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9

알라딘: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 연구

알라딘: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 연구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 연구  | 문명과 가치 총서 7
박현모,정윤재,정순우,가타오카 류,김봉진,김태창,야규 마코토,고희탁 (지은이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2016-05-10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 연구
교보 
종이책 18,000원
eBook 20,000원








책소개
세계 인류문명 발전의 시각에서 한국 전통문화의 고유 가치를 발견하고 탐구하고자 기획한 '문명과 가치 총서' 7권. 동양 문명 속에도 서구 근대성의 틀 안에 있는 공공성 담론과는 전혀 다른 매우 독특하고 근원적인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고유한 형식의 공공철학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양의 공공성 담론이 인성론이나 공부론과 같은 깊은 철학적 성찰과 맞닿아 있음에 주목하고, 그들 지식인들의 개인과 사회 공동체, 국가에 대한 오랜 역사적 경험이 오늘날 재해석하고 수용할 만한 공공 담론을 산출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목차


*총론
• 한국적 공공 이해-그 공통 인식을 위한 대화적 연구(김태창)

• 14세기 말에서 16세기 중반 ‘공공’ 용례의 검토
-<조선왕조실록>과 <한국문집총간>을 중심으로(가타오카 류)
• 조선 선비들을 통해서 본 공공성의 개념과 쟁점들(정순우)
• 최한기와 일본의 공공 사상가 비교 연구(야규 마코토)
• 민세 안재홍의 다사리이념과 ‘공공함’의 정치(정윤재)
• 사중지공(私中之公)으로 본 정조의 국가경영(박현모)
• 선비와 사무라이의 공공의식(김봉진)
• 일본 근대 여명기 국가 공공성 의식
-‘민’의 참여와 체제의 대응을 둘러싼 니노미야 손토쿠의 사례를 중심으로(고희탁)
-‘민’의 참여와 체제 대응을 둘러싼 동학·천도교 운동의 사례를 중심으로(고희탁)

• 면우 곽종석의 공공이학(公共理學)(야규 마코토)



저자 및 역자소개
박현모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999년 서울대학교에서 ‘정조(正祖)의 정치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1년부터 14년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조와 세종, 정도전과 최명길 등 왕과 재상의 리더십을 연구했다. 2013년부터는 미국의 조지메이슨대학교, 일본의 ‘교토포럼’ 등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형 리더십’을 강의하는 한편, 시민강좌 ‘실록학교’를 운영했다(2022년 기준 3,600여 명 수료). 현재 여주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및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며 대학교양 필수과목인 ‘세종리더십’을 대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태종평전』, 『정조평전』, 『정조 사후 63년』, 『세종처럼』 등이 있고, 『몸의정치』와 『휴머니즘과 폭력』을 우리말로 옮겼다. 「경국대전의 정치학」, 「정약용의 군주론: 정조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국왕의 동선과 정치재량권의 관계에 대한 연구: 정조와 순조」 등 90여 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접기

최근작 : <백 년간의 프로젝트 (1351-1450)>,<태종 평전>,<세종학 개론> … 총 43종 (모두보기)

정윤재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서울대 정치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과 졸업(정치학박사)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영국 케임브리지대 퀸스칼리지 방문학자 역임
현대사상연구회 회장,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회장 역임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처장, 국제협력처장,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초대소장, 한국학진흥사업단 단장 역임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사회과학부 교수

주요 저서
《한국현대정치사》(공저), 《미래한국의 정치적 리더십》(공저), 《남북한의 최고지도자》(공저), 《장면ㆍ윤보선ㆍ박정희》(공저), 《유교리더십과 한국정치》(공저), 《한국정치사상의 비교연구》(공저), 《세종의 국가경영》(공저), 《세종리더십의 형성과 전개》(공저), 《세종과 재상, 그들의 리더십》(공저), 《청소년을 위한 세종리더십 이야기》(공저), 《비폭력과 한국정치》(공역), 《리더십강의》(공역), 《영혼의 리더십: 간디의 생애와 유산》(공역), 《다사리공동체를 향하여: 민세 안재홍 평전》, 《다사리 국가론》, 《정치리더십과 한국민주주의》, 《비살생 정치학》(단독 번역) 등 접기

최근작 : <안재홍 평전>,<한국정치 리더십론>,<민족운동가들의 교류와 협동> … 총 25종 (모두보기)

정순우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경북 출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설 한국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버클리 대학교 및 캐나다 UBC 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냈으며, 파리 7대학 강의교수를 지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관장 및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2013년 현재 한국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후기 교육사와 지성사 분야에 관한 약 40여 권의 공저서, 100여 편의 논문이 있다. 조선조 선비들의 사유 방식과 삶의 태도를 다양한 시선으로 헤아려 보고, 그 현재적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공부의 발견>(2007), <도산서원>(공저, 2001), <지식 변동의 사회사>(공저, 2003), <東亞傳統敎育與學禮學規>(공저, 2005), <서당의 사회사>(2013)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후조당 종가의 가문 세우기>,<우반동 양반가의 가계경영> … 총 23종 (모두보기)

가타오카 류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965년 생. 도호쿠 대학 문학연구과 준교수. 와세다대학 문학연구과 박사후기과정 단위 취득 자퇴. 전공은 근세유학, 동아시아사상사.

최근작 : <조선왕조의 공공성 담론>,<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 연구>,<교양으로 읽는 일본사상사> … 총 4종 (모두보기)

김봉진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983년에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하고 1985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 대학원 외교학과를 수료했다. 동경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박사 과정(국제관계론 전공)을 수료(1991)하고 1993년에 기타큐슈北九州대학 조교수, 2001년부터 2021년까지 기타큐슈 시립대학(대학명 변경)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비교 사상사이며, 현 기타큐슈 시립대학 명예교수이자 동양문화연구소(동경)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東アジア「開明」知識人の思惟空間 ―鄭觀應·福澤諭吉·兪吉濬の比較研究》(九州大学出版会, 2004)가 있으며, 공저로는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지식산업사, 2019), 《한국 국제정치학, 미래 백년의 설계》(사회평론, 2018), 《辛亥革命とアジア》(お茶の水書房, 2013), 《国際文化関係史研究》(東京大学出版会, 2013), 《歴史と和解》(東京大学出版会, 2011), 《韓国併合と現代》(明石書店, 2008) 등 다수가 있다. 접기

최근작 : <다시 보는 옛 미래>,<안중근과 일본, 일본인>,<조선왕조의 공공성 담론> … 총 8종 (모두보기)

김태창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연세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주한미국경제기획보좌관, 충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동경대학교 객원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객원연구원, 호주 시드니경영대학원 객원교수, 공공철학공동연구소장(오사카) 등을 역임하였다. 일본에서 「교토포럼」을 20여 년 동안 기획하고 이끌면서, 50여 개국이 넘는 나라와 수천명의 학자들과 철학대화를 전개하였다.
동양포럼 주간

최근작 : <충청도 청주 동학농민혁명>,<일본에서 일본인들과 나눈 공공철학 대화>,<조선왕조의 공공성 담론> … 총 5종 (모두보기)

야규 마코토 (柳生眞)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중국 예안대학 일어전가

최근작 : <조선왕조의 공공성 담론>,<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 연구> … 총 2종 (모두보기)

고희탁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연구교수

최근작 : <조선왕조의 공공성 담론>,<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 연구> … 총 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동양 문명 속에도 서구 근대성의 틀 안에 있는 공공성 담론과는 전혀 다른 매우 독특하고 근원적인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고유한 형식의 공공철학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양의 공공성 담론이 인성론이나 공부론과 같은 깊은 철학적 성찰과 맞닿아 있음에 주목하고, 그들 지식인들의 개인과 사회 공동체, 국가에 대한 오랜 역사적 경험이 오늘날 재해석하고 수용할 만한 공공 담론을 산출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책은 세계 인류문명 발전의 시각에서 한국 전통문화의 고유 가치를 발견하고 탐구하고자 기획한 ‘문명과 가치 총서’의 제7권이다.

===







===
31.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5월 4일 출고
    (중구 서소문로 89-31) 지역변경

==

20 동학의 자생적 근대성: 해월 최시형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중심으로 조성환

 󰋪 연구논문 󰋪 http://dx.doi.org/10.16936/theoph..36.202005.223

동학의 자생적 근대성:

해월 최시형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중심으로1)

조성환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시작하는 말

1. 동학과 근

2. 동학적 인간관- 하늘아(天我)

3. 하늘아(天我)의 근 성- 창조성·다양성·주체성 4. 생태적 세계관- 신령과 기화 나가는 말

시작하는 말

지금까지 나온 동학에 관한 논고 중에서 ‘동학의 근 성’을 다룬 연구는 적지 않다. 그러 나 이 연구들은 부분 일정한 경향성을 띠고 있다. 그것은 암암리에 서구적 근 성을 염두

 

1) 이 논문을 심사에 주신 익명의 심사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필자의 능력 부족과 시간관계상 지적해 주신 내용을 충분히 반 하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하며, 다음 기회에 보완하고자 한다. 

에 두고서, 동학에도 그러한 요소가 있다고 지적한 다음에, “그래서 동학은 근 적이다”라 는 논리전개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2018년에 나온 연구를 예로 들어 보자. 

근 적 인간이란 스스로가 존엄하면서도 자유로운 삶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이끌고 나가 는 존재로 보았다. […] 주체적이며 자유로운 존재에 한 논의는 서양 근 사상을 거쳐 특히 현 의 실존주의 경향에서 잘 나타났다. […] 동학의 사상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존재이자 근 적 인간으로서의 삶을 가능케 하는 계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2)

여기에서 저자는 먼저 근 적 인간을 규정한 다음에, 그것이 서양 근 사상에 두드러

지게 나타난다고 지적한 뒤에, 마지막으로 동학에서도 그런 인간관을 발견할 수 있다고 끝맺고 있다. 이러한 서술방식에서 추측되는 것은 처음부터 근 적 인간관의 기준을 서양 근 사상에다 두고서, 그것을 동학에 적용하는 방법론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법론을 아예 처음부터 명시하고 있는 연구도 있다. 역시 2018년에 나온 「수 운 최제우와 근 성」이 그것인데, 이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논리전개 방식을 취하고 있 다. 먼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근 는 오직 유럽, 그 중에서 서유럽에서 탄 생했다는 점이다. 이에 해 베버는 ‘서구, 오직 서구에서만’이라고 표현했고, 존스는 ‘기 적’이라고 했다.”고 전제한 뒤에, 이러한 근 성의 요소로서 ‘탈주술화’, ‘개인의 등장,’ ‘민족주의,’ ‘사회변동’ 등을 든 다음에, 마지막으로 최제우의 사상에서 그러한 요소가 있 다는 것을 보인 뒤에 “최제우가 말하는 개벽은 근 다”라고 결론짓고 있다.3) 

이 논문은 기존에 한국학계에서 근 성을 논하는 가장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고 있

다. 그것은 베버와 같은 서양의 사회학자들이 규정한 근 성을 기준으로 한국의 근 성을 재단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연구는 그 나름 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이 얼마나 서구적인가?”와 같은 주제를 탐구한다면 이러한 식의 접근은 당연히 필요할 것이 다. 그런데 문제는 연구의 내적 일관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자신의 논문의 목적을 “한국화된 사회과학 이론을 찾기 위해서”(104 쪽)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반 로 이 논문은 ‘서구화된 사회과학 이론’을 강 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서구 사회학에서 정한 근 성의 기준을 한국 사상에 적용해서 한국의 근 성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가 이렇게 모순되어 보이는 듯

 

2) 김 철, 「동학, 근 적 인간의 가능성을 열다」, 󰡔동학학보󰡕, 48(2018, 9), 560-561. 3) 박세준, 「수운 최제우와 근 성」, 󰡔한국학논집󰡕, 73(2018, 12), 114-115. 

한 방법론을 취한 데에는 나름 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한국사상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 해서이다. 저자는 자신의 방법론이 기존의 연구와 다른 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글이 지금까지 연구와 다른 점은 서양에서 만든 사회과학 이론이나 개념으로 수운의 사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서양의 사회과학 이론이나 개념이 설명하는 것이 수운 의 사상에 이미 담겨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곧 사회과학 이론의 한국화는 물론 한 국화된 이론의 보편성을 획득하는 일이다. […] 수운의 사상이 근 성과 사회변동을 설명할 수 있다면, 혹은 그의 사상이 근 성과 사회변동을 포함하고 있다면, 사회 이론의 한국화 또는 한국 이라는 특수성에 내재한 보편성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 

여기에서 저자는 서양이론으로 한국사상을 설명하는 종래의 방식을 비판하면서, 서양의 사회과학 이론이 한국사상에 이미 들어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식을 취하겠다고 한 뒤에, 그것이 보편성을 획득한 한국화된 사회과학 이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 하기에는 저자가 시도하는 새로운 방법도 종래의 접근방식과 근본적으로 달라 보이지 않 는다. “베버가 정한 서구 근 의 요소로 한국사상을 설명하는” 종래의 방법론과, “베버가 정한 서구 근 의 요소가 한국사상에 들어있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한국사상의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저자의 방법론이 무엇이 다른가? 둘 다 서구적 근 성을 근 성의 기준과 보편의 척도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 결과 저자는 자신이 본래 의 도했던 목적과는 상반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즉 한국화된 사회과학을 원했지만 결과적 으로는 서구화된 사회과학을 한 셈이다. 그래서 애초의 의도는 한국의 근 성을 찾는 것 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서양의 근 성을 한국사상에서 확인하는 작업으로 끝나고 만 것 이다. 이러한 문제를 낳은 원인은 두말 할 것 없이 근 성의 기준을 서구적 근 성에 한 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논문의 제목을 “동학의 근 성”이 아니라 “동학에 나 타난 <서구적> 근 성”과 같은 식으로 달아야 하지 않았을까? 

1. 동학과 근 이 글은 동학에 나타난 서구적 근 성을 탐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근 성을 탐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근 성’이란 베버가 규정한 유럽적 근 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라틴어 ‘modernus’에서 파생된 보통명사로서의 근 성(modernity)을 말한다. modernus는 ‘지금의(present)’, ‘최근의(latest)’, ‘최신의(up to date)’, ‘새로운(new)’ 등을 의미하는 어 modern의 어원에 해당하는 말로,5) 한자로는 ‘新’이나 ‘今’, 우리말로는 ‘새’에 가깝다. 따라서 ‘한국적 근 성’은 ‘한국적 새로움’이라 고 바꿔 말해도 좋다. 다만 이때의 ‘한국’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근 성의 내용 도 달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새로움이란 어디까지나 상 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새롭지만 내일의 나에 비하면 새롭지 않다. 마찬가지로 한국적 근 성이라 고 할 때의 ‘한국’을 ‘고려’에 한정시키면, 고려의 근 성이란 고려 이전과는 다른 고려의 새로움을 말할 것이다. 즉 통일신라에는 없었지만 고려시 에 나타난 새로운 요소가 고려 의 근 성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선의 근 성이란 고려시 에는 없었지만 조선시 에 나타난 새로운 요소가 조선의 근 성이다. 따라서 ‘한국적 근 성’이라고 할 때의 한국을 현 한국, 즉 한민국으로 한정시키면, 조선에는 없었던 새로운 요소를 ‘한국적 근 성’ 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한국의 근 성’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한국적 근 성’이라고 한 것은, “다른 나라와는 구별되는”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즉 조 선과는 다르면서도, 당시의 중국이나 일본이나 서양과도 다른 새로움을 ‘한국적 근 성’이 라고 부르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 글에서 말하는 새로움으로서의 근 성은 필자의 능력상 사상이나 철학 분야에 

한정시키고자 한다. 즉 ‘사상으로서의 근 성’만 다루고자 한다. 이렇게 ‘근 성’이라는 범 위를 좁혀서 생각할 때, ‘한국적 근 성’을 추구한 가장 표적인 사상으로는 ‘동학(東學)’ 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동학은 유학과 명칭부터 다르다는 점에서 조선과는 다른 새로운 사상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고, 또 ‘동(東)’이 지금과 같은 ‘동양’이 아니라 당시의 ‘동방 (東方)’ 즉, 한반도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한 국적인 사상을 표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6) 

 

5) 미야지마 히로시, 「유교적 근 로서의 동아시아 근세」,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 (서울: 너머북스, 2013), 324-325; “modern”, 󰡔Online Etymology Dictionary󰡕, https://www.etymonline.com/w ord/modern(접속일: 2020. 5. 23); “modern”, 󰡔Collins Online Decitionary󰡕, https://www.collinsdiction ary.com/dictionary/english/modern(접속일 2020. 5. 23)

6) ‘동방’ 개념은 최 성의 선행연구에 의하면, 통일신라말기의 최치원이 ‘한반도’를 가리키는 의미로 처 음 사용한 말이다. 그 이후로 동학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사는 지식인들은 ‘한반도’를 ‘동방’이라는 

뿐만 아니라 동학은 조선과는 다른 새로움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냈다. 즉 외부의 이론 이나 개념들을 가져다가 그것을 단순히 번역해서 소개한 새로움이 아니라, 기존의 개념들 을 재해석하거나 재창조하여 자신들의 세계관을 표현하 다. 달리 말하면 ‘번역의 근 ’가 아니라 ‘창조의 근 ’를 추구한 것이다.7) 이런 측면을 본 논문에서는 ‘자생적 근 성’이 라고 표현하 다. “자신들이 손수 생각해낸 새로움”이라는 뜻이다.8) 

이와 같은 특징들이 동학을 한국적 근 성으로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동학에 나타난 조선과는 다른 새로운 사상적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이후에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접근한 연구가 최근에 나왔는데, 조성환의 󰡔한국 근 의 탄생󰡕(모시는사람들, 2018)과 안효성의 「동학의 토착적 근 성과 생명평화사상」(󰡔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81집, 2019)이 그것이다. 조성 환은 동학에서 원불교에 이르는 개벽종교를 ‘개벽파’로 규정하고, 이들 개벽파는 척사파나 개화파와는 다른 ‘자생적 근 ’를 지향했으며, 그것의 특징은 ‘성’을 강조한데 있다고 하 다. 안효성은 조성환의 관점을 지지하면서 동학의 근 성의 특징은 ‘성’과 ‘생명’과 ‘평화’를 추구한데 있다고 보았다. 본 논문은 이 두 개의 선행연구의 연장선상에서, 해월 최시형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중심으로 동학의 근 성(새로움)을 고찰하고자 한다.

2. 동학적 인간관- 하늘아(天我) 흔히 서양 근 적 인간관을 특징지어 ‘이성적 자아’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성적 자아를 철학적 개념으로 표현하면 ‘이성적 주체’ 또는 간단히 ‘주체’라고 한다. 여기에서 자아나 주체는 self나 subject에 한 일종의 번역어로 만들어진 개념인데, 동아시아의 전 통적 개념으로 표현하면 ‘아(我)’에 해당할 것이다. 따라서 이성적 주체나 이성적 자아는 

 

말로 지칭하 다. 최 성, 「최치원 사상에서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 동인의식(東人意識)과 동문의 식(同文意識)을 중심으로」, 󰡔동양문화연구󰡕, 4(2009) 참조. 

7) 이러한 관점에서 동학에 접근한 최근 연구로는 조성환·허남진, 「번역의 근 에서 창조의 근 로– 개벽 파의 개념 창조를 중심으로」, 원광 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학술 회 󰡔개벽과 근 󰡕 자료집(2019. 8. 

15)이 있다.

8) 물론 동학에서 서학의 향이 보인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학이 서학의 이론체계나 세계 관을 그 로 빌려왔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단지 동학의 ‘하늘철학’이 서학의 천주(天主) 관념의 자 극이나 향을 받았다는 정도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이성아’(理性我)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성적 자아’ 관념은 적어도 개념상으로는 성리학에 있어서도 마찬

가지이다. 왜냐하면 ‘이성’(理性)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리학적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주자학의 이성은 성즉리(性卽理) )나 궁리진성(窮理盡性) )에서 온 말이고 – 물론 그 기원 을 따지고 올라가면 중국불교의 불성(佛性)이나 리(理) 개념, 또는 장자의 천리(天理) 개념 에까지 도달하겠지만 – 그 의미는 “우주적 원리[理]가 인간의 본성[性]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을 잘 발휘하면 우주적 원리와 부합되게 되고, 그것을 주자는 ‘합리(合理)’라고 하 다. ) 따라서 적어도 개념적으로만 보면 동아시아의 성리학이건 유 럽의 계몽주의건 합리적 인간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물론 ‘합리성’의 내용 자체는 동일하지 않다. 왜냐하면 주자학에서 말하는 리성이나 성리는 ‘도덕감정적 이성’ 또는 ‘윤리적 이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에 해서 동학은 어떤 새로운 인간관을 표방했을까? 즉 주자학적인 이성 적 인간관, 윤리적 인간관에 해서 동학이 추구한 인간관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성적 인 간관에 한 ‘성적 인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성은 동학에서 말하는 ‘하늘’을 종교철학적 개념으로 표현한 것으로, ) ‘신성’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 이러한 성적 인간, 더 강하게는 ‘신성적 인간관’을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1824-1864)는 ‘시천주

(侍天主)’라는 말로 표현하 고 ), 그를 이어 동학을 체계화한 해월 최시형(1824-1898)은 

‘천인(天人)’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냈으며,15) 천도교를 창시한 손병희(1861-1922)는 ‘인내 천(人乃天)’이라고 하 고, 일제강점기의 천도교 이론가인 야뢰 이돈화(1884-1950)는 ‘한 울아’라고 하 다. ) 이러한 인간관은 하나같이 사람이 하늘과 같이 신성한 존재임을 나 타내고 있다. 

이들 네 명의 동학사상가에 나타난 인간관 상에서의 차이를 밝히는 것도 동학사상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작업이 되겠지만, 여기에서는 일단 본 논문의 주제에 맞게 성 리학적 인간관과의 차이에만 주목하고자 한다. 성리학과 비교했을 때에 동학적 인간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시천주나 천인 또는 한울아와 같은 개념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하늘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성리학에서도 ‘천인합일’을 표방했다고 하지만 ) 이때의 ‘천’은 ‘리’로 해석된 ‘천’이고, 마찬가지로 ‘인’도 그 본질은 ‘성(性)’을 말하기 때문에, 천인합일은 결국 ‘리성합일’의 의미한다. 즉 천인은 리성으로 재해석된 천인인 것이다. 반면에 동학에 있어서의 천은 리가 아니라 기이고, 이때의 기도 리와 비되는 기가 아니라 궁극적 실재로서의 기, 즉 하늘로서의 지기(至氣)이다. 최제우 에 의하면 ‘지기’는 만물에 명령을 내리고 매사에 관여하는 최고의 존재로 ), 후 의 연 구자들은 이것을 보통 ‘우주적 생명력’이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동학에 이르면 ‘하늘’은 ‘윤리의 근원’(天理)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天氣)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재해석되게 된다. 최제우의 시천주적 인간관은 최시형에 이르면 ‘천인’(Heavenly Man) 개념으로 구체화

되고, ‘천지(天地)’와의 관계 속에서 재정의 된다. 최시형은 자신이 제시한 ‘천인’ 개념을 풀이하여 “사람이 하늘이고 하늘이 사람이다”라고 하 다.19) 여기서 “사람이 하늘이다”는 “사람이 하늘과 같은 천격적(天格的) 존재이다”는 의미이고, 반 로 “하늘이 사람이다”는 “하늘이 인간과 같은 인격적(人格的) 존재이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최시형이 말하는 ‘하 늘’ 개념은 단지 ‘우주적 생명력’(至氣)뿐만 아니라, 그것이 구현되고 있는 천지, 자연, 우 주, 만물 등도 가리키기 때문에, “사람이 하늘이다”는 말은 “사람이 천지(天地)이다”, “사 람이 우주이다,” 또는 종교학적으로 표현하면 “사람이 신이다”는 말 등으로 바꿔서 이해 할 수 있다.

이러한 천인적(天人的) 인간관을 존재론적 차원에서 설명하고자 한 것이 최시형의 천 지부모설이다.  ) 최시형은 “천지가 부모이고 부모가 천지이다”고 했는데(󰡔해월신사법설󰡕「 천지부모」), 이 말의 의미는 우리의 존재론적 기원은 족보에 나와 있는 인간부모가 아니 라 천지라는 자연부모 또는 우주부모(cosmo-parents)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더 나아가서 는 만물은, 자연의 빛과 공기와 물과 바람 등등의 ‘덕’에 힘입어 태어나고 자라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부모는 그 중의 일부이기 때문에, 진짜 부모는 천지라고 하는 자연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천지는 하나의 인격성과 신성성을 띠게 되고, 그것의 자식인 인간 역시 신성한 존재로 격상된다.21)

이와 같은 인간관에서는 유학이 강조하는 혈연적 친소성(親疏性)이나 그것에 바탕을 

둔 차등적 의례 등은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왜냐하면 만물은 천지라고 하는 공통의 부모 를 모시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의례(제사)의 상은 부모에서 하늘(천지)로 바뀌 게 되고, 그 하늘의 본질이 구현되고 있는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에 ) 결국 내가 제사의 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해월은 ‘향아설위(向我設位)’, 즉 “나를 향해 지내는 제사”라 고 하 다.23) 향아설위 제사는 ‘하늘아’, 즉 “나라고 하는 하늘”에 한 제사이기 때문에 일종의 ‘제천의례’에 해당한다. 그래서 해월의 향아설위는 유교적 제사의례에다 고 동이 족의 제천의례(󰡔삼국지󰡕「위지·동이전」)를 가미했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철 학적 근거는 “사람이 하늘이다”, “내가 하늘이다”고 하는 동학의 인간관이다. 

 

3. 하늘아(天我)의 근 성- 창조성·다양성·주체성 이상과 같은 동학적 인간관이 지니는 새로움(근 성)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창조성’이다. 창조성은 동학이 표방한 ‘개벽’이라는 개념에서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최제우는 “인의예지는 선성(先聖)이 가르친 바요, 수심정기는 내가 다시 정한(更定) 것이다”(󰡔동경 전󰡕「수덕문」, 138)고 하 는데, 여기에서 “내가 다시 정했다”는 표현 은, 최제우가 제창한 “다시 개벽” )의 또 다른 표현이고, 지금 식으로 말하면 “내가 독창 적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단히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한국사상사에서는 그야말로 개벽적인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고려 5백년, 조선 5백년, 그리고 그 이전의 삼국시 에도 한국은 언제나 중국으로부터 사상을 수입해서 쓰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제 우는 자기가 새로운 학문을 창시했다고 선포한 것이다.  ) 이처럼 최제우가 유학과는 다 른 전적으로 새로운 틀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물론 이 과정에서 유학적 개념이나 요소 는 부분적으로 계승되기도 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동학 이 창시된 1860년은 제2차 아편전쟁으로 북경이 함락되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것은 조선으로 말하면 더 이상 사상을 수입해올 공급원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득이하게 새로운 학문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26) 

그러나 철학적인 측면에서 그 원인을 생각해 보면, “사람이 하늘이다”는 명제의 선포, 최제우의 표현 로 하면 “시천주”라는 새로운 인간관의 발견이 최제우로 하여금 성인의 학문이 아닌 자신만의 학문을 과감하게 제시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생각된 다. 최시형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의 몸짓 하나, 표현 하나 하나가 다 하늘님의 조화가 아 닌 것이 없기 때문에, ) 성인(聖人)이라는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종교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최제우가 독창적으로 새로운 철학을 만들었다”기보다

는 “하늘님으로부터 계시의 형태로 전수받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 동경 전󰡕과 󰡔용담유사󰡕에는 최제우가 하늘님으로부터 계시의 형태로 ‘도’를 전해 받았다 고 하는 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내용을 그 로 믿는다면 최제우는 자신의 ‘도’를 혼자서 창작했다기보다는 하늘님으로부터 전수받았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 다. ) 그러나 그 전수받은 도를 바탕으로 최제우가 작성한 주문의 내용이 ‘시천주(侍天

主)’로 시작하고 있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하늘님은 내 안에 모시고 있는 하늘님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의 생각, 나의 언어는 곧 하늘님의 생각과 언어임을 의미한다(이것이 최시 형이 말하는 “인어(人語)가 천어(天語)이다” )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종교학적으로 보면 새로운 사상도 결국 하늘님의 ‘표현’에 불과하지만, 이 세상에 처음 소개되었다는 점에서는 ‘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가 말한 술이부작(述而不作) )이라 는 표현을 빌리면, 일종의 “술이창작(述而創作)” )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하늘님의 계시 (天語)를 술(述)해서 나온 작(作)인 것이다.

이상을 정리해보면, 최제우에 이르면 철학의 근원이 성인의 말씀(聖言)에서 하늘님의 

계시(天語)로 바뀌고, 그 하늘님이 내 안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내가 새로운 철학을 창출 하는 창조적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이러한 창조적 인간관은 이후에 천도교 시 에도 계 승되는데, 가령 이돈화의 󰡔신인철학󰡕에는 ‘창조’라는 말이 70여 차례나 나오고 있다(물론 여기에서의 ‘창조’는 서양어의 번역어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만물이 ‘한울’에 의하여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렇다하여 만물이 ‘한울’로부터 창조된 者는 아니 다. 다만 ‘한울’의 자율적 창조성으로 ‘한울’이 한울 스스로를 표현한 것이 만물인 것이다.32)  

여기에서 “만물이 한울로부터 창조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동학의 하늘 관념이 기독 교의 창조신과는 다르다는 것이고, 이어서 “한울의 자율적 창조성으로 한울이 한울 스스 로를 표현한 것이 만물이다”는 말은 만물은 천지의 생성능력의 표현의 산물이라는 의미 이다.   ) 그런데 동학의 시천주 사상에 입각하면, 하늘의 창조능력이 만물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창조성이 내재해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결국 이돈화의 창조 개념은 동학적 우주론과 인간관에 입각해서 서양의 창조사상을 수 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이돈화의 󰡔신인철학󰡕(1924)이나 천도교의 󰡔개 벽󰡕(1920년 창간) 잡지에 소개된 서양의 ‘개조’ 이론이 - 표적인 것은 버트란드 러셀의 

“Principle of social reconstruction”(1916) - 동학이나 천도교의 ‘개벽’ 개념의 일환으로 이해되고 수용되고 소개되었거나, 서양의 사회진화론이 최시형의 기화론의 맥락에서 수용 되어 이돈화가 ‘기화적 진화’34)와 같은 개념을 쓴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35)

동학의 인간관이 지니는 두 번째 의미는 평등성과 다양성에 한 강조이다. 종래의 성 리학에서는 ‘기’의 맑음과 탁함, 온전함과 치우침 등에 의해 인간과 동물, 나아가서는 식 물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설정하고 있었다. 반면에 동학에서는 인간이건 동물이건 식물 이건 사물이건 할 것 없이 존재론적 차이가 사라지고 세계는 하나의 ‘하늘’로 묶여지게 된다(이돈화는 이것을 ‘한울’이라고 표현하 다). 이것이 최제우가 조선성리학을 해체시키 면서, 당시의 각자위심(各自爲心=이기심)의 세태를 동귀일체(同歸一體=공공심)로 전환시키 는 철학적 해법이었다. 한편 다양성은 “삼라만상은 모두 하늘님의 표현” )이라고 하는 존재론으로 확보되었

다. 최시형에 의하면, 인간의 호흡 하나 하나, 몸짓 하나 하나는 모두 “하늘님의 조화의 힘”의 결과이다. ) 이것은 인간의 모든 ‘표현’들이 원리적으로는 신성한 행위로 긍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삼라만상이 다 고유한 의미를 지니게 되고, 인간에게는 타인의 소리와 몸짓을 하늘님의 소리와 몸짓처럼 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게 된다. 만물의 존 엄성과 다양성은 여기에서 확보된다. 이에 반해 성리학적 세계관에서는 인간이라면 누구 에게나 주어져 있는 공통의 도덕성(인의예지)을 실현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각자의 기질의 차이는 극복되어야 하는 상으로 설정되고, 다양한 개성보다는 공통의 본 성(도덕성)이 강조되기 마련이다.

세 번째는 민(民)의 주체성이다. 시천주의 인간관은 민(民)이 정치적으로 객체에서 주 체로 전환될 수 있는 철학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전통적 신분사회에서는 백성들이 정 치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위정자들에게서 보호받아야 할 적자(赤子) 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하늘이다”는 명제는 농민이건 백정이건 여성이건 할 것 없이 “내가 세계의 주인이다,” “내가 변혁의 주체다”고 하는 주인의식과 자존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하 다. 1894년에 동학농민혁명이 가능했던 사상적 요인도 바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즉 민(民)으로 하여금 정치의 객체에서 주체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 것 이다(그 표적인 예가 전주화약 이후로 ‘민관공치(民官共治)’로 운 된 도소체제이다 )). 서구 민주주의를 접하기 이전에 이미 동학에서부터 유교적 민본에서 근 적 민주로의 전 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동학의 인간관은 창조적 자아와, 평등한 자아, 그리고 주체 적 자아라는 함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동학에서 말하는 ‘우주적 생명력,’ 즉 ‘지기=하 늘’을 ‘성’이라고 한다면, 동학적 자아는 ‘성적 자아’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의미에 서 동학이 추구한 근 는 ‘성적 근’39)로 명명할 수 있다.

4. 생태적 세계관- 신령(神靈)과 기화(氣化) 최시형에게 있어 이 우주는, 천지부모설로부터도 추측할 수 있듯이, 신성한 존재들의 상호의존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즉 우주를 철저하게 상호의존적 그물망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와 유사한 세계관은 노자의 유무상생(有無相生)이나 불교의 연기론 등에서 도 찾아볼 수 있지만, 동학의 특징은 - 그 중에서도 특히 최시형의 철학은 - 그 의존관계 를, 유무상생의 ‘상생’과 연기론의 ‘연기’가 결합된, 일종의 ‘상생연기론’ 내지는 ‘생명연 기론’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최시형에 의하면 만물의 존재형태는 “다른 모든 존재에 의해서 자신의 생명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호의존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심지어는 하늘조차도 인간에 의존해 있다고(天依人)  ) 보기 때문이다. 이러 한 사상을 나타내는 개념이 기화(氣化)이다. 

원래 ‘기화’는 성리학은 물론이고 그 이전의 중국사상에도 자주 등장하는 용어로, 만물

의 생성변화를 나타내는 우주론적 개념이다. ) 그런데 최제우는 이것을 신비체험에 의해 나타나는 “내 안의 신령함에 의한 기운의 변화”(內有神靈, 外有氣化)라고 하는, 일종의 종 교적이고 수양적인 맥락에서 사용하 다. ) 한편 최시형의 경우에는 최제우의 ‘기화’ 개 념에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투 시켜 만물과 만물 사이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우주론적 이고 생태적인 개념으로 재해석하 다. 그러나 최제우든 최시형이든 이전의 ‘기화’ 개념과 는 달리 동학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먼저 최시형이 ‘기화’를 해석하는 목을 보자.  ) 

내 항상 말할 때에 물물천物物天이요 사사천事事天이라 하 나니, 만약 이 이치를 시인한다 면 물물物物이다 이천식천以天食天이 아님이 없을지니, 이천식천以天食天은 어찌 보면 이치에 부합하지 않는 것 같지만, 이것은 인심의 편견으로 보는 말이요, 만일 하늘 전체로 본다면 하 늘이 하늘 전체를 키우기 위하여 동질이 된 자는 상호부조로써 서로 ‘기화’를 이루게 하고, 이질이 된 자는 이천식천以天食天으로 서로 ‘기화’를 통하게 하는 것이니, 하늘은 일면에서는 동질적 기화로 종속種屬을 기르고, 일면에서는 이질적 기화로 종속種屬과 종속種屬의 연 적 성장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니, 총괄해서 말하면 이천식천以天食天은 곧 하늘의 기화작용으로 볼 수 있는 데, 신사께서 ‘시侍’자를 해설하실 때에 “내유신령(內有神靈)”이라 함은 하늘을 이름이요, “외유기화(外有氣化)”라 함은 이천식천以天食天을 말한 것이니, 지묘한 천지의 묘법 이 도무지 기화에 있느니라.44)

여기에서 최시형은 최제우가 시천주(侍天主)의 ‘시(侍)’ 자의 의미에 해 해설한 “내유 신령(內有神靈), 외유기화(外有氣化)”라는 말을 ‘동질적 기화’와 ‘이질적 기화’, 그리고 ‘이 천식천’(하늘이 하늘을 먹는다)과 같은 자신의 어휘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내유 신령은 “만물이 하늘이다”는 의미이고, 외유기화는 그 “하늘들끼리의 상호부조(동질)와 성 장발전(이질)의 관계”를 의미한다. 즉 최시형은 외유기화를, 단지 한 개체 안에서의 변화 로만 보지 않고, 자연계에서 전개되고 있는 “하늘과 하늘의 상호관계”로 확 해서 해석하 고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최시형의 이천식천 사상은 일찍부터 선행연구자들에 의해 주목받아 

왔다. 예를 들어 길희성은 “유기체가 서로 살아가는 생명의 그물망, 즉 먹이사슬”의 해월 식 표현이라고 하면서, 그의 경물사상은 인간중심주의가 낳은 오늘날의 전 지구적 생태위 기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철학적 안이라고 평가하 다.  ) 김용휘는, 황종원과 전 희식 그리고 김종철 등의 선행연구를 소개하면서, “이천식천은 생명의 순환이치와 상호 의존성을 알고 모든 존재를 소중하게 모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정리하 다.46) 

그런데 최시형 철학의 특징은, 마치 만물의 동등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말하고 있듯이, 만물의 의존성에 더해서 ‘독립성’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 이유는 만물이 각각 완결된 하나의 ‘하늘’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 하늘들은 양천(養天-동질적 기화)과 식천(食天-이질적 기화)의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상호의존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시형의 세계관은 독립성과 의존성이 공존하는 일종의 ‘독립·의존적’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불교의 ‘공’ 사상에 바탕을 둔 연기론과 차이를 보인다. 불교에서는 모든 현 상은 존재론적으로 연관되어 일어나고(緣起), 그런 점에서 실체가 없다고 하는 무아(無我) 나 공(空) 사상을 말하고 있는데, 동학에서는 모든 존재가 하나의 자족적인 생명체이고, 그런 점에서 독립성을 지닌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동학적 인간관을, 천도교 이론 가인 오상준의 개념을 빌려서 표현하면 ‘공개인’(公個人) )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공 (公)’은, 이돈화가 말하는 ‘한울’과 같은 전체로서의 하늘(公天)을 말하고, ‘개(個)’는 각각 의 하늘(私天)을 가리킨다. 그리고 최시형이 말하는 경인(敬人)과 경천(敬天)은 사천(私天), 즉 개체들의 독립성에 한 존중의 태도를 의미하며, 양천(養天)과 식천(食天)은 사천(私天)과 사천(私天)들 사이의 의존관계를 가리킨다. 

그래서 동학에서는 이 세계가 독립된 하늘들과 그들 사이의 상호의존관계로 재해석되는 데, 여기에서 독립성은 신분차별의 철학적 근거로, 의존성은 만물일체(동귀일체)의 해법으 로 작용한다. 이러한 세계관이 정치사상에 적용되면 ‘민주공화(民主共和)’가 될 것이다. 여 기에서 ‘민주’는 인내천 사상에 입각한 평등하고 존엄하고 주체적인 개인을 의미하고, ‘공 화’는 이들끼리 양천(養天)하는 기화의 상태를 의미한다. ) 

나가는 말

흔히 서양 근 철학을 열었다고 하는 데카르트는 인간의 이성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우 주 안에서의 인간의 역을 확장시켰다. 이에 빗 어 말한다면 동학은 인간의 성 능력 을 강조함으로써 우주 안에서의 인간의 역을 확장시켰다고 할 수 있다(이 경우에 ‘ 성’은 ‘천지(天地)의 생명력’을 의미한다). 즉 인간을 우주와 동일한 차원의 ‘우주아’(天我) 로 격상시킴으로써 인간의 역할과 위상을 높인 것이다. 또한 서양 근 철학을 비판한 니 체(1844-1900)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함으로써 서양 현 철학을 열었다고 한다면, 동시 의 최시형(1827-1898)은 정반 로 “사람이 신이다”고 선언함으로써 조선 성리학에 종언 을 고하 다. 즉 신 개념을 부정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정반 로 확장시킴으로써 새로운 시 를 연 것이다.

최시형은 더 나아가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 만물과 만물의 관계도 ‘생태적’ 관점에서 

재정립하 다. 종래의 성리학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 인(仁)이 다”고 하는 주자학적 명제로부터 알 수 있듯이, 윤리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 었다. 이에 해 최시형은, ‘천지부모’나 ‘이천식천’ 또는 ‘기화’ 개념으로부터 알 수 있듯 이, 상호의존적이고 상호부조적인 생태적 관계로 인간과 자연을 재해석하 다. 이러한 우 주관은 서양사상사의 맥락에서는 ‘탈근 적’ 경향에 해당된다.

한편 서양의 사회진화론이 소개되던 일제강점기에는 ‘진화’를 ‘기화’의 일종으로 해석 하는 ‘기화적 진화’ 개념이 이돈화에 의해 제시되었다. 진화의 의미를 강자가 약자를 억 압하는 “약육강식적 진화”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진화”로 해석한 것이다. ) 이와 같이 동 학과 천도교는 자기 나름 로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전통을 재해석하고 서양을 수용함으로 써 ‘동학적 근 ’를 창출하 다. 

이러한 움직임은 비단 동학뿐만이 아니었다. 동학과 동시 의 다나카 쇼조(田中正造)는 일본이 지향하는 산업문명을 비판하면서 생태문명을 주창하 는데, 이러한 입장을 고마쓰 히로시(小松裕)는 ‘다나카 쇼조의 근 ’라고 불렀고, ) 죠마루 요이치는 ‘자기식 근 ’라 고 하 다. ) 한편 이와 같이 서구 근 의 도전에 해서 자생적 사상을 바탕으로 전통 을 극복하고 서구에 응하고자 한 운동을 기타지마 기신은 ‘토착적 근 ’(Indigenous 

Modernity)라고 하 다. ) 이에 의하면 동학과 다나카 쇼조는 한국과 일본의 토착적 근 의 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기타지마 기신, 「토착적 근 란 무엇인가」, 󰡔개벽신문󰡕, 58(2016, 9), 14-16. 김 철, 「동학, 근 적 인간의 가능성을 열다」, 󰡔동학학보󰡕, 48(2018, 9), 545-564.

김용휘, 󰡔최제우의 철학󰡕, 서울: 이화여자 학교출판문화원, 2011.

_____, 󰡔손병희의 철학󰡕, 서울: 이화여자 학교출판문화원, 2019. _____, 「해월 최시형의 자연관과 생명사상」, 󰡔철학논총󰡕, 90(2017), 165-185. 박세준, 「수운 최제우와 근 성」, 󰡔한국학논집󰡕, 73(2018, 12), 103-128.

안효성, 「동학의 토착적 근 성과 생명평화사상」,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81( 2019, 

9), 405-431.

오문환, 「천도교(동학)의 민주공화주의 사상과 운동」, 󰡔정신문화연구󰡕 , 30-1(2007, 봄), 

31-55. 이규성, 󰡔최시형의 철학󰡕, 서울: 이화여자 학교출판부, 2012. 이돈화, 󰡔신인철학󰡕, 서울: 천도교중앙총부, 1968.

정혜정, 󰡔동학 문명론의 주체적 근 성: 오상준의 초등교서 다시읽기󰡕, 서울: 모시는사람 들, 2019. 조성환, 󰡔한국 근 의 탄생󰡕, 서울: 모시는사람들, 2018.

_____, 「원주동학을 계승한 장일순의 생명사상 – 최시형의 ‘천지부모사상’과 원주캠프의 

‘한살림철학’을 중심으로」, 󰡔강원도 원주 동학농민혁명󰡕, 서울: 모시는사람들, 

2019.

_____, 「동학의 기화사상」, 󰡔농촌과 목회󰡕, 83(2019, 가을), 179-188. 조성환·이병한, 󰡔개벽파선언󰡕, 서울: 모시는사람들, 2019.

조성환·허남진, 「번역의 근 에서 창조의 근 로 – 개벽파의 개념 창조를 중심으로」, 원 광 학교원불교사상연구원 학술 회 󰡔개벽과 근 󰡕 자료집(2019. 8. 15), 53-65. 죠마루 요이치, 「동학농민전쟁을 찾아서」, 󰡔개벽신문󰡕, 83(2019, 4), 22-24.  

최 성, 「최치원 사상에서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 동인의식(東人意識)과 동문의식(同文意識)을 중심으로」, 󰡔동양문화연구󰡕, 4(2009), 89-114.

황종원, 「최시형의 천지 관념 연구 – 전통 유학과의 연관관계를 중심으로」, 󰡔동철학󰡕

68(2014), 1-27. 小松裕, 󰡔田中正造の近代󰡕, 東京: 現代企画室, 2001.

 

동학의 자생적 근대성:

 해월 최시형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중심으로

조성환

이 글은 동학의 근 성을 한국사상사의 맥락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이다. 종래에 동학 의 근 성을 논한 선행연구들은 체로 서구적 근 성을 기준으로 동학의 근 성을 찾고 자 하 다. 이에 해 본 논문에서는 조선시 와는 다른 새로운 사상적 요소를 동학의 근 성으로 규정하는 내재적 방법론을 취하 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동학의 인간관과 세계관 에 나타난 새로움에 주목하 다.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전통적인 ‘하늘’을 우주적 생명력으로 재해석하고, 그 우주적 생명력이 인간 안에 내재해 있다고 하는 시천주(侍天主)적 인간관을 제시하 다. 이어서 최시형은 그것을 ‘천인(天人)’ 개념으로 정식화함과 동시에 ‘하늘’의 의미를 우주적 생명 력을 제공하는 천지(天地)로까지 확장시켰다. 

그래서 최시형에게 있어 만물은 천지의 우주적 생명력을 먹고 자라는 하늘의 자식으로 자리매김된다. 이로 인해 인간의 모든 행위는 우주적 생명력의 외적 표현으로 간주되고, 신성한 행위로 긍정된다. 바로 여기에서 술(述)=해석에서 작(作)=창조로의 일 전환이 발 생하고, 모든 인간은 창조적 주체로 거듭난다. 종래의 ‘성인’의 자리를 자기 안의 ‘하늘’ 이 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개벽적 인간관과 성리학적 인간관의 가장 큰 차이이 다. 

또한 최시형은 우주를 도덕적 관점이 아닌 생태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각각의 하늘 들이 다른 하늘들에 자신의 존재를 빚지고 있는 ‘기화’의 그물망이라고 보았다. 그런 의 미에서 이 세계는 일종의 ‘생태적 그물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생명연기의 세계에서 는 어떤 존재도 홀로 존재할 수 없고, 타자와의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따라서 각각의 인간은 한편으로는 독립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의존적 인, 상반되는 속성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이처럼 동학은 인간중심적이고 이성중심적이고 혈연중심적인 유학적 인간관과 세계관 과 도덕관을 지구중심적이고 성중심적이고 생태중심적인 것으로 전환시켰다. 그런데 이 러한 경향들은 서구의 근 성보다는 탈근 성에 가까운 것들이다. 이후에 천도교에서는 동학적 인간관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서구의 근 성을 수용하게 되는데, 따라서 거기에는 서구의 근 성과 탈근 성이 혼재되게 된다. 바로 이 점이 동학과 천도교로 표되는 한 국적 근 성의 특징이다.

주제어: 동학, 최시형, 자생적 근 성, 천인(天人), 창조성 

 

Indigenous Modernity of Donghak(Korean Learning):

Focused on the View of Human and World in the Philosophy of Choi Sihyong

Jo, Sunghwan 

This essay attempts to discover Donghak(東學)’s modernity in the context of the history of Korean thought. Until now, previous studies on the modernity of Donghak have been done based on the Western modernity. In this essay, I will define ‘new(modernus) thoughts’ different from Joseon’s neo-confucianism as Korean modernity, focusing on Donghk’s view of man and world.

Choi Jaewoo who found Donghak, literally meaning ‘Korean Learning’, interpreted indigenous ‘Haneul’(Tien in Chinese, Heaven as God in English) as cosmic vital energy, and proposed a whole new view of man, “Everyone has Haneul within him or her.” Choi Sihyong developed it as ‘Heavenly Man’(Tien Ren in Chinese), and expanded the meaning of ‘Haneul’ to ‘Heaven and Earth’(Tiendi in Chinese) which offers cosmic vital energy to myriad things.

Thus, myriad things in the philosophy of Choi Sihyong are regarded as the son and daughters of Heaven and Earth, and every movement of human as a outer expression of cosmic vital energy of Heaven and Earth. This means every expression of human is considered as divine activity. At this point, the great transformation(Gaebyok開闢) from ‘述shu’(interpret) to ‘作zuo’(create) occurs, and everyone rebirth into creative subject. This is the difference in the view of man between Danghak and Joseon neo-Confucianism.

Also, Choi Sihyong interprets universe not from the moral point of view but from 

the ecological one, and regards it as a network of ‘transformation of vital energy’(Qihua氣化), each heavens(beings) owning its life to other heavens(beings). In other words, universe is a kind of ‘an ecological network.’ In this world of life-network, any being can not live alone, and have to maintain its own life depending on others. Thus, each one is an independent being on one hand, and dependent being on the other hand. 

In short, Donghak has transformed anthropocentric world view of confucianism to ecocentric one. This philosophical tendency is not so much Western modernity as Western post-modernity. Cheondogyo(Teaching of Heavenly way) succeeding Donghak has interpreted Western modernity in the base of Donghak’s world view, and so having post-modern tendency as well as modern one in Western meaning. This characterizes Korean modernity in Donghak and Cheondogyo.  

Key Words:  Donghak, Choi Sihyong, Indigenous Modernity, Heavenly Man, Creativity 

 

논문 투고일 논문 수정일 논문게재 확정일 2019년 12월 31일

2020년  5월 11일

2020년  5월 4일 

 


이 땅에서 이 땅에서 공공철학하기(1) -‘공공’이란 무엇인가? 조성환

이 땅에서 공공철학하기(1) – 다시개벽

이 땅에서 공공철학하기(1)

-‘공공’이란 무엇인가?

글: 조성환

이 글은 개벽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공공성’의 유행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공공성’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가령 구글에서 ‘공공성’으로 검색해 보면, ‘법률의 공공성’이나 ‘의료의 공공성’또는 ‘교육의 공공성’이나 ‘건축의 공공성’, ‘금융의 공공성’과 같은 용례가 나오는데, 이에 의하면 ‘공공성’은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만능어’처럼 보인다.
마치 조선시대에 성리학에서 ‘리(理)’라는 말이, ‘사랑[愛]의 리’, ‘효도[孝]의 리’, ‘마음[心]의 리’, ‘사물[物]의 리’와 같이, 어디에도 적용할 수 있었던 것과 유사하다. 성리학에서 ‘리’는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그러나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른, 당위적 ‘가치’를 의미하였다. 모든 사물에는,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에게는, ‘그렇게 있어야 할 모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리’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마찬가지로 ‘공공성’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지켜야 하는, 어떤 분야에도 두루 적용되는, 공통의 덕목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 덕목이 모종의 이유에서 잘 지켜지지 않고 있고, 그래서 ‘공공성’이라는 말이 일종의 화두처럼 쓰이는 느낌이다. 가령 세월호 사태가 있은 지 얼마 후, 〈공공성 꼴찌 국가 한국…세월호와 ‘공공성’〉이라는 제목의 뉴스가 보도되었는데(2014.11.7. SBS 인터넷판 뉴스 「취재파일」). 이 보도에 의하면, SBS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1년 동안 공동 연구한 결과, 세월호 사태의 원인은 한국 사회의 공공성이 낮은 데에 있었고, 실제로 OECD 국가들의 순위를 매겨 본 결과 한국의 공공성은 꼴찌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공공성’에서 찾은 대표적인 예이다.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공공성’이라는 말의 유행과 더불어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원초적인 질문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가령 조원희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매일노동뉴스》 2006.08.20.), 조한상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책세상, 2009), 이노우에 타츠오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초청강연회, 2010.11.05.), 정태인 「공공성이란 무엇인가」(《공무원U신문》 2014.11.17) 등이 그것이다.
이 공통된 물음이 말해주는 것은 ‘공공성’이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공공성이 중요한지는 알겠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고, 그래서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여기에는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더 깊은 철학적 의미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즉 ‘공공성’이라는 말 속에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더 나아가서는 ‘정치’나 ‘경제’의 핵심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 논의에서 공통된 것은 ‘공공성’ 개념을 논하는 데 있어 하나같이 서양의 ‘public’ 개념을 출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공공성’을 ‘publicity’나 ‘publicness’의 번역어로만 이해하지, 원래 동아시아사상에서 논의되어 온 ‘공공성’ 개념은 전혀 고려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실은 ‘공공성’ 개념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부분의 인문학적 논의에서 보이는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는 서양의 ‘publicity’에 해당하는 개념이 없었을까? 다시 말하면 ‘publicity’의 번역어로서의 ‘공공성’ 개념은 어떻게 해서 탄생한 것일까? 그것은 원래부터 한자문화권에 있던 말일까? 아니면 번역을 위해서 만들어진 말일까? 이하에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의 일환으로 동아시아 고전에 나오는 ‘공공’ 개념을 추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을 한국에서의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즉 한국 사회에서의 공공성 문제를 생각하는데 있어 첫걸음으로 삼고자 한다.

‘공공성(公共性)’ 개념의 기원
먼저 ‘공공성’이라는 말을 분석해 보면 ‘공공’+‘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성(性)’이란 ‘인간성’, ‘특수성’, ‘형평성’과 같이 명사 뒤에 붙어서 ‘어떠한 성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공공성’이라는 말도 일단 ‘공공의 성질’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공공’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귀착된다. 즉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아시아사상사에서의 ‘공공’ 개념에 주목한 학자는 일본에서 활동한 공공철학자 김태창이다. 그는 동아시아 고전에 나오는 ‘公共’ 개념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공공철학’을 건립하고자 하였다. 김태창의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동방의 빛, 2010)에 의하면, 한자어 ‘公共’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처음 등장한다. 구체적으로는 『사기』에 수록된 「장석지(張釋之) 열전」에 처음 나오는데, 장석지는 한나라 문제 때에 법을 총괄하는 직책을 맡고 있던 고위 관리였다. ‘공공(公共)’ 개념이 최초로 나오는 문맥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한나라 문제(B.C.202~B.C.157)가 궁궐 밖을 행차하다가 마침 다리를 건너려고 하는데 갑자기 다리 밑에서 한 사람이 뛰쳐나오는 바람에 문제가 타고 있던 말이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문제는 무사했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황제가 말에서 떨어져 큰일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문제는 즉시 장석지에게 다리 밑에서 뛰쳐나온 사람을 심문하라고 명령했다.
장석지가 자초지종을 묻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황제의 행차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다리 밑에 숨었습니다. 한참을 있다가 행렬이 다 지나간 줄 알고 나왔는데 아직 행렬이 다리를 건너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에 장석지는 황제의 행차를 방해했으므로 법률에 따라 벌금 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문제는 황제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죄에 비하면 형벌이 너무 가볍다면서 크게 화를 냈다. 이에 대해 장석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법이란 천자가 천하와 함께 공공(公共)하는 바입니다.”
이 말은 문맥상으로 볼 때 제아무리 천자라 할지라도 법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지켜야 한다는 뜻임을 추측할 수 있다. 여기에서 ‘공공’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데, 그 의미는, 앞의 ‘공公’은 ‘모두’ 또는 ‘공평하게’를 뜻하고, 뒤의 ‘공共’은 ‘함께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모두와 공평하게 함께한다”는 정도의 뜻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핵심은 뒤의 ‘함께한다(共)’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앞의 ‘공(公)’은 ‘함께한다’를 수식하는 부사 정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분석해 보면, ‘공공’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함께한다’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공공’이 동사로 쓰였다면 여기에 ‘성’이 붙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왜냐하면 ‘성’이란 말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대개 명사에 붙어서 추상명사를 만드는 어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성’이란 ‘공공하는 성질’, 다시 말하면 ‘모두와 함께하는 성질’이라고 이해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고전적인 의미의 ‘공공’에서 보면, “한국이 공공성이 낮다”고 한다면 “한국인들은 모두와 함께하는 성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된다. 뒤집어 말하면 ‘모두’가 아닌 ‘일부’하고만 함께하거나, 아니면 ‘자기’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공공철학을 다룬 도서들: 왼쪽부터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김태창 저 / 조성환 역, 도서출판 동방의빛, 2010),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기획, 조병희, 이재열, 구혜란, 김지영 저, 한울아카데미, 2015),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조한상 저, 책세상, 2009), 『일본에서 일본인에게 들려준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김태창 구술/야규 마코토 기록, 정지욱 역,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2)]

우주론적 차원의 ‘공공’
‘공공’ 개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사기』로부터 약 1000년 뒤인 성리학에서의 일이다. 성리학에서는, 『사기』에서와 같이 “법을 공공한다”는 용례 이외에도, “리를 공공한다”는 의미에서의 ‘公共之理(공공지리)’라는 말을 쓰고 있다. 여기에서 ‘리’는 앞에서 말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대해 쓰는 말이다. 즉 법과 같이 단지 인간 사회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에 대해 쓰이는 개념이다.
그래서 ‘공공지리’란 “모든[公] 존재가 공유하는[共] 리”를 말한다. 이것을 줄여서 ‘공리(公理)’라고도 한다. ‘공리’는 근대에 서양문물을 받아들일 때 ‘axiom’의 번역어로 채택된 말이기도 하다. 수학에서 axiom이 “어디에나 두루 적용되는 증명이 불필요한 자명한 진리”를 의미하듯이, 전통시대에 ‘공리’ 역시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존재원리 같은 것을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오늘날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가치중립적인 법칙이나 원리를 말하였던 것은 아니다. 즉 뉴턴 물리학에서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유클리드 기학학에서의 ‘평행선 공리’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리’에는 무엇보다도 가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즉 그것을 실천하면 우주의 조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경우에 한해서 ‘리’라고 한 것이다(Brook Ziporyn 참조).
대표적인 예가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다. ‘공’은 그 원리를 체득하면 해탈을 이룰 수 있고 다른 존재와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리’이다. 그리고 ‘공’이라는 ‘리’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공공지리’, 즉 ‘공리’이다. 붓다는 이 ‘공리’를 몸소 깨닫고 중생을 위해 설파했기 때문에 중국의 성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아울러 인도의 ‘불도(佛道)’가 유교와 같은 중국의 공식적인 ‘가르침’, 즉 ‘불교(佛敎)’로 격상될 수 있었다.
이러한 흐름에 자극을 받아 성립한 성리학에서는 고대 유학의 ‘인(仁)’을 ‘리(理)’로 격상시켰다. 즉 맹자에서는 ‘인(仁)’이 타자의 아픔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라고 하는 인간의 심리현상으로 이해되었는데, 12세기의 주자에 가면 그것이 “우주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天地生物之心]이라고 하는 우주론적 원리, 즉 ‘공리’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즉 인간의 마음이 우주의 마음으로 확대된 것이다. “인(仁)은 사랑의 리(理)이다”[仁者愛之理]라고 하는 주자의 말은 이러한 변화를 말하고 있다.

‘공공’의 세속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쓰는 ‘공공성’이란 개념은, 앞에서 소개한 용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주론적 차원에서의 ‘공공’이 인간사회의 영역으로 한정됨과 동시에 동사에서 명사로 그 쓰임이 변질되어 탄생한 말이다. 이와 같이 ‘공공’ 개념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세기 초의 일본에서의 일이다. 야마와키 나오시에 의하면, 일본의 윤리학자 와츠지 테츠로(和辻哲郎)는 1930년대에 『윤리학』이라는 저서에서 ‘公共性’이라는 개념을 처음 썼다고 한다.
그런데 와츠지는 ‘공공’을 추상명사화함과 동시에 그것이 적용되는 영역을 ‘국가’로 제한시켰다. 즉 공공성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장을 ‘국가’로 한정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도 ‘윤리’적 차원으로 축소시켰다. 주지하다시피 1930년대는 일본이 중일전쟁을 전후로 이른바 ‘전시체제’에 돌입한 시기이다. 즉 국가주의가 절정에 달한 시점이었다. 이때 탄생한 ‘공공성’ 개념이 ‘국가’를 핵심으로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 결과 전통시대의 ‘리(理)’의 자리에 ‘국(國)’이 들어가게 된다.
이때 생겨난 말이 “멸사봉공(滅私奉公)” 즉 “사(私)를 멸하고 공(公)을 받든다”는 개념이다. 다시 말하면 “공(公)을 위해서 사(私)는 희생되어도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때의 ‘공’은 이제 ‘리’가 아닌 ‘국’으로 제한된다. 그래서 ‘멸사봉공’은 달리 말하면 국가를 위해서라면 개인은 희생되어도 된다고 하는 국가지상주의적인 표어를 의미한다.
당시에 일본은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살 특공대를 만들어 미국과 싸우게 했는데, ‘멸사봉공’은 이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사용된 일종의 슬로건이었다. 또한 ‘멸사봉공’은 일제시대에 우리나라를 다스렸던 일본 총독의 연설 속에 나오는 말로도 유명하다(〈이순신 장군이 ‘멸사봉공’? 뜻이나 알고 쓰나〉, 인터넷판 《오마이뉴스》 2012년 12월 5일자). 이 연설은 일본이라는 나라[公]에 대한 봉사[奉]만이 최고의 가치라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후에 이런 생각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지게 되는데,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나라를 위해서, 또는 회사를 위해서, 또는 조직을 위해서라면 개인은 희생되어도 된다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공(公)’은 주로 ‘정부’나 ‘관청’ 등을 나타내는 말로 제한적으로 사용되게 된다. ‘공직자’, ‘공무원’, ‘관공서’, ‘공기업’, ‘공익’과 같은 말이 대표적인 예이다. 반면에 국가나 사회를 뛰어넘어서 모두가 함께하는 것에 대해서 ‘공(公)’을 쓰는 일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공(公)’ 하면 곧바로 국가나 정부를 떠올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아울러 이때부터 ‘공공’이라는 말도, ‘공공 기관’이나 ‘공공 정책’과 같이, 국가로서의 ‘공(公)’을 나타내는 말로 의미가 한정된다.
나는 이것을 ‘공공의 세속화’라고 부른다. 국가를 넘어선 우주론적 차원의 ‘공공’이 국가적 영역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국가와 국가를 잇는 사상적 고리는 끊어지게 되고, 인간의 문제를 우주의 차원으로까지 확장시켜 생각하는 사고는 소멸하게 되었다. 흔히 근대의 폐단으로 지적되는 인간중심주의, 생태문제, 국가주의 등은 모두 공공의 세속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과제는 이 세속화된 ‘공공’을 어떻게 하면 다시 자연의 영역, 우주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관련

조성환 - 주체적 근대의 모색 – 다시개벽

주체적 근대의 모색 – 다시개벽

주체적 근대의 모색

-한국학으로서의 동학

글: 조성환

이 글은 개벽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한국 근대의 출발점은?
일본에서 공부할 때, 또는 일본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공통된 특징 중의 하나는, 전공을 불문하고 거의 대부분이, ‘메이지유신’이나 ‘전전(戰前)’과 같은 일본 역사의 특정한 지점에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는 점이다. 즉 동양학을 하든 서양학을 하든, 그 학자가 일본인이라면 거의 예외없이, 일본 근현대사의 특정한 사건을 화두로 삼아서 자신의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는 근대화의 성취라는 성공적인 기억과 함께 그것이 가져온 비극에 대한 반성이 중첩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으로 이 문제를 분석해 보면, 나는 그것이 학문의 출발을 ‘지금 여기’라고 하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것은 현실적인 학문관의 반영인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몇 년 전에 참여한 교토포럼에서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지점이 지금은 ‘메이지유신’에서 ‘3·11대지진’으로 이동하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근대라는 지점에 더해서 현대라는 지점이 새로 추가된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지점은, 단지 전쟁에 대한 반성과 회한이라는 성격을 넘어서, 근대문명 자체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결국 정리해 보면, 메이지유신이 일본학자들의 근대에 대한 논의의 출발이라고 한다면, 3·11 대지진은 현대에 대한 논의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예를 하나 더 들면,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유행했던 서양의 모스트모더니즘을 들 수 있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사상가나 학자로 분류되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68년’을 논의의 출발로 삼고 있었다. 1968년에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특정한 사회적 사건이 그들의 문제의식의 출발이 되고, 그 공통된 관심사가 일정한 사조나 학파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한국의 학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자신의 전공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주자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주자나 공자 얘기부터, 불교를 연구하는 사람은 붓다나 원효로부터, 칸트를 전공하는 사람은 플라톤이나 칸트의 선배 철학자들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거기에는 지금의 한국이라는 현실은 빠져 있다. 설령 지금 여기라고 하는 현실 문제를 거론한다고 해도, 그것의 기준이 중국의 주자나 조선의 퇴계나 서양의 칸트라고 하는 저 바깥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 ‘메이지유신’과 같은 근대를 알리는 논의의 지점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동학이라고 생각한다.

동학의 정의에 대한 의문
흔히 동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또는 동아시아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동학에 대한 학설은, 그것이 중국의 유불도(儒彿道)나 서양의 천주교의 영향을 받아서 성립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과서에 실린 동학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는 ‘중국의 유불도 삼교의 절충 내지는 종합’이라는 것이고, 최근에 나온 돈 베이커의 『한국인의 영성』에서도 동학 성립에서의 서학(=천주교)의 영향이 강조되고 있다. 동학에서 말하는 ‘한울님’은 일신교에서 말하는 ‘신’과 유사하고, 이러한 신관은 천주교의 영향을 받아서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설명들이 한국사상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피상적인 견해라고 생각한다. 즉 ‘한국학’의 부재에서 오는 성급한 결론인 것이다. 그것은 동학을 한국학이라고 하는 거시적인 지평 위에 올려놓고 분석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단편적인 견해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동학의 피상적인 요소만을 가지고 동학의 본질을 규정하고 있다.
확실히 동학 경전에 보이는 유교적 덕목들, 주술적인 부적, 천주라는 용어나 하늘님의 성격 등은 중국의 유교나 도교 또는 서양의 서학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학’에서의 ‘동’이, 일찍이 최치원이 한반도를 가리켜 ‘동방’이라고 할 때의 그 ‘동’의 함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그런 점에서 ‘동학’이라는 개념을 오늘날로 말하면 ‘한국학’으로 치환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최제우가 추구하고자 했던 한국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토착적 요소는 방법론상에서 중국적인 것과의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적 패러다임의 종언
구한말의 대유학자 최한기는 ‘성학(聖學)에서 기학(氣學)으로’라는 명제로 중국철학의 성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학문은 ‘성학(聖學)’, 즉 ‘성인의 말씀에 의한 대중들의 교화’라고 하는 성인 중심의 형태를 띠었다. 이에 반해 최한기의 ‘기학’은 진리의 기준을 성인의 말씀에 두는 것이 아니라 ‘기’라고 하는 구체적인 자연현상에 두겠다는 학문관이다. 이처럼 성학이 성인 중심의 중국적 패러다임이고, 기학이 기를 중심으로 한 최한기적 학문관을 말한다면, 동학을 규정하는 학문적 개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을 ‘천학(天學)’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최제우는 자신의 학문을 ‘천도(天道)’라고 하였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중국의 그 어떤 주류 사상도 자신의 학문을 ‘천도’라고 명명한 적은 없다. 왜냐하면 중국은 기본적으로 성인 중심의 학문이고, 따라서 학문의 명칭도 성인의 이름을 따라서 붙이기 때문이다. 가령 ‘불도(佛道)’는 ‘붓다가 제시한 길’이라는 뜻이고, 유교의 다른 말은 ‘문무주공의 도’나 ‘공교(孔敎)’, 즉 ‘공자의 가르침’이며, 도교의 다른 말은 ‘노교(老敎)’, 즉 ‘노자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총칭하는 개념이 ‘성교(聖敎)=성인의 가르침’ 또는 ‘성학(聖學)=성인의 학문’이다.
이에 반해 동학은 학문의 근원을 ‘하늘’로 삼았다. 그리고 그 하늘은 중국적인 ‘천’이 아니라 ‘하늘님’이라는 ‘천주(天主)’이다. 즉 자연의 운행을 의미하는 무언(無言)의 ‘천’이 아니라 인격적인 의미가 부여된 계시의 하늘인 것이다. 그래서 동학의 하늘님은, 그것과 합일되어야 할 질서나 원리가 아니라, 모시고 섬겨야 할 공경의 대상이다. 최제우는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사상을 ‘천도’, 즉 ‘하늘님을 섬기는 삶의 실천’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조선왕조 500년 동안의 중국적 사상 형태가 힘을 잃자 한국인들의 궁극적 관심이 드러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즉 성인 패러다임에서 하늘 패러다임으로 사상의 축이 전환된 것이다.

“인간은 성인이다”에서 “인간은 하늘이다”로
중국적 성인 패러다임의 특징은, 일찍이 도널드 먼로가 ‘natural equality’(자연적 평등)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듯이, “누구나 성인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명제로 압축된다. 그런데 먼로에 따르면, 이러한 평등성이 “누구나 똑같이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평가적 평등(Evaluative Equality)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즉 누구나 성인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누구나 사회적으로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의 예적(禮的) 질서나 한국의 사농공상의 차별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누구나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고 주장하는 동학은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평가적 평등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동학에서 설령 인의예지와 같은 유교적 윤리를 긍정하는 대목이 보인다고 해도, 그것은 본래의 유교윤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유교에서는 어디까지나 ‘예’라고 하는 사회적 차등(分) 위에서 상호윤리를 주장하는 반면에(가령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는 자식에게 자애한다고 하는 식의), 동학은 시천주(侍天主)라고 하는 평가적 평등 위에서 유교윤리를 실천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학교도들끼리 행하는 맞절의례는 바로 이러한 점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동학에서는 윤리적 덕목의 중심이 ‘경(敬)’으로 이동하게 된다. 즉 이미 모든 존재가 하늘이 된 이상, 그들을 하늘로 공경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윤리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경’이라고 해도 성리학에서의 ‘경’과 동학에서의 ‘경’이 그 내용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의미한다. 즉 성리학에서의 ‘경’이 자신이 성인이 되기 위한 ‘경’이라고 한다면, 동학에서의 ‘경’은 상대를 하늘로 모시기 위한 ‘경’이다. 즉 전자가 ‘극기(克己)’로서의 마음공부라고 한다면 후자는 ‘시인(侍人)’으로서의 타자 윤리인 것이다.

하늘과 인간의 상호협력
동학이 기존의 중국적 패러다임, 또는 유학적 세계관에서 탈피했다고 하는 증거는 시천주의 인간관뿐만 아니라 천인관(天人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적 천인관의 기본은 “인간은 하늘을 본받는다(人法天)”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일찍이 동중서의 ‘천인상여(天人相與)’나 노자의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 등으로 표현되었다. 동중서의 ‘천인상여’는 “하늘과 인간이 서로 함께 한다”는 뜻인데,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은 “군주가 부도덕한 정치를 하면 하늘이 자연재해를 내린다”고 하는 천인감응설 또는 천인상관설을 말한다. 한편 노자의 ‘도법자연’은 ‘천’을 저절로 그러하게 운행하는 무목적적인 자연으로 해석하여 인간은 그러한 자연의 운행을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에 반해 최시형이 말한 ‘천인상여(天人相與)’는 “인의천(人依天), 천의인(天依人)” 즉 “인간은 하늘에 의존하고 하늘은 인간에 의존한다”고 하는 의미에서의 천인상여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과 하늘의 상호의존성을 말하는 천인상의(天人相依)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늘이 인간에게 벌을 내린다”고 하는 의미에서의 동중서의 천인상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최시형의 천인상여는 하늘도 인간의 힘을 필요로 한다고 하는 불완전한 하늘관을 전제로 하고 있는 반면에, 동중서의 천인상여에서는 하늘은 인간이 범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은 일찍이 최제우에게서 ‘노이무공’이라는 말로 표현된 적이 있다. 최제우의 천어(天語) 체험에 나타난 하늘님은 “개벽 후 5만년 동안 노력은 했는데 공이 없다가 너를 만나 공을 이루었다”고 고백하였다. 이것은 제아무리 하늘님일지라도 인간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세상을 구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최제우는 하늘님의 계시와 하늘님으로부터 받은 무극대도를 통해서, 하늘님은 다시 최제우라는 인간의 포덕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천인관은 이후에 증산교나 통일교에서 ‘신인합발(神人合發)’이라는 형태로 이어진다(홍범초, 노길명, 윤승용 참조). 신인합발이란 인간계와 신령계가 힘을 합쳐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상으로, 동학의 천인상여사상과 그 발상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개벽과 민중사상
최제우나 전봉준과 같은 동학사상가를 비롯하여 증산교와 같은 일제시대의 자생종교, 그리고 구한말의 독립지사들, 심지어는 조선왕조실록에서까지 공통적으로 보이는 한국정치사상의 슬로건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이다. 보국안민은 때로는 보국안민(保國安民)으로도 쓰는데 한국의 민중사상 내지는 정치철학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보국’은, 『대학』의 ‘치국’과 대비될 수 있는 말인데, 나라가 위태로우면 민중들이 나서서 나라를 구제한다고 하는 민중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사상을 나타낸 말이다. 반면에 『대학』의 치국은 정치의 주체를 위정자로 보고 위정자가 중심이 되어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상의 표출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국이 민중 중심의 개벽사상과 통한다고 한다면 치국은 위정자 중심의 개화사상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보국이 정치의 주체를 ‘민’으로 보고 있다면 치국은 정치의 주체를 ‘관’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안민’은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인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일찍이 신라 향가의 「안민가」에서 그 용례가 보이고, 사상적으로는 『논어』의 ‘안인’과 상통한다(“修己以安人”). 세종이 한글창제의 목적을 ‘편민’, 즉 “백성을 편안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천명하거나, 일제시대의 민세 안재홍이 한국정치철학의 핵심을 ‘다사리’, 즉 “정치란 백성들을 모두 따뜻하게 하는 것”이라고 본 것 등은 모두 안민사상의 표출이다.
반면에 『대학』에서의 ‘친민(親民)’(왕양명)이나 ‘신민(新民)’(주자)은 위정자가 백성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논한 것이지, 그 자체가 정치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즉 『대학』에서의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디까지나 ‘치국·평천하’라고 하는 질서유지에 있고, 그것의 일환으로 친민이나 신민이 요청되는 것이다.
보국안민은 논리적으로 안민이 실현되지 못할 때 ‘민’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보국을 해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나라의 존재 의의,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이 ‘안민’에 있고, 정치의 주체는 민이라고 하는 사상의 표현이다. 동학의 개벽은 이와 같은 한국의 민중사상과 안민사상이 응집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자는 혁명사상의 표출이다. 다만 동학이 추구한 혁명이 오늘날 정치학에서 말하는 혁명과 다른 점은, 그것이 영성과 수양을 동반한 혁명이었다는 점이다.

수양과 구원
중국 종교의 특징은 철저하게 수양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데에 있다. 즉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성인이 되고, 그렇게 해서 된 성인이 타인을 구제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초월적인 신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반면에 서양의 기독교의 핵심은 수양론이 아니라 구원론이다. 그리고 그 구원은 창조주로서의 신의 도움에 의해 이루어진다.
중국의 수양 중심의 학문관을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 도학(道學) 또는 심학(心學)이다. 도학은, ‘수도(修道)’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닦는다’고 하는 수양 중심의 학문관을 대변하는 말이다. 동학에서 “닦아야 도덕이다”(『용담유사』「교훈가」)라고 할 때의 ‘도덕’ 역시, 오늘날 말하는 지켜야 할 규범으로서의 도덕이 아니라, 자기도야라는 의미에서의 수양의 다른 표현이다. 그런데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로는 수양의 중심에 ‘마음’이 자리 잡게 된다. ‘심학’이라는 말은 학문의 핵심은 마음공부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퇴계나 동학에서는 자신의 학문을 ‘심학’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런데 동학이 천도라고 하는 하늘님 중심의 사상 체계를 지향했다고 하는 것은, 수양 중심의 중국 종교에 부족한 구원의 문제를 보완하려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최제우는 하늘님의 계시를 통해서 천도를 창시하였고, 천도는 마음속에 하늘님이라는 영적인 존재를 믿고 모시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동학에서는 하늘님이라는 인격적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서 인간의 자기구원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이것은 천인상여의 구원론적 측면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학은 심학이라는 수양의 요소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마음공부 없이 하늘님의 강령이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至氣今至願爲大降). 그래서 ‘수심정기(修心正氣)’와 ‘시천주(侍天主)’는 수양과 구원이라는 동학의 두 축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동학에 이어서 나온 증산교와 원불교는, 증산교가 상대적으로 상제 중심의 구원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면, 원불교는 마음공부 중심의 수양의 문제를 강화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동학이 추구한 근대
전봉준과 동시대의 일본의 생명사상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다나카 쇼조는 동학을 ‘문명적’이라고 극찬하였다. 이것은 당시에 ‘문명화’라는 구호하에 일본이 추구하던 서구적 근대화에 대한 간접적 비판으로, “살생하지 마라”는 기치를 맨 앞에 내건 동학의 살림사상과 평화사상에 대한 공감의 표현이다. 다나카 쇼조는 부국강병이 아니라 생명과 살림을 참다운 문명의 기준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다나카 쇼조와 동학이 비판한 서구적 근대의 근본적인 한계가 일본의 대지진과 한국의 세월호사건으로 표출되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이 현대의 논의의 출발점을 3·11 대지진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면, 한국의 그것은 아마도 4·16 세월호사건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월호는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 하에 추구해 왔던 일본적 근대화의 종언을 알리는 사건으로, 생명과 인권을 대가로 추구해온 경제성장 패러다임의 한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과연 잘 산다는 것이 무언인지를 철학적으로 반성하게 한 계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동학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학은 성장보다는 살림에 가치를 두면서, 영성과 수양이 동반된 인문혁명을, 민중이 중심이 되어 주체적으로 모색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여러 곤경들의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해 줄 수 있는 한국사상사의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김용옥, 『독기학설 – 최한기의 삶과 생각』(통나무, 2004)
노길명, 『한국신흥종교연구』(경세원, 1986)
박맹수, 『생명의 눈으로 보는 동학』(모시는사람들, 2014)
윤승용, 「한국 신종교의 생사관과 상장례」(『신종교연구』23, 2010)
조성환, 「천도의 탄생 – 동학의 사상사적 위치를 중심으로」(『한국사상사학』44, 2013)
조성환, 「‘생명’의 관점에서 본 동학사상사」(『역사연구』28, 2015)
Donald Munro, The Concept of Man in Early Chin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69.

2021 조성환 - 하늘과 땅의 살림영성 – 다시개벽

하늘과 땅의 살림영성 – 다시개벽

하늘과 땅의 살림영성

-안도 쇼에키와 동학을 중심으로

글: 조성환, 2021.05.01

이 글은 개벽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프랑스와 쥴리앙이라는 프랑스의 비교철학자는 “한국은 중국철학의 보관소”라고 했다고 한다(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이근세 옮김, 『전략』 교유서가, 2015, 『해제』). 중국에는 이미 사라져버린 귀중한 사상들을 한국이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일본인들은 한국이라고 하면 ‘한(恨)’을 떠올린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의 혐한론의 분위기를 타고 더욱 가열되고 있는데, 가령 일본에서 활동하는 황문웅이라는 대만출신 저널리스트의 신간 『恨韓論』(宝鳥社, 2014)이 대표적이다(설령 한국에 대해서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자 하는 논의의 경우에도 ‘한’은 단골 주제로 등장한다. 가령, 오구라 키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講談社, 1998)).
이런 외국인들의 평가에서 공통되는 것은 한국사상의 긍정적이고 주체적인 의미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면서 한국과 일본의 생명사상에 접근한 것이다.

1. 안도 쇼에키의 활진사상(活眞思想)
안도 쇼에키(安藤昌益, 1703-1762)는 에도 중기에 해당하는 18세기 일본의 사상가로 중국의 유교, 불교, 도교의 이른바 삼교의 틀 안에 들어오지 않는 독특한 사상가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는 의사였으면서도 농민의 입장을 대변하였고 특히 생명사상을 주창한 사상가로 유명하다. 유불도 삼교의 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니노미아 손토크(二宮尊徳. 1787~1856)와 유사하고, 생명을 철학적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다나카 쇼조(田中正造, 1841~1913)의 선구자라 할 만하다. 그의 철학의 핵심 개념으로는 ‘직경, ‘활진’, ‘자연세’ 등을 들 수 있다.

(1) 직경(直耕=직접 밭을 간다)
안도 쇼에키는 우주의 본질을 ‘경(耕)’, 즉 ‘노동’으로 파악한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다 각자 맡은 일을 함으로써 먹고 산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 하에서 그는, 전통적으로 숭상받아 온 성인들(요순, 석가, 노장 등)을 모두 “불경탐식(不耕貪食)”, 즉 “농사일을 하지 않고 농민들을 착취한 도둑”이라고 비판한다. 그런 점에서 인의나 무위의 실천자로서의 성인이 아닌 ‘일하는 사람’(耕者之謂聖)으로서의 성인관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2) 자연의 원리를 훔친 성인
쇼에키는 우주의 원리는 직경인데, 성인만이(더 나아가서 지배층) 이 원리를 위배한다고 비판한다. 이는 노장사상에서 모든 존재는 무위의 존재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오직 인간만이 여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비판과 유사하다. 다만 그 내용상에 있어서 쇼에키는 무위(=자발)가 아닌 직경(=노동)을 주장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쇼에키의 말을 들어보자: “대개 조, 수, 충, 어에게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고 동류끼리 서로 먹거나 먹히는 일이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네 종류를 잡아먹는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잡아먹는 관습이 시작된 것은 바로 성인들이 범한 죄로 천도를 훔쳤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성인들은 일찍이 천도를 위배한 것입니다.”(박문현·강영자 번역, 『법세이야기』, 5쪽)

(3) 전도(轉道)와 정도(定道)
쇼에키는 기존의 중국철학의 핵심 개념을 모두 자기 식대로 바꾸고 있다. 가령 ‘성인’대신에 ‘정인(正人)’이라는 말을 쓰거나 ‘천(天)’대신에 ‘전(轉)’을, ‘지(地)’대신에 ‘정(定)’을 각각 쓰고 있다. 그 이유는 천지(天地)에는 상하의 계층적 의미가 들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지 대신에 전정(轉定=회전과 고정)이라는 가치중립적 용어를 쓴다. 그리고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천도(天道) 대신에 전도(轉道)를, 지도(地道) 대신에 정도(定道)라는 말을 쓴다.(참고로 『법세이야기』에서는 편의상 ‘天’을 ‘轉’으로 수정해 놓았다: “본문에는 ‘轉眞’으로 되어 있으나 ‘天眞’으로 일괄해 이해하기 쉽게 했다. ‘轉道’ 또한 ‘天道’로 통일하였다.” 박문현·강용자 『법세이야기』 5쪽, 각주 5)

(4) 활진(活眞) 또는 토활진(土活眞)
‘활진’은 쇼에키에게 있어서 우주의 궁극적 실재와 같은 개념이다. 그가 고안해낸 이 말에는 ‘생명’(活)이야말로 ‘참’(眞)이고, 그것의 근원지가 바로 땅임을 의미한다(土活眞). 아울러 ‘곡령(穀靈)’은 땅에서 나오는 곡물 속에 생명의 엣센스가 들어 있고, 그것을 영성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편 공공철학자 김태창은 쇼에키의 ‘활진’을 일본의 고신도(古神道)의 ‘산령産靈’(무스히=천지만물을 생성하는 신령)과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마찬가지로 신도학자인 카마다 토지(鎌田東二) 교수는 “자연신도에서는 무스히를 포함해서 자연생성력이 가장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하였다(<미래공창신문> 제24호). 이것은 쇼에키의 사상이 고대 일본의 생명사상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5) 자연진영도(自然眞營道)
쇼에키에게는 『자연진영도』라는 대표적인 저작이 있는데, 여기에서 ‘진영’이란 우리말로 옮기면 ‘참행위’와 같은 말로,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자연의 생명력을 기르는 직경이야말로 참다운 행위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노동이야말로 참된 ‘도’라는 것이다. 이것은 맹자가 말하는 ‘노심자(勞心者)’와 ‘노력자(努力者)’의 위치를 정확하게 뒤집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 治於人者食人, 治人者食於人, 天下之通義也. 『등문공(상)』).

(6) 법세에서 자연세로
쇼에키는 성인이 노동하지 않으면서 노동하는 자들을 착취하는 세상을 ‘법세’라고 한다. 법세는 성인들이 사적인 법(=제도)를 만들어 자연의 원리(=직경) 반하는 착취를 일삼는 세상이다. 반면에 모두가 직경하면서 자급자족하는 세상을 자연세라고 한다. 자연세는 몸소 경작을 함으로써 대지의 생명력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서 타인의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깨우치며 사는 이상세계이다.

(7) 일본적 영성
카마다 토지 교수는 일본적 영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본적 영성을 근거지우고 있는 것으로 ‘장소적 논리’가 있고, 이것을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의 말로 하면 대지성(大地性)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연이 지닌 커다란 역동으로, 거기에는 생태지(生態智)가 깃들여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생성력으로서 무수히의 힘을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사를 포함한 모든 것을 낳고 만들어 나가는 스스로성과 저절로성이다. 이러한 무스히의 힘이나 자연생성력이 일본적 영성의 근간에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미래공창신문> 제24호)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펴본 안도 쇼에키의 활진, 곡령, 직경사상 등은 이러한 일본적 영성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2. 동학의 하늘사상
일본적 영성의 근원에 ‘대지’가 있다고 한다면, 한국적 영성의 바탕에는 ‘하늘’이 있다. 한반도에 관한 최초의 문헌적인 기록은 제천행사를 특징적으로 전하고 있다. 19세기말~20세기초에 탄생한 이른바 민족종교들은 하나같이 제천행사를 부활시키고 있다(동학, 대종교, 증산교).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박재순은 하늘을 ‘한국종교의 원형’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또한 김태창은 최치원이 말한 풍류는 하늘의 노마드적인 속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였다. 아울러 대지와 하늘의 차이가 한국인과 일본인의 심성의 차이를 대변한다고 하였다. 동학은 이러한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 사상적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상이다.

(1) 천도의 부활
최제우는 자신의 학문은 ‘하늘’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천도’라고 불렀고, 이 점에서는 서학과 마찬가지지만 ‘학’의 연원이 한반도(東方)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서학’이 아닌 ‘동학’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마치 쇼에키의 ‘활진’개념이 신도의 ‘무스히’사상에서 나왔다는 견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것은 동학이 우주적 생명력의 근원을 하늘 관념에서 찾고 있다고 한다면, 쇼에키는 그것을 경작이라는 대지 관념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편의상 전자를 천학(天學), 후자를 지학(地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학의 ‘하늘’은 유불도에 나타난 중국의 ‘천(天)’사상과도 본질적으로 다르다. 가령 『논어』에서의 ‘천(天)’은 무언(無言)의 천(天)인 반면에 최제우의 하늘은 가르침을 내려주는 하늘이다. 이러한 차이는 중국사상이 일찍부터 ‘상제(上帝)’나 ‘천(天)’이 아닌 ‘도(道)’라고 하는 인문적 질서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리라. 그런 점에서 중국사상은 도를 정점에 두는 도학(道學)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동일한 맥락에서 서양사상은 God을 가치의 근원에 두는 신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2) 어우러짐으로서의 생명력
동학과 중국사상 또는 서양사상과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천인관계, 즉 하늘과 인간(또는 신과 인간)의 관계일 것이다. 최시형은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천인상여”(天人相與=하늘과 인간이 서로 관여한다)라는 동중서의 말을 빌려 표현하고 있다(“天人相與之機不可須臾離也”- 하늘과 인간이 함께 하는 구조는 잠시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한대의 동중서는 군주가 비도덕적인 정치를 하면 그에 대한 경고로서 하늘이 자연재해를 내린다고 하는 천인감응론 또는 천인상관론의 입장에서 천인상여를 말했다고 한다면, 동학은 하늘과 인간의 상호의존관계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 말을 차용하였다(“하늘은 인간에 의지하고 인간은 하늘에 의지한다.”최시형).
이것은 인간이 자연의 원리를 일방적으로 본받는다고 하는 중국의 도가사상이나 쇼에키의 직경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이다. 즉 동학은 인간도 하늘을 죽일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어린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하늘님을 해치는 것이다.”최시형) 인간의 주체성과 영향력을 훨씬 강조하고 있다. 동학에 이르면 하늘은 인간처럼 인격화되고 인간은 하늘만큼 존귀해진다. 동학의 생명사상은 하늘과 인간의 하나됨(合一)이 아니라 ‘어우러짐’(相與)을 통해 완성된다(이것을 김용우 선생의 표현을 빌리면 ‘호혜’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동학이 하늘과 인간의 불상리(不相離)를 말하고 있다면, 『중용』에서는 도(규범)와 인간의 ‘불상리’를 주장하고 있다(道也者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또한 『팡세』에서는 신과 함께 하는 행복(Happiness of man with God)과 신과 함께 하지 않는 불행(Misery of man without God)을 대비시키고 있다. 스즈키 다이세츠는 대지로의 회귀를 일본적 영성의 특징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역시 천학(天學)과 도학(道學) 그리고 신학(神學)과 지학(地學)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언설들이라고 생각한다.

(3) 어우러짐의 한국철학적 배경
조선성리학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권근은 『천인심성분석지도(天人心性分釋之道)』에서 성리학의 ‘태극’이 아닌 ‘하늘’을 정점에 위치지우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권근은 ‘天’이라 글자를 ‘大’와 ‘一’로 분해한 뒤, 각각을 다시 리와 기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天爲一大. 一者, 以理言無對, 以行言無息; 大者, 以體言無外, 以化言無窮. 하늘은 ‘一’과 ‘大’를 말한다. ‘一’이란 원리의 측면에서 말하면 짝이 없다는 것이고, 운행의 측면에서 말하면 쉼이 없다는 것이다. ‘大’란 형체의 측면에서 말하면 밖이 없다는 것이고 변화의 측면에서 말하면 끝이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 그림 참조).
권근이 성리학적인 태극이나 리가 아닌 ‘천’을 최고의 범주로 설정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가령 리기론적 범주만으로는 실천철학적인 함축, 즉 ‘외천’(畏天)으로서의 경(敬)을 확보하기가 어려웠을지 모른다. 반면에 ‘천’을 리와 기를 아우르는 범주로 설정함으로써 존재와 당위, 사실과 가치를 포괄하는. 이것을 리와 기의 어우러짐으로서의 하늘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주자학에서는 하늘을 대신해서 태극이나 리가 최고범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면, 권근의 경우에는 그러한 사유체계를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하늘이 여전히 최고범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리와 기의 묘합으로 우주를 이해하는 생각은 이후에 율곡 등으로 이어지는데, 가령 율곡은 리와 기의 관계를 ‘묘합’으로 보았다고 한다(“理氣之妙.”‘묘합’에 대해서는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김동희 박사의 논문 『율곡 이이의 리기지묘 사유에 대한 재고찰』(2015)로부터 계발을 받았다. 김박사는 서양의 이원론적 사유, 중국의 일원론적 사유에 대해서 한국의 묘합적 사유를 특징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김동리의 형인 김범부는 한국사유의 특징을 ‘묘합’으로 보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월간 『공공철학』에 실린 야규 마코토씨의 글을 참고하였다). 리와 기의 묘합적 존재방식은 마치 양자역학에서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인 것과 유사하다(이 점에 대해서는 한동대학교 기계과의 이재영 교수로부터 계발을 받았다). 빛은 관찰자가 보고 있으면 입자처럼 움직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파동과 같이 행동한다고 한다. 여기서 입자와 파동의 이중적 존재방식은 이원론이나 일원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선후나 본말이 있을 수 없다.(게슈탈트심리학에 대해서는 Brook Ziporyn 교수가 중국철학의 ‘리’를 coherence로 해석하면서 드는 예를 참고하였다)

(4) 종교와 종교의 어우러짐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가설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사유의 특징 으로 ‘어우러짐’을 들 수 있고, 그것이 동학에서는 ‘상여(相與)’의 호혜행위로, 권근이나 율곡 등에서는 ‘묘합(妙合)’의 존재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또한 이런 맥락에서 일제시대 종교사가인 이능화의 “세계의 모든 민족종교는 하늘을 중심에 두고 있다”(悉皆以天爲主, 『백교회통』, 1912)는 말을 이해하면, 모든 종교를 어우러지게 하는, 즉 조화되게 하는 작용으로서 하늘이 설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종교’를 신도와 불교 그리고 기독교의 세 개로만 한정시키고, 나머지는 ‘유사종교’라는 이름으로 단속과 통제를 가한 것에 비하면 대단히 대조적인 이해이다. 서양에서도 종교다원주의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이 19세기 말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능화의 “백교회통론”은 대단히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과는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이런 논의가 일찍부터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능화의 심성에는 종교와 종교 간의 장애가 아닌 소통(通敎)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았기 때문이리다. 한편 최치원은 이러한 통교적 사유방식을 ‘포함’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고 한다. 삼교를 포함하고 군생을 접화한다”). 여기서 ‘풍류’는 중국의 유불도 삼교를 어우러지게(包含) 하는 하나의 사유방식을 말하고, 그것이 한국인의 ‘멋’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단지 삼교의 조화나 백교의 조화를 논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어우러지게 하여 하나의 새로운 ‘도’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는 중국과도 다르고 이능화와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식민지시대에 이러한 종교간의 어우러짐을 표방하고 나타난 종교단체가 원불교이다. 가령 원광대학교의 한복판에 있는 수덕호에는 둥그런 호수 주위에 원불교 창시자의 동상 대신에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고 공자와 석가의 동상이 놓여 있다. 이것은 최치원의 ‘포함’사상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 제2대 회장을 지낸 조옥정은 구한말에 유학자로 시작했다가 동학도로 전향하고 다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원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의 기독교 성직자들로부터 불교를 신봉한다는 비난에 대해서 “한 눈보다는 두 눈이, 한 손보다는 두 손이 한 발보다는 두 발이 더 유익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것은 복수의 종교적 아이덴티티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복수의 종교적 아이덴티티를 가치 있는 것으로 본다는 말이다.

(5) 한국인의 영성
나는 바로 여기에 한국인의 영성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즉 “복수의 종교적 아이덴티티”를 인정하는 경향이다. 그것을 한글로 표현하면 ‘하늘’이나 ‘한’으로 나타낼 수 있고(‘크다’, ‘많다’는 의미에서), 이미지로 그리면 ‘○’이 되고, 한자로 표현하면 ‘通’이나 ‘風流’가 될 것이다. ‘한’이나 ‘円’은 타자를 수용하는 ‘바탕’이나 ‘마당’또는 ‘터’를 형용한 것이고, ‘풍류’는 그것이 ‘미적’이라는 가치를 표방한다. 살림은 이러한 영성의 발현을 통해서 실현된다. ‘한’은 맺힌 ‘恨’을 풂으로써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을 어우러지게 하는 살림행위를 말한다. ‘한살림’은 ‘큰살림’이라는 뜻이다. 권근은 그것을 ‘天’으로 표현하고, 그 의미를 다시 ‘大’와 ‘一’로 담아냈다. 큰살림을 방해하는 것은 하늘의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작고(小) 구분된(二) 인식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의 전시체제에서 와츠지 테츠로는 ‘공공’을 국가 영역으로 축소시켰다. 이것은 ‘공공의 세속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스즈키 다이세츠는 1940년대에 『일본의 영성』(1944), 『일본적 영성의 자각』(1946), 『영성적 일본의 건설』(1946), 『일본의 영성화』(1947)를 발표하여 일본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식 근대화를 추구해 온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마 최근에 한국에서도 조금씩 영성에 대한 논의가 일기 시작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일 것이다. 아마도 한살림운동의 근저에는 근대화과정에서 잊혀진 한국적 영성에 대한 성찰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생명학연구회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함께하는 삶의 가치, 다사리 정신과 철학 김종길

서울아트가이드 Seoul Art Guide

기고 | 함께하는 삶의 가치, 다사리 정신과 철학
김종길
함께하는 삶의 가치, 다사리 정신과 철학



김종길 | 前 다사리문화학교 마당샘





다사리 : 다 말하게 하여, 다 잘살게 하여

다사리문화학교는 ‘다사리’라는 말의 뜻과 철학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21세기 새로운 문화예술기획을 위한 다사리 정신은 무엇일까?



어느 날 저는 정윤재 선생께서 갈무리하신 『다사리 공동체를 향하여-민세 안재홍 평전』(2002)을 보게 되었어요. 스물 셋의 나이에 독립혁명단체 동제사에 가입하고(1913), 스물아홉에 대한민국 청년외교단 비밀조직에 가담한 뒤(1919), 신간회 활동을 하며 여러 차례 옥고를 치룬 독립운동가이자 열린 민족주의자셨던 민세 안재홍(民世 安在鴻. 1891~1965) 선생을 아예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그 책의 내용이 그분의 정신을 확연히 드러내더군요.


저는 그분의 사상에 매혹되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다사리’는 제가 궁구했던 여러 삶의 의문들을 풀어주는 좋은 열쇳말이었어요. 선생께서는 “‘다사리’는 우주의 엄정한 질서와 운행법칙을 모델로 하는 인간사회의 정치이념이자 단군 이래 우리 민족의 정치적 이상”이라고 말씀하셨죠. ‘다사리’는 ‘모두 다 말(씀)하게 하여’나 ‘다 사리운다’와 같은 우리말을 뿌리로 두는 데요, 이 말의 의미는 ‘진백’(盡白)과 ‘진생’(盡生)과 통하는 것이에요.


진백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뜻하고, 진생은 공동체 모두를 골고루 잘살게 해주는 사회복지로 해석할 수 있어요. 자유주와 평등주의의 이념인 거예요. 정윤재 선생은 『다사리 공동체를 향하여-민세 안재홍 평전』(한울, 210쪽, 2002)에서 “‘다사리’는 ‘다 사리어’(다 말하게 하여)와 ‘다 살리어’(다 잘살게 하여)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면서 ‘다 사리어’는 모두 정치에 참여케 하는 정치방식으로 ‘진백(盡白)’의 가치이고, ‘다 살리어’는 복지를 증진시켜 모두 살리는 정치목표로서 ‘진생(盡生)’의 가치라고 분석했지요.


정윤재 선생은 ‘민세 안재홍 평전’을 내고 10년이 지나서 「민세 안재홍의 다사리이념 분석」(『동양정치사상사 제11권 제2호』, 2012.9)이라는 논문 하나를 발표해요. ‘다사리’를 사상의 개념으로 온전히 바로 세우려는 작업이었어요. 선생이 정리한 다사리 이념의 세 가지 고갱이는 다음과 같아요. 



첫째, 다사리 이념은 ‘나’의 자유론에서 출발하면서도 ‘나라’와 ‘누리’와 상통하는 사상적 유연성을 지니고 있어 개인과 국가 그리고 세계가 서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하는 지구화시대에 합당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둘째, 다사리 이념은 진백을 정치적 절차상의 핵심가치로 삼는 한편, 진생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가치관에 따른 정치리더십만 적절하게 발휘된다면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실천적 한계는 극복될 수 있다.


셋째, 이렇게 하여 다사리 이념에 의해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들이 극복되어 건강한 다사리공동체 형성에 성공한다면, 이는 장차 민족통일의 미래를 가꾸어 가는 과정에서 북한주민들을 감화(感化)시키고 통합(統合)하는 데에도 유리할 것이다.





하나둘셋넷다섯 :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다사리가 지향하는 공동체의 철학은 ‘만민공생’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서로 삶’의 가치를 이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이죠.
그러니 이 현실이 우리가 만들어 갈 이상향 아닐까요?



민세 선생은 지천명의 나이 쉰이 되자 조선상고사 집필에 들어가요. 또한 쉰둘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아홉 번째 옥고를 치루기도 하고요. 선생은 자신의 사상을 깊고 넓게 확장시키기 위해 우리 역사와 우리말에 집중했던 거예요. 그리고 자신의 사상은 결코 외국사상의 모방이 아닌 “고대 이래의 조국고유의 민족주의·국민주의·민주주의의 제이념과 꼭 합치되고, 다만 그것을 현대적 의의에 발전시킨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것들의 구체적인 증거로 일즉다(一卽多)·대즉일(大卽一)․개즉전(個卽全)의 회통철학(會通哲學)과 화백(和白)·홍익인간·재세이화(在世理化)·접화군생(接化群生)·대동(大同) 등과 같은 우리의 오래된 만민공생(萬民共生)의 개념을 보여주셨죠. 그뿐만 아니라 선생은 이런 만민공생의 개념이 하나(一:한울)·둘(二:땅)·셋(三:씨)·넷(四:나·나라)·다섯(五:다사리)·여섯(六:연속)·일곱(七:성취)·여덟(八:열고닫음)·아홉(九:아우름·회통)·열(十:개전)·백(百:온통)·천(千:참)·만(萬:조화)·억(億:선)과 같은 우리 숫자 말에 나타나 있다고 풀이하기도 했어요. 일이삼사오가 아니라 하나둘셋넷다섯이 품고 있는 유불선의 철학이 보이나요? 단재 신채호 선생으로부터 비롯된 우리말의 말뿌리 철학이 선생을 통해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민세 선생은 “전 민족이 초계급적으로 굴욕과 착취의 대상이 됐고, 이제 전 민족이 초계급적으로 해방됐으니 초계급적인 통합민족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어요. 선생은 그 엄혹한 일제 식민지 시대에 아홉 번이나 옥고를 치를 정도로 정신이 곧았어요. 그런 선생의 비타협적인 저항 정신은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요. 선생의 아호 ‘민세(民世)’는 ‘민족’과 ‘세계’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든 것이에요. 왜 그랬을까요? 선생은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이념은 “민족으로 세계에, 세계로 민족에, 교호(交互)되고 조합(調合)되는 민족적 국제주의-국제적 민족주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민세 선생의 다사리 공동체와 사상사적 맥락에서 21세기 새로운 문화기획의 철학을 엿보았어요. 우리 경기문화재단의 다사리문화학교가 지향해야 할 비전으로서 손색이 없었던 것이죠.



공공하는 문화, 공공하는 학교
자, 그렇다면 다사리문화학교의 정신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현실이 이상향이 될 수 있나요?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 우리가 한 번 더 새겨야 할 공공성에 대해 알아보죠.



멸사봉공(滅私奉公)이라는 말 아세요? 사사로운 감정을 없애고 공공의 목적을 받들어 모신다는 뜻이죠. 같은 말로 선공후사(先公後私)가 있어요. 공공은 사사로운 것에 우선한다는 뜻이에요. 언 듯 우리는 이 말이 애국이나 충정을 뜻하는 것처럼 매우 중요한 공공의 원칙이 아닐까 생각하지요.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 말은 다소 충격적인 뜻으로 읽힐 수 있어요.


사사로운 것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 ‘나’의 일이고 나의 ‘나들’로서 ‘우리’의 일입니다. 봉공(奉公)이라는 공공은 국가나 정부를 뜻하지요. 이를 풀어 말하면 국가나 정부의 공익이 나의 이익에 앞서 있다는 뜻이 되지요. 멸사봉공과 선공후사의 정신은 그러므로 자칫 전체주의나 파시즘으로 흐를 수 있지 않겠어요? 물론 공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의 경우는 문제가 다를 수 있겠지요.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니 국민을 위한 공공의 일을 수행해야 하지요.


멸사봉공을 멸공봉사로 바꿔 부르면 어떻게 될까요? 멸공봉사는 민주주의에 합당한 개념일까요? 아니에요. 그것은 공공을 없애고 오직 사사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니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우리는 자주 이 둘을 혼동하거나 부정하며, 잊고 삽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까요?


활사개공(活私開公)해야 해요. 활사는 나를 크게 살리는 것이에요. 이때 나는 너의 나이고 나의 너여서, 우리 모두를 말해요. 서로주체의 서로 삶을 뜻하는 것이지요. 그런 다음 공을 활짝 열어야 하죠. 그러면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지요. 이를 행복공창(幸福公創)이라고 하고요. 


‘공공하다’의 뜻은 공공행복의 세계를 공동(共働:人+動)으로 구축하는 것을 말해요. 이를 위한 지적전략이 바로 활사개공(活私開公)과 공사공매(公私共媒)를 통해서 행복공창(幸福共創)을 지향하는 공공철학이에요. 저는 그 공공철학으로부터 공공하는 문화, 공공하는 학교를 생각했어요. 우리 다사리문화학교가 그것이지요. 공공철학은 본래 ‘공공하는 철학’으로 불리는데요, 재일 철학자 김태창 선생이 주창한 개념이에요. 앞에서 말했듯이 활사개공은 사를 살리고 공을 활짝 여는 것이에요. 기본적으로 공공하는 철학의 말뜻은 바로 그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죠. 선생의 말을 인용하면, 활사라는 것은 자기와 타자가 함께 서로 마주보면서 상대방의 ‘나’를 살리기 위해서 마음과 힘을 다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나’가 진정으로 온전히, 충실히 사는 길을 말하는 것이에요. 다사리문화학교의 물들이 찾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지요?



중국의 전적 중에서 ‘공’과 ‘공공’이란 말이 제일 처음 출현한 것은 기원전 91년에 쓰여 진 『사기』이다. 『사기』속의 ‘장석지전’(張釋之傳)이라는 편이 있다. 이 장석지는 한 무제 때의 사법장관이었다. 어느 날 한 무제가 지방에 순찰을 하는 길에 다리를 지나가는데 다리아래에서 갑자기 어떤 사람이 뛰어 나왔다. 무제가 깜짝 놀라서 말 위에서 떨어졌다. 장석지는 그 사람을 체포하였다. 심문 이후 가볍게 징벌하고 그를 석방하였다 이 때 무제는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천자가 말위에서 떨어져 하마터면 큰 화를 당할 뻔하였다. 그런데도 그대는 가볍게 징벌하고 그를 석방하였으니 무엇 때문인가?” 장석지는 무제를 향하여 이렇게 대답하였다. “법이란 천자가 천하와 공(公)적으로 함께 하는(共) 것입니다(法者, 天者所與天下公共也)” 다시 말해 “법이 법다운 것은 바로 설령 천자가 귀하다 하더라도 또한 천하(만민)과 공(公)적으로 함께(共)해야 한다.”는 것이다. (…) 『주자어류』속의 ‘공공’과 ‘천하’, ‘중인(衆人)’은 연계되어 함께 사용된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한 나 개인의 독해에 의하면 주자는 관민의 문제를 처리할 때 ‘천하공공’을 주축으로 삼았다 그리고 민민(民民) 문제를 처리할 때는 ‘중인공공’을 주축으로 삼았다. 따로 대화하고 함께 움직이고 새로움을 열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참으로 성실하게 대응하였다. ‘천하공공’은 ‘수직방향 활동의 공공’이고 ‘중인공공’은 ‘수평방향 활동의 공공’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주자의 이러한 사상은 일본의 ‘공공’과 관련 있는 인식에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면 17세기의 이토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 19세기의 요코이쇼난(穔井小楠, 1809-1869) 그리고 다나카쇼우죠(田中正浩, 1841-1913) 이러한 지식인들의 학설 속에 모두 ‘공공’이라는 말이 있다. 또한 사용할 때 그 의미는 ‘공’과 구별이 되는 바가 있다. 예를 들면 요코이쇼난(楻井小楠)이 자주 사용하는 것은 ‘천지공공의 실리(天地公共的實理)’였으며 다나카쇼우죠(田中正浩)가 사용한 것은 ‘공공, 협력, 상애(公共 協力 相愛)’였다. 이러한 낱말들이 명사라기보다는 동사적 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실천생활의 의미가 더욱 강렬하다. 아울러 이러한 ‘공공’에 관한 사상은 『사기』와 『주자어류』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기학가(氣學家) 최한기(崔漢綺;1803-1877)는 바로 ‘공공(公共)’ 또는 ‘공공(共公)’의 개념을 가지고 기학과 인정(仁政)을 주장하였다.
- 김태창 선생의 강연록에서




몸맘얼의 ‘참나’로 거듭나기



함석헌 선생은 『씨알의 설움』에서 “살․몸은 얼․혼의 참을 증명하는 도장이다.// 내 살 내 몸이 닿지 않은 것,/ 내 피 내 맘이 배지 않은 것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선생의 스승 다석 유영모 선생은 몸맘얼의 모습으로 제나(이기적인 나), 몸나(몸둥이로서의 나), 얼나(참나로서의 나)를 말씀하셨지요. 몸이 없이 맘이 없고 맘이 없이 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몸 따로 맘 따로 얼 따로는 없는 것이지요. 함석헌 선생의 말씀처럼 얼․혼을 증명하는 도장이 살․몸이니 우리 몸을 어떻게 다스려서 ‘얼나’로 거듭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저는 얼나의 존재로서 예수을 보고 부처를 보고 간디를 봅니다. 그들의 얼나는 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는 “나는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했는데요, 부처 또한 그런 빛의 존재, 진리의 존재, 생명의 존재였습니다. 간디를 상상하는 것은 어둠이 아닙니다. 그의 존재는 밝게 빛을 발하는 발광체에 다름 아닙니다. 빛은 어둠을 밀어내고 세계를 드러냅니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빛에 비추인 ‘나’가 아니라 ‘나’ 스스로 밝아져야 합니다. 밝은 존재로서의 ‘나’를 옛 사람들은 ‘신명 든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신명(神明)은 내 안의 얼․혼(神)이 밝게 빛나는 것을 말합니다. 어린이는 ‘얼이 어리고 있는 존재(아이)’입니다. 얼이 들면서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얼이 든 존재)이 되는 것입니다. 어릴 때에는 늘 얼이 어리고 있어서 ‘신이 난 존재’로 삽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보면서 “신났다!”, “신났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얼을 잃거나 상실한 사람들이 되기도 합니다. ‘얼간이’가 되는 것이죠.


얼을 들깨워서 다시 신명이 되어야 합니다. 좌뇌와 우뇌 사이에는 뇌들보가 있습니다.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다리인데요, 이 다리는 좌뇌와 우뇌를 장고를 치듯 휘몰이로 치고 돌아야 빛을 냅니다. 생각해 보세요. 뇌들보의 뇌신경이 환하게 밝아지는 모습을요. 그러나 우리는 생각보다 어두운 뇌를 가지고 삽니다. 왜일까요? 신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몸의 신명, 맘의 신명이 터져야 하는데 몸도 맘도 지쳐있습니다.


다사리문화학교의 기획은 단순히 청년문화기획자를 길러내는 곳으로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문화를 기획한다는 것은 기획하는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한 바탕 빛무리로서의 은하를 이루는, 신명의 순간을 기획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선적인 강의식 프로그램을 지양하고, 물들 스스로 샘을 기획하고 그 샘을 모시고, 또한 모신 샘을 통해서 각자가 배움의 노트를 기록해 가는 과정 지향형 수업모델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사전에 문화학교에서 모셔야 할 샘들의 이름과 강연제목을 공지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무모한 수업계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사리문화학교는 루돌프 슈타이터의 교육철학을 수행하는 영국의 슈타이너학교나 러시아의 톨스토이학교, 덴마크의 그룬투비처럼 교재가 없는 열린 수업을 지향함으로써 물들이 창의적으로 만들어가는 ‘창조적 개인의 교재’를 완성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는 2학기에 시작된 현장 프로젝트형 실기수업에서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학교가 하는 일은, 아니 교육이 하는 일은 ‘기획’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의 ‘예술화’를 물들이 체험토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문화적이지 못한 기획은 딱딱하고 엄숙하며 소통이 되질 못합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만남’의 문화적 소통을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판을 짰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눈부처’가 되는 상호 주체성의 ‘만남’이야 말로 다사리문화학교의 철학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학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시천주(侍天主)’하라고 말합니다. “한 얼을 내 안에 모시니”라는 뜻인데요, ‘한 얼’이 ‘하늘님’, ‘하느님’, ‘하나님’이 되었죠. 그런 다음 ‘조화정(造化定)’이라고 말해요. 한 얼을 내 안에 모시니 내 몸에 드디어 조화가 이뤄졌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우리 모두의 ‘너’는 얼님입니다. 얼님을 모시는 것이 곧 내 몸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라는 것이에요. 바로 그것이 ‘얼나’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심’을 잊지 마세요.



※ 다사리문화기획학교 자료집 원고(2018). 이 글은 새로 쓴 것과 예전에 쓴 것, 그리고 다른 글에 있던 것들을 꺼내서 하나의 원고로 만든 것이에요. 다소 어려울 수 있겠으나 짧은 원고이니 늘 마음에 새기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김태창 선생의 글은 물론이요, 이선민 선생이 쓴 『민족주의, 이제는 버려야 하나』(삼성경제연구소, 2008)와 한영우 선생의 「안재홍의 신민족주의와 사학」(『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1집』,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7.8)을 참조했어요.



2016 “청주는 인문·사상철학·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 |

“청주는 인문·사상철학·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 |

“청주는 인문·사상철학·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
야마모토 교시, 변영호씨의 기고
2016-07-13 동양일보

‘동아시아의 공통 가치를 찾아서’라는 주제 아래 특강, 대담, 좌담, 토론 등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양포럼은 이번 회에서 일본 지식인들의 글을 소개한다. 야마모토 교시 일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과 재일교포 2세인 변영호 츠루문과대학 문학부 비교문화학과 교수가 청주를 방문하고 느낀 소감을 보내왔다. <편집자>


▲ 야마모토 교시미래공창신문사 발행인

청주 원로들의 이야기 속엔 일제강점기 한이…
- 동서양과 동아시아의 접점 도시 청주 -
청주 시내에 있는 김태창 선생의 자택은 대로변에 가깝다. 자택을 나와서 인도에 서 있자 곧장 택시가 잡혔다. 택시 문을 열자마자 CD로부터 힘찬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김태창 선생이 “야~ 활기있네요!”라고 말문을 열자, 카마다 토지(鎌田東二) 교토대 교수가 “쿠와타 케이스케(桑田佳祐) 아닌가요? 그립네요!”라고 맞장구쳤다. 이에 택시기사가 고조된 한국말로 “제가 열렬한 팬입니다”라고 응수하였다. 차안에서 일본인 록가수를 화제로 활기찬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이승우 선생과 유성종 전 총장이 기다리고 있는 한정식집에 도착했다.
때는 2015년 12월 6일 저녁. 당시에 한·일정부 사이에는 종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막판 교섭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베신조’는 그 무렵 한국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일본인이었다. 역사인식을 후퇴시킨 수상으로 유명해진 것이다. 이렇게 한·일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는 시기에 일본인 가수의 노래를 불특정 손님에게 들려주는 한없는 밝음과 교정(交情). 이 인상은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인 청주의 현재와 밝은 미래로 이어지고 있다고 나에게는 생각되었다. 수도 서울이 한국의 정치적 중심지라고 한다면, 거기에서 약간 남쪽으로 내려온 청주는 동서양의 인문적·사상철학적·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청주에는 5개의 대학이 있다. 청주대학의 유학생은 중국에서 온 학생이 40%, 나머지는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라고 한다. 청주공항은 오카야마(岡山)공항과 연결되어 있고, 올해 안으로 칸사이(關西)국제공항으로 가는 직행편이 생길 계획이라고 들었다. 충청북도는 한국에서 유일한 내륙 도시로, 경기도를 비롯한 5개도와 인접하고 있다. 미네랄이 풍부한 천연수가 나오며 눈부시게 융성한 도시로 인기가 높다.
전날까지 경상북도 안동에서 열린 ‘이퇴계 한중일국제학술대회’를 마치고, 카마다 교수와 나는 청주의 김태창 선생 자택에 초대받았다. 청주에서는 김태창 선생의 선배이자 친우(親友)인 두 분의 원로로부터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다. 유창한 일본어로 귀중한 역사적 증언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미래공창신문’에서는 그 내용을 27호(2016년 2월 29일자)에서 일부 보도했고 다음호에서 상세한 내용을 소개했다.
두 원로는 식민지시대 말기에 초등학교와 청주시내의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한국바둑문화연구회 회장과 전 꽃동네대 총장이다. 두 분 다 80대의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정하다. 이승우 선생은 고급관료 출신으로 군수, 시장 등을 역임하였고, 정치적으로는 불편부당을 신조로 삼는 청렴결백의 선비이다. 지일파로 뉴스는 NHK를 듣고 일본 문화에도 아주 밝은 분이다. 일본과 중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바둑 기보를 비교하여 역사를 분석하고, 장계석이 왜 모택동에게 졌는지를 해설한 저서는 널리 읽혀지고 있다.
이승우 선생의 1년 후배인 유성종 전 총장은 한국교육평가원장 출신으로 문교행정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다. 여러 대학의 총장을 역임했는데 무엇보다도 우정과 신의가 두터운 철인(哲人)이다. 동양평화를 향한 염원은 남다르고, 타협 없는 언론과 행동에는 국사(國士)의 기풍이 있다. 2000년에는 세계인쇄출판박람회의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하였다.
기억력이 발군인 이승우 선생이 전쟁말기의 소년시대를 회상했다. 부친은 금융조합(현재 농업협동조합)의 간부였는데, 생활이 어려워서 가족들의 식사는 아침에는 죽을 먹고, 점심은 거른 뒤, 저녁에도 죽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친은 명문 청주중학교에 다니는 이승우 소년에게만큼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게 했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청주 제2중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같은 또래의 일본인이 이씨 집안의 어려운 형편을 알 까닭도 없었다.
일제 강점기의 한국에서는 모든 한국인을 송죽매(松竹梅)로 등급을 정하고 배급 등 여러 면에서 차등을 두었다. 송에 해당하는 이씨 가정보다도 등급이 더 낮았던 유성종 소년의 가족에게 배급된 것은 만주로부터 비료로 우송되어 온 시커멓게 썩은 두부찌꺼기였다. 쌀겨를 먹으면서 겨울을 지냈다. 보리가 익는 봄까지 먹을 것이 없어서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먹으며 목숨을 연명했다. 이 시기의 비참함을 ‘보릿고개’라고 한다. 조상의 제사를 중시하는 유씨 집안에서는 과혹한 공출로부터 제사용 쌀을 보호하기 위해서 변소 옆에 작은 단지를 파묻고 그 속에 숨겼다. 언어말살교육은 가혹함을 더했다. 한국말을 쓴 것이 알려지면 교사는 아이들의 손등을 매로 때렸다. “지금 생각해도 한기가 서립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유성종 소년이 시골집에 돌아오자, 처음보는 남자가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누구죠?”라고 묻자, “너의 매형이다.” “어떻게 된 거죠?”라고 묻자, “누나가 나이가 차서 시집을 보내지 않으면 정신대에 끌려간다. 그래서 이웃 마을의 청년과 물 한 그릇 떠놓고 결혼시켰다.” 당시에 한국인 중에서 종군위안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승우 선생은 말한다. 남자는 ‘노동동원’으로, 독신여성은 ‘정신대’로 징용되었다. 정신대는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이었는데, 가는 곳은 알 수 없었다.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의 작품 중에 ‘라파울전기’라는 체험담을 그린 문고본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위안부에 대해서 두 군데 나오는데, 가건물에 매춘부가 있는데 조선여성은 ‘센핑’, 오키나와 여성은 ‘나와핑’이라는 멸칭으로 각각 불렸다고 합니다.”
유성종 전 총장이 6학년이었을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임종시에 “일본은 패한다. 사람들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고서 오래갈 까닭이 없다.”는 말을 남기셨다고 한다.
김태창 선생이 두 사람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두 분과 동년배인 일본인은 한국인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던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요?
이승우 선생은 “진짜 몰랐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한국인과 일본인은 생활세계가 완전히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은 ‘사쿠라’라는 특권계급으로, 먹는 것은 풍부하였다. 하지만 한국인에 대해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든가 ‘(천황 앞에서는) 일시동인(一視同仁)’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자신들과 한국인을 기만하고 있었다. 한국에 사는 일본인은 한국인의 궁핍함을 몰랐고, 그 자손인 우리도 지금까지 알 기회가 거의 없었다.
전후(戰後)에 후지와라 테이는 전쟁 말기에 만주에서 어린애 3명을 데리고 1년이나 걸려서 일본에 돌아온다는 내용의 소설 ‘떨어지는 별은 살아 있다’를 썼다. 북한을 경유한 장대한 귀국기록으로, 식민지의 고충을 체험한 민중이 일본인에 대한 보복을 억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볶은 콩을 씹으면서 연명하는 일본인을 동정하고, 스쳐 지나가면서 먹을 것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아픔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법이다.
나는 만주국의 국무원(國務院) 총무장관을 지낸 키시 노부스케(岸伸介)가 귀향의 고통을 겪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한국과 일본의 서민이 맛본 전쟁의 비참함을 아베 수상은 할아버지로부터 얼마나 배웠을까? 만주에서 민중을 통치하는 입장에 있었던 키시씨에게 애당초 전쟁의 비참함에 허덕이는 서민과 동고(同苦)·공고(共苦)하는 체험이 있었을까? 의문이 남는 부분이다.
일본인은 일본군국주의가 한반도나 중국인들에게 끼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진실을 아직 잘 모른다. 전후 70년을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망언정치가가 잘난 체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동아시아의 한중일 삼국이 진정한 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민중 차원에서 서로 진실을 얘기하고, 먼저 민(民)과 민(民) 사이에서 해원상화(解寃和解)를 추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확신한다.

2015년 12월 7일. 우리는 청주시내에서 스포츠사회학자인 전 충북대학교 체육과 이종각 교수와 경제사회학자인 전 청주대학 장준호 부총장과 함께 점심을 했다. 당시 한국의 TV에서는 연일 불법노동운동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절 안으로 도망친 시민운동 리더의 체포강행 여부를 둘러싼 열띤 토론이 전개되고 있었다. 일본이라면 경찰이 불교사원으로 들어가서 즉각 체포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교회나 절이나 대학은 일종의 아질(성역)이 되어 있다.
“나라는 법에 의해 다스려진다. 법은 스포츠의 룰과 마찬가지인데, 한국은 선진국으로서 법을 지키는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고 이종각 교수는 열정적으로 말한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는 격차해소법안에 저항하는 정규노동자쪽 리더이다. 연수입이 7000만~1억원에 달하는 노동귀족이라는 사실도 시민들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반면에 장준호 전 부총장은 “체포는 조금 더 기다려야한다”는 신중론 쪽이다. 군정에서 민정으로 민중의 힘과 단결에 의해 민주주의를 획득한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위로부터의 ‘통치’와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자치’의 상반성은 민주주의의 근간과 관련된다. 지금의 한국은 일본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언론의 힘이 강하다. ‘노동조합’은 한국사회의 활력의 척도가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체제에 불리한 뉴스진행자가 연이어 퇴직을 강요 당하고 있고, 국립대학의 인문계 교원에 대한 예산상의 압박이 논란이 되고 있으며, 언론은 두드러지게 빈약해지고 있다. 기자는 한국의 뜨거운 언론풍경에서 희망을 보았다.
이날 밤에는 한민족철학연구의 권위자인 충북대학교 김용환 교수와 재회하여 시내에 있는 백화점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백화점은 널찍하고 활기찼다. 주위에는 주차장과 도로를 끼고 고층아파트가 즐비했고, 생활과 쇼핑이 효율적으로 일체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김 교수는 예수가 불교를 배웠다고 전해지는 인도의 헤미스사원 등을 답사하고, 그 체험을 1980년대에 책으로 정리해서 출판한 적이 있다. 예수가 13세 때에 ‘동방박사’를 방문하여 페르시아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 증거가 되는 문헌을 러시아 언론인 니콜라스 노토비치(Nicolas Notovitch)가 발견하여 바티칸궁전에 가지고 온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바티칸의 반응은 “기지(旣知)의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말한다. “예수는 더 나아가서 동쪽의 북인도로 향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병을 고치는 성인이 나타나서, 그 이름을 ‘이사’라고 하였습니다. 이사가 누구인지 문헌과 현지조사를 통해 조사해보면 예수를 가리킨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지간에 예수가 30이 될 때까지 17년간의 공백기간의 행적은 지금도 수수께끼이다. 그리스도교의 구세주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는지 아닌 지는 가톨릭의 교리와도 미묘하게 연결된다.
김 교수는 “예수는 처음부터 구세주로 하늘에서 내려왔다기 보다는, 김태창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성’이나 ‘우주생명’을 각성하고 그리스도로서의 사명을 자각하여 이스라엘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요?”라고 한다. 그리스도교의 십계와 불교의 십계의 공통점 등을 생각하면, 두 세계 종교 간의 대화는 흥미롭기 그지없다.

12월 8일. 아침식사를 마치고 김태창 선생이 “최한기의 활동운화(活動運化)를 실제로 관찰해 봐요”라며, 탁자 위에 유리로 된 커피포트를 준비했다. 포트에 물을 붓고 볶은 현미, 메밀가루, 말린 우엉, 볶은 콩가루, 아마란스를 넣고 스위치를 켜자, 처음에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재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임은 점차 빨라지고 서로 격렬하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정물(靜物)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양상이 돌변했다. 재료가 빙빙 돌면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운(運)’에 해당한다. 정반대로 회전하는 ‘전(轉)’이고, 정신(魂)의 기능으로 말하면 전개(全開)상태가 된 것이다. 한층 열을 가하자 용기 속은 혼돈스럽게 뒤섞이고, 모든 입자가 근원적 생명력을 한껏 들끓게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열탕은 옅은 황색으로 변했다. 각 소재가 속에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던 영양소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탕질(湯質)에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그것은 각 재료의 개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활동운(活動運)’에 이어서 새로운 영양엑기스가 탄생한(化)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활명연대(活命連帶)에 의한 개신(開新), 미래의 공동창발(共 創發=未來共創)은 바로 이것이라고 실제 관찰을 통해서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기자가 지금까지 야규 마코토(柳生眞) 박사의 논문을 읽고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최한기의 ‘활동운화’의 과정을 시각을 통해서 깨닫게 해준 것이다. 이날 밤에는 충북대학교 강형기 교수와 제자들의 회식자리에 동석하게 되었다. 충북대학으로 유학 와서 비영리민간단체가 지방정부 차원의 국제교류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는 네모토 마사츠구(根本眞嗣) 박사도 강 교수의 제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한국에는 226개의 마을에서 만드는 조합회가 있다. 그 고문단장인 강형기 교수는 지방자치의 일인자로, ‘향부론(鄕富論)’(1990년)의 저자이기도 하다. 김태창 선생이 충북대학교 행정대학원장을 겸임하고 있던 25년 전에, 그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사회인을 대상으로 행정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강교수는 말한다. “당시에 김태창 선생님은 구름 위에 있는 존재였습니다.”
1991년에 한국에서 최초로 정보공개조례를 도입한 도시는 청주다. 조례화를 추진한 것은 강형기 교수가 교실에서 가르친 제자이다. 그리고 2년 뒤에는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의 3분의 2 이상이 정보공개조례를 만들었다. 이것에 기초하여 1996년에는 정부가 정보공개법을 만들었는데, 이 법률은 정보공개의 대상을 행정기관뿐만 아니라 재판소, 국회, 특수법인, 지방자치단체에까지도 확대시키고 있다.
한편 일본은 1996년에 행정정보공개부회가 정보공개법안 요강안의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는데, 내용은 한국의 공개법보다도 뒤져 있을뿐만 아니라 아직 법안의 제출조차 되어 있지 않다. 주민투표법이나 외국인투표법의 제정 등 강 교수의 활동은 역동적이고 실적을 동반하고 있다.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강 교수의 친구인 피아니스트가 2개월 전에 오키나와의 쟈마미마을과 토카시키마을에 갔는데, 94세의 할머니가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누구한테 배우셨어요?”라고 묻자, “한국에서 끌려온 7명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대단히 아름다웠는데, 매일같이 멍하니 하늘을 보면서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위안부의 이름도 끌려온 경위도 전부 알고 있었습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고 한다. 진실이 사라지는 일은 없다.
12월 9일에는 이종각·장준호 두 분도 청주공항까지 배웅해 주셨고, 청주에 체재하는 김태창 선생과 잠시 이별을 하고, 카마다 교수와 나는 인천을 경유하여 일본으로 돌아왔다.


▲ 변영호츠루문과대학 비교문화학과 교수

변영호 邊英浩
츠루문과대학 문학부 비교문화학과 교수
나 자신에게 묻는 것, 한국 고유의 것은 무엇인가
- 한국철학 발신지 청주에 동양일보가 있음을 -
일본에서 교토포럼이 인연이 된 이래로 줄곧 알고 지내온 김태창 선생이 최근에 고향인 충청북도 청주로 돌아오셔서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래공창신문’의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사장으로부터 청주에서 열리는 1회 ‘동양포럼: 동양적 생명관의 재조명’(동양일보 주최. 2016년 5월 3일)에 참가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김태창 선생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기 때문에 나는 자세한 내용도 모른 채 무작정 청주를 방문하게 됐다.
나는 재일교포 2세로 한국유학사상을 연구하고 있고, 때때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으며, 2006년에는 서울대학교 객원연구원으로 1년간 지낸 적이 있지만, 사실 충청북도도, 청주도 첫 방문이었다. 청주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에는 서원(西原)이라는 지명으로 불렸으며, 율곡 이이가 지방수령으로 부임하여 ‘서원향약’을 실시한 장소라는 인식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와 보니 인구가 90만명이나 되는 지방의 중핵문화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도착 후에 김태창 선생, 전 세이카(精華)대학의 츠치다 다카시 교수,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사장님, 조성환 박사와 함께 동양일보사를 방문했다. 그러자 먼저 와계신 유성종 전 꽃동네대 총장이 마중 나와 주셨다. 유 총장과는 안동에서 뵌 적이 있는데, 이퇴계의 ‘경사상’을 몸소 실천하시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었다. 그런데 청주 출신인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후에 청주에 체재중인 우리를 배려해 주신 점에 대해서도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방 안에는 조철호 회장이 기다리고 계셨다. 조 회장님의 말씀으로부터 지적이고 성실한 인품과 시인으로서의 정열을 곧바로 느낄 수 있어서, 존경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나에게 있어 이 방문이 주최측에 대한 형식적인 경의 표현의 차원을 넘어설 수 있게 된 것은 의외의 기쁨이었다. 조 회장의 말씀은 흥미로웠다. 기나긴 기자생활 속에서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신문을 창업하겠다는 뜻을 품게 된 이야기, ‘동양일보’를 창업했을 때 도와주기로 한 친구들의 회사에 정부가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바람에 자신의 자금만으로 창업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꺼내셨다.
나아가서 청주가 대한민국의 중심에 위치하고, 삼국시대의 중심지이기도 한 점, 지역에 뿌리를 두면서 장차 동양시대가 오리라는 확신을 갖고 ‘동양일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IMF위기가 한창일 때에 부도난 이야기였다. 처음에 ‘동양일보’는 소규모의 자금으로 창업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모든 인쇄공정을 컴퓨터화하여 한국의 신문출판문화의 선구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노동조합도 없는 규모로 출발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대형 신문사가 노조의 반대로 사원들을 해고시키지 못해서 할 수 없었던 일을 역으로 실현시킨 것이다.
그러나 IMF때에는 이것이 역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당시에 한국에서는 컴퓨터 관련기계는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IMF때에 한국통화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에 동양일보의 비용이 급상승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부터가 조철호 회장의 매력이다. 동양일보 1면에 “부도를 냈지만 신문은 앞으로도 계속 낸다”는 광고를 냈고, 그것을 읽은 뜻있는 시민들이 기부를 해줘 최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조 회장의 인격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때 300명 이상의 사원이 있었는데 단 한 사람도 해고시키지 않고, 대신 사원들로부터 희망자를 받아서 자진 퇴사하게 하여 100명 남짓의 규모로 재편성했다는 것이다. 이 위기상황에서 해고자를 한 사람도 내지 않았다는 것은 보통의 신념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인품 때문에 ‘철학하는 사람이 산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김태창 선생과 곧바로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인문학이 축소·소멸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조 회장과 같은 분이 철학과 인문학을 지탱해 주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조 회장은 시인이기도 한데, 동양일보를 방문한 날 저녁에 트럼펫 연주자와 시인들을 초대하여 낭송회를 열고, 직접 지은 ‘청주의 여성들은’이라는 청주 여성의 높은 품격을 찬양하는 작품까지 들려 주셨다.
다음날에 있었던 1회 ‘동양포럼: 동양적 생명관의 재조명’은 일원적인 일본적 생명관, 이원적인 중국적 생명관, 그리고 삼원적인 한국적 생명관이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10월 1~3일에 대규모로 개최될 동양포럼의 준비모임과 같은 성격으로, 이후의 포럼의 출발점이 되었다.

나는 지금 일본에서 한국의 문화와 사상을 가르치고 있는데, 항상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한국철학이란 무엇인가? 한국 고유의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등이다. 그런데 한국학자들을 만나면 대개는 서양이나 중국에 관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을 알고 싶어서 한국에 왔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까지 서양이나 중국, 또는 일본에 대해 배울 생각은 없다”고 항상 불만이 쌓여있었다. 그런 때에 김태창 선생을 만났는데, 선생 역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더 나아가서 이 문제에 대해 뛰어난 답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조철호 회장도 같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김태창 선생과 의기투합해서 ‘동양일보’를 걸고 지원할 것을 약속해준 것이다.
나는 김태창 선생이 산수(傘壽)를 지나서 고향에서 커다란 지원자들과 지우(知遇)를 얻은 것이 대단히 기뻤고, 이것이 앞으로 형태를 갖추어 나갈 가능성을 느꼈다.
나도 여기에 대해서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고, 나아가서 청주가 장차 동양의 중심지로 문화교류와 한국철학의 발신지가 되기를 크게 기대하고 있다. 그 청주의 중심에 ‘동양일보’가 있음을 알게 해준 여행이었다.

2012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을 비교한다 |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을 비교한다 |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을 비교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연구' 국제 학술회의
2012-11-21     윤관동 기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1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대강당에서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연구’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김태창 일본 공공철학연구소장이 ‘한국적 공공의 개념화를 위한 시론’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이어 7명의 학자가 이이, 장현광, 정제두, 정조, 최한기, 안재홍, 니노미야 손토쿠 등 한국과 일본 지식인들의 ‘공공(公共)’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논문은 ‘선비와 사무라이를 통해 본 공공의식(김봉진, 일본 기타큐스대학)’, ‘민(民)의 참여를 둘러싼 공공의식의 비교적 특징(고희탁, 연세대)’, ‘민세 안재홍의 다사라이념과 공공함의 정치(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사중지공(私中之公)으로 본 정조의 국가경영(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14세기 말∼16세기 전반기 ‘公共’의 용례 검토(가타오카 류, 일본 도오쿠대학)’, ‘조선 선비들을 통해서 본 공공성의 개념과 쟁점들(정순우, 한국학중앙연구원)’, ‘최한기와 일본의 공공 사상가 비교연구(야규 마코토, 일본공공철학연구소)’ 등이다.

토론자는 이숙인(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김현철(동북아역사재단), 윤대식(충남대), 이동수(경희대 공공대학원), 박홍규(고려대), 김기봉(경기대), 안외순(한서대) 등이 나선다.

연구원 관계자는 “‘선비와 사무라이’라는 양국의 상징 존재가 언제 형성되었으며 어떻게 변천됐는지 왕과 사대부들이 독점하던 ‘공공 담론장’이 언제부터 민(民)이 주체가 되어 참여했는지 심층적으로 다룰 예정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