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5

김시천:노자의 눈으로 삶을 보다 강좌

김시천:노자의 눈으로 삶을 보다
https://artnstudy.com/n_lecture/?LessonIdx=scKim003

노자의 눈으로 삶을 보다
현대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고전 『노자』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노자』 라는 거울을 통해 현재의 삶을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우주적 사랑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이 강좌에서는 『노자』를 진리를 담고 있는 경전이나 체계적인 철학서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의 세계를 전혀 낯선 세계로 보게끔 도와주는 하나의 ‘거울’로 이용하면서, 우리들의 삶이 왜 이런 것인지, 다른 방식의 삶은 가능한지를 따져볼 것이다.


다른 방식의 삶은 가능한가?

일명 『도덕경』이라고도 불리는 『노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동아시아의 고전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전통 사회에서 가장 많은 주석과 연구가 이루어진 책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듣는 ‘무위’(無為), ‘자연’(自然), ‘도덕’(道德) 등의 말은 지금도 여전히 쓰이지만 본래의 의미와 현대인이 쓰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이 강좌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것처럼 생각되는 동아시아의 고전 『노자』를 우리의 삶의 세계를 전혀 낯선 세계로 보게 도와주는 하나의 '거울'로 이용하면서, 우리의 삶이 왜 이런 것인지, 다른 방식의 삶은 가능한지를 따져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이 강좌를 통해 우리 모두의 삶과 관련된 사랑과 에로스, 정치, 전쟁과 평화, 욕망과 만족, 영원과 불멸, 죽음 등 다양한 주제를 낯선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보고 또한 다른 방식의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출처: Huxisanxiaotu, via Wikimedia Commons)


우리는 어떤 사랑을 꿈꿀 수 있는가?


『노자』는 이 세계를 하나의 성적인 세계로 상상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우리가 태어나듯이 이 세계의 모든 것 또한 하늘과 땅이라는 부모로부터 비롯된다. 이 세계는 그런 의미에서 거대한 하나의 가족이다. 그럼에도 『노자』는 공자의 인(仁)과 같은 사랑의 세계를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 것일까? 우리는 『노자』가 들려주는 우주적 사랑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를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와 자연 철학자들의 에로스와 비교하여 생각해 볼 것이다.


행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동아시아 사상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금욕주의가 없다는 점이다. 유가와 도가는 이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전통 사상은 인간의 욕망과 욕구를 무한정 긍정하려는 현대 사회와 비슷한가? 그렇지 않다. 동아시아 전통은 욕망을 부정하지 않고 또 죄악시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욕망은 만족의 기술을 통해 최적화된다고 본다. 『노자』의 이런 생각은 오늘날 자본주의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지혜로운 처방처럼 보인다.


너와 내가 함께하는 쿨한 삶


우리는 오늘날 윤리적인 인간,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회에 살면서 이를 개인적 삶의 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인간적으로 훌륭한 인간보다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인간을 더 높이 생각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도덕적 사회를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비도덕적 인간을 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자』의 무관심의 윤리는 매우 현실적인 생각처럼 들린다. 무관심하지만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인간,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강좌에서는 『노자』라는 거울에 우리의 삶을 비춰가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따져볼 것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재와 언어를 강의를 진행하고 있어 누구나 『노자』를 이해할 수 있는 강좌가 될 것이다.


※ 해당 강좌는 2014년 5월 부천시립도서관 고전 강의를 촬영한 내용입니다.


제1강 우리에게 노자란 무엇인가?―『노자』라는 책과 ‘노자’중에서

제3강 『노자』의 행복한 도술(爲道)중에서

제4강 『노자』의 현대적 해석 - 에로스, 만족, 행복중에서
구플레이어고화질일반화질음성
  • 회 차
  • 제 목
  • 시 간
  • 보 기
  • 2교시 - 『노자』라는 책-2
  • 25분
  • 3교시 - 『노자』를 보는 역사 속의 다양한 시선-1
  • 22분
  • 4교시 - 『노자』를 보는 역사 속의 다양한 시선-2
  • 33분
  • 주요내용
  • 『노자』에 대한 물음
    하나이면서 여럿인 『노자』, '노자열전'
    노자의 성명, 자, 출생지 및 직위
    노자와 공자의 만남
    노자의 출관 설화와 『도덕경』 전수
    노자의 또 하나의 후보, 노래자
    노자의 장수와 그 이유
    노자의 또 다른 후보, 주의 태사 담
    노자 후손의 계보
    노자의 학문과 현황
    『노자』속의 인간들

김시천 (철학자, 상지대 교양학부 조교수)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논문 「노자의 양생론적 해석과 의리론적 해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의과학연구소에서 한의학의 철학적 기초에 대해 강의했으며, 상지대, 숭실대, 충북대, 호서대,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해 왔다. 도가철학과 한의철학, 과학사상과 진화론 및 동아시아 고전의 현대적 해석을 주요 주제로 삼아, 대중과 소통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숭실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로 있다. 
- 저서
『철학에서 이야기로-우리 시대의 노장 읽기』(책세상, 2021)
『동양철학산책』(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0)
『21세기 청소년 인문학, 1』(공저, 단비, 2017)
『논어 학자들의 수다:사람을 읽다』(더퀘스트, 2016)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책세상, 2013)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공저, 휴머니스트, 2010)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공저, 책세상, 2010)
『철학으로 과학하라』(웅진지식하우스, 2008)
『문화, 세상을 콜라주하다』(웅진지식하우스, 2008)
『전통 청바지』(공저, 웅진지식하우스, 2007)
『가치 청바지』(공저, 웅진지식하우스, 2007)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웅진지식하우스, 2006)
『기학의 모험 1』(공저, 들녘, 2004)
『철학에서 이야기로 - 우리 시대의 노장읽기』(책세상, 2004)
- 역서
『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마이클 샌델, 폴 담브로시오 지음, 공역, 와이즈베리, 2018)
『노자도덕경 주』(왕필 저, 전통문화연구회, 2017)
 
  • 번 호
  • 제 목
  • 작성자
우수실존을 넘어서는 실존앞에서...윤*선
시대를 읽고, 시대를 살아간다는 의미를 2500년전의 글을 통해서 통찰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효용성(기술)만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사람이 살아가고, 타자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수김시천 선생님 감사합니다.곽*선
노자의 가르침.. 뭐든지 힘들이고, 뭐든지 열정적인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억지로 하고, 가짜로 하는 것들 투성이 속에서 삶의 어려움을 느끼고 회의를 가졌던 저에게. 노자의 '억지로 하지 말라', 즉 '무위'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노자의 가르침을 '함이 없음'이라기 보다도, '억지로 함이 없음'이라 이해합니다. 하되, 억지로 하지 않는 것. 그 억지로라는 것의 의미를 앞으로 더욱 탐구하고, 삶의 실천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아직 과제로 남아있지만요.. 김시천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우수노자를 통해 배우다!한*정

동양철학을 재미없다고 하는 분들~
그 깊이와 재미에 도달하지 못 해서예요..
김시천 선생님의 노자 강의를 들어보세요!
탐구하고 실천하는 자세로 배우는 노자 !!!
장자가 궁금해집니다..

2022/05/14

철학'이라는 이름 피자가 '부침개'는 아니잖아요 by 오수민

'철학'이라는 이름

피자가 '부침개'는 아니잖아요
by오수민Apr 04. 2019

초등학교 때였나, 교과서에서 여러 나라의 문화가 소개되는 자리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예가 있었다. 바로 “피자는 이탈리아식 부침개”라는 비유. 나는 이 비유가 정말 너~무너무 싫었다. (어쩌면 “이탈리아식 빈대떡”이었을지도. 이건 더 싫어!!!) 둥그런 모양 빼고는 재료도, 만드는 방법도 닮은 점이라곤 전혀 없는 두 음식을 마치 서로 대체할 수 있는 음식인 것 마냥 엮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개념적으로 거부반응이 든 것이다.


Ⓒ홈퀴진 이윤정 님 (bit.ly/2JDtyDP)

그런데 철학에서도 피자를 “이탈리아식 부침개”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철학'이라는 이름 자체와 관련해서 말이다.

철학의 세부분야를 나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지역’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으로 나누는 것은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분류다.

고대 그리스에 전통을 둔, 논리학, 인식론, 윤리학 등으로 대표되는 학문을 ‘철학’이라고 부르는 건 별 문제가 없다. 피자를 '피자'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런데 공자에 뿌리를 둔 동양의 학문을 ‘동양 철학’이라고 부르는 건, 엄밀히 말해 딱 맞는 표현이 아니다. 마치 피자를 '부침개'라고 부르는 격이랄까. 대체 ‘철학’이라는 이름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이를 알기 위해선 몇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격물궁리지학 vs 필로소피아

동양의 학문이라 하면 모름지기 ‘유학儒學’이다. 이것이 송명시대에 ‘성리학性理學’으로 발전했는데 그 뼈대를 세우는 데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 주자, 즉 주희朱熹인 까닭에 ‘주자학朱子學’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주자학이 동양의 학계를 주름잡고 있던 시기, 서양에서 새로운 학문이 들어왔다. 서양의 선교사들이 전파한 서양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가 바로 그것이었다. 바다 건너온 신문물이라니, 일단 이름은 원어 그대로 ‘페이루쑤페이야費祿蘇非亞’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이렇게 소리만 따서 부르다 보니 이름만 들어서는 당최 뭘 하는 학문인지 한방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이미 동양에 있던 학문 중 필로소피아와 가장 비슷해 보이는 학문을 골라 그 이름을 쓰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격물궁리格物窮理'의 학, 즉 격물궁리지학이다.

격물궁리는 주희가 외부 세계를 탐구할 방법으로 내세운 이론으로, 그에 따르면 외부 사물의 원리인 ‘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나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리’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 만물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격물궁리학은 외부 세계가 아닌 마음에 집중하며, 마음속 ‘리’를 깨닫는 방법으로 경전을 공부할 것이 중요시된다.

격물궁리지학과 필로소피아 모두 궁극적으로는 이 세계를 알고자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외에는 오히려 서로 다른 점이 더 많다. 단적인 예로 서양의 필로소피아가 전통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 탐구해왔던 것과는 달리, 동양의 유학은 현세를 잘 사는 방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필로소피아는 '격물궁리지학'이라는 이름을 함께 쓰게 되었는데, 19세기에 들어서며 변화가 일어났다. 서양의 자연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필로소피아로부터 '사이언스science'가 따로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니시 아마네가 '철학哲學' 그리고 '과학科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필로소피아를 '철학'으로, 사이언스를 '과학'으로 번역할 것을 제안했다. (초기에는 '분명하게 밝힘을 바란다'는 뜻의 '희철학希哲學'이었으나 이후에 '희'자가 빠졌다) 이러한 신조어는 당시 동양에서도 객관적 지식을 탐구하는 자연과학의 인기가 높아지던 경향과, 일본이 동양에서 학문적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것과 맞물려 금세 널리 쓰이게 되었다.

니시 아마네

그리고 현재, 이 신조어들은 그것이 누군가가 번역어로서 발명해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존재감이 커졌다. 그리고 서양의 학문이 주류가 되면서 기존의 동양의 학문은 서양의 학문 체계로 편입되어 버렸다. 이제 격물궁리지학은 동양 ‘철학’에 속하게 되었다.

이렇게 동양의 학파가 ‘철학’으로 분류되고, 그 ‘철학’의 기준이 서양 철학으로 세팅되어 있는 상황에서 철학 공부를 하다 보면 오해를 하기 십상이다. 동양 철학이 학문적인 기준에 미달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에 “동양의 전통 학문이 서양의 학문보다 열등한 건가” 하는 고민으로 괴로워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오해는 두 학문이 애초에 대등하게 치환될 수 있는 학문이 아니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피자를 '부침개'라고 부르면서 한국의 부침개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건 의미가 없다. 왜 이 부침개는 반죽을 따로 빚냐고, 부추가 안 들어가지 않았냐고 따지며 피자를 열등한 부침개라고 평가한다면 우스운 일일 것이다. 서양 철학을 기준으로 동양 철학을 논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피자집에 가서 부침개를 찾을 수 없듯, 동양 철학으로부터 찾고자 하는 대답과 동양 철학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서양 철학을 대할 때와 달라야 한다. 부침개만이 줄 수 있는 맛이 있고, 피자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는 것처럼, 그래야 각각의 학문이 가진 맛과 매력을 보다 잘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지식을 쌓는다는 고사성어 격물궁리(格物窮理)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지식을 쌓는다는 고사성어 격물궁리(格物窮理)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지식을 쌓는다는 고사성어 격물궁리(格物窮理)

우리가 지식을 이루고 싶다면 모든 사물에 나아가서 그것의 이치를 강구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오늘 한 가지 내일 또 한 가지 궁구하여 힘을 다해 연마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탁 트일 것이라는 말이 격물궁리(格物窮理) 

옛날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난 학자가 있었다. 격물궁리(格物窮理)의 학문을 닦으려는 서양의 학자들은 모 는 어른으로 숭배하였다. 그런데 그는 사람의 참된 복(福)이 어디에 있는가를 논의하면서 먼저 그것이 세상의 지 않다고 결정하였다. 참된 복(福)은 반드시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것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부(富)를 참된 복(福 닭은 바로 재물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富)가 아름다운 복(福)이 되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 에 있지 않고 도리어 베풀어 사용함에 있다는 것이다 

양명학(陽明學)의 창시자이자 심학의 대성자로 꼽히는 명나라의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 1472-1528)이 과 서, 역, 춘추, 예기, 오경을 공부한다. 유학(儒學)의 경전이다. 격물궁리(格物窮理)를 깨우치기 위해 21살 젊은 明)은 대나무를 마주 보고 자리를 잡는다. 7일 동안을 꼼짝 않고 쳐다보며 궁리만 하다가 병들어 눕고 만다. 크게 실망한 그는 유학을 버리고 불교와 도교, 서학인 천주학까지 두루 연구에 몰두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그리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감인데 모든 종교가 무리하게 인연을 끊고, 정신의 위안을 실로 허망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다시 유학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목숨을 건 탐구에 들어간다. 

그렇게 깨우 (陽明學)의 핵심 논리로서 세 가지 종지이다. 
논리(論理)의 종지인 心卽理(심즉리), 
위학(爲學)의 종지인 致良
론학(論學)의 종지인 知行合一(지행합일)이다.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한 주희(朱熹 1130-1200)의 해석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격물궁리 다. 격물궁리(格物窮理)는 나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그 나름의 이치가 있다.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만물의 이치 의미이다.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지식을 쌓는 것을 말한다

스테판 말라르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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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말라르메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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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말라르메
Stéphane Mallarmé
Mallarmé Nadar.jpg
작가 정보
출생1842년 3월 18일
파리
사망1898년 9월 9일
퐁텐블로ValvinsVulaines-sur-Seine
직업시인역자작가문학 평론가미술 평론가high school teacher삽화가
언어프랑스어
국적프랑스
배우자Maria Christina Gerhard
자녀Anatole MallarméGeneviève Mallarmé-Bonniot
주요 작품
서명
Signature Stéphane Mallarmé.jpg
묘비
Le Jour ni l’Heure 6938 - tombes d’Olivier Larronde, 1927-1965, et de Stéphane Mallarmé, 1842-1898, au cimetière de Samoreau, Seine-&-Marne, jeudi 9 août 2012, 18-03-35 (7752143558) (2).jpg
묘소cemetery of Samoreau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 1842년 ~ 1898년)는 프랑스의 시인이다. 폴 베를렌아르튀르 랭보와 더불어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단을 주도했다. 시인의 인상과 시적 언어 고유의 상징에 주목한 상징주의의 창시자로 간주된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 출신으로 에드거 앨런 포의 《갈가마귀》를 불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당대 파리의 문인들을 비롯 인상주의 화가들과 활발히 교류했으며, 폴 발레리앙드레 지드폴 클로델 등 20세기 전반 프랑스 문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표 시집으로는 《목신의 오후 (L'après-midi d'un faune)》(1877), 《주사위 던지기 (Un coup de dès)》(1897) 등이 있다.

생애[편집]

말라르메은 대장성 관리의 아들로 파리에서 출생하였다. 13, 14세부터 시작(詩作)을 시도하여, 생전에 발표되지 않은 소년시절의 시는 50편을 넘으며 1857년에 포와 보들레르의 존재를 안 것이 그의 일생의 진로를 결정하였다. 특히 1861년 ⟪악의 꽃⟫의 탐닉으로 커다란 영향을 받았으며 그것을 극복하여 독자적인 시를 만드는 일이 당면의 목표가 되었다. 1871년 파리에 정주할 때까지 지방의 고등중학교 영어교사를 역임하는 동안에 포의 시관(詩觀)을 도약대로 삼아 보들레르의 영향을 이탈, 더 넘어서서 “세계가 바로 그것을 위해서 존재하는, 쓰여져야 할 유일무이의 순수 저작”이라는 장대한 ‘저작’의 미래상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간 제1차 ⟪현대 고답(高踏)시집⟫(1866)에 투고한 초기의 시로 시단(詩壇)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1864년에 시작한 장시 ⟪에로디아드⟫의 창작을 계기로 시인의 개인적 의도를 초월한 ‘시’ 바로 그것의 본연의 자세에 관한 전대미답(前代未踏)의 탐구를 수행하였다. 1871년 이후 말라르메 전기 시집의 정점을 이루는 ⟪에로디아드(舞臺)⟫(1871), ⟪반수신(半獸神)의 오후⟫를 발표하였다. ⟪큰 까마귀⟫를 비롯하여 포의 시를 계속 번역해내는 한편 ‘저작’의 구현이고 동시에 ‘시도’인 후기 소네트의 창작과 퇴고를 아울러 병행하여 이들을 1884년 이후 이어서 발표하여 작자가 평생에 두 번인 자작시편을 엄선하여 간행한 ⟪말라르메의 시⟫(릐뷔 안데팡당트 판 1887. 데망 판 1899)의 핵심이 되었다.

이보다 앞서 1877년경부터 많은 친구가 그의 저택을 방문하면서 ‘화요회(火曜會)’가 서서히 형성되었는데 1890년대에 들면서 발레리, 지드를 비롯하여 다음에 문학을 담당할 준재(俊才) 거의 모두가 말라르메에게 집결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85년 이후에는 다년간의 사색을 결정(結晶)한 문학론이 여러 잡지에 발표되어 이들 산문시와 함께 ⟪소요유(逍遙遊)⟫(1897)에 집대성되었다. 문예의 근본적 존재방식을 깊이 통찰한 이들 산문작품은 특히 현대 프랑스 문학의 선구자로서, 그것이 제기한 문제는 직접적으로 현대에 계승되고 있다. 또 만년의 산문시 ⟪주사위의 일척(一擲)⟫(잡지 발표, 1897)은 특수한 조판과 7종류의 활자를 사용하여 시화(詩化)된 내면의 파동을 그냥 그대로 시각적인 효과로서 지면에 정치(定置)시킨 공전의 시도였다. 그러나 이 산문시를 더욱 퇴고하여 정진할 무렵인 1898년 가을, 바르방의 별장에서 급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