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8

상키야 학파 - 위키백과, サーンキヤ学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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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키야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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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키야 학파(산스크리트어सांख्य) 또는 샹키아 학파는 힌두교의 정통 육파철학 중의 하나로, 불교 경전 및 논서에서는 수론파(數論派)로 한역(漢譯)되어 불리고 있다.[1] 힌두교의 전통에 따르면, 상키아 학파의 시조는 카필라(Kapila: BC 4~3세기)이다.[1] 그러나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랜 원전은 이스바라크리슈나(Iśvarakṛṣṇa · 자재흑 · 自在黑: AD 4세기 또는 3세기)의 《삼키아송(Sāṁkhya Kārikā)》이다.[2]

상키아 학파는 힌두교의 정통 육파철학 중 가장 오랜 학파이다.[1] 산스크리트어 상키아(सांख्य · Sāṁkhya)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숫자(Number)"로,[3] 이 때문에 상키아 학파는 수론파(數論派)로 한역되었다. 이 때의 수(數)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수열 또는 나열(enumeration)"을 의미하는데, 즉 삼키아 학파(수론파)라는 명칭은 우주의 전개 원리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3]

상키아 학파에서는 두 가지 근본 원리인 푸루샤(Purusa · Cosmic Spirit)와 프라크리티(Prakriti · Cosmic Substance)를 포함한 총 25가지의 우주적 전개 원리들을 통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계층적 구성 부분들을 밝히고 있으며 또한 우주의 전개와 해체를 설명하고 있다.[1][3][4] 그런데, 힌두 철학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25가지의 우주적 전개 원리들을 보여주는 상키아 학파의 철학은 이론에 그치고 마는 형이상학적 담론 또는 사색이 결코 아니며,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제공되는, 존재 즉 인간과 우주에 대한 철학적 설명 또는 견해이다.[5]

 상키아 철학의 목적은 (비참)의 원인을 영원히 제거할 지식을 제공하여서 영혼이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것("모크샤 · 해탈")이다.[5]

철학 개요

상키아 학파는, 우파니샤드의 철학자인 웃다라카(Uddalaka Aruni)의 1원론적(一元論的) 철학인, (有: sat)가 정신(스피릿)적인 원리이면서 동시에 물질(질료) 전개의 원리라는 견해를 비판하고 정신(스피릿)적 원리로서의 푸루샤(Cosmic Spirit)와 질료적인 원리로서의 프라크리티(Cosmic Substance)라고 하는 서로 별개인 두 가지 근본 원리 또는 실체에 의거하여 세계가 전개되고 해체된다는 2원론을 수립하였다. 

처음에는 이 2원론을 통일하는 최고신으로서의 브라만(梵)을 시인하고 유신론에 바탕을 두었으나 후에는 이를 부정하고 무신론적 2원관이 되었다.[1]

상키아 학파에 따르면, 푸루샤는 순수의식으로서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고 다만 프라크리티를 관조(觀照)할 따름이다. 그러나 질료인(質料因)인 프라크리티는 물질(질료)을 전개하는 힘을 지니며 그 결과로서 나오는 물질은 구성의 우열에 따라 차이가 생겨나고 푸루샤와 결합하여 개체(아항카라 · Ahamkara)가 된다. 

개체(아항카라 · Ahamkara)의 세계는 (苦)인데, (苦)는 푸루샤와 프라크리티결합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푸루샤가 프라크리티를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 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해탈(解脫)이다. 

그렇지만 푸루샤는 불변순수(不變純粹)이기 때문에 해탈에 의한 변화는 없다. 해탈을 위한 푸루샤의 (智), 즉 아트마 즈냐나를 얻기 위해서는 요가의 수행(修行)이 강조되었다.[1]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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サーンキヤ学派 [일어한역]

출처 : 무료 백과 사전 "Wikipedia (Wikipedia)"

サーンキヤ学派

(산키야학파는साङ्ख्यदर्शनम्, Sāṅkhya-darśana )는 인도 철학 의 학파의 하나로 현대에서는 육파 철학 의 하나로 꼽힌다 [1] . 세계의 근원으로서 정신 원리인 프루샤 (가가 [2] , 자기 [3] )와 물질 원리인 프랙티티 ( 자성 [2] , 원질 [3] )라는 두 가지 궁극적 실체 원리를 가정한다. 엄밀한 이원론 이며, 세계는 프루샤의 관조를 계기로 프랙티티로부터 전개해 생긴다고 생각했다.


サーンキヤ学派, 혹은 잔키야와도. 또한 Sāṅkhya(쌈키야)는 '세기', '생각 맞추기'라는 의미로 수론 구자체 :論), 수론파 , 수론학파 모두 [주석 1] .

또한 나츠메 소세키 에 영향을 미치고 무관심한 비인정을 테마로 한 실험적 소설 ' 쿠사 베개 '가 쓰여졌다 .

역사 편집 ]

「산키야」라는 말은 「마하버라타」에 있어서, 지식에 의해 해탈 하기 위한 길을 의미하고 있었다 [4] .

시계열적으로 낡은 곳으로부터 설명하면, 쌈키야 학파를 연 것은 카피라에서 그 제자에 판차시카  있었다고 한다 . 하지만 카피라판차 사카에 대해 전승되고 있는 것은 너무 전설적 이며, 그들에 대해 확실한 것은 잘 모르고 있다 [4] . サーンキヤ 사상을 특징짓고 있는 2원론적인 사고방식은, 카피라가 생각해 냈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리그 베다」에 있던 것이다 [ 4 ] .サーンキヤ의 특징적인 개념은 ' 마하버라타 '의 일부를 이루는 ' 바가바드 기타 '(기원전 수세기 무렵의 문헌)에 남아 있다. 그 밖에, サーンキヤ사상을 언급하는 것에는 「모쿠샤 다르마」, 의학서 「차라카・산히터」등이 있다 [4] . 불교의 ' 부다차리타 '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자료에 의해, 혼자서 쌈키야라고 해도, 초기에는 다양한 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4] . 그리고 그 다양한 설이 3세기 쯤 바르샤가냐 의 ' 샤슈티 탄트라 '( Ṣaṣṭitantra , 육십과론 [5] )에서 체계화되어 교리화된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단, '샤슈티 탄트라'는 현존하지 않고, 그 내용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다른 문서 내에서의 언급을 바탕으로 추찰되고 있을 뿐이다) [4] . 4~5세기 무렵, 이슈바라 크리슈나에 의해 ' 산키야 칼리카 (頌, 주)'라는 학설강요가 적혀 있었지만, 이것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텍스트이다. 이 책은 「『샤슈티・탄트라』의 요점을 정리했다」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샤슈티~」의 뒤에 태어난 사상도 포함해 해설되고 있다[4 ] . 여기까지가 '고전 삼키야'라고 불리고 있다.

15세기 무렵 『산키야 수트라』, 16세기 무렵 『타트바 사마사』가 쓰여졌다. 이 내용은 고전적 학설과 일치합니다. 이 무렵에는, サーンキヤ 학파는 쇠퇴하고 있어, 베단타 학파가 우세가 되어 있었다. 16세기 후반이 되면 비쥬냐나 빅시가 ' 프라바차나 바샤 '라는 '산키야 수트라'에 대한 주석서를 저술했지만, 이것은 세력 우세한 베던타를 따라잡기 위해 유신론적인 사고방식을 채용한 것으로 이다 [4] .

사상 편집 ]

잔키야 철학의 세계 전개 (25 포기) [6] [3]

잔키야 학파는 엄밀한 이원론을 특징으로 하며, 그 철저성은 세계의 사상사상에서도 드물다 [6] . 세계는 어느 하나로부터 전개해, 혹은 이것이 변화해 형성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을 파리나마 베다(전변·개전설)라고 하고, 원인 속에 결과가 내재한다고 하는 인중 유과  이지만 , 베다 우파니샤드 의 일원론이나, 프랙티티(근본 원질)로부터의 세계 전개를 주장하는 잔키야 학파는 이것에 해당한다. 정신 원리인 프루샤는 영원히 변화하지 않는 실체 이다 . 프랙티티에는, 사트바(sattva/ सत्त्व , 순질), 라자스(Rajas/ रजस्, 격질), 타마스(tamas/ तमस्, 봉질·암질)라고 하는 상호에 관련된 트리구나(tri-guṇa, 3개의) 구성요소, 삼특성, 삼덕)이 있고, 첫 단계에서는 평형하고 평형 상태에 있을 때 프랙티티는 변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프루샤의 관찰(관조, 관심)을 계기로 평형이 깨지면, 프라크리티로부터 다양한 원리가 전개(유출)해 가게 된다. 프랙티티로부터 알고 있는 일의 근원 상태인 부디(Buddhi, 각) 또는 마해트(mahat, 대)가 전개되고, 한층 더 전개가 진행되어 아한카라(Ahaṅkāra, 참 또는 아집, 자아의식. 아한은 “나”, 카라는 "행위"를 의미한다)가 생긴다 [6] . 아한카라 안의 트리그나의 균형이 라자스의 활동에 의해 무너지면 앞으로 마나스(의, 심근, Manas, 사고기관), 오감각기관(Jñānendriya, 오지근, 눈·귀·코·혀·피부) , 오행동기관(Karmendriya, 오작근, 발성기관·파악기관(손)·보행기관(발)·배설기관·생식기관), 판차·탄마트라(5유 또는 5유량) , 5 개의 단적인 것 [주석 2] )이 전개되어 발생한다. 판차·탄마트라는 감각 기관에 의해 포착되는 영역을 가리키며, 성유(청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음성)·촉유(피부로 파악하는 감각)·색 유(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색이나 형태)·미유(미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맛)・향유(후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향기・냄새)이다 [6] . 이 오유에서 5 대 (Puncha Bota 또는 Pancha Mahabhuta (Pañca Mahābhūta ), 오조 대원소 [7] )가 발생합니다. 5대는 토대(Pṛthivī, 프리티비 혹은 Bhūmi, 부미)·물대(Āpa, 아파 혹은 Jala, 자라)·화대(Agni, 아그니 혹은 Tejas, 테자스)·풍대(Vāyu, 바유)의 4원소 에 원소에 존재와 운동의 장을 주는 공대(Ākāśa, 아카샤, 허공)를 더한 5개이다. 프루샤는 이러한 전개만을 관찰하며, 그 자체는 변화하지 않는다.

「프르샤, 프랙티티, 부디(마햇), 아한카라, 십일근(마나스・오감각 기관・오행동 기관), 판차・탄마트라, 판차・부타」를 맞추어 「255 포기」(25의 원리 )라고 부른다 [6] [8] . (“포기(Tattva)”는 진리를 의미한다 [9] .)

부디는, 프랙티티로부터 전개되어 생긴 것으로, 인식·정신 활동의 근원이지만, 신체의 일기관에 지나지 않고, 프르샤와는 다른 것이다. 부디 속 라자스의 활동으로 더욱 전개가 진행되어 아한카라가 생긴다. 이것은 자기에의 집착을 특징으로 하고, 개인의식·개별화를 일으키지만, 부디와 같이 물질적인 것으로, 신체 속의 일기관으로 된다. 아한칼라는 물질 원리인 프랙티티로부터 생긴 부디를 정신 원리인 프루샤라고 오인해 버린다. 이것이 윤회 의 원인이라고 생각되었다. 플루샤는 프랙티티를 관조함으로써 물질과 결합하고, 물질에 한정됨으로써 본래의 순수 청정성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부디, 아한카라, 판차 탄마트라"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육체의 사후에도 멸망하지 않는 미세한 신체(미사이신, 링가 또는 링가 샤릴라(liṅga-śarīra))는 프루샤와 함께 윤회에 갇힌다. 프루샤는 본성상 이미 해탈한 청정한 것이기 때문에, 윤회에서 해탈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프루샤를 청정하고 그 본성을 현출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십오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요가 수행을 해야 한다고 여겨졌다 [6] .

즉 잔키야 학파에게 있어서槅槃[주석 3] 이란, 프루샤(자기)가 프랙티티에 완전히 무관심이 되어, 자기 안에 침잠하는 것(Kaivalya, 독존, 카이바리아)이었다.

잔키야 학파는 요가 학파 와 짝을 이루며 요가 를 이론면에서 기초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수용 편집 ]

김칠십론 편집 ]

동아시아 에서는 쌈키야는 '수론'으로 불리며 ' 대비파사론 ' [10] 과 ' 도사론 ' [11] 의 비판 대상으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6세기 의 진죄역 ' 김칠십론 '에 의해 사상이 전해졌다 [12] . '김칠십론'은 '산키야 칼리카'의 주석서 의 한역 이지만, 산스크리트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12] .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의 원록 10년( 1697년 )에 화각본이 출판된 이래, 메이지까지 바이셰시카 학파 의 「카츠무네십구의론」과 함께 활발히 연구되어, 많은 주석서가 저술되어 [13 ] 주요 주석자에게 효응 · 법주 · 쾌도 있다.

메이지 37년( 1904년 )에는, 타카쿠스 순지 로에 의해 프랑스어 번역이 만들어졌다 [14] .

나츠메 소세키 편집 ]

쌈키야의 관반관은 나츠메 소세키 에 영향을 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소세키는, 일고 시대에 이노우에 테츠지 로에 의한 잔키야 철학의 강의를 받아 감명을 받고, 무관심한 비인정을 테마로 「쿠사베라」를 저술했다 [3] .

일본 연구자 편집 ]

각주 편집 ]

주석 편집 ]

  1.  일본의 낡은 문헌에서는 「수론파」나 「수론학파」등으로 하는 것 외에, 때때로 불교의 입장으로부터 「 수론 외도 .
  2. ^ 미야모토 케이이치는 「인도의 「2원 논철학」을 읽는다」로, 음성 등은 지각 기관에 있어서, 파악해야 할 대상으로서 단적으로 거기에 있는 것이며, 「탄마트라」의 번역은 「미세한 요소」 「소립자 "이 아니라 "5개의 단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3. ^ 외로움, 외로움. 윤회의 고통이 끊어진 절대적 행복.

출처 편집 ]

  1. ↑ “ 육파 철학 ”. 브리타니카 국제대백과사전 소항목사전. 2020년 8월 23일 열람.
  2. b 『이노우에 엔 료선집 제7권』「인도 철학 강요」 이노우에 엔 료 동양 대학 국제 철학 연구 센터
  3. e 미야모토 케이이치「인도의 「2원 논철학」을 읽는다」춘추사, 2008년
  4. ↑ h 『철학 사상사전』이와나미 서점 , 1998년 pp.582-583 모기 히데아츠 집필 담당
  5. ↑ 혼다 1953 .
  6. f 가와사키 정신 “인도의 사상” 방송 대학 교육 진흥회, 1993년 3월
  7. ↑ 보자의 라사 이론과 라사의 3단계설 혼다 요시오 . 『비교 이론학 연구』 제3호 히로시마 대학 비교 논리학 프로젝트 연구 센터 연구 성과 보고서(2005)
  8. ↑ 『이노우에 엔 료선집 제7권』「인도 철학 강요」 이노우에 엔 료 동양 대학 국제 철학 연구 센터
  9. ""진실"-룽어 합성어 satya-kriyā를 둘러싸고-"원실 류야 대학 현대 인도 연구 센터
  10. 미야자카 아츠카쓰인도 철학 사상과 밀교 - 서설」 「현대 밀교」 제7호, 토야마 전법원, 2018년 75 페이지.
  11. ↑ 오키 츠 2019 , p. 569.
  12. ↑ b 금칠십론』 - 코트뱅크
  13. ↑ 오키 츠 2016 , p. 667.
  14. 카타오카 케이 「「인철」은 무엇을 목표로 해 왔는가?」 「남아시아 연구」 제20호, 일본 남아시아 학회, 2008년 153쪽.

참고 문헌 편집 ]

관련 항목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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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생애와 사상 – 마성 글, - 산자야 (13 mentions)

붓다의 생애와 사상 – 디지털 불교

붓다의 생애와 사상


불타(佛陀)와 불전(佛傳)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이 글은 설법연구원에서 발행하는 說法文案 (2003년 4월호), pp.11-19에 게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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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이번 호부터 “붓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불교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붓다의 생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불교계에서는 출가 · 재가를 막론하고, 붓다의 생애를 너무나 가볍게 여기거나 거의 무시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재가 불자들은 붓다의 생애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국불교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인 기복적인 신앙과 잘못된 신앙 형태들은 붓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야기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붓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자신의 인격향상과 올바른 불교관 정립은 물론 잘못된 불교 신앙을 바로 잡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500여 년 간 인류의 스승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깨우쳐 주었고, 불교의 개조(開祖)로서 받들어져 온 고따마 붓다(Gotama Buddha)께서 실제로 어떠한 생애를 보냈으며, 또 그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하여 가능한 한 정확히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 공부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붓다의 생애 속에는 신화적(神話的) · 전설적(傳說的)인 요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붓다께서 가르쳤다는 교설(敎說) 속에도 후세 사람들의 가필(加筆)과 윤색(潤色)이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러한 후대의 요소들을 되도록 배제(排除)하고,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로서의 붓다의 생애와 그 가르침을 가능한 한 사실에 가깝게 접근하고자 합니다.

사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실시해 온 연구 방법론입니다. 주로 서구의 불교 학자들은 신화와 전설로서의 붓다가 아닌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붓다의 모습을 사실 그대로 드러내고자 시도하였으며, 지금도 이러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기영(李箕永) 박사가 처음으로 이러한 접근 방법으로 붓다의 생애를 다루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이기영 지음, <석가> 세계대사상전집 5, (서울: 지문각, 1965)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의 불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높게 평가 받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출판될 당시(1965)에는 아직 학문적으로 이러한 접근 방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만일 이 책이 한국의 불자들에게 많이 읽혀졌더라면 한국불교는 지금보다는 좀더 나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의 상황보다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이제는 초기불교에 대한 이해와 아울러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붓다의 생애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신화와 전설로 가득 찬 불전문학(佛傳文學)에 기록된 것을 역사적 사실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붓다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연속 강좌를 마련하게 되었음을 밝혀둡니다.

2. 붓다의 호칭(呼稱)과 불전(佛傳)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고따마 붓다를 가리킬 때, 일본의 불교 학자들은 대부분 ‘석존(釋尊)‘이라고 부릅니다. 예로부터 중국 · 한국 · 일본에서는 관례적으로 ‘석가족(釋迦族)의 존자(尊者)’라는 의미로 ‘석존(釋尊)’이란 존칭을 널리 사용해 왔습니다. 이 말은 원래 중국에서 ‘석가모니 세존(釋迦牟尼 世尊)’ (혹은 釋迦牟尼尊) 또는 ‘석가세존(釋迦世尊)’ (혹은 釋迦尊)이라고 하던 것을 줄여 쓴 말입니다.1)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석가(釋迦)’라고 하는 호칭도 사용되고 있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붓다가 출생한 종족의 이름이지 자신의 이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로부터 관용적으로 쓰여진 익숙해진 호칭입니다.2) 그런데 “불타를 말할 때에는 반드시 석가모니, 또는 석존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3)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석존의 호칭으로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붓다(Buddha)’입니다. 이것은 인도 · 동남아시아 및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널리 채용되고 있는 호칭입니다. 중국에서는 ‘불(佛)’, ‘불타(佛陀)’로 음사(音寫)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4) ‘붓다’라는 말은 불교의 전용어가 되었지만, 본래는 보통명사이며 자이나교(Jaina)에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붓다란 ‘깨달은 사람(覺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석존 이외에 또 다른 붓다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이미 초기불교에서도 석존 이전에 여섯 명의 붓다가 존재하였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존을 고타마(Gotama)라고 하는 그의 족성(族姓)에 따라 고타마 붓다(Gotama Buddha)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팔리어 경전에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 용례가 있어5) 흔히 남방불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호칭입니다. 서양의 많은 학자들도 이 명칭을 쓰고 있으며, 근래에는 일본의 학자들도 즐겨 사용하게 되었습니다.6)

그러나 이기영 박사는 그의 저서 <석가>라는 책에서 붓다란 말은 불교의 이상적 존재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서 고유명사가 아니기 때문에 불교의 개조(開祖) 개인을 지칭할 때에는 ‘고따마 붓다’란 호칭을 쓰거나 ‘석가모니(釋迦牟尼)’란 존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석가모니는 원래의 인도음 샤캬무니(Sakyamuni)를 한자로 음사한 것인데, ‘샤캬(釋迦)’란 고따마 붓다가 탄생한 종족의 이름이고, ‘무니(牟尼)’란 ‘거룩한 분'(聖者)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샤캬무니’라고 하면 샤캬족 출신의 성자란 뜻이 되므로 고유명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7)

필자는 개인적으로 ‘붓다’라는 호칭을 선호합니다만 여기에서는 특별한 구별 없이 ‘붓다(佛陀)’, ‘석존(釋尊)’, ‘세존(世尊)’, ‘석가모니(釋迦牟尼)’ 등의 호칭을 두루 사용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 여러 호칭들은 서로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붓다’라는 호칭이 낮춤말처럼 들릴지 모르나, 이 단어 속에는 이미 깨달은 자라는 뜻과 존경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높임말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붓다의 전기에 관한 자료는 매우 많습니다. 불교경전 중에서 부처님의 생애를 주제로 한 것을 일반적으로 ‘불전(佛傳)’, ‘불전경전(佛傳經典)’, ‘불전문학(佛傳文學)’이라고 합니다. 불전은 산스끄리뜨어, 팔리어, 한역(漢譯), 티베트어 역본(譯本) 등 오래된 불전만 하더라도 20여 종에 이릅니다.8) 그 중 중요한 것으로는 산스끄리뜨어로 씌어진 <마하바스뚜(Mahavastu, 大事)>, <랄리따비스따라(Lalitavistara)>와 불교시인 아쉬바고사(Asvaghosa, 馬鳴; A.D. 2세기경)에 의해서 카비야체(體)라는 아름다운 미문(美文)들로 씌어진 <붓다짜리따(Buddhacarita, 佛所行讚)>, <자따까(Jataka, 本生潭)>의 서문에 해당되는 인연품(因緣品), 한역으로는 <보요경(普曜經)>,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등이 있습니다.9)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붓다가 입멸한 후 수 백년이 지난 뒤 성립한 것이고, 더구나 불타로서의 석존의 위대함을 찬탄하는 입장에서 씌어진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여러 가지 창작과 가탁(假託)이 부가되어 비역사적·신화적인 요소가 대단히 많습니다. 따라서 붓다를 역사적 존재로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불전문학의 원천이 되었던 것, 다시 말해서 초기불교 성전인 <율장(律藏)>과 <아함경(阿含經)> 가운데 전해지고 있는 붓다의 전기적인 기술을 중심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초기성전의 기술은 불전을 작성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하여진 것이 아니라 교단 규칙의 제정이나 중요한 설법과 관련하여 붓다의 사적(事蹟)을 단편적으로 말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사적 역시 창작이나 신화적 요소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인간 붓다의 생애 전모를 있는 그대로 묘사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겠지만, 초기성전이 전하는 바에 의해서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붓다의 단서는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10)

3. 붓다의 전기(傳記)를 대하는 태도

지금까지 우리는 불전 혹은 불전문학에 기록된 내용으로써 붓다를 이해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헌들을 통해서는 역사적인 붓다의 생애 혹은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붓다를 올바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문헌에 나타난 부처님의 일대기는 너무나 신격화(神格化)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쉬바고사(馬鳴)에 의해 씌어진 장편 서사시(敍事詩) <불소행찬(佛所行讚)>이 그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아쉬바고사는 인도 카니쉬카(Kanisika)왕과 동시대의 인물로서 대략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11) 불교시인(佛敎詩人)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인물입니다. 이 책은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붓다의 모습보다도 신격화된 부처님의 덕[佛德]을 찬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헌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부처님은 우리와 너무나 동떨어진 인물입니다. 그의 능력은 감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스리랑카 출신 불교 학자인 칼루파하나(David J. Kalupahana)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습니다.

“과거의 여러 종교 지도자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붓다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도 온갖 형태의 신화와 전설들로 점철되어 왔다. 신화와 전설을 역사적인 실제 사건과 구분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려운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열렬한 광신도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문제이다. 신화를 해석하는 사람은 신화란 독실한 신도의 소박한 상상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광신도의 저항이 정당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좀더 냉정하고 신중하게 분석해 보면, 신화란 극적인 설명이 요구되는 실제의 역사적 사건들이나 복잡한 인물 성격과 관련하여 감정이나 정신상의 사태들을 상징화한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12)

위에서 지적한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붓다의 생애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생애에 있어서 신화와 전설의 부분을 삭제한다고 해서 부처님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붓다의 모습을 통해 진실로 인류의 스승으로서의 참모습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붓다의 생애를 공부하는 목적은 그러한 붓다의 생애를 거울삼아 우리들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유의하여 역사적 인물로서의 고따마 붓다의 생애와 사상을 재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근대 학문의 원전비평(原典批評)의 방법을 채택할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의 성전(聖典)이라 할지라도 역사적 소산(所産)임을 인정하고, 그것은 사상의 발전에 기초하여 성립한 것임을 생각할 때, 후대의 전적(典籍)보다도 오래된 전적에 의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된 전적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부분에 의거할 것입니다.13)

둘째, 우리는 고고학적(考古學的) 자료에 의거하여 확실한 증거를 찾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성전 중의 가장 오래된 부분에는 비교적 신화적 요소나 붓다의 초인화(超人化), 신격화(神格化)는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혀 신화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문헌에 근거하는 한, 신화적이지 않은 석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묘사(描寫)를 꿰뚫고, 역사적 면모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 즉 고고학적 자료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14)

셋째, 우리는 불교경전 중의 가장 오래된 것과 그와 거의 동시대의 다른 종교의 성전과를 비교해서 그 사상의 같고 다름을 밝히는 것이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붓다의 교설이 지니는 의의(意義)를 밝히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15)

넷째, 우리는 남방계의 불전(佛傳)에 의거하여 붓다의 생애를 조명할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부처님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불전경전(佛傳經典)은 남방에 전해진 것(南傳)과 북방에 전해진 것(北傳)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생애를 표현하는 방법에도 남전과 북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남방의 불전에는 부처님의 생애를 ①탄생, ②깨달음을 이루다(成道), ③최초의 설법(初轉法輪), ④열반에 들다 라는 네 가지 사건(四大佛事)을 중심으로 설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와는 달리 북방의 불전에서는 ①도솔천에서 내려오시다(下天), ②마야부인의 태내에 들다(托胎), ③탄생(降誕), ④출가(出家), ⑤마귀 파순과 싸워 이기시다(降魔), ⑥깨달음을 여시다(成道), ⑦처음으로 설법하시다(初轉法輪), ⑧열반에 들다(涅槃)의 여덟 가지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기에 더 상세히 하여 청년 시대, 결혼, 규방 생활, 고행, 깨달음의 자리에 있다 라고 하는 네 가지 항목이 더 추가되어 12 항목으로 된 것도 있습니다.16)

이와 같이 북전의 불전에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가정 생활을 거쳐 출가하고 고행해서 마왕을 항복 받고 성도하기까지의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주로 남전의 불전에 의거하여 붓다의 생애를 조명해 나갈 것입니다.

Notes:

1) 비교적 오래된 ‘釋尊’의 용례는 曇無讖 譯 <金剛明經> 권1에 나온다.
2) 후지타 코타츠 外, 권오민 옮김, <초기·부파불교의 역사> (서울: 민족사, 1989), p.34.
3) 와다나베 쇼오꼬 지음·法頂 옮김, <불타 석가모니> (서울: 샘터, 1990), p.5.
4) 후지타 코타츠 外, 앞의 책, p.35.
5) 이를테면 <테라가타(Theragatha, 長老偈> 91게송.
6) 후지타 코타츠 外, 앞의 책, p.35.
7) 李箕永 著, <석가> 세계대사상전집 5, (서울: 知文閣, 1965), pp.278-281 참조.
8) 후지타 코타츠 外, p.35.
9) 스가누마 아키라 지음·편집부 옮김, <부처님과 그 제자들> (서울: 봉은사출판부, 1991), p.35.
10) 후지타 코타츠 外, 앞의 책, p.35.
11) E. H. Johnston, Buddhacarita or Acts of the Buddha (Delhi: Matilal Banarasidass, 1984), p. xvi, (初版本은 Calcutta에서 1935년에 刊行되었다. 金浩星, “Buddhacarita(불소행찬)에 나타난 초기 Sankhya 思想 硏究” (碩士學位論文, 東國大 大學院, 1988), p.3에서 재인용.
12) David. J. Kalupahana, A History of Buddhist Philosophy: Continuities and Discontinuities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2); D. J. 칼루파하나, 김종옥 옮김, <불교철학사-연속과 불연속> (서울: 시공사, 1996), p.54.
13) 이기영, <석가>, pp.1-2 참조.
14) 이기영, <석가>, p.2.
15) 이기영, <석가>, p.2.
16) 스가누마 아키라 지음, 앞의 책, pp.35-36 참조.

출가생활의 결실에 관한 경 5

디가니까야 5회 
출가생활의 결실에 관한 경 5

빠알리대장경(디가니까야)
디가니까야 5회 출가생활의 결실에 관한 경 5
Buddhastudy 2020. 10. 13.

아자따삿뚜 왕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한 때 저는 ‘산자야 벨랏티뿌따’라는 수행자를 찾아갔습니다.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산자야 벨랏티뿌따 존자여,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술을 갈고 닦아 그 결실을 통해 행복과 만족을 느끼고

나아가 여러 수행자들에게 보시함으로써 고귀하고 신성한 과보를 받습니다.



존자여, 존자도 이와 같이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을

저에게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자 산자야 벨랏티뿌따 존자가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만약 대왕이 제게 ‘저 세상이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리고 만약 제가 ‘저 세상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저 세상이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다’고도 하지 않고, ‘저렇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아닌 것이 아니다’라고도 ‘다르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만약 대왕이 제게 ‘저 세상이 없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다’고도 ‘저렇다’고도

‘아니다’라고도 ‘아닌 것이 아니다’라고도

‘다르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만약 대왕이 제게 ‘저 세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냐‘고 물으신다면

또는 ‘저 세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다’ ‘저렇다’ ‘아니다’‘아닌 것이 아니다’ ‘다르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산자야 벨랏티뿌따 존자에게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을 물었는데,

그는 회의주의론을 펼쳤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는 망고나무에 대해 물었는데 빵나무를 설명하고

빵나무에 대해 물었는데 망고나무를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찌 나의 영토에 거주하고 있는 수행자나 바라문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존자의 말을 기뻐하거나 비난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저는 세존께 같은 질문을 드립니다.

세존께서는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을 저에게 보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대왕께서는 나의 질문에 대답해주십시오.



여기 대왕의 하인이 한 사람 있다고 합시다.

충직한 하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리에 들며

무슨 일에도 순종하고 유쾌하게 일하며

그대의 심기를 헤아리기 위해 항상 그대의 안색을 살핍니다.



어느 날 하인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공덕의 과보란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로구나.

마가다국의 주인 아자따삿뚜 왕도 인간이고 나도 역시 인간인데,

좋은 공덕으로 좋은 과보를 받은 왕은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을 신처럼 마음껏 누리고 즐기지만

나는 그의 감각적 욕망을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구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공덕을 지어야겠다.

그러니 나도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리라.‘



대왕이여, 그리하여 그 하인은 출가수행자가 되어

몸으로 말로 마음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며

절제하고 자족하고 멀리 여읨을 즐깁니다.



그런데 대왕이여, 만약 그대가

그대의 하인 중에 한 명이 출가수행자가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시 그를 데려와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리에 들며

무슨 일에도 순종하고 유쾌하게 일하며

그대의 심기를 헤아리기 위해 항상 그대의 안색을 살피라고 명령하시겠습니까?“



대왕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인사하고

그를 반기며 의복과 음식과 거처와 필요한 약품을 마련해 그를 보호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것이 제가 대왕께 알려드리는 첫 번째 출가생활의 결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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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순세파 [順世派]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한국사전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