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9

알라딘: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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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 - 공동체에 대한 고민 |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6
이현주,이계삼,박성준,유창복,이남희,윤구병 (지은이)철수와영희20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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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쪽
152*215mm
385g
책소개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시리즈 '품' 편.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통해 청소년들이 공동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민을 공동체의 순 우리말인 ‘품’이란 주제로 풀어냈다. 여러 분야에서 공동체에 관한 고민을 하면서 실천하고 있는 윤구병, 이현주, 이계삼, 박성준 등 저자들은 청소년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책에서 윤구병 선생님은 왜 우리가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현주 선생님은 종교라는 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더 넓은 품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계삼 선생님은 학교라는 품이 안고 있는 아픔과 어려움을 들려주며, 그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이남희 선생님은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며, 가족의 범위를 주변과 이웃으로 더 넓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창복 선생님은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주변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박성준 선생님은 인문학을 배우는 시민들이 함께 자율적으로 가꾸어가는 우정의 품인 길담서원 이야기를 통해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아가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왜 나는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 ‘더불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진지’를 만들어 학연이나 지연을 넘어선 가치관과 문화적 정서가 서로 통하는 평등관계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한다.


목차


머리말 - 보다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기 위한 우정의 ‘품’

1강. 서로 돕고 살아가는 힘 - 윤구병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자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자율성은 모든 생명체의 꽃이다
스스로 삶과 시간을 통제하라
서로 돕고 사는 힘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
손발을 부지런히 놀려라

2강. 틀 밖으로, 더 넓은 품으로 - 이현주
우리의 마지막 목표는 틀 밖으로 나가는 것
어떤 질문을 품고 사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
틀 속에서 충분히 성숙해져야 한다
더 넓은 품으로 나아가자
학생이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

3강. 가족에 대한 따뜻한 상상 - 이남희
가족은 누구인가?
인구 정책과 가족계획의 변천
사실은 다 남의 가족하고 살고 있다
가족에 대한 다양한 상상이 필요하다
누구와 이룬 가족이든 소중하다
누구도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4강. 고래 배 속에서 살아남기 - 이계삼
학교는 왜 다니지?
학교라는 제도로부터 생겨난 역설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는 모두 다 불행해진다
우리 교육 문제의 근원
좋은 대학 나온다고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은 아니다
고래 배 속에서 살아남기: 질문하기, 빠져나오기, 홀로 존재하기, 친구 찾아가기
머리로 공부하고 몸으로 때우기
지금의 자리에서 용감하게 ‘작은 진지’를 만들자
땅에 발을 붙이고 더불어 굳건하게 살아가기
멀리 바라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고 실천하기

5강. 주민이 100명이면 마을이 100개-성미산 마을공동체 이야기 - 유창복
모두가 주인공인 성미산마을
성미산을 지켜낸 3·13 대첩
성미산 어린이집 공동육아 이야기
이해가 안 되는 차이라도 인정해야 한다
내 아이에서 동네아이로, 방과후 교실에서 마을축제까지
성미산 마을살이 이야기: 성미산학교, 생협, 동네부엌, 작은나무 카페
주민이 100명이면 마을이 100개다

6강. 현대적 서원을 함께 만드는 꿈- 박성준
품,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
「제1의 얼굴」과 「제2의 얼굴」
현대적 서원을 함께 만드는 꿈
책 읽기의 중요성에 대한 불꽃같은 증언
길담의 벗들 - “작은 목소리, 작은 땀방울, 작은 사랑”
「작은 공간의 가능성」- ‘자율’과 ‘공율’
희망의 싹-새로운 시민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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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강. 서로 돕고 살아가는 힘 - 윤구병
사람은 서로 도우면서 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생명체로 태어났으니까 품을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 돕고 사는 힘들이 더 확산되면 확산될수록 좋은 세상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2강. 틀 밖으로, 더 넓은 품으로 - 이현주
엄마 배 속에 있는 열 달 동안 우리의 생명 줄은 엄마와 연결된 탯줄이었어요. 그런데 나올 때가 되어서 산파 선생님이 탯줄을 끊고, 엄마가 나를 ‘품’에 안아 줍니다. 엄마의 배 속이라는 낡은 품에서 나와 엄마의 가슴이라는 새로운 품에 안기는 거죠.
3강. 가족에 대한 따뜻한 상상 - 이남희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도, 그저 마음 편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도 가족에 대한 다양한 상상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제시되는 가족도 있지만, 현실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은 굉장히 다양해요.
4강. 고래 배 속에서 살아남기 - 이계삼
중요한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느냐, 그들이 고립되지 않고 서로 연대하고 있느냐, 이것입니다. 세상의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지배 논리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중요한 거예요.
5강. 주민이 100명이면 마을이 100개 - 유창복
이해도 안 되는 차이를 내가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차이라는 걸 제가 인정하게 됐고, 그 차이와 공존하는 감수성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협동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 너무너무 힘든 협동의 과정을 이어 갈 수 있게 했던 것은 결국 소통이었다는 겁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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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4년 2월 24일자 어린이.청소년 새책



저자 및 역자소개
이현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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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르며, ‘이 아무개’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이자 동화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교회와 대학 등에서 말씀도 나눈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글들을 쓰고 있으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이야기》를 펴냈다.


최근작 : <대한민국 청소년에게>,<아가씨 피리를 부셔요>,<We Want to Be Real Christians 2> … 총 260종 (모두보기)

이계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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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밤낮없이 노동하는 부모님 밑에서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고, 밀양에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마쳤다. 1991년 대학에 입학했다. 국어국문학과에 적을 두었으나, 주로 학과실과 야학에 머물렀고, 거리의 시위대에 휩쓸려 데모를 하거나, 세미나를 하는 빈 강의실에서 토론을 하거나, 막걸리집에서 술을 마시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가끔 사회과학도서나 시집, 소설을 읽기도 했다.

야학과 학생회, 학생정치조직 활동 등으로 대학 4년을 다 보내고, 1994년 말에 군에 입대했다. 충남 계룡대에 있는 육본 헌병감실 상황실에서 상황병으로 낮밤이 뒤바뀐 생활을 했다. 육군 전체의 사건·사고를 매일 실시간으로 접수하고 ‘상황 보고서’와 예하부대에 내려 보내는 ‘사고 사례’ 만드는 일을 했다.

1997년 복학, 펑크난 학점을 때워 겨우 졸업하고, 1998년 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 거기서 교직 과정을 이수하며 교육잡지 『처음처럼』 편집 일을 거들었다. 교육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고, 송순재 교수님의 ‘교육사랑방’ 모임 말석에서 심부름하며 공부했고, 친구들과 교육모임을 만들어 책을 읽으며 교사의 꿈을 키웠다.

2001년 경기 김포 통진중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통진고를 거쳐 고향인 경남 밀양 밀성고에 이르기까지 11년간 중등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전교조 조합원으로 지회 사무국장을 비롯해 내내 활동가로 일했고,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도 활동했다.

『녹색평론』, 『한겨레』, 『교육희망』, 『우리교육』, 『오늘의 교육』 등 여러 매체에 교육과 사회에 관한 글을 기고했고, 이를 묶어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녹색평론사, 2009) 등 몇 권의 책을 냈고, 십여 권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2009년, 밀양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녹색평론』 독자모임, 농민회, 전교조, 어린이책시민연대 소속 회원들,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풀뿌리 협동 조직인 ‘밀양두레기금 너른마당’을 만드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1기, 2기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2012년 2월 사직했다. 농업학교를 준비하려 하였으나, 그 무렵 발생한 밀양송전탑 故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사망으로 결성된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2015년 12월, 녹색당 20대 총선 비례후보 선거에 출마하여 2번 순번을 부여받았다. 접기


최근작 :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고르게 가난한 사회>,<숨통이 트인다> … 총 18종 (모두보기)

박성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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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감옥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하여 일본과 미국에서 신학과 평화학을 연구했다.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에서 평화학을 강의하면서 ‘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와 ‘비폭력평화물결’ 대표로도 일했다. 지금은 길담서원 대표이다. 함께 강의하고 정리한 책으로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 『세상을 담은 밥 한 그릇』, 『세상을 바꾸는 힘』, 『눈, 새로운 발견: 나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볼까?』가 있다. 『모든 이의 집: 건축가 1년생의 첫 작업』을 우리말로 옮겼다.


최근작 : <눈, 새로운 발견>,<세상을 바꾸는 힘>,<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 … 총 8종 (모두보기)

유창복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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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가로 불리는 필자는 경남 합천 산골짜기에서 나고 서울에서 줄곧 자랐다. 성북구 미아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20대에는 ‘나라를 구하겠다’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다. 20대 말에 결핵을 얻어 2년여의 투병 끝에 완쾌한 후, 30대에는 ‘큰돈’을 벌어 보겠다고 창업을 하고 사업을 했다. 큰돈은 못 벌었지만 사업은 제법 할 만했다. 30대 중반에 아빠가 되어, 자식 잘 키워 보겠다고 성미산마을에 깃들더니, 40대 내내 신나는 마을살이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다 우연히 박원순 시장의 부름을 받고, 행정 언저리에서 50대를 다 보냈다. 정책으로 시작한 마을에서 협치를 거쳐 자치에 이르더니, 정치도 보게 되었다. 선량한 선출직의 선의에 기대어, 얻어 쓰는 권한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봤고 나름 성과도 맛보았다. 하지만 ‘거기까지’, 결국 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시민이 ‘권력을 만드는 일’에 나서야, 그 권력이 통제되고 시민이 주인 되고 주민이 주도하는 정치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필자는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2014, 휴머니스트)에 이어, 8년 동안의 서울시 행정나들이에 대한 기록과 보고’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필자의 경력
현) 성공회대학 사회적경제대학원 겸임교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미래분과위원, 행정안전부 정책자문위원(지방자치분권 / 지역경제활성화), 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 부설 미래자치분권연구소 소장, 자치와 사람(자람) 공동운영위원장
전) 서울시 협치자문관,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장, 성미산학교 설립위원장 / 교사대표 / 교감, 성미산마을극장장

필자가 쓴 책
우린 마을에서 논다(2010, 또하나의문화)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2014, 휴머니스트)
마을정부를 말하다(2018, 행복한책읽기) 접기


최근작 : <시민민주주의>,<마을정부를 말하다>,<마을공동체> … 총 8종 (모두보기)

이남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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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영국여성참정권운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성의 역사와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관심이 많아서 자율적 여성모임과 강좌, 생활밀착형 여성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일에 꾸준히 참여해 왔다. 《여성과 사회》 편집장, (사)여성문화예술기획 사무처장, 여성가족부 장관정책보좌관,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 운영위원, 유한회사 미디어일다 사원, (사)한국여성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성 / 사랑 / 사회》(공저, 2006), 《세계화 시대의 서양현대사》(공저, 2010), 《몸으로 역사를 읽다》(공저, 2011),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공저,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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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젠더와 사회>,<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세계화 시대의 서양 현대사> … 총 4종 (모두보기)

윤구병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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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나오고 월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을 거쳐 충북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1988년에 어린이에게 읽힐 좋은 책을 출판하려고 “보리기획(지금의 보리출판사)”을 만들었다.
이후 변산에 자리를 잡아 변산공동체를 꾸리고, 교수 노릇을 그만두고 농사꾼으로 살기 시작했다.
지금은 “영세중립 통일연방 코리아”를 앞당기기 위한 평화 마을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다.
2016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에서 “우리 말글 으뜸 지킴이”로 뽑혔다.
쓴 책으로 「잡초는 없다」, 「실험 학교 이야기」, 「모래알의 사랑」, 「철학을 다시 쓴다」, 「꽃들은 검은 꿈을 꾼다」, 「내 생애 첫 우리말」, 「윤구병 일기」 들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빅북] 심심해서 그랬어>,<아픈 데 마음 간다는 그 말,>,<누리과정> … 총 121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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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전염병 전쟁>,<10대와 통하는 건강 이야기>,<어느 돌멩이의 외침>등 총 130종
대표분야 : 청소년 인문/사회 5위 (브랜드 지수 100,856점), 한국사회비평/칼럼 11위 (브랜드 지수 31,854점), 환경/생태문제 19위 (브랜드 지수 4,718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에서 배우는 ‘품’ 이야기

이 책은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통해 청소년들이 공동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민을 공동체의 순 우리말인 ‘품’이란 주제로 풀어냈다.
청소년기에 만나는 공동체인 품은 다양하다. 가족, 종교, 학교, 마을, 사회로 나누어지는 여러 가지의 다양한 품 안에서 청소년은 성장하고 갈등한다. 청소년은 가족 구성원들 가운데 내가 어떤 존재인지, 학교는 왜 다녀야 하는지, 사회에 나아가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라는 물음을 안고 산다. 여러 분야에서 공동체에 관한 고민을 하면서 실천하고 있는 윤구병, 이현주, 이계삼, 박성준 등 저자들은 이런 청소년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나는 왜 더불어 살아야 할까?”

책에서 윤구병 선생님은 왜 우리가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현주 선생님은 종교라는 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더 넓은 품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계삼 선생님은 학교라는 품이 안고 있는 아픔과 어려움을 들려주며, 그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이남희 선생님은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며, 가족의 범위를 주변과 이웃으로 더 넓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창복 선생님은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주변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박성준 선생님은 인문학을 배우는 시민들이 함께 자율적으로 가꾸어가는 우정의 품인 길담서원 이야기를 통해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아가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왜 나는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 ‘더불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진지’를 만들어 학연이나 지연을 넘어선 가치관과 문화적 정서가 서로 통하는 평등관계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한다.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함께 하는 ‘품’ 이야기

이 책은 여러 분야에서 공동체에 관한 고민을 하면서 실천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의 청소년들에게 들려준 강의를 토대로 한 것이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가파른 경쟁의 사닥다리를 타고 있는 청소년들은 이 책을 읽고 친구들과 함께 내가 원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무슨 일 하며 살아야 할까?』(철수와영희 펴냄), 『몸,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궁리 펴냄),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철수와영희 펴냄), 『나는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철수와영희 펴냄), 『세상을 담은 밥 한 그릇』(궁리 펴냄)에 이어 출판된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에서 진행된 강좌의 여섯 번째 강연집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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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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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 리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문명은 이전과 달리 급속도로 성장한다. 물질문명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근대 국가가 출현하게 되고 이전과 달리 민족주의가 심화되면서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인간이 아닌 '개인'이 출연하게 된다.


'개인'의 등장으로 인권의식이 더 높아지고 공동체는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진 공동체를 '국가'가 메우게 된다. 오늘날 '국가'는 그 형태는 민주정이지만 이전의 왕정보다도 더 강하고 넓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성장한 인권의식과 '개인'의 탄생이 결코 온전한 자유의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푸코의 말처럼 근대의 인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로워보이지만 실상 감옥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가의 메세지를 받아들여 스스로 검열하는 개인의 모습은 공동체의 품에서 벗어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 잘 보여준다.


근대를 상징하는 것은 바로 시간표다. 이전까지 시간이란 자연이 정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시간은 자연이 아니라 자본가가 지정해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교육에도 밀려왔다. 물론 근대 공교육의 성립은 이전 엘리트 사교육을 극복하고 아이들의 교육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진보다. 그러나 근대 학교가 시간표를 정해 아이들의 리듬을 무시하고 통제한다는 점에서 많은 교육자들의 비판이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통제의 반대말은 자율이다. 자율이란 스스로 규칙을 정해 실천한다는 뜻이다. 학교에도 자율학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자율이란 것이 허울 뿐이라는 건 그 자율학습을 계획하는 교사들도 알고 있다. 진짜 자율학습이라면 왜 야자 폐지를 반대한단 말인가.


윤구병 님의 말처럼 자율은 교육이 추구해야할 궁극목표 중 하나다. 오늘날 한국 교육은 자율성을 길러주고 있는가? 이에 대답은 자율성에 대한 해석에 따라 다르겠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이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건 이런 자율성을 말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기존 체제의 승리자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협동 역시 미래에 꼭 필요하다고 명사들이 말하는 능력이다. 협동을 위해서는 말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또 자유로운 분위기가 필요하다. 억제되고 통제된 분위기에서 겉핥기가 아닌 진정한 협동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설령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협동능력을 길러주지는 못한다.


인간은 무리를 짓는 동물이다. 인간의 한자어에 사이를 뜻하는 한자가 들어간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무리를 짓고 인간은 협동을 한다. 언어의 경우 인간만큼은 아니지만 원숭이나 다른 똑똑한 동물도 어린아이 수준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몇 천만, 몇 억이 넘는 개체가 협력할 수 있는 종은 오로지 인간이다. 협동능력이 미래에 중요한 능력이 된다 했지만 생각해보면 과거에도 협동능력은 중요했다. 오늘날 개인이 중요시되어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 능력을 길러주는 곳은 이제 학교 뿐이다.


이 책에는 가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공동체 중에 아직도 무너지지 않은 단위는 오로지 가족 뿐이다. 그러나 그 가족도 요즘은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4가구 중에 1가구가 단독가구라는 통계는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생산을 위한 힘을 재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쉼터라는 점에서 가족은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요즘 공동체란 말은 너무 흔해졌다. 그러나 진정한 공동체는 찾기 어렵다. 공동체는 그 구성원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 듯 사람은 공동체의 품에 안길 수 있어야 한다. 성미산은 그런 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공동체다.


공동체가 공동체 답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감이다. 공감은 연민의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다른 사람을 안타깝게 여길 때 비로소 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점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너무 쉽게 친구를 배제해버린다.
유창복 님의 말처럼 공동체에서 갈등은 당연한 것이다. 갈등이 없다면 그 공동체의 건강에 대해 의심해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있어도 헤어지지 않는 것이다.


학급은 운명공동체다. 미우나 고우나 1년간 떠날 수 없는 공간이자 품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서로에게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공감할 것인가. 이건 교사에게 필연으로 다가오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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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로그스 2018-04-2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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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 가톨릭일꾼



평화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 가톨릭일꾼



평화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박충구
승인 2018.11.2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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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 거부의 평화신학 이해, 재세례파 신앙을 중심으로-4

재세례파 신앙운동은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평신도 영성운동, 즉 퀘이커 신앙운동과 만나면서 그 평화주의적 실천 지평을 넓히게 되었다. 퀘이커들도 재세례파 교도와 유사한 핍박을 받았으나 순교적 차원까지 고된 고난은 겪지 않았다. 그들은 국왕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았고, 국가주의나 애국주의의 폭력성과 전체성을 거부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투옥되는 역경을 겪었다. 이는 18세기 계몽이후 시대에서 그리스도의 평화사상을 지켜나간 운동이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만일 이들도 16세기에 태동되었다면 무수한 순교의 반열에 들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2005/6년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퀘이커 수도원에서 9개월 동안 지내면서 퀘이커 평화운동을 배울 기회를 가졌다. 그 곳을 거쳐 간 인물로서는 함석헌 선생, 한명숙 전총리/박성준 교수 부부, 비폭력 평화운동을 전개해온 박성룡 박사, 그리고 정지석 박사가 있다. 재세례파 신앙을 공유하고 있는 후터리안, 형제단, 아미쉬 공동체 등과 더불어 퀘이커 교도 또한 이 세상에 흔한 ‘폭력의 평화’를 거부한다.

폭력의 평화를 거부한다는 것은 모든 양태의 폭력을 포기하는 것의 일환이다. 폭력의 길은 예수의 길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는 폭력이 아니라 사랑의 길을 일러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무기를 들고 싸워야 할 원수와 적이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John George Fox

문화와 그리스도: 평화주의 전통

에른스트 트뢸취는 소종파 유형, 신비주의 유형, 그리고 교회 유형의 신앙 운동 중에서 교회유형을 선호했다. 교회 유형을 선호하는 이는 정당한 전쟁 이론을 수용하며, 국가주의에도 얼마만큼 헌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의 기호에 맞는 행위를 선택한다. 교회 유형은 대중을 끌어 모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중과 함께 권력과 물질적 부유함도 누린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번영과 위세 등등함을 생각해보면 된다. 나는 기독교 윤리학자로서 이런 평가가 틀렸다는 것을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 유형의 기독교는 유럽에서 미주에서 쇠퇴일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트뢸취의 제자격인 헬무트 리챠드 니버는 그의 <문화와 그리스도>(Christ and Culture)에서 트뢸취와는 달리 기독교 역사를 그리스도와 문화와의 상관적 관점에서 문화의 그리스도, 문화를 초월하는 그리스도, 문화에 적대적인 그리스도, 문화와 갈등하는 그리스도, 문화를 개혁하는 그리스도라는 다섯 유형론으로 분류하고 초기 기독교와 재세례파 운동을 문화에 적대적인 그리스도 유형으로 규정했다.

자연 위에 인위를 섞어 이룩한 모든 제도와 문명 구조를 문화라 한다면 소종파 신앙운동은 이 모든 문화를, 특히 탐욕과 폭력 문화를 누리기보다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성향을 가진다. 이는 소종파 신앙 운동이 죄의 구조를 피하여 분리주의적 원칙(Separation Principle)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리챠드 니버가 선호하는 유형이 칼뱅적인 개혁론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평가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여겨진다.

평화주의 유산을 재평가한 베인튼(Roland Bainton)은 그의 책 <Christian Attitudes Toward War and Peace>(1960)에서 구약 성서적 ‘샬롬’과 신약 성서의 ‘에이레네‘, 예수의 평화적 가르침을 지켜온 전통이 기독교 신앙의 초기부터 연연히 흘러오고 있다는 것을 규명했다.

이에 앞서 1947년 평화 연구가들도 인류의 평화주의적 유산에는 예수의 평화주의 전통이 깊이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근대 이후에는 반전평화주의 운동에 크게 기여해 왔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한국 교회의 종교문화 속에는 권력정치와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 유산이 생략된 기독교 변종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선교적 호전성과 더불어 정치권력과 연대하는 종교유산만 팽배하다.

이런 현실은 한반도의 평화를 지체시키고 반평화적인 군사주의와 권력정치를 지지 후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역사가 예수의 평화적 가르침을 따라 신앙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을 되례 교회가 외면하게 하거나 핍박하는 교회 문화를 낳았다.


Quakers: The Quakers were founded by John George Fox of Drayton in Leicestershire (1624-1691).

평화주의 그룹은 언제나 소수였다

나의 입장(나는 기독교 후기, 종교 후기 시대에서의 기독교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감히 평가를 내린다면 나는 소종파 신앙인이 지니고 있는 예수의 평화사상은 시대가 변하고 바뀌어도 마르지 않는 영성의 샘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정의없는 정당한 전쟁을 뒷받침해온 국가주의와 결탁한 교파신학은 언제나 예수의 평화사상을 망각하거나 요더가 “예수의 정치“에서 언급한 바, 예수의 가르침을 이런 저런 변명을 앞세우며 규범으로 삼지 못하는 불실함을 가지고 있다. 이 그릇된 전통에 반하여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기독교 평화주의 사상적 흐름은 여전히 미약하다.

오늘의 세계에서 우리는 한 국가의 시민이기도 하지만 세계시민이기도 하다. 1947년 평화교회 유산을 이어받은 퀘이커들은 그들이 2차 세계대전 중에 보인 평화주의적 실천으로 인류애를 증진시킨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리스도인이 국가에 헌신하며 애국주의자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하느님 나라 지평을 실천범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있어서 국가주의의 본질은 인위적인 이데올로기로 간주될 수도 있다. 국가주의가 요구하는 애국주의와 군사주의가 결합하면 편협한 반평화적 충성을 유발한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종교가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곳에서는 종교적 증오와 혐오가 생산되고, 국가주의가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곳에서는 인류의 보편적 사랑이 증발한다. 이 오류를 시정하고 비판할 수 있는 지평은 평화주의, 비폭력 무저항적 평화주의다. 요더의 표현을 빌어온다면 ‘덕스러운 소수자의 평화주의‘(Pacifism of Virtueous Minority)다.

이 평화주의를 증언하고 실천하는 것은 간혹 국가주의적 충성보다, 교파적 교리주의를 향한 충성보다 그 기여 범주에서 반지름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련의 평화주의자들은 지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들을 변명하고 해명해야 했다. 국가 권력 앞에서, 동료 신앙인 앞에서, 그리고 견해가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 앞에서 왜 그들이 평화주의자로 살아야 하는 지를 해명해야 했던 것이다. 지난 역사 속에서 그들은 소수였기 때문이다.

평화란 오늘날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명령

지난 1983년 뱅쿠버에서 모인 세계교회협의회는 “정의 평화 그리고 창조보전을 위한 위원회"를 조직했고, 1990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정의, 평화, 창조 보전을 위한 제안 문서"를 냈다. 주류 교회들이 적극적으로 평화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1998년 하라레 총회에서는 “폭력을 극복하는 10년(The Decade to Overcome Violence)” 운동을 결정했고, 2011년 이 운동을 총 결산하면서 “정의로운 평화에 대한 에큐메니칼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소수자들이 주장하던 평화가 그동안 전쟁을 지지하고, 심지어 거룩한 전쟁에 나서는 것을 독려했던 교회에서도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평화란 오늘날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명령이라는 평화주의적 가치에 더 많은 교회들이 동의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무기를 수 천기 장착하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류사회는 ‘더 큰 평화’를 지향해야만 전지구적으로 모든 생명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 전쟁론, 종교 전쟁론을 외치던 교회들 속에서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 예수의 가르침을 새롭게 평가하고, 예수의 비폭력 평화가 초대교회와 중세 이후 소종파 교도들의 신념과 삶에서 참된 평화주의적 실천 지평을 찾는 일이 폭넓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 한국 사회나 교회는 남북의 적대적 대립 구조 아래 평화주의 사상보다는 정당한 전쟁론을 더욱 쉽게 수용했고, 근본주의자들은 아직도 십자군 전쟁 이념을 신앙화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한국의 평화주의자들 역시 지난 날 과거의 소종파 신앙인이 그러했듯이 국가 앞에서, 그리고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 앞에서 “왜 나는 평화주의자인가“를 해명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왔었다.

남북의 대결구도가 서서히 걷히고 있는 요즘, 우리 사회나 종교계 안에는 정당한 전쟁론자와 성전론자들이 한반도 반평화 세력으로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계 교회가 변하고 있듯이 한반도의 구성원들과 종교들도 서서히 기독교 평화주의 유산의 소중함을 자각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런 시대적 변화를 앞당기기 위하여 오늘의 평화주의자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한 시점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충구 교수
감신대 기독교윤리학과
저서로 <종교의 두 얼굴-평화와 폭력>, <예수의 윤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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