섬기라고 함으로써 계급해방, 여성해방, 어린이해방, 나아가 생태 해방을 촉구하게 되었다.

5. 맺음말

동학 천도교의· 한울 님‘ ’(天)을 기존 연구에서는 범천론 범재신론, 등으로 규정하곤 했다 심지어는. 기독교와 같은 초월적 일신관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수운의 천은 그의 체험이 깊어짐에 따라 우주적 영기, 그 리고 내 안에 내재한 거룩한 영으로 상정된다. 나아가 그 영과 나의 본심이 하나라는 자각(오심즉여심)을 하 면서 나의 본질과 우주적 본질의 동일성에 대한 자각 영원성에, 대한 자각으로 나아갔다. 따라서 동학·천도교 의 ‘한울님 개념은’ 일의적으로 파악될 수 없으며, 체험이 깊어짐에 따라, 수도의 단계에 따라 한울님에 대한 이해가 깊고 풍부해졌다 그러므로. 그 다양성과 중층성을 본체와 현상 주체와, 객체 인격성과, 비인격성의 관 계를 통해 잘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동학의 ‘한울님 이해에서’ 특징적인 것은, 해월의 시대에 와서 이 ‘님 에’ 확장이 일어나면서, 천지를 곧 받들어 모셔야 하는 ‘님 으로’ 보는가 하면, 모든 사물 하나하나를 ‘님 으로’ 보고, 특히 천대받는 며느리, 어 린이 빈천자를, ‘님 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특히. 마음을 님으로 보고 그, 마음을 한울님으로 잘 받들어 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수도의 요체로 제시하였다 그래서. 그가 강조하고 있는 삼경(三敬)의 첫째 경천은, 곧 마음 을 공경하는 것을 의미했다. 삼경의 경천 경인 경물은· · 섬겨야 할 ‘님 이’ 누구인지를 잘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동학의 ‘님 의’ 영성은 단순한 신학 존재론이, 아니라 ‘만물공경 의’ 생태적 영성으로 가장, 낮은 자들을 위한 해 방의 철학으로 나아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