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7

알라딘: 예수 왜곡의 역사

알라딘: 예수 왜곡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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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esus, Interrupted (Hardcover) Hardcover







    책소개
    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로 성경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경종을 울린 저자가 이번에는 교회가 가르치지 않는 성경의 모순을 파헤친다. 역사 비평적 방법을 통해 복음서를 수평적으로 비교하여 읽다보면,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탐독했던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던 모순과 불일치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성경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역사적 예수를 만나는 데 공헌한다.

    성경의 실제 저자는 누구일까.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성경을 썼을까. 그 시대에 성경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당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은 그들이 성경을 작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저자는 방대한 초기 기독교 문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성경이나 현대인의 머릿속에 박제된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인 예수의 실체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목차


    프롤로그 열린 마음으로 성경의 실체에 다가가기

    1장 | 성경을 읽는 또다른 방법
    신앙적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 | 역사비평론이 밝힌 성경의 모순 | 신학교에서 배우고, 교회에서 잊히다 | 신의 책인가, 인간의 책인가

    2장 | 성경 속 모순 고찰하기
    예수는 언제 숨을 거두었을까 | 예수의 탄생을 둘러싼 수수께끼들 | 복음서마다 다른 예수의 행적 | 예수의 수난과 부활 사건의 미묘한 차이 | 바울의 서신서와 어긋나는 바울의 행적 | 성경 속 모순의 의미

    3장 | 다른 관점, 다른 믿음, 다른 메시지
    예수의 죽음에 대한 다른 해석 |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차이들 | 바울과 복음서 저자의 충돌 |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여러 차이들

    4장 | 누가 성경을 기록했을까
    복음서는 누가 썼을까 | 신약성경 속 위작의 존재 | 위작 생산은 작은 산업이었다

    5장 | 역사적 예수를 찾아서
    예수에 관한 초기 자료들 | 예수는 종말론적 예언자였다 | 부활과 기적이 정말 있었을까

    6장 | 성경은 어떻게 완성됐을까
    하나도 남지 않은 신약성경의 원전 | 배제된 종파, 살아남은 종파 | 정전에서 빠진 외전들 | 정경의 결정 과정 | 초대교회의 정통과 이단 | 이단 판정에 사용된 무기들 | 인간적인 과정으로 탄생한 성경

    7장 | 기독교인이 만들어낸 것들
    고통받는 메시아 | 기독교의 반유대적 성향 | 예수의 신성 | 삼위일체 교리 | 천국과 지옥 | 서구 문명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품

    에필로그 믿음은 가능한가
    옮긴이의 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접기


    책속에서



    프린스턴은 오히려 성경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놓았다. 물론 내가 자진해서 생각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나는 끊임없이 저항하고 발버둥 쳤다. 내 믿음을 지켜달라고 기도했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진실로 헌신한다면 진리에도 완전히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이 점점 명백해졌다. 성경에도 오류가 있다는 해석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믿던 대로 진리가 나를 인도할 것이란 믿음을 고수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실은 진실일 뿐이었고, 진실이 아닌 것은 진실이 아닐 뿐이었다.
    _프롤로그 “열린 마음으로 성경의 실체에 다가가기” 중에서 접기
    역사비평적 접근법은 성경의 저자들이 우리 시대가 아닌 그들의 시대와 공간에서 살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전제는 지금과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비평적 방법론은 저자들이 어떤 의도에서 그런 글을 썼는가를 찾아내려 애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마다 고유한 글쓰기 방식이 있었으리라 가정한다. 신약성서에서 마태복음의 저자는 누가와 똑같이 말하지 않는다. 마가복음도 요한복음과 다르다. 모든 책이 다르고, 모든 책에 메시지가 담겨 있으며, 모든 메시지가 귀담아 들을 만하다.
    _ 1장 “성경을 읽는 또다른 방법” 중에서 접기
    성경은 이해관계를 초월해 객관적으로 쓰인 역사책이 아니다. 성경에 포함된 어떤 책도 그렇지 않다. 여러분이 법정의 재판관인데 목격자들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어떤 목격자의 증언도 100퍼센트 사실이라고 가정하지 않는 지점에서 판단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 또는 모두가 뭔가를 잘못 알고 있는 게 확실하다. 따라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신약성서와 같은 고대 문헌도 마찬가지다. 증언과 역사적 사실이 충돌한다면, 모든 목격자가 옳을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의 말이 가장 사실에 가까운지 찾아낼 방법을 알아야 한다.
    _ 2장 “성경 속 모순 고찰하기” 중에서 접기
    예수가 두 복음서에서 말하고 행하며 경험한 모든 것을 짜 맞추어 하나의 포괄적인 이야기로 만들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담긴 메시지가 완전히 사라진다. 예수는 누가복음의 예수처럼 확신에 찬 모습이므로 마가복음의 예수처럼 깊은 고뇌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또 마가복음의 예수처럼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때문에 누가복음의 예수처럼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절망에 찬 절규를 내뱉는 동시에 하나님을 믿고 온몸을 맡긴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에, 예수가 마지막에 남긴 말마저 완전히 다른 뜻을 갖게 된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까지 이런 식으로 짜깁기하면 예수가 괴상망측하게 합성된 인물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이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의 이야기에 접근하면 결국 저자의 양심을 빼앗는 짓이고, 저자가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던 의미까지 빼앗게 된다.
    _ 3장 “다른 관점, 다른 믿음, 다른 메시지” 중에서 접기
    네 복음서는 익명으로 쓰였고, 저자들 중 누구도 자신이 목격자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마태복음’처럼 복음서 제목에 이름이 붙어 있긴 하지만, 사실 그 제목들은 나중에 붙여진 것이다. 즉 복음을 다른 식으로 해석한 권위자가 누구인지 독자에게 알리기 위해 편집자가 덧붙인 제목이다. 복음서가 처음 쓰였을 때 현재의 제목이 아니었다는 점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분명해진다. 마태복음을 쓴 저자는 자신의 책에 ‘마태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Mattew’이란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마태복음’이란 제목을 붙인 사람들이 그 복음을 마태가 썼을 거라고 생각한 것뿐이다. 저자들은 복음서 제목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_ 4장 “누가 성경을 기록했을까”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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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글

    바트 어만이 내놓은 또 하나의 충격작 《예수 왜곡의 역사》는 예수와 성경에 얽힌 거짓과 진실을 낱낱이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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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의 진실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있는 《예수 왜곡의 역사》는 동조와 비판 사이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보스턴 글로브




    저자 및 역자소개
    바트 어만 (Bart D. Ehrman)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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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인 성서학자 중 하나로 그리스도교의 역사·문헌·전통에 대한 뛰어난 해설가다. 어만의 저작은 옹호자들과 비판자들 사이에서 계속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 『예수 왜곡의 역사』,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를 비롯해 3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CNN, NBC 및 역사채널(History Channel) 같은 텔레비전과 미 공영라디오(NPR) 프로그램에 출연해 복잡한 성서의 세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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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주헌 (옮긴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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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고,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뛰어난 영어와 불어 번역으로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키스 해링 저널》, 《문명의 붕괴》,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슬럼독 밀리어네어》,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등 100여 권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강주헌의 영어번역 테크닉》 등이 있다.


    최근작 : <그 깊은 떨림>,<편집자로 산다는 것>,<스펀지 영단어 Sponge Words> … 총 426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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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작 : <다시 브랜딩을 생각하다>,<오늘부터 뉴욕으로 퇴근합니다>,<포스트 코로나 일상의 미래>등 총 307종
    대표분야 : 경제학/경제일반 3위 (브랜드 지수 294,988점), 리더십 4위 (브랜드 지수 81,057점), 트렌드/미래예측 5위 (브랜드 지수 97,70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가 과연 진짜 예수일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널리 읽히며 가장 존경받는 책, 성경. 대다수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성경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영감이 배어 있으므로 성경에는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말로 성경에는 그 어떠한 오류도 없을까?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일까? 예수가 스스로 삼위일체를 말하고 저 하늘 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설교했을까?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 연구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바트 어만의 최신 화제작 《예수 왜곡의 역사》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로 성경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경종을 울린 저자는, 성경에 대한 근본주의적 해석이 지배적인 현실에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주장을 내놓았다. 바로 기독교의 전통 교리와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상 성경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연극으로 등장하는 예수의 생애가 네 복음서의 교묘한 짜깁기에 불과하며, 신약성경 27권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에 의해 작성된 것은 8권뿐이라고 주장한다.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의 제자나 그들의 동역자로 알려진 마태와 마가, 누가 등이 아니다. 또한 고통받는 메시아나 예수의 신성, 삼위일체, 천국과 지옥 같은 기독교의 전통 교리는 모두 예수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대 기독교인의 발명품일 뿐이다. 심지어 저자는 그 당시 예수와 제자들이 가르친 종교와 지금의 기독교가 전혀 다른 종교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훗날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제멋대로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경의 모순에 가려진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찾아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거부하고 성경이 쓰인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집중적으로 추적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성경의 실제 저자는 누구일까?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성경을 썼을까? 그 시대에 성경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당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은 그들이 성경을 작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당시의 맥락에서 의도했던 내용이 지금 해석되는 내용과 다를 가능성은 없을까?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원래의 메시지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네 복음서를 수평적으로 비교하여 읽어보면,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탐독했던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모순과 불일치를 깨닫게 된다. 놀랍게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가계도는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도 모순이 발견된다. 마태복음의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신할 때 누가복음의 예수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두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가 죽은 일시에 대해서조차 각각 다르게 말한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유월절 아침 9시에 죽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그 하루 전날에 죽은 것으로 나오는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초기 기독교 문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이런 각각의 사례에 대해 부인할 수 없는 도발적 증거를 제시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단 문헌의 대조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체는 독자들이 성경에 담긴 인간의 해석과 실수를 추적해 나가는 데 매력적인 나침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인간의 실수가 빚어낸 신의 책 다시 읽기
    도대체 왜 성경 저자들은 예수에 대해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을까? 성경 저자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예수의 추종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이 중요한 쟁점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써냈다. 일례로 요한복음이 나머지 세 복음과 달리 예수를 인간에서 신으로 격상시킨 것은 예수 사후에 발달된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바울 공동체처럼 일찍부터 예수가 신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인 공동체도 있지만, 마태나 마가 공동체처럼 받아들이지 않은 공동체도 있었다.
    이처럼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성경을 읽으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띈다. 이를 통해 모순과 차이, 잘못된 주장, 불가능한 선언, 해로운 이데올로기까지 모두 찾아낼 수 있다. 성경에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성경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간에 전 인류가 반드시 읽고 연구해야 마땅한 책이다. 성경을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우리가 왜 여기 있고 무엇을 해야 하며 이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성찰할 수 있고, 성경이나 현대인의 머릿속에 박제된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인 예수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성경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역사적 예수를 만나는 데 공헌한다. 성경의 모순에 진지한 물음표를 던짐으로써, 우리는 한층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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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는 책, 시대정신, 예수는 신화다, 그림자정부, 화퍠전쟁,추락하는 한국교회
    램브란트 2010-09-16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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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한국 교회는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교회에서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 책을 통해서 성서관에 대해서 스스로 다시 한번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읽고 스스로 소화해야 할 책이다.
    S.C 고레스 2014-06-11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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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비평적 방법을 통해 맹목적으로 믿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거북이 2013-06-2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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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를 왜곡하는 바트 어만




    오늘자 한겨레 p.9에 이 책 광고가 실렸고, 나는 오늘 이 책을 구입했다. 책 앞면에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다."라고 써 있다. 이 책도 이런 류의 다른 책들(헬무트 퀘스터, 버튼 맥, 존 도미닉 크로산)과 마찬가지로 복음서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평범한 안티 기독교 책이다.

    이 책 뒷면에 보면 "성경의 모순을 파헤친 화제작!"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그렇다면 저자는 고대에 기록된 모든 역사적 자료도 전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주장해야 한다. 정확성과 같은 '현대'의 역사기술학(객관적인 역사기술)의 관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서 복음서에 모순이 있다는 주장은 현대적 편견일 뿐이고 저자의 안티 기독교 성향에 의한 것이다. 과거의 역사기술학은 현대의 역사기술학과 다르다. 복음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 '전기'의 양식(bios)을 엄밀하게 따르고 있다.

    그리고 모든 역사는 훗날의 해석이다. 바트 어만도 마찬가지다. 바트 어만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일 뿐이다. 또한 역사적 설명에 신앙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편견에 불과하다. 신앙이 제공하는 예수상이 예수의 역사적 실재의 진정한 인식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현재 예수를 왜곡한 책들을 비판하는 책을 쓰고 있다. 최근 발행된 도올 김용옥의 [도마복음한글역주]도 포함된다(나는 도올의 글이 중앙선데이에 연재될 때 신문 홈페이지에 이미 도올 주장의 학문적 오류를 지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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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athema 2010-05-21 공감(13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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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널이 읽히면서 가장 잘못 읽히고 있는 성경에 대한 고찰




    저자는 그리스어 신약 성경에대한 학문적 열정을 가지고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한 신학도이다. 나아가 저자가 인생을 거의 성경의 영향아래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단순히 반 기독교도라거나 무신론자의 입장이 아닌 그 어느 기독교인 보다 더 성경을 많이 읽었고 연구했다는 점 말이다. 한마디로 저자는 철저한 기독교도이며 동시에 그리스어 성경 전문가이다.

    그런 저자가 성경의 문제점, 아니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성경을 교리로 살아가면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기독교의 리더들과 성경의 말씀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성경의 독자들에 대한 깨달음을 주고자 의도한 글이다. 저자는 성경을 연구한 고증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는 점도 기억해두어야 할 일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성서무오설이라는 믿음과는 달리 성경의 이곳 저곳에서 좌충 우돌하는 내용들이 발견되고 있음을 일목 요연하게 제시하고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나아가 성경을 어떻게 읽는 것이 성경을 올바로 읽는 방식인지도 잘 알려준다. 흔히 수직적인 독서보다는 수평적인 성경 읽기를 권하고 있다. 저자의 이 주장은 당장에 성경의 문제점들을 독자들이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명료하게 전달해준다. 수평적인 성경 읽기란 서로 다른 책에 쓰여 있으면서 같은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부분들을 상호 비교하여 읽어보라는 권유이다. 즉, 한 복음서의 어느 부분을 읽고 다른 복음서에서 같은 이야기를 찾아 읽고 대조해보는 것이다. 이런 면밀한 비교하여 읽기는 성경이라고는 하지만 서로 전혀 이질적인 내용을 감지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기독교도이든 기독교도가 아니든 누구나 쉽게 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렇게 수평적인 독서를 하게되면 성경의 모순을 아주 쉽게 찾아내는데 성공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성경의 권위를 떨어트리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성경도 인간이 쓴 책이며 얼마든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데이타 축적 방식이 당시에는 전무했고 성경을 쓴 저자는 다른 성경의 저자를 몰랐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게다가 신약은 예수가 죽은 후 몇십년 뒤에 씌여지기 시작했고, 저자들마저도 불분명한 책이 더 많은 실정이다. 구전되고 구전되다가 어느 누군가가 기록물로 남긴 것이 신약성경의 성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설사 오류좀 있기로서니 그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성경의 진정한 모습을 왜곡하는 일이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맹목적인 셩경의 경외심은 이해의 경외심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무지의 경외심에서 깨어나는 순간의 그 위험함을 상상해보시라...

    성경은 무오하며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경의 귀한 말씀을 생활의 규범으로 삼아 고통받는 사람을 돕고, 이웃을 도우며 스스로 신에게 떳떳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신자이든 아니든간에 과연 나는 예수님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가 이 책의 핵심이이라고 느껴진다. 이 책을 읽었다고, 성경이 그동안 알고지내던 그런 성경이 아니었다며 실망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의 진짜 모습을 보았다고 믿음이 흔들릴 이유는 전혀 없다. 이 책의 목적도 그런 것이 전혀 아니다. 저자는 유신론자이면서 이 책을 연구하여 섰고, 전혀 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는 성경에 죽고 성경에 사는 그런 신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셩경의 좋은 말씀을 따르며 살이가는 방식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전에 죽고 경전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좋은 말씀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르며 생활해 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참된 삶이란 성경이 무오하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 써있는 귀중한 말씀을 존중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살아가는 것이 더더욱 중요한 핵심이라 믿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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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트랑 2011-03-25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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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는 왜, 어떻게 신이 되었을까?


    '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 로버트 퍼시그 ' ... 내가 일찌감찌 모셔두고도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펼치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말이다. 사람들은 숨겨진 진실과 마주쳐야 할 때 가장 망설이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무언가 숨겨진 것이 있을 것만 같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두가지다. 그게 무얼까? 궁금해하며 다가보는 부류가 있는가하면 아니야, 그렇지 않을거야 그럴리가 없어 라며 애써 모른 척하는 부류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바트 어만은 전자에 속한다. 그러나 그가 외치는 것은 정말 명쾌하다. 기독교를 버렸다고는 하지만 그는 철저한 기독교인이다. 다른 어떤 이의 믿음보다도 더 강한 믿음을 가진 존재일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개인적인 나만의 판단으로 볼 때 그의 그런 선택은 옳았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했어야만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정한 종교의 모습을 찾아나가는 그의 믿음에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의 전작 <성경 왜곡의 역사>를 먼저 읽었다. 궁금했기에 망설임없이 다가갔고 그의 작품으로 인해 막혀있던 궁금증도 어느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이다. 나는 무신론자다. 이렇다하게 내세울만한 나만의 종교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형식과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너무나도 편파적인 상징성만 강조하는 현대 종교의 모습에서 환멸을 느낄때도 종종 있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그 상징적인 틀에 자신을 맞추어가는 모습이 어설프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하나님은 성경을 쓰지 않았다. 성경은 여러 사람이 쓴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성경은 하나의 시각에서 쓰이지 않았다. (370쪽)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알고 싶었기에 나름대로는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는 나로써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모든 것은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그 시대의 상황에 맞게.. 그리고 그 시대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편리하도록..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성경은 신화일까? 아니라면 그냥 문학작품으로써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일까?

    신앙적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역사적인 증거를 들이대는 그의 반론은 듣기에 거북하지 않았다. 뭔가 불완전하다면 차라리 그런쪽으로라도 접근해가는 방식이 더욱 신선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말하고 있는 모든 모순들을 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신학교에서 모두 배운다는 사실이었다. 그랬던 사람들이 목회자의 길을 걷는 교회에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조차도 묻고 있었다. 왜 그래야만 하는건지를.. 무조건적인 반론이 아니다. 그가 하는 말들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가 성경 속에서 찾아내는 모순들이 그렇다. 감히 묻고 싶어진다. 진실한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여, 과연 당신도 그처럼 성경을 꼼꼼하게 읽어본 적이 있느냐고.. 무조건적인 믿음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수가 언제 죽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그런 부분에 대해 한번이라도 의심을 품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복음서마다 다른 예수의 행적에 관한 부분은 다시한번 읽게 되기도 한다. 설마하는 마음에서.. 예수는 정말 부활했을까? 사실 과학적인 논리를 들이대자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성경속에 내재되어있는 모순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스물일곱권으로 되어있는 신약성서중에서 단 여덟권만이 정확한 저자를 알 수 있다는 말은 사실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이미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라는 전제를 달고 시작한 것이기에.. 그가 찾아낸 복음서의 차이점들조차 왠지 당연한 이치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복음서들은 누가 썼을까? 책을 읽으면서 하나씩 벗겨지는 진실들이 내 눈앞에 펼쳐질 때마다 놀라움보다는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보다는 그래,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고 있는 모든 말들이 신앙적인 접근이 아니라 역사비평적인 접근 방식인 까닭이다. 시대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다른 마음을 가지고 바라다보게 되니 당연히 다른 메세지를 전달할 수 밖에 없었을거라는 말이다. 그러니 성경의 위작생산은 작은 산업이었고 그것이 수익을 내지 못했을 경우에는 당연히 사라졌을거라는 말에도 백배공감할 수 밖에...

    책을 읽으면서 예수가 종말론적인 예언자였다고 강론하는 부분에서 나는 잠시 멈추어야 했다. 그리고 그가 들이대는 모든 정황들을 거부할 수 없었다. 성경이 완성되어지는 과정들... 초대교회의 정통성과 이단이 생겨나게 되는 배경들... 그렇게하여 살아남게 되는 종파와 배제된 종파들이 각자 처하게 되는 상황들... 그들이 제시했던 모든 근거들은 다분히 주관적이었다는 거였고, 중요한 것은 신약성서의 원전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거였다. 그리하여 지극히 인간적인 정서에 맞춰지는 과정으로 탄생하게 되는 성경!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이 자행했던 유대인 대학살이 그런 차원에서 생겨난 일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분개할 일이다. 그들의 신이 그토록이나 선함을 주장했다면서, 그들의 신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다면서 그들은 그렇게 무서운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속에서 언급되어진 말이기도 하지만 출애굽의 과정속에서 나타났던 모든 일들 또한 말할 수 없이 잔인했었다.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오로지 나만! 을 외쳐대는 지독한 이기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랴 싶다. 왠만한 종교는 다른 종교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를 제외하고!

    마지막장에서 그는 기독교인이 만들어낸 것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훗날 예수를 따른 사람들을 지배한 믿음과 관점이 예수의 종교 자체와 사뭇 달랐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는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여러 해석과 교리, 관점과 기준 등이 경쟁했고, 갈등과 다툼을 겪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탄생한 것이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역사적·문화적인 의미를 지닌 인간의 발명품이었다. 아마도 서구 문명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358쪽) 이토록이나 명쾌한 답을 보여주면서 에필로그를 통해 그가 다시한번 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가능한가? 그의 말을 빌어보자면 가능하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좀 더 강하고 깊은 믿음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교회를 떠났을 뿐이지 자신의 믿음을 버린 것이 아니었다. 상징적인 것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일 뿐이었다. 믿음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기독교를 통해 세례를 서너번은 받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래도 내노라하는 교회에서 성찬식이라는 것도 몇 번씩 겪어보았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의 말처럼 구원을 받았을까? 하지만 너무나도 형식적인 그런 행위들이 내게는 아무런 의미조차 전해주지 못했다. 나를 인도했던 사람의 마음속에 기쁨을 선사할 수 있었다는 것만이 유일한 나의 위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교회의 정식구성원으로 자리매김했는가? 보다시피 그렇게 되지 못했다! 보여지는 것, 보여질 수 있는 것에만 치중하는 것이 문제는 아닐까? 종교를 통해 위안을 받을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 자신의 종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종교일 뿐이지 타인의 종교와 연관성을 갖지는 못한다. 형식적이고 보다 자극적인 상징성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진정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우선은 아닐까? 기독교가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 그런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잘못되었다고도 할 수 없다. 단지 무언가를 강요하기보다는 책임질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진실한 기독교도로써 바트 어만은 왜 이런 책을 써야만 했을까? 내심 궁금증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 궁금증을 접었다. 바트 어만과 같은 사람들을 좀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보면서. 1인시위를 했던 고등학생이 있었다. 그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당시 학교를 상대로 했던 소송에서 그는 이겼다. 실로 값진 승리였다. 미션스쿨이라 할지라도 기도나 예배를 모든 학생들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안건이었다. 그 학생에게 나는 진심으로 박수를 쳐 주었다. 하나님 자체에 대한 의문은 없다. 다만 성경에 언급된 하나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뿐이다. 바트 어만의 말처럼 이미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박제되어진 예수가 아니라 진실로 살아있는 예수를 보게 될 날이 오기는 올까? 예수가 어떻게해서 신이 되었는가를 찾아가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반감보다는 이해가 한발 앞섰던 시간이기도 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한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일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믿음이 더 돈독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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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비 2010-06-20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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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의 장단점


     학자들은 성경을 보다 더 깊고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외적으로는 고고학, 역사학, 문학 등 여러 방법으로 성경의 증명과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내적으로는 비평학적 접근에 따라 문학비평, 본문비평, 양식비평, 역사비평, 자료비평, 편집비평 등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성경을 들여다보고,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방법들은 취지는 좋지만 여러 문제점을 낳았다. 이 방법들로 인해 성경 텍스트의 맥락이 해체 되어 본래의 메시지를 잃게 되었다. 특히 성경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그것에 의문이 제기 되기도 한다.



     '예수 왜곡의 역사'



     이 책은 한국에 소개된 바트 어만의 두 번째 책이다. 바트 어만은 성서비평학자로 이 책에서 역사적 관점으로 성경에 접근한다. 예수에 대한 비평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성경에 대한 이 접근법은 이제 국내의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해석이 아닌 복음 중심의 설교만 들어온 평신도들은 매우 낯설고, 충격적인 접근법으로 느껴질 것이다. - 바트는 이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책에서 바트는 예수에 대한 해석 과정에서 실수가 빚어졌다고 주장한다. 성서비평을 통해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먼저 성경 속에 나타난 예수와 관련된 모순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네 복음서와 신약 사이에 나타나는 충돌을 증거 한다. 이어 예수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보고, 성경의 완성 과정 등을 추적한다. 이상의 과정을 통해 - 저자 자신의 입장에서 - 그동안 역사적 예수가 어떻게 왜곡 되었는지 밝히고, 예수에게 입혀진 옷을 하나하나 걷어낸다.

     성서비평을 처음 접해본 믿는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동안의 자신의 믿음에 대해 회의에 빠지고,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거나 경우에 따라 믿음을 버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믿지 않는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던 이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다. 따라서 믿는 독자들, 특히 신학적 지식과 고민이 전무한 독자에게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하지 않는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말이다. 어설픈 지식으로 혼란에 빠져 믿음을 버릴 것이라면 말이다. 물론 그러한 결과에 자신도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대신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쉽게 동조하지 않고, 객관적 사고를 견지 할 수 있는 믿음의 독자라면 지식과 믿음의 확장을 위해 한 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한국 교회의 교육 상황을 생각 했을 때 그럴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바트는 말한다. 이 책의 목적은 성경을 공격하거나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저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그러나 이러한 소신에도 불구하고 성서비평을 가르치고, 전하는 그의 저의가 의심이 된다. 그가 말하는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에필로그의 그의 저의가 드러나 있다. - 특히 그가 불가지론자라는 사실로 인해 의심은 가중된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자신은 근본주의자였다고. 그러나 이제는 불가지론자라고 말이다. 하지만 성서비평을 공부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성경을 연구하여 불가지론가 된 것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단지 그것을 공부한 이후에 별도로 하나님에 대한 물음과 회의로 자신의 믿음을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솔직한 말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성서비평에 대한 옹호와 그것을 가르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아무튼 객관적 신학 지식과 - '객관적'이라는 말의 분명하지 않은 한계 설정에 문제가 있지만 - 견고한 믿음이 - '견고한'이라고 하면 상당히 보수적이고,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 있다면 이 책을 읽어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이 책을 통해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믿음의 더 넓고, 큰 확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을 다각도로 연구하기 위한 여러 방법과 그 성과는 존중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의 단점은 분명히 지적 되어야 한다. 다양한 연구 방법을 통해 예수와 제자들의 생존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적 배경 등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성경 이해의 바탕을 튼튼히 쌓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논리적, 이성적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비평학으로 인한 믿음의 손실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러한 연구 방법으로 하나님의 본래 메시지를 잃게 되고, 믿음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점은 우려 할 만 한 일이다.

     성서비평, 특히 역사비평은 성경에 담긴 역사적 사건과 나아가 성경의 순수성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이다. 성경의 실재성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변별한다는 점에서는 그 시도를 높이 평가 할 만 하다. 그러나 그것을 변별 할 자료가 부족하거나 없을 경우 그 실재성을 입증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더욱이 이성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성적이지 못한 성경적 내용과 증거는 거짓으로 평가한다는 점에 맹점이 있다.

     바트는 역사학자의 역할을 "어떤 사건이 과거에 일어났을 확률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 속 대부분의 사건들은 역사에 비추어 봤을 때 일어날 확률이 적거나 혹은 제로이다. 따라서 그 사건들은 모두 부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신앙, 곧 믿음은 이성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믿음은 객관적 자료와 일어날 확률로 입증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으로 믿음을 입증 할 수 있다면 믿음의 순수성은 사라진다. 그때에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이해'에 불과하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과 같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그렇다고 성서비평이 반대되고, 증단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성경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계속 시도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믿음을 변별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단지 믿음의 보조적 도구로써 사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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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쩐디닥 2010-06-21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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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트 어만 <예수 왜곡의 역사> 비평 (1)












    어린시절 교회를 다닐 때, 이런 책들은 절대로 읽지 말라는 어른들과 형누나들의 무언의 압박속에 있었다는 기억이 난다. 그러나 결국 나의 그 무한한 의문들과 질문들과 호기심은 교회밖으로 뛰쳐나가게 했고 온갖 세상 모든 학문들을 접하고 완전히 내 몸에 스며들게 하였다. 그렇게 오랜세월 철저한 무신론자로, 유물론자로, 구조주의자 포스트모던의 괴물이라고 스스로 자처하고 살다가, 그들조차 아무런 해답을 가지지 않은 공허한 외침이라는 것을 깨달고 결국 다시 기독교에 귀의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후 신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고 나선, 정말로 이렇게 성경이나 예수 비판 혹은 역사적 예수를 언급하며 온갖 별의별 자신만의 상(象)을 만들어내는 이런 현대 기독교 비판 책들의 주제들은, 이미 오래전 심지어 몇백년전에 이미 온갖 치열한 신학적 논쟁으로서 이미 끝난 문제였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신학은 너무나 방대하여 일반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에 이런 책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또한 대중을 오도하게도 혹은 선동하게도 하는 것도 물론이다)



    나 같아도 내가 무신론자라면 이러한 '예수는 없었다', '예수는 똥을 쌌다', '사실 예수는 신화다', '예수는 마리아와 결혼했다', '예수는 짜집기이다' 등등과 같은 주제로 수 많은 책을 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완전한 증명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말 같다 붙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것들이 세간에 자극적이고 충격을 주기에 책도 이슈화시키기 그만큼 쉬우며 대중이 나의 책을 소비하게 하는 것도 매우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케팅의 일환으로서) 사실 이 책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인 나조차도) 이런 책들이 더욱더 많이 발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기독교가 진리가 아니라면 믿을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독교신앙과 신학은 공부하면 할 수록 그 깊이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요즘 나는 신이 진실로 '너네들이 이 성경이라는 신의 계시가 진리인지 아닌지 따져 볼 만큼 따져보라!'라고 던져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정녕 성경이 진리라면 어떠한 철학과 사상적 매스에도 꿋꿋히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살아남았기에 현재도 믿는 것이다. 이슬람은 그것이 두려워 철저히 코란을 번역도 금지하고 감시하고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이런 책이 이슈가 되는 걸 한편으로 굉장히 즐거워한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예수는 신화다', 오교수의 '예수는 없다' 혹은 러셀의 모든 책들, 그리고 고전으로는 해석학의 슐라이어마허와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같은 위대한 책들을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기독교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모든 사상과 철학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니체인 것이다) 차라리 기독교가 믿기 어려울정도로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아예 무신론으로 돌아서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신의 뜻에도 별로 합당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쩡쩡하게 믿는 사람들이 왜 믿어야 하는 지도 모른채 현재 교회를 망쳐놓고 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또한 반대로 이번엔 무신론을 맹목적으로 믿고 싶어하는 모든 불신자들에게도 제발 (그들 스스로도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책이 나오면 마치 자신이 비판하는 기독교인처럼 맹목적으로 아무 필터링도 없이 믿어버린다.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즉, 자신들도 똑같이 자기가 믿고 싶어하는 것을 믿으려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가능한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오로지 진리를 추구하는 진실성에 입각하여 뭐든지 바라보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



    그렇다면 앞으로 이 책의 주요 논점을 천천히 살펴보며 비평적 관점에서 포스팅할 예정이다.



    오늘은 피곤해서 이만~ㅋ


    http://blog.naver.com/917ph/220207372041
    - 접기책소개
    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로 성경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경종을 울린 저자가 이번에는 교회가 가르치지 않는 성경의 모순을 파헤친다. 역사 비평적 방법을 통해 복음서를 수평적으로 비교하여 읽다보면,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탐독했던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던 모순과 불일치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성경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역사적 예수를 만나는 데 공헌한다.

    성경의 실제 저자는 누구일까.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성경을 썼을까. 그 시대에 성경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당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은 그들이 성경을 작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저자는 방대한 초기 기독교 문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성경이나 현대인의 머릿속에 박제된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인 예수의 실체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목차

    프롤로그 열린 마음으로 성경의 실체에 다가가기

    1장 | 성경을 읽는 또다른 방법
    신앙적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 | 역사비평론이 밝힌 성경의 모순 | 신학교에서 배우고, 교회에서 잊히다 | 신의 책인가, 인간의 책인가

    2장 | 성경 속 모순 고찰하기
    예수는 언제 숨을 거두었을까 | 예수의 탄생을 둘러싼 수수께끼들 | 복음서마다 다른 예수의 행적 | 예수의 수난과 부활 사건의 미묘한 차이 | 바울의 서신서와 어긋나는 바울의 행적 | 성경 속 모순의 의미

    3장 | 다른 관점, 다른 믿음, 다른 메시지
    예수의 죽음에 대한 다른 해석 |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차이들 | 바울과 복음서 저자의 충돌 |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여러 차이들

    4장 | 누가 성경을 기록했을까
    복음서는 누가 썼을까 | 신약성경 속 위작의 존재 | 위작 생산은 작은 산업이었다

    5장 | 역사적 예수를 찾아서
    예수에 관한 초기 자료들 | 예수는 종말론적 예언자였다 | 부활과 기적이 정말 있었을까

    6장 | 성경은 어떻게 완성됐을까
    하나도 남지 않은 신약성경의 원전 | 배제된 종파, 살아남은 종파 | 정전에서 빠진 외전들 | 정경의 결정 과정 | 초대교회의 정통과 이단 | 이단 판정에 사용된 무기들 | 인간적인 과정으로 탄생한 성경

    7장 | 기독교인이 만들어낸 것들
    고통받는 메시아 | 기독교의 반유대적 성향 | 예수의 신성 | 삼위일체 교리 | 천국과 지옥 | 서구 문명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품

    에필로그 믿음은 가능한가
    옮긴이의 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책속에서
    • 프린스턴은 오히려 성경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놓았다. 물론 내가 자진해서 생각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나는 끊임없이 저항하고 발버둥 쳤다. 내 믿음을 지켜달라고 기도했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진실로 헌신한다면 진리에도 완전히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이 점점 명백해졌다. 성경에도 오류가 있다는 해석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믿던 대로 진리가 나를 인도할 것이란 믿음을 고수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실은 진실일 뿐이었고, 진실이 아닌 것은 진실이 아닐 뿐이었다.
      _프롤로그 “열린 마음으로 성경의 실체에 다가가기” 중에서  접기
    • 역사비평적 접근법은 성경의 저자들이 우리 시대가 아닌 그들의 시대와 공간에서 살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전제는 지금과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비평적 방법론은 저자들이 어떤 의도에서 그런 글을 썼는가를 찾아내려 애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마다 고유한 글쓰기 방식이 있었으리라 가정한다. 신약성서에서 마태복음의 저자는 누가와 똑같이 말하지 않는다. 마가복음도 요한복음과 다르다. 모든 책이 다르고, 모든 책에 메시지가 담겨 있으며, 모든 메시지가 귀담아 들을 만하다.
      _ 1장 “성경을 읽는 또다른 방법” 중에서  접기
    • 성경은 이해관계를 초월해 객관적으로 쓰인 역사책이 아니다. 성경에 포함된 어떤 책도 그렇지 않다. 여러분이 법정의 재판관인데 목격자들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어떤 목격자의 증언도 100퍼센트 사실이라고 가정하지 않는 지점에서 판단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 또는 모두가 뭔가를 잘못 알고 있는 게 확실하다. 따라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신약성서와 같은 고대 문헌도 마찬가지다. 증언과 역사적 사실이 충돌한다면, 모든 목격자가 옳을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의 말이 가장 사실에 가까운지 찾아낼 방법을 알아야 한다.
      _ 2장 “성경 속 모순 고찰하기” 중에서  접기
    • 예수가 두 복음서에서 말하고 행하며 경험한 모든 것을 짜 맞추어 하나의 포괄적인 이야기로 만들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담긴 메시지가 완전히 사라진다. 예수는 누가복음의 예수처럼 확신에 찬 모습이므로 마가복음의 예수처럼 깊은 고뇌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또 마가복음의 예수처럼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때문에 누가복음의 예수처럼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절망에 찬 절규를 내뱉는 동시에 하나님을 믿고 온몸을 맡긴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에, 예수가 마지막에 남긴 말마저 완전히 다른 뜻을 갖게 된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까지 이런 식으로 짜깁기하면 예수가 괴상망측하게 합성된 인물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이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의 이야기에 접근하면 결국 저자의 양심을 빼앗는 짓이고, 저자가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던 의미까지 빼앗게 된다.
      _ 3장 “다른 관점, 다른 믿음, 다른 메시지” 중에서  접기
    • 네 복음서는 익명으로 쓰였고, 저자들 중 누구도 자신이 목격자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마태복음’처럼 복음서 제목에 이름이 붙어 있긴 하지만, 사실 그 제목들은 나중에 붙여진 것이다. 즉 복음을 다른 식으로 해석한 권위자가 누구인지 독자에게 알리기 위해 편집자가 덧붙인 제목이다. 복음서가 처음 쓰였을 때 현재의 제목이 아니었다는 점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분명해진다. 마태복음을 쓴 저자는 자신의 책에 ‘마태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Mattew’이란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마태복음’이란 제목을 붙인 사람들이 그 복음을 마태가 썼을 거라고 생각한 것뿐이다. 저자들은 복음서 제목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_ 4장 “누가 성경을 기록했을까” 중에서  접기
    추천글
    • 바트 어만이 내놓은 또 하나의 충격작 《예수 왜곡의 역사》는 예수와 성경에 얽힌 거짓과 진실을 낱낱이 파헤친다. 
      - 뉴욕 타임스 
    • 성경의 진실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있는 《예수 왜곡의 역사》는 동조와 비판 사이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보스턴 글로브 
    저자 및 역자소개
    강주헌 (옮긴이)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고,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뛰어난 영어와 불어 번역으로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키스 해링 저널》, 《문명의 붕괴》,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슬럼독 밀리어네어》,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등 100여 권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강주헌의 영어번역 테크닉》 등이 있다.
    출판사 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가 과연 진짜 예수일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널리 읽히며 가장 존경받는 책, 성경. 대다수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성경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영감이 배어 있으므로 성경에는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말로 성경에는 그 어떠한 오류도 없을까?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일까? 예수가 스스로 삼위일체를 말하고 저 하늘 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설교했을까?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 연구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바트 어만의 최신 화제작 《예수 왜곡의 역사》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로 성경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경종을 울린 저자는, 성경에 대한 근본주의적 해석이 지배적인 현실에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주장을 내놓았다. 바로 기독교의 전통 교리와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상 성경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연극으로 등장하는 예수의 생애가 네 복음서의 교묘한 짜깁기에 불과하며, 신약성경 27권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에 의해 작성된 것은 8권뿐이라고 주장한다.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의 제자나 그들의 동역자로 알려진 마태와 마가, 누가 등이 아니다. 또한 고통받는 메시아나 예수의 신성, 삼위일체, 천국과 지옥 같은 기독교의 전통 교리는 모두 예수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대 기독교인의 발명품일 뿐이다. 심지어 저자는 그 당시 예수와 제자들이 가르친 종교와 지금의 기독교가 전혀 다른 종교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훗날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제멋대로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경의 모순에 가려진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찾아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거부하고 성경이 쓰인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집중적으로 추적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성경의 실제 저자는 누구일까?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성경을 썼을까? 그 시대에 성경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당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은 그들이 성경을 작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당시의 맥락에서 의도했던 내용이 지금 해석되는 내용과 다를 가능성은 없을까?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원래의 메시지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네 복음서를 수평적으로 비교하여 읽어보면,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탐독했던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모순과 불일치를 깨닫게 된다. 놀랍게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가계도는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도 모순이 발견된다. 마태복음의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신할 때 누가복음의 예수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두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가 죽은 일시에 대해서조차 각각 다르게 말한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유월절 아침 9시에 죽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그 하루 전날에 죽은 것으로 나오는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초기 기독교 문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이런 각각의 사례에 대해 부인할 수 없는 도발적 증거를 제시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단 문헌의 대조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체는 독자들이 성경에 담긴 인간의 해석과 실수를 추적해 나가는 데 매력적인 나침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인간의 실수가 빚어낸 신의 책 다시 읽기
    도대체 왜 성경 저자들은 예수에 대해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을까? 성경 저자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예수의 추종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이 중요한 쟁점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써냈다. 일례로 요한복음이 나머지 세 복음과 달리 예수를 인간에서 신으로 격상시킨 것은 예수 사후에 발달된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바울 공동체처럼 일찍부터 예수가 신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인 공동체도 있지만, 마태나 마가 공동체처럼 받아들이지 않은 공동체도 있었다.
    이처럼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성경을 읽으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띈다. 이를 통해 모순과 차이, 잘못된 주장, 불가능한 선언, 해로운 이데올로기까지 모두 찾아낼 수 있다. 성경에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성경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간에 전 인류가 반드시 읽고 연구해야 마땅한 책이다. 성경을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우리가 왜 여기 있고 무엇을 해야 하며 이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성찰할 수 있고, 성경이나 현대인의 머릿속에 박제된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인 예수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성경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역사적 예수를 만나는 데 공헌한다. 성경의 모순에 진지한 물음표를 던짐으로써, 우리는 한층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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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dgusa 2014-12-11 공감(3) 댓글(0)

알라딘: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바트 어만 (지은이)

알라딘: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바트 어만 (지은이),강창헌 (옮긴이),오강남 (해제)갈라파고스2015-12-07
원제 : How Jesus Became God: The Exaltation of a Jewish Preacher from Galilee (2014년)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484쪽

책소개

반역죄로 십자가에 처형된 벽촌 갈릴래아 출신의 가난한 유대인 예언자는 어떻게 인간에서 신으로 승격되었을까? 저자 바트 어만은 이러한 질문들에 신앙인이 아닌 역사가로 대답한다.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이루어진 극적인 전환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를 하느님이었다고 주장한 이유뿐 아니라, 그들이 이 주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했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내준다. 이를 위해 무엇이 역사적 사실이고 그렇지 않은가를 규명한다.

저자는 예수의 신성이 교회의 교의가 되는 데 걸린 300년의 과정을 재미있는 한 편의 소설처럼 펼쳐낸다. 아울러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놀랍고 복잡한 주제를 누구나 읽기 쉽게 전달하고 있으며, 다양한 예수관에 대해 선명하고 균형 잡힌 논의를 제공해준다.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서 인류의 중요한 정신적 자산인 한 종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접할 수 있으며, 아울러 그리스도교의 기본원리가 성립해가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서양의 문명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기초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목차
서문: 그리스도교의 궁극적 질문에 대한 역사적 탐구

1장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성한 인간들
2장 고대 유대교의 신성한 인간들
3장 예수는 정말로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했나?
4장 예수의 부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5장 예수의 부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6장 하느님의 아들이 된 예수
7장 세상으로 내려온 예수
8장 신약성서 이후, 갈 길이 막힌 2,3세기 그리스도론들
9장 니케아 공의회, 예수 완전히 하느님이 되다
맺음말: 역사적 예수에서 신으로, 그 여파

감사의 말
해제: 역사적으로 “재맥락화”된 예수?오강남
옮긴이의 말
성서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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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학생들에게 신약성서 개론을 가르칠 때마다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고 말한다.
P. 7 역사가인 나는 더 이상 ‘하느님이 어떻게 인간이 되었나’ 하는 신학적 문제로 고민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이 되었나’ 하는 역사적 질문에 관심을 갖는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전통적인 답변은 ‘예수는 실제로 하느님이었고, 자신이 하느님이었다는 것을 가르쳤으며, 항상 하느님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말 이후 역사가들은 이러한 진술이 역사상 예수에 대한 올바른 견해가 아니라고 주장했고, 자기들의 입장을 규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강력한 논거들을 제시했다. 만일 이들이 옳다면 우리에게는 당혹스런 문제가 남는다. 예수가 하느님이라는 신앙은 어떻게 발생했는가? 왜 예수의 초기 제자들은 그를 하느님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는가?  접기
P. 63 황제숭배와 그리스도교는 단순히 병행적으로 이루어진 발전이 아니었다. 이것은 하나의 경쟁이었다. 진짜 신인神人은 누구인가? 황제인가, 예수인가? 나는 그 순간에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진공상태에서 하느님 차원으로 올린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신이 살던 환경과 대화하면서 그 영향 아래서 예수를 신으로 받들었던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다른 이들이 이미 그렇게 생각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것이 번개처럼 나를 내리쳤다.  접기
P. 171~172 과연 우리는 부활 사건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이 시점에서는, 역사가들이 설령 개인적으로 부활을 믿더라도, 예수가 정말 육체적으로 죽음에서 일으켜졌음을 긍정하기 위해 역사학적 훈련을 통해서 익힌 지식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나는 역사가든 누구든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 때문이지 역사학적 연구 때문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싶다. 그리고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도 역사학을 토대로 부활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도 강조하고 싶다. 예수 부활을 믿거나 믿지 않는 문제는 신앙적 사안이지 역사적 지식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접기
P. 273 후대 신학자들은 ‘낮은’이나 ‘입양’ 그리스도론이 부적절하다고 여겼지만, 나는 처음에 이 관점을 유지했던 사람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는지 간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예수는 ‘단지’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된 존재가 아니었다. 이 강조점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그들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로 예수가 고양되었다고 믿었다. 그는 불가능할 만큼 높이 고양된 상태로 들어올려졌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는 만물을 지으셨고 만백성을 심판하실 전능하신 하느님 다음 지위로 격상되었다. 예수는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낮은 이해도 열등한 이해도 아니었다. 놀랍고 엄청난 관점이었다.  접기
P. 340~341 역사가들은 진리에 대한 초기의 논쟁을 묘사하기 위해서 정통, 이단, 이설 같은 용어들을 사용한다. 그 이유는 역사가들이 궁극적으로 옳은 쪽을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유력한 쪽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최후에 승자가 된 쪽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어야 할 것을 결정했고 ‘정통’이라 불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체로 유력한 관점을 내세웠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이 옳다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현대의 역사적 관점에서 ‘이단’ 또는 ‘이설’은 그저 논쟁에서 진 관점일 뿐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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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놀랍고 복잡한 주제를 누구나 읽기 쉽게 전달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예수관에 대해 선명하고 균형 잡힌 논의를 제공한다. - 일레인 페이절스 
어만은 무엇보다도 지적 정직성을 우선시한다. 그가 신비성을 제거하는 주제에 대하여 성서학자들은 종종 모호한 말을 쓴다. 신앙인이든 비신앙이든 이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존 콜린스 
어만은 또 해냈다! 생동적이고 도발적인 이 책에서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그리스도론과 그것이 담고 있는 미묘하고 폭넓은 논의를 제공하고 있다. 어만은 예수를 묵시적 설교가이자 인간으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완전히 신적인 존재로 보게 되는 변화를 추적하면서, 성서적·비성서적 문헌을 해석하는 뛰어난 기술을 보여준다. 이 책은 뛰어난 학자가 쓴 중요하고 이해하기 쉬운 저술이다. - 마이클 쿠간 
고대 유일신론은 유일하신 하느님이 어떻게 ‘아들’을 가질 수 있도록 허락했는가? 어만은 천사들과 우주적 세력들과 무수한 반신적(半神的) 존재들로 가득한 유대교적 세계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이 세계에는 자그마한 메시아적 분파를 위해 죽음에서 일으켜진 나자렛 예수도 있었다.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는 니케아 이전의 전체상을 생동적으로 보여준다. - 폴라 프리드릭슨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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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바트 어만 (Bart D. Ehrman)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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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인 성서학자 중 하나로 그리스도교의 역사·문헌·전통에 대한 뛰어난 해설가다. 어만의 저작은 옹호자들과 비판자들 사이에서 계속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성경 왜곡의 역사』, 『예수 왜곡의 역사』,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를 비롯해 3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CNN, NBC 및 역사채널(History Channel) 같은 텔레비전과 미 공영라디오(NPR) 프로그램에 출연해 복잡한 성서의 세계를 대중에게 명쾌하고 수월하게 풀어 주는 역할을 해 왔다. 또 《타임》, 《뉴욕타임스》, 《뉴요커》, 《워싱턴포스트》 등 매체에도 지속적으로 기고해 왔다. 누리집 http://www.bartdehrman.com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접기
최근작 : <두렵고 황홀한 역사>,<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고통, 인간의 문제인가 신의 문제인가> … 총 134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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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헌 (옮긴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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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학교와 서강대학교에서 신학과 종교학을 공부했으며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에서 그리스 교부들의 신화(神化)사상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재야 종교·신학 공부모임인 신앙인아카데미의 사무국장으로 10여 년간 활동했으며, 『신 백과사전』 『악마 백과사전』 『거룩한 책읽기』 『수도원 산책』 외에 여러 책을 옮겼다.
최근작 : … 총 1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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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해제)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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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며,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동안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 서강대 등에서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종교 너머, 아하!”(공저)가 있으며,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아하! 오강남 교수가 속담에서 건진 작은 깨달음”,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최근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을 펴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예수의 기도”, “마지막 강의”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코로나 이후 예배 설교 미래 리포트>,<매거진 G 1호 나란 무엇인가?>,<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 총 64종 (모두보기)
인터뷰 : 예수는 없지만 예수는 있다 - 200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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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어떻게 그리스도교는 갈릴래아의 가난한 예언자를 신으로 받들게 되었는가?
2천 년간 이어온 예수 신화(神化)의 밑동을 들여다본다.
바트 어만은 가장 논쟁적이면서 대중적인 베스트셀러 성서학자로서, 8년간 연구 성과인 이 책을 통해 인간 예수를 둘러싼 숨겨진 이야기들을 드라마틱하게 펼쳐내고, 그리스도교의 궁극적 질문에 대한 역사적 탐구를 전개한다.

세계 최대의 종교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리스도교는 창시자인 예수가 하느님이라는 주장을 가장 핵심적인 교리로 삼는다. 반역죄로 십자가에 처형된 벽촌 갈릴래아 출신의 가난한 유대인 예언자는 어떻게 인간에서 신으로 승격되었을까? 바트 어만은 이러한 질문들에 신앙인이 아닌 역사가로 대답한다.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이루어진 극적인 전환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를 하느님이었다고 주장한 이유뿐 아니라, 그들이 이 주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했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내준다. 이를 위해 무엇이 역사적 사실이고 그렇지 않은가를 규명한다. 생동감 있고 도발적인 이 책은 예수의 신성이 교회의 교의가 되는 데 걸린 300년의 과정을 재미있는 한 편의 소설처럼 펼쳐낸다. 아울러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놀랍고 복잡한 주제를 누구나 읽기 쉽게 전달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예수관에 대해 선명하고 균형 잡힌 논의를 제공해준다. 오로지 교회에서 가르쳐주는 정통 시각 한 가지만이라는 믿음을 강요받으면서도 거기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던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이처럼 역사적 접근에 의한 성찰을 제시한 이 책은 또 다른 대안으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신자가 아닌 일반인은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서 인류의 중요한 정신적 자산인 한 종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아주 드라마틱하고 수월하게 접할 수 있다. 아울러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그리스도교의 기본원리가 성립해가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서양의 문명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기초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 책 내용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그리스도교의 궁극적 질문에 대한 역사적 탐구
저자 바트 어만은 오늘날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인 성서학자이자 그리스도교의 역사·문헌·전통에 대한 뛰어난 해설가다. 그의 저작은 옹호자들과 비판자들 사이에서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8년 동안 연구하고 펴낸 이 책에서, 반역죄로 십자가에 처형된 갈릴래아 출신 묵시론적 예언자가 만물을 창조한 유일한 하느님과 동일하게 여겨지게 된 이유를 역사적 과정에서 밝혀낸다. 예수의 이러한 변모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예수는 어떻게 유대인 예언자에서 하느님으로 전환되었나? 어만은 이러한 질문들에 신앙인이 아닌 역사가로 대답한다.

「1장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성한 인간들」에서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밖 그리스와 로마 세계가 폭넓게 공유했던 신성한 존재들과 인간들이 겹쳐지는 신적 영역을 다룬다. 이를 통해 예수뿐만 아니라 신처럼 받들어졌던 다른 인물들을 확인해보게 된다.

「2장 고대 유대교의 신성한 인간들」에서는 고대 유대교 세계 내부에 존재했던 신성한 인간들이 부각된다. 고대의 많은 유대인들은 천사 같은 신성한 존재들이 인간이 될 수 있으며 인간도 신성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어떤 인간들은 실제로 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러한 점은 성서 이외의 문헌뿐만 아니라 성서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3장 예수는 정말로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했나?」에서는 역사상 예수의 삶을 살펴본다. 저자는 복음서들이 제기하는 문제점들을 논의하면서, 예수를 묵시론적 예언자로 바라볼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수가 수행한 공적 직무의 기본 취지를 다룬 다음, 유대의 로마 총독 본티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된 사건들에 대해 논의한다. 여기서 저자는 ‘예수는 자신을 어떻게 이해했고 묘사했는가?, 예수는 정말로 자기 자신을 신적 존재로 이야기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예수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4장 예수의 부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서는 역사적 관점에서 ‘부활에 대하여 실제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예수의 부활과 관련해 아리마태아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거두었고 셋째 날에 일부 여성제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다는 이야기 등은 확실한 역사적 자료로 볼 수 없다고 한다. 결국 역사가들이 예수 부활에 관한 전승에 대하여 알 수 없다는 것이다.

「5장 예수의 부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에서는 그럼에도 부활과 관련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을 거론한다. 저자에 따르면 예수의 몇몇 제자들이 예수가 죽은 후 그가 살아 있음을 보았다는 주장은 증거가 분명하고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 ‘환시’를 보았는가? 그들은 언제 예수 환시를 보았는가? 그리고 그들은 환시를 어떻게 해석했는가? 등을 추적해간다.

「6장 하느님의 아들이 된 예수」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은 초기에 환시 체험에 기반을 둔 부활신앙을 통해서 예수가 하늘로 들어올려졌고, 하느님의 외아들로서 그분 오른편에 앉아 있다고 믿게 되었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 신조들이 예수를 신적 존재로 이해한 첫 번째 그리스도론들이다.

「7장 세상으로 내려온 예수」에서는 후대에 발전되고 유지되어온 여러 그리스도론적 관점들을 다룬다. 이 관점에서 예수는 단순히 신성의 차원으로 고양된 인간일 뿐 아니라, 지상에 인간으로 오기 전에 하느님과 함께 있던 선재하는 신성한 존재였다. 저자는 이러한 ‘육화’ 그리스도론과 더 이른 시기의 ‘고양’ 그리스도론 사이의 주요 유사점과 차이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쓰인 정경 복음서인 요한복음서에서 육화와 관련된 핵심 구절을 탐구한다.

「8장 신약성서 이후, 갈 길이 막힌 2,3세기 그리스도론들」에서는 2,3세기 그리스도론의 복잡한 양상을 다룬다.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논쟁은 3세기 말에도 해결되지 않았으며,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곪아터지게 되었다. 당시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하느님이라고 믿었지만 여전히 ‘어떤 의미에서?’라는 의문은 그대로 갖고 있었다.

「9장 니케아 공의회, 예수 완전히 하느님이 되다」에서는 아리우스 논쟁과 니케아 공의회의 과정을 통해 어떻게 그리스도교 교리가 정립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초기에 우세했던 아리우스의 입장은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이단으로 몰린다. 이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항상 함께 존재했으며 본성상 하느님과 동등하다는 입장이 정립된다.

「맺음말: 역사적 예수에서 신으로, 그 여파」에서는 이 특별한 신학 논쟁이 해결된 이후의 결과를 다루었다. 그러나 이 논쟁들은 그 이전 역사를 파악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역사기록에 담겨진 특별히 핵심적인 그리스도론적 질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밝힌다.

역사적 예수를 찾아서,‘신이 어떻게 인간이 되었나’에서 ‘인간이 어떻게 신이 되었나’로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에는, 나자렛 예수가 하느님이었고 지금도 하느님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오늘날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인 성서학자이자 그리스도교의 역사·문헌·전통에 대한 뛰어난 해설가인 바트 어만은 이 책을 통해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신학적 차원이 아닌 역사적 차원에서 다루면서 예수의 신성이 교회의 교의가 되는 데 걸린 300년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바트 어만 자신이 더 이상 ‘하느님이 어떻게 인간이 되었나?’ 하는 신학적 문제로 고민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이 되었나?’ 하는 역사적 질문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을 제기한다.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이루어진 극적인 전환들은, 제자들이 예수를 하느님이었다고 주장한 이유뿐 아니라, 그들이 예수의 신성을 다양하게 이해했다는 사실도 드러내준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놀랍고 복잡한 주제를 누구나 읽기 쉽게 전달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예수관에 대해 선명하고 균형 잡힌 논의를 제공한다.
예수가 하느님이었다고 주장하도록 이끈 것은 부활신앙이었다. 바트 어만은 예수가 정말로 부활했는지는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의 일부 추종자들이 예수가 죽음에서 일으켜졌음을 믿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약 예수가 부활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예수는 오늘날 실패한 유대교 예언자로만 알려졌을 것이다. 이처럼 바트 어만은 무엇이 역사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그럴 수 없는가를 구분하면서 역사적 예수를 둘러싼 숨겨진 이야기들을 추적해간다.

무엇이 예수를 신으로 만들었는가?, 예수 신화(神化)의 역사적 연원
신약성서와 초기 그리스도교에 대해 지난 200년간 현대 학문이 중요하게 발견한 것 중 하나는 예수 생전에는 추종자들이 그를 하느님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교사나 랍비, 심지어 예언자로 보았으며, 몇몇은 예수를 아주 인간적인 메시아로 생각했다. 바트 어만은 예수 추종자들이 예수 생전에 그를 하느님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예수 자신도 하늘에서 온 신성한 존재라고 하지 않았음을 주장한다.

확실히 예수는 누구였던가? 이른바 ‘그리스도론’은 신학이나 종교학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문제 중 하나다. 예수가 누구였던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그만큼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지금의 네 복음서마저도 예수가 누구였던가 하는 데 대해 동일한 대답을 주고 있지 않다.
바트 어만은 인간 예수를 신으로 보는 믿음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한 역사적 과정을 다음과 같이 추적한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 심지어 유대인들에게까지도, 인간이 신이 되기도 하고 신이 인간이 되기도 하며, 위대한 인물은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라 보는 시각이 보편적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스스로를 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믿었기에 예수를 신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확실히 예수가 신이 된 연유는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제자들의 믿음과 관련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정말로 예수가 부활했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저자가 주장하듯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공관복음서(마르코, 마태오, 루가복음)에서는 초기 제자들의 예수 신앙과 달리 예수가 세례나 출생에 의해서 하느님의 아들로 ‘고양’되었다고 믿었다. 바트 어만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사후 몇 년간 그들의 예수관을 발전시켰을 때, 가장 초기의 고양 그리스도론이 아주 빨리 육화 그리스도론으로 변형되었다고 주장한다. 바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에 온 하느님의 천사로 보고 그의 선재성을 강조했다. 요한복음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가 선재하는 하느님의 육화(肉化)라 보았는데, 기본적으로 육화 그리스도론이 결국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이런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친 다음,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예수에 관한 논쟁 중 이긴 편이 된 정통설들과 진 편이 된 이단설들을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일부 사상가들은 예수가 온전히 인간이었지만 신은 아니었다고 주장했고, 다른 이들은 예수가 온전히 신이었지만 인간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실상 두 존재였다고 하면서 한편으로 신이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인데 예수의 공생활 동안에만 일시적으로 결합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모든 관점은 철저하게 ‘이단’으로 선포되었다.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에서 모든 것이 정리된다. 콘스탄티누스는 자기가 일치된 교회를 이루었다고 믿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 아버지와 영원히 공존한다. 그는 항상 존재했고 하느님 아버지와 “동일본질”이며, 과거로부터 영원히 참된 하느님이다’라는 교리가 정립된다. 바트 어만은 니케아의 그리스도는, 당국의 권위에 대항하고 국가에 반대한 죄로 갑자기 십자가형에 처해진 갈릴래아 벽촌의 묵시론적 방랑 설교자인 역사적 예수와는 전혀 다르며, 그의 실제 삶과 상관없이 예수는 이제 완전히 하느님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재맥락화, 예수에 대한 이해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바트 어만은 이처럼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벽촌인 갈릴래아의 한 예언자가 어떻게 신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예수가 진공상태에서 하느님 차원으로 격상된 것이 아님을 당시의 시대적 맥락 속에서 밝혀낸다. 예수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살던 환경과 대화하면서 그 영향 아래서 예수를 신으로 받들었던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그를 신성하다고 이해하기에 이르렀는가?’ ‘그들이 십자가에 처형된 갈릴래아 출신 설교자 예수를 하느님이라고 생각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런 질문들과 당대의 논쟁은 이전 역사를 파악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시대별로 예수를 이해하는 방식에는 변화가 있었다. 바트 어만은 이를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항상 예수를 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해왔다”고 표현한다. 예수의 첫 추종자들은 예수가 죽음에서 일으켜졌고 하늘로 고양되었다고 믿게 된 이후에 예수를 재맥락화했다. 그들의 예수는 이전의 예수가 아니었으며, 그들은 자기들이 마주친 새로운 상황에서 예수를 이해했다. 후대의 신약성서 저자들도 자신의 상황에서 예수를 재맥락화하고 이해했다. 예수를 묵시론적 예언자라기보다는 인간이 된 신성한 존재로 이해했던 2,3세기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다. 예수가 항상 존재했으며 지위와 권위와 능력에서 하느님과 항상 동등했다는 입장을 견지한 4세기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했다. 바트 어만은 오늘날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예수를 재맥락화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바트 어만은 예수의 신격화 과정에 대한 논의를 펼칠 때 개인의 정신적, 영적 여정이 어떠했는가를 연관시키면서 이야기해간다. 저자의 진솔한 자기 고백은 이 책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매우 적절하게 작용한다. 자신이 비록 불가지론자로서 예수를 인간으로 보게 되었다고 하면서도 예수가 선언한 윤리적 원칙들을 “재맥락화”하여 그 원칙들을 자기의 삶 속에 체화했다는 고백은 귀담아들을 만한 메시지다. 예수의 가르침은 시대를 통해 언제나 재맥락화되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리라는 그의 통찰은 우리에게 더욱 열린 지평을 보여준다.

예수를 보는 시각이 오로지 교회에서 가르쳐주는 정통 시각 한 가지만이라는 믿음을 강요받으면서도 거기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던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이처럼 역사적 접근에 의한 성찰을 제시하는 이 책이 또 다른 대안으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사성이 배제된 강고한 신학적 입장이 가져온 배타성을 환기시키는 데에도 일정 정도의 효과를 기대한다. 신자가 아닌 일반인은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서 인류의 중요한 정신적 자산인 한 종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아주 드라마틱하고 수월하게 접할 수 있다. 아울러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그리스도교의 기본원리가 성립해가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서양의 문명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기초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접기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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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온타스 2016-06-1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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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는데.. 내용은 괜찮다. 그런데 번역이 좋지 못하다. 번역자는 하느님과 하나님도 구분 못하나? 최장수자를 최연장자라하고. 이상한 번역이 많다. 신학공부보담 어학공부를 더 해주기 바람. 번역 땜에 평점이 낮다.  구매
sumoverpath 2015-12-16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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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해제를 하신 `오감남`이라는 분을 믿고 선택했고 읽으면서 젊었을 때 종교에서의 자유로움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음. 하지만 그분이 번역한 책이나 쓴 책에 비해 내가 받아들이기엔 전달하는 방식에서 건조함을 많이 느꼈음.  구매
alsgml55 2016-02-12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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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문외한으로서 8.9 장에 씌여진 삼위일체론을 포함한 예수의 신격문제에 대한 오랜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독일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했고 책까지 출판한 모 교수가 삼위일체는 신비라고 이해하라는.....  구매
北斗七星 2018-07-2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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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에 대한 역사적 고찰 새창으로 보기

논쟁적 성서학자 바트 어만의 책이다.

이 책은 초기 기독교에서 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나님이 되었는지를 논쟁적으로 그려낸다.

즉 초기 기독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기존의 조직신학자나 성서학자들의 견해를 반박한다.

신앙의 견해가 아닌 역사가의 관점으로 성서와 다른 자료를 활용한다.

그리하여 독창적이고도 신선한 통찰을 보여준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하나님은 어떻게 예수가 되셨나』(좋은씨앗, 2016)에서 구체적으로 반박된다.

두 책을 함께 보면 다양한 견해와 층위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지점에서 자신이 서 있을지 알아보는 기회도 될 것 같다.

 






"오늘날 우리는 신성의 영역, 신의 영역을 완벽한 타자이자 인간의 영역과 분리되었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은 위쪽 하늘에 있고 우리는 아래쪽 여기 땅에 있으며, 둘 사이에는 무한한 틈이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대다수 고대인은 신성의 영역과 지상의 영역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신성의 영역에는 다양한 층이 있었다. 어떤 신들은 다른 신들보다 "더 신성하다" 고 할 수 있으며, 인간도 때로는 신들의 계급으로 고양될 수 있었다. 게다가 신들은 스스로 인간에게 내려올 수 있었으며 때로는 인간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정말 내려왔다. 신들이 이런 일을 할 때는 흥미로운 결과가 생기거나, 불행을 겪고서야 알게 된 프리기아의 불친절한 거주자들처럼 불길한 결과가 빚어졌다.
"

- P30

"사람들이 아폴로니우스를 선재하던 신이 육화한 존재로 여기기는했지만, 신성한 인간이 필멸의 존재로 태어나는 방식은 그리스나 로마의 일반적인 이해방식이 아니었다. 훨씬 일반적인 관점은, 탄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신성한 존재가 세상에 들어오는 방식이었다. 왜냐하면 신이 인간과 성관계를 가지면 그 자손은 어떤 의미에서 신성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행위를 제일 많이 저지른 신은 바로 제우스였는데, 그는 하늘에서 내려와 매력적인 여성과 색다른 성관계를 갖고 무척 유별난 임신을 하게 한다. 그러나 제우스와 필멸하는 그의 연인들 이야기는 단순한 오락거리용 신화가 아니다. 때로 알렉산더 대왕(서기전 356~323)처럼 실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 - P32

"고대적 사고방식에서 인성과 신성은 하나의 수직적 연속체이며, 이 두 연속체는 때로는 높은 차원에서(고급스럽게) 때로는 낮은 차원에서(저급하게) 통합된다."
- P51

"신약성서와 초기 그리스도교에 대해 지난 200년간 현대 학문이 중요하게 발견한 것 중 하나는 예수 생전에는 추종자들이 그를 하느님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교사나 랍비, 심지어 예언자로 보았다." - P57

"유대교 안에도 신성한 존재와 신성한 권력에 속하는 연속체가 존재한다고 이해했으며, 이들은 여러 면에서 이교의 신성한 존재들과 비섯하다. 이것은 엄격한 유일신론적 저자들에게도 진실이었다." - P69

"성서에서 주님의 천사는 때로는 하느님으로 그려지고, 때로는 인간 모습으로 지상에 나타난다. 신성한 모임을 구성하는 천사들은 신들이라 불리지만 필멸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다른 천사들은 지상에서 인간 형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더 중요하게도 일부 유대교 문헌은 죽어서 천사가 된 인간이나 천사들보다도 더 뛰어난 인간에 대해 말한다." - P77

"필론에게 로고스는 하느님 밖에 존재하는 무형의 존재이지만 하느님의 사유 능력이다. 때로 로고스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알 수 있고 하느님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람처럼" 나타나는 하느님의 실제적 모습이다. 어떤 의미에서 로고스는 하느님과 다른 신성한 존재이지만, 또 다른 하느님이기도 하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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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찌모찌 2020-08-20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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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신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 새창으로 보기
제목이 주제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2천년 전 갈릴리를 떠돌던 묵시론적 방랑 설교가는 어떻게 하여 창조주 하느님과 동일시 되고 경배를 받게 되었는가?
아빠는 한때 목회자의 길을 가려고 신학을 공부했던 분인데 현재는 완전히 돌아서서 예수는 한 번도 자신이 신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인간을 어떻게 신으로 섬기겠냐면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이해해도 예수 자체를 섬기는 기독교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선 말에 태어났으면 순교했을 게 틀림없을 정도의 열렬한 신앙을 가진 엄마와의 갈등에 대한 반발심에 극단적인 주장을 펴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랬다.
역사적 예수는 본인이 신이라고 주장하지 않았고, 오히려 곧 세상이 멸망할 것이고 하느님의 왕국을 세울 메시아 정도로 생각했던 듯 하다.
국가반란죄로 허망하게 처형당한 후 제자들 사이에서 부활했다고 믿어지면서 가장 먼저 쓰여진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가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됐다고 했다.
다음에 쓰여진 마태오와 루가 복음에서는 예수가 태어날 때 신이 됐다고 믿었고, 가장 마지막에 쓰여진 요한 복음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선재한 존재로 인간의 몸을 통해 육화됐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위일체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는 점점 더 창조주 하느님에 가까이 다가가 그가 처음부터 존재한 이, 하느님의 또다른 위격이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유일신을 주장하면서 예수와 하느님을 각각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 일인가?
간단하게 삼위일체라고 이해하지만 명백히 예수는 역사적인 실존 인물이고 하느님과 또다른 존재이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예수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러 온 높은 천사 정도로 이해했다고 한다.
유일신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유대교와 예수를 신이라고 믿는 기독교는 명백히 다른 종교인 셈이다.
무조건적 믿음이라는 신앙적 당위성을 전제하는 신학적 관점과, 객관적 증거를 갖춰야 하는 역사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도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이른바 근본주의자들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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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16-05-31 공감(4)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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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6
읽는데 한 달이나 걸렸는데 지루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자기 전에 침대에 엎드려 잠 올 때까지 읽었는데 고작 하루에 고작 `몇 페이지`밖에 진도를 못낸 걸 보면 뭐 흥미진진해서 잡은 즉시 밤새울 정도로 재밌었던 건 아니었나 보지만.

예수의 죽음부터 니케아 공회의까지, `인간`으로 나서 (어쩌면 자신의 의도와 다른) 신이 된 예수의 변모를 역사적으로(즉 과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시적이고 명확한 증거 자료를 바탕으로) 추적해서 보여주는 책.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학과 신학은 다른 영역이고 자신은 오직 역사적으로만 고찰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문제가 ˝정답˝이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가 신앙인이었을 때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는 논리적-이성적으로 따져서 납득해야 하거나 그렇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러니까 그저 믿어야만 하고 ˝믿음이 곧 증거˝가 되는 류의 ˝사실`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신앙을 떠나서 생각해보니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에 별 생각없이 복종하였던 것 같다. 신앙의 본질이 그런 것 아닌가? 순종, 복종말이다.
하지만 진실한 신앙이라면 자신이 순종하는 대상을 잘 알고 분별해야 하겠지. 그래서 삼위일체의 문제가 그렇게 중요해진 거겠다. 하지만 예수가 오직 신적인 존재였는지 혹은 오직 인간일 뿐이었는지 하는 문제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 중 지극히 작은 이에게 네가 베푼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는 그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문제보다 중요할까? 신앙에 관한 한, 같은 것을 믿는다면 `어떤 의미에서, 왜` 그것을 믿는지를 굳이 물어야하는 걸까? `삼위일체`는 확실히 `인간이 논리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패러독스임에 틀림없다. 그런 패러독스를 `믿는 것이 보는 것`으로 밀어붙이면서 이웃을 사랑하기는 커녕 원수로 만들고 끝내는 죽이는 것이 과연 신앙일까?

요즘 우리나라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보면 신앙의 진정한 대상에 대한 성찰도 중요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건지, 목사/사제나 교회라는 `제도`와 그 `제도`의 기득권인지 진지하게 자문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자기성찰은 물론 무슬림에게도 유대인에게도 똑같이 요구된다. 특히 그리스도교인과 무슬림과 유대인은,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니 우리는 이웃! 에서 끝나면 안 되나?

깊이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글을 써야하겠지만 몸에 밴 게으름을 어쩌지 못해 스맛폰에다가 이틀 동안 두들김. 다 읽고 나서 글을 쓰게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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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sum 2016-02-19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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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이쪽 분야는 뭘해도 비난이 난무하는 곳이라 평이나 소개서. 심지어는 책내용까지도 걸러가며 읽는게 맘이 편해진다. 우선 신이라는 단어가 기원 전후에 어떻게 쓰여졌는지 알게 되었다. 볼프의 [알라]를 읽고 난 후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에 관해 좀 더 알고 싶었으나 여전히 어려운 개념?으로 남았다.
monospace 2016-11-1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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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천당! 불신지옥! 닥치고 믿기나 해? 새창으로 보기 구매
거리에서 가끔 들을 수 있었던 예수천당! 불신지옥!

밑도 끝도 없이 그냥 외쳐대는 구호~

닥치고 믿어봐. 의심은 사탄이 주는 마음이니라. 아직 믿음이 작아서 그래요.

합리적 의심을 믿음의 크기와 사탄의 마음으로 치부해 버리는 분위기와 뭔가 다르게 생각하면

이단이라고 단죄해 버리는 분위기.

정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그들만의 리그인가. 시간이 갈수록 교조적이 되어버리는 보수인지

수구인지 알 수 없는 교인들..

자신들과 다르면 무조건 이단이며,,자유주의 신학이라며 공격하고

한 걸음 떨어져서 생각해 보면..너무나 당연한 의문점들인데.

성경이 하늘에서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것이 아닌이상 저자들은 그사회의 문화와 사상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작자 본인의 목적을 위하여 글을 썼음이 분명할 진데. 그리고 지금도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진데 하물며 2000여년 전이야 말해야 무엇하랴.

기독교 신자든 불신자든 한 번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기독교의 역사를 알고 성경의 history를 아는 것 또한 교양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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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 2016-07-2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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