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1

알라딘: 왜 용서해야 하는가

알라딘: 왜 용서해야 하는가



왜 용서해야 하는가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은이),원마루 (옮긴이)

포이에마2015-09-10원제 : Why Forgive?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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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11,000원

판매가

9,900원 (10%, 1,100원 할인)





8.9100자평(2)리뷰(9)

이 책 어때요?

272쪽

131*196mm

360g

ISBN : 979115809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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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가 '용서'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든 책.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용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회복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용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풀어낸다. 독자들을 위해 한국 사례를 특별히 추가했고, 소그룹으로 모여 용서를 향한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용서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부록으로 실었다.





목차





추천의 말

들어가는 말



1. 원한이라는 암 덩어리

2. 기적을 믿으며

3. 증오의 악순환 끊기

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5. 용서와 정의

6. 자비를 베푸는 일

7. 화해가 불가능할 때

8. 일상 속의 용서

9. 결혼과 용서

10. 부모와 친구에 대한 용서

11. 하나님에 대한 원망

12. 자신에 대한 용서

13. 책임지기

14. 길고 힘겨운 여정

15. 파문 일으키기



나가는 말

부록: 용서 학교



접기





책속에서







P. 32 사람들은 고든의 진심을 오해했다. 조롱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고든은 만약 테러범들을 용서하지 않았다면, 딸이 가족들 곁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고, 복수심에 매여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용서는 개인의 삶을 넘어 훨씬 더 멀리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고든의 발언은... 더보기

P. 218~219 “몸이 마비된 채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난 20년간 아내를 안아주지도 못했습니다. 어느 새 청년이 된 코너와 캐치볼을 한 번도 못해봤습니다. 가끔은 이런 상황이 불만스럽고 힘들고 싫습니다.” 그런데도 왜 용서한 걸까? 스티븐은 이렇게 말한다.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고 믿으니까요.... 더보기

P. 250~251 폭력의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일으키죠. 각 사람과 각 집단에 자기만의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러한 ‘적’이 실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이 있다고 해도 이미 죽어버린 후인 경우가 많고요. 제가 매일 대면하는 진짜 적은 따로 있습니다. 매일 끌어안고... 더보기





추천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전 세계에 꼭 필요한 메시지다.

- 넬슨 만델라 (노벨 평화상 수상자,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용서는 비본성적인 행위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참으로 용서하기 어려운 순간에 감히 본성을 거스를 수 있을지 두렵다. 그럼에도 이 책에 실린 사례들을 통해 용서야말로 인간의 삶에서 가장 고귀한 선택임을 깨닫는다. 본성을 거슬러 고귀한 선택을 함으로써 인류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인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소년부 부장판사)



우리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분단의 시대를 치유하는 길은 화해와 용서밖에 없다. 그 화해와 용서의 씨앗을 남과 북 어린이들의 여린 마음에 심어야 한다. 이 책은 한반도가 평화로운 미래로 가기를 기원하는 절절한 기도서다.

- 권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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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Johann Christoph Arnold) (지은이)





1920년 브루더호프를 공동 창립한 에버하르트 아놀드(1883-1935)의 손자. 목사로서, 브루더호프의 장로로서 평화와 용서를 통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평생 헌신한 사람이었으며, 복음을 살아내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싸운 전사였다. 마틴 루터 킹, 마더 테레사 수녀, 세자르 차베스, 도로시 데이, 체 게바라, 특히 그의 아버지 하인리히 아놀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99년부터 전신마비 사고를 당한 뉴욕 경찰관 스티븐 맥도널드와 함께 ‘폭력의 고리 끊기’라는 프로그램으로 수많은 학교와 단체, 기관에서 용서의 메시지를 전했다. 결혼생활, 부모 역할, 평화 문제를 실재 인물들의 경험을 통해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동안 저자가 쓴 책은 20개 이상의 언어로 옮겨졌고 100만 명이 넘는 독자와 만났다. 대표 저서로 《왜 용서해야 하는가》, 《나이 드는 내가 좋다》,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아이들의 정원》, 《평화주의자 예수》 등이 있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과 비폭력을 추구하는 브루더호프에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길 원하는 가족과 미혼자가 살고 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처럼 모든 것을 나누고 공동의 선을 위해 필요할 때면 언제나 자신의 시간과 능력과 힘을 보탠다. 더불어 살고, 더불어 일하고, 더불어 식탁을 나누며, 매일 함께 노래하고, 예배하고, 결정을 내리고, 기도하고, 축하한다. 공동체에서는 학력과 나이, 능력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을 똑같이 귀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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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성, 하나님, 결혼>,<희망이 보이는 자리: 지친 영혼이 천국의 기쁨을 맛보는 인생 좌표>,<왜 용서해야 하는가> … 총 65종 (모두보기)



원마루 (옮긴이)



영국 남동부 로버츠브릿지에 있는 브루더호프공동체에서 아내와 함께 세 아들을 키우며 산다. 옮긴 책으로 《왜 용서해야 하는가》, 《나이 드는 내가 좋다》,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숨어 있는 예수》, 《공동체 제자도》, 《바닥난 영혼》, 《아이들의 정원》이 있다.









최근작 : … 총 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용서만이 상실을 견디는 유일한 길이다!

‘폭력의 고리 끊기’라는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에게 용서를 통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가 ‘용서’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든 책이다. 촉망받는 축구선수였으나 무고하게 폭행을 당해 하루아침에 하반신 마비 환자가 되어버린 글렌 필더부터 결혼식을 열흘 앞두고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켈리, 공동체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저자의 아버지까지,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용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회복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용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2010년에 미국에서 출간한 Why Forgive?에 한국 사례를 추가한 확대증보판.



[출판사 리뷰]

용서만이 상실을 견디는 유일한 길이다!

1995년 9월의 어느 아침, 저자는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다가 동네에 사는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가 유괴당했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접한다. 범인은 일주일 만에 잡혔다. 유괴범은 아이의 가족과 잘 아는 사이였다. 그는 아이를 집 근처 숲으로 유인해서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했다. 뉴스를 접한 대중은 분노했고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아우성쳤다. 자기 손으로 직접 처리할 수 있게 그냥 풀어주라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가 과연 피해자 가족에게 위로가 될지는 의문이었다. 범인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붙잡혀 있던 저자는 몇 달 뒤 교도소에서 수갑을 푼 범인과 마주 앉았고, 저자는 그날의 만남이 자신에게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남겼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 책은 ‘폭력의 고리 끊기’라는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에게 용서를 통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저자가 ‘용서’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든 책이다. 촉망받는 축구선수였으나 무고하게 폭행을 당해 하루아침에 하반신 마비 환자가 되어버린 글렌 필더부터 어린 시절 갱단에 발을 디뎠다가 친구들에게 배신당한 하심 개럿, 인종차별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던 자레드, 결혼식을 열흘 앞두고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켈리, 공동체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저자의 아버지까지,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용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회복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용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이번에 포이에마에서 번역.출간한 《왜 용서해야 하는가》는 2010년에 미국에서 출간한 Why Forgive?에 한국 사례를 추가한 확대증보판이다.



■ 왜 용서해야 하는가

이 책에는 크고 작은 사건으로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상처는 가슴에 응어리를 만들게 마련이다.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큰 사건이 아니라도 사소한 다툼 속에 서운한 감정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가슴에 쓰디쓴 응어리가 생긴다. 그렇게 응어리진 마음은 우리로 삶을 비관하게 하고 결국에는 우리 자신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원한은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적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한 넬슨 만델라의 말처럼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원한은 결국 나를 파괴하기 일쑤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매일 마음을 다잡으며 용서를 향해 힘들게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뉴욕 시 경찰관으로 일하다 총을 맞고 전신이 마비된 스티븐 맥도널드가 용서를 택한 이유도 “등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장 힘든 순간에 고통을 완화하고, 죄에 대한 응징과 인간적인 공평함에 관한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용서의 힘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타인을, 혹은 하나님을, 혹은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다.



■ 용서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용서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과연 이 세상에 용서가 쉬운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용서하고 그만 잊어버리라”고 쉽게 말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해본 사람은 잊는 것도 용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저자의 말대로 의지를 가지고 미워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해야만 용서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서두에 이렇게 당부한다. “용서는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문이다. 낮고 좁아서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찾기도 어려워서 찾는 데 오래 걸린다. 그렇다고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모두 용서의 문을 찾아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당신도 어느새 그 문 앞에 당도할지 모른다. 그때는 부디 그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당신뿐임을 기억하라.”(p.13) 저자의 당부대로 의지를 가지고 용서의 문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는 사람이 생겨나길,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온전히 오늘을 살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길,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시작한 용서의 물결이 사회 전체에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



포이에마에서 출간한 이번 책에는 독자들을 위해 한국 사례를 특별히 추가했고, 소그룹으로 모여 용서를 향한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용서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부록으로 실었다. ‘폭력의 고리 끊기’ 세미나에서 나온 질문을 서로 나누며 용서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길고 힘든 여정의 첫걸음을 떼어보자. 접기





8.9









용서, 그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들



1986년 7월 12일, 미국 뉴욕 시 경찰관 스티븐 맥도널드는 순찰을 돌기 위해 센트럴파크에 들어섰다가 수상해 보이는 십 대 무리와 마주쳤습니다.



경찰을 보고 달아나는 아이들을 쫓아가 잡았을 때, 한 아이가 (나중에 알고 보니 15세였다고 하더군요) 그의 뒤로 돌아가 그의 머리에 총을 쐈지요. 그가 쓰러지자 그 아이는 그의 목에 두 번째 총을 발사했고, 한 번 더 총을 쏘고 달아났습니다.



48시간 동안의 수술과 치료를 통해 의료진은 불가능한 일을 해냈습니다. 그를 살린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이전과 같은 삶까지 돌려줄 수는 없었지요. 목을 관통한 총알이 척추를 건드려서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고, 산소 호흡기가 없이는 숨도 쉴 수 없었습니다. 정말 비참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지요.



그리고 몇 달 뒤, 스티븐은 아내와 함께 기자회견을 합니다.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와 그의 아내는 그 소년을 용서했다고 발표했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고 믿으니까요. 만약 복수심을 안고 살았다면, 영혼의 상처는 더 깊어졌을 것이고 주변 사람들을 더욱 아프게 했을 것입니다. 물론 힘들 때도 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분노는 감정 낭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거의 매일 그날을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를 용서한 걸 후회하지 않아'" 아...





기독교의 많은 덕목 중에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선포할 정도이니 말할 것도 없지요. 그렇다면 사랑의 최고봉은 무엇일까요? 저는 바로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하지요.





이 책은 용서에 대해 철학적으로 분석하거나 체계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조금 산만하기도 합니다.) 대신 용서에 대한 수많은 사례들을 들려주지요. '용서의 사례'라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용서가 필요한 '악한 상황의 사례'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 책에는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일상적인 폭력부터 살인이나 폭행과 같은 범죄, 점점 일상화되고 있는 테러, 그리고 아우슈비츠나 르완다의 학살이나 미국의 인종차별 등과 같은 거대한 상황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질 지경이지요.





그런데, 그 안에 빛나는 별들이 있습니다. 아니, 별이라기 보다는 눈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겠네요. 원망하고 증오하고 복수하기를 꿈꾸는 대신에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지요. 그들의 노력은 때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하고, 가해자가 받아들이지 않아서 허탈하게 끝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가해자를 변화시켜서 새사람이 되게 하고, 주변을 감동시킵니다. 그리고, 또다른 용서를 낳지요.





이 책은 결코 용서가 쉽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용서를 실천한 사람들도 용서가 단번에 되지는 않았다고, 용서했더라도 다시 복수심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고 이야기하지요. 그리고 지금도 완전히 용서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 그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용서는 죽을 때까지, 날마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싸움입니다! 아, 용서는 정말 어렵습니다.





또한 이 책은 용서에 대해 낭만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슬픔과 분노를 무시하거나 그 죄를 가볍게 보지 않지요.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 진실을 밝히는 것, 잘못을 회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인정합니다. 다만 용서의 힘을 더 힘주어 이야기합니다. 과거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 장애물을 극복하게 하며 용서하는 사람과 용서받는 사람 모두를 치유하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힘 말입니다. 사실 우리를 본질적으로 해방시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것도 예수님의 용서 아닙니까!





아내가 이 책을 읽더니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어휴, 이 이야기들을 읽으니까 우리가 용서 어쩌구 말하기는 너무 부끄럽다." 정말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고민하고 상처받은 일들은 너무도 사소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밴댕이 소갈머리같은 제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ㅜㅜ





이 책은 독자들을 용서의 자리로 초청합니다. 낙심과 복수, 증오와 상처의 자리에서 희망과 관용, 사랑과 회복의 자리로 오라고 부릅니다. 과거에서 벗어나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고 권유합니다. 힘들지만 시작해보자고 말합니다.





뉴욕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연못에 돌을 던지면, 그 돌이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고, 그 파문에 퍼지고 퍼져 온 세상에 닿을 것입니다."





우리 손에 용서의 돌이 주어졌습니다. 이제 그 돌을 던져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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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duck 2016-07-04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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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이어주는 책, <왜 용서해야 하는가>를 읽고서



아버지는 술꾼이셨다. 하루도 술을 안드시면 안되시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오실 시간이 넘었는데도 돌아오시지 않으시면 어김없이 찾아나서야했다. 길가에 앉아계신 날들이 다반사였다. 나는 왜 이런 가정에 태어났을까 싶기도 했다. 싫었다. 고3때는 남들 다들 고3이라고 집에서 배려해주는 것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가 술을 좀 덜 드시기만을 바랬다. 바람은 바람으로만 끝났다. 대학생이 되고, 주님 앞에서 내가 용서되었을 때에야 나는 아버지가 용서가 되었다. 아버지의 그 설음의 시간이 새로이 보였고, 육체 노동의 한계와 관계 속에서의 치임을 새로이 보게 되었다. 그리고 형제 관계 속에서의 부침과 아버지 본인 스스로의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사랑합니다!”라고 안아드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용서했던 그 길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아버지 역시 용서했다. 나를 이 가정에 태어나게 한 것이 그저 한 번 고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새로운 미래를, 희망을 써 내려가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예레미야의 말씀이 그때는 참으로 위로가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삼푸투는 술에 마약쟁이였습니다. 그는 하루도 술없이는 지내지 못했습니다. 그의 친구 빈센트가 자신의 부모님을 죽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습니다. 르완다의 투치족이었던 삼푸투는 친구인 후투족 빈센트가 자신의 부모를 죽이는 일에 동참한 것으로 인해 삶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 일로 9년 동안 정신이 나간 채 지냈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아기 클라디아가 장애가 있는 것으로 인해 급기야 아내와도 헤어졌습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뮤지션이었지만 술과 마약으로 감옥을 오갔고, 그의 삶은 재앙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모세라는 한 전도자를 만남으로 인해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하라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가 빈센트를 용서함으로 인해 빈센트는 자기 죄를 뉘우쳤고 자신을 용서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아내와 자녀들도 아버지를 용서했습니다. 용서의 힘은 그의 가족 또한 다시 하나되게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당시을 용서한 게 아니야 당신을 용서한 건 하나님이야.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나님이 삼푸투를 통해 당신을 용서했다면, 나도 당신을 용서할 수 있어.”(243쪽)







용서는 우리를 세계로 연결시켜준다. 우리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감옥은 용서하지 않는 마음과 영혼”(38쪽)이다. “용서가 필요한 이유는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 같은 어둠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어둠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는 용서뿐이다.”(163쪽) “용서는 새롭게 출발하는 데 필요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폭제다.”(70쪽) 이 책 곳곳에 펼쳐져 있는 용서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용서가 우리 삶에 얼마나 필요한지, 또한 복수하는 삶이 우리 삶에 얼마나 편만한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세계의 문제이며, 현실이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로 하여금 나의 한계와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 세계와 화해하며 자신을 용서할 뿐 아니라 세계를 사랑하게 해주는 방법임을 힘주어 말한다. 폴 투르니에가 인격의학이라는 것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회복하려 했듯이, 저자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용서가 이 땅을 새롭게 하는 열쇠임을 전해준다. 저자의 세계 곳곳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나의 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용서는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문이다.”(13쪽) 또한 “용서는 선물”이다. 그 선물을 받아 누리는 것은 우리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러한 결단으로 이끌어주는 징검다리들을 잔뜩 놓아두고 있다. 읽다보면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그러면서 새롭게 다짐하게 된다. 읽다보면 언제 용서라는 은혜의 폭탄이 터질지 알 수 없다. 그 선물을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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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감람나무 2015-09-2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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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자



몸과 마음이 힘든 날이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몇 달 동안 지속되면서 점점 심해져 손바닥만한 두드러기가 온 몸을 뒤덮었다. 아토피에 우유 알러지가 있는 아기에게 모유를 계속 먹여야했기에 약을 쓰지 못했다.



시매부님에게 폭언을 듣고 난 후부터 두드러기가 시작되었다. 남편과 시누이 언니가 사과를 요청했지만 잘못한게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어머니는 안타까워하시며 나를 많이 걱정해주셨다.



두드러기가 심하게 올라 잠을 잘 수 없는 날이면 분노가 함께 나를 덮었다. 그리고 가혹했던 비난의 말들이 계속 떠올랐다. 사과를 받고 싶었다. 사과를 받아야지만 이 지긋지긋한 두드러기가 나를 떠나갈 것 같았다.



아토피가 있는 아가도 잠을 잘 때면 간지러워 깰 때가 많았다. 어느날 밤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이 아이가 잘 잘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시누이 언니에게 상처를 떠올리기보다 진심을 믿기로 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는 순간까지도 고민은 계속됐다. ‘다음에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미루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문자를 보낸 이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 다행히 두드러기도 나지 않았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의 “왜 용서해야 하는가”, 이 책을 조금만 더 빨리 만났더라면 분노로 차오른 내 마음이 내 몸까지 통제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지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이다. 용서는 한번이 아니라 평생 계속되어야하니까.



“그 사람들이 한 일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건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죠(p67)”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p219)”



“용서하는 힘을 계발하고 유지해야한다. 용서할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할줄도 모른다.(p69)”







내 속에 자라는 끔찍한 마음을 직시하고, 예수님의 자리에서 죄를 심판하려는 오만함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용서하는 힘을 키우고 실천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용서하기 힘들 때는 이 책을 다시 펼쳐야겠다.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용서의 이야기들이 ‘함께 가자’고 내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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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건 2015-09-2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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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여섯 살 때쯤의 일이다. 무언가 큰 실수를 하고선 혼이 날까 두려웠던 나머지 마치 내가 한 일이 아닌 것처럼 엄마 앞에서 연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허술해서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이었지만 그 땐 정말 완벽하게 엄마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던 엄마는 내가 죄(?)를 자백할 때까지 기다려주셨다. 결국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자수를 택한 나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엄마에게 용서를 빌었고 그런 나에게 엄마는 따끔한 회초리질 뒤에 콧물 범벅인 나를 꼭 끌어안으며 내 잘못을 용서해주셨다.



그때가 아마도 내가 최초로 ‘용서’라는 단어를 배우게 된 순간이었으리라. 엄마의 따뜻한 포옹을 통해 나는 ‘용서’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란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사랑이 앞서지 않고는 진정한 용서란 받을 수도 또 베풀 수도 없다.







<왜 용서해야하는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용서’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쉽게 상처받는 허약한 사람들이나 용서를 이야기한다고 여기지 마라.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힘 있게 한다.”(61p) 저자는 용서는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던 상대방을 진정으로 용서하는 순간, 비로소 그 용서의 과정 속에 특별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 ‘이정도 일쯤이야’라고 가볍게 여길만한 사건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뉴스나 신문에 등장할 법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들은 결코 쉽지 않았을 용서의 과정을 통해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이웃, 전혀 모르는 사람, 심지어 가족)뿐 아니라 자신과의 진정한 화해를 이루어 나간다. “사실 제가 그를 용서한 이유는 아주 현실적이에요. 피해를 입으면 사람들은 흔히 복수와 용서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복수를 선택하면 분노하는 데 삶이 다 소진되고 맙니다. 복수는 일단 하고 나면, 사람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력이 있으니까요. 분노는 만족을 원하고, 그것은 상습이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앞으로 나아가게 도와주죠.”(109p) 어린 시절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쏜 뒤 습지에 무참히 버려두었던 한 남자를 끝내 용서한 크리스의 고백이다.



“원수를 친구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사랑에만 이다. 미움에 미움으로 맞선다고 적을 없앨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적대감을 없애야 적이 사라진다. 미움의 본성은 파괴와 분리다. 그러나 사랑의 본성은 창조와 건설이다. 구원의 능력으로 사랑은 결국 변화를 이뤄낸다.”(69p)



사랑의 능력은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한다. 용서의 힘은 한 개인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 이웃 그리고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파장을 일으킨다. 물론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는 바울의 가르침은 질투, 시기, 분노가 가득한 이 세대에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왜 용서해야하는가. 용서는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이고,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 이 모두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이야기한다. 용서는 여전히 어두운 과거에 머물며 분노와 증오의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있는 당신이 그 고통의 사슬을 끊고 새롭게 앞으로 나아가게 할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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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또자 2015-09-2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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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쉽지 않은 단어, '용서'



술에 취한 소년의 운전으로 아들 마이클을 잃은 남자. 아버지의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정의의 심판은 더디었다. 법정에서 운전자의 혐의를 밝히는 데만 일 년이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가해자의 어머니는 법정 최고형을 요구했다며 비난조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그 소년은 법의 심판을 받았다. 6개월의 교정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그 뒤 6년 동안 집중 관찰을 받는 조건으로 가석방되었다.



아들을 잃은 남자는 이후로도 극심한 분노에 휩싸였다. 법으로 정의가 실현되었지만, 아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가해자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하지만, 그는 용서의 길을 택했다.



‘용서’. 어쩌면 TV에서도, 책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이 쓰이는 단어이다. 주기도문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기독교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용서라는 말은 묵상하면 할수록 가벼운 단어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내가 용서의 현장, 즉 내게 해를 끼친 사람 앞에 있다면, 용서는 상상할 수 없을 무게로 다가온다.







『왜 용서해야 하는가』. 브루더호프 목사인 요한 크리스토퍼 아놀드가 용서에 대해 썼다. 내게 해를 끼친 사람과 상황 속에서, 힘겹게 용서를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십대 폭력으로 딸을 잃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아동 학대를 받아 온 여성, 인종차별을 겪어 온 아프리카계 미국인, 르완다 사태에서 친한 친구에게 부모님을 잃은 뮤지션,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을 받은 한국 소녀...







용서를 선택한 이들의 리스트이다. ‘정말 이 사람도 용서해야 합니까?’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힘겹게 용서를 선택한 과정을 담았다. 책을 읽는 내내, 이들의 가정과 일터, 삶의 현장을 방문해 직접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했고, 때로는 강렬했다. 앞에 언급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자.







용서의 길은 길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가해자뿐 아니라 마이클을 용서해야 했고, 일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둔 하나님을 용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용서해야 했습니다. 그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저 역시 술을 마신 상태로 마이클을 태우고 운전한 적이 많았으니까요. (94쪽)







그의 말처럼 책에 소개된 다른 사람들도 용서를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용서했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질타를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용서를 선택한 이들은 삶의 큰 보석을 발견해 간다. 다시 아버지의 말이다.







우리가 바라는 사건의 ‘끝’은 결국 용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용서의 힘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고, 용서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94쪽)



다른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십대 때, 크리스는 유괴범에게 머리에 총을 맞았다. 기적적으로 뇌는 다치지 않았지만, 한 쪽 눈이 실명했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에게 분노하고, 어떻게든 복수를 꿈꾸는 것이 당연할텐데, 크리스의 선택은 용서였다.



사실, 제가 그를 용서한 이유는 아주 현실적이에요. 피해를 입으면 사람들은 흔히 복수와 용서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복수를 선택하면 분노하는 데 삶이 다 소진되고 맙니다. 복수는 일단 하고 나면, 사람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력이 있으니까요. (109쪽)



상처를 입고, 그럼에도 용서를 택한 사람들. 이들의 가슴 먹먹한 이야기를 이 책은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좋은 미담을 모아 적은 책이라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쭉 들으며, 질문 한 가지를 던질 수 있었다. ‘저 상황에 놓였을 때,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용서가 결국엔 내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상황에 놓인다면, 내 앞의 가해자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신중히 묵상하고, 용서에 대해 이전과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책은 결국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이 송곳처럼 계속 마음을 찔러 온다. 사실, 내게 조그마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었다. 나는 용서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은 바로 다음 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용서가 정말 어렵구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작가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용서가 반드시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 역시 연약하며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용서를 경험할 때에만 용서할 수 있는 큰 힘을 얻게 된다. (145쪽)



‘왜 용서해야 하는가?’ 독자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 작가는 책 마지막에 이렇게 당부한다.



우리의 손에는 용서에 이르는 열쇠가 쥐어져 있다. 그 열쇠를 사용할지 안 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264쪽)



용서, 생각보다 사용이 쉽지 않은 열쇠. 그럼에도 이 책의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용서를 선택해 서서히 회복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들의 가슴 먹먹한 목소리를 오래토록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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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road 2015-09-2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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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0

불교언론-스님들에게 기본소득을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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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에게 기본소득을

유정길
승인 2019.11.



매월 50만원씩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면

만일 당신에게 매월 50만원의 돈이 통장이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들어온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까? 2019년 1인 최저생계비는 102만4205원인데 50만원이라면 약 반에 해당되며 적은 액수가 아니다. 만일 가족 한사람들에게 각각 지불되기 때문에 5인 가족이면 250만원이다. 그렇게 되면 비루하게 아등바등하게 살지 않게 되고 하고 당당히 싶은 일을 하며 가족 중 누군가 직업을 잃는다 해도 크게 두렵지 않고 소비도 늘어나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일을 한 대가로 돈을 벌수 있다는 ‘임금노동’ 중심의 생각을 하는 사람에겐 아무 일도 안한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누구도 일을 하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시행하는 나라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밀하게 당신은 아무 일도 안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연관되고 서로 의존적인 연기적 이치로 보면 결국 각자가 존재 그 자체로 보이지 않게 도우며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덕분에’ 누군가에게로 돈이 모인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을 재분배하는 것이다.

실제 우리사회는 가사노동이나 자원봉사, 친절과 배려 등 90%의 비지불노동이라는 바다위에 10%의 임금노동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개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점차 세계적인 추세로 부각되고 있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의 70%가 25만원 정도를 받고 있는 기초연금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최근 성남시의 청년기본소득(청년배당)이 24세 이상의 청년들에게 연 100만원을 경기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올해부터 해남은 1년에 60만원씩 전체 농가 1만4579가구가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아마도 매년 재원을 확보하여 액수도 늘어날 것이고 또한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알래스카는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1982년부터 매년 1인당 약 1500달러씩 4인가족에 6000달러를 지급해왔고, 핀란드는 기본소득 매월 71만원 정도를 지급하고 있으며,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 등도 유사한 정책을 펴고 있다. 돈은 벌고 있지만 기술개발로 줄어드는 일자리를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부의 재분배를 위해 농민, 청년, 장애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기본소득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출가자가 증가와 종단민주주의에 기여할 승려기본소득
불교환경연대는 지난 2017년 3월 불교의 기본소득 실시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여기서 중앙승가대 유승무 교수는 ‘기초수행지원 보시금’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스님들에게 무조건 각각 50만원씩 연간 600만원을 지불하는 기본소득이 가능할 수 있다고 추진을 제안했다. 1만여 스님을 대상으로 할 경우 연간 600억 정도의 예산이 소요되는데, 일종의 토지세나 지대처럼 걷는 400억원 규모의 사찰점유비와 직영사찰수입의 4분1로 180억원, 그리고 각 사찰마다 승보공양 복전함 같은 기초수행지원 보시함을 마련하고, 관광사찰입장료의 일부, 기타 출자가의 재보시 등을 합치면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대략적인 추산으로 더욱 상세한 계산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지급되면 과연 어떤 효과가 있을까? 우선 삼보정재의 교리적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권력지향적인 위계적 조직관행, 관료주의가 개혁되는 계기가 되며, 원융살림의 종단의 민주적 의사결정에 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스님들의 생활이 안정되어 승단내의 불평등, 사유화, 세속화, 사사화 등의 온갖 부정적인 추세가 일소하여 승가의 공동체성과 화합에 기여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지나 소임자로 하여금 돈보다 수행지원 등에 집중하게 되어 승단의 과잉정치화를 막을 수 있다. 또한 초발심의 자세로 수행에 전념하는 출가자가 늘어나게 되어 승단이 청정해지며, 승단의 경제적 안정화로 인해 출가자의 감소문제를 해결하는데도 기여하고, 행자시절 중도포기나 환계자를 줄이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데다, 불교가 사회적 변화를 선도하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점차 지급되는 액수는 늘어나게 되고 여기에 향후 국가가 지불하는 기본소득이 추가된다면 훨씬 더 안정적인 수행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기본소득의 특징은 무조건성이다. 누구에게 동일하게 지급되기 때문에 부자와 가난한자를 구분하는 행정비용이 전혀 지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체로 앞날의 불안감으로 인해 돈을 모아 쌓아 놓으려 하며 이를 위해 권력다툼을 하게 된다. 승려기본소득으로 승단이 더욱 청정하고 스님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면 불교가 부흥하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도움이 될 것이다. ‘스님은 잘살기만 하면 먹을 것은 저절로 생긴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더욱 충실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게 되니 복지도 이런 복지가 없는 것이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ecogil21@naver.com



[1511호 / 2019년 1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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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2019-11-06 20:18:15
더보기땡중들한테 세금을 왜 줘 룸살롱 가려고?답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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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던합의 2019-11-05 04:17:08
더보기저도 2년 전 유승무 교수의 기본소득 논의 기사를 공유한 적이 있었는데 불교환경연대 주최 였군요. 법보신문 의 이런 기사 좋습니다. 종단 합의까지 갈 길이 멀지만 시작이 빠르면 빠를수록 종단에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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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2019-11-04 15:16:11
더보기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앤드류 양도 18세 이상 전 국민 1000불 기본소득 공약 제시했더군요
4차산업혁명시대, 생존권 보장은 기본소득이 주류인샘이네요답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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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2019-11-04 13:25:59
더보기스님들에게 매월 50만원이 종단에서 지급된다면 아마도 대단히 바뀔 것같습니다.
분쟁도 훨씬 덜해져 더욱 청정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종단에서 합의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같지만...답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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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 10가지 이유 - 오마이뉴스 모바일



독일이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 10가지 이유 - 오마이뉴스 모바일




독일이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 10가지 이유
[행복사회 유럽 27회] 농민끼리 협동하며 자치하는 슈바츠
정기석(tourmali)
등록 2015.10.26 



지금 우리 농촌 들판에는 난데없이 6차산업화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 농업의 돌파구가 열린다며 정부는 강변한다. 그러나 6차산업화의 현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대보다 걱정이 먼저 보인다. 그곳에 농민은 없고 자본과 기업만 우뚝하다. 농업은 잘 안 보이고 공업과 서비스업만 무성하다.

그렇게 1차 농산물 재배는 없고 2차 농식품 제조와 3차 농촌관광과 유통 서비스만 있으니, 1곱하기 2곱하기 3을 해서 6차산업은 고사하고, 0곱하기 2곱하기 3을 하니 도로 0차 산업의 꼴이 된다. 2차와 3차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6차산업의 출발지점이자 바탕이 되어야 할 1차 산업이 비어있거나 모자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위장 6차산업'은 마치 공염불이나 신기루처럼 여겨진다.


정부의 느닷없는 6차산업 드라이브 정책에 6차의 의미와 의도를 잘 알 수 없는 농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입을 모아 불신과 우려의 목소리를 감추지 못 한다. "농촌의 모든 유·무형의 자원을 제조·가공해 유통·판매·문화·체험·관광서비스와 연계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6차 산업에 대한 정의가 그저 막연하고 막막하다며 한숨을 쉰다.
무엇보다 '공동체농업과 농촌공동체' 방식을 '농정의 정도'로 알고 살아온 우리 농민들의 눈에는 왠지 옳고 바른 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할 수 없는 남의 일처럼 들린다. 자본력과 기술력의 기업농을 내세운 6차산업화는 대다수의 소농, 가족농에게는 그림의 떡처럼 다가온다.

참여하고 싶어도 대다수에게 문턱이 높은 정책은 좋은 정책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름기지 올바른 정책이라면 자본이 모자라고 기술도 부족한 소농일지라도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정부가 좋아하는 표현대로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가진 자만 독과점할 수밖에 없는 정책은 정책이 아니고 어쩌면 특혜로 오해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6차산업화든 융복합산업이든 대농이나 기업농이 아니라 중소농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땅히 마을과 지역사회 공동체를 사업의 기반으로 해야 한다. 거기에 사업을 추진하고 지원할 농민이 주도하는 전문적이고 도덕적인 농업회의소 같은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현실적 주장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오스트리아에서는 이미 선진 농업경영체의 최적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1500명 농민들의 협동연대 경영체 '슈베뷔쉬 할 생산자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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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0명의 농민생산자들의 협동경영체, 슈베비쉬 할 생산자조합(Gemeinschaft) - ⓒ 정기석

'할'이라 불리는 슈베비쉬 할(schwabiseh Hal|)은 독일 바덴-비텐베르크주의 작은 목가적 도시다. 인구는 3만6천 명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독일의 중요한 경제 중심지 가운데 한 곳으로 평가된다 경제는 주로 무역, 서비스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할' 지역은 호엔로에(Hohenlohe) 마을의 유기농업만으로도 충분히 유명하다. 그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맛난 음식은 나라 안팎의 관광객들을 지속적으로 호객하고 있다. 그 중심에 슈베비쉬 할 생산자조합(Gemeinschaft)이 있다. 조합의 기술지도사로 일하는 나드하 레온하드씨는 조합이 이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조합의 설립 목적 자체부터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삼았어요. 농업의 규모화나 기업화가 아니었어요. 1980년대 멸종위기의 재래종 돼지를 할 지방의 특산돼지로 되살리면서 조합의 역사가 시작됐어요. 1986년 설립 당시 불과 8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1500명 가까운 조합원이 모였어요. 연간 1억200만 유로(약 1400억 원)의 매출도 올리고 있고요.

조합의 회장은 설립 이래 연임하며 조합의 경영을 책임져 오늘날의 성과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어떤 조직이든 지도자가 중요하죠. 그리고 거기에 조합원들이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는 힘이 결합되었죠. 또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지역에 기여하는 사업철학과 전략도 변치 않았어요. 전통돼지 한 품목이 성공하면서 지역 전체의 경기가 살아났죠. 조합은 지역의 관광업체와 협력해 지역관광산업을 촉진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어요."

슈베비쉬 할 생산자조합의 역사는 돼지육종협회에서 출발한다. 1988년에 생산자조합을 결성하고 1992년에는 상장된 주식회사도 따로 설립하며 성장을 거듭한다. 조합과 별도로 공장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를 굳이 따로 설립한 이유는, 생산자조합에서 고기를 수매해주면 세금문제가 원활히 해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자체 도축장, 소시지 가공장, 농민시장 등 1차 생산에서 2차 가공, 3차 직거래 유통에 이르는 이른바 6차산업화 과정을 내부 계열화했다. 이로써 지역 뿐 아니라 독일 전역을 대상으로 농식품을 판매하게 되면서 안정경영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역직판장 뿐 아니라 독일의 고급호텔, 유명레스토랑, 기업체 식자재, 루프트한자 기내식 등에서 최우량 식자재로 대우받고 있다.

4000종 로컬푸드 복합 직판장 '호헨로에 농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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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0종 이상의 로컬푸드를 직판하는 호헨로에 농민시장 - ⓒ 정기석

이같은 베비쉬 할 생산자조합의 경쟁력은 한마디로 품질에서 나온다. 조합에 고용된 전문 기술지도사들이 수시로 생산자를 컨설팅하며 품질을 상향평준화시켰다. 유럽연합 최고 등급의 유기농 인증서 '외코테스트(Oekotest)'를 비롯해 Non-GMO 인증, 국제 표준규격, 독일농민협회(DLG) 골드라벨 인증 등 다양한 인증서가 조합 생산품의 품질과 진정성을 보증하고 있다.

심지어 원산지 스페인처럼 도토리만 먹여서 키운 이베리코 돼지로 하몽(Jamon, 염장 건조 생햄)을 생산하기도 한다. EU의 지역특산물로 인정받은 암컷 슈베비쉬 헬리쉬 슈바인종과 수컷인 피에트램종을 교배한 돼지도 특별하다. 소시지 내용물은 당연히 지역농산물을 원재료로 한다. 지역에서 생산하지 않는 양념류는 루마니아, 인도 등의 생산지에서 현장 기술지도를 해서 생산한 것만 공수해 사용한다. 유해 식품첨가물은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성과는 다른 지역이나 조합에서 흉내낼 수 없는 차별화된 생산·가공 전략, 그리고 개발기술이 있어서 가능하다. 우리의 농식품부에 해당하는 독일의 소비자·식량 및 농림부 장관이 우수 사례지로 방문할 정도로 공인받고 있다.

"농민시장은 2007년에 문을 열었어요. 총면적 950㎡의 농민시장에서는 4000여 종류의 로컬푸드를 직거래 판매하고 있어요. 직판장 외에도 레스토랑, 허브가든, 빵가게, 지역여행사, 어린이 놀이터, 태양광발전소 등 복합시설을 함께 운영합니다."

안내원의 설명을 듣다보면 이 조합의 역할은 사실상 한국의 지역농협의 그것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다만 독일에서는 농민 스스로의 힘으로 자치하고, 한국은 사실상 행정이 관치하는 차이가 있을 뿐. 그리고 사업 성과의 수혜자가 독일에서는 농민에게 온전히 돌아가고, 한국에서는 농민은 소외되고 행정이나 농협이 차지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또 조합은 생산자에게 기술지도사를 통해 기술지도를 한다. 한국의 농업기술센터가 하는 일이다. 생산자는 기술지도 비용으로 연 550유로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그만큼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농민들은 생각한다. 모든 농민은 생산자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조합에서 가공·판매까지 책임지고 감당해주기 때문에 농민은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다. 생산자가 조합에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농민들이 주인으로 자치하는 슈바츠군 농업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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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들이 선거로 회장을 직선해 자치하는 슈바츠군 농업회의소 - ⓒ 정기석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동쪽 35km 지점의 로츠홀트지역에는 농민들이 자치하는 슈바츠 군단위 농업회의소가 있다. 티롤주 농업회의소 산하 3개 지역, 9개 시군 단위 농업회의소 가운데 하나다. 오스트리아의 다른 농업회의소와 마찬가지로, 농민 기술 지도, 농업정책 지원 등 우리의 농업기술센터의 역할을 대신한다. 오히려 지자체 관할이 아니라 지자체보다 상위의 기관으로 대접받는다. 그러니까 오스트리아에는 우리의 농업기술센터 같은 기관은 굳이 필요없다.

농민은 모두 농업회의소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물론 연 40~100유로의 회비도 납부해야 한다. 업무와 책임은 어느 나라의 농정당국과 다를 바 없지만, 6년 임기의 회장은 정규 공무원이 아니라 농민들 손으로 직접 선출한 선출직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오직 농민만 출마할 수 있다. 회의소의 직원은 명실공히 농업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다. 정년이 보장되는 준 공무원 신분이다. 농업회의소의 인건비 등 예산은 전액 정부에서 지원한다. 그러나 간섭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한국도 역시 농업회의소를 민관 거버넌스의 구체적 대안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성공적인 협치를 위한 전제조건인 행정의 태도 변화는 요원하다. 상근인력의 인건비 등 예산은 지원하지 않고 시범사업만 독촉하고 있다. 행정이 기존의 '갑'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슈바츠군의 사례를 따라할 필요가 있다. 관에서 먼저 목과 어깨의 힘을 빼지 않으면 농업회의소도, 민관거버넌스도 성공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가 이처럼 농민 자치기구인 농업회의소를 전면에 내세워 구현하려는 농정의 기조는 역시 '사람 사는 농촌'이다. '돈 버는 농업'이 아니다. 농업의 규모화나 현대화가 아니라 소농, 가족농이 농촌을 떠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농촌은 온 국민의 휴양지, 농민은 온 국민의 별장지기"라는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다.

농업의 10가지 기능, 독일이 농업을 지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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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무트 트락슬러 슈바츠군 농업회의소장과 황석중 연수단지도교수 - ⓒ 정기석

헬무트 트락슬러 슈바츠군 농업회의소장은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에서 본 듯한 오스트리아 전통의상을 즐겨입는다. 그만큼 농촌의 전통문화, 그리고 농부로서의 자긍심이 대단한 것이리라. 농민 출신으로 농민들이 투표로 선출한 직선회장이다. 독일처럼 오스트리아도 농민이 농촌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있도록 지원하는 게 농정의 지상과제라고 강조한다.

"농가소득의 60%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농민이 소를 기르지 않으면 나무가 무성해져 아름다운 농촌문화경관이 사라지게 되잖아요. 농민이 농촌을 떠나거나 농사를 포기하게 만들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농민의 경관 유지 기능을 인정해 축산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거죠."

오스트리아에서는 1ha 당 160유로, 고산지는 500유로로 차등지급한다. 경사지가 많은 산악지대로 갈수록 더 많이 지급한다. 그만큼 농업이나 주거여건이 열악해 농민들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산지대인 티롤지방은 1ha 당 800유로까지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황석중 연수단 지도교수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정부가 그토록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보호하는 이유가 농업의 10가지 기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도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10가지 기능 가운데 한 마디라도 틀린 말이 있다면 어디 한번 찾아보라. 나는 한 글자도 찾지 못했다.

하나, 농업은 우리의 식량을 보장한다.
둘, 농업은 우리 국민산업의 기반이 된다.
셋, 농업은 국민의 가계비 부담을 줄여준다.
넷, 농업은 우리의 문화경관을 보존한다.
다섯, 농업은 마을과 농촌공간을 유지한다.
여섯, 농업은 환경을 책임감 있게 다룬다.
일곱, 농업은 국민의 휴양공간을 만들어준다.
여덟, 농업은 값 비싼 공업원료 작물을 생산한다.
아홉, 농업은 에너지 문제 해결에 이바지 한다.
열, 농업은 흥미로운 직종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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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가지 농업의 기능이 지켜지는 독일의 전형적인 '사람 사는 농촌' 풍경 - ⓒ 정기석


○ 편집ㅣ박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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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세상읽기]내가 만일 촛불대통령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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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내가 만일 촛불대통령이라면




[세상읽기]내가 만일 촛불대통령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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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2019.11.08.


아래로부터의 민생 요구는 분출하는데, 보수세력의 발목잡기 속 적폐청산은 갈수록 태산이다. 답답한 마음에 상상을 해본다. 내가 만일 촛불대통령이라면,

45년 전의 작고 가난한 나라 부탄처럼 더 이상 GDP(국민총생산)가 아닌 GNH(국민총행복)로 나라를 경영하겠다! 우리는 부탄보다 10배나 잘사니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오해 마시라, 나는 마을이장 너머의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




첫째, 중립국 선언을 하고, 미국 트럼프가 요구하는 6조원 규모의 방위비를 거부한다. 약 3만명 미군을 집으로 보낸다. 이미 천문학적인 미군 주둔비와 국방비 등을 절약해 민생을 위한 농업, 교육, 복지, 평화통일 분야에 쓰겠다. 세계 중립국 동맹도 강화한다.

둘째, 대통령 욕도 모자라 ‘목’을 친다는 자, 거짓뉴스를 퍼뜨리는 세력, 촛불시민을 종북으로 몰아 계엄령을 공모한 자들을 척결한다. 촛불시민은 자유와 방종을 철저히 구분한다. 총선 땐 스웨덴처럼 정당에만 투표한다.


셋째, 모든 경제활동의 기본인 식량주권을 위해 농민·농촌을 살리는 정책(예를 들면 농민기본소득)을 편다. 현재 23%에 불과한 곡물자급률 100% 목표를 세우고, 특히 유기농업, 자연농업, 대안농업을 장려한다. 밥상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넷째, 한쪽에서는 과로와 일중독, 다른 쪽에서는 실업과 고용불안이 공존하는 모순을 고치고자 일자리 나누기(하루 4시간)를 한다. 없앨 일과 필요한 일도 엄격히 구분한다. 소득감소에도 민초의 삶이 여유롭게 주거비, 양육비, 교육비, 의료비 등을 온 사회가 분담한다.

다섯째, 재벌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노동법, 환경법, 조세법 등을 철저히 적용한다. 위법, 탈법, 편법 사례 발견 시 ‘예외 없이’ 응당 조치를 하고 ‘3진 아웃제’를 실시, 경제와 사회의 건강성을 드높인다.

여섯째, 헌법 121조 ‘경자유전의 원칙’에 충실하게 농지 및 부동산 투기나 난개발, 자연훼손을 상시로 단속, 엄벌한다. 대신 공공의 땅을 싸게 임대해 주말농장·텃밭을 장려하고, 기후위기를 직시, 에너지 전환과 산·들·도로변 나무 심기를 지속한다.

일곱째, 학종과 정시 간 줄다리기게임에 빠진 대입을 획기적으로 바꾼다. 한국의 모든 대학을 K1~K100으로 재편, 공립화한다. 수능 70% 이상 학생은 합격하되, 소망·적성에 따라 5개 대학을 지원, 전자추첨으로 배정한다. 고졸 4년차와 대졸 초임을 같게 한다.

이 모두가 가능하려면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국정원, 공수처, 검경 등 이른바 공권력이 이 구상의 민주적 실현을 도와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은 촛불혁명 완성을 위해 위임된 것이니 민주주의의 수단일 뿐이다. ‘검찰개혁’ 역시 수사권이나 조직문화를 넘어 촛불혁명의 뜻대로 전 사회적 변화를 함께 이뤄야 마땅하다.

다른 하나는 대다수 민초의 뜻이 앞서 말한 ‘더불어 행복한 사회’로 모이는 것이다. 과연 우리 일반 시민들의 소망은 무엇인가? 만일 (50년 전 청년 전태일처럼) 나의 행복이 온 사회의 행복과 연결된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즉 사회 전체의 행복 속에서 비로소 내 행복도 가능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직 ‘나와 내 가족만의 행복’에 집착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야말로 우리가 없애려던 적폐 그 자체의 근본 토대 아닌가? 2016년 박근혜·최순실로 상징되는 국정농단 사태는 바로 그 ‘오직 나와 내 가족만의 행복’을 추구하던 이들이 재벌의 후원과 결합함으로써 발생한 일이었다. 돈과 권력이라는 이중의 중독! 천하무적 검찰과 다양한 스폰서의 결합, 권력중독에 빠진 국회의원과 자본의 유착 역시 같은 원리다. ‘조국 논란’ 당시 일부 건강한 분노의 바탕에는, 사회구조를 비판하던 이가 ‘자기 가족 행복’을 위해 기득권을 십분 활용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있었다.

이제 그 모든 기득권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그러려면 단지 대통령 교체나 선거 승리라는 권력 지향적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 헌법에 나오듯 권력의 원천은 국민(민초) 자신이다. ‘피플 파워’가 중요하다. 파워는 단지 많이 모인다고 생기진 않는다. 이런 면에서 서초동과 광화문에 모인 사람 수를 비교하는 건 그리 중요치 않다. 진정한 파워는 바로 그 사람들이 어떤 ‘가치’에 힘을 모으는지가 결정적이다. 자본의 가치가 아닌 인간의 가치, 파괴가 아닌 생명의 가치, 전쟁이 아닌 평화의 가치에 마음을 모으느냐, 이게 우리 미래를 좌우한다. 이런 가치 패러다임이 절박하다.

만일 자신이 대통령이라면 어떤 가치로 나라를 경영할지, 각자 상상의 날개를 펴보자. 그리고 매주 토요일 동네 공원의 ‘자유발언대’에 올라 나름의 상상을 자유로이 말하는 운동을 펴자.

단, 폭언과 거짓, 비방은 절대 금지다!

강수돌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04 유정길의 삶, 그리고 일이야기 (아프가니스탄 JTS 상근활동가)


유정길의 삶, 그리고 일이야기 

불교의 미래를 말한다 2

유정길 (아프가니스탄 JTS 상근활동가)

유정길의 삶, 그리고 일 이야기 1

2004.04.29 / [불교정보센터

[‘불교의 미래를 말한다.’ 두 번째 주인공은 정토회의 유정길국장님입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해외활동중이신 관계로, 국내에 왔었던 2월을 포함 서면인터뷰까지 포함해 여러차례의 인터뷰과정이 있었습니다. ‘개인 유정길에서 활동가 유정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말씀을 듣다 보니 그 분량이 만만치 않아 편집자 입장에서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유정길국장이“이렇게 속 시원하게 나와 정토회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한적이 없다”며 “가능하다면 원문을 그대로 살려달라”는 부탁말씀에 거듭 고민끝에 총 3회로 나누어 전문을 싣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다소간 많은 분량입니다만 그 어디에서 다시 만나보기 어려운 흥미로움이 있을 듯 합니다. 사부대중 여러분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불교정보센터]



한국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환경운동이나 불교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활동가의 이름을 한 번 들어 보았을지 모른다.



“유정길(본명 류길용)”,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의 사무국장이었던 사람. 그러던 어느날 사무국장직을 끝내더니만 불교환경교육원의 모단체인 ‘정토회’의 부엌살림을 책임지는 공양주가 되었던 사람. 그런데 그로부터 어느 순간 한국에서 사라져버렸던 사람. 노래 부르고, 놀기도 잘 놀았던 사람이고, 일도 무섭게 하던 사람. 그 사람은 한국에서 사라진 이후로 내내 미국의 침공과 탈레반의 붕괴 이후 재건의 길을 걷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으로 갔었다.


지난 2월 그는 정토회 총회가 있어 잠시 한국으로 들어와 있었다. 아프간에서의 고생 때문인지 20Kg이나 빠져버린 날씬한 그를 만나 인터뷰를 부탁했었다. 그는 한국에서의 바쁜 일정 때문에 인터뷰를 한번에 완결하지 못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다음의 서면 인터뷰를 해줌으로써 이번의 만남을 완성해주었다. 불교 활동가들과 만나는 불교의 미래를 말한다. 두 번째 편. 유정길(법운 법사) 님을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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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작년 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본 이후로 처음 뵙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구들에게 근황을 알려주시는 것처럼 최근 살아오신 얘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제가 지금 일하는 곳은 아프가니스탄의 JTS로, 과거 ‘탈레반’의 거점이었던 ‘칸다하르’(편주 : 아프가니스탄의 남부 중심도시)를 중심적인 지원대상으로 여러 지역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지난 기간 이웃국가로 피난을 갔던 난민들이 파키스탄과 이란에서 다시돌아오고 있는데, 사실 이들보다도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자국내 난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 IDP)’(편주 : 해외로 피난하지 못하고 국내를 떠도는 난민들, 대개 해외난민들보다 사정이 열악하다)들입니다. 칸다하르에서 더 내려가 ‘레기스탄’이라는 큰 사막이 나오는데, 그 위쪽에 이들의 난민캠프가 있습니다. 이곳의 난민들은 탈레반 집권 기간 4-5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사막에서 칸다하르로 올라왔던 사람들입니다. JTS는 이들이 모여 있는 난민촌에서 학교 교육지원사업과 과부, 고아, 여성들의 직업교육지원 그리고 식량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카불’ 북쪽 ‘사카르다라’ 마을에 병원과 다리, 학교를 짓는 마을공동체 개발사업을 하고 있으며, 카불시내의 전쟁고아나 거리의 아이들에 대한 지원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몽골족인 ‘하자라’들이 살고 있는 ‘바미안’의 와라스 지역에 대한 긴급구호사업도 전개하고 있습니다.



JTS가 지원하는 여러 지역 중에서도 특히 칸다하르는 자주 폭탄테러사건이 발생해서 현재 UN기구와 250여개의 외국 NGO들이 접근하지 않고 있어 더욱 상황이 열악한 곳입니다. 가난한 아프간에서 가장 가난한 곳이 이곳의 난민캠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카불 북쪽 사카르다라 마을의 다리, 병원, 학교 건설 사업의 복구(Rehabilitation)와 재건(Reconstruction)활동을 책임지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사로 돌아가 옛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법사님께서 불교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리고 본격적인 ‘운동으로써의 불교’를 하게 된 시발점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정토회 활동으로 오기까지의 신행사를 한 번 들려주시죠.



저는 79년부터 학생운동을 해왔고, 당시에는 교회에서 야학을 하고 있었어요. 당시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았나 생각하는데,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에겐 ‘운동성’이 강하거나 종교내 진보적인 입장이 강하면 강할수록, 굳은 종교심이 없거나 종교를 그저 외피 정도로 생각하는 풍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랬지요. 종교가 단지 사회에서 가장 큰 조직으로서 운동의 보호막이 되어주는 일 외에 종교 그 자체는 운동에 별 도움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다가 84년 학생운동 과정에서 수배생활을 한 7-8개월 하게 되었는데, 하도 힘들어서 이때 어느 지인에게 머무를 수 있을 만한 좋은 곳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절을 소개해 주어서 아주 기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 불교를 전혀 모르는 저에겐 산속 아늑한 곳에서 공부하면서 도인처럼 유유자적하면서 지낼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었는데, 실제 데려간 곳이 서울시내 신림동에 있는 모선원이었습니다. 크게 실망했지요. 그러나 도피생활이 지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곳에 법륜스님(당시 최석호 법사)를 위시한 비슷한 또래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비슷한 경력의 사람들이 약 20여명 관계되어 활동하고 있더군요. 알고보니 다들 당시의 학생운동과 관련하여 참 쟁쟁한 친구들이었어요. 당시에 법륜스님을 중심으로 모여서 다들 함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법륜스님에게는 그들을 묶는 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졸지에 절에서 기도생활을 한 달간 하게 되었습니다. 종교자체에 대해서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고, 더구나 종교안에서 활동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시덥지 않게 생각하던 제가 약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되는 천수경과, 능엄신주까지 하는 사분정근이며, 매회 한 500배 정도 절을 한 것 같아요. 그러다가 함께 일하는 분들이 해인사로 청소년 수련대회를 간다고 해서 따라갔었습니다. 한 700명의 청소년이 참여했는데 거기서 어쩔수 없이 고3 담임을 맡게 되었고, 마지막날 3,000배를 한다길래 담임인 제가 안할 수 없어 따라 하게 되었었습니다. 처음엔 시늉만하다가 들어가 자려고 한 저에게 법륜스님은 순간순간 아주 이상한 이야기(당시에는)로 오기와 분심을 갖게하면서 포기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기도는 새벽 4시에 되어서야 다 끝났습니다. 그후 또 잠은 재우지 않고 어느 절에 올라간다고 하더군요. 그곳에 같이 올라갔습니다. 웬 노스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길래 알게 뭐냐고 구석 기둥에서 잠을 잤지요. 나중에야 알고보니 그분이 성철스님이셨더군요. 그래서 이후 법륜스님께서 그러시더군요. 그때 삼천배 기도 공덕으로 지금 이런 일을 하는 복을 누리고 있다고...



이후 다시 수배생활하면서 시위를 준비하고 일을 만들고 하다가 결국 구속되어 서대문, 안양, 전주교도소를 거쳐 1년만에 나왔습니다. 출소 후에 당시에 일상적이었던 공장에 들어가려고 용접을 6개월간 배웠습니다. 이후 노동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구로동 공단 근처에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러 갔다가 당시에 법륜스님과 함께 일하던 동료인 박수일 법사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일하는 비원포교원에 갔다가 책 만드는 일과 대불련 수련교육을 도우면서 조금씩 불교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저에게 예상하지도 못한 인생의 전환이었습니다.



"열성적인 기독교 신자였던 내게 불교공부는

예상하지 못한 인생의 전환이었다"



당시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정말 눈이 확뜨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거지요. 저는 중,고등학교와 대학 1학년때 아주 열성적인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다니길 그만두었지만, 종교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 나에게 불교는 충격이자 운동적인 고뇌의 깊이를 심연 깊숙이 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세계관의 지평을 새롭게 넓힌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함께 일하지만 우리 도반들의 팀웍이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보았던 기라성같은 운동선배들이나 어느 사회운동조직보다 훨씬 수준과 질이 높았습니다. 그것도 큰 놀라움이었지요.

















그 이후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계속 활동을 함께 해왔습니다. 당시에 대불련 교육이나 청년회의 교육수련, 불교 내의 운동이나 ‘청년여래회’를 만들고 스님들에 대한 사회과학세미나 등을 지원하면서 ‘한국불교사회교육원’의 실무책임을 맞게 되었지요. 당시에 법륜스님을 비롯하여 우리 도반들의 팀웍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다들 너무도 잘나서 주체못하는 젊은 열혈운동가들 속에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때로는 갈등하면서도 오랜 시간이 흐르다보니 바로 그 다양하고 다른 성격이 오히려 서로를 완벽하게 보완해 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법륜스님은 이 애물단지들을 건사하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을 겁니다. 크고 작은 내부의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법륜스님의 놀라운 통합력과 지도력, 위기관리능력은 우리가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지금 내가 함께 하는 힘은 대부분 우리 도반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 도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다가 90년 동구와 소련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긴 고뇌의 시간을 갖었습니다. 당시 변화를 어느 규모로 인식하느냐는 대단히 중요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번의 변화가 세계의 대단한 지각변동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점검하고 새로운 방향을 위해 우리 정도의 규모에서 대안적인 모색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약 3년간 활동을 중단하면서 정말 징그럽게 많이 토론하고 논의했습니다. 한달에 약 보름이상은 합숙하면서 토론하고, 과거에 보지 못했던 세계관이나 관점에 대한 검토와 학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색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지속하면서 할 것인가 아니면 전면중단하고, 새롭게 출발한 관점으로 밑그림을 그릴 것인가로 오랫동안 논의하다가, 활동을 전면중단하고 집중적인 고민을 해야한다는 문제의식에 접근했습니다. 그래서 90년 초기에 정토회가 운동을 포기했느니, 변절했느니하는 하는 욕을 불교의 진보진영 내에서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다 법륜스님의 승적문제가 또 문제가 되어 업친데 덥친격으로 보수진영의 욕까지 덤으로 얹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내부 논의는 그정도에 흔들린 가벼운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우리들은 각자 최소한 10여년이 넘게 전 삶을 운동에 집중해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나름대로 참으로 오랜 논의와 신중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비난과 오해에 일일이 우리의 과정을 해명을 할까 생각했지만, 운동가는 운동으로 보여주면 되지, 그걸 말로 설명하고 다니는 것은 운동가의 자세라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삶을 믿는 것이지 말을 믿는 것은 아니며, 행동과 활동으로 확인시키면되지 짧은시간의 억울함을 해소하겠다고 여기저기 설득하면서 다니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아무튼 이후 우리는 나름대로 큰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당시 근 90여년간 지속되어온 하나의 이념적 지형이 붕괴한다면, 그것은 그저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당시 이 교훈을 심각하게 고민은 하면서 다소 나른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리는 전 삶을 바쳤던 신념에 대한 혁명적 변화를 강제하는 것이라고 심각하게 받아들인거지요.



실제 사회주의 붕괴를 보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사회구성체가 변했다고 해도 그것을 이끌어가는 인간이 변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그 사회는 유지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결국 자신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는 나뉠 수 없다는 아주 단순한 명제로 접근했습니다. 그래서 수행과 운동이 둘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말하는 것은 단순히 불교의 종교적 용어가 아니고 보편적인 일반을 위한 용어이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실제 자신이 변한만큼 주변을 변화시키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자신의 열정과 에너지 만큼 일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변화는 그만큼 중요한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불교적으로 더 깊어지기 시작한거지요. 그러면서 훨씬 대안운동중심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이번 한 생을 안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정진...1992년부터 결사시작"



그리고 비전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비전과 대안을 만드는 창조의 과제가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고민과 논의에 대해 무한대로 열어놓고 경청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혀 새로운 사회론을 펼치는 사람, 통일에 대한 여지껏 듣도 보도 못한 견해를 갖고 있는 분들, 도인, 물리학자, 경제학, 인류학 등, 관련된 별아별 사람들은 만났고, 길게는 1-2년, 짧게는 1-2달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함께 토론했습니다. 나를 비롯한 도반들은 자신의 삶을 두고 하는 고민이어서 비전의 불투명성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과정에서 그 비전을 모색하고 창조해야 하는 주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양성이 중요한 시대, 과거처럼 한가지의 담론으로 일사불란하게 정리되거나 통합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 대안창조의 상상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외피적이고 형식적인 종교가 아니라 기도하고 수행하며 스스로 보살의 삶에 대한 깊은 자기결단이 있지 않으면 멀어져가는 이상과 구체화되는 현실의 어려움을 관통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일하는 도반들이 윤회를 거듭하는 생에서 이번 한 생을 안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정진해보자고 생각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10,000일 즉 30년 정도 원력을 갖고 힘을 모으면 큰일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발전적인 물꼬를 터놓는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1992년부터 결사를 시작하고 활동을 하게 된 겁니다.



/활동가로 일하시면서 개인적으로 일에 대한 의심이나 후회의 감정을 느껴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저는 무디고 더딘 편입니다. 하나를 포기하고 선택할 때는 누구보다 늦는 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진아이지요. 아무튼 과정에서 고민을 오랫동안 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일단 선택하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선택과 포기가 분명한 편이지요. 그러나 저는 돈을 못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하고 싶은 일을 나만큼 많이 하고, 갖고 싶은 것을 나만큼 많이 누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일로 만듭니다. 집단의 원(願)과 개인의 원(願)을 일치시켜면 그건 일(Labour)이 아니게 됩니다. 재미있는 놀이(Recreation)이지요. 노는데 출퇴근이나 휴일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 수 없잖습니까? 그리고 조금 견해가 달라도 함께 결정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전화시킵니다. 즐기지 않으면 이런 일 오래할 수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돈과 명예를 포기하면 어떻게 사느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모르시는 말씀이지요. 이 즐거움을 몰라서하는 소리지요.















저는 일단 경제적 이해관계의 세계를 떠나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일을 하면 제 주변에서 제가 하고 있는 일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자신들의 일상생활은 돈에 찌들었을지라도 대부분 저에게 올때는 경제적 동기보다는 선(善)의지를 갖고 옵니다. 환경문제에 관심있거나 이웃을 돕는 일에 관심있어서 오지요. 그 분들이 자원활동을 하거나, 열성적으로 모금하시는 분, 집에서 지독스럽게 환경실천을 하거나, 근 10여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부가 새벽기도을 하면서 정토회에서 자원활동을 하시는 걸 보면 너무도 많은 감동을 줍니다. 그토록 열심히 북한동포나 아프간 사람들을 위해, 직장 끝나고 모금하는 활동가 도반들이나 신도님들을 보면 감동하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이런 일하면 좋은 사람들만 만납니다. 감동적인 사람들만 만나요. 그리고 감동의 감각이 발달합니다. 그래서 나누기 할 때 사소한 것에도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일이 그저 감동의 도가니입니다. 수많은 감동을 누리며 사는 일은 정말 행복한 일이지요. 정토회는 그 감동의 에너지가 만들어가는 조직입니다. 저는 사회운동은 항상 아트(Art)라고 생각합니다. 감동을 주는 것은 모두 아트입니다. 감동을 생산하고 그 감동의 힘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거니까요. 이제 저항 속에 너무 활동이 비장하면 고뇌에 찬 소수의 높은 결의 수준의 사람밖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의미와 감동, 내용과 재미가 에너지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농담삼아 ‘조직의 쓴 맛’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어떤 조직이든 유지되는 것은 ‘조직의 단맛’ 때문입니다. 단맛이 워낙 좋기 때문에 약간의 쓴맛은 단맛을 누리기 위한 투자이자 일종의 ‘기회비용’라고 생각하지요. 그 감동과 재미가 단맛입니다.



/교육원 활동을 마치시고 정토회의 공양주가 되셨었는데 전성기의 활동가가 일선에서 떠나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 봅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들이 가능했을까요?



글쎄요 저는 항상 전성기였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도 아프간의 맑은 밤하늘의 달을 보면서 생각해보면 지금이야 말로 나에게 최고의 시기, 최상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합니다.

공양주는 그동안 제가 정토회에서는 선배축에 속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많은 분들의 정성어린 노고로 매일 밥을 얻어먹으면서 저는 드러나는 일만 했습니다. 표나고 드러나는 일은 공덕을 깍아 먹는 일인 것 같아요. 공덕을 쌓아야지요. 더 오래 일을 잘하려면 많은 사람을 대접하고 모시는 일을 많이 해야하는데 정토회에서 그동안 계속 부문에서 대장노릇만 해 온 것같아서 공양간 일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마음공부도 많이 된다고 해서...



"아이의 인생을 우리의 취향때문에 희생해선 안돼...2세 생각하지 않아...



정토회는 1,000일(약3년)마다 전체활동을 모두 내려놓고 처음상태(Zero Point)에 놓고 전면 검토합니다. 그리고 그때 모든 사람들의 보직이 해임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바른 방향인지를 전면 검토하면서 없앨 것은 과감히 없애고 새로 만들 것은 새로 만듭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도 그가 그 일에 정말 맞는지를 검토해서 다시 배치됩니다. 설령 다시 같은 직책이 주어져도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속 2회 (2,000일)까지는 할 수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무조건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약 10년간 환경관련 활동을 해왔고 바꿔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공양간을 자청했고 도반들이 동의해주었습니다. 이런 방식도 오랜 토론을 통해 정착된 겁니다.



사람이 한분야에 활동을 오래하면 개인의 인맥과 활동의 노하우(Knowhow)가 생겨 훨씬 효율적이고 그 분야에 전문적이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의식이 생깁니다. 그리고 다른 분야로 옮기면 과거의 활동경험이 토대가 되어 훨씬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그 일과 분야가 새롭게 활성화되는 기회가 됩니다. 그리고 한사람이 너무오래 일을 하면 후배들의 지도력을 마음껏 발휘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책임지는 기회를 갖는 것이 지도력 훈련에 가장 좋은 방법이잖습니까?



/공양주가 된 것도 특별한 일이었지만 또 어느날 갑자기 아프가니스탄에 가신 것도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프간으로 가시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습니까?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그 곳에 답사를 다녀온 도반들의 보고를 듣고는, 사람을 보내는데 일단 저도 고려는 해보시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제가 3년 공양주를 해야하는데, 왠만하면 안보내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일단 가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더욱 시급히 필요하다니 그냥 간거지요.



과거 7-80년대 수많은 사회운동가들이 현장으로 현장으로를 외쳤습니다. 아무튼 저도 그동안 20대의 사회운동의 에너지로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이제 40대 중반, 앞으로 스스로 새로운 에너지로서의 현장활동 바닥경험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지요. 이제 어느새 시민사회단체 내에서 책임과 비중이 높아지고 사회적인 위치가 생긴 것 같아요. 더 있으면 아마도 많은 걸 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때가 저에게 중요한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고 새로운 바닥에서 저의 능력을 점검해보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그렇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을 하셨지만 해외파견근무로 부인과 같이할 시간이 많지 않으시겠습니다. 부부 양쪽 다 현직 활동가인 경우인데 결혼생활과 불교운동이 긴장관계에 처하는 일은 없으신가요? (류정길씨의 부인은 현재 한국JTS 사무국장으로 재직 중인 이지현(덕생법사)씨이다)



같이 일하고 경험세계가 같으니까 훨씬 편합니다. 내가 성격이 모난 편이어서 가끔 불평을 하지만, 덕생법사님은 별로 그렇지 않아요. 아니다. 요즘 내 건강문제 때문에 조금 잔소리는 많아지고 있어요. 사소한 것은 가끔 있지만 특별한 긴장은 없어요. 제 처는 저의 스승이자 도반입니다. 잘 모셔야 하는데... 그러진 못해요. 아무튼 항상 고맙게 생각하지요.



우리가 결혼한 지 15년되었습니다. 그동안 떨어져 산적이 없었는데 오히려 이즈음에서 떨어져 살아보는 것도 서로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상대에 대한 존재감, 고마움을 새삼 확인하는 좋은 기회인 것같아요.



아프간 사람들이 제 처에 대해서 물으면 제 처가 저의 보스(Boss)라고 합니다. JTS 실무책임자니까요. 아프간의 여성은 부루카를 쓰고 다기며 가족 이외의 남자들과 얼굴도 마주치면 안됩니다. 사회활동을 하기는 더더욱 어려운데, 제가 부인에게 지시(Order)를 받는다고 하면 아주 재미있어해요.



/장기간 해외파견근무를 하시는 것인데 이후의 출산의 문제나 자녀양육, 자녀교육의 문제 등에 대해 계획이 있으신지요. 어떤 정토회적인 해결방식이라도 있으신지?



저는 한편으로는 이기적인 편입니다. 나의 삶은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에 고스란히 투입하고 싶어요. 그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제 처도 그런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은 못하면서 참으며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다보니, 아이들의 문제는 뒤로 처지더군요. 이런 성격의 사람이 아이를 잘 건사하겠습니까? 우리 두 사람이야 자기의 판단으로 삶을 선택했다지만, 아이의 경우는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부모의 선택에 의해서 삶이 규정되는데, 그 과보를 어떻게 감당합니까? 아이의 인생을 우리의 취향 때문에 희생하게 만들어도 안되지만, 우리처럼 돈 안벌고 살려는 사람에게 그것은 아이에게 무책임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리고 제 처도 능력이 있어서 계속 일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정토회에서 조건이 되면 아이문제나 부모문제도 공동으로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실제 구체적으로 고민을 하지요. 단지 개인의 욕망을 잘 들여다 보라고 서로 이야기는 할 뿐, 정토회에서 해결방식이라는 것은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지요.



인터뷰 : 김 동 훈 (사단법인 우리는 선우 기획과장)



다음편에는 '유정길 그리고 정토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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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길 그리고 정토회 2


불교의 미래를 말한다 2

유정길 (아프가니스탄 JTS 상근활동가)

2004.05.03 / [불교정보센터]





/‘정토회는 이런곳이다’ 라고 쉽게 설명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단체든 '조직'이라는 틀을 만들게 되면 경계가 생기는 거지요. 조직의 안과 밖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조직적인 결속이 강할수록, 원력이나 의지가 강할수록 구심력의 에너지를 다지게 됩니다. 그것은 밖에서 보면 그 경계가 강해서 폐쇄적이라고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부정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내적인 전혀 새로운 신행과 인간관계, 활동기풍을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토회는 공동체입니다. 수행공동체이자, 사회운동공동체, 생활공동체이기도 합니다. 현재 60여명이 함께 생활하면서 활동이 결합되어 있는 단체입니다. 또한 사회운동과 개인의 수행을 아주 깊이 강조하는 단체입니다. 구태여 말한다면 일보다 수행을 강조하는 집단이라고 볼 수 있지요. 또 한편으로 활동보다 공동체 생활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냥 사회운동에만 관심있는 사람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수행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수행을 운동처럼 해야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존의 관행적인 신행을 기대하는 일반불교 신도들도 함께하기 쉽지 않습니다. 일상적으로 요구되는 사회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들은 운동을 수행으로 생각하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토회의 3,000여 신도들은 대부분 환경운동이나 평화통일관련 활동, 제3세계 지원활동에 모두 참여해야 합니다. 현재 서울정토회관에는 약 200여명을 포함하여 전국의 300여명의 활동가들이 일합니다. 이들 중 2/3가 학생, 직장인, 주부와 회사원들입니다. 때로는 풀타임, 파트타임, 무기한, 한정된 기한 동안의 활동을 합니다. 이들이 자신들이 직접 활동을 기획하고 시행하고 모금하고 평가하고 회의를 만들어나갑니다. 지금 우리는 활동가도 신도도 크게 구분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수행과 깨달음의 내용을 강조하지만 불교임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 식구 중에는 다른 종교를 갖고 있지만 아무런 갈등 없이 함께 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토회는 기본적으로 ‘나눔’의 문화를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나눔은 각자의 소유물을 나누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보와 경험을 나누며 기분과 정서, 지혜와 지식까지 함께 나눕니다. 외부에서 개인에게 들어오는 어떤 선물이나 물건도 방침없이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나누도록 되어 있습니다. 특히 ‘마음나누기’라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정토회에서 생활공동체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입니다. ‘나누기’라는 형태로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함께 공유하기도 합니다. 이 ‘마음나누기’는 사업과 일에 대한 토론만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면서 사소하게 올라오는 자신의 감정과 기분에 대해 솔직하고 거침없이 나눕니다. 하루 시작하고 끝날 때, 일이 시작되거나 끝날 때마다 전체 혹은 부서별 나누기를 합니다. 작업시의 나누기는 한사람이 독단적으로 이끌고 지시하지 않고 나누기를 통해 각자의 방식을 제안하고 함께 공감대를 얻으면 그대로 채택됩니다. 모든 논의에서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직위가 있거나 없거나 스님이든 재가자이든 관계없이 하나의 대등한 의견으로 간주됩니다.

정토회에는 법륜스님과 유수스님 두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회의 때에는 모두가 똑같이 대등합니다. 차별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많은 정보가 집중되어 있고 경험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그 권위를 모두 존중하지요. 그리고 한가지 일을 할 때는 명확하게 책임선이 있고 스님이라 할지라도 그 책임자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라줍니다.

우리는 10,000일 결사과정을 1,000일로 나눕니다. 매 1,000일마다 모든 일을 내려놓습니다. 사업의 방향과 보직까지 모두 내려놓는 거지요.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검토합니다. 그래서 방침이나 방향이 발전 변화되기도 하지만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지요. 그리고 다시 1,000일을 100일로 나누어 매 100일마다 전국의 결사자들이 전부 모입니다. 그래서 매일하는 아침기도와 수행을 점검하고 사회실천과제가 주어집니다. 그 실천 결과는 다음 100일에 보고하고 또 다음 실천과제가 주어집니다. 그 실천은 쓰레기 제로를 위한 환경실천, 통일관련 평화운동, 옷모으기, 모금하기, 자원봉사참여하기 등 신도대중들이 일상 속에 실천하도록 아주 다양하게 실시 되었습니다.



또한 매월 모든 실무자들은 ‘포살법회’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월 1회 ‘울력’이 있습니다. 또한 6개월에 1회 ‘자자법회’도 참여합니다. 모든 토론의 결정은 만장일치를 기본으로 하는 불교전통인 삼의제(三議制)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이 정착되기까지 지난 15년간 100여명의 활동가들이 만들어놓은 토론 기록은 아마 한 사람이 평생 보아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의 분량일 것입니다. 그토록 많은 논의 속에 지금의 모양을 갖춘 것은, 정토회의 자산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의 자산일 수 있고, 사회운동의 자산, 불교 내의 자산일 수 있다고 봅니다.



많은 사회단체들에서 정토회의 수행과 운동방식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직접 공동체에 살아보려고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공동체로서의 정토회’만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회운동단체로서의 정토회만 알 뿐, 공동체로서의 정토회, 수행단체로서의 정토회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에너지는 오랜동안 많은 좌절과 실패, 성공과 성취, 작은 변화에서 급격한 변화까지를 내부에서 만들어오면서,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나가고 들어오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 점검과 단련과정을 통해 다져진 부분에서 나온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지금 현재도 정토회는 완성태가 아닙니다. 현재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고 변화의 과정에 있으며 계속 변할 것입니다. 아무튼 정토회는 수행과 보시, 봉사를 실질적으로 벌이는 수행공동체이며 사회활동단체입니다.


/아는 분들은 ‘법운(法雲)’ 법사님으로 호칭하시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은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이후 교육원)의 ‘유정길 국장’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교육원 시절에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요? 그리고 일찍부터 환경을 운동주제를 선택하게 되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처음에는 한국불교사회교육원 사무국장이었지요. 그때 주로 불교내의 대학생교육, 청년교육을 했고, 여성문제를 위한 여성운동관련교육, 민족불교학당, 그리고 스님에 대한 사회과학학습을 했습니다. 이후 민족불교학당출신들이 청년여래회를 만들어 불교내 사회단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열심히 활동했던 환상적인 단체였습니다. 그래서 그때 사람들이 참 정이 많이 가는 아끼는 도반들이지요. 그러다가 90년 환경문제로 관심을 돌려 이름을 한국불교환경교육원으로 바꾸었습니다.



처음에 90년 초, 법륜스님이 ‘환경문제가 네가 그동안 알고 있는 그런 것이 아니며 훨씬 근원적이며 본질적인 문제니까 관심을 갖고 활동을 준비해보라’고 권하셨고 오랫동안 설득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모든 운동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저에게 환경운동은 그저 운동적 결의수준이 높지 못한 사람들의 변방의 활동정도로 인식했었기 때문에 쉽게 동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분의 깊은 조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같아서 다시 진중하게 받아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환경운동이 내가 알고 있는 환경운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이고 새로운 의식화의 중심내용이었습니다. 김지하 선생님이나 김민기씨나 김종철 선생님이나 생명운동을 주장하는 것이 단순히 환경운동하자고 강변하는게 아니거든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가 양쪽 모두 잘먹고 잘사는 것 그리고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가 좋은 것이고 그것이 곧 진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분배방식으로 서로 우열을 다투는 문제였다면,

환경운동처럼 드러나보이는 생명운동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가 그동안 너무도 당연시 해 온 근본전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그 문제되는 근본전제는 인간의 경제성장을 위해 자연(혹 자원)은 무한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오로지 인간만이 중심이고, 인간을 위해 모든 자원이나 생명은 종속되거나 복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소위 ‘위기’라는 말을 쓰는 것에 크게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기 앞에 다른 많은 문제는 2차화됩니다. 그 위기의 내용은 공멸의 메시지입니다. 그속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죽임의 관계와 문화가 보편화된 것지요. 그래서 생명운동 앞에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의 체제경쟁은 ‘그놈이 그놈인 싸움’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죽임의 문화를 살림의 문화로 바꾸는 모든 활동이 생명운동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가 환경운동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은 환경운동이라는 외피(?)를 쓴 근본주의적 생명운동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타인을 죽이고 다른 생명과 자연을 죽이지만 결국은 자신도 죽고 만다는 것은 이제 깊은 통찰까지도 필요없는 일상적인 깨달음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운동은 완전히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생명운동 속에서 펄펄살아 가슴에 깊이 꽂히기 시작하더군요.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도 전혀 달라지고, 일을 펼치는 방법, 작은 계획을 수행하는 방법 모두 달라지는 겁니다. 당시 사회운동에는 과거의 맑시즘적 앙금들이 남아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분노를 조직화하거나 저항을 동력화하는 것이 예전의 운동방식이라면 이제 그것은 낡은 것입니다. 분노와 저항은 단기간의 파괴의 에너지는 될지 모르지만, 전 삶을 던지면서 오랜기간동안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분노와 저항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파괴되고 피폐되기 때문입니다. 네거티브 에너지는 창조와 건설의 에너지가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게 기뻐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살거 아닙니까, 내가 일하면서 힘들어하는데 누가 그런 일을 따라오려고 하겠어요.

제가 하는 일이 과거 불교환경교육원 시절에는 환경운동이었다가 지금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구호활동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때도 생명운동을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과거에는 환경운동처럼 드러났고 지금은 구호활동처럼 보일 뿐입니다. 정토회도 마찬가집니다. 환경운동, 평화운동, 제3세계구호운동, 수행운동 모두 실은 하나의 다른 표현형일 뿐입니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모두 잘먹고 잘사는 것이 진보라고 바라보는 한 그것은 결국 죽임의 논리에 포섭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신성은 피폐해도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려는 것’이 과거의 가치라면 이제는 그것이 더 이상 진보의 내용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깨달음의 가치는 풍요롭게 그러나 물질적으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사회진화(진보가 아니고)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골고루 가난하게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너와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고, 개인이 사는 거지요.





/불교계 일반에서 정토회에 대해서 얘기들을 많이 하면서도 정작 정토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정토회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점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에 대해 생각하고 계신게 있습니까?

그거야 정토회는 폐쇄적이다. 스님이 승적이 없다. 그런 내용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위에서 언급했습니다만, 저도 처음엔 외부의 그런 오해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한편 그러한 비난도 우리가 활동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실제 폐쇄적입니다. 그것은 형식과 내용을 일치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다보니 그리 보이는 거지요. 우리는 아무나 쉽게와서 쉽게가는 조직은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절차가 있고 공감대를 얻는 공동체적 경험을 해야만 그만큼 책임있게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폐쇄적이지만, 바로 그 점이 우리의 초발심의 순수성을 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한편 폐쇄적이라는 비판은 우리와 자주 접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견지동’적 시각이 아닌가 싶어요. 직접 한번 와 본 분들은 그런 이야기는 잘안합니다.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원력을 갖고 일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일할 수 있게 열려있는 곳이 정토회입니다. 정토회는 전국적으로 한 300명 정도가 일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의 경우에는 일하고 싶어도 소수의 사람들만 하지 다수의 일반적인 대중은 그저 돈내는 것이외에 접근하기 어렵잖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일하고 싶은 누구나 어느 조건에서도 일할 수 있도록 하게 합니다. 상근실무자들은 그 사람들의 일감을 만들어주고 조정해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중에 하나예요. 이런 단체를 폐쇄적이라고 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리고 예전엔 승적문제 때문에 답답해 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스님이 승적이 있으면 있는데로 좋습니다. 그러나 없다고 문제삼지는 않습니다. 없어서 불편한 점이 많이 있지만, 있으면 아마도 종단이나 불교공식기구의 수많은 요구로부터 자유롭지 않을테고, 그려면 우리가 원하는 방향을 만드는데 변수가 너무 많아지게 되지요. 처처심심(處處心心), 처한 조건대로 살아야지요. 있으면 있는데로 없으면 없는데로 살아야지요. 오해하면 어쩔 수 없지요. 받으면서 살아야지요. 욕 안먹고 살 수 있나요. 그것도 큰 욕심이지...


/정토회의 활동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활발해지는 것에 비례해서 외부에서의 기대 또한 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반 대중이 쉽게 참여할 수는 없다고들 생각하는데 법사님이 하시는 일을 존경해도 법사님처럼 전일적으로 활동을 하기에는 현실적인 고려사항들이 많습니다. 특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크게 의미를 가지기 힘든건 아닐까요?

특수하지 않은게 있나요. 개개인 모두 특수한 존재입니다. 한 개인 개인을 각자 주의깊게 살펴보면 남이 따라할 수 없는 아주 특수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수한 사람들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특수 속에 일반이 있고 일반 속에 특수가 있습니다. 한 개인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면 누구에게나 관념적으로 가능합니다. 단지 선택하지 않을 뿐이지요. 우리가 특별하다고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과거에 사회운동에 자신을 투신했던 사람들은 일반인이 볼 때 모두 특수한 별종의 사람들이었지요. 학교를 잘리거나 기득권을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가거나 했잖아요. 특수한 거지요. 그러나 정작 개인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리고 세상에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라는게 있기나 한건가요. 하나하나 모두가 특수하지요. 들판에 피어있는 풀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하나같이 모양이 다릅니다. 바로 그 점이 감동스러운 것 아닙니까. 우리가 백인이나 흑인들을 볼 때 처음에는 누가누군지 구분 못하지만 조금 지나면 하나하나 아주 특별하고 영판 다르다는 것, 같은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겁니다. 다른 사람이 정토회를 볼 때도 불교신행단체, 혹은 운동단체와 별반 다를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우리도 다른 단체가 다른 것만큼 다르고, 같은 것만큼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반대중이 쉽게 참여하는 운동을 기조로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 통일운동, 제3세계 지원운동 모두가 몇몇 특별한 전문적 활동가들 중심의 활동을 포기하고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운동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한 예로 환경교육원의 경우, 그동안은 환경교육과 생명운동에 대한 지역네트워크 및 이념개발과 공동체운동 등에 초점을 맞춰 활동을 했지만, 지난 1,000일 입재부터 방향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그래서 다수가 참여하는 대중참여 운동방식으로 생태적 생활양식과 가치관의 변화를 중요한 내용으로 쓰레기 제로운동을 전국적으로 실천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환경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실천해보고 안되면 주장하지 말자는 모토입니다. 그래서 실제 수많은 신도대중들이 참여하다보니 참으로 다양하고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가 나와서 실천되고 있으며 그속에서 사례와 모범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또한 전 신도대중들은 모두 최소한 일주일 2시간 이상씩 자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전국적으로 300명 정도가 완전상근하거나, 최소 일주일에 3일 이상 전일로 활동하고 대부분은 자신의 직장이나 집에서 아니면 법당에서 활동에 참여합니다. 그 외에도 매 100일마다 기도회향과 입재를 합니다. 그때마다 모든 대중들에게 사회적 실천과제가 나갑니다. 그것이 다음 100일에 실천보고회를 갖고 또 다음 실천과제가 나가지요. 이 정도면 어느 단체보다 대중이 쉽게 많이 참여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요즘 들어서 정토회의 사회적 활동이 많아질수록 기대감을 갖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더군요. 우리가 사회운동 내에서 혹은 불교 내에서 요구되는 많은 일이 있지만 물론 많이 못합니다. 그래서 갈수록 “그 정도의 단체가 이것도 하지 안다니... ”라면서 욕도 많이 먹을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 우리의 기조를 정했습니다. '의미 있는 일이나 운동은 모두가 소중하게 생각하며 깊이 공감하고 마음으로 참여하고 연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합니다. 그래서 단지 우리만 할 수 있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될 일을 되게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우리의 활동 기조입니다.



과거 독재타도를 외치면서 강력한 파괴력이 필요했던 시기에는 ‘전노련, 전학련... 등 ’전‘자 돌림의 일사불란한 집단적 규합이 필요하고 그 범역에 포함되지 않으면 전선이 그어지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비전과 생태적인 창조의 시기에는 다양성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로 규합되는 에너지도 필요하지만, 낫낫히 쪼개지는 다양성의 에너지가 훨씬 비전의 풍성함을 갖게 합니다. 기대는 하시겠지만, 그 만큼 실망도 돌려드릴 것 같군요.



아무튼 불교 내에서 우리같은 단체가 없는 것보다 있는게 낫잖아요? 우리로 인해서 불교가 욕을 먹었다든가 불교에 해를 끼쳤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뭔가 의미와 가치를 생산하는 단체가 많은 수록 좋은거지요. 단지 변방에서의 비난이 아니라 불교나 사회운동의 중심에서 책임진다는 관점에서 보면 불교 내, 사회운동내 에서 하는 좋은 일들은 모두가 의미있고 소중하지 않을까요?





/정토회는 조계종에 발을 걸치고 있으면서도 조계종에 포함되려하지 않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계 내부적으로 개혁해야 하고 고쳐져야 될 모습이 많은 시점에서 정토회는 왜 밖으로만 가고 겉에서만 바쁜 걸까요?



실제 정토회에서 주로 활동하시는 분들의 기반은 대불련 출신의 비교적 선배그룹들이라서 조계종의 연줄이 많습니다. 저희 법당은 조계종에 소속되어 있어요. 그러나 사회활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구태여 조계종이라고 범역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말할 필요도 없구요. 운동은 단지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하는 거니까요. 그러다보니 그렇게 보였나보지요. 그러나 우리는 안이다 밖이다 그런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습니다. 단지 안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분에게는 밖처럼 보였겠지요.



그리고 교계 내부개혁은 종단개혁을 말하는 것같군요. 불교는 정법안장하는 종교아닙니까? 정말 올바른 법을 수호하고 깨달음을 얻고 수행해 나가는 것,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의 근본자리를 찾아 살아가며, 그렇게 살려는 것이 개혁이 핵심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중 일부분도 80년대 초반에 내부개혁과정에 적극 참여한 적도 있습니다. 교계내부의 개혁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거 사회운동처럼 파괴와 타도를 중심으로 한다면 단체들이 집결해야 할겁니다. 그러나 개혁을 정치개혁처럼, 정치적인 논리로 바라보는 것은 정치혁명은 될지 모르지만, 종교개혁은 아니라고 봅니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종교적 근본성에 올바로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혁도 중요하지만 누가 개혁하는가, 어떤 과정과 방식으로 개혁하는가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개혁하는 사람들이 정말 개혁적인가, 그리고 충분히 대안적인가도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반복에 불과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개혁하면 뭔가 저항과 반대의 정서가 흐릅니다. 그리고 ‘종단과 제도’라는 한정된 공간의 변화만이 연상됩니다. 저는 종단과 제도의 변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보고 실제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교개혁을 종단으로만 한정해서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겁니다. 사회에서 한 문제가 발생하면 실은 전체 모든 사람 속에 베어있는 문제입니다. 개혁은 종단도 있지만, 불교 내 곳곳에서 올바른 법을 따르고 실천하는 과정도 개혁의 중요한 내용이라고 봅니다. 형식의 변화를 수반할 내용과 정신의 회복이 함께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구조의 변화와 개인의 변화, 제도의 변화와 정신의 올바로 섬, 이것이 함께 하는 것이 개혁이며 저희가 90년대 사회변혁과 관련해서 고민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불교개혁은 종단만으로 국한되어서는 안되며 종단이 문제가 있다면 승재가 우리 모두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개혁은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개혁은 비판과 종단변화의 과정도 필요하지만, 올바른 방향에 대한 대안과 비전에 대한 모색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 단체가 모든 걸 할 수는 없지요. 많은 단체들이 분담을 해야합니다. 종단을 건강하게 만드는 단체들은 참 소중합니다. 우리는 관심있지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그분들이 해야 할, 못하고 있는 한 부분을 하고 있는 거지요. 그것도 저는 큰 불교개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정토회의 사회변화의 전략은 일종의 ‘틈’전략입니다. 모든 변화는 실제 이 ‘틈’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변방에서 시작하지요. 모든 주류의 시작은 언제나 그 출발은 변방입니다. 한국사회는 자본주의로 전면 장악되었다고 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은 반자본주의적 인간적, 공동체적 ‘틈’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걸 발견해서 확장시켜 나가면서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나가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단체들이 안에 신경쓸 때 누군가 밖의 일하는 단체도 필요하잖아요. 다양성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단체는 그 자리 그만큼 소중하고 의미있는 겁니다. 중심과 주변이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중심에 집착하고 강조하게 됩니다. 실제 뭐가 중심이고 어디가 주변인가요. 중심과 주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계적 사고에 빠져있는 것이며 다양성의 관점이 아닙니다.

/운동가로써의 활동경력도 있고, 지난 기간 많은 인맥과 경험을 쌓아오셨기에 정토회가 아니더라도 다른 영역에서 충분히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정토회말고 다른 곳으로의 유혹을 받거나 한 눈을 파신 적은 없으신지? 그리고 아직까지도 여전히 정토회를 고집하고 계신 이유가 있으면 말씀해주시죠.

우리는 모두가 정말 많은 과정을 거쳐 함께 만들어 온 단체입니다. 오랫동안 도반들이 함께 만들었지요. 그속에 저도 포함됩니다. 제가 만들었고, 제 스타일로 일이 진행되는데 달리 다른 곳을 생각할 필요가 있나요? 단지 나른해지지 않기 위해서 정진하려고 할 뿐입니다. 함께 일한 도반들간의 애정, 그리고 부처님 법의 기쁨을 나누고, 사회적 열정을 갖는 이 곳이 저에게 참 과분한 곳이지요.


인터뷰 : 김 동 훈 (사단법인 우리는 선우 기획과장)

다음편에는 불교의 미래를 말한다 -유정길편의 마지막, '유정길이 말하는 활동가의 삶'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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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길이 말하는 활동가의 삶 3

불교의 미래를 말한다 2

아프가니스탄 JTS 상근활동가 - 유정길 (마지막 편)

2004.05.07 / [불교정보센터]



/오랜기간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불교운동을 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

제가 워낙 성격이 괴팍하고 미련하다보니 20년간 활동하면서 주변사람들 고생을 많이 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나보고 인상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가 본데 실제 제 성격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몰아 부치고 혹독한 편입니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실무자이자 도반들은 저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지요.

예전에 환경교육원에 있을 때 함께 일했던 간사들이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6명이었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보통 기가 ‘센’ 친구들이 아니었습니다. 회의는 언제나 전쟁이었지요. 한치도 자신의 의견을 접지 않았고 작은 일 조차도 세계관과 관점의 차이까지를 토론했어야 했으니까요. 그 과정에 나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싸우면서 깊이 정이 들고 함께 계속 일을 해갈 수 있었습니다. 실무자 잘못 얻으면, 애물단지고 상전하나 모시는 거잖아요. 그러나 그게 저에겐 큰 수행이 되었지요. 그럼에도 참 많은 일을 열정적으로 했습니다. 싸우는 것도 에너지가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제가 그 일의 주체라고 생각하면 실은 아무리 힘들게 한다고 해도 저의 일을 도와주러 온 고마운 사람입니다. 정말 고맙지요.




아무튼 그후 5-7년을 함께 일하다가, 그 중 한 여성간사분은 결혼해서 한 생협에서 출중한 환경활동가로 일하면서 정토회의 일을 돕고 있고, 또 그들 중 두 명은 박사학위를 받고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 곳은 기독교 단체이지만 생명운동이라는 차원에서 내용적으로 함께 오랫동안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 곳에서 우리단체 출신들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지금 다른 형태로 관계를 맺고 정토회 일을 돕고 있지요. 지금 만나면 서로 어쩔줄 모르고 반가워하고 좋아하며 연락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옵니다. 그리고 부산의 한 교수님과 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겨울방학에 아예 서울로 올라와 살면서 몇 달간 정토회의 전문적 일을 해주기도 합니다. 그들은 정토회가 고향입니다. 모두 친구이자, 형 동생이고 가족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 정토회에서 일하고 있고, 거쳐갔습니다. 하나하나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지요. 정토회에 상근은 하지 않더라도 다른 단체에서 혹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관계맺는 방식이 변화되었을 뿐 다양한 형태로 정토회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활동가들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는 저같은 젊은 사람에게 매우 궁금한 사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현장의 최일선에서만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과 운동에서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신지요.

정토회와는 달리 많은 불교활동가들은 일반사회인과 같은 생활환경 속에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잘 아시겠지만 경제적 여건이나 환경은 열악한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어떠한 이해나 극복의 지혜가 필요한 걸까요??

사람이 약해지는 것은 두가지 분별 때문입니다. 자꾸 비슷한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서 걱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걱정하는 겁니다. 이렇게 살다가 먹고살기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지요. 이런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원력이 약해집니다. 고민만큼 현재하고 있는 일에 전력투구하는 에너지를 분산시키지요. 이 두 분별이 끊어지면 지금 하는 일을 미친 듯이 할 수 있습니다. 비전은 고민한다고 되는게 아니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정신없이 하다보면 만들어지는 것이 비전입니다.

그리고 인생이 뭐 별건가요. 자꾸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니까 고민하는건데, 까짓거 수많은 사람 중에 그저 별 볼일없는 한 인생이 이런 일하는거 뭐 별거 아니잖아요. 가볍게 던지는 거지요. 우리나라는 잘사는 나라입니다. 아프간에 비하면 한 50배 넘게 잘살아요. 그곳에서는 정말 하루하루 생존의 문제가 턱에 찹니다. 저렇게도 사람이 사는데 한국과 같이 잘사는 나라에서는 어떻게든 한 인생이 못살겠습니까?

예전에는 개인에 대한 비전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이렇게 살뿐이지요. 과거에는 물질적인 진화로 급급한 것이 한국사회라면 이제 사회단체나 시민운동은 정신적인 사회진화를 추구하는 겁니다. 예전에 운동하면 돈버는건 고사하고 감옥가고 고문당할거 두려워했지만, 이제 누가 그럽니까 오히려 좋은 일한다고 칭찬도 많이 듣잖아요. 그리고 사회활동한다고 웬만해서 굶어죽습니까? 너무 엄살들이 심한 것같아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조건인데도 말이지요.

과거 경제성장은 물건과 상품을 생산하는 상품시장의 확대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사회운동은 가치와 의미를 생산하는 일종의 신념시장이자 도덕시장입니다. 상품시장이 포화되었을지 모르지만, 신념과 도덕시장은 아직 개척되지 않은 무궁무진한 영역이 있습니다. 할 일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돈벌 생각만 접어두면 훨씬 더 많은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활동가의 삶 안정을 스님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불교의 주인은 스님이라 생각하는것..“

그리고 요즘 취업이 안된다고 난리들인데, 저는 아주 잘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돈벌려고 일하는 시대에서 자신을 구현하려고 일하는 시대로 변하는 하나의 징후이지요. 열심히 살다보면 돈은 저절로 붙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따라다니면 평생 인생이 돈으로 허덕댑니다. 대부분 돈을 굴리며 살아야 하는데 돈에 의해 굴려 다닌다니까요. 어떤 일이든 그길로 10년만 바닥을 기듯이 일하면 먹고 살길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그걸 못해서 그렇지... 신념있게 살려면 처음에는 고생을 해야합니다. 그 정도도 안하려고 하면 도둑놈이지요. 그리고 10년 뒤, 20년 뒤 그래서 후배들에게 이야기해 줄만한 자신의 전설이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리고 삶에 있어 자신의 신화도 있어야 하잖아요. 돈버는 일과 관련없는 곳에서 이름없이 생고생하면서 사는 것도 행복의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요즘 사회는 벤처를 원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나 개인은 벤처를 절대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밴처를 원하지 않는 부모 말 잘듣고 살면 인생은 망칩니다. 벤처(Venture)라는 것이 번역하면 ‘모험’이잖아요. 취업이 안된다고 하는데 대부분 직장의 일에 고생하거나 혼신을 다해 일을 하기 보다는 적당히 돈벌 생각을 하고, 더 많이 돈준다는 직장이 나오면 홀연히 떠날 생각하잖아요. 회사의 사장들은 그거 다압니다. 그런 사람 누가 받겠습니까? 그러니까 취업하기 어려운거예요. 그런데 실제 직장이 없나요? 회사에선 사람이 없다고 난리잖아요. 하물며 돈벌이도 처음에는 오랜기간 돈도 투자하면서 고생하고 실패하고 좌절하는 기간이 있잖습니까, 운동하는 사람이 구속되고 고문당하는 것도 개인의 삶 속에서는 투자입니다. 고생도 투자예요. 그런 과정을 많이 겪은 사람이 성공할 자격이 있고 성공해도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그러나 일확천금한 사람은 쌓은 공덕은 없이 복만 누리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나중엔 화가 됩니다.

사람이면 결혼도 해야하고 집도 장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혼도, 집도 당연히 해야한다고 생각하니까 괴로운 거지요. 그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게 생각하면 편해집니다. 결혼도 그래요. 사람도 자기만큼 만나잖아요. 신념있게 살다보면 그 길에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문제는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가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길에 굳건하면 주변 사람이 나에게 맞추게 되어 있습니다. 변할만한 구석이 있으니까 부인이나 가족이 흔들어대는 거지, 흔들어대도 안될 것같으면 오히려 그들이 변하고 배우자나 가족이 내쪽으로 오게 되어 있어요. 내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시고, 그냥 나를 던져 버리세요. 그러면 됩니다. 해결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가난한 나라라면 모르겠는데 우리같이 잘사는 나라에서 뭘 걱정인가요? 자기 물질적 기대욕구가 많아서 문제지 그것만 내려놓으면 얼마나 하고 싶은 일하면서 풍요롭게 살수 있는데... 아프간에 있다보니 우리나라는 정말 괜찮은 나라입니다. 사업에 실패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돈에 찌들려 사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은 사람에겐 왠만한 강한 충격(Impact)이 아니면 어려운데 마침 사업이 실패해줘서 바로 그런 전환의 기회를 만들어 준 것 아닙니까.




불교 내에서 종단이나 스님들의 의식 속에서 재가사회활동가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엔 동의합니다. 그러나 내가 내일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해주면 좋지만 안해줘도 상관없지요. 스님들이 해줘야 하고, 종단에서 해줘야 한다고 실제로 (그냥 해보는 이야기가 아니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불교의 주인은 스님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사부대중이 평등하다는 주장을 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정말 스님들을 잘 모시면 그런 자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스님과 재가가 대등하다고 말은 하면서 불교의 모든 책임은 스님에게 있다고 하면, 편익만을 요구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수행도 활동도 똑같이 해야지요.

/현재 불교계에 많은 활동가들이 있고 활동분야도 점차 넓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들에게 들려주시고 싶은 조언은 없으신지? 불교정보센터의 독자들이나 일반 대중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나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으면 들려주십시오.


이제 한국사회에서 진보의 영역은 이제 넓어져야 합니다. 그동안 한국에서의 진보운동은 한국이라는 국가영역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미국이 자기나라의 이익에만 몰두한다면 전세계가 모두 맹렬히 비난할겁니다. 어느덧 우리나라도 세계문제에 책임져야하는 정치적 경제적 지위에 올랐습니다. 국가나 정부의 인식보다 비정부기구(NGO)의 인식이 훨씬 폭넓고 유연해야 합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도 전지구적인 문제, 세계의 문제에 대한 책임의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한때 우리가 제3세계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느 누구도 가난한 나라, 그래서 잘사는 나라로부터 피해만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아프간의 고통, 이라크에 문제, 버마나, 베트남 등 전쟁과 가난속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문제는 연기적으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이제 불교가 다른 사회운동보다 앞서가려면 세계의 문제로 적극 나가야 합니다. 저희 정토회 대학생회는 인도와 아프간 지원활동을 하다보니 대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많이 옵니다. 참 좋은 학생들을 많이 만났고 그 분야에 많이 관심있어합니다.



요즘 대학생운동도 전망이 선명하지 못하고 활력도 떨어지잖아요. 그건 대학생 일반의 관심이 어학연수수다 배낭여행이다 국제화되고 있는데 진보적 대학생운동의 인식은 한국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용도 있지만 즐겁고 감동적인 곳에 사람이 모이는데, 비장하고 결의를 요구하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안오는 겁니다. 남을 돌아보고 걱정하다보면 자기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열심히 밖을 돕다보면, 그러한 분위기가 높아지면 불교내의 기운이 건강해집니다. 불교의 개혁에 일조하는 거지요.



지금 사회운동 속에서 지금만큼 주도력과 영향력을 불교가 발휘했던 시기는 없었던 것같습니다. 어쩌면 불교가 운동 뿐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가장 잘나가는 전성기의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 만큼 깊어져야 하고 넓어져야지요, 사회운동을 하면서 스스로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활동하는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즐거웠고 재미있었다면 그 보답은 이미 받고 있는 겁니다. 목표도 중요하지만 과정지향적이고 관계지향적인 활동이 되어야 합니다.



아둥바둥 돈벌고 싶은데 취직도 안되고 해서 할수 없이 불교운동이나 사회운동하면 안됩니다. 돈도 못버는 사람은 운동도 못합니다. 그리고 돈버는 것이 부러운 마음이 있는 사람이 밀려서 들어와 일하면 열등의식이 있어 당당하지 못합니다. 불교내의 사람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거 아닙니까, 한사람이 노력 여하에 따라서 그만큼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요. 회사나 사람 많은 곳에서는 수많은 사람 중에 그저 하나의 부품에 지나지 않지만, 불교 내에서 한사람이 갖는 파장과 영향력은 큽니다. 그만큼 가시적 생산성이 크다는 거지요. 가볍게 그냥 일하길 바랍니다. 대단한 일을 한다는 상도 갖지 마시고, 온갖 분별갖지 말고, 무식하고 미련하게...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계속 활동하실텐데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필요하거나 있으면 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요. 도움이 안되더라도 말씀을 한 번 듣고 싶습니다.

얼마전에 ‘실미도’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도 봤구요. 그리고 아는 사람의 소개로 ‘한씨연대기’라는 연극을 봤습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내용자체 보다는 아프간을 생각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우리가 3년간의 동족상잔의 전쟁이 50여년이 지난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눈물을 뿌리는 아픔과 서러움으로 남아있고, 그것이 영화나 연극이 대대적인 성공을 이룰 정도로 정서적공감대를 만들고 있는 걸보고, 그보다 더한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의 속내는 어떨까를 생각했습니다.

소련과 10년간의 무자헤딘활동, 그리고 13년간의 내전, 종족간의 전쟁, 종교전쟁등 총 23년간 진행된 아프간의 전쟁속에서, 내가 아프간에서 알고 있는 주변의 대부분 사람들은 식구 중에 최소한 1-2명 많게는 6-7명이 죽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황량한 카불시내 곳곳에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곳곳, 특히 사막의 평야 가운데 우뚝 수많은 푸른깃발의 무덤들이 있습니다. 하늘을 찌르는 이들의 원혼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참 가슴 에이는 아픔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3년간 싸운 우리가 이 정돈데, 23년 싸운 이들은 오죽할까. 우리 함께 일하는 아프간 스텝인 ‘모하메드 하심’은 소련의 폭격으로 어머니와 3명의 여동생이 죽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현지 스텝입니다. 참 성실하고 재미있고 속깊고 귀엽기까지 한 그는, 다 좋은데 아버지와 관계가 나쁩니다. 아버지는 65세인데 그가 40 넘어서부터 일을 안하고 아들인 자기에게만 의지 하고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버지가 집이다 땅이나 자식에게 물려주는데 본인은 하나도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도 없고, 오히려 아들인 자기에게 계속 투정만 하고 불평만 하고 며느리를 못살게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소련폭격으로 자기 부인과 딸 셋을 여읜 그는 이후 ‘돈을 벌어야 할 의미가 없다’는 말을 했을 때는 모든게 너무도 확연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심의 아버지 마음 속에 쌓인 한과 슬픔의 앙금은 더 이상 삶의 의욕도 희망도 없이 절망 속에 지금껏 살아온거지요. 이곳에 술이 없으니 망정이지 있더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원한을 잊기 위해 알코올중독 폐인이 되었을 겁니다.

많은 분들이 아프간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이라크는 아프간보다 그래로 잘사는 나라입니다. 현재 세계어디에도 아프간같은 나라는 없습니다. 물론 후원 많이 해주세요. 일단 오기 어려우니까. 그리고 많은 분들이 자원봉사활동을 하러 오셔도 좋습니다. 잘사는 나라만 가서 어학연수하지 말고 이런 곳에 와서 젊은 날 자신을 태우는 경험도 소중한 삶의 힘이 됩니다.

아하, 그러나 자원봉사하시려면 정토공동체에서 최소한 49일은 살면서 사전 교육을 받아야합니다. 그런 과정없으면 공연히 와서 분별만 내고 이곳에서 일하는 우리들의 힘만 들게 할수도 있습니다. 49일 살려면 3일간 1만배 기도해야 합니다. 절차가 복잡하지요? 그러나 한사람과 안한 사람과는 다릅니다. 이래서 정토회를 폐쇄적이라고 하나?


/오랜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몸조심 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불교정보센터에 가끔 소식도 전해주시고요...



인터뷰 : 김 동 훈 (사단법인 우리는 선우 기획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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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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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회(淨土會)는 1988년 정토포교원을 개원으로 시작된 법륜 스님이 지도법사로 있는 불교수행공동체이다.

정토회는 대승 불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종교와 사회운동 두가지 측면을 다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종교라 하면 개인의 완성 즉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고 사회운동의 영역은 사회의 완성 즉, 사회 변화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지만 정토회는 이 영역이 둘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활동을 한다.

정토회에 참여하는 개인은 불교 수행법에 의해 기도하며 종교생활을 한다. 그러나 종교를 불교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활동하고 있는 사회영역은 국제구호, 통일, 환경의 영역이다. 그래서 산하단체로 국제구호민간단체인 한국JTS, 좋은 벗들, 에코붓다를 설립하고 각각의 영역에서 활동한다.

외부 링크[편집]

(한국어) 정토회
(한국어) 청년정토회 - 정토회 청년단체.

분류:
대한민국의 단체
불교 단체
대한민국의 시민사회운동 단체











2020/02/19

Why is Stoicism so popular in the US Army? — Philosophy for Life



Why is Stoicism so popular in the US Army? — Philosophy for Life



Why is Stoicism so popular in the US Army?



I've noticed, during the research for my upcoming book on how people use ancient philosophy in modern life, how many of the Stoics I interviewed were or are soldiers (or cops, or firemen). Why is that? I asked Nancy Sherman, professor of ethics at Georgetown University and the author of Stoic Warriors, which looks at Stoicism in the armed forces. She replied:

There's a popularization of stoicism with a small s in our culture - the idea of being self-sufficient and self-reliant. In that sense, the word 'stoic' has survived in the popular vernacular. It has little to do with Stoicism. 

But Stoicism is also a natural fit for the military, in the sense of sucking it up, the stiff upper lip, and so on. Being a soldier is about deprivation, survival, the minimization of need and attachment. So Stoicism suits them.
In the US Navy and the military at the academy level, Admiral James Stockdale was also a popularizer of Stoicism. Epictetus and Marcus Aurelius are particularly popular, because they're accessible. And Aurelius was a soldier and emperor, which impresses military people.



Do you think Stoicism can be a harmful ethos?

I think the little s stoic ethos of 'suck it up and chuck on' can be harmful. It's a form of abstinence and denial. Your body goes into it naturally when you go into stressors. But it's also inculcated by the command. You're seen as a sissy if you cry, and a wimp if you go for therapy. If it's linked with a certain macho denial of emotions, then it can be extremely harmful. It minimises all the emotions that are desirable in peace time.



Have a look at this opinion piece 
Professor Sherman wrote for the New York Times on the harmful impact of an unexamined stoic attitude in the military.

Here's Admiral James Stockdale's account of how he used Stoicism to survive seven years in a Hanoi POW camp. Part 1, and Part 2.

And here's a video of Major Thomas Jarrett talking about his Stoic Warrior Resilience course, which he taught during the Iraq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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