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6

알라딘: 우승優勝 열패劣敗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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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優勝 열패劣敗의 신화 - 사회진화론과 한국 민족주의 담론의 역사
박노자 (지은이)한겨레출판200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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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양장본
512쪽
152*223mm (A5신)
922g
ISBN : 978898431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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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초상'을 드러내온 박노자 교수의 신작. 서구의 사회진화론이 한국 사회에 이식된 맥락을 역사적으로 살피며 한국 민족주의 담론의 형성과정과 그 기원을 탐색한다.

논의는 '경쟁'과 '생존'이 한국인의 전투적인 생활 양식의 키워드라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한다. 입시에서부터 입사, 결혼에 이르기까지 삶의 많은 부분에서 한국인은 유독 세계를 전장으로, 인생을 전투로 인식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이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강한 민족, 1류 국가로 대변되는 한국 민족주의, 국가주의 담론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책은 이같은 상황인식에 근거하여 한국 민족주의 담론의 뿌리로 사회진화론을 지목하고, 근대 형성기에 사회진화론이 도입되는 과정을 살피는 데 중점을 두었다. 1900년대 중국의 대표적인 논객 량치차오의 사상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주의, 서구 유럽의 사회 진화론이 중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 사회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더불어 유길준, 신채호, 이승만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부강한 나라', '근대화된 나라'를 꿈꾸었던 당대 지식인들의 내면을 살펴본다.

항일 시대에는 독립과 저항의 논리로, 박정희 정권을 비롯한 과거의 정권에서는 민족과 국가를 내세우며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논리로 동원되어온 민족주의 담론의 도입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스스로를 '민족주의자' 혹은 '반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영문도 모른채 경쟁의 장으로 내밀려야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2005년 현재 우리에게 민족주의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 박노자 교수의 전작 <당신들의 대한민국>, <나를 배반한 역사>, <하얀 가면의 제국>과 비교할때, 이번 책에서는 보다 학술적인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목차


1부 우리는 모두 노예다
생존경쟁의 기원|싸움의 일상화와 스포츠 애국주의|박정희, 이순신을 찬미하다|힘의 숭배와 사회진화론|동아시아를 흔든 사회진화론의 유혹|동아시아 지식계와 량치차오의 사상|량치차오의 노예론과 오리엔탈리즘|근대 충격과 아시아주의|서양의 위협과 동양의 대응-일본 아시아주의의 발원|흥아회의 조직과 활동

2부 생존을 위한 파괴
한국 지성인과 사회진화론의 첫 만남|생존을 위한 파괴-조선적인 것들을 부정하는 계몽의 논리|개화파의 유교적 지식인의 파국|독립신문의 외세관|서재필과 독립신문|독립신문에서의 러시아|독립신문에서의 일본|사회진화론적 민족주의의 황금기|1900년대 한국 사회의 개화 담론|새로운 교의, 쇄신된 민중:급진주의자들|신채호와 윤치호, 이승만의 경우|개신유학자들, 국가 민족주의 사상의 주류가 되다|힘을 지양한 자유|사회진화론에 대한 도전|자유.비폭력.국제주의와 한용운의 항일사상|평화와 공존을 위한 약자들의 투쟁|21세기 한국 사학의 방향 모색|탈정치화 탈이념화된 역사서술의 가능성


책속에서



즉, 사회진화론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이 큰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소개는 결국 유길준이나 윤치호 등 '힘 숭배의 선각자'에 의해 이루어졌다기보다 1900년대(특히 1904년 이후)에 주로 량치차오의 글과 가토 히로유키, 또는 그와 유사한 부류의 일본 논객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즉, 거시적인 안목으로 볼 때 개화기의 조선에 들어온 사회진화론은 역시 가토 등이 '국가화'.'집단화'하고 량치차오가 유교적인 수사로 장식한, '동아시아화'한 변종이라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1900년대 이전에 사회진화론의 원류를 수입한 친미개화파 세력이 그들의 세계관을 조선 지식인들에게 알릴 기회를 전혀 못 가진 것은 아니었다. '독립신문'에는 단편적인 논설의 형태로나마 '생존을 다투는 문명세계'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 본문 265쪽에서 접기
p.15 후대인들이 후기 자본주의 시대, 즉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의 한국인의 사회생활과 집단적인 심성을 서술한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쓰지 않을까 싶다.
˝전통 사회에서 유교적인 규범이 사회와 개인의 일상생활을 철저하게 통제한 것처럼, 근대 사회가 후기적 위기의 시기에 접어든 1990년대부터 `경쟁`과 `생존`은 한국인의 `전투적`생활양식의 키워드가 됐다. ˝
사실 이렇게 써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늘날 한국인의 생활은 요람에서 무덤꺼지 `힘 겨루기`로 일관된다. 접기 - 참교육의함성...


추천글

2005년 올해의 책
- KBS 'TV 책을 말하다'




저자 및 역자소개
박노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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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한국 고대사와 불교사 등을 연구했고 지금은 근대사, 특히 공산주의 운동사에 몰입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들의 대한민국』(1·2) 『우승열패의 신화』 『주식회사 대한민국』 등이 있다.


최근작 : <전환의 시대>,<한국지성과의 통일대담>,<러시아 혁명사 강의 (리커버 에디션)> … 총 87종 (모두보기)
인터뷰 : 이중의 타자, 박노자 교수와의 e-만남 - 2002.07.31
박노자(지은이)의 말
이 책의 목적은 '힘 숭배' 수용의 몇몇 초기 단계들-1883년 부터 1910년까지 미국에 다녀온 초기의 조선 지식인들이나 량치차오와 같은 한국 개신 유림의 '큰 스승', 그리고 개신 유림 계통의 주요 논객 등을 중심으로-을 짚어서 오늘날의 '승자 독식사회', '승자를 위한, 승자에 의한 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식민지시대의 사회진화론적 사고유형들도 자세히 고찰해 보고 싶지만, 이 책에서는 주로 개화기 시절의 사회진화론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왜 하필이면 한국적 토양에 오늘날처럼 잘 착근될 수 있었는지를 역사적으로 파악한다고 해서 신자유주의 퇴치라는 오늘날 민중 투쟁의 주된 목적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외의 신자유주의 퇴치투쟁과 민주적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은 장기간의 고된 싸움일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이 싸움에서 억압자들이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담론구조의 구체적인 역사적 내력을 잘 파악하는 것이 그 담론 해체, 즉 우리 모두의 정신적 해방의 단초라는 생각으로 나는 기존의 학술논문 몇 편을 보완하고 수정하여 이렇게 책으로 내기에 이르렀다.







역사는 승자를 기억한다. 하지만 그 승자가 있기 위해서는 어딘가에 있을 패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승지를 기억하는 것 만큼 패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참교육의함성... 2013-11-1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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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교과서적인 딱딱한 책이었지만 근대 조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행동하게 된 배경과 그것을 이어받은 쿠테타 세력의 행동 배경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감기군만쉐 2013-11-0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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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진화론.... 우리는 정글 속에 사는 것인가?




우리는 인간의 정글 속에 사는 것인가?




사회 진화론 속에서 우수한 민족이 열등한 민족을 지배하고 약탈해도 그것은 정의의 실현이라고 믿는 얼토당토한 논리를 우리는 과연 신봉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나 조차도 그 논리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며 살아온것 같다.

우리가 언제 부터 잘 살았다고, 우리가 언제 부터 다른 나라 보다 국민소득이 조금 많이 있었다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일까?




그런데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금 나는 나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사람에게 자꾸만 그들이 잘 못한 것이라는

그런 논리에 쉽게 동의 하려고 한다.




그래야만 내마음이 조금 편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인것 같다.




이런 말도 안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마음 아프다.




책의 내용이 어렵다 논문을 보는것 같은 잘모르는 단어들 그리고 생소한 개념...

오랜 시간동안 읽은 기억이다.




p.15 후대인들이 후기 자본주의 시대, 즉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의 한국인의 사회생활과 집단적인 심성을 서술한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쓰지 않을까 싶다.
˝전통 사회에서 유교적인 규범이 사회와 개인의 일상생활을 철저하게 통제한 것처럼, 근대 사회가 후기적 위기의 시기에 접어든 1990년대부터 `경쟁`과 `생존`은 한국인의 `전투적`생활양식의 키워드가 됐다. ˝
사실 이렇게 써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늘날 한국인의 생활은 요람에서 무덤꺼지 `힘 겨루기`로 일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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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의함성... 2016-01-3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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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좀 수준이 있는데


박노자의 이전책에 비해 조금 수준이 높은데 내용은 좋으나 대중적인 책은 아닌듯 싶구 단순한 지적 허영심이라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베가본드 2006-01-2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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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급하게 하는가?




우승열패의 신화

박노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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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그를 파란눈의 귀화 한국인으로 소개안해도 될만큼 명성을 가지게 된 오슬로의 한국학 교수이다.



지난 책들이 너무나 강렬해서 그의 신간이 나오길 기다려지는데 '순수토종' 한국인들보다 더 한국사와 동양사에 대해서 심도있는 연구를 진행중이며 날카로운 안목으로 과거와 오늘의 관계를 되짚으며 우리가 나아갈 미래를 그려보이는것이 전문이라고 해야할까?



이 책에서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빨리빨리' 성격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보는데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과거속에 그 이유가 있음을 밝혀낸다. 조선시대 후기 이전만해도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인의 모습은 사뭇 여유롭다 못해서 게을러 보일 정도였다는 점이 우리가 근 100년간의 사이에 이렇게 '급한' 민족성을 가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쉽게 생각해도 농경사회에서 '급하다'고 결실이 더 빨리 맺는 것도 아닐 것이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생활방식인 것을 감안해도 '급함'과 우리 민족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듯 하다. 그렇다고 현재의 '급한 성격'을 어디서 기인한다고 봐야할까? 단순히 식민사관의 하나로 '저급하고 성격 급한 민족'이라 배웠음이 영향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하다.



이에 대한 답을 저자는 조선후기 제국 열강들의 틈새에서 한민족이 살아남을 방법에 대한 대표적인 기득권 학자, 정치가들의 '우승열패'사상에서 찾아보았다.



일제가 불합리하며 불평등한 '한일합방'을 통해 강제로 침략하고, 청나라나 러시아 같은 주변 열강들의 시시탐탐 노리는 상황속에서 대한제국의 살길을 찾기란 그리 쉽지 만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은 단합하지 못하고 각자가 주장하는 사상에 따라 친미주의자, 친일주의자, 친러주의자, 친청주의자 등 열강의 힘을 배경으로 나뉘어지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한소리를 내는 것은 '힘의 원리에 있어서의 우승열패 주의'다.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배경이 되는 나라의 기술이나 발전사를 배워야 하며, 이를 통해 국력을 신장하고 위기와 혼란의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물론 이러한 지도부의 혼란속에 백성의 수탈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여러 파벌들은 삼일천하를 누리고 뺏기는 속에서 나라는 끝이 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역시나 작금의 정치나 100년전의 크게 다름이 없기에 가슴 한편이 답답하기만 하다.



갈피를 못잡는 나라를 살리는 길 찾기 중에 세계전쟁을 경험하고 결국엔 자주적이지 못한 타자에 의한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에도 사분오열되어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게 되는데.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해방의 기쁨은 이내 사라지고 나라가 반으로 갈라지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 역시 열강의 패권경쟁에 의한 분단이기도 하지만, 지도층의 무능력과 분열이 큰 원인으로 작용한 점이 이내 안타깝기만 하다.



19세기 초중반 나라의 살길이 '힘을 키우고, 세계는 적자생존의 정글이다'라는 인식론속에서 우리는 '급하지 않을 수 없는' 성격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밖에 없게 된 것이 아닌지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속성' 이 통하던 계발시대에서는 우리는 성장하였지만, 성장에 어울리는 진정한 '국력신장'은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닐까?

독도, 간도의 영유권, 고구려 역사 등 현안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우리는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며 '주권수호'가 가능할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속성의 끓어 오르는 냄비 근성으로서는 해결하기 불가하며 우리 고유의 민족성인 인내와 노력을 앞세워 당당한 대한민국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것으로 믿는다.



19세기 초반의 지식인들이 오류에 빠지는 큰 이유중의 하나가 근시안적이며 제국주의적 사고를 가졌었다는 것인데 이는 일본어나 중국어로 번역된 서양간행물들을 통해서 지식을 습득한 것이 큰 이유이다.

이같이 우리 청년의 생각이 편협되거나 왜곡돼지 않으려면 다양한 독서와 실질적인 외국어 능력의 향상을 통해서 여러 사상들을 자주 그리고 많이 접해야 하는 절대절명의 이유는 이런 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 접기
바다천사 2006-01-2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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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뉴스 - 한용운 쓴 공약삼장, 논란 재연? - 충남넷 미디어

지역신문뉴스 - 한용운 쓴 공약삼장, 논란 재연? - 충남넷 미디어



한용운 쓴 공약삼장, 논란 재연?

3·1독립선언서 공약삼장 ‘한용운-최남선’주장 논란 재연



2019.04.23(화) 20:30:53홍주신문(uytn24@hanmail.net)추천하기 0 공유하기





박찬승 등 일부학자 “최남선이 다듬었을 것으로 추정”주장 논란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독립선언서 공약삼장의 작성자(집필자)에 대한 논란이 또 다시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양대 사학과 박찬승 교수가 저서 ‘1919’ 출간기념회에서 “독립선언서 공약삼장을 쓴 사람이 만해 한용운이 아니라 최남선”이라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또 논란에 휩싸이는 분위기이다.



박 교수는 “공약삼장은 행동지침을 담은 부분이어서 본문에 비해 단호한 문체로 쓰여져 있다”고 밝히고 “하지만 민족대표 33인의 경찰·검찰·예심판사·법정심문기록을 훑어보니 한용운은 손을 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며 “천도교 쪽에서 내용을 주문하고 최남선이 문장을 다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50년 만에 또 다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 공약삼장, 한용운이 추가해 작성

반면 지금까지 “3·1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은 만해 한용운이 추가해 작성했다”는 주장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견해다.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은 선언서의 핵심이고, 3·1독립운동의 이념을 극명하게 대변하고 있다. 특히 3·1독립운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일제의 재판과정에서도 공약삼장의 표현과 의미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제기됐었고, 민족 대표들에게 내란죄를 적용해 중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공약삼장은 만해 한용운에 의해 작성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이는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최남선에 비해 민족의 자주독립에 더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던 인물이 만해 한용운이었을 뿐 아니라 각종 자료에도 ‘공약삼장’은 만해가 작성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만해 한용운의 제자였던 김법린은 그의 회고록(‘신천지’제1권 3호, 1946)에서 ‘독립선언서’의 작성 배경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면서 “최남선이 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했고, 이를 만해가 수정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일생을 학자로 마칠 생각이라 독립운동의 표면에는 나서지 못하겠다”는 최남선의 독립선언서 초안을 본 만해 한용운은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공약삼장’을 추가해 ‘독립선언서’를 수정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독립선언서’는 최남선이 썼을지라도 ‘공약삼장’은 만해 한용운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는 이후 1969년 민족대표 33인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이갑성 등이 “만해가 ‘공약삼장’을 추서(追書)했다”는 증언을 했고, 이것이 다시 효당 최범술 등이 중심이 된 만해 전공학자들에 의해 ‘한국독립운동사’에 수록되면서 학계에서는 “만해가 ‘공약삼장’을 썼다”는 사실이 통설로 굳혀졌다.



■ 일부학자 한용운-최남선 갑론을박

하지만 1969년 3월 문인 조용만이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공약삼장’은 만해가 쓴 것이 아니라 독립선언서를 쓴 육당 최남선의 작품”이라고 처음으로 주장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또 신용하 서울대 교수도 “△최 린의 자서전에 의하면 만해가 육당의 기초에 불만을 품고 자신이 기초하겠다고 이의를 제기했으나 최 린이 거절한 점 △최 린은 만해에게 ‘독립선언서’의 초고를 맡기지 않았고 ‘독립선언서’를 수정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며 △만해는 스스로가 자신이 추가했다는 사실을 주장한 바가 없다”는 이유를 들며 “공약삼장은 최남선이 작성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와 관련해 김상현 교수는 “△만해가 선언서 인쇄 이전에 초고를 보았으며 수정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점 △만해가 일본인 판사에게 독립선언서의 내용 중 자신의 의견과 다른 점이 있어 개정한 사실이 있다고 답변한 점 △이갑성, 김관호, 최범술 등이 만해가 ‘공약삼장’을 추가했다고 증언한 점”을 이유로 들며 신용하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나아가 육당 최남선의 변절, 공약삼장에 스며 있는 불교의 삼보정신과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에 스며 있는 내용이 불교의 세세생생의 사상이라는 점까지 제시했다.



한편 신국주 교수도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공약삼장의 과격한 문구를 육당이 사용할 수 없으며 △육당이 독립선언서에서 ‘최후에 착수가 곧 성공’이라며 다소 온건적 태도를 고수했던 점 △한용운도 공약삼장에 대해 추궁 받은 점 △한용운이 선언서를 수정할 시간이 있었다는 점 △한용운이 선언서를 개정까지 했다는 점”등을 들며 김상현 교수의 주장에 동조했다.

이에 반해 홍일식 교수는 ‘3·1독립선언서 연구(1989)’라는 논문에서 “증언 등과 같은 간접적 자료로 만해가 ‘공약삼장’을 썼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당시의 상황논리로 볼 때 ‘공약삼장’을 포함한 독립선언서 전부를 최남선이 썼다”고 주장했으며, 박걸순 박사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기도 했다.



■ 독립선언서도 한용운이 윤문

하지만 만해 한용운을 연구한 동국대 김광식 박사는 “한용운의 3·1운동은 지금껏 그의 민족운동 연구 분야의 중심을 이루었다”며 “그중에서도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을 한용운이 작성해 추가했다는 것, 그리고 독립선언서도 한용운이 윤문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라며 “이렇듯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에 대한 논란과 연구가 가열된 것은 육당 최남선의 친일 행적과 그에 반해 만해 한용운의 항일 행적이 극명하게 대비됐음에서 연유한다. 육당과 같은 나약하고 친일적인 인사가 공약삼장을 쓸 수 없었으리라는 감성적인 판단이 작용했는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용운이 공약삼장을 쓰고 추가했다는 다양한 회고와 증언이 나왔던 것”이라고 밝히고 공약삼장의 집필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란과 검증은 당연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사학자인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기미독립선언서 ‘공약삼장’ 집필자에 대한 고찰(불교평론 8호, 2001)’에서 “자유·비폭력을 골자로 하는 ‘공약삼장’은 불교의 해탈, 불살생, 보편·도덕주의 정신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따라서 이 같은 ‘공약삼장’의 필자는 만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박 교수는 “기미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公約三章)을 만해(1879∼1944) 한용운이 아닌 최남선이 집필했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크게 잘못된 것으로 공약삼장에는 만해의 번민과 수양, 득도와 사색 등이 그대로 녹아있다”고 주장했다.



박노자 교수는 2004년 ‘기미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의 집필자에 관하여’란 논문을 통해 “공약삼장은 매우 간단·명료하지만 독립선언서의 ‘눈동자’일뿐 아니라 만해의 사상과 인격, 구도와 신념의 축약판”이라며 공약삼장의 자유·비폭력·국제주의 이념과 만해 사상을 비교 검토한 결과 “불교의 해탈, 불살생, 박애, 보편, 도덕주의 정신을 끝까지 지켜 온 만해가 자유, 비폭력, 세계주의를 골자로 하는 공약삼장의 필자였다고 보는 편이 가장 타당하고 자연스럽다”고 말했다.박 교수에 따르면 당시 지식인들이 그러했듯 만해도 양계초(1873∼1929)로부터 자유의 개념과 사회진화론 등 영향을 받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불교사상의 ‘해탈’을 통해서 수양적·정신 발전적·비폭력적 방향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최남선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의 대대적인 살육이 갓 끝난 1918년의 글에서조차 ‘강한 것은 도덕적이며, 약한 것은 패륜적’이라는 사회진화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즉 “자유적 정신과 그 정신의 발휘를 늘 강조하는 만해의 사상과 사회진화론자이자 국가·민족중심주의자였던 최남선의 사상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약삼장에 나타나는 비폭력 정신은 평소 폭력·살생을 거부하는 불교의 기본 정신에 확고한 기반을 두면서도 일제의 살인적·불법적 행위를 부정하고 거부했던 만해의 사상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탈과 자유를 지향하고 종교적 비폭력주의에 투철했던 만해 한용운이 공약삼장의 폭력방지 사항을 집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불교적 구도 정신에 입각한 한용운이 눈앞에 현실적인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끝까지 타협을 거부할 힘을 충분히 가졌음에 비해, 물질적 강권(强勸)에 매료된 최남선이 결국 강자 일본과 타협하고 말았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현재까지 학계에서는 조용만, 신용하, 홍일식, 박걸순, 박찬승 등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김상현, 신국주, 김광식, 박노자 등이 주장하는 ‘공약삼장은 만해 한용운이 썼다’는 의견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일반화 보편화돼 있다. 이는 자주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의 표현을 담고 있는 ‘공약삼장’을 자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에조차 서명하기를 꺼려했던 육당 최남선이 썼을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공약삼장은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는 구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집필자 문제와 관련해 만해 한용운 집필설이 학계의 대다수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1960년 후반부터 몇몇 학자들에 의해 최남선 집필설이 제기돼 왔다. 이번 논란도 박찬승 교수가 저서 ‘1919’출간기념회에서 “독립선언서 공약삼장을 쓴 사람이 만해 한용운이 아니라 최남선”이라고 주장하면서 재연되고 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홍성지역 향토사학자는 물론 만해 한용운 관련 단체에서도 박 교수의 주장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만해 한용운 선사기념사업회 이소용 회장은 “신문보도를 봤는데 분명하게 정리된 명백한 사실에 대해 왜곡된 주장을 펴는 의도가 무엇인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만해 한용운 선사를 모독하는 일”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3·1독립선언서 公約三章(공약삼장)은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此擧(차거)는 正義(정의), 人道(인도), 生存(생존), 尊榮(존영)을 爲(위)하는 民族的 (민족적) 要求(요구)이니, 오즉 自由的(자유적) 精神(정신)을 發揮(발휘)할 것이오, 決(결)코 排他的(배타적) 感情(감정)으로 逸走(일주)하지 말라. △最後(최후)의 一人(일인)까지, 最後(최후)의 一刻(일각)까지 民族(민족)의 正當(정당)한 意思(의사)를 快(쾌)히 發表(발표)하라. △一切(일체)의 行動(행동)은 가장 秩序(질서)를 尊重(존중)하야, 吾人(오인)의 主張(주장)과 態度(태도)로 하야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광명정대)하게 하라. -朝鮮建國 4252년 3월 1일”로 기록하고 있다.



올해로 3·1독립운동 100돌을 맞았다.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을 누가 썼는지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진정한 3·1독립운동 정신을 후세에 계승한다는 점에서 후대 역사학자들의 올바른 평가가 절실히 요구되는 대목이다.

[서울신문] “만해의 참여불교 사상 진수 해외 전파”

[서울신문] “만해의 참여불교 사상 진수 해외 전파”






“만해의 참여불교 사상 진수 해외 전파”


입력 : ㅣ 수정 : 1970-01-02 00:00

‘조선불교유신론’ 영문판 출간 박노자교수 이메일 인터뷰만해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이 최근 영역됐다.
만해 한용운 선집:사회진화론적 불교유신론부터 불교사회주의까지
(SELECTED WRITINGS OF HAN YONGUN:From Social Darwinism to Socialism with a Buddhist Face)란 제목으로 

영국 ‘글로벌 오리엔탈’ 출판사가 펴냈다. 시가 아닌 만해의 불교사상이 해외로 번역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박노자 교수
역자 이름이 무엇보다 눈길을 끈다.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러시아에서 귀화한 박노자(36·한국학)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학 교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2004년 한국학번역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오웬 밀러(런던대 동양 및 아프리카 연구학교 박사과정)와 함께 번역했다. 박 교수는 중심 텍스트인 조선불교유신론’ 외에 만해 불교관의 요체가 담긴 ‘내가 믿는 불교’‘석가의 정신’‘선과 인생’ 등과 만해가 스스로 자신의 생애를 회상한 ‘시베리아 거쳐 서울로’도 함께 영어로 옮겼다.

박 교수는 불자다. 그의 불심은 폭력에 대한 강한 거부에서 비롯된다. 어린 시절 군사화된 소련 사회의 폭력이 무서워, 그는 ‘법구경’과 ‘숫타니파타’를 읽으며 평화를 갈구했다. 한국사회의 소수자 차별과 도처에 뿌리내린 불평등 권력구조를 ‘토종 한국인’보다 예민하게 감지해내는 것도 불교사상에 뿌리를 둔 그의 폭력혐오와 무관치 않다. 남에 대한 보살핌에 취약하고 수행과 참선이란 이름으로 대중과 유리된 한국 불교를 그는 ‘하화중생(下化衆生·아래로 중생을 구제함)없는 선(禪)’이라고 비판해 왔다. 박 교수의 불교 비판은 “조선시대식 ‘산간불교’는 부처와 예수의 본마음이었던 구세주의보다 염세주의에 가깝다.”고 갈파한 한용운의 불교개혁론에 맞닿아 있다. 노르웨이에 머물고 있는 박 교수를 이메일로 만났다.

●“만해는 민족주의를 넘어선 진보주의자”





▶만해 한용운을 언제, 어떤 계기로 접하게 됐나.

-러시아에서 대학을 다닐 때 만해의 시 ‘님의 침묵’을 읽었다. 만해는 열반 혹은 공(空), 불성(佛性)을 인격화해 ‘님’으로 표현하고, 그 ‘님’에 대한 사랑 속에 인간적인 감정과 종교적인 열성을 섞었다. 특히 ‘당신을 봤습니다’ 같은 시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미 영역된 ‘님의 침묵’과 달리 아직 손이 닿지 않은 만해의 저서를 내가 꼭 번역하고 싶었다.

▶‘불교유신론’을 주요 번역 텍스트로 택한 이유는.

-‘불교유신론’에서 제시된 불교 혁신과제들이 아직 충분히 해결되지 못했기에 시의성이 강한 텍스트라고 생각했다. 예컨대 승려들의 결혼이 본원적인 의미의 계율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만해의 지적은 아직도 주류 불교계에선 꺼내기조차 힘들다. 기복신앙 극복, 비불교적 의례 폐지 또는 간소화 등도 불교계의 여전한 난제다. 지금 세상이 탈근대를 이야기하지만, 한국 불교계는 석가모니와 각종 부처, 보살들을 ‘신’이 아닌 자력을 통해 자기 해방의 길을 제시한 ‘사람’으로 객관화하는 근대적 종교관도 수립하지 못했다.

▶그간 ‘박노자식 한용운론´은 서구 근대적 민족주의를 뛰어넘은 종교적 진보주의자로 만해를 주목해 왔다. 이번 영역판 서문에도 동일한 문제의식이 반영돼 있다.

-한마디로 만해는 특정 시대에 속해 당 대의 경향을 따르면서도 모든 시대를 초월한 자유와 보편성의 정신을 소유한 보기 힘든 사상가였다.1913년에 나온 ‘조선불교유신론’만 해도 당시 유행했던 사회진화론적 사고를 수용하면서도, 약육강식의 야만적 문명이 언젠가 한계점에 도달해 불교적 자비와 상부상조에 입각한 신문명이 도래하길 염원하고 있다. 만해는 식민지 상황에서 불가피했던 민족운동에 깊이 참여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사유제도와 착취, 불평등한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 극복을 지향하는 ‘석가정신’, 즉 불교 사회주의 정신을 견지하고 있었다. 비타협적 민족주의 진영에 있으면서도 민족주의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불교에 대한 몰이해도 풀릴 것”

▶만해의 문제의식을 빌려 한국 불교와 사회현실을 진단한다면.

-우리 사회의 일반적 신앙 행태는 일종의 ‘신과의 거래’다. 불전 혹은 십일조, 헌금 등을 많이 낼수록 서방정토에서의 왕생과 천당행이 쉬워진다고 믿는다. 심지어 모 그룹 오너는 수십억원대의 헌금을 내면서도 비정규직들의 처우는 최악으로 하지 않는가. 비정규직들을 아무리 학대해도 돈으로 영생을 살 수 있다는 사고다. 만해는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천당의 문지기에게 뇌물을 주려는 행태를 비판했다. 진정한 종교인의 태도는 윤리적인 행실과 자기 해방의 쉼 없는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만해 사상이 절실한 이유다.

▶만해의 어떤 면모가 서구 독자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외국에서는 한국 불교가 대개 참선이나 화두참구(話頭參究)를 한다고만 알고 있다. 만해의 참여불교 사상은 잘 모른다. 오리엔탈리즘에 길들여진 서구는 불교를 자칫 이국적 이념과 의식으로만 소비하기 쉽다. 만해는 겉모양이 아닌 내용의 불교, 사회참여를 필요로 하는 알맹이 불교를 가르친다. 만해가 외국에 제대로 알려져야 한국 불교에 대한 몰이해도 풀릴 것이다.

▶번역에서 역점을 둔 부분이라면.

-학술성을 담보하면서도 가능한 한 쉬운 영어를 지향했다. 전문 학자뿐 아니라 학부생과 일반인들까지도 참고할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란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2008-02-28 22면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0228022001#csidx23f38f2fdf5c519b8ea854c14460e4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